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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목사 상혼에 또 죽다?

    배목사 상혼에 또 죽다?

    아프간 탈레반 무장세력에게 납치·살해된 고 배형규 목사의 이야기를 다룬 책이 출간됐다가 비난이 거세지자 출판사 측이 4일 만에 스스로 판매를 중지했다. 25일 출판사 한솜미디어에 따르면 김성웅(49·우림과 둠밈 성경연구소 대표) 목사 등 3명이 공동 집필한 ‘아프간의 밀알:순교자 배형규 목사의 삶과 죽음’을 지난 20일 출간했다가 책을 지난 24일 전량 회수했다. 출판사 관계자는 “저자가 원고를 가져와 ‘이 내용을 책으로 만들 수 있겠냐.’고 제안해 원고를 읽어본 뒤 특별한 문제가 없어 책을 내게 됐다.”면서 “한국 교회 선교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제공하는 책이라고 생각해 출간하게 됐는데 이 정도로 파장이 커질 줄은 몰랐다.”고 밝혔다. 한국의 기독교 선교 100년사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1866년 한국에 왔다가 평양 주민들의 공격으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에서 사망한 영국인 선교사 로버트 토머스의 일대기를 다루고 있다. 로버트 토머스는 현재 한국 선교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평가된다. 그러나 아프간에 선교를 떠났던 분당샘물교회 청년회와 배 목사를 다루면서 배 목사를 ‘아프간의 토머스’로 칭송하고 순교자로 평가하면서 문제가 불거졌다. 이 책은 ‘그들은 왜 아프가니스탄에 갔는가?’라는 주제 아래 ‘분쟁지역 선교 더욱 확대해야’,‘세상 사람의 막말은 사탄의 짓’,‘복음전파의 땅 끝은 이슬람 지역’,‘아프간 사태, 우연 아닌 하나님의 계획’ 등의 소제목이 논란을 낳았다. 책이 출판됐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네티즌 사이에서 비난이 쏟아졌다. 한 네티즌은 “납치돼 있을 때만 해도 ‘아프간에는 선교가 아니라 봉사하러 갔다.’고 말하더니 이제 와서 순교라고 포장하는 것이 우습다.”면서 “이런 행태 때문에 (기독교에) 오히려 반감만 생긴다.”고 비난했다. 또 다른 네티즌은 “아직도 피랍 사태에 대한 앙금이 사라지지 않은 시기에 이런 책을 출간하는 것은 고인의 이름을 팔아 인세를 챙기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분당샘물교회 관계자도 “저자나 출판사 측에 책의 출간을 요청한 적도, 이들로부터 책의 출간을 통보받은 적도 없다.”면서 “피랍자 문제가 조용히 마무리되기만을 바라고 있는 상황에서 이런 일이 생겨나 우리도 무척 안타깝다.”고 말했다. 종교비판자유실천시민연대 신용국 사무국장은 “배 목사가 죽을 각오를 하고 아프간에 간 것도 아니었는데 이를 순교로 미화하는 것은 망자에 대한 모독”이라면서 “오히려 일부 교계가 자신의 과오를 덮고 추후 선교사업의 동력을 마련하기 위해 배 목사의 죽음을 악용하려는 의도마저 느껴진다.”고 비판했다. 서울대 종교학과 김종서 교수는 “사실 순교는 지극히 주관적인 개념이기 때문에 배 목사 죽음에 대해 순교냐 아니냐를 두고 논쟁하는 것은 무의미하다고 본다.”면서도 “아프간 피랍 사태에 책임이 있는 교계가 이런 식으로 배 목사의 죽음을 미화하려고만 한다면 수긍할 수 있는 일반인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류지영기자 superryu@seoul.co.kr
  • 故 배형규 목사 ‘추모서적’…네티즌 논란

    故 배형규 목사 ‘추모서적’…네티즌 논란

    아프간 피랍사태를 다룬 종교 서적이 출판돼 네티즌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탈레반에 의해 살해된 故배형규 목사의 삶을 다룬 ‘아프간의 밀알’(한솜미디어 펴냄)이 판매되기 시작하면서 분쟁지역 선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현직 목사를 포함해 3명이 함께 쓴 이 책은 이번 피랍사태에 대한 종교적 해석이 강조되어 있어 더욱 논란을 부추기고 있다. 저자들은 이 책에서 한국 선교의 역사와 이번 아프간 사태를 비교하면서 이번 사태를 ’순교의 역사’로 해석했다. 또 책에는 피랍사태와 관련된 국내 비판 여론을 ‘사탄의 영향’으로 해석하는 등 자극적인 내용도 담겨 있다. ‘아프간의 밀알’이 판매되고 있는 인터넷 서점 ‘YES24’와 각종 포털사이트의 독자의견 게시판에는 이책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다. 네티즌들은 “그들만의 영웅 만들기”라고 비난하는 한편 책의 출판사와 판매처에 대해서도 실망스럽다는 의견을 드러냈다. 한 네티즌은 “교회 내부에서의 ‘영웅 만들기’까지는 이해하지만 이 시점에서 책까지 내는 것은 인세를 챙기려는 욕심으로 밖에 안보인다.”며 경제적인 목적을 가진 이슈화가 아니냐고 지적했다. 또 ‘세상 사람의 막말은 사탄의 짓’ ‘탈레반에 너무 관대한 대한민국’ 등 자극적인 목차에 “너무했다.”며 “오히려 이런 움직임이 한국교회를 더욱 욕 먹이는 것”이라고 비판하는 기독교인들도 있었다. 한편 출판사측은 책 소개글을 통해 “아프간 사건과 피해자의 삶을 통해 기독교인들의 나아갈 길을 제시하는 책”이라고 밝혔다.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 MSF/댄 보르토로티 지음

    일군의 젊은 프랑스 의사들이 1968년 내전을 겪고 있는 나이지리아 비아프라의 적십자사 병원으로 자원봉사를 떠났다. 이들은 수십만 명의 아이들이 영양실조로 죽어 가는 장면을 목격하고 인종학살의 증인이 될 것을 결심한다. 프랑스로 돌아온 이들은 인종학살을 알리기 위한 단체를 구성하고 곧바로 응급 의료단을 조직한다. 이 즈음 파리의 한 신문이 지진과 홍수 피해자를 돕기 위한 자원 의사를 모집했다.1971년 이 두 단체의 의사들은 손을 잡았다.‘국경없는 의사회(MSF)’는 바로 이렇게 태어났다. ‘지구의 절망을 치료하는 사람들-국경없는 의사회 이야기’(댄 보르토로티 지음, 고은영 옮김, 한스컨텐츠 펴냄)는 ‘지구상에서 가장 인도주의적인 비정부기구(NGO)’라는 평을 듣는 국경없는 의사회를 속속들이 들여다본 책이다. 캐나다 언론인 출신의 논픽션 작가인 저자는 앙골라,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등 국경없는 의사회의 활동 현장과 소속 의사, 간호사, 순수 자원 봉사자들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담았다. 또한 베르나르 큐슈네르 등 창설 당시 지도자뿐 아니라 쿨로드 말레뤼, 로니 브로만 같은 지도자들의 목소리를 담아 국경없는 의사회의 고민과 이상을 전달한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한 해 3000여명의 지원자를 전세계 80여 개국에 파견하고 있으며, 분쟁지역이나 난민촌 활동 외에도 지방 보건소 지원, 에이즈 환자들을 위한 항바이러스 치료, 외딴 마을에 신선한 물과 위생 시설을 공급하는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구호활동 외에 고발정신 또한 국경없는 의사회를 떠받치는 근간이다. 구호활동이 정치적으로 악용될 때 과감히 캠프를 철수, 독재정권의 불의를 국제사회에 고발해 왔다. 자신들의 이상을 자유롭게 독립적으로 실현하기 위해 특정 국가나 국제기구로부터 오는 기부금의 비율도 제한하고 있다. 책은 이처럼 두드러진 활동으로 ‘신화’가 되고 있는 국경없는 의사회에 관한 오해도 적고 있다.‘국경 없는’이란 배짱 두둑한 용어로 말미암아 국경없는 의사회는 유엔이나 적십자사보다 한층 구호활동의 최전선에 있는 것 같은 느낌을 준다. “최전선의 불안전한 지역에 들어가 의료로부터 소외된 사람들에게 의료를 펼치는 것이 국경없는 의사회의 이미지입니다. 오후 5시만 되면 외출을 삼가고 한밤중에 총성이 들리는 현장감 말입니다. 이것이 바로 국경없는 의사회죠. 우리는 누구도 가기를 꺼리는 곳에서 일하거든요.” 저자가 만난 한 내과의사의 말에 슈바이처를 꿈꾸는 감수성 예민한 젊은이라면 국경없는 의사회에 매력을 느낄 만하다. 그러나 국경없는 의사회 소속 회원은 비분쟁 지역에 파견된 경우가 더 많고 이 단체는 수백개의 사업을 운영하고 있기도 하다. 잘나가는 의사가 안락한 삶을 포기하고 국경없는 의사회에 몸을 담는 것은 사실 극소수다. 소속 회원의 4분의3이 의사가 아니다. 실상이 어떻든 출범 30년간 국경없는 의사회가 해온 일은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다. 이 단체는 여전히 남들은 생각지도 못한 일들을 하고 있다. 국경없는 의사회는 그 공로를 인정받아 1999년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대다수의 소속 회원들은 수상 파티와 상관 없이 현장을 지켰다. 지도부는 또한 스스로의 능력을 과대평가해 국제적인 문제에 개입하지 않을까 우려했다. 역할과 한계를 잘 파악하고 있다는 것이야말로 국경없는 의사회의 위대한 점이 아닐까.1만 3000원. 박상숙기자 alex@seoul.co.kr
  • “국제사회는 관심 많은척만”

