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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무심기 35년… 1백만평을 수해로

    ◎오늘 식목일… 평창 추상희씨의 산지기 인생/일­독 등 견학하며 과학육림에 온힘/분신 2백만그루… 산림상품화 주력 이효석의 「메밀꽃 필무렵」의 무대인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무이리일대. 마을입구에서 십여굽이를 돌아 들어서면 탁트인 들녁을 둘러싼 8천5백여㏊ 임야에 빽빽이 들어선 20∼30년생 소나무와 낙엽송 2백여만그루가 봄햇살속에 장관을 이룬다. 마을 터줏대감이자 독림가인 추상희씨(61·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면온리 479)가 35년동안 이 지역 산주들과 피땀흘려 가꿔온 사유림협업단지이다. 『어린나무가 마구잡이로 벌목꾼들에 의해 훼손되는 것을 보고 이대로 가다간 온 국토가 황폐화되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안타까운 마음에 이들 나무를 최소한 30년은 키워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추씨가 나무를 가꾸고 숲의 일부분이 되어야겠다며 험악한 산비탈을 누비는 산지기인생을 시작한 것은 국학대학 3년을 중퇴한 직후인 지난 60년. 우선 나무품종부터 바꾸기로 하고 5년여동안 선친으로 부터 물려받은 임야 46㏊에서 잡목을 베내고 낙엽송·잣나무등을 심고 돈이 모이는대로 인근 민둥산을 사들였다. 추씨의 이같은 집념은 가족들의 반대에 부닥치기도 했으나 주위에서는 3백10㏊의 조림지를 소유,대임업인으로 성장한 그를 두고 나무에 빠져버린 대쪽같은 사람으로 부르고 있다. 지난 86년 이곳 기평산림경영협업체회장으로 선출된 추씨는 한달에 20여일을 이곳 산림단지에 머물면서 6백여 소규모 영세산주들과 함께 조·육림등에 온 정열을 쏟고 있다. 선진임업을 배우기위해 일본임지로 견학을 다녀오기도 하고 협업경영의 경험을 살려 산림협업분야 세미나에 단골강사로도 나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추씨의 이같은 나무사랑은 널리 알려져 지난 87년에는 대통령표창까지 받았다.그러나 추씨는 협의회회장으로 있던 지난 87년 협의회에서 벌채한 나무를 목상들에게 팔면서 이들의 농간으로 세무서로부터 나무가격 허위신고혐의로 고발돼 고초를 겪기도 했다. 추씨는 올해 지난 89년 자매결연한 독일 산림협업체인 FULDA연합회 회원 2명을 초청,선진임업기술을 전파시킬 계획이며 톱밥등 폐잔재를상품화할 계획이다. 『나무도 육십이 넘어야 철이 듭니다.내가 심은 나무는 환갑이 지나지 않으면 절대 베지 않는다는 것이 나무인생을 살아온 나의 소신입니다』 추씨는 나무신선이 될 요량으로 오늘도 자신의 분신인 아름드리를 돌보는데 여념이 없다.
  • 국교교과서 차관급까지 “승승장구”/「위장수뢰」의혹 모영기씨는 누구

    ◎민관식씨 비서 발탁된뒤 문교부 특채/전교조사태 해결공로 인정… 출세가도/대학정책실장 재임때 상지대 “봐주기 감사” 1일자로 사표가 수리된 모영기 전국립교육평가원장은 충남 홍성출신으로 국민학교 교사에서 일약 차관급에까지 「출세가도」를 달려온 교육계의 입지전적인 인물로 널리 알려져왔다. 모씨는 57년 대전 사범을 졸업하고 67년까지 충남과 서울 방산국교에서 교사로 있다가 교사직을 그만두고 당시 민주공화당 서울 제3지구당 민관식씨(75)비서관으로 변신한다.모씨는 그후 민관식씨 밑에서 지구당 총무부장,조직부장을 거쳐 71년 민씨가 장관이 되면서 문교부 고위 관리로 또 한번 변신한다. 요즘의 4급 서기관에 해당하는 당시 3급 갑으로 장관 비서관에 특채된 모씨는 당시 민관식 장관의 분신으로 실·국장이상의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모씨는 비서관에서 73년6월 문교부 편수국으로 자리를 옮기지만 민씨의 절대적인 신임을 배경으로 문교부내 영향력은 여전했고 민씨가 장관을 그만둔 해인 74년3월 김문기씨가 당시의 원주대를 무상 인수해 문제의 상지대를 설립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문기씨 또한 74년 민관식씨가 장관직에서 물러나 서울 종로에서 국회의원으로 출마했을때 선거본부장을 맡아 모씨와 함께 민씨의 이른바 「가신그룹」인 셈이다. 모영기씨는 민씨가 장관을 그만둘 때인 74년9월에는 기획관리실 요즘의 부이사관으로 승진해서 1년반에 걸친 해외출장 근무를 거쳐 화려한 공직생활도 사양길을 걷게된다.이른바 한직인 중앙교육연수원등에서 근무를 하다 84년 주미 대사관 수석 교육연구관으로 파견되기도 했고 87년 귀국했지만 보직은 중앙교육연수원,서울대 재외국민교육원장등으로 당시 문교부의 언저리를 맴돌았다. 모씨가 끝내는 비리 의혹을 받을만큼 막강한 요직에 진출하게된 계기는 지난 89년의 전교조사태이다. 당시 정원식 문교부장관은 얽히고 설킨 전교조문제를 해결할만한 인물로 모씨를 지목,주무국인 교직국장으로 발탁했고 모씨는 예의 숨은 실력을 발휘해 전교조 관련교사를 해직시키는 방법으로 전교조사태를 수습해냈다. 전교조 해결의 공로를 인정받아 91년1월에는 전국 1백47개 대학의 학사업무등 일체를 지도 감독하는 대학정책실장에 임명된다.이 과정에서도 모씨는 숨은 실력이외에 주미 교육관시절 노 전대통령의 딸이 미국에 유학중에 정성껏 보살펴준 사정도 개입된게 아니냐는 의혹을 받는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었다. 그러나 요즘에 와서 문제의 상지대 비리에 연관됐다는 결정적인 의혹을 받고 있는 대목은 모씨가 대학정책실장 재임기간동안 상지대의 학사업무 비리를 아예 은폐했거나 밝혀진 비리조차 미온적으로 감싸왔다는 점이다. 90년 감사에서 부정 편입학생 사실이 적발됐는데도 「금품수수 사실없음」이라는 이유로 고발조치 하지 않았고 92년 감사에서는 비리부분에 아예 눈을 감아버렸다는 비난을 사왔다. 이런 와중에서 대학정책실장 재임기간인 지난 91년12월에는 별 쓸모도 없는 서울 종로구 평창동 소재 대지 1백10평을 김문기씨 주선으로 김씨의 사위인 황재복씨에게 매매가격보다 4천여만원이나 많은 3억5백만원에 매각해 부동산거래를 위장한 뇌물수수혐의를 받게되었다. 이와관련,모씨의 뇌물수수 혐의에 대한 투서가 관계기관에 쇄도해 지난 3월초에 검찰에서 소환조사를 받은후 지난달 13일 교육부장관에게 사표를 제출했었으나 보류되다 비리관련의혹이 심증으로 굳혀지며 1일 전격 수리됐다.
  • 남편사별 두 아들마저 병사/7순할머니 비관 분신자살(조약돌)

    ○…20일 낮12시50분쯤 서울 관악구 신림2동 116 이재상씨(64·여)집 마당에서 이집에 세들어 사는 허막례할머니(70)가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분신자살했다. 이집에 함께 세든 장은주씨(45·주부)는 『외출하려고 방을 나서다 불에 타는 냄새가 나 달려가 보니 허씨가 땅바닥에 이불을 깔고 누운채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허씨가 숨진자리 옆에 휘발유병 4개가 있었고 6·25전쟁때 남편을 잃고 혼자 살아온 허씨가 지난 86년과 91년 두 아들마저 병사하자 『남편도 자식도 모두 잃었으니 사는 보람이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는 이웃주민들의 말에 따라 허씨가 이를 비관,분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있다.
  • 중기 간부 야산서 자살

    【원주=조한종기자】 15일 하오1시55분쯤 강원도 원주군 소초면 학곡1리 백교부락 통제소뒤 야산계곡에서 경기도 시흥시 대야동 세일산업 총괄부장 곽삼호씨(34·인천시 북구 십정동 280의1)가 불에 타 숨져있는 것을 순찰중이던 원주경찰서 소초지서 학곡파견대 염기봉상경(20)이 발견했다. 염상경은 이날 야산계곡에 인천1러7107호 승용차가 빠져 있다는 주민들의 신고를 받고 순찰하던중 차량에서 10여m 떨어진 곳에서 불에 타 숨진 곽씨를 발견했다고 말했다. 경찰은 곽씨가 자금난과 사업부진을 비관해 오다 지난 11일 집을 나간뒤 소식이 없었다는 가족들의 말과 숨진 곽씨 주변에 쥐약봉지와 플라스틱 용기에 휘발유가 남아 있는 점 등으로 미뤄 사업부진을 비관해 스스로 약을 먹고 분신자살한 것으로 보고 정확한 사망원인을 조사중이다.
  • 권노갑(민주 최고위원 8인의 면모)

