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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상] ‘피겨퀸’ 김연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성화봉송

    [영상] ‘피겨퀸’ 김연아, 세상에서 가장 우아한 성화봉송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피겨여왕’ 김연아(28)가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올림픽 성화를 밝혔다. 1988년 서울올림픽 이후 30년 만이다. 예상은 했지만 흰색 드레스에 스케이트를 신은 김연아는 성화점화대 앞에서 우아하게 연기한 뒤 정성스레 성화의 불씨를 밝혀 눈길을 사로잡았다. 전 여자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 선수로 우리나라 피겨 역사상 첫 올림픽 금메달을 안겨줬던 김연아는 전 세계가 주목하는 동계올림픽 역사상 가장 우아한 성화봉송 마지막 주자로 불리기에 손색이 없었다.김연아는 9일 강원 평창올림픽 플라자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회식에서 성화 점화대에 ‘평창의 불꽃’을 옮겼다. 김연아는 네번째 성화주자였던 여자 아이스하키 남북단일팀 박종아(남측), 정수현(북측) 선수로부터 성화를 건네받았다. 김연아는 성화를 전달 받기 직전 아름다운 춤 연기를 선보이며 성화를 맞이해 눈길을 끌었다. 김연아의 손끝에서 번진 불꽃은 성화대에 옮겨붙었다. 1988년 10월 2일 서울올림픽 폐막식에서 올림픽 성화가 꺼진 뒤 약 30년 만에 다시 불꽃이 타올랐다.김연아는 일찌감치 평창올림픽의 가장 유력한 성화 점화자로 예상됐다. 성화 점화는 전 세계인들의 이목을 끄는 개회식 최대 하이라이트인 만큼 한국 겨울 스포츠를 대표하는 인물이 맡아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기 때문이다. 김연아는 피겨 불모지였던 한국에서 혜성처럼 나타나 한 시대를 호령했다. 처음 출전한 2010년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당시 최고 점수였던 228.56점을 받으며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당시 흠 잡을 데 없는 완벽한 경기력을 보여주며 동갑내기 라이벌이었던 아사다 마오를 압도적으로 제압했다. 2014년 러시아 소치동계올림픽에서는 러시아 피겨 선수가 실수를 했음에도 심판들이 고득점을 주는 등 석연치 않은 판정으로 은메달에 머물렀지만 세계는 ‘피겨여왕’ 김연아의 매력에 다시 한번 빠졌었다.전 세계가 김연아의 연기에 찬사를 보냈지만 일본 피겨스케팅 중계 아나운서들도 김연아의 집중력과 기술 및 연기력에 경탄을 금치 못했다. 당시 일본 피겨 중계 아나운서들은 “이런 중압감 속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자신에게만 집중해 이렇게 훌륭한 연기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이 대단하다”며 칭찬했다. 김연아가 가진 상징성은 메달 색과 메달 개수로 평가하기 힘들다. 그는 누구도 개척하지 않은 미지의 땅을 담대하게 걸어갔고, 열악한 환경과 고난을 이겨내며 세계 최고의 자리에 우뚝 섰다. 많은 이들은 김연아의 연기를 보며 용기를 얻었고, 도전의 가치를 아로새겼다.김연아가 한국 스포츠에 미친 영향도 매우 크다. 그의 등장으로 한국 피겨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피겨 등 동계스포츠 인구는 가파르게 늘어났고, 다양한 산업도 창출됐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피겨 선수로 인정받은 김연아는 평창올림픽 개최 과정에서도 직간접적으로 힘을 보태며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2011년 7월 남아프리카공화국 더반에서 열린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 당시 프레젠테이션 주자로 나서 평창이 삼수 끝에 올림픽을 유치하는데도 일조했다. 지난해 11월엔 미국 뉴욕에서 열린 유엔의 ‘올림픽 휴전결의안’ 채택 자리에서 특별연사로 연단에 올라 올림픽 정신을 호소하기도 했다. 평창올림픽 성화의 시작도 함께했다. 지난해 10월 그리스 올림피아에서 채화한 성화를 직접 들고 온 김연아는 성화 최종 점화에 나서면서 성화의 시작과 끝을 함께하게 됐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한국 컬링 중국에 아쉬운 패배, ‘가능성 봤다’는 긍정 평가도

    한국 컬링 중국에 아쉬운 패배, ‘가능성 봤다’는 긍정 평가도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한국 컬링이 중국을 상대로 아쉬운 패배를 당했다. 하지만 불모지나 다름 없던 한국 컬링의 가능성을 엿봤다는 평가도 나온다.장혜지(21)·이기정(23)이 한 조를 이룬 한국은 지난 8일 강릉컬링센터에서 열린 2018 평창동계올림픽 컬링 믹스더블 예선 2차전에서 연장 접전 끝에 중국의 왕루이(23)·바더신(28)에게 7-8로 아쉽게 패했다. 이날 오전 1차전에서 핀란드에 9-4로 쾌승을 거뒀던 장혜지·이기정은 중국전 패배로 예선 1승 1패를 기록했다. 중국은 1차전에서 스위스에 5-7로 패했으나 장혜지·이기정에게 승리하면서 역시 1승 1패를 만들었다. 중국은 지난해 세계믹스더블컬링선수권대회에서 동메달을 차지한 팀이다. 컬링 믹스더블은 1·2차전까지 8개 팀 중 6개 팀이 1승 1패를 나눠 가지며 초접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스위스는 2승, 핀란드는 2패를 기록 중이다. 장혜지·이기정은 이날 오전 8시 35분 노르웨이, 오후 1시 35분 미국과 3·4차전을 벌일 예정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다큐로 만나는 평창

    다큐로 만나는 평창

    평창동계올림픽이 아흐레 앞으로 다가왔다. 총 102개에 달하는 종목만큼이나 겨울 올림픽에는 다양한 이야기들이 숨어 있다.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의 이야기부터 0.001초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스포츠 과학까지 올림픽을 준비하는 세계 각국의 노력들을 담은 국제 합작 다큐멘터리가 2월 초 전파를 탄다.●윤성빈 라이벌… 겨울왕국의 도전 TV조선은 라트비아 국영방송 LTV와 공동 제작한 3부작 다큐멘터리 ‘겨울왕국의 도전’을 다음달 9일과 14일, 25일에 나눠 방송한다. ‘겨울왕국의 도전’은 남자 스켈레톤 윤성빈 선수와 세계 1, 2위를 다투는 라트비아 선수 마르틴스 두쿠르스의 이야기다. 동유럽에 있는 라트비아는 인구 230만명밖에 안 되는 작은 나라이지만 스켈레톤, 봅슬레이, 루지 등 썰매 분야 강국이다. 라트비아에서 겨울 스포츠가 발달한 과정과 윤성빈, 마르틴스 두쿠르스 두 선수가 치열하게 경쟁하며 기량을 다지는 모습을 깊이 있게 담았다.●김연아를 꿈꾸며… 드림걸즈 겨울 스포츠 분야에서는 불모지나 다름없는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피겨스케이팅의 꿈을 이룬 자매 이야기 ‘드림걸즈’는 다음달 13, 17일 KBS 1TV에서 방영된다. 마운틴TV와 남아공 케이프타운TV가 공동 제작한 이 다큐멘터리는 남아공 피겨 국가대표를 거쳐 현재 코치로 활동 중인 타마라 제이컵스와 현재 국가대표인 동생 첼시 제이컵스의 이야기를 섬세하게 조명했다. 특히 두 자매의 한국과의 인연이 눈길을 끈다. 언니 타마라는 13년 전 우리나라가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진행한 세계 동계 스포츠 꿈나무 육성 프로젝트인 ‘드림 프로그램’으로 한국에 와 피겨 훈련을 받았다. 사고로 은퇴한 뒤에는 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언니의 영향으로 피겨를 시작한 동생 첼시는 2011년 동계올림픽 평창 유치를 위해 남아공 더반을 방문한 김연아 선수를 만난 뒤 국가대표의 꿈을 키워 왔다. 마침내 이번 평창올림픽에서 타마라는 성화 봉송 주자로, 첼시는 남아공의 피겨스케이팅 국가대표로 한국을 찾는다. ●과학으로 보다… 브레이킹 리미츠 CJ E&M과 UHD전문방송사 네덜란드의 인사이트TV가 공동 제작한 ‘브레이킹 리미츠’는 만능 스포츠맨으로 알려진 방송인 줄리엔 강과 네덜란드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출신인 비욘 나인하우스가 스케이트, 스노보드 등 동계 스포츠 주요 종목들을 실제로 경험해 보면서 스포츠 과학의 원리를 탐구한다. 1부 ‘마찰력과 속도와의 전쟁’에서는 대중적으로도 인기 있는 스포츠인 스노보드를 집중 탐색해 눈과의 마찰력을 조절해 속도를 조정하고, 아름다운 공중 연기를 펼치게 되는 과학의 원리를 살펴본다. 2부 ‘0.001초의 승부’는 스피드 스케이팅 경기에서 0.001초라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한 스포츠 과학의 진화를 파헤친다. 스피드스케이팅 국가대표 이승훈과 전 스노보드 국가대표 이광기, 국내 스노보드 하프파이프 국가대표 선수들과 함께 동계 스포츠 훈련 과정을 조명했다. 다음달 11일 UHD 전문 채널 UXN에서 방송된다. 신융아 기자 yashin@seoul.co.kr
  • 쇼트트랙·윤성빈·이상화 ‘금빛 설 연휴’ 선물… 4강 신화 쓴다

    쇼트트랙·윤성빈·이상화 ‘금빛 설 연휴’ 선물… 4강 신화 쓴다

    금8·은4·동8개 ‘8·4·8·4’ 전략으로 새달 10일 男쇼트트랙 ‘금맥’ 터질 듯 최민정 4관왕·이상화 첫 3연패 도전 스켈레톤 윤성빈 썰매 새 역사 쓸 듯 男장거리 간판 이승훈 대미 장식 예고‘태극전사’들의 사상 첫 ‘4강 신화’ 도전은 이미 시작됐다. 2018 평창동계올림픽 개최국 대한민국 선수단은 대회 개막(2월 9일)을 꼭 열흘 앞둔 30일에도 오랜 시간 다져 온 소중한 꿈을 일구기 위한 막바지 훈련에 혼신의 담금질을 이어 갔다. 역대 최대인 15개 전 종목에 144명 선수로 꾸려진 우리 대표팀은 홈팬들의 뜨거운 성원에 힘입어 역대 최고인 금 8개로 종합 순위 4위에 도전한다. 아울러 은메달 4개, 동메달 8개를 묶어 이른바 ‘8-4-8-4 전략’에 대한 막바지 총점검에도 한층 애쓰게 됐다. 북한도 여자 아이스하키에 선수 12명을 파견해 ‘단일팀’으로 힘을 보탠다. 대한민국의 역대 최고 성적은 2010년 밴쿠버(캐나다) 대회에서 금 6개, 은 6개, 동 2개로 일군 종합 5위다. 하지만 4위 행보에 걸림돌도 만만찮다. 단일국가 사상 최다인 242명 선수를 보내는 미국을 비롯해 캐나다, 노르웨이 등 동계 스포츠 강국들이 저마다 역대 최다, 최강 팀을 짜 곳곳에서 딴죽을 걸 태세다. 대한민국은 전통 강세 종목 쇼트트랙을 선봉으로 ‘불모지’ 썰매 종목에 이어 스피드스케이팅 금메달로 종합 4위를 완성한다는 시나리오를 짰다. 한국 ‘금맥’은 다음달 10일 쇼트트랙 남자 1500m에서 터질 가능성이 짙다. 남자 쇼트트랙은 소치에서 ‘노메달’ 수모를 당해 설욕을 벼른다. 서이라(화성시청), 임효준(한국체대), 황대헌(부흥고)이 나선다. 막내 황대헌은 올 시즌 월드컵 랭킹 1위에 올라 기대를 더한다. 여자 ‘쌍두마차’ 심석희(한국체대)-최민정(성남시청)은 사흘 뒤인 13일 취약종목 500m에 출전해 기적의 레이스를 꿈꾼다. 한국은 이 종목에서 노메달이다. 둘은 17일 1500m, 20일 3000m 계주, 22일 1000m에도 나선다. 최민정은 4관왕까지 벼르지만 최근 불미스런 사건에 연루된 심석희는 흐트러진 마음을 추스르는 게 급선무다. 설날인 16일에는 남자 스켈레톤 윤성빈(강원도청)이 썰매 종목에 새 역사를 쓸 전망이다. 올 시즌 6차례 월드컵에서 4차례 우승한 강력한 금 후보다. 맞수 마르틴스 두쿠르스(라트비아)를 넘어 국민들에게 ‘금빛 설 선물’을 안기겠다고 다짐한다. 18일에는 한국 동계올림픽 사상 첫 3연패에 도전하는 이상화(스포츠토토)가 스피드스케이팅 여자 500m에 출격한다. 최강 고다이라 나오(일본)와 운명의 레이스가 불가피하다. 고다이라에게 줄곧 뒤졌지만 최근 기록 차이를 줄인 데다 홈팬 응원까지 보태진다면 겨룰 만하다는 자신감에 차 있다. 남자 장거리 간판 이승훈(대한항공)은 대미를 화려하게 장식할 기세다. 대회 폐막 하루 전인 24일 여자부 김보름(강원도청)과 함께 신설 종목 매스스타트에서 초대 챔프를 겨냥한다. 최강 이승훈은 이 종목에 집중하려고 1500m 출전을 포기하는 결단력을 보였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청와대 참모들 지방선거 출마 준비···10여명 줄사퇴에 후임자 검증 작업

    청와대 참모들 지방선거 출마 준비···10여명 줄사퇴에 후임자 검증 작업

    6월 13일 실시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청와대 참모들이 출마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출마를 고심하는 참모들은 10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졌다.선거운동을 하려면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데, 광역단체장 선거 출마자는 다음 달 13일부터, 기초단체장 출마자는 3월 2일부터 등록이 가능하다.이에 따라 청와대는 그 시기에 맞춰 광역과 기초단체장 출마자들을 나눠 일괄 사퇴시키는 쪽으로 정리하고 현재 사퇴 대상자와 후임에 대해 검증을 하고 있다. 광역단체장으로는 3명이 출사표를 던질 것으로 거명된다. 문재인 대통령의 입 역할을 9개월째 수행 중인 박수현 대변인은 일찌감치 안희정 충남지사의 뒤를 잇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문대림 제도개선비서관은 제주지사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총선에서 포항에 3연속 출마했던 오중기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여권의 불모지인 경북지사를 목표로 본격적인 선거운동 채비에 한창인 것으로 전해졌다. 비서관급으로는 지난 연말 가장 먼저 사표를 냈던 황태규 전 균형발전비서관은 전주·임실 등 전북지역 출마를 고려하고 있다. 기초단체장 출마를 놓고 자천 타천으로 이름이 오르내리는 청와대 직원은 7명 안팎에 이르고 있다. 이들 중 상당수도 현재 사의를 표명한 상태로 알려졌다. 자치분권비서관실의 백두현 선임행정관은 경남 고성군수, 유행렬 행정관은 충북 청주시장, 김병내 행정관은 광주 남구청장 출마가 각각 유력하게 점쳐지고 있다. 채현일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서울 영등포구청장 출마 의사를 굳혔다. 박영순 제도개선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대전시장 또는 대덕구청장 출마를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고, 김기홍 총무비서관실 행정관은 인천 남동구청장 출마가 유력하게 거론된다. 문 대통령이 부산 사상구에서 국회의원을 할 당시 보좌관이었던 강성권 정무비서관실 행정관은 사상구청장에 도전장을 내밀 것으로 관측된다. 청와대 관계자는 28일 “출마가 거론되는 인사 상당수가 출마할 것으로 보이지만, 아직 고민 중인 인사도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고 연합뉴스가 전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미리 보는 메달리스트] 아스팔트서 모형썰매 훈련… 세계 정상 올라

