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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친의 훈장 받아든 이근배 회장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회”

    선친의 훈장 받아든 이근배 회장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회”

    ‘너는 사상을 모른다/어머니가 사상가의 아내가 되어서/잠 못 드는 평생인 것을 모른다’ 이근배(80) 대한민국예술원 회장이 쓴 시 ‘냉이꽃’의 일부다. ‘사상가′의 외아들이었던 이 회장은 최근 아버지 이선준(1911~1966) 선생에게 수여된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아들었다. 27일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기자들과 만난 이 회장은 “필설로 다할 수 없는 감회가 있다”고 말했다. 이 회장의 선친 이선준 선생은 일제 강점기 충남 아산에서 독립운동을 펼쳤다. 이 선생은 1933∼1935년 조국 독립을 위해 부친이 한약방을 운영했던 아산군(현 아산시) 신창면 일대에서 주민들에게 민족주의 사상을 전파하고 ‘아산적색농민조합’이란 조직을 만들어 농민운동을 이끌었다. 이 과정에서 체포돼 2차례(1933년 9개월, 1935년 2년) 투옥되기도 했다. 이 회장이 아버지를 본 것은 열 살 남짓 무렵이 전부다. 그러나 부친의 남로당 전력 등으로 연좌제라는 이름 하에 이 회장의 가족들은 서글픈 시절을 보내야 했다. 1950년 6·25 전쟁이 터지자 인공기를 찾아들고 집을 나갔던 아버지에 관한 얘기는 ‘깃발’이라는 시에 고스란히 담겼다. ‘아버지는 깃발을 숨기고 사셨다/내가 그 깃발을 처음 본 것은/국민학교 5학년 때였다..운동회날 하늘을 덮던/만국기들 속에는 보지 못했던 그 깃발’(시 ‘깃발’ 일부)일제 강점과 분단의 상처를 오롯이 감내해야 했던 이 회장은 현재의 한국문학에도 할 말이 많다. ‘미당 서정주의 제자’라는 이유로 친일 논란을 겪기도 했다는 그는 한국문학에 쓴소리를 쏟아냈다. “우리 문학사는 편 가르기를 많이 하는데,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나 하나뿐 아니라 일제 강점, 분단에 상처 받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 [열린세상] 사비니 여인들의 용기와 평화/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열린세상] 사비니 여인들의 용기와 평화/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의 모든 방을 본다면 족히 3일은 걸린다. 잠깐 루브르에 가 보았다고 할 요량이라면 최소 드농관에서 ‘모나리자’, ‘나폴레옹 대관식’을 보고 계단에서 ‘승리의 여신 니케상’을 지나 슐리관에서 ‘밀로의 비너스’를 영접하면 된다. 중간에 만나는 이탈리아와 프랑스의 낯익은 작품들 그리고 대리석이 돼 버린 그리스 신화 속의 신들은 덤이다. 여유가 있어 리슐리외관에서 루벤스와 렘브란트까지 만난다면 더할 나위 없다.두 차례 루브르박물관을 방문했다. 첫 방문은 신혼여행 때이다. ‘모나리자’와 눈만 마주치고 1시간 만에 나왔다. 두 번째 방문은 한나절이나 있었다. 미술을 전공하는 동생을 따라다니는 통에 동생이 좋아하는 ‘나폴레옹 대관식’이 전시된 공간에서만 3시간을 머물렀다. ‘민중을 이끄는 자유의 여신’과 ‘메두사의 뗏목’까지 만날 수 있는 전시실이다. 유명한 작품 앞은 늘 사람들로 붐빈다. ‘나폴레옹 대관식’을 보려는 관람객을 피해 한 걸음 비켜 서니 바로 옆에 걸린 작품이 눈에 들어왔다.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사비니의 여인들’이다. 당시 군인 신분이었던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인생작이 됐다. 이 작품은 로마 건국 시기 이야기이다. 인구가 곧 군사력이었던 시절, 로마를 건국한 로물루스는 여자가 부족했던 도시에 인구를 늘리기 위해 이웃 도시들의 여인들을 납치해 와 로마인들의 아내로 삼았다. 3년 후 여인들을 빼앗긴 사비니인들이 로마에 복수하고자 전쟁을 벌이게 된다. 이때 사비니군의 지휘관인 타티우스의 딸이자 로마 건국의 왕 로물루스의 아내가 된 헤르실리아를 비롯해 로마로 잡혀갔던 사비니 여인들이 나서서 싸우지 말 것을 애원한다. 그녀들은 모두 사비니 군인의 딸이자 여동생인 동시에 로마 군인의 아내였기 때문이었다. 사비니 여인들의 중재 덕분에 전쟁은 끝날 수 있었다. 평화를 정착시켜 로마가 번성할 수 있었다고 승자의 역사로 기록돼 전해진다. 사비니 여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작품들은 적지 않다. 루벤스에서 피카소에 이르기까지 많은 작가가 납치와 약탈의 시점에 초점을 맞추었다. 반면 다비드는 이후 로마에 대한 사비니인들의 복수전을 다루었다. 그림은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을 배경으로 좌우측으로 사비니군과 로마군이 대치해 있고 가장 앞에 사비니군의 지휘관인 타티우스와 로마의 왕 로물루스가 칼과 창, 방패를 들고 맞서고 있다. 그 중간에 헤르실리아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다. 많은 사비니 여인들이 아이들을 안은 채 몸을 던져 싸움을 가로막는다. 전쟁터를 기어 다니는 갓난아이의 눈에서 천진함이 느껴지지 않는다. 미화된 로마의 ‘사비니 여인의 납치’의 야만성을 정당화하고 싶지는 않다. 작품 속에 감추어진 젠더 문제에 대한 무지를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도 아니다. 다비드가 여성을 평화의 아이콘으로 재창조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비드는 당시 프랑스 혁명의 혼란 속에서 외부의 적들과 내부의 갈등으로 심각하게 분열을 겪고 있던 프랑스의 죄우파 대립을 염두에 두고 평화로운 중재를 위해 이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프랑스 혁명의 성공을 막기 위해 유럽의 이웃 국가들이 침략해 오고, 내부에서는 왕권이 사라진 자리에 민주주의를 정착시키는 과정에서 오는 갈등이 심각했다. 분단과 냉전체제 속에서 한반도 평화체제를 만들어 가려는 지금 우리의 상황과 별반 다르지 않아 보인다. 바로 옆 작품 ‘나폴레옹 대관식’은 더이상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남의 나라 대통령 선거 결과에 왜 이리 관심을 집중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오랫동안 ‘사비니의 여인들’ 작품 앞에 서서 한반도라는 아직도 끝나지 않은 전쟁터에서 ‘과연 우리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을 했다. 로마의 장군 로물루스, 아니면 사비니의 장군 타티우스, 아닌 듯하다. 어쩌면 사비니의 여인들과 같은 처지인지도 모른다. 지금까지 우리는 일상에서의 평화를, 우리의 미래를 우리 스스로 결정하지 못하고 타자에게 수탈당하고 선택을 강요당해 왔다. 이제 분단과 냉전의 시대를 깨고 평화로 나아가기 위해서 종전선언과 평화협정 체결을 외치는 사비니 여인들의 용기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 주호영 “文,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휴가 가놓곤 메시지 하나 없다”(종합)

    주호영 “文,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휴가 가놓곤 메시지 하나 없다”(종합)

