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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여 “정계개편 계기 꼭 온다” 느긋/여권의 전망과 정국흐름 분석

    ◎지각변동 징후 곳곳에… 지도부는 부인/재보선·한나라 전대 결과따라 결판 날듯 정치권의 지각변동 징후가 감지되고 있다.그럼에도 여권 지도부가 정계개편 추진 의지에 대해선 손을 내젓는 복합적 상황이 연출되고 있다. 물론 여권도 정계개편 가능성 자체를 부인하진 않는다.다만 지금은 ‘때가 아니다’는 입장이다.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가만히 지켜보고 있으면 결국 될텐데 괜히 (상대당을)자극할 필요가 있는냐”고 반문했다. 여권으로선 올 정국의 흐름 속에서 어차피 정개계편의 계기가 올 것으로 본다.국민회의 趙世衡 총재권한 대행은 31일 그 시점과 관련,“여러 고비의 정치적 사건이 있을 것”이라고만 언급했다. 국민회의측 고위당직자들의 전망을 종합하면 자연스런 정계개편의 계기는크게 4가지다.즉 ▲4월2일 재보선 ▲4월10일 한나라당 전당대회 ▲5월말 15대국회 하반기 원구성 ▲6·4지방선거 등이다. 우선 이번 5개 지역 재·보선에서 여권이 2석만 건져도 정계개편론이 급류를 탈 것으로 보인다.한나라당의 지역적 지지기반의약화에 그치지 않고 선거인책론을 빌미로 당내분이 심화될 가능성이 농후한 탓이다. 한나라당의 당권경쟁도 정계개편의 변수다.주·비주류 어느 쪽이 당권을 장악하든 그 후유증이 4월 중순 이후 여야 협상과 맞물려 파열음을 낼 개연성이 큰 까닭이다. 여야는 ‘JP총리인준’문제 등 핵심 쟁점사안 협상을 4월 중순이후로 미뤄 놓았다.지난 13일 총무회담에서 합의한 결과다.金大中 대통령도 31일 동아일보 창간기념 회견에서 4·10정당대회후 한나라당의 새지도부가 구성되면 여야 영수회담을 가질 뜻을 피력했다. 이들 협상이 무위로 끝난다면 정계개편을 바라는 여론이 고조될 수 있다.이는 “국민들로부터 정계개편을 해야한다는 목소리가 안나오도록 야당이 올 해만이라도 도와주면 좋겠다”(金대통령)는 언급에서도 감지된다. 이 여론이 이후 정치일정과 맞물려 정계재편의 촉진제로 작용할 것이라는게 여권의 기대다.6·4지방선거 결과 여하에 따라 거야의 핵분열과 그 이후대연정까지 내다볼 수 있다는 시각이다.
  • 與 정계개편 큰 그림 그리나

    ◎2與 극한대치 피할 정국구도 희망/국민신당 교섭단체 되면 연정 모색/한나라 분열·신 4당 체제 구축 기대 여권이 정계개편과 관련,‘큰 그림’을 그리고 있는 것 같다.야당 의원의 개별영입은 주춤할 전망이지만,‘정치판 변혁’의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청와대와 국민회의는 30일 정계개편에 대해 더욱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그동안 정계개편에 적극적이던 趙世衡 총재권한대행도 침묵을 지켰다.추진속도를 놓고 고심하는 눈치도 엿보였다. 그러나 방향은 서있다고 여권의 고위관계자는 밝혔다.고위관계자는 “金大中 대통령은 과거 여당처럼 공작적으로 야당의원들을 빼내 의석분포를 바꾸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야당측이 국정운영에 협력한다면 여소야대 구도도 민주정치 측면에서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관계자는 “하지만 야당이 지금같은 태도를 고수한다면 변화는 있어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권 핵심은 국회가 극한대치를 피하는 정국구도를 그리고 있다.‘정치협력 파트너’의 필요성이 제기된다. 여권의 ‘신(新)정국구도’의 일단이 드러난게 국민신당과의 연정론이다.한나라당의 개혁세력이 합류,국민신당이 원내교섭단체가 된다면 정국은 4당체제로 개편된다.국민회의,자민련과 국민신당이 함께 연합할 수도 있고 사안별로 협력할 수도 있다. ‘국민신당 몸불리기’외의 방안도 있다.한나라당이 분열하는 구도다.이 또한 신(新)4당체제다.여권은 ‘야당의 무조건 반대’보다는 ‘견제와 균형’의 정치력이 작동할 수 있는 체제를 선호하고 있다. 여권이 ‘호흡조절’을 하고 있는 것은 단기 목표도 있다.金대통령이 런던 ASEM에 참석,취임후 첫 정상외교를 벌이는데 국내에서 정쟁이 가열되는 것은 좋지않다.다음달 4일까지는 임시국회도 열려있다.국민회의 쪽에서는 자민련의 독주도 개운치않다.자민련 의석수가 갑자기 늘어나면 내각제 조기개헌 얘기가 나올 여지도 있다. 여권의 신중한 행보에는 야당에 의해 정계개편의 판이 벌어져야 국민반감이 없다는 판단도 깔려 있다.한나라당이 4월 재·보궐선거와 전당대회를 통해 스스로 분열할 가능성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다.
  • 여소야대 와해 4월이 분수령/정계개편 공론화 배경과 전망

    ◎재·보선­全大 결과가 巨野 분열 변수/2與­국민회의 신중… ‘JP 인준 시급’ 자민련 강경/한나라­과반 붕괴땐 탈당 도미노… 극한투쟁 선언 정가의 화두(話頭)로 정계개편이 떠오른데는 두 힘이 작용했던 탓이다.여소야대를 탈피하려는 여권의 ‘구심력’과,약한 지도력때문에 ‘원심력’이 커가는 한나라당 내부 사정이다.지금으로서는 어느 힘도 약해질 것 같지 않다.따라서 정국의 앞날은 지극히 불투명하다. 여권이 구심력을 어느 선까지 키울지 내부 컨센서스가 완전히 이뤄지지 않았다.청와대,국민회의는 아직 정계개편 추진에 신중하다.‘거대 야당’을 너무 궁지로 몰다가 정국이 ‘파탄’날 수 있다.정계개편 공론화를 야당의 국정협조를 이끌어내는 지렛대로 우선 활용하려는 분위기다.본격 정계개편은 장기적으로 추진한다는 복안이다. 金鍾泌 총리서리의 임명동의안 처리에 급한 자민련은 다르다.한나라당의 원내 과반수를 하루라도 속히 무너뜨려야 한다는 바램이 강력하다. 한나라당 지도부는 정계개편에 관해 ‘마지노선’을 그었다.그동안버팀목인 원내 과반수가 무너지면 도미노 이탈을 막기 힘들다고 보고 있다.한나라당의 현재 의석은 157석.金宗鎬 朴世直 의원이 탈당한 뒤를 10∼14명(보선결과 감안)만 뒤따르면 과반이 무너진다.李漢東 대표가 ‘극한 투쟁’을 공언한 것도 이런 걱정을 깔고 있다. 하지만 여의 구심력과 야의 원심력은 이미 작동하기 시작했다.국민회의 H·K의원,자민련 K·J의원 등 여권 핵심들이 물밑 활동을 시작했다.한나라당의 S의원,국민신당 P·K의원 등 야권에서도 호응의 움직임이 있다. 정국은 정계개편이 공론화된 것만으로도 이미 경색국면에 들어섰다.‘국정운영 협조없으면 정계개편 불가피’라는 여권의 몰아붙이기에 야권은 ‘협력 전면중단’으로 맞받아치고 있다.긴장상황이 ‘생사(生死)’를 건 쪽으로 확전될지 여부가 결정나는데 몇차례 계기가 있다.첫째는 ‘4·2 재·보궐선거’다.한나라당이 선전한다면 야당 분열속도는 주춤할 것이다.반대면 정계개편의 물살은 거세진다.둘째는 한나라당 당권 다툼이다.야당 스스로 쪼개지는 상황도 배제할 수 없다.셋째,‘6·4 지방선거’결과도 정치권의 지각변동을 가져올 수 있는 분수령이다.
  • 새달 정계 지각변동 오나/여­민주세력·보수 대연합 모색

    ◎야­4·10全大 앞두고 내분 심화 한나라당이 ‘4·10 전당대회’를 앞두고 총재경선을 둘러싼 내분에 휩싸일 조짐을 보이고 있는 가운데 여권은 한나라당이 자체 분열될 경우에 대비한 정계개편 플랜을 짜고 있는 것으로 29일 알려졌다.특히 다음달 2일 실시되는 영남지역 4개 재·보궐선거 결과와 맞물려 4월중 정계에 대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청와대,국민회의 등 여권은 인위적 정계개편을 않는다는 방침아래 야권 내부상황을 주시하면서 한나라당 민주계와 개혁성향 인사,국민신당을 엮는 ‘민주세력 대연합’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자민련은 한나라당 민정계 출신을 받아들이는 ‘보수 대연합’을 추진하고 있다. 청와대 朴智元 대변인은 이날 “현재는 여야가 힘을 합쳐 경제살리기에 노력할 때이므로 정치안정을 기해야한다”며 “이를 위해 무엇보다 야당의 도움이 절실한 때에 정계개편의 목소리가 너무 강하게 나오는 것은 바람직스럽지 않다”고 신중한 입장을 밝혔다. 국민회의와 자민련은 그러나 趙世衡총재권한대행,金相賢 고문,韓和甲 총무대행(국민회의),金龍煥 부총재(자민련) 등이 나서 야당의 중부권·영남권 출신 의원들과 영입접촉을 벌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나라당은 여권의 정계개편 추진에 강력대응 방침을 밝히고 있으나 ‘4·10 전당대회’를 앞두고 비당권파가 총재경선을 주장하면서 소속 의원 157명중 90명 이상의 서명을 받아내 내분이 심화되고 있다. 한나라당 金宗鎬·朴世直 의원은 이번주중 탈당,자민련에 입당할 예정이다.
  • 민정계 출신 野 의원 탈당뒤 자민련과 보수연합 움직임

