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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與圈 몸불리기 가속화/비리정치인 수사 정치권 구조조정 재촉

    9월의 화두는 정치개혁이다. 金大中 대통령이 제2건국을 선언하고 이를 뒷받침하기 위해 올해 말까지 정당,국회,선거제도 개혁을 통한 정치개혁을 완료하겠다는 여권의 프로그램에 그렇게 나와 있다. 여권의 개혁 프로젝트가 성사되기 위해서는 국회의원 머릿수가 많아야 한다. 따라서 이미 국민신당을 흡수한 여권의 몸 불리기가 가속화될 전망이다. 임시국회 후 한나라당 의원 10여명도 이탈이 예견된다. 여야 의석 분포의 구조조정이 시작되는 것이다. 여론조사 결과 국민도 그것을 원한다는 것이 국민회의 주장이다. 국민신당 일부와 무소속 교섭단체 구성을 목표로 탈당을 벼르던 한나라당의원들은 아예 국민회의 혹은 자민련으로 직행하거나 무소속으로 잠시 남았다가 때를 보아 합류하는 안을 놓고 고심할 것으로 보인다. 식물국회를 일깨운 8월의 시민파워가 정치권 개혁을 계속 채찍질할 모양이다. 국민소환제를 추진했던 이들은 정치개혁 진척을 주시하고 있다. 지난 27일 발족한 언론개혁 시민연대의 활동도 초미의 관심사다. 이번 주부터 시작될 청구,기아,비자금 수사는 정치권 구조조정을 촉발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를 정부와 여권은 새로운 시작을 위한 과거 청산의 일환이라고 보는 반면 야당은 여전히 정치 탄압용이라고 보기 때문에 공방이 불꽃을 튈 것이다. 9월9일은 북한정부수립 기념일이다. 이를 즈음,김정일이 국가주석으로 취임할 것이며 유훈 통치를 벗어난 김정일이 우리의 햇볕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도 국내외 관심사다. 그의 선택에 따라 역사 흐름이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이어 오는 25일은 금강산 관광객을 실은 배가 첫 출항을 하는 날이다. 소 떼에 이어 관광객,그리고 이산가족이 차례로 길을 트다보면 마침내 자유왕래의 길이 열릴 것이라는 게 우리 쪽의 기대다. 장마가 걷히자 늦더위 기세가 만만치 않다. 이 늦더위에 과일은 단맛이 든다지 않는가. 우리 정치도 이 9월에 늦더위를 맞이할 모양이다.
  • ‘한국적 가치’對 ‘글로벌 가치’/宋一 한국외국어대 교수(기고)

    지난해 태국의 바트화 폭락을 예광탄으로 아시아 경제가 천국에서 지옥으로 추락한 이후 그 원인을 아시아의 내부 모순에서 찾는 주장과 외부적 충격에서 찾는 주장이 팽팽히 이어지고 있다.결국 ‘부패하고 시대착오적인 아시아적 가치냐’,‘폭력적이고 패권 지향적인 글로벌 가치냐’의 논쟁으로 압축된다. 아시아의 내부적 결함에서 원인을 구하는 주장부터 살펴보면,관주도형 성장모델이 가격 메커니즘을 질식시켰다는 ‘성장모델 무용론’을 비롯해 기술의 첨단화에 따라 노동집약형 압축성장의 토양이 사라졌다는 ‘환경변화설’등 다양하다. 특히 ‘유교자본주의 비판론’은 유교적 공동체 가치관이 경쟁원리를 압살했다고 주장하고 있으며,‘사회제도 결함설’은 비합리적인 사회제도적 관행,특히 정치와 경제 발전간의 괴리가 그 원인이란 설이다.DJ의 ‘민주적 시장경제론’도 이 부류에 접근해 있다. 94년 아시아 성장의 침체를 예언한 폴 크루그만의 ‘생산함수설’은 아시아 성장이 기술 향상을 수반하지 않은 생산요소의 단순 투입증가에 불과하다는분석을 논리로 삼는다.그러나 그는 아시아 경제의 추락은 환란(換亂)에 기인한 것으로 그의 예언과는 무관하다는 것을 시인한 바 있다. ○亞 경제추락 원인 진단 ‘과잉투자설’은 아시아의 수출주도형 산업구조가 과잉투자와 과당경쟁을 유발,유한한 구미(歐美) 시장을 놓고 자멸했다고 주장한다.그밖에 아시아 성장을 견인해온 일본의 침체가 아시아를 침체시킨다는 ‘일본 침체설’,여기에 중국의 고도성장이 아시아 여타 국가의 잠재력을 잠식했다는 ‘중국위협설’ 등이 가세하고 있다. 아시아 경제의 추락이 글로벌 충격 때문이라는 주장으로는 고유의 국내 시스템과 강요된 글로벌 시스템의 갈등 때문이라는 ‘신패권주의설’이 대표적이다.그리고 월가(街)의 작전세력에 의해 아시아의 아킬레스건(腱)인 금융시장이 차례로 공격당하고 있다는 ‘미국음모설’,달러 전횡의 국제금융 체제의 모순에서 원인을 찾는 ‘통화딜레마설’,외환파동→환율폭락→주가폭락→다국적기업 무혈입성의 수순을 밟는다는 ‘신제국주의설’ 등이 이러한 범주에 속한다. ○설익은 한국적가치 비하 이상의 주장들은 아시아 사태를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는 나름대로의 독특한 시각과 논리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개별적으로는 불완전하지만 각종의 설을 종합해 보면 아시아 위기의 총체적 조감이 가능해 보인다.‘나무’와 ‘숲’을 함께 볼 수 있는 IMF 사태의 균형적 해독(解讀)은 오늘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전략적 자리매김의 전제조건이기도 하다. 그러나 최근 한국의 위기대응 방식을 보면 ‘한국적 가치’에 대한 부정 일변도의 회의주의가 지나치게 만연되고 있으며 ‘글로벌 스탠더드’라는 이름 아래 자학적 패배주의가 무책임하게 조장된다. 예컨대,미국의 일개 사설 컨설턴트의 설익은 ‘한국적 가치’의 비하(卑下)나 이들의 어설픈 글로벌 훈수가 마치 절대적 가치인 양 여과 없이 보도되면서 여론이 호도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뼈아픈 반성과 체질 전환을 위한 뼈를 깎는 고통은 IMF를 살아가는 국민 모두의 업보이며 부활을 위한 역사의 십자가인지 모른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게 된 모든 죄를 우리가 덮어쓰는 것은 사초(史草)를 잘못 기록하는 역사적 과오다. 그동안의 한국의 기적은 서구의 계량적 이론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한 불가사의한 한국적 에너지였으며,그것은 우리의 역사책 속에서 한번도 꺼진 적이 없는 성역의 불꽃이다.지금도 우리 경제의 속살 깊은 곳에는 온 몸이 썩어도 죽어서 수없이 새 살을 돋아낼 한 알의 밀알같은 ‘한국적 세포’가 생동하고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
  • 올 여름 휴가는 문학캠프에서/시인학교 등 프로 다채

    휴가철인 여름을 맞아 문단에서 다양한 문학캠프를 열어 독자들을 설레게 하고 있다. ○…시전문 월간지 ‘심상’이 해마다 열고 있는 ‘해변시인학교’가 올해로 20회를 맞는다. 95년부터 충남 태안군 안면도에서 개최해온 해변시인학교의 이번 주제는 ‘사랑으로 불밝힌 시의 축제­시와 문학 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희망’이다. 31일부터 8월3일까지 열린다. 황금찬시인을 비롯,김광림 김남조 유안진 신달자 허영자 등 문인 150여명이 참석하며 시·수필창작,시극 공연,시 낭송,안면도 일대의 문학 유적지 답사와 불꽃놀이 축제 등의 프로그램을 마련한다.가족단위 참가도 가능하다. 3476­5227. ○…민족문학작가회의 전북지회는 8월7일부터 3일간 전북 무주군 안성면 공정수련원에서 제6회 ‘여름 시인학교’를 연다. 주제는 ‘산 아래에서 시를읽다’. 시인 이문재 신현림과 소설가 이병천 등 작가 30여명이 참가하여 창작 강의,백일장,어린이 글쓰기 지도와 함께 ‘노래마을’의 작은 콘서트,계곡 물놀이,노래자랑 등 다채로운 행사로 진행된다.(0652)232­3322. ○…추리작가협회는 8월1일부터 3일간 강원도 홍천군 일대에서 제11회 ‘여름 추리소설학교’를 개최한다. 이상우 김성종 등 대표적 추리작가와 영화감독 정지영,SF해설가 박상준,국립과학수사연구소 최상규박사 등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나와 창작 경험과 추리소설에 관련한 여러가지 도움말을 들려준다. 3142­3221.
  • 반환 1년… 딜레마의 홍콩 경제(해외사설)

    클린턴 미국 대통령과 장쩌민(江澤民) 중국 국가주석이 중국 복귀 1주년을 맞는 홍콩을 잇따라 방문했다.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해 장 주석과 정상회담도 가졌던 터다. ‘1국 2제도와 자치를 유지한다’는 중국의 약속이 지켜질 것인가라는 복귀 전의 불안은 두 정상의 방문을 보아도 당분간은 해소됐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장 주석에게 항의하는 데모도 허가되고 자치를 상징하는 입법의회 첫 회의도 열렸다. 1년전 중국에 복귀하면서 1만7,000발의 불꽃을 쏘아 올리며 찬란하게 축하 행사를 마련했던데 비해 두 정상을 맞는 분위기는 차분했다.표면적인 정치의 안정과는 대조적으로 경제사정은 어려워져 아시아 금융센터로서의 위치는 흔들리고 있다. 주가는 복귀 전의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고 부동산 가격도 폭락했다.실업률은 2.4%에서 4.2%로 크게 악화됐다.주된 원인은 미국 달러화에 연동시킨 특유의 고정환율제를 운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시아 금융위기로 각국의 통화 가치가 하락했기 때문에 홍콩 달러화도 가치가 떨어지면서 미 달러화에 대한 환율은 비싸졌다.통화가치의 하락을 막기 위해 고금리정책을 지속시킬 수밖에 없고 그 결과 비지니스 비용이 크게 오르게 됐다. 그렇다고 고정환율제를 포기한다면 홍콩 달러화 가치의 폭락은 불을 보듯 뻔하다.그리고 세계에서 모여든 자금이 홍콩으로부터 순식간에 빠져 나가 아시아 금융센터로서의 지위를 위협받게 된다. 이런 딜레마속에서 지난 5월에 실시된 중국 복귀 후 첫 입법의회 선거는 예상을 크게 뛰어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으며 선거에서는 ‘민주파’가 대거 당선돼 홍콩 주민들의 불만을 보여 주었다. 그러나 무어라해도 아시아 금융센터인 홍콩의 본격적인 경기회복에는 아시아 경제 회복이 불가결하다.특히 일본 경제의 회복이 절실하다.둥젠화(董建華) 홍콩 행정장관은 클린턴 미국 대통령 환영 만찬회에서 “엔화 환율의 안정과 일본 경제의 회복은 아시아 금융안정 뿐만 아니라 세계경제로서도 중요하다”고 강조했다.딜레마에 빠진 홍콩도 일본의 경기회복을 강하게 희망하고 있는 것이다.
  • 기아自 인수경쟁 어떻게 될까

