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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여름에 만난 사랑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여름에 만난 사랑

    달이 떠오르고 지붕 위에서 한 아가씨가 타란텔라춤을 추고 있다. 다른 한 사람은 지붕 가장자리에 발을 뻗고 앉아 커다란 탬버린을 두드린다. 옅은 분홍빛이 감도는 하늘을 배경으로 춤추는 젊은 여성의 날렵한 실루엣이 생동감 있게 드러나 있다. 사전트는 미국인이지만 피렌체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는 필라델피아의 안과 전문병원에 있었던 의사였다. 두 살 난 딸을 잃고 아내가 충격에서 헤어나지 못하자 일을 접고 유럽으로 건너갔다. 이곳저곳 여행을 다니던 중 피렌체에 머물 때 사전트가 태어났다. 파리에 주거지를 두긴 했지만, 부모는 사전트를 데리고 유럽 곳곳을 다녔다. 학교에 갈 수 없었던 사전트는 부모로부터 기초 교육을 받았다. 아마추어 화가였던 어머니 밑에서 사전트는 자연스럽게 예술을 천직으로 택하게 됐다. 1878년 스물두 살의 사전트는 파리의 국립예술학교를 마치고 화가로서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해 여름 사전트는 나폴리 근처 카프리섬으로 향했다. 카프리섬은 지금은 고급 호텔이 즐비한 휴양지지만 당시에는 바닷가에 고기잡이배가 정박해 있는 한적한 어촌이었다. 청록색 바다와 절벽, 독특한 하얀 집이 어우러진 풍경에 매혹된 화가와 작가들이 드문드문 찾을 뿐이었다. 그림을 그리려면 모델이 있어야 했다. 사전트는 영국 화가 프랭크 하이드의 작업실에서 그의 모델이었던 로지나 페라라를 만났다. 날씬하고 가무잡잡한 열일곱 살 아가씨는 이국적이고 신비한 매력을 지니고 있었다. 페라라는 훌륭한 모델이었고, 사전트는 부지런히 그림을 그렸다. 스물두 살 청년과 열일곱 살 아가씨 사이에 어떤 감정이 오갔을까? 알 수 없다. 여름이 가자 사전트는 짐을 싸서 파리로 돌아갔다. 사전트는 매년 스페인, 이탈리아, 모로코 등지로 스케치 여행을 떠났고 다른 모델들을 만났다. 페라라는 카프리섬을 찾아온 화가들을 상대로 일을 계속하다 1891년 미국 화가 조지 랜돌프 바스와 결혼해 미국으로 건너갔다. 두 사람은 뉴욕 근교에서 오래 사이좋게 살았다. 1934년 페라라가 폐렴으로 먼저 세상을 떠났다. 바스는 아내의 빈자리를 견디지 못했고 3년 뒤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미술평론가
  •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장인주의 춤추는 세상]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

    프랑스의 발레리나이자 가수, 배우였던 지지 장메르가 지난달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를 가진 여인. 발레리나의 울퉁불퉁한 근육 대신 매끈하고 곧은 다리를 타고났기에, 늘 하의실종으로 등장하고 발레리나에겐 금기시됐던 쇼트커트 머리모양의 파격적인 외모로 세상을 놀라게 했던 매력덩어리 파리지엔. 본명은 ‘르네 마르셀 장메르’지만 애칭 ‘지지’로 세계적 명성을 얻었다. 천상의 예술 ‘발레’를 뮤직홀 춤으로 탈바꿈하고도 격을 떨어뜨리지 않았고, 할리우드의 어느 배우에게도 밀리지 않았던 프랑스 뮤지컬배우의 원조다. 1998년으로 기억한다. 난 파리에서 마르세유로 가는 기차를 탔다. 당시 마르세유발레단 예술감독으로 있던 롤랑 프티(1924~2011)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프랑스 발레계 거장 프티가 마지막으로 안무작을 발표하고 은퇴한다고 하니 그전에 꼭 인터뷰를 하고 싶었다. “당신에게 춤은 무엇입니까.” 이 한마디 질문에서 풀기 시작한 프티의 이야기보따리는 마치 우디 앨런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처럼 끝없이 시간을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는 말이야….” 1960년대 카지노 드 파리(파리의 공연장) 시절부터 샹젤리제발레단, 파리발레단을 운영했던 1940년대, 발레리노의 꿈을 키웠던 10대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26년을 이끌어 온 마르세유발레단에 대한 남다른 감회까지 프티가 기억하는 현대발레사를 생생하게 들을 수 있었다. 그에게 ‘춤은 곧 삶’이라는 대답과 함께. 그날 인터뷰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이름은 다름 아닌 그의 영원한 뮤즈이자 아내 ‘지지’였다.동갑내기인 둘은 파리국립발레학교에서 학우로 만나 평생을 함께하며 삶과 예술세계를 공유했다. 직접 돈 호세 역을 맡았던 프티는 ‘카르멘’을 회상했다. “카르멘이 춤추는 부분은 대부분 지지가 안무했죠. 관능미 최고예요. 1949년에 첫 공연하자마자 센세이션을 일으켰어요.” 지지는 미하일 바리시니코프와도 이 듀엣을 추었고, 프티의 또 다른 대표작 ‘청년과 죽음’에서는 루돌프 누레예프와 호흡을 맞추기도 했다. 지지의 트레이드마크는 혼자 춤추며 노래하는 ‘깃털로 만든 내 것’(Mon Truc en Plumes, 1961)이다. 일본 전통가면극 ‘노’에서처럼 검은 옷을 입은 보좌역들이 커다란 분홍빛 깃털을 들고 그녀를 쫓아다니는데 그 재미가 한국 부채춤 군무와 캉캉의 혼합버전을 보는 듯하다. 이브 생로랑이 디자인한 짧은 원피스 밑으로 드러난 하이힐 신은 두 다리는 두말할 것 없는 명품이고. 플랫슈즈 대표브랜드 ‘레페토’에는 지지의 이름을 딴 신발도 있다. 아들 롤랑 프티의 무용의상을 만들다가 아예 회사를 차린 로즈 레페토가 1970년 며느리 지지를 위해 고안한 신발이다. 무용계에서는 보통 ‘재즈화’라고 부르는데, 샹송가수 세르주 갱스부르가 흰색 ‘지지’를 구두 대신 평생 애용해 더욱 유명해졌다. 갱스부르는 가볍고 부드러운 신발 ‘지지’와 인물 지지를 모두 좋아했던 것 같다. 2년 전 지지는 스위스 제네바의 한 병원 행사에 참석했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다는 영광을 안겨 주었지만 말년엔 큰 고통이 됐던, 그녀의 아픈 다리를 수술한 병원에서 세미나를 연 것이다. 극장무대가 아닌데 모셔도 실례가 안 되겠냐는 주치의의 요청에 지지는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내 다리를 기적처럼 고쳐 주신 선생님께서 부르신다면 어디든 기꺼이 갈게요. 단, 내가 세미나실에 들어갔을 때 객석이 꽉 차 있어야 해요. 난 객석이 비어 있는 건 참을 수가 없거든요.”
  • 와인 쏟아 3500만원 H 핸드백 못 쓰게 된 美 여성 “끝까지 소송”

    와인 쏟아 3500만원 H 핸드백 못 쓰게 된 美 여성 “끝까지 소송”

    미국 뉴저지주의 한 여성이 3만 달러(약 3556만원) 짜리 에르메스 핸드백에 와인을 쏟아 못 쓰게 만들었다며 컨트리클럽을 상대로 소송을 냈는데 법원이 기각했다. 마리야나 베이더는 지난 2018년 9월 데마레스트에 있는 알파인 컨트리클럽에서 식사를 하던 중 웨이터가 붉은 와인을 쏟아 분홍빛 값비싼 핸드백을 망가뜨렸다고 지난해 11월 소송을 제기했다. 베르겐 카운티 대법원 재판부는 지난달 24일(이하 현지시간) 원고 베이더와 그녀 남편이 여러 차례 공지하고 소환장을 발부했는데도 법정에 나오지 않아 “선입견을 갖지 않고” 기각했다고 밝혔다. 다만 베이더의 변호인 알렉산드라 에리코가 전날 이의 제기를 한 것을 받아들여 이번주 다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도록 허용했다고 일간 USA 투데이가 7일 전했다. 에리코는 알파인 컨트리클럽의 변호인 케네스 머버가 법정에서 진술한 것과 달리 그의 사무실은 지난달 9일 “두 전문가의 보고서와 (컨트리클럽 회장 데이비드 그라프와 베이더가 주고받은) 이메일 내역”을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오는 28일 에리코 변호인의 재심 요청을 받아들일지 결정할 예정이다. 에리코는 지난해 USA 투데이의 계열사인 노스저지 닷컴 인터뷰를 통해 이름이 밝혀지지 않은 웨이터와 그를 “부주의하게 채용한” 컨트리 클럽이 의뢰인이 일년 가까이 직접 해결하려 했는데도 별다른 성의를 보이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그들은 백 하나가 그렇게 값나갈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내 생각에 그게 가장 큰 문제였다. 그들은 그녀가 실제로 이런 백을 소유할 리가 없다는 식으로 차별하는 모습까지 보였다”고 주장했다. 에르메스 핸드백은 종종 몇만 달러씩 가격이 책정되는데 지난 2017년 홍콩에서 37만 7000 달러에 경매로 낙찰된 일이 있다. 핸드백 경매 사상 최고가 낙찰이었음은 물론이다. 임병선 평화연구소 사무국장 bsnim@seoul.co.kr
  • [그 책속 이미지]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 50곳… 담백하게 떠나볼까

    [그 책속 이미지] 이국적인 국내 여행지 50곳… 담백하게 떠나볼까

    분홍빛 노을이 내려앉은 바다 한가운데 파도를 즐기는 서퍼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외국이라 생각할 수 있겠지만, 강원도 강릉이다. 코로나19 탓에 외국 여행은 엄두도 못 내는 시절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어디로 눈을 돌려야 할까. 20년 동안 여행기자와 여행작가로 일하는 최갑수가 국내 대표적인 하루 여행 코스 19곳과 하루 더 여행할 만한 31곳을 소개한다. 담백한 여행지 소개가 읽기에 부담이 없고, 사진은 눈을 즐겁게 한다. 여행 책이 아니라 에세이집 같다. ‘예쁘고 즐겁고 맛있다’는 설명처럼 책장을 넘기다 보면 떠나고 싶은 생각 간절할 것이다. 그러고 보니, 바야흐로 휴가철이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이런 거북은 처음” 인도서 공개된 노란 거북 영상 화제

