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불교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북극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동북아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지역구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 대학로
    2026-02-1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0,997
  • 완주에 국립문화재연구소 설립

    전북 완주군에 국립문화재연구소가 설립된다. 전북도는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가 오는 23일 출범한다고 17일 밝혔다. 국립완주문화재연구소는 삼례문화예술촌에 마련된 임시 사무실에서 업무를 시작하게 된다. 이 연구소는 초기 철기문화 대표 연구기관으로 운영된다. 한반도 철기문화권 유입 경로인 만경강 유역의 초기 철기유적 조사와 후삼국 시대를 처음 연 후백제 왕도 유적, 불교유적 등 지역 고유의 문화유산 학술조사를 통해 역사문화콘텐츠의 원천 자원을 제공할 방침이다. 특히, 전북지역은 가야사 연구 대상유적 1672건 가운데 23%가 분포하는 등 만경강 유역의 초기 철기문화 세력은 동부지역 가야문화권 형성에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전북혁신도시 건설 당시 전주, 익산 일원 만경강 유역과 완주 일대에서 70여곳 이상의 초기 철기유적이 발굴됐다. 송하진 전북지사는 “국립문화재연구소 설치를 계기로 최근 현안으로 떠오른 전북 동부권 가야고분군의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에도 속도를 내겠다”고 말했다. 전주 임송학 기자 shlim@seoul.co.kr
  • ‘코피노’라 속여 필리핀에 장애아들 버린 한의사 부부

    ‘코피노’라 속여 필리핀에 장애아들 버린 한의사 부부

    정신장애가 있는 친아들을 ‘혼혈’이라고 속여 필리핀 현지에 버린 뒤 연락을 끊은 인면수심의 한의사 부부가 4년 만에 붙잡혔다. 이들은 이전에도 아들을 어린이집, 사찰 등에 버리고 1년 넘게 방치한 혐의를 받고 있다. 그러나 이들 부부는 “아이가 불교를 좋아해서”, “영어에 능통하라고” 각각 사찰과 필리핀에 보낸 것이라며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여러 차례 부모에게 버림받으면서 장애가 악화하고 한쪽 시력까지 잃은 아들은 아버지에게 또 다시 버림받을 수 없다며 부모 품으로 돌아가는 것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다. 부산지검 여성아동범죄조사부(부장 윤경원)는 아동을 유기하고 방임해 아동복지법을 위반한 혐의로 한의사 A씨를 구속기소하고 아내 B씨를 불구속기소했다고 16일 밝혔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A씨는 지난 2014년 11월 정신장애가 있는 친아들 C(당시 10살)군을 필리핀 현지 한인 선교사에게 맡겼다. A씨는 C군을 자신과 필리핀 여성 사이에서 낳은 혼혈아인 ‘코피노’라고 속인 뒤 “먹고 살기 어려워 키우기 힘들다”며 양육비 3900만원을 주고 떠났다. A씨는 선교사가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출국 전 미리 아이 이름을 바꾸고 아이가 한국에 돌아오지 못하게 여권까지 빼앗았다. A씨는 국내에 들어오자 전화번호를 바꾸는 등 치밀하게 범행했다.오랫동안 C군 부모와 연락할 방법을 찾지 못한 선교사는 결국 청와대 국민신문고에 ‘필리핀에 버려진 한국 아이’라는 제목으로 사연을 올렸다. 이를 본 주필리핀 한국대사관이 수사를 의뢰하면서 경찰은 외교부 등과 함께 C 을 4년 만에 한국으로 데려왔다. 또 수소문 끝에 A씨 소재를 찾았다. 필리핀 마닐라지역 보육원 등에서 4년간 방치된 C군은 정신장애가 더욱 악화했고 왼쪽 눈은 실명되는 등 건강 상태가 심각했다고 한다. A씨는 이에 앞서 2011년 경남 한 어린이집과 2012년 충북 한 사찰에 양육비 수백만원을 주고 C군을 맡긴 뒤 각각 1년 가량 방치하다가 어린이집과 사찰 측 항의를 받고서야 C 군을 집으로 데려온 사실도 수사 과정에서 드러났다. 검찰은 A씨가 C군을 두 차례 국내 유기했다가 실패하자 결국 해외에 버린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취학 연령이 된 C군이 학교에 입학하지 못했지만 해당 교육청도 C군 행방을 찾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A씨 부부는 검찰 조사에서 “아이가 불교를 좋아해서 템플스테이를 보냈고, 영어에 능통하도록 필리핀에 유학을 보낸 것”이라며 “아이를 버리지 않았고 그동안 바쁘고 아파서 못 데리러 갔다”고 혐의를 부인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대 피해 아동 쉼터를 거쳐 현재 정신병원에 입원 중인 C군은 “집에 가면 아빠가 또 다른 나라에 버릴 것”이라며 “아빠한테 제발 보내지 말라”고 가정 복귀를 완강하게 거부하는 상태다. 검찰은 아동보호기관과 협력해 피해 아동에게 의료와 심리치료를 지원하기로 했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정신장애 아들 해외에 유기... 40대 부부

    정신장애가 있는 친아들을 코피노(필리핀 혼혈아)로 둔갑시켜 해외에 유기한 혐의로 한의사가 구속기소됐다. 부산지검 여성청소년 조사부 (부장 윤경원 검사)는 16일 정신장애가 있는 친아들(14)을 코피노로 속이고 필리핀 등지에 수년간 유기한 한의사인 아버지 A(47)씨를 아동 복지법위반(아동유기·방임) 혐의로 구속기소하고, 아내 B씨(48)를 같은 혐의로 불구속기소 했다고 밝혔다. 검찰에 따르면 A씨는 소아조현병을 앓던 아들(당시8세 )을 2011년 3월 경남 마산의 한 어린이집에 맡겼다가 원장이 아이의 정신이상을 호소하며 아이를 데려갈것을 요구하자 1년여만에 아이를 되찾아 왔다. 이어 2012년 여름철에 아이를 충북 괴산의 한 사찰에 다시 맡겼다. 그러나 사찰에서도 아이의 이상증세를 알고는 데려갈것을 요구하는 등 아이를 되찾아오는 상황이 반복되자 A씨는 해외에 유기하기로 맘을 먹었다. 이후 2014년 11월 필리핀에 아이를 데려가 친부모를 찾지못하도록 아이 이름을 개명한뒤 자신과 필리핀 여성사이에 난 혼혈아인 코피노라고 속이고 현지에서 고아원을 운영하는 한국인 선교사에게 “먹고 살기 어려워 키우기 힘들다”며 양육비 3900만원을 주고 아이를 맡겼다.A 씨는 선교사가 자신을 찾지 못하도록 출국 전 미리 아이 이름을 바꿨다.또 아이가 귀국하지 못하게 여권까지 빼앗고 국내에 들어오자 전화번호를 교체했다.당초 가벼운 자폐 수준이었던 아이는 필리핀 고아원에 4년간 있으면서 왼쪽 눈이 실명되고 중증도의 정신분열로 증세가 악화됐었다. 이같은 사실은 A씨와 연락이 끊긴 선교사가 2018년 8월 청와대 국민신문고 게시판에 필리핀에 버려진 한국아이라 글을 올리면서 드러났다. 이어 같은해 11월 필리핀 한국대사관이 아동유기가의심된다며 경찰에 수사를 의뢰했다. 경찰은 한달여뒤 귀국한 아들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A씨 소재를 파악 했다. 지난 5월 경찰은 A씨에 대해서만 검찰에 불구속기소 의견을 올렸으나 검찰은 보강조사를 통해 A씨를 구속기소하고 어머니는 불구속기소했다. 검찰은 “아이가 해외로 버려진 충격으로 아빠가 또 다른 나라로 데려가 버릴것이라며 아빠한테 보내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고 전했다.현재 아이는 정신병원에서 생활하고 있다. 이들 부부는 검찰 조사에서 “아이가 불교를 좋아해서 템플스테이를 보냈고 영어 능통자를 만들고자 필리핀에 데려갔다”며 혐의를 부인한것으로 알려졌다. 검찰관계자는 “사회 지도층인 한의사가 장애있는 친자식을 국내외에 유기하는 등 반인륜적인 사건이어서 아버지를 구속기소 했다”고 말했다. 부산김정한 기자 jhkim@seoul.co.kr
  •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의 박해진 작가와 형난옥 나녹 대표는 누구?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의 박해진 작가와 형난옥 나녹 대표는 누구?

