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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황우석 박사 용인서 연구재개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으로 서울대에서 파면을 당한 황우석 박사가 경기도 용인의 한 연구원에서 연구를 재개한 것으로 알려졌다. SBS ‘뉴스추적’ 제작진은 17일 오후 11시 경기도 용인시 원삼면 수암생명과학연구원에서 연구를 재개한 황우석 박사에 대한 이야기를 방송할 예정이다. 제작진에 따르면 황 박사는 전직 기업인과 일부 불교 신도 등의 도움으로 연구를 재개, 경기도 이천의 개 농장에서 실험용 개와 난자를 제공받고 있으며, 카메라에 포착된 실험복 차림의 황 박사는 질문에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또한 연구원은 16명 정도 였으나 황 박사측은 서울대에서 줄기세포를 함께 연구하던 연구원 대부분이 수암연구소로 자리를 옮겨 30여명에 이른다고 주장했다. `뉴스추적´은 1년간 사실상 중단되었던 국내 줄기세포 연구의 현주소를 점검하고 점차 활기를 띠는 외국의 줄기세포 연구사례를 짚으며 바람직한 대안을 모색해 본다.연합뉴스
  • [길섶에서] 마음 속 다신교/ 황성기 논설위원

    연초 일본 NHK가 ‘로마인 이야기’를 완간한 시오노 나나미와 유명 작가 이쓰키 히로유키의 대담 ‘잘 살고 잘 죽기 위해’를 방송했다. 로마 역사에 천착해 온 시오노와 지난 1년간 세계 각지를 돌며 불교를 살펴온 이쓰키는 문명과 종교에서부터 집단따돌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테마로 얘기를 나눴다. 관용과 공생이 로마 흥성의 열쇠였다는 시오노는 어떤 종교도 받아들이는 다신교도 그 바탕에 깔려 있다는 지론을 거듭 강조했다. 기독교도인 할머니가 돌아가시면서 어머니는 본래의 불교도로, 필자는 교회와 인연을 끊고 30년 이상 살고 있다. 지난해부터 부쩍 기도할 일이 많아졌다. 부득불 기도문은 “누구든지 제 말을 들어주세요….”가 돼버린다. 그 누구가 하나님이건 부처님이건 별 관계 없이 말이다. 원초적인 기복에 불과한 기도가 어떤 채널로 누구에게 전해졌을지 의문이 생겼다. 이제 뭐 하나쯤 믿어도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이어지긴 했다. 그렇지만 종교를 갖게 되면서 생겨날 번잡스러움 때문에 망설여진다. 마음 속 다신교는 흔들리는 중이다. 황성기 논설위원 marry04@seoul.co.kr
  • [인사]

    ■ 농림부 ◇기관장 임명 △국립종자관리소장 계약직고위공무원 裵仁泰■ 한국지역난방공사 △기획처장(1급) 李明律△사업개발처장(〃) 曺裕哲△해외사업팀장(2급) 文載喜△건설처장(1급) 諸炳奎△사업개발팀장(3급) 趙容新■ 코트라 ◇승진 △프라하 무역관장 李揆南△디트로이트 무역관장 嚴聖弼△자카르타 무역관장 金炳權 ◇전보△마케팅지원팀장 李光熙△전시컨벤션팀장 朴範勳△대전·충남무역관장 金承哲△주력산업유치팀장 郭東運△시장전략팀장 吳成根△투자전략팀장 禹基勳△인사팀장 韓悰伯△서비스산업유치팀장 金平熹△주력산업팀장 鄭光泳△투자환경개선팀장 宋炳玉△비서팀장 李泰植△홍보팀장 尹孝春△예산팀장 全炳濟△감사실 검사역 魚性日△인천공항사무소장 車鎭成△CIS지역본부장 겸 모스크바 무역관장 羅潤洙△스톡홀름 무역관장 韓鍾雲△로스앤젤레스 무역관장 金相哲△카이로 무역관장 申鉉吉△시카고 무역관장 丁鍾泰△암스테르담 무역관장 尹在天△토론토 무역관장 金侊熙△다카 무역관장 金漢一△콜롬보 무역관장 金亮成△워싱턴 무역관장 宋裕煌△산토도밍고 무역관장 權銑興△바그다드무역관장 崔台植■ 한국생산성본부 △리크루트센터 부원장 직무대리 姜在瑞△사회교육센터장 鄭迎△사회교육센터팀장 崔承鶴△경영지원실장 趙宗鎬■ KBS미디어 △사업기획팀장 양승호△수출사업〃 이효영△매체사업〃 이상우△문화사업〃 김경호△미디어센터운영프로젝트〃 이상윤△감사반장 조문환■ 온세통신 △대표이사 최호△사장(건설부문장) 정만화△부사장 김형석△홍보실장 편경철 ◇상무△경영관리본부장 김태경△마케팅전략본부장 오치웅△영업본부장 노일하△건설사업본부장 김영보■ 고려신용정보 (이사 승진) △대구지사장 박의율 (부장 승진)△강릉지사장 고수경△강남〃 김인철△충북〃 신동준△경기북부〃 김기섭 (차장 승진)△강원지사장 조중찬■ 원불교 ◇교구장△강원 안민순△경기인천 유승인△경남 김혜신△광주전남 김현△대전충남 김혜봉△대구경북 이정택△부산 김일상△서울 이선종△영광 조원오△전북 허광영△중앙 고원선△충북 박달식△미주서부 최정안◇기관△원불교대학원대학 총장 성도종△영산선학대 〃 남궁성△원광대 교당 교감 김도심△중앙중도훈련원장 김주원△원불교신문사·월간원광 사장 황인철△부산원음방송 〃 김무량
  • 진보세력 “대선 개입” ‘단일후보’는 엇갈려

    진보세력 “대선 개입” ‘단일후보’는 엇갈려

    국내 진보·개혁 성향의 시민·사회운동가들이 ‘합리적 신진보운동’을 기치로 올 대통령선거에 적극 개입할 것을 선언했다. 하지만 단일후보 추대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렸다. ‘창조한국미래구상(가칭)’은 12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한국사회의 창조적 미래를 위한 시국 대토론회’를 열고 본격 행보에 나섰다. 발제에 나선 정대화 상지대 교수는 “열린우리당은 국민의 열망을 배반, 정책·현실적으로 대안이 아니다. 민주노동당도 대안정당으로 자리매김하기보다는 ‘문제제기 정당’으로 축소되는 한계를 보이고 있다.”면서 “기존 정치세력으로는 곤란하며, 대안은 ‘새로운 상상력의 정치운동’에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한 “새로운 정치운동은 단기적으로 대선 승리를 목표로 해야 하며 이를 위해 범진보·개혁세력의 국민후보를 선출해야 한다. 정책을 먼저 제안하고 단일 국민후보를 선출하는 ‘선 정책 후 후보’ 전략이 바람직하다.”고 강조했다.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성급하게 진보·개혁세력의 승리를 목표로 삼기보다는 대선에서 실패하더라도 강력한 진보정당 건설에 이바지하겠다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면서 “단일후보를 내려면 어디까지 진보·개혁세력의 범주에 넣어야 할지 그것부터 의견일치를 보는 게 필요하다.”고 말했다. 사회를 맡은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는 “우리의 역할은 올 대선에 가장 올바르고 전문성있고 역량있는 후보를 찾아내 힘을 실어주는 역할”이라면서 “현재 거론되는 후보군 가운데서도 있는지 없는지를 검증해봐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날 토론자로는 문국현 유한킴벌리사장, 임진택 연극연출가, 임동규 부산YMCA사무총장, 나간채 전남대 사회과학대학장, 권미혁 여성민우회 공동대표, 손석춘 원장, 나지현 전국여성노동조합위원장, 최현진 회사원, 이학영 YMCA사무총장 등 9명이 참석했다. 임일영기자 argus@seoul.co.kr
  • [부고] 염불종 종정 윤보스님 입적

    보국불교 염불종(念佛宗)의 종정인 김윤보(金允保) 스님이 12일 오전 4시 입적했다. 세수 67세. 윤보 스님은 문수사로 출가해 승환(承桓) 스님을 은사로 득도했으며 1980년 포항 오천읍에 대흥사를 창건했다. 스리랑카 라만나니카야 종단에서 포교학을 공부한 뒤 그곳 법통을 이어받아 1991년 아미타불을 주불로 삼는 염불종을 한국에서 창종해 초대 종정을 맡았다. 발인은 18일 낮 12시 경주 대흥사.(054)762-7800.
  • 해저 1100m서 ‘기적의 물’을 캔다