    “이런 거북은 처음” 인도서 공개된 노란 거북 영상 화제

    인도에서 온몸이 노란 희귀 거북이 발견됐다. 지난 19일 인도 오디샤주 발라소르의 수잔푸르 마을 해안에서 노란 거북을 발견한 주민들은 IFS(Indian Forest Service)에 신고했다. IFS의 직원인 수산타 난다는 해당 영상을 트위터에 공유하며 화제가 됐다. 인도 임업부의 수잔타 난다는 지난 20일 트위터에 노란 거북이 헤엄치는 영상을 올리고 “어제 오디샤 발라소르에서 희귀한 노란 거북이 발견돼 구조됐다. 아마도 알비노였을 것”이라고 적었다. 10초의 짧은 이 영상은 22일 현재 6만 3000회가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역시 이 거북이 알비노인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머리부터 등껍질, 발까지 온통 노란색인 이 거북의 눈이 분홍빛인 것도 알비노의 전형적인 특징이라고 설명했다. 알비니즘은 선천적 질환으로 멜라닌 색소가 결핍돼 피부와 머리카락, 눈에 색소가 완전히 혹은 부분적으로 없는 질환이다. 야생동물 전문가인 바누미트라 아차르야은 ANI 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거북은 처음 본다”며 이라며 놀라움을 드러냈다. 강경민 콘텐츠 에디터 maryann425@seoul.co.kr
  • [기고] 곡예사의 꿈

    [기고] 곡예사의 꿈

    공중 그네를 타는 곡예사 이야기다. 우연한 기회에 조쉬 그로반(Josh Groban)이 작곡한 ‘렛미폴’(Let me fall), ‘나를 추락시켜 주오’라는 노래를 영상으로 들었다. 이 노래는 캐나다의 태양의 서커스 ‘퀴담’(Cirque du Soleil-Quidam)의 공연 가운데 곡예사의 삶을 그린 곡을 리메이크한 것이다. 좋은 음악은 배경화면이 있으면 가사 내용에 맞는 메시지를 보고 들으면서 선율을 따라 자유로운 상상을 하게 된다. 곡예사는 천장에서 내려온 밧줄이 자신을 지탱해 줄 거라는 믿음 하나로 온 몸을 맡기고 위험한 줄타기를 한다. 아래로 내려갔다가 반대편으로 넘어가기도 하고, 공중으로 솟구치는 동작을 반복한다. 때로는 줄을 잡고 있던 손을 놓고 허리 힘 만으로 무게 중심을 잡는다. 곁에 있는 곡예사와 함께 공중회전을 하고, 두 팔과 다리를 이용하여 온갖 무늬를 만들어낸다. 어쩌면 인생과도 같다. 처음은 혼자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이웃과 동행하기도 하고, 떨어지는 자를 구하고 자신도 도움을 받는다. 노래가 끝날 때 출연자 모두가 어울려 손을 잡고 원을 그리며 사랑과 화합의 장면을 연출한다. 얼마나 인간다운 모습인가. 내가 어린 시절 가까운 동네에 서커스단이 심심찮게 찾아왔다. 그들의 마지막 무대는 언제나 공중서커스 공연이었다. 그네를 타고 반대편에 있는 동료를 잡고 돌아오거나 그네를 흔들다 맨몸으로 공중 돌기를 하며 건너오는 동료를 거꾸로 잡기도 한다. 나는 양쪽에서 줄을 타고 오르내리는 예쁜 얼굴에 몸매도 가냘픈 여인들에게 푹 빠졌던 적이 있다. 서커스 공연의 으뜸은 줄에서 떨어질 새라 관중들의 애간장을 태우며 공중을 자유자재로 날아다니는 모습이었다. 곡예를 하면서 그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노래의 주인공은 차라리 추락하고 싶다고 했다. 추락은 두렵지만 이루고 싶은 꿈이기도 했다. ‘내가 추락하게 놔두세요. 다시 오르는 것도 놔두세요. 두려움과 꿈이 충돌하는 순간이 한번은 있는 법. 내안의 누군가가 나의 용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 미래의 내가 될 그 누군가가 날 붙잡아 줄 겁니다.’ 하지만 곡의 다음 부분에서는 추락하려는 것은 두려움과 속박에서 벗어나 자유를 얻고 싶기 때문이라고 노래한다. ‘내가 추락한다면, (…) 난 아무것도 붙잡지 않고 자유롭게 춤을 출 겁니다. 당신도 이런 모든 쓸모없는 두려움과 속박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추락하길 원한다면, 날 잡아도 좋습니다.’ 진정한 자유는 추락할 때 누릴 수 있다. 곡예사는 늘 긴장 속에서 추락의 공포를 느끼면서 줄을 탄다. 그러기에 차라리 줄을 놓아 추락해 버리고 싶은 충동이 생기기도 하고, 추락하면서 무한한 자유로움을 느끼는 상상도 할 것이다. 곡의 가사처럼 밧줄 놓기를 원하는 곡예사에게 추락이야 말로 용기 있는 자아와 자유를 찾기 위한 몸부림이다. 이처럼 온갖 사회 제도나 인연과 감정의 굴레에서 벗어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들의 소망이 아닐까. 어쩌면 우리 인생은 줄을 타는 곡예사처럼 위로 오르기도 하지만 끝이 어딘지 모르고 추락할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라는 말이 있다. 질병이나 이별의 아픔, 실패와 좌절의 순간이 닥치더라도 이를 극복하고 멋진 인생을 사는 이들이 있다. 그들은 평상심을 가지고 묵묵히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날개를 달듯 잘 나간다고 우쭐대거나 자만하면 언젠가 추락하고 만다. 영화 ‘킹덤 오브 헤븐’에 나오는 대장장이 발리안처럼 어떤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긍지와 자존감을 지켜내는 자야말로 진정한 행복을 누린다. 이문열의 장편 연애소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가 출판된 후 영화로 제작되어 흥행한 적이 있다. 첫사랑과 재회한 연인들이 갈등과 상처를 이기지 못해 죽음으로 결별하는 내용이다. 이 제목은 오스트리아의 시인 바하만의 시집 ‘다스 슈피일 이스트 아우스’(Das Spiel ist aus·유희는 끝났다)에서 따온 것으로, 원래 의미는 날개가 있기에 추락한다는 메시지이다. 하지만 날개가 있기에 날고, 날 수 있기에 추락도 하는 것이지만, 노래 중의 곡예사처럼 진정한 자유를 위해 추락하고 싶다면, 그리고 추락하면서도 오르고 싶은 욕망이 함께 있다면 날개를 활짝 펴고 창공을 힘차게 날 수 있으리라. 오늘도 곡예사는 하늘을 자유롭게 나는 꿈을 꾼다. 불안하고 척박한 환경에서도 기적을 이루는 그런 꿈을 꾼다. 마치 산속 비탈진 언덕 아래에 뿌리를 내리고 울창하게 자란 소나무처럼, 아무도 보지 않는 오솔길의 후미진 곳에서 분홍빛 활짝 피운 철쭉꽃 군락처럼. 김국현 수필가·전 한국지방재정공제회 이사장
  •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이소영의 도시식물 탐색] 복숭아털, 까슬거려 싫으신가요

    내 작업실 바로 옆에는 작은 복숭아밭이 있었다. 복숭아가 익어 가는 이맘때면 주변에 늘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졌고, 나는 그 향기가 좋아 부러 그곳을 지나쳐 작업실로 왔다. 복숭아밭 주인은 복숭아가 다 익는 7월이면 내게 까만 봉지를 쥐여 줬다. 멍이 살짝 들어 판매가 어려운 것이라며 “생긴 건 이래도 맛은 있다”는 말과 함께. 봉지를 열면 달콤한 복숭아 향기가 퍼지고 그 안엔 분홍빛이 살짝 든 복숭아 여덟 알 정도가 있었다. 그것은 며칠 안에 금세 먹어 치울 만큼 달콤한 맛이었다. 그 복숭아는 털이 참 많아 씻으려고 손에 쥐면 유난히 까슬거려 물로 여러 번 문질러 닦아야 했다. 겉이 반지르르해진 복숭아를 껍질도 까지 않고 베어 물며 책상에 앉아 일을 시작하던 시절. 나는 매년 여름이면 그때를 추억한다. 몇 년 전 신도시가 들어서며 복숭아밭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 그 자리에는 거대한 빌딩이 우뚝 서 있다. 얼마 전 대형마트에서 과일 유통 일을 담당하는 학교 선배를 만나 과일 이야기를 하다가 그 복숭아밭 이야기를 꺼냈더니, 선배는 그 복숭아에 털이 유난히 많을 수밖에 없는 이유를 알려 줬다. 유통 과정 중에 자연스럽게 털이 빠지기도 하는데, 무엇보다 사람들이 털 많은 복숭아를 싫어하기도 하고, 복숭아털 알레르기가 있는 사람도 꽤 많기 때문에 포장할 때 복숭아털을 최대한 털어 주거나 표면을 장갑 낀 손으로 닦아 주기도 한다는 것이었다. 복숭아밭에서 갓 딴 복숭아에 털이 유난히 많은 건 당연한 일이었다.소비자의 기호가 이렇다 보니 최근에는 털이 없는 천도복숭아와 달콤한 털복숭아의 장단점을 보완한 품종도 육성되고 있다. 도시 원예식물의 형태는 사람들의 취향에 따라 변해 가는데, 사람들이 복숭아의 털을 싫어하니 복숭아라는 과일은 이제 점점 털이 없는 형태로 진화할 것이다. 2년 전 농촌진흥청에서 육성한 신품종 복숭아 ‘유미’를 그리면서 복숭아의 털에 대해 고민한 적이 있다. 나뭇가지에 매달려 있는 복숭아는 우리가 먹기 전 보는 복숭아보다 표면에 털이 많아 그 털이 표면의 색을 뽀얗게 만들어 아무리 진하게 채색해도 생각하는 것만큼 뚜렷한 색으로 표현되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가지에 달린 복숭아 그대로를 그렸다. 그림을 그리는 내내 복숭아에는 왜 털이 있는 것일까, 이 털은 기존에 그렸던 다른 식물들의 털과 얼마나 다른 역할을 하는 걸까 고민했다. 학자들은 복숭아털이 곤충과 물로부터 열매를 보호한다고 말한다. 복숭아는 다른 과일에 비해 껍질이 현저히 얇다. 오렌지, 사과, 수박 모두 복숭아에 비할 수 없고, 이것은 복숭아가 다른 열매에 비해 동물로부터 공격당하기 쉽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달콤한 과육을 먹으려 얇은 과피를 찢고 들어오는 곤충으로부터 열매를 보호하기 위해 복숭아는 얇은 껍질과 함께 밀생하는 따가운 털도 갖게 됐다. 또한 털은 열매의 수분 손실을 막아 주고 열매가 비에 젖지 않도록 한다. 복숭아는 따뜻한 중국 남부 지역에서 역사가 시작됐고, 이러한 건조한 환경에서 복숭아털은 내부 수분 손실을 막아 열매의 수분 함량을 유지하는 데 도움을 줬다. 비가 와도 털이 표면장력을 높여 빗물이 흡수되는 것을 막아 열매가 젖어 썩지 않도록 한다. 게다가 유통업자들은 복숭아에 털마저 없었다면 유통 시 더 쉽게 손상될 거라고 이야기한다.식물을 그리다 보면 수많은 형태의 털을 만난다. 털은 계속 만지고 싶을 만큼 부드럽거나 손을 대기 힘들 정도로 따갑기도 하고, 10㎝에 가깝게 길거나 아주 짧기도, 온몸에 밀생하거나 특정 부위에 집중되기도 한다. 식물마다 털이 존재하는 이유는 형태만큼 제각각이지만 대개 털은 식물을 보호하는 장치가 된다는 공통점을 갖는다. 작년에 그렸던 섬노루귀는 온몸에 흰 털이 밀생하는데, 이 털은 바람이 많이 부는 섬에서 바람에 대한 저항성을 높여 준다. 복숭아의 털이 내게 주는 따가움, 까슬거림이 그들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장치라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그것은 안쓰러움, 가여움이란 감정으로까지 번진다. 식물의 형태는 언제나 그들의 살아온 역사를 말해 주기에 나는 식물을 그림으로 기록하며 그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 그렇게 나는 복숭아의 털마저 좋아하기로 했다. 며칠 전 마트에서 올해 처음 출하한 비닐하우스 재배 복숭아를 만났다. 이제 복숭아의 계절이 시작됐다. 따가운 털을 움켜쥐어야 비로소 달콤한 과육을 즐길 수 있다는 것. 어쩌면 우리가 복숭아라는 과일을 먹기 위해 치러야 하는 대가가 아닐까 싶다.
  • [포토] ‘분홍빛 융단’ 무등산 산철쭉

