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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朴 전 대통령 생가에 관리전담팀

    경북 구미시가 상모동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 관리 전담팀을 이달 말부터 상주시키기로 했다. 23일 구미시에 따르면 고 김재학 생가보존회장이 박 전 대통령 생가 인근에 살면서 20여년간 무보수로 생가 관리를 맡아왔다. 그러나 지난달 김 회장이 피살된 뒤 마땅한 관리인이 없어 구미시는 임시로 일용직과 공익근무요원을 파견해 관리해 왔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 소유권은 장조카인 박재홍씨가 갖고 있었으나 1996년 박정희대통령생가보존회로 이전됐다 2003년 2월20일 시로 넘어왔다. 시는 박 전 대통령의 생가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보존하기 위해 이달 말부터 이곳에 문화예술담당관 산하 박대통령기념사업담당 직원 2명과 공익근무요원 2명을 배치하기로 했다. 시는 주간에는 이들 직원이 고 김 회장이 사용하던 사무실에서 경비나 안내·관리 업무를 맡고, 야간에는 기존처럼 무인경비시스템을 가동해 관리한다고 밝혔다. 시는 휴일이나 야간에는 관리가 취약해 사고가 발생하더라도 초기에 대응하기 어렵다는 단점이 있어 보완 방안을 강구하고 있다. 구미시 황필섭 문화예술담당관은 “그동안 박 전 대통령 서거일인 10월26일과 생일인 11월14일에 추모제와 숭모제가 고 김 회장 주관으로 열렸으나 앞으로 어떻게 할지 정해지지 않았다.”며 “관련 단체가 많아 논의를 통해 주관 단체를 정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 생가는 1993년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으며 2672㎡ 부지에 사랑채와 분향소, 관리사, 주차장 등이 있다.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와이드 인터뷰] “수련의 시기라 생각”

    김성이 장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한 정통 ‘KS맨’이자, 교수 출신의 관료다. 한국사회복지사협회장을 역임한 그는 ‘입양’과 관련해 남다른 아픔을 떠올렸다. 대학원 졸업 직후인 1975년 미국 유타주립대로 유학길에 오르며 만난 두명의 입양아 때문이다. 김 장관은 아동단체의 의뢰를 받아 16시간이 넘는 비행길에서 이들을 ‘에스코트’했다. 하지만 “막상 양부모에게 인계할 때 매달리는 아이들 때문에 발길을 뗄 수 없었다.”고 돌이켰다. 30여년 뒤 복지부 수장이 된 김 장관은 최근 미국 아이오와주에서 발생한 한인 입양 어린이 사망사건의 국내 분향소를 찾았다. 이 자리에서 “해외입양 아동에게 실질적 사후관리 체계를 만들겠다.”는 평소 구상을 털어놨다.5년의 미국 유학기간에도 지역교회에서 한국 입양아를 위한 대부 역할을 했다고 한다. 또 한가지. 장관 임명 과정의 드센 태풍이 인생에 생채기를 남겼다. 그는 “많은 것을 배웠다. 수련의 시기라고 생각한다.”면서 “가톨릭의 수사 한 분을 만나 많은 대화를 나눴다. 고통에는 자기정화의 단계, 자기 믿음을 공고히 하는 단계, 사회적 고통도 짊어지는 단계가 있다고 했는데 진짜 이런 과정을 거치더라.”고 말했다. 김 장관은 청문회 도중 ‘자녀의 건강보험료’ 논란에 휩싸이기도 했다.2000년 6월 국적을 포기한 것으로 돼 있는 외동딸(32)이 2000년 8월부터 2003년 8월까지 의료기관에서 총 13차례에 걸쳐 11만 8854원의 건보혜택을 받았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거친 파도’가 지나간 뒤 행정착오로 밝혀졌다. 실제로는 2004년 1월 국적을 포기했는 데도, 법무부가 3년6개월여 앞서 소급 처리해 버린 것이다. 김 장관은 “일찍 사려깊게 생각하지 못한 탓”이라며 당시를 회상했다. 오상도기자 sdoh@seoul.co.kr
  • 朴전대통령 생가보존회장 피살

    朴전대통령 생가보존회장 피살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보존회장 김재학(81)씨가 박 전 대통령의 구미 생가에서 피살됐다. 경북 구미경찰서는 26일 오후 6시15분쯤 구미시 상모동 박 전 대통령 생가의 마당에서 김씨가 에어컨 설치 보조기사 강모(26·경북 예천군 감천면)씨가 휘두른 흉기에 맞아 숨졌다고 밝혔다. 경찰은 이날 오후 6시22분쯤 사고 현장에서 알몸으로 도주하는 용의자 강씨를 500m쯤 추격해 붙잡았다. 신고자 김모(50·구미시 진평동)씨는 경찰 조사에서 “아내와 함께 생가를 구경하러 갔다 생가를 알몸으로 돌아 다니는 사람과 시체를 발견해 신고했다.”고 말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씨는 박 전 대통령 생가에 침입해 김씨의 옷을 모두 벗긴 뒤 노끈으로 손과 발을 묶고, 옷가지로 입을 틀어막은 상태에서 흉기로 머리와 가슴 등을 수차례 내리쳐 살해한 것으로 추정된다. 구미경찰서 관계자는 “생가에 설치된 CCTV에 범행 장면이 찍혀 있어 정치적인 목적 여부 등 범행 동기와 수법 등을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정우동 구미서장은 “강씨가 쓰레기와 담배꽁초를 줍는데 김씨가 나가라고 해 화가 나 죽였다고 진술했다.”며 “(강씨의) 전과 기록은 없고, 술과 마약은 먹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고 말했다. 이어 “흉기는 생가에 있는 것을 사용한 것으로 추측된다.”면서 “아직까지 정치적 발언은 없었다.”고 설명했다. 강씨의 직장 상사 조모씨는 “평소 강씨가 양복을 입고 작업장에 나오고 쓰레기를 책상 위에 올려 놓는 등 엉뚱한 행동을 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초등학교 교장 출신이며, 박 전 대통령의 10년 후배로 어린 시절부터 박 전 대통령과 친분을 이어왔다. 김씨는 또 지난해 한나라당 대통령 후보 경선때 박 전 대표의 구미지역 선거대책위원장직을 맡았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박 전 대통령이 1937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던 곳으로 현재 생가와 안채, 분향소, 관리소 등 4채의 건물이 있다. ●박 전 대표 “어떻게 이런 일이”… 오늘 조문 한편 김씨의 피살 소식을 접한 박 전 대통령 큰 딸인 박 전 대표는 27일 오전 영안실이 마련된 순천향 구미병원에 조문할 예정이다. 이정현 전 특보는 “보고를 받은 박 전 대표가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 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박 전 대표의 한 측근은 “경찰은 철저한 수사를 통해 범행의 이면에 정치적 배경 등이 있는지 여부를 명확히 밝혀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구미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숭고한 희생 우리 가슴에”

