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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고] 오피니언 필진 바뀝니다

    서울신문 오피니언면의 ‘CEO칼럼’ ‘토요일 아침에’ ‘녹색공간’ ‘문화마당’ ‘옴부즈맨 칼럼’ 등 5개 칼럼의 필진 일부가 7월부터 바뀝니다.‘CEO칼럼’은 경영현장의 생생한 경험이 소개되며,‘토요일 아침에’는 종교인이 들려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녹색공간’은 생명의 존엄성을 일깨우는 환경칼럼이고,‘문화마당’은 전문가 시각에서 문화현장을 조명합니다.‘옴부즈맨 칼럼’은 서울신문을 분석·평가하고 독자에게 다가가는 신문을 만들기 위한 제안을 하게 됩니다. ●CEO칼럼 석강(신세계 백화점부문 대표) 성낙양(야후코리아 사장) 김영수(신창건설 사장) 곽결호(수자원공사 사장) ●토요일 아침에 길자연(목사·왕성교회 당회장) 손희송(신부·가톨릭대 교수) 현고(스님·한국불교문화사업단장) 오훈동(천도교 종학대학원 교무처장) ●녹색공간 노수홍(연세대 교수) 우석훈(초록정치연대 정책실장) 김판기(용인대 교수) 박정임(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책임연구원) ●문화마당 허동현(경희대 교수) 임영균(중앙대 교수) 문흥술(서울여대 교수) 고운기(연세대 국학연구원 교수) ●옴부즈맨 칼럼 양승찬(숙명여대 교수) 심재철(고려대 교수) 민영(경희대 교수) 김춘식(한국외국어대 교수) 심재웅(한국리서치 상무) 하태현(이화여대 언론정보학과 3학년)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7) 불상없는 ‘寂滅宮’ 효시 통도사

    대한불교 조계종 제15교구 본사인 통도사(경남 양산시 하북면 지산리 583). 신라 진골 출신 김무림의 아들로 태어났지만 출가해 당나라에 유학한 뒤 선덕여왕의 요청에 따라 귀국한 자장 율사가 계율의 근본도량을 삼겠다는 원을 세워 건립한 1300년 역사의 신라고찰이다. 자장 율사가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 삼보사찰 중 하나인 불보사찰로 통하는 사찰. 선원, 율원, 강원의 삼원을 갖춘 사찰에만 격이 주어지는 국내 5대 총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신라 최대의 거찰 황룡사와는 형제사찰로 여겨졌을 만큼 사세가 컸던 도량. 다른 사찰의 가람 배치와는 크게 다른 파격에 더해 다양한 전각과 불상으로 인해 불교는 물론 한국건축 양식의 총집합처로 여겨지는 독특한 사찰이다. 해발 1050m 영축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뻗어내린 봉우리들이 한군데로 모아지는 금강계단은 통도사의 핵. 통도사의 근본정신이 집결된 곳이자 한국불교 최상의 성지이기도 하다. 산문을 들어선 뒤 조금 걷다가 일주문과 천왕문, 불이문을 차례로 지나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범상치 않은 전각들. 신라기에 세워진 대부분의 사찰이 남북 일직선상에 금당과 탑이 놓여진데 비해 통도사는 전각들이 남북 축을 유지하면서 동서로 길게 배열된 파격을 보여준다. 냇물을 끼고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3개의 권역으로 나뉘어 늘어선 크고 작은 건물만도 50여개. 상로전에는 금강계단과 대웅전이, 불이문부터 세존비각까지의 공간인 중로전에는 대광명전 용화전 관음전이, 천왕문과 불이문 사이의 영역인 하로전에는 영산전 극락보전 약사전 만세루가 들어서 있다. 각 구역의 전각들이 하나의 중심축에 일열로 배열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건물 사이의 공간 크기와 모양이 보기에 따라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게 독특하다. 이 가운데 금강계단과 대웅전 대광명전 영산전만 창건 초기에 건립되었고 나머지 것들은 대부분 고려 이후 세워진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통도사의 창건 연대는 확실치 않지만 ‘삼국유사’등의 기록을 볼 때 당나라로 유학을 떠났던 자장 율사가 귀국한 643년부터 선덕여왕 재위 말년인 646년 사이로 추정되며 지금은 646년이란 게 거의 정설로 되어 있다. 통도사란 사명이 붙은 것에도 여러 설이 통한다. 첫째는 출가한 모든 스님들이 이곳의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고 득도한다는 것이고 둘째는 모든 진리를 회통하여 중생을 제도한다는 의미, 또 하나는 통도사가 위치한 산의 모습이 부처님이 설법하던 인도의 영축산과 통한다는 것이다. 자장 율사는 중국에서 부처님 정골(頂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등 사리 100과, 부처님이 입었던 금란가사, 대장경 400권을 갖고 돌아왔는데 이 가운데 정골과 손가락뼈, 치아사리, 금란가사, 대장경이 통도사에 봉안되었다. 나머지 사리는 경주 황룡사탑과 울산 태화사탑에 나누어 봉안한 것으로 전해진다(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 통도사는 불상 없이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는 ‘적멸궁’의 원조이자 모든 사찰의 근본도량이었던 셈이다. 그 때문에 통도사에는 범상치 않은 일들이 많았다고 한다. 지난 1956년 한밤중에 대웅전에서 화엄산림법회가 열릴 때 갑자기 금강계단 사리탑에서 빛줄기가 뻗어올라 대낮같이 밝아져 양산 주민들이 통도사에 화재가 발생했다며 놀랐다는 이야기는 유명한 일화다. 새벽 예불시간에 맞춰 일어나지 못한 스님들이 종종 금강계단에서 들려오는 목탁 소리와 종소리를 듣곤 놀라서 깨어나기도 한단다. 이런 통도사의 핵심이자 요체는 단연 금강계단과 대웅전. 이 가운데서도 금강계단은 부처님 사리가 봉안된 통도사의 적멸궁이다. 창건 때부터 사리를 친견하려는 참배객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으며 고려 왕실과 사신들은 물론 몽골 황실에서도 참배했다고 한다. 고려말∼조선시대엔 사리를 약탈하려는 왜구들을 피해 스님들이 개성 송림사, 서울 흥천사, 금강산 등지로 옮겨다니며 사리를 구했다.“몸과 마음이 부정한 사람이 사내에 들어오면 고약한 냄새가 나 곧 사람이 광란하여 땅에 쓰러져 미치게 된다.”“금강계단 위로는 일체 날짐승이 날지 않고 그 위에 오줌과 똥을 누지 않는다.”는 ‘통도사 사적기’의 사리 부분 기록도 흥미롭다. 창건 때의 모습은 삼국유사 ‘전후소장사리’조의 “2층으로, 위층 가운데에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과 같다.”는 기록으로 미루어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현재의 계단은 2중 사각기단 위에 종 모양의 부도(浮屠)가 놓인 석조로 계단 사방에는 고려∼조선시대에 새로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불좌상(佛坐像)과 천인상, 신장상 등 다양한 조각이 새겨져 있다. 금강계단 남쪽에 맞닿아 있는 정면 3칸, 측면 5칸의 대웅전은 금강계단과 함께 축조된 통도사의 중심건물. 대웅전 바로 뒤편 금강계단에 부처님 사리를 모신 때문에 커다란 불단만 있을 뿐 불상이 없는 게 특징이다. 불단 북쪽 벽에 큰 창을 내어 금강계단을 향해 참배하도록 했다. 임진왜란 때 소실된 뒤 1664년(인조22년) 중건했는데 건물 4면에 각기 다른 편액이 걸린 게 독특하다. 동쪽은 ‘대웅전’, 서쪽은 ‘대방광전’, 남쪽은 ‘금강계단’, 북쪽은 ‘적멸보궁’이라 쓰여 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바라보이는 대웅전의 서쪽 벽은 측면이지만 마치 정면처럼 보이듯 모든 방향에서 볼 때 정면으로 느껴지며 지붕도 팔작지붕의 복합형인 정(丁)자형을 띠고 있다. 통도사 성보박물관 신용철 학예연구실장은 “통도사 대웅전의 정(丁)자 건축은 여주 영릉 등 왕릉 사당에서만 보이는 독특한 형태로 보통의 왕릉 사당보다 더 화려하고 아름답다.”면서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신성한 공간의 의미에 더해 두 개의 건물이 한 건축안에 혼재된 유일한 사찰 건물로 목조건축의 백미”라고 평가했다. kimus@seoul.co.kr ■ 자장율사와 구룡지 통도사를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자장 율사와 구룡지(九龍池)에 얽힌 이야기이다.‘삼국유사’‘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 등 기록에 따르면 통도사가 창건되기 전 이곳에는 큰 연못이 있었다. 여기에는 아홉 마리의 큰 용이 살고 있었는데 자장 율사가 용들을 제압해 그 곳에 세운 가람이 통도사라고 한다.“자장 율사의 항복을 받은 아홉 마리의 용 가운데 다섯은 오룡동(五龍洞), 셋은 삼동곡(三洞谷)으로 가고 한 마리가 이곳에 남아 절을 수호할 서원을 세우자 자장 율사가 그 용을 머무르게 한 뒤 작은 연못을 만들었다.”는 게 바로 지금 대웅전 서편의 구룡지. 구룡지는 불과 4∼5평 남짓한 크기에 수심도 한 길이 채 안 되는 타원형의 작은 연못이지만 아무리 심한 가뭄에도 수량이 전혀 줄어들지 않아 통도사 스님들 사이에서는 ‘구룡신지(九龍神池)’라고 불리기도 한다. 민간에 전하는 다양한 전설에서도 구룡지는 가장 중요한 대목이다. 자장 스님이 중국 종남산 운제사 문수보살상 앞에서 기도할 때 승려로 현신한 문수보살이 부처님 진신사리와 불경, 가사 등을 주면서 “그대의 나라 남쪽 영축산 기슭에 나쁜 용이 거처하는 연못이 있는데 그 연못에 금강계단을 쌓고 불사리와 가사를 봉안하면 재앙을 면해 만대에 이르도록 멸하지 않고 불법이 오랫동안 머물러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귀국한 자장 스님이 선덕여왕과 함께 영축산 연못을 찾아 나쁜 용들을 위해 설법한 뒤 못을 메우고 그 위에 금강계단을 세웠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학계에서는 자장 율사와 구룡지의 관계를 다르게 해석한다. 자장 율사가 통도사를 창건할 당시 양산 지방에는 경주의 왕권에 버금가는 세력집단이 자리잡고 있었다. 따라서 자장 율사가 백성들을 괴롭히는 연못의 나쁜 용들을 제거하기 위해서 통도사 금강계단을 설치했다는 설화는 중앙정부에 대항하는 양산 지방의 정치집단을 제압하기 위해 통도사를 세웠다는 정치적인 함의를 갖는다는 것이다. 즉 불교와 중앙왕권이 제휴했다는 풀이인 셈이다.
  • 박물관은 또 다른 학교