    [포토] ‘분홍빛 융단’ 무등산 산철쭉

    무등산 국립공원 백마능선에 지난달 30일 산철쭉이 피어 있다. 무등산 국립공원 산철쭉은 안양산 정상부와 백마능선을 따라 약 2.8㎞ 구간에 펼쳐져 있다. 2020.5.1 무등산국립공원동부사무소 제공
  • [애니멀 픽!] 대규모 홍학이 만든 ‘분홍빛 물결’…코로나19의 역설

    [애니멀 픽!] 대규모 홍학이 만든 ‘분홍빛 물결’…코로나19의 역설

    전 세계 19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지만, 일부 야생동물에게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전염병 창궐로 인간이 숨어든 사이 날아온 수만 마리의 홍학은 지구의 오염원이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는 걸 방증한다.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0일 인도 뭄바이 인근 샛강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홍학이 날아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나비뭄바이 주거지역 네룰의 한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타네강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홍학이 내려앉아 마치 분홍빛 물결이 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현지언론은 이 지역에 매년 홍학이 찾아오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 수가 많았다고 전했다. 인도 최대 비정부기구인 봄베이자연사협회 측은 ‘더프린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비 25% 이상 많은 약 15만 마리의 홍학이 날아왔다고 밝혔다. 타네강에 형성된 홍학 생츄어리(Sanctuary) 관리자는 “홍학은 보통 10월에서 3월 사이 이 지역으로 날아왔다가 6월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의 홍학 무리가 날아왔다”며 "코로나19 봉쇄령으로 활동인구가 줄면서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개선됐고, 그만큼 먹이군도 풍부해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간의 활동이 지금까지 야생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라고 평가했다.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각국의 경제활동이 봉쇄되면서 전 세계 공기질은 크게 개선됐다. 특히 대기 오염으로 악명이 높은 중국과 인도의 개선 수준이 두드러진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 벵갈루루의 이산화질소 수치는 5년 전보다 35% 떨어졌다. 이달 초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의 잘란다르에서 161㎞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의 눈 덮인 정상이 수십 년 만에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인간이 사라지고 깨끗해진 도심에는 야생동물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미국 시카고 도심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에는 야생 코요테가 나타났으며, 애리조나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돼지처럼 생긴 페커리가 관찰됐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퓨마와 영국의 한 쇼핑가를 배회하는 야생 염소떼도 포착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야생 염소가, 콜롬비아 수도 보코타에는 야생 여우와 주머니쥐, 심지어 개미핥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인간이 잠시 빌려 살던 땅에 원래 주인이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다. 듀크대 환경보호과학자 스튜어드 핌은 “인간이 침범당한 게 아니다. 야생동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사람 옆으로 잘 오지 않던 동물이 인간이 사라지니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대규모 홍학 모여 ‘분홍빛 물결’…인간 활동 줄자 돌아온 동물들

    대규모 홍학 모여 ‘분홍빛 물결’…인간 활동 줄자 돌아온 동물들

    전 세계 19만여 명의 목숨을 앗아간 코로나19는 사람에게는 재앙이지만, 일부 야생동물에게는 다소 의미가 다르다. 전염병 창궐로 인간이 숨어든 사이 날아온 수만 마리의 홍학은 지구의 오염원이 다름 아닌 인간이었다는 걸 방증한다. 힌두스탄타임스 등에 따르면 현지시간으로 20일 인도 뭄바이 인근 샛강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홍학이 날아들어 장관을 연출했다. 나비뭄바이 주거지역 네룰의 한 아파트에서 내려다본 타네강에는 셀 수 없이 많은 홍학이 내려앉아 마치 분홍빛 물결이 치는듯한 착각을 불러일으켰다.현지언론은 이 지역에 매년 홍학이 찾아오긴 하지만 올해는 유난히 그 수가 많았다고 전했다. 인도 최대 비정부기구인 봄베이자연사협회 측은 ‘더프린트’와의 인터뷰에서 지난해 대비 25% 이상 많은 약 15만 마리의 홍학이 날아왔다고 밝혔다. 타네강에 형성된 홍학 생츄어리(Sanctuary) 관리자는 “홍학은 보통 10월에서 3월 사이 이 지역으로 날아왔다가 6월 다른 곳으로 떠난다. 하지만 올해는 사상 최대 규모의 홍학 무리가 날아왔다”며 "코로나19 봉쇄령으로 활동인구가 줄면서 대기오염과 수질오염이 개선됐고, 그만큼 먹이군도 풍부해진 점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어 “인간의 활동이 지금까지 야생동물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보여주는 새로운 사례”라고 평가했다.실제로 코로나19 대유행 이후 각국의 경제활동이 봉쇄되면서 전 세계 공기질은 크게 개선됐다. 특히 대기 오염으로 악명이 높은 중국과 인도의 개선 수준이 두드러진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에 따르면 지난달 인도 벵갈루루의 이산화질소 수치는 5년 전보다 35% 떨어졌다. 이달 초 인도 북부 펀자브 지역의 잘란다르에서 161㎞ 이상 떨어진 히말라야산맥의 눈 덮인 정상이 수십 년 만에 맨눈으로 보일 정도였다. 인간이 사라지고 깨끗해진 도심에는 야생동물이 하나둘 모여들었다. 미국 시카고 도심과 샌프란시스코 금문교 근처에는 야생 코요테가 나타났으며, 애리조나의 한 쇼핑센터에서는 돼지처럼 생긴 페커리가 관찰됐다. 칠레 수도 산티아고 거리를 어슬렁거리는 퓨마와 영국의 한 쇼핑가를 배회하는 야생 염소떼도 포착됐다. 미국 캘리포니아의 한 초등학교 운동장에는 야생 염소가, 콜롬비아 수도 보코타에는 야생 여우와 주머니쥐, 심지어 개미핥기까지 모습을 드러냈다. 마치 인간이 잠시 빌려 살던 땅에 원래 주인이 돌아온 것 같은 분위기다. 듀크대 환경보호과학자 스튜어드 핌은 “인간이 침범당한 게 아니다. 야생동물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사람 옆으로 잘 오지 않던 동물이 인간이 사라지니 이제야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말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황매산 철쭉 내년에 만나요’, 올해 철쭉축제 취소

    ‘황매산 철쭉 내년에 만나요’, 올해 철쭉축제 취소

    경남 합천군·산청군 경계에 걸쳐 있는 황매산에서 해마다 열리는 철쭉제가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열리지 않는다.합천군과 산청군은 21일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올해 ‘황매산 철쭉제’를 취소하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합천군 ‘황매산축제위원회’와 ‘산청황매산철쭉제위원회’는 오는 30일 부터 5월 10일까지 산청군 법평리 일원과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황매산군립공원 일원 철쭉군락지에서 동시에 황매산 철쭉제를 열 예정이었다. 35만㎡에 이르는 황매산 철쭉군락지는 전국 최대 규모로 해마다 5월이면 짙은 분홍빛 철쭉 군락지가 끝없이 펼쳐져 하늘과 맞닿아 환상적인 풍경을 연출한다. CNN이 발표한 ‘한국에서 꼭 가봐야 할 관광지 50선’에 선정될 정도로 우리나라 대표 관광명소다. 황매산 철쭉제 기간에는 전국에서 관광객과 등산객 수십만명이 축제가 열리는 합천·산청지역 황매산 철쭉 군락지를 방문한다. 합천군과 산청군은 올해는 코로나19 확산 방지와 군민, 관광객들의 안전을 위해 어쩔수 없이 축제를 열지않기로 결정하고 축제장도 폐쇄해 차량 출입을 통제한다고 밝혔다.합천군은 지역 곳곳에 축제취소를 알리는 현수막을 내걸었고, 산청군도 군청 홈페이지에 축제취소를 알리는 안내문을 올렸다. 합천·산청 강원식 기자 kws@seoul.co.kr/
  •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바위 틈 발그레 핀 너… 물드는구나 나의 맘

