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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사대화 ‘물꼬’는 텄는데…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노동계와 경영계가 6일 공동으로 마련한 ‘노사대토론회’에서 노사는 노사정간 대화 복원, 비정규직법안 처리 등 노동현안에 대해 이견을 노출하며 치열한 논리대결을 벌였다. 이날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노동계는 극심한 대결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노사정 관계에 대해 정부와 사용자측에 무한책임론과 부분책임론을 제기했다. 반면 경영계는 노동장관 퇴진 등 이념·정치투쟁을 그만두라며 노동계에 쓴소리로 맞받아쳤다.●노사정 관계 시각차 여전 이석행 민주노총 사무총장은 “아시아나항공에 대한 긴급조정권 발동, 병원노조의 직권중재에서 보듯 정부가 반노동자적 정책으로 일관하고 있다.”며 “노동부가 이같은 반노동정책을 선도함으로써 노정관계의 파탄을 초래했다.”고 주장했다. 노동운동이 이념·정치투쟁 지향적이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정치투쟁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맞받아쳤다. 이 총장은 “불법파견 및 노조탄압 해소를 위해 사용자도 노력해야 한다.”며 재계에도 화살을 날렸다. 김영배 경총 상임부회장은 정부가 자본편향적이라는 노동계의 주장에 대해 “재계도 개별 노사관계를 놓고 정부와 많은 갈등을 빚고 있다.”고 반박했다. 김 부회장은 주제발표 자료를 통해 “기업이 있어야 근로자도 있고 근로자가 있어야 노조도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며 “노동부장관 퇴진 등 이념 및 정치투쟁 지향적인 노동운동에서 벗어나 전체 근로자와 함께 하는 노동조합·노동운동이 돼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또 “노동계는 ‘불법도 밀어붙이면 합법이 된다.’는 의식이 아직도 남아 있다.”면서 “어떤 이유로도 불법이 합법화될 수 없다.”고 덧붙였다. 노사간 상설적 대화협의체 구성과 노동현안에 대한 정기적인 노사대화를 갖자는 노동계의 제안에 대해 “대화는 얼마든지 가능하지만 상설협의체는 노사정 개편방향과 맞물려 있어 신중하게 생각해야 한다.”고 밝혔다.●비정규직 등 현안 해법도 달라 유재섭 한국노총 수석부위원장은 비정규직 보호입법, 노사관계 제도 및 노사정 개편방안에 대한 정부의 의지와 태도가 매우 중요하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유 부위원장은 “정부의 비정규직 입법안은 실질적인 보호법안이 아니다.”면서 “비정규직 남용의 원인을 해소하기 위한 사용사유 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등의 내용이 포함된 비정규보호입법을 조속히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연내 입법을 추진 중인 노사관계 법·제도 선진화방안(로드맵)에 대해서는 “노동기본권의 지나친 제약과 개입에 따른 비민주성을 해소하도록 방향을 재검토하고 노사가 참여하는 논의구조 속에서 핵심쟁점부터 충분한 논의가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김대환 노동부장관은 같은 날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주한유럽연합(EU)상공회의소 초청강연회에서 “노사관계 선진화 방안에 대한 입법을 위해 이번 정기국회에 관련 법안을 제출할 것”이라는 기존 입장을 거듭 강조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사설] 현대차 돈잔치 후폭풍 우려한다

    현대자동차 노조는 파업 11일만에 기본급 8만 9000원 인상, 성과급 300%, 타결 격려금 200만원, 추석귀향비 30만원에서 80만원으로의 인상 등 주머니가 두둑할 정도로 ‘눈부신’ 전과를 올렸다. 파업 덕분에 조합원 1인당 758만원을 더 챙기게 됐다는 것이다. 게다가 25년 이상 근속한 조합원은 부부동반 해외여행의 혜택을 받게 되고 자녀가 특목고에 진학한 조합원에게는 일반고 학비를 초과한 금액의 절반을 회사가 부담키로 했다고 한다. 이러니 현대차 노조가 비난 여론을 무릅쓰고 연례행사처럼 해마다 파업을 결행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물론 종업원들의 노력으로 회사 이익이 늘어나면 노사가 그 과실을 공유하는 것은 당연하다. 현대차 노사도 이번 임단협 타결안에 대해 동일한 논리를 들이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현대차의 비정규직 근로자 불법파견 실태조사에서도 드러났듯, 현대차의 기록적인 순이익은 하청업체 납품가 후려치기와 비정규직 근로자 차별에서 비롯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이번에 비정규직에 대해서도 정규직과 엇비슷한 수준의 임금 인상률을 챙겨주었다고 주장할지 모르지만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는 도리어 확대되는 등 상대적인 박탈감만 키웠을 뿐이다. 현대차의 임금 수준은 이미 생산성을 월등히 웃돌아 국제 경쟁력을 잠식하고 있다는 게 정설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우선 내 배부터 불리고 보자는 식으로 돈잔치를 벌인다면 황금알을 낳는 거위를 죽이는 결과를 빚을 수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는 사상 유례없는 흑자를 내고도 기술 개발 등 미래를 위한 투자를 늘리기 위해 기본급을 동결했다고 하지 않던가. 현대차 노사 모두가 뼈아프게 되새겨야 할 대목이다. 현대차는 임금 인상분을 차값이나 하청업체에 전가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하고 있으나 과거의 경험으로 볼 때 믿을 바가 못 된다. 현대·기아차의 시장점유율이 75%나 되는 상황에서 어떤 핑계를 동원하든 소비자와 하청업체에 부담을 떠넘길 것이 뻔하다. 국민은 현대차의 행태를 지켜보고 있다.
  •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여연스님의 재미있는 茶이야기] (9) ‘중국의 차’ 유래와 풍습

