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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플러스]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 발표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최근 ‘21세기형 단기선교여행 표준지침’을 발표했다. 선교한국 39개 회원단체가 서명한 이 표준지침은 전국 교회에 배포돼 선교여행 준비 지침으로 사용된다. 표준지침서는 선교한국 파트너스 사무실로 연락하면 받아볼 수 있다. 선교한국 파트너스는 이와 관련해 다음 달 8일 남서울교회에서 ‘이제 우리는 어떤 선교사를 보낼 것인가’라는 주제로 포럼을 연다. ●국제선센터, 외국인 스님 연수회 조계종 교육원은 다음 달 11일 서울 신정동 국제선센터에서 ‘외국인 스님들을 위한 연수회’를 개최한다. 이번 연수회는 국내외서 활동하는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를 위한 주요 사업과 활동 방향을 설명하고 외국인 스님들의 동참을 독려하기 위한 자리. 교육원 측은 이날 외국인 스님들에게 한국불교 세계화 관련기관에 대한 정보와 주요사업을 전달하고 외국인 스님들이 현장에서 겪는 애로사항 및 요구사항을 수렴해 종단 운영에 반영한다. ●북한기독교총연합회 창립총회 탈북민 교회·선교단체 연합체인 ‘북한기독교총연합회’(북기총)가 21일 오후 3시 서울 한국기독교100주년기념관 소강당에서 창립총회를 연다. 북기총 창립총회 준비위원회는 “북한을 잘 아는 탈북민들을 영적 신앙으로 무장시켜 통일의 날을 대비하고 북한 복음화를 준비하고자 기독 탈북민 단체들이 힘을 모았다.”고 밝혔다. 북기총은 특히 북한의 봉수·칠골교회와 조선그리스도교연맹(조그련)을 북한 기독교회 대표 기관으로 인정하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 기다리는 출가에서 발탁하는 출가로

    기다리는 출가에서 발탁하는 출가로

    ‘기다리는 출가에서 발탁하는 출가로’. 한국불교 맏형 격인 대한불교 조계종이 기존의 출가제도를 전면 손질할 태세다. 출가자가 계속 줄 뿐 아니라 고령화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불교계 안에선 지금 추세라면 조계종이 인력 수급에 큰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래서 조계종 승가교육진흥위원회(승진위·위원장 자승 총무원장)가 메스를 집어들었다. 오는 6월 14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여는 ‘출가제도 개선과 출가자 활성화 방안을 위한 공청회’는 그 첫 작업이다. ●조계종 6월 14일 ‘출가제도 개선’ 공청회 17일 불교계에 따르면 조계종은 공청회에서 출가연령 제한 완화와 다양한 형태의 출가제 도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해 개선 방안을 정할 것으로 보인다. 우선 ‘15세 이상∼50세 이하의 고졸 이상 학력자’로 정한 출가연령 제한 규정의 대폭 완화가 눈에 띈다. ‘적극적 출가자 영입’이란 큰 방향에 따라 이 규정은 폐지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로 조계종 안에서는 이 제한 규정 완화에 따른 문호 개방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출가자 연령제한 완화 등 전면손질 추진 출가자 연령 제한을 완화하는 대신 청소년 출가나 재능·봉사·장애인 등의 단기 출가를 대폭 늘리자는 것이다. 여기에는 ▲교구 출가 정원제 ▲은사도제 정원제 도입 ▲청소년 출가자 확대를 위한 체험프로그램 개설도 포함된다. 승진위에 따르면 조계종은 대학졸업 후 출가할 경우 조계종립대학 3학년에 편입시키고 석사과정을 졸업한 출가자는 기본교육을 이수한 것으로 인정해 주는 방안도 논의 중이다. 이와 관련해 ‘선교육 후득도 출가제’도 눈길을 끄는 부분. 종립대인 동국대에 입학한 출가 지원자에게 전액 장학금을 지급하고 대학 졸업 후 사미계를 수지토록 하는 것. 이에 따르면 대학원 과정을 승려 기본교육으로 인정해 대학원 졸업 후 2년만 수료하면 구족(비구)계도 받을 수 있다. 한편 조계종 승진위에 따르면 사미(니) 수계자는 2001년도 476명에서 2005년 326명, 2008년 287명, 지난해엔 268명으로 계속 줄었다. 연령별 출가자 수는 30∼40대가 전체의 70%를 차지하고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부고] 조계종 前 총무원장 성수스님 입적

    [부고] 조계종 前 총무원장 성수스님 입적

    조계종 총무원장을 지낸 종단 원로의원 성수(性壽) 스님이 15일 오전 6시쯤 경남 양산 통도사 관음암에서 입적했다. 법랍 69세, 세수 89세. 고인은 1923년 경남 울주생으로 일제 강점기에 부산 내원사에서 성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으며 1948년 부산 범어사에서 동산 스님을 계사로 구족계를 받았다. 1967년 조계사를 시작으로 범어사·해인사·고운사·마곡사 등 주요 사찰의 주지를 거쳐 10·27 법난 직후인 1981년 제18대 총무원장에 취임해 혼란스러운 종단을 수습하는 역할을 했다. 고인은 1978년 일본에서 열린 세계불교지도자대회 한국대표로 참가했으며 1994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됐다. 2004년 종단 최고 품계인 대종사(大宗師) 법계를 받았으며 2005~2008년에는 종단 스님들에게 계를 주는 전계대화상을 지냈다. 생전에 도심 포교에 앞장섰던 스님은 1973년 서울 강남구 세곡동에 법수선원을 연 것을 시작으로 경남 산청의 해동선원, 함양의 황대선원 등 3곳을 직접 창건해 조실로 주석했다. 영결식과 다비식은 19일 오전 10시 통도사에서 원로회의장으로 치러진다. (055)382-7182.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선택! 역사를 갈랐다] (8)정도전과 이방원

