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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6.25 상흔 간직한 철원 대마리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 개관

    6.25 상흔 간직한 철원 대마리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 개관

    6.25전쟁의 상흔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강원도 철원군 대마리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이 개관했다. 철원군은 23일 철원읍 대마리 민통선 마을 안에 6.25전쟁의 상흔과 굴곡진 역사를 간직한 역사문화관 세모발자국을 전날 개관했다고 밝혔다. 세모발자국은 대마리 입주민들의 개척 역사를 기록· 보존하고 주민들에게 문화 공간을 제공하기 위해 건립됐다. 대마리 문화역사관 이름인 세모발자국은 지뢰밭 상징인 ‘세모’와 1967년부터 황무지를 개척하며 전쟁 이후 지뢰로 희생된 입주민들의 ‘발자국’을 의미해 붙여졌다. 전체 207㎡ 규모에 영상관 1곳, 전시관 3곳, 전시체험관 1곳, 마을 카페 1곳 등 6개 공간으로 꾸며졌다. 전시 공간은 대마리 입주 1세대 마을 주민들의 증언과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기획했다. 전쟁 이후 지뢰와 버려지다시피했던 척박한 땅을 피와 땀으로 일궈가는 과정을 전시물로 표현했다. 6·25전쟁 당시 철원지역 일대는 철의 삼각 전투로 인해 쑥대밭으로 변했고 대마리 뒤쪽에 위치한 백마고지에서는 처절한 전투가 벌어졌다. 전쟁이 멈춘 뒤 마을 뒤편으로 비무장지대(DMZ)가 들어서는 등 북한과 대치하는 최전선으로 변하면서 민간인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으로 방치됐다. 정부는 전쟁 이후 부족한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허술한 휴전선 목책 사이로 북한 간첩들이 넘어오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1967년 대마리에 150가구를 입주시켰다. 하지만 쑥대밭이 된 대마리는 불발탄과 지뢰가 곳곳에 널렸고 길과 수리시설이 없어 농사를 지을 수 있는 여건이 되지 않았다. 입주민들은 개간 과정에서 폭발물 사고로 목숨을 잃는 등 피해를 보면서도 척박한 땅을 개척해 현재 대마리는 전국 유명 쌀 생산지로 변모했다. 이현종 철원군수는 “6.25전쟁의 상처를 딛고 평화를 위해 피와 땀으로 대마리를 지켜오신 입주민의 삶을 역사문화관을 통해 되짚어 보면서 평화와 번영의 소중함을 느끼는 공간이 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철원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이경우의 언파만파] 전쟁의 언어, 소통의 언어

    [이경우의 언파만파] 전쟁의 언어, 소통의 언어

    “가락지~.” 영화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 여일에게 수류탄의 안전핀은 ‘가락지’다. 해맑은 미소를 보이며 그 ‘가락지’에 너무도 자연스럽게 손을 댄다. 국군, 인민군, 연합군 간 긴장감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소박하고 순수함이라는 강력한 무기를 믿는다. 군인들은 잔뜩 얼어 있지만, 천하태평하게 마음 가는 대로 어디든 돌아다닌다. 그래서 얼굴에 빗물이 흐르는 채로 서 있는 인민군의 얼굴을 편하게 닦아 줄 수 있다. 순간적이지만 인민군은 긴장이 풀리고 ‘가락지’를 뽑아도 반응할 틈도 의욕도 보이지 않는다. 다만 지켜볼 뿐이다. 그사이 긴장감은 더 팽팽해지고 곧 터지고 만다. “펑” 소리와 함께. 그런데 그것은 전쟁이 아니라 평화의 소리, 언어였다. 불발탄이라 여겨졌던 수류탄은 “펑” 소리를 내며 온 마을에 ‘팝콘’을 눈처럼 내리게 한다. ‘펑’은 극에 달했던 긴장을 풀라는 신호처럼 작용했다. 군인들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하기 시작했고, 마음을 조금씩 열어 나갔다. 여일이와 마을 사람들이 보인 따듯한 인간미와 화해의 마음이 전달된 것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허풍이나 거짓말을 뜻하는 ‘뻥’도 ‘팝콘’처럼 의미를 만들어 갔다. 한때 전통시장의 뻥튀기 기계는 그곳이 시장임을 알리는 상징이었다. 왁자지껄한 시장 바닥을 큰 소리로 일시에 덮어 버렸었다. “뻥” 하며 뻥튀기 기계를 요란하게 빠져나온 옥수수 낟알들은 한껏 커지며 달콤하고 구수한 강냉이를 내놓았다. 여기에 먹을거리에서 그치지 않고 장터의 인심까지 담은 말들까지 전했다. 그렇지만 소리와 함께 커지게 한다는 속성 때문에 ‘뻥’은 ‘과장’의 의미가 담겨 ‘허풍’이 되고 ‘거짓말’이란 말이 됐다. 그래도 ‘허풍’이나 ‘거짓말’처럼 정색하지 않은 말이어서 그리 밉게 보이지 않는다. 언어에 관해서도 일가견 있는 의견을 내놓은 장자도 이런 ‘뻥’을 섞는 데 달인이었다. 북쪽 바다에 사는 물고기 둘레가 몇천 리라고 하고, 그 물고기가 변한 새 ‘붕’은 등이 또 몇천 리가 넘는다며 얘기를 풀어 나간다. 또 잉어와 이야기를 주고받기도 했다고 ‘뻥’을 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속에 일상을 꿰뚫는 지혜를 전하고 있기에 ‘뻥’이라고 하지 않는다. ‘웰컴 투 동막골’의 주인공들이 내놓은 ‘펑’ 소리처럼 시원하게 막힌 곳을 뚫어 주는 ‘뻥’이었다. 장자는 소리를 퉁소에 빗대어 말했다. 그 가운데 추구해야 하는 건 하늘의 퉁소 소리였다. 곧 마음으로 내고 듣는 소리다. 여일이의 ‘가락지’에서 비롯된 ‘펑’ 소리 같다. wlee@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박록삼의 시시콜콜] 일왕에 폭탄 던진 이봉창이 누린 ‘영원한 쾌락’

