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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국정 위임 이후 印尼는

    정국 대혼란으로 위기에 몰린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이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 부통령에게로의 국정운영권 이양 카드로 벼랑끝 승부수를 던졌다. 와히드 대통령은 9일밤 마르실람 시만준탁 내각장관이 대독한 국민협의회(MPR) 연설에서 “내각 운영일정 작성,정부업무 중점사항 및 우선순위 배정 등 내정 문제는 부통령에게 위임하고 자신은 거시적 국사와 외교활동에만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이달말까지 개각과 조직축소 등도 단행될 것으로 보인다.이는 국정 난맥상 해결의 공을 메가와티에 떠넘김으로써 MPR내 탄핵여론을 잠재우려는 고육지책인 셈이다.이로써 와히드는 집권 9개월만에 정치일선에서 표면적으로는 물러서게 됐다. 인도네시아 최초의 민주적 정권교체라는 모양새에도 불구,와히드 정권은 출범부터 삐걱거려왔다.그의 당선이 메가와티 집권을 막으려는 여당-이슬람권야합의 산물이라는 의혹에다 산적한 내정을 풀어가기에 고령과 뇌일혈,시력상실 등에 시달리는 와히드가 부적격자라는 우려가 겹쳐 대내외 불안감이 가중됐다.와히드는 초반 최대 이슬람단체 지도자라는 종교적 카리스마를 발휘,수하르토의 불법축재 수사 재개,위란토 보안장관 해임 및 군부 장악 등으로 기선을 잡는듯도 했으나 얼마 못가 치안공백,개인비리 등 집권역량 부족을 드러내며 정국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루피아화 폭락 등 경제실정,아체주·이리안 자야 등 분리독립세력에 대한 통제력 상실,친인척 및 개인 축재 비리,각료들과의 불화설 등이 꼬리를 물자 MPR이 나서 그의 강제 축출을 추진하기에 이르렀고 궁지에 몰린 와히드는 이를 모면하려 권력을 일부 내놓겠다고 나선 셈이다. 그러나 와히드 카드가 혼돈에 빠진 인도네시아 정국 치유에 약효를 발휘할지는 미지수다.무엇보다 바톤을 넘겨받을 메가와티의 국정수행 능력에 대한회의론이 증대되고 있다.메가와티는 인도네시아 국부 수카르노의 딸이란 신분만으로 ‘민주화의 상징’으로 추앙받아 왔으나 9개월간 부통령에 재임하면서 정치적 영향력을 전혀 확대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여왔다.지난해 대선에서는 압도적 지지에도 불구,MPR내 지지세력을 효율적으로 결집하지 못해 패배했다는 비판을 받아왔으며 몇개월간의 내각운영에서도 각료들간갈등을 진화하기는 커녕 증폭시켜 리더십에 대한 회의론에 직면해 왔다.그러나 앞으로 메가와티 배후에서 와히드가 계속 권력을 행사하려 할 경우 MPR과 와히드의 파국적 대립이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한편 이달말 예정인 대폭개각을 앞두고 인도네시아의 경제사령탑인 킥 키안 기 경제조정장관이 10일 돌연 사임의사를 피력했다.킥 장관은 이날 사임의사를 적은 서한을 와히드 대통령에게 보냈으며 이달 말 대폭 개각 때까지는장관직을 유지할 것이라고 모하마드 요자 경제조정부 대변인이 밝혔다. 손정숙기자 jssohn@. * 메가와티 누구. 와히드 대통령의 국정운영권 이양으로 사실상 대통령직을 수행하게 된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Megawati Sukarnoputri)부통령(54)은 인도네시아 ‘건국의 아버지’인 수카르노 전 대통령의 딸이다.아버지의 후광을 업고 마흔넘어 정계에 입문하기 전까지 그는 세 아이를 키우는 평범한 가정주부였다. 93년야당인 민주당 당수로 추대되면서 뒤늦게 정치를 시작했지만 든든한배경과 공격적인 말투,사람을 끄는 남다른 능력으로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 그의 대중적 인기에 위협을 느낀 수하르토 정권은 민주당내 ‘반란’을 뒤에서 조종,메가와티를 당수직에서 내쫓았다. 여기에 좌절하지 않고 메가와티는 지지자들을 모아 98년 수하르토 하야 직후 민주투쟁당(PDIP)을 창당하고 반(反)수하르토 투쟁의 선두에 나섰다.지난해 6월 실시된 국회의원 선거에서 전체 의석의 3분의 1을 석권하면서 차기 대통령 후보로 강력 부상했다.하지만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고 그는 지난해대통령 선거에서 인도네시아 국민각성당(PKB)의 압두라만 와히드(59) 후보에게 패했다.대선에서 패하면서 그는 소극적이고 정치력이 부족하다는 비판을받고 있다. 김균미기자 kmkim@
  • 印尼 와히드, 부통령에 국정 위임

    압두라만 와히드(60)인도네시아 대통령은 9일 밤 일상적인 국정 운영권한을메가와티 수카르노푸르티 부통령에게 위임할 것을 약속,사실상의 대통령권한포기를 선언했다. 와히드 대통령은 이날 국민협의회(MPR)3일째 회의에서 시만준탁 국무장관이대독한 연설을 통해 “나는 내각 업무일정 작성과 정부 업무의 중점사항과우선순위 배정등 매일매일의 기술적인 업무 집행을 부통령에게 위임할 것”이라고 말했다.와히드 대통령은 “국정 운영에 변화를 줄 필요성을 알고 있다.이때문에 부통령에게 업무를 이행한다”면서 자신은 외교업무에 치중할것이라고 밝혔다. 와히드 대통령은 또 메가와티 체제하에 효율적인 국정운영이 가능하도록 다음 주 중 개각을 단행할 것임을 확약했다. 앞서 7일 자신에 대한 탄핵설이 제기된 가운데 열린 MPR개막 연설에서 와히드대통령은 국정운영에 손을 뗄 것이며 외교에 전념할 뜻을 내비치기는 했다.그러나 인도네시아 정치 분석가들은 제2부통령직을 신설,자신의 측근을 등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전망했었다. 외신들은 와히드 대통령의 7일 연설이후 메가와티 부통령을 비롯,악바르 탄중 국회의장,아미엔 라이스 MPR의장 등 MPR지도부가 정부운영권을 부통령에게 위임하지 않을 경우,탄핵소추를 받을 것임을 와히드 대통령에게 최후통첩 형식으로 전달했다고 전했다.결국 와히드 대통령이 자신의 ‘무능’을 인정,야권의 요구에 굴복한 셈이다. MPR의원들은 와히드대통령의 발표에 일제히 환영을 표시했다.골카르 당의악바르 탄중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결정으로 메가와티의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면서 “우리는 부통령이 국정운영을 잘 해낼 것으로 믿고 있다”고말했다. 지난해 10월 국민적 기대를 안고 대통령에 오른 와히드 대통령은 심각한 건강상 문제를 안고 있는데다 경제회생 등 국정현안을 어느 것 하나 해결하지못해 메가와티 부통령이 이끄는 인도네시아독립투쟁당(PDIP)과 구 여당인 골카르당 등 야권으로부터 사임압력을 받아왔다.지난 4월 야당 소속 의원들을이유없이 해임했고 자신의 측근을 요직에 등용하는 등 비리가 불거져 헌법상최고기관인 MPR총회에서 탄핵당할 가능성이 끊임없이 제기됐었다. 특히 말루쿠주(州)및 아체주 등 인도네시아 전역의 분리독립및 종교갈등을 둘러싼 유혈충돌을 잠재우지 못해 정치적 입지가 약할대로 약해진 상태였다. 김수정기자 crystal@
  • 印尼의회 개막…벼랑에 선 와히드

    동남아 안정의 핵,인도네시아가 총체적 위기에 빠졌다.97년 환란(換亂)이후 인도네시아 경제는 빈사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인도네시아 헌법상최고 권력기구인 국민협의회(MPR)는 7일 12일간의 총회를 개막,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에 대한 국정수행평가에 들어갔다.탄핵까지 추진할 움직임이다. 말루쿠주(州)및 아체주 등 인도네시아 전역의 분리독립 및 종교갈등을 둘러싼 유혈충돌은 진정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불안한 와히드 체제 인도네시아 위기의 정점에는 지난해 10월 취임한 와히드 대통령이 있다.경제회생과 민주화,분리독립운동 해결 등 국민적 기대를안고 취임한 와히드 대통령은 이 과제 가운데 어느 것 하나도 해결한 것이없다.오히려 문제를 심화시켰을 뿐이다.와히드는 지난 달 내정을 아랑곳않는 잦은 외유,측근 요직 기용,뇌물수수 연루 등으로 헌정사상 처음으로 국회로부터 소환당하는 대통령이 됐다.7일 MPR총회에서 와히드대통령은 “잘못한부분이 있었다면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자신의 무능력에 대해 사과한 뒤 개각 단행을 약속,위기 수습에 나섰다.또 일상적 국가 업무를 다른 사람에게맡기고 외교분야만 전념할 것이라고 밝혔다.현 난국에서 발을 빼 탄핵및 해임요구에서 우선 몸을 피하겠다는 의도. ●금융위기 재발 인도네시아발 금융위기가 다시 한국을 포함,동남아 금융시장을 흔들고 있다.연초 달러당 7,055선을 유지했던 루피아화는 정국불안이심화되면서 지난 5월 8,000을 돌파했다.7월17일엔 9,510까지 치솟았다.연초대비 26%가 하락한 수치다.국제통화기금(IMF)의 구제금융지원 중단 등도 인도네시아 경제엔 커다란 먹구름이다. ●인종·종교 분쟁 와히드 정권 출범 이후 오히려 심화됐다.분리독립운동을추진중인 수마트라 북부 아체주와 뉴기니섬의 이리안자야 등은 인니 정부와휴전협정을 체결했음에도 소요가 재발,유혈사태가 계속되고 있다.말루쿠주의 경우 기독교와 이슬람 세력이 충돌,4.000여명이 숨지는 유혈사태가 지난 수개월간 계속됐으나 와히드 정부는 수수방관함으로써 사태가 인근 섬 술라웨시로까지 확산됐다. ●전망 인도네시아 정국은 당분간 혼미를 거듭할 전망이다.정파간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대립해있고,국민들로부터 대통령 사임요구도 계속되고 있다.정치분석가들은 이번 MPR총회에서 와히드의 탄핵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지만 대통령 탄핵요건및 절차 조항을 신설,추후 대통령해임 압력은 계속될 것으로전망했다.와히드의 ‘외교분야 전담’방침이 실행에 옮겨진다해도 이후 내정책임자 임명을 둘러싼 정파간 싸움이 계속될 것이 분명하다. 경제와 분리독립 소요도 마찬가지.루피아화의 경우 지난 7월17일 이후 중앙정부가 적극 개입,안정을 보이고는 있으나 정국혼란으로 좀처럼 해결될 기미가 없다.분리독립운동 지역 대부분은 천연가스 등 자원의 보고.경제적 이해관계와 인종·종교간 갈등이 복잡하게 얽혀 분쟁은 쉽사리 잦아들기 힘들 것같다. 김수정기자 crystal@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 7)북아일랜드 신·구교도 갈등