    1398년(태조 7) 음력 8월 26일 밤, 정도전은 이방원과 마주하였다. 정도전은 살려달라고 부탁했지만, 이방원은 거절했다. 1차 왕자의 난에 벌어진 일이었다. 그리고 정도전이 꾸었던 꿈은 뒤틀리고 변하였다. 정도전과 이방원, 두 사람은 조선 초기의 신권과 왕권론을 대표하는 역사적 라이벌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정말 역사적 라이벌로 이해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나이 차이부터 상당했다. 1392년 조선이 만들어질 때 정도전은 50세의 중년, 이방원은 25세의 청년이었다. 당시로는 아버지와 아들뻘 정도의 차이였다. 혹시 1383년(우왕 9) 정도전이 처음 이성계를 만났던 함주 막사에서 보았던 이방원은 16살의 똑똑하고 야심에 찬 아이로 기억했을 수 있다. 그만큼 라이벌 의식을 느끼기 어렵다는 뜻이다. 두 사람이 살아온 길도 조금 달랐다. 정도전은 경상도 향리 집안 출신이고, 어머니의 혈통 문제로 곤란을 겪기도 했다. 귀족 가문이 얽혀 있는 중앙정계에서 그는 과거시험과 자신의 실력만으로 권력의 정글을 헤쳐나가야 했다. 이 때문에 정도전은 유배를 갔다. 그 후에도 노골적으로 차별을 받았다. 자신이 세운 삼각산 아래 학교를 옮겨야 했고, 이사도 여러 차례 했었다. 아마도 그의 성격은 원칙적이고, 때로 과격했던 것 같다. 이방원은 그보다 좋은 주변 환경에서 좋은 조건에서 살았다. 그는 이성계가 중앙 정계에 등장한 이후에 태어났다. 또한, 이성계의 많은 아들 중에서 드물게 과거시험에 합격했다. 벼슬길에서도 크게 어려운 일을 겪지 않았다. 그럼에도 그는 귀족적 나약함보다 정치적 판단력과 추진력이 있었다. 이방원이 정몽주를 살해하는 과정은 그의 냉혹함과 판단력을 보여주는 사례이다. ●‘새 술은 새 부대로’ 의견 모은 정도전과 이방원 정도전과 이방원이 당면했던 현실은 국가운영의 문제였다. 고려왕조는 힘들게 숨을 내쉬고 있었다. 국제적으로는 새롭게 등장한 명나라와 이전 원나라 사이에서 방황했다. 더구나 홍건적과 왜구의 침입은 견디기 쉽지 않은 시련이었다. 특히 왜구의 침략은 시간이 갈수록 더해졌고, 바닷가 지역 사람들을 삶의 터전에서 쫓아냈다. 국내 상황은 더 문제였다. 고려의 귀족들은 지배층이면서도 사회적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들은 권력과 경제력을 이용해 남의 땅을 삼켰다. 넓어진 땅에 필요한 일손은 백성을 노비로 만들어 보충했다. 이들에겐 법적 소송도 먹히지 않았다. 귀족들은 자신의 수하에 있던 사람들을 관료로 만들었다. 세금을 내야 할 땅과 군대에 가야 할 사람들이 계속 줄어 갔다. 한마디로 국가운영이 파탄나고 있었다. 새로운 질서와 혁신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두 사람은 공감했다. 여기까지가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정도전은 현실을 바꾸기 위해 이성계와 손잡았다. 고려말 여러 지식인이 정도전처럼 개혁을 생각했다. 그들은 성리학을 공통된 이념적 무기로 삼아 현실에 적용하려 했다. 자신들의 학문을 실학이라고 불렀다. 그들이 본 불교는 인륜을 해치는 껍데기 학문이었다. 위화도 회군은 이성계와 개혁을 꿈꾸었던 세력이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된 사건이었다. 당시 요동 정벌을 추진했던 우왕과 최영 장군 등은 구세력으로 물러나야 했다. 그렇지만, 개혁세력은 점차 분화되어 갔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고 싶어한 정도전과 조준. 적어도 고려왕조의 틀은 유지하려 한 이색, 권근, 정몽주 등은 대립해야 했다. 정몽주의 죽음은 고려의 가을을 재촉한 상징적 사건이었다. ●정도전, 고려 귀족을 관료로 대체를 시도하다 정도전은 정치의 근본이 민(民)이라고 했다. 유교 정치의 원리인 셈이다. 권력이 이곳에서 출발하고, 통치자가 민심을 잃으면 덕(德)이 있는 다른 사람에게 권력을 넘긴다. 그래야만 이성계가 국왕이 되는 것이 가능하다. 또한 이 백성에서 선비가 등장해서 관료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정도전에게 선비와 농민은 둘이 아니었다. 그의 의도는 과거 문벌 귀족들이 차지했던 관료 자리를 더 많은 계층과 지역에 개방하는 것에 있었다. 이를 위해 정도전은 지방관 등의 천거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또한, 관료들은 통치를 위한 지식과 능력이 필요했기에 반드시 학교를 거쳐 과거시험을 보도록 했다. 그는 고려시대처럼 과거 시험관과 합격자 사이의 개인적 인맥이 생기는 것을 막고, 이를 위해 사립학교를 약화시켰다. 정도전이 추구한 것은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이다. 그는 중국 고대의 제도인 6부를 원리로 한 중앙 관제를 만들었다. 말하자면 권력이 중앙에 모여 마치 물고기를 잡는 그물처럼 행정망이 펼쳐지는 그런 국가였다. 고려의 행정체계는 마치 벌집처럼 복잡한 자율성을 지녔다. 이 체계가 고려말 국가위기에 대응하는 일에 무기력했다. 국가 자원의 효율적 분배와 동원을 어렵게 만들었던 것이다. 정도전은 이를 중앙에서 효율적으로 처리하고, 가문과 개인 등이 자신의 이익만을 추구하지 못하도록 할 필요가 있었다. 조선의 중앙집권적인 국가운영방식은 이런 역사적 배경 속에서 탄생했다. ●이방원, 고려 귀족문벌 다시 정치로 흡수하다 이성계가 집권한 이후 정도전이 당면한 정치적 문제는 두 가지였다. 하나는 국왕의 후계자 문제, 다른 하나는 명과의 외교 문제였다. 후계자 문제는 빨리 정리되었다. 이성계의 둘째 부인인 강씨 소생의 막내가 후계자로 결정된 것이다. 이성계는 첫째 부인인 한씨 소생으로 6명의 아들을 두었고, 이방원이 그중에서 다섯째 아들이었다. 정도전 등은 공로가 있는 아들을 세우자는 의견이었지만, 결국 실현되지 못했다. 이 문제는 정도전이 죽게 되는 원인이 된다. 또 큰 문제는 명과의 외교 마찰이었다. 명 태조인 주원장은 조선에 대한 의심의 눈초리를 풀지 않았다. 주원장은 조선이 명을 공격할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명에 사신으로 왔던 이방원 등에 대해 좋은 대우를 해주었다. 특히 명은 외교 문서의 문구가 건방지다는 이유로, 조선에 문서 작성자를 보내라고 요구했다. 명은 정도전에게 책임의 화살을 돌렸다. 정도전은 이 문제에 정면 대응하려 했다. 그는 요동 정벌이라는 카드를 꺼냈다. 그는 이를 통해 정권에 위협이 될 최대 변수, 즉 왕자와 개국 공신들이 거느린 사병(私兵) 문제를 해결하려 했는지 모른다. 그러나 요동 정벌 추진은 조준 등과 같은 개혁파까지 이를 반대하게 한 카드가 되었다. 개국 공신들도 자신의 사병을 내놓아야 하기 때문에 여기에 찬동하지 않았다. 이방원은 이런 분위기를 놓치지 않았고, 결국 1398년(태조 7) 왕자의 난으로 권력을 장악할 수 있었다. 이방원은 일단 형을 국왕의 자리에 앉혔다. 그렇지만, 그는 본인이 직접 정치에 참여하는 한편, 수하들을 요직에 포진시켰다. 이방원이 주로 손을 잡았던 세력은 현실 개혁이 아닌 개선을 주장했던 세력들이다. 이들은 보수파는 아니지만, 기득권층의 이해는 나름대로 보존이 되어야 한다고 보았던 사람들이다. 고려말 이색 아래에서 공부했던 권근, 하륜 등이 그들이었다. 물론 이방원의 뛰어난 정치적 감각은 이를 뛰어넘고 있었다. 그는 숙청이 끝난 이후에는 모든 정치세력들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이려 했다. 개혁파였던 조준은 영의정으로 내세웠고, 사돈 관계를 맺었다. 또한 자신이 살해한 정몽주를 복권하고, 정도전의 동생과 아들의 벼슬길도 열어 주었다. 그러면서도 그는 과거 귀족 가문으로 중심을 재편하였다. 단, 이들 가문 간의 결속력을 막고자 종실 세력을 키웠다. 한마디로 이방원은 정도전처럼 중앙 정계에 지방세력을 끌어들이지 않고, 이들의 참여를 막았다. 대신에 이들에게는 군역의 면제나 면세와 같은 특권을 주었다. 이처럼 정도전이 추구했던 개혁의 방향은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다. ●일본 학자의 정치적 방법론이 조선사를 왜곡? 그렇다면, 이방원은 왕권 강화론자, 정도전은 신권론자였을까? 여기에는 국가 권력을 보는 시각의 문제가 전제된다. 원래 왕권과 신권의 대립 구도로 정치사를 이해하려 했던 학자들은 일본 학자들이었다. 그들이 메이지 유신을 겪으면서 천황과 봉건 영주의 대결로 정치사를 이해하려는 방법론을 이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왕권이나 신권 등의 말은 모호하고 피상적이다. 예컨대 외척이나 소수 공신에게 특권을 주는 것은 신권의 강화이면서 국왕권의 강화이기도 하다. 대표적인 오해가 바로 정도전의 경우이다. 그는 총재인 재상이 행정실무를 장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국왕은 도덕적으로 완성된 성인과 같은 존재가 되어야 한다고 했다. 따라서 그의 주장은 재상이 모든 권력을 장악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의 주장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었다. 정도전은 공민왕 이후 여러 고려 국왕들의 파행적인 정치운용과 도덕적 문제를 목격했다. 그는 조선에서 국왕이 소수 귀족가문과 결탁하여 개인적 이익을 취하려는 것을 막으려 했다. 그가 재상이 권력을 잡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면, 측근인 남은과 함께 군사권을 태조 이성계가 장악해야 한다고 건의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비록 그의 개혁구도는 이방원에 의해 변질되었지만, 그가 지향했던 중앙집권체제는 조선 왕조를 규정짓는 설계도가 되었다. 김인호(광운대 교양학부 초빙교수)
  • 이기적인 ‘나’ 버리고 ‘우리’ 행복하자

    ‘당신은 행복한가?’ 이런 질문을 받는다면 누구나 망설여지게 마련이다. 즉답에 앞서 ‘행복이란 무엇인가’라는 정의부터 헷갈릴 것이다. 남보다 많이 가진 부, 세상에 이름 높은 명예, 건강한 몸, 남 부러울 것 없는 자손의 번창…. 이것저것 다 갖췄다 해도 어디 한구석이 휑하거나 모자란 느낌을 갖는 게 인지상정일 것이다. ‘당신은 행복한가’(달라이라마·하워드 커틀러 지음, 류시화 옮김, 문학의숲 펴냄)는 그런 차원에서 행복의 참가치를 곱씹게 하는 책이다.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정부를 이끄는 티베트의 정신적 지도자 달라이 라마와 미국의 저명한 정신과 의사 하워드 커틀러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 이후 10년 만에 내놓은 공저. ‘달라이 라마의 행복론’이 ‘누구나 마음 수행을 통해 행복을 발견할 수 있다.’는 개인 차원의 행복찾기를 다뤘다면 ‘당신은 행복한가’는 관계의 측면에서 행복의 진정한 가치를 끌어내 눈길을 끈다. 첫 대면에서 ‘행복한가’라는 물음과 ‘물론입니다’라는 응답으로 시작한 두 사람의 대화는 한 편의 ‘행복 논문’을 완성해 가는 연구와 고뇌의 점철로 비친다. 달라이 라마의 거처인 다람살라와 하워드의 고향인 미국 애리조나의 투산을 오가며 나눈 대화의 큰 화두는 ‘혼자 행복해도 되는가, 혼자서 행복할 수 있는가.’이다. 서양의 이분법적 사고에 영향을 받은 정신과 의사와 동양 불교사상이 몸에 밴 정신적 지도자는 세세한 영역에서 간혹 엇갈리지만, 행복에서 ‘관계’를 빼놓을 수 없다는 인식에 의기투합한다. 책을 줄기차게 관통하는 테마는 ‘삶의 핵심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무엇이 우리를 진정 행복하게 만들고 행복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불러낸다. 달라이 라마는 우선 관점을 바꿀 것을 강력히 주문한다. ‘나’에서 ‘우리’로의 변화다. 요즘 사회에 심각한 문제가 끊이지 않는 주원인이 바로 ‘공동체 의식’이 희박해진 데 따른 ‘나’로의 침잠, 즉 관계의 단절 때문이란다. 그러면 관점을 나에서 우리로 이동하기만 한다면 행복은 저절로 올까. ‘우리’가 있으면 우리와 다르거나 우리에 맞서는 ‘그들’이 있을 터. 그 관계의 갈등과 마찰은 어떻게 풀어야 할까. 여기에 달라이 라마는 주저 없이 말한다. “사회적 길들여짐과 과장된 선전, 편견에 찬 감정을 통해 굳어진 사고방식이 서로 미워하게 하고 온갖 갈등과 분쟁의 문제를 불러일으킨다.” 근원에 있는 것은 인간의 마음. 내 마음에 아주 이기적인 ‘나’가 깊숙이 박혀 있기 때문이라고 두 사람은 말한다. 대부분 우리를 구별 짓는 게 아주 많다고 여기지만 그것은 환상일 뿐. 인생의 가치는 우리가 가진 무언가가 아니라 그것으로 어떤 일을 하는가에 달렸다는 달라이 라마. 그는 결국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변화는 한 사람의 마음과 가슴에서 먼저 시작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사람 관점의 전환과 함께. 이 변화는 한 번에 한 사람씩 일어납니다.” 1만 5000원.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三國志’ 권모술수 백과사전

