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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북한 어린이 돕기 모금운동

    서울우유협동조합(조합장 조흥원)은 4일 서울 삼각산 도선사에서 대한불교 조계종 선묵혜자 스님과 108산사순례기도회 회주 선묵혜자 스님 및 조합 임직원이 참석한 가운데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한 성금 모금 운동을 가졌다.
  • 태고종 ‘열린 선원’ 3주년 맞은 괴짜스님 법현

    태고종 ‘열린 선원’ 3주년 맞은 괴짜스님 법현

    ‘닭 벼슬보다 못한 중 벼슬이라면서도 자리를 탐하여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이들이 많다.’(법현 스님 산문집 ‘부루나의 노래’ 중에서) 태고종 교류협력실장 법현 스님은 불교계에선 좀 별난 사람이다. 중앙대 기계공학과를 나와 불교에 귀의한 뒤 일찍부터 레크리에이션을 통한 대중포교에 나서며 승속, 종교를 가르지 않는 오지랖으로 해서 ‘마당발 스님’으로 통한다. 별명만큼이나 태고종 안에서뿐만 아니라 다른 불교종단이며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민족종교 인사도 폭넓게 교유해 ‘열린 스님’으로 불리기도 한다. 서울 은평구 갈현동 역촌중앙시장 허름한 상가 3층의 열린선원은 ‘괴짜 스님’ 법현의 마음과 열성이 담긴, 불교계의 흔치 않은 시장속 포교처이다. 법현 스님이 선원장으로 ‘저잣거리 포교’를 내걸어 시장 상인이며 손님들과 허물없이 함께 하기를 벌써 3년째.6일 개원 3주년을 맞아 조촐한 행사를 갖는다고 한다. “나름대로 정성들여 시장 대중과 만나왔는데…부족한 게 많아요. 역촌중앙시장을 삶의 터전으로 삼는 사람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가 애환도 듣고 아픔도 나누어야지요.” 법현 스님은 “지난 3년 포교에서 이룬 것보다는 모자란 게 더 많다.”고 소감을 말한다. 하지만 시장 일대에서 열린선원은 이미 명소가 되어 있다. 개원 후 줄곧 진행해온 3∼6개월 과정의 열린불교아카데미 수료자만 해도 150명. 불교 기초교리와 사찰예절,1박2일 코스의 템플스테이 과정을 거쳐야만 수계할 수 있어 조금은 까다로운 강좌이지만 입소문을 타면서 지방에서도 찾아 오는 이가 적지 않다. 불교 교리공부는 엄하지만 선원의 문은 늘상 열려 있다. 성탄절·초파일 법회를 비롯해 빈번히 열리는 일반 법회 때도 기독교 인사들의 모습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다. “처음 문을 열었을 때는 선원을 찾아왔다가 ‘무슨 절이 이러냐.’며 발길을 돌리는 이들이 많았어요. 조용한 곳에서 수행만 하는 줄 알았던 스님과 불교가 치열한 삶의 현장으로 나왔으니 생뚱맞았겠지요.” 발길을 돌리는 상인들과 손님들을 설득하며 달래 선원으로 찾아들게 하기까지 고충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원 이후 시장 경기회복을 기원하는 재래시장 활성화 천도재를 봄 가을 두차례씩 꼬박꼬박 지냈다고 한다. 명절 때 술 대신 차 올리기 운동도 열린 선원이 줄기차게 펴온 운동. 이 ‘차 올리기’ 운동은 불교계뿐만 아니라 일반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반적으로 신도들이 법호나 법명을 받을 때 여성 불자는 석 자를 쓰지만 이곳에선 모두 두 글자로 짓는다. 남녀를 가르지 않는 평등의 뜻에서란다. 법회며 천도재 때 신도들이 형편상 성의껏 보시하는 것도 여느 곳과는 다르다. “불교는 부처님에게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진리와 서있는 자기자신에만 의지한다는 특성을 갖지요. 바로 법등명 자등명(法燈明 自燈明)입니다. 그러러면 의식부터 스스로 해나갈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 합니다. 스님의 도움 없이 신도들이 스스로 불교의식을 하는 것이지요.” 그래서 스님은 출생부터 죽음 이후까지의 평생의례와 불교경전, 찬불가 등 불교의식을 하나로 묶는 법요집을 우선 만들겠다고 한다. 법당과 복도 공간을 활용해 대장경이며 불교사전, 수행·의식서들을 비치한 작은도서관을 단독공간으로 확장할 계획도 갖고있다. 6일 3주년 기념행사에선 태고종 총무원장 운산 스님의 초청법문에 이어 소프라노 권혜준, 국악인 한계명·한인식, 니르바나오케스트라 단원인 강현진씨 등의 노래와 연주가 있을 예정. 예수도원 김진 목사와 한신대 채수일 교수를 비롯한 개신교 인사 10여명도 자리를 함께 한단다.(02)368-4720.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열린세상] 촛불을 잘쓰면 우리 모두 승자가 된다/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열린세상] 촛불을 잘쓰면 우리 모두 승자가 된다/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장관고시가 발표되던 지난달 30일 저녁, 나는 원불교 종로교당에 있었다.‘녹색평론’이 창간 때의 약속대로 결호없이 100호를 발행하게 된 것을 기념해 독자모임이 마련한 시국강연회가 그곳에서 벌어졌기 때문이다. 연사는 김종철 발행인과 ‘미친 소 시국’의 독보적인 스타, 강기갑 의원이었다. 시국강연회라? 왠지 그 말은 근대정치 초창기의 조봉암이나 해공 같은 정치인들이 활약하던 시절에나 어울리던 말로 느껴졌다. 당시를 살지 않아 겪은 것처럼 말할 수는 없지만, 기록을 보면 그때 정치인들은 현 정치인들과는 달랐던 것만 같다. 막 건국한 나라의 선량이라는 높은 자긍심 속에서 지금은 찾아보기 힘든 당차고 지조 높은 줏대가 있었던 것만 같았고, 선량들 개개인에게서는 위엄과 기개가 있었던 것 같다. 그들은 간교하거나 무식하지 않았고, 지금 국회의원들처럼 밤낮없이 어불성설을 일삼지도 않았고, 주장을 펼치고 반박할 때 기품이 서린 논리가 있었던 것만 같다. 인류 역사상 정부 조직이라는 것이 언제나 최선은 아니었기에 그들이 결정한 일들이 모두 옳았던 것은 아니었으나, 최소한 당시 정치인들이 지금의 선량들처럼 경박하고 사대주의에 빠져 그들을 뽑은 이들로부터 이토록 모욕적인 경멸을 받지는 않았던 것만 같다. 그날은 대통령이 중국에서 돌아온 날이기도 했다. 강기갑 의원은 “장관고시가 관보에 게재되기 전까지는 국제법 효력이 없다. 따라서 쇠고기 협상은 아직 효력이 없다. 대통령이 관보 게재를 철회하고 국민의 뜻을 따르면 된다.”고 말했다.“관보 게재를 철회하지 않으려면 차라리 미국으로 날아가시라.”고도 말해 웃음을 자아내기도 했다. 강물처럼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살면서 우리는 어떤 일상은 ‘역사’가 되는 것을 자칫 못 느낄 수도 있다.‘그해 6월’에 사람들이 거리로 뛰쳐나올 때, 그 한 사람 한 사람의 작은 선택이 누구도 폄하할 수 없는 ‘견고한 역사’가 될 줄을 누가 알았을까. 발랄한 10대들이 구김 없는 얼굴로 지펴 마침내 모든 연령에 점화된 지금 대한민국의 밤을 밝히는 촛불도 그렇다. 누구도 지금 이 촛불시위의 놀라운 의미를 독점적으로 온전하게 해석해 내지는 못할 것이다. 서둘 것 없는 해석은 차라리 뒷일. 확실한 것은 ‘될 때까지’ 밝히겠다는 작금의 촛불시위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전혀 새롭게 끌어올릴 것이라는 점이다. 평범한 시민들이 촛불 한 자루 들고 모여 연출해내는 일들이 모두 유례가 없는 일들이기 때문이다. “나도 잡아 가세요.”라고 하면 예전 같으면 집어넣자마자 개 패듯 패던 닭장차에 시민들이 기꺼이 의연한 얼굴로 오른다. 노트북을 들고 서 있는 곳에서 즉석 1인방송을 해댄다. 엄청난 사람들이 그 방송을 듣고 깊은 밤에 한 사람의 힘이라도 보태려고 거리로 나선다. 긴장한 전경들에게 생수를 주고, 가슴에 꽃을 달아준다. 서로 김밥을 나눈다. 어디에서도 듣지 못하던 감동적인 즉석연설이 터져 나온다. 경찰서장이나 여경이 핸드마이크로 아무리 불법이라 외쳐도 사람들은 “불법 위에 상식이 있어요.”라고 유쾌하게 맞장구친다. 완강한 공권력은 비폭력의 유머 앞에서 맥이 빠질 수밖에 없다. 유머가 아니라면 어찌 무장한 힘에 맞서 이길 것인가. 배후는 무슨 배후? 오죽하면 ‘조선일보’ 사회부장까지 “배후는 없는 것 같다.”고 뒤늦게 고백했을까. 왜곡이 본업이 된 ‘조중동’과 반미로 번질까봐 ‘6월’을 두려워하는 여당은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고 하고 있다. 이 촛불은 결코 쉽게 꺼지지 않을 것이다. 이 촛불의 의미를 축소하고 곡해하려 든다면 이 정권에게는 희망이 없다. 이 촛불을 이명박 정권은 나락으로 떨어진 평가를 회복하는 데에 선용해야 할 것이다. 그것만이 미친 소 시국을 우리 모두 승자가 되는 위대한 기회로 삼을 수 있을 것이다. 최성각 작가·풀꽃평화연구소장
  • 신라 사람·현대 한국인의 성과 사랑

