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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벗겨보니 통일신라 채색 木佛

    벗겨보니 통일신라 채색 木佛

    통일신라시대에 만들어진 삼존불이 천 년에 가까운 시간 동안 모습을 감추고 있다가 뒤늦게 자태를 드러냈다. 이 불상은 또한 연주황, 주황색, 녹색이 칠해진 채색 불상이라는 점에서 불교사와 미술사 측면에서 커다란 학술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동안 미술사학계에서는 고대에도 불상을 채색했을 가능성은 제기되었지만 실제로 채색 불상이 발견된 것은 처음이다. ●색깔 입힌 불상 발견은 처음 경주 기림사는 지난해 12월 약사전 삼존불에 전통 옻으로 새롭게 칠을 하는 개금(改) 불사에 들어갔다가 기존 불상에 여러 차례에 걸쳐 5~15㎝ 두께로 덧칠된 사실을 확인했다. 덧칠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일제강점기나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며 문화재 취급조차 받지 못했던 기존의 불상과 전혀 다른 불상이 나타난 것이다. 또한 불상 내부에서 복장(腹藏·불상 안에 집어넣은 사리나 불경 등) 유물도 무더기로 발견됐다. 고려시대 간행된 천태사교의(天台四敎儀)를 비롯해 강희 18년(1679년)의 중수기, 17세기말 가사·적삼·저고리 등 중요한 문화재가 함께 나왔다. 이 불상은 얼굴 부분을 제외한 불상 대부분이 나무로 이뤄진 목불(木佛)이라는 점에서 높은 문화재적 가치를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불상은 나무를 조각한 위에 흙과 한지·짚 등 다른 재료를 섞어 만들어졌다. 삼존불의 원형을 처음 발견한 권순섭 동방대학원대학 옻칠조형학과 교수는 “불상의 발과 좌대가 붙은 부분을 분리하는 과정에서 투박한 발 속에 기막히게 아름다운 발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면서 “곧바로 문화재위원들과 함께 불상 탈피작업을 진행했다.”고 말했다. ●다섯 차례 보수… 전혀 다른 양식으로 약사불과 보현보살, 문수보살로 이루어진 이 삼존불은 통일신라 이후 고려, 조선, 일제강점기를 지나는 동안 다섯 차례 정도 보수작업이 이뤄진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통일 신라 후기 또는 고려 초기에 처음 시행된 보수 작업에서는 한지를 여러겹으로 깔아 채색하는 등 원형에 충실한 흔적이 뚜렷한 것으로 파악됐다. 하지만 중수 기록이 남겨진 1679년부터 석회·옻칠 등을 사용한 첩금(貼) 과정을 거치며 기존의 불상 모습이 감춰지기 시작했고, 일제강점기에는 불상 발등 위에 옷자락을 덮어버리는 등 전혀 다른 양식의 불상으로 탈바꿈했다. 1987년에도 합성수지에 카슈 도료를 사용하여 원형과 무관하게 보수했을 뿐이었다. 불상을 살펴본 정영호 단국대 박물관장은 “채색 불상이라는 점과 신라시대 목불이라는 점에서 문화재적 가치가 대단하다.”면서 “잘록한 허리와 유려한 곡선 등이 신라시대 불상의 전형을 띠고 있는 만큼 향후 통일신라시대 불상으로서 원형을 보존하면서 복원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추모] 끝없는 조문행렬… 9만여명 애도 발길

    김수환 추기경 선종 이틀째인 17일 서울 명동성당은 본격적인 조문 행렬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김 추기경의 마지막 가는 길을 보기 위해 시민들은 명동성당을 넘어 계성여고 쪽으로 1㎞가량 길게 줄을 섰다. 볼이 에일 듯한 강추위에도 아랑곳없이 시민들은 한 시간 넘게 기다려 조문을 했다. 이명박 대통령, 김영삼 전 대통령 등 각계 인사 50여명의 조문도 아침부터 계속됐다. 김 추기경의 시신이 놓인 명동성당 대성전에는 오전 6시부터 신도와 일반인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와는 별도로 명동성당 지하 성당에서는 추모미사가 오전 5시30분부터 1시간 간격으로 진행됐다. 대성전과 꼬스트홀 2층에서는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연도(煉禱·천주교식 위령기도)도 계속됐다. 이날 명동성당을 방문한 조문객은 9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집계됐다. 유명 인사들의 조문도 이어졌다. 천주교 신자로 김 추기경과 각별한 인연을 이어온 김대중 전 대통령은 오전 11시쯤 방문해 “김 추기경은 야당 시절부터 나의 정신적 지도자였다.”면서 “성직자로서뿐 아니라 독재 치하에서 신음하는 국민들을 위해 광야의 소리 같은 말씀을 하신 위대한 신앙가”라고 말했다. 오전 10시쯤 빈소를 방문한 불교방송 이사장 영담 스님은 “종교는 다르지만 국민의 성직자로서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돌아가신 것이 안타깝다.”고 했다. 명동성당은 일체의 조의금이나 조화를 사절했다. 전날 이명박 대통령이 보낸 조화도 되돌려보냈다. 허영엽 서울대교구 문화공보국장은 “장례식이 간소하게 진행됐으면 했던 김 추기경의 유지를 받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모여든 조문객들은 김 추기경을 위한 기도를 멈추지 않았다. 척추장애로 다리를 저는 김윤식(80·경기 산본)씨는 “개신교 신자지만 종교와 상관없이 40년 동안 존경해온 분의 마지막을 보고 싶어 불편한 몸을 이끌고 3시간이 걸려 이곳에 찾아왔다.”고 말했다. 40년간 천주교 신자로 지내온 김방지거(81·서울 청량리)씨는 개종의 이유가 김 추기경이라고 했다. 김씨는 “사진사로 1968년 피정(종교 수련회)에 참여했는데 그때 김 추기경이 피곤하겠다며 집까지 차를 태워주셨다. 그 은혜를 잊지 못해 결국 천주교로 개종하게 됐다.”면서 “천국에서도 다시 뵈었으면 좋겠다.”며 눈물을 훔쳤다. 한편 김 추기경이 입원했던 서울 강남성모병원은 이날 오후 2시 기자회견을 열어 “김 추기경은 마지막까지 의미없는 생명 연장을 거부했다.”고 밝혔다. 황태곤 병원장은 “마지막까지 진통제나 다른 처치를 하지 않고 영면하셨다.”고 말했다. 또 김 추기경에게서 적출된 각막은 이식이 가능하며 대상자가 이미 정해졌지만, 누가 추기경의 두 눈을 받을지는 공개할 수 없다고 병원측은 밝혔다. 김민희 이영준기자 haru@seoul.co.kr
  • [김수환 추기경 선종] 종교계 “따뜻한 아버지였다”

    한국 천주교 수장의 선종 소식에 종교계 지도자들은 한목소리로 추도사를 쏟아냈다. 한국기독교장로회 총회 배태진 총무는 김 추기경의 선종 소식에 몇 초간 말을 잇지 못하다 “그야말로 파더(Father), 따뜻한 아버지 같으셨던 한국 천주교계의 큰 기둥이 쓰러졌다.”며 말문을 열었다. 배 총무는 “김 추기경은 1960~70년대 한국 사회에 조명탄과 같은 존재”라면서 “독재의 어둠 속에서 빛을 비춰 한국 사회가 어디로 가야 할지 인도하셨다.”고 애도했다. 대한불교 조계종 지관 총무원장도 애도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국 종교계의 큰 스승이신 김 추기경의 선종에 불교계 모든 사부대중과 함께 애도를 표한다. 스스로를 낮추며 이웃의 고통과 함께하신 김 추기경의 평생 지표가 실현되기를 기원한다.”고 밝혔다. 원불교 경산 장응철 종법사도 슬픔을 함께했다. 장 종법사는 “종교계 큰 어른으로서 온 국민이 존경했던 김 추기경의 선종에 원불교 전 교도와 충심으로 애도를 표한다.”고 전했다. 천도교 김동환 교령은 “김 추기경이 북극성과 같이 세상 사람들이 나아갈 방향을 제시해 주셨는데 큰 별이 떨어진 것 같다. 남은 이들이 그분의 삶을 교훈 삼아 서로를 공경하고 살아간다면 추기경의 뜻은 세상에 남을 것”이라고 밝혔다. 임주형기자bckang@seoul.co.kr
  • [길섶에서] 붓다 페이스/강석진 수석논설위원

