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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술관으로 들어온 공항

    미술관으로 들어온 공항

    서울 중구 소공동 삼성미술관 플라토가 도심 속 공항으로 탈바꿈했다. 오는 23일부터 열리는 ‘천 개의 플라토공항’ 전시를 위해 미술관 외부에 도착하는 비행기와 도시, 시간을 보여 주는 거대한 보드를 설치했고, 미술관 안에도 출발 체크인과 보안검색 구역, 탑승대기와 탑승 구역 그리고 수화물 수취 구역과 면세점 구역까지 매우 사실적으로 배치됐다. 변신을 이끈 주인공은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북유럽 출신의 현대미술가 듀오인 마이클 엘름그린(54)과 잉거 드라그셋(46)이다. 제도권 미술교육을 받지 않은 이들은 사실적인 조각에서부터 디자인, 건축, 연극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영역을 자유롭게 넘나들며 현실과 그 이면의 진실 사이에 존재하는 미세한 차이를 보여 주는 독자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고 있다. 2009년 베니스비엔날레 특별상 수상, 2012년 영국 런던 트래펄가 광장의 공공조형물 설치 등으로 세계적 주목을 받고 있는 이들은 한국에서 열리는 첫 개인전을 통해 새로운 공간 속에서의 시간여행으로 관람객을 초대한다. “유리와 철로 된 플라토미술관의 외관이 마치 여러 겹의 투명 유리로 지어진 공항 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한두 시간 이상은 머물지 않고, 다른 세계로 이동하기 위한 여행을 위한 공간이라는 점에서 공항과 미술관에서 공통점을 찾아 작품을 구상했습니다.” 전시를 위해 한국을 찾은 이들은 20일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분열증적인 현대사회를 대변하는 대표적인 공간이 공항”이라며 “전시 공간을 중립적이고 독립된 구획으로 보지 않고 공간 자체의 정체성과 실제 환경을 수용해 일종의 언어유희를 통해 미술관과 철학, 그리고 일상 공간을 동일선상에서 사유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정교한 공간 연출로 실제 공항에 있는 듯한 환상을 불러일으키며 관람객들은 여행자이자 환송객으로서 출발과 도착, 자유와 통제, 보호와 소외, 현실과 허구 등 공항에서 겪을 수 있는 다양한 가치와 경험을 각자의 개별적인 삶과 연관 지어 느끼게 된다. 공항을 구체화하기 위해 엘름그린과 드라그셋은 공항 건축구조를 전시에 정교하게 반영했다. 적절한 생략과 집중적인 묘사로 공항을 완벽하게 재현한 뒤 기존 작품 중에서 현금지급기 ‘모던 모세’(2006), 휴게시설 ‘뒤집힌 바’(2014), VIP 라운지 ‘화이트 메이드’(2014), ‘오래된 세계, 5번’(2014), 장애인 편의장비 ‘생일’(2002) 등 오늘날 세계 모든 공항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편의시설들을 추가해 구체적인 현실성을 더했다. ‘미수취 수화물’(2005), ‘무력한 구조물, 247번’(2001) 은 비행의 상징적 속도와는 대조적으로 삶의 속도가 제거되고 지연과 기다림만 남은 공항이라는 공간이 주는 긴장감까지도 다룬다. 전시는 10월 18일까지. 함혜리 선임기자 lotus@seoul.co.kr
  • [여성혐오 판치는 사회 대안 모색] “인권 부재가 부른 문제…청년 질타 아닌 기성세대 반성이 먼저”

    [여성혐오 판치는 사회 대안 모색] “인권 부재가 부른 문제…청년 질타 아닌 기성세대 반성이 먼저”

    “지금 우리나라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는 뭘까요. 아마도 각자 잘사는 것 아닌가요. 내가 잘살려고 하는데 걸리적거리는 게 있으면 짜증 나고, 분노를 표시하고 각자 개인으로 파편화되고 분열됐죠. 마을이나 이웃 공동체 속에서 함께 살아가는 데 대한 기쁨도 잃었어요. 여성 혐오라는 키워드에서 여성을 빼더라도 곳곳에서 벌어지는 혐오 행위와 무슨 차이가 있는지 모르겠어요.” 배우 권해효(50)씨는 서울신문과의 인터뷰 서두에서 “꼰대 같은 소리로 이해되지 않았으면 좋겠다”면서 “상식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 우리 사회가 무섭다”며 이렇게 운을 뗐다 그는 직업이 배우인 ‘시민 활동가’로 통한다. 1990년대부터 지속적으로 이주 노동자 인권 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지원 활동, 호주제 철폐 운동, 재일본 조선학교 후원, 반값 등록금 1인 시위를 하는 등 대표적인 사회 참여 연예인이다. 2012년 ‘미래를 이끌어갈 여성지도자 특별상’을 받았다. 두 자녀의 아빠로, 한국여성단체연합 홍보대사로 양성평등 운동도 벌이고 있다. 그는 지난 18일 서울 성미산 인근 카페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기성세대가 반성해야 된다”고 말했다. “강남의 한 고급 아파트에서 우유·신문 배달부들은 엘리베이터를 타지 못하게 했어요. 자신의 자녀와 임대아파트에 사는 아이들과 같은 학교에 보낼 수 없다고 학교 배정을 철회해 달라는 학부모들의 시위도 있었죠. 한 초등학교 입학식에서는 임대아파트 아이들만 따로 줄을 세웠어요. 우리 지역에 들어오는 기피 시설을 반대하는 님비현상도 넘치죠. 우리 아이들에게 타인에 대한 혐오를 보여 준 사람들이 다름 아닌 기성세대인 것 같아요.” 권씨는 “여성 혐오도 우리 사회 안에 있는 수많은 혐오 행위의 단면 아니냐”며 “청년들을 비난하기 전에 ‘위너’(승자)와 ‘루저’만 존재하는 사회로 만든 기성세대로서 미안하다”고 토로했다. 그는 여성 혐오는 ‘인권 문제’라고 단언했다. 권씨는 “ ‘김치녀’, ‘삼일한’, ‘보슬아치’ 등 여성 혐오적 표현들을 보면 사람이 사람을 상품이나 물건으로 대상화하지 않는 이상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라며 “여성을 성적 상품화해 온 사회 흐름과도 연결돼 있다”고 말했다. 이어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서 혐오적 표현을 쓰는 사람들에 대해 누구도 제어하거나 나무라지 않는 상황이 더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우리 사회가 젊은 세대의 목소리를 제대로 들어 주지 않고, 그들이 (사회로부터) 존중받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데서 박탈감과 분노가 작용하는 것 같다”며 “그래서 인권 감수성이 없는 게 아닌가 싶다”고 지적했다. 권씨는 “초·중·고교에서 인권이나 양성평등 교육을 제대로 하지 않은 데 따른 기회비용이 갈수록 커지는 것 같다”고 우려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한 케이블 방송이 최근 방송한 힙합 가사가 여성 혐오 논란에 불을 지폈다. -힙합 문화와 한국 사회의 혐오 코드를 연결하는 건 반대한다. 랩이 담고 있는 사회적 함의에 대한 이해나 맥락과 상관없이 무조건 비판하는 것도 건강하지 못하다. 공연장이 아니라 TV를 통해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전달된 건 해당 뮤지션보다는 그것을 걸러내지 않고 방송한 제작진에게 책임을 묻는 게 합당하다. →‘김치녀’, ‘보슬아치’, ‘아몰랑’ 등 여성 혐오를 내포한 표현들은 어떻게 보나. -표현 자체는 문제가 있다. 우리 헌법에 규정된 양성평등에 대한 최소한의 감수성을 가진 사람이라면 결코 쓸 수 없는 말이다. 재미있으니 쓴다는 말도 옳지 않다. 개똥녀라는 표현도 알고 보면 언론이 확대 재생산한 측면이 크다. 그런 말이 유행한다고 그 말이 그 시점에서 뉴스로서 가치가 있는 것이었을까. →2008년 2월 국회 앞에서 여성가족부 폐지 반대 1인 시위도 했는데. -여성부가 출범하게 된 데는 우리 정부 정책과 제도 안에서 여성 차별적인 부분을 시정하고 여성 정책을 새롭게 만들어 보자는 취지가 컸다. 지금도 정부 정책을 입안할 때 양성평등적 관점이 반영되는 게 중요하다. →지난해 세계경제포럼(WEF)이 발표한 성평등지수에서 한국은 142개국 중 117위였다. -지난 20년 동안 우리 사회가 진보해 왔다고 하지만 그 기간 자본 앞에서 가장 많이 노출됐던 게 ‘여성’과 ‘여성의 성’이 아니었나 싶다. 우리나라처럼 다양한 방식의 매매춘이 일어나는 나라도 없을 것이다. 1993년 ‘서울대 우 조교 성추행 사건’ 등은 여성에 대한 인식 변화를 가져왔지만 사회 저변에서 여성은 상품화·대상화됐다. 여성 혐오가 갑자기 튀어나온 게 아니라 우리 몸에 밴 여성을 돈 주고 살 수 있는 물건처럼 취급하는 상품화가 심화된 것 아닌가. →여성 혐오와 인권 문제를 같은 선상에서 봐야 한다고 했는데. -임대아파트 학생들과 같은 학교를 보낼 수 없다고 농성하는 엄마들의 모습과 혐오 시설이 우리 동네에 들어와서는 안 된다고 하는 ‘님비현상’ 등을 보면 인터넷에서 마치 배설하듯이 여성에 대해 혐오감을 드러내는 것과 본질적으로 무슨 차이가 있나 싶다. 한국처럼 급격히 공동체 문화가 깨진 곳이 있는가. 어느 순간 우리 사회에서 누군가와 함께 한다는 것이 귀찮은 일이 됐다. 서로가 서로에게 귀찮은 존재가 된 거 같다. 우리 사회가 함께 사는 법이 아닌 배제하고 혐오하는 법을 가르쳐 온 것 아닌가. →특히 청년 세대가 인터넷 등에서 여성 혐오를 드러내는 배경은. -학교부터 이상해지고 있다. 일부 예체능 학과가 아니라 대학이라는 공간 전체에서 일상생활과 카톡 등을 통해 벌어지는 ‘군대놀이’(다·나·까 말투, 복장단속, 90도 인사)가 우려스럽다.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학교 안의 폭력 등을 보면 젊은 세대들이 존중받아 본 경험이 없기 때문에 남을 존중하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여성 혐오 표현은 범죄이고, 기본적인 인권 문제다. 사회적 가치가 전도된 게 아닐까. →어떻게 풀어 가야 할까. -학교 내 양성평등 교육은 성교육 수준에 멈춰 있다. 상대에 대한 이해와 배려, 시민으로서의 행위 등 초·중·고 교과과정에서 ‘시민교육’과 ‘인권교육’이 이뤄져야 한다. 2012년 출범한 서울시 성평등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서울시 사업과 정책들을 보면 대부분의 사업이 어릴 때 학교에서 제대로 교육했으면 필요 없는 캠페인들이다. 여성 혐오라는 인권 문제도 어린 시절 제대로 교육했다면, 타인에 대한 혐오가 범죄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윤수경 기자 yoon@seoul.co.kr
  • [단독] [여론조사]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 처벌해야” 67.6%