    “국제사회는 관심 많은척만”

    “3년 전 미얀마를 방문했을 때는 민주화운동가들이 너무 많이 외국으로 망명해 정작 미얀마 내에서는 민주화 세력의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이번 같은 대규모 시위가 벌어진다는 건 놀라운 일이죠. 지금은 갈림길입니다. 민주화운동을 주도하는 지도력을 얼마나 발휘하느냐, 그것이 변수가 될 겁니다.” ●아시아 분쟁지역이 보금자리 ‘비자 없는 세상’을 꿈꾸며 어느 날 한국땅을 박차고 떠나 아시아 여행에 나선 전직 시민운동가 이유경(35·여)씨.2004년 4월 태국으로 첫 발걸음을 뗐을 때 1년을 계획했던 여행은 어느덧 3년 6개월째로 접어들었다. 그동안 겪은 아시아의 다양한 모습을 담아 최근 ‘아시아의 낯선 희망들:끊이지 않는 분쟁, 그 현장을 가다(인물과사상사)’란 책을 펴냈다. 레바논 베이루트에서 노트북이 고장나 잠시 한국에 들러 재충전중이다. 그의 꿈은 분쟁전문기자다. 그동안 방문했던 분쟁 지역만 해도 미얀마, 태국 남부, 네팔, 스리랑카, 카슈미르와 아프가니스탄 등 일일이 헤아리기 힘들 정도다.“벌써 햇수로 5년을 바라보네요. 최종 목적지인 발칸반도까지 가는 데 1년을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많이 늦어졌죠. 아시아 여행을 마치면 남미 대륙도 여행하고 싶어요. 그 다음엔 한 곳에 둥지를 틀 생각입니다. 물론 분쟁지역이 되겠지요. 노트북을 고치고 나면 제헌의회 선거가 있는 네팔로 날아갈 겁니다.” ●미얀마 민주화 세력과 12일간 동행 이씨는 지금까지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으로 주저 없이 꼽는 것이 바로 군사정부를 상대로 무장항쟁을 벌이는 미얀마 민주화운동 세력과 함께한 12일이다.“그들과 함께 국경근처 웨지 본부에서 사흘 동안 걸어서 파푼 전선까지 갔어요. 비가 쉬지 않고 내려 몸은 무겁고 길도 안 좋고…. 정말 힘들었죠. 미얀마 친구들이 싫은 내색도 없이 헌신적으로 도와주더라고요. 지금도 그때 기억이 선합니다.” 이씨는 한국 정부와 시민사회가 미얀마에 많은 관심을 가져 줄 것을 촉구했다.“평화적으로 대화해라, 양쪽 모두 자제해라. 한국을 포함한 외국 정부들은 속 편하게 그런 얘길 하는데 그게 정말 싫어요. 국제사회는 언제나 미얀마 문제에 관심이 많은 ‘척’해왔죠. 전부 면피하기 위해서였습니다.”라면서 “87년 6월 외국에서 ‘한국 시민들과 정부는 자제하고 대화로 해결하라.’는 성명을 냈다면 기분이 어땠을까요. 개구리 올챙이 시절 모른다는 속담이 있죠. 한국이 개구리가 되지 않길 바랄 뿐입니다.”라고 말했다. ●“평화적 대화? 말은 쉽죠” 이씨는 스스로 “아시아 여행을 하기 전엔 아시아에 대해 관심도 없고 아는 것도 없었다.”고 말한다. 그런 그가 4년 가까이 여행하면서 느낀 것은 무엇일까.“아시아는 빈부 격차에 따라 나라마다 서열이 존재합니다. 한국인은 태국에 우월감을 갖고 태국 사람은 미얀마나 캄보디아 사람을 깔보거든요.” “발 뻗고 편하게 잠을 잘 수 있는 나라가 별로 없는 게 아시아입니다.”라고 말하는 이씨는 이렇듯 많은 문제를 가진 아시아를 여행하는 데 즐거움을 느낀다.“가난하고 불안하고 열등감과 우월감으로 가득 차 있지만 그게 아시아죠. 뒤집어 보면 아주 재미있는 곳이잖아요. 나라마다 부족마다 오랜 세월 지켜온 문화에 서열을 매길 수는 없습니다. 다양한 모습을 가진 아시아. 제가 여행하면서 느낀 아시아의 본모습입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미얀마 유혈사태 확산] 日기자 죽는 순간까지 손에 카메라

    |도쿄 박홍기특파원|27일 미얀마의 시위를 취재하다 진압군이 쏜 총알에 맞은 일본인 영상 저널리스트 나가이 겐지(50)는 숨을 거두는 순간까지 비디오 카메라를 놓지 않았다. 카메라를 움켜쥔 채 도로에 쓰러진 나가이를 찍은 당시의 현장 사진은 전세계로 전파됐다. “아무도 가려고 하지 않은 곳에 누군가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평소 입버릇처럼 말했던 나가이는 생의 마지막 역시 분쟁의 현장에서 맞았다. 나가이는 지난 1997년부터 도쿄 아카사카에 본부를 둔 분쟁지역 전문뉴스 프로덕션인 APF통신사에서 계약직 기자로 일해 왔다. 태국 방콕에서 다른 취재를 하던 중 지난 25일 미얀마 양곤으로 들어갔다. 미얀마의 민주화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취재를 하고 싶다.”고 자원한 것이다. 미얀마 사태가 정변으로 이어질 수도 있어 현장에 있고 싶어 했다는 것이다.1주일 정도 머물 계획이었다. 나가이는 26일 니혼TV의 ‘뉴스제로’ 프로그램에 전화 리포트로 현지 상황을 전하기도 했다. 니혼TV는 27일 저녁에도 나가이와 현지를 연결하기로 예정돼 있었다. 나가이는 27일 숨지기 두 시간 전쯤 통신사의 야마지 도루 사장에게 전화를 걸어 “거리는 비교적 조용하다.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계속 취재하겠다.”고 말했다. 야마지 사장은 “조심하라.”며 전화를 끊었다. 마지막 통화였다. 그뒤 나가이는 양곤의 중심부인 술레탑 주변 거리에서 시위상황을 취재하던 중 총에 맞고 쓰러졌다. 시위대는 병원으로 옮겼지만 총알이 심장을 뚫고 나가 이미 숨진 상태였다. 후지TV가 입수한 영상에는 진압군이 나가이에게 조준사격을 하는 듯한 장면이 포착됐다. 에히메현 출신으로 독신이었던 나가이는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아프가니스탄, 캄보디아 등 주로 분쟁지역을 누비며 분쟁 상황과 피해 흔적 등을 취재한 베테랑이었다.2003년 봄 사담 후세인 정권이 붕괴된 뒤 이라크 바그다드에서 후세인 전 대통령의 동상이 무너지는 광경을 카메라에 담았다.10년 전에는 한국에서 탈북자를 취재하기도 했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나가이는 2003년 초 선천성 장애를 앓던 12세의 이라크 소년을 일본에서 수술을 받도록 지원했다. 나가이의 됨됨이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최근까지 소년과는 연락을 했다. 또 소년의 병 치료를 위해 의약품을 보냈다고 전했다. 나가이의 소식을 접한 동료 무라타 신이치는 “한 손에 소형 비디오카메라를 들고 위험지역을 거침없이 달리던 모습이 생생하다.”면서 “정의감도 강하고, 정도 많고 농담도 잘하는 멋진 친구였다.”며 안타까워했다. hkpark@seoul.co.kr
  • [아프간 피랍이후 해외선교 어디로] (2) 해외선교에 목매는 이유

    지난 1970∼80년대 전 세계적으로 유례가 없을 만큼 폭발적인 교회성장을 일군 한국 개신교는 세계 기독교계로부터 ‘이해할 수 없는 나라’로 인식된다. 짧은 기간 그 많은 신자를 교회로 불러들인 방식과, 도시는 물론 오지 구석구석까지 교회를 우뚝우뚝 세울 수 있는 힘이 과연 무엇인지 선뜻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기독교가 전 세계적으로 쇠퇴의 길을 걷고 있는 상황에서 갖는 당연한 의문일 것이다. 전파과정에서 자본주의를 앞세운 미국 기독교에 절대적인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는 자본주의 속성에 철저하게 물들어 있다. 실제로 신자 수와 헌금액 같은 외형적 규모가 ‘좋은 교회’‘나쁜 교회’의 일차적인 척도가 되고 있다. 한국 개신교가 해외선교에 목을 매는 것은 바로 이 성장주의와 실적주의의 함정에 빠진 탓이 크다. ●90년대 교세 위축… 해외선교 돌파구로 70∼80년대와는 달리 90년대 들어 개신교가 포화상태에 이른 상황에서 당연히 나라 밖으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교회의 조직 메커니즘 차원에서 계속 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태생적인 속성상 90년대 이후 교세가 위축되면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돌파구를 해외에서 찾았다고 할 수 있다. 교세가 늘면서 몸집을 키워온 교회들의 예산은 매년 늘어나는 데 비해 성장 위축으로 적자가 쌓이면서 해외선교가 더욱 기승을 부리게 된 것이다. 교회가 계속 성장할 것이란 장밋빛 기대에 부풀어 각 교단이 앞다투어 늘려 왔던 신학자의 공급과잉도 해외선교의 큰 이유. 가장 큰 교단인 장로교단(통합)만 하더라도 지난 10년간 교회와 교인 수가 각각 23%,15% 증가한데 비해 목사 수는 63%나 늘어났다. 해마다 300명의 잉여 목회자가 배출되고 있는 셈이다. 지난해 졸업생의 45%만이 전임전도사로 진출한 것을 보면 절반도 안되는 인원만 임지를 찾아가는 실정이다. 성장주의에 익숙한 교회들의 내적 동력이 약해진 상황에서 극심한 취업난에 허덕이는 잉여 목회자들을 밖으로 밖으로 쏟아낸 것이다. 교회들이 선교 불모지대인 위험지역에 더 눈독을 들일 것은 불을 보듯 뻔한 일. 실제로 교계에서는 위험한 곳에 얼마나 더 많은 선교사를 파견했는지를 ‘독실한 신앙심’의 척도로 여긴다. 공격적 선교에 치중하는 복음주의 교회들일수록 위험지역과 오지에 더 많은 선교사를 보내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벌인다. 수천명이 사는 외딴 작은 마을에 한국인 선교사 수십명이 몰려드는 경우도 생긴다. ●위험지 파송 선교사 수가 교회 세 좌우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들이 차세대 리더로 부상하고 있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 분쟁지역과 이슬람권 등 위험지역에서 선교를 이끄는 목회자가 귀국후 차세대 지도자로 주목받아 부상하는데 “정치인들의 커리어쌓기와 아주 유사하다.”고 교계의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따라서 위험지역 선교를 개인적인 지명도 향상의 수단으로 삼는 젊은 목회자들은 이들 지역 파송을 주저하지 않는다. 위험지역에서 선교경력을 쌓은, 인기있는 젊은 목회자들을 따라 교인들이 많이 몰려들고 당연히 교인들의 교회에 대한 충성도와 헌금 액수도 높아진다. 위험지역에 많은 선교사를 보내는 교회일수록 높은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고 심지어는 위험지역에 파송되는 선교사 수가 교회의 세와 인기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고 만 것이다. 교회들은 인기있는 차세대 리더들을 보고 몰려드는 젊은 신자들이 늘어나면서 교회의 노령화 극복이란 이득도 얻고 있다. 김진호 목사(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는 “미국 기독교의 영향을 압도적으로 받은 한국 개신교는 기본적으로 식민지 지배의 제국주의적 선교 성향이 강하다.”면서 “해외선교의 깊숙한 늪에 빠진 한국 교회들이 태생적인 성장과 실적주의에서 벗어나 원초적인 ‘구원’의 의미를 찾아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호 문화전문기자 kimus@seoul.co.kr
  • 아프간 악몽 43일…상처는 컸다

