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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헌화·분향없이 추모 묵념

    광복 60돌 기념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8·15 민족대축전’에 참가하기 위해 14일 서울에 온 북측 당국 및 민간 대표단이 오후 3시 동작동 서울 국립현충원을 공식 참배했다. 북한측 인사가 현충원을 참배한 것은 처음이다. 북측 대표단장인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등은 또 오는 17일쯤 청와대로 노무현 대통령을 방문할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의 ‘특사’ 자격 여부와 함께 친서를 전달할지가 주목된다. 북측 대표단은 16일에는 분단 사상 처음으로 국회를 방문, 남북 국회회담 개최방안 등을 협의할 예정이다. 남북 국회간 교류가 급물살을 탈 조짐이다. 이날 현충원 참배에는 김기남 당 비서와 임동옥 노동당 통일전선부 제1부부장, 최성익 조선적십자회 중앙위 부위원장 등 14명의 당국 대표단과 안경호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서기국장, 김정호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장,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 등 13명의 민간대표단, 기자 3명 등 모두 30명이 참석했다. 북측 대표단은 6·25 전사자 위패와 무명용사 유골이 봉안된 현충탑 앞에 도열,“순국선열 및 호국 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전관의 구호에 따라 약 5∼6초간 묵념했다. 그러나 헌화와 분향 순서는 생략했으며, 방명록에 서명을 하진 않았다. 김기남 비서는 이에 앞서 숙소인 서울 워커힐호텔에 도착한 직후 정동영 통일부장관 등 우리측 대표단과의 환담에서 “조국 광복을 위해 생을 바친 분이 있어 방문하겠다는 의견을 제기한 것”이라고 말해 6·25 전몰 군경이 아닌 광복 유공자를 위한 추모 차원에서 방문했음을 시사했다. 그러나 북측 자문위원인 임동옥 제1부부장은 이 자리에서 “현충원 (참배) 결정은 어려운 것이었고 언젠가는 넘어야 할 관문”이라며 “6·15 시대에는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앞서 북측 당국대표 17명, 남녀축구선수단 65명, 민간 대표 100여명 등 180여명은 이날 오전 10시5분과 10시20분 고려항공 전세기 2편에 나눠 타고 인천공항을 통해 입국했다. 김수정 김상연기자 crystal@seoul.co.kr
  •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광복60-민족대축전 화보] 광복에 바친 生 영원히…