    ●형난옥 나녹 대표 경남 거창 출생.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전공. 1980년 숙명여자대학교 총학생회장. 1981년 출판계에 입문, 2002년 편집자 출신으로 ㈜현암사 대표이사 선임. 2009년 서울대학교출판문화원 초대 운영본부장. 2012년 유아림 대표이사. 정의평화불교연대 공동대표 역임, 1980년의 어두운 터널을 지나오며 부당한 공권력을 이길 수 있는 힘은 국민의 ‘깨인 정신’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그 원천이 될 출판에 입문해 우리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성찰했다. 2013년, 때로는 애독자로 때로는 저자로 30년 동안 우정을 지켜온 저자 박해진이 15000매의 원고를 완성하여 찾아왔을 때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 역사에서 사라진 한글창제사. 전설이 비로소 ‘역사´가 되어 찾아왔다. 이것은 정신사의 혁명을 가져올 원고라는 믿음이 갔다. 그러나 우리 출판계는 새로운 것을 쉽게 받아주지 못했다. 우여곡절 끝에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은 나를 출판계로 돌아오게 했다. 지금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창의의 표본인 ‘훈민정음 정신’이고 선각자정신의 선봉에 있는 ‘홍길동 정신’이다. 문자를 창조하고 활자를 개발해 문화를 확산시킬 수 있었던 민족의 후예로서 자긍심을 갖고 저자와 동행하며 세계를 선도하는 출판의 길을 걸어갈 것이다. ●박해진 작가 강원도 태백 출생. 대학에서 국어국문학 전공. 1984년 강원일보 신춘문예 시 부문 당선. 종근당과 아모레퍼시픽 광고대행사의 홍보부장을 지냈다. 30여 년 동안 궁궐 등 문화재 사진을 찍었다. 2001년부터 훈민정음 연구에 매진해 창제의 역사에서 빠져있던 신미의 존재를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으로 집대성했다. 앞으로 훈민정음의 바다 한가운데로 ‘밑바닥 없는 배’를 타고 나가 ‘구멍 없는 피리’를 불 것이다. 김병식 객원기자kbs@seoul.co.kr
  •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훈민정음 창제 도운 신미스님 일대기 집대성”