    ◎DJ 33년동안 수행한 동교동 맏형 김대중 전대표를 33년동안 수행한 동교동 가신그룹의 맏형이자 김전대표의 「분신」. 김전대표와 동고동락을 해오는 동안 대여관계에 창구역할을 도맡아왔으며 특히 외부인사 영입에도 남다른 수완. 선거전이 치러지는 동교동직계들의 모임인 「한정회」를 발족시켜 이른바 야당내 주류·비주류구분의 기폭제를 형성하기도. 부인 박현숙씨(56)와 1남1녀. ▲전남 목포·63세 ▲동국대 경제과 ▲고려대 경영대학원 ▲평민당금대중총재 비서실장 ▲민주당 전남도지부장 ▲〃당무위원 ▲13·14대(목포)의원
  • 「분신트로이카」 개혁국정 전면에/민자 당직개편 의미와 정국전망

    ◎청와대·정부·당 혁신 오랜구상을 실현/서열·대선 논공행상까지 「절묘한 가미」 3일 단행된 민자당 당직개편의 요체는 최형우총장의 기용이다. 김영삼대통령은 야당시절부터의 핵심 측근인 최총장을 실질적으로 당을 이끄는 자리에 앉힘으로써 청와대·정부뿐 아니라 당도 친정관리할 뜻을 분명히 했다. 최총장과 박관용 청와대비서실장,김덕용정무1장관등 민주계출신 3인은 김대통령의 「분신」으로서 당정개혁의 전면에 포진됐다. 이들 「트로이카체제」의 움직임이 향후 국정운영의 방향을 잡아가는데 결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김대통령은 자신의 직할부대를 통해 청와대·정부·당을 혁신하겠다는 구상을 미리부터 해온 것으로 파악된다. 당직 인선과정에서 다소 잡음이 있어 총무·정책위의장내정자가 바뀌었다는 관측도 있으나 「최형우총장」카드는 초반부터 요지부동이었다는 것이 김대통령 측근들의 설명이다. 김대통령은 박비서실장이 이끄는 청와대비서진을 통해 국정개혁의 기본방향을 잡아나가리라 예상된다.김정무장관은 김대통령의 개혁청사진을 정부가 차질없이 수행하도록 하고 야당의 협조도 얻어내는 가교역을 맡게 되었다. 당은 김대통령­김종필대표­최총장으로 이어지는 단일지도체제로써 청와대와 정부가 주도하는 국정개혁을 측면지원하게 구도가 짜여 있다. 민자당이 당직개편과 함께 이번달말까지 최고위원제를 폐지하기로 한 것도 김대통령의 이러한 국정운영구상과 맥을 같이 한다. 그동안 민자당은 3당합당후 계파안배방식으로 운영되어왔다.최고위원 협의제로 당무가 집행됐고 핵심포스트인 사무총장은 항상 최대 계파인 민정계몫이었다. 이제 당헌을 개정,최고위원제도를 없애면서 민주계 「실세」인 최총장이 당살림을 맡은 것은 종래의 계파·계보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경고」의 의미가 강하다.김윤환·이한동의원등 차기를 노리는 민정계 중진들도 이러한 기류를 감지,당분간 「은인자중」하는 모습을 보이리라 전망된다. 김종필대표의 위상도 주목의 대상이다.최고위원제가 없어지면 형식적으로는 대표 위치가 격상된다. 그러나 사무총장에 김대통령의 의중을 누구보다 잘아는 최총장이 발탁됨으로써 당은 총재­대표­총장 라인보다는 총재가 총장을 통해 직접 관리하는 체제로 운영될 가능성이 높다. 당내 일각에서는 구시대를 상징하는 김대표가 당의 얼굴로 남는 것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대두하고 있는 실정이다. 이번 당직개편결과 당을 직할관리하겠다는 김대통령의 의도가 뚜렷해졌지만 당내 서열이나 대선논공행상이 완전히 무시된 것은 아니다. 김윤환의원으로 대표되는 대통령추대위에서 김종호총무가 발탁됐고 대선에서 공조직을 이끌었던 김영구총무가 총장에서 자리바꿈을 했다.김신임총무가 이한동의원과 「밀접한」사이라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최총장을 당개혁의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김윤환·이한동의원등 중간 실세들의 「체면」도 어느정도 살리는,절묘한 인사인 셈이다. 새로운 진용을 갖춘 민자당이 할 일은 너무나 많다. 당내로 볼때는 당기구축소와 사무처 인원감소가 이미 예고되어 있다.그 과정에서 반발도 적지않을 것이므로 최신임총장에게 주어진 「짐」이 상당하다고 볼수 있다.당직인선과정에서 나타났듯이 상호 견제와 비방,계파의식을 불식하고 위계질서를 확립하는 일도 시급하다. 보다 근본적으로는 국정전반의 「대개혁」에 발맞춰 당과 여야관계,국회운영을 전면 수술해야 한다는 난제를 안고 있다.당·국회의 방만한 운영으로 인한 정치자금 조달을 위해 음성거래가 이뤄지던 관행도 뿌리뽑아야 한다는 지적이다.
  • 중대 이사장에 24억 사기/전 한강세무서장/유원지개발 동업 미끼

    【창원=강원식기자】 경남지방경찰청은 2일 유원지 개발사업을 하면서 중앙대 재단이사장으로 있는 재일교포 김희수씨(70)에게 동업을 하자고 제의한뒤 사업교제비및 투자비명목으로 김씨로부터 모두 24억5천만원을 받아 가로챈 전 서울한강세무서장 서경덕씨(65·문화물산주식회사이사·서울시 강남구 논현동271의6)를 사기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서씨는 지난83년 마산시로부터 시내 합포구 교방동 21만6천3백여평의 서원곡유원지 개발사업허가를 받은뒤 재력가인 김씨에게 동업을 제의,89년7월 『외국인 투자인가를 빨리 받기위해서는 재무부등 고위공무원들과의 교제비가 필요하다』며 김씨로부터 교제비명목으로 4억5천만원을 받아 가로챈 혐의다. 서씨는 또 90년1월 김씨와 합작투자계획을 맺으면서 사업비 3백88억원 가운데 10%인 38억8천만원을 사업개발권을 가진 자신이 현물로 투자하기로하고 유원지 예정부지안 80억원대의 자기소유땅 1만3천평이 있는 점을 들어 김씨에게 차액인 41억2천만원을 현금으로 달라고 요구,이중 20억원을 받아낸뒤 이땅을활용하지 못하도록 다른사람명의로 가처분신청을 한 혐의도 받고있다.
  • 국악인 양승희씨(이세기의 인물탐구:18)

