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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김문기자가 만난 사람] 700년 잠들었던 ‘고려사경’ 되살린 김경호씨

    사경(寫經)을 아시나요? 시계바늘을 잠시 고려시대로 돌려본다. 왕족과 귀족들은 하루 일과 중 사경원(寫經院)에서 불경을 베껴쓰는 일(寫經)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먹물이 아닌, 금·은가루를 사용했다. 이를 통해 공덕과 불심의 깊이를 스스로 가늠했음은 물론이다. 충렬왕 이후가 절정기였다. 원나라측은 고려의 사경기술을 거듭 요청했고 고려는 1회 100여명씩 수차례에 걸쳐 파견, 그 위상을 드높였다. 중국에서 들어온 사경 기술이 역수출된 셈. 아마 고려가 원나라의 지배를 받으면서도 유일하게 큰소리 뻥뻥 치며, 콧대를 꺾은 대목이 아닐까. 전생이 있다면 아마 고려시대의 사경승(寫經僧)이었을 것이다. 꿈 속에서 고려 사경원의 각 처소를 돌면서 관리·감독을 한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 김경호(46)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조선시대 이후 쇠퇴한 고려사경 재현의 길을 30년째 고독하게 걷고 있다. 마치 서산대사가 눈 내린 들판을 밟고 걸어갈 때(踏雪野中去)처럼 사경 발걸음에 잠시라도 어지러이 하지 않았다(不須胡亂行). 또 지금 걷는 발자국(今日我行蹟)이 뒤따라오는 사람의 이정표가 되듯(遂作後人程)이 말이다. ●새달 28일 중국서 사경전시회 그 결과, 이제는 사경이 하나의 어엿한 예술장르로 꽃을 피우고 있다. 다음달 28일부터 31일까지 중국 산둥(山東)의 성도 지난(濟南)에서 한국사경연구회 회원 20명과 함께 사경전시회를 갖는다. 이는 중국땅에서 원-고려 이후 700년만에 고려사경이 재현된다는 점에서 사뭇 의미가 크다. 이와 함께 중국의 4대 명찰 중 하나인 영암사에서 최초의 사경법회까지 연다. 특히 오는 7월24일부터 9월9일까지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는 한·중·일 사경 특별전이 처음 개최되는데 여기에서 김씨의 수준높은 사경작업 과정을 동영상으로 담아 선보인다. 아울러 9월 전주에서 열리는 세계 서예비엔날레에 특별초청을 받아놓은 상태. 지난 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사무실에서 김씨를 만났다.“이제야 사경의 중요성을 알아주는 것 같다.”며 탄식이 섞인 긴 한숨을 내뱉었다. 그동안 개인전만 11차례나 열면서 사경의 가치를 알려온 외로운 노력이 비로소 결실을 맺고 있다는 뜻이기도 했다. “사경이 현존하는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물인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역시 세계 최고의 금속활자 인쇄물인 ‘직지심체요절’을 탄생시킨 연원입니다. 사경이 지닌 전법, 그 기능을 극대화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고품이 개발된 것이지요.” 또한 “(사경이)고려시대에는 가장 뛰어난 예술작품으로 승화됐다.”고 전제한 뒤,“고려 왕조 500년 동안 금자대장경과 은자대장경, 그리고 목판대장경을 포함해 무려 열번의 대장경을 사성했을 정도로 고려왕조는 가히 사경왕조였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청자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것. 고려시대의 미술을 깊이 있게 연구한 미술사학자들도 사경과 청자를 고려의 대표적 예술로 꼽는 데 주저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선시대에는 억불정책으로 빛을 잃었고, 현대에 와서는 그 예술성이 사실상 거의 사라지다시피했다는 것. 김씨는 이같은 고려사경을 재현하기 위해 두팔을 걷어붙였다. 언론매체와 방송 등을 통해 사경의 중요성을 수없이 역설했다.‘사경의 기법’ ‘사경서체’ ‘또다른 수행-사경’ 등을 주제로 책을 펴내는 한편, 문화센터와 대학사회교육원 등에서 십수년간 강의도 했다. 연세대 사회교육원에서 1999년 사경 지도자 과정을 신설했을 때 김씨가 최초의 지도교수가 됐다. 또한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교육원·포교원 등에서 사경수행법 연구 및 조사집필 자문위원을 맡기도 했다. 특히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개인전과 단체전 등 모두 40여 차례의 전시를 통해 고려사경의 우수성을 국내외에 꾸준히 알렸다. “사경이 일반인들에게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0여년 전입니다. 지금은 사경인구가 많이 늘어 150만명으로 추산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장충식 교수님의 역할이 정말 컸습니다. 제가 은사로 모셨는데, 그분의 격려가 없었다면 도중하차했을 겁니다.2005년 은사님이 돌아가실 때 백아절현(伯牙絶絃)의 심정으로 사경을 그만두려고 했거든요.” 불교미술사학자로 이름을 떨쳤던 고 장충식 교수는 생전에 김씨의 사경작품을 보고 “고려시대의 그것보다 훨씬 정교하다.”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또 한글 궁서체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꽃뜰 이미경 선생은 “한글 궁체를 발전시키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라고 했으며, 문화재위원과 여러 미술사학자들로부터 “인간문화재의 경지를 넘어섰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수만권 문헌 뒤지며 고려사경 직접 조사 그의 사경기법에는 몇가지 독창적인데가 있다.▲최대한 권위있는 원전을 5종 이상 대조하고 자구에 맞게 한글번역을 하며 ▲가급적 녹교를 끓여 사흘 이상 쓰지 않으며, 사경지를 포수처리하고 ▲금니와 은니를 3회 이상 정제하는 등 100%의 순도를 유지한다. 특히 모든 과정을 문헌에 근거, 제작하기 위해 슬라이드만 수만장에 이를 만큼 고려사경을 직접 조사하고 연구해왔다. 이같은 원칙을 바탕으로 머리카락보다 가는 선묘를 구사(1㎜ 공간에 5개 이상의 금선을 그음)할 만큼 사경의 정교함을 한 차원 높였다. 아울러 2005년 ‘사경수행법’을 집필할 때까지 종단에서조차 정리되지 않았던 사경수행의 방법을 체계화한 것도 그의 업적이다. 그가 사경과 인연을 맺은 것은 네살때. 붓을 잡고 부친에게서 획과 결구를 배우기 시작하면서였다. 초등학교 졸업 후에는 중학 진학도 미룬 채 홀로 서예공부에 빠졌다. 중학교를 1년 늦게 진학한 그는 이후 각종 전국 학생서예대회에 출전, 최우수·우수상 등 대부분의 상을 휩쓸었다. 고교시절에는 사경에 빠져 세번이나 부모 몰래 출가하기도 했다. 대흥사에서 행자생활을 하던 중에 가족들에게 붙잡혀왔고, 두륜산에서는 토굴에서 지내기도 했다. “사경은 서예의 영역을 뛰어넘는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요. 일본의 경우 사경인구가 600만명에 이르고 전승도 잘 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한자문화권에서는 우리나라 사경이 최고 수준이라고 자부합니다.”그는 또 “사경은 서예와 회화, 공예적인 요소를 함께 지닌 종합예술”이라고 거듭 강조한다. 그는 프랑스 파리에서의 ‘동·서양의 사경 만남전’을 추진 중이다. 이때 우리의 우수성을 세계적으로 명실공히 인정받겠다며 매일 12시간씩 사경에 몰두한다.“아들과 딸도 애비의 영향을 받아서인지 전국 서예대회에서 1,2위를 다툰다.”고 귀띔했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62년 김제 출생 ▲76년 중학때 묵서로 사경 독학 ▲82년 남성고 졸업 ▲86년 전북대 국문과 졸업 ▲97년 제1회 불경사경대회 대상수상(조계종 총무원 주최) ▲99∼2006년 연세대 사회교육원 서예·사경 지도자과정 지도교수 ▲04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졸업(석사) ▲현재 한국사경연구회 회장 #전시 금산사 창건 1400주년 기념초대전(98년) 등 40여회. #주요 저서 학의 울음(96년), 외길 김경호 사경집(02년), 신라백지 묵서 ‘대방광불화엄경’의 연구(04년), 수행법연구(사경 책임집필·05년), 한국의 사경(06년). ■ 사경(寫經)이란? 사경의 사(寫)는 베끼다, 옮겨놓다 등이며, 경(經)은 ‘법, 이치, 성인이 지은 책’이라는 뜻을 지녔다. 본래 ‘경’은 ‘수트라’로 ‘실(線)’이라는 뜻으로 꽃에 비유할 수 있는 중요하고 짤막한 금언(金言)이나 격언을 모은 것에서 기원한다. 화엄경 보현행원품에는 ‘사경이 병과 고뇌와 악업을 씻어주고 큰 죄도 용서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불가에서는 궁극적으로 인간의 마음을 평화롭게 하는 고귀한 말씀을 사경을 통해 접하고 전할 수 있다고 믿는다. 중국에서 불교가 전래될 때 함께 건너온 사경은 원래 불교 경전만 옮겨 쓰는 행위였으나 최근에는 성경, 꾸란 등 타 종교의 경전으로 대상이 넓어지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경은 경주 나원리 5층석탑에서 사리장엄구와 함께 출토된 무구정광대다라니편(8세기초)으로 전해졌으나 사성기(寫成記)가 없어 사성연대가 명확한 호암미술관 소장 국보 제196호 ‘신라백진묵서 화엄경 제2축’이 현존 최고(最古)의 사경으로 알려져 있다.
  • [열린세상] 더불어 사는 사회의 종교/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열린세상] 더불어 사는 사회의 종교/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10년 전쯤 일이다. 모스크바 공항 출국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더니 한 사람을 에워싸면서 감격스러워하고, 둘러싸인 당사자는 개선장군처럼 당당하게 한 팔을 치켜올리며 승리의 제스처를 취하였다. 마침 옆에 있던 필자는 그들이 우리나라 선교일행임을 금방 알 수 있었다. 동시에 러시아 대학교수가 해준 말이 떠올랐다. 한국에서 온 종교인들이 취업까지 내걸며 개종을 권유하여, 한국인의 선교활동을 막아달라고 정교회에서 청원했다는 내용이다.3년 전에는 전쟁지역인 중동 이슬람 국가로 기독교를 전도하러 간 청년이 목숨을 잃었다. 보다 타종교를 배려했다면 발생하지 않을 모습일 듯하다. 최근 개신교의 현저한 활동은 경제적 여건과 근본주의 색채와 관련되어 보인다. 어느 교회는 크게 짓다가 외환 경제위기를 맞아 100억원 정도의 빚을 졌다고 한다. 지금 그 빚을 다 갚고, 또 주위의 부동산도 사들였다. 해외선교를 도와주고, 북한도 도와준다고 한다. 행사를 자주 벌이고, 교인들의 활동이 자못 활발하다. 새벽에도 인도에까지 주차할 정도로 열기가 뜨겁다. 한국의 신앙 활동이 구미 사람들에게는 광신으로 보일 거라는 신학대학 유학생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모습들이다. 사실 교회의 성격은 목회자에 따라 차이가 많이 난다. 가톨릭에 비해서도 훨씬 자유롭고 다양할 수 있는 체제이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대부분의 개신교는 맹목적이고 교리에 더 경직된 듯하다. 역사에 의하면 가장 비참한 일은 종교전쟁이다. 그런 일이 우리나라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종교 사이의 반목은 경계수위라고 믿어진다.2005년 통계에 의하면 종교인은 전체 인구의 53%이다. 그 분포는 불교 43%, 개신교 34%, 가톨릭 21%이고, 나머지 2%를 20여개의 군소 종교가 차지한다. 이들 종교간 마찰이 없을 리야 없겠지만 대두되는 큰 문제는 오직 근본주의 교리로 배타주의를 내세우는 일부 개신교와의 갈등이다. 그 개신교 성직자들은 정치적 NGO를 만들고, 대규모 군중집회를 열며, 보다 강하게 자기의 의견을 주장한다. 분포율이 다소 줄어들고 있다지만, 실제 개신교의 영향은 더 커지고 있어, 갈등이 점점 불거지고 있다고 할까. 현재 개신교와 우리 전통과의 충돌은 정말 걱정이다.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숭배라고 보는 교리 때문에 가족 간에 불화가 빈번하다. 단지 보존하기 위한 전통의식도 우상숭배라 단정한다. 대학 캠퍼스에서 장승들이 세워지던 시절의 일이다. 학생들이 세운 천하대장군을 한밤중에 누가 불태웠다. 그러자 학생들이 불타지 않게 처리한 장승을 다시 세웠다. 범인은 이번에는 톱을 가지고 자르려다가 발각이 되었는데, 착실한 엘리트 신자였다. 누구나 교리에 집착하면 사회의식을 상실함을 보여준다. 일부 목회자들이 신자들을 소설 다빈치코드의 실라와 같이, 타파를 사명으로까지 느끼도록 몰아가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지금도 과거 유럽처럼, 종교관이 다르다고 끝까지 싸울 것인가. 참 안타깝다. 종교는 자기의 교리의 우월성을 주장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동체 사회의 종교라면 남의 기준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사회의 정신으로, 또 바른 신앙을 위해 의문을 품는 아퀴나스와 같은 정신으로, 첨예한 문제인 우상에 대하여 생각해본다. 오래 전에 행해진 우상에 대한 판단은 정확한 근거에 의한 것인가. 십자가가 우상이 아니듯이, 남의 상징물도 우상이 아닐 수는 없을까. 근본적으로 인간이 우상의 가부를 판단할 수 있을까. 어떻든 본래 목적에 충실한 종교라면 교리는 시대에 따라 변할 듯하다. 그렇다면 타종교와 전통문화를 어우르는 변화를 간절히 고대해본다. 사회가 격변하면서 갈등들이 표출하는 시기라, 그에 맞는 참다운 소금의 역할이 절실하기 때문이다. 정문성 울산대 물리학 교수
  • 원불교 류기현 종사 열반

