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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일 감정싸움 갈수록 격화

    ◎무역갈등서 비롯… 노골적 비난으로 확산/미선 일제차 때려부수기·보복테러까지 미일관계가 동맹국관계에서 경쟁관계로 변화하면서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다.양국관계의 삐걱거림은 소련붕괴이후 더욱 두드러져 최근엔 최악의 상태로 치닫고 있다. 미일 양국은 역사적으로 태평양전쟁의 악몽에다 무역마찰,그리고 보이지 않는 민족적 적대감등으로 인해 항상 긴장관계에 놓여있었다.그러나 최근의 양국관계악화의 발단은 무엇보다 엄청난 미국의 대일무역적자와 이에따른 두나라간 무역문제에 대한 해결책의 차이점에서 찾을수 있다.미국은 대일적자원인을 일본시장의 폐쇄성에서 찾고있다.그러나 일본측의 시각은 다르다.즉 낙후된 기술력,부실한 품질관리,회사는 적자인데도 보수는 일본의 6배나 되는 미국경영자들의 경영에 그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일본지도자들의 미국인들을 자극하는 발언도 양국관계를 악화시키는데 기름을 끼얹는 작용을 했다.사쿠라우치 요시오 중의원의장이 공식석상에서 『미국은 일본의 하청업자이며 노동자의 30%가 문맹』이라는 가시돋친 발언을 한데이어 미야자와 기이치 일본총리까지 『미국노동자들은 근로의욕이 결여되어 있다』고 가세,미국민들의 자존심을 건드렸다.이에 미행정부는 물론 기업가와 노조지도자들이 벌떼처럼 들고 일어났다.화가 치민 일부 노동자들은 일본사람들이 자기들의 일자리를 빼앗아갔다며 분풀이로 일본차를 때려부수는가하면 일본상품 안사기운동을 벌이고 있다.이같은 상황에서 최근 한 일본기업인이 캘리포니아에서 피살된 사건이 일어나 큰 충격을 주고있다.또 품질이 좋고 값만 싸면 국산품이냐 수입품이냐를 잘 가리지않던 미국인들이 미국산품 애용운동(바이 아메리칸운동)까지 펼치고 있어 반일감정은 미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양국관계의 악화로 인해 초래될 부작용이다.「바이 아메리칸」운동이 아직까지는 외제품거부운동으로까지는 비화되지않고 있으나 선거를 앞둔 시점이어서 자칫 보호무역주의로 회귀할 수도 있는 것이다.그리고 아시아인과 일본인을 동일시하고있는 미국인들이 가지는 일본인에 대한 적대감이 한국을 비롯한 다른 아시아인들에게까지 미칠 수 있어 문제가 되고 있다.최근 로스앤젤레스 한인가게에 대한 불매운동으로 드러난 한인과 흑인들간 갈등도 이러한 범주의 마찰로 볼수있다. 최근의 미일관계의 악화원인과 관련,미국이 먼저 반성해야한다는 시각도 있다.즉,경기침체는 일본탓이 아니라 미국의 산업경쟁력약화와 행정부의 외교정책등에 기인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이 자국경제의 취약점을 자성하고 이를 개선하는 노력을 배가하지 않고서는 「팍스 아메리카나」는 더이상 부르짖을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아직도 폭력 휘두르는 야의원/김경홍 정치부기자(오늘의 눈)

    13일 하오 국회 의원회관 복도에서는 민주당 양성우의원이 같은 당 소속 노무현의원에게 욕설을 퍼부으며 재떨이를 걷어차는 바람에 노의원이 입술이 터지고 이빨이 깨지는 소동이 벌어졌다. 이에앞서 11일 하오 마포 가든호텔 커피숍에서는 공천탈락에 반발한 이재근의원이 민주당 공천심사위원장인 김원기사무총장의 뺨을 때리고 유리컵을 집어던지는 사건도 발생했다. 양의원이 『×자식 죽여버리겠다』 『다시는 내눈앞에 나타나지 말라』는등 갖은 욕설과 함께 발길질을 한 이유는 민주당 공천심사과정에서 심사위원이었던 노의원이 자신에게 치명적인 명예훼손 행위를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노의원이 『자질없는 양의원에게 공천을 주어서는 안된다』는 주장하는 바람에 양의원은 노의원이 공천심사과정에서 자신의 자질과 관련된 발언을 함으로써 지역구에서 적어도 1만표 이상의 감표요인이 발생했으며 『도대체 자격도 없는 공천심사위원이 남의 자질을 운운하는 것은 언어도단』이라며 평소 불만을 표시해 왔었다고 한다. 특정인사에 대한 불만이나공천탈락에 대한 분풀이를 굳이 폭력으로 대응한대서야 어떻게 자신들이 자질있는 의원이라고 국민앞에 나설 수 있겠는가. 또 공천심사과정에서 개인의 신상문제에 대한 논란은 외부에 발설치 않기로 약속해 놓고도 계파간 지분다툼 때문에 상대방 흠집내기에 열중해 소속의원들의 불만을 증폭시킨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사건후 당지도부는 『양의원이 사과했으며 사실상 양의원이 공천심사과정에서 너무 당한 것도 사실인만큼 언론에서 좀 자제해달라』는 반응을 보였다. 또 이의원의 폭력사태는 누가 알까봐 쉬쉬해왔다.물론 시정잡배들의 언쟁과정에서 오간 폭력사태라면 민주당의 반응처럼 별것 아닐수도 있다.그러나 국회의원이,그것도 국회의사당에서 폭력을 휘두른 점이라든가 제1야당으로 자처하는 공당의 공천심사과정이 얼마나 불공정했으면 이같은 폭력사태까지 야기됐겠는가 하는 점에서는 분명히 문제가 되는 것이다. 차제에 민주당은 과연 자신들이 엄격한 심사기준과 공정한 심사과정을 거쳐 자질있는 공천자를 결정했는가 하는 점을 되짚어보아야 한다.국회의원의 폭력이 별것 아닌 것쯤으로 치부되는 그릇된 정치풍토를 조성하는데 민주당이 앞장서고 있다는 국민적인 비난을 받지 않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 1991년을 보내며/지난해 실패만 한것은 아니다(사설)