    박물관은 또 다른 학교

    현장학습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는 박물관이 또 다른 학교로 부각되고 있다. 낡은 유물이나 어려운 설명들로만 가득 찬 지루한 박물관은 이미 옛말이다. 열쇠나 부엉이, 책, 떡 등 우리 주위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소재들만 가지고서도 우리나라와 세계의 문화와 역사를 보여주는 흥미로운 박물관들이 많다. 여름방학을 앞두고 서울에 있는 다양한 박물관들을 둘러봤다. ●‘손대지 마시오’ No! 맘껏 만지고 느끼며 체험하세요∼ 송파구 신천동의 ‘삼성 어린이 박물관’은 국내 최초로 문을 연 어린이를 위한 체험식 박물관이다. 건축 현장속의 일꾼이 되어 집을 짓는 건축 과정을 직접 경험해 보는 ‘우리집은 공사중’, 성장과 노화를 주제로 시간 여행을 떠나보는 ‘나는 나는 자라요’ 등 흥미로운 전시관들로 구성되어 있다. 용산 전쟁기념관 기획전시실에 있는 ‘별난 물건 박물관’은 말 그대로 전 세계의 상식을 깨는 재미있고 특이한 물건들을 보고, 손으로 만지면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이 곳은 전 세계에서 모은 300여 가지의 전시물들이 소리, 빛, 과학, 움직임, 생활 등 다섯 가지 테마로 전시되고 있으며, 다른 박물관과 달리 매달 전시물이 새로 바뀐다. 손가락 두 마디보다 작지만 정규방송이 흘러나오는 초미니 컬러 텔레비전, 거울의 반사각을 이용해 반듯이 누워서도 텔레비전을 볼 수 있게 만든 ‘귀차니스트 안경’ 등 기발한 물건들을 접할 수 있다. 별난 물건 박물관 김덕연 관장은 “상식과 고정관념을 깨는 엉뚱한 물건들을 통해 과학적 원리를 체험할 수 있어 어린 자녀들의 창의력 키우기는 데 관심이 많은 학부모들에게 호응을 얻고 있다. 이색적인 것을 함께 체험하고 싶어하는 젊은이들에게도 인기가 많다.”고 설명했다. ●떡, 농기구 등 통해 소박한 서민문화 엿봐 종로구 와룡동에 위치한 사단법인 한국 전통음식 연구소 2,3층에는 사라져가는 옛 부엌살림과 유물들을 모은 ‘떡·부엌살림 박물관’이 있다. 이 곳에는 연구소 윤숙자 소장이 20여 년에 걸쳐 수집해 온 사라져 가는 우리의 옛 부엌살림과 떡 관련 소장품 2000여 점이 주제별, 재료별, 용도별로 전시돼 어제와 오늘의 음식문화와 부엌살림을 비교해 볼 수 있다. 오는 8월7일부터는 2주일 동안 ‘여름방학 기획-어린이와 함께하는 떡과 차 이야기’ 특별기획 전시 및 체험학습 행사가 마련된다. 떡살과 다식판 등 떡을 만들 때 사용하던 전통 조리기구 전시는 물론 떡과 차를 먹을 수 있는 기회도 있다. 중구 충정로에 있는 ‘농업박물관’은 선사시대에서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한국 농업의 발달과정과 전통 농기구의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몄다. 농업관련 유물과 전통장터 등 옛 생활상을 볼 수 있으며, 우리 쌀과 출산물의 우수성을 알리는 홍보관도 마련되어 있다. ●박물관이야, 카페야? 쉬며, 구경하며 즐기는 박물관 종로구 삼청동의 ‘부엉이 박물관’에 가면 부엉이를 주제로 한 미술품과 공예품 2000여점을 만나볼 수 있다. 고풍스런 분위기로 꾸며진 카페 스타일의 이색박물관으로 테이블이 마련되어 있어 차를 마시면서 전시품을 즐길 수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부엉이를 주제로 한 아기자기한 소품들은 어린이 손님은 물론 어른들에게도 인기만점이다. 2002년 문을 연 북촌 ‘가회 박물관’은 인간의 삶과 염원이 담겨있는 부적과 민화를 전시하고 있다. 한국 고유의 정취를 느낄 수 있도록 설계된 전통 한옥 전시실에는 옛 사람들의 진솔한 감정이 담겨 있는 민화와 주술적 신앙이 반영되어 있는 벽사그림, 통일신라시대의 인면와(人面瓦), 귀면와(鬼面瓦)와 각종 부적들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 한 켠에는 관람객이 직접 부적을 찍고, 귀면와를 탁본할 수 있는 체험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가회 박물관은 도심 속의 숨어있는 휴식공간이기도 하다. 전남 나주 동원사에서 직접 가져온 녹차가 무료로 제공돼 박물관 마당에 있는 통나무 의자에 앉아 민화를 감상하면서 한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인사동을 거슬러 견지동 쪽으로 오르는 골목 깊숙한 곳에 자리잡고 있는 ‘목인 박물관’은 전통 인물 및 각종 동물의 모습을 조각한 목조각상 3000여 점을 소장하고 있는 국내 유일의 목조각상 전문박물관이다. 전시품은 마을의 수호신 역할을 했던 장승, 무덤에 부장용으로 쓰였던 목용(木俑), 불상이나 동자상 같은 종교적 의미의 목조각상, 망자를 저승세계로 모시는 역할을 했던 상여 장식용 조각, 귀신을 물리치고 복을 비는 용도로 각종 신당에 쓰였던 신상(神像) 등이다. 목인 박물관은 담쟁이 넝쿨로 둘러싸인 운치있는 벽돌집으로 옥상정원과 지하 라운지가 마련되어 있다. 이 곳에서는 모든 관람객에게 제공되는 녹차와 음료 등을 즐길 수 있으며, 역사와 민속, 미술 분야와 관련된 간단한 도서도 열람할 수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종로구 9개 사립박물관 여름방학 연합전시회 종로구에 있는 9개 사립 박물관들이 여름방학을 맞아 연합전시회를 열기로 했다. 자녀의 손을 잡고 멀지 않은 도심에서 열리는 각양각색의 멋과 지혜의 향연을 즐겨보는 건 어떨까. 연합전시회에 참가하는 박물관들을 미리 가봤다. 전시회는 7월30일부터 8월16일까지 대학로 마로니에 공원과 방송통신대 담 사이 골목길에 자리잡고 있는 ‘쇳대박물관’에서 열린다. 쇳대박물관은 말 그대로 열쇠와 자물쇠를 모아놓은 곳으로 통일 신라시대, 고려시대, 조선시대 등에 사용되었던 우리 자물쇠의 아름다움과 과학적 우수성을 알리기 위해 건립됐다. 아프리카와 유럽 등의 옛 자물쇠도 전시하고 있다. 북촌의 ‘세계 장신구 박물관’에서는 아시아와 유럽은 물론 아프리카와 중남미 등의 유서 깊은 장신구를 볼 수 있다. 전시관 중 ‘엘도라도 방’에 있는 10∼16세기 남미 인디오 원주민들의 추장 임명의식을 형상화한 황금으로 만든 뗏목 장식은 전 세계에 5개밖에 존재하지 않는 귀중한 소장품이다. 지난 2004년 쓰나미 발생 이후 발견된 ‘재난 속의 보물’인 인도네시아의 악어 이빨과 멧돼지 송곳니로 된 남성용 목걸이도 보는 이의 감탄을 자아낸다. 장신구 박물관 맞은편 길을 따라 정독도서관 쪽으로 내려가다 보면 신비한 분위기의 ‘티베트 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이 곳에서는 척박한 고원에 불교왕국을 일군 티베트인들의 미의식을 보여주는 다양한 공예품과 복식 등을 접할 수 있다. 사원에서 축제 때 썼던 가면과 정신적 지도자로 섬기던 승려를 본떠 불상처럼 만든 ‘조사상’도 인상적이다. 관련 전문서적도 구입할 수 있으며, 직원이 전시물에 대해 간단한 안내도 해준다. 혜화동 로터리에 있는 ‘짚풀 생활사 박물관’은 말 그대로 지푸라기 하나하나를 엮어 만들어낸 살림살이를 통해 우리 민족 특유의 정신문화를 보여주고 있다. 짚풀 관련 자료만 3500여 점이 모여 있으며, 볏짚과 보릿짚으로 여치집이나 달걀꾸러미 등도 만들어 볼 수 있다. 짚풀을 연구해 세운 세계 유일의 박물관이다. 종로구 원서동과 창신동에 각각 본관과 별관을 두고 있는 ‘한국불교미술박물관’은 불화, 나한상 등 격조 높은 불교미술품들을 전시하고 있다. 별관인 ‘안양암(安養庵)’은 오래된 절 자체가 박물관이 돼 조선 말기 사찰 건축을 감상할 수 있는 보너스도 있다. 남산 기슭에 자리잡고 있는 ‘초전섬유-퀼트박물관’은 국내 유일의 섬유예술박물관이다. 사라져 가는 한국 전통 조각보 기법을 전승하고 한국섬유예술을 세계화하기 위해 만들어진 박물관은 세계의 전통섬유 직물전 등 퀼트와 텍스타일 분야를 넘나드는 다양한 기획전을 개최하고 있다. 구기동에 있는 ‘삼성출판 박물관’은 여러 점의 국보급 전적을 비롯해 희귀 양장본에 이르기까지 10만여 점 이상의 전적과 관계자료를 소장, 전시하고 있다. 개관 16돌을 맞은 터줏대감으로 우리나라 출판 인쇄문화 1300년 역사를 고스란히 보여주고 있다. 유지혜기자 wisepen@seoul.co.kr ■ 효과적인 박물관 관람법 박물관에 가면 방대한 전시물을 다 둘러보지도 못하거나 노트에 전시품에 대한 설명만 빽빽이 베껴 가지고 나오기 일쑤다. 하지만 박물관 감상에도 나이별, 주제별로 요령이 있는 법이다. 영유아들에게는 지식 학습보다는 박물관이 즐거운 곳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 중요하다. 오감을 이용해 느낄 수 있도록 체험이 가능하거나 부모들이 함께 활동할 수 있는 박물관이 좋다. 아이들이 보는 그림책에 자주 등장하는 과거와 현재의 동·식물을 모두 감상할 수 있는 자연사 박물관도 좋다. 하지만 아이가 방대한 양에 지겨워하지 않도록 궁금해하는 것 위주로 몇 가지만 아쉬운 듯 둘러보고 나오는 것이 좋다. 초등학교 저학년부터는 상설전을 아이들의 시각에 맞게 재구성해 체험 위주의 전시를 하고 있는 국공립 박물관의 어린이박물관을 이용해 보자. 조선시대를 대표하는 궁궐과 유적은 조선시대의 정치사와 문화사를 이해할 수 있는 초등학교 고학년 때 찾는 것이 좋다. 독립기념관, 전쟁기념관 등의 역사인물기념관이나 백범기념관, 유관순기념관 등의 인물박물관은 근현대사의 배움터로 활용할 수 있다. 과학관은 보다 폭넓은 지식을 접할 수 있도록 교과서 단원에 맞춰 방문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인터넷 홈페이지 등을 통해 박물관에서 현재 벌어지고 있는 행사를 실시간으로 확인하거나 책과 언론보도 등의 자료를 미리 읽어보고 가는 것도 효과적인 감상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박물관 관람 뒤 견학보고서를 쓸 때는 획일화된 형식을 벗어나도록 많은 가능성을 제시해 보자. 그림으로 표현하기, 당시 시대상황 상상하기 등 자율적이고 다양한 형식의 보고서는 아이들 스스로 의문을 던지고 그를 해결하기 위해 또 다른 지식을 습득하는 연결고리가 되어줄 수 있다. ■ 도움말 ‘내 아이의 즐거운 박물관(프리미엄북스)’ 저자 오명숙 ‘새롭게 보는 박물관학교’ 대표
  • 가족과 떠나는 템플스테이