    [미리 보는 메달리스트] 아스팔트서 모형썰매 훈련… 세계 정상 올라

    평창동계올림픽에 출전하는 봅슬레이 남자 2인승 국가대표 원윤종(33·강원도청)-서영우(27·경기BS연맹) 조는 한국이 썰매 불모지였던 시절부터 봅슬레이를 시작해 한국 선수 최초로 세계 정상에 오른 ‘썰매계의 맏형’이다.봅슬레이 조종수(파일럿)인 원윤종은 대학 체육교육과를 다니며 체육 교사를 꿈꾸다 2010년 썰매 국가대표에 도전해 봅슬레이 인생을 시작했다. 당시엔 한국에 썰매 전용 경기장이 없어 아스팔트 도로에서 모형 썰매를 타며 훈련했다. 몸무게가 무거울수록 속도가 더 붙는 봅슬레이의 특성상 원윤종은 몸무게를 100㎏ 이상으로 늘리기 위해 하루에 5~6끼씩 먹기도 했다. 원윤종은 봅슬레이에 입문한 2010년 미국 파크시티에서 열린 국제봅슬레이스켈레톤경기연맹(IBSF) 월드컵에 처음 참가했지만 썰매가 전복되면서 얼음벽을 깨는 사고를 내기도 했다. 열악한 환경과 여러 시련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은 원윤종은 2013년 아메리카컵 남자 2인승에서 처음 우승했고, 그해 여름부터 대학 과 후배인 제동수(브레이크맨) 서영우와 조를 이뤘다.원윤종-서영우 조는 소치올림픽에서 18위를 기록했고, 2014~2015 월드컵에서 세계 10위권에 진입하며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2015~2016 월드컵에서는 금메달 2개, 동메달 3개를 획득해 세계 1위에 오르며 한국 썰매의 기적을 일궈냈다. 이듬해 2016~2017 월드컵에서도 3위에 올라 기적이 운이 아닌 실력임을 증명했다. 하지만 원윤종이 최근 훈련 도중 전복 사고를 당해 어깨와 허리 부상을 입으면서 이번 시즌 월드컵에서는 1차 대회 10위, 2차 13위, 3차 6위에 그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였다. 이에 원윤종-서영우 조는 올림픽에 대비해 평창에서 훈련을 이어가는 것이 낫다고 판단해 조기 귀국했다. 원윤종-서영우 조는 평창올림픽에서 홈 이점을 살려 금메달을 겨냥하고 있다. 코스와 길이가 경기장마다 매우 상이한 봅슬레이를 포함한 썰매 종목은 홈 이점이 다른 종목보다 더 크다는 평가다. 소치올림픽에서도 러시아 선수가 썰매 종목에서 3개의 금메달을 차지했다. 특히 평창올림픽 봅슬레이 경기가 열리는 알펜시아 슬라이딩 센터는 2016년 10월에야 완공돼 세계적인 선수 대부분이 낯설어 한다. 트랙 난도도 다른 경기장보다 높아 외국 선수들이 테스트 이벤트 당시 애를 먹기도 했다. 원윤종-서영우 조가 썰매 종목 사상 첫 금메달을 따낼지 주목된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미리 보는 메달리스트] ‘컬스데이’ 열풍 잇는 金시스터스

    [미리 보는 메달리스트] ‘컬스데이’ 열풍 잇는 金시스터스

    女팀 감독·선수 6명 모두 김씨 중압감 이기려 소음 틀며 훈련 2014년 소치동계올림픽에서 여자 컬링 대표팀(경기도청)은 큰 박수를 받았다.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사상 첫 올림픽 출전권을 딴 것만도 장한데, 숙적 일본과 강호 러시아를 격파하는 등 뜻밖에 선전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메달을 따는 데는 실패했지만, 컬링 신드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선수들은 외모도 출중해 ‘컬스데이’(컬링+걸그룹 걸스데이)라는 애칭을 선물로 받았다.평창에선 경북체육회가 배턴을 이어받아 컬스데이 재현과 함께 메달 꿈에 도전한다. 컬링은 선수 간 호흡이 중요한 종목이라 포지션별로 최정예를 뽑지 않고, 선발전에서 우승한 팀을 국가대표로 내보낸다. 지난해 5월 열린 국가대표 선발전에선 경북체육회 컬링팀이 남자와 여자, 믹스더블(혼성 2인조) 종목에서 모두 정상을 차지해 태극 마크를 달았다. 김민정(37) 감독이 이끄는 여자 대표팀은 주장인 스킵 김은정(28)을 비롯해 김경애(24·서드), 김선영(25·세컨드), 김영미(27·리드), 김초희(22·후보)까지 6명 전원이 김씨다. 국제대회에 나가면 “모두 자매인가”라는 질문을 심심찮게 받는다. 또 ‘팀 킴’으로도 불린다. 김경애와 김영미는 실제 자매이며 다른 선수들도 학창 시절부터 동고동락해 가족이나 다름없다. 김 감독과 장반석(36) 믹스더블팀 감독은 부부다. 남자 대표팀 김민찬(31)은 김 감독의 동생이고 이기정과 이기복(이상 23)은 일란성 쌍둥이다. 모두 15명(감독 3명, 선수 12명)인 선수단에서 7명이 혈연관계로 얽힌 것이다. 임명섭(35) 감독이 이끄는 남자 팀에서는 김창민(33), 성세현(28), 오은수(25) 등이 뛴다. 믹스더블엔 장혜지(21)가 이기정과 짝을 이룬다. 세계 랭킹을 보면 여자 8위, 남자 15위, 믹스더블 12위다. 하지만 강국과 실력 차가 크지 않아 충분히 메달을 노릴 만하다. 올림픽을 경험하지 못한 선수들이 중압감을 어떻게 이겨내는지가 관건이 될 전망이다. 각오도 사뭇 비장하다. 훈련 때 관중이 꽉 들어찬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래나 함성 소리를 녹음해 틀며 적응력을 키우는 데 비지땀을 쏟았다. 여자 대표팀은 소치대회 금메달리스트인 라이언 프라이(캐나다)를 초청해 같이 훈련했고, 미술 심리치료를 통해 팀워크를 다졌다. 현재 캐나다로 건너가 그랜드슬램 대회에서 마지막 실전 모의고사를 치르고 있는 대표팀은 오는 23일 귀국해 충북 진천선수촌이나 경북 의성군 전용경기장에서 최종 담금질에 나선다. 임주형 기자 hermes@seoul.co.kr
  • [미리 보는 메달리스트] 엄마 나라서 물 만난 ‘노르웨이 고등어’

    노르웨이 아버지·한국 어머니 한국 국적 택해… 동계AG 우승 1.3㎞ 스프린트 홈 이점 기대 크로스컨트리 스키 남자부에서 김마그너스(20)의 활약이 돋보인다. 노르웨이 국적의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이중 국적이었던 그는 올림픽 전 3년 이내에 뛴 국적으로만 올림픽 출전이 가능하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규정으로 2015년 ‘엄마의 나라’ 대한민국 국적을 택했다. 당시 그는 “한국 사람으로서 애국심이 있고 평창동계올림픽이 한국에서 열리기 때문에 더 큰 의미가 있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잘나가는 덕택에 ‘노르웨이 고등어’란 별명을 얻은 그는 2013년 열다섯 나이로 전국동계체육대회 3관왕에 올랐고 2014년과 2015년엔 잇달아 동계체전 4관왕을 차지해 주변을 놀라게 만들었다. 어려서부터 독보적인 기량을 선보이며 크로스컨트리의 불모지인 우리나라에서 ‘기대주’로 자리매김을 했다. 그는 2016년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동계유스올림픽에서 금메달 2개와 은메달 1개를 따는 쾌거를 올렸다. 지난해 2월엔 삿포로동계아시안게임 남자 1.4㎞ 스프린트 클래식에서 한국 남자 선수로는 첫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를 정벌했다. 일각에선 아직 성인 무대에서 통하긴 이르다는 평가도 나온다. 2017~18시즌 국제스키연맹(FIS) 월드컵에 뛰어들며 성인 무대에 데뷔한 그는 세계 정상급 선수들과 상대하며 하위권에 머무르고 있다. 중국, 일본, 카자흐스탄 등 아시아 경쟁국 선수들에게도 뒤져 실망을 안기는 듯했다. 하지만 평창에선 다른 모습을 보여 줄 거란 기대도 나온다. 김마그너스는 현재 평창동계올림픽에 맞춰 단내 나는 훈련을 소화 중이다. 노르웨이 출신 전담 코치 3명과 함께 유럽에서 적응 훈련에 매진하고 있다. 훈련과 참가 중인 월드컵 대회를 마치면 일본 삿포로에서 마무리 훈련에 돌입할 예정이다. 김마그너스의 매니지먼트를 맡은 브리온컴퍼니 관계자는 “다소 하드한 평창 코스보다는 조금 편안한 삿포로 코스에서 마무리 훈련을 마치고 올림픽 개최 직전 입국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그가 평창올림픽 메달 사냥에 주력할 종목은 1.3㎞ 스프린트 클래식이다. 이미 국내에서 많은 대회를 통해 평창 코스에 대해 쌓은 사전 이해도 유리하게 작용한다. 남자 스프린트가 시작되는 다음달 13일부터 질주 본능을 자랑하겠다고 마음을 다진다. 한편 여자부에선 2011년 동계아시안게임에서 한국 크로스컨트리 첫 금메달을 선사했던 ‘베테랑’ 이채원(37)이 메달 도전에 나설 예정이다. 이주원 기자 starjuwon@seoul.co.kr
  • [불어라 평창 신바람] 우리 선수 선전에 달린 흥행… 자원봉사자들 열정도 ‘한몫’

    초대형 악재로 멀어졌던 평창동계올림픽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커지고 있다. 2018평창동계올림픽조직위원회는 이번 대회에서 ‘경제, 평화, 문화, 환경’의 4대 올림픽을 표방했다. 모두 올림픽 정신을 구현할 중대 과제이지만 한반도 정세와 국내 경제 등을 감안하면 흑자 올림픽 완수가 보다 시급해 보인다. 종전 동계올림픽 개최는 선진국의 전유물이었다. 그러나 최근엔 국민 부담이 가중된 탓에 유치를 반대하는 ‘부자 나라’도 늘고 있다. 같은 이유로 우리의 유치 반대 목소리도 작지 않았다. 평창 총예산 14조원 중 고속철도, 경기장 등 인프라 비용이 대부분이고 실제 올림픽을 치르는 데 필요한 예산은 2조 8000억원이다. 성공 개최가 절실한 이유이기도 하다. 다행히 입장권 판매가 호조를 보여 기대를 부풀린다. 조직위에 따르면 대회 개막 50일을 앞둔 지난해 12월 21일 현재 판매율은 60%를 넘어섰다. 전통 강세종목인 쇼트트랙, 스피드스케이팅 등의 완판은 이미 예상됐으나 스키 등 약세종목은 여전히 불투명하다. 올림픽 성공에는 우리 선수들의 선전이 ‘절대 요소’다. 이들의 활약에 국민은 울고 웃으며 흥행을 좌우한다. 다음이 안전하고 편리한 시설, 오점 없는 경기 진행, 자원봉사자 등 진행 요원의 열정 등이다. 대표적인 사례로 대구 세계육상선수권대회와 20세 이하(U20) 월드컵 축구가 꼽힌다. 두 대회 모두 성공적 개최로 자평했지만 크고 작은 뒷말은 많았다. 2002 월드컵 이후 뚜렷한 이벤트가 없었던 한국은 2011년 8월 세계 4대 스포츠로 꼽히는 세계육상선수권대회를 유치했다. ‘번개’ 우사인 볼트(자메이카)가 화제를 낳고 명승부가 잇따르면서 불모지 한국 육상 도약에 큰 자극제가 됐다. 아쉬운 것은 우리 선수들의 부진이었다. ‘10-10’(10개 종목-10위 입상)을 외쳤지만 남자 경보 20㎞ 김현섭(6위)과 50㎞ 박칠성(7위)이 전부였다. 우리 선수들이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흥행은커녕 ‘남의 잔치’가 됐고 역대 세 번째 ‘노메달 개최국’의 오점도 남겼다. 하지만 자원봉사자와 대구 시민의 열정은 높은 평가를 받았다. 지난 5월에는 U20 월드컵이 열렸다. 월드컵 유치 경험과 당시 구축한 인프라를 살리고 대회가 세계 ‘뉴스타’를 확인하는 무대인 만큼 흥행 성공이 예상됐다. 관중 41만 795명(경기당 평균 7899명)이 들었다. 당초 목표(경기당 1만명)에는 뒤지지만 대선 등 악재에도 2015년 뉴질랜드(7452명)와 2013년 터키(5558명) 대회보다 관중 동원에서 앞섰다고 조직위는 자랑했다. 당시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의 16강 진출이 주효했다. 8강 실패 직후 빚어진 2만석의 환불 사태가 이를 입증한다. 두 대회에서 보듯이 우리 선수의 활약 여부가 대회 흥행을 쥐락펴락했다. 평창조직위가 논란 속에 외국인 선수들을 귀화시키며 여러 종목에서 호성적을 내려는 것도 이와 무관치 않다. 다시 경험하기 힘든 국내 올림픽인 만큼 많은 국민이 직접 경기장을 찾아 즐기는 문화가 자리잡는 계기를 만들 것으로 기대된다. 김민수 선임기자 kimms@seoul.co.kr
  •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2018 서울신문 신춘문예 평론 당선작] 그림자 필경사 (이철주)