    [단독] [여론조사] “지역감정 조장 정치인 처벌해야” 67.6%

    최근 정치권에서 지역감정 조장 발언 등을 법적으로 처벌하는 방안을 추진하는 데 대해 국민 10명 중 7명이 동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야 의원 12명은 특정 지역이나 사람을 비하하거나 모욕할 경우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한 공직선거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16일 발표된 서울신문의 대국민 여론조사에 따르면 정치인들의 지역감정 조장 발언에 대한 처벌에 찬성한다는 응답이 67.6%로 반대(19.9%)의 약 3.4배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지역감정 조장 발언 제재 입법화를 둘러싼 찬반 논쟁이 일고 있는 가운데 ‘표현의 자유’ 보장보다는 혐오 표현이 불러일으키는 감정싸움과 사회적 분열에 대한 우려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지역별로는 부산·울산·경남 지역의 67.7%, 대구·경북의 68.1%가 ‘찬성한다’고 답했다. 광주·전라 지역에서의 찬성률은 66.4%로 집계됐다. 서울은 62.0%로 영남권 및 호남권보다 비교적 낮게 나타났다. 또 연령대가 높을수록 혐오 발언 제재 입법화에 동의하는 것으로 조사됐다. 찬성 의견은 20대(64.8%)와 30대(62.6%)보다 40대(73.5%)와 50대(74.6%) 등에서 높게 나타났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새 영화] ‘픽셀’

    [새 영화] ‘픽셀’

    인도 타지마할이 외계의 공격을 받아 와르르 무너진다. 영국 런던의 하이드파크도 공격당한다. 뉴욕은 도시 전체가 아수라장이 된다. 그런데 지구를 침공해 지구인들을 공포에 몰아넣은 것들을 가만히 보니 어딘가 많이 익숙하다. 바로 1980년대 전자오락실 게임 속 존재들이다. ‘뿅뿅, 띠띠 띠리리~’ 하는 단순한 전자음에 맞춰 스페이스 인베이더 속 8비트 조악한 형체의 전투기가 픽셀(화소) 총알을 쏴대고, 갤러그의 전투기가 사람을 위로 끌어올려 납치하는가 하면 유령에 쫓겨다니며 쿠키를 주워 먹던 팩맨이 뉴욕의 건물과 자동차, 사람을 마구 먹어치운다. 지네는 몸통에 총탄을 맞을수록 분열돼 오히려 숫자가 점점 늘어나는 식으로 무차별 공격을 가한다. 또 동키콩은 철골 구조물 위에서 오크 술통을 던지며 지구인의 접근을 막는다. 이는 30년 전 미국 우주항공국(NASA)이 당시 아케이드 게임 등을 담은 타임캡슐을 쏘아올렸고, 이를 자기네들에 대한 선전포고로 오해한 외계인들이 게임 속 존재와 똑같은 모습으로 지구에 나타나 선공을 가한 것이다. 황당하기 짝이 없는 상황에서 지구를 구할 수 있는 영웅 역시 황당한 존재들이다. 어린 시절 동생 저금통 동전을 훔쳐가며 전자오락 게임 속에서 이미 숱하게 지구를 구했던 왕년의 ‘전자오락 덕후’들이다. 그 시절 팩맨 세계 챔피언, 동키콩 세계 챔피언 등은 세월이 흐른 뒤 찌질한 가전업체 설비기사, 감옥에 있는 사기꾼 등으로 별 볼 일 없이 지낸다. 물론 그중 한 명은 황당하게도 미국 대통령이 돼 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 역시 유치원 어린이들에게 동화책을 읽어주다가 버벅거린다며 핀잔 듣고, 아이들과 말싸움이나 벌이는 찌질한 대통령이다. 어쨌든 게임의 고수들이 급하게 소집됐다. 우락부락한 덩치의 미 해병대들이 아케이드 게임기 앞에서 갤러그나 팩맨 등 게임의 일정한 패턴을 진지하게 배우도록 훈련하는 것도, 보다 못해 고수들이 직접 나서서 왕년의 게임 실력을 선보이며 전투에 앞장서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북미보다 일주일 앞서 16일 국내에서 먼저 개봉한 영화 ‘픽셀’은 엉뚱하다 못해 황당한 상상력을 블록버스터로 승화시킨 작품이다. 몇 년 전 유튜브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던 2분 30초짜리 단편영상 ‘픽셀’이 이 B급 액션 블록버스터의 시발점이 됐다. 감독은 크리스 콜럼버스다. 그의 필모그래피 ‘나홀로 집에’, ‘박물관이 살아 있다’, ‘해리포터’ 시리즈 등이 보여주듯 만화적 상상력에 B급 유머를 버무려 영화화하는 데 재주가 있다. 애덤 샌들러, 조시 게드, 케빈 제임스의 능청스러운 코믹 연기가 황당한 설정, 지나치게 단순한 스토리 등을 상쇄해 준다. 30대 이상 연령층이라면 이제는 거의 사라져버린 전자오락실의 추억을 잠깐이나마 생각하게 할 법하다. 12세 관람가. 박록삼 기자 youngtan@seoul.co.kr
  • [심재억 기자의 헬스토리] ‘의사들의 전쟁’