    “3년 연속 6·25 기념식 당일 행사 불참에천안함·연평도 전사자 기리는‘서해수호 날’ 행사도 계속 불참”주호영, 전날 ‘남북경협’ 주문한 이인영에도“연평도 北도발을 ‘분단 탓’으로 희석 의심”野 “종전선언 허상만 좇아…또 농락당할 것”北 연평도 포격에 집 불타고 국민 4명 사망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4일 연평도 포격 10주기와 관련해 “문재인 대통령이 어제 하루 연차 휴가를 내면서 아무런 메시지도 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인 23일 올해 첫 휴가를 사용했다. 국민의힘은 여권이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일부러 외면했다고 비난했다. “文, 중요 행사마다 6·25 전사자 의도적 빠뜨려 국민 불안·불신” 주 원내대표는 이날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은 취임 후 3년 연속으로 6·25 기념식 당일 행사에 불참했고, 현충일 기념사에서도 6·25와 북한을 전혀 언급하지 않았으며, 천안함과 연평도 전사자를 기리는 서해수호의 날 행사에도 계속 불참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세월이 흐르니까 국민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정부도 애써 이런 날을 무시하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도 했다. 그러면서 “대통령께서 3년 연속 중요한 행사마다 6·25 전사자들을 의도적으로 빠뜨리는 것 때문에 많은 국민이 불안해하고 불신한다”고 주장했다. 이는 10년 전 북한의 도발로 4명의 희생자가 나온 연평도 포격에 대해 종전선언 등을 거듭 언급한 문 대통령이 북한을 의식해 언급조차 하지 않으려 한다는 비판으로 해석된다. 실제 북한은 2010년 11월 23일 서해 북단 연평도를 향해 170발이 넘는 포탄을 퍼부었다. 1953년 휴전 이후 민간인을 상대로 한 북한의 첫 군사 도발이었다. 당시 우리 국민의 집이 불타고 해병대 장병 2명과 민간인 2명 등 모두 4명이 목숨을 잃고 30여명이 부상을 입었다. 포탄에 맞아 화염에 휩싸인 집과 그 집이 흔들릴 정도로 울렸던 폭발음을 기억하는 연평도 주민들은 10년이 지난 지금도 당시 겪었던 트라우마를 호소하고 있다.연평도 주민 150명, 포격 1년 뒤에도불안·불면증 등 외상 후 스트레스 2016년에도 49명 트라우마 등 고위험군 상당수 연평도 주민들이 북한 포격 사태 이후 장기간 심리치료를 받았다. 인천 한 병원이 포격 사태 1년 뒤 연평도 주민들을 대상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PTSD) 검사를 한 결과 대상자 150명 가운데 상당수가 높은 스트레스 수치를 보였다. 당시 1년이 지난 시점까지도 일부 연평도 주민들은 신경안정제를 복용했고, 보일러나 냉장고의 작은 소음에도 놀라 잠에서 깨는 등 불안과 불면증을 호소했다. 2016년에도 옹진군보건소가 연평도 주민 206명을 대상으로 정신건강 검사를 한 결과 49명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나 우울증 등을 앓는 고위험군에 속한 것으로 나타났다. 공교롭게도 연평도 포격 10주기에 이뤄진 문 대통령의 휴가에 대해 청와대 안팎에서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최근 외교 강행군 일정을 고려한 것이라는 분석이 나왔다.野 “文, 휴가에 연평도 포격엔 그 흔한 SNS 입장도 안내더니 美 의원엔 축전” 배준영 대변인은 서면 논평을 통해 “정권의 외면은 상처를 치유하고 비극을 반복하지 않으려는 노력을 손 놓겠다는 무언의 선언인가”라고 말했다. 그는 “총탄에 유명을 달리한 애국자들을 외면하는 한 대한민국을 나라다운 나라라고 할 수 없을 것”이라며 “문재인 정부는 응답하라”고 촉구했다. 서울 송파병 당협위원장인 김근식 경남대 교수는 페이스북 글에서 “연평도 사태 10주기에 국가안보의 최고 책임자인 문 대통령은 휴가를 내고 그 흔한 SNS 입장도 내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그는 “문 대통령이 미국 친한파 하원의원의 재선에는 축전을 보냈다”며 “집안 제삿날에 이웃집 잔치 놀러가는 격이다. 참 개념 없는 대통령”이라고 비난했다.“이인영, 기업 총수에 남북경협 역할 주문비핵 평화 어떤 조치도 없는데 부적절” 주 원내대표는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연평도 포격 사건에 있어서 북한의 잘못을 문제 삼지 않는 듯한 국회 토론회 발언도 정조준했다. 주 원내대표는 이 장관이 전날 국회 토론회에서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언급하며 ‘분단의 가슴 아픈 현실’이라고 말한 것과 관련해서는 “북한의 도발을 분단 탓이라는 중립적 용어를 써서 희석하려는 의도 자체가 의심스럽다”고 지적했다. 이종배 정책위의장은 “이인영 장관이 어제 기업 총수들을 만나 대북 제재 완화 가능성을 언급하며 남북경협 역할을 주문했다”면서 “북한 비핵화 문제 등 한반도 평화를 위한 어떤 조치도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뜬금없고 부적절한 발언”이라고 비판했다.이인영, 재계 만나 “남북경협 중요”“북 관광 등 호혜적 경협사업 추진” 전날 이인영 장관은 2018년 9월 평양 남북정상회담 당시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방북했던 기업인 등 삼성·SK·LG·현대차그룹 등 4대 그룹을 비롯한 재계 관계자들과 만나 남북 경제협력 등 향후 남북관계 발전을 위한 정부와 기업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 장관은 이날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재계 인사들과의 오찬간담회에서 “남북 경협의 문제는 먼 미래의 문제보다는 예상보다 좀 더 빠르게 시작될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게 아니다”라면서 “우리로서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앞서 북한을 남북 간 협력의 장으로 나올 수 있도록 만드는 전략적 공간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또 “큰 정세로의 변환기에 정부와 기업이 역할 분담을 통해 남북경협의 시간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거듭 신호를 보냈다. 이 장관은 북한 지역 개별관광과 철도·도로 연결사업, 개성공단 재개 등을 언급하면서 “그동안의 과제를 착실하게 준비하고 아주 작지만 호혜적인 경협 사업들을 발굴·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또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남북 경협 비전을 마련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 간의 만남을 정례화하자는 제안도 내놨다.이인영 “폭파된 남북연락사무소 재개가 ‘평화의 시간’ 시작 신호탄” “서울·평양에 연락소·무역대표부 설치 소망” 앞서 이 장관은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남북연락·협의기구의 발전적 재개 방안 모색’ 토론회의 개회사에서는 “남북의 상시적 연락선의 복구는 ‘평화의 시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장관은 지난 6월 북한이 대북전단 살포를 문제 삼으며 170억원의 혈세가 들어간 개성공단 내 연락사무소 청사를 일방적으로 폭파한 일에 대해선 “북의 행동은 평화로 가는 우리 국민의 기대와 열망을 정면으로 배반한 아주 잘못된 행위였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도 “어떠한 시련과 어려움이 있더라도 남북관계를 평화 번영의 미래로 만들기 위해 우리는 다시 또 나아가야 한다”면서 “쉽진 않겠지만 무너진 연락사무소를 적대의 역사에 남겨두지 않고, 더 큰 평화로 다시 세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장관은 한발 더 나아가 “서울·평양 대표부를 비롯해 개성, 신의주, 나진, 선봉지역에 연락소와 무역대표부 설치도 소망해본다”라고 말했다.野 “안보상황 하나도 나아진 게 없다”“연락사무소 폭파·국민 총살에도 잠잠” 야권은 이러한 정부 행보에 대해 연평도 포격 10주기를 맞아 순직 장병과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하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관을 정면 비판했다.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비대위 회의에서 “연평도 도발은 휴전협정 이래 우리 영토와 국민 대상으로 대규모 군사 공격을 감행한 대표적 사례”라며 정부를 향해 “안보에 구멍이 뚫리면, 국민의 생명이 위협받는다는 점을 깊이 인식하라”고 했다. 비대위원들은 이날 회의에 앞서 희생자에 대한 묵념의 시간을 가졌다. 김은혜 대변인은 논평에서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안보 상황은 그때보다 나아진 게 없다”며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형체도 없이 폭파하고, 우리 국민을 총살하고 불태워도 이 정부는 잠잠하다”고 비판했다. 김 대변인은 “정부가 종전선언이란 허상만 좇고 있다. 북한이 만만한 남한을 향해 언제 다시 우리의 영토와 국민을 농락하지 않으리란 보장이 없다”고 덧붙였다.안철수 “北, 연평도 포격 당시나 지금도제대로 된 사과 없이 우리 탓으로 돌려” 安 “김정은 전통문에 감읍, 이게 정상 국가냐”유승민 “文, 김정은 앞에 서면 한없이 작아져”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는 최고위원회의에서 “연평도 포격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까지도 북한은 제대로 된 사과나 유감 표명 없이 모든 것을 우리 탓으로 돌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안 대표는 “이 정권 사람들은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전통문 한 장에 감읍하고, 우리 국민에게 월북 프레임을 뒤집어씌웠다”며 “이러한 태도가 정상적 국가가 취할 자세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이날 대전 현충원에서 열린 연평도 포격 10주기 추모식을 찾았다. 유 전 의원은 페이스북에서 문재인 대통령에게 “‘북한에 당당하게 사과를 요구해달라’는 고(故) 서정우 하사 어머니의 외침에 국군 통수권자로서 답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유 전 의원은 이날 “10년 전의 북한과 지금의 북한은 조금도 변한 게 없고, 변한 건 우리 대한민국”이라면서 “김정은 앞에만 서면 한없이 작아지는 문 대통령과 국방부, 민주당…변한 건 이들이다. 10년전 북한의 포탄에 산화한 두 해병용사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건 살아남은 우리들 몫이다”라고 강조했다.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 종로구의회 정재호 의원, 2020 도전 통일 골든벨 행사 이끌어

    종로구의회 정재호 의원, 2020 도전 통일 골든벨 행사 이끌어

    종로구의회 정재호 의원이 상명대사범대부속여자고등학교에서 열린 2020 도전! 통일 골든벨 행사에서 입상한 학생들을 만나 상장을 수여하는 행사에 참석했다.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종로구협의회(회장 김기찬)에서 주최한 이번 2020 도전! 통일 골든벨 행사는 민족정체성과 통일의식을 고취하기 위한 취지로 종로구에서는 처음으로 실시됐다. 이날 시상식에서는 입상한 학생들(장려상 3, 우수상 2, 최우수상 1)에게 상장과 도서상품권이 수여됐다. 한편 이날 최우수상을 수상한 상명여고 학생은 “우리나라가 분단돼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일제시대를 지나면서 역사관이 한쪽으로 많이 치우친 것 같다”며 “통일이 되면 역사연구가 활발하게 이루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의 선전을 지켜본 정재호 의원은 “생각보다 어려운 문제들이 출제 되었지만 통일관련 내용이 많았기 때문에 학생들의 통일, 역사의식을 많이 함양시킬 수 있었다”며 “내년에는 더 좋은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의 통일에 대한 인식이 올바르게 자리매김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소회를 밝혔다. 정재호 의원은 지난해부터 민주평통 종로구협의회 간사로 활동하며 다양한 사업들은 진행해오고 있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에르도안 “분쟁지 키프로스엔 2개 국가 있다”

    에르도안 “분쟁지 키프로스엔 2개 국가 있다”