    1. 눈먼 자의 윤리 때론 그림자가 더 많은 말을 건넨다. 긴장 가득 훈련된 표정을 지어도, 무시당하지 않으려 허리를 꼿꼿이 세워도, 불안은 그림자에 투영돼 존재를 누설한다. 가끔 속내를 들켜도, 환멸에 사로잡혀 생이 부대껴도 그림자는 결코 존재를 떠나지 않는다. 뒤틀리면 뒤틀린 대로, 어리석으면 어리석은 대로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닌다. 삶과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그러곤 어디에선가 누군가를 닮은 모습을 하곤 쓸쓸히 흘러다닌다. 생을 반복하고 따라하며 생이 이곳을 떠나도 홀로 남아 존재를 증거한다. 그림자의 이 헌신엔 쉽게 이름 붙일 수 없는 어떤 맹목이 있다.한편으로 그림자는 왕성한 식욕의 소유자다. 표정도, 색깔도, 음성도, 촉각도, 냄새도 모두 집어삼킨 채 존재의 맹점을 현상한다. 감각이 보증하는 확실성을 제거하고 정체불명의 검은 얼룩을 펼쳐 놓는다. 그림자는 시각 속의 동공이며 감각을 배반하는 충동이다. 그러니 그림자란 본디 외경의 대상인 것이다. 감각과 관념에 잘려 나간 세계가 역으로 이쪽을 바라볼 때, 맹목의 관계는 뒤집힌다. 그림자에 감염되어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기이한 갈증을 느끼며 한 생을 바쳐 따라다니는데 그들을 시인이라 불러도 좋을 것이다. 그들도 그림자와 함께 태어나 울고 웃고 몸부림치다 사라진다. 수억의 생들을 베끼고 반복하며 처연히 이해해 간다. 그림자의 맹목과 시인의 맹목. 어찌할 수 없음으로밖에는 풀이될 수 없는 이 눈멂은, 그러나 역설적으로 가장 진실한 이해의 방법이 된다. 불가해한 생을 끊임없이 반복하고 따라하며 존재의 자세를 닮아 버리는 것. 그 충분한 대가를 치르기 전까진 함부로 대상을 떠나지 못하는 무능이 그들이 가진 윤리이며 능력이다. 그러나 오늘날의 한국 시가 과연 이 충분한 맹목의 시간을 통과하고 있는지는 의문이다. 2000년대 이후 이어진 일련의 실험적 시들이 관습적 문법의 경계를 뒤흔들고 시의 외연을 확장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그 의지와 선언이 너무 앞선 나머지 관념과 이론이 시를 대신 살아 버린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다. 유행하는 철학적 담론을 잘 소화한 시가 좋은 시가 아니듯, 시와 비평이 근거로 삼은 담론의 윤리성이 시의 윤리와 덕목을 설명해 주는 것은 아니다. 말과 삶에 대한 치열한 응시와 질문. 좋은 시의 윤리와 덕목은 언제나 여기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이 점에서 시의 본연에 충실하고 있어 반갑고 소중하다. 무엇보다 우리는 위태로운 추락의 한 시절을 통과하는 중이다. 좁고 피폐한 삶을 지켜 내기 위해 일말의 어둠도 쫓아내기에 급급한 지금, 육박해 오는 생의 무게에 짓눌리지 않는 당당한 목소리가 절실하다. 이 눈 맑은 시인은 삶의 도처에 엎어져 있는 상흔을 읽어 내고, 고통의 결과 깊이를 삶의 구체적 언어로 더듬으며 섬세히 응시한다. 그림자가 한 생을 바쳐 삶과 동행하듯, 그의 시 역시 수억의 생을 바쳐 그림자에 한없이 가까워진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을 성실히 몸에 새겨 넣으며 깊고 단단해진다. 그림자란 본디 맹점이며, 어떤 확신도 불가능하게 하는 절대적 무지의 영역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그림자를 보았다고, 보인다고, 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림자로부터 ‘시선’의 능력을 빼앗았기 때문이며, 닮았다는 이유로 전부 이해할 수 있다고 스스로를 속여 온 탓이다. 마음의 눈꺼풀은 그렇게 굳게 닫힌 채 존재가 퍼붓는 질문으로부터 안전하게 물러난다. 김소연의 시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한다. 그림자에게 외경을 되돌려 주고, 세련되고 아름다운 이론과 개념들이 생의 그림자가 될 수 없음을 몸소 증거한다. 김소연은 그림자의 시인이다. 그림자의 언어로, 그림자의 시선에 응답하며, 그림자가 남겨놓은 파문들을 뼛속 깊이 묻는다. 2. 그림자양식장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자아 내면의 복수적 형상으로 나타난다. 이를테면 그림자들의 양식장이라 부를 만한 공간에서, 시인은 말들을 먹이로 던져 주며 내면의 그림자들이 불러일으키는 파문을 응시하고 있다. 그림자의 차가운 비늘이 말에 닿아 번지고 마침내 말을 삼켜 버리는 모습을 바라보면서 끊임없이 불화하는 내면에로 깊이 침잠한다. 차가운 환멸과 단호한 자기 부정은 김소연 시의 근본을 이루는데, 여기에는 뼈아픈 목도만이 있을 뿐 화해의 축이 부재한다. 타협 불가능한 절대적 자세로 삶의 피폐를 건넌다. 무참한 추락이 아무렇지도 않게 전시되는 이곳의 삶에 당당히 맞서 고통의 극한을 살아 낸다. 뜨거움과 차가움을 모두 통과한 그의 목소리는 가장 뜨거울 때조차 차가움을 예감하고, 가장 차가울 때조차 뜨거움을 끌어안는다. 이 현격한 열의 낙차가 일상의 무감각한 관성을 깨뜨리는 뇌관으로 작동한다. 사월은 차갑다/사월의 돌은 더 차갑다/사월의 돌을 손에 쥔 사람은 어째서 뜨거운가/그는 어째서 가까운가//마루 아래 요정이 산다고 믿은 적이 있다/잃어버린 세계는 거기서 잘살고 있다/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하나의 문장으로도 세계는 금이 간다/이곳은 차가우므로 더 유리하겠지 - 「열대어는 차갑다」 부분 (『아침』) 돌은 사월의 뜨거움을 기억하기에 더 차갑다. 가장 찬란하고 아름다워야 할 날들이기에, 그렇지 못한 현실을 더 비극적으로 비춘다. 화자는 마루 아래라는 가시성 바깥의 공간에 망각된 세상의 온기를 풀어놓고 있다. 현실과 ‘너머’의 세계가 빚어내는 처연한 온도차를 뜨거움으로 명명하는데, 그러므로 “이 사실만으로도 뜨거워질 수 있다”는 선언은 설익은 화해의 제스처로 읽혀선 안 된다. 세계에 금이 가는 이유는 이곳과 너머 사이의 아득한 거리 때문이지 희망과 열정 같은 추상적 개념 때문이 아니다. 불화를 불화로서 보존하되, 이들이 빚어내는 떨림과 파열을 섬세히 기록하는 것. 김소연 시의 이와 같은 분명한 자세는 화자가 실족의 경험을 구체적으로 노출하는 장면에서 더 아프게 현상된다. 서로가 서로의 치부를 헛짚고 세계의 성감대를 헛짚은. 내리 빗나가던 선택들. 말하자면 기다림으로 독이 남는 자세. 시효를 넘긴 고독. 일종의 모독. 기다려온 우리는 치사량의 관성이 있을 뿐. 부패 직전의 끝물이다. - 「끝물 과일 사러」 부분 (『극』) 말의 파편들이 ‘끝’이라는 날카로운 선 앞에까지 밀려나 있다. 각 행의 끝엔 더 이상 남은 공간이 없다. 마침표조차 제대로 찍히려면 스스로가 끌어온 말들을 다시 과거로 밀어내야 한다. 미루고 미뤘던 삶의 초라한 진실이 단정하고 건조하게 한마디를 건넨다. “우리도 끝물이다.” 단단하게 요약된 이 사랑의 문장은 아프다. “치사량의 관성”으로 버텨온 관계의 맨얼굴, “끝물 과일”이 화자를 바라본다. 언어가 감정을 헛짚고, ‘사랑해’가 ‘미안해’를 대신하며 살을 찌워 갈 때, ‘끝’은 이렇게 언어의 은밀한 구석에 날카로운 뼈를 현상한다. 이럴 때 언어는 잔혹해진다. 한없이 위태로워 길들이지 않을 수 없는 짐승이 된다. 과녁에서 벗어난 말들의 사체가 한동안은 무심히도 쌓였을 것이다. 시인은 이 사랑의 폐허를 떠나는 중이다. 그러나 화자는 이를 “끝물은/아주/달아.”라는 감각적 긍정으로 전환해 낸다. 허위로, ‘헛짚음’으로 유지된 일상을 ‘끝물’에 비유하는 순간, “치사량의 관성”은 역으로 서로의 치부와 세계의 성감대를 더욱 선명하게 발설한다. 부재하는 여기를 정면으로 직시함으로써 몰락한 꿈의 순간들을 발굴해 낸다. 폐허엔 여전히 지독한 허기와 갈망이 어리겠지만 이를 부정하지 않고 생의 언어로 감각해 냄으로써 끝물은 버려야 할 것이 아니라, 도래해야 할 것으로 변모된다. 어떤 환상도 희망도 없이 뜨거움과 차가움을 반복하며 그의 문장은 단단하고 견고해진다. 그가 “차례차례 사랑이었던 것들과 한꺼번에/달디단 혼숙을 하는 것”(「달디단 꿈1」, 『극』)이 꿈이라며 부드럽게 말할 때에도 “이 조용한 숨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게/치욕스럽다”(「학살의 일부12」, 『극』)며 “중무장된 평화”(「학살의 일부1」, 『극』)가 학살이라 선언할 때처럼 단호하게 들리는 이유는 그 때문이다. 그의 시는 끊임없이 스스로의 불화와 혼숙할 수 있는가를 묻는다. 한 사람은 나를 바로 보지 않는다/소파와 구별되지 않게 소파 속에 있거나/반쯤 열린 문틈 안에서 베개를 돋워 돌아눕는다//한 사람은 나를 보다가 나를 태운다/그 온도는 태양과 다름없고/내 운명은 종이와 마찬가지라/돋보기 같은/그의 눈빛에 나는 새까맣게 타들어간다/대체로 나는 그 앞에서 나는 재만 남는다//또 한사람/꿈을 보기 위해/눈꺼풀을 오려냈다는 이 사람/밤새 두 손을 소담히 오므려서/잠든 두 눈을 나는 덮어주곤 했다// (중략) //축하보다는 축복을 받고 싶은 시월 아침에/오만 잡병의 숙주가 된 육체/속옷 벗듯 벗어둔 채/마음끼리 살을 섞는다 - 「세 사람과 한집에 산다」 부분 (『눈물』) 화자는 텅 빈 폐허 같은 방 안에서 자신의 갈라진 그림자를 응시하고 있다. ‘나’에게는 두 명의 폭군이 있는데, 하나는 나를 지우고 다른 하나는 나를 재로 만든다. 비록 관계의 양상은 다르나 결과적으로 나를 비존재로 만들어 버린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리고 여기에 ‘또 한 사람’이 더해진다. ‘꿈을 보기 위해 눈꺼풀을 오려 냈다는 사람’은 나에게 어떤 힘도 강제하지 않는다. 하지만 유일하게 나를 존재로 만들어 준다. 화자는 눈꺼풀을 오려 낸 눈이 꿈에 잡아먹히지 않도록 잠든 눈을 가만히 덮어 준다. 이 시가 평범한 시였다면, 이 세 번째 사람에게 시의 전권을 부여했을 것이다. 그러나 시인은 이 세 개의 그림자로부터 한발 물러나, 이 셋과의 공평하고도 평등한 혼숙을 명명한다. 물론 이는 화해라는 낭만적 해결과는 거리가 멀다. 세 개의 그림자와 나 사이엔 살을 섞어도 결코 화해될 수 없는 아득한 거리가 여전히 냉정하게 놓여 있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문장은 자신을 거쳐간 수많은 그림자들을 마음에 풀어 놓고 그들이 일으키는 파문들에 눈을 충분히 단련시킨 자만이 얻어 낼 수 있는 ‘말’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이 위태롭고 어려운 일을 그는 차분하고도 안정된 걸음걸이로 해낸다. 굉장한 내공과 섬세한 마음의 섭생을 필요로 하는 일이다. 지나간 마음에 눈을 빼앗겨서도 안 되고, 잊어서도 안 되며, 섣부른 성찰로 도망쳐서도 안 된다. 꼬이고 뒤틀린 존재들이 서로를 밀어내고 뒤엉키며 팽팽한 긴장을 잃지 않는 것. 어떤 불화도 해소된 적이 없으며, 앞으로도 영원히 해결될 수 없으리라는 삶의 진실 앞에 스스로를 담담히 열어 놓는 것. 김소연의 시는 이 선명한 규율들을 가슴에 품은 채 치열하면서도 아름다운 보폭으로 사유의 어긋남과 욕망의 비틀림 사이를 뚜벅뚜벅 걸어 나간다. 3. 유실영(影)보호소 김소연 시의 한 축이 자아 내부에 도사리는 복수적 그림자들의 불화를 매개하고 내부의 균열과 긴장을 풀어 놓는 데 있다면, 다른 한 축은 타자의 삶에 깃든 그림자에 대한 섬세한 응시로 나타난다. 그의 시에서 그림자는 철학적이고 개념적인 사유로 환원되지 않는데, 이는 무엇보다 그의 시가 삶의 구체적 실상과 인간의 유한한 조건들에 뿌리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림자는 새로운 삶을 위해 전시해 놓은 그럴듯한 기념물이 아니라, 매일의 몰락을 견뎌 온 숨겨 온 자세들이 어쩔 수 없이 노출되는 장소이다. 단단하게 고정시켜 놓은 표정들과는 달리 불가피하게 삶의 피폐가 누수되는 공간이며, 모두가 공평히 그런 누수 속에 강제되는 사건이다. 시인은 그렇게 누군가 흘려 버린 그림자들을 데리고 와 사라져 가는 존재들을 거두고 보호한다.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상처의 내력을 짚어 보며 삶이 사라지고 난 이후에도 남아 이곳을 떠도는 그림자들을 위무한다. 그녀는/바다에서 용이 머리를 치키고 올라올 때와 같이/담배 연기를 코로 뿜는다 여의주처럼/담배를 물고 앉아서/성긴 이빨을 자꾸 드러낸다// (중략) /그 노파는 세상 사람들이 그어놓은 줄들을/그런 모양으로 무시하듯 질펀히 앉아서 살아왔다//노오란 양지는 노파를 점점 비켜간다/노파는 그저 햇볕 안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햇볕이 얼굴의 반을 부시게 하더니/점점 비껴서/이제는 그늘 안에 노파를 가둔다 - 「학살의 일부 10-이빨이 성긴 노파」 부분 (『극』) 노파는 퇴락한 외모에도 불구하고 자신감 넘치는 태연함 속에 있다. 어느 누구도 함부로 개입할 수 없는 추락의 상흔이 이빨이 성긴 노파의 얼굴에 현상된다. 자신감 넘치는 낡은 몸 안에, 아무도 관심 없던 폐허 몇 개쯤 담담히 갖고 있을 노파의 눈빛이 화자를 응시한다. 함부로 이해해선 안 될 외경이 노파의 그림자에 어린다. 김소연이 “그 얼굴은 얼굴 외에 또 다른 것들이 겹쳐 있었다”(「1937년생」, 『극』)고 말할 때나, “우리 뒤에 깔린 반듯한 비단길을 아무도 걷지 말거라/벼랑 끝 노을이 우리 이마에 새겨주는 불립문자를/아무도 읽지 말거라”(「당신의 저쪽 손과 나의 이 손이」, 『빛』)고 진술할 때, 그가 끌어올린 그림자엔 어찌할 수 없는 외경이 실려 있다. 그가 외경을 표하는 그늘들엔 어쩐지 피 냄새가 짙다. 그늘은 찬란한 빛에 의해서만 어둠을 풀어내고, 어둠이 풀려날 때마다 추락은 반복된다. 수없이 깨지고 터져도 결연히 몸을 털고 일어난 생들은 하나같이 여전히 뜨거운 어둠을 품는다. 그 어둠의 무게가 어깨와 허리를 휘게 만들고, 그림자는 삶을 견디는 그들의 자세를 닮아 버린다. 이승에서 삼십 년/육신을 빠르게 쓰고 저승으로 이사한 아들 사진을//팔십 년째/육신을 아껴 쓰고 계시는 아버지가/느리게 문갑 문을 열어 만지고 계신다// (중략) //계시는 사진 한 장과 없어진 사냥개 사이엔/벽지처럼 살고 있다/앞모습을 보아선 아니 될/가족의 녹슨 얼굴들이 - 「계시는 아버지」 부분 (『눈물』) 여기에는 경솔히 이해해선 안 될 그늘에 머물기 위해 추락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시간이 현상돼 있다. 자식의 죽음을 그대로 안고 살아가기엔 상처는 너무 깊고 치명적이다. 그래도 삶은 이어져야 하기에 멍이 곰팡이처럼 들어선 낡은 방에 벽지를 바른다. 벽지를 뜯어내고 나면 그 자리엔 함부로 보아선 안 될 타인의 맨 얼굴이 저마다의 자세로 들어앉아 있다. 행복한 시절의 낙서처럼, 녹슬어 가는 얼굴들을 마냥 덮어 둔 채 가족의 삶은 이어진다. 벽지에 얼룩진 가족의 그림자는 이따금 마음을 괴롭히다 어둠 속으로 스며들었을 것이다. 