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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조계종 최고 권위 ‘종정’ …연임되나 새로 추대되나

    조계종 최고 권위 ‘종정’ …연임되나 새로 추대되나

    現종정 진제 스님 내년 3월 임기 만료 ‘현 종정의 유임인가, 새 종정 추대인가.’ 한국 불교의 맏형 격인 조계종이 차기 종정 선출을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 17일 조계종 총무원에 따르면 현 종정 진제 스님의 임기 만료가 예정돼 이르면 다음달 5일 차기 종정을 선출하기 위한 종정추대회의가 열린다. 이에 따라 종정 추대를 위한 문중들의 움직임이 눈에 띄게 부산해지고 있다. 조계종 종정(宗正)은 종단의 신성을 상징하고 법통을 승계하는 최고 권위와 지위를 갖는다. 종단 징계자에 대한 사면, 경감, 복권뿐 아니라 비상시 최고 입법기구인 중앙종회를 해산할 수 있는 막강한 권한을 갖는 만큼 종단 정치 지형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다. 대부분 당대 최고의 선승(禪僧)이 추대돼 성철 스님을 비롯해 효봉, 청담, 고암, 서옹, 서암, 월하, 혜암, 법전 스님 등이 지냈다. 조계종의 헌법 격인 종헌에 따르면 종정 임기는 5년이며 임기 만료 3개월 전 차기 종정을 선출하도록 돼 있다. 현 종정은 2011년 12월 종정추대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제13대 종정에 선출돼 이듬해인 2012년 3월 공식 취임했다. 따라서 임기 만료는 내년 3월이지만 3개월 전 선출하도록 규정한 종헌에 따라 다음달 추대회의를 통해 제14대 종정이 선출될 예정이다. 종정추대회의에는 원로회의 의원들과 총무원장,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이 참여해 재적 과반수 이상의 찬성으로 종정을 추대한다. 조계종단사를 보면 특별한 변수가 없다면 현직 종정의 연임이 관례로 통한다. 하지만 ‘종단 변화를 위해 새 종정을 모셔야 한다’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현재로선 결과를 선뜻 예단할 수 없는 형편이다. 현재 가장 많이 거론되는 인물로는 한국 불교의 선맥을 계승했다는 평가를 받는 현 종정 진제 스님과 법주사 조실 월서 스님이 꼽힌다. 이 가운데 진제 스님은 1967년 당대 선지식으로 추앙받던 향곡 선사와 법거량을 통해 전법게를 받은 일로 유명하다. 33세에 경허·수월·운봉·향곡 스님으로 이어지는 법맥을 계승한 선승이다. 종정 추대 이후 줄곧 한국 불교의 간화선 전통 계승을 강조해 지난해 5월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세계종교지도자와 불자 등 20만명이 동참한 한반도 평화통일과 세계평화 기원 간화선 무차대회를 열기도 했다. 월서 스님은 한국 불교 정화운동 1세대로 꼽히는 금오 스님의 직계 상좌다. 동화사, 해인사, 봉암사, 제주 영주선원 등에서 오랫동안 안거 수행을 했으며 제4·5·6·8·10·12대 중앙종회의원과 제8대 중앙종회의장, 호계원장 등 종단 주요 소임을 맡아 종무행정에 밝은 스님이다. 2009년 금오선수행연구원을 설립해 은사인 금오 스님의 사상을 선양해 왔으며 2013년 법주사 조실로 추대됐다. 여기에 수덕사 방장 설정 스님, 오등선원 원장인 대원 스님 등도 꾸준히 하마평에 오른다. 특히 제8대 종정 서암 스님의 사서실장 겸 원로회의 사무처장을 역임한 원두 스님이 ‘차기 종정 추대와 관련, 조계종단 원로 스님들에게 드리는 공개서한’을 발표하는 등 일부 스님 사이에서 종정 위상과 추대 방식 개선을 요구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어 복잡한 양상을 띤다. 이와 관련해 조계종의 한 원로 스님은 “종전대로 현직 종정의 연임 가능성이 유력하지만 종단 안팎에서 종단과 불교계 개혁의 목소리가 적지 않은 만큼 의외의 새 종정 추대로 모아질 수 있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팔만대장경의 기운, 수능성공으로…해인사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너무나도 유명한 성철 스님(1912~1993)의 법어(法語)다. 1981년 1월, 조계종 종정으로 취임하면서 내린 이 말은 단번에 대중의 눈과 귀, 그리고 입까지 벌리게 하였다. 이후 성철 스님은 한국 선종을 대표하게 된다. 그가 젊은 시절 파계사(把溪寺) 성전암에서 8년간 장좌불와(長坐不臥)를 통해 공부했던 일화는 아직도 납자승들 사이에서도 전설로 구전되고 있다. 이러하니 현재도 그의 가르침은 늘 생생히 불교계에 선풍(禪風)을 고양시키고 있다. 바로 성철 스님이 1936년 동산(東山)스님으로부터 사미계를 받은 곳이 경상남도 합천군 가야산에 자리잡은 해인사(海印寺)였다. 이후 1993년 11월 4일 향년 82세(법랍 58세)를 일기로 입적할 때까지 해인사의 공부하는 큰 스님으로 머물렀다. 해인사는 순천의 송광사, 양산의 통도사와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공부하는 법보(팔만대장경)사찰로 유명하다. 그러다 보니 예로부터 대장경판을 보관하고 있는 ‘글이 있는 절’이라 하여, 해인사는 큰 시험을 앞둔 불자들에게는 방문 1순위의 불법(佛法) 높은 발원(發願) 사찰로 유명하다. 특히 매년 11월만 되면 수능 대박을 기원하는 중생들의 간절한 1000배 합장, 무릎 꺾는 소리가 경내 곳곳에 그치지 않는 이유가 있다. 수능을 앞둔 11월, 합천 해인사다. ● 팔만대장경의 불력으로 수능 성공을 기원하다 해인사는 802년 신라 애장왕 3년에 ‘순응’과 ‘이정’이 창건한 후 918년에는 고려 태조가 국찰로 삼은 유서 깊은 사찰이다. 1000년이 넘는 시간동안 해인사 역시 화마의 불길을 피해가지 못해 기록으로 남은 화재만 5차례가 넘는다. 따라서 창건 당시의 건축 원형은 알 수가 없고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부분 조선 말엽때 중건된 것들이다. 이 중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국보 52호 장경판전(藏經板殿)은 조선 초기의 대표적인 건축물로서 숱한 화재 속에서도 불길이 닿지 않은 영험한 곳으로 현재는 외부인의 출입을 엄격히 통제하고 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장경판전은 대장경판의 부식을 막기 위하여 창의 아랫부분은 넓고, 윗부분은 좁게 만들어 습기가 경내에 머무르지 않도록 통풍을 유도하는 건물로 지어졌다. <사진4. 팔만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 입구. 위 사진 양 옆으로 팔만대장경 경판이 보관되어 있다.> 또한 흙바닥에는 숯, 소금, 횟가루, 모래를 넣어 습도를 조절하도록 하고, 장경판전 자체를 사찰 제일 위쪽에 배치하여 인적이나 화마의 위험으로부터 멀리하도록 하였다. 또한 선조들의 건축술을 확연히 느낄 수 있는 것은 바로 전각의 방향이다. 특이하게도 남향에서 약간 비스듬하게 방향을 돌린 서남향으로 건물을 배치하여 하루동안 모든 경판에 햇살이 한 번은 닿도록 만들었다. 바로 이 장경판전에 보관되어 있는 것이 팔만대장경이다. 역시 국보 32호,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어 있는 해인사 대표문화재다. 현재는 일반에 공개되지 않고 있어 관람객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을 좀 더 살펴보자면, 해인사에 보관되어 있는 대장경판은 총 8만 1258판이며, 경판의 크기는 세로 24㎝ 내외, 가로 70㎝ 내외이며 두께는 2.6㎝, 내지 4㎝, 무게는 3~4kg이어서 전체 무게는 약 280톤에 이르는 거대한 규모다. 원래는 ‘고려대장경’이라고 불려야 할 팔만대장경 명칭의 유래는 장경 판수가 8만이 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 보다는 불교에서 말하는 팔만 사천 번뇌에 대치하는 8만 4천 법문을 수록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불교에서는 팔만이라는 숫자는 불력(佛力)으로 다다를 수 있는 ‘큰’ 숫자를 대표하기도 한다. 팔만대장경은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대장경판이면서도 제작 연대가 정확하게 알려진 경판이기도 하다. 고려 고종 23년(1236)부터 38년(1251)까지 16년에 걸쳐 완성한 대장경으로 부처의 힘으로 외적을 물리치기 위해 만들었다. 원래는 강화도성 서문 밖의 대장경판당에 보관되었다가 신원사를 거쳐 태조7년(1398) 5월에 해인사로 옮겨져 오늘까지 이르고 있다. ● 거대한 사찰 규모에 또 한 번 놀라, 발길 바쁜 관람객들 해인사에는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판전 이외에도 눈여겨 볼만한 것들이 많다. 우선 절의 입구에 있는 일주문은 조선 초기 양식으로 사찰 제일 첫 관문이다. 모든 중생이 성불의 세계로 나아가는 길의 첫 문을 상징한다. 일주문을 지나 봉황문을 건너가면 제 3문인 해탈문을 만나게 된다. 유독 해탈문 아래에 높이 33 계단이 있는 데 이는 도리천, 즉 삼십삼천(三十三天)의 삼라만상의 우주를 의미한다. 이 해탈문 아래 오른편에 가야산의 산신과 토지가람신을 모시는 국사단이 있다. 바로 이 앞에 노란 소원지 한 가득 모여있는 나무가 있어 '수능성공’을 기원하는 글귀가 많다. 해탈문을 지나 구광루를 넘어가면 해인사 중심법당인 대적광전이 있다. 해인사는 화엄경의 주불인 비로자나부처님을 모시기 때문에 대웅전이 아닌 대적광전이 중심 법당이다. 바로 이 법당에서 수험생을 자녀로 둔 수많은 불자들이 그들의 염원을 위해 108배에서 3000배까지 합장발원하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해인사에는 이외에도 이름난 전각들이 많다. 보경당, 청화당, 적묵당, 궁현당, 관음전, 경학원, 명부전, 응진전, 독성각, 선열당, 퇴설당, 극락전, 조사전, 대비로전 등 우리나라 3대 사찰 명성에 걸맞는 규모의 법당이 많아서 이를 다 둘러보려 해도 한 나절은 족히 걸린다. 11월 중순, 수능을 앞둔 수험생을 자녀로 둔 부모님들의 간절한 발원 염원이 종교를 넘어 모두 해인사 하늘 위 비로자나불에 닿기를 기원한다. <해인사에 대한 여행 10문답> 1. 꼭 가봐야 할 정도로 중요한 여행지야? -우리나라 3대 사찰 중의 하나다. 경상남도를 방문할 일이 있으면 일부러라도 시간을 내어 가 보는 것도 좋다. 특히 해인사는 겨울 풍경 좋기로 유명한 곳이다. 2. 누구와 함께? -누구라도. 특히 나이드신 부모님이 계시다면 함께. 3. 주소와 입장료는? -경남 합천군 가야면 해인사길 122 (055)934-3000/ 입장료(개인기준) 성인 3000원, 청소년 1500원, 어린이 700원/ 동절기 오전 8시 반~오후 5시(하절기는 오후 6시까지) 4. 감탄하는 점은? -가야산 깊은 산속에 이렇듯 큰 절이 있다니. 해인사로 오르는 길 왼편에서 만나는 계곡의 아름다움, 늦가을 떨어지지 않은 은행나무 잎에서 불어오는 노란 흔들림. 5. 명성과 내실 관계는? -해인사는 생각보다 훨씬 큰 절이다. 홍길동전에서 묘사되는 부정적인 모습의 이유는 아마도 사찰 규모의 거대함때문이었으리라. 6. 꼭 봐야할 장소는? -장경판전, 대적광전, 구광루, 봉황문, 일주문 7. 먹거리 추천? -해인사 주변은 예로부터 관광지로 잘 발전되어 있는 곳이다. 그러나 대개는 단체 관광객을 맞이하기 위한 곳이 많기 때문에 의외로 가족 단위 나들이객이 들어갈 만한 식당은 많지 않은 듯하다. 해인사 아랫마을에 소소한 식당들이 산채비빔밥 위주로 메뉴를 구성하고 있다. 8. 홈페이지 주소는? -www.haeinsa.or.kr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합천영상테마파크 적극 추천함. 10. 총평 및 당부사항 -해인사 소리길을 걷는 관람객들이 많다. 해인사는 가야산 깊은 곳에 위치하고 있기 때문에 천천히 가야산을 등산하듯 걸어 올라가다보면 제대로 된 해인사 나들이가 될 수 있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마주 앉은 간송과 백남준 “우리 세상 좋지 아니한가”

