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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행 취재 대선후보 배우자 24시] 反文 달랜 ‘호남 특보’…朴·安·李 부인들과 정권교체 ‘공조’

    [동행 취재 대선후보 배우자 24시] 反文 달랜 ‘호남 특보’…朴·安·李 부인들과 정권교체 ‘공조’

    선거를 앞둔 대선 후보만큼이나 바쁜 게 후보의 배우자들이다. 문재인(64)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부인 김정숙(63)씨는 지난 8개월간 ‘호남 특보’를 자처하며 광주, 전남 지역을 매주 1박 2일 일정으로 직접 찾았다. ‘5·9 대선’을 보름여 앞둔 김씨의 하루를 동행 취재했다.23일 서울 서대문구 홍은동 자택 앞에서 만난 김씨는 날랜 걸음으로 흰색 카니발 차량에 올랐다. 앞서 오전 일정을 마치고 집에 돌아온 문 후보를 직접 챙기고 곧바로 ‘바통 터치’ 하듯 집을 나선 것이다. 이날 TV토론회 준비로 여념이 없는 문 후보를 대신해 행사 일정을 소화한 김씨는 기호 1번 문 후보의 ‘엄지 척!’ 내조를 톡톡히 했다. 화사한 흰색 정장에 갈색 단화를 신은 김씨는 동행 취재에 나선 기자에게 “오늘 저와 함께하신다면서요”라고 웃으며 말을 건넸다. 밝고 쾌활한 성격의 김씨는 ‘정치인 문재인’의 딱딱한 이미지를 보완하는 시원한 청량제 역할을 하고 있다. 이날 대한불교조계종이 서울 중구 장충체육관에서 주최한 난치병 어린이 돕기 행사를 방문한 김씨는 “문재인 후보 부인입니다. 잘 부탁드립니다”라며 행사장 입구에 서서 꾸벅 인사했다. ‘기호 1번 문재인 더불어민주당’이라고 쓰인 푸른 어깨띠를 두른 김씨는 행사에 참석한 시민들과 악수하고 사진을 함께 찍었고 간혹 포옹을 하기도 했다. 문 후보의 인기만큼이나 현장을 찾은 김씨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네는 사람들도 많았다. 김씨는 자승 총무원장 등 내빈들과 함께한 자리에서 “좋은 날 인사드리러 왔다. 건강하시고 더 편안하시기를 저도 바라고 있다”며 인사를 건넨 뒤 “한 가지 소원이 있다. 문재인씨를 위해서 많은 기도 부탁드린다”고 지지를 부탁했다. 이어 서울시약사회가 서울광장에서 주최한 ‘2017 건강서울 페스티벌’에 참석한 김씨는 당내 경선 상대 후보의 부인들과 선거운동을 함께 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씨와 함께 안희정 충남지사의 부인 민주원씨, 이재명 성남시장의 부인 김혜경씨, 박원순 서울시장의 부인 강난희씨가 참석해 김씨의 선거운동을 도왔다. 경선 후보 가운데 문 후보를 제외한 3명은 모두 지방자치단체장이어서 선거 지원 활동이 어렵다. 때문에 부인들이 함께한 이날 행사를 통해 당내 경선 과정에서 발생한 크고 작은 틈을 메우는 ‘통합 내조’를 선보인 것이다. 김씨는 이날 행사에 앞서 서울시청 안에서 가진 다른 부인들과의 짧은 차담에서 “와 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는 말을 연신 건넸다. 이에 안 지사의 부인 민씨는 “저희가 더 도와드릴 일은 없냐”며 적극적으로 화답했다. 민씨는 이날 문 후보를 위한 첫 TV 찬조 연설자로 나서기도 했다. 박 시장의 부인 강씨도 “다음에 필요한 일 있으면 말씀해 달라”고 했고 이 시장의 부인 김씨도 “힘을 합쳐서 정권교체해요”라고 말했다고 참석자들은 전했다. 이날 행사장에서 흰색과 분홍색, 하늘색 등 파스텔톤 옷을 입은 부인들은 기호 1번 문 후보의 선거 운동 동작인 ‘엄지 척!’을 함께 했다. “제가 추석 때부터 호남에 갔지만 그걸로도 호남분들이 마음을 열어 주신다고 하면 정말 고맙고 미안한 일이죠.” 지난 8개월간 광주, 전남 지역을 방문해 온 김씨는 ‘호남분들이 정성으로 봐 주시는 것 같다’는 기자의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실제 반문(반문재인) 정서가 강했던 호남의 민심은 조금 누그러든 형국이다. 김씨는 공식 선거운동 첫날인 지난 17일 광주 서구의 민주당 광주시당을 방문해 당직자와 선거사무원 등을 격려하고 광주 북구의 말바우시장을 방문하는 것으로 첫 일정을 시작했다. 김씨는 “(호남을) 왜 진작 더 일찍 찾아가지 못했을까 그런 마음까지 든다”면서 “지난 대선 때 못 오기도 했는데 마음을 열어 주신다고 하면 제가 더 미안한 일”이라고 말했다. 김씨는 다음달 9일 대선까지 광주에 사실상 상주하다시피 하며 호남 민심을 살피는 역할을 맡을 계획이다. 김씨는 광주에서 만나는 시민들에게 “효자 문재인과 맏며느리 김정숙이 되겠다”며 지지를 호소할 예정이다. 이날 일정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김씨는 문 후보의 TV토론회 준비를 옆에서 지켜보는 따뜻한 내조를 이어 갔다. 문 후보 측 관계자는 “‘따뜻한 정숙씨’라고 불리는 김씨의 내조가 문 후보의 인간적인 면모를 드러내는 원동력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공포를 잠식한 매력’ 검은색이 써온 역사

    인류가 처음 그림 그릴 때부터 사용 기독교 등장으로 ‘부정적 의미’ 전락 근대 거치며 고급·매혹의 상징으로 시대 색채 변화, 문화 생명력 뜻해 이토록 황홀한 블랙/존 하비 지음/윤영삼 옮김/위즈덤하우스/580쪽/1만 8000원20세기 패션을 주도한 디자이너들은 검은색을 찬양했다. 크리스토발 발렌시아가는 “검은색이 당신을 강타한다”고 했고 크리스티앙 디오르는 “검은색에 관한 책도 쓸 수 있을 만큼 검은색을 사랑한다”고 했다. 시대의 색을 화폭에 옮겨 유행을 이끈 화가들도 예외는 아니다. 오귀스트 르누아르는 검은색을 ‘색의 여왕’이라 칭송했고 ‘빛의 화가’ 카바라조의 그림은 16세기 말부터 유럽 전역을 휩쓴 검은색 유행의 정점이었다. 검은색만큼 정반대의 극단을 모두 치닫는 색은 없다. 죽음, 슬픔, 우울, 악의 상징이었다가 권력, 부, 매혹, 신성, 세련미, 화려함, 성실함의 상징이기도 했다. 그만큼 인류사에서 검은색의 위치와 상징, 의미는 ‘질주하는 롤러코스터’처럼 다양하게 변주됐다.존 하비 케임브리지 이매뉴얼 칼리지 종신석학교수는 이런 ‘블랙의 여정’을 패션, 종교, 인류학,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우르며 탐색해 나간다. 시대와 문화적 맥락에 따라 검은색이 어떤 사회적, 정치적, 미학적 도구가 되었는지 짚어나가는 그의 치밀한 진술은 방대하지만 문화사적으로 가치 있는 지적 체험을 선사한다. 검은색은 인류사의 초기부터 묵직한 존재감으로 자리했다. 인류가 처음 그림을 그릴 때부터 등장한다. 1만 7000여년 전 작품으로 추정되는 라스코 동굴 중앙 벽면에 그려진 거대한 암소는 우아한 검은빛으로 휘감겨 있다. 고대 지중해 사람들이 거래하던 사치품에도 검은 머리카락 등 검은색이 빠지지 않았다. 바빌로니아 아시리아의 남녀는 모두 눈 주위를 검은 화장먹으로 치장했다. 염료, 잉크, 물감 등으로 사용할 검은 안료를 만드는 방법은 이미 고대 이집트에서 거의 다 발견됐다고 전해진다.검은색이 부정적인 의미로 전락한 것은 기독교의 등장으로 여겨진다. 고대 인류에게 검은색은 부정적인 의미만은 아니었다. 로마인에게도 검은색은 달콤하고 사치스럽고 관능적인 색이었다. 전쟁과 재복을 관장하는 불교의 신 마하칼라가 산스크리트어로 위대한 암흑을 의미한다는 것, 마하칼라가 일본으로 건너가면서 음식과 재물을 담당하는 칠복신 가운데 하나인 다이코쿠텐이 됐다는 것, 아즈텍 신화의 신 익스틀릴톤(검은 꼬마라는 뜻)이 지친 아이들을 편히 잠들게 해 주는 치유와 회복의 신이라는 것 등이 검은색에 인류가 부여한 풍요와 긍정성을 엿보게 한다. 하지만 만신 숭배가 유일신 숭배로 바뀌며 검은색의 가치도 근본적으로 전복된다. 기독교에서 ‘죄의 검은색’을 대중들에게 주입시키며 검은색엔 웅장함, 모호함, 불길함, 절망, 악, 신 등 고대에 없던 개념들이 깃들게 됐다. 피부색에 대한 어떤 편견도 없던 과거와 달리 유색인종에 대한 경멸, 혐오, 차별 등이 나타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우리 영혼의 죄악이 검은색이라는 인식이 퍼지면서 일반인들의 일상복에 서서히 검은색이 들어온다. 아랍의 검은옷 전통은 스페인의 검은색 유행을 이끌었다. 스페인의 매혹적인 검은색은 16세기 후반 신대륙에서 실어온 황금빛 전리품들과 함께 이탈리아를 통해 17세기 초 유럽 전역으로 퍼져나갔다. 19세기는 그야말로 ‘검은색의 시대’였다. 프록코트, 벨벳드레스, 이륜마차, 굴뚝청소부 등 모든 것이 검었다. 와인도 검은 병에 담겨 나올 정도였다. 1926년 코코 샤넬이 발표한 ‘리틀 블랙 드레스’는 이전 200여년간의 의복 트렌드를 완전히 뒤엎은 ‘파격’이자 지금까지 여성들을 사로잡은 ‘매혹’이 됐다. 1961년 영화 ‘티파니에서 아침을’에서 오드리 헵번이 검은 드레스를 입고 보석상점 앞에서 진열대를 구경하는 첫 장면은 현대사회에서 검은색이 갖는 위상을 압축한다. 죽음, 공포, 부정을 뜻하던 검은색이 차츰 신념, 예술, 사회적 삶의 구조 속으로 스며드는 이런 변화를 두고 저자는 “검은색의 역사는 인간의 공포를 조금씩 점령해 나간 역사”라고 정의한다. 저자는 시대마다 선호하는 색깔의 팔레트가 변하는 데는 거대한 주기가 있다고 지적한다. 여기에는 국가의 부흥과 몰락, 종교적 계시의 변화, 전쟁과 질병, 기술의 변화, 경제적 호황과 불황, 사회 계급의 변화, 혁명 등 다양한 요인들이 작용한다. 이렇게 시대의 색이 바뀐다는 느리고 거대한 리듬은 분열된 사회에도 통합의 요소가 존재한다는 것, 문화만의 생명력이 존재한다는 걸 의미한다. 추상화가 이마누엘 사이츠는 칠흑 바탕 위에 청록색, 바다색, 자색으로 그린 자신의 추상화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이미 검은 하늘은 검은 수평선 위에서 눈부시게 빛나고 있다. 눈은 깊은 검은색 안에서 길을 잃는다. 상상은 어둠을 뚫고 돌진한다.” 비옥한 어둠에서 늘 무언가 솟아나듯, 검은색의 이야기는 ‘네버엔딩 스토리’이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백제 불교 중심서 ‘천자의 땅’으로… 내포 1500년史