    “가을바람에 객을 보내며 마시는 고로차, 혓속 깊이 특이한 맛과 향이 남아 무한한 옛정을 느끼게 한다.” 고온(高溫)에서 불에 쬐고 말리는 홍배(烘焙)를 하는 고로차는 마치 옛정을 간직한 가을바람을 닮은 향과 맛이 풍긴다. 먼바다에서 불어오는 태풍을 한잔의 찻속에 떨어뜨린다. 차는 근원적으로 ‘평상심(平常心)’을 나누는 것이다. 그것이 혼자가 되었던 둘이 되었던 차는 ‘평상심’을 나누기 위한 ‘고요함’(靜)과 ‘맑음’(淸)을 근본으로 하고 있다. 차의 어머니는 물이다. 그 따뜻한 물속에 담겨서 찻잎이 맑은 색과 향을 뱉어내며 퍼지는 것을 한번 살펴보라. 마치 삶의 윤회를 보는 것 같지 않은가. 찻잎은 기쁘게 ‘열반’에 들며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해 버린다. 차 한잎에 한 인간의 일생이, 한 사회의 역사가, 온 우주가 담겨 있다는 말이 과언이 아닌 것이다. 차의 본향은 중국이다. 중국인들은 대략 5000년 전부터 차를 마시기 시작했다. 베이징이나 상하이 그리고 저 산간오지까지 차가 없는 중국과 중국인은 상상할 수 없다. 중국의 다점(茶店)에 가면 차 한잔을 시켜놓고 한없이 대화를 하는 사람들을 자주 볼 수 있을 정도로 차는 일상의 생활속에 깊이 침투해 있다. ●상류층선 차만 다루는 노비 두고 음용 중국의 음다풍속이 일상화된 것은 전한(前漢)시대로 본다.‘사기´에는 춘추전국시대 전한 선제때 차에 관한 기록이 있다. 왕포는 어떤 과부로부터 양혜라는 편료(便了:차를 다루는 노비)를 1만 5000냥에 사들였다.‘동약’이라는 노비매매 문서에는 편료가 해야 할 일을 적고 있다. 먼저 무도(武都)에 가서 차를 사오는 일, 손님이 오면 차를 달여 접대하는 일등을 구체적으로 적고 있다. 편료의 존재는 전한시대에 이미 쓰촨 일대에서 차가 지배층들을 중심으로 일상화되어 있음을 알게 한다. 차만 전문적으로 다루는 노비의 매매가가 1만 5000냥이란 거금이라면 차도 매우 귀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 시대의 고전인 ‘삼국지´는 그같은 사실을 잘 일깨운다. 위진시대 직전 유비 현덕은 누상촌에서 돗자리를 짜고 있었다. 돗자리를 팔러간 현덕은 당시 명차였던 ‘옥로’를 사들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옥로 값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효심이 지극했던 현덕은 어쩔 수 없이 집안대대로 물려내려오던 보검과 맞바꿨다. 그런 현덕에게 어머니는 “그 까짓 차가 뭔데 조상을 팔았는가.”하며 한탄했다 한다. 현덕이 가보인 보검과 맞바꿀 정도로 차는 귀하디귀한 품목이었음에 틀림없다. 쓰촨성을 중심으로 한 남쪽에서 주로 음용되던 차는 남북조시대를 마감하고 중국을 통일한 후 수나라가 대중화의 물꼬를 텄다. 중국의 원활한 통치와 물자교류를 위해 운하를 건설한 것이 결정적인 계기가 된 것이다. 당대에 보편화된 것은 차의 가공이다. 단병차뿐만 아니라 떡차, 조차, 산차, 말차 등 여러 제다법이 개발, 보급되기 시작했다. 중국 명차의 주인공은 사찰과 스님들이다. 중국의 차 문화는 대부분 불교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음용품으로서 차와 정신문화의 최고봉인 ‘선’이 만나 일궈낸 차문화는 이른바 ‘다선일미’라는 독특한 선차문화를 탄생시켰다. 중국에서는 “천하명산에 승려가 많고 높은 산에는 좋은 차가 난다.”고 했다. 그같은 선차문화를 통한 중국명 차와 차문화의 탄생은 마조 도일선사와 백장 회해선사에서부터 시작된다. 농경시대 중요한 생산동력인 ‘농선결합’의 자급자족적인 생산공동체는 ‘백장청규’를 만들어 냈다. 백장청규의 정신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를 먹지 않는다(一日不作,一日不食)”로 철저한 농선결합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 점에서 사찰의 ‘백장청규’는 사찰에서 차를 마시는 음다풍속과 함께 차의 재배, 제다, 그리고 상품화까지 지속적인 차 생산활동을 촉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큰 절에선 茶僧이 생산·관리 맡아 조동종의 조사중 한 분인 도응 선사가 주석했던 장시성 영수 운거산의 진여선사(眞如禪寺)에서는 1000년 동안 차를 재배해 왔다고 한다. 그 재배면적은 무려 100무(畝:1무는 300평)였고 그 차밭에서 해마다 생산되는 찬림차는 1000근이나 됐다. 또 다른 기록도 전해온다. 푸젠성 무이사에서 생산되는 무이암차 이야기다. ‘민산이록’이란 책에서는 “무이사의 승려들은 대부분 진강 출신으로 차밭을 삶터로 삼는다. 각 사찰마다 천주 사람을 차 스승으로 삼는다. 청명이 지나고 곡우가 되기까지 장시 일대에서 차를 채취하는 사람은 1만여명에 이른다.”고 적고 있다.“남조(南朝)의 480개 사찰에서는 얼마나 많은 누각이 차를 찌는 연기에 휩싸여 있나.”라는 시구(詩句)가 있을 정도다. 차에 대해 상상을 초월할 만한 기록들이다. 차를 재배한 사찰뿐만 아니라 거기에 투여된 인원, 차 생산량 등이 가공할 정도로 어마 어마하기 때문이다. 사찰에서는 명차의 생산이 당연했다. 대규모 사찰에서는 다승(茶僧)을 두고 차의 생산과 관리책임을 전문화시켰다. 차나무의 재배부터 제다까지 풍부한 경험은 대대로 이어져 왔고 그것은 명차를 만들 수 있는 기본조건을 충족시켜 준 것이다. 대표적인 명차의 산지들을 대강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웅이산 달마묘탑, 몽정산의 몽정차, 청성산의 태안사, 서안 차문화의 발상지인 종남산 정업사, 안후이성 구화산의 김지장선차, 천태산 만년사의 천태차, 천주산 마조암·장시성 석문사·보봉사·공공산 보화사·산동성 무염원지·항저우고려사지의 용봉차. 이밖에도 천목산 사자암지, 경산사, 하무산, 천호암 등 명차를 생산한 사찰들의 수는 헤아릴 수 없을 지경으로 많다. 지구상에 존재하는 그 어떤 것이든 정신을 동반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차도 마찬가지다. 약용과 음용으로 출발한 차는 중국 선불교와 만나 그 화려한 꽃을 피운 것이다.‘다선일미’로 시작되는 중국 선차의 출발은 “스님들의 가풍을 이루는 석 잔의 차”로 통할 정도로 강력한 것이었다. 사찰에서는 불법을 강론하고 대중들을 초대해 차를 음미하는 상설적인 차 공간인 ‘다당’(茶堂)을 설치했다. 또한 사찰 법당의 왼쪽 모퉁이에 ‘다고’(茶鼓)를 설치해 시간에 맞춰 다고를 울려 차를 마셨고 다두(茶頭)를 두어 찻물을 긷고 차를 우려 손님을 접대하는 일을 시켰다. 한 명 내지 몇 명의 다두는 매일 이른 새벽에 찻물을 끓여 차를 준비한다. 그들은 아침, 점심 공양이 끝난 스님들에게 차를 공양했다. 또한 수행을 하던 선승들은 좌선을 하면서 매번 향 하나가 탈 때마다 차를 마시고 정신을 집중시켰다. 차에 관한 의례도 발전했다. 새벽에 일어난 사찰의 주지 스님이 불전에 찻물을 봉양하는 ‘차탕’(茶湯), 부처님과 조사에게 올리는 ‘전차’(奠茶), 수계를 전후해 마시는 ‘계랍차’(戒臘茶), 공동으로 함께 마시는 ‘보차’(普茶) 등 차탕회를 할 때 정해진 점차(點茶)와 점탕(點湯)의식이 있었다. 중국 선사들과 사대부의 교류는 위진 시대 이래로 형성된 중요한 지적 교류의 전통이 이미 형성되었다. 이같은 전통은 선차와 문인사대부의 만남을 주선했고 민간에도 선차의 폭넓은 문화가 전파된 가장 중요한 요인이기도 했다. ●손님 격에 따라 접대차 달라 저장성 여향의 천목산맥에 자리잡고 있는 경산사의 ‘경산의 다연’은 그것을 잘 입증하고 있다. 유명한 차 산지였던 경산사에서는 해마다 봄이 되면 사찰에 귀한 손님을 초청해 다연을 열었다. 경산의 다연에는 헌다(獻茶), 문향(聞香), 관색(觀色), 상미(嘗味), 약차( 茶), 서의( 誼)로 이어지는 절차에 따라 차를 음미한다. 가장 먼저 주지 스님이 직접 차를 우려 경의를 표시한 다음 ‘다두’에게 명하여 다연에 참석한 모든 사람들에게 음미하게 하는 ‘헌다’를 한다. 다연에 참석해 차를 받은 대중들은 먼저 다완의 뚜껑을 열어 향을 맡고, 다시 다완을 들어 올려 빛깔을 살핀 다음 맛을 세 번에 걸쳐 음미한다. 그런 후 차의 향기와 빛깔에 대해 품평하고 주지 스님의 품행을 칭송한 후 불경을 독송하며 다연을 끝냈다. 경산의 다연에 참석했던 명대의 명문장가였던 왕홍 왕기 왕주 왕기 등은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 “높이 걸린 등불 아래 봄비 내리는 승방에서/차 이야기 나누노라니 마음은 한층 그윽하다/만길 용담에는 나는 듯 폭포수 쏟아지고/오봉의 학수에는 구름이 모였구나/빗돌에 새긴 황제의 글귀엔 푸른 이끼 가득한데/경산에 피어난 우담바라가 계절조차 잊게한다/능소화 마냥 아름다운 풍경에/긴 강은 동쪽 바다로 흐른다.” 당시 사찰에서는 손님들에게 차를 대접하는 것이 일상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 차 대접에도 차등이 있었다. 최상품은 부처님께 공양을 하고, 최하품은 스님들이 마셨으며 보통 손님에게는 보통차를, 최상위 손님에게는 고급차를 접대했다. 송나라때 안탕산의 한 사찰에 낙향을 한 소동파가 방문했다. 다두를 맡은 스님은 소동파의 초라한 행색을 보고 등받이도 없는 나무의자를 가리키며 “앉게.”라고 했다. 그리고 동자승에게 “차”라고 명령을 했다. 소동파와 몇 마디 이야기를 나눈 그 다두는 그가 예사롭지 않은 인물을 알아차렸다. 다두를 맡은 그 스님은 소동파를 객사로 안내하고 “앉으시지요.”권하고 동자승에게 “차를 가져오라.”고 명령했다. 결국 그 스님은 그가 유명한 소동파임을 알게 됐다. 방장에게 소동파를 인도한 그 스님은 “위로 앉으십시오, 위로 앉으십시오.”라며 환대를 했다. 동자승에게는 “향차를 올리거라.”고 명령했다. 방장과 차담을 마친 소동파가 떠나려 하자 그 스님은 글귀를 소동파에게 청했다. 소동파는 빙그레 웃으며 다음과 같은 시를 남겼다.“앉게! 앉으시지요! 위로 앉으십시오!/차! 차를 가져와라! 향차를 올리거라!”다두를 맡은 그 스님과 차 문화를 통절하게 비판하는 소동파의 기가 막힌 반전이 차인의 진정한 묘리가 어디에 있음을 알게 한다. ■ ‘분차’와 ‘나한공차’이야기 송나라 때는 투차(차의 맛과 향기 등을 품평하는 대회)의 풍속이 있었다. 투차는 본래 당나라 조정 관료들이 차의 품질을 품평하던 것이었으나 송나라 때 이르러 민간의 풍속으로까지 자리잡았다. 그런 점에서 투차는 매우 대중적인 행사였다. 이에 반해 차를 홀로 즐기는 분차(分茶)의 풍속도 있었다.‘분차’는 끓는 물에 차를 우린 다음 작은 대나무 조리로 저어 찻물의 표면에 사람, 금수, 화조, 산수, 글씨 등 묘한 형상의 무늬를 만드는 것으로 당시 차를 고급스럽게 마시던 사람들 사이에서 유행했다.‘분차’의 진수는 ‘나한공차’의 전설 같은 이야기속에 담겨있다.11세기 무렵 천태산 나한당에서는 매일 500나한상에 헌다를 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차를 올리던 동자승은 그 모든 찻잔에 여덟 잎의 연꽃무늬가 만들어져 있는 것을 발견했다. 찻잔속에 새겨진 여덟 잎의 연꽃 소식에 여러 문인들이 시를 지어 찬미했다. 결국 그 소식은 그 지역의 관리에게까지 알려졌고 조정에서는 재상을 파견하기에 이르렀다. 그 재상이 나한당에 도착하자 신기하게도 그 찻잔에서는 ‘대사응공(大士應供)’이란 네 글자가 나타났다. 이것이 바로 그 유명한 ‘나한공차’의 이야기다. 분차는 또 차백희(茶百戱)라고도 불렀다. 도곡의 ‘천명록’에서는 “근세 이래로 일부 사람들은 차탕으로 날짐승 들짐승 곤충 물고기 화초 따위의 무늬를 만들 수 있다. 마치 그림처럼 섬세한데 순식간에 사라진다. 사람들은 이를 차백희라고 부른다.”고 그 사실을 적시하고 있다.‘천명록’에서 말하는 ‘차백희’는 바로 물속의 그림이란 뜻을 가진 ‘영단청’(永丹靑)으로 불리는 ‘분차’를 가리키는 것이다. 당시에 분차에 가장 뛰어났던 스님의 한 일화가 전한다. 복전이라는 스님은 ‘분차’를 통해 그 어떤 형상도 만들어낼 수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스님은 또 순식간에 시 한 구절을 지어내는 특출한 재주가 있었다. 어느 날 분차의 신묘한 재주를 배울 것을 간청하자 그 스님은 이렇게 답을 했다. “찻잔에 수단청 만들어지니/묘한 솜씨는 배워서 됨이 아니라/지난날 육우마저도 비웃으며/차를 우려 좋은 명성 얻는다.” 남송시대의 시인인 육우도 ‘분차’에 대해 이렇게 적고 있다.“작은 종이에 비스듬히 초자 몇자 끌쩍이다/맑은 세유로 분차놀이를 즐긴다.” 분차놀이는 일상속에서, 의례속에서 차의 화려함이 어디까지 미칠 수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분차’에 대한 이야기는 단순한 전설을 넘어 여러 가지 기록속에서 사실로 보여진다. 그러나 마치 ‘신의 손’ 같은 차 우려내는 기술은 안타깝게도 지금은 볼 수가 없다.
  • 인니·아체반군 평화협정 체결

    30년 가까이 내전을 벌여온 인도네시아 정부와 아체반군 사이에 평화협정이 체결돼 평화정착에 대한 기대를 갖게 하고 있다. 하지만 아직 낙관은 이르다는 지적도 있다. 양측은 15일 핀란드 헬싱키에서 반군측인 아체자유운동(GAM)이 독립요구를 포기하고 무장을 해제하는 대신 인도네시아 정부는 이들의 정치 참여와 경제적 보상을 약속하는 내용의 협정을 체결했다. 세부 내용에는 투옥 중인 3500명의 GAM 반군 석방, 아체에 주둔 중인 3만명의 인도네시아 정부군 연내 철수, 아체 지역정부에 석유와 천연가스를 비롯한 천연자원 수입의 70% 귀속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AP통신은 지난 1976년부터 시작된 내전으로 지금까지 1만 5000명 이상이 희생됐다고 집계했다. 지난해말 아시아를 휩쓴 쓰나미로 아체지역은 13만명이 숨지는 피해를 입었고 양측의 평화협정이 급진전되는 계기가 됐다. 미국과 유럽을 중심으로 국제사회는 원조를 해주는 조건으로 평화협정을 맺을 것을 요구했고,8개월에 걸친 협상 끝에 마침내 결실을 거뒀다. 그러나 파이낸셜타임스는 아직 해결해야 할 난제가 많다고 지적했다. 아체지역 이슬람 지도자인 이맘 수자는 “평화는 아직 신기루일 뿐”이라고 말했고, 국제위기그룹(ICG)의 시드니 존스는 “협정이 체결됐다고 다 끝난 것은 아니다.”라고 지적했다. 지난 2002년말에도 양측은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6개월 만에 깨졌다. 신문은 마약 밀거래, 불법 벌채 등 ‘수익 사업’을 놓고 앞으로 양측이 갈등을 빚을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인도네시아 정부가 아체반군에 토지와 직업 등을 보상해줄 구체적인 방법이 협정 내용에 빠져 있고, 유럽·동남아에서 파견될 평화감시단의 활동을 보장해줄 방안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장택동기자 taecks@seoul.co.kr
  • [도청 파문] “DJ때 정치공작용 도청 없었다”

    국가정보원의 ‘DJ정부 도청’ 발표로 정치권은 극심한 혼돈양상을 빚고 있다. 당초 여야간 대치 국면을 보였던 도청 파문이 여권내 신·구세력간 갈등양상으로 번지면서 한치 앞을 가리기 힘든 안개정국으로 치닫는 조짐이다. 급기야 야당이 ‘DJ정부 도청’ 발표가 고도의 정치전략에서 비롯됐다는 음모론을 제기하자, 여당은 근거없는 음해론을 응징하겠다며 대립각을 세웠다. 국정원 발표 이후 열린우리당의 공세는 크게 두 갈래로 펼쳐지고 있다. 하나는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정치적 음모론이다. 진앙지인 민주당에 당 지도부가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까지 보냈다. 문희상 의장은 7일 서울 영등포 당사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국정원 발표의 순수한 취지를 호도해 정치 음모론을 제기하거나 정파간의 이간질에 이용하려는 시도에는 단호히 대처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은 “5·16 쿠데타 이후 지속된 권위주의 체제에서 음습한 모든 비리의 종합결정판이며, 정·재·언론계의 추악한 뒷거래가 그 본질”이라는 논리를 내세웠다. 장영달 상임중앙위원은 민주당 한화갑 대표의 ‘정치적 의도 개입’ 주장에 “지역감정으로 반사 이익을 얻으려는 모습으로 비칠 수 있다.”고 반박했다. 그는 “민주당이 지역감정을 조장해 호남에서 정치적 이득을 볼 수 있지 않겠느냐는 계산이라면, 호남 민중들이 그런 얕은 주장에 현혹될 주민이 아니라는 점을 말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같은 기류는 도청 파문에 따른 호남 민심의 잠식을 차단하려는 당 지도부의 속뜻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DJ 정부 차원의 조직적인 도청 사실’을 애써 부인하고 있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문 의장은 간담회에서 “DJ정부 시절 정치공작을 위해 미림팀을 운영하는 일이 없었다는 것은 분명하고 확실하다.”면서 “당시 불법도청이 있었다는 사실을 지금도 믿을 수 없다.”고 말했다. 또 다른 칼날은 한나라당으로 향하고 있다. 국정원 발표 직후 수세에 몰리던 분위기를 뒤집기 위해 맞불을 놓겠다는 의도로 보인다. 전병헌 대변인은 한나라당 권영세 불법도감청 조사단장을 겨냥,“권 의원은 공안검사 출신으로 YS정부 시절 안기부 파견 검사였으며, 미림팀이 재가동된 시절 안기부장 특보실에서 3년이나 근무했다.”면서 “무책임한 정치공세를 하기 전에 고해성사부터 해야 한다.”고 꼬집었다. 장영달 상중위원도 “도청 원조당인 한나라당은 끽소리 말고 침묵을 지키고, 국민에게 석고대죄하는 게 맞다.”고 공세를 폈다. 박찬구기자 ckpark@seoul.co.kr
  • 서울디지털大 학생모집 금지

