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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섶에서] 어느 날 점심/서동철 논설위원

    점심 약속이 없을 때는 굳이 같이 밥 먹을 사람을 찾지 않는다. 오히려 신경 쓰지 않고 호젓한 시간을 가질 수 있어 좋다. 오늘은 점심 메뉴로 세운상가 근처의 칼국수집을 떠올렸다. 주변의 작은 전자부품 가게 주인인 듯 혼자 오는 사람이 적지 않다. 몇 년 전 처음 갔을 때는 3500원이었는데, 그사이 4500원으로 오르기는 했다. 그래도 밥을 사겠다고 누굴 데려가기는 좀 민망하다. 다음에는 나름대로 ‘문화생활’을 하는 거다. 조계사 경내에 있는 불교중앙박물관으로 간다. 뜰에서는 소풍 나온 유치원생들이 돗자리를 펴고 앉아 김밥을 먹고 있다. 귀여운 것들…. 대웅전의 부처님도 흐뭇하시겠구나 싶다. 박물관에서는 옛 비석의 탑본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입구의 보령 성주사터 낭혜화상탑비부터 인상적이다. 최치원이 썼다는 비문의 한 대목은 이렇다. ‘대사는 장년부터 노년까지 스스로 낮추는 것을 기본으로 삼았다. … 집을 짓거나 고칠 때도 뭇 사람보다 앞장서서 노역했다. … 식수를 길어 나르거나 섶나무를 지는 일도 더러 몸소 하였다.’ 소박하게 묘사할수록 훌륭한 분이라는 믿음을 깊게 하는 매력 있는 글이다. 회사로 돌아오는데 괜히 웃음이 났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경북도·中 안후이성 이어준 지장 스님

    경북도·中 안후이성 이어준 지장 스님

    경북도는 26일 중국 안후이(安徽)성과 관광교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왕보살’로 추앙받는 지장(696~794·김교각) 스님을 관광상품화해 두 도시 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두 지역에는 지장 스님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안후이성 성도인 허페이(合肥) 한 호텔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전화식 경북도 문화체육국장과 완이쉐(萬以學) 안후이성 관광국장, 이진락 경북도의원, 이상욱 경주부시장, 여행사와 불교학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주요 협약 내용은 관광홍보사무소 상호 설치 및 김교각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 등이다. 이어 두 도시는 ‘중국에서의 김교각 발자취’ 소개와 김교각 전용 상품 프레젠테이션(PT) 및 경북관광 홍보 영상 상영, 경북 대표 음식 소개 등 관광홍보 설명회도 가졌다. 안후이성은 인구 6000여만명의 동부내륙도시로,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완 국장은 “안후이성에는 지장보살이 99살에 입적한 것을 기념한 높이 99m짜리 동상과 그의 등신불 등 관련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면서 “이번 협약으로 두 도시가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전 국장은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불법을 설교했던 지장보살의 화신인 지장 스님의 중국 관광상품화로 기존 신라 최치원 역사탐방 상품과 연계돼 내륙지방 중국 관광객 유치 공략이 더욱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글 사진 허페이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경북도, 중국 안후이성 관광 교류 협약

    경북도는 26일 중국 안후이(安徽)성과 관광교류 업무협약(MOU)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신라 왕자 출신으로 중국에서 중생을 구제하는 ‘지장왕보살’로 추앙받는 지장(696~794·김교각) 스님을 관광상품화해 두 도시 간 교류 활성화를 도모하기 위해서다. 두 지역에는 지장 스님 관련 유적들이 남아 있다. 안후이성 성도인 허페이(合肥) 한 호텔에서 열린 협약식에는 전화식 경북도 문화체육국장과 완이쉐(萬以學) 안후이성 관광국장, 이진락 경북도의원, 이상욱 경주부시장, 여행사와 불교학회 관계자 등 200여명이 참석했다. 주요 협약 내용은 관광홍보사무소 상호 설치 및 김교각 다큐멘터리 공동 제작 등이다. 이어 두 도시는 ‘중국에서의 김교각 발자취’ 소개와 김교각 전용 상품 프레젠테이션(PT) 및 경북관광 홍보 영상 상영, 경북 대표 음식 소개 등 관광홍보 설명회도 가졌다. 이와 함께 두 도시 간 B2B(기업 대 기업) 관광교역전과 한·중기업인 교류회도 열렸다. 안후이성은 인구 6000여만명의 동부내륙도시로, 중국 4대 불교 성지 중 한 곳으로 유명하다. 완 국장은 “안후이성에는 지장보살이 99살에 입적한 것을 기념한 높이 99m짜리 동상과 그의 등신불 등 관련한 많은 문화유적이 있다“면서 “이번 협약으로 두 도시가 관광 교류 활성화를 위해 많은 사업을 할 수 있다”고 기대했다. 전 국장은 “안후이성 구화산에서 불법을 설교했던 지장보살의 화신인 지장 스님의 중국 관광상품화로 기존 신라 최치원 역사탐방 상품과 연계돼 내륙지방 중국 관광객(유커) 유치 공략이 더욱 성과를 낼 수 있다”고 말했다. 허페이시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원불교 “대동화합의 길로 함께 가자”

    원불교 “대동화합의 길로 함께 가자”

    6·25전쟁 피해자 유족 등 수천명 참석 원불교는 25일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일제강점기·한국전쟁·산업화·민주화·재난재해 희생 영령을 위한 대국민 특별 천도재를 열었다. 원불교 개교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이번 천도재는 좌와 우, 진보와 보수를 넘어 한국 사회의 상처와 갈등을 씻어내자는 취지로 마련됐다. 이번 천도재에는 한국전쟁전후민간인피학살자 전국유족회,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 태평양전쟁피해자보상추진협의회, 야스쿠니무단합사철폐소송 원고단 등 천도 대상자 유가족 100여명과 원불교 신자 등 수천명이 참석했다.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천도재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먼저 떠나가신 영령들의 아픔과 고통, 견디어냄 그리고 헌신으로 현재의 삶을 살고 있다”며 “천도재를 기연으로 우리 모두 대동화합의 길로 동행하여, 대한민국이 서로 존중하고 배려하는 정신의 지도국, 도덕의 부모국을 이루고 감사와 은혜 가득한 낙원 세계를 이뤄 가자”고 당부했다. 원불교는 이번 천도재를 통해 모은 재비 전부를 천도 대상을 위해 기부할 계획이다. 한편 원불교는 이날부터 다음달 1일까지를 개교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해 천도재와 국제학술대회 등 다양한 행사를 연다. 100주년 기념대회는 1일 서울 마포구 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보복운전男 흉기 위협하려다 “어, 이 차 아니네”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로 다른 차를 15㎞나 따라가 운전자를 회칼로 위협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특수협박 혐의로 임모(4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8일 오후 10시 40분쯤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임씨는 청담대교 부근에서 서행 운전을 한다는 이유로 ‘그랜저’ 승용차와 시비가 붙었다. 그랜저 운전자가 경적을 여러 차례 울리자 임씨는 보복하기 위해 추격했지만 놓쳤다. 이후 임씨는 한남대교 부근에서 아까 그 차를 발견하고 마포구 불교방송국까지 쫓아갔다. 그랜저를 멈춰 세우게 한 임씨는 운전석 창문을 5~6차례 두드리면서 갖고 있던 회칼로 운전자를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임씨가 위협한 운전자는 이전에 경적을 울렸던 그랜저 운전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차는 ‘벤츠’였고, 색상도 전혀 달랐다. 임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적을 울리는 데 화가 나 따지려고 15㎞ 정도를 쫓아갔는데, 위협을 하고 보니 다른 차였다”고 진술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세조가 세운 ‘깨달음의 사찰’… 연산군 땐 기생 관리 장소로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세조가 세운 ‘깨달음의 사찰’… 연산군 땐 기생 관리 장소로

