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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노대통령 출국인사

    저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지며 워싱턴에서 부시 미국 대통령을 만날 것입니다. 한국과 소련 두 나라간의 정상회담은 역사상 처음있는 일입니다. 저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 이 세계에 넘치는 개방과 협력의 물결을 동북아와 특히 한반도에 미치게 하는 문제에 관해 폭넓은 의견을 나눌 것입니다. 한소 양국관계는 물론 특히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의 길을 열기 위한 방안을 논의할 것입니다. 이제 한국은 이 지구상에 냉전체제로 인한 유일한 분단국가로 남게 되었습니다. 저는 고르바초프대통령과 한소 양국관계의 발전,특히 국교정상화문제를 논의할 것입니다. 한소 양국관계의 진전은 두 나라의 번영에 도움이 될 뿐 아니라 동북아시아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할 것입니다. 지난 1년여 사이 세번째 갖는 한미 정상회담에서 저는 굳건한 우방으로서 우리 두 나라가 이 세계의 격변에 다함께 대응할 방안을 논의하고 특히 한미 안보협력체제를 확고히 다질 것입니다. 세계를 바꾸어 놓고 있는 변혁의 물결은 이제 동북아시아로 밀려오고 있습니다. 우리의 분단상황은 결코 21세기로까지 이어질 수 없습니다. 이와같은 면에서 이번 여행이 민족화해와 통일로 나아가는 우리 겨레의 앞길에 한 이정표를 세우는 것이 되기를 기대합니다.
  • 세상은 이렇게 변하고 있는데… (사설)

    3년을 끌어오던 세종대사태가 2일 새벽 드디어 공권력 진입을 불렀다. 농성중이던 학생 「전원」이 연행되어가기 위해 머리를 손에 얹고 엎드려 있는 모습이 신문사진에 나왔다. 보기에 속이 쓰린 장면이었다. 이보다 앞서 지난 31일에는 학생들이 폭력배들처럼 쇠파이프와 야구방망이로 대결하다가 마침내 머리가 허연 총장을 완력으로 밀어 학교밖으로 내동댕이치는 장면이 화면에 비치기도 했다. 학생 자기들끼리는 「총회장님」에 대한 호칭이 무섭게 깍듯하고,말끝마다 『총회장님께서 이러시고 저러시고』하며 경어를 쓰고 반드시 『총회장님께 여쭈어보고 결정하겠다』고 경건하도록 위계질서를 지킨다는 데 명색이 스승이고 경위야 어쨌건 모교의 「총장」 자격을 지니고 있는 나이든 어른을,그런식으로 내동댕이치는 현장은 환멸스러웠다. 그때의 그학생들이긴 하지만,그들이 철갑옷을 입은 진압팀에게 무릎꿇려 연행되고 있는 모습을 보게 되는 것은 가슴아프다. 대체 언제까지 이런 일들이 반복되어야 하겠는가. 그들이 학내에서 그 소모적이고 비생산적이며 반윤리적인 시위로 시간을 파괴해가고 있는 동안 세상은 어떻게 변해가고 있는가. 동구의 땅들은 철저하게 해토되어 새싹이 돋아 녹음을 이룰 지경이 되고 있다. 세계질서에 경천동지할 지각변동이 일어날 판국에 이르러 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나라가 처한 위상은 또 어떠한가. 변혁의 와중에서 핵심적인 역할를 띠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이라고 하는 중량급 뉴스에 국제 외교가가 들끓고 있으며 신선한 충격을 던지고 있는 것이다. 한때 세계를 반으로 나누어 조리하는 당자였던 초강대국이 분단된 반도의 반쪽땅에 살아남은,이념적으로 「적성국」이었던 한국에게 「실리의 악수」를 청해오고 있는 중이다. 조국이 이런 진운에 처했을때 가장 아쉬운 것은 인력이다. 경험과 발달된 기교는 있지만 기력은 쇠잔해가는 노련한 기성인력도 중요하지만 패기있고 자존심 강하며 미래를 향해 대담하게 모험할 줄 아는 젊고 새로운 인력이 더욱 절실해진다. 그것을 맡을 사람들은 젊은이이고,그중에서도 방금 대학에서 면학에 몰두하고 있는 대학생들이다. 그런젊은이들이 비록 일부지만 아직도 캠퍼스안에서 무법하게 날뛰며 파괴의식에 몰두해 있다는 것은 한심한 일이다. 5월축제를 투쟁제로 바꿔놓고 폐쇄적인 북한집단의 논리를 확성하려는데 이용하는 것처럼 구는 일부 변질된 대학가의 축제도 한탄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세종대의 경우,선량하고 성실한 다수의 학생들이 「전원유급」의 위기앞에 놓여있다. 『죄지은 사람 옆에 있다가 벼락맞기』처럼 억울한 사람이 절대다수인 이같은 사태가 생기기까지 학교측은 무얼했는지 모르겠다. 사학문제가 나오기만 하면 그 상징처럼 등장하는 것이 이 학교다. 이쯤 되면 재단측도 교수들도 「죄없음」을 증명할 수 없다. 어떤 「이기」가 작용하는지는 모르지만,어느것도 학교를 이 모양으로 만든 것은 정당화시킬 수는 없고 그렇게 확보된 사리는 곧 무너진다. 모두함께 학교를 살려 정상화시키라. 그것만이 잘못을 탕감하고 큰 득을 가져올 수 있다.
  • 북한의 신사고를 촉구한다(사설)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이루어지는 한국과 소련의 역사적인 첫 정상회담은 한마디로 오늘의 세계를 풍미하고 있는 탈이데올로기ㆍ탈냉전의 국제정치사적 변화의 대세가 가져온 불가피하고도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한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등장하고 그의 개방과 개혁 그리고 신사고외교가 시작되었을 때 그것은 이미 예고되었던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한 세계적이고도 역사적인 변화의 대세를 북한은 거부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지 모르겠다. 소ㆍ동유럽의 거센 민주화개혁의 회오리에도 불구하고 사회주의만이 살 길이라며 사회주의의 고수를 기회있을 때마다 강조하고 있는 북한이다. 사회주의의 종주국이며 북한을 탄생시키고 북한의 오늘이 있도록 지원해온 소련이 사회주의를 포기하고 혁명적 개혁을 단행하고 있는데 북한은 그것을 지키겠다고 고집하고 있는 것이다. 안타깝고 화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고수하겠다는 것인가. 세계는 놀라운 속도로 변하고 있다. 사회주의를 고수하면 하는 만큼 세계의 대열에서늦어지고 낙오할 수밖에 없다. 소련의 개혁도 결국은 사회주의 가지고는 미국등 서방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없다는 판단에서 출발한 것이다. 북한이 유일하게 믿고 있는 중국도 정치적 민주화만을 중단하고 있을 뿐이며 경제적 개혁은 소련보다 먼저 시작한 나라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중국도 북한과는 다른 것이다. 북한이 사회주의를 고수하면 한반도에서 그 결과가 어떠하리라는 것은 쉽게 내다볼 수 있다. 북한은 경제건설 경쟁에서 이미 패배했으며 중국의 대한 접근은 그것을 그대로 확인해주는 객관적 증거라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성사도 결국 한반도 현실의 반영이라고 할수 있다. 북한은 고집을 부리면 부릴수록 더 낙후되고 고립되며 궁지에 몰린다는 사실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다시한번 촉구하고자 한다. 북한은 더이상 고집을 부리지말고 고르바초프의 「신사고」에서 보는 것 같은 발상의 일대전환을 단행해야 하며 도도히 흐르는 세계사적 개혁의 대세에 동참하는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그동안 북한이 보인사사건건의 반대와 부정과 거부와 방해를 과감히 떨쳐버리고 긍정적이고 건실적이며 협조적인 자세로 전환해야 할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 소식에 북한과 중국이 충격을 받았으며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는 보도다. 북한은 이것이 한반도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심각한 정치적 결과를 가져오게 될 것으로 우려한다는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한소관계의 정상화가 동북아 평화와 안정에 기여하고 중국과 북한에 나쁜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으로 믿는다. 분단의 고착화보다는 해소에 기여할 것으로 확신한다. 우리는 북한의 고립이나 파멸을 원하지 않는다. 화해와 공존은 세계사의 조류이며 남북평화공존속에 최소의 희생으로 민족의 비원인 통일로 가기를 바라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과 한소 관계정상화는 그러한 소망을 달성하기 위한 정지작업이라고 볼 수 있다. 북한은 한소 정상회담을 우려하고 경계할 것이 아니라 스스로 변화하는 계기로 삼아야 할 것이다. 남북회담 공식대표들이 31일 남북대화거부 종결시사 성명을 주목한다.
  • 동북아에도 「신데탕트 바람」분다/한ㆍ소 정상회담의 파장