그런 그림자의 앞모습을 요구하는 것은 폭력이며 불경이다. “엄마가 갑자기 보이지 않을 때에/아기들이나 지을 법한 표정”(「뒤척이지 말아줘」, 『눈물』)을 훔쳐보았다고 타인에 대해 이해하게 되는 것은 아니다. 타인에 대한 이해는 그러한 표정을 숨기고 있을 얼굴을 그림자를 통해서 바라볼 때 비로소 가능해진다. 한 번 슬쩍 보고 건네는 동정이 아니라, 그림자를 평생 가슴에 품은 채 그림자가 건네는 추락의 내력을 오래도록 살아볼 때만 허락되는 일이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시들이 쓰여진다. 살 수 없는 장소에서도 살 수 있게 된 사람이 있었다/ (중략) //그 창문으로 나는 지금 바깥을 내다본다/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가장 쉽게 이해한 사람이/가장 오래 서 있었을 자리에 서서// (중략) /할 줄 아는 말이 거의 없는 낯선 땅에서/내가 느낄 수 있는 건 잠깐의 반가움과/오랜 두려움뿐이다//두려움에 집중하다 보면/지배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지배하고 싶었던 사람이/실은 자신의 피폐를 통역하려 했다는 것을/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내쫓으면서/나는 알게 된다 - 「여행자」 부분 (『아침』) 화자는 지금 수십, 수백 년 전의 시간으로 거슬러 올라가 “이토록 난해한 지형”을 바라보던 누군가의 그늘에 머물러 있다. 누구에게도 발설한 적 없는 그늘을 지키기 위해 어떤 삶은 희망이 불가능한 곳으로 자신을 조용히 밀어 넣기도 했을 것이다. 상처를 애써 부정하지 않아도 되는 저녁을 위해 황무지뿐인 창밖을 오래 바라봐야만 했으리라. 화자는 낙관을 하지 않아도 살 수 있다는, 희망을 품지 않아도 충분히 잘살 수 있다는 마음으로 피폐한 문장들을 건져 올리고 있다. 타인의 전생이 한꺼번에 이곳의 삶으로 현상돼 번지고 부대끼는 일. 화자가 매개하고 있는 이 순간은 스스로를 보호하고 있던 “파리처럼 기웃거리는 낙관”을 포기했을 때에만 가능한 것이다. 나를 보호하던 관념들을 내려놓은 채 타인의 그늘을 만져 보는 일은 그 이전과 전혀 다른 삶을 살게 한다. 시인이 “기웃거리던 햇볕이 방 한쪽을 백색으로 오려 낼 때//길게 누워 다음 생애에 발끝을 댄다/고무줄만 밟아도 죽었다고 했던 어린 날처럼”(「먼지가 보이는 아침」, 『아침』)이라고 말할 때, 다음 생이란 희망적이고 추상적인 미래의 어느 때를 의미하지 않는다. 타자의 그림자를 밟는 일이란 이미 하나의 생이 끝나고 다른 생이 시작되는 경이로운 순간을 매개하기 때문이다. 김소연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에 담긴 무게를 섬세히 읽어 내고 그 무게가 역으로 자아의 무게를 읽어 내는 경계의 순간들을 포착한다. 그의 시를 버림받은 그림자들의 보호소라고 할 때, 화자는 그림자들을 관리하는 주체도 아니고 동정을 베푸는 관광객도 아니다. 그의 시는 하나의 그림자가 다른 그림자를 관통하는 사건의 매개이며, 타인의 그림자로부터 또 하나의 생을 물려받는 상속의 증거이다. 그림자를 이해하며 그림자에 감염되어 스스로 또 하나의 그림자가 되어 간다. 길 잃은 그림자들은 그렇게 다음 생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4. 아포리아인형극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배우이고 관객이며, 공기이고 침묵이다. 그림자들에 잠재된 생의 근원적 형상을 발굴하고 혼을 불어넣는다. 잡힐 듯 잡히지 않던 생의 어둠들에 이름을 붙이고, 그들과 연극을 시작한다. 때로는 독백으로, 때로는 방백으로, 그림자인형들 사이에 무형의 그림자가 스미고 번진다. 연극은 비교적 순조롭게 시작된다. 하지만 말이 리듬을 타면 탈수록 그림자는 연출자의 의도를 넘어서 스스로 움직이고 발화하기 시작한다. 오려낸 눈동자의 텅 빈 어둠으로 삶이 역류하기 시작한다. 말에 자기를 꿰뚫리고 거꾸로 그림자에 응시당할 때, ‘이곳’은 어떤 강제성에 내몰린다. 자신에게 찾아온 이 낯선 질문들에 발가벗겨진 채 노출되는 것이다. 일상을 영위하기 위해 몸에 둘렀던 기호와 기표들의 강고함은 물거품이 되어 녹아 버린다. *현재까지 발간된 김소연의 시집은 『극에 달하다』(1996), 『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2006), 『눈물이라는 뼈』(2009), 『수학자의 아침』(2013)까지 총 네 권이다. 인용할 경우 면수는 생략하고 각각 『극』, 『빛』, 『눈물』, 『아침』으로 표기한다. 세상 모든 것들의 표정은 지워지고/자세만이 남아 있다//이따금 나는 무지막지한 덩치가 되고/이따금 나는 여러 갈래로 흩어지기도 한다//그의 충고를 따르자면/너무 빛 쪽으로 가 있었기 때문이다/여러 개의 불빛 가운데 있었기 때문이다// (중략) //그림자 없는 생애를 살아가기 위해/지독하게 환해져야 하는/빛들의 피곤이 밤을 끌어당긴다 - 「빛의 모퉁이에서」 부분 (『빛』) 그림자 없는 삶을 위해 끌어다 쓴 빛의 피곤이 필연적으로 ‘밤’을 끌어당길 수밖에 없다는 정확한 진술은 이러한 말과 그림자의 본질에 닿아 있다. 단적으로 말해 그림자 없는 삶이란 불가능하다. 가능하다면 그것은 유령의 삶일 것이다. 그림자는 사물의 물성을 증거하면서, 동시에 그 물성을 지워 버린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불가능하다는 말은 그만큼 물성이라 믿어 왔던 존재의 본질이 허약하다는 말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림자를 통해서만 사물의 사물됨을 알 수 있고, 말을 통해서만 자신의 자신됨을 실감할 수 있다. 그림자 없는 물성이 유령의 것이라면, 말을 부여받지 못한 내면 역시 비존재로 내몰린다. 그러나 어떤 그림자로도 어떤 말로도 존재의 본질은 포착되지 못한다. 오히려 그림자와 말은 환영 혹은 오류가 되어 존재의 본질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될 뿐이다. 그림자가 지닌 이 이중성. 존재의 물성을 실감하게 하면서 오히려 그 실감을 내파해 버리는 모호성에 삶과 말이 지닌 진실이 깃들어 있다. 그러니 시인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그림자를 수도 없이 베끼며, 그림자들 사이에서 진동하고 있는 어떤 목소리들에 귀 기울이는 일뿐이다. 밤마다/그녀였던 당신이었던/수많은 아이들이 찾아와요/거친 바람처럼 문을 흔들며 칭얼대요/하나같이 눈은 퉁퉁 부었고 손끝은 차고/고개는 숙였어요// (중략) //지낼 만한 노곤함과/돌아갈 만한 차비를 두 손에 움켜쥐고/칭얼대고 칭얼대다 사라지죠//들어줍니다 두 귀를 여행 가방처럼 활짝 열고서/쓰다듬지요 두 손을 세계지도처럼 판판히 펼쳐서 위로합니다 긴 밤을 꼬박 앉아서// (중략) //번번이 한 아이가 남아 있어요/벽에 걸어둔 시커먼 외투처럼 등 뒤에서/이 아이, 자기가 엄마라고 우깁니다// (중략) /누워서 그녀는 자기 젖을 빨아요/그러면 그녀는 잠이 오지요 - 「그녀의 생몰 연도를 기록하는 밤」 부분 (『눈물』) 김소연의 시에서 그림자는 햇볕이 내리쬐는 한낮보다도 밤의 시간에 더 스스로의 본질에 가까워진다. 낮이 강제하는 빛의 윤곽으로부터 풀려남으로써 그림자는 비로소 ‘경계’의 영역에 서기 때문이다. 그녀였던 당신이었던 수많은 그림자들은 태양의 폭정이 사라지고 난 뒤에야 이미 반쯤은 사라지고 투명해진 모습으로 찾아와 말을 건넨다. ‘그녀’가 그 수많은 그림자들을 위해 해줄 수 있는 일이라곤 젖을 물리며 그림자들의 해갈될 수 없는 결여에 응답하는 것뿐이다. 이 고된 노동. 그림자들을 위무하기 위해 역시 그림자에 지나지 않는 ‘그녀’가 스스로의 젖을 빨 수밖에 없다는 운명론적 진술은 삶의 피폐성을 요약한 아포리아에 가까워진다. 그의 시에 잔혹동화와 같은 모티프들이 자주 동원되는 까닭 역시 동화가 압축해 내고 있는 생의 근원적 형식 때문이다. 그가 변용한 동화들 속에서 캐릭터는 오직 ‘자세’만으로 요약되는데, 무수히 많은 말들로 흘려보내도 끝끝내 남아 되돌아오는 ‘그림자’의 맹목적 갈망을 가장 선명하게 드러내 준다. 암늑대가 숲속에서 바람을 간호하는 밤이었대. 바람은 상처가 아물자, 숲을 떠나 마을로 내려갔대. 암늑대가 텅 빈 두 손을 호호 불며, 우듬지에 앉은 지빠귀를 올려다보는 밤이었대. 섭생을 위해서 살생을 해야만 하는 운명에 처한 늑대 이야기에, 한 아이는 밑줄을 긋고 있었대. 바람은 그 지붕 위를 저벅저벅 밟고 다녔대. 암늑대는 노란 지빠귀를 올려다보고, 노란 지빠귀는 늑대를 내려다보았대. 둘은 눈을 떼지 않고 서로를 쳐다보았대. 그래서 겨울밤은 감옥이 되기 시작한 거래. - 「눈물이라는 뼈」 부분 (『눈물』) 아이의 성장통을 비유하고 있을 이 시는 어떤 노래의 전승을 기록하고 있다. 새하얀 벽 위로 그림자들이 생을 공연한다. 섭생을 위해 지빠귀를 노리는 암늑대의 자세는 낮고 단단하다. 단 한 번의 도약으로 먹잇감을 낚아채기 위해 거추장스러운 마음은 모두 잘라낸 채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늑대의 눈빛에 어리는 검은 허공의 시간. 그 시간이 서서히 늑대를 물들여 간다. 암늑대를 내려다보는 지빠귀 역시 흔들림 없이 다가올 운명 앞에 눈감지 않는다. 공포에 몸을 맡겨 둔 채 자신도 그 시간의 일부가 되어 간다. 그리고 이들의 비극을 슬퍼하며 눈물 흘리는 바람과 아이가 있다. 이들이 빛과 어둠 사이에서 얽히고설키며 삶을 요약해내는 동안, 그 단단한 함축을 받아 먹고 돌들이 자란다. 하나의 비극이 있었음을, 누구도 벗어날 수 없는 생의 굴레에 의연하게 걸어 들어가 견뎌낸 그늘이 있음을 증거하고 제의한다. 김소연의 시는 그림자로 펼쳐 낸 한 편의 아포리아 인형극이다. 이 연극에는 무수히 많은 그림자들이 등장하지만, 주인공은 부재한다. 주인공이라 일컬을 수 있다면 아마도 그건 생 자체일 것이다. ‘삶’이 그려 내는 다양한 스펙트럼과 다변성 속에서도 결코 인간을 놓아 주지 않는 묵직한 생의 중력을 그의 시가 잘 포착해 내는 건 그림자야말로 생의 본질임을 잊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림자는 원상의 형상을 얼마든지 왜곡도 하고 때론 숨어 버리기도 하지만 결코 달아나지 않는다. 원상 내부의 상처와 질곡에 악착같이 달려들어 생의 모서리를 현상해 낸다. 삶을 자유롭게 하겠다는 무수한 그림자 기표들이 망각하고 있는 것은 그림자란 본디 원상의 것도 아니며, 원상과 무관한 것도 될 수 없다는 사실에 있다. 그림자란 한 편의 활시위와 같다. 원상의 중력과 그 중력을 넘어서려는 두 힘이 팽팽하게 긴장하며 휘어질 때, 그림자는 필연적으로 생의 근원에 가까워진다. 김소연의 문장이 지닌 안정된 흡인력은 바로 여기에서 비롯한다. 5. 판화적 글쓰기 인간이 맹점의 존재를 잘 느끼지 못하는 건 맹점에 의한 시야의 어둠을 다른 눈의 시각을 통해 메우기 때문이다. 언어의 눈, 그림자의 눈이 있어야 할 자리에 빛을 가득 채워 존재가 현현하는 곳을 봉쇄할 때, 우리의 삶은 점점 더 벼랑 끝으로 내몰린다. 감정과 생각이 어긋나고, 말과 빛이 허용하는 사유만이 폭거하는 메마른 불모지로 변모한다. 동일성의 사유에 항거하는 최근의 숱한 철학적 사유들이 그 윤리적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삶의 언어를 구원해 내지 못하는 건 이들 이론과 이미지의 현란함이 맹점의 파쇄가 아닌, ‘보완’을 수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삶의 언어로 충분히 구체화되지 못한, 자신의 손과 발로 직접 일구어 내지 못한 이미지의 언어들은 스스로가 올바른 대체시각이며, 이 강렬한 빛으로 맹점과 어둠을 몰아낼 수 있으리라 믿는다. 이 또한 뒤틀린 자만이며 확장된 동일성이다. 그러나 맹점은 우리 삶의 조건이며, 그 종착지이기도 하다. 인간의 조건은 부정되거나 개선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직시하고 함께 살아가야 할, 세계와 인간 사이에 놓인 고유한 매개 방식이다. 그림자가 아무런 음성도 없이 지상에 잠시 내려앉은 검은 입으로 말을 건넬 때, 이를 가장 섬세하게 들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어둠을 어둠인 채로 내버려 두는 일이다. 시선의 한구석에 필연적으로 존재할 수밖에 없는 어둠을 받아들이고, 그 어둠과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어쩌면 인간은 영원히 이 조건을 벗어날 수 없을지 모른다. 그렇다하여도 그림자에 마음을 빼앗긴 사람들은 유령처럼 태어나고, 그 절망적인 시도를 되풀이하며 말의 어긋남 속에서 더 진실한 말 하나를 길어 올린다. 이는 시인의 숙명이며, 시의 본질이기도 하다. 이를 김소연의 시적 방법론을 빌려 말하자면 판화적 글쓰기라고 명명해 볼 수도 있겠다. 이 성실하고도 마음 따뜻한 그림자 필경사는 그림자에 각인된 어둠의 지문을 숨죽여 더듬으며 그 굴곡과 깊이를 음화로 찍어 낸다. 어둠의 언어로, 어둠을 끌어안은 채, 어둠 속에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근원적 자세들을 현상해 낸다. 안전한 거리에서 시각의 윤곽을 따 옮기는 것이 아니라, 삶의 언어로 어둠에 밀착해 어둠을 살아 내면서 몸으로 찍어 내는 것이다. 그의 판화적 글쓰기에서 그림자는 언제나 모상(模像)이 아닌 원상(原象)일 수밖에 없는데, 시선의 권력을 그림자에게 돌려줌으로써 주체가 만들어 낸 일련의 위계상을 단번에 해체해 버리기 때문이다. 물론 그의 시가 지향하는 바와 전략이 너무도 명확한 만큼 쉽게 ‘코드’로 환원될 수 있다는 약점으로 비춰질 수도 있겠다. 그러나 그의 시는 ‘코드’로 읽히지 않는다. 그림자를 통해서 ‘무언가’를 말하려 하기보다는, 언제나 그림자 ‘속’에서 그림자 자체를 경험하도록 만들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의 시는 구체적인 삶의 시공간을 결코 가벼이 여기지 않는다. 삶의 실경이 굳건하게 뿌리박고 있는 시적 공간에서 그림자의 우화로 그림자의 눈빛에 노출되도록 만들 뿐이다. 태양에 흑점이 많을 때는, 역설적으로 태양의 활동이 가장 ‘극에 달했을’ 상태라고 한다. 내부의 격렬한 균열과 폭풍이 열의 흐름을 방해하여 상대적으로 어둡고 온도가 낮은 부분을 만들어 내기 때문이라고. 어쩌면 그림자에 대해서도 그와 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그림자들은 가장 격렬한 생을 통과한 내상들이며, 그 내상이 건네는 말의 뒤틀린 방식이라고. 김소연의 시는 현실 너머의 추상적 피안이 아니라, 뜨거움과 차가움을 절실히 통과한 이후의 ‘이곳’을 그림자의 형상을 통해 추적해 낸다. 삶을 가장 치열하게 마주한 자의 뜨거움으로 그늘이 품은 울음을 읽어 내고 위무한다. 그러므로 그의 시를 일컬어 이렇게 말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생의 흑점들로 이루어진 점자들이며, 생의 근원적 자세를 찍어 낸 판화들이라고.
  • !… 다시 머물고 싶은 곳