    마주 앉은 간송과 백남준 “우리 세상 좋지 아니한가”

    텔레비전 앞에 나무로 된 토끼 조각상이 놓여 있다. 토끼가 들여다보는 것은 달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을지도 모르는 둥근 달. 백남준의 작품 ‘달에 사는 토끼’다. 텔레비전이 갖고 있는 정보매체로서의 풍부한 가능성을 달에 비유하며 ‘달은 가장 오래된 TV’라는 작품을 발표하기도 했던 백남준의 설치작품 뒤로 우리 옛 그림 한 점이 보인다. 오동나무 너머로 보름달이 환하게 떠 있는 장승업의 ‘오동폐월’이다. 오동나무 둥치 아래에 노란 국화가 활짝 피어 가을의 정취가 물씬 나는 그림의 주인공은 고개 돌려 달을 바라보는 얼룩무늬 강아지다. 시대와 장르, 표현 방식은 완전히 다르지만 두 대가는 달이라는 소재를 통해 우리의 상상력을 자극하며 시적 감수성을 일깨운다. ●작품 간 연관성에 의미 두어 전시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 디자인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간송과 백남준의 만남: 문화로 세상을 바꾸다’는 간송이 소장한 전통 회화와 백남준의 미디어 아트를 연결시킨 전시다. 백남준 10주기를 맞는 해의 막바지에 열리는 전시로 간송미술문화재단과 백남준아트센터가 공동 주관했다. 간송은 조선 중기 화단의 대가 김명국과 남종화의 대가 심사정의 대표작품, 기이하고 독특한 품행으로 많은 일화를 남긴 조선후기 화가 최북의 산수화 및 인물화, 조선말의 대표적 화원화가 장승업의 작품들을 출품했다. 백남준아트센터는 1950년대 독일 ‘플럭서스’ 활동기의 자료들부터 1960년대 퍼포먼스 영상인 ‘머리를 위한 선’, 1970년대 대표작 ‘TV 부처’와 ‘TV첼로’, 1980년대 이후의 대표적 설치작품인 ‘비디오 샹들리에 1번’, ‘코끼리 마차’, ‘달에 사는 토끼’, ‘TV시계’ 등 28점의 작품을 내놓았다. 전시는 단순히 작품의 나열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연관성에 의미를 두어 작품 간 연결을 시도했다고 재단 측은 설명했다. 우리의 DNA 속에 자리잡고 있는 한국성과 동양정신 속의 ‘이상향’이라는 주제가 그 연결고리다. 심사정의 ‘촉잔도권’은 굽이굽이 험준한 산길과 일렁이는 물길을 건너야 갈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으로 가는 여정을 그린 그림이다. 연속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자연경관을 8m가 넘는 비단 두루마리에 담았다. 심사정이 62세 되던 해에 심혈을 기울여 그린 이 그림과 짝을 이룬 작품은 백남준의 ‘코끼리 마차’다. 마차에 TV를 가득 실은 작품은 장구한 인류사의 발달 과정을 함축적으로 담고 있다. 두 작품 모두 사람과 사람의 미래에 대한 작가들의 낙관적인 믿음을 보여 준다. 연담 김명국은 불교의 선과 도교의 신선사상으로 이상향을 꿈꾸었다. 수성(壽星)이라고도 불리는 남극성을 의인화한 수노인이 거북을 끌고 가는 모습을 그린 김명국의 ‘수로예구’는 백남준이 종이에 잉크로 그린 작품 ‘머리를 위한 선’과 짝을 이뤘다. 최북은 호가 ‘붓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생관이지만 실제는 유유자적하고 은거하는 선비의 이상향을 사랑했다. 그의 작품 ‘관수삼매’는 가부좌한 스님이 흐르는 물을 바라보면서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자 하는 모습을 그렸다. 이 작품은 TV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응시하는 부처를 설치한 백남준의 ‘TV 부처’와 병치시켰다. 옛 그림과 현대 거장의 작품에는 끝없이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며 성찰의 계기를 삼아야 한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다. 복록을 기원하는 장승업의 ‘기명절지’는 부귀를 상징하는 ‘비디오 샹들리에 1’과 함께 전시됐다. ●긍정적 세계관·치열한 창작혼 연결 주제를 놓고 작품을 선별하다 보니 좀 무리하게 엮은 듯한 느낌도 배제할 수 없다. 유불선 삼교회통을 그린 최북의 작품 ‘호계삼소’와 백남준의 텔레비전 로봇 ‘슈베르트’ ‘율곡’ ‘찰리 채플린’을 엮은 것이나 파격과 일탈이라는 주제 아래 백남준이 가담했던 플럭서스 운동과 김명국의 ‘철괴’를 연결시킨 것은 좀 어색하다. 화면이 현란하게 움직이는 물성이 강하게 부각되는 비디오 아트 작품에 고아한 전통 회화가 묻혀버리는 아쉬움도 있다. 간송미술문화재단 전성우 이사장은 “언뜻 서로 다르게 보이는 김명국·심사정·최북·장승업 그리고 백남준의 예술세계에는 세상을 낙천적으로 바라보는 긍정성과 이를 바탕으로 한 치열한 예술창작의 태도가 일관되게 흐른다”며 “엄혹한 시기에 우리문화를 지켜낸 간송 전형필과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린 백남준의 만남은 특별한 에너지를 보여 줄 것”이라고 이번 공동기획의 의미를 강조했다. 전시는 내년 2월 5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구원·희망의 종교 위한 ‘내부자’들의 진단