    가족과 떠나는 템플스테이

    산사(山寺)에 가면 특별함이 있다. 정갈하게 빗질된 산사의 앞마당을 보노라면 아등바등 살아가는 속세의 때가 문득 느껴진다. 여유도 없이 다람쥐 쳇바퀴 돌듯 하루하루 일상에 쫓겨 사는 중생의 한계라고나 할까. 그래서 한번쯤 복잡한 도심을 떠나 숲이 우거진 산사에서 자신을 들여다보고 싶어진다. 마음을 찾아가는 여행, 속세와 잠시 인연을 끊고 마음의 휴식과 사색·명상 등 여유를 느낄 수 있는 편안한 시간, 즉 ‘산사 체험’이 우리들에게 편안하게 다가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혼자도 좋고, 가족과 함께라도 좋다. 근처 산사를 찾아 하룻밤을 지내며 몸과 마음에 진정한 휴식을 맛보자. 글 사진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올 한해도 벌써 절반이 지나가고 있다. 앞뒤 돌아볼 겨를도 없이 숨가쁘게 달려 왔다면 이제는 ‘중간점검’을 해야 하지 않을까. 그래서 이번 주는 충남 서산 도비산 자락에 자리잡고 있는 부석사를 찾았다. 녹음이 우거진 6월의 산사에는 짙푸른 나무들이 주는 편안함뿐 아니라 고즈넉한 절집, 깨끗한 물과 공기, 바람따라 춤을 추며 맑은 소리를 내는 풍경, 듣고만 있어도 마음을 씻어주는 불경 소리에 세상 시름을 잠시 놓게 하기에 충분하다. 일상에 지친 몸과 마음을 쉬게 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름 모를 야생화와 나무들도 돌아보고 천수만의 철새를 보며 생명의 존귀함까지 느끼게 하는 알찬 체험이 가득하다. #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 충남 서산에서 어렵게 부석사를 찾아 차를 세웠다. 눈을 들어 쳐다봐도 절의 모습은 보이지 않고 아름드리 나무들이 만든 터널 아래 잘 정돈된 돌계단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부석사의 일주문인 사자문. 양쪽에 사자가 버티고 서 있다.‘입차문래 막존지혜.’(이 문안에 들어오는 사람은 지혜를 갖지 마라.)라는 글귀가 마음을 사로잡는다. 그래 이제 일주문을 지났으니 세속의 모든 인연과 지식을 벗어버리고 나를 한번 찾아보리라는 ‘결의’를 다지며 계단을 걸었다. # 새소리가 그리우면 부석사로 가라 “휘리∼릭” 휘파람을 불자 새 한 마리가 스님 손에 앉아 무엇인가를 물고 다시 날아간다.“신기하지요.”라며 저두(합장하며 목례를 건네는 것)를 한다. 이어 스님은 “제가 여기 주지인 주경이라 합니다. 우리 부석사는 자연과 인간이 하나임을 느끼게 하는 곳입니다.”고 하더니 “우리가 살면서 항상 자신에게만 집중했다면 여기서는 다른 생명들도 생각하고. 또 늘 보기는 했지만 보지 못했던 세계를 느끼고 가는 소중한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겁니다.”라고 묵직한 화두를 던진다. 햇살이 길게 그림자를 드리우자 갖가지 새들이 끊이지 않고 날아들고 또다시 산으로 날아간다. 아니 무슨 새들이 절 주변에 이렇게 많다니 정말 신기하네…. 새들이 모여드는 것은 생명을 소중하게 생각하는 부석사의 정신 때문이다. 겨울철에 새들의 먹이통을 매달아주고, 툇마루에도 새들의 먹이를 항상 놓아둔다. 그것도 모자라 스님과 보살들 주머니에는 항상 새 먹이를 가지고 다닌다. 보은에 화답하듯 새들도 아름다운 노래로 스님들에게 즐거움을 전해준다.‘삐리릭’,‘지찌릿 찍’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새들만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끊이지 않는다. # 나무 향이 가득한 산사 산사에 가면 항상 마음이 편안해지는 이유 중 하나가 좋은 공기와 나무에서 뿜어내는 각종 발산물질인 피톤치드가 있기 때문. 도비산 중턱에 자리잡은 부석사 주변에는 아름드리 나무들이 숲을 이루고 있다. 아침 안개가 걷힐 무렵 스님과 함께 떠나는 산책은 말 그대로 ‘보약 세첩’이다. 도비산 정상까지 빠른 걸음으로 30분. 우거진 나무들을 친구 삼아, 그들이 뿜어내는 피톤치드를 마시며 지저귀는 새소리에 가볍게 발걸음을 옮기다보면 어느새 정상이다. 이렇게 자연으로 둘러싸인 부석사에서의 아침은 도심에서 맛볼 수 없는 싱그러움이 느껴진다. # 108배, 그리고 철새야 놀자 때마침 주말을 이용해 30여명이 템플스테이에 참가했다. 주경 스님은 저녁 공양 후 이들과 녹차를 마시며 차담을 나누고 기본적인 참선 수행 방법을 가르쳐준다. 가부좌를 튼 상태에서 눈을 반쯤 뜨고 숨을 내쉬었다 들이쉬며 1에서 20, 다시 20에서 1로 마음속으로 숫자를 세면서 호흡을 한다. 호흡하며 수를 세는 동안 잡념과 망상에 빠지지 않도록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탁 탁 탁’하고 경쾌한 죽비소리에 따라 호흡을 가다듬다보면 상사와 불화, 집안 걱정, 미래에 대한 두려움이 어느덧 가슴속에서 사라진다. 다음날 새벽 4시 맑은 목탁 소리에 산사는 잠에서 깨어난다. 아침예불(참가는 자유)을 마치고 올리는 108배.‘어떻게 절을 하나.’라는 생각이 들지만 막상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처럼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면 108번째 절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새벽 미명이 세상을 밝힐 때쯤 모두 모여 아침 참선을 했다. 이어지는 ‘울력’은 커다란 빗자루를 들고 절 마당을 쓸기도 하고 호미로 주변의 잡초를 캐는 시간. 처음 빗질을 하는 아이들에겐 마냥 신나는 시간. 문득 자신의 마음을 닦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아침 공양 후 천수만 간월호와 그곳으로 흐르는 해미천 철새 탐조 시간. 이는 부석사만이 간직한 특별종목이다. 출발 전에 절 마당에서 스코프(망원경) 사용법과 철새 보는 법 등의 교육을 받고 떠난다. 천수만 습지 연구센터 생태학교장 한종현(서산 서일고 교사)씨가 강사로 나선다. 천수만 일대 서산 간척지는 각종 철새들의 서식지로 유명하다. 길다란 빨간 다리로 성큼성큼 걸어다니는 장다리물떼새의 아름다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다. 또한 모내기를 막 끝낸 논에서 하얀 날갯짓을 하는 새백로와 중백로. 회색의 깃털이 아름다운 왜가리의 움직임에 아이들은 물론이고 어른들까지 탄성을 자아낸다. “여러 가지 곤충과 새 등 자연과 함께 하는 시간이 너무 좋았다.”는 김진선(21·한서대)씨,“도심에서 전혀 느껴보지 못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는 공영실(30·부산)씨. 다들 푸른 숲속에서 몸과 마음을 잠시 놓아두고 스스로를 들여다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일 뿐 아니라 평소 관심을 두지 않았던 새로운 생명에 대해 배우고 공부하는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소감을 피력한다. ■ 산사체험 여기가 좋아요 충남 서산 부석사(041-662-3824,www.busoksa.com)의 산사 체험은 말 그대로 자연과 함께 하자는 취지로 시작했다. 참선과 발우공양, 그리고 각종 철새에 대한 공부, 탐조 등을 할 수 있는 국내에서 유일한 곳이다. 부석사는 단체뿐 아니라 가족들이 함께 머물 수 있는 조그만 황토방 10개를 갖추고 있다.충남 공주 마곡사(041-841-6221)는 마음 바로보기, 감사명상, 편지쓰기 등 독특한 프로그램으로 욕심을 버리고 자신과 주변을 돌아보며 마음을 비우는 자비명상 체험을 진행하고, 전남 보성 대원사(061-852-1755)는 직접 관에 누워보는 저승체험 등을 통해 ‘죽음’에 대해 생각해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한다.경북 경주 골굴사(054-744-1689)는 전통 무예와 불교의 참선을 결합한 선무도 수련체험으로 외국인에게 인기.충남 공주 갑사(041-857-8981)는 선체조와 호신술인 불무도를 체험할 수 있다. 자세한 내용은 조계종 산하 한국불교문화사업단 템플스테이 사업팀(02-732-9925),www.templestay.com을 참조하면 된다.www.pusoksa.org
  •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전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전

    사립박물관은 국립박물관에 비해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쉽지 않다. 특별전 등을 자주 여는 것도 아니고, 소장 유물을 잘 공개하지 않는 곳도 있다. 이런 점에서 국내 3대 사립박물관 중 한 곳으로 꼽히는 호림박물관(관장 오윤선)이 23일 개막하는 특별전 ‘호림박물관 소장 국보전’은 눈여겨볼 만하다. 박물관이 수십년간 모은 명품 130여점을 엄선해 선보인다. 전시되는 소장품 중에는 국보 8건 16점과 보물 44건 49점, 서울시유형문화재 6건 6점 등이 들어 있다. 박물관이 소장한 1만여점 가운데 분야별로 손꼽히는 유물이다. 전시는 두 주제로 구성된다.1주제 ‘현재의 국보’에서는 국보·보물 등 국가지정문화재 65점을,2주제 ‘미래의 국보’는 서울시유형문화재 지정품 등 국가지정 문화재에 준하는 명품을 볼 수 있다. ‘닭모양 토기’(鷄形土器) 등 초기철기시대와 삼국시대에 제작된 토기류와 함께 청자·백자·분청사기로 나뉘는 도자기류, 불상·불화 등 불교미술, 초조대장경 등 전적류가 관람객을 맞이한다. 청자류로는 순청자로서 비색과 곡선미가 일품인 ‘청자음각연화문팔각장경병’(보물 1454호) 등이 주목된다. 철화청자인 ‘청자철채각기퇴화연당초문장고’는 현존하는 유일한 실물로, 이번에 처음으로 공개된다. 이와 함께 상감청자인 ‘청자상감운학문매병’ 등도 처음 모습을 드러낸다. 불교미술에서는 고려시대 작품인 ‘금동탄생불’(보물 808호)과 ‘금동대세지보살좌상’(보물 1047호)이 손꼽힌다. 고려시대 불화인 ‘지장시왕도’(보물 1048호)는 화사한 색감과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사경 코너에는 한 질이 온전하게 남은 보기 드문 실물인 ‘백지묵서묘법연화경’ 권1∼7(국보 211호)과, 가장 화려한 것으로 평가받는 ‘감지금니대방광불화엄경보현행원품’ 권34(보물 752호) 등이 선보인다. 실물이 드문 조선시대 사경인 ‘감지금니묘법연화경’ 권1∼7도 처음 공개된다. 출품되는 전적류 또한 화려하다. 초조대장경은 국내에 200여축이 남아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고, 대부분 호림박물관 소장품이다.‘초조대방광불화엄경’ 권2와 75(국보 266호),‘초조본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국보 267호) 등이 그것이다. 전시는 8월31일까지.(02)858-2500,3874. 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2년 기다림끝에 난민 인정 직장 잡아도 카드발급 거부

    2년 기다림끝에 난민 인정 직장 잡아도 카드발급 거부

    항상 밝은 미소를 머금고 있는 방글라데시인 로넬 차크마 나니(38). 그러나 그의 눈가와 입매에 드리운 주름에는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고통과 절망의 그림자가 스쳐 지나간다. 우리는 그를 난민이라 부른다. 20일은 6번째를 맞는 세계 난민의 날. 인종·종교·국적·정치적 의견 또는 특정 집단의 구성원이란 이유로 박해를 당할 우려가 있어 조국에 돌아갈 수 없는 난민들은 더이상 국제뉴스에만 존재하지 않는다.1994년부터 지금까지 한국에서 880명이 난민 지위를 신청,48명이 인정받았고 수천명이 난민 지위를 기대하며 우리와 함께 호흡하고 있다. 하지만 정부나 사회의 난민에 대한 이해와 관심, 정책의 부재는 심각하다. 난민의 날을 맞아 국내 정책의 현주소를 확인하기 위해 2004년 12월에 난민 인정을 받은 로넬을 그가 ‘만년 총무’로 일하고 있는 줌마민족네트워크 한국지부(JPNK·경기도 김포시 대곶면)에서 만났다. 로넬은 방글라데시에서 자신이 속한 소수 민족인 줌마족의 권리를 지켜내는 활동을 하다 3년의 옥고까지 치른 ‘과격 운동권’이었다. 정보기관의 감시에 견딜 수 없게 된 그는 1994년 4월 한국으로 탈출했다. 3년 뒤 정부와 줌마족의 협정이 체결되면서 평화를 기대하며 고국에 돌아간 그는 다시 탄압이 이어지자 2000년 3월 한국에 돌아왔다. 조국에 남아있던 아내 졸리 데완(29)과 아들 주니(7)를 데려온 것은 그로부터 3년6개월 뒤였다. ●통역도 없이 심사… 난민인정 이유도 몰라 로넬과 가족은 각각 2년2개월과 1년을 기다린 끝에 난민 인정을 받았다.“출입국 관리 직원과 면담을 열 몇차례인가 했습니다. 왜 한국에 왔느냐, 왜 불법 체류를 하다가 난민 신청을 했느냐,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활동을 했느냐, 직장은 어디냐,JPNK는 어떤 활동을 하느냐 등등 똑같은 질문을 수십번 되풀이했습니다.” 답답하고 막막하기만 했다. 방글라데시어 통역이 자리를 함께한 기억도 전혀 없다.“왜 2년씩이나 심사를 끌어야 하는지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더군요. 늦어지는 이유를 알아야 기다려도 막막하지 않을 텐데 말이지요.” 기약 없는 기다림처럼 사람을 지치게 하는 것도 없다. 아들 주니를 유치원에 보내도 좋은 건지, 자신과 아내는 취업할 수 있는 건지, 난민 인정을 받으면 과연 무엇이 달라질지 누구도 설명해 주지 않았다. 그가 JPNK의 만년 총무로 일하는 것도 다른 줌마족 신청자들의 답답한 속내를 누구보다 잘 알기 때문이다. 어설픈 한국말을 늘어놓다가 낭패 보는 일이 없도록 그는 열일 제쳐두고 발품을 판다. 자신이 난민 인정을 받게 된 결정적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으니 고국에서 탄압받은 경력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법무부 처분서를 보면 난민협약의 난민 정의를 인용하면서 ‘사실상 난민이기 때문에 난민이다.’라거나 ‘난민에 해당하지 않으므로 난민이 아니다.’는 식으로 돼 있는 경우가 많다. 난민으로 인정받건, 그렇지 않건 간에 어떤 신청자도 그 사유를 정확히 알지 못한다. 난민으로 인정받은 뒤 달라진 것이 있는지, 가장 힘든 것이 무엇인지 물었다.“난민으로 인정됐다는 것, 난민으로 인정되게 된 박해의 가능성 등에 대해 전혀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뭔가 많이 해주기를 바라지는 않지만 인정 후에도 관심이 없고 난민에게 도움이 되는 정책이 전혀 없습니다. 한두 번 전화 걸어 확인하는 것이 전부입니다. 잘 지내느냐, 지금 사는 집은 전세냐 월세냐, 직장 전화번호를 알려달라는 것이 고작입니다.” ●돌아갈 곳 없어 한국이 유일한 희망 로넬은 현재 조그만 가구공장에서 1년째 일하고 있다. 한국에 온 뒤 가장 오랫동안 몸담은 직장이다. 걸핏하면 난민 심사를 위해 자리를 뜨는 그를 공장주들이 곱게 봐줄 리 없었다. 그의 가장 큰 걱정거리는 주니의 앞날. 여느 한국 아이처럼 장난감, 컴퓨터, 하얀 종이와 크레파스를 좋아하는 주니가 좀 내성적이긴 하지만 친구들과 곧잘 어울려 그나마 위안이 되고 있다. 어린이날에는 어려운 집안 형편에도 과천 서울랜드에 다녀왔다. “학자금 대출을 받을 수 있는지, 나중에 좋은 직장을 구해 잘 생활해야 할 텐데, 이런 것들이 걱정이에요. 이런 아이들이 자라서 한국 사회에 좋은 기여를 할 수도 있을 텐데, 그저 무거운 짐으로만 여기는 이들이 많은 것 같아요.” 1년이나 다닌 직장이 있지만 그에게는 신용카드 한 장 없다. 은행에서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발급해 주지 않았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도 가입이 안 되는 곳이 많다. 직장의료보험은 난민 인정 뒤 겨우 가입됐다. 어리석은 질문이라 생각하면서도 왜 하필 한국을 택했는지 물었다.“민주화를 배워야겠다는 생각도 있었고 불교가 자리잡고 있는 점, 그때까지 줌마족 활동이 없는 곳이란 점도 감안했어요.” 많은 실망을 안겨 주었음에도 로넬은 한국에서 희망을 찾고 있다. 돌아갈 수 없기에 머무를 수밖에 없는 이들. 우리가 그들을 ‘짐’으로 생각하기에는 그들이 우리에게 줄 것, 우리가 그들에게 배울 것이 너무 많다. 황필규 객원편집인 공익변호사그룹 ‘공감´ 변호사 hopenvision@naver.com
  •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부산에서 서울까지 다시 걷는 옛길] (5) 대구길