    ◎죽파의 가야금산조 득음 “외길 인생”/혹독한 수련 견디며 「명인」 향한 일념 불태워/뉴욕 독주회땐 “동양의 신의 경지” 격찬받아/세계 명대학에 한국학과설치 위한 모금연주 등 활동 활발 가볍게 튕기고 힘차게 엮는 줄은 가락마다 깊은 시름,희비가 엇갈려 가슴속에 묻어둔 사연을 한없이 풀어낸다.길어도 길어도 바닥이 보이지 않는 옥수 어느 때는 성긴 빗방울에 오동잎 스치듯,일렁이는 파도에 하늘이 소스라치듯 성난 폭우에 수면이 갈라지고 뇌성이 번뜩인다.활짝 핀 꽃송이가 삽시에 저버리는 아픔을 안으로 삭이는 절제미,청정과 청쾌가 선명한 양승희의 가야금 산조를 듣고있노라면 문득 연전에 돌아간 죽파의 운율이 되살아난다. 명인의 길에 오르기엔 젊고 눈부신 나이,화사하고 여린 용모,그러나 무대에서의 능란하고 당당한 연주솜씨는 당대 명인을 계승한 후계자다운 풍모다. 경건함 중에도 정한의 기개가 감돌고 줄을 타는 손끝에서 처절과 애련이 여울져 스승을 잃고 홀로서기까지의 고통과 시련이 얼마나 큰것인가를 절감케 한다. 양승희는 스승인 죽파 가야금산조 하나에 그의 전인생을 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산조 일인자를 꿈꾸며 오로지 이 한길을 위해 그는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고초를 스스로 감내해왔다.자신이 걸어온 가시밭길을 새삼 돌이켜볼 여유는 없다.다만 그것이 지금보다 더 험난하고 가파르다해도 미동도 지체도 할 수 없는 위치다.두 아들의 어머니로서 아내와 며느리로서의 길 이전에 「죽파 가야금 산조의 가문」을 이어갈 공인이며 예인의 사명감이 있을 뿐이다. 죽파 김란초는 가야금 산조 창시자의 한사람인 김창조(1865∼1920)의 친손녀로 그는 조부의 산조에다 단몰이(세산조시)를 창작해넣어 독자적인 죽파류 가야금 산조를 성립,국내외에 1백여명이 넘는 제자를 두고있었으나 양승희를 후계자로 삼아 바로 이 산조를 계승시키고 있었다. 양승희는 스승으로서의 죽파의 삶을 전적으로 맡아 극진히 모셨을 뿐만 아니라 죽파의 모든것,예술혼과 예술성,인간의 도리와 예의범절에 이르기까지 스승을 고스란히 이어받은 분신과도 같은 인연이다. ○곡해석·연주력 출중또 「뛰어난 곡해석과 연주력,끈질긴 노력과 집념,죽파가야금산조를 잇는데 최선을 다하는 지속적인 마음가짐은 누구에게도 비견될 수 없는 비범등이 후계자로 지목된 이유의 하나라는 것이 국립국악원 이승렬원장의 지적이다. 스승댁에 머물면서도 새벽에 눈뜨자 연습,장고에 맞춰 다시 한번,그리고 스승과 맞춰보고 학교에 다녀와서 한바탕 연습,단 한번도 스승을 거스르거나 거역하지 않았다. 「교수」보다는 「연주가」이기를 원하는 스승의 뜻을 받들어 국악의 세계무대 진출이라는 목표를 세워놓고 황병기 나인용 백병동등 국내작곡가들의 창작곡을 받아 초연으로 기량을 확대시켜 나가기도 했다.국악인으로서는 드물게 시립국악관현악단·시향·KBS교향악단과의 대연주회 협연,1년에 수십차례의 해외연주 활동등은 죽파로 하여금 어느 자리에서나 제자를 마음껏 자랑삼을 수 있게 해주었다.특히 85년 뉴욕 카네기 리사이틀 홀에서 가진 독주회 평과 사진이 실린 워싱턴 포스트지를 보고는 자신의 일처럼 기뻐했다.그때 미국의 저명 음악평론가인 마리온 자콥슨은 양승희의 가야금연주를 「볼쇼이 발레단의 프리마 발레리나의 솔로를 보는 듯한 황홀감」에 비유,「55분동안의 연주는 꼼짝없이 청중을 사로잡아 마치 동양의 선의 경지를 경험케 했다」고 쓰고 있다. 89년 79세의 나이로 스승이 몸져 눕게되자 양승희는 고려병원에 모시고는 꼬박 3개월을 그의 곁을 지키면서 스승의 어깨를 주물러 드리려면 「몸이부어 손가락자국이 깊이 남는다」고 안타까워 했고 이를 지켜본 국악계의 김소희씨며 박귀희씨는 『형님은 훌륭한 제자를 두셔서 돌아가셔도 여한이 없겠다』고 부러워 했었다. 같은해 9월17일 임종하기 직전에 죽파는 양승희부부를 불러 유산정리와 함께 자신의 장례를 부탁했다.스승의 유언이 아니더라도 양승희는 당연히 상주가 되어 장례기간의 상례지휘는 물론 삼우제와 사십구제,소상제와 대상제,91년에는 고인을 위한 추모음악회를 여는등 스승과 가까웠던 국악계의 원로들을 참여시킨 무대를 마련하여 「난죽같은 사제의 정」을 변함없이 확인시켜 주었다. 양승희는 본래는 서울에서 태어났다.그러나 국민학교 3학년때 정치를 하는 부친을 따라 집안이 모두 강원도 원주로 이사.피아노와 무용을 배우다가 한 미국선교사의 권유로 원주여고 2학년 되던해 가야금을 시작했다. 서울을 오가며 서울대 김정자교수에게 가야금을 사사,처음부터 가야금의 가락이 마음속에 파고들어 타고난듯 악기에 밀착되는 감이었다. 대학교 2학년인 70년 4월 역시 김정자교수의 소개로 사직동에 있는 죽파문하에 입문,그때부터 만19년간 단 하루도 빠짐없이 스승의 엄격한 가르침을 받게 되었다. ○고2때 가야금 시작 유난히 청각이 예민한 스승은 한올의 음정차이도 족집게로 집어내듯 가혹하게 교육시켰다.하루 6시간에서 7시간,어느때는 10시간을 해내야만 비로소 만족하는 듯 했다.마음에 들지않으면 노안에 광채를 번뜩이며 가차없이 바로잡아 주었다. 그러는 사이 오랫동안 교제해온 부군 노만균씨와는 대학을 졸업하고 나서도 3년후인 76년에야 뒤늦게 결혼해야 했다. 「결혼하면 가야금을 포기할지도 모른다」는 우려에 스승은 이를 못마땅히 여겼으나 「결혼후에도 가야금 계속은 물론 예술가의 길을 걷는데 적극 협조하겠다」는 시댁측의 다짐을 받고나서야 안심하는 빛이었다.혈육이 없던 그는 친딸같은 양승희에게 대대로 내려온 집안의 옥가락지를 물려주면서 「부디 가야금 가문의 대를 이어줄 것」을 두번 세번 당부해마지 않았다. 그러나 7년간의 혹독한 피나는 훈련과 수련에도 득음하지 못한 제자를 몹시 나무라는 눈빛에 양승희는 결혼 1년만에,낳은지 백일도 안된 아들을 시어머니(송재임여사)에게 맡기고 다시 스승의 문하로 들어갈 수 밖에 없었다. 여자로서의 행복을 추구했다면 그는 그때 가야금을 포기할 수도 있었다.어린 자식을 떼어놔야 하는 마음은 문자 그대로 가슴을 칼로 도려내는 아픔이었다. 부군은 고대와 프랑스유학후 국립과학연구소 책임연구원으로 근무,시댁은 훌륭한 가문과 가풍으로 양승희는 얼마든지 풍족한 환경에서 아마도 안락을 누릴 수도 있었다.그러나 남편과 시어머니가 죽파와의 약속을 상기시키면서 오히려 「예인의 경지」에 이르기 위한 박사과정까지 서둘러주었다. ○지난의 수련과정 겪어가야금은 악기를 다루거나 기교를 가르치는 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달랐다.말과 마음으로 전하는 구전심수만이 참다운 예도였다.그해 6개월 다음해 다시 6개월,80년에는 9개월간이나 스승곁에서 성음을 얻기위한 피나는 훈련을 쌓아야 했다. 「학이 살포시 나무가지에 내려앉듯 햇빛 찬란한 해변에 잔물결 반짝이듯 용이 승천하는 힘찬 기운과 동시에 사방이 잠잠하여 침묵하듯 연주하라」는 것이 스승의 연주 지침이었다.차차 국악계의 원로들로부터 「죽파 전성기때의 소리가 난다」는 칭찬과 「매운 손끝에 만만찮은 도전적인 개척정신이 깃들어 있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그럴수록 그는 혼신의 힘으로 가야금에 매달렸다.이는 판소리에서의 폭포수같은 성음을 위한 폭포독공백일수련에 못지않은 지란의 과정이었다. 죽파의 총애와 편애로 동료들의 질시와 따돌림이 따랐으나 스승은 그때마다 「높이 나는 새는 눈에 띄는 법,어중간히 날면 백발백중 돌에 맞기 쉽지만 힘찬 비상은 타의 추종을 불허하게 된다」고 감싸주었다.그리고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물려주기 위해 그의 나이가 다했음을 애석하게 여겼다.커다란 회오리가 지나간듯 어쨌든 지난 세월속의 시련은 그에게 인간적인 성숙을 주었다. 그는 세계 각 유명대학에 한국학과 설치를 위한 기금모금 연주등 91년에 10여차례,지난해 20여차례,올해도 연초와 2월까지 유럽지역 순회와 터키연주등 연말까지 해외연주일정이 빡빡하게 짜여있다.물론 그에게 남겨진 가장 큰 과제는 죽파기념관을 세우는 일,전수생들을 위한 연주무대 마련,이에 앞서 스승의 이야기를 창극으로만들기 위해 극본과 음악을 작가와 작곡가에게 의뢰해놓고 있다.그리고 이 모든 진행은 시댁과 남편의 따뜻한 보살핌이 뒷받침이 되어주고 있다. 진양조에서 중몰이 중중몰이에서 자진몰이 휘몰이 단몰이 장단배열을 갖는 죽파산조를 한바탕 타고나면 인생살이 희로애락이 한낱 물거품이라던 스승의 말이 불현듯 새삼스럽다.원형리정,이제 사계의 순리처럼 자연스러운 산조가락의 하나하나가 그의 몸속에서 피가 되고 살이 되고 그 자신이 바로 가야금이 되어 그날이 언제일지는 모르나 마음으로 음조를 울리고 듣는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산조미의 극치에 이르고 싶은 것이 오직 절실한 그의 기원이다. □연보 ▲1948년 6월 서울출생,양주창씨(92년작고)와 박정옥여사의 2남4녀중 장녀 ▲58년 집안이 원주로 이사 ▲73년 서울대 음대 국락과졸업 ▲75년 서울대 대학원 졸업 ▲86년 성균관대 대학원 동양철학과(예술철학박사학위) ▲75년∼93년2월 서울대 국악과강사 ▲76∼80년 동덕여대·목원대·성심여사대강사,이대·중앙대출강,한국가야금연주단단장,중요무형문화재23호 김죽파류 가야금산조이수자,준인간문화재 죽파 김란초를 비롯,이창규 황병기 이재숙 김정자 사사 ▲71년 서울대 음대 정기연주회 「죽파류 가야금 산조」독주 데뷔 ▲75년 서울국립국악원주최 신인음악회협연(이성천지휘) ▲77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극장소극장) ▲79년 가야금 독주회(세종문화회관)·제1회 유네스코주최 2인음악회(가야금 양승희,거문고 김선한) ▲80년 가야금 독주회(공간사랑)죽파류 55분 가야금 산조 ▲82년 KBS교향악단 정기연주회(지휘 발터 길레센) ▲83년 무형문화재 예술단 창단 1주년기념 특별연주 ▲85년 대한민국음악제 KBS교향악단 협연(지휘 홍연택) ▲85년 미뉴욕 카네기 리사이틀홀 독주,자유중국·일본 독주회 ▲86년 자유중국 NewAspect 초청 국제예술제 국제 고쟁 명가대회참가 ▲88년 가야금 독주회(국립국악원 국악당) ▲89년 서울시향 범세대연주회(세종문화회관) ▲89년 KBS국악대상 축하공연외 해외연주8회 ▲90년 백두산 제천대회,가야금독주회(예음홀)해외연주 7회 ▲91년 KBS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 해외연주 10여회 ▲91년 고 죽파 김난초선생 추모음악회주관(국립영화제작소 영화제작)등 해외연주 20여회 ▲92년 미 조지워싱턴대 초청연주 ▲92년 대한민국음악제 연변 김진교수와 남북한 가야금 비교연주등 해외연주 20여회 ▲93년 우즈베크스탄 공화국대 한국학과 설립기금모금외 유럽지역 연주 황병기 작곡 「비단길」「영목」 「밤의소리」「남도소리」 관현악곡 「7현을 위한 새봄」편곡 「Amaging Grace」나인용작곡「가야금 협주곡 도약」「용」「영상」이강덕작곡 「가야금 협주곡Ⅴ」정윤주작곡 「황병기주제에 의한 가야금 콘체르토」백병동작곡 「환명」 제1회 KBS 국락대상,중요무형문화재 예술상 공로상,KBS FM 명인 CD 출반
  • “재판진행 이유 출국금지 부당”/관련규정은 내규에 불과… 인권침해

