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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열린세상] 시간을 넘어서 생각하다/이옥순 인도연구원장·연세대 연구교수

    [열린세상] 시간을 넘어서 생각하다/이옥순 인도연구원장·연세대 연구교수

    한 해(年)는 언제부터 시작되고 마감되는가? 아마도 대다수 나라에선 한 해의 시작을 양력에 따라 1월 1일로, 그 끝을 12월 31일로 여길 것이다. 그래서 연말이면 한 해를 역사 저편으로 보내는 결산과 송년 모임을 갖고 새해 아침을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며 맞는다. 우리나라에서도 제야에 퍼지는 종소리를 들으며 한 해가 저물고 새해가 도래했음을 실감하는 사람이 많다. 그런데 1980년대 후반 인도에서 맞은 첫 번째 연말연시에서 익숙한 새해의 개념에 혼돈이 생겼다. 송년 행사가 없는 인도에선 1월 1일도 새해의 시작이 아니었다. 이날 모든 관공서는 문을 열었고 은행과 우체국은 일상을 지속했다. 보름 동안 겨울방학에 들어간 대학도 중단 없이 행정 업무를 보았다. “해피 뉴 이어”라는 말은 주고받아도 새해의 분위기는 어디에도 없었다. 물론 1990년대 개혁과 개방이 진행되면서 간디의 그림자가 드리웠던 청교도적 인도 사회는 바뀌기 시작했고, 글로벌 문화에 편입된 인구와 시스템이 늘면서 여타 세계처럼 연말연시를 소란스럽게 보내는 새로운 풍속이 생겨났다. 그럼에도 대다수 인도인은 1월 1일을 새해의 시작으로 여기지 않는다. 그들에게 새해란 힌두달력에 따라 해마다 9~11월에 찾아오는 ’디왈리‘이기 때문이다. 영국의 지배를 200년이나 받은 인도가 서구의 시간 관념을 따르지 않는 건 놀라운 일이다. 신정과 구정이란 이름으로 우리나라에서 계속된 논쟁을 비추어도 그렇다. 영국은 계량이 가능한 시간 관념과 시간을 잴 수 있는 시계를 인도에 소개했다. 노동과 삶을 하나의 기준으로 만든 그 근대의 시간관은 해(年)와 달(月), 시와 분, 초를 쪼개어 낭비 없이 쓰는 것이 미덕이었다. 그럼에도 ‘보름달이 뜬 뒤’나 ‘씨 뿌릴 때’처럼 불분명한 인도인의 시간관은 폄훼되고도 시간을 넘어 살아남았다. 인도인의 시간 관념은 지금도 애매모호하다. 힌디어로 내일과 어제는 같은 단어이고, 몇 주 뒤나 조만간처럼 부정확한 표현도 많다. 시간이 금이라면서 ‘시테크’를 논하는 발전한 세상의 사람들은 이런 관점이 불편하다. 하나 800년 이방의 지배를 참고 생존한 인도인의 시간관은 대체로 ‘괜찮아’라고 안달복달하지 않는 입장이다. 왜 그럴까. 고대 인도인은 근대 서구의 직선적 시간관과 달리 시간이 주기적으로 움직인다고 이해했다. 그들은 43억 2000만년인 대주기를 4개의 주기로 나누고, 그 마지막 주기이자 현재 우리가 사는 칼리유가를 43만 2000년이라고 여겼다. 이 광대한 시간 속에서 100년가량밖에 살지 못하는 인간의 한계를 인지한 탓에 시간을 잘게 나누고 재고 아껴서 쓰는 것에 큰 의미를 두지 않은 것이다. 이 전통에서 빈둥빈둥 놀거나 게으름을 피우는 사람, 즉 백수건달이란 용어가 나왔다. 건달은 불교용어를 한자로 표기한 ‘건달바’에서 나왔는데, 수미산 남쪽의 금강굴에 살면서 음악을 책임진 신이었다. 브라만교에서 언급된 건달신도 허공을 날아다니며 하는 일 없이 노래만 불렀다. 내가 여기서 주목하는 건 게으름이 아니라 뭔가 해야 한다는 사회적 압박이 적고 노래를 부르는 행동, 즉 비생산적인 걸 나쁘게 여기지 않는 문화다. 새해 첫날이 ‘실종’된 나라에서 거주한 덕에 올해와 내년을 가르는 구분이나 시간의 흐름에 덜 연연해하는 걸 배웠다. 사실 12월 31일과 1월 1일이 다를 건 없다. 해가 바뀌어도, 2014년이 떠나가도 오늘과 같은 내일이 이어질 뿐이다. “새해엔 꼭~” 하면서 생산적 일을 달성해야 한다는 부담에 매일 이유는 없다. 미국의 사상가 헨리 소로의 말처럼 투기꾼으로 살거나 자연을 훼손하고 건설하는 행동이 열심히 살았다는 증거는 아니지 않는가. 2015년엔 생각하는 시간을 더 많이 갖는 다른 전략을 쓰는 것도 좋으리라. 저력은 ‘급행’이 아니라 느리게 움직이고 기다릴 줄 아는 ‘완행’에서 나오는 법이다. 세상엔 생산적이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이 많다. 공장에서 대량 생산을 강조하던 지난 세기와 달리 오늘날은 상상력과 창조성이 중요하게 여겨진다. 고독과 게으름이 상상력을 자극한다는 말도 있으니 자신과 만나는 시간을 새해 계획표에 포함하는 건 어떨까. 성과에만 매달리지 않고 삶이 어디로 가는지 짚어 보면서 중요한 일과 그렇지 않은 일을 가려내는 혼자만의 시간을 갖는 것, 이는 극히 소수만 실천하는 훌륭한 생존법이다.
  • [온라인화제] 고속도로 통행료, 카드 가능..남궁민 홍진영 키스 “진짜 사귀는 사이?”

    [온라인화제] 고속도로 통행료, 카드 가능..남궁민 홍진영 키스 “진짜 사귀는 사이?”

    28일 온라인상에서 고속도로 통행료, 제2롯데월드 또 사고 소식이 화제다. 이외에도 세븐 전역, 송재림 김소은 내 여자다 발언, 남궁민 홍진영 키스, KBS 연예대상 유재석, 환희 나도 사람 발언 등이 네티즌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 고속도로 통행료 카드 가능 앞으로 현금이 없어도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탑재된 신용 또는 체크카드로 고속도로 통행료를 낼 수 있다. 국토교토부는 신용카드 통행료 결제 서비스를 30일부터 한국도로공사 구간에 우선 도입하고 내년에 민자고속도로까지 확대한다고 28일 밝혔다. 지금까지 고속도로에서 통행료를 지불할 때는 하이패스를 이용하거나 현금·선불교통카드(One Card All Pass 포함)만을 이용할 수 있다. ▼ 남궁민 홍진영 키스 27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4’(이하 ‘우결’) 에서는 남궁민 홍진영 커플이 마카오로 여행을 떠났다. 이날 남궁민과 홍진영은 마카오 럭셔리 투어의 마지막 코스로 곤돌라를 탔다. 두 사람은 뱃놀이 중 다리 밑을 지날 때 키스를 하면 영원한 사랑을 할 수 있다는 내용의 곤돌라 전설을 듣고, 본의 아니게 키스를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남궁민은 홍진영의 볼에 입을 맞췄지만 이를 본 뱃사공은 입맞춤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두 사람은 부끄러워하던 것도 잠시, 이내 첫 키스를 감행해 화제를 모았다. ▼ KBS 연예대상 유재석 개그맨 유재석이 9년 만에 KBS 연예대상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유재석은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 KBS 신관 공개홀에서 진행된 ‘2014 KBS 연예대상’ 시상식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유재석은 “정말 몰랐다. 제가 무슨 얘기를 해야 될지 모르겠다”며 이번 대상 수상에 다소 놀란 모습을 보였다. 그는 ‘해피투게더3’와 ‘나는 남자다’ 제작진과 MC들의 이름을 나열하며 감사의 말을 전했다. 더불어 자리에 함께하지 못한 박명수에게는 “어디선가 디제잉 하고 있을 명수 형 나 대상 받았어”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송재림 김소은 내 여자다 송재림이 김소은을 두고 ‘내 여자다’라고 발언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지난 27일 방송된 MBC 예능프로그램 ‘우리 결혼했어요 시즌4’(이하 ‘우리결혼했어요’) 방송에서는 송재림 김소은 커플이 터키로 신혼여행을 떠나는 모습이 전파를 탔다. 이날 김소은은 방송에서 케밥을 먹던 중 송재림에게 “(케밥에)가시 있는 거 같다. 가시 먹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송재림은 그룹 버즈의 곡 ‘가시’를 부르며 “이분이 좋아하시더라?”라고 버즈의 보컬 민경훈을 언급했다. 앞서 민경훈은 김소은을 이상형이라고 꼽은 바 있다. 이에 송재림은 “왜 남의 와이프를 이상형으로 꼽냐. 내 여자다”라며 질투 했고, 김소은은 “(민경훈씨)다음에 기회 되면 꼭 봬요”라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 환희 나도 사람 남성 듀오 플라이투더스카이는 지난 26일 생방송으로 진행된 ‘2014 KBS 가요대축제’에서 가수 임창정과의 콜라보레이션 무대를 선보였다. 그러나 환희는 임창정의 ‘그때 또 다시’를 부르던 중 고음 부분에서 음정과 가사를 놓치는 실수를 보였다. 또 무대 중간 환희는 본인의 목 상태와 컨디션을 의식하는 모습을 보이기 도해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이후 환희는 27일 오전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오랜만에 가요대축제인데 콘서트와 행사로 인해 결국”이라며 “노래하는 기계이고 싶지만 나도 사람이라 안 되네요. 조만간 다시 충전시켜서 제대로 보여드리겠습니다”라고 아쉬운 마음을 표했다. 28일 현재 고속도로 통행료 카드 가능, 제2롯데월드 또 사고, 송재림 김소은 내 여자다 발언, KBS 연예대상 유재석, 환희 나도 사람 발언 등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뉴스팀 chkim@seoul.co.kr
  • [사설] 종교인 과세도 못 하는 정부에 뭘 기대하겠나