    ‘三國志’ 권모술수 백과사전

    ‘쌍전’(류짜이푸 지음, 임태홍·한순자 옮김, 글항아리 펴냄)은 속이 후련해지는 책이다. 저자는 중국 문학의 4대 기서로 꼽히는 삼국지, 수호지, 홍루몽, 서유기 4권 가운데 삼국지와 수호지 두 책을 쌍전(雙典)이라고 지칭한 뒤 혹독하게 비판한다. 홍루몽과 서유기는 “그래도 동심(童心)과 불심(佛心)이 있”지만, 수호지와 삼국지는 “전자에는 흉악한 마음이, 후자에는 교활한 심보가 충만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폭력과 권모술수를 숭배하는 책들이어서다. “이 두 권의 ‘위대한 고전 명저’에 심취하고 있을 때 지옥에 떨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면서 쌍전을 일컬어 ‘지옥의 문’이라고 부른다. 아니, 그렇게 위험한 책이 왜 수백년간 그토록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단 말인가. 저자는 쌍전의 문학적 성취는 탁월하다고 본다. 수호지는 독특한 캐릭터, 그것도 3~4명도 아니고 108명에 이르는 엄청난 수의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들어 냈다. 삼국지는 수호지에 비하자면 조조, 유비, 관우, 제갈량 같은 몇몇 전형적인 인물을 만들어 내는 데 그쳤지만, 그 인물들이 너무나 성공적이어서 대성공을 거둔 작품이다. “문학 비평의 관점에서 보자면 그 서사예술이 매우 높은 단계에 이르렀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저자는 ‘문학’ 비평과 ‘문화’ 비평을 구분한다. 일본 소설가 미시마 유키오의 예를 든다. “미시마는 문학적인 파급력, 영향력 면에서 높게 평가받을 수 있지만 노벨문학상 비평가들은 가와바타 야스나리와 오에 겐자부로에게 노벨상의 영광을 안겼다.” 미시마가 추구한 무사도 정신에다 노벨상과 문학이 지향하는 고귀한 이상을 내어 줄 수는 없는 노릇이라는 얘기다. 저자는 셰익스피어의 맥베스에도 비교한다. 맥베스 역시 폭력과 권모술수에 대한 얘기다. 그러나 권력찬탈 과정에서 도덕적 각성 문제도 함께 다룬다. 단순히 맥베스가 몰락했다는 권선징악적 구조 때문이 아니라, 맥베스의 독백을 통해 끊임없이 그 괴로움에 대해 언급한다는 점에 주목한다. 쌍전에는 이런 도덕적 괴로움에 대한 언급이 단 한 곳도 없다. “두 나라 소설의 사상적인 경지, 인생의 경지, 미학적인 취미는 그 차이가 하늘과 땅처럼 컸다.”고 본다. 저자가 이런 관점을 취하는 이유는 1989년 톈안먼 사태 이후 중국 정부의 압박으로 전 세계를 떠돌아다녀야 했던 경험과 관련 있다. 저자는 중국이 겉으로는 마르크스주의니 마오주의니 하지만 “잠재의식 차원에서는 여전히 쌍전의 통치를 받았다.”고 본다. 실제 저자가 문화대혁명 당시 어떤 홍위병 조직의 승리비결을 들여다봤더니 이런 내용이 들어 있었다. “첫째, 성실성은 필요없다. 둘째, 사당(死黨)을 결성한다. 셋째, 상대방에 먹칠을 한다.” 문화대혁명이란, 삼국지의 ‘도원결의’(桃園結義)를 흉내낸 각 파당들이 수호지의 ‘조반유리’(造反有理)를 실행한 난잡한 쇼였다는 것이다. 해서 저자는 1부 수호지 비판, 2부 삼국지 비판을 통해 조반유리와 도원결의라는 것이 얼마나 한심하고 웃긴 논리인지 조목조목 지적한다. 사실 수호지는 워낙 그 내용이 폭력적이어서 비판이 손쉽다. 그래서 눈길을 끄는 것은 도원결의에 대한 비판이다. 이 문제를 다룬 7장 ‘의리의 변절’은 이 책의 백미다. 저자의 탁견을 엿볼 수 있는 구절들이 넘쳐난다. 저자가 고문헌을 보니 원래 의(義)는 순수한 우정이었다. 서양에서 이것은 정의(正義)로, 중국에서는 인의(仁義)로 발전했다. 그런데 ‘의’자에 결(結)자가 붙었다. 단순한 수식어가 아니다. 남을 배제하겠다는 선언이다. 이는 우리끼리 나눠 가질 이익이 있다는 뜻이다. 저자가 “결의의 의란 단지 패거리 집단의 협소한 윤리에 불과한 것이지 결코 사회의 일반적인 윤리가 아니다.”라고 말한 이유다. 자기네들끼리 화목하지도 않다. 이익이 걸려 있어서다. 저자는 “역사는 결의, 즉 형제간의 맹세는 결코 믿을 수 없다는 것을 부단히 증명했다. ‘의’는 최후에 결국 ‘이익’의 검증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역사상 수많은 형제들이 결의해 수많은 반란을 추진했지만, 일단 반란이 성공하면 “수많은 형제들이 의심받고 살해당했다.”는 것. 저자의 이런 날선 비판에 속이 시원해지다가도, 꺼림해지기도 한다. 저자가 한(漢)족 민족주의에 매여 있다는 느낌 때문이다. 가령 “중화민족의 가장 원시적인 기질” 운운하면서 오스발트 슈펭글러의 논의를 빌려 원형(原形)문화와 위형(僞形)문화를 논하는 대목, 쌍전이 명나라 말기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출몰했고 삼국지가 일러준 반간계에 걸려들지 않았더라면 만주족이 중원으로 진입하는 일은 없었을 것이라는 대목, 명대에 유행한 양명학을 ‘위대한 심학(心學)’이라고 거듭 예찬(정통 성리학은 마음을 중시하는 양명학이 불교와 비슷하다 해서 이단 취급한다.)하는 대목 등이다. 한족이 제 앞가림을 잘못해 만주족이 집권했고 그 만주족이 이상한 문화를 만들었다는 뉘앙스 같다. 그런데 저자가 쌍전과 비교하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는 홍루몽은 청나라 때 대히트를 기록한 작품이다. 청나라 ‘덕’은 없고 청나라 ‘탓’만 느껴진다. 쉽게 말해 민족성과 국민성을 운운하는 이론에 대한 의문과 연결된다. 이는 저자가 문예이론가로서 루쉰의 영향권에 있다는 점 때문으로 보인다. 청말 만주족 때문에 나라가 위기에 처했다는 한족 지식인들의 민족주의적 주장이 은근히 깔려 있는 것이다. 1만 8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리뷰]’인류멸망보고서’가 말하는 종말, 어떤 모습?

    [리뷰]’인류멸망보고서’가 말하는 종말, 어떤 모습?

