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불공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 변호사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 공항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 시의원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 충북도
    2025-12-31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11,387
  • 고객 정보 멋대로 이용한 포털·유통업체

    네이버와 롯데백화점 등 사업자 20곳이 가입 고객의 개인 정보를 입맛대로 이용하다가 무더기로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8일 사업자 20곳(21개 사이트)의 불공정약관 4개 유형을 적발해 시정 조치를 내렸다고 밝혔다. 네이버를 비롯해 다음카카오, SK커뮤니케이션즈(네이트) 등 대형 포털 3개사가 포함됐다. 롯데마트와 이마트, 신세계, 현대백화점, 홈플러스, 인터파크, 이베이코리아(옥션·지마켓), 11번가, 쿠팡, 위메프, 현대홈쇼핑, AK백화점, GS홈쇼핑, NS홈쇼핑, CJ오쇼핑, 롯데홈쇼핑, 롯데백화점 등 국내에서 내로라하는 유통업체 17개사가 걸렸다. 유통업체 17개사는 회원 가입 때 ‘본인 확인 정보’를 필수 항목으로 요구했다. 본인 확인 정보는 사이트 가입 과정에서 고객이 휴대전화 문자 또는 아이핀 인증 등의 절차를 거칠 때 본인 확인 기관에서 부여하는 암호화된 정보다. 공정위는 본인 확인 정보를 사업자가 아예 수집하지 않거나 고객이 기입 여부를 선택할 수 있도록 고치도록 했다. 꼭 필요하다면 구매·결제 단계에서만 필수 수집 항목으로 하게 했다. 네이버 등 15개 사업자는 법률상 정해진 개인 정보의 보유 기간이 지났는데도 ‘회사 내부 방침’과 같은 모호한 이유로 고객 정보를 파기하지 않았다. 이에 공정위는 사업자가 개인 정보를 계속 보관해야 할 예외적인 상황이 발생했을 때는 어떤 항목을 언제까지 보존할지 명시하도록 했다. 제휴사이트에 동시 가입하거나 제휴사 통합 ID를 설정할 때 개인 정보를 제3자에 제공하는 점을 고객에게 알리지 않은 사업자도 많았다. 민혜영 공정위 약관심사과장은 “개인 정보 공유 사실을 제대로 알리지 않고 선택 기회를 보장하지 않는 것은 정보통신망법에 위반하는 행위”라고 지적했다. 개인 정보 유출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인터넷이나 네트워크상의 위험’과 같은 모호한 사유를 들어 사업자가 책임을 덜 수 있도록 한 약관 조항도 시정됐다. 앞으로는 사업자가 개인 정보 보호를 위한 기술적·관리적 조치를 다했을 때만 면책받을 수 있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외눈박이 ‘공신’들 키우는 한국

    [김균미의 빅! 아이디어] 외눈박이 ‘공신’들 키우는 한국

    ‘학생들끼리 커닝을 할 수 없도록 좌석 간 적정 거리를 확보하고, 스마트폰 등 전자제품은 모두 회수해 별도 보관한다. 적발되면 즉각 퇴실 조치한다.’ 굉장히 낯익은 광경이다. 얼마 전 중간고사를 치른 중학교, 고등학교의 교실 모습이 겹쳐진다. 그런데 고등학교 얘기가 아니다. 지난해에 이어 지난달 중간고사 기간 중 잇따라 부정행위가 적발된 서울대가 떠밀리듯 최근 발표한 대책이다. 이름하여 ‘시험관리 지침’. 지침에는 이 밖에 교수 또는 강사는 시험 감독을 조교에게 일임해선 안 되고 직접 감독해야 하며, 수강생 50명당 1명 이상의 조교나 대학원생을 배치해야 한다고 명시해 뒀다. 인성교육 강화라는 두리뭉실한 대책보다야 즉각적인 효과는 어느 정도 있겠지만 시간을 거꾸로 돌려 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해도 부정행위에 대해 비인간적·비교육적이라 할 정도로 민감했던 학생들이, 일부이기는 하지만, 대학에 가서 둔감해지는 것을 보면 씁쓸하다. 전문가들은 날로 치열해지는 취업 경쟁과 학점 남발 등을 이유로 꼽지만 그저 공부만 잘하고 좋은 데 취직해서 성공하면 된다는 식의 사회 분위기가 대학생들의 일탈을 상대적으로 가볍게 넘겨 온 것 아닌가 싶다. 서울의 상당수 중학교와 고등학교에서는 학부모시험감독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감독할 교사 숫자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학부모의 학교 활동 참여를 유도하고 시험 감독의 공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로 이해하고 있다.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것보다는 예방하는 데 방점이 찍혀 있다. 몇 년 전 들은 얘기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서울 강남의 한 고교에서 중간고사 때 시작 종이 울리기 전에 한 학생이 연필을 들고 시험지를 훑어보는 것을 주변에 앉았던 다른 학생들이 보고 학교에 부정행위를 했다며 항의해 결국 그 학생은 해당 과목이 0점 처리됐다고 한다. 그 얘기를 듣고 “참 무서운 아이들이네. 살벌한 세상이야”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친구이고, 더군다나 1분 안팎 될까 싶은 짧은 시간에 얼마나 많은 시험문제를 읽고 풀어 점수에 영향을 줬을까 생각해 보면 굳이 ‘신고’까지 할 필요가 있었을까 싶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어른들이 아이들을 친구보다 성적에만 몰두하는 ‘외눈박이 공부의 신(공신)’으로 만든 건 아닐까. 조금 다른 경우이지만 성적에 대한 일부 한국 부모의 지나친 관심에 미국 교사들이 질려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7~8년 전 일이다. 미국 동부 버지니아주의 한 고등학교에 아들을 보내는 한국 엄마가 있었다. 아들과 1등을 다투는 학생이 아파 시험 당일 결석을 해 다른 날 혼자 시험을 치르기로 했는데 해당 과목 교사를 찾아가 문제가 유출됐을 수도 있으니 같은 문제로 치르면 불공평하다고 항의하며 난이도가 같은 다른 문제로 시험을 치를 것을 요구했다고 한다. 내 자식이 잘하는 것 못지않게 경쟁자가 더 잘하는 것을 경계하는 ‘일그러진’ 엄마의 극성이 미국 교사들 눈에는 ‘비정상’으로 비쳐졌던 것이다. 친구들을 경쟁의 대상으로 여기고 견제하는 것은 한국만의 얘기는 물론 아니다. 부정행위도 그렇고, 상대의 부정행위를 신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그렇지만 내부 규율로 ‘관리’되던 부정행위가 자율과 책임을 강조하는 대학에 가면서 교묘해지고 광범위해진다면 대학들도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학들은 인성교육 강화다, 창의·융합 교육이다 말로만 외칠 게 아니라 공부만 잘하는 외눈박이 공신들의 다른 눈도 뜰 수 있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기본을 지켜야 한다. 부정행위를 단호하게 징계하는 것도 그중 하나다. 최근 번역 출간된 ‘공부의 배신-왜 하버드생은 바보가 되었나’에서 능력이 아니라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고 가야 하는지 선도할 수 있는 새로운 리더를 길러 내지 않으면 미국의 미래는 없다는 윌리엄 데레저위츠 전 예일대 교수의 경고가 남 얘기 같지 않다. 왜 공부해야 하는 줄도 모르는 외눈박이 공신만 키우는 한국 사회에는 미래가 없다.
  • [경제 블로그] 中의 퀄컴 제재에 훈수?… 난처해진 공정위