    ◎박세직 의원 탈당 공식화 다음달 10일 전당대회를 앞두고 한나라당내 당권파와 비당권파간의 당권투쟁이 본격화되고 있는 가운데 일부 민정계출신 의원들이 탈당을 전제로 자민련과의 보수연합을 추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이같은 움직임은 金鍾泌 총리서리 임명동의안 재투표 및 인준을 거듭 주장하고 있는 朴世直 金宗鎬 李信行 金一潤 의원 등이 주도하고 있으며,동조세력규합 정도에 따라서는 큰 폭의 정계개편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특히 전당대회 결과는 당 분열의 확전 양상과 관련,상당한 변수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朴의원은 26일 여의도 당사로 趙淳 총재와 徐淸源 사무총장을 연쇄 방문,“당의 정체성이 의심스러운데다 소수 의견을 무시하는 풍토에서는 더 이상 당에 몸담기 힘들다는 판단을 내렸다”면서 탈당의사를 공식화했다.朴의원은 오는 30일쯤 탈당을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朴의원은 당분간 무소속으로 잔류한뒤 동반탈당 인사들과 함께 자민련에 입당할 것으로 알려졌다.이와 관련,朴의원과 정치적 입장을 함께 한 金의원 등이 행동을 같이할 가능성이 있으며 당내 일각에서는 수도권을 중심으로 10여명의 의원 이름이 탈당가능 인사로 오르내리고 있다.
  •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제프리 머렐(미래를 보는 세계의 눈)

    ◎러 민주화는 거역할수 없는 흐름/소련 붕괴 시작의 해는 1989년/옐친 대통령 당선이 대세 못박아/국가 통합 실패 러 정치인들 질타 【모스크바=유민 특파원】 “제프리 머렐(Geoffrey Murrell). 그만큼 러시아의 과거와 현재를 꿰뚫고 있는 사람은 없다”영국의 브라이언 폴경이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란 책의 서문에서 저자 머렐을 평가한 대목이다.폴경은 이미 러시아 주재 영국대사를 역임한 적이 있어 머렐에 대한 이같은 평가는 권위를 갖는다. 머렐을 아는 이라면 누구라도 폴경의 지적에 동의하게 된다.머렐은 영국 외무성에서 ‘러시아학’의 최고봉으로 꼽히는 인물이다.외교관시절 대부분을 소련과 러시아 관련업무에 보냈다.러시아 최근세사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시기로 일컬어지는 소련 공산주의의 붕괴 과정시기를 모두 목격하는 ‘행운’도 지녔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는 이같은 배경에서 나왔다.러시아어에 대한 탁월한 언어감각,소련시대 정치인들에 대한 머렐의 이해력은 그의 평가를 높이는 중요한 대목들이다.외교관의 현장감에다 분석력을 곁들임으로써 그는 책 전반을 하나의 주제로 꿰 뚫었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 것은 거역할 수 없는 도도한 흐름이다”. 머렐은 정치학계의 논란이 되고 있는 소련붕괴 시작의 해를 1989년으로 본다.당시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갈팡질팡거렸고 동유럽에서 개혁이란 낱말들이 봇물터지듯 터져나왔다.그는 소련붕괴를 완성시킨 사건으로 1996년 보리스 옐친대통령이 공산당 당수인 게네디 주가노프를 꺽고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한 것을 꼽았다.러시아가 민주주의로 이행하는데 있어 전환기가 되는 역사적 사건이란 평가다. ‘대전환기의 러시아:문제는 무엇인가’라는 제목의 제1부는 다소 연대기적인 표현이지만 작가의 꼼꼼한 분석적 해석력이 돋보인다.변혁의 고통은 일반인들이 예견했던 것보다 훨씬 컸고,고르바초프와 옐친이 똑같이 상황을 악화시키는 중대한 잘못을 저질렀다는 사실도 지적한다.머렐은 그러나 두사람에게 대세는 불가항력적인 측면이 강했다고 덧붙인다.이과정에서 ‘민주주의와 서방’이라는 단어는 러시아에서 부정적인 이미지를 갖게 됐다는 설명이다. 나토의 팽창 문제도 지적됐다.나토의 팽창은 ‘러시아의 베르사이유 콤플렉스’를 더욱 악화시킨다면서 서방의 ‘우월주의‘에 경종을 울린다.러시아에 대한 미미한 서방의 각종 지원이나 때놓친 지원 등에 대해서도 빠뜨리지 않고 있다. 머렐의 연대기적 역사서술에 대한 해석력은 돋보인다.이미 독자들이 각종 배경들은 잘 알고 있다는 가정에서 출발했다.그의 스타일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독자들이 사전에 러시아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과 최신 정보들을 알것을 요구하기도 한다.그는 화려한 문장도 없이 뼈대만 간단하게 서술하고 있다.머렐은 니나 안드레예바라는 이름을 아무런 배경설명도 없이 쓰는 ‘실수’도 범한다.개혁을 비난하는 그녀는 데이비드 렘닉의 저서 ‘레닌의 무덤’을 읽지 않은 사람이라면 알 수 없는 인물이다.그의 책은 그만큼 내용이 풍부하다는 이야기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는 간결하지만 무미건조하지 않다.재미있으면서도 비밀스런 자료를 많이 인용하고 있기 때문이다.옐친이 1990년 고르비의 개혁을 들어 ‘뱀과 고슴도치의 결혼’이라고 한 대목도 재미있다.1993년 개혁반대세력이었던 알렉산드르 루츠코이 전부통령이 이고르 가이다르 부총리팀의 개혁을 ‘핑크빛 맘보바지를 입은 젊은 아이들’로 표현한 대목에도 패러독스가 들어있다. 그러나 이 책의 정수는 ‘고르바초프에 대한 탐험’이랄 수 있다.머렐은 고르바초프의 ‘동기와 행동’에 대해 어느 누구보다도 깊히 천착했다.고르비는 1991년 쿠데타 6개월전에 이미 정치적·이데올로기적 한계상황에 도달해있었다고 머렐은 적고 있다.그때 이미 통제력을 상실해있었고 그 자신이 ‘인질’이 돼 망설이고 있었다고 평한다.의심이 더해지자 그는 당연히 알고지내던 강경 공산주의자쪽에 붙었다.그는 동시에 알려지지 않은 민주주의 세력에 대해서도 이해하기 시작했다. 1993년 의회반란에 가담자 루츠코이와 하스블라토프 전하원의장에 대한 서술은 날카롭기 그지없고 이들의 공상에 대한 해독을 설득력있게 그려내고 있다.하지만현대 민주주의자들에 대한 비난도 설득력을 지닌다.국가분열을 통합시키는데 실패하고 있으며 일부 민주주의자들은 자신의 영달만을 위해 뛰고 있음을 지적한다.자민당 당수 블라디미르 지리노프스키에 대해서는 그가 결국 KGB(옛소련비밀경찰)추종자임을 주장한다. 옐친에 대한 서술은 다소 실망스럽다.옐친대통령의 첫임기 시절은 허송세월로 보냈다고 할 정도로 비판적인 부분이 많다.정상외교에서 술에 취해 만남을 이루지 못한 일,근무시간의 잦은 음주,이유없는 퇴청 등으로 점철된 것이 그의 첫임기였다.머렐은 이러한 것들을 서술하긴 했지만 ‘왜?’에 대한 분석은 하지 않았다. ‘민주주의로 가는 러시아’라는 책을 계기로 체첸전쟁에 대한 새 사실들이 정리되고 있다는 것을 간과할 수 없다.1995년 체첸지도자 조하르 두다예프가 클린턴과 옐친대통령의 모스크바 정상회담을 깨뜨리기 위해 공격을 개시했다는 설,옐친의 정전명령을 거역한 쪽은 오히려 러시아군이었다는 설들이 이제는 설(열)아닌 ‘역사적 진실’로 정립돼 가고 있는 것도 이 책의 큰공적이다. 원제 Russia's Transition to Democracy:An Internal Political History,1989­1996. 서섹스 아카데미 프레스(Sussex Academic Press)출판.276쪽.32달러.
  • 여순반란사건(대한민국 50년:12)