    ◎모스크바­북경­평양은 어떻게 보나/북한에 개혁압력 부수효과 기대 모스크바/신중한 반응속 새 기류 관망자세 북경/대소 의존 고려,대항조치 없을 듯 평양 오는 4일 하오 4시(한국시간 5일 상오 8시)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되는 사상 최초의 한소정상회담이 냉전후의 세계재편을 가속화 시키리라는 것은 틀림없다. 아직 국교조차 없는 한소양국의 정상이 이처럼 전격회담을 갖는 것은 냉전후 재편성되는 국제정세의 급전개를 의미하는 것이며 이것은 또한 필연적으로 아시아 태평양의 장래에 새로운 개혁의 물결을 초래하리라는 예상을 어렵지 않게 한다. 노태우­고르바초프 회담은 동북아시아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 일본의 언론과 외교소식통들이 분석한 동북아시아 관련국가의 표정을 정리해본다. ▷모스크바◁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소련의 한 관계자는 31일 워싱턴에서 『이것은 외교관계 수립을 위한 비약적인 발전』이라고 말하고 국교정상화를 중심으로 경제협력 등을 포함한 광범위한 협의가 이루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 이번 회담에 관해 『소련과 북한간의 사전협의는 없었다고 생각한다』고 주목할만한 발언을 했다. 이 관계자는 한소 정상회담이 소련과 북한과의 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해서는 논평을 회피했으나 소련측에는 한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일방적으로 진척시킴으로써 북한에 개혁을 촉구하려는 목적이 있는 것이라고 관계자들은 분석하고 있다. 이 소식통은 또 『이니셔티브는 한국측에 귀속한다』고 밝혀 이번 정상회담이 한국측의 적극외교에 의해 성사된 것임을 분명히 했다. 한편 아사히(조일)신문은 1일자 모스크바 특파원발신 기사에서 『한소정상회담이 갑자기 실현되는 배경에는 양국의 국교정상화를 이룩함으로써 한반도정세의 교착상태를 타개하고 경제적으로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는 아시아ㆍ태평양지역에의 외교공세를 본격화 하겠다는 소련측의 의지가 크게 작용한 것으로 보여진다』고 전했다. 또 소련이 지금까지 대한 관계개선에 신중한 방식을 취해왔다는 사실을 생각할때 이번 일거에 수뇌회담으로 비약한 것은 그동안 「장애」가되어온 북한의 대응에 하나의 단호한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도 말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동시에 유럽을 무대로 진행되고 있는 서방측과의 협력관계에 있어서 대공산권 수출통제위원회의 규제완화문제등 생각대로 본격화 되지 않고 있는 현재의 상황타개를 노린 측면도 있다고 지적했다. 소련의 한반도문제 전문가들도 미소 수뇌회담에 맞춰 노태우­고르바초프회담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으로 『소련에 있어서는 아시아에 대한 외교정책의 흐름의 일환이다. 중국과의 관계도 개선되었기 때문에 「다음은 한국」이 라는 논리이다』라고 받아들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고르바초프 정권의 대아시아정책은 86년 7월 아시아의 안전보장체제 확립을 호소한 블라디보스토크 연설에서 시작됐으며,88년 9월에는 크라스노야르스크에서 행한 연설에서 직접적으로 대한관계에 언급,한소접근의 흐름이 본격화 했다. 그를 위해서는 남북분단ㆍ대립이 계속되는 한반도의 긴장완화가 불가결하며 대공산권과의 교류를 확대하는 북방정책을 표방한 노대통령과생각의 일치를 보았다고 아사히신문은 지적했다. 모스크바의 동양학연구소 한반도문제 전문가나 프라우다지의 저명한 정치평론가도 노­고르바초프 회담소식에 『전혀 들은 바 없다,정말인가』라고 되물었으며 외무성 정보국도 묵묵부답이었다고 전했다. 그만큼 이번 회담은 전격적이며 고도의 「정치적」인 것이었다고 이 신문은 말했다. ▷북경◁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중국측은 일응 「무관심」을 가장하고 있다. 31일 이 문제에 관해 논평을 요청받은 중국 외무부대변인은 『그것은 그들 양쪽(한국과 소련)의 일이다』라고만 답변,중국과는 관계가 없다는 태도를 보였다. 중국공산당의 강택민총서기도 이날 일본 창가학회 이케다(지전) 명예회장과의 회담에서 한소 정상회담의 평가에 대해 『중국은 남한과 경제ㆍ무역을 중심으로 민간 왕래를 계속하고 있다. 한소 정상회담은 미묘한 문제이나 우리는 북한과의 관계에 유의하고 있다. 역사적인 관계가 있고 통일이 중요하다. 남북통일을 바란다』며 직접적인 논평을 피하고 중국의 원칙적 입장을 밝히는 데 그쳤다. 그러나 중국이 내심으로는 한소접근에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틀림없다고 일본언론들은 분석한다. 정경분리라는 명목하에 실질적으로는 한국과 중국의 경제적 파이프는 굵어지기만 한다. 그러나 소련처럼 한국을 정치적으로 인정할 수 없는 것이 중국의 약점이다. 북한과 국경을 접하고 있다는 외에 지난해 천안문사건이후 국제적으로 고립돼버린 중국에 있어서 북한은 일당독재를 견지하는 극소수의 맹우이다. 한국을 인정하는 쪽이 경제적으로는 유리하다는 것은 알면서도 외교ㆍ국방ㆍ이데올로기의 관점에서 볼때 그것이 불가능한 것이 중국의 현실이다. 그렇다고는 하더라도 중국의 일반대중이 북한을 보는 눈은 따뜻하지 않다. 중소논쟁이 벌어지면 북한은 중국편에서 서지 않고 『배반했다』라고 대중은 보고 있다. 게다가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않고 있으나 북한정권의 「세습」을 강력히 비판한다. 중국국민의 기분은 북한보다는 남한쪽에 기울어 있다. 소련의 한국접근이 어디까지 이루어질 것인가. 그 결과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 것인가.중국지도부는 그것을 신중히 지켜보고 있다. 그 결과에 따라 중국의 앞으로의 한반도정책에 영향이 나올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평양◁ 한소 정상회담의 실현은 한국외교의 승리이며,북한에 있어서는 믿었던 한쪽 기둥이 완전히 붕괴되는 것을 의미한다고 일본언론들은 지적한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북한이 소련으로부터 경제적ㆍ군사적 원조를 받고 있는 이상 소ㆍ북한관계를 결정적으로 악화시키는 대항조치를 취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말한다. 앞으로 북한은 중국에 더 한층 기울어져 소련을 견제함과 동시에 대미ㆍ대일정책에서는 점차 융화적인 자세를 보이며 한국에 대해서는 남북대화에 관한 제안공세 등으로 쫓기고 있는 국면의 타개를 꾀할 것이라고 일본에서는 전망하고 있다.
  • 정상회담 성사배경과 전망(한ㆍ소 새 시대:1)

    ◎한반도 냉전종식의 역사적 전기/북방ㆍ개혁정책 일치… 양국수교 “초읽기”/통일여건 조성에 큰 파급효과 예상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과의 6월4일 샌프란시스코에서의 역사적인 한소 정상회담은 한소 수교임박이라는 양국관계에 뿐 아니라 냉전체제의 종식이라는 세계사적 시각에서 그 의의가 엄청나게 크다. 노ㆍ고르비회담은 우선 한소 수교에 결정적인 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한소 양국간에는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가 교환설치된 이래 1년도 채 못돼 금년 2월과 4월에 주모스크바 한국영사처,주서울 소련영사처가 설치되었으며 이번에 한소 정상회담이 예상을 뒤엎고 전격적으로 성사됨으로써 양국수교는 사실상 초읽기에 들어갔다. 노ㆍ고르비회담에서는 한소 관계정상화가 핵심적인 의제로 등장될 것이 틀림없으며 미수교국간의 정상이 회담을 갖는 사실 자체가 이미 수교에 대한 기분적인 인식이 일치되어 있음을 의미한다. 따라서 이번 회담에서는 「조속한 시일내에 한소 관계를 정상화 한다」는 수교원칙에 합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같은 수교원칙을 토대로 양국 수교교섭단이나 양국 외무장관이 빠르면 7월중에 1∼2차에 서울과 모스크바 및 유엔본부 등을 오가며 수교에 따른 구체적인 문제를 논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한소 수교는 9월이전에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 않으며 한소간의 관계긴밀화 발전속도에 따라서는 노대통령의 연말 방소,2차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질 가능성도 없지않다. 한소 정상회담의 전격 성사배경에는 페레스트로이카의 장래를 경제적 번영으로 귀결시키려는 소련측의 실질적 욕구와 남북관계개선 방법을 「서울­모스크바­평양」이라는 우회적 방법으로라도 구사해야겠다는 우리의 입장이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소련으로서는 신흥공업국인 한국의 건설ㆍ제조업분야 등을 유치,자국의 시베리아개발,일반국민들의 생필품수급확대 등 경제번영의 촉매가 되게하고 또한 한국경제의 소련진입이 경제대국 일본으로 하여금 소련경제부흥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동기를 유발하겠다는 계산이 깔린 듯하다. 한국으로서는 남북관계진전,나아가 민족공동체로서 남북 통일시대를 앞당기기 위해서는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해야하나 북한이 한사코 폐쇄를 고집하고 있기 때문에 북방외교를 통해 북한을 개방쪽으로 움직이게할 필요성을 갖고 있는 것이다. 북방외교의 관건인 「모스크바」를 평양으로 가는 우회징검다리로 활용하겠다는 전략이 바로 이번 노ㆍ고르비회담 추진의 결정적 배경이었다고 할 수 있다. 한소 정상회담의 또 하나의 의의는 남북한 관계에서 조명해 볼 수 있다. 소련의 개혁ㆍ개방물결이 베를린장벽을 허물고 동구에 자유화의 바람을 불러일으킴으로써 2차대전후 지속되어온 냉전체제의 급속한 붕괴가 이뤄진 최근의 세계적 화해 무드가 「분단 한반도」에 까지 불어닥친 것이다. 냉전체제의 최후의 산물인 남북한 분단의 해소없이는 진정한 데탕트가 이뤄질 수 없다는 인식이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차 있었다면 소련과의 관계정상화 없이는 방북외교의 완결을 기할 수 없다는 판단이 노대통령에게 서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노ㆍ고르비회담은 북한에 대한 개방압력,남북통일 여건조성이란 면에서 엄청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전망된다. 소련은 이번 회담을 통해 「북한을 절대 고립시키지 않으며 그들의 체제를 무너뜨리지 않을 것」이라는 노대통령의 솔직하고도 진지한 메시지를 확인한 뒤 이를 북한측에 전달하면서 남북대화재개 등을 종용하고 북한도 개방의 길을 걷도록 권고할 것으로 생각된다. 북한산이 소련의 충고를 끝내 거부할 경우에 구사할 수 있는 대북압력카드는 매우 다양할 것으로 분석된다. 북한이 폐쇄노선을 고수하면서 집중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핵 개발관련 기술지원의 중단을 들 수 있다. 이미 소련은 북한의 핵개발을 공식비판한데 이어 소련핵기술팀을 철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또 북한의 고도무기체계가 소련무기체계로 이뤄져있는 점을 감안할때 군사적 압력이 용이하고 석유공급도 압력수단으로 구사할 수 있으며 북한외채의 80%가 소련채무인점도 충분한 영향력 행사로 작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북한은 『비록 사회주의가 어렵더라도 자본주의방식으로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사회주의의 포기는 물론 사회주의가 얻은 전리품도 포기하는 것』(5ㆍ24 최고인민회의 제9기 1차회의)이라는 폐쇄노선을 다짐했지만 결국은 소련의 압력을 점진적으로 수용해 나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따라서 중단된 남북대화나 인적ㆍ물적교류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으로 다시 가동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으며 이러한 남북 관계진전은 통일시대 개막의 여건을 성숙시켜 나갈 것으로 기대된다. 한소 관계발전이 가속화될 경우 시베리아개발에 한국의 자본ㆍ기술이 지금도 현지에 나가있는 것으로 알려진 북한의 노동력과 결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볼 때 그같은 「결합」은 남북한 관계진전에 새 전기를 제공할 것이다. 한편 한소 정상회담→양국 관계정상화로 이어질 북방외교성취는 집권후반기를 맞고 있는 노대통령의 국내 정치적 위상제고에도 큰 영향을 줄 것으로 생각되며 내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을 외치로 보상하는 효과도 거둘 것으로 보인다. 요컨대 이번 노ㆍ고르비회담은 분단시대를 열게 했던 주역과 관계정상화를 통해 분단을 해소하고 청산해간다는 의미에서 북방외교의 완결이자 분단시대의 종식을 앞당기는 결정적 전기가 될 것으로 평가된다. ◎한ㆍ소 최근 접촉 일지 ▲78년 4월=KAL기 소 무르만스크 남쪽 2백마일 빙판에 강제착륙 ▲〃 9월=한국각료로는 처음으로 신현확보사장관 세게보건기구총회참석자 소련입국 ▲79년 4월=한소 국제전화 개설 ▲83년 9월=KAL기 사할린부근 상공서 소전투기에 피격 ▲88년 1월=소련,서울올림픽참가 공식발표 ▲〃 8월=박철언대통령정책보좌관 극비방소,수교교섭 개시 ▲89년 3월=최호중외무부장관,방콕에서 아태 경제사회위원회 총회에 참석한 리가초프 소 외무차관과 접촉 ▲〃 4월=소 연방상공회의소 서울사무소 개설,대한무역진흥공사 모스크바사무소 개설 ▲〃 6월=김영삼민주당총재 방소 ▲〃 11월=한소 영사처 상호교환 개설 합의 ▲90년 2월=주모스크바영사처 개설 최호중외무장관 한소 외무장관회담제의 ▲〃 3월=공로명 초대 주소 영사처장부임,주한 소련영사처 개설,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일행 방한 ◎한ㆍ소관계 7백50년 약사/1884년한ㆍ노 수교조약… 공식외교 개시/무역사무소 작년 개설,양국관계 급진전 한국과 소련 양국은 서기 1246년 당시 고려 왕자인 왕준ㆍ왕전형제가 몽고 수도 카라코룸에서 몽고왕 정종즉위식을 계기로 러시아 수스달 공국의 제로슬라브대공과 솔란게스왕자와 첫 접촉을 가진 이래 이번 노태우대통령ㆍ고르바초프 소대통령간 정상회담성사까지 7백50여년간 공식ㆍ비공식관계를 유지해왔다. 한소 양국이 「뗄 수 없는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1861년 중로 북경조약체결로 연해주땅이 러시아영토가 됨에 따라 한로 국경이 두만강을 경계로 접하면서부터. 이후 부동함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남진정책으로 한반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었으며 1884년에는 한보 수교통상조약이 체결돼 양국간 공식외교관계가 수립되었다. 한국전쟁이후 한소 양국간 적대관계가 지속됐으나 70년대 들어 한국정부는 6ㆍ23선언등을 통해 소련을 포함한 비적성 공산국가와의 교류및 관계개선용의를 표명했다. 6공들어 한국정부의 적극적 북방정책추진과 함께 한소간 인적 교류가 증대되었으며 88년 8월 박철언 당시 대통령정책보좌관이 극비 방소,양국 수교교섭을 시작했다. 특히 88년 서울올림픽에 소련선수단이 참가함으로써 양국관계진전에 결정적 전기가 됐으며 한소 양국은 지난해 4월 서울과 모스크바에 각각 무역사무소를 교환개설했다. 이어 11월 공식관계의 시초라고 할 영사처교환설치에 합의,양국관계에 새로운 장을 열었다. 이에따라 지난 2월 주소 영사처가 개설되고 공노명대사가 초대 주소 영사처장으로 부임했으며 소련측도 3월 중순 시로추크를 영사처장대리로 임명,영사처업무를 정식개시했다. 이에앞서 지난해 6월 당시 김영삼민주당총재가 소련과학원산하 세계경제및 국제관계연구소(IMEMO)초청으로 소련을 방문했으며 3월에는 김영삼민자당최고위원과 박철언 당시 정무1장관 등 당정고위인사들이 소련을 또다시 방문,고르바초프등 소련측 고위인사들과 만나 한소 관계정상화에 합의했다. 이어 노대통령과 고르바초프간에 이를 뒷바침하는 친서가 교환됨으로써 양국은 1904년 국교단절이래 86년만에 다시 공식관계를 맺을 수 있는지평을 열었다.
  • 중ㆍ소,곧 고위회담/외무차관 10일 방중/한반도 분단등 논의