    신라 사람·현대 한국인의 성과 사랑

    인간의 성모럴을 담아낸 소설 두권이 나란히 나왔다. 심윤경(사진 왼쪽·36)의 ‘서라벌 사람들’(실천문학사)과 김경원(오른쪽·46)의 ‘와인이 있는 침대’(문학의문학). 이들 두 작품은 시대적 배경이 고대와 현대라는 현격한 시차를 두고 있지만, 인류 보편의 가치인 사랑 혹은 성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갖는다. ‘서라벌 사람들’은 신라시대의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신화적 상상력을 덧입혀 태어난 다섯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그런 만큼 선덕여왕은 다이애나비, 화랑은 비보이, 무열왕은 카우치 포테이토(TV나 보면서 빈둥거리는 사람), 원효대사는 서태지로 그려졌다. 신라시대의 이야기이지만 현대적인 감각을 가미한 상상력 덕분에 신라인들이 눈앞에서 놀이 마당을 펼치고 있는 것처럼 생동감이 넘친다. “우리 전통문화의 근간이 되는 유교와 불교가 낯설고 참신한 외래문화였던 시점, 다시 말해 기존의 토착종교와 충돌하던 시점을 조명해보고 싶었습니다.” 작가는 그런 시대를 찾다가 신라시대 순교자 이차돈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잘 알려진 이차돈과 맞서는 토착종교 세력의 상징적인 인물이 없을까 고민하다 지증왕의 부인인 여걸 연제부인을 만나게 됐다고 말한다. “이렇게 만난 연제부인에 좀더 카리스마를 부여, 이차돈과의 불꽃 튀는 충돌을 그린 게 단편 ‘연제태후’였고, 이를 좀더 폭넓게 다루다 보니 연작소설로 이어졌습니다.” 소설에는 ‘연제태후’ 외에 신라 제일의 미소년 준랑 이야기를 다룬 ‘준랑의 혼인’, 백성들이 우러러 섬겼던 선덕여왕과 왕자 인문을 다룬 ‘변신’, 엄숙하기까지 했던 교합례 모습을 생생히 묘사한 ‘혜성가’, 헤드스핀(머리를 땅에 대고 물구나무 선 채 회전하는 것) 모습을 보여주는 원효대사를 등장시킨 ‘천관사’ 등이 실렸다. “우국충정의 이미지가 덧씌워진 화랑에 대해 새로운 해석을 하고 싶었어요. 한데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우리 젊은이들의 비보잉이 세계적 수준이라는 기사를 보고, 그 맥이 전통문화에 닿아있지 않을까 생각했죠. 사물놀이나 농악 등에 화랑의 피가 섞여 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소설은 성에 관한 묘사가 너무나 대담해 문예지 ‘실천문학’ 연재 당시 ‘선데이 서라벌’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작가는 남녀의 성행위 모습이 장식된 토우장식 장경호 등 유물과 삼국유사의 행간을 읽으면서 소설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말했다. “현대물에서도 굳건한 입지를 만들고 싶다.”는 그는 “현재 산동네에는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경치가 좋은 아랫동네에는 부자들이 평화롭게 공존하는 경계의 이야기를 다룬 장편을 구상하고 있다.”고 전했다.9800원. ‘와인이 있는 침대’는 결혼을 거부한 채 살아가는 서른세살의 프리랜서 기자 다현과 주변 인물의 농도 짙은 사랑 이야기이다. 작가는 “와인을 매개로 쉽게 산화하지 않는 현대인의 ‘불멸의 사랑’을 말하고 싶었다.”고 집필 동기를 밝힌다. 다현은 어느 날 ‘21세기 유망직업’이라는 기사를 쓰기 위해 항공관제사 ‘연우’를 취재하면서 그에게서 남다른 매력과 신비감을 느낀다. 와인에 대해 해박한 지식을 갖고 늘 와인을 옆에 두고 있는 연우와 다현의 사랑은 그윽하게 숙성된 와인을 닮았다. 반면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적당히 즐기는 사랑에 익숙한 잡지사 편집장 ‘은혜’ 등 주변인물의 사랑은 산화하기 쉬운 와인과 같다. 그는 “사랑과 와인을 나란히 놓는다면 주인공들의 사랑은 책의 말미에 등장하는 불멸의 와인 ‘마데이라’와 같은 스타일”이라고 설명했다. 소설은 풍부한 와인 상식을 담고 있다. 이런 까닭에 와인 입문서처럼 흥미롭게 읽힌다. 작가는 “와인에 대해 따로 공부한 적은 없고 소설을 쓰는 과정에서 와인에 대해 배웠다.”며 “항상 침대 옆에 와인을 두고 즐기지만 소설을 쓰는 동안은 와인보다 폭탄주를 즐겼다.”고 털어놨다. 그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품격 있는 문학을 하고 싶다.”며 “장편 하나와 중편 하나를 준비 중”이라고 귀띔했다.1만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안주영기자 jya@seoul.co.kr
  • ‘태국發 공포영화’ 국내 상륙

    ‘태국發 공포영화’ 국내 상륙

    올여름 극장가에 태국발(發) 공포영화들이 몰려온다. 여름이면 어김없이 5∼6편씩 선보이던 국내 공포영화들이 제작·투자 환경이 위축돼 자취를 감추면서 대신 태국 공포물들이 그 자리를 메우고 있는 것. 태국 공포영화들은 불교의 영향을 받아 윤회사상이나 업보 등을 소재로 하는 것들이 많다. 자극적이고 엽기적인 요소가 강한 일본이나 할리우드 공포영화와는 달리 극전개가 느리고 서정적인 면이 두드러진 것도 또 다른 특색이다. 뛰어난 연출력으로 할리우드에서도 종종 리메이크되는 태국 공포물들은 귀신과 한 등 한국 관객들에게도 친숙한 내용이 적지 않다.‘셔터’(2005년),‘샴’(2007년) 등이 흥행에 잇따라 흥행에 성공하며 국내에도 마니아층을 형성하고 있다. 올해엔 악몽이 점차 현실이 되어가는 미스터리를 풀어헤친 ‘바디’가 지난 29일 태국 공포영화로는 처음 선보였다. 의문의 지갑에 얽힌 원한을 소재로 한 이 영화는 ‘셔터’와 ‘샴’을 제작한 태국의 유명 제작사 GTH의 작품. 또 불교의 ‘업(業)’을 키워드로 한 영화 ‘카르마’도 새달 19일 개봉한다.‘시티즌 독’ ‘블랙 타이거의 눈물’ 등을 연출한 태국 뉴 웨이브의 선두주자 위시트 사사나티앙 감독이 선보이는 첫 공포영화다. 두 여자의 애증을 다룬 이 작품의 잔혹 영상은 한국의 공포영화 ‘기담’을 연상시킨다. 이밖에 제시카 알바 주연의 ‘디아이’(새달 5일 개봉)는 2002년 태국과 홍콩의 합작 공포영화 ‘디아이’를 리메이크한 것. 대형사고나 죽음을 예견하는 소녀의 각막을 소재로, 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다. 실제 관속에 들어가 죽음을 체험한 뒤 겪게 되는 공포를 다룬 ‘카핀’ 또한 새달 말 개봉될 예정이다. 이와 과련,‘카르마’‘더 스크린’ 등의 태국 공포물들을 수입한 영화사 누리픽쳐스 정성렬 마케팅팀장은 “주로 원혼을 소재로 한 태국 공포영화들은 은근한 공포를 선호하는 국내 관객의 정서와 맞아떨어져 이미 브랜드화되고 있다.”면서 “‘저비용 고효율’이 특징인 태국 영화들은 수입가도 저렴해 국내 수입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라고 말했다. 이은주기자 erin@seoul.co.kr
  • 말라죽은 꽃 가지에서 피어난 ‘우담바라’