    동지중해 영토 분쟁지인 키프로스의 북키프로스튀르크공화국(북키프로스)에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이 15일(현지시간) 전격적으로 방문, ‘2개 별도 국가’를 강조했다. 북키프로스가 1983년 11월 독립을 선언한 이후 터키 대통령이 방문한 것은 처음이다. 이에 키프로스 정부는 “키프로스 문제 해결에 어뢰로 공격한 것”이라고 비난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북키프로스 독립 37년을 맞은 이날 “키프로스 섬에는 2개 민족과 2개의 국가가 있다. (키프로스 문제) 해결 협상은 별도의 2개 국가에 기반해 논의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터키와 북키프로스의 정당한 이익을 고려하지 않는 동지중해에서의 어떤 행보도 평화와 안정으로 이어질 수 없다”고 강조했다. 국제사회에서 터키만 인정하는 북키프로스에는 터키군 3만 5000여명이 주둔하고 있다. 에르도안 대통령은 이날 북키프로스 동쪽 바닷가의 버려진 리조트 도시 바로샤를 “소풍”이라며 방문했다. 바로샤는 1974년 터키군이 침입해 점령한 이후 그리스계 주민들이 쫓겨나면서 방치된 휴양지다. 키프로스 분단을 상징하는 ‘유령 도시’ 바로샤는 지난달 부분적으로 재개장됐다. 이에 대해 남부의 키프로스 공화국(키프로스)은 이날 성명에서 “터키 대통령과 불법 정권의 도발과 행동은 유엔 결의를 위반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리스도 “유례없는 도발”이라고 비난했다. 앞서 터키는 지난 7월부터 동지중해에서 탄소자원 탐사를 시작하면서 그리스 및 키프로스, EU 등과 갈등을 빚고 있다. 프랑스와 그리스, 키프로스가 터키에 제재 부과를 주장하지만 다른 EU 회원국들은 이에 반대하고 있다. 안토니우 구테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이달 말쯤 협상 재개를 위한 특사를 보낼 계획이다. 터키의 탄소자원 탐사는 해양 항로 확보의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터키는 러시아와 아제르바이잔 등의 석유 및 천연가스가 유럽으로 향하는 파이프라인의 경유지여서 에너지 문제가 시급하지 않다. 반면 중동과 북아프리카를 아우르는 무슬림 세계의 패권국이 되고자 하는 터키는 1923년 로잔조약 이후 막힌 해양 항로를 동지중해를 통해 확보하고자 한다. 이기철 선임기자 chuli@seoul.co.kr
  • 서울시의회 남북특위 공동 주관, ‘2020 한반도 미래도시협력네트워크포럼’ 개최

    서울시의회 남북특위 공동 주관, ‘2020 한반도 미래도시협력네트워크포럼’ 개최

    서울특별시의회 남북교류협력지원 특별위원회(위원장 황인구, 이하 서울시의회 남북특위)가 공동주관하는 ‘2020 한반도 미래도시협력네트워크포럼’이 지난 14일 서울시립대학교에서 개최했다. 서울시립대학교(총장 서순탁)가 주최하고 서울시의회 남북특위와 서울시립대 서울학연구소(소장 양승우), 한반도개발협력연구원(원장 이상만)이 공동 주관하며, 서울특별시(시장 권한대행 서정협)와 서울특별시의회(의장 김인호)가 후원하는 이번 포럼은 학계, 정부, 산업계 등 각 분야 남북교류협력 전문가가 모여 ‘서울형 남북교류협력 모델’을 모색하는 자리로 진행되었다. 특히, 올해 포럼은 지방자치단체도 남북교류협력사업의 주체가 되는 법률 개정이 21대 국회에서 추진됨에 따라 서울시의 특색을 살린 남북교류협력 방안에 대한 의견을 공유하고, 평양과학기술대학교 관계자가 참석하여 현장감 있는 토론이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다. 서울시의회 남북특위에서는 황인구 위원장이 축사로 참여하고 이호대 의원(구로2, 교육위원회, 더불어민주당)과 김경우 부위원장(동작2, 보건복지위원회, 더불어민주당)이 각자 1부와 2부의 토론자로 나서 서울형 남북도시협력 방안과 인문분야 학술교류협력 방안에 대한 열띤 논의를 펼쳤다. 축사를 맡은 황인구 위원장(강동4, 더불어민주당)은 “미국 대선 등으로 대내외적 여건이 급변하고 있는 상황에서 평화를 위한 일념으로 남북교류협력 활성화와 한반도 평화정착을 위한 서울시의 기여방안을 모색하게 되어 매우 기쁘다”라고 감회를 전했다. 이어 황 위원장은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서울이 산업화와 민주화를 완수했듯 한치 앞도 내다보기 어려운 한반도 정세이지만 서울이 동북아 공동번영을 선도하는 평화의 도시가 될 것을 확신한다”라며, “평화도시 서울이 지역 간 교류와 학술분야 교류를 통해 평화와 번영의 한반도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우리는 분단의 상황, 평화의 문제를 일상의 단위에서 공유함으로써 서로에게 다가가야 한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이런 관점에서 서울시의회가 서울과 평양의 공동올림픽 개최를 비롯한 지방자치단체 수준의 남북교류협력을 적극 지원하겠다”라고 강조했다. 서울시의회 남북특위는 황인구 위원장을 비롯하여 이태성, 김경우 부위원장과 김기대, 권수정, 김생환, 김종무, 김춘례, 김평남, 신정호, 이병도, 이영실, 이은주, 이호대, 정재웅 의원이 활동 중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1년 만에 다시 열린다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1년 만에 다시 열린다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다시 열린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정부가 남북 간 관계 복원에 나서는 시점에 비무장지대를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탐방로에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따라 철거한 감시초소(GP)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차단을 위해 지난해 9월 잠정 중단했던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파주 구간을 오는 28일부터 재개방한다고 11일 밝혔다. 탐방 희망자는 13일부터 한국관광공사 ‘DMZ 평화의 길’ 누리집(www.dmzwalk.com)과 행정안전부 ‘디엠지기’ 누리집(www.dmz.go.kr)에서 희망 방문 날짜를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파주 구간은 임진각에서 출발해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철책선을 따라 1.4㎞를 걸어서 통일대교 입구까지 이동한 후 버스로 도라전망대와 지금은 철거된 감시초소까지 둘러본 뒤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전체 거리는 21㎞로 탐방에 3시간이 걸린다. 분단의 상징으로 장단역에서 폭격을 받아 반세기 동안 방치돼 있던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임진각에 전시돼 있고, 비무장지대에선 폭격으로 파괴된 옛 장단면사무소도 확인할 수 있다.행안부는 파주 구간 재개에 앞서 ASF 방역 차원에서 멧돼지 차단 울타리, 차량 및 대인 소독장비, 발판 소독조 등을 설치하고 관계 부처 합동 점검도 마쳤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운영 규모를 20명에서 10명으로 줄였고, 마스크 착용과 2m 거리두기 등 여행 중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방역 수칙도 마련했다. 정부가 지난해 개방한 평화의 길은 강원 고성·철원 구간과 파주 구간 세 곳이다. 파주 구간에선 그중에서도 2018년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철거한 감시초소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개방 이후 ASF 확산으로 중단되기 전까지 약 1만 5000명이 평화의 길을 방문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는 파주 구간 재개를 시작으로 철원과 고성 구간도 ASF 방역 조치가 마무리되는 대로 합동점검을 거쳐 내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평화의 길 재개방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비무장지대에 담긴 평화·생태·역사·문화 등 다양한 가치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1년 만에 다시 열린다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1년 만에 다시 열린다

    ‘비무장지대(DMZ) 평화의 길’이 다시 열린다. 최근 미국 대통령 선거로 정권교체가 이뤄지고 정부가 남북 간 관계 복원에 나서는 시점에 비무장지대를 민간인들에게 개방하는 것이어서 눈길을 끈다.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탐방로에는 2018년 남북 정상회담에 따라 철거한 감시초소(GP)도 있다. 행정안전부는 아프리카돼지열병(ASF) 확산 차단을 위해 지난해 9월 잠정 중단했던 비무장지대 평화의 길 파주 구간을 오는 28일부터 재개방한다고 11일 밝혔다. 탐방 희망자는 13일부터 한국관광공사 ‘DMZ 평화의 길’ 누리집(www.dmzwalk.com)과 행정안전부 ‘디엠지기’ 누리집(www.dmz.go.kr)에서 희망 방문 날짜를 선택해 신청하면 된다. 파주 구간은 임진각에서 출발해 임진강변 생태탐방로 철책선을 따라 1.4㎞를 걸어서 통일대교 입구까지 이동한 후 버스로 도라전망대와 지금은 철거된 감시초소까지 둘러본 뒤 임진각으로 돌아오는 일정이다. 전체 거리는 21㎞로 탐방에 3시간이 걸린다.분단의 상징으로 장단역에서 폭격을 받아 반세기 동안 방치돼 있던 경의선 증기기관차가 임진각에 전시돼 있고, 비무장지대에선 폭격으로 파괴된 옛 장단면사무소도 확인할 수 있다. 행안부는 파주 구간 재개에 앞서 ASF 방역 차원에서 멧돼지 차단 울타리, 차량 및 대인 소독장비, 발판 소독조 등을 설치하고 관계 부처 합동 점검도 마쳤다. 코로나19 예방을 위해 운영 규모를 20명에서 10명으로 줄였고, 마스크 착용과 2m 거리두기 등 여행 중 참가자들이 지켜야 할 구체적인 방역 수칙도 마련했다. 정부가 지난해 개방한 평화의 길은 강원 고성·철원 구간과 파주 구간 세 곳이다. 파주 구간에선 그중에서도 2018년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비무장지대를 실질적 평화지대로 만들기 위해 철거한 감시초소를 직접 살펴볼 수 있다. 지난해 개방 이후 ASF 확산으로 중단되기 전까지 약 1만 5000명이 평화의 길을 방문하는 등 높은 관심을 받았다. 정부는 파주 구간 재개를 시작으로 철원과 고성 구간도 ASF 방역 조치가 마무리되는 대로 합동점검을 거쳐 내년 초부터 순차적으로 재개할 계획이다. 행안부 관계자는 “평화의 길 재개방을 통해 많은 국민들이 비무장지대에 담긴 평화·생태·역사·문화 등 다양한 가치를 직접 체감할 수 있도록 운영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강국진 기자 betulo@seoul.co.kr
  • 기획재정위원회 파주 DMZ 일원 현장 방문