    【북경 로이터 연합 특약】 중국과 소련 두 나라는 곧 고위급 회담을 갖고 한반도 분단에 관한 민감한 문제들을 협의할 예정이라고 31일 이곳 외교관들이 밝혔다. 북경주재 소련대사관의 한 대변인은 오는 6월10일 정치국원 유리 마슬류코프와 이고르 로사체프외무차관이 이끄는 소련대표단 일행이 북경을 방문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한반도 문제가 의제에 포함되는지 아는바 없다고 말했으나 현지 외교관들은 소련대표단의 방문 목적이 이번 한소 정상회담 및 미소 정상회담의 결과를 중국측에 설명키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 “동북아에 새평화기류 형성”기대/“한ㆍ소 관계 개선”미ㆍ일의시각

    ◎북한에 충격… 무언의 개방압력 일언론/동구수교 이어 또 하나의 승리 WP지 노태우대통령이 오는 4일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과 사상 최초로 긴급 한소정상회담을 갖는다는 빅 뉴스는 도쿄(동경)외교가에 큰 충격을 주었다. 외교소식통들은 한반도문제가 앞으로 세계의 새로운 초점이 될 것으로 전망함과 동시에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연내 소련과 국교수립이 가능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일본의 언론들도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비상한 관심을 표명하면서,이의 실현은 동북아시아에 새로운 정세를 펼치려는 한국의 적극외교가 가져온 획기적인 성과라고 평가하고 있다. 당초 한소 정상회담의 가능성은 고르바초프 대통령이 오는 6월5일 미국방문을 끝내고 귀국하는 도중 극동의 캄차카에 들러 아시아ㆍ태평양 정책에 관한 중요연설을 할 것이라고 보도된 30일 하오부터 점쳐지기 시작했다. 지난 86년 블라디보스토크연설,88년의 크라스노야르스크 연설에 이은 이번 캄차카연설은 고르바초프의 포괄적인 아시아 외교연설의 제3탄이 되는것으로,동북아시아의 중심국가로 부상하고 있는 한국과의 사전협의를 거쳐 극동아시아지역에의 안정과 평화,나아가 한반도통일문제에 관한 새로운 제안이 있지 않을까라고 외교 관측통들은 전망했었다.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 관해 도쿄(동경)신문은 『한소 양국의 국교수립과 경제협력,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동북아시아정세를 중점적으로 논의할 전망』이라고 분석하고 『정상회담의 실현은 사상 초유의 일일뿐만 아니라 제2차대전 이후 남북한으로 분단된 한반도정세에 극히 중요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신문은 『소련정부는 지난 3월 소련을 방문한 김영삼 민자당대표최고위원과의 회담에서 한국과의 국교수립에 원칙적으로 합의했으나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국교수립의 시기에 관해서는 언급하지 않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왔다』고 말하고 『그러나 최근 소련매스컴에는 북한의 체제를 비판하고 개방ㆍ민주화를 요구하는 기사가 몇차례에 걸쳐 등장하는 등 현저한 변화를 보였다』고 설명했다. 아사히(조일)신문도 해설기사를 통해 『소련의 대한수교수립은 경제분야를 중심으로 얻을 수 있는 장점이 크다』고 분석하고 『노대통령은 이번 정상회담에서 고르바초프대통령에게 한반도 정세에의 영향력행사를 요청하는 한편 양국의 조기 국교수립을 강력히 촉구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한국정부가 이번 회담계획과 관련,이정빈 외무부 제1차관보를 미국에 긴급파견했으며 북방외교의 주도적 역할을 담당했던 박철언 전정무1장관이 최근 동구방문을 마치고 귀국길에 미국에 들른 사실에도 주목했다. 그러나 이 신문은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에 강력히 반대하고 있음은 분명하다고 우려를 나타냈다. 또한 소련은 동맹국인 북한의 태도에 여전히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어서 이번 회담결과의 성패는 소련측에 달려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은 노­고르바초프의 회담은 지금까지 소련의 개혁과 동구의 변혁에도 불구하고 외형상으로는 변화의 조짐을 보이지 않던 한반도의 냉전구조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오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서방측 소식통의 말을 인용,『이번 고르바초프대통령과의 회담에서 노대통령은 양국 경제협력의 가일층확대 이외에 한반도의 긴장완화를 위한 소련의 영향력 행사,사할린잔류 한국인의 모국방문등에 관해 소련측의 협력등을 요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이 신문은 또 『소련과 중국과의 관계개선을 목표로 하는 한국의 북방외교는 남북관계를 안정시키기 위한 환경조성에 역점을 두고 있다』고 지적하고 『이 때문에 고르바초프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특히 북한의 개방화촉진이 초점이 될 것이며 미일을 비롯한 서방측이 우려하고 있는 북한의 핵개발의 공포도 토의될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그러나 요미우리신문은 워싱턴의 소식통들이 이번 회담에서 『조기 국교수립등의 의제가 결실을 맺기에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고도 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담실현자체만으로도 획기적인 일이며 한국ㆍ북한에 대한 일ㆍ미ㆍ중ㆍ소의 크로스 승인에 한발 더 다가설 가능성이 크다고 예상했다. 이와 함께 노대통령은 워싱턴을 방문,이번 한소 수뇌회담의 결과를 포함,미국정부와 서방측의 대소ㆍ대중ㆍ대북한정책을 검토ㆍ재조정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이 방미중 노태우대통령과 회담을 갖기로 동의한 것은 소련의 주요 대한관계개선조치로서 북한의 김일성에겐 외교적 모욕이 될 것이라고 31일 뉴욕타임스지가 보도했다. 타임스지는 소련언론이 개방문제와 관련하여 김일성의 통치를 비난하고 있는것과 때를 같이해 노­고르바초프회담이 열린다는 사실에 주목하면서 소련에 대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촉구해온 미국관리들은 노대통령을 미국에서 만나기로 한 고르바초프의 결정을 기쁘게 생각하고 있다고 전했다. 타임스지는 한국문제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이번 회담은 ▲한소관계정상화의 행보가 빨라지고 ▲소련이 북한보다 한국을 중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며 북한에게는 타격이 될 것이라고 풀이했다. 타임스지는 최근 소ㆍ북한관계는 마찰을 드러내기 시작했다고 지적하고 그 예로 북한의 핵무기 안전협정체결 지연에 대한 소련의 불만,북한의 소련특파원 추방,소련언론의 북한관,소련역사가의 남침설 및 김일성정체폭로등을 지적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이 북한지지국들을 상대로 추진해온 문호개방정책의 승리』라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소련은 북한으로부터 서서히 손을 떼고 있으며 이번 회담은 서울의 모스크바 동구 잠식에 화를 내 온 평양을 격분 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지는 이번 회담에서 노ㆍ고르바초프는 전면외교관계 수립방침을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하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이 회담을 일괄적으로 지지할 것이나 보수주의자들은 소련과의 급속한 화해에 대해 못마땅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고 전했다. 한편 워싱턴타임스지는 이번 회담은 노대통령의 북방정책의 극적인 성공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보도했다.
  • “노­고르바초프회담 소식에 충격 중국­북한,대응책 부심”