    국내에서도 매우 상서로운 꽃으로 여겨지는 ‘우담바라’가 중국에서 발견돼 네티즌들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불교 경전에 등장하는 우담바라는 3천년 만에 한 번 꽃이 핀다는 전설의 꽃으로 여래(如來)가 세상에 태어날 때 피는 꽃으로 알려져 있다. 우담바라는 불교가 발달한 중국에서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3천년에 한 번 꽃을 피운다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지난 29일 중국 허난(河南)성의 한 평범한 가정집에서 발견된 우담바라는 약 40송이 가까이 되며 길이는 1cm가 조금 넘는다. 집 주인은 “집에 놓아두었던 화분에서 우연히 이 꽃을 발견하게 됐다.”면서 “게다가 이 꽃은 흙에서가 아닌 이미 말라 죽은 다른 꽃의 가지에서부터 피기 시작했다.”며 놀라워했다. 전문가에 따르면 우담바라는 중국 전역에서 발견되기는 하나 그 빈도가 매우 낮으며 일반적으로 밤에 꽃을 피우고 하루사이에 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우담바라는 특수한 조건에서 흙이 아닌 유리나 나무 또는 금속위에 꽃을 피우기도 하며 국내에서는 지난 겨울 용산 소방서의 한 캐비닛 위에서 꽃이 펴 주위를 놀라게 하기도 했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다시 불붙은 ‘종교 침해’ 논란