    21세기를 불과 20일 앞둔 지난해 12월12일 세계는 북아일랜드를 주목했다. 북아일랜드에 신·구교도를 망라하는 자치정부가 들어선 이날 400여년간 지속됐던 신·구교간 갈등이 끝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그러나 새천년의 희망이 채 가시기도 전인 지난 2월 구교도계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폭탄테러와 최근 신교도의 전통적 행사인 ‘드럼크리 행진’으로 신·구교가 충돌,북아일랜드 평화에 암운이 드리워졌다. ◆분쟁 배경 16세기 영국의 헨리 8세가 구교를 믿는 아일랜드를 침략,아일랜드인의 토지를 몰수하고 신교로의 개종을 강요하면서 분쟁이 시작됐다.구교도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영국은 17세기 초 북아일랜드에 신교도를 대거 이주시켜 신교도를 믿는 영국인이 주민의 다수를 차지하게 됐다.게다가 영국은구교도와 신교도 사이의 차별화 정책을 펴 대부분의 구교도들은 소작농으로전락하고 참정권까지 빼앗기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1801년 영국은 아일랜드를 합병했다. 1905년 구교도를 대변하는 신페인당이 탄생하고 1919년 IRA가 창설되면서구교도들은테러를 동반한 독립운동을 조직화했다. ◆북아일랜드 분리독립 운동 1차대전이 한창이던 1916년 남부 아일랜드는 더블린에서 발생한 무장봉기를 비롯,저항을 계속한 끝에 1922년 영국으로부터독립하게 된다.그러나 얼스터지방 등 북아일랜드 6개주는 여전히 영국의 지배 아래 남아 분쟁의 불씨가 꺼지지 않았다.즉 북아일랜드에 거주하는 구교도는 북아일랜드가 독립국인 아일랜드에 편입되기를 원했고,신교도는 영국의지배하에 계속 놓이거나 영국으로 합병되기를 원했던 것.이때부터 신·구교간은 북아일랜드 지위를 놓고 끊임없는 대립을 하게 된다. 69년에 발생한 폭동 등 영국을 상대로 한 구교도의 테러가 계속되자 영국은72년 북아일랜드를 직접통치로 강화했다.그후에도 구교도는 영국과 영국을지지하는 신교도를 상대로 무장투쟁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최근까지 3,200여명이 사망했다. ◆일시적 평화 97년 7월20일 IRA는 휴전을 선언,북아일랜드에 서광이 비치기시작했다. 그해 10월13일에는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가 만나 평화정착의 발판을 마련했다. 98년 4월 신·구교도는 극적으로 ‘굿 프라이데이’ 평화협정을 체결했고협상의 주역이었던 북아일랜드 존 흄 사회민주노동당(SDLP) 당수와 데이비드트림블 얼스터 통일당(UUP) 당수는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그리고 지난해 12월12일에 드디어 초당적인 북아일랜드 자치정부가 구성됐다. 그러나 두달도 채 안된 지난 2월6일 북아일랜드 벨파스트 교외의 한 호텔에서 IRA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발사건이 또 발생했고 영국은 이를 이유로 북아일랜드의 자치권을 박탈했다. ◆향후 전망 북아일랜드 신·구교도는 물론 영국도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피의 역사를 종식시키려는 의지가 어느때보다 높다.영국이 지난 2월 북아일랜드 자치권을 박탈했다가 3개월여만인 5월30일 자치권을 이양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지난 5일 드럼크리 행진에서의 충돌로 영국 보안군이 2년만에 다시배치되기도 했지만 북아일랜드 자치정부는 신교파의 대표적인 테러리스트 마이클 스톤을 석방하는 등 평화정착에 대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강충식기자 chungsik@. *북아일랜드 분쟁일지. ◆1600∼1700년 신교도 북아일랜드에 이주◆1801년 아일랜드,영국의 속국으로 전락◆1905년 신페인당 결성◆1919년 아일랜드공화군(IRA) 창설◆1922년 아일랜드 영국으로부터 독립◆1997년 7월20일 IRA 휴전 선언◆1997년 12월13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 회동◆1998년 4월 ‘굿 프라이데이’ 평화협정 체결◆1999년 12월12일 북아일랜드 자치정부 수립◆2000년 2월6일 벨파스트에서 IRA의 소행으로 보이는 폭탄테러 발생◆〃 5월30일 영국,북아일랜드에 자치권 이양◆〃 7월5일 신교도의 전통행사인 드럼크리 행진으로 신·구교도 충돌 *신페인당 당수 게리 애덤스. 게리 애덤스 신페인당 당수(52)는 아일랜드공화군(IRA)의 전사로 혁명적 노선을 걷던 인물.69년 불법 무장투쟁단체인 IRA에 투신,강경파로 알려진 IRA벨파스트연대의 핵심인물로 활동하면서 투옥과 암살 위협에 굴하지 않고 무력투쟁을 벌여 ‘1급 위험인물’로 지목되면서 수차례 투옥되기도 했다.그가합법적 정치투쟁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대화파’로 변모한 것은 83년 신 페인당의 당수로 취임하면서부터.평화 이외는 대안이 없다는 그의 주장이 북아일랜드 신·구교도에 받아들여지면서 97년 총선에서 신페인당을 북아일랜드 3위 정당으로 끌어올리며 3선 의원이 됐다. 94년 앨버트 레이놀즈 아일랜드 총리,97년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와의 회담을 통해 북아일랜드 분쟁을 테러에서 대화로 바꾸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평화를 위해 IRA의 무장해제도 가능하다는 입장 때문에 구교도 강경파로부터 심한 반발을 샀다.최근 IRA 무기의 사용권을 외부에 둔다는 절충안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북아일랜드의 평화정착에는 필수적 인물로 꼽힌다. [강충식기자] *아일랜드 공화국(IRA). 영국에 대한 무차별적인 폭탄테러로 악명이 높은 구교도계 아일랜드공화군(IRA)은 아일랜드의 완전한 독립을 목적으로 1919년에 탄생했다.‘우리 스스로’란 뜻으로 1905년 조직된 신페인당이 IRA의 정치적 대변자 역할을 맡고있다.1940년대 이후 북아일랜드에서 구교도에 대한 유화정책으로 세력이 크게 위축됐던IRA는 1960년대 말 구교도들의 공민권 운동을 계기로 신·구교도간 갈등이 첨예화되면서 다시 세력을 확장했다.게다가 1970년 영국군이 구교도들의 시위를 진압하기 위해 북아일랜드에 진주하자,IRA는 무장 투쟁을본격화했다. 1980년대 중반부터 IRA는 리비아로부터 밀수한 수십t의 플라스틱 폭탄을 앞세워 폭탄테러를 자행하고 있다.테러는 자신들의 주장을 알리는 최선의 수단으로,무장은 생존의 문제로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무기 구매는 해외거주 아일랜드 출신 주요 인사와 자체 모금을 통해 이뤄진다. 다시 말해 무기는 아일랜드 동포들의 피와 땀인 셈이다.때문에 무기는 마음대로 처분할 수 없는 신성한 재산으로 여겨지고 있다.IRA가 여러차례 무장해제하고 무기사찰을 받겠다고 밝혔지만 이행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6)유고연방 ‘인종분쟁’