    용문산 헬기 추락사고 희생자 합동영결식이 22일 오전 경기 분당 국군수도병원 체육관에서 열렸다. 제1야전군사령부장으로 치러진 이날 영결식에는 고인들의 동료 장병과 유족 300여 명을 비롯해 한덕수 국무총리와 손학규 통합민주당 대표, 이경숙 대통령직인수위원장,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 등이 참석해 명복을 빌었다. 영결식이 시작되기 전 차분히 슬픔을 달래던 유족들은 영정과 유해가 체육관으로 옮겨지자 울음을 터뜨렸다. 이날 23번째 생일을 맞은 김범진 병장의 어머니는 김 병장의 영정 앞에 생일케이크를 올려놓고 아들의 사진을 손으로 어루만지며 통곡했다. 신기용 준위의 딸들은 ‘아빠’를 목놓아 부르기도 했다.13항공단 이학재 소령과 철정병원 손수민 중령이 고인들에 대한 약력보고를 한 뒤 희생자 선효선 소령과 같은 부대에서 근무 중인 철정병원 간호장교 고현미 대위, 부조종사 황갑주 준위와 입대 동기인 204항공대대 임희규 준위가 조사를 낭독했다. 선 소령의 간호사관학교 1기 선배인 고 대위는 “한결같은 마음으로 환자를 돌보신 정재훈·선효선 소령님, 김범진 병장님의 순고한 희생정신은 우리의 가슴에 영원한 빛으로 남을 것”이라고 말하며 눈물을 훔쳤다. 임 준위는 “환자 후송을 위해 칠흑 같은 어둠을 뚫고 날아올라 고귀한 생명을 구하고 죽음으로 임무를 완수하셨다.”면서 “여러분의 군인정신은 육군 항공인의 가슴에 남아 풍성한 열매를 맺을 것”이라고 말했다. 영결식이 끝난 뒤 고인들의 유해는 운구차 7대에 나뉘어 성남 화장장으로 옮겨졌으며, 화장이 끝난 뒤 대전 현충원에 안장됐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이날 오전 7시 50분 국군수도병원을 방문해 고인들의 명목을 빌고 유족들을 위로했다. 육군은 사고 당일부터 3일간 중사 이상을 대상으로 모은 조의금 8억여원을 유가족에게 전달할 예정이다. 한편 고인들의 합동분향소에는 20일부터 3일 동안 군 장병 등 2000여명이 찾아 조문했다. 성남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육군 헬기 추락] 김장수 국방 등 조문행렬

    헬기 추락 사고로 숨진 장병 7명의 시신이 안치된 성남 국군수도병원 합동분향소에는 군 장성과 정치권 인사, 동료 군인들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20일 오후 3시50분쯤 김태영 제1야전사령관이 군 장성으로는 처음으로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데 이어 김관진 합참의장과 박흥렬 육군참모총장, 김장수 국방장관 등이 잇따라 방문해 고인들의 넋을 위로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분향소를 찾아 조문한 뒤 유족들을 차례로 만나 “아들이 군 장교로 있어 유족의 심정을 이해한다. 대단히 죄송하다.”고 말했다. 한나라당 강재섭 대표와 나경원 대변인 등 한나라당 의원들은 오후 5시쯤 분향소를 찾아 10여분간 조문했다. 불의의 사고로 동료를 잃은 육군 부대 장교들과 간호 장교들도 슬픔에 가득 찬 모습으로 분향소를 찾았다. 노무현 대통령과 통합민주당 손학규·박상천 공동대표가 조화를 보내 온 것을 비롯해 분향소 안팎에는 각 군 사령관, 육군사관학교 동기회 등 각계 각층에서 보내온 조화가 진열됐다.성남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육군헬기 추락 7명 순직

    칠흙 같은 어둠을 헤치고 목숨이 위급한 병사를 병원으로 옮긴 뒤 부대로 복귀하던 7명의 장병이 헬기 추락으로 목숨을 잃은 안타까운 사고가 발생했다.20일 오전 1시10분쯤 육군 204항공대대 소속 UH-1H 수송헬기 1대가 경기도 양평군 용문산 정상 인근에서 추락, 조종사 신기용(44)준위 등 탑승 장병 7명 전원이 숨졌다. 이들은 이날 뇌출혈로 쓰러진 육군 모 부대 윤모 상병을 강원도 홍천 철정병원에서 경기 분당 국군수도병원으로 이송한 뒤 부대로 복귀하다 참변을 당했다. 이들은 0시55분 병원 헬기장을 이륙한 뒤 15분쯤 비행하다 1시9분 레이더에서 사라졌다. 신 조종사의 “이륙한다.”는 교신이 이들이 남긴 마지막 메시지였다. ●육군 “운행기록 분석 4주 걸릴 것” 사고 현장은 광탄비행장에서 북동쪽으로 4∼5㎞ 떨어진 용문산 남쪽 9부능선 해발 1000m지점이다. 헬기 잔해와 7명의 시신은 짙은 안개 등 열악한 기상조건 탓에 사고 발생 3시간여만인 오전 3시52분쯤 발견됐다. 이들은 야간인 데다가 안개까지 잔뜩 낀 위험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꺼져가는 젊은 생명을 구하려 어둠을 무릅쓰고 환자 이송작전을 펼치다 참변을 당했다. 육군수사단 지구수사대장 한성욱 대령은 이날 오후 10시쯤 사건 개요를 설명하며 “국군수도병원을 이륙할 당시 지상은 비행이 가능한 시계였지만 1115고지 용문산은 농무가 끼어 5∼10m 앞을 분간하기 어려운 것으로 조사됐다.”고 밝혔다. 한 대령은 “운행기록과 조종사 무전 내용이 담긴 녹음테이프 분석작업 결과가 나오기까지 4주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유족들, 당시 기상자료 공개 요구 이에 대해 유가족들은 “앞을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안개가 꼈다면 당연히 기상상태를 분석해 조종사에게 통보했어야 하는 데도 무리하게 운항을 시켜 사고가 났다.”며 기상상황 분석 자료 공개를 요구했다. 육군은 순직한 병사 3명에 대해 1계급을 추서하고 장교 2명에 대해서도 국방부에서 1계급 추서 절차를 밟기로 했다. 김장수 국방장관은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국군수도병원을 찾아가 7명의 안타까운 죽음을 애도하고 유가족을 위로했다. 버웰 벨 한미연합사령관도 “그들이 수행했던 임무는 부상한 병사를 돌보기 위한 의로운 일이었고 다른 사람을 살리려다 자신들이 희생된 것”이라고 애도했다. 윤설영기자 snow0@seoul.co.kr ●사망자 명단 ▲204항공대대 신기용 준위(44·조종사), 황갑주 준위(35·부조종사), 최낙경 상병(22·승무원), 이세인 일병(21·승무원) ▲육군철정병원 정재훈 대위(33·군의관), 선효선 대위(28·간호장교), 김범진 상병(22·의무병)
  • [육군 헬기 추락] 2살·6개월된 딸 남긴채 간 간호장교