    부처가 깨달음을 이룬 인도 동북부 비하르주의 보드가야로 가려면 13㎞ 남짓 떨어진 거점도시 가야를 경유하기 마련이다. 가야에는 정각(正覺) 이후 부처가 처음으로 설법한 브라마주니 언덕이 있으니 보드가야에 버금가는 성지(聖地)다. 주변에는 팔리어(語)로 가야시사라는 산이 있어 부처 당시 초대형 사원이 지어졌다. 꼭대기가 코끼리 머리를 닮았다고 중국에서는 가야시사를 상두산(象頭山)으로 의역(意譯)하기도 한다. 코끼리는 석가모니 부처를 상징한다.가야산(伽倻山)이라면 경남 합천의 해인사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충남 내포(內浦)의 가야산 역시 합천의 가야산을 뛰어넘는 한국 불교 역사의 중심지였다. 합천 가야산 정상은 해발 1430m 상왕봉(象王峯)이다. 내포 가야산 줄기 북쪽에도 해발 310m의 상왕산(象王山)이 있다. 조선시대 사찰의 단아한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상왕산 개심사는 가본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러니 합천 가야산과 내포 가야산의 작명 원리는 다르지 않다. 인도의 가야와 보드가야, 가야시사는 부처의 수행과 깨달음, 그리고 설법이 이루어진 곳이다. 인도에서 실크로드, 중국을 거쳐 불교를 받아들인 우리 조상들도 같은 상징성을 가진 성지를 갖고 싶어 했음을 알 수 있다. 내포는 가야산을 중심으로 주변의 10개 남짓한 살기 좋은 고을을 가리킨다. 삽교천을 따라 바닷길이 깊숙하게 내륙으로 들어왔다는 지형적 특징이 고유명사가 됐다. 가야산 서쪽 서산시 운산면에는 개심사와 함께 ‘백제의 미소’로 잘 알려진 서산 마애불과 백제 사찰 보원사의 옛터가 있다. 가야산 동쪽 예산군 덕산면에도 백제 거찰(巨刹)로 알려진 가야사가 있었다. 이름으로만 보면 가야사는 과거 보원사를 뛰어넘어 내포 가야산을 대표하는 사찰이었을 수도 있다. 가야사 옛터에 흥선대원군이 아버지 남연군의 무덤을 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2대에 걸쳐 천자(天子)가 나올 길지(吉地)’라는 지관의 말에 헌종 10년(1844) 경기도 연천에 있던 아버지 무덤을 옮겼다는 것이다. 하지만 ‘2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는 흥선대원군의 아들과 손자가 고종황제와 순종황제에 오른 이후 퍼진 말이 아닐까 싶다. 오히려 황제가 불과 2대에 그치고 나라가 망했으니 흥선대원군이 ‘2대천자지지’를 제대로 해석했어야 했다는 씁쓸한 우스개도 있다. 어쨌든 남연군 무덤에 서면 풍수지리에 아무런 관심이 없는 사람이라도 “과연 명당이네” 하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대원군이 가야사를 불태우고 아버지 무덤을 썼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대원군은 훗날 아들 명복이 보위에 오르자 건너편 산기슭에 새 절을 짓고 부처의 은덕에 보답한다는 의미로 보덕사(報德寺)라 이름 지었다는 말이 그럴듯하게 퍼졌다. 하지만 가야사는 이미 폐사(廢寺) 상태였던 듯하다. 다만 남아 있던 석탑과 석등 같은 석물의 일부 훼손은 불가피했을 것이다. 한말의 개화파 문인 김윤식의 ‘속음청사’(續陰晴史)에서도 ‘남연군묘를 가야사의 빈터에 썼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대원군은 단순히 불교에 호의를 가진 데서 그치지 않고 적극 후원한 인물이었다. 집권 이전에도 영종도 용궁사를 원찰로 삼은 것은 물론 쇠퇴한 흥천사, 화계사, 보광사를 중창했다. 대원군은 ‘불교를 즐겨 좇았다’거나 ‘술이 있으면 신선을 배우고, 술이 없으면 부처를 배우리라’는 글귀가 새겨진 인장을 즐겨 썼다고 한다. 조선 후기를 대표한다고 해도 좋을 친(親)불교적 인사가 유서 깊은 대찰(大刹)에 불을 지르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대원군이 불교를 잘 아는 인물이었다는 것은 보덕사에서 확인할 수 있다. 비구니 수도도량이어서 일반인 출입을 막은 적도 있지만, 지금은 개방한다. 보덕사는 한마디로 남연군 무덤의 원찰이다. 대원군이 아버지의 극락왕생과 후손의 발복(發福)을 빌고자 지은 절이다. 이름처럼 자식을 왕으로 만들어 준 부처의 은혜에 보답하겠다는 뜻이 아주 없지는 않았겠지만, 부수적이었을 것이다. 큰법당은 무덤의 원찰이니 서방정토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신 극락전이다. 큰법당 앞에 바짝 붙여 지은 디귿자 모양의 대방(大房)은 충청도에서는 이례적이다. 폐쇄적인 구조의 대방은 내부에 다양한 용도의 공간을 두고 있다. 왕실 여인들의 출입을 전제로 한 공간이다. 대방은 서울 근교의 왕실 무덤을 수호하는 사찰에 주로 지어졌다. 보덕사는 크고 화려하지는 않지만 정성껏 지었다는 느낌을 준다. 게다가 비구니 사찰답게 아주 깔끔하게 관리하고 있어 절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하다. 절의 들머리에는 가야사 터에서 가지고 왔다는 화사석(火舍石)으로 다시 세운 석등이 있다. 가야사는 백제시대 겸익이 창건했다고 전하지만, 유물로 증명되지는 않았다. 2012년부터 단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발굴조사에서는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쏟아져 나왔다. 머리 부분이 없는 소조 불상도 10점 남짓 출토됐다. 고려와 조선 시대 건물 유구도 찾아냈다고 한다. 가야사 역사의 본격 재구성이 시작됐다고 할 수 있다. 발굴조사에서는 절의 흔적뿐 아니라 남연군묘의 제각(祭閣)이었던 명덕사(明德祠)의 위치도 확인할 수 있었다.특히 ‘가량갑’(加良岬)이라고 새겨진 통일신라 시대 기와가 눈길을 끌었다. ‘가량’과 ‘가야’(伽倻)는 과거에는 같은 발음이었던 듯하다. 가야국과 관련된 역사 기록에서도 ‘가량’과 ‘가야’를 혼용한 사례가 보인다. 가야사라는 이름은 ‘고려사’에 처음 나온다. 창건 이후 통일신라와 고려시대 사이 어느 시점에 가야사로 이름이 바뀌었을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또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1530)에는 가야사와 ‘가야갑사’(加倻岬祠)의 기록이 함께 보인다. 그런데 발굴조사에서는 일정한 두께로 깎은 돌로 조성한 유구가 확인됐다. 절의 시설로 보기는 어렵다고 한다. 삼국시대 이후 국가적 차원에서 명산(名山)에 제사 지내던 흔적일수도 있다는 뜻이다. 계룡산 산신에 제사 지내던 중악단(中岳壇) 역시 사찰인 신원사 곁에 두었다. 잘 알려진 대로 남연군 무덤은 대원군에게 통상을 요구하고자 오페르트가 저지른 도굴 사건의 현장이기도 하다. 독일 상인 에른스트 오페르트는 1868년 행담도에 1000t급 차이나호를 정박시킨 뒤 작은 배로 삽교천을 거슬러 구만포에 상륙한다. 일당은 덕산 관아를 습격해 무기를 탈취한 뒤 가야산으로 향했지만 남연군이 안장돼 있는 무덤의 회곽은 단단하기만 했고, 결국 간조 시간에 쫓겨 퇴각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다. 국사 교과서에도 서술돼 있으니 역사적 의미는 각자 새기면 될 것이다. 그렇다 하더라도 남연군 무덤을 방문한 길이라면 오페르트 일행이 상륙한 예산 고덕면의 구만포도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 삽교호 방조제에 물길이 가로막혀 기능을 잃어버린 지 오래지만 삽교천 중류의 구만포는 내포의 중심 포구의 하나였다. 남연군 무덤에서는 자동차로도 20분 이상이 걸린다. 이 길을 걸어서 오갔을 오페르트 일당은 매우 조급했을 것이다. 구만포는 지금 한때 포구였다는 사실조차 짐작하기 어려울 만큼 황량하다. 그래도 내포의 역사를 더듬기에 구만포만 한 곳이 없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정치 뒷담화] ‘루스벨트’ ‘어머니’ ‘오바마’… 인생멘토 보면 대권철학 보인다

