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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천안함 함미인양 이후] “천장 날아가고 기름냄새…살아있는 것도 사치같다”

    “처참하게 부서진 함미를 보니 멀쩡히 살아 있는 것도 사치같네요.” 19일 오전 7시쯤 침몰한 천안함 미귀환 승조원 가족들 9명과 가족협의회 대표 2명 등 11명이 평택 해군2함대 사령부에서 절단된 함미를 찾았다. 이들은 자식이 남겼을 작은 흔적이라도 찾아보려 애썼지만 끝내 빈 손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서해의 컴컴한 펄에서 뒹굴던 함미는 입구부터 끊어진 전선들이 엉켜 있었고 기름 냄새가 진동했다. 구겨진 매트리스가 뒤엉켜 있었고 부서진 집기의 잔해가 발에 밟혔다. 중사휴게실에는 포탄이 굴러다녔다. 가족들은 안전요원의 안내를 받아 천장이 날아간 기관조종실, 기관부침실, 식당, 탈의실, 절단면 부근 등을 둘러봤다. 일부 가족들은 기관부침실에 기름범벅으로 방치돼 있는 승조원들의 옷가지를 보고 울음을 터트렸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최수동 언론담당은 “처음 들어간 곳이 기관부조정실인데 천장부분이 다 날아간 것을 본 가족들은 주저앉기도 했다.”면서 “눈물도 안 나올 정도로 비참하고 처참했다.”고 전했다. 당초 1시간으로 예정됐던 이들의 탐색은 40분 만에 끝이 났다. 강태민 일병의 아버지 영식(50)씨는 “아들의 사물함을 찾으려고 했지만 이름도 지워져 있었고 잠겨져 있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다.”면서 “합조단에서 유품을 수습해서 조사가 끝난 후 돌려주기로 했다.”고 말했다. 박보람 하사의 어머니 박영이(48)씨는 “애 아빠가 ‘도저히 눈 뜨고 못 볼 정도로 비참하다.’고 전했다.”면서 “안 봐도 가슴이 찢어질 듯 아프다.”고 울먹였다. 미귀환 장병 가족들의 바람은 한결같다. 자식과 형제가 아직 인양되지 않은 함수나 연돌부분에서 발견되는 것이다. 박경수 중사의 사촌형 경식(36)씨는 “가족들이 말렸는데도 ‘제수씨가 동생의 흔적이라도 찾고 싶다.’며 (함미를 보러) 갔다.”면서 “엉망이 된 내부를 보고는 ‘진입하는 데 왜 그렇게 어려웠는지 알겠다.’고 말해 더 마음이 아팠다.”고 전했다. 한편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측은 “함수 인양 후 실종자 수색에서도 성과가 없을 경우, 시신 미수습자를 산화자로 처리해 장례를 진행할 계획”이라면서 “시신이 없는 경우에는 희생자의 유품을 가지고 장례를 치를 것”이라고 말했다. 장례는 해군 최고의 예우인 ’해군장‘으로 치르고, 해군참모총장이 장례위원장을 맡아 5일장으로 치를 예정이다. 이에 따라 유가족 대표 중 4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는 24일쯤 함수 인양 후 현재의 ‘천안함 실종자 가족협의회’를 ‘천안함 전사자 가족협의회’로 명칭을 바꿀 예정이다. 장례위원장인 나현민 일병의 부친 나재봉(52)씨는 “분향소 설치 장소에 대해 낭설이 많다. 해군의 아들들에게 제일 큰 것이 해군장 아니냐. 아이들에게 군인답게 해줘야 한다.”면서 “합동분향소 설치와 장소 등의 문제는 해군의 조언에 따르겠다.”고 말했다. 김양진기자 ky0295@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장례절차 논의 진척없어 장례식 이달말 가능할듯

    천안함이 15일 물 밖으로 인양되고 승조원들의 시신이 수습되면서 희생자 가족들은 침통한 마음으로 장례 절차를 준비하고 있다. 독도함에서 인식표, 소지품 등으로 신원을 확인한 희생자들의 시신은 임시 안치소가 마련된 경기 평택 해군 2함대사령부로 옮겨졌다. 분향소 설치와 장례절차는 가족협의회 대표 4명으로 구성된 장례위원회와 군 당국의 협의를 통해 최종 확정될 예정이다. 실종자가족협의회 장례위원장을 맡은 나현민 일병의 아버지 나재봉씨는 “분향소 설치나 장례 절차 논의는 현재 진척된 것이 없으며 해군과 협의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시신을 찾지 못한 장병들의 처리다. 현행 군 인사 규정(시행규칙 73조)은 전투나 재해로 인한 미발견자(행방불명자)는 1년 뒤 제적(장교) 또는 병적에서 제외(일반병)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법률적으로 사망이 인정돼 장례나 보상이 마무리되기까지 1년 이상 걸릴 수 있는 셈이다 하지만 희생자 가족들이 천안함 침몰 당시 폭발 여파로 찾지 못하게 된 장병을 ‘산화자’로 처리키로 하면서 장례 절차에 차질은 빚어지지 않을 전망이다. 미발견 장병들에 대한 예우 등도 시신이 수습된 승조원들과 같은 수준으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장례식까지는 상당 시간이 걸릴 수도 있다. 빨라야 이달 말쯤 가능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정국 실종자 가족협의회 대표는 “함미 인양 후 명확한 사고원인과 장병에 대한 예우가 결정됐을 때 장례절차를 논의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천안함 함미 인양] 가족들 “우리측 전문가는 왜 옵서버로만 참여하나”