    [육군 헬기 추락] 2살·6개월된 딸 남긴채 간 간호장교

    20일 육군 헬기 추락사고 희생자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경기 성남시 분당구 국군수도병원. 오열과 넋두리로도 비통함이 가시지 않았다. 허망하게 숨진 7명은 남은 가족들의 애간장을 끊어놨다. 2살과 6개월된 두 딸 은채와 은결이를 남긴 채 숨진 간호장교 선효선(28·국군간호사관학교 43기) 대위의 시어머니 이영자(54)씨에게 선 대위는 딸 같은 며느리였다. 지난해 11월 출산휴가를 마치고 복귀한 선 대위는 자주 시어머니와 전화통화를 하며 수다를 떨었다. 출동 직전인 지난 19일 밤 11시에도 이씨와 통화했다. 내년 2월 전역을 앞둔 선 대위는 올 12월의 교원임용고시를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게 선 대위의 마지막 바람이었다. 이씨는 “하도 예쁘고 착해서 그냥 효선이라고 부를 정도로 착한 며느리”라며 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년 4월에 전역할 예정이던 군의관 정재훈(33) 대위는 뱃속의 5개월된 아이를 남기고 세상을 등졌다. 지난해 10월 결혼한 정 대위는 2006년 강원 인제군 수해 당시 대민지원활동을 하며 성실한 태도로 동료들의 신임을 받았다. 정 대위의 아버지(64)는 “과묵하고 착한 아들인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부인 이정미씨는 “이제 우리 아이는 어떡해요.”라며 통곡을 했다. 오전 11시45분쯤 군용차로 싸늘한 주검이 합동분향소로 이송돼 오자 최낙경(22) 상병의 어머니는 주저앉아 일어나지 못했다. 아들의 시신을 확인한 뒤 “하고 싶은 것도 많을 텐데. 내 자식이 그렇게 갈 줄 몰랐어. 우리 아들 불쌍해서 어떻게 해. 얼마나 추울꼬.”라며 넋두리만 반복했다. 전북 익산대학을 다니다 군에 입대한 김 상병은 제대를 6개월 앞두고 변을 당했다. 김범진(23) 상병의 어머니는 “이제 23살밖에 안 됐는데 이렇게 가면 어떡해. 내일 모레가 아들 생일인데, 이번 토요일에 휴가 나온다고 했는데, 내 아들 살려내”라며 울부짖었다. 시신을 본 뒤엔 “머리는 어디서 그렇게 많이 다쳤니. 어떻게 눈도 감지 못하고 멀리 갔니.”라며 가슴을 쳤다. 성남 황비웅기자 stylist@seoul.co.kr
  • [부고] 홍병철 전 국회의원 타계

    [부고] 홍병철 전 국회의원 타계

    홍병철 전 국회의원이 18일 숙환으로 별세했다.79세. 육군 중령 출신인 홍 전 의원은 5·16 군사 쿠데타 이후 최고회의 의장경호실 기획과장, 대통령경호실 기획과장과 기획처장을 지냈다.8대 민주공화당 소속으로,9대 무소속으로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유족으로는 아들 성훈(호남대 교수)·세훈씨, 딸 채란·혜정씨 등 2남2녀. 빈소 제주시 한마음병원 제1분향소, 발인 21일 오전 7시. 장지 제주시 한림읍 금앙리 선영.(064)723-3040.
  • “언제 어디서든…” 朴 기다리는 昌

    “언제 어디서든…” 朴 기다리는 昌

    대선 직전 이회창(얼굴) 전 한나라당 총재의 ‘삼고초려’를 외면한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거취가 한나라당 공천 갈등이 일촉즉발의 상황으로 치달으면서 다시 한번 관심을 모으고 있다. 11일 이천 화재참사 분향소를 찾은 박 전 대표와 이 전 총재는 간발의 차로 만나지 못했다. 이후 이 전 총재는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박 전 대표에 대한 질문에 “뜻을 같이 하는 분은 어느 때든, 또 어느 장소에서든 만날 날이 있을 것”이라며 박 전 대표에 대한 구애의 수위를 높여나갔다. 자유신당측은 박 전 대표의 합류를 가장 확실한 ‘총선바람’의 원동력으로 평가하고 있다. 인재 영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최근 충청권 의원들의 동요로 시작된 ‘이회창 바람’이 박 전 대표가 전격 합류한다면 TK(대구·경북)뿐만 아니라 수도권과 강원까지 미칠 수 있다는 계산에서이다. 이러한 분위기를 반영하듯 자유신당 일각에서는 한나라당 사태가 파국을 맞으면 상당수의 박측 의원들이 자유신당행을 선택할 것이라는 기대가 터져나오고 있다. 자유신당측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에서 탈당이 예상되는 분들의 선택폭이 그리 넓지 않다.”며 “이럴 경우 무소속보다는 자유신당행이 더욱 매력적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박 전 대표에게 기대하지 않는다.”라며 “올 사람이었으면 지난번 총재가 삼고초려를 했을 때 왔어야 했다.”면서 부정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일단 한나라당의 공천 갈등 속에서도 박 전 대표가 직접 탈당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박 전 대표가 최근 측근 의원들에게 탈당 등의 개인적인 행동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해 놓았다고 전해지고 있고, 원칙을 중시한 박 전 대표의 입장에서 공천 시비는 탈당의 명분으로 너무 빈약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회의원의 생명줄과 같은 공천에서 배제될 것이 확실시되는 해당 의원들이 집단으로 탈당하고 박 전 대표가 암묵적으로 동의하는 시나리오의 가능성은 아직 남아 있다. 이럴 경우 실질적으로 박심(朴心)은 자유신당이 거머쥐게 돼 총선에서 무시하지 못할 변수로 떠오를 수 있다. 강삼재 창당준비위원장도 13일 브리핑을 통해 “저희와 뜻을 같이 하는 분들과 많은 얘기를 나누고 있다.”며 현역 의원들의 탈당 가능성에 무게를 두었다. 구동회기자 kugija@seoul.co.kr
  • “스프링클러·방화문 작동 안돼”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11일 화재 참사를 빚은 코리아냉동과 코리아냉장, 코리아2000 등 3개사 본점과 지점 등 4곳과 코리아냉동 대표 공모(47·여)씨의 집을 압수수색했다. 수사본부는 수원지법 여주지원으로부터 압수수색 영장을 발부받아 수사진 25명을 조사 대상지 5곳에 투입했다. 수사본부는 압수수색에서 이천시 등에 금품 로비를 한 의혹이 드러나면 코리아냉동 등 3개사 핵심 관계자들의 계좌 추적에 나서기로 했다. 또 사고 발생 당시 공사 관계자들이 스프링클러와 방화문이 수동작동하게 한 뒤 작업했다는 진술을 확보하고 사실여부를 확인하고 있다. 이번 주말까지로 계획됐던 화재 현장 감식 작업을 다음주 중반까지 연장했다. 수사본부 관계자는 “전기 배선의 문제를 중점 조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지난 10일 밤 분향소에 도착한 조선족 동포를 포함한 100여명의 유가족은 이날 오후 2시 조병돈 이천시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매캐한 냄새를 뒤덮은 화재 현장에서 희생자 추도식을 가졌다. 또 이날 오전에는 희생자 중 처음으로 이을순씨의 시신이 가족에게 인도돼 이천 효자원에서 장례식이 치러졌다. 정년을 2년여 남겨두고 냉동창고 화재 진압에 투입됐던 이수호(56) 안성소방서 진압 대장이 사무실에서 두통과 어지럼증을 호소하다 뇌출혈로 쓰러져 지난 9일 천안 단국대병원으로 후송돼 수술을 받았으나 혼수상태다. 이 대장은 6일 24시간 근무 후 비번인 7일 이천 화재현장으로 비상 출동해 8일 새벽까지 근무한 뒤 8일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또다시 정상근무를 하는 등 3일을 연달아 근무하다 뇌출혈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졌다. 유가족 대표단과 코리아냉동 임원단 간의 2차 보상협상은 양측의 입장 차이로 결렬됐다. 이천 윤상돈 김병철기자 yoonsang@seoul.co.kr
  • 이천시 공무원 2명 소환

