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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자민련, ‘2與합당론’ 불씨끄기

    11일 자민련 총재단회의는 격앙됐다.韓英洙부총재가 ‘화살받이’가 됐다.국민회의와의 합당론에 동조한 발언때문이다.‘DJP단독회동’을 다룬 일부언론보도에 대한 불만도 겹쳤다. 朴총재가 먼저 “파문이 너무 크다”고 우려를 표시했다.朴총재는 “들어보지도,생각해보지도,얘기해보지도 않은 문제”라고 쐐기를 박았다.그리고는“양당 공조 틀을 깨려는 일부 불순한 사람들이 퍼트린 것같다”고 해석했다. 이날 1시간30분간 격론을 마친 참석자들은 대부분 얼굴이 상기됐다.韓부총재는 ‘왕따’가 됐다.鄭相千부총재는 “당을 분열시키려는 의도”라고 비난했다.외유중인 朴哲彦부총재에게도 ‘3자연합론’을 들어 화살을 겨누었다. 李麟求부총재는 “합당론은 내각제 연기론에 힘을 싣기 위한 모략”이라고주장했다.金鎔采부총재는 “밑도끝도 없는 합당론”이라고 가세했다. 韓부총재는 소신을 잠시 접었다.“합당문제는 공식적으로 제의하고 거론한일이 없다”고 해명했다.朴大出 dcpark@
  • 金대통령 안보회의 주재… ‘평화증진’등 3대원칙 제시

    金大中대통령은 4일 청와대에서 국가안전보장회의를 주재하고 한반도 평화와 안정의 증진,남북간 화해·협력의 지속적인 추구,우리의 안보 및 대북정책에 대한 국제적 지지와 공조관계 강화를 올해 정부가 중점적으로 추진해야 할 ‘안보 3대원칙’으로 제시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남북관계의 안정적인 발전과 한반도 평화정착의 핵심은남북 기본합의서 이행”이라면서 “이를 위해 남북당국자간 대화가 재개되어야 할 것”이라고 밝혀 남북대화 재개에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金대통령은 이어 “올해에는 이산가족문제 해결에 최대한 노력을 경주,다각적이고 신축적으로 이 문제를 다루어 나감으로써 신뢰와 화해의 계기로 삼아야겠다”고 말했다.또 “북한이 스스로 식량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비료지원·종자개량 등과 같은 대북 농업개발협력을 적극 추진하겠다”고 덧붙였다. 金대통령은 그러나 “북한은 내부결속을 다지고 우리의 사회적 혼란과 국론분열을 획책할 목적으로 여러가지 형태의 침투도발을 계속할 가능성이 높다”고 지적한 뒤 북한의 어떠한 도발에도 확고히 대처할 수 있도록 ●튼튼한국방태세 ●견고한 한·미 안보동맹관계 유지 ●민·관·군 통합방위체제의지속적 보완 발전 ●지방자치단체장의 능동적인 참여와 지원을 역설했다. 특히 “올해는 우리의 재도약과 번영을 보장하는 중요한 해이므로 한반도에 불필요한 긴장이 조성되거나 위기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며“따라서 북핵 및 미사일 문제 등 현안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아울러 “한반도의 불안한 안보환경은 근본적으로 냉전구조에연유하고 있으므로 이를 해체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해야 한다”고 전제,“국제적 공조와 병행한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을 때 한반도의 항구적인 평화와 안정이 보장될 것”이라고 밝혔다. 金대통령은 “한반도 주변 강대국들과의 긴밀한 공조와 협력은 대화와 협상을 통한 북핵 등 당면 현안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가능케 할 것이며,남북관계 개선과 동북아지역의 안정과 평화에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끝으로 “우리는상황에 끌려가기 보다는 주도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하고 “우리의 결집된 국력과 강력한 실천의지가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이에 앞서 康仁德통일·洪淳瑛외교통상·千容宅국방부장관과 李鍾贊안기부장 등이 올 중점 추진과제 등을 보고했다.
  • [동서를 껴안고 통일로 가자 2]-지역할거주의 타파

    지역감정이 위험수위를 넘어섰다는 지적은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선거철만 되면 전국이 동·서·남·북으로 분열돼 한바탕 홍역을 치른다. “우리 지역사람을 뽑아야 차별을 안 받는다”,“236236도 사람이 당선되면 큰일난다”는 등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이 공공연하게 난무한다. 지역감정이 선거에 미치는 가장 큰 부작용은 유권자들의 합리적인 선택을가로막는다는 사실이다.능력보다는 출신지역을 기준으로 당선되는 결과를 낳기 때문이다.이로 인한 피해는 유권자인 국민에게 돌아간다.하지만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의 선동에 휩쓸려 이같은 악순환은 늘상 반복된다. 지난해 치러진 6·4지방선거는 61년 이후 가장 낮은 투표율을 기록했다.서울 등 대도시는 투표율이 50%를 밑돌았다. 정치판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이 선거 자체를 외면했기 때문이다.당연히 뿌리깊은 지역감정도 결정적 영향을 끼쳤다. 역사적으로 따진다면 지역주의의 뿌리는 깊고도 깊다.오늘날 문제가 되고있는 영·호남 대립은 3공화국 때 朴正熙 당시 대통령이 박빙의 승부 상황에서 金大中후보를 꺾기 위해 지역감정에 호소하면서 표면화됐다.그럼에도 87년의 ‘6·29선언’ 전까지만 해도 ‘민주 대 반민주’라는 또 다른 구도가두드러졌기 때문에 그리 심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87년 대선을 기점으로 지역주의가 심화되면서 지역감정은 정책이나이념까지도 능가하는 판단기준으로 자리잡게 됐다.문제는 지역감정에 뿌리를 둔 지역할거주의가 21세기를 눈앞에 둔 지금까지도 전혀 개선될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지역감정을 타파하려면 지역감정의 전제조건인 지역차별의식부터 타파해야한다.기업체,정부 등 모든 부문에서 공정한 인사관행이 자리잡아야 한다.또시민단체의 적극적인 감시활동이 있어야 한다. 경실련 河勝彰정책실장(39)은 “지역감정을 볼모로 생존해온 정치인들을 선거로 심판하겠다는 공감대부터 형성돼야 한다”면서 “따라서 정치인들을 탓하기에 앞서 지역성에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국민의식부터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YMCA 시민사회개발부 李允熙간사(31)는 “지역감정의 뿌리가 워낙 깊어 쉽게 치유되지는 않겠지만 선거 때는 말할 것도 없고 평소에도 지역감정을 조장하는 발언으로 지역정서에 기대는 정치인들에 대해서는 시민단체가 앞장서 감시하고 비판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충남대 정외과 趙燦來교수(45)는 “지역에 기반을 둔 정치구조가 나쁘다기보다는 이를 악용하는 정치인이 문제”라면서 “정치인들이 지역감정을 악용할 수 없도록 유권자들의 의식개혁이 선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연세대 정외과 李信行교수(56)는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하는 것은 정치집단이 정치적 자원을 창조적으로 생산할 능력이 없다는 의미“라면서 “정치집단마다 정체성(Agenda)을 확고히 정립함으로써 지역이 아닌 정책으로 유권자에게 호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연세대 사회학과 宋復교수(61)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지역감정 해소를 외쳤지만 오히려 역효과만 심화시켰다”면서 “지역감정을 없애려면 정치인의 지역감정 조장발언이 무색해지도록 지역정서에 무관심해지려고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가 하면 지역을 기반으로하는 기존의 정치틀을 새롭게 짜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지역구도가 아닌 개혁­보수의 이념대결이라든가,정책내용 면에서의 대결구도 등으로 정치판을 정비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도적으로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치개혁시민연대 孫鳳淑공동대표(55)는 “전국단위로 하든,권역별 단위로하든,정당명부제를 반드시 도입해야 한다”면서 “영·호남을 넘나드는 방식으로 정치인 선출방식을 바꾸면 지역감정에 호소하는 정치인도 사라지게 될것”이라고 말했다. 공동문화 행사 개최 등 지역간의 경제 및 문화 교류를 활성화시키는 것도지역감정 해소에 도움이 된다.영·호남,충청권 등 권역별로 주민들이 함께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하려는 노력이 각별히 요구된다고 하겠다. *전문가 진단-김일영 성균관대 교수·정치외교학/정당명부제·중선거구제 도입 지역격차와 지역감정은 엄연하게 구분돼야 한다.지역격차는 일제 때 시작됐다.영남위주의 개발정책으로 영·호남의 격차가 벌어졌으며,이런 지역격차를 정치집단이 정치적으로 악용한 것이 지역감정이다.71년 대선에서 朴正熙 전 대통령이 당시 金大中후보를 누르기 위해 사용하면서 표면화됐다. 지역감정은 특히 80년 광주 민주화운동 때 심화됐으며 87년 민주화투쟁 이후 범국민적으로 확산됐다.다만 독재정권의 폭압으로 표출되지 않았을 뿐이다.민주화투쟁에 따른 ‘6·29 선언’도 지역감정을 이용할 수 있다는 계산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다.그후의 정치판 구도도 지역감정에서 자유롭지 못했다.90년 3당합당은 지역감정을 정치에 이용하겠다는 극명한 ‘사건’으로 평가된다. 게다가 金泳三 전 대통령이 집권에 성공함으로써 지역감정을 이용하면 득이 된다는 나쁜 선례를 남기게 됐다. 지역감정을 타파하려면 먼저 정치구조부터 바꾸어야 한다.이 때문에 정당명부제의 도입은 필요하다.선거구를 중선거구 이상으로 조정하고 나머지는 정당득표율에 따라 의석을 나누는 것이 바람직하다.이렇게 돼야만 전라도에서경상도 출신의원이 나올 수 있다.다만 당의 총수가 마음대로 명부제의 순번을 정하면 안된다.당내 민주화는 선결요건이다.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도 고려해 볼 수 있다.말하자면 도(道)를 없애고 일본처럼 현단위로 행정구역을 구분하는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의식의 문제도 고려돼야 하지만 지나치게 강조하면 오히려 역효과를 낼 수있다.여론을 호도하려 한다는 오해를 낳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제도가 바뀌면 의식개혁은 필수적으로 뒤따른다.좋은 제도로 바꿈으로써 의식의 변화를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이다. 권력구조 측면에서 내각제는 지역할거주의를 타파할 수 없다.3金이 사라지면 지역감정도 약화될 가능성이 있는 게 사실이다.그러나 내각제를 실시하면 여전히 지역을 기반으로 하는 정치세력들이 기득권을 유지하려 들 것이라는 사실도 간과해서는 안된다.
  • 신춘 논단-20세기 남은 한해의 과제

