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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종교 경전 7가지 골라 핵심 사상 쉽게 풀어

    종교 경전 7가지 골라 핵심 사상 쉽게 풀어

    경전 7첩 반상/성소은 지음/판미동/248쪽/1만 3800원 ‘갈애를 없애기 위해서는 나태하지 말고, 바보가 되지 말고,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같이,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같이, 물에 때 묻지 않는 연꽃같이,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숫타니파타 중에서) 종교의 경전은 흔히 ‘고전 중의 고전’으로 통한다. 많은 이들이 삶과 존재와 관련해 목숨까지 던져가며 탐구했던 본질적인 질문과 답이 함축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세계를 움직인 위인 중에는 최고 지혜의 보고인 경전을 늘상 곁에 두고 통독한 이가 적지 않다고 한다. ‘경전 7첩 반상’은 종교의 경전 7가지를 골라 그 가운데 가장 뜻깊은 부분과 장면을 골라 맛깔나게 해설한 책이다. 기독교를 새로운 차원으로 이끄는 선두마차 ‘도마복음’을 비롯해 가장 초기에 이루어진 불교경전 ‘숫타니파타’, 동양 문헌 중 제일 먼저 읽어야 할 책이라는 ‘도덕경’과 ‘중용’, 한국불교 맏형인 조계종 소의경전 ‘금강경’, 인도를 넘어 세계의 고전이 된 ’바가바드 기타’, 그리고 민족종교 천도교의 ‘동경대전’이 그 텍스트들이다. 책의 특장은 자칫 ‘신자들만의 것’일 수 있는 경전 내용이 저자 체험과 어울려 손에 잡힐 듯 풀어진다는 점이다. 저자는 종교계에선 웬만한 이는 다 알만한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 개신교회와 성공회를 거쳐 3년간 출가수행을 하다 환속했고 지금은 인문, 사회, 종교, 과학, 문학, 신화 등 학문의 경계를 넘나들며 배우는 지식협동조합 ‘경계너머 아하!’의 운영자로 활동 중이다. “현자의 목소리에서 길을 찾아 한걸음 한걸음 걸어가다 보면 ‘내 속의 다른 나’가 싸우지 않는 진정한 내적 평화에 이를 수 있지 않을까” 우리가 경전을 읽는 이유를 이렇게 밝힌 저자의 말 그대로 ‘속 깊고 열린’ 종교적 체험이 어렵지 않게 느껴지는 해설서로 다가오는 책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바로 알자, 고려청자

    강북구는 오는 16일 오전 구청 대강당에서 고려청자를 바로 알리기 위한 특강을 연다고 12일 밝혔다. 서울 역사박물관에 따르면 수유동·우이동의 청자가마터 등 이 일대에 20여곳의 가마터가 있다. 특강 제목은 ‘고려청자의 산실, 강북’으로 고려 말~조선 초 구에서 고려청자가 제작됐던 사실을 알리고 그 배경과 의미를 알아본다. 또 세계 최고의 도자기로 평가되는 고려청자에 대한 이론 강의와 고려청자의 아름다움을 확인할 수 있는 영상강의로 진행된다. 우리나라 도자사의 대표 학자인 윤용이 명지대 미술사학과 석좌교수가 ‘고려인의 멋과 얼이 담긴 고려청자’를 강의한다. 그는 구에서 도자기가 만들어진 배경과 생산 및 유통 과정에 대해 설명해준다. 이어 문화재 수집가이자 도자문양 연구가인 장선호 변호사가 ‘도자문양으로 읽는 선조들의 문화’를 들려준다. 청자의 문양과 기법을 설명하고 여기에 담긴 도교, 유교, 불교문화, 고려인의 마음을 전한다. 강의는 오전 10시부터 2시간 40분가량 진행되며 선착순 무료입장이다. 강의를 마련한 김이천 다산정신실천회장은 “탐방을 하면서 구의 많은 역사문화 유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지역 주민들과 북한산 방문객들에게 역사문화의 현장과 문화재 보존의 필요성을 알리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경주 기자 kdlrudwn@seoul.co.kr
  • 주체적인 삶이란 생각하며 사는 삶…얽매임에서 벗어나야

    주체적인 삶이란 생각하며 사는 삶…얽매임에서 벗어나야

    “요즘 사람들은 생각하면서 사는게 아니라 사는대로 생각해요. 생각할 때 훨씬 주체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검색의 시대, 사유의 회복’(불광출판사) 출간에 맞춰 9일 서울 인사동 음식점에서 기자들과 만난 법인(참여연대 공동대표) 스님은 “현대인들, 특히 젊은이들이 생각하지 않고 사회 시스템과 전통에 강요당해 사는 모습이 안타깝다”고 거듭 지적했다. 신간 ‘검색의 시대’는 흔히 인터넷 검색에 빠져 사는 요즘 사람들, 특히 젊은이들에게 주체적인 생각을 하며 살라고 충고하면서 스님 스스로의 출가 수행을 반추해보는 ‘생각 깊은’ 책. 주변과 사회통념, 시스템에 매몰되지 말고 각자 생각과 주관으로 세상을 보고 헤쳐나가라고 강조하고 있다. “우리 출가 수행자들의 글쓰기는 개인 차원의 산중 미학과 불교에 치우치는 경향이 짙어요. 제 개인적인 수행 이력의 반추를 통해 불교, 특히 사유의 의미를 다져봤다고 할 수 있어요” 지난 수행을 돌아보면서 문득 “쓸데 없이 헛된 것에 많이 휘둘리고 빠져 살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는 법인 스님. 그는 청년출가학교며 단기출가를 통해 이른바 한국불교 템플스테이의 기초를 다진 주인공이다. 전남 해남 일지암에 머물면서 그동안 관심사병과 청소년 템플스테이를 꾸준히 해왔고 입소문이 번져 문의가 넘칠 정도라고 귀띔했다. “일지암에서 10대 청소년들과 같이 밥을 해 먹고 부대끼면서 분별과 차별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경험을 숱하게 했습니다. 특히 TV나 스마트폰 없는 낯선 규칙에 편입된 청소년들이 어렵지않게 주체적으로 생각하는 걸 보고 많이 놀랐습니다” 이런 시도를 우리 불교계의 재물없이 베푸는 일곱가지 방법인 무재칠시(無財七施) 중 안시와 좌시가 아닐까 한다며 웃었다. 편안한 얼굴의 표정기부(안시)와 앉을 자리를 양보하는 공간 개방(좌시)이랄까.“우리 사찰들이 따뜻한 마음으로 정성스럽게 산과 절을 내어주기만 해도 사람들이 일상에서 받는 고통을 조금이나마 줄여줄 수 있지 않을까요” “대장경 말씀 말고도 세상의 보편적 이치에 맞으면 다 부처님 말씀이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선설(善說)이 불설(佛說)이라고 했던가. 관념과 거대담론의 수행보다는 사람들에게 밥값을 하고 살고 싶고 이제부터 그 구체적인 방법을 하나씩 찾아가고 싶다고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불교는 깨달음의 지혜와 사랑의 자비라는 양 날개를 갖고 있어요. 세상의 일들을 세상 바깥이 아닌, 세상 속에서 함께 품고 생각한다면 공동체를 위한 알찬 성찰이 훨씬 더 수월해지겠지요”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완구 총리,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만나

    이완구 총리, 자승 조계종 총무원장 만나

    이완구(오른쪽) 국무총리가 9일 오전 서울 종로구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을 예방해 자승 총무원장과 얘기하며 웃고 있다. 자승 총무원장은 이 총리에게 공공·노동·금융·교육의 4대개혁과 규제개혁 등을 언급하며 민생문제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 줄 것을 당부했다. 박윤슬 기자 seul@seoul.co.kr
  •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국내여행 | 합천이어야 했던 이유