    ◎20개월 앞서 치른 ‘6·25 리허설’/진압에 미군 고문단 관여… 한국전 미 개입 레일 깐셈/주한미군 철수 연기·국가보안법 제정 촉발한 효과/좌파세력의 투쟁방식 게릴라전으로 전환한 계기로 “경찰이 쳐들어 오고 있다” 1948년 10월19일 여수시 신월동 국군 제14연대.늦가을의 어둠이 짙게 깔린 하오 8시쯤 14연대의 연병장에서는 고함소리가 적막을 갈랐다.연대 인사계 지창수 상사의 목소리였다. “경찰을 타도하자.조선인민군이 남조선해방을 위해 38선을 넘어 남진중에 있다”.지상사의 선동에 연병장에 모여든 장병들은 “옳소”를 연발했다.반대한 하사관 3명은 즉석에서 사살됐다.연병장에 모인 2천5백여명의 병력은 순식간에 무장하고 시내로 뛰쳐나갔다.여순사건은 이렇게 일어났다. ‘경찰이 쳐들어 온다’는 선동으로 일어난 여순사건은 당시의 시대상황 탓이다.해방 5개월뒤인 46년 1월부터 각 시도별로 연대 창설 및 모병업무가 시작됐다. ○병력 절반 이상이 좌익 이른바 ‘향토경비대’.14연대는 여순사건 5개월전에 창설됐지만 당시의 경비대는 경찰의 보조기관에 불과하다는 게 일반인들의 인식이었다.특히 경찰은 허술하게 조직된 경비대원들을 오합지졸로 간주하는 시선을 감추지 않았고 군인들은 일제의 주구였던 경찰이 자신들을 폄하하는 것이 못마땅했다.게다가 무기·장비·복장·급식 등 모든 처우에서 경찰에 비해 크게 뒤떨어져 불만은 팽배해 있었다. 46년부터 48년 사이에 많은 젊은이들이 군에 지원했다.새 조국의 건설을 위해,친일경력의 면죄부를 받기 위해,또는 공산혁명을 일으키기 위해 군을 선택했다.향토경비대 입대과정에서는 신원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하지만 처우 등의 불만때문에 군을 그만두거나 탈영하는 이가 적지 않아 충원작업은 어려움을 겪었다. 14연대가 여순사건의 진원지였던 까닭은 병력의 절반이상이 좌파였기 때문이다.미군정의 무장단체 해산령과 남로당의 조직적 침투로 군은 적화돼 있었던 것이다.군정의 해산령은 좌익계열의 분열을 가져왔으며 좌파들은 경찰의 추적을 피해 군대로 물려들었다.남로당은 사병들에게 ‘반경의식’을 고취시켜 미군정의 물리적 기반인 경찰과 군의 반목을 조장하려 했다.다시말해 군을 정치투쟁의 공간으로 활용하려 했다는 것이다. 지창수 상사가 연병장에 서기 직전,당세포 40여명과 함께 무기고를 미리 점령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좌익세력때문에 가능했다.좌익은 비상계엄령이 발령된 제주치안 확보를 위해 연대가 출동하기 전날밤에 여순사건을 일으켜 좌익반란을 본토에 확대하려 했다는 게 당국의 시각이다.국무총리 겸 국방장관인 이범석은 여순사건 진압 직후 “공산주의자들은 여수에서 반란을 일으켜 제주사태를 남한 각지에서 전개하려 했다”고 지적했다. 거리로 뛰쳐 나간 반군들이 여수시가지로 진입한 것은 5시간여 뒤인 20일 새벽 1시20분.이들은 여수읍내 좌익단체와 학생단체에 무기를 지급했고 상오 3시쯤에는 여수경찰서를 점령했다.반란군은 이어 주요기관을 완전 장악했으며 거리에는 온통 인공기의 물결을 이뤘다.여수 인민위원회가 복구됐고 인민재판소는 체포된 경찰,국군장교,지주,그리고 우익인사들을 처형했다.이 때숨진 경찰관은 5백여명.반란군은 식량창고를 개방해 쌀배급을 실시했으며 창고에서 흰 고무신을 꺼내 주민들에게 나눠줬다.이런 인민행정은 14연대 병력이라기 보다는 남로당과 연계된 토착 좌익세력에 의해 이뤄졌다.보복정책과 동시에 선심정책이 이뤄졌던 것이다. ○식량창고 탈취 쌀 배급 반란군은 상오 8시 순천행 통근열차를 타고 북상하기 시작해 순천읍을 장악했다.이어 광양,곡성,구례,고흥 등 동부 전남지역을 손아귀에 넣었고 경찰은 반군이 오기도 전에 도망하는 일도 벌어졌다.군인들의 봉기는 토착 좌익세력들과 어울려 거대한 민중봉기로 발전했다. 반란군이 순천에 진입할 즈음 서울에서는 긴급히 비상회의가 소집됐다.국방장관 이범석,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 로버츠 준장,경비대총사령관 송호성 준장 등이 참석한 회의는 작전지도부를 광주에 급파하기로 했다.21일에는 송호성 사령관이 반군토벌사령관으로 임명됐다.전군 지도부가 총력대응 태세로 대응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토벌군은 반란 사흘째인 22일 계엄령을 선포한 가운데 진압작전에 나섰으나 초기에는 별다른 성과를얻지 못했다.군 자체가 지휘불능과 병력 붕괴상태가 나타나기도 했다.가까스로 순천 탈환작전에 성공한 토벌군은 23일 여수 진압에 나섰다.송호성 사령관은 부산에서 급파된 병력 지원을 받아 바다에서 박격포 포탄을 쏟아 부었다.하지만 박격포 포사격의 미숙과 반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엄청난 사상자만 낸 채 실패하고 말았다. ○AP통신기자도 사망 송사령관은 24일 2차 여수진압작전을 직접 폈으나 오히려 자신이 반군의 기습으로 부상만 입었다.AP통신기자가 총탄에 맞아 숨진 것도 이 때였다.두차례의 실패를 맛본 토벌군은 반란 8일째인 26일 대대적인 여수 탈환작전에 나섰다.이날 정오쯤 경비정 6척이 여수반도를 포위한 채 배위에서 엄청난 박격포 포격을 가했다.여수시내는 불바다로 변했고 5분의 3은 잿더미로 바뀌었다.하지만 토벌군의 작전이 개시될 즈음 반란군들은 모두 시내를 빠져나간 뒤였으며 학생들과 좌익단체 회원들만 남아 있었다.27일에야 여수 시내를 완전 탈환함으로써 9일동안의 여순사건은 진압됐으나 2천3백여명의 목숨을 앗아갔다.2천8백여명이 군사재판에 회부됐다. 여순사건으로 국가보안법이 제정됐으며 주한미군 철수도 연기됐다.전남 동부지역을 휩쓴 여순사건은 좌파세력의 투쟁방식이 대중투쟁에서 게릴라투쟁으로 바뀐 것 뿐이었다.지리산으로 들어간 반군세력 주력들은 벌교 등지에서 유격전으로 빨치산 투쟁을 벌였다.해방후 좌우익이 반란과 진압으로 대규모 충돌한 여순사건은 2년뒤 한국전쟁을 예고하는 전주곡이었다.다시말해 여순사건은 한국전쟁의 리허설이었고,전쟁은 사실상 이미 시작됐던 것이다. 50년이 지난 오늘도 여순사건의 상흔은 여전히 지워지지 않고 여수·순천주민들에게 남아 있다.여수·순천 시민들은 여순사건을 ‘여순병란’으로 바꿔 불러주기를 바라고 있다.시민들의 봉기가 아니라 ‘향토 경비대 14연대’의 반란이라는 것이다. ◎미군기 정찰­진압 병력 수송 참여/주한 미 24군 ‘G­3보고서’ 입수 확인 여순사건에서 미국의 역할은 결정적이었다.주한 미군의 보고서는 당시의 상황을 사태발생과 진압 등 5개 분야에 걸쳐 생생하게 기록하고 있다.기록자는주한 미24군 G­3.제목은 ‘여수와 대구 등지에서의 반란사’로 돼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주한미군은 이승만 대통령의 승인없이는 사건에 개입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워 놓고 있었다.주한미군 임시군사고문단(PMAG)의 로버츠 단장은 미국인들이 직접적인 전투에 참여하지 말 것을 명령했다.따라서 미군은 지휘역할을 맡았다. 주한미군 군사고문단 G­3의 제임스 하우스만 대위,G­2의 존 리드 대위 등은 미군의 직접 개입없이 가장 빠른 시일내 반란군을 포위·진압할 수 있는 작전을 수립했다.이에따라 하우스만 대위와 리드 대위 등은 송호성 경비대총사령관,육본 정보참모부장 정일권,정보국장 백선엽 등과 함께 광주로 직접 내려갔다고 기록하고 있다. 또 미군의 C­47 수송기는 한국군 병사,무기,기타 물자를 대구에서 실어 날랐으며 주한미군 군사고문단의 정찰기들은 반란기간 내내 여순지역을 감시했다. 미군 비행사들은 여수의 반란 세력이 2개의 군 중대와 1천여명의 민간인으로 구성돼 있는 것으로 보고했다.여순사건이 2년뒤 한국전쟁의 리허설이었듯이 미군의 한국전 참전 조짐도 이때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 18세기 불 사상가 디드로 ‘라모의 조카’ 번역판 나와

