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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20일 서울 종로구 견지동 조계사에서 열린 2019년 3대 종교(가톨릭·기독교·불교) 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경제 문화축제’에서 이재갑(왼쪽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참석자들이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 두 번째부터 최혁진 청와대 사회적경제 비서관, 이 장관, 림형석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교단 총회장,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유경촌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3대 종교 사회적 경제 활성화 기원 공동행사

    20일 서울 종로구 조계사에서 열린 2019년 3대 종교 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경제 문화축제’에서 이재갑(왼쪽 세 번째) 고용노동부 장관과 원행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유경촌 천주교 서울대교구 주교, 림형석 대한예수교장로회통합교단 총회장 등이 사회적경제 활성화를 기원하는 피켓을 들고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국립공원에 사찰부지 편입, 국가가 보상하라”

    “국립공원에 사찰부지 편입, 국가가 보상하라”

    불교계가 과거 사찰 소유 토지를 국립공원에 편입하는 과정에서 보상받지 못했다며 공식 보상을 정부에 요구하고 나섰다. 재산권 규제 관련 헌법소원도 불사한다는 방침이다. 조계종은 20일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문화역사기념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화재 관람료를 둘러싼 논란은 국가의 일방적인 국립공원 정책에서 비롯된 것”이라며 이같이 요구했다. 조계종이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해 공식 입장을 밝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조계종은 “국립공원과 관련한 정부 차원의 구체적인 해결방안 제시가 현재의 갈등과 논란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방안”이라며 “국립공원이라는 공공의 필요성으로 사찰 소유 재산을 제한하는 것이 국가적으로 불가피하게 필요하다면 헌법에 근거해 반드시 그에 상응하는 보상 조치를 강구할 것을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자연공원법 개정을 통해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는 정당한 보상 절차를 명문화해 달라는 요구를 더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면서 “사찰이 직접 문화재관람료를 징수하게 해 사찰의 피해를 일부분 보전하게 하는 지난날의 편법 조치를 중단하고 이를 대체하는 국가보상 제도를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조계종은 이와 함께 정부 각 부처에 분산된 전통 사찰 보존관리업무를 문화체육관광부로 일원화할 것도 요구했다. 그동안 문화재 관람료 징수와 관련해선 문화재를 볼 의사가 없는 등산객에게까지 일방적으로 관람료를 받고 있다는 입장과 국립공원 내 사찰 재산 이용에 따른 당연한 조치라는 주장이 맞서 왔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서울포토]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 경제 문화축제’ 개최

    [서울포토]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 경제 문화축제’ 개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 림형석 목사,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린 2019년 3대종교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 경제 문화축제’에서 미소를 짓고 있다. 2019.6.20.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서울포토] 대화하는 스님과 신부님

    [서울포토] 대화하는 스님과 신부님

    대한불교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 천주교 서울대교구 유경촌 주교를 비롯한 참석자들이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공연장에서 열린 2019년 3대종교공동행사 ‘자비와 나눔 행, 사회적 경제 문화축제’에서 대화를 하고 있다. 오장환 기자 5zzang@seoul.co.kr
  • [열린세상] 한국은 진급기에 있는 나라/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열린세상] 한국은 진급기에 있는 나라/최준식 이화여대 한국학과 교수

    요즘 나라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게 나라냐’ 혹은 ‘한국은 망할 수밖에 없다’는 식으로 말이다. 또 북한 핵 문제는 풀릴 기미가 보이지 않는데 백두산마저 징조가 이상하고 어디 한 군데 성한 곳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지금은 우파들이 이렇게 걱정하지만, 우파가 정권을 잡고 있었을 때에는 좌파들이 같은 이야기를 했다. 수십 년째 듣는 이야기가 있는데 한국 경제는 항상 위기라는 것이 그것이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보면 한국 경제는 꾸준히 발전하고 성장했다. 어떤 정권이 들어서든지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전방위적으로 진보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니고 국내외 여러 유력 인사가 했던 말이다. 이들은 한국이 크게 도약하기 위해서는 평화 통일이 가장 필수적인 조건이라고 말한다. 남한 주도로 통일이 된다면 한국은 미국, 중국, 일본, 독일에 이어 5대 강국이 된단다. 그렇게 된다면 골드만삭스사가 예상한 것처럼 2050년에 한국은 세계에서 미국에 이어 두 번째로 잘사는 나라가 된다. 이런 이야기를 하면 사람들은 믿지 못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한국인들은 일찍이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적을 행해 놓고 자신들은 그것에 대해 별 관심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무슨 기적일까? 제일 못사는 나라에서 지금처럼 선진국이 된 것이 그것이다. 이게 기적이 아니면 무엇이 기적이겠는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독립한 수많은 약소국 가운데 선진국에 진입한 나라는 한국이 유일하다. 게다가 한국은 민주화까지 이룬 나라 아닌가? 그런데 이런 한국의 모습에 대해 근 90년 전에 예언한 분이 있다. 원불교를 세운 소태산 대종사인데 그는 1930년대에 한국의 미래를 어변성룡, 즉 물고기가 변해서 용이 될 것이라고 예언했다. 지금은 물고기에 불과하지만, 용이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한국은 나날이 발전하는 진급기에 있는 나라라고 강조했다. 소태산은 한국이 낳은 큰 스승이다. 그의 가르침은 광대무변하다. 그의 원융무애 사상은 원효의 그것에 버금간다. 그래서 큰 교단을 일궈 냈다. 이런 분들은 절대로 허언을 하지 않는다. 그가 한국의 미래를 이렇게 낙관한 것은 깨친 이만이 갖고 있는 통찰력 때문에 가능했을 것이다. 당시 한국은 어떤 상태였나? 세계 지도에서 나라 이름마저 없어져 버린 피식민 국가 아니었는가? 당시 한국에는 아무 희망이 없었을 것이다. 일제의 지배는 더욱더 공고해지고 독립될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으니 말이다. 지식인들은 이런 식이라면 일제의 지배가 100년 이상 갈 것이라고 하면서 절망에 빠져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소태산이 한국에 대해 이러한 비전을 제시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보고 그랬는지 모르지만 당시에 사람들은 이 말을 믿지 않았을 것이다. 나라조차 없는 상황인데 무슨 용이 된다는 것인가 하고 반문하면서 말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용이 되지 않았는가? 아니 진즉에 아시아의 용이 됐다. 그러니 그의 예언이 실현된 것이다. 소태산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한국의 나아갈 길을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한국은 전 세계에서 ‘정신의 지도국’이자 ‘도덕의 부모국’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건 또 무슨 소리인가? 한국이 가장 뛰어난 종교 국가가 된다는 것 아닌가? 이게 가능한 일일까? 한국은 지금 혐오와 거짓만 판치는 사회 같은데 정신적으로 최고의 나라가 된다고 하니 실감이 안 난다. 이것은 현재의 한국이 정신의 중심 나라라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돼야 할 이상을 제시한 것이리라. 한국이 지향해야 하는 국가적 목표는 군사나 경제 강국이 아니라 뛰어난 영성 혹은 문화로 잡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든 이 예언에 따르면 한국의 앞날은 밝다. 지금은 한국인들이 서로 죽어라 싸우고 있지만 크게 보면 창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니 지금의 모습만 보고 낙담하지 말자. 여기까지 왔는데 더 발전하지 못할 까닭이 없다. 또 전 세계에서 활약하고 있는 우리의 젊은이들을 보면 이런 사람들을 배출한 한국이 퇴보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로 보인다.
  • 처음으로 한자리에 모이는 명상 지도자들

    다양한 명상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명상과 깨달음의 상관성을 짚어 보는 이색 포럼이 열린다. (사)한국명상지도자협회(이사장 혜거 스님)가 오는 29일 오후 1시부터 6시간에 걸쳐 서울 종로구 견지동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전통문화공연장에서 개최하는 제1회 한국명상지도자포럼이 그것. 현재 국내외에서 진행되고 있는 모든 명상의 공통점과 특징을 논의하게 된다. 명상은 전 세계적으로 열풍이 불고 있는 수행법으로 스트레스와 우울증 등 심리 치유와 평상심 회복에 적극 활용되고 있다. 구글, 삼성 같은 첨단 기업들이 임직원들에게 명상을 교육하고 있으며 영국에서는 의회 차원의 명상연구모임이 활동하는가 하면 공립학교에서는 교과목으로 활용되고 있다. 깨달음의 종교 차원을 넘어 교육, 의료, 스포츠, 산업 영역에까지 광범하게 확산되는 추세다. 이번 포럼은 이런 상황에서 다양한 명상 지도자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첫 행사라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참석자들은 명상과 깨달음의 관계를 비롯해 명상과 참선, 위빠사나와 간화선, 참선불교, 티베트불교, 통합명상 등을 집중 토론한다. ‘초기불교의 입장에서 본 명상과 깨달음’, ‘티베트불교 입장에서 본 명상과 깨달음’, ‘통합명상의 입장에서 본 명상과 깨달음’, ‘참선불교의 입장에 본 명상과 깨달음’이 발표된 뒤 전체 토론이 진행된다. 포럼에는 이 협회 소속 명상지도사 이외에 관심 있는 일반인도 참석할 수 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한국산사가 간직한 고귀한 단청빛…이젠, 그 아름다움 드러낼 방안 고민할 때”

