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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경제부 △장관 정책보좌관 朴仁圭 통일부 ◇파견 △경기도 기획행정실 이승신◇전입△통일교육원 손경식◇전보△남북출입사무소 출입총괄과장 윤재훈 인구보건복지협회 △교육연수원장 安秉根△부산광역시지회 본부장 宋仁淑△강원도지회 〃 張源喆△광주광역시·전라남도지회 〃 吳春煥△경상남도지회 〃 李斗用△제주도지회 〃 郭昌煥 보험개발원 ◇승진 △상무 崔相泰 세계일보 △부사장 조돈희 월간조선 △편집장 김용삼△편집위원 김연광 한국디지털위성방송 ◇임원 임명 △상무보·신성장사업실장 김명섭◇임원 전보△사업총괄·정책협력실장 겸직 최영익△경영기획실장 윤태섭△마케팅본부장 김용호△고객서비스실장 김성현◇팀장 임명 및 전보 (경영기획실)△기획조정팀장 김윤철△경영지원〃 이형진△재무〃 류충기△인사〃 심윤구(마케팅본부)△마케팅전략팀장 권혁진△마케팅지원〃 이석호△기획영업〃 김선우△수도권남부지사장 김선원△수도권북부〃 이상찬△영남〃 박호식△충청호남〃 박병욱△수도권남부지사 영업팀장 하헌상△〃 영업지원〃 장인용△〃 고객관리〃 정헌택△수도권북부지사 영업〃 양춘식△〃 영업지원〃 유승우△〃 고객관리〃 노준배△ 영남지사 영업〃 전현표△〃 고객지원〃 박인헌△충청호남지사 영업〃 유제한△〃 고객지원〃 양춘호(콘텐츠본부)△콘텐츠기획팀장 조이현△콘텐츠사업〃 공희정(고객서비스실)△CS전략팀장 신동익△CS지원〃 손병천△요금관리〃 박석범(신성장사업실)△신사업개발팀장 류신호△쌍방향사업〃 이건영△광고사업〃 김용범(윤리경영팀)△팀장 정영길 불교방송(BBS) △경영기획실장 박원식△BBS저널 팀장 배재수 인하대 △기획처장 조석연 하나은행 △화성남양지점장 겸 기업금융전담역 진기석 외환은행 ◇본점팀장 △기업마케팅부 한승욱△재무기획부 박병규△KPI 노충환 ◇개인지점장△북울산지점 길영준△서면남〃 정강모◇기업지점장△마포남〃 전세영△인사동〃 오진환 ◇해외지점장△오사카지점 주재중 ◇개설준비위원장△메트로시티지점 민용기△삼성타운〃 금용일 대우증권 △IB사업추진단장 李建杓△Equity파생본부장 丁泰榮
  • [한국을 배우는 외국인들] 마음을 따라, 인연을 따라

    [한국을 배우는 외국인들] 마음을 따라, 인연을 따라

    마음을 찾아서 ‘마음’이라는 비실체를 알아가는 과정이 ‘수행’이라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면, ‘업보’라는 것이 있어서 ‘마음을 찾아 나서는 수행’을 평생 짊어져야 한다면, 우리는 어떨까. 한국에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법현 스님의 본명은 루스탐(Rustam)이다. 선하면서도 명민해 보이는 얼굴과 강인한 체격을 지닌 우즈베키스탄의 20대 청년이 속세를 버리고 이국의 땅에서 불경과 불법과 자기 수행으로 7년을 살아 왔다. 그 긴 세월을 단 한 번의 고향 방문도 없이 말이다. 법현 스님이 불교를 처음 만난 것은 우즈베키스탄의 타쉬캔트에 포교당이 생겼을 때였는데, 포교당에서 불교를 1년여 공부하고 한국행을 결심하게 되었다. 한국에 들어오기 전, 그러니까 출가를 하기 전의 루스탐은 목수였다. 도로공사의 일을 하청받아 창문을 만드는 목수였던 그가 속세의 옷을 벗어던진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루스탐은 청소년기에 대한 기억이 싸움과 이별(연인과의), 자살에 대한 충동에 휩싸인 시절이었다고 회상한다. 그가 10대와 20대에 겪었을 마음의 황폐함을 짐작할 만하다. 그는 늘상 불운에 휩싸인 자신의 처지가 고달팠다고 한다. 의기충천한 젊은 날들이 그에게는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만 싶었던 시절로 기억되고 있다. 그런데 불교와의 만남은 운명과도 같아서 그는 불교를 통해, 참선과 수행을 통해, 그리고 포교를 통해 진정한 ‘마음’을 찾게 되었다고 한다. 7년이란 짧지 않은 기간 동안 법현 스님이 찾은 ‘마음’은, 아니 찾으려고 애쓰는 ‘마음’은 이제 고단한 삶 속에서 더욱 강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 것과 불교를 통해 삶의 인연을 되찾게 된 것이다. 한국 불교와의 만남과 한국어 공부 처음 한국에 왔을 때 법현 스님은 강원도의 최전방 비무장지대 접경의 작은 절 건봉사에서 기거하였다. 오는 이 적고 한적한 한국의 지방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을 하기에는 적합했지만 한국어가 늘리는 만무한 일이었다. 이후에 해인사로 옮겨 갔을 때 스스로 한국어 책을 사서 독학으로 공부를 시작하였다. 2007년 동국대 선학과에 입학하기 전 6개월간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운 것이 기관 교육의 전부였다. 놀라웠다. 법현 스님의 한국어 말솜씨는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법현 스님은 자연스러우면서 유연하며 여유 있고 편안하기까지 한 한국어를 구사한다. 그러나 법현 스님은 여전히 한국어에 대한 고민이 많단다. 그것은 작문의 어려움인데, 경전을 번역하고 자신의 깨달음을 적어 후인들에게 전달하고 싶은 욕구가 많아서이다. 입과 귀는 조금 편해졌지만 손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 글쓰는 작가들처럼 잘 쓸 수 있느냐고 반문하는 법현 스님의 한국적 너스레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법현 스님이 해인사에서 수년간 수행을 하고 서울 화계사의 외국인선원에 온 지는 몇 해 되지 않는다. 가끔씩 포천의 자인사에서 은사 스님을 뵙고 불법을 행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서울생활은 동국대학교 재학생으로서의 삶으로 이어져서 법현 스님의 꿈을 키우는 터전이 되고 있다. 대학생들과 함께 강의를 듣고 한국어로 토론을 하고 불법을 배우는 일이 법현 스님은 마냥 즐겁다. 법현 스님은 그간 지방과 서울의 한국생활을 통해 한국인의 모습이 무척 성실하고 근면하며 민족성이 강하다고 생각한다. 한국은 법현 스님에게 새 삶의 터전이었기에 이미 타국이 아닌 것이다. 인연을 따라서 이제 법현 스님의 삶의 인연이 한국이었음을, 한국에서의 수행생활이었음을 알 것 같다. 법현 스님은 속세에 대한 미련은 없단다. 내년쯤 한번 고향을 방문할까 생각하지만 하고 싶은 일이 너무 많다. 우선 동국대학교를 무사히 졸업해야 하며(지금은 2학년이다), 대학원에 진학할 것이며, 이후에는 러시아연방에서 불교를 포교할 계획이다. 그리고 한국 불교의 역사를 깊이 연구하고 싶고 경전을 러시아어로 번역하고 싶다. 눈빛이 맑고 온유한 법현 스님의 수행 길이 한국에서 넓고 깊게 뻗어 러시아까지 이어지기를 기원해 본다. 글 전해수 문학평론가, 동국대 한국어교육센터강사 월간 <삶과꿈> 2008년 5월호 구독문의:02-319-3791
  • 한성도읍기 백제 절 목탑터 최초 발굴