    인간의 얼굴과 표정에 관한 외국 서적을 보다가 재미있는 표현을 봤다. ‘붓다 페이스’라는 단어가 있었다. 우리말로 옮기면 ‘부처님 얼굴’이다. 예전에 서양에서 뇌졸중 후유증으로 인해 평안해졌지만 표정이 거의 없는 환자의 얼굴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였다고 한다. 부연하기를 근육의 마비와 함께 정신 활동도 저하된 표정이라는 것이다. 불교권에서는 부처님 얼굴은 지혜와 통찰력을 갖춘, 최고 경지의 깨달음을 상징하거늘, 왜 서양 의사들은 붓다 페이스를 생기를 잃고 정신적·육체적 에너지가 소진된 인간의 얼굴을 가리키는 데 썼을까. 몸 안의 병이 치명적인 결함이 되어 얼굴에 나타난 현상과 정신 세계의 깨달음이 극에 이르러 드러나게 된 표정이 ‘무념무상(無念無想)’을 매개로 상통한다고 보았을까. 사고의 준거 틀이 다르면 같은 현상을 보고도 해석이 사뭇 달라지는 게 인간사려니 생각하다 문득 거울을 보니 붓다 페이스도 부처님 얼굴도 아닌, 번민하며 살아가는 한 인간의 얼굴이 들어 있다. 강석진 수석논설위원 sckang@seoul.co.kr
  • 이혼소송 소식에 대상홀딩스 주가 급등

    이혼소송 소식에 대상홀딩스 주가 급등

    이재용 삼성전자 전무에게 부인 임세령(32)씨가 10억원의 위자료와 5000억원대의 재산분할을 요구하는 이혼소송을 제기한 배경에 대한 관심이 주가에도 그대로 반영됐다. 임씨가 19.9%의 지분을 소유한 대상홀딩스 주가는 13일 오후 2시 현재,전일 대비 350원 올라 2850원을 기록하고 있다.증권가에서는 이번 소송 제기로 인해 대상그룹의 지주회사인 이 회사의 미래가 더욱 밝아질 것이라고 전망한다는 추론이 가능할 것 같다.  임씨는 여동생 임성민씨에 이어 대상홀딩스의 2대 주주로 재벌닷컴이 지난 30일 평가한 국내 여성 주식부호 순위에서 173억원으로 46위를 차지했다.  대상그룹 임창욱 회장의 맏딸인 임세령씨는 지난 1998년 불교도 모임인 ‘불이회’의 회원으로 친하게 지내던 양가 어머니의 소개로 이재용씨를 만나 결혼했다. 고(故) 박인천 금호그룹 창업주가 임세령씨의 외할아버지이기도 하다.  결혼 당시 ‘영남-호남 기업의 결합’에다 선대부터 조미료 시장에서 경쟁했던 미원(대상)-미풍(삼성,현재 CJ) 재벌가 자제들의 결합으로 화제를 모은 부부의 이혼 배경도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임씨의 소송 제기로 인해 삼성그룹의 지배구조에 변화가 올 것인지,서울중앙지검 금융조세조사 1부에서 2004년부터 수사 중인 대상 임창욱 회장의 주가조작 사건 수사에는 또 어떤 영향을 미칠지도 관심을 끌고 있다.  인터넷서울신문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어린이 책꽂이]

    ●대통령이 된 통나무집 소년 링컨(러셀 프리드먼 지음, 손정숙 옮김, 비룡소 펴냄) 미국에 링컨 대통령이 없었다면 흑인 대통령 오바마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 오바마 대통령이 취임식에서 링컨 대통령이 취임선서를 했던 성경에 한 손을 올리고 취임선서한 것은 노예해방을 이뤄낸 링컨 대통령에 대한 존경이 짙게 깔려있다. 12일은 링컨 탄생 200주년. 가난한 개척자의 아들로 태어나 정규 교육을 거의 받지 못했지만 노예해방을 통해 분열 위기에 있는 나라를 통합해낸 위대한 대통령의 발자취를 더듬어 볼 필요가 있겠다. 저자는 논픽션 청소년 소설의 대가로 평범한 위인전에 다양한 취재와 사진자료로 생생함을 보탰다. 1만 1000원. ●지도는 언제나 말을 해(김희경 글·크리스티나 립카-슈타르바워 그림, 논장 펴냄) 알쏭달쏭 퍼즐처럼 보이는 1800년전 로마인들이 만든 지도가 하는 말. “우리 인생도 1200 조각의 퍼즐이 아닐까?” 16세기 네덜란드 사람 오르텔리우스가 그린 일본지도의 당돌한 선언. “코레아는 섬일지도 몰라. 그까짓 것 대충 그리지, 뭐.” 봐도 봐도 헷갈리는 고대 지도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지도 속에 담긴 철학, 역사가 보인다. 이 책은 철학과 미술사를 공부한 한국 작가와 폴란드 그림작가의 협업으로 탄생했다. 다른 나라 문화를 존중하는 열린 시각이 바탕이 된 핵심을 뚫는 문장이 각 지도의 의미를 생생하게 전달하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끝에 각 지도에 대한 보충 설명과 함께 원본 지도도 실어 다양한 정보도 주고 있다. 1만 3000원. ●나무가 자라는 물고기(김혜리 글·그림, 사계절 펴냄) 왜 절에는 뱃속이 텅 빈 나무로 된 커다란 물고기가 달려 있을까. 왜 스님들은 아침저녁으로 물고기의 배를 두드릴까. 불교문화유산 가운데 하나인 ‘목어’에 관한 아이들의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그림책. 작가는 나무 물고기의 탄생 배경과 쓰임새를 불교 가르침에 맞게 그럴듯하게 꾸며냈다. 주인공인 동자승 ‘멋대로’의 이야기는 나쁜 일을 하면 반드시 벌을 받으나 진심으로 뉘우치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세상살이의 교훈도 준다. 고무 판화로 제작된 그림은 인물의 표정과 상황 묘사가 생생해 읽는 재미를 한껏 높여준다. 98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파키스탄에 78개 학교 세운 美 산악인

