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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리타스·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15. 언어논리

    [베리타스·에듀PSAT硏과 함께하는 PSAT 실전강좌] 15. 언어논리

    일반적으로 독해 문제는 글의 내용을 어느 정도 이해만 하면 어렵지 않게 정답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생각은 합리적인 판단이 아니다. 질문 내용과 선택지를 구성함에 있어 결코 일정한 원칙이 없지 않기 때문이다. ☞[PSAT 실전강좌]본문 독해의 원리와 적용(이론 및 실전문제) 고도의 비판력과 사고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상황에서는 이런 유사 정답이 한층 더 고차원적으로 만들어질 수밖에 없다. 다음의 독해 원리를 숙지해 보자. 1.‘모든 ↔ 거의, 전혀 ↔ 일부’ 등 개념을 포함한 선택지 활용문제 어떠한 대상을 모두 주연(형식 논리학에서 어떤 개념의 판단이 그 개념의 외연 전체에 미칠 때, 그 개념을 이르는 말)하는 ‘모든’과 최소한 하나 이상만을 의미하는 ‘어떤’이라는 논리학적 용어가 있다. 이런 논리학적 지식들은 단순 논리 부문에 관한 문제에서만 출제되는 것이 아니라, 독해 부문과 관련해서도 자주 문제로 변형돼 출제된다. ●<예제 1.2005년 행·외시> 다음 글에서 이끌어 낼 수 있는 주장을 (보기)에서 모두 골라 묶은 것은? 상대주의는 진리에 상대적 국면이 있음을 인정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신적 권위든지 이성적 법칙이든지 절대성을 표방하는 모든 것을 배격한다. 진리를 파악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과 상대주의 이외의 절대적 진리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이다. 억압적 체계나 규범을 비판하는 것과 모든 형태의 규범이나 제도가 잘못된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다. 후자는 다원주의를 넘어 혼돈에 빠질 수밖에 없다. 상대주의는 가치와 도덕을 무너뜨리고 극단적 실용주의를 부추긴다. 또 아예 드러내놓고 학문이 이데올로기와 권력투쟁의 도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절대적 진리의 존재가 부정될 때 남는 것은 ‘의견’뿐이다. 한 사회나 문화를 지배하는 거대 담론이 사라지면 상대주의가 활개치게 되고 완전히 규제가 풀린 세계가 된다. 거기에는 단순한 구호와 유행, 그리고 피상적 이미지가 진리와 의미를 대변하게 된다. 또 신앙이나 이성에 의해 규제되던 감성·관능·탐욕 등의 폭발적 해방을 부추길 가능성이 있다. 요즘 예술, 특히 상업 예술이나 대중 예술의 급진성은 이런 분위기를 배경으로 이해해야 한다. 잘못된 절대주의의 붕괴는 환영할 만하지만 상대주의와 무정부 상태는 그것보다 더 무서운 악이다. 이런 세계가 빠질 수 있는 가장 위험한 형태가 정신분열증과 테러리즘이라는 지적은 옳다. ●보기 ㄱ. 모든 형태의 절대주의는 상대주의의 혼란을 극복하기 위한 대안이 될 수 있다. ㄴ. 상대주의는 정신적 피폐함과 정치적 과격함 예술의 선정성을 초래할 수 있다. ㄷ. 상대주의는 여러 가지 위험스러운 결과를 초래하지만 피할 수 없는 시대적 조류이다. ㄹ. 상대주의는 상대주의 자체를 궁극적인 것으로 절대시한다. ㅁ. 실용주의는 상대주의를 야기하고 상대주의는 다원주의를 초래한다./ci0000 (1) ㄱ,ㄴ (2) ㄴ,ㄹ (3) ㄱ,ㄷ,ㅁ (4) ㄴ,ㄹ,ㅁ (5) ㄷ,ㄹ,ㅁ 정답 : (2) 이승일 에듀PSAT 연구소 소장
  •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열린세상] 무능이 나을까,부패가 나을까/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무능과 부패, 둘 중 하나만 골라야 한다면 무엇이 나을까. 노무현 정권 시절 특히 대통령선거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항간에는 이런 담론이 떠돌았다.‘무능보다 부패가 낫다’! 도덕성을 앞세워 집권에 성공한 노무현 정권에 대해 갖은 흠집 내기를 즐기던 일부 언론에서 정치적으로 양산한 담론 가운데 하나이긴 하지만, 단지 그것만으로 치부하기에는 나름대로 일리가 있었다. 국민 다수의 피부에 전혀 다가오지 않는 거시경제 지표를 내세워 ‘지표는 좋다.’고 둘러댔지만, 노무현 정부의 부동산정책 실패로 민초들의 좌절감은 극심한 것이었다. 사실 얼마 전 참여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사회 양극화의 가장 주요한 원인이 소득보다는 자산의 불평등에 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그런데 바로 이 자산의 불평등이 가속화되는 원인 가운데 으뜸은 단연 부동산이다. 연구에 따르면 1999년에 부동산이 자산 불평등도에 기여한 비율이 74%인 데 비해,2006년에는 93%로 급격히 높아졌다. 그래서 부동산정책의 실패는 민생경제에 직격탄이 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회적 배경에서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는 생각은 전사회적으로 퍼져 나갔고, 또 이명박정부의 집권에 유리한 사회심리적 환경을 조성했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그렇다면 진정 무능보다 부패가 나을까. 이명박정부의 초대 내각 후보자들을 놓고 잠시나마 온나라가 떠들썩했다.‘고소영(고대+소망교회+영남)’이라는 신조어에 이어,‘강부자(강남 땅부자)’,‘1억달러 내각’이란 말이 인구에 회자되었다. 급기야 세명의 장관후보가 낙마한다. 그 중 누구는 ‘자연의 일부인 땅을 사랑한다.’ 하였고, 또 어떤 누구는 진단 결과 암이 아니라서 남편이 오피스텔을 사주었다고 말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니다. 누구는 부부교수 25년에 재산 30억이면 양반이라고도 말했다. 경제부처 장관 후보는 골프회원권이 2개씩이나 된다고 질타하자 ‘싸구려’ 회원권이라고 맞받았고, 어떤 이는 저서에서 ‘IMF는 축복’이라고 설파하였다. 참으로 새정부는 그들의, 그들에 의한, 그들만을 위한 정부가 되기를 원하는 것일까.‘부자가 천당가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이명박정부에서는 가난한 자가 장관되는 일은 낙타가 바늘구멍 통과하기보다 어렵다고 해야겠다. 이 나라가 적빈의 지경에 있는 것도 아닌 터에, 모든 부를 ‘도둑질’로 보아서는 안 될 일이다. 하지만 우리 국민은 그 부의 축적 과정에 투명성과 정당성의 엄정한 잣대를 여지없이 들이대고 있다. 실패한 부동산정책에 대한 좌절과 분노로 일시 ‘차라리 좀 부패는 했지만 유능한 통치자’가 낫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번에 낙마한 장관후보에 대한 전국민의 공분으로 볼 때, 국민의 절대 다수는 결코 무능보다 부패가 낫다고 생각하고 있지 않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사실 국민의 따가운 시선은 단지 후보자들이 돈이 많다는 이유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보다는 새 정부의 신임 각료후보들이 각종 의혹의 해명과정에서 보여준 안이하기 짝이 없는 사회인식에서 아무 희망을 보지 못했기 때문일 게다. 특히 그 부의 대부분이 바로 부동산이라는 점, 그 부동산이 이 나라 사회 불평등의 가장 중요한 원인이라는 점에서 새 내각과 국민 다수 사이에 넘지 못할 벽을 보았기 때문일 게다.‘섬김’을 내건 정부에서 과연 누가 누구를 섬겨야 할 것인가. 흔히 좌파는 분열해서 망하고, 우파는 부패해서 망한다고 했다. 일단 분열한 좌파는 이번 대선에서 망했다 치자. 그러면 이제는 부패한 우파의 차례인가. 과연 언제쯤 우리는 무능과 부패 사이의 방황에 종지부를 찍을 수 있을까. 이해영 한신대 경제학 교수
  • [사설] 민주당 공천혁명 평가한다

