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보고 싶은 뉴스가 있다면, 검색
검색
최근검색어
  • 분단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 해변
    2025-12-29
    검색기록 지우기
저장된 검색어가 없습니다.
검색어 저장 기능이 꺼져 있습니다.
검색어 저장 끄기
전체삭제
8,017
  • 통독 겉으론 “찬성”… 속으론 “불안”(특파원리포트)

    ◎영ㆍ불ㆍ폴란드 등 주변국,「제2의 나치」 출현 우려 【파리=김진천특파원】 「괴물과 보물이 함께 낚이는 바다」­이는 2차대전이 일어나기전 청년장교 드골이 독일을 두고 한 말이다. 낚싯줄을 드리우자니 괴물이 걸릴까 두렵고 거두자니 보물이 아쉬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는 난처한 입장. 드골은 당시 날로 비대해 가는 독일에 대한 유럽사람들의 마음을 이같은 어부의 심정에 비유하고 있다. 동서냉전시대의 종료신호와 함께 통독문제가 클로즈업 되고 있는 요즈음 독일을 보는 유럽인들의 시각 또한 50여년전의 그것과 다를 바가 없다. 27일자로 발행된 영국의 시사주간지 이코노미스트의 동ㆍ서독 통일문제에 대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유럽사람들은 통독에는 찬성하면서도 통일된 독일의 존재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즉 통독에 대한 찬ㆍ반의사를 묻는 질문에 프랑스 사람들은 61%가,영국사람들은 45%가 찬성의견을 보여 반대의견이 각각 15%,30%인 것에 비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독일의 분단해소에 긍정적인 생각을가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그러나 이들 응답자의 절반은 통일된 독일이 앞으로 유럽을 지배하게 될 것으로 염려하고 있으며 폴란드의 경우는 69%나 됐다. 겁내는 이유에 대해 영국 사람들은 파시즘의 부활(53%),프랑스는 거대한 경제력(55%),폴란드는 영토확장기도(54%) 때문이라는 의견들이 주축을 이루었다. 표현은 달라도 이들의 염려에는 「거대한 하나의 독일」 출현에 따른 위협이 공통된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증명하고 있듯이 유럽 전체의 장래가 독일문제에 크게 좌우되며 주변국가들의 앞날도 직접적인 영향을 받게 될 것으로 판단하고 있기 때문이다. 양독이 합치면 인구는 8천만명,경제력은 멀지않아 EC회원국 나머지 11나라의 생산력에 거의 절반을 따라잡는 실력이 된다. 유럽 최대의 영토에 최강의 군사력을 보유하는 그야말로 「대국」이 탄생하는 것이다. 일부에서는 중립화 통일방안이 조심스레 거론되기도 하지만 이같이 막강한 민족국가에 중립이란 개념을 적용시키는 것은 위험천만한 발상이라는 지적이 따른다. 그래서 유럽국가들은 독일의 통일에 찬성하면서도 갖가지 전제조건을 달아 실제로는 반대하고 있는 이율배반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실례로 프랑수아 미테랑 프랑스 대통령은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방법으로 통독이 이루어진다면 이를 지지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그는 이와 함께 『독일의 통일을 추구하는 모든 정책은 유럽의 전후질서의 테두리안에서 취해져야 한다』(89년 12월7일 고르바초프와의 회담)는 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통독에 대해 반대입장을 분명히 한 몰타 미소정상회담 뒤에 열렸던 NATO(북대서양조약기구) 정상회담도 『현재의 유럽국경선을 변경하는 어떠한 상황변화에도 반대한다』고 못박았다. 유럽사람들을 더욱 조급하게 만드는 것은 EC(유럽공동체)통합작업과 통독과의 관계이다. 서독이 통일문제에 신경을 쓰느라 EC통합작업에 게을러 질 경우 92년말로 잡고 있는 통합완성시기가 제대로 지켜지기가 어렵다. 그렇다고 서독이 빠진 EC통합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상황은 좀 다르지만 NATO 역시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서독 없이 NATO의 존재가치를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독의 시위군중들 사이에서는 통독의 구호소리가 점점 더 높아지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실시될 자유총선에서는 통일을 실질적으로 앞당길 수 있는 결과가 빚어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그에 앞서 양독은 베를린 장벽이 무너진 이후부터 통독을 위한 정지작업을 본격화하고 있다. 내달초에는 스위스 다보스에서 열리는 세계경제지도자회의에서 동ㆍ서독 정상이 만날 예정이며 그리고 곧이어 한스 모드로브 동독총리가 서독을 방문키로 되어 있다. 히틀러의 독일이 제2차세계대전을 도발함으로 해서 독일은 드골의 정의대로 「괴물」로 등장했었으나 요즈음의 유럽지도자들은 「유럽일가」 또는 「유럽연방」속에서 통일독일이 「보물」 역할을 해주길 고대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괴물이 될지 보물이 될지 전혀 마음을 놓을 수 없는 것이 그들의 심정이다.
  • 유럽통합 제안 할듯/하벨,바르샤바 도착

    【바르샤바 AP 연합】 바클라프 하벨 체코슬로바키아 대통령은 폴란드 의회에서 연설을 통해 유럽통합을 제안하기 위해 25일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하벨 대통령은 바르샤바 공항에서 보이체흐 야루젤스키 폴란드 대통령의 영접을 받은 뒤 비공개 회담을 위해 공항을 떠났다. 하벨은 이에앞서 이날 발간된 자유노조 기관지 가제타 비보르차와의 인터뷰를 통해 『현존 유럽구조는 이론적으로는 전 유럽대륙을 대상으로 이루어진 것이지만 실상은 유럽 분단을 반영하는 것이며 사실상 서유럽 중심의 구조』라고 말하고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은 조화로운 방향으로 유럽과 통합해야 하며 유럽도 새로운 상황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 권력구조 어떤 형태가 될까(“대통합” 신당정국:3)

    ◎내각제 잠정합의… 「변형」도 검토/차기 대권구도 맞물려 선뜻 결론 못내/원외포용등 겨냥,양원제엔 의견 접근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 통합을 가능케한 결정적인 요인은 YS(김영삼 민주당총재)의 「전신」이라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그러면 YS가 「중도온건민주세력의 대연합」으로 몸을 담그게 된 열쇠는 무엇인가. 그것은 한마디로 차기 대권일 것이라는 분석이 그럴듯하다. 1노2김이 합당을 선언한 것도 물론 대의명분이 있었기 때문이지만 그 밑바닥에는 포스트 노시대의 권력장악에 대한 콘센서스가 이뤄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노태우대통령의 임기가 끝나는 93년 2월24일 이후의 대권은 일단 YS에게 준다는 양해가 3자간에 이뤄졌고 그때의 대권은 내각제 정부형태의 총리를 의미하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러나 「1ㆍ22 3인 공동선언」은 통합 신당이 추구하는 정부형태에 관해 내각제를 굳이 명시하지 않았다. 다만 공동선언 합의문 3항은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룩하는데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와 정치문화를 창출한다』고만 밝히고 있다.합당추진 핵심인사는 이 「적합한 정치제체」에 대해 『우리 헌정사의 대부분 기간이 대통령중심제로 운영되어 왔으나 이 제도는 전부냐 전무냐의 결과를 가져와 정치발전에 지장이 적지않았다』면서 『내각책임제가 정치안정과 국가발전에 보다 효율적인 제도가 될 수있다』고 말해 3인의 합의가 내각제로의 개헌을 상정하고 있음을 시인했다. 그런데도 권력구조문제에 대해 내각제와 함께 2원집정제,대통령제가 계속 제기되고 있는 것은 3자간의 잠정합의에도 불구하고 3자가 앞으로의 정부형태에 대해 조기공표를 하기가 어려운 데서 1차적으로 연유되고 있다. 또 다른 이유는 1노2김이 내각제로 잠정합의했다 하더라도 앞으로 합당이후 3자간의 위상변화와 3당 세력간의 역학관계 정립과정에서 수정이 가능하다는 각 당 나름대로의 판단 때문이다. 우선 3자가 내각제로의 잠정합의를 현 단계에서 밝힐 수 없는 것은 개헌문제 제기 자체가 이제 집권 중반기에 접어드는 노대통령의 통치기반 강화에 해를 끼칠 가능성이 있고 또한 아직은 개헌을 얘기할 만큼 분위기가 성숙되지 못했다는 상황인식이 있기 때문이다. 2원집정제는 『내각제에도 여러가지 변형이 있어 앞으로 논의해 볼 소지가 있다』(박준병 민정당사무총장)는 등 민정당을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거론되고 있다. 여러가지 분석이 있겠지만 이러한 발언은 YS의 독주를 사전에 막아보겠다는 일종의 애드벌룬 성격이 짙은 것 같다. 순수내각제로 할 경우 YS가 총리(수상),당총재로서 막강한 권한을 행사할 것이고 그렇게 되면 「구민정」계는 YS의 대권장악에 노력봉사만 하는 결과가 되지 않느냐는 일종의 박탈감에서 제기된 것으로 풀이된다. 그러나 2원집정제로 할 경우 위기시 대통령이 외교ㆍ국방에 관한 권한을 갖는등 대통령과 총리가 어느 정도 권한을 나눠가짐으로써 권력의 안배가 이뤄질 수 있다는 생각이다. 2원집정제는 5공 출범전인 80년초 개헌논의가 한창일 때 남북분단등 우리의 안보현실에 비추어 순수내각제보다 우리에게 더 적합한 제도라는 주장이 제기되었으나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했었다. 난데없이 2원집정제가 거론되자 야당 일각에서는 7공의 정부형태가 2원집정제로 될 경우 노대통령을 다시 대통령으로 밀겠다는 의도가 있는 것이 아니냐는 의구심을 나타내고 있다. 김종필공화당총재는 이같은 2원집정제에 대해 『청와대회담에서 거론된 적이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그 실현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고 있다. 권력구조 문제에 대해 김영삼민주당총재는 『청와대회담에서 충분히 논의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있고 그의 핵심참모인 김동영사무총장은 『내각제로 확정됐다는 경직된 생각을 갖지 말라』고 말했다. 이런 발언을 유추해 보면 YS가 아직은 대통령제의 대권에 대한 집념을 버리지 않고 있고 더욱이 거대신당의 대권주자가 될 경우 그 가능성은 매우 높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추측을 낳고 있다. 아니면 YS를 비롯한 민주당측의 대통령중심제 선호입장은 앞으로의 정부형태 결정을 위한 구체적인 3당간의 협상에 유리한 카드로 사용하겠다는 계산일 가능성도 크다. 권력구조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 부문은 국회를 현행대로 단원제로 하느냐,2공화국 때처럼 양원제로 하느냐 문제이다. 물론 양원제는 내각제를 전제로 하는 것이지만 합당에 따른 지구당위원장 조정문제,중도온건민주세력 결집을 위한 외부인사 영입,각 당의 원외중진인사의 포용 등을 위해서는 양원제를 통해 수용해야 된다는 것이 각 당의 공통된 견해다. 단원제로서는 의원정수를 충분하게 늘릴 수 없기 때문이긴 하지만 국가권력구조가 정치세력의 편의위주로 짜여진다는 비난을 면키 어렵다. 앞으로 정부형태를 결정지을 개헌구도는 내각제를 중심으로 산발적으로 논의되다가 본격적인 개헌안 마련은 91년 하반기나 가능할 것이며 개헌시점은 13대 국회임기말에 가까운 92년초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3당 통합신당이 앞으로의 정부형태를 내각제로 할 것이 분명해 보이지만 합당과정에서나 합당 후에 있어 3당세력간의 견제와 균형이 조화를 이루지 못할 때는 내각제가 상당히 변형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가운데는 2원집정제도 있을 수 있고 국회에서의 간선을 통한 대통령중심제도 있을 수 있을 것이다.
  • 새역사 창조를 위한 공동선언/전문