    백제에 불교가 전래된 직후 세워진 절의 목탑터로 추정되는 유적이 서울 송파구 풍납토성에서 발굴됐다. 한신대박물관은 경당지구를 발굴조사한 결과, 그동안 연못터로 추정되던 제206호 유구가 목탑의 기단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고 29일 밝혔다. 경당지구는 아파트 건축이 추진되다가 2000년 사적으로 지정되면서 보존되고 있으며, 한신대박물관은 2005년 주민들과의 마찰로 중단되었던 유구를 지난 2월부터 조사하고 있다. 책임조사원인 권오영 한신대 교수는 “이 유적은 노출된 토층으로 미루어 4세기 후반에서 5세기 전반에 축조된 것”이라면서 “발굴조사가 진행되고 있어 단언키는 어려우나 목탑터로 확인되면, 지금까지 발굴 조사된 유적 가운데 동아시아에서 가장 오래된 목탑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유적이 목탑터로 확인되면, 한성도읍기 백제(BC 18∼AD 475)에서 처음으로 발굴되는 불교유적이 된다.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선화의 대가’ 수안 스님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했던가. 이제 ‘그분’과 만날 시간이 왔다. 아침 찬물로 세수하고 맞이하면 눈이 부시도록 아름답다고 한다. 천지사방이 푸르름으로 가득하고 퍼붓는 정열의 햇살로 온통 찬란해진다.98세에 작고한 피천득 시인은 ‘신록을 바라다보면 내가 살아 있다는 사실이 참으로 즐겁다. 내 나이를 세어 무엇하리. 나는 오월 속에 있다.’라고 찬미했다. 어디 이뿐이랴. 어버이, 스승,‘나를 닮은’ 아이들이 새삼 생각나게 한다. 그럴 것이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날, 석가탄신일, 성년의 날 등 기념적인 날들이 이어진다. ‘마음을 모아 고요히 생각하는 일’(禪), 그리고 공경하는 마음으로 축하(奉祝)하는 일이 더욱 많아진다. 5월과 무관치 않은 한 스님을 만나보자. 곧 칠순임에도 여전히 ‘개구쟁이 어린이’처럼 지낸다. 무장무애(無障無), 아무 거리낌 없이 ‘하하하’ 크게 웃어대는 모습은 영락없는 천진한 부처 같다. 그는 어머니와 어린이들을 ‘말할 수 없도록’ 그리워해 그림(禪畵·선화)을 그리고 시를 쓴다. 내공이 워낙 깊은지라, 주위에서는 ‘선화의 대가’라고 칭송한다. 10년 전쯤이다. 스님이 양저우(揚州)박물관장의 초청으로 중국을 방문했다. 하루는 양저우시장이 저녁자리를 마련했다. 때마침 선화의 대가가 양저우에 왔다는 소문을 듣고 글씨와 그림에 관한 한 ‘무림의 고수’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장쩌민(江澤民) 주석의 어릴 적 은사도 참석했다. 술잔이 몇순배 돌고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자 중국의 한 원로화가가 붓을 잡더니 즉석에서 물소그림을 그렸다. 이어 그 화가는 붓을 한국의 스님에게 건넸다.‘화답’을 청했던 것. 뒤질세라 스님은 주먹쥐듯 네 손가락으로 붓을 잡았다. 원래 악필(握筆)인 스님은 창호지에 원을 그리고 점을 몇군데 쓱쓱 찍었다. 불과 몇분 후 붓을 내려놓자 약속이나 한 듯 여기저기에서 탄성이 흘러나왔다. 발그레한 볼에, 미소짓는 복덩이 동자상이었다. 양저우시장이 즉석에서 “공부 잘하도록 우리 아들 방에 걸어놓으면 너무 좋겠다.”고 하자 스님은 기꺼이 선물했다. 그러자 내로라하는 고수들이 줄을 섰다. 스님은 이날 밤 새도록 붓을 잡았다. 스님과 관계된 일화는 많다. 프랑스 상원의장 초청으로 뤽상부르궁전 의장공관에서 전시회를 열어 프랑스와 우리나라 화가들을 놀라게 했다. 이밖에도 베를린, 카사블랑카, 남미 등 세계 각지의 유서 깊은 도시를 돌며 전람회를 열어 많은 화제를 뿌렸다. 얼마 전에는 유니세프(UNICEF)에서 발행하는 엽서에 그의 작품이 소개되기도 했다. 스님을 만나기 위해 한국을 찾는 해외팬들도 적지 않다. 법문 스타일도 독특하다. 야단법석(野壇法席)에서 마무리할 때 ‘우리의 소원은 성불’을 불러 신도들을 울리기도 한다. 국내 불교계에서는 중생을 연민하고 구제하는 일에 남달라 ‘관세음보살’이라고 표현한다. 스님이 머물고 있다는 통도사(通度寺)의 축서암(鷲棲庵)을 찾았다. 조선 숙종 때 창건된 암자로 영축산(靈鷲山·혹은 영취산)의 옛 이름 축서산에서 비롯된다. 400여년이라는 축서암의 세월 가운데 근래 30년을 문제(?)의 스님이 살아서인지 축서암은 거대한 화실처럼 느껴졌다. 마당 한가운데에는 붉게 핀 자목련이 원숙한 여인처럼 금방이라도 유혹할 듯 낯선 손님을 맞이한다. 암자 뒤로는 온갖 푸른나무들이 병풍처럼 쭉 늘어서 넋을 놓게 했다. 그렇게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기자양반인가? 읍내(서울)에 훌륭한 분들이 많은데 촌구석까지는 뭐할라고 왔노.”라는 투박한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다. 선화의 대가 수안(殊眼) 스님이었다. “차나 마시고 가게.” 합장을 하며 방으로 들어갔다. 쥐 두마리가 ‘입춘대길’이라는 글을 떠받치는 그림이 창문에 붙여져 있었다. “왜 ‘수안’이라고 했습니까?” “내 속가의 성이 ‘문(文)’이야. 그리고 문수보살(文殊菩薩)의 수(殊)에다 ‘문수의 안목을 키워라’해서 안(眼)을 넣었지.” “만화방창, 이 봄에 유혹을 느끼지 않나요?” “허허허, 봄이 되면 관광버스 타고 놀러가는 사람들 많지.” 연근차 몇잔을 마셨다. 스님은 평소 길을 떠날 때 차보따리를 끼고 다닌다. 스님이 마실 차, 그리고 스님과 만날 사람을 위한 차를 준비한다. 그게 바로 풍류의 시작이다.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진수무향(眞水無香)의 ‘풍류차’를 권하면서 ‘어차피 인생살이가 다반사(茶飯事)이지요.’라고 한다. 차를 마시던 스님이 갑자기 기자의 얼굴을 보더니 “어라, 머리만 안깎았군.”이라고 했다. 전생이 스님인가? “호 하나 지어주랴? 고을 제(濟)에서 삼수는 빼버리자, 그리고 산에 기대 살아야 하니 산(山)을 넣어 제산(齊山)으로 해삐리라.‘재산’으로 들릴 수도 있으니 기분이 좋다. 하하하.” 얼핏 ‘개구쟁이 스님’의 장난기로 들려올 법도 했지만 그게 아니었다. 토굴생활 등 혹독한 수행으로 ‘대긍정(大肯定)’의 경지까지 오른 ‘큰스님’의 말씀 아닌가. “대긍정은 어떤 것인가요?” “별거 아니야, 긍정과 부정도 다 마음에서 나오는 것이야. 부정이 많다 보면 그림자가 많아져. 캄캄한 방에 전깃불 켜는 것도 수행이지. 스위치 하나로 어둠과 밝음, 즉 긍정과 부정이 생기거든. 흐르는 물이 굴곡을 탓하는 거 어디 봤는가?” “요즘 세상을 어떻게 보십니까?” “너무 바빠, 그렇게 살 필요 없어. 별로 들 것도 없으면서 왜 무겁게 짊어지고 쫓기면서 살아? 아나 다 놓아삐리라. 집착은 곧 노예인 것이야. 장독대에서 정화수를 떠놓고 기도하는 어머니를 생각해봐. 요즘은 어머니도 고향도 다 잊고 살아가. 지혜는 없고 지식과 정보의 노예로 다들 전락했어. 그러니까 고급인력들이 빈둥빈둥 놀고 자빠졌지.” 스님의 시 중에 ‘사모곡’이 있다.‘누가 지었을까 어머니 이름 석자/기쁠 때 불러도 어머니 슬플 때 불러도 어머니/아무리 불러도 싫지 않은 그 이름 어머니 어머니 어머니/아기가 됩니다.’ 스님은 ‘진리는 곧 어머니’라고 강조했다. 스님은 ‘자비원’을 통해 무의탁 노인을 돕는다. 또 부산 지역 지체장애아동들에게 매년 휠체어 100대씩 사서 선물하는 등 수십년째 선행을 베풀고 있다. 길을 가다가 거지를 만나면 주머니를 뒤져 몇푼의 돈을 꺼내 건네주는 일도 다반사이다. 스스로 ‘수행화가’라고 표현하는 그는 17세 때 출가 직후부터 석정 스님을 스승으로 전각과 선화를 익혔다. 그의 그림은 어린이, 어머니, 초가집 등 토속적 냄새가 짙게 담겨 있다. “출가한 지 50년 됐습니다. 그동안 후회해 본 적이 한번도 없었나요?” “비바람이 부는데 파도가 안 일어날 물이 어디 있겠어. 성불하려면 비워야 해. 가득차 있으면 뭘 담겠나?” 인터뷰를 마치면서 석가탄신일을 맞아 법문 하나를 정중히 부탁했다.“춘래초자청(春來草自靑), 봄이 오면 풀이 절로 푸르기 마련인데 괜히 욕심 보탤 거 없어. 심청사달(心淸事達)이야. 마음이 맑으면 모든 일이 잘 풀려. 부정과 긍정도 다 흑백논리야. 최선을 다해도 나중에 부끄러운데 눈속임을 하면서 살면 얼마나 영혼이 부끄럽겠나. 내 자식이 귀하면 이웃 자식도 귀하고, 사회와 국가도 귀하지 않겠나?”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수안 스님은 1940년 경남 통영에서 출생,57년 석정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64년 월하 스님에게 비구계 수지하고 이후 통도사 송광사 백련사 묘관음사 등에서 수선안거에 정진했다. 77년 이리역 폭발사고 때 이재민돕기 선화전을 열면서 주목을 받았다. 이후 85년 파리 초대전,86년 중앙승가대건립기금마련 전시회,89년 두달간 유럽순회전 등 유럽과 러시아, 남미 등에서 전시를 가져 독특한 수행력을 과시했다. 특히 불우어린이와 장애인, 무의탁노인들을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내놓는다. 그림전시도 ‘중생돕기’ 차원이다. 이달 초에는 서울역사박물관에서 ‘세상을 담는 그릇-발우전’에 공동전시를 가졌다.
  • [Seoul In] 26일 수락산서 ‘산사음악회’