    !… 다시 머물고 싶은 곳

    올해도 ‘서울신문 렛츠고’는 대한민국 구석구석을 쉼 없이 돌았습니다. 렛츠고의 여정은 늘 혼자였으되, 발걸음은 여럿이었습니다. 등 뒤로 늘 독자들의 시선이 따라오는 듯했지요. 그 때문에 발견의 기쁨도 좋았지만, 공유의 행복은 더 좋았습니다. 올해 찾았던 곳 가운데 되새길 만한 곳들을 추리려 합니다. 당시 최적화됐던 풍경 몇몇을 가려내 보자는 거지요. 지난 시간의 단순 복기가 아닌, 발견의 기쁨을 공유하는 자리여서 느낌이 더욱 각별합니다.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 ① 고흥 소록도한 해를 정리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시기별로 나누는 것입니다. 굳이 경중이나 의미 등을 따질 필요가 없어서 좋습니다. 한데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공간이 있습니다. 전남 고흥의 소록도입니다. 외형이 아름다워서는 아닙니다. 시나브로 허물어져 가는 100년의 기억을 서둘러 붙잡아야 한다는 절박함 때문이지요. 올해의 여행지 가장 윗줄에 소록도를 세운 건 그 때문입니다. 소록도 안에서도 몇몇 곳은 일반인들이 자유롭게 오갈 수 있습니다. 문제는 그 너머에 있는 금단의 땅입니다. 그곳엔 1916년 세워진 자혜의원과 병사(病舍)들이 있습니다. 한센인들이 100년에 걸쳐 치료받고 생활했던 공간입니다. 그 공간이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식량저장고, 소록도 등대 등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건축물들은 늘 살뜰한 보살핌을 받습니다. 하지만 용도 폐기된 병사 건물은 다릅니다. 우리의 역량이 시험받아야 할 곳은 바로 여기, 그리고 바로 지금이라고 생각합니다. ‘소록도 서생리 마을 옛터 보존사업’을 이끈 조성룡 성균관대 교수 등을 중심으로 소록도를 보존하려는 시민사회의 움직임이 일고 있습니다. 이제 갓 발걸음을 뗀 이들에게 조용하면서도 강력한 국민들의 지지가 필요해 보입니다. 세계를 울린 역사에 감동받다 ② 정선 아리랑 박물관정선아리랑박물관은 ‘한류 원조’ 아리랑이 세계를 울린 역사에 놀라고 감동받았던 곳입니다. 박물관 전시물은 사진 두 장을 제외하고 모두 진본입니다. 진용선 관장이 젊은 날을 통째 바쳐 수집한 것들입니다. 아리랑을 번안한 미국 장로교단의 찬송가 229장(Christ, You Are the Fullness), 유엔이 아리랑을 담아 아프리카 나라들에 보급한 음악책 등 진귀한 전시물과 만날 수 있습니다. ‘대지’의 작가 펄 벅이 아리랑을 담아낸 소설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일본 여가수 고바야시 지오코의 아리랑 앨범 ‘금색가면’ 역시 이곳에 있습니다. 한국전쟁은 사람과 국토를 산산조각 냈지만, 역설적으로 아리랑이 세계에 알려지는 계기가 됐습니다. 위문 공연차 한국을 방문한 뮤지션들이 세계에 다양한 장르로 아리랑을 소개했기 때문입니다. 야전화장실에서 통역관의 아리랑 휘파람 소리를 듣고 이를 재즈풍으로 재해석한 오스카 페티포드의 ‘아디동(아리랑) 블루스’, 종군기자가 기록한 아리랑 멜로디를 편곡한 미국 여가수 엘리 윌리엄스의 ‘아디동’, 미국 포크 음악의 비조로 꼽히는 피트 시거의 ‘아리랑’ 앨범, 그리고 1970~80년대 폴 모리아 악단의 ‘아리랑’ 등과도 만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섬 산행을 원하는 당신③ 통영 사량도중국발 미세먼지 탓에 여정을 망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래전 찾았던 경남 통영의 사량도가 그랬습니다. 빼어난 암릉미의 명산이 청아한 옥빛 바닷물 위로 솟았지만 당최 아무것도 볼 수 없었습니다. 그 아쉬움에 사량도를 다시 찾았습니다. 마침 사량도 윗섬과 아랫섬을 잇는 사량대교가 놓인 터라 의미가 더했습니다. 하늘은 먼지 한 톨 없는 공기를 허락했고, 그 덕에 이전의 것들은 무효라 할 만큼 멋진 풍경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사량도를 찾는 이들은 대부분 섬 산행이 목적입니다. 윗섬 가운데를 지리산(398m)과 불모산(400m), 옥녀봉(303m) 등이 가로지르는데, 공룡의 등뼈를 닮은 암릉을 따라 걷는 재미가 각별합니다. 풍경전망대를 꼽으라면 윗섬의 향봉과 연지봉을 잇는 출렁다리 주변입니다. 사량도의 거의 모든 풍경을 담을 수 있습니다. 아랫섬은 아직 여행 불모지입니다. 칠현산 등산로 외에 뚜렷하게 개발된 관광지가 없습니다. 윗섬과 아랫섬에 각각 17㎞짜리 일주도로가 놓여 있습니다. 차를 가져가면 사량도 전체를 속속들이 엿볼 수 있습니다. 과장 좀 보태 ‘별유천지’ 그곳④ 서천 비인만충남 서천의 비인만은 이름만으로 관심을 끄는 곳이었습니다. 그리 흔한 이름이 아닌 데다, 어딘가 맑은 풍경을 가만히 숨겨 두고 있을 것 같은 느낌을 줬습니다. 비인만은 활처럼 휘었습니다. 어린아이가 그린 갈매기 그림을 연상하면 알기 쉽습니다. 날개 위는 마량포구입니다. 전어축제로 이름난 홍원항, 붉은 동백이 예쁜 춘장대가 이 언저리에 있습니다. 아래는 장항입니다. 서천의 명물이자 ‘JSA’ 등의 영화 촬영지로 이름난 신성리 갈대숲이 이쪽에 있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그러니까 갈매기의 몸통에 해당되는 곳이 바로 비인만입니다. 마량포구 인근 산자락에 올라 굽어보면 이 모습이 확연히 보입니다. 비인만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꼽으라면 단연 월호리 월하성 포구와 비인면 선도리 해변입니다. 월하성은 이름 그대로 ‘달 아래 성’이란 뜻입니다. 일대 풍경이 바다에 비치는 달빛만큼이나 아름답다네요. 선도리 해변의 해넘이는 단연 압권입니다. 해가 월하성 쪽으로 떨어지며 사위를 붉게 달굽니다. 이때면 하늘도, 바다도 죄다 짙은 주황빛이지요. 기러기 날자 풍경 떨어지더라⑤ 완주 비비정먼 길 날아온 기러기가 쉬어 가는 정자가 있다고 들었습니다. 전북 완주의 비비정(飛飛亭)입니다. 1998년 복원된 비비정은 건물 자체로는 별 감흥을 주지 못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깃들지 않은 탓입니다. 한데 주변 풍광은 정말 멋들어집니다. 만경강이 뱀처럼 휘돌아가고, 그 너머로 드넓은 호남평야와 억새 무성한 습지가 펼쳐져 있습니다. 저물녘엔 더 멋집니다. 사위가 시뻘겋게 물듭니다. 불 칼처럼 빛나는 만경강 위로는 기러기들이 ‘차르르’ 소리를 내며 내려앉습니다. 완산8경의 하나인 ‘비비낙안’(飛飛落雁)이 펼쳐지는 거지요. 이건 뭐 딱 ‘한 폭의 그림’입니다. 비비정 오른쪽엔 옛 만경강 철교(등록문화재 579호)가 남아 있습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역사를 온전히 기억하고 있는 문화재입니다. 비비정 뒤편 마을 언덕엔 카페 비비낙안이 있습니다. 옛 물탱크를 리모델링한 전망대와 도회지 느낌이 물씬 풍기는 카페 건물이 어우러진 곳입니다. 기껏해야 ‘동네 뒷산’ 정도의 야트막한 언덕이지만 사방이 훤히 트인 덕에 비비낙안에서 굽어보는 미감은 아주 색다릅니다. 비비정 레스토랑에서 ‘엄마의 레시피’로 만든 농가 집밥을 맛보는 것도 잊지 말아야겠습니다. 백제의 고도를 새로 보았지요⑥ 익산 미륵사지고백하자면, 그간 무지했습니다. 백제의 고도인 전북 익산을 개성 없는 중소도시쯤으로 여겼으니 말입니다. 이런 오만불손은 미륵사지 돌탑 앞에서 산산이 부서졌습니다. 여명의 긴장이 사라지고 햇살이 게으른 소의 발걸음처럼 느릿느릿 퍼질 무렵이었습니다. 익산의 아침을 깨우던 햇빛이 동원구층석탑 여기저기를 비췄습니다. 그때마다 화강암 돌탑은 스스로 빛을 냈습니다. 풍경 소리를 곁들여서요. ‘자체발광’의 몽환적인 풍경이랄까요. 해와 돌탑의 앙상블은 그처럼 오묘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아마 오래전, 이 자리에 돌탑을 세웠던 백제인 역시 이 장면을 염두에 뒀겠지요. 동탑 맞은편은 저 유명한 미륵사지 석탑입니다. 예정대로라면 내년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겠지요. 그때면 얼마나 더 신비로운 풍경이 펼쳐질까요. 나바위 성당도 감동적이었습니다. 초저녁 달을 이고 선 한옥 성당은 기이하고 아름다웠습니다. 인근 마을을 보듬고 있는 듯한 피에타 조각상도 감탄을 자아냈지요. 무엇보다 감동적이었던 건 예배당에 불이 켜질 때였습니다. 깜빡하며 주황색 불빛이 팔각창을 뚫고 나왔습니다. 그 장면이 달빛과 어우러져 얼마나 그윽하던지요. 글 사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자치단체장 25시] 미래 산업에 배고픈 영천, 보잉과 ‘항공 센터 ’ 키운다

    [자치단체장 25시] 미래 산업에 배고픈 영천, 보잉과 ‘항공 센터 ’ 키운다

    외교관 출신의 경북 영천 첫 3선 단체장인 김영석(66) 시장은 요즘도 여전히 배가 많이 고프다고 한다. 재임 10년 동안 상전벽해(桑田碧海)라고 할 만큼 허허벌판이던 영천을 경북 동남권 중심도시로 도약시키는 데 리더십을 발휘했다고 평가받는데도 그렇다. 김 시장은 요즘 영천 첨단산업도시 육성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경북과 함께 도약할 수 있는 야심 찬 신사업 구상에 몰두하고 있다. 26일 시장실에서 만난 그는 2002년 한·일 월드컵에서 4강 신화를 이룬 거스 히딩크 감독의 “나는 여전히 배가 고프다”(I am still hungry) 발언부터 인용했다. 그런 뒤 “4차 산업혁명 시대를 선도할 수 있는 항공전자, 의료기기 등 영천의 신성장산업 육성뿐만 아니라 경북 전체를 아우르며 상생 발전할 수 있는 ‘경북 경영’의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경북도지사 선거 출마 의지를 우회적으로 표현했다. 다음은 김 시장과의 일문일답이다.▶최근 영천 안팎에서 도시 발전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가장 큰 변화는. -2007년 취임 이후 줄곧 ‘영천 산업혁명’을 과감히 추진했다. 1, 2차 중심의 낙후된 지역 산업구조를 첨단산업으로 혁신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한계점에 다다른 지역의 산업구조를 미래형 첨단산업 중심으로 일대 전환했다. 인구 감소 등 도시 소멸 위험 요소를 제거하고 지속 가능한 미래도시 건설을 위한 ‘선택과 집중’ 전략에서였다. 이제 영천 미래 100년의 먹거리와 좋은 일자리 창출을 위한 토대는 마련됐다고 자부한다.▶첨단산업도시 육성 사업을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핵심 사업은. -대구경북경제자유구역 전체 8곳(대구·경북 각 4곳) 중 영천첨단부품소재산업지구(146만㎡), 영천하이테크파크지구(124만㎡) 등 2곳을 첨단산업 불모지인 영천에 유치했다. 경북 4개 경제자유구역 중 절반이 영천에 있는 셈이다. 첨단부품소재산업지구에는 이미 자동차 부품, 기계, 금속, 화학 업종 69개 기업이 입주했다. 이 중 외국인 투자기업이 7곳이다. 영천은 대한상공회의소의 외국인 투자기업 만족도 조사에서 최우수 등급인 S등급을 받았다. 앞으로 외국 기업들의 투자가 몰릴 것으로 기대된다. 영천하이테크파크지구는 2023년까지 2220억원을 투입해 개발된다. 항공전자 부품 특화단지 및 스마트 자동차 부품 산업 육성이 목표다.▶투자 유치 성공을 이어 가고 있다. 성과는. -2008년부터 지난달까지 국내외 약 50개 기업이 8380억원을 투자하거나 투자를 약속했다. 최근에는 영천 고경일반산업단지(156만 5000㎡) 조성 사업이 새로운 투자 유치에 불을 댕기고 있다. 고경산단은 2020년까지 2110억원을 들여 고경면 용전리에 조성되는데, 최근 투자사인 에스엘㈜, ㈜조은글라스, ㈜에스지, ㈜가온폴리머앤실런트 등 4개 사와 780억원 투자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다. 앞으로 자동차 부품, 금속, 금속가공 제품, 전자 부품, 통신장비, 전기장비, 기계, 운송장비 등 첨단 유망업종 중심으로 기업을 유치할 작정이다. 이 사업으로 기업 투자 7000억원, 경제 유발효과 3조 5000억원이 기대된다. ▶항공 산업을 신성장동력 산업으로 키우고 있다. 기반 확충과 육성 방안은. -국내 최초로 미국 보잉사의 항공전자 유지·보수·정비(MRO)센터를 유치하고, 항공전자 부품의 시험평가, 인증, 연구개발 등을 담당하는 항공전자시스템기술센터를 준공했다. 영천처럼 작은 기초자치단체가 세계 최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사를 유치해 항공 산업을 육성하는 경우는 세계적으로 드물다. 보잉 항공전자 MRO센터는 앞으로 아시아·태평양 항공기 전자 부품 정비 거점으로 육성될 예정이다. 시는 또 항공 산업의 블루오션으로 떠오른 항공기 인테리어와 복합재 산업 육성 사업에도 적극 나설 채비를 하고 있다. 항공기 인테리어의 해외시장은 2015년 17조원에서 2020년 30조원으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말 산업 1번지’로 불리며 말 산업 인프라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렛츠런 파크 영천’(영천 경마공원) 조성 사업은. -2009년 한국마사회의 제4경마공원 유치에 성공했고, 2015년엔 정부로부터 말 산업 특구지역으로 지정받았다. 특히 영천 경마공원은 마사회가 경북도·영천시 소유 부지(147만 4000여㎡)에 총 3657억원을 투입해 전국 최대 규모로 만든다. 마사회는 내년도 예산에 설계비 100억원을 반영하는 등 사업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개장은 2020년쯤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마공원 조성이 1500명의 신규 일자리 창출과 연간 1000억원 이상의 안정적인 세수 확보 등 지역경제 활성화에 이바지할 것으로 확신한다. ▶승마 활성화 사업도 적극 추진하고 있는데. -2015년 국내 최초로 영천시 임고면 운주산에 승마조련센터를 건립해 운영 중이다. 조련사와 승마인들이 제주마, 한라마, 경주퇴역마 등 한 해 약 160마리를 승마용으로 훈련시킨다. 또 조련센터 인근에 승마장을 만들어 연간 2만여명을 유치하고 있다. 매년 ‘말 마라톤’ 격인 말 지구력 승마대회, 전국승마대회, 말 한마당 축제, 전국종합마술대회, 국제유소년승마대회를 열고 있다. 앞으로 경주마 휴양시설 건립, 영천 금호강변 마상재(馬上才·말 위에서 펼치는 곡예) 복원 및 공연장 조성, 전문인력 양성기관 육성, 농촌 승마 체험시설 확충, 말 생산 농가 육성 등의 사업을 펼칠 계획이다.▶군사도시 영천의 미래지향적 발전 방안도 마련했다는데. -남부동과 북안면 일대 탄약부대 4곳 중 1지역 군사시설보호구역 64만㎡를 해제한 뒤 첨단복합도시 및 산업단지 개발을 추진하고 있다. 이곳은 내년 상반기에 국토교통부로부터 투자선도지구로 지정될 예정이다. 이를 위해 160억원을 들여 1지역 내 탄약고 19곳을 4지역으로 옮겨 현대식으로 건립했다. 영천첨단부품소재산업지구 인근 탄약부대 2, 3지역의 군사시설보호구역도 해제한 뒤 산업단지로 조성할 방침이다. 군사시설보호구역 해제 지역에 산업단지를 조성해 첨단 기업을 유치할 경우 영천 균형발전과 경제 활성화에 한몫할 것으로 기대된다. ▶내년 지방선거에서 경북도지사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고 있다. -28일 경북도청 브리핑룸에서 도지사 출마에 대한 저의 각오와 웅도 경북의 비전을 300만 도민에게 알릴 계획이다. 지난 10년간 죽은 도시 영천을 살려 낸 저의 경험과 능력을 바탕으로 ‘잘사는 경북 건설’에 온몸을 바치고 싶다. 영천의 큰 머슴에서 경북의 큰 머슴이 되려고 한다. 준비는 다 돼 있다. 일만 하는 제가 도지사가 되면 정말 잘 해낼 것으로 보는 사람이 많다. 기대에 반드시 보답하겠다. ▶10만 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은. -사분오열된 지역 민심을 하나로 모으는 데 적극 동참해 준 데 대해 감사를 드린다. 시장인 저를 소통과 화합 전도사로 각인되도록 해 준 점에 대해 경의를 표한다. 영천은 역대 시장 3명의 연속 중도 하차 및 잇단 선거로 인한 갈등과 대립으로 민심 분열이 회복 불능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비 온 뒤 땅이 굳는다’는 우리 속담처럼 영천시민들은 이제 전국에서 가장 화합하고 단결된 성숙한 시민의식을 선보이고 있다. 긍지와 자부심을 갖자. 영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균형발전비서관 사의…지방선거 출마 靑 참모들 채비 본격화

    균형발전비서관 사의…지방선거 출마 靑 참모들 채비 본격화

    박수현·나소열·문대림·오중기 등 결심 또는 적극 출마 고려 내년 6월 지방선거가 반년 남짓 남은 상황에서 출마를 준비 중인 청와대 참모들의 면면이 서서히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선거까지는 6개월가량 남았지만 지방선거에 출마할 공직자 사퇴시한인 내년 3월 12일까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은 탓에 출마 예상자들로서는 한두 달 내에 자리에서 물러나 선거를 준비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두 달 전만 해도 내년 지방선거에 나설 청와대 참모들의 이름이 많게는 20여 명 선까지 나오기도 했다.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거론되던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과 부산시장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이야기가 돌았던 조국 민정수석, 성남시장 출마설이 나오던 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 일찌감치 불출마로 가닥을 잡으면서 10명 내외로 정리가 돼가는 분위기다. 핵심 참모들로서는 국정 공백이 우려될 뿐만 아니라 후임자 인선도 부담스러운 만큼 내부에서 실장·수석급은 자리를 지키자는 공감대가 형성된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지방선거 출마를 결심한 것으로 알려진 청와대 참모들은 주로 비서관급 이하다. 황태규 전 균형발전비서관은 지방선거에 출마하겠다는 뜻과 함께 며칠 전 청와대에 사의를 밝힌 것으로 알려졌다. 지방선거 출마를 이유로 청와대에 사의를 밝힌 비서관급은 황 전 비서관이 처음이다. 전북 임실 출신인 황 전 비서관은 전북 지역 출마를 고심 중인 가운데 정확한 출마지를 정하지는 않았다고 한다. 문 대통령의 ‘입’ 역할을 하는 박수현 청와대 대변인은 3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안희정 지사의 뒤를 이어 충남지사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힌 상태다.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안 지사 캠프의 대변인이었던 박 대변인은 안 지사와 친분이 두터워 충청권 내 안 지사의 지지율을 상당 부분 흡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박 대변인과 함께 정무수석실의 나소열 자치분권비서관도 충남지사 도전 여부를 막판 저울질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 사이에 교통정리가 이뤄지지 않으면 한솥밥을 먹는 박 대변인과 나 비서관이 충남지사 후 자리를 놓고 당내 경선에서 격돌할 가능성이 있다. 제주 출신 문대림 사회혁신수석실 제도개선비서관은 제주지사에 출마하기로 하고 지방선거 예비등록일인 내년 2월 13일 전 비서관직을 사퇴하겠다는 뜻을 밝힌 바 있다. 이 밖에 오중기 균형발전비서관실 선임행정관은 2014년 지방선거에 이어 여당의 불모지인 경북에서 도지사직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기초단체장 선거 출마를 고민하는 행정관들도 정리가 돼가는 분위기다. 제도개선비서관실 박영순 선임행정관은 대전 대덕구청장 도전이 유력하게 점쳐지고 자치분권비서관실 백두현 선임행정관은 경남 고성군수 선거에 출마할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 대변인실 김진욱 행정관은 서울 은평구청장 출마를 검토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무비서관실 강성권 행정관은 부산 사상구청장에, 정무수석실 김병내 행정관은 광주 남구청장에 도전할 것으로 보인다. 연합뉴스
  • [자치단체장 25시] 로봇산업 메카로 점프업… ‘대기업 없던 대구’ 마침표