    조세 형평성 차원에서 추진해 온 종교인 과세 문제가 길을 잃어버린 형국이다. 종교계 일각의 눈치를 보느라 정부와 집권 여당이 시행 유예 기간만 고무줄처럼 늘였다 줄였다 하면서다. 기획재정부는 당초 새누리당이 요구한 2년 대신 1년으로 유예 기간을 단축했다. 하지만 2016년 초부터 실시될 가능성 또한 매우 희박하다는 전망이 제기된다. 총선 등 향후 선거 일정을 감안했을 때다. 부디 이런 비관적 예상이 빗나가도록 당정이 함께 맹성하기 바란다. 우리 사회의 누구도 종교인 과세의 당위성을 드러내 놓고 부인하진 않는다. 역대 정부가 사회적 영향력이 막강한 종교계를 의식해 종교인 소득에 대한 비과세 관행을 묵인해 왔을 뿐이다. 현 정부가 출범 초부터 종교인 과세 추진 방침을 흘렸을 때 다수 국민이 내심 반긴 이유다. 이제는 ‘비(非)정상의 정상화’가 이뤄질 것이란 기대였다. 그러나 이대로 가면 국민은 다시 배신감을 느껴야 할 판이다. 선거가 없는 해인 내년에도 이해 집단의 반발에 부딪쳐 시행을 유보한 터에 무슨 수로 2016년 총선과 2017년 대선을 앞두고 다시 추진할 건가. 결국 건국 이래 종교인에게만 허용해 왔던 소득세 특혜는 박근혜 정부에서도 계속 온존하게 된다는 뜻이다. 현재 종교인 과세를 실시하는 데 법적·제도적 장애물은 별반 없다. 모든 국민은 납세의무를 가진다는 헌법상의 ‘국민개세(皆稅)주의’를 누가 반대하겠나. 가톨릭은 이미 1994년 주교회의 결의에 따라 대부분의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지 않은가. 불교와 개신교에서도 승려와 목회자 스스로 세금을 내거나 종단에서 소득세 신고 활동을 지원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물론 목회직을 사기업처럼 대물림하는 일부 교파가 반대할 수도 있고, 표를 의식한 야당의 소극적 자세도 문제이긴 하다. 하지만 적어도 종교계 다수도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대원칙은 지지하고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정부와 여당은 선거에서 이해집단의 반발 가능성에 지레 겁먹기에 앞서 스스로의 개혁 의지 박약을 돌아봐야 한다. 종교인 과세 실시 유예 기간을 놓고 벌인 당정의 줄다리기도 한가해 보인다. 그게 1년이든 2년이든 과세 자체가 물 건너가면 ‘닭이 먼저냐, 계란이 먼저냐’는 논쟁만큼 부질없는 일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얼마 전 국민경제자문회의에서 “역대 정부가 하다하다 힘들어 팽개쳐 둔 과제들이 쌓여 있다”며 “이를 해결하는 게 우리의 사명이자 팔자”라고 했다. 종교인 과세에 대한 당정의 의지가 이렇게 박약해서야 항차 각종 연금 개혁이나 구성원들의 고통 분담이 필요한 노동·교육·금융·공공 등 4대 구조개혁인들 제대로 추진할 수 있겠나. 이제라도 당정이 심기일전해 무뎌진 개혁 의지를 벼리기를 당부한다.
  • 사회의 흔적, 美의 울림 되다

    사회의 흔적, 美의 울림 되다

    미의 역정/리쩌허우 지음/이유진 옮김/글항아리/556쪽/3만 2000원 박물관이나 미술관에서 만나는 고색창연한 걸작 예술품, 굳이 걸작이 아니더라도 옛사람의 모습과 시절의 혼이 절절히 담긴 흔적 앞이라면 묘한 감상에 빠지기 마련이다. 때로는 평소 쉽게 얻지 못할 교훈까지를 덤으로 얻기도 한다. 시·공간을 넘어선 채 변함없이 우러나는 그 울림의 힘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미의 역정’은 바로 그 아름다움의 도도한 울림이 왜 생겨나는지의 궁금함을 풀어주는 역작이다. 저자는 ‘중국 현대미학의 제1바이올린 주자’라는 리쩌허우(李澤厚·1930∼)이다. 1980년대 문화혁명의 금욕주의에서 탈출하고자 했던 중국인, 특히 젊은이들에게 사상적 돌파구를 제시했다는 중국 계몽운동의 기수. 그는 미학자로 불리는 것을 싫어한다지만 역설적이게도 이 책에서 ‘미학은 제1의 철학’임을 소리 없이 강조한다. 그리고 그 미학의 종점은 바로 종교를 대신하는 것이라는 예사롭지 않은 선언으로 귀결된다. 중국 젊은이들이 베껴 쓰고 심지어 통째로 외웠다는 리쩌허우의 대표작인 이 책은 왜 그가 미학을 제1의 철학으로 여겼는지를 보여준다. 책의 기본 구성은 구석기시대 토템부터 시작해 상상 속 동물인 도철을 대표로 하는 청동 문양, 춘추전국시대의 이성정신 등을 거쳐 송·원나라의 산수화, 명·청의 문예사조까지 훑는 흐름. 편편에 숨은 사상과 미적 심미안이 그의 명성을 그대로 입증한다. 많은 이들이 ‘동양적 아름다움의 본질을 밝혔다’고 평가하는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누적과 침전이다. 곳곳에 그 흔적과 상징이 숨어 있다. 첫 사례는 구석기시대인 산딩둥인(山頂洞人)들이 적철석을 사용해 구멍을 꿰는 끈을 물들이고 시체 곁에 붉은 가루를 뿌리던 모습이다. 그 붉음은 선명한 붉은빛에 대한 동물적 생리반응이 아니라 사회적 무술의례의 상징적 의미이다. 바로 자연형식(붉은색) 안에 이미 사회내용이 누적 침전된 것이다. 중국 선사시대에 보편적인 토템의 상징인 용비봉무(용이 날고 봉황이 춤춘다)도 산딩둥인이 붉은 가루를 뿌리던 원시 무술의례가 부호화·도상화된 것이다. 도공이 구워내고 사대부들이 즐겨 썼던 자기도 예외는 아니라고 한다. “송나라대 자기는 당대의 선명하고 아름다운 색깔, 명·청대의 용속한 아름다움과 완전히 다르지만 이 모든 것은 서로 보완하고 조화를 이뤄 한 시대의 미학 풍격이 됐다.” 흔히 ‘백대(百代)가 모두 진나라의 제도를 따랐다’는 말이 회자된다. 건축예술도 예외는 아니어서 모든 시기의 건축은 선진시대에 다져진 기본규범을 벗어난 적이 없다고 한다. 거기에도 중국 민족의 특징인 실천이성 정신이 담겼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그 실천이성 정신은 종교로까지 연결된다. “시대 변천과 생활 발전에 따라 변한 중국 석굴예술은 중국 민족이 불교를 수용한 이래 개조·소화하고 벗어나기까지 자신의 형상 방식으로써 반영한다.” ‘아주 오래된 고전작품들이 여전히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건 그 속에 체현된 구조와 심리구조가 상응하기 때문이고 그것은 오랜세월 누적, 침적되어 생긴 것이다.’ 이 메시지는 ‘중국문학 최고의 보물이라는 홍루몽에서 마지막으로 맺어진다. “홍루몽은 마침내 아무리 읽어도 싫증 나지 않는 봉건말기의 백과사전이 되었다. 상층 사대부의 문학이지만 이것이 묘사한 인정세태며 슬픔과 기쁨은 명대의 시민문예가 더할 바 없이 승화된 것이기도 하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세법개정안 시행령 확정] 사실상 물 건너간 종교인 과세

    박근혜 정부에서도 종교인 과세는 사실상 물 건너갔다. 기획재정부는 내년 1월부터 종교인 소득에 대해 ‘기타소득’(사례금)으로 과세를 할 계획이었지만 정치권과 이해관계자들의 거센 반발로 과세 시행 시기를 1년간 유예한다고 25일 밝혔다. 기재부 측은 “내년 정기국회에 종교인 소득 신설과 종교단체의 원천 징수 의무 삭제, 종교인 자진 신고·납부 등의 내용으로 정부 수정안을 제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2016년은 총선이 있어 ‘표심’ 때문에 종교인 과세를 밀어붙이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2017년은 박근혜 정부 임기 마지막 해여서 추진 동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국세청이 1968년 처음 종교인 과세를 추진한 이후 46년간 헛바퀴만 돌고 있는 셈이다. 앞서 여당인 새누리당은 지난 10일 종교인 과세와 관련된 소득세법 시행령 발효를 2년 늦춰 달라고 정부에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기독교 일부에서 강력 반발하는 만큼 무리해서 하지 말자는 얘기다. 그러나 불교와 천주교, 기독교 등 종교계 대다수는 지금도 자진해 세금을 납부하거나 과세에 대해 반대하지 않고 있다. 정치권과 정부가 종교계에 대해 지나치게 ‘저자세’라는 비판이 나온다. 홍기용 인천대 세무학과 교수는 “선거가 없는 내년이 종교인 과세의 ‘골든 타임’인데 국회 조세소위 일부 의원들이 종교계의 일부 과세 반대자들의 뜻을 적극 반영하면서 결국 무산됐다”고 지적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네요. 눈물 나고 서러울 뿐입니다. 정규직이란 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9번 출구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유흥희(44·여) 분회장은 까맣게 물든 소복을 입은 채 읖조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혹한이 몰아치던 지난 22일 동작구 신대방동 옛 기륭전자 본사에서 출발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마포를 거쳐 이곳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이어온 탓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오체투지란 불교식 큰절을 가리키는 말로, 땅에 무릎을 꿇은 뒤에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마지막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이다. 소복 안에 무릎보호대 등을 덧댔지만 온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삼보일배보다 오체투지 동작이 훨씬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윤 분회장 등 기륭전자 노동자 8명과 지지자 7명 등 15명은 북소리에 맞춰 열 걸음에 한 번씩 절을 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기륭전자 노동자 윤종회(44·여)씨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5년으로 늘리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더 바쁜 발걸음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노예로 살기 싫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까닭은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위해서다. 유 분회장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제2의 기륭전자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위성라디오를 만드는 기륭전자에서의 분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견 비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가 이들을 해고했고 노조는 2010년 11월까지 1895일 동안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조합원 10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들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았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몰래 사무실을 비우고 ‘야반도주’했다. 회사는 지난 2월 상장 폐지했고 3월에는 12억 8851만원의 자본금을 6642만원으로 줄이는 감자를 진행했다. 잠시나마 희망도 비췄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월 조합원 10명이 기륭전자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밀린 임금 1692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했다. 이들은 26일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륭전자 노동자 이인섭(46)씨는 “비정규직 노조 결성도 우리가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공농성과 공장점거 농성도 우리가 처음인 만큼 비정규직의 비루한 현실을 우리가 끝내겠다”며 차가운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 종교인 과세 유예, 현 정부 내 사실상 무산…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백기’

    종교인 과세 유예, 현 정부 내 사실상 무산…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백기’

    ‘종교인 과세 유예’ 종교인 과세가 1년간 유예되면서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내에서 무산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종교인 과세 시행 예정 시점인 2016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그 다음 해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행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는 25일 개정 세법 후속 시행령 개정을 통해 종교인 소득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기타소득(사례금)으로 과세하기로 했던 것을 1년간 유예해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종교단체 원천징수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감안해 종교인소득 신설, 종교단체의 원천징수 의무 삭제 및 종교인 자진신고·납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 대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종교인 과세 1년 유예는 과세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여당에서 유예를 요청한 영향이 크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9월 종교인에게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일부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두달 뒤 시행령을 개정,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에 포함시켜 4%를 원천징수하는 내용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는 올해 2월 원천징수를 자진신고·납부 방식으로 바꾸고 세무조사나 가산세 규정도 제외한 수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개신교계 일각의 반대 목소리가 작아지지 않자 정치권은 올해 정기 국회에서 종교인 과세 관련 수정안을 예산 부수 법안에서 제외시켰다. 정부는 수정안이 무산돼 원천징수 등이 담긴 기존 시행령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난감해진 새누리당은 정부에 종교인 과세 시행 시기를 2년간 유예하자고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공기관 개혁 문제만 해도 벅찬데, 종교인 과세까지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배경이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등이 연이어 있어 종교인 과세는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여의도 주변에서는 나오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특정 종교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종교인 과세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인 과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표심만 의식하는 정치권 못지않게 신앙적 이유를 내세워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종교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서 종교인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기재부 관계자는 “종교인에 대한 과세는 세수 증대보다 조세정의 실현에 목적을 두고 있다”고 강조했다. 모든 종교계가 과세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계는 1994년부터 소득세 원천징수를 하고 있고 불교계는 찬성 쪽으로 돌아섰으며, 개신교계에서도 반대는 일부의 목소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교황 방한·세번째 추기경 탄생 ‘경사’… 조계종 분열 ‘눈살’

    교황 방한·세번째 추기경 탄생 ‘경사’… 조계종 분열 ‘눈살’