    ◎교도통신 보도 【도쿄 연합】 중국과 북한은 노태우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이 한소 정상회담을 갖기로 했다는 소식에 큰 충격을 받고 있으며 각각 정세분석과 향후 대응책 검토에 여념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고 교도(공동)통신이 31일 북경발로 보도했다. 이 통신은 중국과 북한은 지난해 봄부터 시작된 소련ㆍ동구의 대한 접근이 남북분단을 고착화시키는 교차승인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장 경계해 왔다고 지적하고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 양국이 외교관계 수립에 합의하고 소련이 한국의 유엔가입을 지지하게 될 경우 소­북한관계는 결정적으로 악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 “북방외교의 대미… 실질경협 추진을”/한ㆍ소 정상외교 이렇게 본다

    ◎최평길/유엔가입 지원도 기대 이번 한소 정상회담에서는 양국 외교관계수립과 한국의 유엔가입 지원문제가 가장 중요한 의제로 등장할 것이다. 유엔가입문제는 이번에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가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어떤 간단한 원칙이나 천명하고 실질적인 문제는 차후에 외교교섭을 통해 풀어가자는 선에서 합의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 그러나 한소외교관계 수립은 보다 분명히 나타날 것이다. 아마도 올해말이나 내년초에 대사급 수교를 하기로 이번에 합의할 가능성이 높다. 이어 내년초 김영삼 민자당 대표최고위원이 모스크바를 방문하면 노대통령의 방소초청이 나올 수 있을 것이다. 그 시기는 내년 중반이나 하반기로 추측할 수 있다. 이같은 급작스런 한소관계의 접근은 김일성정권에 대해 「실질적인 남북대화」에 임하라는 촉구신호가 될 수 있다. 북한은 딜레마에 빠질 수 밖에 없게 된다. 이같은 상황전개를 받아들일 수도,안받아들일 수도 없게 된다. 따라서 북한은 새로운 돌파구를 마련하려할 것이 분명하다. 그 방법은 우선중국과의 관계를 보다 밀착시키는 일이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결국 내부개혁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을 것이며 그렇게되면(선전차원을 넘는) 실질적인 남북대화의 길도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소의 접근으로 미국은 보다 홀가분한 입장에서 북한을 대할 수 있을 것 같다. 다만 한국이 너무 독자적으로 대소경제ㆍ군사관계를 진전시켜 나가지 않을까 우려할 수는 있을 것이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내년초 일본을 방문할 계획이다. 만약 이때 일소간의 현안인 북방 4개섬 문제가 풀리면 우리에겐 심각한 문제를 제기할 수도 있다. 일본의 소련진출이 본격화될 수 있고,그렇게 되면 한소간 경제ㆍ기술협력이 큰 타격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빨리 소련에 진출해서 그들이 보유한 첨단기술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내년초 고르바초프가 일본에 오는 길에 한국도 방문할 수 있도록 미리 손을 써볼 수도 있을 것 같다. ◎정용석/북한,빗장 더 걸을수도 북한이 한소 정상회담을 예상하지 않았던 것은 아니었겠지만 이처럼 빨리 이루어지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 보면 기습적일 수밖에 없는 이번 회담에 엄청난 충격을 받을 것이고 또 당황할 것으로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과 소련의 관계는 당연히 악화될 것이다. 소련은 동구권의 개방화와 민주화를 유도 내지 구현시키는 데 직ㆍ간접적으로 압력을 행사,관철시키는 데 성공했으나 북한만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때문에 소련은 한소 정상회담을 앞당김으로써 다시 한번 북한의 개방을 촉구하는 의미도 있는 것 같다. 북한은 한소의 급격한 정치적 접근으로 말미암아 대내외적으로 곤경에 빠질 수 밖에 없으며 앞으로 선택할 수 있는 길은 두가지 밖에 없다. 하나는 지금의 폐쇄적인 체제에서 벗어나 단계적이나마 민주화와 개방화를 추진,국제적인 질서에 순응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더더욱 빗장을 무겁게 닫아 걸고 「우리식대로 살겠다」는 이른바 주체적인 사회주의 노선을 공고히 하는 것이다. 그러나 북한은 김일성이 권좌에 버티고 있는 한,또 제9기 최고인민회의를 계기로 이루어진 권력구조의 개편결과를 놓고 볼때 앞으로 더욱 폐쇄내지 고립정책을 다그쳐갈 것이며 대내적으로 주민에 대한 감시와 사상교육을 강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은 한소관계의 급진전에 맞서 미국ㆍ일본을 비롯한 서방진영과 관계개선을 모색할 수도 있겠지만 김일성ㆍ김정일 세습체제의 동요를 우려한 나머지 그같은 시도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최고인민회의내에 외교위원회를 구성하고 그 위원회를 강화한 것은 서방국가들과의 외교관계를 발전시키기 위한 제도적 준비였지만 한소 정상회담으로 이 위원회의 기능도 약화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과의 관계는 상호의존적인 차원에서 보다 유착될 것으로 보인다. 또 대남전략에서는 앞으로 그 경색도가 훨씬 심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유석렬/한­중 관계에 긍정적 효과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전환기적 한소관계가 공식외교관계로 가게 되는 전기가 되기를 바란다. 특히 시베리아개발등 한소경제협력도 보다 큰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번 정상회담은 한반도의 통일문제에 대해서도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본다. 그러나 당분간은 북한이 과거 그들의 종주국인 소련에 대한 불만을 갖게 될 것이므로 불쾌감을 표시하는 등 한소관계의 진전에 저항할 것으로 본다. 이렇게 본다면 단기적으로는 이번 정상회담으로 오히려 북한측의 대한자세 변화가 지연될 가능성도 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북한의 입장에서는 엄청난 충격이며 궁극적으로 북한이 과거와 같이 폐쇄정책을 지속할 수 없을만큼의 압력을 작용할 것이다. 한소 정상회담 뿐만 아니라 미소 정상회담에서도 한반도문제가 거론된 것으로 보이며 이같은 일련의 과정은 북한으로 하여금 더이상 개혁과 개방이라는 시대조류를 역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무형의 압력이 될 것이다. 북한은 단기적으로 이번 회담을 「한반도분단 고착화음모」라고 한소 양측을 동시에 비난하면서 중국과의 유대를 강화하는등 중국 편향적인 노선을 펼 것으로 보인다. 이럴 경우 역시 단기적으로는 중국이 북한을 외교적으로 두둔하는 제스처를 취할 것으로 보이나,중국 역시 세계사의 큰 흐름을 직시한다면 북한의 폐쇄노선이 옳지 않다고 설득할 것이므로 장기적으로 볼 경우 이번 회담은 한중관계개선에도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다. 소련은 시베리아개발참여ㆍ교역증대 등 우리가 필요로 하는 것 이상으로 그들의 경제적 어려움을 벗어나기 위해 한소경제협력에 대한 큰 기대를 갖고 있다. 소련은 일본이 현재 적극적인 일소경제협력을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일본을 끌어들이기 위한 수단의 하나로도 한소경제협력의 진전을 기대할 것으로 본다. 물론 소련은 아시아­태평양지역 진출을 위해서도 우리의 역할을 기대하고 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도 이번 정상회담을 계기로 한소관계에는 획기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 개막전야의 현지표정(워싱턴 미소정상회담:3)

    ◎소수민족 시위 예상… 고르비경호 비상/회담외 「자유시간」 많아 미의 전관리 골치/87년 첫 방미때보다 관심 덜보여 기념품인기도 시들/세계각국 취재진 5천여명 경쟁… 전화 1천회선 가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 일행을 태운 18대의 비행기가 워싱턴 근교 앤드루스 미공군 기지에 도착하는 30일 저녁(미국시간)부터 그가 미네소타로 떠나는 6월3일까지 세계의 관심은 워싱턴으로 쏠려 두 초강국 정상의 발언과 결정에 귀를 기울일 것이다. 최근 워싱턴 포스트지와 ABC뉴스가 실시한 여론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들의 73%가 고르바초프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건 조지 부시 미대통령에 대해 호감을 표시한 80%에 비해 크게 뒤지지 않는 것이다. ○…이번 정상회담에 대한 관심의 열기는 고르바초프의 첫 방미(1987년)때와 비교해 크게 가라 앉아 있는 편이다. 노점상들은 예전처럼 티셔츠 스티커 핀 등 기념품 판매로 재미 볼 생각을 하지 않고 있으며 학교들도 견학 계획을 세우지 않고 있다. 과거보다 많은 그룹이 항의 시위를신청했지만 시위 조직자들은 『참가자가 과거 보다 적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공항 영접행사가 끝난뒤 소련제 질 리무진을 타고 워싱턴에 입성한다. 그의 수행원 2백50명이 뒤를 따르고 35대의 미경호차와 FBI(미연방수사국)특별기동대ㆍ비밀경호헬기 등이 이를 호위한다. 고르바초프는 영빈관(블레어 하우스)을 이용하라는 미측 제의를 거절하고 백악관에서 4블록 떨어진 곳에 위치한 소련대사관에 머문다. 대부분의 수행원이 투숙하는 메디슨호텔은 시위자들이 1백피트 간격을 유지해야 하는 외국공관 대우를 받는다.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의 미국 방문을 앞두고 리투아니아계 주민과 베트남,아프간인들뿐 아니라 한국주도하의 남북한통일을 원하는 사람들을 비롯한 각양각색의 미국내 소수민족단체들이 항의시위를 벌일 계획으로 있어 그의 신변경호에 상당한 어려움이 따를 것으로 보인다. 소련측 방문단의 대변인인 블라디미르 우스티멘코는 29일 고르바초프가 미국에 머무르는 동안 그의 신변보호를 위해 『대규모의 중무장한 경호인력이 동원될 것』이라면서 미국안의 소수민족들이 수십건의 항의시위를 벌일 것으로 보여 경호원들이 잠시라도 긴장을 풀기 어려울 것이라고 걱정했다. 미네소타주의 미니애폴리스에서는 에스토니아,라트비아,리투아니아 등 발트해연안공화국출신 주민들이 평화적인 시위를 벌일 계획이며 캘리포니아에서는 아르메니아인들과 에리트레아인들이 항의집회를 준비하고 있는 등 고르바초프가 가는 곳마다 시위가 끊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고르바초프의 경호인력규모는 미국이나 소련 양쪽 모두 1급비밀로 돼 있다. ○…이번 고르바초프의 방미를 앞두고 미국관리들을 가장 골탕먹인 것은 그의 체미기간중 미국정부가 관여할 수 없는 자유시간이 너무 많다는 점. 미국대통령이 나들이할때 몇달전부터 분단위까지 빈틈없는 일정을 마련하는데 익숙해진 미국 관리들의 입장에서는 체미기간의 많은 부분이 공란으로 비어있는데 초조하다 못해 안달이 날 지경.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고르바초프의 일정이 윤곽을 드러내고 있으나 미국측은 정확히 몇시간동안누구누구를 만나 무슨 얘기를 나누려 하는 것인지 감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스탠퍼드대학의 대변인은 『우리는 소련측 선발대로부터 고르바초프가 4일 상오 11시에서 하오 1시사이에 온다는 것을 통보받았을 뿐 아무리 캐물었지만 아무것도 듣지 못했다』고 푸념. 미국관리들은 모든 구체적 일정을 고르바초프가 직접 결정하는 것 같으며 따라서 그가 소련관리들에게 지시하기 전까지는 아무것도 알수 없다고 한마디. ○…고르바초프의 워싱턴방문을 취재하기 위해 1백70여명의 소련기자들을 포함,전세계에서 5천여명의 기자들이 모여들고 있으며 조지 워싱턴대학 구내 스포츠시설에 설치된 프레스센터에는 1천1백50개회선의 전화선이 가설됐다. 3만평방피트의 카펫이 깔린 농구장은 이 기간동안 백악관의 브리핑장소로 활용될 예정. ○…고르바초프는 워싱턴을 떠나 귀국길에 캘리포니아를 방문할 예정인데 16시간의 캘리포니아 체류기간중 관심을 끄는 행적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반공산주의 자료가 집대성돼 있어 보수주의의 요새랄 수 있는 스탠퍼드대학 후버연구소를 4일 방문하는 것. 레온 트로츠키의 노트,레닌의 1912년 서한,1917년 3월의 프라우다신문 등 소련에도 없는 진귀한,특히 혁명에 관한 자료들이 산적해 있는 후버연구소를 소련의 집권자가 찾는다는 사실에 흥분한 연구소 관계자들은 『그의 방문이 정말 실현된다면 그 자체가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역사에 대한 관심과 상상을 초월한 개방적 행동에 찬사를 아끼지 않는 그들은 『소련혁명기의 잃어버린 역사의 공백을 메워주기 위해 고르바초프가 희망한다면 연구소에 소장중인 방대한 자료들의 마이크로필름을 제공할 용의가 있다』고 피력. 러시아혁명과 1ㆍ2차 대전의 혼란기에 방치했으면 모두 파기됐을지도 모를 자료를 수집해온 후버연구소는 그동안 냉전기간중 대소공격용 보수이론을 제공하는 산실이었으나 고르바초프의 방문을 계기로 대결의 차원이 아닌 진리탐구의 차원에서 과거 역사를 재조명하는 미소협력의 장소로 탈바꿈한 셈.
  • 노대통령의 방일을 보고(특별기고)