    냉전이 한풀꺾인 1990년대 새롭게 떠오른 갈등은 인종분쟁이었다.그리고 그 양상은 지구촌의 화약고라 불리는 발칸반도에서 가장 극단적으로 드러났다. 전후 50여년간 사회주의 이데올로기로 이민족들간의 불화를 다스려온 구유고연방은 소련 붕괴와 함께 유혈 해체의 길로 내동댕이쳐졌다.이 과정에서인류는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자행된 끔찍한 학살극 도미노를 목격해야 했다. 광기의 민족주의가 기승을 부리자 국제사회에도 전혀 새로운 대응논리가 출현했다.인권이 침해될때는 주권국가라 할지라도 국제사회의 도덕적 응징에서 자유로울수 없다.즉 인권이 주권에 앞선다는 새 독트린이었다.이는 미국의주도에 따라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가 창설 이래 최초로 주권국가에 공습을 감행하는 근거가 됐다. ◆분쟁의 배경=유고연방은 2차대전 직후 연합국 전후처리의 산물로 탄생했다.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세르비아,몬테네그로,마케도니아 등 인종이 판이한 공화국들을 국가로 묶어내기 위해 독자적 사회주의노선을 표방한 유고 지도자 티토는 코소보·보이보디나 자치주 등을 비롯한각 공화국에 고도의 자치권을 부여했다.그러나 80년 티토의 타계,90년 소련,동독 등의 붕괴로 연대의 끈이 끊어져나가자 공화국마다 독립요구가 거세졌다.유고연방 실질적 패권세력이었던 세르비아인들의 위기감은 극도로 고조됐고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현 유고연방 대통령은 이에 편승,잔혹한 학살극을자행했다. ◆보스니아 내전=91년 크로아티아 민족주의자들,92년 보스니아 회교집권세력이 각각 독립을 선포함에 따라 이 지역의 소수파로 전락한 세르비아인들은사활을 건 반격에 나섰다.한때 크로아티아의 3분의 1까지 점령했고 보스니아에서는 회교-크로아티아 연합세력에 잔혹한 학살극을 펼치기도 했다.인종청소,강간,약탈 등으로 얼룩진 보스니아 내전은 현대사 최악의 야만적 전쟁으로 기록되고 있다. 결국 국제사회가 개입했다.나토 및 유엔 등 서방의 중재아래 95년 내전 당사자들끼리 ‘데이튼 협정’이 체결돼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의 독립국 지위와 국경선이 확정됐다. ◆코소보 사태=코소보 독립운동은 89년 밀로셰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이 수십여년간 지속돼온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하면서 본격화되기 시작했다.코소보 인구의 90%를 차지하면서도 세르비아에 종속된 위치였던 알바니아인들은 단일민족국가 수립을 선언하고 나왔다.그럴수록 코소보를 자신들의 역사적 성소로 여겨온 세르비아계의 위기감은 높아갔다.밀로셰비치 대통령은 코소보알바니아인들을 살육,추방하는 대규모 ‘인종청소’를 통해 세르비아 국수주의를 자신의 집권연장에 이용했다. ◆미국과 나토의 대응=몇번의 경고에도 불구,학살의 잔학상이 지속되자 미국과 나토는 99년 3월24일 마침내 세르비아에 대공습을 개시한다.나토 50년 역사상 주권국가에 대한 최초의 선제공격으로 기록된 이 78일간의 공습끝에 밀로셰비치는 결국 백기를 들고 유엔 평화유지군 감시하에 알바니아인들의 코소보 귀환을 허용했다. 손정숙기자 jssohn@. *‘발칸의 뇌관’밀로셰비치. 정권을 향한 권모술수와 사정없는 인종청소로 ‘발칸의 뇌관’으로 악명을떨쳤던 슬로보단 밀로셰비치 신유고연방(58)대통령.나토공습 패배이후 최대위기에 봉착했던 그는 최근 유고 의회에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통과됨에따라 또한번 특유의 위기돌파력으로 정치생명 연장의 기회를 갖게 됐다. 1942년 세르비아 중부 산업도시 포자레바츠에서 태어난 그의 어린시절은 아버지의 가출,부모의 잇단 자살 등으로 극도로 불우했다.64년 공산당에 입당,사회주의자를 자처하던 그는 80년대 중반부터 ‘대제국 건설’을 표방하는세르비아인들의 국수주의에 편승,민족주의자로 돌변한다. 이후 그는 이민족에 대한 가차없는 차별과 통제정책으로 권력가도를 승승장구한다.코소보 자치권을 빼앗은 89년 세르비아 대통령에 올랐고 보스니아내세르비아 반군을 전폭지원한 92년 재선됐다.그는 90년대 중반이후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청소를 가속화,무수한 인명을 무차별 학살해 야당의 거센반발을 샀다.결국 나토의 공습을 불렀고 본인은 국제사법재판소에 전범으로기소된 상태다. 손정숙기자. *코소보 왜‘피의 聖地’인가. 왜 코소보인가. 한쪽에서는 독립해 나가겠다고,다른쪽에서는 절대 내어줄수 없다고 유혈극을 불사하는 코소보.코소보는 세르비아계와 알바니아계의 대립양상이 극단적으로 표출된 곳이다. 기독교 세르비아 정교도인 슬라브계통의 세르비아와 이슬람권 알바니아계는 공히 이곳을 자신들의 성지(聖地)로 주장하고 있다. 세르비아는 14세기 이곳서 전성기를 구가하며 정교회 유물 및 건축을 꽃피웠다.때문에 ‘중세의 영광이 서린 땅’을 결코 내어줄수 없다는 입장.그러나 코소보는 이후 500여년간 오스만 투르크 손에 넘어갔고 같은 회교도들인알바니아계가 대량 이주,이번에는 도처에 회교사원을 건립했다.이와 함께 전체의 90%에 이르는 인구구성 등을 들어 알바니아계 역시 자신들의 주권을 주장한다. 코소보 알바니아인들의 분리독립 열망은 1918년 코소보가 세르비아 영토로편입되고 46년 구유고연방으로 합병된 이후에도 국제정세가 바뀔때마다 크고작은 유혈극으로 불거져나왔다.결정적으로 89년 밀로셰비치 당시 세르비아대통령이 그간의 자치권마저 박탈함에 따라 불에 기름을 부은 격이 됐다.현재는 평화유지군이 코소보 자치를 유도하고 있지만 복잡하게 얽힌 민족감정,역사적 배경 때문에 장래를 점치기란 쉽지 않다. 손정숙기자. *유고 연표. ◆1389년 오스만 투르크,세르비아로부터 코소보 강점. ◆1946년 구유고연방 탄생,코소보는 세르비아내 자치주로 이에 편입. ◆1987년 밀로셰비치,세르비아 대통령 취임.민족주의정책의 일환으로 코소보 알바니아계 탄압시작. ◆1989년 밀로셰비치,코소보 자치권 강탈. ◆1991년 슬로베니아,크로아티아,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독립선언.이를 저지하려는 세르비아계와의 사이에 내전. ◆1999년 3월24일 코소보 알바니아계에 대한 밀로셰비치의 인종학살 저지를명분으로 미국과 나토 유고공습 시작.6월9일 유고-나토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철수 합의문에 서명.국제평화유지군 지휘하에 알바니아계 귀환시작.
  • 대기업서 분사된 기업 세제지원기간 연장

    기술력 위주의 핵심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기업 분사를 촉진시키기 위해 올해 말까지로 시한이 정해진 기업 분사에 대한 세제지원 기간을 연장하는 방안이 추진된다. 산업자원부는 11일 기술혁신을 통해 미래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범 국가적 산업기술 드라이브정책을 추진하기로 하고 ‘산업기술개발 프로젝트 21(ITP 21)’을 마련,관계부처 협의를 거쳐 확정한 뒤 올 9월부터 본격 추진한다고 밝혔다. 산자부에 따르면 대기업으로부터 분사된 기업의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편입기준을 완화해주고 분사 기업의 초기 생존율을 높이기 위해 모기업의 부당지원행위 조사시점을 분사 후 1년에서 3년으로 연장하는 방안을 검토중이다. 현행법상 분할과 분할합병으로 구분된 기업분할을 장기적으로 제한주식,분리공개,분리설립,분리독립,분리정리 등 다양한 형태의 기업분사 및 분할이 인정된다. 기업들에 지원하는 기술개발준비금을 직접비와 간접비로 구분,직접비의 세액공제 비율을 10%까지로 높이되 간접비는 3∼5%로 차등적용하고,미사용 금액에 대한 이자 징수를 감면해주기로 했다. 또 기술이전을 촉진시키기 위해 기술 양도자에 대한 소득세와 법인세 감면비율을 50% 이상으로 확대하고,기술이전에 따른 수입금액의 80%를 법인세 과세표준에서 공제하기로 했다. 이와 함께 전략적이고 창조적인 연구·개발(R&D)체제 정립을 위해 ▲주요산업별로 기술기획위원회를 구성 운영하며 ▲기술평가체제를 국제특허(IP)분류체계로 개편하며 ▲기술개발실명제를 확대할 방침이다. 함혜리기자 lotus@
  • 印尼 끊일줄 모르는 ‘총성’

    [자카르타 외신종합] 인도네시아 최악의 종교분쟁지인 북동부 말루쿠 지역에 27일 비상사태가 선포됐음에도 유혈사태가 계속 확산,불안한 와히드 정권에 또하나의 시한폭탄으로 작용하고 있다. 말루쿠 및 북말루쿠 보안당국은 27일 오전 0시를 기해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간의 만성적인 충돌 종식을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분쟁 방지를 위한야간 통행금지를 실시하는 한편 무기 수거작업에 돌입했다. 보안당국은 이날부터 10명 이상이 모이는 각종 집회를 금지하고 밤 10시부터 오전 6시까지 주민들의 집밖 출입을 통제하며 모든 불법무기를 자진신고하라는 내용의 담화문을 발표했다. 그러나 비상사태가 선포된지 불과 수시간만에 말루쿠 주도 암본에서 총성이 재연된 것을 비롯,도심 곳곳에서 하루종일 총성과 폭음이 끊이지 않았다고현지 언론들은 보도했다. 언론들은 주민과 군 관계자를 인용,암본 시내 고층빌딩 곳곳을 점거한 저격수들의 무차별 총격으로,순찰임무중이던 군인 1명이 숨지고 주민 2명이 중상을 입었다고 전했다. 해병대 병력이 주둔중인북말루쿠 갈렐라 지역에서도 이날 오전 폭탄공격이있었으나 인명피해 여부는 알려지지 않고 있다. 이슬람교도와 기독교도들은 군이 서로 상대편을 비호하고 있다고 비난전을퍼부으며 무기 인도를 거부하고 있어 말루쿠 유혈사태는 쉽게 진정되지 않을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월 암본섬에서 유혈사태를 빚은 이래 18개월간 계속돼온 말루쿠 기독교도와 회교도간 종교충돌은 총 4,000여명의 사망자를 낸 것으로 집계되고있다. 한편 파푸아인들의 독립 요구에 강경대응 방침을 천명해온 인도네시아는 이리안자야에 올해 안으로 대규모 해병대 요원을 배치할 방침이어서 이곳의 독립세력과 무력충돌 가능성을 낳고 있다. 안타라통신은 27일 해병대 기지가 말루쿠와 인접한 이리안자야 서쪽의 소롱지역에 창설돼 해안경비 임무를 맡게 될 것이라고 무크신 해병대사령부 대변인을 인용해 보도했다. 내륙침투작전이 주요 임무인 해병대 요원을 이리안자야에 대규모 배치하려는 것은 무장독립세력이 관공서와 현지진출기업 등에 테러 공격과 요인 납치를 감행할 가능성에대비하기 위한 조치로 보인다. 이리안자야는 주민대표 3,000여명이 참가한 가운데 지난 4일 폐막된 웨스트파푸아 의회 총회에서 인도네시아로부터 독립을 선포하고 최근 분리독립 움직임을 가속화해왔다.그러나 인도네시아 중앙정부는 영토통합을 내세워 이리안자야 독립운동에 대한 강력한 경고사인을 거듭 피력해왔다.
  • 印尼 이리안자야 독립 요구 제2 東티모르 사태 가능성

    [자카르타 연합] 인도네시아 최동단 이리안자야가 37년만에 처음 열린 파푸아 의회 총회에서 독립을 촉구한 가운데 인도네시아 정부가 강경대응 방침을천명하고 나서 제2의 동티모르 사태가 재연되지 않을까 우려되고 있다. 이리안자야 주민대표들은 파푸아 의회 총회 3일째인 1일 인도네시아로부터분리,독립을 주장하면서 독립문제를 다루기 위한 인도네시아와 네덜란드,유엔 대표들과 회담 개최를 제의했다. 독립 요구는 즉각적인 독립선포와 해외 망명정부 수립을 주장하는 급진파와인도네시아정부와 평화적인 대화를 통한 독립 달성을 희망하는 온건파 대표들 사이의 난상토론 끝에 나왔다. 이에 대해 알위 시합 외무장관은 총회 주최측이 분리독립 문제를 논의하지않기로 한 당초 약속을 위반했다면서 정부는 이리안자야의 독립을 차단하기위한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겠다고 경고했다. 그는 “파푸아인들이 독립을 선포한다면 이는 헌법에 위반되기 때문에 매우우려된다” 면서 “총회 참석자들이 합의사항을 넘어서는 행동을 한다면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 [끊이지 않는 지구촌 분쟁] (1)17년 내전 스리랑카