    2014 갑오년은 종교계에도 굵은 일이 다발한 해였다. 세 번째 추기경 탄생과 교황 방한이란 겹경사로 천주교계에 이목이 집중된 가운데 불교계에선 탈종과 분리의 메가톤급 불협화음이 잇따랐고 개신교계 역시 연합과 일치보다는 분열과 일탈이 우세했다. 그런 한편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반성, 회개하자는 참회의 움직임이 종교계 곳곳에서 잇따랐다. ●겹경사로 주목받고 큰 과제 안은 천주교 ‘한국천주교의 해’라 불러도 좋을 만큼 천주교계엔 경사가 이어졌다. 8월 4박 5일간의 프란치스코 교황 방한은 온 국민의 이목을 집중시킨 사건. ‘아시아청년대회와 125위 한국순교자 시복식 참가’를 위한 사목방문에서 교황이 보여준 낮은 사목과 소통 행보는 감동의 물결을 자아냈다. 세월호 유족들이며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장애인 등 상처받고 소외된 이들을 만나 눈을 맞춰 위로하고 전한 사랑의 메시지는 ‘지도자 부재’의 한국에 교황신드롬까지 일게 했다. 방한 마지막 날 출국 직전 집전한 명동성당 ‘화해와 평화를 위한 미사’에선 한반도 화해와 통일을 위해 이해하고 용서하라는 굵은 메시지를 만방에 전하기도 했다. 이에 앞서 1월 염수정 서울대교구장의 추기경 서임은 한국 세 번째 추기경 탄생으로 관심이 쏠렸다. 염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임명한 19명의 추기경 중 한 명으로 교황 선출권을 갖는다. 교황청을 비롯한 세계 천주교의 개혁에 앞장서고 있는 교황이 첫 아시아 단독 방문지로 한국을 선택했고 오랫동안 세 번째 추기경을 기다려왔던 한국에 큰 선물을 안긴 만큼 한국 천주교계도 개혁과 역할 측면에서 화답해야 하는 적지 않은 과제를 안게 됐고 고민 중이다. ●탈종과 이탈로 이타의 보살행 가려진 불교 천주교와는 달리 불교계는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악재의 연속으로 곤욕을 치렀다. 그중에서도 한국불교 선지식인 송담 스님(법보선원 이사장)의 조계종 탈종과 선학원의 조계종 이탈은 불교계 전체를 뒤흔들 만큼 여파가 큰 사태이다. 특히 조계종의 정신적 지주라는 송담 스님 탈종은 종단 초유의 일. ‘법보선원과 조계종의 수행전통이 맞지 않아 승려로서 의무와 권한을 내려놓는다’는 충격 선언을 한 스님의 탈종은 공양(시주)거부와 부패·도박·은처승·정치승을 스님으로 인정하지 않겠다는 재가불자 선언까지 부르는 등 논란이 계속 중이다. 법인관리법을 둘러싼 대립과 갈등으로 세간의 관심을 모았던 선학원은 결국 조계종이 선학원 이사장인 법진 스님을 승적 박탈하는 멸빈 조치해 파국을 맞았다. 선학원은 ‘제2의 정화운동’을 선포하며 맞서 선학원 소유권을 둘러싼 다툼이 계속될 전망이다. 그런 가운데 연임에 성공한 자승 총무원장 체제의 조계종은 ‘승려 도박사건’이후 종단 차원에서 추진해온 자성과 쇄신의 한편에서 ‘10·27법난 기념관’이 포함된 조계사 성역화를 강하게 밀어붙여 눈길을 끌었다. ●일치와 연합 구호만 무성했던 개신교 김영주 목사의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NCCK) 총무 재임과 이영훈 순복음교회 목사의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 취임, 양병희 목사의 한국교회연합(한교연) 대표회장 취임…. 연합기관 대표들의 연임과 경질을 둘러싼 잡음이 적지 않았다. 특히 연초부터 교회연합과 일치에의 기대가 컸지만 뚜렷한 성과는 없었다. NCCK는 김영주 총무의 재선 과정에 문제를 제기한 최대교단 예장통합의 반발로 정의와 에큐메니컬(교회일치)에 바탕한 진보적 연합기구 위상에 적지않은 상처를 입었다. 그동안 NCCK에 속했던 여의도순복음교회(기하성)의 이영훈 목사가 한기총 대표회장으로 옮긴 것도 관심 사안. 이 목사는 한기총에서 분리된 한교연의 새 대표회장과 긴밀한 접촉을 갖고 교회연합을 거듭 천명했지만 좀처럼 감정의 골을 메우지 못했다. 한편 세월호 참사 이후 ‘나 부터 반성해 종교 본연의 역할에 충실하자’는 회개 운동이 잇따랐고 NCCK와 진보 성향 목회자 단체들은 ‘세월호 백서’ 발간사업 등 재발방지와 사태해결 측면의 목소리를 높였다. ●차분히 내실 닦기에 매진한 민족종교 천도교·원불교·유교 등 민족종교는 종단 자체의 기념사업에 충실한 채 조용히 한 해를 보냈다. 천도교는 동학농민혁명 120주년 기념사업을 다양하게 벌였다. 특히 동학농민혁명유족회와 손잡고 농민혁명 정신선양에 나서 눈길을 끌었다. 원불교는 3대 종법사 대산 종산의 탄생 100주년 사업에 주력하는 한편 원불교 창교 100주년을 맞기 위한 준비를 차분히 벌였다. 유교는 최근덕 관장 구속 이후 취임한 서정기 관장이 유림사회의 화합과 친목에 바탕한 개혁작업으로 주목받았다. 그러나 지난달 서 관장이 행사 중 의식을 잃고 쓰러져 비상 체제에 돌입한 상태여서 귀추가 주목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종교인 과세 유예, 사실상 무산…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항복

    종교인 과세 유예, 사실상 무산…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항복

    ‘종교인 과세 유예’ 종교인 과세가 1년간 유예되면서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내에서 무산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종교인 과세 시행 예정 시점인 2016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그 다음 해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행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는 25일 개정 세법 후속 시행령 개정을 통해 종교인 소득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기타소득(사례금)으로 과세하기로 했던 것을 1년간 유예해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종교단체 원천징수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감안해 종교인소득 신설, 종교단체의 원천징수 의무 삭제 및 종교인 자진신고·납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 대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종교인 과세 1년 유예는 과세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여당에서 유예를 요청한 영향이 크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9월 종교인에게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일부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두달 뒤 시행령을 개정,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에 포함시켜 4%를 원천징수하는 내용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는 올해 2월 원천징수를 자진신고·납부 방식으로 바꾸고 세무조사나 가산세 규정도 제외한 수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개신교계 일각의 반대 목소리가 작아지지 않자 정치권은 올해 정기 국회에서 종교인 과세 관련 수정안을 예산 부수 법안에서 제외시켰다. 정부는 수정안이 무산돼 원천징수 등이 담긴 기존 시행령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난감해진 새누리당은 정부에 종교인 과세 시행 시기를 2년간 유예하자고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공기관 개혁 문제만 해도 벅찬데, 종교인 과세까지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배경이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등이 연이어 있어 종교인 과세는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여의도 주변에서는 나오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특정 종교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종교인 과세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인 과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표심만 의식하는 정치권 못지않게 신앙적 이유를 내세워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종교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서 종교인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계가 과세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계는 1994년부터 소득세 원천징수를 하고 있고 불교계는 찬성 쪽으로 돌아섰으며, 개신교계에서도 반대는 일부의 목소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비정규직 설움 없게”…혹한 오체투지

    “크리스마스는 남의 일처럼 느껴지네요. 눈물 나고 서러울 뿐입니다. 정규직이란 게 이렇게 목숨을 걸고 싸워도 어려운 일인 줄 몰랐습니다.” 25일 서울 서대문구 충정로역 9번 출구 앞.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금속노조 기륭전자분회 유흥희(44·여) 분회장은 까맣게 물든 소복을 입은 채 읖조렸다. 몸도 마음도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혹한이 몰아치던 지난 22일 동작구 신대방동 옛 기륭전자 본사에서 출발해 국회가 있는 여의도와 마포를 거쳐 이곳까지 ‘오체투지’(五體投地) 행진을 이어온 탓에 온몸은 만신창이가 됐다. 오체투지란 불교식 큰절을 가리키는 말로, 땅에 무릎을 꿇은 뒤에 두 팔꿈치를 땅에 댄 다음 마지막으로 이마가 땅에 닿도록 하는 절이다. 소복 안에 무릎보호대 등을 덧댔지만 온몸은 멍투성이가 됐다. 기륭전자 노동자들은 “삼보일배보다 오체투지 동작이 훨씬 더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윤 분회장 등 기륭전자 노동자 8명과 지지자 7명 등 15명은 북소리에 맞춰 열 걸음에 한 번씩 절을 하며 천천히 전진했다. 기륭전자 노동자 윤종회(44·여)씨는 “기간제 근로자 사용 기한을 2년에서 4~5년으로 늘리고 해고 요건을 완화하려는 정부 움직임에 제동을 걸기 위해서라도 더 바쁜 발걸음이 필요하다”며 “더 이상 노예로 살기 싫다”고 말했다. 비정규직 투쟁의 상징이던 기륭전자 노동자들이 다시 거리로 나선 까닭은 ‘비정규직 법·제도 철폐’를 위해서다. 유 분회장은 “비정규직 제도 자체를 없애지 않으면 제2의 기륭전자 사태가 반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차량용 내비게이션과 위성라디오를 만드는 기륭전자에서의 분규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파견 비정규직 중심의 노조가 설립되자 회사가 이들을 해고했고 노조는 2010년 11월까지 1895일 동안 복직 투쟁을 벌였다. 200여명에 이르던 조합원은 10명으로 줄었다. 우여곡절 끝에 지난해 5월 조합원 10명이 ‘정규직’으로 복직했다. 하지만 사측은 이들에게 어떤 일도 맡기지 않았고 월급도 주지 않았다. 심지어 지난해 12월에는 몰래 사무실을 비우고 ‘야반도주’했다. 회사는 지난 2월 상장 폐지했고 3월에는 12억 8851만원의 자본금을 6642만원으로 줄이는 감자를 진행했다. 잠시나마 희망도 비췄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지난 10월 조합원 10명이 기륭전자를 상대로 낸 임금 청구 소송에서 “밀린 임금 1692만원과 지연손해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하지만 회사는 항소했다. 이들은 26일 청와대 옆 청운효자동 주민센터에서 행진을 마무리할 예정이다. 기륭전자 노동자 이인섭(46)씨는 “비정규직 노조 결성도 우리가 시작했고 비정규직 노동자의 고공농성과 공장점거 농성도 우리가 처음인 만큼 비정규직의 비루한 현실을 우리가 끝내겠다”며 차가운 바닥에 몸을 내던졌다. 글 사진 오세진 기자 5sjin@seoul.co.kr 그리고 26일 행진단은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멈췄다. 미신고집회라는 이유로 경찰이 오체투지 행진을 제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행진 주최 측은 선례가 없다는 이유로 자신들의 신고를 경찰이 받아주지도 않았다고 맞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공무원연금 개혁안 때문에 종교인 과세 유예?…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항복