    전임 부총장의 교비 횡령 등으로 물의를 빚은 서울디지털대학이 내년도 신입생 및 편입생을 뽑을 수 없게 됐다.1년 안에 학교를 정상화시키지 않으면 문을 닫아야 한다. 교육인적자원부는 4일 원격대학인 서울디지털대의 운영 전반에 대해 감사를 실시한 결과, 1년의 말미를 주고 여건이 개선되지 않으면 강제 폐교시키는 대학 설치인가 계고 조치와 학생모집 중지 등 강력한 제재 조치를 취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갑래 인적자원개발국장은 “서울디지털대가 설립 이후 인가 조건을 전혀 지키지 않았고, 전 부총장이 교비를 횡령하는 등 법령 위반이나 부당 운영의 정도가 심각하다고 판단했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서울디지털대는 내년도 신입생 3000명과 2·3학년 결원에 따른 편입생을 모집할 수 없게 됐다. 하지만 현재 원서 접수를 받고 있는 올해 후기 신·편입생 모집 전형은 예정대로 진행될 예정이어서 학생들의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감사 결과 드러난 서울디지털대의 불법 행위는 크게 세 가지다. 황인태 전 부총장이 학생들의 등록금인 교비 35억여원을 횡령하고, 자신이 대표로 있던 M사에 일괄 용역계약을 맺었다. 또 M사의 전환사채를 발행하면서 학생 등록금 12억원을 멋대로 담보로 제공했으며, 이사회 승인 없이 외상을 갚는데 30억여원 어치의 어음을 발행하기도 했다. 지난 2000년 말 인가를 신청할 때는 당초 인가 장소인 부산 동아대 대신 서울 강남의 건물을 빌려 사용하다가 적발되자 시정한 것처럼 교육부에 허위보고한 사실도 드러났다. 황 전 부총장은 지난 6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횡령 등의 혐의로 검찰에 구속기소됐다. 교육부는 평생교육법 제29조에 따라 내년도 신·편입생 모집을 중지하고 채권 및 채무 관계에 따른 불안한 학사운영을 1년 안에 해결하지 못하면 학교설립 인가와 법인 이사장 취임 승인을 취소할 계획이다. 또 황 전 부총장을 비롯한 교직원 13명에 대한 중·경징계와 이사 해임, 황 전 부총장이 횡령한 35억여원을 회수조치할 것을 요구했다. 하 국장은 “현재 원격대학에 대한 사항은 평생교육법에 규정돼 있어 사립대처럼 관선이사를 파견할 수 없는 대신 설치인가를 취소하거나 운영중지만 할 수 있도록 돼 있다.”면서 “이번 일을 계기로 원격대 전체에 대한 실태조사를 실시, 늦어도 이달 말까지 개선안을 마련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서울디지털대는 동아대를 비롯한 35개대와 1개 기업이 컨소시엄을 만들어 지난 2001년 3월 문을 열었다. 전체 17개 원격대 가운데 최대 규모로 총 정원 9400명에 재학생만 8500여명에 이른다.김재천기자 patrick@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평화재향군인회’ 주도 표명렬씨

    과연 ‘제2의 향군’으로 자리잡을까. 요즘 색다른 ‘색깔론’ 공방이 한창이다. 무대가 정치권이 아닌 전통 보수성향의 제대군인단체라는 점에서 초미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재향군인회(향군)와 가칭 평화재향군인회(평군). 향군은 50여년 역사를 간직한 700만 회원의 거대 조직이다. 반면 평군은 현재 인터넷상에서 회원을 모집 중이며 아직 공식적인 출범식은 하지 않은 상태. 향군은 최근 평군의 움직임에 대해 “반미·친북성향의 불법단체”로 규정하고 법적 대응까지 하겠다며 벼르고 있다. 그러자 평군은 향군을 향해 “친일·군부독재에 의해 왜곡된 이권단체에 불과하다.”며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다고 맞서고 있다. 아울러 우리나라의 군대는 일제 때의 시스템을 답습하고 있다며 개혁의 필요성을 대의명분으로 내세우고 있다. 두 단체의 대립은 색깔론 시비로 이어지면서 점입가경이다. 향군은 최근 “불법단체 평군에 현혹되지 맙시다.”라는 호소문을 통해 “평군의 주장은 반미·친북성향의 허무맹랑한 논리에 불과하다.”며 (평군의)‘군비축소론’ 주장은 북한의 적화통일론에 동조하는 것이라고 색깔을 칠했다. 특히 평군 설립자인 표명렬(67·육사 18기) 예비역 준장의 선친이 남로당 간부와 빨치산 전력이 있다고 정면으로 비판했다. 평군측은 이를 마녀사냥이라며 오히려 향군이 평군의 탄생을 자초했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아이로니컬하게도 이상훈(육사 11기·예비역 대장) 현 향군회장과 표씨는 육사 선·후배이기도 하지만 현역시절 지휘관과 참모로 동고동락을 해 더욱 눈길을 끈다. 발화의 주인공인 표씨는 과연 어떤 인물일까. 지난주 경기도 남양주시 와부읍 도곡리 자택에서 표씨를 만났다. 평군은 오는 8월15일 광복 60주년에 맞춰 출정식을 갖고,9월17일(광복군 창설일)에 공식 출범할 예정이다. 준비상황을 물었다.“홈페이지에 매일 1000여명이 방문할 정도로 날로 반응이 좋아지고 있다. 두고 보라.”며 자신했다. 출정식 때에는 전국적으로 수만명이 참가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현재의 향군이나 성우회 등은 사실상 극우라면서, 평군의 이념은 ‘건전보수’를 지향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우리 군은 일제의 잔재를 하루빨리 벗어던지고 정체성과 자부심을 새로이 가져야 할 때라고 역설했다. “향군은 냉전체제하에서 해왔던, 아직도 시대착오적인 범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군사정권의 이권에서 출발한 태생적 한계도 있지요. 그동안 누려온 기득권을 잃을까봐 걱정도 많이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결국 향군은 국민의 혈세를 지원받고 있지 않습니까. 독점적 권리는 헌법에도 위배되는 것입니다.” 평군의 주요 지향점에 대해 ▲친일·군부독재 세력에 의해 왜곡 형성된 군대문화를 개혁하는 일에 앞장서고 ▲자주적 안보관을 국민의식 속에 확산시켜 동북아의 평화와 조국의 평화통일에 기여하며 ▲세계의 평화단체와 협력, 남북 제대군인간의 화해증진·군비축소 종용 등 평화정착 운동을 전개한다는 것 등이라고 역설했다. 이쯤에 이르러 그는 “군개혁의 핵심은 사관학교의 개혁”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군 간부 양성의 요람인 사관학교의 훈육이 ‘일제의 굴레’에서 아직도 못 벗어나고 있다는 것. 육사의 경우 5·16 때 쿠데타를 찬성하는 시가행진에 가담한 뒤 오히려 일제화된 경향이 뚜렷해졌다고 지적했다. 뿐만 아니라 12·12 쿠데타 후 육사는 ‘하나회’로 인해 개혁이 더욱 후퇴했으며, 김영삼 정권 때에는 이같은 하나회를 치는 것을 군 개혁으로 착각하는 오류를 범했다고 지적했다. 또한 육사를 개혁하려고 해도 그동안 붙박이 교수들의 반발,2년마다 다른 부대로 전출가는 간부들의 냉소적 분위기, 동창생들의 반대 등으로 사실상 개혁은 어림도 없는 일로 간주돼 왔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육사 출신 장교들은 오로지 진급에만 관심을 갖는, 이른바 정치장교·정치군인이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순수성을 잃은 지 오래라고 비판했다. 아울러 최근 전방 GP소초 총기난사 사건도 따지고 보면 일제식 교육풍토에서 비롯된다고 설명했다. 한 예로 사병들간에는 병장(분대장)이 유일한 공적인 명령을 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 사병끼리 서로 존비어를 써가며 욕지거리가 오고 가는 군대는 우리나라밖에 없다는 것. 이등병, 일병, 상병 등은 전쟁에 대비해 편의상 서열을 정해놓은 것이지 평상시에는 계급 구분이 없다는 논리를 폈다. 미국의 경우도 장교와 사병간에 서로 장난질까지 할 만큼 얼핏 보기엔 무질서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움직이는 합리적인 군대가 아니냐고 반문했다. 게다가 우리나라 사병들은 상급 지휘관에게 잘 보이기 위해 사역작업에 자주 동원되다 보니 사병들의 불만이 늘 상존해 있다는 것이다. 화제를 바꿔 문제가 된 선친의 남로당 전력에 대해 물었다.“아버지는 일제 때 중앙고보에 다니던 중 사회주의운동에 가담했다가 종로경찰서에 붙잡혀 퇴학을 당했다.”고 털어놨다. 그래서 중앙고보에서 경성전기학교로 옮겨 졸업한 뒤 한국전력의 전신인 ‘남선전기’(남전)에 취업했다는 것. 남전의 군산지점에서 일하던 선친은 차별대우의 부당함을 알리는 데 앞장서다가 수배대상이 되자 만주로 도망을 갔다. 광복 직후 선친은 다시 남한으로 돌아와 남전 광주지점에서 근무하게 됐고, 이때부터 본격적인 남로당 활동에 가담했다. 이때 표씨는 광주 대성초등 3학년이었다. 6·25전쟁이 나자 선친은 전남지역 노동조합 책임자로 부역을 하게 된다.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이 퇴각하자 선친 역시 백두대간을 따라 숨어서 월북길에 올랐다. 그러나 충북 영동경찰서에 붙잡혔다. 이어 대전형무소로 이감되던 중 영어실력을 인정받아 미군 고문관 역할을 하게 되면서 겨우 목숨을 유지한다.6·25가 끝나자 부역활동이 들통날까봐 표씨 선친은 고향인 완도로 내려가지 못하고 거지나 다름없이 떠돌이 생활을 하게 된다. 표씨가 아버지를 오랜만에 만난 것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무렵. 아버지한테 6·25 당시 부역했던 기록이 분실돼 고향에서는 그저 ‘사상가’로만 인식돼 있다고 귀띔해주자 그때서야 고향에 내려와 농사지으며 살았다고 회고했다. 특히 박정희 전 대통령보다 먼저 새마을운동을 펼칠 정도로 고향생각을 많이 했다고 부연했다. 표씨 선친은 90년 4월 90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표씨는 전남 완도 출신. 사범학교에 진학하라는 어머니의 권유를 뿌리치고 육사에 들어갔다. 생도시절 대대장 생도를 맡아 5·16 때 선배들의 강압에 못이겨 후배들과 함께 서울시청앞 시위에 가담했다.65년에는 맹호사단 기갑연대 11중대 부중대장으로 베트남전에 참전했다. 귀국 후에는 군개혁을 위해 나름대로 헌신하고자 전투병과에서 정훈으로 변경했다. 5·18 때에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대령)으로 광주파견 요원으로 차출됐다. 하지만 이때 신군부의 주문대로 보고서를 작성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3군단 정훈참모(중령 직급)로 좌천됐다. 이때 3군단장은 현 향군회장인 이상훈 중장이었다. 이어 표씨는 2군사령부 정훈참모로 자리를 옮겼고, 곧 이어 육본 정훈감으로 장군 진급을 했다. 표씨는 이때 군개혁과 관련된 로드맵을 작성하는 등 남다른 열의를 보이기도 했다.87년 전역 후에도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는 저서를 통해 군 개혁을 설파했다. “남북한 제대군인이 만날 수 있도록 하고, 또 남북 합동으로 ‘6·25진혼곡’도 만들 생각입니다. 평군은 회비로 운영되며 이권사업과 정치적인 일체의 행위를 철저히 배제합니다. 평군의 목적은 뭐니뭐니해도 군 개혁이지요. 더 이상 ‘까라면 깔 것이지.’하는 식의 군대는 안됩니다.” 슬하의 1남1녀가 모두 결혼했으며, 아들 정훈씨는 현재 출판평론가로 활동 중이다. 표씨는 ‘맷돌에서 나온 온보리’ 철학을 거론하며 평군을 통해 군 개혁이 이루어지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글 김문기자 k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38년 전남 완도 출생 ▲58년 광주고 졸업, 육군사관학교에 입학. ▲62년 육사 18기 임관. ▲65년 중위 시절 베트남전 참전. ▲67년 전투병과에서 정훈병과로 변경. ▲79년 타이완 국방부 정치작전학교 수료. ▲80년 5월 국방부 정신전력 연구팀장으로 광주항쟁 현장 파견,3군단 정훈참모. ▲85년 2군 정훈참모에서 장성 진급. ▲87년 육군본부 정훈감으로 예편. ▲2003년 평화재향군인회 준비. ▲2005년 6월 평화재향군인회 발기 선언. ▲현재 군사평론가, 천주교인권위원회 위원, 민족문제연구소 지도위원 ■ 저서 개혁이 혁명보다 어렵다(2003년) 등.
  • [열린세상] 자동차 노사,결자해지 타협점 찾아야/조준모 숭실대 경제학 교수