    통합민주당이 4월 총선과 관련,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인사들을 예외 없이 공천 대상에서 배제하기로 최종 결정했다. 불법 대선자금이나 정치자금 수수에 연루됐거나 선거법에 저촉돼 금고 이상의 형이 확정된 11명 전원이 공천심사에서 탈락하게 됐다. 당내 인사들은 물론, 당 밖에서도 설마설마 하던 일이 현실화됐다. 민주당발 ‘공천 쿠데타’라 할 만하다. 구심력이 부족하고 복잡다단한 이해가 걸린 통합민주당의 상황으로 볼 때 어렵고, 신선한 결단이라 평가한다. 민주당은 공천기준을 둘러싸고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혼돈 상황이었다. 적전분열을 우려한 당 지도부까지 나서 공천심사위원회의 예외 없는 원칙고수의 변경을 촉구했다. 우여곡절 끝에 통합을 이룬 당의 지도부 입장에선 또다시 당의 분열이나 분당을 염려하지 않을 수 없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박재승 공심위원장의 말대로 나락의 당을 구하기 위해선 개인별로 억울한 사정이 있더라도 원칙은 예외 없이 지키는 게 마땅하다. 물론 이번 결정으로 일부 공천 신청자들의 반발과 이탈은 불가피할 것이다. 벌써 구 동교동계 인사 중심으로 조직적인 반발 양상이 드러난다고 한다. 총선에서 한 석의 의석이 아쉬운 민주당으로선, 위험한 결정이라는 일각의 분석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우리 정치가 제대로 자리잡으려면 정당도 이제 바뀌어야 한다. 공천혁명이 그 출발임은 새삼 지적할 필요조차 없다. 민주당발 공천혁명이 한나라당과 다른 정당에도 영향을 미치길 기대한다.
  • 남은 민노 ‘석고대죄’ … 떠난 진보 ‘창당 선언’

    남은 민노 ‘석고대죄’ … 떠난 진보 ‘창당 선언’

    진보정당의 두갈래 ‘각개약진’이 시작됐다. 민주노동당은 2일 국회 앞에서 ‘석고대죄’에 나섰고, 진보신당(가칭)은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민노당 권영길·천영세·강기갑·최순영·이영순·현애자 의원 등 잔류를 선언한 의원들은 이날 국회의사당 본청 앞에서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발표했다.17대 국회에서 미흡했던 점과 분당사태 등에 대한 반성의 의미였다. 이들은 ‘석고대죄’의 의미로 국민 앞에 큰 절을 올린 뒤 “비정규직 악법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등 신자유주의를 막지 못했고 국가보안법과 이라크 파병도 저지하지 못했다. 민생을 구현하지 못한 의정활동에 대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유일한 진보정당 국회의원으로서 국민의 기대에 옳게 부응했는지 자문하며 깊이 반성한다.”고도 했다. 천영세 대표는 “더욱 크게 하나되어 이명박 정부와 싸워도 부족한데 진보정당은 분열했다. 분당만은 막으려고 했지만 결국 막지 못했다.”고 자책하기도 했다. 권영길 의원은 “당의 분열된 오늘 모습에 대해 뭐라고 드릴 말씀이 없다. 얼굴을 들 수 없지만 외람되게 호소드리자면 절망 속에서 희망을 꽃피우겠다.”고도 했다. 이들은 이날 오전 11시부터 3일 오후 민노당 총선대책위 출범까지 국회 본청 앞에서 석고대죄를 이어갈 예정이다. 한편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주도하는 진보정당은 이날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창당 발기인대회를 열고 창당을 공식 선언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진보신당이 드디어 닻을 올린다. 진보신당 창당을 공식 선언한다.”고 밝혔다. 진보신당은 지역·부문을 기반으로 한 50명 이내의 최고의결기구인 ‘확대운영위원회’(확운위) 설치도 심의했다. 확운위는 18대 총선을 겨냥해 200 이내의 비례대표 명단을 작성한 뒤 오는 16일 예정된 창당대회에서 찬반투표로 결정키로 했다. 비례대표 신청은 오는 12일까지다. 지역구 출마자에 대해 심상정 의원은 “50여명 안팎으로 보고 있다.”고 밝혔다. 진보신당 창당준비위원에는 심상정 노회찬 의원, 김혜경 전 민주노동당 대표, 김기수·심재옥 전 민노당 최고위원, 김형탁 전 민노당 대변인 등을 포함, 지역 167명과 부문 169명 총 336명이 이름을 올렸다. 이로써 진보진영은 민노당과 진보신당 두축을 중심으로 4·9 총선을 치르게 됐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탈당·총선 불출마 선언한 단병호 민노당 의원