    아프가니스탄의 반군인 탈레반에 의해 지난달 19일 시작된 한국인 피랍사태가 43일 만에 마침내 대단원의 마침표를 찍었다.‘아프간 악몽’이 끝난 것이다. 탈레반에 의해 억류돼 있던 23명 중 21명은 무사히 풀려났지만 배형규 목사와 심성민씨 등 2명은 끝내 돌아오지 못했다. 탈레반측은 30일 마지막으로 남은 인질 7명을 두 차례에 걸쳐 석방했다고 밝혔다. 풀려난 7명은 제창희(38) 송병우(33) 서경석(27) 김윤영(35) 박혜영(34) 이성은(24) 이영경(22)씨다. 이들의 건강은 양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21명은 모두 무사히 돌아올 수 있게 됐다. 한국정부와 탈레반의 대면접촉 중재역할을 했던 부족원로 하지 자히르는 이날 연합뉴스에 “탈레반이 남성 2명과 여성 2명 등 인질 4명을 먼저 석방하고 이어 남성 1명과 여성 2명 등 남은 3명을 석방했다.”고 확인했다. 이날 1차 석방은 한국시간 오후 11시25분,2차 석방은 31일 오전 1시쯤 이뤄졌다. AP,AFP, 신화통신도 적신월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 같은 내용을 전했다. 일본의 교도통신은 이날 석방된 인질들이 탈레반이 한국정부에 보내는 서한을 갖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날 석방된 7명은 앞서 풀려난 12명과 함께 아랍에미리트연합(UAE) 두바이로 이동해 이번 주말(9월1일)쯤 귀국할 것으로 보인다고 청와대 천호선 대변인이 밝혔다. 그러나 이번 피랍사태는 만만찮은 ‘후폭풍’이 예상된다. 먼저 한국정부가 테러단체인 탈레반과 대면접촉을 가짐으로써 ‘테러단체와의 협상 불가’라는 원칙을 어겼고 이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상에 상처를 입게 됐다. 또한 아프간이나 이라크 등 국제분쟁지역에서 한국인을 비롯한 외국인 납치가 더욱 기승을 부릴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한국인 납치극을 총지휘한 것으로 알려진 가즈니주 탈레반 사령관 압둘라 잔은 30일 워싱턴포스트(WP)에 “미국이 동맹국 국민을 돌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 이번 사건은 탈레반의 전략적 승리”라며 “납치는 적들에게 압력 넣는 돈 안드는 좋은 전략이어서 계속 사용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종찬 박찬구기자 siinjc@seoul.co.kr
  • [피랍자 추가 석방] ‘선교마케팅’ 개선을