    인류의 멸망, 지구의 종말…2012년 들어 수도 없이 등장한 화젯거리 중 일부다. 시도 때도 없이 지구를 향해 날아드는 소행성이나 곳곳에서 벌어지는 끔직한 먹거리 전쟁 등을 접할 때마다 많은 사람들은 세상이 망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혀를 찬다. 김지운·임필성 감독의 옴니버스 SF영화인 ‘인류멸망보고서’는 이러한 현실을 십분 반영한 듯 한편으로는 처절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희망의 빛줄기가 내리는 에피소드를 나열한다. 오랜만의 소개팅에 마음이 들뜬 윤석우(류승범)은 급한 마음에 음식물 쓰레기를 분리수거하지 않고 한 번에 처리한 뒤 퀸카(고준희)를 만나러 간다. 그녀와 즐겁게 고기를 먹은 뒤 석우의 몸에는 이상한 변화가 찾아오고, 그를 비롯해 고기를 먹은 사람들은 점차 좀비로 변한다.(멋진 신세계) 평화로운 천상사(寺)에 사는 로봇 RU-4는 스스로 깨달음을 얻어 설법을 하는 경지에 이른다. 이를 인류에 대한 위협으로 간주한 제조사 UR은 이를 해체하기로 결정하지만, 그를 이미 인명스님이라 부르며 숭배하는 승려들이 거세게 반발하며 갈등이 깊어진다.(천상의 피조물) 아빠의 소중한 8번 당구공을 망가뜨린 초등학생 박민서(진지희)는 부모님 몰래 다시 당구공을 사놓기 위해 인터넷 사이트를 뒤지다 정체불명의 홈페이지에 접속해 당구공을 주문한다. 하지만 2년 뒤 당구공 모양의 괴 혜성이 지구를 향해 날아오기 시작하고, 지구는 혜성 충돌로 인한 멸망의 위기에 놓인다.(해피 버스데이) 쓰레기 갈아 만든 사료를 먹고 자란 육류를 섭취한 인간, 곧이어 이 인간들이 모두 좀비로 변한 세상(멋진 신세계)과 혜성의 충돌이 가까워질수록 속수무책으로 울부짖기에 바쁜 연약한 인류(해피 버스데이)의 모습은 SF라고 치부하기에는 지나치게 사실적이어서 더욱 섬뜩하다. 이미 로봇의 일상화가 코앞에 닥친 현실에서 깨달음을 얻은 로봇을 부처로 보아야 하는지, 인류는 이것을 결국 파괴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천상의 피조물) 역시 창조주와 피조물의 기본적인 관념을 다시금 돌이켜보게 하는 대목이다. ‘인류멸망보고서’의 가장 큰 특징은 바로 과거와 현재, 현실과 비현실, 동양과 서양의 사상이 부합되고 충돌하면서 빚어지는 스토리에 있다. 대한민국을 떠들썩하게 한 광우병 사태로 이미 느꼈듯 먹거리로 인한 바이러스의 공포는 더 이상 과거의 일이 아니며, 지구를 향해 날아드는 혜성의 위협은 더 이상 비현실적인 두려움이 아니다. 깨달음을 얻은 천상사의 로봇은 고도로 발달한 서양의 기술과 동양의 불교사상 사이에서 인류 대신 세상과 삶의 고민을 떠안는다. 이 영화는 SF의 기본 소스인 ‘신선한 소재’를 무기로 삼지는 않는다. 그러나 국내 영화에서는 보기 드물었던 좀비(그것도 ‘류승범 표’ 좀비)의 리얼한 모습과 현실가능성 다분한 미래를 우리 문화와 밀접하게, 그리고 블랙코미디를 버무려 그려냈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 하다. 영화를 본 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음식물 쓰레기를 줄이고 분리수거를 잘 해야겠다고 느끼는 관객이 있다면 ‘인류멸망보고서’는 인류멸망을 막기 위한 보고서로서의 의무를 상당부분 충실하게 이행했다고 봐도 무방하겠다. 송혜민기자 huimin0217@seoul.co.kr
  • “신라로 넘어온 헤라클레스 금강역사·사천왕으로 변신”

    “신라로 넘어온 헤라클레스 금강역사·사천왕으로 변신”

    수천 년 전 동양과 서양이 교류했는지를 어떻게 파악할 수 있을까. 가장 빠르게 흔적을 찾는 방법은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하는 것이다. 특히 문화재에는 정복이나 경제적 교류의 증거들이 오롯이 새겨져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오랫동안 문화재 담당기자를 했던 서동철 서울신문 경영기획실장이 펴낸 ‘오래된 지금’(생각처럼 펴냄)은 동서 문화의 교류현장이 문화재에 어떻게 기록됐는지를 잘 서술하고 있다. ●그리스·인도문화, 신라불교에 스며들어 동양에서 헤라클레스가 등장하는 그 기원은 1~2세기경에 제작된 간다라 불상 조각이다. 런던 영국박물관의 아시아미술관에는 부처님의 수행원인 금강역사로 ‘제우스의 벼락을 든 헤라클레스’가 나타난 조각이 전시돼 있다. 미국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이 소장한 금강역사도 곱슬머리의 그리스 귀족의 모습이다. 어떻게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 대왕은 BC 327년에 오늘날 파키스탄의 페샤와르와 아프가니스탄의 잘랄라바드 일대를 정복했다. 독자적인 예술전통이 없었던 인도 북부의 유목민은 간다라에 도시를 이루고 살던 그리스인들의 전통을 쉽게 수용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헤라클레스를 집안의 시조로 떠받들었기 때문에 정복전쟁을 벌일 때 사자 머리 모양으로 장식된 투구를 쓰고 다녔는데, 그 모습 등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헤라클레스는 네메아 계곡에서 30일 밤낮으로 사자의 목을 졸라 죽인 뒤 그 사자의 가죽을 쓰고 다녔는데 여기서 모티브를 받은 것이다. 쿠샨 왕조의 간다라 불상 조각에서 정복자와 피정복자 문화가 합쳐져 알렉산더 대왕 또는 헤라클레스가 간다라 미술에서 부처를 호위하는 금강역사가 된다. 금강역사가 된 헤라클레스는 중앙아시아와 중국을 거쳐, 한반도와 일본으로 전해졌다. 헤라클레스는 한반도로 오면서, 금강역사가 되기도 하고 사천왕으로도 변신한다. 신라 문무왕이 682년 세운 경주 감은사 석탑의 사리함에 새겨진 사천왕상에 헤라클레스의 사자가 나타났다. 1203년 지어진 일본 도다이지(東大寺)의 금강역사는 올리브 몽둥이를 든 헤라클레스를 연상시킬 정도로 이미지가 강하다. 사자로 대표되는 헤라클레스의 이미지는 통일신라 이후에 줄곧 사천왕상에 흔적을 남겼고, 고려시대를 거쳐 조선시대에는 봉은사의 목조 사천왕상의 서방광목천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봉은사의 정문에 해당하는 진여문의 사천왕상은 배에 사자머리가 장식됐고, 어깨 장식에도 사자가 나온다. ●수로왕릉 ‘쌍어문’은 메소포타미아 영향 김해 김씨의 시조인 김수로왕릉 묘역에 들어가는 삼문 문설주에는 물고기 한 쌍이 마주 보게 그려진 ‘쌍어문’이 있다. 이 쌍어는 메소포타미아에서 생겨난 신어(神魚)사상의 표현으로 신라가 인도와 교류했음을 보여 주는 흔적이다. 수로 왕비가 된 허황옥은 서기 48년 7월 27일 붉은 돛단배로 가락국 해안에 도착해 “가락 국왕 수로는 하늘이 보낸 왕인데, 아직 배필을 정하지 못했으니 공주를 보내라.”고 말하고, 가락국의 왕비가 됐다. ‘삼국유사’에 허황옥 공주의 고향은 인도 아유타국으로 나오는데, 1977년 아동문학가 이종기가 인도 아요디아의 수많은 건물에서 쌍어문이 새겨진 것을 보고, 수로왕릉과 연결하면서 본격적인 연구가 이뤄졌다. 인도의 아유타국은 인도의 아요디아였던 것이다. 메소포타미아의 신어는 인도-중국-한반도-일본으로 연결된다. 이 연결을 따라가다 보면 아프리카 동쪽 해변의 인류가 어떻게 한반도까지 확산됐는지 그 경로를 찾을 수 있다고 서 실장은 말한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외국인 93% “템플스테이 강추”

    외국인 93% “템플스테이 강추”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외국인 10명중 9명이 다른 사람에게 템플스테이를 추천하겠다고 응답했다. 또 템플스테이 참여 이유로 내국인은 ‘휴식·일상의 재충전’을 든 반면 외국인은 ‘한국전통과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을 꼽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같은 사실은 한국불교문화사업단이 2010년 10월∼지난해 9월 29개 사찰의 템플스테이에 참가한 내국인 7037명, 외국인 880명을 대상으로 조사를 벌여 10일 발표한 ‘템플스테이 만족도 조사연구서’에서 나타났다. 사찰의 시설과 운영인력, 프로그램 지원, 애호도 등을 중점적으로 평가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외국인 참가자의 92.7%가 템플스테이를 타인에게도 추천해주고 싶다고 응답했다. 이 같은 수치는 내국인(81.0%)보다 추천 의향도가 훨씬 높은 것이다. 만족도에서도 내국인은 10점 만점 기준에 8.11점을 준 반면 외국인은 8.5점을 줬다. 한편 참가 동기에 대해서는 내·외국인이 확연한 차이를 보였다. 내국인의 경우 ‘휴식·일상의 재충전’이 22.0%로 가장 높은 반면 외국인은 ‘한국 전통문화에 대한 관심’과 ‘불교문화에 대한 관심’을 우선순위로 꼽았다. 불교문화사업단은 이를 놓고 “내국인들은 사회적·개인적 갈등을 해소하고 행복감을 찾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킬 대안으로 템플스테이를 생각하고 있으며, 다른 문화권에 속한 외국인들은 한국의 전통문화를 대표하는 프로그램으로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평가했다. 참여 프로그램 만족도에서도 내국인 참가자들은 ‘스님과의 대화’를 가장 만족스럽다고 응답한데 이어 다도, 108배 순으로 꼽았다. 이에 비해 외국인등은 다도, 염주, 연등 만들기, 스님과의 대화 순으로 만족도를 나타냈다. 불교문화사업단은 “템플스테이를 내국인들 사이에서는 사회통합을 주도하는 공익사업으로 확대하는 한편 외국인들에겐 ‘한국 대표 전통문화 체험 프로그램’의 성격을 좀 더 강화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며 “조사 결과를 적극적으로 수용, 보다 많은 내·외국인이 템플스테이를 통해 마음의 안정과 평화를 찾고, 한국 문화를 체험할 수 있도록 발전시켜 나갈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모두가 은혜입니다” 원불교 28일~새달 5일 대각개교절 행사

