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분신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상속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춘제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 납품
    2026-01-02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3,377
  •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3년 옥고’ 강기훈씨 본지인터뷰

    “수십년간 자행돼 온 군사독재정권의 부도덕성을 덮기 위해 운동권 흠집내기를 시도한 사건입니다.” ‘유서대필 사건’의 당사자인 강기훈(43·경기 고양시)씨는 8일, 이같은 주장을 하면서 어두운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지난 1991년, 노태우 정권에 항거하는 과정에서 김기설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의 분신 자살사건을 포함해 각종 분신 사건이 잇따랐다. 강씨는 “그해 5월 청와대는 당정 고위회담을 거쳐 배후조종세력을 조사할 것이라는 방침을 정했다.”고 회고했다. 이어 “전민련은 검찰이 유서대필 여부를 조사하려고 김씨의 필적을 수집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업무일지를 제출했다.”고 주장했다. 그 뒤로는 일사천리였다는 게 강씨의 판단이다. 검찰은 업무일지와 김씨의 유서,1985년 시국사건으로 구속된 강씨의 자술서 필적 등에 대한 감정을 국립과학수사연구소에 의뢰했다. 그 결과 국과수는 강씨의 자술서와 김씨 유서의 필적이 동일하다는 감정을 내렸다. 강씨는 “조사과정에서 전민련 업무일지 작성자가 이동진, 임무영, 김기설씨 3인이 공동 작성한 것으로 진술했다.”면서 “당황한 검찰은 내가 조작해 작성했다고 자백할 것을 다그쳤다.”고 주장했다. 같은 해 5월13일 김씨가 군대 동료 수첩에 20자 안팎으로 쓴 자필 자료를 검찰에서 압수해 갔고, 그 자료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사건의 의혹은 증폭됐다. 강씨는 물론 당시 김씨의 상급부대 인사장교로 근무했던 이찬진 변호사는 “검찰은 그 자료를 찢어갔지만 증거자료로 제출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김씨는 군대 동료들 사이에서는 ‘연애편지의 전설’로 불렸다고 한다. 따라서 검찰이 동일필적 여부를 밝혀내려고 했다면 김씨의 부대에서 수많은 필적자료를 찾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이 변호사는 주장했다. 강씨는 “유서대필 사건은 수사를 담당했던 세력들이 정권 요직에 그대로 남아 변한 게 없다.”고 주장하며 철저한 진상규명을 촉구했다. 구혜영기자 koohy@seoul.co.kr
  •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경찰 과거사규명위 수사 상황

    [‘강기훈 유서대필’ 진상 밝혀질까] 경찰 과거사규명위 수사 상황

    재야 일각에서 ‘한국판 드레퓌스’사건으로 부르는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의 진상이 새로이 밝혀질까.8일은 지난 1991년 5월8일 군사독재와 공안탄압에 항거, 분신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은 김기설 당시 전민련 사회부장의 14주기 날이다. 최근 14년 만에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가 이사건을 우선조사대상 사건으로 선정했다. 정치권에서도 과거사법에 의해 조사대상 선정을 요구하는 등 진상규명 움직임이 활발해지고 있어 당시 사건을 재조명해 본다. 경찰청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는 ‘강기훈씨 유서대필 사건’을 우선조사대상으로 선정, 지난주 1차 문서검토 작업을 마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당시 이 사건은 경찰조사 없이 곧바로 검찰조사부터 이루어져 관련 수사기록은 모두 검찰측에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경찰청 과거사위의 조사가 쉽지 않을 것으로 짐작되는 부분이다. 박형호 조사팀장은 이날 “이번주부터 사건 관련자 면담을 진행하고 검찰측에 수사기록 자료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경찰청 과거사위는 공안정국 조직사건의 특성상 국가안전기획부가 주도한 경우가 대다수였던 데 비해 유서대필 사건은 유독 검찰이 주도했던 부분에 대한 조사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과거사위 관계자는 “공안정국과 맞물려 검찰 스스로의 권력을 과시하기 위한 무리한 시도였다는 개괄적인 분석도 나오기는 하나 다른 사건에 비해 지휘라인도 명확하게 드러나 있지 않다.”고 전했다. 과거사위는 검찰의 수사기록과 함께 당시 검찰이 수집했던 고 김기설씨의 전체 필적자료와 안기부 등과 진행했던 관계기관대책회의 기록 등도 공개요청할 계획이다. 이 과정에서 국립과학수사연구소 김형영 당시 문서분석실장의 필체분석 결과를 기초로 강기훈씨에게 유죄를 선고했지만 재판 확정 후 언론과 감정인들이 의혹을 제기했던 부분 등에 대한 광범위한 조사가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 한편 최근 발족된 강기훈 유서대필 조작사건’ 진상규명 대책위원회는 10일 허준영 경찰청장과 면담을 갖고 철저한 진상규명을 요청키로 했다. 같은 날 오후에는 국가인권위원회에서 토론회를 갖고 ‘유서대필 사건의 필적감정의 문제점’과 ‘유서대필 사건과 검찰·법원의 역할’ 등 사건 재조명에 주력할 방침이다. 구혜영 유영규기자 koohy@seoul.co.kr
  • 경산 쓰레기 매립장 상처만 남긴 ‘님비’

    경산 쓰레기 매립장 상처만 남긴 ‘님비’

    주민들의 집단 반대와 소송 등으로 9년째 표류 중인 경북 경산시의 쓰레기매립장 조성사업이 갈등의 종지부를 찍고 재개될 전망이다. 경산시는 쓰레기매립장 공사와 관련돼 그동안 맞소송을 벌였던 종전 공동도급 대표회사인 ㈜CIC와 연대보증사인 ㈜유성건설이 최근 공사현장 인수·인계 및 하도급 업체 인수·미불금 청산 등에 합의하고 각종 소송을 취하함에 따라 쓰레기매립장 공사를 본격 추진하기로 했다고 19일 밝혔다. 1997년 6월부터 남산면 남곡리 일원(9만여평)에 총 사업비 387억 8000여만원으로 16년 동안 쓸 수 있도록 추진된 시의 쓰레기매립장 조성사업은 주민 반발과 소송 등으로 장기간 표류됐으며, 현재 10%의 공정률을 보이고 있다. ●주민소송 이어 도급사간 밥그릇싸움 이번 공사가 순조롭게 추진될 경우 당초 계획보다 4년여 늦어지긴 했지만 내년 하반기부터는 쓰레기매립장을 사용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15개 읍·면·동 지역으로 분산 처리해 오던 생활쓰레기를 한 곳에 모아 종합 관리해 위생적으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시의 쓰레기매립장 조성사업은 시작부터 각종 소송 등으로 ‘바람 잘 날’이 없었다.97년 남산면 일대가 쓰레기매립장 후보지로 선정되자 주민들은 곧바로 ‘입지 선정 과정에 절차상 하자가 있었다.’며 행정소송과 헌법 소송을 제기,4년여 동안 공사가 중단됐다. 이후 대법원의 확정판결로 2003년 공사가 재개됐으나, 이번엔 공동도급 3사간의 ‘밥 그릇’ 싸움 문제 등으로 공사가 제자리 걸음을 계속했다. 급기야 시가 지난해 10월 공동도급 대표회사인 ㈜CIC와의 계약을 전격 해지하는 극약처방을 내렸다. 부진공정과 현장을 혼란에 빠뜨린 것이 주된 이유였다. 대신 시는 보증회사인 ㈜유성건설을 새 대표회사로 선정했다. 이에 ㈜CIC측은 “공동도급사 구성원 변경 승인 및 계약 해지는 경산시의 일방적 결정으로 수용할 수 없다.”며 계약해지효력정지 등 가처분신청을 대구지법에 내는 등 법적 대응에 나섰다. 이에 따라 공사는 또 다시 중단됐다 최근 이들 회사간에 공사현장 인수·인계 등에 대한 전격적인 ‘딜’이 이뤄져 새로운 전기가 마련됐다. 경산시 관계자는 “현안인 쓰레기매립장의 조속한 완공을 위해 종전 공동도급 대표회사에 대한 계약 해지는 불가피한 조치였다.”면서 “이로 인한 장기간의 법정 공방 우려 등으로 ‘쓰레기 대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됐으나, 양사간에 합의가 이뤄진 것은 천만 다행”이라고 말했다. ●엄청난 행·재정적 손실을 입어 시가 쓰레기매립장 조성을 위해 치른 대가는 이것만이 아니다. 시는 남산면에 쓰레기매립장을 조성하는 조건으로 현금 125억원을 주민지원기금으로 내놓기로 한 것을 비롯해 ▲24개 이(里)별 숙원사업비 2억원씩,48억원 ▲남산종합개발 계획 수립 등을 약속했다. 쓰레기매립장 등 각종 혐오시설 건립과 관련, 이같은 주민지원 규모는 전국 최대로 알려졌다. 먼저 시가 입지타당성 조사에 대한 공람·공고를 제대로 하지 않는 등 충분한 여론 수렴과 투명성없이 밀어붙이기식으로 추진해 주민 반발을 사게 됐으며, 결국 소송으로 이어져 엄청난 낭비를 초래했다. 주민들도 혐오시설에 대한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내 집 앞 쓰레기장은 안된다.’는 님비현상으로 일관해 성숙한 시민의식 실종이라는 따가운 비난을 사게 됐다. 공익시설을 담보로 시공업체들이 벌이는 ‘사익 챙기기’도 사라져야 할 과제로 지적되고 있다. 정성오(55) 경산시 사회환경국장은 “그동안 쓰레기매립장 건립을 둘러싼 주민 등과의 갈등으로 엄청난 행·재정적 손실을 입은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경산 김상화기자 shkim@seoul.co.kr
  • 日 “反日시위 적극대처를” 中 “사과는 무슨”

