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 데고 맘 데고 다시 쪽방 갇힌 삶
“더 이상 몸 누일 방 한 칸 없어 쫓겨 다니지 말고, 편히 쉬세요….”
25일 오전 10시30분 서울 남대문경찰서 뒤 ‘쪽방촌’. 화재로 시커멓게 그슬린 건물 맞은편 담장 아래에는 조촐한 빈소가 차려졌다.
이틀 전 화재로 숨진 이모(49)씨의 길거리 추모식. 거리에서 살다간 그는 죽어서도 거리에 남았다. 얼굴 없는 영정 사진 앞에 국화 몇 송이만 놓였고, 난데없는 봄바람에 향불도 붙지 않았다. 빈소는 초라했고, 분향소 앞에 모인 사람들도 더 없이 가난했다.
●1평 남짓한 쪽방촌엔 750명의 고단한 삶이
오랜 노숙자 생활을 했던 노숙인당사자모임 한울타리회 대표 송주상(35)씨는 “살아보겠다고…,1평도 안 되는 방에서 죽지 않겠다며 발버둥친 사람에게 왜 이런 일이 생기냐.”며 울부짖었다.
이씨가 화재로 숨진 서울 중구 남대문로5가동 614번지 4층짜리 건물. 이 건물 3층에는 미처 챙기지 못한 신발과 옷가지들이 검은 재로 바스라졌고, 탈출 과정에서 뜯어낸 철창살만 창틀에 매달려 대롱거렸다. 화재 당시 잠을 자던 11명 중 1명은 숨졌고, 5명은 병원 치료중이며, 5명은 회현동사무소의 주선으로 인근 쪽방으로 거쳐를 옮겼다.
불구덩이 쪽방에서 살아나온 이들은 다시 쪽방으로 들어갔고, 화재 건물 1·2층 사람들 또한 하루 방값 7000원을 내며 힘든 삶을 이어가고 있다. 화마(火魔)로 상처를 입었지만 이들의 삶은 쪽방을 벗어나지 못하는 ‘쪽방에 갇힌 삶’이었다.
중구청에 따르면 쪽방촌에는 700가구 750여명이 생활하고 있다. 중구청은 화재 피해자들을 ‘긴급복지 대상자’로 지정, 최장 2개월까지 월 26만원을 지원할 방침이다.
적십자사에서 제공한 회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생존자 몇몇이 잿더미에서 건진 가재 도구들을 날랐다. 창문을 통해 탈출한 이모(55)씨는 “공기도 안 통하고 빛도 안 들어오는 곳이지만, 방안에서 잔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며 불탄 방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추모(52)씨는 골목길에 쪼그려 앉아 한숨 섞인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그는 “외환위기 직후부터 거리를 떠돌다 이곳에 와 3년을 살았다.”면서 “팬티 한 장 빼고는 모두 다 타버렸다. 며칠 동안 잠도 못자고 밥도 못먹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비통해 했다.
노후화된 건물, 다닥다닥 붙은 건물구조, 부엌 한 칸 없어 방에서 밥을 지어먹어야 하는 현실 등 쪽방촌은 화재 위험에 노출돼 있다.
‘노숙인복지와 인권을실천하는사람들’ 이동현 상임활동가는 “화재 사고로 사람이 죽어야 쪽방 문제가 잠시 이슈화되지만 화재만이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라고 말했다.1평이 채 안 돼 발도 제대로 못 뻗는 공간, 사방이 꽉 막혀 원천적으로 차단된 빛과 공기, 여름이면 방이 있어도 노숙을 자청할 만큼 더운 실내온도 등 주거환경 전반이 더할 수 없이 열악하다.
화재 건물에서 2년 동안 살았다는 50대 남성은 “옆방에 아픈 사람이 있으면 바로 전염된다.”며 밀집 공간의 비위생성을 지적했다.
●화재·전염병 위험에 노출
김윤이 한국도시연구소 연구원은 “쪽방의 입지 조건이 좋으니까 도시 개발 과정에서 항상 철거 위협에 놓여 있다.”면서 화재 건물 뒤편 쪽방촌을 헐고 들어서는 고층 빌딩들을 예로 들었다. 이동현 활동가는 “화재 대책을 넘어 쪽방 거주민 및 노숙인 정책 전반에 대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추모식을 마친 직후 빈소 앞을 지키던 쪽방 주민들과 건물 임대 업자들 사이에서 고성이 오갔다. 임대 업자들은 “죽은 사람 쳐다보는 거 불쾌하다. 담장에 빨래 널어야 하니까 빈소 정리하라.”고 요구했다. 송주상씨는 “아저씨들을 상대로 돈을 벌면서 너무한 것 아니냐. 우리도 사람이다.”라고 소리쳤다. 송씨의 말은 너무도 절절했다.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