    [정치 뒷담화] ‘루스벨트’ ‘어머니’ ‘오바마’… 인생멘토 보면 대권철학 보인다

    5·9 대선, 또 그 이후 새 역사를 써내려 갈 대선 주자들도 역사에 길을 묻는다. 지금 우리가 처한 것과 비슷한 난관을 이겨낸 인물, 가 본 적 없는 미래를 개척할 때 신념을 북돋아 주는 인물들에게서 배운다. 대선 주자들에게 스스로 꼽는 ‘롤모델’을 물었다.●문재인 ‘뉴딜정책 본받아 경제부활’ “우리의 안전한 미래가 네 가지 필수적인 인간의 자유에 기초하기를 바란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 종교의 자유, 결핍으로부터의 자유, 공포로부터의 자유이다.” 미국 32대 대통령(재임 1933~1945년)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연설 ‘네 가지 자유’의 일부다. 루스벨트 임기 동안 세계는 만신창이였다.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이 그의 임기 중에 있었다. 루스벨트는 뉴딜 정책을 펴 이를 극복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는 지금 한국이 처한 상황이 루스벨트가 마주했던 당시의 혼란상과 닮은꼴이라고 보는 듯하다. 루스벨트의 재선 연설을 보면 두 사람간 문제의식이 교차하는 지점이 엿보인다. “국민들은 듣지 못하고, 보지 못하고, 일 못하는 정부로부터 고통받았다. 정부는 국민을 외면했다. 기득권들은 무관심한 정부가 최선의 정부라는 교리를 앞세워 그러한 정부를 회복하려고 애쓴다. 독점, 투기, 파벌주의로 부당이득을 챙기던 이들은 미국 정부를 자기 사업을 돕는 조력자 정도로 생각한다.” ‘네 가지 자유의 미래’를 그리기 5년 전인 1936년 루스벨트의 연설이다. 문 후보는 올해 초 언론 인터뷰에서 루스벨트를 자신의 롤모델로 밝혔다. 문 후보는 “극심한 경제 불공정, 불평등을 해결하고 우리 경제를 살리는 대통령이 되고 싶다”고 했다. 현실 인식뿐 아니라 문제를 해결할 방법의 측면에서도 루스벨트는 문 후보의 롤모델이 되고 있다. 매년 21조원의 예산을 들여 공공·민간 130만여개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정책을 문 후보는 ‘한국형 일자리 뉴딜’이라고 이름 붙였다. 매년 10조원씩 공공재원을 투입해 구도심과 노후 주거지를 살린다는 문 후보의 공약은 ‘도시재생 뉴딜’이라고 부른다. 문 후보의 경제 공약 종합판인 ‘J노믹스’의 근간도 재정 확대 정책에 있다. ●홍준표 ‘착함이 대접받는 세상’ 개성 강한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가 자신의 롤모델로 유일하게 밝히는 사람은 알려진 위인이 아니다. 홍 후보는 문맹이었던 자신의 어머니를 멘토, 인생의 스승으로 꼽고 있다. 홍 후보는 “세종대왕, 이순신, 김구보다 위대한 제 인생 멘토는 어머니”라고 했다. 홍 후보가 기억하는 그의 어머니는 “행상부터 시장 좌판까지 안 해 본 고생이 없는 어머니”이고 “내 학비 마련하느라 고리채를 얻었다가 사채꾼에게 머리채를 뜯기던 착한 어머니”이다. 또 “글을 몰라 버스를 탈 때엔 번호를 적어 손에 쥐여 줘야 했던 어머니”이며 “검사 아들 앞날에 누가 될까 봐 평생 자식이 누구라고 말씀 안 하신 어머니”이다. 홍 후보는 좌판을 했던 어머니를 떠올리며 대구 서문시장에서 출마 선언을 했다. 이어 후보 수락연설에서 홍 후보는 “내 엄마처럼 착한 사람 한번 잘살게 해줘 보자. 그게 제 마지막 꿈”이라고 외쳤다. 21일부터 방영되는 TV 광고에도 “저는 어머니를 세상에서 제일 존경한다”는 홍 후보의 사모곡이 담겼다. ●안철수 ‘진보·보수 대통합’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의 롤모델은 버락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다. 안 후보의 수락 연설 중 “이 나라 진보의 나라도, 보수의 나라도 아니다”란 대목이 “진보적인 미국도, 보수적인 미국도 없다”고 했던 오바마의 연설문과 비슷하다는 지적이 나오자 안 후보 측에서 “표절이 아니라 오마주(존경, 경의)”란 해명을 할 정도로 애정이 깊다. 안 후보 부인 김미경 서울대 교수 역시 최근 인터뷰에서 “안 후보가 대통령이 되면 ‘오바마 더하기 메르켈’이 대통령이 되는 것”이라며 오바마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거론했다. 오바마에 대한 오마주는 안 후보 연설문 밖에도 있다. 여러 대목에서 공통점이 보인다. 예컨대 오바마의 대선 구호 ‘예스 위 캔’(Yes, We Can)처럼 짧고 간명한 ‘국민이 이긴다’란 안 후보의 선거 구호, ‘미래’에 초점을 맞추는 선거 캠페인, 당 경선 경쟁자인 힐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에 비해 중앙정치에 덜 익숙했던 오바마의 위치와 5년 전 새 정치를 외치며 신인으로 정치에 입문한 안 후보의 입지 등이 닮은꼴이다. 오바마가 미국 기성정당 안에서 대선 후보의 입지를 다졌다는 점, 오바마가 미국 내 비주류인 흑인 출신이라는 점 등 차이점도 많이 보인다. 하지만 안 후보는 최근 인터뷰에서 “오바마처럼 임기를 끝내고 퇴임할 때 여전히 많은 사람으로부터 존경받고 사랑받는 대통령이 되는 것이 목표”라고 헌사하며 ‘롤모델 오바마’에 대한 애정을 유지하고 있다. 각종 현안을 대하는 태도, 최종 선택하는 정책이 다를지라도 오바마처럼 자신의 신념을 고수하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유승민 ‘실용적인 보수혁명’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의 정치적 롤모델은 대체로 ‘개혁’에 앞장섰던 사람들이다. 민생을 해결하기 위해 실용적인 개혁에 평생을 바친 다산 정약용을 본받으려 하고 영국의 보수주의자 에드먼드 버크를 통해 배운 “진정한 공화국을 위한 보수혁명”을 정치적 목표로 삼고 있다. 버크의 “변화의 수단이 없는 국가는 그 보존 수단도 없다”는 말은 유 후보가 늘 강조하는 “보수가 살아남으려면 보수(補修)해야 한다”는 주장에 영향을 줬고, 개혁적 보수라는 유 후보의 상징성을 만들어 냈다. 공화에 대한 가치는 니콜로 마키아벨리, 장 자크 루소, 모리치오 비롤리 등의 책을 통해 확립했다. 특히 비롤리의 “공화의 으뜸은 정의”라는 지적과 마키아벨리의 “정치적, 사회적 성공의 길이 모두에게 열려 있는 사회” 등은 지금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저성장, 저출산, 양극화 문제를 다루는 데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유 후보는 또 마키아벨리의 책 ‘공화주의’에서 “부모의 신분에 따라서 성공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자유인으로서의 능력에 따라 성공이 결정되는 공동체라면 부모들은 기꺼이 아들을 낳을 것”이라는 대목도 주목한다. 그가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 키우고 싶은 나라’를 만드는 것을 가장 중요한 정책과제로 꼽는 계기가 됐다. 유 후보는 불교 신자이지만 “프란치스코 교황을 정말 존경한다”고도 말한다. 유 후보는 저서 ‘나는 왜 정치를 하는가’에 여덟 쪽을 할애해 교황의 메시지를 소개하면서 교황의 개혁 정신과 함께 소외받은 사람들에 대한 사랑의 실천, 부조리한 현실에 목소리를 내는 용기 등 많은 점을 배웠다고 말했다. 공공선을 위한 정치의 역할을 바라보는 관점은 자신의 생각과도 잘 맞는다고 전했다. ●심상정 ‘소신·협상의 정치’ 심상정 정의당 후보는 메르켈과 자주 비교된다. 심 후보 스스로도 언론 인터뷰에서 “내 롤모델은 메르켈”이라고 고백했다. 심 후보는 소신, 추진력, 협상력, 실질적인 삶에 뿌리를 둔 정치를 메르켈 정치의 강점으로 꼽았다. 서민 집안에서 성장하고 연정을 통해 집권한 메르켈의 인생이 노동운동가로 시작해 진보정당을 이뤄낸 심 후보의 여정과 닮았다는 평가가 많다. 심 후보가 주목하는 메르켈의 특성은 집권 전부터 3연임 총리에 임하는 동안 끊임없이 다른 의견들과 협상하며 ‘(독일이) 더 좋은 길로 가야 한다’는 소신을 추진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는 셈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강윤혁 기자 yes@seoul.co.kr
  • 내년 원불교 ‘서울시대’ 열린다

