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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몸에 밴 안일… 삐꺽거리는 「개혁」

    ◎송복교수 소ㆍ동구 학술 기행 특별기고/대부분 공장 주 40시간 가동에 불과/“힘든일 왜 하나”… 농부도 주말엔 휴무/뇌물 없인 일처리 안돼… 사회기강 급속 붕괴/지식인 푸대접 심해… 청소부 봉급이 신문사 사장보다 많아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할 것인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운명은 세계의 향방은 물론 아시아 한반도의 운명에도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 분명하다. 다음은 최근 2주간 소ㆍ동유럽을 방문,페레스트로이카의 현장을 살펴보고 돌아온 본사 논평위원 송복교수(연세대ㆍ사회학)의 페레스트로이카에 대한 사회학적 진단 특별기고문이다. 근래에 많은 사람들이 소련을 다녀왔고 또 동구 여러 나라들을 보고 왔다. 이 다녀 오신 분들의 사회주의 사회의 실상에 대한 사실적인 표현이나 느낌도 거개가 일치해 있다. 평소 사회주의 사회나 그 이데올로기에 대해 어떤 태도 어떤 시각을 가지고 있었건 그 사실에 대한 인식에는 대차가 없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세상은 있는대로 있는 것이 아니라 보는 대로 있다」라는 미국 초기 사회학자 윌리엄 토머스의 명구가 있다. 사람들은 자기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들어서 그것을 세상의 실체로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회주의 사회에 대해서도 처음 부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부정적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고 반대로 긍정적 견해를 가진 사람은 긍정적인 사실만 보고 왔을 것이다. 그런데 소련이나 동구사회에 관한한 보고 싶은 것만 보았건,보기 싫은 것은 애시당초 보지 않았건 관계없이 대체로 같은 목소리를 내고 있다는 것이 특징인 것 같다. 그것은 첫째로 소비재가 아주 귀하다는 것,그래서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 둘째로 사회관계에 부드러운 기가 없고 윤기가 없고 활기를 그 어디서도 찾아 볼 수 없다는 것. 셋째로 사람들이 너무 느리다는 것,바쁜 것도 없고 안달하는 것도 없고 그리고 성취동기가 전혀 부여되어 있지 않다는 것. 넷째로 너무 관료주의화해 있다는 것,그 어느 사회보다 관료주의의 병리가 골수에까지 깊이 박혀져 있다는 느낌을 준다는 것. 다섯째로 그러면서 너무 부패해 있다는 것,도덕적 기강이 관료사회에서나 일반 시민사회에서나 다같이 급속히 무너져 가고 있다는 강한 인상을 던져준다는 것,대개 이런 것들이라 할 수 있다. 총체적으로 흔히 말하는 「소비에트 엑스페리먼트」(Soviet Experiment)가 실패한 것이라는 결론을 어느 시각에 입각해 있는 사람들이든 다 같이 내리고 있다는 이야기다. 1917년 볼셰비키혁명이 일어난 이후 70수년간 인류사회 최초로 소련이 시도한 공산주의사회의 실험은 그 실험 3세대가 지난 오늘날의 결과에서 보면 그것이 하나의 결과이든 조짐이든 어쨌든 실패했다는 결론을 다같이 도출해 내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현재 살아 있는 공산주의 최고 이론가로 자타가 공인하는 어니스트 만델(Ernest Mandel)의 최근 저서 「페레스트로이카를 넘어서(Beyond Perestroika)」에서도 꼭 같이 지적되고 있다. 누가 보든 궁금하기 이를 데 없는 것은 도대체 그동안 뭘 「어떻게 했길래」 저러고 있느냐는 것이다.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맥도널드 빵을 사먹기 위해 1㎞ 이상의 줄을 서 있어야 하고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의 말보로담배가 자기네 돈(루블)값보다 오히려 더 귀하고 더 태환성이 높아 보이고 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미 제국주의자들의 TV 프로가 텔레비전에 비치기만 해도 하던 일을 멈추고 저렇게 넋이 빠져 보고 있는냐는 것이다. 담배를 사기 위해서,아이스크림을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옷을 사기 위해서,남녀노소 할 것 없이 저렇게 긴 줄을 서 있어야 하고 누구나 비닐백을 한 둘씩 상시로 들고 다니면서 줄만 보이면 뭘 사는지 알지도 못하고 알 필요도 없이 저렇게 무작정 긴 행렬에 끼어서 기다리고 있어야 하는­도대체 「어떻게 했기에」 그런 생활의 연속이 일과의 시작이며 끝이 되어 있는가 하는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소련 전가정주부들이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서 줄서 있는 시간은 연 3백억 시간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대개의 가정주부들은 하루 2시간 이상을 꼬박 줄서는데 바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되어 있다. 그 3백억 시간의 생산손실이 얼마나 될 것인가. 그러나 그것을 계산하지도 않고 계산할 필요도없고 더구나 생산과 연관해서 계산하는 개념조차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이 이 나라의 생활습성처럼 보인다. 건물 도로 전철로 공원시설 등 사회간접자본도 모두 마찬가지다. 지을 때는 거창하고 웅장하기 더할 데 없이 지었을 것이다. 과연 큰 나라답게 웅대하다는 느낌을 줄 정도로 모두 지어져 있다. 아마도 국가예산으로 국가가 관장해서 짓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거대하기는 해도 위용이 없고 오래된 것 같기는 한데 고풍스러움을 찾기가 어렵고 공사기간이 결코 짧았던 것 같지는 않은데 날림으로 보인다. ○관료주의 병리 극심 더구나 안을 들여다 보면 속빈 강정처럼 건물 관리가 전혀 되어 있지 않다. 1∼2㎞에 이르는 거대한 상가를 지어 놓고도 안은 텅텅 비어 있고 거기에 부서진 것 허물어진 것 망가진 것은 일체 손대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두고 있다. 호텔시설도,그것도 외국손님들로차 있는 손꼽히는 호텔도 변기통이 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문이 부서져 있어도 그냥 내버려 두고 있다. 국가는 예산이 없고 개인은 그것이 어디 내것이냐는생각에서 일 것이다. 참으로 「만인의 것은 누구의 것도 아닌 것」인가. 이 사회는 마치 그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움직이고 증명하기 위해서 존속하는 사회로 느껴진다. 이 증명은 농촌에서도 그대로 입증되고 있다. 호텔내에서의 식사나 호텔 밖에서의 식사나 이 광활한 농업지대에서 생산되는 채소라는 것을 식탁에서 구경할 수가 없다. 그 이유를 캤더니 지금 소련 농장에서 채소의 60%가 출하되지 않고 밭에 심어진채 그대로 썩고 있다는 것이고,곡물은 10%가 그런 상태라는 것이다. 국가는 운송시설 냉동시설이 모두 부실해서 손 쓸 여력이 없고 농부는 그것이 「내 것도 네 것도 아닌데」 무엇하러 따가운 햇살에 수고로움을 끼칠까 보냐이다. 자본주의사회의 농부들처럼 기를 쓸 이유도 없고 안달할 필요도 없다. 고추값이 떨어진다고 고추를 자동차에 싣고 여의도 광장에서 농성하는 한국의 농사꾼은 이나라 농부들의 눈으로 보면 실성한 사람들이나 하나도 진배가 없다. 왜 그렇게 살 것인가이다. 무엇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농사를 짓고 무엇하려고 그렇게한푼의 값을 더 올려 받으려고 애를 쓰는냐이다. 더구나 토ㆍ일요일의 이나라 농부들은 밭에서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모스크바 근교의 어느 농촌마을을 돌아다녀도 토ㆍ일요일 이틀동안 들판에 나와 일하는 농부는 그 어느 한 사람도 그림자조차 구경할 길이 없다. 이는 불가리아의 그 넓은 농업지대에서도,유고의 그 많은 농촌마을에서도 조금도 다르지 않다. 농사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때(시)라는 것이 사회주의 사회에서는 없는 것인지 해당이 안되는 것인지 어쨌든 토ㆍ일요일은 어디든 일하지 않는다. 정말로 마르크스의 이상대로 「능력껏 일하고 필요에 따라 갖는 것」인지,고전 경제학파들의 주장대로 「능력에 따라 일은 하지 않고 필요 이상으로 가지려고만 하는 것」인지,자본주의 사회와는 너무나 다른 풍습도를 볼셰비키혁명 70수년동안이 만들어 내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어제가 아니고 또 오늘도 아니고 내일이다. 글라스노스트는 「개방」하자는 것이고 페레스트로이카는 「개편」하자는 것이다. 어디를 향해서 개방하고 어떤 문제를 새로이 개편ㆍ개혁하자는 것인가. 지금까지 소련ㆍ동구에서 시도해 온 교환방식은 시장메커니즘으로,소유는 사소유로,관리는 기업경영체계로,생산은 소비재 위주로 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서구사회를 준거로 해서 모든 것을 서구식으로 바꾸어 보자는 것이나 다름 없다. 그러나 그 길은 너무나 길고도 험난한,그러면서 성공이 전혀 보장이 되지 않는 길이라는 것을 그 누가 이 사회를 얼핏 보든 선뜻 짐작할 수 있는 길이다. 첫째로 이 사회는 개방하면 더빨리 부패할 것이라는 것이다.지금도 도덕적 위기를 어디서든 맞고 있다. 개방하면 그 위기는 일로상승할 것이다. 지금까지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안정은 도덕적 안정감에서 왔다. 그 누가 그 얼마나 부패해 있든 정보통제로 사람들은 부패의 종류를 잘 인식치 못했고 그 수준을 제대로 측량치 못했다. 그러나 개방은 남의 부패를 가장 먼저 인식시키고 그 수준을 실제보다 수배로 과장해서 측량시킨다. 그래서 어떤 사회든 개방과 동시에 정보흐름이 자유화되면서 예외없이 부패가 역상승으로 가속화했다. 이 부패의 속도도 문을 닿아놓은 기간과 정도에 비례했다. ○빵등 소비재난 최악 더구나 이 전체주의적 사회주의의 폐쇄사회에 자본주의의 물결이 홍수져가면서 가장 먼저 들어간 것은 자본주의의 장점이 아니라 가장 타기되어야 할 결점들이다. 애들이 밖에서 다른 애들과 섞여 놀때 부모가 아무리 사회화시켜도 못된 것을 먼저 배워 온다. 사회도 예외는 아니다. 모스크바 국제공항에서 카트를 쓰려해도 말보로 담배 한값을 먼저 내야 쓸 수 있고,호텔 청소부도 담배나 스타킹을 미리 테이블 위해 얹어 놓아야 청소를 제대로 해준다. 이것이 어디 밑바닥에서 일하는 그들에게만 한정된 것이랴. 저변에서 상층에 이르기까지,교육수준이 낮은데서 높은데를 가릴 것 없이,무슨 안개처럼 덮여 있는 듯하다. 어디를 가나 뇌물을 주어야 하고 어디로 가든 암달러상이 있다. 둘째로 노는데 모두 이력이 나 있다는 것이다. 공장은 1주 30시간에서 40시간 일하는 것이 보통이고,일거리가 많아도 40시간 이상 일하는 곳은 찾아 보기 어렵다. 그것도 농촌에서와 마찬가지로 토ㆍ일요일은 반드시 논다. 그리고 1일 6시간 일하든 8시간 일하든 5일 일하는 중에도 정작 일하는 시간은 2시간 뿐이고 나머지 시간들은 대부분 잡담으로 채워진다고 한 관리자는 말한다. 이 관리자는 잡담도 노동의 하나라고 조크인지 진실인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덧붙였다. 그리고 이 노동하는 주중에도 담배를 사기 위해서,감자나 과일을 사기 위해서 길가의 긴행렬에 가담해 줄 서 있다면 결근하는 것도 허용된다는 것이다. 하긴 줄서는 것도 고된 노동임엔 틀림없다. 아마도 한국사람의 경우 줄서는 것은 그 어떤 고된 노동보다 고된 행동이 될 것이다. 그렇다면 줄서기 위해서 결근하는 것도 합리화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쨌든 줄서기 위해선 결근해도 되는 자본주의 사회에선 상상을 불허하는 극히 희귀한 노동현상이 이 나라의 노동관행이다. 고르바초프의 말대로 「아무리 피리를 불어도 춤을 추지 않는 사회」­열심히 일해서 더 많이 벌고,더 많은 업적을 내서 더 많은 냉산성을 올리자는 성취동기는 이 나라에선 이미 사라진지 오래인 것 같다. 소유에 대한 욕망도여느사회와는 판이하게 달라져 있다. 현재 사는 아파트를 싼 값으로 사서(2백50달러 미만) 개인소유화하라고 해도,그것을 왜 사냐고 반문한다. 지금 이대로 살아도 죽을 때까지 이 아파트에서 살 수 있고,더구나 국가에서 수리비까지 부담하는데 왜 그것을 사서 그 돈을 쓰고 그 고생을 해야 하느냐는 것이다. 어쩌면 에덴동산이 그런 것인지,어떻게 보면 낙원에 사는 사람들 같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은 참으로 순박하고 순진하고 그리고 착해 보인다. 저런 사람들에게 한국에서 보는 그 악마구리 같은 경쟁문화­비단 한국사회뿐 아니라 일반적으로 자본주의 시장경제사회에서 보아지는 경쟁문화가 심어지고,경쟁행위가 주도적 행위로 등장했을때 이 사회가 어떻게 요동칠 것인가. 미상불 대혼돈과 고통이 말할 수 없이 따르는 소용돌이가 전국 각지에서 넘쳐 흐르게 될 것이다. 셋째로 지식인의 푸대접이다. 교수나 의사 기자가 노동자보다 월급이 훨씬 적다. 보통 공부많이한 지식인은 한달 2백50루블이고 노동자는 3백50루블,당관료는 4백루블이 되어 있다. 불가리아에서는 신문사 사장이 5백레바를 받는데(8레바가 1달러),청소부가 7백레바를 받는다고 했다. ○암달러상 거리활개 불가리아 칼 마르크스 대학의 손체브(Rasdoslav Tsonchev)교수에게 그 차이의 합리성을 따졌더니 노동자가 주도세력이 돼 있는 나라의 당연한 결과라고 했다. 그러나 노동자의 생산성은 아무리 올라도 3배가 오르기 어려운데 새로운 기술과 상품을 개발하고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제공하는 지식인의 경우 그 생산성은 열배 백배 심지어는 무한대로 확대해 볼 수도 있지 않은가. 그들에게 아무런 인센티브 없이 어떻게 발전을 가속화하려 하는가. 그러나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리고는 손으로 마르크스 석상을 가리켰다. 칼 마르크스대학의 높이 세운 마프크스 석상의 큰 마르크스 이름에 학생들이 페인트로 곱표(×)를 크게 치고 무어라고 불가리아어로 갈긴 낙서를 보라는 신호이다. 그것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더니 「우리는 마르크스를 싫어한다」는 말이라고 했다. 모스크바대학 교수들도 요사이 모스크바 대학생들도 한결같이 비판적이되어 간다고 조심어린 어조로 말했다. 그러나 이러한 지식인ㆍ학생들의 부르짖음이 노동자들의 분노를 얼마나 야기시키고 있는가. 루마니아에서의 광산노동자들의 데모학생 살해수가 그것을 밑받침하고 있다. 지식인들의 인센티브는 좀체 유발되기 어려울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산업화를 촉진해 갈 것인가. 소련에서의 개방화와 개혁화는 모스크바 까마귀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려 놓는 것만큼 어려울지도 모른다. 모스크바 까마귀는 도시에서 관광객이 던져주는 빵조각을 먹고 혹은 쓰레기통이나 뒤지며 쉽게 쉽게 살고 있다. 우리네 갈가마귀처럼 멀리 하늘을 높이 높이 비상하지도 않고 먹이를 찾아 끼옥끼옥 울며 아귀다툼을 벌이지도 않는다. 색깔도 우리 까마귀와는 달리 목과 배ㆍ등 일부가 오히려 회색으로 보인다. 주둥이와 우는 소리는 까마귀 그대로이다. 그러나 그 까마귀는 야성이 없고 사람을 두려워할 줄도 모른다. 배가 고프면 고픈대로,부르면 부른대로 게으르게 살고 있다. 그들이 어떻게 본성을 되찾을 것인가. 정녕 되찾게 할 필요가 있을것인가.
  • 국제자동화정밀기기전 개막/중국등 15개국 참가