    경기 이천 냉동창고 화재 사고를 수사 중인 경기지방경찰청 수사본부는 9일 냉동창고 ‘코리아2000’의 인·허가와 관련해 이천시 담당 공무원들을 불러 비리 여부를 수사하고 있다. 또 회사 대표 공모(47·여)씨와 일부 공무원 등 사건 관련 핵심 관계자들을 출국 금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코리아2000의 건축 허가 신청과 설계 변경 허가, 사용 승인 등과 관련해 이천시 전·현직 건축 부서 관계자 2명을 소환, 인·허가 과정이 적법했는지 추궁했다. 수사본부는 “회사측이 건축 허가(6월29일)가 나가기 전에 건축물 기초공사를 벌이다 이천시로부터 6월14일 건축법 위반으로 고발당한 사실을 확인하고 보름 후 건축 허가를 내준 배경에 대해서도 조사를 벌였다. 또 창고 지하층을 포함해 건축 면적을 늘리는 설계 변경 과정에서 금품이 오갔는지도 캐고 있다. 냉동창고 화재의 최초 발화지점은 지금까지 알려진 기계실이 아닌 냉동실로 확인됐다. 합동감식반은 “1차 감식 결과 첫 발화 지점이 창고 왼쪽 끝부분인 13냉동실로 파악되며 발화 흔적을 찾았다.”고 밝혔다.13냉동실은 기계실과 150m 거리이며, 화재 당시 13냉동실 앞 복도에서 배관 보온 작업 중이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수사본부는 또 “지금까지 사망자 40명 가운데 16명의 신원이 확인됐으며 나머지 희생자는 오는 14일까지 확인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현재 38명(신원확인 16명 포함)의 유전자를 확보했다. 우즈베키스탄 뉴알리, 중국동포 김용해씨 등 외국인 사망자 2명은 거주지를 확인한 뒤 수사 요원을 보내 구강세포 등 유전자를 확보하기로 했다. 한편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이천 창전동 이천시민회관에는 조문객의 발길이 이틀째 이어졌다. 이천 윤상돈 김병철기자 yoonsang@seoul.co.kr
  • [단독]죽어서도 서러운 이주노동자 누알리

    [단독]죽어서도 서러운 이주노동자 누알리

    그는 마지막까지 서러웠다. 이천 냉동창고 화재참사 현장지휘소 상황판에 한국인 26명과 중국동포 13명의 사망자 이름이 차례로 적혀 갈 때 그의 이름은 ‘신원불상 외국인’에 불과했다. 참사 발생 30시간이 지난 8일 오후 하청업체인 ‘동신’측이 사고 당일 인력사무소에서 데려온 인부 명단을 확인했다. 그제야 우즈베키스탄인 미등록 이주노동자 ‘할리코프 누알리’란 이름이 합동분향소에 위패로나마 적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위패를 부여잡고 울어줄 사람도 흐트러진 국화를 다듬어줄 사람도 없다. 서울신문이 출입국관리사무소에 확인한 결과 그의 본명은 할리코프 누랄리(42). 아마 부르기 어려워 한국에서는 누알리로 불렸던 것 같다. 그는 한달 체류가 가능한 단기상용비자(C-2)를 들고 2006년 11월15일 무작정 한국에 왔다. 살기 위해서,3남매를 공부시키기 위해서였다. 고향 타슈켄트에는 아내와 17세된 딸, 아들 둘, 노모와 남동생이 있다.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의어 가족들은 누랄리만 바라보고 있다. 창원의 한 공장에서 일하다 1년 전쯤 이천으로 흘러들어 왔다. 월세방을 얻어 매일 인력사무소에 나갔다.7만원을 받으면 인력사무소에 10%를 떼주고 6만 3000원만 손에 쥔다. 한국인에겐 쉬운 일이 맡겨지고, 누랄리에겐 쇠파이프와 철근을 나르는 일이 돌아왔다. 일용직임에도 인력사무소에서 모아서 돈을 내주는 바람에 임금을 떼이기도 했다. 하지만 불평 한마디 내뱉지 않았다.“우즈베크 사람들 중에서도 성실하기로 소문이 났었어요.‘형, 우리 하루만 쉬자.’고 해도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멀리까지 왔으니까 열심히 일해야지.’라고 다독이며 일하게 만들 정도였어요.” 이천에서 함께 일했던 고향친구 S(35)씨의 말이다. 누랄리는 가족에게 전화를 걸어 “보고싶으니까 돈 조금만 더 벌어서 8월에 돌아갈게.”라고 말하며 그리움을 달래왔다고 한다. 참사 당일 아침 인력사무소에서 만난 사촌동생 카이룰루(34)와 커피를 마시며 “빨리 빨리 돈 벌러 가자.”고 밝게 웃던 그였다. 두달 전부터 일해 온 냉동창고에 도착해 따로따로 할 일을 맡았다. 창고 안쪽으로 걸어들어 가던 뒷모습이 누랄리의 마지막이었다. 카이룰루는 “가족들에게 어떻게 알려야 할지….”라며 서툰 한국말로 걱정했다. 하지만 사고 현장에서 가까스로 탈출한 그도 지난달 23일 비자가 만료돼 미등록 신세다. 당장 추방을 걱정해야 할 처지다. 이 때문에 이천시민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기도 어렵다. 까맣게 그슬린 시체가 누랄리가 맞는지 확인하는 작업도 제일 마지막에 이뤄질 전망이다. 직계가족들이 속속 DNA검사에 들어간 39구와 달리 누랄리 시체와 대조하기 위해 상피세포를 제공할 유가족이 없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정낙은 집단사망관리단장은 “사촌 카이룰루를 통해 내의나 칫솔 등 세포가 묻어 있을 가능성이 있는 물품을 구해 확인하려 하지만 카이룰루가 미등록 신분이라 연락이 잘 닿지 않는다.”고 말했다. ●독립운동가 김규식씨 후손도 참변 이번 참사에서 독립운동가 김규식씨의 후손도 희생됐다. 사망한 김군(27)씨의 아버지 김용진(57)씨는 9일 “조상들이 목숨 바쳐 지킨 조국에서, 아들은 중국 국적으로 불에 타 죽었다.”며 오열했다. 김용진씨는 한말의 의병장이자 한족회 등에서 활동한 독립운동가 김규식씨의 후손이다. 용진씨는 2000년 ‘조선족 노동자’로 입국해 건설현장에서 일했고, 지난달 31일 아들 군씨를 한국에 초청했다. 아들은 부자상봉 이틀만에 돈을 벌겠다고 냉동창고 현장으로 취직했고, 결국 참변을 당했다. 이천 이재훈 이경원기자 nomad@seoul.co.kr
  • [이천 화재 참사] 피해자 산재보험만 보상받나