    우리 경제의 입장에서 자동차 산업은 제조업 내에서 고용의 7.9%, 생산의 11.1%, 부가가치의 10.9%를 차지하는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2003년 자동차 수출 총액은 190억달러로 전체 수출의 9.8%를 차지하였고 무역수지 흑자가 모든 산업 중 1위를 차지한 바 있다. 자동차 산업 종사자만 해도 21만명에 이르고 여타산업에 미치는 전후방 고용효과를 고려한다면 반도체산업을 초월하는 우리 경제에서 제일 중요한 산업이라고 하여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중요한 자동차 산업의 노사관계는 불신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미래를 준비하지 못하는 모습은 국민들을 걱정케 한다. 최근 금속연맹과 현대자동차 노동조합이 제기한 불법파견 진정사건에 대해서 노동부는 현대자동차 사내협력업체 127개 9500명에 대해서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바 있다. 이에 노동계는 불법파견으로 판정받은 인원 전체에 대해 정규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고 현대자동차는 노동부가 요구한 개선계획상 개선방안으로 협력업체근로자와의 생산공정내 혼재작업 문제를 해소하는 방안을 제출하였으나 노동부는 현대자동차의 이러한 개선계획에 대해 개선의지 부족을 이유로 현대자동차를 불법파견 혐의로 고발한 바 있다. 이러한 노동부의 판정에 대하여 재계는 외환위기 이래로 사내하청근로자가 급증한 원인에는 정규직 노동조합의 배치전환 거부가 핵심원인이며, 단체협약상 노동조합의 동의없이는 사내하청 근로자를 사용할 수 없는 현실을 호소한다. 즉 노동조합의 동의하에 이루어진 사내하청문제가 노동조합에 의해 문제가 불거진 점은 노동조합의 야누스적인 태도라고 비판하며, 사내하청문제를 기계적으로 판단해서는 곤란하며 대립적 노사관계, 사내하청의 역사성 및 컨베이어 시스템의 특수성 등 종합적인 측면이 고려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렇게 우리 경제에서 차지하는 자동차 산업의 비중에도 불구하고 노사가 국익 차원의 대승적인 접점을 찾지 못하고 불신의 평행선을 달리는 느낌이다. 노동조합이 사용자의 배치전환을 거부하는 핵심원인은 고용불안정에 대한 우려라고 판단된다. 이러한 고용불안에 대한 우려는 40세 이상의 고령조합원일수록 더 심각하다. 공장을 떠나면 생계를 유지할 마땅한 대안이 없는 상황에서는 현직이 주는 프리미엄을 지켜내기 위해 투쟁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고령 조합원을 위한 생산성 제고, 공장 이동시 신기술 습득, 계열사 부품공장 및 카센터 전직시 필요 훈련 프로그램 마련 등 노사가 갈등의 핵심문제에 대승적인 타협을 해야만 한다. 인력 배치전환의 숨통이 트이면 사내하청 근로자 사용 유인도 줄어들 것이고 설사 사용하더라도 고과평가에 따라 우수 협력업체근로자를 선발, 정규직화하여 협력업체와 원청업체간의 인력의 이동성을 확보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대안 마련을 위해서 현재와 같이 노사가 따로따로 연구용역을 발주하기보다는 노사 및 전문가 공동위원회를 설치하여 합리적인 접점을 찾아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노동조합 또한 과도한 경영권을 요구하거나 근시안적 이익 요구는 자제해야 한다. 현재 세계 자동차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차지해 왔던 GM의 자리를 조만간 빼앗을 것으로 예상되는 도요타 자동차의 경우 노동조합이 회사의 인사권, 경영권을 인정하는 것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구현하고 있으며 세계 5위의 R&D 투자기업으로 발돋움해 가고 있다. 같은 일본 자동차 기업이라 하여도 강력한 노동조합으로 인해 인사, 노무관리에 소극적이었던 닛산의 실패경험을 우리나라 자동차 노동조합은 인식해야만 한다. 이제 단체협약에도 기업의 국제경쟁력이란 요소가 감안되어야만 한다. 이러한 노사의 결자해지(結者解之)의 노력에 대한 정부의 정책지원도 필수적이다. 먼저 근로자공급사업에 대한 노동법적 규제가 후진적 상태에 놓여 있는바, 기업의 경쟁력과 생존의 측면을 고려하여 탈규제가 시급하다. 또한 수동적으로 불법, 합법의 판정관 역할에서 더 나아가 세계화시대 속에 기업이 경쟁력을 확보하고 노사가 생산적인 접점을 찾아가도록 사전예방적인 지원 및 지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조준모 숭실대 경제학 교수
  • 의혹만 더 키운 ‘감싸원’

    의혹만 더 키운 ‘감싸원’

    16일 발표된 감사원의 행담도 개발 의혹 감사결과는 ‘부실감사’‘눈치감사’라는 비난 속에 감사원의 한계를 여실히 보여줬다는 지적이다. 문정인·정찬용씨 등 청와대 핵심 인사들을 수사요청 대상에서 제쳐둔 것을 빼고라도 감사원은 언론이 제기한 의혹을 넘어서는 새로운 조사내용을 내놓지 못했다. 철도청의 러시아 유전개발 감사에 이어 행담도 감사마저 부실논란을 빚자 일각에서는 ‘감사 무용론’마저 제기하고 있다. 감사가 진행되는 동안 관련자들이 입을 맞추고 물증을 은폐했을 가능성을 들어 “처음부터 검찰 수사에 맡겨야 한다.”는 얘기도 그래서 나오는 것 같다. 지위를 이용한 위력(威力)행위의 불법성을 제쳐놓은 채 직무범위를 벗어난 행위(월권)를 직권남용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법 해석도 국민 정서와는 거리가 멀다는 지적이다. ●사건 전말 도로공사는 1999년 10월 행담도를 위락단지로 조성하기 위해 싱가포르 에콘사 등과 컨소시엄을 구성했다. 그러나 에콘사는 2001년 11월 EKI란 회사를 설립한 뒤 행담도 개발사업을 넘겼다. 에콘사가 파견했던 김재복 사장은 2002년 2월 EKI 지분을 인수했다. 이때부터 김 사장의 전방위 로비가 시작된다. 도공은 지난해 1월 EKI측과 1억 500만달러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내용의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다. 오점록 전 도공 사장은 이사회의 반대에도 이 계약을 체결했다. 김 사장은 지난해 5∼6월 정찬용씨와 문정인씨를 만났고,7월에는 동북아시대위원회와 행담도 개발사업에 대해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EKI는 3억달러의 자금조달을 위해 지난해 9월에는 문씨로부터 추천서를 받는다. 추천서를 받았지만 자금조달에는 실패했다. 지난 2월15일에는 EKI와 도공이 채권발행을 놓고 갈등을 빚자 문씨와 당시 동북아위 기조실장이던 정태인 전 국민경제비서관, 정찬용씨 등이 중재에 나섰다. 결국 EKI 발행 채권은 정통부 우정사업본부(6000만달러) 등이 전량 매입했다. ●남은 의혹 행담도 개발은 의문점투성이다. 우선 도공이 왜 EKI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했는지다. 행담도 개발사업에 대한 지분을 10%만 갖고 있으면서도 도공은 2009년 EKI가 지분인수를 요구하면 1억 500만달러의 지분을 인수하겠다는 계약을 체결했다.10%의 지분을 갖고 있다는 이유로 떠안기에는 부담스러운 액수다. EKI가 지난 2월 발행한 채권 8300만달러를 우정사업본부와 한국교직원공제회가 전량 매입한 과정도 석연치 않다. 감사결과 두 기관은 회사채 조건확인을 소홀히 했다. 이들 두 기관이 채권을 매입하는 과정에서 외압이 있었는지도 확인돼야 할 부분이다. 문정인씨 아들이 지난 1월 행담도개발에 취업한 배경도 여전히 궁금증을 낳고 있다. 김 사장은 문씨의 아들이 영어도 잘하고 능력도 있어 채용했다고 하지만 문씨 아들이 미국에서 받던 연봉도 포기하고 월급도 제대로 안 나오는 회사에 입사했다는 점이 쉽게 이해되지 않는다. 다른 이면 계약이 있었는지가 제기되는 의혹이다. 정찬용씨와 김재복 사장이 처음 만난 시점도 풀려야 할 대목이다. 김 사장은 정씨를 2003년 9월 처음 만났다고 주장한 반면 정씨는 지난해 5월이라고 맞서고 있다. 도공이 EKI와 불공정 계약을 체결한 시점은 2004년 1월이다. 만약 김 사장 주장대로 정찬용씨를 2003년 9월 처음 만났다면 정씨는 도공과 EKI간 불공정 계약 등에 관여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진경호 강충식기자 chungsik@seoul.co.kr
  • 200억弗 일부 로비의혹에 초점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는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은 분식회계와 불법대출, 신용장 사기, 외화 밀반출 혐의 등을 순순히 시인했다. 대법원에서 확정판결까지 났고 참고인들의 진술도 확보한 혐의를 김 전 회장이 부인하기는 어려웠던 것으로 보인다. 검찰의 칼끝은 곧 ‘김우중 리스트’로 옮겨갈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 관계자는 “김 전 회장의 정관계 로비 의혹에 대한 단서를 확보한 것은 없다.”면서도 “해외로 빼돌린 돈을 사적인 용도로 쓰지 않았다는 주장을 반박하고 추궁할 자료가 몇 개 있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은 해외로 빼돌린 25조원의 상당 부분을 대우그룹 퇴출저지 등을 위해 정관계에 건넸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은 이 가운데 공소시효가 남아있는 혐의가 한두 건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검찰은 해외 도피를 둘러싼 의혹도 진상규명 차원에서 확인하기로 했다.●신속재판 겨냥 혐의 순순히 시인 분식회계 및 외화 밀반출 혐의와 규모는 2001년 본격적인 수사 개시 이후 지난 4월 대법원의 확정판결이 나기 전까지 법정공방이 치열했던 부분이다. 김 전 회장이 수사 하루만에 혐의를 순순히 시인한 것은 재판을 신속하게 종결하고 형을 확정짓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한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사면·복권 절차를 밟는 것도 형이 확정되어야 가능하다. 김 전 회장은 외환유출 혐의에 대해서는 신고절차를 밟지 않아 실정법을 위반한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개인용도가 아니라, 해외 지사의 채무를 변제하는 데 사용했다.”고 항변한 것으로 전해졌다.●최측근만 BFC에 파견 직접 지시 김 전 회장이 회사자금 25조원을 빼돌린 비밀금융조직 ‘영국금융센터’(BFC)는 1981년 설립돼 30여개의 계좌를 운영했다. 공식적으로는 ㈜대우 런던지사로 통했다. 그는 이동원 전 ㈜대우 부사장 등 최측근 4∼5명만을 BFC로 파견보내고 직접 지시를 내릴 정도로 관심을 기울였던 것으로 파악됐다. 김 전 회장은 1997년부터 1999년에 걸쳐 해외 현지법인 불법차입으로 157억 달러,40억엔,1100만 유로 등을 BFC로 빼돌렸다. 검찰이 확인한 액수만 25조원에 이른다.김효섭 박경호기자 kh4right@seoul.co.kr
  •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비정규직