     최근 들어 국내 각급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이 러시를 이루고 있다. ‘앉은 자리’에서 질병을 치료한다는 고답적인 의료 개념을 적극적으로 확장한 결과다. 즉, 의료가 더 이상 병원이나 지역에서 보수적으로 영향권을 지키려 해서는 안 된다는 개척적 발상이고, 오는 환자만을 치료하는 과거의 진료권 행사 방식을 뛰어넘는 도발적인 시도다. 이런 변화는 의료의 산업화라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가까운 중국 시장을 겨냥했다가 패퇴한 아픈 기억들을 가진 우리지만, 의료의 해외 진출이 의료의 차원을 넘어 새로운 개념의 영토 확장, 시장 확장이라는 점에서 가지 않을 수 없는 길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의료 해외진출은 거동이 불편한 환자를 의료진이 직접 찾아나섰던 예전의 왕진(往診)과는 또 다른 개념이다. 왕진이 아픈 환자만을 찾아가는 의료서비스였다면, 해외 진출은 환자를 찾아가는 왕진의료의 확대이자 동시에 적극적인 시장 개척을 겨냥하고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차이다.  물론, 이런 의료 수출의 배경에는 단기간에 우뚝하게 성장한 우리의 의료, 그리고 그 의료와 연계된 자본이 존재한다. 사실, 자본이라고 말하는 건 너무 거창하다. 왜냐면, 해외 시장을 열겠다고 독하게 맘 먹고 ‘나라 밖의 전쟁터’에 나서는 의료인들이 가진 자본이라는 ‘전쟁비용’은 국가가 지원하는 정책자금이나 대기업이 책정한 전략예산처럼 거액이 아니다. 그렇다고 병원이 대는 비용도 아니다. 오로지 의사 개인 돈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의 각오가 더 비장하고, 그들의 의지가 더 결연하다.  혹자는 “돈 까먹으러 가는 거지”라거나 “돈 많이 벌어놓은 모양이네”라고 쉽게 말하고 마는 의료인들의 그 답 없는 도전, 총성도 없는 살벌한 전쟁의 이면을 들여다 본다. ■찾아오는 환자는 늘었지만…  최근 중국 상하이에서는 한국브랜드병의원협회(회장 안건영) 주최로 의료 해외진출과 관련한 의미있는 심포지엄이 열렸다. 심포지엄에서 주제발표를 한 한림대 정왕교 교수와 한국개발연구원(KDI) 규제연구센터 김장욱 분석평가실장의 발표를 보면, 우리가 이 시점에서 왜 ‘의료’라는 상품을 들고 마치 ‘기업가’처럼 해외로 나가야 하는 지를 설득력있게 보여 준다.  먼저, 정왕교 교수의 발표를 보자.  우리나라를 찾은 외국인 환자는 2012년 15만 9464명이던 것이 2013년에는 21만 1218명으로 늘었으며, 같은 기간 이로 인한 수익은 1030억원이서 3930억원으로 4배 가까운 증가세를 보였다.  내용을 좀 더 상세하게 들여다 보자.  병원 이용 형태(2013년 기준)별로는, 외래진료가 17만 2702명으로 가장 많았고, 이어 입원 2만 137명, 건강검진 1만 8379명 등이었다. 이들이 이용한 병원으로는, 7만 7738명(36.8%)이 상급종합병원을, 5만 2996명(25.1%)이 종합병원을, 4만 6366명(22.0%)이 의원을, 1만 8638명(8.8%)이 병원을 각각 이용해 이들이 전체의 93% 가량을 차지했다. 눈길을 끄는 대목은 의원급 의료기관의 활약이다. 규모 면에서 취약할 수밖에 없는 의원급 의료기관의 해외 환자 유치율이 22.0%라는 건 의사 수 등 규모의 불리를 이겨냈다는 점에서 ‘선전’이라는 평가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면 환자들의 국적 분포는 어떨까. 역시 중국이 5만 6075명(26.5%)으로 압도적이다. 이어 미국 3만 2750명(15.5%), 러시아 2만 4026명(11.4%), 일본 1만 6849명(8.0%), 몽골 1만 2034명(5.7%)으로 집계됐다. 이밖에 베트남 카자흐스탄 캐나다 필리핀 영국 호주 우스베키스탄 사우디아라비아 싱가폴 아랍에미레이트 독일 프랑스 등이 0.4∼1.4%대 안에 자리잡고 있었다.  이를 국가별 증감 추이로 분석해 보면 우리 의료에 대한 각 나라별 선호도를 가늠할 수 있다. 중국의 경우, 2011년 1만 9222명에서 5만 6075명으로 3배 가까운 증가율을 보였고, 러시아는 9650명에서 2만 4026명으로 2.5배의 증가율을 보였다. 이에 비해 미국 환자는 약간의 증가 수준이었고, 일본 환자는 2만 2491명에서 1만 6849명으로 오히려 상당히 감소했다.    ■그래서 밖으로 나가야 한다  이 간단한 분석은 우리 의료의 해외 진출이 어느 곳을 목표로 해야 하는지를 말해준다. 답은 중국과 러시아다. 사실, 미국 환자는 속을 들여다 보면 실상과는 약간 다르다. 미국에서 직접 우리나라를 찾는 환자라기보다 미국에 거주하는 교포나 한국에 체류하는 주한미군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 그렇다고 보면 중국이 우리의 의료 수출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략적 타깃임을 간파하기는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떻든, 우리나라를 찾아 의료 서비스를 받는 해외 환자가 늘어나고 있다는 점은 고무적이다. 그러나 이 현상 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몇 가지 문제가 남는다. 이처럼 찾아오는 환자만을 대상으로 하기에는 수익 창출에 한계가 있으며, 이미 국내 의료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르렀다는 냉정한 평가가 그것이다. 또 인도적·선의적 관점에서도 의료 수준이 상대적으로 낙후한 곳을 찾아가 다양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사실은 권장할 일이다.  이에 따라 국내 각급 병·의원들의 해외 진출이 활성화하고 있다. 서울대병원이 아랍에미리트(UAE) 왕립 쉐이크 칼리파 전문병원 운영을 시작했는가 하면, 연세의료원·삼성의료원 등 대형 병원과 우리들병원을 비롯한 병·의원들의 해외 진출도 크게 늘었다.  한국개발연구원 규제연구센터 김장욱 분석평가실장의 분석에 따르면, 2014년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 건수는 모두 125건으로, 2013년의 111건 대비 12.6%의 증가 추이를 보였다. 국가별로는, 중국이 42건으로 가장 많았다. 이어 미국 35건, 동남아 18건, 몽골12건, 중동 5건 등으로 나타났다.  진출 형태도 눈여겨 볼만 하다. 진출 사례 125건 중 단독 진출이 31건으로 가장 많았고, 라이센싱(브랜드) 26건, 프랜차이징 25건, 연락사무소 21건, 합작 10건 등이었다. 나머지는 자선진료소나 위탁경영 등이었다. 특징적인 것은,미국의 경우 단독진출이 19건으로 가장 많았던데 비해 중국은 라이센싱과 프랜차이징이 각각 11,15건을 차지(단독 진출은 4건)하고 있다는 점이다.  해외에 진출한 의료기관의 진료과목에는 우리 의료의 강점과 약점이 함축적으로 투영돼 있다. 피부·성형이 39건으로 압도적 우위에 있었고, 한방 23건, 치과 13건, 종합 10건, 건강검진 4건 등이었다.    ■‘의료’와 ‘산업’ 사이  문제는 이렇게 물꼬가 트였지만, 갈 길이 멀고 험하다는 점이다. 의료기관이 해외로 진출할 때는 대부분이 산업적 목적을 1차적으로 지향한다. 하지만 국내 의료 관련법에 따르면 의료법인으로서는 원천적으로 해외 진출이 어렵다. 이 때문에 중국 등지의 광대한 시장으로 노리고 진출하는 대부분의 병의원들은 개인투자 형식을 취할 수밖에 없다.  이렇게 해외 시장으로 나갔던 수많은 의료기관들이 패퇴했다. 개인 자격으로는 현지 협상력이 떨어질 뿐 아니라 의료행위에 대한 현지 신뢰도에도 문제가 있을 수밖에 없으며, 정부의 보호 정책이 거의 없어 시쳇말로 현지 당국과 중간에 개입하는 거간꾼들의 쉬운 먹잇감이었던 셈이다.  중국에 진출했다가 고전 끝에 철수한 한 의료인은 “법과 제도 때문에 인력 파견이나 송금 등에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고, 현지 정보 부재와 자금 등의 문제 때문에 결국은 실패할 수밖에 없는 선택이었다”면서 “의료법인이 아니라 개인 자격의 해외 진출은 현지에서 신뢰할 수 있는 파트너를 확보하기 어려워 분쟁 상황에서는 누구의 도움도 받을 수 없는데, 이는 곧 실패를 의미한다”고 털어놨다.  한국브랜드병의원협회 안건영 회장은 “많은 국내 의료기관들이 해외로 나가 시장을 확보하고, 앞선 의료를 통해 국위를 선양할 기회를 갖고 싶어 하지만, 국내 법과 현지 정보부족, 현지 지원체제 부재와 인력수급, 자금 조달 등의 문제로 엄두를 못 내고 있다”면서 “국내에서 의료법인의 투자 규제 문제를 단시일 내에 전향적으로 풀어낼 수 없다면, 해외에 진출할 경우에만 산업적 기준을 적용하는 등 이원체제로 접근하는 것이 문제 해결의 한 방식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견해를 제시했다.  실제로, 우리나라의 의료는 규제나 법규정의 측면에서 서로 융합하기 어려운 양면성을 갖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먼저, 우리나라는 의료가 수익을 전제로 하는 것이 아니라 환자에 대한 진료가 우선이라는 고전적 의료관이 의료 정책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이다. 이는 의료에 대한 국민적 신뢰와 지지를 확보하는데 크게 기여한 것이 사실이다. 또 현재의 국민건강의료보험 체계도 이같은 공공성을 전제로 구축돼 지금까지 운영되고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국내 의료 시장이 과포화 상태에 이른 데다, 해외에서의 의료 수요가 늘어나면서 상황은 달라지기 시작했다. 병원에 앉아서 찾아오는 환자만 치료하던 고답적 방식이 아니라 적극적으로 환자를 찾아가야 한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해외 진출 논의가 달아오르고, 실제로 해외에 진출하는 사례도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모두 의료가 아닌 산업적 관점으로 보아야만 이해가 가능한 상황이라는 점이다.  김정욱 분석평가실장이 의료 해외진출의 애로사항으로 제시한 △정보 부족 △현지 네트워크 부재 △법과 제도 미비 △인력수급의 어려움 △자금 조달체계의 부재 등은 뒤집어 말하면 우리 의료기관이 해외로 진출하는데 필요한 기본 요소 중에서 의료인들의 의지 말고는 갖춰진 게 거의 없다는 의미로도 해석이 가능하다. 이런 상태라면 ‘수출’로 표현되는 고부가 의료산업의 해외 진출은 요원할 수밖에 없다.  실제로, 국내 의료기관의 해외 진출이 많았지만, 성공 사례가 손으로 꼽을 만큼 희귀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수많은 제약과 규제의 벽을 넘어 현재 중국 정부가 비준한 유일한 한중 합작병원으로 자리 잡은 상하이 서울리거성형미용병원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많은 점을 시사하고 있다.    ■상하이 서울리거성형미용병원의 도전  상하이 중심가 동방명주와 월드금융센터, 상하이센터가 한눈에 보이는 황푸 강변에 자리 잡고 있는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료수출협회가 공인한 의료수출 제1호 병원이다. 중국 철도 시설을 현대적으로 리노베이션한 연건평 2000여 평의 이 병원은 한국 의료기관이 아니라 의료인 개인의 중국 진출이라는 불리를 극복하기 위해 3년여에 걸쳐 현지 규제기준 이상의 인력과 시설을 갖췄다. 반도체 공장 수준의 무균 시스템병원에다 심장 격인 수술실은 천재지변에 대비한 비상 동력 공급장치을 설치했으며, 최근 급신장하고 있는 중국의 경제력을 감안해 최고 수준의 스파 치료시설도 마련했다. 이 병원의 목표는 간단하다. 중국 최고의 글로벌 미용성형 병원을 만들어 최고의 의료 수준과 서비스로 승부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한국의 앞선 의료시스템과 잘 훈련된 의료인력을 현장에 투입해 피부과, 성형외과, 모발이식 등으로 중국 현지 의료의 ‘거대한 틈새’를 공략했다. 현지인들의 반응은 고무적이었다. 이곳에서 치료받고 있는 한 중국인 환자는 “중국에서 가장 발전했다는 상하이에서도 지금까지 정도 수준의 의료서비스를 제공받기는 어려웠다”면서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 앞선 성형 및 피부 관련 의료서비스를 한국인 의사로부터 제공받는다는 점 뿐 아니라 중국 의료의 수준과 다양성을 확대하는 계기가 된다는 점에서도 바람직한 사례”라고 말했다.  서울리거병원이 중국에서 주목할 성공을 거둔 것은 철저한 현지화 결과라는 게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홍성범 병원장은 중국 현지화의 관건으로 중국에 대한 관심과 이해를 들었다. “이곳에서 중국을 단순한 시장으로만 보려고 하면 답이 보이지 않는다. 중국이 아무리 경제적으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하지만, 그들의 부가 거저 얻어진 것은 아니다. 그들을 진정성 있게 대하고, 성실하게 진료하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라면서 “현지 정보와 인적 네트워크, 자본 등에서 결코 좋은 조건이 아니라면 정착할 때까지는 물론 안정된 후에도 철저한 현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서울리거병원의 현지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는다. 홍성범 병원장은 “한국의 의료라고 해서 당장 중국 환자들이 관심을 가질 거라는 생각은 착각”이라면서 “중국 시장을 공략 대상으로 삼기보다 중국의 의료 발전에 기여한다는 차원에서 현지 의사들을 교육하는 등의 접근도 중요한 현지화 전략이다. 이런 맥락에서 서울리거병원은 한국의료수출협회로부터 ‘국제 성형외과 의사교육센터’로 공인받아 중국 의사들을 교육하고 있고, 이를 더욱 강화할 방침”이라고 전했다.  한국 의료기관의 중국 진출을 전문적으로 지원하는 안지에로펌 이수철 변호사는 “의료 수출의 전제조건은 철저한 현지 분석과 대응, 그리고 법률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의 지원을 받는 것”이라면서 “이와 함께 정부의 금융지원은 물론 국내에서는 당장 현실화가 어려운 영리병원 문제에 대한 보완도 절실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국가 차원의 전략적 제도 보완이 없으면 문화적·지리적으로 우리와 이질감이 적고, 시장이 큰 중국에서도 다른 경쟁국에 밀릴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고 덧붙였다.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  홍성범 병원장은 “법적 명의가 중국 측에 있어 권리 행사가 극히 제한적인 원내원(院內院) 방식이나 수익률 제고에 한계가 있는 기술제휴 컨설팅 방식이 아니라 서울리거병원은 투자자 지배권을 확보할 수 있는 합작병원 방식으로 중국에서 입지를 다졌다”면서 “이를 성공이라고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성공으로 가는 한 과정일 뿐이며, 지금부터가 시작”이라고 설명했다.  이같은 지적은 현장 조사에서도 확인된다. 2013년에 한 조사기관이 해외 진출 경험이 있는 의료기관을 대상으로 실시한 ‘의료시스템 해외 진출 현황 및 전망’조사 결과, 특별법 제정 등 법적·제도적 개선방안 마련이 필요하다는 응답이 무려 49.8%에 달했다. 또 전문기관과 전문가 육성을 통한 지원이 45.4%, 전문 펀드 조성 등 금융 지원방안 마련이 33.8%에 이르렀다. 정부간 보건의료 협력외교(29.7%), 해외진출 병원에 대한 별도의 평가 및 인증절차 마련(23.1%)도 중요한 대책으로 꼽혔다.  사실, 영리병원 허용 문제는 국내에서 논의가 진척되지 않고 있는 현안이다. 경제력의 격차가 의료 격차로 나타나는데 대한 국민적 거부감 때문이다. 여기에다 영리병원을 허용해서 실질적으로 가장 많은 수혜를 보는 집단이 민간보험사일 것이라는 점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로 꼽힌다. 영리병원의 비싼 의료비를 국민건강보험이 감당할 수 없어 결국 부유층은 사보험으로 빠져나갈 수밖에 없어 사보험은 배를 불리는 반면 국민건강보험 체계는 위기를 맞을 가능성이 높다는 전망이다. 또 사회적으로 건전하지 못한 자본이 대거 병원 경영에 유입되는데 따른 부작용도 무시할 수 없다.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영리병원을 허용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일반적인 관측이다. 일각에서는 “선거가 있는 한 영리병원 문제는 풀리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하기도 한다.  필자는 지금도 국내에서의 영리병원 허용에 반대한다. 논리는 이렇다. 같은 감기 환자를 똑같은 방법으로 치료하는데, A 병원의 진료비는 1000원이고 B 병원의 진료비를 5000원이다. 이는 진료 수준이나 치료 방식, 약제의 차이에서 생긴 것이 아니라 진료 외적 서비스에서 발생한 차별이라고 보는 게 옳다. 가뜩이나 양극화가 심각한 우리나라에서 의료를 두고 이런 불평등이 현실화한다면, 누구도 감당할 수 없는 내부 분열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게다가 건보 가입자가 속속 사보험으로 말을 갈아타면서 발생하는 건강보험 체계의 붕괴는 국민보건 차원에서 볼 때 재앙이다. 국내외 민간 보험사들이 영리병원 허용에 목을 매다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문제 때문에 의료 수출까지 막아서는 안된다는 논리도 충분한 설득력을 갖고 있다. 의료와 산업이라는 두 측면에서 볼 때, 국내 의료인력과 시설은 이미 포화 수준에 이르렀다. 이 때문에 적절하게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의료에너지를 투입할 합리적인 용처가 필요하다. 의료수출을 통해 의료 영역을 확대해야 하는 한 가지 이유가 여기에 있다.  또다른 관점은, 의료를 적극적으로 산업화해 국부 창출에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는 논리다. 사실, 우리 의료는 임상 분야에 지나치게 치중해 왔다. 당장은 진료의 질과 양이 일정 수준 확대되는 효과를 보였으나, 기초연구를 통한 의료 수준의 향상에는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는 구조여서 의료 신기술은 물론 의료와 밀접한 제약 및 의료기기 산업 분야에서도 비효율성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의료 수출에 대한 인식이 개선되지 않고 있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의료의 산업화에 대한 인식이 부족해 관련 법령의 정비가 이뤄지지 않고 있으며, 이는 결국 의료의 낙후와 건강보험 수급체계의 왜곡, 의료수익의 투자 기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얼마 전, 서울 강남의 한 개원의 원장 집에서 발견된 거액의 현금 다발은, 투자 등 선순환 체계로 끌어들이지 못한 의료수익이 어떤 문제를 낳을 수 있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상하이에 터를 닦은 서울리거병원이 실패하면 적어도 의료 분야에 있어 중국은 더 이상 한국 의료의 이상향이 될 수 없게 된다”는 홍성범 원장의 비장함이 상징하는 한국 의료의 현실이 더 이상 의료선진화의 족쇄가 되어서는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한번 두드려보고 마는 식이 아니라 실효성있는 정책을 만들고, 이를 근거로 국민적 합의를 끌어 내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야심 만만한 우리 의료인들이 ‘의료’라는 무기를 들고 해외로 나가 전쟁을 벌이는 판에 정부가 팔짱만 끼고 있어서는 되는 일이 아니다.  jeshim@seoul.co.kr
  •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특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세종로의 아침] 조계종 특사/김성호 문화부 선임기자