    日 “反日시위 적극대처를” 中 “사과는 무슨”

    |베이징 오일만·도쿄 이춘규특파원|일본의 역사 왜곡과 영토 분쟁으로 촉발된 중국의 반일시위가 16,17일 양일간 중국 전역과 홍콩으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이런 가운데 17일 오후 리자오싱(李肇星) 중국 외교부장과 마치무라 노부타카(町村信孝) 일본 외상이 베이징에서 회담을 가졌으나 타협점을 찾지 못해 양국 외교마찰이 장기화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마치무라 외상은 중국 정부가 반일시위에 적극 대처해줄 것을 요청했으나 리 부장은 “중국 정부는 일본인들에게 사과할 만한 행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고 일축했다. 16일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上海)에서 10만명이 참가한 최대 규모의 폭력 시위가 발생한 데 이어 17일 랴오닝(遼寧)성 선양(瀋陽), 선전 등 중국 내 7개 주요 도시에서 동시다발로 발생했다. 게다가 중국에 진출한 일본인 공장에서 처음으로 중국인 노동자들이 전면 파업을 단행, 노동자 파업으로의 확산 여부가 주목된다고 홍콩 언론들이 17일 보도했다. 선양시 대학생 2000여명은 이날 선양 주재 일본총영사관을 향해 돌과 페인트병을 던지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이는 등 반일시위가 점차 폭력적으로 치닫고 있다. 선전에서는 3만여명이 선전시체육관 앞에서 일본 저스코백화점 앞까지 가두행진을 벌이며 반일구호와 일본제품 불매운동을 촉구했다. 청두·둥관시의 시민 1500여명도 가두시위를 했다. 홍콩에서는 1만 2000명의 학생·시민이 반일 시위에 가세했다. 노동자 파업과 관련, 둥관(東莞)시에 입주한 일본투자 전자부품 제조업체인 태양유전의 노동자 수천명은 16일 출근 뒤 일장기를 불태우고 공장 유리창을 파괴하며 파업에 돌입했다. 사태가 악화되자 중국 당국은 17일 관영 인민일보 사설을 통해 냉정과 안정을 찾을 것을 촉구했다. 한편 일본에서도 중국을 겨냥한 공격이 잇따랐다. 신원미상의 30∼40대 일본인 남자가 이날 새벽 일본 오사카 주재 중국총영사관을 향해 유리병을 던진 뒤 분신을 시도, 중화상을 입었다고 일본 언론들이 보도했다. oilman@seoul.co.kr
  • ‘독도는우리땅’ 분신 김경태씨 사망

    지난달 29일 충남 당진군청 마당에서 ‘독도는 우리땅’ 노래를 부르며 분신, 중태에 빠졌던 김경태(44·당진군 원당리)씨가 17일 오전 1시30분쯤 입원 중이던 서울 구로성심병원에서 숨졌다. 병원측은 “중환자실에서 치료를 받았으나 화상이 워낙 심해 회복하기 어려웠다.”고 밝혔다. 분신대책위원회는 18일 오후 김씨의 시신이 든 관을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으로 옮겨 시위를 벌이기로 했다. 이효용기자 utility@seoul.co.kr
  • 윤후명 장편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

    윤후명 장편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

    ‘삼국유사’를 처음 접했던 날이 언제였던가. 가물가물하다.“청무처럼 푸르렀던 대학 시절 어느 날” 이후로 내려놓을 수 없는 강박에 짓눌려 살았다는 것만 또렷하다. 중진작가 윤후명(58)은 “(젊은 날)섣부른 철학에 물들어 얼치기 회의주의자로 매사에 머뭇거리며 살아가던” 어깨 위로 각성제처럼 내리꽂힌 죽비가 다름아닌 ‘삼국유사’였노라고 고백한다. 그가 그렇게나 오래 애정을 갖고 읽어온 ‘삼국유사’를 독자들에게도 읽어주기로 했다. 새 소설 ‘삼국유사 읽는 호텔’(랜덤하우스중앙 펴냄)은 평양을 여행하는 주인공이 호텔방에서 ‘삼국유사’를 다시 읽으며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들을 풀어놓는 틀거리의 장편이다. 주인공 ‘나’란 인물이 작가 자신의 분신임은 말할 것도 없다. 분단 이후 처음 육로를 통해 3박4일간의 평양여행길에 오른 ‘나’는 평양시내 양각도 호텔에 머물면서 이런저런 감회에 젖는다. 호텔 로비에 비치된 ‘삼국유사’를 밤 시간의 파적거리로 집어든 나는, 이제 방으로 돌아와 전에 읽었던 구절들을 새삼 되짚어본다. 작가에게 이번 소설은 단지 글쓰기 욕구를 풀기 위함이 아니다.“‘삼국유사’의 기록들은 하나 같이 빛나는 구슬로 이루어져 있는데, 꿰어 있지는 않다.”는 그는 “내가 읽은 이야기들을 꿰어 엮어서 벗님(독자)들께 선물하고 싶었다.”고 했다. 좀더 많은 독자들을 ‘깊고 넓은 귀중한 책’에 눈뜨게 하고자 짐짓 작중 주인공에게 또박또박 읽히기로 수완을 부렸다. 꾀 부릴 독자들을 단단히 붙들어매기 위함일까. 때론 기행문 같고, 또 때로는 진지한 회고담이 되기도 하는 글의 형식이 다채롭다. 낮 동안 평양 곳곳을 돌아다닌 주인공은 ‘삼국유사’의 구절구절을 다시 읽는 동안 회상에 젖기도 한다. 대부분의 독자들이 교과서를 통해 접했을 ‘구지가’(龜旨歌)가 해설을 달고 등장하는가 싶으면, 어느새 허황옥(許黃玉)이 인도에서 배를 타고 와서 김수로왕의 왕비가 된 이야기로 가지가 뻗어있다. 저만치 밀쳐져 눅눅해진 설화를 꺼내 쨍한 햇빛에 널어말리는 것도 작가의 묘수다.‘삼국유사’의 흔적을 더듬어 그녀 M과 옛 가야땅 김해 등을 현장답사한 추억을 불러내 아련한 감상을 덧씌우기도 한다. 소설은 이처럼 과거와 현재, 신화와 작가 개인의 기억이 혼융된 독특한 질감으로 다듬어졌다. 왜 지금 ‘삼국유사’냐고 질문할 독자를 배려해 책 속에 넌지시 답변을 질러넣어 뒀다.“그제야 나는 왜 내가 책(삼국유사)에 몰두했는지 알 것 같았다. 막힌 통로 속에서의 몸짓, 그것이 아닐까.”(68쪽) ‘구지가’의 가사(‘거북아, 거북아, 머리를 내놓아라’)를 인용하며 이렇게 은유하기도 했다.“스르르 잠이 밀려올 때 나는 노래의 구절을 조렸다. 정의여, 진실이여, 머리를 내미소서.”(69쪽) 오래 별러온 글작업의 노곤한 뒤끝이어서일까.“책이 나오고 내리 닷새 동안 술에 기대어 산다.”는 작가는 2005 프랑크푸르트도서전 주빈국 조직위원회 주최로 19일부터 독일 본, 쾰른 등에서 열리는 한국문학 순회 프로그램에 참가한다. 황수정기자 sjh@seoul.co.kr
  • 안병기, 강풀만화 ‘아파트’ 영화화

    ‘가위’‘폰’‘분신사바’ 등을 잇달아 발표해 한국 공포영화의 독자적인 틀을 확립한 것으로 평가받는 안병기 감독이 차기작으로 인기 만화가 강풀 원작의 ‘아파트’를 선택했다. 제작사 토일렛픽쳐스는 13일 “안병기 감독이 동명의 강풀 만화 원작 영화 ‘아파트’의 메가폰을 잡기로 했다.”고 밝혔다.‘아파트’는 지난 2003년부터 인터넷 미디어 다음(www.mediadaum.net)에서 연재되어 큰 반향을 얻은 인기 만화로, 치밀한 구성과 허를 찌르는 반전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현재 영화는 시나리오 작업 중에 있으며 오는 10월 개봉될 것으로 보인다. 토일렛픽쳐스와 영화세상이 공동제작하며 투자는 IM픽쳐스에서 맡을 예정이다. 이순녀기자 coral@seoul.co.kr
  •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6) 낙산사와 해수관음