    중국ㆍ불가리아 등 공산권국가와 미국ㆍ서독ㆍ일본 등 모두 15개국 1백41개업체가 참가,4천2백여점의 국내외 첨단자동화 관련기기 및 설비를 선보이는 90국제자동화 정밀기기전이 17일 한국종합전시장에서 개막됐다. 한국기계공업진흥회 주최로 오는 21일까지 5일간 열리는 이번 전시회에는 절삭 가공자동화 관련기계 및 설비 1천2백47점을 비롯,공정제어 관련기기 1천5백70점,유ㆍ공압절삭 가공 관련기기 9백11점,제어계측ㆍ시험기기 1백55점,조립ㆍ운반ㆍ포장ㆍ보관관련기기 및 설비 2백53점등 각종 자동화 관련제품이 전시된다.
  • 유러코뮤니즘의 「탈 교조주의」/서병철 외교안보연교수(세평)

    ○공산주의 정당의 흥망 공산주의 정당은 2차대전이 끝난후 동유럽 현실사회주의 국가를 이끌어 오면서 승승장구하여 서유럽에까지도 적지않은 영향을 미쳐왔다. 비록 소련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당세를 확충하여 저항세력을 무력하게 만들었지만 결과적으로는 반세기에 걸쳐 공산당이 유럽의 동부 및 남동부 지역을 석권하는데 성공했었다. 이에 그치지 않고 당세를 몰아 일부 서유럽지역에까지 공산당 추종세력이 발붙이게 되었다. 마르크스가 역사적 유물론에서 선언했던 공산주의로의 역사적 귀결이 이루어질 가능성까지도 한때 내비치는 상황이 전개되기까지 했었다. 그러나 작년 후반기부터 시작돼 금년 상반기에 이르는 불과 1년 남짓한 기간에 공산당은 정치세력을 상실하고 정당으로서의 존립마저 위태롭게 되었다. 루마니아와 불가리아를 제외한 모든 동유럽국가에서 공산주의성 정치이념을 내세운 정당은 선거에서 국민들로부터 외면 당하고 군소정당으로 전락하는 수모를 겪었다. 국민생활을 도탄에 빠지게한 공산주의 체제가 혐오의 대상이 되었으며 「프롤레타리아 일당독재」는 저주받을 체제로 낙인찍혔다. ○서유럽 공산당의 쇠퇴 그러면 자본주의체제에 회의를 느낀 일부세력을 규합하여 결성된 서유럽의 공산당은 어떠한 상황에 처하여 있는가 하는 것이 관심의 대상이다. 서유럽 정치에 무시못할 영향력을 행사해 온 이탈리아ㆍ프랑스ㆍ스페인 및 포르투갈의 공산당 당수들이 1977년 3월 마드리드에 모여 행동통일을 결의하고 각국 정부의 정책결정에 적극 참여할 것과 유럽공동체에도 창구를 일원화하여 발언권을 강화할 것을 다짐할 때만해도 위세가 등등해 보였다. 그러나 80년대에 들어와서 정통공산주의자들을 제치고 사회주의자들이 대거 진출하여 정책방향을 강경에서 온건으로 전환시켰고 수구세력과 개혁세력간의 분규도 커졌다. 이와 동시에 각국 공산당의 세력이 급속도로 감퇴되었다. 특히 서유럽 공산당중에서 가장 세력이 강한 이탈리아의 경우만 봐도 지난 10년동안 30만명의 당원이 당을 떠나 오늘날에는 1백50만명으로 감소되었다. 지난 87년 이탈리아 총선거에서 공산당의 득표율이 30%에서26.8%로 줄어들었으며 그후 선거가 있을때 마다 이와 같은 추세는 계속되고 있다. 특히 당의 핵심을 이루던 20세를 전후한 젊은층의 이탈이 심하여 전당원의 3.2%에 불과한 것은 이탈리아 공산당의 앞날에 암영을 던진다 프랑스 공산당은 이탈리아 공산당보다도 더 큰 타격을 받고 있는 실정이다. 지난 10년동안 지지세력이 절반으로 축소되었으며 공산당 자체발표에 의하면 60만명이 등록된 것으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25만명 정도로 추산되어 존립자체가 위기를 맞고 있다. 78년 총선거에서 20.5% 득표했던 것이 86년에는 9.8%로 감소하였으며 88년 대통령선거에서는 6.8%에 그쳐 앞으로 실시될 국민의 의사를 묻는 행사자체에 두려움을 갖고 있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다. 스페인 공산당은 1982년 이래 당원상실,분규 및 재조직 등 격동을 겪으면서 의회선거에서 득표율이 4.6%에 그쳐 영향력행사는 옛이야기가 되었다. 포르투갈 공산당은 당원이 10만명 정도로 줄어들었고 특히 노동조합과 젊은층으로부터 외면당하고 있다. ○공산주의 신뢰 상실 이와 같이 서유럽의 모든 공산당이 쇠퇴의 길을 걷게된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보다도 유럽의 지식층에서 일기 시작한 공산주의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다. 공산당이 채택하고 있는 정책과 사회에 대한 관념 등은 당초 전통적인 사회민주주의에서와 같이 산업시대의 산물이며 그 표현이다. 즉 국영화와 같은 국가주의적 경제체제,양적인 성장,집체주의 그리고 사회주의적 발전에 대한 긍정적 전망 등이 공산당의 기본노선이었고 오늘날까지도 이에 집착하고 있다. 그러나 공업화를 이미 넘긴 시대의 서유럽이 정치ㆍ경제ㆍ사회 및 세계관에 급격한 변화를 보이고 있고 공산당은 이를 감당하지 못한다. 국가의 경제규제 기능의 범위와 성격이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게 되어 공산당의 중앙계획통제체제는 국민들의 지지를 받기에 이미 낙후되었으며 그 제도가 운영한 경제가 파탄되면서 쓸모없는 것으로 재확인 되었다. 또한 후기 산업사회에 대두된 개인중시 경향은 집단위주의 공산혁명 이론과 정면대립되며,유럽을 포괄적으로 한 공동협력추세는 공산당의국가단위세력확장 계획을 시대착오적인 것으로 만들었다. 동서진영간의 냉전체제 찌꺼기를 씻어버린 새로운 정치사상 「고르바초비즘」도 서유럽 공산당의 붕괴를 촉진시킨 결과를 가져왔다.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는 서방 자본주의 체제를 긍정적으로 재평가하고 특히 다당제 정치제도의 실적 높은 기능과 성장우선주의적 경제운영방식의 성공을 솔직하게 시인함으로써 공산주의에 대한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방향수정,명맥을 유지 한편 정통공산주의를 고집하다가는 완전히 소멸될 것이라고 예견한 선견지명이 있는 고르바초프는 서유럽 공산당들에 경직된 강경노선을 과감히 수정하도록 강력히 권유하여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의 탈출구를 찾고 있다. 특히 이탈리아 공산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자유,평등,정의,공동책임 등을 강조하는 당강령의 개정을 통하여 새로운 구심력을 획득한 것과 같이 공산이념에서 탈피하여 금세기말까지도 최소한 의석을 확보할 가능성이 있다. 또한 이탈리아 공산당은 작년 3월 개최된 18차 당대회에서 『민주주의는사회주의의 유일한 길』이라고 결의하고 『경제와 기술은 공산 혁명완수를 위한 도구가 아니며 인간생활 향상의 수단』이라고 선언함으로써 공산교리에서 이탈하였다. 이와는 달리 다른 서유럽 공산당들은 고르바초프의 「신사고」를 배격하고 공산이념에 집착하므로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하여 정당으로서의 존립자체가 위태롭게 되었다. 따라서 유럽공산당들도 결국에 가서는 탈바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이는 순수공산주의의 소멸을 의미한다. 동부에서는 정권을 상실하고 서부에서는 디디고 설 땅을 잃은 유럽에서의 현상이 지구의 다른 곳으로 파급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은 없다.
  • 한ㆍ소,무역ㆍ항공협정 가서명/새달 서울서 공식조인

