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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웅산 수치가 군부를 변호하는 까닭

    아웅산 수치가 군부를 변호하는 까닭

    노벨평화상 수상자인 아웅산 수치 미얀마 국가자문역 겸 외무부 장관이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을 집단학살한 혐의로 국제사법재판소(ICJ)에 기소된 자국 군부를 변호하기 위해 10일(현지시간) 직접 네덜란드 헤이그 법정에 선다. 군부의 손에 15년 구금생활을 했던 세계 대표 인권옹호자이자 평화주의 상징이었던 수치는 국제사회가 ‘인종청소’라 규정한 미얀마군의 인종·종교 폭력을 묵인했다는 비난을 받아 왔다. 그런 그가 이젠 변호인단을 이끌고 유엔의 최고 재판소에 직접 출두하기까지 이른 것이다. 수치는 2015년 민주주의민족동맹(NLD)을 이끌어 의석을 석권하고 2016년엔 측근을 대통령에 당선시키며 사실상 국가 정상 역할을 하고 있다. 군부는 독재 시절부터 최근까지 로힝야족을 상대로 인종청소에 가까운 살인, 방화, 강간 등을 일삼은 것으로 악명이 높다. 민주적 정권 교체를 이룬 뒤 수치는 이 같은 군부의 만행을 되레 옹호해 실망을 안겼다. 유엔인권이사회 조사 결의안을 손수 거부했으며, 국제사회에 대해 “현실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쏘아붙이기도 했다. 이로 인해 한국 5·18 기념재단의 광주인권상, 미국 홀로코스트 기념박물관의 엘리 비젤상 등 그가 앞서 받은 수많은 인권상과 명예시민권은 박탈됐다.헌법 개정 위해 총선 압승 필수적군부의석 무조건 25% 독소조항도 소속 정당 지지율 갈수록 떨어져정치적 텃밭 소수민족 지지 필요로힝야족, 과거 소수민족·불교 탄압미얀마 국내 여론은 수치 지지 여전 게다가 수치는 스스로 경멸했던 군부의 통치 방식을 그대로 따르고 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정치권 부패와 대기업 결탁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다. 집권 뒤 물가는 2배 이상 뛰었고, 소득 불균형도 점차 심해지고 있다. 집권 여당을 비판했다는 이유로 언론사가 조사를 받거나 언론인이 수감되기도 했다. 특히 로힝야족 거주지인 라킨 주엔 언론 접근도 철저히 차단했다. 그는 2016년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나는 개인적으로 우리 군부를 좋아한다. 나의 아버지가 세운 군대이기 때문이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미국 외교안보 전문매체 ‘더 디플러맷’은 최근 ICJ에 직접 출두하기로 한 수치의 결정을 현재 미얀마 국내 정치 관점에서 봐야 한다고 평가했다. 미얀마는 내년에 총선을 앞두고 있다. 매체에 따르면 수치는 총선에서 압승을 거둬 군부가 독재정권 당시 만들어 놓은 헌법을 개정하려 한다는 것이다. 헌법엔 여러 가지 독소 조항이 있다. 외국 국적 가족이 있는 사람은 대통령 후보가 될 수 없도록 해 수치가 집권하지 못하게 만든 조항이 있으며, 총선 득표율과 상관없이 군부 몫으로 직능 비례대표 의석을 25% 주는 조항, 헌법 개정에 군부가 거부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하는 조항도 있다. 헌법 개정을 통해 60년 군림해 온 군부 권한을 축소하려면 총선 압승이 필수라는 계산이다.하지만 NLD는 미얀마에서 가장 강력한 정당임에도 국내 사정으로 지지율을 점차 잃고 있다. 수치가 총선에서 압승을 하기 위해선 소수민족들의 지지가 필수다. ‘국부’로 추앙받는 아버지 아웅산 장군이 미얀마를 영국에서 독립시키기 위해 소수민족을 일일이 찾아다니며 규합했고 이는 딸인 수치의 정치적 자산으로 이어졌다. 소수민족이 그의 정치적 텃밭인 셈이다. 그런데 식민지 시절 버마(미얀마의 옛 이름)에 영국이 이주시킨 로힝야족(벵골족)은 미얀마인들뿐 아니라 특히 소수민족과도 매우 적대적인 관계다. 과거 로힝야족은 버마인들과 언어조차 공유하지 않았으며, 영국의 사주를 받아 불교 사찰을 불태우고 승려를 학살하기도 했다. 영국을 등에 업고 점령군처럼 전국에 있는 농장을 자신들의 소유로 만들어 미얀마인들에게 로힝야족은 국토를 빼앗은 원수로 인식됐다. 특히 로힝야족은 1942년 아라칸족 2만명을 학살하는 등 다른 소수민족 차별에 앞장섰다. 수치가 로힝야족을 옹호하는 발언을 하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로힝야족은 과거 이슬람국가(IS) 등 테러단체와 손을 잡은 전력도 있다. 2017년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 학살은 2016년 로힝야족이 저지른 테러에 대한 대응이기도 했다. 집단학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지만, 이런 사실들이 미얀마 여론에 큰 영향을 미친 건 분명하다. 국제사회 비난에도 로힝야족에 관한 수치의 대응에 국내 지지가 높은 이유다. 수치의 ICJ 출두를 앞둔 9일 그를 지지하는 대규모 집회가 곳곳에서 일어났다. 가디언에 따르면 이번 ICJ 소송은 이슬람협력기구(OIC) 소속인 잠비아가 제기했다. 1948년 유엔이 채택(한국은 1950년 가입)한 집단학살 범죄의 예방과 처벌에 관한 협약을 위반한 혐의다. 또 다른 국제 재판소인 국제형사재판소(ICC) 역시 미얀마 지도자들이 로힝야족 수십만명을 방글라데시로 강제추방한 혐의로 별도 수사에 착수했다. 김민석 기자 shiho@seoul.co.kr
  • 네팔 ‘생리 중 격리’ 21세 여성 사망…강요자 체포에도 악습 여전

    네팔 ‘생리 중 격리’ 21세 여성 사망…강요자 체포에도 악습 여전

    힌두교 ‘생리혈 불결’ 인식 때문에 여성 격리홀로 낡은 오두막서 불 피우다 질식사 빈번 네팔에서 여성을 생리 기간 중 가족과 격리하는 ‘차우파디’라는 악습 때문에 여성이 숨지는 사건이 또 발생했다. 이번에는 격리를 강요한 사람이 처음으로 체포됐다. 7일 AFP통신 등에 따르면 지난 1일 네팔 서부의 한 오두막에서 생리 중이라는 이유로 격리돼 있던 파르바티 부다 라와트(21)라는 이름의 여성이 숨진 채 발견됐다. 오두막은 추위를 피하려고 피운 불로 연기가 가득 찬 상태였다. 네팔에서는 여성의 생리혈을 부정하게 여기는 힌두교의 관습에 따라 생리 중인 여성이 종교적 상징물뿐만 아니라 소, 남자, 심지어 다른 사람과 함께 먹을 음식에까지 접촉하는 것을 금지하는 풍습이 남아 있다. 과거 힌두교뿐만 아니라 유대교, 기독교, 이슬람교 그리고 불교에서도 여성의 월경을 불결하게 생각했다. 일본에서도 생리 중인 여성을 공동 오두막에 격리시키는 풍습이 있었다. 이와 같은 관습은 현대 사회에 들어서면서 대체로 사라졌지만 네팔에서는 ‘차우파디’라는 이름으로 생리 중인 여성을 집 밖의 외양간이나 창고, 움막이나 외딴 오두막 등에서 자게 하는 관습이 남아 있었다. 이들이 격리돼 지내는 오두막 등이 대체로 낡고 극도로 좁은 공간이다보니 혼자 오두막에서 지내는 여성이 추위를 이기려고 불을 피웠다가 연기에 질식해 숨지거나 독사에 물려 숨지는 등의 사건이 해마다 끊이지 않았다.올해 들어 연기에 질식해 숨진 여성만 해도 4명이다. 2016년에는 15세 소녀가 움막 안에서 불을 피우다가 질식사로 숨진 채 발견되기도 했다. 생리 중인 여성이 불결하다는 이유로 오두막에 격리해놓고는 정작 혼자 남겨진 여성을 성폭행하는 범죄도 빈번했다. 네팔 사법당국은 2005년 ‘차우파디’를 불법으로 규정했지만, 서부 지역 등에서는 여전히 이 관습이 이어지고 있다. 이에 지난해부터 ‘차우파디’ 관습을 따르라고 강요한 사람에게 최고 징역 3개월이나 3000네팔루피(3만 1000원)의 벌금형에 처하는 법을 도입했다.파르바티 사망 사건을 수사 중인 현지 경찰은 “피해자를 오두막에 머물도록 강요한 혐의로 친족을 체포해 조사 중”이라며 “이는 ‘차우파디’ 강요자에 대한 첫 체포일 것”이라고 밝혔다. 그 동안에는 여성들이 생리 중 격리를 강요하는 가족·친족을 신고하지 않아 형사처벌이 거의 이뤄지지 않았다. 라다 푸델 ‘차우파디’ 반대 운동가는 “경찰의 적극적인 개입이 악습을 끊어내는 데 도움이 되겠지만,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신진호 기자 sayho@seoul.co.kr
  • 탈춤, 내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탈춤, 내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추진

