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동북아의 정치기류 예진/일 전문가 특별기고
◎한반도정세 「한ㆍ소관계」를 축으로 진전/소 경제실리 앞세워 대한접근 가속화/중 동구변혁 여파,대북유대 강화주력/한중,당분간 간접교류… 북한소는 불협화음속에
지난 3월12일부터 30일까지 중국 장춘의 길림성 사회과학원과 상해 평화발전연구소의 초청으로 처음으로 중국방문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중국에는 2주일동안 체재하며 북경ㆍ장춘ㆍ연길ㆍ상해의 대학 및 연구소를 둘러 보았다.
최근의 소련ㆍ동구제국의 변화에 따라 세계에서는 동아시아의 군축문제 및 경제교류의 가능성이 논의되고 있다. 아시아에서는 보다 큰 파문속에 국제관계를 생각하지 않으면 안된다라고 하는 견해를 가져왔다. 도쿄와 서울만을 왕복한데서야 어딘가 1990년대의 동아시아 국제흐름의 구도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하여 작년 1월부터 중국방문을 계획,이번에 실현을 본 것이다.
중국에서는 최근의 유럽정세의 변화가 아시아에 어떻게 파급되고 있다고 보고 있는가. 한국과 소련의 관계를 중국은 어떻게 받아 들이고 있는가. 한국과 중국의 관계는 어디까지 진전될것인가 등에 관해 중국의 학자들과 개인적으로 의견을 교환해 보겠다는 것이 목적이었다.
○중,한소 접근에 느긋
중국학자와 의견교환을 했을때 느꼈던 점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첫째로 중국은 대 한반도정책을 장기적 관점에서 세우고 있다는 점이다. 중국은 1백년을 주기로 외교정책을 입안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같은 상황에서 우리들이 중국의 외부에서 부터 「한반도 정세의 변화」라고 보는 것을 중국은 변화라고 보지 않는 경우도 생겨나는 이유이다.
두번째는 한국과 소련의 관계개선에 대해서이다. 소련이 한반도에의 영향을 강화하고 있다는 사실을 중국이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틀림없다. 그리고 소련의 동향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는 사실도 틀림없으나 소련의 한반도에의 적극자세가 그다지 중국에 있어 위협이 된다고는 보지 않는 것 같다. 그것은 역사적으로 보더라도 문화적 측면에서 한반도에 더욱 영향력을 갖고 있었던 것은 중국이며 한반도와의 교류의 역사는 중국이 가장 길다라는 중국의 자신에서 나오는 것으로 보인다. 한ㆍ소관계개선에 관해서는 중국은 크로스관계의 진전이 한반도에 있어서 안정의 기초가 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에 한ㆍ소관계와 병행해서 미국과 일본이 북한과의 관계를 개선해 나간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이다.
셋째로 한ㆍ중관계에 대해 중국의 학자들은 북한ㆍ중국관계를 고려할 때 한계가 있다는 견해가 많았다. 중국의 가장 중요한 국가는 북한이며 그것은 변할 수 없다. 소련ㆍ동구의 변혁 이후 북한은 여전히 고립의 방향을 취하고 있고 북한에 대해 중국의 책임이 더욱 커지고 있다고 중국은 보고 있는 것 같다.
또 중국은 한국과도 1백년이 걸리더라도 좋은 관계를 구축하고 싶으나 한국은 1주간 또는 2주간의 폭으로 한중관계를 개선해 정치적관계를 맺고 싶다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고 보임으로써 의견의 불일치가 생긴다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따라서 한ㆍ중 관계가 때로는 정체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경우도 있으나 실제로는 중국은 「북한과의 우호제일,한국과의 간접교류 추진」이라는 원칙을 계속 견지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하고 있었다. 내가 보는 바로는 한ㆍ중교류에는 중국은 4개의 원칙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즉 정치적 관계를 맺지 않고 경제적 교류는 크게 늘린다. 스포츠교류도 계속하지만 문화면에서는 간접교류에 멈춘다는 것이다. 예를 들면 한ㆍ중간의 중요한 연구소의 자매관계 결연은 하지 않는다는 기준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 4원칙은 이전부터 있어왔으며 당분간은 변하지 않는 것이 아닐까.
넷째로 북한체제의 혼란 및 불안정설에는 중국학자는 부정적이었다. 한국내의 김일성체제의 보도는 홍콩의 등소평보도와 마찬가지로 흥미본위라고 지적하는 학자도 있었다.
이상으로 중국의 인상과 중국의 한반도에의 견해를 소개했으나 이제부터 내자신의 견해를 말하고자 한다.
첫째로 한ㆍ소관계는 어떻게 될 것인가. 최근 주목을 끄는 것은 한ㆍ소양국의 급속한 접근이다. 국교수립은 시간문제로 되어 있으며 그 속도는 예상이상이었다. 최근 소련의 한반도에 대한 자세는 4개의 단계로 변화해 온 것을 알 수 있다. 우선 지난 84년5월의 김일성주석의 소련방문으로부터 86년10월의 방소까지의 시기,소련은 군사협력을 중심으로 북한에 적극적으로 접근했다. 86년10월부터 88년9월의 서울 올림픽때까지는 소련은 북한의 입장을 지지하면서도 동시에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했던 시기이다. 88년9월부터 89년9월 서울올림픽 1주년까지 소련은 북한을 지지하며 한국과의 관계를 진척시켰다. 그러나 때로는 북한을 자극하는 정책(서울올림픽 참가등)을 취해 양쪽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취했다. 북한에 대한 「한국카드」를 소련이 사용했던 시기이다.