    지구촌 곳곳에서 인종간,종교간 반목과 무력분규가 갈수록 격렬해지고 그범위가 확산되고 있다.무력 분규는 코소보,체첸등 옛소련,동구지역에서 시작해 지금은 아시아,유럽,아프리카등 지구촌 전역을 무대로 동시다발로 진행되고 있다.제3세계 분쟁지역의 경우 무지와 가난,천재지변,질병등이 겹쳐 자체해결의 희망이 없는 경우가 태반이고 유엔이나 서방의 관심권 밖에 있어 외부의 도움을 기대하기도 어렵다.주요 분쟁지역의 현황과 분쟁이 일어난 배경,해당 민족들의 역사,문제점등을 시리즈로 보도한다. ‘긴급…,스리랑카 반군 자프나 탈환 임박’‘정부군 2만여명 자프나에 고립’,‘반군 150명 사망’.외신들이 남아시아 끝에 위치한 스리랑카로부터급박하게 전개되는 내전소식을 연일 전세계로 전송하고 있다. 타밀족 독립 무장단체인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가 5년만에 옛 수도인 북부의 자프나 탈환을 눈앞에 두고 정부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고 있다.올해를 ‘전쟁의 해’로 선언한 반군이 자프나에서 1㎞ 떨어진 곳까지 진출,정부군에 “항복하거나수도를 즉각 떠나라”고 최후통첩을 보냈다.4월말 자프나지역과 본섬을 잇는 길목인 ‘코끼리 통로’를 반군에 내주고 자프나 반도에 고립된 정부군 2만여명은 2,000여명의 반군에 대항,유일한 보급로이자 퇴각로인 팔라리 공군기지와 인근 항구를 사수하고 있다.수적 우세에도 불구하고 사기가 땅에 떨어진 정부군에겐 이마저 힘에 부친다. 사태가 심각해지자 스리랑카 정부는 인도를 비롯,외국에 지원을 요청했다. 국내 언론의 보도를 전면 통제하고 전비충당을 위해 세금을 인상하는 등 비상조치를 취했다.인도가 개입 의사를 시사했고 평화협상 중재자로 나선 노르웨이 외무차관이 찬드리카 쿠라마퉁가 대통령과 만나 8만명의 사망자와 70만명의 난민을 낸 17년 내전을 종식시킬 방안을 논의중이다.쿠라마퉁가 대통령이 타밀족에 자치를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중이지만 야당과 정부내 반발,자치가 아닌 완전 독립을 요구하는 반군의 주장에 밀려 결실을 맺을 지는 미지수다. ◆분쟁의 역사 스리랑카는 16세기 포르투갈을 시작으로 네덜란드 영국의 지배를 받아오다1948년 영연방 자치령으로 독립했다. 65년부터 소수 힌두계 타밀족(18%)은 다수 불교계 싱할리족(75%)으로부터분리독립운동을 펴왔다.이것이 민족·종교간 분쟁으로 내닫기 시작한 것은 72년 타밀족에 대한 차별정책에서 비롯됐다.싱할리족 정부가 싱할리어와 불교를 우대하는 등 타밀족에 불리하게 헌법을 개정했기 때문이다.영국식민지 시절 타밀족에 대한 우대정책으로 이들의 지배를 받았던 싱할리족의 보복조치인 셈이다. 이에 반발,타밀족의 폭동이 77년,81년,83년 간헐적으로 일어났다.83년 7월타밀족의 본거지인 자프나에서 싱할리족 군인 13명이 살해되자 수도 콜롬보등에서 싱할리족에 의한 무차별 보복전이 시작됐다.전국적으로 1,000여명의타밀족이 살해되는 이른바 ‘대학살’이 자행됐고 콜롬보시에서만 10만명의난민이 발생했다.이를 계기로 타밀엘람해방호랑이가 결성되면서 무력대결로치달았다.90년부터 5년간 자프나 지역에서 사실상의 독립정부 역할을 해왔던반군은 그러나 95년 9월 정부군의 대규모 공격을 받고 정글로 쫓겨났다. ◆끝이 보이지 않는 내전정부군과 반군이 기존 입장을 고수하는 한 평화적해결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노르웨이가 중재는 하고 있지만 역사적으로 밀접한 인도가 국내외 역학관계에 발목이 잡혀 적극적인 개입을 자제하고 있다.두차례 군대까지 파병했지만 이번에는 군사개입은 배제한 채 양쪽이 요청할 경우 중재 의사만 밝혔다.91년 인도군을 파병했던 라지브 간디 총리의 암살 악몽을 잊지 못하는 인도 국민들과 연정을 이룬 타밀 정당들의 반대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하지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 자리를 노리는 상황에서 지역 맹주로서의 이미지를 제고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놓치기도 아쉬워 인도 정부는 개입여부를 놓고딜레마에 빠져있다.그래서 사태가 진정돼 지친 반군이 협상테이블에 나오도록 유도하는 수밖에 없다는 자조적 분석까지 나온다. 김균미기자 kmkim@. *'엘람해방호랑이' 어떤조직. 83년 결성된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는 타밀족 분리독립을 주도하고 있는무장반군 조직이다. 병력은 1만여명으로 추산되는데 이는 10만명이 넘는정부군의 10%에 불과하다.이들은 자동소총에서부터 지대공미사일과 로켓포 등중화기를 능숙하게 다룰 줄 아는 세계에서 훈련이 가장 잘된 최정예 전사로불리운다.야포와 탱크 등으로 중무장하고 해군력까지 보유하고 있다.특히 포로로 잡히는 것을 피하기 위해 항상 몸에 청산가리를 소지하고 다닌다. 반군 지도자는 벨루필라이 프라바카란(46).인도 타밀족 출신으로 무자비하고 포악하기로 이름난 그는 18살때인 72년 자프나 시장을 살해하면서 반군활동에 참여했다.86년 LTTE의 유사 타밀 무장조직인 TELO의 지도자를 모두살해하고 89년 타밀 무장조직을 통합했다. 반군은 특히 ‘검은 호랑이’로 불리는 자살특공대로 악명이 높다.2차 대전때 일본 가미카제나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을 연상시킨다.프레마다사 대통령(93년 5월),위저라튼 국방장관(90.12월),디사나야케 대통령 후보를 암살했다.91년 라지브 간디 인도총리도 자살특공대 소속 여성대원에게 암살됐다.95년스리랑카 해군에서 둘째로 큰 군함이 소녀대원 3명의 자폭공격으로 침몰됐으며,지난 3월10일 수도 콜롬보 국회의사당 앞에서 자살폭탄 테러로 28명이 사망하고 60여명이 부상했다.지난해 12월대통령 선거 유세현장에서 자살테러가발생, 집권당 후보였던 찬드리카 쿠마라퉁가 대통령이 한쪽 눈을 실명했고 3명의 장관 등 38명이 숨졌다. 전사자가 늘면서 남성대원들의 자리를 여성들로 채우기 시작,현재 전체 병력의 30%를 차지하며 상당수가 자살특공대로 활동중이다. 인도 남부의 5,000만 타밀족과 캐나다 영국 등 해외에 거주하는 수십만 동족들로부터 자금지원을 받고 있다. 김균미기자
  • 살인·테러…요동치는 반군