    ◎대법 원심 확정 법원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났는데도 재판이 진행중이라는 이유로 법무부가 출국을 금지하는 것은 인권침해 소지가 있는만큼 이를 취소해야 한다는 대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 특별3부(주심 김상원대법관)는 28일 관세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유죄를 선고받고 항소심 계류중 보석으로 풀려난 D전자대표 고정씨(40·서울 송파구 가락동 효성빌라)가 법무부를 상대로 낸 출국금지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 재항고사건에서 『법무부의 출국금지 조치에 대한 고씨의 신청은 이유있다』며 법무부측 재항고를 기각,고씨측에 승소결정을 내렸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소송계류중인 자로 보석 또는 구속집행정지 처분을 받고석방된 사람을 출국금지할 수 있다는 법무부 규정은 출입국관리법에 근거하지 않은 내부 사무규칙에 불과하다』면서 『따라서 고씨에 대한 법무부의 출국금지기간 연장처분은 신체의 자유를 부당하게 제한한 처사이므로 고씨의 출국을 허용해야 한다고 결정한 원심조치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 “국세 무조건 우선징수 불가”/먼저 가압류·가처분땐 재산압류 못해

    ◎대법,기존판례 변경… 국민권익 강조 세금체납으로 국가가 특정부동산을 압류할 수 있게된 경우라도 이보다 먼저 관련 부동산에 대한 가처분신청등 민사상의 권리절차를 진행한 일반인이 있다면 국가가 이를 임의로 압류할 수 없다는 대법원 전원합의체의 첫 결정이 나왔다. 대법원의 이번 결정은 지금까지 세금이 체납된 부동산에 대한 가처분 또는 가압류결정이 먼저 내려져 있더라도 국세를 우선적으로 징수를 할 수 있도록 해석해온 기존판례를 변경,국세징수에 관한 국가권리보다 국민들의 권익을 강조했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대법원 전원합의체(재판장 김덕주대법원장)는 27일 최규정씨(서울 강남구 역삼동 개나리아파트 27동 101호)가 서울중부등기소를 상대로 낸 등기공무원의 처분에 대한 이의사건 재항고심 선고공판에서 이같이 판시,최씨측에 패소결정을 내린 원심을 깨고 사건을 서울민사지법 합의부로 되돌려 보냈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현행 국세징수법 제35조는 「세금체납에 따른 처분은 재판상의 가처분 등에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규정하고 있으나 이는 체납세금 징수절차를 진행하는데 가처분등이 영향을 주지 않는다는 뜻의 절차진행에 관한 규정일뿐이므로 체납세금 징수를 가처분보다 무조건 우선시해 가처분결정이 먼저 내려져 있어도 이와 관계없이 세금징수가 가능한 것으로 해석해서는 안된다』고 밝혔다. 최씨는 90년 중순 매입한 서울시 중구 소재 주택에 대해 소유주 정모씨가 소유권이전등기를 해주지 않아 같은해 11월6일 처분금지 가처분 결정을 법원으로 부터 받고 등기를 마쳤음에도 세금체납을 이유로 세무서에 압류된 이 주택에 대한 압류등기 말소신청이 거부되자 소송을 냈었다.
  • 김덕룡 정무1/김 대통령 신임 두터운 상도동핵심

    김영삼대통령의 「분신」이라 불릴만큼 두터운 신임을 받고있는 상도동캠프의 핵심. 6·3세대(서울문리대학생회장)주역으로 대학졸업후 김대통령만 20년이상 보좌했으며 유신과 5공시절 반독재투쟁으로 4차례나 옥고를 치렀다. 정치규제에 묶여 13대에 들어서야 뒤늦게 서울 서초을에서 원내에 진출한 재선의원. 취미는 등산.의사인 부인 김열자씨(52)와의 사이에 2남.
  • “신한국 건설·개혁 보좌에 최선”/박관용 차기청와대비서실장 인터뷰