    [이기철의 노답 인터뷰] “한국산사가 간직한 고귀한 단청빛…이젠, 그 아름다움 드러낼 방안 고민할 때”

    ‘사찰 사진 30년’ 노재학 작가가 말하는 단청의 세계사찰 사진만 30년 가까이 찍어온 노재학(56) 작가의 ‘한국산사의 단청세계, 고귀한 빛’이란 주제의 사진전이 11일까지 서울 인사동 경인미술관에서 열린다기에 6일 그를 만났다. 지난 2월 부산에서 첫 전시를 한 이후 세 번째로 전국 순회 전시를 하고 있다. 전시회는 문화유산회복재단(이사장 이상근)이 주최했다. 지난해 한국 산사 7곳이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것을 기념해 마련된 전시회다. 전시회는 문화유산으로 등재될 때 제대로 표현하지 못했던 한국미술과 불교 미술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고자 마련됐다. 노 작가는 “사찰은 건립 당시 최고의 건축과 회화, 문양, 조형이 결집된 미술관이자 고구려 고분벽화, 고려불화, 조선민화의 전통이 면면히 흐르는 보물창고”라고 강조했다. - 절집 사진, 얼마나 많이 찍었나. “글쎄요, 약 30년간 사진을 찍었으니 대충 1억 컷이 넘을 될 것입니다. 그런데 제가 보는 기준의 작품 사진은 3000컷에 하나 정도이니 작품 사진은 아마 3000장 남짓 보유하고 있습니다. 1년에 집에 있는 날이 50~60일 정도입니다. 보통은 한 절에서 2박3일 정도 머물며 사진을 찍습니다만, ‘내일이면 빛이 좋겠다’ 싶으면 하루 더 머물기도 합니다. 2박3일 머물며 찍어도 작품을 한 장도 못 건질 때가 더 많습니다. 1년에 자동차로 5만km 이상 달립니다. 지구 한 바퀴와 반지름 거리가 더 되지요.”  “절집 사진 대충 1억컷…작품 사진 3000장 정도1991년 제주교도소 출소 이후 자유찾아 돌아다녀1년에 300일가량 나가…자동차 5만km 거리 주행절집 방문횟수 몰라…부처님만 내발걸음 아실 것사진찍을 때 정장차림에 구두光…등산복 안입어”- 그러면, 절집을 얼마나 많이 갔나. “절집을 몇 번이나 갔을까 하고 생각해보면 저도 사실은 모릅니다. 그렇지만, 부처님은 제 발걸음 소리를 기억하실 겁니다. 제가 새벽에 가면, 다른 사람은 알 수가 없잖아요. 집에서 비교적 가까운 경남 양산에 있는 통도사에는 어림잡아 1000번 이상 갔을 겁니다. 방방곡곡의 개들이 최소한 한 번쯤은 저를 보고 짖었을 겁니다.”  - 사진을 찍을 때 정장 차림이라고 들었다. 불편하지 않나. “천정의 저 세계가 숭고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몸가짐을 함부로 해서는 안 되겠다 싶어서 등산복이나 청바지 차림으로 가지 않습니다. 최대한 예경을 갖춰야겠다고 싶어서 촬영을 나갈 때마다 집에서 가장 깨끗한 정장차림에 신발도 구두에 광을 내서 신고 갑니다. 절에서 만나는 일반 사람들은 제가 사진 찍는 줄도 모릅니다. 법당에서 기도하거나 예불 드리는 사람이 있으면 사진 쵤영 작업을 멈춥니다. 예불이 끝날 때까지 다른 데로 가지 않고 그 절에서 기다립니다. 그리고 아침, 점심, 저녁때 빛의 방향과 길이를 관찰하고 확인합니다.”   노 작가는 인터뷰 내내 ‘천장(天障)’이라는 말 대신 ‘천정(天井)’이라는 단어를 고집했다. 국립국어원은 천장을 표준어를 취하고, 천정을 북한어라면서 버린다고 밝혀두고 있다. 그러나 그는 천장은 낮고 좁은 건물의 내부공간 위를 평평하게 막은 개념이라면 천정은 궁궐이나 사찰 건축물 등과 같이 넓고 높은 내부공간을 우물 정(井)자 격자 칸을 짜서 층급으로 위엄있게 꾸민 형태라고 차이를 설명했다. 사찰의 천정은 하늘을 막는(障) 단절의 개념이 아니라 하늘의 세계를 구현하기에 천정으로 써야 한다고 주장했다. 인터뷰에서 그의 표현대로 천정으로 표기한다.  - 절 사진, 언제부터 찍었나. “이런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망설여집니다만 1991년 제주교도소에서 출소하고 나서부터입니다. 한라산 자락 해발 300m 위치에 있던 제주교도소 시설이 매우 열악했습니다. 4중창으로 공기가 소통되지 않아 메케한 냄새가 지독했습니다. 제가 있던 감방이 0.75평이었는데 구더기가 일렬로 구석을 따라 기어가는 것이 다반사였습니다. 미쳐버리기 직전이었죠. 그런데 저녁 무렵이면 한라산 자락에서 소와 말 울음소리가 창살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내가 나가면 푸른 하늘을 무한정 보며 들판을 끝없이 걸어보고 싶었습니다. 이런 자유의 소중함을 만끽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출소하자마자 들판을 쏘다녔습니다. 그게 결국 사찰로, 단청으로 이어졌습니다. 29년째인가요.”- 교도소, 왜 갔나. “아내는 알지만, 아이들은 아빠가 뭘 했는지 모릅니다. 그래서 이런 말을 해야 하는지도 사실 머뭇거려집니다만 제가 부산대 82학번입니다. 당시, 많은 학생이 정권을 향해 돌을 던지고 할 때였으니, 저도 시국사건에 연루된 것입니다. 안양교도소 있다가 제주교도소로 이감되었습니다. 80년대 말이었습니다. 그때 제주교도소장이 ‘내가 알기로 뭍에서 제주도로 귀양온 사람은 네가 세 번째’라고 하더군요. 그러면서 처음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고, 다음은 서울대 학생, 그다음은 저라고 농담 같은 말을 했습니다.”  - 들판을 쏘다닌 것이 어떻게 단청과 연결되나. “자유를 만끽하고, 마음을 다스리려 들판을 쏘다닐 때 처음엔 빈 절터만 찾아다녔습니다. 버려진 절터에는 역사가 무너져 있고, 바람이 있고, 푸르름이 있었습니다. 역사의 잔해가 깊은 감동을 주더군요. 덧없고, 자연만 푸르구나 이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때부터 필름에 담기 시작했습니다. 전국의 절터를 5년간 기행했습니다. 그러다 절터의 석탑이 보여서 석탑만 찾아서 사진을 찍다가, 그다음엔 마애불을 촬영하러 온 산을 오르내렸습니다. 제 성격이 한 곳에 필이 꽂히면 그것에 집중하거든요. 석등만 보이다가 어느 날 절집의 노거수, 고목만을 보려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절집의 창호, 문짝의 꽃살무늬를 보게 됐어요. 점점 법당으로 가까이 가게 된 것입니다.”  - 그래서 법당문을 열었나. “꽃살문을 여는데, 법당 안의 천정 세계가 완벽한 좌우대칭으로 되어 있는 거예요. 같은 패턴이 반복되면서…. 제가 수학을 전공했는데, 수학의 본질이 자연이나 현상에서 패턴의 통일성이나 규칙성을 찾는 것인데, 그것을 법당 천정에서 발견한 겁니다. 수학에선 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대칭으로 남는 순간을 무한으로 해석합니다. 경북 안동 봉정사와 전북 부안의 내소사에서 이런 미학적 인식을 하게 됐습니다. 절집 천정의 단청이 이런 형식으로 무한을 의미하는 것을 보고 정말 놀랐습니다.”  “처음엔 빈 절터 찾다가 마침내 법당안 천정 봐좌우대칭에 패턴 반복…전공인 수학 본질 느껴법당 천정 컴컴…촬영시 플래시, 사다리 안 돼필름 10통 찍어도 작품 못건져…디지털로 바꿔”- 이번엔 절집 천정에 빠졌겠다.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의 천정에 이런 패턴의 단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궁금했습니다만 자료나 책이 없었어요. 그래서 사진을 찍어서 데이터를 구축해야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전국의 사찰을 돌아다니는 것은 습관처럼 해왔기에 한 2~3년이면 작업이 끝날 줄 알았습니다. 그때가 2003년이었습니다. 소임 스님으로부터 사진 촬영 허가 조건이 플래시를 터트리지 말고, 법당이니까 삼각대를 쓰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절집 천정은 등에 가려 있고 어두워서 필름 10통을 써도 작품 사진 한 장을 건지지 못했습니다. 비용이 만만찮아서 디지털로 바꿨습니다. 천정 사진부터 디지털로 쵤영했습니다.”  - 스님들 반응은. “사진은 빛의 예술입니다. 스님들도 평소 육안으로 천정을 올려다보면 어두컴컴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제가 찍은 사진을 보면 ‘어떻게, 이렇게 밝게 나왔느냐’고 감탄합니다. 