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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손글씨’ 하나로 女心 울린 디자이너 공병각

    ‘손글씨’ 하나로 女心 울린 디자이너 공병각

    여기 열병과도 같은 사랑을 하다가 이별을 맞은 한 남성 디자이너가 있다. 펑펑 울기도 하고 술에 흥건히 취해보기도 했지만 실연의 상처는 사라지지 않았고, 거짓말과 같은 이별을 맞은 지 1년 만에 이 남성은 ‘그녀’를 향해 꾹꾹 눌러 썼던 이야기를 모아 책을 냈다. 디자이너 겸 캘리그래퍼 공병각(32)이 사랑과 이별에 관한 두 번째 에세이 ‘전할 수 없는 이야기’(양문)를 펴냈다. 손 글씨로 애틋한 마음을 토해낸 이 책은 서적사이트 에세이 부문 상위권을 차지하며 반향을 일으켰고 한국과 일본여성 독자 수백 명을 고정팬으로 만들었다. “사랑과 이별을 경험한 평범한 사람들의 감성을 건들인 거죠. 전 글을 잘 쓰는 사람이 아니에요. 첫 번째 책인 ‘잘 지내니? 한 때 나의 전부였던 사람’은 제가 여자 친구와 헤어진 뒤 썼던 14권의 공책을 엮은 거예요. 제 일기장에 독자들이 공감을 해 준거죠.” ◆ ‘연애편지 달인’이 작가가 되기까지 “내 얘기 같아서 눈물을 흘렸다.”는 독자들의 후기가 쏟아졌다. 주로 여성이었다. 간결하면서도 미세한 감정의 떨림까지 놓치지 않는 글귀를 읽다보면 공병각이 면도칼처럼 예리한 감성을 가졌음에 깜짝 놀라게 된다. 남성이 어떻게 이런 세밀한 내면을 가지게 됐을까. 공병각의 감성은 하루아침에 세포분열 한 게 아니다. 또래에 비해 더 섬세했던 공병각은 학창시절 다이어리를 감각적으로 꾸미고 친구들의 연애편지를 도맡아 써주던 아이였다. 어른이 돼서도 그는 습관처럼 침대나 책상 등지에서 떠오르는 걸 종이에 적어 모아뒀다. “본격적으로 캘리그래피를 시작한 건 3~4년 전이에요. 크레이티브 디렉터로 일하면서 광고에 손글씨를 사용하기 시작했죠. 헤어진 ‘그녀’가 생각날 때마다 썼던 글을 미니홈피에 올려뒀는데, 그게 입소문을 타면서 출판사로부터 발간 권유를 받게 됐어요.” ◆ “‘이게 책이냐’는 안티도 많아” 이미 헤어진 연인과 200번 넘게 다시 헤어지는 심정으로 두 번째 책도 냈다. 활자가 하나도 없었던 전편에 비해 가독성을 높이는 디자인에 집중했고, 이별에만 집중됐던 내용은 사랑과 애틋한 등으로 좀 더 다양해졌다. 그래도, “‘아프지 말아.’ 누군가가 아프지 않기를 바라는 것이 어쩌면 이렇게 마음 저릴까.”, “사랑에 실패했다고 내 사랑이 멈추는 건 아니다. 실패한 사랑으로 내 마음엔 시동이 걸렸다.” 등 공병각의 애틋한 주절거림은 여전히 책의 주된 내용이다. 에세이 작가로는 드물게 거의 매달 사인회를 열고, 일본에서 여성 팬들이 찾아올 정도로 공병각의 인기는 한류스타를 방불케 한다. 그러나 출판계에는 공병각 안티세력이 존재한다. ‘트렌드’란 허울을 입은 사랑에 대한 가벼운 글들이 에세이로 인정될 순 없다는 것이다. 스스로 “그다지 논리정연하지도 않고 심지어 책도 잘 안 읽는다.”고 솔직하게 고백한 공병각은 “그럼에도 여전히 사랑과 이별에 대한 글을 쓴다. 그에 대한 이야기에는 적합한 논리와 설득력, 이해가 필요하지 않은 것 아니냐.”고 담담하게 의견을 밝혔다. 일명 ‘공병각 폰트’로 돈 좀 벌었겠단, 기자의 호기심 어린 추측에 공병각은 고개를 저었다. “많이 오해하시지만 제 손글씨는 폰트로 등록돼 있지도, 그럴 계획도 전혀 없어요. 제 글씨는 글씨체가 아닌 감정을 담아 디자인한 매개체라서 폰트로 등록할 수 없거든요.” 공병각은 디자이너·크레이티브 디렉터·캘리그래퍼 등 다양한 이름으로 불린다. 감성 디자인이란 이름으로 뭉뚱그릴 수 있는 새로운 영역에서 그는 온갖 상상력을 발휘하는 것이 목표다. “다양한 작은 꿈들을 이뤄가고 싶어요. 동시에 저도 좋은 여성을 만나고 싶어요. 그럼 외로움이 사라지는 날이 오겠죠?” 글=서울신문 나우뉴스 강경윤기자 newsluv@seoul.co.kr 사진·영상=서울신문 나우뉴스 손진호기자 nasturu@seoul.co.kr
  • 아웅산 수치 출마봉쇄…미얀마 ‘껍데기 총선’

    미얀마가 7일 20년 만에 첫 총선거를 실시했다. 48년간 군사정권이 집권해 온 미얀마에서 치러진 민간정부 수립을 위한 총선이다. 미얀마 총선은 연금 중인 아웅산 수치(64)가 이끄는 최대 야당인 국민민주연맹(NLD)이 승리했는데도 군사정권이 그 결과를 인정하지 않았던 지난 1990년 선거 이후 처음이다. 미얀마 유권자 2900만여명은 보안군이 주요 거리를 순찰하는 등 엄중 경계를 펼치고 있는 가운데 전국 4만여개 투표소를 찾았다. 총선에는 정당 등록을 마친 37개 정당이 참여했다. 정부는 소수 민족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는 동부와 북부 국경지대 등 6개 주 310여개 마을 주민 150만여명의 투표권 행사를 배제시켰다. 미얀마는 선거에서 상·하 양원과 지방의회 의원들을 선출한 뒤 90일 이후에 새 정부를 수립, 국명을 ‘미얀마연방’에서 ‘미얀마연방공화국’으로 바꿀 방침이다. 그러나 총선은 민주주의를 도입했다는 ‘거짓 이미지’를 심기 위한 군사정권의 전시행정에 불과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CNN 등 서방 언론들은 “총선이 자유롭고 공정하게 치러질 것이라고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꼬집었다. 호주를 방문 중인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도 “미얀마 총선에서 군사정권이 부정을 저질렀다.”라고 비난했다. 실제로 수치 등 야권 유력인사들이 선거에 출마하지 못한 데다 야당 세력이 분열돼 군정의 지지를 받고 있는 통합단결발전당(USDP)이 압승할 것이 유력하다. 군사정권은 지난 3월 수치 여사의 출마를 경계해 전과자들은 선거에 입후보할 수 없도록 규정한 선거법을 통과시켰다. 게다가 안정적인 의석 확보를 노려 상·하원의 25%씩을 군 지도부가 지명할 수 있게 했다. 수치 여사가 주도하는 NLD는 이 같은 ‘변칙’ 선거법에 반발해 선거 불참을 선언했고 정당 등록조차 거부해 지난 5월 이후 정당의 법적 지위를 상실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군사정권 최고 지도자인 탄 슈웨(77)가 총선 이후 의회가 선출하는 미얀마연방공화국의 첫 대통령으로 재집권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야당인 민주당 투 와이 총재는 “USDP와 정부 당국이 유권자들을 위협하고 돈을 살포하는 등의 부정행위를 벌이고 있다.”면서 “통합선거위원회에 선거 부정 행위를 비판하는 항의 서한을 전달했다.”고 밝혔다. 1989년 이래 15번째 가택연금 중인 수치 는 오는 13일 풀려날 예정이다. 군부 정권은 수치의 출마를 막기 위해 연금해제 시점을 총선 이후로 잡았다. 1990년 총선에서 NLD는 485석 가운데 392석을 차지, 압승을 거뒀으나 군사정권은 정권 이양을 거부했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사퇴 파문’ 인권委 8일 전원위