    “모두가 은혜입니다” 원불교 28일~새달 5일 대각개교절 행사

    원불교가 오는 28일 대각개교절(大覺開敎節)을 맞아 다음 달 5일까지 국내외 각 교당과 기관에서 다양한 봉축행사를 연다. 대각개교절은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깨달음을 얻은 날. 원불교는 이날을 개교일로 삼는다. 원불교가 올해 세운 대각개교절 봉축 주제는 ‘모두가 은혜입니다.’ 개교절인 28일 오전 10시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서 2000여명의 교도와 내외빈이 모인 가운데 기념식이 봉행된다. 이에 앞서 28일까지 700여 교당과 기관에서 인류의 상생과 평화, 행복을 기원하는 특별기도식이 열린다. 특히 23∼26일 익산 중앙총부에서는 법어 봉독과 교리강습회를 진행할 예정이다. 경축 소주제를 ‘가정의 은혜’로 정해 나눔의 프로그램도 다양하게 마련한다. 가족·이웃에 감사편지·카드 보내기, 소외된 가정에 대한 후원사업과 다문화 가정 은혜나눔 사업 등이 그것이다. 낙도를 비롯해 농어촌 지역민을 대상으로 양·한방및 치과 진료를 무료로 해주고 은혜의 쌀나누기며 김치나누기·책보내기 운동도 계속한다. 원불교는 이 밖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심장병이나 난치병을 앓는 어린이에게 무료수술을 해주고 소년소녀 가장을 서로 엮어주는가 하면 헌혈과 장애인 큰잔치, 경로 큰잔치를 연다. 외국인 노동자 지원이나 탈북자를 초청해 성지를 순례하는 행사도 지역별로 갖는다. 봉축 기간중 중앙총부를 개방해 법등축제를 여는 등 각종 문화체험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전국 20여 도시에서 20년째 열어온 청소년 민속큰잔치도 진행한다. 한편 경산 장응철 종법사는 개교 97년을 맞아 법문을 내고 “우리의 삶을 흔드는 고락의 파도는 진리에 대한 무지, 숙세(宿世)에 지어놓은 업장, 소유에 대한 지나친 애착에서 비롯된다.”며 “고해(苦海)를 벗어나 마음의 낙원에 이르러면 지금 받는 고통을 달게 받아 극복해야 하고, 지금 누리는 낙을 영원한 낙으로 만드는 노력을 하며, 고와 낙을 초월하는 법력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연등회는 지혜로운 인간 염원 이젠 세계유산으로 꽃피워야”

    “연등회는 지혜로운 인간 염원 이젠 세계유산으로 꽃피워야”

    불교계의 큰 숙원 하나가 해결됐다. 연등회(燃燈會)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지정된 것이다. 문화재청이 지난달 말 연등회에 부여한 중요무형문화재 일련 번호는 제122호. 연등회를 문화재로 지정토록 한다는 계획을 처음 세운 게 2007년 7월이었으니 조계종은 이 번호를 얻기 위해 무려 8년 8개월간 정성을 쏟은 셈이다. 연등회의 문화재 지정을 놓고 불교계에선 환영 일색이지만 개신교 일각에선 ‘종교 편향’이라며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연등회는 과연 불교에 국한한 종교의식인가, 아니면 온 국민이 챙기고 전승해야 할 보편의 문화유산인가. 10일 오전 대한불교 조계종 총무원 문화부장 진명 스님을 만나 연등회에 얽힌 이런저런 이야기를 들었다. “저 개인뿐만 아니라 불교계 모든 이들이 반갑게 여기고 기뻐하지만 더 큰일이 눈앞에 있어 부담이 큽니다.” 주무부서 책임자답게 진명 스님은 앞으로 해야 할 일들에 대한 고민이 커 보였다. “문화재청이 연등회를 중요무형문화재로 공식 지정한 까닭은 사라지고 변질될 위험성이 큰 부분들을 온 국민이 보존, 전승해야 한다는 메시지로 볼 수 있습니다. 우리뿐만 아니라 세계의 많은 이들이 느끼고 볼 수 있는 문화유산으로 가꿔내야 합니다.” ●부처님앞에 등 밝히고 어리석음 깨우쳐 그동안 연등회는 문화재청 문화재심의위원회에서 부결과 보류를 거듭하는 등 무형문화재 지정까지 우여곡절이 많았다. 왜 그렇게 연등회는 험난한 과정을 겪었을까. “불교 안에선 충분한 가치를 담고 있다고 해도 불교의례 등에 전문성을 갖지 못한 문화재 위원들이 그 가치를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탓이 큽니다. 여기에 일제 잔재가 남아있고 연속성이 없다는 목소리가 얹혔던 것이지요.” 지난해 조계종 문화부가 나서 문화재위원과 학자들에게 연등회와 관련한 소상한 자료들을 제공해 그 오해를 푼 게 그나마 다행이란다. 연등회의 문화재 지정후 개신교 일각에서 일고 있는 불만과 반발의 움직임도 따져보면 그 연장선상에 있단다. “연등회는 1700년 한국불교의 역사 속에 면면히 이어져왔고 국민생활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부처님 앞에 등을 밝혀 불을 켠다는 자체는 바로 무명과 어리석음을 없애 인간을 지혜롭게 만든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반목과 질시는 지혜롭지 못해 생겨난 해악이라고 할때 좀 더 지혜롭게 살아보자는 염원을 담은 축제를 그저 종교적 상징이 강한 의식으로 보는 게 안타깝단다. “국가가 지정하는 근대문화유산에 가톨릭과 개신교 교회 건물들이 많이 포함되지 않았습니까. 연등회가 불교행사라는 이유로 종교성을 따진다면 속 좁은 처사로 보입니다. 오히려 이웃 종교들이 마음을 크게 열고 함께 기뻐할 일이 아닐까요.” 그래서 연등회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기 위해 빈틈없이 문화재청과 호흡을 맞추겠다고 다짐한다. ●불교행사라는 이유로 폄훼 안타까워 우리 국민들은 영국의 대영박물관이며 프랑스의 루브르를 찾아 비싼 입장료를 지불하는 걸 당연시하고 그 보존과 관리의 손길에 감탄사를 연발한다. 스님은 그런 차원에서 “우리 국민은 우리가 갖고 있는 문화재를 특정 종교의 흔적으로만 볼 게 아니라 세계의 다른 문화유산 못지 않게 경쟁력 있고 가치 있는 것으로 인식해야 한다.”고 거듭 말한다. “불교계도 준비며 절차에 소홀한 책임과 잘못이 적지 않습니다. 특히 매일 매일 몸담고 있으면서도 그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불교 문화유산에 승가와 수행자들부터 먼저 눈떠야 합니다.” ‘인간을 가장 인간답게 하는 게 문화’라는 말에 아주 공감한다는 스님은 그래서 우리 전통문화의 유산을 가장 많이 갖고있는 승가부터 정신무장을 다져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최근 조계종단 차원에서 세워 시작한 무형문화유산 중장기계획은 아주 반가운 일이란다. “지금 이 시대에 우리가 만들어가는 문화행위도 100년쯤 후엔 그 또한 문화재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대중들을 꾸준히 설득하고 공감을 확산시켜야 하는 것이지요. 물론 저부터 시작해야겠지요.”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보르헤스 선정 세계문학전집 ‘바벨의 도서관’ 전 29권 완간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는 1973년 이탈리아의 프랑코마리아리치 출판사의 요청에 따라 ‘세계문학작가선집’에 넣을 만한 작가들을 선정했다. 보르헤스는 카프카나 도스토옙스키, 호손처럼 이미 유명한 작가뿐만 아니라 미국의 대중소설가로 알려진 잭 런던, SF소설의 효시인 힌튼, 고딕소설의 기원인 벡포드, 환상소설의 선구자 카조트 등 실험적인 기법과 문체로 세계 문학사의 신기원을 이룬 작가 40여명을 선정해 이들의 대표적인 단편소설 164편을 뽑아 구성하고, ‘바벨의 도서관’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부에노스아이레스 국립도서관장이던 보르헤스는 실명상태에서 젊은 시절에 읽었던 작품들을 기억으로 더듬어 작가와 함께 해제를 구술해 나갔다. 1975년부터 발간되기 시작한 이 시리즈를 바다출판사가 판권을 사들여 2010년 12월부터 단행본으로 출간했고 1년 4개월 만에 29권을 완간했다. 도대체 보르헤스가 누구기에 이탈리아의 출판사는 세계문학을 선집하면서 그의 손을 빌린 것일까. 보르헤스는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신으로 유년시절을 아버지의 서재에서 지냈다. 정규 교육 대신 가정교사에게 배웠고, 영국계 개신교도인 할머니로부터 영국 문화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다. 영어와 스페인어를 익혔고 1914년 스위스 제노바로 이주해 범신론, 불교, 그노시스주의 등을 접하며 프랑스·독일 문학을 섭렵했다. 1924년 전위주의 잡지 ‘마르틴 피에로’를 창간하고, 에세이를 쓰는 등 아르헨티나 문단에 울트라이스모(극단주의)를 소개한다. 1938년 사고로 머리를 다치면서 거의 실명상태로 살게 되는데, 평생 한 편의 장편소설도 쓰지 않으면서 새로운 형식의 단편소설을 써냈다. 보르헤스의 삶을 추적하면 그가 선정한 작가들이 이야기꾼으로서 엄청난 재능이 있고, 작품들은 환상적이면서 예상치 못한 엉뚱한 방식으로 결론에 도달한다는 것을 간파할 수 있다. 바벨의 도서관에 들어온 중국 포송령의 ‘요재지이’나 갈랑의 ‘천일야화’, 파피니의 ‘도망가는 거울’ 등에서 이미 예상할 수 있다. 한혜숙 편집인은 “루고네스, 힌턴, 벡퍼드, 로드 던세이니, 매켄, 빌리에 드 릴아당, 레옹 블루아 등은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작가들”이라고 말했다. 문소영기자 symun@seoul.co.kr
  • 한국여성문학인회장 한분순씨