    기획재정위원회 파주 DMZ 일원 현장 방문

    경기도의회 기획재정위원회는 도정에 대한 현안을 파악하기 위해 지난 10일 파주 임진각, 캠프그리브스, 도라산 평화공원 등 DMZ 일원 현장 시찰을 하는 시간을 가졌다. 기획재정위원들은 먼저 DMZ 생태관광지원센터를 방문해 경기관광공사로부터 DMZ 관광 사업 설명을 청취하고, 올 초 개장한 임진각 곤돌라를 체험 후 캠프그리브스 부지를 방문해 부지 활용 현황 브리핑을 받았다. 캠프그리브스는 1953년부터 2004년까지 미군이 주둔한 민통선 내에 유일한 반환 미군기지로 경기관광공사에서 문화재생사업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현재는 군사시설을 활용한 전시시설, 체험시설이 조성 중에 있다. 위원들은 이번 현장 방문을 통해 도라산 평화공원, 제3땅굴, 도라전망대, 캠프그리브스에 이르는 DMZ 일대 경기북부 관광 활성화와 미군 공여지 활용 방안을 점검했다. 심규순 위원장(더불어민주당·안양4)은 “민통선 지역이 분단과 갈등의 지역에서 자유와 평화, 교류협력의 장으로 발전하고 있는 모습이 좋아 보인다”라며 “도의회 차원의 DMZ 관광활성화는 물론 평화사업을 위한 지원을 위해 기재위도 힘쓰겠다”고 말했다. 오지혜 의원(민주당·비례)은 “평화의 상징인 DMZ가 도민들에게 한 발짝 더 가까이 갈 수 있도록 DMZ 사업이 앞으로 더 활성화 될 수 있었으면 좋겠다”라며 “도차원에서도 관광 컨텐츠를 개발하고 도내 타 미군공여지 반환 사업도 신속히 마무리되어 도가 잘 활용할 수 있게 노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향후 기획재정위원회는 도정전반에 대한 폭넓은 현장 행보를 이어갈 계획이다. 온라인뉴스부 iseoul@seoul.co.kr
  •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글로벌 In&Out] 미 대선으로 재평가될 한국 외교/알파고 시나씨 아시아엔 편집장

    최근 한 달 동안 전 세계적으로 최대 관심거리는 미국 대선이었다. 지난 4년간 트럼프 행정부는 미국과 전 세계에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이유는 미국이 지구상 최대 강대국이라는 특성 때문이다. 미국 대선 승자가 조 바이든이냐, 도널드 트럼프냐에 따라 이해관계가 달라지는 만큼 어쩔 수 없다. 일단은 중국부터 이야기하자면 ‘트럼프 행정부 스타일’ 때문에 최근 4년 미국과 무역전쟁을 벌였고 큰 피해를 입었다. 트럼프의 강한 외교전 때문에 아주 예민해진 중국이 안 그래도 그동안 물컹물컹하는 온화한 이미지를 잃게 됐다. 이란 역시 이번 대선에 아주 큰 관심을 보였다. 국내 언론에서 미국 대선 결과를 실시간으로 특보했다. 이란의 지방도시도 이란 시민들이 미국 대선 덕분에 접전이 벌어진 위스콘신, 미시간, 펜실베이니아 같은 경합주들의 위치를 정확하게 학습하게 됐다고 한다. 반면에 친미 성향이 강한 나라들의 반응도 다양했다. 방위비 분담금 문제를 겪고 있는 독일은 트럼프보다는 바이든을 선호하는 모습을 취했다. 반면 민주주의 후퇴 문제에 큰 목소리를 내지 않은 트럼프 스타일의 행정을 좋아하는 터키는 바이든의 당선을 원하지 않았다. 영국이나 캐나다는 바이든과 트럼프 양쪽에 같은 거리를 두었다. 한국은 미국 대선에 매우 관심이 큰 나라였다. 1948년 한국 정부 수립 당시 미국의 대통령은 해리 트루먼이었다. 미국 내에서 때로는 사회주의적인 발언을 하던 트루먼은 그 당시에 우파에서 비난받을 복지 정책을 내기도 한, 대외적으로 아주 강력한 보수파였고, 냉전체제 탄생에 큰 기여를 했다. 한반도 분단의 여러 원인 중 하나도 트루먼 대통령의 강력한 반공 정책에 기인하지 않았나 싶다. ‘애치슨 라인’ 설정 등으로 6·25전쟁이 터지자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후보는 6·25전쟁을 끝내겠다는 공약을 내세웠다. 그 당시 대선이 한국에서 큰 관심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역시 아이젠하워가 당선되면서 한국전쟁도 휴전으로 마무리됐다. 한국에서 관심거리였던 또 다른 선거는 1968년 선거다. 그 선거 역시 2020년 선거 때처럼 미국의 가장 혼란스러운 시기 중의 하나였다. 인종차별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랐고, 매일 시위가 있었고, 미국이 아주 난장판이었다. 한국은 공화당 후보인 리처드 닉슨의 당선 여부가 관심이었다. 닉슨 후보는 한때 열렬한 반공 정치인이었다. 린든 존슨 대통령 때 한미 관계가 어떻게 보면 제일 좋았던 시기인데, 이 분위기가 계속될 것인지 우려되는 상황이었다. 결국 닉슨 정부는 중국을 방문하면서 데탕트 시기를 연 탓에 한국이나 인도네시아 같은 아시아권 친미 반공 국가들에서 긴장이 강화됐다. 로널드 레이건이 당선된 1981년 대선도 관심이 컸다. 지미 카터 정부에서 한미 동맹이 약화됐고 한국에서 신군부의 쿠데타가 있었다. 전두환 당시 대통령에겐 카터보다 레이건의 당선이 훨씬 좋았다. 카터 시절에 파손된 한미 관계는 개선됐다. 오늘날엔 트럼프냐 바이든이냐에 따라 각 나라의 입장이 다르다. 그러나 한국은 옛날처럼 한 후보에게 올인하기보다 양 후보를 따로따로 보고 있었다. 한국은 영국과 캐나다의 거리두기와 비슷했다. 한국의 이러한 떳떳한 모습에는 두 가지 이유가 있다. 하나는 한국이 예전의 약한 국가가 아니고, 한 국가에 의존하는 피동적인 나라가 아니기 때문이다. 둘째는 핵심적인 것인데, 한국의 외교다. 외교라는 것은 현재의 문제를 잘 푸는 것만큼이나 미래에 발생할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예방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러다 보니 한국은 트럼프든 바이든이든 누가 당선돼도 자국에 유리한 외교적 라인을 이미 구축한 상황이다. 한국은 이런 외교력 덕분에 미국 대선에서 다른 나라들이 취했던 피동적인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다. 이런 외교적 역량이 지속되면 좋겠다.
  • [전문] “백척간두의 삶 놓는다” KBS 9시 뉴스 황상무 앵커 사퇴의 글