    [피랍자 추가 석방] ‘선교마케팅’ 개선을

    아프가니스탄 무장세력 탈레반에 의한 한국인 선교봉사단 피랍사태가 28일 밤 극적인 협상타결로 해결국면에 접어들었다. 하지만 공포와 불안의 41일이 남긴 충격과 슬픔은 단비처럼 날아든 협상타결 소식의 기쁨을 압도하고도 남는다. 이번 사태는 한국 정부는 물론 언론과 기독교계, 그리고 시민사회 전반에 적지 않은 교훈을 남겼다. 서울신문은 테러문제 전문가인 최진태 한국테러리즘연구소장과 이슬람 전문가인 이원삼 선문대 국제학부 교수, 소장파 신학자로 한국 개신교의 성찰과 전환을 촉구해 온 김진호 제3시대그리스도교연구소장을 초청해 좌담을 가졌다. 사회는 이석우 서울신문 국제부장이 맡았다. ●사회 피랍자 석방에 합의를 이뤘지만 테러집단과의 타협이란 선례를 남김으로써 두고두고 부담이 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최진태 소장 테러조직과의 협상은 하지 않는다는 게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암묵적 합의다. 일단 테러조직에 양보를 하면 또 다른 테러를 불러온다는 우려 때문이다. 우리 정부도 탈레반과 협상을 하면서 ‘협상’ 대신 ‘접촉’‘대화’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등 세심한 주의를 기울였다. 동시에 정부는 피랍자들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김선일씨 사건에 대한 학습효과가 크게 작용한 탓이다. 다만 탈레반과의 대면접촉이 첫번째 희생자가 난 뒤에야 이뤄진 것은 유감이다. 탈레반의 요구에 굴복하는 모양새가 됐다는 점도 아쉬운 대목이다. 다만 이번 협상이 제2, 제3의 테러를 부를 것인지는 좀더 두고 볼 문제다. ●이원삼 교수 정부가 얻은 것도 있지만 잃은 것도 있다. 테러단체와 협상·거래를 했다는 것인데, 이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난은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최우선시하면서 보여준 노력은 긍정적으로 평가받아도 좋다. 어차피 테러에 대한 대응은 국제적 룰이 정해진 게 없다. 그때 그때 상황에 맞게 대처하는 게 최선이다. 미국도 자국민이 납치됐을 때 협상한 전례도 있다. ●김진호 소장 사실 이번 사태가 빚어진 데는 한국의 비정부기구(NGO) 활동이나 선교가 국제적 공신력을 갖지 못했다는 점도 작용했다. 가장 큰 문제는 ‘선교 마케팅’으로 불리는 한국 기독교의 공격적 선교행태다. 국내적 필요를 위해 국제적 선교를 활용하는 방식이 문제라는 것이다. 피랍사태 초기 전세계적인 관심과 지원을 받기 어려웠던 것에는 이같은 한국 개신교의 선교행태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적 여론이 작용했다. ●사회 정부가 아프간 현지에서 기독교 선교활동 금지를 약속했는데 실현가능할까. ●김 소장 아랍지역 선교는 상당히 위축될 것이다. 국가의 지침에 자발적으로 순응해서라기보다 이것을 어기면 ‘법인’으로서 활동하는 데 여러 가지 불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같은 조치가 과연 바람직한 것인가는 또 다른 문제다. 개신교의 선교가 문제점을 안고 있긴 하지만 기본적으로 선교란 국가가 나서서 ‘하라 마라’ 할 영역은 아니다. 과연 지금의 한국 선교가 국제평화와 현지인들의 행복을 위해 필수적인지 성찰은 물론 필요하다. ●최 소장 피랍자들이 전적으로 개신교 봉사단체 소속이었기 때문에 납치단체의 표적이 됐다고는 보지 않는다.1968년부터 2006년까지 테러를 1회 이상 겪은 국가가 189개 국가다. 그만큼 테러가 일상화되고 있다는 얘기다. 중요한 것은 기독교 단체든 순수 NGO든 테러에 노출되지 않는 최선의 방책은 테러 다발지역에 가지 않는 것이다. 불가피할 경우 안전대책을 충분히 강구해야 한다. 다만 한국 개신교의 공격적인 선교방식 문제는 짚고 넘어가야 한다. 수요자 입장을 고려한 봉사가 아니라 공급자 관점에 따른 접근이 반발을 불러온 측면이 크다. ●사회 개신교계 내부에 자성의 움직임은 있나. ●김 소장 한국 교계에 특별한 선교적 성찰이 있을 것 같진 않다. 사회적 시각은 극도로 부정적이지만 분당 샘물교회의 교인이 피랍사태 이후 늘어난 것에서 알 수 있듯 해외 선교를 주도하는 교회의 교세는 위축되지 않고 있다. 이른바 ‘선교 마케팅’이 성공하고 있는 셈이다. 이들은 어떤 형태로든 선교활동을 이어갈 것이다. 한국 교회가 해외 선교를 본격화한 시기가 국내에서 교세 팽창이 벽에 부딪친 1980년대 이후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한국 개신교의 선교 활동은 한국 교회가 겪고 있는 내적 위기를 외적으로 해소하기 위한 시도인 셈이다. ●이 교수 사실 이슬람권에도 성당과 교회는 다 있다. 오래전부터 유대교·가톨릭이 공존해 왔다. 문제는 한국 개신교가 이슬람 지역에 나가 선교를 하면서 필요 없는 적을 만들고 있다는 점이다. 선교를 하려면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알고 가야 한다. 그런데 아무것도 모른 상태에서 열정만 갖고 무작정 간다. 이 때문에 호의를 갖고 가지만 충돌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무슬림에겐 이슬람교가 단순한 종교가 아니라 생활이고 관습이며 모든 규범의 지배원리다. 이들에게 개종을 하라는 건 삶의 방식을 포기하라는 것, 한마디로 죽으라는 소리나 마찬가지다. 유럽의 기독교 역시 이슬람권 선교를 한다. 하지만 이들의 선교는 대를 이은 선교다. 관습과 언어, 심지어 사투리까지 익히고 그들의 삶에 철저히 녹아든다. 우리처럼 단기코스가 아니다. ●김 소장 단기 선교의 문제를 지적하자면, 이번에 피랍된 사람들도 열흘짜리 선교팀이다. 위험한 지역에 들어가려면 안전에 대한 자기 감수성이 있어야 하고 현지인과 의사 소통할 수단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교회의 단기 선교는 일종의 ‘어드벤처 게임’이다. 위험한 곳에 보내 선교를 시킴으로써 교회에 대한 충성도를 높이는 게 목적이다. 목회자들 역시 선교팀을 이끌고 위험 지역을 다녀오면 ‘차세대 주자’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현지인과 대화의 필요성도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을 교회가 구조적으로 양산하고 있다는 점이다. 단기 선교를 주도하는 보수 기독교단이 이같은 현실을 성찰적으로 되돌아볼 수 있을까. 지금으로선 회의적이다. ●이 교수 이슬람교를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도 문제다. 사실 아프간의 상황 악화는 종교 문제와는 무관하다. 소련과의 10년 전쟁에 뒤이은 10년 내전,9·11 이후 또 전쟁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의 3분의1이 난민이다. 사실 인류 역사상 종교전쟁은 단 한번도 없었다. 정치적 목적을 위해 종교를 빌려 전쟁을 벌였을 뿐이다. 중동 지역은 15세기까지만 해도 유대교·기독교·이슬람교가 훌륭하게 공존했다. 자기 종교를 지키면서도 다종교·다문화사회 이룬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 건국 이후 정치적 문제에 석유 확보 문제가 겹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무슬림들도 생존 차원에서 범죄를 저지른다. 심지어 집권 시절 양귀비 재배를 엄금했던 탈레반이 양귀비를 키운다. 이런 것들을 정당화하려면 종교로 포장하는 수밖에 없다. 종교를 자기 정당화의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거기에 선교하러 가는 사람들이 사안의 본질을 알지 못하고 들어가니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들어가려면 ‘종교’가 아니라 ‘전쟁의 속성’이 무엇인지를 알고 들어가야 한다. ●사회 우리 정부의 초기 대응 미숙과 위기관리 시스템의 부실을 지적하는 목소리도 있다. ●최 소장 초기 대응에 실패했다는 데는 동의하기 어렵다. 테러단체 입장에서 보면 협박만 가지고 요구 사항을 관철시킬 수 있다면 절대 인질을 죽이지 않는다. 협박이 먹히지 않는다고 판단하는 순간 폭력을 행사함으로써 협박이 효과를 거두려고 한다. 두 사람이 희생을 당했는데 정부가 노력했더라도 막기 어려웠다. ●이 교수 정부 대응은 신속했고 적극적이었다. 그것을 탈레반이 인정했기 때문에 그나마 희생을 줄였다. 다만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정부가 관심 갖고 정비해야 할 게 있다. 사태 초기 아프간 정부의 채널에 지나치게 의존했다는 점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자. 탈레반과 아프간 정부는 적대적 관계인데 그쪽을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었겠는가. 아프간 정부 채널이 벽에 부딪치자 민간단체와 이슬람 단체의 영향력을 활용하기 시작했는데, 그들과의 인적 교류 네트워크를 갖지 못한 정부로선 한계가 명확했다. 무엇보다 현지 전문가가 없었다. ●김 소장 이번 사건이나 김선일 사건에서 느낀 것은 우리 정부 관료들이 현지 한국인에 대한 세심한 관심보다는 미국과의 관계를 더 중요하게 여긴다는 점이다. 사람에 대한 애정이 그리 많아 보이지 않는다. 물론 국가와 관료들이 노력해도 쉽게 안 풀리는 문제들이 있다. 이럴 때 현지에 정착한 한국의 NGO나 기독교 활동가들이 현지인과의 교류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면 많은 도움이 된다. 문제는 기독교 선교사나 NGO 활동가들이 현지인들의 삶 속으로 파고 들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 소장 그동안 우리 정부의 외교가 미국과 일본, 러시아, 중국 등 강대국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점은 지적돼야 한다. 중동과 제3세계에 대한 관심을 갖는 데는 지나치게 인색했다. 중동 등 지역 전문가들을 특별 관리하는 시스템은 반드시 필요하다. 이번에도 김선일 사건 당시처럼 정부가 부족장들에게 큰 기대를 걸었다. 결과적으로 안이한 접근이었다. 지금까지 탈레반을 인정한 국가가 파키스탄과 사우디아라비아, 아랍에미리트연합 3개국뿐이었다. 이런 점을 고려하면 부족장 채널보다는 탈레반을 인정하고 자금을 대준 주변국가들을 처음부터 적극적으로 활용했어야 했다. ●김 소장 전문가가 없었다는 지적에 공감한다. 문제는 국가가 나서서 전문가를 양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간인들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문제는 이번에 정부가 현지 NGO 활동가 철수와 선교활동 금지를 약속함으로써 현지에서 활동하는 건강한 민간 활동가들의 활동 여지마저 없애버린 점이다. 환부를 도려내려다 건강한 부위까지 다치게 만든 셈이다. ●사회 이번 사태가 해외파병 문제에는 어떤 영향을 미칠까. ●최 소장 정치권 일부에서도 철군만 하면 한국인 테러 문제가 없어진다고 하는데 순진한 생각이다. 테러 피해를 입은 190여개 나라 가운데 해외 파병 국가가 얼마나 되나. 이번 피랍사건도 파병은 하나의 원인일 뿐 전부는 아니다. 사실 아프간과 이라크 모두 유엔 결의에 따라 군대를 보냈다. 세계 12위 경제대국의 위상에 걸맞게 국제사회에 대한 기여 방안을 찾는 것은 당연하다. ●이 교수 개인적으로 해외 파병에는 원칙적으로 찬성하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 테러가 파병 때문에 발생했다고 보는 것은 지나치게 단순하다. 다만 우리처럼 미국과의 특수관계 때문에 파병을 해야 하는 입장이라도 몇 가지 고려해야 할 사항이 있다. 중요한 것은 파병 대상국의 국민들이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다. 그들에게 우리의 파병 목적을 충분히 설명해야 하는데, 우리가 아무리 비전투부대, 재건지원부대라고 해도 그들이 받아들이기 힘들다. 파병지와 주변국 정세도 면밀히 고려해야 한다. 장병들의 안전만이 최선은 아니다. 군대를 보낼 때는 어차피 희생을 각오하고 보내는 것인데 그럴 바엔 국제정세를 고려해 국익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이 점에서 이라크 자이툰부대가 쿠르드 지역으로 간 것은 실책이다. 실익을 챙기려고 했으면 정권을 쥔 시아파 지역으로 갔어야 했다. 또 어차피 보낼 수밖에 없다면 주먹구구식으로 부대를 편성해 보낼 게 아니라 상설적인 파병부대를 조직해 유엔의 요구시 병력을 보내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한다. ●김 소장 국가가 국익을 위해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은 많다. 하지만 군대를 분쟁지역에 보내는 것은 마지막 선택이어야 한다. 국제 평화를 위한 노력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도 할 수 있다. 이번 피랍 사태에서도 드러나듯 현지에서 활동하는 민간 활동가들에게 자국 군대가 주둔하고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축 요인이다. ●최 소장 국제사회의 노력에 동참함으로써 국익의 규모도 커진다. 물론 현지인들에 대한 설득 작업이 무엇보다 필요하다. 민사작전이 중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사회 40여일에 걸친 대규모 피랍사태에서 얻을 교훈은 무엇일까. ●최 소장 테러가 우리와 무관한 남의 나라 일이 아니란 점을 실감하게 된 점이다. 이런 점에서 국가 차원의 대테러 정책에 대한 전면적인 재검토와 새로운 방향 설정이 필요한 때다. 연간 해외 출국자가 1100만명에 달하는 시대다. 그만큼 외국에서 테러에 노출될 개연성이 높아진 셈이다. 정부 차원의 대책 못지않게 개인 스스로 자구책을 강구하는 게 필요하다. 해외 여행자에 대한 교육 프로그램 개발이나 교육지원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이 교수 우리 국민들은 이슬람 문화권에 대해 너무 쉽게 생각한다. 정교일치 문제도 시간이 지날수록 대단히 위력을 발휘하게 될 것이다. 깊은 연구가 없으면 이해가 불가능하다. 국내에 아랍어를 하는 사람이 수십명이나 되지만 그들의 종교·문화·법에 대해 아는 사람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문제는 개인들이 노력해 연구하고 학위를 받아도 취업이나 진급이 어렵다는 점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지역 전문가들을 육성하는 시스템을 시급히 갖춰야 한다. ●김 소장 국제정치가 갖고 있는 반(反)생명적인 속성이 여지없이 폭로됐다. 한국 정부는 물론 한국 기독교와 시민사회의 폭력적 에토스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이 모든 행태들의 뿌리엔 성공·성과 지향적 사고 방식이 자리잡고 있다. 이같은 일상화된 폭력·공격지향적 속성들을 성찰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정리 이세영기자 sylee@seoul.co.kr
  • [씨줄날줄] 100달러 지폐/함혜리 논설위원