    원불교의 ‘원불교학 1세대’인 여산(如山) 류기현(본명 병덕) 종사가 18일 오후 3시6분 전북 익산시 원광의료원에서 열반했다. 세수 78세, 법랍 54세. 충남 서산에서 태어난 여산 종사는 1952년 원불교에 입교한 뒤 원광대와 전북대 대학원을 나와 1958년부터 원광대 교수로 재직하며 원불교 교무들에게 원불교학을 가르쳤다. 종교문제연구소를 창설해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의 법을 알리는 역할에 치중했으며 지난해 소천한 강원용 목사가 주도했던 종교간 대화모임에 깊이 참여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성보영씨와 4남. 장례는 원불교 교단장으로 치러지며, 발인은 20일 오전 10시30분 전북 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에서 있다. 빈소는 원불교 중앙총부 대각전에 마련됐다.(063)850-3370.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책꽂이]

    ●중국 문화읽기(유주열 지음, 이비락 펴냄) 주중국 대한민국 대사관 총영사인 저자가 쓴 중국 역사·문화론. 저자는 “흔히 외교관은 나라의 ‘눈’이고 ‘귀’이며 ‘입’이라고들 말한다. 이에 하나를 보태자면 나라의 ‘다리’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고 밝힌다. 국익을 위해 뛰고 또 뛰는 것이 외교관의 일이라는 것이다. 이 책엔 저자의 이런 직업정신이 그대로 녹아 있다. 그런 만큼 이야기는 생생하고 현장감이 넘친다.‘자금성 감상법’ ‘왕푸징과 스차하이’ ‘국화술이 익는 타오란팅(陶然亭) ‘투장옌(都江堰)과 산샤댐’ ‘츠판러 메이요’ ‘신차이라이(新菜來)’ ‘건륭제와 거지 닭’등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실렸다.1만원.●규장각 교리 성대중이 쓴 궁궐 밖의 역사(성대중 지음, 박소동 엮음, 열린터 펴냄) 조선시대 영·정조의 지우(知遇)를 받고 서얼 신분임에도 벼슬길에 올라 규장각 관원이 된 청성(靑城) 성대중. 그는 당대 문인학자로 이름 높았고, 스스로 고문(古文)에 입각한 순정한 문체를 자임해 문체반정(文體反正)의 모범적 인물로 정조의 칭찬을 받은 인물이다.18세기 일상사의 풍경을 그린 그의 저서 ‘청성잡기’에 따르면 조선왕조는 여성억압의 시대가 아니다.“우리나라는 개가(改嫁)를 금지했으므로 부인들의 기세가 더욱 드세졌다. 그들은 다른 방도가 없었으므로 걸핏하면 죽으려 들었다. 남편에게 화가 날 때마다 죽으려 드니, 이는 신하가 임금에게 은총을 잃으면 떠나려 하고 종이 주인에게 벌을 받으면 도망칠 생각을 하는 것과 같다.”라는 대목이 이를 증명한다.1만 3000원.●황하에서 한라까지(심백강 지음, 참좋은세상 펴냄) 교육인적자원부는 얼마전 고조선에 관한 국사 교과서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고 한다.’에서 ‘세웠다.’로 고작 세 글자만 달리 표기했을 뿐, 고조선의 발상지가 한반도의 대동강 유역이라고 보는 데는 달라진 게 없다. 재야 역사학자인 저자는 고조선의 발상지가 한반도가 아니라 중원 대륙의 요서 대릉하 유역임을 ‘사고전서’ 등의 다양한 사료를 통해 분명히 밝힌다. 저자는 한사군을 설치하면서 조선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기 싫어했던 한 무제가 요락수의 ‘낙’자와 백랑수의 ‘랑’자를 결합해 만든 낙랑군이란 지명을 지었다고 주장한다.1만 3000원.●살아있는 한국 근현대사 교과서(김육훈 지음, 휴머니스트 펴냄) 청소년 대안교과서로 화제가 돼온 ‘살아있는 역사 교과서’ 시리즈의 마지막 책. 국권을 상실한 1910년과 광복의 해인 1945년을 기준으로 하는 대다수의 근현대사 책과 달리,3·1 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구성시기를 시대구분의 기준으로 삼은 것이 특징이다. 김옥균과 전봉준이 함께 할 수는 없었을까. 고종에게 망국의 책임을 묻는 것이 가능한가, 분단을 피할 수는 없었을까 등 토론거리와 ‘그때 세계는’과 같이 한국사와 세계사를 연관지어 풀어낸 코너 등이 눈길을 끈다.1만 9000원.●힐러리와 라이스, 성공 리더십(기시모토 유키코 지음, 한성기 옮김, 김영사 펴냄) ‘고성능 불도저’ 같은 뉴욕주 상원의원 힐러리와 백금으로 만든 ‘정밀기계’ 같은 국무장관 라이스. 이들의 성장과정과 삶의 스타일, 가치관, 종교, 외모를 비교했다. 미국에서 두번째로 가난한 아칸소주의 지사 부인에 불과했던 힐러리는 지금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대통령을 꿈꾼다. 힐러리는 적과 절대로 타협하지 않고 정면으로 부딪친다.171㎝의 키에 근육질 몸매를 뽐내며 늘 다리를 꼬고 앉는 흑진주 라이스는 자기관리의 대가. 각기 다른 경력을 쌓으며 초강대국 미국의 최고 권력에 다가간 두 사람을 통해 이 시대의 진정한 여성리더의 모습을 조명한다.1만원.●주돈이(함현찬 지음, 성대출판부 펴냄) 공자와 맹자를 정점으로 황금기를 구가한 유교철학은 수나라와 당나라를 거치면서 그 영광된 자리를 도교와 불교에 넘겨주고 말았다. 유교철학이 훈고학에 치중, 삶과 괴리된 문제로 논쟁을 일삼는 행태가 민중의 이반을 불러온 것이다. 그러나 송대에 들어 이민족의 잦은 침입은 민족의 위기의식을 불러왔고 주체성을 확립할 필요성이 대두되면서 유학의 바탕 위에 불교와 도교의 내용을 흡수, 새로운 시대에 맞는 신유학(성리학)을 건설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그 선두에 서있는 학자가 바로 주돈이다. 성리학의 비조 주돈이의 사상을 다뤘다.1만 5000원.●북한영화사(이명자 지음, 커뮤니케이션북스 펴냄) 1945년 이후 북한 영화사를 시대와 작품, 영화사적 사건별로 정리. 해방공간에서의 토대 구축기(1945∼1950), 전쟁과 전후 사회주의 영화 건설기(1950∼1955), 천리마 영웅 형상기(1956∼1966), 주체영화 출발기(1967∼1979), 숨은 영웅 형상과 고정 창작단 활동기(1980∼1991), 주체 사실주의와 변화 수용기(1992∼1997), 선군혁명영화기(1998∼) 등으로 나눠 설명한다.1만 8000원.
  • 선불교통카드로 한달 5000원 이상 버스 이용 현금영수증 받을 수 있다