    20세기 남은 한해의 첫날이 밝았다.한국역사상 유례없는 파란곡절의 20세기가 올해로 막을 내리고 새 천년 21세기 여명을 맞게 된다. 세기말과 새 천년의 어간에 선 1999년은 청산과 새 설계의 한해가 돼야 한다.무엇을 청산하고 무엇을 설계할 것인가. 먼저 식민지배와 분단과 독재와 지역갈등과 IMF로 상징되는 민족모순과 그잔재를 청산해야 한다. 우리는 20세기 초입에서 식민지로 전락하고 중간시점에서 동족상잔을 치르고 세기 말에 IMF환란을 겪게 되었다.분단과 독재와 실업사태 등 모든 갈등구조는 여기서 연유한다. 무능한 지도자는 범죄다.대한제국 지도층은 국제정세에는 장님과 같았고 국내문제에는 색맹이었다.밀물처럼 밀려드는 외세의 침략에는 눈뜬 장님처럼허둥대고 개혁과 통합이 요구되는 국내문제는 개화·쇄국으로 나뉘어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사시적이었다.결과는 참담한 식민지 전락이었다. 지도층의‘장님과 색맹현상251은 해방후에도 나타났다.해방정국에서 찬탁과 반탁,단독정부와 통일정부수립을 둘러싸고 또 다시 국제정세에는 눈뜬 장님이었고 국내 권력투쟁에는 이념의 색맹이 되었다.결과는 분단과 동족상쟁으로 나타났다. 장님과 색맹의 정치는 자유당 12년 독재와 30년이 넘는 군사정권 그리고 여기에 뿌리를 둔 사이비 문민정부로 승계되는 반세기 정치권력의 모순으로 이어졌다.이 기간 물량위주의 성장이‘한강의 기적251을 이루었지만 사회정의와 국제경쟁력을 갖추지 못한 성장은 IMF허상으로 나타났다.색맹권력이 만든 비극이다. 정경유착,지역갈등,도덕타락,강력범죄,가정해체,공직부패 등 반사회 반국가적 현상은 이같은 모순구조가 빚은 산물이다.이런 것들을 청산하지 않고 21세기를 항해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분단과 남북적대의 해소없이는 민족모순의 해결은 공염불이다.‘유일한 분단국251이 지구촌의 치욕이지만,남한 150만 실업자 북한 300만 기아자,세계최고의 군사밀도와 북한의 핵개발과 생화학무기개발 등은 자칫 민족 전체의파멸을 불러올 재앙으로 이어질지 모른다. 양측에서 존재하는 극우 극좌세력의 준동은 민족문제 해결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조선조 때의 극심한 예송논쟁이나 한말 쇄국·개화파 대결이 국난과 망국을 불러왔듯이 지금 남북간의 적대적 이념대치는 한민족 생존을 위협하고 있다. 밝은 구석도 보인다.무역수지와 경상수지의 흑자에 이어 외환,환율,물가안정,주식시장의 활성화,국제신용도 향상,재벌의 빅딜과 구조조정 그리고 정경유착의 단절로 우리 경제의‘안개251가 걷히고 있다.실업과 내수부진 등 부정적 요인이 없지않지만,정치·사회불안 등 비경제논리가 경제회생을 억누르지만 않는다면 전망은 밝다.올해는 국가의 모든 역량을 국제경쟁력 향상에기울여야 한다.북한은 부분적이지만 시장경제적 요소확대,암시장 허용,금강산개방,금창리 지하시설 현장 접근 가능성등 변화의 모습을 보인다.남북간에 인적 물적 교류도 활발하고 대북투자 물량도 확대되고 있다. 남북간의 엷은 햇살은 김대중대통령의 햇볕정책의 영향이 크다.정부가 어려운 여건속에서도 일관되게 정경분리 정책을 견지하면서 대북 화해정책을 추진한 결과 아직은 엷지만 화해와 협력의 햇살이 50년 언땅을 녹이게되었다. 차제에 미국의대북경제제재 완화,미·일의 대북수교 등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불러올 서방의 가시적 조처가 나타난다면 한반도의 냉전기류는 크게 바뀔 것이다. 우리는 지금 총성없는 혁명의 한가운데 서 있다.과거처럼 폭력혁명이 아닌변화와 개혁의 혁명이다.5대 재벌이 빅딜과 구조조정을 통해 사실상 재벌해체의 과정에 있으며 정부의 4대 개혁과 공직부패 척결이 진행되고 있다.문제는 정치권이다.낡은 행태와 구습을 반복하면서 고비용 저효율의 틀을 벗지못한 정치권이 지역단위 정당체제, 소영웅주의적 의정활동,총독부형 지방행정구조를 고치지 못하면 국난극복의 걸림돌로 작용할 것이다. 무엇보다 국민분열적 선거제도와 국회·정당구조를 국민통합형으로 바꾸고무능력자와 부패정치인을 퇴출시켜야 한다.21세기 한국을 20세기적 정치틀에서 19세기형 정치인들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정치권이 개혁을 단행하여 정치발전과 경제회생에 앞장서야 한다.정치개혁이 없는 국정개혁은 미봉책일 뿐이다.인류역사상 가장 극심한 변화가 예상되는 21세기를 한해 앞두고올해를 민족사적인 낡은 질서의 청산과 새 세기를향한 새 설계의 준비기간으로 활용해야한다.정치개혁이 선결과제다. [김삼웅 본사주필]
  • 각계 주요인사 신년사-朴浚圭국회의장

    새해는 온갖 영욕으로 얼룩진 한 세기를 마무리하고 희망찬 21세기를 준비 해야만 하는 매우 뜻깊은 한해입니다.새해는 기필코 경제재건의 계기로 삼는 한해가 돼야 하며 1년간 꾸준히 추진한 개혁이 성공적으로 마무리돼야 합니 다. 이제 IMF라는 격랑을 간신히 헤쳐나오고 있는 ‘대한민국호’라는 배를 또 다시 좌초위기에 빠뜨려서는 안되겠습니다.지역간,계층간,정파간의 갈등과 분열의 찌꺼기를 화합의 용광로 속에서 말끔히 녹여버립시다. 국회도 국가위기를 맞아 국민과 함께 하는 생산적인 국회를 만들기위해 의 회제도 및 관행을 개선하는 등 많은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보다 심기일전 하는 모습으로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국민과 같이 호흡하는 국회가 될 것을 약속드립니다.
  • 나아갈 길-버려야 할 국민성, 세워야 할 참가치