    위원장의 ‘권력 눈치보기 처신’ 등을 비판하며 상임위원 2명이 동반 사퇴하는 초유의 사태로 논란을 빚은 국가인권위원회가 사실상 파행 위기에 봉착했다. 인권위는 8일 오후 2시 전원위원회를 열어 상임위원회와 소위원회 비상 운영방안을 두고 비공개 회의를 갖는다. 최근 상임위원 2명이 사퇴함에 따라 상임위는 물론 다른 4개의 소위원회 운영도 파행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재 상임위원으로 홀로 남은 장향숙 위원을 포함한 일부 위원들이 전원위에서 현병철 위원장에게 상임위원 사태에 대한 책임부터 물을 것으로 알려져 큰 파장이 예상된다. 장 위원은 이에 대해 “전체적인 맥락에서 분명하게 문제 제기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상임위와 소위원회를 정상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면 거의 모든 사안을 최상급 기구인 전원위에서 검토해야 한다. 전원위는 위원장 포함 상임·비상임위원 11명 가운데 6명 이상만 찬성하면 안건을 통과시킬 수 있지만 현재는 사안마다 비상임위원을 총동원해야 해 부담이 크다. 더욱이 상임위는 상임위원 3명과 위원장 등 4명으로 구성되지만 현재 남아 있는 상임위원은 장 위원 1명에 불과해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태다. 소위원회 가운데 상임위원 3명으로 구성된 ‘장애인차별시정위원회’에는 장 위원 1명만 남아 있는 상태여서 위원회 내부 의견 조율조차 불가능하다. 다만 이날 전원위에서는 유남영·문경란 상임위원의 사퇴를 촉발한 인권위 운영규칙 개정안은 논의하지 않을 방침이다. 인권위 조직이 갈등으로 분열되면서 현 위원장에게 부담감으로 작용한 측면이 적지 않으며 갈등의 불씨도 여전히 남아 있다. 한편 전 인권위원장 2명과 전직 인권위원 14명도 이날 오전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상임위원 사퇴와 최근 인권위를 둘러싼 갈등에 대해 의견을 표명할 예정이어서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현용기자 junghy77@seoul.co.kr
  • 한자리에 모인 대산문학상 수상자들

    한자리에 모인 대산문학상 수상자들

    정신분열증을 앓다가 12년 만에 시집을 낸 시인, 중국에서 한국어 교사로 일하며 번 돈으로 태국에서 첫 장편소설을 완성한 소설가, 치과의사를 부업으로 삼아 희곡을 쓰는 극작가…. 제18회 대산문학상을 받은 수상자들의 다양한 이력이다. 대산문화재단(이사장 신창재)이 주는 대산문학상은 올해 시 부문에 최승자(58) 시인의 시집 ‘쓸쓸해서 머나먼’, 소설 부문에 박형서(38)씨의 장편소설 ‘새벽의 나나’, 희곡 부문에 최진아(42)씨의 ‘1동 28번지, 차숙이네’를 각각 선정했다. 평론 부문에는 김치수(70)씨의 평론집 ‘상처와 치유’, 번역 부문에는 이인성 원작 ‘미쳐버리고 싶은, 미쳐지지 않는’을 공역한 ‘Interdit de folie’의 최애영(49)씨와 장 벨맹-노엘(79)이 뽑혔다. 지난 3일 서울 광화문의 한 식당에서 수상자들을 만났다. 경북 포항에서 올라온 최승자 시인은 “요즘 시들이 너무 다변화돼 언어만 날뛰는데, 말로 흘러가는 게 아니고 시적으로 흘러갔으면 좋겠다.”는 말로 수상 소감을 대신했다. 그는 “한번 생각에 사로잡히면 끝없이 물고 늘어져 밥도 잊어버리고 혼잣말을 하곤 해서 입원과 퇴원을 반복했다.”며 “지난해부터 시를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소설도 구상 중”이라고 덧붙였다. 신경림·신달자 시인 등 시 부문 심사위원단은 최 시인의 시에 대해 다변의 범람 속에 간결성과 간절함이 단연 돋보인다고 평했다. 신경림은 “시인이니까 시를 쓰는 사람이 너무 많은데 최승자 시인은 시를 써서 시인이 되는 사람 같다.”고 말했다. 1980년대 “내가 살아 있다는 것,/ 그것은 영원할 루머에 지나지 않는다”(‘일찌기 나는’ 중에서) “이렇게 살 수도 없고 이렇게 죽을 수도 없을 때/ 서른 살은 온다”(‘삼십 세’ 중에서)와 같은 시어로 젊은이를 열광시켰던 최 시인은 이제 “참 우습다/ 내가 57세라니/ 나는 아직 아이처럼 팔랑거릴 수 있고/ 소녀처럼 포르르포르르 할 수 있는데/ 진짜 할머니 맹키로 흐르르흐르르 해야 한다니”(‘참 우습다’ 중에서)라고 노래한다. 태국을 무대로 사람 사이의 관계를 짚은 소설 ‘새벽’의 박형서씨는 “두껍고 끈적끈적한 책을 읽어주셔서 감사하다.”며 “소설을 위해 태국에서 1년 반가량 머물렀는데 항상 시간을 넉넉히 가지고 공을 들여서 작품을 쓰겠다.”고 수상 소감을 말했다. 치의학과를 졸업하고 연극연출가 겸 극작가로 변신한 최진아씨는 “희곡을 잘 쓴다는 게 너무 어렵지만 연극에 기대어 산다는 생각을 가끔 한다.”고 말했다. 평론 부문의 김치수씨는 “문학으로 상을 받는 것은 여분의 몫이라 생각한다. 외길로 평생을 걸어오니까 우연히 나에게도 상이 찾아왔다.”고, 번역 부문의 최애영씨는 “원작의 힘이 컸고, 공역을 하면서 정교한 교감이 필요했다.”고 각각 소감을 전했다. 상금은 소설 5000만원, 시·희곡·평론·번역이 각각 3000만원이다. 시상식은 오는 26일 서울 태평로 프레스센터에서 열린다. 시와 소설 부문 수상작은 번역 지원 공모를 통해 주요 외국어로 번역돼 외국에서도 출판될 예정이다. 윤창수기자 geo@seoul.co.kr
  • [사설] 한나라, 감세·대포폰 관련 여당 역량 보여줘야