    이야기는 50여 년 전 한국에 머물렀던 어느 프랑스인에서 시작된다. 합천 해인사를 사랑해 죽어서도 그곳에 묻힌 사람. 무엇이 그를 넋으로 돌아오게 했을까? 그 질문에 밀려 합천으로 갔다. 홍류동에 뿌려지다 합천군은 잘 알고 있었다. ‘합천’ 하면 떠오르는 ‘해인사’의 공식이 이 도시의 이미지를 경직시키고 있다는 것을. 그래서 시작한 대장경천년세계문화축전이나 해인아트프로젝트의 소식이 들려왔을 때 귀가 솔깃했으나 결국 2013년 이 행사를 찾았다는 200만명의 대열에 속하지는 못했다. 하지만 ‘로제 샹바르’의 사연과 프랑스인들과 동행하는 합천 여행은 만사를 제쳐 놓게 할 만큼 호기심을 자극했다. 일단 ‘문제적 그’를 먼저 소개한다. 로제 샹바르Roger Chambard는 1959년 한국에 부임해 10년간 근무한 초대 주한프랑스 대사였다. 그 기간 중에 한국을 널리 여행했던 그는 특히 해인사를 좋아해 ‘죽으면 화장을 해서 해인사에 뿌려 달라’는 유언을 했고, 실제로 1982년에 78세의 나이로 타계하자 유골은 한국으로 옮겨져 합천 해인사 자락에 뿌려졌다. 그의 손자 올리비에 샹바르Olivier Chambard는 프랑스 외교부 아프리카-인도양 담당 부국장이 되어 2011년 9월에 공무차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고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도 많지 않다. 종종 언론에 소개되곤 했지만 그냥 잊힐 수도 있는 이야기에 마음이 복잡해진 이유는 아마도 ‘죽을 자리’ 때문이리라. 세상을 많이 떠돈 만큼 상대적으로 강해지는 것은 회귀본능이다. 마지막 자리는 내 나라, 사랑하는 사람의 곁이어야 한다는 생각이 결석처럼 단단해진다. 그런 본능을 넘어서 타국, 타향을 선택할 만큼 로제 샹바르의 해인사 사랑이 대단했던 것인지 영혼의 외로움이 컸던 것인지, 현재까지 알려진 사실들은 단편적이기만 하다. 어느 프랑스인의 피안彼岸 50여 년의 세월이 흘렀다. 전후 가난했던 한국의 모습은 흑백사진으로 남아있고, 그 사진 속 로제 샹바르도 흑백이다. 시간은 그냥 흐르기만 한 것이 아니어서 그 사이 홍류동紅流洞 계곡 옆으로 포장도로가 깔렸다. 2011년부터 ‘소리길’이라는 이름을 가지게 된 해인사 산책로 6.3km는 3분의 2 이상이 이 도로와 나란히 달린다. 해인사 시외버스 터미널을 오가는, 통행량이 적지 않은 도로이고 커브를 도는 엔진소리는 홍류동 계곡의 물소리도 잠식한다. 그 옛날 고운孤雲 최치원 선생의 귀를 먹게 했다 할 정도로 옥계수가 바위에 부딪치는 소리가 우렁찼다는 이야기가 무색하지만 다행히도(?) 소리길의 ‘소리’는 ‘Sound’를 뜻하는 것이 아니다. 이곳에서의 소리蘇利는 불교에서 ‘이상향’ 혹은 ‘피안’을 뜻한다. 작은 힌트를 주워 본다. 로제 샹바르가 해인사를 드나들던 그 시절에 단풍이 아름답기로 유명한 홍류동 계곡은 어쩌면 그에게 이상향에 가까웠을지도 모르겠다. 우거진 송림 사이로 들려오는 새소리 그리고 듬직한 바위 사이를 미끄러져 내려오는 청수, 그 물살의 기개를 보여 주는 폭포와 웅덩이들. 그 안에 숨은 19개의 명소. 신라 최고의 천재로 칭송받았지만 말년에 해인사에 머물다 홍류동 계곡에서 신선이 되어 사라졌다는(혹은 방랑 끝에 죽었다는) 최치원에게 이곳이 피안이었듯, 노년의 프랑스인에게도 해인사와 홍류동 계곡은 그런 곳이 아니었을까. 소나무, 노각나무, 떡갈나무, 떼죽나무, 줄참나무, 굴참나무 가득하고 물소리와 새소리가 어우러지는 소리길을 두 시간 넘게 걷는 동안 두 노인의 마음을 소리 없이 헤아려 보았다. 최치원이 명명했다는 가야산 19경 중 16경이 그 헤아림에 길라잡이가 되어 주었다. 마음에 담은 해인사의 보물 대장경테마파크에서 시작된 소리길은 해인사에서 끝이 난다. 경내로 들어서자 한눈팔지 않고 장경판전으로 직행했다. 해인사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인 장경판전은 고려대장경(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소로 1995년에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됐다. 팔만대장경8만1,258장은 12년 후에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 순서가 바뀐 것 같지만 알고 보면 그렇지도 않다. 15세기에 만들어진 이 건물은 통풍, 방습, 온도 유지 등을 고려한 과학적 설계에 있어서 현재의 건축기술이 따라잡을 수 없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박정희 정권 당시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새로운 건물을 신축했지만 일부 장경에 곰팡이가 피는 등 문제가 발생해 다시 옮겨 왔을 정도다. 통풍을 위해 앞뒤 창문의 크기를 다르게 하고 바닥에 숯과 소금 등을 깔아서 습도와 온도를 조절하는 지혜는 함부로 베껴지지 않는 모양이다. 들어갈 수도, 사진촬영도 불가능하기에 아쉬운 발길이 잘 떨어지지 않는데 먼 북소리가 들려왔다. 이제야 해인사가 눈에 들어온다. 대웅전 앞마당엔 법고식이 진행되고 있었고 경내의 모든 사람들은 부동자세로 젊은 스님들의 손만 바라보고 있었다. 전국 사찰 중 가장 힘차고 아름다운 법고 소리로 유명한 해인사이니 가능한 풍경이다. 무려 23개의 산내 암자를 지닌 해인사이기에 타종 소리, 법고 소리는 그 어느 곳보다 멀리 도달해야 했을지도 모른다. 경외로 나가자 아까 스치듯 지나온 전나무와 작품들이 다시 눈에 들어온다. 소리길에서부터 드문드문 만났던 조각품과 설치 작품들은 2013년 진행됐던 해인사아트프로젝트의 흔적이다. 30팀의 국내외 작가들이 ‘마음’이라는 주제를 담아 평면, 입체, 미디어, 설치작품을 완성했다. 5,200여 만 자에 이르는 팔만대장경의 글자들을 단 한 자로 요약하면 ‘마음 心’이기 때문이다. 방치되어 파손된 작품 앞에서는 안타까운 마음이, 정성을 다한 작품 앞에서는 경탄심이, 위트가 넘치는 작품 앞에서는 ‘아하’ 하는 마음이 둥둥둥 울리고 있었다. 팔만대장경에 한 톨씩을 새겨 넣었던 선조들의 바람은 호국이었든, 무병장수였든, 소원성취였든 모두 같은 마음이었을 것이다. 신분의 한계를 넘지 못하고 불운한 말년을 보냈던 최치원의 마음과 타향에서의 안식을 원했던 로제 샹바르의 마음도 홍류동 계곡에서 하나로 합수하여 합천으로 흘러들고 있듯이 말이다. 글·사진 천소현 기자 취재협조 합천군 www.hc.go.kr ●Bon voyage 해인사 소리길의 도반들 해인사와 소리길 여행에는 유쾌한 도반들이 있었다. 현재 한국에 거주하고 있는 3명의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인의 시선과 감성에서 로제 샹바르와 해인사의 인연이 어떻게 받아들여지는지, 그리고 합천 여행이 어떻게 다가오는지 묻기 위해 합천군에서 초대한 손님들이었다. 유창하게 한국어를 구사하는 벵자맹 박사가 두 사람을 위해 통역을 맡아 주었다. 그들의 ‘까칠하지만 솔직한’ 피드백은 많은 생각거리를 안겨 주었다. 한없이 모던하고 최첨단인 대장경테마파크의 시설과 기술이 오히려 팔만대장경과 단절되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었고, 해인사 사하촌에 많은 식당이 있지만 외국인의 입장에서는 이용하기가 불편하다는 피드백도 있었다. 지나치리만큼 자주 눈에 띄었던 해인사의 보시함을 지적할 때는 부끄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일견 합당하고, 일견 문화적인 차이가 느껴지기도 했던 대화들은 1박2일 내내 진지하게 이어졌다. 해인사에 가려져 있는 합천의 매력이 더 잘 알려지기 바라는 ‘마음’들이 합천군에도 한 자 한 자 기록으로 새겨졌을 것이다. 참고로 세 사람의 프랑스인이 예상외로 황매산의 때늦은 억새풍경을 극찬했다는 사실도 덧붙인다. ▶travel info 합천 합천영상테마파크 2003년 영화 <태극기 휘날리며>의 세트장으로 탄생한 합천영상테마파크는 합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잡았다. 1920년대 경성의 거리와 1980년대 서울의 모습이 교차하는 곳이다. 어른들에게는 추억의 장소이고 아이들에게는 낯선 근현대를 만날 수 있는 곳이다. 경남 합천군 용주면 합천호수로 757 055-931-2467 1,100원 대장경테마파크 초조대장경 간행 1,000년을 기념하기 위해 시작된 대장경세계문화축전은 2011년 첫회를 시작으로 2013년 행사까지 성황리에 마쳤으며 다음 회를 기약하고 있다. 대장경테마파크 안에는 대장경천년관, 지식문명관, 정신문화관, 세계교류관, 세계시민관 등 5개의 전시관이 조성되어 대장경에 대한 모든 것을 알려준다. 경남 합천군 가야면 가야산로 1160 055-930-4801~2 어른 3,000원 황매산 철쭉, 억새 군락지 5월이면 철쭉 원피스를 입고, 10월이면 억새풀 망토를 두르는 산이 황매산이다. 북서쪽 능선의 정상 아래까지 차를 타고 갈 수 있기에 평소에도 산상화원을 만나고 싶은 가족 단위의 방문객들이 많다. 봄과 가을만 바라는 사람은 초목으로 뒤덮인 황매산의 여름이나 눈꽃이 만발은 황매산의 겨울은 놓치는 것이니 어느 계절이든 황매산을 건너뛰어서는 안 된다. 대장경 밥상 받으시오! 합천군에서 지정한 딱 2곳의 식당에서만 맛볼 수 있는 상차림이다. 절식을 기본으로 했기에 기본적으로 채소밥상이지만 육류를 추가 주문할 수 있다. 건강한 맛뿐 아니라 식기를 모두 놋그릇을 사용하기 때문에 품격도 남다르다. 대장경 한정식은 1인분에 3만원으로 반드시 사전에 주문해야 하며 이 밖에 도토리 비빔밥 세트(1인분 1만5,000원), 도토리 비빔밥(7,000원) 등의 메뉴가 있다. 백운식당 055-932-7393 해인식당 055-933-1117 ☞여행매거진 ‘트래비’ 본문기사 보기
  • 보이나요, 시공간 너머 그 무엇이…