    파키스탄에 78개 학교 세운 美 산악인

    “우리가 하려는 일은 큰 바다의 물 한 방울일지 모른다. 하지만 그 한 방울이 없으면 바다는 줄어들 것이다.” 1993년 9월2일 35세의 미국 젊은이 그레그 모텐슨은 세계 산악인의 희열이자 공포인 K2를 공략하던 중 길을 잃었다. 정상을 600m 앞에 둔 상태였다. 얼어붙은 극한지대에 밤이 다가왔고 따뜻한 옷과 식량을 가진 동료는 어디론가 사라져 버렸다. 모텐슨은 단지 여동생 크리스타를 기리기 위해 K2의 8611m 정상에 크리스타의 목걸이를 걸어 놓고 싶었을 뿐이었는데, 우회로에서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됐다. 그보다 열 두 살 어린 크리스타는 세살에 걸린 뇌수막염의 후유증으로 간질과 발작, 장애에 시달리다가 23세의 꽃다운 나이에 결국 발작으로 세상을 등졌다. 얼음 산에서 군용모포에 의지해 하룻밤을 지낸 모텐슨은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산골마을 코르페에 흘러들어 가게 된다. 돌아 보면 그에게도, 코르페 마을 사람들에게도 운명이었다. 당시 190㎝에 95㎏의 건장했던 그는 70일간의 정상공략 탓에 몸무게 14㎏을 잃었고 팔은 이쑤시개처럼 변해 있었다. 위태로운 상태의 그를 구한 것은 코르페의 촌장 하지 알리였다. 그는 한 달이나 가족처럼 돌보며 재산 1호인 산양을 잡아 모텐슨에게 먹였다. 건강을 회복하면서 모텐슨은 그 마을에 뭔가를 해주고 싶었다. 신세를 갚고 싶었던 것이다. 그는 코르페 아이들에게 누이동생의 존재를 느꼈다. 아주 간단한 일조차 힘들어했던 누이동생처럼 이곳 아이들에게 모든 생활은 투쟁이었다. 남자아이 78명, 여자아이 4명이 허허벌판의 얼어 붙은 땅 위에 무릎을 꿇고 앉아 나무 막대기로 흙바닥에 구구단을 쓰면서 공부하는 모습을 목격한 모텐슨은, 촌장에게 이렇게 약속한다. “내가 학교를 지어주겠다.”고. 파키스탄 발리스탄에 78개의 학교를 세운 산악인 모텐슨의 실화는 이렇게 시작됐다. ‘세 잔의 차’(그레그 모텐슨·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 지음, 권영주 옮김, 이레 펴냄)에 산악인에서 히말라야의 희망이 된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이곳에서 3만명의 소년 소녀가 혜택을 받고 있다. 장담에도 불구하고 일은 쉽지 않았다. 미국에 돌아온 모텐슨은 병원에서 야간에 간호업무를 보면서 기금을 모으기 위해 유명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기 시작한다. 첫번째 보낸 6통 편지의 수신인에는 최근 아프리카 학교를 지은 오프라 윈프리, NBC의 앵커 톰 브로커, CNN 버나드 쇼, 여배우 수전 서랜든 등이 있었다. 그리고 580통의 편지를 보낸다. 결과는 참담했다. 톰 브로커만이 100달러 수표를 보내줬을 뿐이다. 당시에는 윈프리도 이런 일에는 관심이 없었나 보다. 어머니가 교장으로 있는 학교에서 초등학생들에 기금모금 연설을 하고 1센트(10원가량)짜리 동전으로 623달러 45센트를 모았다. 어른들보다 아이들이 학교의 필요성을 더 잘 이해한 것이다. 그는 1달러의 돈도 아끼기 위해 아침은 꽈배기 도넛과 커피가 전부인 99센트짜리를 먹고, 쭉 굶다가 저녁에 멕시코 식당에서 3달러짜리 부리토를 먹었다. 월세를 아끼기 위해 차에서 잠을 잤다. 진짜 필사적이었다. 궁하면 통한다고 그에게 서광이 비쳤다. 장 회르니 박사가 파키스탄 골짜기에 학교를 설립할 기금을 모은다는 소식을 들고 연락을 해 것이다. 산악인 출신의 회르니 박사는 ‘실리콘의 평면공정 특허’를 획득한 과학자이자 부자 기업가이도 했다. 모텐슨은 1994년 회르니 박사로부터 “일을 망치지 말게.”라는 쪽지와 함께 1만 2000달러짜리 수표를 받게 된다. 회르니 박사는 미국인들이 불교도인 네팔의 셰르파를 위해 학교와 병원 등을 지어주지만, 이슬람 국가를 위해서는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간파하고 모텐슨의 시도가 성공 가능성이 낮음에도 불구하고 일단 도와주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해서 학교 건설의 장애물은 사라졌을까? 나머지는 직접 읽으며 찾아보라. 이 책은 루터파 기독교도인 선량한 미국인이 문명이 닿지 않는 히말라야 산간마을에 학교를 선물했다는 식의 도식적이거나 계몽적인 책이 아니다. 그는 자신을 후원한 회르니 박사의 후의에 보답하기 위해 조바심을 내다가도 마을 촌장인 하지 알리의 “우리는 600년을 기다려 왔는데 1년을 더 못 기다리겠느냐. 우리의 방식을 따라 달라.”는 얘기를 듣고 그들의 종교와 생활방식, 철학을 존중해 나간다. ‘세 잔의 차’는 한 잔은 이방인으로, 두 잔은 손님으로, 세 잔은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는 풍속을 담은 것이다. 특별히 미국에서 그가 조명받은 시점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아프가니스탄의 탈레반 등 ‘테러와의 전쟁’으로 천문학적인 숫자의 달러를 파키스탄에 쏟아붓고도 실패한 최근이다. 뉴욕타임스는 “모텐슨은 미국정부가 파키스탄에 군사적으로 지원한 돈의 1만분의 1도 쓰지 않고 미국 이미지 향상에 더 기여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한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은 무력이나 폭력이 아니라 한 사람의 작은 꿈과 의지가 현실화되는 과정이 아닐까 싶다. 모텐슨이 구술한 것을 저널리스트인 데이비드 올리비에 렐린이 정리했다. 전체는 전지적 작가시점의 소설처럼 서술됐는데 군데군데 모텐슨뿐만 아니라 주요 인물과의 인터뷰가 들어있어 다큐멘터리를 보는 생동감을 준다. 2007년 1월 미국에서 출간돼 82주 연속 뉴욕타임스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1만 35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대학내 종교시설 허용… 트리 십자가 철거

    대학내 종교시설 허용… 트리 십자가 철거

    ‘대학내 종교시설 설치엔 도끼눈, 시청앞 크리스마스 트리엔 미소’ 최근 정부가 추진 중이거나 조치한 종교 관련 사안들을 놓고 불교계의 표정이 엇갈리고 있다. 종교단체들이 대학 내에 종교시설을 설치하는 것을 허용한 교육과학기술부의 ‘대학 설립운영규정’ 개정안에 ‘또 다른 종교편향’이라며 강력 반발하는 반면 문화체육관광부가 서울시에 협조 요청한 크리스마스 트리의 십자가 철거엔 ‘종교형평을 고려한 당연한 처사’라며 반기고 있다. 먼저 교과부가 지난달 9일 입법예고 후 공포한 ‘대학 설립운영규정’ 개정안. ▲대학 교육시설 분야 운영요건 완화와 ▲대학 설립요건 및 심사 기준 완화 ▲교지,교사의 민간 활용 제고를 통한 자체 재정확충 역량 강화 등을 골자로 한 이 개정안 가운데 불교계는 노유자(노인, 유아)시설, 수련시설, 종교시설 등의 건축물을 대학의 교지 안에 둘 수 있도록 한 3조2항을 문제삼고 있다. 지금까지 교육연구와 복지시설, 문화 집회시설, 운동시설, 주차장에 국한해 대학 설치, 경영자가 소유하지 않는 건축물을 교지 안에 둘 수 있도록 한 것에서 범위를 넓혀 특정 종교와 단체까지 종교시설을 설치할 경우 종교자유의 보장이 침해될 수 있다는 게 불교계의 주장이다. 무엇보다 불교계의 이같은 불만의 바탕에는 개신교 계열 사립대학이 상대적으로 많다는 것. 이와 관련해 종교자유정책연구원(종자연)이 최근 파악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6년 현재 전문대를 제외한 전체 사립대학 155개 중 종교사립대학은 불교계 4개, 기독교계 43개로 31.6% 정도를 차지하며 이 가운데 기독교계 대학 비율이 27%에 이른다. 불교계에 개정안 반대 여론이 들끓자 조계종 총무원과 불교 종교평화위원회(종평위)는 결국 이의접수 기간(20일)을 넘긴 지난 5일 뒤늦게 교과부와 국무총리실 규제개혁실에 의견서를 제출, 문제의 조항 중 ‘종교시설’을 삭제할 것을 요청했다. 이에 앞서 종자연도 지난달 29일 교과부에 반대 의견서를 전달했다. 이에 대해 교과부측은 “개정안 중 종교시설 설립 허용과 관련한 부분은 선택사항으로, 대학이 자율적으로 결정하는 만큼 종교편향과는 멀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정안은 법제심사와 국무회의 의결을 거친 뒤 다음달부터 시행될 예정. 이와 관련, 조계종 총무원 관계자는 “종교편향과 관련한 불교계의 대응에 대한 일반인의 여론을 의식해 신중한 논의를 거쳐 종단 차원의 반대의견을 냈지만 아직까지 이렇다할 반응이 없다.”며 적극적인 대응에 나설 계획을 밝혔다. 한편 문광부가 지난 2일 서울시에 시청앞 광장 크리스마스 트리에 십자가를 설치하지 못하도록 하는 공문을 보낸 것에 대한 불교계의 반응은 딴판. 문광부는 ‘시청광장 크리스마스트리에 설치하는 십자가가 다른 종교 기념일의 상징물과 형평성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는 산하 종교차별자문회의의 건의를 받아들여 조치한 것으로 당장 십자가 철거를 강제하는 것은 아니라는 입장인 것으로 알려졌다. 불교계는 이와 관련, 불교계의 경우 부처님오신날 같은 기념일에 다른 종교인들을 자극할 소지가 있는 상징물을 삼가고 있는 만큼 종교형평을 고려한 당연한 처사라며 환영하고 있다. 불교 종평위 손안식 공동위원장은 “굳이 종교 편향과 관련한 정부의 조치로 받아들이지는 않지만 일단 전향적인 자세로 본다.”면서 “종교 상징물은 순수한 종교 문화의 차원에서는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지만 종교 갈등을 유발할 수 있는 수준이라면 자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종교플러스]