    여당인 한나라당은 현 정부 출범 이후 청와대의 거수기 노릇만 한다는 지적을 많이 받았다. 그 결과 전국 규모의 6·2지방선거에서 패배했다. 한나라당은 그 뒤 뼈를 깎는 자성을 통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주겠다고 했지만 소규모 재·보선에서 잇따라 승리한 뒤 다시 위기의식이 사라졌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특히 감세 철회 문제와 이른바 ‘대포폰’ 등 최근 중요 관심사에 대해 집권당으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여당이 여당답지 못한 행태를 되풀이한다는 것이다. 이제 한나라당은 감세나 대포폰 문제와 관련, 여당의 역량을 보여줘야 한다. 감세 철회 논란, 국무총리실 민간인 사찰과정에서 청와대가 대포폰이나 차명폰을 지급하는 등 불신을 초래할 사안들에 대해 치열한 당내 토론으로 분명한 당론을 정해야 한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을 핑계로 미루다 보면 국민에게 혼선만 주게 된다. 특히 소속 국회의원들은 감세·대포폰 문제에 대해 내후년 총선을 의식한 대중영합적 주장을 자제해야 한다. 국민과 국익을 위한 끝장토론을 불사해야 한다. 여당에는 대통령의 국정수행을 도울 책무가 있다. 그런데 한나라당은 오히려 국정의 발목을 잡고 있다. 중요 정책에서는 분열상을 노출한다. 한 중진의원은 “관광특화 차원에서 섹스 프리 지역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 논란을 불렀다. 아랍에미리트연합 파병 문제에 대해서는 사전통보를 제대로 받지 못했다며 불평을 쏟아냈다. 집권당답지 못하다. 여당은 확고한 당의 방침으로 정부 쪽에 문제가 있을 때 국민의 생생한 목소리를 전해야 한다. 그래야 국민의 믿음과 감동을 얻을 수 있다. 한나라당은 지도부의 약속대로 감세 철회 문제에 대한 의원총회에서 끝장토론을 통해 노출된 분열상을 정리해야 한다. 대포폰 문제에 대해서는 홍준표 최고위원 등의 요구대로 재수사를 요구하든지, 야당이 요구하는 특검이나 국정조사도 포괄적으로 검토해 명확한 결론을 내야 할 것이다. 무엇이든 하나된 입장이 긴요하다. 한나라당이 총선과 대선에서 이기고, 이 정부가 성공하기 바란다면 앞으로는 각종 국정 현안에 대한 당의 입장을 단일화해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그래서 국민에게 감동을 줘야 한다. 한나라당은 이제라도 위기의식으로 재무장, 재집권 전략에 대해 치열하게 고민해야 할 것이다.
  •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서울광장] ‘공룡 이웃’ 중국과 함께 살아가는 법/구본영 수석논설위원

    마침내 용은 잠에서 깨어난 것인가. 중국의 부상이 사뭇 놀랍다. 올들어 일본을 제치고 국내총생산 세계 2위로 솟아올랐다. 사상 최대인 관람객 7300만명의 상하이엑스포도 거뜬히 치러냈다. 어디 그뿐인가. 드넓은 품으로 전세계에 상품과 자본시장을 열어주고 있다. 포천지 선정 세계 500대 기업 중 480개가 진출했다니, 중국이야말로 현대판 엘도라도(黃鄕)가 아닌가 싶다. 개혁·개방 30여년 만에 주요 2개국(G2) 반열에 오른 중국의 용틀임은 이미 시작된 느낌이다. G20 정상회의를 앞두고 미국과 환율전쟁을 불사할 결기를 보였다. 댜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 열도) 영유권 분쟁을 벌이면서 희토류 수출 금지란 비장의 카드로 일본의 얼도 반쯤 빼놓았다. 미 경제지 포브스는 엊그제 영향력 세계 1위 인물로 후진타오 국가주석을 꼽았다. 덩샤오핑이 개혁·개방의 총설계사로 나선 이래 중국의 외교기조는 ‘도광양회’(韜光養晦)였다. 하지만 “칼날의 빛을 감춘 채 어둠 속에서 힘을 기르라.”던 덩의 유지는 벌써 잊은 것인가. 후진타오-원자바오 4세대 지도부는 ‘화평굴기’(和平堀起·평화롭게 우뚝 선다는 뜻)를 표방하더니 슬슬 ‘화평’이라는 접두어를 뺀 채 ‘중화굴기’(中華堀起)를 전면에 내거는 인상이다.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자매지 환구시보는 중국의 외교기조는 이제 ‘돌돌핍인’( 逼人·기세등등하다는 뜻)이라고 기염을 토했다. 우리는 되살아난 중화의 위용에 화들짝 놀랐다. 천안함 사태로 인한 국제적 대북 제재 분위기가 중국이 제동을 걸자 슬그머니 가라앉을 때부터 말이다. 지난 8월엔 ‘주체의 나라’라던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3남 김정은의 세자책봉을 받으려고 병든 몸을 이끌고 방중길에 올랐다. 얼마 전엔 5세대 최고지도자 자리를 예약한 시진핑 국가부주석이 6·25 참전이 정의로웠다고 해 큰 파문을 일으켰다. 그래서 ‘중국은 우리에게 무엇인가?’라는 물음이 새삼 제기된다. 우리는 중국과 반만년 역사를 통해 때로는 맞서 싸우기도 했지만, ‘사대교린정책’이란 수사와 함께 굴신(屈身)해야 할 때도 많았다. 그러나 어쩌랴. ‘공룡 이웃’과 함께 살아야 하는 게 우리의 지정학적 숙명이라면. 이미 한·중은 모든 분야에서 서로 외면하려야 할 수 없는 처지다. 굳이 ‘전략적 동반자 관계’라는 외교 레토릭을 들먹일 필요조차 없다. 우리와 중국과의 교역규모는 일본·미국과의 교역액을 합한 것보다 크다. 중국 내 외국인 학생 중 한국학생이 차지하는 비율이 가장 높고, 한국 내 중국 유학생도 마찬가지 비중이다. 까닭에 중국의 부상은 우리에게 위협이자 기회이다. 위협적 요소를 줄이고 호혜적 요인을 늘리기는 다 우리가 하기 나름이다. 따지고 보면 반만년 역사에서 우리가 중국보다 더 풍요로웠던 때가 최근 수십년간 말고 얼마나 더 있었던가. 중국보다 산업화에 앞섰다는 자부심으로 뿌듯했던 ‘좋은 시절’(벨에포크)이 나른한 한여름의 짤막한 낮잠처럼 끝나서야 될 말인가. 글로벌 슈퍼파워로 떠오른 중국과 동렬에서 공존하려면 그들의 ‘분리통치’에 휘둘릴 빌미를 주지 않아야 한다. 박지원 민주당 원내대표가 촉발한 ‘한반도의 평화 훼방꾼’ 논란이 씁쓸하기 짝이 없는 이유다. 시진핑 부주석 측이 그런 비외교적 언사로 이명박 대통령을 비판한 적이 없다며 부인했지만, 분단상황에서 외세를 국내정치에 끌어들이는 일은 애당초 삼가야 했다. 수·당과 어깨를 겨뤘던 고구려의 패망도 국력의 열세를 떠나 당시 실권자 연개소문 아들들의 분열이 결정타였다. 때마침 문명사적 전환기를 맞았다. 우리가 산업화와 정보화에 한발 앞섰다는 자만심에 빠질 게 아니라 경제력에다 기초과학과 문화를 결합한 스마트파워에서 중국을 선도할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할 때다. 이제 ‘어둠 속에서 칼을 가는’ 일은 중국이 아니라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한다. kby7@seoul.co.kr
  • “광주공항, 무안으로 통합 불변”