    [경제 블로그] 中의 퀄컴 제재에 훈수?… 난처해진 공정위

    중국 국가발전개혁위원회가 지난 2월 미국의 반도체 제조사 퀄컴에 불공정거래 행위로 벌금 60억 8800만 위안(약 1조 626억원)을 부과했습니다. 퀄컴이 시장지배적 지위를 이용해 중국 시장에서 부당하게 많은 특허 수수료를 챙겼다는 결정입니다. 중국이 독점금지법 위반으로 매긴 역대 최고액입니다. 문제는 중국의 퀄컴 제재가 우리나라로 불똥이 튀고 있다는 겁니다. 12일 정부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 경쟁 당국이 중국의 퀄컴 제재에 우리나라의 공정거래위원회가 ‘훈수’를 뒀다는 심증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중국은 자본주의 체제를 도입한 지 얼마 되지 않아 공정거래법 관련 업무에 대한 노하우가 적은 편입니다. 우리나라가 적극적으로 업무 협조를 해 주고 있는데, 퀄컴 제재도 이 연장선상에서 보고 있는 겁니다. 이에 대해 공정위 고위 관계자는 “다른 나라처럼 중국의 공정거래 당국과도 업무 협의를 하고 있을 뿐”이라면서 “다른 나라에서 이뤄지는 기업 제재에는 전혀 관여하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손사래를 쳤습니다. 그럼에도 공정위의 입장이 난처해졌습니다. 세계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에서 우리 기업들이 담합이나 독과점 등에 걸려 혹시라도 ‘괘씸죄’를 받을까 우려되기 때문이죠. 또 자기(공정위)는 제재를 못 내리면서 남의 나라에 훈수를 둔다는 것이 이치에 맞지 않는다는 지적도 나옵니다. 한마디로 ‘너나 잘 하세요’라는 얘기죠. 공정위도 지난 2월부터 퀄컴의 시장지배력 남용 여부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유럽연합(EU)과 중국 등 주변 국가들의 움직임을 지켜보며 저울질만 계속하는 상황입니다. 미국의 무역보복 우려 때문에 아직까지 중국처럼 과감하게 퀄컴 측에 제재를 못 내리고 있는 거죠. 공정위 관계자는 “정보통신기술(ICT) 기업의 표준특허 남용 문제의 경우 지식재산권 보호와 경쟁법 집행이 맞물려 있어서 경쟁 당국 간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미국, EU 당국과 공조해 처리할 계획”이라고 말했습니다. 국내 기업의 불공정 행위에는 과감하게 수천억원의 과징금을 매기는 공정위가 국제적으로도 ‘경제 검찰’의 위상을 지키기가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세종 장은석 기자 esjang@seoul.co.kr
  • 면접볼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옷 색상은 ‘레드’

    면접볼 때 반드시 피해야 할 옷 색상은 ‘레드’

    상대방에게 신뢰와 안정감을 줘야 하는 자리에 참석한다면 반드시 ‘이 컬러’의 의상을 피하는 것이 좋겠다. 최근 외국 연구진은 붉은색의 옷이 상대방에게 공격적이고 화가 난 이미지를 줄 수 있다는 내용의 연구결과를 공개했다. 특히 이러한 특징은 남성들에게 더욱 강하게 적용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더럼대학교 연구진은 남성 50명, 여성 50명으로 이뤄진 실험 참가자들에게 각기 다른 컬러의 티셔츠를 입은 남성의 사진을 보여준 뒤, 해당 사진에서 느껴지는 이미지, 예컨대 분노, 행복, 두려움, 중립 등 다양한 보기 중에 선택하게 했다. 그 결과 붉은색 옷을 입은 남성이 파란색이나 회색 옷을 입은 남성에 비해 훨씬 공격적이고 화가 난 사람처럼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남성은 붉은색 옷을 입은 남성을 우세하고 지배적인 이미지라고 여기는 반면, 여성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 것으로 조사됐다. 연구를 이끈 롭 바튼 더럼대학교 교수는 “붉은색은 동물의 세계에서 ‘공격’의 신호로 사용되기도 한다. 남성이 화가 날 때 얼굴이 붉게 변하는 것은 이러한 공격적 성향을 가진 고대 인류로부터 물려받은 특성 중 하나라고 본다”고 설명했다. 이어 “일부 동물 사이에서도 붉은색은 암컷을 두고 다투며, 주변을 지배하고 군림하려는 성향을 뜻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이 같은 연구결과를 토대로, 전문가들은 사회활동을 할 때 상황과 상대에 따라 붉은색을 피해야 할 것이라고 권장했다. 예컨대 회사 면접을 볼 때 붉은색 옷을 입을 경우 지배적인 성향이 강하고 공격적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스포츠 경기에서도 붉은색 유니폼이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붉은색 유니폼은 상대 팀 선수들에게 심리적인 위협을 줌으로서 경기를 유리하게 이끄는데 효과적인 동시에, 불공평한 이득을 이끌어 내는데에도 도움이 될 수 있으므로 유의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한편 이번 연구결과는 영국 학술원 생물학 저널(Royal Society journal Biology Letters) 최신호에 실렸다. 사진=포토리아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리스차 고객에 취·등록세 떠넘겨