    [자치단체장 25시] 로봇산업 메카로 점프업… ‘대기업 없던 대구’ 마침표

    “2021년에는 청년들이 돌아오고 인구가 증가해 대구가 다시 한 단계 ‘점프업’하는 새로운 전기를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권영진 대구시장은 최근 열린 올해 마지막 정례조회에서 대구가 직할시로 승격해 새롭게 탄생한 지 40주년이 되는 2021년에는 다시 한번 도약하는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으로 내다봤다. 권 시장은 “그때가 되면 미래형 자동차, 로봇, 물산업 등을 기반으로 한 친환경 첨단산업도시로 거듭나 청년들이 일자리를 찾기 위해 대구를 떠나는 일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 “3년 전 산업구조를 전통산업 중심에서 친환경 첨단산업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지적했는데 지금까지 피부에 잘 와 닿지 않았다”고 지적한 뒤 “그러나 올해 대기업 없는 시대에 마침표를 찍는 등 첨단산업도시로의 전환 속도를 내고 있다”고 했다.지난 14일 권 시장으로부터 2021년 대구의 점프업 근거와 현재의 대구경제 현황 등에 대해 들었다.→2021년까지는 얼마 남지 않았다. 대구의 획기적인 변화가 가능한가. -현대로보틱스 본사가 대구에 둥지를 트는 등 대구에 기업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로 인해 대기업이 하나도 없었던 시대를 끝냈고 기업들이 오지 않는 도시라는 불명예도 벗었다. 더구나 현대로보틱스는 현대중공업그룹의 지주회사로 시가총액이 무려 6조 7000억원에 이른다. 또 롯데케미칼 등 대구국가산업단지와 대구테크노폴리스에 유치한 기업들이 본격 가동되는 2019년 이후가 되면 청년들의 눈높이에 맞는 일자리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될 것이다. 이와 함께 긍정적인 수치 중 하나로 청년인구 감소폭이 줄어드는 것을 들 수 있다. 실제로 2014년 1만 3000여명에 가까웠던 청년인구 감소 수가 현재는 5000여명으로 대폭 감소하고 있다. 아마 내년 말 또는 2019년에는 청년 인구가 감소에서 증가로 돌아서는 터닝포인트가 될 것이다.→현대로보틱스 유치 효과와 앞으로 더 많은 대기업 유치 전망은. -현대로보틱스 입주로 인해 대구는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로봇산업의 중심도시로 자리매김했다. 또 한국로봇산업진흥원을 비롯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인 야스카와전기, KUKA 유치에 잇달아 성공했다. 현대로보틱스 협력업체 동명전기 등 5개 업체를 추가 유치해 현대로보틱스 클러스터를 조성했다. 이 덕분에 연간 250여명의 직원이 달성군 현풍에 근무하고 이들의 소비활동을 통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국가산업단지, 대구테크노폴리스, 첨단의료복합단지, 수성의료지구 등 기반시설이 잘 조성돼 있다. 섬유·기계 산업의 구조 고도화와 미래 신성장 산업 선점 등으로 산업생태계의 체질도 개선됐다. 대구에 투자하는 대기업에 대해서는 공장부지 무상제공, 고용보조금, 교육훈련보조금, 투자보조금 등 투자금액의 최대 50%까지 보조금을 대폭 지원한다. 공장 설립부터 가동, 정착, 안정화 단계까지 원스톱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고 있다. 이 같은 파격적인 투자 인센티브 제공에 많은 대기업들이 관심을 가질 것으로 기대한다.→대구 경제 위기 타개를 위한 5대 신성장 산업 추진 상황은. -4차 산업혁명 시대, 사회경제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는 지금이 대구에는 골든타임이다. 따라서 물, 의료, 에너지, 미래형 자동차, 사물인터넷(IoT) 등 5대 산업을 대구의 미래 신성장 동력 산업으로 집중 육성하고 있다. 물산업의 경우 국내 유일의 물산업 클러스터를 지난해 11월 착공했으며 롯데케미칼, PPI평화 등 20개 유망 물기업을 유치했다. 대구가 수도권을 제외하고 최고의 의료 인프라와 서비스, 우수 의료인력을 보유하고 있는 점을 내세워 의료산업을 육성하고 있다. 첨단의료복합단지에는 뇌연구원을 비롯해 15개의 국책기관 및 사업화 지원 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지난 2월에는 국내 최초로 팔이식 수술에 성공해 대구의 의료기술을 전 세계에 알렸고, 지난해에는 비수도권 최초로 의료관광객 2만명을 돌파하는 성과를 이뤘다. 전국 특별시와 광역시 중 신재생에너지 보급률 전국 1위라는 강점을 내세워 에너지산업을 키우는 데 매진하고 있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과 신재생에너지 정책에 앞서 대구시는 2030년까지 청정에너지로 전력에너지 자립률 100%를 달성하고 신재생에너지 보급률 25% 이상을 달성할 계획이다. 자동차부품 산업 관련 기업 885개사가 대구에 입주해 있어 미래자동차산업 육성에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IoT 육성을 위해 SK텔레콤, 삼성전자와 IoT 테스트베드를 구축했고 ‘IoT 전용망’을 전국 최초로 지난해 5월 개통했다.→대구국제공항 이용객이 큰 폭으로 증가하고 있다. 대구공항 통합 이전이 시급하다. -2013년 대구공항은 연간 이용객 108만명에 불과한 자그마한 공항이었으나, 올해는 375만명에 육박하고 있다. 내년에는 수용한계를 훌쩍 넘어설 게 확실해 보인다. 현재 대구국제공항은 주택가에 둘러싸여 있어 확장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대구공항은 K2와 함께 가까운 경북으로 이전해야 한다. 대구공항 통합 이전은 다소 늦었지만 치밀하게 준비해 나가겠다. 이전부지는 예비 이전 후보지 선정, 이전 후보지 선정, 이전 부지 선정 등 3단계 과정을 거쳐 최종 확정된다. 현재 예비 이전 후보지 선정을 완료하고 이전 후보지 선정을 앞두고 있다. 이전 후보지 선정을 위한 첫 관문인 이전부지선정실무위원회가 지난 9월 22일 첫 회의를 개최해 실무위원을 위촉한 바 있다. 지난 15일에는 이전부지선정위원회를 개최했다. 이날 회의에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은 “대구시와 경북도, 군위군, 의성군 등 4개 지자체가 한 곳의 이전후보지 합의안을 내놓으면 내년 1월 15일 이전 두 번째 선정위를 열어 후보지를 결정할 수 있다”고 밝혔다. 대구공항 후보지 이전에 급물살을 타게 됐다. 앞으로 대구시는 민간공항이 어디에 가면 적합할지 등에 대한 시·도민들의 의견을 최대한 수렴할 계획이다. →관광도시 대구를 만들기 위해 추진하고 있는 것은. -과거 대구는 서울, 제주 등에 비해 관광에 대한 인지도가 약했다. 또 팔공산 동화사와 갓바위 외에 매력적인 관광자원이 없었다. 식당, 숙박, 안내 등 수용환경도 미약해 관광 불모지였다. 그동안 대구만의 대표 관광상품을 개발해 관광매력 도시로 부상했다. 실제로 근대골목, 김광석 길, 안지랑곱창골목 등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색다른 관광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개발했다. 컬러풀페스티벌, 치맥페스티벌, 뮤지컬페스티벌 등 시민이 주도하고 참여하는 축제 활성화로 축제의 도시로 발돋움하고 있다. 이로 인해 2013년 33만명이었던 외국인 관광객이 지난해 56만명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또 수도권을 제외하고 전국 최초로 2만명이 넘는 의료 관광객을 유치했다. 앞으로 중국시장을 복원하고 동남아, 일본, 대만 등 직항노선을 활용하는 등 시장을 다변화해 나가겠다. 국내시장 활성화를 위해 영남권 관광 자원을 활용하고 관광공사, 서울시 등 타 지자체, 기관과의 협업을 통해 관광상품을 개발해 나가겠다. 2020년에는 내외국인 관광객 1000만명을 유치하겠다. 대구 한찬규 기자 cghan@seoul.co.kr
  • “공부하러 술집 가요”…장학생은 ‘위스키 석사’ 유학

    “공부하러 술집 가요”…장학생은 ‘위스키 석사’ 유학

    ‘술꾼’들이 똑똑해지고 있다. 전문가가 엄선한 특별한 술을 마시고 한 잔의 술에 담긴 역사와 의미를 이해하려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음주 문화가 달라지면서 와인 업계의 ‘소믈리에’와 유사한 맥주 업계의 ‘비어마스터’와 ‘브루마스터’, 위스키 업계의 ‘마스터블렌더’ 등 다양한 주류 전문가들의 존재도 전보다 한층 부각되고 있다. 일반 소비자들도 다양한 경로로 술에 대한 전문 지식을 탐한다. 수만 가지 제품이 범람하는 주류시장에서 자신의 존재감을 알리고 싶은 주류업체와 하나의 문화로서 술을 좀더 깊게 향유하고 싶은 소비자의 욕구가 맞물려 술자리의 ‘학구열’은 날로 뜨거워지는 추세다.“에일과 라거맥주를 구분하는 가장 큰 차이점은 뭘까요?” 지난달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혜화동 대학로의 한 술집에서 열린 오비맥주의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인근 극단 단원들과 대학생 등 약 50명의 수강생으로 발 디딜 틈 없이 북적였다. 보통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오비맥주 건물에 마련된 전용 수업공간에서 진행되지만, 이날은 단골 손님들을 대상으로 맥주 수업을 하고 싶다는 술집 사장의 요청으로 특별 강연이 열렸다. 강의를 맡은 김소희(41·여) 부장의 기습 질문에 참가자들이 정답을 말하려고 잇따라 손을 들었다. “에일은 과일 맛이 나고 라거는 청량한 맛이 나요.” “에일은 상면 발효로 만들어지고, 라거는 하면 발효로 만들어져요.” “두 분 다 정답입니다. 상품 드릴게요.”동영상과 퀴즈 등을 다채롭게 활용한 강의에 참가자들의 눈이 번뜩였다. 처음에는 다소 정적인 분위기였지만 세계 각국의 맥주, 전용잔 등 각종 경품이 속속 등장하면서 열기가 뜨거워졌다. 자연 발효과정을 거쳐 만들어지는 데만 약 2년이 걸리는 벨기에 람빅 계열 ‘귀즈’를 시작으로 ‘스타우트’, ‘IPA’, ‘스텔라 아르투아’ 등 다양한 종류의 맥주를 강의 중간중간 시음하면서 분위기는 한껏 무르익었다. “대표적인 밀맥주 ‘호가든’은 2차 발효가 병 안에서 이뤄지기 때문에 ‘병나발’을 불지 말고 잘 흔들어서 전용 잔에 따라 마셔야 본연의 풍부한 맛을 즐길 수 있어요.” 김 부장의 설명에 이어 호가든 맥주를 따르는 시범 영상이 스크린에 흘러나오자, 참가자들은 일제히 자리에 놓인 맥주병과 전용잔을 양손에 들고 맥주 완벽하게 따르기 시합에 열중했다. 강의의 꽃은 단연 막바지에 진행한 ‘블라인드 테스트’. 일회용 컵에 따라 놓은 5가지 술 중에서 자신이 자신 있는 맥주 한 종류를 골라내는 시험이다. 도전자들이 줄줄이 정답을 내지 못하고 고배를 마시던 와중에 평소 일본의 ‘아사히’ 맥주를 가장 즐겨 마신다고 밝힌 한 참가자가 실제로 아사히 맥주를 골라내자 일동이 환호성을 내질렀다.국내 최초의 맥주 전문학교인 비어마스터 클래스는 맥주의 역사부터 종류와 제조법, 다양한 음용 방식 등 맥주에 대한 지식을 배우고 직접 맛보는 수업이다. 오비맥주는 2013년 3월 첫 수업을 개최한 이후 현재까지 720회 이상 강의를 진행해 왔다. 지금까지 비어마스터 클래스를 다녀간 사람이 1만 8000명에 달한다. 현재는 주로 기관, 단체 등에서 15명 이상이 사전 신청을 해야지만 수업을 들을 수 있다. 그나마도 최소 두 달 전에는 예약해야 원하는 날짜에 수강이 가능하다. 초반에 비해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 빠른 시일 안에 일반인 대상으로 수업 확대를 모색하고 있다는 게 오비맥주 측의 설명이다. 이날 수업을 참관한 김병모(25)씨는 “먼저 수업을 들은 지인의 추천으로 참석하게 됐다”면서 “온라인을 통해 떠도는 맥주에 대한 잘못된 상식을 바로잡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말했다. 대학생 윤수민(25·여)씨도 “일반 시음행사에서는 맛이 있는지, 없는지만 단순 비교하게 되는데, 수업을 통해 맥주에 얽힌 이야기나 올바르게 마시는 법을 알고 시음하니 내가 선호하는 맥주의 특징이 무엇인지도 더 정확하게 알게 되는 느낌”이라고 말했다. 김 부장은 “과거의 음주문화는 주로 만취할 때까지 들이붓는 경향이 강했지만, 최근 몇 년 동안은 술을 제대로 알고 맛을 음미하려는 분위기가 보편화됐다”면서 “수업에서도 초기에 비해 맥주의 종류별 음용법, 맛이나 향의 차이 등에 대해서 큰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었다”고 설명했다.이렇게 술과 관련된 전문적인 지식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이 증가하고 있다. 음주문화가 변하면서 술을 기호식품의 하나로 보는 인식이 확산됐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여기에 해외여행이 증가하고 다양한 수입 주류가 국내에 반입되면서 소비자가 세계 각국의 술을 접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했다. 체코의 글로벌 맥주 브랜드 ‘필스너 우르켈’ 관계자는 “맥주를 비롯한 수입 주류가 대중화되고 저도주의 유행으로 여성의 술 소비가 늘면서 전체적으로 소비자 입맛도 다양해지고 있다”면서 “소비자 입맛이 다양해진다는 것은 그만큼 맛에 대한 기준이 높아지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세계적인 수제맥주 회사 ‘브루클린 브루어리’의 아시아 첫 자매 회사인 제주맥주는 지난 8월부터 제주 한림읍에 위치한 양조장을 일반인에게 공개하고 원데이 클래스 수업을 진행하고 있다. 양조장 투어를 통해 관람객은 맥주 몰트 분쇄부터 제품 포장에 이르기까지 수제맥주 양조의 주요 공정을 관람할 수 있다. 또 18종의 맥주 원재료 및 부재료를 직접 확인하고 맛볼 수 있으며, 맥주 양조 전문가처럼 좋은 향과 나쁜 향을 구분하는 훈련도 체험해 볼 수 있다. 사전 예약으로만 참여가 가능하고 1회 참가 인원이 40명으로 제한돼 있음에도 지난달 말 기준 약 5000명이 방문하는 등 호응을 얻고 있다. 지난 9월 16일에는 ‘제주 위트 에일’ 맥주 레시피를 개발한 세계적인 브루마스터 개릿 올리버의 방한을 맞아 제주맥주 양조장에서 맥주 애호가 및 전문가들을 대상으로 한 ‘비어긱 클래스’도 열었다. 국내 주요 수제맥주 회사 임직원과 맥주 전문가 등 약 40명의 맥주업계 관계자들이 참석한 이날 행사에는 올리버가 직접 나서 ‘핸드앤드실 코냑’, ‘로컬1’ 등 국내에 수입되지 않은 한정판 프리미엄 수입맥주 10여종의 시음 방법을 강의했다. 미국 시카고의 대표적인 수제맥주 브랜드 ‘구스 아일랜드’도 서울 강남구 역삼동 구스아일랜드 브루하우스에서 매달 맥주 애호가들과 함께 맥주를 연구하는 ‘맥덕 클래스’를 열고 있다. 맥덕 클래스는 구스아일랜드에서 직접 만든 하우스비어 등 다양한 맥주의 맛과 향, 특징 등을 공부하고, 어울리는 음식과의 조합을 직접 발굴해 내는 형식으로 진행된다. 참가자는 10명 이내로 제한된다. 맥주에 비해 상대적으로 대중적이지 않은 위스키도 소비자를 대상으로 한 수업 프로그램으로 ‘이름 알리기’에 나섰다. 에드링턴코리아는 젊은 소비자에게 다가가기 위해 2014년부터 대규모 위스키 시음 클래스 ‘토스트 더 맥캘란’을 진행하고 있다. 매년 4000~5000명의 사전 신청자를 대상으로 위스키의 종류별 제조법과 향, 위스키를 즐기는 방법과 역사 등을 약 2시간에 걸쳐 설명하고 직접 시음해 보는 기회를 갖는다. 올해도 지난 3월 3일부터 4월 4일까지 강남구 삼성동 스타필드 코엑스몰 메가박스 ‘더 부티크’에서 개최됐다. 특히 올해는 행사 기간 중 맥캘란의 영국 마케팅 디렉터 글렌 그립번이 방한해 국내 소비자들과 시음회를 함께 진행하기도 했다. 관련업계 종사자를 위한 주류 전문가 양성과정도 늘었다. 필스너 우르켈은 지난해 2월부터 브랜드만의 비어마스터인 ‘탭스터’ 양성과정을 전 세계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비어마스터는 매장에서 생맥주를 관리하고 완벽하게 ‘푸어링’(맥주를 잔에 따르는 것)하는 직업이다. 와인업계의 ‘소믈리에’와 비견된다. 맥주를 제조하고 생산품질을 유지하는 ‘브루마스터’와는 구분된다. 필스너 우르켈은 세계 각국에 66명의 탭스터를 두고 있으며 체코의 현지 헤드 탭스터 아담이 정기적으로 아시아 지역을 돌면서 맥주를 보관·관리하는 법부터 맥주를 고객에게 제공하는 방법 등을 교육한다. 현재 국내 약 20개 주류 전문점 바텐더들이 수강을 마쳤다. 국내 위스키 전문회사 골든블루는 지난해부터 매년 2명을 선발해 양조전문가로 육성하는 ‘마스터블렌더 육성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마스터블렌더란 숙성된 위스키 원액을 조합해 최고의 향과 풍미를 지닌 위스키를 만들어 내는 주류 제조 전문가다. 원료 선택부터 발효, 증류, 숙성 등 위스키의 모든 제조과정을 책임지는 것은 물론 위스키의 맛과 품질을 유지·관리하는 역할을 한다. 세계양조협회는 1821년 설립된 스코틀랜드의 해리엇와트대 양조.증류학과 석사 학위자 가운데 일정 경력을 지닌 사람에게 마스터블렌더 호칭을 부여한다. 골든블루는 프로젝트를 통해 선발한 장학생을 대상으로 해리엇와트대의 석사학위 취득을 위한 학비, 체재비, 항공료 등을 전액 지원한다. 골든블루 관계자는 “상대적으로 위스키 불모지인 국내 주류산업의 질적 성장을 위해서는 제품 개발뿐 아니라 장기적으로 주류 문화와 역사를 알릴 수 있는 전문가를 양성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김희리 기자 hitit@seoul.co.kr
  • 컴퓨터 대신 달에 로켓 쏴 올린 ‘그녀들’