    그는 창씨개명도 마다하지 않았다. 조선인이건만 유창한 일본말에 비해 오히려 한국말이 서툴렀다. 약국, 제과점, 철도 역부 등으로 일하면서도 술과 여자를 좋아하고 친구와 어울리길 즐기던 ‘모던뽀이’였다. 이 청년은 일본 내지로 건너가 기꺼이 ‘기노시타 쇼조’가 됐다. 그는 꼬박 88년 전인 1932년 1월 8일 동경 요요키 연병장에서 만주국 괴뢰황제 부의(溥儀)와 관병식을 끝내고 경시청 앞을 지나가는 일왕 히로히토를 향해 수류탄을 던졌다. 습기를 머금은 수류탄은 불발탄이 됐고, 그는 곧바로 체포된 뒤 그해 10월 10일 사형됐다. 이봉창(1901~1932) 의사다. 그가 일왕에게 폭탄을 던지기 전 양 손에 수류탄을 들고 해맑게 웃으며 찍은, 그 유명한 사진은 볼 때마다 정말 놀랍다. 아무리 조국을 사랑하고 독립을 염원하는 펄펄 피 끓는 청년이라 하더라도 의거 뒤 뻔한 죽음이 예고된 상황에서 지을 수 있는 표정은 아니다. 물론 최근 들어 합성이라는 주장에 무게가 실리긴 하다. 돈을 많이 벌고 싶었고, 일본인에게 차별받고 싶지 않았던 이봉창은 조선에서 차별은 당연했고, 차라리 일본으로 건너가면 동등한 대우를 받으리라 믿었다. 넉넉지 않은 살림임에도 호기롭게 돈을 쓰며 유흥을 즐기는 것 또한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창씨개명을 하고, 아무리 일본어가 유창해도 조선인 꼬리표는 어딜 가든 붙어다녔다. 식민지 백성으로서 이봉창의 각성은 이때 시작됐다. 일왕 히로히토 즉위식을 볼거리 삼아 구경하러 갔다가 오로지 한글로 된 편지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로 일본 경찰의 제지를 받고 9일간 유치장에 갇힌 점은 본격적인 행동에 나서게 만들었다. 상하이임시정부를 찾아가 무턱대고 김구(1876~1949)를 찾았고, 밀정이라는 의심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진심을 전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했다. 상하이의 한 철공소에서 일하며 틈만 나면 술과 국수를 사와서 임시정부 요인들과 자리를 가졌다. 술잔 공세에 의심이 무뎌졌을까. 그의 진심은 조금씩 통했다. 무엇보다 한인애국단을 이끌던 김구에게 전한 이봉창의 편지는 ‘모던뽀이’였던 그가 왜 이런 비장한 결단을 내렸으며, 어떤 마음가짐으로 독립운동에 투신하게 됐는지 설명하기에 충분했다. “선생님, 인생의 목적이 쾌락이라면 저는 지난 31년 동안 육신의 쾌락은 대강 맛보았습니다. 이제는 영원한 쾌락을 도(圖)키 위해 독립 사업에 헌신할 목적으로 상하이에 왔습니다.” 비장하긴 한데 뭔가 유쾌하다. ‘쾌락’을 독립운동의 이유로 삼다니. 이봉창답다. 그는 상하이에서 일본으로 온 뒤 열흘 동안 김구로부터 처음 받은 300원이라는 거금을 몽땅 술과 유흥에 탕진하고, 이후 200원을 추가로 받아 역시 밥값, 술값에 기꺼이 써버린다. 요즘으로 치면 족히 1000만원이 넘는 돈인데 말이다. 자신의 신분을 위장하기 위한 ‘의도적 쾌락’이었다. 김구는 한인애국단 1호 단원 이봉창의 모습을 백범일지에 이렇게 기록했다. ‘기념 사진을 찍을 때에 내 낯에는 자연 회연한 기색이 있는지 이씨는 나를 권한다. “나는 영원한 쾌락을 향(享)코저 이 길을 떠나는 터이니, 우리 양인이 희열한 안색을 띄고 사진을 찍읍시다.” 나 역시 미소를 띄고 사진을 찍었다.’ 그렇게 남겨진 사진 자체는 합성일지는 모르지만, 철저히 이타적인 영적 쾌락에 대한 지향을 드러낸 88년 전 식민지 청년의 기백에 찬 표정과 말투가 떠오른다. 88년 뒤를 살아가는 우리는 어떤 쾌락을 누리려 바둥거리고 있는 걸까. 논설위원 youngtan@seoul.co.kr
  • 文 “한강의 기적, 메콩강으로 이을 것”

    文 “한강의 기적, 메콩강으로 이을 것”

    문대통령 메콩국 개발기금 100만弗 약속 신남방정책 격상… 아세안 확고한 지지도 한국과 메콩 5개국 정상들은 27일 첫 정상급 정례회의를 갖고 ‘문화관광, 인적자원개발, 농업·인프라, 정보통신기술(ICT), 환경, 비전통안보협력’ 등 7개 우선 분야를 선정해 미래협력을 추진해 나가기로 했다. 특히 메콩 정상들은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에 대해 적극적 의지를 표명하고, 문 대통령의 ‘비무장지대 국제평화지대화 구상’을 공유하며 한반도의 완전한 비핵화 및 항구적 평화를 위해 함께 노력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과 정상들은 이날 부산 누리마루에서 열린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에서 이런 내용을 담은 ‘한강·메콩강 선언’을 채택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이번 회의는 2011년부터 매년 장관급으로 진행된 한·메콩 협의체가 정상급으로 격상된 뒤 첫 회의로, 전날 폐막한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계기에 열렸다. 문 대통령과 아세안 의장국인 태국 쁘라윳 짠오차 총리가 공동 주재하고, 통룬 시술릿 라오스 총리,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고문, 응우옌쑤언푹 베트남 총리, 프락 속혼 캄보디아 부총리가 참석했다. 문 대통령은 “한국의 경험이 메콩의 역동성과 손을 잡으면 ‘한강의 기적’이 ‘메콩강의 기적’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국가 간 개발 격차를 줄여 통합된 공동체로 발전하기 위한 아세안과 메콩의 꿈은 곧 한국의 꿈”이라고 밝혔다. 참가국은 한·메콩 생물다양성센터 및 수자원 공동연구센터 설립, 산림협력 사업 등에 합의하고, 우리 정부가 미래 평화공동체 조성 사업으로 메콩 농촌 지역 지뢰·불발탄 제거, 농촌 공동체 개발을 지원하기로 했다. 문 대통령은 부산 벡스코에서 공개한 공동언론발표문에서 “메콩 지역 발전은 개발 격차를 줄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며 “3억명에 이르는 메콩과 한국 국민이 긴밀히 교류, 함께 잘사는 것이 우리의 공동 목표”라고 역내 연계성 강화를 언급했다. 쁘라윳 총리도 “문 대통령이 메콩국 경제협력체인 애크멕스에 개발기금 100만 달러를 약속해 준 것을 환영한다”며 “한반도 비핵화가 지역 평화·안정 유지에 중요하다는 점을 인지하고 있다”고 했다. 한·아세안 특별정상회의 및 제1차 한·메콩 정상회의는 문재인 정부의 신남방정책 수준을 취임 2년 반 만에 한 단계 높인 계기가 됐다는 평가다. 기존 4강 위주 외교를 다변화하는 동시에 한반도 비핵화 구상에 대한 이들 국가의 공감대를 한층 긴밀히 조성해 외교적 지지의 외연을 넓혔다. 자유무역협정(FTA) 네트워크 확대 등 시장 확보, 제조업·스마트시티 등 경협, 비자제도 개선, 싱가포르·브루나이와 항공자유화 등도 성과로 평가된다. 문 대통령은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열린 한·베트남 정상회담에서도 “베트남 축구팀과 박항서 감독의 만남은 전 세계의 환호를 불러왔다”며 “베트남의 산업국가 목표와 한국의 신남방정책의 시너지 효과도 한 차원 더 높이길 바란다”고 했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어려운 고비와 난관이 우리 앞에 있더라도 교량국가의 꿈을 포기할 수 없다”며 “이제 부산에서 육로로 대륙을 가로지르는 일이 남았다”고 소회를 밝혔다. 부산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성남 공사현장서 6·25때 추정 포탄 발견…“폭발 위험 없어”