    15일 오후 검정색 상복 차림으로 평택 2함대사령부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이정국 실종자가족협의회 대표는 “TV에 집중한 실종자 가족들은 초조·불안에 사로잡혀 있다.”고 말했다. 민·군합동조사단에 참여하는 실종자 가족 측 전문가가 옵서버 자격밖에 안 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며 안타까워했다. 희생자들의 장례는 24일로 예정된 함수가 인양된 뒤 본격 논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다음은 일문일답. ☞[사진]우리는 영웅들을 기억한다…천안함 순직·희생자 →산화자 처리 동의는 전부 구했나. -함미 쪽이나 함수 쪽에서 찾지 못하는 시신에 대해서는 산화자로 간주하려고 한다. 오전에 가족들 동의서를 모두 걷었다. 군의 정책상 실종자 수색을 우리가 하라 마라 하지 않아도 일정 기간은 지속될 것이다. 우리의 요청과 상관없이 군의 수색작업은 일정 기간 계속되는 걸로 알고 있다. →함수 인양 후 장례 치르나. -공식 접촉은 아니고 실종자가족측 장례위원회가 군측 행사기획관과 간단한 만남을 가졌다. 전사자 사유가 명확하지 않다. 순직이냐 전사냐에 따라 절차가 달라진다. 해군에서는 최고의 예우를 갖추겠다고 했다. →장례 준비는. -현재는 몇 가지 군에서 준비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전사자들을 모셔 와야 하고, 귀환하지 못하는 전사자에 대해 확인을 하고 그 후에 가족들 재차 동의가 있어야 한다. 그 다음 단계에서 장례를 논의할 수 있다. 분향소는 장례를 시작하는 것이기 때문에 아직 차릴 계획이 없다. →함미를 보고 좀 더 확신을 갖게 된 점은. -가장 얇은 부분이 11.6㎜인 철판이 은박지처럼 휘어졌다. 철판을 두른 군함이 그렇게 파괴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어뢰밖에 없다. 절단면 봤을 때 군사적 무기에 대한 피습이 확실하다는 확신을 갖게 됐다. 백민경 윤샘이나기자 sam@seoul.co.kr
  • [천안함 침몰 이후] “왜 자꾸 이런 일이…” 울먹인 연평해전 유가족

    [천안함 침몰 이후] “왜 자꾸 이런 일이…” 울먹인 연평해전 유가족

    “왜 이런 일이 자꾸 발생하는지 모르겠어요. 우리 아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갔는데….” 천안함 실종자 구조작업 중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의 빈소가 차려진 경기 성남 국군수도병원에는 1일에도 추모행렬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아침 일찍 2002년 제2연평해전으로 전사한 박동혁 병장, 황도현 중사, 윤영하 소령의 어머니가 찾아 유가족을 위로했다. 박 병장의 어머니인 이경진씨는 “한 준위님 가족들을 위로하기 위해 강원도에서 아침 일찍 올라왔다.”면서 “남을 도우려다가 이렇게 되다니….”라며 차마 말을 잇지 못했다. 윤 소령의 어머니는 “사고 소식을 접하고 잠도 잘 못 잤다.”면서 “우리 아들도 너무 어린 나이에 갔는데 왜 또 이런 일이 발생했는지 모르겠다.”며 울먹였다. 이들은 유가족의 심정을 헤아린 듯 안정을 취하고 있는 고인의 부인을 따로 만나 보지 않은 채 조용히 빈소를 떠났다. 고인의 입관식은 오전 10시 30분쯤 시작돼 1시간가량 진행됐다. 유족 10여명이 한 준위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다. 유족들은 입관식이 진행되는 동안 복받치는 슬픔을 참지 못하고 오열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 [사진] 실낱같은 희망이라도…천안함 침몰 그후 분향소에는 고인의 곁을 떠나지 못한 조문객 20여명이 밤을 세우면서 고인과의 추억을 기렸다. 오전 10시부터는 각 부대의 단체 조문행렬이 다시 시작됐다. 이날까지 빈소를 찾은 조문객은 모두 2900여명으로 이중 일반시민 조문객도 200명이 넘었다. 전날에 이어 군 고위 관계자와 정치권의 발길도 이어졌다. 나경원 한나라당 의원이 빈소를 찾았고, 역대 해군참모총장 20여명과 전재희 보건복지가족부 장관, 김양 국가보훈처장, 창조한국당 지도부, 공군참모총장, 한미연합사 장성들, 유명환 외교통상부 장관 등이 조문했다. 윤상돈기자 yoonsang@seoul.co.kr
  • 故최진영, 눈물과 빗물 속 슬픔의 발인

    故최진영, 눈물과 빗물 속 슬픔의 발인

    故 최진영이 하늘도 슬퍼 비를 뿌린 31일 오전 영결식을 갖고 영면에 들었다. 최진영의 장례식은 시신인 안치된 서울 강남 세브란스병원에서 오전 8시께에 열렸다. 고인의 영결식은 장례식장 1층에 마련된 영결식장에서 기독교장으로 치러졌다. 영결식을 마친 고인의 시시은 고인이 생전 마지막으로 다녔던 모교인 한양대학교로 향한다. 고인은 누나 故 최진실의 뜻에 따라 지난해 한양대학교에 입학해 연기 공부를 다시 시작했다. 현재 한양대학교에는 고인의 분향소가 마련돼 있다. 화장된 고인의 유골은 먼저 세상을 떠난 누나 故 최진실 곁에 안치 된다. 배우 겸 가수로 생전 큰 인기를 얻었던 故 최진영은 지난 29일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해 연예계는 물론 사회 전반에 큰 충격을 던저주었다. 사진=서울신문NTN DB서울신문NTN 이재훈 기자 kino@seoulntn.com@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농식품부 직원 7명 참변] “휴일없이 일하던 직원들인데…” 비통

