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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세종시수정안 발표이후] 세종시發 정치권 빅뱅 시작되나

    [세종시수정안 발표이후] 세종시發 정치권 빅뱅 시작되나

    정치권이 ‘세종시 블랙홀’로 빠져들고 있다. 세종시의 운명이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각 정당과 정파, 정치 거물의 앞날도 엇갈릴 수밖에 없다. 건곤일척의 벼랑 끝 승부가 불가피하다. 정치권 일각에선 한나라당내 친이(친이명박)·친박(친박근혜) 간 갈등의 결과에 따라 여권 분열이 초래되고,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가 닥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세종시는 그동안의 여야 정책 대립과는 차원이 다르다. 청와대와 정부가 내놓은 세종시 수정안을 찬성하는 세력은 원내 90석 남짓한 친이계가 유일하다. 국가 현안을 중심으로, 전대미문의 ‘여소야대’ 국면이 형성된 셈이다. 친이계는 정부의 힘을 빌려 여론을 확실하게 돌려 놓은 뒤 박근혜 전 대표를 압박하거나 설득해야 할 처지다. 정치컨설턴트 이경헌씨는 12일 “타협이 불가능해진 두 세력은 이제 여론전 승리로 상대방을 제압하는 방식 말고는, 쓸 수 있는 카드가 없다.”면서 “대권 플랜이 이미 가동된 박 전 대표 쪽은 충청권을 확실히 묶어 놓고 수도권으로 북상(北上)을 노릴 것이고, 친이계는 이를 저지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친이계는 이날부터 여론전에 돌입했다. 친박계와의 감정 섞인 설전을 자제하며 충청권 민심 달래기에 온 힘을 쏟는 동시에 박 전 대표 진영을 물밑에서 흔들어 놓겠다는 전략이다. 안상수 원내대표는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정부의 수정안이 나온 만큼 한나라당은 치열한 토론을 벌이고, 충청민과 국민의 여론을 적극적으로 수렴해 나가야 한다.”고 주문했다. 14일부터 대전·충남을 겨냥해 당 차원의 국정보고대회를 열고, 의원별로 충청지역을 방문해 각개격파식 홍보전도 병행할 예정이다. 그러나 오는 6월 실시되는 지방선거의 특성상 지역개발 이슈가 부각될 게 뻔해 한나라당이 상대적 박탈감을 호소하는 다른 지역의 불만을 잠재우기는 녹록지 않아 보인다. 친박계도 전열을 정비하고 있다. 박 전 대표가 이날 기자들에게 ‘신뢰의 정치’를 강조하며 수정안 반대 입장을 거듭 밝혀 친박 의원들도 좌고우면할 이유가 사라졌다. 박 전 대표는 ‘충청 여론이 호전돼도 입장이 변하지 않을 것이냐.’는 질문에 “제 입장은 변함이 없다고 분명히 말씀드렸다.”면서 “저한테 설득하겠다고 해서 충청도민을 먼저 설득하라고 말한 것인데, 국민에게 한 약속을 지키라는 말뜻을 못 알아듣는 것 같다.”고 꼬집었다. 어떤 경우에도 수정안 반대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것이란 얘기다. 야당도 세종시 승부에 명운을 걸고 있다. 지난해 미디어법과 예산정국에서 완패한 민주당은 여권 내 분열로 세종시 수정안을 저지할 절호의 기회를 맞았다. 하지만 이 싸움에서도 밀리면 무기력한 야당이라는 늪에서 빠져 나올 수 없게 된다. 자유선진당도 세종시에서 승리하면 박 전 대표와의 연대 등 활로를 모색할 수 있는 길이 펼쳐지지만, 패배한다면 유일한 지지기반인 충청권에서조차 운신의 폭이 좁아지게 된다. 이창구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MB 세종시 설득전 시동

    이명박 대통령은 12일 “(세종시 문제가) 뜻밖에 너무 정치논리로 가는 게 안타깝다.”고 말했다. 이 대통령은 이날 청와대에서 시장과 도지사 등 광역 자치단체장들과 가진 오찬간담회에서 이같이 밝혔다. 이 대통령은 “다 개인의 생각은 다를 것이다. 한나라당에서도 다를 수 있고, 야당 내에서도 다를 수 있다.”면서 “그게 무슨 소속에 따라서 그냥 완전히 의견이 뭉쳐지는 것은(좀 문제가 있다.), 이 문제는 정치적 현안이 아니고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적 차원”이라고 지적했다. 이는 한나라당 내 친박계 의원들이 한목소리로 세종시 수정안에 반대 목소리를 내는 것은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한 것으로 풀이된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와 마찬가지로 혁신도시나 기업도시, 지방의 산업단지도 원형지로 기업에 공급하는 것이 원칙에 맞다.”면서 “앞으로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이 지역의 기업에) 원형지 공급을 원칙으로 하라.”고 지시했다. 원형지는 부지조성공사를 하지 않은 상태로 공급되는 것이어서 공급가격이 싸다. 수요자는 원형지를 필요에 맞게 개발할 수 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논란과 관련, “정치적 차원이 아니고 백년대계를 위한 정책적 차원인데 이렇게 (국론분열로) 가는 게 안타깝다.”면서 “저는 (세종시에 대해) 확신을 갖고 있다. 그런 점에서 많은 이해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여러분이 걱정하는 것처럼 세종시 때문에 다른 지역이 지장을 받지는 않을 것”이라며 “원칙적으로 다른 곳에 있는 것을 세종시에 갖다 놓지는 않을 것이다. 새로운 곳에는 새로운 것을 가져다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때문에 혁신도시 등 지역들이 많은 걱정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그런 일은 없을 것”이라면서 “다른 기업을 더 유치할 만한 땅도 (세종시에는) 없다.”고 밝혔다.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날 국무회의에서 세종시 수정 추진과 관련, “그동안 해온 이상으로 온 힘을 다해 (국민에게) 세종시 발전 방안을 설명하고 설득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우리가 정성을 다해 국민에게 열심히 설명하면 국민도 정부의 진정성을 믿고 지지해 줄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김성수 김상연기자 sskim@seoul.co.kr
  • [세종시수정안 발표]“설 이전까지 민심 잡아라”

    청와대와 정부가 세종시 수정안 홍보전에 ‘올인’하고 있다. 청와대 핵심 참모들과 총리실 실무자들이 경쟁하듯 앞다퉈 언론 인터뷰에 나서며 수정안의 당위성을 알리고 있다. 국회 통과를 비롯한 수정안의 성패는 결국 여론의 향방에 달렸다는 판단에서다. 다음달 설연휴 이후 여론이 고착될 것으로 보고, 수정안이 발표된 이후 ‘속도전’에 나선 형국이다. 박재완 국정기획수석은 12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 세종시의 ‘블랙홀 논란’에 대해 “나라 전체적으로 미래의 먹거리를 창출하는 윈·윈 전략이 될 수 있고, 블랙홀이라기보다 ‘화이트홀’이 되도록 하자는 개념”이라고 설명했다. 박형준 정무수석도 11일과 12일 잇따라 TV와 라디오 프로그램에 나와 세종시 관련법안 처리방안 등을 설명했다. 박 수석은 당내 친박계 설득과 관련, “세종시 발전방안을 놓고 당이 근원적으로 분열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면서 “처음부터 ‘양시론(兩是論)’으로 접근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가 정치적 약속과 신뢰를 강조하는 부분도 일리가 있고 타당성이 있다.”고 밝혔다. 정부 쪽에서는 권태신 총리실장과 세종시 실무기획단장인 조원동 총리실 사무차장이 바빠졌다. 권 실장은 수정안을 발표한 11일 밤 TV 뉴스 프로그램에 출연해 “(세종시 수정안은) 과거지향형 행정중심도시에서 미래지향형 첨단경제도시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했다. 조 차장은 12일 오전에만 세 차례 라디오 방송과 인터뷰를 가졌다. 그는 “원안보다 수도권 비대화 가능성을 막고 균형발전에도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안”이라고 설명했다. 정부는 세종시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을 확산시키기 위해 소책자 발간, 광고, 공무원교육 등을 할 계획이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이승만·박정희·김대중 모두 우리의 대통령”

    “이승만·박정희·김대중 세 분 전직 대통령은 어느 누구의 편도 아닌, 우리 모두의 대통령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11일 “건국과 산업화, 민주화 세력 간에 역사적 화해가 필요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올해 첫 라디오·인터넷 연설을 통해서다. 그는 “세 분은 결코 쉽지 않았던 역사의 한복판에서 성공의 역사를 일궈 내는, 그 중심에 섰던 분들”이라면서 “안타깝게도 지금까지 전직 대통령에 대한 평가에 인색했다.”고 덧붙였다. 이어 전직 대통령을 둘러싼 해묵은 ‘편가르기’ 관행을 지적한 뒤 “대통령은 특정한 어느 누구의 편이 아니다.”면서 “어느 시대나 빛과 그림자가 함께 존재한다. 이제 그 그림자보다는 그 빛에 주목했으면 좋겠다.”고 언급했다. 이 대통령은 “우리에게 가장 시급한 일은 내부의 갈등과 분열의 고리를 끊어내는 것”이라면서 “무엇보다 화해와 통합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문화가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긍정의 힘이 역사를 주도하는 원동력이 된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라면서 “세종시 문제도 갈등 구조에서 벗어나 국가 발전의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세종시 수정안] 李대통령 “정치현안과 분리”… 세종시 직접 설득 나선다

    [세종시 수정안] 李대통령 “정치현안과 분리”… 세종시 직접 설득 나선다

    “세종시로 인해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해야 한다.” 이명박 대통령은 11일 청와대에서 수석비서관 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이같이 밝혔다고 김은혜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통령은 “세종시 수정안은 지역 특성에 맞춘 특화된 발전과 지역성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순수한 정책사안”이라면서 “정치 현안과 구분해 생각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정부는 세종시뿐 아니라 다른 현안 업무에도 소홀함이 없도록 국가적 에너지가 낭비되지 않게 해야 한다.”면서 “각 부처에서 예산집행, 민생법안 처리에 차질이 빚어지지 않도록 챙겨달라.”고 당부했다. 세종시를 ‘정치현안’이 아닌 ‘정책사안’으로 규정한 것은, 정쟁(政爭)의 대상이 아니기 때문에 세종시 문제에 정치적으로 매몰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현실은 이 대통령이 세종시 정국을 타개하기 위해 전면에 나설 것을 요구하고 있다. 수정안이 국민에게 제시되고 평가를 받게 된 만큼 ‘건곤일척(乾坤一擲)’의 심정으로 승부수를 던질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넘어야 할 산은 한두 개가 아니다. 충청도민과 야당의 거센 반발 말고도 여여(與與) 갈등까지, 반대의 목소리가 크다. 집권 3년차에 맞는 가장 큰 정치적 난관이다. 때문에 지금껏 실무적인 역할을 했던 정운찬 국무총리 대신 지금부터는 이 대통령이 직접 나서 수정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여론 설득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가급적 이른 시일에 대국민 담화 또는 특별기자회견을 갖거나, 이달 중 충청권을 다시 방문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이 대통령은 이런 자리를 통해 충청주민에게 다시 한번 사과의 뜻을 전하고, 수정안은 국가의 미래를 보고 결정했으며, 세종시의 자족기능 보강 등 실질적인 도움이 된다는 점을 설명할 예정이다. 김 대변인은 “(이 대통령이 수정안에 대해) 국민에게 직접 설득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으나 시점과 방법, 수위 등은 결정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박근혜 前대표와 회동 검토 이 대통령은 정치권 설득에도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이다. 12일 청와대에서 갖는 광역자치단체장 오찬에서는 일부 광역자치단체장들이 우려하는 ‘세종시 특혜’나 기업도시에 대한 역(逆)차별 우려 등을 설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실무차원에서는 한나라당 박근혜 전 대표와의 회동도 검토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은 다음 달부터 임시국회에서 본격적으로 논의될 수 있지만, 친박계의 도움없이는 국회통과가 어렵다. 수정안이 통과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과반출석에 과반수 찬성(150명 이상)을 얻어야 한다. 한나라당 의원은 169명이지만 친박계로 분류되는 의원이 50~60명이나 된다. ●여권지도부 “4월임시국회 이후로” 친박계는 의견이 분산될 가능성이 높지 않기 때문에 여권 지도부에서는 서두르지 말고 여론수렴 절차를 충분히 밟고, 4월 임시국회 이후로 넘기자는 얘기도 나온다. 한나라당 안상수 원내대표는 “대화와 설득의 시간을 충분히 가져 (세종시) 문제가 국론분열이 아니라 국민통합의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김성수기자 sskim@seoul.co.kr
  • [세종시 수정안] 재계 “연내 착공 위해 정치권 합의 서둘러야”