    ◎한일은 「마음의 벽」부터 헐때/동반시대 발맞춰 젊은세대 교류 넓혀야 노태우대통령이 일본을 방문중이던 지난 25일 도쿄(동경)도내의 학교에 강의를 나가기 위해 자동차로 아오야마(청산)에서 이치가야(시□곡)를 경유할 때의 일이었다. 평소의 분위기와는 어딘가가 다르다는 느낌이 들었다. 경비가 삼엄한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아무래도 그것만은 아니었다. 그것은 일한 양국의 국기가 도로 양쪽의 가로등에 장식되어 5월의 바람에 나부끼고 있는 광경 때문이었다. 1984년 한국대통령의 방일 때에도 그런 풍경은 있었지만 그때는 필자가 미국유학중이었기 때문에 도쿄거리에 두나라 국기가 나란히 펄럭이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다. 비가 많은 도쿄의 봄인데도 이번주는 보기 드물게 5월의 맑은 날이 많아 푸른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풍경은 잘도 어울렸다. 필자가 한국에 유학했던 13년 전에 이런 분위기를 상상하기란 어려웠다는 것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일본에 있어서 「한국」은 크게 변했다. 한국가수가 일본의 TV에 상시 출연하게끔 되었고 일본의 가라오케 술집에서는 한국노래 전용의 가요곡집이 구비되어 있다. 아카사카(적판)을 걸으면 「군고구마」라고 한글로 씌어있는 리어카를 만난다. 특히 젊은 세대의 한국에 대한 이미지가 변화하고 있다. 한국으로 수학여행을 가는 일본고교생이 늘고 있고 올림픽때 정도는 아니지만 일본인 사이에 한국어 학습은 여전하다. 인기가 있는 학교에서는 제2외국어로서,배우는 학생숫자의 순위는 외국어 가운데 5번째 안에 든다. 서울∼도쿄사이 비행기 안에는 젊은 일본인관광객이 넘친다. 또 규슈(구주)간사이 (관서)를 중심으로 한국으로부터의 관광객과 마주치는 일도 흔해졌다. 거리의 2개의 국기가 도쿄의 풍경에 잘어울렸다는 사실은 아직도 많은 과제가 남아 있다고는 하나 80년대에 급속히 개선되어온 일한관계를 상징하고 있는듯 했다. 국제정치로 눈을 돌리면 1989년은 동구를 중심으로 유럽정세가 크게 변한 해였다. 현재 독일통일의 기본방향이 잡혀가고 있으며 유럽의 장래가 보인다. 그것과 비교한다면 아시아에서는 남북한통일문제등 한반도를 중심으로 정치ㆍ경제적으로 여러가지 복잡한 요소가 아직 남아있다. 1990년대는 동아시아의 정세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10년이 될 것이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까지 변하기 쉬운 역사를 가진 일한관계가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가 주목되고 있다. 그같은 속에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이 실현된 것이다. 되돌아보면 일한관계는 3단계의 시대를 거쳐왔다. 제1기는 1948∼1965년이다. 이 시기는 양국간에 국교가 없이 마찰이 많았던 시기였다. 제2기는 1965년부터 현재까지이다. 박정희정권의 「우선 건설을」이라는 정책을 출발점으로 국교가 수립되어 일한관계는 급속히 개선됐다. 그러나 과거 일한관계의 고난의 역사위에 구축된 관계이기도 했기 때문에 80년대에는 교과서문제 및 경제협력문제 등이 양국간에 일어났다. 이번 일본방문에서 앞으로의 관계에 대해 노태우대통령은 『양국은 과거의 어두운 그림자를 씻고 보다 깊은 선린우호관계를 수립할 필요』를 지적했고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는 『일한양국의 선린우호는 일본의 노력이 한국민에게 납득되어야 비로소 흔들리지 않는 것이 된다』고 말했다. 이처럼 일본과 한국은 「미래지향적 관계」를 구축하는 일에 대해 쌍방이 같은 생각을 갖게끔 되었다. 아시아ㆍ태평양의 번영을 위해 양국이 협력관계를 한층 더 높여 간다는 총론에서 양국이 같은 생각을 갖게된 것이다. 즉 전후 일한 관계사의 제3의 단계에 접어 든 것이다. 이것은 각론은 이제부터다라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번 대통령의 방일은 하나의 계기이며 이것을 앞으로 어떻게 살려나가느냐 하는 것이 중요성을 갖게 됐다. 『일의 시작이며 앞으로 살려야만 의미가 있는 것이기에 일한관계를 일보 진전시키는 기운이 솟아났다고 의미를 부여해야 한다』(스노베 전주한대사)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일한관계의 장래를 생각할 때는 다음과 같은 사항을 이해하는 것이 적어도 중요하게 될 것이다. 첫째로 한국에는 『일본은 한반도가 통일되면 통일코리아가 일본의 라이벌이 되기 때문에 현상고정을 바라고 있다』라는 견해가 있다. 일본인은 결코 한반도통일에 반대하고 있는 것은아니다. 실제는 일반의 일본인은 한반도통일문제에,혹은 분단이라는 의미에 대해 구체적으로 생각해 본 일은 적다. 그러나 한반도ㆍ아시아지역의 현실을 깊이 생각,일본의 역할을 강구해보자는 젊은이가 일본에는 늘어나고 있다. 일본의 대학에서 증가해온 국제정치관계의 학부와 강의,한국관계의 강의는 그같은 사실을 나타낸다. 북미와 유럽의 케이스에 있는 것처럼 하나의 지역이 번영을 위해 노력할 때,한 나라의 경제만이 돌출하기 보다는 복수의 동등한 경제력을 갖는 국가가 서로 경쟁하는 것이 그 지역의 경제이익으로 되는 것이며 또 지역의 안정에도 도움이 되는 것이다. 북미에서의 미국과 캐나다,유럽의 서독 프랑스 네덜란드 등이다. 한반도가 통일되었을 때 일본과 한반도와의 관계는 한층 성숙한 파트너의 관계가 되며 동아시아의 경제발전에 기여할 것은 세계의 역사가 증명하는 그대로일 것이다. 둘째로 일한의 상호인식이다. 일본인은 한국인이 반일일색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한국의 대일협력요청이라는 예를 들어 보더라도 한국의 대일기대감이 나타나 있는 것이기 때문에 반일이라는 말만으로는 설명이 되지 않는 것이다. 또 일찍이 「어두운」이라는 한국이미지는 개선되어 급속히 실상에 접근하고 있다. 활기에 넘치며 낙천적이고 감정표현이 직선적이다. 동시에 격렬하고 다정하다고 하는 한국인의 성격은 일본에서는 겨우 최근에 들어 알려지게 되었을 뿐이다. 쌍방의 상호이미지를 실상에 접근시키기 위해서는 인적 교류,특히 젊은 세대의 교류를 축적시키는 방법밖에는 없을 것이다. 앞으로 진정한 선린우호관계의 구축을 위해 양국의 노력이 시작되려고 하고 있다. 90년대의 아시아에서 예상되는 복잡한 국제정치상황을 생각할 때,이 일한간의 좋은 분위기를 소중히 여겨 협력관계를 구축해 나가야 할 것이다.
  • 김일성의 착시와 무감각(사설)