    벤저민 프랭클린의 얼굴이 새겨진 100달러짜리 지폐가 60년 만에 새로운 모습으로 바뀔 예정이다. 내년 말부터 유통될 새 지폐는 첨단 기술로 무장한 ‘마법의 지폐’가 될 것이라고 한다.65만개의 소형 렌즈가 달린 특수 프린터를 사용해 아주 미세한 문자나 숫자를 새기고 보안용 특수 은선도 들어간다. 이 은선을 적용하면 새 지폐의 그림이 움직임에 따라 달리 보이게 된다. 미국이 100달러의 디자인을 바꾸는 이유는 기술력을 과시하거나 돈 쓰는 즐거움을 배가시키기 위해서가 아니다. 골칫거리 위조지폐를 원천봉쇄하기 위해서다. 100달러 지폐는 전 세계에서 유통되는 7760억달러의 미화 현찰 중 액수로 70%를 차지한다. 위폐 생산 국제범죄조직의 가장 흔한 타깃이 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미 통화당국은 1990년대 이후 위폐에 대응하기 위해 7∼10년마다 화폐 디자인을 바꾸고 있으며 지난 96년 3월엔 10여가지 위조방지 요소를 적용한 100달러 지폐를 발행했다. 그러나 곧바로 종이의 조직과 무게, 잉크 성분과 색깔, 미세문자 등 위조방지 표시까지 모방해 육안으로 진짜·가짜를 식별하기 힘든 위조 신권이 나돌아 통화당국을 경악하게 했다. 정교하게 만들어진 초정밀 100달러 위조지폐를 ‘슈퍼노트’라고 부른다. 미국 사법 당국이 부르는 공식명칭은 ‘C-14342’다. 미국은 북한을 슈퍼노트 제조·유통의 주범으로 지목하고 있다. 부족한 외화를 충당하거나 대량살상무기 기술취득, 정부 관계자의 해외여행, 해외사치품 구입 등에 쓰이는 것으로 추정한다. 북한 제조설에 대한 반론도 제기됐다. 독일의 탐사보도전문가 클라우스 벤더는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너차이퉁’을 통해 슈퍼노트 제조범이 북한 특수기관이 아니라 미국중앙정보국(CIA)이라고 주장했다.CIA가 의회의 통제를 벗어나 국제분쟁지역에서 벌이는 특수공작 재원 마련을 위해 비밀리에 슈퍼노트를 제작한다는 것이다. 어느 것도 확인되지 않았지만 유통 중인 지폐 1만장 가운데 1장은 슈퍼노트로 알려져 있다. 슈퍼노트를 아직 본 적은 없지만 이에 대적할 새 100달러 지폐가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함혜리 논설위원 lotus@seoul.co.kr
  • [부고] 英 언론인·정치인 디즈 사망

    [부고] 英 언론인·정치인 디즈 사망

    영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정치인 윌리엄 프랜시스 디즈가 94세로 사망했다.20일 영국 언론들에 따르면 ‘플리트 스트리트(런던 신문사 거리)의 위대한 올드맨’이라는 별명을 가진 디즈는 17일 밤 켄트주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지난 8월 3일 텔레그래프 신문에 수단 다르푸르 상황을 홀로코스트에 비유하는 칼럼을 마지막으로 썼을 정도로 그는 평생 글을 쓰다시피 했다. 그 자신도 정치인이기보다는 언론인으로 불리기를 원했다. 1913년생인 디즈는 명문 사립 해로를 졸업했고,16세에 모닝 포스트(뒷날 텔레그래프 신문에 흡수)의 기자로 언론계에 입문했다.2차 세계대전 후 디즈는 50년 애슈퍼드에서 보수당 국회의원으로 선출됐고,62년 해럴드 맥밀런 총리 시절 공보부 차관을 지냈다. 디즈는 다시 언론계로 방향을 틀어 74년 텔레그래프의 편집장이 된 이래 12년 동안 이 신문을 이끌었다. 그는 다이애나 전 왕세자비와 함께 앙골라, 보스니아를 방문하며 지뢰 퇴치 캠페인을 펼치기도 했다. 디즈는 90대 노령에도 칼럼니스트로서 분쟁지역인 에티오피아, 수단을 방문한 후 신문에 글을 썼다. 고든 브라운 총리는 “영국은 디즈에게 엄청난 빚을 지고 있다.”며 “디즈처럼 그렇게 탁월하게 저널리즘과 영국인들을 위해 오랜 기간 봉사한 사람은 거의 없다.”고 죽음을 애도했다. 이춘규기자 taein@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아프간 피랍사태와 언론의 국제경쟁력/최영재 한림대 교수

    아프가니스탄 한인 피랍 및 피살 사건은 우리에게 충격과 분노, 우려, 당황, 기대, 절망과 같은 복잡하고 착잡한 감정들이 교차하게 만들고 있다.21세기 세계화의 대표적인 부작용 현상인 테러의 희생자 대열에 우리 국민 23명이 연루된 위기사태 앞에서 정부와 언론, 시민들은 엄청난 시행착오를 경험하고 있다. 2001년 9·11 테러에서 보듯 테러는 세계화시대에 목격할 수 있는 일종의 현대전이라고 할 수 있다. 탈레반에 의한 한국 국민 피랍사태는 따라서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세계화 공간에서 매우 소규모의 전쟁을 치르고 있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정부는 탈레반을 압도할 물리적인 힘이나 외교적 영향력을 가지고 있지 못하고, 한국 언론은 관련 정보를 취재할 능력은커녕 테러사태를 해결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정보를 적절히 걸러내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지 못하다. 나라밖 분쟁지역에서 발생한 국가적 위기사태에 관한 국내 언론의 취재력 부재는 우리 언론의 취약한 국제경쟁력을 드러냈다. 한국 언론은 외국 언론의 오보를 확대 재생산할 뿐 아니라 탈레반의 언론보도 전략에 어쩔 수 없는 희생양이 되고 있다. 한국 언론의 취약한 국제 취재망은 국가적 차원에서 투자해서 보완하면 된다. 하지만 국가적 위기사건에 관한 우리 언론의 근본문제는 사태의 원인을 엉뚱한 데서 찾아 사회적 분란을 일으키는 ‘희생양 찾기’ 보도의 문제를 반복하고 있는 데 있다. 가령 이번 납치 및 살해사건의 범인은 누가 뭐래도 탈레반이다. 어찌 됐든 범인이 명확한 마당에 피랍자와 그 가족, 정부, 그리고 국민 모두 피해자 일 수밖에 없다. 납치자이자 살인자인 탈레반을 처벌할 능력도, 엄두도 못 내고 괴롭힘만 당하고 있는 우리는 안타깝게도 피해자인 우리 자신들을 희생양으로 삼는 우를 범하고 있다. 7월20일 경 피랍 뉴스가 날아들자마자 일부 시민들과 언론은 피랍자들의 위험지역 입국문제 등을 지적하며 피랍을 자초한 꼴이라고 성토했다. 서울신문도 7월21일자 3면 기사와 7월25일자 사설 등에서 피랍의 “주원인으로 일부 개신교회의 무분별한 해외선교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했다. 물론 피랍자들이 사전에 좀 더 신중했더라면 불행한 사태를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해자가 명백한 마당에 우리편 희생자를 공격하는 것은 내부의 갈등과 불신을 키우는 적전 분열 효과를 초래하므로 언론이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적지 않은 언론들이 또한 피랍의 원인을 아프간 입국 제한조치를 엄하게 하지 않은 한국 정부, 인도주의적 임무 수행을 위해 파견된 아프간 주둔 한국 부대, 심지어 아프간전쟁을 일으킨 미국 등에서 찾으려 했다. 이런 예들은 피랍이 발생한 정황은 될지언정 진정한 피랍의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 서울신문도 피랍자의 조속한 석방에 대한 염원이 지나쳐서인지 피랍에 관한 엉뚱한 원인을 나열하기도 하고, 때로는 결과적으로 탈레반의 요구사항에 동조하는 결과를 빚는 비논리적인 주장을 펴기도 했다. 7월23일 사설은 아프간 주둔 부대가 “아무리 인도주의적 임무를 수행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테러의 표적이 된다면 오래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했고,7월30일과 8월1일 사설에서는 탈레반이 요구하는 수감자 맞교환을 위해 아프간 당국과 배후의 결정권을 쥐고 있는 미국이 협조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있을 수 있는 주장이지만 논리와 전략이 빈곤하여 탈레반에 이용 당할 우려가 있다. 그럼에도 몇가지 해결방안이 서울신문안에서 발견된다.“네 탓, 내 탓 공방은 문제가 해결된 뒤에 해도 된다(7월28일 사설).”는 것이고,“미국의 역할을 주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책임론을 주장는 것은 온당하지도, 바람직하지도 않다(8월4일 사설).”는 것이다. 최영재 한림대 교수
  • [특파원 칼럼] 폭력의 시대 간디를 생각하다/이종수 파리 특파원