    1991년은 끝난다. 우울하고 답답한 1년이었다.활력넘치고 빛나던 70년대나 착실하게 안정적이었던 80년대의 체험이 다소 들뜬 체질을 만들어온 우리에게 이 긴 불황과,단서를 찾을 길없는 혼미는 견디기에 부담스런 한해였다. 정치적으로 지난 한해는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했다.의정은 의정대로 기대를 밑도는 실망만 보여주었고 행정 또한 표나게 좋은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무엇보다도 사회적인 불안요인은 심각한 지경을 만들었다.민생치안이 허망하게 구멍뚫려 있어서 국민학교주변도 주택가도 안전하지 못했고 여전히 인신을 볼모로 하거나 해치며 범죄를 저지르는 집단이 별로 줄지 못했고 갖가지 범죄가 창궐했다.특히 범죄의 질이 지능화되고 신종범죄수단이 개발되기도 했다.그 중에도 지난해에는 범죄적 연고가 없는 불특정의 대상을 상대로 「분풀이식」 폭행이나 잔혹한 범행을 하는 범죄가 늘어났었다. 사회가 타락해가고 도덕적으로 무너지는 속도도 91년에는 좀더 심했던 해였다고 할 수 있다.뇌물로 인한 함정에 빠진 계층이 사회전반을 휘몰고가는 현상을 보였다.국회의원의 뇌물외유를 비롯하여 직위가 상당한 고위공직자가 줄줄이 연루된 증수회 비이가 천지를 진동시켰다. 마침내 그 이전의 어떤 비이보다도 우리를 강타한 것은 예술교육기관에 종사하는 대학교수들의 입시불정사건이다.국회의원이나 관이에 대한 뇌물 파동은 어느 시대 어떤 사회에서도 예가 있을수 있지만 명문대학의 권위있는 대학교수가 자기대학 학생을 거액으로 거래하며 입시부정을 해왔다는 사실은 충격적인 일이다. 우리를 가장 암울하게 만드는 현실은 어둡고 긴 터널을 헤어나지 못하는 경제현실이다.물가는 물가대로 불안하고 제조업에서 수출에 이르기까지 생산은 가라앉고 증권시장은 주저앉았다.개방압력은 굶주린 맹수처럼 대문앞에서 으르렁거리는데 수출마인드는 살아나지 않고 근로의욕은 상실되어간다.과잉으로 불어닥친 민주화욕구와 분수없는 자신감이 남긴 후유증으로 집단이기주의와 사려없는 과소비기질이 사회를 조금씩 더 혼란시킨 결과,이제는 좌절과 실의가 팽배하게 되어 버렸다. 그러나 일일이 열거하노라면 이렇게 어둡고 대책이 없는 한해였지만,그렇다고 1991년이 그렇게 한심하고 대책없는 한해였지만은 않다.곰곰이 돌이켜보면 이해처럼 우리에게 중요하고 성과가 많았던 해도 드물다. 국내정치가 불신의 계절병을 면치못했다고는 하지만 민주화라고 하는 거대한 개혁의 물결을 헤치고 탄생한 정부가 그런대로 합의의 정치를 도출해가며 위태한 고비들을 넘기는 슬기도 발휘했고 무엇보다도 지자제의 첫걸음을 힘있게 내디뎠다. 특히 유엔회원국이라는 건국이래의 소망과업을 이루어 북방외교와 함께 우리의 위상을 세계질서안에 전향적이고 확고하게 편입시킨 공은 한민족 유사이래 획기적인 일이었다. 끝이 안보이는 터널속같은 경제사정의 암울한 현실도 「자각」이라고 하는 전기를 마련하는 지혜를 발휘하고 있다.아직은 다 탕진되지 않은 자신감과 의욕이 국민적 공감대를 가지고 재점화될 분위기를 무르익히고 있다. 지난 한두해에 걸친 우리의 침체와 혼미는 따지고 보면 충분히 예측되어온 위기이고 불안이다.단순히 사회발전론에 입각한 이론을 근거로 그렇다는 것만이 아니다.성장의 빛이 남긴 그림자이고 민주화 열병이후에 오는 예후증상이다. 사회라는 유기체는 생략이나 설명안되는 지름길을 가지 못한다. 1991년은 건너뛰거나 회피해갈 수 없는 우리의 도정을 적나라하게 우리 앞에 펼쳐보인 영광과 시련의 「실체」를 한눈으로 부감해보게 하는 해였다. 발전의 신화를 창출하는 시대에는 앙분되고 고조된 열기를 추진력의 원동으로 삼기도 한다.그 꿈꾸듯 열에 떠서 보내는 시대로부터 차디찬 현실의 세계로 들어서는 현실의 시대가 우리의 90년대라고 할 수 있다. 국제적으로도 응석으로 프리미엄을 요구할 시기가 아니고 내부적으로도 의타심이나 요행을 쫓을 수 있는 단계는 지났다.뿌린 만큼 거두고 온당하게 노력하는 사람만이 온당하게 거둬들일 수 있는 시대에 우리는 이미 진입된 것이다. 그러기 위한 도정으로서 1991년은 소임을 하지 못한 것은 별로 없는 해이기도 하다.정신없이 터져나온 온갖 비이도 어제 오늘 새로 심어진 악덕의 결과이기 보다는 해묵혀가며 자라온 전시대 해악의 타성적인 확대인 경우가 더 많다.이제 더는 지하나 그늘에 숨어서 계속해갈 수가 없기 때문에 추하고 흉한 「진상」을 들키게 된 것들이 더욱 많다. 예술교수들의 불정이 노정될때의 모습은 특히 시사한 것이 많다.더는 부정을 덮어두지 않기 위해서 어떤 초월적인 의지가 연출해놓은 드라마 같은 절묘함을 보였기 때문이다. 묵은해가 물러가는 저녁 땅거미질녘같은 지금 우리가 해보아야할 반성과 성찰은 다가오는 해를 맞기 위한 맑고 곧은 정신의 회복이다.92년은 우리민족의 결정적인 운명을 개척해야 할 절박하고 중대한 시기이다.통일의 기틀을 위해 직접 초석을 놓아야 하고 국제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피나는 경쟁에서 낙오되지 않을 보조를 가다듬어야 할 해다.그와 함께 인류의 이상을 실현하는데 기여해야 할 사명과 직분을 공유해야 할 해이다.자학과 좌절로 낭비할 시간도 없고 유예할 수 있는 여분도 없는 시기다. 남에게 핑계대고,정치에 떠넘기고 계층간에 서로서로 떠넘기며 책임을 모면하려다가는 공멸할 수밖에 없는 매우 절박한 시기이다.1991년을떠나보내며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그것을 확실히 인식하는 일이다.그것만이 1991년을 의미있게 살리는 길이다.
  • 외언내언

    일본 아사히(조일)신문이 크게 망신당한 사진조작 보도사건이 있다.조작임이 탄로되어 기자 본인은 물론 사진부장·편집국장이 경질되고 마침내 사장까지 인책사임한다.89년에 있었던 일이다.◆아사히 신문은 인간에 의한 자연파괴를 고발하는 사진 시리즈를 실었다.문제가 된 사진은 오키나와(충승)현 이리오모테(서표)도 앞바다 속의 산호초.누군가가 「KY」라고 크게 새겨놓은 사진이었다.『산호초를 망가뜨린 KY는 누구인가』가 그 사진의 제목.그런데 「KY」는 바로 사진기자 자신이었다.「사죄광고」를 두번이나 내게 했던 사건.권위지의 권위를 땅에 떨어뜨린 사건이었다.◆이런 일은 어느 나라 언론매체고 간에 가끔씩 일어나는 일.지나친 경쟁의식과 취재기자의 그릇된 특종의식이나 영웅심 같은 것이 작용하면서이다.자기의 의도에 맞추려는 과잉의욕 탓이기도 하고.지금 한창 화제가 되고 있는 「웅진여성」지의 「에이즈 복수극」기사의 진상은 무엇일까.「섹스 보복」을 하다 자살했다는 김모양의 일기내용은 과연 진짜일까.기자의 작위가 개재된 것일까.아니면 기자까지도 속은 「장난질」인 것일까.◆에이즈에 걸린 사람이 그 분풀이로 무차별 성행위를 한다는 루머는 진작부터 나돌았다.우리나라뿐 아니라 외국에서도 있어오는 일.우리 작가의 작품속에도 나타난다.그 유형도 갖가지.어떤 상대방을 의식하는 악의에 찬 것들도 적지 않다.가령 『에이즈에 걸린 한 일본 의사가 한국에 와서 강남 룸살롱 마담들을 모조리 상대했다더라』따위.강북쪽 술장수의 흑색선전일 수 있다.◆20세기가 저물면서 지구촌을 심각하게 하고 있는 에이즈.이런 기사가 경종이 되는 측면도 있다 하겠으나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이 예민한 문제를 흥미의 대상으로 삼아 불안감·공포감을 흩뿌리는 태도를 옳다할 수 있을 것인지.우선 기사의 진상부터 밝혀져야 겠다.