    [김문기자가 만난사람] 탈당·총선 불출마 선언한 단병호 민노당 의원

    뿌리가 튼튼하지 못해서일까. 진보진영이 최대의 고비를 맞고 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다음달 새로운 진보정당을 창당한다고 공식 밝혔다. 이에 앞서 단병호 의원도 탈당과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진보진영끼리 분당과 분열로 치닫고 있는 형국이다. 하지만 분화와 재편의 시기로 봐야 한다는 시각도 있다. 사실 노동자를 대표하는 민주노동당의 위기는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지난 17대 대선 때였다. 어찌보면 70만명의 민주노총 조합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민노당 권영길 후보가 얻은 득표(3%)를 보고 노동자 계급이 분열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곧바로 나왔다. 또 노동자들을 한 민노당의 틀로 정착시키는데 한계에 도달한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됐다. 결국 지난 2월3일 당대회 직후 스스로 내풍의 소용돌이에 휘말렸고, 결국 탈당-분당-창당 등의 내분사태까지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단병호(59) 의원의 거취가 주목된다. 민주노총의 역사나 한국 노동운동사에서 대부격이나 다름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는 “비록 민노당은 탈당하지만 정치활동은 계속하겠다.”면서 “이제 평범한 노동자로 돌아가 현장에서 많은 노동자들과 만나 그들이 진정 원하는 새로운 정치세력을 만들겠다.”고 강조한다. 알다시피 그는 4년6개월 동안 민주노총 위원장을 맡았을 때에도 수많은 거리집회에서 노동자의 정치세력화를 강조했다. 아울러 노동자, 농민, 도시빈민,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진보정당의 필요성을 역설했다.17대 국회에 민주노동당 비례대표로 진출한 것도 바로 이런 까닭이다. 탈당을 선언하고 고향인 포항에 머무르는 단 의원을 만났다. 여전히 점퍼차림이었다. ▶민노당을 탈당한 진짜 이유가 뭔가요? -기자회견 때도 밝혔지만 당이 만들어진 지 7년 됐습니다.17대 총선에는 국회의원 10명이 당선되는 등 민노당은 급성장을 했습니다. 진성당원만 10만명에 이르지요. 그러나 토대가 튼튼하게 다져지지 않은 상태에서 당의 화려한 성장은 작은 충격에도 무너질 수밖에 없는 사상누각이었습니다. 무엇보다 민노당의 토대를 굳건하게 다져야 할 때에 2008년 제1야당,2012년 집권이라는 신기루를 쫓아다니며 허송세월을 했습니다. 지금의 체제로는 위기의 본질을 통찰하지도 못하고, 따라서 현재로서는 극복도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변화를 만들어낼 계기가 필요하고, 또 노동자들이 중심이 되는 진정한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결심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민노당의 위기의 본질은 무엇인가요.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실패가 그 첫번째입니다. 민노당 당원의 40%가 노동자들이고 그 대다수가 민주노총 조합원입니다. 그러나 민노당내에 민주노총 조합원은 있지만 민주노총 내에 민노당 당원은 없었습니다. 당의 강령과 기본정책, 그리고 당면한 정치방침을 가지고 노동현장에서 일상적으로 정치사업을 수행할 수 있는 당원은 없었습니다. 그래서 노동자 대중은 각종 행사와 선거때, 그리고 재정을 조달하는데 필요한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습니다. 결국 지역주민인 이들의 중심기반화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지역주민으로서의 민노당이 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문제의 핵심이지요. 노동자 당원을 당의 중심에 세우기 위한 재조직화의 노력도 게을리했습니다. 특히 언제부터인가 운동의 건강한 풍토가 사라지고 보수정치판의 잘못된 풍토가 당을 지배하는 형국이 돼버렸습니다. 공은 가까이하려 하면서도 책임은 멀리하려고 합니다. 진보정당에서 가장 경계하고 멀리해야 할 풍토들이 똬리를 틀고 굳어진 것이지요. 비대위에서는 이러한 문제에 대해 단한차례도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민노당을 떠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종북논쟁’ 등 이념적 갈등에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노선이나 이념은 당의 본질적 어려움은 아닙니다. 민노당은 우리 사회의 다양한 진보에서 출발했습니다. 때문에 진보정당에서 사상과 이념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이념이나 논리를 치열하게 토론하면서 올바르게 정리돼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종북’ 등 특정 사상을 배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외부에서는 이념갈등의 문제로 비추어졌는데 언론에서 민노당의 실질적 본질은 간과한 채 이념문제를 크게 부각시켰어요. ▶총선출마 포기를 재고할 수는 없는지요. -사실 정치인으로서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느끼고 있습니다. 포항에서 출마하려고 작년부터 지역주민들과도 많이 만났습니다. 하지만 민노당을 탈당하는 마당에 무소속이나 다른 당에서 출마한다는 것은 주민들에게 우습게 보여집니다. 도의도 아니고요. 이번에는 출마하지 않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습니다. 민노당에 대한 깊은 성찰을 하고, 또 새로운 진보정당을 만드는데 진지한 고민을 하는 기회로 삼겠습니다. ▶앞으로 정치활동은 어떻게 하실 계획인지요. -전국의 현장에 있는 수많은 노동자들을 폭넓게 만나 진지하게 토론하고, 같이 고민하면서 새롭게 만들어지는 진보정당의 원칙과 방향을 확실하게 수립할 생각입니다. 정치세력화를 위한 실질적 활동을 하게 될 것입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다음달 진보신당을 창당한다고 합니다. 여기에 합류할 생각은 없는지요? -두 분과 같이 만나 얘기해본 적은 없습니다. 다들 고민을 많이 해온만큼 고민이 동일하다면 같이 만들어나갈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어차피 신당은 총선용입니다. 과정을 지켜보면서 총선이 끝나고 나서 진정한 진보정당을 위해 논의할 수도 있지요. 저는 노동자가 정치세력화가 돼야 한다는 원칙에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신당과 민노당이 합쳐질 가능성은 있나요? 또 이번 총선에서 진보정당에 대한 전망을 하신다면? -지금의 여러 상황으로 봐서는 상당기간 합쳐지긴 어렵다고 봅니다. 총선전망은 어려운 질문이긴 합니다만 2004년 총선때는 13.1%의 지지를 얻었습니다. 이번 총선에서는 국민들에게 어떻게 다가가느냐 하는게 중요하겠지만 현재로서는 그 지지율을 넘어서기가 힘들 것 같습니다. ▶민주노총 지도위원까지 사퇴를 하셨는데. -가장 고민스러웠던 부분입니다.4년 넘게 위원장을 했던 사람으로 남다른 애정도 있고 조직적 책무도 있습니다. 하지만 상처가 깊을 때 도려내는 것을 두려워하거나 방치하면 회생불능의 상태에 빠져듭니다. 노동조합의 기본적 역할 수행에 대한 언급은 적절하지 않지만 당 발전에 민주노총이 어떻게 기여했는가, 이유가 어쨌든 일정한 한계는 없었는가의 부분을 생각하게 됩니다. 예를 들면 노동부문 할당제, 배타적 지지 등 모든 것이 제가 위원장으로 있을 때 결정됐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7년이 지난 지금까지 순기능보다는 역기능이 많았습니다.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질적 발전을 저해한 셈이지요. 빨리 고치고 극복해야 합니다.(현 지도부와)서로 상반된 입장을 가지고 있으면서 민노총 지도위원직을 유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판단했지요. ▶새정부가 들어서게 됩니다. 앞으로 노동운동의 방향을 어떻게 보십니까. -이명박(MB) 정부가 들어서면 노동정책에 현격한 변화가 예측됩니다.MB가 친기업정책을 펼치게 되면 자연히 반노동적 정책으로 옮겨가게 됩니다. 이럴 때 나타나는 노동운동의 반응은 크게 두가지입니다. 첫번째는 급속하게 정부나 기업에 유착되면서 편하게 취하고 편입되는 성향을 보이는 것이고, 두번째는 이렇게 수용할 수 없으면 저항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한국노총은 한나라당과의 정책연대 등으로 벌써부터 편입돼가는 모습이고 민주노총은 아직 분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고 있습니다. 긴장상태라고나 할까요. 아마도 MB가 강하게 나가면서 민주노총은 쉽게 끌려가지 않을 것이고, 그러다보면 노·정갈등이 깊어지고 적대적 관계가 심화될 것으로 보여집니다. ▶시위현장에서 맞는 경찰관이 없어야 한다고 MB가 말하고 있습니다. -폭력문제는 일방이 아닌 쌍방의 문제입니다. 시위집회는 국민의 권리이고, 이를 최대한 보장해줘야 합니다. 자율적인 집회를 지나치게 간섭하다보면 감정적 충돌이 생겨날 수도 있겠지요.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사회변화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1987년부터 지금까지 우리 사회의 변화축을 보면 민주화 등 어느정도의 균형이 만들어지고 있지만, 신자유주의 정책이 본격화되는 MB 정부에선 균형이 깨질 것이 우려됩니다. 교육제도가 전면적으로 후퇴할 것이고 남북관계도 경직될 가능성이 큽니다. 대운하건설은 경제효과도 없을 것이고 환경파괴만 몰고올 것입니다. 친기업 개발로 가면 환경훼손은 뻔하지요. 인터뷰를 마치면서 ‘점퍼’는 언제 벗을 생각이냐고 묻자 “솔직히 편해서 입는다. 또 점퍼 3개를 갈아입으면 1년이 지나간다. 옷값도 별로 안들고…”라고 하면서 웃었다. 슬하에 사법연수원에서 2년차 연수 중인 딸과 현재 공군복무 중인 아들이 있다. 김문 인물전문기자 km@seoul.co.kr ■ 단병호는 ▲1949년 경북 포항 출생 ▲67년 동지상고 중퇴 ▲87년 동아건설 창동공장 노조 초대위원장 ▲89년 서울지하철 파업 관련 구속 ▲90∼94년 전국노동조합협의회(전노협) 1∼4대 위원장 ▲90년 전노협 활동 관련 2차구속 ▲93년 전국노동조합 대표회의 공동대표 ▲95년 현총련 파업 관련 3차구속 ▲96년 민주금속연맹 위원장 ▲98년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총력투쟁 관련 4차구속 ▲99∼2002년 제3,4대 민주노총 위원장 ▲01년 노동운동 관련 5차구속 ▲04년 민주노총 지도위원 ▲현 제17대 민주노동당 국회의원
  • “역사적 인물은 자폐증 통해 천재성 발휘”

    “역사적 인물은 자폐증 통해 천재성 발휘”

    천재 과학자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을 비롯해 몇몇의 유명 정치가와 예술가들이 자폐증을 앓아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었다는 흥미로운 연구결과가 나왔다. 아일랜드 트리니티 대학(Trinity College)의 마이클 핏젤라드 정신의학과 교수는 “자폐증과 같은 정신질환이 창조적인 천재성과 큰 연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발표했다. 핏젤라드 연구팀은 자폐 증상을 가졌으면서 역사적으로도 잘 알려진 인물 1600명을 대상으로 그들의 생물학적인 기질과 특징 등을 분석했다. 그 결과 자신의 내면세계에 파묻혀 강박적 행동을 반복하는 자폐증의 행동적 특징이 한 분야에 철저하게 몰입하도록 만들어 천재성 발휘에 큰 역할을 한다는 상관관계를 알아냈다. 따라서 자폐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역사적 인물은 다소 복잡한 주제에 대해서 20~30년간 연구, 역사적으로 주목받을 만한 업적을 이뤄냈다는 설명이다. 핏젤라드 교수는 “분열된 성격으로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수행할 수 없었던 뉴턴은 3일 내내 밤낮을 가리지 않고 연구한 것으로 유명하다.”며 “자폐증 기질을 가진 정치가 드골과 미국 대통령 토마스 제퍼슨도 창조적인 천재성을 발휘했다.”고 분석했다. 또 “유명 철학자 루드비히 비트겐슈타인(Ludwig Wittgenstein)이 여러가지 철학적 주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할 수 있었던 것은 아스퍼거장애(Asperger’s syndrome)의 기질을 가졌었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이외에도 핏젤라드 교수가 예로 든 역사적 인물에는 영국 출신의 유명 공상과학 소설가 H G 웰스와 독일 철학자 칸트 그리고 영국 작가 조지 오웰이 있었다. *아스퍼거장애: 자폐증과 비슷한 발달장애로 소리·맛·냄새·시각에 예민하고 특정한 주제에 흥미가 생기면 몰두하는 경향이 강하다. 사진=데일리텔레그래프 온라인판(사진 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조지 오웰·아인슈타인·토마스 제퍼슨·칸트·H G 웰스·모짜르트) 서울신문 나우뉴스 주미옥 기자 toyobi@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이용원 칼럼] ‘無爲의 治’와 지도자의 말