    해저 1100m서 ‘기적의 물’을 캔다

    인류 역사에서 물과 관련된 기적의 사례는 셀 수 없이 많다. 최근에도 유럽과 미국, 일본 등지에서는 물과 관련된 수많은 기적의 치유사례가 잇따라 보고되고 있어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영국 웨일스의 홀리웰이나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인근의 잠잠 우물은 종교적 성지로, 일본의 벳푸 온천과 프랑스의 엑스 레뱅, 영국의 바스, 독일의 비스바덴 온천은 수치료, 즉 대체의학의 산실로 주목받고 있다. 물론 물과 관련된 기적의 체험사례라는 게 대부분 과장이거나 거짓이었지만 그렇다고 현대 과학이 경이롭게 여기는 ‘물의 기적’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는 없을까. 강릉시 심곡·금진 해저온천수가 답이 될 듯하다. 해저 1100m에서 용출되는 이 온천수는 프랑스의 루르드처럼 질병의 치유력에 대해 상당한 무게가 실리고 있다. 최근 들어 언론 보도나 입소문을 통해 꽤 알려진 곳이기도 하다. 여러 궁금증을 안고 지난주 그 현장을 다녀왔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영동고속도로에서 동해고속도로로 진입해 옥계IC를 벗어나자 일망무제의 동해가 가슴을 열고 맞는다.IC를 빠져나와 왼쪽으로 길을 잡으면 곧장 금진 포구에 닿는다. 지척에 정동진이 있는 자그마한 이 포구를 굽어보는 산자락에서 최근 입소문으로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는 이른바 ‘기적의 물’ 해저 온천수가 솟구쳤다. 강원도와 강릉시가 이곳 온천원 보호지구의 진입로를 잘 닦아놨다. 개발이 한창인 현장에 들어서자 ‘큐어하우스(KURE HOUSE)’란 명패를 내건 말끔한 신축 건물이 눈길을 끈다. 이곳이 입소문을 타고 전국에 알려진 금진 해저온천이다. 김정득 큐어하우스 대표는 “특별한 치료체계 없이 이 물을 1일 수차례씩 한 달가량 마시는 것만으로도 암의 진행이 억제되고, 치솟은 혈압과 혈당치가 정상으로 돌아오며, 심장병 증상이 개선되는 것은 물론 심지어는 아토피 피부염과 탈모, 무좀까지 낫는다는 체험사례가 수집된 것만 수천 건에 이른다.”고 설명했다. # 각종 실험결과 효능 뛰어나 물론 이런 단순 체험사례만으로 이 온천수의 위력(?)을 믿으라고 하기엔 뭔가 석연찮다. 그래서 각계 전문가들이 이 물의 비밀을 풀겠다고 나섰다. 연세대 원주의대 생화학교실 김현원 교수는 국내에서 손꼽히는 ‘물박사’. 그는 심곡·금진 온천수의 생리활성효과 연구를 통해 “이 물이 각종 난치병 치료에 도움이 되는 것에는 충분한 근거가 있다.”며 “분석 결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여타 ‘기적의 물’들보다 빼어나다.”는 요지의 보고서를 냈다. 연구팀은 또 생리활성 효과를 확인하기 위해 이 온천수와 해수, 해양심층수로 배추를 재배한 결과 해수와 해양심층수를 준 배추는 이내 시들었으나 이 물을 준 배추는 일반 배추보다 왕성한 생육 실태를 보였다. 이 온천수가 가진 짠맛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연구팀은 “짠맛을 내는 나트륨과 쓴맛을 내는 마그네슘은 해수에 비해 적은 반면 단맛을 내는 칼슘은 해수보다 5배나 많아 소금과는 전혀 다른 이온화된 짠맛을 보인다.”며 “사람이 마셔도 갈증 등 이상 증세를 거의 나타내지 않는 것이 특징”이라고 덧붙였다. # 동해권 새 건강아이콘 탄생 김 대표도 이 온천수의 성분을 규명하기 위해 미국 FDA 산하 검사기관인 ANRESCO와 일본 식품분석센터, 중국 칭화대학과 강원도 보건환경연구원, 한국화학시험연구원 등에 의뢰, 이런 연구 내용을 입증할 수 있는 결과를 통보받았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면서 나름대로 특화하려는 움직임이 구체화되고 있다. 강릉 동인병원은 이 온천수로 대규모 임상시험을 진행 중이며, 앞서 강릉시와 강릉대학,KIST 강릉분원과 동인병원이 참여한 산업화 협약도 체결됐다. 또 강원도는 온천수가 용출된 강릉시 옥계면 금진리 92의1 일대 87만평을 온천원보호지구로 지정했다. 이른바 우리나라의 대표적 관광벨트인 동해권에 새로운 건강 아이콘이 탄생한 셈이다. ■ 해저심층 온천수란 현지 관계자들에 따르면 이곳 해저 온천수는 이미 알려진 해양심층수, 즉 깊은 곳의 바닷물을 걸러 음용하는 해양심층수와는 달리 해저 1100m의 암반층에서 용출된다. 따라서 생성과정은 물론 성분 또한 전혀 다르다. 이 온천수는 발견 후 구전으로 전국적인 유명세를 탔다. 처음에는 수도권과 강원지역의 가톨릭 성직자들이 음용을 시작해 특정 질병 치유효과가 확인되면서 전국에서 물을 구하려는 행렬이 장사진을 이루기도 했다. 개신교와 불교 쪽은 물론 최근에는 운동선수들까지 이 물을 음용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지난해 8월에는 대한육상경기연맹이 육상선수들에게 공급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으며, 코오롱·한국체대 마라톤팀 등 수많은 단체들도 앞다퉈 이 물을 마시게 해달라는 공문을 보내오고 있다. 여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동물실험 결과 이 온천수는 음용수로서의 적합성과 안전성을 갖고 있을 뿐 아니라 온천수로는 드물게 빼어난 활성산소 제거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 온천수의 질병 치유력 역시 이 연장선에서 이해되는 대목이다. 아울러 이 온천수는 고생대 암반 지층에서 형성된 물로 용출 온도는 33.7도를 보이고 있으며, 지하 1100m에서 용출된다는 것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성분과 효과 연세대 원주의대 생화학교실 김현원 교수는 심곡·금진의 온천수를 이렇게 요약했다.‘우리나라에는 세계적으로도 드문 치유능력을 갖는 물들이 여럿 있는데, 특히 심곡·금진의 물은 미네랄 농도와 다양성에 있어서 비교할 만한 물을 찾기 힘들며, 그 성분이나 효과 면에서 세계적인 희소성을 가진 것으로 판단된다.’ 김 교수에 따르면 이 온천수는 일반 광천수에 비해서 칼슘과 마그네슘의 농도가 매우 높을 뿐 아니라 그 함유비가 체내 흡수에 매우 적합하게 구성되어 있다는 것. “실제로 이 온천수에서는 항암 및 항산화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진 셀레늄이 500ppb(ppb는 10억분의1) 정도 관찰되는데, 광천수에서 농도 100ppb를 넘는 셀레늄이 발견된 것은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습니다.” 의학적으로 셀레늄은 다양한 치료효과를 보이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 온천수에는 셀레늄이 완전히 이온화된 상태로 존재하기 때문에 그 효과가 기대된다는 것이다. 셀레늄뿐만 아니라 게르마늄, 스트론튬, 망간, 아연, 구리, 코발트, 바나듐 등 희귀 미네랄이 다량 포함되어 있다. 특히 관심을 끄는 대목은 이 온천수가 드러낸 특정 질병에 대한 치료 및 예방효과. 김 교수는 “동물실험에서 항암 및 간 보호효과, 혈당강하 효과를 보였다.”며 “특이하게도 이 온천수가 짠맛을 보이는 데도 불구하고 혈압을 올리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오히려 이 물을 마신 많은 고혈압 환자들의 혈압이 정상으로 환원되는 것을 관찰할 수 있었으며, 당뇨를 비롯한 다양한 성인병 환자들이 이 물을 마시고 치유되었음을 증언하는 사례도 많다고 소개했다. 김 교수는 “문제는 미네랄 농도가 매우 높아 현재의 먹는 물 관리법 상 음용수로 인정되지 않는 점이 안타깝다.”고 지적하고 “외국의 경우 미네랄 농도가 높은 물을 의료용 광천수로 분류해서 사용하고 있는 만큼 우리도 이런 전향적인 기준 정비가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심재억기자 jeshim@seoul.co.kr
  • 갈수록 꼬이는 사찰 문화재관람료

    갈수록 꼬이는 사찰 문화재관람료

    지난 1일부터 전격 실시된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징수를 놓고 전국에서 마찰이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일반 탐방객들과 전국 사찰에서 마찰을 빚자 문화연대는 국립공원입장료의 졸속 폐지를 전면 재검토할 것을 촉구하고 나섰고 전남 백양사를 중심으로 한 조계종 사찰들은 국립공원에서 사찰 토지를 제외시켜 줄 것을 요구하며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위한 연대 운동에 돌입하는 등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무엇이 문제인가 현재 문화재보호법을 적용해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사찰은 모두 68곳. 이 가운데 국립공원 안에 들어 있는 법주사, 월정사, 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불국사·석굴암을 비롯한 22곳에서 갈등을 빚고 있다.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관람료를 합동 징수해온 이들 사찰은 새해들어 국립공원 입장료가 폐지된 뒤에도 공원 입장료와 상관없이 1200∼1600원 수준의 문화재관람료를 받고 있다. 문제는 등산객을 비롯해 사찰 문화재를 관람할 의사가 없는 이들도 관람료를 내야 한다는 점. 특히 대부분의 사찰들이 종전 국립공원 입장료를 받던 자리에서 그대로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어 마찰을 피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하루 평균 500∼600명 정도의 탐방객이 찾아드는 오대산 월정사의 경우 매일 5∼6건의 마찰이 생겨 스님들과 직원들이 관광객을 일일이 설득하느라 골머리를 앓고 있다. 속리산 법주사를 비롯한 해당 사찰들도 사정은 별반 다르지 않다.“사찰 문화재 유지 보수를 위해 관람료 징수가 불가피하다.”는 공식 입장을 밝힌 조계종측은 “종전 설치된 국립공원 소유지의 매표소를 사찰 안으로 이전하는데 6개월의 기간이 필요하다.”며 매표소 이전에 난색을 보이고 있다. 조계종 측에 따르면 현재 문화재관람료를 받는 68개 사찰의 문화재 유지관리 비용은 연간 809억원. 이 가운데 문화재관람료를 통해 320억원 정도를 충당하고 있다. 이치범 환경부 장관이 10일 “지관 조계종 총무원장을 만나 기존의 매표소를 사찰 입구 등으로 옮겨 관람료를 받도록 협의할 계획”이라며 진화작업에 나서 해당 사찰들의 반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어떻게 풀어야 하나 국립공원 입장료와 문화재 관람료 통합징수는 해묵은 문제였으며 지난해 정부의 국립공원 입장료 폐지 결정 이후 이같은 마찰을 해소할 대안 마련이 끊임없이 요구되어 왔다. 무엇보다 공원 입장료 폐지에 앞서 공원입구의 매표소 위치를 사찰쪽으로 옮겨야 한다는 주장이 많았지만 사전 조치 없이 무리하게 시행한 것이 가장 큰 문제점이다. 문화연대가 지난 5일 ‘조삼모사 격의 국립공원입장료 졸속 폐지는 전면 재검토되어야 한다’는 성명에서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운영비 230여억 원을 지원하는 조건으로 실시된 입장료 폐지가 출발부터 삐거덕거리는 것은 당연한 결과”라고 주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운영비 보조라는 형태의 입장료 폐지는 불안정할 뿐만 아니라 일부 사찰의 문화재관람료 인상,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주차료 및 시설이용료 인상 등 조삼모사 격의 조치만 낳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백양사가 지난 7일 긴급 임회를 열어 “사찰의 국립공원 지정을 해제하라.”고 촉구하고 나선 것도 예사롭지 않다. 백양사는 “불교계와 동의 없이 일방적으로 지정된 사찰 토지와 자연문화유산에 대한 국립공원 지정은 당연히 해제되어야 한다.”며 다른 지역 국립공원내 사찰들과 연대해 국회에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촉구하는 청원 운동을 벌일 것이라고 밝히고 나서 주목된다. 문제는 매표소 이전이나 사찰의 국립공원 지정 해제와 같은 단편적인 조치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데 있다. 불교계는 사찰 문화재에 대한 근본적인 인식 개선과 함께 문화재 보존 유지에 대한 정부의 철저한 지원이 따른다면 굳이 문화재 관람료를 받을 이유가 없다는 입장이다. 실제로 불교계 조사에 따르면 중세교회와 성당이 집중돼 있는 유럽의 경우 평균 5000원 이상의 입장료를 받는 등 대부분의 나라에서 문화재를 보유한 종교시설은 어김없이 관람료를 징수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연대나 시민단체가 지적하듯 문화재관람료와 관련한 사찰측의 투명하고 공정한 행정이 선행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연간 얼마나 걷히며 어떻게 쓰이는지 밝혀지지 않은 문화재관람료를 일방적으로 징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주장에 일리가 있다.“문화재를 보수, 유지하기 위해서 문화재관람료는 필수적이며 그 최소한의 비용마저 양보할 수 없다.”는 사찰들의 막연한 주장은 지금처럼 입장료 마찰 같은 악순환을 거듭할 뿐이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 은진미륵의 발가락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1) 은진미륵의 발가락