    보이나요, 시공간 너머 그 무엇이…

    “우리가 경험하고, 눈에 보이는 것 이외의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합니다. 앞으로 한 방향으로만 진행하는 시간도 그 너머에 반드시 무엇인가 있을 것입니다.”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에서 대규모 개인전을 여는 비디오 예술의 세계적 거장 빌 비올라(64)는 전시회 개막일인 5일 기자간담회에서 “내 비디오 작업은 눈에 보이지 않는 심오한 그 무엇을 찾아가는 여정”이라고 말했다. 비올라는 40여년에 걸친 작품 활동을 통해 현대미술에 대한 정의를 지속적으로 정립해 왔으며 그중 영상이라는 매체의 한계를 확장시키고 영상 이미지 전반에 대한 인식을 바꿔 놓았다는 평가를 듣는다. 그의 작품은 극도의 슬로모션 기법을 통해 시간을 극적으로 사용하면서 탄생, 죽음 그리고 환생과 같은 의식의 순간들을 기록한다. 영상 이미지 속 인물들은 지각의 기본적인 구조가 어떻게 인간적 감정을 움직이는지에 집중한다. 그가 삶에 대해 갖는 태도는 매우 깊고 견실해 보였다. 2003년, 2008년에 이어 국제갤러리에서 세 번째로 열리는 국내 전시에는 최근 2년간 작업한 7점의 영상 작품과 이전의 주요 작품들을 선별해 선보인다. 신작 가운데는 런던의 생폴 대성당에 영구 소장된 ‘순교자’ 시리즈 중 하나인 ‘물의 순교자’가 포함됐다. 밧줄에 발목이 묶인 남자가 거꾸로 매달리고, 십자가형을 받는 자세에서 물이 쏟아져 내리고, 그 남자가 위로 사라지는 장면을 극도의 슬로모션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다. 비올라는 “부처님도 인간의 생을 고통의 연속이라고 하셨듯이 인간은 고통을 피할 수 없다”면서 “순교자 시리즈를 통해 고통과 역경, 죽음을 감수하고 신념과 가치를 위해 인내하는 인간의 희생을 보여 주고자 했다”고 말했다. 동양의 선과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갖고 실제로 1년 반 동안 도쿄에서 선사로부터 명상 지도를 받기도 했던 비올라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은 무한히 넓은 공간과 아주 작은 공간 등 다양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영혼의 공간’”이라며 “인류의 중심인 영혼의 공간이 있어야 옳고 그름을 분간할 수 있고, 역경을 이겨 낼 힘을 얻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1951년 뉴욕에서 태어나 시러큐스대에서 기술과 미술, 철학을 공부한 비올라는 백남준의 어시스턴트로 일하며 비디오아트의 세계를 발견했다. 비디오라는 현대적 예술언어를 통해 삶의 다양한 주제를 연구하며 새로운 장르를 구축한 비올라는 삶과 예술, 그리고 비디오를 포함한 기술의 관계를 이렇게 요약했다. “한쪽에 탄생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죽음이 있습니다. 작은 시냇물들이 흘러 계곡을 이루고 무한하게 흘러 강을 이루듯이 우리는 삶의 강에 들어왔지만 언젠가는 죽음을 맞고 사라지게 됩니다. 우리가 있는 현재는 유한하기에 아름답고, 그래서 예술이 존재합니다. 그 예술을 위해서는 기술이 필요합니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中·페르시아·유럽 문화 뒤섞인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 ‘코치’ 히브리어 간판부터 중국식 어망까지 이색 풍경… ‘세계 10대 낙원’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즈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남인도, 숨은 속살 낯선 끌림