  • 필리핀 공항의 한국인 추방(사설)

    필리핀에 입국하려던 한국인 7명이 입국수속도중 뚜렷한 이유없이 폭행당하고 억류당했다가 강제추방 당하는 사건이 발생했다.필리핀은 동남아에서 가장 오랜 우방의 하나다.인적교류도 활발하고 화목했으며 우호관계도 돈독했던 나라다.사건의 진상이 완전히 밝혀지진 않았으나 그런 필리핀에서 이런 사건이 발생한 사실 자체를 우선 주목하고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보도된 내용으로는 한국에 불법 취업 목적으로 입국하려다 강제출국당한 필리핀인의 행패가 사건의 발단이다.서울에서 쫓겨간 분풀이를 마닐라공항의 한국인들에게 한 것이며 그것이 발단이 되어 영문을 모르는 7명의 한국인들이 억류당하고 추방당하는 수모와 피해를 입은 사건인 것이다.우리는 한 나라의 국제공항에서 그 나라를 합법적으로 입국하려는 선의의 외국인들을 상대로 어떻게 그런 국제적 상식을 무시하는 야만적 사건이 발생할 수 있는지 우선 어처구니가 없다. 사건을 일으킨 필리핀인은 한국에서 이유없이 폭행당했다고 주장하며 폭력을 휘두른 것으로 보도되었다.폭행을 당한 것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자신이 당한 폭행과는 전혀 상관이 없는 다른 무고한 사람들에게 보복을 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황차 그는 한국에서 불법으로 일자리를 구하다가 주민들의 신고로 강제귀국조치된 자로 밝혀졌다.말하자면 적반하장인 것이다.더욱 놀라운 것은 마닐라 출입국관리소 관리들이다.폭행당하며 도와달라는 외국인을 보호해 주기는 커녕 구경만 했으며 여권을 빼앗고 억류했다가 합당한 이유의 설명도 없이 강제출국시켰다는 것이다.게다가 출입국관리소책임자는 한국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이 필리핀인들을 못살게 군다는 소리를 들었다며 옷을 벗는 한이 있어도 한국인들을 혼내주려 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한마디로 마닐라공항은 무법천지가 아닌가 하는 의문을 갖게 하는 광경이 아닐 수 없다. 물론 우리는 이 사건이 우발적인 것이며 필리핀정부나 다른 많은 선의의 필리핀인들과는 상관이 없는 특정인의 몰지각한 행동의 결과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러나 최근들어 필리핀을 비롯,동남아로부터 불법취업 돈벌이를 위해 한국에 오는 사람들이의외로 많으며 우리 정부당국이 그들을 단속하고 발각되면 강제출국시키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쫓겨가는 사람들이 한국에 대해 좋은 감정을 갖기는 어려울 것이다.그렇다고 돌아가서 합법적으로 그들 나라에 입국하는 한국인을 적대시하고 관리들이 그것을 방조하는 사태가 용납되어서는 절대로 안될 것이다. 우리 국내에는 필리핀인만도 불법취업자가 2천5백명이나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으며 금년들어서만도 1백여명이 강제출국당한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비슷한 사건이 또 일어날 수 있음을 보여주는 통계다.같은 사건이 재발되지 않도록 한·비 양국정부는 만전을 기해야 할 것이다.필리핀정부는 사건의 진상규명과 관계자 엄벌은 물론 사건의 원인을 제공하는 불법취업출국자 단속도 강화해야 할 것이다.우리 정부는 한국인이 불법출국 당한다는 보고를 받고도 현지영사관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는 비판을 받지 않도록 해외에서의 자국민보호에 좀더 철저해야 할 것이다.외국인불법입국자나 취업자 처리에도 불필요하게 나쁜 감정을 갖지 않도록 신경을 쓰는 원려가 있어야 할줄 안다.
  • 암살 배후 “0순위” 지목/「타밀엘람해방호랑이」란

    ◎타밀족 독립추구 스리랑카내 반군단체/총리 재임시절 파병·탄압… 간디에 원한 라지브 간디 전 인도 총리의 폭사와 관련,스리랑카의 타밀분리주의 반군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들(LTTE)이 「0순위」의 혐의를 받음에 따라 이 단체와 타밀족이 세인들의 관심을 모으고 있다. LTTE는 타밀족의 독립을 추구하는 스리랑카내 10여 개 반군단체 중 가장 과격하고 호전적인 그룹. 2만명의 전사를 거느리고 있는 LTTE는 스리랑카 거주 3백만 타밀족의 독립쟁취를 위해 지난 75년에 결성됐으며 83년부터 반정부 유혈무력투쟁을 벌여오고 있다. 힌두교를 신봉하는 타밀족은 스리랑카의 1천7백만인구 중 18%를 차지,불교를 믿는 74%의 싱할리족과 그 동안 자주 마찰을 빚어왔는데 양종족간의 반목과 불화의 원인 제공자는 영국이라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영국은 지난 19세기 인도와 스리랑카를 점령한 뒤 「분할통치」의 식민정책에 따라 스리랑카에서의 차재배를 위해 우대조치를 베풀며 인도 남부에 살던 타밀족을 스리랑카로 이주시켜 분쟁의 소지를 만든 것. 싱할리족은 스리랑카가 48년 독립하자 영국 식민통치하에서 타밀족으로부터 받은 천대에 대한 분풀이에 나서 공무원임용 제한,타밀어의 공용어 제외정책 등을 폈다. 이에 분개한 타밀족게릴라들은 지금까지의 합법적 투쟁에서 급선회,83년부터 정부군과의 무력대결에 나서 이미 쌍방간 2만여 명의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번 라지브 간디의 암살사건의 배후세력으로 LTTE가 지목되고 있는 것도 라지브 간디가 총리 재임중이던 지난 87년 7월 스리랑카정부와의 협정에 따라 타밀반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스리랑카에 5만명의 평화유지군을 파병,타밀족의 원한을 샀으며 지난 2월에는 LTTE와 가까운 타밀 나두주정부를 해산하도록 세카르 총리에게 압력을 넣기도 했기 때문. 인도에는 남부의 타밀 나두주에 5천만명의 타밀족이 거주하고 있다. 드라비다계인 타밀족은 BC 3세기 인도 남부로부터 이주했으며 말레이시아·베트남·아프리카 동부 및 북부지역 등에도 일부가 살고 있다.