    월 5000원 이상을 버스요금으로 지불하면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또 교통카드의 충전 잔액이 부족하더라도 1회에 한해 버스승차가 가능한 ‘마이너스 승차제’가 도입된다. 서울시는 선불교통카드를 사용해 월 5000원 이상을 요금으로 지불하면 현금영수증을 발급, 소득공제 혜택을 받도록 하는 서비스를 이달부터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현금영수증을 원하는 시민은 티머니카드의 경우 한국스마트카드 홈페이지(www.t-money.co.kr), 버스조합교통카드(유패스)는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www.sbus.or.kr)에 실명등록하면 된다. 티머니카드 사용 시민은 이달 25일부터, 버스조합교통카드는 다음달부터 등록이 가능하다. 경기·인천지역 버스에서 지불한 요금은 현금영수증 합산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시는 앞으로 현금영수증 합산이 가능토록 이들 지역의 버스조합 및 지자체와 협의할 방침이다. 또 교통카드의 충전잔액이 버스요금에 못 미치면 1회에 한해 버스 승차가 가능토록 하는 ‘마이너스 승차제’를 다음달 15일 도입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현금영수증 받을 수 있다

    월 5000원 이상을 버스요금으로 지불하면 현금영수증을 발급받을 수 있다. 또 교통카드의 충전 잔액이 부족하더라도 1회에 한해 버스승차가 가능한 ‘마이너스 승차제’가 도입된다.서울시는 선불교통카드를 사용해 월 5000원 이상을 요금으로 지불하면 현금영수증을 발급, 소득공제 혜택을 받도록 하는 서비스를 이달부터 실시한다고 19일 밝혔다. 현금영수증을 원하는 시민은 티머니카드의 경우 한국스마트카드 홈페이지(www.t-money.co.kr), 버스조합교통카드(유패스)는 서울버스운송사업조합 홈페이지(www.sbus.or.kr)에 실명등록하면 된다. 티머니카드 사용 시민은 이달 25일부터, 버스조합교통카드는 다음달부터 등록이 가능하다. 경기·인천지역 버스에서 지불한 요금은 현금영수증 합산 대상에서 제외되지만, 시는 앞으로 현금영수증 합산이 가능토록 이들 지역의 버스조합 및 지자체와 협의할 방침이다. 또 교통카드의 충전잔액이 버스요금에 못 미치면 1회에 한해 버스 승차가 가능토록 하는 ‘마이너스 승차제’를 다음달 15일 도입한다.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5) 부석사의 절묘한 건축미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5) 부석사의 절묘한 건축미

    오랜만에 부석사에 올랐습니다. 이번에는 쓸모가 있을 듯하여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나침반도 하나 준비했지요. 경북 영주의 부석사는 특히 건축가들이 깊은 애정을 갖는 절집입니다. 서양건축사를 배우며 주눅들었던 건축학도 시절, 부석사를 알게 되면서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았던 기억 때문이겠지요. 불교 교리의 상징체계를 건축적으로 완벽하게 구현한 절이 부석사입니다. 극락정토에 왕생하고자 하는 중생을 선행의 정도에 따라 아홉 단계로 나누는 아미타신앙의 3품3배관(三品三輩觀)을 반영하고 있음은 유홍준의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도 잘 소개되어 있지요. 아미타신앙은 보살급 공력을 쌓은 상품상생(上品上生)은 물론 일자무식의 하품하생(下品下生)이라도 한결같은 정성으로 ‘나무아미타불, 나무아미타불….’하고 간절히 부르면 극락에서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부석사를 지은 사람들은 천왕문에서부터 크게 세단씩 나눠진 모두 아홉 단의 돌계단을 만들어 놓아, 절에 들어선 뒤 극락정토 세계를 상징하는 무량수전에 이를 때까지 자연스럽게 스스로를 정화시켜 가도록 배려했습니다. 무량수전의 부처가 남쪽 정면을 향하지 않고 서쪽에 앉아 있는 것은 조금 생소합니다. 이 또한 아미타부처가 동쪽을 바라보게 함으로써 서방정토에 상주하고 있음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건축가들이 부석사에서 가장 의문스럽게 생각하는 대목은 굴절된 축인 듯합니다. 천왕문에서 중품단(中品壇)이 끝나는 여섯째 계단의 범종각까지 일자로 곧게 뻗은 축이, 상품단(上品壇)이 시작되는 일곱째 계단부터는 왼쪽으로 방향을 달리하고 있습니다. 지형에 순응한 결과라는 해석에서부터 안양루와 무량수전이 중첩되면서 이루는 극적인 장면을 연출하기 위해서라는 해석, 여기에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산맥과 형국의 생김새가 건물 배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는 풍수지리적 해석까지 갖가지 상상이 이뤄졌습니다. 하지만 축의 굴절이라는 건축계획 과정의 중대한 결정이 아미타신앙의 교리적 상징과 무관하게 이뤄졌다면 부석사는 위대한 절일 수 없습니다. 나침반은 천왕문에서 범종루에 이르는 직선축이 240도 방향의 서쪽을 향하고 있음을 알려줍니다. 지형을 거스르지 않는 자연스러운 배치입니다. 하지만 직선축을 연장해 무량수전을 짓는다면 아미타불은 330도 방향의 ‘북방동토’에 앉게 되니 고민스러웠겠지요. 그래서 일곱번째 계단인 상품하단에서 무량수전에 이르는 두번째 축의 방향을 타원형에 가깝게 크게 틀었을 것입니다. 자세히 보면 무량수전도 최대한 남쪽을 향하도록 안양루와도 각을 조금 두어 마당은 사다리꼴을 이룹니다. 이렇게 해서 무량수전은 195도 방향의 남향집이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이처럼 부석사의 굴절된 축 또한 무량수전의 아미타불이 서방정토에 머물고 있다는 교리적 상징을 살리고자 고안한 건축적 장치입니다. 그럼에도 일관성을 훼손시키기는커녕 신비감을 오히려 배가시키는 효과를 거두었으니 부석사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dcsuh@seoul.co.kr
  • ‘마음 부처’ 찾으면 미움·애착 사라져요