    인도 여행 하면 대개 타지마할이 있는 아그라, 혹은 뉴델리와 자이푸르를 연결하는 골든트라이앵글 등을 첫손에 꼽는다. 하지만 이들이 인도의 전부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남인도에도 북부와는 다른 특유의 여유로움과 아름다운 자연을 간직한 곳이 많다. 그 가운데 대표적인 곳이 타밀나두주(州)의 주도 첸나이와 향신료 무역의 역사가 서린 케랄라주(州)의 코치다. ●첸나이, 어촌마을서 인도 무역항 거점으로 첸나이는 뉴델리와 뭄바이, 콜카타와 함께 인도를 대표하는 4대 도시 중 하나다. 인도에서 가장 산업화된 도시로 현대자동차를 포함한 세계 주요 자동차 회사와 정보기술(IT) 기업들이 진출해 있다. 사실 고대 왕국인 촐라왕조 시절 첸나이는 작은 어촌 마을에 불과했다. 그러다 1639년 영국이 동인도 회사를 세운 이후 인도 무역항의 거점이 되면서 천지개벽했다. 무역항 보호를 위해 세운 세인트조지성은 지금도 굳건하게 자리 잡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가 첸나이의 지배권을 놓고 1746년 치열한 전투를 벌여 상당수가 파괴됐지만 이후 재건됐다. 이 때문에 일부에서는 첸나이가 인도 식민지 전락의 첨병 역할을 했다고 비판하기도 한다. 이제 세인트조지성에서 영국인은 물러가고 인도인이 자리 잡았다. 현재는 타밀나두주 청사로 이용되고 있다. 세인트조지성에서 멀지 않은 곳에 정부 박물관이 자리 잡고 있다. 1851년 개관해 인도 4대 박물관 중 하나로 불릴 정도로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곳이라지만, 겉으로는 다소 초라해 보였다. 이런 곳에 ‘특별한 유물이 있을까’ 하는 걱정이 들 정도다. 하지만 이런 기우는 박물관 안에 들어서자마자 금세 사라졌다. 9~13세기 번성했던 촐라왕조 시대의 유물이 가득했다. 인도 남부를 지배했던 촐라왕조는 스리랑카는 물론 미얀마·베트남까지 진출했다. 그래서인지 청동 조각상은 서구적인 인도인의 모습과 동양인의 모습이 적절히 혼합됐다. 특히 힌두신인 시바가 그의 부인인 파르바티를 얻고 나서 기쁨에 겨워 춤추는 모습을 나타낸 나트라즈 조각상은 시바신의 섬세한 춤 동작을 그대로 표현했다. 마치 시바가 현세로 다시 살아돌아 온 듯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우리를 안내해 준 가이드 다르마는 “나트라즈 조각상은 파괴의 춤 탄다바와 함께 인도 무용의 기원으로 추앙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부 박물관을 둘러봤다면 마리나 해변도 가볼 만하다. 무려 13㎞에 달하는 백사장은 가볍게 걸으며 산책하기에 그만이다. 다만 벵골만의 거친 파도가 그대로 밀려와 수영하기에는 부적합하다. 현지인이 잡은 물고기를 파는 작은 어시장도 곳곳에 있다. 해변에서 가장 도드라지는 건 거대한 하얀 첨탑이다. 기독교 유적지인 성토머스 성당으로, 예수의 12제자 중 한 명인 토머스 신부의 무덤 위에 세웠다. 1504년 포르투갈인이 세운 것을 1893년 재건축했다. 인도는 국민의 80%가량이 힌두교를 믿는다. 한데 남부는 다소 다르다. 서기 1세기쯤 토머스 신부가 인도 남부에 정착하면서 기독교도 함께 뿌리를 내렸다. 신자만도 2600만명에 달하며 현재 인도 제3의 종교로 자리 잡았다. 네오고딕 양식으로 죽 뻗은 새하얀 건물 지붕을 보면 인도가 아닌 유럽의 어느 한 지역에 온 듯한 착각이 든다. 12사도의 무덤이 모셔진 곳은 이곳 외에 이탈리아와 스페인뿐이라고 한다. 기독교 신자 여부를 떠나 이곳은 인도인의 또 다른 모습을 볼 수 있는 곳이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도 1986년 2월 이곳을 방문했다. 첸나이에서 남쪽으로 해변을 따라 60㎞가량 내려가면 마말라푸람이 있다. 7~9세기 팔라바 왕국의 수도였던 마말라푸람은 거대한 바위에 새겨진 조각상이 유명하다. 고대 중국을 비롯해 페르시아와 로마의 동전도 발견됐다. 일찍부터 교역 항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얘기다. 인구 1만 2000명의 작은 도시인 마말라푸람의 위용은 도시 중심에서 볼 수 있다. 높이 15m, 폭 27m의 거대한 바위를 깎아 만든 아르주나의 고행상을 마주하니 입이 딱 벌어졌다. 바위에는 인도의 각종 신화를 새겨 넣었다. 시바신에게 물을 달라 애원하는 모습이나 히말라야에서 머리에 이고 온 물을 주는 모습, 소원을 성취하기 위해 고행하는 사람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조각돼 있다. 심지어 실제 크기의 코끼리까지 벽에 담아냈다. 고양이가 고행하는 모습도 눈에 띈다. 아르주나가 한쪽 발을 드는 고행을 통해 소원을 성취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따라하는 모습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각해 냈다. 이게 전부는 아니다. 아르주나 고행상에서 걸어서 불과 5분 거리의 해안엔 해변 사원이 있다. 1985년 유네스코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해변 사원은 촐라왕조 시절인 7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두 개의 탑은 멀리서 보면 나눠져 있지만 가까이 갈수록 한 몸으로 합쳐진다. 남녀가 합쳐질 때에만 비로소 완전해 진다는 인도인의 생각이 반영됐다는 해석도 있다. 원래 7개의 사원이 있었다고 알려졌지만 현재는 이곳만 남아 있다. 일출이나 일몰 때 바라보는 사원 풍경은 아름다움의 극치라고 현지인들은 자랑한다.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인도양의 바닷바람을 막기 위해 주변에 방풍림이 조성돼 있다. 거대한 크기의 화강암을 깎아 만든 판치 라타스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다. 판치 라타스는 ‘5대의 전차’란 뜻이다. 인도의 대서사시 마하라바타에 나오는 5형제의 이름을 본떠 이름 지어졌다. 하나의 바위 덩어리를 48년 동안 조각한 남인도 양식의 힌두사원으로, 7세기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사원 내부에는 시바신이 탔다는 암소 난디의 조각상도 있다. 실제 크기의 거대한 코끼리 조각상은 인도의 힘을, 사자는 용맹을 상징한다. ●칸치푸람, 팔라바 왕조 수도로 힌두사원 즐비 첸나이에서 남서쪽으로 72㎞ 떨어진 칸치푸람은 3~9세기 번성했던 팔라바 왕조의 수도였다. 힌두교도에게는 성스러운 7개 도시 중 하나로 꼽힌다. 종교 성지인 까닭에 외국인 관광객은 드물다. 도시 곳곳에 힌두 사원이 널려 있어 ‘1000개의 사원이 있는 황금도시’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팔라바 왕조 당시에는 불교도 융성해 당나라의 현장 법사가 칸치푸람을 방문하고 쓴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다. 현장 법사는 “도시의 둘레가 10㎞에 달하고 주민들은 용감하고 정의를 사랑하며 학문을 존중한다”고 기록했다. 특히 남인도 힌두 사원의 건축 양식인 고푸람은 엄청난 위용을 자랑한다. 고푸람은 힌두 사원마다 높게 솟은 사각형의 탑이다. 외벽에 수많은 신을 조각한 뒤 원색으로 아름답게 치장해 놨다. 우리 사찰 입구의 사천왕각이라 보면 틀림없다. 고푸람의 크기로 사원의 규모를 짐작할 수 있다. 엑암베스와라 사원은 칸치푸람에서 가장 높은 58m짜리 초대형 고푸람이 인상적인 곳이다. 사원을 이루는 1000개의 기둥홀은 돌로 만든 조각이라고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정교하다. 첸나이에서 서쪽으로 비행기를 한 시간여 타고 오면 인도 향신료 무역의 거점인 코치가 자리잡고 있다.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주는 수려한 해안 풍광을 갖고 있다.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 잡지는 코치를 포함한 케랄라 주를 세계 10대 낙원으로 선정하면서 반드시 가봐야 할 50곳 중 하나로 선정하기도 했다. 예부터 코치는 중국과 페르시아, 유럽 상인이 드나들면서 여러 문화가 자연스럽게 혼합된 지역이다. 수메르인의 기록에 따르면 기원전 3000년쯤부터 코치를 비롯한 주변 항구는 후추와 강황, 육두구 등 향신료 수출의 중심지였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코치에는 향신료 무역을 위해 정착한 유대인의 후손들이 아직도 살고 있다. 한국의 인사동 거리를 방불케 하는 옛 건물 양식이 그대로 남아 있는데 상점의 간판이 히브리어로 씌여진 경우도 있다. 유대인들은 이곳에 기원전 573년 도착했다. 유대인뿐만 아니라 포르투갈인도 정착했다. 세계사 수업시간에 이름을 들었음직한 바스코 다 가마가 1498년 코치 인근에 도착했었다. 바스코 다 가마는 코치를 근거지로 삼아 유럽과 인도를 잇는 무역로를 개척했다. 포르투갈이 총독부를 설치했던 곳이 바로 코치다. 한때 2500여명에 달했던 유대인은 상당수가 이스라엘로 돌아갔다. 지난 2001년 조사 때 7가구 22명에서 최근에는 겨우 7명만 남았다. 대부분 기념품 가게를 운영하는데, 운좋게 최고령 유대인인 사라 코헨(93) 여사를 만날 수 있었다. 그의 후손은 대부분 코치에서 자수 등 기념품을 팔며 생활을 이어간다. 아직도 정정한 코헨 여사는 “한국인들이 이곳에 와서 둘러보고 물건을 사갔으면 한다”고 말했다. 유대인 마을과 함께 해변을 따라 있는 중국식 어망은 코치를 상징하는 볼거리다. 6~8명이 한 조를 이뤄 네모난 그물을 드리운 뒤 다시 끌어올리는 방식인데 사진 찍기에는 좋을지 몰라도 고기를 잡기에는 그렇게 효율적으로 보이지 않았다. 중국식 어망은 중국 광둥성에서 전래된 것으로 코치가 향신료와 차 등을 동서로 연결해주던 주요 통로였음을 보여주고 있다. 해넘이에 맞춰 중국식 어망이 설치된 해안을 바라보니 이국적인 풍경에 취해 한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해안가 주변엔 각종 해산물 요리가 발달했다. 해산물 카레를 맛볼 수 있는 좋은 곳이기도 하다. 인도관광청 코치 지부의 고빈드 부얀 부국장은 “타지마할이 있는 북부 골든트라이앵글보다 코치를 비롯한 남부 지역의 매력이 상대적으로 한국에 알려지지 않았다”며 “이곳에서 색다른 매력을 느껴보길 진심으로 바란다”고 말했다. 글 사진 첸나이·마말라푸람·코치(인도) 이제훈 기자 parti98@seoul.co.kr ■여행수첩 →가는 길:첸나이와 코치로 가는 직항편은 없다. 뉴델리에서 갈아타야 한다. 에어인디아가 인천~뉴델리 구간을 매일 운항한다. 뉴델리에서 첸나이나 코치로 가는 비행편은 많다. 인천에서 뉴델리까지 비행 시간은 대략 10시간. 에어인디아 직항편으로 돌아올 경우 귀국 시간이 밤이라 낮에 반나절 정도 뉴델리 시내를 둘러볼 여유가 생긴다. 싱가포르나 방콕을 경유한 뒤 첸나이로 가는 방법도 있다. 첸나이에서 코치는 비행기로 1시간이다. 남인도는 11~2월이 여행 적기다. 첸나이는 평균 29℃로 습도가 높지 않으며 코치는 이보다 높은 32℃ 정도로 아라비아해의 습한 해풍이 불어온다. →맛집:첸나이는 인도 채식의 3대 고향 중 하나다. 바나나잎에 밥과 각종 카레를 담아 먹는 밀스를 어디서나 맛볼 수 있다. 값은 150루피(약 2700원). 코치는 해산물이 풍부한 곳이다. 포르투갈 식민지 영향으로 서구식 요리가 혼합됐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 인근에 음식점이 많다. 마말라푸람의 그란데베이 리조트 또한 검증된 남인도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곳이다. →잘 곳:첸나이에서는 래디슨블루 시티센터 호텔의 위치가 좋다. 부대시설도 잘 갖춰져 있고 불과 2㎞ 떨어진 곳에 익스프레스 애비뉴 몰도 있다. 기념품과 선물 등을 살 수 있다. 코치는 유적지와 볼거리가 몰린 포트 코치 쪽이 좋다. 유대인 마을, 중국식 어망 등 핵심 볼거리를 걸어서 볼 수 있다. 자전거 렌트 비용은 하루 80루피(약 1400원). →놓치지 말 것:코치에서는 인도 4대 무용으로 꼽히는 카타칼리 공연을 꼭 보자. 과장된 복장과 화장으로 중국의 경극을 연상시킨다. 매일 오후 6시부터 1시간 30분 간 공연이 이어진다. 케랄라 카타칼리 센터(www.kathakalicentre.com)에서 보면 된다. 요금은 300루피(약 5300원).
  •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사찰연구’ 일어판 출간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백제사찰연구’ 일어판 출간