    컴퓨터 대신 달에 로켓 쏴 올린 ‘그녀들’

    당시 여성 불모지에서 주도적 자기 계발…끈끈한 유대로 편견과 차별 당당히 극복 로켓 걸스/나탈리아 홀트 지음/고정아 옮김/알마/416쪽/1만 8500원 지난 3월 국내에서 개봉한 영화 ‘히든 피겨스’는 미국 우주 개발에 큰 공헌을 한 흑인 여성 삼총사의 이야기를 그렸다. 인종 차별과 여성 차별이라는 큰 장애물 속에서 거듭되는 난관을 유쾌하게 극복하는 모습이 잔잔한 울림을 남겼다. 직업적인 선구자로서 이들이 일군 업적과 삶을 대하는 진정한 태도에 감동한 관객이라면 미국 과학자 나탈리아 홀트가 쓴 ‘로켓 걸스’에서 또 다른 재미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책은 1940~50년대 미국 캘리포니아 패서디나의 항공우주국(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에 입사해 ‘인간 컴퓨터’로 불리며 일했던 여성 과학 기술자들의 삶을 좇는다. 홀트는 2011년부터 약 4년간 JPL에서 일했던 여성 연구자와 그들의 가족, 동료 직원들과의 인터뷰, 인터뷰한 사람들이 제공한 임무 보고서·서신·일기 등의 자료 분석을 통해 ‘소리 없는 영웅’들의 삶을 자세하게 복원해 냈다. 특히 수학에 흥미가 많은 괴짜 여학생들이 전문직 여성이자 워킹맘으로서 성장하는 과정과 일과 가정의 균형을 유지하고자 고군분투한 모습은 오늘날 여성들이 현실에서 겪는 풍경과 크게 다르지 않다.로켓이 비주류 과학으로서 진지한 대접을 받지 못하던 1940년대 JPL은 로켓의 속도를 계산하고 궤적을 작성하는 수학자들로 여성들을 채용했다. ‘메모리를 갖춘 중앙처리장치’라는 컴퓨터의 현대적인 정의가 생겨나기 이전에 이들은 종이와 연필 그리고 오로지 머리만으로 복잡한 수학 방정식을 풀어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달에 우주선을 보내는 등 행성을 탐사하는 데 필요한 모든 계산을 책임진 이들은 당시 여성에게는 척박하기만 했던 과학기술계에서 새 길을 개척한 전문가 집단이었다. 당시 대다수 여성들이 선택했던 비서, 교사, 간호사라는 직업 대신 여자들의 불모지와 다름없는 곳에서 일한 이들은 자신의 삶을 꾸릴 때도 주도적이고 도전적이었다. 남성 엔지니어들이 자신들을 ‘여자 계산원’으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스스로 ‘여성 단체’라고 일컫는가 하면 프로그래밍 강좌를 통한 신기술 공부 등 자기 계발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하지만 직장인 여성으로서 엄마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것은 이들에게도 역시 쉽지 않았다. 행복한 균형을 얻기 어렵다는 깨달음 속에서도 그들에겐 그저 해내겠다는 강인한 의지가 있었다. 연구소 안팎에서 수많은 시간을 함께하며 서로에게 조언을 아끼지 않았던 여성 동료들과의 우정 덕분이다. 삶의 어려운 문제를 함께 푸는 즐거움 속에서 끈끈한 유대를 쌓았던 이들에게 JPL은 그런 의미에서 “직장이라기보다는 비밀결사 같았다.” 50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로켓 걸스’들이 작성한 코드는 우주선, 기후 연구, 화성 탐사 로봇에 계속 쓰이고 있다. 2012년 이후 계속 화성을 탐사하고 있는 큐리오시티 탐사 로봇에서부터 2004년 이후 토성을 돌고 있는 카시니 궤도선 등 이들의 위대한 역사는 광활한 우주에 뻗어 있다. 물론 미래의 지구 궤도 비행 장치들에서도 이들의 흔적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에서 편견과 차별을 당당히 극복하고 자신의 미래를 새롭게 쓴 그들의 진취적인 삶이 하늘을 향해 주저 없이 날아오르는 로켓과 꼭 닮았다. 조희선 기자 hsncho@seoul.co.kr
  •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헌책방 주인장의 유쾌한 책 박물관] 문화 낙원 꿈꾼 ‘우리들의 한나’

    미모·다재다능…드라마서 활약 연예 생활 중 본명 ‘안영채’ 등단 장편 ‘우리들의 한나…’만 본명 써‘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 1970년대 한국 영화를 좋아해서 시간 날 때마다 찾아 감상하고 있다. 내가 운영하는 헌책방에서 만나는 손님들도 영화를 즐기는 분들이 더러 있기 때문에 이런 주제로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있다. 이럴 때 흔하게 나오는 화제가 ‘어느 배우를 좋아하느냐’인데 보통은 여배우 이름이 많이 나온다. 신성일, 허장강 등 훌륭한 남자 배우도 여럿이지만 그런 이름이 거론되는 경우는 열이면 한둘 정도에 불과하다. 대개는 흔히 ‘트로이카’라고 불리는 문희, 남정임, 윤정희, 유지인, 장미희 등의 이름이 자주 불려 나온다. 그런데 트로이카라고 불리지 않았던 배우들 중에서 유독 사람들 기억 속에 강렬한 인상으로 남아 있는 이가 있다. 트로이카처럼 많은 활동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들만큼 엄청난 인기를 끌어안고 살았던 것은 아니지만 이상하다고 여겨질 만큼 이미지가 뚜렷했던 배우가 있다. 그중 하나가 안옥희(安玉姬)다.배우 안옥희는 1953년 경기도 시흥에서 태어났고 중앙대 연극영화과를 졸업했다. 특출한 외모와 함께 다양한 재능을 갖추었던 그녀는 일찌감치 예술가로 성공할 가능성을 보였다. 이미 열아홉 살 때 희곡 ‘여우와 소’를 발표했고 아동극 ‘하늘나라에서 온 편지’를 연극 무대에 올렸다. 이 작품은 1979년에 영화로 제작되기도 했다. 스무 살 때는 연극 ‘러브스토리’와 ‘검은 고양이 네로’에 출연해 이 즈음부터 연기의 세계에 빠져들게 된다. 바로 그즈음 텔레비전 신인 탤런트 모집에서 무려 2800대1의 경쟁자를 물리치고 비로소 시청자들 앞에 나타났다. 영화 출연은 많지 않았지만 ‘어머니’를 비롯해 ‘꽃신’, ‘수초의 노래’ 등 텔레비전 드라마에서의 활약은 두드러졌다. 그런데 안옥희는 배우로서 재능만 갖고 있었던 것은 아니다. 10대 시절부터 희곡과 아동문학을 쓰면서 기본기를 다진 그녀는 1977년 월간문학에서 동화 부문 신인상을 받으며 문단에 데뷔했다. 다음해에는 ‘마지막 일기’로 성인문학 부문에서도 입선을 했는데 이때 안옥희는 이미 잘 알려진 연예인이었다. 그런 이유로 문학작품을 발표할 때는 안옥희라는 이름 대신 본명인 안영채(安榮蔡)를 썼다. 문단 데뷔를 위해 작품을 보낼 때도 ‘영채’라는 이름을 써서 자신의 현재 신분을 가렸다. 많은 사람들이 안옥희라는 이름을 연기자로 기억하고 있지만 그녀는 안영채라는 이름으로 한국문인협회, 한국아동문학평론가협회, 한국수필문학가협회, 그리고 한국희곡작가협회의 정회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녀가 쓴 대부분의 문학작품은 앞서 말했듯 안영채라는 이름이 저자로 돼 있다. 1975년에 발표한 수필 ‘귀뚜라미의 외출’을 시작으로 ‘춤추는 무리들’(1976), ‘아아, 저 눈빛이’(1988), ‘혼자 사는 여자’(1993)까지 작가로 활동할 때는 옥희가 아닌 영채였다. 그런데 안옥희라는 이름을 쓴 장편소설이 있다. 이 책은 안옥희를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데 유독 이 작품에서 그녀는 안옥희라는 이름을 그대로 쓰고 있다.이 책은 안옥희가 쓴 유일한 장편소설인 ‘우리들의 한나는 왜 서울을 떠났나’다. 출간 연도는 1979년. 그러니까 한창 배우로서 바빴던 시기에 시간을 쪼개어 장편을 써 냈던 것이다. 나도 전에는 이 책의 존재를 모르고 있었는데 몇 해 전 수원에 사는 어떤 분 댁에 가서 책을 매입했을 때 발견한 것이다. 처음엔 제목이 좀 유치해서 웃고 넘기려고 했는데 표지에 한자로 쓰인 저자 이름을 읽어 보니 안옥희인 것이다. 설마 이 옥희가 바로 그 연기자 안옥희일까? 에이 설마, 그래도 혹시? 하면서 표지와 면지를 넘겨 보니 정말로 저자는 유명한 배우 안옥희였다. 소설이 시작되기 전 편집자는 우선 왜 이 소설에 ‘영채’ 대신 ‘옥희’라는 이름을 썼는지 밝히고 있다. 안옥희는 문학작품을 출판할 때 영채라는 이름을 줄곧 써 왔기 때문에 여기서도 그 이름을 쓰고자 했으나 소설을 검토해 본 결과 옥희라는 연기자의 이름을 쓰는 것이 굳이 핸디캡이 될 수 없겠다는 판단을 내린 게 요점이다. 그러면서 편집자는 소설가 안옥희를 버지니아 울프, 조르주 상드, 캐서린 맨스필드와 견줄 만하다고 소견을 말하고 있다. 물론 약간 과장을 덧붙인 비교일 수도 있지만 과히 틀린 말은 아닌 것이 작품을 읽어 보니 저자는 주인공 ‘한나’를 포함한 여러 여성 캐릭터들을 특히 매력적인 인물로 그려 낸 것이 흥미로웠다. 소설의 배경은 1970년대 후반, 그러니까 당시로선 현대물인데 사회 분위기상 이처럼 여성이 주체적인 모습으로 형상화된 작품은 그렇게 많지 않다. 여성은 대부분 약하고 순결한 이미지이기에 가부장적인, 마초적인 남성에 종속돼 휘둘리는 역할이 많았던 것이다. 그런데 한나는 그런 남성들에게 굴하지 않고 꿋꿋하게 자기 삶을 살아가는 강인한 캐릭터다. 소설 내용을 가볍게 보자면 일단은 연애소설이다. 한나는 대학교 졸업반이지만 이미 문예잡지에 시(詩)가 추천받아 게재되면서 신인 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주변엔 한나를 좋아해서 따르는 남자 셋이 등장한다. 말이 좋아 따르는 것이지 이들은 사실 한나를 힘으로 제압해서 자기 것으로 만들고 싶어 한다. 가장 어린 강동민은 20대 대학생으로 화가가 되려고 그림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직업은 딱히 없고 순수하지만 앞뒤 안 가리는 저돌적인 성격이다. 그의 삼촌인 강이권 역시 한나를 좋아하는데 나이는 40대이고 관광사업 투자 회사를 운영 중이다. 세상의 가장 큰 가치를 자본에서 찾는 인물이다. 아는 언니로부터 소개받은 김원일이라는 사람은 30대로 서울 모 지역구의 5선 국회의원의 맏아들이다. 독일에서 유학하다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서양식 예의범절을 갖추고 있어서 신사적인 면도 있지만 아버지를 닮아서 기본적으로 정치 쪽 야심이 대단하다. 주인공 한나는 이 세 명의 남자들 사이에서 오도 가도 할 수 없는 먹잇감 신세가 되는가 싶더니만 이내 기지를 발휘해서 빠져나오기를 반복한다. 한나가 원하는 행복은 남자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처음부터 남자에게 기대어 무언가를 이룰 생각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한편 마음 한구석엔 언제나 쓸쓸함이 있다. 어머니인 송 여사는 이런 말을 한다. “행복은 스스로 느끼며 살아가는 것 아니겠어? 그런데 내겐 작은 행복들이 없어. 그저 더듬이를 상실한 곤충 같지.” 이런 말을 남긴 후 갑자기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 어머니를 생각하며 한나는 큰 결심을 세우고 안면도로 떠난다. 거기 작은 중학교에서 교사로 활동하며 한나 주위를 맴도는 남자들이 그려 내지 못한 큰 그림을 시작하려 한다.당시만 하더라도 불모지나 다름없었던 안면도에서 주민들과 함께 서울과는 다른 행복하고 자연친화적인 문화공동체를 구상한 한나는 그 옛날 덴마크를 발전시킨 니콜라이 그룬트비히의 모습을 그려 보는 중이다. 하지만 그런 꿈을 꾸는 것도 잠시뿐 사업가 강이권과 서울에서 온 D재벌이 안면도를 장차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지역 유지들과 물밑 작업을 하고 있는 게 아닌가. 진정한 행복을 찾아, 편안하게(安) 쉴 곳(眠)을 찾아 안면도까지 온 한나는 힘과 자본을 앞세운 이들의 야욕 앞에서 절망하고 만다. 결국 한나는 강이권 몰래 안면도에서 빠져나와 또 다른 곳을 향해 떠난다. 그곳이 어디인지 소설은 알려 주지 않는다. 서울을 떠난 한나는 안면도에서 비로소 ‘우리들의 한나’가 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아니라 이제 어디로든 떠날 수 있고 거기서 자신만의 행복을 찾는 한나는 그 누구의 한나가 아닌 우리들 모두의 한나인 것이다. 어느 곳에서 한나는 어머니가 말했던 잃어버린 삶의 더듬이를 찾을 수 있을까. 한나가 안면도를 떠난 뒷이야기가 무척 궁금하지만 우리는 영원히 한나가 또다시 어디로 향했는지 알 수 없게 됐다. 작가 안옥희는 1993년 10월 위암 투병 중 세상을 떠났다. 연기자로나 문학가로 한창 꽃피울 시기인 서른아홉 어린 나이에 안타깝게 우리 곁을 떠난 것이다. 한나가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 그녀가 어느 곳으로 갔는지 알 수 없지만 분명 그곳에서 한나의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나가고 있을 것이다. 우리들의 한나는 끝내 행복해야 한다. 윤성근 이상한나라의헌책방 대표
  • [논현맘 플러스] 삶·문화·공동체 어우러진 공연으로 ‘예술’의 고정관념 깨다