    민주주의 사회에서 법과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할 정의다. 그래서 모든 모임과 조직은 물론 국가의 집행과 조치에는 법과 원칙의 명제가 따라붙는다. 그런데 많은 경우 그 법과 원칙은 화합과 균형의 기준이 아닌, 분열과 쏠림의 명분이 되는 모순을 낳는다. 한국불교의 맏형 조계종이 법과 원칙의 시비로 시끄럽다. 1994년 범계(犯戒)행위를 이유로 멸빈당한 서의현 전 총무원장의 감형이 단초이다. 멸빈은 승적을 영구 박탈하는 불교계 최고의 형벌이다. 극형을 받았던 서 전 총무원장에게 느닷없이 ‘공권정지 3년’이라는 극단의 감형 사면 판결을 냈으니 평지풍파가 일 만하다. ‘종단 명예와 위신 실추의 장본인’으로 낙인찍혀 종단에서 내쳐졌던 인물을 21년 만에 복권시킨 조치가 마뜩지 않다. 일반인들은 최근 조계종 사태를 그저 ‘불교계가 또 왜 저러나’식의 호기심 차원에서 보는 것 같다. 하지만 바깥 시선과는 달리 조계종단의 사정은 심각하다. 법과 원칙을 어긴 범법과 일탈에 대한 거센 반발이 어디로 튈지 모르는 형국이다. 서 전 총무원장에 특별사면 판결을 내린 재심호계원은 서 전 원장이 고령인데다 참회 입장을 밝혀 왔고 사면 여론이 적지 않다는 점을 들고 있다. 그 사면의 바탕에 대승적 차원의 화합을 두고 있다. 그런데 그 입장에 대한 조계종단 사부대중의 민심은 정반대이다. 1994년의 종단사태는 조계종을 거듭나게 한 분기점이고 서 전 원장은 그 갈림의 정점에 놓였던 인물이다. 1994년 이후 종단이 일관되게 목표로 삼아 달려온 개혁정신의 계승을 지금 왜 거스르냐는 것이다. 또 한 가지는 바로 나라의 헌법과 법에 해당하는 조계종단 종헌·종법의 위배이다. 엄연히 법과 원칙의 실행 도구인 종헌·종법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몇몇 스님들이 모여 일방적으로 사면 복권을 결정한 밀실의 음모로 보고 있다. 종무원들의 반발 모임으로 시작된 판결 철회 요구는 재가자 연대와 서명운동으로 번지고 있고 1994년 개혁운동에 참여했던 스님들까지 동참하면서 그야말로 벌집을 쑤셔놓은 형국이다. 재심호계원이 종단 화합의 계기로 든 사면 복권이 파국을 향한 촉매가 된 것 같아 안타깝다. 조계종단의 내홍이 걷잡을 수 없이 확산되던 무렵 박근혜 대통령이 광복절 특사를 거론해 주목된다. 지난 13일 청와대 수석비서관회의에서 박 대통령이 광복 70주년에 단행할 필요가 있다고 밝힌 광복절 특사의 이유는 국가 발전과 국민 대통합이다. 경제사정이 어렵고 이런저런 갈등이 뒤섞이는 나라 형편상 특사 조치에 대한 환영이 재계를 중심으로 연일 이어진다. 그 한쪽에서 특별사면에 신중한 입장을 견지해왔던 박 대통령의 다소 이례적인 작심에 쏠리는 견제의 시선이 적지 않다. 법과 원칙을 살린 형평성의 지적이다. 내일은 자유민주주의를 기본으로 한 대한민국 헌법의 제정과 공포를 경축하고 헌법수호를 다짐하기 위해 제정한 국경일 제헌절이다. 법과 원칙의 시비로 얼룩진 조계종 내홍도, 나라 발전과 국민 대통합을 위한 것이라는 광복절 특사도 제헌절을 계기 삼아 모두 차분히 정리되기를 바란다. kimus@seoul.co.kr
  • [그리스 협상 타결 이후] 집권당 거센 반발·공무원 파업 선언… 설 곳 없는 치프라스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과 3차 구제금융 협상에 합의한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가 집권 시리자로부터의 거센 반발에 직면, 정치적 위상이 흔들린다고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가 13일 전했다. 강경파인 좌파연대를 중심으로 연합 정당인 시리자 안에서만 40여명이 의회 표결에서 합의안에 반대표를 던지거나 기권할 방침으로 전해졌다. 시리자 안에서 “합의안은 그리스에 대한 모욕”이라거나 “채권단이 그리스를 통치하는 신식민주의”라는 내부 총질이 이어졌다. 그리스 공공노조연맹은 15일 의회의 합의안 처리 시점에 맞춰 반대 파업을 선언했다. 야당 협조로 합의안의 의회 통과는 무난한 기류이지만, 집권 세력의 분열이 가속화되면서 치프라스 총리가 실각할 가능성도 제기된다고 영국 가디언은 전했다. 독일에서도 의회 통과가 부담 요인이다.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과 유럽중앙은행(ECB) 등으로부터 구제금융을 받은 뒤인 지난 5년 동안 이런 반발은 재현되어 왔다. 같은 정파 안에서의 분열, 선거로 위임한 합의 결과에 반발하며 백지화를 요구하는 노조, 구제금융에 대응해 긴축안을 제안하는 채권단을 ‘악마’처럼 치부하는 여론 등이 그렇다. 국제 채권단의 백약이 그리스를 만나면 무용지물이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시리자의 정권교체 전후에 그리스 사태 분석에 본격 뛰어든 정치학자들은 ‘후진 정치’에서 답을 찾았다. 그리스 총선 직후 ‘역사의 종언’ 저자로 유명한 프랜시스 후쿠야마 미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후견주의를 통해 표를 얻는 그리스, 이탈리아와 그렇지 않은 독일, 스칸디나비아 등 ‘두 개의 유럽’이 있다”고 주장했다. 후견주의란 보스 중심으로 정당을 구축, 표를 몰아주는 지지 세력에 공직과 같은 반대급부를 제공하며 패거리를 짓는 정치를 말한다. 정병기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한국의 무상보육, 기초노령연금 같은 포퓰리즘 정책이 불특정 대중에 대한 인기영합정책을 뜻한다면, 후견주의는 정치 후원 집단에 이권을 몰아주는 행위로 서로 다르다”고 설명했다. 이어 “1974년 군사정권이 끝난 뒤 번갈아 집권한 두 정당은 집권할 때마다 정실주의 인사를 통해 지지 세력에 보은했다”고 덧붙였다. 좌파, 우파를 막론하고 정실주의 인사를 남발해 금융위기 직전 그리스 공무원 수는 노동인구의 27%인 100만명에 달했다. 전문성이 결여된 채 비대해진 관료 조직은 ‘정부 부패’와 ‘급행료가 필요한 사회’를 야기시켰다. 국제투명성기구(TI)는 2012년 그리스 사태의 원인을 ‘뇌물의 대가’로 규정한 보고서에서 “공립병원 수술 급행료가 100~3만 유로, 건축 인허가 급행료가 200~8000유로 등”이라며 아래부터 위까지 만연한 부패 실태를 고발했다. 정치학자들의 분석은 세계에서 멕시코와 한국에 이어 세 번째로 긴 노동시간(2013년 기준 2037시간), 유럽연합(EU) 국가 평균보다 낮은 수준인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비 지출 비중(2007년 기준 21.3%)에도 불구하고 그리스가 회생하지 못하는 이유를 보완, 설명해준다. 그러나 문제의 뿌리가 진정 정치에 있다면 ‘그리스 디스카운트’가 극복될 길도 한결 요원해질 전망이다. 홍희경 기자 saloo@seoul.co.kr
  • [그리스 기로] 메르켈 “합의 없다” 올랑드 “그렉시트 없다” 충돌 속 일부 진전