    문화재청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소장 배병선)는 일본 나라(奈良)현립 가시하라고고학연구소(소장 스가야 후미노리)와 백제 사찰을 다룬 논문을 종합한 ‘백제사찰연구’ 일본어판을 공동 출간했다. 2013년 부여연구소가 펴낸 같은 제목의 논문집을 번역한 것으로, 백제 사찰의 건물지 구조와 출토 사리장엄의 특징, 상·하부구조를 통한 사찰 축조기법 검토, 가람배치와 도성과의 입지 관계 등 국내 연구자들의 논문 9편으로 구성돼 있다. 연구소 관계자는 “이번 번역 출판은 백제 불교문화에 관한 우리나라의 최신 연구 성과를 일본 학계와 공유할 수 있다는 점에서 뜻깊은 작업”이라고 평했다. 연구소는 오는 9월 2009~2010년 발행한 백제사찰 도서 ‘동아시아 고대 사지(寺址) 비교연구’ 금당지편과 목탑지편 일본어판도 일본 독립행정법인 국립문화재기구 나라문화재연구소와 함께 출간할 예정이다. 연구소 관계자는 “앞으로도 일본과 국제공동연구를 지속적으로 추진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트랜스젠더 女 가슴 만진 수도승 논란

    트랜스젠더 女 가슴 만진 수도승 논란

    캄보디아 출신의 한 수도승이 태국 방콕의 사원을 찾은 여성 신도의 가슴에 손을 댄 사진이 공개돼 논란이 일고 있다고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이 3일 보도했다. 현지시간으로 지난 주, 태국 방콕의 한 페이스북 유저가 올린 이 사진은 승려복을 차려입은 나이든 수도승이 상의를 모두 탈의한 여성의 가슴에 손을 대고 무언가 메시지를 전하는 모습을 담고 있다. 문제는 해당 여성의 ‘정체’다. 이 여성은 본래 남성으로 태어났지만 부분 성전환시술을 통해 여성이 된 트랜스젠더였던 것. 그녀는 현지 언론과 한 인터뷰에서 “호르몬 시술을 꾸준히 받은 덕분에 가슴이 커졌다. 아직 성전환 수술이나 가슴성형수술은 받지 않은 상태”라고 고백했다. 현지 불교문화의 특성상 여성은 절대 수도승에게 가까이 다가가서는 안된다. 다만 특별한 의식행사가 있을 경우, 수도승은 남성의 가슴 또는 여성의 이마에 축복의 메시지를 써 주기도 한다. 사진 속 트랜스젠더는 자신이 아직 완벽한 여성의 몸이 되지 않았으며, 본래 남성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가슴에 메시지를 받는 것이 가능하다고 여겼다. 해당 수도승 역시 이를 알고는 그녀의 가슴에 메시지를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진이 공개되고 비난이 쏟아지자 해당 트랜스젠더는 “죄책감을 느낀다. 내가 수도승의 명예에 누를 끼친 것 같다”며 심경을 토로했고, 해당 수도승 및 사원 측은 공식적인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현지에서는 사진 속 여성을 여성으로 보아야 하는지, 남성으로 보아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한 상황이며, ‘제3의 성(性)’이라 불리는 ‘카토이’(태국의 성전환자 여성 또는 여성적인 게이를 일컫는 말)가 존재하는 태국의 문화 특성 상 논란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나우뉴스부 nownews@seoul.co.kr
  • [청와대 개편] 신임 특보단 면면

    정무특보단에 임명된 새누리당 윤상현·김재원 의원과 주호영 의원은 각각 원조친박, 비박계로 나뉘지만 현 정부에서 당·청 관계를 이끈 핵심 인물들이다. 윤 의원은 18·19대 재선(인천 남을)으로 2007년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 원외 신분으로 조직기획단장을 맡는 등 박근혜 대통령을 도왔다. 2012년 대선 땐 박근혜 캠프 공보단장·수행단장을 맡으며 친박 주류로 부상했다. 현 정부 출범 직후인 2013년 5월부터 1년간 대야협상 실무를 맡는 원내수석부대표를 지냈고 이후 사무총장을 거쳤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사위였고, 현재는 롯데그룹 신격호 회장의 막내동생인 신준호 푸르밀 회장의 사위다. 김 의원은 17·19대 재선(경북 군위·의성·청송)으로 2007년 경선 캠프 기획단장·대변인을 역임한 친박계 핵심 인사다. 검사 출신 전략통으로 지난해 원내수석부대표 때 세월호 협상 등 야당과의 물밑 조율을 주도했다. 18대 공천에서 탈락한 뒤 중국 베이징대 국제대학원 교환교수를 지내고 최근까지 ‘열하일기 답사기’를 블로그에 연재하는 등 중국통이다. 판사 출신인 주 의원은 2007년 경선 때 이명박 후보 비서실장을 맡았고 이명박 정부에서 특임장관을 지냈다. 이런 이유로 친이계로 분류되나 친박계가 우세한 대구(수성을)에서 19대까지 내리 3선에 당선됐다. 이완구 전임 원내대표의 러닝메이트로 정책위의장을 지냈고 불교계와의 깊은 친분을 바탕으로 당내 의원들과도 두루 교분이 깊다. 원내수석부대표, 여의도연구소장 등 주요 당직을 거쳤다. 김경재 홍보 특보는 호남 출신 대표적 ‘DJ(김대중 전 대통령)맨’이지만 지난 대선 때 박 대통령 지지를 선언하고 중앙선대위 ‘100% 대한민국 대통합위원회’ 특보로 활약했다. 대통령직인수위에선 국민대통합위 수석부위원장을 맡았다. 전남 순천 출신으로 1971년 김대중 당시 신민당 대선후보 선전기획위원으로 DJ와 인연을 맺었고 유신체제 아래 도미해 15년간 사실상 망명생활을 했다. 당시 김형욱 회고록을 박사월이라는 필명으로 출간하기도 했다. 귀국 후 15·16대 의원을 지냈고 노무현 정부 출범 이후엔 민주당 분당 과정에서 친노세력과 결별했다. 이재연 기자 oscal@seoul.co.kr
  • 한국 전통문화 ‘불교’ 꽃피우다

    한국 전통문화 ‘불교’ 꽃피우다

    한국 불교와 전통문화의 모든 것을 한눈에 보고 체험할 수 있는 대규모 박람회가 열린다. 다음달 12∼15일 서울무역전시컨벤션센터(SETEC)에서 열리는 ‘2015 서울국제불교박람회’다. 지난해 대한불교 조계종이 ‘불교박람회’라는 이름으로 열었던 행사를 서울시와 공동 개최하면서 규모와 명칭을 바꿔 국제박람회로 확대했다. ●서울시와 공동 개최… 국제박람회로 확대 ‘살아 있는 한국 전통문화의 꽃’이라는 주제의 이번 박람회는 한국 전통문화와 관련된 예술, 산업을 조명하고 국내외 전통 속에서 긴 역사를 함께해 온 불교문화와 지혜를 조화롭게 전달하는 데 초점을 맞췄다. 그래서 전시도 주거를 비롯해 차와 다기, 예술과 문화상품, 수행과 사회활동, 문화서비스 부문으로 세분화했다. 특히 경기 침체로 실업률이 증가하고 행복지수가 감소하는 상황에서 융복합 치유산업의 전반을 소개하고 즐기는 ‘힐링 공간’의 성격을 크게 부각시켰다는 게 박람회 사무국의 설명이다. ●400여개 부스 운영… ‘힐링공간’ 부각 박람회에는 230여개 업체가 참여해 400여개의 부스를 운영할 계획이다. 부스는 전시와 체험, 부대행사 등 세 분야로 나뉘어 진행되며 사찰음식과 템플스테이, 불교 예술 작품 등으로 다양하게 꾸며진다. 박람회 기간 중에는 사찰음식을 주제로 한 ‘사찰음식대축제’, 사찰 생활을 느낄 수 있는 ‘템플스테이展’, 불교 관련 현대미술 작품과 한국 전통·불교 주제의 작품들을 소개하는 ‘붓다아트 페스티벌’, 일본·스리랑카·부탄 등 외국 불교업체들이 참여하는 국제불교전도 열린다. 14일 오후에는 매년 5월 진행되는 연등회를 미리 선보인다. ●연등회·사찰음식대축제 등 행사 다양 참가 업체들을 대상으로 한 특별 전시인 ‘전통문화우수상품전’은 불교계 안팎에서 큰 관심을 모은 행사다. 박람회 주제에 부합하고 품질이 우수하며 전통적 가치와 실용성을 지닌 상품을 선정해 홍보, 판촉의 기회를 준다. 참가 업체의 공모로 진행되며 심사를 통해 조계종 총무원장상과 서울특별시장상을 수여한다. 자세한 사항은 ‘2015 서울국제불교박람회’ 홈페이지(www.bexpo.kr)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박람회 입장료는 3000원으로 28일까지 홈페이지를 통해 사전 등록 하면 무료 입장할 수 있다. (02)2231-2013.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7대 종단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