    [바다에 살어리랏다-주강현의 觀海記] (66) 낙산사와 해수관음

    놀라운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맙소사!’,‘아이구, 하나님!’이라거나 ‘어머나!’를 외친다. 그런데 예전 사람들은 ‘나무관세음보살….’이 입에 붙어 있었다.5일 식목일, 한국 관음도량의 진원지인 천년 고찰 낙산사가 화염에 휩싸인 장면을 보면서 ‘나무관세음보살’이라는 탄식이 절로 터져 나왔다. 관음보살은 화마도 물리친다는데…. 지난해 10월 낙산사를 답사했지만 ‘사람들에게 너무도 잘 알려진 곳’이라는 생각에 막상 글은 쓰지 않았었다. 그런데 그 낙산사가 잿더미로 변했다. 동해의 ‘관해 1번지’는 두 말할 것 없이 낙산사다. 교과서에도 나오는 곳이라 오히려 수학여행 코스에서 빠질 정도로 널리 알려진 낙산사가 쑥대밭이 되었으니, 고찰의 운명이란 이런 것인가. ●남해 보리암·강화 보문사와 함께 3대 관음도량 관음보살은 관세음, 또는 관자재보살이라 한다. 대자대비의 화신으로 사바세계의 중생들이 진심으로 부르기만 해도 고통과 번민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관세음보문품’에 부처께서 이르기를 “선남자여! 많은 중생이 온갖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없을 때 관음을 한 마음으로 부르면 그 소리를 들으시고 모든 괴로움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신다. 활활 타는 뜨거운 불길에 갇힌다 해도 타지 않으니, 관세음보살의 위력 때문이다. 큰 물길에 떠내려간다 해도 관음을 부르면 곧 안전한 땅에 이르게 될 것이다.”고 했다. 큰 일 닥쳤을 때 저절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는 것은 이런 관음 영력을 믿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낙산사는 남해 보리암, 강화 보문사와 더불어 한국 3대 관음도량이자, 세계 8대 보타성지다. 그 중 관음신앙의 원조는 아무래도 낙산사다. 의상조사가 세운 가람이기 때문이다. 순조시절의 범해(梵海)가 찬한 동사열전(東師列傳)에 다음 같이 의상의 행장을 밝히고 있다.“귀국하는 당나라 사신의 배에 실려 입당, 화엄의 2대 조사인 종남산 지엄의 방에 들어가 함께 화엄경에 관해 문답하였다. 화엄경의 오묘한 뜻을 논함에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부분까지도 철저히 해부, 분석하니 가히 청출어람 격이었다.”이렇듯 해동 화엄종의 시조라 하여 그는 의상조사로도 불린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의상은 원효와 가까웠던 도반이다. 뜻을 같이 해 중국유학길에 오르다 원효는 되돌아오고, 의상은 건너갔다.661년에 산둥반도 끝에 있는 무역항 등주로 들어갔으니 이 때 그의 나이 이미 30대 후반. 오늘날까지 불교의식에서 빼놓지 않고 애송되는 그 유명한 법성게도 바로 의상조사의 창작이다. 화엄경의 심오한 진리를 7언시 30구로 응축시켜 놓았으니 본래 이름은 화엄일승법계도(華嚴一乘法界圖)이다. 의상은 일관되게 실천하는 삶을 살았으니, 철저한 신분제 계급사회인 당대에 거대한 토지와 노비를 거느린 사찰의 영화를 끝내 거부하였다. 그런 그가 세운 가람이 바로 낙산사이다. 설악산의 준수한 줄기가 양양쪽 동해로 흘러 내리다가 빚어낸 오봉산 품안에 넉넉하게 자리잡아 산은 작되 옹골지며, 산세가 수려하여 송림이 우거졌고, 동해를 벗하여 가히 해산(海山)의 격조를 말해 준다. 벼랑 때리는 파도를 벗삼아 잠들고, 다시금 파도 소리에 선잠을 깨는 가람이다. 오봉산은 본디 보타산 낙가산이었으니, 낙산이란 관음보살이 산다는 포타라카(Potalaka)의 음역으로, 낙가산 혹은 낙가로도 불린다. ●당에서 귀국한 의상, 관음 계시로 낙산사 지으니 당에서 귀국한 의상은 온 나라를 주유하며 뜻을 펼칠 마땅한 땅을 찾다가 이곳에 이른다. 해변 석굴에 관음 진신이 산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높이 100자가 넘는 해식 단애의 깎아지른 바위 틈으로 쉴 새 없이 파도가 드나드는 험한 곳. 그곳에서 관음 진신을 만나길 간구했으나 뜻을 못이루자 그대로 바닷물에 몸을 던진다. 마침내 관음이 그 정성에 감복하여 진신은 드러내지 않은 채 수정염주 한 꾸러미를 건냈으며, 동해 용왕도 여의보주 한 알을 내렸다. 그러나 의상은 다시 이렛동안 진심으로 기도하여 마침내 관음을 친견한다. 관음은 의상에게 굴 위 산꼭대기에 쌍죽이 솟아날 것인즉, 그곳에 절을 짓도록 계시한다. 낙산사를 이해하려면 반드시 중국 보타산을 알아야 한다. 관음도량인 보타산은 오대산 문수보살, 아미산 보현보살, 구화산 지장보살 도량과 더불어 중국 불교의 4대 성지다. 바다 가운에 꽃처럼 피어있는 보타산은 상해에서 쾌속선으로 1시간 반, 항주 이남의 영파에서는 4시간이 걸리는 곳이다. 불긍거관음원(不肯去觀音院)은 보타산의 여러 사원 가운데 중심이며, 조음동사원은 우리 낙산사와 주위 경관이나 지형이 너무도 흡사하다. 동해 일출의 관해지인 의상대와 바닷물이 절벽 아래까지 밀려들어와 절벽을 치며 동굴에서 파도를 일으키는 홍련암 관음굴이 너무 비슷해 하나의 의문이 풀린다. 의상이 일찍이 중국 보타산을 순례하고 그곳 지형과 거의 흡사한 동해안에서 바다로 돌출한 해식 동굴을 찾아내 그 위에 건물을 올렸던 것이 다양한 연기설화로 전해진 것은 아닐까. 그동안 불긍거관음원을 세운 유래를 불조통기(佛祖統記)란 자료를 통해 일본 승려 혜악(慧鍔)선사와 관련지어 설명하는 학설이 주류였으나, 신라 상인들이 지었다는 설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다. 북송 말 서긍은 고려도경(1124)에서 “석교의 산록 위에 양무제가 세운 보타원이 있고, 전각 안에는 영험한 관음상이 있다. 옛날에 신라 상인이 오대산에 갔다가 그 불상을 조성해 싣고 본국으로 돌아가려 했다. 바다로 나아갔으나 배가 암초에 걸려 더 나아가지 아니하므로 관음상을 바위 위에 내려 놓았다. 관음원의 승려 조악이 전각 안으로 모셨더니 해상으로 왕래하는 이들이 반드시 나아가 기도하매 감응하지 않음이 없었다.”고 적었다. 글은 보타산이 관음보살의 주도량이며, 항해를 위한 기도도량으로 조성된 사실을 알려준다. 실제로 관음원 앞바다에는 신라초(新羅礁)로 불리는 조그마한 암초까지 남아 있다. 의상을 비롯한 많은 고승들의 중국유학, 보타산과 비교되는 낙산사, 그리고 보타산의 신라인 흔적은 해로를 통한 중국과의 왕성한 교류를 잘 암시한다. ●중국 보타산과 주위경관·지형 흡사 낙산사에는 관음과 얽힌 여러 설화들이 전해진다. 삼국유사를 보면 원효 역시 낙산의 관음 참배에 나선다. 낙산 근처에서 흰옷 입은 여인이 벼를 베기에 원효가 다가가 장난삼아 벼를 달라고 하니 여인은 벼가 흉작이라 줄 수 없다고 답한다. 다리에 이르니 한 여인이 서답을 빨고 있기에 마실 물 좀 달라고 청하니 서답 빨던 더러운 물을 주는지라 원효는 냇물을 새로 떠마셨다. 그랬더니 들판의 소나무 위에서 파랑새 한 마리가 “휴제호와상아”라고 말하는데,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나무 밑에 짚신 한 짝만 남아 있었다. 절에 이르러 보니 관음상 아래에 방금 전에 보았던 짚신이 한 짝 있음을 보고서야 자신이 만난 여인이 관음임을 깨닫는다. 원효가 다시 암굴에 들어가 관음 진신을 보고자 했으나 풍랑이 크게 일어나 들어가지도 못한 채 낙산을 떠나야 했다. 원효의 관음 친견까지 더해 관음도량 낙산사의 격을 한층 높이는 설화다. 관음의 주장처이면서도 정작 낙산사는 늘 편치가 않았다. 고려시대 몽골군의 침략으로 초토화되어 관음상도 부서진다. 오대산에 자주 나다니던 세조는 원통전 석탑을 7층으로 늘리고 중창 불사를 단행한다. 그로부터 20년 뒤(1485)에 낙산사를 찾은 남효온의 유금강산기(遊金剛山記)를 보면, 그 때까지는 의상이 만들었다는 관음소상이 관음전에 안치돼 있었고, 관음굴에는 파도가 돌을 쳐대는 전각도 있었으며, 그 시대에도 낙산 일출의 장관을 보려는 발길이 끊이지 않았던 것 같다. 관동팔경의 하나인 낙산일출은 이미 조선시대부터 유명세를 치렀으니 최소한 600년이 넘는 전통이다. ●여러번 화마에 휩싸였던 낙산사 또 ‘고통’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절은 다시 무너진다. 광해 11년(1619)에 관음굴을 중건하며, 인조 9년(1631)에 재건하여 어느 정도 복원된다. 그 모습은 겸재 정선이 힘찬 필치로 그린 낙산사와 관음굴에 잘 남아 있다. 이후 낙산사는 중건을 거듭하며 1925년에는 의상대까지 세워 동해 일출의 적지로 자리매김한다. 그러나 삼팔선 근역에 위치, 한국전쟁의 격전지가 되면서 다시금 금석물과 원통전 앞 원문을 제외한 모든 당우가 불타버린다. 불자들이 가장 많이 찾아오는 고려시대 불상인 건칠관음보살좌상(보물362호)을 모신 원통보전도 전쟁 이후 새로 세운 것이다. 연꽃을 타고 바다를 건너는 관음이니, 낙산사 홍련암이란 검푸른 동해에 떠있는 붉은 연꽃, 즉 관음의 분신이렸다. 홍련암 마루바닥에는 10㎝ 가량의 구멍이 있어 파도가 들이치는 모습이 한 여름에도 전율을 느끼게 한다. 해일이 몰아쳐서 집채만한 파도가 몰아쳐도 홍련암만큼은 버텨 왔다. 의상이 관음을 친견하고 동해 용왕이 여의주를 내린 장소로 손색이 없다. 이상하게도 벼랑 위에 위태롭게 세운 홍련암은 온갖 병화에도 끄떡없다. 그것 또한 관음의 원력은 아닐런지. 그러나 이 모든 게 이번 산불로 다시 잿더미가 되고 말았으니 낙산사는 본디 애초의 출발지였던 관음굴로 되돌아 간 셈이다. 원통보전은 물론이고 해수관음을 상징하던 보타루도 사라졌다. 한가롭게 바다를 굽어보며 차를 마시던 솔숲이 흉물스럽게 그을렸다. 바닷가 홍련암 요사채도 사라지고 관음굴만이 화마를 피했으니 본디 낙산사의 원점으로 회귀한 폭이다. 붉은 장송이 하늘을 가린 아름다운 솔밭길을 올라가면 해수관음상이 있는 신선봉이 나오는데, 그 솔밭도 그만 타버렸다.1977년에 700여t의 돌을 들여 높이 16m로 세운 해수관음만이 남아있어 먼 동해를 굽어보며 서있을 뿐이다. 관음보살이 중생들의 원력을 시험하려고 하심인가. ●집채만한 파도 몰아쳐도 버텨온 홍련암 죽어 자빠진 소나무의 몰골들이 귀신을 부를 것만 같은데 화마가 훑고 갔어도 낙산의 일출만은 어제와 다를 바 없으니, 그 아름다운 관해의 1번지를 모두의 공력으로 다시 세울 일이다. 관해의 명당이어서 만은아니다. 역사적으로나, 규모로나 동해안 사찰의 태두 격인 낙산사의 화마 소식에 실로 안타까운 헌사를 바치지 않을 수 없다. 삶의 덧없음을 갈파한 낙산사 조신설화처럼 사람의 인생뿐 아니라 말 못하는 문화유산도 덧없는 것이런가. 아름다운 원장(垣墻)이 처참하게 불에 그을린 채 동해를 굽어보는 모습이 참으로 안쓰럽고 민망하다.
  • 전태일 열사 1억4000만원 추가보상

    지난 1970년 근로기준법 준수를 주장하며 분신자살한 전태일 열사에 대해 1억 4000여만원의 추가보상이 이뤄진다. 민주화 보상자에 대한 보상 기준이 바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그동안 지급대상에서 제외됐던 민주화 관련 불법 구금자에게도 보상금이 지급된다. 정부는 4일 국무회의를 열고 ‘민주화운동관련자 명예회복 및 보상법률 일부 개정령’을 의결했다. 이에 따르면 민주화 운동관련 사망자와 부상자에 대해 보상금 지급 기준임금을 당시 급여를 적용하거나, 당시 급여가 최저임금에 미달하면 현재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적용하도록 했다. 지금까지는 사건 당시의 급여만 적용했다. 생활지원금 지급기준은 30일 이상 구금자에게도 지급할 수 있도록 했다. 구금자는 최고 5000만원 이내에서 지급받는다. 이에 따라 보상금이 지급된 민주화운동 관련자에게는 이미 지급한 금액과 새로 적용되는 기준에 따른 차액이 보상된다. 보상금이 미리 지급된 인원은 380명인데, 이중 50% 정도는 차액이 지급될 전망이다. 전 열사 가족에게 지급될 차액은 1억 4000여만원으로 가장 많다. 기존의 보상 방식은 사망 당시의 월수입을 기초로 호프만 방식에 따라 계산이 이뤄졌다. 당시 전 열사의 월 급여는 2만 991원이어서 2000년쯤 930만원을 보상받았다. 하지만 새 보상법에 따라 전 열사는 올해 최저임금인 월 64만 1840원을 기준금액으로 적용받게 됐다. 조덕현기자 hyoun@seoul.co.kr
  • 도봉구 지하차도 인근 주민 ‘공공의 적’인가