    북한의 김일성이 평양당국의 「국가주석」으로 「재추대」됐고 아들 김정일이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전면에 나섰으며 권력서열에 변동이 있었다고 해서 우리는 별로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 한반도문제와 남북한대화및 교류에 관한 한 우리의 관심은 항상 본질문제 해결에 있기 때문이다. 작금 평양쪽에서 전개되고 있는 그들의 당직내각 개편은 솔직히 그들끼리의 권력놀음에 불과할 뿐 민족문제 해결에는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마디로 이번 평양당국의 권력체제 개편은 첫째 김일성 절대유일체제의 계속유지와 둘째 부자세습체제의 강화,셋째 대남ㆍ대외정책면에서의 비평화적 접근이라는 종래의 그들 정책방향과 당면 노선을 다시 확인한 것에 불과하다. 그보다 우리는 그들이 지난 23일과 24일 이틀에 걸쳐 개최한 전원위원회와 최고인민회의에서 김일성이 제시한 이른바 시정연설내용에 더 주목하고자 한다. 김일성은 먼저 그 자신이 40여년간에 걸쳐 강압적으로 견지해온 사회주의 이념및 독재권력체제와 관련해 『불치의 중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은 사회주의가 아니라 제국주의』라고 했고 『사회주의는 역사의 요청이며 인류가 택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말했다. 한마디로 시대에 뒤떨어진 낡고 비인간적인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겠다는 얘기다. 이에 이르러 우리는 김일성의 무디기 짝이 없는 국제적 현실감각과 한반도문제 인식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을 다른 말로 정치적 단견이며 착시라고 해서 틀리지 않는다. 세계는 지금 그야말로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다.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이 거듭하고 있는 변신(개혁과 개방의 물결)에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니라 국제적 분쟁의 해소와 분단국가들의 통일로까지 줄달음치고 있는 것이다. 동서독과 남북예멘이 그러하다. 중국과 대만도 본질적인 접근을 시도하고 있다. 특히 남북예멘은 역사적 전통적으로 가장 어려운 종교적 장애를 헐고 국가연합을 선포하기에 이른 것이다. 김일성이 그런 세상움직임을 모를리 없다. 그런 점에서 사회주의 고수는 시대착오적이다. 매우 배타적이고 적대적인 자세이기도 하다. 국제적 현실이나 역사의 추세를 외면하고 스스로의 체제와 이념에 안주하겠다는 것은 다시말해 상대의 체제와 이념을 차단하고 적대시하겠다는 것이다. 그것이 한반도문제에 적용될 때 반통일,비평화,폭력문제 해결자세가 되는 것이다. 우리는 그것을 경계하고자 한다. 그는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항상 구두선처럼 내세우는 자유왕래를,대유엔정책과 관련해서는 단일국호하의 유엔가입을 내세웠다. 그러나 여기서도 그 내용의 비현실성과 허구성이 발견된다. 남북한 자유왕래의 전단계과정은 무엇인가. 상호간의 신뢰를 바탕으로 한 대화와 교류이다. 그것이 점진적인 과정을 거쳐 군축으로까지 간다면 더욱 바람직하다. 그러나 북한당국은 지금 아예 대화와 교류조차 차단,거부하고 있다. 얼마전에 비록 민간차원이긴하나 계약서명까지 한 금강산공동개발등 경제협력을 전면 취소하고 나섰다. 바로 며칠전에 적십자 인도주의 원칙에 따른 이산가족 상봉을 위한 남북적회담 재개도 거부했다. 게다가 존재하지도 않는 콘크리트장벽의 철거를 내세우고 이쪽의 기존법령의 폐기를 요구했다. 문제를 풀려는 자세가 아니라 아무것도 하지 않겠다는 거부의 몸짓과 다를 바 없다. 대 유엔문제도 그러하다. 단일국호아래 한자리로 가입한다는 내용은 결국 종래의 그들 주장인 고려연방제의 연장선상에서 비롯된 것이다. 또한 북한 자신도 유엔가입문제에 성의를 보이고 있지만 「분단을 고정화」하려는 남한측의 반대로 타결을 보지 못하고 있다는 대외선전적인 차원의 선동과 다르지 않다. 한국이 현재 북방외교정책의 결실에 힘입어 추진하고 있는 유에단독가입에 제동을 걸려는 것이다. 전반적으로 아직 북한으로부터는 아무런 변화의 조짐이 보이지 않는다. 오히려 핵확산금지조약(NPT)에서 탈퇴하겠다는 위협등으로 고립정책을 강화하는 듯하다. 북한은 그렇다고 해서 변화의 필연성마저 외면하지는 못할 것이다. 그러니 어떻게 할 것인가. 그들은 변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우리들의 관심과 주목의 대상인 것이다.
  • “남북한 단일의석 유엔가입 북 제의는 비현실적”/외무부당국자 논평

    외무부당국자는 26일 북한 김일성의 유엔 단일의석 공동가입제의와 관련,『북한측이 그동안 남북한 유엔가입은 한반도의 분단을 영구화한다는 논리아래 통일이 실현된 뒤 하나의 국호와 의석을 가지고 들어가야 한다고 계속 주장해온 사실에 비춰볼 때 이번에 처음으로 그들이 「통일실현전이라도 유엔가입」가능성을 언급한 점에 유의한다』고 논평했다. 이 당국자는 『그러나 북한측이 말하고 있는 「단일의석 동동가입안」은 남북한관계의 현실과 국제사회에서의 규범과 관행에서 뿐만 아니라 회원국의 자격에 관한 유엔헌장규정을 고려할 때 매우 비현실적인 방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 미래를 위한 동반자관계 필요(사설)

    한일간의 우호협력관계를 보다 긴밀히 만드는 것이야말로 현안의 해결을 위해서나 아시아·태평양시대를 열어 나가려는 공동목표를 추구하기 위해 두나라 모두에 꼭 필요한 일이다. 노태우대통령의 이번 일본방문은 이같은 인식을 양국 국민들에게 확산시켰을 뿐 아니라 가시적이고도 실질적인 양국 협력방안을 이끌어내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고 믿는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방일을 통해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반성과 사과를 요구했던 것은 일제의 한반도 강점과 식민통치라는 과거가 우리 국민들의 마음속에 응어리져 양국관계의 차원높은 개선을 제약하는 요인이 되어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징적으로나마 과거청산이 필요했고 그럼으로써 양국간 새로운 협력관계도 보다 밀도있게 진전될 수 있다는 생각에서 그 계기를 잡은 것이 노대통령의 방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일본의 진정한 사과는 양국간에 보이지 않게 가로놓인 감정의 벽을 무너뜨릴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아키히토 일왕은 노대통령을 맞는 만찬사에서 「통석의 염」이란 말로 과거사에 대한 사과를했다. 그 어의를 놓고 해석이 구구하지만 양국 정부가 이 말속에 사과와 반성의 뜻이 있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과거보다는 현재와 미래의 발전이 더욱 중요하기에 더 이상 일왕의 말뜻을 갖고 왈가왈부하고 싶지는 않다. 다만 이번 사과가 지난 84년 당시의 전두환 전대통령 방일때 고 히로히토 일왕이 표시한 사과에 비하면 한단계 진전된 표현이고 일본정부를 대표한 가이후총리가 노대통령과의 1차 정상회담에서 「겸허히 반성」 「솔직한 사과」 등 구체적 표현을 썼기에 일본이 사과한 것은 틀림없다고 본다. 따라서 사과의 심도에 대한 논란 보다는 이 사과를 기초로 하여 일본이 해야 할 일을 촉구하고 실질적으로 양국의 우호에 도움이 되는 진정한 협력을 늘려 나가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이 노대통령의 방일 목적과도 부합되는 것이다. 그중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안보와 통일에 대한 일본의 역할이다. 남북분단이 일제 강점통치의 후유증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에 일본은 한반도의 안정과 나아가 통일을 도와야 할 응분의 도덕적 책임이있다. 과거를 반성한다면 행여 분단을 악용하여 혼자만의 잇속을 챙기려는 어떤 기도도 있어서는 안되며 통일을 돕는 가시적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우리는 또 이것을 요구해야 한다. 보다 현실적인 문제로 과거청산과 관련하여 일본의 성의가 요구되는 사안들이 적지 않다. 특히 재일교포의 법적 지위에 관한 문제는 개서되어야 마땅하다. 지문날인등 이른바 4대 악의 철폐는 물론 각종 차별대우가 하나하나 시정되어 나가야 할 것이다. 이밖에 원폭피해자와 사할린동포를 돕는 문제에도 보다 적극성을 보여야 사과문제가 실질적으로 일단락되고 보다 가까운 이웃이 될 것이다. 우리가 노대통령의 이번 방일을 계기로 특히 주목하는 것은 양국이 과연 미래지향적 동반자관계를 제대로 맺어나갈 것이냐 하는 점이다. 이를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무역역조의 시정과 첨단기술 이전이다. 한일간의 진정한 우호를 위해 이 부문에 대한 양국의 지속적 노력이 있어야 할 것이다. 노대통령 방일의 참뜻이 제대로 구현되기를 기대한다.
  • 노대통령 일 국회 연설 요지