    [姜 萬 吉] ●고려대 한국사학과 교수 ●경남 마산·65세 ●고려대 사학과졸·문학박사 ●고려대 중앙도서관장 ●월간 ‘사회평론’발행인 ●주요 저서 ‘분단시대의 역사인식’ ‘한국민족운동사론’ ‘통일운동시대 의 역사인식’ 절충하고 나누는 것이 필요합니다.나는 그것을 수렴이라고 부릅니다.우월성 으로 통일의 기반을 삼는 견해는 우려스럽고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姜교수 통일문제는 한반도에서만 유일하게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냉전구 도는 다 무너졌는데 한반도에만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역사학도의 입장에서 보면 지정학적 위치가 문제입니다. 우리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은 무력통일이나 독일식 흡수통일이 지정학적 으로 어렵다는 점입니다.한마디로 남북이 대등한 위치에서 평화통일 방법론 을 찾아야 한다는 겁니다.국민의 정부는 이 점에서 방향은 옳게 잡고 있습니 다.그러나 여기에 만족하지 말고 서해안에 간첩선이 출몰하더라도 왜 동해안 에서 금강산 유람선이 뜰 수밖에 없는지,그리고 왜 흡수통일이 아닌 평화통 일이 이뤄져야하는 지를 국민에게 분명하게 설명해 줘야 합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에서는 북한은 모든 것이 이질화됐다고 말합니다.남한의 거울에 비춰 같지 않은 것은 이질화라고 봅니다.그러면 남한은 이질화되지 않았는지 남한 자체를 객체화시켜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姜교수 지역대결 문제에도 역사적 원인이 있습니다.일제는 한반도 강점을 쉽게 하기 위해서 분열 요인이 별로 없는 우리를 두가지로 분열시켰습니다. 하나는 계급적 차이를 이용한 것이고,다른 하나가 지역갈등 문제였습니다.일 본이 지역갈등의 씨앗을 심어 놓았던 것입니다. 그후 해방이 되면서 일본에 대한 적대감이 분출되면서 지역문제는 그다지 불 거지지 않았지만,일본군 출신의 朴正熙정권이 들어서면서 다시 악용하기 시 작했습니다.정통성없는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서 지역대립을 조장한 것입니다.그같은 지역대립조장의 결과가 절정에 이른 게 광주민주항쟁이었습 니다만,문민정부를 거치면서 지금까지도 고질화돼 있는 형편입니다.최근에 겪은 하나의 어이없는 사례를 들겠습니다.제고향(마산)에서 한 관리가 부정 을 저질러 막상 사법처리되자,부정한 사실 그 자체는 간 곳 없어지면서 아무 개 정권이 우리 지역을 탄압하고 있다는 여론이 일고 있다고 합니다.부패 관 리 징치보다 지역감정이 우선하는 이런 일이 어떻게 생길 수 있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지역감정 문제 해결은 과거 피해를 입었던 쪽이 정권 차원에서 이것을 푸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봅니다.과거 정권의 틀을 벗어나 모든 부문에서 공정하 게 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도 다행한 것은 젊은 층이 지역감정이 희박하다는 점입니다.동서문제는 젊은 층이 민주사회의 주인으로 자리잡으면서 자연히 해소될 것으로 여겨집 니다.기성세대 중에서도 양심적 지식인들이 시민운동을 통해서 지역대립 문 제를 풀어가는 적극적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李교수 남한사회의 지역 대립은 근대사회 들어 사회에서 피해적 존재를 만 들어내기 위한 파쇼의 통치전략입니다.19세기 말과 20세기초 독일,폴란드 등 에서 이같은 일이 일어났는데,이 과정에서 600만여명의 유태인이 나치에 학 살당했습니다.유태인은 유럽에 동화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했습니다.그러나 파쇼 집단은 백인 부르주아사회의 반인간성을 유태인에 투영시켰습니다.유태 인으로 하여금 사회적 카타르시스의 역할을 하도록 강요한 것입니다.이같은 원리와 전략이 朴정권에 의해 호남에 적용됐습니다. 나는 철이 든 나이로 일제시대를 살아 잘 아는데,일제시대에는 지역 차별이 없었습니다.해방 뒤와 민주당 정권 때도 지역 차이 없이 정당을 구성했습니 다.지역 차별은 71년 대통선거를 계기로 구조화된 것이 분명합니다.유럽 파 시스트체제 생성과정의 유태인의 존재를 호남에서 찾은 것이지요.●姜교수 역사 교육 쪽으로 화제를 돌려보지요.현대사 교육을 제도교육 쪽에서 보더라 도 지금 2가지 문제가 잘못됐습니다.중·고 국사 교과서가 아직도 朴정권 때 결정했던 그대로 국정교과서 상태로 남아있다는 것은 부끄러운 사실입니다. 이래선 일본에 역사교육이 잘못됐다고 말하기도 곤란할 지경입니다. 그중 국사교과서에서 현대사 부분이 대단히 약합니다.정권의 정당성 문제에 대한 서술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남북대립적 입장에서 주로 역사를 기술하다 보니 남북화해적 교과 내용이 없습니다.통일된 독일의 경우 옛날 서독 교과 서를 동독지역에서 그대로 쓰고 있어도 문제가 안될 정도입니다.그만큼 객관 적으로 썼다는 얘깁니다.남북의 역사 교과서가 해방 이후 천양지차로 서술돼 있습니다만 민족 화해적인 내용이 더 크게 부각되도록 방향을 잡아가야 합 니다. ●李교수 역사교육의 잘못은 원죄에 속하는 부분이 있습니다.그리고 원죄는 해방 직후 일제 잔재를 토대로 한 새 국가 건설에서 출발합니다.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45∼48년 군사정부를 만들어 통치하면서 일제시대 독 립운동가,혁명가,애국지사를 토대로 한 것이 아니라 친일 반역행위를 한 개 인을 모아 요직에 배치했습니다.그리고 李承晩정부가 그것을 이어 12년간 통 치했습니다.李承晩 개인은 독립운동을 했다고 하지만 그 정권은 친일 반역자 에 업혀 새 국가를 건설하고 통치한 추악스러운 정권입니다.정부 수립 직후 반민특위법을 만들었지만 한 명도처단하지 못하고 거꾸로 애국지사가 처단 됐습니다.그래서 이같은 사실들이 국정교과서에 들어가지 못하고,또 ‘국정 ’으로 교과서를 만들 수밖에 없었던 것이지요.朴正熙는 제 발로 일본군에 입대해 천황에게 목숨을 바치겠다는 말을 한 사람입니다. 그런 나라의 국정교과서가 어떻게 진실을 기술할 수 있겠습니까.朴正熙는 진실을 요구하는 목소리와 지성의 요구를 반공(反共)이라는 적대적 긴장을 조성해서 무마했습니다.그렇기 때문에 늦었지만 교육을 다시 해야 합니다. ●姜교수 역사교과서를 국사편찬위에서 국정교과서로 만든다는 것 자체가 민 주주의 국가에서 어불성설이고 창피한 일이지요. ●李교수 21세기는 스스로 승리했다는 자본주의 안에 사회적,도덕적,인간적 가치를 재생시켜야 하는 시대라고 생각합니다.나는 자본주의는 절반만 승리 하고 절반은 패배했다고 생각합니다.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역사는 끝났다” 고 말했지만 나는 21세기부터 새로운 역사가 시작된다고 봅니다.IMF는 자본 주의의 발작이자 경련입니다. ●姜교수 20세기에서 자본주의가 살아남게 된 것은 이른바 ‘케인스 혁명’ 이후 사회주의에 약간의 양보를 했기 때문입니다.케인스의 신이론에 따라 자 본주의가 계획경제의 장점을 일부 받아들인 것입니다.반면 국가사회주의는 7 0년대를 지나면서 무너져갔습니다.이제 21세기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신자유 주의가 풍미하면서 각종 비인간적인 측면이 벌어지고 있습니다.그러나 신자 유주의 체제하에서 비인간적인 사회적 상황이 점점 확대되면서 새로운 (경제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려는 노력도 더욱 적극화될 것으로 보입니다.인간은 끊임없이 자기 혁신을 추구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21세기에는 그런 새로운 것을 찾아낼 것입니다.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그런 일에 당연히 관심을 가져 야 하며,그렇게 되기 위해선 우리 정치를 이끄는 지도자들이 남다른 역사의 식을 가져야 합니다. ●李교수 여기서 올바른 언론의 자세에 대해 다시 한번 강조하고자 합니다. 미국 수정헌법 1조는 “의회는 종교,언론자유(Freedom of Speech),출판(Pres s),집회,청원권을 제한하는 법을 제정할 수 없다”고규정하고 있습니다.이 는 오늘날 세계의 모든 문명국가가 헌법 전문에 규정하고 있는 문명사회의 원칙으로,호치민의 북베트남 헌법에도 들어 있습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서열에서 출판의 자유가 언론의 자유 다음이라는 것입니다.언론의 자유는 시민과 개인은 무엇이든 책임질 수 있는 범위에서 무엇이든지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뜻합니다.또 언론기관보다 개인의 말할 수 있는 자유를 보장하고 존중하는 것을 의미합니다.그러나 우리 사회는 이것이 언론기관의 자유로 둔갑돼 있습니다. ●姜교수 崔章集교수 문제가 일어나는 과정을 보고 참 불쾌했습니다.한 학자 가 자기 나름대로 심혈을 기울여 연구,이론구성을 해놓은 것을 가지고 언론 이 즉흥적으로 평가,시비를 거는 것은 문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학술적 결과 물은 학계 내에서 소화하거나 비판해야 합니다.어떤 이유에서건 학자를 걸고 넘어져 학문을 어렵게 하는 것은 언론기관이 할 일이 아닙니다. ●李교수 우리는 역대 개발독재정권이 경제 건설이라는 미명 아래 그동안 쌓 아온,권력집단의 노획물 같이 수탈할 수 있었던 가치구조와 관습 등 모든 면 을 수술해야 합니다.毛澤東정권이 제도를 혁명적으로 바꾸고 鄧小平이 모든 체제를 바꿨던 예를 본받아 혁명적 변화를 이루어야 합니다.우리 국민은 타 락하고 부패한 지도자 밑에서도 뭔가를 이뤄냈습니다.하물며 새 지도자 밑에 서 혁명하는 마음가짐으로 해 나가면 무엇이든 이루어내지 않겠습니까. ●姜교수 12월31일과 1월1일의 24시간은 다를 게 없는데도 굳이 구분하는 것 은 마음을 새로이 하자는 뜻일 것입니다.(시간의 흐름 위에서)마디를 만들어 새롭게 다짐하면 그것이 역사를 바꿔나가는 일이기도 하겠죠.앞서 언급했듯 이 국민의 정부는 해방 이후 처음으로 제대로 정통성을 갖는 정권입니다.새 정부는 올해 역사적 전환점에서 서서 이 정권의 성립 기반을 다시 돌아보고 이를 확실히 정착시켜나가야 할 것입니다. 지금의 기성세대가 가진 역사관을 젊은이들이 다시 이어가게 하면 그 민족 은 망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젊은이들의 역사관이 기성세대와 달라야 그 민족사회가 전진할 수 있습니다.기성세대들은 이 점을 인식하면서 젊은 층과 부딪쳐야 조화가 서로 이뤄질 것입니다. 나는 통일을 과정으로 보지 결과로 보지 않습니다.열매를 따려면 나무에 올 라가야 하고,첫 발을 내디디면 두번째 발을 옮기고,그러다가 가시에 찔리기 도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과 같은 통치체제,또는 이념이나 인민의 자유,권리,창의력을 당이 독점 하는 흘러간 공산주의식 체제는 용납할 수 없습니다.그렇다고 남한식으로 통 일의 기틀을 잡는 것도 찬동할 수 없습니다.남한도 해방 후 반세기 동안 친 일파,범죄,부패,타락,잔인성,비인간성,빈부 차이,자본주의가 가지는 주기적 경기변동으로 인한 인간의 재난과 불행 등을 청산하면서 새로운 국가를 지향 해야 한다고 봅니다.우리는 물신주의(物神主義)에 빠져서 인간 위에 돈이 있 고,모든 가치 위에 돈이 있다는 한계를 갖고 있습니다.돈을 소유하기 위해 인간의 이기심을 전면적·극단적으로 발동시켜 생산을 극대화시킨 것이 우리 사회의 우월성입니다.그런데 그것은 인간 파괴를 가져옵니다.
  • 정직한 역사 되찾기-민주열사 열전(20회)