    단언컨대 여기는 진달래의 영토다. 칼처럼 뾰족 솟은 암봉도 지금 여기에선 꽃을 돋보이게 하는 보조 장치에 불과하다. 전남 강진의 덕룡산(德龍山). 고도는 낮아도 험하기가 설악의 용아장성을 뺨친다는 산이다. 그 산의 바위 벼랑 사이에 지금 연분홍 진달래가 장관이다. 진달래 하면 저 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 사뿐히 즈려밟고 가시라는 애잔한 시구로 기억되는 꽃이다. 애이불비(哀而不悲)의 정한 가득한 진달래가 어떻게 험상궂은 바위 벼랑 틈마다 여린 꽃잎을 심어 둔 건지, 볼수록 신기하다. 그래도 이런 부조화의 아름다움이 좋다.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것들이 어우러지는 모습 말이다. 개체수가 많지 않으면 또 어떠랴. 노류장화처럼 흔천인 것보다 외려 이편이 더 낫다. 덕룡산은 찾는 이가 많지 않은 산이다. 그래도 사회적 거리두기를 염두에 둬야 하니 가급적 올봄일랑 지면과 랜선으로 즐기시고 내년 봄을 기약하시길.덕룡산의 이름을 한글로 풀면 덕이 있는, 그러니까 후덕한 용의 모습을 한 산이라는 뜻이다. 뭐 용의 등뼈를 닮았다는 건 그렇다 치자. 창날처럼 솟은 희디흰 암봉들이 실제 꿈틀대는 백룡을 보는 듯하니까. 한데 덕이 있다는 것에는 선뜻 동의하기가 어렵다. 이 산은 두 팔과 두 다리를 모두 쓰고서야 겨우겨우 ‘등뼈’ 하나를 넘을 수 있다. 그런 암봉을 여러 개 넘어야 한다. 그 과정에서 체력은 물론 멘탈까지 탈탈 털린다. 그런데 덕이 있다고? 용은 본 적이 없으니 현실에서 이 산줄기와 가장 닮은꼴을 찾으라면 지네다. 마치 지네의 발처럼 여러 산줄기를 이 마을 저 마을로 늘어뜨리고 갈지자로 꿈틀대는 듯하다. 멀리 월출산에서 일어선 산자락은 다산 정약용이 머물던 만덕산을 지나 석문산, 덕룡산, 주작산을 세운 뒤 해남 쪽 두륜산, 달마산을 거쳐 바다로 빠져든다. 그 장대한 줄기의 일단을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자리에 주작산 일출전망대가 세워져 있다. 덕룡산은 주봉인 서봉(432.9m)과 동봉(420m)을 비롯해 크고 작은 다수의 암봉으로 이뤄져 있다. 우지끈 솟아오른 거대한 암봉들이 선사하는 장쾌한 풍경이 일품이다. 반면 찾는 이는 그리 많지 않다. 겨울철엔 하루 한 명 보기도 쉽지 않다. 진달래가 피는 이맘때는 사람들이 꽤 찾는다. 그것도 주말에 서울 등 대처에서 등산 단체가 찾을 때나 잠깐 북적댈 뿐이다. 덕룡산과 주작산은 이어져 있다. 사실상 한몸이나 다름없다. 덕룡산이라 따로 부르는 게 일반적이지만, 주작산에 딸린 봉우리로 여겨 ‘주작산 덕룡봉’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산꾼들 역시 주작과 덕룡을 이어 붙여 종주산행에 나서기도 한다. 이 경우 석문공원(소석문) 구름다리를 들머리 삼아 덕룡산 동봉~서봉~475봉(475m) 등을 거쳐 오소재로 내려선다. 거리가 무려 16㎞에 이른다. 노련한 산꾼이 숨만 쉬고 걸어도 7시간, 어지간한 이라면 9시간은 족히 걸린다. 물론 반대 코스도 가능하다. 가장 일반적인 건 소석문에서 출발해 수양마을 쪽으로 내려오는 코스다. 거리는 9㎞ 남짓. 6시간가량 걸린다.‘얄팍한 산행’에 나서는 이들도 있다. 만덕광업에서 곧바로 동봉으로 올라 인증샷만 찍고 내려온다. 이 경우 2시간 안팎이면 그럴싸한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줄곧 오르막 구간이긴 해도 거리는 편도 1㎞ 미만이다. 덕룡의 두 핵심 봉우리를 돌아보는 코스도 있다. 수양마을에서 출발해 서봉, 동봉을 거쳐 만덕광업으로 하산하거나 수양마을로 원점회귀한다. 거리는 5㎞ 미만이다. 얄팍하기는 매한가지지만 강진 이곳저곳을 돌아봐야 하는 갈길 바쁜 관광객들에겐 이 단거리 코스가 가장 현실적인 대안으로 보인다. 휴식 시간까지 포함해 4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오소재와 주작산 전망대, 소석문(석문공원) 구름다리 등의 명소는 하산해서 차로 돌아보면 된다. 덕룡산은 오르기 힘든 산이다. 암릉의 형태가 변화무쌍해 잠시도 쉴 틈을 주지 않는다. ‘용의 등뼈’ 하나를 넘고 나면 또 다른 등뼈가 앞을 막아선다. 이 지역 산꾼들의 ‘라떼’ 시절엔 산에 철심은커녕 로프 하나 매달려 있지 않았다. 그 탓에 산행 시간도 10시간 이상 걸렸단다. 물론 암봉 아래에 우회로는 있다. 하지만 우회로로 가는 이는 거의 없다. 이는 암봉을 발아래에 둔 정복감, 아찔한 바위 벼랑에 서서 빼어난 풍경을 맞는 성취감을 포기하는 것과 진배없으니 말이다.요즘은 위험 지역에 로프를 매어 놓거나 ‘ㄷ’자 형 철심을 박아 뒀다. 그 덕에 산행 시간도 꽤 줄었고 좀더 안전해 졌다. 그래도 아찔한 구간은 여전히 많다. 한 발짝 내디딜 때마다 정말 조심해야 한다. 그렇게 힘들여 암봉 위에 오르고 나면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풍경과 마주한다. 칼날이 여러 개 겹쳐진 듯한 암릉 사이사이마다 분홍빛 진달래가 보석처럼 박혀 있다. 고된 산행 끝에 만난 절경이라 그럴까. 과장 좀 보태, 신이 만든 정원에 실수로 발을 들인 듯한 느낌이다. 덕룡산 진달래는 대규모 군락을 이루는 경우가 드물다. 암릉과 산허리 등에 소박한 규모로 핀다. 여느 진달래 명산처럼 흐드러지지는 않았지만 외려 이 모습이 더 단정하고 아름답다.백룡의 등뼈에 올라타서 아래를 굽어보는 맛도 그만이다. 강진만과 다도해의 시원한 풍경이 발아래 펼쳐진다. 앞뒤로는 삼국지 장비의 장팔사모를 연상케 하는 뾰족한 암벽이 연달아 펼쳐진다. 쉽게 말해 눈 두는 곳마다 절경이다. 덕룡산 주변에 유명 관광지들이 많다. 백련사 동백숲은 자체가 천연기념물(151호)로 지정된 명소다. 수백년 묵은 고목 1500여그루에서 떨어진 동백꽃이 숲 바닥에 낭자하다. 산행 들머리인 석문공원은 ‘강진의 소금강’이라 불리는 곳이다. 요즘 강진의 랜드마크로 떠오른 가우도는 ‘강진만의 여의도’라고 불린다. 서울 여의도의 양 끝에 다리가 놓였듯, 가우도 역시 도암면, 대구면과 각기 다른 연륙인도교로 이어져 있다. 월출산 아래 터를 잡은 백운동 정원도 필수 방문 코스다. 담양의 소쇄원, 보길도의 부용동 등과 함께 호남 3대 정원이라 불린다. 글 사진 강진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얄팍한’ 덕룡산 산행의 들머리인 수양마을 주작산별빛마루펜션은 영업을 중지했다. 내비게이션 주소는 신전면 수양길 148-217이다. 옛 펜션 건물 조금 지나 공터에 차를 대면 된다. 만덕광업 쪽으로 오르는 이들도 꽤 많다. 광산 바로 앞에 작은 주차공간이 있다. -주작산휴양림은 강진 남쪽에서 가장 권할 만한 숙소다. 다만 현재는 코로나19로 폐쇄 중이다. 강진 읍내에선 프린스행복호텔이 깨끗하다. -강진 읍내에 오감통 먹거리장터가 있다. 강진을 대표하는 한정식, 토하비빔밥 등의 먹거리를 내는 집들이 몰려 있다. 칠량면의 청자식당은 바지락 회무침 비빔밥이 맛있는 집이다. 강진을 오갈 때 거치는 영암 학산면 독천리 일대에 낙지요리를 하는 식당들이 많다. 갈비와 낙지를 함께 끓인 갈낙탕, 연포탕 등 ‘혼밥’도 낸다.
  • 필리핀 뒤덮은 해파리 수 천 마리…코로나19 영향? (영상)

    필리핀 뒤덮은 해파리 수 천 마리…코로나19 영향? (영상)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된 가운데, 필리핀의 한 해변에서는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분홍색 해파리가 가득 메운 장관이 연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인 팔라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분홍빛을 띠는 해파리의 천국으로 변해버렸다. 현지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팔라완에서는 지난 수 년간 관광객이 북적인 탓에 해파리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관광객이 사라지고 나자 바다는 순식간에 해파리 무리로 뒤덮였다. 지난달 23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영상은 바닷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울정도로 옹기종기 모인 해파리 수 천 마리가 물 위에 떠다니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에 생물학자들은 이 분홍빛 해파리떼에 ‘바다의 토마토’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해파리들이 평소 서식하던 환경에서 인간으로부터의 위협을 더이상 느끼지 않게 되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러한 현상이 코로나19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환경의 변화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며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다. 영상을 통해 해파리떼의 모습을 분석한 호주 그리피스대학의 해양생물학자인 뎬든 레이 보코는 뉴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인근 해변에서 해파리 수 천 마리가 나타난 것은 지난 1월 말~2월 정도다. 이후 강풍이 불고 조수의 차가 발생하면서 3월이 되어서야 팔라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 상황이나 물의 속도, 조수 그리고 해변의 지질적 변화 등 다양한 요소가 해파리떼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바다를 뒤덮을 정도의 해파리떼가 나타난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다량의 해파리가 바다를 뒤덮은 현상이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 활동도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해파리가 해수 내 산소량이 낮아졌을 때 이상번식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었다. 바다의 산소부족은 온난화와 산성화 등과 함께 인간 활동이 야기한 환경파괴의 결과 중 하나다. 한편 필리핀은 지난달 17일부터 수도 메트로 마닐라를 포함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700만 명이 거주하는 루손섬을 봉쇄했고, 이어 봉쇄령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누적 확진자수는 3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44명으로 증가하는 등 감염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필리핀 뒤덮은 수많은 ‘핑크색 해파리’…코로나19 영향? (영상)