    우리의 고정관념을 뒤집어엎는 화제의 책이 있다.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이다. 개봉 예정 영화 ‘나랏말싸미’의 원안이라 주장하기에 더욱 관심을 끌고 있다. 우리는 세종과 집현전 학자에 의해 훈민정음이 창제된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라고 한다. 혜각존자 신미스님이란다. 그는 나옹, 무학으로 이어지는 여말선초의 불교 선맥을 잇는 함허의 제자이고 산스크리트어의 대가였으며 훈민정음 창제에 직접 참여한 1등 공신이란다. 15년 세월, 연구와 집필의 수행을 통해 깨달음으로 세상에 출현한 박해진 작가. 저자는 “훈민정음은 철저하게 백성과 뜻을 함께하는 바른 소리이자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고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이란다. 작가와 신미와의 동행(同行)으로 새롭게 펼쳐지는 대하드라마의 역사 현장에 우리는 함께한다. 편집자 주-세종과 집현전 학자들이 훈민정음을 만든 것으로 알고 있다. 또 그렇게 배웠다. “세종과 집현전 학자의 창제가 아니라 신미가 훈민정음 창제에 깊이 관여했음을 이 책을 통해 소상하게 밝혔다. 신미가 나고, 출가하고, 정진했던 곳을 15년간 순례하며 그의 행적을 따라 ‘조선왕조실록’ 속의 신미 관련 기록을 빠짐없이 확인했다. 집현전 학자들의 문집도 확인하며 숨은그림찾기를 거듭했다. 훈민정음은 신미가 쌓아 올린 9층 목탑이다.” -신미스님은 어떻게 알게 되었나. “2001년 겨울, 덕수궁 중화전 해체 현장에서 함께 손과 발을 섞던 김덕문 박사(현 국립문화재연구소 실장)가 “속리산 법주사 대웅보전이 아프다. 해체하기 전 옛 장인이 남긴 모습을 기록해 달라.”며 부탁했다. 며칠 뒤 법주사에 내려갔다. 주지스님께 인사를 올렸다. “글쟁이가 카메라를 들고 와? 부처님 집 잘 기록하게.”라며 요사채 한 칸을 내주었다. 대웅보전의 안팎을 드나들었다. 마지막 날, 법당의 노보살이 언 몸 녹이라고 차 한 잔 건네며 말했다. “훈민정음 창제에 큰 공을 세운 스님이 복천암에 머물렀는데….” 천둥, 번개가 내 머리를 치고 들었다. 금시초문이었다. 국어국문학과를 나와 마음 한 켠에 소설을 써야겠다는 숨겨두었던 꿈의 첫 장면이 등 뒤로 눈송이가 되어 파고들었다. 파릇파릇한 첫사랑, 첫눈이었다. 대웅보전의 대들보와 기둥, 마지막으로 남은 주춧돌을 찍으며 한순간도 노보살의 이야기를 놓지 않았다. 새벽 예불을 끝내고 복천암으로 올라갔다. 복천의 물소리를 들으며 신미의 길을 떠올렸다. 길은 휘어지고, 이어졌다. ‘세종실록’을 따라갔다. ‘뭐야, 훈민정음과 신미는?’이라고 날마다 물었다. 답은 한길이었다. ‘찾아봐, 거듭. 자랑질하지 말고….”-신미스님은 누구인가. “신미(1403∼1480)는 전설이 아니라 역사 속의 인물이다. 몰락한 유학자 집안의 자제로 불가에 입적하여 무학의 법맥을 이은 함허당(1376∼1433)의 제자로 세종을 도와 훈민정음을 창제한 스님이다. 신미가 없었다면 한글도 없었다.” -신미 연구는 어떻게 했나. “시로 등단했지만, 서랍 한쪽에 소설을 쓰겠다는 바람을 쟁여 두고 한순간도 놓지 않았다. 신미의 자료를 끝까지 찾아나선 끝에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썼다. 시간과 공간 속에서 신미가 만들고, 번역한 책을 남김없이 구해 읽었다. 신미는 내가 옆길로 빠질 때마다 미혹의 길을 끊었다. 전국의 헌 책방을 순례했다. 관련 책을 찾아내면 끝까지 읽었고, 읽고 나면 다음 책이 기다렸다는 듯 내게로 왔다. 신미의 행장을 정리한 비문(碑文)은 남아 있지 않았다. ‘조선왕조실록’과 ‘한국문집총간’ 영인본을 사서 일일이 신미 관련 기사의 원문을 입력하며 다시 번역하고, 거듭 읽었다. 15세기에 간행된 학자들의 개인문집을 남김없이 뒤졌다. 재인용은 없다. 신미가 머물렀던 절을 찾아 사진을 찍었다. 이렇게 정리된 초고는 15000매, 사진은 수만여 장이다. 1374개의 주를 달았다. 실증적 자료조사의 결과물이다. 흩어진 기록을 짜 맞추어 읽으며 신미는 분명 역사라고 확신했다. 소설은 미완성으로 두고 확인된 사실을 바탕으로 문학적 상상력을 토대로 행간을 메꿔 나가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간행했다.”-복천암, 해인사, 송광사, 현등사를 자주 찾았다고 들었다. “속리산 복천암, 합천 해인사, 순천 송광사, 가평 현등사는 훈민정음과 뗄 수 없는 절이다. 법주사에 머무는 5년 동안 새벽예불이 끝나면 복천암의 신미와 학조의 부도를 찾아 인사를 올렸다. 현등사는 세종이 승하하고 난 뒤 문종이 ‘의금부 군사들은 신미가 주석하는 절에는 침범하지 말라’는 명을 내린 기사를 실록에서 읽고 찾아간 절이다. 그곳에서 함허당의 부도를 만났다. 신미가 출가 초기에 스승을 모시고 불사를 한 내력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절을 10년 넘게 들고 나며 신미와 수양과 효령대군 등 왕실과의 관계를 찾아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점은. “신미 평전과 소설을 쓰기 위해 연구와 병행해서 현지 답사를 이어갔다. 신미의 일대기를 검증할 연구는 단편적이었다. 자료를 거듭 읽고, 찾았지만 앞과 뒤를 이어가기에는 빈 곳이 많았다. 신미와 훈민정음의 자료를 확인하기 위해 국립중앙도서관, 규장각, 한국학중앙연구원 등과 전국의 고서점을 찾아다녔다. ‘조선왕조실록’ 영인본부터 함허당이 쓴 ‘금강경오가해설의’ 등 관련 책 2000권을 아낌없이 사서 읽었고, 관련 논문 1000편도 주제별로 분류해서 읽었다. 가난한 살림에 책값과 현장 답사 경비를 조달하기 위해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렇게 만든 원고를 들고 형난옥 대표를 찾았을 때는 그는 좀더 규모있는 출판사가 출판해야 할 원고라고 했다. 형대표는 원고를 심청이 젖동냥하듯 다른 출판사에 소개했지만, 1년이 지나도록 출판에 응한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벼랑 끝을 휘돌아가는 느낌이었다. 형대표에게 무턱대고 책만 출간해주면 세종대왕 동상 앞에 좌판을 펼치고 팔겠다며 깡을 부렸고, 형대표가 손수 전 과정을 편집하여 출간될 수 있었다.” -집필과정에서 가장 보람찬 일은. “신미의 전 생애를 완성할 수 있었던 것은 큰 보람이었고, 책의 출간은 모든 어려움을 잊게 해주었다.” -집필하며 깨달은 것은. “통(通)이다. 간절하면, 사무치게, 알아 뚫린다. 소용돌이치더라도 꼭 할 일은 하고 가야 한다.” -훈민정음은 한마디로 무엇인가. “훈민정음은 위와 아래가 없는 보편성, 모든 싸움을 화해로 이끄는 화쟁(和錚)이었다. 백성의 알지 못하는 절대고독과 불통의 벽을 허문 혁명의 도구다. ‘무소유의 오래된 미래’다. 훈민정음은 ‘앎’이다. 알면 남에게 기대지 않고, 간섭받지 않고, 스스로의 삶을 살아간다.” -세종이 훈민정음을 통해 뭘 하고자 했는가. “백성이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했다. 소통만이 나라의 평안을 이끄는 지름길이다. 조선의 새로운 문자 훈민정음은 기득권이 가진 묵살과 배신의 벽을 허무는 장도리이고, 얽매임 없이 함께 꿈꿀 수 있는 불꽃의 바다다. 편민(便民·백성을 편하게 함) 정신의 실천이다.” -저자에게 신미는 어떤 분인가. “동행(同行)이다. 텅 빈 길에는 위, 아래가 없다. 걷는 자만이 주인이다. 주인은 훔치지 않고 흉내 내지 않는다. 세종은 제국을 꿈꾼 조선의 유일한 왕이다. 신미는 제왕의 곁에 온 또 다른 부처였다. 조선을 화엄의 바다로 당겨가려는 강렬하고 간절한 서원(誓願)이 둘을 함께 하게 했다. 누구보다 부지런했고, 집중했고, 고통을 감내했다. 새로 만든 문자 훈민정음은 ‘제국의 선언’이다. 신미는 백성이 주인 되는 제국으로 가는 길을 닦았다.” -훈민정음과 세종, 신미를 위한 향후 계획은. “집현전 학자와 기득권 세력들이 백성이 깨어나는 것을 두려워하며 쌍수를 들고 막는 바람에 만들지 못했던 책들을 이 시대의 언어로 다시 써서 나녹과 출간해 갈 계획이다. ‘아롬’은 언제나 리더, ‘모롬’은 언제나 머슴이다. 민초들이 주인 되어 온 세상이 평등해지는 ‘아롬’의 혁명을 해나갈 것이다. -영화 ‘나랏말싸미’에 대해 출판사와 함께 법원에 영화상영금지가처분신청을 제기했는데. “영화 ‘나랏말싸미’는 ‘훈민정음의 길-혜각존자 신미 평전’을 원안으로 한다는 약속이 있어 자문에도 응했다. 돈을 바라는 것도 아니고, 15년간 치열한 취재, 연구와 장인정신으로 출판한 크레딧을 인정해 달라는 것뿐이다. 당연한 요구다. 왜 그것을 가로채려 하는지 모르겠다. 영화사에 인간적 배신감과 모멸감, 환멸을 느낀다.” 김병식 객원기자 kbs@seoul.co.kr
  • [법인의 활발발]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법인의 활발발] 저마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어느 봉사 모임의 표어를 보면 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따뜻하고 신선한 긍정의 감정이 가슴에 스민다. 이와 반대로 “너하고는 참 지독한 악연이다”라는 말에는 그만 우울해진다. 불교의 전문용어라고 할 수 있는 인연이라는 말을 우리는 삶터에서 일상의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자’, ‘옷깃만 스쳐도 삼천 생을 함께 살았다’라는 말은 만남의 소중함을 뜻한다. 또 ‘우리는 인연이 아닌가 보네요’라는 선언은 관계의 어려움을 뜻한다. 관계, 즉 사이 맺음의 끈이 얽히고, 꼬이고, 떨어지는 현실을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좋은 사이도 어떤 까닭으로 말미암아 틈이 벌어지고 다시는 보고 싶지 않은 사이가 된다.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을 어쩔 수 없는 까닭으로 함께 만남을 갖고 살아가야 하는 경우도 있다. 간혹 단순한 질문을 한다. 고통은 피해 갈 수 있는가?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을 불러오는 갈등과 사건들은 애초부터 일어나지 않을 수 있는가? 그리고 부처님과 역대 성인들의 일생을 살펴본다. 온갖 번뇌와 괴로움에서 벗어난 그분들에게는 과연 악연이 없었을까? 물론 진리를 탐구하고 깨침을 얻고자 하는 사람들이 찾아와 가르침을 구했으니 좋은 인연들이 모였을 것이다. 그러나 경전의 기록을 보면 결코 그렇지만은 않다. 극단적으로 부처님과 예수님을 배신하고 반역한 제자들이 있었다. 제바닷타는 부처님의 제자로서 교단의 실권을 장악하려고 부처님을 음해하고 등을 돌렸다. 가롯 유다 또한 예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한 제자였다. 누구나 삶의 여정에서 내가 원하지 않은 악연을 피해 갈 수 없음을 역사와 현실은 말하고 있다. 그것뿐만이 아니다.석가모니는 깨달음 이후 45년을 대중과 함께 수행하고 가르침을 전해 왔다. 긴 세월 동안 적지 않은 사건 사고가 있었다. 개인적인 일탈이 있었다. 함께 살아가는 승단에서, 혹은 저잣거리에서 세속인과 불협화음을 일으키는 제자들이 적지 않았다. 그래서 개인적인 일탈이 발생하면 그것을 경계하는 계율이 생겨났다. 사람과 사람의 사이에서 갈등과 시비가 발생하면 조정하고 해결하는 멸쟁법(滅爭法)이라는 매뉴얼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때나 지금이나 인간사는 사건과 사고의 연속이 아닐 수 없다. 누구도 피해 갈 수 없는 사건과 사고, 그리고 갈등과 시비를 그분들은 어떻게 대면했을까를 생각해 본다. 먼저 제자들이 저마다 온갖 사연을 가지고 서로 화내고 미워하고 공동체의 화해 분위기를 무너뜨릴 때, 부처님과 예수님의 마음은 어떠했을까? 분노와 미움은 아예 없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분들의 마음은 이미 연민과 자애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바로 이 대목이 부처와 중생을 가르는 지점이 될 것이다. 갈등과 시비를 불러오는 사건은 늘 부처와 중생에게 똑같이 다가온다. 저마다 환경이 다르고, 생각이 다르고, 가치가 다른 중생들이 다른 생각과 주장을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겠다. 갈등을 대면하는 바로 그 순간! 어떻게 받아들이고 처리하는 지점에서 천당과 지옥, 부처와 중생의 길이 드러날 것이다. 명색이 수행자인 나도 때로는 갈등과 시비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내 처신이 갈등을 불러일으키지 않도록 나름 조심하고 있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 오해와 왜곡과 비난을 받기도 한다. 나는 이런 의도로 이렇게 말하고 행동했는데 다른 사람은 저런 의도라고 달리 해석하고 서운해한다. 이럴 때는 어찌해야 할까? 먼저 사람들은 저마다 나름의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고 해석할 수밖에 없는 그 이유에 내 생각을 비워 놓고 관심을 가진다. 예전에는 내 생각이 옳다고 설득하는 편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먼저 경청에 집중한다. 진지하게 그의 말에 귀를 열어 놓으면 대략 가닥을 잡을 수 있다. 그가 그렇게 생각하는 그럴 만한 이유를 공감하면 비로소 대화가 가능해진다. 내 경험을 통한 갈등 조정법은 이렇다. 생각 내려놓기, 진지한 경청과 공감, 그리고 침착한 대화다. 내가 옳다고 생각하고 생각에 힘을 넣는 설득은 상대방이 설득당해야 한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설득보다는 공감이 먼저다.
  •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 번째 사원: 로로 종그랑 공주의 비극