    국민의 선택에 따라 출범한 이 공화국의 국정 책임을 지고 있는 민주정의당 총재 노태우와 오랜 세월 이 땅의 민주주의를 위해 몸바쳐온 통일민주당 총재 김영삼,그리고 국태민안의 신념을 굿굿이 실천해 온 신민주공화당 총재 김종필,우리 세 사람은 민주ㆍ번영ㆍ통일을 이룰 새로운 역사의 장을 열기 위해 오늘 국민 여러분 앞에 함께 섰습니다. 21세기를 눈앞에 두고 1990년을 맞은 우리는 나라의 장래를 결정할 중대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오늘의 국가적 상황은 지난 40여년 헌정사의 파란을 넘어 연 민주주의와 지난 30년간 온 국민이 피땀 흘려 이룩한 우리 경제의 바탕 위에서 번영된 선진민주국가로 나아가느냐,아니면 불안한 후퇴의 길로 떨어지느냐의 갈림길이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난 반세기에 걸쳐 세계 그 어느 민족이 겪은 것보다 가혹한 시련과 고난을 국민의 단합된 힘으로 슬기롭게 이겨왔습니다. 우리 국민은 민족의 분단과 동족상잔의 전쟁을 겪으면서도 세계가 경탄하는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오랜 권위주의 시대에 막을 내리고 민주주의를 함께 열어 서울올림픽을 역사상 가장 훌륭한 대회로 치렀습니다. 그러나 지난 2년간 온 국민이 값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얻은 명백한 결론은 현재의 정치구조가 오늘의 국가적 문제를 해결하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더욱이 4당으로 갈라진 현재의 구조로는 나라 안팎의 도전을 효율적으로 헤쳐 나라의 밝은 앞날을 개척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4당체제는 지난 총선거의 결과임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국민이 바란 선택이기 보다는 인맥과 지연에 따른 정치권의 분열이 가져온 결과였습니다. 기존 정당은 국민의 여론을 조직화하고 국민적 역량을 뭉치게 하기 보다 지역적으로 기반을 나누어 국민적 분열을 심화하는 현실을 빚게 했습니다. 그동안 우리 사회에는 급속한 민주화와 함께 지난 시대 쌓여온 계층간ㆍ세대간ㆍ지역간의 갈등과 다양한 욕구가 폭발적으로 분출되었습니다. 4분된 정당체제는 사회경제적 갈등구조를 개선하고 국민적 여망을 구현하는 데 무력했습니다. 정치적 안정이 이루어지지 않음에 따라 국민의 불안은 가중되었고 우리 경제도 위기상황으로 치닫게 되었습니다. 4당으로 갈라진 우리 정치권은 격동하는 세계에서 나라의 발전을 선도하지 못하고 불안정과 불확실성으로 국민에게 장래에 대한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금 동서세계는 자유와 번영을 향해 세기적인 번혁의 소용돌이 속에 있습니다. 공산주의 국가에도 개혁과 개방의 물결이 넘쳐 공산주의 체제가 잇따라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지금의 국제정세는 반세기 가까운 분단상황의 남북한관계에도 언제 어떠한 변화를 몰아올지 알 수 없는 현실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도 우리 정치권은 오늘까지 민족문제를 해결하고 통일의 길을 적극적으로 열어갈 태세를 갖추지 못했습니다. 역사의 이 큰 갈림길에 서서 우리는 오늘 국민에게 희망을 주고 나라를 밝은 미래로 이끌 새로운 정치를 출범시키기로 하였습니다. 우리의 현실과 이 시대는 한 차원 더 높은 나라의 발전을 이룰 새로운 사고와 결단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국민과 사회발전의 수준에 못미치는 지난날의 정치를 개혁하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 우리는 당파적 이해로 분열ㆍ대결하는 정치에 종지부를 찍기로 하였습니다. 지난날의 배타적 아집과 독선,투쟁과 반목의 구시대정치를 활활 타는 용광로 속에 불사르기로 했습니다. 우리의 정치도 이제는 지난날의 발상과 체질에서 벗어나야 합니다. 대망의 21세기를 열어가는 지금 우리는 6천5백만 우리 겨례가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이루어 자유와 번영과 평화를 누릴 날을 앞당겨야 합니다. 우리는 지난해 12월15일 여야의 대타협으로 2년간을 끌어온 과거문제를 매듭지었습니다. 그것은 부정과 불신,투쟁으로 얼룩져온 지난 40년간의 민주화 쟁취기를 마감하고 새로운 민주주의의 시대를 여는 진정한 전기가 되어야 한다고 확신하였습니다. 이제는 다양한 국민의 요구를 조화하고 통합하여 그것을 실현하는 정치,과거를 뛰어 넘어 나라의 발전을 이끄는 정치가 이루어져야 할 때입니다. 경제적 위기와 당면한 국가적 과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하면서 민주발전의 업을 완수하기 위해서는 광범한 국민적 지지기반 위에서 새로운 정치구도를 갖추어야 합니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 갈등과 대립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민화합을 실현할 새로운 정치질서를 이룩해야 합니다. 안정위에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룩하면서 국민 모두가 골고루 잘 사는 복지국가를 건설해야 합니다. 우리가 맞게 될 고도기술사회,정보화사회를 앞장서 이끌 창조적인 정치가 펼쳐져야 합니다. 이제는 통일조국의 앞날을 내다보면서 민족통합에 대비하는 정치체제를 구축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모두의 미래를 힘차게 열어가는 희망의 정치,국민에게 믿음을 주는 신뢰의 정치,각계의 자율과 참여를 폭넓게 수용하는 성숙한 정치를 실현해야 합니다. 이 모든 일은 이제까지의 좁은 정치틀로는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 장기집권과 권위주의의 무거운 짐도 벗어 던졌습니다. 이제 민주ㆍ반민주의 단순논리시대도 끝났습니다. 자유와 민주의 이념을 함께 나누며 정책노선을 같이하는 정치세력이 뭉쳐 정책중심의 정당정치를 실천하는 것은 시대의 요청입니다. 새로운 상황에 맞지 않는 과거의 낡은 정치를 과감히깨는 데서 새로운 시대정신이 요구하는 새정치가 시작돼야 합니다. 지난 시대의 고루한 관념과 거기에서 비롯된 낡은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어야 합니다. 우리 세 사람은 오늘의 상황에 공동의 책임을 느끼며 역사의 사명을 함께 다 하기로 결심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지난 대통령선거와 총선거에서 보여준 절대다수 국민의 지지와 성원을 겸허하게 가슴깊이 새기며 이 중대한 역사적 상황에서 국민의 기대에 부응하는 길이 무엇인가를 깊이 논의했습니다. 나라와 겨레의 오늘과 내일에 관한 모든 문제에 대하여 가슴을 열고 의견을 나누었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든 당파적 이해관계를 초월하여 역사와 국민앞에 책임을 다한다는 한마음으로 이 시대의 과제를 함께 풀기 위해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 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여야의 다른 위치에서 그동안 이 나라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 왔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의 현실은 보다 더 굳건한 정치주도세력과 국민적 역량의 결집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모든 민족ㆍ민주세력은 이제 뭉쳐야 합니다. 이같은 시대적 요청에 부응하기 위해 우리는 중도 민주세력의 대단합으로 큰 국민정당을 탄생시켜 정치적 안정 위에서 새로운 정치질서를 확립해 나가기로 했습니다. 우리 세 사람은 굳은 의지와 사명감으로 21세기 세계의 중심에 우뚝선 당당한 나라를 건설하는 초석이 될 것을 다짐하면서 국민 여러분께 합의사항을 다음과 같이 밝힙니다. 첫째,민주정의당과 통일민주당,그리고 신민주공화당은 민주발전과 국민대화합ㆍ민족통합이라는 시대적 과제 앞에 오로지 역사와 국민에 봉사한다는 일념으로 아무 조건없이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새로운 정당으로 합당한다. 새 정당의 명칭은 가칭 「민주자유당」으로 한다. 전당대회시까지는 3당총재가 공동대표가 된다. 둘째,새 정당은 모든 온건 중도 민주세력이 다같이 참여하는 국민정당으로서 자주ㆍ자존의 바탕위에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주도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의 이념을 기저로 하여 실질적인 복지와 정의를 실현하며 민족문화를 창달하는 것을 기본정책으로 삼는다. 이와 함꼐 우리나라의 발전을 이룩하는 데 가장 적합한 정치체제와 정치문화를 창출한다. 셋째,합당의 절차와 방법은 국민적 여망을 바탕으로 당원의 총의를 최대한 존중하여 추진한다. 합당 등록절차는 금년 2월말 이내에 완료하고,새로운 정당의 전당대회는 금년 5월말까지 개최하는 것으로 하되 늦어도 정당법에 의한 합당 등록일로부터 6개월 이내에 개최한다. 넷째,구체적인 합당절차와 이에 따른 제반사항을 효율적으로 추진하기 위하여 3당 각 5인으로 통합추진위원회를 구성하고 합당을 위한 모든 실무적인 사무를 담당한다. 다섯째,민족,민주역량의 총 단합을 위하여 우리와 뜻을 같이하는 모든 정당과 단체ㆍ개인에게 문호를 활짝 열고 동참을 호소한다. 그러나 새로운 정당에 참여하지 않는 어떠한 정당ㆍ정파나 단체와도 의회민주주의를 신봉하는 한 대화와 타협으로 정치발전을 위해 긴밀히 협조한다. 우리 역사상 처음으로 이제 여야정당이 합당하여 새로운 국민정당이 탄생됩니다. 우리 정치사에 새로운 기원이 열리는 것입니다. 새 국민정당의 출범은 정치의 안정ㆍ정치의 선진화를 이룩하여 위대한 역사를 창조하는 새로운 출발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더 큰 국민의 지지 위에서 민주ㆍ번영ㆍ통일의 영광된 시대를 창조해 갈 것입니다. 우리 국민 모두 새로운 세계,희망의 미래를 향해 함께 나아갑시다. 국민 여러분의 성원과 동참을 호소합니다.
  • 「여대야소」 신 정국의 향방 긴급(대담)