    성남 공사현장서 6·25때 추정 포탄 발견…“폭발 위험 없어”

    경기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한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6·25전쟁 당시의 것으로 추정되는 포탄 1점이 발견돼 경찰과 군 당국이 수거했다. 5일 경기 성남수정경찰서에 따르면 이날 오후 1시 20분께 성남시 수정구 시흥동 근린생활시설 건물 신축공사 현장에서 작업자들이 땅에 묻혀있던 155㎜ 구경의 포탄 1점을 발견해 경찰에 신고했다. 포탄은 흙으로 덮여 녹이 슬어있는 상태였던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은 공사장 주변 출입을 통제한 뒤 군 폭발물 처리반(EOD)을 통해 포탄을 회수해 군에 인계했다. 경찰 관계자는 “발견된 포탄은 6·25 전쟁 당시 국군이 사용한 불발탄인 것으로 추정된다”며 “땅속에 오래 파묻혀 있어 폭발 가능성은 거의 없던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여기는 할리우드] 마동석 주연 ‘이터널스’ 촬영장에 폭탄이…졸리 등 대피

    [여기는 할리우드] 마동석 주연 ‘이터널스’ 촬영장에 폭탄이…졸리 등 대피

    배우 마동석이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마블 스튜디오 영화의 주연으로 캐스팅 돼 더욱 기대를 모으고 있는 영화 ‘이터널스’ 촬영장에서 불발탄이 발견돼 배우와 스태프가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 영국 메트로 등 해외 언론의 4일 보도에 따르면 안젤리나 졸리, 마동석, 리차드 매든 등이 출연하는 영화 ‘이터널스’ 촬영장에서 폭파되지 않은 폭탄이 발견됐다. 당시 현장에는 졸리와 매든 및 스태프 다수가 있었고, 소식을 들은 배우와 스태프들은 곧장 촬영장 인근인 스페인 카나리아 제도의 푸에르테벤투라 섬으로 안전하게 대피했다. 이후 아수라장이 된 촬영장으로 폭탄 전문가들이 들어왔고, 불발탄을 안전하게 제거한 뒤에야 촬영이 재개될 수 있었다. 마동석이 다른 배우들과 현장에 있었는지는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촬영장에 있던 한 관계자는 영국 일간지 더 선과 한 인터뷰에서 “문제의 폭탄은 수 십 년 동안 훼손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있었던 것으로 보였다”면서 “만약 실수로라도 잘못 건드릴 경우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장의 모두가 매우 두려워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더 선은 “문제의 폭탄이 정확히 언제, 어디서 제작된 것인지, 얼마나 오랫동안 촬영이 있었던 해당 공간에 존재해 왔는지 밝혀지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촬영이 진행된 섬은 과거 2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이 군사기지로 썼던 곳”이라고 전했다. 한편 영화 ‘이터널스’는 수백만 년 전 인류를 실험하기 위해 지구로 온 셀러스티얼이 만든, 우주 에너지를 조종할 수 있는 초인적 힘을 지닌 불사의 종족 이터널스가 빌런 데비안츠와 맞서 싸우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마블(MCU)의 25번째 작품이다. 마동석은 ‘길가메시’ 역으로 합류했으며, 주연인 안젤리나 졸리가 지난 9월 영국 런던의 한 강가에서 촬영하는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이터널스’는 오는 2020년 11월 6일 개봉 예정이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순천시의원들, 라오스에서 나눔 봉사활동 펼쳐 ‘눈길’

    순천시의원들, 라오스에서 나눔 봉사활동 펼쳐 ‘눈길’

    순천시의원들이 라오스에서 나눔 봉사활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서정진 의장 등 시의원 8명으로 구성된 라오스 연수단은 지난달 28일부터 지난 2일까지 국외연수 기간 동안나눔문화와 봉사활동을 하고 돌아왔다. 연수단은 30도를 웃도는 무더위도 불구 방비엥에 있는 나통초등학교 담장 페인트칠 봉사활동을 한데 이어 운동복 100벌과 연필·공책 등 학용품 100점, 금일봉 등을 전달했다. 이들 연수단은 연간 연수 비용 한도액인 1인 320만원의 절반도 안되는 여행경비가 지급됐으나 자재 구입비와 금일봉을 각자 사비를 들여 마련했다. 의원들은 한국국제협력단 라오스사무소와 라오스 불발탄지원센터, 비엔티엔 여성장애인센터를 방문, 기관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갖고 활동사항 공유와 시설 등을 둘러봤다.또 블루라곤, 쏭강을 따라 펼쳐지는 롱테일보트, 짚라인, 카약, 버기카 등 문화관광 시설지 등을 견학하기도 했다. 서정진 의장은 “지금까지 국외출장시 자원봉사 사례가 없어 연수일정에 지장이 없는 범위에서 봉사활동을 했다”며 “시대변화에 따른 새로운 시도여서 의미가 남달랐다”고 소감을 밝혔다. 서 의장은 “짧은 기간임에도 기관방문과 문화관광시설 체험 등 바쁜 일정을 모두 소화했다”며 “동료 의원들이 개인 여비를 들여 나눔과 봉사를 하는 등 학생들에게 작은 감동을 주고 돌아와 마음이 뿌듯하다”고 말했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한화, 다련장 로켓포 ‘천무’…국산 무기 첨단화 주도