    ‘마음 부처’ 찾으면 미움·애착 사라져요

    “세상을 살면서 무엇을 깨닫고 무슨 일을 하다가 가느냐가 중요합니다. 사람의 청정한 근본정신이랄 수 있는 마음의 법등(法燈)을 발견해 전해준 성자(聖子)의 탄생은 모든 인류가 축하해야 할 경사입니다. 그 성자들의 깊은 뜻을 깨달아 생활 속에 올곧게 실천하도록 돕는 게 종교인의 역할이 아닐까요.” 원불교 창교일인 대각개교절(28일)에 앞서 지난 17일 전북 익산 총부를 찾은 기자들을 반갑게 맞은 장응철(67) 종법사는 “성자들은 은혜로 얽혀 있는 세상과 인류의 구원을 위해 마음의 개벽을 중시했다.”며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마음부처’를 찾아 나눔의 미덕을 실천한 창교자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의 뜻을 전했다. “물질이 중시되는 세상에선 정신이 황폐해질 수밖에 없지요. 그런 점에서 정신 개벽을 통해 물질을 잘 사용할 줄 아는 방법을 깨닫는다면 앞서가는 사람과 민족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도 생활 속에서 사고나 사유(생각)를 쉬면서 의심머리(화두)를 직관하는 노력을 계속하면 누구나 관조할 수 있고, 파워와 실천력을 갖춘 깨달음에 도달할 수 있다.”는 종법사. 그는 “어떤 일을 할 때 온전하게 그 일에 전심전력하면 선입견이나 감정 흐름, 딴 생각의 경계에 걸린 마음의 뿌리를 뽑아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대각개교절을 맞아 종도들에게 무엇보다 잊고 사는 ‘본 마음’(마음부처)을 되찾도록 당부하고 있다는 종법사는 “많은 사람들은 ‘본 마음’이 가려진 탓에 마음의 난리 속에 살고 있다.”며 기자들에게도 “마음의 등불을 밝히라.”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세상의 현안들로 화제를 옮긴 종법사는 새 지도자상에 대해 “지금 우리는 보수·진보, 빈부 차별 등 극도로 양분된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며 무엇보다 흩어진 사람과 일들을 모아 ‘화합동진’(和合同進)할 수 있는 자질과 역량을 갖춘 사람을 찾아내야 한다고 강조했다.“통일의 열정뿐만 아니라, 중심무대가 동아시아로 옮겨지고 있는 국제사회의 흐름을 향도할 안목도 중요합니다. 시대가 영웅을 만든다는 말이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어려움을 헤처나갈 바른 지도자가 절실한 때입니다.” 남북 통일과 관련해선 “바다의 물이 들고 날 때 들락날락하면서 서서히 간·만조를 이루듯이 평화 공존 역시 성급하게 서둘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의 한·미무역협정(FTA)에 대해 묻자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민족은 도전과 응전에 강했다.”며 “그늘진 곳에 있는 사람들에게 얼마만큼 실질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는지를 따져 새로운 도약의 발판으로 삼아야 한다.”고 전했다. 특히 “자연과 생명을 거스르면 결국 재앙을 가져온다.”는 종법사는 지구온난화, 배아줄기세포 연구의 문제점을 따지기도 했다.“속세에서 지은 업(業)에 따라 생기는 병은 약으로 극복할 수 있지만 병을 낳는 근본적인 원인인 업은 약으로만 고쳐지지 않습니다. 인연으로 얽힌 생명을 중시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본래의 ‘마음 부처’를 찾다 보면 잡념의 뿌리를 녹여 죄가 없는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이참(理懺)에 이를 수 있습니다. 미움과 애착이 없는 행복을 이루기 위해 늘상 나쁜 곳에서 좋은 곳으로 마음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익산 글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원불교 ‘이웃종교’와 사랑 나눔 원불교가 창교일인 대각개교절을 맞아 이웃 종교의 사회복지시설을 돌며 사랑의 나눔행사를 가져 눈길을 끌었다. 이성택(64) 교정원장이 지난 16일 전북 익산시 월성동의 천주교 작은천사어린이집(원장 강마리루시 수녀)과 전북 완주군 소양면의 조계종 송광녹지원(원장 우용호)을 차례로 방문해 시설을 둘러보고 성금을 전달한 것. 원불교의 ‘처처불상 사사불공’ 정신에 따라 소외된 이웃에 대한 관심 확대와 종교화합 실천의 차원에서 전격적으로 마련한 행사다. 먼저 발달장애아 교육·치료시설인 작은천사어린이집을 방문한 이성택 교정원장은 40여명의 발달장애 아동들을 둘러본 뒤 성금을 전달했다. 이 원장은 “우리 주변에 불우한 이웃이 많지만 일반인들의 관심 부족으로 소외된 채 어둡게 살아가는 경우가 많다.”면서 “이웃종교끼리 교류를 활성화해 이들에 대한 사랑과 지원을 확산시키자.”고 종교 복지시설간의 교류를 제안했다. 이에 대해 강 원장수녀는 “교육과 치료시설이 잘 갖춰진 이곳과 원불교 사회복지시설이 힘을 합하면 더 많은 아동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며 이 원장 일행을 배웅했다. 이어서 정신질환을 앓는 노인 169명을 수용 치료 중인 완주 송광사 녹지원을 찾은 이 원장은 시설 곳곳을 일일이 돌며 노인들을 격려하고 성금을 전달했다. 녹지원은 개인이 운영하다 2년 전 조계종 송광사가 인수해 노인들을 돌보고 있는 노인 요양시설. 이 원장 일행을 따뜻하게 맞은 덕산 스님(상임이사)이 “전북 지역에서 사회복지시설을 선도적으로 운영해온 원불교가 그동안 쌓아온 노하우를 전해달라.”고 청하자 이 원장은 덕산 스님의 손을 맞잡고 적극 협조할 것을 약속했다. 익산 글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종교건축 이야기] (26) 화성 용주사