    공무원연금 개혁안 때문에 종교인 과세 유예?…일부 기독교계 반대에 여당 항복

    ‘종교인 과세 유예’ ‘공무원연금 개혁안’ 공무원연금 개혁안 때문에 종교인 과세 유예? 종교인 과세가 1년간 유예되면서 사실상 현 정부 임기 내에서 무산된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종교인 과세 시행 예정 시점인 2016년에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그 다음 해에 대통령 선거가 예정돼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시행이 불투명하다는 분석이다. 기획재정부는 25일 개정 세법 후속 시행령 개정을 통해 종교인 소득에 대해 내년 1월 1일부터 기타소득(사례금)으로 과세하기로 했던 것을 1년간 유예해 2016년 1월 1일부터 시행한다고 밝혔다. 기재부는 종교단체 원천징수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감안해 종교인소득 신설, 종교단체의 원천징수 의무 삭제 및 종교인 자진신고·납부 등을 내용으로 하는 수정 대안을 내년 정기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다. 종교인 과세 1년 유예는 과세에 대한 종교계의 반발을 의식해 여당에서 유예를 요청한 영향이 크다. 애초 정부는 지난해 9월 종교인에게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는 것을 내용으로 하는 소득세법 개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이에 일부 개신교 대형 교회들이 거세게 반발하자 두달 뒤 시행령을 개정, 종교인의 소득을 사례금에 포함시켜 4%를 원천징수하는 내용으로 선회했다. 그러나 종교계 일각의 반발이 수그러들지 않자 정부는 올해 2월 원천징수를 자진신고·납부 방식으로 바꾸고 세무조사나 가산세 규정도 제외한 수정 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하지만 개신교계 일각의 반대 목소리가 작아지지 않자 정치권은 올해 정기 국회에서 종교인 과세 관련 수정안을 예산 부수 법안에서 제외시켰다. 정부는 수정안이 무산돼 원천징수 등이 담긴 기존 시행령에 따라 내년 1월 1일부터 과세할 수밖에 없게 됐다. 난감해진 새누리당은 정부에 종교인 과세 시행 시기를 2년간 유예하자고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공공기관 개혁 문제만 해도 벅찬데, 종교인 과세까지 추진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게 배경이었다. 하지만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등이 연이어 있어 종교인 과세는 ‘물 건너갔다’는 전망이 여의도 주변에서는 나오고 있다. 선거를 앞두고 여당이 특정 종교단체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종교인 과세를 밀어붙이기에는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종교인 과세 문제와 관련해서는 표심만 의식하는 정치권 못지않게 신앙적 이유를 내세워 세금을 내지 않겠다는 종교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있다. ’소득 있는 곳에 세금 있다’는 과세 원칙에서 종교인만 예외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모든 종교계가 과세에 반대하는 것도 아니다. 가톨릭계는 1994년부터 소득세 원천징수를 하고 있고 불교계는 찬성 쪽으로 돌아섰으며, 개신교계에서도 반대는 일부의 목소리인 것으로 전해졌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부처님 법대로”… ‘절구통 수좌’ 법전 스님 열반

    “부처님 법대로”… ‘절구통 수좌’ 법전 스님 열반

    ‘봉암사 결사’의 마지막 주인공이자 조계종 제11·12대 종정을 지낸 도림당 법전 대종사가 23일 오전 11시 25분 대구 도림사 무심당에서 입적했다. 법랍 73년, 세수 90세. 전남 함평 태생인 법전 스님은 한국불교의 대표적 선승. 어린 시절 서당에 다니면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속가에 두면 단명할 팔자’라는 말을 들은 부모님 결정으로 열네 살 때 출가했다. 영광 불갑사에서 설제 스님을 은사로 사미계, 장성 백양사에서 만암 스님을 계사로 비구·보살계를 각각 수지했다. ‘타사시구자’(拖死屍句子·무엇이 너의 송장을 끌고 왔느냐)를 화두로 평생 정진 수행했으며 선방에 한 번 앉으면 구들장에 붙어 움직이지 않았다 해서 ‘절구통 수좌’로 통한다. 특히 1949년 성철·청담·자운 스님 등과 함께 ‘부처님 법대로 살아보자’는, 이른바 봉암사 결사에 참여했다. 이때 ‘탁발도 수행’이라며 자운 스님 등과 탁발을 다닌 것으로 전해진다. 법전 스님은 특히 성철 스님과의 인연이 아주 각별한 것으로 알려져있다. 1951년 통영 안정사 천제굴에서 성철 스님을 은법사로 모시고 정진하던 중 ‘도림’(道林) 법호를 받았다. 이후 경북 문경 대승사 묘적암에서 홀로 정진하던 중 깨달음을 얻은 것으로 전해진다. 이때 한겨울 쌀 다섯 되로 밥을 지어 김치 단지 하나 두고 ‘내가 저 쌀이 다 떨어지기 전에 공부를 마치든가, 죽든가 둘 중 하나를 택하겠다’며 석 달간 목숨 건 수행을 했던 이야기는 유명하다. 성철 스님이 파계사 성전암에서 10년간 동구불출에 들 때 철조망 울타리를 친 주인공이며 인가도 성전암에서 성철 스님에게 받았다. 종단이 어렵던 1981년 중앙종회의장을 맡아 교단을 안정시켰고, 1982년 총무원장을 잠시 맡은 뒤 1985년부터 해인총림 수좌로 선원에 주석했다. 해인사 주지, 해인총림 방장, 원로회의 의장 등 종단 주요 소임을 두루 거쳤다. 2002년 3월 조계종 제11대 종정으로 추대된 이후에도 해인사 퇴설당에서 수행 정진을 계속했고 12대 종정까지 추대돼 한국불교를 대표하는 어른 역할을 해왔다.영결식은 27일 오전 11시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대한불교 조계종단장으로 봉행된다. (055)934-3000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불완전한 법체계서 ‘양심’ 좁게 해석한 것은 문제… 양심의 진지성 판단해 대체복무 인정 여부 논의해야

    [권위자에게 듣는 판례 재구성] 불완전한 법체계서 ‘양심’ 좁게 해석한 것은 문제… 양심의 진지성 판단해 대체복무 인정 여부 논의해야

    사람은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다. 그 마음이 양심이다. 헌법 제19조는 양심의 자유를 규정하고 있다. 양심은 삶의 기둥이 된다. “삼군이 호위하는 장수라도 그를 잡을 수 있지만, 필부라도 그 가슴 속의 지조는 빼앗지 못한다.”(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논어 자한 편) 자기가 믿는 종교, 윤리나 가치관에 따라 군 복무를 거부하는 경우를 흔히 ‘양심적 병역거부’라 한다. 양심적 병역거부를 하는 이들은 주로 여호와의 증인 신도이지만 불교도나 종교가 없는 경우도 있다. 군대가 가진 폭력성 때문에 입대를 거부하고 프랑스로 망명한 경우도 있다. 헌법재판소는 병역법상 입영통지를 받고도 양심상의 이유로 입영 또는 소집에 응하지 않은 이들을 ‘정당한 사유’를 가진 것으로 보지 않고 처벌하는 병역법 조항이 헌법에 위반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해당 판례는 다음과 같은 문제가 있다. 첫째, 헌법재판소는 양심의 자유가 보호하는 양심을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는 자신의 인격적인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것이라는 강력하고 진지한 마음의 소리로서 절박하고 구체적인 양심”이라고 봤다. 양심에 대한 해석을 매우 좁게 하는 문제가 있기는 하다. 아울러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는 인격적 존재가치가 허물어지고 말 양심’에 관한 문제라면 이를 제한하는 법률조항에 대한 심사는 그에 상응하여 매우 엄격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택한 심사의 기준과 정도는 그 중요성에 상응하지 않는다. 양심의 자유가 국방의 의무보다 더 가치 있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는 관점은 양심을 정의한 것과 모순된다. 둘째,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더라도 국가안보와 병역의무의 형평성에 ‘아무런 지장이 없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은 국가·안보 등의 가치를 극단적으로 중시하는 입장이다. 양심은 절대적으로 옳은 것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사람은 모두 다르고, 옳은 것에 대한 관념도 그 사람의 경험이나 가치관, 윤리와 종교 등에 따라 달리 형성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양심은 그 내용을 객관적으로 말하기 어렵다. 때로는 양심은 현행법과 충돌하지만 이러한 과정을 거쳐 새로운 법률이 만들어지기도 한다. 이 판례는 양심의 자유에 따라 법률을 심사하기보다는 법률체계에서 인정한 가치와 틀 안에서만 양심의 자유를 인정하고 있다. 셋째, 이미 다양한 형태의 대체복무가 실시되고 있음을 도외시한 채 대체복무의 도입 가능성을 논의하고 구체적인 근거의 제시 없이 병력자원의 손실이나 안보의 문제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은 소설에 가깝다. 이 사건에서는 대체복무제를 도입할지 여부가 아니라 이미 시행되고 있는 대체복무제에 관련하여 양심상의 이유로 군 복무를 할 수 없는 자를 추가적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신체조건이 복무에 부적합한 이들에게 병역면제 또는 대체복무 처분을 하고, 산업기능요원 또는 사회복무요원 등으로 군 복무를 대체하는 이들도 많다. 양심적 병역거부는 정신적 사유로 인해 군복무가 부적합한 이들의 문제로도 볼 수 있다. 양심상의 이유로 도저히 병역의무 이행을 하지 못하는 이들에게 대체복무를 인정할지 여부는 일반적인 국방의 의무에 관한 법률형성권에 관한 논의나 입법재량의 문제로 접근할 일은 아니다. 넷째, ‘양심적 병역거부를 인정하면 병역거부를 위해 특정 종교로 개종하려는 이들이 나오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없고 인간의 윤리나 신념을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곤란하다’고 하지만 그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본다. 이미 많은 국가가 양심상의 이유로 병역 면제 또는 대체복무 여부를 심사하는 제도를 가지고 있다.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인정되기 위하여 다양한 근거자료를 제시해야 하고 상세한 질문과 토론을 통해 양심의 진지성을 판단하는 게 그렇게 어려운 것은 아니다. 또한 군 복무의 여건을 개선하는 게 수반된다면 굳이 어려움을 무릅쓰고 거짓된 방법을 이용해 병역을 거부하려 시도하는 일도 줄어들 것이다. 해당 판례에서는 등장하지 않지만 2004년 헌법재판소의 판례에서 권성 재판관이 쓴 합헌의견에 대한 별개의견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양심적 병역거부에 대한 항간의 사려 깊지 않은 인식과 편견 또는 적대감이 고스란히 담겨 있기 때문이다. 권성 재판관은 별개의견을 통해 ‘양심적 병역거부자의 인의예지(仁義禮智)가 의심스럽다’, ‘군 복무를 하는 이들이 양심이 없거나 전쟁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이 병역거부를 결정하기까지 겪은 고민과 이후 겪어야 할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어쩌면 이를 외면하는 것이야말로 측은지심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또 양심적 병역거부라는 용어가 이들만 양심이 있고 군 복무를 하는 사람이 양심이 없다고 하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법체계 자체는 불완전한 것이다. 항구불변의 것도 아니다. 다수가 가진 이해관계나 가치관을 반영하고 있으며 그 변화에 따라 변화할 수 있는 것이다. 다수와 다른 생각과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도 공존할 수 있는 것이 민주공화국이고 대한민국은 이러한 관점에 기초하고 있다. 이것이 인권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대통령이 가진 사면제도도 법체계가 근본적으로 불완전하고 법제도가 취한 가치체계와 다른 가치가 존재할 수 있다는 것이 전제돼 있다. 다양성과 공존을 위한 관용이 민주주의의 핵심적인 가치이고 모든 사람은 다르다는 것이 헌법이 전제하는 인간관이다. 사람마다 다른 양심을 다수가 만든 틀 안에 가둬 둘 수만은 없는 것 아니겠는가. ■ 송기춘 교수는 ▲서울대 법학 박사 ▲한국비교공법학회 학술이사 ▲한국헌법학회 총무이사 ▲법학전문대학원 교수협의회 공동대표 ▲민주주의 법학연구회장 ▲전북교육청 학생인권심의위원회 위원장 ▲전북 평화와 인권연대 공동대표 ▲한국공법학회장
  • ‘대한민국 자유’란 무엇인가