    [그리스 기로] 메르켈 “합의 없다” 올랑드 “그렉시트 없다” 충돌 속 일부 진전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은 12일(현지시간) 그리스 개혁안 및 구제금융 협상 재개 논의에 진전이 있었다고 밝혀 주목된다. 하지만 이날 열릴 예정이었던 유럽연합(EU) 정상회의가 막판에 전격 취소되고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정상회의만 열리는 등 협상이 난항을 겪었다. 독일과 핀란드 등 채권국 일부가 그렉시트(그리스의 유로존 탈퇴)를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는 데다 유로그룹(유로존 재무장관 협의체)도 그리스의 개혁 의지와 신뢰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바람에 협상이 겉돌았다. 반면 남부 유럽 국가는 그리스에 유화적인 입장을 나타내 정상회의에서 유로존이 분열되는 모습을 보였다. 유로존 정상회의에 앞서 열린 유로그룹 회의는 11일부터 이틀간에 걸쳐 그리스의 새 경제 개혁안을 두고 10여 시간 마라톤협상을 벌였지만 합의를 이끌어 내지 못했다. 예룬 데이셀블룸 유로그룹 회장은 “그리스의 제안과 신뢰성, 재정적인 문제들에 대해 심도 있는 논의를 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고 밝혔다. 볼프강 쇼이블레 독일 재무장관은 “부채 탕감은 불가능하다”고 선을 그은 뒤 “그리스 개혁안을 믿을 수 없어 협상을 진행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알렉산데르 스투브 핀란드 재무장관도 “유로존이 그리스에 추가 구제금융 제공안을 승인할 때가 아니다”라며 “일부는 다른 의견을 가지고 있을 수 있지만 유로존 회원국 절반 이상이 우리와 같은 입장”이라고 거들었다. 반면 프랑스를 비롯해 스페인, 이탈리아, 키프로스, 몰타, 아일랜드, 포르투갈 등은 그리스에 유화적인 태도를 견지했다. 프랑수아 올랑드 프랑스 대통령은 “그리스의 새로운 제안은 진지하고 신뢰할 만한 것”이라고 평가했으며, 마테오 렌치 이탈리아 총리도 “협상 타결을 더욱 낙관하게 됐다”고 그리스의 입장을 두둔했다. 이에 따라 유로그룹 회의는 그렉시트를 밀어붙이는 독일, 핀란드, 벨기에, 슬로베니아, 슬로바키아 등 북부 유럽과 유로존에 잔류시키려는 프랑스, 이탈리아 등 남부 유럽 간 대결 구도로 진행됐다. 이에 앞서 독일과 핀란드가 그렉시트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그리스 정부를 강하게 압박했다. 독일 정부가 그리스가 제시한 개혁안보다 더 강도 높은 500억 유로 상당의 국유자산 매각을 통해 부채를 갚는 개혁 프로그램을 추진하든지, 아니면 앞으로 5년간 유로존을 한시적으로 떠나 채무조정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는 내용의 문건 폭로와 핀란드 의회는 그리스에 대한 어떤 추가 구제금융 방안도 수용하지 않기로 결정했다는 보도가 잇따라 나왔다. 그렉시트 대안론은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지그마어 가브리엘 부총리, 쇼이블레 재무장관 사이에 조율된 사안이라고 DPA가 전하면서 파문이 커졌다. 보도 직후 독일 정부 문건이 ‘플랜B’ 수준으로 검토되던 실무 보고서일 뿐이라는 후속 보도가 나오고 그리스 정부도 유로그룹 회의에서 독일이 그렉시트를 거론하지 않았다고 밝혀 일단 논란은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김규환 선임기자 khkim@seoul.co.kr
  • [와우! 과학] 흡연, 정신병 유발 가능성 있다

    [와우! 과학] 흡연, 정신병 유발 가능성 있다

    흡연이 폐 기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병 유발과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진은 1980년∼2014년 전 세계에서 진행된 연구 61개, 정신병 환자 29만 명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약 29만 명 중 최초로 정신병 진단을 받았을 당시 흡연자였던 사람은 전체의 5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신병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흡연 확률이 3배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매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비 흡연자에 비해 정신병 발병 시기가 1년가량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담배 성분 중 하나인 니코틴과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담배의 니코틴이 뇌에 쾌락과 보상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문제는 도파민이 지나치게 과분비 되면서 정신분열증 등 정신병이 유발된다는 것. 정신병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흡연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 둘의 연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킹스칼리지런던의 로빈 머레이 교수는 “통계학적 분석만으로 담배가 정신병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담배와 도파민 사이의 관계는 명확하며 담배가 정신병 유발의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흡연이 약물 부작용을 억제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돕는 측면 때문에 정신이상자의 흡연율이 정상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설명됐다. 즉 정신병 때문에 흡연을 한다는 것. 그러나 이번 연구는 정신병 환자들이 진단 이후에 더 많이 흡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최초로 정신병 진단을 받았을 때 흡연율이 높은 상태였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란셋 정신의학지‘(The Journal of Lancet Psychiatry)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꽃다운 26세에 노화 시작… 38세 이후 천천히 늙는다

    꽃다운 26세에 노화 시작… 38세 이후 천천히 늙는다

    또래 중에도 유독 나이 들어 보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려 보이는 사람이 있다. 최근 국제 공동연구진이 나이에 비해 늙어 보이는 사람은 피부 노화뿐만 아니라 신체의 생물학적 노화도 빨리 진행되고 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겉보기엔 노안이어도 몸은 팔팔하다”고 주장해 온 사람들은 다소간 충격을 받을 만한 얘기다. 연구진은 또 노화는 누구나 꽃다운 나이인 20대부터 시작된다고 결론 냈다. 미국 듀크대 의대,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영국 킹스칼리지, 이스라엘 헤브루대, 뉴질랜드 오타고대 등의 국제 공동연구진은 사람의 노화가 평균적으로 26세에 시작돼 38세까지는 빠르게 진행되다가 40세를 넘어서면서 속도가 완만해진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 연구결과는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8일자에 실렸다. 연구팀은 뉴질랜드의 더니든 지방에서 1972년 4월~1973년 3월에 태어난 1037명을 대상으로, 이들이 세 살이 되던 해부터 38년간 추적조사를 벌였다. 연구팀은 3, 5, 7, 9, 11, 13, 15, 18, 21, 26, 32, 38세 때 18가지 생체지표 검사를 실시했다. 신장, 간, 폐, 대사 및 면역기능, 콜레스테롤 수치, 치아 상태, 염색체 끝 부분에서 세포분열을 조절해 노화를 결정하는 ‘텔로미어’의 길이, 눈 뒤쪽 모세혈관의 상태 등을 통해 생체 나이를 측정했다. 연구팀은 노화의 속도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26세에 시작돼 38세 때까지는 이후 연령대에서보다 빠르게 진행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실험 참가자들이 38세가 됐을 때 측정한 생체 나이는 28세에서 61세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는 것으로, 어떤 사람은 생체 나이가 실제보다 최대 10세 어린 반면 어떤 사람은 23세나 많다는 얘기다. 그러나 또래보다 노화 속도가 빠른 사람이나 느린 사람 모두 40세가 넘으면 생체 노화 속도는 크게 둔화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팀은 특히 실제 나이보다 생체 나이가 많아 노안인 사람은 또래에 비해 신체능력과 정신적 기능도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빨리 늙는 사람은 몸의 평형기능과 운동기능이 좋지 않아 계단을 오르거나 물건을 나르는 데도 어려움을 겪는다는 말이다. 헤브루대 살로몬 이스라엘 교수는 “생물학적 노화에서 유전적 영향은 20%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환경적 영향이 큰 만큼 생물학적 노화도 늦출 수 있다”며 “노화와 관련된 질병 연구가 노인층에 집중돼 있는데 관련 질환 예방을 위해서는 젊은 층의 노화 연구도 필요하다는 것을 보여 준 연구”라고 설명했다. 유용하 기자 edmondy@seoul.co.kr
  • 흡연, 정신병 유발에도 영향 끼친다