    [논현맘 플러스] 삶·문화·공동체 어우러진 공연으로 ‘예술’의 고정관념 깨다

    우리나라 서남해안을 따라 강강술래라는 공연예술이 있다면 서울 강남 논현동에는 ‘논타’가 있다. 강강술래가 집 안에만 머물며 밖에 나가기 힘들었던 여인들이 자유롭게 사람들과 어울려 밤새 놀 수 있는 놀이문화라면 논타는 육아에서 학부모, 경력단절의 논현동 엄마들이 ‘삶과 문화, 건강한 공동체’를 지향하는 공연문화이다. 그래서 논타는 ‘나의 인생을 즐기면서 잘 가꾸어 나가는 논현동 엄마들의 힐링 난타 동아리’의 줄임말이다. 논타는 10년 전 타악예술을 들고 주민들 속으로 걸어간 사나이, 멀티퍼커션이라 대북연주가라 부르는 정규하(42세) 리듬앤시어터 대표에서 시작됐다. ‘서울 강남구 강남대로120길 18’이란 주소가 말해 주듯 이곳은 한신포차의 먹자골목길과 맞닿아 있다. 그 곁으로 교육기관인 논현초등학교, 삶의 터전인 주택가가 이어져 있다. 한마디로 ‘문화 불모지’였던 셈이다. 그렇다 보니 당시는 대학로의 소극장 문화를 강남의 논현동에 그대로 옮겨 ‘문화 오아시스’ 역할을 해보자는 취지였다.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100배의 열매를 맺는다’고 했던가. “논현골 동네방네 문화유랑길”이라는 작은 문화축제를 시작으로 그 노력의 결실이 맘마렐라와 ‘논현초등학교 힐링맘 난타’를 탄생시키더니, 지난달 24일 ‘논현1동 어르신 경로잔치’를 거쳐 급기야 지난달 30일 주민 가무악 동아리인 ‘논타’로 발전했다. 이로써 논타는 기능 중심의 예술이 삶의 예술로, 공동체 문화로 확장되는 티핑포인트(Tipping point)가 됐다. 정규하 대표는 이를 “예술을 주민공동체 속으로 이끌어 삶과 문화의 일체화로 발전시킨 것”이라고 자평했다. 정 대표는 “특별한 것을 해야 예술이라는 고정관념을 깬 것”이라며 “예술은 인간 내면의 본질적인 것”이라고 설명했다. ‘두둥. 두둥. 두둥 둥. 둥~’ 대북의 울림소리가 강남의 서울을 넘어 대한민국의 공동체 예술혼을 깨우길 기대해 본다. 편집자 주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멀티퍼커션, 대북연주자로 소개돼 있습니다. -대학에서 클래식 타악과 국악 타악을 전공했습니다. 그 후 다양한 음악적 표현과 퍼포먼스를 결합한 타악적 무대공연을 연출하다 보니 붙은 이름입니다. 특히 제가 국악 타악기와 월드 퍼커션을 응용해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악기를 제작해 전통과 현대를 넘나들며 다양한 퍼커션 연주를 해 온 것도 역할을 한 것 같습니다. 또 멀티퍼커션 연주자로 소개된 것은 2013년 송강 정철 선생님의 관동별곡을 모티브로 한 타악 퍼포먼스 공연에 ‘관동대북’을 도입한 것이 주효했다고 봅니다. →대북과 관동대북은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대북은 이 세상 모든 타악기의 어머니 같은 존재입니다. 태고의 악기이자 인간의 심장 소리와 가장 흡사한 원초적 악기입니다. 대북은 소리 나는 것이 딱 두 개 뿐이 없습니다. 대북은 가죽소리와 테소리죠. 머리가 아니고 가슴으로 쳐야 하는 악기죠. 사실 심장 소리에는 악보가 없죠. 가장 단순하면서 어려운 악기라고 생각됩니다. 관동대북은 소나무와 소가죽으로 만든 한국의 대표적인 타악기인 모듬북 16대 등 총 46개 타악기 세트를 말합니다. 제가 2013년 ‘관동별곡’ 공연을 위해 관동의 절경을 이미지화해 제작했습니다. 관동대북은 한국적 북소리와 쇳소리, 그리고 현대적인 타악기를 이용한 세계 유일의 멀티테스킹 퍼커션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멀티퍼커션 연주자란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대북과 대표께서 직접 제작한 관동대북 이 둘을 모두 연주하는 연주자란 말이군요. -네, 그렇습니다. →서울 강남에 ‘리듬앤시어터 소극장’을 개설해 운영한 지 10주년입니다. 취지와 소감은 어떻습니까. -‘리듬앤시어터’는 극단의 이름이자 소극장의 이름입니다. 타악이란 음악에 연극이란 장르를 합해 새로운 타악 퍼포먼스 장르를 개척해 보자는 취지로 만든 것이 ‘리듬앤시어터’입니다. 10년 전 리듬앤시어터 소극장을 강남의 논현동에 열 때는 ‘강남의 문화 오아시스’를 목표로 개척해 보자는 취지였습니다. 대학로 소극장 문화를 논현동으로 그대로 옮긴다는 것이었죠. 이후 공감하고 공유하는 예술, 지역공동체에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지역공동체라면 무엇을 말하는가요. -지역공동체의 기본 정신 중 대표적인 것이 자발성과 협동성인데요, 논현동 주민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엄마들과의 교류입니다. 2012년 첫 만남이 시작됐는데요, 엄마들이 저희 ‘논현소극장’을 직접 찾아오신 것이죠. 문화적 갈증을 자발적으로 직접 해결해 보자는 발걸음이었던 거죠. 그렇게 한 분 두 분이 모여 3년전 맘마렐라라는 모임으로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논현소극장이 위치한 주변이 워낙 상업지구로 발전한 곳이다 보니 ‘문화, 특히 공연문화’가 전무하다시피 하거든요.→리듬앤시어터가 ‘강남의 문화 오아시스’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거군요. -자발적으로 모였던 논현동 엄마들이 리듬앤시어터오아시스가 아닌 ‘논현동 문화 오아시스샘물’을 스스로 파던 겁니다. 모든 것이 맘마렐라 엄마들의 역할 덕분입니다.→논현동 문화 오아시스이라면 무얼 말씀하시는 건가요. -리듬앤시어터 논현소극장이란 공간적 제약성을 벗어난 것이죠. 맘마렐라라는 소규모 모임에서 더 많은 논현동 엄마들이 주축이 돼서 자발적으로 결성한 문화동아리인‘논타’입니다. 논타가 뭐냐고 엄마들에게 물으니 ‘나의 인생을 즐기면서 잘 가꾸어 나가는 논현동 엄마들의 힐링 난타 동아리’란 뜻을 담았다고 합니다. 육아로 경력단절 된 엄마들이 스스로 나서 자신들의 ‘문화 향유권, 행복추구권’을 만들어 가는 겁니다. 그래서 논타는 북만 두드리는 게 아니고 결혼 전 익혔던 피아노, 비올라, 춤, 노래. 기획 등 다양한 재능을 가진 엄마들이 북소리와 가무악이 하나가 되어 만들어가는 소통의 두드림입니다.→‘논타’가 만들어지는 데는 대표님뿐 아니라 논현초등학교의 역할도 상당했다고 들었습니다. -논현초등학교 역할이 결정적입니다. 나야 예술을 직업으로 하는 사람이니까 해야 할 당연한 뒷받침을 했다고 할 수 있지만 논현초등학교는 다릅니다. 특히, 올해 3월 새로 부임한 이순임 교장선생님과 학부모회의 김유경 회장님, 김정화 부회장님과 윤영주 감사님 등 엄마들이 힘을 합쳐 2017년을 ‘힐링 맘의 해’로 정하고, 강남교육청 사업으로 ‘힐링 맘 난타’란 학부모 동아리 활동을 하게 된 겁니다. 이에 따라 ‘논현초 힐링맘 난타’는 강남교육청의 예산지원을 받아 지난 6월 12일부터 9월 25일까지 운영됐는데, 저는 강사로 참여했습니다. →‘논현초 힐링맘 난타’가 경로잔치에 초대돼 무대공연을 했다지요. -지난달 24일, 논현1동 어르신 경로잔치가 있었습니다. 4개월 10주 동안 동아리 활동으로 익힌 솜씨로 어르신들을 위한 무대공연을 했었죠. 얼마전 타계하신 한국무용의 명인이신 이매방 선생님의 승무북가락을 열심히 익혀서 15명의 학부모가 우리 전통 가락의 멋스러움과 열정을 한껏 발산하셨죠. →동네 주민들, 엄마들과 어울려 문화공연을 하신 분이 거의 없잖아요. 감동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예술을 주민공동체 속으로 이끌었다’는 제 나름의 거창한 느낌입니다. ‘주민문화공연’은 동네 주민이자, 엄마들과 소통한 경험만이 만들어 낼 수 있거든요. 이 경험이 아니면 절대로 못 해요. 동네 엄마들이 동네 어르신들을 위해 무대에 올라 문화공연을 한다는 것은 삶과 문화, 공연이 공동체화된다는 것을 말하잖아요. 그것도 서울 강남의 엄마들이잖아요. 사실 얼마 전까지 제게 문화와 예술은 특별한 존재였습니다. 말하자면 예술인이라는 특별한 존재가 일반인을 상대로 예술성을 불어 넣는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닌 거예요. ‘내면의 본질은 똑같다’는 것을 알게 된 거죠. 그 전에는 제가 갖는 기능적 우월성으로 보지 못했거든요. 하지만 삶을 통해 바라본 예술은 예술가나 일반인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겁니다. 주민들, 엄마들을 만나 작품 활동하는 것이 자연스러워진 거죠. ‘특별한 것을 해야 예술이다’고 하는 고정관념을 무너뜨리고 있는 중입니다. →그렇다면, 영등포공고 난타 동아리 ‘리듬앤스쿨’의 지도 경험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영등포공고의 난타 동아리는 학창시절 은사님인 한국희 선생님의 제안으로 질풍노도의 시기에 방황하는 후배들을 위해 2009년도에 결성됐습니다. 모든 학생이 그런 것은 아니었지만 가정과 학교 상의 문제로 학업을 중단하려는 학생들을 적극 참여시켜, 그들이 북을 치며 스트레스를 풀고 무대에서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으면서 자신감과 존재감을 배워나갔습니다. 두드림이 북에서 자아로 옮겨진 거죠. 불만과 원망이 정화되었습니다. 그 결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 ‘세상에 재밌는 일이 많다는 것’, ‘꿈과 이상이 생겼다는 것’들을 깨닫기 시작한 거죠. 9년 동안의 결과인지 모르겠지만 학교에 계신 많은 선생님과 선후배 공연 예술가들의 도움으로 학생과 교사, 지역주민 그리고 예술가 등 100여명이 함께 만드는 매력적인 공연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매력적인 직업학교라는 교육부의 매직사업에 선정되어 지역문화교류라는 형태로 새로운 형식의 문화 공연을 만들어 가고 있습니다. 12월 21일, 2017년도 공연이 예정돼 있습니다. 서원호 객원기자 guil@seoul.co.kr
  • 광명시 ‘2017 올해의 공감경영 대상’ 수상

    광명시 ‘2017 올해의 공감경영 대상’ 수상

    경기 광명시는 지난 27일 서울 중구 조선호텔에서 열린 ‘2017 올해의 공감경영 대상’ 주민공감 지자체부문에서 광명동굴을 통한 도농 상생협력으로 지역특산물 활성화 지자체 대상을 수상했다고 30일 밝혔다. 이 상은 고객을 진심으로 섬기고 지역사회와 국가 행복에 초석이 되는 진정한 리더상을 널리 알리기 위해 마련됐다. 지역특산물 활성화 지자체 대상에 선정된 양기대 시장은 뚝심의 아이콘으로 불린다. 양 시장은 끈기와 집념으로 40년간 방치됐던 광명동굴을 개발하면서 불모지 광명시를 연 200만명이 찾는 관광지로 변모시켰다. 또 대한민국 대표관광지 100선에 오른 광명동굴을 통해 전국 41개 자치단체와 상생협약을 맺었다. 전국 58개 와이너리에서 생산되는 국산와인 175개 종을 광명동굴 안에서 판매하고 있다. 2015년부터 현재까지 22억원어치 판매됐다. 시는 와인 관련 산업 육성과 국산와인 대중화 및 세계화를 위해 해마다 대한민국 와인 페스티벌을 개최하고 있다. 공존과 상생, 동반성장을 위한 팔도 농?특산물 상생장터를 운영해 지역 생산농가 소득에 도움을 주는 등 지역특산물 활성화에 크게 기여하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번 대상은 한국언론인협회와 서비스마케팅학회가 공동으로 주최했다. 공감경영 CEO와 소비자공감 브랜드, 국민공감 공공기관, 주민공감 지자체 부문으로 구성돼 있다. 양 시장은 “무에서 유를 창조한 광명동굴의 기적에 이어 도농 상생으로 다시 한 번 기적을 만들기 위한 여정을 시작하고 있다”며, “광명동굴이 백년, 천년이 지나도 모든 국민과 전 세계의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관광지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선 기자 mslee@seoul.co.kr
  •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데뷔 40년… 소통하는 무대 기대돼요”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 “데뷔 40년… 소통하는 무대 기대돼요”

    2017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 수놓을 주인공들… 31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올해는 저에게 매우 뜻깊은 해인데 또 이렇게 서울신문 가을밤 콘서트와 함께하게 되어 인연이라고 생각합니다.”김영욱, 정경화를 잇는 대한민국 1세대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62) 한국예술종합학교 음악원 교수에게 올해는 무척 의미 있는 해다. 영 콘서트 아티스트 오디션 1위를 차지해 미국 뉴욕 카프만 홀에서 리사이틀을 열며 국제무대에 데뷔한 지 40년이 됐고, 또 실내악 불모지인 한국에 씨앗으로 뿌렸던 현악 앙상블 ‘조이 오브 스트링스’가 20년을 맞았다. 순회 독주회, 음반 레코딩, 조이 오브 스트링스 갈라콘서트 등 다채로운 프로젝트로 올 한 해를 숨 가쁘게 지내고 있는 그가 짬을 내 오는 31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리는 서울신문 주최 가을밤 콘서트 무대에 오른다. 그는 가을밤 콘서트 같은 공연이 클래식 문턱을 낮추는 기회라고 웃었다. “대중적인 음악회라고 편견은 없어요. 제가 연주하는 음악은 어느 무대에서든 그 자체는 변하지 않아요. 다양하게 관객들과 소통하는 무대를 꾸미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교수 또한 해설이 있는 음악회, 찾아가는 음악회를 꾸준히 기획해 대중과의 거리를 좁히며 클래식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서 왔다. 이번 가을밤 콘서트에서는 멘델스존 바이올린 협주곡을 연주할 예정이다. 가을밤 콘서트와 조화를 이루며 관객에게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는 레퍼토리라는 생각에서다. 1970년대 이 교수는 국제 콩쿠르에서 국가대표와 마찬가지였다. 바이올린 경연 중에서 손꼽히는 시벨리우스 콩쿠르에서 4위로 입상했고, 또 차이콥스키 콩쿠르,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에서 거푸 결선에 오르며 이름을 알렸다. 20, 30대에 종횡무진 국제무대를 누비다가 1994년 개원 초기인 한예종에 합류해 후학 양성에 매진해 온 지도 20년이 훌쩍 넘었다. 이 교수는 요즘 후배들이 국제 콩쿠르에서 좋은 결과를 내고, 유수의 교향악단 단원으로 활약하며 낭보를 전해 올 때마다 남다른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제가 해외에서 활동하던 시절에는 한국인 연주자들이 얼마 되지 않았어요. 고생도 많았고요. 해외에 진출하려는 후배들의 시행착오를 줄여주고 싶다는 생각에 한국에 돌아왔죠. 세계에 자랑할 수 있는 연주자들을 키워내는 데 힘을 보탰다는 게 정말 뿌듯합니다.” 다음달 21일 조이 오브 스트링스 갈라콘서트도 무척 기다려지는 공연이다. 조이 오브 스트링스를 한국의 대표 현악 앙상블로 뿌리내리게 한 전·현 멤버들이 뭉친다. “학생들에게 연주 무대를 만들어 주고 싶어 스승과 제자 음악회처럼 시작한 게 오늘에 이르게 됐네요. 후배들이 음악가로 성장할 수 있는 길을 만들어 가다 보니 누가 그러더라고요, 너는 도대체 정체가 뭐냐. 연주자냐, 교수냐, 매니지먼트냐 하고요. 호호호.” 몇 년 뒤면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게 된다. 정년이 성큼 다가온 것. 이 교수는 더 자유로워질 수 있다며 웃었다. “음악은 정말 끝이 없는 공부라고 생각해요. 오히려 연주에 있어서나 가르침에 있어서나 틀에 얽매이지 않고 더욱더 열린 소통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하고 있지요.”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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