    지방 출장 중 차량 사고로 직원 7명을 잃은 농림수산식품부는 28일 비통한 분위기 속에서 주말을 보냈다. 특히 사망자 모두가 지역개발과 소속이어서 충격을 더했다. 장태평 농식품부 장관은 장례를 ‘농림수산식품부장(葬)’으로 치를 것을 지시했다. 농식품부 직원 전원은 사고 직후 주말인 27~28일 정부 과천청사에 출근해 비상근무를 했다. 이들은 민승규 제1차관을 본부장으로 해 사고대책본부를 꾸리고 정확한 사고 경위를 파악하는 한편 유족과 장례 절차 등도 논의했다. ●지역개발과 16명 중 7명 사망 농식품부 관계자들은 사망자가 속한 지역개발과의 경우 농촌지역개발업무를 맡아 왔고 업무량이 많아 평소 휴일 없이 일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특히 고(故) 김영준(47) 지역개발과장은 장 장관 비서관 출신으로 장관의 신임이 두터웠던 것으로 전해졌다. 농식품부의 한 직원은 “김 과장은 평소 일벌레로 불릴 만큼 성실해 직원들로부터 두터운 신망을 받았다.”고 말했다. 참변을 당한 공무원 중에는 갓난아이를 둔 ‘엄마’들도 있어 주위를 안타깝게 했다. 숨진 황은정(39) 실무관은 6살 난 아들과 2살배기 딸이 있고 배선자(40) 실무관도 돌이 지나지 않은 딸의 엄마였다. 한희경(38) 전문관 역시 7살과 1살 된 딸을 뒀다. ●갓난아이 둔 엄마 3명 포함 사망자들의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서울 일원동의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에는 주말 내 농식품부 직원과 친지, 친구 등 조문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28일 빈소를 찾은 농식품부의 한 직원은 “지역개발과 직원이 모두 16명인데 이 중 7명이 변을 당했다. 참으로 참담한 심정”이라고 부처 내부의 분위기를 전했다. 한편 영결식은 29일 오전 7시 진행되고 이후 정부 과천청사로 운구돼 노제를 지낼 예정이다. 임일영 유대근기자 dynamic@seoul.co.kr
  • 정주영회장 9주기… 현대家 한자리

    정주영회장 9주기… 현대家 한자리

    범 현대가(家)가 21일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의 9주기를 맞아 한자리에 모인다. 정몽구 현대차 회장,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뿐 아니라 3세인 정의선 현대차 부회장과 정지이 현대유엔아이 전무 등도 참석할 것으로 보인다. 19일 현대차 및 현대그룹 등에 따르면 범 현대가 인사 대부분이 20일 밤 서울 청운동 정 명예회장의 자택에 집결한다. 이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것은 지난해 10월 정몽구 회장의 부인 이정화 여사가 별세한 후 처음이다. 정 회장은 2002년 1주기에 참석한 후 5년 동안 서울 청운동 자택에서 열리는 제사에 불참했다가 2008년 7주기 추모식부터 참석, 장자로서 ‘범현대가 회동’을 이끌고 있다. 정 회장은 해외출장 등 일정을 따로 잡지 않는 등 참석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정 회장은 정의선 부회장과 함께 기일 전후로 경기 하남시 창우리의 정 명예회장 묘소를 참배할 것으로 알려졌다. 매년 참석해 온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도 청운동을 방문할 예정이다. 현대그룹 관계자는 “현 회장은 정 명예회장의 추도식을 중요한 가정사로 생각하고 있다.”고 말했다. 현대중공업의 최대 주주인 정몽준 한나라당 대표는 불참하게 됐다. 정 대표는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 자격으로 FIFA 집행위원회 참석을 위해 지난 17일 출국했다. 정 대표의 이번 출장은 2022년 월드컵 유치를 위한 것이다. 정몽혁 현대종합상사 회장도 매년 추모식에 빠지지 않는 가족이다. 올해는 정 명예회장의 땀이 배인 현대상사 회장으로 경영 일선에 복귀한 만큼 창업주의 유지를 기린다는 계획이다. 정 명예회장을 기리는 추모 행사도 열렸다. 현대중공업은 이날 울산 본사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민계식 회장 등 임직원 5500여명이 추모식에 참석했다. 추모식은 현대중공업 서울사무소와 군산조선소 임직원들에게 생중계됐다. 최원길 사장 등 현대미포조선 임직원도 현대중공업에서 열린 추모식에 참석했다. 현대삼호중공업은 별도의 추모행사를 열었다. 울산대학교는 전날 추모음악회를, 현대학원 산하 현대청운고, 현대중 등 5개 중·고교는 20일까지 추모 글짓기 대회 및 시상식을 갖는 등 교내 행사를 가진다. 현대차그룹과 현대그룹, 현대중공업과 현대종합상사 등 범 현대 임직원들도 기일인 21일을 전후해 정 명예회장의 묘소를 참배할 예정이다. 안동환 오상도기자 ipsofacto@seoul.co.kr
  • [법정스님 다비식] 추모객 3만 ‘마지막 길 배웅’