햇빛이 법당 바닥에 들어와 반사되어 천정이 밝게 보이는 그 순간을 포착한 것이지요. 한 절에 2~3일씩 머무는 것도 법당 마룻바닥에 비친 자연빛이 언제 가장 길고, 어디 쪽으로 가는지 관찰합니다. 그리곤 그 빛의 시간에 가서 찍었기 때문에 화사하게 나오는 것입니다. 그 빛이 피사체에 머무는 시간도 길어야 5분 정도, 보통은 2~3분 만에 슬그머니 사라집니다. 그리고 저는 기계적 메카니즘이 저의 몸에 맞아 니콘카메라를 쓰는데, 아주 낡고 허름합니다. 이걸 한 스님이 보더니 ‘이런 낡은 구닥다리 카메라에서 이렇게 좋은 사진이 나오다니’ 하고 놀라더군요. 그래서 ‘빛이 언제, 어느 벽화에 들어오는지 그 순간을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해줬습니다.” 노 작가는 조계종 소속 전통사찰 1000여곳 가운데 100년 이상 된 전통문양과 벽화를 가진 사찰은 140곳이고, 법당은 200여 곳이라고 단정했다. “어디 나온 통계는 아니고, 제가 30년 가까이 발품을 팔면서 샅샅이 조사한 결과입니다. 대다수 사찰은 고전의 빛을 간직한 법당이 한 곳인데, 통도사는 대웅전 영산전 용화전 등 11곳이나 있습니다. 마곡사처럼 서너곳인 경우도 있지요. 정말 놀라운 것은 사찰마다 법당 벽화 표현이 다 다릅니다. 하나도 같은 게 없습니다.” “법당천장 촬영 노하우?…마룻바닥 반사빛 관찰사찰 가면 2박3일 머물러…기도 하면 촬영 안해산사 유네스코 등재, 단청·벽화 아름다움 빠져단청작가 이름 없는 이유?… 無我 사상과 연결”- 사찰 단청과 벽화, 유네스코가 인정하지 않았나. “작년 6월에 한국의 산사 7곳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것은 정말 자랑스러운 일입니다만, 그것은 가람의 배치, 법당의 역사 등 기록 위주로 되어 있습니다. 산사, 그 내부 세계 소개는 대단히 제한적이었습니다. 2011년부터 유네스코 등재를 준비했는데 불경스러운 이야기이겠지만 사찰에 있는 벽화와 문양 등에 대해 이야기는 하는 분이 없었습니다. 실제로 한 사찰에서 등재심사 실사를 나온 이코모스 조사단을 우연히 마주친 적이 있습니다. 그분들이 사찰을 둘러보기는 했지만, 법당 안으로 들어가 내부를 세밀히 살피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사찰 내부 장엄을 뺀 것은 시스티나 성당에서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와 같은 천정벽화를 제외한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산사의 진정한 아름다움, 법당 내부에 있는 아름다움이 알려줬으면 합니다.”  - 작가 이름도 전하지 않는데, 그렇게 가치가 있나. “작가 이름이 전하지 않는다고 그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조선시대 사찰 중건 과정에선 거의 모든 것을 사찰 스스로의 역량으로 해결했습니다. 그러니 단청도 당연히 스님 장인인 승장(僧匠)이 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단청에 불교와 불교 철학이 깊이 투영된 것이지요. 단청을 한 사람이 이름 전하는 것은 전남 해남군 미황사의 대웅보전에 ‘무등산인단확야(無等山人丹艧也·무등산 사람이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유일합니다만 불교 철학이 무아(無我) 즉 자신을 드러내지 않고, 자신을 주장하지 말라는 가르침인데, 스님이 그 이름을 드러내겠습니까. 개인이 아니라 조직인 사찰의 힘으로 한 것이니 이름을 드러내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노 작가는 일 년 중 거의 300일을 길 위에서 보낸다. 사찰뿐만 아니라 고택, 궁궐도 그의 피사체다. 불교 매체인 현대불교에 ‘사찰천정 화엄의 빛’, ‘한국산사의 단청문양 세계’, ‘그 절집의 빛’을 연재했다. 저서로는 ‘한국산사의 단청세계, 불교건축에 펼쳐진 화엄의 빛’을 내기도 했다. 그는 주지 스님의 성격이 다소 괴팍해 촬영허가를 해주지 않은 사찰에도 어떤 전통의 빛이 있는지를 살펴보고 카메라에 담고자 하고있다. “한국불교 習合사상… 태극·신선·민화 등장 이유한국 사찰 단청·벽화 지역적으로 미세한 차이 감지영남사찰 고전주의적 정형성…안동은 유교 요소도서남해안 사찰 낭만주의·자유분방… 20세 탈종교적통도사 ‘봉황 탄 문수보살’…고구려 고분벽화 원리”- 단청에 불교가 아닌 태극 등의 문양도 보인다. “한국 불교의 수용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합니다. 유교의 태극, 도교의 신선, 사군자, 약리도, 화조도, 책가도 등이 들어와 있습니다. 그리고 해학적인 그림들, 민화적 요소들도 들어와 있지요. 시대 상황에 따라 여러 문화요소가 관습처럼 합쳐지는 습합(習合)이 큰 특징입니다. 지역적 차이점도 보입니다. 조선시대 유교의 본향 같은 안동에서는 태극을 비롯한 성리학적 요소들이 많이 들어와 있습니다. 봉정사 봉황도의 경우 사찰이 아니라 궁궐에 있을 법한 벽화도 보입니다. 범어사나 통도사의 조형미술은 고전주의적 정형성이 엄격합니다. 반면에 내소사, 미황사, 대흥사와 같은 서남해안 산사 단청은 대단히 세련되고 낭만주의적 경향으로 자유분방하고 정겹습니다. 20세기 들어서면서 사찰 공사도 거의 민간이 맡아서 하게 됩니다. 벽화도 종교적인 것에서 많이 벗어나지요. 해남 대흥사 대웅보전의 불단에 보이는 뫼비우스 띠와 같은 청룡, 황룡 조형이 그런 산물일 것입니다.”  - 가장 감동이 있는 단청 사진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에서 2013년 통도사 대웅전을 보존처리 할 때였습니다. 비계를 설치하고, 위에서 뭔가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천막을 쳐둔 상태입니다. 천정 쪽에 뭔가 있다는 것을 직감하고, 허락을 얻어 높이 10m의 비계에 올라갔습니다. 너무 어두워서 휴대폰 조명을 켜보니 ‘와~’ 하고 탄성이 절로 나왔습니다. 너무 감격스럽고 놀라서 비계에서 떨어질 뻔했습니다. 고구려 고분벽화의 미술조형 원리가 드러난 작품으로, 봉황을 탄 문수보살이었습니다. 휴대폰 조명을 이용해 사진을 찍었습니다. 통도사의 적멸보궁은 1640년대에 중수한 것입니다. 300여년 전의 빛이 그대로 남아 있었습니다. 깊은 어둠 속에서 한줄기 빛을 보는 그런 느낌이었습니다. 아마 유일한 사진일 겁니다.”  - 애지중지하는 사진을 든다면. “역시 양산 신흥사 대광전 후불벽 뒷면에 있는 관음삼존도 벽화입니다. 옷 의습에 베푼 문양을 보면 고려불화의 전통이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다른 후불벽화가 백의 수월관음도인데 여기는 특이하게도 검은 먹 바탕에 백묘로 그린 관음삼존도입니다. 수월관음과 함께 어람관음을 배치한 대단히 독창적인 벽화입니다. 어람관음은 중생구제를 위해 한 손에 물고기 바구니를 들고 맨발로 저잣거리에 나투신 보살니다. 어둠에서 빛이 나오듯 정말 숭고합니다. 양산 신흥사는 효종 8년(1657년)에 건립됐습니다. 어람 관음보살은 경주 불국사 대웅전 후불벽에서도 적외선 촬영결과 존재했다는 사실이 발견됐지만, 현재는 신흥사가 유일합니다.” “아름다운 벽화·단청, 등·불전함에 가려져 안타까워연등·불전함 재배치해 아름다움 공유, 고민할 시기” - 이런 벽화나 단청의 아름다움, 사람들이 잘 모른다. “산사 벽화와 천정의 세계가 말 그대로 부처님의 세계를 드러낸 것인데, 연등이나 불전함 등으로 가려져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볼 수 없으니 참 안타깝습니다. 그 아름다움을 세계인들이 다 공유할 수 있게 연등이나 불전함 배치문제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라고 생각합니다. 한국산사가 세계유산으로 등재된만큼 종단차원에서 지혜를 모아야 할 것입니다. 이젠 불교미술의 정수인 벽화와 단청, 천정의 세계를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요.” 글·사진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공초·구상 그리고 저의 문학 3대 인연… 성장의 계기 되길”