    도봉구 지하차도 인근 주민 ‘공공의 적’인가

    “우리 아파트 앞으로는 절대 지하차도를 개설할 수 없습니다.” 서울 도봉구(구청장 최선길)가 창4동 181번지와 창5동 224번지를 잇는 지하차도 조성공사에 대한 설명회를 개최했지만 인근 주민들의 집단 반발로 파행적으로 끝나고 말았다. 지난 25일 오후 2시 창4동 현대 4차 아이파크 앞 공원에서 열린 설명회는 새로 조성되는 지하차도에 대한 필요성과 공사기간 중 발생될 통행불편을 최소화하는 방안을 함께 머리를 맞대고 찾자는 취지에서 마련됐다. ●내집 앞엔 길도 내지마라? 시비 158억원을 지원받아 새로 만드는 지하차도는 폭 20∼25m, 연장 352m의 왕복 2차선으로 건설되며 올 상반기 중 착공돼 오는 2006년말 완공될 예정이다. 지하차도는 경원선 철도가 지나는 부분을 지하로 횡단, 도봉로와 마들길을 잇는 왕복 4차선 도로와 바로 연결된다. 구는 도로가 만들어지면 2000년 이후 대형 아파트단지가 많이 들어선 창4·5동 지역을 비롯, 방학사거리와 방학지하차도 일대의 상습교통정체를 해소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구 관계자는 “지하차도가 만들어지면 방학로는 물론 도봉로와 마들길의 흐름도 좋아지며 의정부 등 경기 북부지역과도 쉽게 오갈 수 있게 된다.”고 설명했다. ●통행 불편·사고 위험등 내세워 ‘막무가내’ 하지만 공사구간 인근 창4동 현대 2∼4차 아파트 주민들은 공사의 필요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아파트 입주자 대표 A씨는 “지금은 대형 국책사업도 주민들이 반대하면 못하는 세상”이라며 “주민들이 불필요하게 생각하는 공사니 설명회조차 필요없다.”며 거세게 반발했다. 이날 설명회에는 구청 관계자 및 창4·5동 구의원, 시공회사 관계자 등이 참석했지만 일부 주민들이 흥분된 반응을 보이면서 행사진행을 원천봉쇄했다. 구청측은 공사 기간 중 등하굣길 안전시설 확충 및 아파트 진입로 확장 등을 도면과 자료를 제시하며 설명했고 시공회사측은 공사로 인한 소음과 분진을 최소화하겠으며 직원들을 동원해 통행로를 이용하는 주민을 보호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주민들은 막무가내였다. ●일각선 “구청장 집 편익위한 공사” 일부 주민들은 “이번 공사가 구청장과 구청직원들이 많이 살고 있는 ‘북한산 아이파크’의 편익을 최우선적으로 고려한 공사”라며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주민들은 중재에 나선 창5동 목충균 의원의 발언을 고성을 지르며 막기도 했다. 또한 이들은 인근에 있는 재활용센터를 이전하고 철길 방음벽을 터널 형태로 만들어달라는 등 공사와는 별다른 관련이 없는 요구사항을 제시하고 있다. ●재활용센터 이전등 무관한 요구도 이에 대해 구 관계자는 “지하차도 건설은 지난 98년 현대아파트 단지에 대한 사업승인과 동시에 난 것이므로 구청장이 사는 아파트와는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주민들의 요구사항이 이번 공사와는 직접적 관련이 없는데다 공공성과 적절성이 부족해 무조건적으로 들어줄 수도 없는 문제”라고 덧붙였다. 한편 반대주민들은 공사가 진행되면 가처분신청을 해서라도 막을 것이라며 으름장을 놓았다. 이같은 행태가 무조건적인 지역이기주의로 비쳐질 것이 두려울 정도였다. 구청측은 앞으로 이같은 설명회를 몇 차례 더 열어 주민들의 이해와 동의를 구할 계획이다. 글 이병숙 시민기자 dulmaru@hanmail.net
  • 儒林(315)-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儒林(315)-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제3부 君子有終 제2장 鄒魯之鄕 여인의 향기. 그것은 두향의 향기였던 것이다. ‘임이 돌아간 뒤에도 천향을 피우리라.’ 하고 맹세하였던 것은 두향의 맹세였으며,‘원컨대 임이시여, 우리 서로 사랑할 때의 청진한 옥설 그대로 함께 고이 간직해 주오.’란 말은 단양군수를 끝내고 이별할 때 두향이가 했던 별곡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단양군수를 끝내고 돌아갈 때 퇴계의 행장 속에 깊이 간직되어 있던 매화는 두향이가 퇴계에게 주었던 별루(別淚)의 정표였던 것이다. 두향은 매화를 사랑하였던 퇴계처럼 매화를 사랑하였다고 한다. 이는 두향의 묘비에 새겨진 다음과 같은 비문을 통해서도 잘 알 수 있다. “성명은 두향. 중종조 시대의 사람이며, 단양 태생. 특히 거문고에 능하고 난과 매화를 사랑했으며, 퇴계 이황을 사모하였다.” 매화를 인격화하여 분신처럼 애중하였던 퇴계와 매화를 사랑하여 양매(養梅)하는 데 탁월한 솜씨를 지녔던 두향은 이처럼 취미에서부터 우선 서로 통하였다. 퇴계에게 정표로 준 것은 두향이 키우던 노매(老梅). 단양에 있는 9개월 동안 두향이가 준 노매를 유독 사랑하였던 퇴계는 떠나기 전날 두향에게 그 분매를 되돌려 주려고 하였으나 두향은 머리를 흔들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으리, 이 분매는 나으리께 드리는 신표이나이다. 어딜 가시더라도 나를 본 듯 있는 그대로 간직하여 주소서.” 퇴계에게 있어 두향은 특별한 인연이었다. 일찍이 이율곡이 아내와 동침할 때 의관을 정제하고 들어가 지극히 근엄하게 교접하였다는 말을 듣고 ‘만물이 제대로 생성하려면 비도 오고 바람도 불어야 하는 법인데, 율곡이 그토록 범방시에 근엄하다면 자식이 없겠는걸.’ 하고 걱정하였다는 말이 있듯이 퇴계는 남녀간의 상사를 비가 오고 바람이 부는 만물의 자연스러운 생성현상으로 보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나 퇴계에게 있어 여인들과의 인연은 이상하게 박복하여 가정적으로 행복한 사람은 아니었다. 이미 퇴계는 두 번이나 결혼하였으나 두 여인 모두 사별하였다. 두 번째 부인이었던 권씨가 죽은 것은 46세 때의 일. 단양에 군수로 있을 무렵에는 아내를 잃고 독수공방한 지 어느덧 2년이 흘러가 버린 뒤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퇴계가 두향을 만나 그의 인생에서 비도 오고 바람이 부는 운우지정의 자연스러운 생성현상을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맛보았던 것은 전혀 비도덕적인 행위는 아니었던 것이다. 특히 퇴계는 평소에 처가향념(妻家向念)을 제가(齊家)의 중요한 덕목으로 가르치고 이를 몸소 실천하였다. 지금도 퇴계의 가문에서는 ‘첫째 부모에게 불효한 사람과는 대화를 나누지 말 것, 둘째 처가에 향념이 없는 사람은 교제하지 말 것, 셋째 아내를 쫓아낸 사람과는 사업을 같이 하지 말라는 가규’를 시행하고 있을 정도인 것이다. 퇴계는 21세 때인 중종 16년 김해 허씨와 첫 번째 결혼을 하였다. 가락국 수로왕의 부인이었던 허황옥(許黃玉)의 후손이었던 허씨 부인은 4남매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퇴계와의 사이에 준, 채, 그리고 적(寂) 세 아들을 두고 불과 6년 만에 숨을 거두고 만다.
  • [박동섭 가족클리닉 행복만들기] 남편 전처의 딸이 돈 요구 행패

    저는 1988년 결혼해 남편과 행복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런데 얼마전 미국에서 돌아왔다는 20대의 젊은 여성이 남편의 전처 딸이라고 하면서 행패를 부립니다. 한번은 술을 마시고 찾아와 “아버지의 돈을 내놓아라. 그 많은 재산은 다 어떻게 했느냐.”면서 거실의 유리창을 깨기도 했습니다. 어떻게 막을 길은 없을까요. 하지만 형사고소를 하고 싶지는 않습니다. 또 이런 것이 남편을 상대로 이혼청구를 할 수 있는 사유가 될 수는 없을까요. -김인숙(가명)- 접근금지가처분 신청을 하는 것이 최선의 길입니다. 신청에는 두가지 방법이 있는데 하나는 일반 민사소송절차로 신청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가정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에 따라 신청하는 것입니다. 남자대학생이 어떤 여학생을 일방적으로 좋아해 편지나 이메일을 보내고, 계속 전화를 걸고, 뒤를 따라 다닌다든지, 집 앞에서 일정한 시간에 기다린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서로 좋아한다면 아무런 문제가 없지만 여학생은 싫어하는데 남학생만 일방적으로 무리하게 좋아해 ‘스토킹’을 할 때 문제가 생깁니다. 이 경우 그 남자의 친구를 동원하여 말리는 길도 있지만, 역시 어렵다면 민사신청으로 “홍길동은 ○○○에게 100m 이내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신청을 내면 법원에서는 당사자를 소환합니다. 그리고 담당판사가 신청인의 진술과 상대방의 이야기를 모두 들어보고, 접근금지명령을 내립니다. 이런 결정을 받고도 위반하면 과태료 처분을 내릴 수 있습니다. 또한 어떤 할머니가 재산이 많아 장남이 자기에게 유리한 유언을 받아내려고 평소와 달리 어머니에게 잘 대하고 나아가 다른 형제자매를 일절 만나지 못하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딸들이 “오빠가 어머니를 만나지 못하게 한다. 나는 어머니의 말을 듣고 싶다.”고 호소하는 일도 있습니다. 이 경우에도 면접교섭 방해금지 가처분신청을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음으로 가족간의 접근금지 신청은 가족의 일원이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해 가정생활의 평온을 깨트릴 때 사용됩니다. 인숙씨의 경우처럼 딸은 인숙씨의 1촌의 인척(배우자의 혈족)이고, 친족이므로 서로에게 일정한 권리와 의무가 있습니다. 딸은 아버지의 재산에 대하여 현재 청구할 권한은 없지만 생계유지가 곤란하다면 아버지를 상대로 부양청구를 할 수는 있습니다. 만일 같이 살고 있었다면 계모인 인숙씨와 딸 사이에도 서로 부양할 의무가 있습니다. 인숙씨가 남긴 재산에 대하여 그 딸이 상속할 권리는 없고, 딸이 남긴 재산도 인숙씨가 상속할 수 없음은 마찬가지입니다. 인숙씨가 딸을 상대로 접근금지신청을 하려면, 주소지 관할 수사기관에 고소하고 동시에 접근금지를 신청해야 합니다. 신고를 받은 사법경찰관은 폭력행위가 진행되고 있다면, 즉시 현장에 출동해 폭력행위의 제지, 행위자와 피해자 분리, 범죄수사 등을 합니다. 이런 응급조치에도 불구하고 폭력행위가 재발될 염려가 있다고 인정되면, 검사는 가정법원에 임시조치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가정법원은 행위자를 피해자의 집이나 방으로부터 퇴거 등 격리, 피해자의 집·직장 등에서 100m 이내의 접근금지, 병원 등 기타 요양소에 위탁, 경찰서 유치장·구치소에 유치 등을 결정할 수 있습니다. 판사로부터 접근금지결정을 받으면 행위자는 피해자와 항상 100m 밖에 있어야 하고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이를 위반하면 바로 구속됩니다. 접근금지결정은 사실 상당히 가혹한 최후의 수단인 만큼 가족의 건강, 가정의 평화 등을 고려해 신중하게 신청해야 할 것입니다. 끝으로 딸의 행동이 남편에 대한 이혼사유가 될 수 있는가는 남편이 혼인 당시 전처와 딸이 있다는 사실을 미리 아내에게 알렸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를 알리지 않고 느닷없이 전처의 딸이 나타나 감당할 수 없을 정도의 행패를 부리는데도 남편이 수수방관하거나 딸의 편을 든다면 이혼사유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족클리닉의 상담 의뢰는 인터넷 서울신문(www.seoul.co.kr)에서 받습니다.
  • [의회] 구로·부천 ‘화장장 전쟁’