    광주공항이 예정대로 전남의 무안국제 공항으로 통합·이전될 것으로 보인다. 5일 광주시에 따르면 국토해양부는 내년부터 시행되는 제4차 공항개발 중장기종합계획(안)에서 광주공항의 무안공항 통합 추진과 동시에 광주공항 시설투자를 더 이상 하지 않기로 했다. 국토부는 최근 이 같은 계획을 광주시와 전남도에 통보하고, 다음 달 6일까지 의견을 제출할 것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종합계획안이 확정되면 광주공항과 무안공항의 통합 작업은 호남고속철도(KTX)가 개통하는 2014년 이후 속도를 낼 것으로 보인다. 국토부는 호남고속철도가 개통되면 광주공항 수요에 큰 변화가 일 것으로 보고 광주공항을 무안공항으로 통합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광주시와 관광업계 등은 ‘광주 공항 존치’를 강력히 요구하는 등 반발하고 있다. 광주 관광협회 관계자는 “광주 공항은 KTX가 개통되더라도 국제선을 취항해야 중국 등 해외 관광 활성화가 기대된다.”며 “관광뿐만 아니라 외자 유치 등 지역 경쟁력을 위해서도 광주 공항 존치는 필수적”이라고 말했다. 강운태 광주시장도 “무안 국제공항은 국제화물중심 공항으로 재편하고, 광주공항의 국제선을 되살려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그러나 전남도는 “당초 정부의 계획대로 조속히 광주공항의 국내선을 무안공항으로 이전해야 한다.”고 밝혔다. 전남 서남권 11개 시·군 민간단체협의체인 무안공항활성화대책위원회도 “정부의 안이하고 소극적인 태도가 최근 무안공항 국제선을 광주공항으로 이전해야 한다는 불필요한 논란까지 일으켜 시·도민 사이에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광주 최치봉기자 cbchoi@seoul.co.kr
  • [글로벌 시대]화(和)의 리더십/임성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코리아 대표

    [글로벌 시대]화(和)의 리더십/임성은 커뮤니케이션 서비스코리아 대표

    자금성은 명나라와 청나라 500년간 24명의 황제가 거처한 곳이다. 자금성의 정문 오문(午門)을 지나면 태화문(太和門), 태화전(太和殿), 중화전(中和殿), 보화전(保和殿)이 한줄로 늘어서 있다. 이 건물들의 이름에는 모두 ‘화’(和)가 들어 있다. 중국 왕조의 심장부에, 천하를 통치한다고 호령하던 황제의 거처에 왜 그들은 ‘화’(和)를 네 번이나 새겨 넣었을까? 중용에서는 화를 천하의 달도(和也者 天下之達道也)라고 이야기한다. 화(和)할 수 있으면 천하의 도에 달하게 된다는 것이다. 황제의 도란 무엇인가? 그것은 다스림이다. 물론 다스림이란 현 시대의 관념과 맞지 않다. 지금으로 치면 그것은 바로 리더십이다. 얼마 전 ‘남자의 자격’이라는 방송 프로그램에서 합창이 방송되었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 하나의 소리를 만드는 과정에 사람들은 감동했다. 그리고 그 프로그램만큼 이슈가 된 인물이 박칼린이라는 음악감독이었다. 사람들은 박칼린을 우리 시대에 필요한 리더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합창과 박칼린, 그리고 리더십에 공통된 요소가 하나 있다. 그것이 바로 ‘함께’ 라는 ‘화’(和)이다. 주제는 바로 하모니(harmony)였다. 둘, 셋, 넷…아무리 많은 음이 한꺼번에 울려도 화음이 연결되면 그 소리는 천상의 소리로 바뀐다. 아무리 좋은 소리라도 화음이 연결되지 않으면 그것은 소음일 뿐이다. 하나의 하모니를 만들어내기 위해 자신을 죽여 전체를 살려내는 모습은 감동을 주기에 충분했고, 32명의 단원이 노력과 땀을 흘리며 이루어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태도 역시 많은 사람들의 가슴에 잔잔한 감동을 주었다. 하모니를 뜻하는 말이 화성(和聲)이다. 화합(和合)한 소리라는 뜻이다. 박칼린은 서로 다른 사람과 서로 다른 소리를 묶어 하나의 울림을 만들었다. 그것은 조화(調和)였으며 그런 박칼린의 리더십에 우리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그 리더십의 기본이 또한 화(和)였던 것이다. 공자는 논어에서 ‘군자화이부동 소인동이불화’(君子和而不同 小人同而不和)라고 했다. 군자는 화(和)하나 같지 않고 소인은 같으나 불화(不和)한다는 뜻이다. 하나의 사회, 하나의 조직, 하나의 팀이 있다. 그 속에는 다양한 목소리가 존재한다. 그런데 내가 리더라 하여 내 주장만 편다면, 무조건 내가 옳으니 따라 오라고 한다면 그 사회나 조직이나 팀은 분열하고 말 것이다. 나와 달라도 하나로 묶어서 함께 갈 수 있게 하는 것이 바로 화(和), 화이부동(和而不同)이다. 그러나 소인은 동이불화(同而不和)한다. 생각이 같음에도 함께 갈 수가 없음이다. 우리는 그런 광경을 사회와 기업에서 종종 목격한다. 동일한 목표를 가지고 모인 집단에서 불협화음이 일고 서로를 헐뜯고 무시하고 결국 원수가 되어 찢어지기도 한다. 아니면 겉으로는 같은 뜻인 척하며 딴 마음을 품고 있는 경우도 있을 것이다. 가끔 기업에서 의뢰를 받아서 강의를 하는 경우, ‘조직 내부에 적이 있다.’는 웃지 못할 하소연을 하는 때가 있다. 여럿을 함께 묶어 하나로 만드는 힘, 그래서 함께 같은 방향으로 나아가게 만드는 ‘화’(和)의 절실한 필요성을 느낀다. 그리스어 kharisma에서 유래한 카리스마(charisma)라는 말은 본래 신의 특별한 은총을 뜻했다. 그 말이 사회학적 용어로 바뀌며 사람들을 이끄는 초인적인 능력으로 바뀌어 사용된다. 예전 카리스마라고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강력한’, ‘힘’, ‘밀어붙이기’ 등이었다. 그러나 요즘은 카리스마 앞에 또 다른 단어들이 붙는다. 화합하는 카리스마, 열정적인 카리스마, 부드러운 카리스마 등 카리스마의 의미는 또 다시 변화 중이다. 힘에 기반한 리더십과 팀워크는 오래가지 못한다. 힘이란, 사람을 이끄는 힘이란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때 가능하다. 사람의 마음을 얻어서 함께 가는 것, 그것이 바로 세계화 시대, 지금 우리 시대의 리더십일 것이다. 군자는 화이부동하고 소인은 동이불화한다는 공자 말씀을 이렇게 바꾸고 싶다. 리더는 화이부동하고 졸개는 동이불화한다.
  • [사설] 어이없는 일부 개신교도들의 ‘봉은사 일탈’