    “공초·구상 그리고 저의 문학 3대 인연… 성장의 계기 되길”

    “공초 선생을 평생 사숙했던 구상 선생은 ‘공초 선생의 훈도와 영향은 이루 헤아릴 수 없다’고 쓰셨습니다. 대하, 장강과도 같은 두 어른의 관계는 저로서는 오로지 짐작만 할 뿐입니다. 그런데 저는 지금 사단법인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을 맡고 있습니다. 공초 선생에서 구상 선생, 저로 이어지는 문학 3대의 인연에서 숙명 같은 것을 느낍니다. 그래서 이 수상이 제 문학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되기를 저 자신은 애타게 갈구하고 있습니다.” 서울신문사가 주최하는 공초문학상의 스물일곱 번째 주인공인 유자효(72) 시인은 처음 시를 쓰던 그때로 돌아간 듯 설레는 목소리로 수상 소감을 읊었다. 5일 서울 중구 세종대로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27회 공초문학상 시상식에서 유 시인은 “제 시의 출발은 우리 시대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며 “가급적 신세를 안 지고 살겠다는 말을 좌우명처럼 생각하고 있었는데 오늘 진 신세를 살아가면서 갚아 나가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이날 시상식에는 대한민국예술원 원로회원인 김남조 시인, 이근배 공초숭모회장, 홍사성 불교평론 주간, 민윤기 서울시인협회장, 손우현 한불협회장, 김초혜·박건상·안혜초 시인 등 100여명의 내빈이 참석했다. 심사위원장인 이근배 시인은 “구상 선생은 살아생전에 공초 선생을 ‘위대한 시인’이라 하지 않고 ‘위대한 삶의 완수자’ 혹은 ‘무위의 구도자’라 칭하셨다”며 “유 시인의 시 ‘거리’에서 인간의 거리를 우주의 거리에 비견하는 것은 공초적인 원대함으로, 우주까지 파악하는 힘을 지녔다는 뜻”이라고 평했다. 고광헌 서울신문사 사장은 “공초 선생은 안빈낙도와 평화, 무위 사상을 문학 속에 담아낸 고귀한 선배 시인”이라며 “유 시인은 좌뇌로는 저널리즘의 언어를, 우뇌로는 시적 언어를 사유해 하나는 빼어난 방송의 언어로, 다른 하나는 높은 문학적 성취로 풀어냈다”고 말했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빠르게 싸게 편하게… 한국 금융 ‘3색 전략’ 캄보디아도 통했다

    빠르게 싸게 편하게… 한국 금융 ‘3색 전략’ 캄보디아도 통했다

    캄보디아 수도 프놈펜에서 남편과 함께 자동차부품 판매점을 운영하는 자영업자 응 킴히엑(30)은 2017년 8월 KB캄보디아은행에서 50만 달러를 빌렸다. 사업 확장을 위해 대출 받을 곳을 알아보다가 KB의 대출금리가 저렴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캄보디아 현지 은행의 대출 금리는 보통 연 10%대였지만, KB를 비롯한 한국계 은행을 이용하면 7~8%대로 대출 받을 수 있었다. 그는 “먼저 KB에서 대출 받아 본 친척이 믿고 써보라고 추천했고, 실제로 써보니 굉장히 만족스러웠다”면서 “KB에서 대출 받은 이후 사업장을 넓은 곳으로 옮겼고 직원도 더 뽑을 수 있었다”며 웃었다. 이어 “물론 저렴한 금리도 매력적이지만, 현지 은행과 가장 큰 차이점은 지속적인 관리”라면서 “담당 직원이 주기적으로 찾아와서 추가 대출이 필요하진 않은지 상황을 점검해준다”고 말했다. 금융지주들이 금융 발전 잠재력이 큰 캄보디아에서 새로운 수익원 발굴에 몰두하고 있다. 현지 은행의 경쟁력이 낮기 때문에 국내 은행들이 승산이 있다는 판단이다. 신한은행은 영업점 확대, 우리은행은 개인 소액대출, KB국민은행은 모바일 플랫폼에 주력하는 ‘3색 전략’을 각각 펼치고 있다. 베트남에 이어 블루오션으로 주목받는 캄보디아에서 신남방 시장 영토 확장 경쟁의 ‘2라운드’에 접어든 것이다. 5일 금융권에 따르면 캄보디아에서 신한은행과 국민은행은 법인 형태로, 우리은행은 저축은행과 소액대출회사(MFI)를 인수한 형태로 진출해 있다. 현지 은행보다 낮은 대출 금리, 빠르고 친절한 서비스를 강점으로 내세우는 점은 서로 닮았지만 중점을 두는 영업 전략에는 차이가 있다.지난달 10일 방문한 신한캄보디아은행 본점에서는 하나의 창구에 부부가 나란히 앉아 대출 서류를 작성하고 있었다. 개인의 신용을 입증할 서류가 부족한 캄보디아에서는 이처럼 대출을 받을 때 ‘코바로우어’(co-borrower)라고 부르는 공동차주, 그리고 보증이 보편화돼 있다. 이태경(53) 신한캄보디아은행 법인장은 “한국도 1980년대까지는 가족, 친구 간 연대보증이 많았다”면서 “우리도 급속한 금융 발전을 경험해 봤기 때문에 캄보디아 고객들의 수요와 앞으로의 상황을 어느 정도 예측해 대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자본이 60% 넘게 차지하는 캄보디아 금융 시장에서 다른 선진국 은행보다 한국계 은행이 경쟁력 있는 이유다. 2007년 한국계 금융기관 최초로 캄보디아에서 은행업 허가를 받은 신한은행은 영업점을 늘려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보수적인 영업 전략을 세웠지만, 2017년부터 변화를 줬다. 박태종(48) 신한캄보디아은행 부법인장은 “캄보디아는 베트남과 달리 한국 기업 진출이 많지 않기 때문에 고객의 90% 이상이 현지인”이라면서 “리테일(개인고객) 중심의 적극적인 대출 확대 전략을 추진해 지금은 영업에 활력이 붙고 있다”고 설명했다. 총 자산은 2017년 1억 8800만 달러에서 지난해 2억 5100만 달러, 올 3월 말 3억 1100만 달러로 증가했다. 특히 개인고객 대출이 2017년 이후 2년 연속 50%대 증가율을 보였다. 신한은 현재 6개인 영업점을 올해 안에 8개로 확대할 계획이다.캄보디아의 경제 발전 단계를 고려해 개인 소액대출에 집중하고 있는 우리은행은 2014년 현지 소액대출회사를 인수한 뒤 지난해 저축은행 ‘비전펀드’도 인수했다. 현재 소액대출회사는 우리파이낸스캄보디아(WFC), 저축은행은 WB파이낸스(WBF)라는 이름으로 운영 중이고 올해 안에 두 법인을 통합할 계획이다. 장기적으로 상업은행으로 전환하기 위해서다. WBF 본점에서 만난 고객 리나 니 엔쥐아이(38)는 “비전펀드 때부터 사용해 왔는데 우리은행에 인수된 뒤 직원들이 더 친절해졌고 서비스도 빨라져서 좋다”고 칭찬했다. 은행에 비해 문턱이 낮은 편인 WBF는 1인당 평균 대출액이 약 1000달러다. 지난해 캄보디아 1인당 국내총생산(GDP) 1500달러의 67% 수준이다. 금리는 연 16~17%로 은행보다 높은 편이지만 연체율은 1%가 안 된다. 불교 문화가 강해 빌린 돈은 꼭 갚아야 한다는 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에서 개인 소액대출을 적극적으로 늘릴 수 있는 배경이다. 아울러 현지 통화 리엘이 아닌 달러가 유통 통화여서 환리스크 부담이 없다는 점도 캄보디아 시장의 장점이다. 한국에서는 고객들이 은행에 찾아오지만, 캄보디아에선 고객을 찾아 밖으로 나가야 한다. WBF도 ‘크레디트 오피서’라고 부르는 대출 전담 직원들이 늘 오토바이를 타고 고객이 부르는 곳으로 달려간다. 소팔 소팟(42) WBF 여신심사부장은 “전국에 있는 100여개 영업망과 대출 전담 직원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대출을 늘려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대출 전담 직원들은 아이패드를 들고 다니며 현장에서 대출 원금과 이자 상환을 처리하고 있다. 올해 말까지 대출 신청과 심사도 아이패드로 가능하도록 전산 개발을 진행 중이다. 김선규(58) WBF 법인장은 “정보기술(IT) 투자는 ‘무제한’이라고 표현할 만큼 전폭적인 투자를 할 계획”이라면서 “젊은 고객 유치를 위해 모바일뱅킹 업그레이드도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우리은행은 지난 2월 동남아 최대 차량공유 서비스 업체 그랩과 제휴해 그랩 운전자를 위한 맞춤형 저금리 대출 상품도 출시했다. 그랩은 캄보디아에서 오토바이, 툭툭(오토바이를 개조한 택시), 승용차 등의 차량공유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프놈펜 시내를 다니다보면 그랩 툭툭에 달린 WBF 광고를 볼 수 있다. 고객을 확보하고 홍보도 하는 일석이조 효과다. 캄보디아 한 호텔에서 일하는 찬 보레이(27)는 “아직 한국계 은행을 이용해 본 적은 없지만 프놈펜 시내에서 지점이나 광고가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고 있어 앞으로 더 많이 알려지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같은 날 프놈펜 시내에 있는 카페와 식당 등에서는 ‘리브페이’로 결제하면 할인해준다는 안내판을 종종 볼 수 있었다. 7만 8000명이 넘는 가입자를 확보한 모바일 금융 플랫폼 리브는 KB캄보디아은행의 자랑거리다. 2016년 출범 당시 가입자수가 1만 1900여명이었던 리브는 약 3년간 급성장했다. 가맹점에 따라 20~50% 할인 혜택을 주는 리브페이는 중국 알리페이, 현지 업체가 만든 파이페이 등과 치열한 경쟁 중이다. 한국에서 일하는 캄보디아 노동자들도 리브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하는 주요 고객이다. KB캄보디아은행은 지난해 리브를 통한 해외 송금으로 총 14만 3000달러의 수수료 수익을 벌어들였다. 지난해 리브로 들어온 대출 신청도 1억 달러에 달했다. 박용진(52) KB캄보디아은행 법인장은 “한국에서도 영업점을 줄이는 추세인 가운데 지점만으로 영업을 확대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면서 “캄보디아는 휴대전화 사용률이 높은 만큼 온·오프라인을 같이 가는 전략이 주효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어 “캄보디아 국민 중 은행 계좌를 이용하는 비중은 10명 중 2명에 불과하다”면서 “캄보디아 계좌 없이도 리브 앱과 한국 계좌만 있으면 노동자들이 해외 송금을 할 수 있도록 추진 중”이라고 덧붙였다. KB캄보디아은행의 창립 멤버로 1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쏨 로타(38) 현지영업본부장은 “직원들끼리 가족같이 지내는 분위기가 마음에 들어서 오래 다니고 싶다”면서 “캄보디아에는 대출 등 금융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들에게 도움이 되는 은행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했다. 글 사진 프놈펜 최선을 기자 csunell@seoul.co.kr
  • 신채호 후손 “옛 삼청동 집터 돌려달라”