  • 욕설·몸싸움으로 정기국회 마감

    ◎추곡가등 19개 안건 1분만에 가결선포/야,의사 방해·의장석 돌진… 저지엔 실패 ○…지자제선거법 합의통과로 간신히 파행을 면한 올 정기국회는 폐회일인 18일 밤늦게 추곡수매동의안 처리를 둘러싸고 여야가 또다시 격돌,끝내 여야 의원들의 욕설과 몸싸움 등 일그러진 모습으로 종결. 이날 회의의 막판 파행상은 전날 국회 농림수산위에서 추곡수매동의안이 여당 단독으로 처리된 뒤 이날 잇따른 여야총무협상에서 절충이 실패해 이미 예견됐던 수순. 전날 농림수산위에서 추곡수매동의안을 여당 단독으로 처리하는 데 대해 묵인했다는 언론의 보도에 발끈한 평민당측은 이날 소득세법 개정안,91년도 예산안,특정 강력범죄의 처벌에 관한 특례법,공무원연금법 개정안,정부조직법 개정안 등의 제안설명·심사보고·반대토론에 나선 유인학 김태식 양성우 박상천 의원 등이 필리버스터로 맨 마지막인 36번째 의사일정에 잡힌 추곡수매동의안의 안건상정의 「원천봉쇄」를 시도. 폐회를 4시간40여 분 앞두고 하오 7시20분쯤 개회된 이날 본회의는 의사일정 16번째 항인 정부조직법 개정안에 대한 박상천 의원의 반대토론이 끝날 무렵인 하오 10시30분께부터 여당 의석에서 『그만하라』는 등 야유가 나오기 시작. 박 의원의 토론이 끝난 35분께 「초 읽기」에 몰린 박준규 의장이 『솔직히 터놓고 영혼으로 대화해봅시다』라고 말문을 연 뒤 『그 동안 추곡수매동의안 심의과정에서 농어촌 구조개선을 위해 1천억원의 예산을 여야의 노력으로 증액했고 92년까지 농업기반 조성기금으로 5천억원을 마련하는 등 국회가 농어민을 위해서 많은 노력을 했다』며 나머지 19안건의 일괄상정을 선포. 이때 평민당 의원들이 의장석으로 돌진,의사진행에 대한 실력저지를 시도하면서 여야 의원들이 몸싸움을 벌이는 와중에 박 의장은 『나머지 안건은 소관 상임위에서 심사보고한 대로 가결하는 데 이의있느냐』고 묻고 1분 만에 가결을 선포. 그러자 일부 평민당 의원들은 『무효다』 『날치기다』는 등 고함과 욕설을 여당 의석을 향해 퍼부었고 흥분한 채영석 유인학 의원(평민)과 이들의 의장석 돌진을 저지하려던 강우혁 김병룡 의원(민자)들간에 심한 몸싸움이 벌어졌으며 이 와중에 임무웅 의원(민자)의 상의가 찢어지기도. 채영석 의원 등 일부 평민당 의원들은 산회가 선포된 뒤에도 자신들의 의장석 진입을 막은 국회 관계직원들의 멱살을 잡고 욕설을 퍼부으며 『감히 국회 직원이 의원의 몸에 손을 대느냐』며 분풀이. ○…민자당의 김윤환 총무와 평민당의 김영배 총무는 이날 밤 본회의가 평민당측의 고의적 의사진행 방해로 진행이 순조롭지 못하자 따로 접촉을 갖고 문제가 되고 있는 추곡수매 문제를 논의. 이날 김 민자총무는 『박준규 국회의장이 추곡수매동의안을 처리하면서 「정부는 동의안 처리 이후에도 더 많은 추곡수매를 위해 노력해 달라」는 언급을 하는 선에서 정상적 표결절차에 응해 달라』고 요청. 그러나 김 평민총무는 『박 의장이 추곡 1백만섬 추가수매를 약속하고 강영훈 국무총리가 이를 확인해야 한다』고 요구했으며 김 민자총무는 『그같은 안은 수용불가』라고 밝혀 합의점 도출에 실패. ○…이에 앞서 예결위는 사흘밤 철야 계수조정소위회의 끝에 일반회계에서 3천4백44억6천만원을 삭감하고 농어촌 구조조정자금 및 의원들의 지역구사업지원금 등 1천4백17억6천만원을 증액해 이날 하오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30분 만에 통과. 당초 평민당측은 5천6백억원의 삭감을 요구했으나 정부·민자당측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쳐 3천4백억원 선의 삭감에 합의했으나 의원들의 지역사업이 많이 포함된 건설·상공·내무부 등의 부처 예산은 대부분 삭감대상에서 제외. 이날 하오 5시30분부터 시작된 예결위 전체회의에서는 91년도 예산안에 대해 민자당측의 심완구 의원만 찬성토론을 벌인 반면 평민당측은 계수조정소위의 합의에도 불구하고 김영진·이철용·이협 의원 등이 반대토론에 나섰고 김용태 위원장의 토론종결선포에도 아랑곳없이 평민당 의원들은 단상까지 나와 의사진행 발언을 요구하며 표결처리를 저지. 김 위원장이 기립표결을 선언,민자당 의원 32명이 기립찬성을 했고 『반대하는 의원은 일어서 달라』는 김 위원장의 요청에도 평민당 의원들이 반발해 찬성 32,기권 12로 91년 예산안은 통과. ○…평민당은이날 자정무렵쯤 국회 본회의에서 추곡수매동의안 등이 기습통과된 직후 국회 총재실에서 긴급 의원간담회를 30여 분 동안 갖고 박준규 국회의장에 대해 불신임결의안을 제출키로 하는 등 성토일색의 분위기. 김태식 대변인은 간담회가 끝난 뒤 발표한 성명에서 『오늘의 날치기통과는 노 정권이 얼마나 반민주·반농민적인 정권인가를 여실히 드러냈다』면서 비난의 톤을 높인 뒤 『김 총재는 이같은 상황에서는 오는 24일로 제안받은 영수회담에 응하지 않겠다고 했다』는 발표로 흥분된 분위기를 집약.
  • 외언내언

    통일독일을 경축하는 1백만 독일인들의 함성과 환호. 베를린시 의사당앞 광장의 감격이 화면으로,활자로 전해져 온다. 통일독일을 두고는 피해당사국들 사이에 우려의 시각이 없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한민족으로서는 부럽다는 생각이 먼저다. ◆『…헨델,라이프니츠,괴테,비스마르크…,그들은 독일류의 강력한 전진의 특징을 잘 보여준다. 독일은 온갖 대립 사이를 의념없이 살아 나오고 유한 강을 터득한 가운데 신념이나 주의에 사로잡히지 않으면서 그를 서로 접합ㆍ이용함으로써 자기 자신의 자유를 보전하고 있다.…』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884)에서 하고 있는 말. 오늘의 동서독일 하나됨도 니체의 이런 지적에 연유함인가. ◆지금부터 5년전쯤,헬무트 콜 수상을 실랄하게 꼬집는 「농담집」 4권이 서독을 휩쓸었다. 동서독이 대치한 상황 아래서 서독의 방첩책임자 티트게가 동독으로 망명하고 심지어 총리의 여비서 부부까지 망명하자 서독국민들은 울화가 치밀었던 것. 「농담집」은 그 분풀이를 하면서 콜 총리를 완전히 「바보 천치」로 묘사한다.그것을 읽은 콜 총리는 『너무 재미있어 나도 웃었다』는 여유. 그럴 수 있는 체제 속의 대기였기에 오늘의 주역으로 등장하는 것 아닐까. ◆통일이 되었다 해도 안팎의 시련은 지금부터라 하겠다. 중요한 것은 「거인」이 된 독일이 세계평화에의 길에 어떻게 이바지해 가느냐 하는 점. 특히 주변 피해 당사국들은 거기 주목한다. 그 점에서 독일인의 심성을 기회 있을 때마다 비판했던 독일인 하이네의 경고도 재음미해야 겠다.­『프랑스의 애국주의가 전문명국을 포용하는 데 비해 독일의 애정의 실체는 이렇다. 마음은 점점 좁아지고 냉기 속의 가죽과 같이 수축하며 외국 것을 증오하면서 세계시민도 유럽인도 아닌 편협한 독일인이기를 원할 뿐 이다』(「로망파」제1장). ◆누가 뭐라해도 오늘의 결과는 게르만족의 예지와 애국애족정신에 기인하는 것. 우리의 남과북­예지도 애국애족정신도 없다 할 것인가.