    ◎현대+대우 연합­포드 ‘불꽃 레이스’/삼성측 포드 등과의 제휴에 총력/국내 3社 빅딜 연계 거래 가능성 기아자동차가 매각 수순에 들어감에 따라 현대 대우 삼성 그리고 미국 포드사 간의 인수경쟁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앞으로 두 달 남짓 펼쳐질 이들의 레이스는 당사자 뿐 아니라 우리 자동차 산업구조에 한 획을 긋는다는 점에서 귀추가 주목된다. 이들 빅4 간의 인수경쟁은 6일 정부와 기아 채권단이 국제 공개경쟁 입찰을 공식화함으로써 새 국면을 맞았다.기존 지분을 앞세워 부채탕감 및 수의 계약을 요구하며 이에 반대해 온 선두 포드를 주춤거리게 만든 것이다.포드를 버겁게 좇아 가던 현대와 대우,삼성으로서는 한숨을 돌리면서 전열을 가다듬을 수 있게 됐다.싸움은 이제부터인 셈이다. 인수경쟁에서 최대 관심사는 현대와 대우의 제휴다.대우자동차 측은 6일 “현대와의 공동응찰을 위해 컨소시엄 구성 조건 등에 협의하겠다”고 현대와의 제휴의사를 분명히 했다.기아자동차를 현대에 양보하는 대신 아시아자동차를 확보,상용차 부문을 강화한다는 구상이다.현대·대우의 컨소시엄이 성사되면 인수경쟁에서 유리한 입지를 확보하게 될 전망이다. 포드는 일단 독자적으로 인수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앞선 자금력과 국제 입찰 경험 등을 볼 때 승산이 충분하다는 계산이다.그러나 내부적으로는 삼성과의 제휴를 다시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인수경쟁에서 가장 다급한 쪽은 후발주자인 삼성.레이스에서 낙오하면 은행의 여신중단으로 문을 닫아야 하는 상황도 각오해야 한다.그렇다고 홀로 기아를 인수하기에는 힘이 달린다.포드나 유럽의 메이커와 제휴하는 데 사활을 걸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기아 레이스에서 눈여겨 볼 대목은 현대 대우 삼성이 기아 입찰과 빅딜(사업 맞교환)을 한데 묶어 거래할 가능성이다.즉,삼성이 자동차에서 완전히 손을 떼는 대신 현대나 대우로부터 다른 사업부문을 넘겨받는 구도다.이런 구도를 종합할 때 기아 레이스는 현대·대우의 연합세력과 포드의 2파전 속에 삼성이 캐스팅보트를 쥔 상황으로 보인다. ◎왜 국제입찰하나/공정­투명성 확보·외자유치로 경제 정상화 겨냥 채권금융기관을 대표해서 기아자동차 처리작업을 주도하고 있는 산업은행이 기아자동차를 국제경쟁 입찰로 처리하기로 한 이유는 기아자동차 처리를 공정하고 투명하게 매듭짓기 위한 의지가 담겨있다.외자유치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조기 정상화시키려는 목적도 겨냥하고 있다. 산업은행은 당초 대출금의 출자전환 이후 매각하는 방안,국민주화하는 방안,출자전환 없이 바로 국제입찰에 부치는 방안 등을 검토했었다. 그러나 출자전환후 제3자 매각을 할 경우 시간이 많이 걸리며 정부가 매각 작업에 개입한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다.국민주화하는 것도 기아자동차를 조속히 정상화시키는데 무리라는 판단을 했다. 국·내외 업체에 입찰 참여 자격 제한을 두지 않음으로써 만약 국·내외 업체가 컨소시엄을 만들어 기아를 인수할 경우 적지 않은 외자유입 효과가 기대된다. ◎유찰되면 어떻게/1차서 낙찰 안되면 재입찰외 다른 방안 없어 기아자동차 국제입찰이유찰되면 어떻게 되나.산업은행은 1차 입찰에서 낙찰자가 나올 것으로 확신하는 분위기다.포드와 삼성 등 기아자동차를 탐내는 업체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장담할 수 만은 없다.기아자동차의 부채는 지급보증을 포함해 9조6,000억원 대로 자산보다 1조원 가량 많다.영업권을 인정하지 않고 순전히 자산·부채로만 따지면 값어치가 없다는 계산이 가능하다.포드 이외 외국업체들은 기아자동차 처리 방침 발표에 냉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빚 탕감 규모나 부채상환 조건 등이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자동 유찰될 수도 있다.산은 관계자는 “처분하는 입장에서 유찰을 생각할 수 있느냐”면서도 “유찰될 경우 재입찰을 실시하는 길 외에 다른 방안이 없지 않느냐”고 반문했다.한보철강은 입찰을 서너 차례 실시했으나 지금껏 처분하지 못하고 있다.
  • 햇볕정책 확고한 의지를/朴元淳 변호사·참여연대 사무처장(기고)

    “숨기었던 색시가/너울에서 나오매/거룩하신 화관이/절로 와서 얹쳤네/구원의 빛 넘치는/임의 눈을 보아라/해가 아니 뜬대도/어둠 다시 없겠네/”(최남선의 ‘금강예찬’ 중에서) “만이천봉!무사하냐 금강산아/너는 너의 님이 어데서 무엇을 하는지 아느냐/너의 님은 너 때문에 가슴에서 타오르는 불꽃에 온갖 종교,철학,명예,재산 그 외에도 있으면 있는대로 태워버리는 줄을 너는 모르리라.” (한용운의 ‘금강산’ 중에서) ○금강산구경 꿈 부풀어 금강산을 예찬한 글을 모두 모으면 좀 과장해서 작은 도서관을 하나 차릴 일이다.그러나 최남선은 ‘금강예찬’권두에서 “금강산은 보고 느끼기나 할 것이요.형언(形言)하거나 본떠 낼 것은 아니다”라고 하여 장래의 금강산 기행문을 후학이 더 이상 쓰지 못하도록 못을 박았다.그러면서 자신은 기행문을 남겼으니 그 일갈에도 불구하고 누군들 다시 금강산 기행문을 못쓰리. 분단 50년이 넘어 이제 금강산기행문을 중·고생도 수학여행 끝에 쓸 수 있게 될 모양이다.최근 북한을 방문한 현대그룹 정주영 명예회장은 올가을까지는 유람선을 타고 가는 금강산 구경길이 뚫린다는 선물을 안고 돌아왔다.과거 정상회담을 앞두고 김일성의 사망으로 모든 것이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으니 가을이 되어보아야 할 일이로되 이보다 더 구체적인 합의에 이른 적은 없으니 기대해도 좋을 일이다. 동해안에 나타난 잠수정이 금강산으로 향하는 유람선의 복병으로 등장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있다.이미 반공단체나 일부 언론은 북한에 대한 적대적인 분위기를 확산하는 기회로 삼고 있다.잠수정의 출현은 분명 북한의 침략성을 과시하는 분명한 근거다.그것만으로도 남북관계는 원점으로 돌아갈 충분한 사건이 된다.그러나 정부는 군사적인 엄정대응과 동시에 종래 내세운 ‘햇볕정책’은 수정하지 않겠다는 확고하고도 신중한 의지를 보여주엇다.조문논쟁으로 金泳三정부하의 남북관계는 완전히 얼어붙었던 경험에 비추어보면 이 정부의 실리주의 정책은 과거와 분명 달라진 것이다. ○남북관계 질그릇같아 남북관계에는 마치 깨지기 쉬운 질그릇을 다루는 세심한 주의가 필요하다. 될듯하다가 말고 깨졌다가 다시 시작하는 남북관계로 실향민들의 가슴은 이미 숯덩이가 되었다.생사를 달리하는 이산가족들이 하루하루 늘어가는 마당에 남북교류의 지연은 반인도적 범죄에 다름아니다.지금껏 조그마한 사건으로 서로 토라져 얼굴도 맞대지 않으려던 소아병적인 자세는 버려야 한다.강력한 국방력의 존재와 온유한 얼굴의 남북관계는 결코 두 얼굴이 될 수 없다. 오히려 북한의 호전성과 적대감을 줄이기 위해서도 북한에게 신뢰와 이익을 주어야 한다. 서독은 동베를린에 이르는 도로의 수선비용으로 실제 그 용도에 쓰여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면서도 막대한 돈을 지출하였다고 한다. 그렇게 쌓여진 신뢰로 서독은 동독을 마침내 통채로 삼켰다.작은 이익을 주고 큰 이익을 챙기는 것은 큰 장사를 하는 기분이다.이제 우리도 올 가을에는 금강산 구경이나 떠나볼꺼나.
  • ‘한지붕 두가족’ 불협화음/홍콩 반환 1년