    한양은 유교를 국시로 내세운 조선의 계획도시였으므로 고려시대 절이 남아 있었다고 해도 훼철됐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1000년이 넘은 불교국가의 전통이 하루아침에 사라질 수 없었고, 불덕(佛德)에 의지하는 분위기는 왕실이 더욱 짙었다. 태조는 도성 안 세 곳에 사찰을 세웠다. 곧 흥천사, 흥덕사, 흥복사다. 태조가 신덕왕후 강씨의 무덤인 정릉을 덕수궁 터에 만들고, 명복을 비는 원찰로 세운 것이 흥천사다. 그런데 태종이 배다른 어머니의 무덤을 도성 밖 오늘날의 돈암동 고개 너머로 옮겼으니 흥천사도 돈암동에 다시 터를 잡아야 했다. 흥덕사는 ‘태상왕이 새 전각을 희사하여 사찰로 만들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태조가 왕위에서 물러난 이후에 지은 절이다. ●‘불교대호왕’ 세조, 원각사를 조선 불교 거점으로 흥복사는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다. 세조는 흥복사를 넓혀 원각사를 건립하고 불경을 간행하는 등 불교의 거점으로 삼았다. 원각사의 흔적은 지금도 국보 제2호 십층석탑과 대원각사비(大圓覺寺碑)로 남아 있다. 최초의 근대식 공원이라는 탑골공원은 3·1운동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세조는 불교대호왕(佛敎大護王)으로 불릴 만큼 조선왕조에서는 전무후무한 불교 후원자였다. 그가 불교중흥에 힘쓴 것은 흔히 조카를 죽이고 왕위를 찬탈한 업보(業報)를 씻기 위해서라고 한다. 하지만 어린 단종이 즉위함에 따라 왕권을 제약할 만큼 성장한 신흥사대부를 견제하겠다는 목적이었다는 시각도 없지 않다. 실제로 도성 한복판에, 그것도 주변 어디서나 바라보이는 12m 불탑이 세조 13년(1467년) 완성됐을 때 유신(儒臣)들의 굴욕감은 적지 않았을 것이다. 어느 시기, 석탑의 8층 이상이 땅바닥에 끌어내려진 것도 그 불쾌감의 일단을 보여 준다. 십층석탑은 1946년 미군공병대의 크레인을 동원하고서야 제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이런 분위기였던 만큼 세조는 원각사를 창건하고자 주도면밀한 계획을 세웠다. 실록에는 일종의 창건설화마저 등장한다. 효령대군이 회암사에서 원각법회를 베풀자, 여래가 나타나고 신(神)의 음료라고 할 감로(甘露)가 내렸다. 황색 가사를 입은 신승(神僧) 3인이 나타나니 밝은 빛이 일어나고, 채색 안개가 공중에 가득 찼으며, 부처님의 사리가 저절로 늘어나는 분신(分身)이 일어났다는 것이다. 세조는 ‘이처럼 기이하도록 상서로운 일은 좀처럼 만나기 어려우므로 홍복사를 다시 세워 원각사를 삼고자 한다’고 했다. 원각(圓覺)이란 깨달음의 다른 말이다. 회암사에서 원각법회가 계획됐을 때부터 세조는 도성에 새로 지을 거대 사찰의 성격과 구체적인 이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게 아닐까 싶다. 흥복사는 세종시대까지도 왕실의 불사가 있었다는 기록이 보인다. 세조는 원각사 조성의 명을 내린 이튿날 흥복사에 거둥했는데 왕세자와 효령대군, 임영대군, 영응대군, 영순군 같은 왕실의 핵심 인사들이 앞장선 가운데 영의정 신숙주와 좌의정 구치관, 병조판서 윤자운을 비롯한 관리들을 대동한다. 못마땅한 신하도 없지 않았겠지만, 불만을 공개적으로 토로할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었을 것이다. 세조는 앞서 회암사의 법회에서 신기한 일이 일어났다고 했을 때부터 대사면령을 내리며 민심을 자기편으로 이끌었다. 이후에도 13차례에 걸쳐 상서로운 조화가 있었다며 사면령을 내리거나 관계자를 포상했다. 원각사를 인간의 뜻이 아니라, 신의 뜻에 따라 새로 짓는 것으로 뇌리에 각인시키겠다는 뜻이었을 것이다. ●사림정치 기반 공고해지면서 사찰 명맥 끊겨 하지만 세조가 승하하고 예종마저 재위 14개월 만에 세상을 떠난 데 이어 13세에 불과한 성종이 즉위하자 사정은 달라졌다. 사림정치의 기반이 공고해지면서 성종 5년(1474) 원각사의 백옥불상은 회암사로 옮겨지고 승려들도 퇴출된다. 연산군은 즉위 10년(1504) ‘흥덕사를 원각사로 옮기게 하라’고 전교한다. 이듬해 장악원(掌樂院)을 원각사로 옮기도록 했다. 사찰로서 간신히 명맥을 유지하던 흥덕사와 원각사의 기능도 이때 완전히 중단된 것으로 보아야 한다. 예악(禮樂)을 관장하던 장악원의 기능도 기생과 악사를 관리하는 기관으로 전락했다. 조광조를 비롯한 신진사대부가 조선을 성리학적 이상국가로 만들겠다며 도학정치를 부르짖던 중종시대 원각사터는 집터로 팔려나갔다. 반정으로 중종이 집권한 직후 원각사 건물은 한동안 한성부 관아로 쓰이기도 했다. 이후 명종시대 잇따라 큰불이 나고,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원각사터는 빈터로 남게 된다. 원각사의 역사를 살펴봤을 때 오늘날까지 십층석탑과 탑비가 남아 있는 것은 기적에 가깝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인도 동북지방 산사태로 건설노동자 16명 사망·1명 실종

    인도 동북지방 산사태로 건설노동자 16명 사망·1명 실종

    인도 동북부 아루나찰 프라데시 주에서 22일(현지시간) 산사태로 건설노동자 16명이 사망했다. 인도 지뉴스 등에 따르면 이날 오전 3시쯤 주 내 타왕(지도) 지역 외곽에서 산사태가 나 호텔 건설 공사를 하던 노동자 숙소를 덮치면서 16명이 숨지고 3명이 다쳤다. 또 1명이 실종상태로 알려졌다.  히밀라야 산맥 동쪽 끝자락에 위치해 해발 2500m가 넘는 이 지역에는 최근 며칠간 많은 비가 내려 주변 여러 곳에서 전기와 도로가 끊겼다. 티베트 불교가 번성한 타왕은 인도가 실효 지배하고 있지만 중국이 영유권을 주장하고 있다.  류지영 기자 superryu@seoul.co.kr
  • “왜 빵빵 거리나”…15km 쫓아가 회칼로 운전자 위협 충격

    “왜 빵빵 거리나”…15km 쫓아가 회칼로 운전자 위협 충격

    경적을 울렸다는 이유로 다른 차를 15㎞나 따라가 운전자를 회칼로 위협한 40대 남성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마포경찰서는 특수협박 혐의로 임모(40)씨를 불구속 입건했다고 22일 밝혔다. 지난 8일 오후 10시 40분쯤 ‘쏘나타’ 승용차를 몰고 올림픽대로를 달리던 임씨는 청담대교 부근에서 서행 운전을 한다는 이유로 ‘그랜저’ 승용차와 시비가 붙었다. 그랜저 운전자가 경적을 여러 차례 울리자 임씨는 이에 보복하기 위해 추격했지만 놓쳤다. 이후 임씨는 한남대교 부근에서 아까 그 차를 발견하고 마포구 불교방송국까지 쫓아갔다. 그랜저를 멈춰 세우게 한 임씨는 운전석 창문을 5~6차례 두드리면서 갖고 있던 회칼로 운전자를 위협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경찰 조사 결과 임씨가 위협한 운전자는 이전에 경적을 울렸던 그랜저 운전자가 아닌 것으로 나타났다. 차는 ‘벤츠’였고, 색상도 전혀 달랐다. 임씨는 경찰 조사에서 “경적을 울리는 데 화가 나 따지려고 15㎞ 정도를 쫓아갔는데, 위협을 하고 보니 다른 차였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임씨가 조수석에 회칼을 소지한 점, 진술이 바뀌는 점 등을 수상히 여겨 구속영장을 신청했으나 기각됐다. 경찰 관계자는 “블랙박스 영상을 확인한 결과 그랜저 승용차와 시비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라면서 “추가 수사를 통해 범행동기를 밝혀내겠다”고 말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재밌는 일화에 담긴 성철 스님 가르침