    우리의 전통 탈춤이 내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에 도전한다. 문화재청은 6일 문화재위원회 세계유산분과와 무형문화재위원회 연석회의에서 2020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등재 신청 대상으로 ‘한국의 탈춤’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탈춤은 가무(歌舞)와 연극 성격을 모두 지녔으며, 부조리한 사회 문제를 해학과 풍자로 공론화한 점이 특징이라고 문화재청은 설명했다.문화재위원회는 이전에 등재한 ‘농악’이나 ‘줄다리기’처럼 탈춤도 국가무형문화재와 시도무형문화재를 모두 포함해 신청서를 작성하라고 권고했다. 국가무형문화재로는 양주별산대놀이(제2호), 통영오광대(제6호), 하회별신굿탈놀이(제69호) 등 13건이 지정됐다. 시도무형문화재는 경기도무형문화재 제53호 퇴계원산대놀이 등 4건이 있다. 정부는 한국의 탈춤 등재신청서를 내년 3월 말까지 유네스코에 제출할 예정이다. 등재 여부는 2022년 제17차 무형문화유산보호를 위한 정부간 위원회(무형유산위원회)에서 확정된다. 아울러 문화재위원회는 이날 ‘한국의 전통 장(醬)문화’를 2022년 인류무형문화유산 대표목록 신청 대상으로 정했다. 국가무형문화재 제137호로 지정된 장 문화는 한국 음식 맛과 정체성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인 장을 만들고 나누는 과정을 통해 가족과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장문화 등재 여부는 2024년에 결정된다. 우리나라는 2001년 ‘종묘제례 및 종묘제례악’을 시작으로 지난해 남북이 공동으로 등재한 ‘씨름, 한국의 전통 레슬링’까지 대표목록 20건을 보유 중이다. 중국, 일본 다음으로 유산이 많아 2년에 한 건씩만 등재 신청이 가능하다. 내년 제15차 무형유산위원회는 석가모니 탄생 축하를 기념하는 불교 행사인 ‘연등회’(燃燈會) 등재 여부를 결정한다.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보관” 주장 나와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 상권 보관” 주장 나와

    고려시대 ‘석가여래행적송’(釋迦如來行蹟頌) 상권으로 보이는 고문서를 갖고 있다는 소장자가 나왔다. 장윤석(51·제주시)씨는 6일 제주도의회 도민의 방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석가여래행적송’ 상(上)권을 소장하고 있다면서 진품 여부와 발행 연도 등을 정부가 공식적으로 연구해 문화재로 등록해달라고 요구했다. 불교서인 석가여래행적송은 고려 후기 승려 운묵이 석가모니의 생애와 불교의 전래과정 등을 해석해 1328년(충숙왕 15년)에 간행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장씨는 “조부가 고문서를 모아왔고 최근 집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이 책을 발견하게 됐다”고 말했다. 현재까지 전해 내려오는 책은 공식적으로 원판을 고쳐 조선시대에 다시 발간한 개판본(목판본) 밖에 없다. 서울대 규장각에 개판본과 다른 별도의 석가여래행적송’ 하(下)권이 보관돼 있으나 규장각은 발간 사항과 연도에 대해 미상으로 판단하고 있다. 장씨가 소장한 고문서를 판정한 임홍순 서경대 명예교수는 이날 기자회견장에 나와 “규장각이 보관한 하권의 말미에 적힌 ‘천력삼년무진’(天歷三年武辰· 1328년)이란 시기가 장씨가 보관중인 소장본 상권 서문에도 동일하게 나와 있다”면서 장씨 소장본이 진본이고 규장각 하권과 한 질로 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인쇄상태로 보아 목판본으로만 인쇄한 것이 아닐 수 있다. 장씨 소장본이 금속활자로 인쇄됐는지 등도 조사 연구 대상”이라고 주장했다. 이와 관련, 규장각 관계자는 “책에 찍힌 서문과 발문 날짜만으로 인쇄 시기를 특정하기 어렵다”면서 “활자전문가의 정밀한 감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한편 장씨의 고문서는 7일 열리는 한 경매 사이트에 매물로 올라왔다가 보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제주 황경근 기자 kkhwang@seoul.co.kr
  • [인사] 행정안전부, 아시아경제, BBS 불교방송

    ■ 행정안전부 ◇ 부이사관 승진 △ 국가정보자원관리원 대구센터추진단장 김엽 ■ 아시아경제 ◇ 편집국 △ 디지털뉴스본부장 소민호 △ 디지털뉴스본부 미디어기획실장 조병무 △ 부국장 겸 4차산업부장 이정일 △ 부국장 겸 건설부동산부장 정두환 △ 부국장 겸 정치부장 정완주 △ 산업부장 이은정 △ 금융부장 이초희 △ 기업분석부장 전필수 △ 소비자경제부장 명진규 △ 중기벤처부장 김민진 △ 국제부장 최일권 △ 편집기획팀장 이경호 ◇ 전략기획실 △ 전략기획실장 조영신 * 이상 12월6일자 ■ BBS 불교방송 △ 경영기획국장 박시하 △ 광고사업국장 허선명 △ 전법후원국장 김봉래 △ 보도국장 박경수 △ TV제작국장 김상준 △ 대구불교방송 총괄국장 박호창
  • ‘라디오스타’ 엑소 수호 “별명이 교회 오빠? 사실 불교”

    ‘라디오스타’ 엑소 수호 “별명이 교회 오빠? 사실 불교”

    엑소 카이가 ‘라스’에 출연해 치명적 눈빛의 ‘LOVE SHOT’으로 팬들의 심장을 저격한다. 이와 함께 수호가 ‘교회 오빠’ 이미지의 충격 반전을 고백한다. 4일 오후 11시 5분 방송 예정인 MBC ‘라디오스타’(기획 김구산, 연출 최행호, 김지우)는 엑소 카이와 수호의 ‘예능캐’ 모먼트가 담긴 선공개 영상을 공개했다. 공개된 영상에서 카이가 셀프 매력 탐구로 관심을 집중시켰다. 그는 윤세아, 오연서 등 여배우들의 이상형으로 꼽힌 바 있다. 이에 카이는 댄스 실력과 무대 위 섹시한 모습들을 자신의 매력으로 꼽아 눈길을 끌었다. 그를 유심히 살펴보던 김구라는 “눈으로 슥- 쳐다볼 때 그런 게 있네~”라며 카이의 치명적인 눈빛 매력을 찾아냈다. 안영미 역시 엑소의 ‘Love Shot’ 춤을 재연하며 “나 미쳐 죽어~ 총 쏴줘유~”라며 드립을 날렸고, 카이는 사랑의 총알 시늉으로 안영미를 저격해 모두를 웃음 짓게 했다. 그런가 하면 수호는 ‘교회 오빠’ 별명을 털어놓았다. 팬들이 ‘교회 오빠’ 이미지가 느껴진다며 그에게 지어준 별명. 신앙심이 돈독하냐는 MC들의 질문에 그는 “사실 저는 불교라서..”라며 반전을 공개해 폭소를 유발했다. 4일 수요일 밤 11시 5분 방송.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두 보살, 조계종에 50억원 기부… 종단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