  • 한 어머니의 잘못된 생각(사설)

    그 죽음은 유난히 우리를 우울하게 하는 것이었다. 거의 어른들로만 구성된 3대 일가가 여관에 투숙하여 집단자살을 꾀했던 사건이다. 30대의 아들내외는 죽고 노부부와 작은아들,손녀가 중태에 빠진,이 이해하기 어려운 집단자살이 실은 부동산투기에 실패한 한 나이많은 주부의 정신병 발작같은 독살극이었다고 한다. 우리를 새삼스럽게 불행하게 만드는 사건이다. 어머니가 돼서,특히나 나이가 들어 아량과 참을성이 깊어졌을 어머니가 되었어야 할 나이에 장성한 아들내외를 기어코 죽이고 만 일은 도저히 설명될 수 없는 일이다. 죽은 아들내외는 어엿한 직장이 있는 공무원이요 그 슬하에 아이까지 둔 30대의 부부다. 불행해진 노부모의 운명을 그들에게 옮겨주지 않아도 너끈히 살아갈 수 있고,조금만 인내하면 부모를 곤경으로부터 구출해 줄 아들이고 며느리였다. 도대체 어머니들이 자식을 왜 이렇게 쉽게 죽이는 세상이 되었는지 알 수가 없다. 어제도 20대의 한 주부가,밥투정한다고 어린아들을 산으로 끌고가 죽였다는 기사가 있었다. 남편 바람피우는일을 항의하려고 자식을 죽이고 자신도 죽고,시부모 모시기 싫다고 아이들까지 죽음길에 동반해 버린다. 일련의 이런 죽음들을 보면 어딘지 「분풀이」나 보복을 느끼게 한다. 가정을 돌보지 않고 바람이 난 남편의 가슴에 쾅쾅 못을 박아버리고 싶어했거나,구질구질한 시부모들이 단란한 젊은 가정을 만드는 데 방해가 되는 것에 대한 반발과 오기가 엿보인다. 그런데 이번 나이많은 부인네가 한 짓은 그중의 몇 경우와도 다르다. 그냥 놔두면 충분히 잘 살아갈 젊은이들을 목도 조르고 입도 틀어막아 가며 음독에,기어코 죽게 한 것은 아들내외에게 어떤 종류의 원한이 쌓였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다. 한 가정이 경제적으로 파탄에 이르면 가족간의 정은 극도로 황폐해진다. 더구나 남편의 구박이 그리도 심했다니,그 남편에 가세하여 자식내외도 어머니를 핍박하고 원망하고 능멸했을지도 모른다. 그런 자식들만 잘살도록 남겨두고 혼자 죽기는 원통했던 것일까. 그러나 우리가 아는 한 그런 「어머니」란 있을 수가 없다. 출산의 고통과 육아의 신고를생각하면 자기 속으로 낳은 아기는 자기의 분신이고 자기자신이다. 그 목숨을 주었으니 뺏을 수도 있다고 생각하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그것은 큰 잘못이다. 아기는 비록 어머니의 몸을 빌려서 태어나지만 신의 뜻으로 태어난다. 신이 아니면 조물주라도 좋고 우주의 섭리라도 좋다. 사람마다 각각의 운명을 지니고 태어나는 것만 보아도 알 수 있는 일이다. 단지 부모에게 한때 맡겨졌을 뿐,각각 타고난 인생을 살아갈 개체의 존재들이다. 감히 그 존재를 어떻게 가로맡아 죽이고 살리고를 할 수 있겠는가. 신에게 아이를 낳아 기르는 성스런 기능을 위탁받았으므로 어머니들은 극악한 투기욕같은 것을 부리면 안된다. 가정을 유지하는 제일 큰 힘은 화목이다. 화목이 깨질 일을 하면 반드시 화가 다가온다. 물욕은 화목을 깨뜨리는 대표적인 마물이다. 그 마물을 일부러 찾아나서는 것이 투기같은 짓이다. 그 화로 자식을 죽이는 일까지 하고서야,삶은 커녕 죽음인들 편하겠는가. 어버이날에 즈음해서 듣게 된 한 어머니의 자식 살해극이 너무도 정떨어진다.
  • 뺏긴 의사봉 되찾아 5분만에 통과/12일 국방위 이모저모

    ◎유 위원장,야의 의사진행 발언 묵살/평민의원들,“날치기… 무효다” 고함 ○…여야간에 위헌시비논쟁까지 불러일으키며 첨예하게 대립해 온 국군조직법개정안은 12일 상오 국방위의 국군조직법안심사소위에 이어 하오에 열린 국방위전체회의에서 민자당이 정계개편후 거여소야로 바뀐 뒤 처음으로 5분만에 기습통과. 전체회의에서 유학성위원장은 민자당간사인 이광로의원이 소위심사결과 보고를 끝내자 『그동안 충분한 심사를 거쳤으니 토론은 필요없다』고 말한 뒤 민자당 의원석을 바라보며 『이의 없느냐』고 문의. 이때 평민당 권노갑의원은 『의사진행발언이 있다』며 제지하고 나섰으나 유위원장이 이를 묵살하고 의사봉을 잡으려 하자 권의원이 위원장석으로 달려나가 의사봉을 낚아채며 『이래도 되느냐』고 고함. 유위원장은 의사봉없이 주먹으로 책상위를 3번 내리쳐 통과를 선언하려 했으나 3번째 주먹은 권의원이 내민 손바닥에 부딪쳐 불발. 이순간 김덕규ㆍ정웅(이상 평민) 김현(무소속)의원 등 야당의원들이 유위원장을 둘러싸고 거센 항의를했고 유위원장은 이틈을 타 권의원의 손에서 의사봉을 다시 빼앗아 두차례 내리친 뒤 일부 민자당의원들과 위원장실로 직행. 야당의원들은 회의장안에 남아있던 최형우ㆍ황명수ㆍ옥만호의원 등 민자당의 민주ㆍ공화계 의원들을 둘러싸고 『날치기통과시키려고 3당야합했느냐』 『이럴 수가 있느냐』고 소리치면서 분풀이. 최ㆍ황의원은 얼굴이 상기된 채 침묵을 지켰으나 지난해 국군조직법개정안이 통과되면 의원직을 사퇴하겠다고 공언한 옥의원은 『우리에게 따지면 어쩌자는 것이냐』는 말만 되풀이. 소식을 듣고 뒤늦게 달려온 평민당 신순범사무총장은 『이제는 본회의에서 문제삼을 수밖에 없다』면서 『표결처리와 토의종결도 안된 의결은 무효』라면서 소속의원들이 회의실에서 철수할 것을 종용. 유위원장은 위원장실에서 『평민당 김대중총재에게 조기통과의 배경을 설명하겠다』면서 야당측의 반발에 개의치 않겠다는 표정. 이광로의원은 『위헌시비를 불러일으킨 국방참모총장의 명칭을 합참의장으로 수정하고 정치적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평민당이 주장했던 수방사ㆍ특전사에 대한 작전지휘권은 종전대로 육군참모총장이 갖도록 하는등 평민당의 법안을 최대한 수용한 만큼 더이상 양보할 것이 없었다』고 설명. 이와관련 민자당의 김동영총무는 『정부측의 입장과 이번 회기내 처리방침에 대해 김대중 평민당총재에게 11일 사전통보된 것으로 안다』면서 『평민당측과 절충을 거쳐 실시시기ㆍ명칭ㆍ참모차장정원 등에 대해 수정안을 마련했음에도 뒤늦게 날치기 통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며 평민당측에 화살. 김총무는 또 『과거 민정당총무가 어찌 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상임위 일은 소관상임위원장에게 맡기겠다는 방침』이라 말해 이날 법안통과가 궁극적으로 유위원장의 「결정」에 따른 것이라고 피력. ○…평민당은 이날 하오 국방위에서 국군조직법개정안이 전격 처리되자 국회총재실에서 김대중총재를 비롯한 총무단ㆍ국방위원연석회의를 열어 대책을 논의한 끝에 1단계로 이를 「불법무효」로 간주,국방위재심의요구,2단계로 법사위와 본회의통과 실력저지,3단계로 범국민무효화투쟁을 전개키로 의견을 집약. 회의가 끝난 뒤 김영배총무는 『민자당이 국방위에서 적법한 회의절차를 무시한 채 이의가 있다고 주장했음에도 불구,이를 날치기로 통과한 것은 절대 승복할 수 없다』며 『국방위 재심의를 요구하되 이에 응하지 않을 경우 법사위및 본회의에서 실력으로 저지할 것이며 구체적인 투쟁방안은 여러분의 상상에 맡기겠다』며 강한 톤으로 민자당측을 비난. 김태식대변인은 『13대 국회들어 첫 날치기통과가 3당통합이후 처음 열린 국회에서 저질러졌다는 것은 3당통합의 실체가 무엇인지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면서 『우리당은 지난주말 국방위법안심사소위에서 굳이 이번 회기내에 국군조직법개정안을 처리할 필요가 없다는 민자당측 얘기를 믿고 오늘 예정된 의총까지 연기시켰으니 또한번 그들에게 속은 셈』이라고 분개.