    ◎모든 합리적인 것들을 부정하는 ‘광기’/피카레스 소설 ‘전형’/대혁명 부른 시대정신 붕괴/지식인의 분열­와해 묘사 18세기 프랑스의 대표적인 계몽주의 사상가이자 문학가인 드니 디드로(1713∼1784)의 장편소설 ‘라모의 조카’(세계사)가 고려대 불문과 황현산 교수의 번역으로 나왔다.디드로는 튀르고·볼테르·루소·몽테스키외·케네 등과 함께 프랑스 ‘백과전서파’의 중심을 이루는 인물.특히 이번에 국내에 처음 소개된 ‘라모의 조카’는 풍자문학의 걸작으로 디드로의 사상적 면모뿐 아니라 문학적 정신까지 아우러 살펴볼 수 있는 묵직한 작품이어서 주목된다.디드로의 소설 가운데 현재 우리말로 번역된 것은 ‘운명론자 자크’‘수녀’ 정도가 고작이다. ‘라모의 조카’는 한 건달 예술가의 삶을 그린 피카레스크소설(악한소설) 유형에 속한다.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진지한 철학소설로도 읽힌다.디드로는 바로 이 소설의 틀을 빌려 자신의 사상적 적수들인 반계몽주의자들을 날카롭게 풍자한다.그의 풍자의 화살은 권력에 아부하고 기생하는어용문인들은 물론,당대 사회와 풍속,예술,학문,교육 등 사면팔방에 미친다. 소설은 철학자 디드로가 어느날 장기 두는 사람들을 구경하기 위해 카페에 들렀다가 유명한 음악가 장 필립 라모의 조카인 장 프랑수아 라모를 만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장 프랑수아는 명색이 음악가이지만 자신의 재능을 발휘하지 못한 채 온갖 직업을 전전하며 하루하루 불안정한 삶을 이어가는 무뢰배 신세다.그는 ‘평생에 단 한번 상식을 가졌던 탓’에 이제까지 몰상식한 아첨꾼과 광대놀음을 하는 대가로 편안하게 살고 있던 집에서 쫓겨난다.이에 대한 앙심으로 그는 자신의 옛 보호자들과 그들의 집에 드나드는 식객들을 헐뜯는다.그런 한편 틈틈이 철학자 디드로를 상대로 다양한 지적 토론을 벌인다.억지소리가 뛰어난 통찰로 이어지고,신세 한탄이 예리한 자기반성과 얽혀들며,익살스런 재담에 매혹적인 판토마임이 뒤섞이는 가운데 때마침 오페라 개막을 알리는 저녁 종소리가 울린다.장 프랑수아는 “마지막에 웃는 자가 잘 웃는 자”라는 말을 던지고 떠난다. 디드로는이 소설에서 지식인의 철저한 자기와해와 분열의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한 시대가 정신적으로 허물어지는 정황을 생생하게 드러낸다.이 정신의 와해 끝에 프랑스 대혁명이 일어난다.이 소설은 헤겔의 ‘정신현상학’과 미셸 푸코의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 적잖은 영감을 줬다.헤겔은 ‘정신현상학’에서 정신이 부정에 이르는 어떤 순간,즉 ‘순수사유’와 퇴폐의 순간을 설명하기 위해 이 작품을 이용했다.또 ‘고전주의 시대의 광기의 역사’에서 푸코는 ‘의도적인 미친 짓의 세계’와 ‘광기의 세계’ 사이의 단절을 나타내는 작품으로 ‘라모의 조카’를 소개했다.‘라모’의 광기어린 재치와 디드로의 백과사전적인 박식을 따라가기에 숨찼다고 번역의 어려움을 토로하는 황교수는 이 작품에 유달리 적극적인 의미를 부여한다.“무질서를 질서의 체계로 만든 이 소설은 모든 합리적 체계가 의혹의 대상이 된시대,바로 우리 시대의 텍스트이다”
  • 후세인 제거보다 봉쇄가 효과적/리처드 하스(지구촌 칼럼)

    유엔 무기사찰단이 이라크에 다시 들어갔으며 지금까지는 이라크가 이들의 일을 방해하지 않았다는 소식이다.그러나 이렇다고 해서 문제가 해결됐다는 것은 아니다.이같은 소식은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남겨논 생화학 무기와 미사일을 더 잘 감추는데 지난 4개월을 잘 써먹었다는 사실을 말해줄 따름인 것이다. ○반정세력 지원 어려워 이런 결과로 세계는 상당한 대량파괴 무기를 소지한 후세인의 나라 이라크와 계속 얼굴을 맞대게 됐다.이때 미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암살이 한 방안이 될 수 있을까.한 마디로 이는 ‘아니다’이다.쿠바의 카스트로가 계속 집권하고 있는 사실이 시사해주듯 이는 어려운 방안이다.더구나 암살은 법률적,도덕적 및 정치적인 문제를 한 보따리나 미국에 안겨줄 터이며 미국은 개방된 사회로,보복을 노리는 집단들에게 쉽게 노출되는 곳이다. 또 다른 방안은 아프가니스탄 경험에서 도출될 수 있다.이라크 반정부 세력을 미국이 돈,방송,무기 및 공군력으로 지원해 후세인의 축출을 촉진시킬수 있다고 여러 사람들은 주장한다.그러나 이 제안은 이라크 반정부 세력이 취약한 데다 분열되어 있다는 현실을 간과하고 있다.강력하고 통일된 반대세력을 이라크에 구축하는 일은 몇년이 걸릴지도 모르는 불확실한 사업이다.이를 시도하더라도 이라크가 야기하는 보다 단기적인 즉각적 문제는 또다른 정책노선을 요구한다. 아프가니스탄 보다 더 유사한 경험으로 1956년 헝가리 사태와 쿠바 피그만 사태를 떠올릴 수 있다.이때도 일정 지역을 차지한 반정부 세력을 지원하면서 문제의 정권에 어려움을 안겨주긴 했지만 그들 세력이 정권을 잡을 만큼 충분치는 못했었다. 이라크 반정부 세력에 직접적인 군사지원은 위험한 시도로 문제를 더 복잡하게 만들 수 있다.반대세력에 대한 제한적 지원이 충분치 않은 상황에 봉착하면 미국은 전면적인 공략을 감행하지 않을 수 없는 처지에 빠질 수도 있다. ○국제적 연대 강화 시급 미국이 2차대전 직후 일본과 독일에 했던 것처럼 지상군 투입으로 이라크를 점령해야 된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도 놀라운 것은 아니다.그러나 이같은 이라크‘새나라 세우기’는 수년이 걸릴 것이며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많은 희생자가 나올 것이다.저항이 실제 어느 정도가 될 것이며 보복 테러가 얼마나 심할지 예측할 수 없다.또 어떤 성격의 정권과 체제가 새로 들어설지에 대해서도 확신할 수 없는 것이다.그래서 이런 행동안에 대한 미국내의 호응도는 낮으며 중동 지역에서도 이같은 방안에 대한 지지는 거의없다. 후세인을 쫓아내는 것을 포기할 때 그 대안은 묶어두는 봉쇄책이다.이 전략에서 미국의 최우선 목표는 이라크의 인근 지역 위협 능력을 제한하고 걸프전 종전시 채택된 유엔 안보리 결의안을 이행토록 촉구하는 것이다.후세인 제거는 차후로 논의될 다음 목표다. 봉쇄 전략은 결코 거저먹는 일이 아니다.미국 혼자 해서 될 일이 아니다.지난 7년동안 후세인의 위협을 저지하는데 큰 도움을 준 국제적 연대를 최대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미국은 중동평화와 관련해 보다 적극적인 정책을 택해야 한다.이라크 문제를 외교 최우선 과제로 삼을 필요가 있다.러시아의 고립감을 심화시키지 않도록 나토 확대 속도를 늦추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또 미국의 쿠바,이란 정책에 동조하지 않는다고 프랑스 등 다른 여러 나라들에 경제적 손실을 가하는 정책도 재고할 필요가 있다. ○이라크 점령책도 무리 이라크가 또다시 유엔 사찰단을 막거나 군사력을 결집하거나 할때 택할 군사응징은 대대적이고 지속적이어야 한다.공격 목표는 공화국 수비대,보안부대,통신망 등 후세인의 정권 기반이어야 한다. 전쟁억지 방안도 고려할 사안이다.이라크가 만약 대량살상 무기를 사용하면 미국은 후세인 정권을 타도할 전면전에 나선다는 점을 후세인에게 명백히 해야 하는 것이다. 이런 봉쇄 전략은 가능할 뿐 아니라 충분히 가동될 수 있다.지난 냉전 때는 물론이고 한반도에서 계속 감지할 수 있는 원칙이지만 봉쇄 정책은 성공하겠다고 맘만 단단히 먹으면 성공하는 것이다.반대로 후세인을 제거하겠다는 일념의 정책은 성공할 기회가 없는 한 실패하기 십상인 것이다. 무릇 정책은 바람직하기도 해야겠지만 또 가능한 것이어야 한다.또 어떤 특정 정책을 밀고갈 경우의 비용과 혜택은 다른 대안 때보다 나아야 한다.이런 기준으로 보아 후세인을 무너뜨리는데 초점을 맞춘 정책은 현재 미국에게 가능한 최선의 선택이 아니다. 그 결과,처칠의 말대로,최선책만 보고 다른 것들은 생각조차 않을 때는 제일 나빠 보이는 봉쇄책이 그중 나은 것이다.
  • 나무의 영혼/정진성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굄돌)