    흔히 은진미륵이라고 불리는 충남 논산의 관촉사 석조미륵보살입상은 우리나라 불교조각 가운데 촌스럽기로 첫손가락에 꼽힙니다. 미술사학자들은 이 고려 초기 대작(大作) 불상을 두고 지방색이 강하다느니, 파격적이고 서민적이라느니 점잖게들 설명하지만, 시골 조각가의 서툰 솜씨라는 뜻에 다름 아닙니다. 대표적인 미술사학자인 진홍섭 선생 등이 최근 펴낸 ‘한국미술사’를 펼쳐들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얼굴의 표현이나 원통형의 불신은 거작을 만들려는 의욕을 작가의 기량이 따르지 못한 예”라고 설명하고 있군요. 얼굴이나 몸통이기에 망정이지, 발가락을 평가의 대상으로 삼았다면 “조각의 조(彫)자도 모르는 사람이 만든 것”이라는 혹평이 나왔을 겁니다. 실제로 신체의 일부분을 표현했다기보다 ‘받침대’라는 기능을 염두에 둔 것은 아닐까 생각하게 만들 지경이니까요. 하지만 미술사학자들이 은진미륵에 냉정한 시선을 보내는 동안 관촉사를 찾았던 보통사람들의 느낌은 조금 달랐던 듯합니다. 김장철에 더욱 인기를 끄는 ‘강경 젓갈여행’에는 보통 관촉사 방문코스가 들어 있는데, 우연치 않게 마주친 은진미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여행후기가 적지 않습니다. 교과서에서 눈에 익은 은진미륵은 미술사학자들이 말하는 대로 얼굴이 지나치게 커서 4등신에도 못미치는 어린아이의 모습이지요. 하지만 키가 18.2m에 이르는 미륵보살을 실제로 만나보니 뜻밖에도 거역하기 어려운 권위가 서려 있었습니다. 나아가 고통의 바다에서 헤매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미륵보살로서 영험마저 느낄 수 있었다면 지나치게 개인적인 체험담이겠지요. 조각가인 최종태 서울대 명예교수는 ‘은진미륵을 다시 보다’라는 글에서 새로운 평가를 내렸더군요. 요약하면 중앙과 비교하면 다소 거칠기는 하지만 표현이 능숙하고, 비례가 경쾌하고 유려하며, 부분적으로는 현대조각 못지않은 모던함마저 보여 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성당과 수도원에 많은 작품을 남겼습니다. 신앙의 대상이 되는 조각에 ‘조형미 이상의 것’을 담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알고 있기에 이런 평가도 가능한 것은 아닌지 모르겠네요. 은진미륵은 분명히 통일신라시대 불상과는 다르게 보입니다. 하지만 굳이 불교조각의 최전성기 작품과 비교하기보다는 나름대로의 가치를 찾아 주는 것이 우리 문화를 풍요롭게 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은진미륵은 졸작’이라는 책에서 읽은 지식과 실제로 대했을 때 느껴지는 권위 사이의 괴리도 해소될 수 있겠지요. 애정을 가지고 바라봤을 때 은진미륵의 발가락에서도 미숙함이 아닌 조각가의 장난기를 읽으며 미소지을 수 있을 것입니다. dcsuh@seoul.co.kr
  • [10일 TV 하이라이트]

    ●클로즈 업(YTN 오후 1시30분) 누구나 새해를 맞으면 새로운 각오로 희망을 말한다. 세상이 어렵고 삶이 힘들수록 용기를 주는 희망의 메시지는 더 절실한데, 요즘이 바로 그런 때일 것이다.‘우리시대의 대표적 지성’으로 통하는 이어령 중앙일보 고문과 함께 새해의 의미와 우리 사회의 과제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다.   ●살림의 여왕(EBS 오전 11시) PDP,LCD,CRT, 프로젝션. 다양한 TV 어떻게 골라야 할까? TV는 무조건 클수록 좋다? TV가 근시의 원인이다? TV를 오래 보면 머리가 나빠진다? TV에 얽힌 여러 궁금증을 풀어본다.‘돈이 보이는 특강’에서는 우리 아이를 위한 노후를 어떻게 계획해야 할지 재테크계 미다스의 손, 백정선씨에게 들어본다.   ●생방송 TV연예(SBS 오후 8시55분) 2001년 마약 복용 혐의로 구속돼 연예활동을 중단했던 황수정이 5년여 만에 모습을 드러낸다. 복귀 논란을 놓고 그녀가 드라마 제작보고회에서 밝힌 솔직한 심정을 소개한다. 연기자로 평가받고 싶다는 그녀의 촬영장 모습도 공개한다. 또 김정은, 이서진을 ‘연인’마지막 촬영 현장에서 만나본다.   ●생방송 오늘아침(MBC 오전 8시30분) 혼수가 웬수? `혼수’갈등으로 인한 이혼이 늘고 있다. 많거나 적거나 결혼을 앞둔 예비부부와 양가부모들 사이에 어떤 식으로든 마음의 상처를 남기게 된다는 대한민국 혼수문화. 대한민국 중산층의 평균 혼수 액수는 어느 정도이며 혼수로 인한 파경을 막을 수는 없는지 그 실태와 대안을 짚어본다.   ●신년특집 추적 60분(KBS2 오후 11시5분) 서울 여의도 증권가에서부터 충청도 농촌 마을, 전라도 항구도시, 부산 자갈치시장.40여일 동안 약 200여명의 민심을 직접 들었다. 대한민국의 국민들이 1년 남은 참여정부에게 바라는 점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추적 60분’신년특집 2부작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생생하게 전한다.   ●환경스페셜(KBS1 오후 10시) 흔히 ‘히말라야의 보석’이라 불리는 불교 왕국 부탄. 중국과 인도의 사이에 존재하는 작은 나라 부탄은 지구상 가장 접근하기 어려운 천연의 요새 같은 지형을 갖고 있다. 때문에 고유문화와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완벽하게 유지, 보존되는 곳이기도 하다. 물, 바람 그리고 하늘의 나라 부탄을 찾아가본다.
  •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김성호 전문기자의 종교건축 이야기] (20) 석가 진신사리 모신 오대산 상원사

