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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8)무(無)의 의미와 마음의 혁명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8)무(無)의 의미와 마음의 혁명

    오늘은 철학사상에서 무(無)가 어떤 뜻을 지니는지 생각해 보기로 한다. 동양의 불교와 노장사상에서 그 무를 매우 귀하게 여기는데, 전통 서양사상의 주류에서 정반대로 그 무를 별로 달갑지 않은 것으로 여겨 왔다. 서양의 전통사상에서 무는 제조적 기술적 사고의 출발점으로서만 인정하는 경향이 있었다. 즉 지식과 기술을 쌓아서 물건을 제조해 나가는데 임의적 출발의 가정으로서 제로(zero)점을 상상한다. 이것이 서양철학이 무를 이해하는 기본적 태도였다. 실제로 20세기 프랑스의 대표적 철학자로서 제조적 기술적 사고를 싫어한 베르그송마저 그런 생각을 견지했다. 무는 지식과 기술의 축적이 없는 결핍의 상태와 같다. 전통적 서양의 신학은 정신주의적이라서 기술적 제조의 사고를 멀리한 것 같지만, 기실 신의 창조론도 인간의 제조적 생산론과 질적으로 다를 바가 없다. 신이 이 세상을 무로부터 창조했다는 것은 인간이 제조적 기술을 무로부터 쌓아 나간다는 축적과 유사하기 때문이다. 하이데거가 서양 신학은 서양 기술제조철학의 모태에 해당한다고 지적한 것은 탁월한 통찰력이겠다. “아는 것이 힘”이라고 말한 16세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의 말은 당당하게 기술철학을 공개적으로 세상에 선포한 사건에 해당한다. 기술적 무지와 경제적 빈곤의 탈피가 경제기술주의의 이념이다. 그런데 그 당당한 이념은 몇 가지의 철학적 문제점들을 안고 있다. 인간과 인간의 자아가 이 세상의 중심이고 만물의 척도가 된다는 것이다. 자연과 세상의 모든 것은 인간을 위해서 존재해야 하고, 극단적으로 자아를 위해서 존재하는 한에서만 가치가 있다는 인간중심주의를 정당화하는 결과를 빚는다. 인간중심주의와 이기주의는 종이 한 장의 차이밖에 안 된다. 비록 서양철학이 인간을 이기적인 심리에서 보기보다 논리적 보편적 인간관에서 선양하려고 애썼지만, 보편적 자아는 심리적 자아의 이기심을 살짝 가리는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스위스의 심리학자 융이 이것을 잘 꿰뚫어 보았다. 경제적 제조적 사고가 필연적으로 낳는 이기심의 소유욕을 제지하기 위하여 서양사상은 또 다른 차원의 도덕적 제조적 사고를 구성하기 시작했다. 이것이 이른바 사회주의적 마르크시즘의 운동이다. 이 운동은 사회도덕적 인간중심주의의 이념으로 이기주의를 척결하려는 사회적 제조론에 다름 아니다. 무를 철저히 배제한 사상이다. 무는 세상의 실천적 혁명의지를 둔화시키는 허무적 도피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이처럼 서양의 사상은 자본주의든 사회주의든 다 무를 이해하지 못했고 또 오해했다. 그 동안 서양의 전통철학은 경제적이든 도덕적이든 제조적 기술의 철학을 일구어 왔었다. 제조적 기술(경제적/도덕적)의 철학은 결국 인간의식이 진리를 제조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한에서 소유론의 철학이다. 그러나 서양 전통적 철학사상의 적자인 자본주의가 경제기술적 풍요와 편리를 가져 왔으나 탐욕의 병을 낳았다. 사회주의가 그것에 도전했으나 실패했다. 사회주의의 실패는 인간의 자연적 성향에 맞지 않는 당위의 법을 강요했기 때문이다. 자연의 모든 성향은 이익을 좋아한다는 점이다. 자연의 존재방식은 좋은 것을 찾지, 옳은 것을 추구하지 않는다. 이래서 자연의 존재방식을 욕망이라고 우리가 불렀다(1·16회 글). 인간도 무의식적으로 자연이므로 자연적 성향을 거슬리는 것을 인간이 수용하지 않는다. 사회주의의 도덕제조론을 인간이 자연스럽게 수용하지 못한다. 왜냐하면 거기에는 이익의 선이 없기 때문이다. 옳음의 선만 주장했지 좋음의 선을 보여 주지 못했다. 이익은 옳음이 아니고 좋음의 편에 서 있다. 그래서 자본주의가 사회주의보다 더 자연스러운 것에 가깝다고 하겠다. 그러나 자본주의적 경제제조론은 소유론적 탐욕의 병을 뿌린다. 자연스러운 인간의 무의식에는 본능이 좋아하는 소유론적 이익과 본성이 좋아하는 존재론적 이익이 있다고 앞에서 수차 거론되었다(1·15·16·17회 글). 소유론적 이익은 이기배타적이고, 존재론적 이익은 자리이타적이다. 존재론적 이익을 통하여 경제와 도덕을 다 생겨나게 하는 제삼의 길을 우리가 찾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본성(자성=불성=신성)의 무의식이 되살아나야 한다고 나는 앞에서 여러 번 강조했다. 마음이 무를 익혀서 무의 마음을 활용하는 것이 제삼의 길이겠다. 미국의 동물인류학자인 홀이 그의 ‘감춰진 차원’에서 언급한 것은 여기서 매우 긴요한 자료가 된다. 무의 빈 공간이 거의 없이 빽빽하게 집단생활을 하는 동물들은 비정상적 변태적 성행위를 자행하고 서로 싸우면서 약한 자들을 왕따시키고, 약한 자들은 자살하거나 밤에 몰래 도망가는 이상한 짓들을 자행한다고 한다. 처음에는 죽은 동물들이 먹거리가 부족해서 그런 줄로 알았는데, 나중에 시체들을 해부해 보니까 영양상태가 아주 좋았다는 것이다. 무의 빈 공간이 부족하면, 동물들도 심리적 이상행위를 자행하고 집단생활의 붕괴조짐이 야기된다는 보고다. 무는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동물들로 하여금 심리의 평정을 유지케 하여 여유를 누리게 하는 안 보이는 구조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노자가 말한 바와 같이 무는 무위이무불위(無爲而無不爲=인위적인 작동은 없으나 자연적 작용은 있음)의 역할을 하는 셈이다. 인간의 사회생활도 동물의 군서생활처럼 여유를 느끼게 하는 무의 빈 공간이 필수적이라는 것이다. 사회생활이 너무 촘촘해서 서로 부딪칠 것 같은 생활분위기는 인간들의 마음을 서로 공격적으로 변화시켜 강한 소유욕으로 남을 제거시키거나 지배하려는 탐욕의 도가니로 변하게 한다. 더구나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세계에서 가장 조밀한 나라들에 속하는 경우에 무의 생활공간이 필수적이다. 비어 있음을 생활 안에서 찾기 어려운 분위기에서 여백의 공간을 생활세계에 창조하는 것은 한국인의 마음을 공격적 소유의 탐욕에서 존재론적인 이타적 사유를 생활 속에 배어들게 하는데 중요한 몫을 한다 하겠다. 기술의 철학이 소유론으로 미끄러지게 하지 않게끔 방지하는 길에서도 무의 공간적 활용에 못지않게 마음의 무를 익히고 닦는 무의 정신교육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여기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공공의 교육에서 당위적 의무만 강조하는 도덕교육의 폐단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무를 닮는 마음의 교육은 마음을 고요히 진정시키는 참선과 명상을 생활화해야 한다. 무의 비어 있음이 주는 고요와 평정과 너그러움을 우리는 마음에 새겨야 한다. 지금과 같은 기술과 자본의 시대에 어떻게 이것들을 적대시하는 반(反)기술과 반(反)자본의 시대에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는가? 그런 철학은 또 하나의 공상적 이상주의에 불과할 뿐이겠다. 그러나 경제기술의 이익을 존중하되 사람들의 마음이 소유적 탐욕에 빠지지 않고, 존재론적 이익으로 남들에게 복락을 주는 것을 즐거워하는 정신문화를 가꾸어야 하겠다. 그렇게만 되면 경제적 행위는 바로 도덕적 행위와 다르지 않게 된다. 또 재래의 제조적 경제기술처럼 자연에 주리를 틀고 심문하여 어떤 정보를 자연으로부터 강탈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허공이 뭇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생명의 비를 저장하여 보시하면 중생들이 제 각기의 근기에 따라 자량(資糧)을 얻어간다고 말한 7세기 신라 의상(義湘) 대사의 ‘화엄법계도’의 구절처럼 ‘일반경제’(general economy)의 실현을 위한 마음의 혁명이 필요하다. 일반경제는 20세기 프랑스의 해체철학자 바타이유가 남긴 사상인데, 그것은 제한적인 몇 사람들만의 이기심을 채우는 재래의 ‘제한경제’(restricted economy) 대신에 아낌없이 주는 태양의 기(氣)가 모든 생명을 살리듯이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넉넉하게 가꾸겠다는 경제기술사상의 대 전환을 가리킨다. 그것은 당위의 도덕적 명령이 아니라, 본성이 좋아서 하는 자발적 기호다. 남의 것을 장악하는 이기적 이익에서부터 스스로 자기가 꽃피운 열매를 남들에게 즐겁게 주는 자리적 이익으로 방향전환을 하게 하는 마음의 혁명 이외에 무슨 희망이 인류에게 또 있을 수 있나? 마음의 혁명은 기업가가 곧 자선가가 되는 길이다. 한 사회가 다 기업가의 덕택으로 가난의 고통을 벗어나 모두 부자가 되고, 부자가 되니 여유가 생겨 정신문화도 상승하고 가난한 나라들을 도와주고 그래서 세계가 한국인을 존경의 눈으로 바라보며 한국인의 높은 품격과 함께 한국상품들을 선호하게 되면, 결국 부자가 되는 길은 탐욕에서가 아니라, 보시에서 시작한다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닌가? 기업가가 자선가가 되는 길은 오직 마음의 활용에 달렸다(11회 글). 불가의 말에 돈은 관세음보살이기도 하고 마군이기도 하다고 한다. 마음의 활용에 따라 갈라진다는 것이겠다. 기업가는 돈버는 재주를 선천적으로 타고나 그 길을 간 사람이다. 돈을 모았다는 것은 자리의 열매다. 그 열매를 이타적으로 쓰면, 그것이 자선가의 길이 아닌가? 본능의 탐욕을 본성의 원력으로 바꾸면 그렇게 된다. 그러기 위하여 마음이 무를 닮아야 한다. 아무 것도 없는 빈 허공은 모든 것들을 소유하지 않고 그대로 다 포괄하면서 존재케 하는 역할을 한다. 이것이 자연의 필연법이다. 이 법을 어기면 재앙을 받는다. 흔히 천벌이라 부른다. 그래서 중국의 3대 조사인 6세기 승찬(僧璨)대사가 ‘신심명’에서 “유(有)가 곧 무(無)요, 무가 곧 유”라고 말했다. 유는 나의 소유가 아니라 인색하지 않는 무의 것이고, 무한히 관대한 무는 유를 통해 안 보이는 자신을 보도록 암시한다. 그러나 무는 유가 자신의 것이라고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는다. 우리는 다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돌아간다. 무로부터 와서 무로 되돌아간다. 유는 무가 잠시 자신을 만물의 형상으로 위탁한 것에 해당하겠다. 부자들이 돈을 자기 것으로 착각하지 않고, 무가 ‘일반경제’를 시행하도록 빌려준 것이라고 여기는 데서 마음의 혁명이 가능하다. 그러나 그 혁명은 강제적 당위가 아니라, 마음의 본성이 원하는 자발적 기호이어야 한다. 마음이 가난한 기업은 만인의 도움을 받는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부처님 오신날, 김천 청암사에서 욕심을 비우다