    ◎신당 권력구도 적응,내부통합이 과제/외피적 통합… 대화ㆍ타협으로 극복해야/야 극한투쟁… 정국대립 첨예화 예상/중도 탈피,혁신정당화가 평민 활로/비호남ㆍ호남 대결 우려… 「지역감정 해소책」 기대 노태우 대통령과 김영삼 민주ㆍ김종필 공화당 총재가 22일 청와대에서 긴급회담을 갖고 민정ㆍ민주ㆍ공화당을 주축으로 하는 신당창당에 합의함으로써 앞으로의 정국이 숨가쁘게 돌아가게 됐다. 특히 2년여동안 지속되어 오던 4당체제가 신당의 출현으로 「여대야소」의 2당체제로 탈바꿈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정치풍토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신당창당 선언을 계기로 정계개편의 의의와 전망 및 문제점을 송복 교수(연세대) 신희석 교수(외교안보연구원)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송복 신희석 ▲송교수=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을 주축으로 한 신당 출현은 한국정치사의 물줄기를 바꿔놓는 대지진으로 받아들여집니다. 특히 통합신당은 정치지도자들의 담합합의에 의해 이루어진 정치적 행위의 소산이라는 점에서 한국정치사의 대사건이라 하겠습니다. 일본에서는 50년대 보수대연합이 이루어졌지만 우리와는 정치적ㆍ사회적 환경이 달랐다는 점입니다. 동경대에서 정치학을 전공한 신박사는 어떻게 보시는지요. ▲신교수=3당합당 선언에 따른 정계개편은 한국정치사에 있어 파격적이고 획기적인 의의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금까지 기존정당의 통폐합은 적지 않게 이뤄졌지만 여당,야당세력들만의 통폐합에 불과했습니다. 이번과 같이 정치지도자,이념을 전혀 달리하는 3개정당이 동시 통합한 예는 이웃 일본정치사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대변혁입니다. 3당통합은 현 4당구조의 고질적 병폐인 지역감정이 탈피될 수 있다는 긍정적 측면과 함꼐 상당히 빠른 속도로 개편작업이 이루어진 특징을 갖고 있습니다. 3당통합은 여러모로 일본 자민당창당과 비교됩니다. 일본 자민당은 지난 55년 보수주류와 비주류간의 통합으로 결성된 이래 지금까지 정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 일본 상황과 현재의 우리 사정을 살펴볼 때 크게 3가지 유사점을 발결할 수 있습니다. 첫째 양측 모두 획기적인 정계개편을 이뤘다는 점이고 둘째 이러한 개편이 국내정치의 전환기에서 나왔다는 점입니다. 셋째로는 학생운동 및 노동운동 등 이데올로기 투쟁으로 야기된 위기감을 보수정치권이 감지,이를 모면하겠다는 배경을 공통분모로 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같은 유사점에도 불구,양측간에는 근본적인 차이점이 노정되고 있습니다. 먼저 일본의 통합은 내각책임제하에서 이뤄졌지만 우리의 경우 대통령중심제를 유지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또 일본은 당시 보수파간의 통합인 만큼 혁명적인 것으로 볼 수 없지만 우리는 전혀 이념을 달리하는 3당간의 통합이기 때문에 가히 혁명적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즉 일본은 주류와 비주류에 의한 보수통합인 반면 우리의 경우 보수여당과 중도야당간의 통합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으로 다릅니다. 당시 일본은 2차대전 종전 후의 과도기적 체제였지만 우리는 서울올림픽 개최등 국력향상과 민주화 물결속에 선진국으로 가는 길목에 있습니다. 국제정치상황도 50년대는 미소간의 대립냉전기였지만 현재는 신보수주의 물결속에서 경제제일주의를 추구하는 쪽으로 바뀌었습니다. 결국 일본은 당시 사회당ㆍ공산당 등 야당의 강력한 등장에 보수세력이 위기의식을 느껴 이에 대한 견제수단으로 통합을 추진했지만 우리는 민주정치 안정과 효과적인 정국운영이라는 측면에서 3당통합을 추진한다는 데 큰 차이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송교수=2년전 국민들이 만들어준 4당체제를 정치지도자들이 자의적으로 바꾼다는 점이 이번 신당창당을 부정적으로 보는 일부 시각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계개편 추진이 나름대로의 이유가 있다고 받아들여지는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첫째 우리의 정치상황은 90년대를 맞았으나 60년대의 초기민주주의 구도 그대로이기 때문에 역사발전에 맞게 바뀌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1인당 GNP 80여달러에서 현재 50배가 되는 4천여달러로 급성장했으나 정치구도는 30여년전이나 똑같아 사회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어 대다수 국민이 정계개편의 필요성에 합의하고 있습니다. 둘째 지금까지의 4당체제는 각당의 이념ㆍ지향ㆍ정책이 다른데서 연유한 것이 아니라 지역성에 기인하고 있어 적어도 인위적이라도 4당구조는 전진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는 점이고 셋째 평민당이 비교적 선명성을 내세우지만 혁신정당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4당 모두가 보수당이기 때문에 정책과 이념대립보다는 지역성ㆍ감정적 싸움으로 극한상황으로 치닫기 쉽다는 점입니다. ▲신교수=송교수 말씀에 기본적으로 동의합니다. 우리나라와 일본이 정치풍토ㆍ사회구조ㆍ정치문화 등에서 유사한 점이 많은 만큼 일본 자민당 모델에 의한 3당통합은 필요불가결하면서도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일본은 의원내각제ㆍ양원제ㆍ권력분산형태를 취하고 있다는 점에서 대통령중심제ㆍ단원제ㆍ중앙당중심체제로 짜여진 우리 정치상황과는 분명히 다릅니다. 또 야당의 존재양상도 서로 다른데 일본의 경우 사회당ㆍ공명당ㆍ민사당 등 야당지도자들이 대권에 도전하겠다는 야심을 갖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이들 야당은 정책이나 이념을 중심으로 구성됐고 총재직도 순환임기제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반면 우리 야당은 지도자들이 하나같이 대권도전 의사를 갖고 있으며 정책ㆍ이념이 아닌 인물ㆍ지역에 의해 정당이 만들어져 정당의 인물화ㆍ지역화 현상이 두드러지는 경향을 보였습니다. 그런 측면에서 파벌간 영수에 의해 대권교체가 손쉽게 이뤄지는 일본 자민당 정권모델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하겠습니다. 사실 일본 자민당이 35년 이상 장기안정속에 정권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파벌정치를 통한 견제와 균형에 기인합니다. 그러나 우리 정치에서는 이러한 「뿌리」가 없기 때문에 자민당식으로 될 것 같지는 않습니다. ▲송교수=신교수 말씀대로 50년대의 일본 자민당과 90년대의 우리 정치환경은 다르지만 이번에 민정ㆍ민주ㆍ공화 3당이 합의에 의해 개편하게 된 데는 나름대로의 정당성이 인정된다고 하겠습니다. 민정당이 집권당임에도 불구하고 「여소」라는 상황에서 정국을 열어가는 데 한계성이 있었으며 민주ㆍ공화당이 야당이라고는 하나 제1ㆍ제2당 싸움에서 제3ㆍ제4당은 정국운영의 뒷전으로 밀려나정치현장서 사라지지 않나 우려하고 있어 정계개편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됐다고 하겠습니다. 이로 인해 3당은 내각제 개헌의 필요성을 인정,개헌수준의 정계개편을 도출하기에 이르렀다고 하겠습니다. 미국 하버드대의 사무엘 헌팅턴이 『양당제는 영국과 미국에서만 잘 운영되어오나 고전적인 이 제도는 정치사적 측면에서는 현대적이지 못하다』고 말했듯이 2차대전 후 프랑스ㆍ영국ㆍ스칸디나비아제국 등 세계각국의 보편적 정치구도는 거대한 「통합정당」과 이에 대응하는 「0.5정당」이라는 사실입니다. 이 「0.5정당」이야말로 「통합정당」이 국정기능을 수행하지 못할 때 국민들의 거부로 쫓겨나게 된다는 점을 지적,경고적인 정당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입니다. 지난 50년 이후 일본에서는 자민당 이외의 여타정당은 경고적인 「0.5정당」이었으며 이번 3당의 할당도 전후 자유주의국가 정당의 보편적인 정당개편 유형에 속한다고 하겠습니다. ▲신교수=일본식의 정치구도 도입이 우리 정치상황에서 어떤 문제점을 노출시키는지 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신당내부의 정치질서 재편성인데 지금까지 3당은 여야로 나뉘어 대립과 갈등을 반복했다는 사실을 두고볼 때 과연 외형적인 통합 뿐만 아니라 실제적인 통합을 이룰 수 있는지 의문시 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도 대립과 갈등이 아닌 대화와 타협에 의한 상호인정으로 해결될 수 있을 것으로 봅니다. 다음으로 그동안 야당지도자로 군림해 왔던 김영삼총재와 김종필총재가 신당내에서 어떠한 지위를 차지할 것인지도 중요한 문제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최근 일 자민당내에서 거론되고 있는 총재와 내각총리대신 분리론과 마찬가지로 신당의 총재와 국정최고책임자를 분리시키는 방안도 검토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신당창당에 이은 내각책임제 개헌은 대통령중심제보다 강력한 리더십이란 측면에서 뒤떨어지는 만큼 남북분단의 현실을 안고 있는 우리로서는 앞으로의 과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송교수=지금까지 알려진 바로는 3당이 하나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한 개의 이름아래 3세력이 필요시에는 힘을 합치고 평소에는 떨어져 있는 「분권구도」라는 느낌입니다. 신당의 「분권구도」에 우리 정치인들이 얼마나 잘 적응할 지가 앞으로의 문제입니다. 조선조 이후 지금까지 우리 국민은 「집권화구도」에 익숙해 왔기 때문에 동업자적 조직운영인 「분권구도」에 정치인들이 얼마나 익숙해질 수 있느냐가 신당운영 성패의 관건입니다. 이에 비해 일본 사회는 분권화에 익숙하며 자민당을 중심으로 이같은 구도가 잘 이어져왔다고 볼 수 있습니다. 또 통합신당의 내부문제로는 그동안 3김이 정치자금의 센터역할을 맡아와 정치집단의 축을 이루고 있었는데 통합후에도 정치자금의 주축역할을 하게 되면 신당이라는 한 우산 아래에서 분열의 소지가 남아있다고 하겠습니다. 이밖에 신당출현이 호남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 평민당을 고립시킴으로써 정국을 호남 대 비호남으로 갈라놓을 우려가 있습니다. ▲신교수=기존의 다당화에서 양당화 현상으로 이양돼 대립과 갈등이 첨예화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또 평민당은 통합신당에 거의 포함되지 않기 때문에 이번의 3당통합이 자칫 호남세력과비호남세력으로 편가르기하지 않을까 우려됩니다. 더욱이 신당의 장기집권이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야당은 만년야당이 될 수밖에 없고 이로 인해 극단적인 대여투쟁을 전개할 것으로 점칠 수 있습니다. ▲송교수=신당이 나타나면 정계구도도 보혁구도로 탈바꿈되어야 합니다. 평민당은 앞으로 보혁의 양날개에서 탈피,혁신정당으로서의 외모를 보여줘야 하며 국민들도 이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평민이 중도 온건으로 남으면 우히려 운신의 폭이 좁고 존재 이유도 명확하지 못합니다. 평민당이 재야세력등 혁신을 대변하는 정당으로 탈바꿈할 때 평민의 구조도 튼튼해질 것으로 확신합니다.
  • 남북문화재 공동전시 추진/예술공연단 교환ㆍ사적 합동조사도

    ◎정부,25일께 대북 「문화교류회담」 제의 정부는 분단 후 남북한간의 심화된 이질현상을 문화적 접근에 의해 해소함으로써 통일의 여건을 마련한다는 원칙 아래 남북한간의 문화교류를 적극 추진해나가기로 했다. 정부는 이를 위해 문화부와 통일원 합동으로 실무작업에 들어갔으며 구정을 앞둔 25일쯤 남북한 화교류를 위한 당국간 회담개최를 제의하는 것을 주 내용으로 한 대북한 문화교류방안을 발표할 것으로 알려졌다. 20일 정부의 한 당국자는 『정부가 마련하고 있는 문화교류방안에는 전통예술공연단의 상호교환,문화재공동전시회,사적지 공동발굴및 연구,한국어표준화를 위한 협력등 비교적 정치성을 배제하고 남북간에 손쉽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분야일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당국자는 또 『정부는 이에 대한 준비작업으로 통일에 대비한 남북한 문화유산의 총괄정리를 위한 「북한문화재 실태와 현황」 증보판을 금년중 발간하고 비무장지대에 문화유적 학술조사를 펴나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 미국과 북한의 접촉 확대(사설)