    ◎수교ㆍ경협 촉진에 크게 기여/수출입등서 상호 최혜국대우/교역대금 송금ㆍ상사 분쟁중재 합의 한국과 소련은 양국간의 수출입 및 항만이용 등에서 서로 최혜국대우를 하는 것을 내용으로 한 무역협정 및 항공노선의 운영을 뒷받침하는 항공협정에 가서명했다고 15일 외무부와 상공부가 발표했다. 정부는 한소 양국간 국교가 수립되기 전이라도 무역협정ㆍ투자보장협정ㆍ이중과세방지협정ㆍ항공협정ㆍ과학기술협정ㆍ어업협정 등 6개 경제관련 협정을 체결한다는 방침이어서 이번 두개 협정 가서명으로 다른 협정체결 및 국교수립도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상공부는 이날 소련을 방문중인 한소경제회담 한국측 실무대표인 신국환상공부제1차관보가 13ㆍ14일 이틀 동안 모스크바에서 모르드비노프 소련대외경제성차관을 수석대표로 한 소련측과 고위실무회담을 갖고 양국간 무역협정안에 가서명했다고 밝혔다. 이날 하오 귀국한 신차관보는 『오는 10월 중 소련대외경제성 카투셰프장관이 내한해 양국간의 무역협정을 공식체결하게 될 것』이라고말했다. 신차관보는 또 무역협정이 공식체결,발효되면 양국의 통상장관을 위원장으로 하는 한소 공동위원회를 설치해 통상업무를 관장키로 했다고 밝혔다. 신차관보는 앞으로 내한할 카투셰프장관이 한소 각료회담과는 별도로 박필수상공부장관과의 1차 통상회담을 갖게된다고 설명했다. 무역대표부설치문제에 대해서는 양국간에 공식외교수립 이후에 자연히 설치키로 했다고 밝혔다. 이로써 한국은 지난해 2월 대헝가리수교와 함께 무역협정을 맺은 것을 시작으로 폴란드ㆍ불가리아ㆍ체코ㆍ루마니아 등 공산국 6개국과 잇따라 무역협정을 체결하게 됐다. 이번에 가서명된 무역협정안은 한소 양국이 수출입과 관련된 관세ㆍ부과금ㆍ조세와 그 부과절차ㆍ상품통관에 관한 규정ㆍ방식ㆍ수입품의 국내판매ㆍ유통ㆍ보관 등에 영향을 미치는 법규정,지급방식에 관한 통제조치,국제환거래에 대한 제재조치의 적용,수입수량제한,수출입허가,외환배정에 상호 최혜국대우를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또 상대국 상선에 대한 항만사용료 부과,항만 이용에 제공되는 여러가지 편익에서 서로 최혜국대우를 하도록 정하고 있다. 그러나 인접국과 국경관계를 원활히하기 위해 주어지는 편익과 관세동맹,자유무역지대에 주어지는 편익,개도국과 교역증대를 위해 주어지는 편익 등에는 서로 최혜국대우 조항을 적용하지 않기로 했다. 한소 양국은 이 협정에서 상사 지사 등 교역당사자에 대한 주택ㆍ통신ㆍ거주 등에 대한 편익을 제공하도록 정하고 결제통화의 자유로운 송금 및 사용에 관한 규정과 상사분쟁의 중재에 의한 해결원칙 등을 정했다. 한편 외무부는 한소 양국이 지난 14일 모스크바에서 양국간 항공협정에 가서명했다고 밝혔다. 우리측 김삼훈외무부통상국장을 수석대표로 한 대표단은 지난 12∼14일 소련측과 항공회담을 열어 이같이 합의했으며 정식서명은 오는 10월말 소 정부대표단이 방한할 때 이행할 예정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이날 『한소항공협정 가서명으로 지난 2월 대한항공과 소 국영항공사인 아에로플로트간에 체결된 쌍무협정을 정부차원에서 법적 근거를 제공,양국 항공노선이 안정된 기반위에서 운영될 수 있게됐다』며 『또한 양국 경제협력 및 수교촉진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당국자는 『항공사 지정,노선구조,여객편 증설,화물편 개설 등의 문제는 추후 실무자회담을 통해 결정해나가기로 했다』고 말하고 『한소경협협정 가서명은 이달말까지 완료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 대공산권 수출/상반기 11억불

    북방정책에 힘입어 대공산권교류가 활발한 것으로 나타났다. 무공이 8일 내놓은 「상반기 수출동향과 하반기 수출촉진대책」에 따르면 올들어 지난 6월까지 소련·중국 등 공산권 9개 국가에 대한 수출실적은 11억7천2백만달러로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6.8% 증가했다. 이중 소련은 2억1백만달러로 7백73%의 증가율을,유고 5백93%,불가리아 3백33%의 수출신장을 기록한 반면 중국은 14.1%가 감소한 6억8천만달러로 나타났다. 이들 국가에 대한 올해 수출전망치는 지난해보다 27% 증가한 24억9천1백만달러가 될 것으로 보인다.
  • 불가리아 1만명/반공산당 시위

    【소피아 로이터 AFP 연합】 1만여명의 불가리아 군중들이 26일 수도 소피아에서 사회당(구공산당) 본부에 불을 지르고 반공구호를 외치면서 독재자 토도르 지프코프 대통령 축출 이후 가장 격렬한 반정부 시위를 벌였다. 수백명의 시위자들이 불타고 있는 사회당 본부 건물안에서 서류와 집기,컴퓨터,레닌 초상화 등을 건물앞 광장에 피워놓은 모닥불에 내던지자 근처에 모여있던 1만5천여명의 시위자들은 『공산당을 불태워버리자』로 외치며 환호했다.
  • 우리안 초대 주한 루마니아대사/본지 특별인터뷰

    ◎“한­루마니아 「경협의 다리」 튼튼히 놓겠다”/전자ㆍ자동차부문 한국기업 진출바라/남북대화 지원… 통일촉진에 보탬될 터/15년간 평양근무… 주민,불만 많지만 드러내지 않아 이시도르 우리안 초대 주한 루마니아 대사. 그가 서울에 부임한지도 한달이 넘었다. 북방외교의 성공으로 봇물처럼 터진 동구권외교의 개가로 서울에는 헝가리ㆍ폴란드ㆍ체코ㆍ불가리아ㆍ루마니아 등 6개국의 상주대사관이 잇따라 개설되고 특명 전권대사가 부임했지만 우리안 대사가 유독 우리의 관심을 끄는 것은 그의 유창한 한국어 구사능력 때문이다. 에트레 산도르 헝가리 대사와 함께 난형난제의 한국어 실력을 보이고있는 우리안 대사는 그만큼 한국인에게 친근감이 가는 인물이다. 서울시내 중심부인 뉴서울호텔에 임시대사관 사무실을 설치한 우리안 대사는 기자를 반갑게 맞이하면서 한달간의 서울생활,남북한 주민의 생활상,그리고 한­루마니아관계 등에 관해 비교적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서울에는 언제 부임하셨습니까. 『7월17일 서울에 도착한뒤 19일 노태우 대통령에게 신임장을 제정했습니다. 대사관업무도 이날부터 본격 개시 했습니다. 물론 한국과 루마니아는 지난 3월30일 대사급 외교관계를 수립했구요. 어쨌든 초대 상주대사로서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서울생활도 이제 한달이 넘은 것 같은데 가장 인상 깊었던 기억은. 『외교관으로서 여러나라를 다녀봤지만 한국처럼 짧은 기간에 이처럼 높은 수준의 경제적ㆍ사회적 발전을 달성한 나라는 보지 못했습니다. 루마니아는 이러한 한국의 발전 특히 경제ㆍ과학기술분야에서 이룩한 대단한 성과를 본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점이 루마니아가 한국과의 수교를 서두른 가장 큰 원동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루마니아는 차우셰스쿠 독재정권 당시에도 북한과는 정치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유지했지만 경제적으로는 서울에 대한 관심이 무척 높았다는 사실을 덧붙여 말씀드립니다』 ­한국음식은 매우 독특한 것으로 소문나 있습니다. 그동안 지내시면서 음식으로 인해 곤란한 점은 없었는지요. 『북한ㆍ중국ㆍ인도ㆍ베트남 등 아시아지역에서 오랫동안 근무했기 때문에 커다란 불편은 없습니다. 한국음식도 지나치게 짜거나 맵지만 않다면 잘 먹습니다. 그래서인지 서양식당보다는 한식당에 자주 가는 편이고 특히 갈비와 비빔밥은 제 집사람과 함께 즐겨 찾는 식단입니다』 ­서울의 밤거리는 익숙해지셨는지요. 『낮과 밤이 확연히 구별되는 곳이 서울이더군요. (웃음) 조그만 선술집에도 가보고 포장마차에도 가봤습니다. 특히 지난번 호텔앞 포장마차에서 「꼬치」안주와 함께 맥주를 마신 일은 지금도 기억에 생생합니다』 (대사는 웃는 얼굴로 기자에게 포장마차에서 술 한잔 하자고 제안했다) ­한국어를 잘 하시는데 평양에선 오랫동안 사셨는지요. 『55년부터 60년까지 김일성대학에서 공부했고 80년에서 83년까지 정무참사관을 지낸 것을 비롯,모두 세차례에 걸쳐 평양주재 대사관에서 근무했습니다. 그러니까 평양에서 15년 가까이 지낸 셈이죠. 조선어(한국어가 아닌)를 배운 것도 이때구요. 그렇지만 83년 평양을 떠난 이후 한번도 조선어를 써보지 못해 약간의 어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물론 평양에 있을때는 KBS라디오를 통해 한국어방송도 많이 들었습니다』 ­남북한 주민들의 생활상 차이점도 피부로 잘 느끼실 것 같습니다. 『남북간에 얼마나 큰 차이가 있는지 상상하기 힘듭니다. 북한으로서도 적지않은 성과를 달성한 것은 사실이지만 아직도 많은 문제가 남아 있다고 생각됩니다. 북한주민들의 불만이 나타나지 않았다고 해서 불만이 없다고는 단정할 수 없습니다』 ­역시 한국어를 잘 하는 에트레 산도르 헝가리 대사와는 자주 만나는가요. 『서울에 부임한 이후 공식석상에서 한번 만났습니다. 에트레 대사와 대화를 나눌 때는 한국어와 러시아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만 특히 한국에 관해서 얘기할 때는 한국어만을 사용합니다. 오히려 편리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어 조선어가 달라 말하는데 어려움이 많다」고 고충을 토로했더니 에트레 대사는 「몇개월만 지나면 괜찮다」고 충고해 주더군요』 ­루마니아는 지난해 12월혁명 이후 어떤 상황이 빚어지고 있습니까. 『지난 5월20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총선거를 실시해 대통령과 국회상ㆍ하원의원을 선출했고 이에 따라 일리에스쿠정권이 새롭게 탄생했습니다. 새로운 정부는 앞으로 18개월내에 신헌법을 제정하는등 민주국가로서의 기틀을 마련해야 하는 짐을 떠맡고 있습니다. 현정부는 또한 시장경제와 사유재산을 기본골격으로 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도입해야 하는 막중한 책무를 지고 있습니다. 현재의 1백% 국가소유 형태의 경제를 30∼50% 정도 사유재산화하는 것을 이 기간동안 달성할 최대 목표로 설정하고 있습니다』 ­한국이 루마니아에 진출할 수 있는 유망분야는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TV 및 비디오 등의 전자제품과 승용차,그리고 호텔경영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이들 분야는 루마니아정부에서 상당한 신경을 쓰고 있는 분아이기도 하구요. 특히 루마니아는 이들 분야의 한국업체 진출을 활성화하기 위해 관련협정을 이른 시일내에 체결할 계획입니다』 ­한­루마니아 관계발전은 어떤 방향으로 전개될 것으로 보시는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긴밀한 유대강화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하며 이에 따라 정치적인 관계도 보다 결속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앞으로 양국간에 정부대표단의 상호방문과 민간교류가 이어져 서로를 이해하려는 노력이 계속되리라 봅니다』 ­한­루마니아 관계개선이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은. 『남북간의 좋은 분위기를 만드는데 기여한다고 생각하며 루마니아는앞으로 어느 일방만을 맹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남북 어느쪽에서든 통일과 관련된 건설적인 제안이 나오면 이를 적극 지지할 것입니다』 서울지리를 익히기 위해 가끔씩 숙소에서 이태원까지 걸어다닌다는 우리안 대사는 2시간 넘게 진행된 인터뷰도중 잘 모르는 사항에 대해서는 일일이 메모,상당히 진지한 모습을 보여줬다. 그리고 그는 차우셰스쿠정권을 무너뜨린 이후 차곡차곡 민주화를 진행시키고 있는 루마니아를 잘 소개해달라는 부탁도 빼놓지 않았다.
  • 「신 데탕트」는 어디로 흘러가나/세계 석학 기고