    민주열사열전 시리즈가 20회로 막을 내린다.어두웠던 시대에 조국 민주화를 위해 치열하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다 생을 마감한 이들의 진실은 무엇이었을 까.그들은 굴절된 현대사에서 희망의 빛이었고 그들의 희생적 투쟁이 밀알이 되어 오늘의 민주화가 이루어졌다.그들의 진실 밝히기가 현재와 미래를 더 욱 의미있게 하기 위한 과거의 재창조 행위라는 인식에서 시리즈를 이어갔다 .그동안 독재정권에 의해 역사의 변방으로 밀려났던 이들을 제자리로 돌려야 한다는 작은 소망의 표현이기도 했다.시리즈를 마무리하며 그 의미와 성과 를 짚어보는 좌담을 마련한다.가톨릭대 安秉旭교수와 李相勳변호사,전국민족 민주열사·희생자추모단체연대회의 金學喆사무국장,대한매일 金三雄주필이 자리를 같이했다. 金三雄주필:8월7일 장준하선생편을 첫 회로 시작된 시리즈가 5개월만에 마 무리하게 됐습니다.제도언론 매체로서는 처음으로 반독재투쟁에 몸을 불사른 인물들의 행적과 사상,우리 사회에 끼친 영향,역사적 의미,유족과 동지들의 근황 등을 총체적으로 담는 결코 쉽지 않은 작업이었습니다. 安秉旭교수:언론뿐만이 아니라 유관단체를 포함해서도 처음이라고 봅니다. 민주화투쟁을 하다 희생된 분들의 증거로 그분들의 업적은 중요합니다.이는 역사적인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뒤늦은 감은 있지만 대한매일이 어려운 여건 에서 이러한 작업을 한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金學喆국장:이번 시리즈는 하나의 사변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진실이 뒤집어진 상태에서 ‘이것이 진실이다’라고 과감히 밝힌 것이 언론 계의 ‘사변적 사건’이란 의미입니다. 李相勳변호사:한 건의 의문사를 해결한 것만큼의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시리즈는 과거 군사독재에 의해 저질러진 의문사 진상규명을 위한 법 률 제정 등에 가장 강력한 압력수단의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더 이상 잘못된 50년 역사를 되풀이해서는 안되겠다는 것이 중요합 니다.과거역사를 청산하고 정리해 새로운 역사를 위한 디딤돌의 의미가 깊다 고 봅니다. 金주필:‘항일운동을 하다 산화한 이들에게 붙였던 ‘열사’라는호칭이 부 적절하다,과거지향적인 것을 꺼내어 국민분열을 부추기는 행위다’라는 지적 이 있었습니다.하지만 민주화를 위해 몸을 불사른 사람들은 열사로 불리는 데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고 봅니다.또 역사적으로도 두번 다시 잘못됨을 되 풀이하지 않게 하기 위한 것에 연재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金국장:보훈처 관계자의 열사호칭에 문제가 있다는 기고를 보고 제가 반론 을 제기한 적이 있습니다.항일정신이나 반독재의 민주화 정신은 구국의 의미 에서 맥을 같이합니다.과거를 덮어두고 어떻게 제대로된 미래가 나오겠습니 까.밝은 미래와 진정한 화해를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올바른 청산이 꼭 필요 합니다. 安교수:민주화 정신은 항일정신만큼 높이를 같이한다고 봅니다.아직 민주화 에 대한 인식이 덜 보편화되어 있어 항일정신과 민주화정신을 구분하려는 것 같습니다.더이상 희생자가 나오지 않는 사회가 된다면 이러한 논란이 나오 지 않을 것입니다.과거에 대한 진실이 허심탄회하게 밝혀졌을 때 미래지향적 인 것이 가능한 것입니다. 金주필:우리 역사를 보면 가장 투철했던 시대정신이 있습니다.신라의 화랑, 조선시대의 의병·승병,한말의 의병,일제시대의 독립운동가들이 그 정신을 주도했습니다.해방 후 그 대를 잇는 것이 바로 민주화투쟁과 통일운동이라고 봅니다.그들이 있었기에 이 나라가 지탱될 수 있었습니다.하지만 아직 그들 에 대해 의미부여가 덜 되어 있습니다.현 정부도 그들의 희생을 바탕으로 세 워졌는데 그들을 홀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李변호사:민주열사 예우와 보상 관련 법안 작성에 민족민주운동의 개념문제 가 불거졌습니다.보상과 명예회복을 전제로 한 민족민주운동 개념의 실례가 부족하고 사회적 일치점도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金주필:해방후 반민족행위자 규정처럼 민주화운동 유공·희생자들과 관련해 역사·사회학계 등의 주도로 전 국민적인 토론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또 활발한 학술토론을 거쳐야 할 것입니다. 安교수:민족민주운동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는 밀렸던 숙제를 풀어나가는 과정입니다.개념 설정과 인물의 구체적 선정과정에서 큰 논란이뒤따를 것입 니다.하지만 우리 민주화에는 큰 희생이 있었다는 큰 틀에서 볼 때 그러한 논란은 지엽적인 문제일 뿐입니다.공개적인 논의과정에서 문제를 하나씩 충 분히 풀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金국장:열사들이 유공자 대우를 바라고 민주화투쟁을 한 것은 아닐 겁니다.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결국 그 혜택이 돌아가는 것입니다.중요한 것은 독재정 권에 맞섰던 민주화투쟁의 정당성 획득의 의미입니다.폭압적 공안기구와 정 권의 부도덕성이 낱낱이 파헤쳐져 그러한 행태가 줄어들고,장기적으로 없어 져서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있다는데 법 제정의 의미가 있습니다. 金주필:나치 치하에서 함께 저항하던 사람들과 함께 죽지 않고 살아남은 죄 를 야스퍼스는 ‘형이상학적 죄’라고 했습니다.군사독재 치하에서 살아남은 우리들도 야스퍼스가 말한 ‘형이상학적 죄인’에 해당될 것입니다.마땅히 희생된 이들에 대한 도덕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고 봅니다.관련 법률안을 만 들어 그들의 명예를 회복하고 진실을 규명해야 합니다.기념관을 세워 그들의 뜻을 기려야 하고 묘역을 조성해 민주성지로 만들어야겠지요.또 어렵게 살 고 있는 그 유족들을 국가가 책임져야 합니다.조선왕조시대에도 병자·정묘 호란 희생자들의 자손들을 7·8대까지 돌봐준 예가 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 관련 법안은 다음 세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합니다. 첫째,더이상 독재하에서 저질러진 반민주적 행태가 되풀이되지 않게 하는 징 계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둘째는 그들의 행적을 조사·정리해 기념관 등을 조성해 모아놓고 학교와 국민교육에 적절히 활용하게 하는 것입니다.셋째는 그 유족들에 대한 적절한 배상과 보상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李변호사:현재 국민회의가 내놓은 최종 법률안인 ‘민주유공자에 대한 명예 회복과 예우에 관한 법률안’이 국회 법사위에 상정돼 있습니다.이 법안이 통과되면 가해자 측면에서는 진상규명,피해자 측면에선 명예회복과 예우 및 보상에 직접 당사자가 될 것입니다.하지만 시기와 적용대상이 처음 작성할 당시의 원안에서 많이 축소됐기 때문에 문제가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安교수:정당별로 이해관계에 따라 이견을 보이는 것은 현재로서는 불가항력 적인 면이 있습니다.보훈대상자 선정이 아직도 계속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민 주유공자 선정문제도 장기적으로 해결해나가는 방안을 고려해 볼 수 있다고 봅니다.민주화운동 과정에서 흔적도 없이 역사속으로 사라져간 분들도 많이 있습니다.장차는 이런 분들까지 발굴해 숭고한 정신을 기릴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합니다. 金주필:이승만정권 이후 최근까지를 포괄하는 법률안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생각이 듭니다.이번 기회에 촉구해야하지 않을까요. 金국장:처음엔 1945년 이후로 잡아 법안 작성을 추진했습니다.하지만 집권 여당에서도 부담을 갖고 반대했습니다.보수 기득권층의 반발을 감당하기 힘 들다고 판단한 것 같습니다.그래서 절충한 것이 3선 개헌을 기준으로 잡은 6 9년 8월7일 이후입니다.하지만 이 문제는 법안 개정을 통해 장기적으로 개선 해나갈 수 있을 것입니다. 安교수:전거가 없어 법률안을 만드는 데 어려움이 컸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하지만 우리 법률안이 다른 나라에도중요한 선례로 작용할 수 있는,자랑이 될 수도 있습니다.국회의원들도 자신이 국회의원일 때 역사적인 법률을 만들 었다고 생각해야 합니다.눈앞의 위기 탈출에만 급급하지 말고 한달이 아닌 1 0년 앞을 내다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金주필:일각에서는 가해자들에 대한 처벌로 생각하고 위기감을 갖는 사람들 이 많은 것 같습니다.하지만 진실규명 차원에서 참여기회를 주고 적절한 배 상과 보상을 통해 화해의 바탕을 마련하는 것이 핵심입니다. 金국장:유가족도 진상규명을 원합니다.처벌이 아니라 진상규명을 통해 진정 한 고백과 사과를 받으면 용서한다는 입장이지요. 李변호사:예우·보상은 진상규명의 전제 위에서 가능합니다.결코 떨어질 수 없는 문젭니다.진상규명이야말로 문제 해결의 출발점입니다. 金국장:국회에 상정된 법안은 늦었지만 의미 있습니다.‘형이상학적 죄’를 짓고 있는 우리들이 열사들의 뜻을 잊어서는 안될 것입니다.대한매일은 이 러한 것이 가능하도록 물꼬를 트는 역할을 했습니다. 安교수:민주열사들에 대한 공적인 자리매김을 대한매일이 했습니다.시리즈 에서 다룬 인물들은 우리 자랑스런 역사의 출발점이고 굴절된 50년 역사를 그나마 빛나게 한 분들입니다. 金주필:필리핀의 호세 리잘은 스페인 침략시절에 ‘나는 조국의 밝은 새벽 을 보지 못하고 죽는다.그러나 밝은 세상의 사람들은 밤사이 스러져간 사람 들을 잊지 말라’라고 했습니다.우리는 바로 밤사이 스러져간 열사들의 희생 위에 지금의 민주화를 누리고 있습니다.그들의 뜻을 기리고 희생을 생각하 는 것은 우리 전부의 의무입니다.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金在暎·任昌龍 kjykjy@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이 총선정국 혼미

    ?맙뭍瀯痍? AP AFP 연합?립뺙? 5월 17일로 예정된 이스라엘 조기총선을 앞두고 베니 베긴 전 과학장관이 총리 선거전에 합류하는 등 등 총선 판세 가 혼미 양상을 띠고 있다.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초대 총리의 아들로 민족주의 우익 세력을 대표하는 베니베긴(56)은 28일 총선에서 총리직에 도전하기 위해 소속 정당인 리쿠드 당을 탈당한다고 전격 선언했다. 베긴은 이날 네타냐후 총리가 팔레스타인의 압력에 굴복했다고 비난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건설이라는 위험과 싸울 수 있는 진정한 우익 정당을 결성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따라 집권 연정을 이끄는 리쿠드당에서만 댄 메리도르 재무장관과 암 논 리프킨-샤하크 전 군참모총장에 이어 베긴 전 장관 등 모두 3명의 후보가 차기 총리 출마를 위해 탈당을 선언했다.또 네타냐후 총리를 리쿠드당의 총 리 후보로 지지한 아리엘 샤론 외무장관도 이날 “특별한 상황하에서는 총리 직 출마를 배제하지 않겠다”고 밝혀 총리 출마 가능성을 시사했다. 여기에 이츠하크 모르데차이 국방장관도 리프킨-샤하크전 참모총장이 결성 할 중도 정당에 합류할 수도 있어 리쿠드당의 분열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 다. 유력 후보들의 연쇄 탈당으로 리쿠드당 총리 후보 선두주자로 남게 된 네타 냐후총리는 27일 리쿠드당 중앙위에서 팔레스타인 독립국가는 이스라엘의 존 재 자체를 위협할 것이라고 경고하며 사실상 선거운동에 돌입했다.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네타냐후 재선 출마 “”먹구름””

    이스라엘 의회의 조기 총선안 승인 이후 정치 생명연장에 골몰하고 있는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집권 리쿠드당의 분열로 궁지에 몰리고 있 다. 지난 26일 집권 리쿠드 당 중앙위 총회에 앞서 당내 최고 경쟁자로 부상한 에후드 올메르트 예루살렘 시장의 출마포기를 이끌어내 총리 재선 가도를 달리는가 했던 네타냐후 총리는 28일 메나헴 베긴 이스라엘 초대총리의 아들 인 베니 베긴(57)의 강력한 도전에 맞닥뜨렸다. 베긴은 차기 총선에서 총리직에 도전하기 위해 소속 리쿠드당을 탈당한다 고 이날 전격 선언했으며 별도의 우익 정당을 결성할 것으로 보인다. 네타냐후는 당내에서도 중도계의 암논 리프킨 샤하크 전 육군 참모총장 등 의 도전을 이겨내야 총리 지명을 받을 수 있다.게다가 이미 댄 메리도르 재 무장관이 차기 총리 도전을 선언했으며 이츠하크 모르데차이 국방장관과 리 모르 리브내트 통신장관도 탈당을 내비쳐 안팎으로 고비를 넘어야 하는 처지 다. 팔레스타인과의 ‘영토-평화 교환’으로 불리는 와이 리버 협정에 강력히 반대하고있는 베긴은 벤야민 네타냐후 총리 정부에서 과학장관을 지냈으며 지난해 1월 네타냐후 정부의 요르단강 서안 철군 결정에 반대,사임했었다. 이스라엘은 네타냐후 정부가 체결한 와이 리버협정 이행을 둘러싼 논란끝 에 최근 여야가 내년 4,5월께 조기선거 실시에 합의했으나 선거일을 확정하 지는 않은 상태다. [金秀貞 crystal@daehanmaeil.com] **끝** (대 한 매 일 구 독 신 청 721-5544)
  • 민주열사 열전:19/前 성균관대생 崔東(정직한 역사 되찾기)