    ◎가까운 이웃으로,믿음 나누는 친구로 평화와 번영,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나는 한일 양국이 상호존중과 이해에 기초하여 이제 가깝고도 가까운 동반자가 되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일본을 방문했습니다. 45년전 식민통치에서 벗어난 한국국민의 기쁨은 하루아침 국토분단의 슬픔으로 표변했습니다. 그러나 우리 국민은 결코 좌절하지 않았습니다. 한 세대에 걸친 피땀어린 노력으로 한국은 이제 신흥산업국가로 발돋움 했습니다. 우리 국민은 서울올림픽을 12년만에 동서세계가 함께 모인 훌륭한 평화의 축제로 치렀습니다. 우리 국민이 이룬 또하나의 보람은 민주주의의 시대를 연 것입니다. 근40년간 안팎의 숱한 파란속에서도 자유와 민주주의를 향한 우리 국민의 뜨거운 염원과 투쟁은 그치지 않았습니다. 3년전 「6ㆍ29민주화선언」을 시발로 한국의 새로운 시대는 언론과 정치적 자유를 제한없이 열어 놓았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헌법과 제도는 물론,사회의 가치체계와 국민의식에 이르기까지 모든 것을 바꾸어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국의 민주화는 큰 대가를 치르고 있으나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후퇴하는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한반도에 평화와 통일이 오게하는 것은 우리 국민의 지상과업일 뿐만 아니라 세계와 이 지역에 우리가 기여할 으뜸가는 과제일 것입니다. 지난 한 세기동안 한국처럼 침략과 전쟁ㆍ대결체제로 고통받아온 나라는 이 지상에서 드물 것입니다. 평화는 한국민의 절실한 소망입니다. 우리는 평화를 이룸으로써 이 세계가 우리에게 준 시련에 답하려 합니다. 우리는 한반도의 평화적 통일을 이 세기안에 반드시 이루려합니다. 냉전체제의 타율에 의한 민족의 분단상황은 다음 세기로까지 이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모두가 어렵다고 여겨온 동서 독일의 통일이 이제 현실이 되고 있듯이 전쟁의 위험이 도사린 분단된 땅에서 인류화합의 올림픽이 열렸듯이,한반도에 통일의 날은 올 것입니다. 이제부터 한일 양국은 동북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본격적으로 펼쳐가야 할 것입니다. 나는 1988년 유엔총회에서 「동북아 평화협의회의」를 제안한 바 있습니다. 이 협의체의 실현에는 북한의 태도변화등 정치적 여건의 성숙에 시일이 필요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실현하기 위해 가능한 나라,가능한 분야부터 공동 이익을 실현할 협력관계를 발전시켜 나가야 할 것입니다. 이 동북아시아 국가들간의 협력은 아시아ㆍ태평양시대의 밝은 미래를 여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일본과 한국의 21세기도 아시아ㆍ태평양의 평화와 번영과 직결되어 있을 것입니다. 한일 두 나라는 동반자로서 태평양시대를 앞장서 열어가야 할 것입니다. 이를위해 우리는 이 지역의 개방성과 다양성을 바탕으로 모든 나라에 도움을 주는 효율적인 협력의 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한일 양국은 이제 서로 미국 다음가는 두번째의 교역국이 되었습니다. 세계10대 교역국에 들어선 한국은 일본 기업에 연간 1백70억달러의 시장이 되었습니다. 25년전 일본의 대한 수출이 불과 2억달러였던 것을 생각하면 한국의 발전은 일본의 번영에도 도움을 주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번영하는 나라가 가까이 있는 것은 일본의 장래를 위해서도 바람직한 것입니다. 한일간에는 만성적인 무역불균형의 문제가 있습니다. 일본은 미국과 유럽에 대해 시장개방과 무역불균형을 개선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을 펼치고 있습니다. 한국에 대해서도 이처럼 정책적 의지를 갖고 불균형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 조처를 취해주기 바랍니다. 일본이 경쟁을 꺼려하여 기술이전에 소극적이라는 지적도 있습니다. 한국의 수출증대가 해외시장에서 일본기업에 다소의 경쟁을 불러오는 면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단견일 뿐 그것은 일본으로부터 더 많은 우리의 수입을 유발해 왔습니다. 한국의 경제발전이 일본의 국가이익에 합치한다는 인식하에서 일본의 기술이전과 기초과학 협력을 촉진하여 주기 바랍니다. 모든 것이 변화하고 많은 것이 발전하였음에도 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 진정한 우정을 가로막는 마음의 벽이 남아 있습니다. 전후 45년이 지난 이제 세계대전을 치렀던 유럽 각국이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고 있는 이 시점까지,우리 두 나라 국민간에는 잘못된 과거에 대한 인식과 감정이 정리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대의 잔재가 두 나라 관계발전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국민학교에 갓 들어간 한국 어린이가 일본식 이름 아닌 자기 이름을 썼다하여 어머니로부터 익힌 자기 나라말을 했다하여 선생님의 회초리를 맞아야 했던 아픔을 여러분이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입니다. 지난날 어두웠던 시대,우리 민족이 겪은 더 큰 고통과 시련,그 엄청난 비극을 지금 이 자리에서 이야기할 필요는 없습니다. 오늘의 우리는 나라를 지키지 못한 스스로를 자성할 뿐,지난 일을 되새겨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려 하지 않습니다. 내가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진실에 바탕한 두 나라 국민의 참된 이해이며 그것을 바탕으로 밝은 미래를 열자는 것입니다. 프랑스인 독일인 영국인이 이제 하나의 유럽인이 되고 있는 것은 그들이 진실의 힘으로 잘못된 과거를 분명히 씻음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창조에 함께 설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나간 일은 신도 바꿀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역사는 오늘의 우리가 지난 일을 어떻게 보고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하기에 따라 지난날의 속박을 끊고 과거의 잔재는 치울 수 있습니다. 우리 모두의 용기와 노력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내가 특히 이 자리 여러분에게 말씀드리는 것은 지난날의 역사로 인해 일본에 살게 된 70만 재일 한국인의 문제입니다. 이들은 일본국민과 함께 전쟁의 고통을 겪었으며 전후 일본의 재건과 발전에 참여하였습니다. 이들이 사이좋게 이웃으로 이곳에서 불편없이 살게 될 때 우리 두 나라 국민은 한일 우호를 가슴으로 느낄 것입니다. 일본은 지난날의 일본이 아니라 이제 새로운 일본이 되었습니다. 역사와 세계에 대해 열린 일본은 아시아와 세계의 인식을 새롭게 할 것입니다. 공통의 이상을 나누고 있는 우리 두 나라는 이러한 관계위에 세계로,미래로 손잡고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가깝고도 가까운 이웃으로,믿음을 나누는 친구로 더욱 평화롭고 번영하며 자유와 행복이 넘치는 세계를 함께 만들어 갑시다.
  • “남북한 정상회담 조속 개최”/전직국가수반회의 성명

    제8차 전직정부수반협의회(IAC)는 24일 남북한의 조속한 정상회담 개최와 남북한 주민들의 자유로운 왕래 허용등을 촉구하는 한국문제에 관한 성명을 채택했다. IAC 서울총회에 참석중인 30여명의 전직대통령과 총리들은 이날 상오 1차 회의를 끝내고 채택된 이 성명에서 『오늘날 세계에서 일고 있는 엄청난 변화는 아직도 분단돼 있는 남북한 정부에 획기적이고 용기있는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하고 있다』고 전제,『IAC 회원들은 이러한 비극을 우려하여 평화적 통일을 앞당기기 위한 첫 단계로서 남북한 최고책임자가 아무런 선행조건없이 즉시 만나 공동의 문제를 토의할 것을 촉구한다』고 천명했다. 1차 회의가 끝난 뒤 IAC부회장인 핀타실고 전포르투갈총리는 이와관련,『이 성명은 25일 정상적인 외교경로를 통해 한국정부와 북한의 김일성주석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밝혔다.
  • 늦었지만 북한도 변해야 한다(사설)

    작금년에 걸쳐 개혁과 개방ㆍ민주화로의 눈부신 변혁을 거듭하고 있는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에 비해 아시아 공산권은 그 엄청난 변화의 물결 속에서 비켜서 있었던 게 사실이었다. 북경과 평양 하노이를 잇는 아시아 공산국들이 동구권의 공산국들보다 그 이념노선이 보다 교조적이고 체제적 생활양식에 더 얽매어져 있기 때문이기도 할 것이다. 이제 그러나 사태는 변해 있다. 좀처럼 움직일 것 같지 않던 울란바토르 당국이 어느날 갑자기 개혁에로의 길을 택하더니 한ㆍ몽 수교를 이루게 됐다. 북경당국도 6ㆍ4 천안문사태 1주년을 앞둔 최근에는 대만과의 급속한 관계개선을 수용하는 듯한 조심스런 자세변화를 보이고 있다. 국제적인 화해와 개방시대의 상징적인 과실이라고도 할 분단국들의 통일문제도 그러하다. 베를린장벽 붕괴이후 빠른 진전을 거듭하고 있는 동서독 관계는 단일통화제를 비롯한 경제통합을 이룬 끝에 양독이 드디어 역사적인 통독을 목전에 두고 있다. 정치체제와 종교 어느쪽으로도 화합될 것 같지 않던 중동권 저 아래쪽의 남북예멘이국가연합 형태의 예멘공화국으로의 통일을 선포한 것도 국제적 화해와 통일시대의 국가적 통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국제화 시대를 관류하는 이처럼 도도한 역사적 물결을 홀로 외면할 뿐 아니라 오히려 역류시키려는 힘겨운 태도로 나오고 있는 쪽이 있다. 바로 한반도의 북쪽에 있는 평양당국이다. 남북한은 동구권에 서서히 변혁의 추세가 다가올 때만 하더라도 부분적인 대화와 교류를 지속했었다. 그러나 이제 그마저 평양당국의 일방적 취소와 거부로 완전 단절상태에 있는 것이다. 평양당국의 시대를 역행하는 그같은 자세가 바로 한반도가 국제무대에서 유일한 분단상태로 남을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가 되고 있는 것이다. 지금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국가들은 생존을 위해서 수십년간 신봉하던 이념이라든가 체제를 포기했다. 일찍이 그들 국가이념의 기초로 제시했던 마르크스 레닌주의의 궁극목표는 분배의 공정이 최대로 실현되어 모두가 잘살게 되는 계급없는 「지상천국」이었다. 그러나 그것은 모두 허망한 꿈이었다. 그들 권역의 종주국인 소련마저 경제개혁의 완전한 실패를 인정했고 국가계획경제를 포기한다고 했다. 국제적인 채무국으로 뒤떨어진 나머지 빚독촉에 시달려 군비를 축소하고 서방의 지원을 호소하는 형편이다. 북한의 외곬 사회주의노선 고집에 소련조차 민망하게 생각한 나머지 요즘은 서로 개혁종용과 경고에 대소비방과 선동을 주고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우리는 소ㆍ북한간 그러한 관계 역전현상에 고무되지 않는다. 오히려 3자간의 발전적 관계정립이 필요하다고 본다. 이제 한반도도 국제적 조류와 시대적 변혁의 한가운데에 들어서야 한다. 그러려면 북한이 변해야 한다. 세계적 변화에 대한 냉정한 현실인식이 필요하다. 속도는 늦었지만 어쩔수 없이 변해가는 아시아공산권의 추세도 눈여겨 살펴야 한다. 북한이 뒤늦게 변하더라도 그것이 세계와 한반도의 평화에 기여한다면 그것은 잘하는 일이라 할 수 있다.
  • 세계지도자초청 「새시대의 도전」 대토론 내용