    [전문] “백척간두의 삶 놓는다” KBS 9시 뉴스 황상무 앵커 사퇴의 글

    ‘KBS 뉴스 9’를 진행했던 황상무(56) 앵커가 KBS에 사표를 냈다. 황 앵커는 9일 사내 게시판에 글을 올려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몸담았던 KBS를 떠나려고 한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회사가 한쪽 진영에 서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이다. KBS는 극단의 적대 정치에 편승해서는 안 된다”며 “용서와 화해, 치유와 통합은 KBS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되는 소중한 가치”라고 주장했다. 황 앵커는 1992년 KBS에 입사해 사회부, 통일부, 정치부 등을 거쳤으며 뉴욕 특파원을 지냈다. 2015년 1월부터 ‘KBS 뉴스 9’ 앵커를 맡았다가 2018년 4월 새 경영진이 들어서면서 교체됐다. 지난 7월에는 ‘KBS뉴스9 검언유착(채널A 사태) 오보방송 진상규명을 위한 KBS인 연대서명’을 통해 양승동 사장의 대국민 사과와 진상 규명을 요구하기도 했다. 다음은 황 전 앵커가 KBS 사내 게시판에 올린 글이다. 존경하고 사랑하는 KBS 선후배 동료 여러분, 저는 오늘 제 인생의 절반 이상을 몸담았던 KBS를 떠나려고 합니다. 그동안 참으로 감사하고 고마웠습니다.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될 지, 기약없이 떠나지만 고마웠던 기억만큼은 잊지 않겠습니다. 막상 이 글을 쓰려니 주마등처럼 기억들이 스쳐갑니다. 2005년 5월 3일 피눈물을 삼키며 진행했던 아침뉴스가 생각납니다. 불과 몇 시간 전, 어린 자식을 영안실에 넣어놓고 돌아선 직후였습니다. 무엇이 저를 그렇게까지 일하도록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혼신의 노력을 바쳤던 KBS였습니다. 생의 처음이자 마지막 직장이라고 믿었던 제 삶의 안식처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KBS에 대한 저의 의탁을 접으려고 합니다. 시대상황이 변했고 더 이상은 제가 머물 공간이 없어졌습니다. 저의 애정은 변함없지만 그건 사랑이 아니라 스토킹에 불과할 겁니다. 그래서 떠나고자 합니다. ‘떠날 때는 말없이’를 실천하려고 했는데, 송구스럽습니다. 보잘 것 없는 사람을 아껴주고 키워줬던 조직이기에, 인사는 드리고 가는 게 도리라고 여겨 몇 자 적습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매일 욕지거리와 쌍소리 악다구니로 해가 뜨고 지는 세상이 됐습니다.” 작가 김훈의 말입니다. 말 그대로 온갖 말이 난무하는 사회입니다. 불행하게도 그 한 가운데에 KBS가 있습니다. 스스로 자초한 일입니다. 현대사회에 진리는 없습니다. 사실이 있을 뿐입니다. 이익이 중첩되어 첨예하게 엇갈리는 다원 사회에서 한쪽에서 말하는 정의는 다른 쪽에서는 불의가 되고, 견강부회, 곡학아세일 뿐입니다. 요즘 말로 내로남불입니다. 이른바 진영논리만이 횡행하는 시대입니다. 우리 사회가 오늘날 방향을 모른 채 진영 간의 난투극 시대로 접어든 데는, 진리가 없는데 서로 자신들의 주장을 진리라고 우기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언론은 사실 앞에 겸손해야 합니다. 사실과 자신의 이념이 부딪칠 때, 과감히 이념을 버리고 사실을 택해야 합니다. 제가 신입사원들에게 누누이 강조했던 말입니다. 이는 KBS의 숙명입니다. 이념으로 사실을 가리거나 왜곡하려 드는 순간, KBS는 설 자리가 없습니다. 국민의 수신료로 운영되는 회사가 한쪽 진영에 서면, 나머지 절반의 국민을 적으로 돌리는 일입니다. 국민을 편가르고 이간질하는 일입니다. 스스로를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존재로 만들고, 편들고자 했던 바로 그들로부터 업신여김이나 당할 뿐입니다. 우리는 곡절의 현대사를 헤쳐 왔습니다. 우리 사회 극단적 진영논리의 근저에는 망국과 식민, 해방과 분단, 전쟁과 독재, 산업화와 민주화 시대를 거치며 이분법으로 세상을 재단해 온 암울한 역사적 유산이 있습니다. 사회 전체가 깊은 상처를 입었고 치유하지 못한 채 살아왔습니다. 그 안에 사는 개인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최근 날마다 벌어지는 분노와 저주의 악다구니를 듣노라면, 우리는 좌·우 양손에 이념의 촛불을 들고 서로를 향해 달려가는 폭주 기관차 같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습니다. 좌나 우, 진보나 보수라는 틀로서는 결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날이면 날마다 사방에서 쏟아지는 날선 주장들에서 여실히 확인됩니다. 명백한 사실조차 부정하고 내로남불을 쏟아내며 욕설과 저주로 증오만을 키우고 있습니다. 이성은 없고 극단의 감정만 있습니다. 문제해결이 아니라 문제를 키우는 ‘소용돌이’일 뿐입니다. 사실은 무시되고 조롱받으며, 주장과 선동만이 힘을 얻습니다. 과거에 대한 고찰, 현재의 성찰, 미래에의 통찰은 설 자리를 잃었습니다. 극도로 분노하는 이들이 생기고, 동시에 극도로 좌절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이렇게 상대를 쓸어버리겠다는 극단의 적대정치가 힘을 얻는 한, 이 땅에 킬핑필드를 재현하는 것 외에는 해결방법이 없습니다. KBS는 이런 극단의 적대정치에 편승해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의 가슴에 분노의 불을 질러서는 안됩니다. 분노와 증오의 끝은 언제나 골육상쟁의 파국뿐이었습니다. 역사에서 단 한 번도 예외가 없었습니다. KBS는 국민의 가슴에 희망의 불꽃을 지펴야 합니다. 긍정의 가치를 일깨워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용서와 화해 치유와 통합은 KBS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되는 소중한 가치입니다. KBS가 우리 역사의 저주, 보복의 악순환을 끊어야 합니다. 자학사관을 버리고 과거 들추기를 접고 미래로의 전진을 역설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중한 자산을 발굴하고 키워서 이를 중심으로 단합하고 국민의 자긍심을 높여야 합니다. 우리가 피흘려 쟁취한 이 땅의 민주주의를 자랑스럽게 여기듯이, 변방의 약소국을 지키기 위해 굴욕을 마다않고 노심초사 살아왔던 선조들의 헌신, 세계 최빈국을 신흥 선진국으로 만들어 온 선배들의 노고를 존중하고 평가해야 합니다. 조롱과 경멸, 능멸과 조소, 비아냥을 접고 배려와 존중, 예의와 염치, 정중한 말투를 되찾아야 합니다.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꿋꿋이 그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그게 수신료로 운영되는 KBS의 존재 이윱니다. KBS가 국민의 사랑과 신뢰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지난 2년 여, 벼랑 끝에 매달린 채 백척간두의 삶을 살았습니다. 이제는 손을 놓으려고 합니다. 천 길 낭떠러지 아래에 무엇이 있는지는 저도 모릅니다. 그저 돌과 바위투성이뿐이어서 낙하가 끝나는 순간 머리가 깨지고 뇌수가 터져서 처참하게 죽을지도 모릅니다. 운이 좋아 아래에 깊은 소(沼)가 있더라도 과연 수면까지 다시 헤엄쳐 올라올 수 있을지도 알 수 없습니다. 저도 두렵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손을 놓아야 하고, 그게 제 운명이려니 하고 받아들이기로 했을 뿐입니다. 말이 길어져서 죄송합니다. 고맙고 감사한 기억만을 안고 가겠습니다. 어디서든 KBS를 사랑하며 지켜보겠습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윤창수 기자 geo@seoul.co.kr
  • DMZ 관광 활성화 위한 ‘원더티켓’ 28일 온라인 공개

    DMZ 관광 활성화 위한 ‘원더티켓’ 28일 온라인 공개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관광공사는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한 창작 공연 ‘원더티켓’ 제작을 마치고 오는 28일 온라인 공개한다고 9일 밝혔다. 공연은 네이버티브이(TV), 브이(V)라이브, 유튜브 등에서 무료로 볼 수 있다. 공연은 자유의 다리에 세워진 녹슨 기관차와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바람의 언덕을 배경으로 삼아 가수 윤도현을 비롯해 배우 이황의, 정준하, 전민지가 전쟁과 분단을 겪은 아픈 과거를 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했다. 이들은 과거를 딛고 꿈을 이루기 위해 여정을 떠난다. 임진각 평화누리공원 내 야외무대에서 진행한 공연은 3차원 영상 투사, 증강현실(AR), 확장현실(XR), 5세대 이동통신(5G) 등 여러 첨단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했다. 관람객들은 휴대전화 응용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으로 증강현실(AR) 장면을 관람하거나, 출연진과 사진을 찍을 수 있다. 문체부는 애초 2주 동안 현장 공연과 함께 각종 체험 행사를 진행하려 했지만, 코로나19 확산 탓에 온라인으로만 공개하기로 했다. 공연에 관한 자세한 내용은 공식 홈페이지(www.dmzfesta.or.kr)에서 확인하면 된다. 문체부 측은 “이번 공연이 DMZ 평화관광 핵심 콘텐츠로 자리 잡길 바란다”며 “관객과 출연진의 안전을 위해 비대면 공연으로 진행했지만, 앞으로 접경지역 대표 관광자원으로 발돋움할 수 있도록 계속 개선해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열린세상] 바이든 시대, 아시아 전략 재설계 시급하다/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열린세상] 바이든 시대, 아시아 전략 재설계 시급하다/김양희 국립외교원 경제통상개발연구부장

    조 바이든 후보의 미 대통령 당선이 사실상 확정됐다. 각국은 바이든 시대에 대비한 대응 방안 마련에 분주하다. 아시아에 속한 우리는 그의 대한반도 전략뿐 아니라 대아시아 전략을 묻고 우리의 대응 방안을 시급히 정립해야 한다. 이는 우리에게 매우 절박한 사안이다. 코로나19는 효율성에 입각한 글로벌공급망(GSC) 구축의 결과 한 나라가 세계 수출의 70% 이상을 점하는 품목이 180개나 되는 GSC의 위험성을 알렸다. 특히 세계 제2의 부품 수출국이자 항생제와 같은 약품 수출의 60% 이상을 중국에 의존하는 현실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코로나19는 이처럼 탈동조화의 기폭제가 됐다. 탈동조화가 곧 탈세계화는 아니다. 이미 고도의 상호의존성을 지니고 있는 세계의 탈세계화는 불가능하거나 고비용을 요구한다. 다만 의료재와 핵심 기술재의 내재화, 지역화, 오프쇼어링 간 최적의 배분을 통한 회복력 제고라는 글로벌가치사슬(GVC)의 재편이 요청될 뿐이다. 이 중 특히 지역화의 중요성이 강조된다. GVC의 회복력 제고 차원에서는 내재화 일변도도 위험하며 세계 상품무역 중 저임금에 기반한 상품의 수출 비중은 13%에 불과해 오프쇼어링도 핵심은 아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기능 마비가 현저한 가운데, 지역이 새로운 무역규범의 산실로 변모하고 있다. 결국 세계 생산의 중심축이 일부 지역으로 집적되고 있는데 이 중 아시아는 3대 제조 강국이 있고 2040년에 세계경제의 50%를 점할 것으로 전망되는, 지역화의 핵심 공간이다. 그러나 우리는 지정학적 특성이 투사된 아시아의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트럼프가 분단시킨 것은 자국민만이 아니다. 아시아의 주 무대가 동북아에서 동아시아로, 나아가 아시아태평양으로 확장되다 최근에는 인도태평양 심지어 쿼드(미국, 일본, 인도, 호주)로 축소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은 없다. 중국의 강압 대응으로 홍콩도, 대만도, 중국도 안 보인다. 이처럼 아시아는 미중 전략경쟁의 격랑 속에서 쪼개지고 갈라지고 있다. 분단되는 아시아다. 이미 세계경제가 두 진영으로 분단되는 와중에 지역조차 분단되는 현실을 직시하지 않으면 우리의 지역전략은 외교적 수사를 넘어서기 힘들다. 코로나19를 계기로 GSC의 회복력 제고를 위해 내재화의 한계를 넘어서 지역화에 나서야 할 이때, 쪼개진 아시아는 역내국 간 탈동조화를 강요한다. 성큼 다가선 비대면의 시대에, 갈라진 아시아는 4차 산업혁명에서 앞선 중국과도, 부품소재강국 일본과도 탈동조화를 강요한다. 디지털 전환이 중요해진 시대에, 분단된 아시아는 한중일 간에 디지털 무역협정 논의도 막는다. 지역무역협정 논의조차도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CPTPP)과 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RCEP)으로 분단된 채 한국의 CPTPP 참여도, RCEP 타결 전망도 불투명하다. 우리에게 아시아는 경제활동의 중심축인 동시에 기후변화와 자연재해, 월경성 환경오염, 팬데믹, 핵, 빈곤, 반민주로부터 평화와 안전, 번영을 갈구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이해관계가 직결된 삶의 공간이다. 그러나 바이든의 시대에도 아시아의 분단 기조가 이어지고 중국 또한 상승작용을 일으킨다면 두 나라를 제외한 모든 나라가 이에 제동을 걸어야 한다. 그것이 어렵다면, 우리를 위한 지역의 당면 과제는 포기해야 한다. 뜻대로 안 될 때는 돌아가자. 지역 내 생산 네트워크와 가장 유사한 RCEP가 중일 갈등으로 어렵다면 연연하지 말자. 한국의 CPTPP 참여는 악화일로를 걷던 한일 관계의 출구전략 마련이라는 차원에서 진지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는 또한 지역의 외연 확장 및 새로운 무역규범 제정 차원에서 유용한 광역 메가 FTA 참여 차원에서도 중요하다. 그러나 이 또한 중국과 일본이 반대한다면 당분간 접자. 대신 우리는 지정학적 공간을 뛰어넘는 지경학적 공간으로의 지역의 외연 확장을 꾀하자. 기후변화, 디지털경제, 방역, 개발 등 사안별로 중층적·입체적으로 타 지역과 연대하는 지역의 덧셈으로 우리의 운신의 폭을 넓혀야 한다. 이때 중요한 파트너는 유럽연합(EU), 믹타(MIKTA) 등 우리와 유사한 입장의 나라들이다. 분단 아시아를 통합 아시아로 만드는 주역은 우리 자신이다.
  • 6·25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며