    금융사들이 리스 차량을 등록할 때 내야 하는 취·등록세를 고객에게 부당하게 떠넘겨 오다가 적발됐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1일 ‘자동차 시설 대여’(리스)와 관련한 여신전문금융사들의 불공정약관 조항을 시정 조치했다고 밝혔다. 해당 금융사는 현대캐피탈과 BMW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신한캐피탈, 삼성카드, 하나캐피탈, BNK캐피탈, 롯데캐피탈, 메르세데스벤츠파이낸셜서비스코리아, 신한카드 등 9곳이다. 세종 김경두 기자 golders@seoul.co.kr
  •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광식의 천문학+]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인류의 오랜 과학사에서 최대의 과학적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우주팽창'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우주팽창의 증거를 발견하여 인류에 고함으로써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된 사람은 허블 우주망원경, 허블 법칙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 인물이었다. -허풍스러운 태도의 '20세기 천문학 최고 영웅' 1889년 미국 미주리 주의 마시필드에서 태어난 허블은 한마디로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보험 대리인이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부모로부터 높은 지능과 강건한 체질까지 물려받은데다 미남형이라 매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철철 흘렀다. 허블은 고등학교 시절 육상대표로 7종 경기에서 우승했고, 그밖에도 여러 대회,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수두룩하게 받았다. 공부도 잘했다. 명문 시카고 대학 법학과에 어렵잖게 진학했다. 말하자면 허블은 엄친아 대표선수였다. 대학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보인 그는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 유학기간 3년이 허블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때부터 허블은 늘 정장차림에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멋을 내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스러운 영국식 억양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버릇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천문학 하는 사람 중에 괴짜가 많긴 하지만, 허블도 그런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는 등급이었다. 아무튼 그런 허블이 어떻게 20세기 천문학계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가끔 세상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손대는 일마다 떡 먹듯이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불공평하게 보이고 배 아픈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블이 바로 그런 인간형이었다. 1913년 귀국해서 잠시 변호사 협회에 이름을 걸어놓은 허블은 얼마 후 돌연 하던 일을 접고 시카고 대학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훗날 허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학은 성직과도 같다. 소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스빌에서 1년 동안 법률업무에 종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명을 받았다.” 뒤늦게 시작한 천문학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약간의 노력으로 밀린 공부를 따라잡아 1917년 천문학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 졸업 후 은사인 조지 헤일의 추천으로 윌슨 산 천문대에서 일하려던 허블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일로 취소되었다. 미국이 뒤늦게 1차대전에 뛰어들었던 탓이다. 육군 장교로 지원한 허블은 전투에서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덕으로 소령으로 특진되었다. 그 역시 허블에게는 자랑거리였다. 평생 소령 칭호를 입에 달고 살았다니까. -무시받던 '희미한 빛뭉치'에 꽂히다 전선에서 돌아온 허블은 1919년 30살 때 짐을 꾸려서 윌슨 산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입산이었다.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있는 윌슨 산 천문대에는 당시 세계 최대인 2.5m 후커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한나절이나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외진 곳이라 생활은 고행이었고, 일과는 고달팠다. 그럼에도 수십 명의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관측대 위에 앉아 온밤을 지새웠다. 거대한 반사망원경을 조그마한 손잡이를 돌려 조절하며, 렌즈의 십자선을 응시하면서 최고 12시간을 버텨야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난방기구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망원경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연구원 숙소에 여자가 머무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곳을 수도원이라 불렀다. '수도원 원장'인 조지 헤일은 천체물리학은 모든 잡념을 버린 남자만이 전념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일찍이 설파했다. 윌슨 산 꼭대기에서 허블은 먼 우주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성운들을 향해서 망원경의 주경을 겨누고는, 사진을 찍고 스펙트럼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는 열흘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허블은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의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퍼시벌 로웰의 화성 이야기를 들으며 우주로의 꿈을 키워왔다. 허블의 박사논문 주제는 ‘희미한 성운’이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과 행성, 혜성에 연구할 주제가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하러 그런 희미한 빛뭉치를 연구한다 말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허블의 깊은 관심은 늘 그 희미한 빛뭉치인 성운에 있었다. ‘저 가스 구름들은 과연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은하 바깥을 떠도는 별들의 도시인가?’ 라틴 어로 '안개'를 뜻하는 성운(nebula)은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안개에 가려진 천체였다. 허블의 머리속에는 늘 성운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허블이 윌슨 산에 오자마자 대망원경의 주경을 성운 쪽으로 돌린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건달에 가까운 노새 몰이꾼 휴메이슨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한 사나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블의 조수였던 그 사내 역시 천문학사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는 원래 노새 몰이꾼이었다. 이름은 밀턴 휴메이슨, 나이는 허블보다 2살 아래였다. 윌슨 산 천문대로 장비나 생필품을 운반하는 잡일꾼으로 일했던 휴메이슨은 학교는 일찌감치 중2 때 때려치우고, 당구와 도박, 여자 후리기에 한가락하는 사내로, 좋게 말하면 한량, 나쁘게 말하면 건달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영리하고 호기심도 풍부한데다, 도박으로 다져진 눈썰미와 손재주, 머리회전에 힘입어, 천문대의 각종 장비와 기계에 대해 질문하고 익히고 하는 새에 어느덧 엔지니어 비슷한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휴메이슨의 놀라운 변신이 펼쳐진다. 야간 관측 보조원이 병결했는데, 대타로 투입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귀한 망원경을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천문대에서는 하룻밤 공칠 요량을 하고 휴메이슨에게 대타로 뛰어볼 용의가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 업무는 거대한 덩치인 망원경을 다룰 뿐만 아니라 천체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휴메이슨은 임시직 관측 보조원이 되어 왕년에 트럼프 장 다루듯이 거대 망원경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를 자랑했다. 그뿐인가, 천문대 연구원들은 휴메이슨이 찍어놓은 은하 스펙트럼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화질이 일급 전문가의 솜씨였던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천문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허블의 조수가 되었다. 중학 중퇴로 천문대에 정식직원이 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중학 중퇴 건달과 허풍기 있는 천문학 박사는 만나자마자 악동들처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휴메이슨은 일을 시작하자 이내 양질의 은하 스펙트럼을 얻는 데 어떤 천문학자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나중엔 '휴메이슨 혜성'을 발견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 완벽한 천문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건달에서 천문학자로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1923년 10월 어느 날 밤, 마침내 허블은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2.5m 반사망원경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대성운으로 알려진 M31과 삼각형자리 나선은하 M33의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안드로메다 성운 사진 건판을 분석하던 허블은 갑자기 “유레카!” 하고 크게 외쳤다. 성운 안에 찍혀 있는 변광성을 발견한 것이다. 1912년 헨리에타 리빗이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를 재는 표준 촛불로 삼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하늘의 잣대를 제공한 바 있었다. 리빗의 발견을 잘 알고 있던 허블은 안드로메다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해본 결과 31.4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다 리빗의 자를 들이대어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93만 광년이란 답이 나왔다. 우리 은하 크기보다 10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단순히 나선 모양의 성운으로 알고 있었던 안드로메다는 사실 우리 은하를 까마득히 넘어선 곳에 있는 독립된 나선은하였다. 칸트의 섬우주론이 200 년 만에 완벽히 증명된 셈이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측정했던 허블은 새로운 우주공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계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놓고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은하가 우주 전체다', '우리은하 외에도 많은 은하들이 있을 것이다'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가 그 판정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블의 계산은 참값보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현재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250만 광년이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은하 안에 속해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발견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 태양계는 조그만 웅덩이 정도로 축소되어버리고, 태양은 우주라는 드넓은 바닷가의 한 알갱이 모래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허블의 발견 이후 은하들 뒤에 다시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는 무한에 가까운 우주임이 드러났다. 인류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계시였다. -하늘도 불안정하다! 은하를 추적하는 허블의 망원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후 6년 동안 허블과 그의 조수 휴메이슨은 은하들의 거리에 관한 데이터들을 모으느라 춥고 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과학자들은 은하들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12년, 로웰 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는 은하 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발견하고, 은하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허블은 슬라이퍼의 연구를 기초로 삼고, 그 동안 24개의 은하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얻은 자신의 관측자료를 정리하여 거리와 속도를 반비례시킨 표에다가 은하들을 집어넣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은하는 후퇴하고 있다. 먼 은하일수록 후퇴속도는 더 빠르다. 그리고 은하의 이동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은 항상 일정하다. 이것이 허블 법칙이다.(사실 허블-휴메이슨 법칙이라 불러야 공평하다) 훗날 이 상수는 허블 상수로 불리며, 'H'로 표시된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이것만 정확히 알아낸다면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허블 상수는 우주의 로제타 석에 비유되기도 한다. 허블과 휴메이슨의 발견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왔던 올베르스의 역설도 이로써 우주팽창이라는 정답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허블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것이 우주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것의 근본을 건드리는 심오한 문제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묘하게도 죽이 잘 맞았던 이 덤앤더머 커플이 인류를 우주 기원의 순간으로 데려갈 이론적 토대를 닦았던 것이다. 이는 20세기 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1929년, 이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이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이 현기증 나는 사실에 사람들은 황망해했다. 최초로 인류가 지구상을 걸어다닌 이래 우리 인간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하늘조차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대우주였다. -허블의 유해는 어디에? 허블은 죽을 때까지 열성적으로 은하를 관측했다. 1953년 허블은 팔로마 산 천문대의 지름 5m의 거대 망원경 앞에서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할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대천문학자다운 열반이었다. 향년 64세. 코페르니쿠스 이후 천문학의 발전에 최대의 공헌을 한 허블의 업적은 노벨 상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허블은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이 천문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 규정이 바뀌어 허블에게도 상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이번엔 상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허블이 죽은 지 3개월 뒤였던 것이다. 노벨 상은 고인이 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으려면 업적 못지않게 수명도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죽은 뒤에도 허블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허블의 유언에 따른 거라는 설도 있지만,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장례식과 추도회를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허블의 행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되는 바람에 허블을 추념하려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90년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진 우주망원경에 허블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구 중심 궤도를 95분마다 한 바퀴씩 돌며 먼 우주를 담아 보내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난 4월 24일로 관측 25주년을 맞았으며, 2018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될 때까지 계속 운용될 전망이다. 마지막 허블의 말로 이 글을 접기로 하자. “오감만 잘 갖춰져 있으면 인간은 우주가 무엇인지 탐험할 수 있으며, 그걸 모험과학이라 부른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률로 명시해야”

    “국민연금 지급보장 법률로 명시해야”

    현재 국민연금 논란의 중심에는 공무원연금 개혁 논의 과정에서 국민연금 문제가 갑작스레 불거진 절차상 하자 문제와 기금 소진으로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불안감 등이 빚어낸 국민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 이번 논란으로 인해 공적연금 확대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와 함께 국민연금에 대한 국민 불신을 해소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가 국민연금 지급 보장을 책임지고, 이를 법률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가는 연금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고만 규정하고 있다. 공적연금 가운데 하나이지만 연금이 고갈되거나 적자가 날 경우 국가의 책임이나 지원은 명시돼 있지 않다. 반면 국민연금 외에 공무원·군인·사학연금은 국가가 부족한 액수를 메우도록 하는 보전금 조항이나 국가 지원·부담을 법률에 명시하고 있다. 2007년 2차 연금개혁에서 추진됐던 국민연금 지급의 법적 보장은 2013년 국민연금법 개정안이 국회 보건복지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하면서 입법화 문턱까지 갔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와 기획재정부의 반대로 ‘국가는 연금급여의 안정적·지속적 지급을 보장한다’는 원안의 문구가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한다’로 바뀌는 데 그쳤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지난해 11월 장기재정전망 보고서에서 “국민연금기금 적자분을 국가가 보전해야 한다는 의무 규정이 현재로서는 명확하게 존재하지 않는다”고 지적한 바 있다. 이 같은 과정은 ‘연금을 받지 못할 수 있다’ 혹은 ‘보험료는 더 내고 연금은 덜 받을 수 있다’고 인식될 정도로 국민연금에 대한 신뢰가 추락하는 한 원인이 되고 있다. 구창우 연금행동 사무국장은 “보험료, 소득대체율 인상 등 모든 개혁에 앞서 연금에 대한 신뢰 회복이 이뤄져야 한다”며 “국가가 법적으로 책임을 회피하고 있는 상황에서 개혁을 달가워할 국민은 없다”고 지적했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2012년 ‘국민연금의 국가 지급 책임과 연계한 기금 운용 개선 방안’ 연구에서 “연금보험료 수입만으로 연금 급여를 책임지기에는 불가능하다”며 “보험료가 국가에 의해 강제적으로 징수되고 있음에도, 국가가 퇴직 후 급여 지급을 법적으로 약속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공평하다”고 지적했다.이어 “국민연금의 장기 지속성을 위해 향후 정부의 책임은 반드시 필요하다”며 국가 지원을 법률에 명시하거나 지급 주체를 공단이 아닌 정부나 국가로 명시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홍인기 기자 ikik@seoul.co.kr
  • [스타뷰] ‘부활’ 이 거룩한 두 글자처럼…죽어도 죽지 않는다