  •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과 기대/김문환 서울대교수ㆍ미학(세평)

    비판적 합리주의라고 불리는 현대사상의 한 맥을 주도한 칼 포퍼의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이라는 저서는 그가 히틀러에 의한 오스트리아 침공소식을 처음 접했던 1938년으로부터 1943년 사이에 씌어진 것이다. 그러므로 플라톤 등을 다루면서 『전쟁이나 그밖의 어떤 현대적인 사건들중 어느 것도 분명하게 언급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 책은 그러한 사건들과 그 배경을 이해하기 위한 시도였으며 문제들 중에는 전쟁이 승리로 끝난 후에 발생될 것처럼 보이는 것도 있다』 ○비판적 합리주의 공감 그러한 문제들의 예로 우리는 전체주의ㆍ권위주의ㆍ인종차별주의ㆍ부족주의 또는 그의 포괄적인 술어를 빌린다면 역사(결정)주의를 지적할 수 있다. 그가 아리스토텔레스나 헤겔에 이어 마르크스를 비판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였다. 그에 따르자면 『마르크스주의는 인간이 좀더 좋고 좀더 자유로운 세계를 만들어보려는 끊임없는 위험스러운 투쟁을 벌이는 사이에 만들어진 실수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그의 이론에 대해서는 엄격한 합리적 비판이 요구된다는것이다. 그러나 그는 곧 이어 『그 이론이 지닌 놀라운 도덕적 호소력과 지적 매력에 대해서는 공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쓰고 있다. 작은 지면에 「개방사회와 그의 적들」의 집필동기를 이렇게 늘어놓는 것은 차마 함부로 비교될 것은 못되지만 이른바 민중예술에 대한 필자의 심정이 그와 비슷하기 때문이다. 필자의 대학생활은 1962년부터 시작되지만 실질적으로는 군에서 제대한 1964년 여름부터이다. 이때 대학들은 이른바 한일국교정상화 반대운동,또는 6ㆍ3사태로 들끓었고 그 열풍이 지나간 2학기의 캠퍼스는 그야말로 마른 잎들만이 뒹구는 들녘과 같았다. 이 메마른 대지에 다시 싹을 틔우려는 여러가지 노력들중의 하나가 문화운동이었고 그 한가지 표현이 탈춤인 셈이었다. 향토의식 초혼굿이라는 행사가 그 대표적인 활동이었던 바,필자도 예컨대 연암 박지원의 소설을 각색한 작품에서 북곽선생이라는 역을 맡아 다가오는 추위와 맞서보기도 하였다. 1969년 서울신문의 서울문예평론 모집에 당선되었을 때,그 내용이 민속극을 다루는 것이 되었던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그 마지막 귀절에서 필자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부정을 통한 긍정의 세계관,갈등과 모순을 날카롭게 의식하면서도 그것을 멋스럽게눙쳐 몸으로 받아치는 실감,모든 잡다한 것을 하나로 뭉뚱그려 너ㆍ나의 대립을 초극한 우리만을 있게 해주는 우리 민속극의 활개짓을 「오늘ㆍ여기」에서 펼쳐주는 창작적 민속극의 출현이다』라고 쓴 바 있다. 25살 청년의 치기가 아직도 묻어나지만 이러한 주장은 1970년대와 1980년대에 대학가를 풍미한 마당극의 출현을 마치 예감한 듯 싶기도 하다. 필자 스스로는 교회를 거점으로 삼은 창작적 민속극(판소리 포함)에 좀더 관심을 보이면서도 주변에서 이루어지는 그 비슷한 작업들도 비교적 열심히 구경한 셈인데 어느날 그만 벽에 부딪치고 만 느낌을 강하게 받게 되었다. 그것은 김지하의 「비어」를 읽었을 때였다. 대학시절의 인연도 작용하면서 그의 작품들에서 창작적 민속극의 가능성을 가장 확실하게 읽어내던 필자로서는 대연각 화재사건에서 힌트를 얻은 듯한 「고관」이라는 소품에서 비롯 그것이 죽어 마땅하다고 생각될 위인들의 죽음일지언정 그 죽음이 한낱 분풀이를 위한 우스개감으로만 다뤄질 때 섬뜩한 느낌을 얻게 되었던 것이다. ○동기의 순수성은 인정 그러면서도 그후 「민중의 소리」가 그의 작품이라고 소문이 났을 때 필자는 아직 만일 그것이 그의 작품이라면 그가 시인이기를 포기했거나,아니면 그것이 전혀 그의 작품이 아니거나 둘중의 하나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1976년 독일에 유학했을 때 그곳에서는 이 「민중의 소리」를 김지하의 작품으로 믿어 의심치 않아 이를 일어ㆍ영어ㆍ독어 등으로 번역하여 노벨문학상 후보작으로 추천하는 운동이 열성적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필자에게 의견을 물었을 때,필자의 대답은 한결같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서도 이것이 단지 위작에 지나지 않는다고 확언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실망하거나 아니면 필자를 사이비 내지 사쿠라로 매도하기까지 한 일도 있다. 왜 나는 아무런 물증도 없이 그런 소리를 했을까? 그것은 결국 본래적 예술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안으로 들어오지 못한 많은 청년들이 밖에서 「피ㆍ피ㆍ피」를 외치는 와중에 명동성당의 한 부속건물에서 이루어진 문학강연에서 김지하 시인이 「살림」론을 차분하게 강연했을 때 필자는 그에게서 여전히 이러한 믿음이 살아있음을 확인하고 눈시울을 붉힐 수밖에 없었다. 그는 역설한다. 『오늘날 우리는 생물학적인 죽음만이 아니라 정치ㆍ사회적인 죽임에 의해 희미해져가는 삶을 되살리는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문학도 그러한 살림의 일환이다. 그러나 살림은 규모가 있어야 한다』 ○신명과 품위의 조화를 1990년대로 접어들면서 민중예술을 주도하던 몇몇 일꾼들이 「현장」을 떠날 때,때마침 이른바 사회주의국가들에서 이는 개혁의 물결과 상승작용을 일으키면서 『그것 봐라』 하는 음성이 제법 크게 들려온다. 그러나 필자는 그들의 「실수」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동기」마저 그릇되었다고 질타할 수가 없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예술과 현실정치의 상관관계에 대해서는 다른 견해를 가지지만 칼 포퍼의 심정을 기본적으로 이해하고 있다고 자부한다. 같은 맥락에서 필자는 바로 그 핵심적인 인물들의 자성에 힘입어 우리가 공허하지 않으면서 신명과 품위가 조화된 본래적인 예술작품들을 만날 수 있게 되리라는 기대를 갖는 순진한 관객일 뿐이다.