    ◎“비서실 월권행위 없게 면모일신” 『김영삼차기대통령의 뜻을 성실히 받들어 신한국 건설에 일조를 다할 생각입니다』 차기정부의 청와대비서실장으로 내정된 박관용의원은 17일 인선발표 직후 서울 여의도 뉴서울빌딩 대통령직인수위 사무실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변화와 개혁을 요구하는 국민여망을 실천에 옮기겠다』는 의지를 강하게 피력했다. 그는 『새 대통령과 정치적 생명을 같이한다는 각오로 전심전력을 다해 일하겠다』고 덧붙여 새 대통령의 철저한 분신역할을 자임했다. 박의원은 오래전 부터 예상한 것처럼 비교적 담담한 표정으로 기자들의 일문일답에 응했다. ­역대 어느정권보다 강한 비서실이 되리라는 관측인데. ▲비서실의 역할은 어디까지나 비서의 역할이다.대통령의 뜻과 의지를 받드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대통령중심제인만큼 대통령이 강하면 비서실도 거기에 맞춰질 것이다.그러나 결코 과거와 같은 월권은 없을 것이다. ­김차기대통령은 청와대비서실을 「권부」가 아닌 「국민의 청와대」로 만들겠다고 했는데 앞으로 비서실의 위상은. ▲앞서 지적했듯이 비서실의 역할은 대통령의 뜻을 받들고 대통령의 지시사항을 충실히 이행하는 것이다.김차기대통령은 그동안 청와대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없어져야 한다고 강조해왔다.그런 노력을 하겠다.과거와는 전혀 다른 비서실의 모습을 생각하고 있다. ­새 정부의 최우선 국정목표인 부정부패방지와 경제회생문제는 어떻게 추진할 구상인가. ▲이제 비서실장으로 내정된만큼 구체적으로 얘기할 입장이 못된다.앞으로 대통령의 뜻을 받들고 경제참모들과의 협의과정을 거쳐 결정하겠다.관심을 갖고 보조해 나갈 생각이다.부정부패방지에 대해서는 김차기대통령이 강한 의지를 갖고 있지 않는가. ­청와대가 개혁작업의 주체세력이 될것이라는 얘기가 많은데. ▲수석 비서관들의 인선 내용을 보면 최상의 인물로 자부한다.개혁을 주도하는 주체세력이 될 것으로 확신한다.호흡이 잘 맞을 것 같다. ­청와대 기구개편은. ▲무엇보다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사정수석을 폐지한다는 공약도 있고하니 부분적인 기구개편은 불가피할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당정협조와 차기정부 조각은 . ▲잘되리라고 본다.차기대통령의 구체적 구상이 있는 것으로 알고있다. ­언제 통보받았는가. ▲그동안 두차례 김차기대통령과 만나 협의했다.한달전에,그리고 지난 12일에 만나 언질을 받았다.상당히 고민을 많이 한게 사실이다. 지난 67년 국회의원비서로 들어와서 비서관·전문위원·국회의원등 27년동안 국회에서 생활해왔다.국회를 떠난다는 것은 개인적으로 가슴 아픈 일이다.그러나 새로운 국가사회 건설에 일조하겠다는 생각에서 수락했다.(김차기대통령은 한달전 박의원을 만났을때 구체적인 언질은 없이 『서울보다는 부산에서 보궐선거를 치르는 것이 좋지않나』라며 간접적인 의사전달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지역구 문제는. ▲차기대통령과 만나 의논해봐야겠다.아무래도 내놓아야 할 것 아닌가. ­뒤늦었지만 소감은. ▲중요한 고비에 중책을 맡게돼 중압감을 느낀다. 박의원은 인수위 직원들의 『축하한다』는 인사에 『정말 마지막까지 확신은 없었다』고 받아 넘긴뒤 김차기대통령을만나기 위해 중앙당사로 향했다.
  • 「산업스파이」 피해 보상 방법은/「삼미기업」 계기로 관심 집중

    ◎스파이·고용사 상대 손배소청구 가능/미국법따른 소송땐 우선 증거 확보를 국내기업의 영업정보를 외국 경쟁회사에 빼돌린 호주인 「산업스파이」사건이 기업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심어주고 있는 가운데 피해기업이 취할수 있는 대응책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는 기업의 영업비밀을 보호하는 제도적 장치로 지난해 12월 발효된 「부정경쟁방지법」에 영업비밀보호 관련 규정만 있을뿐 별다른 법적 보호장치가 거의 없는 실정이다. 따라서 과거 몇차례 비슷한 사건이 발생했을때도 대부분 단순절도사건으로만 처리됐을뿐 기업정보유출에 따른 피해에 대해서는 관심이 전혀 없을 정도로 국내 인식수준은 낮았다. 그러나 이번 사건의 경우 빼돌려진 컴퓨터 디스켓속에 제품개발 모델과 가격·해외거래선 등 극비정보가 수록돼 있어 경쟁회사에 넘어갈 경우 막대한 손해가 예상되는 삼미기업측으로서도 적극적으로 손해배상을 받기 위해 애쓰고 있다. 특허청등 관계기관과 국제분쟁 전문가들에 따르면 삼미기업측의 대응책은 대충 3가지 정도로 나눌수 있다. 첫째 삼미기업이 디스켓을 훔친 보튼씨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다.그러나 이 방법은 가장 간단하기는 하나 보튼씨의 개인적인 재산능력이 부족할 경우 실질적으로 보상받기는 어렵다는 것이다. 두번째로 빼돌린 디스켓을 넘겨받은 미오우라사의 재산이 국내에 있을 경우 이에 대한 가압류 또는 가처분신청을 하는 방법이 있다. 그러나 이 방법은 오우라사가 아직 국내에 진출해있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불가능하다. 세번째 방법은 삼미기업이 오우라사를 상대로 미국법에 따른 손배청구소송을 내는 것이다. 기업정보 보호에 대한 인식과 법률적 장치가 상당히 발전돼 있는 미국의 현실을 볼때 그런대로 보상받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방법이다. 그러나 절차가 까다롭고 복잡해 많은 시간이 걸린다. 뿐만아니라 오우라사와 보튼씨가 서로 입을 맞춰 단독범행이라고 주장할 경우 난관에 봉착하게 된다. 구속된 보튼씨가 디스켓을 훔치기는 했지만 오우라사에 넘기는 스파이짓은 하지 않았다며부인하고 있는 것이나 오우라사가 이 사건이후 『뚜렷한 증거가 없다』며 발빠르게 대응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이런 우려를 뒷받침해 주고있다. 이처럼 삼미로서는 몇가지 방법을 생각할 수 있으나 어떤 방법이든 명백한 증거확보가 선행돼야 한다는 점에서 영업비밀보호법에 대한 인식조차 거의 없는 우리 기업의 현실을 볼때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 「비자금열쇠」 이병규씨 어디있나

    ◎40일째 묘연… 현대소유 별장은신 추정/“정 대표 개입 밝혀줄 증인” 검거 총력 현대중공업의 비자금조성사건으로 구속영장이 미리 발부된 국민당 정주영대표 특별보좌관 이병규씨(40)의 검거에 검찰이 전담수사반까지 편성해 검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러나 검찰과 경찰이 이씨검거에 나선지 40일이 넘도록 행적을 좀처럼 찾지 못해 애를 태우고 있다. 검경은 검찰수사관 10명과 경찰청특수수사대 소속 경찰 14명,서울강남경찰서소속 경찰 3명등 27명을 투입해 연고지등을 상대로 이씨를 쫓고 있다. 거기에다 이씨를 검거하는 경찰관에게는 1계급특진의 포상까지 내걸었다. 수사당국이 이씨 검거에 이처럼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은 이번 사건에 있어서 이씨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기 때문이다. 이씨는 구속된 현대중공업 최수일사장과 장병수전무가 조성한 비자금을 받아 국민당 중앙당과 지구당에 분배한 핵심인물이다. 더욱이 이씨는 정주영대표의 개입여부를 밝혀줄 열쇠를 쥐고 있을 것으로 보여지는데다 정대표의 기소방침을 굳힌 검찰로서는 이씨의 진술이 공소유지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칠것으로 보고있기 때문이다. 이씨가 당국의 수사선상에서 완전히 사라진 것은 지난해 12월22일 쯤.지난해 12월초 대통령선거운동기간중 수배된뒤에도 국민당사에서 머물다 정주영후보의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특보로서의 임무를 수행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그뒤 같은달 13∼14일을 전후해 다시 당사에 나타났으며 대선투표일에는 국민당 상황실에도 모습을 드러낸 것으로 확인됐으나 곧 종적을 감췄다. 검경은 이씨가 현재 서울에 있는 국민당 또는 현대소유의 안가나 지방에 있는 현대별장,현대계열사가 마련해준 은신처에 숨어 있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고 있지만 아직 확실한 정보를 얻지 못하고 있다. 또 홀로 전국의 호텔이나 여관을 옮겨다니며 도피중일 것으로도 보고 있지만 비교적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밖에 이씨에게는 수사착수직후 곧바로 출국금지조치가 내려져 해외로 도피하지 못한 것으로 확인됐지만 밀항등의 방법으로 국외로 달아났을 가능성은 배제하지 않고 있다. 어쨌든 검경은 국민당이나 현대소유의 아파트나 친분 있는 당고위인사집 또는 당측이 제공한 모처에 은신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아래 추적활동을 강화하고 있다. 이와함께 이씨의 집등에서 전화발신지추적작업도 벌이고 있 으나 연락은 끊긴 상태이다.다만 국민당측이 이씨와 연락하며 보호하고 있는 것은 분명한 것으로 검경은 보고 있다. 한편 국민당측에서는 정대표에 대한 1차조사가 끝났기 때문에 기소여부를 보아가며 2월초에 이씨를 자진출두하도록 하는것을 검토중이라고 밝히고 있다. 연세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바로 현대그룹에 입사,정주영회장의 비서실에서 15년동안 근무한 이씨는 그 경력덕택에 특보에 임명됐고 정대표의 분신으로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 미­러시아/「스미르노프 보드카」 전쟁(특파원코너)