    [논술이 술술] 시사 키워드/비정규직

    노동계의 최대 현안인 비정규직 문제가 좀처럼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노·사·정이 지난 2일 협상을 벌였으나 끝내 결렬됐다.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가 불가능해져 비정규직 법안은 6월 임시국회로 넘겨졌다. 그러나 6월 국회에서는 법안 처리가 더욱 어려워질 수 있다. 그 시기는 임단협 협상으로 노사 대립이 격화되는 때이기 때문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이목희 법안심사소위 위원장이 주재한 협상에서 노·사·정은 ▲기간제 노동자의 사용 기간과 사용 사유 제한 여부 ▲근로계약이 끝난 뒤 고용 보장 여부 등을 놓고 논의했으나 견해 차이를 좁히지 못했다. 노동계는 기간제 노동자를 1년 고용한 뒤 재계약할 때는 고용사유를 제한하고,3년째부터는 정규직으로 간주할 것을 요구했다. 반면에 정부는 3년을 사용사유 제한 없이 고용한 뒤 근로 기간이 끝나면 임의로 해고할 수 없도록 ‘해고 제한’ 규정을 적용하자고 맞섰다. ●비정규직 용어풀이 ▲비정규직=▲근로기간이 정해져 있는 계약직, 일용직▲해당 사업장에서 근로하지 않는 파견, 도급직▲상시근로를 하지 않는 파트타임 근로자를 말한다. ▲사유제한=기업이 기간제 노동자를 고용하려면 ‘합리적 사유’가 있어야 한다는 것. 비정규직은 예외적·제한적으로 사용돼야 한다는 뜻이다.‘입구제한’이라고도 한다. ▲기간제한=일정한 기간까지만 비정규직을 반복 고용할 수 있게 규제하는 것을 말한다. 정부안은 기간제한 방식이다.‘출구제한’이라고도 한다. ▲고용의제=고용계약을 체결하지 않았지만 법률에 의해 고용 관계가 만들어진 것이다. 사업주가 고용을 거부할 경우 ‘부당해고’로 처벌받을 수 있다. ▲고용의무=고용의무는 ‘고용해야 한다.’는 의미로 고용을 강제하는 힘을 법률에서 제거한 것이다. 사업주가 직접 고용을 이행하지 않는 이상 노동자는 사용자에 대해 아무런 권리를 가지지 못한다. ▲해고금지=‘고용의제’와 가깝다.‘3년 이상 고용할 경우 계약만료를 이유로 해고를 할 수 없다.’는 조항이 그 예다. 이미 기업과 노동자가 고용에서 계약관계가 성립된 것으로 보는 것이다. ●비정규직 왜 문제인가 외환위기 이후 비정규 노동자는 급증 추세를 보이고 있다. 노동계의 주장에 따르면 2004년 8월 현재 비정규직 규모는 816만명, 전체 노동자의 55.9%에 이른다고 한다. 특히 여성 노동자는 10명 중 7명이 비정규 노동자라고 한다. 그러나 노동부는 35% 정도라고 밝히고 있다. 비정규직 증가의 가장 큰 문제점은 극심한 고용불안과 임금 및 근로조건 등의 차별이다. 노동계에서는 신용불량자 양산, 출산율 저하, 생산성 저하 등의 문제를 야기한다고 주장한다. 노동계에 따르면 임금은 정규직 임금의 51.9%, 퇴직금·상여금·시간외수당·유급휴가 등은 비정규직의 경우 13.7∼18.9%만 적용받는다. 이에 따라 노동계에서는 차별을 폐지하기 위해 같은 가치의 노동을 하는 비정규직을 정규직과 동등하게 대우하도록 동일가치노동 동일임금을 명문화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또한 비정규직은 노동3권을 심각하게 제약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해 비정규직의 노동조합 조직률은 3.1%에 불과했다. ●법안의 핵심 쟁점 ▲임시계약직(기간제)과 관련한 정부안은 ▲사유제한 반대▲3년 내 기간제 자유로이 사용▲3년 초과 때 해고제한(광범위한 예외 허용)이다. 이에 대해 민주노총은 ▲합리적 사유 있는 경우에만 허용▲사용기간 1년 제한▲기간초과 때 정규직으로 간주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사유를 제한하면 정규직이 다소 증가하겠지만 전체적으로 고용이 감소하고 용역 전환 등의 부작용이 더 크다고 한다. 그러나 노동계는 기간만 제한하고 사유를 제한하지 않을 경우 3년이 되기 전에 계약을 해지하거나 다른 계약직으로 교체해 임시직이 더 확대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노동계는 출산과 육아 등으로 대체근로가 필요하거나 고용변동이 심한 계절적 산업 등 기간제가 불가피한 경우를 명시하고, 그밖에는 금지하자고 주장하고 있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리고 있다. 정부는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업무의 성격과 내용, 책임 및 중요성 정도 등 동일노동 조건이 성립되지 않는 경우가 많아 법제화가 어렵다고 한다. 차별시정 기구의 사례가 축적되면 차별판단의 기준이 점차 마련될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반면 노동계는 1989년 제정된 남녀고용평등법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규정이 이미 명문화돼 충분히 기준을 만들 수 있다고 강조하고 있다. ▲파견제 관련 정부안은 ▲26개 업종으로 제한되어 있는 파견 허용 업종을 전면 확대(네거티브 리스트 방식)▲파견 기간을 2년에서 3년으로 늘림▲파견 3년에 휴지기 3개월▲직접고용 고용의제를 고용의무로 전환 등이다. 그러나 민주노총은 ▲파견법 폐지▲불법파견 때 직접고용▲불법파견 처벌 강화▲파견과 도급기준 구분기준 강화▲사용업체 사용자 책임 인정 등을 요구하고 있다. ●어느 쪽이 옳은가 비정규직 관련법안을 놓고 노동계는 비정규직을 양산할 가능성이 크고 비정규직을 보호해 주지 못할 것이라고 비판한다. 그러나 정부는 고용 유연성의 확대와 고용 증가 등에 더 큰 가치를 두고 있는 듯하다. 사유를 제한하면 전반적으로 고용이 감소할 것이라는 설명이다. 파견제와 관련해서도 파견 노동자의 수요를 무시할 수 없다고 한다. 수요에 비해 파견 대상 업무가 너무 한정돼, 불법 파견이 확산된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파견업종을 확대하고 불법 파견의 처벌을 강화하는 것이 실효가 있다는 것이다. 사용자들도 정규직 고용 강제는 고용과 노동의 유연성을 저해해 기업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직무급이 정착된 선진국과는 달리 연공급 위주의 우리나라에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은 적용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어느 한쪽을 완벽하게 만족시킬 수 없다. 그러나 노동자의 권리 보호와 차별 최소화를 실현하면서도 전체 고용을 감소시키지 않고 경제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도록 하는 최적의 절충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그러자면 노사정이 조금씩 양보하는 방법 밖에 없다. 손성진 기자 sonsj@seoul.co.kr
  • ‘비정규직’ 최대 변수로

    각 사업장의 올해 임금협상이 부진한 가운데 수도권지역 덤프트럭 1만여대가 일주일째 파업에 돌입하는 등 ‘춘투(春鬪)’가 가시화되고 있다. 8일 노동부와 노동계에 따르면 지난달 말 현재 100인 이상 사업장 6228곳 가운데 554곳(8.9%)만이 임금협상이 타결돼 지난해 동기 11.9%보다 낮은 것으로 집계됐다. 이처럼 임금협상 타결이 저조해지자 곳곳에서 춘투가 시작되고 있다. 민주노총 산하 전국건설운송노조 덤프연대는 부당한 과적단속의 중단과 유가보조, 면세유 지급을 요구하며 지난 1일부터 파업에 들어갔다.. 울산지역건설플랜트 노조원 3명도 지난 1일부터 SK울산공장 정유탑에서 단체협약 체결을 요구하며 농성을 벌이고 있다. 또한 노동부가 불법파견으로 판정을 내린 현대자동차, 기아자동차,GM대우차 등의 사내 하청노조 역시 불법파견 노동자의 정규직 전환을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올해 임단협에서는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비정규직 문제 해결에 적극적인 데다 비정규직 자체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민주노총은 현재까지 80여개 비정규직 노조(조합원 3만여명)를, 한국노총도 50여개 노조(조합원 2만 7000여명)를 각각 조직한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GM대우차 1000여명 불법파견

    현대자동차에 이어 GM대우자동차에서도 불법파견이 적발되는 등 대기업의 ‘파견근로자 보호법’ 위반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이에 해당기업 노동조합은 회사측을 상대로 불법파견에 대한 일전을 벌이겠다고 벼르고 있다. 13일 노동부에 따르면 GM대우차 창원공장 생산라인에 투입된 6개 협력업체 소속 1000여명의 근로자들이 노무관리, 작업지시 등을 원청업체로부터 받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GM대우차노조 창원지부는 지난 1월 말 불법파견에 대한 집단 진정을 냈으며, 창원지방노동사무소는 이 사건에 대해 두 달 동안 조사를 벌여 불법파견 사실을 확인했다. 이에 앞서 노동부는 지난해 9월 현대차가 21개 하청업체 1800여명의 근로자를 불법파견 형태로 활용한 것으로 확인한 데 이어 지난해 말 현대차 울산공장과 전주공장 100여개 하청업체 8000여명도 도급을 위장한 불법파견인 것으로 드러났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日 교과서 왜곡 파문] 이라크戰도 美배려 왜곡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식민지 침략을 정당화하고 미화, 왜곡한 역사교과서 검정작업에 일본 정부가 깊숙이 개입한 사실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관여할 수 없다.’고 호언했던 일본 정부의 주장이 거짓으로 판명된 것이다. 이에 따라 일본의 교과서 왜곡은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막후에서 감독하고, 나카야마 나리아키 문부과학상이 현장을 지휘·감독해, 검정교과서가 아니라 국정교과서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는 게 중론이다. 6일 일본 언론에 따르면 ‘한국이 독도를 불법 점거하고 있다.’고 기술한 후소샤판 공민교과서는 문부과학성의 검정 의견에 따라 수정된 것으로 확인됐다. 신청본에 ‘한국과 우리나라가 영유권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다케시마(독도)’로 돼 있었으나 문부성이 “영유권이 애매하게 표현됐다.”며 수정을 요구했다. 특히 문부성은 후소샤가 ‘한국이 점령하고 있는 다케시마’라고 수정안을 내자 ‘불법점거’가 정부 견해라며 이를 반영하지 않으면 검정을 통과시키지 않겠다고 압박, 극우적인 후소샤마저 곤혹스러워 했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문부성측은 정부 견해에 맞지 않는다는 검정 의견을 제시했을 뿐 “표현을 어떻게 하라는 지시는 하지 않았다.”고 해명했지만 설득력이 약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라크전 발발이나 자위대의 이라크 파견, 부부 별성제(결혼하면 여성이 남편의 성을 따르는 걸 고치는) 기술 등도 정부측이 압박, 여러 대목이 수정된 것으로 드러났다. 도쿄신문에 따르면 문부성은 일본서적신사의 공민교과서 내용 중 미국의 이라크 공격을 기술한 대목에서 ‘대량살상무기는 없었다.’는 표현은 안 된다며 구두로 출판사측에 정정을 요구했다. 하지만 이라크전 개전 명분이었던 대량살상무기는 미국 정부의 조사 결과에서도 없었던 것으로 확인된 바 있다. 특히 검정 의견은 문서로 반드시 통보하도록 규정돼 있으나 구두로 통보했다. 이에 대해 문부성측은 “수정 과정에 대해서는 밝힐 수 없다.”고만 밝혔다. 문부성은 이라크전 발발에 대해서도 신청본의 ‘유엔결의 없이’라는 부분을 삭제한 뒤에야 검정을 통과시켰다. 그래서 “근린제국조항 대신 미국 배려조항이 적용됐다.”는 비아냥이 나올 정도다. 일본서적신사의 경우 지난해 2월 자위대가 파견된 이라크를 본문에 전지(戰地·전투지역)라고 신청본에 기술했으나 문부성이 ‘비전투지역’으로 바꾸도록 지시, 이를 수정한 뒤에야 통과됐다고 마이니치신문이 보도했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가 비전투지역이라고 주장한 것을 뒷받침한 검정 지침이었다. taein@seoul.co.kr
  • 산재보험금 줄줄 샌다