    다시 불붙은 ‘종교 침해’ 논란

    불교계의 ‘10·27법난’과 개신교계의 ‘강의석군 소송’과 관련해 진정 국면에 들었던 ‘종교 침해’ 논란이 재연되고 있다. 불교계는 1980년 신군부에 의해 자행된 ‘10·27’법난에 대한 명예회복과 보상에 별 진전이 없자 국방부를 항의방문하는 등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그런가 하면 학내 종교수업에 반대하다 퇴학당한 강의석(22·서울대 법대 휴학)씨가 2심에서 패소한 데 대해 시민사회단체들이 학내 종교자유를 촉구하며 연대운동에 돌입했다. ●‘10·27법난 특별법 시행령에 불교계 입장을´ 불교계는 1980년 신군부의 불교탄압 사건인 ‘10·27’법난을 ‘한국불교 최대의 굴욕’으로 여기고 있다. 피해가 가장 컸던 조계종을 중심으로 법난에 대한 정부차원의 명예회복과 보상을 요구해온 끝에 ‘10·27법난 피해자의 명예회복 등에 관한 법률’ 제정을 이끌어 냈다. 불교계가 이 법난과 관련해 최근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선 것은 현재 제정 중인 이 법률의 시행령에 불교계의 입장이 반영되지 않고 있기 때문. 다른 과거사위원회와는 달리 10·27법난 관련 위원회의 위원장이 실무국장급에 머물고 있고 피해 당사자인 종단 추천 인사를 위원회에 포함시키는 것을 주저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조계종 ‘10·27법난에 대한 특별법 제정추진위원회’(추진위 공동위원장 법타·원학 스님)는 지난 22일 국방부를 전격 항의방문했다. 추진위는 이날 방문 자리에서 정부에 대해 위원회 구성에 있어 시행령에 ‘피해종교단체 추천자의 위원 위촉’을 명시할 것과 아직도 해명하지 못하고 있는 의문들을 해결할 수 있는 학술연구활동과 기념행사, 역사관 건립, 추모단체 지원 등을 시행령에 명문화할 것을 강력히 요구했다. 피해 스님들에 대한 명예회복 기능이 강화될 수 있도록, 심사분과위원회와는 독립된 명예회복추진분과위원회를 신설할 것도 주문했다. 국방부는 일단 “문화체육관광부와 협의해 좋은 시행령을 만들어 보겠다.”고 응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추진위와,22개 불교 종단이 가입한 불교종단협의회는 “요구안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경우 불교 신자들이 동참하는 전 불교계 항의운동에 나설 것”이라고 밝혀 결과가 주목된다. ●‘강의석 사건은 인권존중의 바로미터’ 2004년 서울 대광고측의 종교수업 강요에 반대하다, 퇴학 처분당한 강의석씨가 진행해 온 손해배상청구 소송은 국민의 기본권과 종교자유 측면에서 관심을 끌어온 사건. 서울 고등법원이 “학교와 교육청이 강씨에게 1500만원을 배상하라.”고 판결한 원심을 깨고 지난 8일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리자 시민사회단체들이 강력하게 반발하고 나섰다. 강의석씨와 함께 공익소송을 대리해온 종교자유정책연구원은 27일 대법원에 상고장을 접수시켰다. 강씨 등은 “지난 2005년부터 진행된 재판에서 예배에 참석하지 않은 학생들을 손바닥으로 때리면 종교강요가 아니고 몽둥이로 때리면 종교강요로 보는 것과 같은 법 논리를 지켜보면서 씁쓸한 생각이 들었다.”면서 “현재도 진행되고 있는 학교내 종교강요가 사라지기 위해서는 100명, 만명의 원고가 나와 법에 호소해 종교계 사립학교의 관행이 개선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인간교육실현학부모연대, 인권실천시민연대, 종교자유정책연구원, 참교육을위한전국학부모회, 학교종교자유를위한시민연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한국YMCA전국연맹 등 11개 시민사회단체도 강씨의 입장을 옹호한 채 연대운동에 돌입했다. 이들 시민사회단체는 27일 강씨의 대법원 상고에 앞서 합동 기자회견을 열고 “강의석 사건은 소송의 승패를 넘어 한국사회가 조금이라도 더 인권존중적인 사회로 갈 수 있는 바로미터가 될 것”이라면서 “대법원의 논쟁을 통해 상식이 통하는 사회를 만드는데 법원이 마지막 보루 역할을 하라.”고 주문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김문기자가 만난사람]음악인생 40년 국민가수 현철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떠오르는 당신 모습 피할 길 없어라∼’ 35년 결혼생활, 부부싸움 한번 없었다. 언성을 높이는 경우도 없었다. 그야말로 사랑의 콩깍지 속에서 알콩달콩 살기에 바빴다. 강상수·송애경 부부. 결혼 초기 10여년 동안은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생활이었다. 견디다 못해 집을 뛰쳐나갔을 법도 한데 잔소리조차 안한 부인, 이에 늘 따뜻한 말로 위로해준 남편. 사랑의 힘으로 모든 역경을 극복했고 이제는 남 부럽지 않게 살고 있다. 최근에는 새 식구인 예쁜 며느리를 얻었고, 올가을에는 듬직한 사위까지 생긴다. 살아갈수록 새록새록 행복이다. 이 이야기에 나오는 남편 강상수는 다름 아닌 가수 현철(63)의 본명이다.‘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사랑의 이름표’‘봉선화 연정’‘사랑은 나비인가 봐’ 등 수많은 히트곡을 불러 국민가수로 사랑받는다.60대 중반을 바라보는 나이에도 여전히 ‘오빠’ 소리를 듣는다.‘사랑의 이름표’는 초등학생들까지 따라 부를 정도다. 대중가수의 인기라는 것이 오르락내리락, 또 반짝했다가 사라지는 경우가 많은데 그는 다르다. 지난 20년 동안 흔들림없이 국민적 인기를 유지하면서 ‘트로트계 황제’의 위치를 굳건히 지키고 있다. 집에서 손자의 재롱을 볼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인기를 끄는 비결은 뭘까. 토종 된장 같은 구수한 목소리, 사투리가 짙게 묻어나는 입담, 민요풍이 가미된 독특한 꺾기 창법은 누구도 흉내를 낼 수 없다. 일본의 어떤 학자는 그의 목소리를 연구해 보겠다며 특별주문(?)까지 했단다. 현철은 1968년 ‘무정한 그대’로 데뷔했으니 올해로 음악인생 40년이 되는 셈이다. 여기에는 무명생활 20년이 포함된다. 대기만성, 나이 40대 중반에 ‘쨍’하고 햇빛을 본 그는 평소 “부인의 내조가 없었다면 오늘의 성공은 불가능했다.”고 말한다. 지난 주 그를 만났을 때에도 “우리 아내와는 한번도 부부싸움을 안 했어예, 어린 나이에 나한테 시집와 고생을 무척 많이 했지예.”라고 자랑하기 바빴다. 그는 가정의 달을 맞아 서울 장충체육관(8일)과 대전 컨벤션 센터에서 카네이션 효 콘서트(11일)를 개최했다. 또 최근 MBC ‘쇼 뮤지컬 판타지’ 전국 공연과 미국 LA 공연을 성황리에 마쳤으며 신곡 ‘아미새’로 인기의 온도를 더욱 높이고 있다. 서울 여의도의 모 방송국 ‘현철 룸’에서 문을 꼭 걸어잠그고 1시간 동안 인터뷰를 가졌다. ▶‘아미새’가 요즘 최고 히트입니다. 아미새는 어떤 뜻인가요. “사랑하는 사람은 때론 꼬집고 싶고 또 얄미울 때도 있잖아요. 아름답고 얄밉기도 한 사랑, 바로 그 뜻이 담긴 ‘아름답고 미운 새’를 말합니다. 감정이 흠뻑 담긴 가사에 흥겨운 가락의 국악창법을 접목시켰더니 대박이 터졌습니다. 주부들이 설거지하다가도 ‘아미새’ 노래가 나오면 TV 앞으로 달려나온다고 하데예.” ▶그 매력이 독특한 꺾기 창법에 있다고 합니다. “저는 노래 부를 때 ‘도레미’ 중 높은 ‘미’에서 꼭 꺾어집니다. 민요가락 중 ‘닐리아 닐리아 니나노∼’라고 할 때 끝에 음이 올라가는 식의 창법을 응용했지요.” ▶꾸준하게 인기를 얻는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우리나라의 토종 김치와 된장 냄새가 담겨진 노래라는 얘길 많이 들어요. 또한 전철 탈 때도 있고, 동네 대중 목욕탕에도 자주 갑니다. 아마 촌스럽고 편한 느낌의 아저씨 같아서 인기가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수많은 히트곡이 있습니다. 이들 중 가장 애착을 느끼는 곡이라면. “무명가수 시절은 정말 돈도 못 벌고 셋방살이로 전전긍긍하며 아내를 너무 고생시켰습니다. 고민 끝에 가요계를 떠나려고 마지막 곡으로 아내에게 바치는 노래를 만든 것이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이었지요. 평소 알고 지내던 부산 모 방송국의 김양화씨가 작사를 하고 제가 곡을 붙였습니다.1985년도인가 그랬죠. 정말 출세곡이 될 줄 몰랐습니다. 그래서 가장 애착이 갑니다. 이후 ‘사랑은 나비인가 봐’와 ‘내마음 별과 같이’‘들국화여인’ 등이 연이어 터지면서 1988년부터 3년 연속 KBS가요대상과 MBC10대가수상을 수상했지요.” ▶무명 때는 어디에서 지냈나요. “주로 부산에서 헤맸습니다. 처음에는 솔로였다가 1974년에는 ‘현철과 벌떼’를 결성, 팝송을 리메이크하며 열심히 불렀지만 주목을 받지 못했어요. 그때 13번이나 이사를 했는데 주로 월세 1만∼2만원짜라 단칸방에서 생활했습니다. 친구집에서 셋방을 살면서 봉지쌀 사다 먹고 연탄 낱장으로 사다가 추위를 달래기도 했지요. 마지막 이사 할 때에는 철거민 딱지를 사서 12평짜리 주택에서 살다가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무명시절의 일화 한토막.1987년 리비아 대수로 공사현장에 공연을 갈 때였다. 당시 리비아에 파견된 근로자들은 고국의 부인을 보고 싶은 마음에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을 부른 가수를 공연단에 꼭 포함시켜 달라고 사전에 요청했다.KBS방송팀은 주현미 현숙 조용필 김연자 김세환 백남봉 나미 등 당시 내로라하는 인기스타들과 함께 현철을 합류시켰다. 그런데 이때까지만 해도 얼굴이 안 알려진 현철을 보더니 다들 리비아로 떠나는 근로자로 알았던 것. 그뒤 현철은 보란듯이 가요대상 등을 휩쓸어버려 동료 가수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특히 1989년 KBS가요대상을 받을 때 무명시절의 설움이 한꺼번에 묵받쳐 시상식에서 ‘사나이 눈물’을 왈칵 쏟아내 전국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적시게 했다. 현재 그는 서울 구의동 집에서 23년째 살고 있다. 그동안 번 돈으로 4층 건물을 구입해 식재료가게와 세탁소 등에 세를 내주고 그의 식구들은 4층에 산다. ▶다니던 대학 경영학과를 그만두고 음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우리 어머님이 ‘울고 넘는 박달재’를 무척 잘 불렀어요. 제가 그 소질을 이어받았습니다. 콩쿠르대회에도 많이 나갔지요. 그런데 아버님은 제가 장차 은행원이 되기를 원했어요. 야단도 많이 맞았습니다. 결국 아버님의 고집에 못이겨 경영학과에 진학했지만 끼를 못버렸던 것이지요. 또 동료나 주변 사람들이 목소리가 정말 독특하니 그 방면으로 한우물을 파라고 권하더군요.” ▶‘현철과 벌떼들’의 멤버는 지금도 만나는지요. “요즘 트로트계의 유명한 작곡가로 활동 중인 박성훈씨가 벌떼들 멤버였습니다. 박씨는 제 노래 ‘싫다 싫어’로 가요대상을 받기도 했지요. 당시 모두 7명이었는데 나머지는 만나질 못하고 있습니다.” 현철이라는 이름이 뜨는 바람에 박성훈·박현진(봉선화 연정 작곡)씨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그는 작곡가 외에 ‘정정정’을 부른 가수 한영주 등 후배 양성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는다. ▶트로트란 무엇입니까. “평양 공연을 갔을 때나 외국 공연 갔을 때나 트로트를 부르면 한마음 한뜻이 됩니다. 이것이 우리 가요의 힘이지요. 기쁨과 슬픔이 담겨 있습니다. 고상한 대학교수도 술자리에서 트로트를 부르지 않습니까. 일생 동안 오직 트로트의 길만 갈 것입니다.” 현철 부부는 독실한 불교신자로 알려져 있다. 특히 현철은 지방공연을 갈 때마다 주변에 사찰이 있으면 꼭 들러 부처님께 기도를 한다. 부인의 안부를 물었더니 “무명시절에는 옷가게도 하고 카세트 장사도 하면서 아이도 키우고 집안을 이끌어갔다.”면서 지금도 방송 모니터를 하는 등 남편 내조에 열심이라고 했다. 부산에서 태어난 그는 대저중학교와 동성고등학교를 졸업했다. 그의 부친은 종묘장사를 했으며 모친은 5일시장에서 좌판 깔고 씨앗을 팔곤 했다. 그는 “말없이 꿋꿋하게 사시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고 아내가 도망도 안 가고 잘 견딘 것 같다.”고 했다. 부인과 결혼할 때는 집안형편이 어려워 물 한그릇 달랑 떠놓고 식을 올렸다고 했다. 그는 자전거를 타고 동네 한 바퀴를 도는 것을 좋아한다. 가끔 아들하고 테니스도 친다.“언제나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면 젊어지지 않겠어예.”라며 활짝 웃는다.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사진 이호정기자 hojeong@seoul.co.kr ■ 그가 걸어온 길 ▲1945년 부산 출생(본명 강상수). ▲1964년 부산 동성고 졸업. ▲1966년 동아대 경영학과 중퇴. ▲1968년 데뷔곡 ‘무정한 그대’ 발표. ▲1974년 록밴드 ‘현철과 벌떼들’ 결성. ▲1988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1989년 일간스포츠 골든디스크상. ▲1990년 KBS 가요대상,MBC 10대가수상, 고복수 가요제 대상, 제1회 서울가요대상 7대가수상. ▲1997년 국무총리표창(선행 연예인). ▲1999년 제36회 저축의 날 국민포장,KBS 올해의 가수상. ▲2002년 대한민국 연예 예술상 특별공로상(대통령 표창). ▲2006년 목관문화훈장. ●주요 히트곡 앉으나 서나 당신 생각, 내 마음 별과 같이, 사랑은 나비인가 봐, 들국화 여인, 봉선화 연정, 사랑의 이름표, 아미새 등.
  • [부고]