    비구니 도량 김천 청암사의 아침 ‘모든 것이 목탁 구멍 속의 작은 어둠이라’어둠이 있어야 빛을 볼 수 있다고 했다. 세상의 빛을 위해 그늘에서, 어둠에서 용맹정진하는 스님들이 있는 도량에 가면 자신도 모르게 가슴에 있던 분노와 응어리가 저절로 녹아든다. 오색 연등이 파란 5월의 하늘을 수놓고 있는 이맘때 우리가 사찰을 찾는 이유이기도 하다. 비구니 도량으로 알려진 경북 청암사의 아침을 느껴본다. 부처님 오신 날인 사월초파일. 불자건 아니건 초파일에는 인근 사찰을 한번쯤은 찾아보는 게 우리의 습관일 것이다. 경북 김천은 직지사를 비롯해 청암사, 수도암, 신흥사, 봉곡사, 계림사 등 유명한 사찰들이 많은 고장이다. 그 중에서도 비구니 사찰로 알려진 청암사를 찾았다. 애틋한 사연과 아름다운 절의 모습이 초파일에 들러보기에 제격이다. 또한 청암사에서 수도산(불령산) 정상을 향해 50분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수도암 또한 고즈넉한 사찰이다. 경북 김천에서 단아하고 조용한 사찰을 여행을 떠나보자. 글 사진 김천 한준규기자 hihi@seoul.co.kr 셀수 없이 많은 별들이 까만 밤하늘을 수놓고 있는 새벽 3시. 파르라니 깎은 머리, 앳된 얼굴의 스님이 “똑똑똑∼”청아한 목탁 소리로 모두가 잠들어 있는 고요를 깨운다. 천년의 역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듯 수 겹의 나뭇결이 아름다운 선방에 하나 둘씩 불이 밝혀진다. 청암사의 새벽은 늘 그렇듯 이렇게 시작한다. 새벽 별이 아직도 가득한 지금, 잠의 수렁에 빠져있는 속세의 인간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그들의 하루는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칠흑같은 어둠을 몰아낸다. 고요한 산사의 밤을 깨우는 종소리와 함께 단아한 목소리가 울려 퍼진다. 나는 누구인가를 찾고자 하는, 사바세계의 중생들을 위한 염원을 담은 비구니들의 구성진 법문 소리를 듣고 있노라니 계곡에 피어오르는 새벽 안개처럼 기분이 가라앉고 마음이 편안해진다. 비구니들이 모여 용맹정진하는 청암사를 찾았다. # 나를 찾아가는 길 여승은 합장하고 절을 했다. / 가지취의 내음새가 났다. / 쓸쓸한 낯이 옛날 같이 늙었다. / 나는 불경처럼 서러워졌다… 백석의 ‘여승’이란 시의 한 구절이다. 경북 김천과 경남 거창의 경계에 우뚝 솟은 수도산(불령산·1317m) 깊은 자락에 자리잡은 청암사. 아름드리 나무들이 즐비한 계곡을 승용차로 한참을 달렸다. 사람들의 발길이 뜸해서 인지 파란 이끼를 가득 머금은 바위들, 깨끗하다 못해 존재의 유무를 인간의 눈으로 확인할 수 없는 투명한 계곡물, 파란 하늘을 모두 가려버린 잣나무와 소나무. 사람의 흔적은 찾을 수 없고 지저귀는 새들과 풀벌레만이 낯선 이방인을 반기고 있었다. 아∼ 여기가 말로만 듣던 ‘불령동천(佛靈洞天)’이다. 깊은 계곡의 적막한 숲길을 쓸쓸하게 걸어가는 비구니의 모습에 한지에 먹물이 번져나가듯 뜻모를 애틋함이 가슴을 적신다. 파르라니 깎은 머리, 두 볼에 흐르는 고운 선에서 느껴지는 구도자의 기품에 속인 손은 합장으로 변하고 이내 고개가 숙여진다. “스님, 청암사는 더 가야합니까.”,“어찌 깊은 산중에서 절을 찾으십니까. 마음이 있다면 바로 앞에 있을 겁니다.” 도대체 어쩌란 말인가. 있단 말인가, 잘못 왔단 이야긴가.10여분을 더 걸으니 일주문이 저기 눈에 보인다. 맞게 오기는 온 것 같다. 소박하다 못해 초라한 듯한 일주문에 들어섰다.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는다. 잔뜩 찌푸렸던 하늘이 갑자기 밝아지며 거짓말처럼 봄햇살을 쏟아낸다. 옛 대갓집 마당처럼 정갈하게 빗질된 절 마당에서 청암사의 정갈함이 느껴진다. # 끈질기게 이어온 청암사 청암사는 신라 헌안왕 3년(859년)에 도선국사가 창건한 고찰이다. 조선 인조 25년(1647년)때 큰 화재로 절이 완전히 불타버린 것을 다시 재건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130여년 뒤인 정조 6년(1782년) 다시 불로 대부분의 전각이 소실되는 큰 피해를 입었다. 이때도 바로 다시 세웠다. 그 뒤 점차 쇠락해 가던 청암사가 새로워지는 것은 광무 1년(1897년). 대운(大雲)스님이 8년에 걸쳐 청암사를 모두 보수하고 극락전을 새로 지으며 청암사는 제2의 중흥기를 맞았다. 참 어이없게도 보수를 끝낸 지 6년만인 1911년 9월 다시 원인 모를 화재로 또 위기를 맞는다. 하지만 대운스님은 1912년 봄에 청암사를 다시 세웠다. 그때의 모습이 지금 청암사다. 조선 영조 때 대강백(불교계의 대학자이자 원로를 일컫는 말)인 회암 정혜 스님 이후 우리나라 불교의 정신적인 가르침이 가득한 도량으로 자리잡았고 근세에는 박한영 스님뿐 아니라 많은 학승들이 거쳐간 사찰이다. 한 번 화재에 거의 모든 절은 생명을 다하는데 청암사는 다섯 번이나 화마가 할퀴고 지나갔음에도 아직까지 그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니 참 신기한 일이다. # 아름답고 소박한 비구니 도량 청암사는 예로부터 ‘여인’들과 인연이 꽤 많은 절이기도 하다. 숙종의 둘째 왕비인 인현왕후가 장희빈의 무고로 폐서인이 되었을 때 청암사 보광전에서 기도를 드렸고 그 인연으로 왕실의 후원을 받았으며 조선 말기까지 상궁들이 내려와 신앙생활을 하기도 했었다. 또한 청암사 계곡 바위에 또렷하게 새겨져 있는 ‘최송설당’. 그녀 또한 청암사와 깊은 인연이 있는 여인이다. 대운스님이 청암사를 두 차례에 걸쳐 보수할 때 대시주(大施主)가 바로 그녀였다. 김천 출신으로 영친왕의 보모상궁이었던 그녀는 영친왕의 생모인 엄비와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많은 재산을 얻었다. 대운스님은 그녀를 통해 많은 궁녀들의 시주를 얻을 수 있었기에 짧은 기간에 큰 사찰을 두 차례나 지을 수 있었다. 이런 인연 때문이었을까. 청암사에 1987년 비구니 승가대학이 만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비구니들의 도량이 된 것이다. 지금은 130여명의 비구니들이 속세와 인연을 끊고 오직 불심을 위해 수련하는 소박하고 정갈한 사찰이다. # 자연이 곧 절이고 절이 곧 자연이라 청암사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두 구역으로 나뉜다. 계곡 북쪽의 낮은 곳에 남향으로 자리잡은 대웅전과 그 남쪽 언덕 위의 보광전이다. 대웅전에서 보광전으로 가는 길은 마치 잘 가꾸어진 정원을 걷는 기분이다. 홍매화가 예쁜 얼굴로 반기는 오솔길, 길섶에 핀 이름 모를 야생화, 이끼 가득한 돌로 정성스레 쌓은 돌담, 무엇인가 생명을 느끼게 하는 텃밭 등 어느 사대부가의 고택을 연상케 한다. 무엇인가 커다랗고 웅장함으로 인간을 짓누르는 건물이 하나도 없다. 고만고만하며 단청을 입히지 않아 나무의 결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건물이 대부분이다. 어쩌면 이렇게 자연과 함께 숨쉬며 살 수있을까. “절에 들어서면 사람이나 짐승이나 편안해야지. 파헤치고 잘라내고 절을 만들면 뭐해. 우린 그저 우리가 있는 그대로, 자연 그대로를 지키고 살아가는 것이 제일이야.”라는 지형스님. 정말 그랬다. 절이라기 보다는 편안한 마음의 안식처가 청암사였다. # 세상의 때를 씻어내는 청암사에서 계곡을 따라 수도산 정상으로 수도암을 찾아 떠났다. 따사로운 햇살에 민소매 셔츠만을 입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며 ‘헉헉’거리기를 20여분. 수도산 줄기의 8부 능선을 지나자 가야산의 북쪽이 한눈에 들어오며 시야가 탁 트인다. 시원한 봄바람에 땀을 식히고 청암계 표지석에서 서쪽으로 20분을 지나자 드디어 수도암이 눈에 들어온다. 대적광전 앞에 섰다. 내 발 아래로 세상이 굽어보인다. 문이 활짝 열린 대적광전의 거대한 석불은 인자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석굴암의 석불보다 80㎝ 정도 작은 비로자나불좌상은 가늘게 뜬 눈으로 부질없는 욕심으로 가득한 인간들에게 무엇인가를 이야기하고 있다. 수도암은 수도산 8부 능선인 해발 1080m에 세워진 암자로 청암사와 같이 헌안왕 3년 도선국사가 창건했다고 한다.‘석조 비로자나불좌상’은 보물 제307호, 약광전의 ‘석불좌상’은 보물 제296호, 그 앞에 자리잡고 있는 ‘삼층석탑’ 한 쌍 역시 보물 제297호로 지정된 문화재를 가지고 있는 암자이다. 이렇듯 청암사와 수도암에 갈 때는 속세의 것을 버리고 바람에 날리는 옷깃마저 여미는 마음으로 돌아 보면 가슴 한가득 풍성함과 편안함을 품고 나올 수 있을 것이다.
  • 김선일씨 갔지만 ‘사랑’은 피고…