    *필리핀. 서방 관광객 등을 볼모로 한 필리핀 회교반군들의 반정부 게릴라 투쟁이 3일정부 목표물에 대한 폭탄 공격과 인질 사살로 확대되는 등 필리핀 정부와 반군간의 대립 사태가 격화되는양상을 보이고 있다. 분리독립 투쟁을 벌이고 있는 회교반군들은 이날 남부 민다나오 섬의 헤네랄산토스 시청사와 시장 등 세 곳에 동시다발적 폭탄 테러를 감행했다.군 정보보고에 따르면 이 폭탄 테러로 15명이 사망하고 다수가 부상했다. 반군들은 이와 함께 코타바토시 인근의 한 고속도로를 달리던 버스를 강제로세운 후 이 버스에 타고 있던 승객 70명을 인간방패로 삼아 정부군과 교전을 벌였다.앞서 모로이슬람해방전선(MILF)은 정부측과의 평화협상이 결렬된후 민다나오섬 전역의 정부·군사 시설을 공격하라는 명령을 1만5,000여명의휘하 반군들에게 하달했다.반군들의 이날 공격은 최근 수년만에 가장 큰 규모로 이루어졌다. 현재 필리핀내에서는 반군들의 대정부투쟁이 확산됨에 따라 민다나오섬 일대에 비상사태를 선포해야 한다는 지적이 고개를 들고 있다.필리핀 대통령궁은 그러나 정부가 현재 민다나오 섬의 치안을 잘 유지하고있다며 비상사태 선포 가능성을 일축했다.한편 서방인 등을 인질로 억류하고있는 회교반군단체 아부 사이야프는 3일 남부 바실란 섬에서 대대적인 인질구출 작전을 벌이고 있는 정부군의 공격에 맞서 가톨릭 성직자 등 적어도 4명의 인질을 사살했다 말했다. 삼보앙가·코타바토(필리핀) AFP AP 연합. *시에라리온.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유엔평화유지군(UNAMSIL)과 반군 혁명연합전선(RUF)간에 충돌이 발생,유엔군 7명이 살해되고 3명이 부상했으며 유엔군과 옵서버 등 50명이 인질로 잡혔다고 유엔대변인이 3일 밝혔다. 반군들은 지난 1일부터 수도 프리타운 북동쪽 140㎞ 지점 마케니와 마그부라카 등 유엔군 기지 두 곳을 공격,3일까지 교전을 벌였다.인질 한 명은 3일석방됐으나 나머지 인질 21명은 마케니와 마그부라카에,28명은 카일라훈에분산 수용돼있다. 유엔 안보리는 2일 비상회의를 소집,사태해결 방안을 모색하는 등 비상체제에 돌입했으며 반군 지도자 포다이 산코는 3일 저녁 유엔군 억류사태 해결을위해 ‘즉각적 조치’를 취할 것을 약속했다.또 ▲평화정착을 위한 대화 계속 ▲RUF점령지역에서의 유엔군과 인도주의적 업무 봉사자 및 민간인들의 자유활동 보장 ▲지난해 7월 체결된 평화협정에 따른 무장해제를 약속했다.그러나 산코는 그동안 식언을 거듭,서방의 신뢰를 얻지 못하고 있다. ●원인 유엔의 무장해제에 대한 반발.91년부터 내전을 벌여온 정부군과 RUF는 지난해 반군의 정부전복 시도가 서아프리카 평화유지군(ECOMOG) 개입으로 실패하면서 평화협정을 체결했다. ●반군 정부군이 1만3,000점의 무기를 유엔군에 반납,거의 무장해제한 반면반군은 4,000개만 반납한 채 여전히 시에라리온 동부·북부지역 등 다이아몬드광산 밀집지역을 장악하고 있다.국토의 절반.이중 마케니는 국가 속의 국가로 불리는 반군의 요새.무장반군 수는 1만5,000명이며 지도자 산코는 지난해 11월 정당을 구성하고 정부의 광물전략위원회의장직을 맡고 있다.반군은다이아몬드를 인근 라이베리아 등에 판매,자금을 조달하고 있으며 이지역장악 유지를 위해 유엔군과 계속 충돌하고 있다. ●유엔 유엔의 시에라리온 평화정착 의지는 강력하다.소말리아,르완다,브룬디 내전에 개입하고서도 대학살을 방지하지 못한 유엔은 시에라리온만이라도 건지기 위해 필사적이다.현재까지 8,000명을 파견했다.94년 르완다 대학살시 평화유지군 책임자로 있던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은 1만1,000명까지 증파할 계획.이번 사태로 증파 시기가 앞당겨질 것으로 보인다.이 경우 분쟁지역에 파견된 유엔군 사상 최대 규모가 된다. 김수정기자 crystal@. *스리랑카. 분리독립을 요구하는 타밀반군과 스리랑카 정부군간의 17년 내전에서 정부군의 패색이 짙어지고 있다.무장반군단체 타밀엘람해방호랑이(LTTE)는 지난달말부터 자신들의 문화적 수도로 여기는 자프나에 대한 공세를 강화,정부군이 고립되면서 스리랑카 정부가 전시체제 돌입을 선언하고 공공안전법을 발효시킨 것.찬드리카 쿠마라퉁가 스리랑카 대통령은 이날 반군과의 전쟁에 재원을 투입하기 위해 앞으로 3개월간 불요불급한 개발사업을 전면 중단할 것이라고 발표했다.스리랑카는 또 공공안전법 발효에 따라 특정재산을 몰수하고 신문 등 인쇄물의 발행을 중단시키는 한편 전쟁에 해를 끼칠 수 있는 모든 시위를 금지시킬 수 있게 됐다. 스리랑카는 1,900만 인구 가운데 4분의3 정도가 불교를 믿는 싱할리족이고힌두교도인 타밀족은 6분의1 정도인 320만 정도.타밀족은 48년 스리랑카가영국으로부터의 독립한 직후부터 분리독립을 요구해 왔다.양 민족간 무장투쟁이 본격화된 것은 83년 LTTE가 자프나에서 경찰관 13명을 살해한데 대한보복으로 타밀족 수천명이 피살되면서부터.다수민족인 싱할리족으로부터 차별받고 있다고 생각하던 타밀족들은 그 이후 본격적인 무장투쟁에 나섰고 17년에 걸친 내전을 통해 약 6만여명이 희생됐다. 인도는 스리랑카에 인도적 지원은 제공할 수 있으나 군사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지금의 정황으로는 자프나가 반군들의 수중으로 떨어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이며 자프나에 갇힌 정부군 4만명을 어떻게 대피시킬것인지가 큰 문제로 떠올랐다. 자프나는90년에도 반군들에 장악된 바 있다.반군들은 95년까지 약 5년간별도의 입법·사법·행정부는 물론 소규모 해군까지 거느려 사실상 독립국역할을 했었다.자프나의 함락은 오는 8월 총선을 앞둔데다 민족갈등 해결을공약으로 집권한 쿠마라퉁가 대통령으로서는 정치·군사적으로 큰 패배가 될것이다. 유세진기자 yujin@. *콜롬비아. 반군과의 오랜 내전에 지친 콜롬비아 국민이 요즘 단단히 화가 났다.아무리 납치사건이 극성이라지만 9살난 어린이까지 납치해 간것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콜롬비아 국민들은 연일 시위를 벌여반군의 후안무치를 규탄하며 피납 어린이를 하루빨리 부모의 품으로 돌려보낼 것을 촉구하고 있다. 콜롬비아 내전 종식을 위한 어린이 평화단체의 대변인역을 맡고 있는 다고베르토 오스피나군이 납치된 것은 일주일 전 하교길에서 였다.스쿨버스를 타고 집으로 가던 중 무장괴한 3명이 갑자기 버스를 세운 뒤 차 위로 올라와학생들의 가방과 노트를 뒤적이다 ‘다고베르트’라는 이름이 나오자 가방의주인공을 납치해달아났다.다고베르트군은 콜롬비아 어린이 130명으로 구성된 평화단체인 ‘평화의 건축가들’의 회원으로 얼마전 TV에 출연,“어른들은 이제 내전을 그만둬달라”며 간절히 호소해 유명인사가 됐다. 아들이 납치되자 어머니 글로리아 오스피나씨는 “우리 가족에게도 이런 일이 생길까봐 무척 마음을 졸이며 살아왔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콜롬비아에서는 지난해만도 3,000여건의 납치사건이 발생했으나 어린이 납치는 거의 드문 일이어서 국민들의 분노는 어느 사건때보다 더하다. 멕시코시티 연합
  • [역사를 바꾼 정상회담](1)부시‘고르비 정상회담

    세계 현대사의 굵은 매듭에는 어김없이 그 시대,세계를 이끌어온 지도자들의 역사적인 대좌가 있었다.살벌한 군비경쟁속에 인류를 이념의 틀에 얽어맸던 냉전체제도 강대국 정상들의 결단에 의한 회담으로 무너졌다.관계가 소원하기만 했던 나라들의 해빙(解氷)무드 역시 지도자들의 ‘만남’을 필요로했다.정상간의 대화는 묵었던 현안을 해소할 수 있는 장(場)이 될 수 있음을역사는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6월12일의 한반도 분단 이후 첫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새 천년의 기억 한편에 물러서 있는 세기의 정상회담을 돌아보고그 의미를 되짚어본다. *89년 美·蘇정상회담. 베를린 장벽이 붕괴된 지 4주 뒤인 1989년 12월2일,지중해의 휴양지 몰타해변.정박중인 소련 순양함 ‘막심 고리키’호의 카드놀이방을 개조해 임시로 만든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조지 부시 미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고르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마주앉았다.주위에는 소련의 에두아르드 셰바르드나제 외무장관과 미국의 제임스 베이커 국무장관,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백악관 안보보좌관 등이 배석했다. “얘기가 잘 안되면 책상을 발길로 걷어 찰 수 있을 정도로 너무 좁군요.”수많은 취재진 앞에서 고르비는 가벼운 농담으로 분위기를 이끌어 갔다. “정상회담 얘기가 나가자 동유럽 등 지구촌 곳곳에서 커다란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자주 만나야 할 것 같습니다.” “맞아요.오늘 만남도 오래전부터 이어진 대화의 연장선 같습니다.” 헝가리의 국경 개방,베를린 장벽 붕괴 등 냉전의 벽들이 무너지는 소용돌이속에서 구질서의 양대 축인 미·소의 정상은 이렇게 만났다. 부시 대통령이취임한 이후 10월 말까지 철저히 비밀에 부치며 추진해 온 정상회담이었다. “페레스트로이카가 성공한다면 세계는 더욱 좋아질 것입니다.” 부시는 참모진과의 협의를 거쳐 준비한 양국 무역협상 개시,소련의 최혜국 대우를 금지시킨 잭슨-바닉 수정안 해제 등 고르비 최대의 관심사항인 경제 제안들을한꺼번에 제시했다. 부시는 무기감축에 관해서도 진일보한 입장을 보였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으며 양극화는 더 이상 존재하지 않습니다.우리는과거 냉전에서 얻은 교훈들을 토의할 필요가 있으며,대립의 정치학인 냉전적방법론은 전략적 패배를 맞고 있습니다.” 고르비는 다소 철학적인 답변으로대신하며 대화분위기에 신경을 썼다. 정상회담이 열리는 동안 몰타의 기상은 최악이었다.미국의 순양함 벨크냅호와 소련 함정 슬라바호를 오가며 갖기로 한 정상회담은 폭풍우를 꺼린 고르비의 제안으로 장소가 고리키호로 변경됐다. 이튿날 회의에서 고르비는 미·소관계의 이정표를 긋는 중대한 발언을 한다.“우리는 미국이 유럽에 남아있는 것을 원하며 이것은 유럽의 장래를 위해서도 중요하다. 우리는 이제 여러분들을 적으로 간주하지 않는다”고 한 것이다. 물론 언쟁도 있었다.아프카니스탄 나지불라 정권에 대한 소련의 지원을 두고 설전이 오갔으며,동독의 변화를 서방의 가치에 기초를 둔 변화라는 부시의 언급에 고르비가 “우리도 민주적 가치관을 갖고 있다”고 되받는 등 한때 공기가 냉랭해지기도 했다. 부시는 고리키호를 떠나지 않으려는 고르비를 위해 이틀 동안 거센 파도속에 함재정을 타고 밸크냅호와 고리키호를 오가,이를 TV로 지켜보던 미 국민들은 가슴을 졸여야 했다. 몰타회담의 하이라이트는 12월3일 열린 사상 최초의 미·소 정상 공동 기자회견.고르비의 전격 제안이었다. 부시가 기자들에게 “미·소 관계개선으로 고쳐 나갈 수 없는 문제가 세계,특히 유럽에는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말을 꺼내자 고르비는 “우리 두 사람은 세계가 냉전의 시대를 지나 다른 시대로 접어들고 있다는 의견을 나누었습니다.영구적 평화로 가는 긴 여정의 시작입니다”라고 화답했다. 기자회견을 끝낸 두 사람이 전용기를 타고 몰타를 떠날 때 회담 내내 멈추지 않던 폭풍우는 빛나는 태양에 그 자리를 내줬다. 45년간 지구촌을 갈라놓은 냉전시대 구질서가 역사의 뒤안길로 물러서는 순간이었다. 김수정기자 crystal@. *조지 부시,냉전해체과정 충격없이 연착륙시킨 주역. 미국 41대(1989∼1992) 대통령.89년 1월23일 취임,동구 민주화 도미노,베를린 장벽 붕괴 등 급속한 속도로 진행된 냉전 해체 과정을 충격 없이 연착륙시킨 당사자다. 76세.매사추세츠주 밀튼 출생으로 예일대 경제학과 출신.텍사스에서 정유사업으로 부를 축적,64년 상원의원 출마로 정치에 입문했다.닉슨 대통령 시절주 유엔 대사를 거치고 75년 미 중앙정보국(CIA) 국장을 지냈다. 최근 CNN과의 인터뷰에서 헝가리 국경 개방 이후 선물받은 ‘헝가리 철조망조각’을 보며 눈물을 흘렸다고 소개해 당시 외교 결실에 따른 보람을 은근히 내비쳤다. 98년 보좌관이었던 브렌트 스코우크로프트와 함께 당시를 기록한 회고록 ‘세계의 대전환(A World Transformed)’을 펴냈다. 동구 해체시의 위기관리 능력과 91년의 걸프전 승리에도 불구,미 경제의 침체로 클린턴에게 대통령 자리를 내줄 무렵 인기가 급추락했다.아들인 조지 W부시가 공화당 후보로 올 대선에 출마한다. *미하일 고르바초프,냉전해체 1등공신…90년 노벨평화상 수상. 옛 소련 공산당 서기장(1985∼1991년),옛 소련 대통령(1990∼1991년).명실상부한 냉전해체의 일등 공신으로 90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69세.스타프로폴의 농가 출신.모스크바대에서 법학을 전공했으며 52년 공산당에 입당했다. 82년 후견인인 안드로포프가 레오니드 브레즈네프의 뒤를 이어 공산당 서기장이 되면서 정치적 위치가 급상승했다.이때부터 부패와 비효율에 대한 개혁을 시도,명성을 얻었다. 85년 서기장으로 선출된 뒤 추진한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는 80년대 국제사회 최대의 화두였다.그러나 시간이 흐를수록 기득권을 지키려는 보수강경파와 개혁파들 사이에서 입지가 흔들렸고 91년 8월강경파들의 쿠데타로 실각했다. 개방정책은 발트해 공화국들의 분리독립,소련연방의 해체로 이어졌고 경제는 피폐해졌다.서방에서는 ‘칙사’ 대접을,러시아내에서는 러시아 추락의주범이라는 원성을 듣고 있다.지난해 9월 부인 라이사가 암으로 사망,쓸쓸한말년을 보내고 있다. 김수정기자
  • [서유럽에 극우바람] 분리‘차별주의 기치 입지 넓힌다