    최근의 급격한 세계정세 변화및 우리 북방정책의 진전과 관련하여 미국ㆍ북한간의 빈번한 외교접촉이 주목을 끌고 있다. 새해 들어 지난 5일 북경에서 이뤄진 접촉에 이어 미국의 한 국제연구기관 책임자급 인사가 2월께 북한을 직접 방문,그쪽 당국자들과 접촉할 것이라고 전해진다. 미ㆍ북한은 그동안 북경을 무대로 몇차례 참사급 대좌를 가진 것으로 알려졌는데 앞으로는 양쪽,특히 대미 관계개선을 바라는 북한측 희망으로 대사급 접촉까지 진전돼 갈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우리는 먼저 미ㆍ북한간의 접촉이 새로운 세계 정세와 한반도 냉전체제의 변화를 불가피한 것으로 받아들이는 북한측의 탈 고립정책에 따른 것인지에 대해 관심을 갖고자 한다. 아울러 북한에 이런 인식의 변화를 갖게끔 미ㆍ일 및 소ㆍ중의 개별적인 노력에 의한 것인지에 대해서도 주목하게 된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 구조가 88서울올림픽을 고비로 해서 「교차교류」의 방향으로 진행되어 온 것은 이미 드러난 사실이다. 다만 북한만이 그것을 「한반도 분단 고착화」라고 거부하며 폐쇄를 고집하고 있을 뿐이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소련이 평양측의 그러한 「탈 냉전체제 거부」에도 불구하고 정경분리의 원칙밑에 사실상 한국과의 교차교류를 공식화한 사실을 평양 당국은 간과해서는 안된다. 소련은 최근 한국과의 영사급 교류를 다지기 전후하여 한국의 유엔가입을 반대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분명히 했다. 교차교류가 필연적으로 교차승인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이는 당연한 일이다. 따라서 한반도 유관국가로서의 미국이 북한과 교류를 트고 그들을 개방된 세계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한다면 우리로서도 환영할 일이다. 객관적으로도 현재 북한측은 더 이상 고립정책을 고수할 명분도 실리도 없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김일성은 지난번 신년사를 통해 남북간 「자유내왕」을 위한 「장벽 제거」를 미측이 협조해 달라고 요청했다. 아울러 연례적인 비난의 대상이 된 팀스피리트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다. 그가 주장한 「장벽 제거」에 관해서는 한반도에는 제거될 장벽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한반도에는 40년전에 그들이 도발한 동족전쟁같은 참화를 다시 되풀이 하지 않기 위한 휴전선의 완충지대가 있을 뿐이다. 그 휴전선 일대에 전력의 대부분을 전진배치한 그들이 바로 장벽제거에 나서야 한다. 팀스피리트에 관해서도 이미 한미 양국이 규모축소를 발표했고 그들에게 훈련참관을 요청했다. 남북간 장벽을 제거해야 할 쪽은 북한인 것이다. 미ㆍ북한의 빈번한 접촉에도 불구하고 개방과 개혁의 바람을 지금 당장 북한에 불어 넣기는 어려울 것이다. 자신들의 자존심때문에도 그러할 것이고 현재로서도 김일성 정권은 갑작스러운 개방과 개혁을 그들 체제와 정권의 위기요인으로 생각할 것이다. 따라서 우리와 주변국들은 북한과 그 당국자들에게 그러한 위기의식을 주지않는 방식으로 문호개방을 꾸준히 유도할 필요가 있다. 미ㆍ북한 접촉이 한반도문제 해결의 중요한 계기가 될 것으로 믿으며 주의 깊게 지켜보고자 한다.
  • “「문화향수ㆍ참여권」 넓혀야”/노대통령,문화부 순시

    ◎창작 지원 최대로,간섭은 최소화 노태우대통령은 15일 모든 국민이 문화를 골고루 나누어 갖는 「문화의 향수권」과 누구나 그것을 자유롭게 창조하는 「문화의 참여권」을 확보하는 방향으로 문화정책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날 하오 문화부를 순시,그동안 정치ㆍ경제의 뒷전에서 소외되어온 문화예술 분야에 국민들이 관심을 갖고 문화예술가들의 잃었던 자존심을 되찾게 하는 환경조성이 중요하다면서 이같이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특히 다양성과 자율성을 토대로 한 창작풍토의 조성을 위해 개인의 창작활동에 대한 지원은 최대로 하되 간섭은 최소화해야한다고 지적하고 창작활동 지원을 위한 창작마을,예술인 기념관 설립을 추진하라고 지시했다.〈관련기사2면〉 노대통령은 또 무분별한 외래문화의 수용과 국토분단에 의한 민족문화의 단절 등으로 민족문화의 동질성이 크게 위협받고 있는 만큼 전통 문화 언어 등 우리 문화의 원형을 찾아내는 작업을 통해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와 함께 우리의문화권을 북한과 재외교민들에까지 확산,한국인의 문화적 동질성을 불러 일으켜야 할 것이라고 말하고 이를 위해 해외에서 활약중인 장래성 있는 예술인을 지원하는 방안을 강구하라고 아울러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지방자치제 실시를 앞두고 지역 향토 특성문화 육성을 위해 지방문화원을 명실상부한 향토문화센터로 육성시켜 나가고 경복궁으로부터 창덕궁ㆍ창경궁ㆍ예총으로 이어지는 서울대학로를 문화벨트화 하라고 지시했다. 노대통령은 오는 93년 수도 6백년을 맞는 서울을 고도로서의 면모를 갖추도록 개발하고 외국인들에게 우리의 전통생활문화를 제대로 체험케 하는 방안을 연구하라고 지시했다.
  • 90년대의 바람직한 관계증진 방안/프랑수아 조아유(해외기고)

    ◎“한­EC,새 협력시대 함께 열어야”/상호신뢰 바탕,사장개방 등에 공동대처/동구권 변혁 감안한 전략적 협의도 필요/북방외교 지속적 추진땐 북한개방유도에 큰 도움 한국의 국력신장은 유럽국가들에 대한 강력한 경쟁자로 부상하고 있다는데 대한 경계심과 한국상품의 유럽시장침공에 대한 우려를 불러 일으키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한국이 신흥공업국가의 대열에 서게된 사실은 서부유럽국가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경쟁관계에서 발생하는 대립과 갈등요소가 잠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인상은 오래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오늘날 유럽국가들은 한국이 정치개혁 없이 경제성장만으로 지금과 같은 국가발전을 이룩하지는 못했을 것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 이는 또한 한국의 국내문제에서 뿐만 아니라 대외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서유럽국가들은 민주주의,자유 및 인권의 가치존중에 대해 대단히 민감하다. 이는 특히 영국과 프랑스에 있어 더욱 그러하다. 극단적인 정치탄압국가로 규정되던 과거 한국의 상황은 유럽인들에게는 당연히 눈에 거슬리는 것이었다. 북한의 침공을 경험한 한국이 아직 그들과 대치상태를 계속하면서 항상 남침의 위협을 염려해야하는 상황을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다. ○대립ㆍ갈등요소는 잠재 그동안 서유럽은 공산국가들을 경제적으로 부강하고 정치적으로 민주화된 서방국가들과 비교시키는 것만이 그들을 곤경에 빠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안으로 여겨왔다. 한국은 경제력을 바탕으로 이제부터 다른 민주국가들과 조화를 이루어 나갈 것이며 북한에 대해서도 개방을 강력하게 유도할 수 있는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고 있는 것으로 느껴지고 있다. 결국 진정한 민주주의 속에서 이룩되는 강력한 경제력만이 한반도의 분단을 극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며,이러한 사실은 유럽에서 전개되고 있는 작금의 사실은 상황이 잘 입증해 주고 있다. 서구는 지금 국제사회에서 한국의 위치가 나날이 격상되어가고 있는 상황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88서울올림픽은 한국을 신흥공업국 대열에 올려 놓는데 성공적인 역할을 수행해 냈다. 특히 한국정부가 펴온 북방정책은 아직 시행된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좋은 결과를 빚어내고 있다. 헝가리와의 국교수립과 최근에 이루어진 폴란드와의 수교는 서유럽국가들로부터도 크게 환영을 받고 있다. 동구의 정치ㆍ경제 개혁에 보탬이 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되기 때문이다. 한국의 국제적 지위는 이들 새로운 우방들로 인해 한층 격상되고 있음을 부인키 어렵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한국이 유엔회원국으로 가입될 날이 훨씬 가까워졌다는 전망이 나오기도 한다. 요컨대 동구는 지난 20년간 한국의 발빠른 경제성장과정을 눈여겨 보아왔고 지난 2년전부터는 중대한 정치발전모습을 현장 확인했다. 이제 남은 것은 한국이 앞으로 10년간 이러한 굳건한 정치ㆍ경제적 토대위에서 어떠한 변화를 추구해나가야 할 것인가를 가늠해 보는 일이다. 한국의 신흥공업국으로의 도약은 정치ㆍ경제적인 측면에서뿐만 아니라 안보적인 측면에서 서구와의 관계를 발전시키는데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유럽국가들은 한국이 주도적역할을 하고있는 태평양경제공동체의 구성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있다. 이 협의체가 GATT(관세무역일반협정)규정을 준수하고 국제교역의 개방,불평등 해소,제3세계의 외채문제해결을 겨냥한 것이라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것이며 구공체(EC)역시 환영하고 있다. 구공체가 이미 한국의 파트너이듯이 이 새 협의체제도 한국의 동반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중요한 점은 태평양경제공동체가 어느정도 대외개방의 문호를 넓힐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우리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이 협의체안에서 오로지 일본과만 독점적이며 배타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자세는 처음부터 버려야한다는 지적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다. 지금까지 한국은 미국 및 일본과의 경제관계에 치중해 왔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 한국은 그러한 자세를 고칠 때가 된 것이다. 미국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이 표면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EC와의 관계를 발전시켜 나가는 것이 과제로 부각되고 있다. 또한 일본의 거대한 경제력에 대면할 수 있는 평형추를 찾아야 한다. ○정치ㆍ경제발전 인정 태평양경제공동체가 스스로 폐쇄적인 경제협의체의 모습을 보인다면 이는 당연히 EC를 자극하게 될 것이다. 유럽에서 볼때 그러한 상황을 예방하는 것은 한국이 취해야 할 가장 자연스럽고 적절한 역할이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유럽통합을 앞둔 지금 종종 회원국 12나라들만의 번영을 추구하기 위한 폐쇄적인 움직임으로 간주되거나 또는 하나의 무역전쟁의 도구로 인식되고 있는게 사실이다. 그러나 지난해 말에 열렸던 EC정상회담에서 증명되었듯이 유럽통합은 유럽 뿐만 아니라 세계의 평화안보 그리고 안정에 기여하게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한국은 얼마전 EC와의 정례고위정책협의체의 구성을 희망,이를 실현시켰다. 이같은 사실은 국제무대에서 한국의 중요성이 크게 인식되고 있다는 증거이며 국제사회의 중요한 일원으로서 한국의 역할에 대한 기대감도 비례하여 점증하고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1992년 EC의 시장통합이 이루어지면 한국은 이지역에서 3억2천만명 인구의 거대한 단일시장을 대하게 될 것이다. 한국의 상품이 질좋고 믿을만 하다면 강력한 구매력을 가진 유럽소비자들의 요구를 만족시킬 수 있으리라는 점은 믿어 의심할 필요가 없다. EC와 한국이 서로 문호를 더욱 넓혀 간다면 보다 많은 것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오늘날 펼쳐지고 있는 새로운 상황들은 유럽과 한국과의 관계에 있어서 정치적인 측면은 물론 안보문제까지 상호간 깊은 논의와 협력을 요구하고 있다. 한국이 유럽의 정치상황 전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은 새삼 지적할 필요가 없다. ○배타적자세 버려야 노태우대통령의 지난번 유럽순방때 동구국가의 방문일정이 포함되어 있던 점이 이를 잘 증명해 주고 있다. 한국은 최근 폴란드에 대한 재정지원을 약속했다. 이러한 자세는 유럽대륙의 문제와 아시아ㆍ태평양권의 문제가 상호 긴밀히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다. 아시아의 동쪽끝 나라인 한국과 사회주의 유럽대륙의 서쪽끝 나라사이에 긴밀한 관계가 맺어지고 지속된다는 사실은 국제정치관계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유럽사람들의 견해로는 한국이 너무 오랫동안 미국에 기울어져 왔던 것으로 여겨진다. 이같은 사실은 결국 북한의 남침위협에 자체 방어능력을 보유하지 못한 한국이 오직 미국에 자국의 방위를 의존해 왔음을 스스로 설명해 주는 것이었다. 결코 떳떳하다고만은 할 수 없는 현상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와같은 상황은 이제 바뀌어가고 있다. 한국은 이제 갈수록 자체방위능력이 향상되어가고 있다. 기술적인 면이나 재정적인 면은 물론 군사적인 측면에서 자주국방노력이 실효를 거두어 가고 있는 것이다. 유럽사람들의 눈에는 그와 같은 결과는 한국의 자주적인 노력외에 유럽과 정치적 유대를 공고히 해왔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유럽국가들이 한국과 더욱 긴밀한 정치관계를 유지하기를 희망하고 있는 사실이 이를 잘 증명해주고 있다. 지금,유럽국가들과 한국과의 이같은 관계가 더욱 진전될 것이며 나아가 안보측면의 전략협의까지 가능할 수 있을 것인가가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현재로서는 동북아나 한반도에서 중대한 사태가 발생했을 경우 미국은 혼자서라도 한국을 지원할 것이라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그러나 동구개혁으로 대표되는 사회주의국가들의 변혁이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감안한다면 한국과 서유럽국가들간의 새로운 전략적 협의의 필요성은 점증되고 있다. 유럽과 마찬가지로 한국 역시 현재 동구에서 벌어지고 있는 개혁에 찬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동구개혁이 어느 방향으로 진행될 것이며 어떠한 결론을 초래할 것인지는 유럽국가들은 물론 한국도 쉽게 예언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아직도 안정적인 측면에서 취약하며 위험스런 요소는 얼마든지 발견되고 있다. 특히 소련의 경우에서 더욱 그러하다. 극동에서의 북한이나 베트남은 아직도 완강한 공산주의세력이 권력을 장악하고 있다. ○미ㆍ일의존 탈피시급 중국에서는 공산주의가 개혁변신은 커녕 과거의 그것으로 되돌아가려 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과정이 「대위기」를 초래할 지도 모른다는 가정이 설득력을 지니는 것이다. 이와 같은 이유로 해서 아시아국가들 특히 한국과 서부유럽국가들이 안보적인 측면에서 관계를 다져나아가야 되며,이를 위해 전략회담을 강화할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내전의 종식분위기를 타고 군축회담은 마치 모든 문제의 해결사인 것처럼 인식되고 있다. 군축회담이 결말지어지면 동서관계는 물론 지구상의 모든 분쟁까지 해결된다는 착각을 일으키기도 한다. 그러나 우리는 군축이 가져올 그 반대현상도 염두에 두어야 한다. 때문에 사회주의국가들의 개혁속도보다 앞지르는 군축은 있을 수 없다는 것이 전략문제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그래서 우리는 한국이 안보문제에 관하여 계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점을 이해할 수 있는 것이며 앞으로 한국과 유럽국가들간의 협력관계가 더욱 증진되어야 한다는 필요성이 대두되는 것이다. 공산권내부의 불확실성과 이에 따른 불안요인의 가능성을 생각할 때 그에 대한 경계심은 어느때보다 더욱 절실한 것이다. 내일을 예측할 수 없는 90년대를 맞으며 한국과 유럽국가들은 직접적이며 정례적인 접촉을 계속하는 가운데 서로 신뢰관계를 증진시켜나가는 것만이 공동의 안전과 번영을 위한 바람직한 길이라는평범한 진리를 되새겨야 한다.
  • 통일문제 기적 바라선 안된다/정종욱 서울대 교수(서울시론)