    내년 원불교 ‘서울시대’ 열린다

    행정 총괄 교정원 서울로 옮겨 익산 총부는 이전하지 않기로 내년 하반기 원불교의 서울시대가 개막된다. 원불교가 서울 동작구 흑석동 옛 서울회관 터에서 짓고 있는 ‘원불교 100년기념관’이 완공되는 내년 9월쯤 행정을 총괄하는 기관인 교정원(조계종의 총무원 격)을 서울로 이전한다. 본격적인 서울시대가 시작되는 셈이다.한은숙 원불교 교정원장은 원불교 최대 명절인 대각개교절(28일)을 앞두고 지난 18일 종로구 은덕문화원에서 기자들과 만나 “원불교 100년기념관 완공을 기점으로 서울시대가 시작될 것”이라고 밝혔다. 그동안 논란이 일었던 교정원의 서울 이전을 확인해 준 것이다. 한 원장은 “원불교 100년기념관은 종교동과 업무동으로 구분돼 건립되며 종교동에는 서울교구와 주변의 서울교당들이 입주하게 되고 업무동에는 교정원이 들어서게 된다”며 “이전할 교정원의 규모를 정하기 위해 TF팀이 구성돼 가동 중”이라고 밝혔다. 한 원장은 그러나 “전북 익산시 일원에서 이전을 둘러싸고 우려가 확산되는 ‘총부’의 이전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다.지난달 28일 기공식을 가진 ‘원불교 100년기념관’은 대지 면적 5928㎡에 지하 4층, 지상 10층 규모로 지어진다. 완공까지는 18개월가량이 걸릴 예정이며 완공되면 ‘원불교 서울시대’를 알리는 새로운 랜드마크가 될 전망이다. 전북 익산시 신용동의 원불교 총부는 원불교의 심장부라 할 수 있다. 원불교 교조인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가 공식적인 교화를 처음 열었던 곳으로 현재 종단의 최고 웃어른인 종법사가 주석하고 있고 최고의결기구인 수위단, 사법기관, 원광대를 비롯한 각급 학교와 의료기관, 사회복지시설이 자리하고 있다. 익산시에서 원불교가 갖는 경제적인 영향력을 비롯한 위상이 높은 만큼 원불교 총부 이전 소문이 끊임없이 불거지면서 지난달 31일 익산시장이 한 원장을 방문해 총부 이전 검토 중단을 요청하기도 했다. 교정원이 서울로 이전한다 해도 종법사와 입법, 사법, 교육, 의료기관은 그대로 익산에 남아 있을 전망이다. 하지만 원불교 교단의 행정 총부가 이전하게 될 경우 원불교의 서울시대가 사실상 가시화하게 된다. 한편 원불교는 오는 28일 전북 익산 원불교 총부에서 원기 102년 대각개교절 기념식을 거행한다. 경산 종법사는 개교절을 앞두고 대선 정국을 의식한 때문인지 ‘지도자의 덕목’이란 제목의 법문을 통해 “지도자는 지도받는 사람 이상의 지식을 갖춰야 하고 지도받는 사람에게 신용을 잃지 말아야 하며 지도받는 사람에게 사리(私利)를 취하지 말아야 한다”고 밝혔다. 한 원장도 간담회에서 이와 관련해 “큰일을 하려는 사람은 눈앞의 이익에 흔들리지 않고 국민을 위해 나부터 비우고 공적 이익을 위해 공을 쌓아야 한다”며 특히 “대선 주자들이 어떤 경우라도 공(公)을 먼저 생각하는 공심(空心)과 공심(公心)을 지켜 달라”고 당부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佛국립도서관에 ‘직지’보다 오래된 고서 있다

    佛국립도서관에 ‘직지’보다 오래된 고서 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본 ‘직지심체요절’이 있는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한국 고서적과 고지도 유일본, 희귀본이 여러 점 소장돼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가운데는 ‘직지심체요절’보다 7년 앞선 1370년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불교서적 ‘육조대사법보단경’(六祖大師法寶檀經)과 국내에서 보물로 지정돼 있는 조선 초기 ‘능엄경’(楞嚴經)도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직지보다 7년 앞선 육조대사법보단경 한지희·김효경 국립중앙도서관 학예연구사, 이혜은 숙명여대 교수는 지난해 5월 프랑스 국립도서관 필사본장서부에 있는 한국 고문헌을 처음 실물로 전수조사한 결과 134종, 306책이 있다는 것을 알아냈다고 16일 밝혔다. 지금까지 알려진 137종, 316책보다 3종, 10책이 적다. 이는 중국, 일본의 고서를 한국 책으로 잘못 분류해 빚어진 오류로 파악됐다. 이번 조사에서 발견한 가장 이른 시기의 책은 선종의 제6대조인 혜능(慧能)이 설법한 내용을 담은 ‘육조대사법보단경’이다. 가로 15.1㎝, 세로 22.6㎝ 크기로 고려 후기 문신인 이금강이 시주해 경술년에 제작됐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능엄경, 보존 상태 좋아 학술가치 높아 ‘능엄경’ 10권, 5책은 1401년에 새긴 목판으로 1456년 찍은 책으로, 서적의 보존 상태가 매우 양호하다. 국립중앙박물관에도 1401년 판본이 있으나 첫 번째 권의 서문과 권수 부분이 떨어져 나간 상태다. 15세기에 나온 ‘능엄경’은 낱권도 보물로 지정돼 있어 프랑스 국립도서관 소장본은 학술 가치가 높을 것으로 보인다. 18세기 고지도인 ‘관서전도’(關西全圖)와 ‘영연도’(嶺沿圖)도 이번 조사에서 처음 존재가 확인됐다. 이번 연구는 한국서지학회의 학술지 ‘서지학연구’ 제69집에 실렸다. 안동환 기자 ipsofacto@seoul.co.kr
  • 전기차 10대당 급속충전기 1기, 연말까지 500여대 추가

    전기차 장거리 운행 및 긴급 충전이 가능한 급속충전기가 1300대를 넘어섰다. 전국 226개 시·군·구에 5기 이상이 설치된 것으로 전기차의 전국 운행이 가능한 기반을 갖추게 됐다. 16일 환경부에 따르면 서울과 경기 등에 급속충전기 180기를 추가 설치해 17일부터 운영한다. 이에 따라 국내에 설치된 전기차 충전기는 급속충전기 1320기, 완속충전기 1406기다. 3월 현재 공급된 전기차 1만 4516대를 기준으로 할때 급속충전기 1기당 전기차가 10.2대로 충전 인프라가 개선됐다. 환경부는 7월까지 260기, 10월까지 250기를 추가 설치할 계획이다. 급속충전기는 고속도로 휴게소나 대형마트·패스트푸드점 등 접근성이 높고 충전 대기시간 활용이 용이한 장소에 집중 설치키로 했다. 또 충전수요가 많은 지점에는 2기 이상 설치해 충전 대기 문제도 개선한다. 설치물량 중 일부는 부지를 개인·법인 신청을 받아 접근성이 높은 장소에 충전기 설치를 확대, 지원한다. 이용자 편의도 확대키로 했다. 이번에 설치된 충전기는 화면이 기존 7인치에서 12.1인치로 확대됐고 화면 밝기도 일반 컴퓨터 모니터의 5배 이상 밝은 제품으로 개선했다. 특히 충전기 제작사마다 각각 달랐던 메뉴화면을 표준화하는 한편 오류 개선 또는 업데이트를 통합관리전산망에서 제어해 고장이 발생시 즉각적인 대응이 가능해졌다. 후불교통카드 기능이 있는 신용·체크카드만 가능했던 결제를 모든 신용·체크카드를 사용할 수 있는 결제단말기를 설치했다. 이번에 설치된 급속충전기에 대해 6월 말까지 시험운영할 계획이며 시험운영 기간에는 요금을 징수하지 않는다. 세종 박승기 기자 skpark@seoul.co.kr
  • “서체·조판 등 인쇄활자로 보기 어렵고 출처 불분명”

    “서체·조판 등 인쇄활자로 보기 어렵고 출처 불분명”

    글자 각도·굵기, 인쇄본과 편차 커 고려시대 활자 가능성은 열어둬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가 되느냐로 국민적 관심을 모았던 일명 ‘증도가자’가 문화재의 가치가 없는 것으로 결론 지으며 7년을 끌어온 논란에 종지부를 찍었다. 13일 증도가자 101점에 대한 보물 지정 여부를 심의한 문화재청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는 부결 결정을 내렸다. 위작이라고 볼 증거는 찾지 못했으나 이것이 곧 진품이라는 뜻도 아니라는 게 요점이다. 하지만 2010~2014년 네 차례에 걸쳐 진행된 방사성탄소연대측정에서 활자에 묻은 먹의 연대가 11세기 초~13세기 초로 모두 고려시대 것으로 결론났다. 때문에 문화재청은 국가문화재로 지정 신청된 활자가 “증도가자는 아니지만 고려시대 활자일 가능성은 열어뒀다”고 밝혔다.증도가자의 보물 가치가 인정되지 않은 것은 서체 비교, 주조, 조판 등에 대한 과학조사 결과 목판 복각본인 고려시대 불교서적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이하 증도가·보물 758-1호)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증도가자 활자와 증도가의 서체를 비교한 결과 글자 모양, 각도, 획의 굵기 등이 대조집단인 조선시대 금속활자 임진자(1772)와 그 복각본에 비해 평균 유사도가 낮고, 유사도의 편차 범위가 큰 것으로 나타났다. 황권순 문화재청 유형문화재과장은 “특히 조판 실험 결과가 부결의 결정적 원인이었다”고 지적했다. 증도가에는 한 페이지에 8행 15자로 조판이 되어 있다. 하지만 증도가자의 모형을 만들어 조판을 해 본 결과 증도가보다 활자 크기가 더 컸다. 때문에 증도가자로 증도가를 찍었다고 볼 근거가 크게 약해진 것이다. 증도가자가 처음 공개된 직후부터 논란거리였던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점은 이번 부결에도 영향을 미쳤다. 소장자이자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자인 김종춘 다보성고미술 대표가 금속활자 200여점 구입 당시 같이 사들였다고 주장한 청동초두, 수반에 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신청 활자가 고려금속활자라고 결론낼 수 없는 이유였다. 증도가자는 문화계의 해묵은 숙제였다. 2010년 9월 김종춘 대표와 남권희 경북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활자를 일부 공개하며 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된 증도가자라고 주장했다. 이듬해 국가문화재 지정 신청을 내며 진위 여부를 둘러싸고 오랜 논쟁이 시작됐다. 증도가자는 목판 복각본인 증도가만 남아 있을 뿐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없어 태생적으로 진위를 가리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정확한 제작 시기를 측정할 수 있는 (활자에 묻은) 먹이 더 이상 남아 있지 않다는 점, 출토지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걸림돌이 됐다. 하지만 문화재청이 탄소연대측정 결과를 근거로 증도가자가 고려시대에 만들어진 활자일 가능성은 남아 있다고 밝힌 만큼 이후에도 조사와 심의는 이뤄질 수 있다. 현재까지 고려금속활자로 확정된 유물은 없다. 황권순 유형문화재과장은 “신청자와 협의를 거쳐 청동초두, 수반을 제출받아 분석할 수 있거나, 지금까지 확인된 증거나 자료 외에 고려금속활자임을 증빙할 수 있는 자료가 확보되면 (고려시대 활자인지를) 계속 조사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재심의가 가능하려면 취득 경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날 심의 결과에 대해 김종춘 대표는 “문화재 신청을 ‘고려활자’로 할지 검토하거나 행정심판 등의 절차를 밟겠다”는 입장이다. 남권희 경북대 교수는 “과학적 검증을 통해 진본이라는 증거를 이미 충분히 보여 줬다. 이는 증도가자의 문화재 지정을 막으려는 의도”라고 반발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조계종 스님 674명 석·박사 학위 소지