    두 보살, 조계종에 50억원 기부… 종단 개인 기부금 사상 최고액

    두 여성 불자가 대한불교조계종에 현금 50억원을 기부한다. 단체가 아닌 개인이 종단에 낸 기부금으로는 사상 최고액이다. 법명(法名)이 설매(73)와 연취(67)인 두 보살은 2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에서 50억원 전달식을 가졌다. 37년 간을 도반으로 지낸 둘은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을 짓는데 써달라며 돈을 기부했다. 설매 보살은 전달식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기부 배경에 대해 “우리는 잠시 돈을 가지고 사용하다가 빈몸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그것을 어디다 남겨둔다기보다 (돈은) 삶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나름대로 발원을 했는데, 뜻밖에 금년에 조계종에서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을 세우겠다는 총무원장 스님의 원력을 듣고서 인연을 지어야겠다고 결정했다”고 떠올렸다. 연취 보살도 “부처님의 업을 다시 펴는데 (기부금을)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며 바람을 전했다. 두 도반은 1982년 지인의 소개로 인연을 맺었다. 6살 위인 설매 보살이 연취 보살을 석가모니 가르침의 길로 인도했다. 이들의 기부는 ‘비승비속(非僧非俗)’인 설매 보살이 먼저 1억원을 준비하며 시작됐다. 연취 보살은 본인 소유 건물를 판 돈으로 나머지 49억원을 마련했다. 두 보살은 내년 2월말까지 현금으로 50억원 기부를 완료할 계획이다. 인도 부다가야는 석가모니가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에서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진 곳이다. 두 도반은 조계종 측에 현지에 사찰을 건립하면 그 이름을 ‘분황사(芬皇寺)’로 짓고, 사찰 마당에는 소박한 석등을 세워줄 것을 요청했다. 분황사는 경북 경주에 있는 신라시대에 창건한 절로, 원효와 자장이 거쳐간 곳이다. 조계종은 향후 종단 불사위원회를 열어 기부금 활용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60대·70대 여성 2명, 조계종에 50억 기부…“인도에 절 짓는데 써달라”

    60대·70대 여성 2명, 조계종에 50억 기부…“인도에 절 짓는데 써달라”

    60대, 70대 여성 두명이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을 짓는 데 써달라며 대한불교 조계종에 50억원을 기부해 화제다. 50억원은 개인이 종단에 낸 기부금으로는 사상 최고액으로 알려졌다. 실명 대신 법명만 밝힌 설매(73) 보살과 연취(67) 보살 두 여성 불자는 2일 서울 종로구 조계종 총무원에서 50억원을 기부하는 전달식을 가졌다. 이들은 기부 전달식에 앞서 연 기자 간담회에서 “우리는 잠시 돈을 가지고 사용하다가 빈몸으로 돌아가는 것 아니냐”며 “그것을 어디다 남겨둔다기보다 (돈은) 삶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거액의 기부 배경을 밝혔다. 이어 “올해 조계종에서 (인도 부다가야에) 한국 사찰을 세우겠다는 총무원장 스님의 원력을 듣고서 인연을 지어야겠다고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설매 보살은 “그래서 한국 불교가 거듭나고, 2600년 전에 부처가 성도(成道)하신 곳으로 되돌아가는 불심을 내고 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에 기부를 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두 보살은 내년 2월말까지 현금으로 50억원 기부를 완료하게 된다. 조계종은 향후 종단 불사위원회를 열어 기부금 활용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기부자의 의향대로 상당액을 사찰 건립에 쓸 전망이다. 오달란 기자 dallan@seoul.co.kr
  • 종교계 “3·1운동 민족대표는 33인 아닌 50인이었다”

    종교계 “3·1운동 민족대표는 33인 아닌 50인이었다”

    ‘불교, 천도교, 기독교 세 종교가 단일한 목적하에 연합한 인류 역사상 전무후무한 일.’ 흔히 1919년 일제에 항거한 3·1운동을 놓고 이렇게 말한다. 하지만 각 종교의 입장과 이해에 치우친 과정과 역사의 해석 탓에 3·1운동 정신은 제대로 빛을 발하지도, 계승되지도 못한다는 지적을 받기 일쑤이다. 그런 상황에서 불교, 천도교, 기독교가 머리를 맞대 3·1운동의 모든 것을 다시 점검하고 평가한 공동자료집이 출간돼 종교계 안팎의 눈길을 끈다. 3개 종교의 역사학자들이 3년여의 공동 작업 끝에 낸 자료집은 8권의 방대한 분량이다. 1~2권이 당시 언론에 보도된 3·1운동을 소개하고 있다면 3~7권은 3·1운동에 참여한 민족대표에 얽힌 자료를 세밀하게 담고 있고 마지막 8권은 민족대표들의 묘소와 생가 등 유적지를 한눈에 볼 수 있는 사진 자료로 엮었다. 자료집의 가장 큰 특징은 3·1운동의 시작과 과정을 어느 한 종교에 치우치지 않은 시선으로 집대성했다는 점이다. 자료집은 우선 3·1운동이 종교계의 주도로 시작된 항거였음을 못 박고 있다. 1910년 일제가 강제합병을 한 이후 정치단체와 사회단체 모두를 폐지시켜 사실상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단체는 종교단체와 교육단체뿐이었다. 그러므로 “종교단체와 교육단체에서 독립운동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 보다 전반적인 지지 기반을 마련하기 위해 종교 지도자들은 3·1운동을 계획하면서 먼저 민중의 신망을 가진 인물을 전면에 내세워야 한다는 판단 아래 박영효, 윤치호, 한규설, 김윤식, 윤용구, 송병준 같은 인물들과 교섭해 동참하기를 시도했지만 실패한 채 결국 종교단체와 학생들의 연합으로 3·1운동을 일으켰다.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민족대표가 50인이었음을 밝혀낸 점이다. 지금까지 3·1운동 민족대표는 독립선언서에 서명한 33인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공동자료집을 보면 3·1운동이 전개되기까지 더 많은 사람들의 숨은 노력이 있었다. 3·1운동과 관련해 출판법, 보안법 위반 혐의로 재판을 받은 사람은 총 48명이다. 여기에 독립선언서에 서명은 했지만 중국 상하이로 이주해 해외 독립운동을 벌인 김병조와 옥중 순국한 양한묵까지 더하면 3·1운동 민족대표는 50인이다. 불교계의 참여와 관련한 해석도 색다르다. 민족대표 중 불교계는 용성 스님과 만해 스님 두 명뿐 대다수가 천도교 외 기독교 인사였지만 불교계가 참여하면서 종교 운동이 아닌 민족운동으로 확산되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바로 그것이다. 실제로 자료집에는 범어사와 해인사, 통도사, 동화사, 마곡사 등 사찰 스님과 신도 대중들이 주도한 만세 운동 등 불교계의 활동을 자세히 확인할 수 있다. 이 대목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원회 공동대표인 법현 스님은 “이번 자료집이 민간에서 만든 최초의 종합 집대성 자료라는 의미에 더해 불교도 정확히 제 몫을 했음을 증명하는 근거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자료집에 따르면 민족대표의 유적지가 가장 많은 곳은 서울(57곳)이었고 다음은 충청권(26곳)이었다. 이에 비해 제주도 지역엔 1910년 말 안악사건에 연루되어 유배된 남강 이승훈 선생의 유적지만 남아 있어 비교된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사업추진위는 이와 관련해 “제주도에는 제주 해녀들의 항일유적지와 3·1운동 1년 전 일었던 항일운동 발생지가 있다”며 “이들 유적지는 3·1운동 이전의 유적지이지만 기념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고 설명했다. 이홍정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총무는 “우리는 급변하는 동북아의 생명 환경 속에서 안전과 안락보다는 위기와 도전을 선택하며 책임적 신앙인으로 응답할 것을 요청받으며 살아가고 있다”며 “이번 출판된 공동자료집은 이 시대를 향한 우리들의 책임 있는 응답의 준거요, 지향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한국 불교 출가자 절반은 비구니… 더이상 사회 정의에 눈감을 수 없다”

    “한국 불교 출가자 절반은 비구니… 더이상 사회 정의에 눈감을 수 없다”