    청도 옛길은 팔조령을 넘어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으로 들어선다. 가창은 지난 1995년 경북도에서 대구시로 편입된 곳이다. 편입된 지 10년이 넘었지만 아직 시골풍경이 완연하다. 날씨마저 흐려 퇴비 냄새가 진동했다. 그러나 지방도 확장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고 곳곳에 러브호텔이 들어서 개발의 손길이 턱밑까지 왔다는 느낌이다. 팔조령 아래 녹문삼거리는 새로운 도로가 개설돼 녹동서원과 남지장사를 찾는 사람만 지나가는 한적한 곳으로 전락했다. 녹문삼거리에서 2㎞쯤 가면 벌판 한가운데 위치한 데서 유래됐다는 ‘들마마을’이 나온다. ●얼음같이 찬 ‘냉천´ 하루 5000명 발길 오동원을 거쳐 30번 지방도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처음으로 큰 건물을 만난다. 한국마사회가 운영하는 장외경마장이다. 여기서부터 위락시설과 음식점 등이 빼곡하게 들어서 있다. 그중 가장 우뚝한 봉우리인 최정산 자락에 허브힐즈(구 냉천자연랜드)가 자리잡고 있다. 가창면 냉천2리 정동곡(50) 이장은 “냉천은 최정산 골짜기와 청도 팔조령에서 흘러 내려오는 물줄기가 가창면 주리에서 만나면서 큰 계곡을 만들고, 이 물이 얼음같이 차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 소주회사가 냉천의 물로 소주를 만들 만큼 수질이 좋아 주말에는 하루 5000여명의 대구 시민들이 물을 받기 위해 몰려 든다. 옛길은 냉천에서 파동을 거쳐 신천을 넘어 대구 시내로 들어간다. 파동은 수성못 입구에서 가창까지 난 길이 곧다고 해서 ‘니리미, 파잠, 파집’ 등으로 불렸다. 파동에서 상동교를 거쳐 대봉네거리, 봉산육거리로 이어진다. 이 길은 비교적 곧게 연결돼 있다. 대봉네거리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틀면 건들바위가 나온다.4m 높이의 건들바위는 대구시 기념물 2호로 지정돼 있다.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바위의 모양이 삿갓을 쓴 노인과 같다고 해서 ‘입암바위’ 즉 ‘삿갓바위’라고도 불리고 있다. 원래 이 바위 앞에는 냇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1776년(조선 정조1년) 대구판관으로 부임한 이서가 이 일대의 하천 범람을 막기 위해 제방을 만들면서 물줄기가 신천으로 돌려져 물이 흐르지 않게 되었다. 대구시가 1994년 건들바위 종합조경공사를 실시하여 분수와 폭포를 새로 설치하고 물이 흐르도록 하여 옛 정취를 그대로 느낄 수 있게 하였다. 건들바위 뒷산은 조선 순조 때부터 정오를 알리는 대포가 설치돼 오포산으로 불렸다. ●약령시 주변 전국서 사람 모여들어 봉산육거리에서 성밖 골목을 지난 옛길은 서문시장과 원대동으로 이어진다. 성밖 골목은 계산동과 대구읍성 남쪽 성곽사이에 난 길이다. 대구시 거리문화시민연대 권상구(32)국장은 “성밖 골목은 전정리라고 불렸으며 우리말로 풀이하면 앞밭골, 앞밖걸”이라고 말했다. ‘대구 천주교사’에는 ‘앞밖걸엔 천주교 신자였던 상인이 많았다. 이들중 중심인물은 최철학이란 사람이었으며 그는 1890년대부터 대구지방 보부상단의 도회장으로 활약했다.”고 적혀 있다. 권 국장은 “성밖 골목은 대구를 지나는 교통요지였으며 넓이는 크게 줄어들어 지금은 차가 지나다닐 수 없는 전형적인 골목이 되었다.”고 밝혔다. 그는 또 “이곳은 서문시장과 남문시장이 만나는 길목이라 일찍부터 자유시장이 형성되어 있었다.”고 덧붙였다. 성밖 골목에는 약령시의 보조기능을 하는 상점들과 업체들이 들어섰다. 권 국장은 “약령시 주위에는 유생과 한약종상은 물론 한약재를 수집하여 판매하는 중간상인과 객주, 거간 등과 관련되는 한의약업인이 모여들었다.”며 “전국에서 온 사람들이 약을 팔고 사면서 여러 날을 이 일대에서 보내야 했고 자연스럽게 성밖 골목 주변은 객주집과 여각이 성업을 이루었다.”고 설명했다. 큰 장으로 통했던 서문시장은 약령시와 함께 전국 상권을 주도했다. 대구문화육성추진협의회 손필헌(72) 위원은 “당시 서문시장은 현 섬유회관 맞은편인 오토바이 골목 일대에 있었다.”며 “성주, 고령, 의성, 김천 등 대구에서 상당히 떨어진 곳에서도 2일과 7일 장날에 장꾼들이 모여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는 “현재 서문시장 자리에는 천황지라는 못이 있었으며 1923년 이를 메워 옮겼다.”고 곁들였다. ●관문동 ‘밤숲´ 수백가마 알밤 따기도 서문시장을 빠져 나온 사람들은 달성지구대와 자갈마당을 지난다. 달성지구대 건너편에는 달성공원이 자리잡고 있다. 달성공원은 대구시민의 오랜 휴식처다. 손 위원은 “고려 중엽 이후 달성 서씨가 대대로 살던 사유지였으나 조선 세종 때 국가에 헌납했다.”면서 “1905년 공원으로 조성됐으며 1967년 5월 대구시가 현재의 대공원으로 만들었다.”고 밝혔다. 집창촌인 자갈마당은 행정명으로 중구 도원동이다. 낮시간이라 그런지 다른 상가지역과 다름없이 보였다. 도원동은 복숭아 나무가 많아 그렇게 불렸다는 설이 있다. 한때 700명이 넘는 윤락녀들이 모여 호황을 누렸으나 윤락행위방지법 시행 뒤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단다. 경부선 철길이 지나는 지하차도를 건넌 옛길은 달성초등학교를 거쳐 원대오거리로 향한다. 지명에 ‘원’이라는 글자가 있는 것으로 보아 대구 북부의 관문인 원이 위치했던 데서 유래했지만 그 자리는 찾을 길이 없었다. 금호강을 건너면 또 한번 쉬어갈 곳이 나온다.‘밤숲’이다. 현재의 북구 관문동 동양자동차학원 부지 일대다. 이 일대는 밤나무가 무성해 가을걷이 때는 수백가마의 알밤을 땄다고 전해진다. 대구의 강북으로 불리는 이곳도 최근 아파트단지가 잇따라 들어서는 등 급성장했다. 러시아워 때는 차량이 밀려 팔달교를 통과하는 데 상당한 곤욕을 치러야 한다. 금호강을 건넌 옛길은 현 금호인터체인지에 못미쳐 난 경부고속도로 지하 굴다리를 통과해 경북 칠곡군으로 넘어간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조선에 투항한 日장수 모셔져 있는 ‘녹동서원’ 일본 관광객이 대구에 오면 꼭 들르는 곳이 있다. 바로 대구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 있는 녹동서원이다. 이 서원은 조선시대 김충선 장군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김 장군은 1592년 임진왜란 당시 일본 장수이다. 일본 이름은 사야가. 그는 임진왜란 당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에 회의를 품고 전투를 포기한 채 경상도 병마절도사 박진에게 투항했다. 김 장군은 임진왜란 동안 화포 및 조총 만드는 법과 사용기술을 조선군에게 전수했다. 또 왜적이 점령한 18개 지역의 성을 탈환하는 등 혁혁한 전공을 세웠다. 권율 장군과 어사 한준겸이 선조에게 간청해 정이품인 정헌대부에 올랐으며, 선조가 그에게 ‘사성 김씨‘라는 성을 하사했다. 그는 1600년부터 우록리에 둥지를 틀었다. 녹동서원은 1789년(정조 13년)에 창건됐으며 김 장군의 후손과 인근 유림들이 봄·가을로 제향하면서 그의 넋을 기리고 있다. 서원 주변에는 녹동사와 숭의당, 향양문, 장군의 이력과 공을 새긴 유적비, 장군의 묘소 등이 있다. 또 충절관에는 임진왜란 때 사용된 조총을 비롯해 모하당(김 장군의 호) 문집과 친필 등 유품, 유물이 두루 전시돼 있다. 연간 2만여명의 관광객이 이 서원을 찾고 있으며 이중 일본인이 5000여명에 이른다. 김 장군의 후손 중에는 법무장관과 내무장관을 지낸 김치열씨 등이 있다. 녹동서원에서 비슬산 쪽으로 1㎞쯤 가면 남지장사가 나온다. 이 사찰은 대한불교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의 말사이다.684년(신라 신문왕 4년)창건되었다. 임진왜란 당시 사명대사가 승병을 훈련시키고 병사들을 지휘한 곳이다. 사명대사는 3000명의 승병을 이곳에서 배출시켰다. 대구 팔공산 동화사 부근의 북지장사와 대칭되는 곳에 있다고 해서 남지장사가 되었다는 유래이다. 왜군에 의해 불탔다가 1940년 중수되었다. 현재는 대웅전과 설현당, 삼성각, 광명류 등이 자리해 있다. 대구 한찬규기자 cghan@seoul.co.kr
  • [책꽂이]