    한국 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 스님 가운데 석·박사 학위 취득자를 비롯한 전문인력에 대한 데이터베이스(DB)가 공개됐다. 조계종 교육원은 “종단 홈페이지를 통해 승가 전문 교학자 및 특수 분야 인물정보를 공개했다”고 13일 밝혔다. 조계종단의 전문인력 자료가 공개되는 건 처음이다. 공개 자료에 따르면 석사 학위자, 박사 수료자, 박사 학위자 및 특수 분야(염불·언어·전강 등) 전문 승가인력은 총 674명에 달했다. 공개된 674명은 비구 357명, 비구니 317명으로 비구가 조금 더 많았다. 이 가운데 석사 학위자가 224명으로 가장 많고 다음은 박사 수료자(193명), 박사 학위자(188명), 석사 특수분야(157명) 순이었다.(중복자 87명 포함) 분야별로는 대승불교(176)와 선불교(116) 전공자가 압도적으로 많았고 인문·사회·자연(71), 사회복지·심리학(70), 불교사·사상(51), 문화·예술·건축(46), 초기불교(33), 불전언어(27), 포교전법(15) 순이었다. 특수 분야는 불전언어(52)가 가장 많았고 영어(44), 일본어(25), 불교의식염불(21), 중국어(13), 수화(2) 순으로 많았다. 교육원 측은 앞으로 전문 승가인력에 대한 기초정보를 매년 보완해 제공할 예정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증도가자, 세계 最古 금속활자 아니다

    증도가자, 세계 最古 금속활자 아니다

    세계 최고(最古)의 금속활자인지를 놓고 논란을 빚었던 일명 ‘증도가자’(證道歌字)가 보물로 지정할 가치가 없는 것으로 판명났다. 이로써 2010년 9월 처음 제기된 증도가자를 둘러싼 진위 논란이 7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문화재청은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간담회를 열어 “오늘 개최된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 회의에서 문화재 지정 신청 활자(증도가자) 101점의 보물 지정 안건을 심의한 결과 부결됐다”고 밝혔다. 증도가자는 보물로 지정된 불교서적인 ‘남명천화상송증도가’(南明泉和尙頌證道歌·증도가)를 인쇄할 때 사용했다는 활자다. 보물 증도가(보물 758-1호)는 1239년 목판으로 제작된 책으로, 이전에 금속활자로 찍은 책이 있었다고 전해지나 지금은 남아 있지 않다. 증도가자가 진품으로 인정되면 1377년 간행된 ‘직지심체요절’보다 최소 138년 앞서는 금속활자 관련 유물이 되기 때문에 국민적 관심을 모았다. 하지만 이날 심의에서 문화재위원회는 증도가자의 서체 비교, 주조와 조판 검증 결과 증도가를 인쇄한 활자로 보기 어렵다는 결론을 냈다. 출처와 소장 경위가 불분명하다는 점도 부결 이유로 지적했다. 다만 고려 시대에 제작된 금속활자일 가능성에 대해서는 이후 재심의 신청이 들어오면 조사를 이어 가기로 했다. 정서린 기자 rin@seoul.co.kr
  • 부처님오신날 기리는 미륵사지 석탑 점등식

    부처님오신날 기리는 미륵사지 석탑 점등식

    12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부처님오신날(5월 3일)을 기리려고 열린 점등식에 참여한 불자들이 미륵사지 석탑(국보 11호)을 본떠 만든 높이 20m의 한지탑을 바라보고 있다. 이날 행사에 참여한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은 “아직 가시지 않은 세월호의 아픔, 민심이 일렁였던 광장의 물결이 앞날을 밝히는 지혜의 빛으로 새로워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손형준 기자 boltagoo@seoul.co.kr
  • 성주골프장 입구서 5000명 사드반대 집회

    성주골프장 입구서 5000명 사드반대 집회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반대하는 평화집회가 지난 8일 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열렸다. 소성리 마을은 사드 배치 예정지 성주골프장으로 향하는 길목으로, 골프장 입구까지 거리가 2㎞ 정도다.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와 김천시민대책위원회, 원불교성주성지수호비상대책위원회 등 7개 단체가 주최했다. 이날 집회에는 성주·김천 주민뿐 아니라 서울·부산·광주·제주 등 전국 시민·사회단체 회원 5000여명(경찰 측 추산)이 참석했다. 이들은 ‘불법사드 원천무효 소성리 범국민 평화행동’ 집회에서 “한·미 간 사드배치 합의는 법적 요건을 갖추지 못한 원천무효”라고 밝혔다. 또 4월을 사드장비 반입 저지를 위한 ‘평화의 달’, 소성리 마을을 ‘평화의 마을’로 선포했다. 참가자들은 집회를 마친 뒤 700여m 떨어진 성주골프장 입구 진밭교까지 평화행진을 벌였다. 대구지법은 지난 7일 사드배치철회 성주투쟁위원회가 성주경찰서장을 상대로 낸 옥외집회“신고제한 통고처분 집행정지 신청을 받아들여 “평화대회 참가자들이 성주골프장 정문에서 100m 밖까지 접근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경찰은 이날 집회 현장에 2000여명의 경찰력을 투입했으나 별다른 충돌은 일어나지 않았다. 평화행동 집회에 앞서 이날 오후 1시 30분쯤 소성리 마을회관 앞에서 원불교·개신교·불교·천도교·천주교 등 5대 종단은 평화기도회를 열고 한반도 평화를 위해 국방부의 일방적인 사드배치에 반대한다는 ‘평화 선언문’을 발표했다. 성주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대선 D-30] “불심으로! 대동단결!” 역대 이색 대선 후보들

    5월 9일 ‘장미 대선’이 30일 앞으로 다가왔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전 대표의 독주 속에 대중의 인지도가 낮은 후보들도 저마다의 목적으로 대권에 도전하고 있다. 다가오는 대선을 맞아 그간 유권자에게 황당함 혹은 신선한 충격을 던졌던 이색 대선 후보들을 알아봤다.●“불심으로! 대동단결!”…2002년 호국당 김길수 후보 기호 1번 이회창 한나라당(현 자유한국당) 후보의 대세론 속에 기호2번 노무현 민주당(현 더불어민주당) 후보 양강 구도로 치러진 2002년 제 16대 대통령 선거에서 유권자의 눈길을 끈 한 후보가 있었다. 기호 6번 호국당 김길수 후보. 30대 이상 세대라면 ‘김길수’라는 이름을 몰라도 그가 대선에 내건 구호는 기억할 것이다. “불심으로! 대동단결!” 이 구호는 이후 각종 코미디 프로그램에서 패러디되기도 했다.김 후보의 공식 직함은 ‘세계불교 법왕청 산하 법륜사 주지’이다. 과거 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그는 1970년 육군 7사단에서 하사로 병역을 마치고, 1988년 필리핀 콘티넨탈대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당시 김 후보는 출마의 변을 통해 “역대로 큰스님들은 국난 때 사회참여를 주저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김 후보의 주요 공약은 ▲조세정책 개정을 통한 ‘빈익빈 부익부’ 타파 ▲선 평화, 후 통일 대북정책 ▲한미주둔 지위협정(SOFA) 전면 개정 등이었다. 선거 결과 김 후보는 5만 1104표(0.2%)를 얻으며 6명의 후보 가운데 5번째에 이름을 올렸다. ● “십자가의 사랑만이”…1997년 바른나라정치연합 김한식 후보 불교계의 대권 도전에 김길수 후보가 있었다면 기독교계에서는 1997년 제 15대 대선에 출마한 바른나라정치연합 김한수 후보가 기독교 정당의 대선 출마 시초로 꼽힌다.김 후보는 당시 한사랑선교회 대표 목사로, 광주숭일고 재학시절 6.3한일외교회담 반대 투쟁에 참가한 것이 문제가 돼 중퇴했고 서울대 재학시절에는 음대 학생회장과 서울대 총학생회 부회장을 지내면서 유신반대투쟁을 벌였다. 주요 공약으로는 ▲남북한 공동 예배 추최 ▲예수님의 사랑으로 남북통일 ▲신앙과 정치활동의 접목 등이 있었다. 대선에서는 총 4만 8717표(0.18%)를 받으며 7명의 후보 중 공화당 허경영 후보를 누르고 6위에 올랐다. ● “신안 앞바다 보물로 국민 부자 만들겠다”…1971년 정의당 진복기 후보 시간을 더 거슬러 1970년대로 올라가면 더욱 황당한 대선 후보들이 등장한다. 그 가운데 회자되는 사람은 단연 “신안 앞바다 보물로 국민을 부자로 만들겠다”던 정의당 진복기 후보다.트레이드 마크인 ‘카이젤 수염’으로 당시 유권자에게 얼굴을 알린 진 후보는 외모만큼이나 공약 또한 파격적이었다. ‘신안 보물 발굴’외에 그가 강조한 공약은 ‘북진 전쟁을 통한 통일’이었다. ● ‘남장여자’ 1992년 무소속 김옥선 후보 1992년 제 14대 대선에 출마, 8만 6292표(0.4%)로 낙선한 정치인 김옥선 후보. 당시를 기억하는 유권자에게 김 후보는 ‘남장여자’ 대선 후보라는 다소 황당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하지만 김 후보는 단순히 ‘괴짜’ 후보로 치부되기에는 국내 정치사에 던진 의미가 결코 가볍지 않다.김 전 의원은 1967년 제7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신민당 후보로 출마, 재검표 끝에 국회에 입성했고, 이후 두 번의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됐다. 유신 체제이던 1975년에는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딕테이터(dictator·독재자) 박”, 유신정권을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정권”이라고 비판했다가 의원직을 박탈당했다. 김 전 의원의 ‘남장’은 대선에 출마하면서 더욱 주목받았지만, 그녀는 이미 1950년대부터 남장으로 살아왔다. 그녀는 과거 서울신문과 인터뷰에서 “어머니가 일제 징용으로 끌려가 죽은 오빠를 그리워하는 것을 보고 1남 3녀 중 막내인 내가 남장을 하게 됐다”면서 “어린 나이에 사회사업과 교육 사업에 뛰어들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이기도 했다”라고 밝힌 바 있다. ● ‘나라를 지킨 철모’ 2007년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후보 이명박, 정동영, 이회창 등 유력 후보군 뒤로 사람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던 한 남자의 홍보용 포스터. 녹슬고 구멍 난 철모 뒤로 태극기 이미지가 걸려있다. 포스터 속 구호는 ‘지키자! 대한민국’. 당시 대선 후보 중 유일한 군 출신인 기호 9번 새시대참사람연합 전관 후보다.전 후보는 1967년 육군사관학교를 임관, 합동참모본부와 육군 보병제9사단장과 학생중앙군사학교(ROTC 사령부) 학교장 등을 지냈다. 선거 결과 7161표(0.03%) 득표에 그치며 10명의 후보 중 최하위에 그쳤다. ●“내 눈을 바라봐!”…본좌 허경영의 등장 국회의원 300명 정신교육대 입소, 유엔본부를 판문점으로 이전 유치, 산삼뉴딜 정책으로 100만 일자리 창출… 공약만 봐도 누구인지 알 수 있는 한 남자. 사람들에게 ‘허본좌’로도 잘 알려진 민주공화당 허경영 전 총재다.2007년 제17대 대선에서 각종 황당한 공약과 ‘축지법’, ‘아이큐 450’ 등 괴짜로 주목 받은 허씨는 이미 1997년 제15대 대선도 황당한 공약으로 도전한 바 있다. 그가 지난 두 번의 대선에서 내세운 주요 공약으로는 1000여 개의 산삼재배단지를 만들어 100만 실업자는 고용하는 ‘산삼뉴딜정책’, 결혼 시 1억원 지급과 출산 시 3000만원 지원, 국회의원 100명으로 축소 및 지자체의원 보수폐지 등이 있다. 허씨는 이번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이 된다면 “국회의원 300명을 국가지도자 정신교육대에 집어넣어버리겠다”며 또 대선 출마 의지를 밝히고 있지만, 그는 2008년 12월 박근혜 당시 한나라당 전 대표에 대한 명예훼손과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선고된 징역 1년 6월형이 확정되면서 출소 후 10년 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이번 대선에도 출마할 수 없다. 앞서 허씨는 2007년 대선 과정에서 “대통령이 되면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와 결혼하기로 했고, 조지 부시 대통령 취임 만찬에서 한국 대표로 참석했으며, 고(故) 이병철 삼성 회장의 양자이고, 박정희 전 대통령의 정책보좌역을 역임했다”고 주장했으나 모두 허위로 확인됐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란 속 父子 잃은 백제 위덕왕, 원찰 세워 넋 기리다