    천주교, 불교, 개신교 등 국내 7대 종단이 연합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ㆍ대표회장 백도웅 목사)가 이라크 어린이들을 한국 병원으로 초청해 치료한다. KCRP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사무총장 김성곤 열린우리당 의원)는 3일 한국과 이라크 양국의 우호 증진을 위한 ‘한국·이라크 평화프로젝트’의 하나로 테러를 당해 전신화상을 입었거나 심장병을 앓고 있는 이라크 어린이 4명을 한국으로 데려와 입원 치료한다고 4일 밝혔다. 이라크 어린이 국내 초청 치료는 KCRP와 ACRP가 지난해 5월 이라크 종교지도자들을 한국에 초청한 것을 계기로 추진해온 사업. 바그다드에서 폭탄 테러를 당해 몸 전체의 70% 이상에 화상을 입은 코더 아델 후팀(4)양과 선천성 심장질환을 앓고 있는 산타 셰자드(4)양 등 4명이 서울대병원과 가톨릭중앙의료원, 원광대병원, 가천의대 길병원에 각각 수용돼 수술 및 치료를 받는다. 이들은 어머니, 혹은 아버지와 함께 7일 입국할 예정이다. 이에 앞서 양 단체는 지난해 11월부터 6개월 동안 이라크 의사 20명을 대상으로 국내 대학병원에서 연수를 진행해 이 가운데 19명은 연수를 마친 뒤 귀국했으며, 현재 서울대에서 박사학위를 준비하고 있는 하이더(이라크 종교평화회의 사무총장)씨만 남아 있다. 김성곤 열린우리당 의원은 “이번 사업은 2004년 김선일씨가 이라크 무장세력에 의해 납치됐을 당시 김씨의 석방을 위해 현지 종교지도자들과 협의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며 “한국과 이라크 양국의 민간 우호증진 차원에서 이라크 어린이 국내 초청 치료가 확대될 수 있도록 각계의 적극적인 관심과 지원을 바란다.”고 말했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육조단경 공부하실 분~”

    조계종 중앙신도회(회장 김의정)는 하안거를 맞아 각화사 태백선원 선덕 고우 스님을 초청해 ‘돈황본(敦煌本) 육조단경(六祖壇經) 대강좌’를 연다. 지난 2004년 여름부터 스님들의 안거 기간에 맞춰 일반 신도들을 위해 마련해온 공부 프로그램 중 하나.16일부터 매월 셋째주 화요일 오후 7시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2시간 강의에 이은 30분 문답 형식으로 진행한다. 교재는 선종(禪宗)을 정립한 육조 혜능(638∼713) 선사의 법어집 육조단경의 성철 스님 번역본 ‘돈황본 육조단경’(장경각 펴냄). 선 사상이 집약돼 있어 참선하는 스님들의 필독서로 꼽히는 책이다. 고우 스님은 최초의 간화선 입문서인 ‘조계종 수행의 길-간화선’ 편찬을 주도한, 한국의 대표적인 선사(禪師). 선착순 250명. 중앙신도회는 또 간화선 입문 프로그램 1기생을 모집한다.17일부터 매주 한 차례씩 총 11회에 걸쳐 주간반(오후 2시30분)과 직장인반(오후 7시)으로 나누어 진행한다. 장소는 조계사 큰설법전(주간반)과 극락전(직장인반). 조계종 포교연구실장 진명 스님과 신도국장 원철 스님, 고명석 포교연구실 연구팀장과 박희승 팀장이 지도법사, 지도사로 나선다. 선착순 주간반 42명, 직장인반 50명.(02)733-7277.
  • [주말에 뭘 보러갈까]

    [미술] ■ 바이런 킴:최근 사진과 일요일 그림 27일까지 서울 화동 pkm갤러리. 지난 93년 피부 색깔을 상징하는 수백개의 패널을 격자무늬로 배열한 작품으로 정치, 인종 등 사회적 문제를 이슈화시키며 반향을 불러일으켰던 바이런 킴의 개인전. 이번 전시에선 ‘What I see’란 제목으로 사진 및 회화작품을 선보인다.(02)734-9467. ■ 날마다 좋은 날 염화미소 9일까지 서울 법련사 불일미술관. 부처님 말씀을 조형화하는 작업을 해온 정현 스님의 선화 전시회. 소, 봉황, 오방색, 물고기 등 우리 민화나 세화(歲畵)처럼 친숙한 소재에 부처님, 연꽃, 동자승 등 불교적 소재가 어우러진 작품들을 볼 수 있다. 특별행사로 선화 따라 그리기, 경전 듣고 그림으로 표현하기 등도 진행된다.(02)733-5322. ■ 사인사색 8일부터 23일까지 서울 평창동 그로리치 화랑. 상반되는 4인 작가의 비교전시. 추상표현주의적 화풍의 남관, 미니멀적인 모노크롬(단색화)을 추구해온 정상화, 구상 인물과 꽃의 작가 임직순, 자연을 배경으로 인물의 심층을 파고든 황용엽 등 4인의 독특한 색깔을 보여주는 작품들을 선보인다.(02)395-5907. [뮤지컬] ■ 빨래 14일까지 상명아트홀1관. 고단한 서울살이를 이겨내는 달동네 서민들의 희망가. 얼룩지고 구겨진 일상을 빨래처럼 깨끗하게 빨아 툭툭 털어내는 눈부신 긍정과 따뜻함이 놀랍다.2005년 한국뮤지컬대상 작사·극본상 수상작. 추민주 작·연출, 최진영 임진웅 등 출연. 화∼금 8시, 토·일 3시·7시.1만 8000∼3만원.(02)762-9190. ■ 레딕스, 십계 9일까지 화∼금 8시, 토·일 3시·7시 올림픽공원 체조경기장.‘모세를 통해 온갖 역경을 겪으며 정체성을 찾아가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다.4만∼15만원.1588-7890. ■ 거울공주 평강이야기 21일까지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3시·6시 대학로 예술마당1관. 평강공주와 바보 온달의 이야기를 비튼 아카펠라 창작 뮤지컬. 민준호 연출, 박민정 진선규 등 출연.2만∼3만원.(02)501-7888. [연극] ■ 거기 월25일까지 대학로 예술마당2관. 강원도 해수욕장 인근 마을의 작은 술집에 모여든 단골 손님들이 술잔과 함께 기울이는 일상적인 이야기안에서 찾는 삶의 의미. 아일랜드 작가 코너 맥퍼슨의 원작을 번안했다. 이상우 연출, 정원중 이대연 문소리 출연. 화∼금 8시, 토 4시·7시, 일 4시.1만 5000∼2만 5000원.(02)744-4337. ■ 일요일 손님 4∼28일 화∼목 7시30분, 금·토 4시30분·7시30분, 일 3시·6시 블랙박스시어터. 로맨틱한 일요일 저녁을 보내려는 신혼부부의 집에 느닷없이 들이닥친 눈치없는 불청객의 좌충우돌 코믹극. 오혜원 작·최용훈 연출, 홍성호 이혜원 등 출연.1만5000∼2만원.(02)764-3380. ■ 유령 7월2일까지 화∼목 7시30분, 금·토 3시·7시30분, 일 3시 소극장 산울림. 노르웨이 극작가 헨릭 입센의 서거 100주기 기념작. 사회의 관습에 맞선 개인의 고민과 갈등이 섬세하게 그려진다. 임영웅 연출, 전무송 이혜경 등 출연.2만∼3만원.(02)334-5915. [클래식] ■ 스타니슬라프 부닌&바이에른 체임버 오케스트라 내한공연 17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 콘서트홀.3년만에 내한하는 ‘건반위의 황태자’ 부닌의 모차르트 연주. ■ 엄마, 아빠와 함께 하는 모차르트 음악회 6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 극장 용.4일 오후 2시,5·6일 오전 11시·오후 2시·5시. 타악기 오케스트라와 인형극 오페라 ‘마술피리’가 합쳐진 예술교육 프로그램. [어린이] ■ 우당탕탕, 할머니의 방 10∼21일 월∼금 5시, 토·일 3시·5시 동덕여대 공연예술센터대극장. 위층 할머니와 아래층 용희 남매의 티격태격 우정나누기.(02)725-4033. ■ 이중섭 그림속 이야기 6월18일까지 화∼일 2시·4시, 수 11시·2시 사다리아트센터 동그라미극장. 화가 이중섭의 그림이 무대에서 인형으로, 영상으로, 움직임으로 되살아난다.(02)382-5477.
  • 동국대 개교 100주년 축시 서정주 미발표작품 공개