    최춘식(우지스건설 회장)씨 모친상 창식(하나은행 강남지역본부장)씨 백모상 24일 영동세브란스병원, 발인 27일 오전 6시 (02)2019-4003 조영진(현대자동차 과장)씨 부친상 배우한(한국일보 기자)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7일 오전 9시 (02)3010-2238 박영서(현대하이카다이렉트자동차보험 감사)미경(문화랑 대표)씨 부친상 신창수(조국평화통일 불교협회 상임이사)강명효(주한 호주 퀸스랜드주 한국대표부 대표)최승국(세명대 교수)신찬식(LG 디스플레이 상무)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 (02)3010-2294 변성환(자영업)은환(경향신문 편집부 기자)은진(사천시 청소년상담실 사회복지사)씨 모친상 23일 진주 경상대병원, 발인 26일 오전 9시 (055)750-8653 이익상(전 동광전기 이사·예비역 공군 중령)씨 별세 윤권(좋은씨앗 부장)기섭(시나리오 작가)씨 부친상 김인수(금오공과대 신소재공학부 교수)박우경(페이켐 대표)씨 빙부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7시 (02)3010-2252 한복덕(전 이화여대 교수)씨 별세 서승원(선진분말 감사)씨 모친상 장선희(세종오페라단 단장)씨 시모상 24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6일 오전 6시 (02)3010-2251 이수민(자영업)수명(”)민효(CJ투자증권 지점장)씨 모친상 24일 이대목동병원, 발인 26일 오전 5시 (02)2650-2753 임채완(전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채기(포스코 팀장)채희(대학강사)채호(미르엠종합건설 대표)효녕(자영업)씨 모친상 정숙희(대학강사)이정순(자영업)도동숙(신현고 교사)김진숙(자영업)씨 시모상 이윤휘(신창기공 차장)씨 빙모상 24일 광주 그린장례식장, 발인 27일 오전 8시30분 (062)250-4407 이기서(고려대 명예교수)기웅(열화당 대표·파주출판도시 이사장)기량(사업)기연(STX중공업 부사장)씨 모친상 강유(JC미디어 프로덕션사업부 실장)강빈(코스콤 PB업무팀 과장)씨 조모상 24일 고대안암병원, 발인 26일 오전 8시30분 (02)921-3699
  •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

    “작가보다 몇 수 높은 독자들이 있는가 하면, 천자문의 천지현황(天地玄黃)을 3년 넘게 읽어도 ‘도로아미타불’인 독자들도 있게 마련입니다. 송두리째 삼켜 버릴 책이 있는가 하면, 어떤 책은 삼킨 것을 몇 번이고 토해내 씹고 삼키고 또 씹어야 하는 책도 있지요.” ‘난해 작가의 대명사’ 박상륭(68)씨가 장편소설 ‘잡설품(雜說品)’(문학과지성사 펴냄)을 내놓았다.1969년부터 캐나다 밴쿠버에서 거주하고 있는 작가가 창작집 ‘소설법’ 이후 3년 만에 선보이는 작품이다. 인간이 해탈에 이르는 과정을 들려주는 ‘잡설품’은 1975년 구도 이야기를 다룬 대표작 ‘죽음의 한 연구’와 고행 이야기를 그린 ‘칠조어론’에 이은 ‘죽음의 한 연구’ 시리즈의 완결편이다.‘죽음의 한 연구’는 가상의 고장 ‘유리’의 육조(六祖) 촌장 이야기.‘칠조어론’이 작가가 칠조(七祖)라고 ‘참칭’하며 펼치는 설법을 담고 있다면,‘잡설품’은 주인공 시동이 고행 끝에 해탈하는 팔조(八祖)가 되는 과정을 그렸다. 조(祖)는 불교 선종의 조사(祖師)를 일컫는데, 초조(初祖) 달마로부터 육조(六祖) 혜능까지 이어졌다. ‘잡설품’은 경전과 소설의 사잇글이라는 뜻의 ‘잡설’에다 불교 경전에서 내용을 담는 그릇으로 사용되는 ‘품’을 덧붙였다.“세상에는 두 종류의 잡설이 있지요. 하나가 철학자 니체가 쓴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이고 나머지 하나가 나의 글이죠.‘차라투스트라는’가 몰락의 축에서 쓴 글이라면,‘잡설품’은 상생의 축을 바탕으로 썼습니다. 추상적인 것도 물질로 구상화해 사고하는 서구적 한계를 벗어나 마음속에 우주가 깃든 추상적 이미지의 동양 정신을 풀어 보려고 했죠.” 소설도, 서사시도, 경전도 아닐 수 있지만 소설이나 서사시, 경전 모두로도 읽힐 수 있다 보니 이 글의 제목을 ‘잡설’이라고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소설은 작가 자신이라 할 패관을 화자로 등장시켜 극과 시의 형태를 종횡무진 오가며 주인공 시동이 해탈하는 과정을 그려낸다.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동서고금의 신화와 설화, 종교와 철학을 한데 아우르며 작가의 화두인 ‘죽음’을 통한 삶과 생명의 이해라는 문제의식을 펼쳐낸다. 작가가 소설은 쉽게 썼다고 여러 번 강조했지만 소설 자체가 형이상학적인 심오한 철학을 담고 있는 까닭에 읽기에 적잖은 공력과 인내가 필요하다. 소설은 인간 본연의 문제를 깊이 있게 짚어낸다.“오늘날 물질적으론 매우 풍요롭습니다. 하지만 인간의 정신은 날로 황폐해지고 있습니다. 타락한 현대 우리 사회를 극복하는 방법은 바로 본연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것이죠.” 난해한 소설을 쓰는 작가라는 평가에 대해서도 한마디했다. 하나의 책이 모든 계층 독자들의 기호에 맞아 모두를 만족시킬 수는 없다는 것. 작가는 “난해하다, 난삽하다, 읽을 수 있는 글이 아니다라는 말은 일견 찬사일 수도 있지만, 결과적으로 작자와 독자 사이를 소원하게 하는 만큼 작가로서는 매우 손해를 보게 만드는 말”이라고 털어놨다. “허리도 아프고 고혈압·당뇨 등 온갖 성인병은 다 갖고 있어요. 아직까지 다음 작품은 생각하지 않고 있습니다. 절필 선언은 아니지만, 물러날 때가 되면 물러나야지….” 작가는 “이제 마지막 이민 길 가는 기분”이라며 “즐겁게 죽는 연습이나 해야겠다.”며 허허롭게 웃었다.1만 4000원. 글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사진 류재림기자 jawoolim@seoul.co.kr
  • 설화의 이면에 감춰진 신라인의 정치적 욕망

    우아한 자태와 화려한 의장, 장엄한 소리로 ‘신품(神品)’이라 불리는 에밀레종(성덕대왕신종). 그 한 서린 긴 여운의 종소리에는 한 편의 슬픈 설화가 실려 내려온다. 종 만드는 일이 실패를 거듭하자 어린 아이를 제물로 바쳐서야 비로소 완성할 수 있었다는 이 특별한 종. 아이의 한이 서려 ‘어미 때문이야’라고 외치는 듯한 ‘에밀레∼’ 소리를 낸다고 한다. ‘에밀레종의 비밀’(푸른역사 펴냄)은 이처럼 슬픈 내력을 지닌 에밀레종의 진실을 밝힌다. 저자는 ‘석굴암, 그 이념과 미학’ 등의 책을 낸 성낙주(54·서울 중계중 교사)씨. 에밀레종 설화와 만파식적 설화를 바탕으로 에밀레종의 이면에 감춰진 폭력적 진실과 신라인의 정치적 욕망을 파헤친다. 저자는 에밀레종 설화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지적한다.“신라사회의 성숙도나 종교사상적 동향 등을 감안할 때 아이를 끓는 쇳물 속에 던졌을 확률은 단 1%도 없습니다. 신라 왕실의 정치적 역학관계를 폭로하는 하나의 알레고리일 뿐이지요.” 당시 종을 만드는 일이 거국적인 공개 불사(佛事)이며, 불교 자비사상이 널리 퍼져있는 상황에서 아이를 제물로 바치는 일은 상상할 수 없다는 것. 저자는 희생된 아이는 중대 신라시대의 권력투쟁에서 희생된 혜공왕을 상징하며, 제 아이를 제물로 바친 어미는 당시 혜공왕을 쥐락펴락하며 섭정한 대비 만월부인이라고 주장한다. 에밀레종 설화에는 혜공왕을 동정하고 외척세력을 비난하기 위한 정치고발적 성격이 담겨 있다는 얘기다. 책은 에밀레종의 독창적인 양식에 대해서도 다룬다. 저자에 따르면 에밀레종은 대나무 모양의 원통에 용이 두 다리를 앞뒤로 힘차게 뻗어 물살을 가로질러 오는 형상을 하고 있다. 이는 문무왕을 형상화한 것으로, 에밀레종은 ‘소리로 세상을 다스려라.’라고 유언했던 문무왕의 욕망을 담고 있는 신기(神器)라는 것이다. 에밀레종은 “무작위로 이뤄진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철저한 조형원리에 따라 치밀하게 기획된 결과물”이라는 것이 책의 요지다.2만 5000원. 김규환기자 khkim@seoul.co.kr
  • [종교플러스] 감로사, 충담 대종사 추모 영산재