    흡연, 정신병 유발에도 영향 끼친다

    흡연이 폐 기능을 저하시킬 뿐만 아니라 정신병 유발과도 연관이 있다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연구진은 1980년∼2014년 전 세계에서 진행된 연구 61개, 정신병 환자 29만 명의 데이터를 비교 분석한 결과, 약 29만 명 중 최초로 정신병 진단을 받았을 당시 흡연자였던 사람은 전체의 57%에 달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 정신병 환자들은 정상인에 비해 흡연 확률이 3배 이상인 것으로 조사됐다. 또 매일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비 흡연자에 비해 정신병 발병 시기가 1년가량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연구진은 이러한 현상이 담배 성분 중 하나인 니코틴과 뇌의 신경전달물질 중 하나인 도파민과 연관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담배의 니코틴이 뇌에 쾌락과 보상을 느끼게 하는 도파민 분비를 촉진시키는데, 문제는 도파민이 지나치게 과분비 되면서 정신분열증 등 정신병이 유발된다는 것. 정신병 환자가 정상인에 비해 흡연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은 알려져 있었지만 이 둘의 연관관계가 밝혀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연구를 이끈 킹스칼리지런던의 로빈 머레이 교수는 “통계학적 분석만으로 담배가 정신병의 원인이 된다고 할 수는 없으나, 담배와 도파민 사이의 관계는 명확하며 담배가 정신병 유발의 요인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연구에서는 흡연이 약물 부작용을 억제하고 심리적인 안정을 돕는 측면 때문에 정신이상자의 흡연율이 정상인에 비해 높은 것으로 설명됐다. 즉 정신병 때문에 흡연을 한다는 것. 그러나 이번 연구는 정신병 환자들이 진단 이후에 더 많이 흡연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최초로 정신병 진단을 받았을 때 흡연율이 높은 상태였다는 것에 중점을 뒀다는 점에서 학계의 관심을 받았다. 한편 이 연구결과는 ‘란셋 정신의학지‘(The Journal of Lancet Psychiatry) 최신호에 실렸다.  송혜민 기자 huimin0217@seoul.co.kr
  • [포토]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

    [포토] “양심의 자유를 보장하라”

    인권 관련 시민단체들이 양심적 병역 거부자를 처벌하는 병역법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위헌 결정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와 전쟁없는세상 등 시민단체들은 9일 서울 재동 헌법재판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병역법 88조 1항 1호가 헌법에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양심에 따른 병역 거부권이 1990년 국회 비준을 받은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에 따라 보장받는 권리라고 지적했다.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규약 18조는 모든 사람이 사상·양심·종교의 자유에 대한 권리를 가진다는 것을 규정하고 있는 조항이다. 이들은 이어 올해와 내년 유엔에서 한국의 인권 상황에 대한 심의가 있을 것이라고 언급하며 “한국은 유엔 인권이사회 이사국이자 유엔 사무총장을 배출한 나라인데도 인권 상황은 점점 더 후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들은 헌재가 위헌 결정을 내린다고 해도 우리 사회가 분열되거나 혼란이 생기지는 않을 것이라며 오히려 한국 사회가 한 걸음 더 진보하는 데 이바지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희진 국제앰네스티 한국지부 사무처장은 “올해 5월 국제앰네스티가 한국 내 양심적 병역거부 수감자가 669명으로 전 세계 수감자의 92.5%를 차지한다는 보고서를 냈다”면서 “보고서가 해외에서 높은 관심 대상이 되면서 ‘이것이 북한이 아니라 한국의 사례’라고 강조하는 언론도 있었다”고 말했다. 헌법재판소는 이날 오후 2시부터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이 제기한 병역법 88조 1항 1호에 대한 위헌 소송 공개변론을 진행한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문화 In&Out] 국민적 불안감에 맞닿은 영화 ‘연평해전’의 선전

    [문화 In&Out] 국민적 불안감에 맞닿은 영화 ‘연평해전’의 선전

    영화 관계자들 사이에 “영화는 하나의 생명력을 지닌 유기체”라는 말이 있다. 일단 제작자의 손을 떠난 영화는 관객의 것임과 동시에 당대의 사회문화적 분위기가 흥행의 변수로 작용한다는 뜻에서다. 그런 의미에서 영화 ‘연평해전’은 산전수전을 다 겪은 영화다. 제작에서 기획까지 무려 7년이 걸렸고 중간에 투자 배급사가 교체됐다. 촬영 중간에 주연배우가 바뀌는 초유의 사태를 겪기도 했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 때문에 홍보에 차질을 빚었고 개봉일마저 연기됐다. 언론 시사 이후에 영화 관계자들의 평가도 좋은 편은 아니었다. 30여분의 해상전투 신은 긴장감 있게 그렸지만 초·중반까지 전개가 늘어지는 등 만듦새가 매끄럽지 못하고 실화 영화의 전형성에서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그럼에도 이 영화는 300만명의 관객을 동원하며 ‘예상 밖의’ 선전을 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로는 현재 한국의 사회 분위기와 국민 정서를 관통하고 있다는 점이 꼽힌다. 2002년 한·일월드컵 때 국가적 무관심 속에 스러져 간 여섯 청춘의 이야기는 세월호 참사에 이어 메르스 사태를 거치면서 국가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국민들의 불안감과 맞닿아 있다는 분석이다. 다소 ‘올드’해 보이는 이 영화에 20~30대 관객이 몰리고 있는 것도 이와 관련 있다. 휴전이나 전쟁에 대해 추상적인 인식을 갖고 있는 젊은이들은 불과 10여년 전 벌어진 ‘연평해전’을 통해 군대 문제를 자신들의 현실적인 문제로 받아들였다. 영화에서 청각장애를 가진 어머니의 효자 아들로 나오는 박동혁 병장, 해군 출신 아버지의 속깊은 아들인 윤영하 소령, 곧 태어날 사랑스러운 아이의 아버지인 한상국 중사는 주변에서 볼 수 있는 우리 이웃들이다. 영화를 본 30대 직장인 이모씨는 “월드컵 때 무관심 속에 외롭게 산화한 6명의 용사에게 미안함을 느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국민에 대한 국가의 진정한 의무를 생각하게 되는 이 영화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데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역사적인 공과는 분명히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지만 정치 논쟁은 국민을 또다시 분열시키고 상처받게 만들 뿐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 영화 이후 제2연평해전 당시 김대중 정부의 대처를 놓고 보수와 진보의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영화 평론가 정지욱씨는 “‘변호인’이나 ‘국제시장’이 1000만 관객을 동원한 것은 좌우 논리가 아니라 권력과 부당한 대우 속에서 홀로 힘겨운 삶을 살아야 했던 시대적 정서에 사람들이 공감했기 때문이고, ‘연평해전’도 그런 맥락의 영화”라고 평했다. 다만 “관객 점유율이 20%에 그치는 평일에도 ‘연평해전’에 800~900개의 스크린을 잡아 주는 등의 몰아주기식 마케팅은 눈살을 찌푸리게 한다”고 덧붙였다. 이은주 기자 erin@seoul.co.kr
  • [열린세상] 우리는 바른길을 가고 있는가/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열린세상] 우리는 바른길을 가고 있는가/홍성걸 국민대 행정정책학부 교수

    광복 70주년을 눈앞에 둔 이 시점에 우리는 바른 길을 가고 있는가? 지난 수십년간 숨 가쁘게 달려온 덕분에 먹고살 만하고, 정치적 민주화를 이룬 것도 사실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나 세계은행 등에서는 한국의 존재 자체가 개발도상국에는 희망이라고까지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어떤가? 공권력의 권위는 땅에 떨어져 경찰과 검찰은 조롱의 대상이 된 지 오래다. 툭하면 데모하면서 경찰차를 때려 부수고 불 지르는 것을 당연한 권리로 생각한다. 검찰 조사를 믿지 못하겠다는 정치권은 늘 특별검사를 주장한다. 영해를 지키기 위해 제주도 남단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는 데도 십년이 넘도록 착공조차 못했고, 착공 후에도 이에 반대하는 시위로 몸살을 앓는다.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소를 짓는 것도 어렵지만 애써 발전소를 지어도 지역 주민의 반대로 송전탑을 제때 세우지 못해 전력 공급이 차질을 빚는 나라다. 법은 있어도 지키면 손해인 나라다. 같은 일을 해도 비정규직이라는 이유로 저임금을 감수해야 하고 그나마 2년마다 실직의 공포를 겪어야 한다. 나이 50이면 직장에서 내몰려 자영업에 허덕이다가 빈곤층으로 주저앉는다. 취업의 기회조차 갖지 못한 젊은 세대들에게 일자리를 나누려면 임금피크제를 도입할 수밖에 없지만 노동계는 요지부동이다. 양극화는 갈수록 심해지는데 대기업의 횡포는 나아지지 않는다. 나라를 지키라고 월급 주고 키운 직업 군인들이 돈에 눈이 멀어 무기 획득 과정에서 부정을 저지르는 나라다. 부실한 무기를 가지고 전투에 임해야 할 병사들에 대한 생각은 어디에도 없다. 생때같은 자식들을 군에 보내고 그들이 목숨을 바쳐 영해를 수호했건만 전사가 아니라 순직이라는 나라다. 수년간 그들을 추모하는 자리에 대통령은 물론 국무총리도 찾지 않았다. 세월호 참사는 있어서는 안 될 비운의 사고이며 인재(人災)였다. 이의 근본 원인은 밝혀야 하지만 조사특위 구성과 조사 1과장을 공무원이 맡느냐, 민간인이 맡느냐를 놓고 허송세월하고 있는 나라다.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 사태에 우왕좌왕한 것은 물론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서로 옳다고 싸우는 나라다. 격리 명령을 거부하고 제멋대로 돌아다니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닌 나라다. 경제는 갈수록 어려워지는데 경제성장을 위한 법안을 경제 외적 이유로 질질 끌고 있는 나라다. 여야 모두 입으로만 국민을 걱정하면서 진정 국민을 위한 민생 법안은 이 핑계 저 핑계를 대며 미룬다. 그러고는 서로 남의 탓만 한다. 대다수 국민들이 복지 혜택은 확대돼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부담이 증가하는 것은 싫어한다. 아니 혜택은 내가, 부담은 다른 사람이 해야 한다는 것이 더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정치는 이러한 혼란스러움을 극복하고 국민의 역량을 한 곳으로 모아 위기를 극복하는 중심이 돼야 한다. 그러나 우리 정치는 정반대다. 국민의 역량을 모으는 것이 아니라 갈기갈기 찢어 놓기 일쑤다. 계파 간 경쟁이나 갈등은 당연히 존재하는 것이지만 그것은 정당 내부에서 협의되고 처리돼야 한다. 마치 부부 싸움이 집 경계를 넘어 동네 전체에 퍼져 마을 사람 전체가 분열돼 싸우는 것처럼 한국의 정치는 통합보다 분열, 협력보다 갈등이 구조화돼 있다. 그리고 최근에는 대통령과 집권 여당 원내대표 간의 갈등이 최고조에 달해 한 치 앞을 예측할 수 없게 한다. 이쯤 되면 과거 경제발전과 민주화처럼 우리가 지금 이만큼 하고 사는 것도 기적이다. 이제 더이상 허비할 시간이 없다. 박근혜 정부의 골든타임은 분초를 다투는 상황으로 몰려간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대통령과 여야 정치권 모두가 지금까지의 생각이나 입장을 내려놓고 허심탄회하게 국가와 국민만을 생각해야 한다. 대통령도,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도 지난 시간은 덮어 두고 이 시점에서 민생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일까만을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 야당이 먼저 경제 회생을 위한 법안과 추경예산을 즉시 통과시키자고 하면 어떨까? 만일 그럴 수 있다면 단언컨대 2017년 대권은 누가 되든 야당의 몫이 될 것이다. 눈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국민을 외면한 정치인은 결국 역사의 심판에 직면하게 될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 부부도 세대 간에도… 갈가리 찢긴 그리스