    경기도 화성시 화산 아래 야트막한 언덕에 자리잡은 조계종 제2교구 본사인 용주사(龍珠寺·화성시 태안읍 송산리 188). 조선 제22대 임금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무덤을 양주 배봉산(지금의 서울 전농동)에서 화성(현륭원·지금의 융릉)으로 옮겨 모신 뒤 아버지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던 능침사찰(陵寺)이다. 사도세자와 사도세자비 혜경궁홍씨의 합장묘인 융릉(용주사에서 동북쪽으로 10여분 거리)을 수호하기 위해 지어 ‘효(孝)의 본찰’로 널리 알려진 도량이다. 능사의 사격 그대로, 다른 전통사찰과는 달리 산이 아닌 평지에 들어서 사찰보다는 오히려 궁궐과 사대부 가옥의 특징들을 더 많이 갖춘 독특한 가람이다. 능사란 왕이나 왕비의 능 근처에서 능침을 수호하고 명복을 비는 재(齋)를 지내기 위해 세운 사찰이다. 조선시대를 통틀어 모두 11곳이 세워졌다. 지금 남아 있는 것으론 용주사를 비롯해 세조의 광릉을 위한 봉선사, 세종의 영릉 수호사찰 신륵사, 중종의 정릉 능사 봉은사가 대표적이다. 이들 능사 가운데 용주사는 당파싸움의 와중에 억울하게 뒤주에서 목숨을 잃은 아버지 사도세자를 향한 정조의 절절한 효심이 그득한 ‘효 사찰’이란 차별성을 갖는다. 정조는 아버지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조성한 뒤 능사를 짓기 위해 큰 공을 들였다고 한다. 각처에서 길지를 모색하던 중 신하들로부터 ‘천하제일의 복지’로 추천받아 낙점한 곳이 바로 옛 갈양사 터이다. 신라시대부터 사찰의 이름이 등장하는 갈양사는 한국불교 선종(禪宗)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구산선문의 하나인 가지산문(迦智山門)의 제2조 염거 스님이 창건하고 주석했던 선찰이다. 지금도 그 선풍을 이은 선원 서림당과 중앙선원엔 안거(安居)를 가리지 않고 참선수행하는 선승들의 정진이 이어진다. 신라기부터 고려기까지 왕실 원찰로 받들어졌으며, 물과 육지에서 헤매는 영혼과 아귀를 위로하기 위해 불법을 강설하는 ‘수륙재’가 처음 열린 곳이기도 하다. 갈양사는 이처럼 명성이 높았지만 어떻게 소실됐는지 알 수 없고, 다만 잦은 전란으로 사라져간 것으로 학계는 추정하고 있다. 용주사 대웅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에 따르면, 정조는 사도세자의 묘를 화성으로 옮겨 봉안한 다음해인 179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불과 7개월 만에 사찰 짓기를 모두 마무리했다.140여칸이나 되는 사찰 규모를 볼 때 정조가 용주사에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를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절을 지을 때 큰 시주를 한 관료의 명부인 ‘대시주진신안(大施主縉紳案)’에는 경기감사를 비롯한 각 도의 감사 9명, 군수·현감·부사·만호·첨사 같은 지방관료 87명 등 모두 96명의 관직명과 이름이 들어 있다. 중앙의 고위관리들도 당연히 시주했을 것이며 ‘용주사건축시각도화주승’에서 확인되었듯이, 용주사 창건을 위해 각 지방의 승려들이 책임을 맡고 나섰음을 볼 때 이 불사는 승속을 초월해 대규모로 진행된 유례없는 것이었다. 절 이름 ‘용주(龍珠)’는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는 형국’이라는 지형에서 비롯됐지만, 절을 다 지은 뒤 낙성식이 있던 전날 정조가 여의주를 물고 승천하는 용 꿈을 꾼 뒤 붙여졌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가람의 큰 골격은 비교적 옛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고(故) 정대 스님이 주지 시절 새로 지은 불음각이며 중앙선원, 호성각, 천불전을 빼곤 창건 당시와 크게 다르지 않다. ‘경기제일가람 용주사’라고 쓴 일주문을 들어서 좌우에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 같은 불교 경전 속 경구들을 새긴 표석들을 바라보며 천왕문을 넘으면 좌우 양쪽에 행랑을 거느린 맞배지붕 양식의 삼문이 눈에 들어온다. 삼문이란 동서 옆문과 중앙 대문에 각각 문이 나 있어 부르는 이름. 전통사찰에선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공간인데 사도세자의 재궁(齋宮)으로 지어졌음을 보여준다. “용이 꽃구름 속에 서리었다가 여의주를 얻어 조화를 부리더니 절문에 이르러 선을 본받아 부처님 아래에서 중생을 제도한다.” 삼문 네 기둥에 ‘龍珠寺佛’의 네자를 각각 첫 글자로 딴 시구를 적은 주련이 인상적이다. 낙성식 전날 밤 정조가 꾼 꿈에서 비롯됐다는 사찰 이름과도 통하는 부분이다. 삼문과 주 전각인 대웅보전 중간에 서 있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2층 누각 천보루(天保樓)도 왕실이 직접 지었음을 보여주는 부분이다. 일주문 쪽에서 보면 천보루요, 대웅전 쪽에서 보면 홍제루(弘濟樓)라고 쓰인 현판이 사찰 양식이 아닌, 꼭 궁궐 풍이다. “밖으로는 하늘이 보호하고 안으로는 널리 백성을 제도한다.” 여섯 개의 목조기둥을 떠받치는 거대한 장초석도 주로 궁궐 건축에 쓰이는 것들이다. 누각 좌우로 7칸씩의 회랑이 맞닿아 있고 동쪽에 나유타료, 서쪽에 만수리실이 회랑과 연결돼 있다. 나유타료와 만수리실은 모두 바깥 마당으로 출입문이 나 있고 툇마루가 달려 있어 절집보다는 오히려 대갓집을 연상케 한다. 창건 당시 각각 선원과 강원으로 쓰였는데 지금은 회의 때 사용하는 큰방과 스님들의 요사채로 바뀌었다. 왕실의 위엄을 세우기 위해 이 천보루와 나유타료, 만수리실을 대웅전과 연결해 ‘ㅁ’자형으로 도드라지게 꾸며 그 정점에 대웅보전을 놓았다. 대웅보전은 창건 때 세워진 주 전각으로 조선후기 사찰양식을 그대로 따라 정면 3칸, 측면 3칸에 팔작지붕을 얹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화려한 닫집이 눈에 들어오는데 마치 석가모니 부처님과 약사여래불, 아미타불의 삼존불과 후불탱화를 옹휘하는 듯하다. 삼존상 뒤 후불탱화의 아랫부분 중앙에 ‘주상전하 수만세(壽萬歲) 자궁저하 수만세 왕비전하 수만세 세자저하 수만세’라 쓴 축원문이 들어 있다. 부처님의 가피가 왕실에 미치기를 기원한 탱화인 것이다. 당대의 불화에선 전혀 보이지 않는 서양화법의 원근법·명암법을 쓴 게 특이하다. 오래 전부터 김홍도의 작품으로 알려져 왔으나 대웅보전 닫집에서 발견된 원문(願文)의 “민관 상겸 성윤 등 25인이 탱화를 그렸다.”는 기록을 앞세운 학자들이 김홍도가 아닌 다른 화승들의 작품임을 주장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대웅전 앞의 회양목(천연기념물 제264호)은 정조가 직접 심은 나무다. 아버지 사도세자가 죽은 뒤 갖은 위협과 고난을 참고 견뎌냈던 지난날을 돌이키며 번뇌를 떨어내려 심었을까. 오래도록 사철 푸른 잎을 피웠지만 지금은 병이 들어 앙상하게 마른 모습이 보는 이들을 안타깝게 한다. 정조는 용주사를 세운 뒤 융릉과 용주사를 틈나는 대로 들렀다고 한다. 아버지의 능을 참배한 뒤 귀경하다가 자꾸 뒤를 돌아보며 아쉬워해 일행이 걸음을 늦추곤 했는데, 바로 그곳이 서울로 향하는 1번 국도변의 ‘지지대 고개’이다. 정조의 효심이 담긴 때문인지 대웅전 앞의 회양목은 마른 가지에서도 힘겹게 꽃을 피워내고 있다. “나를 잉태하고, 쓴 것은 뱉고 단 것은 먹여 주시며, 나를 키워주고, 먼길 떠나는 자식을 걱정하신 부모님의 은혜는 부모님을 양어깨에 모시고 수미산을 수억만년 돌아다녀도 결코 다하지 못한다.” 마치 바로 옆 ‘부모은중경탑’의 경문에 화답하듯이…. kimus@seoul.co.kr ■ 용주사와 부모은중경(父母恩重經) 정조는 즉위 초기에 조선시대 역대 왕들과 마찬가지로 억불정책을 폈던 것으로 전한다. 즉위하자마자 조선 초기부터 궁실에서 빈번하게 지어왔던 원당(願堂) 사찰 건립을 금지시켰고, 걸미승(乞米僧)들의 성내 출입을 엄금하는 조치를 취한 주인공이기도 하다. 그런 정조가 어떻게 전 국민이 동참하는 불사인 ‘용주사 건립’의 뜻을 세웠을까. 다름 아닌 불경 ‘부모은중경(佛說大報父母恩重經)’ 때문이다.‘조선불교통사’에 따르면 정조는 전남 장흥 보림사의 보경 스님이 바친 ‘부모은중경’을 읽고 마음에 느끼는 바가 커 용주사를 창건토록 지시했다. ‘부모은중경’은 부모의 크고 깊은 10가지 은혜에 보답하도록 가르친 경전이다. 아버지 사도세자에 대한 효심이 컸던 정조의 마음을 움직이기에 충분했을 것이다. 정조는 실제로 ‘부모은중경’에서 비롯된 용주사 창건을 전후해 불교에 대한 생각을 크게 바꾸었다. 해남 대흥사에 세워진 휴정 스님 사당의 편액 ‘표충’을 직접 썼으며, 안변 석왕사의 고사(古事) 내용을 담은 비문을 손수 지어 세웠다. 표훈사의 사찰 중수를 도왔는가 하면, 무학대사에게 ‘개종입교보조법안광제공덕익명흥운대법사’라는 법호를 내리는 등 고승들의 추존에도 열성을 보인 것으로 전해진다. 정조가 ‘부모은중경’을 얼마나 각별하게 생각했는지는 용주사의 숱한 유물들에서 그대로 읽힌다. 용주사 건물들에 걸린 많은 주련들은 정조가 당대의 명 문장가였던 이덕무에게 명해 쓰도록 한 것이다. ‘부처님과 용주사의 복을 빈다’는 내용의 게송 ‘어제화산용주사봉불기복게’는 직접 지은 것이며,‘부모은중경’의 내용을 한문·언문·그림으로 새긴 73매의 ‘부모은중경판’중 목판 42매(변상도·김홍도 그림)도 정조가 하사한 것이다.
  • [부고]