    ‘대한민국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란 무엇인가/박홍규 지음/문학동네/340쪽/2만원 도대체 자유란 무엇인가. 자유총연맹, 자유청년연합, 자유민주주의 등 한국사회 보수 진영이 전가의 보도처럼 쓰는 이데올로기적 개념인지, 아니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는 개인과 공동체의 숭고함 그 자체를 품고 있는 개념인지, 그것도 아니면 마음껏 소유하고 내키는 대로 소비할 수 있는 상태인지 사람마다 내놓는 답은 다를 수 있다. 테오도어 아도르노는 일찍이 ‘부정변증법’을 통해 왜곡되고 변질된 자유의 개념이 당대 사회에 가져올 위험성에 대해 경고한 바 있다. 아나키스트를 자처하는 박홍규 영남대 교수는 지금 우리의 자유 개념이 왜곡돼 있다는 전제에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찾아 나간다. 서양철학에 근거한 자유의 개념은 노예 또는 노예의 속박된 상태와 대립되는 개념이었다. 자유인과 노예, 백인과 비백인, 남성과 여성 등 우월한 존재가 누리는, 타인과 사물 또는 자연의 부자유를 전제로 한 자유였다. 여기에서 서구 제국주의의 침략과 약탈도 정당화될 수 있었다고 비판한다. 우익의 이데올로기로 오용되고 있는 한국적 자유 개념 역시 마찬가지다. 공산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사상적 경향성으로서 자유주의가 한국에 와서 독재를 옹호하고 개혁, 민주의 가치를 부정하는 식으로 타락했음을 지적한다. 또한 한국의 자유가 멋대로 사유(私有)하고 욕망하고 소비하는 자유로만 존재하는 듯 변질돼 결국 사회 양극화의 한 배경이 됐음에 대해서도 개탄을 잊지 않는다. 박 교수가 제안하는 진정한 자유의 모습은 ‘상관 자유’다. 상관(相關)하거나 상관 안 하거나는 사람의 행동에 대한 의지를 담고 있다. 타자와의 관계 속에 자유, 즉 다른 사람의 평등과 여러 권리 및 의무와 상관됨을 강조하는 의미다. ‘상관 자유’는 사회의 구성원들이 평등한 조건하에 저마다의 능력을 발휘하여 창조하는 자유를 뜻하므로 ‘공존 자유’로 부를 수 있으며, 이럴 때 비로소 자유는 개인 차원의 욕망이나 경쟁을 넘어서게 된다. 모든 사람과 자연, 세상은 하나의 그물로 얽혀 있다는 불교의 인드라망 사상과 맥락이 맞닿는다. ‘상관 자유’의 요체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세속적 성공이나 대중적 소비, 물질적 과시를 거부하고 최소한의 절제된 소유를 지향하는 것, 그리고 부당한 권위와 불합리한 질서에 대항하며 정신과 지성의 해방을 갈구하는 것이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자유를 오용, 남용하는 이들로부터 그 본질적 정수를 빼앗아 와야 함을 뜻하기도 한다.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골든스팟’ 공략하라 혜택이 두 배로 쑥~

    ‘골든스팟’ 공략하라 혜택이 두 배로 쑥~

    자녀들의 겨울방학과 잦은 송년모임 등으로 씀씀이가 커지는 연말이다. 올겨울 스키장이나 주말 여행을 계획하는 알뜰족에겐 ‘모바일, 오전(심야), 평일’이 주요 키워드가 될 것 같다. 겨울방학을 앞두고 카드사들이 다양한 이벤트를 진행 중인데 특정 결제수단과 시간대에 할인폭이 커지는 ‘골든 스팟’을 공략하면 혜택을 두 배로 챙길 수 있다. 16일 금융권에 따르면 하나카드는 이달 들어 ‘만원의 서프라이즈’ 행사를 열고 있다. 하나카드 앱(애플리케이션) 카드를 발급받으면 오는 21일까지 롯데월드 야간 자유이용권을 1만원에 살 수 있다. 이달 말까지 하나카드 이용 고객들에게는 요일별 무료 혜택도 준다. 목요일은 롯데시네마 영화권, 금요일은 뮤지컬 관람권, 주말에는 롯데월드·서울랜드·원마운트·한화 아쿠아플라넷 등 테마파크 자유이용권과 입장권이 각각 나간다. 스키 여행을 계획 중이라면 평일을 공략하는 게 유리하다. KB국민카드는 내년 3월 스키장 폐장일까지 리프트권 할인 행사를 여는데 특정 평일에 40~50%까지 할인해준다. 보광피닉스파크에서서는 매주 화요일에, 웰리힐리파크에서는 매주 월요일 오전에 리프트권을 최대 반값까지 깎아준다. 어린 자녀를 동반한 가족이라면 신한카드로 비발디파크 여행을 고려해볼 만 하다. 4인 가족에게 리프트권을 30% 할인해주고 눈썰매장 이용료도 4인 모두에게 30% 깎아준다. 겨울 방학에 자녀들의 학원비를 지원해주거나 연말연시 감사 선물이나 교통비를 할인해주는 곳도 있다. 삼성카드 ‘5 V2’는 직전 3개월 평균 이용실적 30만원 이상을 충족하면 학원, 서점 등 가맹점에서 5%를 할인받을 수 있다. 현대카드 고객이라면 온라인 쇼핑 때 이 카드를 쓰는 게 유리하다. 그동안 쌓은 M포인트로 특정 온라인 쇼핑몰에서 물건값의 50%까지 결제할 수 있다. 이런 결제가 가능한 쇼핑몰은 날짜별로 다르다. CJ몰은 16일, 티켓몬스터 17일, 홈플러스 인터넷쇼핑몰 17~19일, 롯데홈쇼핑 19~21일이다. 송년모임 교통비를 지원해주는 이색 이벤트도 있다. 신한카드는 31일까지 신한후불교통카드로 버스나 지하철을 이용한 고객 중 총 800명에게 해당 교통수단 이용금액의 50%, 최대 5000원까지 현금으로 돌려준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 스님