    “이번 국민투표를 두고 부부, 형제, 친구, 이웃 간에도 갈등을 겪고 있다.” 국민투표를 하루 앞둔 지난 4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가 전한 그리스의 분열상이다. 지난 1주일 동안 그리스는 지금까지 겪어 보지 못한 반목과 대립을 경험했다. 채권단 제안 수용 여부를 두고 가진 자와 빈자는 물론 남녀노소 간에도 여론이 갈가리 찢겨 투표 이후 한동안 혼란이 계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향후 구제금융 협상이 순탄하지 않을 수도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는 5일 투표를 마친 뒤 전 세계에서 몰려든 수백명의 취재진에게 “누구도 국민 스스로 운명을 선택한 결정을 무시할 수 없다”며 “내일 우리는 유럽의 모든 국민을 위한 길을 열 것을 확신한다”고 결과를 낙관했다. 이날 찬성 진영의 지도자인 안도니스 사마라스 신민당 대표도 한 표를 행사한 뒤 “오늘 우리 그리스인들은 조국의 운명을 결정했다”며 “우리는 그리스와 유럽에 ‘찬성’ 표를 던질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지난달 27일 치프라스 총리가 국민투표 실시를 선언한 뒤 그리스 여론은 연령별, 재산 유무 등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니코스 마란치디스 마케도니아대 교수는 “투표 다음날인 6일부터 그리스는 거대한 경제적 문제뿐만 아니라 심각하게 분열된 국가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민투표를 둘러싸고 세대 갈등이 심각하게 노출됐다. 지난 3일 현지 언론이 발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18~24세 유권자는 71%가 합의안에 반대하는 반면 65세 이상 유권자는 56%가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영국의 더타임스는 “젊은 세대 가운데 직업이 없거나 낮은 임금을 받는 사람이 많고 긴축을 강요하는 유럽에 저항할 준비가 더 잘돼 있다”고 설명했다. 한편 파이낸셜타임스는 그리스 은행이 8000유로 이상 예금의 30%를 돌려주지 않는 방안을 고려 중이라고 4일 보도했다. 그리스 은행 관계자는 FT와의 인터뷰에서 “개혁의 일환으로 은행이 소액 예금주에게 손해를 부담시키는 방안을 시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보도가 나간 뒤 야니스 바루파키스 재무장관은 자신의 트위터에 “FT 보도는 악의적 루머”라며 반발했다. 안드레아 엔리아 유럽은행감독청(EBA) 청장도 “그리스 은행이 소액 예금주에게 ‘헤어컷’(예금 삭감)을 부과한다는 계획은 들어 본 적 없다”며 보도를 부인했다. 박기석 기자 kisukpark@seoul.co.kr
  • [사설] 여야 계파정치, 성난 민심 직시하라

    현재 진행 중인 여야의 계파 갈등은 우리 정치의 부끄러운 현주소다. 과거 한나라당 시절부터 계속되고 있는 친박(친박근혜)계와 비박(비박근혜)계의 세력 싸움과 통합민주당 시절부터 지속되고 있는 친노(친노무현), 비노(비노무현) 간의 당권 투쟁은 집권당과 제1야당의 수준을 형편없는 삼류 정치로 자리매김했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박근혜 대통령이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를 촉구하면서 촉발된 ‘유승민 정국’을 통해 친박과 비박의 치졸한 계파정치를 그대로 노출했다. 이번 사태의 발단이 된 국회법 개정안에 많은 친박 의원들이 찬성해 놓고 박 대통령이 유 원내대표를 ‘배신의 정치’로 몰아세우자 부랴부랴 사퇴 촉구에 앞장선 것은 계파정치의 창피한 민낯이다.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마무리될 오늘 친박계가 다시 사퇴 압박에 나설 게 확실해 보이지만 비박계가 사퇴론을 정면으로 반박하고 있어 내홍은 한동안 진행될 가능성이 높다. 박 대통령의 지침에 따라 홍위병 역할을 하는 친박계와 이를 저지하려는 비박계의 충돌은 결국 ‘치킨게임’ 양상으로 번지면서 집권당 자체를 무력화시키고 있다. 집권당 내부의 화합과 통합에 나서야 할 박 대통령이 반대편의 목소리를 힘으로 제압하려 하는 등 당의 분열에 빌미를 제공하고 있는 것은 매우 유감스런 일이다. 새정치민주연합의 계파 분열은 더욱 심한 지경이다. 지난 4·29 재·보궐 선거에서 참패한 이후 ‘계파 청산을 위해 뼈를 깎는 고통을 감내하겠다’는 문재인 대표의 약속은 이미 공수표가 된 지 오래다. 어렵사리 출범한 ‘김상곤 혁신위원회’는 당내에서조차 친노 친위대란 소리를 들으며 좌초 위기에 있고 사무총장 인선을 둘러싼 계파 싸움은 지지자들의 희망마저 빼앗은 상태다. 이종걸 원내대표의 당무 거부 파동이 일단 봉합됐지만 당내 분란은 언제 재연될지 모를 불씨로 남아 있다. 비노 분당설이 끊이지 않고 호남에 기반을 둔 정당 창당설이 보다 구체화되는 것도 지리멸멸한 야당의 분열상이 주요 원인이다. 최근 정치권의 대립과 분열의 핵심에는 국민과 국가의 이익보다는 계파 이익을 앞세우는 파벌정치가 있다는 것은 모든 국민들이 다 아는 사실이다. 내년 4·13 총선에서 공천권을 쥐려는 여야 내부의 파워게임에 민생 정치가 뒷전으로 밀리는 현실에 국민적 분노는 이미 임계치를 넘어서고 있다. 그들만의 ‘밥그릇 싸움’에 버젓이 국민의 이름을 도용하며 민의를 왜곡하는 여야의 계파정치에 넌더리를 내는 것은 당연한 이치다. 파벌정치는 공당보다 계파를, 국민과 국익보다는 패거리 진영을, 민생보다는 패권을 우선시함으로써 국정 마비를 초래하는 한편 국가와 정당의 공공성을 위협하는 ‘암적’ 존재나 다름없다. 사사건건 친박과 비박이니, 친노와 비노니 하면서 패거리를 지어 벌이는 멱살잡이 수준의 한심한 정치에서 더이상 집권당이나 제1야당의 비전과 희망은 찾기 어려워졌다. 여야가 성난 민심을 제대로 직시하지 못한 채 현재와 같이 계파 싸움에 골몰한다면 결국 내년 총선에서 ‘민심의 쓰나미’가 정치권을 심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유권자들이 깨어 있어야 한다.
  • 탈당·신당설·분당론… 흔들리는 새정치연합

    여권발(發) 국정 혼란 속에 전열을 재정비해야 할 새정치민주연합이 끊임없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신당설과 분당론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당 외부에서는 무소속 천정배 의원이 ‘전국정당’ 창당을 추진 중인 동시에 당내에서도 일부 비노(비노무현)계 의원의 탈당설이 흘러나오며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최근 이종걸 원내대표와 박지원 의원 등 비주류 중진 8인 회동에서 신당 문제가 논의됐다는 점도 예사롭지 않다. 회동에 참석한 김동철 의원은 “당 혁신이 성공하지 못하면 신당, 탈당 등의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비노계 의원 모임인 ‘민집모’(민주당 집권을 위한 모임) 소속 의원들이 모인 자리에서도 신당론에 대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따라 ‘김상곤 혁신위원회’가 활동을 마무리 짓는 9월 이후가 야권 재편을 가늠할 수 있는 시점이 될 것으로 보인다. 비노계 중진인 박주선 의원은 서울신문과의 통화에서 “혁신이 제대로 되지 않아 국민들에게 새정치연합이 성공할 수 없는 정당으로 읽혀지면 여당에 맞설 대안의 길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박지원 의원도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혁신안이 공정하지 못할 때 분당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현실을 두려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혁신위가 당 개혁의 일환으로 공천 개혁에 손을 대기 시작하면 당내 반발이 노골적으로 표출될 가능성이 크다. 참신한 인재 영입을 위해 현역 물갈이가 불가피할 경우 역설적으로 당내 구심력보다 원심력이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혁신위원인 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 교수는 지난 2일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혁신세미나에서 현역 의원 물갈이 비율과 관련, “공천제도의 객관적인 기준과 공정한 원칙에 따라서 30~40%가 될 수 있고 더 많으면 70~80%도 될 수 있다”고 밝혔다. 2013년 민주당 혁신위원장을 지낸 정해구 성공회대 교수는 “공천 문제가 걸려 있기 때문에 (혁신안을 의결하는) 중앙위원회에서 조직적으로 거부 움직임을 보일 가능성도 있지만 이를 무서워해서는 안 된다”며 “총선 직전에 당이 깨지는 것보다 차라리 지금 분열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당 밖에서는 4·29 재·보궐선거를 통해 국회에 입성한 천정배 의원이 김두관 전 경남지사 등과 접촉하는 등 보폭을 넓히며 전국정당을 강조하고 있다. 장진복 기자 viviana49@seoul.co.kr
  • [특파원 칼럼]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이 부러운 이유/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특파원 칼럼] 오바마 대통령의 ‘레임덕’이 부러운 이유/김미경 워싱턴 특파원