    ■ 北대표단 현충탑 참배 안팎 그들의 얼굴 앞에 포연(砲煙) 대신 향연(香煙)이 자욱하게 피어올랐다. 14일 ‘8·15 민족대축전’ 북한 대표단이 6·25 전쟁 전사자의 위패가 모셔진 현충탑 앞에서 참배하는 장면은 실감이 나지 않을 만큼 긴 여운을 남겼다. 50여년 전 서로 총부리를 들이댔던 쌍방이 무덤 앞에서 참배의 형식으로 만나는 그림은 전쟁 당시는 물론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일반 국민으로서는 상상키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북측 대표단의 표정과 행동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고, 참배 절차와 시간도 최대한 짧게 하는 등 전체적으로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는 인상을 풍겼다. 이날 오후 3시쯤 대형버스로 현충원 현충문 앞에 도착한 북측 대표단 32명은 김기남 당국대표 단장과 안경호 민간대표 단장을 선두로 해 5열 종대로 줄을 맞춰 현충탑으로 향했다. 고경석 현충원장과 송기호 현충과장이 좌우에 서서 대표단을 안내했다. 이때 양옆에 도열한 국군의장대가 “받들어 총”이라는 구령과 함께 거총 자세로 예우를 갖췄지만 대표단은 일체 두리번거리지 않고 정면만을 응시했다. 표정은 엄숙하면서도 굳어 있었다. 대표단은 50m가량을 걸어서 2분여 만에 현충탑에 도착했다. ●행동경직… 참배시간 모두 5분정도 걸려 현충탑 앞에 도열한 대표단은 “순국선열 및 호국영령에 대해 묵념”이라는 집례관의 구호에 따라 약 5초간 가볍게 고개를 숙였다. 대표단은 묵념을 끝내자마자 곧바로 오던 길을 되돌아 현충문으로 나왔으며 이때 의장대가 다시 “세워 총”이라는 구령으로 거총 자세를 취하면서 참배는 마무리됐다. 전체 시간은 5분 정도 걸렸다. 김기남 단장은 나오는 길에 고경석 원장에게 현충원의 시설과 규모에 대해 물었다. 이어 그는 “이렇게 현충원을 방문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민족의 화합을 위해 앞으로 일들을 많이 합시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안경호 단장은 기자들이 몰려들자 “역사적인 장면이니까 취재 경쟁이 심한 것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는 헌화→분향→묵념 등 순으로 진행되지만 북측은 이날 헌화와 분향 절차를 생략했다. 다만 대표단이 도착하기 전 현충원측에서 향을 피워놓아 묵념 당시에는 하얀 연기가 솟아 오르고 있었다. 통일부측은 “우리와 북측은 참배 관행이 다르다.”고 설명했다. ●보수단체 회원 24명 연행 격리 북한은 김일성 주석의 동상 등을 참배할 때 헌화는 하지만 분향은 하지 않는다. 앞서 오후 1시45분쯤 현충원 정문 앞에서 시위를 벌이던 보수단체 회원 24명이 경찰에 의해 연행돼 강제 격리됐으며, 대표단 버스가 현충원 정문을 통과할 때도 40대 남성이 경찰 저지선을 뚫고 버스에 달려들며 반북구호를 외치다가 연행됐다. 김상연 이효연기자 carlos@seoul.co.kr ■ 헌화·분향 않고 왜 묵념만 14일 국립현충원을 방문한 북측 대표단이 묵념만 하고 5분 만에 서둘러 자리를 뜬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대표단은 현충원의 공식 참배 절차 가운데 헌화와 분향 순서를 생략했다. 이는 북측의 요청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북측의 참배 관행이 자연스럽게 반영된 것으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부의 설명은 설득력이 약하다는 지적이다. 북측은 김일성 동상과 혁명열사릉 등 현충시설을 참배할 때 분향은 안 하지만 꽃다발과 꽃바구니로 헌화도 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북측은 5초 정도의 짧은 묵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서둘러 현충탑을 떴고, 내내 경직된 표정을 풀지 않았다. 이와 관련, 북한 당국이 북한내 강경파와 대남관계의 수위 조절을 두루 감안한 것 같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현충탑에 헌화할 경우 김일성 동상에 대한 예우와 맞먹는다는 점에서 북한 주민이 받을 충격을 우려했다는 것이다. 아울러 아직 남한과의 공조 방침이 확실히 정리되지 않은 상황에서 한번에 너무 최고의 예우를 할 경우 나중에 남북관계가 부정적으로 흐를 때 빠져나갈 여지가 없다는 점도 감안했다는 관측도 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민족대축전 이모저모 14일 저녁 서울 상암월드컵경기장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5만 인파의 우렁찬 통일 함성으로 진동했다. 함성은 이어 벌어진 통일축구로 절정에 달했다. ●“말복 폭염도 통일열기 못 따라와” 나흘간 계속되는 8·15 민족대축전은 오후 5시10분 남·북·해외 대표단의 민족대행진(상암동 평화공원∼월드컵경기장)으로 막을 열었다. 북한 대표단은 ‘역사적인 북남공동선언 기치 밑에 통일운동을 거족적으로 벌여나가자.’고 적힌 플래카드를 앞세워 행진했다. 성자립 김일성종합대 총장은 “오늘이 말복이라 날씨가 덥고 폭염이 계속되고 있지만 통일열기는 따라잡지 못한다.”고 말해 박수를 받았다. 대표단이 경기장에 도착한 오후 6시 각각 백두산과 한라산에서 채화된 성화가 성화대에 불을 붙였고, 그 순간 한반도기가 게양됐다. 개막식은 백낙청 남측 준비위원회 위원장의 개막선언과 북측 당국 대표단장 김기남 노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남측 당국 대표단장 정동영 통일부장관의 개막연설 순으로 진행됐다. ●세종로서도 축구 보며 남북 동시응원 오후 7시 남북 통일축구 경기 시작에 앞서 일제시대 위안부로 끌려갔던 최갑순씨 등 정신대 할머니 3명과 경기 하남시 대안학교인 ‘꽃피는 학교’ 학생 28명이 ‘고향의 봄’ 노래를 부르기도 했다. 경기가 열린 상암월드컵경기장 주변은 물론 차량의 통행을 막은 세종로에 모인 시민들까지 남북 양측을 모두 응원하며 통일을 향한 염원을 실어보냈다. 통일연대 등 진보단체는 15일 0시쯤 경희대 노천극장에서 ‘자주·평화·통일을 위한 결의의 밤’ 행사를 가졌다. 김혜경 민주노동당 대표, 한상렬 통일연대 상임대표 등의 인사말로 시작된 행사에는 학생 등 1만6000여명(경찰추산)이 참가했다. 이례적으로 한국민주통일연합(재일 한국인 단체) 등 해외인사들도 참석했다. 당초 행사는 연세대에서 열릴 예정이었으나 연세대측과 연세대총학생회의 반대로 장소가 변경됐다. 유영규 이효연 나길회기자 whoami@seoul.co.kr
  •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마지막 황세손 떠나는 길 하늘에선 ‘애도의 소나기’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李玖)씨의 영결식이 24일 서울 창덕궁 희정당에서 오전 10시에 열렸다. 고인은 고종황제의 둘째 아들 영친왕(英親王)의 왕세자로서 조선왕가의 마지막 적통이었다. 이날 영결식은 유홍준 문화재청장과 이환의 전주이씨 대동종약원 이사장이 공동위원장을 맡은 ‘황세손장례위원회’ 주관으로 치러졌다. 상주는 지난 22일 고인의 양자로 입적된 이원(李源)씨가 맡았다. 영결식에는 이해찬 국무총리와 유홍준 청장, 주한일본대사, 박진·이낙연 등 현직 국회의원과 문중인사, 취재진 등 약 1000여명에 달하는 인파가 모여들었다. 마침 창덕궁을 둘러보던 외국인 관광객들도 우연히 마주치게 된 이번 행사에 깊은 관심을 보였다. ●이해찬 총리등 1000여명 인파 몰려 또 조선왕조의 마지막 행사라는 역사적 의미 때문인지 일부러 자녀들의 손을 이끌고 나온 사람들도 눈에 띄었다. 방학 숙제 주제로 잡고 이번 행사를 꼼꼼히 기록하는 중·고등학생들도 많았다. 무더위 때문에 일부 관람객들은 쓰러지기도 해 119구조대가 출동하기도 했다. 영결식은 운구 운반→개식 선언→묵념→조악(弔樂) 연주→고인의 약력보고(이용규 장례부위원장)→인사(이환의 이사장)→식사(유홍준 청장)→조사 낭독(이해찬 총리)→유족과 조문객 분향→조악(弔樂) 연주→퇴회식 순서로 진행됐다. 이해찬 총리는 조사를 통해 “대한제국 마지막 황세손 고 이구 저하의 훙서(薨逝)를 진심으로 애도하오며, 영령께서 사랑하시는 부왕(영친왕)과 모후(이방자)를 만나 현세에서 다하지 못한 행복을 영원토록 누리시기를 삼가 기원합니다.”라고 말했다. ●돈화문~종로3가~종묘 노제 영결식 뒤 운구 행렬은 창덕궁 돈화문과 종로 3가를 거쳐 종묘에 도착해 노제(路祭)를 지냈고, 노제 뒤에는 경기 남양주시 금곡동 영친왕 묘역인 영원(英園)으로 옮겨 고인을 안장했다. 운구행렬이 지나는 동안 종로3가는 교통이 통제됐고 지나가던 시민들도 황세손의 마지막 길을 유심히 지켜봤다. 일부 시민들은 “이렇게 행사만 요란하게 할 게 아니라 왕손들을 지금이라도 우리가 잘 챙겨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으나 휴일을 맞아 극장가에 나온 젊은이들은 행사의 의미를 잘 모르는 듯 무심코 지켜보기도 했다. 행사는 전통과 근대 사이에 있었던 대한제국의 역사를 반영하듯, 전통과 근대가 혼합된 형식으로 치러졌다. 한편에서는 군악대와 국군의장대, 캐딜락이 있었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취타대와 만장 행렬 등이 함께 했다. ●3년상위해 낙선재에 상청 설치 논의 9일장으로 치러진 고인의 장례식은 고궁 내에서 치른 마지막 장례가 될 가능성이 높다. 사후에라도 양자가 지명됐다고는 하지만 고인의 사망으로 조선왕실의 적통은 단절됐다고 보는 시각이 우세하기 때문이다. 고인과 결혼했으나 ‘외국여자인 데다 후손도 없다.’는 이유로 강제 이혼당한 줄리아는 노제가 열린 종묘공원 맞은 편에서 고인의 마지막 길을 조용히 지켜본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장례는 고인의 어머니 이방자 여사의 1989년 장례절차를 기록해둔 ‘의민황태자비 장의록’에 따라 치러졌으며, 고인의 넋을 위로하는 ‘우제’는 낙선재에서 25일 열린다. 종약원측은 3년상을 위해 낙선재에 상청을 설치하는 문제를 두고 문화재청과 계속 협의키로 했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부고]