    ‘동방의 진주’ 홍콩이 7월1일로 중국에 반환된 지 꼭 한돌이다. 길지 않은 기간이지만 ‘홍콩 차이나의 1년’은 세계인들의 궁금증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비록 법적으로는 ‘1국가 2체제’로 자유분방한 영국식 정치환경이 보장됐지만,역사적 주권 귀속이 주민들에겐 무겁게 다가왔을 것이다. 아직 ‘생부모’(중국)보다는 150년을 함께 생활해온 ‘양부모’(영국)쪽에 더 마음이 쏠린 그들이었다. 더욱이 때마침 밀어닥친 아시아권 경제위기에서 홍콩도 예외가 아니다.변혁의 물결로 소용돌이치는 홍콩의 오늘을 진단해 본다. ◎급속 中國化 부작용… 국제 비즈니스센터 위상 흔들/개혁세력 선거 승리… 시민 상당수 “英領시절 그립다” 홍콩이 50년 시한부인 특별행정구라는 지위로 중국에 귀속된 지 어언 1년. 사회주의 체제하의 12억 본토인과 시장경제하의 650여만 홍콩인들이 ‘한지붕 두가족’처럼 딴 살림을 꾸려가고 있다. ‘1국 2체제’구도는 겉보기엔 순조롭게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질적인 체제의 접목 과정에서 내부적으로 큰 몸살을 앓고 있다. 변화의 방향은‘탈(脫)영국 중국화’로 요약된다. 홍콩은 더 이상 동서양가치가 조화롭게 공존하던,과거의 ‘동양의 진주’가 아니다. 올들어 홍콩거주 영국인들의 ‘엑소더스’도 가속되고 있다. 반환 이전 3만1,400여명을 헤아리던 영국인들이 현재 2만7,000여명으로 줄었다. 중국 정부의 음양의 간섭으로 서구식 자유주의도 눈에 띄게 위축되고 있다. 문제는 급속한 ‘중국화’과정에서 장점보다는 부작용이 두드러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영국 통치의 강점이었던 ‘법의 지배’가 약화되는 대신 인치와 연고주의가 고개를 들고 있다. 영국령일 때보다 한층 무질서해진 교통질서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중국어 전용이나 서구적 질서의 실종은 그렇찮아도 위기국면인 홍콩경제의 주름을 깊게 하고 있다. 금융·무역 등 국제 비즈니스센터로서의 홍콩의 위상을 약화시키고 있는 까닭이다. 다수 홍콩인들의 불안감도 증폭되고 있다.최근 홍콩대 사회과학원의 여론조사가 이를 입증한다. 주민 대다수가 영국 통치를 그리워하는 역설적인결과가 나온 탓이다. 이는 지난해 9월 주권반환 100일에 즈음한 홍콩정부의 여론조사 결과와는 극히 대조적이다. 당시엔 주민의 80%가 “‘홍콩 차이나‘가 더 안정되면서 번영할 것”으로 내다봤다. 요컨대 홍콩과 중국이 협연하고 하고 있는 ‘1국 2체제’교향악은 아직 미완성 상태로 불협화음을 빚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 귀속후 처음 실시됐던 지난달 입법회(의회)선거에서도 이 여론이 반영됐다. ‘홍콩발전민주연맹’ 등 친중국계는 불공정 시비 속에 간선제로 뽑는 의석을 독식,억지로 다수파가 됐다. 하지만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직선제인 지역구 20석중 15석을 석권,사실상 승리를 거뒀다. 이 결과는 중국 귀속 이후 상황에 대한 홍콩인들의 강력한 불만표출로 받아 들여진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기묘한 동거체제가 벌써 삐걱거리고 있는 징후인 것이다. ◎홍콩은… 홍콩은 홍콩섬과 대륙의 구룡반도,그리고 부근의 240개의 조그마한 섬들로 되어 있다. 모두 합해 면적은 1,067㎢. 제주도가 1,845㎢이니 제주도의절반보다 조금 큰 편이다. 주변 경관이 아름답고 동서양간 경제교류의 징검다리로 보물과 같은 존재라 해서 흔히 ‘동방의 진주’로 불린다. 그러나 157년전만 하더라도 홍콩섬은 불모의 땅이었다. 고작 해적의 소굴에서 ‘동방의 진주’로 변신한 것은 영국의 식민지가 되면서부터. 1841년 아편전쟁의 와중에 홍콩섬에 영국군이 처음 진주했고 이듬해에 아편전쟁이 끝나면서 영국에 할양된다. 18년후 2차 아편전쟁이 4년만에 매듭지어지며 구룡반도와 스톤 캐터스섬이 영국 영토가 된다. 그리고 1898년의 의화단 사건을 수습하면서 영국은 란타나오섬을 비롯한 200여개의 섬들을 또 넘겨받는 대신 할양기간을 99년으로 조정하는 조약을 맺었다. 60년대에서 80년대를 거치며 홍콩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경제의 중심이 되면서 영국이나 중국에 ‘효자’노릇을 톡톡히 한다. 실제로 중국정부는 홍콩을 영국에 할양하게 했던 조약들이 평등하지 않다면서도 공식적으로 반환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그러다 79년 반환협상을 시작했고 84년 협상에서 역사적인 ‘97년 홍콩반환에 관한 공동성명’에 조인하면서 97년 7월1일 157년만에 본래의 중국 땅이 되었다. 그리고 1년이 흘렀다. ◎누가 이끄나/董建華·陳方安生 1국2체제 실험 주도/李柱銘 민주당수 “개혁세력의 희망봉”/통화전문가 任志剛 경제 조타수 역할 ▲둥젠화(董建華·61) 행정장관=홍콩이 중국에 반환될 때부터 가장 많은 스폿라이트를 받았던 인물. 지난 1년동안 톈안먼(天安門) 사태 추도행사를 보장하고 입법회의 선거를 실시하는 등 유화 정책을 많이 썼다. 홍콩의 초대 행정장관으로서 앞으로 4년간 ‘1국 2체제’실험을 주도해나갈 인물이다. ▲천팡안성(陳方安生·58) 행정총리=둥젠화 행정장관 아래 홍콩의 관료들을 이끄는 제2인자. ‘홍콩의 대처’로 불린다. 영국 통치시절 홍콩 번영의 반석이라 할 깨끗한 행정관료 조직을 중국 귀속 이후에도 별 흔들림없이 잘 지켜내고 있다는 평이다. ▲스투화(司徒華) 지련회 주석=홍콩 민주 운동 단체의 대부격인 ‘애국민주운동을 지원하는 홍콩시민들의 연합회’(약칭 지련회)주석. 톈안먼 사태 기념 촛불시위 등을 주도. 중국의 인권탄압상을 국내외에 알리며 홍콩시민의 민주화 교사역을 하고 있다. ▲리주밍(李柱銘·60) 민주당 당수=5월24일 홍콩이 중국이 반환된 후 처음 치러진 입법회 선거에서 화려하게 재기했다. 귀속 전 최대 정당인 민주당의 수장. 이번 입법회 선거에서 민주당 등 개혁세력이 지역구를 휩쓰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민주주의 수호자’인 미국의 클린턴 대통령은 중국을 방문하는 길에 당연히 자신을 만나야 한다고 주장해 미국측을 난감하게 만들기도 했다. ▲조셉 얌(任志剛·50) 홍콩 재정사 금융관리국 총재=아시아 경제위기를 통해 급부상한 통화정책 전문가. 지난해 10월 미국 달러에 대한 홍콩달러 가치 하락 압력이 거세자 하룻밤 사이에 홍콩 이자율 280% 인상을 단행,환율을 성공적으로 방어한 주역이다. 홍콩 경제 순항의 열쇠를 쥔 인물이다. ◎달라진 것들/北京語 배우기 열풍… 모르면 2류시민/“아편전쟁은 침략전쟁” 中 역사관 주입/영국紋章 사라지고 紫荊化도안 사용 홍콩 특별행정구의 거리에선 이제 그 흔하던 대영제국(大英帝國)의 왕관 로고를 찾아볼 수 없다. 엘리자베스 여왕 동상은 물론 우표에 찍힌 여왕 흉상도 사라져 버렸다. 대신 특별행정구를 상징하는 박태기나무꽃(紫荊花 자형화)도안이 행정특구 깃발에서부터 경찰제복에 이르기까지 뒤덮고 있다. 지난해만해도 어색하던 지하철과 공공장소에서의 보통화(普通話 베이징 표준어)의 사용도 자연스런 일이 됐다. 영국 통치 시대 홍콩에선 영어와 광둥어(廣東語)만을 사용해 보통어는 소통이 불가능한 외국어에 불과했다. 초등학교 등 각급 학교에선 보통화 교육이 필수가 됐다. 아직 완벽하지 못한 보통화를 배우려는 공무원과 직장인들로 학원은 계속 호황이다. 영국 치하에서 영어에 능숙하지 못하면 2류 시민이 됐던 것처럼 이제 매끄러운 보통화 실력없이는 설땅이 좁아지고 있다. 각급 학교의 교과서가 개정된 것은 물론이다. 중화민국은 타이완(臺灣)으로 격하됐고,역사는 영국의 식민지배적 관점에서 중국의 역사관으로 대체됐다. 예전 영국령 홍콩 시절 교과서에서는 아편전쟁이 자유무역을 지키기 위해 불가피하게 일어났다고 기록했지만 이제는 본래 모습대로 침략전쟁으로 제자리를 찾았다. 공휴일도 달라졌다. 6월 두번째 토요일부터 시작되던 ‘여왕 탄신 기념일’연휴는 지난해로 홍콩에서 영원히 사라졌다. 대신 10월1일부터 3∼4일간 이어지는 중화인민공화국 국가수립일이 홍콩섬과 구룡반도를 뒤덮는 불꽃놀이 속에 가장 성대한 축제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7월1일 이전까지 법원의 최종 판결은 영국의 추밀원에서 결정했으나 이제는 홍콩에도 최종심 법원이 설치돼 자체적으로 처리하고 있다. 거리의 외환 환전창구에선 인민폐(중국돈)를 바꿔주고 있고 인민폐를 홍콩돈처럼 받는 상점도 늘고 있다. 물론 ‘베이징 바람’이 점점 거세질 수록 ‘홍콩 차이니즈’들의 정치적 참여와 비판의식도 높아지고 있다. 그러나 홍콩의 중국화는 어쩔수 없는 대세로 굳어지고 있다. ◎경제/불황 주름살/1분기 마이너스성장 실업률 15년래 최악 중국 반환 1주년을 맞는 홍콩이 요즘 우울하다. 홍콩의 버팀목은 단연 경제. 꼭 영국과 결별해서 그런 것은 아니지만 때마침 닥친 아시아 경제위기에 휩쓸리며 어려움을 격고 있다. 90년대 들어 5%대의 경제 성장율을 유지해 왔으나 올들어 1·4분기에는 -2%를 기록했다. 경제가 침체되다 보니 실업률도 최악의 상황이다. 1.4분기 실업률은 4.1%. 최근 15년이래 가장 높은 것이다. 96년의 실업률은 2.8%,지난해 2.5%였다. 지난해 중국 귀속을 앞두고 불안심리가 팽배하면서 오르기만 했던 부동산 가격과 주식의 폭락은 사뭇 심각하다. 주가는 1년 전보다 절반 아래로 떨어졌고 부동산도 40∼50% 수준에 머물고 있다. 홍콩 경제가 자랑하는 고정 환율제마저 흔들리고 있다. 홍콩 달러가 실제가치보다 높게 평가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탄력을 잃고 1년 내내 붐비던 관광객마저 발길이 뜸해졌다.중국에 편입되면서 11%나 줄었던 관광객이 올들어 24%나 더 감소했다. 재무장관격인 도널드 창(曾蔭權) 재정사(財政司)는 지난 17일 올 경제성장률 3.5%의 달성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앞으로 몇년간경제 전망도 어둡다고 털어 놨다. 버팀목인 경제가 허약해지자 홍콩 사회가 흔들린다. 실제로 최근 홍콩대학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콩장래에 대한 불신도(不信度)도 지난해 9%에서 25%로 늘어났고 신뢰지수는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동북아와 동남아의 요충지에 위치한 지리적 이점,세계최고의 컨테이너 수송능력과 첵납콕 신공항 등으로 요약되는 아시아 금융·무역의 중심지 홍콩. 그러나 싱가포르와 상하이(上海)가 홍콩의 자리를 맹렬히 추격하는 상황에서 ‘동방의 진주’가 얼마나 더 ‘제 색깔’을 유지할지, 의구심이 커가고 있다.
  • 中 민주화 바람 다시 불까/美­中정상 ‘인권설전’ 이후