    ●이재(전 경남은행 국제부장)원(전 경희대 부총장)씨 모친상 13일 경희의료원, 발인 16일 오전 8시 (02)958-9545●추교섭(삼지상사 대표)교인(삼성물산 인사지원실장 상무)씨 부친상 장성봉(사업)씨 빙부상 13이 분당 서울대병원, 발인 16일 오전 7시 (031)787-1503●여준동(코리아아마스 회장)균동(영화감독)씨 부친상 박재권(3K Inc. 대표)씨 빙부상 13일 서울 여의도 성모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779-2193●황용진(CJ자산운용 경영리스크관리본부장 이사)창진(안과의사)씨 부친상 13일 부산 조은강안병원, 발인 15일 오전 (051)610-9671●문완식(SH공사 홍보팀장)용식(사업)씨 모친상 김현태(영남건설교육원 원장)김수현(법무사)홍재형(〃)씨 빙모상 13일 서울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7시 (02)3430-0397●신동규(대한민국재향군인회 보도과장)씨 부친상 13일 강원도 원주의료원, 발인 15일 오전 10시30분 (033)760-4603●주용철(이로지텍 대표)용진(KCC 차장)씨 부친상 황진자(한국소비자보호원 차장)씨 시부상 손동화(한국식품개발연구원)유병우(자영업)씨 빙부상 13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2650-2742●유형선(인하대 교수)영선(유영선치과 원장)경선(와토코리아 대표)씨 모친상 황도형(전 성신양회 상무이사)김근호(마이폰 사장)씨 빙모상 13일 경희 동서신의학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440-8912●김영태(중소기업청 서기관)씨 모친상 임병전(현대증권 포트폴리오팀 대리)씨 빙모상 12일 부산의료원, 발인 14일 오전 6시30분 (051)607-2654●오환우(진해 경화초등학교 교사)환중(회사원)환원(원테크놀로지 대표)환호(국회의원 보좌관)씨 부친상 12일 경남 창원 파티마병원, 발인 14일 오전 8시 (055)270-1942●최완용(엠에스테크놀러지 대표)승용(〃 부사장)호용(종근당 병원사업부장)씨 부친상 최다래(현암중 교사)씨 조부상 이명례(단대초등학교 교사)씨 시부상 조성묵(삼태성 이사)씨 빙부상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5●김일원(한국동서발전 당진화력발전처 총무팀장)씨 별세 13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010-2266●김성로(전 동명기술공사 부사장)씨 별세 13일 한양대병원, 발인 15일 오전 10시20분 (02)2290-9460●오용식(충북도의원)씨 부친상 13일 충북 괴산장례식장, 발인 15일 오전 9시 (043)834-4447●조문배(불교방송 보도국 차장)씨 형님상 12일 을지병원, 발인 14일 오후 2시 (02)971-2203●이종구(전 한나라당 총재특보)씨 빙모상 13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15일 오전 8시 (02)392-0899
  • [특파원 칼럼] 東으로 건너간 젠전/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젠전(鑒眞) 대사가 지난 11일 입적했다. 그토록 어렵게 건너간 동쪽의 땅. 도착 10년만이다. 향년 76세. 젠전은 중국 당나라 시대 고승이다. 그가 일본에 건너간 때는 66세였던 서기 753년.12년간 5전6기 끝에 이룬 꿈이었다. 무려 다섯차례나 ‘조각배’로 동중국해를 건너 일본에 가려다 실패했으며,5번째는 고향 장쑤(江蘇)성 양저우(揚州)를 떠난 배가 폭풍우를 만나 14일간이나 표류하기도 했다. 그때 하이난다오(海南島)까지 떠밀려간 젠전은 열병을 앓아 실명에까지 이른다. 그래서 그는 일본에서 ‘장님 성자(盲聖)’로 불렸다. 중국 CCTV의 최근 드라마 ‘젠전이 동으로 건너가다(鑒眞東渡)’는 그의 일대기를 그린 것이다. 드라마는 그를 일본 율종(律宗)의 태조이며, 일본 의학의 시조로 묘사하고 있다. 일본에 두부를 처음 소개하고, 자수를 가르친 것도 젠전 일행인 것으로 설정했다. 중국 시청자들이 뿌듯한 우월감을 느끼게 할 만하다. 드라마 시청률 1위의 배경도 여기에 있어 보인다. CCTV가 대단히 이례적으로 불교 드라마를 제작·방영한 것도 이처럼 젠전이 갖는 상징적 의미 때문이었을 것이다.CCTV는 이 16부작 드라마를 1번 채널에 편성했다. 저녁 8시∼9시30분 황금시간대였다.CCTV는 “중·일 수교 35주년을 맞아 준비했다.”며 편성 의도를 분명히 했다.“이 드라마는 오래전부터 이어져온 중·일 우호 역사의 교과서”라고 자평했다. 드라마는 4월4일 시작해 11일 막을 내렸다. 젠전의 극적인 입적도 원자바오(溫家寶) 총리의 2박3일 방일 일정 첫날에 맞췄다. 드라마 앞뒤 뉴스에는 원 총리와 아베신조 일본 총리의 악수 장면이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원 총리는 이튿날 12일 일본 국회 연설에서 젠전을 언급했다. 잘된 드라마처럼 잘 짜여진 구성이다. 젠전 이야기가 아니어도 조금 과장해보자면, 중국의 TV와 신문은 지금 ‘일본 신드롬’이라 할 만하다. 역사 문제는 종적을 감췄다. 쏟아지는 일본 특집에 밀려 방일에 앞서 이뤄진 원 총리의 1박2일간 한국 방문은 당초부터 가려졌다.1박2일과 2박3일의 여행일정 차이가 있다지만, 원 총리의 이번 한·일 순방을 다루는 비중은 이렇게까지일 수 있나 싶을 정도다. 중국에서는 요사이 일본 전문가가 아니어도 외교·경제·국제정치 전문가들이 일본 관련 업무에 동원될 정도로 일본 연구 열기가 뜨겁다. 모처럼 조성된 일본과의 화해 분위기를 살려가려는 중국의 노력은 이처럼 전방위적이다. 현시점에서 외교·전략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일본과의 관계개선이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이런 결과 ‘중·일 고위급 경제대화’가 설치되자 한국의 많은 전문가들은 긴장하는 눈치다. 한·중간에는 없는 형태의 대화 채널이기 때문이다. 이 채널이 당장 양국의 협상력을 높이게 되고 그 여파로 한국이 곳곳에서 밀리게 될 것이라는 우려도 벌써 나온다. 실제 1972년 수교 이후 중·일관계가 최악이었다는 지난 5년간에도 중·일간 투자 및 교역액은 한국을 크게 앞섰다.2006년 한국의 대중 무역액과 실행투자액은 각각 1343억달러와 39억달러였지만, 일본은 2723억달러와 46억달러였다. 중국측 관계자들은 최근의 중·일관계에 대해 “‘정치는 냉각돼도 경제는 뜨겁다.’는 정랭경열(政冷經熱)이었다지만, 사실은 정랭경랭(政冷經冷)이었다.”고 말한다. 정치관계가 식어 경제도 싸늘했다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투자와 교역규모는 한국을 앞섰으니, 향후 정치관계가 뜨거워지면 완전히 압도할 가능성이 있다. 물론 많은 이들이 중·일 관계는 역사문제라는 근본적인 걸림돌에 결국 한계를 드러낼 것으로 전망한다. 그러나 잠깐 녹아내린 얼음물에 물난리를 겪는 일도 허다하다. 이번 중·일 정상회담 이후를 꼼꼼히 살펴야 하는 이유다. 이지운 베이징 특파원 jj@seoul.co.kr
  • 정지용 문학상 조오현 스님 수상

    ‘향수’의 시인 정지용을 기려 지용회(회장 이근배)가 제정한 ‘정지용 문학상’ 제19회 수상자로 시인 조오현(법명 무산·霧山·75) 스님이 12일 선정됐다. 수상작은 ‘아득한 성자’. 스님은 1958년 밀양 성천사에서 사미계를,1968년 범어사에서 비구계를 받았으며 불교신문 편집국장과 주필을 거쳐 현재 강원도 낙산사와 신흥사 회주를 겸하고 있다.1968년 ‘시조문학’으로 등단해 시집 ‘심우도’ ‘설악시조집’ 등을 발표했다.
  • “에헴~” 27일부터 북촌서 양반체험

    27일부터 29일까지 사흘간 북촌 한옥마을 일대와 한옥마을 내 재동초등학교에서 ‘하이 서울 페스티벌 2007’ 프로그램의 하나인 ‘북촌 조선시대 체험’행사가 열린다.10일 서울시에 따르면 행사기간 이곳에 가면 조선시대의 양반가와 서민촌, 포도청과 장터가 재현돼 당시의 풍속과 생활상을 체험할 수 있다. 행사는 ‘북촌 한옥마을 조선시대 체험’과 ‘북촌 한옥마을 탐방’으로 나눠 진행된다. ‘체험’은 조선시대 거리로 완전히 바뀐 재동초등학교 운동장에 마련된다. 서민촌과 양반촌, 장터, 포도청 등 옛 한옥이 가건물로 재현된다. 서민촌에서는 떡메치기·새끼꼬기 등이, 양반촌에서는 사군자치기, 투호놀이 등이 벌어진다. 관아에서는 포졸 훈련, 감옥 체험·곤장 등을 체험을 할 수 있다. ‘탐방’은 한옥마을 일대를 걸으며, 한옥 고유의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행사다. 탐방 코스로는 ▲체험형 코스(운현궁→북촌 문화센터→한국 불교미술박물관→한상수 자수박물관→가회박물관→매듭공방→북촌 생활사박물관→서울 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와 ▲관람형 코스(운현궁→북촌 문화센터→서울 무형문화재 교육전시장→옻칠공방→가회동 31번지 한옥촌→세계 장신구박물관→티베트박물관→종친부) 등이 있다. 서울의 유일한 한옥마을인 북촌(北村)은 ‘종로의 윗동네’라는 뜻으로 경복궁과 창덕궁, 종묘 사이에 있어 조선시대 왕족이나 고위관리들이 많이 살았다. 상세한 내용은 축제 홈페이지(www.hiseoulfest.org)를 참조하면 된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6)준비된 귀농만이 성공의 길