    ◎북한변화 너무 낙관하면 오류 범할지도 지난 10일 노태우대통령이 연두기자회견에서 내놓은 대북제의는 전향적 자세를 취하면서도 북한을 궁지에 몰아넣는 일방통행식의 내용들을 배제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주장한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개장이 현실성이 없는 것이지만 그 기본취지를 수용하는 진취적 입장을 보였으며 특히 팀스피리트훈련의 규모를 감축시켜 북한의 주장을 수용한 것은 한반도의 평화정착과 통일성취에 기여하는 중대한 발전으로 크게 환영할 만한 일이다. ○전향적 통일정책 현황 인적교류와 군사적 신뢰구축 이외에도 금강산개발과 체육분야의 협력등 남북이 합의만 한다면 당장이라도 실천에 옮길 수 있는 구체적 제안들이 제시되고 있어 6공화국이 지난 2년 동안 통일문제에 대해 과시해온 현실감각과 적극적 자세를 다시한번 확인시켜주고 있다. 사실 6공화국이 내세울 수 있는 치적으로 가장 두드러진 것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이라는 점에 대해 크게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다. 다소의비난과 볼멘 소리가 있긴 했지만 북방정책은 냉전의 벽을 뚫고 동구공산국가들을 우리의 외교무대 위에 올려놓는 데 성공했다. 그것은 공산권 내부의 개혁과 개방에 힘입은 바가 적지 않았지만 동시에 동구의 급격한 변혁을 앞질러 진행되었다는 점에서 외교적 개척정신이 한층 돋보이는 참신한 변화였다. 지금의 시각에서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일지 몰라도 당시만 해도 과감한 발상과 결연한 실천을 요구하는 벅찬 도전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북방의 개척은 통일정책에서 유연성과 자신감을 갖게 했고 북의 입장을 보다 진보적으로 수용하게 하는 바람직한 결과를 낳았다. 자신감이 지나쳐서 오만과 과신으로 보이기도 하고 유연성이 도를 넘어 일방적 양보처럼 비추어지기도 했지만 6공의 대북정책이 국민의 폭넓은 지지를 받아왔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어렵다. 어지러운 국내정치에 비교하면 북방정책과 통일정책은 구름사이로 비쳐나오는 한 줄기 햇살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제 80년대를 역사속에 묻고 새로운 90년대를 맞아 대통령이 연두회견에서 통일문제를 강조하고 있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비극과 고통의 세기를 마감하는 마지막 연대를 맞아 분단을 극복하고 통일된 민족공동체를 완성하려는 실천적 의지를 다짐하려는 것이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염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염원이 이루어지려면 몇가지 조건들이 충족되어야 할 것이다. ○북이 문열어야 가능 무엇보다도 우선 공산권 내부의 변화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남북관계의 개선과 한반도에서의 평화성취는 북한이 얼마나 변화하느냐에 달려있다. 북한이 그 닫힌 문과 마음을 열고 세계와 남한에 대한 인식과 태도를 바꾸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관계개선을 추구하고 통일을 염원한다 해도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최근 동구를 휩쓸고 있는 변혁의 물결이 언젠가는 북한에도 밀어닥칠 것으로 보려는 희망과 기대가 우리들 사이에서 커가고 있지만 자칫 잘못하면 북한의 변화 가능성을 지나치게 낙관하는 오류를 범할 위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북한이 영원히 바뀌지 않는다는 주장은 아니지만 스스로 바뀌지 않는 한 우리가 아무리 변화를 희망하고 추구한다 해도 한계가 있다는 너무나도 당연한 사실을 망각해서도 안될 것이다. 동구의 변화는 서구가 동구의 변화를 유도했기 때문이 아니라 서구가 스스로를 잘 관리하고 유지했기 때문이다. 서구의 성공이 동구의 변화를 가져온 가장 위력적인 촉매제였다. 마찬가지로 북한의 내부변화를 실현시킬 수 있는 최선의 길은 남한 스스로의 성공에 있다.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완성하고 경제적으로 성장과 복지가 조화를 이루어 낼 때 북은 지금의 상태로 외부와 단절된 채 주체의 왕국으로 계속될 수는 없을 것이다. 남쪽에서 달동네가 없어지고 재야가 제도권내의 목소리로 흡인될 수만 있다면 김일성이 신년사에서 휴전선 이남에 콩크리트 장벽이 있다는 억지 주장을 해도 이를 믿을 사람이 점차 줄어들게 될 것이다. ○기적은 내부서 찾아야 특히 위험스런 일은 남쪽의 부족한 성공을 보충하거나 호도하기 위한 수단으로 통일정책이 오용되는 것이다. 남북이 서로 개방하고 교류하며 그러는 사이에 통일을 앞당기는 일은 80년대나 90년대나 변함없이 인내와 자제가 요구되는 장기적 과제이지 연대가 바뀌었다고 해서 갑자기 그 가능성이 좋아지는 것이 아니다. 통일정책이 구름사이로 비춰지는 한 가닥 햇살이라 해도 구름 자체가 가려지는 것은 아니다. 빛과 그림자는 엄연히 구별되는 것이다. 통일문제에 관해 당연히 진취적이며 적극적인 자세를 가져야 하지만 그렇다고 당장 뭔가 기적이라도 생겨날 것 같은 인상을 주어서도 안될 것이다. 기적은 우리 내부의 정치ㆍ경제에서 먼저 일어나야 한다. 우리가 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에서 통일문제 못지않게 정치ㆍ경제분야에서도 많은 구체적 청사진이 나오기를 기대했던 것도 이러한 이유 때문이었다. 연설과 질문이 보여준 차이를 결코 가볍게 넘길 수는 없는 것이다. 통일문제를 다룸에 있어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이 정말 변화하지 않으면 안될 역사적 시점이 다가왔을 때를 대비하여 북한에 대한 연구와 지식을 축적시켜 나가는 일이다. 훌륭한 통일정책이 있기 위해서는 충분한 재정지원과 뜨거운 성원이 뒷받침된 성숙한 통일연구가 있어야 한다. 연구없는 정책은 단견과 졸속을 면할 수 없다. 그동안 북한연구가 적지않게 진행되어 왔고 많은 연구소와 전문가가 존재하고 있지만 서로 연계되지 않은 가운데 간헐적인 활동만 확대 재생산되고 있는 게 우리의 솔직한 실정이다. 정부가 통일문제를 90년대의 최우선정책으로 삼고 있다면 이에 상응하는 북한연구에 대한 지원이 있어야 할 것이다. 서독의 전독문제연구소에는 수백명의 전문가들이 동독연구에 전념하고 있으며 이것이 바로 베를린의 기적을 가져온 비결이었음을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 팀스피리트 축소의 의미(사설)