    서울 강남구 삼성동 대한불교 조계종 봉은사 경내에서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도들이 개신교식 예배를 올리며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를 한 것은 너무 한심하다. 봉은사 땅밟기 논란은 ‘찬양인도자학교’ 20대 수강생 수명이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기도하는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최근 인터넷에 올리며 시작됐다. 영상에서 젊은이들은 봉은사 경내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올렸다. 불교가 우상숭배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했다. 하나님에 의해 이 땅은 파괴될 것이고, 하나님에 의해 회복될 것”이라고 강변했다. 편협하기 그지없는 위험한 생각이요, 행동이다. 우리 사회에 내재된 종교 갈등을 자극할 소지도 있다. 일부 개신교도들의 ‘봉은사 일탈’은 정말 어이없다. 문제의 젊은이들은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의 예배 뒤 “우상은 무너지고 주의 나라 되게 하소서.”라고 빌었다. 상대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것은 물론 저주까지 퍼부은 것이다. 이런 소식에 누리꾼들은 “다른 종교를 포용할 줄 모른다는 것은 치졸하다.” “현대판 십자군”이라는 등 우려와 비난을 하고 있다. 대부분의 개신교도들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불교계 인사들과 사회지도자들도 이들의 행동이 우리 사회의 갈등과 분열을 조장할 가능성을 우려한다. 어찌됐든 일부 개신교도들의 일탈이 종교 갈등을 자극하는 건 결단코 피해야 한다. 다행히 문제의 동영상을 유포한 젊은이들과 찬양인도자학교를 주관하는 단체의 목사가 어제 오전 봉은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용서를 구했다. 이에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은 “남을 배려하고 고통을 주지 않는 것이 청년예수의 진정할 가르침이다.”고 타일렀다. 또 이번 사건이 종교 간의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한국 사회의 화합을 다지는 전화위복의 계기가 되길 바란다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다행스럽다. 이번 사건을 계기로 각 종교 간 소통과 갈등 해소를 위한 장이 열리기를 기대해 본다. 하지만 극단적 개신교도들이 봉은사 외에도 국내·외 다른 사찰에서 땅밟기를 한 영상이 속속 유포되는 것은 걱정스럽다. 종교 갈등은 모두가 피해자가 될 수밖에 없음을 명심해야 한다.
  • ‘봉은사 땅밟기’ 논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조계종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이른바 ‘봉은사 땅밟기’라는 기독교식 예배를 올려 논란이 일고 있다. 파문이 커지자 해당 신자들 측에서 사과 의사를 밝혔지만 불교계는 종단 차원의 대응책 마련을 강구 중이다. 발단은 지난 주말 봉은사 주지 명진 스님이 ‘봉은사에서 땅 밟기’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인터넷에서 발견하면서부터. 6분여 분량의 영상에는 자신들을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기독교인들이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예배를 보고 기도하는 장면이 담겨 있다. 명진 스님은 지난 24일 일요법회에 앞서 문제의 동영상을 신도들에게 보여준 뒤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이런 행동이 한국 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며 기독교 측에 종교 갈등을 주제로 한 공개토론회를 제안했다. 봉은사 관계자는 26일 “찬양인도자학교를 운영하는 단체에서 오늘 전화를 걸어 와 사과하겠다고 밝혔지만 아직 공식 사과는 받지 못했다.”면서 “해당 사이트에 들어가보니 ‘땅 밟기 하러 간다’는 글이 몇 년전부터 다수 올라와 있었다.”고 전했다. 이어 “진상 파악이 끝나는 대로 종단 차원의 대책을 강구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조태성기자 cho1904@seoul.co.kr
  • [사설] 캐나다 쇠고기 수입 재개 안전이 먼저다

    캐나다산 쇠고기의 수입 재개를 위한 실무협상이 결국 결렬됐다. 어제 농림수산식품부에 따르면 양국은 30개월 미만 연령 쇠고기를 대상으로 삼는 데 합의했지만 광우병 추가발생에 대한 조치에서 팽팽히 맞섰다고 한다. 캐나다는 미국과 같은 광우병 위험통제국 지위에 있는 만큼 미국과 동등한 조건의 수입재개를 강력하게 요구하고 있다. 가뜩이나 한·미 FTA 추가협상에 미국산 쇠고기 수입 확대가 들먹거려져 불안이 증폭되는 시점이다. 당국은 외교·통상의 입장에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을 침해당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할 것이다. 2년 전 한·미 쇠고기 협상 파동은 온 나라를 들썩거리게 했고 그 후유증은 여전히 진행 중이다. 국론분열은 물론 정치·경제적 손실 또한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 간 통상협약과 기준이 있지만 한 나라의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은 먼저 존중하는 게 마땅하다. 캐나다의 광우병은 2003년 수입금지 후 올 2월을 포함해 17번이나 생길 만큼 빈발하고 있다. 사료규제조치며 검사비율, 특정위험물질(SRM) 범위의 통제기준도 미흡한 실정이다. 일본이 20개월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하고 호주가 캐나다산 쇠고기 수입을 막는 게 괜한 게 아니다. 그런데도 캐나다가 이번 협상에서 보여 준 무성의하고 고압적인 자세는 우리 국민을 납득시키긴커녕 불신감만 더한 꼴이 됐다. 제2의 광우병 파동은 철저히 막아야 한다. 미국산 쇠고기의 국내 소비가 늘고 있지만 소비자들의 불안감이 완전히 가시진 않았음을 명심해야 한다. 우리는 광우병 발생 후 5년이 경과하지 않은 나라의 30개월령 이상 쇠고기 수입을 금하고 있다. 극심한 파동을 딛고 마련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지만 시행의 문제점이 적지 않다. 거듭 지적하지만 국민건강권과 검역주권은 훼손될 수 없는 사안이다. 앞으로 있을 협상도 신속하고 투명하게 공개해 의혹과 불안을 없애야 할 것이다.
  • [이원복 교수의 카툰 G20] (1)환율전쟁

    [이원복 교수의 카툰 G20] (1)환율전쟁

    날로 격해지던 ‘환율전쟁’이 경주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타협을 이루며 휴전에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이번 경주 코뮈니케(공동성명)에 담긴 내용만으로는 실행력을 담보한 방안과는 거리가 있어 갈등의 불씨는 여전히 남은 상태로 봐야 합니다. 국제적 환율전쟁은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과정에서 각국의 경제적 이해관계와 갈등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대표적 사례입니다.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상을 요구하는 미국의 공세로 시작된 이번 ‘전쟁’은 신흥 흑자국가(중국, 아르헨티나, 인도네시아)와 선진 적자국가(미국, 영국 등)의 반목과 갈등에다 선진 흑자국(독일, 일본)과 미국의 분열 등이 복잡하게 얽혔던 사안입니다. 근본적인 이유로는 글로벌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2년간 엄청난 재정을 쏟아부었고 나라마다 국가 재정이 바닥난 상태에서 자국의 화폐가치를 떨어뜨려 국제교역에서 가격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전략입니다. 그야말로 ‘무역 전쟁’이 발발하기 일보 직전 상태까지 간 셈이지요. 여기에 미국이 지난달 말 하원에서 중국을 겨냥해 환율조작 가능성이 있는 국가에 보복관세를 부여할 수 있는 ‘환율 제재법’을 통과시키면서 갈등은 최고조로 올라갔습니다. 하지만 G2(미국과 중국)는 벼랑 끝에서 타협점을 찾았습니다. 이번 경주회의에서 ‘시장 결정적인 환율제도로 이행하고 경쟁적인 통화절하를 자제하자’는 데 합의한 것입니다. 즉 ‘마음대로 환율을 조작하지 말고 시장에서 공정하게 돈의 가치를 결정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앞으로 각국이 앞다퉈 자국의 통화가치를 떨어뜨리는 경쟁은 당분간 약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일각에서는 이번 경주합의가 ‘말의 성찬’으로 끝날 수도 있다고 우려합니다. 앞으로 G20 서울회의에서는 경주 합의를 구체적인 실천으로 옮길 수 있는 방안을 만드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입니다. ● 이원복 교수는 이원복 교수(64)는 경기고, 서울대 공대(건축공학과 수료)를 거쳐 독일 뮌스터 대학·대학원에서 디자인을 공부한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1987년 출판된 ‘먼나라 이웃나라’는 1300만부 이상 팔린 초대형 베스트 셀러다. 알기쉽게 풀어쓰면서도 정곡을 찌르는 세계사 강의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 봉은사에서 기독교 예배를…‘불교 폄훼’ 동영상 논란