    구원·희망의 종교 위한 ‘내부자’들의 진단

    지금, 한국의 종교/김근수, 김진호, 조성택, 박병기 성해영, 정경일 지음/메디치미디어/348쪽/1만 8000원 오늘날 종교는 믿음보다 불신을 자아내는 경우가 많아 보인다. 뉴스에는 종교와 관련해 눈살 찌푸려지거나 귀를 막고 싶은, 때로는 욕을 하게 되는 크고 작은 사건들이 넘쳐난다. 길을 가다 이따금 맞닥뜨리던 ‘불신지옥’의 구호는 혐오·극우 집회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온 세상의 전쟁의 70~80%가 종교 전쟁이라는 말이 나온다. 바야흐로 종교의 위기다. 화쟁아카데미 대표인 조성택 고려대 철학과 교수는 우리 사회 종교의 현주소를 다음과 같이 요약한다. “종교가 사람들에게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종교 자체가 사회적 정의의 실현과 화합에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교회와 사찰의 대형화, 신앙의 상업화, 종교적 권위를 빙자한 권력의 사유화는 오늘날 한국 종교의 민낯이다. 세습과 파벌, 그로 인한 갈등과 분쟁은 종교계의 일상이다. 보시와 헌금은 세상과 공동체를 위한 나눔이 아니라 개인적 욕망을 달성하는 수단으로 부추겨지고 있다.” 이 책은 지난해 2월부터 11월까지 모두 아홉 차례에 걸쳐 열렸던 포럼 ‘종교를 걱정하는 불자와 그리스도인의 대화’의 결과물이다. 중견 학자들이 자신의 종교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 ‘내부자 시선’으로 진단한다. 조 교수는 지나친 깨달음 지상주의를 오늘날 한국 불교의 큰 문제로 지적한다. 불교가 사회 문제에 대해 방관자나 관전자의 모습을 보이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며 한국 불교는 도인 불교가 아니라 사회적 실천의 불교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 연구실장은 개신교가 사랑의 종교가 아닌 증오의 종교로 퇴행하고 있다고 비판한다. 해방 정국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개신교의 배타적 공격성은 오늘날 우리 사회의 미시적 영역에서 여러 적그리스도(악마)를 만들어내 공격을 퍼붓고 있다는 것이다. 김근수 해방신학연구소 소장은 일부 사제와 신자들의 공헌을 제외하면, 대부분 가난한 민중들의 삶이나 고통과 별로 관계없는 길을 걸어온 한국 가톨릭 교회가 잘못된 권위주의를 버리고 낮은 곳으로 가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해결책은 무엇일까. 각 종교는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저마다의 옳음이 있다. 서로의 경계를 넘어 각자의 옳음을 모아서 전체를 이루려는 화쟁(和諍)적 대화가 방법으로 제시된다. 이에 대해 김경재 목사는 함석헌 선생의 말을 빌려 “현대 사회에선 언론이 옛날의 종교 제사장 역할을 하고 있다”며 “화쟁론으로 갈등적 사회 문제를 풀려면 바른 언론과 열린 광장이 조성되어야 한다”고 총평했다. 홍지민 기자 icarus@seoul.co.kr
  • 부인 마리안느 곁으로… 캐나다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 떠나다

    부인 마리안느 곁으로… 캐나다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 떠나다

     지난 7월 부인 마리안느 일렌의 죽음이 임박하자 “곧 따라가겠다”고 편지를 썼던 캐나다 출신 음유시인 레너드 코헨이 82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10일(이하 현지시간) 그의 공식 페이스북 페이지에는 “전설적인 시인이며 가수인 레오너드 코헨이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알리게 돼 깊은 유감을 표한다”며 “음악계에서 가장 존경받고 심오한 낭만주의자를 잃었다”는 성명이 게재됐다. 영면 시간이나 장소, 사인 등 그의 마지막 순간에 대해서는 아무런 정보가 주어지지 않았다. 다만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며칠 뒤 장례식이 열릴 것이라고만 성명은 전했다.    몬트리올의 유대인 가정 출신인 고인의 히트곡에는 ´수잔´과 ´아임 유어 맨´ 등이 있으며 지난달 14번째 음반인 ´유 원 잇 다커(You Want It Darker)´가 유작이 됐다. 2008년 로큰롤명예의전당에 헌정됐다. 유대인이지만 얼마 안있어 선불교에 귀의했던 것으로도 유명하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5년 동안 음악계를 떠나 로스앤젤레스 동쪽 마운트 발디 선명상센터에서 거주하기도 했다.   그는 그곳 생활을 정리한 뒤 “내 삶은 엄청난 무질서와 캐오스(혼돈)로 가득 차있다. 그래서 거기서 조금이나마 원칙들을 바로세웠다”고 돌아본 뒤 “그래서 음악에로 돌아가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생전에 자신을 “파토스(정념)의 고귀한 사제”와 “음울함의 대부”라고 불렀다. 하지만 그의 가사에는 늘 위트와 유머가 숨쉬고 있었다.    또 코헨은 1960년대 그리스에서 만난 평생의 연인 마리안느 일렌에 대한 노래들 ´버드 온 더 와이어´ ´할렐루야´ ´소롱 마리안느´ ´헤이 댓츠 노웨이 투 세이 굿바이´ 등을 내놓은 것으로도 이름높다. 그는 지난 7월 부인 일렌의 죽음이 가까워오자 “정말 나이를 먹고 우리의 몸이 산산이 스러질 때가 온 것 같소이다. 내 생각에 아주 금방 당신을 따라갈 것 같으오”라고 편지를 썼다.    당연히 저스틴 트뤼도 캐나다 총리, 영화배우 러셀 크로와 미아 패로, 베트 미들러, 팝 가수 알라니스 모리세트 등이 일제히 트위터 등을 통해 애도의 글을 올리고 있다. 임병선 선임기자 bsnim@seoul.co.kr    
  • 1500여 시민단체 ‘박근혜 퇴진행동’ 발족