    ◎노동운동 헌신… 고문 후유증 시달리다 분신/‘인노회’ 관련 구속… 수면기능 망가져 정신분열증세/‘인간 파괴’ 절망의 벼랑에서 쓸쓸하게 죽음을 선택 ‘어찌하여 감옥에 들어서자마자 죄를 지었노라고 자백하지 않았느냐? 고문자들 앞에 서거든 유죄임을 인정하고 죽어라.결코 거기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유럽에서 ‘마녀사냥’이 횡행하던 16세기초 독일의 프리드리히 슈페 폰 랑엔펠트 신부가 했던 말이다.그는 종교재판에서 유죄가 확정된 죄인들과 처형장까지 동행했던 참회신부였다.죄없는 사람들이 고문에 버티다 결국 절망의 나락까지 떨어진 끝에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수없이 보았다.그가 말하고자했던 것은 무엇일까.바로 고문 앞에 한없이 무력한 인간과 고문이 가져오는 인간성 파괴였다. 수십년 독재정권을 겪었던 우리 사회도 고문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고문은 정권수호를 위한 강력한 도구였기 때문이다.그리고 그 최대 피해자는 결국 ‘민주주의의 꽃’을 피우기 위해 정권에 도전한 사람들이었다. ○법정진술서 “도덕적 승리” 주장 전 성균관대생 崔東(80년 입학)도 그들중 하나였다.그는 10여년간 학생운동과 노동운동에 앞장섰다.그러나 어느날 공안기관의 조사를 받은 뒤 정신분열현상을 보이다 황폐한 삶을 마감했다. 최동은 90년 8월7일 한양대의 한 강의실에서 분신자살했다.하지만 그의 유서에는 시국관련 분신자들이 흔히 남기는 ‘독재타도’나 ‘외세타도’ 등 정치적 내용은 없었다.‘저들의 목적은 인간을 파괴시키는 것이었습니다.지금의 저는 폐인이나 다름 없습니다’란 절망적 몸부림의 흔적이 있을 뿐이었다.이는 그가 걸어왔던 노동자와 민주주의를 위한 길을 더이상 갈 수 없다는 점을 자인하는 것이었다.그리고 분신은 그런 길을 걸을 수 없는 자신의 존재 부정이었던 것이다. 朴炯圭 목사는 장례식 조사에서 이렇게 그의 죽음에 의미를 부여했다.“지배자들은 사람들에게 굴복할 것을 강요합니다.그러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육체적·정신적으로 불의에 맞설 힘이 없었던 최동 열사는 무릎을 꿇기보다는 마지막 싸움의 무기로 죽음을 선택한 것입니다” 최동은 대학1학년때부터 학생운동에 적극 참여했다.80년 5월 문무대 병영집체교육 거부운동을 주도적으로 벌였고 2학년때는 공개적 이념동아리인 ‘심산연구회’ 결성을 주도했다.심산(心山)은 성균관대 설립자이고 반독재운동가인 金昌淑 선생의 호이다.최동은 여기서 1학년 후배들 뿐만 아니라 2학년 동기들에게까지 학습을 지도했다.그리고 4학년때 광주항쟁 진상규명 등을 촉구하는 학내시위를 주도했다가 처음으로 구속된다.이때 재판에서 그는 최후진술을 통해 “다른 무엇보다도 우리는 인간적 승리,도덕적 승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해 신념에 가득찬 민주투사로사의 면모를 보여준다. 9개월 복역후 출소한 최동은 정부의 복학허용을 개량화 조치라며 거부하고 84년 노동운동에 뛰어든다.부천의 삼창정밀 동광정밀 등에서 프레스공으로,(주)세일에서 재단사로 일한다.수형전력이 발각될까봐 주로 소규모 작업장을 전전하며 동료 노동자들의 노동의식을 일깨우는데 주력했다.외부에서는 다른 노동운동가들과 연대작업에 힘을 기울였다.그러나 활동가 중심의 노동운동이 현장과의 유리라는 한계를 갖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현장노동자들이 주체적으로 참여하는 노동운동’을 표방하는 인천·부천 민주노동자회(인노회)는 그런 한계를 넘어보려는 의지의 산물이었다.최동은 88년 3월 인노회 결성에서 산파역할을 했다. ○기각된 영장 재청구해 발부 받아 89년 2월 검찰은 국가보안법 이적단체구성죄를 적용해 인노회 관계자 6명을 구속했다.최동도 4월 부천 심곡동 자취방 앞에서 붙잡혀 치안본부 대공분실로 연행된다.하지만 관련자들은 인노회가 공개적 노동자들의 대중조직이라고 주장했다.담당판사도 인노회가 노동운동을 위한 단체임을 인정해 구속영장을 기각했다.그러나 검찰은 강성의 다른 판사에게 재신청하여 영장을 발부 받는다. 최동은 동료들에게 시간을 벌도록 처음에는 묵비권으로 버티었다.또 고문조작 수사를 막기 위해 취조실 욕조에 머리를 찧어 자해를 기도한다.그러나 경찰병원에서 7바늘을 꿰매는 응급치료만을 받고 다시 20여일에 걸쳐 조사를 받았다.구치소 수감 직전에도 그는 극도의 정신적 압박감에 시달리다칫솔대를 부러뜨려 목을 찌르는 자해를 한다.하지만 이때도 외상만 치료받고 하룻만에 구치소에 수감되고 만다. 최동은 출소후 조사기간 내내 거의 잠을 못자며 취조를 받았다고 주장했다. 수사관들이 교대로 취조를 했고 취조를 안할 때는 밝은 조명과 괴상한 소음을 이용,잠을 못자게 해 수면기능을 파괴했다고 말했다.고문을 경험했던 사람들은 수많은 고문중에서도 잠을 안재우는 고문이 가장 참기 힘들다고 말한다.어머니 金順玉 여사(62)는 “동이가 구치소 수감 직전부터 이미 눈빛이 정상이 아니었다.경찰병원 의사도 주의깊은 관찰과 치료가 요구된다고 진단했다”고 밝혔다. 그는 구치소에서도 조사 때의 수면기능 파괴로 인한 불면에 계속 시달렸다. 그리고 7월 초부터 심한 발작과 실어증세를 보인다.의도하지 않은 말 등 의식과 행동이 따로 작용하는 증세도 뒤따랐다.책이나 신문도 전혀 못 보는 등 상태가 악화되자 종로신경정신과에서 외래진료를 받았는데 ‘정신분열증’ 진단이 나왔다.하지만 이런 비정상적 정신상태에서도 수감된 채 재판이 계속 진행됐다.9월18일 선고공판에서 집행유예가 결정된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비정상적 정신상태서 재판 출소후 종로신경정신과에서 입원치료를 받았으나 상태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는 “적들이 나를 무능하게 만들었다” “AIDS균으로 나를 죽이려 한다” “계속 감시당하고 있다”고 하는 등 극도의 불안한 심리상태를 보였다.그리고 90년 4월 부천의 한 자취방에서 연탄가스로 자살을 시도한다.이후 그는 수영장에 가거나 집에서 가까운 한양대로 산책을 나가며 건강회복을 위해 힘쓴다.정치이념이 철저하고 논리가 ‘칼’같아 마오쩌뚱에서 이를 따 ‘마동’으로 불렸던 최동.그는 어떻게 해서든지 학교와 노동현장에서 인정받았던 이러한 탁월함을 되찾고 싶었는지도 모른다.하지만 노력도 헛되이 스스로 한많은 세상을 뒤로 하고 말았다.8월 7일 아침 평소처럼 “운동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던 그는 잠시후 검게 탄 시신이 돼 있었다. □약력 ●1960 서울 정동 출생 ●80 서울 환일고 졸업.성균관대 국문과 입학 ●81 학내 동아리 심산연구회 창립●83 광주항쟁 진상규명 요구시위 주도.9개월 복역 ●84 부천에서 노동운동 투신 ●88 인천·부천민주노동자회(인노회) 결성 ●89 인노회사건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구속 ●90 한양대에서 분신.한양대 부속병원으로 옮겨졌으나 곧 운명 ◎崔東 가족들/“치료만 제때 받았어도…” 회한/4남매중 셋이 학생운동/아버지 홧병으로 사망 “제때 치료만 받았어도 그렇게 가지는 않았을 텐데…” 최동의 어머니 김순옥 여사가 가슴에 묻고 있는 안타까움이다.대공분실 조사때부터 입원치료를 애원했으나 거절당했다고.구치소에서도 ‘충분한 휴식과 요양이 필요하다’는 의사의 소견을 계속 무시했다고 한다.결국 출소할 때까지 제대로 손도 못쓴 채 아들의 증세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깊어졌다는 것이다.김여사는 아들이 노동운동을 할 때도 부천에 전세방까지 얻어주고 밥도 해주는 ‘후원자’였다.아무리 말려도 듣지 않자 기왕 할거라면 굶지 말고 하라는 모정때문이었다.그런 아들이 제때 치료를 못받아 죽은 것이다. 김여사의 비극은 그러나 그것으로 끝나지 않았다.아들의 49재가 끝나자마자 남편 최수호씨(당시 56세)까지 잃은 것이다.여자인 자신과 달리 슬픔과 분노를 가슴속에 꾹꾹 눌러 담기만하다가 홧병으로 가고 말았다고 했다. 4남매중 셋이 학생운동을 한 ‘덕’에 김여사는 구치소라면 치가 떨린다고 했다.장남인 최동의 바로 밑 여동생 숙희씨(35)는 서울여대 재학시절 야학문제로 1주일간 유치장 신세를 지고 나왔다.오빠가 구치소에 있을 때는 거의 매일같이 어머니와 함께 옥바라지를 했다.출가했지만 친정어머니인 김여사와 함께 사는 그녀는 “면회때면 제게 항상 귀엣말로 동료들을 조심시키라고 당부했다”며 “오빠이기 이전에 동지로서 존경의 대상이었다”고 고백한다. 둘째동생 재동씨(34)도 민정당연수원 점거사건으로 영등포구치소에서 6개월간 복역했고 2년간 수배생활을 하기도 했다.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와 현재 일본 도쿄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 의보酬價 병원별 차등/黨政 2000년부터 시행 방침

    ◎1∼3차 기관별로 진료항목 지정 정부와 여당은 환자들이 대학병원 등 3차 진료기관으로 몰리는 현상을 막고 1차(개인병원)·2차(준종합병원)·3차(대학병원등 종합병원) 의료기관의 동등한 발전을 위해 각 의료기관의 수가구조를 단계적으로 차등적용하는 ‘수가차등제’를 오는 2000년 1월부터 도입할 방침이다. 당정은 간염,결핵,자궁경부암,고혈압,당뇨병,치아 우식증,정신분열증,치매,분만 및 산후관리,영유아 건강관리 등 10대 질병을 국가 중점관리 대상으로 선정하고 ‘국가건강위원회’를 구성해 국가차원에서 관리하기로 했다. 국민회의 金元吉 정책위의장은 23일 당정협의를 통해 마련한 보건의료 개혁안을 발표하고 이를 위해 보건의료기본법과 공공보건의료법을 제정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당정은 의료기관별 적합 진료항목으로 ●1차진료기관 감기,설사,고혈압,당뇨병 등 단순치료 ●2차기관 충수돌기 절제술,치질수술,폐렴 등의 입원치료 ●3차기관 암,뇌수술,심장수술 등 고난도 수술을 각각 지정하고 이를 어기는 진료기관에 대해서는 차등 수가를 적용,경제적 불이익을 줄 방침이다. 당정은 또 의약분업제도를 정착시키기 위해 1,2차 진료기관의 외래조제실을 2000년부터 폐쇄하되,희귀약제를 처방하는 3차 진료기관의 경우 3∼5년간 유예할 방침이다.
  • 정범구의 세상읽기/정범구 지음(화제의 책)