    오는 3월로 예정된 팀스피리트 90훈련의 규모가 작년보다 10% 감축되는 수준에서 실시되리라고 한다. 이 사실은 남북한문제및 한반도 군축논의의 진척과 관련해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한미 양국 군당국은 이와함께 이 한미합동훈련에 북한과 중국 그리고 스위스 스웨덴 체코 폴란드 등 중립국 감시위원단 4개국이 참관해 줄 것을 제의했다. 노태우대통령이 엊그제 연두회견을 통해 제의한 팀스피리트 규모 축소에 상응하는 북한측 조치와 우리측의 북한군사훈련 참관요청의 수락을 촉구하는 일련의 조치라 할 수 있다. 새해들어 남북관계의 진전을 가능케해줄 수도 있는 전향적인 노력으로 평가될 수 있을 것이다. 「팀스피리트」 훈련은 지난 76년부터 한미 양국이 합동으로 수행해온 방어작전훈련에 해당하는 군의 기동훈련이다. 13차례의 과정이 말해주듯 이 훈련은 집단안보의 존재의미를 새기고 한반도에서의 한미연합 억지전략 태세를 다지는 방어개념상의 연습일 뿐이다. 북한측이 억지로 주장해온바처럼 그들을 가상적으로 하는 공격적 훈련과는 그 개념과 내용이 전혀 다르다. 북한측은 그런데도 80년대 냉전적 분위기를 한반도 주변에 의도적으로 조성하면서 이 훈련을 비난해왔고 급기야 지난 83년엔 이를 트집잡아 남북한간 모든 대화와 부분적인 교류를 일방적으로 중단시키기까지 했다. 팀스피리트 훈련 이전에도 한미군 사이에는 포커스 레티나,프리덤 볼트,금룡 등 합동군사연습이 있어 왔다. 군이 있는 곳에 항상 군사적 이동과 작전훈련이 있게 마련이다. 북한 역시 80년대 일관하여 소련과의 군사협력관계를 강화하는 가운데 동해를 중심으로 대규모 해공 합동군사훈련을 매년 실시한 것도 잘 알려진 사실이다. 냉전시대의 종막과 함께 오늘날 구체적으로 마주치는 것은 당연히 군축의 문제이다. 지난날의 군비경쟁이 전쟁을 전제로 했다면 군축은 전쟁을 제거하자는 상호간의 의지와 노력을 의미한다. 미소 양국은 사실 과거 냉전체제의 양극이었다. 두나라는 새 국제질서에서도 여전히 두 축이 될 수밖에 없었으나 두나라 정상의 몰타회담 이래 구체적인 군축실현 의지는 구체적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반도는 어떠한가. 이제 이 지역에서도 군축논의가 금기의 영역을 벗어나 공식거론되기 시작했다. 국제적 추세에 유연히 대처하고 분단상항을 극복하는 방법론으로서 전진적 변모임에 틀림없다. 사실은 그것이 한반도문제의 궁극적인 해걸의 열쇠이기도 한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90년대 남북대화는 전쟁 재발방지와 긴장완화,평화구조 정착의 필요충분조건이 되는 군축협상을 전제로 한 정치군사회담에의 접근으로부터 시작돼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의 군비경쟁은 이제 군축경쟁으로 바뀌어야 한다. 전쟁의 위험성은 아직 완전히 가시지 않았으나 전쟁 가능성은 보다 희미해진 것도 사실이다. 군비경쟁에 따른 군사비가 동족간의 삶의 질의 향상과 사회복지증진에 돌려진다면 그것은 총체적으로 민족공동체 의식회복과 분단극복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북한측의 호응을 기대하고자 한다.
  • “분단해소 전망”/유럽 TV들

    【브뤼셀 연합】 벨기에와 프랑스의 TV들은 10일 베를린 장벽 붕괴에 뒤이어 동서 양진영간의 또다른 철의 장벽이 극동 한반도에서 붕괴될 것으로 보인다고 일제히 보도했다.
  • “지속적 경제개혁… 분배정의 실현” 노대통령 연두회견 내용

    ◎폭력ㆍ불법분규엔 단호히 대응/제2세제 개혁추진ㆍ토지공개념 차질없이 시행/경찰력 총동원,민생치안 확립 ▷국정운영 기조◁ 1990년대는 이 세기에 들어와 어느 민족보다 가혹한 시련을 겪어온 우리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희망의 연대」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랫동안 국민이 나라의 진정한 주인이 되는 민주주의의 실현을 염원해왔습니다. 3년전 6ㆍ29선언을 출발점으로 우리는 모두가 한마음이 되어 이 모든 헌정사의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고 민주주의의 큰 길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민주화와 함께 욕구와 갈등이 무절제하게 분출되면서 우리 모두는 지난 3년간 큰 진통을 겪어왔습니다. 우리의 선택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질서 위에서 지속적인 경제발전을 이룩하는 길밖에 없는 것입니다. ▷경제난국 극복◁ 우리는 지금 우리 경제의 앞날에 대한 위기의식 속에 90년대의 첫해를 맞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는 정치ㆍ사회적 요인과 경제적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매우 어려운 국면에 처하고 있습니다. 우리 경제의 당면한 난국을 극복하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서는 확고한 「사회적 합의」가 이루어져야 합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기업인과 여유있는 계층이 절제와 희생을 솔선수범해주어야 합니다. 모든 국민이 전체 경제를 살리면서 각 계층의 욕구를 점진적으로 실현해가는 슬기를 발휘해야 이 어려움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정부는 수출과 제조업,중소기업의 어려움을 타개하고 기업의 체질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는 데 최대한의 지원을 할 것입니다. 인재의 육성과 과학기술의 발전,첨단기술산업의 육성 등을 통한 선진국형 산업구조로의 발전을 위해 적극적인 정책을 추진해나갈 것입니다. 나는 앞으로 3년 임기동안 경제정의 실현을 위한 개혁을 결연한 의지로 추진하고 경제발전의 결실이 우리 사회 보통사람들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불법과 폭력에 대해서는 노사 어느쪽을 막론하고 단호히 대응할 것입니다. ▷쾌적한 사회건설◁ 정부는 우리경제의 갈등구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경제개혁을 착실히 이루어 나갈 것입니다. 정부는 열심히 일하는 보통사람들이 성실히 일하면 정당한 대우를 받으며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희망의 사회」를 건설해 나갈 것입니다. 첫째,경제정의를 실현하기 위해 제도적 개혁을 밀고 나갈 것입니다. 올해부터 토지공개념관련 법률과 종합토지과세를 차질없이 시행하고 제2단계 새제개혁을 추진할 것입니다. 둘째,대기업의 경제력 집중을 완화할 것입니다. 또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도록 유도하여 근대적 경영구조가 뿌리내리도록 할 것입니다. 셋째,92년까지 주택 2백만호를 건설하여 주택문제를 해결해 나갈것입니다. 넷째,92년까지 16조원을 투입하여 농어촌종합발전대책을 추진합니다. 다섯째,올해 지방자치의 실시와 함께 경제ㆍ행정ㆍ교육ㆍ문화의 기능이 지방에서 활발히 이루어지고 국가발전의 힘이 지방으로부터 창출되는 지방화시대를 열 것입니다. 여섯째,국토를 균형있게 발전시키고 도로ㆍ철도ㆍ항만 등 사회간접시설을 커가는 경제규모에 모자람이 없도록 확충할 것입니다. ▷5대 당면과제 해결◁ 나는 국민생활과 직결되어있으며 우리의 밝은 미래을 위해 시급히 서둘러야 할 민생치안ㆍ교육개혁ㆍ과학기술진흥ㆍ깨끗한 환경보전ㆍ교통난의 개선,이 다섯가지 과제를 본격적으로 해결해나갈 것입니다. ①민생치안=범죄예방과 범인검거에 모든 치안능력을 투입하겠습니다. 경찰인력과 체제,통신기동장비를 선진국 수준으로 강화할 것입니다. 진학하지 못하는 청소년들에게 장래의 길을 터줄 수 있도록 교육체제를 고치고 여가를 건전하게 보내는 문화ㆍ체육 공간을 늘리는 등 근본적 대책을 추진하겠습니다. ②교육개혁=산업사회가 요구하는 우수한 인력이 고등학교 단계에서 양성되도록 고등학교 교육체제를 개혁하겠습니다. ③과학기술진흥=앞으로 10년안에 우리 과학기술을 선진 7개국 수준으로 발전시켜나가야 합니다. 최첨단 반도체ㆍ슈퍼 컴퓨터ㆍ통신위성을 우리 손으로 만들고 신소재ㆍ광산업ㆍ생명공학 등 첨단산업을 발전시켜나갈 것입니다. ④환경보전=상수도원을 정화,보전하고 현재 30%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하수처리율을 빠른 시일안에 높이도록 할 것입니다. ⑤도시교통난 개선=지하철 건설,도로망 확충,주정차 공간확장 등 도시교통문제 개선에 과감한 투자를 해갈 것입니다. ▷남북한 관계개선◁ 우리는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아시아 태평양과 유럽의 전통적인 우방과 더없이 공고한 관계를 이룬 바탕 위에서 이제 본 궤도에 오른 북방정책을 더욱 내실있게 추진해갈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이 다함께 번영을 누려야 할 같은 민족공동체로서 세계사의 흐름에 동참하여 개방으로 나오도록 모든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분단 반세기를 앞둔 이제 남북한은 상호 신뢰의 바탕 위에서 대화ㆍ교류ㆍ협력을 통해 통일의 시대를 함께 열어가야 합니다. 민족통합을 위한 가장 핵심적인 이 문제는 남북당국,특히 그 최고책임자간의 회담을 통해 해결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유왕래ㆍ전면개방의 합의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서신교환과 전화통화ㆍ남북 이산가족들의 자유로운 왕래부터라도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북한측이 성의를 보일 것을 촉구하며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추진할 것입니다. 북한이응하기만 한다면 우리는 금강산을 포함한 관광자원 등을 공동개발하는 사업에 착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남북한간의 물자교역도 게속 추진하여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처를 해나갈 것입니다. 남북대화와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우리의 성의를 보이기 위해 올해 팀스피리트훈련은 축소하여 실시하기로 한미간에 합의하였습니다. 우리는 방어목적의 이 훈련을 직접 참관하도록 북한과 중국 및 중립국 감시단 4개국을 초청합니다. 이와 함께 우리는 북한이 실시하고 있는 군사훈련을 우리도 참관할 수 있도록 조처해줄 것을 촉구합니다. ▷2천년대의 설계◁ 우리가 모든 역량을 뭉쳐 우리가 맞고있는 도전을 이겨가면 10년후 서기 2000년의 우리나라는 수출 2천억달러,국민소득 1만5천달러 이상의 선진국이 될 것입니다. 균형발전정책을 본격적으로 추진해가면 근로자와 서민이 어렵잖게 내집을 갖고 수입의 상당부분을 저축하며 더 밝은 내일을 설계하는 중산층의 안정된 삶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남북한간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루어져 헤어진 가족과 친척을 만나며 금강산과 백두산을 가보는 소원을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 “남북 실질교류”… 통일 향한 새 지표 제시