    민중총궐기 투쟁본부와 시민사회단체연대회의 등 시민단체 1500여곳이 9일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퇴진행동)을 발족하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었다. ‘퇴진행동’은 기자회견문에서 “이미 대통령직을 수행할 자격, 능력이 없음이 증명된 대통령이 퇴진을 거부하고 있어 혼란이 수습되지 않고 있다”며 “내려오지 않겠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끌어내리는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오는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리는 민중총궐기에서 촛불집회를 이어 갈 계획이다. 대학가와 종교계, 시민사회단체의 시국선언도 이어졌다. 고려대 교수 507명은 이날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박 대통령과 청와대 비서진, 검찰 수뇌부, 새누리당 의원들의 일괄 사퇴를 요구했다. 교수들은 “시민사회와 국회가 동의한 특별검사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서울상인유니온 등 중소상인 30여명과 한국사교과서국정화저지네트워크, 대한불교조계종 종무원 212명 등도 정권 퇴진을 촉구하는 시국선언을 했다. 한편 경찰은 12일 민중총궐기 대회 직후 예정된 ‘시민 10만명 청와대 방향 행진’을 광화문광장 세종대왕상 이남까지만 하도록 주최 측에 제한 통고했다. 사실상 행진을 금지한 것으로 풀이된다. 주최 측인 민주노총은 “국민의 목소리를 듣지 않겠다는 불통의 금지 통고”라고 비판했다. 강신 기자 xin@seoul.co.kr
  • 朴대통령 만난 자승 스님 “꽃을 버려야 열매 맺는다”

    박근혜 대통령은 9일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을 청와대로 초청해 국정 현안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고 청와대가 밝혔다. 청와대에 따르면 자승 스님은 최순실 사태로 인한 시국 상황에 우려를 표명하면서 서둘러 민생안정과 국정 정상화가 이뤄져야 한다는 뜻을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특히 자승 스님은 불교 경전인 ‘화엄경’에 나오는 ‘수목등도화(樹木等到花) 사재능결과(謝才能結果) 강수류도사(江水流到舍) 강재능입해(江才能入海)’라는 구절을 인용해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지혜로 삼아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 구절은 ‘나무는 꽃을 버려야 열매를 맺고, 강물은 강을 버려야 바다에 이른다’는 뜻, 즉 ‘버려야 얻는다’는 뜻이다. 이를 두고 자승 스님이 박 대통령에게 ‘모든 것을 내려놓는 자세를 보여야 해법이 보인다’는 취지의 설법을 한 게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박 대통령은 주로 자승 스님의 말을 경청하면서 특별한 언급을 하지는 않았다고 청와대는 전했다. 김상연 기자 carlos@seoul.co.kr
  • 미 공영 라디오, 박근혜-최태민 다룬 드라마 소개

    미 공영 라디오, 박근혜-최태민 다룬 드라마 소개

    미국의 공영 라디오인 NPR은 7일 우리나라의 TV 드라마 ‘제4공화국’의 한 장면을 싣고 박근혜 대통령과 최태민 일가와의 베일에 싸인 관계들이 과거 한국 드라마에서 실제로 극화됐었다고 보도했다. 1995년 문화방송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에서 박정희 대통령(독재자)은 큰 딸(현 대통령)이 최순실의 아버지로 사이비 종교 교주인 최태민과 어울려다니는 것을 알고 있다고 인정하고 있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과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최태민과 박근혜 대통령과의 관계에 대해 나누는 장면이 주목된다. 김(재규) : 큰 영애에 관한 문제입니다. 박(정희): 최 그 머시기라는 ‘목사’ 말하는 거요? 김(재규) : 네, 그렇습니다…그 자가 큰 영애의 후광을 얻고 지나친 짓을 하고 있습니다. 구국여성봉사단이라고 하는 것은 허울뿐이고, 업체에서 찬조금 챙기고, 또 각종 이권에 개입하고, 여자.. 문제까지..저..여기 보고내용입니다. 박(정희) : (보고서는 보지도 않으며) 내 그 문제는 대충 들어서 알고 있어요. 근혜 말은 그게 아니던데. 그건 이쯤에서 그만 둡시다. 가보세요. NPR은 최씨 집안과 박근혜 대통령의 관계를 상세하게 설명하고 주한미국대사관이 “고 최태민은 박근혜의 ‘몸과 정신을 완전히 지배’한 ‘라스푸틴’과 같은 인물이며, 최태민의 자식들은 그 결과 엄청난 부를 축재했다.”고 작성한 보고서를 인용했다. NPR은 박 대통령이 아무런 공직도 없는 40년간의 친구인 최순실에게 국정에 대한 광범위한 접근과 의사결정 권한을 주었고 그 결과, 최씨가 수백만 달러를 챙기는 길을 만들어 주었다는 혐의를 받고 있다고 보도했다. 최순실씨는 1994년에 사망한 최태민의 딸이며, 최태민은 알려진 대로 불교, 기독교 및 샤머니즘의 요소들을 혼합해 만든 영생교라는 사이비 종교를 창시했다. 그는 1970년대 현 대통령인 박근혜를 알게 되면서, 박 대통령의 죽은 어머니와 통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삼국유사 목판 사업 차질 불가피…전문가들 “가치 훼손·왜곡” 우려

    삼국유사 목판 사업 차질 불가피…전문가들 “가치 훼손·왜곡” 우려

    경북도와 군위군이 박근혜 정부의 문화융성 사업에 발맞춰 추진하는 삼국유사(국보 제306호) 목판 복원 사업이 일부 차질이 불가피하게 됐다. 전문가들이 사업의 부당성을 지적하며 반대 입장을 밝히고 나서자 도 등이 이를 최대한 수용할 방침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8일 도 등에 따르면 최근 서울에서 역사학·국문학·민속학·불교사 관련 전문가 등 1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삼국유사 목판사업에 대한 학술적 검토 대토론회’를 가졌다. 삼국유사 목판 복원 사업 가운데 ‘삼국유사 경북도본’ 목판 판각 논란에 따른 의견 수렴 차원에서였다. 삼국유사 경북도본은 현존하는 삼국유사 조선 중기본과 초기본을 집대성해 새로운 형태의 삼국유사 판본을 만드는 것이다. 하지만 이번 토론회 토론자 11명 중 과반이 훨씬 넘는 8명이 이에 반대했다. 이들은 원형이 없는 삼국유사 경북도본을 새롭게 만들 경우 민족의 보물로 인정받고 있는 원 삼국유사 가치 훼손과 왜곡이 우려되는데다 디지털화가 대세인 요즘의 시대성과도 거리가 멀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이에 도 등은 오는 11일 ‘경북도 삼국유사 목판 복원 자문위원회’를 열어 의견을 청취한 뒤 최종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서원 경북도 문화관광체육국장은 “내부적으로 삼국유사 경북도본 목판 판각 사업은 하지 않는 것으로 결론났지만 최종적으로 자문위원회의 의견을 수렴할 필요는 있다”면서 “디지털화하거나 전자책으로 만드는 방안을 적극 고려하겠다”고 말했다. 경북도와 군위군은 내년까지 국비와 지방비 34억원을 들여 현존하는 삼국유사 판본을 모델로 조선 중기본과 초기본, 이를 집대성한 경북도본을 1세트씩 판각해 전통 방식으로 인출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최근까지 조선 중기본과 초기본 목판 복각(復刻)을 완료됐다. 안동·군위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민자고속도 통행료 최종목적지서 한번에 결제

    민자고속도 통행료 최종목적지서 한번에 결제

    2020년 통행권 안 뽑고 자동 부과 오는 11일 0시부터 8개 민자고속도로도 중간에 요금을 정산하지 않고 최종 목적지 영업소에서 통행료를 내면 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재정고속도로(정부 예산으로 건설)와 연결된 8개 민자고속도로에서 ‘무정차 통행료 시스템’(원톨링·One Tolling)을 시행한다고 7일 밝혔다. 현재는 일반고속도로와 민자고속도로를 연이어 이용할 때 중간영업소에서 정차하고 요금을 정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까지 갈 경우 천안~논산고속도로 풍세영업소와 남논산영업소에서 각각 통행료를 중간 정산해야 했다. 하지만 원톨링 시스템이 구축되면 최종 목적지인 광주 영업소에서 전 구간의 요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원톨링 서비스는 고속도로에 설치된 영상 카메라로 차량 이동 경로를 파악해 최종 목적지에서 통행료를 일괄 수납하는 시스템이다. 원톨링 시스템이 적용되는 고속도로는 천안∼논산, 대구∼부산, 서울∼춘천, 서수원∼평택, 평택∼시흥, 부산∼울산, 수원∼광명, 광주∼원주 민자고속도로다. 운전자들은 원톨링 시스템 구간을 지날 때 정차하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릴 수 있다. 다만 기존 중간영업소가 완전히 철거되기 전까지는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안전하게 서행(시속 30㎞)해 통과해야 한다. 결제 시스템도 개선돼 전국 12개 민자고속도로에서 모두 신용카드(후불교통카드 기능 탑재) 결제가 가능해져 현금을 따로 준비해야 했던 불편이 사라질 전망이다. 국토부는 2020년부터 전국 모든 고속도로에서 통행권을 뽑지 않고 주행 중 자동으로 통행료가 부과되는 ‘스마트톨링’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무지개떡 천국’ 싱가포르, 다민족의 얼굴 닮은 이곳