    [의회] 구로·부천 ‘화장장 전쟁’

    ‘서울 구로구와 경기도 부천시는 현재 화장장 전쟁 중.’ 경기 부천시가 원미구 춘의동에 화장장 건립을 추진하자 서울 구로구 등 인근 주민들이 극렬하게 반대하고 있다.‘부천시가 공청회 등도 없이 환경 및 재산 피해를 불러올 화장장 설치를 강행하고 있다’는 게 구로구의 반대 요지다. 그러나 부천시는 “부천 시민들의 편의를 위해 꼭 필요한 시설”이라며 강행할 태세여서 화장장을 둘러싼 갈등은 고조될 것으로 보인다. ●구로 “환경 파괴·재산 피해 뻔해 법적대응 불사” 부천시는 지난달 4일 춘의동 462 일대 1만 6000여평에 ‘시립 추모의 집’을 건립한다고 발표했다. 추모의 집에는 화장로 6기와 유골 3만개를 수용할 수 있는 납골당이 들어선다. 모두 132억원의 예산이 들어간다. 부천시는 1260여평 규모의 화장로와 납골당을 제외한 나머지 면적에는 호수와 체육시설 등을 갖춘 가족형 테마 공원으로 조성하기로 했다. 내년 4월에 착공,2007년 4월에 완공된다. 그러나 문제는 춘의동이 서울 구로구와 양천구의 ‘옆동네’라는 점이다. 올상반기에 지구지정 해제 또는 완화가 예정돼 있는 온수연립단지와는 200m 정도 떨어져 있다.‘한달 사이에 집값이 반토막났다.’는 이야기가 나돌고 있다. 또 이곳에는 장애인 특수학교인 정진학교 등 7개의 학교가 몰려 있다. 화장장에서 나오는 분진에 학생과 주민들의 ‘생존권’이 침해당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이에 구로구 주민들은 지난 4일 ‘부천 화장장 건립 반대 구로구 투쟁위원회’를 결성한 뒤 지난 16일과 22일 부천시의회와 온수역, 역곡역 등에서 700여명이 모여 반대 집회를 벌였다. 구로구의회도 21일 “주민의 생존권과 재산권을 지키기 위해 화장장 건립을 저지하겠다.”는 내용의 결의안을 채택했다. 투쟁위 위원장인 구로구의회 변한수 의원은 27일 “묘지 및 장사에 관한 법률에 의하면 반경 300m 안에 학교 등 공공시설이 없어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면서 “정진학교 등과 300m도 못 미치는 거리에 화장장이 들어서는 것은 법적으로도 문제가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어 “부천 시민들도 화장장이 원미산을 중심으로 한 부천 녹지축을 파괴할 수 있기 때문에 반대하는 실정”이라면서 “다음달 중에 춘의동 화장장 건립을 반대하는 인근 양천구·부천시 주민 등과 함께 수천명 규모의 대대적인 반대집회를 벌이는 것은 물론, 공사중지가처분신청 등 법적 대응도 불사할 것”이라고 밝혔다. ●부천 “시민 편의위한 필수시설 건립… 분진등 최소화 노력” 부천시는 그러나 화장장 건립은 불가피하다는 입장이다. 화장장이 정부 시책으로 권장되는 사업이고, 시내에 화장장이 없다 보니 시민들이 몇 배나 많은 요금을 내고 인천이나 수원의 시설을 이용하는 실정이라며 건립을 미룰 수 없다는 설명이다. 부천시 관계자는 “화장로를 지하에 설치해 분진을 최소화하는 등 화장장을 친환경적으로 짓겠다.”고 설명했다. 구로구 관계자는 이에 대해 “부천시는 화장장 건립과 관련해 단 한 번도 협의 과정을 거치지 않는 등 지역 이기주의 밀실행정을 벌이고 있다.”면서 “구로구 주민들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화장장 건립 저지를 위해 모든 방법을 동원하겠다.”고 밝혔다. 이두걸기자 douzirl@seoul.co.kr
  • NYT 독도 기사 ‘일본해’ 표기

    |뉴욕 연합|한때 한국 공관과 교민들의 강력한 요구를 받아들여 ‘일본해(Sea of Japan)’ 표기를 자제하던 뉴욕타임스가 독도 문제에 관한 보도를 하면서 이 용어를 다시 등장시켰다. 타임스는 22일자 서울발 기사에서 주한 일본대사의 독도 영유권 주장과 시마네현의 ‘다케시마(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 조례 제정에 따른 한국의 격렬한 반발과 그 역사적 배경을 객관적으로 소개했다. 그러나 일본의 행태에 항의하는 시위 도중 한 시민이 분신하는 장면과 독도 전경 등 두 장의 사진과 함께 게재된 지도에는 동해가 ‘일본해’로 표기됐다. 신문은 뉴욕 총영사관과 뉴욕 일대 한인단체들의 지속적인 요청에 따라 지난 2003년 이후 ‘일본해’ 대신 ‘한국과 일본 사이 수역(the body of water between Japan and Korea)’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거나 동해 자리에 아예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아 동해 명칭 문제에 관해 중립적인 자세를 유지하려는 모습을 보여왔다. 이 기사에서 “일본의 독도 영유권 주장은 한국에서는 일제 침략의 정당화 시도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이로 인해 특히 월드컵 공동개최 이후 고조됐던 양국간 우호 분위기가 냉각되고 있다.”고 전했다.
  • [클릭 이슈] 고사위기 씨름계 ‘프로-아마 통합’ 논란