    ㈜한화, 다련장 로켓포 ‘천무’…국산 무기 첨단화 주도

    1952년 설립된 한화그룹의 모기업 ㈜한화는 1974년 방위산업에 진출한 이후 유도무기부터 탄약, 우주사업에 이르기까지 국산 무기의 첨단화를 주도해 왔다. 특히 2015년부터 전력화한 230㎜급 다련장 로켓포 ‘천무’ 개발에 성공했다. ㈜한화는 또 기술력을 바탕으로 추진제, 신관, 화약 등 국내 정밀탄약 분야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또한 천무를 바탕으로 다양한 신규 유도무기 사업을 수주하며 유도무기 사업도 확대 중이다. 이 밖에도 미래 성장동력으로 항법장치, 레이저 분야 등의 분야에서 핵심 기술을 보유하기 위한 기술 개발 투자를 확대하는 등 지속적인 연구개발을 진행하고 있다. 향후 정부의 첨단 무기개발 확대 정책과 더불어 중장기적으로도 지속 성장할 것으로 기대된다. 천무 외의 주요 제품으로 소형무장헬기(LAH) 공대지 유도탄 ‘천검’, 식별된 급조폭발물 및 불발탄을 고출력 레이저로 빠르고 안전하게 무능화시키는 폭발물 처리 장치인 ‘레이저폭발물처리기’, 적의 장사정포 갱도 진지 파괴용 등으로 개발 중인 전술지대지유도무기(KTSSM) 등이 있다. KTSSM은 2021년에 전력화할 예정이다. ㈜한화는 전술지대지 유도무기 전력화와 함께 탄두 다양화, 플랫폼 다변화를 통해 국군의 작전 운용성을 증대해 나가는 동시에 해외시장도 개척할 방침이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지금’이 내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정지환 감사경영연구소장은 충북 옥천신문과 손잡고 ‘은빛자서전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다. 한 사람의 일생은 그 자체가 역사이고 작은 박물관이라는 믿음을 가지고 80세 이상 주민의 구술(口述)을 풀어내 자서전으로 정리하는 프로젝트다(서울신문 2018년 3월 16일자 ‘인터뷰 플러스’ 참조). 이번에는 옥천군 동이면 지양리에 사는 최정술 씨(87)를 만났다.●후쿠오카를 거쳐 옥천으로 나(최정술)는 1932년 전북 무주에서 태어났다. 옥천과 인연을 맺은 것은 13세가 되던 1945년이었다. 징용으로 끌려간 아버지가 있다는 일본 후쿠오카(福岡)의 한 탄광촌으로 어머니 손에 이끌려 찾아간 것은 그보다 두 해 전인 1943년이었다. 그곳에서 일본 소학교를 다니다 해방을 맞았다. 우리에게는 감격의 해방이었지만 일본인에게는 치욕의 패전이었다. 관동대지진 당시 조선인 학살의 악몽을 떠오르게 할 정도로 살기가 넘치는 분위기였다. 도망치듯 우리 식구는 귀국길을 서둘렀다. 외아들인 아버지는 고향인 무주에 기댈 언덕이 없었다. 이모네가 살고 있던 옥천읍 양수리에 들어와 새 둥지를 틀었다. 우리 식구는 아버지, 어머니, 여동생과 나까지 모두 넷이었다. 나와 동생의 나이 차이는 열 살이나 되었다. 그 10년 사이에 태어난 아이들이 모두 죽다 보니 그렇게 둘만 남았다. 당시는 의료 현실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신생아 사망률이 높았다. 우리 식구는 옥천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당장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해야 했다. 아버지는 이모네 땅을 얻어서 농사를 지었고, 나도 13세 어린 나이였지만 제사 공장에 다녔다. 공장은 현재의 옥천역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다. “정술이는 한 번만 가르치면 잘 한다”는 칭찬을 들으며 공장에 다녔다. ●배수진(背水陣)을 치고 결혼 나는 17세가 되던 해인 1949년 안남면 오대리 노총각 조재한과 결혼했다(현재 오대리는 옥천읍에 속해 있다). 사주단자를 가지고 읍내에 있는 우리 집으로 찾아오던 날, 아버지처럼 일본으로 징용을 갔다 왔다는 예비 신랑의 얼굴을 처음 봤다. 그런데 내 입에서 나도 모르게 이런 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머!” 중매로 평생의 인연을 맺게 된 신랑은 나이가 나보다 여덟 살이나 더 많았다. 더욱이 강 건너 오지 중의 오지에서 농사를 짓다가 배를 타고 왔으니 햇볕에 그을린 얼굴이 얼마나 시커멓고 볼품이 없었겠는가. 신랑이 돌아간 다음 어머니에게 “남편이 아니라 아버지 같다”면서 불평을 늘어놓았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사주단자만 들여도 이미 혼인한 것으로 간주하던 시절이었다. 내가 싫다고 혼인을 물릴 수는 없었다. ‘거기 강이 있다니 가서 정 살 수 없다면 빠져 죽자’고 독한 마음을 먹고 나는 시집을 갔다. 오대리는 배를 타고 가야 하는, 금강 건너 깡촌이었다. 