    ◎TV 명사회자가 쓴 정치·사회평론집 지난해 ‘대통령 후보 합동TV토론’ 진행을 맡은 뒤 각종 방송의 개혁 프로그램 사회자로 명성을 높인 지은이의 사회평론집. 지난 94년 이후 신문·라디오 등 여러 매체에서 발표한 25편을 모았다. 지은이는 갈수록 국민을 정치적 무관심으로 몰아가는 정치판,‘빨갱이 사냥’과 같은 사회적 정신분열,또다른 권력의 아성으로 자리잡은 언론,국가적 환란을 맞고도 정쟁만을 일삼는 현실정치 등을 날카롭게 비판하면서 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2∼3년전에 쓴 글이 상당수 있지만 지금 읽어도 명쾌한 까닭은,형태는 달라도 그 본질은 그제나 이제나 별로 달라지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3년전 ‘박홍 서강대총장의 주사파 발언’을 다룬 글은 요즘의 ‘최장집 교수 논문 왜곡사건’에 그대로 대입해도 가능할 정도이다. “세월이 흘러도 무수히 많은 것들이 반복되는 동어반복의 정치,동어반복의 사회”라는 지은이의 비판이 가슴 아프게 와닿는다. 창작과비평사/7,000원
  • 내각제 논쟁 국력 소모 우려/姜元敦 목사(특별기고)

    ◎아직은 경제회복 힘모을때 내각제 개헌에 관한 논의가 연말 정국에 파장을 몰고오지 않을까 우려된다.지난 18일 대선 승리 1주년 기념식에서 대통령과 총리가 내각제 개헌 조기 공론화와 관련,미묘한 시각차이를 보이는 발언을 한 것을 두고 정치권이 한바탕 폭풍에 휩싸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내각제 개헌 문제에 관한 한,정당들과 정파들의 의견은 제각각이다.내각제를 추진하고 있는 자민련 내부에서도 서로 다른 목소리가 들린다.일부는 대통령 임기말이나 차기 총선 이후쯤으로 내각제 개헌 논의 시기를 조절하자고 주장하고,또 다른 일부는 연초부터 내각제 개헌을 논의하기 시작해 내년 말까지 개헌을 완료하자고 한다.국민회의측은 내각제 개헌에 관한 약속이 여전히 유효하다고 전제하면서도 우리 경제 사정을 들어 공론화를 연기하자는 입장이다.당내 사정이 복잡한 한나라당은 아직 이렇다 할 견해를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많은 국민들은 경제위기가 극복되지 않은 상황에서 예민한 정치사안에 대한 논쟁이 공동정권 내부에서 불거지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지금은 국민의 역량을 한 군데로 모아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경제를 재건해야 할 때인데 내각제 개헌 논쟁이 갈등국면으로 치닫고 국론분열로 이어질까 두려워하는 것이다.관치금융과 재벌독재로 상징되는 과거의 경제제도를 뜯어 고쳐 공정하고 효율적인 시장경제를 건설하는 데 강력한 정치적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개혁에 동참하지 않는 세력들의 힘이 여전히 큰 오늘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사정이 이러한데도 지난 대선 때의 내각제 약속을 내세워 현대통령이 2년 임기로 당선되었다고 생각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결코 지혜롭지 못하다. 내각제 개헌 논의는 경제가 안정을 되찾고 시장경제에 대한 민주적 규율이 제도화된 뒤에 해도 결코 늦지 않다.내각제를 논의하게 되더라도 내각제가 우리의 정치 현실에 맞는지도 검토해 보아야 한다.내각제가 다양한 정치,사회세력들의 이해관계를 조절하고 타협을 유도하는 순기능을 발휘하는 경우도 있지만,일본의 예에서 보듯이 장로들의 밀실정치로 타락할 수도 있다.강권을 내세운 정치 보스 중심으로 세력을 엮거나 지역주의에 기대어 정치세력을 유지해 왔던 우리의 정치 상황에서 장로정치가 민주주의의 건전한 발전에 역행하지 않는가를 따져 볼 필요가 있다.우리 정치에 큰 부담이 되어 왔던 부패구조가 내각제를 통해 더 심화되지 않는가 하는 문제도 검토되어야 한다. 내각제가 비교적 잘 발전된 독일의 경우에는 사회세력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이념정당들이 발달되어 있고,시민사회와 국가와 시장경제를 엮을 수 있는 공론구조가 잘 발전되어 있다.순수내각제 형태로 독일식 내각제를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들리지만,내각제의 확립과 발전은 제도 자체를 이식하는 것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이를 위한 여러 여건들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된다.이 문제 역시 우리 정치가 앞으로 풀어나가야 할 여러 과제들을 고려하는 가운데 근본적으로 검토되어야 한다. 이와 같은 문제들에 대한 토론은 학자들 간에 언제나 있어 왔다.문제는 전국민이 참여하는 내각제 논의가 지금 벌어져서 좋은가 하는 것이다.
  • 이라크 공습 클린턴­후세인 손익계산서

    ◎클린턴/美 이미지 타격 “적자”/“탄핵지연술” 비난여론/세계경찰 윤리성 손상 【워싱턴 崔哲昊 특파원】 이번 이라크 공습으로 클린턴은 무엇을 얻고 잃었을까. 더 잃을 것이 없던 클린턴으로서는 얻은 것이 있겠으나 미국 전체로 본다면 손익계산서는 적자로 기록될 것으로 보인다. 우선 클린턴 개인으로서는 대통령직을 연장해가는 데 큰 이익을 얻었다고 볼 수 있다.탄핵 표결이 하루 연장되는 동안에 공화당의 차기 하원의장인 리빙스턴의 스캔들이 터져나와 주었다.이것은 공화당이 우세한 하원이 탄핵을 논의하는 데 엄청난 판도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총력전을 펼치면서 클린턴을 지지하는 국민여론 외에 탄약이 부족하던 민주당 의원들에게 크루즈 미사일을 장전해준 격이 됐기 때문이다.클린턴 개인에 대한 비난은 얻은 것에 비하면 미미한 정도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미국 전체로는 잃은 것이 많다.우선 윤리성을 앞세운 지구촌 경찰 국가의 이미지가 클린턴 탄핵에 맞물리면서 크게 손상됐다. 또 러시아가 17일 주미대사를 소환해 불쾌감을 나타내는 등 미국에 대한 전세계의 여론이 이번 공격으로 양분됐다.이는 외교적 손실이 아닐 수 없다. ◎후세인/정치위상 강화 ‘흑자’/아랍권 지지세력 확대/핵무기개발 빌미 얻어 후세인 이라크 대통령은 이번 미국과 영국의 공습을 정치적 위상을 강화하는 계기로 삼고 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할 공산이 높다.살아남기만 한다면 그는 잃을 게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이번 공습의 1차 목표는 이라크내 생화학무기 등 대량 살상무기 생산시설의 파괴이지만 궁극적으로는 후세인의 축출과 신정부 수립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공습에도 불구,무기 생산시설의 완전 파괴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군사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유엔 무기사찰단(UNSCOM)의 지적대로 무기 생산시설의 정확한 위치를 알지 못하는데다 설사 시설이 파괴된다 해도 무기 설계도의 복사판이 얼마든지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반정부세력도 후세인에게는 별로 위협이 되지 못하고 있다.공습에 따른 이라크 국내와 아랍권의 반미감정이 그에게는 큰 힘이 되고 있다.영국에 망명한 야권은 분열양상을 보여 걱정거리가 못된다.더욱이 2,000대 이상의 탱크와 43만명의 병력 등 군사적 지지기반도 충분하다.따라서 그는 걸프전 이후 7년간 계속돼온 유엔의 무기사찰에 종지부를 찍고 핵무기와 생화학무기 개발에 전력 질주할 가능성이 높다.
  • 지금은 경제회생에 전념할때(사설)

    金大中 대통령은 18일 내각제 개헌문제와 관련해서 “나와 金鍾泌 총리가 합의서에 도장을 찍은 사람으로서 결자해지(結者解之)차원에서 멀지않아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풀어나갈 것”이라고 밝히고,“그러나 지금은 아직 (내각제 개헌을 거론할)때가 아니며 국회와 청문회등 많은 문제가 있는만큼 할일을 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날 오전에 열린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수평적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 치사를 통한 金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金총리가 ‘대국민 약속인 99년 내각제 개헌약속의 이행’을 촉구한 데 대한 공개적인 답변의 성격을 지닌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지 않아도 많은 국민들은 국민회의와 자민련의 ‘수평적 정권교체 1주년 기념식’을 조마조마하게 생각했다. 며칠전부터 자민련 일각에서 내각제 조기논의를 거론하고 나왔기 때문에,혹시 이날 모임에서 이 문제를 둘러싸고 공동집권여당인 국민회의와 자민련 사이에 메울 수 없는 골이 패여 우리 나라의 명운이 걸린 경제회생과 국정개혁에 차질을 빚는 것은 아닌가 우려해서였다. 金대통령도 이같은 국민들의 우려를 알고 “쓸데없이 간극을 만들지 말고 누구는 하자하고 누구는 하지말자고 하는 인상을 언론에 심어주어 국민을 걱정케 하고 의원들간에 의심케 하는 인식을 주지말자”고 공동집권여당에 당부했다. 우리는 “내각제 약속은 그대로 살아있다”는 金대통령의 확인과 ‘결자해지’의 다짐을 평가하면서,지금 우리 나라가 당면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우리의 인식을 전하고자 한다. 우리는 지난해 연말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던 외환위기를 맞아 국제통화기금(IMF)구제금융관리체제 아래 들어갔다. 6·25동란이후 최대의 국난이었다. 다행히 정부와 국민이 합심 노력한 끝에 우리는 겨우 외환위기를 벗어났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사회 각부문에 걸쳐 거품빼기와 구조조정을 추진하고 있다. 거기에는 뼈를 깎는 고통이 따른다. 기업도산과 구조조정으로 150만명 가까운 실업자가 거리를 방황하고 있는 마당이다. 경제가 다소 회생되는 기미를 보이기는 하지만 경제위기를 완전히 벗어나기 위해서는 가야할 길이 아직도 멀다. 그렇다면 정치분야는 어떤가. 새정부가 들어선 이래 줄곧 정쟁에 휘말려 민생을 팽개쳐두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때아닌 내각제 개헌 논의를 둘러싸고 국론이 분열된다면 실업문제등 민생은 어디로 가고,경제회생은 어떻게 되겠는가. 지금은 정치권과 국민 모두가 경제회생에 전념할 때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그 때를 놓치면 뒤늦게 후회해도 소용이 없다.
  • DJP 공조(정권교체 1주년:下)