    [클릭 이슈] 고사위기 씨름계 ‘프로-아마 통합’ 논란

    독도 문제로 동해가 불타오르고 있는 가운데 최근 민속씨름 천하장사 출신 최홍만이 종합격투기대회 K-1에서 스모(일본 씨름) 출신 선수들을 잇달아 침몰시키며 우승을 차지했다. 흐뭇한 소식이 아닐 수 없다. 최홍만의 K-1 진출과 관련, 섭섭함을 감추지 못했던 씨름계도 내심 어깨가 으쓱할 만한 일. 그러나 현재 모래판 속사정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LG씨름단 해체 여파로 겪는 내홍에 더해 업친 데 덮친 격으로 프로-아마 통합 논의가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내부 갈등이 더욱 심해지고 있는 것이다. 프로-아마 통합 문제는 프로를 관장하는 한국씨름연맹이 침체된 씨름에 대한 관심을 촉발할 수 있는 묘안으로 내세운 대책 중의 하나. 한 때 8개 씨름단으로 호황을 유지하던 민속씨름은 LG씨름단의 해체로 프로팀은 2개만 남은 상태. 세 팀으로 대회를 꾸려갔을 때도 이미 단체전 의미가 퇴색됐고, 결승으로 가는 길목에서 같은 소속 선수가 격돌하는 등 흥미를 떨어뜨렸기 때문에 연맹은 아마추어인 지자체팀과 함께 정규대회를 치르는 방법을 최근 고사 위기를 돌파할 반전의 계기로 판단하고 있다. 설날대회처럼 프로 선수와 지자체 선수가 기량을 겨루는 일종의 오픈 대회를 정례화하자는 것이다. ●프로팀 2개, 지자체팀 14개 현재 남은 프로팀 2개에 울산동구청, 동작구청 등 지자체팀 14개가 더해지면 16개팀 체제로 개편되고, 선수도 30여명에서 130여명으로 크게 늘어난다. 이로 인해 ‘그 나물에 그 밥이 아닌’ 신선한 얼굴을 접한 팬들의 호응이 높아질 것이라는 계산. 또 두 팀이라면 자체 청백전식으로 운영되는 반쪽짜리 대회보다 박진감이 넘칠 수밖에 없는 점은 물론, 씨름의 명맥을 잇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온 TV 생중계에도 도움이 된다는 게 연맹의 설명. 연맹은 “이를 바탕으로 장차 지역 연고제로 발전시킨다면 과거 민속씨름의 영광을 되찾는 기폭제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신생팀 창단이 늦어지고 있는 만큼 프로-아마를 통합해 대회를 운영하는 게 차선의 방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연맹의 생각이 모두에게 공감을 얻고 있는 것은 아니다. 프로팀인 신창건설이나 현대삼호중공업은 격이 맞지 않는 지자체팀과 어깨를 나란히 하기에는 거북하다는 입장. 씨름단 해체도 불사하겠다는 강경한 목소리도 들려오고 있다. 금강급은 최소 1년, 백두급은 3∼4년 등 프로-아마 기량차가 커 승부의 재미를 반감시키는 것은 물론, 프로가 유명무실해지는 상황이 초·중·고등학교 등 전반적인 씨름 저변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게 씨름단측의 지적이다. 또 전 LG씨름단 소속 선수들이 팀을 찾지 못한 채 표류하는 상황에서 이들을 구제하는 방법을 모색하기보다는 통합 쪽으로 초점을 맞추는 것은 연맹이 해야 할 일의 순서에 어긋난다는 불만도 터져나오고 있다. 씨름단측은 “프로에서 아마로 돌아간 프로 스포츠의 전례가 없다.”면서 “아무리 좋은 방안이라고 할지라도 대회 운영과 직접 관련이 있는 씨름단과 공식적인 상의를 하지 않은 것은 도의에도 맞지 않다.”고 성토했다. 통합론의 또 다른 당사자인 지자체팀 사이에서도 아마추어는 들러리 역할만 한다는 우려가 팽배하다. 한 지자체팀 감독은 “매일 질 수밖에 없는 현실을 알기에 선뜻 연맹의 방안에 찬성하기는 어려운 일”이라면서 “서로 상이한 체급과 규칙을 조정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연맹 총재 퇴진요구로 불똥 통합론자와 불가론자들은 의사 개진을 넘어 아예 한국씨름연맹 총재 자리를 놓고 힘겨루기 양상까지 보이고 있다. 불가론자들은 지난해 6월 이호웅 총재가 물러난 뒤 민속씨름의 안정적 운영을 위해 김재기 직무대행을 영입했지만,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채 LG해체 사태와 관련해서는 무관심으로 대응했고, 이후 신생팀 창단 추진 과정에서도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은 만큼 퇴진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김 직무대행이 물러나지 않을 경우 직무정지 가처분신청 등 법적 소송을 준비하겠다는 후문도 있다. 이준희 신창건설 감독은 “김 직무대행이 오면서 대화는 커녕 독선적인 일처리로 일관, 각 단들의 불만이 폭발했다.”면서 “당초 약속이었던 신생팀 창단도 지키지 못하고 있는 만큼 당연히 물러나야 한다.”고 토로했다. 그는 “더욱이 직무대행으로 올 당시 지난해 12월에 스스로 물러나겠다고 공언하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반면 연맹 입장은 다르다.LG 해체는 기업 차원에서 결정됐기 때문에 연맹과는 무관하고, 정부를 통해 이를 막아보려 했지만 소용이 없었다고 반박한다. 또 신생팀 창단 노력도 게을리 한 게 아니라, 현재에도 추진 중이며 다만 경제 사정으로 여의치 않았을 뿐이라고 반박했다. 연맹은 “씨름단이 현 상황에 대한 대안은 내놓지도 않고, 연맹이 추진하는 일에 무조건 딴죽을 걸고 있다.”면서 “이는 위기의 씨름계를 나락으로 밀어내는 행위”라고 불쾌감을 표시했다. 홍지민기자 icarus@seoul.co.kr
  •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②-현대맨과 가신들