    6·25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며

    한국전쟁 70주년의 해가 저문다. 전쟁 세대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끔찍한 참상도, 트라우마도 희미해진다. 경기도미술관이 올해 마지막 전시로 기획한 ‘흰 밤 검은 낮’은 기억에서 멀어지는 전쟁의 흔적들을 현재로 불러내 희생자와 실향민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다. 전시는 ‘겨울나무집 사람들’, ‘흰 도시’, ‘함께 추는 춤’ 등 3개 소주제로 나눠 작가 14명(팀)의 작품 41개를 배치했다. ‘겨울나무집 사람들’은 전쟁 세대의 이야기다. 텍스트의 흔적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는 고산금 작가는 전쟁 발발 당시 신문 지면을 인공진주로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금순 작가의 그래픽노블 ‘나목’은 박완서의 동명소설에서 묘사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렸다. 전후 1세대 화가 하인두(1930~1989)의 대표작 ‘만다라’와 ‘묘계환중’ 등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 ‘흰 도시’는 경기도 접경 지역에 남아 있는 분단의 현실을 조명한다. 가장 오래된 주한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의 장교 숙소를 모형으로 설치한 정정주의 작품과 파주 적군묘를 촬영한 전명은의 사진 작품 ‘적군의 묘’ 시리즈 등이 전시된다. ‘함께 추는 춤’에서는 기억과 애도의 방식을 담는다. 한석경 작가는 실향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한 사운드 설치작품 ‘늦은 고백’을 내놨고, 업셋프레스_안지미+이부록은 젊은 시인들과 함께 희생자들을 기리는 시모음집 ‘금단의 서재’를 선보였다. 전시 제목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따왔다.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는 “과거로 소환되는 과정을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는 하루로 은유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70년 전 사건을 마주하기에 적절한 태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아직 끝나지 않은 전쟁을 기억하는 방식

    한국전쟁 70주년의 해가 저물고 있다. 전쟁을 경험한 세대가 점점 역사 속으로 사라지면서 끔찍한 참상도, 트라우마도 희미해지고 있다. 경기도미술관이 올해 마지막 전시로 기획한 ‘흰 밤 검은 낮’은 아직 끝나지 않았지만 기억에서 멀어지는 참혹한 전쟁의 흔적들을 현재의 시공간으로 불러내 희생자와 실향민에 대한 애도와 위로를 건네는 자리다. 전시는 ‘겨울나무집 사람들’, ‘흰 도시’, ‘함께 추는 춤’ 등 3개 소주제로 나눠 작가 14명(팀)의 작품 41개를 배치했다. ‘겨울나무집 사람들’은 전쟁 세대의 이야기를 담은 작품들을 모았다. 텍스트의 흔적을 이미지로 변환하는 작업을 하는 고산금 작가는 한국전쟁 발발 당시 신문 지면을 인공진주로 시각화한 작품을 선보인다. 김금순 작가의 그래픽노블 ‘나목’은 박완서가 원작 소설에서 묘사한 1950년대 서울의 모습을 생생하게 되살려냈다. 전후 1세대 화가 하인두(1930~1989)의 대표작 ‘만다라’와 ‘묘계환중’ 등은 강인한 생명력을 보여준다.‘흰 도시’는 김포, 파주, 연천 등 경기도 접경 지역에 남아있는 분단의 현실을 조명한다.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미군 기지였던 캠프 그리브스의 장교 숙소를 모형으로 설치한 정정주의 작품과 경기도 파주에 있는 적군묘를 촬영한 전명은의 사진 작품 ‘적군의 묘’시리즈 등이 전시된다. ‘함께 추는 춤’에서는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들이 전쟁을 기억하고, 희생자를 애도하는 방식을 소개한다. 한석경 작가는 실향민이었던 외할아버지의 삶을 소재로 한 사운드 설치작품 ‘늦은 고백’을 내놨고, 업셋프레스_안지미+이부록은 젊은 시인들과 함께 한국전쟁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시모음집 ‘금단의 서재’를 선보인다. 전시 제목은 한강의 소설 ‘흰’에서 따왔다. 구정화 경기도미술관 학예사는 “과거 속으로 소환되는 과정을 완전한 빛도 완전한 어둠도 없는 하루로 은유한 데서 영감을 얻었다”면서 “70년 전 사건을 마주하기 위한 적절한 태도라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내년 2월 14일까지. 이순녀 선임기자 coral@seoul.co.kr
  •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는 하나… 대통합의 ‘화엄 도량’