    “세종시의 불확실성을 서둘러 잠재워달라.” 재계는 11일 세종시 발표안과 관련, 정치권의 갈등으로 국론 분열이 확대되는 것을 경계했다. 또 투자가 제때 이뤄지도록 정치권의 조속한 합의를 촉구했다. 여야 정쟁으로 수정안이 장기 표류하며 불확실성이 커지면 자칫 ‘투자 실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이는 비용 상승과 글로벌 경쟁력의 약화를 의미한다. 정치권 혼란이 경제사회 전반으로 확대되면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는 한국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것이란 우려도 적지 않다. 이번 세종시 수정안이 논란의 ‘시작’이 아니라 ‘끝’이 되기를 기대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재계 관계자는 “기업 투자는 타이밍이 매우 중요하다.”면서 “(우리의 경우) 올해 착공에 들어가야 하는데 정치권 때문에 좀 걱정”이라고 밝혔다. 또 “공동화의 우려가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면서 “정부가 생활기반시설 확대 등 후속 조치를 마련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는 이날 “세종시 건설에 대한 국민적 합의가 조속히 이뤄져 국론 분열과 갈등이 발생하지 않기를 기대한다.”면서 “기업들의 실질적 투자가 이루어질 수 있는 구체적인 지원대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국경제인연합회 황인학 산업본부장은 “신속하게, 제대로 추진된다면 세종시뿐 아니라 주변 지역까지 경제발전의 구심 축으로 성장해 나갈 것”이라면서 “수정안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관련 법 개정 등 제도적인 장치가 신속히 마련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정부안은 국가 백년대계와 충청권 발전을 위해 각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고 고뇌한 모습이 엿보인다.”면서 “중소기업의 실질적인 투자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지원 대책을 마련해 줄 것”을 당부했다. 김경두기자 golders@seoul.co.kr
  • 세종시수정안 관가 표정

    세종시수정안 관가 표정

    11일 정운찬 국무총리가 발표한 세종시 수정안과 관련, 정부부처의 반응은 예상대로 환영하는 분위기 일색이다. 원안대로라면 2012년부터 세종시로 옮겨야 했던 부처는 물론 관계없는 부처까지 모두 수정안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9부2처2청을 옮긴다는 원안이 백지화되면서 정부과천청사 공무원들은 ‘이해당사자’에서 ‘관망자’로 변했다. 이날 세종시 발전방안에 대해서도 이렇다 할 동요는 없었다. 기획재정부 관계자는 “자칫 엄청난 비효율을 가져올 수 있었는데 일단락이 돼서 다행”이라면서 “이젠 반대했던 이들을 보듬을 방법을 생각해야 될 시점인 것 같다.”고 말했다. 농림수산식품부 관계자는 “결과적으로 잘 정리된 것 같다.”면서도 “세종시 사업 같은 국가대사가 정권에 따라 180도 달라질 수 있다는 건 좀 씁쓸하다.”고 평가했다. 이전대상 기관이었던 환경부의 한 국장급 간부는 “처음 환경부가 내려간다는 언론보도를 접하고 환경부 직원들은 상실감에 빠지기도 했었다.”면서 “향후 두 집 살림을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불안했는데, 가닥이 잡혀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두집 살림살이 할 뻔 했는데… 정부중앙청사 소방방재청의 팀장급 공무원은 “업무상 국회를 방문하는 횟수가 많은 직원일수록 수정안에 대한 찬성의 강도가 높았다.”면서 “업무 효율성이나 자녀교육 등 개인적인 차원에서도 결론이 내려져 다행이다.”고 안도했다. 충청권 출신의 행정안전부 고위 공직자도 “세종시가 정치적인 논리의 산물인 데다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문제 해결을 더 어렵게 했다.”면서 “대승적 차원에서 정치권이 빨리 한목소리로 주민설득에 나서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감사원 직원들은 부처이전 백지화로 지방 출장 부담이 늘어나지 않게 됐다며 반겼다. 감사원 업무 특성상 출장이 잦은 편인데 부처가 옮겨 가면 지방 출장이 두 배는 늘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지난해 9월 말 국회 본회의에서 ‘정부가 세종시 부처 이전 변경고시를 이행하지 않았다.’며 감사원에 감사청구를 의결함에 따라 오는 3월6일까지 예정돼 있던 행안부, 국토해양부, 국무총리실 등을 대상으로 한 감사는 추후 논의를 거쳐 실시 여부를 검토하기로 했다. 공무원노동조합총연맹 간부는 “일단 행정부처 이전이 투입비용 대비 효과가 미미하다고 정부가 판단한 만큼 이를 수용하고 지켜봐야 한다.”면서도 “정부의 일방적인 밀어붙이기식의 수정안은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밀어붙이기식 생각해볼 여지 정부대전청사 공무원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특허청 고위공무원은 “국회까지 다 내려오지 않는다면 행정기관 이전은 의미가 없다.”고 평가했다. 또 다른 과장급 간부는 “과천이나 대전청사를 보더라도 행정기관 이전은 소비도시화하는 측면이 강하다.”면서 “기업 이전이 지역발전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관세청의 한 간부는 “특별법까지 제정한 정부의 정책을 중간에서 수정하는 선례를 남긴 데다 충청지역 주민을 설득하는 것이 쉽지 않을 것”이라며 “정부의 방침이 세워진 만큼 더 이상 국론 분열 없이 국회에서 잘 마무리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정부대전청사 박승기기자·서울 임일영 이재연기자 oscal@seoul.co.kr
  • [사설] 세종시 여도 야도 아닌 국민이 판단할 일이다

    온 나라를 격랑 속으로 빠져들게 할 세종시 수정안이 오늘 최종 발표된다. 무엇보다 정치권이 극한 대결의 대척점에 서면서 사태 해결은 난망이다. 청와대와 정부는 찬성 여론 확산에 총력전을 기울이고, 한나라당 정몽준 대표와 친이명박계는 전방위 지원에 나섰다. 반면 민주당과 자유선진당 등 야당은 원내외를 병행하는 반대 투쟁을 선언했다. 민주당은 전국 혁신도시를 순회하며 역차별론을 한층 더 키워나갈 태세다. 한나라당 친박근혜 계는 원안 고수 대오를 형성해 여야 갈등에 여여 갈등이 추가됐다. 온통 찬성과 반대로 나뉘어 갈등과 분열이 심화될 공산만 커지고 있다. 수정안 윤곽은 상당부분 드러나 있다. 그 내용만 보면 정부가 원하는 명품도시를 만드는 데 손색이 없을 정도다. 막대한 투자가 이뤄지고, 대기업들이 줄지어 투자한다. 그럼에도 찬반 논란의 영역은 오히려 넓어지는 모양새다. 세종시에 주는 각종 인센티브롤 놓고 타 지역은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정치권의 제 정파는 갈등과 분열을 부추기는 데 앞장서고 있다. 이 시점에서 정략적인 잣대를 일단 접는 게 옳다. 수정안이 발표된 다음 내용의 좋고 나쁨을 따지는 게 순서다. 친이계의 인신공격성 발언이나 친박연대의 거친 대응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다. 작금의 세종시 논란을 보면서 수정돼도 걱정이고, 안 돼도 걱정이라는 얘기가 많다. 후유증이 남을 수 있다는 점 때문일 것이다. 세종시 문제는 임기를 3년 남긴 대통령이 호소해 온 사안이다. 무산되면 국정 장악력이 훼손돼 앞으로의 국정 운영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수정안을 성사시키더라도 국회의 절반가량을 차지한 반대 세력들이 발목을 잡으려 할 게 뻔하다. 토론과 표결에 승복하는 자세보다 극한대결이 판치는 만큼 이런 우려가 기우만은 아닐 것이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의 회동 필요성이 일각에서 제기되는 것도 일면 수긍이 간다. 하지만 만남은 해결로 가는 만남이어야 한다. 이견과 충돌을 확인하는 만남이라면 오히려 후유증과 부작용만 키운다. 세종시 문제는 이 대통령의 언급대로 의연하고 당당하게 풀어가야 한다. 이제 여야 모두 소모적인 정쟁을 자제하고 여론에 맡길 일이다. 충청도민과 국민의 판단을 지켜봐야 할 때이다.
  • ‘추미애 불협화음’ 민주 첫 의총

    지난해 말 예산 국회에서 4대강 예산을 막지 못해 어수선한 민주당이 8일 새해 들어 첫 의원총회를 열었다. 지도부를 비롯한 대다수 의원은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선 당이 단합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으나, 일부 의원이 노동 관련법을 한나라당과 함께 강행처리한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의 징계 방침에 이의를 제기해 ‘불협화음’이 이어졌다. 조경태 의원은 비공개로 진행된 의총에서 지도부 책임론을 제기했다. 조 의원은 “추 의원의 행동을 해당 행위로 몰아 징계하려는 당 대표와 지도부의 행태는 적반하장”이라면서 “지방선거를 앞두고 적전(敵前) 분열을 초래한 대표와 지도부야말로 진정한 해당행위자이기 때문에 사퇴해야 한다.”고 일갈했다. 그러나 대다수 의원은 “추 의원의 행동은 적절치 못했고, 징계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만 김영진 의원 등이 “추 의원이 사과하면 징계를 거둬들여야 한다.”고 말했다. 의총에 참석해 동료 의원들과 악수만 하고 퇴장한 추 의원에 대해 중진 의원들은 “해명이든 사과든 해야 하는데, 어떻게 그냥 나갈 수 있느냐.”며 격분했다. 민주당 원내대표단과 환노위 소속 의원들은 이날 민주노동당, 창조한국당, 진보신당 의원들과 공동으로 추 의원을 국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했다. 한편 이종걸 의원은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국민참여당 창당 등 야권 분열을 방치한 책임이 있는 사람은 일선에서 후퇴하고 야권을 통합할 수 있는 새로운 지도부가 절실한 시기”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당내 주류를 포함한 많은 의원은 “현 시점에서 조기전당 대회는 의미가 없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어 물리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이창구기자 window2@seoul.co.kr
  • 겉다르고 속다른 ‘秋징계·鄭복당’ 해법