버들개, 오리티, 보내, 양로골, 터골 등 5개 마을에 주민들이 흩어져 산다고 해서 ‘오대리’라고 부르게 됐다고 한다. 시댁은 5개 마을 중 버들개, 그 중에서도 가장 위쪽에 위치해 있었다. 마을 사람들은 ‘높은 집’이라고 불렀다. 거기에 신랑이 시아버지, 시동생과 함께 살고 있었다. 시어머니는 일찍 돌아가셨다고 했다. 시집 생활은 낯설고도 힘겨웠다. 우선 강변 마을이다 보니 논밭을 가려고 해도 배를 타야만 했다. 그나마 인적이 드물어 고사리 등 산나물은 지천이었다. 모든 일을 처음부터 배워서 시작해야만 했다. 목화도 기르고 누에도 치면서 밤낮을 가리지 않고 틈나는 대로 길쌈을 했다. 옷감 80자를 짜면 4~5벌 정도의 바지저고리를 만들 수 있었다. 아이들도 돌봐주고 베틀질도 도와주는 다른 집 시어머니가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처럼 인생이란 참으로 오묘하다. ‘힘들면 강물에 빠져죽자’고 생각했던 내가 ‘나무꾼과 선녀’ 이야기에 나오는 선녀처럼 아이를 하나둘 낳다 보니 과거 그런 생각을 했던 것조차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전쟁이 일어나던 해인 1950년 장녀 현순, 장남 광현을 필두로 18년에 걸쳐 6남2녀의 자식들이 줄줄이 태어났다. “아이가 너무 많아 먹여 살리기 힘들 테니 한둘은 남에게 주라”고 충고하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펄쩍 뛰며 거절했다. 아무리 힘들어도 한 가족으로 어울려 살아가자고 생각할 수 있었던 데는 남편의 역할이 컸다. 결혼 초기 살림 밑천을 마련하기 위해 남편은 1년 동안 집을 떠나 남의 집에서 머슴으로 지냈다. 그러다가 늦은 나이에 징집영장을 받고 3년 넘게 공병대에서 군복무를 마치고 돌아왔다. 제대한 후에도 내 권유를 받고 다시 집을 떠나 2년 동안 머슴살이를 했다. 그렇게 부부가 고생한 덕분에 어느 정도 살림 밑천을 장만할 수 있었다. “광현 아범이 피투성이가 됐어요.” 남편은 죽을 고비를 두 번이나 넘겼다. 제대한 남편은 일할 때는 주로 튼튼한 군복을 입었는데, 어느 날 산으로 나무를 하러 갔다가 토벌대로 오인을 받아서 빨치산으로부터 집중 사격을 받았다. 빗발치는 총알을 뚫고 간신히 살아 돌아온 남편을 그 다음에 노린 것은 불발탄이었다. 전쟁 후에는 곳곳에 불발탄이 널려 있었다. 남편이 공병대 출신이라 동네 아이들이 불발탄을 가져왔는데, 어느 날 뇌관을 제거하다 폭발하는 바람에 큰 부상을 입었다. 남편은 성실하고 생활력이 강했지만 경제 개념은 조금 약한 편이었다. 그래서 집안 살림은 내가 일임하다시피 했다. 가장으로서의 자존심을 내세우지 않고 한참 나이 어린 아내의 요구를 잘 들어준 남편이 고마웠다. 지금 생각해보니 남편은 참으로 착하고 자상한 남자였다. 살다 보니 그런 남편에게 정(情)이 들었고, 진심으로 존경하고 좋아하게 되었다. ●그림으로 황혼을 수(繡)놓다 내가 시집온 지 30년 만인 1979년 대청댐이 들어서면서 오대리 일대가 수몰되었다. 동이면 지양리로 이사온 지 꼭 40년이 됐다. 그 사이에 많은 일이 있었다. 8남매 중 장녀와 장남은 어려운 가정 형편과 동생들 뒷바라지 문제가 겹쳐 상급 학교 진학을 포기한 채 집안 대소사를 도우며 성장했다. 덕분에 아래 여섯 남매는 학업에 전념해 우수한 성적을 거두며 고등교육을 마쳤다. “잘 살고 못 살고는 팔자와 인연 사이에 달려 있다. 남한테 해코지 하지 말고 무애하고 무탈하게 살아라.” 남편이 자식들에게 늘 해주었던 말인데, 내 생각도 같다. 한때는 나도 자식들이 출세하고 치부하길 원했으나 그것이 모두 다른 사람에게 상처와 피해를 주지 않고는 어렵다는 것을 잘 안다. 그런 점에서 지양리 이장으로 수십 마리 소를 키우며 부모를 모시는 장남 부부(조광현, 한봉선)가 특별히 고맙다. “어머니 이 시간에 뭐 하세요?” 광현이 어느 날 방문을 열더니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4년 전부터 나는 장손녀 훈미가 가져다준 색연필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주로 화단과 텃밭의 꽃과 식물을 그리고 있는데 얼마나 재미있는지 모른다. 아마 그 날도 새벽까지 그림에 몰두하다가 시간이 가는 줄도 몰랐던 것 같다. 팔순 기념으로 예쁜 상보(床褓)를 만들어 동네 집집마다 선물하기도 했다. 오대리에서 남편과 함께 단둘이 출발한 우리 가족이 지금은 47명의 대가족으로 늘어났다. 6남2녀의 자녀가 결혼해 8남4녀의 손주를 낳았다. 그리고 다시 그들 중 결혼한 사람이 현재 9명의 증손주를 낳았다. 남편과 시아버님을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을 것 같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옥천신문
  • 獨 하노버에서 2차대전 불발탄 발견...시민들 대피