    ◎클린턴­江澤民 공동회견 ‘천안문’ 불꽃 공방/반체제 인사들 잇단 야당 창당신청서 제출/클린턴 충원먼교회 예배때 종교자유 역설 중국 대륙에 민주화의 싹이 또다시 움트고 있다. 공산당과 노선을 달리하는 새로운 정당의 설립신고서가 제출되는가 하면 종교의 자유를 요구하는 목소리들이 높아지고 있다. 클린턴 미 대통령의 방중과 중국 인권상황에 대한 공개비판이 그간 위축됐던 민주화운동에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것이다. 정상회담을 마치고 가진 27일의 공동 기자회견에서 중국의 인권 상황을 놓고 장쩌민(江澤民) 국가 주석과 벌인 불꽃튀는 인권 공방전도 큰 힘이 됐다. 왕밍샹 등 중국의 반체제인사들은 기자회견이 있던 날 민정부(民政部) 등 관계당국에 ‘중국 민주정의당’ 창당신청서를 제출했다. 25일에는 왕유카이 등 반체제인사들도 ‘중국민주당’ 창당 신청서를 정부에 냈다. 모두 미국의 지원과 클린턴의 방중에 쏠려있는 세계의 눈을 염두에 둔 것이다. 베이징(北京)에서 클린턴의 종교활동 또한 적잖은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클린턴은28일 베이징 충원먼교회의 예배에 참석해 종교 자유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충원먼교회는 중국최대의 개신교 교회다. 때맞춰 교황청은 중국의 가톨릭 신자를 위해 중국 당국이 종교의 자유를 확대해 줄 것을 촉구했다. 중국내 인권과 자유에 대한 클린턴과 장쩌민의 기자회견장에서의 뜨거운 설전을 중국의 민주화 세력을 고무시키는 지지행동의 신호가 되고 있다. 클린턴은 “9년전 중국인들은 자유를 위해 외쳤다. 무력사용과 인명의 비극적 손실은 잘못된 것”이라며 먼저 텐안먼 민주화운동의 무력진압을 비판했다. 장 주석은 “단호한 조치가 없었다면 현재의 안정은 누리지 못할 것”이라고 응수했다. 클린턴은 지지않고 “지나치게 인권을 제한한다면 중국의 실수가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중국내 반체제인사의 투옥 지적에 대해 장주석은 법에 의한 처벌을 강조했으며 “중국은 외국에 내정간섭을 하지 않으며 어떤 나라도 인권이 완전한 국가는 없다”고 강조했다. 10분이 넘게 진행된 두 정상간의 ‘인권 설전’은 장 주석이 ‘시간이 많이 지났다’고 화제를 바꾸며 간신히 수습됐지만 일부 채널이나마 생중계된 두 정상의 논쟁은 중국인들에게 민주화의 염원을 일깨웠다.
  • 정부수립 50주년 기념사업 아이디어 백출

    ◎총리실 “성에 안차” 특별팀 가동/국위선양 1만8,250명 이름새긴 조형물 제안/1,000만명이 1,000원씩 100억원 모금 기념탑도 국무총리실 직원들이 불꽃튀는 ‘아이디어 짜내기’ 경쟁에 돌입했다.정부 수립 50주년 기념사업 아이디어를 내라는 金鍾泌 국무총리 서리의 특별 지시에 따른 것이다.행자부가 지난 24일 발표한 ‘전국 순회 태극기 이어 달리기’ 등 50가지 행사계획이 미흡하다는 金총리서리의 의중을 엿보게 한다. 총리실은 이에 따라 이번주 ‘아이디어 개발 태스크 포스’를 발족할 계획이다. 金총리서리의 주문은 프랑스의 에펠탑이나 미국의 자유여신상처럼 후손에 길이 남겨줄 기념비적인 상징조형물을 만들라는 것이다. 金총리서리는 지난주 초 청와대 주례보고를 마치고 돌아와 ““행정자치부가 낸 기념사업 계획을 갖고는 안된다”고 지적했다.金大中 대통령과 金총리 서리가 ‘행정자치부의 계획안이 탐탁치 않다’는 데 의견을 같이 했음을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金총리서리는 “지난 반세기를 정리하고 앞으로 다가올 반세기를 여는 비전을 제시하는 이벤트나 조형물 아이디어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金泳三 전 대통령 시절의 임시정부 요인 유해봉환에 버금가는 아이디어를 생각해 보라는 지시이다.지역 세대 계층을 통합해 한 덩어리를 만들 수 있도록 하라는 주문도 곁들였다. 총리실 직원 250여명은 지난주 각각 1건씩 아이디어를 제출했었다.이 아이디어 중 우수작은 이번주중 상을 주고 인사고과에 반영할 방침이다. 당시에도 경쟁은 치열했다.국장이 부하 직원에게 자신의 아이디어도 대리 작성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거절당한 일도 있다.상사의 부탁을 거절하기 어려운 공직사회에서 드문 일이다. 직원들이 머리를 싸매고 고민한 아이디어 가운데는 1,000만명이 1,000원씩 내는 모금운동으로 100억원 기념탑을 만들자는 아이디어도 있었다.완공은 2000년 1월1일이나 그 해 8월15일에 하자는 것이다. 1만8,250명의 국위선양 인물의 이름을 새긴 기념탑을 만들자는 의견도 나왔다.1년 365일동안 매일 국위 선양 인물을 50년동안 배출했다는 계산에 따른 것이다. 총리실은 이미 제출된 아이디어와 새로 출범하는 태스크포스가 내놓는 것을 종합,눈에 번쩍 뜨이는 사업계획을 수립할 계획이다.
  • 교사이지메/李世基 논설위원(外言內言)

    부(富)를 축적하기까지 주변의 증오와 비난을 면치못했던 강철왕 카네기는 저서 ‘사업의 왕국’에서 사람의 비난을 위험한 불꽃에 비유하고 있다. ‘비난의 불꽃이 자존심의 화약고를 건드리면 결국 폭발하여 사람의 목숨마저 빼앗는다’고 했다. 시경(詩經)에도 이와 비슷한 ‘천인소지무병이사(千人所指無病而死)’란 말이 나온다. ‘천사람의 손가락질을 받으면 병이 없어도 죽게된다’는 뜻이다. 근거없는 비난이 마음의 병이 되면 남몰래 앓다가 죽어버릴 수도 있다. 일본사회의 병폐인 ‘이지메’란 것도 그렇다. 매년 수십명씩의 청소년들을 자살로 내몰고있는 이지메현상은 힘센 아이가 약한 아이를 괴롭히는 단계를 넘어 중년의 직장인들에게까지 오염된지 오래다. 지난 96년 산업효율을 위한 감원열풍에 휩쓸리면서 각기업이 감봉 전직 업무박탈로 자진퇴직을 유도하는 직장이지메가 성행하자 일본 노동조합은 이지메와의 전쟁을 선포하기도 했다. 이유없이 상대방을 따돌려 코너로 몰아붙이는 이지메란 인간으로선 가장 참기 힘든 잔혹한 형벌이다. 이로인해 목숨을 끊는 인구가 늘어나자 이지메는 곧잘 ‘살인’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교사들이 ‘교사 이지메’를 자행하다 해직된 사실이 드러나 충격을 주고있다. 경남 합천의 두 여중교사가 수업시간에 학생들을 상대로 자신과 사이가 좋지않은 다른 여교사를 비방했다는 것이다. 단순히 비방할뿐만 아니라 여기저기 낙서를 해놓고 비방내용도 남자교사와의 ‘불륜관계’등 입에 담지못할 욕설을 남발한 모양이다. 아무리 사도(師道)가 땅에 떨어졌다고는 하지만 이런 역겨운 행태는 감히 ‘교사’의 자격조차 운위할 필요가 없게 한다. 교사란 심오한 학문과 인격과 모든 행동거지가 학생들에게 모범이 되는 존재다. 시정 잡인만도 못한 수준에서 교사를 자청한 것도 안쓰럽지만 그런 교사들에게 아이들을 맡긴 부모로서는 모골이 송연해지지 않을수 없을 것이다. 결국 청소년 세계에서 나타나는 이지메란 추악한 어른사회의 실태를 반영한 것이라는 반성이 앞선다. ‘본받을 만한 좋은 선생님을 만나 좋은 환경에서 공부하고 싶다’는 학생들의 독백에서 어른으로서의 자괴(自愧)를 금할수 없다.
  • 白凡 재조명:2­1(정직한 역사 되찾기)