    불교,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민족종교 등 7대 종단 협의체인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가 ‘종교인부터 자성하고 참회해 조화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어 가자’는 범종단 운동에 돌입했다. KCRP는 25일 오후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2층 국제회의장에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을 갖고 4월 말까지 종단별 운동본부를 조직, 실천운동을 벌여 나간다고 발표했다. 선포식에는 7대 종단 수장들과 대의원, 평신도 대표 등 300명이 참석했다.
  • “신자 수 늘리기보다 청년 고통 줄이기 힘써야”

    “신자 수 늘리기보다 청년 고통 줄이기 힘써야”

    “신자 수를 늘리기보다 청년 고통을 줄이고 함께 부대끼는 공동체로 거듭나야 한다.” “불교 틀에 너무 매이지 말고 청년들에게 열린 마음으로 적극적으로 다가가야 한다.” 조계종의 ‘종단혁신과 백년대계를 위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 제2차 모임이 열린 24일 오후 충남 공주 한국문화연수원 모둠토론장. ‘불교, 미래 세대를 위해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주제를 놓고 스님과 재가 신도들이 8개로 나뉜 그룹 난장에서 솔직한 의견들을 털어놓았다. 지난달 28일 같은 장소에서 열린 첫 모임에 비해 비교적 자리가 잡힌 모습이다. 오전 10시 입재식과 1시간여의 모둠토론에 이어 점심 식사를 마친 사부대중들은 곧바로 토론에 돌입해 10대, 20대 등 이른바 미래 세대를 위한 불교의 역할과 개선돼야 할 점들을 다양하게 도마에 올려 솔직한 의견을 나눴다. “다른 종교에 비해 우리 불교계엔 친절이 부족해요. 재가자건 출가자건 불자로서 실천해야 할 큰 덕목인 친절을 다시 새겨야 해요.” “출가자들이 존경을 너무 강요해요. 삭발했다는 이유만으로 신도들에게 막말을 해대는 모습이 청소년들을 멀어지게 합니다.” 미래 세대를 위해 사찰이 버려야 할 것들에 대한 성토가 쏟아지는 옆 난장에선 ‘스님들이 청소년들의 고통을 아느냐’는 토론이 뜨거웠다. “어른들 위주의 사찰 프로그램으로는 곤란해요. 사춘기 아이들을 위한 학교를 종단 차원에서 운영할 필요가 있습니다.” “스님들이 리더로 참여하는 복지시설이나 공공시설을 늘려 불교적 이해를 바탕으로 한 청소년 포교 확대가 절실합니다.” ‘절에 가면 재미없어’라는 난장에 참여한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최근 우리 사회의 어린이집 아동 학대와 폭력 실태를 우려하며 “사찰이 요사채 등의 기존 건물과 신도 교사들을 활용하고 등록금 대신 인등비 등으로 충당하는 불교식 어린이집이나 유치원을 운영할 수 있는 방법을 적극 찾아보자”는 의견을 내 박수를 받았다. 이날 대중공사에 참여한 대중은 스님 66명, 재가자 42명 등 모두 108명이다. 지난 모임엔 참석하지 않았던 11명의 위원이 새로 가세했다. ‘월드 카페’라는 난장의 새 토론 방식을 도입한 것도 지난 모임과는 다른 점이다. 참석한 대중이 8개의 난장을 각자 돌며 토론에 참석하도록 해 최대한 많은 의견을 수렴함으로써 종단 행정에 효과적으로 반영하게 한다는 차원에서 시작했다. 조계종은 다음 모임에서도 이날 토론 방식을 그대로 지킬 방침이다. 대중공사의 스님·재가 불자 위원들은 5월과 9월을 빼곤 매월 셋째 주 수요일 대중공사를 이어 간다. 한편 이날 공사에선 지난번 모임과 마찬가지로 ‘사부대중 100인 대중공사’의 운영 방식과 효과에 대한 평가가 엇갈려 눈길을 끌었다. 오전 11시 모둠토론에서 한 참가자는 “주제 설정과 토론 진행이 서툴러 대중의 결집력이 우려되고 실제로 효율적인 집행이 가능할지 걱정”이라고 지적했고 다른 참가자는 “대중공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늘고 운영 방식 개선과 관련한 의견도 쇄도하고 있다”는 상반된 주장을 내놓았다. 이날 대중공사를 포함해 향후 모임에서 있을 견해차를 의식해서인지 참가자들은 함께 낭독한 발원문을 통해 “오늘 우리가 겪고 있는 문제들 대부분은 모두가 함께 탁마하며 살아야 할 도반임을 잊고 이기적으로 살아온 각자의 허물에서 비롯된 것임을 고백한다”며 “초발심 학인(學人)의 자세로 당면한 중요한 문제들을 지극정성으로 다뤄 가겠다”고 밝혔다. 세 번째 대중공사는 다음달 25일 같은 장소에서 ‘사찰재정 투명화’를 주제로 열릴 예정이다. 글 사진 공주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불상 안에 잠든 약 1000년 전 승려 미라 발견

    불상 안에 잠든 약 1000년 전 승려 미라 발견

    1000년 전 만들어진 불상 안에서 당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수도승의 미라가 발견돼 학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네덜란드 아메르푸르트의 의학센터 전문가들이 지난 1월 몽고에서 출토된 이 불상을 정밀 조사한 결과, 내부에서는 지금으로부터 11~12세기 무렵인 1050~1150년 사망한 것으로 보이는 수도승의 미라를 발견했다. 불상 안의 미라는 장기가 모두 제거된 상태로 결가부좌 자세를 유지하고 있으며, 고대 중국어가 쓰여진 오래된 종이가 함께 발견됐다. 전문가들은 외부 CT촬영 및 불상 내시경 검사, 미라 DNA 검사 등을 통해 이를 확인했으며, 검사 결과 및 불상 안에서 미라와 함께 발견된 기록 등을 미뤄 봤을 때 이 미라의 주인이 ‘리우콴’이라는 이름의 승려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이 미라가 일명 ‘살아있는 부처’가 되기 위한 과정에 처했던 것으로 보고 있다. 고대 중국 승려들 사이에서는 미라가 된 승려를 사망하지 않은 것으로 간주했고, 다만 무아지경에 빠진 것이며 깨달음을 줄 수 있는 신적인 존재로 인식돼 왔다. 고대 기록에 따르면 이 승려는 지금으로부터 약 1000년 전인 1100년에 생존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온라인매체인 인터내셔널 비즈니스 타임즈는 “특히 불교신자 사이에서는 리우콴이라는 전설적인 승려는 아직 죽지 않았으며, 명상의 상태에 있는 것이라는 믿음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수도승의 미라를 감싼 이 불상은 현재 네덜란드 박물관에서 보관하고 있으며, 오는 5월 헝가리 자연사박물관에서 전시될 예정이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35.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35.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독자들의 성원 속에 연재되고 있는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은 1960~70년대 독자들을 울리고 웃겼던 생활 속의 사건 기사들을 모아 <그땐 그랬지>라는 코너로 소개합니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사건 소품 기사들을 통해 당시의 사회상과 생활상을 간접적으로나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일부 표현은 요즘 상황에 맞게 수정했음을 알려드립니다. ▒▒▒▒▒▒▒▒▒▒▒▒▒▒▒▒▒▒▒▒ 35. [선데이서울로 보는 그때 그 시절] 그땐 그랬지(5)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커피 마신 스님, 돈 대신 목탁만 쳐줬다가… 5일 오후 6시쯤 부산 서면의 한 다방에 승복을 입은 스님 한 분이 들어와 의자에 앉더니 점잖게 커피를 한잔 시켜 마시고는 엄숙히 목탁을 서너번 두드린 뒤 아무 말 않고 홀연히 다방을 따났다. 찻값을 받지 못한 다방 아가씨가 스님을 뒤쫓아 가 승복 자락을 붙잡고 늘어지며 찻값을 요구하자 스님 왈, “복을 많이 빌어 주었는데 무지하게도 찻값을 받으려 하느뇨?”라며 호통. 때마침 지나가던 불교신도 한 사람이 대신 찻값을 물어주어서 무사히 사태는 수습되었다나. 나무아미타불! -1970년 3월 15일자 ▒▒▒▒▒▒▒▒▒▒▒▒▒▒▒▒▒▒▒▒ 냇가서 목욕하며 물장난한 옆사람, 알고보니 ‘경악’ 경남 창녕에 사는 안모(21)양은 냇가에서 목욕을 하다가 큰 망신을 당했는데.... 7일 저녁 7시쯤 안양은 친구 3명과 함께 동네앞 냇가로 목욕을 갔는데 어둠이 깔리자 안양은 옆에 있는 사람이 친구인 줄 알고 껴안고 물장난. 머리칼을 잡아보니 기다란 장발이어서 마음 놓고 친구에게 주물림을 당하다가 한참뒤 상대방을 껴안은 다음 가슴깨를 더듬었더니 어럽쇼, 운동장처럼 밋밋. 기겁한 안양은 날 살리라고 도망쳤는데 알고보니 동네 장발족 총각들이 슬쩍 끼어들어 처녀행세로 재미를 봤다는 것. -1972년 8월 20일자 ▒▒▒▒▒▒▒▒▒▒▒▒▒▒▒▒▒▒▒▒ 여관 침대밑에 몰래 숨어 현장보고 돈 훔치다 결국… 남녀가 재미보는 현장을 훔쳐보고 물건까지 슬쩍하려던 20대 얌체가 철창신세.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6월23일 동대문구의 한 K여관 객실에 숨어들어가 침대 밑에 숨었다가 투숙한 손님의 물건을 훔쳐 나오려던 서모(23·인천)씨를 야간 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했다. 서씨는 지난달 23일 오후 10시 30분쯤 K여관 바로 옆에 있던 여인숙에 1차로 투숙한 뒤 팬티와 러닝셔츠만 입은 채 K여관의 비상구를 통해 3층으로 올라가 304호 침대밑에 숨어 있었다. 이방에 투숙한 최모(49)·김모(23·여)씨가 잠이 들자 다음날 새벽 3시 30분쯤 최씨가 벗어놓은 옷에서 현금 10만원을 훔쳐 달아나려다 인기척에 놀라 깨어난 최씨에 의해 붙잡힌 것. 서씨는 경찰에서 “술에 취해 우리 집인 줄 알고 그랬다”고 엉뚱한 변명. 그러나 서씨가 투숙했던 여인숙 주인은 서씨가 한달전부터 새벽 3~4시쯤에 나타나 여관쪽 방을 기웃거렸다고 진술. 한편 최씨의 고함소리에 잠에서 어난 김양은 너무나 놀란 나머지 5분 정도 기절을 했다가 최씨의 인공호흡으로 겨우 깨어났다고. -1985년 7월7일자 ▒▒▒▒▒▒▒▒▒▒▒▒▒▒▒▒▒▒▒▒ 아수라장 된 2중 결혼식의 현장 내연의 처가 있는 청년이 묘령의 아가씨와 결혼식을 올리려다 정체가 발각돼 예식장이 아수라장이 되었는데. 부산의 한 회사 경리과장인 김모(29)씨는 동거중인 홍모(26) 여인에게 “회사에 출근한다”고 속이고 집을 나와 엉뚱하게 예식장으로 출근(?), 결혼식을 올리려다 이런 사고를 빚은 것. 자기 남편이 결혼식을 올린다는 기별을 듣고 허둥지둥 달려온 임신 9개월의 홍 여인은 웨딩마치를 듣자 그만 넋을 잃었고 새 신부 아버지 송모씨는 3층 계단에서 2층 계단으로 떨어져 실신. 가끔 일어나는 중혼극(重婚劇)이긴 하지만 정말 왜들 이러실까? -1969년 11월 23일자 ▒▒▒▒▒▒▒▒▒▒▒▒▒▒▒▒▒▒▒▒ 재혼 위해 산 처를 죽었다며 사망신고한 패륜男 딴 여자와 살기 위해 멀쩡히 살아 있는 본처를 사망신고까지 한 패륜 남편이 꼬리를 잡혔다. 지난 20일 공문서 부실기재 혐의로 경찰에 구속된 A(38·전남 함평)씨는 10년 전 결혼해 엄연히 살아있고 3형제까지 둔 본처 B(35·무안)씨를 1969년 2월 15일자로 사망신고. 그리곤 C(27·목포) 여인과 재혼해 12월 4일자로 다시 혼인신고 한 것이 본처에게 들켜 쇠고랑을 차게 됐다. -1970년 3월 8일자 정리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서울신문은 1960~70년대 ‘선데이서울’에 실렸던 다양한 기사들을 새로운 형태로 묶고 가공해 연재합니다. 일부는 원문 그대로, 일부는 원문을 가공해 게재합니다. ‘베이비붐’ 세대들이 어린이·청소년기를 보내던 시절, 당시의 우리 사회 모습을 현재와 비교해 보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 될 것입니다. 원문의 표현과 문체를 살리는 것을 원칙으로 하지만 일부는 오늘날에 맞게 수정합니다. 서울신문이 발간했던 ‘선데이서울’은 1968년 창간돼 1991년 종간되기까지 23년 동안 시대를 대표했던 대중오락 주간지입니다. <편집자註>
  • [당신의 책]