    필리핀 뒤덮은 수많은 ‘핑크색 해파리’…코로나19 영향? (영상)

    중국 우한에서 시작된 코로나19 사태가 전 세계로 확산된 가운데, 필리핀의 한 해변에서는 관광객들이 빠져나간 자리를 분홍색 해파리가 가득 메운 장관이 연출돼 눈길을 사로잡았다. 필리핀의 유명 관광지인 팔라완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분홍빛을 띠는 해파리의 천국으로 변해버렸다. 현지 생물학자들에 따르면 팔라완에서는 지난 수 년간 관광객이 북적인 탓에 해파리의 모습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었지만, 관광객이 사라지고 나자 바다는 순식간에 해파리 무리로 뒤덮였다. 지난달 23일 촬영된 것으로 알려진 영상은 바닷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울정도로 옹기종기 모인 해파리 수 천 마리가 물 위에 떠다니는 모습을 생생하게 담고 있다. 이에 생물학자들은 이 분홍빛 해파리떼에 ‘바다의 토마토’라는 별칭을 붙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해파리들이 평소 서식하던 환경에서 인간으로부터의 위협을 더이상 느끼지 않게 되자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면 갑작스럽게 나타난 이러한 현상이 코로나19와는 무관하며, 오히려 환경의 변화와 연관이 있을 수 있다며 자세한 분석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내놓은 전문가도 있다. 영상을 통해 해파리떼의 모습을 분석한 호주 그리피스대학의 해양생물학자인 뎬든 레이 보코는 뉴스위크와 한 인터뷰에서 “인근 해변에서 해파리 수 천 마리가 나타난 것은 지난 1월 말~2월 정도다. 이후 강풍이 불고 조수의 차가 발생하면서 3월이 되어서야 팔라완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대기 상황이나 물의 속도, 조수 그리고 해변의 지질적 변화 등 다양한 요소가 해파리떼의 등장에 영향을 미쳤을 수 있다”면서 “바다를 뒤덮을 정도의 해파리떼가 나타난 정확한 원인을 분석하기 위해서는 전문가들의 조사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이밖에도 다량의 해파리가 바다를 뒤덮은 현상이 환경을 파괴하는 인간 활동도 연관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과거 세계경제포럼에서는 해파리가 해수 내 산소량이 낮아졌을 때 이상번식한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었다. 바다의 산소부족은 온난화와 산성화 등과 함께 인간 활동이 야기한 환경파괴의 결과 중 하나다. 한편 필리핀은 지난달 17일부터 수도 메트로 마닐라를 포함해 전체 인구의 절반 이상인 5700만 명이 거주하는 루손섬을 봉쇄했고, 이어 봉쇄령은 전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누적 확진자수는 3000명을 넘어섰고, 사망자도 144명으로 증가하는 등 감염자가 급증하는 추세다. 송현서 기자 huimin0217@seoul.co.kr
  •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네가 그렇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네가 그렇다

    서글픈 봄이 지나고 있다. 어느 계절보다 찬란해야 할 봄이지만 예년에 견줘 생기 잃은 기색이 역력하다. 그래도 계절의 순환은 어김없다. 아직은 차가운 들녘 여기저기에서 봄꽃들이 겨울을 털어내고 있다. 전북 부안의 내변산 일대는 나라 안에서도 내로라하는 봄꽃 명소다. 변산바람꽃, 노루귀, 복수초 등 봄의 전령들이 힘차게 꽃대를 밀어올리고 있다. 변산은 변산바람꽃이란 이름이 비롯된 곳. 어느 곳보다 아리따운 변산바람꽃을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가 몽실몽실 피어난다.사람이 그렇듯, 새침한 것들은 눈에 잘 띄지 않는다. 관심을 바라지도 않는다. 허리 굽혀 살펴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한다. 봄꽃 중에서도 변산바람꽃이 특히 그렇다. 참 희한한 일이지, 처음엔 잘 보이지 않던 꽃인데 한 번 눈에 띄면 여기저기서 아우성치듯 제 자태를 드러낸다. 그 모습이 꼭 반짝이는 별을 닮았다. 변산바람꽃은 부안에서도 내변산 지역에 특히 많다. 그 가운데 내소사 뒤 산자락은 비교적 덜 알려진 들꽃 자생지로 꼽힌다.내소사로 드는 길. 전나무 숲이 객을 맞고 있다. 수령 150년을 넘긴 전나무들이 일주문에서 천왕문에 이르는 500여m 거리에 빼곡하다. 청량한 공기를 한껏 들이마시면 머리가 맑아지고 폐가 개운하게 씻기는 듯하다.곧 터질 듯, 가지 끝에 붉게 움을 틔운 벚나무 숲을 지나면 곧 내소사다. 치장을 하지 않은 다소곳한 모습이 인상적인 절집이다. 대웅보전(보물 291호) 역시 쇠못 하나 쓰지 않고 나무로만 매끄럽게 이음매를 맞췄다. 단청이 없는 수수한 외모 덕에 한결 더 고색창연하게 느껴진다. 한데 건물 내부는 다르다. 화려한 색감의 후불탱화 등이 장엄한 불화의 세계를 선사하고 있다. 내소사를 뒤로하고 산자락을 오른다. 머리에 땀이 송글송글 맺힐 때쯤 관음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내소사에 속해 있으면서도 경내를 벗어난 곳에 터를 잡은 독특한 건물이다. 관음전 앞 뜨락에 서면 내소사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새의 시선으로 내소사를 굽어보는 맛이 각별하다. 관음전 옆으로는 계곡이 펼쳐져 있다. 아직 시린 바람이 골짜기를 휘감아 돌고 있다. 이 차가운 계곡에도 꽃이 피었을까, 하는 회의적인 생각이 들 무렵 누런 낙엽 틈에서 반짝이는 뭔가가 눈에 띄었다. 변산바람꽃이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순간에 꽃은 산의 선물처럼 다가왔다.변산바람꽃은 하얀 꽃받침에 파란 수술이 인상적인 꽃이다. 꽃받침엔 수줍은 듯 연분홍빛이 감돈다. 이 꽃을 ‘변산아씨’라고 부르는 것도 이 자태 때문일 것이다. 변산바람꽃은 우리나라 고유종이다. 1993년 변산에서 처음 발견돼 이 같은 이름을 얻었다. 요즘엔 전국적으로 꽤 많은 서식지가 알려지면서 신비감이 다소 덜해졌지만, 봄꽃을 찾는 탐화객, 이른바 ‘꽃쟁이’들에겐 여전히 첫손 꼽히는 볼거리다. 봄꽃들이 종종 그렇듯, 변산바람꽃도 독특한 구조로 이뤄졌다. 꽃잎처럼 보이는 하얀 잎 다섯장은 사실 꽃받침이고, 꽃술 주변에 있는 열 개 안팎의 깔때기 모양 기관이 퇴화한 꽃잎이라고 한다. 꽃받침이 꽃잎의 역할을 하도록 진화한 것이다. 활짝 핀 변산바람꽃은 옛 여인들이 머리를 가꿀 때 썼던 떨잠을 닮았다. 꽃대는 콩나물 줄기보다도 가늘다. 저 여린 꽃대로 어떻게 저리 단단한 땅을 뚫고 나왔을까. 변산아씨는 존재 자체로 감동이다.노란 복수초도 비탈면에 가득하다. 변산바람꽃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피는 꽃이다. 복수초(福壽草)는 글자 그대로 복(福) 많이 받고 오래 살라(壽)는 축복의 뜻이 담겨 있는 들꽃이다. 꽃잎에 햇빛이 비치면 어두운 숲에 노란 등불을 켜놓은 것처럼 도드라져 보인다. 복수초를 달리 ‘황금잔’이라 부르는 건 그 때문이다. 벌써 꽃잎을 활짝 연 개체도 있고, 이제 막 돌 틈을 비집고 나오는 봉오리도 있다.개체수는 적지만, 노루귀도 드문드문 눈에 띈다. 노루귀는 잎이 솜털 보송보송한 어린 노루의 귀와 닮았다 해서 이름 지어졌다. 