    [2005 재계 인맥·혼맥 대탐구] 현대家 ②-현대맨과 가신들

    “내가 하면 우리나라에서 제일 먼저 시도하는 것이고, 세계에 한국을 들이미는 일이었다. 그런 생각으로 다들 덤볐고, 그랬기에 자부심 또한 대단했다. 번듯한 직장과 두둑한 월급도 중요했지만 국가경제에 끼쳤던 절대적 영향력이 없었다면, 제 아무리 왕회장(고 정주영 명예회장)이 무서웠어도 그렇게 무모하리만큼 청춘을 불사르며 죽어라 달려들지 않았을 것이다.”25년을 현대에서 부대낀 이계안(53) 열린우리당 제3정조위원장은 자신을 포함한 현대맨들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기자는 짐짓 딴죽을 걸어보았다.“그렇지만 세상은 당신들을 가신이라 부르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이 위원장의 대답이 돌아왔다. “물론 오너(창업주 일가)와의 친분으로 사장이 된 사람도 있다. 또 내부 세력 다툼에서 촉발된 경영권 분쟁으로 아직도 현대가 부분적으로 국가경제에 부담을 주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치열한 경쟁을 뚫고 정상에 오른 사람들이다. 정주영 회장과 함께 건설, 자동차, 중공업 등 국가 기간산업을 무에서 일으킨 사람들이다. 부분적인 그림자가 있다고 해서 ‘경제인 정주영’과 현대맨들이 흘렸던 땀과 노력이 평가절하돼서는 안된다.” 현대는 여느 그룹처럼 구조조정본부가 없다. 그렇다고 비서실 인맥이 뚜렷한 것도 아니다.‘회장님’(정주영)과 ‘현대맨’, 두 가지 구분법만이 있을 뿐이다. 이같은 독특한 구조 때문에 ‘가신그룹’이라는 부정적 단어도 생겨났지만 이 위원장의 말대로 오늘날의 현대를 일궈낸 데는 현대맨들의 열정과 우직한 노력을 빼놓을 수 없다. ●현대… 현대맨… 현대스타일 현대맨들에게는 이른바 ‘현대 스타일’이라고 하는 공통점이 있다. 첫째, 부지런하다.“부의 원천은 근검”이라며 새벽 6시에 출근해 7시에 임원회의를 소집했던 고 정주영 회장의 스타일에 적응하다 보니 근면이 아예 몸에 배어 버렸다. 정 회장이 세상을 뜨고 그룹이 뿔뿔이 쪼개진 지금도, 현대라는 간판을 단 회사의 직원들은 오전 7시면 출근한다. 둘째, 저돌적이다. 이 역시 “이봐, 해봤어?”하는 정 회장의 윽박에 오랜 세월 단련된 결과다. 이 때문에 때로는 거칠고 무모하다는 평가도 받지만 일단 ‘문제’에 달려들어 해보려는 의지가 남다르다. 셋째,‘정주영 마니아’다. 여느 그룹이나 창업주에 대한 직원들의 존경심은 대단하지만 현대맨들의 정주영 회장에 대한 경외심은 일반인의 상상을 넘어선다.“그 분의 부지런함, 하면 된다는 의지, 집요한 노력을 곁에서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게 가슴 밑바닥에서부터 뭔가가 끓어오른다.” 정주영 회장과 함께했던 현대맨들의 한결같은 고백이다. ●핵심 인맥 ‘건설’ 그룹의 모태인 현대건설에 대한 창업주의 애착은 남달랐다. 때문에 현대건설 출신이 아니면 그룹에서 성장하기 어려웠고 건설 스타일이 아니면 적응하기도 어려웠다. 건설 인맥의 맏형은 훗날 그룹 상임고문까지 지낸 이춘림(78) 전 회장이다.1957년 현대건설에 입사해 77년 1월 사장을 지낼 때까지 직장생활의 대부분을 건설에서 보냈다. 그 뒤를 잇는 이는 이명박(64) 현 서울시장이다.‘현대맨의 전형’으로 불리는 그는 65년 현대건설 공채로 입사해 5년 만에 이사,12년 만에 사장이 됐다. 이후 91년까지 현대건설 회장으로 장수하며 ‘샐러리맨의 신화’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정작 그는 자서전 ‘신화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한다.“세간에서 나를 신화의 주인공이라고 한다. 그러나 신화는 명명하는 사람들 밖에서 보는 사람들에게만 신화일 뿐, 안에 있는 사람에게 그것은 겹겹의 위기와 안팎의 도전으로 둘러싸인 냉혹한 현실이다. 시련이라는 험한 파도 앞에서 나는 우회하지 않고 정면돌파를 시도했다.” 서울시장 재임 중에 밀어붙인 청계천 복원과 교통체계 개편은 그가 건설 출신의 현대맨임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 일각에서는 그에 대한 일화가 지나치게 과장됐다는 지적도 있다. 현대의 한 고위 임원은 “태국 근무때 강도에게서 회사 금고를 지켰다는 일화 등 일부 얘기는 다소 부풀려졌다.”면서 “정주영 회장과도 막판에는 사이가 벌어졌다.”고 밝혔다. 이 시장의 뒤를 잇는 이내흔(69)씨는 90년대의 현대건설을 키운 주역이다.70년 현대건설로 입사해 91년 11월부터 7년 가까이 현대건설 사장을 지냈다.100% 국산 기술로 원자력발전소(영광 3·4호기)를 지어 우리나라 원전 건설사에 새 장을 열었다. 이 공로로 금탑산업훈장을 받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이 말년에 가장 애착을 가졌던 서산간척사업의 토대도 그가 닦았다. 옛 현대전자에서 분사된 홈네트워크시스템 전문구축업체 현대통신을 인수해 현재 대표이사 회장을 맡고 있다. 잠시 대학 강단에 섰다가 ‘친정’으로 돌아온 이지송(65) 현 현대건설 사장은 지난해 사상 최대의 이익을 달성하며 옛 영광 재현에 나섰다. 박세용(65) 전 INI스틸 회장과 심현영(66) 전 현대산업개발 사장도 현대건설 출신이다. 박 전 회장은 비자금 문제에 연루돼 중동에서 옥고를 치르면서도 단 한마디도 입을 열지 않아 정주영 회장의 두터운 신임을 얻어냈다. 외환 위기때는 그룹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았다. 대학(연세대) 선후배라는 인연까지 더해져 고 정몽헌(MH) 회장의 믿음도 컸다. 이 때문에 그가 99년 12월31일 현대차 회장으로 발령나자 ‘MH계의 자동차 접수’라며 MK(정몽구 현대차 회장) 진영의 반발을 샀고, 결국 형제간 다툼의 시초를 제공했다. 딸이 미국에 살고 있어 딸 집을 오가며 소일하고 있다. ●왕회장의 그림자 인맥 정주영 회장의 최장수 비서를 지낸 이병규(52) 전 비서실장(현 문화일보 사장)이 단연 첫 손에 꼽힌다.77년 1월부터 91년 12월까지 무려 14년을 회장 비서실에서만 근무했다.92년 정주영 회장이 통일국민당을 창당했을 때도 당으로 옮겨 정 회장을 ‘모셨다’. 이 기간까지 포함하면 꼬박 15년이다. 정치자금 관리 혐의로 1년 8개월 동안 ‘5평짜리 아파트에서 연탄을 직접 갈며’ 숨어 지내면서도 단 한번도 불편한 내색을 내비치지 않아 “가신을 넘어 분신”이라는 평을 들었다. 정주영 회장 장례식때 조사를 읽은 사람도 그다. 육군 중위 출신의 김영일(62) 전 현대백화점 사장도 통일국민당 사무부총장을 맡아 정주영 회장을 그림자처럼 보좌했다. 이 공을 인정받아 94년부터 5년간 금강개발산업(현 현대백화점) 사장을 지냈다. 김 전 사장이 금강개발산업으로 발령나자 셋째 아들인 몽근(현 현대백화점 회장)씨 진영은 ‘왕회장의 친정체제 구축’으로 이어질까봐 바짝 긴장하기도 했었다. 지금은 리츠칼튼CC 등 골프장 운영업체인 애머슨퍼시픽 부회장을 맡고 있다. 이진호 전 고려산업개발 회장도 빼놓을 수 없다. 스스로를 ‘명예회장의 지팡이’라고 불렀을 정도다. 미국 연방수사국(FBI) 출신으로 92년 대선때 정주영 회장의 경호 책임을 맡았었다. 그러나 고려산업개발이 부도나기 직전인 2000년 말에 현대를 떠나면서 씁쓸한 인상을 남겼다. 고 정몽우(정주영 회장의 넷째 아들)씨의 부인 이행자씨의 친오빠이기도 하다. 정주영 회장이 전국경제인연합회장을 10년간 역임할 때 통역을 담당했던 박정웅씨도 ‘인간 정주영’을 가까이서 들여다본 인물이다. 이 때의 일화를 엮어 ‘이봐, 해봤어?’라는 제목의 책도 냈다. 책에 나오는 한 대목.“호칭을 보면 회장님의 기분상태를 알 수 있었다. 기분이 좋으면 ‘김 이사’ 식으로 아랫사람들의 직책을 불렀지만 기분이 나쁘면 ‘그치’라고 불렀다.” 책을 본 현대산업개발 정세영 명예회장은 “제목을 정말 잘 지었다.”며 무릎을 쳤다고 한다. 생전의 정주영 회장은 아랫사람들이 불가능하다며 고개를 저을 때면 “이봐, 해보기나 했어?”하고 다그치곤 했다. 칭찬에 인색했던 정주영 회장이 드물게 아랫사람들을 칭찬한 적이 있다. 독일 바덴바덴에서 88서울올림픽을 유치할 때다. 그는 자서전 ‘시련은 있어도 실패는 없다’에서 “프랑크푸르트 지점 전 직원과 그 부인들까지 혼연일체가 돼 한 가지 목표(올림픽 유치)를 향해 뛰었다.”며 올림픽 유치의 숨은 공로를 현대건설 프랑크푸르트 지점 식구들에게 돌렸다. 재료가 변변찮은 이국 땅에서 30∼50명분의 한국음식을 매일같이 해나른 사람이 채수삼(62) 당시 프랑크푸르트 지점장이다. 그 열정과 노력을 인정해 정주영 회장은 93년 그를 ‘그룹 통합구매실장’으로 불러들였다. 이후 광고 계열사 금강기획 사장을 맡아 업계 5위권 밖을 맴돌던 회사를 2∼3위로 끌어올렸다. 지금은 서울신문 사장을 맡고 있다. 채 사장은 “69년 현대양행에 입사해 내 인생의 반이 넘는 시간을 현대에 몸담았건만, 돌이켜보면 엄청나게 일만 한 기억밖에 없다.”고 털어놓았다. 그룹 ‘7인 회의’ 멤버였던 김형벽(70) 전 현대중공업 회장, 그룹 종합기획실 인맥의 대부로 불리는 이현태(69) 전 현대석유화학 회장,‘포니 정’(정세영)과 함께 현대차의 기반을 닦은 박병재(63) 전 현대차 부회장, 현대종합상사를 일군 김고중(65) 전 현대아산 부사장도 빼놓을 수 없는 현대맨들이다. ●가신 3인방의 등장 박세용-심현영-이내흔 등에 가려 주목을 받지 못하던 새로운 인맥이 90년대 중반 들어 등장한다. 김윤규-이익치-김재수로 이어지는 이른바 ‘가신 3인방’의 급부상이다. 왕회장 인맥이 MK·MH 인맥으로 쪼개지는 시점이기도 하다. 엔지니어 출신의 김윤규(61) 현 현대아산 대표이사 부회장은 ‘소떼 방북’을 성사시킨 대북사업의 주역이다. 정주영 회장의 평생 염원인 금강산관광 사업을 주도하면서 2대(정주영-정몽헌)에 걸쳐 두터운 신임을 얻었다. 정주영 회장의 임종 직전까지 거의 매일 서울 청운동 자택을 찾아 점심을 함께 하며 말동무가 돼주기도 했다. 정주영 회장의 비서 출신인 이익치(61) 전 현대증권 회장은 98년 3월 ‘바이 코리아’ 돌풍을 일으키면서 주가 1000시대를 이끌었다. 매사가 시원시원하고 자신감에 넘쳐 MH의 총애를 받았지만, 경박함 때문에 싫어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MH의 상가에 끝내 나타나지 않아 입방아에 오르기도 했다. 정몽준(현대중공업 대주주) 의원과도 사이가 벌어지면서 현대가와 완전히 등을 돌렸다. 82년 현대중공업 사장과 현대엔진공업(중공업 관계사) 전무로 처음 만난 두사람은 그러나 당시 정몽준 사장이 “화장실에서 생각난 아이디어를 말하지 마라.”며 면박을 줬을 만큼 처음부터 사이가 좋지 않았다. 역시 정주영 회장의 비서 출신인 김재수(57)씨는 박세용 회장의 뒤를 이어 구조조정본부장을 맡아 그룹을 이끌었다. 재무통으로 노래도 잘했던 그는 2000년 경영권 분쟁 과정에서 대학 동문인 MH 진영에 뒤늦게 합류했다. 다소 ‘욱’ 하는 성질도 있다는 게 주위 얘기다. 세 사람은 이렇듯 형제간 경영권 다툼 과정에서 MH를 공개적으로 지지하며 MH 인맥을 만들어냈다.MH의 눈과 귀를 가렸다는 부정적 평가도 적지 않다. 이후 현대건설이 자금난에 휩싸이면서 세사람 사이에도 반목이 커졌다.‘MH의 그림자’로 불리던 강명구(59) 전 현대택배 회장, 박종섭(58) 전 현대전자 사장 등도 MH 인맥으로 꼽힌다. 같은 범주에 들었던 김충식 전 현대상선 사장은 대북송금 특검 과정에서 MH와의 인연을 끊었다. ●MK 인맥의 전면부상 MH쪽에 김윤규-이익치-김재수가 있었다면 MK쪽에는 유인균-이계안-정순원이 있었다. 세 사람 모두 MK의 고등학교(경복고) 선후배다. 가장 선배인 유인균(65) 전 INI스틸 회장은 보는 이에 따라 시각이 엇갈리기는 하지만 ‘의리파’로 통한다. 김익환 현 기아차 사장이 세 싸움에서 밀려 쉬고 있을 때 “유능한 후배를 놀려서는 안된다.”며 앞장서 불러들였다. 이계안 의원은 76년 현대중공업으로 입사해 2004년 총선에 출마할 때까지 20년 넘게 현대에 몸담았다. 현대 시절의 가장 큰 보람으로 그는 기아차 인수를 꼽았다.“기아차를 인수하자고 하니까 그룹내에서 다들 겁먹고 물러서며 반대했다. 찬성한 사람은 오직 정몽구 회장 한사람 뿐이었다.” 이 의원은 ‘규모의 경제’를 내세워 결국 기아차를 성공적으로 인수했다. 이 일로 MK의 신뢰를 굳혔지만 MK 인맥내 세 싸움에서 밀려나 현대를 떠났다는 관측도 있다. 정순원(53) 현 로템 부회장은 경제학 박사 출신답게 학자 스타일이다. 현대·기아차그룹의 구조조정본부격인 기획총괄본부장을 오랫동안 맡았다. 현대차써비스 출신의 윤명중(64) 전 현대하이스코 회장, 자타가 공인하는 해외영업통 김뇌명(63) 전 기아차 부회장,‘영업의 귀재’ 김수중(64) 전 기아차 사장, 현대정공(현 현대모비스) 창립 멤버인 박정인(62) 현대모비스 회장 등도 MK 인맥의 핵이다. 유인균-박정인-김동진(현대차 부회장)으로 이어지는 ‘정공 인맥’은 저돌성과 로열티(오너에 대한 충성심) 면에서 ‘건설 인맥’과 매우 흡사하다는 평을 듣는다. 출신 성분(입사 계열사) 못지 않게 현대에는 대학을 연결고리로 한 인맥이 있다. 이현태-박세용-김재수 등으로 이어지는 연세대 인맥과, 정세영-이명박-김호일(전 현대해상 사장) 등으로 이어지는 고려대 인맥이다. 두 인맥은 오랜 세월 견제와 갈등 관계를 지속해 왔다. 고대 인맥은 MK의 외아들인 정의선(35) 현대·기아차 사장으로 연결된다. 고희를 바라보는 전직 현대 사장의 얘기다.“어느덧 창업주의 2·3세들이 그룹을 각자 나눠 이끌고 있다. 부디 아무것도 없던 데서 조국경제를 일으켰던 왕회장의 헝그리 정신과 초심을 도도히 되살려 정주영가의 영광과 거기에 젊음을 불살랐던 현대맨들의 긍지를 재현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hyun@seoul.co.kr ■ “가신들 사랑싸움이 MK·MH 갈등 비화” 현대맨이 보는 ‘왕자의 난’ 2000년 MK와 MH간의 경영권 다툼은 현대를 핵분열시켰다. 이 다툼을 둘러싸고 여러 해석이 존재하지만 현대맨들은 “가신(家臣)들의 사랑싸움”이라고 정의한다. 분쟁의 직접적인 출발점이었던 박세용 당시 그룹 구조조정본부장(회장)의 현대차 인사발령만 하더라도 박 회장과 이익치 당시 현대증권 회장의 사랑싸움의 산물이었다는 것이다. 경영권 다툼의 한복판에 있었던 한 현직 고위임원의 얘기.“두 사람은 사이가 별로 좋지 않았다.MH의 사랑을 서로 더 차지하려는 경쟁에서 박 회장이 밀리면서 인사발령이 났고, 결국 죽음으로 끝이 난 형제간 갈등을 초래했다.” MH의 사랑을 독차지한 이 회장은 그러나 이번에는 김윤규 현대아산 사장과 사랑을 나눠야 했다. 두 사람은 입사동기(1969년 현대건설)이자 동갑내기였다. 이어지는 임원의 얘기.“싸워야 할 상대(MK진영)가 분명했을 때는 서로 똘똘 뭉쳤지만 싸움이 끝나자 두 사람 사이에도 서서히 균열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러던 차에 현대건설 자금난이 심화되면서 결정적으로 사이가 틀어졌다.” 경영권 다툼의 승패 원인을 ‘사즉생(死卽生)’에서 찾는 것도 흥미롭다. 현대그룹의 한 임원은 “사실 브레인으로만 따지면 MH쪽에 인재가 더 많았다. 그러나 결과는 MK 진영의 승리였다.MK 진영 가신들은 MH쪽에 현대차가 접수되는 순간, 피바람이 불 것을 알고 있었기에 배수진을 치고 덤벼들었다. 반면 MH 진영은 싸움에서 이기면 좋지만 진다고 해서 ‘목숨’까지 왔다 갔다 할 일은 아니었다.” 그는 ‘숙부의 난’도 마찬가지라고 했다.“현정은(MH 부인) 회장이 이끄는 현대그룹은 정상영(정주영 회장의 막내 동생) 회장이 이끄는 KCC에 먹히면 줄줄이 옷을 벗고 나가야 할 판이었다.‘왕자의 난’때와 입장이 완전히 바뀐 것이다. 죽기를 각오하고 달려들 수밖에 없었고, 결국 이번에는 승자가 됐다.” 그렇다면 왜 유독 현대에는 다른 재벌에는 없는 ‘가신그룹’이 생겨났을까. 이계안 의원은 이렇게 해석한다.“삼성만 하더라도 소비재가 많기 때문에 오너가 아무리 예뻐해도 시장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최고경영자(CEO)로서의 생존이 어렵다. 그러나 현대는 기간산업이 대부분이다. 오너가 영업을 하고 임원들은 생산·노무관리를 책임지다 보니 오너의 영향력이 다른 재벌에 비해 절대적으로 컸다.” 그래서 가신그룹이라는 특이한 인맥이 생성된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내흔 현대통신 회장은 “평생을 현대에 몸담은 사람으로서 가신들의 싸움이 얼마나 보기 민망하고 가슴이 아팠는지 모른다.”면서 “이제라도 마무리됐으니 생채기를 치유하고 각자의 길을 가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hyun@seoul.co.kr ●특별취재반 산업부 홍성추 부장(부국장급·반장) 박건승·정기홍·류찬희·김성곤·최광숙차장 안미현·주현진·류길상·김경두기자
  • 징용자 유족 ‘항의 분신’