    [스타뷰] ‘부활’ 이 거룩한 두 글자처럼…죽어도 죽지 않는다

    “30주년이 되니 ‘부활’이라는 두 글자가 얼마나 거룩한 이름이었는지 새삼 깨닫게 돼요. 그동안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 만큼 나누고 돌려줘야 할 이름이라고 생각해요.”(김태원) 30년 전 언더그라운드에서 ‘디 엔드’(The End)라는 팀으로 활동하던 김태원이 김종서를 보컬로 영입하고 팀 이름을 ‘부활’로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는 지금의 ‘부활’을 만나지 못했을지 모른다. 1985년 7월 3일 결성한 ‘부활’은 그 이름처럼 모진 비바람을 견디며 록그룹으로는 드물게 30년간 꿋꿋이 버텨왔다. 그동안 ‘희야’, ‘비와 당신의 이야기’, ‘마지막 콘서트’(회상3), ‘사랑할수록’, ‘네버 엔딩 스토리’ 등 1980~2000년대 대중가요사의 한 획을 긋는 명곡이 그들을 통해 탄생했다. 디너쇼할 나이지만… 신선한 록음악 보여줄 것 지난 7일 밤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의 한 합주실에서 만난 이들은 열흘 앞으로 다가온 30주년 기념 콘서트 연습에 여념이 없었다. 리더인 기타리스트 김태원, 채제민(드럼), 서재혁(베이스)과 최근 새로 영입된 보컬 김동명은 요즘 매일 새벽 2시까지 연습을 하면서 부활의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있다. 채제민은 1998년, 서재혁은 1999년부터 ‘부활’과 함께했다. 해체 위기 속에서도 ‘부활’이 30년간 명맥을 유지할 수 있었던 힘은 뭘까. “16년 전 처음 ‘부활’에 들어왔을 때보다 지금 더 신선하다고 봐 주세요. 아마 록밴드로서 우리만의 색깔 있는 음악을 해 왔기 때문일 겁니다.”(서재혁) “보통 가수들이 데뷔 30주년이면 디너쇼를 여는 게 보통이죠. 하지만 우리는 오래된 밴드가 아닌 영원한 젊은 그룹으로 남고 싶어요.”(채제민) 김태원은 자신들의 음악을 사랑해 준 팬과 관객들에게 공을 돌렸다. “바람과 나무처럼, 바다와 해변처럼 관객이 존재해야 음악하는 사람이 노래할 수 있어요. 그러면서 위로를 주고받는 것이죠. 서로가 서로를 원할 때 생기는 에너지와 조화가 30년 동안 음악을 해 온 원동력이라고 생각해요.”(김태원) 역시 달변이다.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서 개성적이면서도 포용력 있는 화법으로 인기를 끌어온 그답다. 그는 “20주년 때의 인터뷰를 보면 무슨 넋두리를 하는 것 같다. 그때는 팀 분위기도 어두웠고 화면으로 보면 건강도 조금 안 좋아 보인다”며 웃었다. 강산이 세 번 변하는 시간 동안 ‘부활’은 어떻게 변했을까. 피고 지고 다시 피고… 낙엽 같던 시절 많아 “우리는 매번 초반에 확 피다가 지는 세월을 반복했어요. (1, 2집이 히트했던) 초반 10년도 처음에 잠깐 확 꽃이 폈지만 나머지 7년은 힘들었구요. 그다음 10년에도 처음 2년 정도 만개하다 바로 졌어요. 마치 길거리의 젖은 낙엽 같았던 시절이 많았죠. 그다음 10년은 제가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면서 한 5년 정도는 시들지 않는 꽃처럼 꽤 오래갔죠.(웃음)” 밝음 뒤의 어두움은 더 짙었다. 2002년 이승철이 보컬로 재합류해 발표한 8집 앨범 타이틀곡 ‘네버 엔딩 스토리’가 히트를 치면서 다시 부활했지만 척박한 국내 가요 시장에서 록밴드가 버티기는 쉽지 않았다. “‘네버 엔딩 스토리’ 이후 2004년 1만여명의 관객 앞에서 공연했을 때를 지금도 잊지 못해요. 하지만 이듬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대학로의 100석짜리 소극장에서 공연을 했죠. 하지만 아쉽지는 않았어요. 2009년 ‘생각이 나’라는 곡으로 700~800명석 규모의 공연장으로 조금씩 늘려갔죠.” ‘아들뻘’ 새 보컬 김동명… 故김재기 목소리 닮아 1년에 행사 스케줄이 고작 두 번일 때도 있었지만 어려운 상황에서도 팀을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음악에 대한 절박함 때문이었다. 김태원은 “음악에 갇혀 있고 고립됐다는 생각이 든 적이 있냐”고 반문했다. 검은색 선글라스 뒤로 진정성이 느껴졌다. 다른 멤버들은 김태원의 리더십에서 이유를 찾았다. “집의 기둥이 튼튼하면 오래갈 수 있잖아요. 아버지가 어떻게 대처하느냐에 따라 집안이 다시 일어설 수 있는데 태원이 형은 굉장히 강인한 아버지이자 튼튼한 버팀목이었어요.”(채제민) “태원이 형은 처음부터 리더로 태어난 사람 같았어요.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는 학교 강의나 영화 음악, 다른 가수의 세션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했죠.”(서재혁) 지난해 팀을 떠난 정동하의 뒤를 이어 들어온 신인가수 김동명에게 김태원은 스승 같은 존재다. 중학교 때 ‘희야’를 좋아했다는 그의 아버지와 김태원은 동갑이다. 김태원은 “김동명 역시 음악적 동반자”라고 말한다. 김태원의 삶에도 만만찮은 굴곡이 있었다. 1993년 100만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린 3집 앨범 타이틀곡 ‘사랑할수록’을 부른 보컬 김재기가 불의의 교통사고로 갑자기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성격은 180도 바뀌었다. 그는 “내가 죽을 뻔하거나 누군가 죽는 충격을 경험하면 그렇게 된다. 80년대에는 휘어지지 않는 철근처럼 고집이 강했지만 그가 세상을 떠난 뒤 부드러운 것이 더 아름답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김태원 “내가 노래했다면 이승철·정동화 없지” 1980년대 록그룹 ‘백두산’, ‘시나위’ 등과 함께 국내에 헤비메탈 유행을 주도하던 ‘부활’이 3집 이후 다소 부드러운 록발라드적인 성향으로 변한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지금까지 이승철을 비롯해 김재희, 박완규, 정동하 등 총 9명의 보컬이 ‘부활’을 거쳐갔다. 새로 발탁된 김동명은 “곡의 절정에 다다랐을 때 고 김재기와 음색이 비슷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보컬이 자주 바뀌는 것이 팀 색깔을 약화시킨다는 지적도 있다. 만일 김태원이 에릭 클랩턴처럼 노래를 좀 더 잘했다면 ‘부활’은 달라졌을까. “제가 노래를 잘했다면 이승철이나 고 김재기, 정동하는 지금 존재하지 않았겠죠. 한 사람이 모든 걸 다 갖고 있다면 너무 심심하고 식상하지 않나요? 제가 작곡을 하고 기타를 치는데 노래는 못하는 게 맞는다고 생각해요.” 그러고 보니 작곡이나 작사를 따로 배우지 않고 그저 가슴 아팠던 느낌을 적다 보니 명곡이 나왔다는 그가 노래까지 잘했다면 불공평하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그에게 작곡은 괴롭지만 여전히 ‘할 만한 게임’이다. 그는 종종 제기되는 이승철과의 불화설에 대해서는 ‘아름다운 관계’라고 일축했다. 그는 “이승철은 내가 발굴한 사람이고 그 역시 ‘부활’에서 한 업적이 많은데 서로 아쉬우면 안 된다”면서도 “내가 속이 좁아서인지는 몰라도 그가 불편해 할까 봐 30주년 기념 콘서트 출연에 대해서는 따로 이야기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밴드 있어야 음악 발전… 한국의 ‘롤링스톤스’ 꿈 오는 16일 서울 올림픽공원 올림픽홀에서 열리는 ‘부활’ 30주년 기념 콘서트는 그들이 지나온 30년을 한 편의 영화처럼 담을 예정이다. ‘부활’을 거쳐간 보컬들이 출연하고 오프닝에는 김태원의 딸이 공연한다. 하반기에는 미니 앨범을 내고 내년에는 30주년 앨범을 낼 계획인 이들은 올해 50주년을 맞은 ‘롤링스톤스’처럼 롱런하는 밴드가 되는 것이 꿈이다. “밴드가 존재하지 않으면 대중음악은 큰 발전을 기대할 수 없다고 봐요. 저도 기타 솔리스트 레이프 개릿이 아니라 ‘비틀스’나 ‘레드 재플린’ 같은 밴드를 보고 음악을 연구했으니까요. 내년이면 환갑인데 어느 상황에서건 음악을 하고 있을 겁니다. 부활은 언제나 부활하고 싶은 그룹이니까요.”(김태원)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정청래 막말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무슨 말 했나 보니..’