꽃의 이름을 잎 모양에 따라 지은 셈이다. 노루귀는 흔히 여러 개체가 다발로 핀다. 워낙 가녀린 녀석들이라 꽃을 다 합쳐 봐야 어른 손톱보다 작다. 꽃대엔 솜털이 보송보송 나 있다. 해를 정면에 두고 보면 솜털들이 은빛으로 반짝인다. 부안에서 변산바람꽃 자생지로 가장 널리 알려진 곳은 사실 청림마을이다. 쇠뿔바위봉 등 수려한 내변산의 암봉을 품고 있어 등산객들이 종종 찾는 마을이다. 봄이면 변산바람꽃을 보기 위해 오는 이들이 대부분이다. 다만 오랜 기간 들꽃 군락지로 입소문 나면서 철마다 탐화객들이 몰리는 통에 주민들의 피로도가 상당히 높아졌다. 차량을 마을 입구에 두고 걸어가거나 발걸음 자체를 줄이는 게 좋을 듯하다. 봄꽃을 만나러 간다는 건 첫걸음부터 죄가 쌓이기 시작한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실수로 갓 피기 시작한 꽃을 밟는 경우가 흔하기 때문이다. 돌 틈에 핀 꽃은 그나마 잘 보이지만 낙엽 속에 숨은 꽃은 눈에 띄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한 걸음 내려놓기 전에 정말 꼼꼼하게 주변을 살펴야 한다.변산아씨를 만나러 가는 길에 내변산의 명소를 둘러볼 수 있다. 내변산탐방지원센터에서 직소폭포까지 다녀오는 길은 내변산 최고 절경을 만나는 트레킹 코스로 꼽힌다. 청림마을에서 차로 5분 거리에 내변산탐방지원센터가 있다. 여기서 직소폭포까지 완만한 트레킹 코스가 조성돼 있다. 거리는 약 2.3㎞ 정도다. 직소폭포 일대는 ‘실상용추’(實相龍湫)라 불리는 소(沼)와 분옥담, 선녀탕 등이 이어져 경관이 빼어나다. 화산암에서 생겨난 주상절리와 침식 지형 덕에 지질학적 가치도 크다. 이 일대가 국가지질공원으로 지정된 이유다. 직소보 절벽에 세워진 ‘하트 전망대’, 봉래곡 등 소소한 볼거리도 많다. 직소보는 직소폭포 등에서 흘러내린 계곡물을 가둔 저수지다. 관음봉 등 내변산 암봉이 병풍처럼 저수지를 둘러싸고 있다. 하루 두번만 허락된 인생샷 여기가 인생사진 맛집… SNS서 핫한 부안의 명소들변산반도는 자체가 국립공원이다. 내소사, 직소폭포 등이 있는 변산의 안쪽 산악지대를 내변산, 새만금방조제에서 곰소항에 이르는 바닷가 일대를 외변산이라 부른다. 해안선을 따라 펼쳐지는 채석강, 곰소만 등 외변산의 풍경도 내변산 못지않게 빼어나다. 그 가운데 요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뜨겁게 달구는 곳이 있다. 채석강과 솔섬 등의 바닷가 풍경이다. 특히 여성들을 중심으로 채석강 일대가 인증샷의 성지처럼 확산되고 있다. 채석강(명승 13호)은 변산반도 나들이의 하이라이트다. 중국 당나라의 시성(詩聖) 이태백이 술에 취해 강물에 뜬 달그림자를 잡으려다 물에 빠져 죽었다는 고사에서 이름을 따온 해안절벽이다. 책을 수만 권 쌓아 놓은 듯한 퇴적암층은 보는 이로 하여금 탄성을 자아낸다. 채석강 암벽엔 동굴이 몇 개 있다. 수만년 세월에 걸친 파도의 침식작용으로 생긴 해식동굴들이다. 이 동굴 속에서 보는 낙조가 일품이다. 요즘 이 해식동굴이 새로 각광받고 있다. 이른바 ‘인생사진’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예전에는 채석강의 모습만 둘러보고 가는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요즘은 완전히 바뀌었다. 채석강은 그저 조연에 불과할 뿐 해식동굴이 압도적 주연이다. 밖에서는 평범한 동굴이지만 안에서 보면 확연히 다르다. 동굴 형태가 한반도를 닮았다고 하는 이도 있다. 다소 억지스런 주장이긴 해도 해질녘 풍경은 확실히 아름답다. 해가 수평선 아래로 잠길 때마다 동굴 밖 하늘도 붉게 물든다. 이때 암벽 위에 서서 실루엣 사진을 찍는데, 꽤 멋진 사진을 얻을 수 있다. 암벽 위 공간엔 한 커플 정도만 설 수 있다. 이 때문에 순서를 기다리느라 동굴 밖에선 길게 줄이 이어지기도 한다. 채석강을 직접 답사할 수 있는 바닷길은 하루 두 번 썰물 때만 열린다. 시간을 잘 맞춰 가야 한다. 해식동굴까지 가는 길도 상당히 미끄럽다. 물이 빠진 뒤에도 그렇다. 가방 등을 바닷물에 빠트리는 경우는 흔하고, 미끄러져 넘어지는 이들도 드물게 있다. 하이힐 같은 굽이 높은 구두를 신고 가는 건 피하길 권한다. 원래 안전상 출입금지 구역이었지만, 워낙 많은 이들이 몰려들면서 유명무실해졌다.도청리 전북 학생해양수련원 앞에 있는 솔섬도 꽤 알려진 일몰 명소다. 작은 섬 위로 몇 그루의 소나무가 있는데, 해질 무렵 오른쪽 끝에 있는 소나무 가지 사이로 해가 걸린 모습이 꼭 용이 여의주를 문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유명세를 얻었다. 솔섬에서 500m 정도 떨어진 바닷가엔 액자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사각형 액자 왼쪽에 한 신사가 멋진 자세로 서 있고, 액자 안엔 사다리를 탄 소년이 붓질을 하는 모습이 표현돼 있다. 뭔가 공원 등의 시설을 조성하려다 만 듯한 모습인데, 부안 초입에서 만났던 조형물처럼 이 액자 조형물 역시 작품에 대한 아무 설명이 없다. 이곳 또한 최근 SNS를 중심으로 인증샷 명소로 급부상하는 중이다. 우동리는 조선 후기 실학자인 허균과 ‘반계수록’을 쓴 유형원이 반세기 시차를 두고 살았던 곳이다. 내변산의 웅숭깊은 풍경을 갈무리한 곳들이 곳곳에 숨어 있다. 선계폭포가 이 일대의 명소로 꼽힌다. 비가 올 때만 드러나는 폭포다. 조선 태조 이성계가 나라를 개국하기 전 머물며 수도했다 해서 ‘성계폭포’라고도 불린다. 선계폭포의 깎아지른 벼랑 위에 세워진 정사암엔 허균이 머물렀다고 전해진다.내변산 일대는 최고봉인 의상봉(509m), 쌍선봉 등 암릉들이 펼쳐내는 선 굵은 풍경이 인상적인 곳이다. 이 일대를 관통하는 736번 도로는 기암괴석에 둘러싸인 내변산의 아름다운 숲길과 만날 수 있는 길이다. 놓치면 후회할 풍경들을 줄곧 차창에 매달고 달릴 수 있다.도청리의 금구원야외조각미술관도 둘러볼 만하다. 1966년 농민 교육을 위한 농장으로 문을 열었다가 2003년 개인 미술관으로 정식 개관했다. 조각공원엔 김오성 관장이 평생 조각한 작품들이 전시돼 있다. 전시된 작품들은 대부분 여성상이다. 목석같은 사내라도 얼굴을 붉힐 법하다. 공원 안엔 천문대도 있다. 별 관측에 관심이 많은 김 관장이 직접 천문대를 꾸미고 일반에 개방하고 있다. 변산반도 남쪽의 줄포만 갯벌생태공원은 갯벌 일부를 막아 만든 공원이다. 100종이 넘는 생물종이 서식하는 등 생물종 다양성이 높아 2010년 람사르습지로 등록됐다. 갯벌생태공원 안쪽으로 갈대숲 10리길, 야생화단지, 바람동산, 조각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인증샷 찍으며 자박자박 걷기 딱 좋다. 글 사진 부안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여행수첩 -봄꽃이 만개하는 3~4월이면 내소사 주변은 상춘객들로 몸살을 앓는다. 특히 벚꽃 필 무렵이면 내소사는 구경도 못하고 주차장으로 변한 도로에서 시간을 허비할 수도 있다. 코로나19 탓에 상황이 바뀔 수도 있지만 성수기에는 가급적 일찍 서두르는 것이 좋다. -곰소만 일대에 ‘곰소쉼터’ 등 젓갈 정식을 파는 집들이 몰려 있다. 어지간한 젓갈은 죄다 맛볼 수 있다. 값도 1만원 정도로 그리 비싸지 않은 편이다. 곰소항 ‘슬지네찐빵 슬지제빵소’에선 달콤한 찐빵을 맛볼 수 있다. ‘봄 주꾸미, 가을 낙지’라고 했다. 격포항이나 궁항, 모항 등의 어촌계 직판장 회센터에서 쫄깃한 주꾸미를 맛볼 수 있다. 부안소방서 앞의 ‘계화회관’은 백합죽으로 이름난 집이다.
  •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코로나 시련 뚫고, 또다시 봄이 왔네