    “이제 밥값을 한 것 같아 마음이 조금 놓입니다. 성철 스님이 살아계시면 뭐라 말씀하실지….” 성철(1912~1993) 스님을 평생 시봉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 원택(70) 스님은 어쩔 수 없는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제자)였다. 바람이 코끝을 에는 듯한 찬 날씨에 환한 얼굴로 기자를 맞는 스님. 신도들이 연신 합장하며 인사를 건네자 일일이 맞인사를 한다. 이른 아침 ‘한국 불교 1번지’ 조계사 대웅전 앞 만남에선 좀 생뚱맞은 질문일까. 더군다나 총무원이 들어 있는 조계사는 성철 스님과는 인연이 없는 곳이나 마찬가지일 텐데 최근 나온 성철 스님의 ‘백일법문’ 개정증보판 소감을 물었더니 망설임 없는 답이 돌아온다. “돌이켜 보면 감회가 새롭지요. 큰스님이 설법한 지 반세기인 47년 만에 이렇게 대중에게 온전한 법 보시를 하게 됐으니 말입니다.” 성철 스님이 1967년 해인총림 초대 방장(方丈)에 추대된 뒤 첫 동안거를 맞아 대중에게 백일간 불교 전반에 대해 강설한 법문이 백일법문이다. 불교의 핵심 내용을 경론과 조사어록 등을 인용해 알기 쉽게 풀어낸, 한국 불교의 퇴색하지 않는 대중 교과서다. 선(禪)과 교(敎)를 불교의 핵심인 중도사상으로 회통해 일갈한, 성철 스님과는 떼려야 뗄 수 없는 법문이다. 그 법문을 일반 대중에게 처음 소개한 책이 성철 스님 열반 한 해 전인 1992년 세상에 나온 ‘백일법문’(장경각)이다. 이번 개정 증보판은 첫 판에서 빠진 법문 내용 중 테이프 14개 분량을 보완한 것이다. 처음 나온 초판 ‘백일법문’ 책을 보곤 시큰둥했다는 성철 스님이 살아 있다면 이번 백일법문에는 무슨 표정을 지을지 궁금해진다. 그때의 백일법문은 말할 것도 없고 22년 만의 개정 증보판 출간은 전적으로 상좌 원택 스님의 공이다. 억센 사투리 억양에 말까지 빨라 알아들을 수조차 없고, 녹음 상태도 썩 좋지 않은 그 법문을 일일이 풀어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고 고된 일이었을까. 2004년 원택 스님이 이끄는 성철선사상연구원에서 낸 CD가 첫 판 백일법문과 많이 다르다는 사실을 알고 증보판을 내기로 작심했단다. 스님의 백일법문 내용을 전한 책이 빈약했다는 자책과 스승에 대한 죄송함 때문이었다. 2007년부터 다시 시작해 탄신 100주년인 재작년, 그리고 열반 20주기인 지난해에 개정판 출간을 맞추려 했지만 작업이 너무 어려워 늦어졌다. 찬바람을 피해 총총걸음으로 인근 백련불교문화재단 사무실로 옮겨 ‘개정판에 만족하느냐’고 묻자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불쑥 법정 스님 이야기를 꺼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저를 법정 스님에게 보낸 게 필생의 길이 되었군요.” 바로 성철 스님 법문집 ‘선문정로’(1981년)와 ‘본지풍광’(1982년)이 세상에 나오게 된 이야기다. “성철 스님과 법정 스님은 묘한 관계였어요. 경쟁자이면서 서로가 가장 인정하는 도반이랄까. 원고 뭉치를 꺼내더니 법정 스님에게 가져가라고 했지요. 그래도 글은 법정이 최고라면서….” 자신의 글에 대한 윤문을 부탁했으니 성철이 법정을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 만한 대목이다. “법정 스님도 글자 하나, 토 하나, 받침 하나도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면서 최소한의 교정으로 성철 스님 글의 윤문을 마쳤어요. 그 스님에 그 스님이지요. 더군다나 법정 스님은 성철 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해 비판을 가장 많이 했던 스님이었는데….” 원고 뭉치가 든 걸망을 메고 법정 스님을 찾아가 불일암과 유스호스텔을 돌며 윤문 작업을 한 끝에 ‘선문정로’ ‘본지풍광’을 냈고, ‘백일법문’도 그 바탕에서 시작해 결실을 볼 수 있었다. 얼마 전부터 시작한 선종 소의어록 ‘고경’ 시리즈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한다. 원택 스님이 대학을 졸업하고 고시 공부를 하던 무렵 고향 친구와 함께 경남 합천 해인사를 찾은 건 지금으로부터 43년 전인 1971년의 일이다. ‘성철 스님이라는 큰스님이 있으니 한번 만나 보자’는 친구의 권유에 그저 평생의 지남이라도 받아 볼 요량으로 방문했는데 그게 평생의 인연이 될 줄은 전혀 몰랐다고 한다. “쏙이지 말그래이.” 기대 속 첫 대면에 받은 지남치곤 허접했을까. 대실망이었단다. 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속이지 말라’는 그 말이 가슴에 켕겼고 결국 자신의 몸이 화장당하는 꿈을 꾼 뒤 해인사를 찾아 ‘삼서근’(麻三斤) 화두를 받아 ‘가야산 호랑이’의 상좌가 됐다. ‘살아서 20년, 죽어서 20년.’ 스승 성철 스님을 시봉한 햇수를 담아 영원한 시자 원택 스님이 즐겨 하고 즐겨 듣는 말이다. 내성적인 성격으로 괴팍한(?) 스승을 모시느라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지만 변함없이 성철 스님을 모셨고, ‘가야산 호랑이’의 마지막 임종을 지킨 것도 원택이었음을 알 만한 이는 다 안다. 성철 스님 입적 후 경남 산청 출생지에 겁외사를 세었고, 그곳에 다시 기념관을 지어 얼마 전 회향식을 했다. 힘겹게 지은 사리탑이며 연꽃 봉오리 모양의 연화대에 법구를 모신 관을 넣고 불을 넣은 파격적인 다비식을 치른 일 말고도 스승을 향한 그의 정성과 시봉 일화는 숱하다. ‘성철 스님 상좌.’ 자신에게 언제나 따라붙는 이 말이 질리지 않을까. 그래도 큰 소식 한번 하겠다며 출가한 납자인데 성철 스님을 뺀 ‘스님 원택’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가야산 호랑이’ 스님에게 받은 화두 풀이는 잘됐을까. 상당히 어려운 질문이었나 보다. 무거운 침묵 끝에 돌아온 말은 역시 스승을 향한 자책이었다. “속이지 말라 하셨는데 여전히 속이고 살지요. 죽을 때까지의 숙제겠지요. 법정 스님과 함께하라며 보냈던 그 일은 일찌감치 성철 스님이 제게 내준 길이었어요. 그 길 뜻을 더 일찍 알고 풀었어야 하는데….” 그래서 원택 스님의 ‘백일법문’을 향한 집념은 그렇게 질겼나 보다. “큰스님은 제게 첫 대면에서부터 글을 보지 말라 하셨어요. 글 모르는 무식쟁이인 육조 스님(혜능)도 진리를 깨우쳤는데 대학까지 나온 녀석이 뭐하러 글을 보느냐며 글을 보는 저를 항상 나무라셨지요.” 크게 맘을 먹고 ‘스님 법문을 책으로 내야 스님 뜻이 온 세상에 퍼질 것 아니냐’는 직언을 드렸는데 그게 받아들여졌단다. 지금 다시 생각해 봐도 ‘글 보지 말라’던 성철 스님의 지론과는 딴판이었다. “백일법문은 불교의 핵심이 잘 설명된 책입니다. 많은 이들에게 진리를 알려주는, 꺼지지 않는 횃불이 되기를 바랄 뿐입니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로다.’ 삼척동자에게도 친숙할 법한 이 말처럼 성철 스님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는 거인이다. ‘왜 달을 안 보고 달 가리키는 손가락만 쳐다보느냐’고 세상을 혼내던 쩌렁쩌렁한 목소리, 절집을 찾는 이에게 어김없이 삼천 배를 시키던 그 무서운 호령은 여전히 ‘먼저 나를 낮춰 내려놓으라’는 사랑이라는 이름의 다른 매다. 그 거인의 외침은 왜 열반한 지 21년이 지난 지금도 울림이 여전할까. 기다렸다는 듯이 상좌가 돌려주는 한마디. “세상 시류에 흔들리지 않는 고집이지요. 스님이라고 왜 유혹과 회유가 없었겠습니까. 흔들리지 않고 본분을 지킨 것이 그 답이 아닐까 합니다.” 그 ‘가야산 호랑이’는 ‘세상의 고통을 외면한 스님’이라는 세상 한편의 비판도 받았었다. 군사독재 시절 ‘보편의 정의’를 몸으로 보여줬던 천주교 김수환 추기경과 왜 다르냐는 물음이기도 했다. “스님은 항상 자기를 바로 보라고 하셨지요. 남을 위해 기도하라 하셨습니다.” ‘중은 논두렁 베고 잠들다 죽어야 한다’는 성철 스님은 출가자의 속가 출입을 절대 용납하지 않은 것으로 유명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도 집을 찾지 않아 상좌가 문상을 대신 했다. 원택 스님도 그 스승을 따랐다. “출가한 지 얼마 안 돼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성철 스님이 시좌를 시켜 ‘느그 아부지 돌아갔다’는 말만 전해준 기억이 생생합니다. 결국 장례를 잘 못 치렀어요.(웃음)” ‘내 상좌는 죽어도 해인사 본말사 주지가 될 수 없다’는 성철 스님 유지도 그대로 지켜진 셈이다. 절집 표현대로라면 ‘친인척 간 다툼과 알력’을 미리 막았다고나 할까. 상좌 36명 가운데 해인사 본말사 주지는 단 1명도 없다. 상좌들은 주로 선방을 지켰고 열 군데 사암 주지를 맡고 있을 뿐이다. 원택 스님도 해인사에서 멀리 떨어진 부산 고심정사의 주지다. 성철 스님이 주석하던 해인사 백련암은 스승의 유지를 받들기 위해 자주 찾아 머무는 편이다. “형제간 다툼이나 알력도 피하고 폭넓게 퍼져 산 셈이니 일석이조 아닌가요.” ‘도망가지 말고 중노릇 잘해라.’ 출가한 지 얼마 안 된 어린 상좌가 안쓰러웠던지 성철 스님이 툭 던졌다는 말씀이다. ‘희한한 놈’ ‘곰새끼’라 부르면서도 ‘아무한테나 중 되란 소리 안 한다’던 스승의 말 한마디가 요즘 부쩍 가슴에 박힌단다. ‘참선 잘하그래이.’ 성철 스님이 임종 때 곁을 지킨 원택 상좌에게 남긴 유언이다. 그 유언을 제대로 지키기 위해 이제 자신만의 만행을 떠나고 싶은 건 아닐까. 세상 사람들은 흔히 ‘원택이 없었으면 성철이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이 말을 상좌 원택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찰나의 틈도 없이 손사래가 허공을 휘젓는다. “스님 뜻을 제대로 전하기나 한 건지 걱정인데….” 한국 불교계에 이름난 ‘절집 효자’, 원택이다. 옷깃을 여민 ‘절집 효자’가 인터뷰 말미에 얹은 마지막 말은 역시나 ‘스님 뜻을 완전하게 전하고 죽고 싶다’였다. 백련암 이름을 딴 백련불교문화재단은 그 희망의 텃밭이다. 30년쯤 전 ‘한국엔 왜 남방불교를 잘 아는 범어 전문가가 없느냐’는 스님의 질타에 ‘그럼 우리가 백련암에서 범어학자들을 키우자’고 원택 스님이 제안해 만들어진 재단이다. 그 재단을 토대로 스님의 정신을 올곧게 세우겠단다. 지난 11일부터 석달 일정으로 백일법문 강좌를 진행 중이다. 해마다 이맘때쯤 열어 왔지만 47년 만의 개정판 출간으로 올해엔 더 신경이 쓰일까. “백일법문 개정판이 나왔다고 스님 뜻이 바뀌는 건 아니지요. 항상 해 온 대로 하고 있습니다.” 타협 모르는 ‘괴각쟁이’ 수행자 성철 스님, 그의 그림자는 여전히 크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선불교 거두 성철의 그림자 원택 원택 스님은 근현대 한국 선불교의 거두인 성철 스님의 상좌(제자). 경남 해인사에 주석하던 성철 스님을 그림자처럼 수행하며 일거수일투족을 챙긴 성철 스님 삶의 산증인이다. 1967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외무고시를 준비하던 중 고향 친구와 함께 해인사에서 성철 스님을 만났고 이듬해 출가했다. 일만 배를 올려 첫 대면한 성철 스님에게 들은 ‘쏙이지 말그래이’ 한마디가 가슴에 박혀 떠나왔던 백련암을 다시 찾아 제자가 된 인연담이 유명하다. 당초 ‘성철 스님 뺨이라도 한 대 올리겠다’며 호기 있게 찾았지만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니 고마 중 되라’는 한마디에 머리를 깎았다. 성철 스님 생전 20년간 꼬박 시봉한 유일한 상좌다. 입적 후에도 ‘큰스님’ 뜻을 따라 20여년간 온몸을 바쳐 살고 있다. 성철 스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챙겼고 입적 후에는 유지 받들기에 열과 성을 다하고 있다. 사리탑과 새 형식의 다비장으로 스승을 기려 불교계를 놀라게 한 ‘소문난 효자’다. 늘 “마음을 다해 시봉한다 했건만 돌아보니 큰스님을 보아도 보지 못한 것 같고, 만나도 만나지 못한 것 같다”며 존경과 그리움을 감추지 않는다. 성철 스님 생가터에 성철 스님 친딸이자 출가자인 불필 스님과 뜻을 모아 겁외사를 세웠고, 그곳에 기념관을 다시 지어 최근 개관했다. 조계종 총무원 총무부장을 역임했고 성철 스님의 뜻에 따라 1987년 설립된 백련불교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도서출판 장경각 대표, 해인사 백련암 감원, 부산 고심정사 주지를 겸한다. 1998년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 1999년 제10회 대한민국 환경문화상(환경조형부문)을 수상했다. 성철 스님 입적 전해인 1992년 출간한 성철 스님 법문집 ‘백일법문’이 대업으로 평가되며 22년 만인 최근 그 개정증보판을 내 화제가 되고 있다.
  • [기고] 인재에 시달리는 석굴암/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 연구원장

    [기고] 인재에 시달리는 석굴암/강우방 일향한국미술사 연구원장

    우리는 석굴암의 건축과 조각 그 자체뿐만 아니라 그 주변 환경, 즉 가까이는 석굴암 주변의 풍수, 더 폭넓게는 토함산, 그리고 동해 바다를 모두 포함해 석굴암이라 인식해야 한다. 석굴암 앞에서 맞이하는 토함산 일출의 눈부시게 장엄한 광경은 석굴암 본존과 무관하지 않다. 석굴암은 왼쪽에 길게 뻗은 우람한 줄기인 청룡, 오른쪽에 얌전하고 짧은 줄기인 백호, 뒤에는 둥근 산봉우리인 현무, 앞에는 낮은 산들이 연이어 있고 그 너머에는 망망한 동해바다가 펼쳐지고 있는 등 사신(四神)을 주변에 배치한 가운데, 용이 호흡하는 자리인 용혈(龍穴) 자리에 있다. 원래 이름은 석불사(石佛寺)이므로 석굴암(石窟庵)으로 부르면 암자의 성격으로 바꾸어 품격을 폄하한 셈이 된다. 그러니 원래 이름인 석불사로 불러야 한다. 석굴암이라 부르면 현재 석굴암의 석조 구조만 지칭할 뿐이다. 사람들이 석불사라고 하는 산을 포함한 가람의 규모를 잊을 위험성이 크기 때문이다. 석불사 금당 바로 앞에는 석등이 자리 잡고 있는데 가람에서 매우 중요한 존재로 석가여래의 다른 모습이다. ‘금당과 석등과 탑’은 가람 형성의 가장 중요한 세 요소다. 그런데 웬일인지 석탑은 청룡의 줄기가 거의 끝나는 곳에 자리 잡고 있다. 그 까닭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용이 우주의 기운을 호흡하는, 즉 그 기운을 내고 머금는 토함산(吐含山)의 이름이 생겼다. 바로 그 용혈 자리인 신령스러운 자리에 금당, 즉 석굴 모양 금당과 석등이 자리 잡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그 숨 자리인 금당을 학자들의 오판으로 이중의 전실(前室)로 가두고 궁륭 위를 흙으로 덮은 지 오래고, 마침내 석등마저 두꺼운 콘크리트로 막고 있으니 참담하기 그지없다. 금당 앞에 축대를 만들어 마련한 넓은 철근 콘크리트 광장은 얼마 전에 의도적으로 과대한 전실 공사를 빙자해 만들어진 것을 알 수 있다. 이런 큰 공사를 문화재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경주시청이 발주하고 문화재청이 감독했으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까닭이나 알겠는가. 석불사는 인도의 마하보디 사원과 같은 성격의 사원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정각을 이룬 곳이 바로 마하보디(위대한 깨달음·즉 大覺 혹은 正覺) 사원 자리로 그곳의 석가여래를 본뜬 것이다. 즉 당나라 현장 법사가 그곳을 순례했을 때 그가 본 그곳 불상의 크기를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에 기록해 두었는데, 석불사 본존의 크기를 요즘 곡척(曲尺)으로 재서 당척(唐尺)으로 환산한 건축학자가 일본의 측량 기사인 요네다 미요지였다. 필자가 그 수치가 어딘가에 근거했으리라는 예감을 가지고 추적해 본 결과 현장이 기록해 놓은 치수와 정확히 일치하고 있음을 알았다. 즉 그 석불사 자리에서 여래가 정각을 이룬 셈이어서 석불사의 본존 석가여래의 조각이 세계의 으뜸인 것이다. 그리고 그 앞의 석등에서 진리의 빛이 발하는 것이다. 석불사는 우리나라 역사상 숱한 전란에도 조금도 적의 손길이 안 간, 자연적 변화만을 겪은 유일한 불교 사원이고 원형을 그대로 유지한 사원이다. 한데 이처럼 크게 훼손했으니 여래여! 그들이 무슨 죄를 지었는지 전혀 알지 못합니다.
  • [新국토기행] ‘다이내믹’ 원주… 인구 100만시대 앞둔 新교통허브