    ‘무소유’ 가르침으로 세상을 가득 채웠던 법정 스님이 끝내 한 줌 재로 화했다. 정부는 법정 스님에게 국민훈장을 추서하려 했으나 문도들은 “주변을 번거롭게 하지 말라.”는 스님의 유언에 맞지 않는다며 정중히 거절했다. 24시간 다비된 스님의 법구는 불길이 사그라든 14일 오전 10시쯤 1차로 큰 유골이 수습됐다. 이어 불이 완전히 꺼진 뒤 습골 의식이 치러졌다. “사리를 찾지 말라.”는 스님의 유지(遺志)대로 재를 뒤적이는 과정 없이 재빨리 뼈만 수습했다. 유골은 바로 분쇄돼 송광사 지장전에서 하루를 머문 뒤 15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로 다시 옮겨진다. 새달 28일 49재 전까지 이곳에 안치된다. 이후 유골은 상좌들에게 전해져 스님이 머물던 강원도 오두막, 길상사 뒤뜰 풀밭 등에 비공개로 뿌려진다. 6재까지는 길상사에서 치르고, 막재인 49재는 송광사에서 지낸다. 오는 21일 길상사 일요법회 때는 추모 법회도 함께 열린다. 108타의 범종 소리와 함께 13일 시작된 다비식에는 이른 새벽부터 전국 각지의 추모객들과 스님 3만여명이 몰려들었다.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던 학봉(전남 화순 달마사) 스님은 “철저히 계율을 지켰던 스님의 모습은 수행자들에게 귀감이 됐다.”고 했다. 스님의 병상을 끝까지 지켰던 가수 노영심은 “마음이 너무 복잡하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효봉 스님 밑에서 법정과 함께 동문수학했던 법흥(法興·동당 수좌) 스님은 “평소 ‘중이 법명 하나면 되지 무슨 호가 필요하냐’고 질색하더니 성정 그대로 ‘비구 법정’ 딱 4글자로 돌아왔더라.”고 말했다. 그래도 그건 아니다 싶어 ‘비구 법정 대선사 강녕’이라고 몇 자 더 붙여 분향소에 올렸다고 한다. 한편 ‘주님 발언’으로 불교계의 반발을 샀던 SBS 스피드 스케이팅 해설위원 제갈성렬씨는 지난 12일 길상사 분향소를 찾았다. 순천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 [법정스님 운구] 이대통령 분향소 조문

    [법정스님 운구] 이대통령 분향소 조문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서울 성북동 길상사 설법전(說法殿)에 마련된 법정(法頂) 스님 분향소를 찾아 조문했다. 이 대통령은 오전 9시30분쯤 길상사 입구에 도착해 기다리던 스님들에게 합장 후 일일이 악수한 뒤 분향소에 들어섰다. 이 대통령은 분향을 마친 뒤 법정 스님의 영정을 향해 합장하고 머리를 숙여 삼배했다. 이 대통령은 “평소에 제가 존경하던 분이셨고, 저서도 많이 읽었는데 마음이 아프다.”라고 말했다. 또 “진짜 나는 오래전부터 스님 책을 많이 읽었고 여행 중에도 꼭 들고 다녔다. 스님이 쓰신 글이나 사상이 이번 기회에 많이 알려질 것”이라며 “(법정 스님처럼) 그렇게까지 실천은 못 해도 있는 사람들이 나누는 마음을 갖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사진] 법정 스님 마지막 가시는 길 ☞[사진]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법정 스님 생전 활동 모습
  • [법정스님 운구] 오열·염불 속 작은 평상에 모셔

    [법정스님 운구] 오열·염불 속 작은 평상에 모셔

    화려한 상여도, 거창한 의식도 없었다. 길상사를 떠나는 스님을 보내 주는 것은 수만 신자들이 만들어 내는 울음소리와 부처님을 부르는 염불 소리뿐이었다. 스님은 마지막 가는 순간까지도 소박했다. 세간(世間·속세)과 출세간(出世間·수행 세계)을 떠나 존경받았던 스님에게 주어진 건 단지 법구(法軀)를 가린 한 벌 가사와 대나무 평상뿐이었다. 12일 법정 스님의 법구가 다비를 위해 전남 순천 송광사로 옮겨졌다. 정오쯤 서울 성북동 길상사를 떠난 법구는 오후 5시쯤 송광사에 도착해 문수전(文殊殿)에 모셔졌다. 운구 절차는 스님의 생전 모습처럼 담백했다. 형형한 눈빛이 그대로 남아 있는 흑백 영정 뒤로는 어떤 수식도 붙이지 않고 ‘비구(比丘) 법정’이라고만 쓴 유패가 따랐다. 스님의 법구는 한 몸을 겨우 눕힐 정도의 작은 평상에 모셔졌고, 이를 10명의 제자들이 받쳐 들었다. 이 평상은 평소 스님이 강원도 오두막에서 사용하던 것을 본떠 만들었다. 운구행렬은 행지실 앞 비탈길을 곧장 내려와 길상사 본당인 극락전(極殿)으로 향했다. 이곳에서 아미타불을 향해 삼배만을 드린 행렬은 곧장 설법전 앞 마당에 준비돼 있던 운구차로 이동했고, 스님의 법구를 실은 행렬은 참배객들의 오열을 뒤로하고 그대로 일주문을 빠져나갔다. 30~4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그나마도 행렬이 지체된 것은 스님의 마지막 모습을 조금이라도 가까이 보려는 참배객들 때문이었다. 수많은 참배객들은 행지실에서부터 행렬을 따라 산길을 내려왔고, 운구행렬이 길상사를 떠난 뒤에는 버스를 타고 이를 따랐다. 신자 박옥희(68·여·서울 돈암동)씨는 “‘무소유’를 읽고 큰 감동을 받아 길상사를 찾았으나 와병으로 스님의 법회가 중단된 상태였다.”면서 “결국 한 번도 스님을 뵙지 못하고 보냈다.”고 눈가를 적셨다. 황토색 가사를 입은 이국적 차림의 스님들도 눈에 띄었다. 법정 스님의 입적 소식을 듣고 달려온 타이완 불광협회 소속 비구니들이었다. 다비식이 치러지는 송광사는 다비식 당일에 외지 신도와 추모객이 대거 몰릴 것으로 보고 순천경찰서와 진입로 일대 교통 소통 대책을 협의했다. 송광사 3거리에 주차를 하면 사찰 측이 마련한 셔틀버스를 타고 다비장 입구로 진입할 수 있다. 전국 각지에는 스님을 추모하기 위한 분향소가 자발적으로 설치됐다. 프랑스 파리에 있는 길상사 분원, 미국 뉴욕 사암연합회 등 해외에도 분향소가 마련됐다. 순천 최치봉·서울 강병철기자 bckang@seoul.co.kr ☞[사진] 법정 스님 마지막 가시는 길 ☞[사진]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법정 스님 생전 활동 모습
  • [법정스님 입적] “장례의식 일절 말라”… 분향소 조촐히