    14일은 인도가 독립한 지 60년이 되는 날이다. 그래서인지 최근 유럽에서 인도 건국의 아버지 마하트마 간디를 조명하는 열기가 뜨겁다. 독일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학술대회에 참가한 뒤 파리에 들른 한 정치학 교수는 “오다가 몇 나라를 거쳤는데 유럽에서 왜 간디 열풍이 뜨거운지 궁금하다.”고 말할 정도다. 프랑스 주요 언론들도 최근 잇따라 특집기사로 간디의 사상과 삶을 조명했다. 주간 렉스프레스는 ‘간디, 근대’라는 제목의 특집 기사에서 간디의 무저항 철학이 단순히 인도라는 지정학적 공간에 머문 게 아니라 1960년대 미국의 흑인 인권운동가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비롯해 가까이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넬슨 만델라 대통령의 비폭력 사상으로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고 보도했다. 유력 주간지 누벨옵세르바퇴르도 특집 기사에서 “간디는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영웅 가운데 한 명”이라며 그가 영국에 살면서 ‘비폭력’과 ‘무저항’이라는 ‘투쟁’ 방법을 창안한 과정을 분석했다. 1869년 인도 오만해 해안도시 구자라 인근 마을에서 태어난 간디는 영국으로 유학가 변호사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인도 독립에 헌신했다. 비폭력·무저항으로 상징되는 ‘시민불복종 운동’ 등으로 구금과 석방을 거듭하다가 1947년 인도의 독립을 맞이했으나 힌두교와 이슬람의 통합을 위해 노력하다가 이듬해 힌두교 광신자의 흉탄에 맞아 서거했다. 곧 간디 전기를 출간할 프랑스의 석학 자크 아탈리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간디의 근대성은 무저항을 강조한 데 있다.”며 “인류 역사를 이끈 동인은 돈이나 돈의 착취가 아니라 굴욕감을 극복하려는 무저항의 방식에서 나왔다.”고 설명한 바 있다. 그는 “간디는 우리로 하여금 빈 라덴이나 다른 세계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면서 “그런 의미에서 간디의 비폭력 사상은 가장 근대적이고 전위적”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아탈리는 간디에게서 환경 사상과 반세계화운동의 대안을 찾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유럽에서 불고 있는 간디 열풍은 ‘지금, 여기의 지구촌’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아직도 세계에는 종교·종족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다. 최악의 분쟁지역으로 꼽히는 다르푸르 사태를 보자. 최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아프리카 수단 서부의 다르푸르 지역에 2만6000명 규모의 평화유지군을 주둔시키는 내용의 결의안(1769호)을 승인함에 따라 해결의 실마리는 찾았지만 수단 정부의 미온적 반응으로 아직 매듭을 짓지 못했다.4년 동안 이슬람 민병조직 등에 의한 기독교계 양민학살 등으로 20만명이 죽고 250만명이 난민으로 전락하는 비극이 진행형이다. 매일 수십명이 테러로 죽어가고 있는 이라크는 어떤가. 미국 주도로 사담 후세인을 몰아낸 뒤에 찾아온 것은 평화가 아니라 종파 간 분쟁으로 인한 사실상의 내전 상태에 빠져 있다. 가까이는 지난달 납치돼 석방 여부가 아직 불투명한 한국 인질 사태도 결국 탈레반과 미국이 옹립한 집권 세력과의 테러-반(反)테러의 악순환이 한 원인으로 볼 수 있다. 이런 현실에서 간디의 손자인 라즈모한 간디의 말은 잔잔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일리노이대 교수인 그는 “할아버지의 사상은 평화·관용·진리의 메시지로서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도 크다.”고 말했다. 아탈리의 해석을 빌리면 ‘무저항’과 ‘비폭력’으로 대변되는 간디의 철학은 상대방, 구체적으로 영국이라는 제국주의에서 받은 굴욕감에서 시작한다. 간디는 굴욕감을 폭력적으로 제거하는 게 아니라 굴욕감의 근본적 원인을 찾는 데서 해법을 찾았다. 그 방식은 차이를 찾되 적대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겉으로는 약해 보이지만 생명력이 길다. 지구촌 분쟁의 당사자들에게 간디의 지혜를 배우자고 말하는 것은 여전히 이상일까? 이종수 파리 특파원 vielee@seoul.co.kr
  • 이슬람권 평화활동가 시각

    아프가니스탄 한국인 피랍사태가 장기화되고 있다. 인터넷에선 ‘자업자득’이라며 피랍인들을 향한 비난이 끊이지 않는다. 미국 역할론과 책임론을 두고 ‘반미운동’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들린다. 군사대응 필요성까지 제기되고, 가족들은 그때마다 피가 마른다. 이슬람권에서 평화활동을 해온 청년 운동가 두 명이 만났다. 안영민(36) ‘경계를넘어’ 활동가와 이동화(33)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모임’ 국제연대위원회 간사. 두 사람은 팔레스타인과 이라크, 레바논 등 분쟁지역을 오가며 평화운동을 해왔다. 이동화씨는 최근 무슬림이 됐다. 피랍사태를 지켜본 두 사람의 답답함과 안타까움을 입말 그대로 옮겼다. ●“‘람보’ 기대하는 건 인질 죽으란 말” 이동화:“잘됐네”“이번 기회에 순교하면 되겠네”…. 피랍사실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 반응이 이랬잖아. 너무 놀랐어. 냉소를 넘어 거의 증오에 가까웠어. 안영민:국제평화운동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선교를 목적으로 하는 한국 기독교의 봉사활동을 두고 부정적인 평가가 많아. 타 종교와 문화에 대한 이해 없이 오직 ‘미전도 종족’이란 관점으로 접근하고 있으니까. 이:내가 2005년 요르단에 머무를 때 정말 화났던 게 뭐였냐면 말야. 이라크에 들어가려고 준비하는 선교사들 중 일부는 한국 강남쯤 되는 곳에서 호화롭게 살면서 가난한 무슬림을 하찮게 보는데, 정말 기가 막히는 거야. 안:그렇다고 ‘너희가 선교하러 갔으니까 너희 책임이다.’라는 건 너무 가혹하지. 이:형 말이 맞아. 비판할 건 비판해야겠지만 상황이 너무 안 좋잖아. 지금은 비판보다는 생명을 걱정하는 게 우선이니까. 안:더 심각한 건 군사적 대응이 필요하다는 주장인데, 납치된 사람들이 미국인이나 프랑스인이었어도 그런 말이 나왔을까. 아닐 거야. 하지만 실제 군사작전 가능성이 있다는 게 문제야. 지금은 말뿐이지만, 상황이 장기화돼서 더 이상 기다려도 소용없다고 판단하면 미국이 군사적으로 밀고 들어갈 수도 있어. 이:미국은 그렇다 치고 한국 네티즌들이 군사작전 운운하는 게 더 놀랍지. 할리우드 인질구출 영화를 너무 많이 봐서 그래. 현실에서 람보를 기대하는 건 말 그대로 ‘인질 다 죽어라’잖아. 안:한나라당 정형근 의원이 ‘미국 책임론’을 반미로 몰아가지 말라고 했는데, 정말 너무 하는 거 아냐? 이 상황에서 어떻게 그런 말이 나오지? 사실 아프간에서 미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란 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잖아. 사람 목숨보다 미국과의 관계를 더 걱정하고 있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 이:정부 협상력이 제대로 안 통하는 거 봐. 벌써 두 사람이 죽었어. 사람들이 미국을 거론하는 건 미국이 싫어서가 아니라, 지금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인 데 말이야. ●“국내 무슬림 희생양 돼선 안돼” 안:언론에도 아쉬운 점이 있어. 하루하루 급박하게 돌아가는 상황에서 한가로운 요구처럼 들릴 수도 있을 거야. 하지만 미국이 아프간에 들어간 이유가 석유·가스 파이프라인 때문이란 사실, 한국인은 두 명이 죽었지만 그간 미국과 나토군의 폭격으로 죽어간 아프간 국민이 수만명이었다는 사실 등도 한번쯤 보도해줬어야 하지 않을까? 이:속보도 중요하지만 아프간 정부-탈레반, 아프간 정부-미국, 탈레반-미국 간의 역사·정치적 배경을 함께 짚어줬다면 독자들이 피랍사태의 전후 맥락을 좀더 객관적으로 파악할 수 있었을 텐데. 안:얼마 전 부산에서 술 취한 사람이 이슬람사원 유리창 깨고 그랬다면서? 무슬림으로서 어떻게 생각해? 이:내 무슬림 친구들이 정말 우려했던 게 바로 그거야. 왜 한국 사람들은 탈레반을 무슬림과 동일시하냐고 그래. 자기들도 탈레반이 싫고, 아랍권에선 탈레반을 무슬림으로 인정하지도 않는데, 억울하다는 거야.‘우린 한국 사람들이 우리나라 와서 깽판을 쳐도 한국 사람 전체를 욕하진 않는데, 왜 한국 사람들은 탈레반의 행태를 두고 이슬람 전체를 욕하냐’는 거지.9·11사태 이후 ‘무슬림=테러, 코란=칼’로 각인된 이미지 탓이 크다고 봐. 안:탈레반은 정말 나쁜 짓 많이 했지. 사람도 많이 죽였고, 여성 인권도 억압했고. 하지만 탈레반은 무슬림의 일부분일 뿐이야. 언론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가 ‘이슬람 극단주의자’‘원리주의자’‘근본주의자’란 표현인데, 자꾸 이 부분만 부각되니까 결국 이게 전부인 것처럼 되는 거야. 이:2003∼2004년 이라크 전쟁 때 현지에 있었는데, 더 이상 최악일 수 없는 상황에서도 사람들이 너무 평안한 거야. 도대체 알 수 없는 평안의 정체가 뭘까 궁금했어. 결국 찾은 답이 무슬림이란 종교였어. 난 총도 안 쏘고 폭탄도 안 터지는 한국에서 늘 머리가 깨지는 듯 했는데…. 내가 무슬림이 될 수 있었던 건 내가 그들의 실제 삶을 봤기 때문이야. 안:아프간 사람들, 특히 여성들의 이야기를 한국에 많이 전해야겠다고 생각해. 이슬람제국 건설이 아닌 여성인권과 민주주의를 원하는 목소리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으니까 자꾸 오해가 생긴다고 봐. 그 오해를 없애는 게 우리 할 일이기도 하고. 정리 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옴부즈맨 칼럼] 인질사건 보도의 딜레마/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 무장세력이 한국인들을 납치하여 인질로 억류한 지도 보름이 지났다. 보름 이상 동안 벼랑 끝에 놓인 인질의 생사를 지구 반대편에서 지켜봐야 하는 가족의 심정이야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이다. 인질사태를 지켜보는 일반 국민들도 착잡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무고한 인질이 두 명씩이나 무참히 희생되는 뉴스를 지켜보면서 사건의 추이에 따라 감정의 극과 극을 오가는 경험을 하였을 것이다. 사건 초기에는 놀라움과 걱정이 앞섰고 조기 석방의 가능성에 대한 기대와 희망, 무고한 희생에 대한 경악과 분노, 지지부진한 협상에 대한 실망, 우리 힘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다는 사실에 대한 무력감 등이 지난 보름동안 몇 번이나 요동을 치는 경험을 했을 것이다. 인질사건이 주는 충격은 언론보도의 혼선으로 더욱 가중된 느낌이다. 초기에는 정확히 몇 명의 인질이 납치되었는지에 대한 혼선이 있었고, 최근까지도 남·여 인질의 수가 정확하게 몇 명인지 확인되지 않은 것 같다. 인질의 건강상태나, 몇 그룹으로 나뉘어 억류되어 있는지에 대한 보도도 언론마다 제각기 다르다. 협상 진전상황에 대한 보도는 더더욱 그렇다. 첫 번째로 희생된 인질의 경우도 충격적이었지만, 두 번째로 희생된 인질의 경우는 억류된 인질들의 육성이 공개된 무렵으로 가느다란 희망을 가지던 시점이었기에 그 충격은 더 컸다. 이러한 언론보도의 혼선에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우선 한국인 인질을 억류하고 있는 탈레반 무장세력에 대한 접근 자체가 차단되어 있고 지극히 제한적이고 일방적인 접촉만이 가능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더 중요하고 직접적인 요인은 인질사건에 대한 외신보도가 제각각이라는 점이다. 한편에서는 일부 인질의 석방을 예고하는 보도가 흘러나오고 다른 한편에서는 인질을 살해하겠다는 보도가 동시에 나오는 상황이 반복된 것이다. 인질 석방이나 군사작전에 관한 보도를 공식적으로 취소하거나 정정하는 경우도 여러 번 있었다. 탈레반 무장세력이 이번 인질사건을 계기로 자신들의 세력을 과시하고 협상상대를 압박하며 최대한 이득을 얻기 위하여 일부러 거짓 정보를 흘리거나 고도의 심리전을 구사하는 것도 또 다른 요인일 것이다. 탈레반 대변인을 자처하는 인물이 언론사 간의 경쟁을 이용하여 선별적으로 몇몇 언론에 그럴듯한 정보를 제공하더라도 이를 무시할 수 없다는 약점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다는 느낌이다. 정부 당국이 기자들의 안전위협을 이유로 아프가니스탄 방문취재를 제한하는 바람에 현지의 동향을 주로 외신보도에만 의존할 수밖에 없다는 현실적인 이유도 인질사건 보도가 혼선을 빚고 있는 중요한 요인이다. 그러나 몇 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에 특파원을 상주시키고 있는 해외언론조차도 혼선을 거듭하는 것을 보면 현지 취재의 한계도 분명히 있다. 직접 취재의 경로가 사실상 차단된 상태에서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여야 할까? 우선 언론이 사실여부의 확인이 충분하지 않은 외신보도의 인용을 좀 더 신중하게 할 필요가 있다. 긴박한 사안에 대한 속보도 중요하지만 두개 이상의 소스에 의해 독립적으로 사실을 확인해야 한다는 기본원칙은 이 경우에도 적용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두 번째로 비록 이 사건이 분쟁지역에서 다수의 우리 국민이 장기간 인질로 납치된 초유의 사건이기는 하지만 제목과 지면에서 좀 더 차분할 필요가 있다. 자극적인 제목, 과도하게 큰 활자, 충격적인 사진 같은 보도는 절제할 때이다. 직접 취재가 제한된 상황일수록 정보를 판단하고 종합하여 전달하는 데스크의 게이트키핑과 편집기능이 더 중요한 시점인 것이다. 심재웅 한국리서치 상무이사
  • [피랍 한국인 석방협상] ‘피랍사태 해법’ 전문가 제언