    그는 이제 ‘레임덕’(권력누수)에 빠질 것이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4일 중간선거에서 야당인 공화당이 대승을 거두면서 ‘여소야대’가 된 미국의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두고 한 말이다. 4년씩 연임해 8년까지 할 수 있는 미국 대통령제에서 마지막 2년은 대부분 야당에 주도권이 넘어가 대통령의 레임덕은 당연한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러나 미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워싱턴 정가 분위기와는 맞지 않을 정도로 패기가 넘치는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 7개월여간 너무나 달랐다. 오히려 선거에 다시 나가지 않으니 눈치 볼 것이 없다는 듯 거침이 없었다. 오바마 대통령은 공화당의 반대에도 이란 핵협상에 나섰고, 54년간 국교를 단절했던 쿠바와의 관계 정상화 추진을 선언했다. 이란 핵협상은 지난 4월 초 잠정 합의한 뒤 오는 7일까지 최종 협상을 진행 중이다. 쿠바와는 관계 정상화 선언 6개월여 만인 지난 1일 대사관 재개설을 통해 국교를 다시 맺는다고 발표했다. 외교 정책에서 낙제점을 받아 온 오바마 대통령이 레임덕 기간에 오히려 외교력의 뒷심을 발휘하고 있는 것이다. 지난 2주간 오바마 대통령은 최고의 전성기를 누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바마 대통령의 임기 2기 주요 정책인 ‘아시아 재균형’ 전략의 핵심인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협상이 자신이 속한 민주당의 반대로 난항을 거듭하자 이를 찬성하는 공화당과 손잡고 TPP의 선결 조건인 무역협상촉진권한(TPA) 부여 법안을 통과시켰다. 행정명령 ‘남발’로 공화당과 각을 세워 온 오바마 대통령이 적과의 동침으로 실리를 추구한 것이다. 이어 미 연방대법원은 오바마 대통령의 야심작인 건강보험개혁법(오바마케어)의 정부 보조금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고, 논란이 돼 온 동성결혼도 합헌 판결을 내림으로써 오바마 대통령의 손을 들어 줬다. 오바마 대통령의 ‘최고의 순간’은 지난달 26일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찰스턴 흑인 교회의 총기 난사사건 희생자 장례식에서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놀라운 은총)를 부른 순간이 아닐까 싶다. 흑인 대통령 시대를 열었지만, 흑백 갈등이 오히려 더욱 심해진 상황에서 희생자 가족이 보여 준 은총을 노래함으로써 분열된 미국 사회를 위로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페이스북 등에는 “대통령의 찬송가를 듣고 울컥했다”는 댓글이 쏟아졌다. 오바마 대통령은 이 같은 분위기에 힘입어 지난달 30일 발표된 CNN 여론조사에서 2013년 5월 이후 2년 만에 처음으로 지지율 50%를 회복했다. 그래서일까. 오바마 대통령의 파격 행보는 계속 이어지고 있다. 온라인 매체와의 창고 인터뷰에 이어 백악관 관광객에게 사진 촬영을 허용하고 앞마당을 걸스카우트 캠프장으로 내놨다. 그의 자신감은 지난달 30일 기자회견에서도 엿볼 수 있었다. “그동안 쌓은 정치적 자산을 어떻게 쓸 것이냐”는 질문에 그는 “마지막까지 할 일의 명단이 길다. 다음주는 더 좋은 주로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웃었다. 오바마 대통령을 부러워하면서 한국 대통령과 정치를 생각했다. 세월호·메르스 사태로 국민은 힘들기만 한데 ‘친박’이니 ‘비박’이니 ‘배신정치’니 하며 정쟁을 일삼는 모습이 한심스럽기만 하다. 임기가 1년 반 남은 오바마 대통령보다 임기가 절반이나 남은 박근혜 대통령이 더 레임덕에 빠져 보이는 것은 기자만의 생각일까. chaplin7@seoul.co.kr
  • [사설] 국민들은 대통령의 소통 리더십을 보고 싶다

    최근 불거진 집권 세력 내부의 분열은 도가 넘어섰다. 국회법 개정안과 새누리당 유승민 원내대표의 사퇴 논란으로 촉발된 집권당의 반목과 대립 양상은 계파 갈등을 넘어 국정 운영 자체를 꼬이게 했다. 전 국민이 지켜보는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서 오간 막말과 파행은 물론 중대차한 추가경정예산 편성을 위한 당·정 협의에 집권당 원내대표가 불참하는 사태도 발생했다. 집권 세력으로서 보여서는 안 될 추태가 계속되면서 국민들의 탄식과 불안은 가중되고 있다. 이러고도 국정 운영을 책임진 집권 세력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다. 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이 어제 국회 운영위원회에 출석해 일방적 국정 운영 방식과 관련해 야당의 거센 공격을 받은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최근 17기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출범식에선 대통령과 갈등을 빚고 있는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불참해 불편한 당·청 관계를 숨기지 않았다. 대통령과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의 반목으로 번지고 있다. 청와대는 그제 한국 주도로 결성된 중견 5개국 협의체인 ‘믹타’(MIKTA) 국회의장 초청 행사에 정의화 국회의장을 참석자 명단에서 제외했다. 정 의장이 대통령 거부권이 행사된 국회법 개정안에 대해 재의(再議) 입장을 밝힌 데 대한 일종의 불만이란 분석이 정치권에서 나돈다. 박근혜 대통령의 ‘분노’ 때문에 초청국 국회의장이 뚜렷한 이유 없이 공식 행사에 배제됐다면 이는 외교적 결례는 물론 국제적 망신으로 비화될 수 있는 사안이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국정을 함께 끌고 가야 할 책임이 있다. 최근 여권 지도부가 보여 주는 반목과 대립은 집권 세력의 국정 운영 능력 자체를 의심케 하는 행동이다. 대통령이 여당 지도부는 물론 국회의장과의 대면 자체를 외면하고 소통의 길마저 단절시키는 모양새에 국민들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입장 차이가 클수록 더 많이 만나 대화하고 설득하는, 포용의 정치를 국민들은 기대하고 있다. 국가의 역량을 결집해 안팎의 산적한 위기를 이겨 나가야 하는 상황에서 박 대통령의 리더십에 대한 우려도 증폭되고 있다. 박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무회의에서 밝힌 것처럼 유 원내대표가 배신의 정치를 했을 수도 있지만 이는 사적인 영역에서 풀어 나가야 할 문제이지 공적인 영역으로 확대해 결과적으로 국정 혼란의 빌미를 주는 것은 대통령의 리더십이 아니다. 박 대통령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통합의 정치를 하겠다는 약속으로 표를 얻었고 신년 기자회견에서는 소통 강화를 위해 특보직까지 신설했다. 그간 박 대통령의 행보는 대국민 약속과는 달리 많은 국민들이 체감하는 온도차가 있다는 것이 우리의 생각이다. 임기의 절반이 다가오는 시점에서 현 정부의 국정 목표인 공공·노동·금융·교육 등 4대 개혁도 지지부진한 상태다. 지금과 같은 군림의 정치와 불통(不通)의 리더십으론 앞으로도 성과를 내기가 쉽지 않다. 박 대통령은 현시점에서 무엇이 국가와 국민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지를 냉정하게 판단할 필요가 있다. 결자해지의 정신으로 집권당 내부의 분열과 반목을 끝내야 할 책임은 대통령에게 있다.
  • 이종걸 “당무 복귀”… 野 내홍 수습 국면

    이종걸 “당무 복귀”… 野 내홍 수습 국면

    사무총장직 인선 등을 놓고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갈등을 빚었던 이종걸 원내대표가 최고위원회 출석 등 당무 복귀를 2일 확정했다. 문·이 대표는 이날 오후 4시 30분쯤부터 2시간 30여분간 회동을 가진 뒤 밤 10시 최종담판 성격으로 다시 만나 이같이 결정했다고 김성수 당 대변인이 전했다. 이 원내대표는 앞서 문 대표가 신임 사무총장에 범주류인 최재성 의원을 임명하자 이에 반발하며 당무를 거부해 왔다. 이 원내대표는 이날 회동에서 당내 계파 문제와 당직 인사 문제 등을 폭넓게 논의한 데 이어 문 대표가 비주류를 겨냥해 “계파 나눠 먹기식 공천은 없다”는 취지로 쓴 ‘당원에게 드리는 글’의 문제점도 조목조목 거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날 회동에서는 정책위의장과 조직사무부총장 등 인사 문제도 논의한 것으로 알려져 조만간 추가 인사가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강기정 의원이 맡고 있는 정책위의장직은 유임이 유력했지만, 원내대표와 러닝메이트 성격으로 함께 호흡을 맞춰야 하는 당직의 성격상 비주류 인사로 교체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돼 왔다. 김 대변인은 “일부 당직 인선에서 소통이 부족했다는 점에 두 대표가 공감했다”고만 밝혔다. 이 원내대표가 당무에 복귀하며 야당은 ‘거부권 정국’에서 오랜만에 일치단결된 모습을 보일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문 대표는 이날 ‘빅데이터, 승리의 과학’이라는 책을 서한과 함께 소속 의원 129명에게 보내는 등 내년 총선 준비를 본격화할 뜻도 나타냈다. 하지만 당 내홍이 여당의 분열상에 가려진 측면도 있어 이후 국면에서 계파 갈등 등의 문제가 또다시 불거질 가능성도 적지 않다. 이날 회동 결과가 나오기까지도 진통의 연속이었다. 한편 새정치연합은 이날 국회법 개정안 재의를 앞두고 여당의 표결 참여를 요구하는 홍보물을 시민들에게 돌리는 등 장외 여론전을 펼쳤다. 또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를 겨냥한 박근혜 대통령의 ‘선거 심판’ 발언이 공직선거법 위반 소지가 있다며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유권해석을 의뢰하는 등 공세 수위를 높였다. 안석 기자 sartor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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