    노원구(구청장 이노근) 26일 오후 1시30분부터 3시간 동안 상계동 수락산 염불산 광장에서 불교방송 후원으로 ‘산사 음악회’가 열린다. 마야, 박상민, 혜은이, 김범룡과 박진광, 추가열, 윤수일 밴드 등이 출연한다. 문화과 950-3088.
  • “고마워요, 부천 석왕사”

    “고마워요, 부천 석왕사”

    |콜롬보 김성호특파원| 석왕사의 스님과 신도들이 스리랑카 ‘문화 삼각지대’의 불교 유적지 순례에 나선 지난 19일 오전 콜롬보의 스리랑카 대통령궁에서 이색 행사가 열렸다. 스리랑카 정부가 한국에 이주해 살고 있는 스리랑카 노동자들을 돕고 있는 부천 석왕사(주지 영담 스님)측에 불상을 기증한 것. 기증식은 스리랑카 측에서 마힌드라 라자파크세 대통령과 각료진, 한국측에서 영담 스님을 비롯한 석왕사 스님과 신도들이 참석해 1시간여 동안 진행됐으며 기증식 직후 불상 이운법회도 열렸다. 불상은 스리랑카산 보석의 일종인 돌라마이트로 제작한 2m 크기의 좌상. 스리랑카 정부가 배 편으로 한국에 이운해 오는 부처님오신날 석왕사 법당에서 법회와 함께 봉안될 예정이다. 이날 마힌드라 대통령이 영담 스님에게 불상을 기증한 데 이어 영담 스님은 대통령에게 해인사 대장경 동판을 선물로 전달했다. 한편 석왕사는 지난 1995년 부천시에 외국인노동자의 집을 열어 스리랑카를 비롯한 외국인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의료, 법률지원과 인권보호 활동을 벌여왔다. 이번 불상 기증은 지난해 방한한 스리랑카 킹슬리 라나와카 해외인력고용청장이 석왕사에 들렀다가 귀국해 정부에 건의해 이루어졌다. 마힌드라 대통령은 기증식이 끝난 뒤 기자들과 만나 “한국에 살고 있는 1만 2000명의 스리랑카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 평화롭고 안정적으로 정착하도록 지원하는 석왕사측에 감사한다.”며 “한국과 스리랑카가 불교를 매개삼아 더욱 공고한 관계를 맺고 교류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kimus@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5·끝) 불상없는 불전 정암사 적멸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5·끝) 불상없는 불전 정암사 적멸궁

    강원도 정선 사북에서 만항재를 넘어 영월 상동으로 가는 길은 별빛이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코스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해발 1330m의 만항재는 포장도로가 놓인 고갯길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다고 하지요. 고갯마루에 올라서면 1573m의 함백산과 1567m의 태백산이 손에 잡힐 듯 다가옵니다. 카지노와 스키장이 있는 사북에서 고한을 거쳐 414번 지방도에 접어든 뒤 만항재로 오르다 보면 왼쪽 산기슭에 정암사(淨巖寺)가 나타납니다. 그저 퇴락한 산골의 작은 암자처럼 소박한 모습이지만, 내력을 살피고 나면 오염되지 않은 별빛을 찾아나선 여행이 더욱 뜻깊어질 것입니다. ●진신사리 모신 인근 수마노탑에 예배 드리기 위한 공간 정암사에는 적멸궁(寂滅宮)이 있습니다. 흔히 영취산 통도사와 오대산 중대, 사자산 법흥사, 그리고 태백산 정암사를 4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라고 하지요. 여기에 설악산 봉정암을 더하여 5대 적멸보궁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보배 보(寶)’자로 화려하게 장엄한 다른 적멸보궁과는 달리 정암사 적멸궁은 이름부터 과장이 없습니다. 정암사 적멸궁을 그저 보이는 대로 설명한다면 불상이 없는 절집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일반적인 전각과는 달리 부처님 자리에는 연꽃을 수놓은 붉은 방석이 하나 놓였을 뿐입니다. 대신, 적멸궁의 뒤로 돌계단이 놓여진 가파른 산길을 100m쯤 오르면 7층짜리 수마노탑(水瑪瑙塔)이 나타납니다. 적멸궁은 이 탑에 예배를 드리기 위한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수마노란 붉은색, 검은색, 흰색이 곱게 어우러진 석영의 일종이라고 하지요. 신라의 자장법사(590∼658년)가 당나라에서 수도하고 645년 귀국할 때 그의 불도에 감화된 용왕이 건넨 수마노로 탑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하지만 지금의 탑은 고려시대에 수마노가 아닌 석회암을 벽돌처럼 다듬어 쌓아올린 모전석탑(摸塼石塔)이지요. 정암사의 옛 이름은 석남원(石南院)입니다. 자장은 석남원을 창건하면서 중국에서 가져온 진신사리를 수마노탑에 봉안했다고 하지요. 진신사리란 부처님의 유골입니다. 부처를 수마노탑에 모셨는데, 부처의 모습을 흉내낸 불상을 적멸궁에 두는 것은 무의미하겠지요. 적멸궁은 우리나라에서 창안되었다고 합니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지요.7세기 신라불교가 이미 외래의 교리를 주체적으로 소화하여 새로운 상징체계를 만들어 낼 수 있었을 만큼 성장했다는 증거입니다. ●외래 교리 주체적 소화… 신라불교 성장 증거 적멸(寂滅·Nirvana)은 번뇌의 불꽃을 지혜로 꺼서 일체의 고뇌가 소멸된 상태를 가리킨다고 하지요.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보리수 아래는 그래서 적멸도량(寂滅道場)이 됩니다. 적멸도량을 우리 나름대로 건축적으로 구현한 것이 적멸궁입니다. 법왕(法王)이 머무는 곳이니 궁(宮)이지요. 정암사 적멸궁은 불교의 본질이 깨달음이라는 것을 웅변하고 있지만, 그 깨닫는다는 것이 또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도 동시에 일러주고 있습니다. 자장법사는 우리나라 문수신앙의 선구자이기도 하지요. 그가 634년 당나라로 건너갔을 때 가장 먼저 찾아간 곳도 문수보살이 머물고 있다는 오대산이었습니다. 귀국한 뒤에는 오늘날의 평창 일대를 오대산으로 삼아 문수보살의 정토세계를 재현하려 했지요. 문수보살은 지혜를 형상화한 존재라고 합니다. 지혜 없이는 깨달음도 없으니 문수보살은 곧 깨달음을 상징하지요. 그런데 ‘삼국유사’의 ‘자장정률(慈藏定律)’에는 자장이 석남원에서 남루한 도포를 입고 칡으로 만든 삼태기에 죽은 강아지를 담은 문수보살을 알아보지 못하고 내쫓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문수보살은 ‘잘못된 깨달음(我相·아상)을 가진 자가 어떻게 나를 알아 볼 수 있겠느냐.’고 자장을 꾸짖지요. 문수보살이 사라진 뒤 자장이 몸을 던져 죽으니 화장하여 바위구멍(石穴·석혈)속에 모셨다는 줄거리입니다. 바로 정암사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자장이 문수보살을 친견하지 못했다는 것은 결국 깨달음을 얻지 못했음을 뜻하고, 그래서 스스로 목숨을 버릴 수밖에 없었음을 일러줍니다. 깨달음을 말하는 사람은 많지만, 깨달음이란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있는 단어가 아니라는 사실을 자장과 정암사, 그리고 적멸궁이 일깨워주고 있는 듯합니다. dcsuh@seoul.co.kr
  • 남방 근본불교 중심 스리랑카에 가보니