    [서동철 기자의 스토리가 있는 문화유산기행] 전란 속 父子 잃은 백제 위덕왕, 원찰 세워 넋 기리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는 2014년부터 경주 월성을 발굴 조사하고 있다. 월성은 파사이사금 22년(101)에 새로 쌓아 내부에 궁궐을 지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신라의 역사가 끝날 때까지 궁성(宮城)으로 기능했다. 발굴단 안팎에는 신라 역사를 밝히는 것 말고도 호기심 어린 기대가 하나 더 있다. ‘일본서기’ 기록이 사실이라면 월성에는 백제 성왕의 두골(頭骨)이 묻혀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월성으로 시작했지만 오늘 찾아가는 곳은 백제의 마지막 수도 사비, 곧 오늘의 부여다. 부여 이야기라면 의자왕으로 시작해 낙화암으로 끝나기 마련이다. 부소산에 올라 고란사에서 약수 한 모금을 마신 뒤 정림사 터와 궁남지, 그리고 국립부여박물관을 차례로 둘러보는 것으로 부여 탐방을 마무리하곤 한다. 하지만 의자왕이 아니라 위덕왕에 초점을 맞추면 부여 여행 길은 훨씬 풍성해질 것이다. 신라와 연합한 백제는 551년 고구려를 공격해 한강 하류의 옛 영토를 회복했다. 그런데 고구려와 밀약을 맺은 신라가 553년 백제군을 밀어내고 한강 하류 지역을 차지해 버렸다. 백제는 분노했고, 훗날 위덕왕(재위 554~598)이 되는 창 왕자가 신라 정벌의 선봉에 섰다. 성왕(재위 523~554)은 창 왕자가 빼앗은 신라의 관산성에 50명 남짓 소수의 군사를 이끌고 독려하러 갔다가 신라 복병에게 붙잡히는 신세가 되고 만다. 관산성은 지금의 충북 옥천에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삼국사기’는 성왕이 전투 중 목숨을 잃은 것으로 기술하고 있지만 ‘일본서기’의 서술은 다르다. 신라는 노비 출신 장수 고도로 하여금 사로잡은 성왕의 목을 베고 머리뼈를 월성 북청(北廳) 계단 아래 묻었다고 했다. 신라 관리들이 계단을 오르내릴 때마다 백제 왕의 머리를 밟는 모욕을 주기 위함이었다는 것이다. ‘일본서기’는 성왕의 두골이 묻힌 건물을 “도당(都堂)이라 이름한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관산성에서 왕을 잃은 백제는 군사 2만 960명이 죽고 말은 한 마리도 돌아가지 못했다고 ‘삼국사기’는 적었다. ‘일본서기’는 포위당한 창 왕자가 빠져나오는 모습도 그렸다. 군사들이 당황해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에서 축자국조가 활을 당겨 가장 용감한 신라 장수를 쏘아 말에서 떨어뜨렸고, 이 틈에 창 왕자는 샛길로 간신히 도망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백제, 가야, 왜 연합군은 처절하게 패배했다. 부왕(父王)이 죽자 창 왕자가 왕위에 오른다. ‘일본서기’에는 “돌아가신 부왕을 받들고자 출가하여 불도(佛道)를 닦고자 한다”는 창 왕자의 이야기가 나온다. 젊은 창 왕자의 무모함으로 국가적 위기를 맞은 것은 사실이지만, 조정은 왕위 계승자의 출가는 말렸던 것 같다. 전후 사정을 보면 위덕왕을 비롯한 왕실 인사들의 중심 이념은 불교였음을 짐작하게 한다.백제는 두개골을 제외한 성왕의 시신을 오늘날의 능산리 고분군에 장사 지낸 것으로 추정한다. 능산리는 부여에서 논산 가는 길을 따라 3㎞쯤 달리면 나타난다. 사비성 외곽을 두른 나성을 막 벗어난 위치다. 고분군은 무덤이 3기씩 2열을 이루고 북쪽 기슭에 하나가 더 있어 모두 7기로 이루어져 있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금 서북쪽 산록에서 2기의 또 다른 왕릉급 무덤을 발굴하고 있다. 능산리 고분군에서 주인이 밝혀진 무덤은 아직 하나도 없다. 그럼에도 성왕이 묻혀 있을 것으로 보는 이유는 이웃한 능사(寺)의 존재 때문이다. 능사는 1993년 국립부여박물관이 발굴 조사 도중 백제 금동대향로를 찾아낸 곳이라면 이해가 빠를 것이다. 능사는 왕릉의 원찰을 가리키는 보통명사다. 위덕왕도 능산리에 잠들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듯하다.금동대향로도 중요하지만 능사에서 발굴한 창왕명석조사리감(昌王銘石造舍利龕)은 사비 시대 백제 역사를 재구성하는 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볼 수 있는 사리감은 능사의 목탑(木塔) 터 중앙의 심초석 위에서 발견됐다. 내부에 사리장엄을 안치할 수 있도록 화강암을 다듬고 오목하게 홈을 판 모습이다. 좌우에 10글자씩을 새겼는데 ‘백제 창왕 13년 정해년에 누이 형(兄) 공주가 사리를 공양했다’는 내용이다. 정해(丁亥)는 567년에 해당한다. 한동안 위덕왕의 즉위는 패전의 책임론으로 순탄치 않았을 것이라는 학설이 지배적이었다. ‘일본서기’가 창왕의 즉위를 557년으로 기록한 것도 이런 해석에 한몫했다. 부왕의 3년상을 치르며 책임을 곱씹어 귀족의 합의를 이끌어 내는 시간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리감에 적힌 대로 정해년이 즉위 13년이라면 위덕왕은 성왕 사후 곧바로 왕위를 계승한 것이 된다. 형 공주가 목탑의 사리를 공양했다고 능사 조성을 주도했다고 보는 것도 무리다. 미륵사 탑을 해체하는 과정에서 수습된 사리구에도 무왕비 사택씨가 사리 공양의 주체로 등장한다. 그렇다고 무왕비가 엄청난 규모의 미륵사 건립을 혼자서 주도했다고 보지 않는다. 능사 조성 역시 위덕왕이 주도한 국가적 사업이었을 것이다. 관산성 패전에 결정적 책임이 있는 위덕왕이 부왕을 추모하고자 지은 절이라고 할 수 있다.부소산성 남동쪽에 능사를 세운 위덕왕은 완전히 반대편인 북서쪽에는 왕흥사를 창건한다. 백마강을 건너야 하는 곳이다. 당연히 왕흥사 터에 서면 강 너머로 부소산과 낙화암이 바라보인다. 왕흥사 터 목탑이 있던 자리에서는 2007년 발굴 조사에서 사리장엄구가 출토됐다. 심초석에 사리공을 만들고 그 위에 5각 지붕 모양의 뚜껑돌을 올려놓은 모습이었다. 청동사리합 표면에서는 명문이 드러났다. ‘정유(丁酉)년 2월 15일 백제왕 창이 죽은 왕자를 위해 절을 세우고 사리 둘을 묻었는데 신의 조화로 셋이 됐다’는 내용이다. ‘삼국사기’에는 왕흥사 창건 연대가 법왕 2년(600)으로 나오니 발굴 조사로 역사적 사실을 바로잡은 것이다. 일본에 사신으로 건너가 쇼토쿠 태자의 스승이 됐다는 아좌태자 말고도 위덕왕에게는 왕자가 더 있었다는 사실도 자연스럽게 확인됐다. 왕자의 죽음은 위덕왕 8년(561)과 24년(577) 신라를 침공했으나 각각 1000명과 3700명의 전사자를 냈다는 ‘삼국사기’ 기록과 연결 지을 수 있을 것이다. 사비 시대 여섯 임금은 성왕, 위덕왕, 혜왕, 법왕, 무왕, 의자왕이다. 오늘날의 공주인 웅진에서 천도한 성왕과 마지막 의자왕은 부여에 짙은 체취를 남겨 놓았다. 무왕은 전북 익산의 미륵사와 왕궁리 유적 등으로 자신의 위상을 다양하게 과시하고 있다. 능사와 왕흥사 발굴로 위덕왕의 존재 또한 뚜렷해졌다. 하지만 위덕왕의 동생인 혜왕과 혜왕의 아들인 법왕은 모두 즉위한 이듬해 세상을 등졌다. 사찰을 창건하는 등 사비에 흔적을 남기기에는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을까 싶다. 글 사진 논설위원 dcsuh@seoul.co.kr
  • “이재용 부회장 성실히 수감생활”