    2000년 타계한 미당(未堂) 서정주 시인이 생전에 모교 동국대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써둔 미발표 축시가 1일 공개됐다. 미당은 1935년 동국대의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했으며 1959∼1979년 모교의 국어국문학과 교수로 재직했다. ‘동국대학교 개교 100주년을 앞두고’라는 제목의 이 시는 미당이 1996년 5월 쓴 것으로 그동안 중앙도서관내 국보급 도서보관실인 귀중본실에 보관돼 왔다. ‘국선 화랑도와 불교의 원만한 통합 정신을 이어받아서’를 시작으로 32행으로 구성됐다. 김준석기자 hermes@seoul.co.kr
  • 사형수 5명, 지관스님 수계 제자 됐다

    “죄라고 하는 정체는 본래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마음 한번 잘못 일으키면 죄를 짓고, 좋은 마음 일으키면 복을 짓게 되는 것입니다.” 불교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이 부처님오신날(5일)을 앞두고 1일 오후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사형수들을 위한 수계법회를 열었다. 현직 조계종 총무원장이 사형수들에게 직접 계(戒)를 주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다. 지관 스님은 모두 5명의 사형수에게 일일이 법명을 지어주면서 재가 신도들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다섯 가지 계율인 오계(五戒ㆍ살아 있는 것을 죽이지 마라, 훔치지 마라, 음란한 짓을 하지 마라, 거짓말하지 마라, 술 마시지 마라)를 내렸다. 이어 사형수들에게 참회 연비(燃臂ㆍ향으로 팔을 태우는 의례)를 한 뒤 수계증과 108염주를 주었다.지관 스님의 수계 제자가 된 이들의 법명은 각각 덕륜(德輪), 정광(淨光), 수월(修月), 법수(法水), 정암(正岩). 살인 또는 강도살인으로 사형을 선고받고 수감 중인 사람들이다. 지관 스님은 “연비를 하는 것은 몸에 고통을 주어 자신이 지은 죄를 참회하기 위한 것이고, 그 다음은 마음 속으로 반성을 한다.”면서 “이렇게 몸과 마음으로 참회하는 순간 큰 죄, 작은 죄가 다 녹아 없어진다.”고 수계법회의 의미를 설명했다. 지관 스님은 지난 3월 사형제 폐지에 서명하면서 “우리는 법과 제도의 미명 아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인간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박탈하는 사형을 ‘제도적 살인’으로 규정한다.”면서 “어떠한 경우라도 가장 존엄한 생명을 빼앗는 사형을 폐지하고 종신형의 입법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밝힌 바 있다. 이날 행사에는 지관 스님을 비롯해 주호영(한나라당) 국회 법사위원, 김문수 한나라당 경기도지사 예비후보, 조계종 총무원 사회부장 지원 스님, 호법부장 도진 스님, 불교인권위원회 위원장 진관 스님, 이형구 의왕시장 등 사부대중 약 80명이 참석했다.연합뉴스
  • 복숭아씨로 염주 만드는 공예가 임세택씨

    속리산에서 10여년째 복숭아씨로 염주를 만드는 공예가가 눈길을 끌고 있다. 주인공은 충북 보은군 보은읍 누청리 임세택(52)씨. 그는 12년 전 이곳에 ‘도실공예´란 공방을 차려놓고 염주, 묵주, 열쇠고리 등 공예품을 생산하고 있다. 원료는 일반 복숭아보다 작은 산복숭아(일명 개복숭아)씨다. 임씨는 “악귀를 쫓는 천상의 과일, 복숭아에서는 신비스러운 기운이 나와 이 씨로 염주 등 공예품을 만들게 됐다.”고 말한다. 사찰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그는 태백산에서 수도하던 중 망가진 염주알 대신 복숭아씨를 깎아 알을 꿴 뒤 도실공예의 매력에 빠졌다. 오랜 방황 끝에 속리산 기슭에 터를 잡은 그는 직접 도실염주 세트를 만들어 법주사 스님들에게 선물한 뒤 반응이 좋자 공방을 차리고 본격 생산을 시작했다. 씨를 깎아내는 절삭기도 손수 개발했다. 그의 도실공예품은 씨의 결이 살아 있고 쓸수록 매끄럽고 윤이 나는 게 특징. 불가에서 최고로 꼽히는 금강주(인도산 나무열매) 염주보다 낫다는 평도 있다. 충북도 우수공예기능인으로 지정받은 임씨는 제14회 불교미술전에도 입선하는 등 꽤 명성을 떨쳤다. 몇년 전부터는 도실베개, 방석과 속리산 황토로 물들인 침구세트를 제작해 전국 유명 백화점에 세트당 50만~80만원의 가격에 납품하고 있다. 보은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김성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한국불교 1번지’ 조계사(서울 종로구 견지동 45번지) 대웅전. 일제치하 불교 총본산으로 세워져 지금은 조계종 직할교구본사 본당의 위상을 갖는 건물이다. 조선시대 억불숭유책에 따라 막혀 있던 승려의 도성출입이 허용되면서 불교계의 중지를 모아 건립된 불당으로, 단일 목조건물론 국내 최대 규모. 조선후기 전통사찰 불전과 궁궐 양식이 혼합된 대웅전에는 일제에 시달렸던 우리 민족의 한과 암울했던 시절 불교중흥을 위한 불교계의 염원이 함께 서려 있다. ‘4방에 계단을 둔 단층 석조 기단위 정면 7칸, 측면 4칸의 평면에 외부 22개의 평주, 내부 12개의 고주를 세워 다포계 단층 팔작지붕을 얹은 155.7평 규모의 남향 불전.’ 조계사 대웅전 앞에 서면 법당은 물론, 기단과 공포(拱包, 처마 끝을 받치는 기둥머리에 맞추어댄 나무쪽)의 크기에 압도당한다. 조선후기 불교 건축양식에 충실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며 조선왕조의 궁전보다 더 장대하고 화려한 외양을 갖추고 있다. 우선 대웅전을 받치고 있는 기단. 높이가 160㎝에 이르는 단층 석조인데 경복궁 근정전을 포함해 어느 궁전의 기단보다도 높다. 다음은 공포. 외부 5출목, 내부 7출목으로 짠 다포계로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 덕수궁 중화전 등 당시 가장 규모가 컸던 궁전보다 안팎으로 2출목씩이나 더 많을 만큼 장중하다. 대웅전 천장 높이는 자그마치 8.5m. 대웅전 디자인을 비롯해 곳곳에 스며있는 궁궐 양식도 눈길을 끈다. 외벽 큰 기둥을 받친 장초석은 경복궁 집옥재(1873년)의 것과 비슷하며 기단 전면에 일렬로 배치한 석조 동물상 중 해태상도 궁정에서만 볼 수 있는 전통이다. 불전에 궁궐양식을 쓴 것은 당시 불교계가 얼마만큼 이 건물을 중시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부분이다. 대웅전 건립을 맡았던 도편수와 부편수는 모두 궁궐 재건공사를 지휘했던 인물들이다. 특히 도편수 최원식은 1920년대 창덕궁 대조전 재건 공사를 총지휘한 도편수로 대웅전 건립을 위해 경복궁과 덕수궁을 여러 차례 시찰하였다는 기록이 전해진다. 당시 설계 담당이며 관리직들은 모두 이왕직(李王職) 영선과 소속 일본인으로 돼 있었으나 사실상 대웅전 건립은 모두 한국인들의 손에 의해 이루어졌던 것이다. 불상을 모신 불단도 폭 14.57m, 높이 2.3m의 초대형.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강원도 홍송으로 교체했다. 불단 크기에 비해 불상은 왜소한 편. 불전 건립때 도갑사의 것을 개금해 모신 것인데 오는 10월쯤 대웅전 동편에 들어서는 영산전으로 옮겨지며 대신 석가모니불과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등 17자 크기의 대형 삼존불이 봉안된다. 석가불좌상 뒤편, 즉 후불벽에는 1978년 새로 봉안된 천불도와 목각탱이 걸려 있다. 대웅전 정면은 전혀 벽이 없이 모두 장엄한 꽃판문과 꽃판창으로 처리했는데 벽 안쪽에는 천부중·신중, 바깥쪽에는 최근에 그려진 불전도가 장엄되어 있다. 바닥은 원래 다다미가 깔려 있었으나 최근 불단과 함께 강원도 홍송으로 바꿨다. 그런데 조계사의 원래 이름이 ‘태고사’였고 대웅전도 증산도 원류인 민족종교 보천교의 본당인 ‘십일전(十一殿)’을 옮겨지은 것이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먼저 태고사는 일제하에서 한국불교를 지켜내려는 당시 불교계의 눈물겨운 노력이 담긴 이름. 일제의 민족말살책에서 불교계도 예외는 아니었다. 일제가 불교계를 통제하려는 사찰령을 시행한 데 이어 본격적으로 칼을 들이댄 게 바로 총본산 건립이다. 식민지 시절인 만큼 불교계의 통일기관인 총본산 설치에 총독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터이지만 나름대로 한국불교의 맥을 지키기 위해 불교계가 뭉쳤다.1935년 8월 전국 31본산주지회의 이후 ‘조선불교선교양종종무원’이란 대표기관을 설치한 데 이어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을 갖는 사찰을 세운다는 원칙아래 인근 각황사 교당 개축에 뜻을 모은 것이다. 각황사는 지금의 조계사 옆 수송공원에 있던 한국 최초의 불교 포교당. 이 각황사를 헐어 지금 조계사 자리로 이전한다는 것이었는데 새로 대웅전을 건립하고도 그 명칭을 확정짓지 못하다가 고심끝에 한국불교의 법통을 태고 보우에서 찾는다는 뜻에서 삼각산(현 북한산)의 태고사로 정해 총독부에 신청한 것이다. 태고사는 전국승려대회 이후 소유권 다툼이 법정으로 비화한 끝에 1975년 6월에야 명칭이 조계사로 변경되었다. 그러면 왜 하필 보천교 십일전을 옮겨왔을까. 아무래도 당시 신도가 12만명에 불과했던 불교계 형편상 기존 건물을 옮겨짓는 것이 비용절감에 긴요했고 무엇보다 보천교가 일제에 강하게 맞서 일제에게도 위협적인 종교란 점에 착안했던 것 같다. 조계사 대웅전은 단순히 불교의 한 가람에 머물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보천교는 한때 신도가 200만명에 달할 정도로 교세가 컸다.1928년 당시 전북 정읍의 보천교 본소는 2만평 부지에 지금의 조계사 대웅전, 내장사 대웅전 같은 건축물이 45채나 들어섰을 만큼 엄청난 규모였다. 특히 십일전은 일제가 남산에 설치한 조선신궁(神社)에 대응해 지은 건물이란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교주 차경석이 사망한 뒤 일제는 대대적인 보천교 말살에 나서 결국 십일전을 강제로 헐값(1만 2000원, 당시 쌀 한 가마 값은 5원30전)에 사들였는데 불교계가 이것을 매입해 옮긴 것이다. 대웅전 기둥과 대들보는 십일전의 것을 그대로 옮겨 세웠으며 형태도 사실상 십일전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조계사 대웅전이 낙성된 것은 1938년 10월25일. 건립엔 총 17만원이 소요됐으며 기술자는 목공 7000명, 와공(瓦工) 200명을 포함해 6500명, 인부는 6만 5000명이 동원됐다. 당시 만해 한용운은 ‘총본산건설의 재인식’(1938년 ‘불교’ 신제17집)이란 글에서 대웅전의 규모를 말하면서 “만일 이 건물을 신축하자면 최소한도 100만원은 초과치 아니하면 안 되겠다고 하니 얼마나 훌륭한 집인가.”라고 적고 있다. 그야말로 19∼20세기를 통틀어 한국 최대의 건축불사(佛事)였던 셈이다. 조계사는 지난 2004년부터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하면서 “전통사찰 양식에 충실한다.”는 원칙을 세워 기둥과 지붕 등 기본 골격과 구조물은 변형하지 않기로 했으나 실제로는 많은 부분이 바뀌어 전문가들의 지적을 받고 있다. 우선 천장을 민반자로 완전히 바꾸면서 천장에 있던 그림들이 모두 철거됐고 자개 장식의 불단도 완전히 바뀌었는가 하면 새로 봉안될 3존불 위에 전통양식의 닫집을 설치하면서 기존의 장식이 모두 없어져 버렸다. 이강근(48) 경주대 교수(미술사학)는 “전통사찰 양식도 중요하지만 나름대로의 의미를 갖는 문화재의 구조물들을 교체하는 것은 역사인식의 결여를 보여주는 큰 오류”라고 말한다. 이 대웅전 해체 보수공사를 시작으로 4년 안에 조계사에는 종각과 보제루·영산전이 새로 들어서 환골탈태하게 된다. 경내에 있는 여관 현대장도 헐려 그 자리에 24시간 개방형 시민선방이 세워진다. 조계사 주지 원담(48) 스님은 “조계사는 서울 중심에 위치한 대표적인 신중도량으로 한국불교의 견인차 역할을 계속 하게 될 것”이라며 “그러나 한국불교 1번지의 위상에 맞지 않게 사찰 형태가 초라하고 급하게 지은 대웅전도 전통 사찰양식에서 비켜난 부분이 많아 해체보수를 통해 한국불교 고유의 모습을 되살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kimus@seoul.co.kr
  • 동국대 이사장에 영배스님