    ◎21세기 국제질서 다극체제로 대변환/미·소,자체문제로 골치… 「세계 경찰역」 포기/곳곳 국지분쟁… 유럽·아랍,「지중해 대립」 가능성/정치적 관심 시들… 종교가 이데올로기화(서울신문 광복 45주년 특집) 우리는 15일 마흔다섯번째 광복절을 맞는다. 해방과 분단의 45주년을 맞는 것이다. 소·동유럽의 개혁으로 세계가 대립과 갈등의 냉전질서를 청산하고 화해와 공존의 새 질서를 모색하고 있는 가운데 맞는 광복절이란 점에서 새롭고 중요한 의미를 갖는 광복절이라 할 수 있다. 소련의 민주화개혁과 시장경제 도입,동유럽의 탈소 독립 민주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과 유럽 통합노력의 가속화등으로 조성되고 있는 구질서 붕괴의 과도기적 유동상황속에 지금 태동하고 있는 새로운 세계질서 내지는 국제정치체제는 어떤 것이 될 것인가. 냉전의 이념적 대결이 사라진 가운데 터진 아랍 민족주의 갈등의 중동사태는 새 질서 형성의 방향을 시험하고 있는 느낌이다. 21세기를 지향하는 새 질서는 과연 세계의 평화와 안정과 번영을 보다 확고히하고 촉진하는것이 될 것인가. 그 연장선상의 동아시아 질서는 어떻게 전개될 것이며,붕괴되고 있는 구질서의 산물인 한반도 분단의 상황도 이제는 끝날 것인가. 광복 45주년 특집으로 새 국제정치·경제질서의 향방과 한반도 주변 열강의 새 역학관계,그리고 한반도형 통일의 바람직하고 현실적인 모델등을 내외 학자·전문가들의 시각을 통해 종합진단하고 전망해본다.〈편집자주〉 1990년은 희망으로 가득차 있었다. 동서의 대립은 막을 내렸으며 핵의 위협은 사라졌다. 자유의 바람은 어디서나 느껴지고 있으며 전제정치에 대한 민주주의의 승리는 영원히 계속될 것 같이 보인다. 또 그동안 제3세계를 괴롭히던 기아문제는 적어도 남부아시아에선 해결됐다. 이같은 보다 나은 미래에 대한 전망은 그러나 2000년에는 다소 불투명하다. 한 시대의 전환은 물론 어느 정도 평화리에 이루어진다. 그러나 2000년으로의 전환은 지난 45년이후 탄생한 국제질서가 보다 나은 새 세계질서로 새롭게 대체될 것이라는 기대를 약화시켰다. 국제질서의 붕괴,「북­남관계」의 점증되는불평 등에 대한 운명론,갈수록 심화되는 부국의 자기중심주의,게다가 이데올로기 대용으로서의 종교문제 대두 등이 이같은 사실을 말해준다. 국제질서는 기존 강대국들이 더이상 그 무엇이든 책임지려 하지 않음으로써 무너지고 있다. 러시아연방은 소련을 대체했다. 러시아연방은 민주화에 성공했으며 또한 이란·아프가니스탄 등과 국경을 맞대고 있는 연방내 이슬람 영역은 기회만 제공되면 자치를 이룰 것이다. ○달러화,기축기능 상실 그루지야·아르메니아·백러시아·우크라이나 등은 폴란드의 야심에 맞서기 위해 혹은 이슬람 제국주의로부터 자신들을 보호하기 위해 러시아와 연방을 맺고 있다. 그러나 이 거대한 결합체는 아직 정치적으로 취약하다. 연방 공화국들은 끊임없이 다투고 있으며 이로인해 모스크바 중앙정부는 어떠한 결정도 내리지 못하는 지경이다. 군주제도의 복귀는 아직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나 그것은 앞으로 영원히 논의될 중요한 과제이다. 게다가 새 러시아는 이제 막 경제·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작업에 착수했다. 이같은 일련의 상황들로 인해 러시아연방은 2000년에 자신들의 문제에 전념할 수밖에 없으며 여타문제에 관해선 신경을 쓸 수 없는 것이다. 한편 미국은 오랜기간 동안 세계 최대 강국의 자리를 지켜왔다. 그러나 미국인들은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미몽에서 서서히 깨나기 시작했다. 그들은 그들 이웃 지역에서 발생한 일에 관해 책임을 지려 하지 않고 있다. 2000년에 미국은 세계질서의 개편보다는 더 많은 도전에 직면하게 된다. 경제성장의 침체는 냉혹하리 만큼 지속돼 미국인들의 삶의 수준은 일본이나 유럽인들의 수준에 못미칠 것이며 심할 경우 한국이나 대만 수준에도 이르지 못하게 된다. 더더욱 심각한 것은 미국의 엄청난 외채문제로 달러화가 국제시장에서 신용화폐로서의 기능을 상실할지 모른다는 것이다. 미국인들은 또한 국가 정체성의 위기를 안고 있다. 유럽에서 건너온 미국인들은 2000년에는 대다수 큰 도시에서는 물론 25개주에서 소수인종으로 전락하게 되며 흑인과 스페인계가 대다수 지역을 지배한다. 미국은 또 사회복지를 위해 군비를 삭감,해외주둔기지를 철수시키고 대외적으로 안보는 아무 위협이 없다고 생각한다. 일본은 궁극적으로 미국의 뒤를 잇지 못한다. 일본인들은 미국인들이 했던 역할을 떠맡으려 하지 않고 있으며 또한 할 수도 없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제국주의에 대한 기억이 아직도 생생해 일본의 그런 역할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유럽과 북미는 일본을 불신하며 동시에 시기한다. 2000년에 있어 이들이 아시아를 대하는 공식 독트린은 보호주의다. 그러나 일본은 국제적으로 정치적 야심을 꾸미진 않으며 자신들의 가치관과 문화가 모든 국민에게 적합하다고 생각지도 않는다. 세기의 전환기를 맞아 일본 경제의 우월성이 흔들리고 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진 일이다. 위도상 북부에 위치한 산업화된 부국과 남부에 위치한 미개발 빈국 사이의 균열은 점점 상호 관련이 없어진다. 좁은 땅덩어리에 높은 임금 때문에 일본은 그들의 사업을 해외로 확장,한국 대만 등은 물론 중국·동유럽에서 라틴아메리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해외기업을 소유하게 된다. 이렇게 되면 세계 각국은일본의 기술은 물론 노하우,심지어 경영철학까지도 손쉽게 얻을 수 있어 일본은 곧 추월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러나 이같은 추세는 일반화되어 「남부」국가들 사이에서도 분열현상이 나타난다. 라틴아메리카는 연대감을 잃는다. 예를 들어 멕시코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콜롬비아 등은 경제성장과 민주주의 발전이 꾸준히 이뤄지고 있는 데 반해 안데스산맥 인근국가들의 상황은 더욱 악화된다. 마찬가지로 인도는 기아문제와 인구증가문제를 해결한 반면 아프리카는 구제불능의 상태에 빠진다. 아프리카 국가들은 이름뿐인 민주정부가 들어섰지만 여전히 부패가 만연,발전을 못하고 있다. 이슬람지역은 회교 정통주의 정권이 지나치게 명령과 평등을 강조하고 있으며 자기들끼리 싸우느라 진정한 발전이 저해당하고 있다. 2000년의 문턱에서 중동지역은 또한 내부갈등에 시달리고 있다. 터키,이라크,시리아 등은 종교적 색채가 덜한 정권이 들어서서 현대화를 꾀하는 데 반해 여타 다른 국가들­특히 산유국들­은 세계의 에너지원인 기름을 무기로 지탱하고 있다. 따라서 그들의 부는 더이상 부가 아니며 그들은 삶의 수준을 어떻게 향상시키는지 알지 못한다. 그들은 가중되는 경제혼란을 이슬람 가치의 찬양을 통해 모면하고 있을 뿐이다. ○폴란드,권위주의 회귀 1990년대를 통해 선진국들은 제3세계의 정신적 가치를 받아들였다. 사회분석가들은 미국과 서유럽내의 가난과 부랑자들의 만연이 80년대의 실업위기로 인한 일시적 현상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그렇지가 않다. 타대륙으로부터 이민의 유입과 냉혹한 경쟁으로 인해,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많은 사람들이 연금에 의존하며 근근히 살아가는 군중으로 전락했던 것이다. 이같은 상황에서 2000년대 선진국이 직면한 문제는 미개발된 타대륙을 원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 자신의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이 문제는 따라서 통합유럽의 수도인 브뤼셀에서뿐만 아니라 워싱턴에서도 주요 정치현안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같은 사태 발전은 지중해지역에 새로운 분쟁을 야기했다. 유럽에서는 주요 국제현안이던 동서대립이 중단됐다. 2000년 유럽의 분쟁은지중해에서 일어나게 되며 이때 유럽은 기술적 이점을 활용하는 데 반해 아랍은 수적 우세와 과격성을 내세우게 된다. 또다른 분쟁지역은 팔레스타인 문제와 이스라엘­아랍분쟁이 계속되는 중동지역이다. 같은 지역의 이라크,시리아,회교정통국가들간의 충돌도 피할 수 없을 듯 보인다. 1990년 발발했던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사건은 이러한 전망의 예행연습이었다. 만일 이같은 전쟁이 발발하게 되면 최신 무기로 무장한 나라가 승리할 것이며 그때 이란은 호메이니 때와는 달리 이슬람국가를 일방적으로 지지하지는 않는다. 중국도 90년대말쯤에는 주요 관심사항으로 부각된다. 공산체제가 와해된 이후 설립된 불안정한 민주정부는 진정한 통치력을 확보하지 못하며 경제적 관점에서 볼 때 또다시 옛날처럼 분열된다. 해안에 위치한 지역들­특히 상해와 홍콩­은 각광받은 도시로 엄청난 변화를 겪게 되겠지만 내륙도시는 발전이 부진하게 된다. 중국인에게 자유란 희망이 없는 곳을 떠나 새 삶을 이룰 수 있는 것을 의미하겠지만 그같은 희망이 어디서나 나타나지는 않는다. 90년대 10년간 유럽에는 균형이 존재했었다. EC 12개국으로 유럽연방이 이루어졌고 오스트리아 헝가리 체코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럽의 외교적 활동은 바로 이같은 이유 때문에 정지된다. 유럽은 이제 한 목소리로 이야기할 수 없게 됐다. 2000년에 브뤼셀의 정부는 아무 결정권이 없는 하나의 관료체제가 될 뿐이며 또 이러한 상황은 10년은 더 계속된다. 이 기간은 유럽이 내부적인 정치행태를 공고히 하는 데 필요한 시간이다. 게다가 유럽동맹은 소련과 동유럽의 재건을 도와주느라 바쁠 뿐이다. 이 기간동안 유럽은 말뿐이지 진정 세계질서에 관심을 갖지는 못한다. 동독의 서독으로의 경제통합은 불과 4∼5년 만에 이루어졌다. 체코와 헝가리의 사회·경제적 회복은 그다지 어렵지 않게 달성됐다. 농업적인 측면에서 보면 그 나라들은 공산주의가 남긴 대규모 농장에서 더 많은 이익을 얻었고 사유화가 이루어지자 서유럽의 소규모 농장들과 경쟁해서 이겼다. 그러나 전체적으로는 손실이었다. 유럽동맹의 농업문제는 전보다 나빠졌다.이제 2000년에는 적은 농업규모를 가지고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해야 한다. 잉여농작물에 대해 계속 보조금이 지급되어야 하나 아니면 환경을 보호하기 위해 살던 곳에 머물라고 돈을 주어야 하나. 이러한 문제들은 동유럽국가들이 안고 있는 문제들에 비하면 사소한 문제에 지나지 않는다. 바웬사대통령의 반독재통치정부이후 폴란드는 민주주의를 회복하려 하지만 바웬사는 여전히 막후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다원적 민주주의 발달 루마니아에선 다수의 지지를 얻지 못해 계속 정권이 바뀐다. 불가리아의 상황은 그래도 좀 낫다. 그러나 90년대 정치적인 안정은 이루었으나 경제적인 문제는 해결하지 못했다. 유럽은 다시 두개로 나뉘어진다. 그 정도가 완화는 되었으나 여전히 격차가 있는 이 양자 사이에 이민이 계속된다. 폴란드와 루마니아에서는 권위주의체제로의 복귀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있다.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가능성 또한 여전하다. 2000년의 새로운 세계에 있어선 또한 인간의 정신자세에 변화가 나타난다. 무엇보다도 먼저 인간문제를 영원히 해결해준다는 어떠한 혁명적 이데올로기도 통용되지 못하며 대부분의 사회에 있어 다원주의적 민주주의가 비교적 덜 나쁜 정부로 인식된다. 또한 국민들은 정치에 점점 무관심해지고 현실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되며 동시에 정치적인 유토피아에 대한 회의론이 증대된다. 공산주의 독재정권의 붕괴는 마르크스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뒤이은 필연적 결과일 뿐이며 2000년에 마르크스 이론은 고려할 가치도 없는 것으로 간주된다. 동시에 학자들과 일반인들은 공히 「혁명은 독재를 낳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또한 혁명은 역사를 후퇴시키며 또다른 문제를 낳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또 불평등은 선동연설이나 기적에 대한 확신 또는 속죄양을 내세워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돼 2000년에 혁명을 부르짖는 게릴라그룹은 없어진다. 이데올로기가 내세운 유토피아가 거부되는 현상은 왜 다원적 민주주의가 인본주의 정치의 상징이 되는가 하는 것을 설명해준다. 많은 사람들은 진짜 민주주의를 경험을 통해 알게 된다. 그들은 자신들이 한때 시민이 아니라 놀란 노예였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형식적인 민주주의의 성문화된 권리나 보장이 자유와 사회발전을 저해하는 요소였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이같은 발견은 값비싼 대가를 치르고 얻어진다. 2000년 시민들은 정치가를 믿지 않으며 그들의 목적은 단지 선거에 당선되는 것뿐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때문에 선거에 기권하는 유권자는 늘어나고 이로인해 민주주의에 불만을 갖는 목소리는 충분히 전달되지 못한다. ○내세·구원문제 눈돌려 그러나 민주주의의 이상적인 목표는 사라지지 않는다. 그들은 수많은 종교적 정서에 자신을 의지하게 된다. 예를 들어 회교도들에게 이슬람적인 신념은 민주주의에 반하는 것이다. 인간을 다스리는 것은 신에게 부여된 능력이지 인간에게 부여된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신념은 세계의 서구화에 직면,이슬람 특유의 정치를 표현하게 된다. 게다가 그것은 이 세계에 침투해 있는 모든 악에 맞서 도덕적인 저항을 하게 된다. 2000년대 문턱에서 이같은 태도는 특이한 것은 아니다. 인도에서는 힌두교가 국가의 정치성을 표현했다. 산업화된 아시아국가에서는 불교가 다시 번성하고 그것은 1천년 일상생활의 사소한 문제에 맞서 정신적인 균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주게 된다. 일본은 매우 종교적인 나라는 아니지만 전통적인 신도가 새롭게 번성하게 된다. 정치성에 관한 관심이 종교의 유일한 동기는 아니다. 이미 90년대 후반에 많은 사회에선 물질적 욕구에서 얻는 상대적 불만족이 다른 기대를 발생시켰다. 그래서 내세와 영원한 구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졌다. 기독교사회에 있어선 신비주의가 새로운 경향이 됐다. 종교지도자들은 사회정의나 제3세계를 위해서 보다는 개인의 구원에 더 관심을 갖게 된다. 종교분파는 급속하게 증가하고 신과의 교감이 다시 깊은 관심사항이 된다. 2000년의 세계는 인간의 사고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지는 않는다. 그러나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는 근본적으로 다른 새로운 세기의 시작을 알리는 그러한 시대인 것이다. □기에르메 ▲1934년 파리 출생 ▲파리대학 졸 ▲정치학박사(비교정치학) ▲파리정치대학교수(현재) ▷저서◁ 「비교정치론」 「반민주 민중론」 「민주실천의 사회학」 「민주주의의 역설」
  • 서독미군병원「독가스」치료장비 확충/“일촉즉발 위기”… 중동의 현장