    ●애국지사 송석형 선생 일제 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송석형(宋錫亨) 선생이 22일 오전 대전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6세. 1919년 대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특수훈련인 OSS훈련반에서 3개월간 특수훈련 무기반을 수료한 뒤 광복군 간부대원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국내정진군 제2지구 충청도반에서 국내침투공작 작전을 진행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인구 여사와 3남3녀가 있으며 빈소는 대전보훈병원 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낮 12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010-3034-3102. ●권순일(전 한국방송광고공사 국장)순범(전 새한투자자문 이사)순욱(전 SK증권 상계지점)순천(대우자동차판매 차장)순동(제일기획 수석국장)씨 모친상 22일 삼성서울병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3410-6912 ●김남순(전 기독교성결교회 전국여전도회장)씨 별세 김인기(아이케이인터내셔널 대표)윤기(전 외환은행 차장)씨 모친상 정계성(가야쉬핑 대표)씨 빙모상 22일 경희의료원, 발인 25일 오전 7시 (02)958-9545 ●손두형(아시아나항공 상무)두용(캐나다 거주)씨 모친상 김해동(캐나다 거주·소아과 원장)씨 빙모상 22일 서울대병원, 발인 25일 오전 6시 (02)2072-2091∼3 ●최윤식(성창산업 사장)정식(금호전기 상임감사)경숙(광주종합고 교사)씨 모친상 박주재(성호전력)씨 빙모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9시 (02)3010-2291 ●이미영(새만금영농조합 대리)씨 시부상 황선태(황선태산부인과 원장)안지택(미국 회계사)씨 빙부상 22일 신촌세브란스병원, 발인 24일 오전 8시 (02)392-0699 ●민승현(플라팬 대표)은현(고려당 대표)씨 부친상 김기일(우성상사 대표)이석노(대아인쇄 대표)최병길(기웅 대표)안재왕(알프스 대표)씨 빙부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39 ●진영환(서울리버사이드호텔 사장)씨 부친상 22일 서울아산병원, 발인 24일 오전 7시 (02)3010-2294 ●최용안(전 산림조합중앙회장)씨 별세 22일 전북대병원, 발인 24일 오전 10시 (063)250-2441
  • 애국지사 송석형 선생

    일제 강점기 광복군으로 활동한 애국지사 송석형(宋錫亨) 선생이 22일 오전 대전보훈병원에서 숙환으로 별세했다.86세. 1919년 대전에서 태어난 선생은 일제강점기 광복군 제2지대에 입대해 한미특수훈련인 OSS훈련반에서 3개월간 특수훈련 무기반을 수료한 뒤 광복군 간부대원으로 활동했으며 1945년 국내정진군 제2지구 충청도반에서 국내침투공작 작전을 진행하다 광복을 맞이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77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고 1990년에는 건국훈장 애국장을 수여했다. 유족으로는 미망인 이인구 여사와 3남3녀가 있으며 빈소는 대전보훈병원 장례식장 제3분향실에 마련됐다. 발인은 25일 낮 12시, 장지는 대전 국립현충원 애국지사 제3묘역이다.010-3034-3102.
  • 시신없는 영결식