    동국대 이사회는 28일 신임 이사장에 영배스님을 추대했다고 밝혔다.5월18일부터 직무를 맡게 되는 영배스님은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장, 불교방송 상무, 중앙종회 사무처장, 중앙종회의원, 동국대 이사장 직무대행 등을 역임했다.
  • [儒林 속 한자이야기]釋奠祭(석전제)

    儒林(580)에는 ‘釋奠祭’(풀 석/제사지낼 전/제사 제)가 나오는데,‘陰曆(음력) 2월과 8월의 첫 번째 ‘丁’(정)일에 文廟(문묘)에서 孔子(공자)를 비롯한 四聖(사성) 十哲(십철) 七十二賢(칠십이현)을 祭祀(제사)지내는 儀式(의식)’을 말한다. ‘釋’은 ‘땅에 찍힌 짐승의 발자국’의 상형인 ‘ ’(분별할 변)과 칼을 쓰고 있는 罪囚(죄수)를 나타낸 ‘ ’(엿볼 역)을 합한 글자이다.嫌疑(혐의)를 받아 逮捕(체포)된 사람이 정말 죄를 지었는지를 변별하는 과정에서 무죄로 釋放(석방)하는 경우도 있으므로 ‘풀다’‘풀어주다’의 뜻이 생겼다.‘베풀다’‘차려놓다’와 같은 뜻도 있다. 用例(용례)에는 ‘釋門(석문:불교를 믿는 사람, 또는 그들의 사회),釋根灌枝(석근관지:근본을 잊고 지엽의 일에 힘을 쏟음),釋然(석연:의혹이나 꺼림칙한 마음이 없이 환함),註釋(주석:낱말이나 문장의 뜻을 쉽게 풀이함)’ 등이 있다. ‘奠’은 ‘술과 음식을 차려놓고 제를 올린다’는 뜻을 표현하기 위한 글자.‘定’(정)과 통하여 ‘정하다’의 뜻으로도 쓰인다.用例에는 ‘奠居(전거:살 곳을 정함),奠物(전물:부처나 신에게 올리는 음식이나 재물),香奠(향전:상가에 부조로 보내는 돈이나 물품)’ 등이 있다. ‘祭’는 ‘고기를 손으로 들어 신에게 바치는 모습’을 통해 ‘제사’라는 뜻을 나타낸 會意字(회의자)이다.用例로는 ‘祈雨祭(기우제:고대사회에서 하지가 지나도록 비가 오지 않을 때에 비가 내리기를 빌던 제사),祭祀(제사:조상신에게 정성스레 음식을 바치어 복을 비는 의식),祭典(제전:제사의 의식. 문화, 예술, 체육 따위와 관련하여 성대히 열리는 사회적인 행사)’ 등이 있다. 釋奠은 중국 上代(상대)의 先聖(선성)과 先師(선사)를 제사하는 의식이었다.漢(한)나라 이후 儒敎(유교)를 國是(국시)로 받아들이면서 국가적 차원에서 공자의 제사를 모셨다. 특히,後漢(후한)의 明帝(명제)는 공자의 옛 집까지 가서 공자와 72제자를 제사했다. 이후 唐(당)나라 玄宗(현종)은 開元(개원) 27년(738)에 공자를 文宣王(문선왕)으로 追封(추봉)하였고,明(명)나라 초기에는 대학에 廟(묘)를 설치하고 大成殿(대성전)이라 하였다. 우리나라는 삼국시대부터 이 제도를 받아들여서 고려, 조선에 이어서 현재까지 繼承(계승)하고 있다. 전국의 234 鄕校(향교)에서도 성균관과 동시에 釋奠祭를 봉행한다.釋奠이 예부터 학교에서 봉행된 것은 儒學(유학)의 독특한 聖人觀(성인관)에 기초한 것이라 할 수 있다. 釋奠의 봉행 절차는 初獻官(초헌관)이 幣帛(폐백)을 올리는 奠幣禮(전폐례)에 이어 초헌관이 神位前(신위전)에 첫 술잔을 올리고 大祝(대축)이 축문을 읽는 初獻禮(초헌례), 두 번째 술잔을 올리는 의식인 亞獻禮(아헌례), 세 번째 술잔을 올리는 終獻禮(종헌례), 초헌관이 祝文(축문)과 폐백을 태우는 것을 보는 의식인 望燎禮(망료례) 등으로 진행한다. 김석제 경기도군포의왕교육청 장학사(철학박사)
  • 동국대 ‘新세속오계’ 제정

    동국대 정각원(학내 법당)은 28일 오후 학교 본관 중강당에서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신(新) 세속오계 실천강령’을 발표했다.신 세속오계는 ▲생명을 사랑한다(不殺生·Life & Love) ▲살림을 절약한다(不偸盜·Economy) ▲욕심을 자제한다(不邪淫·Integrity) ▲말을 삼간다(不妄言·Praise) ▲마음을 맑게 한다(不飮酒·Enlightenment)로 구성됐다.정각원장 진월스님은 “개교 100주년을 맞아 건학 이념과 불교의 오계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가 보편적으로 실천해야 할 강령을 만들었다.”고 말했다.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 하나님을 의심하면 신앙이 싹튼다