    조계종 제4교구 본사 월정사에서 서북쪽으로 9㎞쯤 떨어진 오대산 산록에 아담하게 앉은 상원사(강원도 평창군 진부면 동산리). 건물이래야 목조 문수동자좌상을 모신 주 전각 문수전에 딸린 영산전과 청량선원, 범종각 정도가 고작인 소박한 사찰이다. 가람의 규모가 작은 탓에 흔히 월정사의 ‘산내 암자’쯤으로 인식되지만 숱한 고승을 배출해온 1200년 신라 고찰이자 나라 안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선원이기도 하다. 일반인들에겐 ‘한국 최고의 범종’인 상원사동종(국보 제36호)으로 인해 잘 알려진 사찰. 불교계에선 석가모니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한 적멸보궁에, 지혜의 상징인 문수보살이 상주한다는 문수신앙이 보태져 수행하는 운수납자(雲水衲子)와 신도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지이다. 원래 오대산의 산명(山名)은 처음 산문을 연 개산조인 자장 스님이 문수보살이 머문다는 중국의 오대산에서 꿈속 게송을 받고 돌아와 절을 창건한 데서 비롯된 이름. 자장 스님은 중국 오대산에서 한 노 스님으로부터 “당신의 나라 동북방 명주 땅에 일만의 문수보살이 늘 거주하니 가서 뵙도록 하라.”는 말과 함께 가사와 발우 한벌, 부처님 정골사리를 받고 신라 선덕여왕 12년(643년)에 귀국해 월정사를 창건하였다고 한다. 상원사는 한참 후인 성덕왕 4년(705)에 두 왕자인 보천·효명에 의해 오대산 중대에 진여원(眞如院)이란 이름으로 창건되었는데 당시 오대산은 오류성중(五類聖衆), 즉 다섯 부류의 성인들이 머무는 신성한 곳으로 여겨졌다. “신라 신문왕의 아들 보천태자는 아우 효명과 더불어 오대산으로 들어갔다. 두 사람이 함께 예배하고 염불하던 중 오만의 보살을 친견한 뒤로, 날마다 이른 아침에 차를 달여 일만의 문수보살에게 공양했다.”(삼국유사) 당시 사람들이 오대산에 찾아와 보천태자에게 신문왕의 후계를 권했지만 보천태자가 한사코 거부해 결국 효명태자가 왕위에 올랐는데 그가 바로 성덕왕이다. 왕위에 오른 효명태자가 오대산에서 수도하던 중 여러 모습의 문수보살을 친견한 뒤 세운 것이 진여원, 지금의 상원사다. 이 설화를 뒷받침하듯 지금도 오대산에는 상원사를 중심으로 중대 사자암, 동대 관음암, 서대 염불암, 남대 지장암, 북대 상두암(미륵암)이 포진해 있다. 이 오대 중에서 상원사가 있는 중대는 바로 오만 보살신앙의 중심으로 여겨진다. 상원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은 아무래도 적멸보궁과 상원사동종. 부처님 진신사리를 모신 적멸보궁이란 모든 바깥 경계에 마음의 흔들림이 없고 번뇌가 없는 보배스러운 궁전이란 뜻. 욕심과 성냄, 어리석음이 없으니 괴로울 것이 없는 부처님의 경지를 말한다. 국내엔 사자산 법흥사, 태백산 정암사, 영취산 통도사, 설악산 봉정암 등 모두 다섯군데의 적멸보궁이 있는데 불교계는 상원사의 적멸보궁을 가장 먼저의 것으로 보고 있다. 이곳을 방문한 조선시대 암행어사 박문수는 ‘천하의 명당’이라며 감탄했다고 한다. 정식 사리탑은 없고 최근 증축한 정면 3칸, 측면 2칸 건물 뒤쪽에 1m 높이의 판석에 석탑을 모각한 상징물이 서 있다. 문수전 앞 마당 작은 건물 안에 달려 있는 상원사동종은 종소리와 청동 합금, 주조기술 면에서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한국종의 모범. 무릎을 세우고 허공에 뜬 채 수공후와 생(笙)을 연주하는 비천상을 비롯한 의장(意匠)과 우아한 문양이 시선을 사로잡는다. 종의 마멸과 훼손을 막기 위해 타종을 중단해 지금은 아쉽게도 종소리를 들을 수 없다. 조선왕조실록 예종 1년(1469) 윤2월조와 경북 안동읍지인 ‘영가지(永嘉誌) 6권´에 따르면 이 종은 신라 성덕왕 25년(725년)에 제작되어 안동의 누문에 걸려 있던 것을 조선 예종1년(1469년)에 이곳 상원사로 옮겨왔다. 죽령을 넘을 무렵 종이 너무 무거워 애를 먹던 중 종유(鐘乳) 하나를 떼어 안동으로 돌려보내자 종이 수월하게 움직였다는 이야기가 얽혀 있다. 원래 종의 동서남북 사방 면에는 각각 9개씩 36개의 종유를 만들었는데 1개가 없어진 35개만 남아 있어 흥미롭다. 상원사에서 특이한 것은 불교 중흥기인 고려대엔 사찰의 중창과 관련한 기록이 거의 남아 있지 않으나 오히려 숭유억불책을 썼던 조선조에 왕실의 각별한 비호와 지원을 받았다는 점이다. 승려의 도성 출입을 금지하는 등 척불에 앞장섰던 태종은 만년에 상원사 사자암을 중건하고 자신의 원찰로 삼을 정도였다. 특히 세조와 관련된 흔적은 사찰 곳곳에 남아 있다. 당시 서울에서 상원사까지는 달포나 걸리는 먼 길이었지만 세조는 재위기간 중 3차례나 상원사를 찾았다고 한다. 상원사 주차장 앞에는 세조가 몸을 씻기 위해 의관을 걸어두었다는 관대걸이가 지금도 서있다. 단종을 죽인 세조는 단종의 모후인 현덕왕후가 자신에게 침을 뱉는 꿈을 꾸고 난 뒤 온 몸에 종기가 돋고 고름이 나는 병에 걸리자 오대산을 다니며 기도를 올려 병이 낫도록 발원했다고 한다. 어느날 오대산 계곡에서 목욕을 할 때 우연히 지나던 동자승에게 등을 밀어줄 것을 부탁했는데 동자승이 등을 밀어준 뒤 씻은 듯이 나았다. 이에 감격한 세조가 화원을 불러 그 동자승의 화상을 그리게 했는데 지금 문수전 오른쪽 외벽에 그 모습을 재현한 벽화가 걸려 있다. 문수전 안의 목조 문수동자좌상(국보 제221호)도 그런 연유에서 조성해 봉안했다고 전해진다. 1984년에 발견된 문수동자 복장에서는 세조의 딸 의숙공주가 문수동자상을 봉안한다는 발원문을 비롯하여 30여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다. 세조의 왕사인 신미 스님이 복을 빌기 위해 상원사를 중수하려 하자 세조가 채색·쌀·무명·베와 철재 등을 보내면서 그 취지를 적었다는 ‘중창권선문’(국보 제292호)도 왕실과 상원사의 관계를 짐작게 한다. 세조가 대(大)시주자로 앞장서자 왕비를 비롯한 궁인, 종실, 조정 신료와 전국의 수령방백들이 앞다투어 시주에 나섰던 사실을 보여준다. 문수전 앞 두마리의 고양이가 나란히 선 석조상에 얽힌 이야기도 흥미롭다. 고양이가 상원사 법당에 들어가려는 자신의 옷소매를 물고 늘어진 것을 수상하게 여긴 세조가 법당 안팎을 샅샅이 뒤진 끝에 불상 좌대 밑에 칼을 품고 숨은 자객을 찾아냈다고 한다. 고양이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진 세조는 은혜에 보답하기 위해 상원사의 고양이를 잘 보살피라는 뜻으로 묘전(猫田)을 하사해 상원사는 사방 80리의 땅을 보유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후 세조의 원찰이 되었던 상원사는 안타깝게도 1946년 선원 뒤의 조실(祖室)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건물이 전소되었으며 지금의 문수전과 청량선원 등 대부분의 전각은 모두 그 이후 복원되거나 새로 지어진 것들이다. kimus@seoul.co.kr ■ 천고에 자취감춘 학이 머물렀던… ● 한암 스님과 상원사 상원사는 한국 선불교의 중흥조로 불리는 경허 스님을 비롯해 수월 운봉 동산 등 역대 선지식(善知識)들이 주석하며 수행했던 유서깊은 곳. 이들 선지식 중에서도 27년간 오대산문을 나서지 않은 채 ‘오대산 도인’으로 통했던 한암(1876-1951)스님은 상원사와 관련해 빼놓을 수 없는 선승이다. 금강산에 유람갔다가 발심해 장안사 행름 노사를 은사로 출가한 한암 스님이 상원사에 든 것은 50세 때인 1925년. 당시 서울 봉은사 조실로 있었던 스님은 “차라리 천고에 자취를 감춘 학이 될지언정 삼춘(三春)에 말 잘하는 앵무새의 재주는 배우지 않겠노라.”는 말을 남기고 홀연히 오대산을 찾았다. 들고 다니던 단풍나무 지팡이를 상원사 산 중턱의 중대 사자암 앞뜰에 심었는데 지팡이가 꽂힌 자리에서 잎사귀와 가지가 돋아 나무가 되었으며 지금도 그 단풍나무가 서있다. 조계종 초대 종정이 된 것도 그 즈음이다. 일제시대 일본 조동종 사토가 상원사로 한암 스님을 찾아와 법거량을 한 끝에 “한암 스님은 세계에서 둘도 없는 인물”이라며 떠난 일은 유명한 일화다. 이 일이 있은 뒤 상원사에는 한암 스님을 만나려는 일본 저명인사들의 발길이 이어졌다고 한다.6·25전쟁 중에는 국군이 “월정사와 상원사가 적의 소굴이 된다.”는 이유로 상원사 법당을 불태우려고 하자 법당에 앉아 “법당을 지키는 것은 불제자의 도리니 어서 불을 지르라.”며 자세를 흐트리지 않았다고 한다. 이에 국군이 어쩔 수 없이 법당 문짝만 뜯어내 불지르고 떠나는 바람에 상원사가 남아 있게 됐다고 한다. 한암 스님은 이곳에서 보문 난암 탄허 스님 등 한국불교의 기라성같은 제자들을 키워내다가 6·25전쟁이 발발한 이듬해인 1951년 좌탈입망(앉은 자세로 입적)했다.
  • “경제 괜찮다는 뜻” 박차관 해명불구 논란 여전

    “경제 괜찮다는 뜻” 박차관 해명불구 논란 여전

    박병원 재정경제부 제 1차관이 5일 “아주 제한된 지역에서 중대형의 특정 아파트를 제외하곤 부동산 거품이 광범위하게 끼여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발언, 논란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박 차관의 발언이 보도되자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정부의 안일한 태도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각에서는 분양가 공개에 반대하는 등의 시장주의적 정부 시각을 박 차관이 작심하고 표현한 소신 발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박 차관은 “정부가 부동산 가격 상승 문제를 심각하게 보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라 거품 붕괴가 경제 전반에 심각한 타격을 줄 정도는 아니라는 취지로 말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네티즌들은 “거품이 없다면 왜 부동산 대책을 내놓느냐.”는 등의 댓글을 통해 박 차관을 비난했다. 박 차관은 이날 불교방송에 출연,“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것에 대해 걱정을 많이 하지만 전국적으로 보면 지방에서 거품을 운운할 정도의 가격상승은 없다.”면서 “수도권에서도 가파르게 상승한 지역은 그렇게 많지 않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어 “지난해 수도권 외곽 지역의 중소형 아파트가 올라 공급대책을 제시했다.”면서 “제한된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에 가격상승이 집중됐지만 부동산 거품이 꺼지는 현상이 크게 일어날 지역은 많지 않다.”고 말했다. 네티즌들은 이 발언에 대해 재경부 홈페이지와 인터넷 사이트에서 반박의 댓글을 퍼부었다.‘나빈민’이라는 네티즌은 “당장 우리 동네로 와 봐라.5000만원이면 살 수 있던 빌라도 지금은 1억원 밑으로는 못 산다.”고 꼬집었다. 재경부는 해명자료를 통해 “박 차관의 발언은 붕괴라는 표현을 쓸 정도로 부동산이 급등한 지역은 제한적이라는 뜻”이라면서 “이미 주택담보대출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 등을 시행했기에 가격 하락이 금융채무 불이행으로 경제전반에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취지였다.”고 설명했다. 백문일 이영표기자 mip@seoul.co.kr
  • [열린세상] 늑대 이야기/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어린 시절 초등학교 때 일이다. 이웃에 사는 친구네 돼지 한 마리가 한밤중에 사라진 사건이 일어났다. 이를 두고 어른들은 늑대 짓이 틀림없다고 했다. 늑대는 본래 영리한 짐승이어서, 소리도 없이 돼지를 잡아간다는 소문이 돌았다. 돼지가 울 안에서 뛰쳐나오게 겁을 준 다음 제발로 걸려 데려갔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고, 늑대는 두 마리가 넘게 왔을 것이라는 자상한 설명도 뒤따랐다. 그러나 딱히 늑대를 본 기억은 없다. 돼지를 데려갔다는 동네서 좀 떨어진 해받이고개 초입에서 어느 날 만났던 큼직한 개가 혹시 늑대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지레 겁을 먹은 적은 있다. 그리고 몇 년이 지난 뒤에 한국전쟁이 터지면서, 늑대 소리는 이내 쑥 들어가 버렸다. 중학교에 입학하고 나서, 늑대와 흡사하다는 이리를 주제로 삼은 황순원의 단편 ‘이리도’를 국어책으로 배웠다. 이 소설에 나오는 이리떼 이야기를 빌려 늑대도 그러려니 하는 어림잡은 상상의 날개를 달았다. 정해(丁亥) 돼지의 해 들머리에 무슨 늑대냐고, 되받아 물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열두 지지(地支) 띠 이름에도 끼어들지 못한 늑대를 새삼스레 들춘 까닭은 따로 있다. 지난 세밑 경상북도가 이미 멸종한 늑대를 지리산 반달곰처럼 복원할 계획이라는 대구발 뉴스가 내심 반가워서다. 이 보도에 따르면, 한국의 야생과 종(種)이 같은 늑대 2∼3쌍을 몽골이나 러시아에서 들여와 안동 야생동물생태공원에서 키워 5년 뒤에 방사(放飼)한다는 것이다. 이참에 친구네 돼지가 사라졌을 때 들었던 재미난 이야기 하나를 더 해야겠다. 무아지경에서 사람을 만난 늑대는 사람 키를 훌훌 타 넘다가 해코지를 한다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기다란 담뱃대 장죽(長竹)을 저고리 등자락에 세워 꽂아 뾰죽한 물부리가 드러나면, 늑대는 그만 달아났다고 했다. 이에 곁들여 ‘혼자 길을 가다 만난 늑대보다 더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말로 이야기 끝을 맺었던 기억이 난다. 이말은 옳다. 서구인들은 일찍부터 늑대를 심술궂고도 탐욕스러운 짐승으로 몰아세운 설화(說話)를 빌미로 죽음 이상의 고통을 주고, 또 늑대를 독살하는 짓거리를 마다하지 않았다. 지난 18세기까지도 북아메리카에서는 황무지 개간에다 신의 은총이라는 꼬리표를 붙여 늑대 멸종을 부추겼다. 그래서 1883∼1918년 사이 몬태나 주에서만 3만마리 이상의 늑대를 죽인 기록이 남아 있다. 지난 19세기 찰스 다윈의 진화론을 옹호하는 가운데 동물 가까이로 다가간 영국의 동물학자 토머스 헉슬리에 이어 독일의 생물학자인 에르스트 헤켈에 의해 생태학(生態學)이 태동한다. 그리고 20세기가 막 시작되었을 때 환경보호주의자로 나선 ‘동물기’의 작가 어니스트 톰슨 시튼은 늑대를 비롯한 동물의 삶과 죽음을 연민(憐愍)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지금 여러 사람들이 어여쁜 마음으로 키우는 애완견의 조상이 1만 4000여년 전 극동 아시아에서 사육한 늑대라는 사실을 알면, 야생의 동물이 달리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늑대의 역사는 꽤 오래되었다.2만여년 전 유적인 스페인 알타미라 동굴에서는 늑대를 실제 스케치한 그림이 보이거니와, 이보다 2000여년이 앞선 로스앤젤레스 판초라 유적에서는 수백마리 몫의 늑대뼈가 나왔다. 늑대는 유라시아 대륙과 북아메리카를 잇는 북반구에 널리 퍼졌던 식육목(食肉目) 개과(科)의 무리 사냥꾼이다. 그러나 멸종에 가까울 만큼 숫자가 줄어들었다. 오늘날 생태보존 문제는 인류가 자연계에 화답하지 않을 수 없는 이슈가 되었다. 세계의 생태학자들은 문제의 실마리가 아시아 쪽에서 먼저 풀어지기를 기대하는 모양이다. 유교적 자연관(自然觀)과 불교적 자비관(慈悲觀)이 아직은 다 메마르지 않은 지역으로 보았기 때문인 것이다. 행여 생태를 복원하는 날이 오면, 늑대가 어슬렁거렸던 고향땅 해받이고개를 거닐어 볼란다. 황규호 한국의 고고학 상임편집위원
  • [중계석] 남북정상회담 가능성 더 커졌다/김대중 前대통령