    석가모니의 깨달음으로 불교가 시작했다. 스스로 해탈하려는 소승에 더해 중생을 구제하려는 대승불교로 확대되었다. 대승의 모든 신앙을 통합한 것이 화엄종이며, 그 방대한 가르침을 기록한 경전이 화엄경이다. 지리산 화엄사는 이름 그대로 화엄사상을 건축으로 구현한 가람이다. 그러나 그 역사는 거대한 화엄경의 내용만큼 복잡하고 중층적이다.●화엄종, 화엄경, 창건 화엄사 신라 선덕여왕 때 자장율사가 처음으로 화엄사상을 들여왔으나 그는 계율학을 신라 불교의 근간으로 삼아 전제 왕권 강화에 이바지했다. 다음 세대인 의상대사는 당나라에 유학해 2대 화엄종주 지엄의 수제자가 됐고, 삼국 통일 직후 귀국해 신라 화엄종을 세웠다. 계율학이 분단시대의 부국강병 수단이었다면 화엄종은 통일시대 통합의 국교였다. 의상의 후예들은 각지에 화엄도량을 열었고, 그중 중요한 사찰들을 묶어 화엄십찰이라 불렀다. 화엄사는 마땅히 그중에서도 핵심이었다. 544년 서역의 승려 연기조사가 창건했다는 설은 전설일 뿐이다. 최근 발굴된 기록에 근거해, 연기조사는 국찰 황룡사에서 화엄경 사경을 주도한 이로 8세기 후반에 화엄사를 실질적으로 창건했다는 설이 합리적이다.현재 화엄사의 모습은 임진왜란 후 재건된 결과이며, 8세기 창건 당시의 모습은 사뭇 달랐다. 이 시기의 유적은 각황전의 기단과 초석, 그 앞의 큰 석등, 그리고 동5층석탑이다. 창건 가람은 동향으로 앉았고, 각황전 자리에 장육전이라는 건물이 있었다. 장육전과 동5층석탑 사이, 서5층석탑 자리에 금당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동서축을 따라 (동)석탑, 금당, 석등, 장육전으로 구성된 전형적인 1탑 1금당 형식의 가람이었다.현 각황전은 2층이지만 장육전은 3층이었다. 내부에는 화엄경을 정교하게 새겨 넣은 거대한 석경벽을 세웠다. 화엄석경은 임진왜란 때 불타 파괴돼 1만 9000여 파편으로 남아 있다. 추정하면 600여매의 돌판에 총55만여자를 새긴 대규모 경판이었다. 내부 고주가 서 있는 5칸×3칸 기둥 사이 사방으로 석경벽을 두르고, 이를 순회하며 화엄경 전편을 읽을 수 있는 구조였다. 장육전은 곧 건축으로 쓴 화엄경이었고, 화엄사가 화엄종의 종찰이 되는 종교적 근거였다. 장육전 창건과 동시에 특이한 모습의 석탑과 석등을 뒤편 언덕에 조성했다. 탑은 사자 4마리와 가운데 승려 1명이 탑을 받치고 있는 모습의 4사자3층탑이다. 석등 역시 승려 1명이 꿇어앉아 석등을 받치고 있다. 4사자석탑의 인물은 스승이며, 석등의 승려는 제자인 연기조사로 사제 간의 전법을 묘사한 것 같다. 사자탑의 전통은 꾸준해서 고려시대의 사자빈신사지탑이나 홍천 괘석리탑이, 그리고 화엄사 원통전 앞에도 일부가 남아 있다. 화엄사의 사자탑은 그 효시일 뿐 아니라 가장 완벽한 유산이다. ●거듭된 중창과 가람의 대변화 화엄종은 신라 불교의 대세가 됐다. 종교의 거대화는 분열을 수반한다. 후삼국시대, 신라는 쇄락하고 왕건의 후고구려와 견훤의 후백제가 자웅을 겨루던 때다. 거대 화엄종은 왕건 편에 선 희랑과 견훤 편 관혜의 무리로 분화됐다. 북악파인 희랑은 해인사와 부석사에, 남악파인 관혜는 화엄사에 근거지를 두었다. 결과는 왕건과 희랑의 승리, 고려가 후삼국을 통일했다. 화엄사의 종단 내 위상이 크게 추락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태조 왕건의 마지막 해, 943년에 고려 왕실은 화엄사를 크게 중창했다. 패자 남악파에 대한 승자의 마지막 배려였을까?기존의 대석단을 연장해서 현재와 같이 ㄱ자로 꺾은 모습으로 만들었다. 새로 조성한 북쪽 석단 위에 새로운 불전을 세웠다. 현재의 대웅전 자리다. 기존의 동5층석탑은 마치 대웅전에 속한 탑같이 되었다. 창건기의 금당을 없애고 서5층석탑을 세워 장육전 앞의 탑으로 삼았다. 두 개의 석탑이 동서로 놓여 마치 쌍탑식 가람 같아 보이지만, ‘장육전+서탑’과 ‘대웅전+동탑’의 1탑식 가람 두 개가 한 공간에 공존하는 것이다. 두 탑은 규모와 형태가 유사하지만 자세히 보면 차이가 많다. 서탑은 일절 장식이 없다. 반면 동탑은 하층기단에 12지상, 상층기단에 8부신중, 1층 몸돌에 사천왕상을 조각했다. 같은 듯 다른 이 형태적 차이는 적어도 150년 이상의 조성시기 차이 때문이다. 새로운 불전과 불상을 모셨다는 것은 신앙의 대상이 더해졌다는 것, 더 나아가 종파가 바뀌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화엄석경이 봉안된 기존의 장육전은 여전히 화엄신앙의 중심이었다. 현 각황전 불단 안에는 신라 때 불상을 세웠던 대석이 남아 있다. 아마도 법신, 보신, 화신의 3신불상을 모셨고, 장육전이니 1장 6척(약 4.8m)의 거대한 입상이었을 것이다. 비로자나불 중심의 3신불은 화엄신앙의 핵심이다. 새로 더해진 불전, 현재의 대웅전은 원래 석가모니불을 모신 곳으로 선종 계통의 중심 불전이다. 조선시대의 기록에 화엄사는 줄곧 선종을 대표하는 사찰로 등장한다. 고려 불교의 4대 종파는 교종의 화엄종과 법상종, 선종의 천태종과 조계종이었다. 천태종은 화엄사상을 바탕으로 선불교를 융합한 종파였고, 종조 대각국사 의천은 화엄사에 각별히 애착이 많았다. 여러 연유로 화엄사는 고려 초에 교종인 화엄종에서 선종인 천태종으로 종파를 바꾸었을 가능성이 높다. 적어도 기존 화엄에 더해 선불교를 습합한 것은 확실하다. 임진왜란 때 화엄사는 의승병의 근거지였고 불에 타 파괴된다. 남은 것은 석단과 석탑과 석등 그리고 산산조각 난 화엄석경뿐이었다. 40년 후인 1636년에야 중창 재건을 시작했다. 중창주인 벽암대사는 남한산성을 수축한 공을 세운 팔도총섭이었다. 인조의 신임을 얻어 불사를 벌였으나 대웅전 등 겨우 일부만 가능했다. 열악한 경제 여건으로 대규모 다층건물인 장육전 재건은 엄두를 내지 못했다. 입구에 일주문을, 그 위로 금강문과 천왕문을 세워 긴 진입로를 만들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산중 가람이 되었다. 장육전은 1702년에야 왕실의 후원을 얻어 겨우 중창한다. 그나마 2층으로 줄이고 이름도 각황전으로 바꾸었다. 중창 대웅전에 이미 비로자나의 3신불을 모셨기에 각황전에는 석가불 중심의 3세불과 보살들을 모셨다. 신앙적 내용으로 본다면 대웅전은 대적광전으로, 각황전은 대웅보전으로 불러야 마땅하다. 전쟁 후 순서 없이 재건했기에 벌어진 혼란이다. ●중창으로 이룬 연화장 세계 화엄사에는 두 개의 중심이 병존한다. 각황전은 크고 높고, 대웅전은 상대적으로 작고 낮다. 평범한 가람배치라면 각황전의 위세에 대웅전이 눌릴 지경이다. 두 중심을 동등하게 인식할 특별한 방법이 필요했다. 일주문에서 시작된 진입 동선을 육중한 보제루 앞에서 동쪽으로 틀어 운고각 쪽으로 오르게 했다. 마당 한 귀퉁이에서 중심 공간을 마주하도록 의도한 것이다. 가까운 대웅전은 실제보다 크게, 멀리 있는 각황전은 작게 보인다. 결과적으로 두 중심은 거의 같은 크기와 높이로 인식된다. 건물의 위치와 규모를 바꿀 수 없으니, 인간이 바라보는 시점을 바꾼다. 입체적이고 감각적인 실감형 배치법이다. 각황전은 후일 영조가 된 연잉군을 위해 그의 생모 숙빈 최씨가 시주한 법당이다. 대시주에 대한 화답으로 원통전으로 세워 연잉군의 원당으로 삼았다. 그후 사이사이에 나한전과 영전을 세웠다. 각황전부터 대웅전에 이르는 5개 건물은 높낮이가 다르다. 운고각 앞에 서면 이 다섯 건물이 ‘강, 약, 중강, 약, 강’의 리듬을 가진 하나의 연속체로 다가온다. 화엄은 부분과 부분, 부분과 전체가 하나라는 통합의 사상이다. 화엄법계 중 최상은 ‘사사무애법계’로, 부분들이 독자적이어도 전체 질서에 아무런 장애가 없는 자유로운 세계이다. 화엄의 세계는 온갖 꽃들이 어우러진 무한한 정원인 연화장 세계다. 각황전과 대웅전, 원통전 등 화엄사의 전각들은 독자적인 중심성을 갖지만, 동시에 전체 속에서 조화된다. 화엄 법계를 이루는 동력은 ‘끝없이 펼쳐지는 원인과 결과의 그물’인 무진연기이다. 모든 만물은 변화한다. 1300년 역사 속에서 화엄사의 사상도 가람의 건축도 변화했다. 화엄종이 분열되어 종파가 바뀌고 전쟁의 파괴가 새로운 가람을 만들었다. 그러나 과거의 질서는 사라지지 않고 새로운 질서가 그 위를 덮는 중창의 무진연기 속에서 건축적 연화장 세계를 꽃피우고 있다. 건축학자·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
  • [금요칼럼] 군자와 소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금요칼럼] 군자와 소인/계승범 서강대 사학과 교수

    한국은 흑백논리의 진영 싸움이 심하다. 조선 시대에 피 튀기는 300년 당쟁이 있었다면, 현재는 당쟁 뺨치는 정쟁이 온 나라를 뒤흔든다. 심지어 일반 장삼이사까지도 진영 싸움으로 쫙 나뉜 것 같다. 혁명과 이념 투쟁의 시기인 20세기가 지난 지 오래인데, 한국은 여전히 진영으로 갈라져 전쟁 중이다. 왜 유독 한국 사회에 이런 현상이 두드러질까? 가까운 근현대 역사를 보면 수긍이 간다. 같은 세상에서 역사적 경험은 양극처럼 달랐기 때문이다. 개화와 척사, 항일과 친일, 친미와 친소,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남쪽과 북쪽, 민주와 독재, 노동과 재벌 등등 지난 150여 년 한국 역사는 양자택일을 늘 요구했다. 동족상잔의 전쟁까지 겪었다. 이렇게 몇 세대가 이어지다 보니, 불과 몇 개월 만에 마스크 착용이 자연스럽듯이, 이제는 익숙하다 못해 친숙하기까지 하다. 공통분모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갈라진 여의도요, 5000만 국민의 건실한 교집합조차 없는 것처럼 보이는 대한민국이다. 그런데 이런 특이 현상의 원인을 근현대사의 경험 때문만으로 충분히 설명할 수 있을까? 분단도 없었고 전쟁(내전)도 없었던 조선에서는 왜 그토록 자자손손 대를 이어가며 양쪽으로 나뉘어 피 터지게 싸웠을까? 한반도의 정치판을 흑백논리 이전투구로 만든 역사적 연원은 좀더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지 않을까? 혹시 흑백논리로 볼 때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유교의 영향과는 무관할까? 국가는 문명 수준이 낮을수록, 사람은 인식 수준이 낮을수록, 선악에 기초한 저급한 흑백논리가 횡행한다. 어린이용 만화영화의 선악 구도가 대체로 선명한 데 비해, 일반 영화의 구도가 단순하지 않은 것은 좋은 방증이다. 이런 면에서 볼 때 내세를 강조하는 종교가 아니면서도 유교의 인간관은 후한 점수를 주기 어렵다. 인간의 부류를 군자와 소인으로 칼로 무 베듯이 확연히 갈랐기 때문이다. 유교의 가치 기준에서 군자는 절대 선이요, 소인은 절대 악이다. 그러나 한 인간이 절대 선하거나 절대 악할 수는 없다. 사람에게 선과 악은 화학적으로 혼재해 있지, 수학의 공식을 적용해 인수분해 해낼 대상은 전혀 아니다. 누구에게나 선과 악은 공존하되, 다만 이성으로 조절하는 능력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비유하자면, 이성애 성향과 동성애 성향도 모든 사람에게 내재하되, 그 본능적 비율이 사람마다 차이가 날 따름이다. 그런데도 조선 시대 500년간 군자·소인 이데올로기는 한반도를 만화영화의 세계로 몰아넣었다. 이런 조선 사회에서 어떤 이가 소인이라고 탄핵을 당하면, 그것은 ‘금수만도 못한 놈’이라는 낙인을 받은 꼴이다. 한마디로 인간이 아니라는 얘기다. 본인은 말할 나위도 없고, 자손만대를 이어가며 그 문제로 싸울 수밖에 없다. 개인 차원을 넘어 가문의 수치를 묵과할 수 없기 때문이다. 마치 종교 분쟁과도 흡사하다. 신을 믿는 사람들 사이의 싸움은 일반인보다 더 치열하고도 처절하다. 패배를 인정할 경우 자신의 신이 열등함을 인정하는 모양새이기 때문이자, 자기가 신의 가호에서 제외됐음을 자인하는 꼴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 종교전쟁은 없었지만, 정치무대와 지식인사회에서 날마다 벌어진 군자·소인 논쟁의 속성도 그 본질은 비슷했다. 어떤 논쟁이 군자·소인 논쟁으로 비화하는 순간 서로 불구대천의 원수가 돼 장기전에 돌입하기 마련이었다. 이런 문화적 유전인자에 근현대사의 양자택일 경험이 더해져서 여전히 작동하는 것 같다. 사실상 반면교사뿐인 당쟁을 ‘붕당정치’라는 미사여구로 그럴싸하게 포장하면 과거의 역사가 새롭게 탄생할까? 저급한 꽹과리 수준의 깽판을 ‘정당정치’라고 호도하면 지지도가 올라갈까? 이참에 역사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비전을 갖는다면, 지금 야당은 향후 여당의 지위를 오래 누릴 것이다.
  • 고민과 저항의 삶… 인간 리영희를 읽다