    [이용원 칼럼] ‘無爲의 治’와 지도자의 말

    이제 나흘 뒤면 노무현 대통령의 참여정부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이명박 정부가 정식 출범하게 된다. 노 대통령의 공과는 세월이 어느 정도 흐르고 나서야 정확히 평가되겠지만, 막상 퇴임을 앞둔 이 시점에서 그에 대한 반감은 다소 누그러지는 듯하다. 그동안 노 대통령에 호감을 갖지 않던 사람들이 ‘되돌아보면 나랏일을 그리 잘못한 것도 없다.’고 말하는 걸 가끔 보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난 5년 국민을 그토록 힘들게 하고 사회를 분열시킨 ‘놈현스러움’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그 주범은 ‘말(언어)’이었다. 취임 직후 “이쯤 되면 막가자는 거지요.”로 시작된 그의 거침없는 화법은 임기 내내 계속되다가 지난가을에야 “말씨와 자세에서 대통령 할 준비가 돼 있지 않았다.”는 고백으로 나타났다. 지도자의 섣부른 말이 국민의 불만을 부추길 위험성은 곧 취임할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게서도 감지된다. 숭례문 누각이 소실된 뒤 “국민 성금으로 복원하겠다.”고 발언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서둘러 거둬들인 일은 그 대표적인 사례이다. 이 당선인 역시 노 대통령처럼 직설적인 화법을 구사한다. 아직은 국정을 운영하기 전이고, 그에 대한 국민 기대가 여전히 높아 크게 문제되지는 않았지만 취임 후에도 성급한 발언이 계속되면 사회에 작지 않은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이 크다. 그같은 우려는, 지난 15일 한국정치학회와 관훈클럽이 공동주최한 학술회의에서 “이 당선인의 설화(舌禍)가 잦아 노무현 대통령에 빗댄 ‘노명박’이란 표현이 생겼다.”는 지적으로 요약됐다. 동양 전통사상에서는 바람직한 통치 형태를 ‘무위(無爲)의 치(治)’라고 했다.‘하는 일이 없는(無爲)’듯이 다스린다는 뜻이다. 최고 지도자는 적재적소에 인재를 등용해 일을 맡기고 자신은 한걸음 뒤로 물러앉는다. 그리고 일을 제대로 하는지 관찰하다 잘못이 드러나면 책임을 묻는다. 아울러 본인은 말을 거의 하지 않는다. 말을 많이 하고 정책을 직접 결정했다가 잘못될 때는 백성과의 갈등에 전면 노출되기 때문이다. 현대사회에서 대통령에게 ‘무위의 치’를 그대로 시행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무리이다. 더구나 ‘불도저 정신’으로 무장해 취임 전부터 강력히 드라이브를 거는 이 당선인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그 정신만은 이 시대에도 유용하다.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이 전형적인 예라 할 수 있다. 레이건을 지적(知的)인 대통령으로 분류하지는 않는다. 그는 심지어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인 ‘레이거노믹스’조차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그런데도 미국인들이 지난해 여론조사에서 역사상 두번째로 위대한 대통령-첫째는 링컨이다-으로 꼽을 만큼 성공한 비결은 무엇일까. 실무는 능력 있는 전문가에게 맡기고 자신은 오히려 뒷짐 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필요할 때 짧고 명료한 언사로 국민을 설득하는 게 그의 몫이었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多言數窮 不如守中(다언삭궁 불여수중)’이란 경구가 나온다.‘말을 많이 하면 자주 궁하게 되니, 중용을 지키느니만 못하다.’라는 뜻이다. 이 당선인이 ‘말의 늪’에 빠져 스스로 난처해지고 국민은 더욱 힘들어지는 일이 벌어지지 않기를 기대한다.‘불도저 정신’은 안으로 갈무리하고 겉으로는 ‘무위의 치’를 실현한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일일 터이고…. 수석논설위원 ywyi@seoul.co.kr
  • “한반도 선진화 변혁적 중도주의로”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가 자신이 편집인으로 있는 ‘창작과비평’ 봄호에서 ‘한반도 선진화’ 담론을 폈다. 한반도선진화재단(이사장 박세일 서울대 교수)의 ‘대한민국 선진화’ 담론의 지향점과는 여러모로 다르다. 대한민국 선진화가 남한만을 대상으로 한다면, 한반도 선진화는 남북을 아우른다. 백 교수의 한반도 선진화론은 통일지상주의도 시장만능주의도 경계한다. 백 교수는 한반도 선진화를 위한 실천 원칙으로 ‘변혁적 중도주의’를 내세운다. 변혁적 중도주의는 이념의 차이를 내세워 분열하기보다는 중도적인 방향에서 최대한 대중적 통합을 이끌어낸다는 의미로 최근 그가 주창해온 개념이다.백 교수는 ‘87년 체제의 극복과 변혁적 중도주의’라는 주제로 조효제 성공회대 교수와 나눈 대담을 통해 “현실적으로 과격한 진보주의 처방보다는 중도주의가 맞고, 다만 중도개혁이 남북의 화해협력 및 재통합 과정과 연결되고 그래서 남북관계의 진전에 대해 과감한 자세를 취하는 중도개혁이면 그게 변혁적 중도주의가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이문영기자 2moon0@seoul.co.kr
  • 노홍철 집앞서 피습

    연예인 노홍철(29)씨가 지난 19일 오후 8시쯤 서울 압구정동 자신의 아파트 앞 복도에서 김모(27)씨에게 폭행당했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를 통하면 연예인 등 유명 인사들의 실제 거주지를 쉽게 알 수 있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인사를 건네는 척하다가 갑자기 주먹을 휘둘렀다. 김씨는 일본에서 직장을 다니다 정신분열 증세로 지난 3일 귀국했으며, 평소 TV를 보며 노씨가 자신의 부모에게 피해를 주고 있다는 생각을 해온 것으로 드러났다. 김씨는 키 190㎝에 몸무게가 100㎏에 육박하는 거구로 근처 상점에서 흉기를 구입했으나 실제 사용하지는 않았다. 노씨는 전신에 타박상을 입고, 왼쪽 귀가 3㎝ 정도 찢어졌다. 경찰은 “노씨가 처벌을 원하지 않고, 김씨 부모도 김씨를 정신병원에 입원시킨다고 밝혀 김씨를 20일 오전 귀가시켰다.”고 밝혔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노씨의 실거주지를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찾았다.20일 오전까지만 해도 네이버 검색창에 ‘노홍철 집주소’를 치면 주소지가 고스란히 나왔다. 이후 네이버 측은 노씨 주소를 서둘러 삭제했다. 네이버 관계자는 “모니터 요원 430명이 개인정보를 계속 지우고 있지만 양이 너무 많아 미처 못 찾은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SBS TV ‘생방송 TV 연예’가 노홍철 가해자의 얼굴을 그대로 노출해 ‘인권 침해’ 파문이 일고 있다.20일 오후 8시50분에 방송된 ‘생방송 TV 연예’는 전날 발생한 노홍철 피습 사건을 다루면서 가해자의 얼굴을 모자이크 처리 없이 그대로 수분간 내보냈다. 시청자들은 “살인을 한 사람도 얼굴을 가리는데, 너무 어처구니 없는 방송사고다.”며 비난의 글을 시청자 게시판에 쏟아냈다. 이에 제작진은 오후 10시25분쯤 홈페이지에 공식사과문을 게재하고 “사건 관계자의 신원보호를 위해 화면처리를 한 방송 편집본을 준비했으나 컴퓨터 작업상의 오류로 인해 실제 방송에선 화면처리되지 않은 장면이 방송됐다. 깊이 사죄드린다.”고 밝혔다.이경주 강아연기자 kdlrudwn@seoul.co.kr
  • [월드이슈] 각국 대통령 취임식 어떻게