    독일 북부 하노버시의 한 공사장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불발탄이 발견돼 1만 5000명 이상의 시민들이 대피하는 소동이 벌어졌다고 AFP통신이 2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시 관계자는 이날 무게 250kg의 불발탄이 발견돼 제거 조치하고 대피한 시민들을 밤늦게 귀가하도록 했다고 전했다. AFP는 하노버 등에서 2차 대전 당시 불발탄이 발견되는 것은 흔한 일이라고 전했다. 앞서 지난 6월에는 베를린 알렉산더 광장에서 100kg짜리 불발탄이 발견됐고, 2017년 프랑크푸르트에서는 1.4t 무게의 영국군 폭탄이 발견돼 6만 5000명이 대피하는 일이 있기도 했다. 독일 주간 슈피겔은 전문가의 말을 인용해 전쟁 중 독일 상공에 투하된 폭탄 10개 중 1개는 불발탄이라고 전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폼페이 미발굴 유적에 연합군 불발탄 10여개 있다”

    이탈리아 남부 폼페이 유적에 2차 세계대전 때 투하한 것으로 보이는 10개 이상의 불발탄이 묻혀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7일(현지시간) 이탈리아 매체 보도를 인용해 이같이 전했다. 1943년 8월 연합군은 9차례에 걸쳐 165발의 폭탄을 이 일대에 떨어뜨렸다. 이가운데 94발은 해체됐고, 나머지는 이미 폭발했거나 제거됐지만 10여개의 불발탄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으로 이탈리아 매체는 보도했다. 국가항공사진보관소(NAPA)의 당시 폭격 지도 등도 처음으로 공개됐다. 나폴리 수오르 오르솔라 베닌카사대학의 고고학자 안토니오 데 시모네 교수는 “1986년 폼페이 유적 발굴 중 우연히 불발탄을 발견했다”면서 “폭탄 2개를 찾았는데 하나는 이미 폭발해 조각난 상태였고 다른 하나는 온전한 상태였다”고 말했다. 폼페이 전체 유적지 66헥타르(66만㎡) 가운데 발굴이 진행되지 않은 지역은 22헥타르(22만㎡)로, 이 지역에 폭탄이 묻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폼페이 고고학박물관은 폼페이를 찾는 관광객들이 이러한 불발탄으로부터 안전하다고 주장했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 화살머리고지 단독 유해발굴 사흘 만에 첫 유해 발견

    화살머리고지 단독 유해발굴 사흘 만에 첫 유해 발견

    남북 공동유해발굴 지역인 강원 철원 화살머리고지에서 군 당국이 지난 1일 단독으로 유해발굴 작업을 개시한 지 사흘 만인 4일 처음으로 유해가 발견됐다. 국방부는 이날 “철원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제거 작업 중 6·25 전쟁 전사자로 추정되는 유해 2점을 발견했다”고 밝혔다. 국방부에 따르면 이번에 발견된 유해는 화살머리고지 일대에서 지뢰제거를 위한 통로개척 작업을 하던 중 불발탄을 제거하는 과정에서 확인됐다. 유해는 약 20cm 길이의 아래팔뼈 2점으로, 유해는 추후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으로 봉송돼 신원확인을 위한 정밀감식과 DNA 분석 등을 진행할 예정이다. 국유단 관계자는 “신원을 추정할 수 있는 유품 등은 발견되지 않아 정밀감식으로 발견된 유해 2점이 동일한 전사자의 유해인지 등을 확인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군 당국이 화살머리고지에서 단독으로 유해발굴을 시작한 이후 유해가 발굴된 것은 처음이다. 현재 군 당국은 지난 1일부터 화살머리고지 일대 남측 지역에서 지난해 실시한 지뢰제거 작업과 연계해 지뢰제거 및 기초발굴 작업을 단독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북측도 공동유해발굴에 참여한다면 북측 지역에서도 많은 유해가 발굴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앞서 군 당국은 지난해 10~11월 화살머리고지에서 진행한 지뢰제거 및 도로개설 작업 중 총 13구의 유해를 발굴한 바 있다. 이 중 12구는 국군으로, 나머지 1구는 중공군의 유해로 판명됐다. 국방부는 “추가적인 유해발견을 위해 지뢰제거가 완료된 이후 주변지역으로 발굴을 확장해 나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어쩐지 무겁더라···’, 낚시바늘에 걸린 박격포탄

    ‘어쩐지 무겁더라···’, 낚시바늘에 걸린 박격포탄

    한 중국인이 연못에서 낚시를 하던 중 20센티미터 길이의 폭탄을 발견했다. 당시의 상황을 뉴스플레어, 라이브릭 등 여러 외신이 전했다. 지난 4일 중국 광둥성 중부 장먼시 연못 주위에서 촬영된 영상 속, 경찰관 한 명이 특수하게 제작된 폭발 방지용 장치 속에 낚시꾼이 발견한 불발폭탄을 조심스럽게 싣고 있는 모습이다. 이 폭탄의 표면은 심하게 부식됐으며, 확인결과 세계 2차 대전 때 사용됐던 박격포탄으로 판명났다. 경찰은 이 불발탄을 운반해 안전하게 폭발시켰다. 대어를 건졌다고 생각했을 낚시꾼, 하지만 자신의 목숨을 건진 것 만으로 다행이라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사진=Top Life 2020 유튜브 영상부 seoultv@seoul.co.kr
  • 포천 미군 사격장서 또 산불

    포천 미군 사격장서 또 산불

    경기 포천 미군 사격장에서 훈련 도중 파편에서 불이 옮겨 붙어 산불이 발생했다. 전날 불을 껐지만 강풍에 불씨가 되살아 나면서 재차 불이 번지는 모습이다. 20일 포천시에 따르면 이날 낮 12시 40분쯤 포천 영중면 미8군 종합훈련장인 영평사격장(로드리게스) 내 불무산(해발 660여m)에서 산불이 발생해 번지고 있다. 영평사격장 산불은 지난 18일 오후 3시 미군이 공용화기 사격훈련을 하다 예광탄 파편이 불무산 4~5부 능선 피탄지에 떨어지며 발생했다. 미군과 산림당국은 헬기 6대를 동원해 19시간 만인 지난 19일 오전 10시 진화를 마쳤다. 그러나 이날 낙엽 속에 있던 불씨가 강풍과 함께 되살아나며 다시 산불로 이어졌다. 산림청 헬기 1대가 진화에 나서며 산불은 오후 4시 40분쯤 진화되는 듯했다. 그러나 오후 5시 다시 불길이 살아나며 불무산 8∼9부 능선까지 태운 상태다. 야간 헬기 투입이 어려워 미군 측과 산림 당국은 산불 상황을 주시하고 있다. 다행히 산불이 사격장 밖으로 번지지 않아 민가에 피해를 줄 상황은 아닌 것으로 파악됐다. 다만 불이 난 곳이 미군이 관리하는 사격장 안이어서 산림 당국은 헬기 외에 인력과 장비를 투입하지 못해 진화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미군 측과 산림 당국은 21일 날이 밝는 대로 헬기를 동원해 다시 산불 진화에 나설 방침이다. 포천시 관계자는 “사격장 내에 불발탄 등이 많아 미군 측이 사격장 출입을 통제하고 있어 헬기 외에 진화는 어려운 상황”이라며 “CCTV 등을 통해 산불 상황을 지켜본 뒤 내일 아침 동이 트면 진화작업을 재개할 것”이라고 말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앰버 허드 주연의 뜨거운 영화 ‘런던 필즈’ 뚜껑 열었는데