    ◎원래 러제국 황실에 진상됐던 명주/공산혁명뒤 미서 생산·보급 “상표권 싸움”/이달 모스크바시판… 본토산과 “맛 대결” 세계 최고의 보드카로 통하는 「스미르노프」의 판매를 둘러싸고 러시아와 미국 두 양조회사간의 첨예한 한판대결이 곧 모스크바에서 벌어지게 됐다. 표트르 스미르노프는 러시아 마지막 황제시절 황실에 보드카를 만들어 공급하던 거상으로 그의 이름을 딴 보드카가 곧 러시아보드카의 대명사로 통하던 시절이 있었다.그러나 볼셰비키혁명뒤 제조중지된 이래 러시아땅에서 이 보드카는 자취를 감추었고 그뒤 미국의 양조회사인 퓨틀레인사가 그의 이름을 붙인 보드카를 생산,전세계 최고의 보드카로 성장시켜 지금에 이르고 있다. 문제는 스미르노프의 후손들이 모여 러시아에서 「진짜 스미르노프」보드카를 생산키로 함으로써 비롯됐다.이들은 최근 「표트르 스미르노프와 후손들」이란 양조회사를 설립,이달중 스미르노프 보드카 6천병을 최초로 시판할 예정이다. 이들은 시판에 앞서 미국산 스미르노프의 상표권 사용금지 가처분신청을 러시아특허청에 제출했으나 지난해 12월 이것이 기각됨으로써 어느 것이 진짜냐의 판정은 술꾼들에게 넘어가게 됐다. 러시아산 스미르노프가 과연 확고한 명성을 굳힌 미국산을 따라잡을 수 있을지 여부는 미지수이지만 이들의 의욕은 대단하다.이 회사의 블라디미르 니콜라예프 판매담당 매니저는 러시아특허청의 조치에 불만을 나타내면서도 『이런 상표권 시비가 새술의 판매에 상당한 선전효과를 올렸다』며 새술이 혁명전 스미르노프가의 전통적인 양조비법을 재현해 만들었기 때문에 『미국산 보드카는 곧 설땅을 잃을 것』이라고 장담했다. 가격면에서는 새로 탄생한 보드카가 상당한 강점을 갖고 있다.현재 모스크바 시내 가판대,달러숍등에서 팔리는 미국제 스미르노프 1ℓ들이 한병에 4천5백루블(약10달러)정도인데 비해 새 스미르노프는 0.61ℓ들이 한병에 1천5백루블로 예정돼 있어 훨씬 싸다.그외 일반 러시아산 보드카로 스틀리츠나야,프세니츠나야,모스콥스카야,루스카야 등이 있으나 이들은 모두 0.5ℓ들이 한병에 3백50루블 수준이다. 「스미르노프와 그의 후손들」이 만든 새 보드카는 미국산과 다르다.우선 술맛이 미국산과는 판이하고 러시아제 일반 보드카에 훨씬 가깝다.병모양도 옛날 스미르노프 보드카병과 흡사하게 만들고 내용물 표기도 보드카라고 쓰지 않고 당시 쓰던대로 「식탁용 와인」이라고 표기했다.앞으로는 과거 스미르노프가에서 제조하던 3백여종의 합성 보드카를 모두 만들어 시판할 계획인 것으로 알려졌다. 표트르 스미르노프의 증손녀인 타치아나 포미나여사는 이미지제고를 위해 최근 조부가 하던 스미로느프가의 자선사업을 다시 시작할 계획을 발표했다.수익금의 1%를 이 자선기금으로 적립하는 외에 이미 어린이재단에 일정금액을 기부했다는 사실등을 발표했다. 하지만 드러내놓고 말은 않지만 러시아 스미르노프 보드카측이 가장 크게 기대하는 것은 뭐니뭐니해도 「러시아술꾼들의 애국심」이라고 할수 있을 것이다.
  • 정 대표 외유와 국민당 진로(진단)

    ◎「외환」 응급치료… 「내실」 불씨 잠복/지도체제·「기금」 내연소지 그대로/의원직 상실땐 최악의 위기직면 끊임없는 「내우외환」에 시달리던 국민당이 「외풍」으로부터 다소 벗어나게 됐다. 정주영대표가 검찰에 자진출두,조사를 받음으로써 소환을 둘러싸고 빚어졌던 국민당과 관계당국간의 긴장이 해소됐기 때문이다. 정대표에 대한 사법처리문제가 남아있긴 하지만 기소가 된다해도 불구속일 경우 한두달 사이에 결론날 일은 아니다. 또 정대표가 16일 열흘정도 일정으로 미·일방문길에 오름으로써 대선패배후 거듭되어온 「실수 실언」으로 인한 파문도 당분간 잠잠해질 것으로 보인다. 국민당의 당직자 대부분은 『새 정부출범때까지 휴식기를 가지며 당체제나 정비해야겠다』고 입을 모은다. 그러나 「외환」이 수그러들더라도 「내우」가 도사리고 있어 모든 문제가 해소된 것은 아니다. 그동안 검찰의 소환조사라는 외압에 파묻혀 외부로 표출되지 않았던 지도체제를 둘러싼 입당파와 창당파의 갈등,당정치발전기금 2천억원조성백지화등 내연하고 있던 문제들이 곪아터질 가능성이 높다. 국민당의 운명을 좌우할 가장 주요한 변수는 정대표의 의지와 행보이다.때문에 정대표의 「미·일구상」이 주목되고 있다. 정대표는 최근 수차에 걸쳐 정치계속의사를 강력히 천명했다.당 관계자들도 정대표가 자신의 분신인 현대그룹의 보호막역할을 위해서라도 국민당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한다. 반면 정대표가 정치에서 손을 떼지 않겠다고 자주 언급하는 것 자체가 그의 정계은퇴 내지 2선후퇴를 예고하는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그만큼 정대표가 정계를 떠나야한다는 압력이 상당함을 반증하고 있다는 것이다. 정대표가 이번 미·일방문기간 동안 앞으로 정치에 대한 자신의 소신과 입장을 어떻게 가다듬고 돌아올는지 궁금하다. 만일 정대표가 당안팎의 체제를 새로이 정비하고 정상정치를 펴겠다는 결심을 한다면 국민당의 위기상황은 없어질 것으로 보인다.그러나 정대표가 이와는 다른 생각을 갖고 온다면 국민당이 어찌되리란 것은 불을 보듯 훤하다. 정대표 의중과 관계없이 국민당 내부 알력으로 당이 붕괴될 위험도 있다. 정대표는 그동안 자신을 정점으로한 최고위원 집단지도체제로 당을 운영하겠다고 밝혀왔다.4월 전당대회에서 경선에 의해 지도부를 구성하겠다는 약속도 했다. 김동길의원등 창당파들은 정대표의 이같은 구상에 강력반발하고 있다.새한국당에서 입당한 인사들과 양순직최고위원등이 합세,기존의 창당세력을 몰아내려는 계획의 일환으로 「경선주장」을 들고 나왔다는게 창당파들의 반박이다. 2천억원 기금문제는 창당파나 입당파에게 모두 불만인 사항이다.국민당내 대다수 인사들은 정대표가 기금조성약속을 파기한 것을 놓고 「1인체제의 유지」혹은 「당청산작업돌입」이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대선이후 너무 영일없는 상황에 시달려 당분간은 조용하게 지나갈지 모른다. 하지만 정대표의 귀국시점,늦어도 4월 전당대회 전까지는 창당파와 입당파간의 전면전이 벌어질수 있고 기금문제에 불만을 품고 당을 이탈하는 인사도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단기적 외환에서는 어느정도 벗어났지만 외부에서의 압력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검찰은 정대표를 불구속 기소하겠다는 방침을 세운것으로 알려지고 있다.개정된 현행 대선법은 기소후 6개월이내에 1심판결을 내리고 2·3심도 각각 3개월내에 하도록 되어있어 정대표에 대한 사법처리결과는 빠르면 금년내로 확정될 수 있다.재판결과 선거법에 따라 벌금 1백만원이상,형법에 따라 금고이상의 형이 결정되면 의원직을 자동박탈당한다. 결국 새정부의 「의지」가 국민당과 정대표의 장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사법처리 이외에도 집권당이 마음먹기에 따라 국민당을 흔드는 일은 별로 어렵지 않으리라 여겨진다.
  • 대한매일신보에서 서울신문까지(겨레의 맥박으로 89년:3)