    봉은사에서 기독교 예배를…‘불교 폄훼’ 동영상 논란

    일부 기독교 신자들이 조계종의 핵심 사찰인 서울 삼성동 봉은사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하는 동영상을 올려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영상에서 기독교 신자들은 ‘우상 숭배’ 등의 단어를 사용하는 등 종교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다분한 말과 행동을 보여 빈축을 사고 있다. 문제의 영상은 지난 24일 ‘봉은사 땅밟기’라는 제목으로 인터넷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 올라 왔다. 6분30여초 분량의 이 영상에서 자신들을 ‘찬양인도자학교’ 소속이라고 밝힌 젊은 기독교 신자들은 봉은사 대웅전 등에서 기독교식 예배를 보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담았다. 이들은 “서울 한복판에 이렇게 크게 우상 숭배를 하는 곳이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면서 “이 땅은 하나님의 땅이라는 것을 선포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봉은사 곳곳의 전경을 보여주면서 ‘사람들이 만든 우상들’, ‘헛된 것들’ 이라는 설명을 덧붙였다.  이어 기독교식 예배를 한 뒤에는 “우리가 밟고 지나간 자리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보냈다고 믿는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봉은사 주지 명진스님은 24일 일요법회에서 이들의 행동을 지적하면서 “일부 개신교 신자들의 이같은 행동들이 한국사회를 갈등과 분열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판했다. 명진스님은 기독교 목사들에게 종교 갈등을 주제로 공개 토론을 제안하면서 “봉은사는 신도들과 함께 이런 망동을 막아내고 한국불교의 불꽃을 피울 것”이라고 덧붙였다. 서울신문 맹수열기자 guns@seoul.co.kr
  • [고전 톡톡 다시읽기] 영화로 본 ‘양철북’

    1979년 독일 영화감독 폴커 슐렌도르프는 귄터 그라스의 ‘양철북’을 영화로 제작하면서 큰 성공을 거두었다. 작품은 프랑스 칸 영화제 황금종려상과 미국 아카데미 최우수 외국영화상을 수상했고, 이로 인해 귄터 그라스와 소설 ‘양철북’에 또 한 차례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됐다. 분열증 환자처럼 지껄여대는 오스카를 길잡이 삼아 독일 전체주의와 소시민 사회, 그리고 일그러진 가족의 초상 사이를 오가며 어지럼증을 경험해본 독자라면, 보다 직접적으로 그 모든 것들을 ‘보여주길’ 택한 영화 ‘양철북’의 관객이 되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작품에서 카메라는 세 살에서 성장이 멈춘 오스카의 시선을 정직하게 따라, 곧잘 낮은 각도에서 앵글을 잡는다. 카드 게임이 한창인 탁자 밑에서 ‘추정상 아버지’인 남자가 자기 어머니의 치마 속을 발로 더듬는 것을 말없이 지켜보는 오스카, 할머니의 네 겹짜리 치마 속으로 들어가 몸을 웅크리고 있는 오스카, ‘추정상 아버지’가 어머니의 몸을 더듬으며 달래주는 모습을 옷장 속에서 바라보는 오스카. 관객은 오스카의 바로 옆에서 이 모든 장면을 함께 ‘봐버리는’ 공범자가 된다. 이때 눈에 들어오는 오스카의 표정은 그로테스크함 그 자체다. 아이다운 볼살 한 점 없이 홀쭉한 얼굴에 언제나 처진 입을 앙다물고 있는 이 아이는 옅은 하늘색 눈-어쩌면 빈약한 하안검 위의 하늘색 눈동자 때문에 감독이 열한 살짜리 데이비드 베넨트를 택한 게 아닐까-을 홉뜬 채 앉아 있다. 그는 한 마디 말도 없이 모든 광경을 올려다볼 뿐이다. 어른들을 향해서는 단 한마디도 제대로 하지 않고 오직 양철북을 두드리고 비명만 지르는 오스카에게 감독은 기나긴 내레이션을 지시한다. 내레이션은 소설 ‘양철북’과 거의 흡사하다. 때문에 소설 속에서 매끈한 텍스트 위로 흐르는 북 소리와 비명을 함께 상상하는 게 쉽지 않았던 독자라면, 영화에서 한 목소리가 들려주는 두 소리 인간의 음성과 짐승의 괴성을 보다 친절하게 느낄 수 있을 것이다.
  • 닮은 듯 다른 천재와 광인 미묘한 한끝 차이는 뭘까?

    천재적인 예술가들의 삶은 평탄하지 않은 경우가 많고 비극적인 자살로 끝이 나는 경우가 많다. 그렇다면 그들에게 정신질환적 증세가 있을까. 천재성과 광기는 뇌의 해부학적이고 화학적인 근원에 있어서는 같은 출발점을 갖고 있다는 말로 이 책은 시작한다. 또한 천재성과 정신질환을 구별하는 구체적이고 본질적인 경계선에 대해 말하고 있다. 교수이자 작가인 중국 자오신산이 쓴 ‘천재적 광기와 미친 천재성’(이예원 옮김, 시그마북스 펴냄)이다. 책은 아인슈타인, 피타고라스, 앙페르, 애덤 스미스, 가와바타 야쓰나리, 백거이 같은 천재들과 히틀러 같은 광기 어린 독재자의 정신세계를 살펴보고 천재의 창조력과 정신질환 사이의 관계를 찾아보려 시도한다. 또한 과학, 예술, 철학의 창작은 정상적이라고 볼 수 없는 천재 혹은 탁월한 능력의 소유자들이 자신들의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는 통로라고 언급하면서 만일 그들이 창작활동을 하지 않는다면, 어쩌면 그들은 미치거나 범죄를 저질렀을지도 모를 일이라고 설명한다. 천재의 창조력과 정신질환 사이의 관계를 살펴보고 심리적·정신적 에너지라고도 할 수 있는 광기는 어떤 방향으로 분출되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사실을 저자는 밝힌다. 세상을 창조하고 건설하거나, 세상을 파괴하거나 아니면 자기자신을 파괴하는 것이다. 독일 역사에 길이 남을 인물, 즉 비스마르크가 독일의 재상이 되지 않았더라면, 만일 그가 대단한 대업을 완수하지 않았다면 그는 정신분열증 환자가 되었을지도 모른다고 말하고 있다. 히틀러도 마찬가지로 화가나 위대한 건축가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수많은 건물을 부수고 수천만명을 학살한 잔인한 인물, 인류 역사상 길이 남을 최고로 잔인한 범죄자가 되었던 것이란 예를 든다. 저자는 정신질환과 천재성 사이의 교차점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중국 베이징대학을 졸업했으며 교수, 작가, 상하이 세계박람회 고문 등 다양한 활동을 했다. 과학과 예술, 철학 분야에서 관련 저서 56권을 펴낼 정도로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 본문 중에 흥미를 끄는 한토막. “누가 물을 발견했지? 분명 물고기는 아닐 것이다. 왜냐하면 물고기는 일생 동안 물속에 있으니까…” 1만 6000원 김문 편집위원 km@seoul.co.kr
  • [데스크 시각] 쌀·반도체·핵융합 발전/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데스크 시각] 쌀·반도체·핵융합 발전/김경운 산업부 부장급