    고령·투병 비구니 위한 요양시설 확보 불교계 남녀 불평등 해소 등 노력할 것“한국 불교에서 비구니는 전체 출가자의 절반가량을 차지하는 거대 승가인데도 잘 드러나지 않아요. 비구니들이 갈 길을 찾아 실천하는 데 전력하겠습니다.” 지난 9월 4년 임기의 제12대 조계종 전국비구니회 회장에 선출된 본각(67) 스님은 지난 25일 서울 수서동 전국비구니회관에서 기자들과 만나 “한국 비구니의 위상 강화와 대 사회적 역할 증대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거듭 다짐했다. 동국대 철학과를 나와 일본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고 중앙승가대 교수로 26년간 재직한 본각 스님은 ‘6남매 출가’라는 집안 내력으로 유명하다. 성철 스님 맏상좌인 천제 스님을 비롯해 2남 4녀가 모두 출가했다. 막내인 본각 스님은 세 살 때부터 절에서 살았지만 1976년 대학 졸업후 석남사로 돌아가면서 ‘진짜 출가’를 했다고 말한다. “대학교 시절 머리를 기른 채 공부하고 석남사로 돌아와 3000배를 올린 다음날 새벽 발우에 비친 모습을 보곤 전생(前生)에도 출가자였음을 느꼈다”고 한다. 현재 조계종 승적을 가진 비구니는 5000명 정도. 한국의 비구니회는 세계적으로도 드물게 활성화됐다면서도 출가자 감소와 고령화는 그냥 넘길 수 없는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래서인지 비구니 회장 선거 때 제일 공약도 바로 비구니 스님들이 안정적으로 수행과 전법에 매진할 수 있도록 복지체계를 세우는 것이었다. “고령, 혹은 몸이 아픈 비구니들이 의지할 요양시설이 많이 부족해요. 비구니회가 신뢰할 만한 역할을 한다면 비구니 스님들의 주거공간을 충분히 확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귀띔했다. 특히 비구니회관에 ‘국제 사미니 강원’을 열어 한국에서 비구니계를 받고 싶어하는 해외 사미니들을 국내로 초청해 교육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불교계의 평등과 관련해선 “자유가 구속되고 남녀 불평등이 심한 곳으로 비친다는 근본적인 해결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도 “오랜 역사를 갖는 승단에서 갑자기 기본룰이 불평등하다며 치고 들어가기는 어려운 부분이 있다”고 조심스레 밝혔다. ‘평소 비구니들은 뭘 했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는다는 본각 스님은 “이제 비구니들도 더이상 정의에 눈감을 수 없다”며 비구니회의 사회적 역할을 거듭 밝혔다. 환경 문제 해결과 미혼모, 노숙자 지원에 힘을 아끼지 않겠단다. 본각 스님은 취임식 날 비구니 스님들에게 일회용품을 쓰지 말자며 도시락통과 젓가락을 나눠줬다. 역대 비구니회 회장들과는 달리 비구니회관에 상주하겠다는 그는 선거에 나서면서 ‘학자로 살던 사람이 왜 (불교) 정치판에 뛰어드느냐’는 주변의 시선에 “나는 회장도 수행으로 살겠다”고 했다. 글 사진 김성호 선임기자 kimus@seoul.co.kr
  • 순천만국가정원에서 핀 ‘순천 사랑애(愛) 김장 나눔 축제’

    순천만국가정원에서 핀 ‘순천 사랑애(愛) 김장 나눔 축제’

    순천만국가정원 잔디마당에서 개최한 ‘순천 사랑애(愛) 김장나눔 대축제’가 시민·자원봉사자 2600여명이 참여한 가운데 따뜻한 꽃을 피웠다. 26일 시 승격 70주년 기념으로 처음 마련된 김장 나눔 행사는 107개 기관·단체와 자원봉사자의 붉은 앞치마 물결이 잔디광장을 가득 메워 장관을 이뤘다. 김장 나눔 자리에는 순천시 관내 각 기관과 단체 회원들이 십시일반 마련한 기금으로 2만 포기(39t) 김장을 담아 소외계층 7000여명에게 전달됐다. 이날 김장 나눔은 연말을 맞아 읍면동을 포함해 기관, 단체, 기업, 종교계(기독교, 천주교, 불교)를 총 망라한 각계각층 시민들이 참여했다. 나눔과 봉사의 화합한마당이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가 깊다. 시는 행사에 사용된 절임배추와 양념을 통합 구매해 재료비 절감과 지역 농산물을 우선 구매함으로써 농가 소득으로 이어지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뒀다. 시민들 정성으로 담궈진 김장은 그동안 다원화했던 나눔 방식을 개선해 전남사회복지공동모금회를 통해 지역의 어려운 이웃에게 고루 전달됐다.특히 수능을 마친 고등학생 300여명이 참여해 눈길을 끌었다. 여러 단체들의 재능기부를 통한 다양한 문화 공연 등으로 흥겨운 축제의 장으로 진행됐다. 순천만국가정원을 찾는 관광객들에게도 순천의 손맛과 지역 배추의 우수성을 알리기 위한 농산물 체험부스를 운영해 도농복합도시로써 또 다른 면모를 보여줬다. 행사에 참여한 한 봉사자는 “그동안 개별적으로 추진했던 김장 봉사를 시민들이 모여 다 함께하니 ‘나눔은 축제’라는 말이 실감된다”며 “아름다운 국가정원 한 가운데서 김치를 담아보는 것도 시민으로서 누리는 특권이라는 생각에 뿌듯하다”고 소감을 전했다. 허석 시장은 “나눔과 봉사의 화합의 장 마련과 지역 농산물 판로 확대를 위해 마련한 행사에 참여해주신 시민들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도 더 많은 나눔의 기회를 확대해 소외됨이 없는 따뜻한 포용의 도시를 만들어가겠다”고 밝혔다. 순천 최종필 기자 choijp@seoul.co.kr
  • ‘박경리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박경리 외동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 별세