    겉다르고 속다른 ‘秋징계·鄭복당’ 해법

    서울신문이 6일 민주당 의원들을 상대로 한 ‘3대 현안’ 긴급 여론조사 결과는 복잡한 당내 사정을 그대로 보여 준다. 겉으로는 추미애 국회 환경노동위원장 징계, 정동영 의원의 복당, 조기 전당대회 문제에 대해 일정한 흐름이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응답을 거부한 8명을 빼고, 견해를 적극 밝힌 50명의 생각을 종합하면 징계는 불가피하고(34명), 복당은 빨리 이뤄져야 하며(37명), 조기전대는 필요없다(41명)는 것이다. 추 위원장을 징계해 당의 기강을 세움과 동시에 상처받은 동료들의 마음을 치유해야 하고, 대통합 차원에서 정 의원을 끌어들여 지방선거에 임해야 하며, 비록 현재의 지도력이 완벽하진 않지만 조기 전대는 당의 분열로 이어질 가능성이 있는 만큼 적절치 않다는 뜻이다. 하지만 ‘징계’와 ‘빠른 복당’이라는 답이 나오기까지의 과정이 복잡해 의원들의 뜻이 한 곳으로 모이기는 힘겨워 보인다. ●당론 결집까지 힘겨울 듯 우선 ‘추미애 징계’를 놓고 8명이 당원권 정지와 출당 등의 중징계를 주장했다. 최재성·조정식 의원은 “당론을 무시한 행위에 대해 당원권 정지 이상의 징계가 내려져야 한다.”고 했고, 홍영표 의원은 “추 위원장의 해명은 거짓으로, 제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영진 의원 등 중진들을 비롯한 26명은 “징계가 필요하지만 수위는 당 윤리위원회에서 정하거나, 추 위원장이 사과하면 징계를 가볍게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장선 의원 등 14명은 “추 위원장과 지도부의 주장이 다르니 사실관계가 먼저 규명돼야 한다.”며 입장 표명을 유보했다. 조경태 의원은 “상임위원장으로서 노동관계법 원안 시행에 따른 폐해를 감안한 어려운 결정이었다.”며 징계에 반대했다. ‘정동영 복당’에 대해서도 대다수 의원이 이달 내 이른 복당을 희망했지만 지도부가 먼저 결단해야 한다는 의견과 정 의원이 먼저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의견으로 나뉘었다. 복당을 아예 반대하거나 당이 정하는 절차에 따라 들어와야 한다는 의원들(12명)은 대부분 당내 주류로, 공천권 갈등 등 복당이 몰고 올 후폭풍을 우려했다. 김춘진 의원은 “대선 후보였던 의원을 더이상 방치할 수 없다.”면서 “이미 복당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정세균 대표의 한 측근 의원은 “마음대로 탈당하고, 복당하는 것은 상식과 양식에 맞지 않는다.”면서 “당의 사정에 따라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진표 의원은 “복당을 미룰 이유가 없다.”면서도 “정 의원이 먼저 지혜롭게 복당을 신청하고, 당은 신속하게 받아줘야 한다.”고 말했다. ●조기전대 “득보다 실” 반대 힘실려 조기 전대에 대한 의견은 비교적 명확했다. 현 지도부의 ‘성적’과 관계없이 조기 전대는 득(得)보다 실(失)이 크다는 것이다. 최재성 의원은 “선거에 참패한 것도 아니고, 지도부에 큰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면서 “비록 원내대표단에 일부 문제가 있지만 조기 전대는 상대편만 이롭게 할 뿐”이라고 일축했다. 박주선 의원은 “재야 세력을 아우르는 전당대회라면 몰라도 지금은 의미가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강창일 의원은 “지지부진한 국면을 타개하기 위해 조기 전대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창구 홍성규 유지혜 허백윤기자 window2@seoul.co.kr
  • 세종시 ‘속도조절론’ 부상

    오는 11일쯤 발표되는 세종시 수정안의 국회 처리를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견해가 여권에서 유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이른바 ‘속도조절론’이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5일 “수정안에 대한 충청권 여론이 우호적으로 나타나는 게 최상이지만, 만약 눈에 띄게 호전되지 않아 찬반 논란이 격화된다면 2월 국회에서 성급하게 처리하기보다는 4월 국회, 아니면 6월 지방선거 이후 처리해도 나쁠 게 없다는 공감대가 확산되고 있다.”고 말했다. 속도조절론의 배경엔 6월2일 치러지는 지방선거에 대한 득실 계산이 작용하고 있다. 세종시 수정안 논란이 이어질 경우 충청권에선 불리할지 몰라도, 역(逆)으로 지방선거 승패의 척도가 될 서울시장 선거 등 수도권에서는 유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다는 논리다. 실제 서울을 비롯한 수도권 민심은 세종시에 9부 2처 2청의 정부부처를 이전하는 원안에 반대하는 비율이 높은 것으로 최근 각종 여론조사에서 확인됐다. 서울신문 신년 여론조사에서 서울 지역 응답자의 27.3%만이 원안에 찬성한 반면, 반대한다는 응답은 66.7%나 됐다. 인천·경기에서도 찬성은 36.4%, 반대가 56.2%로 나타났다. 반면 대전·충청은 찬성 62.4%, 반대 33.7%였다. 이 관계자는 “찬반 입장이 첨예한 상황에서 법안 처리를 무리하게 강행하다가는 한나라당 내 친이(친 이명박)와 친박(친 박근혜) 간 분열로 지방선거에서 어려움을 자초할 수 있는 만큼, 차라리 논란을 이어가되 결정적인 당내 분열은 피하는 구도가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방선거에서는 현 정부에 대한 중간평가보다는 세종시라는 정책으로 전선이 형성되는 게 유리한 측면이 있다.”고 덧붙였다. 한나라당 출신인 김형오 국회의장도 이날 한 언론사와의 인터뷰에서 “국회에 수정안이 넘어온다고 당장 표결할 수는 없을 것이며, 충분한 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해 2월 국회 처리가 쉽지 않을 것임을 시사했다. 다른 여권 관계자는 그러나 “속도조절론은 어디까지나 차선책”이라면서 “수정안이 충청 주민들로부터 호평을 받아 2월 국회에서 큰 충돌 없이 깔끔하게 처리되는 게 지방선거 전략의 최선”이라고 말했다. 속도조절론에 대해 정부 당국자는 “세종시 수정은 어떤 경우에도 정치적으로 해석돼서는 안 된다는 이명박 대통령의 지침에 입각해 충청 주민들로부터 신뢰를 얻을 수 있는 수정안 마련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면서 “가급적 이달 안에 수정안을 국회에 제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상연기자 carlos@seoul.co.kr
  • [사설]세종시 발전구상 정략의 잣대로 재지 말라

    정부가 어제 세종시 민·관 합동위원회에 제출한 세종시 투자유치 지원책은 여러모로 고심의 흔적이 엿보인다. 세계에 내놓기에 손색없는 국제적 과학비즈니스벨트로 육성한다는 목표와, 다른 지역에 대한 역차별을 불식해야 하는 제약 사이에서 나름의 절충점을 찾은 것으로 평가된다. 세종시에 입주하는 대기업과 대학에 주변 산업단지 땅값의 절반 수준인 3.3㎡당 36만~40만원에 토지를 제공한다는 방침은 분명 투자 유인의 가치를 지닌다고 할 것이다. 수도권 이전기업과 신설기업 등에 소득세·법인세 7년간 면제, 3년간 50% 감면 혜택을 주기로 한 세제 지원방안도 다른 기업도시 지원 수준과 일치한다는 점에서 별다른 이견의 여지가 없어 보인다. 이제 세종시 논의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단계에 접어들었다. 정부는 오늘 이명박 대통령에게 세종시 발전구상 초안을 보고한다. 여기에는 지난해 11월 30일 국토연구원이 세종시위원회에 보고한 과학비즈니스벨트 육성 구상과 기업유치 지원안, 그리고 삼성그룹의 생명공학 부문과 고려대, KAIST 유치 방안 등이 담길 것이라고 한다. 세종시 구상의 종합판이자 또 하나의 국가 성장동력의 청사진이 제시되는 셈이다. 정부가 11일 최종안을 내놓으면 이 나라의 공론은 온통 세종시로 빨려들 것이다. 더불어 국론의 가파른 분열도 우려된다. 세종시 구상은 정운찬 총리의 말대로 ‘국가의 명운이 걸린 거대한 역사(役事)’임과 동시에 ‘대한민국의 새로운 발전을 여는 역사(歷史)’가 돼야 한다. 세종시를 논함에 있어서 그 어떤 정파나 지역, 계층도 국익과 후세만을 머리에 둬야 하며, 사리(私利)와 정략을 잣대로 들이대선 안 될 것이다. 야권에 당부한다. 수정안의 허실을 짚고, 발전적 대안을 제시하기 바란다. 정부 최종안이 오기도 전에 세종시 수정을 저지하겠다며 전열부터 가다듬는 자세는 온당치 않다. 원안을 일점일획도 고쳐선 안 된다는 식의 교조적 행태는 6월 지방선거를 겨냥한 정략적 반대로 비쳐질 뿐 국민을 설득하기 어렵다고 본다. 정부 여당도 세종시와 지방선거 간 손익계산을 삼가야 한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이른바 속도조절론이 제기되고 있다고 하나, 이는 우호적인 여론 흐름을 지방선거 승리로 연결지으려는 발상으로 보인다. 정권 차원의 충심을 훼손하지 말기 바란다.
  • [객원칼럼]헤이그의 경찰관/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