    ◎불,이라크원유 선적 유조선 입항 거부/“미군주둔은 방어용”사우디왕 첫 회견/이스라엘선 신형 애로 지대공미사일 실험 발사 ○…프랑스는 9일 이라크산 원유를 싣고 입항하려는 그리스선적 유조선의 입항을 불허했다고 해운소식통이 전했다. 유조선 안드로스 아틀라스호는 이라크산 원유 1백50만배럴을 싣고 르아브르항에 정박하려 했으나 프랑스 당국에 의해 입항이 거절돼 네덜란드 로테르담으로 향했다. 네달란드도 대이라크제재에 동참하고 있으나 지난 주말 이전에 선적분에 대해서는 입항을 허용하고 있다. ○병상도 갑절로 늘려 ○…미국밖에 있는 미군병원으로서는 세계에서 가장 큰 서독 비스바덴 소재 공군기지병원이 점증하고 있는 페르시아만 위기상황에 대처,병상수를 종전의 2백50개에서 5백개로 배증시켰다고 9일 발표했다. 미확인 보도에 따르면 프랑크푸르트 부근에 있는 이 병원은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것에 대비해 독가스 희생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장비도 구비해 놓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병원 대변인은 이를 부인했다. 이병원은 지난번 레바논에서 석방된 미국 인질들을 치료한 적이 있다. ○…이라크 수도 바그다드에 머무르고 있는 미국인들은 「특별한 위기」에 처해 있으며 바그다드 국제공항에는 대공포대가 둘러싸고 있다고 이라크로부터 국경을 넘어 요르단에 도착한 서방인들이 8일 전했다. 약 2백명의 외국인들이 7일 밤 바그다드로부터 요르단 수도 암만에 도착했다고 프랑스의 TF­1TV가 보도했다. 이 가운데 포함돼 있는 유일한 미국인인 제프 에드워드씨는 『이라크에 있는 미국인들이 특별한 위험에 처해 있기 때문에 전투가 벌어지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영군도 사우디 도착 ○…파드 사우디아라비아 국왕은 사우디가 외국의 군사지원을 모색키로 결정한 것은 이라크의 쿠웨이트 침공에 따른 방어적인 움직임이라고 9일 말했다. 그는 이날 TV로 사우디 전역에 중계된 연설에서 이라크가 쿠웨이트로부터 철수할 것과 쿠웨이트 왕실의 권력복귀를 촉구했다. 이날 연설은 이라크가 2일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후 파드 국왕이 밝힌 첫 공식 성명이다. 또 그는 미군뿐만 아니라 영국군도 이미 사우디에 도착했다고 말했다. ○…이라크로부터의 공격위협에 대비,무장태세를 강화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9일 미국의 자금 제공으로 개발한 애로 지대공 미사일을 시험 발사했다고 목격자들이 전했다. 이번 애로 미사일 발사 시험은 당초 수주전 계획됐었으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이 8일 이스라엘이 이라크를 공격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만일 이라크가 공격당할 경우 대규모 보복전을 전개하겠다고 위협한지 하루만에 실시된 것이다. ○외유각료 긴급 소환 ○…이라크의 화학미사일 공격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고조되고 있는 가운데 이츠하크 샤미르 이스라엘 총리는 9일 외유중인 전 각료들의 긴급 귀국을 명령했다. 화학무기 공격가능성에 대한 우려는 이스라엘이 페르시아만 공습에 참가하기 위해 이라크전투기들에 미국전투기 색깔을 칠하고 미군조종사 신분증을 발급받았다고 이라크 군대변인이 주장한데 따른 것이다. 이에 대해 이스라엘 관리들은 이라크측 주장을 강력 부인하면서 그같은 주장은 다국적군의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에 대한 위협이 가중되고 있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한 공격 가능성을 증대시킨 것이라고 말했다. ○동구권도 제재 가담 ○…전통적으로 이라크와의 교역이 활발했던 동구권 국가들이 대이라크 제재조치에 가담하고 있으며 한편으로는 경제제재가 가져올 문제에 대해 우려하고 있다. 체코와 불가리아가 8일 제재를 발표한데 이어 헝가리도 곧 제재조치를 발표할 예정. ○…사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9일 쿠웨이트 괴뢰정부의 총리이자 자신의 사위로 알려진 알라 후세인 알리 대령을 이라크의 부총리로 임명했다고 이라크 관영 INA통신이 보도. 이 통신은 또 후세인 대통령이 전원이 영관급인 쿠웨이트 괴뢰정권의 각료 8명을 장관급의 대통령 보좌관으로 임명했다고 전했다. ○섭씨 50도 열사가 적 ○…16시간의 비행끝에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수천명의 미군은 이란ㆍ이라크전으로 단련된 이라크군보다 사막이라는 혹독한 적을 더 두려워해야 할듯. 군사관측통들은 거의 섭씨 50도에 육박하는 열사와 하루에 최소한 6갤런의 물을 마셔야하는 더위,모든 광학기기의 열파에 의한 손상,지상이동의 어려움,화학무기 사용가능성 등이 미군의 작전에 어려움을 주는 요인들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쿠웨이트 망명정부는 8일 석유운영을 영국에서 하겠다고 발표했다. 쿠웨이트석유회사(KPC)는 이날 성명을 통해 『쿠웨이트 국영석유회사와 협력관계에 있는 KPC와 쿠웨이트 석유탱커회사(KOTC)는 런던지사에서 운영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보험료 40배나 인상 ○…런던의 로이드선박 보험회사는 8일 페르시아만에서 전쟁위협이 고조됨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으로 향하는 선박에 대한 전쟁위험 보험할증료를 종전 보험가액의 0.025%에서 1%로 40배나 전격 인상. ○이라크외무 처형설 ○…미국 및 중동의 외교관들은 타리크 아지즈 이라크 외무장관이 쿠웨이트의 침공에 반대,처형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믿고 있다고 소식통들이 8일 밝혔다. 이 소식통들은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의 동료이기도 한 아지즈가 지난 2일 이라크가 쿠웨이트를 침공,괴뢰정부를 수립한 이후 모습을 보이고있지 않다고 전언. 지난주 열렸던 아랍연맹 및 회교회의기구에 다른 국가들이 외무장관을 파견했던데 반해 이라크는 내무장관과 다른 정부관리들을 대표로 참석시켰었다. ○방호복등 완전무장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에 배치된 미군들에 대해 이라크가 화학무기를 사용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콜린 파월 미군 합참의장이 8일 말했다. 파월장군은 이날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브리핑을 통해 이같이 말하고 사우디 현지로 파견된 미군부대들은 이라크의 화학전에 대처하기 위해 방호 마스크와 피복ㆍ화학무기에 의한 오염을 치료할 의약품을 장비하는 등 완전한 준비를 했다고 밝혔다. ○후세인은 정보 부재 ○…군사분석가들은 미ㆍ이라크 쌍방이 군사대결의 방향으로 가고 있는 와중에서 과실로 총격전이 벌어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하고 지난 87년 5월 이라크의 미사일이 실수로 미함 스타크호에 발사되고 88년 7월에는 미군이 실수로 이란여객기를 격추시킨 사건이 있었음을 상기시켰다. 미 행정부 관리들은 『한가지 문제는 현 사태에 관해 후세인 대통령이 접하고 있는 정보가 얼마나 정확한지를 아무도 알 수 없다는 점』이라고 지적하고 후세인 대통령은 그에게 나쁜 소식은 전하지 않으려는 「맹종자」들에게 둘러싸여 있다고 말했다.
  • 외언내언