    아프가니스탄에서 한국인 23명이 피랍된 것과 관련해 전문가들은 이슬람원리주의를 신봉하는 탈레반 무장 세력이 장악한 지역에 파병국인 한국 국민이 무리지어 들어간 것 자체가 아무런 안전장비 없이 외줄타기를 한 것과 다름없다고 분석했다. 피랍된 한국인들이 선교를 목적으로 아프간 땅을 밟은 것도 문제지만 어디까지나 부차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최영길 명지대 아랍지역학과 교수는 23일 “미국 등 서방 세력에 의해 정권을 빼앗긴 탈레반 추종자들에게 피랍된 한국인들이 기독교인인지 불교신자인지는 부차적인 문제다. 그저 파병국이자 미국의 동맹국가인 한국 국민일 뿐”이라면서 “정부에선 우리 군이 아프간 재건을 돕기 위해 갔다고 말하지만 탈레반엔 위선적 주장일 뿐”이라고 말했다. ●“반미국가선 한국도 美동맹국일 뿐” 최 교수는 “이 같은 사고를 막기 위해선 분쟁 국가나 국군이 파병된 곳, 특히 반미 국가에는 어떤 이유에서든 가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좋은 목적으로 가더라도 ‘친미국가’로 낙인찍힌 한국 국민이 아프간이나 소말리아, 이라크 등에 가는 것은 너무 큰 위험 부담을 안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한국중동학회장 겸 한국외대 중동연구소장인 장병옥 교수는 “이번 사건의 본질은 외국군의 철수, 아프간 정부에 붙잡힌 탈레반 동료들의 석방, 더 나아가 피랍자들의 모국과 이면 거래를 통한 투쟁자금 확보 등 정치적 행위”라고 못박았다. 장 교수는 일부 기독교인들의 공격적인 선교 방식에 대해서도 자제를 당부했다. 그는 “극히 일부이겠지만, 독실한 수준을 넘어선 기독교 원리주의자들이 의료사업 등을 구실로 이슬람 국가에 무리하게 선교를 하러 들어가는 것도 문제”라면서 “내 가족이 중요하면 남의 가족도 아껴야 하듯이, 내 종교가 존중받길 원하면 남의 종교도 존중하는 이성적 행동을 해야 한다. 이번 기회에 기독교인들도 외형에 치중하는 선교, 문명 충돌을 야기하는 선교 방식을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사전준비 없는 분쟁국 여행은 위험 이희수 한양대 문화인류학과 교수는 아프가니스탄 같은 분쟁지역에 대해 충분한 사전답사나 준비없이 종교적 신념 만으로 덤벼드는 행태를 꼬집었다. 이 교수는 “아프간의 경우 알라와 기독교는 형제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무신론자보다는 기독교인에게 우호적”이라면서 “다만 선교는 이슬람 율법과 아프간 현행법에도 금지하는 범법 행위이기 때문에 존중해야 한다. 특히 가즈니, 칸다하르는 탈레반 거점 지역으로 정확한 정보에 의해 납치된 것으로 보이며 대규모 선교 자체가 위험한 곳이었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군대를 파병하든 비정부기구(NGO)를 보내든 현지 문화나 언어에 소양을 가지고 보내야 한다. 충분한 사전 지식과 미묘한 사회적 갈등 구조를 알고 가야 한다.”면서 “아무리 좋은 목적이라도 열정 만으로 갈 수 있는 것은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위험국가 문화·정치 소양교육 필요 장준희 한양대 세계지역문화연구소 연구원은 “국가가 나서서 소외된 지역에 대해 꾸준히 전문가를 양성해야 이런 일이 재발하는 것을 막을 수 있다.”면서 “아프간은 아직은 유목 사회이기 때문에 많은 결정이 연장자그룹(부족원로회의)의 영향을 받고 젊은이들이 주축이 된 탈레반도 그들의 조언을 듣는다. 하지만 한국 정부나 학계에 연장자 그룹과의 채널은 거의 없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장 연구원은 “90년대 중반까지 위험국가에 나가는 사람들을 위한 교육을 했던 것처럼 일부 국가에 한해서는 문화, 정치 등의 소양교육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임일영 이경주기자 argus@seoul.co.kr
  • 전세계 피살 언론인 10년동안 1000여명