    23~26일 승려 연수교육 한국불교 태고종은 종단 소속 스님 대상의 2009년도 승려 연수교육을 23~26일 매일 오전 10시30분 한국불교전통문화전승관서 실시한다. 연수 교육은 ▲장묘문화 및 사찰재정 확보를 위한 불사 추진 방법 ▲사찰에서 정부의 사회복지시설 시행 방법 ▲각종 사찰 관련 법규 및 세무 관련 내용 등으로 짜여지며 23일 종덕·대덕법계, 24일 중덕법계, 26일 선덕·미법계자 등 법계별로 진행된다.(02)739-3450. 교회정보화 세미나 23일 개최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산하 교회정보기술대학과 교회정보기술연구원은 제12회 교회정보화 세미나를 23일 오전 10시 해오름교회에서 연다. 정보기술(IT)을 활용한 교회 성장과 부흥 관련 무료 콘퍼런스. ‘듣기 좋은 설교를 위한 교회음향’ ‘교회영상 콘텐츠 활용을 통한 교회성장’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성경공부와 설교 작성법’ 주제의 강의로 진행한다.(02)741-2782. 공주 마곡사서 겨울 워크숍 불교학연구회는 2009년 겨울 워크숍을 14~15일 공주 마곡사에서 ‘명상, 이 뭣고’라는 주제로 연다. 지금 한국불교에서 가장 흔한 수행법인 간화선, 위파사나를 둘러싼 이견과 논란을 점검하는 자리. 위파사나 측면에선 홍원사 주지 성오 스님과 수행공동체 제따와나의 일묵 스님이, 간화선 측면에선 미산(중앙승가대 교수) 스님과 월암(벽송선원장)·무각(공생선원장) 스님이 각각 발제한다. 010-5501-5589. ‘지역사회와 함께’ 후보교회 접수 기독교윤리실천운동(기윤실) 사회복지위원회는 ‘제7회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교회상’ 후보교회 신청을 다음달 13일까지 접수한다. 노인·아동·장애인·어린이 복지사업을 활발히 해온 교회들이 대상. 대도시와 중소도시, 농어촌, 특수사역 교회 등 4개 분야 10곳을 뽑아 4월 초 이 가운데 최종 수상교회를 가린다. 수상 교회는 교회사회복지 지원금 100만원과 기념동판, 상패를 받는다. (02)794-6200. 공무원불자聯 창립 1주년 법회 서울시 공무원불자연합회(공불련)는 16일 오후 7시30분 서울 관문사 대불보전에서 창립 1주년 기념 및 신년법회를 연다. 법회에는 관문사 주지 영재 스님을 비롯한 서울시 공불련 회원 및 스님·신도 300여명이 참석할 예정. 서울시 공불련은 불자회가 구성되어 있는 20개 구청의 불자회가 모인 신행단체로 올해 성지순례와 연합법회 개최, 자원봉사 및 불우이웃돕기 사업을 전개할 계획이다.
  •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5) 리투아니아 출신 계룡산 무상사 입승 보행 스님