    ●쇼펜하우어 세상을 향해 웃다(랄프 비너 지음, 최흥주 옮김, 시아출판사 펴냄) 철학가 쇼펜하우어는 대표적인 염세사상사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플라톤과 인도 베다철학의 영향을 받은 염세관을 기조로 하는 그의 철학적 인식 방법은 19세기 후반 세기말 현상에 편승돼 널리 보급됐다. 그러나 이 책은 쇼펜하우어를 유머와 재치, 위트가 넘치는 재기발랄한 낙관주의자로 그린다. 쇼펜하우어는 자신의 논문인 ‘웃음론’에서 뿐만 아니라 그의 저서 전반에서 유머라는 정신적 무기를 사용하고 있다는 것이다.1만 4000원.●고이즈미와 일본 광기와 망령의 질주(후지와라 하지메 지음, 황영식 옮김, 시대의창 펴냄) 외조부 마타지로, 아버지 준야 모두 정치인이었던 고이즈미 총리 집안 3대를 축으로 메이지유신 전후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 정치사의 추악한 이면을 다뤘다. 프리랜서 논평가인 저자는 당시 외무장관이었던 다나카 마키코는 단지 정적인 하시모토파에 대한 자신의 원수를 갚기 위해 고이즈미를 총리에 앉혔다고 주장하며 이를 악마의 향연이 시작된 좀비정치의 클라이맥스라고 냉소한다. 포퓰리즘으로 점철된 고이즈미 정권은 틈만 나면 야스쿠니 신사참배를 하며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야스쿠니 유신’ 정권이며, 우정민영화는 공공선이 무너진 천민자본주의라고 비판.1만 5000원.●예수와 유다의 밀약:유다복음(로돌프 카세르 등 옮김,YBM Si-sa 펴냄) 인류 역사상 최악의 배신자 가룟 유다. 그는 위대한 스승이자 절친한 친구인 예수를 배반한 후 죄책감에 시달리다 스스로 목을 매 죽는다고 성서에 묘사돼 있다. 또 다른 성서에는 배가 터져 피투성이가 된 채 죽은 것으로도 나온다. 그런데 유다의 배신에는 석연치 않은 점이 있다. 동기가 불명확하다는 것이다. 은화 30닢에 눈이 멀어, 혹은 사탄의 꾐에 빠져 동고동락한 스승을 죽음으로 몰고갔다는 얘기는 어쩐지 설득력이 부족하다. 유다는 예수의 가르침을 이해하는 유일한 제자였으며, 그의 배신은 예수의 요청에 위한 것이었다는 주장이 담긴 고문서 유다복음 완역본.1만 1000원.●에드워드 사이드 다시 읽기(김상률 등 엮음, 책세상 펴냄) 팔레스타인계 미국인으로 평생을 두 세계의 망명객으로 살았던 사이드. 그는 이슬람문화권에 대한 서구중심적인 재현의 폭력과 서구 지식체계와 담론의 관계를 파헤친 ‘오리엔탈리즘’, 그리고 그 속편격인 ‘문화와 제국주의’를 발표하며 세계적인 학자로 떠올랐다. 탈식민주의의 선구자 사이드의 삶과 비평, 정치를 다룬 이 책은 구체적인 현실을 기반으로 한 사이드 비평의 진보적 성과를 높이 평가하지만 그의 비평이 지닌 담론적 한계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특히 푸코의 이론에서 영향을 받은 결정론적 성격을 문제삼는다.1만 5000원.●달라이 라마와 함께 지낸 20년(청전 지음, 지영사 펴냄) ‘지구촌의 공인된 스승’ 달라이 라마를 20년간 모시며 인도 다람살라에서 수행하고 있는 청전 스님 이야기. 라닥에서의 의료봉사 활동이 눈에 띈다. 라닥은 인도의 오지로 티베트인들이 모여 사는 척박한 땅. 인도 영토이고 인도 국적이다 보니 라닥 사람들은 티베트 난민기금의 혜택도 받지 못하고 인도의 도움도 제대로 받지 못하는 형편이다. 라닥 주민들은 우리와 같은 몽골리언으로 혈통이 똑같다. 그래서인지 우리 약이 잘 듣는다는 것. 저자는 수행하면서 품었던 의문들을 풀기 위해 남방의 여러 근본불교 국가들을 방문한 뒤 다람살라에 정착했다.1만 3500원.●음식의 역사(레이 태너힐 지음, 손경희 옮김, 우물이있는집 펴냄) 동물로부터 먹을 것을 얻었던 유목민들은 새로운 방목지를 찾아 끊임없이 이동해야 했다. 그 결과 농경정착민과 유목민 사이엔 분쟁이 그치지 않았다. 중앙아시아 스텝지대 유목민들은 유럽대륙을 휩쓸고 지나가기도 했고 중국과 인도에도 진출했다. 유목민들은 채소나 과일을 거의 먹지 않지만 동물 피와 비타민C가 모유의 2배, 우유의 4배나 들어있는 말젖을 먹음으로써 원기와 활력을 유지할 수 있다. 인류 음식문화의 서사시라 할 만한 책.1만 8000원.
  • “당장 국보로 지정해도 손색없다”

    “예상했던 것보다 작품들이 훨씬 뛰어납니다. 남한에 있었으면 당장 국보로 지정될 만한 것들이 많아요.” 13일부터 국립중앙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시작된 ‘북녘의 문화유산-평양에서 온 국보들’ 특별전을 둘러본 안휘준(명지대 석좌교수) 문화재위원장은 지난달 4일 서울에 도착한 지 한달 만에 전모를 드러낸 북한의 국보급 유물 90여점에 대해 이렇게 평했다. 특히 고구려 5∼6세기 평양 진피리 7호무덤에서 출토된 ‘금동맞뚫음장식’ 등 상당수 유물들은 가치가 뛰어나 국보로 바로 지정해도 손색이 없다고 했다. 금동맞뚫음장식은 피장자의 머리부분에서 한 쌍으로 출토됐지만 나머지 한 점은 수습되지 않았다. 특별전은 주제별로 ‘선사문화’와 ‘고구려·발해의 웅비’‘고려·조선의 아름다움’‘고려의 불교공예품’‘고려·조선의 불상’‘고려·조선의 도자기’‘평양와당과 전통회화’‘조선의 또 다른 미학-나전칠기·화각공예’ 등으로 나눠 시대별로 살펴볼 수 있게 했다. 시대별·종류별 분류가 가능한 것은, 북측에서 유물들을 대여할 때 시기별 대표 작품들을 선별해 가져왔기 때문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남한과 북한에 각각 하나씩 전해지고 있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고려시대 금속활자가 같은 박물관에서 만났다는 것.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상설 전시되고 있는 ‘복’자를 새긴 활자와 함께,1958년 개성 만월대 신봉문 터에서 발굴된 ‘전’자를 새긴 활자가 공개됐다. 특별전 시작 전부터 남북을 망라해 일반에 처음 공개돼 눈길을 끌었던 ‘고려 태조상’은 다른 작품들과 별도로 독립된 공간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게 됐다. 예상대로 하반신에 흰 천을 둘렀으며, 어둠 속에서 얼굴이 빛날 수 있도록 조명에 신경을 썼다. 천을 두르지 않은 고려 태조상을 보고 싶다면 중앙박물관이 발간한 도록 ‘북녘의 문화유산’을 참고하면 된다. 도록은 6쪽에 걸쳐 고려 태조상에 대한 사진과 설명을 담았다. 시기별로 고풍스러운 나무패널을 만들어 그 속에 상세한 설명을 담아 관람객들의 이해를 돕고 있다. 유물을 대여해준 평양 조선중앙역사박물관을 비롯, 을밀대·칠성문 등 평양 중심부의 지도와 사진을 곁들인 것도 눈에 띈다. 그러나 개별 작품을 설명하는 패널에는 북한에서 지정한 국보 50점과 준국보 11점에 대한 설명이 없어 아쉬움을 남겼다. 또 김홍도·신윤복·정선·황집중 등의 대표작들이 공개돼 보는 이들의 눈을 즐겁게 했으나 일부 작품들은 색깔이 퇴색됐거나 작가의 진품인지 의심케 하는 부분도 있어 전문가들의 추가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김미경기자 chaplin7@seoul.co.kr
  • 儒林(625)-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8)

    儒林(625)-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8)

    제6부 理氣互發說 제1장 相思別曲(8) 비록 간략하게 ‘집으로 돌아오면 고요한 방안에 책만이 벽에 쌓여있고, 서탁 위에는 분매 한그루가 놓여있다.’고 표현하고 있지만 서탁 위에 놓인 분매 한그루는 바로 두향이가 퇴계를 위해 보내온 정표이니, 퇴계가 ‘비록 옛사람의 대문 안을 들여다보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마음속에 느껴지는 즐거움이 결코 얕지 않도다.’라고 도산을 영탄(詠嘆)하는 것은 두향이가 보내온 분매가 뿜어대는 천향(天香) 때문이 아니었을까. “도대체” 물끄러미 분매를 완상하던 퇴계가 한 곁에 물러서 있던 유생을 쳐다보며 말하였다. “누가 이 매화를 가져왔더란 말이냐.” 그러자 유생이 대답하였다. “웬 낯선 노인 하나가 선생님께 드릴 물건이 있다면서 걸망에서 꺼냈나이다.” “그 노인은 어디 있느냐. 이 매분만을 전해주고 떠나버렸느냐.” “아니옵니다.” 유생은 대답하였다. “아마도 서당 앞 우물가에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나이다. 선생님께오서 매화꽃을 받아보신 후 자신을 부르시면 들어와서 문안인사를 여쭐 것이고, 부르시지 안 사오면 그대로 날이 저물기 전에 서둘러 돌아갈 것이라 하였나이다.” “그러면 어서 가서 그 노인을 들어오도록 하게나.” 퇴계가 고개를 끄덕이자 유생은 알았다는 듯 물러서며 대답하였다. “알겠나이다. 가서 노인을 불러 대령토록 하겠나이다.” 유생은 서둘러 완락재를 벗어났다. 그로서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선생은 서당에서 함께 기거하고 있는 제자들이나 문인을 빼어놓으면 찾아오는 손님을 만나는 일은 거의 없었다. 실제로 ‘퇴계언행록’에 보면 제자 김성일은 스승 퇴계가 ‘손님이 찾아오면 손님 앞에서 말을 하지 않고 침묵을 지켰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퇴계가 문인이나 제자들을 제외하고 찾아오는 손님들 앞에서 침묵을 지켰던 것은 오로지 ‘마음을 휘어잡고 이치를 궁구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퇴계의 이러한 침묵은 마치 화두에 전념하기 위한 불교적 묵언(默言)을 연상시키는 것이었다. 그런 스승께서 남루하기 짝이 없는 낯선 노인을 손님 대접하여 직접 자신의 완락재로 부르고 있음이 아닌가. 과연 노인은 우물가에 앉아 있었다. 노인은 이제라도 먼 길을 떠나려는 채비를 갖추듯 신고 있던 헌 짚신을 버리고 새 짚신으로 갈아 신고 있었다. “뭐라고 하시던가요.” 유생이 나타나자 노인은 일어서면서 물어 말하였다. “선생님께오서 잠시 들어오시랍니다.” 순간 노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내 그럴 줄 알았다 하는 식의 자신만만한 웃음이었다.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23) 마음과 의식의 차이