    |파리 이종수특파원|언론인들은 주로 암살을 당해 살해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제뉴스안전연구소(INSI)는 6일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10년 동안 1000여명의 언론인이 살해됐다.”며 “그중 657명이 전쟁터나 무력 분쟁지역이 아닌 자기 나라에서 취재 도중 살해됐다.”고 밝혔다. 전쟁터에서 피살된 언론인은 250명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에 따르면 살해범은 대부분 드러나지 않았다. 보고서에서 집계된 피살 언론인에는 기자, 운전기사·통역원·사무원 등 취재지원 인력도 포함됐다. 2년 동안 조사를 지휘한 로드니 파인더 INSI 소장은 “암살이 골칫거리 언론인을 침묵시키는 가장 효과적인 도구가 됐다.”며 “살해범을 방치하면 언론인 피살이 갈수록 더 늘어날 것”이라고 우려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2000년 이래 언론인 피살이 계속 늘어났다.2005년에는 147명, 지난해에는 168명이 화를 입었다. 조사 기간인 1996년부터 지난해 6월 사이에 언론인이 가장 많이 살해된 곳은 이라크·러시아·콜롬비아 순이다. 이라크에서는 138명, 러시아에서는 88명이 살해됐다. 또 평상시에 살해된 언론인들은 대부분 당시 부패·마약 혹은 범죄 등을 취재하고 있었다. 피살 언론인의 3분의1이 집, 사무실, 호텔에서 살해된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이어 언론인 피살에 대한 각국 정부의 책임은 물론 언론사와 언론인들의 안전 불감증도 지적했다. 파인더 INSI 소장은 “미국이 2003년 이라크를 침공했을 때 취재하러 왔던 아시아지역 언론인 대부분이 화생방 공격에 대비한 보호장비를 갖추지 않았다.”고 설명했다.vielee@seoul.co.kr
  • [사설] 해외파병 장병 안전대책 강화해야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윤장호 병장이 탈레반 무장세력의 자살폭탄테러로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미국 인디애나대를 졸업하고 대학원에 진학했으나 조국의 병역의무를 다하려 자진 입대한 청년의 죽음인지라 그 안타까움은 더욱 크기만 하다. 유학시절 병석에 누운 어머니의 쾌유를 빌며 삭발기도를 했을 정도로 효성과 신앙심이 깊은 막내 아들이었다.‘여긴 밥도 맛있고 위험한 것 하나 없으니 걱정 마시라.’고 외려 부모를 위로하던 그 아들이 제대를 불과 석달 앞두고 참변을 당했으니 부모의 충격과 슬픔 또한 이루 헤아릴 수 없을 것이다. 윤 병장의 참변은 베트남전 이후 해외에 파병된 한국군으로서 처음 테러에 의해 희생된 사례다. 지금 우리 장병은 이라크 2300여명을 비롯, 세계 8개 분쟁지역에 2500여명이 파병돼 유엔평화유지군(PKO)등으로 활동하고 있다. 윤 병장이 근무한 바그람 지역은 그동안 테러 위험으로부터 비교적 안전하다고 평가받던 곳이다. 윤 병장의 희생은 결국 그 어느 파병지도 테러 위협의 안전지대가 아니며, 언제든 제2의 불행이 닥칠 수 있음을 말해준다. 이번 사건만 해도 테러의 표적은 아프가니스탄을 극비 방문한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이었다. 우리 군이 미국으로부터 아무런 정보도 받지 못한 상황에서 평소와 다름없이 근무하던 윤 장병이 뜻 밖의 변을 당한 것이다. 미국은 보안상 정상급 인사들의 테러지역 방문은 극비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테러범에게까지 정보가 새는 판에 동맹국에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음으로써 동맹국 장병이 테러에 무방비로 노출되도록 한 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하겠다. 오는 7월이면 레바논에 새로이 350여명이 파병된다. 군 당국은 이번 사건에 대한 철저한 진상조사와 함께 미군과의 정보공유 등 해외파병군 안전 대책을 강화해야 한다. 불요불급한 파병군을 감축하거나 조기 철수시키는 방안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 [Local] 화천 세계평화의종공원 조성

    강원도 화천군은 ‘세계 평화의 종 공원 사업’이 오는 10월 착공된다고 14일 밝혔다. 군은 오는 10월말쯤 평화의 댐 일대 현지에서 세계평화의 종 공원 기공식을 갖고 종교간 세계평화위원회의도 함께 연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사업은 지난 2005년 2월 광복·분단 60주년 기념사업으로 기획됐으며 오는 2008년 완공된다. 세계평화의 종 공원 사업은 화천군 동촌리 평화의 댐 일원에 세계분쟁지역에서 수거한 탄피로 평화를 알리는 종을 만드는 사업이다.
  • [씨줄날줄] 소년병/이목희 논설위원

    “9살에 반군에 납치돼 소녀병사 생활 시작, 성노리개 전락, 초경 시작하자마자 임신, 반군 중대장과 사이에 두 딸, 다른 반군 장교에게 폭행당해 딸, 반군에서 도망치자마자 정부군 장교에 의해 아들. 날마다 ‘나에게 기적이 일어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 아프리카 소녀의 사연이 탤런트 조민기씨를 눈물짓게 만들었다.‘기아대책’ 나눔대사로 우간다를 다녀온 조씨. 앞서 아프리카를 돌아본 선배 탤런트 김혜자씨는 시에라리온에서 말문을 잃는다. 어른들의 다이아몬드 탐욕으로 인한 내전. 그곳엔 성한 아이들이 없었다. 김씨는 책 ‘꽃으로도 때리지 말라’에서 “어떤 일이 있어도 어린이를 전쟁에 내몰지 말라.”고 절규한다. “사람을 쏘는 게 물 마시듯 쉬웠다.”는 12살 소년병 출신의 증언. 영화 ‘블러드 다이아몬드´에서처럼 마약에 취해, 위협에 의해 소년들이 전쟁으로 내몰리고 있다. 유엔이 정한 소년병 기준은 18살 미만이다. 국제분쟁지역에 25만명의 소년병이 있는 것으로 집계했다. 전투병은 물론 연락병, 짐꾼, 간첩, 성노예 등 착취방법은 다양했다.5살 어린아이에게 총을 쥐어 주는 극악한 사례도 보고되었다. 소년병이 문제되는 지역은 아프리카, 동남아, 중동 등. 우리도 한국전쟁때 어린 병사의 희생이 있었다.14∼16세의 학도병들이 나라를 위해 꽃다운 목숨을 바쳤다. 북한 인민군에 강제징집된 이들의 얘기는 비극적이다.A씨는 북한군 점령지역의 중학교에 등교했다가 인민군에 차출되었다. 당시 14세. 변변한 전투도 못해 보고 포로가 되어 거제도 수용소에서 오랫동안 지냈다. 풀려난 뒤 뇌물로 신원조회를 통과해 일류대학에 들어갔고, 사회 지도층이 되었다. 그는 지금도 소년병 얘기가 나오면 가슴이 떨린다고 했다. 한반도에서 소년병의 슬픔은 현재진행형이다.16살부터 징집을 시작하는 북한. 제대로 못 먹여서 왜소하기까지 하니…. 북한군 대부분의 행색이 영락없는 소년병이다. 프랑스 파리에 모인 58개국 대표들이 엊그제 소년들의 군징집을 막는 파리규범에 서명했다고 한다. 단순히 선언에 그쳐서는 안될 것이다. 집단학살처럼 반인류범죄로 삼아 세계가 함께 징벌해야 한다. 이목희 논설위원 mhlee@seoul.co.kr
  • ‘어린이병사’ 근절하자

    |파리 이종수특파원|지구촌에 ‘카도고스(Kadogos)’라는 말이 사라질까?동부 아프리카에서 쓰는 스와힐리어로 카도고(kadogo)는 ‘어린이 병사’란 뜻으로 콩고민주공화국 내전 당시 생긴 말이다. 단수가 아니고 복수로 통용되고 있는 데서 알 수 있듯 어린이 병사는 아프리카 수단, 코트디부아르 등 주요 분쟁 지역에서 25만여명이 동원되고 있다. 이들을 근절시키기 위해 파리에서 이틀 동안 열린 ‘어린이 병사 구하기 국제회의’가 6일(현지시간) 폐막했다. 회의에 참석한 지구촌 58개국 대표들은 어린이 병사 근절을 위한 ‘파리 규범’에 합의했다. 서약에는 어린이 병사가 징집되는 국가들로서 유엔의 블랙리스트 12개 국가 가운데 부룬디, 차드, 콜롬비아, 코트 디부아르, 콩고민주공화국, 네팔, 소말리아, 수단, 스리랑카, 우간다 등이 참여했다. 또 라틴아메리카, 아시아, 유럽연합(EU) 국가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유엔 블랙리스트에 오른 미얀마와 필리핀은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 ●어린이 병사 동원땐 처벌규정 마련 합의문의 골자는 어린이가 무기를 들도록 허용하는 정부들에 변명의 여지가 없다는 점을 명시하고, 전쟁 기간에 각 국은 어린이 병사를 적발, 해산하고 이들을 동원한 사람들을 처벌하도록 규정했다. 이번 회의는 20여년에 걸친 어린이 병사 근절을 위한 국제적인 노력 가운데 가장 최대의 조치로 꼽힌다. 또 그동안 주로 비정부기관(NGO)들 중심으로 추진해온 어린이 병사 근절 노력에서 처음으로 정부 차원의 대책이 논의됐다는 점에서도 의의를 지닌다. 그러나 합의문이 법적 구속력을 갖지 못해 실제 어린이 병사를 근절하는 데 어느 정도 효력을 미칠 지는 의문으로 남아 있다. 현재 유엔 보고에 따르면 어린이 병사들이 주로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10여개 분쟁 지역에 동원되고 있다. 이들은 전투병은 물론 심부름꾼·짐꾼·스파이 등으로 이용되고 있다. 한때 30만명까지 추정됐었다. ●“물 마시듯 총 쏴” 어린이 병사 증언 앞서 회의 첫날인 5일 시에라리온의 어린이 병사 출신 이스마엘 베아흐(26)는 “총을 들고 누군가를 쏘는 것이 물 한 잔 마시는 것처럼 쉬웠다.”는 증언으로 회의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12세 때부터 총을 들고 전선에서 사람을 죽이기 시작했다는 그는 “어린이 병사들을 도와주지 않으면 그들은 언제든 100달러를 받고 이웃의 분쟁지역으로 갈 수 있다.”며 국제사회의 도움을 호소했다. 또 르몽드는 11살 때부터 콩고 내전에 참가 중인 무히마(17)의 증언을 보도했다. 그는 “늘 돈이 모자랐는데 사촌형이 ‘한달에 30달러를 받는다.’고 권유해 부모들에게 말하지도 않고 집을 나왔다.”며 “가자마자 군인들이 군복과 무기를 줬다.”고 말했다. vie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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