    ◎정계개편 당위성 인정… 구조변화 예고/국민 자제 호소… 경제난국 타개 적극적/노대통령 연두회견 함축 노태우대통령의 10일 연두기자회견은 본격적인 집권 중반기를 맞은 국내 정치구도ㆍ남북관계 개선ㆍ경제난 극복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구상을 가식없이 밝힌 것으로 평가된다. 우선 그의 국내 정치분야에 대한 답변내용을 분석해보면 정계개편의 속도가 일반적인 관측보다는 빠르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현재의 4당체제 정치질서가 어떤 식으로든 변할 것 같다. 노대통령은 현 4당구조는 지역감정에 바탕을 두고 있고 여소야대 현상은 정치적 불안을 가져오고 있다고 말해 현 정치질서의 변화에 대한 당위성을 지적했다. 또 정계개편과 관련해 ▲의원들의 당적 이전의 자유는 법에 보장돼 있고 ▲민정당의 문은 열려있다고 상기시킴으로써 개편의 여건은 갖춰져 있음을 강조했다. 그러나 이같은 정계개편의 촉진요소와는 반대되는 제동요소로서 ▲인위적 개편 불가 ▲보혁구조의 비현실성 ▲조기총선 불실시 ▲내각제 개헌 시기상조의 입장을 피력한 것으로주목된다. 따라서 노대통령이 구상하고 있는 정계개편의 방향은 「촉진요소」와 「제동요소」의 중간지점에서 찾아질 수 있을 것 같다. 항간에 떠돌고 있는 민주ㆍ공화당의 합당 성격의 보수대연합이라든가,민정ㆍ평민당간의 정치연합설ㆍ대연정설은 모두 배제하면서도 여소야대를 타파하는 수준에서 민정당이 일부 야당의원을 영입하거나 아니면 특정 정당과 국회운영에 있어 지속적인 제휴관계를 모색하는 것이 노대통령의 복안이 아닌가 싶다. 정계개편문제가 야권으로서는 차기대권 향방과 긴밀한 관계가 있다면 노대통령으로서는 자신의 집권 중반기이후의 통치구조를 견고히 한다는 데 더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정계개편과 맞물릴 수 있는 내각제 개헌문제를 현재로서는 고려하기 힘들다고 한 것이나 여권내 후계구도와 관련,조기 거론을 피해야 한다는 입장이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이날 회견에서 분명히 잘라 말한 대목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친ㆍ인척 가운데 차기 후보자 후계자 운운은 있을 수 없다고 말한 것인데 이는 시중에 일부 나도는 김복동씨나 박철언정무장관의 대권주자 관측에 쐐기를 박은 것으로 해석된다. 노대통령의 이날 회견중 국내 정치부분이 은유법을 사용한 것이라면 남북한문제ㆍ경제문제 등은 직설법을 사용해 분명한 방안과 조치를 제시했다고 할 수 있다. 특히 남북 관계개선문제와 관련,주목되는 것은 북한 김일성의 신년사에서 밝힌 「남북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환영,원칙적으로 수용하면서 단계적인 실현방안을 역제의한 것이다. 노대통령은 김일성이 자유왕래등을 위해 「남북한당국 및 각 정당협상회의」의 개최를 주장한 데 대해 『북한측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다』면서도 자유왕래,완전개방의 합의에 시간이 걸린다면 우선 서신교환,전화통화,이산가족들의 왕래부터 실현시키자며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제의했다. 또 양측의 신뢰회복을 위해 한미간의 팀스피리트훈련 규모를 축소하고 북한ㆍ중국 및 스웨덴 스위스 체코 폴란드 등 중립국 감시위원단의 훈련 참관을 촉구하기까지했다. 노대통령의 이번 대북제의를 요약하면 전면개방원칙 환영→단계적개방안(60세 이상의 노인 이산가족 왕래,전 이산가족 왕래,서신교환,전화통화 등을 위한 통행통신협정 체결) 제시→신뢰회복 위해 상호 군사훈련 참관→통상 추진,경제공동체 건설(금강산등 관광자원 공동개발ㆍ물자교류)→전면개방으로 나아가자는 것이다. 또 이런 모든 것들을 해결하기 위해 남북당국 특히 남북 정상회담의 조속한 개최를 거듭 촉구하고 있다. 노대통령의 이같은 적극적인 대북개방화 유도제의는 6공화국 들어 가속화하고 있는 북방정책과 궤를 같이하고 있으며 북한의 수용여부에 따라서는 남북한 관계개선의 획기적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당면 경제난 극복과 관련해서는 「대국민 호소」와 함께 경제정의 실현의 처방을 제시하고 있다. 정부와 여야 정치권,기업인과 「더 가진자」의 자제와 희생을 요구하는 한편 근로자와 전국민의 자제와 협력을 호소했다. 경제의 갈등구조를 해소하고 분배와 복지를 통해 「희망의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토지공개념관련 법률과 종합토지과세의 시행 ▲금융실명제 실시,제2단계 세제개혁 ▲대기업 경제력 집중완화 ▲92년까지 2백만호 주택건설 ▲농어촌 종합발전대책을 차질없이 추진하겠다고 밝히고 있으나 이는 기존정책의 재확인수준에 머문 것이라고 할 수있다. 노대통령은 시급히 해결해야 할 당면과제로 민생치안,교육개혁,과학기술진흥,깨끗한 환경보전,교통난개선 등 다섯가지를 선정,결의와 의욕을 보였다. 또 현 경제난국을 타개하기 위해 대통령의 비상조치권 발동까지는 필요치 않다고 말함으로써 이의 극복에 자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이밖에 「수출 2천억달러,국민소득 1만5천달러」 「근로자가 내집을 갖고 저축하며 복지를 누리는 사회」 등 앞으로 10년후인 「2천년의 한국」 비전을 제시했는데 이는 난국 극복의 국민적 합의를 모을 수 있는 하나의 상징으로 이해된다. ◎대북한 제의에 담긴 뜻/신뢰성 회복 위해 북한측 입장 대폭 수용/이산가족 왕래등 실현 가능한 방안 촉구 노태우대통령의 연두기자회견 내용중 남북관계에 관한 부분은 한마디로 남북한관계를 낙관적으로 전망하는 입장에서 북한의 각종 대남제의에 대해 보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대응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노대통령은 북한의 김일성이 올 신년사에서 제의한 「남북한간의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환영한다」는 표현으로 수락함으로써 김일성의 제의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전향적인 자세를 보이는 한편 자유왕래를 위한 통행통신협정의 체결을 제안,대외선전용일 수 있는 김일성의 막연한 제의를 보다 현실적이고 구체화시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노대통령은 또 「전면개방」에 앞서 남북간에 편지교환이나 전화통화부터 실현시키고 아울러 이산가족의 자유왕래,이산가족 전체가 어려우면 60세 이상의 노인부터 당장 고향을 방문하게 하자고 제안함으로써 통일을 위해서는 실현성 없는 큰 걸음보다 실현성 있는 작은 걸음부터 시작하자는 합리적인 방안을 다시한번 촉구했다. 정용석교수(단국대)는 노태우대통령이 김일성이 제의한 「자유왕래ㆍ전면개방」에 대해 『북한측이 이해하기 어려운 전제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환영한다」는 말로 수락한 매우 적극적인 대북자세를 보인 것으로 평가한다며 『금강산 공동개발ㆍ남북한간의 물자교역등 남북 경제공동체 형성을 위한 실질적인 조치를 취해나가겠다고 약속한 것은 앞으로 보다 긍정적이며 적극적으로 대북관계에 나서겠다는 정부의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고 말했다. 정교수는 또 팀스피리트훈련 규모의 축소는 북한의 중단요구에는 응하지 않는다고 해도 그들의 입장을 대폭 수용한 것으로 북한측도 긍정적으로 평가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양성철교수(경희대)는 「통일을 위한 작은 걸음마 정책」이 노대통령의 이번 대북제의의 입장인 것 같다고 말하고 김일성의 허구에 찬 자유왕래 및 전면개방 제의에 대한 노대통령의 「원칙적인 수락」은 김일성을 다시 궁지에 빠뜨리는 결과를 빚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 양교수는 1천만 이산가족이 서로의 생사를 확인,통신ㆍ우편교류를 할 수 있도록 하자는 통신협정의 체결제안은 북한이 거부할 수 없는 현실적인 대안이기 때문에 북한이 이를 계속 거부할 경우 국제적인 비난을 면치 못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평길교수(연세대)는 노대통령이 제안한 금강산 공동개발문제는 북한측이 먼저 그 필요성을 역설해온 것으로 실현가능성이 높다고 볼 수도 있으나 기본적으로 북한이 대외개방을 할 수 있는 입장에 있지 못하기 때문에 노대통령의 대북제의가 실현될 수 있는가는 회의적이라고 말했다. 최교수는 『김일성의 신년사를 엄밀하게 검토해볼 때 북한의 태도가 변했다는 징조는 찾아볼 수 없었다』고 지적하고 따라서 노대통령의 대북제의가 현실성 있는 구체안임에도 불구하고 북한측이 실질적인 성사를 위해 적극적으로 대응하리라고는 기대할 수 없다고 분석했다. 정용석교수도 북한측이 분단이후 반세기에 걸쳐 추진해온 대남적화 책동을 포기하지 않는 한 오늘의 남북긴장 구조는 근원적으로 해결할 수 없다고 전제하면서 그러나 78세의 고령인 김일성의 사후를 겨냥해서라도 노대통령이 보여준 적극적인 대응전략은 꾸준히 계속돼야 할것이라고 주장했다. 최평길교수는 올봄에 있을 것으로 보이는 김일성의 소련방문이 북한의 정책전환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 같다고 말하고 이후 김일성이 노대통령의 적극적인 대북정책에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 「남북왕래협상」 제의/김일성/고위당국자ㆍ정당대표 참가 조건

    ◎북한방송 보도 【내외】 북한의 김일성은 1일 남북한 자유왕래와 전면개방을 실현하기 위해 남북한의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각 정당들의 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제의했다. 김일성은 이날 상오 42분간에 걸쳐 육성으로 발표한 「신년사」에서 남북한이 분단장벽을 제거,자유왕래를 실현하며 정치ㆍ경제ㆍ문화 등 모든 분야를 전면 개방하는등 통일문제 해결을 위해 「결정적인 구국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주장하고 이러한 문제를 협의하기 위해 『북과 남의 최고위급이 참가하는 당국과 각 정당수뇌들의 협상회의를 소집할 것』을 제의한 것으로 북한방송들이 보도했다. 김일성은 특히 동독의 국경개방과 장벽붕괴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밝히지 않은 채 『다른 나라에서 분단의 장벽을 개방한 데 대해 미국도 환영하고 남조선 당국도 환영하고 있는 만큼 우리나라에 있는 콘크리트장벽도 허물지 못할 조건이 없을 것』이라고 말하고 자유왕래의 전제 조건으로 한국측 지역의 콘크리트장벽의 철거를 주장하고 나섰다. 김일성은 이어 자유왕래에 대해 이산가족 문제는 언급하지 않은 채 『북과 남의 노동자ㆍ농민ㆍ청년학생들과 정치인ㆍ경제인ㆍ문화인ㆍ종교인을 비롯한 각계각층 인사들이 차별없이 상대지역을 자유로이 왕래하면서 제한없이 접촉하여 활동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면서 한국측이 「반통일 행동」을 계속하고 있다고 비난한 것으로 북한방송들이 전했다.
  • “경제 회생위해 자제ㆍ협력을 북한동포엔 희망의 한해로”