    [객원칼럼]헤이그의 경찰관/박명재 CHA의과학대 총장

    네덜란드 헤이그 유학시절 있었던 일이다. 숙소 근처에 좋은 공원이 있어 매일 새벽 산책 겸 운동을 하다 알게 된 네덜란드인 한 사람이 일주일가량 보이지 않다가 나타났기에 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느냐고 물었다. 자기는 경찰관인데, 이웃 아주머니가 아침에 배달되는 신문이 가끔 없어진다는 말을 듣고 그걸 해결하기 위해 지켜보느라 아침운동을 못했다는 것이었다. 까닭인즉슨, 개를 데리고 아침운동을 시키던 한 청년이 개의 오물처리를 위해 이따금씩 그 집 신문함에서 신문을 꺼내갔던 것이다. 매일 그런 것도 아니고 별도 휴지를 준비하지 못한 날 가끔씩 신문을 집어가다 보니 일주일 이상 지켜보면서 그 원인을 밝혀내게 되었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들으면서 두 가지 궁금한 점을 물어봤다. 첫째는 이웃 아주머니가 정식으로 경찰에 신고를 해 조사가 이루어진 것이냐는 것이고, 둘째는 도대체 양식 없는 그 청년의 신상에 관한 것이었다. 우선 그 청년이 인도네시아에서 온 같은 동양인이라는 사실에 마음이 좀 안 좋았고, 첫 번째 물음에 대해 그는 물론 정식신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아침 산책 나오다가 우연히 아주머니의 말을 듣고 스스로 며칠 지켜보면서 이를 해결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사무관 시절의 얘기이지만 공직을 그만둔 오늘까지도 나의 머릿속에 그 경찰관이 깊이 각인되어 있다. 요컨대 스스로 작은 일에도 소홀히 하지 않고 자기 직분을 다한 그의 사명감과 충실함 때문이다. 새해가 밝았다. 우리는 각자 저마다의 꿈과 소망을 지니고 보다 밝고 건강하고 희망찬 한해가 되기를 기원하고 있다. 누구나 한결같이 개인과 가족이 건강하고 행복하며, 하는 일과 사업이 잘 되고 번창하며, 사회와 국가가 안정되고 번영되며, 나아가 인류와 국제사회가 평화롭기를 소망한다. 아울러 이 모든 소망과 기원을 이루기 위해 새해 우리 모두가 다지고 실행해야 할 가장 중요한 과제가 무엇인가를 생각해본다. 조선조 대학자 서거정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모든 사물은 각기 직분을 가지고 있다. 소의 직분은 밭과 논을 가는 일이며, 말의 직분은 사람을 태우는 데 있다. 닭의 직분은 새벽에 우는 일이요, 개의 직분은 도둑을 지키는 데 있다. 직분을 지키지 않는 것은 도리에 어긋난 것일 뿐 아니라 화를 자처하는 노릇이 된다.” 그렇다. 한 해의 시작을 맞아 우리가 지니고 추구해야 할 고귀한 가치, 기본적인 정신, 최고의 준행덕목은 우리 각자가 자기 직분을 일탈하지 않고 충실히 하는 일이다. 남편과 아내는 가장과 주부로서, 학생은 학업에, 교수는 학문 연구와 교육에, 군인은 국토방위에, 정치인은 진정한 민의의 대변자로서, 기업인은 생산과 이윤창출에, 공직자는 참다운 공복으로서, 언론인은 정론직필의 사회적 공기로서 저마다의 직분에 충실할 때 우리 사회는 각 분야가 제자리를 찾아 제대로 작동하는 조화로운 순기능 사회가 될 것이다. 논어에 ‘모든 공장들은 작업장에 있으면서 자기의 일을 이루고, 군자는 학문을 통해 도를 구현한다.(百工居肆 君子學 以致其道)’라는 이치가 바로 이에 해당한다. 그렇지 못하고 우리 사회가 각자의 직분을 일탈해 곁눈질하고 잿밥에만 관심을 둘 때 왜곡과 갈등, 분열과 부조화가 생겨난다. 교수가 연구와 교육보다 정치에 관심을 두면 폴리페서가 되고, 기업인이 정도경영보다 정치와 유착하면 정경유착이 되고, 언론이 굴절하면 곡언아세(曲言阿世)의 해괴한 현상이 벌어지게 된다. ‘그 직위에 있지 않으면 그 직무를 논하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는 공자의 말씀은 직분을 일탈하여 남의 일에 주제넘게 간섭하고 오도하지 말라는 깨우침이다. 각자가 자기의 문 앞을 쓸어라. 그러면 거리의 온 구석이 청결해진다. 각자 자기의 직분을 다하라. 그러면 사회는 할 일이, 다툴 일이 없어진다는 괴테의 말은 새해 벽두 우리 모두가 새겨야 할 참으로 명료하고 소중한 진리다.
  • [2010 신춘문예-평론 당선작]’질문하는 소설, 경험하는 콜라주’-김중혁론