    가끔씩 전에 살던 아파트 근처를 지나칠 때면 중요한 일을 놓아두고 도망친 듯한 켕김을 느낀다.몸에 초록색 그물 같은 것을 두른채 주위의 벽돌과 콘크리트 더미에 가려,힘들게 올린 팔만이 겨우 보이는 그 나무때문이다.나이가 730살이나 된다는 서울의 최장수 느티나무. 그곳에 이사했을 때 느티나무는 참으로 당당한 위용을 자랑하며 마을에서 수호신 대접을 받고 있었다.주민들은 해마다 그 나무에 제사를 지냈다.매봉산을 배경으로,주변의 그보다는 어리지만 꽤 나이든 잔가지의 나무들과 함께서 있는 그 느티나무는 서울 어느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장한 모습이었다. 그 나무의 시련은 주변의 연립주택 단지를 사들인 재벌 건설회사에 땅이팔리면서 시작되었다.회사는 어떤 교수들에게서 유리한 환경영향평가를 받아와 나무를 보호하려는 구청의 조사를 뒤엎고 아파트 건립계획을 진행시켰다.처음에는 나무를 살리고자 애쓰는 듯하던 구청 각 부서는 완연 태도가 달라졌고 밤마다 주민들의 애타는 모임이 이어졌다. 그러나 주민들의 노력은 지역이기주의로 몰리고 행정은 기업 쪽으로 기울어지는 가운데,주민들 내부에서도 분열과 이탈이 생겨 그동안 늦춰져온 건설작업이 차츰 기지개를 편 것이다.지난 일년간 별 진전이 없어 보이던 건설현장에서 느티나무의 주변에 그물을 치고 연립주택 철거가 한창이다. 이제 고층아파트로 철갑을 두른 나무는 바로 창문을 마주한 새 주민들의 눈에만 모습을 보인 채,시름시름 죽어갈 것이다.나무에도 영이 있다는데,나무를 죽이는 데 공모한 땅주인과 기업 관계자·관리·교수들은 나무의 영혼을 어떻게 달랠 것인가.길잃은 환경정책 주변을 700살이 넘은 나무의 영혼이 배회할텐데….
  • 일 자민 ‘제1당 색깔’ 유지할까

    ◎야권 거대신당 결성으로 2강구도 재편/참의원 선거전후 연대요구 목소리 커질듯 【도쿄=강석진 특파원】 일본 정계가 다시 재편되게 됐다. 민주당,민정당,신당우애,민주개혁연합 등 야당권의 4개 정당은 12일 열린 ‘정권전략회의’에서 하나의 정당으로 합치기로 12일 최종 합의했다. 당명은 야권 최대정당인 민주당의 당명을 그대로 이어받기로 하고 다음주 합당준비회를 설치,신당의 기본이념과 정책,지도부 인선 등을 협의해 오는 4월말까지 합당작업을 마치기로 했다.즉 3개 정당이 민주당에 합류하는 형식으로 정식 출범시기는 5월초 연휴 시작 직전이 될 전망된다. 새 정당은 중의원 100명,참의원 40명 등 140명 안팎 규모로 자민당에 이어 제2당으로 떠오른다.즉 야당권이 9개의 군소정당 체제에서 벗어나 1중5약으로 재편되게 된다.5약은 오자와 이치로 당수가 이끄는 자유당,공산당,공명당 계열인 신당 평화,공명 그리고 개혁클럽 등이다. 이들이 합당하기로 한데는 오는 7월 치러지는 참의원 선거에서 야권이 분열된 채로 선거에 임하면 지리멸렬한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공통된 우려 때문이었다.이들은 정치노선으로서는 민주중도,기본정책으로서는 지방분권 추진,규제완화 등 누가 들어도 받아들이기 쉬운 것들을 내걸었다.하지만 안보정책과 관련해서는 사회당 출신자가 많은 민주당과 보수계 의원이 많은 민정당등 사이에 조정이 난항을 겪을 가능성이 높다. 당수로는 민주당 대표인 간 나오토(관직인)의원이 유력시되고 있는 가운데민주당 독주를 경계하는 쪽에서는 하타 쓰토무(우전자) 전총리 등을 거명하고 있다. 한편 야권의 재편에 따라 의원 53명 규모의 자유당을 이끄는 오자와 당수의 정치적 입지는 더욱 좁아지게 됐으며 자민당도 참의원 선거에서 낙승을 기대하기는 쉽지 않게 됐다.이에 따라 자민당 내에서는 참의원 선거를 전후해자유당 등과의 연대를 모색하는 정치인들의 움직임이 활발해질 것으로 보인다.여하튼 일본 정치권은 신 민주당의 결성으로 양대 정당제의 색채가 강해지게 됐다.
  • 변화·내분 기로의 러 공산당/탄생 100돌의 명암

    ◎온건주의자들 옐친과 타협… 개혁노선 공개 지지/레닌신봉 금진파도 정체성에 ‘새 좌표’ 설정 막막 【모스크바=류민 특파원】 러시아 공산당이 13일 탄생 100주년을 맞았다.정확히는 1898년 3월13일부터 15일까지 3일 동안 혁명가인 레닌,플레하노프 등은 현재 벨라루시공화국의 수도인 민스크에서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의 결성을 꾀했다.이 러시아 사회민주노동당이 바로 그해 가을 탄생한 러시아공산당의 모태다. 그러나 오랜 역사의 러시아공산당은 이제 발전은 커녕 정체감 위기 속에 분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새 러시아’에서 공산당의 역할은 무엇인가.옐친정부의 협력자인가 아니면 적인가.공산당 이론에 충실한 반대자인가 급진적인 무리들인가.옛 이론에 충실한 고위층들이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공산당은 방황하고 있다. 마르크스주의자에 염증을 느끼고 정치보다는 오히려 경제적 이익에 관심이큰 ‘신세대 공산주의자’에게 러시아 공산당은 이제 아무런 호소력도 없다.겐나디 주가노프 러시아 공산당 당수는 최근 옐친 대통령에게 ‘연립정부’의 뜻을 비추다 ‘퇴짜’도 맞았다.이 연립정부 제안은 곧바로 공산당의 분열을 가속시킨다.“공산당을 헐값에 팔아넘기는 것이 아니냐”는 것이다.일부 관측통들은 당이 최소한 두조각이 날 가능성을 벌써부터 점치고 있다. 서방국가들은 소련체제의 붕괴를 ‘공산주의의 사망’으로 연결했었다.그러나 공산당은 여전히 러시아의 강력한 정치세력으로 존재하고 있다.국가두마의 다수당이요,러시아 남부 ‘레드벨트’에서 공산당의 위력은 대단하다. 그렇다면 오늘날의 공산당은 무엇인가.당내 일부세력은 서방의 사회민주당을 본따며 변화하려 든다.하지만 상당수는 여전히 소련식 전체주의를 숨김없이 드러내며 미국을 적대시한다. 변화의 한 축에는 주가노프 당수가 자리잡고 있다.그는 온건하고 합리주의적인 공산주의자의 선봉으로 꼽힌다.마르크스주의보다는 러시아의 민족주의에 호소한다.때때로 시장개혁과 자본주의자들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일부분파들은 그를 실용주의자로 분류해 비난한다.러시아 정치무대에서 옐친과 타협하며 그와 권력을 공유하려 애쓰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한 축인 급진주의를 대표하는 블라디미르 세마고 하원의원은 “공산당이 좌파로서 새 좌표를 설정하지 않으면 안되며 레닌주의는 21세기에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정작 정체성에 대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공산당의 정체성과 관련한 최대의 아이러니는 옐친정부 지도부의 상당수들이 전직 공산당 간부라는 점이다.한 몸에서 나온 두개의 머리가 러시아 정치를 괴롭히고 있다.
  • 세계의 알바니아인 탄압 중단을(해외사설)

    오래 전부터 우려해 오던 ‘제2의 보스니아 사태’가 알바니아인들이 90%를 차지하는 코소보에서 불붙으려 한다.코소보인들은 억압 정책을 펴며 부분적 자치 요청마저 묵살해온 세르비아 정부에 독립을 주장해 왔다.세르비아 지도자 밀로세르비치와 동일시 되는 ‘대 세르비아’주의와 마찬가지로 민족주의적인 ‘대 알바니아’주의가 맞부딪칠 위기다. 세르비아 경찰을 알바니아 민족주의자 그룹이 살해하면서 최근의 위기가 촉발되었다.이같은 경찰살해는 충분히 예견되온 일이었으나 세르비아 정부는 무고한 주민들에까지 무차별적인 무력을 행사했다.미 국무부는 그간 알바니아 민족주의 단체인 코소보 해방군이 테러리스트 집단이라는 세르비아 정부의 주장에 동조하고 알바니아계 주민들의 분리주의에 찬동하지 않았지만 이번 세르비아 정부의 대응이 ‘지나쳤다’고 비판했다. 옛 유고 분열의 장본인인 밀로세르비치는 미국을 도와 보스니아내 세르비아에 보다 온건한 정권이 자리잡도록 하는 등 국제사회의 인정을 받으려 했었다.덕분에 세르비아는 바로 1주일 전 미국 공항에 착륙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미국은 또 사안별로 코소보 갈등을 해결하려는 세르비아 정부 방침을 지지했으나,이제 이같은 진전과 약속은 의미를 잃게 될 상황이다. 외교적 해결을 위한 회동이 런던에서 있을 예정이다.당사국들이 제동을 잃고 폭력행위에 빠져들지 않도록 해야 한다.폭력행위가 격화되도록 했다면 세르비아는 국제적 고립을 피할 수 없을 것이며,알바이아인들은 계속 무시될 것이다.협상 테이블에서 모든 정치적 변화가 이뤄져야 한다.필요한 경우 세르비아에 대한 무역제재는 최강도가 되어야 한다.나토의 무력사용에 대한 방침도 재고될 수 있다.미국은 지난 92년 세르비아가 무력공격에 나섰을 때경고를 주었고 이 경고는 지금까지 거듭 천명되었다.밀로세르비치는 미국의이 경고를 혹시라도 시험할 생각은 버려야 할 것이다.
  • “21세기 초강대국 건설 매진”/중 정부 보고 내용