    앰버 허드 주연의 뜨거운 영화 ‘런던 필즈’ 뚜껑 열었는데

    앰버 허드가 주연이고 전 남편 조니 뎁이 카메오 출연한 화제의 영화 ‘런던 필즈’가 미국 개봉 첫 주말 흥행에서 참패했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작품인데 613개 스크린을 잡고도 박스오피스 집계에서 16만 달러(약 1억 8200만원) 수입에 그쳤다. 마틴 아미스가 1989년 쓴 소설이 원작으로 예고편에는 “모두가 원했던 니콜라 식스(여주인공 캐릭터)”라고 홍보했는데 영화를 보고 싶어 한 이들은 많지 않았다. 원작이 대단한 인기를 끌었고 짐 스터게스, 테오 제임스, 빌리 밥 손튼 등 캐스팅이 화려한데 이 정도 관객이면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2008년 작품 ‘프라우드 아메리칸’이 개봉 첫 주말에 올렸던 9만 6000달러에 버금가는 최악의 흥행 성적이라고 영국 BBC가 전했다. 프라우드 아메리칸은 코카콜라와 월마트 창업자들의 자수성가를 스크린에 옮긴 작품으로 두 회사가 뒷돈을 댔다. 이 영화는 2015년에 처음 기획됐는데 그 때부터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올해 토론토 영화제 공식 상영작으로 예정됐다가 매슈 컬렌 감독이 크리스토퍼 핸리, 조던 거트너 등 제작자들이 자신의 동의 없이 “음란한 장면”들을 편집해 넣었다는 이유로 고소하는 바람에 취소됐다. 핸리와 거트너는 컬렌이 계약을 위반했다며 맞고소했다. 둘은 이어 주인공 허드가 영화의 평판을 나쁘게 만드는 잘못된 캠페인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소송을 제기했다. 앞서 허드는 두 남자와 정사를 벌이는 장면을 몰래 촬영해 전라 상태로 영화를 찍지 않겠다는 자신의 계약 사항을 위반했다고 소송을 제기했다가 제작자들과 법정 화해했다. 촬영 당시에는 남편이었으며 지난해 이혼 소송이 마무리된 뎁이 갱스터로 카메오 출연하는데 로튼 토마토에 리뷰가 단 한편도 올라오지 않았다. 뉴욕 타임스는 이 영화를 “쓰레기, 고문 당하는 것 같은 불발탄”이라고 평가했고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aggressively awful”이라고 알듯 모를듯한 평가를 남겼다. 이 영화는 두 가지 편집본이 동시 개봉되는 진풍경도 연출했다. 13개 스크린에서만 감독 편집본이 공개됐다. 컬렌이 영화사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 “틀을 벗어난 사고를 보여줬다”며 고마워했다. 미국 외에는 러시아, 리투아니아, 에스토니아에서 개봉됐다. 사진·영상= GVN Releasing youtube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평화가 시작됐다

    평화가 시작됐다

    DMZ 너머 불과 2㎞ 거리에 북한군 GP 보호장구 등 20㎏ 착용 하루 4시간 수색 경계병 호위 속 폭 4m씩 조심스레 확장 軍 “최근 불발탄 등 발견 잇따라” 긴장감지난 2일 오전 11시 강원 철원군 화살머리 고지 정상의 최전방 감시초소(GP). 서울신문을 비롯한 취재진이 지켜보는 가운데 20여명의 장병들이 지뢰 제거 작업을 위해 GP 통문을 열고 북쪽으로 향했다. 장병들은 20㎏이 넘는 보호복, 지뢰화, 덧신, 헬멧 등 보호장구를 갖추고 있었다. 비무장지대(DMZ) 너머 불과 2㎞ 거리의 북한군 GP가 육안에 들어왔다. 이날 지뢰 제거 작업은 지난달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도출한 ‘9·19 평양공동선언’의 부속합의서인 ‘판문점선언 이행을 위한 군사분야 합의서’에 따른 조치다. 당시 남북은 DMZ 시범적 남북 공동 유해 발굴을 위해 지뢰를 제거하기로 합의했고, 양측은 지난 1일부터 작업에 착수했다. 군사분야 첫 신뢰 조치인 지뢰 제거 작업이 앞으로 종전선언 등 평화 정착으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작업은 GP 통문부터 길이 500m 1구역 수색로를 폭 4m씩 확장하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전후방 경계에 6명의 수색대대 요원이 나서고, 지뢰탐지장비인 숀스테드와 예초기, 지뢰탐지기, 휴대용 공기압축기를 사용하는 장병 등이 뒤따랐다. 남북은 지뢰 제거 작업을 다음달 말까지 매일 4시간씩 진행하기로 합의했다. 현지 부대 지휘관은 “이 일대는 과거 지뢰 매설 기록이 없는 지역이지만, 폭우로 유실된 지뢰나 수류탄, 박격포탄 등 불발탄이 산재해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말해 긴장감을 높였다. 군 당국은 지난 3개월간 이 지역에서 10여개의 불발탄을 발견했다. 화살머리 고지는 백마고지 능선이 보이는 6·25전쟁 당시 격전지 중 하나다. 김용우 육군참모총장도 현장을 방문해 장병들에게 “이번 작전에 가장 중요한 요소는 장병들의 안전이다. 남북한 군사적 신뢰 형성과 의미 있는 과업을 수행하는 평화 구축자로서 소명을 다해 주기 바란다”고 격려했다. 통문 뒤로 민간인출입통제선 이북 지역에서 가을걷이에 나선 농민들의 모습이 보였다. 민통선 초소에서 2㎞ 떨어진 강원 최북단 묘장초등학교 운동장에서는 천진난만한 표정의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지뢰가 모두 사라지고 평화가 자욱해진 DMZ 일대를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노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철원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와우! 과학] 美공군의 폭발물 제거 레이저…로봇보다 효과적(영상)

    [와우! 과학] 美공군의 폭발물 제거 레이저…로봇보다 효과적(영상)