    고대 그리스의 부타데스(Butades of Sicyon) 이야기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의 기원에 관한 단서를 찾을 수 있다. 한 여인이 연인을 사랑하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불빛에 비친 연인의 그림자를 따라 벽에 그린 행위가 바로 그것이다. 옹기장이였던 여인의 아버지 부타데스가 딸의 그림을 본떠 빚은 점토 형상은 그후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었다고 전해진다. ‘실제 대상-그림자-회화-조소’로 이어지는 이 이야기 속 일련의 과정에서 우리는 그림 그리기, 나아가 예술적 표현과 관련하여 두 가지 중요한 전제를 발견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예술적 표현은 사적 욕망의 구체화라는 것, 그러나 역설적으로 그 욕망의 대상에 다가가고자 하면 할수록 그 대상과 멀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 그것이다. 시간의 퇴적 속에서 예술적 표현의 방식이 보다 다양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이제 우리는 시원(始原)의 욕망과 대상을 그저 희미한 화석으로만 확인할 수 있게 되었다. 사적 영역(oikos)과 공적 영역(polis)의 경계가 깨지면서 발생한 것이 ‘사회’라는 아렌트의 지적대로라면, 이제 우리의 사회는 개인의 욕망조차 자아를 충족시키는 내밀함에서 벗어나 공적 담론의 장 속에서 공익적 측면을 수용하기를 요구한다. 역사의 진행을 개인 욕망의 발현 과정으로 본다면, 욕망을 어떻게 표현하는가의 문제가 아니라 공적인 영역 속에서 욕망이 어떤 식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는가가 중요시된 것이다. 이 속에서 우리의 개인적 욕망은 때로 성적(性的)인 원죄의식에 사로잡히거나, 집단적 도덕성으로 재단되기도 한다. 결국, 계량화가 가능해지고 공적 가치를 따질 수 있는 것만이 우월한 지위를 부여받으면서 순수하고 개인적인 욕망의 발현은 유아기적 망상으로 치부되기에 이른다. 더구나, 매스 미디어의 균질적 정보처리 과정을 거친 다양한 욕망들은 서열화 속에서 재배치된다. 이제 욕망은 비교우위 없는 순수한 발현을 억압당한 채 잘못된 대상에 고착되거나 인터넷의 작은 화면 속에서 일쑤 신경질적으로 해소된다. 마치, 떠나고 없는 연인의 그림자를 향해 말없음을 타박하는 어리석은 사람처럼 말이다. 욕망조차 계열화된 현실에서 소설 행위(쓰기/읽기)의 의미는 무엇보다도 욕망의 실체를 확인하는 데 있다. 다양한 욕망이 부딪치는 공간이 소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벤야민은 소설이 이야기와 달리, 이전 시대의 경험들과 분리되어서 후대의 경험으로 확장되거나 조언을 포함하지 않는 고립성을 지니고 있음을 지적한다. 게다가 현대 사회의 소설은 정보가 그랬듯이 상품으로서 자본주의적 유통의 과정으로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 결국 소설행위의 의미 역시 정보가 소비되는 방식처럼 한 순간 안에서만 소비되고, 우리의 욕망은 자본주의적 만화경 속에 갇히고 만다. 이 글이 김중혁의 소설(‘펭귄뉴스’(2006), ‘악기들의 도서관’(2008). 두 권의 단편집을 제외한 작품으로는 ‘3개의 식탁, 3개의 담배’(창작과 비평, 2009년 봄), ‘C1+y=:[8]:’(문학과 사회, 2009년 여름), ‘유리의 도시’(현대문학, 2009년 8월), ‘1F/B1’(문학동네, 2009년 가을) 등이 있다. 단편집에서 작품을 인용할 때에는 작품의 제목과 면수만 밝히기로 한다.)에 주목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일관되게 자신의 소설 안에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반복·중첩시켜 가며 소설 공간을 확장시켜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그의 소설은 종국에 이르러 개인의 순수한 욕망을 만날 수 있도록 가벼워지고, 이 가벼움은 다시 무한대의 욕망과 경험들을 가로지른다. 김중혁의 이러한 작업은 부타데스 이후 멀어져 가고만 있는 개인의 욕망을 직접 대면케 하는 동시에 소설행위에 대한 근본적인 물음으로 여겨진다. 김중혁 소설의 근저에는 공통 취향을 가진 두 인물들의 반복과 변주가 배치되어 있다. 이 배치가 그의 소설을 팽팽하게 잡아당겨 소설적 긴장감을 형성하는 동시에 공통 취향의 공간은 독자들을 무리없이 공감하게 만든다. 이 두 명의 중심인물들은 때로 쉽게 의기투합하기도 하지만(‘무용지물 박물관’), 결코 공동의 목표를 설정하거나 협력의 지점을 만들어 내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 두 인물들은 만나지도 않거나(‘자동 피아노’), 아니면 아예 한 인물이 다른 인물에게 위해를 가하기도 한다(‘비닐광 시대’). 반면에 이럴 때조차 이들은 서로 여전히 “작고 가냘픈”(‘자동 피아노’, 29쪽) 연결점을 가지고 있는데, 말하자면 두 인물들은 매개물을 통해 가까워진 두 개의 항이 아니라 매개물을 통해 반복되고 변주되는 하나의 항이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인물들은 ‘여성들의 서사적 비중이 축소된 남성적 유대관계’(신수정)나, ‘전형적인 남성 버디(buddy)소설의 면모’(심진경)로도 파악된다. 하지만 소설적 공간의 의미를 구축하는 이들의 역할에 주목하여 살펴본다면 성구분은 무의미해지고 우리는 다만 반복적 이형태(異形態)가 만들어내는 변화에 동참하게 될 뿐이다. 소설 속에서 상대자로 ‘나’와 같이 등장하는 인물들의 이름이 영어 이니셜이나 별명으로만 나타나는 경우 이러한 변화는 더욱 두드러지는데, 고유명사를 부여받지 않은 대상은 독립적 역할보다는 ‘나-나’로의 반복과 변화를 이끈다. 가령, ‘나와 B’에서 ‘나’는 ‘B’와 음악으로 인해 ‘핵융합’을 한 것처럼 금방 친해진다. 하지만 실제 이 둘의 관계는 ‘B’에 대한 ‘나’의 일방적인 행위로 시작되고, 전개된다. 음반 가게 점원인 ‘나’가 음반을 훔치려던 ‘B’를 처음 만난 뒤, 몇 번의 이직을 겪는 ‘나’와 무명 기타리스트에서 주목받는 신인 기타리스트가 되는 ‘B’의 사이를 ‘하나로 합쳐’졌다고 보기에 둘 사이는 느슨하다. 음악이라는 공통 취향은 있지만, 근본적으로 ‘B’는 ‘음반을 두 번 정도 듣고 난 다음엔 음반과 거의 똑같이 기타를 연주’(195쪽)하는 전문가이고, ‘나’는 심장에 무리가 가서 아예 전기기타를 배우기도 힘든 인물일 뿐이다. 그렇다면 이 두 인물의 관계를 통해서 우리는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어느 날 나는 동영상을 보다가 내 습관 하나를 발견했다. 나는 화면 속에서 기타를 연주하는 그를 볼 때마다 왼쪽 엄지로 나머지 왼손 손가락들의 끝을 비비고 있었다.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어루만지듯 매끄러운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다. ‘내가 손가락 끝을 비비고 있었네?’라는 생각이 들고 난 다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째서 그런 행동이 시작됐는지 모르겠다. 대리석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는 그의 손가락 끝을 그리워했던 것일까. 아니면 굳은살 하나 박여 있지 않은 내 손가락 끝이 부끄러웠던 것일까. (…중략…) 한 달 전 기타를 한 대 샀다. 다시 기타를 배우고 싶어졌다. (…중략…) 아직 내 손가락 끝은 너무 무르다. -‘나와 B’, 210~211쪽. 결국, 소설의 마지막에서 우리가 마주치는 것은 ‘나’ 스스로의 재발견이다. ‘나’는 ‘B’와의 만남으로 인해 이전에는 억압되어 있던 자신 내면의 어떤 지점을 발견하고 다시 이를 통해 내면에 감추어졌던 순수한 욕망으로 나아갈 수 있는 실마리를 잡게 된다. 갑자기 음악(기타)을 위해 생업을 내팽개치거나 하는 등의 결단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무른 손가락 끝’을 발견할 수 있도록 이끄는 것이다. 작가가 보여주는 이 순간은 우리가 전망을 가지고 억압과 대결을 펼치든, 현실을 비틀어 냉소적 거리를 두든 오히려 단 한 번도 벗어나지 못했던 현실적 억압의 그림자로부터 벗어나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전망이나 목표는 그 자체로 억압되고 조작된 욕망에 노출되어 뒤틀린 결과물이 될 위험성을 항상 갖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결말이 보여주는 의미는 미래에 대한 전망을 그리거나 목표를 정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출발점과는 구별된다. 이제 우리는 조작된 욕망에서 벗어나 본래의 욕망, 즉 시원(始原)의 욕망을 대면할 수 있게 된다. 김중혁은 이러한 반복과 변주가 주는 새로운 의미의 발견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가 자신의 작업에 붙이는 이름(제목)에서도 확인 가능하다. 첫 번째 소설집 ‘펭귄뉴스’에서 우리는 ‘무용지물/ 박물관’, ‘사백 미터/ 마라톤’이라는 제목을 볼 수 있다. 하나의 의미를 만들어내기 힘들 것 같은 두 단어가 하나의 단어로 사용되면서 묘한 호기심과 낯섦을 불러일으키는 이런 방식의 명명은 두 번째 소설집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더욱 늘어난다. ‘자동/피아노’, ‘악기들의/도서관’, ‘유리/방패’, ‘무방향/버스’(제목의 /부호는 인용자) 등이 그것이다. 지적한 제목들은 모두 이질적인 두 단어가 A+B의 구성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작품을 읽은 뒤 우리는 소설의 내용이 A나 B 어느 한쪽과 관련된 이야기거나, A가 B(혹은 B가 A)를 특별한 방식으로 만드는 이야기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소설이 전달하는 의미들은 사실, A∩B를 통해 파생되며 이를 통해 A나 B가 기존의 의미에서 벗어나고 그것들의 공통점에 기반하되 새로운 의미가 부여된 A‘(또는 B’)가 무한대로 풀려 나오게 되는 것이다. 교집합적 운동이라고 새롭게 불러도 좋을 이와 같은 김중혁의 소설적 전략은, ‘반복(repetition)’과 ‘이접(離接.disjunction)’을 통해 모든 ‘토대’를 집요하게 해체하고자 했던 일련의 운동이 문학적 테두리 안에서 갖는 성과이다. ‘엇박자 D’의 감동적인 마지막 장면에서 우리는 이 성과를 분명하게 만날 수 있다. 한 사람의 목소리가 두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두 사람의 목소리가 세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고, 네 사람, 다섯 사람의 목소리로 바뀌었다. 합창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합창이라고 하기에는 서로의 음이 맞질 않았다. 박자도 일치하지 않았다. (…중략…) 노래는 아름다웠다. 서로의 음이 달랐지만 잘못 부르고 있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마치 화음 같았다. (…중략…) 22명의 노래가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이유는, 아마도 엇박자 D의 리믹스 덕분일 것이다. 22명의 노랫소리를 절묘하게 배치했다. 목소리가 겹치지만 절대 서로의 소리를 해치지 않았다. 노래를 망치지 않았다. -‘엇박자 D’, 280~281쪽. 공연기획자인 ‘나’가 20여년 만에 우연히 만난 고등학교 합창단 친구 ‘엇박자 D’를 만나 같이 공연을 기획하게 된다. 그 공연에서 ‘나’ 몰래 친구가 준비한 앙코르 장면은 소설속의 ‘나’가 그랬듯 예기치 못한 감동을 준다. 공연을 기획한 ‘엇박자 D’는 합창단 시절, 자발적으로 단장까지 맡을 정도로 유일하게 열성적이었던 친구지만 그는 ‘놀라울 정도의 박치이자 음치’(255쪽)여서 실제 공연 때는 선생님에게 립싱크만을 강요당한다. 그러나 ‘엇박자 D’는 결국 노래를 부르고, 공연을 망친 장본인이 된다. 그 뒤 의도적으로 음악을 듣지 않던 ‘엇박자 D’는 전공으로 무성영화를 선택한다. 무성영화를 통해서, 영상과의 필연성에 얽매이지 않는 소리의 자유로움을 깨닫고 위에 언급한 장면을 연출하기까지의 소설적 과정에서 우리는 어렵지 않게 ‘엇박자 D’의 의도를 알게 된다. 실상, 음치라는 것은 ‘자신이 알아낸 게 아니고 들어서 아는 것’이며 ‘평생 그렇게 세뇌’(270쪽) 당해서 살아왔다는 것을 말이다. 개인의 욕망이 자유롭게 표현된 것이 노래임에도 불구하고 억압으로 작용하는 사회적 기준이 음치를 생산해내고 있는 것이다. 억압이 작용하지 않는 시원의 욕망을 만남으로써 주체들이 자유롭게 해방되고 나아가 ‘서로의 소리’를 억압하지 않는 ‘화음’을 꿈꾸는 것, 그것이 바로 김중혁이 보여주는 교집합적 운동의 힘이다. 교집합적 운동 속에서 억압되/하지 않는 욕망을 만날 수 있다면, 역설적으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교집합의 상태 그대로 남아 있기이다. 운동성을 상실한 모든 것은 결국 그 힘을 잃고 다시 계열화 속으로 수렴될 위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때로 이러한 위험은 계시적인 교훈이나 전망으로 구체화되면서, 문학작품이 운동성을 상실한 채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라앉아 버리게 만들기도 한다. 김중혁은 자신의 소설이 처할 수 있는 이 비극적 운명에 대해 예민하게 반응하여 표준으로 작동하는 모든 것들과 거리를 둠으로써 자신의 전략이 지속적 운동성을 가질 수 있도록 한다. ‘억압적 현실⇒구체적 전망의 필연성’으로 이어지는 고정적 틀 그 자체를 벗어나지 못한다면, 전망이 다시 억압으로 작동하는 악순환이 계속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고유의 비트(beat)를 억압하기 위한 진압군과 이에 맞선 저항군이 전쟁 중인 현실, 청년 실업자가 넘쳐나는 현실을 각각 배경으로 삼은 ‘펭귄뉴스’와 ‘유리방패’처럼 비교적 억압의 양상이 구체적으로 드러나는 작품에서 이러한 의도는 더욱 잘 드러난다. 이는 억압의 체계에 포획되지 않기 위해 경계하는 작가 스스로의 부단한 노력으로 읽힌다. ‘전쟁 중인 현실→무감각한 나→저항군인 그녀→그녀와의 우연한 만남→그녀를 따라 저항군이 되는 나’로 이어지는 ‘펭귄뉴스’의 이야기 전개는 전형적이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끝에서 우리는 다소 의외로 ‘그녀’의 죽음을 확인한다. 전쟁 중인 현실조차 ‘지루하고 재미없’(263쪽)는 ‘나’에게 ‘그녀’는 ‘모든 살갗이 곤두서’(274쪽)게 하는 유일한 자극이었기 때문에 그 의외성은 더욱 두드러진다. 게다가 ‘나’는 ‘그녀’의 죽음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제 곁에 있던 그녀는 죽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비극적이었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굳이 감상을 말해야 한다면 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해야겠군요. 어쨌든 극히, 자연스럽게 그녀는 죽었고 저는 살아남았습니다. - ‘펭귄뉴스’, 357쪽. ‘비트’를 매개로 ‘나’와 ‘그녀’ 사이에서 이루어진 교집합적 상태는 필연적으로 ‘나’에게 새로운 변화를 일으키지만, 이것 자체가 지속가능한 운동으로의 전환은 아니다. 교집합적 만남을 통해 변화된 주체는 다른 주체와 거리를 가질 때 비로소 자신의 내면에 자유의 공간 즉, 운동성을 지속 가능하게 할 수 있는 공간을 생성할 수 있는 것이다. 결국, ‘그녀’의 죽음 뒤에야 비로소 ‘나’는 그 어디에도 ‘반납’할 수 없는 ‘정말 사적인 비트’(357쪽)를 완성하게 된다. 그리고 이 순간, 그 ‘비트’는 ‘그녀’와 ‘나’만의 매개에서 그치고 마는 것이 아니라, ‘엇박자 D’의 마지막 장면처럼 ‘다른 사람들의 마음을 쿵쾅’(358쪽)거릴 수 있는 운동으로 변환한다. 우리는 이와 같이 지속적인 운동성을 가능하게 하는 공간을 파리의 빌레트 공원(Parc de La Villette)에서 만나볼 수 있다. 이 공원은 설계단계에서부터 문학·철학·영화 등의 다양한 비건축적 개념을 적극 끌어들인 것으로 유명한데, 이를 통해 오히려 건축의 새로운 발전가능성을 촉발시키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다. 이 공원은, 점·선·면의 세 체계를 따라 설계된 각각의 공간이 한 공간 안에서 중첩되고, 분열되고, 해체되면서 복합문화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어 있다. 설계의도에 따르면, 응집력 있는 구조들을 중첩시켰을 때 하나의 초응집적 거대구조가 생겨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결정될 수 없는 것, 즉 전체성에 반대하는 것이 생겨난다. 결국 이 공간은 반-맥락적인 공간이다. 따라서, 실제 공원 내 기능들의 중첩은 고정된 시설물로서의 기능성과 편의성에서 벗어나서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공간을 탄생시킨다. 일상 언어학에서 말하는 관습적인 절차나 효과로서의 ‘맥락(context)’을 파괴하는 이 공간은 2000년대 우리 소설이 새롭게 만들어 낸 소설적 공간, 이른바 ‘무중력 공간’(이광호)과 맞닿아 있다. 2000년대 소설들은 종래의 작품들에서 기피해 온 이질적인 소재나 인물군들을 적극적으로 차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이야기 공간에 낯섦을 불러일으킨다. 이는 여러 가지 부작용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전 시기와 비교하여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있는 지점이다. 이 소설들이 만들어 내는 공간 자체가, 중력으로 작용하는 어떠한 억압적 기준 없이 자유로운 방향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 소설에서 공통적으로 찾아볼 수 있는 단절적인 대화나 전통적 서사 구성을 거부하는 듯한 문체, 현실과 이질감 없이 섞여 있는 환상적 비현실 또한 그 결과물이자 원동력임은 물론이다. 김중혁의 소설 역시 이와 같은 공간을 공유한다. 그러나 현실과 냉소적인 거리를 두거나 이질적인 공간을 창조하는 방식이 아니라, 오히려 수많은 현실들과 겹치면서 동시에 거리를 두는 변별성을 통해 보다 많은 욕망들을 해방시킨다. 따라서 비교적 전통 서사에 충실하게 진행되던 김중혁의 소설은 언제나 결말에 이르러 모든 것을 툭툭 털어버리고 ‘마음이 편안해’(‘자동피아노’, 35쪽)지는 경험을 안겨준다. 이때의 ‘가벼움’이 바로 단순한 현실과의 거리감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김중혁만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결과이다. 이 ‘거리두기’ 역시, 앞서 언급한 빌레트 공원에서 폴리(folie)라는 인상적인 개념으로 확인해 볼 수 있다. 프랑스어로 광기, 무분별한 짓이나 말, 정열 등의 의미를 가진 폴리는 이 공원의 설계 단계에서 중심 역할을 하고 있다. 특히, 점 체계 속의 폴리는 실제 빨간색 철골 구조물들로 형상화되었는데 공원 내에서 쉽게 눈에 뜨이기 때문에 방향을 찾을 수 있는 기준점의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일정한 간격을 두고 세워진 이 폴리는 전체 공간을 나누고 분리시키는 동시에 면과 선 체계의 폴리들과는 상호충돌하고 왜곡되어, 애초 설계자의 의도대로 공원전체가 탈통합적인 공간이 되는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결국 모든 억압에서 벗어난 공간을 만드는 것은 기준점으로서의 ‘나’가 아니라 모든 것들과의 반복과 중첩, 그리고 다시 그것과의 거리두기에서 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M의 옆모습을 보는 순간, 어쩌면 M과 이렇게 버스를 타고 가는 것도 마지막일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순간 얘기를 했지만 그사이 M과 나는 어딘가를 지나온 것 같았다. 어떤 갈림길을 지나온 것 같았다. 그는 왼쪽 길을, 나는 오른쪽 길을 선택했고, 발목에 묶여 있던 끈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스르르 풀어져 버린 것 같은, 그런 기분이 들었다. -‘유리방패’, 180쪽. 위의 장면 속 ‘나’와 ‘M’은 ‘동전의 앞면과 뒷면’처럼 지내면서 취업을 위한 면접시험조차 같이 치른다. 심지어 한 명만 뽑는 회사의 면접시험도 ‘막무가내’로 같이 치르는 이 둘은 전형적인 김중혁 소설의 인물들이다. 이들이 면접시험을 위해 준비했던 일종의 퍼포먼스가 우연히 인터넷 신문에 예술적 시도로 널리 알려지게 되면서 순식간에 이들은 면접관으로 불려다니는 유명인사가 된다. 서른 번의 입사시험을 치르는 동안 ‘한때 실패에 중독된 인간들’이었던 주인공들이 ‘실패중독자들을 위로해 주는 입장’(178쪽)이 된 것이다. ‘점수를 받는 사람’에서 ‘점수를 주는 사람’(176쪽)으로바뀌게 된 이 발랄한 치환은 현실의 체계를 뒤엎는 듯 보인다. 자본주의적 서열구조의 확대·재생산 방식으로 작동하는 공개취업의 기준에 함몰되어온 인물들이 그 틀을 자신들의 힘으로 벗어난 듯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취업을 위해 면접을 본 경우보다 오히려 짧은 시간 내-‘스무 번째였는지 스물한 번째였는지의 면접관 일을 마치고 나올 때’(178쪽)-에 ‘피곤’을 느끼고 만다. 애초부터 이들의 ‘자리바꿈’은 사실 무분별하게 정보를 생산해 내는 매스미디어 시스템이 만들어낸 ‘이벤트’였을 뿐이다. 자신들의 변화가 억압이 작동하는 체계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 그 체계 안에 다시 포획되고 말았음을 느낀 순간, ‘나’는 ‘M’과 다른 길을 가게 된다. 소설 속 인물들의 교집합적 운동이 다시 체계 내에 갇히고 말 때, 김중혁의 ‘거리두기’는 이를 벗어나기 위해 지속적인 운동성을 확보한다. 교집합적 반복과 변주, 그리고 거리두기까지 포괄한 김중혁 소설의 운동성은 작가 특유의 소재가 만들어 내는 이야기 공간과 교직(交織)된다. ‘마니아적인 열정과 감수성’(박진), ‘사물들을 해방시키는 수집광’(김형중), ‘등장인물들의 마니아적 취향과 취미를 개성적으로 드러내주는 사물-예술’(심진경) 등으로 평가되는 김중혁의 사물에 대한 애착은 독자들에게 호응을 불러일으키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가 무엇보다도 주목해야 할 것은 작품 속 소재들이 공통적으로 가지고 있는 ‘수공업적’ 성격이다. 또 하나의 새로운 의사소통 방식으로 등장한 ‘정보’의 유통은 후대로 전달되는 경험의 가치를 하락시킨다. 따라서 사실이 아닌 이야기에도 진실이 포함되어 있던 시대에서, 진실과 관련 없이 사건만 난무하는 시대로의 변모를 지적한 벤야민의 비판은 여전히 유효하다. 정보기술의 발달로 인해 실시간적 확산이 가능한 정보만이 중요시되고, 전생애에 걸쳐 축적된 개인의 경험들이 획득하는 의미와 그 깊이가 외면되는 것이 여전한 현실이기 때문이다. 이때, 수많은 경험들이 구전적인 방식으로 축적되어 있는 이야기를 벤야민은 수공업적 형태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가 이야기의 특성을 빗대서 말한 ‘옹기그릇에 남아있는 손흔적’은 현대사회에서 하나의 가치가 아닌 시스템의 오류로 취급될 뿐이다. 이와 같은 현실 속에서 김중혁은 경험들이 축적되어 있는 동시에 새로운 경험들을 환기시키는 소재들을 사용한다. 마치 벤야민의 ‘이야기’처럼 그의 소재에는 다양한 욕망과 경험들이 공존의 방식으로 존재한다. 다음에서 작가가 사물을 인식하는 방법론을 먼저 살펴보자. “잠수함 설명하기가 아무래도 힘들 것 같아서 제가 집에 있는 잠수함 모형을 하나 가지고 왔어요. 비틀스의 영화 ‘Yellow Submarine’에 등장했던 잠수함이에요. 청취자 여러분들이 이걸 직접 만져볼 수 있다면 좀더 이해가 쉬울 텐데 아쉽네요. 전체적인 모습은 입이 툭 튀어나온, 심술 맞은 물고기 같아요. 심술난 것처럼 입을 삐죽 내밀고 한번 만져보세요. 잠수함 앞모습이 바로 그래요. 그리고 몸통은 비늘을 다 긁어낸 물고기라고 생각하면 될 거예요. 미끈하죠. 창문은 왼쪽에 여덟 개, 오른쪽에도 여덟 개가 있어요. 이 창문을 통해서 바닷속 풍경을 보는 거죠. 그리고 꼬리 쪽에는 방향을 조종하는 지느러미 같은 게 달려 있어요. 지느러미 아래쪽에는 잠수함이 앞으로 나갈 수 있게 프로펠러가 두 개 달려 있어요. 프로펠러는 바람개비를 생각하면 될 거예요. 그리고 위쪽에는 네 개의 잠망경이 올라와 있는데요, 잠망경은 잠수함이 물 위로 올라오지 않고도 바깥을 볼 수 있도록 기역자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굽힐 수 있게 만든 스트로 아세요? 그걸 잠망경 모양이라고 생각하면 돼요. 음, 그리고…….” (…중략…) “자, 이제 우리가 잠수함이 한번 돼 볼까요? 제가 자주 하는 놀이인데요. 욕조에 물을 받은 다음 스트로를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 거예요. 우리에겐 그 스트로가 잠망경인 셈입니다.” -‘무용지물 박물관’, 33~34쪽. 대상과 직접적 연관없는 “물고기, 바람개비, 스트로” 등을 동원하여 잠수함을 설명하는 이 장면에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모든 감각과 경험을 총동원하게 된다. 그리고 이 감각과 경험들 역시 대상과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지고 있지 않음에도 우리에게 ‘잠수함’을 경험적 실체로 인식할 수 있게 도와준다. 이 과정에서 대상을 보편화시키는 정의(定義)는 ‘무용지물’이 되고, 나아가 감각 주체가 스스로 대상이 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이와 같은 인식방법은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과 달리 “통조림”처럼 압축되지 않고 수많은 감각과 경험들이 중첩되면서 위의 긴 인용문에서처럼 필연적으로 비경제적이 된다. 김중혁이 선택한 소재들의 수공업적 성격은 여기에서 기인한다. 즉, 계열화된 체계 안에서 박제된 상태의 사물이 아니라, 누구나 자유롭게 경험할 수 있는 동시에 누군가에게는 특별한 경험이 되는 사물이 바로 작가의 탐구 대상이다. 먼저, ‘에스키모, 여기가 끝이야’의 지도가 그것이다. 나무를 깎아 만든 이 지도는 에스키모들이 ‘기억과 소리’로 만들고 촉각을 동원하여 ‘상상하는 지도’이다. 일반적인 ‘지도’의 제작과 활용에서 벗어나, 사용자들의 반복적인 경험 안에서 유용한 이 지도는 그 자체로 수공업적 소재라 할 수 있다. 이 지도로 인해 ‘나’는 ‘아무리 떠올리려고 해도 떠오르지 않’(78쪽)던 돌아가신 어머니를 기억하게 된다. 사물에 축적된 수많은 경험들이 ‘나’와 중첩되어 나만의 경험을 생생하게 불러일으키는 동시에 사물 역시 갇혀있던 가치판단의 틀에서 자유로워지는 순간이다. 이와 같은 탐구는 ‘악기들의 도서관’에서 심화되어 나타난다. 교통사고를 당하는 순간 ‘아무것도 아닌 채로 죽는다는 건 억울하다.’(109쪽)는 생각이 든 ‘나’가 우여곡절 끝에 취직하게 된 악기점에서 만든 이 ‘도서관’은 연주가 아니라 ‘그냥 악기 소리만’ 있는 곳이다. 악기는 애초에 인류가 감정표현과 전달의 도구인 신체를 보충하는 보조수단이었다. 여기에 악기를 사용해온 수많은 사용자들의 경험이 축적되면서 하나의 도구로 발전되어 왔다. 그러나 악기가 분류되고 체계화되면서 점점 경험의 세계에서 분리되어 전문연주자를 필요로 하기에 이른다. 체계 내로 편입되지 않은 개별적 경험들이 가치를 발현할 수 있는 기회는 이제 차단당한 것이다. 사실상 처음부터 박물관에 전시될 목적으로 만들어진 사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전시되기 직전까지도 사물들은 오직 사용자들의 경험과 경험사이에서만 존재해 왔다. 그럼에도 우리는, 자본주의적 체제의 강제성을 보편타당성으로 받아들여 사물들을 분류하고 서열화해 왔던 것이다. 이제 자본주의적 질서로 재편된 박물관 안에서 사물들은 더 이상의 경험을 용납하지 않은 채 개별성을 상실하고, 인간마저 전시물과 같은 운명을 겪게 된다. 김중혁의 수공업적 사물에 대한 탐구는 이와 같은 운명을 벗어나고자 하는 노력이다. 이 노력은 ‘박물관’을 ‘무용지물’로 만들면서, 체계에서 소외된 모든 것들을 ‘악기도서관’으로 이끈다. 여기서 우리는 ‘긁거나 할퀴거나 두드리거나 뜯거나 쓰다듬거나 꼬집으면서’(127쪽) 억압되/하지 않는 개별적 경험의 자유를 누릴 수 있게 된다. “처음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지 않냐? 그보다 더 처음으로, 더 처음” -‘유리방패’, 178~179쪽(인용자 재구성). 시원의 욕망을 꿈꾼다는 것은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내포하고 있다. 전도되고 억압된 관계를 바로잡을 수 있는 기회인 동시에 기억을 통해 더듬어 가는 ‘처음’은 언제나 왜곡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경계하는 데리다는 기원을 아예 결정 불가능한 것으로 본다. 부타데스의 딸이 기억에 의존하여 그림을 그리던 순간부터 실제 대상은 무시될 수밖에 없고, 차라리 현존(presence)과 부재 사이의 ‘놀이’ 그 자체가 의미를 생성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현실 자본주의는 모든 차이의 진폭과 오류마저 자신의 안으로 포획하는 강력한 보편타당성을 지향하는 체계이다. 자본주의적 금융시스템이 자체 내의 심각한 오류를 드러내고 있는 지금에도 여전히 자본주의적 처방만이 유효하게 거론되는 현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김중혁의 소설은 이 같은 현실 속에서도 모든 욕망들을 중첩시키면서 멈추지 않고 차이들을 생산한다. 그리고 그는 그 전략으로 모든 경험과 욕망들의 ‘흔적(trace)’이 새겨진 사물을 사용한다. ‘자신만의 생각과 리듬’을 가지고 있는 ‘살아 있는 괴물에 가까’운 ‘타자기’(‘회색괴물’), 그 어떤 외부조건에도 얽매이지 않고 연주되는 순간마다 ‘자신의 몸을 통째로’ 빌려주는 ‘투명’한 ‘피아노’(‘자동피아노’), ‘수많은 밑그림 위에다 자신의 그림을 그려나가’고 이것이 다시 ‘또다른 사람의 밑그림’이 되는 작업을 하는 디제이들의 ‘비닐레코드’(‘비닐광시대’) 등이 바로 그것들이다. 이 사물들이 만들어 내는 차이들이 결국 무한대의 욕망들에 열려 있는 공간을 만들고 그 공간을 통해 우리들은 ‘처음’으로 이끌린다. 작가의 이런 의도는 최근작인 ‘C1+y=:[8]:’에서 ‘보드빈터’라는 공간으로 구체화된다. 정글의 특성을 도시에 연결시켜 보다 쾌적한 도심을 만들고자 하는 도시 연구가 ‘나’가 스케이트보드를 타고 도심을 다니다가 우연히 만나게 되는 이 공간은 목숨을 걸고 정글을 탐사하면서까지 만들고 싶었던 공간이다. 그러나 이는 목적지로 충족되는 결과물이 아니라 도심 속 길들의 일부분이며, 수많은 익명의 스케이트 보더들이 ‘단 한 번도 신호등을 만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지 않’고도 스케이트 보드를 탈 수 있는 길의 연결일 뿐이다. 이 ‘길’이야말로 도시가 생성되기 이전 개인의 욕망들이 자유롭게 소통하던 ‘첫 길’이며, 그 ‘처음’은 억압 자체가 무화되고 인류전체의 경험과 개인이 분리되지 않았던 시원의 욕망을 바라볼 수 있는 순간이다. 그 길 위로 부지런하게 걸음걸이를 옮기고 있는 작가의 행보에 시선을 고정시킨 이유는 그의 소설행위가 하나의 답변이 아니라 ‘처음’을 향한 지속적인 질문이 되고자 하기 때문이다. <끝>
  • [사설] 정부·정치권 새해 민심 무겁게 받들라