    정청래 막말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무슨 말 했나 보니..’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다.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정청래 “사퇴 공갈 말라” 막말…주승용 “치욕” 최고위원 사퇴

    정청래 “사퇴 공갈 말라” 막말…주승용 “치욕” 최고위원 사퇴

    새정치민주연합이 8일 다시 한번 ‘집안싸움’을 벌였다. 전날 선출된 이종걸 신임 원내대표가 처음 자리한 최고위원회의에서다. 축하와 박수 속에 시작된 회의는 주승용·정청래 최고위원이 ‘공갈’, ‘치욕’ 등의 격한 언사를 주고받으며 분위기가 급랭했다. 지난 4일 주 최고위원이 문재인 대표에게 “친노(친노무현) 패권주의 때문에 졌다”고 사의 표명을 하며 ‘분열상’을 보인 지 4일 만이다. 당내에선 4·29 재·보궐선거 참패 뒤 ‘바람 잘 날 없다’, ‘콩가루 집안이다’라는 탄식이 나왔다. 주 최고위원 : “비공개·불공정·불공평이 (친노)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다. 제갈량의 원칙이던 3공 정신(공개·공정·공평)을 되새긴다면 희망이 있다. 모든 사안을 공개적으로 논의해야 한다.” 정 최고위원 : “공개·공정·공평은 매우 중요한 문제이지만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큰 문제다. 단결에 협조하는 게 좋다.” 주 최고위원 : “치욕적인 말이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할 말은 아니다. 저는 지금까지 공갈치지 않았다. 사퇴하겠다. 모든 지도부들도 사퇴해야 한다.” ‘지도부 총사퇴’ 발언 뒤 주 최고위원은 문 대표의 손을 뿌리치고 회의장을 나갔다. 이후 유승희 최고위원이 어버이날을 맞아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로 시작되는 원로가수 고 백설희씨의 노래 ‘봄날은 간다’ 일부를 즉석에서 불러 분위기는 더욱 썰렁해졌다. 미리 준비한 듯 분홍색 정장 상의 차림이었다. 예기치 못한 상황을 맞이한 문 대표는 사태 진화에 부심했다. 이날 서울의 한 사회복지관을 찾아 배식봉사를 한 뒤 기자들과 만난 문 대표는 “두 분이 각각 화합과 단합을 말한 건데 그 방향이 좀 달랐던 것 같다”며 “(정 최고위원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조금 과했고, 적절한 사과 등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후 문 대표는 주 최고위원과 한 차례 통화하고 만남을 청했으나, 주 최고위원은 “만나지 않겠다”며 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내에서도 비판이 쏟아졌다. 이언주 의원은 페이스북 글을 통해 “재·보선 참배로 모두가 합심해도 모자랄 이 시기에… 가슴이 턱 막힌다. 그 언행이 도를 넘었다”고, 안철수 전 대표 때 당 대변인을 지낸 금태섭 변호사는 ”막말하고, 노래하고, 정말 부끄러워서 말이 안 나온다”고 비판했다. 한편 이날 오전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 상임고문과 박지원 의원은 단독 회동을 갖고 재·보선 패배에 따른 ‘문 대표 책임론’을 논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범수 기자 bulse46@seoul.co.kr
  •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이유는?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이유는?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사퇴는 안 할 거면서 사퇴할 거라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이어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태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사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표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정청래 막말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뭐라고 했기에?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정청래 막말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뭐라고 했기에?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정청래 막말에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뭐라고 했기에? ‘문재인 정청래,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가 주승용 최고위원직 의원의 사퇴를 이끌어 낸 정청래 의원에게 사과를 촉구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승용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친노 패권주의’를 다시 언급하자 정청래 의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사퇴는 안 할 거면서 사퇴할 거라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주승용 의원은 “지금까지 제가 발언한 것에 대해서 정청래 의원이 사사건건 SNS를 통해서도 비판해왔지만 참았다. ‘주승용 의원의 말 틀렸습니다’가 아니라 저 같으면 ‘의견이 다르다’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해도 그런 식으로 당원 대표인 최고위원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다. 문재인 대표는 “생각이 다르다 해서 공개석상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조금 과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는 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정청래 최고위원께서 적절한 사과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까지 ‘대체 무슨 일?’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까지 ‘대체 무슨 일?’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다.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표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입장은?’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입장은?’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사퇴는 안 할 거면서 사퇴할 거라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이어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태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전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하게 된 상황은? 알고보니..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하게 된 상황은? 알고보니..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승용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친노 패권주의’를 다시 언급하자 정청래 의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다.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사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표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정청래 발언 논란, 정청래 “공갈치지마” 비난에 주승용 사퇴.. 문재인 입장은?

    정청래 발언 논란, 정청래 “공갈치지마” 비난에 주승용 사퇴.. 문재인 입장은?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정청래 “공갈치지마” 비난에 퇴장..문재인 입장 보니 ’정청래 발언 논란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주승용 사퇴’정청래 의원의 비난에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주승용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친노 패권주의’를 다시 언급하자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을 향해 “최고위원직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공격했다. 주승용 의원은 지난 4일 4·29 재·보궐선거 패배 이후 ‘친노패권 정치’를 지적하며 문재인 대표를 공개 비판한 바 있다. 주승용 의원은 비노(비노무현)계, 정청래 의원은 범친노(친노무현)계로 분류된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날렸다. 이어 “당이 단결하는데 일조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최고위원직 사퇴는 안 할 거면서 사퇴할 거라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주승용 의원은 “지금까지 제가 발언한 것에 대해서 정청래 의원이 사사건건 SNS를 통해서도 비판해왔지만 참았다. ‘주승용 의원의 말 틀렸습니다’가 아니라 저 같으면 ‘의견이 다르다’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해도 그런 식으로 당원 대표인 최고위원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격분했다. 이어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저는 최고위원직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에 정청래 의원은 “주승용 위원이 문재인 대표를 비판하는 것도 자유고 제가 옳지 못한 주승용 최고위원을 비판하는 것도 자유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주승용 위원이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자 문재인 대표가 뒤따라갔지만 붙잡지 못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문재인 대표는 “지금은 단합이 중요하다”며 “아까 발언은 우리끼리 자리면 몰라도 공개적 자리에서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이어 문재인 대표는 “지금까지 당 운영과 당의 단합에 미흡한 부분 있었다면 고쳐 나가겠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단합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고 전했다. 문재인 대표는 또 최고위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생각이 다르다 해서 공개석상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조금 과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는 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정청래 최고위원께서 적절한 사과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정청래 최고위원의 사과를 촉구했다.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주승용, 정청래 “공갈치지마” 발언에 발끈… “치욕적이다…최고위원 사퇴”

    주승용, 정청래 “공갈치지마” 발언에 발끈… “치욕적이다…최고위원 사퇴”