    김대중 전 대통령은 2일 남북정상회담 개최 전망과 관련,“노무현 대통령은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서울을 방문하는 조건을 풀어줘 어디서든 만나겠다고 했기 때문에 상당히 가능성이 더 커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전 대통령은 이날 불교방송 ‘조순용의 아침저널’에 출연, 이같이 말하면서 “문제는 북한의 태도이며 북한은 약속한 것이기 때문에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정상회담을 해야 한다.”고 정상회담 개최의 필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어 남북관계 진전을 정략적으로 해석할 수 있지 않으냐는 질문에 대해 “선거는 선거이고 남북관계는 남북관계일 뿐”이라며 “남북이 계속 협력해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가 선거 때문에 그러지는 않으리라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부동산 정책의 신뢰회복 방안과 관련,“좋은 정책의 잦은 변경보다는 나쁜 정책의 일관성이 오히려 낫다는 말이 있다.”며 “일단 한번 정하면 그대로 가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정책을 국민이 알아듣게 쥐어주듯이 설명하고 정책을 세우면 일단 세운 대로 가야 한다.”며 “국민이 잊어버리지 않게 되풀이해주고 국민과 같이 가는 정책을 집행하면 국민이 안심하고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그는 양극화 해소 방안에 대해 “경제 여건이 전부 나쁜 것은 아니지만 중산층과 중소기업이 튼튼하지 못한 데 문제가 있다.”며 “대기업은 자기 힘에 맡기되 중소기업, 부품소재 기업 육성에 힘써야 하고 사회적 불안요인인 사회 빈곤층과 주택문제는 정책으로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는 “금년 대선에서도 내가 개입하지 않을 것은 분명한 사실이고, 나이도 많고 건강도 안 좋은 점이 있는 사람이라 국내 정치까지 개입할 짬이 없다.”며 “내가 하고 싶은 것은 평화적으로 통일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면 좋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 [국악인] 음악으로 부처님 만나는 이삼 스님

    [국악인] 음악으로 부처님 만나는 이삼 스님

    글 최종민 철학박사, 국립극장예술진흥회 회장, 동국대학교문화예술대학원 교수 교통사고로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이삼 스님이 왼쪽 팔과 왼손만으로 대금 연주하는 것이 TV로 소개되어 스님을 아는 사람이 꽤 많아졌다. 두 손으로 대금 구멍 막는 것도 어렵다고 하는데 이삼 스님은 한쪽만 가지고 산조대금보다 더 큰 정악대금을 멋지게 연주하고 있으니 정말 초인적이라 할 만하다. 이삼 스님을 만나 본 사람이나 그의 연주를 들어 본 사람들은 대개 그가 보통을 훨씬 넘는 비범한 사람임을 느낀다. 한쪽 팔을 못 쓰게 된 지금도 물건을 옮긴다거나 가야금이나 거문고 같은 악기를 만드는 것을 보면 우선 힘이 장사고 집중력과 추진력이 대단하다. 그는 쉬지 않고 대금을 불고 꾸준히 악기를 만든다. 음악에 쏟는 정력과 시간이 엄청나다. 어떻게 보면 음악 행위 그 자체가 이삼 스님에게는 수행의 한 부분이 되는 것 같다. 그래서 그런지 이삼 스님은 옛날 지식인들이 수양의 음악으로 하던 정악을 한다. 요즘 국악애호가들이 좋아하는 산조나 시나위는 하지 않는다. 신나는 음악보다는 마음을 다스리고 정서를 도야할 수 있는 음악을 한다. 옛날 같으면 선비 계층에서 선호하던 음악이 정악이었다. 욕심이라든지 사특한 마음을 없애고 정대한 자기 본성의 선한 마음을 도야하기 위해 하는 음악이 정악이다. 그래서 정악은 ‘바른 음악‘이고 ‘바른 마음에서 나오는 음악’이다. 정악을 하면 ‘바른 마음‘이 도야되고 ‘바른 마음’의 상태에서 표현하면 정악이 된다. 때문에 정악은 많은 사람들이 오랜 세월에 걸쳐 ‘더 바른 마음‘을 가지기 위해 노력하며 발달시킨 음악이다. 하여 이삼 스님의 대금정악은 전혀 세속에 물들지 않고 그의 스승 녹성이 불었던 그 가락 그 느낌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녹성 김성진은 20세기 후반 한국 대금정악의 최고봉이었고 인간문화재였다. 꽤 여러 명의 제자를 가르쳤지만 대부분 국립국악원 부설 국악사양성소 학생들이었지 외부 인사나 스님 같은 신분의 제자는 거의 없었다. 이삼 스님이야말로 특별하게 녹성의 제자가 되었고 또 녹성이 아주 정성껏 가르쳐 준 애제자가 되었다. 인연을 중시하는 불가에서 볼 때 이삼 스님과 녹성과의 관계는 아주 특별한 인연이라 할 수 있다. 불교로 해탈하고자 불도에 귀의한 이삼 스님이 염불이나 참선 못지않게 열심히 정진하는 것이 대금정악이 되었으니까 말이다. 이삼 스님은 본명이 이영래이고 1949년생이다. 어려서부터 음악을 좋아하여 기타와 피아노, 색소폰과 바이올린을 배웠다. 그런 사람이 20세 되던 1969년 수원 용주사로 출가하여 스님이 되어 해인사 승가대학을 졸업한 다음 은사인 각성 스님을 따라 봉원사로 와 다시 음악을 하게 된 것이다. 1975년 국립국악원에 거문고를 배우려고 갔었는데 사정상 배우지 못하고 비용을 적게 들이고 배울 수 있는 단소를 배우기 시작했다. 단소를 조금 배운 다음 78년 대금을 배우게 되었는데 처음부터 녹성 김성진 명인에게 배우게 되어 정말 알찬 공부를 할 수 있었다. 녹성은 외부 사람을 거의 가르치지 않기 때문에 배울 수 있는 장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악사 연습실에서 배우기도 하고, 가야금 하는 황병주 연구실을 빌려서 배우기도 했다. 따지고 보면 78년부터 93년까지 근 15년을 그렇게 알뜰히 배워 대금정악의 레퍼토리 거의 전부를 3차례쯤 배웠다. 녹성 선생은 이삼 스님에게 취법이나 프레이징 방법까지 세밀히 가르쳐 주었기 때문에 이삼 스님은 음악의 속과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방법까지 지도 받았다. 술을 좋아하셨던 녹성 선생은 자주 제자와 함께 술을 마시며 많은 얘기를 해주었다. 제자 또한 그런 스승을 위해 늘 술과 안주를 준비하는 것이 일상처럼 되었었다. 함께 여행을 하며 가르치기도 하고 술을 마시면서도 음악을 얘기해 주기도 했으니 얼마나 지성으로 가르쳤던가를 짐작할 수 있다. 이삼 스님도 그런 스승의 사랑과 가르침 때문에 89년 교통사고를 당하여 한쪽 팔을 못 쓰게 되었는데도 대금을 놓지 않고 계속 불고 있다. 스승이 가시고 난 지금 스승의 사랑을 저버리지 않는 것은 스승이 남겨주신 대금정악을 계속 보급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난해에는 스승이 가르쳐 준 대금정악의 악보를 일일이 필기하여 정간보로 출판했다. “녹성 성진의 진짜음악이 이것이다” 하고 실제 연주로 보여주고 싶은 것이다. 그래서 이삼 스님은 하루도 거르지 않고 배운 것을 계속 연습하며 녹음 준비를 하고 있다. 이삼 스님은 악기 만드는 기술 또한 대단하다. 80년부터 악기를 만들기 시작했는데 국립국악원장을 지낸 김기수 같은 대가에게 대금을 만들어 주기도 했고 황병주에게 가야금을 만들어 주기도 했다. 지난해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가졌던 독주회에 구름처럼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 크게 감동을 받고 가는 것을 보았을 때, “아하 이삼 스님은 음악으로 포교 하는구나”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부디 건강하여 스승의 대금정악은 물론 좋은 악기, 좋은 제자들을 많이 양성하기를 바란다.     월간 <삶과꿈> 2006.12 구독문의:02-319-3791
  • 올해 탄생 100주년 문인들 작품세계 조명