    [월드이슈] 각국 대통령 취임식 어떻게

    오는 25일 오전 11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마당에서 내외인사 4만 5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제17대 대통령 취임식이 치러진다. 국가 최고 통치권자의 임기가 시작되는 출발점이자 국민에게서 권력을 위임받는 상징적인 자리다. 취임식을 앞두고 미국, 프랑스 등에서 대통령의 취임식을 어떻게 치르는지 살펴보았다. |워싱턴 이도운특파원|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미국의 역사와 사회상을 고스란히 반영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1789년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취임식을 포함해 모두 55번의 대통령 취임식이 열렸다. ●1789년부터 55번의 취임식 열려 미 대통령 취임식 날짜는 대통령 선거가 치러진 다음해의 1월20일.1933년까지는 취임식 날짜가 3월4일이었지만 그 해 발효된 수정헌법 20조에 따라 날짜가 변경됐다. 바뀐 날짜에 따라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이 1937년 최초로 1월20일에 취임했다. 취임 선서는 초기에 상원이나 하원 회의실에서 거행됐다. 그러나 1829년 앤드루 잭슨 대통령부터 일반인도 볼 수 있도록 의사당 밖에서 하게 됐다. 대통령의 취임선서는 주로 대법원장이 주재한다. 제3대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취임식에 참석하기 위해 워싱턴DC의 하숙집에서 의사당까지 걸어갔다.1921년 워런 하딩 대통령부터 승용차로 취임식장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현재는 미 대통령들이 취임식 참석 때 미국의 대표적인 자동차제조업체인 제너럴모터스(GM)의 캐딜락 최신형 모델을 이용하는 것이 관례다.2004년 재선에 성공한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2005년 1월20일 취임 당시 이용했던 캐딜락 리무진은 미사일 공격에도 견딘다는 최첨단 방탄장치와 통신시설이 갖춰져 있었다. 취임식이 끝난 뒤 펜실베이니아 가에서 벌어지는 축하 퍼레이드는 1809년 4대 제임스 매디슨 대통령 때 처음 생겼다. 취임연설 최초 라디오 중계는 1925년 존 캘빈 쿨리지 대통령 때.1949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의 취임연설은 TV로,1997년 빌 클린턴 대통령의 연설은 인터넷으로도 중계됐다. 1985년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은 추위와 바람 때문에 퍼레이드가 취소되고 선서도 의사당 안에서 했다.1865년 에이브러햄 링컨 대통령 재선 취임식 때는 흑인이 처음으로 퍼레이드에 참가했다. ●취임사에 명연설 많아 미국 대통령의 취임사는 취임식의 ‘하이라이트’. 미 대통령의 취임사는 미국과 세계에 보내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는 중요성을 반영하듯 명연설이 많았다. 대표적인 것이 1961년 존 F 케네디 대통령의 취임사. 그는 “횃불은 이제 새로운 세대의 미국인에게로 넘어왔다.”면서 “국가가 여러분들에게 무엇을 해 줄 수 있는지 묻지 말고 여러분들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가를 물어라.”라는 유명한 구절을 남겼다. 또 대공황 시절인 1933년에 취임한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가난의 공포에 떨고 있는 미국인에게 “우리가 두려워할 유일한 것은 두려움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연방주의와 공화주의로 분열됐던 1801년 취임한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은 “우리 모두는 공화주의자이고 우리 모두는 연방주의자”라며 단결을 호소했다. 가장 짧은 취임사는 조지 워싱턴 초대 대통령의 1793년 재선 취임사로 135단어로 이뤄졌다.9대 윌리엄 해리슨 대통령은 8500여 단어로 된 가장 긴 연설문을 약 2시간 동안 읽었다. 강추위 속에서 2시간 동안 연설한 해리슨 대통령은 폐렴에 걸려 한 달 뒤 사망했다. ●갈수록 성대해지는 취임식 행사 미국 대통령의 취임식은 갈수록 성대해지고 있다. 2005년 열린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 취임식과 축하행사는 4일 동안 이어졌으며, 무려 4000만 달러(약 380억원)가 사용됐다. 대부분 부시 지지자들의 모금으로 충당됐으나 차라리 그 예산을 불우한 이웃을 돕는 데 사용하라는 비판도 있었다. 해외 각국에서 1000명이 넘는 축하사절단이 몰려왔으며,50만명이 넘는 미국인이 취임식과 축하행사를 보기 위해 수도로 몰려들었다. 미 의사당 앞부터 워싱턴기념비까지 이어진 잔디광장인 ‘내셔널 몰’은 25만명에 이르는 취임식 참관객들로 가득 찼다. 취임식 이후 20일 밤부터 21일 새벽까지 워싱턴컨벤션센터와 유니언스테이션 등 9곳에서 축하 무도회가 열렸다. 무도회에는 주로 부시 대통령의 재선 선거운동에 10만∼25만 달러의 정치헌금을 낸 인사들이 초청됐다. 이와 함께 취임식에 맞춰 연주회 등 크고작은 각종 행사와 모임이 열렸고 불꽃놀이가 밤하늘을 수놓았다. 미 대통령의 취임식은 정치적 시위의 장이 되기도 한다. 부시 대통령 취임식 때도 이라크에서 사망한 군인들을 상징하는 500여개의 마분지 관을 든 시위대가 반전 구호를 외쳤다. 시위와 테러 가능성에 대비하기 위해 워싱턴 주변에는 1만 3000명이 넘는 군과 경찰이 배치됐으며 군 특수부대도 경호에 투입됐다. dawn@seoul.co.kr
  • [씨줄날줄] 코소보 독립 방정식/구본영 논설위원

    코소보가 엊그제 독립을 선언함으로써 ‘발칸의 화약고’가 다시 일촉즉발의 위기를 맞고 있다. 코소보의 분리를 반대하는 세르비아의 강한 반발 때문만이 아니다. 인종·종교·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주변국과 강대국들간에도 긴장이 고조될 조짐이다. 발칸 반도의 옛 유고연방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지녔던 티토 전 대통령 사후 끊임없이 해체 수순을 밟았다.1991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마케도니아,1995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에 이어 2006년 몬테네그로가 독립했다. 코소보 독립선언은 유고연방 붕괴의 마지막 수순인 셈이다. 이는 1998∼99년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내건 밀로셰비치 정권이 코소보내 알바니아계에 대한 악명높은 ‘인종청소’를 자행했을 때부터 예견됐던 일이다. ‘Balkanize’(작은 나라로 쪼개지다)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을 정도로 유고의 분열은 역사적 흐름을 타고 있다. 그러나 평화로운 종착역이 기다리고 있지 않다는 게 발칸의 비극이다. 당장 코소보내에서 그리스 정교를 믿는, 총인구의 7%인 세르비아계가 벌이는 격렬한 반발이 변수다. 이들의 분리 선언이란 또 다른 세포분열의 가능성을 잉태하고 있는 꼴이다. 코소보 사태에서 고려해야 할 변수는 이외에도 많다. 우선 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들이 코소보 독립을 지지하는 미국·영국·프랑스와 자국내 소수민족의 봉기를 우려해 반대하는 러시아·중국으로 갈리고 있다. 유럽연합(EU)의 주류는 세르비아를 회원국으로 받아들이는 ‘당근’으로 코소보 독립을 유도하려는 분위기다. 그러나 27개 회원국중 소수민족 문제를 안고 있는 스페인·그리스 등 6개국은 극히 소극적이다. 까닭에 코소보 해법을 찾기란 고차방정식을 푸는 것처럼 쉽지 않은 일이다. 유엔 특사인 아티사리의 처방이 현재로선 모범답안에 가까운 편이다. 그는 “코소보가 독립은 하되 당분간 국제감시하에 두는 방안”을 중재안으로 제시했다. 당장 코소보의 소수인종이 된 세르비아계 주민을 보호하는 것도 과제다. 일각에서 우리 정부도 당장 코소보 독립을 승인하란 주장을 펴고 있지만,‘아티사리 계획’의 추이를 좀더 지켜본 뒤에 해도 늦지 않을 듯싶다. 구본영 논설위원 kby7@seoul.co.kr
  • 심상정도 탈당… 민노 분당의 길로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17일 탈당 선언과 함께 진보신당 창당 계획을 밝혔다. 이로써 민노당 분당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 됐다. 노회찬 의원에 이어 평등파를 대표하는 심 의원이 탈당을 선언함에 따라 민노당내 자주파와 평등파의 동거 체제는 창당 8년 만에 막을 내리게 됐다. 심 의원은 조승수 전 의원, 노회찬 의원 등과 함께 임시정당 형태인 ‘진보신당 연대회의’를 구성해 총선을 치른다는 방침이다. 이미 탈당해 진보신당을 준비하던 조 전 의원측도 적극 화답했다. 조 전 의원이 속한 새진보정당운동은 “심 의원의 ‘진보신당 연대회의’ 제안이 우리의 구상과 다름없음을 확인했다. 적극적으로 함께하겠다.”고 밝혔다. 새진보정당운동은 이날 효율적인 통합작업을 위해 자진해산을 결정했다. 심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가진 기자간담회에서 “현재의 민노당 틀로는 진보정치의 희망을 만드는 데 한계에 다다랐음을 고백한다. 민노당을 떠나 진보신당의 새 길을 개척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총선 전 진보신당 창당 입장도 분명히 했다. 심 의원은 “당면 총선에서 이명박 정권에 맞설 견실한 진지를 구축하고 대중적 진보정당의 기초를 다질 것”이라고 했다. 그는 또 “이를 위해 진보신당 건설을 위한 연대회의를 제안한다.”고도 했다. 창당 작업은 ‘2단계’로 이뤄질 전망이다. 심 의원은 “진보신당 연대회의 이름으로 총선을 치르고 실질적 의미의 창당은 총선 이후 이뤄질 것”이라고 했다. 심 의원은 곧바로 탈당을 결행하지는 않기로 했다. 심 의원의 한 측근은 “17대 국회가 28일 끝나는 상황에서 마지막까지 의원직에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느냐. 무책임하게 손 놓고 떠날 수만은 없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민노당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과 최순영·이순영 의원은 분당을 막기 위한 마지막 사투에 나섰다. 천 직무대행은 이날 기자회견을 열어 “함께할 방법을 다시 찾아봐야 한다. 비정규직과 서민의 작은 버팀목이 되려면 분당·분열의 모습은 안 된다.”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민노당 혁신 방안도 밝혔다.그는 “민노당 혁신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해 당내 위기를 수습하고 재창당을 준비하겠다.”고 했다.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김혜경 前대표도 탈당 선언