    [법정스님 입적] “장례의식 일절 말라”… 분향소 조촐히

    스님은 마지막 순간까지도 ‘불필요한 것들의 소유’를 거부했다. 형식적인 장례 절차를 일절 마련하지 말라는 스님의 유지에 따라 스님이 숨을 거둔 서울 성북동 길상사에는 11일 조촐한 분향소만 마련됐다. ●길상사 추모·조의 발길 이어져 스님의 투병 소식은 이미 오래 전부터 알려지긴 했으나, 최근 안정을 찾았다는 소식이 나왔던 터라 스님의 입적은 갑작스러운 것이었다. 입적 소식이 전해진 직후 길상사에는 각지에서 불자들이 모여들었다. 불자들은 길상사 주지 덕현 스님의 안내에 따라 스님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 설법전(說法殿)에서 삼배를 올리며 조의를 표했다. 스님의 법구가 모셔져 있는 행지실(行持室)에는 일부 스님들을 제외하고 접근이 제한됐다. 길상사에는 산문 밖으로까지 이어진 조문객들의 줄이 밤늦도록 줄어들지 않았다. 신도들은 더러 통곡을 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묵언’ 안내에 따라 침묵 속에 조의를 표했다. 분향소에는 조계종 총무원장 자승 스님, 전 총무원장 지관 스님을 비롯,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손학규 민주당 전 대표,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 도올 김용옥씨 등 각계 인사들과 불자들이 찾아왔다. 생전에 길상사에서 스님의 법문을 직접 들었다는 진여정(50·여·서울 도곡동)씨는 “좀 더 우리 곁에 머무르시면서 좋은 말씀을 들려주셔야 하는데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분향소는 길상사 외에도 스님의 출가본사인 전남 순천 송광사, 스님이 머물던 불일암에도 마련됐다. ☞ [포토] “큰 욕심 부리지 말고” 법정 스님 생전 활동 모습 한편 법정 스님은 종교 간의 담을 허물었을 뿐 아니라 문학, 미술 등 문화 예술계의 많은 인사와 교류했다. 2000년 법정 스님의 부탁으로 길상사에 성모 마리아를 닮은 관음보살상을 조각해 큰 화제를 낳았던 원로 조각가 최종태 전 서울대 교수는 “스님은 글재주가 특별나 말보다는 글로 선교를 하시고 신선한 스님의 향기를 만천하에 전파했다.”면서 “병원에서 마지막으로 만날 때는 ‘세상을 향한 원이 있는데 몸이 이렇다 보니 한계가 있다.’고 하셨다.”고 말했다. 법정 스님의 수필집 ‘아름다운 마무리’에 등장하는 소녀 ‘봉순이’ 그림을 그린 박항률 화백은 ‘봉순이’ 그림에 얽힌 일화를 전했다. 그는 “스님께 작은 소년을 그려 드렸더니 스님이 껄껄 웃으시면서 ‘나는 소녀가 더 좋아.’라고 하셔서 소녀 그림을 다시 그려 드렸다.”고 회상했다. ●MB 조전… “비우는 삶 소중함 보여주셔”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법정 스님 입적과 관련, 조전을 보내 애도의 뜻을 표했다. 이 대통령은 조전에서 “법정 큰스님은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무소유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해 오셨다.”면서 “많이 갖고 높이 올라가기를 욕심내는 현대인들에게 비우는 삶, 베푸는 삶의 소중함을 보여 주셨다.”고 추모했다. 이 대통령은 “큰스님께서는 원적에 드셨지만, 수많은 저서와 설법을 통해 남겨진 맑고 향기로운 지혜와 마음은 우리 가슴속에 오래 남을 것”이라면서 “부디 서방정토에 극락왕생하기를 기원한다.”고 덧붙였다. 김성수 윤창수 강병철기자 geo@seoul.co.kr
  • ‘용산시위’ 9명 추가 기소

    용산참사가 용산참사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와 재개발조합간 합의를 통해 사건발생 345일 만에 마무리된 가운데 참사에 대해 항의 시위를 벌였던 철거민들이 추가로 기소됐다. 이들이 36~69세 여성들임에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은 물론 공무집행방해·공용물건손상·업무방해·폭력행위처벌법 위반·일반교통방해 등과 함께 지난해 헌법재판소에서 헌법불합치 결정이 난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상 야간옥외집회 금지조항까지 적용시켰다. 범대위와 조합간 합의와 사법절차는 별개라는 검찰의 입장이 그대로 드러났다. 서울중앙지검 공안2부(부장 유호근)는 지난해 1월 용산참사 발생 이후 재개발 지역을 무단 점거하고 공사를 방해한 용산4가 철대위위원장 유모(40·여)씨, 전철련 조직강화특위 위원 김모(36·여)씨 등 9명을 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 혐의로 불구속 기소했다고 4일 밝혔다. 유씨 등은 지난해 1월 용산참사가 발생한 뒤 5월까지 참사현장인 남일당 건물에 분향소를 차려두거나 건물주변에서 추모집회를 열어 ‘이명박 살인정권 퇴진’ 등의 구호를 외치면서 건물과 도로를 점거하고, 건축폐기물을 방출해 차량통행을 막는 등의 방법으로 재개발업무를 방해한 혐의를 받고 있다. 또 이들은 용산참사로 사망한 고 이상림씨의 부인을 경찰이 연행했다 석방하는 과정에서 여경 3명의 상의와 허리띠를 잡아당기고 팔을 잡아 꼬집는 등 전치 2주의 상해를 입히고, 채증작업을 벌이던 경찰의 가슴을 밀치고 주먹으로 허벅지 안쪽을 두차례 때린 혐의도 받고 있다. 이에 대해 류주형 범대위 대변인은 “참사현장에 분향소를 설치하고 추모행사를 벌인 것까지 모두 범죄로 몰았다.”면서 “장례를 앞두고 있는 상황에 검찰이 찬물을 끼얹었다.”고 말했다. 검찰 관계자는 “당사자간 합의와 사법절차는 별개일 수밖에 없다.”면서 “참사 직후 관련자 조사가 늦춰지면서 처리가 다소 지연됐을 뿐이다.”고 말했다. 조태성 장형우기자 cho1904@seoul.co.kr
  • “이젠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새삶 꾸릴 것”