    “왜 네 이름이 여기 있니. 차라리 나를 데려가라….” 8일 경기 이천시민회관에 마련된 화재 참사 합동분향소는 통곡의 바다였다. 김준수(32)씨의 어머니는 흰 국화꽃으로 둘러싸인 아들의 위패를 보더니 그대로 허물어졌다.“아이고 우리 아들, 엄마는 어떻게 살라고”라는 말도 허공에만 맴돌았다. 김태규(30)씨의 어머니도 아들의 위패를 부여잡고 “남편도 죽고, 아들도 죽었는데 내가 집에 가서 뭐하나, 뭐해.”라며 오열했다. 곧 이어 “창고에 가스가 차게 한 사람이 누구냐.”며 분노를 쏟아내다 결국 정신을 잃고 축 늘어지고 말았다. 한 유가족은 이날 오후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의 팔을 부여잡고 “어머니께서 아파서 남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알리지 못했다.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울부짖었다. 시신의 신원이 확인되지 않아 유가족의 고통은 배가 됐다. 화재 현장에서 밤을 꼬박 새우며 실낱같은 희망을 놓지 않았지만 화재 당시 폭발과 함께 시신이 심하게 손상돼 신원 확인이 늦어져 애만 태우고 있다. 한 유족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 집단사망자관리단측에 “몸에 신분증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걸 보면 내 아들인지 알 수 있지 않느냐.”며 확인을 요구했다. 한편 냉동창고 운영사인 ㈜코리아 2000은 LIG손해보험에 153억원짜리 기업종합보험에 가입했다. 하지만 이 보험은 재물피해만 보상토록 돼 있어 인명피해에 대해선 배상책임이 없다. 다만 피해자들은 산재보험 혜택을 받을 수 있다.사망자의 경우 유족이 없을 때는 1300일분의 평균 임금이 한꺼번에 지급되며, 유족에게는 사망자 평균 임금의 52∼67%가 유족이 사망할 때까지 매월 연금으로 지급된다. 부상자의 경우 치료비가 나오고, 요양기간 내내 하루 평균임금의 70%가 휴업급여로 지급된다. 치료 뒤 장애가 남으면 장애등급에 따라 장애보상금도 받을 수 있다.이천 이재훈 신혜원기자nomad@seoul.co.kr
  • 李 당선인 이천 화재현장 방문, ‘어떻게 이런일이...’

    이명박 당선인이 8일 오후 이천 냉동물류센터 화재현장을 방문해 희생자 유족을 위로하고 소방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이날 이천시민회관에 마련된 합동분향소를 찾은 이 당선인은 “이런 날벼락이...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느냐!”고 침통한 표정으로 유족들을 위로했다. 이어 화재현장으로 간 이 당선인은 소방관계자로부터 화재발생 개요와 피해상황, 인명구조현황 등에 대한 보고를 받은 뒤 마스크와 헬맷을 쓴 채 직접 화재현장을 둘러봤다. 검은 재로 뒤덮인 화재현장을 둘러보던 이 당선인은 “아이구, 참 내...”라고 허탈해하며 안전관리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20여분 가량 현장을 둘러본 이 당선인은 현장에 투입된 소방대원들에게 “모두 고생한다.”며 “무너질 염려는 없는지, 위험하니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 [관련동영상]이천 냉동창고 불 40명 사망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부고] 조계종 정영 대종사 입적

    대한불교 조계종 원로인 영파당(靈波堂) 정영(瀞暎) 대종사가 24일 오후 4시30분 충남 공주시 계룡산 갑사 대자암에서 입적했다. 법납 66세, 세수 85세. 경남 창원에서 출생한 정영 대종사는 일본에서 수학하다 1940년 해인사로 출가해 해인사, 칠불암, 대승사, 미래사 등 전국의 선원에서 안거를 계속했으며 대자암 조실과 조계종 원로의원을 지냈다.1964년 도봉산 천축사에서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으로 무문관 선방을 개설한 뒤 대자암에 제2의 무문관인 삼매당(三昧堂)과 시민선방인 시방당(十方堂)을 개설, 한국불교의 수행풍토를 일신시켰다. 분향소는 갑사 대자암에 마련됐으며 영결식은 28일 오전 10시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조계종 원로회의장으로 봉행된다.(041)857-5880.
  •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주말탐방] 전·현직 대통령 생가 르포