    [김성호 선임기자의 한국서 길찾는 이방인] (35) 리투아니아 출신 계룡산 무상사 입승 보행 스님

    겨울철 스님들의 집단·집중 수행인 동안거(冬安居)의 끝, 해제(解制)를 사흘 앞둔 6일 오후 충남 계룡시 엄사면 계룡산 자락의 국제선원 무상사. 몸과 마음을 챙겨 ‘참나’를 찾기 위한 안거를 나기 위해 15개국에서 찾아든 60여명의 스님, 재가 불자들이 3개월의 수행 정진을 마무리하는 정중동의 엄한 분위기에 몸, 마음이 절로 숙연해진다. “안거철엔 절대 외부인을 사찰 경내에 들이지 않는다.”는 주지 무심(미국) 스님의 물러서지 않는 완강한 거부를 무릅쓰고 어렵사리 찾아간 수행공간. 3개월간의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묵언 수행의 끝자락에 선 수행자들이 해제 준비를 하느라 분주한 가운데 주지 스님에게 간곡한 청을 들여 수행자들의 기강을 책임진 입승(立繩), 보행(48·본명 케스투티스 마르시우리나·리투아니아) 스님을 만날 수 있었다. 무상사는 외국인 스님들이 연중 수행을 하는, 국내 몇 안 되는 국제선원. 특히 안거철이면 ‘한국에서 집중수행을 하며 한 철을 살겠다.’는 외국의 스님들이 대거 몰리지만 이번 동안거엔 지난해보다 20여명이 줄었다는 주지 스님의 귀띔. 스님들이 모여 사는 이곳도 세계 경제불황의 무풍지대는 아니다. 모두 자비를 들여 찾아온 무상사에서 숨막히는 3개월의 묵언 정진을 관통한 수행자들의 마지막 단도리를 하느라 바쁘게 움직이던 보행 스님이 굳은 얼굴로 기자 앞에 선다. 참선 때마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죽비를 치며 선방 수행자들의 기강을 잡아온 입승 소임 때문일까. 스님이 좀처럼 표정을 누그러뜨리지 않는다. “오늘부터는 죽비를 치지 않고 묵언을 풀어 말을 할 수 있다.”며 불청객을 맞지만 외계인에 대한 경계가 쉽게 풀리지 않는 눈치다. 화두를 들어 참구하는 수행자의 몸, 마음을 다잡는 입승 스님. 입승 스님은 죽비를 칠 때 무슨 생각을 할까. 흐트러지지 않겠다는 거듭된 다짐일까, 아니면 도반들의 엄한 공부 챙김일까. ●묵언정진… 외국인 수행자들 기강 책임져 “선방의 마음 하나 몸 하나는 모두 말로 풀 수 없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곳 무상사의 가풍인 묵언 정진은 말로 인한 업을 짓지 않고 오로지 수행에만 철저히 매달리도록 독려하는 방편이지요.” 스님이 매달려 참구하는 화두가 궁금해졌다. 부모로부터 몸을 받기 이전, 부모미생전 본래면목을 찾기 위한 ‘혹독한 싸움’의 근원이 무엇일까. “이 뭐꼬.” 본래 나는 어디에서 왔으며 지금 나는 무엇인가. 외마디로 객에게 던져주는 평범한 화두에 실린 삶의 무게가 심상치 않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지금 리투아니아 공화국 제2의 도시인 카우나스 출신. 사회주의 소련 체제의 붕괴와 조국 독립의 격동기에 흔들리는 사람들의 고통과 혼돈에서 스님은 세상을 안정시킬 수 있는 ‘그 무엇’에 심한 갈증을 느꼈다고 한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때는 옛 소련으로부터 독립하기 이전. 의무적으로 치러야 하는 소련군 생활이 싫어 택한 게 고향 카우나스의 폴리테크닉 대학이다. 대학에서 전기공학과 공부를 마치면 군 대체복무가 수월하다는 생각에 원래 되고 싶은 연극 배우의 꿈을 잠시 미룬 채 진학했지만 결국 대학 졸업 후 2년간 소련 육군 병 생활을 해야 했다. 혐오하던 소련군 생활을 마친 뒤 결국 ‘테아트르 앤드 아츠 아카데미’에 들어가 6년간 공부 끝에 작은 극단까지 만들어 연극을 하며 살았다. 오랜 배회 끝에 마침내 올라선 연극 무대에서 배우 겸 연출자로 꿈을 펼칠 수 있게 됐다는 성취감에 마냥 행복했단다. 고등학교 시절 판토마임으로 이름난 선생님을 보고 연극배우로 살겠다는 절실한 꿈을 키웠던 보행 스님. 그 무대에서 막 빛을 보기 시작할 순간 인생 향로를 틀어 지금 무상사에서 죽비를 잡게 만든 것은 무엇일까. 돌이켜보면 그는 일찍부터 이른바 ‘무아(無我) 경계’에 눈떴던 것 같다. 고교 졸업후 러시아어로 된 불교 서적들을 읽던 중 ‘네가 너를 세상에 드러내 세우고 자랑하지만 그것은 결코 네 진면목이 아니다.’라는 말에 지금까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나’에 대한 의심을 품게 됐다고 한다. 대학 졸업후 그토록 하고 싶던 연극을 하면서도 줄곧 그때의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작품을 만들어 무대에 올렸지만 ‘내 자신이 완전하지 않은데 어떻게 다른 사람에게 만족을 줄 수 있을까.’라는 의심과 회의가 계속됐다. 그러던 중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건너온 폴란드 스님의 법문을 들으면서 조금씩 머릿속의 안개가 걷혀가는 듯했다. 결국 하던 극단 일을 접고 빈 집을 얻어 친구들과 함께 고향 카우나스에 고봉사라는 사찰을 마련했다. 지금도 고봉사엔 매일 법회 때 30여명의 리투아니아 신도들이 모인다고 한다. 고봉사에서 생활하다 유럽 한국불교 포교의 핵심인 폴란드 바르사뱌의 도암사로 건너가 매년 결제에 참가하는 등 행자생활을 했다. 그러다 만난 게 숭산 스님과 지금 무상사의 주지인 무심 스님. 고봉사 생활중 읽은 숭산 스님의 책 ‘부처님께 재를 털면’을 보며 숭산 스님을 만나고 싶어 했다고 하니 도암사로 찾아온 숭산 스님을 보고 얼마나 반가웠을까. “‘부처님께 재를 털면’은 미혹에 빠진 일반인을 깨달음에 이르게 하는 방편을 쉽게 쓴 책이었지요. 미궁에서 길을 찾던 저에겐 벽력처럼 쳐들어온 이정표였던 셈이지요.” 숭산의 법문에 빠져있던 중 결국 무심 스님의 “한국에서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지 않겠느냐.”는 권유에 출가를 결심했다. 생활이 어려워 비행기 표 사기도 힘들었던 시절, 한동안 접었던 극단 일을 틈틈이 해 모은 돈으로 한국에 온 게 1999년. 이후 화계사 국제선원에 8년간 몸담아 행자부터 살림살이를 맡는 원주, 입승 등 온갖 소임을 두루두루 거쳤다고 한다. 화계사 국제선원에서 사미계를 먼저 받았지만 부산 범어사에서 조계종 사미계를 다시 받고 미국 로드아일랜드주 컴버랜드시 프로비던스 선센터에서 비구계를 받아 지금은 한국 조계종의 공식 비구계 수지를 기다리는 중. “언제쯤 한국의 비구계를 받을 수 있느냐.”는 물음에, 대답 대신 작은 웃음만 보여 준다. “비구계 받는 것이 전부인가요. 끊임없이 공부할 따름이지요. 1000년 이상의 선 불교 역사를 가진 한국 사찰에서 배우고 수행하는 것만도 얼마나 큰 일입니까.” ●한국 온 지 10여년… 온갖 소임 두루 거쳐 이곳 무상사에 옮겨 산 지는 1년 남짓. 절집 살이를 놓고 보면 미국인 조실 대봉 스님과 주지 무심 스님에 이어 세 번째 높은 소임을 맡고 있다. 대봉 스님과 무심 스님은 대하기 아주 어려운 스님들. 몸짓 하나, 말 한마디에서 깍듯한 예의가 묻어난다. 불교의 대표적인 화두 ‘염화미소’(拈華微笑). 스님은 염화미소 화두를 처음 들었을 때도 그랬고 지금도 들을 때마다 알 수 없는 눈물을 흘리곤 한단다. 말을 하지 않고도 마음이 통해 깨달음을 얻는다는 이 화두에 스님이 눈물을 흘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염화미소의 사연을 처음 듣는 순간 마치 집을 떠나 오랜 세월 떠돌다가 고향에 돌아온 듯한 느낌을 받았어요. 삶은 인연짓기의 반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이 순간의 만남도 오랜 인연의 공덕 때문이겠지요.” ‘온전하지 못한 내가 남에게 무엇을 내세워 보여줄 수 있는가.’라는 의구심에 절실한 꿈이던 인기 연극배우의 허물을 벗고 인생 향로를 틀었던 스님. ‘이 뭐꼬’ 화두 참구는 언제까지 할 예정이냐는 기자의 우문에 “오직 모를 뿐, 그저 한 걸음 더 나아가기 위해 순간 순간 나를 버려가고 있을 뿐”이라는 말만 돌려준 채 자리를 뜬다. 글ㆍ사진 계룡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보행 스님은 ▲1961년 리투아니아 카우나스 출생 ▲1983년 카우나스 폴리테크닉 대학 전기공학과 졸업 ▲1989년 빌뉴스 테아트르 앤드 아츠 아카테미 졸업 ▲1990~1995년 카우나스에 리투아니아인들과 불교사찰 고봉사 창건, 수행 ▲1995~1997년 폴란드 바르샤바 국제선원 도암사서 수행 ▲1997년 숭산 스님 설법에 감화, 출가결심 ▲1999년 한국입국 ▲1999~2007년 화계사 국제선원서 수행 ▲2001년 화계사 국제선원서 사미계 수지 ▲2003년 부산 범어사서 조계종 공식 사미계 수지 ▲2005년 미국 로드아일랜드 프로비던스 선센터서 비구계 수지 ▲2007년말~ 계룡산 무상사 입승
  • 「미스·투자개발공사」양지혜(楊智惠)양-5분 데이트(182)

    「미스·투자개발공사」양지혜(楊智惠)양-5분 데이트(182)

    『청소하고 바둑두는 것이 취미예요. 바둑은 급수보다도 둘 때의 변화무쌍한 재미에 끌려 바둑책을 봐 가며 열심히 두곤 하죠』 한국 투자개발공사 총재실 비서생활 3년째인 양지혜양의 말. 46년 10월 1일생. 전남 보성군 벌교읍이 고향이고 그곳 상업학교를 나왔다. 산업은행에도 잠깐 근무한 적이 있는 양양은 바다가 보이고 봄이면 진달래와 철쭉이 만발하는 부용산의 아름답고 포근한「이미지」를 간직하고 있다며 고향을 무척 자랑스러워 한다. 방송통신대학 경영학과에 입학한 이유는 몇 년간 직장생활을 하면서 경험으로 얻은 지식을 이론적으로 정리하고 싶어서였단다. 가장 관심있는「액세서리」는「벨트」인데도 아직 쇠줄로 된 것, 헝겊, 가죽으로 된 것, 하나씩 밖에는 없는 극성맞게 옷에 관심을 보이는 아가씨들과는 사뭇 다른 성격. 할머니를 따라 절에 다니다가 불교신자가 됐는데 요즘도 가끔 봉은사엘 들른다. 안정성 있는 직업, 신용할 수 있는 인격의 소유자와 결혼하겠다는 안전 제일주의의 아가씨이다. 원(媛) [선데이서울 72년 4월 30일호 제5권 18호 통권 제 186호]
  • 조계종, 사찰음식 DB구축

    참살이 식품으로 인기를 얻고 있는 사찰 음식에 관한 정보가 데이터베이스로 구축된다.불교 조계종 총무원은 올해부터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매년 1억원씩 5년간 예산지원을 받아 전국 사찰의 음식에 대한 데이터베이스 구축 작업에 착수한다고 8일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인각사서 발굴된 통일신라 국보급 불교공예품 왜 무더기로 묻혔을까?