    한국여성문학인회는 시조시인 한분순(69)씨를 제24대 회장으로 선출했다고 2일 밝혔다. 임기는 2년. 한 회장은 1970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로 등단했으며 ‘실내악을 위한 주제’, ‘서울 한낮’, ‘소녀’ 등의 시집을 냈고 한국문학상, 가람시조문학상, 현대불교문학상 등을 받았다.
  • 대놓고 세손 꾸짖은 신하 그들의 아슬아슬한 대화

    보통 정조와 실학 사상가들은 개혁파로 간주된다. 그런데 이 해석은 자의적이란 비판을 받는다. 현재의 필요 때문에 너무 왜곡했다는 것이다. 핵심은 노론의 성리학과 남인의 실학이 대립한 적 없다는 것이다. 성리학은 불교나 도교를 허(虛)하고 공(空)하다고 비판하면서 스스로 실(實)학임을 내세운 학문이다. 해서 실학자들의 주장은 이기이발론 같은 철학적 주제는 그만 떠들고 유학의 본령, ‘실학으로서의 성리학’으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다. 이렇게 보면 실학은 개혁적이고 근대 지향적이라기보다 오히려 더 철저하게 과거 회귀적이고 복고적인 사상인 셈이다.실학자 홍대용은 이용후생의 뿌리를 주자에게서 찾았다. 박지원은 아들에게 중국식 상투를 틀게 했고 박제가는 중국어공용화론자였다. 노론 성리학자들 못지않은 ‘중국앓이’인 셈이다. 그렇다면 정조는? ‘정조와 홍대용, 생각을 겨루다’(김도환 지음, 책세상 펴냄)는 개혁 군주 정조가 아니라 ‘권력자, 그것도 약간 신경증적 정조’에 한 표 던진다. 저자는 홍대용 전문가로서 책을 썼는데 책은 오히려 정조에 대한 관찰 일기로 읽힌다. 그럴 만한 것이 책 자체가 홍대용의 ‘계방일기’를 번역한 것이다. 정조가 보위에 오르기 직전 세손으로서 신하들과 벌인 토론 내용을 기록해둔 것이다. 이 토론, 살얼음 위를 걷는다. 영조 나이 여든을 넘겼고 세손은 왕위 계승을 눈앞에 두고 있다. 실제 다음 해인 1776년 영조가 사망한다. 요즘 말로 하자면 대통령 당선자, 그것도 절대 권력을 지닌 종신 대통령 당선자와 함께 토론하는 것이다. 미래 권력자는 자신의 뜻을 은연 중에 드러내고 어떤 대답을 하느냐에 따라 신하의 앞길이 달라질 것이다. 또 권력의 향배에 관심 있는 이들은 얼마나 세손의 머릿속이 궁금했겠는가. 실제 세손은 토론 내용이 자꾸 바깥으로 흘러나가 툭 터놓고 토론할 수 없다고 불평할 정도였다. 이 자리에서 홍대용은 실학으로서의 성리학, 즉 이용후생을 거듭 강조한다. 세손의 관심은 권력과 정치다. 절대권력으로서의 왕권 강화다. 그렇기에 노론의 거두 우암 송시열을 두고 나누는 대화는 아슬아슬하기 이를 데 없고 홍대용이 세손에게 아예 대놓고 위엄이 부족해 보인다고 비판하는 대목에서는 저래도 될까 싶을 정도다. 저자는 왜 그런 문답이 오가는지 역사적 배경을 충분히 설명하고 그들이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추론까지 진행한다. 앞뒤로 설명과 해제도 충실하다. 덕분에 손쉽게 읽힌다. 1만 5000원.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동물보호 공약 내놓는 후보 없나요”

    “동물보호 공약 내놓는 후보 없나요”

    “수많은 동물들이 고통 속에 죽어가고 있습니다. 동물들의 비인도적 도살 금지를 약속할 후보는 없나요?” 총선을 앞두고 박창길 성공회대 경영학부 교수의 호소가 트위터를 통해 퍼지고 있다. 동물보호단체인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대표이기도 한 박 교수가 4·11 총선 출마자들에게 동물보호에 대한 공약이 있는지를 묻고 나선 것. 트위터 이용자들의 동참이 이어지면서 그의 ‘동물유권자운동’이 새삼 화제가 되고 있다. ●철장 사육 폐지·유기동물 입양시설 설치 제안 동물유권자운동은 후보들에게 동물보호 공약을 내놓도록 촉구하는 운동이다. 우리와 달리 선진국에서는 유권자 운동의 한 분야로 자리매김했다. 생명체학대방지포럼 등 동물보호단체와 2012생명평화기독교행동, 참여불교재가연대 등 종교단체들이 함께하고 있다. 구제역 파동 때의 동물 살처분 논란, 유기견 증가 등 동물에 관한 문제는 많지만 정작 동물관련 공약을 내놓는 후보는 없다는 문제의식에서 시작됐다. 이들이 제안하는 동물 관련 공약에는 ▲철장 사육 폐지 등 복지축산 ▲유기동물 입양시설 설치 ▲구제역 발생 시 살처분 금지 ▲동물복지에 관한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 등이 포함돼 있다. 유권자운동은 해당 공약에 대한 의견을 묻는 질의서를 생명체학대방지포럼 홈페이지(www.voice4animals.org)에서 다운받아 각 후보들에게 전달한 뒤 답변을 인터넷에 올려 공유하도록 할 방침이다. 각 후보들의 동물보호 관련 공약을 유권자들이 평가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박 교수는 ‘동물학대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공장식 축산, 구제역 의심 동물의 대량 살처분 등은 우리의 건강과 환경을 위협한다.”면서 “또 버려지는 동물이 늘면 결국 유기동물 관리비용을 사회가 부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정치권서 중요 의제로 다뤄지도록 노력” 박 교수는 이어 “동물학대는 생명보다 돈을 우선시하는 자본주의적 축산시스템에서 발생한다는 점에서 우리 사회에서 약자들이 버려지는 것과 다르지 않은 현상”이라면서 “동물보호 문제가 정치권에서 중요한 의제로 다뤄지도록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글 사진 김소라기자 sora@seoul.co.kr
  • 신앙 다른 부부 5% ‘종교에 갇힌 결혼’

    신앙 다른 부부 5% ‘종교에 갇힌 결혼’