    [희망의 씨 뿌리기 귀농] (6)준비된 귀농만이 성공의 길

    막상 귀농을 결심해도 선뜻 실행에 옮기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어디서 귀농 정보를 얻고, 어떻게 관련 교육을 받을지부터 막막하다. 특히 시골에 연고가 없는 도시민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겁먹을 필요는 없다. 잘 찾아보면 귀농 정보와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이나 단체들이 많다. 인터넷을 통해서도 ‘귀농 선배’들의 생생한 영농·정착 노하우를 접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사전 정보와 귀농 교육, 농사 체험 등 철저한 사전 준비가 귀농 성공을 이끈다.”고 강조한다. ●귀농 준비자 3명 중 1명은 아무 준비 없어 과연 귀농을 준비하는 사람들의 ‘귀농 준비도’는 어느 정도일까. 농림부가 최근 발표한 ‘귀농 실태 보고서’에 따르면 귀농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가운데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는’ 경우가 35%에 달했다. 반면 귀농 교육을 계획 중이거나 수료한 경우는 22%, 농업 관련 활동을 하고 있는 경우는 19%로 나타났다. 이밖에 귀농 관련 책을 구입해 읽는 경우가 12%, 귀농 관련 온라인 동호회 활동을 하는 경우 6%의 비율을 보였다. 농림부 관계자는 “귀농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 중 상당수가 귀농과 관련된 직·간접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면서도 “그러나 3명 중 1명 이상은 준비 없이 맨주먹으로 귀농에 뛰어들어 실패 가능성을 높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귀농 준비자들이 정보를 처음 접하는 수단은 TV, 라디오, 신문, 잡지 등 ‘매스컴’을 통한 경우가 42.9%로 가장 많았다. 농업 관련 교육은 20.5%, 가족이나 친구·이웃은 24.8%, 인터넷은 8.1%를 차지했다. ●충분한 정보는 귀농 성공의 필수 조건 귀농을 단순히 시골로 이사를 가는 것쯤으로 쉽게 생각하면 십중팔구 낭패를 보게 된다. 전문가들은 “귀농 결심은 관련 정보를 충분히 습득한 뒤 이뤄져야 실패 가능성을 줄일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귀농 정보를 얻기 위해서는 우선 각 사회단체에서 운영하는 귀농학교 등에 관심을 가져볼 만하다. 귀농이 자신에게 맞는지부터 어떤 농사일을 하는 게 적합한지까지 갖가지 정보와 교육기회를 제공한다. 대표적인 귀농학교로 전국귀농운동본부가 있다. 회원을 대상으로 귀농교육을 제공하며, 특히 도시민을 대상으로 한 농업 교육이 주로 이뤄진다. 귀농에 대한 정신·이론 교육 등을 중요시하는 것이 특색이다. 지방자치단체들의 농업기술센터나 귀농상담실을 통해서도 유용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농업 기술 교육이 중심이 된다. 귀농을 희망하는 도시민 등에게 능력에 맞는 단계별 상담 및 품목별 영농기술교육, 농기계 교육, 현지 지도 등이 이뤄진다. 자금·주택 확보 등 안내도 받을 수 있다. 대개 무료로 제공돼 교육에 대한 부담도 적다. 천주교와 불교 등 종교단체들이 운영하는 귀농학교도 관심을 가질 만하다. 특히 지리산 인근의 ‘실상사 귀농학교’는 높은 귀농 성공률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농사일을 전혀 모르는 도시민이라면 가까운 곳의 농촌 체험 현장부터 찾는 것이 효과적이다. 농촌정보문화센터 김귀영 연구원은 “귀농에 앞서 주말농장을 통해 농촌생활에 대한 정보를 습득하거나 앞서 귀농에 성공한 사람들로부터 노하우를 전수받는 것은 훌륭한 복안”이라고 조언했다. ●인터넷은 귀농 정보의 바다 바쁜 도시민들은 인터넷 동호회나 블로그 등을 통한 정보 습득이 효율적이다. 귀농학교와 귀농 단체들도 홈페이지 등을 통해 각종 정보과 관련 교육을 제공한다. 농림부에서 운영하는 ‘우리농’ 블로그(blog.daum.net/af2006)는 귀농 지원 정책 등을 쉽게 설명해 놓았다. 국내 최대 온라인 귀농 동호회인 ‘귀농사모(귀농을 원하는 사람들의 모임:cafe.daum.net/refarm)’는 다양한 귀농 상식과 관련 법률을 제공하며, 농자재와 부동산 직거래도 가능하다.‘앙성댁의 귀농일기(angsung.com)’,‘새낭골 귀농일기(www.senang.co.kr)’ 등 사이트를 통해 ‘귀농선배’들의 생생한 귀농 정보를 얻을 수 있다. 이영표기자 tomcat@seoul.co.kr ■ 은퇴형? 돈벌이? 내 성향 파악부터 날로 사는 게 팍팍해지는 요즘, 문득 귀농을 떠올리게 되고 귀농을 해보려고 이것저것 알아보아도, 뚜렷하게 속시원한 대답을 얻기가 쉽지 않은 것 또한 현실이다. 그만큼 귀농을 하는 방법이나 형태도 다양하고, 살아가는 모습이나 추구하는 이상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귀농을 하려면 우선, 자신이 어떤 유형의 사람인지를 파악해야 한다. 남 따라 아무 생각 없이 귀농을 하려 하면 본인의 성향과 맞지 않아 결국은 실패하기 십상이다. 귀농을 하려는 사람들의 성향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분류된다. 첫째, 생태적 삶을 위한 귀농이다. 이것은 대량생산·대량소비의 도시적 구조에서 벗어나 자립을 통한 삶의 영위를 목표로 하는 귀농이다. 적게 벌고 적게 쓰며, 생태적 순환의 고리에 가깝게 살기 위해 영농의 규모도 최소화하고, 유기농업을 하는 것이 이런 형태 귀농의 실천 과제다. 이러한 형태의 귀농을 원하는 사람은 전국귀농운동본부(www.refarm.org) 등 기관을 통해 교육도 받고, 정보도 수집하면 원하는 방향의 귀농을 하는 데 도움을 얻을 것이다. 둘째, 귀농으로 성공하기를 꿈꾸는 사람들이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개방화에 따라 농촌에 희망이 사라진 것만은 아니다. 자본력이 있고, 열정적 에너지가 있는 사람은 전문적인 영농교육을 이수해 자신의 꿈을 이룰 토대를 마련하면 충분히 가능하다. 전국 농협이나 한국 농업경영인중앙연합회(www.kaff.or.kr) 등을 통해 정보를 수집하는 것이 효율적이다. 셋째, 농업보다 농촌의 변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농촌에서 마을의 각종 행정일을 맡아 보는 사무장이나, 마을 간사 등 여러 명칭의 행정적 일을 할 수 있다. 그런데 농촌에서 이런 일을 수행하려면 업무 능력보다 마을 어른들을 대하는 태도나 마을을 사랑하는 마음 등이 복합적으로 어우러진 사람이어야 한다. 농림부나 한국농촌공사로 문의하면 원하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넷째, 요즈음 가장 많은 문의를 받고 있는 은퇴형 귀농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가장 먼저 ‘내가 정말 끝까지 살 수 있는가?’하는 점을 생각해 봐야 한다. 이제 은퇴를 하고 약간의 자금을 가지고 배산임수 남향의 터에 흙집을 짓고, 문전옥답 작은 텃밭에서 행복하게 살아 보자는 꿈을 이루려면 실로 만만치 않은 자금이 소요된다. 하지만 땅을 사고 집을 짓고 꾸미노라면 생각보다 훨씬 더 많은 자금이 소요되는 게 사실이다. 은퇴한 분들에게는 전원마을 조성 사업지구 중 전북 진안군 등에 조성되는 30여호 정도의 마을을 선택하라고 권하고 싶다. 농촌공사나 관련 지자체에 문의하면 된다. 어떤 경우든 귀농을 할 때는 농촌 고유의 문화를 이해하고, 그 지역에서 살아온 분들에 대한 존경과 예의를 갖추어야 한다. 내가 이 지역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고민하고 실천에 옮겨야 귀농을 한 자신에게나 지역사회에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성여경 전국귀농운동본부 소장
  • [종교·문화재 플러스] 7일 산림법회 60주년 기념세미나

    1948년 이후 매년 산림법회를 열어온 부산 초량동 소림사는 7일 오후 2시 무량수전에서 산림법회 60주년 기념 세미나를 연다. 종림(고려대장경연구소 이사장) 스님의 기조강연에 이어 김경집 동국대 교수(‘한국불교 산림법회의 이해’), 김응철 중앙승가대 교수(‘소림사 산림법회의 포교적 의미와 활동분석’)가 발제한다.(051)468-4497.
  • [종교·문화재 플러스] ‘출가’ 체험해 보실래요

    불교수행공동체 정토회(대표 유수스님)는 마음수련과 자기변화 훈련 프로그램인 ‘제2기 100일 출가’를 8일부터 진행한다. 사찰음식, 공동체생활, 환경·생태적 실천을 통해 현대 물질문명의 대안적 가치관을 익히고 체험할 수 있다.(02)587-8990.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3)儒林 누른 세조의 힘

    조선 세조(1417∼1468)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습니다. 양주 회암사와 여주 신륵사, 양평 수종사, 오대산 상원사와 금강산 건봉사·표훈사·유점사, 양양 낙산사, 영암 도갑사, 합천 해인사 등 방방곡곡의 수많은 절을 창건하거나 중수했지요. 세조는 온몸의 종창으로 크게 고생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왕위에 오르고자 조카인 단종을 죽이는 등 온갖 악행을 저질렀으니 자업자득이라고 수군거렸지요. 불교에 의지한 것도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들 했습니다. 하지만 세조가 불교 중흥에 힘쓴 가장 큰 이유는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려는 데 있었던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습니다. 어린 단종이 집권한 뒤 유신(儒臣) 세력이 부각되면서 왕권과 신권(臣權)의 균형이 무너지자 ‘국정의 원상회복’을 외치며 반기를 들었던 이가 훗날 세조가 되는 수양대군입니다.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 있는 국보 제2호 원각사터10층석탑은 이처럼 세조가 중심에 선 조선 왕실과 사대부들이 벌인 주도권 다툼의 양상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롭습니다. 소재구 국립고궁박물관장은 “원각사의 창건과 10층석탑의 조성은 세조가 국왕의 권위를 보여주려던 의도에 따른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세조가 자신의 통치력을 과시할 수 있을 만한 권위의 상징물을 만들고 싶은 의도를 원각사로 구현시켰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유교국가의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였을 12m짜리 고층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신진사대부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입니다. 언제인가 석탑의 8∼10층이 땅에 끌어내려진 뒤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이 동원되어서야 제 모습을 찾은 것도 유신들이 가졌던 불쾌감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겠지요. 하지만 세조의 둘째 아들인 예종이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고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습니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년) 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내보내 원각사는 절의 기능을 상실합니다. 조광조 등이 성리학적 이상국가를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에 원각사터는 아예 택지로 분양되었습니다. 하지만 명종시대 잇따라 큰 불이 나고, 임진왜란(1592∼1598)을 거치면서 원각사터에는 다시 10층석탑과 탑비만 덩그러니 남았습니다. 이후 대한제국 광무 원년(1897년) 공원으로 지정되기까지 300년 동안이나 원각사터는 왕실과 유신들의 상호견제 속에서 빈터로 남아 있게 됩니다. 원각사탑은 고려 충목왕 4년(1348년)에 세워진 라마불교의 영향이 짙은 원나라풍의 경천사10층석탑을 모델로 삼았습니다. 아름답고 화려한 대리석탑이지만, 조선의 시대정신을 보여주는 대표적 미술품이라고 하기는 어렵겠지요. 하지만 미술사적 시각에 머무르지 않고, 역사적 가치까지 부여했을 때 원각사탑에 대한 온전한 평가는 가능해질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397세대 “올 대선은 우리가”