    남방 근본불교 중심 스리랑카에 가보니

    |아누라다푸라·폴론나루와·캔디 김성호특파원| 인도 남쪽의 작은 섬나라인 스리랑카는 ‘남방 근본불교의 중심’으로 불린다. 고대 왕국 수도였던 아누라다푸라와 중세 불교 중심지역인 폴론나루와, 그리고 포르투갈에 점령되기 직전 마지막 왕조의 수도였던 캔디는 스리랑카 근본불교의 유적들이 집중되어 있는 ‘문화 삼각지대’. 지난 16∼21일 부천 석왕사 스님, 신도 70여명이 이 ‘문화 삼각지대’ 순례행사를 가져 기자가 동행했다. 스리랑카에 불교를 전한 것은 인도 마우리야 왕조의 3대 왕인 아쇼카(BC 273∼232)의 동생 마힌드라 장로(長老). 아쇼카왕의 칙명을 받아 32세 때 7명의 승려들과 함께 실론(스리랑카의 옛 이름)에 파견된 마힌드라는 당시 왕 데바남피야 티샤에게 법을 설했는데 왕이 법을 듣고 환희하여 법을 받아들였다는 게 공식적인 전래설이다. 아누라다푸라는 스리랑카 최초의 도읍지로 마힌드라의 설법에 감화받은 왕이 이곳에 큰 절을 세워주었다고 한다. 콜롬보에서 첫 밤을 보내고 이튿날인 17일 이른 새벽 버스에 몸을 맡겨 5시간을 달리니 아누라다푸라의 창연한 불교 유적들이 펼쳐진다. 순례객들이 가장 먼저 찾은 곳은 마힌드라 스님이 주석했던, 스리랑카 최초의 사원 이수루무니아 사원. 연못 앞 바위를 뚫어 지은 사원에 새긴 춤추는 코끼리상이 아주 인상적이다. 스리랑카 불교 미술의 대표작이라는 코끼리상에 끌려 동굴사원에 들어서니 마힌드라 스님의 설법 장면이 눈에 든다. 비좁은 동굴에서 앞다투어 참배하는 순례객 틈을 벗어나 왼쪽 고고학 박물관에 드니 이 사원 북쪽 왕궁 정원에서 수습된 5∼8세기 무렵의 연인상과 왕족상이 순례객들을 맞는다. 사리야 왕자가 마라라는 여인과 결혼한 뒤의 모습을 담은 이 연인상은 낮은 계급의 여인과 결혼한 왕자의 로맨스로 회자되는 작품이란다. ●득도 보리수앞에서 스님과 순례객 즉석 법회 이수루무니아 사원 인근의 보리수사원은 마힌드라 스님의 누이동생 상가미타가 인도 부다가야에서 가져다 심은 보리수가 있는 사원. 석가모니가 깨달음을 얻은 부다가야의 보리수는 말라 죽었으니 이 보리수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득도 보리수인 셈이다. 스님과 순례객들이 보리수 앞에서 염불을 외며 즉석 법회를 갖는다. 법회를 마친 순례객들과 함께 사원을 벗어나 걷다 보니 BC2세기 로마에서 수입해온 산호가루로 만든 높이 110m의 거대한 루반벨리세야탑이 우뚝 서 있다. 코끼리 2000마리가 조각된 담장 가운데로 난 계단을 올라서면 웅장한 탑에 압도당한다.2300년전 마힌드라 스님이 인도에서 가져온 부처님 진신사리와 경전, 불상들이 들어 있지만 순례객들에겐 공개하지 않아 아쉬움이 컸다. ●왕자직도 버린 마힌드라 스님의 가르침 이어서 찾은 곳은 2600년 고도 아누라다푸라에서 13㎞ 떨어진 미힌탈레. 왕자의 신분을 포기하고 스님이 되어 자신을 따르는 승려 7명과 함께 실론에 온 마힌드라 스님은 법을 펴기 위해 이곳에 머물렀다고 한다. 사냥나온 실론 왕 데바남피야 티샤가 산 정상 작은 석굴에서 수행하던 스님의 가르침을 받아 불교에 귀의하게 된 바로 그 장소이다. 한창 성할 때 1만 1000명이 이곳에서 수행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68개의 수행 동굴이 남아 있다.2000명이 한꺼번에 식사를 할 수 있는 공양간과 커다란 석조 밥통, 국통이 당시의 상황을 보여준다. 아누라다푸라에서 103㎞ 떨어진 폴론나루와는 중세(11∼12세기) 스리랑카의 수도. 전성기에 태국 미얀마 등지 승려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불교도시이다. 왕궁에 사원과 수도원이 인접한 독특한 지대. 동쪽에 36개의 열주와 50개의 방을 가진 7층짜리 거대한 왕궁 건물이 있었지만 궁터와 2개 층의 벽만 휑하니 남아 있다. 남북 5㎞, 동서 3㎞ 크기의 도시로 네모난 정원에 둘어싸인 건물군이며 파비리온, 왕실 목욕탕 터가 남아 있다.150년전 영국 식민지시절 문헌으로만 전해오던 이 유적지가 발굴됐다고 하는데 자연 통돌에 새긴 10m 크기의 와불과 좌상이며 아난 존자의 표정이 살아있는 듯 생생하다. 수도 콜롬보의 북동쪽으로 116㎞ 떨어진 캔디는 14세기 스리랑카의 수도. 콜롬보가 교역, 행정 중심인 제1의 도시라면 캔디는 스리랑카의 제1의 문화 중심지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치아사리를 모신 불치사(佛齒寺)는 스리랑카가 으뜸으로 꼽는 불교문화유산. 사리를 모신 공간과 법당 건물을 중심으로 박물관과 경전 도서관이 둘러선 독특한 건물이다. 법당 사리함 앞에 연꽃을 바치던 순례객들이 일제히 반야심경을 봉독하자 스리랑카 신도들이 미소로 반긴다. ●불도래설의 나라… 모든 업장 소멸키를… 스리랑카인들은 석가모니가 스리랑카를 세번 찾아와 직접 법을 설했다는 ‘불도래설(佛渡來說)’을 믿고 있다. 석가모니의 방문과 관련한 문헌상 기록은 없지만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스리랑카 신도들은 이곳엘 가면 그동안 지은 업장이 모두 소멸한다고 믿어 평생 한번은 꼭 들른다는 성지이다. 순례의 마지막 장소인 켈레니아 사원 앞에 서니 신발을 벗으라고 한다. 맨발로 사원에 들어선 순례객들의 시선이 중앙 건물 앞쪽에 매달린 한국 범종에 쏠린다. 신도들이 합장한 채 들어선 중앙 건물은 석가모니가 왔을 때 영접하던 장면, 상가미타가 인도에서 배를 타고 보리수를 이운해 오는 장면을 담은 벽화들과 와불상이 모셔진 공간. 탑돌이를 하듯 회(回)자형 건물을 돌아나오니 석가모니 부처님이 앉아서 설법했다는 의자를 봉안한 큰 탑이 눈에 든다. 중앙사원 바로 앞에 커다란 보리수에 순례객들이 모인다. 보리수 네 귀퉁이에 만들어 놓은 기도공간에 줄지어 섰던 신도들이 순례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연꽃을 바친 뒤 버스로 향하며 연방 뒤를 돌아본다. kimus@seoul.co.kr
  • 법정스님“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

    법정스님“대운하는 국토에 대한 무례”

    “조상 대대로 영혼과 살과 뼈를 묻어온 곳이자 후손들에게 물려줄 신성한 땅을 대운하 사업으로 훼손하는 것은 우리 국토에 대한 무례이자 모독입니다.” 불교계 원로 법정(73) 스님이 20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서 봄 정기법회를 갖고 찬반 논란이 빚어지고 있는 한반도 대운하 사업에 대해 강하게 비판했다. 법정 스님은 사찰 앞마당을 메운 1000여명의 신자들에게 설법하면서 “이 땅은 사람만이 아니라 겉모습만 다른 수많은 생명이 어울려 살아가는 곳이어서 생태계의 조화와 균형이 필요하다.”면서 “그런 땅이 근래에 와서 방방곡곡 어느 곳 하나 성한 곳이 없을 정도로 개발에 의해 피 흘리고 신음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청계천은 기존 하천을 복원한 것이지만 한반도 대운하는 멀쩡한 땅을 파헤치고 토막 내는 반자연적 사업”이라면서 “한반도 대운하에 찬성하는 사람은 개발사업으로 주변 땅값을 올려 재미를 보려는 땅투기꾼과 건설업자들뿐”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법정 스님은 “한반도 대운하 사업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가장 중대한 사안”이라면서 “어떤 희생을 치르더라도 이를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겨울 지병인 천식이 악화돼 구토와 헛구역질 등으로 50일 동안 사실상 단식 상태에 있었다고 밝힌 그는 “70년 넘게 몸을 끌고다니다 보니 부품이 삐걱거려 정비공장에 다니느라 여러분께 걱정을 끼쳐 드렸다.”고 근황을 전했다. 그는 “정부가 중국의 눈치를 보느라 티베트 사태 등에 대해 할 말을 못하는 실정이니 양식 있는 사람들과 언론이 정부를 대신해 발언해야 한다.”고 말했다. 지난 총선에 대해서는 “한나라당이 예뻐서라기보다 지난 정권에 대한 실망감 때문에 그런 결과가 나온 것”이라고 평했다.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강원도 산골에서 칩거하고 있는 법정 스님은 매년 봄, 가을에 열리는 길상사 정기법회 때 일반 신도를 대상으로 설법하고 있다. 한편 길상사는 법회 후 신자들을 대상으로 한반도 대운하 추진을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펼쳤다. 연합뉴스
  •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김달진 문학상] 김달진의 생애와 작품세계