    ◎시장경제 대비 행정·금융·국유기업 개혁/대대만 통일 협상은 1국 2체제 방식 적용 【북경=정종석 특파원】 9일 상오 9시(현지시간) 북경인민대회당.제9기 중국 전국인민대표대회(전인대) 개막일.정부사업보고에 나선 이붕 총리가 “우리는 중국 특색이 있는 사회주의 건설의 길을 따라 21세기를 향해 전진하고 있다”고 말문을 열자 대회장 안에는 우레와 같은 박수가 터져나왔다. 앞으로 5년 동안 중국이 걸어갈 길을 밝힌 전인대 개막식의 화두는 단연 ‘21세기’와 ‘초강대국 중국’에 모아졌다.이총리는 “우리나라의 사회주의 현대화 위업은 21세기를 향해 전면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며 여러 차례 ‘21세기’를 강조한 뒤 연설을 마쳤다. 미국의 연두교서에 비견되는 이 보고서는 올해부터 시작하는 중국의 제9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 기간 중의 중점사업을 절반 이상 담고 있다.오랫동안 ‘철밥통(철반완)’으로 상징돼 온 국유기업의 개혁과 정리실업자 재취업 문제,아시아의 금융위기와 인민폐(위안화)의 환율안정 등 당면한 경제문제 해결을 위해 국가가 진력하겠다는 내용이다.미국에 대항하는 21세기 초강대국 건설을 위해서 그만큼 경제건설에 매진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정부가 중시하는 또 다른 현안은 행정부기구 개혁이다.과거 계획경제 시절에 마련한 현재의 방만한 정부기구를 갖고서는 국제화시대의 시장경제질서에 대비할 수 없다는 판단이다.그래서 주용기 부총리의 전폭적인 주도 아래 행정부인 국무원의 부와 위원회를 현재의 40개에서 29개로 줄이기로 했다.특히 직접 경제를 관리하는 전문부서를 줄이고 거시적 조절통제 기능을 강화하겠다는 것이다. 중국은 외교문제에 있어서는 미국,러시아,일본 등 세계 3강과의 친선관계를 유지하는 등 교과서적인 원칙론만을 밝혔다.그러나 대만문제에는 강경한 입장을 취했다.대만은 신성한 중국의 영토에서 갈라놓을 수 없는 일부분이라고 못박고 대만독립을 조작하는 등 각종 분열활동을 단호히 반대한다고 천명했다. 그리고 홍콩과 같은 ‘1국 2체제 방식’을 적용,평화적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거듭 표명했다. 한반도 문제는 종전과 달리간단히 표현했다.남(호혜협력 촉진) 및 북(친선관계 수호)과도 관계를 유지,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힘써 수호할 것이라고 밝혔다.종래의 ‘남=경제’‘북=정치’라는 한반도정책의 틀을 유지하면서 한반도의 전쟁방지 억제 등 안정에 체중을 싣고 있다.이는 만일 한반도에 전쟁같은 큰 돌발사태가 일어나면 중국의 경제발전 야망에도 큰 차질을 초래하기 때문인 것 같다.
  • 여야 총리인준 대타협하라(사설)

    총리인준투표 문제로 꼬인 정국이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이 정국이과연 어디까지 갈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정치권의 이같은 파당싸움에 국민들만 볼모로 잡혀 있는 꼴이다. 여권이 여론을 업고 서리체제를 강행한데 이어 야당인 한나라당은 김종필 총리서리 직무정지가처분 신청을 내려 하고 있고 서리체제 자체의 무효화를 위한 헌법소원까지 검토중이라고 한다.아울러 야당은 지난 2일의 총리인준투표 부결을 확인키 위한 190회 임시국회 소집까지 요구하고 나섰다.단독국회도 불사하겠다는 으름장이다. 서리체제는 여야 모두에게 최악의 선택이다.행정공백의 장기화에 대한 우려때문에 서리체제는 일단 불가피했던 일면이 있지만 결코 오래 끌수는 없는 응급처방일 뿐이다.서리체제가 설령 법률적으로 하자가 없다고 하더라도 정치적으로 문제가 될뿐아니라 반대하는 다수 야당을 상대로 무슨 정치를 할수 있겠는가. 당장에 급한 추가경정예산안 처리며 새정부가 추진하려는 각종 개혁입법 등 무엇 하나 되는 일이 있을것 같지않다.일단은 국민여론이 여당편에서있으나 시간이 지나면 여권의 정치력 부재가 비판의 초점이 될것이다.새정부의 초대내각이 위헌 시비에 휘말려 있다는 사실 자체가 정부·여당에게는 정치적 부담이다. 한나라당은 한나라당대로 여론의 집중적인 비판속에 결국엔 당내 분열요인으로 작용하게될 것이다.이는 필시 조기정계개편을 촉진하는 촉매 역할을 하게 될게 불을 보듯하다.이처럼 서리체제를 그대로 두고서는 결코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이 정국을 풀수 없다. 여야간 대타협을 시도하는 길뿐이다.무엇을 갖고 타협을 할지는 양측지도부가 허심탄회한 심정으로 접점을 찾아내야 할것이다.우선은 총리인준투표에 대한 정치적 해결책부터 모색해 나가야 할것이다.
  • 안보리,결의안 해석싸고 또 알력

    ◎이라크 사찰 거부때 ‘가혹한 결과’ 문구/미 “군사공격 의미” 러·중 “아니다” 맞서 【워싱턴·모스크바 AP AFP 연합】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는 이라크가 유엔무기사찰 합의를 위반하면 ‘가장 가혹한 결과’(severest consequences)에 직면할 것이란 대이라크 경고 결의에 대한 해석을 놓고 또 다시 분열 양상을 드러냈다. 빌 클린턴 미대통령은 3일 “‘가장 가혹한 결과’의 의미는 분명한 것”이라면서 안보리가 전날 채택한 결의안은 이라크의 무기사찰활동 거부시 군사공격에 나설 수 있는 권한을 미국에 부여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마이클 매커리 백악관대변인도 안보리 결의안이 ‘가장 가혹한 결과’에 관해 구체적 언급을 하지 않았으나 이는 “군사적 행동을 분명하게 의미하는 것”이라고 규정했다. 반면 결의안 작성 과정에서도 미국과 영국에 맞서 이라크의 합의 위배시 유엔의 자동적 무력개입 규정 명시에 제동을 걸어온 러시아와 중국은 여전히 이번 결의가 자동무력개입을 허용한 것은 아니라는 견해를 밝혔다. 겐나디 타라소프 러시아외무부대변인은 안보리에서 채택된 대이라크 경고 결의안이 이라크의 무기사찰 합의 준수를 강제하기 위한 자동적 무력사용은 배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 우드로 윌슨(미국의 대통령 문화:13)