    지난해 11월 동독에 한창 자유화의 바람이 불어닥치자 북한은 서둘러 5백명을 넘는 유학생들을 소환했다. 영사관에서 평소 이들의 여권을 보관하고 있어 소환조치는 간단히 이루어졌다. 또 비슷한 시기에 체코에서도 수백명의 북한 유학생들이 수업을 중도 포기한 채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폴란드나 불가리아와 같은 다른 동구국가에서도 이런 일이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동구권에서 일고 있는 자유화의 엄청난 바람이 북한에까지 밀어닥칠 것을 우려한 대응조치였다. 밖에 나가 있는 사람들을 모두 불러들이고 문을 꼭꼭 잠금으로써 바깥세상과 단절시키겠다는 궁여지책으로 이런 발상이 나왔다고밖에 볼 수가 없다. 북한과 오랫동안 우호관계를 맺어온 동구의 국가들이 문을 활짝 여는 판인데,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체코에서 만난 북한의 한 유학생은 『그렇다고 자유화의 실상이 감춰지겠느냐』며 불만을 토로하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최근 북한은 그동안 소련과 합영으로 운영해온 모스크바시내의 「평양식당」의 문을 닫았다고 들린다. 김일성배지를 단 종업원들이 일하고 있는 이 식당은 얼마 전부터 모스크바방문 한국인들이 대거 이용함으로써 단순한 식당의 범위를 넘은 어떤 의미를 우리에게 주어왔다. 그런데서 심심찮은 화제를 전하기도 했다. 그것은 이곳이 남북한 사람들이 쉽게 만나고 여러 대화를 나누는 장소가 돼왔기 때문이다. ◆바로 그이유 때문에 북한은 이곳마저도 폐쇄한 것으로 생각된다. 「만남의 장소」로 활용되는 것이 북한은 싫었고 불안했을 것이다. 저들이 당초 기대했던 것과는 달리 이곳이 남한 인사들의 모임장소가 되고,북한의 관계자들이나 유학생들과의 대화가 달갑지 않았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문을 닫는다고 대화·교류가 막아지겠는가. 또 언제까지나 이런 식으로 기피할 것인가. 문제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인위적으로 막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서로 만나고 대화의 장을 폭넓게 펼쳐나가는 것이 지금 중요하다. 북한은 그것을 알아야 된다.
  • 불가리아 내각 총사퇴

    【소피아 UPI 연합 특약】 안드레이 루카노프 불가리아 총리는 7일 새로운 내각구성을 위해 각료전원의 사직서를 의회에 제출했다. 관영 BTA 통신은 『루카노프총리가 이날 40년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지난 선거의 결과에 따라 이날 각료전원의 사직서를 의회에 제출했다』고 보도했다.
  • 동구권 물가고에 시름/체코등 생필품 갑절 올라

    ◎사재기 열풍에 정부선 배급제 고려/가격보조금 폐지ㆍ소의 원유감축 기인 【빈 AFP 연합 특약】 동구권국가들이 가격보조금 폐지와 소련으로부터의 원유공급 감소로 인해 전례없는 물가폭등을 겪고 있다. 체코는 7월초부터 식료품가격을 60∼1백% 인상하는 충격요법을 쓰기 시작했다. 소련의 원유공급이 30% 감소됨에 따라 원유소비를 줄이기 위해 유가는 50% 인상했다. 이 때문에 전국적으로 사재기현상이 일어 정부는 휘발유 배급제 실시마저 고려하고 있다. 헝가리는 연초부터 평균 35%의 물가상승이 이뤄졌음에도 불구,이번주부터 휘발유 20%,술과 담배 25% 인상조치를 단행했다. 루마니아도 18일 휘발유 1ℓ당 9레이에서 15레이(약 5백50원)로 70% 인상했다. 신문과 광천수 등은 품귀현상을 보여 값이 거의 2배 가까이 올랐다. 불가리아도 가격자유화 정책을 추진한 결과 6월의 소비자물가는 5월에 비해 평균 4% 올랐고 연간 인플레율은 50%에 이르고 있다. 유가는 아직 인상되지 않았으나 주유소는 휘발유를 사려는 사람들로 1㎞이상의 장사진을 이루고있다. 폴란드만이 연초부터 가격개혁을 실시한 덕택에 올들어 인플레율이 3.8%에 그치고 있으나 9월중 주택임대료가 2백% 인상될 예정이다.
  • 불가리아 민선의회/개원후 첫 회의 개막

    【소피아 로이터 AP 연합】 45년만에 최초의 자유총선을 통해 구성된 불가리아의회는 17일 개원후 첫 전체회의를 열고 신임대통령 선출문제를 비롯한 국정현안들에 대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했다. 그러나 이날 회의가 개막되자마자 여당인 사회당(구공산당)의 대통령후보연설을 듣는 문제를 둘러싸고 야당의원들이 사전에 이뤄진 여야지도부간의 합의내용을 미처 모른채 연설자체를 저지하려는 행동을 보이는등 소란이 빚어졌다. 이와 함께 의사당밖에서는 민족주의를 내세우는 불가리아인 1백50여명이 국기를 들고 『불가리아,불가리아』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경찰의 저지망을 뚫고 의사당안으로 들어가려는 등 불가리아는 민선의회 개원직후부터 민족주의세력과 최대 규모의 소수민족인 터키인들간에 민족감정이 악화되면서 긴장이 고조되고 있다.
  • 공산권 8국 군관계자 올 국군의 날 행사 초청

    국방부는 17일 우리나라와 외교관계를 수립한 공산국가들과의 군사외교를 강화하기 위해 오는 10월1일 건군 42주년 「국군의 날」 행사에 이들 국가의 군 관계자들을 공식초청키로 했다고 밝혔다. 국방부는 또 지난해 수교한 헝가리ㆍ폴란드ㆍ유고슬라비아에 있는 한국대사관에 무관파견을 검토중이다. 올해 「국군의 날」 행사에 군 관계자들이 초청될 공산권국가는 체코슬로바키아ㆍ루마니아ㆍ불가리아ㆍ몽고ㆍ알제리 등 8개국인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국방부는 국군조직법 개정안의 국회통과로 오는 10월1일 건국이후 처음으로 출범하는 통제형 합참의장제도하에서 「국군의 날」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를 계획이며 이 행사의 주제를 「하나로 되어 통일」로 정하고 민과 군이 한마음 한뜻으로 뭉쳐 통일의 계기를 마련한다는 취지로 민의 참가를 대폭 늘릴 방침이다. 국방부는 과거 무력시범과 제식훈련 위주로 치렀던 국군의 날 행사를 올해는 국민 모두가 축제의 행사에 참여하는 범국민적 행사로 만들기 위해 학생과 근로자대표등도 참여시킬 계획이다.
  • 불가리아 의회 개원/새대통령 선출할듯

    【벨리코 투르노보(불가리아) 로이터 AFP 연합】 지난 45년이후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총선 결과에 따라 다당제로 구성된 불가리아 의회는 10일 점차 고조되고 있는 소수민족문제와 정치적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10일 하오 옛 수도 벨리코 투르노보에서 정식 개원했다. 지난달 선출된 불가리아 의회는 이번 회의를 통해 헌법 초안을 작성하는 한편 지난 6일 사임한 페트르 믈라데노프대통령 후임을 선출하고 새로운 행정부를 구성할 총리를 임명할 예정이나 아직 의제 자체가 모호한 상황이다.
  • 불가리아,당 대회 소집/반정 소요 대처방안 논의

    【소피아 AFP 연합 특약】 불가리아 집권사회당(전 공산당)은 8일 광범위하게 번지고 있는 반정부 소요에 대처키 위해 특별 당대회를 소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반정부시위대가 믈라데노프대통령의 사임을 축하하면서 8일에도 시위를 계속하고 있는 가운데 사회당 지도자들은 7일 긴급회의를 갖고 당 대회를 열기로 결정했다. 이날 회의가 끝난 뒤 당 의장 릴로프는 「의회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모든 당원과 지지자들이 동원돼야 한다고 촉구하는 한편 당은 당 대회 때 모든 수준에서 확고한 태도로 개혁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 신임대사 9명에 노대통령 신임장

    노태우대통령은 26일 상오 청와대에서 김좌수 주불가리아대사,노영찬 주프랑스대사,이현홍 주루마니아대사,선준영 주체코대사,한석진 주알제리대사,권영순 주몽고대사,김일건 주네팔대사,김항경 주미얀마대사,김승영 주에티오피아대사 등 9명의 신임대사에 신임장을 수여했다.
  • 불가리아,또 반정시위/4만명/선거부정 규탄… 사회당퇴진 요구