    대하소설 ‘토지’를 쓴 박경리 선생의 외동딸이자 김지하 시인의 부인인 김영주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이 25일 별세했다. 73세. 연세대 사학과와 대학원을 졸업한 고인은 생전 국제대, 서강대, 연세대에서 교편을 잡으며 ‘조선시대 불화연구’, ‘신기론으로 본 한국미술사’, ‘한국불교미술사’ 등의 저서를 남겼다. 1973년 김지하 시인과 결혼했으며 이듬해 김 시인이 민청학련 주모자로 기소돼 사형 선고를 받고 1980년 형 집행정지로 석방되기까지 옥바라지를 했다. 1980년 무렵 강원도 원주에 정착, 2008년 박 선생의 타계 이후 토지문화재단 이사장을 지내며 국내 문학 발전에 힘써 왔다. 2011년에는 박경리문학상을 제정하고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국립대 현대조각공원에 박 선생의 동상을 세웠다. 지난 6월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박경리 문학제를 열었다. 유족으로 남편 김 시인과 2남이 있다. 빈소는 원주 세브란스기독병원 장례식장, 발인은 27일 오전 9시이다.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5층 석탑, 5칸 대광보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5층 석탑, 5칸 대광보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2018년, 7개 사찰을 묶은 ‘한국의 산지승원’이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천개의 불교 사찰 가운데 이들은 건축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뚜렷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충남 공주의 마곡사는 누가 언제 설립했는지,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역사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 다른 6개 사찰의 중흥조는 자장율사(통도사), 의상대사(부석사와 봉정사), 진표율사(법주사), 대각국사(선암사), 서산대사(대흥사) 등 한국 불교 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다. 불명확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매우 창의적이다. 또한 원초적 모습의 영산전, 측면이 정면인 독특한 대광보전, 희귀한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독특한 건물로 가득하다.●수평으로 늘리고 수직으로 중첩되고 절 이름의 유래도 석연치 않다. 고려 중기에 이 절을 중창할 때 신도들이 밭의 삼(마)과 같이 많아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 이 절 이전에 마씨들의 마을이 있었다는 설 등 종교시설의 유래치고는 유치할 정도다. 비교적 믿고 싶은 설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승이었던 마곡보철의 이름을 땄다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를 일으킨 이는 육조혜능이고, 그의 법맥은 남악회양을 거쳐 마조도일 그리고 마곡보철에 이른다. 신라 말 낭혜화상 무염은 당나라로 유학해 마곡보철의 제자가 됐다. 보철이 혜능의 증손 제자이니 무염은 고손인 셈이다. 무염은 귀국해 보령에 성주사를 세우고 성주산문을 열었다. 인근인 공주 일대는 성주산문의 권역이 됐기에, 이 산문 정통성의 뿌리인 마곡의 이름을 따 절을 세웠을 법하다. 현재 마곡사 가람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조성됐다. 남쪽은 영산전이, 북쪽은 대광보전이 중심 전각이 된다. 신라 말 주산인 태화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곳에 처음의 가람을 세웠다. 지금의 영산전이 있는 남쪽 가람이고, 그저 지역의 작고 소박한 사찰이었다. 한때 폐사가 됐던 마곡사는 고려 중기에 대대적으로 부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밭의 삼과 같이 신도가 많이 모였다니, 절을 크게 확장해야 했다. 개울 남쪽은 땅이 좁아 개울 건너 북쪽 너른 터에 큰 가람을 세우게 된다. 현재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곳이다.확장에는 성공했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개울로 나뉜 두 개의 가람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가. 다리만 놓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기존의 남가람과 새로운 북가람은 산에 가려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진입로를 만들어 두 가람을 연결하는 수였다. 영산전 영역 바로 앞에 해탈문을 세우고 그 뒤로 천왕문을 세웠다. 두 개의 문이 겹쳐지면 길이 만들어진다. 그 연장선 위에 극락교를 세워 개울을 건넌다. 남가람에서 북가람으로 향하는 길은 휘어져 있다. 그만큼 연결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극락교를 지나도 북가람의 모퉁이에 다다를 뿐이다. 북가람의 중심에는 5층탑과 대광보전이 놓이고, 그 뒤로 대웅보전이 솟아 있다. 가장 뒤의 대웅보전은 산등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2층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광보전 너머 수직적으로 중첩돼 보이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가람 확장에 매우 불리한 지형을 가졌다. 개울이 가로막고, 남가람과 북가람의 산은 거의 직각으로 놓여 규칙적인 가람배치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문들과 다리를 잇는 강력한 길이 개울을 건너고, 5층탑의 상승감이 수평적인 5칸 대광보전으로 하강하다가 다시 뒤의 대웅보전으로 솟아오른다. 건축적 창의성으로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두 개의 가람을 하나로 통합해 입체적인 건축 경관을 얻었다. 더 나아가 산과 개울이라는 자연과 건축을 일체화했다.●5층 석탑, 불교적 불개토풍 북가람의 중심에 서 있는 5층석탑에 주목하자. 이 석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전형적 비례의 고려시대 탑이다. 2층 몸돌 4면에 부처상을 새겨 마치 사방불탑 같은 성격도 갖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가장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국적인 탑이다. 보통 한국 탑은 원판과 구슬 모양 석재들을 겹쳐 꽂아 가장 위의 상륜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탑의 상륜부엔 이른바 ‘풍마동’이라는 특수한 청동 구조물을 얹었다. 티베트 불교의 불탑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산속에서 발달한 밀교의 일종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국교로 삼았던 종교다. 일명 라마교라 하고 현재도 중요한 중국 불교의 종파다.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묘응사 백탑은 원나라 때 세운 전형적인 라마교의 탑이다. 마치 하나의 봉우리가 솟은 것 같은 높이 50.9m의 이 거대한 탑은 여전히 중요한 베이징의 랜드마크다. 이 백탑을 그대로 축소하면 1.8m 크기의 마곡사 풍마동이 된다. 재료만 청동으로 바뀌었을 뿐 놀랍게도 닮은꼴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청동의 세공기술 또한 고려와는 다른 이국적인 솜씨다. 원의 간섭기인 13세기에 유입된 수입 완제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했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지만 고려는 귀중한 강화조건을 관철했다. “불개토풍(不改土風)-의관은 고려의 풍습을 따른다.” 의관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몽골의 사위 나라가 됐지만 고려의 언어와 영토와 왕실은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복과 변발을 강요당하고, 나라 자체가 없어진 유라시아의 대부분 정복국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였다. 6차례의 대대적 침략에도 39년간 끈질기게 항쟁한 대가였다. 그러나 한 세기에 가까운 원간섭기에 온전한 토풍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제국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고려의 유행을 바꿨고, 자발적 친원 행위도 무수하게 벌어졌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개성의 대형 사찰들은 원황실을 축원하는 노골적 부역을 자원했다. 개성 근처에 세워졌던 경천사 석탑은 그 명확한 증거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이 탑은 강융이라는 친원 귀족이 원나라의 승상 탈탈을 위해 원나라 장인들을 데려와 만든 원나라풍의 기념물이다. 그러나 고려 불교의 수백년 전통은 밀교적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라마교가 종파로서 자리잡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곡사 5층탑은 고려의 몸통에 몽골의 머리를 얹고 있다. 이 이상한 형상이 바로 당시의 불교적 ‘불개토풍’이었다. 모자를 바꿨지만 몸통은 바꾸지 않았다.●다시 개울을 따르고 건너 대웅보전에서 일단 멈췄던 마곡사는 현대에 들어 다시 확장의 역사를 시작했다. 마곡천을 건너 성보박물관과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었다. 상류로 향하다 다시 개울을 건너면 현대적인 일군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한국문화연수원, 2009년에 전통불교문화원으로 지은 수련원 건물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야심작이다. 전통적 내용을 현대적 그릇에 담겠다는 포부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원래 이 땅은 17세기 마곡사 중창을 위해 기와를 굽던 가마터였다. 조사 결과 여러 곳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그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가운데에 운동장을 만들었고 남쪽에 숙박동을, 북쪽에 교육동을 지었다. 개울을 경계로 두 가람이 들어선 마곡사의 배치와 유사한 환경이고 유사한 해법이다. 선방, 다도실, 지대방, 강당 등을 수용한 교육동은 하나의 건물이면서도 여러 지붕이 중첩된 모습이다. 마치 여러 동의 기와집이 모여 하나의 가람을 이루는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배열된 숙박동은 현대판 요사채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배흘림 나무 기둥도, 날렵한 처마 선도 없다. 콘크리트 벽과 금속제 경사 지붕만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조형이다. 그럼에도 기와지붕 없는 한옥이고, 중첩된 전통 가람의 배치법이다. 마곡보철이 스승 마조를 따라가다가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급하구나.” 보철이 다시 물었다. “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살펴보아라.” 문헌기록이 없는 마곡사에서 가람배치의 비밀을 풀고, 5층탑 풍마동의 역사를 밝히려 추정과 상상에 빠져 있었네. 아, 조급했구나! 그저 마곡천의 휘어짐을 살피고 그 흐름에 발길을 따르면 되는 것을. 물길은 장애물이 아니라 건축의 무한한 생명선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5층 석탑, 5칸 대적광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5층 석탑, 5칸 대적광전, 2층 대웅보전… 입체미 입은 산사