    월하(月下) 김달진 시인은 생전 평생을 한결같이 세속에서 벗어나 세상을 관조하며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 세계를 추구한 시인이요 한학자다. 세속의 명리를 깃털보다 가볍게 여긴 시인의 삶은 천민자본주의가 팽배한 이 시대 사표(師表)가 되기에 충분하다. 1907년 2월 경남 창원군 웅동(현 진해시 소사동)에서 태어난 월하는 항일 민족 기독학교인 계광보통학교를 졸업했다.1926년 서울 경신중학 재학중 일본인 영어교사 추방운동을 주도하다 퇴학을 당하는 고초를 겪었다. ●인간이 지향해야 할 숭고한 정신세계 추구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 모교 계광보통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바쁜 생활 속에서도 1929년 순수 문예지 ‘문예공론’에 시 ‘잡영수곡(雜詠數曲)’을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후 시인은 ‘시원’‘시인부락’‘죽순’의 동인으로 참여하며 활발한 활동을 펼쳤다. 당시 ‘유점사를 찾는 길에’‘나의 뜰’‘샘물’ 등을 잇달아 발표했다. 그러나 항일교육에 앞장섰다는 이유로 계광보통학교가 폐교되자 민족 현실에 절망한 시인은 1934년 금강산 유점사에 들어가 수도생활에 매진했다. 시인은 1936년 동국대학교 전신인 중앙불교전문학교에 입학, 불경 연구의 길을 걸었다. 불교전문학교를 졸업한 뒤 1940년 시집 ‘청시(靑枾)’를 발표했다. 유점사로 돌아간 시인은 1941년 ‘불령선인’이라며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던 일제 경찰을 때려 눕히고 중국 용정으로 건너갔다. 이곳에서 소설가 안수길을 만나 그가 발간하던 잡지 ‘싹’에 ‘향수’ 등 시를 게재하기도 했다. 1945년 광복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그는 이듬해 서울을 떠나 창원 남면중학교 교장, 해군사관학교 교관 등을 거쳐 1973년 동국대학교 역경원 역경위원을 지냈다. 이 기간에 ‘한국선시’‘법구경’‘금강삼매경론’ 등 불교서적도 번역했고 ‘장자’‘한산시’ 등 동양고전을 우리말로 옮겼다. 이러다 보니 자연히 시작 활동은 뜸해져 문단에서 서서히 잊혀졌다. 역경 작업에 몰두하던 시인은 1967년 ‘임의 모습’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재개한 이후 ‘벌레’‘속삭임’‘낙엽’‘포만’ 등을 발표했다.1983년 불교정신문화원에 의해 한국고승석덕(碩德)으로 추대된 시인은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와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등을 펴냈다.1989년 6월 ‘한국 한시’(전 3권)의 완간을 앞두고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김달진 시인은 일제시대부터 제도권 문단의 편입을 거부하고 고고한 삶을 살았다. 그런 삶이 시 속에도 오롯이 녹아들어 그만의 순수한 시적 영토를 지켰다. 시인은 그 어떤 이데올로기나 관념에도 편벽되지 않고 자연 본연의 모습을 질박한 언어로 담아냈다.“여기 한 자연아(自然兒)가/그대로 와서/그대로 살다가/자연으로 돌아갔다./ 물은 푸르라/해는 빛나라/자연 그대로./이승의 나뭇가지에서 우는 새여./빛나는 바람을 노래하라.”(‘비명(碑銘)’) ●동양고전·한시·불교서적 번역에도 힘써 시인의 시어는 평이하다. 하지만 청아한 정신주의적 세계관을 표방하는 시인의 도저한 시적 상상력은 끝간 데가 없다. 시인의 작품은 물질만능주의에 휘둘리는 이 시대에 인간 본연의 순정한 본성을 일깨워 주는 마력의 힘을 발휘한다. 시인의 작품은 자연에 대한 관조와 종교적 초월의 경계 속에서 태어난다. 그것은 곧 우리 시사(詩史)에 면면히 이어져온 순수 서정시와 동양적 미학을 접목, 새로운 경지로 나아가려는 몸짓이다. 노장사상과 불교사상으로 대표되는 동양적 사유의 전개, 그것이 바로 월하 시의 요체다. 김달진문학상 운영위원인 오세영(서울대 명예교수) 시인은 “월하의 시세계는 서구의 이미지스트적 감각과 한국의 토속적인 자연, 동양사상의 합일로 요약된다.”면서 “시인의 작품들이 은둔생활에 가까운 생활로 대부분 묻혀 있는 만큼 그의 문학사적 위치를 제대로 찾아주려면 앞으로 더 많은 연구가 있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유물로 깨닫는 ‘불법의 세계’

    유물로 깨닫는 ‘불법의 세계’

    불교중앙박물관 개관 1주년 특별전시인 ‘법보(法寶)전’이 29일부터 6월 29일까지 불교중앙박물관 전시실에서 열린다. ‘법보’전은 불교중앙박물관이 기획한 불·법·승 삼보(三寶) 시리즈 가운데 두 번째 행사. 불법을 주제로 한 유물 162건 197점(국보 9점, 보물 25점)이 나오는데 불교전래 이후 조선시대까지 간행된 주요 경전의 전적과 목판·사경, 한국불교의 소의경전인 화엄경·법화경 관련 불교미술,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 조탑경인 무구정광다라니경과 대표격 복장유물이 들어 있다. “2007년 개관 특별전의 ‘불’전시가 지혜와 자비로 나투신 부처님의 실재를 깨닫게 하는 전시라면 이번 ‘법’전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통해 진리의 세계에 도달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박물관측은 설명한다. 전시는 크게 ‘부처님의 실재’(중앙전시실)와 ‘법의 전래와 법보’(제1전시실),‘경전미술’(제2전시실),‘부처의 몸 안에 내재된 법보와 법의 장엄’(제3전시실)으로 나누어 진행할 예정. 중앙전시실에 전시될 경주 황룡사지 출토 부처님 진신사리와 ‘황룡사 찰주본기’(국립경주박물관),‘초조본대방광불화엄경주본 권제13’(삼성출판박물관)‘초조본아비담비파사론 권16’(호림박물관) 등의 초조대장경, 보협인다라니경인 ‘보광사복장유물’(불교중앙박물관)이 눈길을 끈다. 이 가운데 황룡사지 출토 진신사리는 자장법사가 선덕여왕 12년(643) 중국 오대산에서 가져와 봉안한 사리. 황룡사 구층탑과 태화사탑, 통도사 계단에 나누어 봉안했던 불사리 100과중 일부이다. 황룡사 찰주본기는 벼락을 자주 맞았던 황룡사 구층탑의 두 번째 수리(872∼873년)내역을 담은 기록. 탑 중수 사실과 9세기 후반 신라의 정치적인 상황을 알 수 있게 해주는 자료로 민간에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황룡사 사리 이운과 고불식 및 사리 친견은 23일 오전 10시 조계사 대웅전에서 있으며 개막식은 28일 오후 3시에 열린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혼탁한 정신문명 종교인이 바로잡을 때”

    “혼탁한 정신문명 종교인이 바로잡을 때”

    “작은 샘물이 오염된 물을 맑게 해주는 것처럼 종교인들이 혼탁한 정신문명을 바로잡는 첨병이 돼야 합니다.” 오는 28일로 93주년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을 맞는 원불교의 행정 수장인 이성택(65) 교정원장. 대각개교절을 앞두고 14일 서울 종로구 원서동 은덕문화원에서 만난 이 교정원장은 “어린이 추행과 유괴 같은 험한 일들이 다발하는 요즘 종교인으로서 큰 책임을 느낀다.”며 말문을 열었다. ●“어린이 유괴 등 아찔한 사회 정신개혁 절실” 대각개교절은 교조인 소태산(少太山) 박중빈(朴重彬·1891~1943)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원불교 창교일. 전통의 종교들이 창시자의 생일을 최고의 축일로 기리지만 원불교는 창교자가 깨달음을 얻은 날을 최고 경축일로 삼고 있다. “대각개교절은 새로운 시대에 맞는 새로운 종교의 출발을 의미합니다.93년의 일천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원불교가 종교간 대화와 협력 차원에서 적극적인 것은 교조 신앙보다는 교조가 깨우친 진리를 따르기 때문입니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같은 정신적 근원을 갖고 있어 그 가르침을 올바르게 따른다면 종교간 갈등이 없어질 것이라는 이 교정원장.“기독교 성경이나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실천하는 길이라면 원불교의 마음공부나 하등 다를 게 없다.”고 힘주어 말한다. 특히 그는 어둠의 세상에서 밝은 세상의 질서로 바뀌는 개벽기엔 개개인의 정신개혁이 긴요하다고 강조한다. 사회가 수직구조에서 수평구조로 이행하면서 개개인의 인권이 중시되는 만큼 모든 이들이 스스로 마음공부에 힘써 주인으로 거듭날 것을 거듭 권한다. ●“아침형 인간보다 엑셀런스형 인간이 돼야” “세상의 모든 악행과 모순은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는데서 비롯되지 않을까요. 개개인이 모두 온전하고 고귀한 정신을 갖고 있지만 살아가면서 외부환경에 매몰되는 것이지요.” 급속하게 변화하는 스피드 시대에 순간적인 실수가 인류에 얼마나 큰 재앙을 가져올지 아무도 예단할 수 없다는 그는 “마음을 온전하게 다스려 시비를 잘 판단하고 안할 것을 하지 않는다는 마음 가짐이야말로 정신적 노예화를 푸는 지름길”이라고 강조한다. “이젠 ‘아침형 인간’보다는 ‘엑셀런스형 인간’이 돼야 합니다. 각자가 가진 장점을 최대한 살려 나도 돕고 남도 돕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정신이 중요한 것이지요.” ‘세상 가는 곳마다 부처가 계시니 하는 일마다 불공을 드려야 한다’는 처처불상 사사불공(處處佛像 事事佛供)’ “처처불상 사사불공은 원불교 교단의 생활속 근본 수행정신이지만 모든 이들이 한번쯤 진지하게 생각해 봄직한 보편적인 불공(佛供)이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2003년부터 경주의 원불교 새등이 문화원장을 겸하고 있는 이 교정원장은 도예에도 적지 않은 열정과 관심을 가진 도예가.“도자기를 만들고 불을 때 구워 내는 순간순간이 수행의 한 방편처럼 여겨진다.”며 컴퓨터 같은 지식정보에 매몰된 채 잊어가는 근본과 전통을 찾기 위해선 혼을 다해 도자기를 일궈내는 장인정신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4)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