89년9월 이후 고르바초프 정권의 유력한 브레인들이 잇달아 한국을 방문했다. 한국과의 관계를 적극적으로 진전시켜,때로는 북한을 자극함으로써 소ㆍ북한관계가 악화되더라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담한 한반도정책을 편 것이다. 바꾸어 말한다면 지난 9월 이후 북한ㆍ소련관계에의 배려보다 한ㆍ소관계에의 배려를 우선시켰다고 말할 수 있다. 그 배경에는 국내정세의 변화에 의해 개혁을 서두를 필요가 생긴 소련이 한국의 협력으로 시베리아 개발을 진척시키고 무역을 활성화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던 것을 들 수 있다. 또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방문을 앞두고 대일관계 타결을 위해서도 긴밀한 한ㆍ소관계는 소련에 있어서 유리하다고 판단했던 것이다.
○한중관계 개선 한계
둘째,한ㆍ중관계는 어떻게 볼 것인가.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를 보다 강화하고 있다. 이붕총리는 88년3월 이후 3차례에 걸친 정치활동보고를 했다. 88년3월에는 『북한은 중국의 친밀한 인국이며,중국은 북한의 자주적 평화통일의 합리적 주장과 한반도의 긴장완화의 노력을 지지하고 있다』고 부추겼다. 그러나 89년3월에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정부관계는 존재하지 않지만 민간의 경제무역은 하고 있다』며 한국과의 경제관계에 처음으로 언급했다. 이와 함께 남북대화의 진전을 기대했다. 이것은 중국이 한국과의 간접교류에 의욕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러나 지난 3월의 보고에서는 이붕총리가 한국에 대해 전혀 언급하지 않고 『최근 1년 중국과 많은 국가 특히 주변의 인국과의 관계는 한층 더 개선,강화됐다. 중국과 북한의우의는 더 돈독해졌다』고 말했다. 그 표현은 지난해 보다도 강한 것이었다.
중국의 전기침 외교부장이 3월말 기자회견에서 말한 『대만과 한반도의 통일은 동일 방식으로 되지 않으면 안된다』는 의미는 무엇인가. 그것은 중국이 한반도는 2개의 정부라도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대만 문제와 한반도 문제에는 차라리 다른 점이 많다. 같이 분단된 지역이라 하더라도 중국으로 본다면 대만은 국내이며 한반도는 외국이다. 한반도에는 한국이라는 존재가 있으며 한중간접교섭의 필요는 중국도 인정하고 있는 터이다. 또 한반도에는 소련의 영향이 있으며,주한미군이 있어 한반도의 긴장완화책과 주한미군의 유지를 둘러싸고는 주변 제국사이의 의견이 엇갈려 있는 지역이다. 그런 점에서 한반도는 대만과는 다른 복잡한 국제적 이해가 교차한다. 중국 동북부에 접하는 한반도가 갖는 지정학적 중요성은 대만의 그것과는 다르다. 따라서 중국에 있어서 대북한관계가 갖는 가치는 중국ㆍ대만관계가 갖는 가치와는 이질적인 것이며,중국에 있어서 북한ㆍ중국관계의유지는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그 때문에 중국은 북한의 연방제 제안을 전면적으로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이 통일방식은 대만문제해결과는 기본적으로 다르다. 이 「다른 방식」이라는 것은 차라리 지금까지의 정책의 확인이다. 북한에 있어서의 중국은 고민을 해결해 줄 수 있는 힘이며 중국자신도 북한에 대한 역할을 통감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의 관계는 더욱 긴밀해 질 것으로 보인다. 그것은 80년대초의 중ㆍ북한관계로 돌아가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소,북한에 쇼크요법
셋째로 소련ㆍ북한관계이다. 소련은 북한에 대해 쇼크요법을 시험중이며,그 때문에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다소 멀어지더라도 어쩔 수 없다고 보고 있다.
북한과 소련 사이에 불협화음이 나와서는 곤란하다는 시기는 지났다는 것이다.
당장 앞으로 소련의 대북한 무기공급 템포는 둔화될 것이다. 북한은 한국에 접근하고 있는 소련에 대해 동구제국에 대해 그랬던 것처럼 「배신행위」라고 비난하는 것은 어렵기 때문에 소ㆍ북한관계는 표면상으로는 조용하다. 그러나 수면하에서는 북한의 불만이 팽배하고 있으며 마침내는 불협화음이 나올 것이다.
네번째로 북한은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의 문제이다. 올 들어서 부터 북한에서는 김정일비서의 신격화운동이 진행되고 있다. 김정일의 문헌을 주석의 것과 동격으로 학습하게 된 것. 김정일이 태어났다는 백두산 밀영지의 혁명사적화 사업이 전개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소련ㆍ동구에 파견된 유학생의 귀환명령 및 동구제국에의 비판을 보면 북한은 더 한층 폐쇄적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그것이 북한에 있어서는 체제를 온존하는 길이라고 지도부는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북한이 그렇게 함에 따라 한국에 대해 우위를 견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가 있다는 사실이다. 한국은 마침내 북한이 한국에 대해 양보함으로써 정책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낙관주의자이기 때문에 남북대화는 「통일과 긴장완화」라는 총론에서는 일치하지만 각론에 이르면 대화가 중단돼 버리고 만다.
1990년대는 한반도에서는 한ㆍ소관계의 진전을 축으로 일부에서는 냉전구조를 남겨두면서 복잡한 정치적 양상이 전개될 것으로 보인다. 다케사다 히데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