    소설가 이효석과 시인 신석정·김달진의 공통점은. 모두 고인이 됐지만 이들은 모두 대한제국 시절인 1907년 태어나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이다. 2001년부터 ‘탄생 100주년 문학인 기념문학제’를 열어온 대산문화재단과 민족문학작가회의는 새해에도 탄생 100주년을 맞는 10여명의 문학세계와 작품을 조명키로 했다. 한국 단편문학의 백미 가운데 하나인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인 이효석은 1928년 ‘조선지광’에 단편 ‘도시와 유령’을 발표하며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했다.초기에는 작품에 깃든 사회주의 성향 때문에 ‘동반자 작가’로 불렸고, 이후 ‘돈’ ‘수탉’ 등 향토색 짙은 작품들을 잇따라 발표했다. ´고향인 강원도 봉평 주민들로 구성된 가산문학선양회는 오는 5월25일 봉평면 가산공원에서 추념식을 연다. 매년 9월 메밀꽃밭이 펼쳐진 봉평면 일대에서 개최되는 ‘효석문화제’도 9회째를 맞아 규모를 키우기로 했다. 신석정은 1924년 조선일보에 ‘기우는 해’를 발표한 뒤 삶의 경건함과 순수함을 노래한 ‘선물’ ‘나의 꿈을 엿보시겠습니까’ 등을 내놓았다. 시집 ‘촛불’ ‘슬픈 목가’ ‘빙하’ ‘산의 서곡’ ‘대바람 소리’ 등을 남기며 목가적 서정시인의 대명사로 꼽혔다. 김달진은 불교사상을 바탕으로 동양적 세계와 유유자적하는 생활이념을 나타낸 작품과 인생을 탐구한 서정시를 함께 보여준 시인으로 평가받는다. 시집 ‘청시’ ‘올빼미의 노래’가 있다. 이들 외에 일본에서 활동하면서 우리 민요와 신시를 번역 소개한 김소운,1946년 월북해 조선작가동맹 상임위원 등을 지낸 시인 박세영, 애정소설을 많이 발표한 함대훈 등도 올해로 탄생 100주년을 맞는 문인들이다.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추사의 학문·예술·삶 한눈에

    우리가 아는 추사 김정희(1786∼1856)는 시서화·유불선·문사철을 관통하는 인물로 조선 후기 문화사에 커다란 영향을 미쳤다. 특히 새로운 국제적 조류를 적극 수용하고, 우리 것과 결합시켜 자기화해냄으로써 19세기 세계서예사에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한 위인이다. 하지만 같은 이유로 추사를 중국 청조문화의 수입업자이자, 한국서예사의 단절자라고 보기도 한다. 추사 서거 150주년을 기념해 예술의전당 서울서예박물관에서 27일 개막된 ‘한국서예사특별전-추사문자반야(秋史文字般若)’는 이런 비판적 시각을 낳은 서예가로서 단편이 아니라 추사가 쌓은 학예세계의 전모를 밝히는 자리이다. 특별 코너에서는 ‘이헌서예관 소장 추사명품’과 멱남서당 소장 ‘추사가의 한글’전도 동시에 열리고 있다. 세 전시회를 결합하여 추사체가 그의 학문과 예술, 삶과 그 시대의 분위기가 유기적으로 결합해 태어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그동안 추사 연구는 토대가 될 추사체의 형성·변화·완성의 실체적 과정을 기준작 중심으로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에 서예와 시문학, 경학, 불교학, 그림 등 연구의 개별 성과를 추사예술의 학문이라는 유기적 관계 속에서 제대로 밝혀내지 못했다. 추사서예를 동아시아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객관적으로 비교 조명하지도 못했다는 것이 주최측의 문제의식이다. 이번 전시회는 따라서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고 한다. 전시장에는 선문대 박물관이 소장한 추사의 자화상을 비롯해 ‘문자반야’,‘문자보리(文字菩提)’,‘사서루(賜書樓)’,‘만휴(卍休)’ 등 큰 글씨와 행서 병풍, 여러 가지 서체를 섞은 파체서(破體書)인 ‘가정유예첩(家庭遊藝帖)’과 서예비평인 ‘완당제산곡신품첩(阮堂題山谷神品帖)’ 등 분야별 대표작 100여점이 출품됐다. 여기에 박제가가 손가락으로 쓴 지두화(指頭畵) ‘한거독서(閑居讀書)’, 정약용의 초서병풍 ‘사언고시’, 초의선사의 ‘문자반야’ 시첩 등 주변인물의 작품 50여점, 옹방강의 ‘애련설도(愛蓮說圖)’와 ‘세한도 발문’ 등 청나라 문인과의 교유 관계를 보여주는 작품 50여점, 증조할아버지 김한신, 아버지 김노경 등 집안 작품 50여점이 나왔다. 전시회는 내년 2월25일까지 열린다. 이 기간 동안 매일 오후 2시 큐레이터가 작품을 설명하는 갤러리토크가 있고, 매주 토요일 오후 1시에는 ‘추사학예강화’가 열린다. 매주 월요일 휴관.(02)580-1284.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52·끝) 에필로그

    [김형효 교수의 테마가 있는 철학산책] (52·끝) 에필로그

    이것이 마지막 회의 글이다. 이미 1년이 경과했다. 그 동안 이 졸고들을 성실하게 읽어주신 독자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올린다. 그리고 철학산책과 같은 칼럼을 기획해 주신 서울신문사에도 역시 감사의 말씀을 전하고 싶다. 철학은 별로 대중성이 없는데, 이렇게 과감하게 신문 한쪽 지면을 할애한 것은 천학비재한 나에게 큰 짐이었고 동시에 행운이었다. 철학이 대상학이 아니고 사유학이라고 한다면(50회 글 참조), 서울신문사의 기획은 아마도 독자들에게 사유하는 철학의 맛을 알리려는 의도가 있었던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신문에 연재되는 철학적 글쓰기는 쉬우면서도 깊이가 우러나와 사색의 자료가 되어야 하는데, 나의 모자라는 재주로는 그런 복합적 요구를 만족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최선을 다해 보려고 했으나, 평가는 독자들의 몫이겠다. ●철학공부는 전공 틀 벗어나 사유의 날개 펴야 내가 한 평생 철학공부에 매진해 오는 도중에 조금 깨달은 바가 있다. 한국의 일반적 철학의 풍토에 대한 자기 반성과 유사한 것이다. 철학은 과학과 달라서 전공의 벽에 갇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과학은 대상학이기에 전공으로 세밀화될 수 있으나, 철학은 그렇게 공부해서 결코 소기의 성과를 거둘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일반적 철학의 풍토가 너무 전공의 벽에 갇혀 사유의 날개를 펴지 못한다는 것이다. 동서고금에 그 이름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 철학자치고 좁은 전공의 벽에 갇혀 천착한 이가 단 한 명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둘째로 한국의 철학 풍토는 사유는 적게 하고, 개념적 지식을 쌓는 일을 능사로 여기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다. 그런데 그 지식은 과학지식처럼 실용성이 없어서 철학교실을 벗어나면 별로 여운을 남기지 못한다. 이것이 한국에서 철학의 소멸을 가져오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셋째로 한국의 철학 풍토는 각자가 전공하는 그 영역의 이론을 중심으로 한국의 현실을 증발시키므로 늘 현재완료진행형인 한국의 역사적 업(業)은 은폐되고, 이론적 당위성만으로 한국현실을 재단하는 안이한 길을 간다. 불행히도 우리에게 늘 당위적 주장은 넘치도록 많으나, 우리의 운명적 업을 풀고 우리를 훨훨 자유스럽게 하는 철학적 지혜의 출현이 너무 아쉽다. 당위적 주장은 실제로 약이 안 된다. 우리를 행복하고 자유스럽게 하는 철학사상의 출현은 다른 나라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괴이한 사설적(私說的) 처방전이 아니고, 한국의 역사적 운명 속에서 움텄으면서 그 운명으로부터의 해방을 인류의 깊은 지혜로 등록됨 직한 정신적 깊이를 지녀야 하겠다. 히말라야 고봉이 하루아침에 솟은 것이 아니고 점진적인 높이가 쌓여서 그렇게 되었듯이, 한국의 철학적 사유의 깊이도 그런 과정을 밟아야 하겠다. 그러기 위해서도 우리는 죽어서 다음 세대가 우리의 무덤 위에 높이 올라서게 하는 발판이 되어야 하겠다. 우리는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철학을 공부한다. 헤겔의 지적처럼 인간은 아픈 동물인지 모른다. 모든 철학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두 가지의 종류밖에 없는 것 같다고 지적되었다(50회 글 참조). 그 두 가지는 구성 철학과 해체 철학이다. 즉 마음의 병을 치유하는 도(道)는 구성과 해체의 두 가지 계열이 있는 셈이다. 그런데 왜 철학이 역사적으로 그렇게 다양한가? 그 까닭은 병을 낳는 시대적 역사적 인연들의 결합이 각각 다르게 출현하기 때문이다. 인연들의 결합이 제각기 다르더라도, 그 기본본질의 계열로 보면 단 두 가지가 있을 뿐이지만, 현실적으로 다양한 철학사상이 결합되어 나타난다. ●한국 철학의 業은 유교·순수주의 그래서 철학의 질병진단은 역사적 인연들을 무시하면 안 된다. 나는 인류가 그동안 너무 구성을 많이 축적해서 그 구성의 짐에 짓눌려 인류가 고생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나는 이 글의 연재를 통하여 해체주의적 시각에서 철학적 산책을 걸어갔었다. 구성주의의 철학에서 보면, 내가 연재한 글들이 납득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우리의 시대가 해체를 결행해야 할 그런 시절인연에 이르렀다고 믿는다. 더구나 한국의 역사적 업이 너무 많이 쌓여 있어서 이 무거운 업을 용해시켜 나가는 것이 한국철학의 길이라는 생각을 나는 한시라도 놓친 적이 없었다. 우리의 역사적 업보는 유교적 구성주의와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지금 우리는 유교시대를 살지도 않고, 그것이 생활의 희미한 흔적으로서만 남아있지만, 실로 우리의 집단무의식의 흐름에서 아직도 그것이 강력히 작용하고 있음을 나는 도처에서 느낀다. 유교적 구성주의의 업 가운데 나는 특히 대표적인 한국적 업이라고 여겨지는 순수주의를 예로 든다.‘까마귀 싸우는 곳에 백로야 가지 마라/성낸 까마귀 흰빛을 새오나니/창파에 좋이 씻은 몸 더럽힐까 하노라.’ 누구나 다 아는 정몽주의 시조다. 순수성을 아끼고 찬양하는 의미로 가득 차 있다. 이런 순수성의 가치가 우리의 무의식의 맥락에 연면히 흘러가고 있는 것 같다. 그래서 윤동주의 ‘서시(序詩)’가 한국인이 가장 애송하는 시로 꼽히고, 서정주의 시 ‘동천(冬天)’도 한국적 서정의 순수함을 반영하기에 사람들에 의하여 널리 회자되고 있다. 순수함을 그토록 사랑하기에 한국문화는 잡된 것을 싫어하고 순정품을 고귀한 것으로 여긴다. 고려말기의 충신 우탁으로부터 조선 중기의 기생 송이에 이르기까지 150수의 시를 조사하면서, 순수성을 애착하는 시가 무려 50여수가 되는 것을 나는 보았다. 즉 이화/명월/광백/백월/광명/은한(銀寒)/고죽/청풍/창랑/시냇물/백로/백골/백운/매화/청산/풍월/청초/청운/은구(銀鉤)/연화/명주/송죽 등과 같이 깨끗하고 순수하고 절개를 지키는 의미를 상징하는 의미소들이 50여수의 시조를 채우고 있었다. 그러나 자기의 심신을 더럽히지 않으려는 순수성의 정신이 또한 역설적으로 매우 편협하고 배타적인 성향으로 흐를 수 있는 위험성을 지닌다.20세기 프랑스의 의학철학자 캉길렘의 주장처럼 병은 정상적인 것의 부재나 고장이 아니고, 정상적인 생리의 과잉이나 과소에서 발생한다는 것을 우리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순수성의 생리적 과잉이나 과소가 오히려 병이 된다는 것이다. 한국병은 저 순수성의 과잉에 기인하는 것 같다. 순수성의 과잉이 곧 흑백논리로 세상사를 재단하는 병이 된다. 순수성이 과잉적이면, 그 순수라는 원리적 가치에 사람들의 생각이 집착되어서 일체의 창조적 변용을 사람들이 잡된 것이라고 여기기 쉬워진다. 그래서 주어진 사상의 근본적 핵심에 사람들의 사고가 응결되어 버리면, 그것 이외에 다른 일체를 불순한 것으로 배척하는 생리가 또한 흐른다. 이런 교조적 순수를 지키려는 생리가 한국인의 사고방식에 근본주의적 사고방식(fundamentalism)을 뿌리내리게 하는 것 같다. 주자학이 한국에 유입되어도 근본주의적 주자학이 판을 치면서 주자학적 근본원리와 조금이라도 맞지 않는 것을 이단으로 배척하는 사고방식이 중국이나 일본에 비하여 대단히 강력했다. 그래서 조선 유학사에서 양명학이나 순자학이 발붙일 여유가 없어졌고, 심지어 노장사상이나 불교는 공식적으로 완전히 추방되기에 이르렀다. 그것만이 아니다. 공산주의가 들어와도 일본공산당은 자국의 이익에 따라서 가변적으로 융통성 있게 공산주의를 운영했었는데, 조선 공산당은 온전히 국제적 코민테른의 지시를 철칙으로 삼는 근본주의를 선택했다는 것이다. 나는 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도 근본주의적 태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고 본다. 민주주의의 불변적 정신을 살리면서 어떻게 가변적으로 유효하게 그 민주주의를 구체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는 애시당초부터 생각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민주주의의 순수성을 훼손시키는 잡생각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나는 우리의 종교도 그런 근본주의의 요인을 안고 있다고 생각한다. ●구시대적 관습 새판짜기보다 수정 중요 한국만큼 종교를 근본적으로 바꾼 나라도 드물겠다. 불교국에서 유교국으로 조선시대에 바뀌더니, 지금에서는 기독교국으로 개변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겠다. 보통 종교와 관습은 쉽게 바뀌지 않는데, 급변하게 종교가 바뀌었다는 것은 근본주의적 마음의 태도와 무관하지 않다고 본다. 우리는 구시대의 관습법도 완전히 뜯어고쳐야 직성이 풀리는 급진성을 노출하고 있는 것 같다. 근본주의와 성질 급한 급진주의는 같이 간다. 종교나 관습이 시대의 요구에 미흡한 점이 있으면, 구체적으로 상황에 따라 점진적으로 수정하면 될 일을 근본적으로 새판을 짜려고 한다. 이것은 정당정치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마도 한국처럼 정당이 시시각각 부침하는 나라도 드물 것이다. 우리의 정신문화는 이 근본주의적 요구 때문에 늘 외국 선진국의 수준에 기준을 둔 당위의 주장들로 채워져 있을 뿐, 이 땅의 사실과 운명에 따른 구체적 진단으로 병에 따른 약이 되는 사실적 처방과 상응하는 식견과 지혜가 움틀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하지 못하고 있다. 정신문화적으로 어떤 사상이 우리의 정신풍토의 병을 치유하는 약이 되는지 심사숙고하는 자기소화의 과정을 거쳐야 한다. 어떤 사상이라도 자기 것으로 소화시키는 오랜 숙고의 시간을 통과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사상이 다 공허한 당위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다. 정신문화는 ‘유마경’에 나오는 ‘응병여약(應病與藥·병 따라 약을 줌)’의 철학을 견지해야 하겠다. 추상적 원론이 쉽게 흑백논리를 부르고, 그것이 우리의 급진적 급한 성격과 우리의 잠재적인 광기와 만나면, 미증유의 단순 소박한 추상적 구호가 광풍의 회오리바람을 불러일으키면서 온 나라를 단순 무식하게 만들어 버릴 위험성을 띤다. 거기서 깊은 사유와 구체적 처방의 창의가 죽어버린다. 하이데거가 역사를 공동존재로서 민족에게 파송된 ‘공동운명’(common destiny)이라고 한 말은 의미심장하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지식 아닌 유산을 깨닫는 것 역사는 각 민족의 공동업의 존재양식이 깃들어 있는 곳이다. 역사의 반성은 각 민족의 공동마음의 생리와 병리를 읽는 순간이다. 역사는 단순한 과거의 지식이 아니라, 현재완료진행형으로 살아 있는 과거의 유산을 깨닫는 것이다. 그 공동운명으로서의 업이 곧 생리와 병리다. 생리와 병리는 분리되어 있지 않고, 생리 즉 병리다. 생리의 다과(多寡)가 곧 병리를 불러온다는 캉길렘의 지적을 잊지 말자. 역사의 치유는 과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에게 지나치고 모자라는가를 아는 자각에서 이루어진다. 그동안 우리는 한편으로 지나치게 과격했고, 또 다른 한편으로 지나치게 모자랐다. 이것을 뼈저리게 깨닫자. 한국학중앙연구원 명예교수·철학
  • [강학중 가족클리닉-행복만들기] 결혼 약속한 남자와 종교가 달라요