    경기도 가평 감로사는 충담 대종사 소신 열반 10주년을 맞아 다음달 6일 오전 11시 추모 영산재를 봉행한다. 범음범패 대종장 스님들이 집전하며 동국대 불교대학장을 지낸 목정배 교수의 학술발표와 종단 원로·중진 스님들의 증명으로 법회도 봉행한다.(031)584-0117.
  • [종교플러스] 진관사 불교가족 복지 프로그램

    조계종사회복지재단은 28일∼7월15일 매주 화요일 오후 1시 서울 은평구 진관사서 ‘4C네 8남매 이야기’ 제목의 불교가족 복지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돌봄’‘치유’‘소통’‘연대’ 등 4C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을 8차례 진행한다.(02)723-5101.
  • 도시 젊은이가 배우는 ‘농촌의 삶’

    도시 젊은이가 배우는 ‘농촌의 삶’

    ‘날이 갈수록 생명이 죽어가고 공동체가 파괴되어 가는 오늘날에도 모든 이가 마음의 고향인 농촌에 관심과 애정을 기울이고 온갖 죽어가는 것들을 살리는 데 앞장서게 하소서.’(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 ‘농민을 위한 기도’) 청년들이 생태적인 삶을 배우고 실천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천주교계에서 처음으로 운영된다. 천주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와 우리농촌살리기운동본부가 함께 개설하는 ‘청년 농부학교’.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가 지난 2006년부터 매년 가을 일반인을 대상으로 진행해온 ‘농부학교’를 청년 층으로 확대했다. ‘청년 농부학교’는 종전 불교계를 중심으로 운영해온 귀농자 양성 프로그램과는 차별화된 것이 특징. 단순히 귀농을 준비하는 도시인들에 대한 귀농 안내와 교육을 넘어 노동체험과 현장교육을 통해 청년들이 도시에서 좀 더 생태적인 삶을 살 수 있도록 돕는 데 초점을 맞춘다. 제1기 ‘청년 농부학교’는 7월7일부터 10일까지 천주교 청주교구 관할인 충북 괴산군 청천면 공역에서 열릴 예정. 이를 위해 희망자를 이달 말까지 모집한다. 학교는 농업과 농촌 현실에 대한 강의와 나눔활동을 비롯해 농민들과의 대화, 지역문화 생태 체험 프로그램으로 짜여진다. 참가 청년들의 ‘생태농활’도 눈길을 끄는 부분. 참가자들은 유기농업을 실천하고 있는 농민들의 농사일을 직접 돕게 된다. 농약을 쓰지 않는 대신 일일이 손으로 풀을 뽑고 양계장에서 닭에게 사료를 주고 유정란을 닦고 정리하는 일도 한다. 농부학교 기간 동안 합성세제나 인공약품을 일절 쓰지 않으며 인스턴트 음식도 먹지 않는다.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맹주형 교육부장은 “요즘 문제가 되고 있는 조류독감, 광우병은 더 빨리, 더 크게, 더 많이 먹기 위한 인간의 욕심이 불러 온 동물의 역습”이라며 “농부학교에 참여하는 청년들을 중심으로 자연을 거스르지 않는 생태적 삶의 실천운동을 확산시켜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02)727-2274,2283.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김성호 전문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17) 헝가리 출신 청안 스님