    고민과 저항의 삶… 인간 리영희를 읽다

    ‘진실에 복무하다’ 가족·지인 인터뷰 등 반영‘생각하고 저항하는’ 대표작 22편 골라 실어“편견과 오해 깨고자 했던 것들 지금도 건재”“리영희 선생은 냉전과 군부독재의 상황에서 담연히 일어나 잘못을 말한 ‘벌거벗은 임금을 비판한 소년’이었다.” 고 리영희 선생과 제도권 밖에서는 사제 관계를 맺었고,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함께 근무했던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선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어 “1974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머리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긴급조치가 내려지고, 민청학련 등이 일어난 암흑과도 같았던 시기에 당시 담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을 낸 이가 누구인가 하는 관심이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리영희 선생 10주기를 맞아 평전과 선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출판사 창비는 27일 서울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와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평전을 쓴 권 대표는 “엄혹한 시대에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항상 궁금했고, 평전의 서술도 그것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책은 ‘수업시대’, ‘연마시대’, ‘실천시대’, ‘성찰의 시대’ 등 4부분으로 구성했다. 가족은 물론 지인과 충분한 인터뷰를 거쳤고 구속과 해직, 연행을 반복한 투사로서의 활동은 물론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반영했다. 권 대표는 “한쪽에서는 ‘사상의 은사´, 반대편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는 비판이 나오는데, 평전이 그런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선집은 리영희재단 이사장인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선생의 전체 저서와 번역서 20여권, 7500면에 이르는 350편 글 가운데 대표작 22편을 골라 실었다. 베트남전쟁, 중국 사회주의 사상, 국가보안법, 사회주의 몰락 시기 발표 글을 포함해 선생이 대표작으로 꼽은 ‘대화´의 글, 일본 교과서나 친일 극복, 미국 사회의 그늘을 다룬 글 등이 포함됐다. 1986~1995년 선생의 연구실에서 조교로 지냈던 최 교수는 “한 분야에서 정통한 이는 많지만 시대 전체를 아우르며 미래까지 조망하면서 울림 있게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쓴 이는 선생 이후 불가능할 것이다. 제국과 권력, 파시즘, 친일, 사회주의 등 우상과 평생 싸우며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깨고자 했던 것들은 지금도 건재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글을 고를 때 현재성이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과 일본에 관해 비판한 글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로 보건대 충분한 현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원한 것은 ‘리영희가 필요 없는 세상’이었다”면서 “10주기를 맞아 발행한 책과 관련 행사들이 그를 넘어서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우상과 맞섰던 고 리영희 선생을 다시 읽다

    우상과 맞섰던 고 리영희 선생을 다시 읽다

    “리영희 선생은 냉전과 군부독재의 상황에서 담연히 일어나 잘못을 말한 ‘벌거벗은 임금을 비판한 소년’이었다.” 고 리영희 선생과 제도권 밖에서는 사제 관계를 맺고, 한겨레신문에서 기자로 함께 근무했던 권태선 환경운동연합 공동대표는 선생을 이렇게 소개했다. 이어 “1974년 대학에 들어갔을 때 ‘전환시대의 논리’를 읽고 머리에 지진이 일어난 것 같았다. 긴급조치가 내려지고, 민청학련 등이 일어난 암흑과도 같았던 시기에 당시 담론과 다른 이야기를 하는 책을 낸 이가 누구인가 하는 관심이 생겼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전환시대의 논리’를 비롯해 ‘우상과 이성’, ‘분단을 넘어서’ 등으로 우리 시대를 일깨운 리영희 선생 10주기를 맞아 평전과 선집이 나란히 출간됐다. 출판사 창비는 27일 서울 망원동 창비 사옥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평전 ‘진실에 복무하다’와 선집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를 출간한다고 밝혔다. 평전을 쓴 권 대표는 “엄혹한 시대에 그런 용기는 어디서 오는 것인가 항상 궁금했고, 평전의 서술도 그것을 따라간다”고 설명했다. 책은 한반도 최북단 변방인 평안북도 운산에서 출생하고 한국전쟁을 맞이하기까지를 쓴 ‘수업시대’, 비판적 지식인으로 담금질질한 한국전쟁 시기에 관한 ‘연마시대’, 기자로서의 삶을 다룬 ‘실천시대’, 사회주의 붕괴와 북한의 핵 문제 등에 관한 ‘성찰의 시대’ 등 4부분으로 구성했다. ‘진실에 복무하다’라는 평전 제목대로 기자로 활동하면서 국제 사회를 조망하고 독재 시절 목소리를 내며 ‘사상의 은사’로 불리기까지 부분은 3편으로 다시 나눠 자세하게 수록했다. 가족은 물론 지인과 충분한 인터뷰를 거쳤고 구속과 해직, 연행을 반복한 투사로서의 활동은 물론 선생의 인간적인 면모도 많이 반영했다. 권 대표는 “한쪽은 ‘사상의 은사‘, 반대편에서는 ‘의식화의 원흉’이라고 비판하는데, 평전이 그런 오해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선집은 리영희재단 이사장인 백영서 연세대 명예교수와 최영묵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가 선생의 전체 저서와 번역서 20여권, 7500면에 이르는 350편 글 가운데 대표작 22편을 골라 실었다. ‘한반도’, ‘국제관계’, ‘사상·언론’, ‘문명·미래’의 4부분에 걸쳐 베트남전쟁, 중국 사회주의 사상, 국가보안법, 사회주의 몰락 등 굵직한 사건에 관해 쓴 글을 포함해 선생이 자신의 대표작으로 꼽은 ‘대화’ 글, 그리고 일본 교과서나 친일 극복, 미국 사회의 그늘을 다룬 글 등이 포함됐다. 책 제목인 ‘생각하고 저항하는 이를 위하여’는 선생이 한 농부의 글에 답하면서 쓴 편지 구절에서 가져왔다. 1977년 나왔다가 이듬해 강제로 삭제당했던 것으로, 이번 선집에는 원문을 담았다. 관련해 선생이 썼던 글 가운데 고유명사를 잘못 썼거나 사실이 다른 경우, 출처가 다른 부분 등도 이번에 모두 바로 잡았다. 1986~1995년 선생의 연구실에서 조교로 지냈던 최 교수는 “한 분야에서 정통한 이는 많지만 시대 전체를 아우르며 미래까지 조망하면서 울림 있게 설득할 수 있는 글을 쓴 이는 선생 이후 없을 것이다. 제국과 권력, 파시즘, 친일, 사회주의 등 우상과 평생 싸우며 우리의 편견과 오해를 깨고자 했던 것들은 지금도 건재하다”고 말했다. 백 교수는 “문화대혁명 이후의 중국에 관해 현지 취재해 쓴 ‘8억인과의 대화’에 관해 국제정치학자 한 분이 ‘전문가라면 다 아는 내용’이라는 식으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어떤 지식을 안다는 것과 지식을 전파해 사회적 효과를 불러일으키는 것, 다시 말해 아는 것과 행동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고 강조했다. 그는 선집과 관련 “글을 고를 때 현재성이 있는가 고민을 많이 했다. 미국과 일본에 관해 비판한 글은 지금의 코로나19 사태, 그리고 일본의 군국주의 행태로 보건대 충분한 현재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그가 원한 것은 ‘리영희가 필요 없는 세상’이었다”면서 “10주기를 맞아 발행한 책과 관련 행사들이 그를 넘어서는 작업이 되길 바란다”고 했다. 김기중 기자 gjkim@seoul.co.kr
  • 소설이 된 도시, 인천을 조망하다

    소설이 된 도시, 인천을 조망하다

    소설 속에 나타난 도시 인천을 조망하는 전시가 열린다. 인천문화재단 한국근대문학관은 오는 30일부터 인천 중구 해안동의 기획전시관에서 ‘인천 문학 기행: 인천, 이야기가 되다’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전시는 한 세기 전 신소설에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소설 속에 도시 인천이 형상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총 여섯 코너로, 1900년대부터 2015년 작품까지 총 18작품, 41점의 자료가 전시된다. 이번 전시는 1930년대 지어진 근대 건축물을 리모델링한 기획전시관 개관을 기념한 특별전시다. 전시는 1·2부로 나뉘어 광복 이전과 한국 전쟁 이후부터 오늘날까지를 살펴본다. 소설 ‘빈상설’(1907)과 ‘모란병’(1909)에서는 개항 직후 외국인들로 북적대는 인천항의 모습과 치외법권이 형성된 조계지로서의 모습이 나타난다. 1930년대의 소설 ‘마도의 향불’, ‘밀림’, ‘박명’ 등에서는 식민지 파라다이스로 부상한 인천 월미도의 모습을 만나볼 수 있다. 이 시기 인천에서는 월미도의 해수온천 조탕(潮湯)이 전국 최고의 관광휴양지로 주목받았다. 이후 2부에서는 차이나타운을 배경으로 한국전쟁 후 쓸쓸한 모습의 인천(‘중국인 거리’), 북한과 가까운 항구도시로서 분단의 아픔을 오롯이 간직한 인천(‘바닷가 풍경’, ‘포구의 황혼’) 등을 보여준다. 1970~1980년대에는 인천이 노동소설의 중심 배경이 됐다. 실제 조세희가 쓴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1975)의 작중 도시 ‘은강’은 인천을 모델로 했다. 2000년대에 들어서는 김미월의 ‘중국어 수업’(2009)이나 백수린의 ‘중국인 할머니’(2015)처럼 인천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주노동자, 화교를 소재로 한 소설들이 많이 쓰여졌다. 문학관 측은 1924년에 발행된 이광수의 소설 ‘재생’의 신문 연재 스크랩본 등 희귀자료 40점을 공개한다고 밝혔다. 전국 최초의 지역 문예지 ‘개척’(1920) 등 인천에서 만들어진 근현대 문예지 등도 만날 수 있다. 매주 월요일 휴관. 이슬기 기자 seulgi@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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