  • 워싱턴­파리­도쿄 특파원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 3각진단

    ◎“인종분쟁 암초”… 기로에 선 고르바초프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지난 85년 집권한 이후 발트3국의 탈소 독립주장에 이어 최근에는 악화일로에 있는 아제르바이잔과 아르메니아인들간의 유혈종족분쟁 등 민족문제,경제난 등으로 최대의 위기를 맞고 있다. 소련 남부지역에 대한 비상사태 선포 및 정부군의 파견 등으로 진압결정을 내리게 된 고르바초프가 과연 소기의 목적을 달성,페레스트로이카를 계속할 것인지,사태장악을 하지못해 개혁정책이 중단될지에 대한 서방측의 시각을 워싱턴 도쿄 파리 특파원 등을 통해 알아본다. ◎미국의 시각/“몇차례의 위기… 조기실각 가능성 없다” 낙관 『소련내에서 들끓고 있는 경제적ㆍ정치적 문제들은 고르바초프를 위기에 몰아넣고 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가 가까운 장래에 실각할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고르바초프가 안고 있는 문제는 너무 심각한 것이어서 그의 라이벌들 조차도 떠맡기를 원치 않고 있기 때문이다』 소련문제의 세계적 권위자인 조지 케넌 교수(86)는 지난 17일 미상원 청문회에서소련의 상황과 고르바초프의 운명에 관해 이렇게 진단했다. 대소봉쇄정책의 창시자로 냉전시대중 미국의 대소전략을 주도했던 케넌 교수는 『지금 소련내 상황은 극도로 불안정해서 고르바초프에게 아주 어렵고 위험한 국면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와 글라스노스트가 소비자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고 종족분규와 민족주의운동을 가열시키는 등 지금까지 전반적으로 실패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고르바초프의 위치가 불안하더라도 그의 정책이 혹시라도 후계자에 의해 극적으로 변화될 것을 기대할 수는 없을 것이라고 전망하면서 케넌 교수는 『고르바초프는 냉전극복과 유럽평화안정에 뛰어난 기여를 했다』고 덧붙였다. 고르바초프의 경제ㆍ정치 개혁운동이 난관에 봉착해 있으며 이로 인해 고르바초프가 위기를 맞고 있다는 것은 미국 조야의 공통된 인식이다. 고르바초프의 미래를 비관적으로 내다본 견해를 「과장된 경보」 「서방의 기분풀이용 허위보도」라고 치부해온 진보주의자들도 이젠 『고르바초프 자신이늑대가 문앞에까지 온 것으로 생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인식이다. 얼마전까지만 해도 이들은 고르바초프가 착실히 내실을 다지고 있으며,그의 라이벌들을 압도하는 정치적 기반을 쌓았다고 주장했었다. 그러나 동구공산권 국가들의 잇단 붕괴와 발트해 연안 소 연방공화국들의 독립요구에 이어 코카서스 지방의 종족분규가 내란으로 확대되자 「고르바초프 위기론」이 이들 진보주의자들에게 까지 확산된 것이었다. 시사주간지 US뉴스 앤드 월드리포트지는 최근호에서 소련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소련내 각 공화국에서 일어나고 있는 민족독립운동이 고르바초프를 비롯한 소련 공산당 지도자들의 당초 예상보다 훨씬 심각한 것』이라고 전하며 『이같은 저항운동은 이들 공화국의 체제를 전복시키는 데 그치지 않고 어쩌면 레닌과 스탈린이 건설해 놓은 공산대국 소비에트연방의 근저를 붕괴시킬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카터행정부에서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보좌관을 역임한 즈비그뉴 브레진스키 교수가 작년에 출간한 공산주의 연구 저서 「위대한 실패­20세기 공산주의 생과 사」와 최근 뉴욕 타임스지에 「Z」라는 가명으로 게재돼 화제를 모았던 학술논문 「소련의 종말적 위기」는 다같이 공산주의의 붕괴와 종언을 예고하면서 페레스트로이카는 종국적 해결책이 될 수 없고 공산주의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변화의 노력일 뿐이라고 지적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 공산당의 독점이 와해되고 모스크바의 통제로부터 비러시아인이 이탈하고 있기 때문에 고르바초프의 개혁이 성공을 거둘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견하면서,현재의 개혁은 차라리 소련체제 와해과정의 첫 단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논증했다. 부시행정부 내에서도 백악관 국가안보담당 차석보좌관인 로버트 게이츠는 페레스트로이카가 실패할 것이고 고르바초프는 실각할 것이기 때문에 그를 도울 가치가 없다고 공공연히 주장하고 있다. 케넌 교수는 소련 공산당이 고르바초프를 교체할 대안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에 고르바초프가 계속 집권할 것이라고 예견했지만 US 리포트지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공산당 내부의 도전이 만만치 않은 것으로 보도했다. 리포트지는 최악의 경우 당내 강경보수파나 급진파들이 별도의 정당을 만들어 고르바초프에 정면도전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했다. 브레진스키는 소련의 미래를 다음 네가지 상황중의 하나가 될 것이라고 예견했다. 첫째 결론없는 체제위기가 10년 이상 장기간에 걸쳐 지속되는 상황,둘째 혼란이 진정되면서 정체가 재현되고 중앙집권적 전통으로 회귀하는 상황,셋째 고르바초프의 때아닌 죽음 등과 관련한 군부와 KGB의 쿠데타 가능성,넷째 단일국가인 소련의 분열과 이로 인한 국가폭력 및 종족폭력의 폭발. ◎유럽의 시각/“개혁일정 촉박… 경제 차질땐 「백지화」 위험성” 서유럽국가들에 있어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개혁)나 동구국들의 변혁은 결코 「강건너 불」이 아니다. 동역권의 문제라는 지리적인 이유외에 페레스트로이카에서 비롯되는 동서냉전구도의 와해는 유럽인들의 앞날에 직접적이고도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서유럽국가들은 소련의 국내정세나 페레스트로이카의 진전 추이에 당연히 깊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페레스트로이카의 성패여부는 흔히 내부적으로는 경제문제 민족문제 그리고 정치적 다원화문제가 어느 방향으로 전개되느냐에 달렸다고 얘기되고 있다. 이중 어느하나라도 흔들리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성공보다 실패할 확률이 많다는 지적인 것이다. 이같은 관점에서 최근의 소련상황을 보는 유럽쪽의 시각은 우려와 기대라는 서로 상반되는 두방향으로 엇갈리고 있다. 프랑스의 르 몽드지는 16일 모스크바발 기사에서 소수민족문제에 대처하는 고르바초프의 전략이 전면적으로 바뀌었다고 전제하면서 『고르바초프가 현재는 잃은 것이 없지만 시간은 촉박하고 이제 더이상 그가 열광과 꿈을 주는 연단에 서 있지도 않다』고 보도,고르바초프 및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어둡게 전망했다. 고르파초프가 페레스트로이카의 당위성을 강조하면서,그리고 동구국가들의 개혁을 부추기는 과정에서 내세운 신사고가 소련내 소수민족들의 민족감정에 불을 댕기는 결과를 초래했으며 그는 이제 정치인으로서 천부적 능력을 상실한채 전략변경에 따른위험스런 부담을 안고 있다고 분석했다.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를 정의하면서 『경제적 안정이 보장되면 페레스트로이카는 승리한다』고 장담했었다. 그러나 프랑스의 르 코티디앵 드 파리지는 『이미 5년의 연륜을 쌓은 페레스트로이카가 아직 경제문제에 뚜렷한 해결책을 발견하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가 90년대의 경제성장률이 연 4∼5%를 웃돌 것이라고 장담하고 있지만 서방의 연구기관들은 주변여건이 좋아진다 하더라도 2.7%를 넘기가 힘들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고 소개하면서 경제난의 해결이 페레스트로이카의 큰 과제라고 지적했다. 