    지난 13일 발생한 전투기 연쇄 추락사고로 희생된 조종사 4명의 영결식이 15일 소속부대인 수원과 청주비행단에서 부대장(葬)으로 거행됐다. 공군은 사고기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는 못했지만 조종복과 기체 일부 등이 사고 인근 해역에서 발견됨에 따라 전원 사망으로 판단하고 유족들과의 협의를 거쳐 사고 사흘째인 이날 영결식을 거행하게 됐다고 밝혔다. 희생 조종사들에 대해서는 훈련 중 순직한 고인들의 위국 헌신의 뜻을 기려 모두 1계급씩 진급이 추서됐다. 이에 따라 F-4E 팬텀기를 몰았던 이해남(36·공사 40기)·김동철(34·공사 42기) 소령은 중령으로,F-5F 제공호에 탑승했던 김태균(35·공사 40기) 소령과 김종수(30·공사 46기) 대위는 각각 중령과 소령으로 각각 진급했다. 영결식 후 희생자들은 모두 국립 대전현충원에 안장됐다. 순직 조종사들의 유해를 찾지 못한 만큼 전투기 추락 등 불의의 사고에 대비해 고인들로부터 미리 확보해 둔 머리카락과 손톱 등으로 유해를 대신해 안장했다. 공군은 이날 영결식과는 별도로 고인들의 유해와 추락한 전투기 잔해에 대한 수색작업은 계속할 방침이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족을 비롯해 윤광웅 국방장관과 이상희 합참의장, 이한호 공군참모총장 등 주요 군 지휘관들이 참석했다. 앞서 공군은 지난 14일 추자도 인근 해상에서 김동철 중령의 조종복과 기체 잔해, 신체 일부 등을 찾아낸 데 이어 일부 기름띠가 목격됐던 충남 보령시 인근 해상에서 전투기 꼬리 부분 잔해를 추가로 찾아냈다. 배창식 공군 참모차장을 위원장으로 하는 공군 사고조사위는 수거된 전투기 일부 잔해와 조종사들의 음성기록 등을 기초로 추락 원인 조사를 사흘째 계속하고 있다. 공군은 또 이들 순직자에 대한 추모를 위해 자체 인터넷 홈페이지(www.airforce.mil)에 사이버 분향소를 마련했다.조승진기자 redtrain@seoul.co.kr
  • [지역플러스] 경부고속도 건설 순직자 위령제

    경부고속도로 건설 순직자 합동 위령제가 7일 오전 11시 충북 옥천군 동이면 조령리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에서 열린다. 경부고속도로 개통(1970년 7월7일) 35주년을 맞아 열리는 이 행사에는 한국도로공사 관계자와 경부고속도로 건설역군들의 모임인 7·7회원, 유가족 등 100여명이 참석해 헌화·분향하고 희생자들의 넋을 기린다. 한국도로공사는 경부고속도로 개통 이듬해 이 도로 중간지점인 금강휴게소 맞은편 언덕에 77명의 순직자를 기리는 탑을 세웠다.
  •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경기도 연천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인 고 김종명(26) 대위 등 육군 장병 8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25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육군 28사단장(葬)으로 거행됐다. 고인들의 유해는 성남시립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 200여명과 군장병 500여명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은 조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정ㆍ영구 입장, 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영결식 내내 유족들의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전우들을 위해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소임을 완수해 왔던 높은 뜻과 발자취를 추모하며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피의자 김동민(22) 일병의 동기이자 사건현장에서 생존한 천원범 일병은 조사에서 “(희생자들은) 젊은 나이에 조국의 부름에 당당한 자세로 응해 온 몸으로 조국을 지켜온 이 시대의 진정한 젊은이들이었다.”며 “누구보다 용감하고 성실했던 선배 전우들의 환한 웃음과 멋진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어 희생장병의 유해는 대전 유성 갑동 대전 현충원에 도착, 합동안장식이 엄수됐다. 박흥렬 육군참모차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안장식은 종교의식, 헌화, 분향, 조총, 묵념과 하관순으로 이어졌다. 하관식이 열리자 유족들은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엄마 두고 어디 가느냐.”“하고 싶어하던 것도 다 못해 줬는데 미안해서 어쩌냐.”며 오열, 온통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종명 대위의 영현은 장교묘역에 안치됐고, 김인창(22) 병장 등 7명의 영현은 사병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유족들은 하관식이 끝난 뒤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문조 8마리와 가족과 친구를 나타내는 잉꼬, 카나리아 등 모두 20마리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온몸으로 조국 지켜온 모습 영원히…”