    Q5년째 사귀고 있는 오빠와 결혼을 약속했는데 종교 문제로 고민입니다. 우리 집은 독실한 기독교 집안인데 오빠네는 제사에 철저하고 점이나 궁합도 보는 불교 집안입니다. 불교 신자인 오빠는 저를 따라 교회에 2년간 열심히 다니고 있는데 오빠네 집에서는 이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삼형제 중 막내인 오빠를 우리 집에서는 제가 좋다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반대는 안 하지만 역시 종교 문제 때문에 조금은 불만이십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정혜나·가명·29세- A결혼을 앞두고 마음이 많이 무겁겠네요, 그러나 결혼을 약속한 남성이 혜나씨의 종교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애쓴다니 다행입니다. 그리고 혜나씨 부모님 역시 다소 불만은 있지만 반대는 안 하신다니 얼마나 다행인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두 분의 사랑과 믿음입니다. 서로를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서로의 다름을 수용하면서 갈등을 함께 풀어나가려는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내 종교가 소중한 만큼 상대방의 종교도 소중한 것이니까요. 우선 남자 친구의 마음 씀씀이가 참 예뻐 보입니다. 하지만 아직 부모님이 그 사실을 모르신다니 언젠가는 조심스럽게 그 얘기를 해야겠지요. 자신의 종교에 철저한 집안일수록 종교 문제로 인한 갈등이 커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일단 결혼하고 나면 어떻게 되겠지 하고 예상되는 문제를 과소평가했다가 결혼 생활 내내 그 문제로 고통 받는 경우가 없도록 불씨가 될 것 같은 일은 미리 대화를 통해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물론 가장 바람직한 경우는 부부나 가족이 같은 종교 아래에서 진실된 신앙심을 키워 나가는 것이겠지만 부부나 가족의 종교가 반드시 같아야 되는 것은 아닙니다. 시부모 되실 분이 이해를 하실 수 있도록 시간과 인내심을 갖고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또 시댁의 문화에 맞추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제사 때 절을 하느냐 안 하느냐 같은 문제인데 비록 자신이 기독교인이지만 시댁의 종교나 문화가 절을 해야 하는 분위기라면 자신의 원칙을 잠시 양보할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런 경우가 1년 중 또 며칠이나 되겠습니까? 친정 부모님께서 다소 열린 사고 방식을 가지고 계신 듯한데 혜나씨가 자신의 종교를 바꾸실 수 있다면 그것 또한 또 하나의 해결책이 될 수도 있겠지요. 지금 두 분의 고민은 언뜻 종교 문제처럼 보이지만 결국은 두 사람의 가치관이나 욕구가 상반될 때 그것을 어떻게 조정해 나갈 것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다행히 장남이 아니라 막내라니 문제가 다소 가벼울 수도 있으리라 보며 종교 문제가 아닌 다른 일로는 속 썩이는 며느리가 아니라 너무너무 사랑스럽고 대견한 며느리로서의 모습을 보여 주신다면 시부모 되실 분들도 마음의 문을 여시지 않을까요. 아무쪼록 두 분이 마음을 터놓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면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부부간의 사랑과 믿음을 키워 나가시길 바랍니다. 한국가정경영연구소장
  • 30일 연재 마치는 ‘유림’ 작가 최인호씨