    [강희정의 아시아의 美] 천 번째 사원: 로로 종그랑 공주의 비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는 지난 6일 열린 제43차 총회에서 우리나라의 서원과 함께 미얀마의 바간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하라고 결정했다. 우리나라의 산사와 서원, 그리고 3000여개의 사원과 탑이 가득한 바간의 등재는 아시아 문명의 위대함을 다시 확인해 준다. 바간에 필적하는 아시아의 세계문화유산 가운데 인도네시아의 프람바난이 있다.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프람바난에는 450여곳의 힌두교와 불교 사원들이 장대한 ‘사원의 숲’을 이루는데 이 중 200여개의 힌두 사원군을 프람바난 사원이라 한다. 고대 힌두 건축의 걸작으로 꼽히는 프람바난 사원은 1991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850년쯤 샤일렌드라 왕국을 병합한 라카이 피카탄 왕이 건립하기 시작한 이 사원은 힌두교의 여러 신을 모신 크고 작은 사원 복합체다. 왕은 열렬한 시바 신자였다고 한다. 높이 47미터에 이르는 중앙의 가장 큰 사당은 시바 신전이고, 좌우에 브라마와 비슈누의 신전을 세웠다. 힌두 3대 신을 모셔 삼위일체 사상을 따랐음을 알려 준다. 내부에 각 신과 그들이 타고 다니는 승물 조각이 있었으나 다 남아 있지는 않다. 석굴암에서 알 수 있듯 8~9세기는 아시아에서 기념비적 건축이 세워지던 시대다. 장대한 건축은 수학, 공학적 지식 기반이 확고했을 때 가능하다. 땅 다지기부터 지붕 세우기까지 정확한 계산 아래 방향과 각도를 맞춰 건물을 올려야 하니 구체적 공학 기술이 아니면 짓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프람바난 역시 강의 물길을 바꾸고 지반을 다지는 공공수로 작업부터 시작했다.사원의 위용은 압도적이지만 비운의 건축이다. 이 일대가 화산 지대라 한 번 화산이 폭발하면 어김없이 그 피해를 입었다. 가까이 므라피 화산이 불을 뿜을 때마다 땅이 흔들렸고 사원은 돌무더기가 됐다. 프람바난 사원의 창건 전설도 비극적이다. 로로 종그랑 사원이란 원래 명칭이 그 비극에서 나왔다. 프람바난의 보코 왕에게 로로 종그랑이란 아름다운 딸이 있었다. 이웃 나라의 왕자 반둥 본도오소가 프람바난을 정복하고 왕을 살해했다. 그는 천하절색 공주를 보고 한눈에 반해 아내로 삼으려 했다. 부친의 원수인 왕자와 결혼하기 싫었던 로로 종그랑은 꾀를 냈다. 하룻밤에 두 개의 우물과 천 개의 사원을 세운다면 청을 들어주겠노라고 실현 불가능한 조건을 내건 것이다. 왕자는 수하의 귀신을 불렀다. 귀신의 힘으로 못할 것이 없었다. 하룻밤이 무언가? 순식간에 사원 수백 개가 건립됐다. 초조해진 공주는 귀신을 쫓기 위해 시녀들에게 짚을 태우고 절구질을 하라고 시켰다. 불길이 어둠을 환하게 밝히고, 쿵쾅거리는 절구 소리가 울리자 아침이 온 줄 알고 귀신들은 깜짝 놀라 후다닥 달아났다. 사원 999개를 짓고서. 공주의 계략을 알아채고 화가 난 왕자는 공주가 자기를 기만하고 귀신을 속이지 않았다면 다 지을 수 있었을 거라며 로로 종그랑에게 저주를 퍼부었다. “당신이 말한 대로 천 개의 사원을 짓고 말겠소. 그러니 당신이 마지막 천 번째 사원이 되시오.” 이 저주에 공주는 아름다운 모습 그대로 돌조각이 됐고, 주변의 돌들이 날아와 마지막 천 번째 사원이 완성됐다. 사원 건립에도 사랑과 복수, 기만과 저주의 인간사가 얽혀 있다. 귀신도 한몫을 했다. 프람바난 창건 설화는 천 년을 지켜 온 건축을 하루아침에 지을 수 없다는 걸 말해 준다. 짓는 것도, 부수는 것도 공들여 할 일이다.
  • 라이트의 ‘구겐하임미술관’ 등 8곳 세계문화유산 등재

    라이트의 ‘구겐하임미술관’ 등 8곳 세계문화유산 등재

    구겐하임미술관, 낙수장으로 유명한 미국 건축 거장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1867∼1959)가 설계한 건축물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7일(현지시간) 아제르바이잔 바쿠에서 열린 제43차 회의에서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의 20세기 건축’을 세계유산으로 지정했다고 발표했다. 구겐하임미술관과 낙수장은 물론 프레더릭 C 로비하우스, 홀리혹 하우스, 제이컵스 하우스, 탤리에신, 탤리에신 웨스트, 유니티 교회까지 모두 8개 건물이 ‘유산군’으로 묶였다. WHC는 등재 이유로 “각각의 건물은 주거와 예배, 일, 여가와 관련해 혁신적인 해결책을 제공한다. 이 시기 라이트의 작업은 유럽 현대건축 발전에 강한 영향을 미쳤다”고 설명했다. 라이트는 스위스 태생으로 프랑스에서 활동한 르코르뷔지에(1887∼1965)와 함께 20세기 최고 건축가로 꼽힌다. 르코르뷔지에가 지은 빌라 사보아는 2016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됐다. 이번 회의를 통해 ‘한국의 서원’이 세계문화유산으로 결정됐고, 미얀마 불교 유적 ‘바간’과 이라크 바빌로니아 왕국 수도 ‘바빌론’ 등 29건이 신규 등재되면서 세계문화유산은 모두 1121건으로 늘었다. 박성국 기자 psk@seoul.co.kr
  • [In&Out] 문화재 관람료는 납세자가 결정해야/김집중 종교투명성센터 사무총장

    [In&Out] 문화재 관람료는 납세자가 결정해야/김집중 종교투명성센터 사무총장

    최근 조계종 총무원은 그동안 갈등을 빚어 왔던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한 기자회견을 열고 공식 대책을 내놨다. 하지만 직접 이해당사자인 등산객에 대한 배려는 전혀 없고, 오히려 세금으로 거액의 보상을 하지 않으면 다양한 법적 조치를 취하겠다는 내용이어서 여론을 악화시키고 있다. 사실 이 주장은 기존 조계종의 입장과 크게 다르지 않다. 대표적으로 민원이 많았던 지리산 천은사의 경우 문화재 관람료를 폐지했다고 알려졌지만 그중 상당액을 지방자치단체에서 보전받고 영리사업을 할 수 있는 허가까지 얻은 것으로 밝혀졌다. 문화재를 보전·관리할 책임은 문화재 소유 사찰이 부담하고 있다. 국민들이 그 문화재를 관람하고 교육적ㆍ문화적 수요를 충족할 수 있으므로 그 대가를 지급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법원 판결에도 있듯이 관람료는 문화재를 볼 의사가 명백한 이들에게서 거두는 게 맞다. 그래서 계속 해결책으로 제시되는 것이 관람료 징수 위치 변경이다. 기자회견에서는 정부가 손놓고 아무것도 안 하고 있다고 하지만 문화체육관광부, 문화재청, 산림청 등 유관 부처들은 관련 대책을 지금도 논의 중이다. 해당 사안에 대한 정부 차원의 공식 조사 보고서도 냈고 다양한 대안을 조계종에 제안해 왔다. 하지만 조계종은 수입 감소를 보상받을 방안에만 혈안이 돼 있다. 문화재 관람료를 어떻게 사용하고 있었는지는 공개하지 않으면서. 신흥사의 경우 관람료 수입을 조계종이나 불우 이웃에게 보내고 나머지는 징수 비용과 내부 경비로 사용한다는 뉴스도 나왔다. 애초의 징수 목적과 다른 용도로 전용하는 실태를 고백한 셈이다. 아예 문화재 관람 비용을 정부가 보전하는 방안이 대안이 될 수 있을까? 사실 정부는 매년 거액의 문화재 유지 비용을 이미 불교계에 지급하고 있다. 사찰들은 그 비용이 충분하지 않다는 입장인 셈인데 그렇다면 문화재 유지 비용을 객관적으로 산정해 검증받으면 된다. 실제로 다양한 정부 보조금엔 국민의 혈세가 투입되는 만큼 비용의 적정성을 검토받고 지출 이후에는 외부 회계기관의 감사까지 받은 뒤 문제가 있을 경우 사후 추징까지도 한다. 하지만 거액의 혈세를 보전받는 종교보조금의 경우에는 유독 이런 사후 관리가 안 되고 있다. 이미 불교계는 재산세와 취득세, 양도소득세 등을 면제받는다. 비영리법인이 당연히 공개해야 할 결산자료 제출 의무에서도 자유롭다. 세금에서 자유로운 사찰들이 세금으로 운영비를 보상해 달라는 주장 자체가 아이러니다. 정부 정책으로 불교계가 엄청난 피해를 봤다는 주장은 불교계에 거꾸로 양날의 칼이 될 수 있음을 모르지 않을 것이다. 조계종이 할 일은 간단하다. 그저 회계자료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검증받으면 된다. 정부가 할 일도 간단하다. 세금 안 내는 불교계 눈치를 보지 말고 봉급 주는 납세자 편에 서면 된다. 조계종과 정부는 양자 간의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려 하지 말고 공개된 장에서 국민 여론을 수렴해야 한다.
  • “직지 금속활자 복원,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5년을 매달렸죠”