    산재보험금 줄줄 샌다

    산재보험이 치료가 아닌 소득보전 목적으로 왜곡되면서 위기를 맞고 있다. 이를 틈타 직장에 복귀하기보다는 병원에 눌러 앉으려는 장기요양환자와 속칭 ‘나이롱 환자’가 더욱 기승을 부리고 있다. 실제로 울산지검은 최근 전국 최초로 ‘산재보험금 편취사범’ 기획수사를 통해 나이롱 환자 4명을 구속했다. 이들은 법으로 금지된 이중 취업을 통해 고액의 산재보험금을 타낸 것으로 드러났다. 추모(45·현대중공업)씨는 취업하면 휴업급여를 받을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난해 3월 중국집을 개업, 운영하면서 10차례에 걸쳐 휴업급여 3000만원을 불법 수령한 혐의로 구속됐다. 또 차모(56·현대미포조선)씨는 산재환자로 요양하던 중 횟집 운영 사실을 숨기고 휴업급여 4000여만원을 타냈다. 최모(44·세원선박)씨도 산재환자로 요양하던 중 대리운전업체를 설립, 운영하고 있는 사실을 숨기고 22차례에 걸쳐 5000여만원을 받아낸 혐의로 구속됐다. 이처럼 불법 휴업급여 등이 날로 증가하면서 산재보험급여 총액은 지난 2000년 1조 4563억원에서 지난해 2조 8599억원으로 두배 가까이 폭증했다. 장기요양환자도 2000년 1만 2511명에서 2001년 1만 5539명,2002년 1만 7726명,2003년 2만 812명,2004년 2만 3842명으로 매년 14∼24%씩 꾸준히 늘고 있다. 특히 노조가 강한 일부 대기업의 경우 산재환자는 통상 임금의 70%를 휴업급여로 받는 것 이외에 생계보조금으로 임금의 20∼30%, 상여금으로 600∼700%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H자동차 소속 10년 근무경력 근로자의 경우 평균 연봉은 4500만원이나 산재환재가 되면 일을 하지 않으면서도 평균 5500만원을 수령한다. 진단서의 허술한 발부도 문제로 지적되고 있다. 근골격계 질환의 경우 원인이 산업재해인지, 개인의 건강관리 잘못인지를 확인하지 않은 채 진단서가 발부되고 있다는 것이다. 근골격계 산재 승인율은 독일의 경우 2%에 불과하지만 한국은 무려 94%에 이르고 있다. 노동부는 이에 따라 장기요양환자 및 나이롱 환자에 대한 감시·단속을 강화하기로 했다. 의사와 간호사들을 파견해 재해발생 때부터 요양·재활단계까지 단계적으로 면담을 실시, 사이비 환자를 가려내기로 했다. 노동부 관계자는 29일 “제대로 치료해 제때 직장에 복귀하도록 종합대책을 세우겠다.”고 말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백승종의 정감록 산책] (11)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 호남엔 여느 도 못지않게 길지가 많다며, 성질 급한 독자들은 내게 거세게 항의했다. 그런 줄 내가 왜 모르겠는가? 다만 ‘정감록’의 길지는 태백산과 소백산을 모태로 삼는 까닭에 그 두 산부터 설명을 시작해 점차 주변지역으로 확대시킨 것뿐이다. ‘남격암’에 가장 먼저 언급된 호남의 길지는 무주(茂朱) 덕유산(德裕山)이다. 덕유산 아래서도 무풍(舞豊) 북쪽에 있는 동굴 옆 음지가 으뜸이라 했다. 그곳은 어떠한 환난도 피할 수 있는 명당이라 한다.‘피장처’에선 약간 다른 곳을 지적해, 덕유산 남쪽의 원학동이야말로 숨어 살기 적당하다 했다. ●덕유산 부자마을 한편 이중환은 ‘택리지’에서 덕유산의 성격을 흙산이라 보았다. 지리산과 성질이 같은 것으로 본 것인데 남격암과 마찬가지로 산의 북쪽에 있는 무풍에 주목한다. 이중환은 바로 그 옆의 설천(雪川)도 길지로 간주한다. 그는 남사고가 무풍을 복지(福地)로 파악했던 점을 정확히 알고 있었는데 덕유산의 미덕을 이렇게 말한다.“무풍의 바깥쪽은 온 산이 비옥해 부자 마을이 많다. 이는 속리산 이북 지역에 비할 바가 아니다.” 남사고는 내게 보낸 편지에서도 덕유산의 장점을 장황하게 설명했다.“과연 그렇다네. 실로 덕이 넉넉한 산이 덕유산이요, 풍요로움을 기꺼워하다 못해 저절로 춤이 나오는 곳이 무풍이라네. 우리나라 12대 명산 가운데 하나인 덕유산. 그 주산은 향적봉(香積峰·1614m)이요, 산세의 흐름이 유장해 무풍의 삼봉산(1254m)에서 흘러내린 용맥이 수령봉(933m), 대봉(1300m), 덕유평전 (1480m), 중봉(1594m), 무룡산(1492m) 삿갓봉(1410m), 남덕유(1508m)까지 무려 100리를 굽이쳐 흐르며 영호남을 갈랐다네. 충청, 경상, 전라 3도를 굽어보는 향적봉에 한번 올라보게. 가까이는 북으로 적상산을 발치에 두고 멀리 황악산과 계룡산을 바라보네. 서쪽을 둘러보게나. 운장산, 대둔산이 버티고 서있어. 남쪽은 어떠한가. 남덕유를 코앞에 걸어두었네. 지리산 반야봉도 가물거리네. 동쪽을 어찌 빠뜨릴쏜가. 저 멀리 가야산과 금오산이 보이지 않나? 향적봉 정상에서 흘러내린 옥 같은 샘물줄기가 한참을 흐르다가 구천동 33비경을 만들어 놓았도다. 요즘은 북사면에 무주 리조트가 있다지. 서남쪽의 칠연계곡도 큰 장관일세. 봄의 덕유산은 칠십 리 깊은 계곡에 붉은 철쭉꽃이 불타오르고,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온 산을 적시네. 가을이면 붉은 단풍이 꼬까옷을 입히지. 겨울이면 설화를 피운 고목이 고요한 은세계를 더욱 빛낸다네. 참 아름다운 곳이야! 길지란 대부분이 이렇게 아름답고 고즈넉하며 은근히 풍요로운 곳에 있기 마련이네.” 덕유산에 대한 남사고의 예찬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나는 이쯤에서 줄이기로 했다. ‘남격암’은 호남의 명산 내장산(內臧山)도 길지로 손꼽는다. 이른바 호남 5대 명산의 하나라는 내장산은 가을 단풍 하나로만 전국에 유명하다. 이 산의 단풍은 30여종의 나무들이 토해낸 붉고 노란 빛깔이 어우러진 전원 교향악이다. 많은 사람들은 단풍에만 혹할 뿐이나 실은 난세를 피할 길지로서 이만한 곳이 무척 드물다. 임진왜란 때는 전주 사고(史庫)에 소장돼 있던 왕조실록이 내장산에 옮겨져 잠시 화를 피했다. 그 때 만일 내장산이 아니었더라면 오늘날 세계기록문화유산이기도 한 왕조실록은 한 줌의 재가 되고 말았을 것이다. 내장산은 과연 길지로다.‘피장처’는 내장산에서 별로 멀지 않은 담양 추월산도 숨을 만한 곳이라 추천한다. 추월산은 전남 담양군 용면과 전북 순창군 복흥면 사이에 걸쳐 있는데, 구한말 호남의병운동의 한 거점이었다. ●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 “그러나 누가 뭐라 해도 호남 굴지의 길지는 부안의 변산(邊山)이야.” 남사고는 그렇게 주장한다.“내 책 ‘남격암’을 살펴보게나. 부안엔 호암(壺岩)이 있고 그 아래 변산 동쪽은 몸을 숨기기에 정말 적합하구나라고 했지. 만일 제주도가 다른 나라 땅이 되고 말면 일은 그릇된다고 했어. 이는 왜 그런가? 제주에서 배를 타고 북상하면 전남 강진, 영광, 또는 전북 부안에 곧장 뱃길이 닿을 테니 위험할 수밖에. 어쨌거나 내 생각은 그래. 기왕 변산을 찾았다면 그 동쪽 계곡까지 들어가라. 하지만 그 산을 빠져나가지는 말라! 언제는 속리산 이북으로 가지 말랬다가 이젠 또 변산 동쪽을 벗어나지 말라고 하니, 자네들이 좀 헷갈리겠군. 내 말의 뜻은 그만큼 속리산 이남이 길하고 변산이 좋다는 말이야. 다른 뜻은 전혀 없다고!” 참 이상한 노릇이지만 좀 조사해본 결과 문학속의 변산은 도둑의 소굴이기도 했다. 연암 박지원의 ‘허생전’을 보면 주인공 허생이 변산의 도둑 떼를 인솔해 무인도로 떠나간 걸로 돼 있다. 어떤 연구자는 이를 두고 영조 때 일어난 ‘무신난(戊申亂·1728년)’ 무렵 변산의 실제 상황을 반영한 것으로 본다.‘이인좌(李麟佐)의 난‘으로도 불리는 무신난의 주체는 남인(南人)·소론(少論)·소북(少北)의 연합세력이었다. 그들은 당시 집권층인 노론(老論)을 몰아내려고 난을 일으켰고 거기에 전국 각지의 도둑들·서얼·상민·천민들이 상당수가 가담했다. 호남 여러 고을의 빈농들과 변산의 도적들도 무리 가운데 끼어 있었다. 사실 그 당시 빈농은 자칫하면 유리걸식할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살다 보면 자연히 도적 무리에 포섭되었다. 허생전에 나오는 변산의 도둑 떼는 허생의 영도 아래 각자 배우자와 소 한 마리씩을 이끌고 무인도로 들어간다. 그들은 그 곳에서 열심히 농사 지어 외국과 무역에 종사 하는 등 유족한 삶을 누린다. 변산 도둑들의 입장에서 볼 때 허생은 다름 아닌 ‘진인’이었다. 혹자는 허생이 현실에 정면으로 맞서 싸우지 않고 이상향으로 도둑들을 이끌고 숨었다며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이미 현실에 순응하며 합법적인 개혁을 꿈꾸던 연암 박지원에게서 허생 이상의 주인공을 기대하는 것은 비현실적인 요구가 아닐까? 그야 어쨌거나 허생전에 변산이 도둑의 소굴로 설정된 것은 실상을 반영한 것이라고 한다. 변산은 골짜기가 깊고 사방으로 뻗어 있어 은신에 적합했다. 그렇기 때문에 변산이 길지로 손꼽혔다. 하지만 도둑 떼들이 이러한 자연 조건을 적극 이용한 결과, 조선 후기엔 그들의 요새로 둔갑하기도 했다. 남사고는 말하기를,“변산이 중요한 까닭은 그 산세에 국한된 것이 아니야. 좀더 깊은 연유가 있었지.”라며 매우 의미심장하게 운을 뗀다. 그러나 그에 관한 이야기는 별도의 기회를 마련해 경청하기로 한다 ●조계산의 ‘십팔공’ ‘남격암’은 전라도의 또 다른 길지로 조계산(曺溪山·887m)을 예로 든다. 전남 승주군에 있는 이 산엔 고찰(古刹) 송광사(松廣寺)가 있어, 산기운이 예사롭지 않다. 절에서 동북쪽으로 10여리를 올라가면 천자암(天子庵)이란 작은 암자가 있다. 이 암자의 오른편에 곱향나무 두 그루(천연기념물 제88호)가 우뚝하다. 높이가 12.5m, 가슴높이쯤에서 둘레가 3∼4m나 되는 거목인데, 나무에 얽힌 유래가 특이하다. 지금부터 800여년 전 이 절에 머물던 보조국사(普照國師)는 중국에 건너가 황후의 불치병을 고쳐준 다음 그 인연으로 왕자 하나를 제자삼아 데리고 돌아왔다고 한다. 천자암에 오른 그들은 나란히 지팡이를 땅에 꽂았는데 그것이 살아나 차츰 거목으로 자랐단다. 보조국사 일행의 도력도 만만치 않지만, 조계산의 지력도 여간 왕성하지 않은 모양이다. 워낙 명산에 자리잡은 까닭에 송광사의 “松”자는 길한 예언을 담고 있다. 그 글자를 해체하면 “십팔공(十八公)”이 돼,18명의 국사가 나온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그런데 지금까지 보조국사를 비롯해 모두 16명의 국사가 나왔다 한다. 앞으로 2명이 더 나오게 돼 있는데 그때가 되면 모든 중생에게 불법이 바로 전해져 용화세계의 평안을 누리게 된다고 한다. 이 전설에서 유추되듯, 조계산은 최고수준의 길지라 미륵세상의 도래를 약속하는 곳이 된다. 소백산에서 남서쪽으로 곧게 뻗어 내린 용맥이 서해바다를 눈앞에 두고 멈춰선 곳에 한 길지가 있다.‘남격암’이 말한 월출산(月出山)이 그곳이다.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에 불쑥 솟아오른 월출산은 단순히 많은 큰 산의 하나가 아니다. 산 이름 그대로 달맞이하는 산이라서, 이 산은 많은 사람들의 가슴속에 달 신앙의 대명사로 우뚝 솟았다. ●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 월출산에서 좀더 남으로 내려가면 한반도 남단의 길지 팔령산(八靈山)이 웅자를 드러낸다.‘남격암’은 이렇게 말했다.“우리나라의 지세를 논할 때 섬이 바라보이는 남쪽은 절대적으로 피할 일이다. 다만 한 예외가 있어 팔령산이 바로 좋은 산이다.” 남사고는 편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소백산 줄기가 고흥반도 동쪽까지 내려오다 끝맺음을 한 것이 바로 이 팔령산이야. 정상의 봉우리가 모두 8개인 산이지. 팔영산(八影山)이라고도 부른다네. 예전엔 팔전산(八顚山), 팔형산(八兄山), 팔봉산(八峰山)으로도 불렸어.‘택리지’에서 이중환은 이 산이 마치 섬처럼 바다로 깊숙이 들어가 있다고 했어. 일찍이 내가 복이 있는 땅이라고 기술했다고도 썼어. 기특한 내 후배 이중환은 늘 중요한 지점에서 내 말을 곧잘 인용한단 말이야! 아는 대로 임진왜란 때는 왜선이 고흥반도를 타고 침입하려고 했으나, 끝내 성공하지 못했어. 이게 다 팔령산의 지기(地氣)에 힘입은 거야. 고흥의 옛 문헌을 자세히 살펴보면 알겠지만 팔령산의 넷째 봉우리인 사자봉이 대단해. 마치 용이 바다를 향해 치닫는 형상이라고 할까. 사자봉의 혈(穴)은 국왕의 옥쇄인데 마지막 봉우리에서 그만 미완성으로 끝나 여간 아쉽지 않아. 일제시기 그 놈들이 조선의 맥을 끊어버리려고 팔봉에다 큰 쇠막대를 깊이 박았어. 그 놈들은 한국 사람들을 미신적이라고 비웃었지만, 그래도 뒤가 켕겼는지 갖은 못된 짓을 다했어. 이제 와선 멀쩡한 우리 땅 독도를 자기네 섬이라고 주장하지를 않나. 가소롭기 짝이 없어! 한데 말이야, 당시 그 놈들이 혈을 정확히 짚지 못하는 바람에 그 뒤 고흥선 진짜 장군이 나왔다고들 하지.” 팔령산이 명산이란 소문은 진작 전국에 널리 퍼졌다. 각지의 무당이 몰려와 무속신앙의 중심지가 되기도 했고, 난리가 닥치면 산 속 깊이 은신하려는 사람들의 행렬이 그치지 않았다. 삼십년 전엔 어느 사이비 종교단체가 이 산에 본거지를 두고 사회적 물의를 빚기도 했다. ●경기도의 길지 “나는 주로 속리산 이남인 하3도(충청, 경상, 전라)에서 길지를 찾았지. 속리산 이북인 중부지방엔 별다른 길지가 없다고 보는 편이야. 영산인 태백산에 가까운 강원도 남부지역에 한두 군데 있을까 말까. 그 외엔 사실 주목되는 곳이 하나도 없는 셈이야. 정감록에서도 말했을 걸. 오대산 이북은 몹시 흉하다고 말이야.” 그러나 ‘피장처’와 ‘두사총비결’엔 중부지방의 피난지가 다수 언급돼 있다. 우선 ‘피장처’에 따르면 양주 산내촌에서 북쪽으로 80리를 들어가면 길지가 있다 했다. 또한 양근 소설촌의 북쪽 40리쯤에서 좀더 골짜기를 따라 올라가면 가장 은밀한 곳에 숨은 길지가 있다고도 했다. 요새 설곡리(雪谷里)라 불리는 곳 말인데 고려 말 임제종(臨濟宗)을 개창한 명승 보우(普愚)가 설곡리에서 출생했다고 전해진다. 여주의 사전촌에선 장수와 정승이 나온다고 했고, 광주 율평 동쪽에 있는 동굴은 난리 때 여덟 성씨가 함께 숨어 살 곳이며 장차 56대 동안 장수와 정승이 출생할 곳이라고 했으니 굉장한 명당이다. 또한 ‘피장처’엔 이천 북면의 광복동, 가평의 대아, 도성 등도 피난할 만하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인천의 영종도 역시 복지라 했다. 오늘날은 국제비행장이 들어선 영종도는 고려 말부터 단 한번도 전쟁의 여파가 미치지 않았다고 한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때도 무사했다는 것이다. ●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 임진왜란 때 이여송을 따라 중국에서 왔다는 지관(地官) 두사총이 쓴 비결로 알려진 ‘두사총비결’에도 경기도의 길지가 두어 군데 언급된다. 그 중 하나는 화약산이다. 가평에서 363번 지방도로를 따라가면 나오는 산이 바로 그 산인데 부근엔 집다리골 휴양림도 있어 쉬어 갈 만하다. 그밖에 포천의 도성산도 길지로 말해진다. 도성산은 길가에 가까워 산세가 얕다는 평을 듣지만 전쟁의 기운이 미치지 않고 간사한 기운도 침범하지 못한다고 믿어진다. 고려가 망했을 때 어느 선비는 도성산 밑으로 들어가 시냇가에 대(竹)를 심고 충절을 맹세했다는 전설이 남아 있다. 그 선비가 지조를 온전히 지킬 수 있었던 것도 도성산의 지기 덕분이라 한다. ‘두사총’은 강화의 마니산(467m)도 길지라 일컫는다. 인천시 강화군(江華郡) 화도면(華道面)에 있는 이 산은 강화섬에서 가장 높다. 마니산은 한반도 남쪽의 한라산, 북쪽의 백두산까지 거리가 똑같아 주목된다. 마니산은 마리산·머리산이라고도 불리는데, 마리란 머리를 뜻한다. 이 산은 강화도에서 가장 높은 산이라 이름이 그렇게 됐다. 마니산이 길지로서 특별한 위치를 주장하게 된 것은 산 정상에 있는 참성단(塹星壇·사적 제136호) 때문이다. 참성단은 단군왕검이 하늘에 제사지내기 위해 건립했다고 한다. 높이 5m의 자연석을 포개어 만든 이 단의 기단부는 원형이며 그 상단은 네모꼴이다. 이는 천원지방(天圓地方·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이란 고대 동양인들의 세계관을 반영하는 것이리라. 이 단이 축조된 시기는 분명하지 않지만 멀리 고려 때부터 국가가 제관을 파견해 하늘에 제사를 올렸다고 전한다. ●황해도의 길지 북부지방엔 길지가 없다는 게 ‘정감록’의 근본 주장이다. 이와 달리 ‘피장처.’는 황해도 곡산의 명미촌을 길지라 한다. 좀더 정확히 말해 명미촌에서 서쪽으로 발길을 재촉해 희령과 잇닿은 경계 지점에 숨으면 어떤 난리도 피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편 ‘남격암’은 “수양산(首陽山·899m)은 백미(白眉)의 난을 당하면 물 마른 개울의 물고기처럼 되느니라.”라고 했다. 수양산이 좋긴 해도 눈썹 흰 사람이 난리를 일으키면 도리어 흉하다고 경계한 것이다. 수양산은 황해남도 벽성군(碧城郡)과 해주시(海州市)에 걸쳐 있다. 이 산은 남격암이 거론한 서북지방의 유일한 길지다. (푸른역사연구소장)
  •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 인터뷰 전문