    우리는 별로 의식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생각이 마음이고, 의식은 분명하게 주제화하는 자의식이나 도덕적 논리적 자각의 깨어 있는 상태를 말한다고 여긴다. 그 말이 대체로 옳다. 마음과 의식의 차이를 비교함은 사전적 의미의 개념을 하나 정리해 보는 것이 아니라, 미래적 문명에 대한 비전을 숙고해 보는 깊은 뜻을 지녔다고 하겠다. 프랑스의 20세기 무신론적 실존철학자 사르트르는 확실한 의식의 철학자다. 그는 사물의 존재양식과 의식의 존재양식을 철저히 구별하여, 사물의 존재양식은 의식없이 멍청한 상태에서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완전한 일치를 이루는 자기동일적 존재로서의 즉자(卽自)존재(being in itself)이고, 인간의 의식은 자기와 자기자신 사이에 늘 거리를 두고 반성하고 자기자신을 부정하면서 자기자신의 어제를 극복하려 애쓰고 있는 대자(對自)존재(being for itself)라고 규정하였다. 그는 또 인간은 매일 자기자신을 스스로를 만들어 가는 그런 투명한 의식의 존재로서 자기만족의 게걸스러운 존재방식을 거부하는 무한자유의 존재라고 인간의 의식을 높이 평가했다. 사르트르에게 명증한 자의식의 포기는 인간의 죽음과 같다. 의식의 철학자 사르트르와 달리 자연스런 마음의 뜻을 가장 철학적으로 정교하게 밝힌 사유는 불교의 유식학(唯識學)이라고 보는 데는 별 이의가 없겠다. 불교의 유식학에 의하면 일체가 다 마음이고, 다 마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이 다 마음으로 만들어진 것인가? 그렇다. 이것을 유식학의 용어로 만법유식(萬法唯識·모든 것은 마음이 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것과 같음)이라 부른다. 마음은 바깥으로 지향하는 탈자(脫自·자기를 벗어남)운동이고, 이 탈자운동으로 마음이 자기의 수준과 차원만큼 바깥에 그림을 무의식적으로 그린다. 이 그림이 바깥 경계로서의 집, 산, 구름, 자동차, 사람 등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그러면 집, 산 등의 개념이 다 모든 사람들에게 동일한 것일까? 아니다. 저것들도 사람 마음의 욕망 수준이나 차원만큼 제각기 다르게 그려진다. 어떤 이는 집을 투기의 대상으로, 또 다른 이는 집을 낭만적 스위트 홈으로 여길 수도 있다. 산도 마찬가지다. 산을 자연의 온상으로 여기는 이가 있는가 하면, 산을 이익을 위한 경제개발의 대상으로 생각하는 이들도 있다. 모든 것들은 마음의 욕망의 대상인데, 그 대상은 마음의 욕망이 그린 사이버에 불과하다. 유식학은 마음이 곧 식(識·자기 마음을 알아차리는 마음)이라고 하는데, 그 알아차리는 마음은 마음이 세상을 향하여 무의식적으로 탈자적인 운동을 하고 있는 욕망과 분리되지 않는다. 탈자운동은 내가 결심해서 하는 것이 아니라,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음이 탈자적인 운동을 이미 하고 있기에 무의식적이라고 한다. 눈이 색을 보면서 그냥 알아차리고, 귀가 소리를 들으면서 그냥 알아차리는 것은 눈과 귀가 각각 보고 들으려는 욕망의 운동을 무의식적으로 하고 있기에 가능하다. 더구나 눈과 귀는 보고 싶고 듣고 싶은 것만 보고 들으려 하는 무의식적 기호를 지닌다. 보고 들으려는 욕망이 사람마다 다르면, 색과 소리를 알아차리는 마음의 각도가 달라진다. 이런 자연적 마음의 알아차림과 욕망은 의식수준의 결심과 다르다. 도덕의식은 인간이 도덕적 양심을 실천하기 위하여 자각하려는 결의와 함께 가고, 과학적 의식은 인간의 의식이 대상을 과학적으로 인식하기 위한 명석하고 판명한 판단능력을 요구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문제의식은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한 문제파악 능력을 상정하고 있다. 이처럼 의식은 자의식의 자각을 촉구하면서 도덕적 과학적 대상에 대한 주관의 가치우위를 염두에 둔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cogito·코기토)는 철학이 의식 철학의 정상이다. 이 ‘코기토’의 출현으로 의식이 철학의 역사에 뚜렷이 부상하여 객체에 대한 의식의 주체가 세상에 도덕과 과학을 낳는 진원지로 여기게 했다. 그래서 서양철학이 대체로 의식 철학이 되었다.18~19세기 독일의 철학자 헤겔이 데카르트의 철학으로 의식과 주체가 철학의 영역에 솟아난 것을 콜럼버스의 신대륙의 발견에 비유했을 정도다. 이 말은 서양 철학사에서 데카르트의 ‘코기토’ 철학이 의식의 철학을 낳았고, 의식의 철학은 주체의 철학을 키웠고, 이 주체의 철학은 인간이 주인이 되는 새로운 삶의 지평을 개척하게 되었다는 것을 뜻한다. 서양의 근대 400여년은 이 의식의 철학사였고, 의식의 철학사는 의식의 사회도덕적 자각과 과학적 눈으로 세상을 소유론적으로 지배하려는 강렬한 의욕을 불러일으켰다. 단적으로 의식의 철학은 세상을 자아의 보편적 의식으로 지배하려는 소유론의 철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사회도덕적 의식의 이상주의도 경제기술적 의식의 현실주의에 못지않은 소유론이라는 것을 우리는 앞글(1.2.7.8.9회)에서 여러 번 지적했다. 불교의 유식학에서도 의식이 취급된다. 그러나 그 의식은 신대륙의 발견처럼 자랑스런 성과가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마음에 번뇌와 고통을 안겨다 주는 진원지로 여겨진다. 유식학에서 의식을 제육식(第六識)이라 부르는데, 이것은 의식이 오감(五感)의 지각인 안·이·비·설·신식(眼·耳·鼻·舌·身識=前五識)의 데이터를 나의 의식으로 통합하는 통각(統覺)의 기능을 수행하는 여섯 번째 마음의 알아차리기라는 뜻이다. 의식이 자기 홀로 공상처럼 생각하는 일도 하지만, 원칙적으로 의식은 오감이 작용하지 않으면 쉰다. 신체의 오감이 작동하기에 그 오감의 지각을 늘 나의 생각으로 모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의식이다. 그러므로 의식은 늘 ‘나의 의식’이다. 동물도 감각이 있기에 동물도 알아차리는 마음이 있고, 따라서 마음의 욕망인 탈자운동을 한다고 볼 수 있다. 모든 동물도 각자 마음의 차원만큼 살아가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본능적 욕망을 지닌다. 아마도 식물도 생존하기 위하여 알아차리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고 봐도 되겠다. 왜냐하면 식물도 공격이 오면 그 공격을 알아차리고 자기 방어의 기제를 쓰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식물은 마음을 지녔지만 의식을 가지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왜냐하면 동식물은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안 하기 때문이다. 왜 인간만이 ‘나의 의식’이란 생각을 할까? 인간은 사회생활을 영위하는 동물이고, 또 사회생활은 언어생활에 다름 아니고, 그 언어생활을 통하여 인간은 지능에 의한 소유론적 욕망을 성취시켜 나간다. 사회생활이 없으면, 즉 언어생활이 없으면 인간은 인간이 안 된다.17세기 독일 황제 프리드리히 II세는 갓 태어난 아기가 독일어를 전혀 듣지 않으면, 인류의 원초적인 언어인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할 것이라고 공상했다. 병원에서 그는 간호원들에게 유아들이 독일어를 전혀 듣지 못하도록 명령을 내렸다. 그 유아들은 신의 말인 히브리어를 말하기는커녕 얼마 후 다 죽었다고 한다.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의 길이고, 이 길은 인간의 길이다. 그리고 이 길에 지능이 동반된다. 지능은 사회생활을 통하여 남들로부터 인정을 받기 위해 경쟁을 벌인다. 경쟁은 소유욕에서 발단한다. 인간의 언어생활은 동물의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을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으로 바꾼 것의 대가다. 생물학적 욕망의 마음은 자기생존을 위하여 타 생명을 먹을 수밖에 없는 것으로 끝나지만, 인간의 사회학적 욕망의 마음은 타 생명을 먹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타 생명을 사회적으로 지배하기를 욕망한다. 여기서 나와 타자의 사이에 투쟁이 일어난다. 서양의 의식철학에서 아무리 도덕의식이나 과학의식을 강조해도 그 의식은 다 사회적 지배의지의 투쟁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그래서 불교의 유식학은 의식이 마음의 평화와 지혜를 어둡게 하는 번뇌와 고통의 원천이라고 본다. 사회생활에서 언어생활은 이미 인간의 무의식적 마음에 깊은 골을 새겨놓은 것과 같으므로, 유식학에서 이 언어생활이 잉태한 자의식은 아상(我相) 아만(我慢) 아애(我愛)를 형성하여 자아중심적 무의식인 제7식 말나식을 형성했다고 말한다. 이 말나식은 이미 의식과 오감의 지각을 다 자기중심적 편견과 색깔로 채색하게 하는 진원지와 같다. 그래서 의식수준의 도덕적 결의가 무의식인 말나식의 이기주의를 전혀 바꿔놓을 수 없다. 모든 이성주의와 이상주의의 헛수고를 우리가 여러 번 앞글(11.12.16.17회)에서 지적했다. 원효 대사는 의식수준의 번뇌를 ‘기(起)번뇌’라고 부르고, 무의식 수준의 번뇌를 ‘주지(住地)번뇌’라고 그의 ‘이장의’에서 기술했다. 그의 비유를 옮기면 기번뇌는 풀과 같고, 주지번뇌는 풀을 자라게 하는 땅과 같아서 풀뿌리를 쉽게 뽑아도 다시 땅에서 풀이 자란다는 것이다. 그러면 주지번뇌도 일어나지 않게 하는 길이 무엇일까? 오감과 의식이 쉬면, 제7식인 말나식도 고요해지고, 말나식이 진정되어 평온해지면 제8식인 아뢰야식도 맑아지면서 여래장인 불성(佛性=神性)이 피어 오른다는 것이다. 아뢰야식이 사실상 마음의 궁극적 본질이다. 죽으면 딴 마음은 다 소멸하는데, 이것만은 불생불멸한다. 여기에 부처님(하느님)의 종자와 번뇌에 찬 중생의 종자가 함께 공존하고 있다. 본래 마음의 본질이 부처님(하느님)인데, 번뇌의 때가 사회생활(언어생활)의 와중에 끼어서 인간이 타인과 괴리되고 우주의 모든 동식물들과도 단절된 고립된 생활을 괴롭게 영위한다. 고립된 생활을 벗어나고자 타자를 욕망하지만, 소유론적 욕망만 하니까 서로 싸운다. 의식철학은 소유욕을 더욱 부채질하나, 마음의 철학은 우주의 만물로 향하는 존재론적 욕망의 길을 가르쳐 준다. 우주의 만물도 다 인간처럼 마음이다. 우주는 한마음(一心)이다. 인간의 마음에서 의식의 무게를 제거하면 우주의 동식물과 다 한 마음의 공명이 이루어진다. 심지어 광물까지도 잠자는 마음이라고 느껴야 하리라. 의식철학이 의식과 사물을 나눈다. 그러나 마음의 철학은 의식과 사물이 둘이 아니고, 한마음의 동기(同氣)라고 여긴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안거’ 스님도 사람일세

    ‘안거’ 스님도 사람일세

    스님들의 여름, 겨울철 집단 수행인 안거(安居) 기간에 수행처 선방은 일반인은 물론, 스님들까지도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금기의 영역이다. 득도를 위한 치열한 현장이지만 이곳 또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공간이기에 생활의 단면들이 새록새록 스며 있다. 현성(40) 스님이 지난 2002년 전남 장성군 백양사의 산내 선방인 운문암에서 3개월간 안거를 지내면서 기록한 일상들을 세상에 알린 산문집 ‘동안거’(민족사 펴냄)는 그래서 독특한 울림을 주는 책이다. 쉽게 접할 수 없는 선방이란 영역에 대한 호기심을 채워주면서 한국불교에 대한 나름대로의 지론을 과감하게 풀어놓았다. 현성 스님은 충북 괴산 공림사로 출가해 1998년 계간 ‘포스트모던’에 소설 ‘미인암(美人巖)’으로 등단한 재주꾼 수좌. 일찌감치 소설에 뜻을 두었지만 출가 스님인 탓에 다른 세상을 살면서 문재를 인정받은 인물로, 이번 글은 민족사의 제1회 출판원고 공모 당선작이다. 그래서인지 무엇보다 선방의 자잘한 일상을 감칠맛나게 풀어낸 글솜씨가 돋보인다. 안거를 나려는 선방에 등록하는 방부 들이기부터 스님들이 모두 모여 안거기간 동안 각자 할 일들을 정하는 소임 맡기(용상방), 그리고 계속 이어지는 참선과 운력, 해제까지 안거의 모든 과정이 담겨 있다. 책의 가장 큰 장점은 선방에서 일어나는 스님들의 비밀스러운 일들을 속속들이 볼 수 있다는 점.‘안거 초보자’의 입장에서 가감 없이 전하는 이런 이야기들을 스님은 “출세간(出世間)에 나타나는 세간(世間)의 모습들”이라고 말한다. 참선에 든 스님들에겐 독이나 마찬가지인 냄새 나는 파스나 화장품을 쓰는 스님들을 보는 시선이 스님답지 않게 솔직하다. 중생구제의 원을 세운 스님들이지만 역시 사람이기에 원초적인 욕심은 속인들과 다름이 없다. 참선에 들기 전 몰래 라면을 끓여 먹은 스님들이며 선방에서 방귀를 뀌는 스님들에 대한 단상이 흥미롭다. 참선에 들어서도 ‘원자폭탄급’ 방귀를 대수롭지 않게 뀌는 스님에서부터 면도칼로 삭발하던 중 피를 본 일, 불륜인 듯한 남녀가 암자로 승용차를 몰고 들어선 것을 보고 당황했던 일들이 흥미롭게 풀어진다. 현성 스님은 “안거를 두번밖에 지내지 못한 초보 수행자의 입장에서 스님들의 엄숙한 영역인 선원과 수행자들의 모습을 세상에 공개하는 것을 망설였지만 거꾸로 솔직한 모습을 알리는 게 한국불교와 수행 발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에서 책을 내게 됐다.”고 밝혔다.9500원. 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서울 ‘종교월드컵’ 20여개국 한자리