    “직지 금속활자 복원, 죽어도 좋다는 생각으로 5년을 매달렸죠”

    충북 청주는 세계 인쇄문화의 발상지다. 현존하는 금속활자로 찍은 것 가운데 가장 오래된 직지심체요절을 1377년 청주 흥덕사에서 발간했다. 직지는 승려 백운화상이 선불교에서 전해지는 여러 얘기를 모아 만든 책이다. 금속활자 발명은 지난 1000년 동안 인류에게 가장 큰 영향력을 미친 100대 사건에서 1위로 꼽힐 정도로 대단한 것이다. 지금은 폐간된 미국의 잡지 ‘라이프’가 2000년대를 맞아 조사한 결과다. 이 금속활자는 구텐베르크가 발명한 것이다. 우리나라가 발명한 금속활자가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했지만 세계 최초라는 사실만으로도 경이로운 것이다. 직지의 고장답게 청주에 가면 옛 금속활자를 재현하는 사람이 있다. 대한민국 유일의 금속활자장으로 국가무형문화재 101호인 임인호(56)씨다. 임씨는 글씨 새기기, 거푸집 만들기, 활자 주조, 조판, 인쇄를 거쳐 책을 만드는 모든 과정을 혼자 한다. 지난 5일 그가 관장으로 있는 금속활자전수교육관을 찾았다. 마침 임씨의 금속활자 주조 시연이 있었다. 방문객들은 그의 움직임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불의 뜨거움, 쇠의 단단함 등과 싸우는 거친 작업이었지만 그의 얼굴은 환희에 차 있었다. 세계 최초인 금속활자의 맥을 이어 간다는 장인의 자긍심 때문일 터. 금속활자가 완성되자 박수 소리가 전수관을 가득 채웠다. 다음은 일문일답. ●활자주조·인쇄까지 전 과정 혼자 작업 -어떻게 활자장이 됐나. “집안이 어려워 18살 때 상경해 구두닦이, 목공을 하다 1984년 나무에 글씨를 새기는 서각에 입문했다. 그런데 1996년 우연한 기회에 청주 수동에 있던 금속활자 분야 무형문화재 오국진 선생님의 작업실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그날 이후 선생님의 작업실에 들락거렸다. 당시 괴산군 연풍에서 청주까지 오려면 2시간 30분을 가야 하는데 선생님을 만나는 게 즐거웠다. 수입은 없었지만 시간이 가면서 성취감이 큰 금속활자의 매력에 푹 빠졌다. 당시 가정은 아내가 분식점을 해 꾸려 갔다. 2008년 선생님이 타계한 뒤 2009년 국가무형문화재 금속활자장이 됐다.” -손이 무척 거칠다. “보기 흉할 것이다. 서각도를 자주 다루다 보니 손이 성할 날이 없다. 20년 전에는 양쪽 엄지손가락이 반쯤 잘려 봉합수술을 받았다. 직지 복원 작업 기간에는 주형틀에 붓던 쇳물이 바지에 옮겨붙어 다리에 큰 화상을 입기도 했다. 하지만 직지 복원에 매달리느라 민간요법으로 치료하며 작업했다.” -금속활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나. “크게 밀랍주조법과 주물사주조법이 있다. 밀랍주조법은 밀랍에 새긴 글자를 흙으로 싸서 구운 뒤 밀랍이 녹아 생긴 공간에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드는 방법이다. 주물사주조법은 나무에 글자를 새겨 어미자를 만들고 주물사에 거푸집을 만든 뒤 쇳물을 부어 활자를 만드는 방식이다. 밀랍주조법이 더 어렵다. 황토, 모래, 물 등을 적당한 비율로 반죽해 일종의 틀인 ‘주형’을 만들어야 하는데, 습도와 온도 등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 날씨를 고려하지 않고 주형을 만들면 실패한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감’으로 반죽 비율을 정한다.”-가장 기억에 남는 작업은. “3만여자에 달하는 직지 금속활자 복원이다. 청주시에서 18억원을 지원받아 2011년부터 5년간 작업 기간에는 매일 2~3시간만 자고 일에 매달렸다.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다 하반신 마비가 오기도 했다. 직지에는 같은 글자가 여러 번 등장하는 데 재사용하지 않고 새 활자를 만들어 썼다. 단순히 책을 인쇄하기 위해 금속활자를 만들었다면 그럴 필요가 없었을 것이다. 먹고살기 힘든 백성들을 위해 무언가를 전달하고자 직지를 만든 것 같다. 고려시대 불력(佛力)으로 몽골 침략군을 물리치기 위해 팔만대장경을 만든 것처럼.” -활자장의 삶은. “고독하다. 대부분 밤새 혼자 하고, 사 가는 사람이 없어 만든 활자를 판매할 수도 없다. 만드는 순간 재고가 된다. 이 길을 가려는 사람이 없다. 맥이 끊길 것 같아 강제로 아들을 입문시켰다. 활자장은 경제논리를 생각하면 안 된다. 한 달에 130만원인 무형문화재 정부지원금과 시연비 등으로 산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 느낄 수 없는 성취감을 경험할 수 있다. 1200도에 달하는 쇳물을 다루다 보니 화상을 입기도 한다. 그래서 항상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작업을 한다.” -활자 복원의 의미는. “우리의 빛나는 금속활자 제작기술 보존과 선조들의 정신을 이어 가기 위한 것이다. 팔만대장경 못지않게 곰팡이 없이 팔만대장경을 보관하는 장경각도 높게 평가받고 있다. 장경각 건축방법이 지금까지 전해진다면 우리나라 건축기술이 더 빠르게 발전했을 것이다. 금속활자로 책을 인쇄했다는 것은 대량 인쇄로 ‘정보화의 길’을 연 매우 경이로운 일 아닌가.” ●호 ‘무설’(無說)… 돈 생각 말고 욕심 버리라는 뜻 -호가 ‘무설’이다. “서각을 가르쳐 준 신영창 선생님이 지어 주셨다. 돈 생각하지 말고, 욕심부리지 말고 ‘무의 세계’로 걸어가라는 뜻이 담겼다. ‘세상은 공평하다. 돈을 버리니 명예가 따라왔다’는 믿음을 잊지 않는다. 스승의 가르침을 잊지 않기 위해 1992년 괴산에 마련한 개인 작업실 이름을 ‘무설조각실’로 지었다.” -앞으로 하고 싶은 작업은. “한글활자를 복원하고 싶다. 한글의 세계화에 보탬이 되고 싶어서다. 한글로 돼 있는 책자에서 ‘월인천강지곡’이 금속활자로 인쇄됐다. 우선 이 책에 쓰인 한글 복원에 도전하고 싶다. 활자 복원 작업은 나에게 마약과도 같다. 이 일을 하지 않으면 몸과 마음이 모두 불편하다. 활자 복원은 내 운명인 것 같다.” 청주 남인우 기자 niw7263@seoul.co.kr
  • 안동 도산서원 등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안동 도산서원 등 ‘한국의 서원’ 세계유산 등재