    나라 전체가 멈춰 선 듯하다. 바이러스 탓이다. 사람들은 나들이를 꺼리고, 여행지는 얼어붙었다. 빼앗긴 들에도 왔던 봄인데, 한국인의 가슴엔 봄이 내려앉을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이러스가 막아서도 봄은 온다. 매화가 팝콘처럼 터지기 시작했고 들꽃들도 시나브로 꽃대를 밀어 올리고 있다. 경남 양산의 통도사를 찾았다. 늙은 매화가 필 때면 늘 뭇사람들의 입길에 오르내리는 절집이다. 절집 뜨락의 수백년 묵은 자장매가 붉은 꽃술을 열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행장 꾸려 내려갔다.●부처님 진신사리 모신 사찰… 370년 ‘자장매’ 인기 통도사는 선원과 강원, 율원을 모두 갖춘 대가람이다.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있어 불보 사찰이라고도 한다. 2018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됐다. 봄의 통도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건 이른바 ‘자장매’(慈臧梅)다. 통도사를 창건한 자장율사의 법명을 딴 매화다. 영각(影閣) 처마 아래 있다. 수령은 370년쯤 됐다고 한다. 2월 하순쯤 꽃이 피기 시작하면 분홍빛 매화를 보려는 인파로 북새통을 이룬다. 극락보전 옆에도 이름난 홍매 두 그루가 있다. 각각 만첩홍매와 분홍매로 불린다. 한데 ‘꽃보다 절집’이었다. 자장매의 자태도 명불허전이었지만 절집의 웅숭깊은 아름다움은 그보다 몇 배 뛰어났다. 다른 여행지를 둘러볼 생각은 못하고 절집에서 ‘혼자놀기의 진수’를 선보인 건 그 때문이다. ●법당 중심으로 상로전·중로전·하로전으로 나뉘어 통도사는 가람 배치가 독특하다. 법당을 중심으로 상로전, 중로전, 하로전 등 세 구역으로 나뉜다. 이는 통도사가 조성 시기가 다른 3개의 가람이 합해진 복합사찰이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넘어서면 곧 하로전이다. 영산전(보물 제1826호)과 극락보전, 범종루 등의 당우가 밀집돼 있다. 극락보전 외벽의 ‘반야용선도’가 여행자의 시선을 잡아끈다. 용선을 타고 피안의 세계로 가는 중생들의 모습을 담았다. 삼층석탑(보물 제1471호) 맞은편은 영산전이다. 하로전 구역의 중심 건물이다. 영산전은 안을 들여다봐야 한다. 다보탑을 그린 ‘견보탑품도’ 등 진귀한 벽화들(보물 제1711호)이 즐비하다. 중로전 구역에는 고려 말 건물인 대광명전을 비롯해 용화전, 개산조당 등이 자리잡고 있다. 이 구역에서 가장 독특한 건 봉발탑(보물 471호)이다. 부처님의 발우를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밥그릇에 뚜껑이 덮인 형상을 하고 있다. 발우는 스님들이 밥을 먹을 때 쓰는 그릇이다. 봉발이란 발우를 모셨다는 뜻이다. 용화전 안에는 중국 소설인 서유기의 내용 일부가 벽화로 그려져 있다. 절집 벽화로는 매우 이례적인 그림이다. 이제 상로전으로 간다. 가장 중요한 건물은 ‘대웅전 및 금강계단’(국보 제290호)이다. 대웅전은 사면이 한 건물을 이루는 독특한 구조다. 면마다 출입문이 있고, 현판도 달려 있다. 동쪽은 대웅전(大雄殿), 서쪽은 대방광전(大方廣殿), 남쪽은 금강계단(金剛戒壇), 북쪽은 적멸보궁(寂滅寶宮)이다. 이는 모두 대웅전을 일컫는 말이기도 하다. 대웅전 안에는 불상이 없다. 건물 뒤에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이 있으므로 불상이 따로 필요 없다는 의미다. 금강계단은 납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계(戒)를 수여하는 의식을 벌이는 곳이다.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금강계단에서 계를 받는 건 곧 부처님으로부터 직접 계를 받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갖는다. 납자들 모두가 이 계단을 통해 득도한다는 뜻도 담겨 있다. 통도사란 이름도 바로 여기서 비롯됐다고 한다. 대웅전 지붕 위에도 볼거리가 많다. 가로 지붕과 세로 지붕이 만나는 정점에 철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석탑의 찰주(꼭대기에 있는 원기둥 모양의 중심 기둥)와 불가에서 보배로 여기는 보주(둥근 구슬)를 형상화한 것이다. 사파이어빛 조형물이 아름다우면서도 무게감이 느껴진다. 이 모습 못 봤으면 후회가 막심할 뻔했다. 대웅전 주변에서는 찰주의 일부만 보인다. 통도천 건너편의 사자목 오층석탑에 오르면 전체를 살필 수 있다. 찰주에서 아래로 내려오면 기와 끝자락에 하얀 연꽃봉오리 같은 것들이 늘어서 있다. 이른바 백자연봉이다. 기와 끝의 숫막새에는 와정이라는 못이 박혀 있다. 기와가 미끄러지지 않도록 박아 놓은 것이다. 못을 가리고 조형미를 더하기 위해 와정 위에 연꽃 모양의 백자를 얹는데, 이게 바로 백자연봉이다. 대방광전 앞의 구룡지(九龍池)는 통도사의 창건 설화가 담긴 작은 연못이다. 자장율사가 구룡소에 사는 용들을 승천시키고 못을 메워 절을 창건했다고 한다. 응진전 앞 바닥에는 호혈석(虎血石)이라 불리는 붉은 돌이 있다. 호랑이의 기를 누르기 위해 호랑이 피를 발랐다는 반석이다. 물을 부으면 붉은 빛을 띤다. 극락전 앞에도 또 하나의 호혈석이 있다. 아울러 대웅전 계단에 새겨진 용의 비늘, 계단 옆에 마련해둔 아귀밥통 등 재밌는 이야기를 담은 유물들을 찬찬히 찾는 재미가 각별하다.●벽화부터 명필 글씨까지… ‘불화의 보고’로 유명 통도사는 흔히 ‘불화의 보고’라고 불린다. 그만큼 벽화가 많다는 뜻이다. 사진을 찍을 수 없는 것들이 대부분이지만 볼 수는 있으니 최대한 많이 눈에 담아가는 게 좋겠다. 명필들의 글씨도 많다. 일주문 현판의 ‘영축산통도사’(靈鷲山通度寺), 관음전 맞은편의 ‘원통소’(圓通所) 현판, 대웅전의 네 개 현판 중 ‘대방광전’과 ‘금강계단’ 등이 흥선대원군 이하응의 글씨다. ‘일로향각’(一爐香閣) 현판과 주지실 앞의 ‘탑광실’(塔光室) 등은 추사 김정희의 글씨로 알려졌다. 추사의 ‘성담상게’(聖覃像偈)라는 서예작품은 성보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춘풍에 세상 시름 씻겨 보내리●1㎞ 솔숲 걷노라면 업장이 벗겨지는 듯 통도사 입구를 넘어서면 곧바로 솔숲이 펼쳐진다. 이른바 ‘무풍한송로’(舞風寒松路)다. 무풍교에서 일주문 사이 솔숲에 조성된 보행로다. 솔숲에 들면 늙은 소나무들이 춤을 추듯 늘어서 있다. 통도사 일대의 빼어난 풍경을 일컫는 이른바 ‘통도8경’ 가운데 1경인 ‘무풍한송’이 바로 여기다. 솔숲의 길이는 1㎞ 정도다. 천리길을 걷듯 느릿느릿 걷는 게 솔숲의 정수를 만끽하는 방법이다.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솔향이 코를 간질이고, 솔바람이 온몸을 휘감는다. 영혼이 씻기고 업장이 벗겨져 나가는 듯한 느낌이다. 하마비가 세워진 산자락엔 큰 암벽이 있다. 부채를 펼친 듯하다는 선자바위다. 바위 여기저기에 선인들의 이름이 빼곡하다. 조선의 풍속화가 단원 김홍도, 일제강점기 박영효, 종두법의 지석영, 애국지사 의암 손병희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는데, 뭐 눈엔 뭐만 보인다고, 껄렁한 여행자 눈엔 그저 우수마발들의 이름만 들어찰 뿐이다. 부도탑에 이르면 무풍한송로는 끝이 난다. 곧장 들어가면 통도사 중심 영역이고, 주변으로 실핏줄처럼 이어진 소로를 따라 가면 부속 암자들이 나온다. 통도사의 부속 암자는 모두 19곳이다. 불심이 깊은 이들은 암자를 모두 둘러보는 ‘19암자 순례’에 나서기도 한다. 하지만 하루 일정으로는 어려워 일반 관광객들은 유명한 암자 서너 곳을 둘러보는 게 보통이다. 19암자 가운데 영축산 중턱의 백운암을 제외하면 모두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서운암은 장독대로 유명하다. 그 숫자가 무려 5000개에 이른다고 한다. 원래 야생차로 유명했던 곳인데 요즘은 장독대를 보기 위해 찾는 이들이 더 많다. 옹기들은 대부분 최소 50년이 넘었고 200~300년 된 것도 섞여 있다. 장독 안에서는 된장이 익어간다. 운이 좋으면 서운암에서 키우는 공작새가 꼬리깃을 활짝 펼친 장면과 마주할 수도 있다.●영축산 능선 품은 16만 도자대장경의 장경각 서운암 위는 장경각이다. 16만 도자대장경을 모신 곳이다. 도자대장경은 도자에 새긴 불경을 일컫는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8만 1528장의 목판 양면에 법문을 새긴 까닭에 견줘 도자대장경은 한 면에 새긴 탓에 전체 도판 수가 그 두 배인 16만 3056장에 이른다. 도자대장경을 완성하기까지 준비기간 5년을 포함해 무려 15년이 소요됐다고 한다. 이웃한 곳에 삼천불전도 있다. 역시 도자로 만든 3000개 불상을 모시고 있다. 장경각 앞 뜨락에 서면 영축산과 멀리 양산 시가지가 한눈에 담긴다. 가장 볼거리가 많은 곳은 자장암이다. 첫손 꼽히는 건 마애아미타삼존상(등록문화재 제617호)이다. 전체 높이가 4.54m에 이르는 대형 마애불이다. 1896년(고종 33년) 조성됐다. 다른 곳과 달리 자장암의 마애상은 바위에 얕게 새겨진 편이다. 이 덕에 조각이 아닌 불화(佛畵)를 보는 듯한 느낌이 든다. 마애상 뒤편 바위엔 금와보살이 산다. 거대한 바위 중심부에 작은 구멍이 뚫렸고, 종종 이 구멍 밖으로 황금빛 개구리가 출현한다고 한다. 불심 깊은 이들 눈에만 보인다고 하니 한번 도전해 보시길.●빼어난 경관에 왜구들도 활을 놨던 안양암 암자의 마루에 걸터앉으면 ‘악’ 소리나는 풍경과 마주하게 된다. 뜨락 위의 키 낮은 담장 너머로 영축산 능선이 얹혀져 있다. 늙은 소나무들은 이리 휘고 저리 굽은 자태로 추임새를 넣고 있다. 단정하고 소박한 풍경화 한 폭을 보는 듯하다.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발품 판 노고는 보상받고도 남는다. 원래 통도사 암자 가운데 전망 좋기로 명자깨나 날리던 곳은 안양암이다. 임진왜란 때 왜구들이 활을 쏘려다 눈앞에 펼쳐진 경관이 너무 빼어나 활을 놓고 말았다던가. 통도8경 중 제3경인 안양동대(安養東臺)가 바로 이 절집이 앉은 자리를 일컫는 말이다. 한데 시원한 맛으로는 자장암에 한 수 접어줘야 할 듯하다. 극락암은 극락영지(極樂影池)라는 작은 연못과 그 위에 놓인 어여쁜 홍교로 유명한 암자다. 통도8경 중 제5경이 바로 여기다. 연못엔 영축산 풍경이 그대로 담긴다. 연못 위 홍교는 당대 최고의 선지식으로 꼽히는 경봉 스님이 1962년 조성했다. 극락영지와 나란히 선 늙은 벚꽃이 개화하면 그야말로 선경이 펼쳐질 듯하다. 글 사진 양산 손원천 기자 angler@seoul.co.kr ■ 여행수첩 대중법회 일시 중단… 공양간도 폐쇄 -금강계단은 상시 개방됐던 예전과 달리 일정 기간에만 공개된다. 매달 음력 1~3일, 보름 등의 특정 시기 오전 11시~오후 2시에 개방한다. 통도사 홈페이지에 자세한 개방일자가 나와 있다. 평시에는 대광방전 쪽 담장 너머로 살펴볼 수밖에 없다. -코로나19(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확산으로 대중법회 등은 취소됐지만 다행히 산문은 폐쇄되지 않았다. 다만 내방객 모두 발열 체크를 해야 하는 등 다소간의 불편은 예상된다. 코로나19 확산세에 따라 상황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방문 전 확인하는 게 좋겠다. -공양간도 폐쇄됐다. 3월 초까지는 절밥을 먹을 수 없다. 산문 앞에 산채비빔밥 등 맛집들이 즐비하다. 삼정메밀소바, 금호정 등은 메밀국수로 유명한 집이다. 통도사 입구에서 멀지 않다. -통도사는 울산 울주군과 인접해 있다. 양산 시내보다는 석남사, 반구대암각화 등 울주 쪽 명소들을 묶어 돌아보는 사람들이 많다.
  • 정해인 채수빈, 그림 같은 투샷…‘반의반’ 제작진 “현장 핑크빛”