    ◎‘역할분담의 미학’ 공동정권 순항/김 대통령 경제·외교­김 총리 규제철폐 심혈/‘예우와 배려’속 국정운영… 환란 성공적 극복 金大中 대통령과 金鍾泌 국무총리의 관계는 어떤가.많은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있다. 공동정권의 운영자라는 협조관계,대통령과 총리라는 상하관계,국민회의 총재와 자민련 명예총재라는 경쟁(?)관계….이처럼 복합적인 것이 새 정부에서의 두사람 관계다. 그러나 지난 1년 동안 양김(兩金)은 다른 관계를 일단 접어두고 대통령과 총리로서의 관계에 충실해왔다. 金총리는 국가원수인 金대통령을 깍듯이 ‘모시는’ 태도를 주저하지 않았다.金총리는 보좌진과의 회의에서 “대통령께 윤허(允許)를 받아보겠다”는 식의 표현을 자주 쓴다.매주 화요일 청와대 주례회동 전에는 보고할 사안 하나하나의 예산확보 여부까지 챙긴다.“대통령이 나에게 그런 것까지 묻지는 않지만,그렇게 하는 것이 도리”라고 金총리는 자료를 준비하는 실무진에게 말한다. 金총리에 대한 金대통령의 예우와 배려도 곳곳에서 나타난다.金대통령은 지난달 28일 金총리가 한·일 각료간담회에 참석하기 위해 일본을 방문할 때 전용기를 내주기도 했고,최근 千容宅 국방부 장관의 거취문제를 결정할 때도 金총리의 의견을 반영했다고 한다. 金대통령은 경제회생과 대북정책 등 핵심현안을 직접 챙겼고,金총리는 행정규제 철폐 등 정부가 추진하는 개혁작업을 다듬어왔다. 이런 관계 속에서 두 사람은 분열과 반목으로 점철된 우리 헌정사에서 초유의 공동정권을 성공적으로 운영해왔다.몰락위기의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선데는 양김의 역할분담을 통한 국정운영도 중요한 기반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다. 지난 1년 동안 양김 관계를 흔들어보려는 시도도 없지 않았다.양김의 뜻과 는 관계없이 개인적,집단적,정략적 이익을 노린 갈등 부풀리기 현상도 나타났다.국민회의와 자민련간에도 내각제 추진 시기 등을 놓고 이따금씩 신경전이 있었지만,두 사람의 신뢰 관계에 영향을 미칠 정도는 아니었다.金총리가 崔章集 정책기획위원장의 6·25 전쟁 시각을 비판했을 때도 청와대측에서는 “그만큼 현 정부의 이념적 스펙트럼이 넓다는 반증”이라고 받아넘겼다. 이제 99년을 맞으며 金대통령과 金총리의 관계에 다시 한번 시선이 쏠린다.대통령후보 단일화 당시 약속한 내각제 개헌시기가 다가오기 때문이다.내각제 문제는 양김의 신뢰 관계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유일한 변수다. 여권의 핵심관계자는 “金대통령과 金총리가 적어도 국정을 담보로 정치게임을 벌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이 관계자는 “양김 모두 이미 내각제의 형태와 추진 시기에 대한 생각을 갖고 있을 것”이라면서 “설령 그 생각에 차이가 있다고 해도 정치 9단인 두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충분히 조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金총리는 지난 5일 청구동 자택을 떠나 삼청동 공관으로 이사했다.청와대 바로 옆이다.이제 金대통령과 金총리의 관계에 ‘이웃사촌’이 추가됐다.주변 시선의 부담을 던 상태에서 金대통령이 金총리를 청와대로 부를 수도 있고,金총리가 金대통령을 따로 ‘집들이’에 초청할 수도 있을 것이다.어쩌면 그런 만남이 벌써 시작됐을지도 모른다.◎정책 어떻게 바꿨나/‘실사구시’에 바탕둔 내외치/경제개혁­대북 포용 등 실용주의 정착단계로 정권교체는 정부의 대내외 정책에도 새 바람을 몰고왔다.‘대북 포용정책’과 실사구시(實事求是)의 ‘경제정책’, 세일즈 외교는 새 정부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정책의 변화는 자연스레 집회및 시위 문화의 변화등 사회 전반에 걸쳐 새로운 패러다임 정착으로 이어지고 있다. 대북 포용정책은 국민의 정부 대북정책의 화두다.안팎의 도전도 거셌다. 소떼가 판문점을 통해 북한으로 올라간 뒤 동해안 잠수정 침투사건이,금강산 유람선이 뜨는 시점에 서해안 간첩선 침투사건이 발생했다.정권교체 1주년을 맞은 18일에는 남해안에 침투한 북한의 반잠수정이 격침됐다.야당은 대북포용정책의 수정을 강력히 요구했다. 그러나 정부는 확고한 국가안보과 정경분리원칙에 입각한 대북포용정책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그 결과 경협이 잇따르고 경제인·종교인들의 방북행렬도 줄을 이었다.11월말까지 2,645명이 북한을 방문,과거 10년동안의 2,408명보다 많았다.지난 한달동안 6,000여명이 금강산 관광을 다녀왔다.금강산 관광은 대북포용정책의 대표적인 과실로 꼽힌다.하지만 북한의 대남정책에 근본적인 변화가 없는 한 끊임없는 도전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실사구시에 입각한 경제정책은 국내적으로는 금융·기업 구조조정 추진, 대외적으로는 신인도 회복과 환란 극복,경제회생 기반조성으로 나타났다. 세일즈 외교는 金大中 대통령의 진가를 더욱 빛나게 했다.金대통령은 취임후 미국,일본 등 기존 우방국가는 물론 중국,동남아,유럽 여러 나라들과의 우의를 돈독히 하는 등 전방위 경제 협력체제를 구축했다.양보할 것은 양보하고,받을 것은 받으면서도 밑지지 않는 실용주의 외교를 펼친 셈이다.이는 최근의 베트남 방문때도 계속됐다. 사회분야에서도 다양한 변화가 일어났다.그 중 하나가 건전한 집회·시위문화의 정착이다.金대통령도 이와관련,정권교체 1주년 기념행사에서 “수십년 동안 최루탄·돌멩이·쇠파이프는 한국의 명물이었으나 국민의 정부 반년만인 지난 5월 이후 뿌리뽑혔다”고 말했다.이어 “가장 큰성공 사례로 높이 평가하고 싶다”고 자랑했다. 인권 존중에 있어서도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인권법이 제정 단계에 있으며 현 정부는 고문과 도청을 영원히 없어져야 할 사회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노조가 정책결정에 참여하는, 상상하기 어려웠던 변화도 있었다.노사정위원회를 통해 교원노조의 허용,노조의 정치자금 모금 및 기부행위 허용 등의 변화가 있었다.공직사회도 예외는 아니다.부정부패를 뿌리뽑기 위한 부패방지법 제정이 추진중이다.이와함께 경쟁체제 도입등 공직사회 전반에 새바람이 일고 있다.
  • 인간배아 복제 국내 첫 성공/경희대 金勝普 교수팀

    ◎난치병 치료 획기적 계기 될듯/세포분열 확인… 세계 2번째 배아단계까지의 인간복제가 국내 처음으로 이뤄졌다. 경희대 金勝普 교수팀은 “시험관아기 시술시 수정 못하고 폐기하는 난자를 대상으로 난자세포의 핵(n)을 제거하고 체세포핵(2n)을 삽입한 뒤 세포분열을 유도하여 자궁내 이식 전 단계인 4세포기의 배아단계까지 분열되는 것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4세포기 배아단계는 시험관아기 시술과정에서 정자와 난자를 수정한 뒤 세포분열이 일어나는 것을 확인하고 자궁내에 이식하기 전단계로서 이 단계의 수정란을 이식하면 정상적 분열을 거쳐 태아가 된다. 인간세포 배아단계까지의 복제는 세계적으로는 2번째이다.이 방법은 올해 하와이대학의 야나기마치교수팀이 개발하여 7월에 쥐의 복제에 성공한 기술이다.최근에는 복제양 돌리를 만든 로스린 연구소에서 인간세포의 배아단계까지 성공한 바 있다. 연구팀의 李普淵 교수는 “이번 배아복제는 임상목적이 아닌 순수 연구목적으로 시도되었다”면서 “국내 불임치료 윤리규정상 복제된 배아의자궁내 이식이 금지되어 있기 때문에 자궁에 이식하지는 않았다”고 밝혔다.李교수는 “법적·윤리적으로 필요성이 인정되고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되면 이 기술을 불임부부를 위한 치료에 이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의료계에서는 이번 개가가 간·신장 등의 장기 이식이 필요한 환자가 자신의 체세포를 이용,필요한 장기만 복제할 수 있도록 하는 기술의 개발가능성을 높인데서 큰 의의를 갖는다고 보고 있다.
  • “새마을운동 정치 이용 불용”

    ◎金 대통령 치사… 지도자대회 ‘제2새마을운동’ 선포 金大中 대통령은 8일 “국민의 정부는 건전한 시민운동을 적극 지원하되,불필요하게 개입하거나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일은 결코 하지 않을 것임을 굳게 다짐한다”고 말했다. 金대통령은 이날 오후 서울 잠실학생체육관에서 열린 ‘전국새마을지도자대회’에서 이같이 밝히고 “새마을지도자들도 ‘새마을’이 관변단체라는 과거의 굴레를 벗어나 자율적인 시민사회단체로 거듭날 수 있도록 한층 노력해달라”고 당부했다. 金대통령은 특히 “어떤 일이 있어도 다시는 권력이 새마을운동을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것을 용납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金대통령은 “이제 ‘새마을’은 국난극복을 위한 국민의 참여와 협력을 불러 모으고,지역·계층·세대간 분열과 갈등을 국민대화합으로 승화시키는 데 큰 역할을 맡아줘야 한다”며 “우리 사회의 각종 병폐와 부조리를 바로 잡는 생활의식개혁 등 국정을 총체적으로 개혁하는 제2의 건국운동의 선봉에 나서달라”고 말했다. 한편 새마을운동 관계자 8,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이날 대회에서 새마을운동중앙본부는 ‘제2 새마을운동’을 선포했다. 姜汶奎 회장은 대회사를 통해 “우리는 지금 ‘제2의 새마을운동’을 통해 ‘제2의 건국’운동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하려는 새로운 전환점에 처해 있다”고 지적하고 “새마을운동이 진정한 국민운동으로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21세기 시대정신에 맞는 사회공동체운동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이날 徐漢泰 새마을운동 경남도지부장이 새마을훈장 자조장을 수여한 것을 비롯, 모두 198명에게 훈·포장과 대통령 및 국무총리 표창장을 주었다.
  • 범불교도대회 6일 개최/조계종 분쟁양측 성명전