    한국 14번째 유산…“탁월한 보편적 가치 인정”조선시대 핵심 이념인 성리학을 보급하고 구현한 장소인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가 확정됐다. 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결정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는 6일 아제르바이잔 수도 바쿠에서 진행 중인 제43차 회의에서 한국의 서원을 세계유산 중 문화유산(Cultural Heritage)으로 등재했다. 서원은 공립학교인 향교와 달리 지방 지식인이 설립한 사립학교로, 성리학 가치에 부합하는 지식인을 양성하고 지역을 대표하는 성리학자를 사표(師表)로 삼아 배향했다.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서원은 모두 9곳이다. 풍기군수 주세붕이 중종 38년(1543)에 ‘백운동서원’이라는 명칭으로 건립한 조선 첫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경주 옥산서원, 달성 도동서원, 함양 남계서원, 정읍 무성서원, 장성 필암서원, 논산 돈암서원으로 구성된다. 16∼17세기에 건립한 이 서원들은 조선 후기 흥선대원군이 서원 철폐령을 내렸을 때 훼철되지 않았고, 2009년 이전에 모두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돼 원형을 비교적 잘 유지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병산서원과 옥산서원은 2010년 세계유산에 등재된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에도 포함돼 세계유산 2관왕이 됐다.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에 대해 “오늘날까지 교육과 사회적 관습 형태로 지속하는 한국 성리학과 관련된 문화적 전통의 증거”라면서 “성리학 개념이 여건에 따라 변화하는 역사적 과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세계유산 필수 조건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Outstanding Universal Value, OUV)가 인정된다”고 평가했다. 세계유산의 탁월한 보편적 가치는 모두 10개이며, 이 가운데 6개를 문화유산에 적용한다. 그중 하나만 충족해도 세계유산이 되는데, 한국의 서원은 세 번째인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을 충족했다. 다만 우리 정부가 서원 건축의 정형성과 독특한 입지 등을 근거로 신청한 네 번째 기준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은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앞서 세계문화유산 후보지를 사전 심사하는 자문기구 이코모스(ICOMOS·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는 지난 5월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 유산으로 분류해 세계유산 등재가 확실시됐다. 한국의 서원은 2011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됐다. 2015년 세계유산 도전에 나섰으나, 이듬해 이코모스가 서원 주변 경관이 문화재 구역에 포함되지 않았고 연속유산 연계성에 대한 설명이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들어 ‘반려’(Defer) 판정을 했다.이에 문화재청은 등재 신청을 자진 철회했고, 국내외 전문가 의견을 종합해 비교 연구를 보완하고 연속유산 논리를 강화한 신청서를 새롭게 작성해 지난해 1월 유네스코에 제출했다. 다만 세계유산위원회는 한국의 서원이 지닌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진정성, 완전성은 인정하면서도 9개 서원에 대한 통합 보존관리 방안을 수립하라고 권고했다. 정재숙 문화재청장은 “불교 유산이나 기독교 유산에 비해 유교 유산은 세계유산에 등재된 사례가 적다”면서 “한국의 서원이 조선시대에 보편화한 성리학의 지역적 전파에 이바지한 점이 인정됐다”고 말했다. 정 청장은 이어 “지방정부와 적극적으로 협력해 보존관리를 빈틈없이 하겠다”면서 “연속유산의 세계유산 등재 추진에 어려움을 겪는 나라가 많은데, 이번에 이코모스와 대화하면서 축적한 경험을 공유하고자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의 서원을 등재하면서 우리나라는 석굴암·불국사, 해인사 장경판전, 종묘(이상 1995년), 창덕궁, 수원 화성(이상 1997년), 경주역사유적지구, 고창·화순·강화 고인돌 유적(이상 2000년),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2007년), 조선왕릉(2009년),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와 양동(2010년), 남한산성(2014년), 백제역사유적지구(2015년), 산사, 한국의 산지승원(2018년)을 포함해 세계유산 14건을 보유하게 됐다.북한에 있는 고구려 고분군(2004년), 개성역사유적지구(2013년), 그리고 중국 동북지방 일대 고대 고구려 왕국 수도와 묘지(2004년)를 합치면 한민족 관련 세계유산은 17건에 달하게 됐다. 이 가운데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만 자연유산이고, 나머지는 모두 문화유산이다. 내년에는 서남해안 일부 갯벌을 묶은 ‘한국의 갯벌’(Getbol, Korean Tidal Flat)이 자연유산 등재 심사를 받는다. 한편 한국의 서원은 세계유산, 인류무형문화유산, 세계기록유산을 통틀어 유네스코가 인정한 우리나라의 50번째 유산이 됐다. 한국은 인류무형문화유산 20건, 세계기록유산 16건을 보유 중이다. 다만 인류무형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은 세계유산과 규모와 성격이 다르며, 세계기록유산 영문 명칭은 ‘메모리 오브 더 월드’(Memory of the World)로 유산을 뜻하는 ‘헤리티지’(Heritage)가 들어가지 않는다.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부고] 고영권씨 부친상, 이성근씨 별세, 김규련씨 부친상, 최지남씨 별세

    ●고영아·고현아·고영찬(초당대 교수)·고영권(한국일보 멀티미디어부 차장)씨 부친상, 유헌식(단국대 교수)·김용하(전 KCC 상무)씨 장인상, 3일 오전 6시30분께, 동국대 일산병원 장례식장 15호실, 발인 5일 오전 5시50분, 장지 전북 익산 원불교영모묘원. 031-961-9400 ●이성근(전라북도 무형문화재 제9호 판소리 고법 보유자)씨 별세, 영호(시파프레스 한국특파원)·일호·준오·상호(국악인)씨 부친상, 2일 오후 7시, 전주시 삼성 장례문화원 202호, 발인 5일 오전 8시, 국립대전현충원. 063-247-1003 ●김규련(창원상공회의소 경남지식재산센터장)씨 부친상, 3일 오전 3시, 경남 창녕군 남지읍 경남요양병원장례식장 특1호, 발인 5일 오전 7시 30분. 055-526-2575 ●최지남(경향신문 경기남시흥 지국장)씨 별세, 3일 오전 4시 30분, 경기도 시흥시 신천연합병원 특실, 발인 5일 오전 8시 30분. 031-310-6440
  • [길섶에서] 우주와 도솔천/손성진 논설고문

    광대한 우주 속에서 나는 무엇일까. 나는 어떻게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일까. 138억년이란 시간과 지금도 확장되고 있다는 무한성의 공간. 우주의 시작은 언제이며 끝은 어디인가. 그 경계를 넘어갈 수는 있는 것일까. 우주 진화에 대한 전문서적에 도전한 것은 막연하게 궁금증을 풀어 보고자 하는 무모함에서 비롯됐다. 10의 마이너스 35승 초. 150억 광년. 불교에서 말하는 찰나와 억겁이란 이렇게 상상 불가인 시공(時空)을 뜻하는 것일까. 잔뜩 벼르고 있었던 터였기에 2할도 이해하지 못하면서 끝까지 읽은 심정은 절망에 가까웠다. 다만 우주 속에서 인간이란 미물(微物)의 영역을 새삼 자각했다. 그 속에서 날뛴들 언제 저 천상 세계, 춘향이가 말하던 도솔천(兜率天)에 닿을 수 있단 말인가. “도솔천의 하늘을 구름으로 날더라도 그건 결국 도련님 곁 아니어요?” 그래도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본다. 우주는 멀리 있는 게 아니라 바로 우리 위에 있다. 우리는 지구라는 별의 표면에 발을 붙이고 머리는 탁 트인 우주로 향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 내가 서 있는 곳이 바로 우주 공간이라는 사실을 깨닫자 잠잠하던 가슴이 갑자기 뛰기 시작했다. sonsj@seoul.co.kr
  • 임종국 서울시의원, ‘커뮤니티케어시대, 상담에서 길을 찾다’ 세미나 참석