    하느님에 대한 존재증명은 불가능하다. 온 세상을 정밀하게 조종하는 ‘시계공’으로서의 하느님은 증명할 수 없다. 물론 신도들에게는 경칠 소리다. 하느님이 어디 사람의 짧은 머리로 이해될 수나 있는 분이던가. 그런데 이렇게만 말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진다. 아무도 모를 뿐 아니라 짐작이나 상상조차 할 수 없는 하느님이라면, 하느님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죄다 사기꾼이 된다. 그런데 이걸 설마 ‘신앙’이라 부를 텐가. 이보다 더한 하느님 모독은 없다. 영국의 종교철학자 돈 큐피트가 쓴 ‘떠나보낸 하느님’(한국기독교연구소 펴냄)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모든 것이 하느님의 온전한 뜻이라면, 그건 아무 의미없는 세상이라 본다.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할 수 있는, 완전한 자율성을 갖춘 사람이 있어야 비로소 선과 악이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존재에 대해 충분히 의심하고 또 의심하라고 권한다. 실제 철학적 논리학적 논증 문제는 심도깊게 다룬다. 그 뒤 하느님을 느낀다면, 그것은 하느님의 존재를 믿는게 아니라 ‘영성’(christianity)을 가지게 된 것이라 부른다.‘깨달음’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불교적인 색채가 짙다. 교회가 저지르는 “지성의 희생, 자의식의 상실, 유아기적 의존성, 영혼을 타락시키는 자기기만”은 믿으라고만 말하는 보수주의 신앙이 초래하는 결과다. 충분히 예상할 수 있듯 영국에서도 1980년 출간 이래 20여년간 금서취급을 받았다. 협성대 이세형 교수가 번역했다.1만 2000원.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데스크시각] 총무원장이 추기경을 만났을 때/김성호 문화부 부장급

    27일 종교계 수장들의 의미있는 만남이 있었다.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이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가톨릭사회복지회에서 운영하는 성북동 ‘성가정 입양원’을 방문, 지원금을 전달했고 천주교 서울대교구장 정진석 추기경이 지관 총무원장을 반갑게 맞은 것이다. 종교계 수장들이 나란히 앉은 모습을 좀처럼 보기 어려운데 더해 두 수장의 화제가 ‘종교간 대화’였으니 예사롭지 않다. 올해 부활절과 부처님오신날 언저리에서 종교간 화해가 큰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16일 서울 올림픽주경기장서 열린 부활절 연합예배의 주제가 ‘생명과 화해’였던 데 이어 부처님 오신날을 앞두고 각 불교 종단 대표들이 낸 법어에 화해가 단골로 낀다. 조계종 종정 법전 스님의 법어는 그중에서도 놀랄 만한 것이다.“번뇌 속에 푸른 눈을 여는 이는 부처를 볼 것이요, 사랑 속에 구원을 깨닫는 이는 예수를 볼 것입니다.” 불교계 큰 어른이 부처님오신날 봉축법어에서 예수를 거론한 것이다. 종교계에 남을 화해의 법어가 아닐 수 없다. 이에 화답하듯 정진석 추기경은 조계종 총무원에 전달한 ‘불자들에게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지금도 끊임없는 분쟁, 증오와 대립, 다양한 종류의 차별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가 부처님의 자비하심을 닮고 모든 종교의 근본 가르침인 사랑을 실천할 때 이러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며 종교간 대화를 강조했다. 오는 7월 1만여명의 세계 감리교인들이 참가해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감리교대회의 큰 주제 역시 종교간 화해다. 한국기독자교수협의회와 한국교수불자연합회는 다음달 19일 성공회 서울대성당에서 종교간 화합을 놓고 공동학술모임을 갖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 종교계에 불고 있는 화해의 바람(?)에서 잠깐 비켜서 속내를 들여다보면 화해일색만은 아니다. 우선 개신교 사상 처음으로 보수쪽 한기총과 진보쪽 KNCC가 공동주최한 지난 부활절 연합예배만 하더라도 아쉬움이 크다. 연합예배의 자리였지만 한기총과 KNCC 두 단체를 뺀 천주교며 여타 기독교 단체들이 빠졌다. 기독교 전체를 아우르는 행사로 치른다는 기대가 또 불발로 끝난 것이다. 해마다 부활절 연합예배에서 북한의 조선그리스도연맹과 남한 교회들은 공동기도문을 채택해 봉독한다. 북한의 교회마저 동참하는데 왜 부활절 예배며 미사에 가톨릭과 개신교 단체들은 한자리에 모이지 않을까. 부처님오신날도 사정은 마찬가지. 석탄일마다 북한 불교도연맹과 조계종은 번번이 공동발원문을 봉독하지만 남한의 불교 종단들이 모두 참여하는 발원문 같은 것을 마련했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얼마전 국내 개신교 가운데 가장 교세가 크다는 교단 대표들과 만난 자리에서였다.10여년전 ‘교회 밖(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는 소신을 펴다가 이단으로 몰려 출교당한 교역자의 복권을 묻자 교단 대표들은 한결같이 “시간이 더 흘러야 한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얼마나 더 기다려야 한다는 말인지. 교단 내부에서조차 열린 마음을 보이지 못하는 실정에서 종교간 화해를 기대하는 게 무리일 것도 같다. 말로만의 화해가 아니라 실천하는 화해가 있어야 할 것 같다. 최근 세계 각국의 종교 성지를 함께 순례하고 돌아온 원불교·불교·천주교 여성 교역자들의 모임인 삼소회의 한 멤버가 이런 얘기를 했다.“3개 종단 여성 교역자들만의 만남과 대화에 그칠 것이 아니라 남성들, 모든 종교로 확대되어야 한다.”고. 사실상 한국 종교 대표들의 만남은 1970년대 초반부터 있어왔다. 종단 대표들의 모임인 종교지도자협의회가 여전히 존재하지만 종교간 대화와 화해에 있어선 이렇다 할 흔적이 없다. 물론 한국만큼 종교간 분란없이 공존하는 나라가 어디 있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종교간은 차치하고라도 종단, 교단간의 교류조차 일천하기 짝이 없다.27일 총무원장과 추기경의 만남은 그래서 더욱 돋보인다. 구두선이 아닌 종교계 전체의 실천적 만남으로 확산되길 기대한다. 김성호 문화부 부장급 kimus@seoul.co.kr
  • 선사들이 들려주는 참삶·깨침의 소리

    한국의 100여개 선방(선원)에서는 2200여 불교 수행자들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화두(話頭)를 든채 치열하게 정진을 거듭하고 있다.이 선방은 수행처답게 규율이 엄격하며 일반인들의 접근조차 쉽지 않은 곳이다. 그래서 많은 이들에게 이 선방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관심의 대상이 되곤 한다. ‘선방에서 길을 물었더니’(서화동 지음, 고즈윈 펴냄)는 10여년간 종교기자로 일해온 저자가 전국의 주요 선원 25곳과 프랑스 파리 도심의 사자후선원 등 모두 26곳을 훑어 그속의 치열한 구도 현장을 비롯해 선사들의 가르침과 선원의 역사·전통을 오롯이 담아낸 책이다.통도사 영축총림선원, 백양사 고불총림선원, 범어사 금어선원, 서귀포 남국선원, 쌍계사 금당선원, 은해사 백흥암선원, 선암사 칠전선원 등의 모습과 선원장 스님들과의 문답이 실려 있다. 책에는 외부인에겐 좀처럼 문을 열지 않는 ‘뜨거운 구도 현장’의 모습을 일반인들에게 전하려 애쓴 흔적이 역력하다. 해인사 해인총림선원은 ‘가야산 호랑이’로 유명한 성철 스님이 수행했던 곳이고 문경 봉암사의 경우 부처님 오신 날 이외에는 1년 내내 신자들의 발길조차 허용치 않는다.부산 범어사는 일제 때부터 선찰 대본산으로 정평 난 선원. 그런가 하면 백담사 무금선원은 밖에서 문을 걸어 잠근 채 폐문정진(閉門精進)하기로 유명한 곳.보통 1∼3년, 길게는 6년씩 두문불출 수행하는데 밖에서 문을 잠가 나가려 해도 나갈 수가 없다고 한다. 이같은 선원의 모습에 더해 수행 현장에서 만난 선사들이 들려주는 깨침의 소리는 세속에 찌든 속인들에게 청량감을 안겨주기에 충분하다.“바보 같은 사람들이 자기한테 속은 줄도 모르고 남한테 속았다고 한다.”(송광사 방장 보성 스님)/“세게 칠수록 공이 터 튀어오르듯 망상은 버리려 할수록 더 달려든다.”(쌍계사 조실 고산 스님).1만2800원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지관 총무원장 사형수 수계법회

    조계종 총무원장 지관 스님은 다음달 1일 오후 3시 경기도 의왕시 서울구치소에서 사형수들을 위한 수계법회를 연다. 조계종 총무원장이 사형수들에게 직접 계(戒)를 내리기는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지관 스님은 사형수 5명의 참회와 건강을 축원할 예정이다.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상임감찰 정현스님이 집전하는 이날 법회는 사형제폐지 불교운동본부 진관 스님의 인사말과 총무원장 지관 스님의 법어, 수계증 및 단주 수여로 진행된다.
  • 성철스님 법골 석가모니 성지 간다