    [건축가 황두진의 무지개떡 건축을 찾아서] ‘무지개떡 천국’ 싱가포르, 다민족의 얼굴 닮은 이곳

    본격적인 싱가포르의 역사는 19세기 초인 1819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영국 동인도 회사의 토머스 스탬퍼드 래플스 경이 국제무역항을 개발한 것이 그 시초로, 아직도 그의 이름이 여기저기에 남아 있다. 1867년에는 대영제국의 정식 식민지가 됐다가 2차 세계대전 당시에는 일본의 지배를 받았다. 이후 다시 영국령이 됐다가 1963년 말레이시아의 일부로 독립했다. 그러나 인종과 사상 등의 차이로 인해 1965년 8월 9일 초대 총리 리콴유, 초대 대통령 유소프 빈 이스학 등이 주도해 말레이시아로부터 분리 독립, 현재에 이른다. 작년인 2015년, 독립 50주년을 성대히 기념했다. 잘 알려져 있는 것처럼 싱가포르는 도시국가다. 면적은 719.1㎢로 605.25㎢인 서울보다 넓고, 인구는 2015년 말 기준 567만 명으로 990여만 명인 서울의 절반이 넘는다. 단순히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인구밀도가 서울의 절반 정도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서울 정도의 면적에 한 국가가 들어가다 보니 국가로서의 인구밀도는 엄청나게 높다. 국가로서의 싱가포르 인구밀도는 무려 6801.63명/㎢로 단연 아시아 최고다. 대한민국 전체의 인구밀도가 505명/㎢인 것을 감안하면 엄청나게 높은 수치다(물론 동등 비교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면적이 작은 국가의 인구밀도는 별도로 취급한다). 흔히 싱가포르 하면 고층 건물들이 숲을 이룬 모습만 상상하게 되지만 사실 나라 전체가 이런 것은 물론 아니다. 도심지나 교외의 신개발지를 벗어나면 의외로 저밀도 지역과 녹지가 많다. 싱가포르의 별명 중 하나가 ‘가든 시티’인 것도 우연은 아니다. 드물지만 리콴유 전 총리의 사저가 있는 옥슬리처럼 단독주택이나 저층 공동주택이 자리잡은 지역도 있다. 게다가 간척 사업을 활발히 해 건국 이후 지금까지 국토 면적을 무려 23%나 늘려왔다. 좁은 국토에 민간용, 군사용을 포함해 공항이 6개나 되는 것도 특이하다. ●중국식 상가 주택, 상업 밀도 높이는데 유리 국토가 극히 제한적인 나라이다 보니 싱가포르에서 공동주거는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개국 이후 주택정책은 정부의 최우선 핵심 사업의 하나였다. 2015년 4월 2일자 연합인포맥스 기사에 의하면 싱가포르 정부는 한국으로 치면 토지주택공사(LH)에 해당하는 주택개발위원회(HDB)를 주축으로 해 전체 주택 시장에서 공공주택의 비율을 무려 85%까지 끌어올렸다. 게다가 그중에서 임대주택이 차지하는 비중은 겨우 3%에 불과하다. 리콴유 전 총리 이후 강력하게 실행해 온 자가소유확대 방침의 결과다. 사회적, 경제적 조건이 여러모로 다른 대한민국과의 단순 비교는 섣부르겠지만, 싱가포르 국민의 거의 대부분은 정부 주도로 지어진 자기 집에 살고 있는 셈이다. 상업 및 교역을 경제력의 근간으로 삼아 온 싱가포르에서는 이미 이전부터 다양한 유형의 주거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한국과 비교했을 때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상가주택이다. 현지에서 ‘숍하우스’라고 부르는 이 유형은 기본적으로 3층이며 전체적으로 좁고 긴 대지에 자리 잡고있다. 짧은 변이 거리에 면하기 때문에 (이를 ‘frontage’라 한다) 상업의 밀도를 높이는 데 매우 유리하다. 중국에서 기원한 유형으로서, 건물에 대한 세금을 도로에 면한 폭으로 매겼기 때문에 이렇게 좁아진 것이라는 설이 있으나, 결과적으로 상업 시설이 밀집한 거리를 만드는 데 크게 기여한다. 사실상 이런 유형은 싱가포르뿐 아니라 전 세계의 상업이 발달된 도시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다. 동남아시아에 특히 많으며 일본의 ‘나가야’(長屋) 또한 이런 유형이다. 다만 한국에는 이런 유형을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오히려 대지의 긴 변이 거리에 면하는 경우가 더 흔하다. 이런 유형의 건물이 많이 모여 있는 곳이 싱가포르의 어퍼 크로스 스트리트 일대다. 가로의 남쪽 면에 잘 보존된 상가주택이 줄 지어 서 있다. 넓게 보면 차이나타운에 속한다. 중국계가 대다수인 싱가포르지만 그래도 차이나타운은 엄연히 따로 존재한다. 이 중에서도 가장 붐비는 골목의 하나인 파고다 스트리트의 한복판에 있는 ‘차이나타운 역사박물관’은 3층 상가주택을 복원한 것이다. 내부의 가구, 집기까지 잘 갖춰 놓아 당시의 생활상을 쉽게 볼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단면 모형을 보면 좁고 긴 평면 안에 중정이 두 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중정을 중심으로 환기가 필요한 두 개의 시설, 즉 주방과 화장실이 바로 인접해 있는 것이 특이하다. 아마 많은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내린 결론이었을 것이다. ●1973년 완성된 두 건물… 관광 명소로 변화 이 상가주택들은 이제 일종의 역사 유물이 돼 관광객들의 인기를 독차지하고 있다. 그러나 이들을 통해 형성된 복합 건축의 전통은 여전히 현재형이다. 싱가포르를 위시한 동남아시아 일대는 우리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복합건축이 보편화돼 있다. 그야말로 ‘무지개떡 천국’인 셈이다. 그중에서도 싱가포르 거대 주상복합의 대명사는 바로 ‘골든 마일’(Golden Mile Complex)과 ‘국민 공원’(People´s Park Complex)이다. 두 건물 모두 1973년에 최종 완성됐을 뿐 아니라 건축가 또한 같았다. 싱가포르 근대건축의 선구자로 일컬어지는 윌리엄 림과 그가 이끄는 설계회사인 DP 아키텍츠였이었다. 그리고 앞서 언급한 싱가포르 주택개발위원회의 주도로 진행된 공공 프로젝트라는 공통점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이 연재에 등장했던 세운상가 등 한국의 상가아파트들에 비해서는 다소 연도가 늦은 편에 속한다. 그러나 윌리엄 림이 유럽과 미국에서 공부한 해외파인 데다가 싱가포르의 지정학적 성격이 겹쳐 국제적인 지명도는 비교하기 어렵다. 두 건물과 윌리엄 림에 대한 자세한 영문 정보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할 수 있다. 특히 골든 마일은 당시 세계적으로 유행하던 일련의 건축적 사고들, 즉 메가스트럭처, 일본의 메타볼리즘, 브루탈리즘 등 중에서 실제로 지어진 거대 사례의 하나로 평가받으면서 국제 건축계에서 상당한 명성을 얻은 바 있다. 이는 동시에 당시의 한국 또한 일정한 동시대성을 확보하고 있었음을 역으로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것이다. ●사선 외관의 미학, 강남고속터미널과 비슷 골든 마일은 상업과 업무, 주거의 다양한 기능이 거대 구조물에 들어가 있는 건물이다. 아래서부터 순차적으로 500개의 주차공간, 411개의 상점, 226개의 사무실, 68개의 주거 가구가 있다. 멀리서 보면 반포의 강남 고속버스터미널을 연상케 하는 외관이다. 경사 구조물로 된 본관과 그 옆의 고층 타워 두 동으로 돼 있는데, 타워에는 북한 대사관이 입주해 있다고 들었다. 택시에서 내리자 태국어 간판이 여럿 눈에 보인다. 오가는 사람들 또한 싱가포르의 화교들이나 말레이족들과는 다소 다른 외모다. 싱가포르의 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어서 ‘미니 방콕’으로 불린다는 소문대로다. 건물 한쪽에 태국식 불교 제단이 있고 사람들이 향을 피우며 경배를 올리고 있다. 건물을 보러 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상당히 경비에 신경을 쓰는 눈치다. ‘촬영금지’라는 푯말도 보였으나 마음속으로 사과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탄다. 최고층인 16층에서부터 계단을 따라 걸어 내려간다. 오래된 건물이지만 의외로 건물의 상태가 나쁘지 않다. 1960~70년대 한국 상가아파트들이 예외 없이 벽에 금이 가 있고 페인트가 벗겨져 있는 것에 비하면 큰 차이다. 그나마 이 건물도 싱가포르에서는 일종의 슬럼으로 간주된다고 하니, 한국의 건물 관리 문화가 얼마나 낙후돼 있는지 알 수 있다. 주거 부분은 기본적으로 개방형 편복도 구조라 환기나 채광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 게다가 정면은 계단식, 혹은 테라스 식으로, 그 앞에 펼쳐지는 마리나 베이 일대의 풍광을 즐기기에 손색이 없다. 주거 부분의 최하층에는 일종의 운동장이 있다. 기둥을 밝은 노란색으로 칠해 분위기가 경쾌하다. 원형의 창문이 건물 여기저기에 나 있는 것도 특이하다. 계단실 바닥이 작은 모자이크 타일로 돼 있는데 계단코 부분의 타일 높이를 달리해 발이 미끄러지지 않게 하는 논슬립을 만들고 있는 등, 디테일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테라스 증축 덕지덕지… 다소 음울한 내부 그러나 아래로 내려갈수록 분위기는 다소 음울해진다. 특히 사무실이 밀집된 중간 부분은 거대한 사선의 공간으로서, 건축의 기계미학을 경험하기는 좋으나 결코 쾌적하다고는 할 수 없는 곳이다. 저층부의 상가는 층고가 높아서 시원시원한 공간이기는 하나 이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다니기에는 어딘가 부족해 보인다. 다만 이것은 건물 자체의 본질적인 문제라기보다 현재 건물을 사용하고 있는 형태에서 비롯된 것이기는 하다. 내부를 좀더 잘 정리하고 조명, 간판 등을 업그레이드하면 훨씬 더 좋은 분위기가 될 것이다. 다소 부정적인 의미를 담아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물론 세운상가 등에 비하면 관리 상태나 사용 형태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 그러나 외부에서 바라보는 골든 마일은 왜 싱가포르에서 툭하면 이 건물을 헐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오는지 설명해 주지 않아도 알 수 있을 정도다. 테라스를 불법 개조, 증축하지 않은 가구가 거의 없다. 국민을 심지어 물리적으로 때려가면서 교육시킨 것으로 유명한 싱가포르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대부분의 건물들이 말쑥한 싱가포르에서 불법 증개축이 판을 치는 건물이 존재한다니? 그것도 세계적으로 잘 알려진 건물이. 오죽하면 의회에서 이 건물 주민들의 이기심과 무관심을 통렬하게 비판할 정도다. 다민족 국가로서 싱가포르는 특정 민족의 전통이나 문화를 우선하기 어렵다는 고민을 안고 있다. 그래서 오히려 일찍부터 지역주의를 벗어나 국제적인 건축에서 해답을 찾으려는 경향을 보여 왔다. 현대건축의 대부 격인 렘 쿨하스는 싱가포르의 이러한 탈맥락적 특징을 ‘포괄적 도시’(The Generic City)라는 명칭으로 설명했다. 다만 싱가포르 사람들에게 이 건물은 본격적인 국제화가 이루어지기 전, 소위 ‘싱가포르적’ 문화를 담는 노력을 한 사례로 종종 인용된다. 이 건물의 미래에 대한 논의는 그간 다양하게 진행돼 왔으나 여전히 철거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한국의 세운상가가 겪었던 것처럼 극적으로 재생의 길을 걷게 될지, 아닐지 여전히 의견이 분분하다. 비슷한 시기에 지어져서 찬사와 비난을 동시에 받아온 한국과 싱가포르의 두 건물이 맞게 될 운명은 어떤 것일까.
  • 11일부터 8개 민자고속도로 ‘무정차 통행료 시스템’ 도입