    질곡의 한 해를 보내고, 다시금 굳은 의지로 내일의 희망을 동여매는 새해 아침에 섰다. 밖으로는 글로벌 금융위기의 잔설(殘雪)을 헤쳐가야 하며, 안으로는 정파와 지역, 그리고 이념의 깊은 골을 메우고 소통과 통합을 일궈가야 할 출발점에 섰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국으로서,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서, 이제 더 큰 대한민국을 향한 대장정에 나서야 할 시점에 섰다. 과제가 적지 않다. 무엇보다 국론을 하나로 모아가는 노력이 중요하겠으나 현실은 거꾸로 갈등과 분열을 키울 요소들로 가득하다. 세종시 문제가 놓여 있고, 6월에는 지방선거가 실시된다. 지난해와 같은 정파 싸움과 이념대치가 계속되는 한 올해도 분열과 혼돈의 소용돌이 속을 헤매게 될 것이다. 우리의 빈약한 정치자산을 키우는 일이 시급하다. 새해를 몇시간 남겨놓고까지 준예산 편성을 걱정하게 만드는, 낡은 대립의 정치구조를 그대로 두고는 국가 발전을 기약하기 힘들다. 정치권의 대오각성과 함께 제도 개혁이 불가피하다. 2012년 총선과 대선 일정을 감안할 때 정치권은 권력구조 개편을 포함한 개헌 논의를 서둘러야 한다. 여야간 충분한 논의를 보장하되 다수결에 의한 책임정치를 구현할 수 있도록 국회법 등 정치제도 전반을 개혁하는 작업에도 힘을 쏟아야 할 것이다. 새해 민심에도 더욱 귀를 기울여야 한다. 서울신문을 비롯한 다수 언론의 신년 여론조사에서 응답자의 절대 다수는 새해 정부와 정치권이 힘을 쏟아야 할 최우선 과제로 일자리 창출과 서민생활 안정을 꼽았다. 또 다른 여론조사에서는 자신의 이념적 성향을 중도라고 답한 응답자가 절반을 육박한 반면 보수나 진보라고 답한 응답자는 20%대에 머물렀다. 한마디로 국민 다수는 지금 진보니 보수니 하는 이념의 틀을 벗어나 보다 실용적이고 민생친화적인 정책노선을 희구하고 있다. 정부와 정치권은 민심을 무겁게 받들기 바란다. 정부는 올 상반기까지 연장한 비상경제체제의 틀 속에서 서민과 중소기업의 자립기반을 확충하는 데 역량을 집중해야 한다. 정치권 또한 당리당략에 맞춰 민의를 재단하고 국민을 편 가르는 분열적 행태를 버려야 한다. 친서민 정책 경쟁, 여기에 자신들의 살 길이 있음을 깨닫기 바란다.
  • [신년사설] 새로운 10년, G10으로 웅비하자

