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청 덫에 걸린 여고동창’ 통화로 본 性세태
‘외도’(外道)가 일상의 용어가 된 지 오래다.비윤리·부도덕 등의 가치규정과는 무관한 듯하다.인터넷 공간에선 말할 것도 없다.주로 ‘주부 바람’‘바람’‘유부남’‘간통’‘만남’이란 검색어로 접근된다.불륜을 감정해 준다는 심부름센터 사이트도 버젓이 올라있다.불륜을 통해 일탈을 꿈꾸는 내용의 노래를 담은 음반이나 일기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수집되기도 한다.불륜이 일상의 소재가 된 텔레비전 드라마는 외도를 바라보는 시청자들의 가치 기준마저 혼란스럽게 한다.전화통화로 자신들의 불륜 경험담을 주고받다 이를 도청한 협박범에게 곤욕을 치른 ‘도청 덫에 걸린 유부녀 여고 동창생’사건(서울신문 19일 11면) 광범위하게 퍼져 있는 우리 사회의 ‘외도 세태’의 단면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협박범은 구속됐고 경찰은 이들 동창생의 비밀을 보호해야만 했다.아직까지 남편들에게 알려지지 않았고,인터넷에 뜨는 참담한 결과도 나타나지 않았다.
이에 따라 문제의 주부들은 배우자들로부터 고소를 당해 형사처벌을 받거나 가정파탄이라는 불행은 막을 수 있었다.그러나 경찰 관계자들은 이들과 같은 일탈이 손쉽게 발견될 수 있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각종 성적 일탈과 외도,불륜이 일상화된 사회.특히 평범한 가정을 꾸려가던 중년 주부의 일탈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범행에 이용됐던 주부들의 전화통화 내용을 통해 이들의 일탈 심리의 기저를 들여다 보고,심리 및 상담 전문가 등의 분석과 진단을 들어본다.
●외도경험 없었던 평범한 주부들
39세 동갑내기 여고 동창생 3명은 평범한 가정생활을 해왔고 나름대로 남편과 아이들 뒷바라지를 위해 노력해온 주부들이었다.이들이 외간 남자를 처음 만난 건 2∼3개월 전이었다.
범인을 검거하기 위해 당사자를 직접 신문하고 녹음 테이프를 분석한 경기도 고양경찰서의 S형사는 이들이 이전에는 외도 경험이 없었던 것으로 파악하고 있다.
동창생 중 1명인 A씨.남편과 함께 하던 자영업이 실패한 후 조그만 사무실에 다니는 그녀는 지난해 12월 중순 ‘아는 언니’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받았다.
처음엔 호기심에 만났다.이 언니는 자신의 불륜 경험을 고백하면서 A씨에게 “괜찮은 사람이니 만나 보라.”고 권했다.
협박범이 녹음하고 경찰이 증거물로 확인한 통화 내용을 보면 그녀는 만난 지 한달여 만에 그 남자와 불륜에 익숙해 있었다.
“남편과는 3∼4년전부터 이미 식었어.그 남자와는 새로운 느낌이야.남편보다 새로운 기분이 들고 더 좋아.잘 해주고.만나면 우선 저녁을 먹고 노래방에 가.백세주 한잔하면 기분이 야릇해져.그러면 모텔에 함께 들어가지.그게 코스야.”
지방에 사는 전업주부인 A씨의 친구 B씨.“나는 낮에도 여관에 들어 갔었다.좀 불안했어.관계를 마치고 화장실에서 샤워를 마치고 나오니까 그 남자가 옷을 벗은 채 서 있는 거야.내가 민망해 하니까 ‘남자 벗은 것 처음보냐.’고 당당히 말하던데.과격한 듯 하지만 싫지는 않아.”
역시 지방에 사는 또 다른 여고 동창생 C씨도 전업주부다.그녀도 두 동창생들처럼 뚜렷한 외도 경험이 없었고 역시 돈 때문에 남자를 만난 것도 아니었다.그러나 통화 내용은 예사롭지 않다.
“난 그 남자 처음 만난 그날 모텔에 갔었어.그 남자차를 타고 모텔로 들어갔어.남편보다는 새로운 맛이 나고,더 잘 해주던데.”
담당 형사는 “이들 동창생이 서로 전화를 통해 불륜 행각을 낯뜨거울 만큼 구체적으로 설명하면서 서로 자랑삼아 말하는구나 하는 느낌을 받았다.”고 말했다.
범인은 이들이 전화로 털어놓은 불륜행각을 8개의 테이프에 녹음한 뒤 20여 차례에 걸쳐 폭로하겠다고 협박했다.금품을 요구하는 범인의 협박에 시달리다 못해 그중 한 명이 “더 이상 범인에 끌려나닐 수 없다.”며 경찰에 신고했다.