    11일부터 8개 민자고속도로 ‘무정차 통행료 시스템’ 도입

     오는 11일부터는 8개 민자고속도로도 중간에 요금을 정산하지 않고 최종 목적지 영업소에서 통행료를 내면 된다. 국토교통부와 한국도로공사는 11일 0시부터 재정고속도로와 연결된 8개 민자고속도로에서 ‘무정차 통행료 시스템’(원톨링·One Talling)을 시행한다고 7일 밝혔다.  현재는 일반 고속도로와 민자고속도로를 연이어 이용할 때 중간영업소에서 정차하고 요금을 정산하고 있다. 예를 들면 경부고속도로와 천안~논산고속도로를 이용해 광주까지 갈 경우 천안~논산고속도로 풍세영업소와 남논산영업소에서 각각 통행료를 중간 정산해야 했다. 하지만 원톨링 시스템이 설치되면 최종 목적지인 광주 영업소에서 전 구간의 요금을 한 번만 내면 된다.  원톨링 서비스는 고속도로에 설치된 영상카메라로 차량 이동 경로를 파악, 최종 목적지에서 통행료를 일괄 수납하는 시스템이다. 원톨링 시스템이 적용되는 고속도로는 천안∼논산, 대구∼부산, 서울∼춘천, 서수원∼평택, 평택∼시흥, 부산∼울산, 수원∼광명, 광주∼원주민자고속도로다.  이용자들은 원톨링 시스템 구간을 지날 때 정차하거나 속도를 줄이지 않고 그대로 달릴 수 있다. 다만 기존 중간영업소가 완전히 철거되기 전까지는 도로 폭이 좁기 때문에 안전하게 서행(시속 30㎞)해 통과해야 한다.  이와 함께 결제 시스템이 개선돼 전국 12개 민자고속도로에서 모두 신용카드(후불교통카드 기능 탑재) 결제가 가능해져 민자고속도로 이용 시 현금을 따로 준비했던 불편이 사라질 전망이다.  국토부는 2020년부터는 전국 모든 고속도로에서 통행권을 뽑지 않고도 주행 중 자동으로 통행료가 부과되는 ‘스마트톨링’(Smart Tolling) 시스템을 도입할 계획이다.  세종 류찬희 선임기자 chani@seoul.co.kr
  • 제주 불교 성지순례길 ‘선정의 길’ 개장

    제주 불교 성지순례길 ‘선정의 길’ 개장

    원희룡(앞줄 가운데) 제주지사가 6일 서귀포시 약천사에서 열린 불교 성지순례길인 ‘선정의 길’ 개장식에 참석해 관계자, 신도들과 함께 출발하고 있다. 선정의 길은 총 6곳의 순례길 중 5코스로 길이는 42㎞다. 제주 연합뉴스
  • “600년간 명맥 끊긴 전통사경 원형 복원 우리가 해낼 겁니다”

    “600년간 명맥 끊긴 전통사경 원형 복원 우리가 해낼 겁니다”