    2005년 입적한 숭산 스님은 생전 5만여명에 달하는 외국인을 제자로 삼았다. 한낱 공허한 말에 얽매여 머물지 않는 그의 실천행 법문에 감화된 많은 지식인들이 출가해 수행 중이거나 한국불교 포교에 앞장서고 있다. 헝가리 출신의 청안(42·淸眼) 스님도 그중 한 사람. 헝가리에 머물면서도 틈틈이 불교TV 강의와 법문집 ‘꽃과 벌´(김영사)을 통해 국내에 이름이 알려져 숭산 제자 중 가장 대중에게 인기높은 ‘스타 스님´이다. 출가 전 자신이 그랬던 것처럼 무명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본래불성(本來佛性)´을 찾아 주기 위해 고국 헝가리에 유럽 최초의 한국식 사찰 원광사(www.wonkwangsa.net)를 짓는 불사에 매달려 있는 청안 스님. ‘나의 마음이 깨끗해지면 세상이 하나가 된다.´는 숭산 스님의 ‘세계일화(世界一花)´ 사상을 몸으로 펴가는, 한국불교의 대표격 국제포교사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깨달음 얻어 하안거(夏安居) 결제를 사흘 앞둔 16일 오전. 수소문끝에 조계사 일주문에서 만난, 훤칠하게 키가 큰 스님은 환하게 웃으며 손을 모았다. 나란히 찻집으로 향하는 길에서도 ‘스타 스님´을 알아본 신도가 거푸 인사를 하는 바람에 여러 번을 멈춰서야 했다. 지난해 11월 숭산 스님 3주기 행사 때 한국에 들어온 이후 6개월 만의 방한. “안거를 나기 위해 들어 왔느냐.”고 묻자 “현실적인 이유” 때문”이라며 헝가리 부다페스트 외곽에 짓고 있는 원광사 이야기부터 꺼낸다. “한국식 그대로 절을 지으려니 꼼꼼히 챙길 게 많아요. 벌써 두어차례 다녀갔지만 공을 들일수록 손볼 것이 생겨납니다. 이번엔 서까래와 기와 때문에 헝가리 와공들을 대동하고 절집들을 돌면서 전문가들을 만나고 있습니다.” 양양 낙산사에서 대목장을 만나 ‘한 수´ 배웠지만 출국하는 23일까지 찾아야 할 사찰과 만날 사람들이 많아 바쁘단다. 헝가리의 신도 6명도 함께 들어와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을 백담사에서 지냈다. 백담사는 숭산 스님이 조실로 주석했던 곳. 스승의 흔적과 정신이 고스란히 스며 있으니 응당 여느 사찰과는 달리 각별할 것이다. 헝가리 중산층 가정, 의사 아버지 밑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그가 숭산을 만나 삶의 모든 것을 송두리째 바꾼 이유는 무엇일까. 무슨 말을 들었기에 그토록 자신을 괴롭혀 왔던 혼란을 단박에 털고 벼락 같은 깨침에 닿았을까. 숭산의 제자들이 대부분 그랬던 것처럼 청안도 그 유명한 법문 ‘방하(放下)´를 입에 올린다. “오직 모를 뿐, 그저 내려 놓아라. 그런 다음 그냥 하라(Just do it).” ‘내가 누구이고 무엇 때문에 이곳에 이렇게 살고 있느냐.´는 보편적인 의문이라면 누구나가 한번쯤은 품었을 터. 하지만 그냥 모든 것을 내려 놓으라는 ‘방하´ 한마디에 벼락 같은 해법을 찾았으니 예사 법기(法器)는 아니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에서 영어와 헝가리어를 전공한 어학도. ‘내가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에 더해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 것인지, 어떤 것이 좋고 어떤 것이 나쁘냐는 삶에 대한 고민과 의심에 끊임없이 시달렸단다. 이런저런 철학·심리학 책들을 뒤졌고 종교인들의 조언도 받았지만 답을 얻을 수는 없었다. 절친한 친구로부터 소개받은 관음선종 선방을 다니며 참선을 하다가 선방을 찾은 숭산 스님 법문 자리에서 문답을 통해 어느 곳에서도 찾을 수 없었던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고 한다. “실체가 아닌 나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릴 때 진짜 나를 보게 된다. 본디 내 안에 있는 이 불성을 닦게 되면 마음이 맑아지고 세상도 밝아지게 된다.” 헛된 생각에 휘둘리지 않고 있는 그대로 세상을 바라볼 때 나와 세상에 얽힌 매듭과 관계가 풀린다는 말은 당시 무슨 말로도 표현할 수 없는 큰 충격이었다. 대학시절 영어 교생으로 있던 어느 날. 수업을 마친 뒤 무심코 학교 잔디밭에 환하게 쏟아지는 빛을 보면서 불현듯 ‘스님´될 생각이 들었고 참선 수행에 깊숙이 빠져 들었다고 한다. 대학을 졸업하고 통역사로 일하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의 본산인 미국 프로비던스 선원 겨울 안거를 나면서 결국 출가를 결심, 해인사에서 행자교육을 받고 사미계를 받았다. 이후 통도사에서 비구계를 받았고 서울 화계사에서 2000년까지 수행 끝에 고국 헝가리로 돌아갔다고 한다. ●숭산스님의 ‘세계일화´ 이어 유럽에 한국불교 전파 한국불교가 좋아 한국 비구가 되었으니 한국에 머무는 게 바른 길이 아닐까. 비구계를 받은 ‘한국 스님´으로 꼬박꼬박 안거도 참여했지만 굳이 헝가리를 택한 이유를 들려 준다. “비구계를 받고 나서 적지 않은 갈등이 있었습니다. 한국에서 출가 전의 나같은 속인들을 위해 길잡이를 할까, 아니면 헝가리를 터전삼아 유럽 포교에 나설까를 놓고 많이 고민했습니다.” 1999년 숭산 스님으로부터 외국인 스님으론 사실상 최고 경지인 지도법사 인가를 받고 이듬해 결국 고심 끝에 헝가리를 택했다. 오스트리아, 슬로바키아, 리투아니아, 체코, 폴란드 등 발닿는 대로 유럽 각지를 돌며 포교에 나섰다고 한다. “고국으로부터 받은 은혜를 갚는다는 뜻도 있지요. 헝가리서 받은 내 몸과 교육, 집, 음식…. 이런 것들을 부처님 법(佛法)으로 갚자는 것이지요.” 헝가리에서 처음 3년간은 집시들을 위한 작은 선원에서 기거했다. 그러던 중 숭산 스님이 세운 관음선종 사찰들이 유독 유럽에만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스님과 주민들이 함께 생활할 수 있는 원광사를 짓기 시작한 것이다. 대웅전이며 크고 작은 선방, 탑, 요사채 등 한국 전통사찰 양식 그대로 지으려니 공사가 더디다. 2006년 선방 상량식을 갖고 식당이며 목욕탕 같은 우선 필요한 부대시설을 갖추었지만 주 건물인 대웅전과 명부전, 선방을 다 세워놓기엔 아직 갈길이 멀다. 한국불교를 온전히 담고 알리려면 그 그릇(원광사)부터 제대로 만들어야 한단다. 불교 십이인연(十二因緣)의 하나로 모든 사물이 무상(無常)·무아(無我)함을 모르고 갈애(渴愛)를 일으켜 윤회(輪廻)의 원인이 된다는 근본적 번뇌 무명(無明). 24년간의 무명에서 깨어나 한 줄기 빛과도 같은 깨침을 얻었다는 뜻이 담겼을까. 스님이 그토록 애착을 갖는 원광사의 이름 뜻이 궁금해졌다. 이름은 누가 지었을까. “관세음보살이 이름을 점지해 주셨다.”며 웃음을 피우더니 이내 정색을 한다. “헝가리를 비롯한 유럽 사람들은 한국불교와 일본, 티베트 불교의 차이점을 모르지요. 그 모르는 상태에서 제가 숭산 스님에게 받았던 것처럼 한국불교를 통한 깨침을 얻게 해주는 게 제 소명입니다.” 예상대로 그랬다. ‘모든 사람이 각자 갖고 있는 불성을 닦아 지혜와 자비, 보시행을 이뤄 세상을 밝히자.´ 본래의 빛, 불성을 찾아가는 공간이다. 출가의 원을 세운 지 어언 20여년. ‘나는 누구인가.´라는 근원적인 의문과 무명의 번뇌는 말끔히 소멸한 것일까. 오래 전에 제 이름을 잊어 버렸다는 청안 스님. 그는 스님의 본분은 끊임없이 수행하는 것뿐이라고 거듭 말한다. “끊임없이 버리고 내려 놓는 것이지요. 오직 모를 뿐 그냥 할 뿐입니다.” 한국불교를 삶의 또 다른 길로 선택한 푸른 눈의 납자가 가꾸는 ‘세계일화´의 꽃은 소문대로 튼실했다. 끊임없이 ‘스타 스님´을 찾는 손 전화의 울림들이 인터뷰를 힘들게 한다. 결국 스님을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는 누구인가의 전화를 받고는 서둘러 일어서며 한 마디를 남긴다. ‘Just do it´. 글·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청안 스님은 ●1966년 헝가리 출생 ●1990년 참선 수행 시작 ●1991년 숭산 스님 법문 듣고 불교 귀의 ●1992년 부다페스트 엘테(Elte)대학 졸업 ●1993년 미국 프로비던스 선 센터서 동안거 중 출가 결심 ●1994년 한국 입국 ●1995년 해인사서 사미계 수지, 이후 2000년까지 화계사서 수행 ●1996년 통도사서 비구계 수지 ●1999년 숭산스님으로부터 지도법사 인가 ●2000년 헝가리 귀국, 관음선원 주지 취임, 유럽 각지 돌며 참선지도 ●현재 부다페스트 외곽에 원광사 건립 불사 중
  • [Metro&Local] 소요산 입장료 폐지안 상정

    경기 동두천시는 18일 관광객 유치를 위해 소요산 입장료 징수를 폐지하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시의회에 제출했다고 밝혔다. 시의회는 27일 본회의를 열어 개정안을 처리할 예정이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소요산 관광객은 현재 2000원의 요금 중 대한불교조계종 봉선사 말사인 자재암 측이 징수하는 1200원만 내고 입장하면 된다. 앞서 시는 경원선 전철 개통과 함께 소요산 등산객이 늘어나자 지난해 3월 소요산 입장료를 폐지하려 했으나 자재암 측과의 의견이 엇갈려 무산됐다.동두천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교정 대상 수상자] 특별상