    세계 각국의 종교지도자들이 서울에 모여 종교간 화합과 세계평화를 위한 뜻을 모은다. 만해사상실천선양회(총재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가 8일 개막식(서울 올림픽공원 제2체육관)을 시작으로 14일까지 13차례에 걸쳐 진행하는 종교지도자 회의와 ‘종교와 평화’ 주제의 국제학술대회. 만해 한용운의 사상을 따라 평화의 길을 찾기 위한 자리로 중국, 인도, 미얀마, 이라크 등 20여개국 종교지도자 30여명과 국내 종교지도자 200여명, 각계 인사 500여명 등 700여명이 참가한다. 주제는 ‘21세기 세계 평화와 지속 가능성을 위한 종교의 역할’. 행사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은 참석자들의 면면. 스리랑카 대표인 시리세나 반다 헤티아랏치(자웨와테나푸라대학) 교수는 프랑스·스페인·유네스코 대사를 역임했고, 미얀마 대표 타엣 사야도 바단타케사라 대승정은 마하시 명상센터에서 수행해온 선승으로 현재 미얀마 국립불교승가회의장을 맡고 있다. 중국의 유·불·선 대표가 한 자리에 모이는 것도 예사롭지 않다. 중국의 차세대 불교대표인 스융신(釋永信) 소림사 방장은 1981년 출가해 소림사를 브랜드화한 데 이어 최근 쿵푸 최고수들을 영화계에 진출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해 주목받고 있는 인물이다. 또 유교 대표인 쿵더반(孔德班) 산둥성 취푸(曲阜)시 상공회 전 주석은 공자의 77대 직계 후손으로 눈길을 끈다. ‘종교화합’이라는 대회의 화두에 따라 테러·전쟁의 해결책을 찾기 위한 세션도 이채롭다. 여기에는 나와즈 칸 마르와트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 의장, 유대교 대표인 예후다 스톨브 예루살렘 종교간협의회(IEA)소장, 모사 바샤 미국 이슬람연합 의장, 힌두교와 시크교를 각각 대표하는 인도의 TD 싱과 모힌데르 싱 등이 주제발표와 토론에 나설 예정이다. 이밖에 루스산트세렌 겔에잠스 몽골 불교연구소장, 성휘 중국불교협회 부회장, 판 아나메데 타이불교도우회 회장과 프라 뎁소폰 세계종교지도자협의회 회장 등이 처음으로 한국에 온다. 참석자들은 행사 기간 중 조계사를 비롯한 사찰과 명동성당, 순복음교회 등 한국의 대표적인 종교시설을 차례로 순례할 예정이다. 한편 행사 참석을 위해 한국 정부에 비자를 신청했다가 거부당한 티베트의 달라이라마는 주최 측에 보내온 메시지를 통해 “전통은 세계 평화의 진정한 바탕인 내적 평화로 이르는 길”이라면서 “이런 선물을 잘 간직해 평화를 위한 소망으로 후세에 전할 것인지, 아니면 후세의 미래를 위협하는 무기로 바꿀 것인지는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고 종교간 화합을 강조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선상균(불교진각종 교법부장)상신(불교방송 보도국장)씨 모친상 이종문(자영업)씨 빙모상 6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12일 오후 2시 (02)929-0099 ●김동진(한국지질자원연구원 책임연구위원)재진(한국조세연구원 연구위원)혜정(뉴질랜드 거주·피아니스트)씨 부친상 양재진(뉴질랜드 거주)씨 빙부상 6일 경북 상주 적십자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54)535-7990 ●이덕우(성일하이텍 대표)씨 별세 상혁(학생)씨 부친상 환우(신성관 대표)현우(미도락 〃)병우(TR산업 〃)명우(중국청도성일악기 유한공사 총경리)씨 형님상 신효철(성일하이텍 이사)씨 상부 6일 건국대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30분 (02)2030-7902 ●권융구(전 삼융볼트 대표)씨 별세 오윤(삼융볼트 대표)씨 부친상 정두환(서울경제신문 기자)씨 빙부상 6일 광명성애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 (02)2689-9052 ●임부원(㈜보광퓨터 대표이사)부성(경민공고 교사)부영(㈜보성 대표이사)씨 모친상 김대생(자영업)김경현(현대중공업 전무이사)최홍모(㈜에스케이에스 부사장)씨 빙모상 6일 고려대 안암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923-4442 ●정상만(예비역 육군 소장)씨 별세 명호(모아부동산개발 대표)명두(신승프린테크 〃)씨 부친상 김옥남(효문고 교사)이선희(신승프로세스)씨 시부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9시 (02)3010-2230 ●원영범(뷰토피아 대표)씨 부친상 6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8일 오전 6시30분 (02)3010-2292
  • [클릭 지구촌 이곳!] 도쿄 애완동물 장례식장

    [클릭 지구촌 이곳!] 도쿄 애완동물 장례식장

    |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 도쿄시내 핵심요지인 미나토구의 한적한 고급주택가 옆 상가에는 동물묘지인 ‘아자부주반·동물정원(淨苑)’이 있다. 이곳에서는 연중무휴 개·고양이 등 애완동물의 장례를 치른다. 또 유골을 안치하는 납골당도 갖춰져 있다.1층에는 장례나 납골당 안치를 위한 접수처 및 생화 판매소가 있다.2층에는 엄숙한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의 장례식장이 마련돼 있다. 장례식장 옆에는 비교적 비싼(A형·20년 계약) 납골시설이 있다.5년 계약인 C형 납골시설은 구석에 있다.3층에는 B형 납골당(계약기간 20년)이 있다. 물론 1년 단위 납골도 가능하다.A,B형도 사정이 인정되면 5년 뒤에는 해약이 가능하다. 지난주 찾은 묘지는 사람의 장례식장이나 납골당에 조금도 뒤지지 않을 정도로 깨끗하게 꾸며져 있었다. 개원 초기라 일부는 납골이 돼 있고, 일부는 ‘예약종료’라는 표시가 돼 있었다. 주변은 롯폰기힐스, 도쿄타워 등 도쿄의 상징시설들이 즐비하다. 시바타 대표는 “180년 전부터 아자부주반에서 석물점과 생화점(인근에 묘지가 있는 절이 있음. 일본은 시내 주택가에 묘지가 적지 않음)을 운영해 왔다.”면서 “3년 전 애완동물 전문점을 열었는데, 최근 희망하는 고객이 많아 묘지도 개설했다.”고 설명했다. 개와 고양이 등의 장례절차는 비교적 단순하다. 이 동물묘지는 24시간 전화접수를 한다. 동물묘지 직원은 애완동물이 죽어 장례를 의뢰받으면 집을 방문해 주인이 보는 자리에서 입관을 하고 상담을 거쳐 각자 희망에 따른 의식을 치른다. 이후 이 동물묘지측과 제휴관계인 도쿄도 한 애완동물 화장장에서 화장을 한다. 합동화장시에는 다른 애완동물의 유골과 함께 화장한다. 개별화장시에는 이 묘지의 식장서 영결의 장례식을 치른 뒤 이 묘지 납골당에 안치하거나, 희망에 따라서는 주인의 자택에 갖다 주기도 한다. 장례 및 납골당 이용 비용은 다양하다. 작은 새나 햄스터, 다람쥐 등 작은 애완동물은 합동장일 경우 장례비만 1만 500엔(약 9만원)이다. 개별장일 경우는 3만 2000엔(약 27만원)이다. 특별한 개별장례는 4만 3500엔(약 37만원)짜리도 있다. 고양이나 토끼 등 조금 큰 애완동물의 요금은 이보다 30% 안팎 비싸다. 개의 경우는 작은 것이 합동장일 경우 1만 6800엔(약 14만원)이지만 특대형의 개에다 특별 개별장은 8만 1300엔(약 69만원)이 든다. 이 요금에는 5%의 소비세가 포함됐다. 납골당 요금도 다양하다. 아자부주반 동물정원 2층에 있는 A형 납골당은 1,2,3,4단 모두 60만엔(약 500만원)이다. 최대 12회로 분할납부도 된다. 별도로 1년간 관리비는 1만 8000엔(약 15만원)이다.A형은 120개의 납골당이 마련됐다. B형은 요금이 다양하다. 맨 위의 1단은 45만엔, 그 다음 2단은 40만엔,3단 35만엔,4단 35만엔이고 5단이 25만엔이다. 연간 관리비는 1만 2000엔이다.B형은 615개의 납골 공간이 확보돼 있다. 1년 단위로 납골계약을 하면 집합형은 사용료 1만엔(이것을 C형으로 분류)에 관리비는 6000엔이다. 개별단위 1년 계약시엔 사용료가 2만(3,4,5단),3만엔(1,2단)짜리가 있고, 관리비는 1만 2000엔이다. 생전의 친구 애완동물들을 함께 합사할 수도 있다. 장난감 등 애완동물이 좋아하던 생전의 유품도 납골당에 둘 수 있다.A,B형의 경우 계약기간 20년이 끝나면 주인이 유골을 수습해 가져갈 수 있다. 희망에 따라 여러 방안을 선택할 수 있다. 동물묘지측의 전문상담사는 애완동물이 아프거나 죽었을 때 주인의 고민에 대한 상담도 한다. 예를 들면 “애완동물이 죽고 나서 불면·식욕부진·환청 등에 시달리고 있다.”고 호소하면 “애완동물을 사랑하고 있었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이므로, 이상한 일이 아니다.”고 답해 준다. 인간과 애완동물의 합장은 불가능하다. 일본의 현행 묘지매장법은 사람을 매장하는 장소를 정했기 때문에 애완동물을 함께 납골할 수가 없다. 그러나 한 조사에 따르면 일본 성인여성의 40% 정도가 기르던 애완동물과 함께 묻히기를 희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자부주반 동물정원은 장례 때 승려가 출석하는 경우도 있다. 특별히 불교식 장례를 희망하면 인근 사찰에서 온 승려가 법회를 열어준다.7일재,49일재,1주기 법회도 가능하다. taein@seoul.co.kr
  • FTA협상 첫날 팽팽한 신경전