    ‘전통사경 복원, 우리가 해내렵니다.’ 전통사경 분야에서 한국사경연구회(회장 허유지)는 독보적인 단체로 꼽힌다. 2002년 김경호(현 한국전통사경연구원장·고용노동부 지정 ‘전통사경 기능전승자’)씨의 주도로 결성돼 전통사경의 조사와 연구, 전시, 홍보, 교육, 공개강의, 특강, 학술대회 등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종교계, 학계, 서예계, 문화예술계 종사자부터 일반인까지 500여명의 회원이 소속돼 있으며 이 가운데 60여명이 전통사경 복원 작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기, 불교 교리 전파와 교육의 핵심이었던 전통사경은 고려시대에 특히 흥성해 중국에 전문 인력을 역수출한 유일한 분야였으며 원(元)의 지배를 받던 시기 중국의 요청으로 여러 차례 고려의 사경 전문가가 100명씩 파견돼 금은자경을 제작해 주고 돌아왔다고 한다. 한국사경연구회는 조선시대 이후 600년간 명맥이 끊긴 전통사경을 철저하게 원형 그대로 복원하는 데 치중하고 있다. 2002년 동국대 박물관 초대전 형식의 제1회 한국사경연구회원전을 시작으로 스리랑카 전통사찰 사경법회, 중국 지난시에서의 한국사경연구회원전, 중국 4대 명찰로 꼽히는 영암사의 전통사경법회, 태산 옥황정의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화 발원 행사를 비롯해 국내외에서 괄목할 만한 행사를 이어 오고 있다. 특히 미국으로 진출해 2010년 미국 중서부 최대 미술관인 LA카운티미술관의 ‘한국 전통사경의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를 주제로 한 특강 및 금사경 제작시연회, 2012년 뉴욕시 랜드마크 건물로 지정된 복합문화공간 플러싱 타운홀의 특별초대전과 특강 및 시연회, 2014년 LA한국문화원의 초대전과 특강 및 시연회 등을 열어 외국인들의 시선을 끌기도 했다. 김경호 한국사경연구회 명예회장은 “한국 전통사경은 세계사적 의의와 가치를 갖고 있고 최고 성취를 이룬 예술이지만 계승 발전시키자는 인식을 가진 사람이 많지 않다”며 “사경 분야 종사자들이 안정되게 창작 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 글자에 번뇌 사라지고 한 글자에 평안 찾아오네

    한 글자에 번뇌 사라지고 한 글자에 평안 찾아오네

    “아교 물에 금가루를 섞는 금니 과정이 쉽지 않아요.” “사경 작업하는 도중 호흡 조절이 잘 안 돼요. 자꾸 떨려서….” 지난달 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인사동 미술세계 3층. 사경 작가들의 열띤 토론이 이어지고 있었다. 각자 작업하고 있는 사경의 정보를 나누고 작업 과정의 애환을 털어놓는 자리. 자주 모임을 가졌기 때문인지 서로 편하게 안부를 묻는가 하면 그간 있었던 사소한 일들을 허물없이 털어놓는다. 2시간여의 모임을 마친 작가들은 나름의 성과와 보람이 있었다며 밝은 얼굴로 하나둘씩 자리를 떠났다. ●수행에서 힐링으로… 사경 경험 인구 300만명 추산 흔히 불교경전 베껴 쓰기 정도로 일반에 알려진 사경(寫經)이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각종 동호회며 연구 모임이 잇따라 생겨나는가 하면 전시회도 크게 늘고 있다. 종전 신행이나 수행 차원에 머물렀던 사경이 대중문화로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불교뿐만 아니라 개신교, 천주교, 원불교 등 각 종교에서 사경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고 있다. 현재 사경을 한 번이라도 해 본 경험이 있는 사람만도 300만여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최근 일고 있는 사경 붐은 대체로 종교적 의식과 수행에 밀접하게 연결돼 있지만 점차 정신적인 안정과 힐링의 방편으로 번지는 추세다. 바쁜 일상으로 마음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조급증과 우울증 등을 치유할 수 있는 대안으로 뜨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종교계 전문가들은 경전 내용을 한 자 한자 정성스럽게 필사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움직임을 파악할 수 있어 자아 성찰의 시간을 갖게 해 준다고 말한다. 사경을 알고 해 온 지 7년이 됐다는 박경빈(55·서울 서대문구 홍제동)씨는 “서예 활동을 오래 한 뒤 사경에 빠져 지금은 현대적 양식의 사경 작업을 주로 하고 있다”며 “정성을 쏟아 집중하는 과정에서 마음의 안정을 느껴 주변에도 적극 권하고 있다”고 전했다. 요즘 유행하는 사경은 크게 세 개의 분야로 구분된다. 컴퓨터사경과 일반사경, 그리고 전통사경이 그것이다. 특히 컴퓨터 자판을 이용한 사경은 각종 동호회를 통해 온라인상에서 이뤄지는데 아직 크게 주목받지 못하지만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등장해 눈길을 끈다. 비록 손으로 필사하는 것만큼의 효과를 얻을 수는 없지만 사경이 지닌 느림의 미학이 잘 반영된 장르로 꼽힌다. 일반사경은 옅게 인쇄된 사경지 위에 연필이나 경필, 붓펜으로 그대로 베껴 쓰는 사경을 말한다. 가장 일반적인 사경으로 불교계에서 널리 퍼져 있다. 대부분의 신자가 신행의 영역에서 수행 방법으로 택하고 있으며 때로는 불상의 복장이나 탑의 복장물로 봉안하기 위해서도 많이 쓰인다. 이런 경우 대개 일회성 사경 행사로 마무리된다. 기독교, 이슬람교, 원불교 등 다른 종교에서도 일반 사경의 붐은 걷잡을 수 없이 확산 추세에 있다. 서양에선 일찍부터 성경을 필사하는 전통이 있었고 수도사들의 주요한 일과이기도 했다. 이슬람교 역시 쿠란을 필사하는 일은 성스러운 신앙 행위로 간주된다. ●금은가루 섞은 장엄경 사경… 극도로 세밀한 작업 이런 일반사경은 웬만한 사찰에선 상시의 신행, 수행 행위로 권장되고 있다. 사찰이 주도하는 문화 행사에서 사경 체험이 빈번하게 열리고 템플스테이 과정에도 흔히 포함된다. 각 사찰에서 주최하는 사경법회도 늘고 있다. 그런 열기 때문인지 불교 종단과 각 단체들이 대중포교 차원에서 적극 나서고 있다. 1997년부터 조계종과 동방연서회는 불교사경대회를 꾸준히 열고 있고 1998년부터 파라미타청소년연합회가 개최하는 전국청소년사경공모전에는 해마다 2만여명이 참여해 열띤 경쟁을 벌인다. 여러 공모전에서 사경을 예술의 한 분야로 채택하고 있으며 2008년 원광대 서예학과와 대학원은 전통사경 과목을 개설하기도 했다. 2009년에는 세계서예전북비엔날레에서 사경이 주 전시 행사의 한 부분으로 채택됐고 2010년 고용노동부는 전통사경 직종을 전승해야 할 종목으로 채택해 기능전승자 1명을 지정하기도 했다. 개신교계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2014년 CBS 창사 60주년 기념 ‘한국 교회 성경 필사본 전시회’가 대성황을 이뤄 연장 전시된 게 대표적인 예다. 서울 성북구 돈암동 길상암에서 사경법회를 지도하고 있는 행오 스님은 “당시 출품된 작품들이 시종일관 흔들림 없이 똑같은 필치로 마무리된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며 “불교계와 기독교계의 사경 기법을 교류한다면 종교 교류와 사경의 대중화 차원에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한지에 먹물로 하는 전통사경은 일반사경에 비해 조금 더 전문적이다. 저본 경전을 옆에 두고 자신의 필체로 촘촘히 서사하는 서예적 성향이 짙어 ‘삼매 속의 예술’로 평가되기도 한다. 묵서 사경에서 조금 더 발전하면 아교에 금가루, 은가루를 섞어 극도로 세밀하게 작업하는 장엄경 사경까지 해낼 수 있다. 각고의 섬세함과 노력이 필요해 수행 차원의 으뜸 사경으로 여겨진다. ●교육기관·전문가 늘려 체계적 취미로 살려야 최근 사경 인구가 급속히 느는 데 비해 지도할 전문가와 전문적으로 배울 수 있는 곳은 많지 않은 형편이다. 사경 연구 모임을 지속적이고 정기적으로 갖고 있는 한국사경연구회와 원광대 서예학과 김수천 교수를 중심으로 한 원광사경연구회, ‘사경하는 사찰’로 유명한 법화정사(회주 도림 스님)가 그나마 사경인들에겐 가장 익숙한 단체로 인식돼 있다. 그래서인지 동호회나 연구 모임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가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냥 시늉 내기 차원에 머무는 잠깐의 취미로 끝나기 일쑤다. 전통사경 작업 10년째인 허유지(65·서울 노원구 상계동)씨는 “사경은 눈으로 보고 손으로 쓰는 작업이지만 오감을 집중해야 하는 정교한 작업인데도 그저 베껴 쓰는 행위에 머무는 대중이 많고 그런 취향에 편승한 상업적 거래도 적지 않은 게 사실”이라며 “좀 더 체계적인 취미로 살려 낼 수 있도록 돕는 전문가와 기관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타심 담은 한국 사찰불화 기독교 걸작 성화 못지않아”