    “이젠 허드렛일이라도 하며 새삶 꾸릴 것”

    “‘도시테러범’으로 몰렸던 남편이 누명을 벗었기에 두 아들을 보는 마음이 조금이나마 가벼워졌습니다. 새해엔 허드렛일이라도 하면서 새 생활을 꾸려나갈 겁니다.” 3일 오후 ‘용산참사’ 합동분향소가 차려진 서울 용산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참사로 남편 이성수씨를 잃은 아내 권명숙(47) 씨는 새해 연휴에도 이곳을 묵묵히 지켰다. 345일을 끌어온 희생자 보상문제가 지난 30일 극적으로 타결됐지만 권씨가 마음을 둘 만한 곳은 합동분향소에 남겨진 남편의 영정사진이었다. 연휴 기간에다 보상 문제가 일단락됐기 때문인지 분향소는 인적이 뜸했다. 권씨는 “여전히 남편 생각으로 가슴이 무겁지만, 두 아들을 지켜보며 힘을 내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지난해 10월 육군에 입대해 전방 부대에서 근무하는 큰아들 상흔(21)씨는 청원휴가를 얻어 9일 용산참사 희생자 합동장례식에 참석, 아버지와 작별 인사를 나눌 예정이다. 큰일을 겪었지만 담담히 군생활을 하는 큰아들이 권씨는 누구보다 대견하다고 했다. 아르바이트를 하다 계단에서 넘어지며 발목뼈를 다친 둘째 아들 상현(19)군도 다친 다리를 감고 있던 깁스를 얼마 전 풀었다. 권씨는 “남들과 같이 가족과 새해를 지내지 못하는 현실이 답답하다.”면서 “하지만 최선을 다해 군생활을 하는 첫째와 절뚝거리면서도 젊으니까 괜찮다고 말하는 둘째가 대견하고 예쁘다.”고 미소를 지었다. 권씨는 장례식을 마친 뒤 남편을 대신해 일터로 향할 예정이다. 권씨는 “빌딩 청소 등을 시작해 가족 생계는 물론 아들의 대학 등록금도 손수 마련할 것”이라며 삶에 강한 의지를 보였다. 아울러 참사에 대한 책임자 처벌과 구속자 석방, 완전한 명예회복을 위해서도 계속 노력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권씨는 이번 연휴기간 남편의 유품을 하나 둘 정리했다. 다시 용산참사의 비극이 머릿속을 맴돌았다. 권씨는 “새해 연휴 동안에도 잠을 잘 수가 없었다.”면서 “장례식 얘기를 들으면 누군가에게 쫓기는 것처럼 마음이 불안하다.”고 말했다. 지난 31일에는 용산참사 추모문화제를 마친 뒤 경기 안산의 큰집을 찾아 틈틈이 참사 현장을 방문했던 아주버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권씨는 “우리가 겪은 아픔이 우리 사회에 또다시 되풀이되지 않기를 간절히 소망한다.”고 말했다. 안석기자 ccto@seoul.co.kr
  • [용산참사 타결] 정공법 리더십 ‘유종의 미’

    용산참사 협상 타결의 ‘정치적 수혜자’는 정운찬 국무총리다. 물론 정 총리가 전적인 역할을 했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그가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일이 유종의 미를 거둠으로써 결과적으로 정 총리의 정면돌파형 리더십이 주목받게 됐다. 정 총리는 취임 직후인 지난 10월3일 추석을 맞아 용산참사 분향소를 전격 방문, 주위를 놀라게 했다. 참혹한 인명피해로 심기가 험악해질 대로 험악해진 유족들과의 대면은 화약을 안고 불섶으로 뛰어드는 일처럼 무모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자칫 현장에서 봉변을 당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때 정 총리는 무릎을 꿇고 유족들을 위로하면서 빠른 해결을 돕겠다고 말했다. 당시만 해도 정 총리의 약속이 실현될 것으로 보는 시각은 많지 않았지만, 돌이켜 보면 그의 말은 수사(修辭)가 아니었다. 실제 정 총리는 지난 2일 관훈클럽 토론회에서 “올해 안에 해결될 것 같다.”고 했다. 정 총리가 30일 협상 타결 소식에 맞춰 보도자료를 준비해 놓고 있었던 것도 이미 협상 진척 상황을 꿰고 있었다는 방증이다. 그는 보도자료에서 “여러 경로를 통해 용산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고자 노력해 왔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이날 정치부장단과의 간담회에서 “총리가 된 뒤 불쑥 그곳에 갔었는데…(언론에) 일일이 다 말할 수는 없고 문제가 해결돼 홀가분하다.”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용산참사 타결] “협상내용 몰라… 장례 치른다기에 합의”

    [용산참사 타결] “협상내용 몰라… 장례 치른다기에 합의”