    ◎매신의 인걸들/선각자들 결집… 「국권회복」 구심체로/영국인… 일제탄압에 울타리역할/배설/총무 맡아 항일논조 사실상 주도/양기탁/박은식·신채호는 주필로 민족자부심·독립정신 고취 대한매일신보가 민족의 대변지로서 국권회복운동의 정신적 구심점이 된데는 여러가지 요인이 있다.그 가운데 하나가 이 신문에 관련 또는 종사했던 사람들의 면면인데 국적과 신분을 뛰어넘어 매우 다채로운 인물들이 포진하고 있었다. 이 신문을 이끈 주역은 영국인 사장 배설과 양기탁 박은식 신채호 등 논객이자 사학자이며 항일투사였던 국내 인사들로 돼있다.배설(Ernest T Bethell)은 1872년 11월3일 영국 브리스톨시 북부 애쉴리에서 태어났다.극동상대의 무역상이던 토머스 헨콕과 전도사의 딸인 마서 제인 홀름의 다섯 남매중 장남으로 브리스톨의 머천트 벤처러스스쿨을 나왔다. 이 학교를 졸업한뒤 열다섯살 때인 1888년 일본에 건너와 1904년초까지 16년동안 고베(신호)에 살면서 무역업에 종사했다.1899년에는 동생들과 함께 「베델 브러더스」라는 무역상을설립했다.이 회사는 지금도 런던에 있다.어떻든 배설은 한때 돈을 많이 벌어 러그(rug·깔개)공장을 차리기까지 한것을 보면 사업수완이 대단했던 인물이 아닌가 한다. 그러나 일인들의 방해로 실패,재산을 모두 날렸다.졸지에 삶의 기반을 잃게 된 것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천성대로 늘 활달한 쾌남아의 풍모를 잃지 않았다고 한다.그는 수영 크리켓등 스포츠를 좋아했으며 특히 음악에는 타고난 감수성의 소유자로 널리 알려져 있다.체계적인 음악교육은 받지 않았으나 청중들 앞에서 곧잘 노래를 부를만큼 빼어난 가창력도 지녔다. ○늘 활달한 쾌남아 서양장기를 잘 두었으며 술과 담배 또한 즐기는 편이었다.뿐만 아니라 자신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전개하는 문장력도 여간 뛰어난 인물이 아니었다. 학력은 비록 고졸에 그쳤으나 이처럼 다채로운 그의 재능과 기질은 언론인으로서 훌륭한 잠재력을 지녔던 것으로 평가된다.이윤추구가 최대의 목표인 무역업보다 다양한 가치를 추구하고 창의성을 발휘,정치 사회에 직접 영향을 미칠수 있는 사업인 신문발행이그에게는 적격이었던 셈인지도 모른다. 그가 언론과 인연을 맺은 것은 러그사업에 실패한 직후 영국 데일리 크로니클지의 특별통신원이 되어 한국에 온 것이 계기가 됐다.그리고 그는 불과 4개월 1주일만에 대한매일신보를 창간할 수 있었다.배설의 언론입문은 그의 자질이나 성격과 결코 무관치 않다.당시 한국의 실정 역시 배설과 같은 언론인을 절실히 필요로 한 시대이기도 했다. 그가 양기탁을 만나 대한매일신보의 견본판 「양자신문」을 만들기는 1904년 6월29일이었으며 실제로 신문을 창간하기는 20일 뒤인 7월18일이었다.그로부터 1909년 이 땅에 뼈를 묻히기까지 줄곧 한국인의 편에서 일제에 맞선 항일언론의 선봉장으로 또 신보를 이끌고 지킨 울타리 역할을 다 해냈다. 배설이 신보를 지킨 울타리였다면 양기탁은 신보를 떠받친 기둥이요 대들보로 비유해도 좋다.그는 신보사의 전무와 주필 그리고 편집국장을 겸한 위치인 총무로서 제작 및 운영에서 절대적인 비중을 차지하고 있었으며 항일논조를 사실상 주도한 신보의 분신이었다. 양기탁은 호가우강으로 1871년 4월2일 평양태생이다.배설보다는 1년7개월 먼저 태어난 셈이다.부친은 한학자로 그 지방에서 널리 이름이 알려졌던 양시영이었다.어려서부터 서당에서 한문을 배웠는데 사람됨이 매우 총명하여 보기드문 소년 문장가로 꼽힐 정도였다. 그가 서울에 오기는 배설이 일본에 갔던 같은 나이인 15살 때였다.상경직후 동학및 유림의 명망가이자 우국지사인 나현태를 알게 됐다.이후부터 여러 우국지사들과 접촉하면서 그들의 애국사상에 감화를 받게 되었고 동학당과도 관계하면서 견문과 사상을 확고히 다지게 되었다. 외국과의 교섭이 점차 확대되던 국내외 정세에 영향을 받은 그는 한성외국어학교에 들어가 반년동안 영어를 배우기도 했다.따라서 그의 지식과 사상은 어려서 배운 한학의 토대위에 양학문과 기독교 정신이 접목된 것이 아닌가 한다.또 동학과도 관계함으로써 민족주의 사상의 기틀을 다지게 됐다.일제의 가슴에 예리한 비수를 들이대는 듯 했던 신보의 반일논설 필봉은 그의 이런 사상과 학식에 바탕한 것이다. 그는 한때 부친과 함께 캐나다의 선교사 게일(James S Gale)이 만든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편찬하는 일에도 참여했다.이 한영사전은 1897년 6월에 출판됐는데 인쇄소는 요코하마에 있는 복음인쇄합자회사였고 발행소는 서울야소교서회로 되어 있다. 그는 신보를 이끈 항일지사형 언론인의 전형적 인물이다.국권회복을 위한 비밀결사 신민회를 결성,그 총감독으로 활동한 바도 있으며 나라를 빼앗긴뒤 서간도에 신흥무관학교를 세워 일제에 대항케한 열혈투사이기도 했다.여러차례의 옥고끝에 만주로 도피한 그는 상해에서 광복운동에 종사하던중 1933년 김구에 의해 법무담당 국무위원에 임명,1년4개월간 재임했다.강소성 담양현에서 그 파란의 삶을 마쳤는데 그 해가 1938년이다. 백암 박은식은 황해도 황주태생의 이름높은 성리학자로서 본래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이 신문이 정간된 뒤 양기탁의 추천으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논설기자)로 자리를 옮겨 정력적인 항일언론 활동에 나섰다. ○신민회에도 참여 신민회가 결성되자 그 원로회원으로서 교육 및 출판부문을 담당하기도 한 그는 신보를 통해 주로 애국계몽에 관한 글을 집필했다.신교육구국사상·사회관습개혁사상·애국사상·대동사상 등 애국계몽사상을 설파,국권회복운동을 적극 고취하는데 앞장섰던 것이다.한일합방뒤에는 상해로 가서 독립운동에 나서는 한편 「한국통사」「한국독립운동지혈사」등 많은 역사 저술을 통해 민족적 자부심과 독립투쟁정신을 심는데 크게 공헌을 한 인물이었다. 박은식의 뒤를 이어 신보의 주필로 활동한 단재 신채호는 충남 대덕출생으로 명성 높은 사가였다.역시 황성신문의 논설기자였다가 양기탁의 천거로 대한매일신보의 주필이 됐다.민중계몽 및 정부편달 중심의 시론과 우리나라 역사관계 사론으로 민족의식을 고취했다. 1910년 망명할 때까지 그는 대한매일신보에 「일본의 3대충노」「이십세기 신국민」「서호문답」「금일 대한국민의 목적지」등의 논설과 「독사신론」「수군 제일위인 이순신전」등 역사관계 논문및 시론등을 연재,민족의식을 일깨웠다. 신민회조직에 참여했고 국채보상운동에도 가담했다.한마디로 그는 신보의 국권회복운동을 이끈 주역의 한사람으로서 일제에 대한 저항의 논리를 구축하고 민족운동의 방향을 제시한 사람이었다. 이밖에 대한매일신보를 이끌어온 사람들로는 임기정 이교담 옥관빈 강문수등이 있다.이들은 주로 업무분야 종사자들로 신보의 조직을 통해 일본세력을 몰아내려 했던 사람들이다.
  • 「대선 패배정국」 돌파구 모색/정주영씨,왜 동교동 방문했나