    경기도 연천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희생자인 고 김종명(26) 대위 등 육군 장병 8명에 대한 합동영결식이 25일 경기도 성남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육군 28사단장(葬)으로 거행됐다. 고인들의 유해는 성남시립 화장장에서 화장된 뒤 대전 국립현충원으로 옮겨져 안장됐다. 이날 영결식에는 유가족 200여명과 군장병 500여명 등 각계 인사 1000여명이 참석, 희생된 장병들의 넋을 위로했다. 영결식은 조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영정ㆍ영구 입장, 고인에 대한 경례, 조사, 추도사, 종교의식, 헌화 및 분향, 조총 및 묵념 순으로 1시간 넘게 진행됐으며 영결식 내내 유족들의 오열이 그치지 않았다. 김장수 육군참모총장은 추도사에서 “조국을 위해,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그리고 생사고락을 같이하는 전우들을 위해 국가안보의 최전선에서 묵묵히 소임을 완수해 왔던 높은 뜻과 발자취를 추모하며 명복을 빈다.”고 애도했다. 피의자 김동민(22) 일병의 동기이자 사건현장에서 생존한 천원범 일병은 조사에서 “(희생자들은) 젊은 나이에 조국의 부름에 당당한 자세로 응해 온 몸으로 조국을 지켜온 이 시대의 진정한 젊은이들이었다.”며 “누구보다 용감하고 성실했던 선배 전우들의 환한 웃음과 멋진 모습을 영원히 기억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이어 희생장병의 유해는 대전 유성 갑동 대전 현충원에 도착, 합동안장식이 엄수됐다. 박흥렬 육군참모차장 등 300여명이 참석한 안장식은 종교의식, 헌화, 분향, 조총, 묵념과 하관순으로 이어졌다. 하관식이 열리자 유족들은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떡해.”“엄마 두고 어디 가느냐.”“하고 싶어하던 것도 다 못해 줬는데 미안해서 어쩌냐.”며 오열, 온통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종명 대위의 영현은 장교묘역에 안치됐고, 김인창(22) 병장 등 7명의 영현은 사병묘역에 나란히 묻혔다. 유족들은 하관식이 끝난 뒤 희생자들을 상징하는 흰색과 검은색 문조 8마리와 가족과 친구를 나타내는 잉꼬, 카나리아 등 모두 20마리를 하늘로 날려보냈다. 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김일병 혼날때 선임한테 욕도 했다”

    “김일병 혼날때 선임한테 욕도 했다”

    육군의 총기난사사건 최종수사 결과가 발표된 뒤 유가족들은 분향소를 찾은 동료 장병들과 군당국을 대상으로 2시간 남짓 질문공세를 폈다. 유족들은 특히 군 당국이 당초 발표한 ‘언어폭력’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성실하게 군생활을 한 희생자들을 위해서라도 사건의 진상이 밝혀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질문을 이끈 차유철 상병의 아버지 정준씨는 “당시 사고현장을 돌아보며 생존 병사들에게 모두 질문했지만 언어폭력의 흔적을 발견할 수 없었다.”며 “이같은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제도적 뒷받침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동기 천일병 “언어폭력이 원인 보도 희생자에 미안” 문제의 GP 상급부대인 모 연대 김선영 군목은 증언자로 나서 “부대원을 매도하는 듯한 보도를 볼 때마다 너무 싫었다.”면서 “김모 일병은 항상 우울해 보이고 의기소침했다.”고 말했다. 김 군목은 또 “김 일병에게 힘을 주고 싶었는데 무심코 지나간 것이 후회된다.”고 덧붙였다. 이날 병원을 찾은 동료 부대원 대부분이 김 일병의 평소 군생활의 심각한 부적응을 지적했다. 김 일병의 친구이자 동기인 천원범 일병은 “군 생활에서 잘못이 있을 경우 선임자들의 질책이 있을 수는 있지만 가혹행위는 없었다.”면서 “최근 언어폭력에 의한 사고였다는 보도를 보면서 희생된 동료에게 미안한 생각마저 들었다.”고 말했다. 천 일병은 또 “동기여서 옆에서 지켜봤는데 김 일병은 선임병을 무시할 때가 많았다.”며 “김 일병은 혼날 때 선임한테 욕도 했고 반항적인 모습을 보여 더 혼이 났다.”고 말했다. ●박 상병이 동료 살렸나 수류탄에 사망한 것으로 알려진 박의원 상병 유족들은 “박 상병의 시체가 다른 상병들과는 달리 머리 방향이 반대쪽인 사물함을 향해 있었다.”며 “수류탄의 폭발로 그렇게 될 수 있느냐.”고 국방부 검의관에게 따졌다. 이에 대해 검의관은 “폭발로 몸이 뒤집힐 수는 없다.”며 박 상병이 수류탄을 막았을 수도 있다는 가능성을 부인하지 않았다. 수류탄 투척이 총기 난사 후에 있었다는 유족들의 주장에 대해 동료사병 25명 가운데 22명이 ‘그렇지 않다.’고 대답해 신빙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영정 부여잡고 “의원아! 나야 나”