    ●면려상 남상학 서울구치소 교위 1979년 교도관으로 임용된 뒤 28년 5개월 동안 투철한 사명감으로 세입 확충과 직원 주차공간 마련 등에 힘썼다. 구치소 정화조 용량부족으로 오염 문제가 발생하자 의왕시와 여러 차례 협의를 통해 안양시 오수종말처리장에 직접 연결함으로써 시설보완에 필요한 막대한 국가예산을 절감했다. 또한 민원실에 민원인을 위한 유아놀이방을 새로 만들고 민원실 현관 입구에 휠체어가 다닐 수 있는 경사로를 설치해 장애인 처우 개선과 민원인의 편의를 적극 도모했다. ●창의상 김흥중 성동구치소 교위 1980년 교도관에 임용된 뒤 28년 1개월 동안 원칙적인 근무로 검신을 철저히 하여 도주사고를 예방하고, 직원들의 복지향상에도 기여했다. 성동구치소 법조타운 이전과 관련, 관계기관에 교도소 쪽의 입장을 전달해 서울시에서 책정한 부지보다 4000여평을 추가로 할당 받았다. 민원인용 주차장이 부족해 민원 제기가 빈번하자 테니스장을 주차장으로 전환하는 등 지역사회 발전에 기여했으며,93년부터 상일동 소재 중증장애인 수용시설에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공로상 정종훈 장흥교도소 교화위원 교도소 교정협의회 고문으로서 1992년에 교화위원으로 위촉돼 15년 6개월 동안 교화상담을 실시하고, 수용자 체육대회 등에 물품을 지원했다. 정신교육을 실시하고, 출소자에게 취업을 알선했으며, 교정위원 발전을 위해 기금 및 위원 대기실 비품 등을 기증했다.90년부터 지역의 불우 대학생 7명에게 6000여만원의 장학금을 지급했고, 장흥지청 예방위원으로 활동하던 2004년에는 절도범의 벌금 200만원을 대납하고 교화활동을 실천했다. ●자애상 최영순 영등포교도소 종교위원 1986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돼 21년 10개월 동안 활동했다. 수용자 종교집회 및 교리지도에 적극 참여했고, 다과류 및 생필품을 지원했다. 신앙생활에 대한 상담을 실시하고, 영치금을 지원했다. 또한 종교행사에 필요한 물품을 지원했고, 취업을 알선하는 등 출소자들이 안정을 되찾을 수 있도록 노력했다. 교도소내 정예직업훈련소의 책임봉사자로 일하며 천주교 신자들의 고충상담을 도맡아 ‘훈련소 어머니’로 불리는 등 교정교화에 헌신했다. ●박애상 홍재정 의정부교도소 종교위원 서울상북노회 전도목사로서 1995년 종교위원으로 위촉된 뒤 13년 7개월 동안 종교집회와 교리지도를 했다. 취업을 알선하고 벌금을 대납했으며, 수용자 정신교육과 교화강연을 했다. 교정복지선교회로부터 도서 2900여권을 지원받아 기증했다. 또한 2007년 모범 교정공무원 부부에게 격려 여행비를 지원하고 직원탁구장의 바닥공사 비용과 운동기구 구입비 등을 지원했다. 또한 서울지방교정청 교정연합회 운영위원과 한국기독교 교정복지선교회 운영이사로 활동하며 교정교화에 공헌했다. ●성실상 윤동한 대구교도소 교위 1977년 교도관에 임용된 뒤 30년 11개월 동안 수용자 교정교화에 헌신했다. 소송서류 담당시 서류 작성에 필요한 법률상식 소형책자 150여권을 자비로 만들어 수용자들에게 도움을 주었다. 가족과 연락이 단절된 수용자 20여명에게 가족과 연락이 닿도록 조치해 주는 등 성실한 업무 수행으로 99년 변호사 협회장상을 받았다. 또한 2005년 수용자 정신교육 담당시 외부 전문강사들을 초빙해 수용자를 위한 음악회를 개최하고 2004년부터 지체장애인을 위해 봉사하는 희생정신을 몸소 실천했다. ●자비상 박윤자 경주교도소 종교위원 1994년부터 참여인사로 활동을 시작해 98년에 종교위원으로 위촉됐다.94년부터 여자 수용자들에게 미용봉사를 실시하고, 매월 불교행사시 음식물 등을 지원했다.97년부터 대구, 대전, 청주, 청주(여) 등 4개 교정기관에서 매월 정신교육을 했다. 또한 정보화교육 기자재 확보를 위해 기금을 마련했고,2003년부터 징벌위원, 교정시민옴부즈맨으로 활동했다.27년간 양로원, 무의탁 독거노인들에게 미용봉사, 장애인에게 미용기술을 지도해 안정된 생활을 하도록 노력했다. ●교화상 박한영 홍성교도소 교위 1977년 임용된 뒤 보안근무만 31년 4개월 동안 수행했으며 수용 벌금을 대납하거나 취업을 알선했다. 직원테니스장 신설시 적극적인 활동으로 외부인사에게 600만원을 기증받고, 종교인들에게 교화 기자재를 적극 지원받아 처우개선에 기여했다.2002년부터 지역 보존회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내고향 지키기에 앞장서고 지역 원호가족 및 불우시설에도 성금을 지원했다. 또한 75세인 어머니는 췌장 및 비장암,52세인 부인은 간암 수술 후 간경화로 투병 중임에도 항상 밝은 모습으로 봉사정신을 보여 주고 있다. ●교정발전상 양강래 육군교도소 원사 1976년 육군 하사로 입대해 32년 2개월 동안 투철한 사명감과 성실한 자세로 수용자의 취미활동을 보장했다. 또한 면회시간을 연장하는 등 수용자 처우개선을 위해 노력했다. 군교도관들에게 수형생활지침서를 작성해 제공하는 등 군교도관 자질향상에 기여했다. 2000년부터 여주교도소와 자매결연을 맺어 정보교류를 활발히 했다. 또한 육군교도소 환경개선에도 기여해 98년 국방부장관 표창을 받는 등 교정행정 발전을 위해 성실히 노력하며 헌신했다.
  • [종교플러스] 24일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 학술대회

    한국불교심리치료학회는 24일 오후 2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서 ‘연기론과 심리치료’ 주제의 봄철 학술대회를 연다. 동국대 김성철(‘연기론의 인지치료적 활용’), 가톨릭대 윤호균(‘온마음 상담과 연기론’) 교수가 발표한다.
  •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면 썩게 되죠”

    “교회가 권력과 결탁하면 썩게 되죠”

    신자 5만명, 전체 사제 수 230명의 작은 교회 대한성공회. 많은 일반인들에겐 그저 ‘영국 국교’쯤으로 알려진 소수종교이지만 이 땅에서 1890년부터 선교를 시작해 옹골찬 신앙을 이어 개신교의 한 축을 이루고 있다. 유연한 교단 운영과는 달리 구성원들의 ‘줏대있는 소신’으로 인해 작지만 강한 교회로 인상지어지는 대한성공회. 내년 1월 박경조 주교의 뒤를 이어 대한성공회 제5대 서울교구장으로 착좌하는 김근상(56) 신부는 어찌보면 성공회에서 가장 ‘성공회적인 사제’중 한 명이랄 수 있다. 어느 자리에서나 분방하게 속말을 뱉으면서도 남의 말을 잘 듣는, 아주 유연하고 강한 신부이다. “성경의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에서처럼 진짜 신앙의 의미는 뻔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을 이기는 데 있습니다.” 서울교구장 착좌에 앞서 22일 주교 서품을 받는 김 신부는 13일 기자들과 만나 “공부도 못했고, 품성이 썩 고운 것도 아닌데 교구장으로 뽑힌 것은 사제들과 신자들이 함께 잘 어울릴 사람이 누구인가를 기준으로 삼았기 때문이 아니겠느냐.”고 겸손한 소감을 밝혔다. ●운동권·베이시스트·연극배우…‘괴짜´ 신부 “교회가 세상의 권력과 결탁할 때 빠르게 부패한다.”는 김 신부는 그러나 “못생긴 나무가 숲을 지키듯 잘나지 못한 이 사람에게 성공회를 지키는 큰 소임이 주어졌다.”면서 뼈있는 말을 이어갔다. “성공회가 500여년간 변함없이 가져온 큰 미덕은 서둘지 않고 민주적 절차를 거쳐 합의점을 끌어내는 것입니다. 제가 맡은 교구장은 바로 이 미덕을 지켜 교회 안팎의 갈등과 대립을 풀고 일치시키는 소임이겠지요.” 법으로 강제하는 공동체가 아닌, 자발적 신앙으로 어우러지는 공동체의 전형이라고 성공회를 설명하는 김 신부. 그는 극우니 극좌니 하는 양단의 분별이 아니라 여러 색깔이 어울려 아름다움을 빚는 무지개처럼 느슨한 일체감으로 어우러지는 성공회의 신앙 전통을 흐트러뜨리지 않겠다고 거듭 강조한다. 서강대 화학과를 3학년 1학기에 중퇴하고 가톨릭대 신학부를 나와 성공회 성미가엘신학원 과정을 마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재학시절 이른바 운동권에도 몸담았고 밴드에 가입해 베이스 기타를 치는가 하면 연극배우와 연출가로도 뛰어다녔다. 그래서인지 툭툭 쏟아내는 말이며 짓는 몸짓이 어디 한군데에 맺히지 않은 채 자유롭다. 별명 그대로 ‘괴짜’스럽다. ●아버지는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 외할아버지가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를 지낸 뒤 6·25전쟁 중 평양에서 교회를 홀로 지키다 순교한 이원창 신부. 아버지는 성공회 서울성당 주임사제를 지낸 김태순 신부. 신학대에 진학할 뜻을 비치자 어머니가 “아버지와 남편을 이어 어떤 여자를 또 데려다 더 고생시키려드느냐.”며 다림질하던 다리미를 집어던졌다고 한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통일위원장과 ‘온겨레 손잡기 운동본부’ 상임대표를 맡아 통일운동과 북한돕기에도 앞장선 활동가. 그 누구에 못지않게 북한동포를 향한 연민이 크지만 “아프리카의 불쌍한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손잡고 도와야 할 인간들이기 때문에 돕는다.”고 말한다. 그래서 ‘우리민족끼리’라는 말은 아주 싫어한단다. ●“후배 사제들 고통의 땅으로 보낼 것” “불교며 기독교 사람들이 지탄받는 데 대해 종교인의 하나인 성공회 사제로서 공동 책임을 느낀다.”는 김 신부. 종교인, 신앙인으로 손가락질받지 않기 위해 동료 사제와 교우들이 절실하게 힘을 모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100명 중 89명이 끼니마다 먹을 것이 없어 고통받는 오지의 사람들을 어떻게 외면할 수 있습니까. 성직자들이야말로 인간의 고통을 본능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훈련을 받고 뛰어야 합니다. 후배 사제들을 라오스며 캄보디아 미얀마 등 고통의 땅에 보내 도전의식을 키울 것입니다.” 글 사진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원불교 18일 6·25사망자 위령제

    원불교는 18일 오후 7시30분 금강산 온정리 문화회관에서 6·25전쟁으로 사망한 100만 여위의 남북한 및 UN, 중공군 장병들의 영혼들에 대한 ‘민족화해 생명평화 위령제’를 지낸다.150여명의 원불교 원로교무와 교도들이 18∼20일 내금강 일대에서 갖는 순례행사의 하나로 진행한다.(02)813-22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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