    독립운동가이자 사학자인 단재 신채호 선생의 후손들이 단재의 옛 삼청동 집터 소유권을 돌려달라며 법원에 소송을 냈다. 5일 법조계에 따르면 단재의 며느리인 이덕남 여사와 자녀 2명은 삼청동 집터의 현 소유자인 불교재단 선학원과 국가를 상대로 전날 서울중앙지법에 소유권 이전 등기 소송을 제기했다. 후손들이 주장하는 집터의 주소지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2-1과 2-2로, 단재가 1910년 중국으로 망명하기 전까지 살았던 곳으로 추정된다. 단재는 망명 직전인 1910년 4월 19일 대한매일신보에 “본인 소유 초가 6칸의 문권(집문서)을 알지 못하는 가운데 분실했기에 광고하니 휴지로 처리하시오”라는 내용과 함께 ‘경 북서(京 北暑) 삼청동 2통 4호, 신채호 백’이라고 주소를 적은 기사를 실었다. 후손들은 이 기사와 관련 문헌, 인근 거주민 증언 등을 근거로 제출했다. 이 주소는 1912년 국유지로 기록됐다가 단재가 순국한 지 2년 뒤인 1939년 한 일본인 앞으로 소유권 보존 등기가 이뤄졌고, 몇 차례 소유권이 바뀌어 현재 선학원이 소유하고 있다. 그러나 후손들은 1939년 당시 일본인이 유효하게 국가로부터 소유권을 얻었다고 보기 어려워 현재의 등기도 말소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만약 소유권을 돌려받기 어려우면 국가로부터 손해를 배상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소장에 담았다. 허백윤 기자 baikyoon@seoul.co.kr
  • “詩 한 줄에도 우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詩 한 줄에도 우주를 담을 수 있습니다”

    거리 그를 향해 도는 별을태양은 버리지 않고 그 별을 향해 도는작은 별도 버리지 않는 그만한 거리 있어야끝이 없는 그리움“삶 자체가, 인생 자체가 시이고 문학이에요. 문인으로서 글을 쓰는 것하고 방송인으로서 방송을 한다거나 언론인으로 기사를 쓰는 게 다른 일이 아니에요. 세상 도처에 시가 널려 있는데, 단지 발견을 못할 뿐이죠. 사람들의 대화에도 시가 있고요. 이제 막 말 배운 어린아이들 하는 말에서 깜짝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유자효(72) 시인에게 시와 기사는 매한가지다. 1968년 신아일보 신춘문예에 시로 입선하고 1974년 KBS 기자로 입사한 이래 평생을 언론인과 시인을 오가며 살았다. 기자 시절 페루 쿠스코에서 스페인의 남아메리카 정복사를 목도하고 깜짝 놀란 시인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쿠스코 기행’이라는 긴 시를 썼다. 1980년대 말, KBS 파리 특파원으로 일하다 독일 통일 직전 귀국한 시인은 동구권의 몰락을 직접 목도했다. 인생과 생명에 관한 오롯한 성찰을 토대로 한 그의 시는 이렇게 쓰여졌다. 지난해 2월 펴낸 시집 ‘황금시대’(책만드는집)에 수록된 ‘거리’로 제27회 공초문학상을 수상한 시인은 평생을 ‘쓰며’ 살아왔다. 시든 기사든. 처음 글을 쓰던 학창시절에는 시와 소설을 가리지 않았다. 부산고 시절 문예반에 들어가 활동하면서 진해 군항제 백일장 등에서 장원을 수상했다. “고등학교 때 만든 교지를 보면 제 이름으로는 단편 소설이, 친구인 소설가 박영한(1947~2006·‘머나먼 쏭바강’, ‘왕룽일가’ 등을 썼다)의 이름으로는 시가 실려 있어요. 서울로 대학을 오면서는 가정교사를 하느라 워낙 바빴고, 직업 기자가 되면서 현실적으로 소설을 쓰기 어려워졌어요. 시는 어느 정도 가능하지만요. 모든 게 운명적입니다. 하하.” 기자로 일하면서도 시집만 20여권을 펴내며 창작혼을 불태울 수 있었던 까닭은 고작 몇 줄에 응축된, 시의 힘을 믿기 때문이다. “동문 선배 문인이신 김남조 선생님을 위한 행사에 후배인 이문열 소설가가 나와서 ‘제가 소설 몇 권으로 한 얘기를 선생님께서는 시 한 편으로 하셨네요’라고 하더라고요. 생각해 보면 유명한 장편 소설 ‘까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은 결국 자식이 아버지를 죽이는 얘기잖아요? 조병화 시인이 쓴 시 ‘천적’에 나오는 ‘결국, 나의 천적은 나였던 거다’와 동급이에요. 그게 시의 힘이고, 시의 신비라서 인류가 오랜 기간 매달려 온 것 아닐까 싶어요.” ‘시 한 줄에 우주를 담을 수 있다’고 믿는 그가 펼쳐보인 우주가 수상작 ‘거리’다. 그의 시에는 우주의 질서가 사람 사이의 관계에도 그대로 투영된다는 평소 지론이 담겼다. “바람직한 인간관계는 태양과 지구, 달처럼 거리의 황금 비율을 유지하고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습니다. 조금만 가까워져도 불타고, 멀어지면 남이 되는 거죠.” 70년 인생을 살아오면서 깨달은 과유불급의 미학이다. 수상작이 실린 ‘황금시대’는 기실 시조집이다. 연시조도 아니고 단시조만 고집해 한 권의 시집을 만든 까닭에 대해 그는 말했다. “시조는 우리 민족의 문학적 자존심이에요. 몇 백 년 된 문학 장르를 지금까지 유지하고 있는 경우는 한국의 시조나 일본의 하이쿠 정도 아니면 없죠. 일부 시조 시인들이 자유시 비슷한 시조를 쓰기도 하는데, 이렇게 되면 시조의 존립 의미 자체가 없어질 수 있어요. 시조는 그 정형성이 지켜졌을 때 전통시로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거리’는 시조라는 간결한 그릇 안에서 더욱 빛나는 듯하다. 올해로 등단 51년. 그간 달라진 게 있는지 물었다. 평생 시인으로 살았고, 시와 함께 자라고 늙어왔기에 큰 변화는 없단다. “젊은 시절 제가 추구했던 정신의 견고함 등은 중년으로 접어들면서 단단한 성스러움으로 발전됐어요. 장년이 되면서는 결국 우리가 이 세상에 온 까닭이 갖고 있는 사랑을 다 주기 위함이 아닌가, 이 사랑을 소진시키기 위해 세상을 살고 있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요.” 노년기로 접어들면서 중요한 건 거리와 시간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생각을 한다는 시인. 최근 그의 관심은 다른 시간, 어쩌면 같은 마음일 1500년 전 신라 사람들에게로 뻗었다. “제가 전후의 비참함을 잘 아는 세대인데요. 오늘날 우리나라를 둘러싼 정세를 보면서 도대체 ‘신라는 어떻게 한반도 최초 통일 국가를 이룩했을까’ 그 시대의 사람들을 생각하게 돼요.” 그는 곧 경주에 내려가 그 시절 신라 사람들을 만나 연작시 ‘신라혼’을 끝맺을 계획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유자효 시인은 ▲1947년 부산 출생 ▲1975년 서울대 사범대 불어과 졸업 ▲1974~1991년 KBS 기자·파리 특파원 ▲1991~2009년 SBS 정치부·국제부장, 보도제작국장, 기획실·논설위원실 실장, 이사 ▲2007~2008년 한국방송기자클럽 회장 ▲2015년 서울시인협회 회장 ▲2002년 후광문학상·편운문학상 수상 ▲2005년 정지용문학상 수상 ▲2008년 유심작품상 수상 ▲2009년 한국문학상 수상 ▲현 지용회장 ▲현 구상선생기념사업회장 ▲현 계간 ‘시와시학’ 주간 ▲현 BBS불교방송 초대석 향기로운 만남 진행
  • 공초문학상은