    기독교인인 회사원 최모(32)씨는 지난해 8월 불교를 믿는 이모(30)씨와 결혼했다.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양가 부모의 반대가 심했다. 하지만 8년간 변함없이 사랑을 이어온 터라 종교는 결혼 생활과 전혀 상관없을 줄 알았다. 현실은 달랐다. 최씨는 결혼 준비 과정에서부터 종교 문제로 아내와 부딪쳤다. 주례를 목사에게 부탁할지를 놓고 티격태격했는가 하면 밥 먹을 때 기도하는 문제로도 다퉜다. 최씨는 “종교가 다르니 생활 태도나 의식에서 이질감이 적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결혼에서 ‘종교’의 벽은 여전히 높다. 사회가 대체로 서로 다른 종교를 가진 커플의 결혼을 감싸안지 못하는 분위기다. 결혼할 배우자 조건으로 부모직업·연봉 등 각종 조건을 따지는 풍토가 만연한 가운데 종교 역시 결혼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셈이다. 전문가들은 “결혼 상대자 선택 기준은 사회의 개방성·폐쇄성을 가늠해 볼 수 있는 중요한 지표”라고 분석하고 있다. 29일 결혼정보업체 듀오가 최근 3년 사이 결혼한 회원 6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배우자와 종교가 다르다’고 밝힌 비율은 5%인 300명에 불과했다. 20명 가운데 1명꼴이다. ‘같은 종교’라는 회원은 13.1%인 786명으로 집계됐다. 종교를 가진 쪽과 갖지 않은 쪽이 만나 결혼한 사례는 42%인 2520명로 가장 많았다. 또 아예 종교가 없는 사람끼리 결혼한 경우는 39.9%인 2394명에 달했다. 종교가 같은 부부도 종교 문제가 없지 않다. 주로 종교적 신념의 깊고 낮음과 정체감의 차이 등에서 비롯되는 갈등이다. 약사인 최모(34)씨 부부는 둘다 기독교인이지만 믿음 때문에 종종 말싸움을 벌인다. 아내는 “기독교만이 진리”라며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경향이 강하지만 최씨는 “종교인들도 세금을 내야 한다.”는 비판적인 시각을 갖고 있다. 김수정 듀오 커플매니저는 “사회·경제적 여건에 따라 선호하는 배우자 조건은 변하지만 종교는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배우자 선택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치는 요소”라면서 “요즘은 ‘종교가 없는 사람을 만나는 게 속편하다’는 예비 부부들이 많다.”고 전했다. 종교 가운데 개신교가 다른 종교 간의 결혼을 가장 꺼린다는 연구 결과가 최근 발표돼 주목되기도 했다. 한내창 원광대 원불교학과 교수가 ‘2012 한국사회학 학회지’ 제46집에 발표한 ‘종교성과 타 종교와의 결혼 허용도’ 연구 논문에 따르면 전국 18세 이상 성인남녀 150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타 종교 결혼 허용도’는 5점 만점에 ▲개신교 2.76점 ▲천주교 3.21점 ▲불교 3.04점으로 나타났다. 한 교수는 “개신교인은 비교적 큰 결혼 시장을 가지고 있어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종교적 신념 때문에 폐쇄적 결정이 이뤄져 가족의 갈등·해체가 야기되는 등 사회 문제로 번지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영준·조희선기자 apple@seoul.co.kr
  • 분홍코끼리 실존?…미얀마서 희귀 코끼리 공개

    분홍코끼리 실존?…미얀마서 희귀 코끼리 공개

    물에 젖어 뽀얀 분홍색 피부를 드러낸 희귀 코끼리 모자(母子)가 미얀마에서 공개돼 화제가 되고 있다. 27일 영국 데일리메일 등 외신은 미얀마의 한 동물원에서 공개한 희귀한 분홍 코끼리를 소개했다. 공식적으로는 ‘흰 코끼리’인 이들 코끼리는 일반적으로 적갈색 피부를 갖고 있지만, 물에 젖게 되면 밝은 분홍색 피부를 드러낸다. 이는 옅은 털색과 속눈썹, 발톱 때문이다. 코끼리를 신성시하는 불교 국가에서는 흰 코끼리를 대단히 귀중한 존재로 여겨 국가의 수호신으로 대접하며 미얀마에서는 흰 코끼리를 정치 변혁과 행운의 상징으로 여기고 있다. 그 이유는 과거 고대 국왕이 불편한 관계에 있는 신하들에게 흰 코끼리를 선물했다는 기록 때문. 신하로서는 국왕이 선물한 코끼리가 죽게 되면 왕권에 대한 도전으로 간주하기 때문에 자연사할 때까지 열과 성을 다해 키울 수밖에 없다. 코끼리의 평균 수명은 70년 정도이고 하루 먹는 식사량이 어마어마하기 때문에 어지간한 재력을 갖지 않고서는 사육할 수 없었다고 한다. 사진=멀티비츠 윤태희기자 th20022@seoul.co.kr
  •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

    28일 오후 2시부터 서울 견지동 조계사에서 봉행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宗正) 추대식에서 진제(眞際) 스님이 “부모에게 나기 전에 어떤 것이 참 나던고?”라는 법어를 내리고 있다. 종정은 조계종 최고의 정신적 지도자로서 진제 스님은 지난해 12월 원로회의에서 추대됐다. 1934년 경남 남해에서 태어난 진제 스님은 1971년 부산 해운정사를 창건해 현재까지 조실로 있으며, 동화사 금당선원 조실, 봉암사 태고선원 조실을 지냈다. 2003년 조계종 원로의원으로 선출돼 2004년 대종사 법계를 받았다. 이종원 선임기자 jongwon@seoul.co.kr
  • 정치1번지 종로 조계사 찾은 박근혜 “佛心 잡아라”

    정치1번지 종로 조계사 찾은 박근혜 “佛心 잡아라”

    박근혜 새누리당 위원장이 공식선거운동이 시작되기 하루 전인 28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에 위치한 조계사를 방문했다. 박 위원장은 헌사에서 진제 스님의 종정 추대를 축하하며 “종정 스님께서는 동양 정신문화의 정수인 간화선을 일상의 삶 속에서 구체적이고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 당대 선지식의 최고봉”이라면서 “종정 스님의 가르침에 따라 우리 사회가 통합하고 평화가 충만하기를 기원한다.”고 말했다. 이어 “대한민국은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잘못된 과거는 극복하고 새로운 도약을 해야 할 때”라며 “저부터 마음을 가다듬고 정진하겠다. 언제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도록 국민을 먼저 생각하며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어 조윤선 선대위 대변인이 논평을 내고 “진제 법원 대종사께서 종정 취임 교시로 지계정청(계율을 받들어 깨끗이 하고), 정진화합(정진하고 화합하며), 광도중생(중생을 위해 불도를 넓게 펼쳐라)을 당부한 것처럼 불교계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화합해 행복한 나라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마침 이날 거행된 대한불교조계종 제13대 종정 진제 스님의 추대법회는 박 위원장에게 ‘불심’ 잡기에 좋은 기회가 됐다. 2010년 말 ‘템플스테이 예산’ 삭감으로 멀어졌던 새누리당과 불교계와의 관계를 복원하는 자리였다. 조계종은 당시 한나라당의 예산안 단독처리 과정에서 템플스테이 예산 등이 삭감되자 정부 여당과의 대화를 거부하며 관계자들의 사찰 출입을 막기도 했다. 이후 새누리당이 전통문화특위를 구성해 사찰 등 전통문화 건축물의 건폐율 완화, 증개축 허용범위 확대 등 불교계 현안을 챙기면서 불교계의 ‘앙금’이 다소 풀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동행한 조 대변인은 “불교가 종교 간 갈등을 없애는 데 상당히 노력해 온 점을 볼 때 분열이 아닌 화합을 추구하는 우리 당의 가치와 부합하는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선거운동의 측면에서 보자면 조계사가 위치한 지역이 ‘정치 1번지’로 불리는 종로여서 새누리당 홍사덕 후보를 거드는 효과도 거둔 셈이다. 홍 후보는 민주통합당의 정세균 후보와 오차범위 내에서 접전을 벌이고 있다. 공식 선거운동이 시작되는 29일부터 박 위원장은 매일 유세지원에 나설 계획이다. “잠 안 자고 선거지원에 나서겠다.”고 한 만큼 빡빡한 일정이 기다리고 있다. 초반에는 초박빙 지역이 포진한 수도권 가운데 상징적인 지점을 중심으로 경기, 강원 등 주변의 거점 지역을 묶어서 돈다는 계획이다. 새누리당 이혜훈 종합상황실장은 “종로나 중구는 상징성이 있기 때문에 우리가 좀 더 관심을 갖고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선거운동 초반 지원유세에서 기선을 제압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김문이 만난사람] 숭례문 복원공사 석장 이재순