    인각사서 발굴된 통일신라 국보급 불교공예품 왜 무더기로 묻혔을까?

    고려시대에 일연이 ‘삼국유사’를 쓴 곳으로 잘 알려진 경북 군위군 인각사에서 발견된 통일신라시대의 국보급 불교 공예품(서울신문 2월6일자 3면 보도)들은 어떻게 땅속에 무더기로 파묻혔을까. 매장의 방식이나 장소 등이 전례가 없는 만큼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매장 방식·장소 전례없어 관심 증폭 앞서 불교문화재연구소(소장 범하)는 “지난해 말 인각사 5차 발굴조사에서 금동병향로, 청동정병 2점, 청동향합, 청동이중합, 청동반자 등 통일신라시대 불교의식구 10여점을 발굴했다.”고 밝혔다. 유물이 무더기로 발굴된 지점은 인각사의 오른쪽으로 통일신라시대 회랑과 담장, 탑 등의 터가 드러났다. 그리고 부도로 추정되는 탑터 2~3m 지점에서 유물이 쏟아져 나왔다. 가장 큰 의문점은 왜 묻었을까이다. 묻힌 장소가 지표층에서 5㎝밖에 되지 않는데다, 묻는 방식이 그리 정교하거나 치밀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더욱 의문을 남긴다. 유물들은 둥그렇게 땅을 파서 바닥에 기와를 깔고 벽과 위쪽에 기와로 칸막이를 삼은 뒤 흙을 덮어 묻었다. 일부에서는 몽고 침입 당시 약탈이나 훼손을 막으려 급하게 묻은 것이거나, 새로운 건물이나 탑을 지을 때 땅의 신을 위로하고자 묻는 지진구(地鎭具)가 아니겠느냐는 가설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동반 유물인 기와가 통일신라시대의 것이 확실한 만큼 몽고가 침입한 고려나 임진왜란 때 묻어놓았을 가능성은 낮다. 지진구라는 가설 역시, 매납 방식이 정교하지 않은 데다 유물이 의식을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실제로 사용되었던 것이라는 점에서 가능성은 높지 않다. ●생전의 공양구 함께 묻은 것으로 추정금속공예전문가인 안귀숙 인천공항 문화재감정관은 “일단은 통일신라시대에 국사(國師)급의 고승이 열반하자 묘탑을 짓고 생전의 공양구를 함께 묻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면서 “불교사 연구 전문가들이 더욱 연구해야 할 대목”이라고 말했다. 한편 이번에 발굴된 유물 가운데 길이 40㎝, 높이 10㎝의 금동병향로(銅柄香爐·금박이 입혀진 손잡이 달린 향로)는 중국, 일본에서는 몇 차례 발견된 사례가 있으나 국내에서는 두 점(삼성미술관 소장 병향로, 말흘리 출토 병향로)만이 알려져 있었다. 그러나 출토 지역과 성격이 명확한 것으로는 사실상 이번 것이 처음이다. 손잡이에는 사자가 조각돼 있어 765년 세워진 당나라 고승 신회선사의 신탑(身塔) 지하석실에서 나온 병향로와 유사하지만 세밀한 아름다움은 더욱 뛰어나다는 평가다. 또한 청동정병(靑銅淨甁) 2점은 그동안 고려시대의 것만 알려져 있었으나 통일신라시대 것은 처음으로 확인됐다. 한 점은 완벽하게 형태를 보존하고 있고, 또 한 점은 목 부분이 파손됐다. 작은 뚜껑으로 여닫을 수 있는 주구와 첨대가 달린 정병으로 유일한 통일신라시대 출토물이다. 박록삼기자 youngtan@seoul.co.kr
  • [우리말 여행] 늦깎이

    나이가 많이 들어서 어떤 일을 시작한 사람을 이렇게 부른다. ‘늦깎이로 시작한 연기 생활.’ ‘늦깎이 교수.’ 남보다 늦게 사리를 깨달아도 늦깎이다. 늦게 익은 과실·채소 따위도 늦깎이라고 한다. 이 말도 본래 불교용어였다. 나이가 많이 들어서 승려가 된 사람을 뜻했다. 반대말도 있다. 올깎이. 나이가 어려서 승려가 된 사람을 가리킨다.
  • 고삐 풀린 전국 유명산 케이블카 설치

    고삐 풀린 전국 유명산 케이블카 설치

    환경부가 최근 삭도(케이블카) 설치 규제를 일부 완화하고, 앞으로 이를 더 확대할 방침을 밝히면서 전국 유명산에 케이블카 설치 붐이 일 것으로 보인다. 국립공원을 끼고 있는 지방자치단체는 관광 개발과 지역경제 활성화 등의 명분을 내걸고 정부의 설치 허가를 얻어내려고 안간힘을 쏟고 있다. 반면 환경·종교단체 등은 자연환경 훼손 등을 이유로 케이블카 설치에 적극적으로 반대하고 나서면서 갈등이 예상된다. ●보호구역 폐지 등 관련 규제 완화 환경부는 최근 케이블카 설치와 관련, ‘문화재 보호구역 500m 이내 금지’ ‘녹지자연도 8등급 이상 불가’ 등 일부 규제 조항을 폐지했다. 또 공원지역의 케이블카 통과 길이도 기존 ‘2㎞ 이내’에서 ‘4~5㎞ 이내’로 완화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환경부 관계자는 “일부 규제가 폐지 또는 완화된다고 하더라도 국립공원의 주봉과 생물다양성이 높은 지역 등에는 피하도록 한 별도의 가이드라인이 있고 공원위원회의 심의도 거쳐야 하는 만큼 케이블카가 무분별하게 설치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제활성화 등 내세워 케이블카 설치 봇물 그럼에도 각 지자체는 “설치에 핵심 걸림돌이 제거됐다.”며 반기고 있다. 전남 구례군은 지리산 케이블카 설치에 4번째 도전장을 냈다. 이를 위해 지난해 12월 환경영향평가 용역을 발주하고 올해 안에 국립공원계획변경안을 환경부에 신청할 예정이다. 구례군은 산동면 좌사리 지리산온천관광지구~노고단 8부 능선(5㎞)과 관광지구~성삼재(2.9㎞) 등 2개 코스를 놓고 저울질하고 있다. 군 관계자는 “노고단 도로개방 이후 연간 80만대 이상의 차량이 자연보전지구를 통과하면서 매연과 야생동물 로드킬 등 각종 폐해가 발생하고 있다.”며 “케이블카를 설치하고 이 도로를 축소 또는 폐쇄하는 것이 오히려 환경파괴를 막을 수 있다.”며 강한 의지를 내보였다. 케이블카가 설치되면 1~3월 노고단 눈꽃 관광객 등 연간 130여만명이 지리산을 찾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지리산 온천지구와 야생화 테마랜드, 산수유 군락지 등 지역 관광 산업과도 연계한다는 구상이다. 앞서 1997년, 2001년, 2004년에도 케이블카 허가 승인을 요청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전남 영암군도 영암읍 회문리 작은골~천황봉 지봉(2㎞) 사이에 케이블카를 설치하기 위해 지난해 9월 타당성조사 용역에 들어갔다. 군 관계자는 “도갑사 주변 등 문화재 보호구역만 피하면 설치 허가를 받아낼 수 있을 것”이라며 자신감을 보였다. 전남 목포시 역시 유달산~고하도(1.85㎞)구간에 케이블카를 설치키로 하고 지난해 기본구상 및 타당성 검토에 들어갔다. 고하도 유원지 개발이 마무리되는 2012년까지 설치를 목표로 잡고 있다. 이밖에 전북 남원, 경남 산청·함양군 등 지리산권 지자체와 제주·강원 등 유명 관광지들도 앞다퉈 케이블카 설치를 추진 중이다. ●파괴와 훼손 등 이유 환경단체 반대 그러나 환경단체 등은 환경 파괴와 문화재 훼손 등의 이유를 들어 이에 반발하고 있다. 특히 해당 지자체가 케이블카 설치 추진의 근거로 내세우고 있는 지역경제활성화 분야에 대한 검증도 철저히 펴기로 했다. ‘국립공원을 지키는 시민의 모임’을 비롯, 환경운동연합, 녹색연합, 대한불교조계종, 산악회 등은 지난해 9월 ‘국립·도립·군립공원안 관광용 케이블카 반대 전국대책위원회’를 출범시켜 자치단체와 정부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윤주옥 시민의 모임 사무처장은 “너무 여러 지역에서 케이블카 설치에 나서고 있는 만큼 지역별 현장조사를 진행하겠다.”며 “이를 토대로 가지산도립공원처럼 사업이 구체화되고 있는 지역부터 저지를 위한 공동투쟁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글ㆍ사진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힌두 인도 vs 이슬람권 파키스탄 분쟁의 역사 파헤치다