    ◎노대통령 신년사 전문 1990년대를 여는 새해 아침이 밝았습니다. 올해는 여러분 모두에게 기쁨과 행복이 충만한 보람찬 한해가 되기를 빕니다. 특히 북한의 우리 동포들이 새로운 희망을 갖는 한해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오늘 아침 맞는 1990년대는 우리나라가 선진국이 되는 「희망의 연대」입니다. 6∼7년 후면 국민소득 1만달러,서기 2000년에는 1만5천달러의 번영을 이루어 우리는 대망의 선진국 대열에 들어설 것입니다. 민주주의시대를 힘차게 진전시켜 국민 모두가 자유와 행복을 누리는 민주복지국가를 이 연대동안 이룩할 것입니다. 세기적인 변혁을 분단극복의 기회로 삼아 민족통합의 큰 길을 여는 것도 우리가 90년대에 이루어야 할 과업입니다. 불과 10년 후로 다가온 21세기를 「영광의 세기」로 만들기 위해 우리 모두 새로운 결의로 힘찬 전진을 시작할 때입니다. 우리는 그 출발선상에 다함께 서 있습니다. 나라와 온 국민에게 어둠과 빛,시련과 성취가 엇갈렸던 1980년대는 이제 역사의 한 장이 되었습니다. 빛나는 경제발전과 서울올림픽의 영광,그리고 어려움속에 활짝 연 민주주의,우리가 80년대에 애써 이룩한 이 소중한 보람은 더 큰 결실을 거두도록 키워가야 합니다. 우리 모두에게 아픔을 주고 큰 대가를 치르게 한 지난날의 문제는 이제 역사의 밑거름이 되게 해야 합니다. 지난 2년간 나라와 국민의 힘을 그처럼 소모시키며 우리의 전진을 가로막아온 과거문제의 시비는 90년대를 맞는 이제 끝내야 합니다. 물러난 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그의 재임중에 한 일에 대해 증언하는 일은 3권분립을 채택하고 있는 어느 민주국가에도 선례가 없는 일입니다. 7년 넘어 이 나라 대통령으로 재임하고 평화적으로 정부를 이양한 전임대통령이 국회에 나가 지난날의 문제를 밝히고 잘못에 대해 사과한 이제 제5공화국의 문제는 분명한 매듭을 지어야 합니다. 전임대통령의 증언에 미흡한 부분이 있다면 그것은 역사가 밝혀야 할 과제로 하고 여기서 분명한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90년대가 열린 새해에까지 지난 시대로 또다시 돌아가 이 문제의 시비를 계속하면 정치ㆍ경제의 안정과 발전은 기약할 수 없을 것입니다. 과거의 불씨로 우리 모두의 소중한 내일을 불사를 수는 없습니다. 저는 국민의 여망에 따라 이룬 여야합의를 실천함으로써 지난 시대의 문제는 여기서 정치적으로 종결짓는다는 것을 국민 여러분께 분명히 말씀드립니다. 이제 우리 모두는 더 넓은 세계로 시야를 넓히고 더 밝은 미래를 내다보며 우리의 의지를 한 데 모아 나라의 발전과 겨레의 과업을 이루어가야 합니다.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를 질서와 안정 위에 굳건히 뿌리내리도록 해야 합니다. 경제적으로는 당면한 어려움을 극복하는데 온국민이 힘을 모아야 합니다. 우리는 다같이 자제하고 협력하여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살려야 합니다. 특히 올 노사관계는 우리 경제의 앞날을 결정하는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선진국으로 발전할 굳건한 바탕을 마련하기 위해서도 지난날 고도성장의 그늘에서 소외되어 온국민들이 꿈을 이룰 수 있는 「희망의 사회」를 만들어갈 것입니다. 90년대에는 근로자를 비롯한 우리 사회의 보통사람들이 안락한 집을 갖고 자녀교육을 걱정하지 않는 안정된 삶을 누리게 할 것입니다. 각자의 일터와 맡은 분야에서 모두가 자기의 몫을 다할 때 민주번영의 소망은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90년대는 통일의 전기가 이룩되는 연대가 될 것입니다. 오늘날 사회주의국가는 혁명적인 변화를 하고 있습니다. 헝가리로부터 폴란드 동독,최근 루마니아에 이르기까지 공산당 1당 독재체제가 잇따라 허물어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세계속에서 북한만이 경직된 폐쇄체제를 고수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변화가 빨리 오느냐 좀 늦게 오느냐의 시간문제일 뿐 북한의 변화는 필연적일 것입니다. 우리는 북방정책을 통해 북한의 개방을 촉진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민족공동체로서 북한을 포용하는 정책을 더욱 적극적으로 펼쳐나갈 것입니다. 우리의 자유와 번영의 넘치는 힘이 북한을 민족통합의 길로 나오게 할 것입니다. 우리는 북한의 어떠한 변화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할 태세를 갖추어나갈 것입니다. 올해는 우리가 약소민족으로 남에게 나라를 빼앗긴 지 80년이 되는 해입니다. 분단의 비극 위에동족상잔의 전쟁이 일어난 지 꼭 40년이 되는 해입니다. 또한 새해에는 민주주의를 이루기 위해 일어섰던 4ㆍ19의거 30주년입니다. 이 민족사의 파란은 번영하는 나라,민주주의의 나라,통일된 나라를 이루는 일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절실한 소망인가를 말해줍니다. 우리는 이제 이 소망을 실현할 마루턱에 섰습니다. 폐허에서 일어나 세계에 빛나는 발전을 이룩한 우리의 뛰어난 역량을 다시한번 발휘한다면 90년대는 이 모든 소망을 이루는 「결실의 연대」가 될 것입니다. 새해 이 아침 우리 모두 21세기의 밝은 앞날을 내다보며 전진의 결의를 새롭게 합시다.
  • 90년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사설)

    우리들의 90년대는 대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미래가 항상 그러하듯이 90년대 우리의 안팎정세도 예측하기 어려운 유동성과 불확실성의 안개속에 가려 있다. 그러나 80년대 후반기에 시작된 역사적 변화추세가 이미 하나의 큰 주류를 형성하기 시작했다고 보면 한반도의 오늘과 미래의 전망은 가능할 것이다. 80년대는 실로 격동의 시기였다. 우리는 그 기간 사회의 모든 것과 연결되는 많은 것을 실험했다. 과도기의 진통에 이어서 분권화 자율화 민주화의 구도로 사회구조의 개편을 가져다준 연대가 80년대였다. 90년대는 그러한 개편구조가 안정적으로 균형을 이루며 사회적 통합의 기반으로 정착되는 시대이어야 할 것이다. 그중에서도 목표가 확연하고 과정이 진지하며 전망이 투명해야 할 과제가 있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가 그것이다. ○능동적인 자결의지의 구현 80년대 한반도는 전반적으로 겨울이었다. 그러나 국제정세는 가히 기적으로 불릴 만큼 평화공존과 탈이념,화해의 방향으로 급전되었다. 이념적인 양극 대립,핵을 둘러싼 공포의 균형상태는 일변하여 이념보다는 국가이익 우선의 실용주의가 국제관계에 새로운 동기로 등장하였다. 미소간의 화해와 군축협상이 새 국제질서를 주도했다.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정책은 동구권 개혁의 물결을 유도했다. 그 해빙의 와중에서 왜 한반도는 겨울이었는가. 아직도 이데올로기 위주의 전후 냉전논리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한반도의 남북한이 탈냉전의 시대적 조류에 유연한 대응을 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한반도의 대결구조는 근본적으로 전후 미소 양극체제의 산물이었다. 대결구조의 해소와 분단의 극복이 근본적으로 우리 자신의 문제이면서 그것이 미소를 비롯한 중국ㆍ일본 등 주변세력들의 이해관계와 그들 국가전략에 의해 해결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하는 자결의식의 결여가 80년대 한반도의 겨울을 있게 한 원인이었다. 한반도의 남북한은 이제 과감한 변혁과 민족적 화해노력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국제질서의 재편은 남의 일이 아니다. 상호 체제이념의 문제,군축시비 등 소비적 논란으로 지새울 수는 없다. 우리 내부적으로도 그러하다. 향상된 국력과 국제적 지위,민주화 개혁성과를 이제 민족대단결의 분단극복의지로 한 데 모아야 할 것이다. ○더이상 냉전의 고도일 수 없다. 국제적 긴장완화에 따라 한반도의 전쟁위험성은 다소 줄었다고 할 수 있다. 또 89년에는 사상 가장 잦았던 대화를 통해 남북한간 교류의 에너지와 신뢰의 가능성을 어느 정도 축적시키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북한은 내부적으로 그 성장과 변화에 있어 큰 차이를 드러냈다. 우리가 6공화국에 들어서서 민주화를 지향하여 폭넓은 개방과 사회정의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통일논의의 완전한 개방을 이룬 반면 북한은 폐쇄와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들은 동구공산권의 눈부신 개혁과 개방을 외면하면서 오히려 구체제의 족쇄를 풀지 못하고 있다. 구태의연한 이념과 체제의 틀속에서 안주하며 민족적인 화해와 국제적인 탈냉전의 논리를 거부하고 있다. 오늘날 우리의 북방정책은 괄목할 만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북한과 6ㆍ25 침략전쟁을 공모했던 공산종주국 소련까지도 우리와 영사관계를맺고 있다. 물론 그보다 훨씬 이르게 동구권국가들과는 공식수교관계를 이룩했다. 동족전쟁의 경험과 한반도 특수상황에 비추어 그동안 금기의 영역에 두었던 남북한 군축문제를 우리 스스로 공식거론하기에 이른 것도 군축과 화해로 상징되는 새 국제질서에 힘입은 것이었다. 한반도의 남북한은 이제 더이상 냉전의 고도로 남아 있어서는 안된다. ○평화와 통일의 선결과제 지금 우리 사회의 가장 큰 토론의 주제는 민주화와 통일의 문제이다. 그 가운데 어느 것이 선결과제일 것인가라는 물음은 무의미하다. 그 두 주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이라는 궁극적 목표에 이르는 과정을 일관하여 표리관계를 이루며 끊임없이 제기되고 토의되어야 하는 불가분의 과제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는 이제 실체로서 다가서야 한다. 남북한을 통튼 전민족의 실현가능한 목표로서 제시돼야 한다. 특히 우리는 80년대 전반을 통해 우리의 젊은 세대들이 통일에 대한 관심과 열의를 가져온 것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런 점에서 90년대 우리의 궁극적 관심의 과제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의 문제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게다가 95년이면 「분단반세기」가 된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는데 민족분단의 한과 울분은 강산이 다섯번 변하는 세월에까지 미치게 되는 것이다. 민족분단 50년의 그 시점까지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에 어떤 결정적인 돌파구를 마련해야 한다는 민족적 여망과 분위기가 무르익을 것이다. 또 그 시기까지에는 북한에서 김일성 이후의 「승계의 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그것이 동토에서의 민주화 개혁으로 연결될 경우 이 땅에서 인위적인 분단의 장벽을 허물자는 목소리는 더욱 높아질 것이다. 90년대의 남북한은 전쟁위험론따위 냉전적 유산을 과감히 버려야 한다. 그러려면 우선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의 공유가 선행돼야 한다. 상호불신의 해소이다. 그리고 어느 쪽이나 다른 쪽에 대해 체제사활의 위협적 존재가 되지 않아야 한다. 90년대의 남북한은 그렇게 돼야 하는 것이다.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