    공초문학상은

    공초(空超) 오상순(1894~1963) 시인은 ‘나와 시와 담배’라는 시에서 ‘나와 시와 담배는/이음동곡(異音同曲)의 삼위일체’라고 노래했다. 친한 문인들도 농담 삼아 ‘꽁초’라 부를 정도로 그는 담배를 사랑했다. ‘꽁초’는 1926년 작품 활동을 접고 부산 동래 범어사에 입산해 불교와 인연을 맺은 이후 ‘공초’가 되었다. 불교의 공(空)을 초월하고 싶은 시인의 마음이 담겼다. 평생 독신으로 살던 시인은 혈육 하나, 집 한 칸 두지 않은 무욕의 삶을 살았다. 생전에는 자신의 이름으로 된 시집 한 권 남기지 않았다. 시인은 1920년 김억·남궁벽·황석우 등과 함께 ‘폐허’ 동인으로 참여해 한국 신시 운동의 선구자로 활약했다. ‘방랑의 마음’, ‘허무혼의 선언’, ‘폐허의 낙엽’ 등 50여편의 시를 남겼으며 대한민국예술원상(1956), 서울시문화상(1962) 등을 수상했다. 1992년 지극한 무욕의 삶을 살았던 그를 기리기 위해 공초문학상이 제정됐다. 1993년 첫 수상자로 이형기 시인을 선정한 이래 공초문학상은 매해 등단 20년 차 이상 중견 시인들이 최근 1년 새 발표한 작품 중에서 수상작을 고른다. 역대 수상자로 신경림, 정호승, 신달자, 유안진, 나태주 등 한국 문단을 대표하는 시인들이 있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꽃보다 라오스, 탑보다 지폐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꽃보다 라오스, 탑보다 지폐

    특정한 미술이 한 나라나 도시를 대표하는 일은 흔하다. 에펠탑이 파리를,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을 상징하는 것처럼 미술은 종종 나라나 국가를 상징한다. 숭례문이나 남산타워가 서울의 얼굴처럼 여겨지는 것도 비슷하다. 이들은 단순히 상품화된 관광 명소 이상의 의미가 있다.한국인이 보는 숭례문과 외국인이 보는 숭례문은 다를 것이다. 숭례문 화재 때를 생각해 보면 된다. 한국인에게 숭례문과 같은 역할을 하는 건축물이 라오스에서는 탓루앙이다. 탓루앙은 라오스 사람들이 가장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사원이며, 라오스 민족주의의 상징이기도 하다. 1991년 제정된 국장(國章) 중앙에 탓루앙이 자리한다. 라오스의 지폐에도 배경처럼 탓루앙이 그려져 있다. 마치 라오스 국민을 항상 같은 자리에서 지키는 든든한 형이자 아버지 같은 모습이다.탓루앙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의 한가운데에 자리한다. 가까이에 라오스 독립기념탑 파투사이가 있다. ‘위대한 탑’이라는 뜻의 탓루앙은 중앙의 황금색 탑 높이가 45m로 우뚝해 멀리서도 잘 보인다. 3층으로 이뤄진 기단 위에 좁고 높은 탑이 세워졌고, 그와 비슷하게 생긴 30기의 작은 탑들이 주위를 둘러싼 모습이다. 기단부에는 탑을 빙 둘러 가며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 교리가 표현돼 있다. 사람들이 탑 둘레를 돌면서 불교를 이해하도록 만든 것이다. 탑의 정상부에만 진짜 금을 입혔고 그 아래에는 금칠을 했다. 같은 황금색이기는 해도 탓루앙은 동남아시아 인근 나라의 탑과 모양이 다르다. 인도 스투파의 영향을 받은 미얀마나 태국의 탑들은 대부분 상부가 바가지를 뒤집어 놓은 것처럼 둥글다. 하지만 탓루앙은 폭이 좁아서 유럽식 첨탑처럼 보인다. 오늘날 탓루앙의 자리에는 기원전 3세기에 인도 아쇼카왕의 불교 포교단이 가져온 석가모니의 가슴뼈를 안치하기 위해 세운 탑이 있었다고 한다. 이는 라오스에 불교가 아주 오래전에 전래됐다고 주장하기 위해 만든 전설일 것이다. 전설은 증명할 수 없기에 전설이다. 13세기에 크메르 사원이 있었다는 이야기부터는 역사적 사실로 보인다. 이보다 더 신뢰할 만한 탓루앙의 기원은 세타티랏 왕이 라오스 북부 루앙프라방에서 중부 비엔티안으로 수도를 옮기고 1566년 사원을 건립했다는 전승이다.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의 호빗 판 베조프는 1641년에 쓴 기록에서 “(탑의) 꼭대기가 1000파운드가량 되는 금잎으로 덮여 있다”고 했다. 그는 탓루앙에서 당시 이 지역을 다스린 란상 왕국의 수린야 봉사 왕에게 후한 대접을 받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하지만 라오스는 쇠락했고, 1828년 태국의 침략으로 ‘위대한 탑’은 허물어지고 말았다. 탓루앙은 라오스를 식민지로 삼은 프랑스에 의해 재건됐다. 복원의 근거는 당시 인도차이나 일대를 탐험했던 루이 들라포르트의 그림이었다. 그러나 1940~41년 태국과의 전쟁 때 공습으로 또다시 파손됐다가 복원된 현재의 탓루앙은 사실상 20세기의 건축이다. 라오스 민족주의가 자신들의 건축이 아니라 식민 지배자 프랑스의 손으로 복원된 탓루앙을 통해 상징된다는 점은 아이러니하다. 어쩌면 한 나라를 대표하는 미술, 혹은 문화재의 가치는 그 외적인 형태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들의 가치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기억과 그 끝없는 전승에 있는 것이 아닐까.
  • ‘무지갯빛으로 물든 서울 광장···’,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무지갯빛으로 물든 서울 광장···’, 제20회 서울퀴어문화축제 개최

    1일 오후 국내 최대 성소수자 문화축제인 서울퀴어문화축제가 20회째를 맞이해 서울광장에서 성대히 열렸다. 퀴어축제의 하이라이트인 퀴어퍼레이드는 오후 4시부터 서울광장을 출발해 을지로 입구, 종각, 광화문 광장을 돌며 행진했다. 서울퀴어문화축제는 행사 초기엔 성 소수자들의 문화축제로 한정된 ‘그들만의 리그‘였다. 하지만 해가 지날 수록 성소수자들에 대한 국민 인식이 많이 개선돼, 보다 조직적이고 활발한 축제의 맥을 이어나가고 있다. 이날도 성소수자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연령대의 일반 시민들도 축제를 응원하기 위해 시민광장을 찾았다. 퀴어축제의 상징인 무지개색을 이용한 화장과 옷차림을 한 시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광장 곳곳에는 성소수자 인식개선을 촉구하는 여러 기관과 단체 부스 74개가 설치됐다. 국내 인권단체와 대학 성소수자 동아리, 캐나다 등 주요국 대사관이 참여했다. 또한 구글코리아를 포함해 여러 기업들과 정의당, 녹색당 등 정당들도 부스를 꾸렸다. 강문민서 국가인권위원회 혐오차별대응기획단장 “각자가 가진 성적지향과 성정체성이 다르지만 그 다름이 무지개를 이루는 것처럼 각자의 빛깔을 지닌 모든 사람들이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캠페인의 일환으로 나오게 됐다”고 말했다. 퀴어축제 참가자들은 부스 체험도 하고 사진도 찍으며 비록 제한된 공간이지만 축제를 마음껏 즐기는 모습이었다. 이날 축제에 참여한 시민 민서영씨는 “모두가 평등한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 성소수자들을 포함한 모든 소수자가 자신의 목소리를 힘껏 낼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기독교를 제외한 불교계, 천주교 관계자들도 참여해 성소수자들의 성평등권을 지지했다. 조계종 시경 스님은 “이곳에 스님이 있어 이상하게 생각하는 분들이 많은 거 같다“며 ”우리 사회는 소외받고 불이익 받는 사람들이 많은 데 성소수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차별을 받아서는 안된다는 뜻을 전하고 싶었다”고 참여 의미를 밝혔다. 하지만 도로 하나를 두고 반대편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맞불집회도 어김없이 열렸다. 대한문 광장과 서울시의회 앞에서는 퀴어축제를 반대하는 ’동성애 퀴어축제 반대 국민대회‘가 진행됐다. 퀴어문화축제를 반대하기 위해 이곳을 찾은 이수연씨는 “동성애는 분명 다수의 문화는 아니다. 그 속엔 어두운 부분들이 엄연히 존재하는 데 그런 것들은 얘기하지 않고 너무 아름답게 미화하고 포장만 하고 있다”며 “학부모의 입장에서 이건 정말 아니다 싶어 나오게 됐다”고 했다. 집회 참석자들은 ‘성평등 NO, 양성평등 YES’ 등이 적힌 팻말과 플래카드를 들고 “차별금지법 제정 반대” 등 구호를 외쳤다. 이날 오후 3시부터 대한문과 세종로사거리, 주한미국대사관, 세종문화회관, 숭례문 등을 거치는 퀴어퍼레이드에 맞서 러플퍼레이드를 진행하기도 했다. 경찰 또한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대규모 경력을 투입했고 이날 큰 불상사도 발생하지 않았다. 글 박홍규, 김민지 기자 gophk@seoul.co.kr 영상 손진호, 박홍규, 문성호, 김민지 기자 nasturu@seoul.co.kr
  • [부고] 변해섭씨 모친상, 장학진씨 모친상, 남수영씨 부친상