    어찌 보면 중동의 가자지구나 인도의 카슈미르나 전 세계 분쟁지역들이 50년 넘게 유혈사태를 빚고 막대한 사상자를 내는 원인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통치 잔재나 흔적 탓이다. 2차 대전이 끝나고 중동과 아시아 아프리카 등의 식민지에서는 민족주의를 기반으로 한 신생국가들이 생겨났다. 그러나 민족주의란 배경은 또 다른 분쟁의 원인이 됐다. 신생 국가 내의 소수민족과 다수민족 사이에 권력을 둘러싸고 민족문제가 불거지거나 인근 국가들과 종교, 인종적인 갈등을 시작했기 때문이다. 제국주의 국가들이 원활한 식민통치를 위해 ‘분리해서 통치하라.’는 원칙을 준용해 가면 한 나라를 분열시켰기 때문이다. 2009년 세계 주요 분쟁지역으로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인도와 파키스탄의 분쟁도 같은 양상이다. ‘인도와 파키스탄’(조길태 지음, 민음사 펴냄)은 카슈미르를 중심으로 한 양국 간의 분쟁을 인도에서의 파키스탄 분리를 중심으로 살펴보고 있다. 아주대 사학전공 교수인 저자는 두 나라의 대립과 분쟁이 단지 종파적 민족주의의 산물인지 또는 영국 제국주의 정책의 일환인지 자문하고 있다. ●인도에서 파키스탄 분리 중심으로 분쟁사 분석 힌두 국가였던 인도에 이질적인 무슬림이 섞인 것은 12세기 말 무슬림 왕조가 수립되면서다. 인적 구성상 영국의 식민통치를 받던 200여년 동안 힌두의 관직진출은 무슬림보다 많았다. 이에 19세기 후반 무슬림의 지도자인 사예드 아메드 칸은 무슬림 민족주의를 내세우며, 영국 정부로부터 무슬림에게 유리한 분리 선거제의 특혜를 얻어냈다. 당시 영국 정부는 인도에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두 개의 민족공동체가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한 것으로, 다른 한편에서 무슬림의 분열 운동을 촉진시켰다. 영국으로서는 ‘분리통치’를 통해 식민지 인도 내부에서 정치적 급진주의를 억제하고, 종파적 균형을 유지함으로써 통치의 안정을 확보하려고 한 것이다. 이런 분리통치의 결과 2차 대전이 종식되고 1947년 8월 영국이 인도에서 철수하자 인도는 힌두의 인도와 무슬림의 파키스탄으로 분리된다. 분리된 인도의 힘은 불가피하게 국제사회에서 약해진다. 여기에 두 개의 국가로 분리된 이후에도 전쟁의 형태로 갈등이 지속됐다. 인도와 파키스탄은 분리 후 3차례의 전쟁을 치렀는데 이중 2번이 인도령인 카슈미르가 발단이다. 카슈미르는 이슬람교가 전체인구의 77%, 힌두교·불교·시크교가 23%다. 종교적인 측면이나 전체 국민의 뜻을 따지자면 영국으로부터 독립할 때 파키스탄으로 편입됐어야 했다. 하지만 당시 카슈미르 지방을 통치하던 힌두계 토후 왕족들은 인도 편입을 선언했다. 만약 영국이 식민통치 과정에서 두 개의 종교적 세력(민족)을 용인하지 않거나, 철수하는 영국이 카슈미르의 주민 80%인 무슬림의 뜻을 고려하는 장치를 마련했더라면 현재의 상황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뜻이다. 그해 10월 카슈미르 이슬람 세력이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수도를 점령하려고 하자 인도가 군대를 파견해 1차 인·파 전쟁이 시작됐다. 그 다음해 8월 유엔 개입으로 정전합의가 이뤄졌고, 카슈미르는 인도와 파키스탄에 각각 63%, 37%씩 영토가 쪼개졌다. 2차 인·파 전쟁은 1964년 파키스탄이 인도령 카슈미르 지역을 공격하면서 발발했다. 1980년대 들어서서 인도령 잠무 카슈미르 내 이슬람 세력이 분리독립 운동을 시작하면서 양측 간 충돌은 더욱 빈번해졌다. 이때 결성된 ‘잠무 카슈미르 해방전선(JKLF)’은 파키스탄의 지원 아래 테러전을 시작했다. 인도군도 이들과 이슬람 주민을 상대로 무자비한 보복을 자행했다. 2007년 12월 인도 국회의사당 폭탄테러도 JKLF 소행으로 알려져 있다. ●“인도-파키스탄 문명의 충돌 세계에 재난 될 것” 핵무기 보유국인 인도와 파키스탄의 갈등은 두 국가만의 비극이 아니라 전 인류에게 가공할 만한 재난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우려한다. 기독교와 이슬람간의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는 중동처럼, 힌두권과 이슬람권의 문명의 충돌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국제주의와 세계 시민 사상을 강조하는 국제적 개방 시대에 살고 있는 현대인에게 민족주의가 지나치게 강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다. 민족주의는 제국주의에 의해 분열되고 억악받던 국가가 통일운동이나 해방운동을 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말한다. 2만 8000원.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삼국유사 설화 군위서 재현된다