    주승용, 정청래 “공갈치지마” 발언에 발끈… “치욕적이다…최고위원 사퇴” 주승용 최고위원, 정청래 최고위원 주승용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이 8일 정청래 최고위원과의 설전 끝에 사퇴를 선언했다. 주 최고위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 도중 “저는 사퇴합니다. 모든 지도부들 (사퇴) 해야합니다”라고 말하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갔다. 주 최고위원의 사퇴 선언은 정청래 최고위원과의 감정 다툼에서 비롯됐다. 앞서 주 최고위원은 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제갈량이 와도 당내 갈등을 해결 못할 심각한 상황”이라며 “제갈량의 원칙이던 3공(공개·공정·공평) 정신을 되새긴다면 희망이 있다”고 말했다. 주 최고위원은 지난 4·29 재보선에서 새정치연합이 패배한 뒤 당의 패권주의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을 해왔다. 그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면서 특히 폐쇄적인 당의 의사소통 구조를 지적했다. “최고위원들도 모르는 일이라면 당원들이 알리 만무하다”면서 “일단 공개되면 공정하게 처리될 수밖에 없고 그러면 공평하게 느껴질 것이다”고 주장했다. 그러자 곧바로 정 최고위원이 “공개 공정 공평 다 좋다. 그런데 사퇴하지도 않으면서 사퇴할 것처럼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생각한다”며 맞받아쳤다. 이에 대해 주 최고위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런 말 듣는 것은 치욕적이란 생각이 든다”면서 “세상을 이렇게 살지 않았다. 사퇴 안 할 거면서 사퇴한다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며 불편함을 드러냈다. 주 최고위원은 이어 “제가 발언한 것 사사건건 (정 최고위원이) SNS 통해 비판한 것 참아왔다”면서 “제가 아무리 무식, 무능하다고 해도 그런 식으로 당원들 대표인 최고위원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비판했다. 주 최고위원은 갑자기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하고 나갔다. 문재인 대표가 뒤따라 갔지만 붙잡지 못하고 자리에 돌아왔다. 문 대표는 “지금은 단합이 중요하다”며 “아까 발언은 우리끼리 자리면 몰라도 공개적 자리에서 하는 것은 다소 부적절했다고 생각한다. 유감스럽다”고 말했다. 문 대표는 그러면서 “지금까지 당 운영과 당의 단합에 미흡한 부분 있었다면 고쳐 나가겠다”며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게 필요한 것은 단합이라는 것을 다시한번 강조한다”고 덧붙였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정청래 “공갈치지마” 비꼬자 주승용 “최고위원 사퇴” 박차고 나가..초유사태

    정청래 “공갈치지마” 비꼬자 주승용 “최고위원 사퇴” 박차고 나가..초유사태

    문재인 정청래 사과 촉구,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하게 한 한마디.. ‘문재인 정청래,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정청래 의원의 비난에 주승용 의원이 최고위원직 사퇴를 선언했다. 이에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의원이 사과해야 한다며 유감을 표했다. 새정치민주연합 최고위원회의에서 정청래 의원이 주승용 의원에게 “공갈친다”며 거칠게 비판하자 주승용 의원이 발끈해 “최고위원직을 사퇴하겠다”며 회의장을 박차고 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주승용 의원이 8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회의에서 모두 발언을 통해 ‘친노 패권주의’를 다시 언급하자 정청래 의원이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날 주승용 의원은 “저는 패권주의의 또 다른 이름이 비공개, 불공정, 불공평이라고 생각한다. 선거에 패배하고 나서 (지도부가 사퇴하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도 하나의 불공평이라고 생각했다”며 공개·공정·공평 등 제갈량의 ‘3공정신’을 강조했다. 주승용 의원의 발언이 끝나자 정청래 의원은 “공개, 공정, 공평 다 맞는 말”이라면서 “주승용 최고위원이 최고위원직을 사퇴할 것처럼 해놓고 공갈치는 게 더 문제”라고 돌직구를 던졌다. 이에 주승용 의원은 “공개석상에서 이렇게 말씀하는 것은 치욕적”이라며 “사퇴는 안 할 거면서 사퇴할 거라고 공갈쳤다? 설사 그렇다 하더라도 그렇게 말하면 안 된다”고 맞받았다. 주승용 의원은 “지금까지 제가 발언한 것에 대해서 정청래 의원이 사사건건 SNS를 통해서도 비판해왔지만 참았다. ‘주승용 의원의 말 틀렸습니다’가 아니라 저 같으면 ‘의견이 다르다’라고 하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제가 아무리 무식하고 무능해도 그런 식으로 당원 대표인 최고위원에게 할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저는 공갈치지 않았다. 공개석상에서 말했으니 저도 공개석상에서 말하는 것”이라며 “저는 사퇴한다. 모든 지도부는 사퇴해야 한다”고 최고위원직 사태를 선언한 뒤 회의장을 나갔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사태에 대해 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는 “정청래 최고위원이 적절한 방법으로 사과해서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는 입장을 표했다. 문재인 대표는 이날 최고위 회의를 마친 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생각이 다르다 해서 공개석상에서 정청래 최고위원이 그렇게 말씀한 것은 조금 과했다.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는 그에 대한 반응이기 때문에 정청래 최고위원께서 적절한 사과 조치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며 정청래 최고위원의 사과를 촉구했다. 문재인 정청래, 문재인 정청래, 문재인 정청래, 문재인 정청래, 문재인 정청래,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주승용 최고위원직 사퇴 뉴스팀 seoulen@seoul.co.kr
  •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야기