소련의 과학아카데미 조차 고르바초프가 계획하고 있는 경제개혁조치들 가운데 몇몇 핵심적 요소가 불가피하게 연기되어야 할 것이라고 지적,페레스트로이카 추진에 있어 경제문제의 중요성을 뒷받침 해주고 있다. 소련문제 전문가인 프랑스 대외관계연구소의 프랑수아 톰 박사는 『고르바초프가 추진하고 있는 경제개혁 조치들이 실효를 거두지 못해 국민들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하면 개혁자체가 백지화될 위험성을 내포하고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지난해 몰타 미소정상회담을 계기로 국제적 공인의 마지막 절차를 밟은 셈이다. 서유럽국가들은 이미 오래전에 페레스트로이카에 찬사를 보내고 고르바초프의 정책에 신뢰를 표시해 왔으나 미국 등 일부 국가들은 얼마전까지만 해도 그 진실성에 의문을 떨쳐 버리지 못했던 것이 사실이다. 페레스트로이카 제창 이후 소련의 대외정책은 크게 방향을 바꾸어 왔다. 군비경쟁의 무모성을 인식,군비감축에 의한 균형안보개념을 실천해 오고 있으며 국제문제 해결에도 융통성과 타협의 정신을 높이 사고 환경오염문제 등에 대해서도 인식을 새롭게 하고 있다. 그리하여 고르바초프는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을 위한 자국의 경제난 해결에 필요한 자본과 기술을 서방으로부터 성공적으로 끌어들이고 있다. 『평화공존의 방향으로 재편되어 가고 있는 유럽질서가 다시 대혼란에 빠지는 것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성공적 추진을 부추겨야 하며 그런 이유로 경제적 도움을 포함한 대소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는 것이 서유럽국가들의 생각이다. 이와같이 소련의 대외관계에서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밝은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분위기가 형성되어 있다고 볼 수 있다. 다만 국내문제에서 발생되고 있는 딜레마를 어떻게 풀어나가야 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한 문제이며 고르바초프의 지도력의 한계가 어느부분까지 미칠 수 있을 것인가가 페레스트로이카의 앞날을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게 유럽쪽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일본의 시각/“「민족분쟁」 안이하게 대응… 매파 고개들지도” 소련의 민족분쟁과 이에 대한 무력진압 결정은 고르바초프 정권과 페레스트로이카 정책에 영향을 미치는 것은 물론 소련 자체를 위기에 봉착시키고 있는 중대문제라고 보는 것이 일본의 소련문제 전문가와 언론들의 시각이다. 동경대 야마무치 마사유키(산내창지) 조교수는 19일자 요미우리(독매)신문에 게재된 글에서 고르바초프 정권은 민족문제에 안이하게 대응했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국내의 민족분쟁에 대해 당사자끼리 해결해야 한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그러나 가속화하는 민족문제를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너무 단순히 이해해왔던 것은 아닐까. 민족문제는 모스크바의 보수적인 중앙관료가 비러시아민족을 압박하고 민족의 자주성 및 긍지를 무시,반러시아 감정을 유발한 것이 원인이다. 따라서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하고 민주화가 진행되면 민족관계의 모순도 해결되리라는 것이 고르바초프의 견해였다. 그러나 현실은 그의 생각보다 훨씬 복잡했다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 이번의 군대파견으로 아제르바이잔공화국은 소강상태를 유지하겠지만 민족문제가 앞으로 고르바초프 정권을 계속 뒤흔들 것은 확실하다. 소련의 민족문제는 바야흐로 유라시아국가인 소련의 아시아와 유럽으로의 분열조짐마저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오야마(청산)대학의 데라다니고지(사곡홍임) 교수도 『지금 고르바초프 서기장은 벼랑에 서 있다』고 지적했다. 『고르바초프가 내무부의 치안부대뿐 아니라 육ㆍ해군까지 투입한 것은도로가 각지에서 봉쇄되어 있기 때문에 공중,해상을 통해 무장병력을 넣기 위한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오는 6월의 미소 수뇌회담에서 군축문제를 논의한 다음 10월의 제28차 당대회에서 권력기반의 강화를 꾀하고 그 후 민족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한다는 전략을 세워놓고 있다. 이 계획이 가능했던 것은 ①최고회의 의장과 당서기장으로서 2개의 조직을 이용할 수 있고 ②군상층부,국가보안위원회(KGB)의 지지를 얻고 있다는 것 등을 이유로 적어도 당분간은 정권을 지탱할 수 있는 공산이 크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이 부드럽게 진척되지 않는 것이 괴로우며 경제부진에 의한 불만이 커지고 있다. 나아가 사회가 보수쪽으로 상당히 기울고 있는 것도 간과할 수 없다. 미국 미시간대학의 세라벤토프 교수가 소련 노동자들과 대화했을 때 그들은 고르바초프 서기장,야코블레프 정치국원들의 이름을 들어 매도하고 그러한 노동자의 폭넓은 통일전선이 결성되어 있음을 분명히 했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위신 추락은 숨기기 어렵다. 고르바초프 서기장은동구제국과의 유대는 영 연방처럼,소련 내부의 공화국은 미합중국의 각주처럼 강력한 권한을 부여하는 것을 미래상으로 꿈꾸어 왔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억압당해 온 각 민족의 응어리진 감정은 러시아인인 고르바초프에게는 이해될 수 없었다. 이같은 이성으로서는 명쾌한 결론을 내릴 수 없기 때문에 계획이 틀어질 우려가 다분히 있는 것이다』 한편 도쿄(동경)신문은 17일자 국제면 톱기사에서 『강경책으로의 전환은 당내 보수파,군부 매파의 발언권을 강화시키고 민족정책 전체의 경직화를 초래할 염려가 크다』고 지적했다. 또 『고르바초프는 발트3국 정세에의 대처미비,지난번 리투아니아공화국에서의 설득공작의 실패 등으로 29일부터의 당확대 중앙위총회에서 곤경에 빠질 것으로 보이며 코카서스지역 분쟁의 험악화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보수파의 공세를 더욱 기세등등하게 만들 것이 틀림없다』고 말했다. 니혼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도 17일자 「위기에 처한 소련의 민족분쟁」이라는 사설에서 『비상사태 선언은 고르바초프 정권이 각기 원인이다른 몇몇 분쟁의 동시발생이라는 사태를 중대시하고 이대로 방치해서는 수습곤란한 사태를 초래한다는 판단아래 결단을 내린 강경조치』라고 지적했다. 이 사설은 『고르바초프 정권의 전도는 예측을 불허하는 상태』라며 『민족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은 몹시 어려운 과업임에 틀림없다. 적어도 연방체제를 현 상태로 둔채로의 수습은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이번 사태는 고르바초프 정권의 지상과제인 페레스트로이카 추진에 수반되는 자유화,개방에 의해 분출된 문제로서 고르바초프 정권의 고민은 심각하다』고 말하고 『민족문제의 앞으로의 전개는 세계정세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은 분명하다』고 단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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