    전 조계종 종정 성철 스님의 법골(法骨)이 석가모니의 열반지이자 불교 4대 성지 가운데 하나인 인도 북부 쿠시나가르에 봉안된다. 전남 보성 대원사 티베트박물관 관장 현장 스님은 “티베트박물관에서 열리고있는 ‘미륵불상 심장전(心藏殿) 사리세계 순례전’에 성철 스님의 법골을 전시 중”이라면서 “법골은 세계순회전을 마친 뒤 인도 북부 쿠시나가르에 조성되는 세계 최대 미륵불상에 석가모니 사리 등과 함께 봉안될 예정”이라고 26일 밝혔다. 티베트박물관측에 따르면 성철 스님의 상좌 원택(백련암 주지) 스님은 현장 스님의 요청을 받고 성철 스님의 법골을 최근 티베트박물관으로 이운했다. 한편 지난 24일 시작되어 다음달 14일까지 계속되는 ‘미륵불상 심장전 사리 세계순례전’에는 석가모니의 혈(血)사리와 머리뼈 사리, 석가모니의 10대 제자 사리 1000과(顆)가 들어 있다. 순례전시가 끝나면 성철 스님의 법구를 비롯한 사리들은 빌딩 50층 높이(152m)인 세계 최대 규모의 미륵불상 중심부에 봉안된다.김성호기자 kimus@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7) ‘나’의 말과 ‘그것’의 말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17) ‘나’의 말과 ‘그것’의 말

    ‘나’(I)라는 대명사는 자연의 생물학적 본능(It)이 사회화한 사회적 욕망의 무의식인 ‘그것’(It)의 기반에서 자란 어떤 가상(假像)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는 자의식은 거품과 같은 환상이고, 실상은 ‘그것’이라는 무의식의 말이다. 라캉의 생각에 설득력이 붙는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나의 말은 사회적 소유욕의 무의식인 ‘그것’이 나의 자존심의 덩어리를 빌려서 말하는 꼴이다. 이 글은 16회의 생각을 좀 더 연장시켜서 우리가 쓰는 말과 연관시켜 보려고 한다. 인간의 의식은 자의식과 같은 개념이다. 자의식은 사회생활에서 남들과 자기를 분별하는 심리와 같다. 사회생활에서 모든 이는 다 자기 우선의 생각으로 살아간다. 이것이 인간의 이기심이다. 이 이기심은 생물학적으로 동물의 살려는 맹목적 생존의지의 본능과 통한다. 동물의 본능은 생물학적 생존의지의 유지로 끝나지만, 인간의 자연적 본능은 생물학적 생존의지에서 사회학적 생존욕으로 이행하면서 지능이 본능을 대신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이기심은 사회적 이기심이고, 이것은 생물학적 본능의 생존의지가 사회생활에서 언어활동을 하는 주체로서의 자의식으로 변용된 것이다. 맹목적으로 살려는 생물학적 본능이 인간에게 사회학적 지능으로 자리바꿈하였다는 것은 사회적인 지배자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소유욕과 같다. 헤겔과 마르크스가 이것을 ‘주인과 노예의 변증법’이라고 읽었다. 사회생활은 곧 언어생활이다. 이 언어생활은 사회생활에서 각자가 자기의 지배욕을 남들로부터 인정받으려는 소유욕의 표현이다. 인간의 생존욕은 사회적 지배욕과 같은 의미다. 인간은 인정받기 위하여 지식을 쌓고 출세도 하고 부자가 되려고 안간힘을 쓴다. 인간의 지배욕은 언어생활에 인간이 가입할 수밖에 없는 유아기부터 시작된다.(16회 글) 인간은 타인들로부터 말을 배운다. 자기의 지배욕은 타인들로부터 익힌 지배욕의 반영이다. 이것을 정신분석가인 구조주의자 라캉(16회 글)은 ‘거울의 단계’라고 불렀다. 라캉에 의하면 생후 6∼18개월의 아기는 아직도 스스로 자의식도 없고 자존심도 형성되기 이전이다. 아기가 거울을 보면서 거울에 비친 자기영상이 타자의 영상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다가 그 영상이 곧 자기 자신의 반영이라는 것을 자각하게 된다. 이 말은 인간이 사회생활의 와중에서 원초적으로 타자로부터 자기의 욕망을 형성하게 된다는 것이다. 라캉이 말한 ‘거울의 단계’는 사회적 타자의 말이 자기의 말이 되는 무의식의 형성단계를 상징한 것이겠다. 그와 함께 타자의 말속에 잠재된 소유욕이 자기의 소유욕으로 탈바꿈한다. 나의 욕망은 사실상 내가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형성되어 온 사회적 욕망의 언어적 굴레를 벗어날 길이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미 나를 둘러싼 타자들로부터 말을 배웠고, 그 타자들의 소유욕에 무의식적으로 전염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무의식적으로 타인들을 닮아 있으면서 그 타인들을 같은 소유의 경쟁자로 간주한다. 고대 그리스의 오이디푸스 신화에서 아들 오이디푸스가 그의 생부와 싸워 죽인 살부의 행위는 인간의 사회적 무의식의 이중성을 반영한 것이겠다. 오이디푸스는 아버지와 너무 닮았고, 동시에 그의 적수다. 인간은 남과 닮지 않기 위해 자기 것을 소유하려 한다. 그래서 패션도 유니크한 것을 찾는다. 그러나 결국 모든 패션은 다 유행으로 같아진다. 인간은 자기 것을 찾으면서 결국 다 타자의 것을 모방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유행의 장난이다. 나의 소유욕은 타자가 준 것이라면, 왜 ‘나’라는 자존심에 인간은 그렇게 목숨을 거는가? 그것은 의식이 나와 남을 확실하게 나누기 때문이다. 의식이 말을 하면서 나의 것과 남의 것을 구분하고, 내 것을 최우선으로 여기는 것은 사회생활의 대결에서 자란 나의 자존심이 굴종과 상처를 입는 것이 싫기 때문이다. 나의 의식은 무의식적으로 생긴 사회적 지배욕을 자기 것으로 만들려 한다. 남으로부터 부러움과 선망을 얻기 위함이다. 나만이 이기적이 아니다. 모두가 다 이기적이다. 그러므로 이기심은 사회학적 공동의 욕망이고, 이 욕망은 내가 생기기 이전부터 이미 있어 온 공통 무의식과 다를 바가 없다. 결국 이기심은 모두가 다 소유하고 있는 것이고, 자의식은 각자의 언어활동에서 생긴 ‘나’라는 대명사의 자존심을 남들에게 으스대고 싶은 이기심의 산물이다. 자의식은 사실상 일반적인 무의식적 이기심의 반영에 불과하므로 ‘내가 생각한다.’는 의식의 말은 사실상 ‘사회적 무의식이 다 생각한다.’는 것을 자기화한 것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사회적 무의식의 소유욕이 한 언어권에서 일반적으로 강렬한 것일수록 개인으로서의 나도 그것을 소유하려고 강렬히 바란다. 그런 점에서 소유욕은 객관적 대상을 좇는 것이 아니라, 다수의 욕망을 나도 욕망하려는 것과 같다. 이것은 한 시대에 사람들이 자기만의 것을 찾지만, 결국 다 유행의 무의식적 속성에 함께 섞이고 마는 것과 유사하다. 자의식은 소유적 무의식의 한 표피적 현상에 불과하다. 소유적 공통 무의식의 말을 라캉은 ‘그것이 말한다.’(It speaks)로 표현한다. 의식의 말인 ‘나는 말한다.’(I speak)는 기실 무의식의 말인 ‘그것이 말한다.’(It speaks)의 한 표피적 껍데기에 불과한 셈이다.‘그것’은 자아 이전에 이미 사회언어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공동의 업장과 유사하다 하겠다. 20세기 러시아인으로 미국에 귀화한 언어학자 야콥슨은 그의 저서인 ‘일반언어학시론-I’에서 인간이 말을 배움에서 가장 늦게 배우는 것이 1인칭 대명사, 지시사, 전치사들이고, 또 언어상실의 과정에서 가장 먼저 증발되는 것이 역시 늦게 익히는 1인칭 대명사, 지시사, 전치사들이라고 밝힌 바 있다. 즉 저 품사들의 내용이 무의식에 깊이 소유되지 않기 때문이겠다. 그렇다면 ‘나’(I)라는 대명사는 자연의 생물학적 본능(It)이 사회화한 사회적 욕망의 무의식인 ‘그것’(It)의 기반에서 자란 어떤 가상(假像)에 불과한 셈이다. 그런 점에서 ‘나’라는 자의식은 거품과 같은 환상이고, 실상은 ‘그것’이라는 무의식의 말이다. 라캉의 생각에 설득력이 붙는다. 일상생활에서 ‘내’가 말하는 것 같지만, 사실상 나의 말은 사회적 소유욕의 무의식인 ‘그것’이 나의 자존심의 덩어리를 빌려서 말하는 꼴이다. 내가 나의 개성미를 추구하는 패션을 의식하지만, 결국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 시대의 유행인 ‘그것’의 구조 아래서 내가 춤을 추는 것과 같다 하겠다. 이것이 불교의 업감연기설과 유사하다는 것이다.(16회 글) 그런데 또 다른 무의식의 말이 있다. 이것이 본성의 말이다.(1·16회의 글) 이 본성의 말을 하이데거는 ‘그것’(It)의 말이라고 불렀다. 그가 말한 ‘그것’의 말은 라캉이 말한 ‘그것’의 말과 다르다. 왜냐하면 전자는 존재의 말이지만, 후자는 소유의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둘 다 자의식의 말을 중시하지 않는 데서 서로 비슷하기도 하다.17세기 프랑스의 데카르트가 말한 ‘내가 생각한다.’(cogito)의 철학은 의식의 주체로서 내가 진리를 소유해야 확실하다는 주장을 함축하고 있다. 진리의 소유주로서 내가 명증하게 말한다. 이것이 합리적 진리의식이고, 소유의식이다. 그러나 하이데거에 의하면 저런 자의식의 철학은 자의식 중심주의가 되어서 절대로 우주와 세상을 존재하는 그대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하이데거는 소책자인 ‘휴머니즘에 대한 편지’에서 ‘존재는 그것 자체’(Being is It itself.)라고 표명했다. 이것은 수수께끼 같은 말장난이 아니다. 하이데거는 해체철학의 선구자로서 모든 종류의 중심주의를 싫어한다. 재래의 서양철학은 고중세의 신중심주의에서 근현대의 인간중심주의로 생각의 중심을 옮긴 것이다. 생각의 중심이 이동한 것은 사실이지만, 생각의 질이 달라진 것은 아니다. 중심주의는 신이나 인간이 모든 우주의 진리를 소유하는 주체라는 생각에서 전혀 변동이 없다. 말하자면 인격적 중심주의는 소유론의 진리를 반영하는 셈이다. 해체철학은 소유론을 해체시키고 세상을 원초적으로 존재하는 그대로 놓아두는 사상을 말한다. 세상의 필연성인 ‘그것’에 따라 세상을 편안하게 놓아두는 사상이 ‘나중심’과 ‘우리중심’이 될 수 없다. 그 사상은 중심을 모르는 ‘그것’의 사유라 할 수밖에 없다. 세상의 필연성인 ‘그것’은 삼라만상에 다 적용된다. 신과 인간을 비롯한 삼라만상에 다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그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간의 의식이 소유하거나 장악할 수 있는 개별적 존재자들(beings)이 아니고, 자연성으로서의 절대무(絶對無)인 원기(元氣=potency)의 욕망과 같다고 하이데거는 ‘휴머니즘에 관한 편지’에서 설파했다. 그 절대무의 욕망은 타자를 소유하지 않고, 타자가 존재하도록 힘을 증여하는 원력과 같다. 절대무는 인격적 중심이 없기 때문이다. 절대무는 허무가 아니라 오히려 무진장한 기(氣)의 저장고를 뜻한다. 존재는 ‘그것’이 자신의 기를 증여하는 것(It gives)이라고 하이데거가 봤다. 이런 절대무의 사상이 14세기 가톨릭 교회의 수사였던 독일의 에카르트에게 나타났다.“신은 무엇이며 누구인가? 나는 대답한다. 신은 그것(Isness)이다.”“신은 무(nothingness)다. 신은 우리가 표현할 수 있는 이런 것이나 저런 것이 아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 존재(a beingless being)다.” 재래의 전통신학에서 말하는 신중심사상이 인간중심의 소유적 진리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절대화하기 위한 작업이라면, 에카르트는 그런 소유론적 신학사상을 해체시키려는 존재론적 신학사상을 선구적으로 펼쳤다고 볼 수 있다. 절대자인 신이 소유한 진리의지는 반드시 다른 절대자가 생각한 진리의지와 충돌을 일으킨다. 각 절대자의 진리의지는 인간들이 생각한 자의식의 진리의지를 무의식적으로 절대화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각각 절대자를 숭배하는 다른 종교들 간의 전쟁이 성전의 이름으로 예나 이제나 역사를 장식한다. 절대자의 신격화를 해체시키는 길은 신을 ‘그것’,‘무’,‘존재하지 않는 존재’로 사유하는 절대무의 신학이겠다. 이것을 에카르트는 신성이라고 읽었다. 인간이 무의 본성을 닮으려는 한에서, 인간은 무의식의 본성인 무의 ‘그것’에서 그리스도를 본다. 바깥에서 전지전능한 절대자로서의 신을 보지 말고, 마음의 본성 안에서 그리스도가 자라게 하는 것이 미래 신학의 길이겠다.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원효는 반전주의자였죠”