    *배경과 실태. 서유럽에 극우(極右) 바람이 불고 있다.회원국 확대를 꾀하고 있는 유럽연합(EU)은 분리·차별주의를 지향하는 극우세력의 입지 확대에 쐐기를 박으려고하지만 그들의 꿈틀거림은 계속되고 있다. 바람은 알프스산맥에서 먼저 불고 있다.스위스와 오스트리아에서다.두 나라는 지난해 10월 선거에서 극우 정당으로 분류되는 인민당과 자유당을 각각제 2당으로 올려놓았다.스위스 인민당은 독일어권인 스위스 동부지역에서의압도적 지지를 바탕으로 유권자의 22.5%로부터 지지를 받았고 오스트리아의자유당은 27%의 높은 지지를 얻었다. 특히 오스트리아 자유당은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한 사민당과 함께 연립정부를 구성,중앙 정치무대에서 당당히 활동하게 됐다. 자유당의 연정 참여는 나치의 악몽에 시달렸던 EU 회원국들을 경악시켰다.EU 15개 회원국들은 오스트리아와의 외교관계 단절까지 검토하고 있다.이는자유당이 EU 확대,단일통화,이민자 반대 등으로 통합과 조화를 지향하는 EU의 정책에 반대해왔기 때문이었다. 나치당은 게르만민족의 우월성에 입각한 반유태주의와 팽창주의를 지향했다.유태인 학살은 인종차별의 당연한 결과였다.최근 입지를 확대하고 있는 극우정당들은 나치의 인종차별주의의 아류인 ‘외국인 혐오’‘이민 반대’를생명으로 삼는다.EU 등 국제기구 반대와 내국인 우대 정책 지지도 공통적인특징들이다. 하이더 당수의 경우 지난 선거에서 이민자 유입을 ‘외국인 침투’로 표현했다.나치가 2차대전 당시 만들어낸 용어였다.그는 또한 외국인들을 ‘범죄자’라고 연설에서 자주 언급했다.스위스 인민당의 크리스토퍼 블로허 당수도 이민자 반대 등을 내걸어 효험을 본 케이스다. 이탈리아 북부연맹도 롬바르디아 등 북부지역의 분리독립,외국인 이민 및 EU 단일통화에 반대를 내걸고 있다.북부연맹의 움베르토 보시는 오는 4월 북부지역 선거를 앞두고 하이더식의 부상을 꿈꾸며 중도 우파인 포르자 이탈리아당과 연대를 꾀하고 있다. 벨기에의 극우정당인 플레미시 블록은 플랑드르 지역의 분리독립과 이민 반대를 내세운다.필립 드윈터 당수는 나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은 피하지만이민 중단과 내국인 우대를 표명하고 있다.그에게 있어 외국인들은 범죄자와같다. 진보당이 15%의 지지를 받고 있는 노르웨이의 사정도 마찬가지다.프랑스의 국민전선(NF)이 십수년간 지속적인 지지를 모으고 있는 것도 외국인 혐오에 대한 호소 탓이라는 분석이다. 독일에선 정부의 강력한 단속 탓에 극우정당은 기를 펴지 못하고 있지만 잠재력은 매우 풍부하다.독일인민연합이 2년전 옛 동독지역인 작손 안할트주선거에서 18%의 지지를 얻은 게 이를 입증한다.게다가 나치 추종세력이 100여개 집단 7만여명에 이르는 점도 유념할 대목이다.베를린자유대학은 여론조사 결과를 토대로 극우당의 지지율은 13%까지 치솟을 잠재력을 갖고 있다고분석했다. 극우세력이 활개치는 데는 외국인 유입에 따른 일자리 상실에 대한 두려움과 함께 인터넷도 일조를 하고 있다.현재 인터넷에는 300여개가 넘는 신나치주의자 웹사이트가 개설돼 동조자를 끌어모으고 있는 실정이다. BBC는 극우세력의 확산을 “변화와 미래에 대한 두려움,그리고 세계화와 이민이 일자리와 문화에 미칠 영향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빚어지는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박희준기자 pnb@. *하이더 정신세계 나치물 ‘흠뻑’. 오스트리아 극우정당인 자유당의 연정 참여에 대해 EU 회원국은 물론 미국등 국제사회가 외교단절 등 초강수를 두는 이유는 하이더 당수가 오스트리아와 유럽에 잠자고 있는 ‘나치 망령’을 깨울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우선 하이더의 정신세계에는 ‘나치’ 물이 흠씬 배 있다.나치당원인 부모에게서 태어난 하이더는 16세 때 ‘오스트리아의 뿌리는 독일’이라는 제목으로 웅변대회에서 입상한 경력이 있다. 그리고 그의 조국 오스트리아는 나치의 잔영이 오랫동안 뿌리를 내릴 수 있는 훌륭한 토양을 제공하고 있다.그가 76년 대학을 졸업하고 이주해 주지사가 된 케른텐주는 역사적으로 외국인 혐오와 게르만 민족주의가 유난히 강한곳으로 꼽힌다. 오스트리아는 1938년 독일과 나치동맹을 구축한 나라다.나치당의 인종주의를 그대로 답습,2차대전중 유태인 7만명이 목숨을 잃게 했다.그러고도 독일처럼‘과거사’에 대해 반성하지도 않았다.그저 묻어두고 있었다.나치 정보장교 전력이 있는 쿠르트 발트하임이 대통령에 당선되도록 한 게 나치에 대한 일종의 ‘묵인’이었다. 하이더의 인종차별적 친(親)나치 발언이 되풀이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그는 91년 히틀러의 ‘체계적 고용정책’을 찬양했고 95년에는 “나치의SS친위대는 영예로운 독일군의 일원”이라고 미화했다.홀로코스트(유태인 대학살)를 초래한 수용소는 ‘처벌 수용소’라고 말하기도 했다. 그는 93년엔 비(非)독일어권 학생비율을 30% 이하로 묶어야 한다고 주장했고 97년엔 외국인 노동자 가운데 3분의1을 2년 안에 본국으로 돌려보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나치의 인종차별주의 냄새를 물씬 풍기는 면면이다.그리고 이 수법은 저소득 젊은층에게는 큰 호소력을 발휘했다.그것은 자유당에대한 높은 지지의 한 축이긴 하지만 동시에 오스트리아 고립을 자초한 화근이기도 하다. 그는 오스트리아가 EU에 가입하면 다른 회원국으로부터 많은 외국인이 들어와 안정된 일자리를 뺏게 된다며외국인 유입에 반대해왔다.현재 이민자는오스트리아 인구 800만명의 10%를 차지하고 있으며 빈 일부 지역에서는 3분의1에 육박한다.사상 유례없는 낮은 실업률에도 불구하고 저소득층 특히 가난한 젊은이들 사이에서 그의 ‘외국인 혐오’는 큰 인기를 얻으며 세력을넓혀나가고 있는 게 사실이다. 박희준기자 pnb@
  • [다시 뛰는 아시아경제](3)완만한 회복세 인도네시아