    중부전선 GP 총기난사 사건 당시 GP에 함께 있던 동료 장병들이 23일 오후 2시쯤 희생장병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을 찾았다. 후임 GP소대장 김인성 중위를 비롯한 GP장병 25명은 전투모와 전투복장으로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곧바로 합동분향소로 들어섰다. 장병들은 흰 국화를 한 송이씩을 들고 고개를 떨어뜨린 채 영정 앞에 섰고 이 모습을 바라보던 유족들은 끝내 참았던 울음을 터뜨렸다. 유족들의 오열에 정렬해 있던 장병들도 울음을 터뜨렸고 분향소는 유족들과 장병들이 뒤엉켜 이내 울음바다가 됐다. 사건 당시 내무반에 있었던 유재현 병장이 박의원 상병의 영정으로 다가가 영정을 부여잡고 “의원아! 나야 나!”라며 울부짖자 어머니 장정애(54)씨가 영정을 어루만지며 “의원아. 우리 의원이 불쌍해서 어떻게….”라며 오열했다.조정웅 상병의 어머니 김향숙(50)씨도 장병들에게 달려나가 일일이 얼굴을 어루만지며 “우리 정웅이는 아무리 찾아봐도 없네. 너희는 다 왔는데….”라고 울부짖었다. 차유철 상병의 어머니 최영애(49)씨는 당시 김동민 일병과 함께 초소근무를 섰던 임창용 일병을 껴안고 “여기있는 군인들이 다 우리 아들이야.”라며 통곡했고, 이건욱 상병의 시계를 받아든 어머니 최복남(50)씨도 “우리 아이가 온 것 같다.”며 한참 동안 시계를 어루만져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성난 유족… 윤국방 문잠그고 ‘조문’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도 성남시 율동의 국군수도병원에는 20일 200여명에 이르는 유가족들의 울음속에 사회 각계 인사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유가족 대표 22명은 이날 오후 1시30분쯤 UH-60군용헬기 3대에 나눠 타고 사건현장인 중부전선 GP를 둘러본뒤 오후 5시20분쯤 수도병원으로 되돌아왔다. 오전 10시쯤 윤광웅 국방장관이 승용차편으로 도착했으나 유가족들의 거센 항의가 계속되자 “죄송하다.”고 말한 뒤 합동분향소의 문을 걸어 잠그고 5분 남짓 ‘도둑조문’을 했다. 윤 장관은 이어 유족대기실로 사용되고 있는 빈소에 들어가려다 일부 유족들에게 떼밀려 면담도 하지 못한 채 황급히 돌아갔다. 윤 장관이 떠난 직후에는 열린우리당 문희상 의장, 김덕규·장영달·김혁규 의원 등이 조문했다. 이날 오후 4시30분쯤에는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와 소속 의원 10여명이 분향소를 찾았다. 유족들은 오열을 참지 못하며 군과 정부 관계자들에게 하루 종일 불만을 터뜨렸다. 김인창(22) 상병의 어머니 정석숙(47)씨는 아들의 영정을 부둥켜 안고 “내 아들…, 내아들이…”라며 오열해 주위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당초 이날 오전 7시30분에는 유가족들에게 군당국의 사고경위 브리핑이 있을 예정이었으나 현장방문과 부상자 면담을 우선적으로 요구하는 유가족들의 거친 반대에 부닥쳐 무산됐다. 합동분향소는 새벽 4시에 설치가 끝났고 노무현 대통령과 윤광웅 국방장관의 조화가 자리를 잡았다. 오전 6시30분쯤 조정중(22), 이태련(22), 이건욱(21) 상병을 마지막으로 전날 안치된 박의원(22), 차유철(22) 상병을 포함해 경기도 양주국군병원 등에 분산돼 있던 총기난사사건 희생 장병 8명의 시신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성남시 분당 국군수도병원에 모두 안치됐다.성남 윤상돈기자yoonsang@seoul.co.kr
  • [軍 총기난사 ‘충격’] 휴일 날벼락… “병원 잘못 알려줘” 분통

    [軍 총기난사 ‘충격’] 휴일 날벼락… “병원 잘못 알려줘” 분통

    내무반 총기난사 사건의 희생자 유가족들은 숨진 자식의 시신을 확인하며 울음을 멈추지 못했다.19일 사고 직후 양주·일동·벽제 등 경기도 4개 국군병원에 분산됐던 8구의 시신은 이날 밤 성남 국군수도통합병원에 함께 안치됐다. 유족들은 군 당국의 무성의에 분통을 터뜨렸다. ●“부모님 커플반지 해준 효자” 이날 밤까지 조정웅·이태련·이건욱 상병의 시신이 안치돼 있던 양주병원에서는 비보를 듣고 찾아온 유가족들의 오열이 이어졌다. 조 상병의 어머니는 정문 앞에서 “내 아들 살려내라.”고 울부짖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이태련 상병의 어머니 배옥자(49)씨는 “태련이가 지난번 휴가 나와서 월급이랑 위험수당 받은 걸 한 푼도 쓰지 않고 모아서 아버지, 어머니에게 커플 금반지를 해줬다.”며 눈물을 훔쳤다. 고양 벽제병원도 유족 20여명이 영정을 붙잡고 오열해 눈물바다를 이뤘다. 김인창 상병의 아버지 김길남(53)씨는 “제대해서 아빠 일을 돕겠다던 효자였는데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다.”면서 “그동안 용돈을 제대로 못 준 게 너무 가슴 아프다.”고 슬퍼했다. 전영철 상병의 이모 장영숙(42)씨는 “언니(전 상병의 어머니)가 지체장애자여서 군에 있는 영철이가 엄마를 부탁한다고 전화를 자주 했는데 언니가 어떻게 이겨낼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유가족들은 군 당국의 무성의에 크게 분노했다. 시신이 일동병원에 안치돼 있던 소대장 김종명 중위의 유족들은 “소대장이라는 이유로 시신을 따로 떼어놓은 것은 물론이고 일부 고위장교들이 이번 일이 소대장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등 망자를 욕되게 하고 있다.”고 분통을 터뜨렸다. ●성남 수도통합병원에 합동분향소 전영철 상병의 유족은 “군이 오전 6시50분 수도병원으로 안치장소를 알려줘 가봤더니 병원에서 금시초문이라 했고 뒤늦게 벽제병원이라고 통보해 몇시간을 도로에서 허비했다.”면서 “영안실을 둘러보니 시설이 너무 나빠 우리 영철이를 두번 죽이는 것 같다.”고 울먹였다. 유족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이 합동분향소가 마련돼 있던 양주병원에 오자 거칠게 항의하며 ▲8명의 시신 한 곳에 안치 ▲납득할 수 있는 사건경위 설명 ▲현장 방문 허용 등을 요구했다. 윤 장관은 이들의 요구를 수용한 뒤 방문 1시간여 만에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또 20일 오전 유족들에게 사건 경위를 자세히 설명하고 이어 유족 대표 2명이 연천군 중부전선 GP 사건현장을 방문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한편 유족들은 전영철 상병의 외삼촌 김흥렬(40)씨를 유족 대표로 하는 임시대책위원회를 구성했다. 양주·고양 한만교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盧대통령 “공동체적 통합이 숙제”