    교도관 “절도 있는 생활” 칭찬 지난 2월 17일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뇌물공여 등의 혐의로 구속돼 7일 첫 재판을 앞둔 이재용(49) 삼성전자 부회장이 서울구치소 안에서 ‘모범수용자’로 통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국내 최대 기업 총수인 그가 주변의 우려와는 달리 식사도 잘하고 운동도 열심히 하는 것은 물론 흐트러짐 없는 모습으로 생활하고 있는 덕분이다. 6일 사정당국에 따르면 이 부회장은 어릴 적부터 ‘황태자’로 자란 ‘범털’(사회 고위층을 일컫는 은어)답지 않게 안정적이면서도 절도 있는 생활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부회장은 TV 1대와 매트리스 등이 비치돼 있는 6.56㎡(약 1.9평) 크기의 독거실(독방)에서도 책이나 침구류 등을 잘 정돈하며 생활하고 있다고 구치소 관계자들은 전했다. 이 부회장은 최근 불교, 개신교 관련 서적 등을 외부에서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교도관들은 각 방에 설치된 폐쇄회로(CC)TV를 통해 수시로 재소자들의 생활을 관찰한다. 사정당국 관계자는 “밖에서는 한 번도 접하지 못했을 한 끼당 1440원 정도의 식사를 하면서도 음식물을 남기는 법이 거의 없다”면서 “매일 배달되는 신문들을 꼼꼼히 읽으면서 천천히 식사를 하는 편”이라고 귀띔했다. 이 부회장은 하루 한 번 45분씩 주어지는 운동 시간엔 좁은 부채꼴 모양의 운동 공간을 쉬지 않고 달리는 등 몸 관리에도 철저하다는 게 구치소 관계자들의 전언이다. 독방에 수용된 거물급 인사들의 경우 일반 재소자와 마주치지 않도록 따로 운동 시간을 배정받는다. 그가 조사받는 자세는 박영수 특별검사팀 안에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특검팀 고위관계자는 “이 부회장이 상당히 점잖고 가정교육이 잘된 사람이라고 느꼈다”고 떠올렸다. 반면 김기춘(78·구속 기소) 전 청와대 비서실장은 구치소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실장은 독방에서 종종 식사를 제대로 비우지 않는 데다 계속해서 주변을 두리번거리는 등 산만한 모습을 보이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관계자는 “평생 서슬 퍼런 권력을 휘둘렀던 김 전 실장이 만년의 자신의 처지를 현실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재희 기자 jh@seoul.co.kr 조용철 기자 cyc0305@seoul.co.kr
  • ‘망명 은인’ 만난 달라이 라마

    ‘망명 은인’ 만난 달라이 라마

    “당신의 얼굴을 보니 나 또한 나이가 들었다는 걸 깨닫게 되네요.”티베트 불교 최고 지도자 달라이 라마(81)가 58년 전 중국군에 쫓기던 자신을 인도로 무사히 안내한 인도인 국경수비대원과 감동의 재회를 했다. BBC 중문망은 4일 인도 북동부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달라이 라마가 지난 2일 구와하티에서 나렌 찬드라 다스(79)와 만났다고 소개했다. 다스는 1959년 3월 티베트의 수도 라싸를 떠난 지 보름 만에 인도 땅을 밟은 달라이 라마를 호위한 군인이다. 달라이 라마는 다스를 보자마자 끌어안으며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 다스는 “내 임무는 그를 지키는 것이었다”면서 “아무 대화도 하지 말라는 상부의 명령에 따라 그를 인도로 들여보내기만 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달라이 라마는 “인도에 도착해서야 비로소 자유를 경험했고 내 삶의 새로운 장이 열렸다”고 말했다. 1950년 중국이 티베트를 침공한 뒤 9년간 양측은 협상을 벌였다. 그러나 성과는 없었다. 티베트인의 대규모 봉기가 일어났다. 중국의 진압으로 약 12만명의 티베트인이 학살됐다. 23세였던 달라이 라마는 중국군으로 변장한 채 히말라야를 넘는 2600㎞의 망명길에 올랐다. 망명 이후 달라이 라마는 인도 다람살라에서 망명 정부를 이끌고 있다. 베이징 이창구 특파원 window2@seoul.co.kr
  •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세상에서 가장 밝으면서 가장 어두운 것은

    [김선자의 신화로 문화읽기] 세상에서 가장 밝으면서 가장 어두운 것은

    “세상에서 가장 밝으면서 동시에 가장 어두운 것은 무엇일까요?” 여신이 묻는다. 자신과 혼인하고 싶다는 남자에게 여신이 이런 알쏭달쏭한 수수께끼를 낸 것이다. 어두우면서 동시에 밝은 것이라니, 도대체 그것이 무엇이란 말인가. 어려운 문제였지만 여신과 혼인하겠다는 일념으로 오랜 세월 동안 답을 찾아다닌 남자가 마침내 대답했다. “그것은 사람의 마음이오.” 참으로 지혜로운 대답이다. 사람의 마음속에는 그렇게 빛과 어둠이 공존한다. 그래서 모든 종교의 경전에는 일찍부터 빛과 어둠의 대립에 관한 이야기가 등장했다. 기독교나 이슬람, 불교보다 더 오래된 종교인 조로아스터교의 경전 ‘아베스타’와 ‘분다히슨’을 보면 그 바탕에는 빛과 어둠의 대립 구도가 깔려 있다. 빛의 신 아후라 마즈다와 어둠의 신 아흐리만은 끊임없이 대립한다. 생각해 보면 기독교나 이슬람, 불교도 빛의 종교다. 신은 언제나 밝은 빛과 함께 등장한다. 그리스 신화의 제우스도, 인도 신화의 인드라도 빛의 신이다. 중국 윈난성 나시족의 신화에서도 빛의 신은 어둠의 신과 전쟁을 하며, 만주족 신화에서도 빛의 여신은 세상을 지키기 위해 어둠의 신과 길고 긴 싸움을 한다. 이처럼 유라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곳에는 빛의 신과 어둠의 신이 대결하는 신화가 예외 없이 등장한다. 물론 마지막에 승리하는 것은 빛의 신이지만 쉽게 이기는 것은 아니다. 어둠의 신을 몰아내려고 지난한 투쟁의 과정을 거쳐야 하고, 그 과정에서 죽을 고비를 몇 번이나 넘긴다. 영웅 코드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영화들을 보아도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선한 주인공이 이기는 경우는 없다. 빛의 세력은 영화가 계속 되는 내내 어둠의 세력에게 쫓기다 영화가 끝날 무렵이 돼서야 마침내 승리를 거둔다. 그런 공식은 영웅 코드가 들어 있는 대부분의 영화에 적용된다. 어둠의 세력은 그렇게 끈질기고 힘이 세다. 신화 속에서도 빛의 신은 어둠의 신에게 이기지만, 그렇다고 빛의 신이 완벽한 승리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어둠의 신은 결코 소멸하지 않기 때문이다. 아니, 소멸하기는커녕 언제든 기회만 있으면 돌아온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유의 힘이 있는 식물을 태워서 연기를 피워 올려 주변을 정화하고, 불을 피워서 환한 빛을 만들어 내어 어둠의 신이 돌아오는 것을 차단한다. 이란 야즈드에 있는 조로아스터교 사원의 영원한 불도 그래서 지금까지 타오르며, 티베트나 윈난 지역에도 빛을 상징하는 하얀 돌에 대한 신앙이 있다. 사실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암흑 물질과 암흑 에너지가 96%나 된다고 하는데, 악의 세력이 그토록 강한 것도 어찌 보면 우주의 법칙이 그러하기 때문이 아닌가 한다. 하지만 아무리 강한 어둠이라고 해도 한 줄기 빛은 그 어둠을 무너뜨린다. 그래서 신화 속의 빛은 언제나 지혜를 상징한다. 어둠의 신은 사람들이 지혜를 갖는 것을 원치 않는다. 그래야 자신의 뜻대로 세상을 다스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세상을 어둠과 무지로 채우려고 한다. 그렇기에 어둠을 물리치고 세상을 빛으로 채우는 것은 생각보다 어렵고 긴 과정이 필요하다. 지나간 겨울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광장으로 나온 것은 세상을 지혜의 빛으로 채우고자 하는 소망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빛이 이제 조금씩 세상을 밝혀 가고 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한다. 어둠은 의외로 강하며 엄청난 생명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빛이 조금만 힘을 잃으면 어둠은 즉시 돌아온다. 우주를 구성하는 원리가 빛과 어둠이듯 세상에는 언제나 빛과 어둠이 나란히 존재한다. 빛의 힘이 강할 때 어둠은 잠시 밀려나 있을 뿐이다. 앞의 신화에서 보았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빛과 어둠은 공존한다. 그 속에서 우리가 선택해야 할 것은 세상을 밝히는 위대하고 영원한 빛, 즉 지혜다. 정의로운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집단지성의 지혜로운 눈빛은 영원한 불이 돼 어둠 세력의 귀환을 막을 힘이 될 것이다.
  • [런웨이 조선] 비애의 色 축제의 色 ‘백색’

    [런웨이 조선] 비애의 色 축제의 色 ‘백색’