    정치의 계절이다. 대선 정국이다. 연말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정당들은 당내 예선을 치르느라 바쁘다. 대선 정국인 지금, 대통령들이 꿈을 키웠던 생가(生家)는 어떤 모습으로 자리를 하고 있을까.‘명당(明堂)’으로 불리지만 업적과 인기에 따라 발길 빈도가 엇갈린다. 박정희 전 대통령의 생가는 큰 딸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경선에 나서면서 발길이 크게 잦아졌다고 전해진다.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는 한창 복원 중이다. 대통령 생가라면 단연 박 전 대통령 집이다. 한국 경제를 발전시킨 최고의 대통령으로, 민주화를 억압한 장본인으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 박 전 대통령의 생가는 경북 구미시 상모동에 있다. 박 대통령 생가를 6년째 청소하고 있다는 김영순(56·구미시 사곡동)씨는 “생가를 찾는 연세 드신 많은 분이 박 전 대통령 영정 앞에서 곡을 한다.”고 소개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에서 눈물 쏟는 관람객들 이곳에는 연간 45만명의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다. 생가보존회 김재학(82·전 초등학교장)옹은 “관람객들이 초라한 생가를 보고 ‘이건 아니다.’ ‘너무 했다. 심하다.’라고 말한다.”고 전했다. 구미시 박 대통령기념사업단 박경하 계장은 “홍보를 안하는데도 찾는 사람이 는다.”고 말했다. 박 전 대통령과 악연(?)이 있는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에도 발길이 잦은 편이다. 전남 신안군 하의도 생가에는 외지인들이 연간 1500∼2000명 가량 찾고 있다. 이승현 하의면사무소 직원은 “여름방학 때는 하루 30∼40명, 방학이 끝나면 10명 안팎이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목포항에서 하의도까지 2시간20분이 걸리는 데다가 배편도 하루 2∼3번밖에 안돼 방문객이 갈수록 줄고 있다. 김 전 대통령과 ‘민주화를 향한 배’에 동승했던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조금 낫다. 요즘 하루 30∼40명이 경남 거제시 장목면 외포리 대계마을의 생가를 찾고 있다. 방학 때면 학부모가 자녀들을 동반한다. 지난해 7만 3000명이 다녀갔고 올해 6만 4000여명이 찾았다. ●을씨년스러운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 반면 ‘80년 민주화의 봄’을 짓밟은 전두환·노태우 전 대통령의 생가는 발길이 뜸하고 썰렁하기까지 하다. 경남 합천군 율곡면 내천리 도로변 전 전 대통령 생가는 대문을 열어 놓아 오가는 행인들이 간간이 들른다. 대구 동구 신용동에 있는 노 전 대통령 생가는 을씨년스럽기 짝이 없다. 훼손이 많이 됐다. 전형적인 시골 촌집으로 2∼3년 전만 해도 주민들에 의해 청소 등 관리가 이뤄졌으나 이후에 방치되고 있다. 한 주민은 “관광객이 가끔 찾기는 하나 전직 대통령의 생가 관리에 정부도, 자치단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고 있다.”며 아쉬워했다. 전 전 대통령 생가는 84년 경남도가 2800만원에 사들여 합천군으로 소유권을 넘겼다. 군은 매년 11월 이엉을 엮어 초가 지붕을 보수하고 있다. 강원 원주에 있는 고 최규하 전 대통령의 생가는 현재 없다. 터만 있었지만 2000년 원주시립박물관이 들어서 흔적조차 사라졌다. 박물관에도 유품이나 생가에 대한 자료가 없어 박물관이 최 전 대통령의 생가 터라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 드물다. 원주에서조차 최 전 대통령은 잊혀져 가고 있다. 윤보선 전 대통령의 생가는 충남 아산시 둔포면 신항리에 있다. 주민 임승희(54)씨는 “한달에 100명 정도는 구경을 온다.”고 말했다. 특히 풍수가 뛰어난 명당이란 소문이 퍼져 지관 등이 많이 온다고 덧붙였다. 생가는 마을 노인회에서 관리하고 있다. ●김대중 전 대통령 생가 年 2000여명 발길 박 전 대통령에 대한 평가는 엇갈리지만 구미시는 생가 주변 7만 7600여㎡를 성역화하고 있다.2020년까지 200억원을 들여 추모관과 생가 원형복원, 연대별(1920∼70년) 시대촌, 내자(內子)의 공원 등을 조성한다. 현재 생가에서는 서거일(10월 26일)과 출생일(11월 14일)에 매년 2차례 추모제가 열리고 있다. 거제시는 김 전 대통령 생가 옆에 기록전시관을 건립한다.19억원을 들여 738㎡에 2층 규모로 만들어 김 전 대통령의 일대기와 소장품 등을 전시할 계획이다. 마당 왼쪽에 청동 흉상이 설치돼 있다. 이 흉상은 김 전 대통령이 2000년 중국을 방문했을 때 허난성 ‘한원비림(翰園碑林)’을 참관한 뒤 휘호를 써준 데 따른 감사의 뜻으로 한원비림이 기증한 것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생가는 신안군에서 관리인을 두고 제초비와 비품비 등으로 연간 120만∼150만원을 대주고 있다. 추수 후에는 초가지붕 보수비 등으로 700만원을 더 지원한다. 이장 이형열(60)씨는 “대통령 생가가 너무 초라하다는 여론이 있어 생가와 주변을 공원으로 만들려고 최근에 땅을 사들이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김 전 대통령이 대선과정에 자주 개입하면서 대선 후보로 오르내리는 정치인들이 찾을 것으로 보인다. 윤 전 대통령은 생가보다 묘가 위치한 아산시 음봉면 동천리 마을 주민들로부터 존경을 받고 있다. 주민들은 지난달 22일 자발적으로 1000여만원을 모아 유족들이 참석한 가운데 윤 전 대통령 탄신 110주년 추모행사를 갖고 ‘대통령 마을’로 선포했다. 마을 이장 이성복씨는 “생전에 1주일에 한번씩 내려와 마을에 나무와 꽃을 심고 주민들과 음식을 나눠 먹는 등 음덕을 많이 베풀었다.”고 말했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그들의 생가 형태와 규모 대통령 생가 중 가장 큰 집은 윤보선 전 대통령 생가다.‘아흔아홉칸’이라고 하나 안채, 사랑채, 행랑채, 문간채 등 4동뿐이다. 기와집에 총건평 352㎡에 이른다. 윤 전 대통령의 부친이 1920년대에 지었다고 전해진다.1984년 중요민속자료 196호로 지정됐다. 전형적인 중부지역 가옥형태로 윤 전 대통령 장남이 소유하고 있다. 박정희 전 대통령 생가는 58㎡의 초가집과 안채(114㎡), 분향소(119㎡)로 돼 있다. 풍수지리학자들은 금오산의 정기가 이어지는 현월봉 아래 자리한 명당 중의 명당으로 ‘대통령이 날 만한 자리’라고 입을 모은다.1993년 2월 경북도기념물 86호로 지정됐다. 이 집은 박 전 대통령이 태어나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20여년 동안 살았다. 대구사범시절 쓰던 책상과 책꽂이, 호롱불 등이 전시돼 있다. 김영삼 전 대통령 생가는 본채와 사랑채 2동으로 구성돼 있다. 목조 기와집이지만 본채는 76㎡, 사랑채는 26㎡로 보잘것 없는 규모다. 김 전 대통령의 정치 초년생때부터 대통령 당선때까지의 기록물이 전시돼 있다.1950년 공비가 침입, 모친을 살해했던 총탄 흔적이 남아 있다. 거제시에서 2명을 배치해 관리하고 있다. 연간 관리비 2000여만원을 지원한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생가, 관리동, 헛간, 소금전시관, 화염(불에 구운 소금) 제조공장 등 5채로 초가집이다. 김 전 대통령은 4학년 1학기까지 이 집에서 살다가 목포로 전학을 갔다.1999년 김해 김씨 종친회에서 8000여만원을 모아 생가를 복원했다. 대통령 시절 모습을 담은 대형 사진 12개, 붓글씨 액자 2개, 책상과 20여권의 책, 벽시계가 있다. 전두환 전 대통령 생가는 안채, 행랑채, 대문 등 초가 건물 3채이다. 총건평은 251.5㎡이다. 당초 5채였으나 2채는 1988년 11월 방화로 소실됐다. 군과 면사무소 직원이 수시로 들러 제초작업 등 보수를 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 생가는 생가, 우사, 창고로 꾸며져 있다. 노 전 대통령이 태어나 경북고교를 졸업할 때까지 살았다.‘국풍’이라고 하는 풍수학자들은 연기산·윗도덕산 등 생가 앞에 큰 산이 많아 인물이 났다고 얘기한다. 전국종합·대전 이천열기자 sky@seoul.co.kr ■ 노무현 대통령의 생가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한 뒤 머물 사저는 경남 김해시 진영읍 본산리 봉하마을에 지어지고 있다. 생가 뒤편이다. 시공 업체가 공사현장에 펜스를 치고 작업하고 있어 외부에서는 공사현황을 알 수 없다. 김해시 관계자는 “작업현장이 외부에 노출되지 않아 정확한 진척 상황을 알 수 없지만 준공 예정일을 감안하면 공정률이 90%에 이른 것으로 보인다.”고 추정했다. 이 사저는 다음달 말 준공될 예정이다.3991㎡의 부지에 지하 1층 지상 1층으로 총건평이 933㎡에 이른다. 지난 1월15일 기공식이 열렸다. 노 대통령의 생가는 사저 앞쪽 463㎡의 터에 목조 슬레이트 건물로 지어져 있다. 본채와 20㎡ 남짓한 헛간이 있다. 마당은 40㎡쯤 된다. 이 집에는 하모(65)씨 부부가 살고 있으나 지난 2월 강모(61)씨에게 소유권이 넘어갔다. 하씨는 연말까지 집을 비워 주기로 했다. 강씨는 노 대통령과 부산상고 동기로 경남 창원에서 자동차부품회사를 경영하는 기업인이다. 강씨가 생가를 매입한 동기는 명확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노 대통령이 당선된 이후 친형인 건평씨가 생가를 매입하려고 했으나 가격이 맞지않아 뜻을 이루지 못했다. 사저가 생가 바로 뒤에 건립되고 있어 조만간 생가를 복원할 것이라는 소문이 파다하다. 퇴임 후 강씨로부터 이 땅을 매입하거나 증여받을 것이라는 관측이다. 봉하마을에는 노무현 대통령 취임 직후 관광객이 문전성시를 이뤘다. 요즘도 휴일이면 200여명씩 찾고 있다. 훗날 노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업적을 어떻게 평가받고 인기를 얻어 어떤 대통령 생가를 닮아갈지 궁금하다. 김해 이정규기자 jeong@seoul.co.kr
  • [아프간 피랍자 추가 피살] 심성민씨 유족도 “시신 기증”