    |워싱턴 이영표특파원·서울 백문일기자|우리나라와 미국은 5일 오전(현지시간) 워싱턴에서 자유무역협정(FTA) 1차 본협상을 갖고 사전 공개된 초안 내용에 대해 의견을 나눴으나 핵심 쟁점은 물론 언론 홍보 등 문제를 놓고 팽팽한 신경전을 벌였다. 두 나라 협상단은 각각 농업시장 개방 폭과 개성공단 제품의 한국산 인정 여부, 자동차 세제 개편 문제 등 쟁점을 중심으로 기존 입장차를 재확인하며 치열한 탐색전을 벌였다. 미국은 특히 국내 자동차 세제와 관련, 배기량이 아닌 가격을 기준으로 자동차세를 부과할 것을 요구했으나 우리 협상단은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크기 때문에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을 고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미 양국은 협상과 관련한 언론 홍보 업무를 놓고도 신경전을 폈다. 미국측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의 상시 파트너인 최석영 주미 한국대사관 경제공사는 “미 무역대표부는 ‘한국측이 FTA 초안은 물론 1차 협상에 관한 브리핑을 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며, 협상 중인 상황을 외부에 공개할 필요가 없다.’는 입장”이라고 전했다. 최 공사는 “미국측에 ‘두 나라간의 언론 홍보 시스템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밝혔다. 미 무역대표부(USTR) 본사에서 열린 이날 첫 공식 협상은 김종훈 수석대표를 포함한 우리측 협상단 146명과 웬디 커틀러 수석대표 등 미국측 협상단 178명이 참여해 농업·서비스 등 17개 분과 가운데 11개 분과에서 진행됐다. 한편 김동수 재정경제부 경제협력국장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쌀과 같은 초민감 품목은 관세를 철폐하는 양허안에서 제외할 계획이며 일부 과일 품목이나 축산물 등은 이행기간을 10년 정도 확보하는(유예하는) 노력도 병행하겠다.”고 밝혔다. 김성진 재경부 국제업무정책관도 KBS1라디오에 출연,“개성공단 제품의 국내산 인정은 쉽지 않겠지만 남북관계의 특수성을 고려해 최대한 관철시키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양측의 협상문 초안을 보면 농산물 분야의 특별세이프가드 조치와 서비스 분야의 전문직 상호인증 등 인력이동 문제에 시각차가 드러났다.”면서 “자동차 세제와 의약품, 금융·통신 분야 등에도 주장이 달라 쟁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tomcat@seoul.co.kr
  • 권오승 공정위원장 “출총제 대안 내년 하반기 시행”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2일 “출자총액제한제도의 대안 등 새로운 대규모기업집단 정책이 빠르면 내년 하반기에 시행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새로운 대규모기업집단 정책 방안을 논의하기 위한 시장경제선진화 태스크포스를 오는 7월1일부터 가동하면 올해 말에 결론이 나오고 내년 초 입법 과정을 거치게 될 것”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출총제 대안에 대해 “악성 순환출자를 단계적으로 축소하는 방법, 사업지배력이 집중되는 것을 막는 일본식 방법 등 여러가지를 생각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 [토요일 아침에] 소유권과 관리권 사이에서/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북관대첩비는 일제시대 때 반출되어 그 유명한 야스쿠니 신사에 있다가 일본과 한국의 두 노스님의 관심과 열정에 힘입어 100여년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리하여 남한을 거쳐 북한의 원래 있던 자리로 되돌아갔다. 이를 지켜보면서 유물은 제자리에 있을 때 가장 의미가 있다는 원론에 동의하면서도 새삼 관리와 소유의 경계선이 어딘가를 되묻게 한다. 지난 5월 한달동안 국립박물관의 기획전인 ‘사리함(舍利函)’전시회를 접한 느낌도 마찬가지이다. 절집의 소유물임이 분명한데 어떤 경로를 밟아 박물관의 관리를 받으면서 국가의 소유 아닌 소유가 되어버렸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이제 소유자와 관리자의 한계마저 모호해졌다. 경천사지 10층석탑을 용산의 신축 박물관에 복원하면서 탑이 가지는 예배대상으로서의 종교적 의미는 무시한 채 사리공(舍利孔)에 사리도 없이 ‘이건기(移建記)’만 넣겠다는 안목을 가진 사람들에게 사리함을 맡기기에는 원소유자로서 별로 내키는 일은 아니다. 마치 남의 무덤 앞에 있는 무인석을 뽑아다가 정원장식물로 쓰는 사람들처럼, 보이지 않는 의미는 무시한 채 눈에 보이는 미적 조형물로만 인식하는 의식구조를 다시 한번 확인하게 된 것이다. 문화재 관리자가 원소유자에게 돌려주지 않고 계속 관리하겠다고 고집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 먼저 소유자의 관리능력에 대한 의구심 때문이다. 그건 유물보존을 최우선으로 하는 지극히 프로다운 생각이니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또 그동안 유물 관리비용을 적지 않게 투자하다 보니 내 소유물이 된 양 착각하는 부분도 있기 마련이다. 마지막으로 오랜 세월 관리하다 보니 거기에 묻은 손때와 정성 그리고 유물과의 교감으로 인한 집착도 한몫했을 것이다. 이런 경우 원소유자가 그동안의 복원관리비용을 모두 지불하겠다고 해도 돌려받기 어려운 요인으로 작용하기 마련이다. 최근 조선왕조실록 오대산본의 반환소식을 접하면서 또 소유와 관리의 경계선을 생각하게 된다. 이것은 역으로 불교계가 관리자의 입장에 속하는 문화재이다. 월정사 경내의 영감사는 오대산 사고(史庫)를 지키기 위하여 지어진 암자이다. 임진란 이후 1913년 일본으로 반출될 때가지 몇백년을 사찰에서 관리해 왔다. 보존을 위해 시설관리는 말할 것도 없고 승군까지 조직해 외곽을 지켰다. 물론 소유자는 조선왕조였다. 왕조가 망한 후 대리 관리를 자처하며 가져갔으나 결국 일본에서 대지진을 만나 거의 소실되었다. 마침 그 무렵 대출된(빌려간 연구자가 누구인지 그 후손에게라도 감사패를 드려야 할 것 같다.) 74책만이 무사하여 27권은 일제말기 경성제국대학으로 이미 돌아온 상태였고, 나머지 43권은 도쿄대학에 현재까지 보관되어 있던 것이 저간의 사정이다. 이를 알고서 오대산 월정사 스님네들이 반환을 위하여 소매를 걷어붙였다. 그런데 그 결과는 기존 관리자인 사찰이 아니라 서울대 규장각으로 반환된다고 한다. 도쿄대학이 관리자와 소유자 사이에서 반환주체를 누구로 할 것인가를 줄타기하다가 나름대로 고심하여 내린 결론일 것이다. 하지만 이미 규장각에는 같은 종류의 완질본이 남아있다. 물론 이본(異本)이니 똑같을 수는 없다. 그래도 대동소이할 것이다. 따라서 산질(散帙)인 오대산본을 부분적으로 중첩하여 가지고 있는 것은 ‘소유’라는 욕심 충족 외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기존 27권과 이번에 돌아오는 43권을 포함한 오대산본 74권 모두를 원소재지에 두는 것도 역사적 의미를 제대로 살릴 수 있는 길이 아닌가 한다. 왜 북관대첩비가 휴전선을 넘어 자기 자리로 가야 했는지 우리는 그 도리를 알아야 한다. 현재 오대산에는 두 채의 텅빈 사고(史庫)가 복원되어 있다. 건물은 있는데 내용물이 전혀 없는 것은 사리없는 탑을 보는 것만큼이나 허전하다. 그리고 이끼 낀 석물들이 도굴로 실려 나가버린 오래된 큰무덤을 바라보는 것처럼 안쓰럽기까지 하다. 원철 조계종 포교원 신도국장
  • [5·31 이후] 경제현안도 ‘주도권 다툼’ 소지

    ‘5·31 지방선거’ 뒤로 미뤘던 굵직한 각종 경제현안들이 한나라당의 압승으로 ‘선거 후폭풍’에 휘말릴 전망이다. 정부는 그간의 정책기조를 그대로 끌고 가겠다고 밝혔으나 사실상 당정협의에서 여당보다 야당의 눈치를 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당장 지방자치단체의 공공요금 인상을 둘러싼 협의 상대자는 전북과 제주를 빼고는 열린우리당이 아닌 한나라당이 됐다. 국회에서의 법안 처리에도 야당이 사실상 주도권을 쥘 것으로 보인다. 박병원 재정경제부 차관은 1일 정례브리핑에서 “정부가 지방선거를 전후해 정책의 기조를 바꾸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예정된 정책들을 그대로 추진, 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할 것”이라고 밝혔다. 조원동 재경부 경제정책국장도 이날 불교방송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중장기 조세개혁안 등 주요 경제 현안을 국회와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경제 문제에는 그동안 여야 구분이 없었기에 야당과도 원만한 협의를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다른 관계자들은 “앞으로 정책운용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따를 것”이라면서 “특히 참여정부의 부동산 관련 정책과 양극화 해소 방안을 위한 재원 마련 등과 관련한 여야의 힘겨루기는 더욱 고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만약 하반기부터 정계 개편과 대선정국의 소용돌이속에 대통령의 레임덕 현상마저 나타나면 주요 경제정책에 대한 의사결정은 경제논리가 아닌 정치논리에 좌우될 것으로 지적됐다.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은 지난해 12월 발표하려다 올 2월에서, 다시 지방선거 이후로 연기됐다. 재경부 세제실 관계자는 “오는 8월에는 내년도 세제개편안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어차피 6∼7월 공청회는 불가피하며 이 때 중장기 조세개혁방안도 함께 논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정부가 검토해 온 중장기 조세개혁방안에는 소득세 등의 증세방안이 적지 않게 포함됐다. 한나라당은 선거 이전부터 증세보다 감세를 주장하면서 정부가 추진해 온 조세개혁방안에 반대를 표명, 이번에도 표류할 가능성이 높다. 보건복지부가 지난달 발표하려다 선거 뒤로 미룬 저출산·고령화 기본계획 역시 재원 마련과 연결됐다. 한나라당이 반대한 것은 아니지만 어떤 형식으로든 국민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서는 안 된다는 게 당론이다.6월 임시국회에서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의 개편을 목표로 하는 국민연금법 개정안도 여야간 격돌이 예상된다. 참여정부의 최대 ‘화두’ 가운데 하나인 양극화 해소 방안에 여야간 시각차는 여전히 평행선을 달린다. 정부와 여당은 사회안전망을 위한 복지예산 확대에 초점을 맞추지만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는 “성장을 통한 일자리 창출이 유일한 해법이며 소득 상위계층에 부담을 주는 분배 방식으로는 곤란하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이 때문에 하반기 경제운용계획에 재경부가 성장과 분배를 놓고 어떤 조합을 일궈낼지도 커다란 관심사다. 게다가 6월에는 굵직굵직한 경제 현안들에 대한 용역안들이 대거 쏟아진다. 산업·수출입·중소기업 등 3개 국책은행 개편안과 새만금 사업의 국토이용계획안, 농협중앙회의 신용·경제분리안, 자영업자 소득파악 방안, 중소기업 활성화방안 등 ‘정책홍수’를 이룬다.8·31 부동산 대책의 후속인 주택청약제도 개편 공청회와 외국자본 탈세를 막기 위한 조세회피지역 지정도 예정돼 있다. 무엇보다도 5일부터 협상이 시작되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관련해 한나라당이 어떤 입장을 취하느냐에 따라 정부의 경제운용은 크게 달라지거나 타격을 받을 수 있다.백문일기자 mip@seoul.co.kr
  • 낙산사 산불 ‘타산지석’으로

    지난해 4월 산불로 큰 피해를 입었던 강원도 양양 낙산사에 ‘재난안전 체험장’이 설치된다. 31일 양양군에 따르면 대형산불 피해현장인 낙산사 지역에 당시 기록물을 체계적으로 수집, 전시·상영하고 경내에는 산불이 났을 당시의 모습을 남겨 관광객들에게 체험하도록 할 계획이다. 현재 재난안전 체험장을 설치하기 위해 소방방재청 등 관계기관과 협의를 진행중이다. 재난안전 체험장은 양양군 강현면 전진리 낙산사 경내 홍예문앞 매표소 인근에 40여평 규모로 건립될 전망이다. 사업비는 모두 18억원이 들어가 오는 2007년 2월부터 11월까지 공사가 추진된다. 양양군은 우선 낙산사측과 협의를 통해 최종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재난안전 체험장은 건물 내부에 ‘꺼져가는 산의 생명(산불교육관)’ ‘산과 인간을 안전하게(산림복구관)’ ‘파랑새가 사는 숲’ ‘희망의 불씨로’ 등 4개의 공간으로 구성된 ‘오감 체험공간’을 조성할 계획이다. 산불교육관은 산불이 났을 당시 낙산사 경내에서 타다 남은 동종(보물 499호)의 잔해와 기와, 나무기둥, 서까래, 불속에 깨진 돌 등을 전시하게 된다. 산림복구관은 산불이 났을 때 찍어 놓은 사진자료와 조림복구 과정, 숲이 우거진 뒤 미래의 낙산사 모습을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꾸며진다. 이와 함께 낙산사 정문에 마련될 야외체험장에는 ‘산화지’ ‘훼손된 철종 전시’ ‘복원지’ 등으로 구성, 현장교육을 통한 안전의식 고취에 도움을 줄 방침이다. 양양군은 재난안전 체험장 설치와 관련해 현재 양양군의 재정상태를 감안, 기준 보조율 외에 차등보조율을 적용해 국비 70%, 도비 15%, 군비 15%로 사업비가 분담될 수 있도록 관계기관에 건의할 계획이다. 김득중 낙산사 종무실장은 “이번 체험장 건립은 사찰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낙산사의 지나온 모습뿐 아니라 산불의 위험을 널리 알리는 데 목적이 있다.”고 말했다.양양 조한종기자 bell21@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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