    ◎정부,무력진압 경고 【소피아 로이터 연합】 수만명의 반정부 시위자들이 25일 불가리아 수도 소피아 중심가에 모여 현정부의 퇴진을 요구했으며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요구하며 연좌농성에 들어갔다. 4만여명의 시위자들은 이날 소피아 중심가에 있는 광장에 모여 야당인 민주세력연합(UDF)의 푸른색 당기를 흔들면서 『사회당(BSP)은 물러가라』 『사회당은 마피아였으며 지금도 마피아다』,『퇴진,퇴진』이라는 등의 반정부 구호를 외쳤다. 시위자들은 또 이달초 40여년만에 처음으로 실시된 자유총선거에서 불가리아사회당(구공산당)이 부정을 저질렀으며 선거결과를 조작했다고 비난하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1만5천명의 학생들은 연좌농성에 들어갔는데 이들은 이번 선거에서 행해진 부정선거 사례의 발표를 요구하고 있는 많은 교수들의 지지를 받고 있다. 한편 불가리아정부는 26일 학생들의 시위를 종식시키기 위해 무력을 사용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불가리아내무부는 성명을 통해 『학생들의 스트라이크는정치적인 행위』라고 비난했다.
  • 재미작가 김은국씨의 「민족사적 6ㆍ25론」

    ◎한민족,자의건 타의건 「자유로운 삶의 길」로/“살상ㆍ폐허ㆍ굶주림” 고정관념 벗어날때/개개인의 체험 역사적 맥락서 조망해야/반억압 선택은 바로 「인간해방의 길」/이제야 변혁하는 동구를 보니 큰 대가 치렀지만 값진 경험/서울신문 6ㆍ25 40주 특집 6ㆍ25니 8ㆍ15니 그러한 개인적으로나 민족적으로나 어마어마한 뜻을 갖고 있는 역사적인 날이 찾아올 때마다 느끼는 것들 중의 하나이지만 우리는 참으로 쓸데없이 거창하고 모호한 말을 즐겨쓰는 민족이라는 것이다. 왜 그런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문을 토대로 한 우리의 언어의 덕분인지 아니면 우리 민족에 개인적이든 공동체적이든 세상의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심리적인 특이한 태도가 있어서 그런지는 알 수 없지만 흔히 겉잡을 수 없는 허황한 상투용어로 한마디하고 넘어가 버리는 버릇이 있다. 8ㆍ15가 오면 언제나 「과거 36년간 혹독한 일본 제국주의의 통치」로 시작하고 끝나고 6ㆍ25가 오면 으레 「동족상잔의 비극」으로 시작하여 「조국분단의 쓰라림」 등으로 끝난다. 상투용어란 것은 사람들이 너도나도 써먹어 오다보니 누구나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말처럼 그럴듯하게 들리는 것이지만 따져 보면 반드시 그렇지도 않다. 그러니까 한번쯤은 다른 사람들이 쓰는 상투용어를 빌려 쓰지 말고 자기의 말로써 인생의 경험을 이해하려고 애써 볼 만하다. 그렇지 않으면 무엇을 아는 것 같으면서도 모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요사이 한국에서 흔히 듣는 말이지만 「6ㆍ25를 모르는 세대」라는 표현이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개는 「6ㆍ25를 모르는 세대」가 이렇고 저렇고 할때 풍기는 뜻은­그런 표현을 쓰고 사람들에게서 오는­그 세대가 좀 한심하다는 것이다. 그 세대가 한심한건 말건 그것은 둘째로 치고 우선 그러면 그 표현이 내포하는 즉 「6ㆍ25를 아는 세대」는 과연 6ㆍ25를 얼마나 어떻게 알고 있는가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된다. ○인생과 역사의 결합 누가 시작한 진담­농담인지는 몰라도 어린애들(물론 6ㆍ25를 모르는)에게 6ㆍ25때 얼마다 먹을 것도 없고 고생했었던가 하는 이야기를 해주었더니 그 애들이 「그럼 왜 라면이라도끓여먹지 않았냐」하더라고… 원 그런 어처구니 없는 한심한 것들이 어디 있겠느냐는 것이다. 물론 「6ㆍ25를 아는 세대」가 6ㆍ25때는 먹을 것도 없고 입을 것도 없고 피란만 다녔다는 식으로 「고생」했다고 말을 시작하면 어린애들은 역시 그런 식으로 반문을 할 것이 뻔하다. 고생했다,굶었다,헐벗었었다,많이 죽었다,도시는 폐허가 됐었다,가족이 흐트러졌다­물론 6ㆍ25의 경험속에는 그런 것들이 다 들어간다. 6ㆍ25라는 것이 빚어낸 현상이며 결과이다. 그러나 그것들은 6ㆍ25를 참으로 설명해 주지도 않고 해줄 수도 없다. 경험이란 것은 왜 그 경험이 있게 되고 그 경험이 나에게 무엇을 주었는가를 알지 못하면 그 경험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없지 않을까. 그러니 한편으로는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공동체가 쓰는 상투용어로,또 한편으로는 「고생했다」는 개인이 쓰는 역시 상투용어로만은 6ㆍ25와 같은 어마어마한 민족공동체적 개인적인 경험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기가 힘들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6ㆍ25를 체험한 세대에게나 6ㆍ25를 모르는 세대에게나 마찬가지의 문제라고 본다. 이러한 문제를 푸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역사관,그 역사관과 개인을 연결시켜주는 개인의 인생관­나는 이렇게 살고 싶다하는­가치관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렇게 생각할 때 나에게는 6ㆍ25는 「선택」의 경험이라고 여겨진다. 그 「선택」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있었다고 본다. 하나는 개인적인 한가지 한가지의 「작은 선택」들이고 또하나는 커다란 역사적인,나아가서는 철학적인 「커다란 선택」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커다란 역사적인 철학적인 「선택」이 처음부터 있었던 것은 아니다. 그것은 나중에 온 것이다. 우선 「작은」 선택들이 모이고 쌓이고 하다 좀더 철이 들고 배우고 사색하게 되면서 그 개인과 역사를 연결시켜 주는­인생관과 역사관의 결합을 보았다고 할 수 있다. 나는 고향이 이북이어서 8ㆍ15를 이북땅에서 맞았다. 그 덕분에 남한으로 넘어오기 전 3년여를 북한식 공산주의체제 밑의 생활을 경험하였다. 그러한 경험에 바탕을 둔 「작은 선택」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이 글에서는 내게 중요한몇개만을 들어보겠다. 첫째로 생각되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의 특이한 「작은 역사」를 무시하고 말살시키려는 주의와 사상을 거부하고 그것에 반항하는 「선택」이라고 할 수 있다. 북한의 공산당 권력체제가 주장하고 실행한 소위 계급투쟁으로 「소지주 계급」의 낙인이 찍힌 우리는 모든 재산을 빼앗기고 고향에서 추방을 당했다. 그때의 우리의 재산이란 한때 가난했던 조부모님이 일하고 저축하여 쌓았던 것이다. 빈곤으로부터의 해방을 바라고­본인들과 후손의­노력해온 그들의 구체적인 「작은 역사」는 「계급투쟁」이라는 추상적인 커다란 주의ㆍ사상으로부터 아무런 이해와 「용서」를 받지 못하였다. 그 경험은 개개인의 작은 역사를 이해하고 존중해야 한다는 가치관을 나에게 심어주었고 그것을 말살시키려는 주의ㆍ사상ㆍ정치체제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정치관을 갖게 했다. 또한 그러한 소위 「계급투쟁」의 발단,심리적 원시점은 인간의 가장 천한 본능에 두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의 것을 탐내고 남을 시기하는 원시적인 본능을 부추겨서 『잘산다』 『못산다』의 개념과 정의를 오로지 물질적인 차원에만 두는 가엾은 인생의 가치관을 보았고 나는 그러지 않겠다는 「선택」을 했다. 나아가서는 그러한 추한 인간의 본능을 『그럴듯한』 정치이념과 주의로 장식하여 인간의 증오심을 정의감으로 가장시켜 그것을 이용하여 권력을 잡으려는 어떠한 사상에는 반항해야 한다는 「선택」을 했다. 목사이셨던 외조부께서 일본통치하에서도 억압을 당하시고 북한공산체제 밑에서도 억압을 당하시는 것을 경험하고 「나의 외조부님을 억압하는 자들」에게의 반항의 「선택」에서 시작하여 특정한 종교를 믿지 않는 입장이면서도 「종교의 자유」 「신앙의 자유」를 보장하지 않는 정치이념ㆍ주의사상은 반대해야 한다는 「선택」을 하였다. ○한국은 운좋은 나라 그렇게 하여 내가 6ㆍ25가 일어나기 얼마전 남한으로 넘어 왔을 때는 이미 수많은 작은 「선택」들이 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6ㆍ25가 왔을 때 그 전쟁은 나에게는 혹독하게 말한다면 죽느냐 사느냐의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었다.「나」를 없애버리려는 권력에는 방항ㆍ대항해야 하는 선택밖에는 없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 대한민국이 더 좋아서 더 귀중해서 대한민국을 사수하기 위해서 참전한 것 같지는 않다. 또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어쩌니 하는 감상을 품고 전쟁을 겪은 것 같지도 않다. 우선 「나」라는 하나의 인간의 「자신」이 살아 남아야겠다는 것 뿐이었다고 할 수 있다. 개인의 개성,특이한 작은 역사,개인의 존엄성­이러한 것들이 보존되고 살아 남아야겠다는 신념과 행동의 선택에서 이윽고 자유에의 「선택」이 있게 됐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한 인생관 가치관이 그 당시에는 지극히 구체적인 것이었으면서도 이념적으로는 뚜렷한 것은 아니었다고 하겠지만 그것이 훗날에 「나」라는 하나의 개인과 그 개인의 경험을 역사와 연결시켜주는 역사관을 찾았을 때 6ㆍ25를 비롯한 지난날의 경험을 좀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오늘의 나는 인간의 역사를 이렇게 생각한다. 즉 인간의 역사는 「해방」으로의 과정이라고 본다. 자연의 공포와 횡포로부터의해방,질병으로부터의 해방,굶주림으로부터의 해방,무식으로부터의 해방,인간이 타인에게 행하는 무자비한 잔인으로부터의 해방­끝없이 많은 인간해방이 필요하고 하나하나씩 이루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말하자면 「자유」로의 행진이라고도 할 수 있다. 참혹한 인간역사의 사실이 증명하듯 그것은 하루이틀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꾸준한 해방의 과정은 조금씩이나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여가고 있다고 믿는다. 그렇게 믿는다면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해야 한다. 개개의 구체적인 경험과 그 경험을 바탕으로하여 여러 작은 「선택」을 해온 나로서는 그러한 역사관을 「선택」하지 않을 수 없었겠지만 그럴 수 있었다는 것을 지극히 행복하게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6ㆍ25란 나에게는 하나하나의 개인이 나름대로의 해방을 찾고 자유를 찾아야 한다는 인생관과 역사관을 얻게 해준 경험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흔히 진담­농담으로 말하듯이 대한민국은 참으로 운이 좋은 나라라고 생각한다(그렇게 말할수 있는 나도 운이 좋은 사람이 되겠지만). 6ㆍ25는 대한민국에도 역시 하나의 「선택」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 전환기라고 할 수 있다. ○싫건 좋건 이끌린 삶 강대국간의 냉전이니,국제정세의 배경이니,국토의 분단이니­「동족상잔의 비극」이니­그런 것들을 지금 이 자리에서 생각할 필요는 없다. 다만 6ㆍ25라는 역사적 사건과 경험은 한국으로 하여금 되돌릴 수 없는 그야말로 역사적인 선택을 하도록 했다. 그 「선택」으로 한국은 공산주의 체제가 아닌 자유주주의체제 쪽으로,공산주의의 국가통제경제가 아닌 자유시장경제체제 쪽으로,그 당시에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이끌려 간 것이다. 그리하여 온갖 우여곡절을 거치면서도 싫건 좋건 알건 모르건 간에 개개인의 역사가 존중되고 개개인의 나름대로의 자유가 존중될 수 있는,앞서 말한 인간해방의 역사관의 과정에 참여하게 된 것이다. 이것은 우습게 볼 일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반드시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가 의식적으로 또한 고의적으로 그러한 역사의 길을 기꺼이 선택했다는 말은 아니다.한국이 운이 좋은 나라라는 말이 그래서 나오게 된다. 6ㆍ25를 전후한 국제정세와 6ㆍ25라는 처참한 경험을 겪고 살아남은 한국은 어쩌다 싫건 좋건 그러한 길을 선택하게 됐고 그리하여 오늘의 한국을 이루게 된 것이다. 그러한 선택을 한 이상 한국은 어쩔 수 없이라도 한걸음 한걸음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 끼여 따라가게 돼있다. 지난 몇년동안 한국에서 일어난 정치적 사회적 경제적인 변화와 발전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가리라 생각한다. 커다란 인간역사라는 것은 하나하나의 개인은 물론 국가사회라는 공동체도 예측할 수 없는 현상과 결과를 빚어내는 버릇이 있다. 6ㆍ25라는 역사는 어쩌면 한국사회가 자진해서 이룬 것이 아닌 하나의 선택을 한국사회에 강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나는 그 선택이 나 자신의 선택과 어울리는 것이기에 지극히 흡족하게 느낀다. 그러기에 나는 역사적으로 볼 때 한국이라는 사회공동체는 6ㆍ25를 겪었기 때문에,또 6ㆍ25를 계기로 하여 전세기적인 인간가치관과 인간통치관에서 탈피하여 전진적인 인간해방의 역사적 흐름에 함께 낄 수 있게 됐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나의 생각을 기다랗게 설명할 필요는 없다. 동독을 비롯하여 폴란드ㆍ헝가리ㆍ체코ㆍ루마니아 심지어는 불가리아 등­동구 여러나라에서 일어난 역사적 변화를 생각만 해보면 된다. 그들의 역사야말로 인간해방의 역사이다. 40여년간의 공산주의 독재체제 밑에서 억압당해 왔던 하나하나의 인간들을 해방하고 자유를 이루어준 역사의 흐름이 파도를 친 것이다. 불평ㆍ불만이 많고 걸핏하면 「한」이 어쩌고 하는 우리는 동구의 그들에 비하면­나아가서 소련의 일반 시민들과도 비하면­참으로 운이 좋은 사람들이다. 6ㆍ25라는 참혹한 경험이 있었지만 그 경험이 헛되지 않게 해준 그 「선택」 덕분에 우리는 인간해방의 역사의 대열에서 그들보다 훨씬 앞서 있게 된 것이다. 동구의 그들 뿐인가. 소련의 사정을 살펴보며 리투아니아ㆍ에스토니아ㆍ라트비아 국민들의 자유독립에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 우크라이나의,그루지야의,아르메니아의,아제르바이잔의 모든 개인들의 자유독립으로의 「선택」을 생각해 본다.2차대전이후의 세계역사를 소위 냉전의 역사라고 한다. 하지만 따져보면 그 냉전의 역사는 실은 자유와 억압의 대결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자유민주주의 정치체제를 선택하고 자유시장경제 제도를 선택한 진영은 꾸준히 인간의 자유의 범주를 넓히고 차원을 높이면서 인간을 억압하고 불안하게 만들고 인간을 조롱하는 것들에서부터의 인간해방을 이루어왔다고 본다. 그것을 인정 안하다면 동구공산권의 붕괴와 동구 사람들의 자유의 「선택」을 인정하지 않고 이해하려하지 않는다는 말이 된다. ○인간가치관의 대결 이 모든 것이 궁극적으로는 무엇을 말해주는 것일까.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즉 2차대전후부터의 이른바 냉전은 결국은 정치이념의 대결이었고 인간의 가치관의 대결이었다고 본다. 인간의 「자유와 개방」을 위주로 하는 이념과 절대적인 정치권력 체제속에서의 「인간통치」에 전념하는 이념과의 대결이 아니었던가. 6ㆍ25에 참전하면서 「동족상잔의 비극」이니 하는 감상을 품고 있지 않았었다고 나는 앞서 말한 바 있다. 어떻게 보면 냉혹하게 들릴지도 모른다. 그러나 6ㆍ25전쟁이 내게는 단순히 부족간의 영토싸움이라든가 조국통일이라는 미명아래에서의 권력다툼이라든가 그러한 전세기적인 단순한 전쟁이 아니었었기에 그랬었는지도 모른다. 그 전쟁은 2차대전때 이미 시작되고 그 후에 냉전으로 계속된 이념의 대결이 터져나온 전쟁이라고 보았기 때문이다. 싫건 좋건 틀렸건 옳건간에 사람은 각자각자 나름대로의 작은 역사를 창조하고 자유와 개방을 이루고 인간해방을 이룰 수 있도록 풀어주고 돌봐주어야 한다는 가치관과 이념과 역사관을 「선택」했었기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6ㆍ25의 그날이 돌아올 때마다 「동족상잔의 비극」이라는 상투용어로 그 경험을 「설명」해 버리려는 것을 싫어한다. 그 전쟁이 그것뿐이었다면 그야말로 전세기적인 관념으로 그 전쟁의 경험을 소화하려는 것이 된다. 그 보다는 「나는」 「우리는」 그러한 참혹한 역사적 경험으로 인하여 「이러한 선택」을 하였노라 하는 것을 생각해 보았으면 한다. □김은국 □32년 함남 함흥출생.□황해도 황주,중국 만주에서 성장. □48년 평양 제2중(평양고보)재학중 월남. □50년 서울대 상대 경제학과 중퇴(6ㆍ25발발로). □51∼54년 육군장교복무. □55년 도미,미들버리대(정치학 및 역사철학전공),존스 홉킨스대(영문학 전공),아이오와대 대학원,하버드대 대학원 졸업. □64년 6ㆍ25를 배경으로 한 소설 「순교자」를 하버드대 대학원 졸업논문 대신 발표,세계적 명성얻음. □이후 「심판자」 「잃어버린 이름」 「잃어버린 영혼」 등 발표. □미국 매사추세츠 주립대,시라쿠스대,캘리포니아 주립대교수 서울대 교환교수 역임. □현 매사추세츠 소재 「트랜스 리트 에이전시」 (국제저작권대행회사)대표.
  • 북한에 핵전문가 5천명/62년 영변연구소 설립,개발 박차