    인도네시아 경제가 회복세로 돌아서고 있다.지난해부터 부쩍 호전되고 있는 환율·물가·금리 등 주요 경제지표가 이를 말해준다.국제통화기금(IMF) 관리를 함께 받았던 한국·태국에 비해서는 속도는 느리지만 이러한 추세라면멀지않아 IMF 이전의 경제수준을 회복할 것 같다. 98년 상반기 달러당 1만6,000루피아까지 수직상승했던 환율은 IMF·세계은행(IBRD) 등 국제금융기관의 금융지원과 경상수지의 흑자 반전으로 98년 10월 이후 7,000루피아선에서 안정세를 보이고 있다. 아시아 금융위기 이전까지 크게 심화돼오던 경상수지 적자 규모 역시 유가등 원자재 가격의 상승에 힘입어 98년 흑자기조로 돌아선 뒤,흑자 규모가 큰 폭으로 늘어나고 있다.98년 40억달러,99년 51억달러로 증가했고 올해에는 45억달러 수준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도 희망적인 것은 서민경제의 사정을 그대로 반영하는 물가가 큰폭으로 하락하고 있다는 점이다.98년 연 58.5%까지 치솟았던 물가상승률은 99년 20%대로 떨어진데 이어,올들어서는 6%대로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98년 기상이변까지 겹쳐 농업생산량이 크게 줄고 폭동으로 유통망이 파괴돼 폭등했으나,최근들어 유통망이 복구되고 농업 생산량도 크게 늘어난 덕분이다. 금리도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한때 70%대까지 폭등했던 인도네시아 중앙은행 증서(SBI) 28일짜리 금리는 최근 2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에 따라 99년 2·4분기부터 국내총생산(GDP)이 플러스 성장으로 돌아섰다.99년 전체 성장률은 0.1%.올해는 4.1%의 성장이 기대된다.경제회복의 장애물이던 정국불안도 어느 정도 해소돼 재도약의 기틀이 마련된 상태다. 그러나 인도네시아의 경제는 여전히 취약하다.풀어야할 과제가 많다.최근플러스 성장세는 경제기반이 탄탄해졌기 때문이 아니다.99년 1·4분기까지마이너스 10%대의 성장률을 기록하다가 플러스 성장률로 돌아선 것은 산업생산보다 유가상승과 농업생산 증가에 힘입은 것이어서 수치상의 호전일 뿐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외채는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다.98년말 총외채 규모는 1,560억달러.97년(1,360억달러)에 비해 절대액에서는크게 늘어나지 않았지만 루피아화가치의 폭락으로 외채부담은 97년 국내총생산(GDP)의 68%에서 98년 177%로크게 늘었다. 금융개혁도 필요하다.하비비정권이 IBRA(인도네시아 은행구조조정위원회)를 설립,은행에 대한 실사를 마치고 금융개혁을 추진했으나,정치적 압력으로지금은 거의 중단된 상태이다. 여기에 빈곤과 실업문제가 두드러진다면 재기를 위한 도약은 더욱 힘들어진다.96년 인구(약 2억명)의 11%에 불과했던 절대 빈곤층이 환란 이후 20%로급증했다. 특히 실업률은 15%선을 넘었다.여러 지역의 독립분리 요구에 시달리는 압둘라만 와히드 정권이 사회통합을 위해서도 꼭 풀어야할 과제다. 김규환기자 khkim@ *경제회복의 ‘뇌관' 분리독립운동 국제통화기금(IMF)은 최근 인도네시아 경제가 ‘회복’의 초기단계에 있다고 평가했다.그러나 높은 실업률과 빈부격차,중산층의 소멸을 위기전 수준까지 복구하기까지는 최소한 몇년이 걸린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미국은압둘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이 일을 할 적임자로 보고 각종 지원책을 강구중이다. 하지만 와히드 대통령 앞에는 어떤 경제적 난관보다 더 풀기 어려운 ‘숙제’가 기다리고 있다.분리독립운동의 확산이다.갈길 바쁜 와히드의 발목을 챈다. 인도네시아는 지난 45년 독립이후 ‘다양성속의 통일’을 국가모토로 삼아왔다.이는 인도네시아가 360여 종족이 300여개 언어를 사용하며 1만3,000여개의 섬에서 살고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결과였다. 국부(國父) 수카르노와 그의 뒤를 이은 수하르토의 일신교와 바사인도네시아라는 단일언어의 확산,부족간 결혼 및 이주권장,군대와 보안군의 조직과파견을 통한 사회의 군대화를 통해 이 목적은 달성됐고 경제는 번성할 수 있었다.그러나 97년 외환위기는 이같은 꿈을 단숨에 날려버렸다. 수하르토 하야후 분리독립 운동은 더욱 거세졌다.이미 76년 복속됐던 동티모르는 무장독립 투쟁을 통해 자치지역으로 탄생했다.51년 인도네시아 합병되고 59년 ‘특별지역’의 지위를 부여받은 아체주의 경우 76년 ‘자유아체운동’이라는 무장단체를 조직하고 아예 ‘아체 이슬람공화국’을 선언한 실정이다.88년부터 정부군과 전투를 벌여왔으며 최근에는 100만명이 주도인 반다아체에 운집한 가운데 독립시위를 벌였다.와히드 대통령은 자치확대라는 당근을내놓았으나 먹혀들지 않고 있다.스웨덴에 망명중인 아체주의 독립지도자 텡쿠 하산 디 티로는 “인도네시아는 최소 5개의 독립국가로 나눠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67년부터 ‘자유파푸아운동’을 통해 분리독립을 추진해온 뉴기니 서쪽의이리안자야자도 2003년까지 완전독립을 쟁취하겠다고 밝혀둔 상태다.술라웨시도 최근 ‘술라웨시 회교독립공화국’을 선포했으며 싱가포르 남쪽의 리아우주까지 분리주의 열기는 번지고 있는 실정이다. 박희준기자 pnb@
  • 印尼 종교전쟁 발발 위기

    인도네시아가 새해 벽두부터 사실상 내전 위기에 처했다.발칸반도가 따로없다.엄청난 희생끝에 동티모르가 독립한 데 이어 이번에는 암본을 중심으로말루쿠주에서 독립을 요구하는 기독교도와 회교도간의 분쟁이 전쟁양상으로치닫고 있다.일부 신문은 최근 2주일 사이에 2,000명이상이 숨졌다고 보도했다.급기야 회교도들은 기독교도들을 상대로 성전(聖戰)을 선포했다. ■회교도들의 움직임 30여만명의 인도네시아 회교도들은 7일 자카르타 독립기념 광장에 모여 말루쿠 제도에서 벌어지는 기독교 회교도간 유혈 사태의복수를 위해 지하드(성전)를 촉구했다. 시위대는 이날 “교회를 불태워라”“관용은 넌센스다.기독교도들을 죽이라”는 구호를 외쳐댔다.이들은 회교 정치가들과 운동가들이 낸 신문 광고와소집령에 따라 모여들었다.통합개발당 지도자이자 장관을 역임한 함자 하즈와 국민협의회 의장인 아미엔 라이스도 참석했다.사상 최대 규모의 시위였다. ■무정부상태인 말루쿠주 인도네시아 군은 7일 말루쿠제도로 무기가 밀반입되는 것을 막기 위해 해군 함정 9척과 정찰기 5대를 배치 이지역을 완전히봉쇄했다.또 군병력을 대거 투입됐다.일간지 레푸블리카는 6일 말루쿠제도북쪽 할마헤라 섬에서 회교도 2,000명이 학살됐다고 보도했다.암본에서만 최근 700여명이 사망했다.안타라통신은 지난해 12월 26일 이후 할마헤라섬 7개지역에서 모두 991명이 사망했다고 전했다. 또 예배처 122곳을 포함한 건물8,500채가 부셔지거나 불탔다.수만명이 다른지역으로 피신했다. 새해 들어서1만 7,500명이 이곳을 떠났다. ■말루쿠주도 암본 19세기 태평양권 무역 중심지로 네덜란드의 항구였다.따라서 기독교도가 많다.2차대전 후에 인도네시아에의 편입을 거부,독립운동이벌어졌으나 강점당했다. 중앙정부의 회교도 이주정책에도 불구하고 기독교도의 우위가 유지되고 있다.90년대 들어 이슬람교도가 지배세력이 되면서 긴장이 조성됐다.이때 기독교도들의 독립요구도 불거지기 시작했다.98년 11월 양측의 싸움으로 14명이 숨진 사건이 무력분쟁의 시발이었다.이외 분리독립 운동이 고조되고있는 지역은 아체주와 이리안자야주,리아우주 술라웨시섬 남부등이다. 김병헌기자 bh123@
  • [‘99지구촌 조명] (2)전쟁

    세기말을 목격하듯 99년은 그야말로 지구촌 곳곳이 전쟁과 분쟁으로 얼룩진 한해였다. 새해벽두부터 전면전으로 치닫던 아프리카 앙골라내전을 비롯해,나토의 유고 대공습과 러시아의 체첸침공 등은 올 한해 전쟁의 그림자가 각 대륙을 망라했음을 여실히 드러냈다. 특히 민족갈등이 주원인이었던 코소보 사태는 ‘발칸의 화약고’로 한때 제3차 세계대전의 발발 위험성까지 내포하며 금년 최악의 전쟁으로 기록됐다. 알바니아계에 대한 유고연방의 인종청소로 촉발된 코소보 사태는 알바니아계 주민 2,000여명의 희생과 100만명 가까운 난민을 발생시키며 결국 나토의유고 대공습이라는 전쟁상황으로 몰아갔다. 78일간 계속된 나토의 공습으로 유고 전역은 거의 초토화되다시피했으며 미국을 비롯한 다국적군 또한 엄청난 전비와 물적부담을 떠안으며 전쟁의 큰상처로 남았다. 최근 국제적 초점이 되고 있는 체첸전쟁은 배후 이슬람혁명이라는 종교갈등이 자리하고 있다.체첸 회교반군의 무장 독립운동은 지난 94∼96년 제1차 체첸전쟁에 이어 이번에도 러시아 연방군의 무력침공을 불러들이며 대규모 희생을 낳고 있다. 실제 러시아군은 지난 10월1일 군사작전을 시작한 이래 3개월여에 걸친 대규모 공격을 퍼붓으며 현재 체첸의 수도 그로즈니를 함락하기 일보직전이다. 그런가하면 인도네시아는 각종 분쟁으로 몸살을 앓고 있는 대표지역.종족분쟁에서부터 종교분쟁,분리독립을 위한 유혈충돌 등 인도네시아에선 하루도분쟁이 그칠날이 없다. 이 가운데 지난 8월30일 유엔주관하에 독립여부를 묻는 주민투표가 이뤄졌던 동티모르에선 이후 독립에 반대하는 인도네시아 민병대의 대규모 살육전으로 주민 수만명이 서티모르로 탈출하는 등 극도의 혼란을 겪기도 했다. 그러나 76년 인도네시아에 강제합병된뒤 지금까지 인구의 4분의1인 22만명이 희생되는 ‘피의 독립투쟁’을 벌여온 동티모르는 마침내 지난 10월20일인도네시아 국민협의회가 독립을 승인,정식 독립국으로서의 절차를 밟게 됐다. 이경옥기자 ok@
  • [지구촌 밀레니엄준비] 스리랑카/소득증대‘빈곤퇴치 국민운동 전개