    21세기의 새로운 10년이 밝았다. 우리는 지난 한 해를 힘들게 보냈다. 세종시와 새해 예산 등으로 극심한 국내 정치적 갈등을 겪었다. 그럼에도 국제 금융위기 극복의 모범국가라는 평가를 받았다. 전세계 주요 20개국의 모임인 G20정상회의를 유치했다. 400억달러에 이르는 원전을 아랍에미리트연합(UAE)에 처음 수출하는 성과도 거뒀다. 경인년 새해 우리를 둘러싼 환경은 지난해보다 더한 격동을 예고한다. 중국이 미국과 함께 G2로 등장했다. 글로벌 파워의 균형에 지각변동 조짐이 강해지고 있다. 나라 안에서는 연초 세종시 수정안이 발표되면 갈등의 파고가 높아질 우려가 있다.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빚어진 부작용을 해소하고 경제 도약을 이뤄내야 하는 중차대한 과제도 대두돼 있다. 우리는 역량을 모아 눈앞의 도전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가야 한다. 지난 10여년간 뒷걸음질치던 선진국 진입의 꿈을 실현해야 한다. G20에 안주하지 말고 G10 진입에 총력을 모아야 한다. 새해 개최할 G20회의는 나라의 면모를 크게 일신할 기회가 될 것이다. 공허한 이념대결 대신에 성숙한 시민의식으로 국격을 다져야 한다. 변방의 패배주의를 떨치고 대립과 분열의 닫힌 자세를 소통과 상생의 열린 자세로 전환해 사회적 자본을 확충해야 할 것이다. 이로써 2008년 14위에 이어 2009년 15위로 해마다 한 단계씩 하락한 한국의 경제력 순위를 상승세로 반전시킬 수 있다. 오는 6월2일 지방선거는 우리의 잠재력을 가다듬는 시험대이다. 지역의 일꾼을 뽑아 실질적으로 주민의 삶을 향상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정파적 이익에 매몰된 낡은 정치가 발붙이지 못 하도록 해야 한다. 그것은 유권자만이 할 수 있다. 선거를 혐오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참여함으로써 국민을 두려워하도록 정치개혁의 시동을 걸어야 한다. 이런 지난한 일들을 가능케 할 추동력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이다. 극단적 대치에서 비롯되는 국력의 소모를 슬기롭게 막고 그 에너지를 서민의 주름을 펴 주는 쪽으로 돌려야 한다. 공직자의 부패비리 척결과 탄탄한 경제가 선행돼야 한다. 국민에게 봉사하는 공직자의 상을 세워야 하고 부패비리에 대해서는 과감하게 메스를 대야 할 것이다. 또 성장률 5% 목표를 채우되, 고용 없는 성장의 함정에서 벗어나야 한다. 괜찮은 일자리를 창출해 1997년 환란 이후 최악인 청년 실업을 해소하는 일이 시급하다. 저탄소 녹색 산업을 적극 지원함으로써 새로운 먹거리를 준비해야 한다. 미뤄 둔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비준도 서둘러야 할 것이다. 모든 노력의 종착점은 서민생활의 안정과 향상이다. 정치권과 정부는 서민의 행복을 지선지미의 푯대로 삼아 불확실성으로 가득 찬 현실을 함께 헤쳐 나가야 할 것이다. 교육개혁도 소홀히 할 수 없다. 서민의 시름을 더하는 사교육비는 줄여야 한다. 나아가 교육 정책을 소비자인 학생과 학부모의 편에서 전면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대학입시 제도를 다양화하고 학생의 선택권을 넓혀 창의성이 꽃필 수 있도록 토대를 쌓아야 한다. 저출산과 고령화의 해법에 더욱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특히 저출산은 생산가능인구와 직결된다. 미래의 국가경쟁력을 좌우하게 된다. 이미 100만명을 넘어선 국내 거주 외국인이 한국사회의 이방인이 되지 않도록 하는 것도 중요한 과제다. 북핵과 남북문제는 일대 고비를 맞을 가능성이 크다. 3대 세습을 둘러싸고 북한사회의 불가측성이 극히 높아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한반도 주변 4강의 안보지형에 영향을 줄 수 있다. 그럴수록 한·미동맹을 굳건히 다지며 평화를 지킬 자주적 역량을 키워야 할 것이다. 우리는 밖으로 뻗어나가야만 생존을 보장하고 발전할 수 있는 지리적 숙명을 깊이 인식해야 한다. 이 점에서 국가브랜드 파워를 제고하는 일이 중요하다. 폭력과 시위만능에서 벗어나야 경제력에 걸맞은 선진국가의 브랜드가 형성된다. 경술국치 100년과 한국전쟁 60년을 맞아 100년간 겪은 한반도의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도록 눈을 크게 떠야 할 시점이다. G10으로의 도약을 비전으로 삼아 이번에 맞는 10년 동안 기필코 웅비하자. 깨끗한 공직상과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가치를 정립하고, 낙후된 정치와 노사문화를 합리적 행태로 치환해 보자. 모험을 회피하지 않는 기업가 정신과, 나눔과 섬김의 리더십이 넘쳐흐르는 사회를 만드는 실천의 대장정에 나서자.
  • ‘康衢煙月’ 교수신문 2010년 사자성어 선정