    ◎원자로 가동ㆍ미사일도 자체생산 북한이 6개월안에 핵무기를 개발할 가능성이 높다는 외신 보도가 국민들을 긴장시키고 있다. 장근모 과학기술처장관이 지난 12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국제원자력기구(IAEA)이사회에 참석,북한이 85년 12월 핵확산금지조약(NPT)에 가입하고서도 전면 안전협정(Full Scope Safeguards)체결을 이행하지 않은 채 버티고 있음을 주지시키고 가입을 촉구할 것을 강하게 요청하고 돌아온 직후라서 이 소식은 더욱 당혹스럽기 짝이 없다. 세계에서 가장 호전적이고 수단 방법을 가릴 줄 모르는 폐쇄적인 북한이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확보돼 있다는 것이 사실일 경우 어린이들이 안전핀을 뺀 수류탄을 들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그러면 북한은 핵무기를 생산할 능력이 얼마나 있을까. 이것은 아무도 정확하게 알고 있는 사람이 없다. 다만 알려진 대로 북한은 이미 핵연료를 생산할 수 있는 원자로,핵폭발에 이용되는 뇌관,핵무기원료인 플루토늄 재처리공장,그리고 핵폭탄 운반에 쓰이는 스커드 미사일의 자체 생산능력을 갖춘 것으로 볼 수 있다. 북한의 원자력 분야연구는 1959년 9월 소련과 원자력협정을 체결한 후 62년초 영변에 원자력연구소가 설립되면서부터 시작했다. 86년 12월 원자력공업부를 정무원 산하에 발족시켰다. 연구기관 및 인력현황을 보면 62년 설립된 영변 원자력연구소에 2천5백여명의 연구원이 있다(IAEA 추정). 또 김일성대학ㆍ 김책 이과대학에 원자력연구부서를 64년 설치했으며 89년까지 약 5천여명의 핵 전문가 및 기술자를 확보한 것으로 알려진다. 북한은 65년 2메가w급 연구용원자로를 도입,70년 4메가w급으로 출력을 늘렸으며 87년 30메가w급 연구용 원자로를 자력 설계 가동중이다. 특히 평안북도 영변의 30메가w급 원자로에는 천연우라늄 75t이 장전돼 있는데,이 원자로는 군사용으로 전용하기 쉬운 핵연료 처리시설로 사용한 핵연료 찌꺼기에서 플루토늄을 분리하는 시설이 특징인 것으로 추정된다. 이 원자로는 1㏏(TNT 1천t의 폭발력)급 원자탄을 제조할 수 있는 7∼8㎏의 플루토늄을 생산할 수 있는 양이다.연구용이든,발전용이든간에 우라늄을 핵연료로 쓰고 있는 나라는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고 있다. 일반적으로 ▲핵연료(우라늄)의 재처리공장 ▲핵연료 가공시설 ▲원자로 설계 기술자를 확보하면 핵무기의 생산은 가능하다. 이는 원전을 가동할 수 있는 기술 수준을 가진 나라라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단기간내에 핵폭탄을 제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미국 최초의 원자탄 제조에 참가했던 물리학자 데오도 테일러박사는 『원자탄 만들기가 얼마나 쉬운가는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원자탄 제조방법은 한 때 1급 국가기밀이었으나 이제는 백과사전을 뒤져봐도 상세히 기록돼 있다』고 할정도로 이 기술은 이제 비밀이 아니다. 핵무기 제조에 필수적인 핵연료 재처리공장이 북한에 건설되었는지 여부는 아직 확인되지 않고 있다. 재처리 공장은 원자로에서 타고있는 핵연료(우라늄 235와 238)가운데 연소되지 않은 우라늄 238에 중성자를 충돌시키면 플루토늄 239가 생성된다. 이 플루토늄은 핵분열을 일으키는 물질로 새로운 핵연료로 이용된다. 현재 핵폭탄을 생산하고 있는 인도나 파키스탄은 모두 원전에서 수거한 우라늄 238을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생산,핵폭탄 원료로 사용하고 있다. 한편 이 보도에 접한 한국원자력학회장 이창건박사는 6개월이내 북한의 핵무기생산 가능이라는 뉴스 자체에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이박사는 첫째 동독이 농축우라늄을 독자적으로 갖고 있지 않은 상태에서 발전용이 아닌 무기용 농축우라늄을 줄 수 없을 것 같고,소련이 이럴 경우 가만히 있을리가 없다는 분석이유를 들고 있다. 다음은 루마니아에서 기술을 들여왔다는 부분에 대해서도 강한 의문을 표시한다. 그는 루마니아가 아닌 불가리아라면 혹시 믿을 수도 있지만 루마니아는 그런 수준에 와 있지 않다고 가능성을 배제한다. 불가리아의 경우는 전체 전기발생량의 30%가 원자력에서 나오고 있으며 세계원자력기구(IAEA)를 통해 20명의 북한원자력 전문가를 훈련시킨 바 있으며 원자력건설 당시 10여명 정도를 훈련시킨 바 있다는 것. 이박사는 소련이 한국으로 하여금 정보소스를 자기쪽으로 끌어가기 위해 그런 자료를 낸 것으로도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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