    ‘올 대선에서는 ‘397세대’를 주목하라.’ 지난 대통령선거 이후 사회 주류층을 형성하고 있는 ‘386세대’의 그림자에 가려 있던 ‘397(30대,90년대 학번,70년대생)세대’가 올 대선 정국을 맞아 독자적인 세력 결집에 나섰다. 1일 시민·사회단체에 따르면 시민·사회단체에서 활동하는 30대들이 최근 ‘진보와 개혁을 위한 전국 청년세대 네트워크’(청년세대 네트워크)를 결성했다. 현재 시민운동가와 국회의원 보좌관, 언론인, 직장인, 종교인 등 우리 사회의 허리를 형성하고 있는 30대 100여명이 동참 의사를 밝혔다.●“올 대선에서 적극적인 목소리 낼 것”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오는 19일 ‘청년세대 4·19인 선언’을 통해 공식 활동을 선언한 뒤 올해 대선에서 적극적인 목소리를 낼 계획이다.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90년대 초반 학번이 주축이 돼 움직이고 있다.91학번인 안진걸(35) 희망제작소 사회창안팀장은 “이번 대선에서 창조한국미래구상 등과 적극 연대해 민주주의와 평화, 인권 가치와 부합하는 후보를 지원하고 이 가치를 부정하는 후보에 대해서는 공세적으로 맞서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정치 세력화가 아닌 사회 세력화를 내세우는 등 386세대와는 구분을 명확히 했다. 정을호(35) 미래구상 팀장은 “386세대와 단절하겠다는 의미는 아니다.”라면서 “그러나 정치적 진출을 중심으로 이야기되는 386세대와는 명확히 구분되는 시민사회의 가치에 기반한 사회세력화를 추진하는 전국적 네트워크를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그는 “평화를 사랑하고 6·15공동선언을 지지하며 신자유주의에 문제 제기를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환영한다.”고 밝혔다. 청년세대 네트워크 참가자들은 새로운 세대답게 기존 단체들과는 달리 상근 인력이나 사무실을 따로 두지 않고 모든 의사 소통을 인터넷을 중심으로 할 계획이다.‘포괄적이고 느슨한 네트워크’를 지향한다는 것이다. 또 지역 및 부문별 연락책임자와 운영위원회를 빼고는 지도부도 따로 구성하지 않을 방침이다.●인터넷을 기반으로 한 활동 청년세대 네트워크는 지난해 말 90년대 학번 출신 시민운동가를 주축으로 한 시민사회청년활동가모임에서 처음 제안됐다. 이 모임은 오광진(35) 서울흥사단 사무국장, 윤법달(35) 원불교청년회 평화의친구들 사무국장, 문치웅(35) 마포개혁연대 간사, 최양현진(35·벤처기업 회사원)씨, 권영태(35·동국대 북한대학원)씨 등 91학번들이 주도를 하고 있다. 이들은 “한국사회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변화와 개혁의 동력으로서 새로운 세대가 나서야 한다고 판단했다.”면서 “전국에 흩어져 있는 젊은이들의 역량을 결집해 한국사회 진보와 개혁의 새로운 돌파구를 만들어낼 것”이라고 다짐했다.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인사]

    ■재정경제부 ◇고위공무원단 전보△경제정책국장 任鍾龍△재정정책심의관 姜炯旭△경제자유구역기획단 지원국장 崔鍾球■ 통일부 △남북산업협력팀장 鄭東文△문화교류〃 金桂鎭△남북경협총괄〃 裵光福△이산가족〃 鄭巢云△정착지원〃 李正玉△정세분석〃 姜錫勝△정치사회분석〃 李秉元△개성공단사업지원단 지원총괄〃 鄭俊熙△〃 개발기획〃 朴炯一△통일교육원 사이버교육〃 蘇俸奭△〃 지원관리〃 鄭承薰△〃 연구개발〃 郭柄采△경제회담〃 徐東薰△회담지원〃 金錫圭△북한이탈주민정착지원사무소 관리후생〃 姜棋燦■ 한국도로공사 △감사 이재영■ KBS △경영본부 안전관리팀장 宋元燮△보도본부 국제팀 모스크바지국장 李春求■보험개발원△보험연구소장 전무 柳炯均△생명보험본부장 金庸柱△손해보험본부장 權興球△자동차보험본부장 李得周△기획관리본부 경영기획실장 金成浩△자동차기술연구소 기획조사실장 趙秉坤■현대종합상사◇승진△전무(경영기획실장) 김종원△상무보(베이징지사장) 전성수◇전보△기계차량본부장 정의욱△정보통신본부장 이창범△선박플랜트본부장 직무대행 겸 플랜트팀장 김기홍△인사총무팀장 이승권■ 서울평화상문화재단 △사무총장 崔燉星■ 서울보증보험 ◇전보 △마케팅실장 尹勝煥△구미지점장 盧在赫△여수〃 李龍善■ 한국교직원공제회 △상임감사 鄭樂鈞■ 평화문제연구소 △이사장 玄敬大△부이사장 申榮錫(총괄) 朴相贊(국내) 林官憲(해외)△소장 金明洙△부소장 孫賢守■ 고려대 △국제학부장 이재승△스페인라틴아메리카연구소장 민용태■ 동국대 (서울캠퍼스) △여성커리어개발센터장 이심열△학생상담〃 조상식△국제교육원 외국어교육센터 교육부장 윤현숙△〃 한국어교육센터 〃 박광현△동국포스트 부주간 김성중△문화학술원장 황종연△불교문화연구원장 강문선△생명과학〃 박정극△산학협력단 기술이전센터장 박형무△영상문화콘텐츠연구원장 이종대△황사·사막화방지연구소장 강호덕■ 한국야쿠르트 △대표이사 사장 양기락△부회장 김순무◇승진△상무 황치건 정종기■ 휠라코리아 △사장 이기호△부사장 정성식△상무이사보 양하준■ GLBH Holdings △사장 조영찬
  • [1일 TV 하이라이트]

    ●진실(YTN 오후 11시5분) 1970∼80년대 언론의 민주화 운동사를 되짚어 본다. 정부의 거스를 수 없는 명령과 강력한 통제만이 존재했던 유신시대에는 획일화된 보도만 있었다.74년 10월, 동아일보 기자들이 모여 자유언론 실천선언을 채택했다. 이런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돼 80년대까지 이어지는 언론 민주화 역사의 거대한 흐름을 이루게 된다. ●사랑의 공부방(EBS 오후 6시) 대전 신안동의 꿈동산 공부방을 찾아가 본다. 공부방 아이들의 기초학력 증진을 위한 대기만성 프로젝트에서는 다양한 기초학력진단을 통해 상황에 맞는 맞춤 학습법을 알려주고, 공부방 아이들의 고민을 들어 본다. 또한 고진감래 프로젝트에서는 가난 속에서도 꿈을 잃지 않는 희승이의 소원을 들어준다. ●SBS스페셜(SBS 오후 11시5분) 다양하고 미묘한 맛의 차이를 짚어내는 인간의 미각 능력은 건강의 척도가 되지만 현대인들의 미각 능력은 나날이 퇴화되고 있다. 패스트푸드와 가공식품의 섭취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폭발적인 가공식품 섭취로 인한 아연 결핍과 그로 인한 고충을 알아보고, 우리 옛 밥상의 지혜를 알아본다. ●문희(MBC 오후 7시55분) 방숙희는 문희를 내쫓을 생각으로 냉장고·화장대 등 문희의 물건들을 내다 버리고, 문희네 집에 청혼하러 온 유진은 이 광경을 보게 된다. 유진이 인사를 온다는 말을 듣고 문희네 집에서 대기하고 있던 유진의 엄마는 문희에게 양심에 호소하며 과거가 있냐고 묻는다. 단도직입적인 질문에 문희는 대답을 망설인다. ●최강! 울엄마(KBS2 오전 8시55분) 작문 과제인 유서쓰기에 열중하던 최강은 그동안 공부도 못하는 못난 아들 노릇만 해온 17년이 후회스럽고 죄송스럽다. 이제부터라도 부모님께 든든한 큰아들이 돼보겠다고 굳은 다짐을 한다. 같은 시각, 식당에서 불판을 닦느라 비지땀을 흘리고 있는 최강부는 오늘도 식당주인의 잔소리에 귀가 따갑다. ●역사기행(KBS1 오후 11시) 인구의 약 90%가 힌두교를 믿는 네팔은 2000년이 넘는 역사에도 불구하고 외부세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은둔의 왕국이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네팔의 ‘구르카 용병’과 네팔속 힌두와 불교의 역사, 그리고 히말라야를 지나갔던 고승들의 천축국 직행로, 최근 불안을 겪고 있는 네팔의 정치사를 들여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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