    “이타심 담은 한국 사찰불화 기독교 걸작 성화 못지않아”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최후의 만찬’이나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 같은 최고의 종교화가 그려진 시기, 이 땅에서도 걸출한 종교미술 작품이 다수 탄생했음을 아는 이는 별로 없다. 한국 불교미술의 정수로 손꼽히는 대표 불화(佛畵)를 세밀하게 해설한 ‘사찰불화 명작강의’(불광출판사)가 출간됐다. 강소연 중앙승가대 교수가 25년간 작품 조사를 거쳐 추린 불화 11점은 모두 종교적 상징성과 회화적 형식미를 고루 갖춘 뛰어난 예술작품들. 강진 무위사 아미타삼존도와 관세음보살도를 비롯해 해인사 영산회상도, 동화사 극락구품도, 용문사 화장찰해도, 쌍계사 노사나불도, 법주사 팔상도, 운흥사 관세음보살도, 갑사 삼신불도, 직지사 삼불회도, 안양암 지장시왕도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용문사의 ‘화장찰해도’(조선 후기)를 보자. 추상적 진리의 세계를 둥근 여의주로 표현한 이 작품을 놓고 강 교수는 “우주 만물이 시공을 초월해 서로 연결돼 존재하며 그 속에서 생성, 변화, 소멸을 거듭한다는 ‘화엄경’ 속 우주관을 표현했다”고 쓰고 있다. 책은 제작 당시의 시대 상황까지 두루 짚은 게 특징이다. 대승불교 세계관을 구현한 초대형 괘불인 갑사의 ‘삼신불도’(1650년대)는 임진왜란기 희생된 영혼들을 달래기 위한 대규모 천도재 때 제작됐다. 직지사의 ‘삼불회도’(1744년) 역시 고단한 민중들의 삶을 위로하기 위한 것이었다. 강 교수는 “불화가 전달하려는 뜻은 ‘삶의 바른 이치’”라며 “나 아닌 타인을 돕거나 세상을 아름답게 하기 위한 마음을 담아내는 불교 조형미술은 서양 기독교 작품들과 견줘도 예술성에서 뒤지지 않지만 세계적으로 알려지지 않아 제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고 밝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원불교도 “박대통령 사퇴하라”

    원불교계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와 관련해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원불교계 사회단체 연대기구인 원불교시민사회네트워크는 3일 시국선언문을 발표하고 “박근혜 대통령은 즉각 사퇴하라”라고 촉구했다. 원불교는 경북 성주 성지 인근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방어체계) 배치 문제로 정부와 갈등을 빚고 있다. 시국선언문에서 “우리의 눈앞에서 거짓말 같은 현실로 벌어지고 있는 작금의 상황을 마주하며 2016년 대한민국의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는 부끄러움을 넘어 참담함을 금할 수 없다”며 “이게 나라이고 이게 국가인가를 우리는 지금 위정자들에게 묻지 않을 수가 없다”고 개탄했다. 이들은 이와 함께 비선 실세 최순실과 무기 로비스트 린다 김의 친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하며 “무기체계로서 검증되지도 않은 사드를 성주·김천 주민들의 의사를 무시한 채 종교성지 인근에 일방적으로 배치하겠다고 밀어붙이는 박근혜 정부의 속내가 의심된다”고 일치을 가했다. 이들은 또 “대통령은 자신을 포함한 성역 없는 수사로 국민 앞에 진실을 밝혀야 할 때임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고 밝혔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불교계 “朴대통령 퇴진”… 종교계 잇단 시국선언

    불교계 “朴대통령 퇴진”… 종교계 잇단 시국선언

    ‘최순실의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해 종교계가 잇따라 시국선언을 발표하는 가운데 1일 오전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 일주문 앞에서 불교단체 연대기구 ‘불교단체 공동행동’과 불자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구호를 외치고 있다. 불교단체 공동행동에는 바른불교재가모임, 불교인권위원회, 불교환경연대 등이 소속돼 있다. 연합뉴스
  • 박근혜 대통령 “제가 사교(邪敎)를 믿는다더군요” 억울함 표시

    박근혜 대통령 “제가 사교(邪敎)를 믿는다더군요” 억울함 표시

    박근혜 대통령이 ‘최순실 게이트’ 파문과 관련된 각종 추론에 대해 “제가 사교(邪敎)를 믿는다는 얘기까지 있더군요”라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1일 KBS는 박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각계 원로 12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시국 수습책에 관한 의견을 듣던 자리에서 이와 같이 말했다고 보도했다. 박 대통령은 이날 거의 발언을 하지 않았지만 자신과 관련된 ‘사교 소문’에 대해서는 직접 언급했다고 전해졌다. 이날 한 참석자가 최근 여론에 대해 발언하자 박 대통령이 “제가 사교를 믿는다는 얘기까지 있더군요”라고 밝혔다. 박 대통령은 더 이상 구체적인 이야기를 덧붙이지는 않았지만 참석자들은 박 대통령이 최씨 일가와의 인연을 사교와 연결 짓는 추론에 대해 억울하다는 입장을 밝힌 것으로 받아들였다고 전해졌다. 하지만 최근 정치권과 언론에서는 최순실씨 일가와 박 대통령의 끈끈한 인연에는 종교적인 배경이 작용하고 있을 것이라는 추론이 나오고 있다. 최순실의 선친인 최태민은 1970년대 초 불교·기독교·천도교를 통합했다는 ‘영세교’를 세우고 교주를 지냈다. 최태민은 1975년 4월 영세교라는 이름을 버리고 ‘대한국선교단’을 설립했다. 1976년 박근혜 대통령은 최태민이 여러 단체를 통합해 만든 ‘새마음봉사단’의 총재를 지냈고 당시 최순실은 새마음봉사단의 대학생 회장을 맡았다. 한편 이날 모임에는 보수와 진보를 아우르는 원로 12명이 초청됐다. 고건, 이홍구 전 국무총리, 조순 전 서울시장, 진념 전 경제부총리, 박상증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이사장, 이상훈 전 국방부장관, 이세중 환경재단이사장, 이돈희 전 교육부 장관, 류근일 전 조선일보 주필, 이심 대한노인회장, 박세환 전 재향군인회장, 이인호 서울대 명예교수(KBS이사장)등이 참석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종교계도 분노했다 “진상 철저 규명... 박근혜 결단 내려라”

    종교계도 분노했다 “진상 철저 규명... 박근혜 결단 내려라”

    종교계도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에 시국선언을 발표하며 목소리를 높이기 시작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정평위)는 1일 정평위원장 유흥식 주교 명의의 성명을 내고 “‘비선 실세’를 통한 국정 개입은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유린한 반헌법적 행위”라고 비판했다. 정평위는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책임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또 “관련자 전원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진실을 규명해야 한다”면서 “어떠한 불의와도 결탁하지 않는 용기와 엄정한 법 집행이 조속한 국정 정상화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우선적 과제”라고 강조했다. 보수 성향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이하 한기총)도 이날 엄중한 처벌과 거국내각 구성을 주장했다. 한기총은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 명의로 성명을 발표하고 “특검을 통해 최순실 게이트의 진상을 낱낱이 밝히고 관련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중 처벌하라”라고 촉구했다. 또 “책임 총리제를 실시하고 거국내각 구성에 대한 국민의 뜻을 반영해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불교계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불교단체 공동행동’(불교행동)은 1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비선 실세 최순실의 국정농단이라는 충격적인 사태는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의 유린이라는 초유의 상황을 국민에게 적나라하게 보여 주었다”면서 “대한민국의 민주주의와 헌정 질서가 최순실이라는 한 사인에 의해 철저히 유린당한 이런 엄혹한 상황에도 박근혜 대통령은 진실된 사과를 하지 않았다”라고 비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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