    노무현 대통령은 6일 “공동체적 통합을 이루는 것이 지금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숙제”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이날 서울 동작동 국립현충원에서 열린 제50회 현충일 추념식에 참석해 헌화 분향한 뒤 추념사를 통해 이같이 강조했다. 노 대통령은 ‘공동체적 통합’에 대해 “내부 분열과 갈등을 넘어서고, 변화가 필요할 때 국민적 합의로 변화를 결정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는 것”이라고 정의했다. 노 대통령은 특히 공동체적 통합을 이루기 위해서는 균형된 사회를 만드는 것과 성숙한 민주주의의 토대를 구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사회 각 주체의 창조적 참여 자세를 거듭 촉구했다. 균형사회에 대해 노 대통령은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 공공기관의 지방이전, 그리고 수도권문제 해결을 통해 지역 불균형을 해소하고자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노 대통령은 이어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풀어가야 한다. 특히 합리적인 절차를 거쳐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줄 아는 관용의 정신이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박정현기자 jhpark@seoul.co.kr
  • “배설 선생 숭고한 뜻 이어가자”

    “배설 선생 숭고한 뜻 이어가자”

    대한매일신보 창간자인 영국인 배설(영국명 어니스트 베델) 선생 96주기를 맞아 27일 서울 마포구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추모대회가 열렸다. 배설선생기념사업회(회장 진채호) 주최로 열린 행사는 배설 선생의 생애와 항일 언론투쟁 활동상 회고, 경모시 낭송, 헌화 및 분향, 기념식수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종전 추모식은 서울 외국인 묘지공원에서 열렸으나 올해에는 외국인 묘지공원 옆에 조성된 양화진 성지공원에서 진행됐다. 양화진 성지공원은 개화기때 한국에 기여한 외국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최근 마포구청이 새로 조성했다. 대회장인 채수삼 서울신문사장은 양동용 서울신문 이사가 대독한 추념사를 통해 “배설 선생이 창간한 대한매일신보는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겨레의 독립자존을 일깨운 횃불이었고 일제에 의해 강제 폐간될 때까지 그들의 만행을 고발하고 우리 민족을 계몽시켜나가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말했다. 채 사장은 또 “서울신문은 앞으로도 선생의 숭고한 뜻을 이어 언제나 독자와 진실편에 서서 밝은 미래를 창조하는 한편, 공공 이익과 민족화합에 앞장서겠다.”고 다짐했다. 대한매일신보의 후신이 서울신문이다. 당초 행사에 배설 선생의 후손이 초청됐으나 일정 때문에 8·15광복절에 서울을 찾기로 했다. 배설 선생은 15살 때 일본으로 건너간 뒤 영국 크로니컬지 아시아특파원으로 일하던 중 러·일전쟁을 취재하면서 조선에 관심을 가졌다. 영·일동맹 때문에 운신이 자유롭지 못하자 크로니컬지에 사표를 던지고 1904년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했다. 고종의 후원 아래 배설 선생은 박은식·양기탁·신채호 선생을 영입, 민족주의 논조를 펼쳤다. 그러나 일본의 항의를 견디다 못한 영국이 일본의 탄압을 묵인해줘 선생은 한때 상하이에서 구금되기도 했다.1909년 조선에서 지병으로 숨진 뒤 고종이 마련해준 마포구 외국인 묘지에 안장됐다.1964년 한국 언론인들이 기념비를 세웠고, 1968년에는 대한민국 건국훈장 대통령장이 추서됐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故 박성용 명예회장 영결식

    故 박성용 명예회장 영결식

    지난 23일 별세한 박성용(朴晟容)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의 영결식이 27일 서울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트홀에서 유가족과 조문객 등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신훈 금호건설 사장의 사회로 진행된 영결식은 고인이 평소 즐겨 듣던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고인에 대한 묵념과 약력 보고, 고인의 생전 육성 청취, 영결사 및 조사·조시 낭독,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박찬법 아시아나항공 사장은 약력 보고를 통해 “재계와 문화예술계의 큰별이셨던 고인은 권위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진실하고 스스럼없이 대해주셨다.”면서 “소외된 사람에게 늘 관심을 가지고 약자를 진정으로 아끼고 사랑하신 아름다운 분”이라며 고인을 추모했다. 이어 음악 영재에 대한 교육과 지원의 뜻을 담은 고인의 생전 육성이 방송되자 장내는 고인을 떠나보내는 안타까움에 더욱 숙연해졌다. 황인성 전 국무총리는 영결사에서 “우리는 너무도 고결하고 순수한 영혼을 지녔던 이 시대의 진정한 영웅을 잃었다.”며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이 세상을 순수하고 아름답게 만드는 게 남은 사람들의 사명”이라고 말했다. 재계와 문화예술계에 큰 족적을 남긴 고인의 생애를 보여주듯 정동채 문화관광부 장관과 이홍구 전 총리, 강신호 전국경제인연합회 회장, 리처드 레빈 미국 예일대 총장(예일대 음대학장 대독) 등 각계 인사의 조사가 이어졌다. 여류시인 김남조씨가 ‘절망에 싹트는 희망 있으니’라는 제목의 조시를 통해 고인의 마지막 길을 애도했다. 헌화 및 분향을 마지막으로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의 유해는 오후 1시쯤 경기도 화성시 팔탄면 기천리 선영에 묻혔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故 정세영회장 영결식…1300여명 조문