    ◎생애 재평가/利害­이념 초월… 독립­통일 헌신/애국단 의거·광복군 참전 지휘/상황논리 정치이익과 타협 배격/‘한국의 간디’ 역사성 부여해야 역사는 정직해야 한다.그러나 세계사는 일그러진 역사로 얼룩져 있다.세계사의 많은 갈등과 분쟁은 굴절된 역사의 산물이다.한국의 현대사에도 일그러진 역사가 있다.그중의 하나가 백범 金九 선생에 대한 잘못된 평가다. 백범의 독립운동은 과격한 테러에 의존했고 현실인식도 부족했다는 일부 지적이 있었다.그의 실패한 남북협상은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를 나타낸 것이라는 평가도 있었다.그러한 평가는 그러나 친일세력들의 식민사관과 백범을 죽인 권력집단의 인위적인 ‘평가절하 시나리오’의 한 부분일 뿐이다. 테러리즘 비난은 주로 ‘한인애국단’ 활동 때문이었다.백범은 애국단을 창설하고 애국단의 李奉昌 의사와 尹奉吉 의사의 의거를 지휘했다.그러나 애국단 활동을 테러리즘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일제 강점을 합법적 지배구조로 보는 민족 반역적인 친일 세력들의 식민사관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대학의 愼鏞廈 교수는 “애국단 활동은 침체된 독립운동을 부활시킨 독립운동사의 중요한 부분”이라고 강조한다.애국단 활동에 고무된 국내외 동포들은 임시정부의 중요성과 독립운동의 성과를 재인식하고 재정지원 등을 재개했다.그 결과 집세도 제대로 못내던 초라한 임시정부의 활동이 활성화됐다.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신뢰와 협조를 다시 얻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이 활성화된 결정적 계기가 됐다.1930년대 들어 중국에서의 독립운동은 꺼져 가는 불꽃과 같았다.일제가 조작한 1931년 7월의 ‘만보산사건(萬寶山事件)’으로 한국인에 대한 중국사람들의 증오와 적대행위가 만연되며 독립운동은 거의 불가능했다. 그러나 尹奉吉 의사의 의거는 일본침략군에게 상하이(上海)를 점령당한 중국인들의 울분과 한을 풀어준 통쾌한 일이었다.중국 중앙군 사령관 장제스(蔣介石)는 “중국군 30만명이 해내지 못한 일을 한국청년이 해냈다”고 극찬했다.그후 중국은 임시정부의 독립운동에 협조적이었다.애국단의 의거는 특히 국제도시 상하이·도쿄 등에서 일어났기때문에 한국민족의 독립운동을 전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역할도 했다. 백범은 국제사회의 냉엄함도 잘 알고 있었다.망명중 제국주의 열강이 중국을 어떻게 수탈하는 지를 체험을 통해 알았다.자주적 독립의 중요성을 절감했다.일본에 선전포고를 하고 광복군의 참전을 서두른 것도 자주적 독립을 위한 전략이었다. 그러나 역사는 보다 빨리 바뀌었다.광복군이 참전하기 전에 일본이 항복한 것이다.그는 백범일지에서 “일본의 항복은 내게 기쁜 소식이라기보다는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일이었다.수년간 애써 참전 준비를 한 것도 다 허사다.걱정되는 것은 우리가 이번 전쟁에서 한 일이 없기 때문에 장래 국제간에 발언권이 박약하리라는 점이다”라며 아쉬워했다.프랑스의 드골 장군이 전후 프랑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해 연합군에 앞서 파리 입성을 고집했듯이 백범도 국제정세의 흐름을 정확히 읽고 있었다.그는 일본과의 전쟁에 주도적으로 참여해야 자주독립이 보장될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백범은 귀국후 독립운동의 연장선상에서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통일한국만이 진정한 민족의 광복이라고 강조했다.일부는 백범의 이러한 통일노력을 공산주의 본질을 잘 몰랐던 현실 정치가로서의 한계라고 매도했다.그러나 그는 독립운동과정에서 이념적 갈등을 경험하면서 공산주의의 실체를 잘 알고 있었다.특히 중국에서 국공(國共)분열이 얼마나 참담한 비극이었는 지를 직접 눈으로 보았다.결국 분단국가가 성립되면 같은 민족간의 갈등과 전쟁을 피할 수 없다고 판단,통일한국의 건설을 위해 남북협상을 강행했다. 그는 정치적 이익과 이념을 초월하여 독립과 통일을 위해 일생을 받쳤다.그의 위대함은 상황이 불리한 줄 알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타협하지 않고 민족의 미래를 생각한 점이다. 그의 일생은 애국의 역사였다.그러나 현실정치는 그에게 참된 역사성을 부여하지 않았다.그러한 오류는 고쳐져야 한다.백범은 현대사의 가장 위대한 지도자로 재평가되야 한다.그는 ‘한국의 간디’라 할 수 있다.백범에 대한 올바른 평가는 정직한 역사를 되찾는 일이다.정직한 역사는 민족의 밝은 미래를 보장한다.◎암살의 진상/이승만 정권­軍部 합작품 1949년 6월26일.그날은 비극의 일요일이었다.민족의 위대한 지도자 金九 선생이 암살된 것이다.분노와 애도의 물결 속에 온 겨레는 슬픔에 잠겼다. 백범은 7월5일 온 국민의 애도 속에 효창공원에 안장됐다.그의 죽음에 대한 진상도 함께 묻혀 버렸다.자신의 집무실 경교장(京橋莊)에서 당시 포병소위였던 안두희에게 피살됐으나 그 배후는 베일에 가려져 왔다. 안두희는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그러나 1년도 못되어 석방된 후 육군에 복귀,대위까지 진급했다.후에 국회에서 그 사실이 문제되자 제대했다.그러나 자유당 정권의 비호아래 암살의 ‘정당성’을 주장하기도 했다. 李承晩 정권이 4·19혁명으로 무너지자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민간차원의 운동이 일어났다.그러나 61년 5·16 군사쿠데타가 일어난 후 진상조사활동은 거의 중단됐다.그 이후에도 활발한 활동은 없었다.곽태영·권중희·노송구씨 등에 의한 안두희 추적만 있었을 뿐 국가적 차원의 조사는 없었다. 본격적인 진상조사는 92년 11월5일 ‘백범 김구선생 시해 진상위원회(위원장 이강훈)’가 국회에 청원서를 내면서 시작됐다.국회의 청원심사소위원회(위원장 강신옥 의원)는 95년 12월18일 조사보고서를 발표했다.보고서는 안두희의 우발적 단독범행이 아니라 면밀하게 모의되고 조직적으로 역할 분담된 정권적 차원의 범죄였다고 결론내렸다. 안두희는 거대한 조직과 역할에서 하수인에 지나지 않았다.암살사건은 고급정보 브로커였던 김지웅이 전반적으로 조율했다.그의 지시를 받는 홍종만은 암살 하수인들을 관리했다.이들은 모두 정권적 비호를 받았다. 그러나 암살의 일차적 배후는 군부쪽 이었다.암살명령은 장은산 당시 포병사령관이 내렸다.김창룡 특무대장은 사건후 적극 개입했다.채병덕 총참모장,전봉덕 헌병부사령관,원용덕 재판장,신성모 국방장관 등은 사후 처리를 주도했다. 백범 암살에서 가장 큰 쟁점은 李承晩 전 대통령과 미국의 관련성이다.李 전대통령은 정권적 차원의 범죄라는 차원에서 도덕적 책임이 있다.사건후 개입한 것도 확인됐다.미국도 암살사건의 내막을 알 수 있었을 것으로판단된다. ◎안두희 ‘처단’ 朴琦緖씨/“정의 일깨우고 싶었습니다”/힘겨웠던 독방생활/김구 선생 떠올리며 감내/어려운 사람 잘 사는 세상 왔으면 朴琦緖(49)씨는 버스 운전기사다.보통 사람으로 평범하게 살아가고 있다.그러나 그에게는 또다른 모습이 있다.金九 선생 암살범 安斗熙를 죽인 ‘정의의 사나이.’ 그는 정의라는 말을 좋아한다.安斗熙를 죽인 것도 사회의 정의를 일깨우기 위해서였다고 말한다.“위대한 민족 지도자 金九 선생을 시해한 사람이 제명을 다하는 것은 역사의 정의가 아니라고 생각했습니다.” 1996년 10월23일.安斗熙는 朴씨의 ‘정의의 봉’에 맞아 죽었다.“옳은 일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죄의식은 크게 없었습니다.하지만 고뇌의 시간도 많았습니다.그러나 누군가 이 일을 해야만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3년형의 판결을 받았다.감시 카메라가 있는 독방에서 생활했다.“교도소 생활은 힘들었습니다.추위는 정말 고통스러웠습니다.귀와 발이 동상에 걸렸습니다.그러나 고통의 순간마다 金九 선생의 힘들었던 감옥생활을 생각했습니다.金九 선생과 비교하면 나는 얼마나 편한가라고 위로했습니다.”성당에 다니는 그는 성경과 백범일지,역사책 등을 많이 읽었다고 말했다. 그는 3월13일 사면으로 청주감옥을 나왔다.잠시 중단했던 운전대를 다시 잡았다.부천에 있는 소신여객 사람들은 그를 환영했다.“회사 노조원들의 석방운동이 고마왔습니다.광복회와 백범 김구선생 기념사업협회의 석방운동도 감사했습니다.” 출옥후 그의 집에는 조그만 변화가 나타났다.“아이들(딸 2명 아들 1명)의 보는 눈이 달라졌습니다.그저 평범한 아빠로 보던 그들이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살인자의 아내’라는 부담을 느끼던 아내도 자랑스런 남편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범한 운전기사로 남기를 원한다.그는 오늘도 피곤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태우고 김포공항과 월미도 사이를 달린다.“나의 버스를 타는 사람들은 대부분 어려운 사람들입니다.그런 사람들도 잘 살 수 있는 올바른 사회가 실현됐으면 좋겠습니다.”올바른 사회를 만드는 것이 金九 선생의 큰 뜻을 살리는 길이라고 그는 말했다.
  • 활과 리라/옥티비오 파스 지음(화제의 책)