    정해인 채수빈, 그림 같은 투샷…‘반의반’ 제작진 “현장 핑크빛”

    올 봄 안방극장을 설렘으로 물들일 tvN 새 월화드라마 ‘반의반’ 정해인과 채수빈의 그림 같은 유리창 투샷이 공개돼 시선을 사로잡는다. 다음달 23일 첫 방송 예정인 tvN 새 월화드라마 ‘반의반’은 인공지능 프로그래머 하원(정해인 분)과 클래식 녹음 엔지니어 서우(채수빈 분)가 만나 그리는 시작도, 성장도, 끝도 자유로운 짝사랑 이야기다. 정해인, 채수빈, 이하나, 김성규가 주연을 맡고 드라마 ‘아는 와이프’, ‘쇼핑왕 루이’ 등을 연출한 이상엽 감독과 영화 ‘유열의 음악앨범’, 드라마 ‘공항 가는 길’ 등을 집필한 이숙연 작가가 손을 잡은 작품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13일 정해인(하원 역)과 채수빈(서우 역)의 투샷 스틸이 첫 공개돼 이목이 집중된다. 공개된 스틸 속 정해인은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으로 눈길을 끈다. 그의 그윽한 눈빛과 입가에 머금은 희미한 미소가 보는 이들까지 숨을 죽이고 지켜보게 한다. 이에 채수빈은 유리창 너머에 그대로 멈춰선 채 정해인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는 모습. 정해인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의 눈빛에서 묻어 나오는 궁금함과 애틋함이 따스한 설렘을 전파한다.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서로 다른 곳을 바라보는 정해인과 채수빈의 엇갈린 시선이 짙은 짝사랑 감성에 빠져들게 한다. 첫 스틸 만으로도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정해인과 채수빈이 만나 그려갈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사랑 이야기에 기대감이 고조된다. ‘반의반’ 제작진은 “정해인과 채수빈은 첫 촬영부터 싱그럽고 몽글몽글한 설렘 케미스트리를 터뜨리며 촬영 현장을 분홍빛으로 물들였다”면서 “올 봄, 한 겨울 메마른 나무처럼 얼어붙어 있던 연애 세포를 봄꽃처럼 피어나게 만들 정해인과 채수빈의 로맨스를 기대해 달라”고 전해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반의반’은 오는 3월 23일 기존 월화드라마 방송시간보다 30분 앞당겨진 밤 9시에 첫 방송될 예정이다. 이보희 기자 boh2@seoul.co.kr
  • 덫에 걸려 ‘조커’ 흉터 생긴 희귀 알비노 코끼리

    덫에 걸려 ‘조커’ 흉터 생긴 희귀 알비노 코끼리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희귀 알비노 코끼리 한 마리가 끔찍한 모습으로 발견됐다. 남아공 야생동물보호구역인 캠프 자블라니를 근거지로 하는 한 코끼리 보호단체는 이달 6일(현지시간) 크루거국립공원 근처 사설 구역에서 새끼 알비노 코끼리 한 마리가 덫에 걸린 채 발견됐다고 밝혔다. 생후 4개월 된 새끼 코끼리는 인근을 순찰하던 수의사가 발견해 보호단체로 이송시켰다. 일명 ‘코끼리 탁아소’로 불리는 ‘호스푸르잇 코끼리 재활 보호소’(HERD) 측은 새끼 코끼리가 구조 사흘 만에 보호소로 이관됐으며 상처가 심해 계속 치료 중이라고 설명했다.코끼리는 입부터 귀 뒤까지 찢어지는 큰 부상을 입었다. 그 흉터는 영화 ‘배트맨’ 속 악당 ‘조커’를 연상시킬 정도로 깊다. 21일(현지시간) 영국 데일리메일은 상처 부위에 생긴 구더기가 코끼리의 살을 파먹으면서 귀 일부가 잘려 나갔다고도 전했다. 의료진은 왼쪽부터 오른쪽까지 수일에 걸쳐 상처를 봉합하는 수술을 진행했다. 지난 15일에는 구조 후 처음으로 탁아소를 둘러보기도 했다. 특히 이곳에 머무는 염소 한 마리와 함께 뛰놀며 우정을 쌓은 코끼리는 단 며칠 만에 탁아소 환경에 완벽 적응했다. 사육사와 의료진 품에 안겨 애교를 부리는 모습도 보였다.특히 알비니즘을 갖고 태어난 코끼리는 반짝거리는 특유의 분홍빛 눈망울로 보호소 사람들을 사로잡았다. 보호소 측은 코끼리에게 ‘카니자’(Khanyisa)라는 이름을 붙여주었다. 카니자는 짐바브웨 쇼나족의 모어 ‘쇼나어’로 ‘빛’이라는 뜻이다. 적응이 빨라 다행이긴 하지만, 상처 때문에 먹이 공급에 오랜 시간이 소요되는 점은 우려스럽다. 탁아소 설립자 아딘 루디는 “찢어진 코끼리 입 사이로 우유 공급이 가능한 각도를 찾느라 애를 먹었다”라면서 “부상이 심해 식사 시간도 꽤 오래 걸리는 편”이라고 말했다.아프리카에서는 보츠와나, 케냐, 나미비아, 르완다, 우간다 등에 코끼리가 서식하고 있다. 이들 나라에서는 비교적 강력한 밀렵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만, 콩고민주공화국이나 중앙아프리카공화국, 남아프리카공화국 국경 일대에서는 아직도 상아를 노린 밀렵이 성행하고 있다. 세계자연보전연맹(IUCN)에 따르면 2006년~2015년까지 아프리카코끼리 개체 수는 11만1000마리가 감소했다. 2016년에만 전 세계적으로 40t의 불법 상아 유통이 적발됐다. 이대로 가면 20~30년 이내에 아프리카에서 코끼리를 찾아볼 수 없게 될 것으로 세계자연기금(WWF)은 내다보고 있다.  권윤희 기자 heeya@seoul.co.kr
  •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들은 왜 이 그림을 추하다 했을까

    [이미혜의 발길따라 그림따라] 그들은 왜 이 그림을 추하다 했을까

    해 질 무렵 묘지. 두 수녀가 있다. 한 사람은 무덤을 파고, 한 사람은 묘석 위에 앉아 관객을 바라본다. 화면에는 죽음의 모티브가 흩어져 있다. 오른쪽 수녀의 묵주에는 해골 장식과 십자가가 달려 있고 뒤편에는 묘석들이 서 있다. 저무는 하늘에 관처럼 길쭉한 구름이 떠 있다. 옛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이런 구름이 누군가의 죽음을 예고한다고 믿었다. 죽음에는 평화가 있다. 얕은 담장으로 둘러쳐진 묘지는 고요하고, 연노랑 하늘에는 보랏빛과 분홍빛 구름이 떠간다. 마지막 햇살을 받은 포플러와 교회 종탑의 실루엣이 선명하다. 살아 있는 한 이 휴식의 계곡에서도 걱정근심과 노동을 면제받을 수 없다. 오른쪽 수녀는 인기척에 놀라 돌아보는 것처럼 경계심 가득한 눈길을 던진다. 왼쪽 수녀는 이미 깊게 땅을 판 상태다. 이들은 왜 이런 시간에 무덤을 파는 것일까. 누구를 묻으려는 것일까. 당시 영국에서 사사로운 매장을 법으로 금지했다는 사실을 알고 나면 이 장면은 더욱 이상하다. 그림은 더는 말해 주지 않는다. 이 작품을 기점으로 밀레이는 라파엘 전파와 작별하고 유미적·상징적인 그림으로 옮아갔다. 이 그림에서 밀레이는 서사를 배제하고 고요함과 불안감이 교차하는 느낌만으로 화면을 채웠다. 꼼꼼하게 묘사된 식물이 ‘오필리아’(1851) 시절의 밀레이를 말해 준다. 1859년 로열 아카데미 전시회에서 그림이 공개되자 밀레이의 기대와 달리 비난이 쏟아졌다. 추하다는 것이었다. 그 이유가 오늘날의 관점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다. 19세기 중산층 여성은 육체노동을 하지 않았다. 비평가들은 이 그림의 여성이 남자처럼 능숙하게 삽을 다루는 게 숙녀답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두 사람이 수녀인 것도 눈에 거슬렸다. 이 시대의 모든 여성은 결혼해서 남편을 받들고 아이를 낳아 키우는 가정의 천사가 돼야 했다. 결혼하지 않고 물론 출산도 하지 않고 남자 없이 자족적으로 살아가는 수녀는 당대 여성관에 어긋나는 존재였다. 그들은 휴식의 계곡에 잠들었고, 그림은 남아서 우리를 마주 바라본다. 미술평론가
  • ‘어하루’ 이재욱, 거친 외면 속 애틋한 진심 [SSEN리뷰]

    ‘어하루’ 이재욱, 거친 외면 속 애틋한 진심 [SSEN리뷰]

    ‘어하루’ 김혜윤을 향한 이재욱의 남모를 진심이 빛을 발했다. 지난 6일 방송된 MBC 수목미니시리즈 ‘어쩌다 발견한 하루’에서는 본격적으로 ‘능소화’ 스테이지가 전개되며 백경(이재욱 분)과 단오(김혜윤 분), 하루(로운 분)의 현재로 이어진 이들의 대과거가 펼쳐져 눈길을 끌었다. 백경은 ‘능소화’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인 진미채(이태리 분)에게 찾아가 하루의 존재에 대해 묻지만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바로 이어진 ‘능소화’ 스테이지에서 백경과 진미채의 대립각은 현재로 이어진 이들의 관계에 앞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 궁금케 했다.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진 이들의 끈질긴 인연 이외에도 단오를 향한 백경의 애틋한 진심도 눈길을 끌었다. 백경은 빈 병실에서 단오를 기다리며 과거를 회상하며 어린 시절부터 현재가 되어서도 단오에게 분홍빛 장미꽃을 선물했던 지난 날들이 전해진 것. 특히 분홍빛 장미꽃의 꽃말인 ‘나의 마음은 당신만이 알아요’처럼 단오를 향한 백경의 남모를 순애보를 짐작케 했다. 백경은 그동안 스테이지와 쉐도우를 오가며 단오를 향한 마음에 혼란을 겪으며 어느 순간 단오의 곁에서 자신의 커져버린 마음을 확인하게 되지만 하루 곁에서 행복해하는 단오가 신경 쓰이면서도 하루에 대한 단오의 확고한 마음에 주저할 수 밖에 없는 백경의 상황은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하지만 끝내 둘만의 비밀 공간에서 또 다시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며 행복해하는 단오와 하루의 모습 앞에서 그저 지켜만 보는 백경의 외사랑은 마음을 아프게 했다. 한편, ‘어쩌다 발견한 하루’는 극 중 세계관을 담고 있는 만화 ‘비밀’에 이어 ‘능소화’의 이야기까지 폭풍 전개되며 매 회 화제를 모으고 있는 가운데 엇갈린 이들의 관계가 어떻게 퍼즐을 맞춰 나갈지 관심이 증폭되고 있다. 임효진 기자 3a5a7a6a@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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