    ◎‘민족자결주의’ 제창 국제평화 기본틀 다져/독점기업·세제 등 개혁… 노동자보호 앞장/‘이상주의자’ 평가속 20년 노벨평화상 수상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민족자결주의로 한국민에게도 익히 알려져 있는 28대 미국대통령 우드로 윌슨은 이른바 ‘버지니아왕조’,즉 버지니아주 출신 대통령 8명중 마지막 대통령 이다. 프린스톤대 총장을 지낸 학자 출신의 이상주의자로 알려진 윌슨 대통령은 1차대전의 와중에서 미국익의 성실한 수호자역을 맡아 국제정치의 무게중심을 유럽에서 미국으로 옮겨 놓은 훌륭한 대통령으로 평가되고 있다.대통령은 도덕적으로나 정치적으로나 명실공히 국가의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던 그는 온화한 외적 분위기와는 달리 강력한 지도력을 행사했다. 그의 생가가 있는 스톤튼은 애팔래치아산맥 동부의 빼어난 절경인 셰난도계곡 복판에 위치해 있으며 윌슨의 도시로 유명하다.이 작은 도시에서는 도시 설립 250주년을 기념,지난해 9월부터 올 1월말까지 5개월 동안 생가에서 ‘스톤튼의 이야기들’이라는 제목의 전시회를 가졌다. ‘윌슨시대의 도시(1855­1912)’라는 부제가 붙은 이 전시회에는 윌슨이 이곳 장로교회의 목사관에서 태어나 자라고 대통령이 되어 이 도시를 떠났던 때까지,사진과 각종 유품 등 당시의 생활상을 상세히 진열해 윌슨을 키워낸 이 도시의 어제와 오늘을 잘 살펴볼수 있게 했다. ○한국독립 운동에 침묵 이곳의 윌슨 사적지에는 그의 생가가 그대로 보존돼 있으며 새로 지은 박물관과 부친 조셉이 시무하던 교회,설립한 대학 등이 시가지 곳곳에 그대로서 있다.우드로 윌슨 재단에 의해 사적지 내에 세워진 박물관에는 윌슨의 존스 합킨스대 박사학위논문을 책으로 펴낸 ‘의회 정부론’를 비롯,‘민주주의 국가론’‘분열과 통합론’‘조지 워싱턴’‘미국 민중사’ 등 그의 명저들을 비롯,1차대전과 관련된 많은 자료들이 전시돼 있다. 프린스톤 총장에 이어 뉴저지 주지사를 역임했던 윌슨 대통령은 총장 당시 리승만 대통령에게 박사학위를 수여함으로써 한국과의 인연을 시작했다.그러나 3·1운동 이후 임시정부수반으로조선독립의 필요성을 역설하는 리승만의 거듭된 주장에 그는 이렇다할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한국민에게는 섭섭한 감정을 남기고 있다. 20세기 초 시어도어 루즈벨트 대통령에 의해 미국내 일기 시작한 혁신주의운동은 정당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윌슨에 의해서도 계승됐다.남북전쟁 이후 경제적 사회적 침체와 함께 사회 도처에 만연된 부정부패를 일소하여 미국을 진정한 민주사회로 개혁하자는 이 운동의 가장 큰 목표는 당시 모든 폐해의 근원이 되고 있던 국내의 독점기업을 타도하는 것이었다. 윌슨이 내세운 정강은 바로 이같은 사회적 욕구를 반영한 것으로 기업의 독점을 와해시켜 시장원리에 따른 자유경쟁을 부활시키자는 이른바 ‘신자유(New freedom)’였다.‘신자유’는 대대적인 반향을 불러 일으켰고 재선을 꾀하던 윌리엄 태프트 대통령은 무릎을 꿇어야 했다. 그는 백악관에 입성하자마자 대중을 독점기업의 강력한 지배로부터 해방시키고 개개인을 모든 형태의 압제로부터 자유롭게 하기 위한 정책을 내세웠고 이를 위해 개혁주의자들을 전면에 포진시켰다.대표적인 정책으로는 관세인하,연방소득세 신설 등 세제개혁과 연방지불준비법 등 은행제도의 개혁이 있었다.루즈벨트 시대의 셔먼법보다 훨씬 강화된 독접 규제법인 ‘클레이턴 트러스트 금지법’도 제정했다. ○전쟁중 경제활황 재선 윌슨 대통령이 이같이 국내문제에 심혈을 쏟고 있는 동안 1914년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총성으로 인해 발발한 1차대전은 미국에 국제정치의 중심역할을 맡게하는 계기를 가져왔다.초기에 미국은 중립을 선언했고 급증하는 군수수요는 미국의 경제활황을 가져다 주었다.이같은 상황에서 16년 그의 재선은 순조롭게 이뤄졌다. 그러나 독일군 잠수함의 집요한 미국 상선 공격은 1917년 4월 마침내 미군의 참전을 불러오게 했다.미해군과 육군의 참전은 전세를 급속히 반전시켰으며 이듬해 1월 윌슨은 1차대전 이후 국제평화의 기본틀이 된 유명한 ‘14개항 원칙’을 발표했다. 자유주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원칙에 따라 전후의 세계질서를 재편하려는 의도가 담긴 이 선언의 주요 내용은 ▲공개외교 ▲평화시나 전쟁시 항해의 자유 ▲군비축소 ▲자유무역의 원칙 ▲식민지 요구에 대한 공정한 판결 ▲영토본전을 위한 국제연맹 창설 등으로 돼있다. 이 선언은 파리평화회의를 가져왔고 이 회의에서는 국제연맹규약이 포함된 베르사이유조약을 도출해 냈다.그러나 집단안전보장을 골자로 하는 국제연맹의 설립은 윌슨에게 뜻하지 않은 정치적 부담을 안겨주었다.공화당이 가맹국의 내전에 간섭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상호 불간섭의 원칙을 표방했던 먼로주의에 위배된다는 이유로 반대입장을 밝혔다. 윌슨은 국민들에의 직접 설득을 통해 이를 돌파하려 애썼지만 국제연맹 가입안은 미상원에서 부결됨으로써 막상 초강대국으로 부상한 미국이 가입을 못하는 사태가 발생했던 것이다.이같은 이상과 현실의 괴리를 여러차례 윌슨은 겪어야 했고 이때문에 그는 시대를 앞서가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는 평을듣고 있다.그러나 그의 이상주의는 1920년 노벨문화상수상으로 보상 받은 셈이 됐다. ◎룰라 브룩스 윌슨박물관 큐레이터/“도덕정치·개혁 실천한 지도자”/“이상주의 추진” 용기와 노력 본받을만/첫부인 앨런과 사별… 재임중 재혼 기록 【스톤튼(미버지니아주)=나윤도 특파원】 ‘스톤튼의 이야기들’전시회를 주관했던 우드로 윌슨 박물관의 엘렌 시아 큐레이터는 “5개월간의 전시기간중 많은 관람객들로 붐벼 윌슨 대통령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는데 놀랐다”며 말문을 열었다. ­.윌슨 대통령의 성품에 대해 설명해달라. ▲윌슨을 흔히 미국의 마지막 지성인 대통령이라고 한다.그는 높은 도덕정치와 과감한 개혁을 동시에 행한 지도자로 높이 평가되고 있다.이때문에 그는 라이딩스의 대통령 랭킹에서 42명중 6위라는 높은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그는 지나친 이상주의자라고 비난을 받기도 하는데. ▲오늘날 생각하면 그의 생각들은 모두 옳은 것이었다.한 예로 그의 세계정부론은 선견지명이 있던 것이다.그러나 당시의 수준에서는 너무 앞선 것이어서 인정을 받지 못했을 뿐이다.이상을 실현하려는 그의 용기와 노력은 우리가 본받을만 하다. ­.어린 시절은 어떠했는가. ▲아버지가 장로교회 목사 였기 때문에신앙이 좋고 매우 검소한 분위기에서 성장했다.특히 장남으로 태어난 그는 아버지의 임지에 따라 남부의 여러곳을 다니며 성장했다.그러나 출생지인 스톤튼에 대한 애정은 남달라 성장후에도 틈틈이 찾아왔던 기록이 있다. ­.가족관계는 어떠했는가. ▲첫부인인 앨런과 사이에 세 딸을 두었다.대통령 취임 2년만에 그녀가 죽고 불과 9개월만에 에디트 갈트와 재혼,재선에 영향을 끼치지 않을까하는 측근들의 우려를 사기도 했다.타일러,클리브랜드와 함께 대통령 재임중 결혼의 기록을 남겼다.
  • 지연·학연인사 없는 사회(사설)

    김대중 대통령이 3·1절 기념사에서 3·1운동을 “국민 대화합의 절정을 이룬 국민적 총참여”로 해석해 주목된다.특히 김대통령이 3·1운동 당시의 국가·민족적 위기상황과 현재 우리가 처한 경제적 ‘국난상황’을 동일선상에서 분석하며 위기극복의 전제로서 국민 대화합의 중요성을 강조한 것은 대단히 의미있는 지적으로 받아들여진다. 김대통령의 대화합·총참여는 길게는 민족분단 상황의 평화적 해결을 겨냥하고 있다.이에따라 남북간의 화해와 공존,평화적 교류,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평화 통일을 목표로 남북접촉과 대화를 본격화해 민족 대화합을 추구할 것을 북측에 거듭 강조하고 있다. 김대통령은 안으로는 우리 사회 모든 계층,노동자·기업인·정부의 총단합과 고통의 균형있는 분담을 경제난국 극복 방안으로 제시하고 있다.노·사·정 3자가 3·1운동의 국난극복 정신을 그대로 계승하여 일치단결할 때 현재의 위기를 성공적으로 헤쳐나갈 수 있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다. 김대통령은 또 우리의 단결을 해치는 근본적 분열요소의 척결을 대화합의 과제로 제시했다.특히 지역감정이란 고질의 대표적 피해자이기도 한 김대통령은 우리 사회의 지연 학연에 따른 정실인사,패거리주의를 뿌리뽑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하고 있다.우선 행정부 개편 인사에서 시작해 사회전반에 투명한 인사를 전파시키겠다고 다짐한 것은 뜻깊은 일이다. 공직사회 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뿌리박힌 정실인사를 없애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그러나 이런 패거리주의를 없애지 않는 한 지역감정 타파나 진정한 국민 대화합이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김대통령의 ‘국민의 정부’가 이를 반드시 관철해 줄 것을 기대한다. 패거리주의는 지역감정외에 권력에 줄서기,행정부처 이기주의라는 병폐를 낳으며 심지어 기구개편에 따른 원활한 행정기능의 장애요소가 되기도 한다.김대통령의 대화합 원칙에 따른 패거리의식의 척결과 각계층,그리고 노·사·정의 단합이 우선 우리 경제를 살리고 나아가 민족의 대화합과 평화통일을 가져오는 초석이 되기를 기대한다.
  • 국민의 정부 출범­취임사에 담긴 정책방향