    서울신문은 일본 시마네현 의회가 ‘다케시마의 날’ 조례안을 통과시킨 16일 국제법 전문가인 서울대 법대 백충현 명예교수로 부터 조례의 부당성,우리 영토인 독도의 법적 근거,향후 우리의 대응 등에 대해 인터뷰했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 전문이다. -영토 문제는 우리나 일본이나 내부에 서 쉽게 하나로 의견이 통일된다.그 러다보니 학술적으로는 국민 감정을 어떻게 할 수는 없다. -먼저 시마네현 조례안 통과에 대해서 말해보자.시마네현 영토편입 문제를 거론하는 것 자체가 문제다.지역 차 원에서 할 것이 아니다.시마네현 관할에 들어왔다는 조례를 만들 수 있는 전제는 독도가 일본정부의 영토이어야 하는 것이다.1905년 1월 28일 일본 중앙정부에서 독도를 영토에 편입했다.영토편입이라는 것이 무엇이 냐.이전에는 독도가 자신들의 영토가 아니었으니까 영토를 편입하는 것 아니겠느냐.즉 당시 1월 28일 영토 편입은 이전까지는 독도가 자신의 영토가 아니었다는 것을 얘기한다.그러므로 이 문제는 전제가 이미 모순이었고,때문에 시마네현이라는 한 지역에서 따질 문제가 아니다.예전에 일본의 한 학술회의에서 학자들이 당시 현대국제법에 맞게 고치기 위해서 일본 영토로 편입한 것이라고 주장하길래 “그럼 일본은 독도 말고 다른 섬은 없느냐.다른 섬은 왜 당시 영토편입을 논하지 않았느냐.”고 따지니 아무 대답도 못했던 적이 있다. -그럼 일본의 것이 아니면 누구의 것이냐는 문제를 따져보자.일본 것이 아니라고 해서 꼭 한국 것이라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먼저 최소한 제3국의 것은 아니어야 한다.이제까지 독도와 관련한 문제에서 일본과 한국을 제외한 나라는 영토권을 주장하는 나라가 없다.그래서 독도는 일본과 한국의 문제다. -다음은 한국의 영토인 근거에 대해 따져보자.먼저 고문서상의 문제다.서 기 512년 신라의 영토로 처음 독도를 포함한 우산국이 등장한 이후 고려와 조선으로 이어지면서 영토 승계가 됐다는 것이 실록이나 한·일 고지도에 적혀 있다.거기에는 양국 다 의심의 여지가 없다.다음은 무주지(無主地) 선점론이다.일본은 1849년 프랑스 선박에 의해서 독도가 발견됐을 때 ‘량꿔(liancourt·1849년 독도를 발견한 프랑스 포경선)도 영토 편입 및 대하원’이라는 문서를 만들었다.즉 당시 독도가 이제까지 어느 나라 땅도 아니었으며 먼저 선점하게 되었으니 자기네 땅이라고 우기는 것이다.하지만 앞서 말했던 고지도나 일본 문서에 이미 일본은 독도가 한국땅에 소속되어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는 증거가 다수 있다.즉 조선의 땅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영토를 편입한 것은 침략행위가 되고 이는 국제법적인 효력이 없다. -즉 한국의 영토인데 일본이 편입시켰다면 남의 나라 영토를 침략했다는 게 된다.그래서 국제법 위반이다.그럴 때 일본 측이 한국 땅인 줄 몰랐다고 나오는데 우리가 줄기차게 다녔고 지도에도 나왔으니 몰랐다는 건 말도 되지 않는다. -시마네현 영토에 관한 문제를 따져보자.일본에 과거 태정관이라는 우리 총리실에 해당되는 최고기관이 있었다.1877년에 일본 시마네현에서 어부들이 독도 쪽에 어업을 가려한다고 하자 태정관에서 ‘울릉도와 외 1도’는 조선에서 말하는 우산국의 일부이니 신라에 복속된 다음에 계속해서 조선의 영토다.그러니 일본 사람은 가지말라고 명령했다.이는 일본에서 맨 처음으로 유권해석한 것이다.그래서 통항금지시켰다.이는 일본도 인정하는 사실이다. -또 따져봐야 할 문제가 국가가 변할 때는 영토가 같이 가지는 않는다는 점이다.이는 발해가 우리 영토였지만 승계를 못 받아서 지금은 우리 땅이 아닌 것과 같다.하지만 독도는 고려 를 거쳐서 세종실록이라든지 연산군 왕조실록들을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울릉도와 우산이 다같이 우리 영토로서 승계됐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다.영토로서 증거력을 가지고 왕조실록을 가지고 있다.영토 문제 다루는 비변사에도 기록이 있다.그렇게 이해한다면 우리 조선왕조에는 계속 승계되어 왔다. -일본이 문제삼고 있는 것 중의 하나가 1430년 세종 때부터 우리나라가 300년정도 동안 공도정책을 썼던 것이다.공도정책이란 전방에 있는 일부 섬이 조세 면탈자,병역기피자들이 가서 살면서 가끔 외적 침탈의 선봉 이 되기도 해서 아예 그 섬에 사람 들을 살지 못하게 했던 정책이었다.그래서 사람들을 살지 못하게 비워뒀다.당시에는 변방에서 별로 쓸모가 없는 지대였기 때문이다.그러다 1880년대 일본 사람들이 자꾸 거기로 가고 선박이 와서 지도도 만들고 하는 것을 보고선 방치해서는 안되겠다고 생각하게 됐다.그러면서 다시 우리 주민들도 많이 들어갔다.우리가 비워 두는 사이에 왜구들이 나무도 베어가고 행패도 부리고 고기도 잡아가고 했었다.그래서 1882년 공도정책을 파기하고 직접 적극적인 관할을 하기로 한다.그래서 적극적으로 관할하려면 도감을 두는 수준보다 격상시켜서 1900년 칙령 41호로 울릉도를 울도로 바꾸고 도감이 관할하지 않고 군수를 두겠다고 한다.울진군과 격상시켜서 독립된 군으로 만든다.이때 독도인 죽도를 석도로 표현한다.일본은 이 공도정책 자체가 영유권 포기라고 주장하는 데 이는 터무니없다.공도정책이라는 정책을 실시했다는 자체가 바로 통치권 행사의 증거다. -또 고종 황제가 우리가 관할하는 지역이니 측량을 하자며 1898년 양지아문을 만든다.서양 지도 전문가를 불러서 지도 전문가 30명을 양성한 뒤 대한여지도와 대한전도를 만든다.1899년 나왔다.그 지도에 울릉도,우산 이렇게 섬이름까지 넣어서 조선 영역을 표시했다.우리 관에서 만든 영토 지도다.고종 황제가 직접 관할하려는 정책으로 전환한 것이다.그래서 우리의 땅을 법령상에 표기한 것이다. -1953년 국제사법재판소에서 프랑스와 영국 사이에 망뀌에 및 에끄레 후(Minquiers and Ecrehos) 영토분쟁이 있었다.당시 영국의 영토로 결정됐는데 서로의 주장을 가른 근거는 국가가 영토로서 그 주권을 행사한 직접 증거로 입법을 했다든지 행정적 조치를 취했다든지 영토지도를 가지고 있다든지 등의 증거였다.우리에겐 대한전도가 대표적인 영토지도였으며,칙령 41호가 입법조치이다.군수 를 파견한 것이 행정조치이다.즉 우리는 이미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더라도 충분히 이길 수 있을만한 근거를 가지고 있으며 일본측이 자꾸만 감정적으로 자극하는 조치를 취하는 것은 영토분쟁 지역이라는 사실을 부각시키는 것 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일본은 1905년 영토 편입도 이미 언급했다시피 영토가 아니기때문에 편입한 것이므로 근거가 되지 못하고 고기잡으러 남의 땅에 간 것이 자기 네 땅이라는 증거도 아니므로 근거가 될 수 없다.일본 국가 기록이 있어야 한다.하지만 막부 시절 다카하시,이 노 등이 만든 지도도 독도가 일본의 영토에 포함된 것이 없다.오히려 적극적으로 조선의 영토라고 표기됐다.보통 일본의 기록 문서나 영토 지도를 볼 때는 독도는 일본의 영토가 아니거나 아예 조선의 영토로 표시되어 있다. -오늘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을 조 례로 결정한 것은 중앙정부의 불법 조치를 합법조치로 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부당하고 불법하고 효력이 없다.시마네현 문제는 국내적인 문제에 불과하다. -일본은 문서 자료를 자꾸 감추고 있지만 우리 외교부는 25년전 일본 아세아 역사 자료센터에서 입수한 자료를 착실하게 갖추고 있다.결국 일본이 내심으로는 꿀리니까 큰소리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면 우 리가 불리하다고 하는데 우리는 국제 사법재판소 가도 근거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그리고 시비건다고 다 국제사법 재판소 가지 않는다.우리는 국제사법 재판소 갈 일이 없다.우리는 100% 우리 것이라는 증거를 가지고 있는 것 아니냐.일본이 센카쿠열도 등 은 죽어도 자기들 것이니까 국제사법재판소 가자고 말하지 않지 않느냐.일본이 독도 문제에선 유독 국제사법재판소에 가려고 의도하는 것은 결국 독도 문제에선 우리가 우월하다는 점을 인정 하는 것이다. -2차대전 끝나고 나서 대일평화조약 등에서 독도 문제가 거론된 것은 본질이 아니다.대일평화조약은 일본과 연합국과의 조약이지 한국과의 조약이 아니다.당사국인 우리나라가 관여되지 않은 조약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미국이 독도가 일본 영토라는 인식을 가졌다고 하는 건 문제가 없다.2차대전이 발발하지 않았더라도 독도는 우리 것이기 때문에 2차 대전 관련 평화조약과 독도 문제는 관계없다. -물론 지금 정세를 이해는 하지만 이번에 국회에서 너무 감성적으로 ‘독 도 이용 특별법’ 만든다고 하던데 사실 그럴 필요가 없다.우리 땅이면 그냥 갔다오면 되는 것 아니냐.변방 이니까 연평도 등과 같이 국방상의 이유때문에 못갈 수도 있지만 제주도 가는 데도 특별법이 필요하겠느냐.독도를 특별취급할 필요가 없다. -우리 국민정서는 당연히 이해한다.하 지만 이번에 외교부에서도 반기문 장 관이 독도 문제는 영토 문제고 주권 문제니까 거기에 도전하는 것은 한일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라고 강경하게 천명하고 있어서 크게 문제될 것은 없다고 봐야한다. -일본이 자꾸 한마디씩 던지는 것은 분쟁으로 이끌어 내려는 전략에 불과하다.일본 측의 한 마디만 나오면 주한 일본대사관에 가서 화형식하고 하면 NHK 등에서 몇 시간식 방영해서 일본 내에서 이용하는 경향도 있다. 물론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너무 감정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된다. -지금 국민적으로 감정이 격앙되고 있는데 물론 그 감정도 어느 정도 필요한 게 사실이다.하지만 우리는 우리가 할 일만 해두면 된다.국제사법 재판소에 가게 될 경우를 대비해 아주 적극적으로 준비해야 할 필요가 있다.국가의 영유권에 관한 조사도 하고 충분히 준비하면 일본이 이길 수 있는 근거는 없다.
  • 파견근로 업종 확대 서비스·판매업 추가