    재밌는 일화에 담긴 성철 스님 가르침

    백련암 생활 등 비하인드 스토리 공개 ‘가야산 호랑이’ 성철(1912~1993) 스님을 수족처럼 시봉한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장경각) 최종판을 펴냈다. 2012년 성철 스님 탄생 100주년 때 가족사 일부를 뺀 단행본으로 냈다가 재출간한 511쪽 분량의 개정증보판. 2001년 출간 당시 30만명이 넘는 독자들이 읽어 ‘국민 불서(佛書)’ 반열에 올랐었다. 이번 최종판에는 성철 스님과 원택 스님의 첫 만남과 출가, 돈오돈수 논쟁, 치열한 구도정신 등 성철 스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일화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200쪽 분량의 ‘시봉이야기 그 후’를 더해 성철 스님 일상사와 해인사 백련암 생활,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을 시봉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들이 실감 나게 담겨 있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 생전 22년, 열반 후 23년, 통틀어 45년째 은사 성철 스님을 시봉하고 있어 불교계의 ‘효(孝)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 연세대 정외과 출신으로 1972년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산중생활을 하며 나무하다가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뱀에 물리고, 발로 걷어차이기 일쑤였다고 한다. 어설펐던 행자 시절 꾸중도 많이 듣고 뺨까지 맞았지만 성철 스님의 말씀을 붙잡고 수십년간 성철 스님 곁을 지켰다. 책의 특징은 원택 스님의 눈으로 바라본 큰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랄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생전에 잘한 일, 열반 후에 잘한 일 등, 성철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기억과 법문이 실렸고 은사 스님 추모 불사의 자취도 진솔하게 소개한다. 원택 스님은 “호랑이 같은 엄격함과 천진불 같은 순수함으로 많은 이들을 보듬었던 성철 큰스님이 산승(山僧)으로 살았던 58년의 삶과, ‘그림자 시봉’을 했던 저의 45년을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했다”며 “단순한 독서물이 아니라 성철 스님을 비롯해 해인사 백련암의 100년 역사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난치병어린이 돕기 3000배 철야정진

    조계종 사회복지재단은 23일 오후 7시~24일 오전 4시 서울 조계사에서 ‘국내외 난치병어린이 지원 3000배 철야정진’을 진행한다.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열릴 이번 행사에는 사회복지재단 산하 시설 종사자, 자원봉사단원, 후원자, 불교단체 회원, 일반신도 등이 1배(拜)마다 100원씩 모금해 백혈병과 심장병, 소아암 등 난치병을 앓는 어린이를 후원하게 된다. 조계사를 비롯해 용주사, 직지사, 동화사, 통도사, 고운사, 선운사, 신륵사, 수원사 등에서도 5월 부처님오신날 봉축기간 중 ‘3000배 철야정진’이 진행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홍도·신윤복, 그들의 일상 속으로

    김홍도·신윤복, 그들의 일상 속으로

    우리 옛 그림 가운데 인물을 주제로 하는 풍속인물화는 가장 많은 사랑과 관심을 받는 주제이다. 서울 성북동에서 1년에 두 차례 2주씩만 전시를 해 오던 간송미술관이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소장품들을 전시하기 시작한 지 어느덧 3년째. 2014년 DDP 개관과 함께 열리기 시작한 간송문화전의 여섯 번째이자 대미를 장식하게 될 전시는 그래서 풍속인물화를 중심으로 꾸며졌다. 오는 8월 28일까지 열리는 ‘풍속인물화-일상, 꿈 그리고 풍류’전에서는 풍속화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조선시대 대표화가 33명의 작품 80여점이 선보인다. 조선 500년 역사 속에 펼쳐진 시대를 대표하는 화가들의 작품을 통해 회화양식의 발전성쇠를 한자리에서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다. 풍속화는 조선시대 초기 중국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지만 16세기부터 고유 화풍이 형성되기 시작했고 겸재 정선은 성리학 이념을 바탕으로 진경풍속화를 창안했다. 18세기에는 심사정, 강세황이 중국 남종화를 수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기도 했으나 김홍도와 김득신, 신윤복 등 화원 화가들이 등장하면서 절정을 맞았다. 백인산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 연구실장은 “이번 전시에는 선조들의 현실적인 삶의 모습을 보여 주는 풍속화 외에도 불교와 도교에 관계된 초자연적인 인물상을 그린 도석화(道釋畵)들을 만나 볼 수 있다”면서 “시대의 흐름과 미감의 변화를 비교하면서 감상하면 조선회화의 가치가 더욱 돋보일 것”이라고 말했다. 전시는 문인과 백성의 ‘일상’, 현세의 행복과 내세의 구원을 바라는 ‘꿈’, 흥취를 풀어내는 문화인 ‘풍류’ 등 세 가지 주제로 나뉜다. 노동과 휴식을 보여 주는 일상 부문에선 들고양이가 병아리를 훔치는 모습을 익살스럽게 표현한 김득신의 ‘야묘도추’(野猫盜雛), 정선의 자화상으로 추정되는 ‘독서여가’(讀書餘暇) 등이 공개됐다. 수양버들에 파릇파릇한 잎이 돋아나기 시작하는 화창한 봄날에 길을 나선 선비의 모습을 묘사한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 ‘마상청앵’(馬上聽鶯)은 진경풍속화풍의 완결판으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봄기운을 이기지 못하고 문득 말에 올라 봄을 찾아 나선 선비가 길가 버드나무 위에서 꾀꼬리 한 쌍이 노니는 모습에 넋을 빼앗긴 채 서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다. 꾀꼬리 소리에 넋이 나간 선비의 모습이 돋보이도록 버드나무는 간결하게 처리해 측면의 길섶으로 몰아놓고, 선비 일행을 큰길 가운데에 내세운 채 나머지는 모두 하늘로 비워 둔 대담한 구도가 기가 막히다. 미디어 아티스트 이이남 작가는 이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미디어아트를 선보였다. 꿈 부문에서는 달마도로 이름난 김명국이 신선을 소재로 그린 작품들과 노승이 흰 구름을 타고 하늘을 나는 장면을 묘사한 김홍도의 ‘염불서승’(念佛西昇) 등 소망과 이상을 표현한 작품들을 볼 수 있다. 마지막 풍류 부문에는 ‘단오풍정’, ‘쌍검대무’(雙劍對舞)와 ‘미인도’ 등 신윤복의 작품이 다수 전시됐다.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울 핫 플레이스] 북한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한옥마을엔 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서울 핫 플레이스] 북한산 자락에 안긴 고즈넉한 한옥마을엔 역사와 문화가 숨쉰다