    ●변해섭(대전시선관위 지도과장)·광섭(코오롱글로벌㈜ 이사) 씨 모친상, 30일 오후 8시 35분, 대전 을지대학병원 장례식장 특1호실, 발인 6월 1일 정오. 042-611-3980 ●장학진(토요경제신문 이사)·장욱진(개인사업)·장혁진(개인사업)·장은진씨 모친상, 변복순·서정란씨 시모상, 추성배(개인사업)씨 장모상, 30일 오후 11시47분께, 한양대병원 장례식장 9호실, 발인 6월2일 오전 9시, 장지 서울시립승화원. 02-2290-9459 ●남수동·남수영(능인불교대학원대학교 불교학과 교수·불교학연구회 부회장)·남수일·남수욱씨 부친상, 31일 오전 6시2분께, 쉴낙원 서울장례식장 VIP 1호실, 발인 2일 오전 5시40분, 장지 서울추모공원(영천 만불사 봉안 예정). 02-2683-4444
  • ‘불교 설화’ 꺼낸 황교안 “문 대통령, 손가락만 보지 마라”

    ‘불교 설화’ 꺼낸 황교안 “문 대통령, 손가락만 보지 마라”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는 31일 “지혜로운 사람이 달을 보라며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니, 어리석은 사람은 손가락만 볼뿐 정작 달은 쳐다보지 않는다”고 문재인 대통령을 비판했다. 황 대표는 이날 ‘손가락과 달’이라고 제목을 붙인 글에서 한 불교 설화를 거론했다. 그는 “문 대통령의 어제 국무회의 발언을 떠올리니 문득 불교 설화에 나온 이야기가 생각난다”고 운을 뗐다. 황 대표는 “문 대통령이 국무회의에서 ‘국정을 담당하고자 하는 정당이라면 국가 운영의 근본에 관한 문제만큼은 기본과 상식을 지켜주기 바란다’고 했는데, 며칠 전 5·18 기념식에서 ‘독재자의 후예’라고 했던 발언도 함께 떠오른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문 대통령은 달을 가리킨 손가락만 보는 대통령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한미정상 간 통화내용을 유출한 강효상 의원과 이를 엄호하는 한국당을 국무회의에서 강력히 비판한 데 대해 불편한 심경을 내비친 것이다. 황 대표가 글에서 쓴 ‘달’은 한미동맹 균열을, 손가락은 강 의원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인다. 강 의원이 통화내용을 토대로 한미동맹 균열을 지적했더니 그에게 외교기밀 누출 혐의를 씌워 형사고발하고 유출 당사자인 공무원까지 파면했다고 비판하는 내용이다. 정현용 기자 junghy77@seoul.co.kr
  • [서울광장] 황교안의 구심력과 원심력/박록삼 논설위원

    [서울광장] 황교안의 구심력과 원심력/박록삼 논설위원

    최근 흥미로운 통계를 봤다. 한 빅데이터 전문 매체가 지난달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비롯한 온라인 공간 속 예비 대선주자들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빅데이터로 풀어낸 통계였다. 흔한 지지율 조사와는 또 다른 의미를 담고 있었다. SNS 관심도에서는 이낙연 총리가 30.8%로 가장 높았고 김경수 경남지사(29.3%), 유시민 노무현재단 이사장(15.4%), 이재명 경기지사(14.4%),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8.4%) 순이었다. 주목할 만한 이는 황 대표였다. 그는 SNS 언급량에서는 26만 4367건으로 이 지사(28만 739건)와 1, 2위를 다퉜지만 관심도는 매우 낮았다. 그에 대한 긍정적 언급(6.7%)과 부정적 언급(76.5%)이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참고로 이 총리는 언급량은 9만 2741건에 불과했지만 긍정적 언급이 69.3%로 부정적 언급(7.7%)을 훨씬 뛰어넘었다. 반면 뉴스 댓글 관심도에서는 황 대표가 79.6%로 압도적 1위였다. 오세훈 전 서울시장(8.0%), 이 총리(3.1%) 등이 뒤를 이었지만 비교할 바가 아니었다. 요즘 포털사이트 기사 밑에 난무하는 댓글의 우익 편향성을 감안하면 황 대표 지지세력의 주활동 무대가 어디인지 짐작할 수 있는 대목이다. 물론 황 대표 지지 여부를 떠나 이 통계 수치 자체에 연연할 이유는 없다. 대중 여론의 추이를 확인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이 통계에서 의미 있게 봐야 할 점은 따로 있다. 공안검사, 법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지낸 ‘황교안’이라는 만년 공직자가 정치무대에 대단히 성공적으로 데뷔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월 27일 한국당 전당대회에서 당대표로 선출된 이후 그는 정치신인답지 않게 이념·종교·지역·성별 갈등과 극한정쟁을 부추기는 말들도 서슴지 않았다. 덕분에 그는 최고의 뉴스메이커였다. 3월 12일 국회에서 나경원 원내대표가 “김정은 수석대변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키자 황 대표는 다음날 한술 더 떠 “좌파독재정권의 의회장악 폭거”라고 비판했다. 한국당이 틈만 나면 부르짖는 ‘좌파독재’ 구호의 시발점이었다. 그는 지난달 11일 한미 정상회담을 앞두고서도 “사실상 북한 변호인(…) 되지도 않을 남북경협”이라며 정쟁을 독려하는 선봉장이 됐다. 지난 7일에는 “임종석씨가 무슨 돈을 벌어 본 사람입니까? 좌파 중에 정상적으로 돈 번 사람들이 거의 없다”며 색깔론을 펴기도 했다. 이런 황 대표의 막말은 각종 민생경제법안을 내팽개치고 국회를 파행시킨 한국당의 이른바 ‘민생투쟁 대장정’의 마지막에 정점을 찍었다. 지난 24일 강원도 최전방 부대를 찾아 “군은 정부, 국방부의 입장과도 달라야 한다”고 말하며 ‘내란 선동’ 논란을 일으켰는가 하면 26일에는 자신의 SNS에 “현장은 지옥이며, 국민들은 살려 달라고 절규했다”고 글을 올려 ‘국가·국민 모독’ 논란을 자초했다. 당대표에게 금도(襟度)가 없으니 한국당 전체가 막말과 불법의 잔치판이었다. 폭력으로 국회 파행을 이끄는 등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무더기 고소됐지만 아랑곳하지 않았다. 김진태·이종명·김순례 의원 등 한국당 5·18 망언자 징계를 몇 달째 우물쭈물 뭉개고 있는 사이 정진석 의원, 차명진 전 의원은 세월호 참사에 대한 패륜적 막말을 내뱉었다. 강효상 의원의 한미 정상 간 통화내용 기밀유출의 범죄행위에도 ‘알 권리’, ‘야당 탄압’만 되뇌고 있다. 부처님오신날 법요식에 찾아가 불교식 예법을 거부하는 종교 편향성을 보이기도 했고, 성소수자에 대한 편견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다. 모든 운동에는 구심력 또는 원심력이 작동한다. ‘정치인 황교안’의 활동에도 구심력과 원심력이 동시에 나타났다. 누군가를 배제하고 바깥으로 밀어내면서 또 다른 누군가를 끌어들이는 방식의 힘을 전면에 내세웠다. 덕분에 지난 25일 한국당의 광화문 앞 집회에는 태극기·성조기를 흔드는 극우세력들과 한국당 지역당원협의회 깃발이 어우러지며 완전히 하나가 되는 모습을 연출했다. ‘배타적 구심력’의 결과물로, 우려할 만한 상황이다. 이 때문에 많은 이들은 법과 상식, 화해와 통합 등 정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 역할을 부정하면서 분열과 갈등을 부추기는 황 대표의 정치 방식에 넌더리를 내며 한국당이 서있는 곳에서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황 대표가 계속 정치를 할 뜻이 있다면, 보여주기식 민생 챙기기가 아니라 진짜 민생을 챙겨야 한다.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통합을 택해야 한다. 그때 비로소 건강한 구심력이 나타날 수 있다. youngtan@seoul.co.kr
  • 중국 대익그룹, 한·중 선차교류회 및 신제품 발표회 개최