    [서동철 전문기자의 비뚜로 보는 문화재] (64)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

    1960년, 백제의 옛 땅인 충남 연기 출신의 동국대 학생 이재옥씨는 고향의 작은 절에서 부처님이 새겨진 돌을 탁본하여 불교미술을 강의하던 황수영 교수에게 리포트로 제출했습니다. 당시까지 우리 미술사학계에 전혀 보고되지 않았던 불비상(佛碑像)이 분명했지요. 황 교수는 곧바로 학생들을 이끌고 연기 전의면으로 내려가 차령산맥 기슭 비암사(碑岩寺)의 삼층석탑 위에서 사방에 부처와 보살이 새겨진 불비상 3점을 확인하게 됩니다. 이렇게 발견된 계유명 전씨(癸酉銘全氏) 아미타불 삼존석상은 당장에 국보 제106호로 기축명(己丑銘) 아미타여래 제(諸)불보살석상과 미륵보살 반가사유석상은 보물 제367호와 제368호로 각각 지정되었습니다. ●신라시대 만들어진 백제 불비상 이뿐만이 아닙니다. 추가 조사를 벌인 결과 조치원 서광암(瑞光庵)에서는 계유명 삼존천불비상이 발견되어 국보가 되었지요. 또 연기 서면 월하리의 연화사(蓮花寺)에서는 무인명(戊寅銘)석불비상과 칠존석불상을, 이웃한 공주 정안면에서는 납석제 삼존불비상을 찾아내어 모두 보물로 지정했습니다. 이렇듯 백제 부흥운동이 활발하게 벌어진 것으로 알려진 연기 일대에서는 한반도의 다른 지역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7점의 불비상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이 불비상을 역사학계에서 크게 주목한 것은 신라의 삼국통일 과정에서 점령지에서 벌어졌던 일련의 움직임을 짐작케 해 주는 명문(銘文)이 담겨 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인 것이 계유명 전씨 아미타불 삼존석상이지요. 명문은 마멸되어 전모를 파악하기는 어렵지만, 대략 다음과 같은 내용이라고 합니다. ‘계유년 4월○일에 공경되이 발원하여…국왕, 대신, 칠세부모, 모든 중생을 위하여 절을 짓는다.…계유년 5월15일 한 마음으로 아미타불상과 관음·대세지보살상을 조성한다.’ 그러고는 발원한 사람의 이름을 나열했는데, 전씨를 비롯하여 달솔(達率) 신차원, 진무 대사(大舍), 목○ 대사(大舍), 상차 내말(乃末) 등이 보이지요. 문제는 달솔이 백제의 관직인 반면 대사나 내말은 신라의 관직이라는 데 있습니다. 학계는 ‘계유년’을 일반적으로 신라 문무왕 13년(673년)으로 봅니다.671년 신라가 당나라 장수 유인원(劉仁願)을 오늘날의 부여인 사비에서 몰아내자 당나라의 웅진도독이었던 의자왕의 아들 융(隆)도 당나라로 건너갈 수밖에 없었지요. 이후 신라는 사비에 소부리주를 설치하고 실질적인 삼국통일의 기초를 다지게 됩니다. 신라는 백제의 옛 땅에 살던 사람들이 당나라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이 당면과제였는데,673년 백제 인사들에게 신라의 관직을 준 것도 유민들의 불만을 잠재우고자 취한 조치로 풀이되고 있습니다. 계유명 삼존석상에 나타난 ‘대사’나 ‘내말’은 불만스럽지만 회유책에 순응해가기 시작한 사람들인 반면 ‘달솔’ 신차원만은 백제에 의리를 지키고 신라 벼슬을 받지 않은 사람으로 볼 수 있겠지요. ‘국왕, 대신’이라는 표현에는 학자들 사이에도 논란이 없지 않습니다. 새로운 지배자인 신라의 국왕, 대신인지, 그동안 충성을 바친 백제의 국왕, 대신인지, 아니면 불사(佛事)에서 관행적으로 사용한 국왕, 대신인지 분명히 드러나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점령군 통치로 핍박받은 중생의 넋 달랜 듯 하지만 이 불비상은 아미타불을 중심으로 관음보살과 대세지보살이 좌우에 협시하고 있는 삼존불입니다. 아미타불은 서방정토의 구세주로 인식되면서 죽음과 마주칠 수밖에 없는 중생에게 위안을 주고, 관세음보살은 세상 사람들의 고통에 자비를 베푸는 존재이지요. 백제가 멸망하고, 부흥운동을 벌이는 과정에서 죽거나 핍박받은 중생의 명복을 빌고자 절을 짓고, 불비상을 조성했을 가능성이 크다는 뜻입니다. 이 불비상은 미술사에서도 독특한 존재입니다. 아미타삼존불과 광배, 그 양쪽의 인왕상과 사이사이에 보이는 나한상, 옆면의 주악천인상에 이르는 모든 조각에는 작은 원이 구슬처럼 연결된 연주무늬 장식이 화려하고, 보살의 가슴에는 일종의 목걸이인 영락(瓔珞)이 늘어뜨려지는 등 백제시대 불교조각에서 흔히 보이는 수나라(581∼619년) 양식의 특색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명문이 없었다면 이 불비상은 백제시대 것으로 분류될 수밖에 없었겠지요.‘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졌지만 백제의 옛 땅에서, 백제의 미의식을 담아놓은 불교조각’이라는 성격만큼이나 이 불비상에는 점령군의 통치 아래 살아가야 했던 패망국 사람들의 복잡한 심사가 담겨 있는 듯합니다. dcsuh@seoul.co.kr
  • [종교플러스]

    ● 법성사 부용 스님 두번째 연꽃사진전 대구 법성사 주지 부용 스님의 두번째 연꽃사진전이 28일부터 5월3일까지 서울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열린다. 연꽃이 있는 풍경과 종교적 특성이 담긴 연꽃 사진 50여점이 선보인다.(053)553-5371. ● 지리산 기독교선교유적지 세미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문화예술위원회는 17일 오전 10시30분 서울 종로5가 한기총 세미나실에서 ‘지리산 기독교선교유적지 발굴 보존 세미나’를 연다. 이만열 숙명여대 명예교수와 세브란스병원 외국인진료소장 인요한 박사가 발표한다. ● 지역 종교문화행사 지원사업 공모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는 ‘제3회 지역 종교문화행사 지원사업’을 공모한다.7∼11월 서울지역 외에서 3개 종교 이상의 종교단체가 연합해 개최하는 음악회, 전시회가 대상으로 5월 2일까지 마감. 자세한 내용은 홈페이지(www.kcrl.or.kr) 참조.
  • [사고] 국내 최고 권위 김달진문학상

    서울신문사는 올해부터 국내 최고의 권위와 영예를 자랑하는 김달진 문학상을 김달진 문학상 운영위원회와 공동으로 주최합니다. 올해로 19회를 맞는 김달진 문학상은 날로 물신화되어 가는 이 시대, 인간이 지향해야 할 정신주의 영역을 일관되게 추구한 월하(月下) 김달진 시인을 기리기 위해 제정된 상입니다. 1990년 시 부문상을 시작으로 1998년부터는 문학평론 부문상을 추가해 시행하고 있습니다. 상금은 시부문 2000만원, 평론부문 2000만원입니다. 시인이자 한학자였던 김달진 시인은 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한 동양적 정신세계를 구현한 시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첫 시집 ‘청시(靑枾)’를 비롯해 김달진 시전집 ‘올빼미의 노래’, 장편 서사시집 ‘큰 연꽃 한 송이 피기까지’ 등을 펴냈고 ‘당시전서’ 등 동양 고전을 우리말로 옮겼습니다. 김달진 문학상은 문단 경력 10년 이상의 시인과 평론가 가운데 전년도 4월부터 당해 연도 3월까지 발간된 시집과 평론집을 심사 대상으로 합니다. 수상자는 매년 4월 중순쯤에 결정됩니다. 부대 행사로 매년 9월 시인의 고향인 경남 진해에서 김달진문학제도 열립니다. 독자 여러분의 관심과 성원을 부탁드립니다.
  • 아사히 “日 최고사찰, 백제 왕흥사 보고 건립”