    김혜경 前대표도 탈당 선언

    민주노동당의 분당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심상정·노회찬 의원이 탈당 후 신당을 창당하기로 의견을 모은 데 이어 이번에는 김혜경 전 대표가 탈당을 선언했다. 김 전 대표는 15일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대선에서 민주노동당은 국민들의 준엄한 심판을 받았지만 당대회는 변화와 혁신을 정면으로 거부, 당이 자정능력을 상실했음을 드러냈다.”면서 탈당 이유를 밝혔다. 이어 그는 “오늘 민주노동당을 떠나지만, 진보정치를 더욱 키우는 데 일조하기 위해 새로운 진보신당 창당에 동참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전 대표와 함께 이덕우 당대회 의장, 김기수·심재옥·홍승하·김종철 전 최고위원도 동반 탈당했다. 천영세 대표 직무대행을 비롯, 권영길 의원 등 민노당 의원단은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분당을 막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천 대표는 “민노당의 분당, 분열은 한국 진보운동의 대재앙이 될 것이다. 어떻게 만든 당인데 이렇게 허망하게 분열하느냐.”고 목소리 높였다. 그는 심·노 의원을 겨냥해 “설혹 어쩔 수 없이 잠시 헤어져야 하는 것이 필연이라면 깨끗하게 신사적으로 최대한 정중하게 이별하자.”고 말했다. 하지만 천 대표 스스로가 “우리의 노력에도 분당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말한 것처럼 민노당의 분열은 되돌리기 어려워 보인다. 민노당 탈당파 중심의 ‘새로운진보정치운동’은 17일 2차 전국운영위원회를 연다. 이 자리에서 심상정·노회찬 의원의 ‘진보신당 제안모임’이 제안한 24일 대토론회를 진보 신당 창당을 위한 원탁회의로 규정, 이들과 보조를 맞출 방안을 모색할 계획이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민노당 자주파 김창현 vs 평등파 김형탁 대담

    민노당 자주파 김창현 vs 평등파 김형탁 대담

    민주노동당 분당이 초읽기에 들어갔다. 창당 이후 계속돼 온 노선갈등은 임계점에 다다랐다. 논란의 핵심은 소위 ‘종북(從北)주의’다. 한쪽은 “북한을 추종한 다수파가 당을 북의 위성정당으로 전락시켰다.”고 하고 다른 쪽은 “비상식적인 낙인찍기를 중단하라.”고 맞받는다. 접점이 없다. 지난 13일 심상정·노회찬 의원은 민노당 탈당·진보신당 창당에 합의했다. 실질적 창당 작업 시작이다. 관망하던 평등파 당원들도 줄줄이 탈당을 결행했다. 자주파는 분당을 막기 위한 사투를 벌이고 있다. 천영세 집행부는 “분당을 막아달라. 당이 함께 죽는 길로 치닫고 있다.”고 호소했다. 민주노총·전농·전여농·한청 등 자주파를 지지하는 4개 단체도 민노당 사수를 선언했다. 그러나 이제 분당은 시기의 문제만 남은 분위기다. 한 평등파 당원은 “총선 전이냐 후냐의 문제 외에 다른 걸림돌은 없지 않으냐.”고 했다. 민노당과 진보신당의 18대 총선 맞대결 가능성은 점점 커지고 있다. 진보진영 재편의 갈림길에서 민노당 김창현 전 사무총장과 새진보정당모임 김형탁 대변인이 대담을 통해 격론을 벌였다. 둘은 각각 자주파와 평등파의 핵심인물로 꼽힌다. 직접 만나기를 부담스러워한 둘은 서면으로 대담을 진행했다. ▶분당사태로 진보진영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분석도 있다. 진보진영의 진로에 대해 말해달라. -김창현 전 사무총장 새로운 진보운동을 추진하는 분들이 종북주의 등 비상식적 주장을 들고 나왔다. 토론과 논쟁은 발전과 단결로 연결돼야 한다. 그러나 현재 진행되는 논쟁은 분열을 위한 명분쌓기다. 진보의 지평이 넓어지기보다 도리어 입지를 좁혀버렸다. -김형탁 대변인 민노당은 지난 대선 참패로 국민들에게 이미 심판을 받았다. 사표심리가 없었던 선거였는데도 참패한 이유가 무엇인가. 첫째, 후보 선정과 대선 전략이 정파적 이해에 따라 결정됐기 때문이다. 둘째, 민생문제를 해결하는 정당이 아니라 운동권 정당·친북당·데모당·민주노총당이라는 부정적 인식 때문이다. 진보정당은 이제 새롭게 시작돼야만 한다. -김창현 민노당에 대한 비판과 혁신안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대선 패배 이후 당의 고질적 문제가 무엇인지, 무엇 때문에 국민들에게 냉정한 평가를 받게 됐는지 논쟁해야 한다. 그러나 모든 토론의 성과는 진보정당의 발전과 단결로 귀결될 때 의미가 있다는 점도 명심했어야 한다. -김형탁 자주파는 심상정 비대위의 혁신안을 거부했다. 대선도 실망스러운 결과일 뿐이라고 했다. 당 운영에 문제가 있었다는 평가도 거부한다. 민노당은 더 이상 진보정당이 아니다. 민노당은 이제 자주파의 서클에 불과하다. 희망이 없다. ▶종북주의는 존재하나. 존재한다면 그 폐해는 무엇인가. -김창현 친북이라는 용어는 들어 봤지만 종북이라는 단어는 이번 논쟁과정에서 처음 들어 봤다. 자주파에게 이런 식으로 딱지 붙이는 것은 함께하지 않겠다는 적대감의 표현일 뿐이다. -김형탁 당 간부들의 신상·성향 분석 자료를 북에 넘겼는데도 감싸고 도는 게 말이 되나. 한반도에서 핵이 사라져야 한다고 주장해 오다가 북한이 핵무기를 만드니 자위적 핵무기는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게 이해될 수 있나. -김창현 민노당은 국가보안법의 적용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일심회 관계자들은 피해자로 인정받고 보호받아야 한다. 공소장과 판결문만으로 당원정보를 유출했다는 점을 인정할 수는 없다. 북 핵실험 당시 지도부 입장은 이런 상황을 만든 미국의 대북적대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분당의 다른 이유인 패권주의에 대해 말해달라. -김형탁 정파간 경쟁은 당연하다. 그러나 숫자로 다른 입장을 눌러버리면 희망이 없다. 자주파가 다수를 차지한 민노당은 상식이 통하지 않는 정당이 되었다. -김창현 다수파의 일원으로서 반성한다. 소수를 배려하는 측면이 부족했다. 지금이 존중하고 소통하는 시스템을 만들 기회다. ▶총선이 임박했다. 총선 전략은. -김형탁 새 진보정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새로운 희망의 메시지를 줄 것이다. 또 이번 총선도 중요하지만 총선용 정당을 만들 생각은 없다. 본격적인 내용을 채우는 작업은 총선 이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민노당과 정책연대도 가능하다. -김창현 실체와 근거가 없는 종북 논란을 제외하면 민노당과 새 진보정당은 차별점이 없다. 각각 깃발 들고 별 차이 없는 구호를 외치면 공멸이다. 민노당으로 힘을 모아 총선에 임해야 살 수 있다. ▶평등파·자주파 모두 대중과 동떨어졌다는 지적도 있다. -김형탁 인정한다. 그래서 이번 대선에서 심판 받은 거다. 민노당의 갈등이 심해진 건 자주파가 대거 입당하면서부터다. -김창현 국민은 반성해야 할 시점에 소모적인 이념 논쟁을 하는 모습을 싫어한다. 자주파의 ‘평화통일’과 평등파의 ‘민중의 삶 보호’ 모두 중요하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최태환칼럼] 진보의 진화는 없는가