    [新국토기행] ‘다이내믹’ 원주… 인구 100만시대 앞둔 新교통허브

    ‘다이내믹 원주’의 슬로건처럼 하늘길과 철길, 찻길이 거미줄처럼 이어져 교통의 허브 도시로 자리 잡는 강원 원주시가 용틀임하고 있다. 서울과 차량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고 국토의 동서와 남북을 잇는 중심에 있어 물류의 거대 거점도시가 되고 있다. 이런 이점으로 기업과 사람들이 모여들며 급속하게 팽창하고 있다. 강원 지역에서 규모가 비슷하던 춘천과 강릉을 멀찌감치 제치고 이제는 인구 33만명이 넘는 도시로 우뚝 섰다. 도시 속의 신도시인 혁신도시·기업도시가 수년 내 완성되고, 수도권과 이어지는 여주~원주 간 전철까지 개통되면 원주는 100만명 시대도 멀지 않았다. 원주는 예부터 국토 중심에 있는 군사·행정 요충지였다. 신라 때는 작은 경주 북원이라 불리며 국토 중앙을 다스리는 중심지 역할을 맡았다. 당시 도읍지였던 경주에서 멀다 보니 신라의 왕족과 귀족을 이주시켜 살게 했던 중부지방 중심지였다. 당시 융성했던 모습은 불교문화의 흔적에서도 엿볼 수 있다. 남한강변을 따라 이어지는 법천사지, 거돈사지, 흥법사지의 거대 사찰 터가 원주 지역에 모두 있었다. 이들 사찰은 신라와 고려를 거쳐 조선시대 초까지 번성하다 임진왜란 때 모두 소실됐다. 이 같은 흐름은 고려와 조선시대까지 이어져 도청 소재지인 강원 감영이 500년 동안 원주에 자리 잡았다. 조선시대까지 평창~영월~단양~충주~원주~여주~한양을 잇는 남한강 뱃길의 중심에 있어 조세를 거둬들이는 조세창을 두며 번창했다. 수도 한양과 가깝고 풍수해가 적어 사람 살기에 좋다 보니 한양 선비들이 낙향지로 원주의 남한강변을 꼽아 많이 내려와 살았다. 그래서 과거시험 초시 합격자를 많이 배출한 곳 중의 하나였다. 지금도 이곳은 수도권 은퇴자들의 별장 터로 인기가 있다. 원주는 토박이보다 외지인들이 유독 많이 찾아오는 도시이기도 하다. 원주가 군사 요충지로 자리 잡은 것도 오래전부터다. 원주의 주산인 치악산에는 영원산성과 금대산성, 해미산성 등 산성이 남아 있다. 현대에도 한국전쟁이 끝나자마자 1군사령부가 들어와 중부 지역 주요 군사도시 구실을 하고 있다. 대대로 전해지는 전통문화가 밑바탕이 돼 원주 문화도 꽃피우고 있다. 의료산업과 칠산업 등도 선조들의 맥을 이어 번성하고 있다. 원주는 조선시대 서울 경동시장, 대구 약령시장과 함께 3대 약령시로 유명했다. 당시에도 서울과 가까운 교통 여건이 약령시장 발달에 큰 역할을 했다. 이는 현재 의료기기산업 발전으로 맥을 이어오고 있다. 원주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게 옻칠산업이다. 원주에서는 토양과 기후가 맞아 옻나무가 잘 자란다. 칠공예가 발달한 일본이 강점기 시절 착취 목적으로 옻산업을 발전시켰다. 일본은 당시 지역 젊은이들에게 징용까지 면제해 주며 옻나무 진액을 채취해 갔다. 해방 이후 옻칠 기술을 가진 토박이들이 1958년 현대식 공장을 세우고 일본 수출길을 열었다. 전국에서 인재가 모여들었다. 시 문화예술과 박종수 문화재담당은 “생명사상이 원주에서 태동한 것도 우연이 아니다. 꿩과 구렁이에 얽힌 치악산 보은의 전설은 너무도 잘 알려진 얘기다. 내용의 전반에 흐르는 게 생명이고 보은이다. 얘기와 맥을 같이해 원주에서 기거하던 무이당 장일순 선생이 펼친 ‘한살림 운동’도 생명사상”이라고 귀띔했다. 이 같은 문화와 산업을 바탕으로 원주가 중부 내륙지역의 경제와 문화 중추 도시로 웅비하고 있다. 교통 여건의 발달에 따라 도시 규모도 빠르게 진화하고 있다. 여주~원주 간 1.4㎞ 전철 사업이 완공되면 원주는 수도권 시대를 맞게 된다. 문막 궁촌리 일대 33만여㎡에 조성되는 화훼특화관광단지도 원주의 지도를 바꿀 대규모 사업이다. 영동고속도로 인근으로, 어려운 농촌과 관광산업을 살리는 고부가가치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화훼 수출 등만이 아니라 연간 500만명 이상의 관광객을 끌어들이겠다는 야심찬 프로젝트이기 때문이다. 도심 지역의 군부대를 외곽으로 이전하는 사업도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이미 태장동 미군부대 캠프롱은 이전을 끝냈고 학성동 인근의 1군지사도 이전을 서두르고 있다. 이들 자리에는 공원이 어우러진 쾌적한 신도시 개발이 추진된다. 특히 34만 4000여㎡에 이르는 캠프롱 터는 국비를 끌어들여 시민 문화체육공원으로 새로 태어나게 된다. 기업 활동에 좋은 환경 조성에도 나서고 있다. 입지 보조금과 설비투자 보조금 등을 대폭 늘렸다. 의료기기와 제약 관련 기업 수십 곳이 속속 입주하고 있다. 의료기기산업 지원을 위해 의료기기종합지원센터(MCC)도 뒀다. 수도권 공공기관이 이전해 오는 혁신도시도 탄력을 받고 있다. 반곡동과 관설동 일대 359만 6000여㎡에 들어서는 혁신도시는 13개 기관, 3만 1000여명의 인구를 수용할 수 있는 일종의 신도시다. 혁신도시가 완료되면 원주의 품격이 한층 높아질 것으로 기대된다. 도로 확포장에도 나서고 있다. 판부~신림 간(15.9㎞) 국도와 태장~새말 간(12.7㎞) 국도, 문막~부론 간 국가지원 지방도 등의 건설이 완료되면 원주 동부와 남부 지역 발전에 기폭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기존 도심 지역의 슬럼화 방지에도 적극적이다. 원주 감영이 있고 전통시장, 상가들이 밀집해 있는 원일로와 중앙로, 평원로의 구도심권을 리모델링해 원일로·평원로는 교통 일방통행으로, 중앙로는 차 없는 문화거리로 깔끔하게 조성했다. 도로변은 상설공연장으로 만들었고 공영주차장을 늘려 쾌적한 도심권으로 재탄생시켰다. 흉물스러운 도심권 담장은 벽화를 그려 단장하고, 인도를 넓히고 숲과 벤치, 조형분수대, 가로수길 등을 설치해 시민 휴식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슬로건에 걸맞게 축제도 다이내믹하게 펼친다. 군사도시의 이미지를 살려 시작했던 군악대 공연 중심의 따뚜공연을 시민들이 함께 어울려 한판 축제로 승화한 ‘다이내믹 페스티벌’로 변경해 인기다. 브라질의 리우축제와 같은 형식으로 러시아 등 해외에서까지 참가하는 화려한 거리 춤 축제다. 이상분 시 홍보계장은 “국토 중앙의 중심도시로 빠르게 변모하는 원주시는 2030년대 인구 100만 시대를 바라보는 명품 도시로 거듭날 것으로 확신한다”고 말했다. 원주 조한종 기자 bell21@seoul.co.kr
  • [시론] 성지화 갈등, 주어사의 경우/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시론] 성지화 갈등, 주어사의 경우/정웅기 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 운영위원장

    조선 정조대인 1779년 한 무리의 선비들이 관헌의 눈을 피해 경기도 여주의 한 사찰에 모였다. 권철신의 지도로 정약전, 권상학, 이벽 등 남인 시파의 유생들이 서학을 배우기 위해서였다. 이때 그들이 배운 서학에는 천주교가 포함돼 있었다. 천주교 최초의 강학회를 연 사찰이 여주 주어사(走魚寺)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절에서 강학회를 열었을까. 정황을 추측하기 어렵지 않다. 당시는 정부가 서학을 금하던 때였으니 외진 사찰이 안전했을 것이다. 또한 무엇보다 사찰의 조력을 받기 쉬웠다. 당시만 해도 유생들이 절에 들러 숙식을 하거나 스님들을 산행 길잡이로 세우는 것이 흔한 일이었다. 그러나 주어사 측의 협조가 강압 때문이라고만 볼 수는 없다. 모임 장소를 제공했다는 이유로 관아의 해코지를 당할지 모르는 일을, 그것도 비주류 유생들을 위해 위험을 자초했다고는 생각되지 않는다. 강학회 장소를 잘못 알고 맞은편 천진암으로 찾아간 유생들을 승려들이 산길을 넘어 안내했다는 기록으로 보아서는 지역 불교계가 대체로 이 불온한(?) 모임에 우호적이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주어사가 언제 왜 폐사됐는지는 알려진 바가 없다. 2009년 여주시 발굴 조사 결과 사지에서 발견된 기와 도편 등이 17~18세기 것이었다고 하니 강학회 이후 오래지 않아 폐사된 것으로 짐작될 뿐이다. 폐사 이유가 어쨌든 주어사가 갖는 의미는 오늘 새겨도 남다르다. 지배 이념인 유교가 변질되고, 당쟁으로 날밤을 지새울 때 권력의 눈을 피해 새로운 시대를 갈구하며 서학을 탐구하던 유림의 아웃사이더들. 그들을 위해 사회적 약자인 사찰과 승려들이 기꺼이 공간을 제공하고 밥을 지어 나르는 광경. 생각만 해도 따뜻하고 아름다운 풍경이 아닌가. 이 아름다운 역사를 간직한 주어사를 둘러싸고 최근 불교계와 천주교계가 갈등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천주교 입장에서는 최초로 강학회를 연 이곳을 한국 천주교의 성지로 가꾸고 싶은 마음이 남다를 것이다. 불교계 입장에서도 아름다운 미담을 간직한 주어사지를 본래의 사찰로 복원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입장이다. 불교계의 속내로 치자면 인근의 천진암 복원 과정에서 천주교 측에 의해 몇 곳의 사지가 멸실된 경험이 있어 정서적 반발도 깔려 있다. 두 종교가 주어사 복원을 놓고 점유권을 고집한다면 갈등은 필연적이다. 200년 전 아름다운 역사 전통을 꽃피웠던 그곳이 종교 간 갈등의 장소가 된다면 이는 두 종교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도 불행한 일이다. 이러한 흐름을 우려하면서 종교평화적 해법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지난달 말 열렸다. ‘붓다로 살자’라는 불교 모임이 주관했는데, 그 자리에는 한 가톨릭 언론사 대표도 나와 주어사지를 종교평화의 공간으로 복원하자는 의견을 나누었다. 마침 주어사지는 현재 산림청이 관리하는 국유지이니 두 종교가 제 입장만을 고집할 처지도 아니다. 역사와 문화를 복원하는 데 초점을 둔다면 시민의 입장에서도 반길 일이다. 주어사에 이르는 7.5㎞는 차량이 다닐 수 없는 오솔길이라 한다. 그 길도 시민들이 옛 선조들의 미담을 나누며 걸을 수 있도록 잘 보존되면 좋겠다. 지금 우리 종교계에 부족한 것은 사찰, 성당, 교회와 같은 시설이 아니다. 오히려 주어사와 같은 시대정신, 아름다운 전통의 부재가 더 문제다. 주어사 문제를 풀기 위해 불교와 가톨릭 두 종교가 빨리 머리를 맞대길 바란다. 최근 논란이 일기 시작한 서소문공원 성지화 사업도 마찬가지다. 황사영 등 구한말 천주교인들의 순교를 기념하기 위해 정부와 서울시가 500여억원을 들여 순교기념관과 성당 등을 세우는 이 사업은 서소문이 갖는 역사적 상징 때문에 논란이 일고 있다. 서소문 일대는 비단 천주교인들의 성지일 뿐만 아니라 조선 대표의 충신 성삼문, 개혁가 허균, 동학 지도자 최시형, 김개남, 안교선, 최재호 등이 효시됐고, 일제강점기 서대문 감옥이 있던 곳이다. 무리한 사업 추진에 앞서 충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한 일이다. 사회적 대화의 실마리가 주어사 문제에서부터 풀려 나가기를 기대한다.
  • 해외여행 | 어서와, 방콕은 처음이지?