    중국 대익그룹, 한·중 선차교류회 및 신제품 발표회 개최

    중국의 차(茶)를 대표하는 대익그룹(大益集團)이 지난 29일 서울 신라호텔(The Shilla Seoul)에서 ‘무상묘품(無上妙品)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주제로 한·중 선차(禪茶)교류회 및 신제품 ‘전심(傳心)’ 보이차(생차) 발표회를 성황리에 마쳤다고 밝혔다. 이날 행사에는 주한중국대사관 문화참사관인 왕옌쥔(王彦军) 서울 주한중국문화원 대표와 리소우펑(李少鹏) 주한중국문화원 부대표를 비롯해 중앙승가대학 전임 총장 성문스님, BTN불교TV 회장 성우스님, 안국선원/동국대학교 국제선센터 선원장 수불스님, 기원정사 주지 설봉스님 등 대한불교조계종 대표단이 귀빈으로 참석했으며, 차인연합회 박권흠 회장, 중국 기업 대표단 등 80여 명의 국내외 인사들이 참여했다. 대익은 1940년에 설립된 80년 역사의 전통(傳統)차 브랜드로, 중국의 차(茶)를 대표하는 대익그룹은 조계종(曹溪宗)을 대표하는 한국불교와의 밀접한 교류를 통해 한·중 양국간의 차문화(茶文化)에 대한 심도 있는 교류를 진행했다. 또 대익그룹은 중국 차문화와 불교문화가 결합되고 한·중 선차(禪茶)문화의 요소가 깃든 신제품 ‘전심(傳心)’ 보이차의 탄생 순간을 행사에 참여한 여러 게스트들과 함께 했다. 이날 행사에서 대익그룹 우위엔즈 회장은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흥덕왕 시기 견당사 대렴(大廉)이 당나라에서 차씨(茶種)을 갖고 돌아와 재배했다고 한다. 신라인들은 중국의 차문화를 받아 들이는 동시에 자신들만의 다도예절 문화를 갖추게 됐다”면서 “이와 같이, 그 당시 이미 차(茶)는 양국 소통의 매개로 자리매김했다. 한·중 양국은 차를 매개로 심도 있는 문화교류를 통해 상호 문화발전을 촉진해 왔다”고 말했다. 또 그는 “대익그룹은 현재 한국에 뿌리를 깊게 내렸고 많은 성과들을 얻게 됐다. 이는 모두 양국간의 공통된 선차문화의 밑거름이 있었기에 가능한 것들이었다”고 감사를 표했다. 대익그룹의 신제품 ‘전심(傳心)’ 보이차 명칭을 명명해준 중앙승가대학 전임 총장인 성문스님은 “한국 불교문화와 차(茶)문화의 결합은 그 역사가 유구하다. 초의선사(草衣禪師)가 한국의 다도(茶道)에 있어 지대한 영향을 미쳤는데 지금까지도 다성(茶聖)으로 불리우고 있다”면서 “조계종과 차문화의 연원(淵源)은 여러 한국의 고승들을 거쳐 현재까지 그 흐름을 이어오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서는 세진(洗塵), 탄정(坦呈), 소성(蘇醒), 법도(法度), 양성(養成), 신수(身受), 분향(分享), 방하(放下)의 순서로 이루어지는 다도 수련 방법인 대익팔식다도 시연이 진행돼 참가자들에게 차를 매개로 하여 타인 및 자신, 정신 층위와 교류하는 기회를 선사했다. 한편 중국 차(茶)업계의 대표기업으로 성장한 대익그룹은 글로벌 시장 개척과 글로벌 차문화 교류에 앞장서고 있다. 2011년 한국에 지사를 설립하고 2018년에는 대익다도원 한국분원을 설립하여 중국의 차문화를 알리고 한국인들의 입맛에 맛는 중국 최상급의 보이차를 제공해 왔다. 또 2014년에는 우리나라에 새로운 영업 모델을 도입해 타이티 카페(TAETEA CAFE)를 선보이는 등 한국인들의 취향에 맞는 새로운 베리에이션 보이차 음료를 부단히 연구하고 출시해 오고 있다.대익그룹 관계자는 “이번 선차 신제품 발표회의 장소를 서울로 정한 것은 한국 고객들을 그만큼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고 최고 품질의 제품으로 한국의 고객에게 보답하겠다는 의미”라면서 “차(茶)를 매개로 하여,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는 평온한 음차(飲茶)여정을 시작으로 양국간의 문화교류가 더욱 활발해지길 기원한다”고 말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황교안 전도사의 변명/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황교안 전도사의 변명/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미숙하고 잘 몰라서 다른 종교에 대해 이해가 부족한 부분이 있었다면 불교계에 사과드린다.” 침례교 전도사인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난 28일 불교계에 사과했다. 부처님오신날 경북 영천 은해사 봉축 법요식에서의 결례에 들끓는 불교계 원성을 의식한 조치로 보인다. 그런데 불교계에선 황 대표, 아니 황 전도사의 ‘이례적인 사과’에도 불만이 가라앉지 않는 듯하다. 사과를 받아들이는 대신 독실한 개신교 신자의 변명쯤으로 여기는 눈치다. 그 가라앉지 않는 원성의 이유는 사실상 황 대표의 사퇴를 요구한 조계종 종교평화위원회의 성명에서 찾을 수 있다. “나만의 신앙을 가장 우선으로 삼고자 한다면 공당의 대표직을 내려놓고 자연인으로 돌아가 독실한 신앙인으로서 개인 삶을 펼쳐 나가는 게 개인을 위한 행복한 길이 될 것이다.” 은해사 법요식에서 황 대표는 다른 참석자들이 합장하는 동안 합장을 하지 않고 두 손을 아래에 모은 채 서 있었다. 반배를 해야 하는 삼귀의·반야심경 의식이 진행될 때도 반배를 하지 않았다. 아기 부처님을 목욕시키는 관불의식에선 이름이 호명되자 손사래를 쳤다. 법요식에서의 황 대표 처신은 개신교 입장에서야 자연스런 행동일 수 있다. ‘우상숭배’를 거부하는 종교적 신념이랄까. 집총 거부를 고집하는 여호와의 증인들처럼 말이다. 하지만 불교계 안팎의 논란을 부른 황 전도사의 처신은 평소 황 대표가 갖고 있는 ‘종교 편향’ 탓이라는 여론이 적지 않다. 황 대표는 계속해 왔던 ‘장외 투쟁’을 통해 위험 수위를 웃도는 편향의 과격 발언을 쏟아냈다. 특히 천사, 악마, 지옥처럼 종교적 색채가 짙은 말은 연신 논란을 불렀다. 은해사 사건 말고도 불교계의 불만이 누적돼 왔던 셈이다. 그 ‘종교 편향’을 의심받을 수 있는 발언을 놓고 황 대표는 나름의 해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그는 페이스북을 통해 “현장에서 들은 소리는 현장은 지옥과 같았다. 시민들께서는 살려 달라 절규했다”라고 썼다. 기자 회견에선 “종교의 관점에서 말한 게 아니다”라며 “만난 시민이 말한 내용과 고통스러워하는 말을 대변한 것”이라고 했다. 논란마다 다른 사람의 의견, 주장을 전한 것이라며 주춤주춤 물러서는 것이다. 며칠 새 보수 개신교계의 최대 연합기관인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 대표회장인 전광훈 목사와 황 대표의 대화가 화제다. 황 대표가 전 목사에게 했다는 발언이 핵심이다. “목사님, 제가 대통령 당선되면 목사님도 장관 한번 하실래요?” 전 목사 측은 대화 내용의 일부분만 콕 짚어 왜곡했다며 반발하고 있고, 황 대표는 사실무근이라고 강력 부인한 것으로 전해진다. 파문이 확산되자 한기총 정상화를 위한 비대위는 “전 목사가 한기총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다”며 회장직에서 즉각 퇴진할 것을 요구하고 나선 형국이다. 지도자의 으뜸 덕목은 쏠리지 않는 소통과 화합이다. 특히 독실한 신앙을 가진 지도자를 향한 대중의 큰 기대는 관용과 사랑일 것이다. 예수님은 ‘나를 따르려거든 제 십자가를 메고 따르라’고 했지 않은가. 황 대표, 아니 황 전도사는 왜 자꾸 십자가를 다른 이의 등에만 지우려 할까. kimus@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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