    [당신의 책]

    구스타프 슈바브의 그리스 로마 신화 1·2·3(구스타프 슈바브 지음, 이동희 옮김, 휴머니스트 펴냄) 19세기 독일 교육자이자 시인인 구스타프 슈바브가 그리스 로마 신화를 연대기적으로 서술한 책. ‘신과 영웅의 시대’, ‘트로이아 전쟁’, ‘오뒷세우스·아이네아스’ 등 3권으로 나눴다. 2006년 어린이 독자 위주로 발간됐던 내용(물병자리)을 대폭 다듬고 번역 오류도 바로잡아 완역했다. 서양 문명과 사상의 뿌리로 통하는 그리스 로마 신화는 주로 원전에 충실한 서술 위주의 토머스 불핀치 판이 널리 알려져 있다. 그에 비해 슈바브의 신화는 방대한 신화를 시간순으로 재구성했다. 무엇보다 단편적 신화들을 흐름과 맥이 살아 있는 전체적 이야기로 엮어 낸 게 특징이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에서 헤겔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번역자(한국학중앙연구원 박사)의 감각적인 번역도 책의 특장으로 꼽힌다. 1·2권 2만 1000원, 3권 2만 3000원. 성지에서 쓴 편지(호진·지안 지음, 불광출판사 펴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불교를 보고 연구하는 두 스님의 수준 높은 대화’-칠순 나이에 인도 성지 1600리 길을 도보순례한 호진 스님과 도반 지안 스님이 순례길에 얹어 나눈 묵상집이다. 호진 스님이 초기불교를 현대적인 방법으로 천착한다면 지안 스님은 대승불교를 전통적 방법으로 연구해 대조를 이룬다. ‘인간적인 부처’를 찾아 유언 편지까지 남기고 인도로 떠난 호진 스님이 고행에 가까운 순례 과정에서 체험하고 사색한 내용과 그에 대한 지안 스님의 답문 모음. ‘초전법륜의 길’(부다가야-샤르나트)과 ‘열반의 길’(라즈기르-쿠시나가라) 353㎞에 걸친 마음의 기록인 셈이다. 역사적인 인물로서의 부처님, 깨달음과 열반, 근본 가르침을 향해 나아간 수행자의 목숨 건 수행기 형식으로, 녹록지 않은 깊이의 글들이 인상적이다. 안부를 걱정하며 그리움을 전하는 우정의 향기에 학자의 열정과 고집이 얹혀 책 읽는 즐거움을 더한다. 239쪽. 1만 5000원. 모두를 위한 국제이해 교육(한국국제이해교육학회 지음, 살림터 펴냄) ‘전 지구적으로 생각하고 지역 현장에서 행동하라’-중요성이 널리 인식되고 확산되는 국제이해 교육의 내용과 의의를 쉽게 정리했다. 국제이해 교육은 유럽·미국 등지에서 글로벌 시민교육이나 글로벌 교육의 형태로 전개되고 있다. 일본만 하더라도 주요 교육 주제 4개 중 하나로 지정됐고, 중국에선 거대 중국의 다양성과 국제적 상호 의존성을 담는 교육을 적극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한국에선 제대로 소개도 되기 전 견제 속에 위축된 형편. 책은 그런 상황에서 글로벌 시민성, 평화, 인권, 지속 가능성, 문화적 다양성을 축으로 글로벌 위기에 대처할 수 있는 도덕적 역량을 기를 것을 제안한다. 교육만으로 폭력적 사회를 바꿀 수 없다 하더라도 국제이해 교육을 통해 평화롭고 인권 친화적인 방법으로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가능성은 높일 수 있다고 강조한다. 교육 현장에서 구체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예시까지 보여 준다. 359쪽. 1만 6000원.
  • [경제 블로그] 외국 진출 성공한 ‘관계형 금융’의 힘

    [경제 블로그] 외국 진출 성공한 ‘관계형 금융’의 힘

    캄보디아에서 지난해부터 소액 신용대출 사업을 벌이고 있는 우리은행이 0%대 연체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국내 여신업체 연체율이 3~4%대인 점을 감안하면 놀라운 수치입니다. 그 비결이 뜬끔없습니다. ‘오토바이’랍니다. 우리은행은 지난해 7월 캄보디아 현지 마이크로 크레디트(소액 무담보 신용대출) 회사인 ‘말리스’를 인수해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를 설립했습니다. 말리스는 도시 외곽에 5개의 점포를 가지고 있는 작은 금융회사입니다. 우리은행은 인수 직후 영업직원 70명 모두에게 오토바이를 제공했습니다. 국민의 13% 정도만 은행을 이용할 정도로 캄보디아의 금융산업은 낙후돼 있습니다. ‘기다려도 손님이 오지 않는다’는 얘기입니다. 직원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동네 곳곳을 누비고 다닙니다. 어느 집이 급전이 필요하고, 갚을 능력은 얼마나 되는지 손금 보듯 훤할 수밖에 없습니다. 정교한 신용평가 시스템이 없어도 고객의 평판과 밥 숟가락 숫자까지 줄줄 꿰는 ‘관계형 금융’을 실천하고 있는 셈이죠. 종교 덕도 크다고 합니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캄보디아가 불교 국가라 남의 돈을 떼먹는 것을 죄악시하는 경향이 있다”고 전했습니다. 연체가 발생하면 ‘마을 명예와 이미지를 실추시켰다’며 촌장(村長)이 불호령을 내리기도 한답니다. 마을 어른 무서워서라도 연체를 못 한다는 거지요. 덕분에 우리은행은 지난해 말리스의 자산을 70% 넘게 늘리면서도 연체율은 0.34%를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은행은 캄보디아 성공에 고무돼 같은 불교 국가인 미얀마에서도 비슷한 소액 신용대출 사업을 준비 중입니다. 규모가 다르다고는 하지만 돈을 떼이지 않는 근본 비결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바로 고객을 ‘아는 것’입니다. 모뉴엘과 KT ENS에 속아 ‘부실 대출’로 줄줄이 징계받는 국내 금융사를 보며 불현듯 든 생각입니다. 이유미 기자 yium@seoul.co.kr
  • “세상이 왜 종교를 걱정하게 되었는가”