    ‘포니 정’ 정세영 현대산업개발 명예회장이 영면했다. 25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잔디광장에서 1300여명의 조문객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린 영결식은 고인에 대한 묵념, 약력 보고, 영상물 상영, 추모사, 조전 소개, 헌화 및 분향 순으로 진행됐다. 영상물은 고인이 1974년 10월 이탈리아 토리노 모터쇼에서 취재진에 포니를 설명하는 모습과 수상 스키를 즐기는 모습 등 왕성하게 활동하던 모습을 압축해 담았다. 고인의 비서를 지냈던 이유일 아이서비스 사장은 약력 보고에서 “한국 자동차산업의 아버지로 불리는 분이며 현대사에 큰 족적을 남긴 거목”이라고 울먹였다. 특히 불모의 땅에서 국내 자동차 산업을 일궈낸 분이라며 고인의 업적을 기렸다 추모사는 이춘림 전 현대중공업 회장과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고희석 일정실업 회장이 낭독했다. 이 전 회장은 “1970년 어느날 광화문 앞 거리를 가득 메운 차들을 국산차로 바꿀 수 없을까 하고 안타까워했을 때 고인이 ‘내가, 현대가 꼭 이루고 말겠다.’고 말씀하셨다.”고 회고했다. 고 회장은 “고인은 항상 국가 경제를 걱정하며 우리나라 자동차 산업에 모든 열정을 바쳤다.”며 “한국 최대의 기업을 운영하면서도 모나지 않았고 원칙에 어긋나는 일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고 넋을 기렸다. 이어 “이승에서 겪은 희로애락과 마음에 안고 있는 것이 있다면 모든 애착과 사랑, 미움을 놓아두고 영면해 달라.”며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달랬다. 고인의 유해는 수상스키를 즐겼던 양평군 양수리 북한강이 바라보이는 선영에 묻혔다. 류찬희기자 chani@seoul.co.kr
  • 해공 신익희 선생 추모식

    해공 신익희(1894∼1956) 선생 제49주기 추모식이 5일 ‘해공 신익희 선생 기념사업회’(이사장 유치송) 주관으로 서울 강북구 수유동 소재 선생의 묘소 앞에서 거행됐다. 추모식은 박유철 국가보훈처장, 민주당 한화갑 대표, 송방용 헌정회장, 국민대 김문환 총장, 이철승 서울평화상이사장, 민관식 조병옥박사기념사업회장, 이종찬 전 국가정보원장 등 각계 인사와 학생 등 3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헌화와 분향에 이어 추모사 낭독 순으로 진행됐다. 선생은 경기도 광주 출신으로 1919년 중국 상하이로 망명한 뒤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국호, 관제, 정부관원 및 임시헌장 등을 의결·선포하는 등 대한민국 임시정부 탄생에 기여했다. 광복 후 국민대 초대 총장을 지내다 남조선 과도입법의원 대의원에 피선돼 1947년 의장이 됐다. 이어 1950년에는 제2대 국회의원에 당선된 뒤 1956년 3대 대통령선거에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나섰으나 유세중 서거했다. 정부는 선생의 공훈을 기려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추서했다.
  • 日 가나가와현 지사 3·1운동기념관 참배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 및 역사교과서 왜곡으로 한·일 관계가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경기도와 국제 자매결연도시인 일본 가나가와(神奈川)현 마쓰자와 시케후미(松澤成文) 지사가 22일 오전 3·1운동 순국기념관이 있는 화성 제암리를 방문, 일제만행으로 숨진 23인의 묘역에 헌화 분향했다. 마쓰자와 지사는 헌화 분향 후 “일본인에 의해 살해된 사람들을 애도했다.”고 밝히고 “국가 사이에는 좋은 때도 있고 나쁜 때도 있으며 나는 역사적 사실을 마음 깊이 새기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또 “경기도와 가나가와현의 재매결연 15주년을 맞아 이해를 넓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전시관에 들러 방문록에 ‘우정(友情)’이라고 적고 20여분만에 제암리를 떠났다. 수원 김병철기자 kbchul@seoul.co.kr
  • 서울 도봉서원 18일 전통향사

    서울 도봉구(구청장 최선길)는 오는 18일 도봉동 도봉서원에서 정암 조광조, 우암 송시열의 학문적 사상과 덕행을 추모하기 위해 도봉서원 전통향사(춘향제)를 개최한다. 도봉서원은 1573년 창건된 사액서원으로 매년 봄(음력3월)·가을(음력9월) 전국의 유림들이 모여 향제를 지내오고 있다. 이번 향제에서는 향을 피우는 분향례, 폐백을 바치는 전폐례, 술잔을 올리는 헌례, 술잔을 마시는 음복례, 폐백과 축문을 불사르는 천변두 등 좀처럼 보기힘든 전통향사를 그대로 재현한다. 누구나 참관할 수 있다.(02)2289-1153. 고금석기자 kskoh@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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