    여야가 4월 처리키로 합의한 비정규직 법안 중 파견근로 대상에 기존 26개 업종 외에 서비스와 판매업종 등이 추가될 전망이다. 김대환 노동부 장관은 2일 정부 과천청사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현행 26개 파견업종은 그대로 유지하고 고용의 탄력성이 필요한 서비스업, 판매업종을 파견업종에 포함시키는 안이 당정협의에서 합의됐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그러나 “파견대상 업종에 대해서는 네거티브 방식이 바람직하다.”면서 “국회 환경노동위가 노동계 반발 등을 고려해 네거티브 방식에서 포지티브 방식로 바꾸려하고 있으나 실질적인 불법파견 해소를 위해서는 네거티브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기존 입장을 고수했다. 최용규기자 ykchoi@seoul.co.kr
  • 진통예상 삼성전자 주총 ‘무난한 마무리’

    진통예상 삼성전자 주총 ‘무난한 마무리’

    삼성전자가 사상 최대의 실적을 앞세워 진통이 예상됐던 정기 주주총회를 ‘무난하게’ 마무리지었다. 삼성전자는 올해 고유가, 원화절상, 정보기술(IT)경기 하락 등 악재가 많지만 원가절감 경영 등을 통해 지난해(10조 7867억원)보다 많은 11조원대의 순이익을 목표로 설정했다. ●순이익 11조원 시대 여나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은 28일 정기주총에서 “올해 매출을 지난해 대비 2% 성장한 58조 7850억원으로 잡았다.”면서 “아날로그와 저부가가치 사업 철수, 신성장 모멘텀 확보 등을 통해 순이익 목표치도 지난해보다 높게 설정했다.”고 밝혔다. 삼성전자는 해마다 경영계획을 밝히면서 매출 목표는 제시했지만 순이익에 대해서는 말을 아껴왔다.1998년부터 8년째 주총 의장을 맡아 온 윤 부회장이 순이익 목표를 밝히기도 이번이 처음이다. 구체적인 수치는 밝히지 않았지만 큰 폭의 증가는 어려울 것으로 보여 11조원대가 예상된다. 삼성그룹도 지난해 말 올해 그룹 매출은 지난해보다 3% 늘어난 139조 5000억원으로 잡았지만 세전이익은 23% 줄어든 14조 6000억원으로 설정했다고 밝힌 바 있다. 환율변수와 액정표시장치(LCD) 등 주요 품목의 판매가격 하락을 반영한 것이었다. 사정이 이런데도 윤 부회장이 순이익 증대를 목표로 내건 것은 반도체 경기가 예상보다 좋고 LCD도 판매가격이 회복되는 등 곳곳에서 청신호가 켜지고 있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일류주총은 절반의 성공 지난해 주총에서 참여연대와 설전을 벌이다 몸싸움까지 벌인 삼성전자는 올해 주총을 무사히 끝내기 위해 각별한 노력을 기울였다. 참여연대 인사들에게 발언기회를 최대한 준 것이다. 참여연대는 예상대로 삼성카드 추가 증자 참여, 삼성자동차 채권 처리, 이건희 장학재단 출연, 김인주 사장의 이사 재선임에 대해 반대의견을 표명했다. 이 가운데 김 사장 선임 문제는 표결까지 갔지만 96.25%의 찬성으로 결론났다. 참여연대는 전자사업과 전혀 상관없는 신용카드에 지금까지 1조 900억원을 출자했고 매년 수천억원의 지분법 평가손을 보는 상황에서 또다시 1조 2000억원 규모의 증자에 참여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삼성전자 최도석 사장은 “추가 증자에 참여할지 여부를 놓고 현재 삼정회계법인에 평가를 의뢰하는 등 증자 참여 득손실을 따져보고 있다.”고 밝혔다. 참여연대는 또 불법 정치자금 문제로 구설수에 오른 김인주 사장은 이사로서 자격이 없다고 주장했다. 윤 부회장은 “김 사장은 정치자금 제공 건으로 사법처리를 받지 않은데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외부압력 등으로 연루된 것으로 판단, 회사차원의 징계도 하지 않았다.”고 대응했다. ●여전히 남은 숙제 이날 주총이 3시간만에 비교적 원만하게 끝났지만 삼성의 ‘아킬레스건’인 지배구조를 둘러싼 논란은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김상조 소장은 “삼성전자의 최대 위험 요소는 비즈니스 관련 의사결정이 아니고 지배구조와 관련된 의사결정 구조”라면서 “구조조정본부에 파견돼 있는 김인주, 이학수 이사 등이 법률적 위험의 전형적 사례”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 부회장은 “지배구조가 ‘형편없는’ 삼성전자는 분식을 안 하는데 지배구조가 훌륭한 미국에서는 어떻게 엔론사태·월드콤 사태가 나오느냐.”면서 “기업의 지배구조가 문제가 아니라 사회전체의 지배구조가 문제”라고 반박했다. 이날 주총장 분위기는 윤 부회장의 ‘논리’를 지지하는 쪽이었다. 하지만 김 소장은 “앞으로 이재용 상무를 등기이사로 선임하는 주총이 있으면 3시간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 여운을 남겼다. 류길상기자 ukelvin@seoul.co.kr
  • [CEO 칼럼] 한류열풍속 ‘짝퉁그늘’/김범수 NHN 대표

    [CEO 칼럼] 한류열풍속 ‘짝퉁그늘’/김범수 NHN 대표

    국립국어원이 최근 발간한 ‘2004년 신어 보고서’를 보면 욘사마, 욘겔계수, 욘플루엔자 등 한류스타 배용준에 관한 신조어가 세 개나 수록되어 눈길을 끈다. 일본열도를 강타한 ‘한류열풍’의 조짐은 중국에서 먼저 시작됐다. 드라마 ‘사랑이 뭐길래’‘여명의 눈동자’ 등 한국 드라마와 대중음악으로 중국대륙은 벌써부터 ‘한류열풍’의 진원지로 자리매김한 바 있다. 중국의 한류 열풍은 온라인게임에서도 두드러진다. 시장조사기관인 IDC가 발표한 2004년 초 기준 자료에 따르면, 중국 인기 온라인게임 톱10에 ‘미르의 전설 2·3’‘뮤’ 등 5개의 한국 온라인게임이 들어 있다. 그러나 중국은 한국 온라인 게임에 대한 불법복제라는 지나친 애정표현(?)으로 한류 열풍에 그늘을 드리우고 있어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 뿐만 아니다. 얼마 전 중국에 한국 ‘짝퉁’ 사이트의 범람과 이에 따른 국내 업체들의 피해사례가 속출한 바 있다. 국내 게임포털과 미니홈피 등 인기 인터넷 서비스의 메뉴구성과 전체화면, 캐릭터를 그대로 표절한 것이다. 심지어 서비스에 사용된 한글까지 그대로 사용하는 등 몇몇 중국 사이트의 노골적인 ‘짝퉁’ 행각이 혀를 내두르게 하고 있다. 전세계 짝퉁산업의 현황과 기업의 대처법을 특집으로 다룬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 최신호에 따르면 세계관세기구(WCO)가 추정한 전세계 짝퉁시장 규모가 물품교역량의 5∼7%인 약 512조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놀라운 것은 이중 중국산이 전세계에서 생산·유통되는 짝퉁의 3분의2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내가 몸담고 있는 NHN의 게임 포털 사이트 ‘한게임’이 국내에 서비스 중인 플래시 게임들도 최근 중국의 모 게임업체에 의해 도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신속한 사태 파악과 중국대사관 인증 등을 통해 수집한 증거자료들을 토대로 NHN의 저작권을 침해한 해당 기업에 경고장을 보내 서비스를 중단시켰다. 나는 한국에서 만든 증거자료가 중국에서 얼마나 능력을 가질지 알지 못한다. 또 모방 서비스로 인한 피해액이 어떻게 산정될지도 알 수 없다. 다만 이번 사태가 중국 업체들의 무분별한 도용에 대한 경고가 되고, 한국 기업들의 지적재산권보호의 본보기가 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법적 조치가 필요하다고 관련 부처에 주문했다. 다행히 불법복제에 대한 불만을 각국 정부로부터 받아온 중국정부는 최근 지적재산권 침해 행위에 대한 처벌 수위를 강화하겠다고 공식 선언한 바 있다. 실제로 세계 최대 오토바이 제조업체인 일본 ‘혼다’가 자사 로고와 브랜드를 혼동시키는 ‘훙다’를 사용해온 중국 최대 오토바이 생산업체를 상대로 제기한 상표권 침해소송에서 승소 판결을 받아 냈다.2년여의 심리 끝에 중국인민법원으로부터 받아낸 이 판결은 중국시장을 개척하려는 수많은 외국 기업들에 희망적인 사인으로 읽혀지고 있다. 특히 미국 특허청(PTO)은 베이징 주재 미 대사관에 특허권 문제를 전담하는 담당관까지 파견하는 등 중국의 지적재산권 침해에 대해 이례적인 대처를 하고 있다. 우리도 이제 힘을 모아야 한다. 유수 글로벌 기업들과 해당 국가의 정부들은 지적재산권 침해 사태에 공동 대응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IT강국이다. 향후에도 우리 IT 기업들이 초일류 글로벌 기업으로 세계에서 경쟁력을 쌓기 위해서는 정부와 기업이 함께 행동해야 할 시점이라고 생각된다. 김범수 NHN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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