    “세상이 왜 종교를 걱정하게 되었는가”

    불교의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 개신교의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 김진호 목사, 천주교의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장. 종교인은 물론 웬만한 일반인조차 이름만 듣고도 ‘아, 그 사람’ 하며 관심 가질 인물들. ‘내 종교’에 바른말, 쓴소리 잘하기로 소문난 이른바 종교계의 ‘뜨거운 감자’ 셋이 나란히 앉는 자리가 마련됐다. 지난 10일 점심시간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 소문 그대로 ‘뜨거운 감자’ 셋은 자리를 화끈하게 달궜다. 그 쏘시개는 역시 ‘왜 종교가 세상을 걱정하는 게 아니라 세상이 종교를 걱정하는가’였다. 오는 28일부터 서울 종로구 사간동 화쟁문화아카데미(대표 조성택 교수)에서 매월 한 차례씩 총 9회 일정으로 시작되는 종교 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 경계 너머 지금 여기’의 예비 모임. ‘종교계의 올곧은 삐딱이’들이 작정한 듯 쏟아내는 말들은 포럼 현장의 토론을 방불케 했다. “평화와 힐링을 마케팅 상품처럼 내세우는 한국 주류 종교의 현실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종교란 근본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솔직하게 논의할 예정입니다.” 포럼 주최 측인 화쟁문화아카데미 대표 조 교수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우리 종교와 각자의 종교를 향한 성토성 발언이 쉴 틈 없이 이어진다. “사회적 스트레스가 높아지면서 공격성이 증오범죄로 표출되고, 이웃 없는 사회, 모두가 적으로 여기는 사회가 돼 가고 있다. 여기에 한국 개신교의 배타성이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김진호 목사) “천주교는 성직자의 권위주의며 다른 종교보다 낫다는 우월감이 유난히 강하다. 예수님 말씀의 핵심은 자유와 해방이 아닌가.”(김근수 소장) 한쪽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조 교수가 한마디 얹었다. “불교는 깨달음을 추구하는 종교가 아닌 실천하는 종교다. 그런데도 실천을 등한시할 뿐만 아니라 거꾸로 깨달음이 나와 너, 승과 속을 가르는 경계로 작용하는 실정이다.” 두 시간 남짓한 모임에서 오고 간 말들은 한국 종교의 민낯을 정색하고 드러낸 신랄한 자성의 외침들. “종교의 핵심인 자유와 해방 대신 순종과 복종, 노예 윤리를 강요하고 가르치는 흐름”, “종교가 사회를 비판하고 개혁을 촉구하기보다 자체 쇄신이 급선무”, “신뢰의 위기를 미워할 대상에 대한 증오를 통해 피해 가려 한다”…. 포럼에서 돌아가며 발제자로 등장할 세 사람이 초점을 맞출 종교의 의제는 ‘무엇이 걱정이고 왜 걱정인가, 그리고 어떻게 해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그 논점의 바탕은 세월호 참사와 맞닥뜨린 종교계의 무력감이었다고 한다. 독일에서 아우슈비츠 이후의 신학을 예로 든 김진호 목사는 “세월호 참사의 고통 안에서 종교가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라고 설명했다. 후반부 포럼 사회를 맡은 정경일 새길기독사회문화원장은 “종교의 존재 이유는 고통에 대처하는 길의 제시가 아닐까 한다”며 “사회적 고통이 극심한 지금 세 종교가 모여 고통에 응답하는 해방의 언어를 찾아가는 여행을 시작할 것”이라고 거들었다. “각 종교의 개혁을 위한 마중물과 각성의 효과가 있기를 기대한다’는 조 교수의 말마따나 포럼은 보통의 종교 모임과 세미나라면 꺼내들기조차 꺼려 하는 주제들을 감추지 않고 도마에 올려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그리스도와 가난’, ‘이웃의 고통에 공감하지 않는 불교’, ‘성형 사회의 그리스도교’, ‘사회적 영성’, ‘자유와 해방’, ‘정의들의 화쟁’…. 포럼 주제도 예사롭지 않지만 진행 방식도 종전의 포럼들과는 사뭇 다르다. 이를테면 조 교수가 발제를 한 뒤 김 목사와 김 소장이 함께 토론을 벌이는 방식이다. 발제가 30%인 데 비해 당일 세 사람의 현장 토론 비중이 70%에 달한다. 사회자, 방청객까지 토론에 가담하며 매회 토론은 온라인에서 동영상으로 서비스되고 책으로도 출간될 예정이다. 070-8872-2023.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씨줄날줄] 불화에 담긴 1939년의 사회상/서동철 논설위원

    감로탱(甘露幀)은 외래 종교인 불교를 한국인들이 얼마나 창조적으로 해석하고 신앙했는지를 보여 주는 그림이다. 전생에 지은 죄에 따라 육도윤회(六道輪廻)에 고통받는 중생이 구제 과정을 거쳐 극락에 이를 수 있다는 내용을 담았다. 일반적으로 상·중·하 3단으로 그려졌는데, 아래부터 과거-현재-미래가 인과관계로 연결된다. 윤회 과정의 지옥도와 아귀도에서 헤매는 중생도 단이슬(甘露)이 상징하는 맛나고 풍성한 음식이 베풀어진 의식을 거치고 나면 부처가 머물고 있는 세계로 올라설 수 있음을 상징한다. 감로탱은 산천에 떠도는 외로운 영혼을 천도하기 위한 수륙재나 조상을 윤회의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는 우란분재에서 쓰였다. 이렇듯 독창적인 그림이 불교가 극심한 탄압을 받던 조선시대에 본격화되어 꽃을 피웠다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현재까지 전해지는 감로탱 가운데 제작 연대가 가장 빠른 것은 일본 나라국립박물관에 있는 약산사 감로탱(1589)이다. 적지 않게 남아 있는 각각의 감로탱은 하단의 육도윤회상이 당시의 사회상을 생생하게 보여 준다는 점에서 기록화이자 풍속화로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적 의미가 뚜렷한 감로탱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서울 돈암동의 흥천사 것이다. 조선 태조의 계비 신덕왕후의 무덤 정릉의 원찰 흥천사는 1939년 감로탱을 새로 봉안했다. 공주 마곡사를 중심으로 활동한 계룡산파 화맥(畵脈)의 대표적 화승이라는 보응 문성과 그의 제자인 병문이 제작에 참여했다. 두 화승의 감로탱은 기존의 도상을 현실에 맞게 재해석한 것은 물론 당시 핵심적 사회상을 서양화법으로 놀랍도록 과감하게 담아냈다. 당시는 중일전쟁이 한창이었고, 1941년 진주만 공격 직전이었으니 일제의 군국주의 망령이 갈수록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었다. 보응 문성과 병문은 비극적 시대상을 먹선으로 분할한 31개의 화면에 담았다. 전투함이 돌진하고 전투기가 날아가는 가운데 엄청난 위력을 가진 포탄이 여기저기서 터지는가 하면, 기세등등한 육군은 탱크를 앞세우고 상대 진영을 불바다로 만들고 있다. 일제가 남산에 세운 조선신궁과 침략의 본거지인 통감부의 모습도 사실적으로 담았다. 지옥도와 아귀도가 있다면 바로 이런 모습일 것이라는 뜻이다. 하지만 광복 이후에는 이런 장면이 충격적이었던지 한동안 일제와 관련된 부분은 가려 놓기도 했다. 물론 자동차 여행, 기차가 다니는 어촌, 코끼리 서커스단, 전당포, 전신주 공사, 전화 거는 모습, 스케이트 타는 모습 등 새로운 문물의 다양한 양상도 보인다. 이 특별한 불화를 지금 서울 견지동 불교중앙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다. 종이를 붙이고 호분칠을 해 놨던 부분도 복구해 놓았다. ‘불화에 담긴 근대의 풍경과 사람들, 흥천사 감로왕도 특별공개전’은 4월 12일까지 열린다. 관람료는 없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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