담당 형사는 이들이 ‘도청의 덫’에서는 빠져 나왔지만 ‘불륜의 덫’에서도 빠져나올 수 있을지에 대해선 확신하지 못하고 있다.
이들은 경찰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면서 남편과 자식에 대해 별다른 죄의식을 토로하지 않았고,출신학교 등 구체적 개인 정보는 진술하지 않도록 해달라고 한사코 부탁해 담당 형사는 ‘○○도에 소재한 여고’로만 진술을 받았다.
A씨 등은 평균 1주일에 한 차례 정도 불륜남을 만났다.이목을 피해 이웃 도시에서 원정 만남을 갖기도 했다.
상대남 3명은 모두 비교적 시간이 많은 개인사업자들이었다.3명 모두 전과가 전혀 없는 평범한 생활인이었다.담당 형사는 “신고를 받은 뒤 범인을 잡는 데 온 힘을 기울였다.힘든 잠복근무 끝에 범인을 검거한 다음에 테이프의 내용을 다시 들어보았다.그러자 이들 세 동창생을 보호해야 하는지 솔직히 회의가 생겼다.”고 토로했다.
협박범이 도청 장치를 설치한 지역은 오피스텔과 사무실,유흥업소 등이 밀집한 곳이었다.하지만 반경 500m 이내를 도청했는데도 세 동창생말고도 불륜을 확인할 만한 통화가 여러건 더 있었다고 진술했다.범인은 나머지 불륜 사례는 통화 내용만으로는 신분이나 연락처를 확인할 수 없어 속칭 ‘작업’(범행) 대상으로 삼지 못했다.
●일탈행동의 심리기제
평범한 주부이던 이들이 짧은 시일안에 외간 남자에게 빠지고,그 결과로 저지른 외도 행각을 비록 흉허물 없는 사이라도 ‘자랑삼듯이’ 노골적으로 털어놓은 심리기제(心理機制)는 무엇이었을까.
많은 사람들은 자기 남편 혹은 아내가 ‘처음이자 마지막인 듯’ 마주보며 의지해 살아간다.하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상상’과 ‘동경’을 갖기도 한다.
불륜이 일상화된 TV 드라마는 이런 상상력을 현실화하고픈 욕구를 더욱 증폭시킬 수 있다.
MBC의 ‘성녀와 마녀’는 한 남자의 아내와 다른 여자간의 줄다리기를 보여준다.SBS의 ‘이브의 화원’은 남편이 결혼전 사귀던 여자가 남편의 아이를 데리고 등장해 결국 이혼하는 스토리다.
종영을 앞둔 KBS 2TV ‘나는 이혼하지 않는다’도 복잡하기는 마찬가지다.
가난이 싫어 옛 애인을 버리고 돈 많은 여성과 결혼한 남자의 옆집에 평범한 남자와 결혼한 옛 애인이 이사오면서 벌어지는 갈등을 중심축으로 다양한 남녀이야기가 등장한다.
정신과 전문의 김정일 박사는 “불륜을 소재로 한 드라마를 자꾸 보다보면 현실감이 떨어져 불륜을 정당화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고 말한다.“영상 이미지(心象)가 현실과 차이가 없는데 대개의 드라마가 불륜을 미화하는 것처럼 시청하는 주부들도 불륜을 미화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여고동창생의 경우 외간 남자와의 만남에 필연적 인과관계는 없었다.일탈을 감행한 심리적 배경엔 ‘상상력의 덫’이 작용했다고 분석했다.
‘아줌마는 나라의 기둥’김용숙 대표는 흔히 ‘놀이방 도우미’ 여성들이 하는 ‘남편들도 밖에서 딴 여자들과 신나게 놀텐데,우리라고 집에만 처박혀있을 필요가 있나요?’라는 말로,최근 문제가 되고있는 여성들의 불륜심리를 꼬집었다.
그는 “남편이 외도하는 기미가 보이면 여자들은 ‘맞바람 피울테니 알아서 해!’라고 협박한다.아내의 맞바람이 무서워 외도를 그만 뒀다는 남편이 거의 없다는 사실이 보여주듯 맞바람은 아무 것도 해결해주지 않는다.괜한 복수심으로 나 자신까지 내팽겨치는 결과로 이어진다.”며 “누구에게나 낯선 설렘이 찾아올 수는 있으나,두려움과 죄책감 수치심으로 성욕에 항복하지 않는다.수치심을 잃어버린 사람이야말로 가장 추한 사람이다.”고 말했다.
‘원초적 본능’이든 ‘중년의 우울(憂鬱)’이든 아니면 ‘홧김에 서방질’이든 우리사회에서 ‘불륜’이 이처럼 이젠 결코 드문 일이 아니라는 사실은 분명하다.‘불륜도 내가 한다면 누구에게나 로맨스’라는 말이 있지만 말이다.
고양 한만교기자 mghan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