    30일 오전 서울 한강로 남일당 건물 합동분향소에 앉아 있던 고(故) 이상림씨의 부인 전재숙(65)씨는 협상이 극적으로 타결됐다는 소식에 고개를 떨궜다. 검은색 상복 차림의 전씨는 입을 꽉 다문 채 한동안 눈물만 흘리다 가까스로 말문을 열었다. ●“감옥있는 아들생각에 가슴아파” 전씨는 “이 엄동설한속에서라도 남편의 장례를 치를 수 있게 된 것은 정말 바라던 일”이라면서도 “감옥에 있는 아들을 생각하니 오히려 마음이 더 춥고, 허무하고, 시리다. 9일 우리가 치를 장례는 반쪽짜리”라고 소회를 밝혔다. 전씨는 용산참사가 발생한 1월20일 남일당 건물 망루에서 발생한 화재로 남편 이씨를 떠나보내야 했다. 게다가 용산철거민대책위원장인 아들 이충연(36)씨마저 서울구치소에 수감돼 복역 중이다. 충연씨는 10월28일 용산참사 관련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 등의 혐의로 징역 6년을 선고받았다. 전씨는 “28일 면회를 갔는데 아들의 얼굴이 부쩍 수척해 있었다.”고 안타까워했다. 전씨는 “법원 판결대로라면 아들이 아버지를 죽인 것인데, 세상에 그런 이치가 어디 있느냐.”면서 “장례 문제와는 별개로 책임자 처벌과 구속자 석방을 위해 계속 투쟁할 것”이라고 울먹였다. 전씨는 “협상내용은 잘 모른다. 다만 장례를 치른다기에 합의한 것”이라면서 “충연이가 아버지 장례를 꼭 모시고 싶어했는데, 감옥에 있어서 그럴 수 없다고 생각하니까 마음이 착잡하다.”고 말했다. 고령에 장기간 시달려온 탓에 전씨는 무척 지쳐 보였다. ●“도움준 분께 감사… 쉬고 싶어” 전씨는 그동안 천주교정의구현사제단과 용산철거민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에서 제공하는 식사로 끼니를 이었다. 전씨는 “이번 문제 해결을 위해 많은 분들이 뛰고 기도해 준 것에 감사하다. 그저 집으로 가서 쉬고 싶을 뿐”이라며 자리를 떴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용산참사 타결] 정초에 터진 대참사… 세밑에 봉합

    [용산참사 타결] 정초에 터진 대참사… 세밑에 봉합

    정부와 재개발조합, 유족 간 극심한 마찰을 빚었던 ‘용산참사’ 협상이 345일 만인 30일 극적으로 타결됐다. 도시재개발 과정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은 우리 사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정초를 막 지난 1월20일 오전 서울 한강로2가 남일당 건물. 용산 재개발 지역 철거민들의 점거농성장인 이 건물에 경찰의 진압작전이 시작되면서 건물 옥상 망루에 불이 붙었다. 이로 인해 농성자 5명과 경찰관 1명이 숨졌다. 검찰은 경찰이 용역업체 직원을 동원했는지 여부를 수사하는 한편 사건의 핵심인물로 거론된 이충연 용산철거민대책위원회 위원장을 긴급체포해 구속했다. 검찰은 2월9일 “화재원인은 시너에 떨어진 화염병”이라는 내용의 최종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사태의 책임은 ‘철거민의 과실’에 있다는 결론이었다. 다음날 김석기 경찰청장 내정자가 사태에 도의적인 책임을 지고 사의를 표명했다. 유족과 용산참사범대위 측은 4월부터 화재현장에 분향소를 차리고 시민단체와 연계해 농성에 들어갔다. 5월에는 법원이 용산참사 당시 건물 내에서 불을 피운 철거용역업체 직원들에게 집행유예와 벌금형을 선고했다. 6월 말에는 재개발조합 측이 유족과 철거민 측에 8억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다. 철거민들은 7월부터 서울시청 별관 앞에서 노숙농성을 시작했다. 10월 들어 사태해결의 실마리가 보이기 시작했다. 정운찬 총리가 유족들을 전격 방문한 것이다. 정 총리는 추석을 앞둔 10월3일 용산참사 분향소를 방문해 “사태해결을 위해 노력하겠다.”고 약속했다. 검찰은 이충연 위원장 등 농성자 9명에 대해 경찰관 사망 원인을 제공했다며 특수공무집행방해 치사상 혐의를 적용, 징역 5~8년을 구형했다. 법원은 화재 발생 이후에도 끝까지 망루에 남아 있다 검거된 7명에게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죄 등으로 징역 5~6년을 선고했다. 나머지 2명도 집행유예를 선고받아 기소된 농성자 전원이 유죄 판결을 받았다. 11월부터 서울시와 유족 측 실무 협상이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형사책임에 대한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었지만 유가족 생계대책과 보상금 지급에 대한 접점이 찾아지기 시작했다. 결국 이날 양측은 지금까지 미뤄졌던 사망자의 장례식을 내년 1월9일 치르기로 합의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관광버스 부적격 기사가 몰았다”

    16일 오후 경북 경주시 현곡면에서 발생한 관광버스 추락사고는 운전자의 운전 미숙이 원인일 가능성이 큰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청 사고분석팀과 경주경찰서, 도로교통안전공단의 합동조사단은 17일 경주 관광버스 추락사고 현장에서 현장검증을 실시했다. 합동 조사단은 굴곡이 심하고 급경사인 남사재 지방도로를 내려오던 버스 운전기사 권모(56)씨가 핸들을 미처 제대로 조작하지 못해 사고가 난 것으로 추정했다. 권씨도 경찰조사에서 ‘기어 변속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바람에 운전 중 핸들조작 등에 일부 실수가 있었다.’고 진술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이번 사고가 운전사의 운전실수 등 과실로 발생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사고현장 타이어 마모자국(스키드마크) 등을 집중 분석하기로 했다. 왼쪽으로 굽은 도로인 현장에 남은 타이어 마모자국은 오른쪽 바퀴에서 생긴 것으로 보이는 것이 좀 더 선명해 사고 직전 밝혀지지 않은 원인으로 운전실수가 있었던 것으로 추정됐다. 하지만 경찰 관계자는 “급경사 사고 도로에 생긴 130여m의 타이어 마모자국은 평지와 달리 실제 속도보다 길게 나타날 수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또 버스 차체의 상태를 점검하고 차체 결함 여부를 파악하기 위해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정밀 감식을 의뢰하는 한편 사고 버스를 견인해 정비공장으로 옮겼다. 운전사 권씨는 1991년 사업용 자동차 운전 정밀검사에서 불합격 판정을 받은 뒤 지금까지 재검사을 받지 않았으며, 2000년 초반 음주운전으로 면허가 취소됐다가 이후 재취득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경주시는 사고 유족 측과의 합의에 따라 18일 오전까지 황성동 경주실내체육관에 합동분향소를 설치하고 오후부터 문상객을 받기로 했다. 유족 측이 요구한 장례 절차에 따른 제반 경비는 시가 부담한다. 이달곤 행정안전부 장관도 이날 경주를 방문해 시신과 부상자가 있는 동국대경주병원과 굿모닝병원을 찾아 유가족들을 위로했다. 이 장관은 당초 시가 선거법에 저촉될 수 있다는 이유로 수용 불가 입장을 전달한 유족 측의 조문객 등을 위한 식사와 음료 제공요구를 수용하겠다고 밝혔다. 경주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 용산참사 유가족 위로