    서울 서북쪽 끝자락에 은평구가 놓여 있다. 은평구라 하면 수려한 북한산을 먼저 떠올릴 테고 그다음은 ‘개발 소외 지역’ 정도의 이미지가 다가오지 않을까 싶다. 개발은커녕 변변한 공연장 하나 갖추지 못했던 은평구는 최근 몇 년 사이 눈부신 문화적 발전을 했다. 지역 최고의 자연 자원인 북한산과 천년 고찰 진관사를 중심으로 전통 한옥이 모여 장관을 이루는 한옥마을, 한옥과 문학의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는 은평역사한옥박물관 등이 하나둘 들어섰다. 이참에 은평구는 곳곳에 깃든 문학적 역량을 길어 올려 전통과 문학의 고리를 조성하는 계획을 세웠다. 지난해 지정된 ‘한문화체험특구’에 다양한 문화를 들여다보고 체험할 수 있는 콘텐츠를 첨가하는 데 열정을 쏟고 있다. 진관동 기자촌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선 김우영 서울 은평구청장은 “역사와 문화를 입히면 사람이 온다”면서 “이곳에 문화예술을 모두 아우를 수 있는 종합적인 테마공원을 만드는 구상을 하고 있다”고 했다. 지하철 3호선 구파발역에서 이말산 자락을 따라 2㎞ 정도 들어가면 고즈넉한 한옥마을이 눈에 들어온다. 5만 2000㎡ 규모의 한옥지정구역은 2011년부터 조성에 들어갔다. 2014년 11월 155필지 분양을 완료했다. 38채가 건축허가를 받았고, 12채는 사용승인까지 마무리됐다. 몇 년 전까지도 허허벌판이었던 이곳에 40~124평짜리 한옥이 들어서서 마을 모양을 갖췄다. 단층 또는 2~3층짜리 한옥을 구경하면서 여유를 만끽하기 좋다. 은평구는 한옥마을로서 품격을 높이기 위해 올 초 한옥건축팀을 신설했다. 한옥 건축 심의 허가, 전통 한옥과 현대 건축의 장점을 살린 신한옥 적용, 한옥 유지 관리 지침 개발, 한옥마을 발전 방안 모색 등 다각도로 촘촘한 역할을 한다. ●전통 한옥을 체험하고 문학을 즐기는 마을 한옥마을 북쪽 끝자락에 자리한 ‘셋이서문학관’은 한옥마을 문화를 향유할 수 있는 곳이다. 총면적 142㎡ 크기의 은평 한옥체험관을 리모델링했다. 천상병과 중광, 이외수 작가의 그림과 시 등이 전시돼 있고 북카페가 있는 휴식 및 한옥 체험 공간으로 조성했다. 셋이서문학관에서 한옥마을을 가로질러 남쪽으로 내려가면 은평역사한옥박물관을 만나게 된다. 은평의 역사와 한옥을 체험할 수 있는 박물관으로, 지하 1층~지상 2층(총면적 2901㎡)으로 지었다. 지하 1층에는 장난감도서관과 교육실이 들어섰고, 1층에는 은평역사실이 있다. 은평역사실은 은평의 유래와 지리적 의미, 파발꾼과 사신 행렬, 은평뉴타운에서 발굴한 유물로 본 옛 서울 사람들의 문화, 북한산이 오랜 세월 간직한 유적 등을 소개한다. 2층에는 한옥을 체험하는 한옥전시실을 마련했다. 한옥의 변천사와 과학적 원리를 보고, 등록문화재 제229호 민형기 가옥 사랑채를 재현한 모형을 만날 수 있다. 한옥 모형을 조립하는 시간도 있다. 오는 6월 19일까지 아주 특별한 전시도 연다. ‘한국문학 속의 은평전’은 해방 전후 은평에 거주하던 문인 130여명의 작품 초간본과 은평에 거주했거나 연관 있는 문인들의 희귀본을 확인할 수 있다. 윤동주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정지용의 ‘정지용 시집’, 황순원의 ‘곡예사’ 등도 공개한다. 또 최인훈의 ‘광장’, 이호철의 ‘소시민’ 등 우리나라 분단문학 거목의 초간본을 전시한다. 이 전시와 관련해 오는 23일에는 녹번동 은평문화예술회관 숲속극장에서 이호철 작가를 초청해 ‘토크콘서트’를 진행한다. ‘무속 콘텐츠 관련 금성당의 보존과 활용을 위한 학술대회’와 ‘김훈 작가 초청 토크콘서트’도 줄줄이 기획해 놨다. ●숨은 역사문화의 발견, 진관사와 청담사지 은평구 통일로는 조선시대 9대 간선로 가운데 중국으로 통하는 의주로를 근간으로 한다. 의주로는 전통문화와 중국에서 유입되는 문화가 소통하는 관문 역할을 했다. 통일의 염원을 담은 통일로와 한국의 오악(五嶽)에 드는 명산 북한산 사이에는 은평구의 숨은 문화유산이 많다. 사찰 문화를 제대로 누릴 수 있는 곳이 대한불교 조계종 직할 사찰인 ‘진관사’다. 동쪽의 불암사, 남쪽의 삼막사, 북쪽의 승가사와 함께 서쪽의 진관사는 서울 근교의 4대 명찰로 손꼽혔다. 고려 현종이 1011년 진관대사를 위해 지은 진관사는 일제강점기에 항일운동의 근거지가 되기도 했다. 6·25전쟁 당시 폭격으로 폐허가 됐다가 복구돼 현재의 모습에 이르렀다. 매년 10월이면 진관사에서 수륙재를 펼친다. 조선 태조는 고려 왕실의 영혼을 기리는 한편 왕조가 바뀌어 동요한 국민을 달래고 조선 왕실의 안정을 꾀하기 위해 수륙재를 개설했다. 조선 왕실이 수륙재를 주로 진관사에서 진행해 국찰로 자리매김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126호로 지정된 진관사 수륙재는 화려하면서도 엄숙한 장관을 연출한다. 석가탄신일, 수륙재 기간이 아니더라도 진관사를 들러볼 만하다. 초가집 같은 정겨움에 눈길이 가는 보현다실은 아늑한 공간에서 차 한잔 누리기 좋다. 진관사에서 운영하는 산사음식연구소에서는 사찰 음식도 배울 수 있다. 진관사에서 이말산 쪽으로 향하다 보면 조선시대 단종 복위운동에 실패해 죽음을 맞은 세종대왕 6남 금성대군을 신격화한 금성당을 만날 수 있다. 이곳에서 통일로를 건너가면 화엄10찰 중 하나인 청담사지가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핵심 사상인 화엄사상을 전파하는 곳이었다. 정조가 선왕 영조의 애민정신을 기리기 위해 세운 금암기적비(서울유형문화재 제38호), 조선시대 공문서가 전해지던 파발로 등에서 역사의 현장을 발견할 수 있다. ●‘문화 은평’의 종착점은 국립한국문학관 은평구는 한옥마을과 역사한옥박물관, 진관사 등 지역의 역사문화 시설을 연계한 대규모 ‘문화테마파크’를 꿈꾸고 있다. 그 종착점에는 한국문학관이 있다. 김 구청장은 “기자촌의 역사, 그리고 은평구의 역사는 문학과 뗄 수 없는 관계”라면서 “우리나라 근대문학을 상징하는 이광수, 채만식, 이육사, 심훈, 주요한 등 수많은 작가들이 기자 활동을 하며 근대문학을 꽃피웠다”고 운을 뗐다. 기자촌은 세계사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기자들의 마을’이다. 1969년 박정희 정부는 한국기자협회에 5000평 규모의 국유지를 내줬다. 1974년까지 이곳에 터를 잡은 사람들은 대부분이 월급도 변변찮고 집도 절도 없던 기자들이었다. 정부의 의도를 떠나 한국 언론을 일으켜 세우던 기자 선후배들이 모여 살며 애환과 정서를 녹여낸 이곳은 기자 출신 문학인을 배출한 텃밭이 되기도 했다. ‘기자촌 옆 한국문학관’을 중심으로 은평구는 지역 곳곳에 남아 있는 문인들의 발자취를 네트워크로 이을 계획이다. 녹번동에 있는 정지용 초당(草堂), 1938년 일제 신사참배를 거부해 폐교된 숭실학교가 해방 후에 자리한 신사동 숭실중·고, 이호철의 불광동 주택과 최인훈이 지냈던 주택 등이 연결된다. 기자촌 인근에 이전할 예정인 한국고전번역원부터 한국문학관을 거쳐 올 하반기에 한옥마을 끝자락에 들어설 삼각산미술관까지 이어지면 은평구에는 거대한 문화고리가 완성된다. 김 구청장은 “정지용이 납북되기 전 1948~1950년에 거주했던 초당, 시인 윤동주·김현승과 소설가 황순원·김동인·주요섭 등이 다닌 숭실학교 등 은평에는 문학 인프라가 충분하다”면서 “한국문학관이 건립되면 문인을 포함한 문화예술인을 위한 레지던스, 명인마을, 한옥마을, 한옥역사박물관을 이어 문학테마구역이 완성될 것으로 본다”고 설명했다. 최여경 기자 cyk@seoul.co.kr
  • 45년째 성철스님 받드는 불교계 ‘효(孝) 스님’

    45년째 성철스님 받드는 불교계 ‘효(孝) 스님’