    ◎노벨상 수상작가 파스의 시론집 멕시코 출신의 시인 옥타비오 파스(1914∼1998)의 시론집.파스가 평생 천착한 ‘시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주로 다뤘다. 좌·우 이념투쟁이 세계를 휩쓸던 1943년,그는 자신을 시인의 반열에 올려준 후견인이었던 파블로 네루다와의 ‘순수­참여 논쟁’에 휘말린다.파스는 외면적 진실도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역사의 이름으로 내면적 진실을 희생시켜서도 안된다고 주장했다.젊은 시절 스스로 혁명가를 자처했고 사회주의 운동에도 가담했던 파스는 시와 역사라는 이질적인 두 가치를 조화시키기 위해 애썼다.이것은 그에게 ‘시인으로서의 나는 누구인가’라는 정체성의 문제로 이어졌다. 이 논쟁 이후 청년 파스는 당시 문단을 지배하던 사회주의 리얼리즘을 옹호하는 참여문학 진영에서 철저히 소외됐다.그는 결국 질식할 것만 같은 조국의 문단을 등진 채 ‘숨을 쉬기’위해 국외로 떠났다.파스가 스페인어권에서 열번째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하는 시인이 되고,중남미를 대표하는 지성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젊은 시절 겪었던혹독한 정체성의 흔들림에 정면으로 맞서 그것을 극복해냈기 때문이다. 옥타비오 파스 전집(전5권) 첫 권으로 나온 이 책에 이어 시론집 ‘흙의 자식들·타자의 목소리’,시선집 ‘일상의 불꽃’,문화비평서 ‘고독의 미로’‘동양사상 및 예술론’ 등이 내년 6월까지 나올 예정이다. 김홍근·김은중 옮김 솔 1만5,000원.
  • 당차고 강인한 그리스 女神

    가부장제 끈질긴 공작에 속불꽃을 사위어버린 여성들.하지만 반란의 불씨는 남아 있다.그래서 당당하고 욕망에 직설적이고 냉혹한 여성성의 원형과 만나면 한차례씩 끓어오른다.그리스 여신들.현대 문화계에서 그런 원형의 상징으로 인기다.무용계도 그들이 탐났다.서울현대무용단의 5∼6일 정기공연 ‘여성속의 여신’은 그리스 여신들의 여성성을 춤사위로 드러내본 연작.하오 7시30분 서울 문예회관 대극장. 이들이 살려낸 여신은 5명.여신 하나를 소품 하나로 다룬다.△‘헤스티아의 불씨’는 화덕을 밝히는 창조적 열정과 사랑(안무 김옥주) △‘아르테미스의 질주’는 사냥터에 선 불굴의 야성(윤일청) △‘아테나의 잃어버린 기억찾기’는 가부장제를 비틀어 새롭게 본 모성(배인영) △‘아프로디테 신드롬’은 사랑과 열망에 거침없는 솔직성(길현정) △‘페르세포네의 거울’은 무기력한 순응의 역사(조동희)를 불러내고 되돌아 본다.마지막 △‘누가 황금사과를 딸 수 있나?’(이상 5인 공동안무)는 이같은 다양한 잠재속성을 인식한 여성의 자아찾기를 형상화한다.안무자들과 정유라,최재연,정황수,김선희 등 출연.3672­8633.
  • 연금매장도 손님끌기 경쟁/할인점 가격파괴 확대로 단골손님 급감

    ◎직거래 도입·연중무휴… 서비스 개선 총력 ‘값은 종전의 절반,서비스는 2배’. IMF시대를 맞아 공무원 연금매점이 대형 백화점 및 일반 할인점들과 불꽃튀는 판매 경쟁을 벌이고 있다. 가격을 끌어 내리고 상품의 질(質)과 서비스를 대폭 개선하는 등 안간힘을 쏟고 있다. 연금매점은 공무원연금 관리공단에서 직영하는 서울 강동구 고덕동 공무원 임대아파트 단지내 상록스토아 고덕점을 비롯해 국방부 등 중앙부처,서울시 등 광역자치단체와 기초단체에서 운영하는 매점 등 전국적으로 모두 89개다. 연금매점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낮은 값에 힘입어 많은 고정 손님을 확보하고 있었다.판매 마진율이 할인점이나 백화점의 10%∼30%에 비해 거저나 다름없는 2%선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요즘 대형 백화점들과 각종 유통 할인점들이 ‘살아남기’ 위해 엄청나게 가격파괴를 감행하는 바람에 경쟁력을 잃고 단골손님을 빼앗기고 있다. 강동구 천호동 현대백화점에 가까이 있는 상록스토아 고덕점의 분위기는 아예 비장할 정도다.지난 3월부터 단 하루도 쉬지 않고 문을 연다.종전에는 일주일에 하루를 쉬었다.상오 10∼하오 6시이던 영업시간을 하오 7시30분까지 1시간 30분을 늘렸다.할인판매 행사나 사은행사도 수시로 갖는다. 또 값을 더욱 낮추기 위한 아이디어를 공단 차원에서 짜내고 있다. 다음달 1일 문을 열 정부 대전청사 옆의 상록스토아 대전점의 경우 물건을 생산자로부터 직접 구입,판매가를 대폭 내릴 방침이다.공단측은 성과를 보아 다른 매점에도 이같은 생산자 직거래 방식을 도입할 계획이다. 연금관리공단의 한 관계자는 “자기 살을 깍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말했다.
  • 白凡 재조명:1/金九 연구 어디까지(정직한 역사 되찾기)