    우주팽창, 이렇게 발견됐다! -문제적 엄친아 ‘허블’​ 이야기

    인류의 오랜 과학사에서 최대의 과학적 발견 하나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우주팽창'을 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우주팽창의 증거를 발견하여 인류에 고함으로써 20세기 천문학의 최고 영웅이 된 사람은 허블 우주망원경, 허블 법칙 등으로 너무나 잘 알려진 미국의 에드윈 허블이다. 그는 여러 가지 면에서 문제적 인물이었다. -허풍스러운 태도의 '20세기 천문학 최고 영웅' 1889년 미국 미주리 주의 마시필드에서 태어난 허블은 한마디로 온갖 행운을 타고난 사람이었다. 아버지는 변호사이자 보험 대리인이라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는 부모로부터 높은 지능과 강건한 체질까지 물려받은데다 미남형이라 매력이 주체하지 못할 정도로 철철 흘렀다. 허블은 고등학교 시절 육상대표로 7종 경기에서 우승했고, 그밖에도 여러 대회, 여러 종목에서 메달을 수두룩하게 받았다. 공부도 잘했다. 명문 시카고 대학 법학과에 어렵잖게 진학했다. 말하자면 허블은 엄친아 대표선수였다. 대학에서도 발군의 성적을 보인 그는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영국 옥스퍼드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이 유학기간 3년이 허블에게 큰 영향을 미친 듯하다. 이때부터 허블은 늘 정장차림에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멋을 내며 허세를 부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허풍스러운 영국식 억양을 쓰기 시작했는데, 이 버릇은 평생 바뀌지 않았다. 천문학 하는 사람 중에 괴짜가 많긴 하지만, 허블도 그런 면에서는 전혀 꿀리지 않는 등급이었다. 아무튼 그런 허블이 어떻게 20세기 천문학계에서 최고의 영웅으로 등극하는 영예를 거머쥐게 되었을까? 가끔 세상에는 별로 힘들이지 않고도 손대는 일마다 떡 먹듯이 성공하는 그런 부류의 인간들이 있는 법이다. 불공평하게 보이고 배 아픈 노릇이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허블이 바로 그런 인간형이었다. 1913년 귀국해서 잠시 변호사 협회에 이름을 걸어놓은 허블은 얼마 후 돌연 하던 일을 접고 시카고 대학 천문학과에 들어갔다. 이에 대해 훗날 허블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천문학은 성직과도 같다. 소명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나는 루이스빌에서 1년 동안 법률업무에 종사한 다음에야 비로소 그 소명을 받았다.” 뒤늦게 시작한 천문학이었지만 그는 뛰어난 머리와 약간의 노력으로 밀린 공부를 따라잡아 1917년 천문학 박사학위를 손에 쥐었다. 졸업 후 은사인 조지 헤일의 추천으로 윌슨 산 천문대에서 일하려던 허블의 계획은 뜻하지 않은 일로 취소되었다. 미국이 뒤늦게 1차대전에 뛰어들었던 탓이다. 육군 장교로 지원한 허블은 전투에서 오른팔에 부상을 입은 덕으로 소령으로 특진되었다. 그 역시 허블에게는 자랑거리였다. 평생 소령 칭호를 입에 달고 살았다니까. -무시받던 '희미한 빛뭉치'에 꽂히다 전선에서 돌아온 허블은 1919년 30살 때 짐을 꾸려서 윌슨 산으로 들어갔다. 말 그대로 입산이었다. 해발 1,800m 산꼭대기에 있는 윌슨 산 천문대에는 당시 세계 최대인 2.5m 후커 반사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었다. 그러나 노새가 이끄는 수레를 타고 한나절이나 걸려서야 도착할 수 있는 외진 곳이라 생활은 고행이었고, 일과는 고달팠다. 그럼에도 수십 명의 천문학자들이 연구를 위해 이곳에 둥지를 틀었다. 그들은 추운 겨울에도 관측대 위에 앉아 온밤을 지새웠다. 거대한 반사망원경을 조그마한 손잡이를 돌려 조절하며, 렌즈의 십자선을 응시하면서 최고 12시간을 버텨야 했다.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도, 난방기구를 이용할 수도 없었다. 망원경에 안 좋은 영향을 끼치기 때문이다. 연구원 숙소에 여자가 머무는 것은 금지되었기 때문에 연구원들은 그곳을 수도원이라 불렀다. '수도원 원장'인 조지 헤일은 천체물리학은 모든 잡념을 버린 남자만이 전념할 수 있는 분야라고 일찍이 설파했다. 윌슨 산 꼭대기에서 허블은 먼 우주에서 희미하게 빛나는 성운들을 향해서 망원경의 주경을 겨누고는, 사진을 찍고 스펙트럼을 찍기 시작했다. 그것은 때로는 열흘 밤을 꼬박 지새워야 하는 고된 작업이었다. 허블은 소년 시절에 할아버지의 망원경으로 별보기를 좋아했다. 그리고 할아버지가 좋아하던 퍼시벌 로웰의 화성 이야기를 들으며 우주로의 꿈을 키워왔다. 허블의 박사논문 주제는 ‘희미한 성운’이었다. 주류 천문학자들은 밝은 별과 행성, 혜성에 연구할 주제가 얼마든지 있는데 무엇하러 그런 희미한 빛뭉치를 연구한다 말인가 하고 의아해했다. 하지만 허블의 깊은 관심은 늘 그 희미한 빛뭉치인 성운에 있었다. ‘저 가스 구름들은 과연 우리 은하 안에 있는 것인가, 아니면 은하 바깥을 떠도는 별들의 도시인가?’ 라틴 어로 '안개'를 뜻하는 성운(nebula)은 20세기 초만 해도 정말 안개에 가려진 천체였다. 허블의 머리속에는 늘 성운에 대한 의문이 떠나질 않았다. 허블이 윌슨 산에 오자마자 대망원경의 주경을 성운 쪽으로 돌린 것은 당연한 노릇이었다. -건달에 가까운 노새 몰이꾼 휴메이슨 이 대목에서 우리는 또 한 사나이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허블의 조수였던 그 사내 역시 천문학사에서는 전설이 되어 있는 존재이다. 그는 원래 노새 몰이꾼이었다. 이름은 밀턴 휴메이슨, 나이는 허블보다 2살 아래였다. 윌슨 산 천문대로 장비나 생필품을 운반하는 잡일꾼으로 일했던 휴메이슨은 학교는 일찌감치 중2 때 때려치우고, 당구와 도박, 여자 후리기에 한가락하는 사내로, 좋게 말하면 한량, 나쁘게 말하면 건달이었다. 그런데 머리가 영리하고 호기심도 풍부한데다, 도박으로 다져진 눈썰미와 손재주, 머리회전에 힘입어, 천문대의 각종 장비와 기계에 대해 질문하고 익히고 하는 새에 어느덧 엔지니어 비슷한 수준까지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야사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휴메이슨의 놀라운 변신이 펼쳐진다. 야간 관측 보조원이 병결했는데, 대타로 투입할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그렇다고 귀한 망원경을 놀릴 수도 없는 노릇이라, 천문대에서는 하룻밤 공칠 요량을 하고 휴메이슨에게 대타로 뛰어볼 용의가 없느냐고 제안했다. 그 업무는 거대한 덩치인 망원경을 다룰 뿐만 아니라 천체사진까지 찍어야 하는 일이었다. 그날 밤 휴메이슨은 임시직 관측 보조원이 되어 왕년에 트럼프 장 다루듯이 거대 망원경을 능숙하게 다루는 솜씨를 자랑했다. 그뿐인가, 천문대 연구원들은 휴메이슨이 찍어놓은 은하 스펙트럼들을 보고는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선명한 화질이 일급 전문가의 솜씨였던 것이다. 이 일로 그는 천문대 정식 직원으로 채용되어 허블의 조수가 되었다. 중학 중퇴로 천문대에 정식직원이 된 것은 전무후무한 일이었다. 이 중학 중퇴 건달과 허풍기 있는 천문학 박사는 만나자마자 악동들처럼 서로 죽이 잘 맞았다. 휴메이슨은 일을 시작하자 이내 양질의 은하 스펙트럼을 얻는 데 어떤 천문학자보다 뛰어난 역량을 발휘했고, 나중엔 '휴메이슨 혜성'을 발견하는 등 훌륭한 업적을 많이 남겨 완벽한 천문학자로 인정받게 되었다. 건달에서 천문학자로의 놀라운 변신이었다. 1923년 10월 어느 날 밤, 마침내 허블은 생애 최고의 사진을 찍었다. 그는 2.5m 반사망원경을 이용해 안드로메다 대성운으로 알려진 M31과 삼각형자리 나선은하 M33의 사진을 찍었다. 며칠 후 안드로메다 성운 사진 건판을 분석하던 허블은 갑자기 “유레카!” 하고 크게 외쳤다. 성운 안에 찍혀 있는 변광성을 발견한 것이다. 1912년 헨리에타 리빗이 변광성의 주기와 밝기가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발견하고 이를 우주를 재는 표준 촛불로 삼아, 그때까지 알려지지 않았던 하늘의 잣대를 제공한 바 있었다. 리빗의 발견을 잘 알고 있던 허블은 안드로메다 변광성의 주기를 측정해본 결과 31.4일이라는 것을 알아냈다. 여기에다 리빗의 자를 들이대어 지구까지의 거리를 계산해보니 놀랍게도 93만 광년이란 답이 나왔다. 우리 은하 크기보다 10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게 아닌가! 단순히 나선 모양의 성운으로 알고 있었던 안드로메다는 사실 우리 은하를 까마득히 넘어선 곳에 있는 독립된 나선은하였다. 칸트의 섬우주론이 200 년 만에 완벽히 증명된 셈이었다. 이로써 인류 역사상 가장 먼 거리를 측정했던 허블은 새로운 우주공간의 문을 활짝 열어젖혔던 것이다. 당시 천문학계는 우리은하의 크기를 놓고 '대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우리은하가 우주 전체다', '우리은하 외에도 많은 은하들이 있을 것이다'는 두 진영으로 나뉘어 있었는데, 뒤늦게 나타난 신출내기 천문학자가 그 판정을 내려주었던 것이다. 어쨌든 이 하나의 발견으로 허블은 일약 천문학계의 영웅으로 떠올랐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허블의 계산은 참값보다 큰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현재 알려진 안드로메다 은하까지의 거리는 그 두 배가 넘는 250만 광년이다. 밤하늘에서 빛나는 모든 것들이 우리 은하 안에 속해 있다고 믿고 있던 사람들에게 이 발견은 청천벽력과도 같은 것이었다. 갑자기 우리 태양계는 조그만 웅덩이 정도로 축소되어버리고, 태양은 우주라는 드넓은 바닷가의 한 알갱이 모래에 지나지 않은 것이 되었다. 허블의 발견 이후 은하들 뒤에 다시 무수한 은하들이 늘어서 있는 무한에 가까운 우주임이 드러났다. 인류에게 이것은 근본적인 계시였다. -하늘도 불안정하다! 은하를 추적하는 허블의 망원경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후 6년 동안 허블과 그의 조수 휴메이슨은 은하들의 거리에 관한 데이터들을 모으느라 춥고 긴 밤을 지새우기 일쑤였다. 과학자들은 은하들이 제자리에 고정되어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1912년, 로웰 천문대의 베스토 슬라이퍼는 은하 스펙트럼에서 적색이동을 발견하고, 은하들이 엄청난 속도로 지구로부터 멀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처음으로 알아냈다. 허블은 슬라이퍼의 연구를 기초로 삼고, 그 동안 24개의 은하를 집요하게 추적해서 얻은 자신의 관측자료를 정리하여 거리와 속도를 반비례시킨 표에다가 은하들을 집어넣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이 하나 드러났다. 멀리 있는 은하일수록 더 빠른 속도로 멀어져가고 있는 것이다. 은하는 후퇴하고 있다. 먼 은하일수록 후퇴속도는 더 빠르다. 그리고 은하의 이동속도를 거리로 나눈 값은 항상 일정하다. 이것이 허블 법칙이다.(사실 허블-휴메이슨 법칙이라 불러야 공평하다) 훗날 이 상수는 허블 상수로 불리며, 'H'로 표시된다. 허블 상수는 우주의 팽창속도를 알려주는 지표로서, 이것만 정확히 알아낸다면 우주의 크기와 나이를 구할 수 있다. 그래서 허블 상수는 우주의 로제타 석에 비유되기도 한다. 허블과 휴메이슨의 발견은 우주가 팽창하고 있음을 명백히 보여주는 것이었다. 또한 여러 세기 동안 과학자들을 괴롭혀왔던 올베르스의 역설도 이로써 우주팽창이라는 정답을 얻은 셈이었다. 그러나 당시에는 허블 자신까지 포함해서 이것이 우주의 기원과 연관되어 있으며, 모든 것의 근본을 건드리는 심오한 문제라고 확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묘하게도 죽이 잘 맞았던 이 덤앤더머 커플이 인류를 우주 기원의 순간으로 데려갈 이론적 토대를 닦았던 것이다. 이는 20세기 천문학사에서 가장 중요한 발견으로 받아들여졌다. 1929년, 이 사실이 발표되었을 때 엄청난 충격을 사람들에게 던져주었다. 이 우주가 지금 이 순간에도 무서운 속도로 팽창하고 있으며, 우리가 발붙이고 사는 이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거라곤 하나도 없다는 이 현기증 나는 사실에 사람들은 황망해했다. 최초로 인류가 지구상을 걸어다닌 이래 우리 인간사가 불안정하다는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20세기에 들어서는 하늘조차도 불안정하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의 대우주였다. -허블의 유해는 어디에? 허블은 죽을 때까지 열성적으로 은하를 관측했다. 1953년 허블은 팔로마 산 천문대의 지름 5m의 거대 망원경 앞에서 며칠 밤을 새워 관측할 준비를 하던 중 갑자기 심장마비로 숨졌다. 대천문학자다운 열반이었다. 향년 64세. 코페르니쿠스 이후 천문학의 발전에 최대의 공헌을 한 허블의 업적은 노벨 상을 뛰어넘는 것이지만, 허블은 상을 받지 못했다. 노벨 물리학상이 천문학을 배제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늦게 규정이 바뀌어 허블에게도 상을 주기로 결정했지만, 이번엔 상을 받을 사람이 없었다. 허블이 죽은 지 3개월 뒤였던 것이다. 노벨 상은 고인이 된 사람에게는 주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상을 받으려면 업적 못지않게 수명도 중요한 변수라는 것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죽은 뒤에도 허블은 세간의 관심을 모았다. 허블의 유언에 따른 거라는 설도 있지만, 그의 부인 그레이스는 장례식과 추도회를 모두 거부했다. 그리고 남편의 유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에 대해서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래서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였던 허블의 행방은 반세기가 지난 지금까지도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되는 바람에 허블을 추념하려면 우주공간에 떠 있는 허블 망원경을 바라볼 수밖에 없다. 1990년 우주 공간으로 쏘아올려진 우주망원경에 허블의 업적을 기리는 뜻에서 그의 이름이 붙여졌기 때문이다. 지금도 지구 중심 궤도를 95분마다 한 바퀴씩 돌며 먼 우주를 담아 보내고 있는 허블 우주망원경은 지난 4월 24일로 관측 25주년을 맞았으며, 2018년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이 발사될 때까지 계속 운용될 전망이다. 마지막 허블의 말로 이 글을 접기로 하자. “오감만 잘 갖춰져 있으면 인간은 우주가 무엇인지 탐험할 수 있으며, 그걸 모험과학이라 부른다.” ​이광식 통신원 joand999@naver.com
  • [오늘의 눈] ‘담합 면죄부’ 준 국민은 없다/김경두 경제부 기자