     ‘가야산 호랑이’ 성철(1912~1993) 스님을 수족처럼 시봉한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 시봉이야기’(장경각) 최종판을 펴냈다. 2012년 성철스님 탄생 100주년 때 가족사 일부를 뺀 단행본으로 냈다가 재출간한 511쪽 분량의 개정증보판. 2001년 출간 당시 30만명이 넘는 독자들이 읽어 ‘국민 불서(佛書)’ 반열에 올랐었다. 이번 최종판에는 성철 스님과 원택 스님의 첫 만남과 출가, 돈오돈수 논쟁, 치열한 구도정신 등 성철 스님의 진면목을 볼 수 있는 일화들이 오롯이 담겨 있다. 특히 200쪽 분량의 ‘시봉이야기 그 후’를 더해 성철 스님 일상사와 해인사 백련암 생활, 원택 스님이 성철 스님을 시봉하면서 느끼고 경험한 이야기들이 실감 나게 담겨 있다.  원택 스님은 성철 스님 생전 22년, 열반 후 23년, 통틀어 45년째 은사 성철 스님을 시봉하고 있어 불교계의 ‘효(孝) 스님’으로 널리 알려진 스님. 연세대 정외과 출신으로 1972년 성철 스님을 은사로 출가해 산중생활을 하며 나무 하다가 도끼에 발등이 찍히고, 뱀에 물리고, 발로 걷어차이기 일쑤였다고 한다. 어설펐던 행자 시절 꾸중도 많이 듣고 뺨까지 맞았지만 성철 스님의 말씀을 붙잡고 수십 년간 성철 스님 곁을 지켰다. 책의 특징은 원택 스님의 눈으로 바라본 큰스님의 삶과 가르침이랄 수 있다. 성철 스님의 생전에 잘한 일, 열반 후에 잘한 일 등, 성철 스님의 성정을 짐작하게 하는 다양한 기억과 법문이 실렸고 은사 스님 추모 불사의 자취도 진솔하게 소개한다. 원택 스님은 “호랑이 같은 엄격함과 천진불 같은 순수함으로 많은 이들을 보듬었던 성철 큰스님이 산승(山僧)으로 살았던 58년의 삶과, ‘그림자 시봉’을 했던 저의 45년을 재미있게 풀어보고자 했다”며 “단순한 독서물이 아니라 성철 스님을 비롯해 해인사 백련암의 100년 역사서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같은 듯 다른, 국보의 만남

    같은 듯 다른, 국보의 만남

    한국과 일본의 고대 불교조각을 대표하는 반가사유상이 국내 최초로 한자리에 전시된다. 국립중앙박물관은 ‘한·일 국보 반가사유상의 만남’ 특별전을 다음달 24일부터 6월 12일까지 기획전시실에서 개최한다고 20일 밝혔다. 전시엔 우리나라 국보 제78호 금동반가사유상(위·국보 78호 상)과 일본 국보 나라 주구(中宮)사 소장 목조반가사유상(아래·주구사 상)이 나란히 선보인다. 반가사유상은 한쪽 다리를 다른 쪽 다리의 무릎 위에 얹고 손가락을 뺨에 댄 채 생각에 잠긴 보살상이다. 인도에서 제작되기 시작해 중앙아시아, 중국을 거쳐 우리나라와 일본에 전해졌다. 한국과 일본엔 반가사유상이 많지만 높이가 1m 안팎인 대형 반가사유상은 한국의 국보 78호 상과 국보 83호 상, 일본의 주구사 상과 교토 고류(廣隆)사 상 등 양국에 각각 2점씩밖에 없다. 삼국시대인 6세기 후반 만들어진 국보 78호 상은 입가에 엷은 미소를 띤 채 두 눈을 지그시 감은 모습으로, 사유에 든 보살의 무한한 평정심과 숭고한 아름다움을 전하는 수작으로 일컬어진다. 화려한 장신구와 몸을 덮은 천의(天衣) 자락을 일정한 두께의 금동으로 주조한 점이 특징이다. 일본 주구사 상은 7세기 후반 아스카시대에 녹나무로 된 11개 목조 부재를 조합해 제작됐다. 상반신에 옷을 걸치지 않고 대좌 위로 치맛자락이 겹겹이 흘러내린 모습은 삼국시대 반가사유상과 유사하지만 대좌가 매우 크고 상체를 세워 고개를 들고 있는 점은 일본만의 독창적인 조형 감각으로 평가받는다. 주구사 상의 해외 전시는 처음이다. 일본 전시는 ‘미소의 부처님-2구의 반가사유상’이라는 제목으로 6월 21일부터 7월 10일까지 도쿄국립박물관에서 열린다. 중앙박물관은 “올해 초 도쿄국립박물관에서 공식 제안해 전시가 성사됐다”며 “이번 전시는 사유라는 인류 보편적 주제를 한·일 양국이 어떻게 이해하고 시각화했는지를 비교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승훈 기자 hunnam@seoul.co.kr
  • ‘창교 100주년’ 원불교의 오늘과 내일

    ‘창교 100주년’ 원불교의 오늘과 내일

    6대 종단 수장도 참석… 법어 봉정식 등 진행 다음달 1일 오후 2시 서울 마포구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국내외 원불교 교도 5만여명이 모이는 대규모 기념대회가 열린다. 이에 앞서 오는 25일 오후 7시 서울광장에선 한국의 근현대기에 희생된 영령들을 위한 특별천도재가 벌어진다. 국내 최대 민족종교인 원불교가 창교 100주년을 맞아 25일부터 다음달 1일까지를 ‘100주년 기념주간’으로 정해 다양한 행사를 진행한다. 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19일 서울 중구 플라자호텔에서 간담회를 갖고 “지난 100년을 돌아보면서 원불교의 창립 이후 소중하게 지켜졌던 정신적 자산과 재조명할 부분에 천착해 향후 1000년을 열어 가는 소중한 기점으로 삼고자 한다”고 밝혔다. 기념행사의 하이라이트이자 대미는 5월 1일 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을 기념대회 기념식. 해외 23개국 500명을 포함한 국내외 원불교 교무 1만 2000명과 교도, 국내 6대 종단 수장, 정·재계를 비롯한 각계 인사 등 5만여명이 모인 가운데 10개 국어로 번역된 법어 봉정식과 법훈 서훈식, ‘정신개벽 서울선언문’ 선포식을 진행한다. 원불교 개교 100년을 결산하면서 세상과의 소통, 미래를 향한 비전선포를 통해 창교자인 소태산 박중빈 대종사와 원불교의 으뜸교훈인 정신개벽 의미를 되살리게 된다고 한 원장은 설명했다. 이 가운데 법훈 서훈식은 소태산 대종사의 초기 제자 9인을 종사로 승급해 성인 추대하는 행사. 정신개벽과 섬김·봉사의 결집 메시지가 응축된 원불교의 이적, ‘백지혈인’(白指血印) 주인공들을 통해 원불교 정신을 반추하는 의미 있는 의식이다. 특히 행사 말미에 선포될 ‘정신개벽 서울선언문’에는 도덕부활과 자리이타 등 원불교 2세기 원불교인의 실천강령과 미래비전이 명확히 담길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앞서 25일 서울광장의 ‘해원·상생·치유·화합 특별천도재’는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최근의 세월호까지 근현대 100년간 억울하고 힘들게 죽음을 맞은 이들을 위로하고 아픔에 동행하는 행사. 유족들을 초청한 가운데 이념과 진영 논리를 떠나 한국인 모두의 열린 화합 천도재로 마련했다고 한 원장은 전했다. 이와 함께 28~30일 전북 익산 원불교 중앙총부 반백년기념관과 원광대 숭산기념관에선 ‘종교·문명의 대전환과 큰 적공’이란 주제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리며 29일 세종문화회관 세종홀에서는 ‘인류평화와 상생’을 위한 세계종교지도자포럼이 이어진다. 한편 원불교는 기념대회 주간 내내 모든 교도들이 소태산 대종사의 서울 교화 유적지를 순례하는 ‘개벽순례’를 진행하며 지난 1월 22일부터 5월 1일까지의 일정으로 빅워크(스마트폰 걷기 기부앱)에 ‘세상을 위한 화합의 발걸음’이라는 모음통을 개설해 걷는 만큼 기부를 하는 사회공헌 걷기 기부 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원불교 교도뿐 아니라 모든 대중의 걷기 참여를 통해 모인 기부금은 전액 유족과 공익단체에 기부된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미술이 그려 온 다양한 불교의 세계