    해외여행 | 어서와, 방콕은 처음이지?

    방콕을 처음 방문한 당신에게 주어진 시간은 단 하루. 어딜 가야 할지 고민하는 당신을 위해 방콕과의 1일 데이트 코스를 추천한다. 10:00am 방콕 여행 1번지 왕궁 Royal Palace 방콕의 대표적인 명소는 단연코 왕궁이다. 금박을 입힌 뾰족한 탑이 인상적이며 유리와 타일로 장식된 건물의 외벽 또한 환상적이다. 가히 동남아 최대의 명소라 이름 붙일 만하다. 왕궁에서 가장 인기 있는 명소는 에메랄드 불상이 자리한 왓 프라 캐우Wat Phra Kaew 사원. 이 에메랄드 불상을 보기 위해 오늘도 어김없이 전 세계에서 불자들이 찾아든다. 이처럼 방콕의 왕궁은 왕이 거하던 곳이었지만 대규모의 불교사원이 자리한 곳이기도 하다. 왕궁의 정식 명칭은 ‘프라 보롬마하 랏차 왕’인데 1782년, 라마 1세 때 태국의 수도가 방콕으로 이전하면서 착공하였다. 그 후 태국의 국왕들이 사용했지만 현재 국왕은 이곳이 아닌 치뜨랄다 궁에 거주하고 있다. Na Phra Lan Rd., Phra Nakhon, Bangkok 10200 08:30~15:30 (66-2)-623-5500 www.palaces.thai.net 방콕 사원의 대명사 왓포Wat Pho 왓포는 방콕을 찾는 관광객들이 왕궁 다음으로 많이 들르는 사원이다. 방콕에서 가장 오래된 사원으로 태국에서 가장 큰 와불이 있기에 이곳을 찾아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는 방문객들이 적지 않다. 왕궁 인근에 위치해 왕궁과 같이 둘러볼 수 있어 좋다. 차오프라야Chao Praya강 위에서 디너 크루즈 보트를 타고 방콕의 야경을 감상하노라면 하늘을 찌를 듯한 왓포의 금빛 찬란한 스투파가 선명하게 모습을 드러내기에 어둑해질 무렵 방콕에서의 리버크루즈를 강추한다. 행여나 나이트크루즈에 탑승 못했더라도 실망하지 마시길. 아침 무렵에도 왓포의 민낯은 여전히 화려하기만 하니까 말이다. 2 Sanamchai Rd., Grand Palace Subdistrict, Pranakorn District, Bangkok 10200 (66-2)-226-0335 www.watpho.com 12:00pm 커리 크랩의 성지 솜분 시푸드Somboon Seafood 방콕에 가서 맛깔스러운 타이 스타일의 시푸드 요리를 먹어 보지 못한다면 무척 애석한 일이다. 타이푸드를 잘 모르더라도 이곳에 와서 차근차근 타이푸드를 맛보면 그 매력에 흠뻑 빠질 수밖에 없다. 1969년 오픈한 솜분 시푸드 레스토랑은 오랜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시푸드 전문 레스토랑으로 현재 방콕에만 시암 스퀘어 원Siam Square One, 센트럴 엠버시Central Embassy 등 총 7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그만큼 신뢰할 만한 맛집이다. 셰프가 자신 있게 권하는 프라이드 커리 크랩Fried Curry Crab은 꼭 맛보자. 칠리와 코코넛 소스로 양념을 한 크랩 메뉴의 맛도 일품이다. 그 밖에 다양한 생선, 로브스터, 새우 요리를 비롯해 태국의 전통 음식들을 제공한다. 센트럴 엠버시 지점 5th floor, Central Embassy 1031 Ploenchit Rd., Lumpini, Pathumwan, Bangkok 10330 11:00~22:00 (66-2)-160-5965 www.somboonseafood.com 13:00pm 방콕의 쇼핑시크릿 아시아티크Asiatique 방콕에서의 쇼핑은 아시아티크가 정답이다. 차오프라야강의 리버 프론트에 자리한 이곳은 1,500여 개의 부티크 숍이 모여 있는 동남아 최대의 아웃도어 마켓이자 다문화센터다. 수많은 점포가 거대한 시장을 이루고 있는데 기존의 재래시장과는 달리 깔끔하고 모던한 스타일의 점포들이 모여 있어 오히려 쇼핑몰에 가깝다. 또한 골목마다 방문객들의 입맛을 즐겁게 해주는 음식 가판대가 들어서 있기에 식도락을 즐기기에도 그만이다. 타이푸드, 차이니즈 푸드, 이탈리안 파스타, 피자 등을 제공하는 세련된 레스토랑들도 자리해 있고 아이스 모찌(떡 안에 아이스크림을 넣은 음식)처럼 일본이나 홍콩에서 최신 유행하는 먹거리 아이템도 간이음식점에서 맛볼 수 있다. 그 밖에도 회전대관람차를 타고 방콕 전역을 조망할 수 있어 연인들을 위한 나이트 데이트 스폿으로 인기다. 그 밖에도 다양한 공연 및 축제에도 참여할 수 있다. 2194 chareonkrung Rd., Wat Prayakrai District, Bankor Leam, Bangkok 10120 17:00~24:00 (66-2)-108-4488 www.asiatiquethailand.com 새로운 쇼핑 스폿 센트럴 엠버시Central Embassy 방콕 시내에서 가장 최근에 들어선 대규모 쇼핑몰로 인기를 한몸에 받고 있다. 세계 어느 곳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을 만한 울트라 럭셔리 쇼핑몰을 세운다는 야심찬 계획 아래 모던한 감각의 쇼핑몰이 들어섰다. 1층에는 프라다, 구치, 샤넬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럭셔리 브랜드의 매장이 입점해 있으며 다양한 식도락과 쇼핑을 함께 즐길 수 있도록 전문식당과 숍이 층층마다 함께 들어서 있다. 1층부터 6층까지는 쇼핑 공간, 8층에는 영화관도 자리했다. Central embassy 1031 Ploenchit Rd., Pathumwan, Bangkok 10330 10:00-22:00 (66-2)-119-7777 www.centralembassy.com 17:30pm 특급호텔보다 좋은 디바나 스파Divana Spa 방콕 여행자들이라면 시원한 마사지로 여행의 피로를 날리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오리지널 타이 마사지를 정교한 서비스로 제공하는 곳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 디바나 스파는 최상의 서비스로 안락한 시설 속에서 각종 타이 전통 마사지와 스파 메뉴를 제공한다. 특히 디바나 스파는 정교한 서비스로 고객들에게 만족도가 높은 곳이다. 서비스를 받은 후에는 이곳에서 제공하는 레몬그라스lemon grass티를 맛볼 수 있다. 또한 디바나 스파는 자체적으로 방향제, 마사지 오일, 목욕 용품 등을 개발해 생산·판매하고 있으며 방콕 시내의 유명 백화점 등지에 스파 용품 전문 매장도 운영하고 있다. 7 Sukhumvit 25, North, Wattana, Bangkok 10110 (66-2)-661-6784 www.divanaspa.com 19:30pm 차오프라야강의 진면목 호라이즌 크루즈Horizon Cruise 방콕에서 즐길 만한 나이트 라이프는 무수히 많지만 방콕의 밤을 가장 로맨틱하게 보내려면 샹그릴라 호텔에서 운영하는 디너 크루즈에 탑승할 것을 권한다. 그동안 여러 차례 방콕을 방문했지만 야경을 위한 나이트 크루즈 탑승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처음에는 뷔페 메뉴에 대한 기대가 무엇보다 컸었는데, 결과적으로는 선상에서 즐겼던 방콕의 화려한 야경이 가장 큰 수확이었다. 방콕의 젖줄인 차오프라야강을 따라 오가며 강변에 들어선 사원, 시장, 현대식 건축물 등 방콕의 주요 명소와 야경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다. 또한 시푸드는 물론 로스트 미트roast meat 등 다양한 음식과 디저트, 음료 등이 뷔페로 제공되는데, 특급 호텔인 샹그릴라 호텔에서 마련한 것이라 음식의 질과 맛이 일반 크루즈와는 달랐다. 방콕에서 누릴 수 있는 매우 만족도 높은 체험이라 꼽을 만하다. 89 Soi Wat Suan Plu, New Rd., Bangrak, Bangkok 10500 장소 샹그릴라 호텔 앞 Next2 Pier 선착장 (66-2)-236-7777 디너 뷔페 크루즈의 경우 매주 화, 금, 토요일(하루 1회) 19:30~21:30 22:00pm 최고의 야경 라운지 센타라 그랜드 호텔Centara Grand Hotel 여행자로서 방콕을 사랑하는 소소한 이유 중 하나는 우리나라에서 성수기에 해당하는 6~8월에 태국 전역의 숙박 요금이 저렴하다는 점이다. 방콕의 특급호텔도 예외는 아닌데 태국 전역에 지점을 두고 있는 유명 호텔 리조트 체인인 센터라 호텔도 마찬가지다. 방콕에만 다섯 군데의 센타라호텔 체인이 있는데 특히 시암 스퀘어 쇼핑몰 인근에 세워진 센터라 그랜드 호텔 앳 센트럴 월드Centara Grand at Central World는 최첨단 스타일의 고층 건물에 자리한 모던 감각의 호텔로 건물의 루프톱인 54층에 마련된 스카이라운지 바가 매우 인상적이다. 해질 무렵부터 문을 여는 이곳 스카이라운지에서 방콕 도심의 야경을 한눈에 내려다보자. 칵테일이나 음료를 즐기면서 방콕의 밤공기와 나이트씬을 음미해 보는 것이야말로 방콕에서 꼭 해야 할 여행자의 버킷 리스트 중 하나다. 또한 건물의 중앙부에는 아웃도어 풀과 풀사이드 바poolside bar가 있어 시원한 물속에 몸을 누이며 방콕에서의 감미로운 밤을 완성시키기에 손색이 없다. 999/99 Rama 1 Rd., Pathumwan, Bangkok 10330 (66-2)-769-1234 www.centarahotelsresorts.com 에디터 트래비 글·사진 Travie writer 김후영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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