    임종국 서울시의원, ‘커뮤니티케어시대, 상담에서 길을 찾다’ 세미나 참석

    보건복지부가 6월부터 통합돌봄서비스(커뮤니티케어) 제공을 본격적으로 실시함에 따라 복지서비스 ‘커뮤니티케어시대’에 발맞춘 국가와 지역사회의 책임에 대한 논의가 뜨거워지고 있다. 임종국 서울시의원(더불어민주당, 종로 2)은 지난 27일(목), 오후 2시 종로구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커뮤니티케어시대, 상담에서 길을 찾다’ 세미나 축사자로 참석했다. 이번 세미나는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개소 10주년을 맞아 열린 것으로 서울시 지역사회의 현실적인 적용을 위해 다양한 논의가 이어졌다. 임 의원은 “정부는 본격적인 초고령사회를 목전에 두고 치매국가책임제를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는 등 어르신 건강문제를 개인을 넘어 국가 책임으로 정책화하는데 힘쓰고 있다”며, “커뮤니티케어 사업이 국가차원에서 본격 추진됨에 따라 자택에 거주하며 다양한 복지 서비스를 받고 동시에 어르신에게 시민생활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수 있는 기회가 마련됐다”고 말했다. 이어서 임 의원은 “커뮤니티케어 시대에 어르신들께 필요한 것이 현실적으로 무엇인지, 수요자 중심의 복지 서비스를 위한 ‘어르신 상담’ 영역은 더욱 전문성이 요구된다”며, “노인상담에 대한 전문적 인력 수요와 현장의 목소리를 정책에 담는 작업들이 절실한 만큼 참석하신 분들과 함께 저 역시 의정활동을 통해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세미나는 서울시어르신상담센터 희유 센터장의 인사말을 시작으로 임종국 서울시의원, 윤재삼 서울시 인생이모작지원과 과장, 성미선 서울시노인종합복지관협회장이 축사자로 나섰으며, 남석인 연세대 교수를 좌장으로 희유스님 서울시 어르신상담센터장, 고현주 한국보건복지인력개발원 부장, 김영혜 영등포구노인상담센터장이 발표자로 나섰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패싱/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절집에 가면 ‘조고각하’(照顧脚下)라는 문구를 자주 만나게 된다. 절절한 사연이 담긴 고사이지만 대체로 ‘발밑을 잘 살피라’는 경구로 통한다. 법당이나 선방 앞에 널려 있는 신발과 포개지지 않게 내 신발부터 잘 정리하라는 당부 말이다. 출가자들도 속인들과 마찬가지로 나름의 질서와 현실의 직시가 중요함을 보여 주는 경구가 아닐까. 그래서 세상 사람들도 나부터 신중히 처신하자는 마음 다잡이의 경구로 이 말을 자주 쓴다. 한국 불교 맏형 격인 조계종이 정부를 향해 연신 불만을 쏟아내고 있다. 불교문화유산 정책이 잘못됐다며 ‘심하게’ 분통을 터뜨린다. 문화재위원 스님 축소에 볼멘소리를 내더니 며칠 전엔 문화재 관람료 논란을 해결하라는 폭탄선언을 내놓았다. 문화재위원의 경우 분과별로 1명씩 위촉했던 문화재위원 스님 8명을 갑자기 5명으로 줄인 데 대한 불만이다. 조계종 측에서 추천하면 위촉할 준비가 돼 있다는 문화재청의 해명에도 원성이 가라앉지 않는다. 문화재 관람료 사태에 대한 반발은 더 강도가 높다. 국립공원에 편입된 사찰 소유 부지에 대한 보상을 하라는 요구다. 정부가 보상을 거부하면 국립공원 지정 해제를 포함한 헌법소원까지 불사하겠단다. 최근 연발한 조계종의 불만은 불교계의 지분과 권리의 박탈에 대한 항의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불교와 관련된 우리 문화유산은 상당하다. 국가 지정 국보·보물의 60% 이상이 불교문화재인 상황에서 불교계의 문화유산 관리·보존 노력과 공은 무시할 수 없다. 그런데 정부가 불교계를 폄훼하고 무시하려 든다는 반발인 것이다. 이른바 ‘불교계 패싱’이다. 따져 보면 새 정부 들어 ‘불교계 패싱’에 대한 불만은 하루이틀의 문제가 아니다. 주요 참모진과 내각의 천주교 인사 편중이며 자연공원법 개정안 입법예고 과정의 조계종 배제, 남북 회담 당시 천주교 인사들만 북측 인사 접촉…. 지난 25일 시작된 조계종 중앙종회 임시회도 그 연장선에 있다. 종회 개회 전부터 종단에선 ‘불교계 패싱’을 더이상 좌시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실제로 첫날 회의에선 대정부 성토가 이어졌다. “불교문화재와 불교문화유산이 일반 사회에서조차 문화재 주요 정책에서 배제되고 소외되고 있다는 불편함이 점점 커져 가고 있음을 직시해야”, “불교계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고 향후 제대로 된 불교문화 정책이 수립, 집행되는지 분명하게 지켜볼 것”…. 불교계의 불만과 성토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합리적인 항변과 권리 주장이어야 한다. 점차 줄어드는 불교 신자와 출가자 수는 불교계의 위기로까지 여겨지는 추세다. 그 축소의 원인으로 일탈과 본분 망각을 꼽는 이들이 많다. 조계종 안팎의 상황이 녹록지 않은 것이다. 문화재 관람료와 관련한 종단 부지 보상 요구에도 비판이 쏟아졌다. 불교·시민사회 단체들은 오히려 조계종단을 향해 사과할 것을 주문했다. ‘줄탁동기’(?啄同機). 병아리가 알에서 나오기 위해선 새끼와 어미닭이 안팎에서 서로 쪼아야 한다는 선종의 공안이다. 일반의 보편 인식과 발밑을 조심스레 살피는 종교의 신중함이 어울릴 때 권리 주장과 요구도 힘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kimus@seoul.co.kr
  •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 ‘혼개통헌의’ 등 10건 보물 지정

    조선 후기 천문시계인 ‘혼개통헌의’, 조선 후기 이인문의 역작 ‘강산무진도’ 등 10건이 보물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실학자 유금(1741∼1788)이 1787년 제작한 과학기구인 혼개통헌의를 포함해 모두 10건의 문화재를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했다고 26일 밝혔다. 혼개통헌의는 별 위치와 시간을 알려주는 원반형 모체판과 별을 관측하는 지점을 가르쳐주는 ‘T’자 모양 성좌판으로 구성했다. 동아시아에서 유일하게 제작 사례가 알려진 유물로, 1930년대 일본인 도기야가 사들여 일본으로 가져갔다가 한국으로 돌아와 현재 실학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강산무진도는 조선시대 궁중화원 이인문(1745∼1821)이 ‘강산무진’(江山無盡)을 주제로 그린 8.5m 길이의 두루마리 형식 그림이다. 불교 문화재로는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 ‘김천 직지사 괘불도’, ‘고창 선운사 참당암 석조지장보살좌상’이 보물이 됐다. 구미 대둔사 삼장보살도는 18세기 경북 지역에서 활동한 승려화가들이 천상·지상·지하 세계를 관장하는 보살을 그린 그림, 직지사 괘불도는 승려화가 13명이 1803년 함께 완성한 12m 높이 그림이다. 고창 선운사 참당암 불상은 여말선초 시기 유행한 두건을 쓴 지장보살좌상이다. 이외에도 ‘도은선생시집 권1∼2’, ‘도기 연유인화문 항아리 일괄’, ‘이인문 필 강산무진도’, ‘신편유취대동시림 권9∼11,31∼39’, ‘완주 갈동 출토 동검동과 거푸집 일괄’, ‘완주 갈동 출토 정문경 일괄’이 보물로 지정됐다. 보물 지정은 문화재위원회 동산분과위원가 결정한다. 격월 회의가 원칙이지만, 최근 신청이 많아 매월 회의를 열고 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BTN, 호국보훈의 달 특집 다큐드라마 ‘사명대사’ 방송

    호국보훈의 달 특집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가 BTN불교TV를 통해 방송한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호국영웅 임진왜란 승병장인 사명대사의 일대기 및 승병들의 구국활동을 그렸다. 1, 2부로 제작됐으며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 2부 ‘승복입은 외교관’을 주제로 이틀에 걸쳐 방영된다. 26일(수)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1부 ‘일어나라, 조선의 승병들이여’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동한 사명대사의 이야기와 이름 없이 죽어간 수 많은 승병들의 역사적 기록이 다큐 드라마 형식으로 제작됐다. 조선불교를 이끌고 갈 인물로 촉망 받음과 동시에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과 교류했던 지성인 사명대사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27일(목) 밤 10시30분에 방송되는 2부 ‘승복입은 외교관’에서는 임진왜란 중 일본으로 끌려가 노예 생활을 하던 10만여 명의 조선 피로인을 구하기 위한 사명대사의 활약상을 일본 현지 취재를 바탕으로 드라마 재연을 통해 생생하게 전달한다. 연출을 맡은 윤정현 PD는 “임진왜란 당시 승병장으로 활약했던 구국 영웅인 사명대사의 다큐멘터리를 통해 이름 없이 희생된 승병들의 정신을 되새기고자 한다”고 밝혔다. 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경상북도와 김천시, 조계종제8교구본사 직지사의 제작지원으로 BTN불교TV가 기획 및 제작을 맡았다. 1년 여의 기간 동안 김천 직지사를 비롯해 동화사 금산사, 갑사, 흥국사 등 사명대사와 관련있는 사찰에서 촬영됐다. 또 승병들의 활약상과 시대적 상황을 담기 위해 문경새재, 평창, 창원해양드라마 세트장, 군산, 부안, 아산, 담양 등 국내 촬영과 더불어 교토, 구마모토, 우스키 등 일본 현지로케 촬영을 진행했다. UHD다큐드라마 ‘사명대사’는 전국 각 지역 케이블TV과 SkyLIfe, IPTV, BTN인터넷과 모바일 등을 통해 시청할 수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경북, 찬란한 세계문화유산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다