    한국미술이 그려 온 다양한 불교의 세계

    한국 미술 속에 표현된 불교의 다양한 모습을 조명하는 ‘세 가지 보배 : 한국의 불교 미술’전이 경기도 용인 호암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다. 미술관 앞 전통정원 희원(熙源)에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요즘은 미술관 나들이하기에 최적의 시기다. 이번 전시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걸쳐 만들어진 불화, 사경, 전적, 불구 등을 통해 불교를 구성하는 세 가지 근본요소인 삼보(三寶)를 조망한다. 삼보란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부처를 뜻하는 불보, 부처가 남긴 가르침인 법보, 교법을 따라 수행하는 승려를 가리키는 승보를 말한다. ‘깨달은 자’라는 뜻의 부처와 ‘깨달음을 향해 가는 중생’이라는 의미의 보살은 대중의 예배와 공경을 받은 대표적인 존재로 여러 장르의 미술품에 표현됐다. 특히 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중적 인기를 누렸던 아미타불은 불교미술에서 중요한 주제가 됐다. 1부 ‘부처의 세계’에서는 우리나라 최초의 아미타불상인 고구려의 ‘금동 신묘명 삼존불’과 통일신라시대의 ‘신룡 2년명 사리장엄구’, 고려말 조성된 ‘은제 아미타삼존불좌상’, 사후의 심판과 죄업에 따른 무시무시한 고통을 표현한 ‘시왕도’, 석가모니 생애의 중요한 여덟 가지 업적을 담은 ‘팔상도’ 등이 선보인다. 구전으로 전해지던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문수보살의 인도를 받아 53명의 선지식을 찾아 떠난 선재동자의 이야기는 불법을 전하는 간절한 마음과 구법의 험난한 여정을 보여준다. 그런 까닭에 회화와 사경 변상도에 즐겨 표현된 주제다. 구전되던 가르침이 문자화된 경전은 삼국시대 이후 조선시대까지 우리나라에 전래됐고 다양한 형태로 제작되거나 간행됐다. 2부 ‘부처의 가르침’에서는 통일신라시대의 사경과 변상도, 우리나라 최초의 대장경인 고려시대 초조대장경, 조선시대 언해본 불경 등을 보여준다. 3부 ‘구도의 길’은 부처의 말씀을 바탕으로 수행과 실천의 삶을 사는 출가자의 모습과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생활용구, 예배와 불교의례에 사용된 공양구, 범종과 반자(청동 북)와 같은 범음구, 향완이나 합처럼 일상적으로 사용되는 공양구를 전시한다. 고려시대 청동은입사 향완과 향합, 청자 정병 외에 고려시대의 ‘석가삼존십육나한도’, 장승업의 ‘송하고승도’ 등을 감상할 수 있다. 전시는 11월 6일까지. (031)310-1801.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불국사 뒤편, 자비심 치솟게 하는 오르막 계단

    [서동철 기자의 문화유산 이야기] 불국사 뒤편, 자비심 치솟게 하는 오르막 계단

    ‘삼국유사’에 나오는 경주 불국사의 창건 설화는 학창 시절 국사 시간에도 배웠던 것 같다. 잘 알려진 대로 재상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 ‘전세(前世) 부모를 위해 석굴암을, 현세(現世) 부모를 위해 불국사를 창건했다’는 내용이다. ‘김대성이 공사를 시작했으나 완성하지 못하고 죽자 국가가 완성을 보았으니 30년 남짓한 세월이 걸렸다’고 적었다. 그런데 ‘불국사 고금창기(古今創記)’에 나타난 창건 시기와 주체는 전혀 다르다. 528년 법흥왕의 어머니 영제부인이 발원해 창건한 뒤 574년 진흥왕의 어머니인 지소부인이 중건했고, 훗날 김대성이 크게 개수했다는 것이다. ‘불국사 사적(事蹟)’에는 눌지왕(417~458) 시대 아도화상이 창건했다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어느 시점의 창건 이후 여러 차례 중건을 거쳐 경덕왕대 완성된 것으로 이해하면 무리가 없지 않을까 싶다. 불국사는 임진왜란으로 2000칸의 대가람이 모두 불타버리고 만다. 선조 37년(1607)부터 순조 5년(1805)에 이르는 40차례 수리 기록이 남아 있다. 최근 서울대 중앙도서관에서 확인된 ‘불국사 복역공덕기(復役功德記)’는 정조 3년(1779)의 복구 공사 과정을 적은 것이다. 당시 불국사 재건에는 지역 유림과 지방관도 힘을 보탰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승려 동은이 1740년 지은 ‘불국사 고금창기’는 ‘삼국유사’를 비롯한 몇 가지 사료를 짜깁기한 것으로 학계는 보고 있다. 신뢰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하지만 아주 먼 과거의 사실이 아닌 임진왜란 이후 불국사의 변화에 대한 언급만큼은 어느 정도 신뢰해도 좋지 않을까 싶다. 관음전처럼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시피 하다면 더욱 그렇게 하고 싶어진다. ●불국사 유명세에 가려… 대웅전 돌아가면 보여 하기는 유명세를 타는 문화재가 지천인 불국사에서 관음전을 기억하는 사람부터가 많지 않을 것 같다. 다보탑과 석가탑이 있는 대웅전을 지나 뒤로 돌아가면 나타나는 작은 전각이 관음전이다. 우리 절집을 두고 흔히 자연 지형을 거스르지 않고 살려 지은 것이 특징이라고 한다. 불국사는 전체적으로 밋밋한 오르막에 지어졌다. 그런데 관음전에 이르면 갑자기 지형이 산처럼 치솟는다. 관음전 계단은 연세 지긋한 어르신이라면 오르기가 망설여질 만큼 매우 가파르다. 자연 지형을 살렸다기보다는 인위적으로 땅을 돋운 듯하다. 급격한 계단의 기울기 또한 의도적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의도적으로 돋운 땅… 3대 관음성지 입지와 같아 하기는 한국의 ‘3대 관음성지’는 모두 섬이나 바닷가의 산에 자리잡고 있다. 양양 낙산사 홍련암, 강화 석모도 보문사, 남해 금산 보리암이 그렇다. ‘4대 관음성지’로 여수 향일암을 추가하면 입지의 공통점은 더욱 도드라진다. 대개 보살은 진리를 구하면서 중생을 제도(上求菩提 下化衆生)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지만, 관음은 중생에게 무한한 대자대비(大慈大悲)를 베푸는 존재다. 절대적 자비심으로 중생을 모든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권능을 실행하는 것으로 불교에서는 믿는다. ●‘절대적 자비’ 관음신앙 상징성 가치 새겨보길 관음신앙은 많은 불교 경전에 모습을 보인다. ‘화엄경’의 관음보살은 남쪽 바닷가의 흰꽃이 만발한 산에 머물면서 사랑으로 중생을 제도한다. ‘법화경’의 관음보살은 마음 깊이 그 이름을 간직하고 염불하면 어떤 어려움도 능히 벗어날 수 있게 한다. ‘아미타경’의 관음보살은 아미타불의 뜻을 받들어 중생을 보살피고 극락정토에 왕생하도록 한다. ‘능엄경’의 관음보살도 ‘법화경’에서처럼 현실에서의 고통을 벗어나게 해주는 존재다. ‘고금창기’에는 ‘관음전 주변에 동서 행각과 해안문(海岸門), 낙가교(迦橋), 취죽루(翠竹樓), 연양각(緣楊閣)과 관음보살이 지혜를 밝히던 석등 광명대(光明臺)가 일곽(一廓)을 이루고 있었다’고 묘사했다. ‘화엄경’에 나오는 관음보살 상주처를 상징하는 불사(佛事)와 작명(作名)이 어느 시기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관음신앙의 상징성이 극대화된 관음전의 건축적 가치가 제대로 부각된다면 불국사의 의미는 물론 재미도 더욱 커질 것이다. 서동철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서울신문이 만난 사람] “상생의 동양문명이 세계평화 이끈다…그 중심은 한반도”