    2010년 새해의 희망을 담은 사자성어로 ‘강구연월(康衢煙月)’이 선정됐다. 교수신문은 대학 교수, 일간지 칼럼니스트 등 지식인 21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강구연월’이 2010년 사자성어로 뽑혔다고 31일 밝혔다. 강구연월(편안할 강, 네거리 구, 연기 연, 달 월)은 번화한 큰 길거리에 달빛이 연기에 은은하게 비치는 모습을 나타내는 말로, 태평한 세상의 평화로운 풍경을 이른다. 강구연월을 추천한 김상홍 단국대 한문학과 교수는 “지도층은 강구연월의 세상을 만들어 줄 책임과 의무가 있다. 새해에는 분열과 갈등이 해소되고 강구연월의 시대가 열리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이민영기자 min@seoul.co.kr
  • [신년 파워인터뷰] 영화계 제2도약 이끌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신년 파워인터뷰] 영화계 제2도약 이끌 조희문 영화진흥위원장

    “새해에도 영화계의 반등 기운이 느껴지지만 아직 샴페인을 터트릴 때는 아닙니다.” 한동안 침체기에 빠졌던 국내 영화계는 2009년에 들어서며 어두운 터널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과속스캔들’, ‘해운대’, ‘국가대표’, ‘전우치’ 등 흥행 대작이 꾸준히 이어지면서 연말연시 분위기도 좋다. ●“영화인들, 호황일 때 미래 준비해야” 30일 서울 홍릉길 영화진흥위원회 사무실에서 만난 조희문(53) 위원장은 “2010년 출발이 힘찬 것을 보면 개인적으로 운이 따르는 것 같다.”며 환하게 웃었다. 그러나 이내 “외형은 좋아졌지만 여러 불안 요소가 있다.”며 “성공에 취해 해이해지거나 오만해지면 안 된다.”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호황일 때 영화계가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가 2009년 9월 취임했을 때 우려의 목소리가 없지 않았다. 상명대, 인하대 (연극영화과)교수 시절, 스크린 쿼터 축소를 주장했고 심지어 영진위 축소 또는 해체를 외친 ‘전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는 ‘개인’과 ‘위원장’은 다르다고 잘라 말했다. “한국 영화 진흥이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위해 연구자 입장에서 제시할 수 있는 여러 방안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지금도 개인 의견이 있지만 다양한 입장을 조율해야 하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제 의견을 지나치게 반영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10여년 동안 한국 영화는 산업적·문화적으로 확연하게 달라졌다. 이전에는 미래 산업이라는 막연한 기대감만 있었다면 이제는 경쟁력이 검증돼 사회를 이끌고 변화를 유도하는 문화의 중심으로 우뚝 선 것. 조 위원장은 “정치 환경 변화의 영향으로 영화계 안에 불신과 분열도 있었지만 이제는 이념과 변혁의 갈등을 떠나 문화산업 콘텐츠로서의 영화가 강조돼야 하는 시기”라고 힘주어 말했다. 그런 흐름을 타면서 영진위는 시장 자율에 맡길 것은 맡기되 불합리한 것은 논의해 보완하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렇더라도 넉 달 가까이 영진위를 이끌어 오면서 부담이 적지 않았을 것으로 보인다. 전임 위원장이 공공기관 경영평가에서 영진위가 꼴찌를 기록한 데 책임을 지고 물러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부담보다 바람이 컸다.”고 돌이켰다. “영화계는 물론 문화계 전체, 정부에게까지 불신받고 신뢰가 무너진 상황을 복구하는 것이 급선무였습니다. (영진위가) 제대로 일한다, 영화판을 제대로 돌아가게 한다, 이런 평가를 끌어내는 게 중요했죠. 생각보다 빨리 제자리를 찾아가는 것 같아 내심 자신감도 생겼습니다.” ●“영화인 서울사랑방, 영화인기금 만들 터” 그가 가장 주력했던 것은 조직 개편 등 영진위 ‘수술’과 영화현장과의 ‘소통’이었다. 그 결과 영진위는 최근 공공기관 개혁 성공사례로 꼽혔고, 영진위를 바라보는 영화계 현장의 시선도 조금 따뜻해졌다. “아직도 많이 부족하지만 제작, 유통, 배급, 상업영화, 독립영화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의견을 주고받았습니다. 영화계는 상상 이상으로 복잡합니다. 같은 사안을 놓고 시각이 다르고, 이해 관계도 다르죠. 서로 다투기도 하지만 소통을 통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발휘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모처럼만의 호황 이면에 드리워진 그늘을 걷어내는 것도 그에게 주어진 중요한 새해 임무다. 국내 영화계의 고질병인 교차상영(한 스크린에 여러 영화를 교대로 내거는 방식)이나 열악한 스태프 처우 문제가 그것이다. “우리나라 영화 역사는 길지만 산업화를 이룬 것은 불과 10여년밖에 안 됐습니다. 미국이나 일본이 수십년에 걸쳐 이룬 것을 단기간에 해내다 보니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지요. 조급해하지 않고 시간을 두고 해결할 작정입니다.” 조정자, 조력자 역할에 최선을 다할 것이라는 그는 임기 안에 꼭 하고 싶은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우선 영진위가 정책기관으로서 뿌리내리게 하는 것이다. 2012년까지 영진위의 부산 이전도 예정돼 있는 만큼 서울에 영화 기념공간도 만들 작정이다. 영화인들의 상징적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하겠다는 복안이다. 마지막 한 가지는 공제회나 영화인 연금 형식의 영화인 노후 복지 시스템의 디딤돌을 쌓는 일이다. 아직은 구상단계라며 성급한 기대감을 경계했지만 말 속에 강한 의지가 전해져 왔다. 글 사진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새해 예산안 본회의 통과] 與도 野도 패한 ‘예산전쟁’

    [새해 예산안 본회의 통과] 與도 野도 패한 ‘예산전쟁’

    여당의 단독 처리로 끝난 ‘예산 전쟁’은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에게 패배를 안겼다. 한나라당에는 ‘타협을 모르는 거대 여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었고, 민주당에는 ‘명분도 실리도 잃은 허약한 제1야당’이란 낙인이 찍혔다. ●“與 파행 책임… 野 동력 상실” 한나라당은 일단 정국 주도권을 계속 유지할 수 있게 됐다. 그러나 명분과 여론에서 약세였던 미디어법과 4대강 예산을 잇따라 강행 처리해 ‘반대 의견을 고려하지 않는 여당’이란 이미지가 더욱 굳어졌다. 이번 예산 협상에서 한나라당은 제대로 된 양보안을 한 차례도 내놓지 않았다. 미디어법과 4대강은 청와대가 강하게 미는 정책이어서 여당이 청와대에 종속된 게 아니냐는 우려를 낳는다. 정몽준 대표가 제안한 ‘여야 대표+대통령’ 3자 회담을 여권에서 거부해 정 대표와 안상수 원내대표의 관계가 어색해졌으며, 여권 내 조정기능이 실종됐다는 지적을 받았다. 민주당의 내상(內傷)은 한나라당보다 더 깊다. 민주당은 당초 한나라당이 예결위 회의장을 본청 245호(청문회의장)로 변경할 것이라고 충분히 예상했고, 대비도 해 왔다. 그러나 큰 저항 없이 무너졌으며, 본회의장에 먼저 들어갈 기회도 있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의장석을 내줬다. “정말 4대강 사업을 막을 의지가 있었나.”라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다. 준예산에 대한 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보(湺)와 준설까지 허용하는 양보안을 제시했다. 더욱이 이낙연 농림수산식품위원장과 추미애 환경노동위원장 등 중진들이 당론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상임위를 이끌어 적전(敵前) 분열 양상을 보였다. 당장 강경파들이 지도부 교체를 요구할 태세다. 정치컨설턴트 이경헌씨는 31일 “파행의 1차적 책임은 다수 여당인 한나라당에 있다. 불가피한 선택이라는 변명은 궁색하다.”면서 “민주당은 청와대 주도의 강공 드라이브를 막을 수 있는 동력을 많이 상실했다.”고 평가했다. ●오욕의 국회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승자 없는 싸움을 벌이는 사이 국회는 또다시 오욕의 기록을 남겼다. 예산안 법정 처리 시한인 12월2일을 7년 연속 넘겼고, 1993년 이후 두 번째로 예결위 계수조정소위를 구성하지 못했다. 민주당은 역대 최장인 보름 동안 예결위 회의장을 점거했다. 4대강 사업을 심의하는 국토해양위에서는 여당의 날치기 의결이 재연됐고, 교육과학기술위는 예산부수법안을 아예 넘기지도 못했다. 회계 종료 사흘을 남기고 4대강 예산과 일반 예산을 분리해서 논의하는 ‘투 트랙’ 협상이 진행됐지만, 그나마 비교섭단체는 배제됐다. 예산 집행의 핵심인 예산부수법안 처리를 놓고 민주당 소속 유선호 법제사법위원장은 끝까지 상정을 거부했고, 한나라당은 심야에 단독 상정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리고 마지막 날, 한나라당은 의원총회를 갑자기 예결위로 전환해 3분 만에 나라 살림의 규모를 결정했고, 국회법 위반 논란에도 불구하고 본회의에서 일사천리로 의결했다. 민주당은 반대편에서 메아리 없는 규탄 구호만 외쳐댔다. 이창구 유지혜기자 window2@seoul.co.kr
  • 독자여러분 새해 “변·사·또”

      ‘강구연월(康衢煙月)’. 지식인들이 뽑은 새해 사자성어다. 분열·갈등을 해소하고 태평성대 새 시대가 열리길 염원하는 사회·정치적 의미가 크다. 반면 연말연시 건배사는 대개 개인적 소망을 담는다.   건강이나 사업번창등을 기원한다. 세태를 반영한다. 재미있고 유익할수록 인기가 높다. 연령에 따라 사용어는 다채롭다. ‘xx 위하여’는 이젠 고전에 속한다.  세대 가릴 것 없이 애용하는 ‘변사또’. ‘변함없는 사랑으로 또 만나세’란 뜻이다. ‘사우나’ 도 유행이다. ‘사랑과 우정을 나누자’의 축약어이다. ‘당나귀‘. ‘당신과 나의 귀한 만남을 위하여’란 표현도 있다. 노년층에 희망주는 스킨십 ‘9988’. ‘구십구세까지 팔팔하게 살자’란 의미이다.  ’애인 만들기’. 이젠 젊은이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은퇴한 한 노교수가 망연회에서 밝힌 새해 소망이다. 의외였지만 솔직하셨다. 정말 순수한 사랑을 할 수 있기 때문이란다. 또 병들지 않고 건강하게 살고 있다는 증명이다.거대 담론을 기대했던 70세 중반을 앞둔 은사의 주장에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이 자리에서 노교수의 건배사는 ‘세우자’ 였다. 남자는 기를 세워야 세파를 이길 수 있다고 의미심장한 덕담도 곁들였다. 고령화 시대 기대수명의 연장에 대한 바램을 담고 있다. ‘당신 멋져(당당하게 신나게 멋지게 져주며 살자)’도 괜찮은 것 같다. 한발 양보하는 자세는 아름답고 상대방의 기를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인년 새해 독자여러분 “변·사·또”  호랑이의 기상 누리세요. 평생 싱싱한 건강과 빛나는 성취 가득하길 두 손 모아 기도 드립니다.    장상옥기자 007jang@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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