    한국인이 즐겨 입었던 백색은 시대에 따라 보는 사람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되었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었는지 한마디로 단정 짓기는 어렵다. 그러나 백색에 대한 우리의 감정과 밖에서 바라보는 사람들의 느낌은 확실히 달랐다.일본의 미술평론가 야나기 무네요시가 바라본 한국인의 옷은 아무런 색도 지니지 않은 흰빛이거나 연한 옥색이었다. 흰색이든 옥색이든 무엇이 문제였겠는가? 한국인의 옷에 대한 그의 감상은 남녀노소 모두가 같은 색의 옷을 입고 있다는 것에 대한 낯설음이었다. 막부시대 이후 기모노는 대담한 장식과 함께 더욱 화려해졌다. 그런 기모노를 보고 자란 그였기에 충격은 더했을지 모른다. 야나기 무네요시는 ‘조선의 벗’으로 알려져 있다. 식민지 지배를 받던 조선의 상황에 가슴 아파하고, 조선을 침탈한 일본의 만행을 부끄러워했다. 하지만 그는 어쩔 수 없는 외부자의 시선으로 한국인의 흰옷을 바라보았다. 그에게 있어 한국인의 흰옷은 나라를 잃은 사람들의 일상화된 ‘상복’이었고, 색채의 결핍에서 온 애상의 미였다. 반면에 프랑스의 화가 조세프 드라 네지에르는 흰색을 한국인의 색으로 인정했다. 그는 흰색에서 어떠한 슬픔도 찾지 않았으며, 하나의 색으로 뭉뚱그려 바라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백옥같이 밝은 흰색에서 거칠고 투박한 흰색까지 아주 다양한 하얀색들을 있는 그대로 만났고, 그 속에서 생동감을 느꼈다. 조선의 거리에서 볼 수 있었던 흰옷의 물결은 서로 조화를 이루며 만들어내는 하모니였다. 그가 감상한 흰옷은 음색의 향연 그 자체였다. 그렇기에 세계 정세가 어떻게 바뀌더라도 한국인들은 영원토록 ‘백색 왕국’을 만들 것이며, 그렇게 불릴 것이라고 했다. 우리의 흰옷 사랑은 그 전통이 오래됐다. 태양을 신으로 하는 원시신앙에서부터 유래하는 한국인의 흰색은 삼국시대에서 고려시대에 이르는 불교사상, 조선시대의 유교사상과 융합되면서 한민족을 대표하는 상징색이 되었다. 그렇기에 한국인이 느끼는 흰색은 단순한 색이 아니라 신성한 색, 상서로운 색, 자연 그대로의 색, 정신 또는 사상을 담은 색으로 인식하였으며, 그 속에서 우리 민족의 고유한 미적 감각과 문화를 담아냈다. 서직수는 1766년(영조 41) 진사시에 합격한 후 능참봉에서 시작하여 통정대부 돈령부 도정을 지낸 인물이다. 소색(素色) 도포를 입고, 동파관을 쓰고 있는 모습에서 꼿꼿한 선비의 정신이 느껴진다. 소색은 흰색의 다른 표현이다. 소색은 본성, 본질, 본원, 시초의 뜻을 가진다. 결국 인간의 티 없는 본질, 물들지 않은 진심으로 우주 최고의 정신을 품는다. 한원진은 송시열의 학문을 이은 권상하의 수제자이다. 성리학 연구에 몰두한 학자답게 심의를 입고 복건을 쓰고 있다. 흰옷에 검은색의 연을 두른 심의는 다른 포와는 달리 상의와 하상(下裳)을 따로 재단하여 허리에서 이었다. 의는 하늘을 상징하는 건(乾)이며, 상은 땅을 상징하는 곤(坤)이다. 건은 곤을 통섭하므로 이 둘을 이어 붙임으로써 우주를 형성하게 된다. 결코 다른 색으로 물들일 수 없는 소색에서 출발하여 흰색으로 마무리 짓는다.이렇게 심오한 의미를 갖고 있는 흰옷임에도 불구하고 야나기 무네요시는 한국인의 흰옷에서 상복(喪服)을 떠올렸다. 우리 민족이 겪어 온 고통스럽고 의지할 데 없는 경험이 흰옷과 잘 어울리지만 몹시 원망스럽고 억울하거나 안타깝고 슬퍼 응어리진 한(恨)을 드러내기에 최적화된 것으로 표현했다. 그는 단순히 복색으로 드러나는 소색 또는 흰색에 대한 자신의 감상을 이야기했을 뿐이다. 오히려 직물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한국인이 즐겨 입는 평상복은 목면이나 명주로 만든다. 상복을 만드는 데 사용하는 삼베와는 전혀 다른 직물이다. 상복을 입는 사람은 죄인이다. 죄인으로서 죽은 자에 대한 슬픔을 표현하기 위해 상복은 삼베 올의 굵기를 달리해서 만들었을 뿐 색상으로 슬픔을 표현하지 않는다. 프랑스의 여행가이자 시인이며 문화인류학자인 조르주 뒤크로는 ‘가련하고 정다운 나라’(1904년)에서, 한국인의 흰색을 동심 어린 조선인들의 성향과 가장 잘 어울리는 색이라고 평가했다. 여기에 미국인 G W 길모어는 조선 면포의 탁월함까지도 간파했다. 조선의 의류는 보통 면포인 무명을 가장 많이 입으며, 복색은 한국인의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담은 백색이라고 했다. 그들은 서울 어디를 가서도 볼 수 있는 한국인의 밝은 흰옷에서 축제 같은 분위기를 느끼고, 그 속에서 한국인들의 천진난만한 쾌활함을 찾아내기까지 했다. 한국인의 색으로 인정했고 순수함의 결정체라고 생각한 백색이 누구에게는 슬픈 비애의 색으로, 또 누구에게는 기쁜 축제의 색으로 다가갔다. 결국 한국인의 백색은 누가 어떤 상황에서 느끼느냐에 따라 달라질 수밖에 없다. 우리의 흰옷은 오히려 비어 있는 색이기에 앞으로 더 많은 가능성을 담을 수 있지 않을까! 이민주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 원불교 본산 익산, 교정원 서울 이전설에 술렁

    원불교의 행정을 총괄하는 교정원의 서울 이전설이 나돌아 전북 익산시가 술렁이고 있다. 3일 익산시에 따르면 지난해 개교 100주년을 맞은 원불교가 지난달 28일 서울 동작구 흑석동에 100주년기념관 착공을 계기로 교정원의 서울 이전설이 흘러나온다. 원불교는 글로벌 종교로 거듭나기 위해 핵심 부서를 서울 기념관으로 집중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익산에는 종법사와 의결기구만 남게 된다. 이에 원불교 성지가 있는 익산시와 지역 상공인들이 교정원 서울 이전을 재검토해줄 것을 요청하고 나섰다. 정헌율 익산시장은 지난달 31일 원불교 총부를 방문해 한은숙 교정원장에게 이전 개검토를 요청했다. 정 시장은 “익산은 원불교 성지로서 그 위상이 있다. 본부가 이전하면 지역의 중심축이 없어지는 것이고 시민들이 큰 충격을 받게 될 것”이라고 우려의 목소리를 전했다. 한 교정원장은 “이전 계획이 없다”고 했지만 원불교의 세계화를 위해 운영 중인 태스크포스(TF) 관련 일부 업무를 서울로 옮기는 방안을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설명했다. 그러나 핵심부서인 문화교육부가 이미 서울로 이전, 다른 부서들의 이전설은 수그러들지 않을 전망이다. 박헌재 익산상공회의소 부회장은 “원불교가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 교정원을 이전하지 않겠다는 방침을 확고하게 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이주의 문화 레시피]

    [이주의 문화 레시피]

    전시 ●리장뽈·이종희 조각전 두 작가는 각각 ‘파라다이스’와 ‘유토피아’라는 비슷한 주제로 자신들이 지향하는 낙원을 표현한 작업을 선보인다. ‘내가 있는 바로 이곳’이라는 명제에서 출발한 리장뽈은 부조 형식의 ‘플래닛’(작품) 등 신작을, 자본주의의 다양한 문제점을 지적해 온 이종희는 그 연장선에서 제작한 조각작품을 선보인다. 16일까지. 서촌 팔레드서울. (02)730-7707. ●‘내가 사는 피부’전 인간의 실존과 은폐된 진실의 경계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현상을 피부를 매개로 보여 준다. 노상균, 김일용, 한효석, 강우영, 조혜진, 김준, 오를랑, 김성수, 장숙, 김윤경, 정지필, 이원석, 배찬효 등 출품. 30일까지. 서울 송파구 올림픽공원 내 소마미술관. (02)425-1077.대중음악 ●프렐류드 콘서트 유쾌하고 편안한 사운드로 재즈의 대중화를 이끌고 있는 프렐류드는 미국 버클리 음대에서 재즈를 전공한 고희안(피아노), 최진배(베이스) 등을 주축으로 결성되어 2005년 데뷔했다. 지금까지 7장의 앨범을 발표하며 한국 재즈의 도약을 알리는 전주곡(프렐류드)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7일 오후 8시. 서울 종로구 옥인동 서촌공간 서로. 3만 5000원. (02)730-2502. ●울림 콘서트 BTN불교라디오 ‘울림’의 개국 2주년 기념 공연. 힐링 멘토로 통하는 혜민 스님이 진행한다. 관록의 록 밴드 부활, 맨발의 디바 이은미, 감성 싱어송라이터 루시드폴, 1960년대 콘셉트의 3인조 걸그룹 바버렛츠가 듣는 이에게 힘이 되어 주는 음악을 연주한다. 8일 오후 4시. 서울 서초구 서초동 한전아트센터. 5만 5000~7만 7000원. (02)3270-3464연극·뮤지컬 ●연극 ‘목란언니’ 평양 예술학교에서 아코디언을 전공한 조목란이 뜻하지 않은 사고에 휘말려 한국에 오면서 벌어지는 이야기. 분단된 남북처럼 갈라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탈북 여성 조목란의 시각으로 담아 낸다. 22일까지. 서울 종로구 두산아트센터 Space111. 3만원. (02)708-5001. ●뮤지컬 ‘머더 포 투’ 당대 최고의 범죄 추리 소설가가 자신의 80번째 생일 파티에서 살해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범인을 잡아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야 하는 경찰 ‘마커스’를 비롯해 다수의 용의자를 두 배우가 연기하는 코미디 뮤지컬이다. 5월 28일까지. 서울 종로구 DCF대명문화공장 2관 라이프웨이홀. 3만~5만원. 1588-5212.클래식·무용 ●김재영&손열음 듀오 콘서트 2014년 모차르트 콩쿠르 우승자인 노부스콰르텟의 리더 바이올리니스트 김재영과 2011년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준우승한 피아니스트 손열음이 한 무대에서 브람스 바이올린 소나타 전곡(1~3번)을 연주한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동창으로, 오랜 음악적 동반자인 클래식 스타들이 들려 주는 하모니가 기대된다. 8일 오후 5시, 경기 성남 티엘아이아트센터. 5만원. (031)779-1500. ●유니버설발레단 ‘돈키호테’ 1869년 안무가 마리우스 프티파의 안무로 러시아에서 초연된 이후 세계적인 사랑을 받는 작품이다. ‘돈키호테’와 시종 ‘산초 판사’의 무용담이 중심인 소설 원작과 달리 가난하지만 재치 있는 이발사 ‘바질’과 매력 넘치는 ‘키트리’의 유쾌한 사랑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다. 5~9일. 서울 중구 국립극장 해오름극장. 1만~10만원. 1544-15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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