    아이린 칸 국제앰네스티 사무총장이 22일 한국을 찾아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했다. 칸 사무총장은 이날 오전 서울 한강로 남일당건물 용산참사 희생자 합동분향소를 찾아 분향한 뒤 유가족과 30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유가족 측은 “검찰이 수사 기록을 은폐했고 법원도 중형을 선고했다.”면서 “용산참사에서 벌어진 인권침해와 정부의 편파적인 조사를 밝히는 데 힘써 달라.”고 호소했다.칸 사무총장은 “유가족을 만나 위로의 뜻을 표하고 용산참사가 하루 빨리 해결되기를 희망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고 이 자리를 찾았다.”면서 “한국 정부가 국제기준에 맞지 않게 법집행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칸 사무총장은 23일 이귀남 법무부장관을 만나 이 같은 의사를 전달할 예정이다.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鄭총리 “용산사태에 막중한 책임 통감”

    정운찬 국무총리가 추석날 용산참사 현장을 방문, “사태 해결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혀 조만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지 주목된다. 정 총리는 지난 3일 서울 한강로 용산참사 현장에 있는 분향소를 찾아 유족들에게 “사태가 발생한 지 250일이 지나도록 장례조차 치르지 못한 것에 대해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감을 통감한다.”면서 “유족문제를 비롯해 용산사태를 원만하게 해결하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용산참사 발생 이후 국정을 총괄하는 총리로서 분향소를 찾아 희생자에게 조문한 것은 정 총리가 처음이다. 그는 약 30분간 유족들과 대화를 나누며 눈시울을 붉히기도 했다. 정 총리는 “참사 원인이 어디에 있든지, 누구의 잘잘못을 떠나 일어나선 안 될 참으로 불행한 일”이라며 “저의 방문이 그동안 가슴속에 쌓인 응어리를 푸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고 덧붙였다. 이어 사태해결 방안과 관련,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기는 어렵다.”면서도 “당사자 간 원만한 대화가 이뤄지도록 분위기를 조성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 유족들께서 저를 믿고 조금만 시간을 달라.”고 말했다. 이로써 8개월이 넘도록 평행선을 달려온 정부와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원회(범대위) 사이에 접점이 생길 것이라는 기대도 한층 높아졌다. 범대위는 지난 30일 정 총리의 취임과 동시에 그에게 ‘용산으로 와서 유족앞에 사죄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 하지만 범대위는 이날 정 총리의 방문에 대해 기대와 우려가 엇갈린 행보였다는 입장을 보였다. 정 총리가 사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히는 등 기존 정부의 태도에 비해 전향적인 자세를 취했지만 구체적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한 점은 한계라는 지적이다. 이영준 유대근기자 apple@seoul.co.kr
  • [사설] 용산참사 정운찬식 해법 구체화하라

    정운찬 국무총리가 추석명절인 3일 용산철거민참사 분향소를 방문해 “자연인으로서 무한한 애통함을, 공직자로서 막중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총리로서 사태해결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용산참사 범국민대책위(범대위) 측이 이를 “다행한 일”이라고 평가한 것으로 미뤄 정운찬 총리의 방문을 계기로 250일이 지나도록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 갈등과 대치를 계속하고 있는 용산참사 문제가 해결의 실마리를 찾기 시작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제 정운찬 총리가 해야 할 일은 자신의 말을 행동으로 구체화시켜 나가는 것이라고 본다. 물론 용산 철거민 참사 문제는 중앙정부가 직접 나서 해결하기 어려운 측면이 많다. 범대위는 경찰의 과잉진압에 대한 정부의 사과를 요구하지만 이미 검찰의 무혐의 처분으로 일단락된 상태이고 망루 화재는 농성철거민 때문에 발생했다는 수사결과가 나온 마당이다. 법 집행의 엄정성을 고려하면 정부가 나서서 사과할 수 없는 문제다. 생계대책은 재개발조합과 얽혀 있어 정부가 쉽게 개입할 수 없다. 그러나 해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문제는 얼마나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사태 해결에 나서는가이다. 유족들이 절실히 원하는 것은 그들 남편이자 아버지의 명예회복이다. 정부 발표대로라면 ‘집단이기주의에 눈 먼 도심 테러리스트’이지만 그들도 희생자임은 분명하다. 어려운 계층을 보살핀다는 국정 철학에 맞춰 정부가 해결책 모색에 성의를 보여야 한다. 신망 있는 인사들로 중재단을 구성해 한 가지씩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찾아 나갈 것을 당부한다. 재개발 정책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전환도 필요하다. 현재의 재개발 정책이 지속된다면 제2, 제3의 용산사태가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따뜻한 경제학자’의 명성에 걸맞은 정운찬식 해법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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