    미 공군, 육군, 해군은 다양한 레이저 유도 무기를 운용하고 있지만, 목표를 파괴하는 용도의 레이저 무기 배치는 아직도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 미 공군이 이 부분에서 작지만 첫걸음을 뗄 예정이다. 미 공군이 육군과 함께 개발한 RADBO (Recovery of Airbase Denied By Ordinance)는 활주로에 뿌려진 지뢰나 폭발물, 불발탄을 제거하는 무기로 현재 운용 중인 미 공군의 폭발물 제거 차량 상부에 탑재된다. 출력은 3KW 정도로 낮지만, 폭발물을 가열해 파괴하는 용도로는 부족하지 않다. 3년 전부터 테스트한 결과 미 공군은 RADBO의 성능이 충분히 만족스럽다고 판단하고 양산 및 배치를 결정했다. 미 공군은 아프간 및 이라크 전에서 반군의 소소하지만, 효과적인 방해에 시달렸다. 반군이 사용하는 조잡한 급조 폭발물이나 박격포, 로켓탄, 지뢰 등은 치명적인 피해를 입히지는 못해도 활주로를 당분간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이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아무리 조심해도 폭발물 처리반이 위험한 상황에 노출되는 일은 피할 수 없었다. 그래서 폭발물 제거 로봇을 사용하긴 하지만, 안전하게 제거하는 데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자연스럽게 미군은 레이저를 이용해서 멀리서 폭발물을 제거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하지만 이를 실전 배치하기까지는 오랜 연구가 필요했다. 레이저 무기의 실전 배치는 미 공군의 25년간에 걸친 노력의 결과물이다. RADBO는 300m 거리에서 다양한 폭발물을 안전하고 빠르게 폭발시킬 수 있어 신속하게 활주로를 정리하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원리상 어떤 폭발물에 대해서도 적용할 수 있어 인명 피해나 재산상의 피해가 걱정 없는 환경에서 널리 적용할 수 있다. 크기도 작고 현재 미군이 운용하는 무장 트럭 및 장갑차에 쉽게 통합이 가능하다. 따라서 실전에서 효과적인 것으로 밝혀지면 활주로 안전 확보는 물론 다양한 폭발물 제거 작전에 투입될 것으로 보인다. 레이저의 특징상 먼 거리에서도 작은 목표물만 공격할 수 있고 탄약이 고갈될 걱정도 없으며 1회 발사 비용이 매우 저렴하다는 장점이 크기 때문이다. 다만 다양한 기상 조건에서 사용할 수 있고 야전에서 잔고장 없이 유지 보수가 간단하며 실전에서도 효과적으로 목표를 파괴하는지 검증은 필요하다. 레이저 무기는 SF 영화에서는 매우 강력하고 효과적인 파괴 무기지만, 현실에서는 가격이나 크기 대비 파괴력이 좋지 않아 아직 널리 사용되지 못하고 있다. 하지만 오랜 연구 개발 끝에 이제 하나씩 실전 배치되거나 배치를 눈앞에 두고 있어 공상 과학(science fiction)이 과학적 사실(science fact)가 될 날이 머지않은 것으로 보인다. 고든 정 칼럼니스트 jjy0501@naver.com
  • 독일 공업도시서 2차대전 불발탄 발견…1만8500명 대피

    독일 공업도시서 2차대전 불발탄 발견…1만8500명 대피

    독일 서부 라인란트팔츠주(州)에 있는 공업도시 루트비히스하펜에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군이 투하한 것으로 추정되는 불발탄이 발견돼 해체 작업 동안 시민 1만8500여 명이 대피해야 했다고 AFP통신 등 외신이 26일(현지시간) 보도했다. 지난 주중 건설 작업 동안 발견된 이번 폭탄은 그 무게가 500㎏인 것으로 알려졌다. 시 당국은 폭탄 해체 작업에 앞서 만일에 대비해 발견 지점에서 반경 1㎞ 내에 있는 모든 시민 1만 8500여 명에게 26일 오전 8시부터 폭발물 해체 작업이 진행되는 동안 대피하도록 권고했다. 이에 따라 해당 지역 내 거주자들은 8시가 되기 전까지 대피를 마쳤고 거리가 통제돼 사람들의 출입을 막았다. 이후 폭탄 처리 전문가들이 해체 작업에 들어갔고 1시간여 만에 무사히 임무를 완수했다. 피난 권고는 폭발물 운반 등의 이유로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해제됐다. 당국은 발 빠르게 트위터 공식 계정으로 “좋은 소식이다. 폭탄은 무사히 해체됐다”면서 “시민들은 집으로 돌아가도 좋다”고 밝혔다. 한편 독일에서는 불발탄 제거를 위한 대피 권고가 내려진 사례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금까지 가장 많은 시민이 대피했던 경우는 지난해 9월 프랑크푸르트로, 2차 대전 당시 영국군이 투하한 무게 1.8t짜리 대형 불발탄이 발견돼 반경 1.5㎞ 내 시민 6만 명이 대피해야 했다. 수도 베를린에서도 불발탄이 발견됐었다. 지난 4월 중앙역 인근에서 발견된 불발탄은 영국군이 투하한 500㎏짜리 폭탄으로 해체 작업 당시 반경 2㎞ 내 시민 1만 명이 대피했다. 한편 독일에는 2차 대전 당시 나치 독일에 대한 연합군의 집중 포격으로 여러 지역에 불발탄 3000여 개가 잠자고 있다고 전문가들은 추정하고 있다. 사진=루트비히스하펜 시/트위터 윤태희 기자 th20022@seoul.co.kr
  • [여기는 중국] 땅 속서 발견돼 손자에게 준 장난감 알고보니 불발탄

    [여기는 중국] 땅 속서 발견돼 손자에게 준 장난감 알고보니 불발탄

    어린 손자에게 장난감을 준 물건이 알고보니 불발탄으로 밝혀진 웃지못할 일이 벌어졌다. 최근 영국 데일리메일 등 해외언론은 하마터면 큰 참사로 이어질 뻔한 중국의 한 시골마을에서 벌어진 소식을 보도했다. 사건이 벌어진 것은 지난 19일 아침. 이날 중국 장쑤성 롄수이에 사는 노인 수이 화이녠은 집 인근에서 삽으로 땅을 파다가 무엇인가 부딪치는 소리를 듣게됐다. 땅 속에서 나온 것은 녹이 슨 금속 덩어리. 전체적인 모양이 한 눈에 봐도 폭탄으로 보였지만 수이씨는 오래된 장난감으로 오인하고 이를 손자에게 선물했다. 이 '장난감'의 정체가 밝혀진 것은 이웃 덕분이었다. 한 주민이 수이씨의 손자가 이 폭탄을 가지고 놀고있는 것을 우연히 목격했기 때문. 이에 폭탄임을 확신한 주민은 경찰에 신고하면서 큰 참사를 막을 수 있었다. 현지경찰은 "폭탄 전문가를 동원해 조사한 결과 이 금속덩어리는 녹이 슨 경량급의 박격포 불발탄을 확인됐다"면서 "1949년 이전에 이곳에 묻힌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이어 "여전히 폭발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매우 위험하다"면서 "이와 유사한 금속덩어리가 땅에서 발견되면 곧바로 당국에 신고해달라"고 당부했다.   박종익 기자 pj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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