    인도 동남쪽 적도 바로 아래 위치한 섬나라 스리랑카의 새 밀레니엄은 2000년 1월1일 0시 수도 콜롬보의 얼굴 ‘골 훼이스’ 광장에서 세계에서 가장큰 ‘밀레니엄 평화의 기(旗)’를 게양하는 것으로 시작된다.가로 160m,세로84m로서 기네스북에 오를 것으로 예상된다. 새천년을 맞아 지구촌 어디에나 밀레니엄이라는 접두어가 유행하지만 스리랑카도 예외가 아니다.모든 행사와 정책에 밀레니엄을 껴안고 있다. 무엇보다 이 나라는 밀레니엄 대통령 탄생을 고대하고 있다.현 여성 대통령인 ‘반다라나이케 쿠마라퉁가’대통령은 내년 하반기에 예정된 대선을 앞당겨 오는 21일 조기 실시할 계획이다.새로운 마음으로 21세기를 이끌 통치체제를 구축하겠다는 의지다. 쿠마라퉁가 대통령은 조기 선거를 통하여 반드시 재선을 이룩하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다.얼마 전에는 ‘비전 21’이라는 이름으로 밀레니엄 청사진을 제시했다.인종분규의 해결을 통한 민족화합,민주주의 발전,시장경제를 기반으로 한 경제발전 전략이 각 부서별로 상세하게 망라돼 있다. 스리랑카는 98년 기준 1인당 국민소득이 837달러로 우리나라의 1976년 수준이다.오는 2010년까지 1인당 국민소득을 2,500달러로 끌어올리겠다는 야심찬계획을 갖고있다. 이 나라의 경제발전 전략은 첫째 적극적인 외국투자 유치다.외국의 100% 직접투자 허용을 비롯,각종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있어 좋은 투자환경을갖고 있다.우리 업체도 이미 130여개가 진출,이 나라 수출 총액의 10% 정도를 담당하고 있다. 둘째는 사회간접시설의 확충이다.콜롬보항을 인도양 최대 교통요충지로 발전시키는 전략이다.21세기 지식산업 시대에 살아남기 위한 생존전략으로 정보통신 산업의 적극 육성도 도모 중이다.전국의 모든 학교에 컴퓨터를 보급,현재 35%에 이르는 컴퓨터 해독률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 올리려는 계획을갖고 있다. 다음은 ‘사무르디’ 운동의 전개를 통한 빈곤퇴치이다.정부 차원에서 농어촌 중심으로 절대 빈곤자들에게 최저 생계를 보장해주고 자조 노력과 고용창출을 지원하는 국민 운동이다. 사무르디 은행을 지방 단위로 설립,빈곤자에 대한 금융대여의 혜택을 주고있다.과거 우리의 새마을 운동을 상기시키는 사업으로서 앞으로 고위 관계자들을 방한시켜 우리의 경험과 사례를 연구토록 할 계획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스리랑카 국민과 정부에 중요한 것은 21세기 민족 갈등을종식시키고 국가통합을 이루어 평화로운 국가건설을 이룩하는데 있다.80년대 ‘타밀 타이거’로 불리는 타밀족 분리독립주의자들과의 기나긴 내전은 스리랑카의 경제성장을 잠식하고 있으며 국민들을 분열시켜 왔기 때문이다. 스리랑카로서 하루속히 내전을 끝내고 다인종,다종교의 다양성 속에서 스리랑카 국민으로서의 일체성을 찾고 평화와 번영을 추구하는 것이 새천년을 맞는 최대의 목표일 것이다. 송영오 駐스리랑카대사
  • 인도, 아체 일부 계엄령 검토

    [자카르타 AFP 교도 연합] 인도네시아 정부는 최근 분리 독립문제로 혼란이 계속돼 온 아체주(州) 일부 지역에 계엄령 선포를 계획하고 있다고 국영 안타라통신이 17일 보도했다. 통신은 유워노 수다르소노 국방장관의 말을 인용,현재 각료들이 아체주 일부지역을 계엄령에 해당하는 ‘군 비상 상태’에 둘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전했다. 수다르소노는 장관은 계엄령 선포 가능성을 고려하고 있는 것은 “최근 몇달간 아체 분리독립운동 단체 자유아체운동(FAM)과의 교전으로 많은 군인과경찰이 사망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인도네시아 정부의 계엄령 선포 고려는 압두라만 와히드 대통령이 군부의부정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아체 주민자치투표를 허가할 수 있다는 입장을표명한 지 이틀만에 나왔다.
  • 印尼 “내년 아체州 자치투표 용의”

    [자카르타 AFP AP 연합] 분리독립운동이 격화되고 있는 인도네시아 아체주에 대한 자치투표가 빠르면 내년 상반기중에 치러질 전망이다. 압두라만 와히드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16일 도쿄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아체주 사태가 한달안에 해결된다면 그후 6개월내에 자치투표가 실시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알위 시하브 외무장관도 아체주의 분쟁을 해결하고 인도네시아 통합을 유지하기 위해 미국 자문단의 조언을 수용할 계획이라고 말했다.그러나 아체주민대부분이 독립을 원하고 있어 인도네시아 정부가 특단의 조치를 내놓지 않는한 소요는 계속될 전망이다. 빌 클린턴 대통령도 지난 12일 워싱턴에서 와히드 대통령과 가진 정상회담에서 “아체의 분리를 희망하지 않는다”고 전제하고 국제적 분쟁해결의 경험이 있는 전문가들로 자문단을 구성해 인도네시아에 파견하겠다고 제의,아체주민들의 반발을 샀다. 이에 따라 독립 지지파들의 움직임이 과격해지면서 테러를 우려한 이주민들은 벌써부터 탈출행렬에 나섰다. 아체주 주도 반다아체의 말라이야하티 항구 관리인 알 안쇼르는 이날 분리주의자들이 다음 달 4일 독립 선포 23주년 기념식을 앞두고 아체인이 아닌주민들에게 떠날 것을 촉구하는 유인물을 배포한 이후 이주민들의 탈출행렬이 시작됐다고 설명했다. 아체 북부 도시인 로크세우마웨에서도 수백명의 이주민들이 북 수마트라 주도 메단으로 향하는 도로를 따라 탈출하기 시작했으며,메단행 비행기는 예약이 꽉 찬 상태이다. 이에 앞서 분리 독립을 주도하고 있는 아체 주민투표공보센터(SIRA)의 무하마르나자르 조직위원장은 “정부가 우리의 요구를 무시한다면 아체 주민들은 자유아체운동(GAM)에 합류하거나 독자운동을 결성하는 등 대책을 모색하겠다”고 경고했다.GAM 군사령관을 맡고 있는 텡쿠 압둘라 샤페이도 이주민들에게 피난처를 찾도록 권고했다고 시인했다. 인도네시아에서는 독립이 결정된 동티모르와 아체외에 이리안 자야,암만,보루네오 등도 분리독립운동의 몸살을 앓고 있다.
  • 印尼 거국내각 출범

    [자카르타 AFP AP 연합] 압둘라흐만 와히드 신임 인도네시아 대통령은 26일 과거 정권과 거리를 둔 새로운 ‘거국내각’을 출범시켰다.새 내각은 군부의 정치적 입김을 축소하고 대외관계와 경제정책에 역점을 두었고 원주민의분리독립 움직임에 대응하기 위해 소수민족의 대표성도 폭넓게 고려했다는평가다. 위란토 군참모총장은 전보다 영향력이 적은 자리인 정치안보조정장관에 기용됐고 국방장관에는 민간인 출신으로 하비비 내각에 참여했던 주워노 수다르소노가 임명됐다. 또 군참모총장에는 참모차장을 지낸 위도도 아디수트지프토 제독을 발탁했다.신임 아디수트지프토 총장은 과거 정권에서 정치적인 역할을 맡은 적이없다. 한편 자카르타 포스트는 이날 인도네시아와 동티모르의 관계를 새로 정립하기 위해 내달중 동티모르 반군 지도자 사나나 구스마오와 브루나이에서 비공식 회동을 가질 계획이라고 보도했다.
  • [사설]‘정권교체 印尼’의 앞날

    인도네시아의 새 대통령에 제2야당인 국민각성당(PKB)의 압둘라흐만 와히드후보가 당선됐다. 독립후 54년만에 처음으로 인도네시아가 헌법절차에 따른평화적 정권교체를 이루었다는 것은 인도네시아는 물론 아시아의 민주주의발전을 위해 환영할 일이다.온건한 성향의 회교지도자인 와히드대통령의 취임으로 수하르토 퇴진이후 혼란과 불안이 계속돼온 인도네시아가 국민적 통합을 이루고 하루빨리 안정을 되찾기 바란다. 그러나 평화적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인도네시아의 앞날은 여전히 불안한것으로 우려되고 있다.수하르토를 승계하여 지난 17개월동안 집권해온 하비비대통령의 후보사퇴로 집권 골카르당의 후보가 없는채 치러진 대통령선거에서 국민협의회(MPR)는 예상과 달리 다수 국민들의 지지를 받고있는 민주투쟁당(PDIP)의 메가와티 수카르노 푸트리 여사대신 와히드후보를 택했다.선거결과에 반발하여 격렬한 시위를 벌이고 있는 메가와티 지지자들을 진정시키고 정국을 안정시키는 것이 와히드대통령에게 닥친 당장의 과제이다. 와히드대통령 앞에는수하르토정권의 장기독재가 남긴 부정·부패구조를 척결하고 극심한 빈부격차를 해소하며 국민들이 바라는 민주화와 개혁을 이루어야하는 어려운 과제들이 쌓여있다.내분으로 대통령후보조차 내지못했지만오랜 집권당이었던 골카르당을 비롯한 보수·기득권세력의 반발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지금까지 정치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왔던 군부의 동향도 새대통령에게는 엄청난 부담일 수밖에 없다.동티모르에 이은 다른 지방들의 분리독립운동을 해결하는 난제도 남아있다. 인도네시아가 안고있는 산적한 과제들이 평화적인 정권교체가 되었다고하여하루아침에 모두 해결될 수는 없을 것이다. 더구나 와히드대통령은 건강상의문제에다 정치적 기반도 약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32년의 장기독재정권을무너뜨리고 평화적 정권교체까지 이룬 민주 시민들의 힘이 다시 한번 뭉쳐져야만 가능할 것이다.이런 점에서 선거에서는 패배했지만 지지자들에게 현재의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호소한 메가와티여사의 자세를 높이 평가하며 앞으로의 정국안정에 그의 역할이 기대된다. 인도네시아의 안정과 민주화는 그 나라의 장래뿐 아니라 아시아와 세계 평화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특히 우리나라와는 많은 교민들과 기업들이 진출해있는데다 교역과 투자, 자원협력 등 외교·경제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갖고있다.두나라 모두 국제통화기금(IMF)관리체제하의 경제위기를 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발전으로 극복하기위해 노력하고 있다는 점에서도 정책집행의 공통점이있다. 인도네시아의 평화적 정권교체가 정치적 혼란과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 민주주의의 참다운 힘을 보여주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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