    ◎개혁회의선 분열행위 비난 조계종 月下종정은 3일 담화문을 발표,“폭력 사태로 불교계의 위신이 떨어지고 국민에게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면서 “모두가 참회해 분쟁을 빨리 종식시키자”고 말했다. 그러나 ‘전국승려대회 봉행위원장단’은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갖고 “6일 1만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서울 광화문 공원에서 대회를 열겠다”고 밝혔다. 정화개혁회의측도 성명서를 내고 “봉행위측의 대회 강행은 교단과 국론을 더욱 분열시키는 행위”라고 비난했다.
  • 민주열사열전:17/88년 투신·분신3명의대학생(정직한역사되찾기)

    ◎‘허울뿐인 민주’ 항거… 생명의 불꽃 살라/조성만­민주화운동 통일논의 새장 열어/최덕수­광주항쟁 진상규명 국조권 요구/박래전­“양심수 석방… 죽음 더 없어야” 유서 16년만에 국민이 직접 뽑은 대통령과 함께 1988년 6공화국이 시작되었으나 진정한 민주정부를 갈망하던 국민들은 허탈감과 패배의식에 사로잡혔다.직선제란 모양을 갖췄을 뿐 6공 盧泰愚 정권은 5공 군사정권의 연장이라는 인식이었다. 6공은 공식 출범 전부터 민주화추진위원회 등을 구성하며 ‘민주화’ 정책을 차례로 발표했다.군사독재 정권인 5공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는 선언인 셈이었다.그러나 6공 출범 3개월이 채 지나지 않은 5월 중순부터 20일간에 걸쳐 3명의 대학생들이 ‘노태우정권 타도’를 부르짖으며 젊은 목숨을 잇따라 내던졌다. 87년 12월 대선 때 문민정부의 도래를 꿈꾸었던 많은 사람들은 체념과 함께 6공 출범을 인정할 수 밖에 없었다.나아가 일말의 기대감도 없지 않았다.80년 5·18 광주학살 피해자들이 처음으로 민주화추진위에서 증언하기도 했다.그러나6공이 요란한 선전과 함께 내놓은 민주화정책들은 군사정부의 연장이라는 정권의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지 못했다.진정한 개혁이 절실한 때에 어설픈 개랑주의의 깃발만 펄럭이는 모습이었다.세 젊은 학생은 이를 그대로 두고 볼 수 없었던 것이다. 세 대학생의 잇따른 투신·분신을 두고 일부 사람들은 운동권의 좌절감과 방향감각 상실을 웅변해준다며 냉소적으로 바라보았고 정권도 이런 쪽으로 몰고갔다.그러나 수십,수만명의 시민·학생들이 이들의 장례식에 참석했다.세 학생은 직선제 정부의 출현에 만족해하려는 현실순응의 추세를 질타하면서 우리에겐 진정한 민주주의를 위해 해결해야만 하는 민주 현안이 산적해있음을 죽음으로 일깨웠다.이에 많은 국민들이 각성하고 공감을 표한 것이었다. ○시청앞 장례식 노제 30만 인파 운집 88년 5월15일 서울 명동성당에서 민가협 등 재야 민주단체 주최로 ‘양심수 전원석방을 위한 범국민 결의대회’가 진행되고 있었다.다른 한쪽에서는 100여명의 청년들이 참가한 명동성당 청년단체연합회(명청) 주최 ‘광주항쟁계승 마구달리기 대회’가 열리고 있었다.출발신호를 기다리던 오후 3시38분.서울대생(화학과 2년)으로 명청소속 가톨릭민속연구회 회장인 趙城晩이 구내 교육관 4층 옥상에 나타나 핸드마이크로 사이렌을 울린 뒤 “양심수 가둬놓고 민주화가 웬말이냐” “공동올림픽 개최하여 민족통일 앞당기자” “광주학살 진상규명 노태우를 처단하자”는 구호를 1분여 동안 외쳤다.이어 흰색 농민복을 입은 조성만은 오른손에 든 칼로 복부를 찌르고 몸을 뒤로 날려 마당으로 떨어졌다.투신 직후 인근 백병원으로 옮겨진 조성만은 이날 저녁 7시쯤 운명했다. 5월19일 낮 서울시청 앞에서 치뤄진 조성만의 장례식 노제에 30만명에 달하는 인파가 운집했다.1년전 시민항쟁 당시의 열기가 느껴지는 군중모임으로 4월총선에서 여소야대를 이룬 당시 야당의 金大中 평민당총재와 金泳三 민주당총재도 참가했다.조성만이 중고등학교를 다닌 전주 도심을 지날 때와 망월동 묘역으로 떠나기 전 광주 도청앞에서 노제를 지낼 때도 수만명의 시민들이 장례 행렬을 뒤따랐다. 전북 김제 농촌에서 하급공무원의 아들로 태어난 조성만은 독실한 가톨릭신자로 대학을 졸업하는 대로 신부의 길을 걸을 계획이었다.그는 투신 오래전에 일기에서 ‘10년 세월에 휼륭한 사제가 되어 교회의 모습을 변화시켜야 하느냐 한순간에 나의 진실된 모습을 표현하는 것이 옳은가’라고 자문했다.조성만은 투신 당일 아침 작성한 유서에서 특히 한반도 통일에 대한 관심을 촉구하면서 자유로운 통일 논의를 소리높여 요구했다. 민주화 운동에서 통일논의의 새 장을 열었다는 평가와 함께 ‘통일 전사’로 불리는 조성만은 유서 말미에 ‘지금 이 순간에도 떠오르는 아버님,어머님 얼굴,차마 떠날 수 없는 길을 떠나고자 하는 순간에 (그리스도가) 고행전에 느낀 마음을 알 것 같습니다’라고 쓰고 있다. ○“오월항쟁 계승 군부독재 타도” 외쳐 조성만의 장례식이 있기 하루전인 5월18일 오전 10시30분 단국대 천안 캠퍼스 시계탑 밑에서 이 학교 법학과 2학년에 다니다 휴학중인 崔德秀가 온몸에 신나를 붓고 분신했다.성명서를 통해 ‘광주학살 비리주범 노태우를처단하자’‘오월항쟁 계승하여 군부독재 타도하자’‘광주민중항쟁 진상규명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라’고 주장한 최덕수는 천안 순천향병원에 이어 서울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분신 9일만인 26일 운명했다. 빈한한 가정사정으로 학교를 쉬고 공장과 고향 농촌을 오르내려야 했던 최덕수가 분신할 당시 정가는 4월 총선후 국회개원을 앞두고 광주항쟁 진상조사 특위구성을 놓고 대립하고 있었다.그의 30일 서울역 노제에는 1만5,000여명의 시민 학생들이 참가했고 광주도청 분수대 노제에는 3만여명이 모였다. ○“안일과 비겁을 깨뜨리고 투쟁” 호소 그리고 6월4일 오후 4시30분 대학생들의 통일논의가 급피치를 올리고 있는 가운데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이던 朴來佺(국문3)이 학교 학생회관 옥상에서 “광주는 살아있다” “청년학도여 역사가 부른다.군사파쇼 타도하자”라고 외치며 몸에 신나를 뿌리고 불을 붙여 분신했다.박래전은 이미 분신 이틀전에 작성한 유서에서 ‘학살원흉 노태우 처단’ ‘통일논의 자유보장’ ‘양심수 즉각석방’ 등을 주장했다.그는 특히 학생들과 사회인 모두에게 안일과 무감각 그리고 분열의 씨앗을 제거하고 단결의 투쟁 대오를 갖추어 나갈 것을 호소했다. “저의 뒤로 저와 같은 죽음이 뒤따라서는 안됩니다.이제 더 이상 죽음은 우리의 손실일 뿐입니다.”“어두운 시대를 열정으로 살아가고자 했던 한 인간이 여러분의 곁을 떠납니다.87년 6월 투쟁을 기억하십시오.그리고 개량의 환상,안일과 비겁을 깨뜨리고 투쟁의 대오를 굳게 하십시오.”“지금은 슬프시겠지만 제가 원하는 그날이 오면,두분 부모님,아니 그날이 오기까지 힘드시더라도 눈감지 마세요.” 분신 이틀 뒤인 6일 운명한 박래전의 장례식은 12일 수천명이 참가한 시청앞 노제와 함께 치뤄졌다. ◎박래전의 형 박내군씨/인권운동 사랑방 사무국장 활동/동생보다 먼저 민주화운동 투신/유가협 일맡아 희생자 50여명 처리 인권 ‘지킴이’로 이름높은 인권운동 사랑방의 朴來群 사무국장(37세·연세대 국문과졸)은 분신자살한 숭실대생 박래전의 바로 윗형이다.민주 열사 가족들 가운데 스스로 민주화 운동에 뛰어드는 경우가 많지만 대부분 그들이 세상을 뜬 다음이다.그러나 박래군 사무국장은 동생보다 먼저 민주화 운동에 뛰어들었다. 그렇다고 형이 동생을 의식화(?)한 것은 전연 아니다.그는 “대학 학회장으로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바빴을 뿐이며 동생은 스스로의 길을 택했다”고 말했다. 두 형제는 수원에서 버스로 한시간 달려가야 하는 남양반도 끄트머리 시골 출신으로 부모는 가난한 농부였다.어렵게 대학에 보낸 두 아들이 모두 민주운동을 한다면서 감옥에 가고 그러다 끝내 분신하는 아들까지 나오게 된 시골 부모의 마음을 이리저리 헤아릴 필요는 없을 터이다.박래전이 유서에서 염려했던 부모는 지금도 고향에서 농사를 짓고 있다. 박래전이 대학 1학년 때인 82년 가을부터 가두 시위에서 형제는 서로 마주치곤 했다.박 사무국장이 86년부터 2년형을 살고 있던 감옥에서 87년 6월 항쟁으로 석방돼 나온 뒤에 형제는 자취방에서 같이 살았다. “그때 래전이는 특히 몇몇 운동한다는 사람들의 불성실 무책임에 가슴아파했다.” 동생이 죽은 후 그는 유가협 일을 맡아 5년동안 사무국장으로 있으면서 50구가 넘는 민주화 희생자들의 시신을 처리해야 했다. 그는 동생의 분신이 갖는 의미에 대해 따로 덧붙일 말이 없다고 하면서 오히려 같은 무렵 통일논의에 물꼬를 튼 조성만의 분신에 주목한다고 말했다. □연보 ◆박래전 63년 경기 화성 출생 82년 숭실대 국문과 입학 83년 휴학,입대 86년 제대 87년 복학 12월 민중후보 선거대책위선전국장 88년 숭실대 인문대 학생회장 88년 6월4일 학생회관 분신 88년 6월6일 운명 ◆최덕수 68년 전북 정주시 출생 87년 단국대 천안캠퍼스 법학과 입학 88년 휴학 88년 5월17일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성명서 낭독 88년 5월18일 분신 88년 5월26일 운명 ◆조성만 64년 전북 김제 출생 83년 전주 해성고 졸업 84년 서울대 화학과 입학 85년 군입대 87년 제대,복학,명동성당 가톨릭 민속연구회 회장 87년 12월 대선 구로구청 부정선거 규탄데모 관련 구류 10일 88년 5월15일 명동성당내 교육관 옥상 투신,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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