    ◎그의 죽음은 ‘불행한 역사’의 시작/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참역사의 불꽃 스러지고/식민유산 씻을 주체 상실 평화통일론 어둠속 유배/국가차원 연구후원 全無 이젠 정당한 평가 필요 백범 金九 선생은 우리 현대사의 거인이다.순수한 열정으로 조국의 독립과 민족통일을 위해 헌신했다.온갖 어려움속에서도 임시정부를 이끌며 독립운동의 구심점이 됐다.독립후에는 민족의 화해와 평화통일을 위해 앞장섰다.그러나 그는 1949년 6월26일 암살됐다.타계한지 거의 반세기가 지났지면 현대사는 그를 제대로 평가하지 못했다.국민의 존경을 받았지만 권력은 그를 왜곡했다.이제 그는 민족의 위대한 지도자로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와야한다.정직한 역사를 되찾기 위해 金九 선생을 재조명한다. 어둠의 시대에 등불이었던 민족의 큰 스승 백범 金九.그는 일제식민통치의 암울한 시대를 끈질긴 생명력으로 밝혀온 민족의 등불이었다.그의 헌신적 민족사랑은 조국독립이라는 찬란한 불빛으로 빛났다.그러나 그 불빛은 정의의 역사로 승화되지 못한 채 일그러진 권력의 바람에 꺼지고 말았다.그의 비극적 죽음은 ‘정의의 역사’가 현실에서 패배한 민족의 비극이다. 그는 1949년 6월26일 안두희에게 암살됐다.암살범은 일본인이 아닌 그가 사랑했던 같은 민족이었다.그러나 ‘암살범’은 안두희라는 개인이 아니었다.그는 거대한 음모의 한낱 조연에 지나지 않았다.金九 선생은 권력에 의해 조작된 제도적 폭력에 희생된 것이다.권력의 하수인이었던 안두희의 총성은 일그러진 현대사의 시작을 알리는 ‘조종(弔鐘)’이었다.결국 잘못된 현대사에서 파생된 권력의 폭력은 5·18 광주민주항쟁도 무력으로 진압했다. 金九 선생을 죽인 권력과 친일세력들은 그를 낡은 역사속에 묻어두려했다.그들은 金九 선생의 최고 가치였던 독립과 민족통일론을 매도했다.그의 평화통일론은 냉전체제속에 공허한 메아리가 됐다.그는 자유당 정권에 의해 현실에서의 ‘패배자’로 왜곡됐다.자유당정권은 그의 자서전 ‘백범일지’의 출판도 금지시켰다. 그는 朴正熙 대통령과 그이후 全斗煥·盧泰愚 정권에서도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다.“군사정권들은냉전체제의 분단상황에서 백범의 민족통일론을 외면했다”고 창원대학의 都珍淳 교수(한국사)는 말했다. 金九 선생을 죽게한 일그러진 현대사의 원인은 어디에 있는가.현대사의 첫단추가 잘못 끼워졌기 때문이다.마땅히 단죄됐어야 할 민족반역자 친일세력들이 해방후에도 부와 권력의 핵심을 차지한 것이다.백범의 죽음은 일제식민통치의 유산을 청산할 주도세력의 상실을 의미했다.그러한 불행한 역사과정은 민족정기와 사회정의를 무너뜨리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 굴절된 현대사의 어둡고 긴 그림자 속에서도 백범은 일반대중들의 가장 존경받는 지도자로 추앙받아왔다.SBS방송 조사결과,金九 선생은 광복이후 50년동안 한국사회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인물로 나타났다.그는 고대 신문이 실시한 가장 복제하고 싶은 인물조사에서도 1위를 차지했다. 백범은 국민들에게는 가장 존경을 받으면서도 권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평가절하된 독특한 위치에 있었다.현대사가 권력지향적 사회였기 때문에 백범연구는 활발할 수 없었다.문민정부에 들어와 그의 연구는좀더 적극화됐지만 국가차원에서 그를 재평가하려는 움직임은 거의 없었다.일부 정치세력이 그를 정략적으로 이용하려 했을 뿐이다.가장 존경받는 지도자이면서도 그의 기념관도 만들어지지 않고 있다.중국에서 돌아와 업무를 보고 임시정부 국무회의까지 열렸던 경교장(京橋莊)의 복원도 불투명하다.그가 서울에 설립했던 2개의 ‘초등학교’ 등 교육기관들은 흔적조차 없어졌다.백범 푸대접은 정통성이 약한 과거의 권력이 그의 영웅화를 두려워하고 그의 통일론과 분단상황이라는 현실과의 괴리 때문이었다.그러나 냉전체제도 무너지고 金九 선생에 각별한 존경과 관심을 갖고 있는 金大中 대통령의 등장으로 새로운 평가가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라고 都교수는 예상한다. 金九 선생은 국가적 차원에서 올바른 역사의 제자리로 돌아오게 해야한다.그것은 잘못된 역사를 바로잡는 중요한 일이다.역사를 왜곡하는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다.백범의 올바른 평가가 이루어지면 세계사적 보편성을 갖는 그의 열린 민족주의와 삶의 철학은 세계화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미래에도 ‘등불’이 될 것이다. ◎죽음을 초월한 생애 ▲1876년(고종13년) 해주에서 탄생 ▲1893년(18세) 동학에 입도 동학접주가 됨 ▲1896년(21세) 황해도 치하포에서 변장한 일본인 쓰치다 때려 죽임. 해주감옥에 감금됐다 인천으로 이감 ▲1898년(23세) 인천감옥 탈옥.마곡사에 들어가 승려가 됨 ▲1904년(29세) 최준례와 결혼 ▲1909년(34세) 안중근 의사 의거 관련자로 체포됐다 석방 ▲1919년(44세) 31운동 직후 상하이(上海)로 망명.임시정부 경무국장 취임 ▲1923년(48세) 임시정부 내무총장 취임 ▲1924년(49세) 부인 최준례 여사 사망 ▲1926년(51세) 임시정부 국무령에 선출 ▲1930년(55세) 이동녕·안창호·조완구·조소앙 등과 한국독립당 조직 ▲1932년(57세) 이봉창 의사의 日王 저격,윤봉길 의사의 홍구공원 의거 지휘.상하이에서 자싱(嘉興)으로 피신 ▲1933년(58세) 중국의 장제스(蔣介石)와 만나 낙양군관학교에 한인훈련반 설치 합의 ▲1935년(60세) 난징(南京)에 학생훈련소 설치 ▲1938년(63세) 호남성 장사로 피신.민족진영3당 통합을 논의하던중 이운환의 저격으로 중상 ▲1939년(64세) 어머니 곽낙원(81세) 여사 사망 ▲1940년(65세) 임시정부 주석으로 선출 ▲1941년(66세) 대한민국 건국강령 제정.대한민국 임시정부 명의로 대일선전포고 ▲1945년(70세) 중국에서 귀국.모스크바 3상회의 결정에 반대하여 신탁통치반대운동 전개 ▲1947년(72세) 제2차 반탁운동 전개.인재 양성을 위한 건국실천원양성소개설 ▲1948년(73세) 남한 단독정부 수립 반대하는 ‘3천만 동포에게 읍고함’발표.남북연석회의 위해 평양방문후 귀국 ▲1949년(74세) 백범학원·창암학원 설립.6월26일 육군소위 안두희의 저격으로 서거. ▲1962년 대한민국건국공로훈장 추서 ▲1969년 남산에 동상 세움(서거 20주년) □특별취재반 ▲특집기획팀=羅潤道 팀장,李昌淳·李穆熙 차장,金聖昊·任昌龍 기자 cslee@seoul.co.kr
  • 印尼 총선 내년 실시/정부­국회의장 합의

    ◎대학생들 “하비비 즉각 퇴진” 시위/북수마트라선 폭동… 은행 3곳 파괴 상점 약탈 【자카르타 외신 종합】 바차루딘 주수프 하비비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약속한 인도네시아 조기총선은 올해 안에는 실시되지 않을 것이며 정치개혁법들이 통과된 이후인 99년에나 실시될 것이라고 하르모코 인도네시아 국회의장이 28일 밝혔다. 하르모코 의장은 이날 하비비 대통령 및 일부 각료들과 만난 자리에서 총선 실시를 위해 필요한 법률들을 재검토하는데 약 6개월이 걸린다는데 합의가 이루어졌다고 전했다. 그는 자신과 하비비 대통령이 엄격하게 통제돼온 인도네시아의 정치제도를 자유화하기 위한 법률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데 의견일치를 보았다고 말하고 총선 실시를 위해 불필요한 법령들을 폐지하기 위한 국회 특별회의가 올해말 소집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하비비 대통령은 이날 2명의 정치범을 추가 석방하도록 지시했다고 물라디 사이드 법무장관의 말을 인용,관영 안타라 통신이 보도했다. 통신은 석방 지시가 내려진 2명의 정치범은 인권단체인‘불꽃 재단’사무총장 누쿠 술라에만과 독립언론인협회 소속의 안디 사푸트라로 모두 수하르토 대통령 치하에서 대통령 모독죄로 수감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신정부의 조치에도 하비비 대통령을 믿지 않는 인도네시아 대학생 수백명은 이날 자카르타의 국회의사당 진입을 시도하며 ‘전반적 개혁 실시’와 ‘하비비의 즉각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또 자바주수라바야에서도 2,000여명의 학생들이 시청사를 점거,하비비에게 즉각 퇴진할 것을 요구하는 연좌농성을 벌였다. 북수마트라주 탄중발라이에서는 주민들의 폭동이 발생,3개 은행이 파괴되고 상점들이 약탈당하는 소요사태가 빚어졌다.경찰은 약탈에 참여한 주민 50여명을 체포하고 시내에 대한 순찰을 강화했다. 이같은 시위와 소요사태는 하비비가 취임한 이후 처음이다. 한편 이날 하비비 대통령과 만나 인도네시아에 대한 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 지원 재개 문제를 논의한 휴버트 나이스 IMF 아·태 국장은 인도네시아의 상황 악화로 인해 거시적 경제구조 개혁 프로그램을 재조정할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다.
  • 2002년 월드컵 기념우표 판매

    정보통신부는 2002년 월드컵 축구대회와 국회개원 50주년을 기념하는 우표를 발행,30일부터 판매한다.월드컵 축구대회 우표는 인스텝 킥 ,다이빙,오버 헤드 킥,볼을 다투는 모습 등이 담긴 4종이다.종류별로 500만장씩 발행했다.국회개원 50주년 기념 우표는 국회의사당과 불꽃놀이를 담아 300만장이 발매됐다.액면가는 모두 170원이다.
  • 6·4 지방선거 D­7/경기지사 후보 2차 TV토론

    ◎“지역개발” “관권선거” 설전/林 후보­노동법 날치기 통과 경위 등 집중 공세/孫 후보­“在京畿 호남향우회 급조 林 후보 지원”/토론 진행방식 싸고 신경전 10분 늦게 시작 ‘굳히기’와 ‘뒤집기’.MBC가 27일 주최한 경기지사후보 초청 TV토론은 난타전의 연속이었다.국민회의 林昌烈 후보는 지역개발 의욕을 부각시키며 막판 다지기에 주력했다.반면 한나라당 孫鶴圭 후보는 여권의 관권선거 사례를 폭로하며 추월을 시도했다. ○…토론은 두 후보간 신경전으로 당초 예정보다 10분 늦은 하오 11시10분쯤 시작됐다.그러나 정작 林후보는 11시15분이 넘어서야 토론장에 등장하는 진풍경을 연출했다.孫후보의 기조발언은 林후보가 없는 상태에서 이뤄졌다.뒤늦게 토론장에 입장한 林후보는 “토론 진행방식을 놓고 후보간 합의가 조율되지 않아 시간이 걸렸다”고 해명했다. ○…공방전은 기조발언에서부터 불꽃이 튀었다.孫후보는 “지난 4월14일 林후보 지원단체로 급조된 ‘재(在)경기 호남향우회’의 회원명부에 金大中 대통령이 특별고문,韓勝憲 감사원장,高建 서울시장후보 등이 고문으로 돼 있다”며 “특히 ‘林昌烈 필승계획서’에는 시·군 행정조직과 이심전심으로 협조한다는 말도 들어 있다”고 폭로했다.孫후보는 “이는 여권이 관권·불법선거를 획책한 명백한 증거”라고 주장했다. ○…토론의 절정은 후보간 자유토론이었다.사회자가 “답변은 치열하게 하되 표정은 부드럽게 해달라”고 부탁할 정도로 열기가 뜨거웠다.孫후보가 林후보의 주민등록 이전과 관련,위장전입 의혹을 제기하자 林후보는 “장인 댁으로 위장전입하는 사람도 있느냐”고 맞받았다.그러자 孫후보는 “위장전입으로 범법자가 되거나 장관직을 내놓은 사람도 많다”고 따졌다.林후보는 孫후보의 ‘노동법 날치기 통과’ 참여 경위를 문제삼았다.이에 孫후보는 “당시 林후보가 몸담았던 정부가 노동법 통과에 더 안달하지 않았느냐”고 되물었다.그러자 林후보는 “통과를 요구했지 날치기를 요구하지 않았다”고 맞불을 놨다. ○…한편 토론의 사회자를 놓고 두 후보간의 치열한 신경전으로 당초 예정된 朴慶宰씨가 嚴基永 보도제작국장으로 교체됐다.朴씨가 林후보와 경기고 58회 동기란 점을 孫후보측에서 이의를 제기,嚴국장으로 바꿨다는 것.이 과정에서 孫후보측은 자신과 경기고 61회 동기인 文振英 해설위원을 강력히 선호했으나 역시 林후보측이 반대했다는 후문.
  • 너무∼ 너무∼/박명욱 지음(화제의 책)