    ◎“당체제정비 실기땐 위기상황온다” 판단/뿌리약한 소속의원 이탈 사전방지 포석/야권 대통합 등 「밝히기 힘든 제안」 추측도 정주영 국민당대표의 24일 동교동 전격방문은 이병규특보에 대한 사전구속영장발부와 정몽준의원의 거듭 소환등 사직당국의 강경수사에 따른 당의 위기를 야권공조를 통해 헤쳐나가려는 포석으로 분석되고 있다. 정대표가 이번 주말쯤 상경하려던 당초 일정을 앞당겨 이날 급거 귀경,김대중 전민주당대표를 방문한 것은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용과 「부산기관장 모임」도청에 대한 당국의 강경수사에 대한 방향전환 모색의 의미를 갖는다. 정대표등 당수뇌부들은 검찰·경찰의 이러한 수사로 당이 자칫 회복할수 없는 타격을 입을 우려가 있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당은 지난 3·24총선 직전 급조된 정당으로 소속의원들의 뿌리의식이 부족,당이 흔들리면 이탈할 의원들이 적지않을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즉 당이 선거사범 수사에 휘말려 체제정비등에 차질을 빚게 돼 향후정국의 흐름에 효율적 대응을 못하면 일부 소속의원들의 이탈이 예견된다는 것이다. 또 일부 의원들의 이탈이 시작되면 사태진전에 따라 연쇄탈당으로 번져 국민당은 원내교섭단체 구성마저 어려울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 정대표측은 이같은 속성을 잘 알고있는 민자당이 국민당을 뒤흔들 속셈으로 당국의 수사를 부추기고 있다고 주장한다. 정대표의 한 측근은 『민자당과 정부당국이 정대표로 하여금 국민당과 현대 가운데 하나만을 택하도록 압력을 가하기 위해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용과 「부산기관장 모임」도청을 철저히 수사할 것이라는 정보를 입수했다』며 검찰의 수사가 「관권을 통한 정치공세」라고 항변했다. 국민당은 당국의 수사가 정대표의 분신이라고 일컬어질 정도로 핵심측근인 이특보와 6남인 정의원에게 초점이 맞춰진데 대해 곤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특히 이특보는 정대표와 현대와의 고리역할을 해온 인물로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용과 관련,이특보에 대한 강경수사는 정대표를 겨냥한 것이 아니냐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만약 관련당국의 수사가 당의 중심인 정대표에게까지 미쳐 국민당이 이에대한 대응으로 시간을 빼앗겨 대선이후 정국상황에 대처하기위한 체제정비등을 실기한다면 당은 정치적 명맥마저도 의문시되는 위기상황에 처하게된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안팎에서는 이러한 위기상황을 조기차단하고 민자당주도의 현정국을 전환시키기위해서는 야권공조,특히 민주­국민당의 연대가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에 의견이 자연스럽게 집약되고 있다. 이와 관련 김정남총무는 『대선이후 민자당과 당국에서 우리당에 지나치게 압력을 가하고 있기때문에 민주당과 공조관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인식이 당내외에 팽배해 있다』고 밝힌다. 한편 민주당측에서는 정대표가 동교동을 방문한 자리에서 「밝히기 힘든 제안」을 했다고 말하고 있다. 이 제안내용과 관련,일부에서는 대민자당견제를 위한 민주·국민 양당의 공조를 훨씬 뛰어넘는 내각제 개헌을 위한 양당의 연대 내지는 야권대통합이 아니냐는 추측이 일고있다. 이러한 추측은 대선기간동안에도 민주당과의 일정거리를 유지해온 정대표의 마음을 돌려 민주당과의 공조를 모색하도록 영향을 미친 인사들이 평소 내각제를 위한 야권대통합을 주창해온 박철언·이자헌최고위원이라는 점에서 신빙성을 더해 주목된다.
  • “뜨거운 감자”… 민자·민주·국민당의 입장

    ◎「부산모임」 수사향방 싸고 신경전/“도청은 사생활 침해… 철저한 규명을”/민자/“참석자 전원 구속,관권개입 밝혀야”/민주/“편파수사 의도 명백” 강경대응 태세/국민 「12·18」대선결과를 낙선후보들이 흔쾌히 수용함으로써 대선후 큰 정국위기는 없었으나 「부산기관장회식모임」과 「현대비자금사용」에 대한 검찰수사를 둘러싸고 민자·민주·국민 3당간 미묘한 신경전이 계속되고 있다. 특히 「부산모임사건」과 관련,민자당은 도청부분도 철저히 파헤쳐져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민주·국민당은 검찰수사가 관권개입보다 도청부분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고 비난하며 이의 정치쟁점화를 시도하고 있다. ▷민자당◁ 부산기관장 회식모임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에 대해 일체의 공식적 언급을 회피하며 사태의 추이를 주시. 민자당은 중립내각아래의 검찰이 사법적 판단에 따라 이 문제를 공정히 처리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에 그 결과를 따르겠다는 입장. 그러나 민자당은 이번 사건의 선거운동 위법여부와는 별개로 「도청」문제는 국민의 사생활보호를 위해서라도 엄격히 다루어져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 박희태대변인은 이미 『이번에 도청문제에 대해 결연한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 사업상 이유 또는 개인간 단체간에 첩보전을 방불케 하는 도청이 우리 사회에 횡행,피해가 계속 늘어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 때문에 민자당은 기본적으로 이번 사건이 검찰의 소관사항인 만큼 왈가왈부하지는 않겠지만 김영삼당선자가 표방한 신한국건설을 위해서라도 「공작」의 수단으로 사용된 도청문제는 수사당국이 확실히 짚어주고 넘어가야 한다고 보고 있다. ▷민주당◁ 검찰이 부산지역 기관장모임의 관권개입 의혹보다는 도청에 수사의 초점을 맞추는 것은 주객이 전도된 편파적인 수사라고 단정하고 연일 성명을 발표,모임참석자 전원 구속등 공정한 수사를 촉구. 물론 도청부문도 법을 위반한데 대해서는 사법처벌을 받아야 한다는 입장. 이기택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를 통해 『이 사건에 대한 검찰의 수사방향을 보면 김영삼정부의 성격을 예측할 수 있다』면서 『하루이틀‘더 지켜본뒤 지금과 같은 편파적인수사태도가 계속될 경우 대응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이 검토하고 있는 대응방안은 국민당의 요구를 받아들여 국회 법사위원회를 공동소집,국회차원에서 다루거나 민주·국민 두 당만으로 조사단을 구성하는 것등이다. 그러나 대통령선거 직후에다 연말이라는 시점 때문에 국회를 열거나 조사단을 구성해도 별다른 성과를 얻기 어렵다는 지적이 많아 검찰의 수사가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당의 중진이 현승종총리를 찾아가 항의하는 선에서 그칠 전망이다. ▷국민당◁ 국민당은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용및 부산기관장 모임도청과 관련,검찰이 정주영대표의 분신이나 다름없는 이병규특보에 대해 사전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서는 한편 정몽준의원에 대해서도 소환장을 거듭 발부하고 있는 것을 「관권을 통한 정치공세」로 판단,일체불응한다는 방침이다. 국민당은 부산기관장 모임과 관련,검찰이 정의원을 소환하려는 것은 사건의 본질을 관권선거에서 도청으로 바꾸려는 의도로 보고 있다. 국민당은 24일 낮 긴급최고위원 대책회의를 열고 검찰의이와같은 수사태도에 대해 즉각 시정할 것을 촉구했다. 정몽준의원도 『검찰이 우리당의 이미지에 타격을 주기위해 의도적으로 편파수사를 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검찰의 소환에 불응하겠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정의원의 한 측근은 『검찰이 부산기관장 모임 사건 관련자들을 무죄처리하기 위해 시간끌기작전을 벌이고 있다』며 『당국이 관련자들을 구속수사,진상규명하겠다는 의지가 확인되면 정의원이 자진출두할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현대중공업 비자금유용과 관련,검찰의 수배를 받아오고 있는 이특보는 이날 사전구속영장이 발부되자 당사에 출근하지 않고 잠적했다. 국민당은 이와관련,성명을 내고 『민자당의 정치자금은 수사를 하지 않고 있는 경찰이 이특보등만을 정치자금법위반으로 사전영장을 발부받아 검거에 나선 것은 편파수사의 증거』라며 『당국의 편파수사가 시정되지 않으면 독자적으로 민자당의 자금을 조사,밝히겠다』며 강경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 “재판계류자 출국금지는 부당”/“재량권 남용… 취소해야”

    ◎서울고법 결정 서울고법 특별9부(재판장 김학세부장판사)는 17일 고정씨(39·두고전자대표·서울 송파구 가락동)가 법무부장관을 상대로 낸 출국금지처분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에서 『재판에 계류중이라 해도 도주의 우려가 없다면 출국금지조치는 부당하다』며 고씨의 신청을 받아들였다. 재판부는 결정문에서 『고씨가 비록 재판에 계류돼 있는 상태라 해도 이미 법원의 보석결정으로 풀려난 것은 도주및 증거인멸의 우려가 없다고 인정된 것』이라고 전제한뒤 『법무부가 내부규정을 내세워 출국금지조치를 내린 것은 재량권 남용』이라고 밝혔다. 현행 출입국관리법 4조는 「축국이 국가이익을 현저히 해칠 위험이 있거나 범죄수사를 위해 필요한 경우」출국을 금지시킬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고씨는 89년8월 관세법위반 혐의로 구속기소돼 1심에서 징역3년을 선고 받고 항소심에서 보석으로 풀려났으나 91년9월 출국금지처분을 받아 18일로 예정된 말레이시아로의 출국이 불가능해지자 가처분신청을 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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