    한반도가 학계의 통설보다 8000년이나 앞서 벼농사를 시작했고, 중국 대륙과 일본 열도에 신품종 벼를 보급했다는 최신 글을 읽고 잠시 기분이 우쭐했다. 원로 사회학자 신용하 교수가 지난 8월 15일에 펴낸 ‘고조선 국가형성의 사회사’라는 단행본을 통해서다. 신 교수는 나름의 고고학적 근거를 제시하고 해석하면서 한반도의 신석기인들이 기원전 1만년에 한강과 금강 유역에서 단립종 벼(자포니카 쌀)를 처음 재배했다고 했다. 이것이 지금 동아시아인들이 주식으로 먹는 쌀이다. 인도에서 처음 재배된 장립종 벼(인디카 쌀)보다 향과 맛이 좋고 찰기가 있다. 우리 조상들은 아열대 기후에 더 적합한 벼를 재배하기 위해 인공적으로 물을 끌여들인 무논 환경을 조성하고 까다로운 생육 조건을 맞추는 데 성공했다. 이 질 좋은 쌀로 밥과 떡, 과자, 된장, 술 등을 만들었다. 조상들은 안정적인 식량 사정 등을 토대로 광활한 영토를 자랑했던 동아시아 최초의 고대국가 고조선을 건국한 것이다. 오늘날 한국 경제는 ‘전자산업의 쌀’이라는 반도체 덕분에 다시 한번 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반도체는 모든 디지털 기기에 빼놓을 수 없는 부품인 만큼 과연 쌀에 비유될 만하다. 반도체는 우리나라 무역 흑자의 약 47%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35%를 장악했고 이를 50% 이상으로 끌어올리기 위해 최근 거액의 투자를 결정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함정이 있다. 이 함정에는 삼성전자가 아니라 한국 경제가 빠질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버팀목인 메모리 반도체가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불과 20~25%. 나머지는 한국이 뒤처진 시스템 반도체와 아날로그 반도체이다. 시스템 반도체는 컴퓨터의 중앙처리장치(CPU), 휴대전화의 모뎀칩 등에 쓰이는 일종의 인공지능(AI)이고, 아날로그 반도체는 빛과 소리·압력 등을 디지털 신호로 바꿔주는 첨단 센서. 이런 반도체는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내는 것이 아니라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다양한 모델에 맞춰 설계해야 하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늘 수요가 널뛰는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잘 버틸 수 있겠지만 실적이 부풀려진 한국 경제는 자칫하면 무역수지 악화와 금융시장 불안, 국가신용도 추락 등을 부를 수 있다. 우리는 ‘불안정한 쌀’에 너무 많이 의존하고 있는 셈이다. 중앙아시아 초원에서 기원한 밀국수는 동쪽으로 전해져 물 국수 형태로 발전했고, 서쪽 사막을 건너간 마른 국수는 무슬림을 거쳐 9세기쯤 지중해 시칠리아 섬에 상륙했다. 이 마른 국수를 시칠리아인들은 주변에 흔한 듀럼밀로 만들었고, 이것이 스파게티와 마카로니로 이어진다. 우리 쌀과 듀럼밀은 공통적으로 비타민B 덕분에 활발한 신진대사를 도와주고 비만 예방 효능도 지녔다. 그 옛날 우리 쌀이 한강을 벗어나 널리 퍼졌듯 우리의 정보기술(IT)과 일꾼들도 반도체 공장을 벗어나 ‘미래의 쌀’을 찾아 나서야 한다. 다행히 정부가 차세대 먹거리 산업 중 하나로 원자력발전을 꼽았다. 원전 수출도 탄력을 받은 듯하다. 원전은 원자핵의 분열 과정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말한다. 아울러 원자핵의 융합을 통한 엄청난 에너지는 방사능 문제가 없는, 그야말로 우주시대의 힘이다. 얼마 전 우리나라의 핵융합 초전도 연구장치인 ‘KSTAR’가 중수소 핵융합 반응에 성공했다. 핵융합 발전은 아직 먼 일이겠지만 어서 한국이 세계 최초가 되기를 바랄 뿐이다. 지금으로부터 137억년 전 빅뱅 직후 우주에 흔한 수소(H) 원자들이 초고온과 초고압 상태에서 융합 또는 분열을 통해 헬륨(He), 탄소(C), …철(Fe), …코발트(Co), 니켈(Ni), …우라늄(U) 등 무수한 원자들을 만들었다. 미래의 쌀은 가장 먼 과거부터 이미 존재했던 셈이다. kkwoon@seoul.co.kr
  • “서울서 글로벌 경제불균형 조정해야”

    “서울서 글로벌 경제불균형 조정해야”

    다음 달 서울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전 세계 경제 불균형을 조정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는 요구가 잇따라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자칫 기존 선진국들과 신흥국이 두 패로 나뉘어 충돌할 가능성도 있다는 분석이 제기된다. 만모한 싱 인도 총리는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와의 인터뷰에서 “서울회의는 마음과 마음이 만나는 회합이 돼야 한다.”면서 금융개혁에서 공조하는 새로운 계기를 마련하면 세계 경제의 균형을 되찾을 수 있다고 밝혔다. FT는 인도 정부 관계자들 사이에선 서울회의가 중국 등 채권국을 한편으로 하고 미국·영국 등 채무국을 한편으로 해서 분열돼 있기 때문에 서울회의에서 이해관계와 인식 차를 조율하지 못할 경우 경제회생을 위한 진전을 가로막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고 보도했다. 멜빈 킹 영국중앙은행(BOE) 총재도 “지금 필요한 것은 대타협”이라고 강조하고 나섰다. 그는 19일 영국 재계 지도자들과 회동한 자리에서 “주요 경제국 간 정책이 직접 충돌하고 있기 때문에 세계경제 균형 회복을 위해 공조가 필요하다.”면서 “실패할 경우 무역 장벽이 더 높아지고 성장도 약화되는 위험에 직면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통화 가치가 상승한 신흥국들을 ‘억울한 희생자’로 표현하기도 했다. 올리 렌 유럽연합 경제·통화담당 집행위원도 이날 G20 회의가 세계경제 성장의 균형을 되찾기 위한 공조 방안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금융위기 이전에 세계 경제에 충격을 가했던 불균형이 되살아났다면서 수출국은 과다한 무역 흑자를 보는 반면 다른 쪽은 지탱할 수 없는 적자로 허덕이고 있다고 지적하고 “G20 회의가 정책을 효과적으로 조율하는 등 다시 화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강국진기자 betulo@seoul.co.kr
  • [씨줄날줄] 침묵의 맹세/이춘규 논설위원

    비밀을 지키자는 침묵의 맹세는 깨지기 쉽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설화가 단적이다. “당나귀 귀가 된 임금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게 특별한 모자를 썼다. 모자를 만든 이에게 발설하지 말도록 침묵의 맹세를 강요했다. 모자를 만든 사람은 아야기를 못하자 병이 났다. 대나무숲에 가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하자 바람만 불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울려 세상에 알려졌다.”는 내용이다. 보통 사람들이 비밀스러운 일에 대해 침묵의 맹세를 지키기는 어렵다. 가족끼리, 친구끼리의 맹세 등이 그렇다. 비밀이 많은 정치인들은 비서나 운전기사, 경호원을 가족·친척으로 두어 비밀을 지켜내려고 끊임없이 노력한다. 어느 정부에서든 실력자들은 비밀을 많이 알지만 언론인들이 질문하면 “입이 없다.”며 피해간다. 기밀이 많은 대기업들은 임원 이상에게 침묵의 맹세를 원하고, 지켜주면 대가를 지불해 주기도 한다. 맹세가 깨지면 총수가 홍역을 치르는 걸 자주 본다. 이탈리아 시칠리아섬을 중심으로 번성했던 범죄조직 마피아 단원 사이에는 오메르타(Omerta)라는 침묵의 규약이 있다. 경찰 등에 잡혀도 조직의 비밀에 대해 입을 열지 않고, 협력을 거부한다는 침묵의 맹세다. 밀고자는 죽임으로 단죄한다. 귀가 들리지도 않고, 눈도 보이지 않으며, 조용한 자만이 100년을 평안하게 살 수 있다는 시칠리아 속담과 관련이 있다. 수사관들은 이 침묵의 맹세를 고도의 수사 기법으로 무너뜨리곤 한다. 가톨릭 교회 교황을 뽑는 선거회의인 콘클라베. 추기경들은 콘클라베가 시작되기 전 침묵의 맹세를 한다. 길게는 수일이 걸리는 콘클라베가 끝날 때까지 숙소와 개최 장소를 오가며 침묵해야 한다. 선거 뒤에도 침묵으로 비밀을 지켜낸다. 그렇지만 여러 종교의 성직자들도 침묵의 맹세를 지키는 것이 쉽지 않은 것 같다. 부패한 성직자가 성도와의 약속을 파기, 이용했다는 이야기가 낯설지 않다. 성직자들도 이러니 일반인들이야…. 매몰 69일 만에 구조된 칠레 광산 광부들이 했던 침묵의 맹세가 흔들리고 있다고 한다. 광부들은 매몰 뒤 외부에 생존 사실이 알려질 때까지 17일간의 내부분열 등 불편한 진실에 대해 전원의 동의가 없는 한 “함구하자.”고 맹세했다. 인터뷰 등 수입 또한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다. 하지만 언론의 취재 경쟁과 최고 수천만원의 인터뷰료 등의 유혹으로 맹세에 금이 가고 있다. 그렇다 해도 칠레광부 생환은 분명 사람들에게 희망을 쏘았다. 이춘규 논설위원 taein@seoul.co.kr
  • 불가능 vs 조건부 가능 민주당 개헌론 시각차