    “원효는 반전주의자였죠”

    “일연의 ‘삼국유사’도, 춘원 이광수의 소설 ‘원효대사’도 원효를 무책임하게 오독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잘못 알려진 원효의 삶과 사상을 바로잡고 싶었습니다.” 소설가 한승원(67)이 부처님오신날(5월5일)을 즈음해 한국 불교의 큰 스승, 원효의 일대기를 그린 전작 장편소설 ‘소설 원효’(전 3권, 비채)를 펴냈다.3년 전, 조선후기 선승이자 한국 차의 중시조인 초의선사를 다룬 책을 출간한 바 있는 작가는 “‘초의’보다 먼저 구상한 작품인데 공부가 부족한 탓에 이제야 집필을 끝내게 됐다.”고 말했다. 원효는 신라시대 불교 대중화와 불교사상 융합에 힘쓴 정토교의 선구자로 한국 불교사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화왕계’의 저자인 설총의 아버지이기도 하다. “‘삼국유사’의 기록대로라면 원효는 불안정한 시국에 여자 생각이 동해 과부 요석공주와 동침한 파렴치한 승려입니다. 또 이광수는 원효가 도술로 도적을 제압하고, 신라 젊은이들에게 삼국통일 전쟁에 기꺼이 몸을 던지라고 부르짖었다고 썼습니다.” 원효의 저서는 물론 수많은 관련 서적을 탐독하고, 원효의 행적을 좇아 경산 불등마을과 경주 남산 등을 수차례 취재한 결과를 근거로 작가는 이들 기록에 강한 반론을 제기한다. 반전주의자였던 원효를 제거하기 위해 신라 집권자들이 그를 파렴치한 승려로 몰았으며,2차 세계대전 중 ‘매일신보’에 연재된 이광수의 소설도 식민지 조선의 젊은이들을 전쟁에 참여하도록 충동질하는 데 원효를 이용했다는 것이다. 작가는 “원효는 반전주의자이자 세계주의자였고, 일심(一心)·화쟁(和諍)·무애(無碍)를 실천한 ‘불국토주의자’였다.”면서 “분단의 아픈 시대를 살고 있으면서, 이 나라를 분단되게 한 강대국이 치르는 전쟁의 소용돌이에 군대를 파견하는 현 상황을 돌아보게 하는 인물”이라고 말했다. 작가는 ‘소설 원효’에 등장하는 고유명사를 한자의 뜻말과 이두를 섞어 쓴 ‘삼국유사’의 표기를 따르지 않고 뜻을 그대로 한글로 표기했다. 이를테면 김춘추의 큰딸 ‘고타소(古陀昭)’는 ‘예삐’로, 원효의 할아버지 ‘적대공(赤大公)’은 ‘불커’로 썼다.“예전에 국어교사 시험 준비할 때 공부했던 걸 활용해봤다.”며 웃었다. 글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中 공산당 ‘이념 마케팅’

    “중국 공산당이 마오(毛)주의 정당이라고? 순진한 소리! 그들은 ‘마케팅 정당’이다.” 베이징 인민대학의 미국인 교수 러셀 레이 모제스가 최근 중국 공산당의 ‘메시지 정치’를 꼬집어 내놓은 진단이다. 실제 중국 대중매체는 당이 발주하거나 후원하는 메시지 광고들로 홍수를 이룬다. 당이 표방하는 ‘조화로운 사회’ 건설을 독려하기 위해 1930년대 빨치산 전사부터 10대들의 우상인 대중 가수까지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부지런히 오간다. 미국 일간 크리스천 사이언스 모니터는 최근 중국 지도부가 나날이 심화되는 사회적 불안요인을 잠재우기 위해 다양한 이질적 가치들을 닥치는 대로 활용하는 메시지 정치에 힘을 쏟고 있다고 25일 보도했다. 최근 중국은 잇따르는 농촌 소요사태와 관료 부패, 물질주의 만연 등 급속한 개방과 경제성장에 따른 부작용들로 몸살을 앓고 있다. 메시지 정치는 이 같은 ‘해체적 징후’들에 대처하기 위해 중국 지도부가 고안해낸 고도의 사회통합 전략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메시지 정치에 동원되는 가치들은 다양하다 못해 모순적이기까지 하다. 옛 사회주의 건설기의 검약과 절제문화에 향수를 갖는 노년층에겐 영웅적인 인민해방군 전사가 활용된다.중국 고유의 전통이 사라져버렸다고 탄식하는 사람들을 위해 유교문화 부활 캠페인이 펼쳐진다. 사회주의 유물론이 충족시켜 주지 못하는 영적인 것을 갈망하는 사람들에겐 불교가 있다. 조국의 번영을 염원하는 사람들에겐 일본·한국과 경쟁하는 중국산업의 놀라운 발전상이 제시된다.‘흑묘백묘론’의 사상적 변종인 셈이다. 모제스 교수는 “인민들을 향해 ‘말만 해라. 우리에겐 다 있다.’고 공언하고 있다.”면서 “공산당이 이미 철저한 마케팅 전략에 입각한 ‘소비자 정당’으로 변신했다.”고 진단했다. 실제 공산당은 최근 베이징 인민대학에 유교전공 학과를 개설하는 것을 허가했다.13일에는 사상 최초로 세계 불교포럼을 개최했다. 그러나 이같은 사상적 다양성의 허용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적 원칙은 견고하게 고수된다. 지난달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사유재산권 허용 법안이 부결된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전문가들은 다양한 선전 캠페인들을 하나로 통합하는 것이 후진타오(胡錦濤) 국가주석의 ‘8개 영욕론’이라고 본다. CCTV의 한 프로듀서는 “지난달 고위 각료가 당이 시작한 새로운 캠페인을 저녁 뉴스 시간대에 내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예정된 메시지 광고들 때문에 거절했다.”고 말했다. 양자오휘 베이징대학 교수는 전임자들과 다른 현재 지도부의 특징이 이같은 메시지 정치의 활성화를 낳고 있다고 진단한다.그는 “마오쩌둥(毛澤東)과 덩샤오핑(鄧小平)은 연설능력뿐 아니라 논문을 통해 이념과 사상을 만들고 전파하는 데 뛰어난 인물들이었다.”면서 “그러나 후진타오와 원자바오(溫家寶)는 기술관료들이며 이데올로기를 만들어본 경험이 없다.”고 분석했다.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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