    검은 갓, 흰 도포에 꼬장꼬장한 말과 몸짓…. 종교지도자 모임이나 국경일 행사 기념 촬영 때면 나란히 선 인사들 속에 독특한 외모의 한 노인이 유난히 눈길을 끈다. 지난 31년간 줄곧 국내 민족종교를 이끌어 온 한양원(93)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이 그 주인공이다.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 말고도 그가 가진 직함은 아흔을 넘긴 노인에겐 과하다 싶을 만큼 수두룩하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 공동회장,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 갱정유도 도정(대표), 한국서당문화진흥회 이사장…. 그중에서도 민족정기와 겨레얼 살리기는 평생을 바쳐 천착한 으뜸의 숙제다. 서울 답십리 사무실에서 기자를 만난 한 회장은 자타 공인의 ‘민족종교 대부’답게 대면부터 민족정기와 겨레얼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민족종교협의회를 31년간 이끌어 왔다. 민족종교협의회는 어떻게 시작됐나. -1983년 염보현씨가 서울시장으로 재임하던 무렵이었다. 당시 민족지도자인 안호상 박사에게 사직공원에 단군궁을 건립하는 데 20억원을 기부하겠다는 제의를 했다. 개천절, 삼일절, 광복절 행사를 함께 치르며 민족정기를 고취해 보자는 취지였다. 그런데 거의 성사를 앞두고 일부 개신교 측 반대로 무산되고 말았다. 당시 내가 갱정유도 총무를 맡고 있었는데 문제가 많다 싶었다. 그래서 당시 명맥만 유지하고 있던 민족종교친목회를 확대해 1985년 지금의 한국민족종교협의회를 탄생시켰다. 당시 34개 민족종교 교단이 참여했다. →지금 민족종교계의 형편은 어떤가. -흔히 알려진 대로 일제강점기 애국애족 운동에 누구보다 앞장선 게 민족종교였다. 3·1운동을 시작한 게 천도교였다면 임시정부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건 대종교였다. 독립군 양성을 위해 북만주에 무려 11개의 학교를 세운 것도 모두 민족종교였다. 조선총독부의 미움을 샀던 민족종교는 일제가 물러간 후에도 잔재가 남은 탓에 사이비 종교 취급받기 일쑤였다. 이런저런 탄압을 받거나 운영난으로 교세가 위축된 민족종교들이 적지 않게 도태됐다. 지금은 원불교, 천도교, 대종교, 갱정유도 등 12개 교단이 참여하고 있다. 이런 민족종교들은 교리와 운영 면에서 모두 잘 유지하고 있다. →한 회장이 대표로 있는 갱정유도는 일반인에겐 좀 생소하다. 어떤 종교이며 어떻게 인연을 맺었나. -선(仙)·불(佛)에 바탕하면서 인륜의 도리를 유도로써 밝혀 나가는 유불선 삶의 병행이 핵심이다. 기미년 독립만세운동 당시 태극기 300장을 직접 만들어 순창시장 사람들에게 나눠 주며 만세운동을 주도했던 도조 강대성이 해방 3년 전 전남 순창 회문산에 갱정유도회 본부를 만든 게 시작이다. 강 도조는 일본에 대적해 독립운동을 제대로 하자는 뜻을 세웠었다. 나는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입도했다. 내 인생의 좌표를 정한 시기였다. 좌우익 혼란기엔 전국에서 많은 사람들이 회문산의 갱정유도에 구름처럼 몰려들었다. →평생을 겨레얼 살리기에 천착해 살아오셨다. 왜 그렇게 겨레얼 살리기를 중시하는가. -일제강점기엔 우리말과 글을 못 쓰고 배우지 못하게 했다. 한마디로 우리 문화 죽이기다. 일본이 패망해 쫓겨 간 뒤엔 미국과 소련이 주둔한 채 민족이 반 동강 났다. 지금은 어떤가. 세계적으로 우수한 우리말과 글을 두고도 남녀 노소가 모두 영어 배우기에 혈안이다. 외래 문화가 판치고 그것을 우리 것으로 알고 가르친다. 건국 이념과 우리 문화, 역사를 다시 살려야 한다.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는 현재 외국에 17개 지부를 두고 있다. 그런데 국내에서보다 외국의 동포들이 더 겨레얼 살리기 운동에 적극적이다. 웃지 못할 현상 아닌가. →민족종교가 그 일을 주도할 수 있다는 말인가. -그렇다. 건강한 우리의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물질문명을 병행시키자는 것이다. 물질문명이 고도로 발달했는데도 정신문화는 반대로 추락한다. 정신이 퇴폐해진 가운데 경제만 성장하면 싸움과 다툼이 만연하고 안정된 평화를 찾을 수 없다. 과거 서당, 서원만 있던 시절에도 성현군자와 영웅호걸이 나와 세상을 밝혀 나갔다. 지금은 어떤가. 유치원부터 대학원까지 다양한 교육시설과 기관이 있는데도 정신문화는 날로 쇠락해만 가는 현실이 안타깝다. →민족종교계를 이끌어 오면서 다른 종교인들과 폭넓게 교류한 것으로 유명한데. -갱정유도 총무로 일하면서 많은 이들과 만나 조언을 듣고 함께 일했다. 서울에 처음 올라와 초대 성균관대 총장을 지낸 유교의 심산 김창숙 선생 비서로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작고한 통일교 문선명 총재와는 주역 공부를 놓고 가까워진 적이 있었다. 불교의 경봉·효봉·청담 스님, 개신교의 강신명·한경직 목사와도 허물없이 자주 만났다. 그 때문인지 지난해 금강산에서 남북 종교인 만남 때 북측 대표로 나온 강지영씨가 7대 종교 지도자 중 아는 사람이 나뿐이라며 분위기를 좀 풀어 달라고 주문했었다.(웃음) →요즘 종교의 가치 전도가 공공연하게 회자된다. 종교계를 어떻게 평가하나. -종교가 본질을 벗어난 채 자꾸 외도로 빠져드는 것 같아 안타깝다. 공자나 예수, 석가가 하신 말씀 그대로를 모르는 사람에게 전해서 하늘의 이치를 깨닫게 하고, 진리를 알게 하도록 하는 게 종교 아닌가. 황금에 매여 진리와 복음을 제대로 못 전해 사회가 어두워진 탓이 크다. 정치 사회도 마찬가지이겠지만 지도자들이 먼저 부패해졌으니 자기가 썩은 줄 모르고 국민이 썩은 줄만 알고 있다. 일반인들도 각성해야 한다. 옛날 배고프고 어렵던 시절에도 나와 내 가정보다 사회와 나라 걱정을 먼저 했다. 나 혼자 잘 먹고 잘살겠다는 생각에서 물러나 이웃도 나와 같이 잘 먹고 잘살 수 있는 길을 솔선해 살펴야 한다. →남북 관계가 꽁꽁 얼어붙었다. 지금의 위기 상황을 어떻게 보나. -우리 민족은 본디 피와 언어, 사상, 건국이념이 모두 하나였다. 지금 남북 관계가 유례가 없을 만큼의 경색국면이라고들 한다. 우리 본래의 민족정신을 빨리 되찾느냐 못 찾느냐가 관건일 것이다. 겨레얼을 먼저 살리자는 것이다. 통일은 미국, 중국, 러시아의 것이 아니다. 남이 해 주기를 바라서야 되겠나. 남과 북 모두 외세 주도를 벗어나 하루속히 우리끼리 손잡고 뜻과 힘을 모아야 한다. 이미 한참 전에 냉전이 끝났는데도 남북한만 갈라져 있다. 강대국들이 제 이해관계를 따져 통일 후 한반도에도 간섭하려 든다면 또다시 식민지가 되고 말 것이다. →역대 대통령의 당선 점괘를 봐 주는 등 주역에도 통달한 종교인으로 유명하다. 통일 전망을 한다면. -그동안 서양이 상극의 전쟁·물질 문명에 편승해 세계를 좌지우지하며 동양까지 끌고 다녔다. 이제 동양으로 운이 넘어왔다. 지금까지는 도적질 잘하는 사람(서양)이 성공했지만 앞으로는 상생과 평화, 그리고 도덕을 우선시하는 동양문명이 세계 평화를 이끌어 갈 것이다. 그리고 세계 중심국은 한반도가 될 것이다. 우리의 건국이념이 바로 온 인류가 함께 유익하게 살자는 ‘홍익인간’ 아닌가. 세계에서 1000여회의 외세 침략을 받으면서도 단 한 번 남을 침략해 본 적이 없는 나라다. 마지막까지 남북한이 시험을 겪는 중이다. 다시 말하면 임신부가 세계를 이끌어 갈 옥동자를 낳기 위한 산고의 순간으로 보면 된다. 내가 보기엔 통일의 기운이 10년 전후에 들었다. 과학문명의 발달 속도가 빨라지는 추세를 감안하면 통일이 더 앞당겨질 수 있다고 본다. →여생에 꼭 이루고 싶은 게 있다면. -일제강점기와 해방을 넘어 온 나라가 외래 문화에 휩쓸린 지 100년이 넘었다. 우리 것을 살려 낼 인재 양성이 시급하다. 그래서 수도권에 민족문화대학을 하나 세우는 게 꿈이다. 반만년 역사의 우리 문화와 정신을 제대로 알고 국민에게 오롯이 전달할 인재를 무료로 교육하는 구심체가 될 것이다. 또 하나는 예절 교육의 터전인 서당문화마을을 호남권에 꼭 하나 만들고 싶다. 전통서당문화진흥회와 갱정유도가 매년 한 차례씩 전북 남원에서 열고 있는 대한민국 서당문화한마당은 그 모태가 될 것이다. 이달 초 15회 서당문화한마당 행사엔 외국인을 포함해 150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루었다. 고무적인 현상이 아닐 수 없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한양원 회장은 ▲1923년 전북 남원 출생 ▲1933년 광의보통학교 졸업 ▲1937년 순천서당 및 용담서숙 수학 ▲1943년 지리산 입산 수도 ▲1946년 민족종교 갱정유도 입도 ▲1976년 갱정유도 총무·도무원장 및 도정(대표·현) ▲1985년 한국민족종교협의회 창립회장(현) ▲1991년 사단법인 한국민족종교협의회 회장(현) ▲1997년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 공동대표(현) ▲1999년 민족정기선양협의회 공동대표(현) ▲2001년 한국종교인평화회의 공동회장(현) ▲2002~2003년 개천절민족공동행사 공동위원장(남측대표) ▲2003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창립대표 ▲2005년 겨레얼살리기국민운동본부 이사장(현)
  • 무형문화재 ‘연등회’ 세계인에게 알린다