    징용자 유족 ‘항의 분신’

    일본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과 역사 왜곡에 항의하는 집회가 18일에도 서울 곳곳에서 열렸다. 일제 강제징병자의 아들인 50대 남자는 일본 대사관 앞에서 분신을 기도했다. 한국과 일본의 시민단체는 역사교과서 왜곡을 규탄하는 공동 기자회견을 열었다. ●50대 남 분신 시도 18일 낮 12시10분쯤 서울 종로구 중학동 일본대사관 정문 앞 인도에서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 회원 허모(54)씨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항의하며 분신을 시도했다. 허씨는 종로구의회가 기자회견을 하고 있던 도중, 몸에 휘발유를 뿌리고 라이터로 불을 붙인 채 “일본은 사죄하라.”고 외치며 갑자기 뛰어들었다. 허씨는 불이 붙은 점퍼를 벗어 주위 사람들에게 던진 뒤 쓰러졌고, 경찰은 불을 끈 뒤 허씨를 인근 병원으로 긴급 후송했다. 허씨는 손과 다리 등 전신의 16%에 3도화상을 입었으나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허씨는 “아버지가 1942년 일제에 강제징병됐다 해방 직후 유키시마호 폭발사고에서 가까스로 생존해 귀국해 후유증으로 고생하다 20년 전 사망했다.”면서 “보상은 커녕 독도가 일본 땅이라고 설치는 것에 울화가 치밀어 분신을 시도했다.”고 말했다. 허씨는 분신 당시 미지급분 월급 증명서 등 징병에 관한 서류, 일본군 복장을 한 부친의 사진,“너희 나라는 부자인데 왜 우리나라를 침략하고 독도까지 넘보느냐.”는 내용의 편지 등을 가지고 있었다. 태평양전쟁희생자유족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일본에 대마도 반환을 요구한 8월18일을 ‘대마도의 날’로 선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일본인도 참가한 항의 집회 전국역사교사모임 등 90여개 시민단체로 이뤄진 ‘아시아 평화와 역사교육연대’는 이날 여의도 국회의사당 근처 국민은행 앞에서 ‘일본의 과거청산을 요구하는 국제협의회 일본위원회’ 등 3개 일본 단체와 함께 ‘일본 역사왜곡문제 해결을 위한 한·일 시민단체 연대집회’를 열었다. 이들은 성명을 통해 “지난 2001년에는 한·일시민단체의 연대활동으로 왜곡 교과서 채택을 막았으나, 이번에는 일본 정부의 우익교과서 검정·통과가 거의 확실시되고 있다.”면서 “일본 정부는 침략사실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올바른 역사교육을 실시해 한·일 관계 개선에 앞장서라.”고 요구했다. 이효용 이재훈 박지윤기자 utility@seoul.co.kr
  • 가스公사장 해임안 반발

    한국가스공사 비상임 이사회가 지난 14일 회사 명예 실추 등을 이유로 오강현 사장에 대한 해임결의안을 가결하자 오 사장이 소송 제기 등 법적조치를 취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서 파문이 예상된다. 오 사장은 15일 ‘친애하는 임직원 여러분께’라는 제목의 글을 사내 전산망에 올려 “이번 이사회의 불법, 부당한 결정에 대해 불행한 사태가 되풀이되지 않도록 법에 의한 엄정한 조치를 취하겠다.”며 불복 의사를 분명히 했다. 오 사장은 “이사회의 상식 이하 결정은 참여정부가 지속적으로 추진 중인 투명하고 자율적인 공기업 경영원칙에도 배치된다.”면서 “이사회가 구체적이고 객관적인 경영성과 평가와 관계없이 외부압력에 의해 공기업 초유의 사장 해임건의안을 통과시킨 것을 유감스럽게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이사회가 제시한 해임 사유 가운데 ▲국정감사 때 노조집회 방치 ▲정부와 협의 없이 LNG 도입물량 감축 등은 법이 정한 최소한의 소명 기회도 주지 않아 절차에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 오 사장은 가스 관련 국제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지난 10일 스페인으로 출국했으며, 이사회의 해임결의안 가결 내용을 보고받은 뒤 이날 오전 현지에서 e메일을 통해 사내 전산망에 글을 올렸다. 오는 18일 귀국한다. 가스공사 노조도 이번 사태와 관련, 법원에 이사회 결의 무효 가처분신청과 비상임이사에 대한 직무정지 가처분신청을 내기로 했다. 또 산업자원부에 대해서는 노조활동에 대한 간섭을 이유로 노동부에 부당노동행위 고발과 함께 감사원 감사도 청구할 계획이다. 장세훈기자 shjang@seoul.co.kr
  • “악수합시다” 갈등 재건축조합들 화해 분위기 고조

    오는 5월 중순 개발이익환수제를 담은 도시 및 주거환경정비법(도정법) 발효를 앞두고 내분을 겪던 재건축 조합이 화해 분위기로 접어들면서 사업 추진이 빨라지고 있다. 도정법이 국회를 통과, 개발이익환수제가 발표되는 5월 중순까지 분양신청을 하지 못하면 재건축을 통해 늘어나는 용적률의 25%를, 사업승인을 받지 못한 아파트는 10%를 각각 임대아파트로 지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동안 갈등을 빚었던 조합원들은 재건축단지에 임대아파트가 들어서면 집값에 악영향이 미칠 것으로 판단, 갈등을 접고 사업추진을 서두르고 있는 것이다. 가장 대표적인 단지가 서울 강남구 삼성동 영동차관(AID)아파트 단지다.1654가구로 구성된 AID아파트는 재건축을 통해 2070가구를 지어 이 가운데 1654가구를 조합원에게 배분하고 416가구를 일반분양할 예정이다. 하지만 22평형 조합원들이 지난해 말 48평형 배정을 요구하며 동호수 추첨 금지 가처분 신청을 낸 것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지고, 조합측은 이에 반발해 가처분 무효소송을 제기한 상태다. 그러나 최근 법원이 중재에 나서 2개 감정평가기관에 감정을 의뢰한 상태다. 양측은 감정평가 결과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빠르면 다음주 중 결과가 나올 전망이다. 잠실주공 1단지 재건축조합은 7일 동·호수 추첨을 실시했으며 조만간 관리처분 인가 신청을 구청에 낼 예정이다.4월 동시분양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잠실주공 2단지도 일부 조합원이 관리처분 결의 무효확인 소송과 동·호수 추첨금지 가처분신청을 냈으나 조합측과 소 취하문제를 논의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4월 동시분양에는 참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개발이익환수제를 적용받으면 모두가 손해라는 공감대가 형성됐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잠실시영아파트 재건축조합은 지난 5일 총회를 열고 관리처분 계획안을 70%의 높은 찬성률로 통과시켰다. 조합측은 이달 말에 동·호수 추첨을 거쳐 다음달 초에는 분양승인 신청에 들어가 5월에 진행되는 서울 4차 동시분양에 참여한다는 계획이다. 김성곤기자 sunggone@seoul.co.kr
  • [국제플러스] 日법원 라이브도어 가처분신청 인용

    |도쿄 이춘규특파원|니혼방송을 둘러싼 라이브도어와 후지TV의 쟁탈전에서 법원이 11일 라이브도어의 손을 들어주었다. 도쿄지방법원은 이날 니혼방송이 회사주식수를 현재(3280만주)의 2.5배인 8000만주까지 늘리기로 하고 신규주식인수권을 후지산케이그룹에 주겠다는 결정에 대한 라이브도어측의 금지 가처분 신청에 대해 “(신주인수권) 발행목적은 현 경영진의 지배권 유지에 있다. 현저히 불공정한 방법에 의한 발행이다.”라며 대량 신주인수권 발행을 금지했다. 니혼방송은 결정에 불복, 이의를 제기하겠다고 밝혀 도쿄지법이 재차 가처분금지 심리를 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의심리나 고등법원, 최고재판소에서 판결이 뒤집혀지지 않으면 니혼방송은 후지TV에 신주인수권을 줄 수 없다. 니혼방송은 신주인수권 발행 예정일인 24일 이전까지 법원 결정을 뒤집기 위한 대책 마련을 서두르고 있다. 하지만 라이브도어가 법정투쟁의 제1막에서 우위를 점해 향후 다툼에서 유리한 국면을 점할 것으로 전망됐다. 라이브도어는 지난달 23일 후지산케이측이 경영권을 방어하기 위해 신주인수권 발행을 발표하자 바로 다음날 법원에 후지측의 신주인수권 발행금지 가처분 신청을 냈다. 라이브도어는 “신주인수권 발행은 후지TV의 니혼방송에 대한 지배권을 유지하는 게 목적”이라고 주장했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