    경북, 찬란한 세계문화유산 ‘글로벌 브랜드’로 키운다

    경북, 광역단체 중 세계유산 최다 보유 소수서원, 임금이 현판 하사한 사액서원 병산서원은 교육기관 넘어 사림 공론장 하회마을 年 100만명 이상 관광객 찾아 울릉도와 가야고분군도 세계유산 추진경북이 보유한 문화유산이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잇따라 등재되면서 세계적인 문화 브랜드로 육성되고 있다. 경북은 25일 현재 세계유산이 4건으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다. 여기에 조선 시대 교육기관인 서원 9곳을 묶은 ‘한국의 서원’(Seowon, Korean Neo-Confucian Academies) 세계문화유산 등재가 확실해 모두 5건으로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경북도의 문화유산 브랜드 가치가 세계적으로 알려지게 되자 도는 관광산업을 한 단계 끌어올리는 계기로 삼고 있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경북은 세계가 부러워하는 찬란한 문화유산의 보고”라며 “세계유산으로 선정된 경북의 문화재들을 세계적인 관광상품으로 개발해 민선 7기 핵심 공약인 관광산업을 육성시키는 도약대로 삼겠다”고 강조했다. 서원 9곳 가운데 경북에는 조선시대 첫 서원인 영주 소수서원을 비롯해 경주 옥산서원, 안동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등 4곳이 모여 있어 경북이 ‘선비의 고장’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켰다. 나머지 5곳은 대구 달성 도동서원, 경남 함양 남계서원, 전남 장성 필암서원, 전북 정읍 무성서원, 충남 논산 돈암서원 등이다.유네스코 세계유산 등재를 심사하는 세계유산위원회(WHC) 자문기구인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ICOMOS·이코모스)가 지난달 한국이 세계유산으로 신청한 한국의 서원을 등재 권고했고 오는 30일 아제르바이잔에서 개막되는 제43차 유네스코 세계유산위원회에서 등재가 확정될 전망이라고 도 관계자는 설명했다. 이코모스의 등재 권고는 이변이 없는 한 바뀌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의 서원이 세계유산에 등재되면 경북의 세계유산은 모두 5건이 된다. 전남이 4건으로 늘어나 뒤를 이으며 충남은 서울과 같은 3건이 된다. 경북은 현재 ▲경주 석굴암·불국사(세계문화유산 지정 연도 1995년) ▲경주역사유적지구(2000년) ▲한국의 역사마을(안동 하회마을 및 경주 양동마을·2010년)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영주 부석사, 안동 봉정사 등·2018년) 등 4건을 보유했다. 소수서원은 조선 중종 때 풍기군수로 부임한 주세붕(1495~1554)이 세운 서원으로, ‘사액서원’으로 유명하다. 사액서원은 조선 시대 임금이 현판과 토지 등을 하사한 서원을 일컫는다. 우리나라 서원 교육, 제향과 관련한 운영 규정을 처음으로 만들어 이후 세워진 서원 교육 규정에 영향을 미쳤다. 도산서원은 퇴계 이황(1501~1570) 선생을 기리기 위해 1574년 지어졌으며 자연 친화적 경관 입지를 보여 주는 한국 서원의 전형으로 학문과 학파, 학술, 정치, 사회적 영향력 측면에서 상징성이 크다. 병산서원은 서애 류성룡(1542~1607) 선생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진 서원으로, 만대루에서 보는 낙동강의 풍광은 수려하기로 이름이 높다. 교육기관을 넘어 만인소 등 사림 공론장으로 확대됐으며 만대루는 한국 서원 누마루 건축의 탁월성을 보여 준다. 조선 중기의 대표적 성리학자인 회재 이언적(1491~1553) 선생을 배향한 옥산서원은 누마루 건축물을 처음으로 서원에 도입하고 흥선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에도 살아남은 47개 서원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장서를 보유한 서원으로도 알려졌다.앞서 지난해 통도사(경남 양산), 법주사(충북 보은), 마곡사(충남 공주), 선암사(전남 순천), 대흥사(전남 해남)와 함께 세계문화유산에 이름을 올린 경북의 부석사와 봉정사는 이코모스로부터 1000년 한국 불교 전통을 계승해 온 종합 승원이라는 점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부석 사는 676년 신라 문무왕 16년에 의상(625~702)이 왕명을 받들어 창건한 화엄종찰이다. 국내 최고 목조건물인 무량수전을 비롯해 국보 5점과 보물 4점 등이 있다. 조사당 벽화는 목조건물에 그려진 벽화 중 가장 오래된 유산이다. 의상대사의 제자 능인 스님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봉정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인 극락전(국보 제15호)이 있는 곳으로 유명하다. 임진왜란 때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 불상, 불화가 잘 보존됐다. 1999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찾아 더 유명해졌다.특히 엘리자베스 2세 영국 여왕이 다녀간 이듬해인 2000년에 세계문화유산에 오른 안동 하회마을은 지난해까지 5년째 매년 100만명 이상이 찾는 국제적인 관광지로 탈바꿈했다. 세계적인 명사들도 즐겨 찾을 정도가 됐다. 각국 주한 대사는 물론 부시 전 미국 대통령 부자가 2005년과 2009년 연이어 찾아 한국의 전통문화를 즐겼다. 2017년 10월에는 문재인 대통령 부부가 추석 연휴에 하회마을을 깜짝 방문하기도 했다. 가야고분군과 울릉도의 세계유산 등재도 추진돼 앞으로 경북도의 세계문화유산 보유 건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고령군은 2021년까지 가야고분군인 지산동고분군의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 중이며, 경북도는 최근 울릉도를 세계자연유산으로 올리기 위한 시동을 걸었다. 지산동고분군은 이미 2013년 세계유산 잠정목록에 올랐다. 울릉도는 지형지질학적 가치, 다양한 생물종 및 희귀·멸종식물에 대한 보존가치 등과 관련해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의 세계유산 13건 가운데 자연유산은 2007년 등재된 제주 화산섬과 용암동굴이 유일하다. 안동 김상화 기자 shkim@seoul.co.kr
  • 인도 사원 행사 위해 40도 무더위에 코끼리 열차 태워 3100㎞ 이동

    인도 사원 행사 위해 40도 무더위에 코끼리 열차 태워 3100㎞ 이동

    인도 힌두교 행사 때문에 섭씨 40도가 넘는 무더위 속에 기차에 태워 코끼리 네 마리를 3100㎞ 이동하게 만들어 비난을 사고 있다고 영국 BBC가 21일 전했다. 인도 북서부 구자라트주의 아흐메다바드에 있는 자간나스 사원에서는 매년 7월 초 라스 야트라란 횃불 행진이 펼쳐진다. 불교에서 신성시하는 동물인 코끼리들이 함께 행진해 커다란 볼거리를 제공한다. 그런데 지난해 이 행사에 참가했던 코끼리 세 마리가 고령으로 세상을 떠나자 사찰 측은 북동부 아삼주 틴수키아 마을에서 코끼리 네 마리를 기차 화물칸에 태워 무려 3100㎞ 떨어진 이곳까지 사나흘에 걸쳐 옮기기로 결정했다. 아직 출발 날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다음달 4일 이전에 도착해야 행사를 무난하게 치를 수 있는데 방송은 구자라트주 철도당국이 코끼리의 수송 일정을 조율하고 있으며 수송 과정에 쓰일 자동차를 물색하고 있음을 확인했다. 동물 보호 활동가들은 잔인하고 비인도적인 결정이라고 규탄하고 있다. 사나흘 정도 걸리는 여행 내내 코끼리들이 비좁고 흔들리는 화물칸에서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을 것이며 자칫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문제의 사원 행사에는 매년 구자라트주 출신인 나렌드라 모디 총리가 참석해왔다. 하지만 올해는 모디 총리가 불참할 것으로 알고 있다고 총리실 관계자는 밝혔다. 아삼주 주도 구와하티의 환경보존 활동가 카우식 바루아는 “인도 북서부 대부분 지역이 열파 때문에 몸살을 앓고 있다. 열차 여행 중 사람도 목숨을 잃는다는 보도도 잇따르고 있다”며 “코끼리가 이송되는 화물칸은 날씨를 감안해 통제할 수 있는 장치가 없다. 승객 칸과 연결해 시속 100㎞의 속도로 달리면 동물이 얼마나 놀랄지 짐작이나 하느냐”고 되물었다. 이런 잔인한 결정이 다른 어느 곳도 아니고 힌두 사원의 행사를 위해 버젓이 행해진다는 것에 공분하는 이도 적지 않다. 바루아는 묻는다. “인도에서는 가네샤란 코끼리 신을 모신다. 그런데 신들은 왜 사원이 이런 잔인한 행동을 하도록 그냥 놔두는 것인가?” 임병선 기자 bsnim@seoul.co.kr
  • [부고] 이건철씨 부친상, 이경호씨 부친상, 강영길씨 별세

    ●이건철(한국교통대 교수)씨 부친상, 21일 오전 8시 40분, 청주 참사랑병원장례식장 백합실, 발인 23일 오전 8시. 043-298-9200 ●박향단씨 남편상, 이정은·이경호(고려대 정보보호대학원 교수)·이정수(원불교 교무)·이정진·이준원(에스케이재원㈜ 팀장)씨 부친상, 류재정(서울체고 교사)·이강권(삼성웰스토리 상무)씨 장인상, 황혜진·성은정씨 시부상, 21일 오전 10시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9호실(22일 오전 8시부터 15호실), 발인 23일 오전 7시, 장지 전북 익산 원불교 영모묘원. 02-3410-6909(22일 오전 8시부터. 02-3410-6915) ●강영길(대한건설협회 기획조정실장)씨 별세, 21일 오후 12시 30분, 강남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 1호실, 발인 23일 오전 9시 30분, 장지 서울추모공원. 02-2019-4001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