    부처님오신날(5월 14일)과 맞물려 진행될 국가무형문화재 제122호 ‘연등회’를 세계에 알리고 자원봉사에 나설 다국적 홍보·봉사단인 ‘2016년 연등회 글로벌 서포터스’가 발족했다. 7일 연등회보존위원회에 따르면 최근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공연장에서 열린 입재식에 최종 선발된 150명(한국인 75명)의 서포터들이 참석했다. 지난해 40개국보다 9개국 늘어난 49개국에서 300여명이 지원해 2대1의 경쟁을 뚫고 선발된 젊은이들이다. 모두 엄격한 서류 심사와 인터뷰를 거쳤다고 한다. 서포터스의 국적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 에콰도르와 같은 아메리카권을 비롯해 영국·독일·러시아 등의 유럽권, 중국·인도·싱가포르 등의 아시아권, 가나·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의 아프리카권을 모두 아우른다. 이들은 8일 오후 6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 전통문화예술공연장에서 출범식을 겸한 오리엔테이션을 한다. 이어서 1박 2일 템플스테이(서울 은평구 진관사) 등을 통해 역사·문화 교육도 이수한다. 이들이 두 달간 벌일 주요 활동은 세계인에게 연등회를 알리는 글로벌 홍보와 외국인들을 위한 통역·안내 자원봉사다. 특히 실시간 홍보에 주력할 예정이다. 교육과정과 활동을 페이스북을 통해 알리는 ‘SNS(소셜네트워크서비스) 일지 작성’을 비롯해 팀 활동 동영상을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후기 콘테스트’도 자체적으로 진행한다. ‘광화문 점등식’에선 깜짝 이벤트로 연등을 모티프로 한 율동 플래시몹을 선보이며 ‘생생문화재 탑돌이’에도 함께 참여한다. 서울노인복지센터에서의 ‘일일 어르신 배식’ 자원봉사도 예정돼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김성호 기자의 종교만화경 26〕말기 암 老스님의 5억 기부

     “비록 생전엔 나누고 살지 못해도 사후에라도 남에게 준다면 아름다운 죽음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평생 장기기증 운동을 하면서 살아온 노 목회자로부터 얼마 전 들은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남의 어려움에 너무 몰인정한 것 같다.”는 목사의 일갈에 고개를 끄떡였었다. 그 공감의 전언에 딱 맞춘 것처럼 나눔의 선덕(善德)을 베푼 80대 노 스님의 미담이 화제다. 췌장암으로 입원 투병 중인 전 부산 정주사 주지 지인 스님이 평생 모은 5억원 전액을 인재 양성에 써달라며 동국대에 기부했다는 그 이야기다.  ‘스님이 뭔 돈이 그리 많아?’ 세간 대중들의 의문이 쏠리는 대목인 것 같다. 그런데 그 사연을 알아보니 절절하다. 17세에 머리를 깎고 출가한 스님은 30년 넘게 교도소며 군 병영에서 봉사활동을 펼쳐 온 납자(衲子·입다가 버린 낡은 헝겊으로 기워 만든 옷을 입은 수행승)다. 차량 없이 대중교통을 이용해 전국 곳곳을 다니며 필요로 하는 이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고 휴지 한 장도 말려 쓸 만큼 청빈한 생활로 유명한 출가승이다. 암 세포가 간까지 전이돼 거동이 힘든 형편인데도 직접 은행을 찾아 예금통장을 해지해 동국대 기부금 계좌로 돈을 모두 이체했다는 후담이 잔잔한 울림을 전한다. 스님에겐 마지막일지도 모를 ‘속 깊은 기부’가 제대로 쓰여지길 바란다.  지인 스님의 덕행에 얹어 불교계에선 자주 회자되는 고사 하나를 떠올려본다. 명대 선승 운서 주굉의 ‘죽창수필’에 등장하는 유명한 이야기다. 군인이 죽어서 좋은 세상으로 가라며 천도재를 지냈는데, 정성이 모자란 탓인 지 음계(陰界)를 벗어나지 못했다고 한다. 아내의 꿈에 나타나 모처에 가 염불을 해달라고 부탁하면 정성들여 해줄 것이란 말을 전했다. 적은 돈을 갖고 그곳에 갔더니 돈 상관 없이 정성껏 염불을 해주었고 그날 밤 꿈에 죽은 남편이 나타나 음계를 벗어났다며 고마워했다는 이야기다. 불교 세계에 맞춰진 이야기지만 죽은 사람조차 배려와 나눔이 긴요하다는 교훈 쯤으로 들린다.  ‘요즘처럼 나 먹고 살기도 버거운 시절에 남 도울 여력이 어디 있나’ 거개의 대중들이 갖는 생각일 것이다. 하물며 최소의 비용으로 최대의 이익을 얻는다는 경제 논리에 휘둘릴 수 밖에 없는 무한 경쟁의 세상에서 내 것을 모두 줘 남을 돕는다고? 얼마 전 알파고와 이세돌이 펼쳤던 세기의 바둑 대결 때 자주 등장했던 그 ‘아생연후 살타(我生然後殺他)’가 더 설득력을 갖는 세상 아닌가. 그래서 나보다 남을 배려하고 나누는 덕행은 동서고금을 통해 고귀한 덕목으로 여겨져왔다.  특히 ‘인류가 가진 최고의 도덕률’이라는 종교에서 그 나눔과 배려는 종파와 교리의 구별 없이 우선시되는 공동 선(善)의 으뜸 가치로 꼽힌다.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 환자를 깨끗하게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어라’(마태복음 10:8) ‘네 손이 선을 베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잠언 3:27)…. 불교에서 생사의 고해를 건너 열반의 피안에 이르기 위해 닦아야 할 여섯가지 실천덕목이라는 ‘육바라밀’속 보시(布施)도 그 성경 경구와 맞닿아 있다. 재(財)보시, 법(法)보시, 무외(無畏)시의 세 보시가 있지만 그중에서도 집착없이 온전한 자비심으로 무조건 베푼다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는 최고의 경지로 존중된다.  나에게 이롭지 않으면 쳐다보지도 않는 각박한 세상이다. 그래도 분분한 설이 있긴 하지만 인간 심성의 바탕엔 분명히 착한 마음이 버티고 있다고 한다. 실제로 그 선한 심성은 기부와 기증이라는 배려의 나눔으로 도처에서 뻗치고 있다. 비록 노 스님의 5억원 기부처럼 많진 않더라도, 남을 위해 내 것을 다 내주진 못하더라도 조금 씩의 배려는 세상을 훨씬 더 좋게 만들어 놓지 않을까.김성호 선임기자겸 논설위원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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