    [최태환칼럼] 진보의 진화는 없는가

    교사인 친구가 있다. 늘 생각이 젊다. 전교조 활동에 꽤 열성이다. 민주노동당 지지자다. 친구들은 “의식있는 늙은 노동자”라고 놀렸다. 앞서가는 가치를 실천하려는 의지와 용기를 부러워했다. 얼마 전 그를 만났다. 대통령 선거때 투표를 하지 않았다고 했다. 의외였다. 민노당이 미덥지 못하다고 했다. 세상 변화를 읽지 못하는, 외곬 시각의 성난 얼굴이 불편하다고 했다. 그는 “서민의 고단함을 헤아리는 따뜻한 시선을 발견하기 어려웠다.”고 했다. 여전히 제도권 밖 시절의 낡은 가치와 행동 양식에 머물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했다. 얼마 전 한 토론회에서다. 최장집 고려대교수가 지난 대선 결과에 대해 새겨들을 분석을 내놓았다. 유권자들이 보수화됐다는 진보 인사들의 진단은 성급하다고 했다. 유권자의 정치 성향이 5년 만에 급격히 바뀌었다는 근거가 없다고 했다. 그는 “다만 서민의 뜻을 받들 만한 정당이 없었기 때문에 투표율이 극히 낮았다.”고 했다. 민노당이 정당으로서 역할을 제대로 못했다는 지적이다. 최근 자주파와 평등파의 친북(親北)갈등 역시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한 관심을 억압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 대선은 민노당에도 엄청난 시련이었다. 지지율은 느닷없이 무대에 올라 원맨쇼를 한 이회창당이나 문국현당에도 크게 못 미쳤다. 참담한 패배였다. 이대론 안 된다는 경고였다. 변화의 주문이었다. 대중과 소통하는 진보의 재창출의 요구였다. 진보를 진보시켜야 하는 숙제를 받았다. 새로운 콘텐츠의 제시 없이는 진보 역시 생명력을 가질 수 없음을 확인했다. 서민, 소외 계층이 공감하는 유연한 사고 없이는 미래가 없음을 확인했다. 그럼에도 집안 싸움에 골몰이다. 친북·종북(從北) 논란에 휘청대고 있다. 분당이 가시화되는 양상이다. 창당 8년 만에 반토막 위기다. 보수 진영은 민노당 내분과 다툼을 즐기는 분위기다. 민노당이 친북 정당임이 드러났다며 희색이다. 민노당 안에서 친북, 종북 고백이 나왔으니, 더 이상 색깔논쟁이 필요없어졌다며 비아냥댄다. 물론 통일 지향과 북한 관심을 나무랄 일은 아니다. 진보의 전유물일 수도 없다. 하지만 북한 정권에 대한 경향성은 국민들의 외면을 불렀다. 진정한 진보라면 오히려 북한 주민의 삶과 인권에 보다 더 관심을 갖는 게 마땅하다. 세상 민심을 등진 화석화된 집단은 고립만 부를 뿐이다. 18대 총선이 50일 남짓 남았다. 지난 대선 때와 분위기가 별반 다르지 않다. 한나라당으로의 쏠림이다. 여론조사에서도 안정론이 견제론을 앞지르고 있다. 한나라당 압승을 점치는 전망이 적지 않다. 총선 후보자 지원에서도 나타났다. 한나라당 창구는 사상 유례없는 러시였다. 지난 총선을 떠올린다. 탄핵 역풍이 열린우리당의 제1당 탄생을 유도했다. 한나라당의 오만에 대한 심판이었다. 선거는 후보자의 됨됨이나 능력보다는 당이 선택의 기준이었다. 정치의 질을 떨어뜨리는 결과로 연결됐다. 한나라당으로의 쏠림이 우려되는 이유다. 이럴 때일수록 쏠림을 견제할 세력과 집단의 목소리가 중요하다. 진보 진영의 활성화도 중요한 한 축이다. 그럼에도 민노당은 지금 시민 참여 속의 진보, 진보의 진화를 거부하고 있다. 제도권 밖으로 몰릴 위기다. 현실화된다면 한국정치의 퇴보가 아닐 수 없다. 민노당 지지여부를 떠나 진보의 분열·추락을 보는 국민들의 마음이 착잡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yunjae@seoul.co.kr
  • 시간여행 가능한 ‘타임터널’ 5월 실험

    시간여행 가능한 ‘타임터널’ 5월 실험

    원자분열 실험의 영향으로 시간여행이 가능한 ‘타임터널’이 생길수 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러시아의 스테콜로프 수학연구소(Steklov Mathematical Institute)의 수리물리학자 이리나 아레프에바(Irina Aref’eva) 교수와 이고르 볼로비치(Igor Volovich) 박사가 원자 분열 실험에 의한 타임터널 생성 가능성을 주장했다고 과학 전문지 뉴사이언티스트가 보도했다. 이들이 타임터널의 가능성을 주장한 실험은 오는 5월 예정된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원자분열 실험. CERN은 ‘빅뱅 이론’과 관련해 우주의 생성 직후 상황을 연구하기 위한 실험을 계획하고 있다. 제네바 인근 지하 공간에서 실시될 이 실험에서 빅뱅 바로 뒤의 엄청난 빛과 에너지를 원자분열을 통해 재현할 예정이다. 러시아의 과학자들은 이 실험 과정에서 우주 조직의 균열이 생길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을 근거로 “미립자가 빛에 가까운 속도로 충돌하면서 시간의 문이 열리게 될 것”이라며 “만약 에너지가 충분하다면 현재와 미래를 잇는 시간터널도 가능하다.”고 밝혔다. 그러나 CERN의 브레인 콕스 박사는 “상상력 좋은 SF소설에 불과할 뿐”이라며 러시아 과학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이어 “우주공간의 물질과 우주선의 충돌에 의해 생기는 에너지는 우리가 만들 수 있는 것보다 훨씬 크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한번도 시간을 벗어나는 일은 없었다.”고 덧붙였다. 사진=인디펜던트 온라인 (independent.co.uk) 서울신문 나우뉴스 박성조 기자 voicechord@seoul.co.kr@import'http://intranet.sharptravel.co.kr/INTRANET_COM/worldcup.css';
  • [핵 분열되는 진보정당 민노당] 진중권 “자주파는 진보진영 아니다”

    [핵 분열되는 진보정당 민노당] 진중권 “자주파는 진보진영 아니다”