    ◎경제정책/전문화된 재벌·내실있는 중기 육성/계열사 3∼6개로 축소… 공존 토대 마련/부당한 내부거래 차단·투명경영 유도 국민의 정부에서는 재벌(대기업)에 대한 개혁이 경제정책의 핵심과제로 확실하게 자리잡았다. 김대중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격렬한 어조로 재벌개혁의 당위성과 필요성을 역설했다. 김대통령은 “국민의 정부는 대기업과 이미 합의한 개혁을 반드시 관철시켜 기업의 고질적인 병폐를 청산할 것”이라고 했다. 기업의 투명경영,계열사간 상호지급보증 금지,건전한 재무구조확립,핵심기업의 설정과 중소기업과의 협력,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체제 확립이 재벌개혁을 위한 5대 과제로 제시되고 있다.계열사간 부당한 내부거래를 없애고 사외이사 제도를 도입하려는 것은 이러한 개혁을 위한 조치들이다.그 동안 막강한 영향력은 행사해 왔지만 책임은 지지 않았던 회장실과 기획조정실을 폐지하도록 하려는 것도 재벌개혁의 수단들이다. 30대그룹은 오는 2000년 3월 말까지 계열사간 빚보증을 완전히 없애야 하고 재무구조 개선약정을당장 26일부터 주거래은행과 체결해야 한다.재벌회장(오너)들에게는 무엇보다 김 대통령이 강조한 지배주주와 경영자의 책임이 실질적인 부담이 될 것이다.김 대통령이 “대기업에 자율성은 주겠지만 지배주주와 경영자가 경영을 잘못하면 책임은 묻도록 하겠다”고 말한 것은 기업오너들에게 권한과 책임을 같이 지도록하라는 것이다.회장이 경영을 하려면 실제로 계열사의 대표이사 자격으로 하라는 게 새정부의 뜻이다. 재벌들은 주력업체 3∼6개만 남기고 계열사도 정리해야만 한다.김 대통령은 “잘못 하다가는 나라가 파산할지도 모를 위기를 겪는 요인 중 하나는 대기업들이 경쟁력없는 기업들을 문어발처럼 거느렸기 때문”이라고 재벌들의 계열사 정리를 강렬한 톤으로 촉구했다.중소기업 지원과 농어민을 위한 정책도 새 정부의 중요한 경제과제로 꼽히고 있다.김 대통령이 “중소기업을 집중적으로 지원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다같이 발전해 나가도록 하겠다”면서 “농어민들의 소득을 높이겠다는 약속을 5백만 농어민에게 하겠다”고 분명히 말한 것은주목된다. 박정희 정권 때부터 대기업 위주의 성장정책을 펴왔다면 앞으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같이 발전하고 공존하는 쪽으로 경제정책의 방향을 확실히 바꾸겠다는 의미다.김 대통령이 시장경제주의에 바탕을 둔 철저한 경쟁의 원리를 지켜나가겠다고 한 것은 부실한 기업은 억지로 살리지 않고 퇴출시키는 게 바람직하다는 뜻이다. ‘대중경제론’은 시장경제를 원칙으로 하되 재벌의 전문화와 중소기업육성을 두축으로 해 펼쳐지게 됐다. ◎대북정책/정상회담엔 신중… 비정치분야 협력 확대/4자회담 통한 집단안보체제 구축 주력 김대중 대통령은 25일 취임사에서 상호무력 불사용, 흡수통일배제,남북간 화해와 협력추진 등 대북 3대원칙을 천명하고 남북기본합의서이행과 이를 위한 특사교환,정상회담을 제의했다. 이는 김대통령이 평소 피력해온 대북정책이 그대로 담겨있는 것이다. 특히 남북기본합의서의 실천을 위해 특사교환을 제의함에 따라 지난 93,94년 개최됐다가 북측의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중단된 남북간 특사교환을 위한실무접촉이 재개될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특사교환은 93년 북한이 먼저 제안한 바 있어 김대통령의 이번 제안은 북한측에서도 큰 부담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전망했다. 김대통령은 또 북한이 원한다면 정상회담에도 응할 용의가 있다고 밝혀 북한과 국제사회에 정상회담 개최의사를 선전했다.그러나 개최조건으로 ‘북한이 원한다면’이라는 단서를 달아 일각에서 우려하는 성급한 회담추진보다는 신중한 자세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와 함께 취임사에는 대북경수로 건설,대북 식량지원,4자회담의 지속적 추진과 더불어 정경분리에 입각한 경제교류 확대,이산가족상봉 등이 다시 한번 강조되고 있다. 김대통령은 4자회담과 관련해서는 ‘자주적 집단안보체제 마련을 위해 반드시 성공시키겠다’고 천명해 4자회담 추진의 강력한 의지를 시사하는 한편,문민정부 말기에 모든 대북문제를 4자회담틀내에서 풀려던 것과는 달리 안보문제는 4자회담,남북문제는 남북 당국간 대화를 통해 해결해 나가겠다는 의도를 내비친 것으로 분석된다. ◇역대 대통령 취임사 비교 대통령 국정목표 취임사 주요 내용 주용공약 이승만 민주주의 정부수립에 따른 국민 (48.7) 화합 호소.동포라는 △정부구성 완료 용어 자주 사용.국부 △평화적 남북통일 라는 인상 강하게 품김 박정희 주체적 새로운 정치풍토 조성. △견실한 경제사회 (63.12)민주민족 경제근대화,부패척결 토대 구축 주의 △부정부패 청산 △정책대결 정치풍 토 조성 최규하 민생정치 자유에 대한 책임강 △정치권력 남용과 (79.12) 조 과도기 상황에서 국정분열방지 위한 특별한 정책제시는 개헌 없음 △과학기술 진흥 전두환 정의복지 부정부패 척결,의식구 △정치과열방지 및 (80.9) 사회 구현 조개혁 강조 평화적 정권교체 △과외 폐지 △민간주도 경제 노태우 권위주의 민주주의 실현 강조. △신뢰받는 정부 (88.2) 청산 보통사람들의 위대한 △반대세력 비판수 시대 용 △지역갈등 해소 △폭력·투기 방지 김영삼 신한국 변화와 개혁을 강조 △부정부패 척결, 창조 고통분담 호소.문민 위로부터의 개혁 (93.2) 시대 개막선언.우리다 △경제회생 함께 신한국으로 강조 △국가기강·권력회 복 김대중 국난극복과 국민의 정부 선언.국 △정치보복·지역차 국민화합 난극복과 재도약의 시 별 금지 대를 열자고 강조.국 △작지만 강한 정 민에 의한 정치약속. 부 국난극복을 위한 단합 △물가안정·기업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혁 의 동시발전.각분야의 △교육개혁총체적 개혁 △자주적 집단안보 △남북정상회담 특 사 교환 제의
  • DJ 비자금 수사 의미와 한계

    ◎‘정치적 수사’로 매듭… 다시 불거질수도/불법 자료수집 배후 등 명확하게 규명 안돼/정치자금 양성화 문제도 주요 과제로 대두 지난해 15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터져 나왔던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비자금 사건이 23일 김 당선자에 대한 무혐의 처분결정으로 일단락됐다. 청와대 민정수석실 경찰청 은행감독원 증권감독원 관계자 등 선거법과 금융실명제 위반자도 혐의 없음이나 불입건 결정으로 매듭지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수사는 검찰도 밝혔듯이 한나라당이 지난해 대선 과정에서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정치적 목적으로 고발한데서 기본적으로 한계가 있었다.더욱이 한나라당의 폭로는 국민 여론을 분열시킨데다 금융실명제를 위반한 것이었기 때문에 검찰로서도 실체를 규명하기는 어려웠다.대검 박순용 중앙수사부장도 “애초부터 정치권에서 해결할 문제”였다고 토로했다. 이번 사건을 마무리하면서 검찰이 고민한 것은 피고발인보다는 고발인을 어떻게 처리하는가에 있었다.그러나 검찰은 경제 상황과 국민 대화합 차원에서 고발인 쪽 관련자 모두를 무혐의 처분하거나 불입건했다. 검찰은 한나라당 관계자들의 공직선거 및 부정방지법의 허위사실 공표나 무고 혐의,은감원·증감원·경찰청 관계자들의 금융실명거래 및 비밀보장에 관한 긴급재정 명령위반죄의 혐의가 인정되지만 피고발인과의 형평성과 국민여론 등을 감안해 사법처리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정치적으로 이같은 사건이 불거져나온 것 자체가 후진국형이듯이 검찰의 수사 자체가 미흡했다는 지적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고발인 및 피고발인에 대한 조사 모두가 미흡하다는 비난도 있다. 선진외국에서는 이같은 문제가 얼마든지 형사문제로 비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일각에서는 이번 사건이 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특히 비자금 추적 및 폭로의 배후 등이 명백하게 규정되지 앉은데 대해 궁금해 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 이와 함께 이번 사건은 정치자금의 양성화 문제를 정부와 정치권의 주요과제로 제기한 것으로 보인다.검찰이 이번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함으로써 김영삼 대통령의 92년 대통령선거자금 문제도 사법적으로 더 이상 거론하기는 어렵게 됐다. □비자금 수사 일지 ▲97년 10월7일=신한국당 강삼재 의원 DJ비자금 의혹 폭로 ▲10월16일=신한국당 검찰에 고발장 접수.바른 정치실현 시민연대 신한국당 강삼재 의원 등을 금융실명제 위반혐의로 고발 ▲10월20일=검찰,대검 중앙중사부에 사건 배당 ▲10월21일=김태정 검찰총장 15대 대선 이후로 수사 유보 발표 ▲98년 1월31일=비자금 사건 수사착수 발표 ▲1월31일∼2월22일=대우그룹 김우중 회장과 진로그룹 장진호 회장 등 기업관계자 52명,권노갑 전 의원과 김봉호 의원 등 국민회의 및 정당관계자 29명,김용진 이수휴 전·현 은행감독원장과 박청부 증권감독원장 등 금융관계자 62명,김홍업씨 등 김당선자 친인척 55명,한승수 김광일 김용태 전·현 청와대비서실장,김영수 문종수 전·현 민정수석,손주환 김중권 이원종 전 청와대 정무수석,이현우 전 청와대 경호실장 및 경찰청 조사과 관계자 49명 등 총 2백50명 조사 ▲2월21일=김대중 대통령 당선자 서면조사▲2월22일=한나라당 이회창 명예총재 조사 불응,미국 출국 ▲2월23일=수사결과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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