    아사히 “日 최고사찰, 백제 왕흥사 보고 건립”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사찰이 한국의 절을 모델로 세워졌다는 새로운 주장이 제기돼 한·일 양국의 학계 반응이 주목된다. 일본 아사히신문은 “최고(最古)사찰로 알려진 아스카 사원(飛鳥寺)이 백제시대 때의 절 왕흥사(王興寺)를 참고해 만들었다는 주장이 나왔다.”고 16일 보도했다. 양쪽 사찰 모두 출토품과 불탑의 구조가 비슷하고 같은 기술자에 의해 세워졌다는 것. 이같은 주장을 제기한 와세다(早稲田)대학교의 오오하시 가쓰아키(大橋一章·불교미술사) 교수는 그 근거로 최근 부여에서 출토된 유물과 아스카 사원의 별칭을 들었다. 그는 “아스카 사원의 별칭은 왕흥사와 비슷한 단어의 호코지(法興寺)·간코지(元興寺)”라며 “지난해 10월 부여에서 발견된 금·은·청동 재질의 사리(舍利)용기는 아스카 사원이 왕흥사 건립 뒤에 세워졌다는 것을 강력히 뒷받침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서기 600년 이후에 세워진 것으로 알려진 왕흥사가 이번 사리용기 출토로 577년 2월에 건립된 것으로 판명됐다.”며 “이는 588년에 축조되기 시작한 아스카 사원보다 앞서고 일본 역사서에서도 577년 11월 백제왕이 기술자를 (일본으로) 보낸 것으로 나와있다.”고 덧붙였다. 가쓰아키 교수는 “비록 가마쿠라(鎌倉)시대에 아스카 사원의 사리용기가 화재로 소실됐지만 왕흥사의 출토품과 비슷했을 것”이라며 ”이로써 수수께끼였던 아스카 불교의 난제가 풀리기 시작했다.”고 피력했다. 한편 현지를 방문한 다른 학자들도 불탑의 구조나 출토품·기와의 문양 등도 매우 비슷하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으며 가쓰아키 교수팀의 연구는 향후 10년 동안 계속될 전망이다. *가마쿠라 시대:1192년 일본의 미나모토노 요리토모(源賴朝)가 가마쿠라에 막부(幕府)를 세운 때부터 1333년 호조 다카도키(北條高時)가 멸망할 때까지의 시기 사진=아스카 사원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교황 美서 ‘유연한 이미지’ 심을까

    교황 베네딕토16세가 2005년 취임 후 처음으로 15∼20일(현지시간) 미국을 방문한다. 교황의 백악관 방문은 1979년 요한 바오로2세에 이어 29년 만이다. 카리스마와 쇼맨십이 강한 전임자와 달리 수줍음 많은 학자 스타일의 그가 미국인을 비롯한 전세계인들에게 어떤 메시지와 인상을 남길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교황 81세 생일축하 만찬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전례없는 극진한 환대를 준비중이다. 워싱턴 도착 당일인 15일 앤드루 공군기지에 직접 나가 교황을 영접한다. 부시는 물론 역대 어느 미국 대통령도 외국 국가원수를 공항에 나가 맞이한 적은 없었다고 AP통신 등은 14일 전했다. 16일 백악관 남쪽 잔디밭에서 열리는 공식 환영행사에는 무려 1만 2000여명의 관중이 참석한다. 부시 임기중 최대 규모다. 지난해 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2세의 방미 때도 7000여명 언저리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날 저녁에는 교황의 81세 생일을 축하하는 성대한 만찬이 마련된다. 메뉴도 각별히 신경써서 교황이 태어난 독일 바이에른주의 음식으로 식탁을 차린다. 하지만 정작 교황은 워싱턴 국립대성당에서 열리는 미국 주교들과의 기도회 때문에 참석하지 못한다고 백악관측은 밝혔다. 부시 대통령은 교황을 특별히 환대하는 이유에 대해 “정치인이 아닌 종교지도자이기 때문이며,‘도덕적 상대성이 보다 희망적이고 자유로운 사회를 만들 가능성을 훼손한다.’는 교황의 신념에 존경을 표하고 싶어서”라고 한 가톨릭언론 인터뷰에서 밝혔다.●가톨릭 성직자 성추문 사과 여부 관심 교황은 방미 기간중 워싱턴 내셔널파크와 뉴욕 양키스타디움에서 두차례 대중 미사를 갖는 한편 18일 유엔에서 연설할 예정이다. 마지막날인 20일에는 9·11테러 추모지인 그라운드제로에서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를 연다. 취임 초기 엄격하고 보수적인 언행으로 이목을 끌었던 교황 베네딕토16세는 이번 방문에선 할 말은 하되 좀더 긍정적인 방식으로 전달하는 노선을 택할 것으로 보인다.영국 더 타임스는 바티칸 전문가인 존 앨런을 인용,“교황은 한때 교회의 다스베이더(영화 ‘스타워스’에 등장하는 악역)로 비춰지는 실수를 범했다.”면서 “이제 종교의 가치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를 좀더 긍정적으로 전달하는 방법을 찾고 있다.”고 전했다. 교황은 이번 방미 기간동안 뉴욕의 시나고그(유대교회)를 방문하는 것을 비롯해 이슬람교도와 불교신자, 힌두교인들을 두루 만날 예정이다. 낙태, 동성간 결혼, 줄기세포 연구 등에 대해선 부시 대통령과 뜻을 같이하지만 이라크전쟁에 관한 한 의견차가 큰 교황이 백악관 면담에서 이 문제를 어떻게 다룰지도 관심사다. 이와 더불어 가톨릭 성직자들의 성추문으로 상처입은 미국내 가톨릭 신자들의 신뢰 회복을 위해 교황이 이번 방문에서 공식 사과를 할 것인지에 이목이 쏠리고 있다.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씨줄날줄] 개고기/함혜리 논설위원

    끝없는 논란의 주제가 되는 개고기 식용의 역사는 얼마나 될까. 안악 3호분 고구려 벽화에 도살된 개가 등장하는 것을 보면 우리 조상들은 고구려 시대에도 이미 개고기를 먹었던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조선시대 궁중 수라상의 식단에는 구증(狗蒸)이라는 음식이 있고, 민간에서는 ‘구장’을 더위를 쫓는 최고의 음식으로 쳤다. 홍석모의 ‘동국세시기’에는 “개를 삶아 파를 넣고 푹 끓인 것을 구장이라고 한다. 구장에 고춧가루를 타서 밥을 말아 시절음식으로 먹는다.”고 적혀 있다. 개고기가 임금님부터 서민들까지 모두에게 동물성 단백질의 중요한 공급원이었던 것만은 틀림없다. 그렇다고 모두가 개고기를 반긴 것은 아니었다. 개고기를 금기시하는 습속 또한 줄곧 존재했던 까닭이다. 부처님 제자인 목련존자의 어머니가 개로 환생했다는 불교 설화의 영향이 컸고 산신인 호랑이가 즐기는 개를 먹으면 호환을 당할 염려가 있다는 민간 산신신앙의 영향도 있다. 오랫동안 보양식으로 대접받아 온 개고기가 국제적 논쟁거리로 비화한 것은 88서울올림픽 때였다.1960년대 은막의 스타에서 극단적 동물보호주의자로 변신한 브리지트 바르도가 한국에서 수많은 개들이 식용으로 죽어가고 있다며 이런 야만적인 국가에서 개최하는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급해진 서울시는 개고기 판매행위 단속 고시를 통해 보신탕과 개소주의 판매를 금지했다. 그러나 보신탕은 대로에서 사라졌을 뿐 영양탕, 사철탕, 보양탕 등으로 불리며 골목안에서 여전히 건재하다. 엄밀히 따지면 모두가 불법이지만 고시는 사문화된 지 오래다. 서울시가 시내 개고기 취급 식당에 대해 처음으로 식품안전성 점검에 나서는 한편 축산물 가공처리법상 ‘가축’에 개를 포함시키는 내용의 법 개정 건의안을 정부에 제출키로 했다. 혐오, 비혐오 식품의 차원을 떠나 시민들의 먹거리 안전을 위한 조치라고 한다. 비위생적인 사육과 도축, 유통을 막고 위생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것은 맞는 방향이다. 그러나 개를 가축으로 분류하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수긍이 가지 않는다. 과연 ‘개고기는 개고기일 뿐’일까?좀더 고민해야 할 것 같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4) 증산도 상생문화硏 빅토르 앗크닌