    진보논객인 진중권 중앙대 겸임교수는 민주노동당 분당사태와 관련,“자주파는 절대 진보진영이 아니며, 정상적인 사람들이 아니다.”라고 맹비난했다. 진 교수는 5일 라디오 대담을 통해 “2003년 자주파 인사들을 만나 보니 북한을 ‘본사’라 부르며 상전으로 모시더라.”면서 “북한이 갖고 있으면 핵무기도 정당하다는 이들 자주파는 결코 진보진영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진 교수는 또 “자주파들은 토론을 통해 누가 옳은지 가리지 않고 가족, 심지어 조그만 애들까지도 당원으로 가입시킨 뒤 오직 숫자로 자신들의 주장을 관철시키려 한다.”고 주장했다. 박창규기자 nada@seoul.co.kr
  • [시론] 공천갈등 지역 전당대회 개방이 해법/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시론] 공천갈등 지역 전당대회 개방이 해법/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대선 승리와 진보 진영의 지리멸렬로 인해 이미 총선 승리를 얻어낸 것처럼 밥그릇 싸움을 하는 한나라당을 바라보는 국민 시선이 고울 수는 없다. 한나라당의 내분은 한국 정당의 기형적 구조 때문에 필연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것이었다. 범여권 대선 후보군의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머물던 시절, 한나라당의 현역의원들과 당원협의회 위원장, 그리고 정치 지망생들이 대선 후보들 뒤로 줄 서기를 했을 때 이미 예고되었던 갈등이었다. 일부 정치학자들은 그 때 이미, 대선 이후 범여권 정당의 궤멸과 이명박당, 박근혜당으로의 한나라당 분열 가능성을 점칠 정도로 총선 공천을 둘러싼 한나라당의 갈등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였던 것이다. 지금 대통합민주신당이 겪고 있는 내홍이나 민주당과의 통합 난항도 공천과 관련된 것으로, 어떤 정당도 공천 갈등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이 한국정치의 현실이다. 공천이 늘 문제가 되는 것은 한국 정당의 성격과 국회의원 후보자 선정 구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들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이 아니라, 단기적 목표를 공유하는 정치적 연합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대통합민주신당의 전신인 열린우리당은 정치적 신념을 공유한 집단이 아니라 호남·충청의 일부, 노사모, 재야, 일부 진보세력, 전통적인 보수 야당 세력의 반(反)한나라 연합이었다. 정치적 신념이 아니라 한나라당의 집권을 막기 위해 결성된 정당이기에 노무현 대통령은 집권에 성공했지만, 집권 초부터 외로운 싸움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또 어떠한가. 영남,3공의 산업화세력,5공의 군부,YS의 전통적 보수 야당세력, 중산층 등이 반 노무현·보수의 이름으로 한 당을 구성하고 있지만 정권 획득의 목표가 달성된 뒤에도 정치적 핵심 가치들을 공유할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구성원들의 정치적 신념이 비교적 균일해보였던 민주노동당도 자주파와 평등파로 분당되고 있는 형국이고 보면, 정당이 정치적 신념을 공유하는 정치적 집단이라는 교과서적 정의는 한국 정당에는 잘 맞지 않고, 그러다 보니 오월동주의 형국이 한 정당 내에서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국회의원 후보를 지역주민이나 당원들이 선출하지 못하고, 중앙당의 공천심사위원회에서 결정하는 현행 공천제도는 국회의원들이 의정활동보다 대선후보 뒤에 줄 서기에 몰두하고, 계파간 공천다툼이 벌어지는 근본 원인이다. 한나라당의 경선이 파국 직전까지 갔던 것도 줄 서기를 하고 있던 국회의원 지망생들의 샅바싸움 때문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지역의 전당대회에서 국회의원 후보 선출을 하지 않고, 중앙당에서 공천을 주는 이유는 무엇인가. 만약 지역구의 전당대회에 국회의원 후보자 선출을 맡겨놓으면 토착권력을 가진 지역유지들이 당원 동원을 통해 계속적으로 국회의원 후보로 선출되어, 참신한 정치신인의 발탁이 어려워진다. 그래서 공천심사위에서 능력있는 참신한 후보를 공천한다는 명분에도 일리는 있다. 그러나 현행 공천제도 뒤에는 계파간 지분을 나누고, 보스는 공천권을 통해 영향력을 유지하려는 진짜 이유가 숨겨져 있다. 토착 권력의 견제를 위해서라면 지역 전당대회를 개방하면 된다. 좋은 후보라면 지역민이 먼저 알기 때문이다. 보스주의에서 벗어나 후보자 선출권을 국민에게 돌려주는 것만이 공천갈등을 없애는 길이다. 김진하 계명대 국제관계학 교수
  • [핵 분열되는 진보정당 민노당] 노회찬까지…민노당 대규모 탈당 가시화

    심상정 비대위 대표의 사퇴로 민주노동당의 분화가 빨라지고 있는 가운데 노회찬 의원이 5일 탈당을 예고했다. 서울지역 총선후보 등 20명도 민노당과의 결별을 선언했다. 이들은 설 연휴 기간 세를 모아 집단 탈당을 결행하기로 해 설 연휴가 끝나면 대규모 탈당이 현실화할 것으로 보인다. 노 의원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당은 당대회에서 스스로 존립근거를 부정, 더이상 창당 때 약속한 민노당이 아니다.”면서 “국민 여러분께 엎드려 용서를 구하는 심정으로 진보정치의 새로운 길을 떠나고자 한다.”고 탈당 의사를 밝혔다. 이어 박용진 전 대변인 등 서울 지역 총선 후보, 전·현직 지역위원장, 지방의원 20명도 기자회견을 통해 “민주노동당의 이름으로 출마하지 않을 것을 선언한다.”고 탈당을 기정사실화했다. 탈당계는 뜻을 같이 하는 당원들과 함께 설 연휴 후에 제출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 이같은 움직임은 설 이전 탈당을 선언, 신당 창당 의지를 확실히 해 당내 신당파 결집을 유도하고 동시에 개별 탈당보다는 집단 행동으로 새 진보정당 창당에 동력을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후에는 조승수 전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새로운 진보정당 운동’과 함께 움직일 예정이다. 심상정 의원은 설 연휴 기간 거취를 고민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진보정치의 새 길을 열어 가겠다.”고 밝힌 만큼 탈당은 시기의 문제만 남았다. 노 의원은 심 의원과 관련,“행동을 같이 하기로 쭉 얘기해 왔다.”고 말해 이같은 관측을 뒷받침했다. 하지만 심 의원은 당 비대위 대표를 지낸 만큼 당장 탈당을 결행하기는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3월 창당을 목표로 하고 있어 시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세력 구심점 확보 차원에서 결단을 앞당길 수도 있다. 분당이 기정사실화되자 당 대표 직무대행을 맡게 된 천영세 의원단대표가 수습에 나섰다. 천 대표는 “분열에 앞서 단결할 방안을 고민해 달라. 초심으로 돌아가 단결 또 단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나길회기자 kkirina@seoul.co.kr
  • [핵 분열되는 진보정당 민노당] 창당이후 노선 경쟁… 시각차 컸다

    [핵 분열되는 진보정당 민노당] 창당이후 노선 경쟁… 시각차 컸다

    민주노동당이 지난 2000년에 창당한 지 8년 만에 분열의 길에 들어섰다. 그동안 민노당은 자주파(민족해방파·NL)와 평등파(민중민주파·PD)로 갈려 ‘불안한 동거’를 해 왔다. 지난 80년대 이후 20년간 이어져 온 두 진영의 벽을 허물지 못해 끝내 갈라서게 된 셈이다. 민노당의 분열을 바라 보는 시각은 대체로 따갑다. 진보세력임을 자처한 민노당이 사회 변화를 주장하면서도 정작 자신들의 변화를 외면하는 수구진보적 행태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5일 탈당한 박용진 전 대변인은 “진보세력의 대연합은 존중과 배려를 바탕으로 선의의 경쟁이 전제가 되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민노당내 양 정파는 지난 4년간 각자의 정파에만 몰두했다.”며 아쉬워했다. 민주노동당은 2000년 1월 창당했다. 초대 민주노총 위원장을 지낸 권영길 의원이 주도하고 평등파 계열이 가세했다. 그러나 양측의 시각은 너무나 차이가 커 사실상 창당 이후부터 노선 경쟁을 벌여 왔다. 자주파 계열은 ‘반미 친북’ 노선을 기초로 통일 운동에 중점을 뒀다. 반면 노동 문제에 주력한 평등파는 북한에 대해 ‘사회주의를 가장한 독재국가’라고 비판했다. 2002년 지방선거 이후 평등파와 자주파간 세력 균형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이 해 6·13 지방선거 정당 투표에서 민노당이 8.13%를 얻자 자주파가 대거 입당했기 때문이다. 특히 2004년 총선을 앞두고 전국농민회총연맹(전농)을 비롯한 자주파 지역 연합체들이 대거 민노당에 합류, 자주파가 당을 완전히 장악했다. 이후 민노당은 양 정파가 불안한 동거를 하는 ‘정파 연합’ 구조가 형성돼 계파갈등이 더욱 노골화됐다. 양 계파간 감정 충돌은 지난 대선 참패로 인해 터졌다. 평등파 심상정 의원이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종북주의 청산을 공론화시킨 이후부터다. 당내 인사들이 북한에 정기적으로 내부 동향을 보고했다는 이른바 ‘일심회’ 사건 가담자의 제명을 요구한 것이다. 자주파의 거센 반발을 받은 심 위원장은 지난 3일 당 대회에서 혁신안 통과 여부에 자신의 신임을 물었지만 64%를 점한 자주파의 반대에 부딪혔다. 이종락기자 jrlee@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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