    “바로 10시간 전에 육성을 공개해 놓고 이럴 수는 없다.” 고 배형규 목사에 이어 심성민(29)씨가 탈레반에 의해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한 피랍자 가족들은 31일 충격에 할 말을 잃었다. 일부 피랍자 가족들은 그 자리에 주저앉아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배 목사가 살해됐다는 소식을 접할 때만해도 ‘성직자’라는 특수성을 감안해야 한다며 스스로 위로했던 피랍자 가족들은 심씨의 살해 소식에는 넋을 잃고 말았다. 특히 배 목사에 이어 두 번째 역시 남성 인질이 살해됨에 따라 남성 피랍자 가족들이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였다. 피랍자 가족들은 이날 오후 5시30분 ‘국제사회를 향한 호소문’을 통해 “미국이 21명의 무고한 생명을 구하기 위해 정치적 이해관계를 초월해 인도적인 차원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배 목사의 시신은 31일 오후 안양 샘병원에서 서울 국립과학수사연구소로 옮겨져 부검이 진행됐다. 배 목사의 시신에는 총상이 7군데나 있지만 뚜렷한 고문 흔적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심씨 유족들은 정부의 공식 확인이 발표된 이후 기자회견을 갖고 배 목사와 마찬가지로 심씨의 시신을 기증키로 했다고 밝혔다. 유족들은 1일 심씨의 분향소를 서울 혜화동 서울대병원에 설치하고 정부측과 협의해 최대한 빨리 민항기편으로 운구하기로 결정했다. 심씨의 시신은 카불에서 두바이를 거쳐 빠르면 2일쯤 국내에 도착한다. 한편 외교통상본부 재외동포영사 등 2명은 저녁 늦게 피랍 가족 대책본부를 찾아 2시간 넘게 가족과 교회 관계자들을 위로하고 협상결과를 설명했다. 한 가족은 “설명 내용은 언론에 보도된 내용뿐이었다.”면서 “정부도 뾰족한 대안이 없는 것 같다.”고 안타까워했다. 박건형 이은주기자 kitsch@seoul.co.kr
  • 하나투어, ‘캄 참사’ 위로금 1인당 3000만원 제시

    캄보디아 여객기 추락사고 희생자들의 시신이 고국 품으로 돌아온 3일째인 2일 서울 송파구 풍납동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합동분향소와 희생자 개인 빈소에는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가족별로 마련된 개인 빈소에는 유가족들의 안타까운 흐느낌이 계속됐다. 고 조종옥 KBS기자 가족 4명은 예정대로 4일 KBS 회사장으로 장례를 치를 계획이며, 하나투어 직원 가족인 고 이충원씨 가족 4명도 같은 날 발인하기로 했다. 전날보다 다소 안정을 찾은 유가족 대표들은 이날 오후 하나투어 및 PMT에어(캄보디아 민간항공) 측과 장례 일정 및 위로금에 대해 논의했다. 희생자들이 이용했던 여행사인 하나투어 측은 이날 열린 대책회의에서 유가족 측에 1인당 위로금 3000만원 등 지원책을 제시했다. 하나투어 관계자는 “3000만원 외에도 내년 캄보디아에서 진행될 위령제 비용과 고 조종옥 KBS기자의 혼자 남은 쌍둥이 막내아들이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학비 전액을 부담하는 안을 제시했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진행된 사고기 항공사인 PMT에어와 유족 간의 장례비 협상에서는 PMT에어 측이 2억 5000여만원의 장례비 전액을 선지급하는 안을 제시했다. PMT에어 한국 판매 대리점 관계자는 보상금 문제에 대해 “지금 캄보디아 정부로부터 조사를 받고 있는 PMT에어 본사에서 실무자가 도착해야 보상액 협상을 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다음 주쯤 구체적인 보상액이 산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유족과 하나투어,PMT에어 측은 3일 오후 위로금 등의 문제에 대해 재논의하기로 했다. 이경원기자 leekw@seoul.co.kr
  • 이국 하늘도 온종일 울었다

    이국 하늘도 온종일 울었다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 한국인 13명의 목숨을 앗아간 캄보디아 하늘도 이날만은 함께 울었다. 캄보디아에서의 마지막 날인 29일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프놈펜 칼멧병원에는 새벽부터 추적추적 비가 내렸다.6∼8월 우기에도 보통 2∼3시간 폭우가 내린 뒤 뚝 그치는 빗줄기가 이날만은 하루 종일 그칠 줄 몰랐다. 유가족들은 오전 9시30분쯤(이하 현지시각) 합동분향소를 찾았다. 넋을 잃고 진도 빠진 듯 별다른 말을 잇지 못하고 붉게 충혈된 눈으로 흐느끼기만 했다. 고 조종옥 KBS 기자의 어머니 박정숙씨는 손수건으로 조종옥-윤현숙 부부 등 4개의 영정을 고이 닦으며 “왜 여기 왔니, 왜 왔어.”라는 말만 하염없이 되풀이했다. 캄보디아 한인회 등 교민들은 합동분향소에 나와 유가족들을 물심양면으로 위로했다. 한인식당에서는 분향소에서 쓸 음식을 제공했고, 현지 한국 기업들은 차량 등을 제공해 간접적으로 도왔다. 일부 한인식당에선 캄보디아 현지 종업원까지 검은 리본을 달아 조의를 표하기도 했다. 분향소를 직접 찾아 조문한 한국인들만 1000여명에 이르러 캄보디아 전체 교민 숫자의 3분의1에 달했다. 캄보디아 한인 부녀회 조덕순(59) 회장은 “원래 캄보디아에 사는 한국인들은 궂은 일이 생기면 내 일처럼 똘똘 뭉쳐 나섰다.”면서 “한인회비로 합동분향소 제사음식들을 마련하는 데 누구도 반대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앞서 28일 밤에는 현지에서 북한정부가 직영하는 평양랭면관 하대식 지배인이 직원들과 함께 ‘고인들의 명복을 빕니다.’라는 리본이 달린 조화를 들고 와 조문을 해 진한 동포애를 느끼게 했다. 유가족들은 오후 9시쯤 회한의 캄보디아 땅에서 마지막으로 추모제를 가진 뒤 13명의 주검과 함께 무거운 발걸음으로 칼멧병원을 떠나 프놈펜 포첸통 공항으로 이동했다. 30일 0시35분쯤 대한항공 특별기 KE690편을 통해 캄보디아 땅을 떠나 고국 땅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특별기는 30일 오전 8시쯤(한국시간) 인천공항에 도착할 예정이다. 이후 시신은 곧바로 서울 아산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빈소에 안치된다. 주캄보디아 한국대사관 오낙영 참사관은 “훈센 캄보디아 총리가 유가족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씩 적은 친필 조문 서한을 보내 유가족들에게 심심한 위로의 뜻을 전했다.”고 말했다. nomad@seoul.co.kr
  • 애끊는 母情 애틋한 父情