    ‘여권발(發)’ 개헌 불씨가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직은 실체도 없고 주체도 뚜렷하지 않다. 거기에다 기존 개헌 정국과 결을 달리한다. 통상 개헌이 여소야대 국면을 전환하기 위한 정계개편의 기제였던 점을 고려하면 최근 개헌 방정식은 고차원적 요소가 많다. ●손학규 “與 정략적”… 효과 차단 이는 야권이 대응하기 어려운 배경으로 작용한다. 민주당의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된다. 손학규 대표의 불가능론과 박지원 원내대표 중심의 조건부 가능론이 대표적이다. 손 대표는 여권의 ‘개헌 효과’를 사전 차단하려는 의도가 짙어 보인다. 박 원내대표는 ‘개헌 활용도’를 최대치로 끌어올리려는 의중이 깔려 있다. 손 대표는 여권의 개헌 제안이 정략적이라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다. 공식·비공식 석상에서 “(개헌은) 민생·국정 실패를 가리고 정권 연장을 위한 국민 호도”라며 시종일관 강수를 뒀다. 여권이 분권형 개헌을 통해 집권 이후에도 안전판을 노린다는 시선을 거두지 않고 있다. 한 측근이 “개헌의 시기와 주도 세력의 측면에서 집권 연장의 의도가 뚜렷하다.”고 밝힌 대목에서 손 대표의 판단을 가늠할 수 있다. ●박지원 “後논의”… 與 분열 겨냥 설상가상으로 여권이 개헌 이슈를 주도하는 동안 손 대표는 국정 제어력을 뺏기게 된다. 찬반 공방이 오가는 과정에서 민주당은 물론 야권 연대(통합)의 구심력도 떨어진다. 개헌이 ‘박근혜 vs 반박근혜’ 전선으로 흐를 경우 여권 주류는 박근혜 전 대표의 ‘무조건 반대’ 이미지도 부각시킬 수 있다. 차기 대권주자 ‘손학규’로서는 개헌 제기 자체가 여권의 ‘남는 장사’라고 인식할 수밖에 없다. 그만큼 손 대표 자신의 기회비용이 줄어든다고 받아들일 법하다. 박지원 원내대표는 다른 각도에서 개헌을 바라보고 있다. ‘선 여당 단일안, 후 논의 가능’이라며 개헌 추진 입장에선 한발 물러섰지만 논의 여지를 열어 뒀다. 여권의 자중지란을 노린 측면이 크다. 한나라당 내에도 친박 진영 등 개헌 반대파가 있다. 어차피 여권의 단일안이 나오긴 어렵다. 여론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여권의 분열을 기다리는 행보로 이해할 수 있다. 연말 예산안 정국을 고려하면 성과물이 나와야 한다. 한 측근의 “개헌은 그 자체로 끝나는 게 아니다. 반대 급부가 따라야 한다.”는 언급은 개헌을 미끼로 한 박 원내대표의 셈법을 담고 있다. 개헌을 여권의 자중지란과 4대강 드라이브를 급제동시키기 위한 다목적 카드로 쥐고 있는 셈이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정당·계파간 공통분모 취합 ‘재점화’

    정당·계파간 공통분모 취합 ‘재점화’

    한나라당의 김무성 원내대표가 17일 꺼져가던 개헌론에 또다시 불을 지폈다. 청와대가 “개헌을 추진할 동력이 없다.”고 입장을 정리하고, 여야 대권 주자들도 “개헌 논의는 정략적”이라고 못을 박았는데도 여당 원내대표가 개헌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여 그 의도와 실현 가능성에 궁금증을 자아내고 있다. 김 원내대표는 기자간담회를 자청, 개헌 구상을 비교적 소상하게 밝혔다. 그는 우선 “(청와대와 이재오 특임장관 등 소위 ‘권력 핵심부’는 개헌 논의에서 빠지고) 국회가 중심이 돼 연말까지 특위를 구성해 개헌을 할지 말지를 결론내자.”고 했다. 그는 또 “다음달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끝난 뒤 의원총회 등을 통해 한나라당 내 의견을 모으겠다.”고 일정표까지 제시했다. 김 원내대표는 특히 “대통령의 권력을 분할하는 이원집정부제나 의원내각제뿐만 아니라 박근혜 전 대표가 찬성하는 4년 중임제도 개헌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2012년) 4월에 국회의원을 뽑고, 12월에 대통령을 뽑는다는 게 말이 되냐. 최소한 임기는 조정해야 하지 않겠냐.”고도 했다. 이 같은 주장은 언뜻 ‘나홀로 외침’처럼 들리나 뜯어보면 제 정파 간 공통분모를 취합한 것이어서 실현 가능성을 마냥 차단할 수 없다. 우선 청와대가 개헌 논란에서 발을 빼는 모양새이지만 여전히 총선과 대선이 한 해에 몰려 있는 점과 소선거구제의 폐해에 대해선 고민을 계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더욱이 국회 차원의 개헌 논의를 청와대가 반대할 이유가 없다. 박근혜 전 대표를 필두로 한 친박 진영도 현재의 개헌 논의를 경계하지만 4년 중임제까지 반대하기엔 명분이 약하다. 이재오 특임장관 역시 “G20 이후 필요하면 다시 논의하겠다.”는 입장이다. 민주당 박지원 원내대표도 “일방적인 개헌 논의는 안 되며, 여당이 분명한 안을 가져와야 한다.”고 선을 그었지만 “당론을 먼저 모으고, 여야 합의로 추진돼야 한다.”고 했다. 결국 한나라당과 민주당이 각자 당내 협의를 거쳐 협상에 나선다면 개헌 논의가 탄력받을 수 있다. 하지만 개헌 논의가 실제 개헌으로까지 이뤄질 가능성은 여전히 낮다. 국민적인 요구가 강하지 않고, 정당 및 계파 간 이해관계가 얽혀있어 올해까지는 논의만 무성하고, 내년에는 소멸할 수 있다. 다만 실현 여부와 상관없이 여야 모두 논의 자체를 ‘함구’하진 않을 전망이다. 한나라당은 G20 이후에도 정국 주도권을 쥐기 위해선 4대강 사업 등에 대한 야권의 파상공세를 막아야 하는데, 개헌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 들이는 ‘블랙홀’이 없다고 판단을 할 수 있다. 민주당에서도 개헌 이슈를 한나라당의 친이계와 친박계를 분열시키는 근원적 ‘호재’라고 분석하는 이들이 많다. 당장 김 원내대표의 발언을 놓고 한 친박계 의원은 “G20을 눈앞에 두고, 국정감사도 한창인데 왜 원내대표가 개인적으로 불필요한 의제를 툭 던지느냐.”고 비판했다. 이창구·강주리·김정은기자 window2@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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