    [오늘의 눈] ‘담합 면죄부’ 준 국민은 없다/김경두 경제부 기자

    “최저입찰제가 하도 말썽이어서 일부 지방자치단체가 무작위 입찰서류 3개를 뽑아 입찰가 평균을 내고 가장 근접한 업체를 낙찰하는 방식으로 입찰제도를 바꾸었습니다. 담합이 불가능할 것으로 봤는데 상상을 초월한 방법으로 짬짜미를 해 내더군요. 입찰에 참여하는 건설업체끼리 사전에 짜고 3개 업체의 입찰서류만 각각 냉동실에 보관한 뒤 입찰 당일 가져옵니다. 그럼 누가 뽑기에 참여하든 차가워진 입찰서류만 뽑으면 되니 낙찰가를 사전에 알 수가 있었던 거죠. ‘리니언시’(자진신고 감면제)가 아니었으면 지금도 파악하지 못했을 겁니다.” 공정거래위원회 고위 관계자가 전해준 건설업계의 담합 과정은 좀 충격적이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건설업계의 용의주도함에 혀가 찼고 공정위가 적발한 담합이 빙산의 일각이라는 생각이 굳어질 수밖에 없었다. 요즘 자고 나면 터지는 것이 건설업계의 담합이다. 시공능력평가 100위에 드는 대형 건설사 가운데 38개사가 국책공사 담합으로 제재를 받았다. 제재가 예고된 업체들도 수두룩하다. 2012년 ‘4대강 사업’ 이후 부과된 과징금이 연내에 2조원을 돌파할 것이라는 얘기도 나온다. 대한민국의 모든 건설업체가 짬짜미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얘기다. 담합은 자유 시장경제를 좀먹는 중대한 범죄행위다. 좁게는 경쟁기업과 관련 산업이, 넓게는 국민과 국가가 피해자가 된다. 특히 국책공사의 담합은 일종의 ‘세금 도둑’이다. 이름만 들어도 알 수 있는 대형 건설사들이 무더기로 적발됐으니 대통령의 말대로 적폐 척결의 1호 대상이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는 과징금도 내고 공공공사의 입찰 제한까지 두는 것은 이중 제재라고 항변한다. 국책공사에 차질이 빚어지고 ‘제2의 중동붐’에도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며 선처를 요청하고 있다. 단체로 짬짜미를 하다 보니 마치 ‘우리 없이 어떻게 공사할래’라고 협박하는 듯한 태도다. 한술 더 떠 대규모 국책공사를 한꺼번에 발주한 정부도 문제가 있다는 식이다. 사실 이들만 뭐라고 할 게 아니다. 국책사업과 건설업계 발전에 지장이 온다는 논리를 제공한 것은 ‘경제 검찰’의 수장인 노대래 전 공정거래위원장이었다. 물밑에서는 정부의 선처 움직임도 감지된다. 이는 모럴 해저드만 부추기는 꼴이다. 건설업계의 ‘담합 고질병’이 사라지지 않는 것은 법의 엄정함이 지켜지지 않았던 탓이 크다. 불공정 행위를 일삼는 기업들이 있다면 법과 원칙에 따라 시장에서 퇴출시키는 것이 당연하다. 이를 방치하다 보니 국가 경제를 볼모로 삼는 지경까지 왔다. 생뚱맞게 공직후보자의 청문회가 오버랩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총리와 장관 후보자가 위장 전입만으로 연이어 낙마하던 때가 엊그제였다. 그때는 전전긍긍이었다. 요즘엔 공직 후보자들이 ‘자녀 교육’이라는 변명과 함께 자연스럽게 고백한다. 낙마 사유가 안 되니 일종의 통과의례로 여긴다. 건설업계의 담합 분위기도 ‘경제 활성화’라는 이유로 이렇게 흘러가는 모양새다. 국민은 누구에게도 ‘담합 면죄부’를 준 적이 없다. golders@seoul.co.kr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