    2018년, 7개 사찰을 묶은 ‘한국의 산지승원’이 또 하나의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됐다. 수천개의 불교 사찰 가운데 이들은 건축적 가치가 높을 뿐 아니라 역사적 의미도 뚜렷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충남 공주의 마곡사는 누가 언제 설립했는지, 또 어떻게 변해 왔는지 역사가 명확하지 않다. 반면 다른 6개 사찰의 개산조는 자장율사(통도사), 의상대사(부석사와 봉정사), 진표율사(법주사), 대각국사(선암사), 서산대사(대흥사) 등 한국 불교 사상 뚜렷한 족적을 남긴 위인들이다. 불명확한 역사에도 불구하고, 마곡사의 가람배치는 매우 창의적이다. 또한 원초적 모습의 영산전, 측면이 정면인 독특한 대적광전, 희귀한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독특한 건물로 가득하다.●수평으로 늘리고 수직으로 중첩되고 절 이름의 유래도 석연치 않다. 고려 중기에 이 절을 중창할 때 신도들이 밭의 삼(마)과 같이 많아서 마곡사라 했다는 설, 이 절 이전에 마씨들의 마을이 있었다는 설 등 종교시설의 유래치고는 유치할 정도다. 비교적 믿고 싶은 설은 중국 당나라의 유명한 선승이었던 마곡보철의 이름을 땄다는 것이다. 중국 선불교를 일으킨 이는 육조혜능이고, 그의 법맥은 남악회양을 거쳐 마조도일 그리고 마곡보철에 이른다. 신라 말 낭혜화상 무염은 당나라로 유학해 마곡보철의 제자가 됐다. 보철이 혜능의 증손 제자이니 무염은 고손인 셈이다. 무염은 귀국해 보령에 성주사를 세우고 성주산문을 열었다. 인근인 공주 일대는 성주산문의 권역이 됐기에, 이 산문 정통성의 뿌리인 마곡의 이름을 따 절을 세웠을 법하다. 현재 마곡사 가람은 태극 모양으로 휘돌아 흐르는 마곡천을 사이에 두고 남쪽과 북쪽 두 곳에 조성됐다. 남쪽은 영산전이, 북쪽은 대광보전이 중심 전각이 된다. 신라 말 주산인 태화산에서 내려온 산줄기가 마무리되는 곳에 처음의 가람을 세웠다. 지금의 영산전이 있는 남쪽 가람이고, 그저 지역의 작고 소박한 사찰이었다. 한때 폐사가 됐던 마곡사는 고려 중기에 대대적으로 부흥한 것으로 알려졌다. 삼밭의 삼과 같이 신도가 많이 모였다니, 절을 크게 확장해야 했다. 개울 남쪽은 땅이 좁아 개울 건너 북쪽 너른 터에 큰 가람을 세우게 된다. 현재 대광보전과 대웅보전이 있는 곳이다. 확장에는 성공했지만 큰 문제가 발생했다. 개울로 나뉜 두 개의 가람을 어떻게 하나로 통합해야 하는가. 다리만 놓는다고 해결될 일은 아니었다. 기존의 남가람과 새로운 북가람은 산에 가려 서로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유일한 방법은 강력한 진입로를 만들어 두 가람을 연결하는 수였다. 영산전 영역 바로 앞에 해탈문을 세우고 그 뒤로 천왕문을 세웠다. 두 개의 문이 겹쳐지면 길이 만들어진다. 그 연장선 위에 극락교를 세워 개울을 건넌다.남가람에서 북가람으로 향하는 길은 휘어져 있다. 그만큼 연결하기 어려운 지형이다. 극락교를 지나도 북가람의 모퉁이에 다다를 뿐이다. 북가람의 중심에는 5층탑과 대적광전이 놓이고, 그 뒤로 대웅보전이 솟아 있다. 가장 뒤의 대웅보전은 산등성이 높은 곳에 위치하고, 2층으로 만들었다. 그래야만 대적광전 너머 수직적으로 중첩돼 보이기 때문이다. 마곡사는 가람 확장에 매우 불리한 지형을 가졌다. 개울이 가로막고, 남가람과 북가람의 산은 거의 직각으로 놓여 규칙적인 가람배치를 불가능하게 했다. 그럼에도 문들과 다리를 잇는 강력한 길이 개울을 건너고, 5층탑의 상승감이 수평적인 5칸 대적광전으로 하강하다가 다시 뒤의 대웅보전으로 솟아오른다. 건축적 창의성으로 지형의 불리함을 극복하고, 두 개의 가람을 하나로 통합해 입체적인 건축 경관을 얻었다. 더 나아가 산과 개울이라는 자연과 건축을 일체화했다. ●5층 석탑, 불교적 불개토풍 북가람의 중심에 서 있는 5층석탑에 주목하자. 이 석탑은 폭이 좁고 높이가 높은 전형적 비례의 고려시대 탑이다. 2층 몸돌 4면에 부처상을 새겨 마치 사방불탑 같은 성격도 갖는다. 더욱 특이한 것은 가장 위에 놓인 또 하나의 이국적인 탑이다. 보통 한국 탑은 원판과 구슬 모양 석재들을 겹쳐 꽂아 가장 위의 상륜부를 이룬다. 그러나 이 탑의 상륜부엔 이른바 ‘풍마동’이라는 특수한 청동 구조물을 얹었다. 티베트 불교의 불탑 모양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유일한 사례다. 티베트 불교는 티베트고원과 히말라야 산속에서 발달한 밀교의 일종으로, 몽골이 세운 원나라가 국교로 삼았던 종교다. 일명 라마교라 하고 현재도 중요한 중국 불교의 종파다. 베이징 중심부에 있는 묘응사 백탑은 원나라 때 세운 전형적인 라마교의 탑이다. 마치 하나의 봉우리가 솟은 것 같은 높이 50.9m의 이 거대한 탑은 여전히 중요한 베이징의 랜드마크다. 이 백탑을 그대로 축소하면 1.8m 크기의 마곡사 풍마동이 된다. 재료만 청동으로 바뀌었을 뿐 놀랍게도 닮은꼴이다. 섬세하고 정교한 청동의 세공기술 또한 고려와는 다른 이국적인 솜씨다. 원의 간섭기인 13세기에 유입된 수입 완제품으로 볼 수밖에 없다. 세계 역사상 가장 거대하고 강력했던 몽골제국이 고려를 침략했다. 결국 항복하고 말았지만 고려는 귀중한 강화조건을 관철했다. “불개토풍(不改土風)-의관은 고려의 풍습을 따른다.” 의관에 그치지 않는다. 비록 몽골의 사위 나라가 됐지만 고려의 언어와 영토와 왕실은 바꾸지 않는다는 뜻이다. 호복과 변발을 강요당하고, 나라 자체가 없어진 유라시아의 대부분 정복국에 비해 파격적인 대우였다. 6차례의 대대적 침략에도 39년간 끈질기게 항쟁한 대가였다. 그러나 한 세기에 가까운 원간섭기에 온전한 토풍을 지키기는 힘들었다. 제국의 문물이 쏟아져 들어와 고려의 유행을 바꿨고, 자발적 친원 행위도 무수하게 벌어졌다.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어서 개성의 대형 사찰들은 원황실을 축원하는 노골적 부역을 자원했다. 개성 근처에 세워졌던 경천사 석탑은 그 명확한 증거다. 현재 국립중앙박물관 1층 홀에 전시된 이 탑은 강융이라는 친원 귀족이 원나라의 승상 탈탈을 위해 원나라 장인들을 데려와 만든 원나라풍의 기념물이다. 그러나 고려 불교의 수백년 전통은 밀교적 영향을 받았을지언정 라마교가 종파로서 자리잡을 여지를 주지 않았다. 마곡사 5층탑은 고려의 몸통에 몽골의 머리를 얹고 있다. 이 이상한 형상이 바로 당시의 불교적 ‘불개토풍’이었다. 모자를 바꿨지만 몸통은 바꾸지 않았다.●다시 개울을 따르고 건너 대웅보전에서 일단 멈췄던 마곡사는 현대에 들어 다시 확장의 역사를 시작했다. 마곡천을 건너 성보박물관과 템플스테이 건물을 지었다. 상류로 향하다 다시 개울을 건너면 현대적인 일군의 건물들이 나타난다. 한국문화연수원, 2009년에 전통불교문화원으로 지은 수련원 건물이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건축가 승효상이 설계한 야심작이다. 전통적 내용을 현대적 그릇에 담겠다는 포부가 여기저기서 나타난다.원래 이 땅은 17세기 마곡사 중창을 위해 기와를 굽던 가마터였다. 조사 결과 여러 곳의 가마터가 발굴됐다. 그 유적을 보존하기 위해 가운데에 운동장을 만들었고 남쪽에 숙박동을, 북쪽에 교육동을 지었다. 개울을 경계로 두 가람이 들어선 마곡사의 배치와 유사한 환경이고 유사한 해법이다. 선방, 다도실, 지대방, 강당 등을 수용한 교육동은 하나의 건물이면서도 여러 지붕이 중첩된 모습이다. 마치 여러 동의 기와집이 모여 하나의 가람을 이루는 모습이다. 마당을 중심으로 배열된 숙박동은 현대판 요사채라 해도 무방하다. 여기에는 배흘림 나무 기둥도, 날렵한 처마 선도 없다. 콘크리트 벽과 금속제 경사 지붕만 있는 지극히 현대적인 조형이다. 그럼에도 기와지붕 없는 한옥이고, 중첩된 전통 가람의 배치법이다. 마곡보철이 스승 마조를 따라가다가 물었다. “어떤 것이 큰 열반입니까?” 마조가 답했다. “급하구나.” 보철이 다시 물었다. “급한 것은 무엇입니까?” “물을 살펴보아라.” 문헌기록이 없는 마곡사에서 가람배치의 비밀을 풀고, 5층탑 풍마동의 역사를 밝히려 추정과 상상에 빠져 있었네. 아, 조급했구나! 그저 마곡천의 휘어짐을 살피고 그 흐름에 발길을 따르면 되는 것을. 물길은 장애물이 아니라 무한 건축의 생명선이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日작가 “일부 세력 긴장 유발… 한반도 평화가 日에 이득”

    얼어붙었던 한일 교류가 군사정보보호협정(지소미아)의 조건부 연장으로 재개 가능성이 커지는 가운데 한일 시민 100명이 먼저 만나 마음을 나눴다. 한국국제교류재단, 서울대 일본연구소와 와세다대학 한국학 연구소는 ‘2019 한일시민 100인 미래 대화’를 지난 22일부터 3일간 경기 고양시 일산 킨텍스와 소노캄 고양 호텔에서 개최했다. 학계 전문가와 비정부기구(NGO) 단체 활동가, 시민 등으로 구성된 한국인 50명과 일본인 50명 등 모두 100명이 모여 미래지향적 한일 관계를 위한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한일 관계가 경색된 민감한 시기라 정치적 발언을 자제하는 분위기였지만 ‘시민평화연대’ 세션에서는 일부 관련 발언이 나오기도 했다. 평화·인권운동 단체 좋은벗들의 구자웅 조사부장은 “일본이 한국을 신뢰하지 못하는 군사적 대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지소미아 문제도 민감하게 반응한 것 같다”면서 “분단 체제가 일본 우익들에게 도움이 되고 그걸로 정권이 유지된다고 본다”고 말했다. 일본인 프리랜서 작가 가토 나오키 역시 “일본의 일부 세력은 긴장 질서를 만들고자 하고 일본 다수 사람들은 역사적으로 무지하다”면서 “오히려 한반도와 동아시아에 평화 만드는 것이 일본인에게도 이득”이라고 말했다. 지난 23일 만찬 행사에서는 한일밴드 ‘하나이치 포크밴드’가 공연으로 한일 화합을 이끌었다. 하나이치 밴드는 지난해 같은 행사에서 만난 유정길 불교환경연대 운영위원장과 하야시우치 류지 후쿠오카 인권연구소 연구원, 강희석 한국생산기술연구원 수석연구원이 결성했다. 이들은 이날 평화를 노래하는 ‘케세라’와 더불어 행복하자고 얘기하는 일본 곡 ‘인간의 노래’를 불렀다. 하야시우치 연구원은 강제징용으로 돌아가신 아버지를 기리는 재일교포 가수의 노래 ‘청하로 가는 길’도 홀로 부르기도 했다. 이들은 “합주를 하며 서로를 이해하게 됐다”면서 “우리처럼 재밌게, 아래로부터 교류할 수 있다고 보여주는 게 밴드의 취지”라고 입을 모았다. 행사 참가자들도 “개인들의 연대가 큰 힘을 발휘하는 시대”라면서 “민간 교류로 물꼬를 터 동아시아 평화로 나아가야 한다”고 공감했다. 이태권 기자 rights@seoul.co.kr 고혜지 기자 hjko@seoul.co.kr
  • ‘화성연쇄살인 피해자 극락왕생 기원’ 용주사서 위령제