    |프놈펜(캄보디아) 이재훈특파원·서울 임일영기자|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떡하나…, 얼마나 무서웠을까….” 27일 오후 1시40분(이하 현지시간) 희생자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프놈펜의 칼멧병원을 찾은 19명의 유가족들은 가족의 영정사진을 부여잡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시신 신원 확인이 지연된 데다 크메르-소비에트프렌드십 병원에서 냉동시설이 갖춰진 칼멧병원으로 옮기는 바람에 유가족들은 이날 오후에야 분향소를 찾았다.●“엄마도 데려가야지…” 영정 앞 통곡 ‘캄보디아 항공기 추락사고 희생자 합동분향소’라는 플래카드가 내걸린 분향소 내부에는 사망자 13명의 영정과 위패가 놓여 있었다. 고 이명옥씨의 어머니 서만숙씨는 “내 새끼 불쌍해서 어떻게 사나. 얼마나 산 속에서 무서웠을까.”라면서 “엄마가 대신 가야지. 네가 왜 가냐. 얼마나 착했는데….”라고 울먹이다 쓰러졌다. 고 조종옥(KBS 기자)씨의 어머니인 박정숙씨도 “아이고∼ 종옥아, 왜 휴가를 여기로 왔어. 어쩌다 여기까지 왔어.”라며 목놓아 울었다. 아들과 며느리, 금쪽 같은 두 손자를 모두 잃은 박씨는 조종옥·윤현숙 부부 등 4개의 영정을 끌어안고 이름을 외쳐 보는 이의 눈시울을 붉히게 했다. 고 황미혜씨의 동생인 황재욱씨도 할 말을 잊은 듯 “누나∼”만을 외치며 오열했다. 오후 2시쯤부터 신현석·오갑렬 대사와 님반다 국가재난관리위원회 수석부위원장, 통콘 관광부장관 등 캄보디아측 관계자들이 잇따라 조문했다. 잠시 뒤 육경건 이사 등 하나투어 직원들이 분향하려 하자 일부 유가족들이 “하지마. 니네가 죽였잖아.”라며 제지하는 소동을 빚었지만 다른 유족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분향을 마쳤다. 유족 대표들은 분향소 뒤편에 마련된 시신 안치소에서 희생자들을 확인했다. 안치소는 화물용 컨테이너를 개조해 만들었으며, 드라이아이스 400㎏을 넣어 시신을 냉동보존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두 팔로 아기를 꼭 끌어안고 있었던 것 같아요. 한쪽 팔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 덕분에 아기 시신이 온전하게 남을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추락사고 현장에서 자발적으로 시체 수습 작업에 참여했던 현지 교민 문치현(57·용역회사 직원)씨는 “조종석 바로 뒤를 파보니 아이의 발이 보였고 어른 허벅지가 나왔다.”면서 “조종옥씨가 두 팔로 아들 윤민(1)이를 꼭 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문씨는 “그 팔을 펴고 아기 시신을 꺼내는 데 애를 먹은 걸 보면 조씨가 끝까지 아이를 부둥켜안고 있었던 것 같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문씨는 교민 의료진과 함께 보코르산으로 달려가 마지막까지 시체를 수습한 뒤 이날 칼멧병원에 마련된 합동분향소에서 시신의 염까지 맡았다. 24년 전 캄보디아에 이민 온 문씨는 1997년 9월3일 프놈펜 포첸통 공항에서 베트남 항공기가 떨어져 한국인 21명이 숨졌을 때에도 현장으로 뛰어갔다.“당시엔 불이 나서 시체 수습 작업이 너무 참혹했다.”면서 “거의 10년 만에 이런 사고가 또 나서 안타깝지만 그래도 한국 사람이 당한 일이다 보니 어떤 계기랄 것도 없이 바로 뛰어갔다.”고 털어놓았다.●“항로이탈해 육안식별 비행하다 사고” 사고 원인은 추락 여객기의 조종사가 정기항로를 벗어나 육안식별비행을 하려다 사고를 낸 것으로 알려졌다. 캄보디아 항공당국은 이날 정확한 추락 원인을 찾기 위한 블랙박스 판독작업에 착수했다. 캄보디아 정부 고위관리는 이날 한국대사관 관계자에게 “사고기의 조종사가 비록 관제탑의 사전 승인을 받았지만 정기 항로를 벗어나 육안으로 지형을 식별하면서 우회 비행을 하다 사고가 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것으로 확인됐다. 이 관리는 “바다에서 보코르산 정상 쪽으로 비스듬히 바람이 자주 불기 때문에 항공기가 산에 충돌할 위험을 느껴 조종사들이 자주 산 정상 북쪽으로 항로를 이동한다.”면서 “사고 당일 악천후로 계기비행을 하지 않고 육안식별 비행을 한 것이 확실해 보이며 사고 원인은 악천후와 조종사 과실을 반반으로 본다.”고 말했다. 신현석 주 캄보디아대사에 따르면 조종사와 시아누크빌 공항 관제탑 사이에는 25일 오전 10시30분부터 10시50분까지 4차례의 교신이 있었다.‘고도를 2000피트(600m) 정도로 낮추도록 해달라.’는 기장의 거듭된 요청에 관제탑은 ‘산악지방이라 허가할 수 없다. 고도를 내리지 말라.’고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관제탑 지시 무시한 조종사 이해 못해” 한국민간항공조종사협회 관계자는 “조종사가 임의로 고도를 강하하거나 자신이 잘 안다고 우기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잘라 말했다. 그는 “공항 활주로 앞 50㎞ 지점에 해발 1080m의 보코르산이 있었는데도 관제탑에서 ‘당장 고도를 높여라.’라고 하지 않고 ‘너무 고도가 낮지 않나.’란 식으로 얘기했다는 것도 이해하기 힘들다.”고 덧붙였다. 가장 큰 의문점은 목적지까지 50㎞가 남은 지점에서 조종사가 굳이 2000피트로 고도를 낮추려고 했던 점이다.AN-24기와 같은 소형 민간항공기의 경우 활주로를 20㎞ 남겨 놓고 관제탑의 지시에 따라 ‘파이널 어프로치(최종접근단계)’에 돌입한다.그 이전에는 고도를 낮출 이유가 없고 악천후로 위험이 다분한데도 기장은 4차례나 고도를 강하하도록 요청했고, 결국 관제탑의 제지를 무시한 채 고도를 낮췄다. 지난 27일 추락 현장에서 회수된 블랙박스의 조종석 음성기록장치(CVR)와 비행기록장치(FDR)를 판독하는 데 6개월∼1년이 걸린다.그러나 기장과 부기장간의 대화, 기장과 관제탑 간의 교신이 담겨 있어 원인 분석의 실마리를 제공할 CVR의 데이터를 출력하는 데는 1주일이면 충분하다는 전문가들의 지적이다.nomad@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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