    대전시 중구 선화동의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는 민족종교 증산도 사상의 학술적인 정리와 연구가 집중적으로 이루어지는 증산도의 대뇌격 기관. 외국인 3명을 포함한 25명의 연구원이 크고 작은 모임과 세미나를 이어가며 증산도 사상을 국내외에 알리기 위해 호흡을 맞추고 있다. 이곳에서 증산도 도전(道典)을 러시아어로 번역하는 막바지 작업에 매달려 있는 캐나다 국적의 연구원 빅토르 앗크닌(56).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의 원주민 출신으로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와 한국문화를 러시아에 알리기 위한 첨병 역할을 4년째 맡고 있는 유별난 언어학자이자 문화 호사가이다. ● 옛 소련 하카스 자치주 원주민 출신 증산도 도전을 양손에 든 채 1층 자료실에서 객을 맞은 빅토르 앗크닌은 외국인이라기보다는 한국인에 아주 가까운 동양인의 얼굴을 하고 있었다. 연구소 주변에 흐드러진 봄꽃만큼이나 화사한 미소를 지으며 반갑게 손을 내민 앗크닌은 능숙한 한국어로 증산도의 요체를 펼쳐놓았다. 시베리아 아래 크라스노얄스크 남쪽, 인구 12만명의 작은 도시 아바칸에서 홀어머니 슬하의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낸 옛소련 자치주의 원주민이 환갑에 가까운 나이에 한국의 소수종교 증산도, 아니 한국문화에 깊숙이 빠지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증산도에 입도(入道)하면 그 순간부터 증산도에 매몰될 수밖에 없지요. 순수하게 증산도를 보기 위해 객관적인 제3자의 입장을 지키고 있습니다.” 증산도를 웬만한 증산도 도인들보다 더 잘 알고 깊숙이 빠져 있지만 오염되지 않은 증산도를 파고들기 위해 ‘비신자´로 머물러 있다는 앗크닌. 그는 자치주 원주민이란, 이른바 출신성분 때문에 적지않은 불이익을 감수해야만 했던 지난날을 넌지시 들춰낸다. 레닌그라드대(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역사학부에 다니던 형이 “언어에 재능이 있는 것 같으니 레닌그라드대 외국어학부를 지원해 보라.”고 권유해 고교 졸업을 2년 앞두고 레닌그라드대학에 입학하고 싶다는 뜻을 간곡하게 담은 편지를 직접 썼다고 한다. 모국어와 가까운 터키어를 전공하고 싶었지만 입학연도엔 터키어과 모집이 없어 대신 일어과를 지원했는데 그만 낙방하고 말았다. “레닌그라드대 일어과는 최상의 출신성분에 최고 점수를 맞아야만 들어갈 수 있었어요. 자치주 소수민족의 애환을 처음 알았지요.” 결국 차선의 선택으로 ‘조선어학과´에 들어간 게 사실상 한국과 맺은 인연이라면 첫 인연이다. 대학 재학시절 소련에서의 한국에 대한 인식은 거의 적국 수준. 졸업을 해도 마땅히 할 일이 없을 만큼 조선어학과 학생들은 찬밥신세였다고 한다. 그런데 조선어가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조선 역사와 문학, 민속학, 종교까지 파고들었으니 ‘한국학´을 제대로 공부한 셈이다. 레닌그라드대 재학중 북한의 김일성대학에 유학해 중세 조선어사와 문법, 역사도 배웠다. 레닌그라드대에서 조선어부터 시작해 영어, 중국어, 일어를 배웠고 러시아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과정을 하면서 러시아어, 독일어, 만주어, 몽골어, 에벵키어, 타타르어를 더해 자유롭게 구사하는 언어가 무려 11개 국어나 된다. “대학 시절, 그때만 해도 ‘결코 갈 수 없는 나라´였던 남한에서 직접 들어온 책이란 찾아볼 수가 없었어요. 신문이나 TV에서도 한국과 관련해 좋은 쪽 이야기들은 아예 보거나 들을 수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 생애 처음 본 한국인 고송무씨와 교유… 한국공부 힘써 1970년대말 핀란드 헬싱키에서 만난 고송무(1947∼1993)가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본 남한 사람이었다고 한다. 고송무는 중앙아시아에서 한인들을 연구하는 데 몸 바쳐 ‘고려인 연구분야의 선구자´로 통하는 인물. 당시 헬싱키국립대 한국어 교수였던 고송무와 교유하면서 얻은 국어사전이며 잡지들을 몰래 갖고 삼엄한 러시아 국경을 넘을 때 진땀을 얼마나 흘렸을까. 한국에 대한 관심이 더욱 커져 갔고 1985년부터는 유럽한국학협회 회원 자격으로 한국학 관련 학과가 설치된 유럽의 대학들을 돌며 논문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1990년 한·소 수교가 됐지만 여전히 소련에선 한국 관련 책이며 문헌들을 보기란 수월치 않았다고 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한국어문화센터 부소장으로 일한 지 6년쯤 됐을까. 우연히 접한 증산도 사상서 ‘이것이 개벽이다´ 요약집에 눈이 번쩍 뜨였다고 한다. “종교·사상서에 앞서 한국의 문화와 고대역사, 철학을 한눈에 볼 수 있는 독특한 책이었어요. 러시아를 비롯해 서양인들에겐 생소한 후천(後天)이며 개벽, 원시반본(原始返本) 사상이 눈에 쏙 들었습니다.” 1년에 걸쳐 요약집을 러시아어로 모두 번역해 놓았다. 그 때문이었을까. 한국에서도 이름이 알려져 수교 이듬해부터 수년간 학술진흥재단과 대학들의 초청으로 무려 15차례나 한국을 다녀갔다고 한다. 소수민족 출신으로 겪은 인생의 첫 좌절 기억에 얹혀, 탈이데올로기를 앞세운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도 불구하고 변화하지 않는 소련의 현실에 불만이 컸던 것 같다. 결국 2000년 소련 생활을 정리하고 캐나다 이민을 택했다. “이민 후 본격적으로 러시아 문화와 한국 문화의 관계에 집착하게 됐지요. 옛소련 자치주였던 터키계 저의 모국 언어와 한국어는 많은 유사점을 갖고 있는 것 같아요. 샤머니즘의 상관성도 아주 많고요.” 한국·캐나다 문인협회에 들어가 러시아와 한국의 시문학들을 서로 비교번역하는 작업을 하고 있을 때였다. 자신을 애타게 수소문한 증산도측이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어 번역을 의뢰해온 데 선뜻 응했고 4년째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증산도 도전의 러시아판은 영어, 일어, 중국어, 독어, 불어, 스페인어 등 6개 언어 번역에 이은 마지막 번역작업.900쪽 분량으로 번역되어 ‘러시아판 도전´이 사실상 마무리됐지만 마지막 정리 작업을 하고 있는 중이다. “증산도와 인연이 돼서 지금 한국에 몸을 두고 있지만 따져보면 먼 옛날부터 한국에 오도록 되어 있었던 것 같아요. 한국문화의 많은 부분을 담고 있는 증산도 도전을 러시아인들에게 알리는 기수 역할에 자부심을 느낍니다.” ● 틈만 나면 사찰·박물관 등 찾아다녀 ‘우주 순환의 큰 판 짜기´, 증산도에서 흔히 말하는 도수(度數)를 인용해 자신의 한국 살이를 “내 뜻이 아닌, 누군가가 정해놓은 길”로 받아들인다는 앗크닌. 틈만 나면 훌쩍 떠나 사찰이나 박물관 등 한국의 문화를 알 수 있는 구석구석을 뒤진다. 한국인을 닮은 생김새 때문인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이 “외국에서 오래 살다가 고국에 돌아온 한국인”으로 보아주는 게 재미있고 반갑단다. “서양의 시간관이 직선적이라면 동양의 시간관은 순환성이 아주 강합니다. 개개인이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찾자는 원시반본도 결국 동양의 순환적인 시간개념에 바탕을 두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그래서 요즘은 부쩍 천도교며 원불교 같은 한국의 다른 민족종교들을 비교하는 데 관심이 많아졌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은 결정적인 순간에 너무 서두는 게 큰 흠인 것 같아요. 뿌리와 근본을 찾아가는 원시반본이 중요하지만 천천히 나를 돌아보는 느림의 원시반본이야말로 지금 한국인들에게 소중한 가치가 아닐까요. 내가 한국에 사는 것도 그 길을 찾기 위한 작업인 것 같아요.” 글 사진 대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빅토르 앗크닌 ●1952년 옛소련 하카스 자치주 아바칸 출생 ●1973∼1974년 김일성대학 유학 ●1975년 레닌그라드 국립대학교 동양학부 조선어과 졸업 ●198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석사 ●1980∼2000년 러시아 과학아카데미 언어학연구소 연구원 ●1991∼2000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학교 한국어 문화센터 부소장 ●2000년 캐나다 이민 ●2002∼2004년 한국·캐나다 문인협회 회원 ●2004년∼ 증산도 상생문화연구소 연구원, 증산도 도전 러시아어 번역
  • [총선 D-1 여야지도부 총력전] “한나라에 180석 주면 친박계 몰락”

    친박연대가 7일 한나라당을 매섭게 비판하며 ‘견제론’을 설파했다. 친박연대는 한나라당이 180석 이상의 의석을 확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송영선 대변인은 “한나라당이 180석 이상을 얻으면 박근혜 계열을 밀어내거나 고사시키고 과반이 될 수 있고, 그러면 재산 50억원 이상이 안 되고 서울대나 외국 명문대 박사 학위 소지자가 아니면 능력있는 사람으로 안 보일지도 모른다.”면서 “박근혜의 원칙과 정직함을 이어받은 친박연대를 선택해 달라.”고 호소했다. 서청원 대표는 서울 노원갑 함승희 후보 사무실에서 “대운하의 상징인 후보에게 민심이 등돌리자 대통령이 당당하게 그 후보 지역구를 방문했고, 배신과 오만의 상징인 어떤 후보는 ‘노숙자를 정리하겠다.’고 했다.”며 최근 한나라당과 관련된 구설을 열거했다. 이어 그는 “오만한 권력은 쉽게 무릎 꿇지 않는다.”고 덧붙엿다. 이 대통령의 은평 뉴타운 방문과 관련해서는 홍사덕 선대위원장도 불교방송 라디오에 출연,“청와대는 도움이 된다고 여겼는지 몰라도 국민은 묘수, 암수를 좋아하지 않는다.”면서 “상당한 손해를 끼쳤을 것”이라고 혹평했다. 한편 친박 무소속연대 좌장인 김무성 의원은 부산·경남 일대를 돌며 지원유세에 나섰다. 무소속연대는 8일 한번 더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단합력을 과시할 계획이다.홍희경기자 salo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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