    ‘화성연쇄살인 피해자 극락왕생 기원’ 용주사서 위령제

    대한불교조계종 제2교구 효찰대본산 화성 용주사(경기 화성시 소재)는 경내 관음전에서 23일 화성연쇄살인사건 피해자의 넋을 기리는 합동 위령제를 봉행했다. 이날 위령제에는 용주사 주지 성법스님과 불자들, 이춘재가 살해했다고 자백한 초등학생 피해자 유족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 등이 참석했다. 위령제는 피해자의 영혼을 법단으로 모셔오는 ‘시련’ 의식으로 시작해 영혼을 영단에 모시고 천도의식을 고하는 ‘대령’ 의식,고혼을 깨끗이 씻고 정화하는 ‘관욕’ 의식 등 순으로 진행됐다. 이어 피해 영령의 극락왕생을 빌기 위해 용주사 본말사 주지 스님들이 천도염불을 집전하고 용주사 주지 성법스님의 추도사,헌화 등이 이어졌다. 용주사 주지 성법스님은 “33년간 묻혀 있던 사건의 전모가 밝혀지고 있는 상황에서 고통받은 피해자와 그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위령재를 마련했다”면서 “억울하게 희생된 고혼의 극락왕생을 발원하고 다시는 끔찍한 사건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이 되기를 기원하고자 한다”고 밝혔다. 배용주 경기남부경찰청장은 “과거 많은 희생이 발생한 것에 대해 깊은 사과와 함께 큰 책임을 느끼고 있다”면서 “지금이라도 사건의 진실을 정확히 알려드리는 것이 경찰의 책무인 만큼, 수사본부에서 모든 사건을 원점에서 검토하고 철저히 수사해 진실을 명명백백하게 확인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당시 수사과정에 과오가 있었다면 숨김없이 밝히고 다시는 안타까운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혼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린다”고 덧붙였다. 배 청장이 추도사를 끝내고 자리로 돌아가는 과정에서 화성 실종 초등생의 아버지가 당시 수사 관계자를 처벌해달라며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초등생 아버지는 “30년 동안 (딸이)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경찰들이 은폐해서 시신까지 다 없애버렸다. 그 경찰은 누가 잡아야 하나. 왜 못 잡고, 왜 처벌 못 하나”며 “나는 (딸의) 시신도 못 찾았다.(그 경찰이 시신을) 어디 감춰서 숨겨놨는지. 경찰이 두 번 죽이는 것이다”며 오열했다. 위령제는 추도사에 이어 살풀이,영혼을 극락왕생시키기 위해 천도재를 올릴 때 법식을 베풀고 경전을 읽어주는 ‘시식’ 의식,초청된 영혼을 돌려보내는 ‘봉송’ 의식을 마지막으로 끝이 났다. 화성연쇄살인 사건은 1986년 9월부터 1991년 4월까지 당시 태안과 정남, 팔탄, 동탄 등에서 10대 초등학생부터 70대 할머니까지 11명이 무참히 살해된 사건이다. 경기남부지방경찰청은 우선 DNA 대조 작업이 끝난 5건의 살인사건 피의자로 이춘재를 입건하고 30여 건의 성폭력 사건도 재수사하고 있다. 신동원 기자 asadal@seoul.co.kr
  •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행나무, 황금빛 날개 되어 - 영동 영국사(寧國寺)

    [윤기자의 콕 찍어주는 그곳] 은행나무, 황금빛 날개 되어 - 영동 영국사(寧國寺)

    #영국사(寧國寺) #은행나무 #천태산 “신비로워라 잎사귀마다 적힌 / 누군가의 옛추억들 읽어 가고 있노라면 / 사랑은 우리들의 가슴마저 금빛 추억의 물이 들게 한다.” <시 ‘은행나무’ 중에서, 곽재구, 1991> 은행나무는 억울하다. 가을이 되면 욕이라는 욕은 다 먹어 혈색(?)조차도 노랗게 변한다. 도심 보도(?道)에 떨어진 은행 열매는 거의 지뢰 취급을 받는다. 매년 가을마다 사람들은 떨어진 은행을 밟지 않으려고 무던히도 애를 쓴다 . 그러나 가로수가 은행나무인 이유가 다 있는 법.2018년 서울시 가로수 현황 통계에 의하면 서울 도심 가로수 총 306,287주 중에서 은행나무는 109,784주로 전체 36%에 육박한다. 그 다음 수종(樹種)으로는 양버즘나무, 느티나무, 왕벚나무 등이 그 뒤를 잇는다. 은행나무는 생육에 무척이나 강하고 사람 손을 타지 않는다. 오죽하면 진화론 주창자인 찰스 다윈은 은행나무를 ‘살아있는 화석(Living Fossil)'이라 불렀으며 히로시마 원폭(原爆) 당시 유일하게 살아남은 나무도 은행나무다. 그러다 보니 은행나무는 공룡과 암모나이트가 번성하던 중생대부터 지금까지 진화도 하지 않은 채 1목 1과 1속 1종의 식물 분류 계통을 유지하며 멸종되지 않고 지금껏 살아남았다. 또한 은행나무는 자동차 배기가스를 흡수 정화하는 능력이 우수하고, 나무의 껍질이 두껍고 코르크질이 많아 화재에도 불이 옮겨 붙지 않을 정도로 끄덕없다. 더구나 열매에는 독성이 있는 은행산이라는 성분이 있다. 바로 이 독(毒)성분에는 고약한 냄새가 있어 해충이나 뱀, 그리고 멧돼지와 같은 큰동물도 근접을 하길 꺼린다. 비록 인간에게는 열매 내음이 악취로 다가오겠지만 알고보면 인체무해한 천연 해충제가 바로 은행나무 열매다. 따라서 예로부터 집주변이나 사찰, 누각 등지에는 꼭 은행나무를 심은 이유가 있는 것이다. 암수 구별이 있는 자웅이체인 은행나무는 오직 암나무만이 열매를 맺는데 2011년 산림청에서 은행나무 성 감별 DNA 분석법을 개발하기 이전에 심은 가로수 암나무들을 현재 열매가 없는 수나무로 교체 작업중이다. 황금빛 날개짓 가득한 은행나무를 만나러 영동 영국사(寧國寺)로 가 보자. #가로수짱 #암수나무 #살아있는화석 우리나라에는 현재 총 23주의 천연기념물 은행나무들이 있다. 그 중에서 영동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양평 용문사 은행나무와 더불어 우리나라에서도 첫 손에 꼽히는 은행나무다. 더구나 영국사의 은행나무는 가지의 뻗음과 방향이 자유분방해서 예로부터 사람들의 사랑을 받아왔다. 수령 1000년으로 추정되는 높이 31m, 둘레 11m 암나무인 은행나무는 사찰 초입의 천왕문 역할도 하여 예로부터 영국사의 수호신으로도 인정받아 왔다. 또한 서쪽으로 뻗은 가지 중에서 하나가 유주(乳柱)가 되어 땅에 뿌리를 둔 후계목으로 자라는 신기한 현상도 볼 수 있다.영동군 양산면에 위치한 영국사는 충청의 설악산으로 불리는 ‘천태산(天台山, 해발 715m)'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따라서 방문객들은 천태산 입구 천태동천의 청아한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올라가다보면 진주폭포와 삼단폭포를 만나고 곧 은행나무 한 주가 크게 솟아 있는 영국사 입구에 다다른다. 영국사는 신라 문무왕 8년(668년)에 창건되었고, 고려 명종 때인 12세기에 원각국사에 의해 중창이 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 고종 때는 왕명으로 탑과 승탑, 금당을 새로 지어 국청사라 명명하기도 하였다. 그 후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하여 이 곳에서 국태민안을 기원함으로써 국난을 극복하고 나라가 평안하게 되었다 하여 현재의 영국사(寧國寺)로 개명하게 되었다.현재 영국사에는 원각국사비(보물 제534호), 영국사 승탑(보물 제532호), 영국사 삼층석탑(보물 제533호), 망탑봉 삼층석탑(보물 제535호), 영국사 후불탱화(보물 제1397호)와 높이 31미터가 넘은 천연기념물 제223호인 수령 1,000살 가량의 은행나무 등을 비롯한 지방유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어 영동 지역에서는 대표적인 사찰로 이름나 있다. <영동 영국사에 대한 방문 10문답> 1. 방문 추천 정도는? - ★★★ (★ 5개 만점) - 우리나라 은행나무 유명 사찰은 양평 용문사, 영동 영국사, 금산 보석사, 청도 적천사 2. 누구와 함께? - 가족 단위의 가벼운 등산 코스로, 연인들의 데이트코스로 3. 가는 방법은? - 충북 영동군 양산면 영국동길 225-35(누교리1397) - 천태산 주차장에서 천천히 삼단폭포 쪽으로 걸어올라가면 된다. 4. 영동 영국사의 특징은? -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다. 대한불교조계종 제5교구 법주사의 말사로 은행나무와 천태산 등산로에 위치하여 유명한 사찰이다. 5. 여행지로서의 유명 정도는? - 주말을 제외하고는 항상 조용한 사찰이다. 6. 꼭 가 볼 장소는? - 은행나무, 원각국사비, 영국사 승탑, 영국사 삼층석탑, 망탑봉 삼층석탑, 영국사 후불탱화 7. 토박이들로부터 확인한 추천 먹거리는? - 짜장면 ‘덕승관’, 어죽 ‘가선식당’, 송어회 ‘송천가든’ 8. 홈페이지 주소는? - http://www.yeongguksa.com/bbs/content.php?co_id=1010 9. 주변에 더 볼거리는? - 노근리 평화공원, 난계 국악박물관, 월류봉, 물한계곡, 송호국민관광지, 옥계폭포, 반야사, 와인터널 10. 총평 및 당부사항 - 은행나무만 보러 가기에는 사찰의 규모가 작은 편이다. 시간을 두고 천태산 등산길 가운데 영국사를 만난다면 꽤나 괜찮은 절집이 될 수도 있다. 수령(樹齡)이 오래되다보니 노란 은행잎을 보기 위해서는 날짜를 잘 맞추어 가야 한다. 영국사 홈페이지에 은행나무 축제가 공지된다. 글·사진 윤경민 여행전문 프리랜서 기자 vieniame2017@gmail.com
  •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후 공식석상 복귀 ‘청룡영화상 참석’