    30일 연재 마치는 ‘유림’ 작가 최인호씨

    작가의 얼굴엔 행복한 미소가 그려졌다.3년간의 대역사(役事)였지만 피곤한 기색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서울신문에 대하장편소설 유림(儒林)을 연재하는 ‘우리 시대의 대표적인 이야기꾼’ 최인호(61)는 그랬다. 아쉽게도 유림은 오는 30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21일 서울 한남동의 집필실에서 만난 작가는 연신 “이처럼 행복할 수 없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수백명의 아이(작품)를 낳았지만 특히 이번에는 명분 있는 아이를 낳았습니다.3년간 꼬박 연재할 때도 그랬지만 작가라는 사실이 어찌 행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두시간여 동안 그의 입에서 ‘키워드’들이 툭툭 튀어 나왔다.‘혼돈의 시대, 작가적 충정, 동방예의지국, 선비정신의 부활’. 그가 행복하게 ‘유교의 숲’에 매달릴 수 밖에 없었던 까닭이 차츰 조합되기 시작했다. 그는 “21세기에는 하이에나 논리로 가득 찬 서구적 자본주의가 무너지고, 더불어 사는 유교적 자본주의가 화두가 될 것”이라면서 “이러한 때 우리의 훌륭한 유산인 ‘선비정신’을 되찾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공자, 맹자, 순자, 조광조, 율곡, 안향 등 유림의 무수한 주인공 가운데 작가 최인호가 가장 주목했던 인물은 누구일까. 그는 거침없이 퇴계 이황을 꼽았다.“석가모니의 불교가 원효에 의해서 사상적으로 완성된 것과 마찬가지로 공자의 유교 역시 퇴계에 의해 사상적으로 완성됐습니다. 일본에서는 퇴계를 ‘해동의 공자’라고 불렀습니다. 퇴계는 불세출의 위대한 사상가였습니다.” 퇴계 사상의 골수인 이기이원론(理氣二元論)에 주목했다는 그는 “어려운 것을 알기 쉽게 쓰려고 무지하게 노력했다.”고 토로했다. 퇴계가 왜 위대한지, 이기이원론의 정수가 무엇인지 등이 모두 유림속에 농축돼 있다는 것. 그는 유교의 필요성을 교육문제와도 연결지었다. 교육의 난맥상을 해결하는 첫걸음은 선비사상의 부활 외에 대안이 없다는 것이다.“지금의 교육 시스템은 한 사람의 ‘난 사람’을 만들기 위한 교육이어서 문제입니다. 백사람의 ‘된 사람’을 기르는 교육으로 회귀해야 합니다. 공자는 정치가이자 외교가이자 위대한 교육자였습니다. 유교에 해법이 있습니다.” 그는 아직도 육필원고를 고집한다. 머릿속의 진수를 짜내는 데 컴퓨터 키보드는 적합지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3년간 써내려간 원고량은 200자 원고지 6500장에 이른다. 한동안 가야시대를 다룬 ‘제4의 제국’을 동시에 썼기 때문에 일주일 내내 집필만 하기도 했다. 스스로도 “태어나서 가장 초인적으로 써내려간 시기”라고 말했다. 불교(길없는 길), 유교(유림)에 이어 이제 그는 기독교에 숨결을 불어넣으려고 한다.200년 전 이 땅에서 수만명이 순교함으로써 우리와도 인연이 깊은 예수 그리스도 사상의 본류를 꿰뚫어볼 작정이다. “불교다운 불교가 남아 있는 곳은 우리밖에 없고, 유교도 한반도에서 꽃을 피웠습니다. 이들은 우리 민족의 원형질입니다. 이제 마무리 개념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자 합니다.” 그는 예루살렘 순례 등을 통해 곧 자료수집에 착수,2년 뒤쯤 작품을 ‘출산’할 계획이다. 작가의 창작열을 ‘입덧’에 비유한 그는 스스로 ‘가임(可姙)성 작가’라는 사실에 행복해했다. 글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유림’ 시작부터 마무리까지 최인호 대하장편소설 ‘유림’은 2004년 1월5일 서울신문 지면을 통해 세상에 첫선을 보였다. 하지만 이 보다 12∼13년 전 작가의 심장에서는 이미 유림의 뜨거운 피가 흐르고 있었다. 당시 불교를 주제로 한 장편소설 ‘길없는 길’을 집필하던 그는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 불교뿐 아니라 유교라는 원형질이 깃들어 있음을 깨닫고 거리낌 없이 다음 작품 주제로 유교를 점찍었다. 곧바로 공자의 고향 곡부를 둘러보고, 공자의 사당이 있는 태산에 올라 ‘태어나지도 않은 아기’의 이름까지 미리 정해 두었다. 유림은 연재 시작과 함께 독자들의 폭발적 반응을 몰고 왔다. 학술서적 외에 유교를 접하기 어려웠기 때문일까, 소설로 형상화된 유교와 유학의 대가들을 만난 독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유교를 다시 보게 됐다.”고 탄복했다. 천원짜리 지폐에 그려진 퇴계 이황이 사실상 2000년 유학을 집대성했다는 사실에도 뿌듯해했다. 무엇보다 혼탁 일색인 오늘을 살아가야 할 지혜를 제공해준 작가에게 감사해했다. 연재가 완성되기도 전에 지난해 7월 조광조의 개혁정치(1권), 공자의 주유천하(2권), 퇴계의 군자유종(3권)을 묶어 이례적으로 먼저 1부 3권을 출간했지만 독자들의 반응은 식지 않았다. 한 중학생 독자는 TV 교양프로그램에 출연한 작가를 상대로 “서점에서 선 채로 유림을 읽었다. 공자가 이렇게 재밌는지 알게 해줘 고맙다.”고 말해 작가의 눈시울을 뜨겁게 만들기도 했다. 공자에서 퇴계로 이어지는 유림의 숲을 다룬 4권과 과감히 벼슬을 버리고 세상을 떠날 때까지 학문에 정진했던 퇴계의 일생을 다룬 5권까지 모두 50만부 정도 판매된 것으로 집계됐다. 출판사(열림원)나 작가 모두 이같은 호응에 깜짝 놀라고 있다. 공자의 생애를 되살린 6권은 내년 1월15일쯤 출간된다. 박홍환기자 stinger@seoul.co.kr
  •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10) 위협받는 ‘가톨릭국가’

    [함혜리 기자의 프렌치 리포트] (10) 위협받는 ‘가톨릭국가’

    크리스마스 시즌이 되면 파리의 아름다움은 절정에 이른다. 샹젤리제 양쪽에 늘어선 가로수에는 수십만개의 조명등이 반짝이고 거리마다 설치된 형형색색의 조명등과 상점의 크리스마스 장식들은 보는 것만으로도 즐겁다. 이즈음 갤러리 라파예트와 프렝탕 등 고급 백화점이 위치한 오스만 대로와 상점가는 가족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사기 위해 나온 사람들로 북적인다. 일년 중 가장 중요한 기독교 축일인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내는 것은 프랑스인들의 오랜 전통이다. 직장을 위해, 학업을 위해 이곳저곳으로 흩어졌던 자녀들도 크리스마스가 되면 부모님 댁을 찾는다. 온가족이 식탁에 둘러앉아 거위간, 생굴, 칠면조 고기, 장작모양의 크리스마스 케이크 등으로 이어지는 성탄절 특식을 즐긴다. 밤을 새워가며 먹는다고 해서 레베이용(밤참)이라고 하는데 몇시간에 걸친 식사가 끝나면 각자 준비한 선물을 교환하며 덕담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마을의 성당에 가서 자정 미사를 드린다. 프랑스인들은 이렇게 가톨릭의 전통에 따라 크리스마스를 보낸다. 세례나 결혼, 장례 등 많은 예식이나 관습들은 종교적 방식을 따른다. 하지만 그뿐이다. 인구의 82%가 로마가톨릭인 나라지만 정기적으로 교회나 성당에 나가는 사람은 여성의 14%, 남성의 9%에 불과하다. ●가톨릭 국가 맞아? 프랑스에서 종교는 곧 가톨릭을 의미할 정도로 가톨릭이 지배적이다. 인종적으로 프랑스인이지만 가톨릭 신도가 아닌 경우는 신교도들이다. 프랑스의 신교도는 16세기 종교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대거 다른 나라로 이주했다. 따라서 프랑스에 남은 신교도는 95만명으로 2%선에 머문다. 이밖에 500만∼600만명(8∼9.6%)이 이슬람교도로서 대부분 북아프리카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다. 유대교가 75만명 정도, 불교가 40만명 정도다. 대부분의 프랑스인들은 가톨릭 교인으로 태어나 가톨릭식 이름을 갖고, 자신을 가톨릭이라고 생각하며 산다. 따라서 프랑스에서 당신의 종교가 무엇이냐고 묻는 것은 바보 같은 질문이다.“당신의 인종이 무엇이냐?”고 용감하게 물어보는 것이나 다름없다. 종교와 관련해서 프랑스인에게 의미있는 질문을 하려면 “신자냐, 비신자냐?”를 묻기보다는 “실천교인이냐, 아니냐?”를 물어봐야 한다. 그러면 10명중 9명은 “나는 신자(croyant)이긴 하지만 실천교인(pratiquant)은 아니다.”라고 답한다. 믿기는 하지만 성당에 꼬박꼬박 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나아가 이슬람이나 유대교가 아니라는 뜻을 내포하기도 하다. ●쇠퇴하는 로마가톨릭 프랑스가 가톨릭 국가가 된 기원은 메로빙거 왕조의 클로비스가 496년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하고 성직자들과 기독교 공동체의 지지를 받아 프랑크 왕국을 탄생시킨 것에서 찾을 수 있다. 클로비스의 개종은 로마 가톨릭에 기초한 유럽 탄생의 단초가 됐다. 프랑스에서 가톨릭은 역대 왕조의 흥망성쇠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종교뿐 아니라 국민들의 생활과 밀접한 관계를 이뤄왔다. 특히 교육과 행정은 가톨릭 교회를 중심으로 형성됐다. 프랑스에는 가톨릭 국가답게 정말 성당이 많다. 프랑스에는 3만 8000개의 교구가 있고 전국에 4만 5000개의 성당이 있다. 이들 교구 중 인구 500명 이하의 작은 교구도 1만 6000개나 된다. 파리 등 대도시의 광장에는 여지없이 커다란 고딕식 주교좌 성당이 서 있다. 시골 어디를 가나 마을에서 가장 높은 언덕 위나 중심에는 가톨릭 교회가 자리잡고 있다. 이들 가톨릭 교회는 오래 전부터 마을 공동체의 중심역할을 했다. 시청이나 면사무소와 같은 국가기관이 들어서기 이전에는 가톨릭 교회에서 호적을 관리했다. 학생들의 지도도 가톨릭이 담당했다. 현재 프랑스의 행정단위 중 가장 기초단위인 코뮌(commune)이 모두 3만 6551개인데 이 행정구역도 가톨릭 교구를 중심으로 정해졌다. 그러나 프랑스 대혁명 이후 지속적으로 정교(政敎)분리와 세속화가 진행되면서 이제는 성당을 정기적으로 찾는 사람이 매우 드물어 졌고 세력도 약해졌다. 웅장하고 유서깊은 파리의 노트르담 대성당도 크리스마스를 제외한 주일 미사에 가보면 빈자리가 수두룩하다. 성당을 찾은 교인들도 노부부나 할머니가 대부분이다. 젊은이들의 경우 종교와 거리를 두는 경향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젊은이들 사이에는 종교에 관심이 없거나 신의 존재를 부정하는 무신론자들이 상당히 많다. 국립통계연구소의 조사에 따르면 2005년 현재 15∼24세인 젊은이들 중 종교와 무관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여자 43%, 남자 47%로 높게 나타났다.1996년 조사(여자 30.3%, 남자 44.7%)에 비해 종교에 대한 회의론자들이 남녀 공히 늘어났음을 알 수 있다. ●갈등의 요인이 되는 이슬람 16세기 종교전쟁 당시 프랑스에서는 구교와 신교가 극렬하게 다퉜지만 현재 프랑스에서 사회 갈등을 유발하는 종교문제는 대부분 이슬람과 관련된 것이다. 프랑스는 다른 유럽국가들에 비해 무슬림(이슬람 교도) 인구 비율이 높은 편이다. 프랑스의 무슬림은 앞서도 언급했듯이 예전 프랑스의 식민지였던 북아프리카 출신이 70% 이상이다. 출신국별로는 알제리 35%, 모로코 25%, 튀니지 10% 등이며 이들은 주로 파리 릴 리용 마르세유 등 대도시의 외곽에 집단을 이뤄 살고 있다. 이민 2,3세들은 부모 세대의 종교와 문화를 그대로 답습하기 때문에 프랑스 국적을 갖고 프랑스식 교육을 받아도 프랑스에 완전 동화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수많은 논란거리를 낳고 사회갈등의 요인으로 작용한다. 이슬람 머릿수건과 같은 종교적 상징물을 학교에서 착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법이 논란 끝에 채택된 것이나, 차별과 소외에 대한 불만으로 터진 2005년 가을의 교외지역 소요사태를 대표적인 사건으로 꼽을 수 있다. 무늬만 남은 가톨릭 국가에서 이슬람이 빚어내는 갈등은 더욱 두드러져 보인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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