    700여년 전 보각국사 일연(1206~1289년) 스님이 삼국유사를 편찬한 경북 군위에 삼국유사 문화 콘텐츠를 집대성한 문화 단지가 조성된다. 군위군은 오는 2014년까지 삼국유사의 산실인 고로면 화북리 인각사(隣角寺) 일원에 ‘삼국유사 문화랜드’를 만들기로 했다고 4일 밝혔다. 군은 이 사업에 총 3000억원이 소요될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삼국유사 문화랜드에는 우선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각종 신화·향가·설화 등을 현대적 감각에 맞게 창극화해 공연하는 마당놀이 상설 공연장이 들어선다. 공연으로는 선화공주와 서동, 선덕과 지귀의 사랑, 원왕생가(願往生歌·사랑의 갈등과 깨달음) 등이 선보일 예정이다. 또 단군·박혁거세·김수로·고주몽 등 각종 신화를 체험할 수 있는 신화 체험관, 도솔가·찬기파랑가 등 향가, 왕력·흥법 등 설화를 감상하는 문예촌이 세워진다. 삼국유사를 주제로 한 영화·만화·연극·게임·캐릭터 등의 문화 콘텐츠 창작마을과 삼국유사를 한눈에 보고 느끼고 체험할 수 있는 문화역사 박물관도 조성된다. 이와 함께 관광객 등이 문화랜드에 머물면서 불교와 삼국유사를 경험하게 하는 템플스테이 시설 및 자연 치유(治癒)·효(孝)·명상 체험장 등의 설치도 구상하고 있다. 또 삼국유사 문화연구소 및 국제교류관을 설립해 문화콘텐츠 등을 지속 발굴해 관광 상품화하고, 한자·불교 문화권과의 교류도 활성화한다는 복안이다. 군은 이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해 이달 중 각계각층의 삼국유사 권위자 20여명으로 자문위원회를 구성해 운영하기로 했다. 또 주민들의 문화 마인드 향상을 위해 9일을 시작으로 매월 2차례씩 지속적으로 ‘삼국유사 아카데미’를 연다. 군은 삼국유사 문화랜드 조성 사업을 정부의 100대 국책 선도사업의 하나인 3대(신라·가야·유교) 문화권 개발 계획에 적극 반영해 줄 것을 문화체육관광부에 건의키로 했다. 한편 고려 후기의 고승으로 경북 경산에서 출생한 일연은 노년에 어머니를 모시고 군위 인각사에 머물면서 역사서인 삼국유사를 편찬(충렬왕 7년·1281년)하고 그곳에서 입적했다. 군위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종교플러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 신청접수 조계종 불교문화사업단은 2009년도 템플스테이 운영사찰을 20일까지 모집한다. 템플스테이 운영사찰로 지정되면 불교문화사업단으로부터 시설 및 운영자 교육지원 등의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지원을 원하는 사찰은 20명 이상을 동시에 수용할 수 있는 전용 공간을 갖추고, 프로그램 운영자를 확보해야 한다. 희망 사찰은 불교문화사업단 홈페이지(www.templestay.com)에서 신청서를 다운받아 사찰 홍보물, 조감도 및 가람 배치도, 시설 사진과 함께 제출하면 된다. 현재 템플스테이 운영 사찰은 87곳이 지정돼 있다. ●겨울생명평화학교 13일 개최 생명평화결사는 13일부터 15일까지 전북 남원 실상사 작은학교에서 ‘2009 겨울생명평화학교’를 개최한다. 도법 스님과 생명평화탁발순례단이 지난 5년간의 순례를 통해 제시한 화두인 ‘단순 소박한 삶을 위하여’가 주제. 생명평화 100대 서원 절 명상, 숲길걷기, 공동체 대화 등의 프로그램으로 진행되며 도법 스님의 ‘단순 소박한 삶과 마을운동’, 황대권 공동체위원장의 ‘아쉬람, 공동체 마을 만들기’ 강연도 있다. ●내일 용산참사 희생자 시국법회 시국법회추진위원회(공동대표 수경스님 외)는 용산 철거민 참사와 관련해 5일 오후 6시30분 서울 조계사 대웅전에서 ‘용산 참사 희생자를 위한 시국법회’를 연다. 법회는 수경 스님의 여는 말을 시작으로 불교인권위원장 진관 스님의 추모사와 조계종 교육원장 청화 스님의 법어 순으로 진행된다. 희생자들을 위한 천도의식과 함께 108배 참회정진도 있다. 시국법회에는 스님 100여명을 비롯해 유족대표, 신도 500여명이 참가할 것으로 알려졌다. 법회가 끝난 뒤 조계사~청계광장까지 추모행진도 갖는다. ●고 탁명환 소장 15주기 추모식 이단사이비연구의 선구자인 고 탁명환 소장의 15주기 추모식이 16일 오전 11시 서울 종로5가 한국교회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월간 현대종교 주최로 열린다. 추모식은 월간 현대종교 탁지원 발행인의 사회로 진행되며 충신교회 박종순 목사, 장기기증운동본부장 박진탁 목사가 각각 설교와 추모사를 한다. 이날 추모식은 고 탁 소장의 기독교계 신흥종교운동 연구 사료를 엮은 ‘사료 한국의 신흥종교’(탁지일 저) 출판기념회도 겸한다.
  • 정세균 “구경꾼 같은 소리”에 이회창 “구경꾼 될 밖에”

    정세균 “구경꾼 같은 소리”에 이회창 “구경꾼 될 밖에”

    자유선진당 이회창 총재와 민주당 정세균 대표의 신경전이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야당다움,즉 ‘선명성’을 둔 염두에 둔 설전이다.  이 총재는 4일 불교방송 ‘김재원의 아침저널’에 출연,전날 정 대표가 “선진당은 구경꾼 같은 말만 하지 말라.”고 비판한 것과 관련 “폭력을 행사하고 이유가 안되는 장외집회를 하는 것에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고 반박했다.  이 총재는 “정 대표가 그런 말을 할 사람이 아닌데 아마 잘못 전해진 것 아닌가 싶다.”고 말하면서도 “망치 쳐들고 때려 부수는 게 야당다운 야당은 아니며,시도 때도 없이 시민단체 모임에 나가서 장외집회에 참여하는 것도 야당의 진정한 모습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장외투쟁에 대해 “물론 야당이 장외집회를 해야 할 때가 있다.”고 전제한 그는 “(장외집회는) 아주 필요하고 정말 다른 방법이 없어 국민에게 호소할 때 나가서 해야 한다.걸핏하면 나가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 총재는 “야당은 야당 같이 공조할 때가 있다.”면서 “ 폭력을 행사하고 이유가 별로 안 되는 장외집회에 나가는데 우리는 구경꾼이 될 수밖에 없다.”며 동참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두 사람의 ‘야당다운 야당’ 공방은 지난 2일 이 총재가 여의도 당사에서 열린 주요 당직자회의에서 “지금은 정당들이 장외로 나갈 때가 아니며,국회로 돌아와 국민의 의사를 받들어야 한다.”라고 포문을 열었다.다음 날 정 대표는 KBS 1라디오 ‘안녕하십니까, 민경욱입니다’에 출연,” 정당의 활동은 국회에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다.”라며 “야당이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구경만 할 수는 없다.선진당도 구경꾼 같은 말만 하지 말고 야당답게 행동하라.”고 맞섰다.  민주당과 선진당의 대립은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지난해 12월 민주당은 예산안 협상 과정에서 한나라당과 비슷한 입장을 밝힌 선진당을 향해 “한나라당 2중대”라며 목소리를 높였고,이에 선진당은 “민주당은 민주노동당 2중대”라고 반박하며 공식 사과를 요구하는 등 충돌했었다. 인터넷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조계사 8각 10층탑 세운다

    조계사 8각 10층탑 세운다

    현재 서울 견지동 조계사 대웅전 앞뜰에 있는 ‘진신사리 7층 석탑’이 총무원 옆으로 옮겨지고 그 자리에 10층탑이 새로 들어선다. 3일 조계사 주지 세민 스님에 따르면 조계사는 불교의 큰 정신인 8정도(正道)와 10선계(善戒)를 상징하는 높이 15.6m(기단부 폭 6.6m)의 8각 10층 사리탑을 늦어도 오는 6월 말까지 조성한다. 지금의 ‘진신사리 7층석탑’은 스리랑카의 다르마팔라 스님이 1913년 기증한 부처님 진신사리 1과를 봉안한 탑. 원래 조계사의 전신인 각황사에 보관해 오던 이 사리를 1930년대 조계사 창건과 함께 이운하면서 탑을 세운 것이다. 세민 스님은 새 탑 조성과 관련, “7층 석탑이 한국 전통 탑에 비해 왜소하게 보이고 탑 옥개석이 말려 올라간 양식을 볼 때 왜색(倭色)이 짙어 한국불교 1번지로 평가받는 조계사의 사격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에 따라 불사를 추진중”이라며 새 탑은 고려시대 전통 탑 양식을 따를 것이라고 밝혔다. 탑 중대부의 8면에 천룡(天龍)과 용, 야차, 건달바, 아수라, 금시조, 긴나라, 마후가라 등 ‘팔부 신중상’을 새기고 첫 번째 탑신 8면에는 과거 3불과 현세 4불, 미래불 등 여덟 불상을 부조로 새긴다. 탑의 상륜부는 청동 함 형태로 만들어 금 도금하며 그 안에 기존 7층 석탑에 있던 부처의 진신사리를 옮겨 모실 계획이다. 탑에는 1만개의 작은 불상을 함께 봉안하며 조계사측은 이에 필요한 경비의 80%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7층 석탑은 오는 5월 부처님오신날 이후 옮겨진다. 한편 조계사는 새 사리탑 조성에 맞춰 조계종 역사를 자세하게 담는 사적비 건립과 사찰 주변의 공원화도 추진중이다. 현재 조계사에 등록된 신도는 2만 5000여가구 10만여명이며 매월 초하루 법회 참석자가 5000명 수준. 매일 찾아드는 외국인 방문객도 하루 500여명에 이른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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