    김우빈, 비인두암 투병 후 공식석상 복귀 ‘청룡영화상 참석’

    김우빈이 2년 6개월 만에 공식석상에 선다. 배우 김우빈의 소속사 싸이더스 HQ측은 “오늘(21일) 인천 영종도 파라다이스시티에서 열리는 제40회 청룡영화상에 시상자로 참석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김우빈은 지난 2017년 최동훈 감독의 영화 ‘도청’ 출연을 확정 지었으나, 그해 5월 갑작스럽게 비인두암 판정을 받아 투병 생활에 들어갔다. 현재 김우빈은 건강을 많이 회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우빈은 최근 친한 지인들과 여행을 가거나, 조인성과 불교 행사에 참석한 모습이 포착되는 등 반가운 근황을 전하기도 했다. 한편, 제40회 청룡영화상은 21일 오후 8시 45분부터 SBS를 통해 생중계된다. 사진 = 서울신문DB 김채현 기자 chkim@seoul.co.kr
  • 울산시 ‘묘법연화경 권1’·‘선원제전집도서’ 문화재자료 지정

    울산시 ‘묘법연화경 권1’·‘선원제전집도서’ 문화재자료 지정

    울산시는 대한불교조계종 청룡암 소장 ‘묘법연화경 권 1’과 ‘선원제전집도서’를 시 문화재자료로 지정 고시했다고 21일 밝혔다. 울산시에 따르면 ‘묘법연화경 권 1’은 표지에 먹물로 ‘법화경’(法華經)이라 표제를 쓰고, 아래에 ‘원’(元) 자를 적었다. 현재 1책밖에 남아있지 않지만, 원래는 ‘원형이정’(과거 4권의 책을 분류하는 표기법) 4책으로 제본됐다. 책 끝 부분에 ‘융경육년임신이월일 경상도상주지사불산대승사개판’(隆慶六年壬申二月日慶尙道尙州地四佛山大乘寺開板)이라는 기록이 있어 1572년 경상도 상주 대승사에서 간행했다는 점도 알 수 있다. 본문 서체는 조선 초기 명필인 성달생 서체 계통의 판본이고, 같은 대승사 간행본은 현재 고려대 만송문고와 동국대 도서관 등 2곳에만 소장돼 있다. 시 관계자는 “임진왜란 이전 판본으로 귀중본에 해당한다”며 “현존하는 판본이 희소해 문화재 자료로 지정·보존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판단했고, 조선 전기 국어사 연구 자료로도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선원제전집도서’는 책 끝 부분에 ‘1635년’이라는 명확한 간행 기록과 연화질(불사를 맡아보는 임시 사무소 일과 관계있는 사람의 이름을 기록한 명부)과 시주질(시주한 사람 명단)이 수록돼 있다. 인출과 보관 상태도 대체로 양호하다. 비록 임진왜란 이후에 간행된 것이지만 이보다 후에 간행된 1681년 운흥사판도 문화재자료로 지정된 선례가 있어 이 책도 문화재자료로 지정해 보존·관리할 가치가 있다고 시는 설명했다. 현재 울산에는 국가지정문화재 28건, 시지정문화재 120건 등 총 148건의 지정문화재가 있다. 울산 박정훈 기자 jhp@seoul.co.kr
  • 염태영 수원시장 “자치와 분권, 거버넌스가 혁신의 원동력”

    염태영 수원시장 “자치와 분권, 거버넌스가 혁신의 원동력”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대표회장인 염태영 경기도 수원시장은 20일 “지방정부에 자율성과 책임성이 주어지는 재정 분권이야말로 사회혁신의 동력이 될 것”이라며 “자치와 분권, 거버넌스를 통한 권한의 분산이 진정한 혁신”이라고 말했다. 염 시장은 이날 서울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제7회 자치분권과 사회혁신 포럼‘ 기조 강연자로 나서 ‘사회혁신의 엔진, 분권형 복지대타협’을 주제로 강연하면서 이같이 주장했다. 포럼의 기조발제를 맡은 염 대표회장은 기초정부의 관점에서 우리사회의 다양한 혁신적 정책들이 실패한 원인으로 중앙집권적 정책 구조를 꼽았다. 즉 정책의 기조는 자치분권을 향하면서도 실행방식은 여전히 중앙의 주도로 이뤄지면서 필연적 재정악화로 이어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지적했다. 염시장은 “지방자치 부활 25년 만에 불교부단체가 2곳만 남게 되는 등 지방정부의 재정이 고사 직전 상태”라고 진단한 뒤 “복지는 확대됐지만, 여전히 사회 환경에 대응하지 못하고 낡은 실행체계가 유지된다면 중앙정부가 복지정책을 늘릴수록 지방의 재정은 점점 악화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중앙 주도의 실행 방식이 혁신정책 실패와 재정 위기로 이어졌다. 지방에 자율성과 책임성을 부여해 성공 사례를 확대해야 한다”고 밝혔다. 염 시장은 이런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로 수원의 ’공동주택 근로자 휴게시설 의무설� � 정책을 국토부가 받아들여 법령을 개정 중인 사례를 소개하며 “ 현장에 밀착된 지방정부의 성공한 정책을 확산하는 방식이 실패의 위험을 줄일 수 있는 대안”이라고 강조했다. 염 시장은 기초 지방정부들이 지속가능한 복지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자발적으로 시작한 ’복지대타협특별위원회‘가 중앙과 광역, 기초정부 간 새로운 질서를 만들어 공공성을 확충하고 맞춤형 사업들을 진행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도 했다. 복지대타협특위는 무분별한 현금복지 정책을 재검토, 중앙·지방 정부 간 복지 역할을 재정립하기 위해 올 7월 4일 출범했으며, 전국 226개 기초지자체의 89.3%인 202개 시·군이 참여하고 있다. 김병철 기자 kbchul@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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