    ◎비주류 아티스트들의 삶과 예술 평면적인 현재에 안주하지 않고 늘 자기갱신을 통해 새로움을 추구했던 예술가들의 삶과 예술을 조명.세계의 역사를 훑어보면 많은 예술가와 사상가들이 시대와 도덕의 광기 혹은 폭력에 희생당했음을 알 수 있다. 도덕적 편견과 예술적 몰이해 때문에 생애의 대부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했던 카미유 클로델,예술적 천재성으로 인해 역시 말년을 정신병원에서 보내야 했던 잔혹극의 기수 앙토넹 아르토가 그렇다.또 독일 프랑크푸르트학파의 철학자이자 문예이론가인 발터 벤야민의 경우는 어떤가.그는 나치치하에서 탈출,갖은 고초를 겪으며 도보로 프랑스를 횡단해 스페인 국경에 이르렀지만 독일군에게 넘겨버리겠다는 국경수비대원의 농담에 그만 약을 먹고 죽음을 결행했다. 지은이는 이러한 희생자들의 명부에 17명의 ‘비주류’ 아티스트들의 이름을 덧붙인다. 그 중의 한 사람이 이탈리아 출신의 영화감독이자 시인이었던 피에르 파올로 파졸리니(1922∼1975)이다.불꽃같은 그러나 위험한 삶을 살았던 파졸리니는 우리에게는 좀 생소한 인물이다.그의 유작 ‘살로 혹은 소돔의 120일’이 한때 상영돼 물의를 빚기도 했지만 그의 영화는 국내에 본격적으로 소개된 적이 없다. 하지만 파졸리니의 본령은 어디까지나 시이다.파졸리니는 ‘성당의 나이팅게일’‘장미꽃 모양의 시’‘우리 시대의 신앙’‘그람시의 유해’등 많은 시집을 냈다.지은이는 이러한 예술가들의 사유와 작품을 질료로 자신의 예술관을 토로하기도 한다.그는 파졸리니에게서는 집단적인 악과 고투하는 개인의 도덕적 아름다움을 읽어낸다.이를테면 레몬을 ‘태양의 황금빛 트럼펫’이라고 말한 움베르토 에코가 물상(物象)을 다른 물상에 빗대 명료한 마음의 풍경을 보여주는 그런 식이다.박가서·장 1만원.
  • 용인 등잔박물관(생활속의 박물관·미술관:1)

    ◎천년의 밤을 사른 애잔한 불꽃…/1,000년된 신라토기부터 백자 사기 놋 다양한 소재/210여점 등기구 오롯이 낭만으로 돌려준 그 기억 “타고 남은 재가 다시 기름이 됩니다./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韓龍雲 ‘알 수 없어요’) 가물거리는 약한 등불을 달래 밤을 새워 지펴주던 그 등잔들이 오늘 우리의 역사같은 끈질긴 불꽃을 다시 태우고 있는 현장.이제는 우리의 기억 속에만 남아 있는 등잔들을 고스란히 끄집어내 모아놓은 ‘한국등잔박물관’(설립자 金東輝)은 이제 낭만으로 그 불꽃을 우리에게 다시 돌려주고 있다. 1천년간 우리네 밤을 사르던 옛 등기(燈器)가 한자리에 모여 있는 이 박물관은 경기도 용인시 모현면 능원리 258 숲속,고려말 충신 정몽주 묘소에서 300m쯤 북쪽으로 앉아 있다.수원성을 닮은 지하 1층 지상 3층으로 우뚝 선 이건물은 원통형 회백색 벽돌건물로 돼있어 멀리서 보면 마치 등대처럼 보인다.이곳에 1천년된 신라 토기 등잔부터 120년전 사용되던 등잔까지 210여점의 등기구들이 각양각색의 자취를 보이고 있다. 한 민속품 수집가의 고집에 의해 지난해 9월 문을 열게된 이 박물관은 이름 그대로 등기구의 모든 것을 한자리에서 보여준다.건평 290평중 전시면적만 해도 130평.여기에 지하 70평짜리 문화공간과 3층엔 30평짜리 휴게실까지 있어 박물관을 찾은 이들이 다과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공간도 제공하고 있다. 박물관 안쪽으로 들어서면 중앙계단을 경계로 1∼2층에 갖가지 등기구들이 진열돼 있어 자연스럽게 눈길이 가도록 돼있다. 1층 ‘생활속의 등잔’ 코너에서는 식생활공간 마루 사랑방 안방 등 주거공간별 생활용품과 함께 등기구를 놓아 각 등기들이 어떻게 사용됐는가를 쉽게 보여준다.2층에 위치한 ‘역사속의 등잔’과 ‘아름다움속의 등잔’ 코너는 신라·백제·고려시대때 쓰이던 등부터 100∼400년전쯤 조선 전·후기의 다양한 등기까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해 낸다. 어디에서 누가 쓰던 것인지는 모르지만 오랜 풍상속에서 찌들고 볼품 없어진 관솔과 벽에 걸어두는 괘등,밤길 행인들이 들고 다니던 제등,방안에 놓아두던 좌등들이 서로의 자태를 자랑하며 지난날의 아름다움을 뽐냄이 낯익은 모습으로 다가선다.옛 등잔들은 재료에서도 토기나 백자 놋 사기 등 다양함을 보여준다.형태도 종지나 탕기 등 다양한 모양을 갖추고 있고 솜·노끈·한지 등 심지의 종류 역시 이루 헤아릴 수 없다. 등잔걸이 역시 놋쇠나 철 청동 유리 등 다양한 재질이 눈에 띈다.그 가운데 무엇보다도 나무로 만든 것이 묵직하면서도 조상들의 숨결을 진하게 느낄 수 있는 소박함을 그대로 전해준다.이밖에 등잔을 받쳐주는 받침대나 등잔이 흔들리지 않도록 붙들어주는 등재받이 굽·받침대에 매듭이나 줄구슬,새김 등 무늬를 넣어 장식한 것도 있다. 백제시대 토기등잔에서부터 고려의 염주문 청동촛대,무쇠에 은을 입힌 촛대와 조선시대의 원추형 백자촛대,안방과 사랑방에서 방을 밝혀주던 목제 좌등도 은은한 향기를 내뿜는 볼거리들이다.여기에 맷돌·절구·짚신과·죽부인·청사초롱 등 등기구를 받쳐주는 물품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려 옛 정취를 불러 일으킨다. 金옹은 이 박물관을 단순한 등기구 전시장에 머물지 않도록 하겠다는 욕심을 보인다.그야말로 우리 생활문화의 전통을 널리 알리고 활용할 종합문화공간으로 만들겠다는 각오다.우선 개관 1주년을 맞는 오는 9월 지역 문화활성화 방향을 모색해보는 토론회와 기념공연 등을 연다.이를 계기로 정기적인 공연이나 전시회·세미나 등도 마련해 나가겠다는 계획이다. ◎설립자 金東輝옹/“있는 그대로의 멋 알게됐으면…”/의사시절 틈틈이 수집 민속품만 500여가지/사재털어 건립 자부심 한국등잔박물관 설립자인 金東輝옹(80)은 평생동안 우리 민속품 수집에 매달려온 전직 산부인과 의사.수원 출신으로 1940년 수원에서 산부인과병원을 개업,87년 대한적십자사 경기도지사 혈액원에서 퇴임할 때까지 47년간 재직하면서 틈틈이 모은 민속품만 해도 500여점이 된다. 金옹은 “등기구에 대해 남다른 애착을 갖게 된 것은 어린시절 머리맡 등잔밑에서 바느질을 하던 어머니에 대한 인상이 짙었기 때문”이라며 “지금도 한밤중 늦게까지 등잔에 의지해 바느질을 하시던 어머니에 대한 어릴적 기억이 생생합니다.등잔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는 독특한 멋을 갖고있는 민속품입니다.처음엔 그냥 좋아서 모으기 시작했는데 차츰 사명감을 갖게까지 됐다”고 수집 동기를 설명했다. 전국의 골동품상이나 개인 소장가 등 등기가 있는 곳이면 어디든지 마다않고 찾아 다니는 金옹의 등기구에 대한 애착과 수집사실이 널리 알려지면서 여러차례 등기구 전시도 열게 됐다. “전시를 계속하다 보니 유물 손상도 적지않고 무엇보다도 항상 이 등기구들을 일반인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공간마련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다“는 金옹은 20년전 일선 은퇴후 여생을 보내려고 마련해둔 현 박물관 부지에 자신의 병원을 정리해 세운만큼 순전히 사재로 만들어진 박물관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다. 그는 또 “박물관 전시품과 공간구성은 이미 오래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을지낸 崔淳雨씨에게 자문을 구한만큼 박물관 건립 자체는 별 문제가 없었다“며 “관람객들이 바쁜 일상 속에서 잊혀져가는 우리만의 멋을 간직한 등잔을 부담없이 감상하고 그냥 있는 그대로의 우리 멋을 알고 대화를 나눌 수 있기를 바랄뿐”이라고 덧붙였다. ◎등잔박물관 가는길/수원·양재역에 노선버스/목∼일요일 상오 10시 개관 분당과 광주·수원 등 3군데 방향에서 찾아갈 수 있다. 분당쪽에서 들어가다 보면 광주와 수원으로 갈라지는 능골삼거리에서 수원쪽으로 방향을 잡아 100m쯤 직진하면 왼쪽으로 정몽주 선생 묘소로 향하는 좁은 샛길이 나온다.이 갈림길에서 주차장까지는 걸어서 5분정도 거리. 수원에서는 660번 좌석과 60번 일반버스가 수원역∼장안공원∼매향동∼풍덕천∼능원리까지 운행하는 버스편이 있고 서울에서는 양재역∼분당∼능골삼거리까지 운행하는 500번,천호동∼가락시장∼성남∼분당∼능골삼거리를 다니는 17·17­1·17­2·119번 버스를 이용할 수 있다.능골삼거리에서 차량으로 소요시간은 약 5분정도. 개관시간은 목∼일요일 상오 10시부터 하오 5시까지.관람료는 성인 3천원,초등학생 1천원.연락처 0335­34­07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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