    천년의 세월이 지나도 석공의 흔적은 역사의 물결처럼 도도하게 흐른다. 백제의 석공 아사달은 신라로 건너와 석가탑을 만들었다. 아내 아사녀는 천리길을 달려와 탑의 그림자를 기다리다 지쳐 연못에 빠져 죽었다. 나중에 이 소식을 들은 아사달은 연못에 다가가 웃는 듯하다가 사라지는 아내의 모습을 앞산 바위에 새기며 뼈 아픈 한을 달랬다. 그러다가 ‘아사녀! 아사녀!’를 외치며 연못에 빠졌다. 후대의 사람들은 이 못을 ‘영지’라고 했고 그림자가 비치지 않는 석가탑을 ‘무영탑’이라고 했다. 석공의 슬픈 전설은 지금도 그렇게 전해진다. 이렇듯 신라시대의 석공은 많은 전설과 함께 오늘날의 ‘국보’와 ‘보물’이란 이름으로 우리들과 만나고 있다. 문화재청은 2007년 처음으로 국가중요무형문화재(120호) 석장(石匠) 부문을 신설했다. 때늦은 감이 있지만 그나마 석공예의 중요성을 부각시켰다. 이때 석조각 공예가 이재순(57)씨가 국내 최초로 무형문화재 석장이 됐다. 이씨는 김진영 선생의 제자로 경복궁의 석조물을 조각한 이세욱·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는 석조각계의 대가였기에 이 계통에서는 당연하게 받아들였다. 이씨는 요즘 이에 부응이라도 하듯 숭례문 복원작업에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성곽 복원 전체 공정 중 85%가 진행됐고 오는 7월이면 거의 끝날 예정이다. 그는 12살 때부터 돌과 인연을 맺어 올해로 석조각 인생 45년째이다. 지난 26일 오후 경기 구리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입구에는 10여m 높이의 미륵상을 비롯해 사자상, 부처상 등 수많은 석상들이 놓여 있었다. 모두가 돌이지만 다들 저마다 메시지를 품고 있었다. 완성품도 있었고 아직 덜된 작품도 있었지만 다들 무엇을 이야기하고자 하는 모습들이었다. 꽃샘추위를 담은 바람이 잠시 밀려왔다. 작은 부처상한테 물었다. “춥지 않으세요.”라고 했더니 “바람은 극복하는 것이여.”라는 대답이 돌아온다. 에궁…. # 성곽 85% 복원… 옛 석공의 번뇌 읽다 그러는 참에 웃으면서 나타난 이씨와 사무실로 자리를 옮겨 이야기를 나눴다. 먼저 요새 무슨 일로 바쁘냐고 했더니 숭례문 복원공사 얘기가 나온다. “숭례문 성곽 복원이 85% 정도 완료됐습니다. 숭례문을 중심으로 동쪽으로 53m, 서쪽으로 16m의 길이를 대부분 복원했지요. 기나긴 세월의 풍화를 읽으면서 하는 작업이 정말로 간단하지는 않았습니다. 먼 옛날 석공들의 고뇌와 번민 등 그런 부분을 알고 그대로 재현하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이씨는 석공 선현들의 지혜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숭례문에 쌓아 올려진 돌, 그러니까 오랜 세월을 간직한 유물들에 대한 재발견이었다. 비오는 날이었다. 돌에 구멍이 있었는데 빗방울에 의해 구멍이 뚫렸다. 이 순간 이집트의 신전이 생각났다. 커다란 돌을 옮겼던 기억이었다. 정사각형의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자리 이동을 해 벽을 쌓은 것이다. 그 다음에는 숭례문 돌 모양들이 아주 자연 친화적으로 쌓여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 돌 가운데 구멍 뚫어 옮긴 흔적 발견 “숭례문에 있는 돌들은 아무렇게 쌓아 올려진 것이 아니라 봄, 여름, 가을, 겨울을 생각하면서 그에 맞게끔 친자연적으로 어우러져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도석수(都石手)라는 내용도 있습니다. 도편수는 그동안 많이 나왔지만 도석수라는 말은 이번 복원공사에서 처음 알게 됐습니다. 아마 당시 도석수는 지금으로 말하면 5급 관리 정도로 여겨집니다. 또한 돌마다 가진 물과의 관계, 즉 비가 오면 물이 밖으로 새도록 하는 등 아주 과학적이고 자연적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입니다.” 특히 돌의 크기가 다 다르다는 점에 눈길이 쏠렸다. 얼핏 보면 부자연스럽고 서로 맞추기도 힘들 법한데 퇴물림 형식으로 쌓아놓은 돌의 모습을 보고 놀라지 않을 수 없었던 것. 이씨는 그런 돌을 보면서 한마디, 한마디 묻고 또 물었다. “선조들이 어떻게 돌을 다뤘으며, 또 어떻게 생각했을 것이란 상상을 하는 순간 전율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특히 중간중간에 놓인 장돌들을 볼 때에는 더욱 그랬지요. 위아래에서 누르는 압력을 장돌을 통해 견디도록 하는 지혜에 참으로 경탄했습니다.”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힘든 것은 무엇일까. 잠시 고민하던 이씨는 “(방화사건 직후) 처음에 아직도 가시지 않은 화재의 기운과 접하면서 같이 일하는 동료들 몇몇이 피부병에 걸렸을 정도였다.”면서 하지만 다들(20여명) 숭례문 복원공사가 새로운 역사를 쓴다는 생각으로 열심히 작업했다고 술회했다. “따지고 보면 그동안 우리는 문화재를 복원한답시고 기계적으로 손을 대는 바람에 오히려 화재나 사고 등에 대해서는 무심했습니다. 정작 보존과 관리에 대해서는 진정성 없이 다가갔던 것입니다. 아마 숭례문 복원은 이런 것들을 전부 고민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시발점이 될 것입니다.” # 都石手가 있었음을 처음 알게 돼 이씨는 숭례문 복원 공사에 참여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첫째 앞에 언급한 도석수라는 단어였다. 원래 도편수라는 말은 있었지만 도석수라는 단어를 처음 알게 되면서 선조의 존엄성을 몸소 느꼈던 것. 또한 부석소(浮石所), 즉 지금의 채석장을 두고 돌 문화 창달에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는 것을 새삼 발견했다. 특히 돌을 다듬으면서 비가 올 것을 대비해 정교하게 빗물을 흘려보내는 것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의 흔적을 보면서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을 깨는 방법이나 돌을 다듬는 방법이 정말 과학적이며 친자연적으로 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특히 돌 중앙에 구멍을 뚫어 정교하게 이동시켰다는 걸 알고 놀랐지요. 대체로 돌을 다른 곳으로 옮길 때에는 사방에 밧줄을 연결하게 되는데 이럴 경우 밧줄을 빼는 과정에서 약간의 오차가 생깁니다. 그런데 숭례문의 돌을 보면서 이런 과정까지 염려했다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흔들림 방지, 비 올 때 물의 흐름까지 생각한 선조 석공들의 지혜를 숭례문 복원 공사를 통해 깨달았다는 것을 거듭 강조했다. 이씨는 이런 점을 소중히 메모하면서 후배들에게 전수할 책을 준비하고 있다. “옛날에는 돌을 다루는 것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석공들 또한 자부심이 강했지요. 그러나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은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문화재 가운데 돌이 안 들어간 것이 어디 있습니까. 소중한 것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돌의 미학, 석공의 예술을 책으로 남기려고 합니다.” 이씨가 그동안 제작한 작품은 2000여점에 이른다. 전국의 사찰과 문화재가 있는 곳에는 그의 손때가 대부분 묻어 있다. 뿐만 아니다.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일본 덕정사, 타이완 기륭 자항기념당, 프랑스 파리 7대학 등에도 이씨의 작품이 보관돼 있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일화 한토막. 2005년 일제가 가져간 북관대첩비(임진왜란 때 정문부를 대장으로 한 함경도 의병의 전승비)의 환수 운동이 벌어지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문화재청에서 북관대첩비가 환수될 때를 대비해 좌대와 옥개석을 복원해 달라는 연락이 왔다. 며칠 후 북관대첩비는 무사히 반환돼 남한을 거쳐 북으로 돌아갔다. 이때 북관대첩비는 이씨가 복원한 옥개석을 머리에 인 채 북한 국보 193호로 지정돼 북한으로 갔다. 이씨는 당시를 회고하면서 “돌을 만지는 장인으로서 더없는 영광이 아니냐.”고 말한다. # 선조의 지혜 책으로 펴낼 계획도 이씨는 전남 담양 출신으로 12살 때부터 외삼촌에게 돌을 다루는 기술을 배웠다. 평소 무엇이든 만들기를 좋아했던 그는 팽이, 썰매 등 전통 놀이기구 제작에 솜씨를 발휘했다. 그러던중 1970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으로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스승 김씨는 40년간 석조계에 몸담은 베테랑으로 조선 철종, 헌종 시대 경복궁의 해태상 등을 조각한 이세욱 선생과 김맹주 선생의 맥을 잇고 있었다. 이씨는 스승 김씨한테 10년 동안 가르침을 받고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을 따라 불국사 청운교, 백운교 보수작업을 하면서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으며 그 덕분에 불교미술 대전에서 특선을 수상하면서 이름을 널리 알렸다. “돌 분야는 할 일이 많습니다. 현대와 전통을 접목시키는 것도 중요하고요. 사실 이제야 돌을 만지는 사람들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습니다. 돌은 정직합니다. 화난 사람이 돌을 마주하면 돌도 화가 나 있고, 예쁘게 돌을 보면 돌 또한 예쁜 대답을 합니다. 돌에는 정이 있습니다. 한국 사람도 정이 많잖아요. ” 선임기자 km@seoul.co.kr 열두 살 때부터 돌 잡아 국가주요무형문화재 석장 부문 1호 지정 1956년 전남 담양에서 태어났다. 한학자인 할아버지와 할머니 밑에서 자랐으며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남달랐다. 12살 때 석공이었던 외삼촌에게 돌을 고르는 일을 배웠다. 문화재 공사현장을 다닌 것도 이때부터. 이후 스승 김진영 선생을 만나면서 본격적인 석공예의 길로 들어섰다. 두 번째 스승인 김부관 선생한테 돌을 다듬는 숙석(熟石) 기법을 배웠다. 전국 기능인경기대회에서 연속 2회 금메달과 함께 한국문화재기능협회전에서 최우수상을 받으면서 대한민국 석공예 명장으로 지정됐다. 1995년 타이완의 자항기념당에서 석굴암보다 더 큰 석상을 만들어 화제가 됐다. 현재 부도를 비롯한 석조물의 복원과 정비, 각종 석조물의 해체 및 보수 공사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성곽의 해체 및 복원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주요 작품으로는 일본 오사카 보암사 석가노미불(1999), 경북 영주 석륜선원 부처 진사리석탑(2000), 네덜란드 유트리트 박물관 기하형체(1977), 이탈리아 카라라시청 소상(1983), 북관대첩비 갑석(2005) 등 2000여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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