    ◎“통독은 한반도통일에 큰영향 미칠 것”/한국과 독일분단 「상호교류」측면서 큰 차이/경제개혁 실패한 고르바초프… 서방 자원엔 한계/한­일은 갈등극복,동ㆍ서구 변화에 대처해야 「새 시대의 도전­동아시아정세와 관련하여」를 주제로 한 세계지도자초청 대토론회가 23일 서울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열렸다. 헬무트 슈미트 전서독총리,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신현확 전 총리 등 4명의 전직국가수반들은 한승주교수(고대)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토론회에서 소련과 동구의 개혁,미소관계 및 군축문제,아시아ㆍ태평양협력체제 구성문제,아시아와 한국의 역할 등 국제정세 전반에 걸쳐 논의했다. 참석자들은 특히 독일통일이 한국통일의 교훈이 된다는데 의견을 같이하고 독일통일이 남북한관계개선에 미칠 영향과 남북통일을 위한 과제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토론내용을 요약해본다. ▲한승주교수(사회)=세계 정세가 최근 급변하고 있고 고르바초프대통령의 등장이후 소련과 동구의 개혁도 본격화되고있다. 소련의 당면과제와 앞으로의 전망에 대한 견해는. ▲헬무트 슈미트 전 서독총리=소련은 글라스노스트(개방)와 언론의 자유면에서는 성공을 거두고 있지만 경제적인 페레스트로이카(개혁)에서는 실패했다. 현재 소련의 경제상태는 브레즈네프시대보다 오히려 악화돼 있다. 고르바초프는 용기가 있는 뛰어난 정치인이지만 경제사정이 악화됨에 따라 국민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있다. ○개방정책은 성공적 고르바초프는 이밖에도 소연방을 하나로 유지하는 문제에 직면하고 있다. 또한 고르바초프 앞에는 당내 보수ㆍ개혁파간의 권력투쟁,개혁에 대한 관료층의 저항,군비축소 등에 따른 군의 반발 등이 해결과제로 놓여 있다. 고르바초프의 개혁정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소련내의 지원뿐 아니라 주변국가들의 원조가 필요하다. ▲사회=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는 이처럼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데 서방세계는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성공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보는가. ▲지스카르 데스탱 전 프랑스대통령=서구는 고르바초프의 노선을 지지하고 있다. 따라서 고르바초프의 정책이 실현되도록 노력하고 있으며 성공되는 것이 매우 바람직스럽다. 그렇지만 서구의 지원에도 한계가 있을뿐 아니라 서구의 힘만으로는 불충분하다. 소련 내부의 경제 사회문제가 고르바초프 정책의 성공여부를 결정하게 될 것이다. ▲사회=소련의 개혁정책 및 문제점들과 관련해서 일본은 어떤 시각을 갖고 있으며 내년쯤으로 예상되고 있는 고르바초프의 방일이 일ㆍ소관계에 획기적인 전환점이 되리라고 보는가. ▲후쿠다 다케오(복전규부)전 일본총리=고르바초프가 개혁을 성공시킬수 있느냐에 따라 그의 장래가 결정될 것이다. 일본과 소련과의 관계는 서구ㆍ소련과의 관계와는 다를 것이다. 양국간에는 북방도서 반환문제 등이 놓여있기 때문에 비교적 쉽게 풀리기는 어렵다고 본다. 소련정부가 발트3국에 대해 강경정책을 취하고 있듯이 북방도서 문제도 이와 비슷한 선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사회=일소관계와는 대조적으로 한소관계는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 물론 이것은 소련의 정책 및 체제의 변화와 함께한국이 북방정책을 표방한 결과일 것이다. 현재 한소관계는 어떠하며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에 대한 견해는. ▲신현호 전 국무총리=그동안 한국은 정부수립이래 같은 유라시아에 있는 소련을 단지 「위협」의 의미로만 여겨왔으며 미국과의 관계만 유지해 왔다. 그런데 그동안 역사적인 조건이 누적된 것도 있지만 고르바초프가 등장한후 과감한 정책변경과 민주화ㆍ자유화 노선으로 한국에는 닫혀 있던 지평선이 완전히 열리게 되었다. 북방정책이 시기적절하게 주효하여 한국은 동구 대부분의 국가들과 외교관계를 수립했으며 소련과도 가까운 시일내에 국교를 수립할 전망이다. 한국은 현재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련 및 동구가 시간이 걸리더라도 어려움을 극복,신사고가 성공하기를 다른 나라들보다 더 바라고 있다. ○군사력 중요성 감소 ▲사회=통독은 유럽뿐 아니라 전세계의 주목을 받고 있는 사안이지만 분단국인 한국국민들은 더욱 더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통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으며 주변 유럽국가들이 독일통일을 보는 입장은 어떤가. ▲지스카르 데스탱=유럽의회에서는 정기적으로 통독에 대한 현황을 논의하고 있다. 통독은 의문의 여지가 없는 확실한 것으로 91년까지는 이루어질 것으로 보며 7월2일 시작되는 경제금융통합이 잘되느냐에 따라 통독의 전망이 밝혀질 것이다. 지난해 10월 헬무트 콜서독총리가 장기적인 것으로 통독의 10개항을 발표한 것과는 달리 통독은 훨씬 신속히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는 물론 동서독인들의 통일에 대한 열망도 있지만 통독을 도와주는 주위의 요소가 크게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독이 쉬운것만은 아니다. 서독정부는 생산성이 떨어져 있는 동독기업들의 육성과 동독인들의 생활수준향상을 위해 수천억달러의 예산을 마련하는 일을 감수해야 한다. 한편 통독에 호의적인 유럽인들의 수가 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점차 줄어들고 있다. 유럽은 20여년전부터 영국ㆍ서독ㆍ프랑스ㆍ이탈리아 등 4개국의 중요성이 비슷하다는 결론에 도달했었다. 그런데 독일이 통일될 경우 인구도 늘어나게 될 뿐아니라 GDP(국내총생산)가 40% 증가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어 하나의 유럽을 만들고자 하는 노력에 어려움으로 작용하고 있다. 어쨌든 독일의 통일은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사회=독일은 어떤 과정을 거쳐 신속히 통일을 하게 되었는가. ▲헬무트 슈미트=한국과 독일의 분단은 차이가 더 많다. 서독은 항상 밀접한 관계를 지속해왔으며 서독정부는 동독정부로부터 교통,왕래허용 등 적지않은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 많은 돈을 지불했다. 나는 호네커 전 동독국가평의회의장과 공식적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서신을 자주 교환했으며 유선으로도 통화할 수 있었다. 콜총리와 호네커는 상호 방문하기도 했으며 이러한 서로의 노력으로 쉽게 관계가 개선될 수 있었다. 이것은 한반도가 분단이후 남북이 접촉을 거의 하지않은 것과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서독은 지난 60년대말 브란트 전총리가 주창한 동방정책의 일환으로 체코슬로바키아 헝가리 등 동구국가들과의 관계개선에도 노력했으며 프랑스와의 협력을 위해서도 힘으로 기울였다. 90년대는 군사력보다는 경제ㆍ재정적인문제가 더욱 중요하게 될 것이다. ▲사회=강대국뿐아니라 주변국가들이 통독을 경이적으로 보고 있다. 독일은 2차대전으로 피해를 본 국가들에게 그동안 어떻게 했는가. ○한국,저자세 바꿔야 ▲헬무트 슈미트=동독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지만 서독은 비록 충분하지는 않지만 많은 배상을 했다. 프랑스와 협력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드골 전 프랑스대통령은 독ㆍ불관계증진에 많은 기여를 했다. 서독은 유태인학살로 피해를 당한 이스라엘에 배상금을 지급하고 방문단을 파견하기도 했으며 폴란드 헝가리 등에도 재정지원을 했다. 서독정부는 이들 국가들에 수백억달러를 배상했으며 동구국가들에 더 많은 지원을 해야 하는데 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해왔다. 소련은 서독의 이러한 움직임에 의심스런 태도를 보여왔다. 서독내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군잔류 등이 더욱 소련의 감정을 상하게 한 것이다. ▲사회=독일과 일본은 주변국가들과의 관계가 상이한것 같은데 24일 시작하는 노태우대통령의 방일을 맞아 어떻게 생각하는지. ▲후쿠다 다케오=한­일 양국은 문제가 있을수도 있지만 이를 극복함으로써 언젠가 닥칠지도 모르는 동ㆍ서구의 움직임에 현명하게 대처해야 하며 두나라는 가장 가까운 선린관계를 유지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노대통령의 방일을 일본은 환영하며 한일양국관계가 돈독해지고 좀더 전진적인 관계로 나아가기를 바란다. 말뿐이 아닌 명실상부한 이해관계를 유지해야 하며 양국은 협력을 통해 아시아와 세계에 영향을 미칠수 있어야 한다. 일본은 한국에서 바라는 것을 해왔으며 계속 노력해 왔다. 남북한이 현실을 직시한다면 미래에는 실수가 없도록 현명히 대처해야하고 일본은 미래의 우호적인 환경조성을 위해 노력할 것이다. ○인구ㆍ환경 주요이슈로 ▲헬무트 슈미트=30년전 한국을 방문했었는데 그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발전했다. 한국은 경제적인 성공을 이루었으므로 너무 저자세를 취할 필요는 없다. 자세를 바꿔야 하며 이것은 대소ㆍ중관계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지금은 상대방이 거절하겠지만 주변국들은 한국의 신뢰를 얻어야 할때라고 생각하며 처음부터 성공을바라서는 안된다. 한국은 이제 중간급 호랑이로 성장했으며 한­일은 동아시아의 유대를 위해 고립되어서는 안된다. ▲사회=앞으로 10년 남은 21세기는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지스카르 데스탱=경제적으로 성공하지 못한 정권은 존립할 수 없으며 경제적으로 성공하는 국가는 타국의 주의력을 이끌게 될 것이다. 2000년 이후에는 인구와 환경문제가 주요 이슈로 등장하게 될 것이다. 그동안 경제산업발전이 있었지만 환경은 이로 인해 문제점이 노출되었다. 군사력 대립은 줄어들게 될 것이지만 우발적인 사고가 야기될 수도 있다.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국지적인 면에서 해결해야 할 것이며 지역문제는 그 지역기구를 통해 풀어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
  • 그레그,새달 광주 방문/미 문화원 재개관 맞춰

    【뉴욕 연합】 도널드 그레그 주한미대사가 다음달 한국 반미감정의 진원지인 광주를 방문,옛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일 방침이라고 미국의 월 스트리트 저널지가 21일 보도했다. 저널지는 연대세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도널드 클라크교수의 말을 인용,한반도 분단문제로부터 침체한 경제,심지어 보수거대여당의 출현에 이르기까지 일부 한국인들이 마음에 맞지 않는 일들을 무엇이나 미국과 연관시켜 생각하려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레그대사가 이같은 경향을 바꿔 보려고 광주를 방문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레그대사의 광주방문 계획은 그동안 27차례나 화염병 세례를 받아 문을 닫아온 광주 미 문화센터의 내달 재개관에 때를 맞추는 것이다.
  • 통일「예멘공화국」출범/살레 초대대통령취임… 5인평의회 구성

    ◎“국방비가 경제피폐 주인”인식… 이념벽 넘어/81년 협정체결,동서화해무드 타고 급진전 아라비아남단에 위치한 중동유일의 분단국가인 남북예멘이 꾸준한 노력끝에 마침내 22일 통일을 선언,단일국가인 예멘공화국(Republic of Yemen)을 수립했다. 통일예멘의 통치기구는 지난 4월 22일 양국정상회담에서 합의된 헌법초안에 따라 앞으로 30개월의 과도기간동안에는 인구비례에 의해 북예멘 3명,남예멘 2명으로 구성된 5인대통령회의가 구성돼 합의제로 국정을 운영하게 된다. 과도기간이 지나면 선거를 통해 행정부수뇌와 입법부를 구성한다. 입법권은 북예멘 국가자문평의회 의원 1백59명과 남예멘 인민의회의원 1백11명에다 대통령회의가 주로 야당인사로 지명할 것으로 예상되는 임명직 31명의 의원을 합한 3백1명 정원의 통일의회가 행사한다. 대통령회의는 양국간 사전 합의에 따라 알리 압둘라 살레 현북예멘대통령을 통일예멘의 새대통령으로,남예멘 집권 사회당 사무총장 알리살렘 알바이드를 부통령으로 선출했으며 하이데르 아부 바크르 알아타스 현남예멘대통령이 총리에 임명됐다. 헌법초안은 21일과 22일 양국의회에서 통과됐으며 오는 11월 30일 국민투표로 확정되게 된다. 친서방 자본주의 회교국가인 북예멘과 친소 사회주의 세속국가인 남예멘이 급속하게 통일을 이루게 된것은 통일을 향한 꾸준한 노력과 동서화해무드에 크게 힘입은 것이다. 예멘은 15세기이래 오스만 터키의 지배하에 있었다. 1918년 제1차세계대전 이후 승전국 영국이 패전국 오스만터키로부터 이 지역을 분리시키면서 북예멘만 독립시키고 남예멘은 「남아라비아연방」에 편입,계속 지배해 왔다. 남예멘지역은 마르크스주의자가 중심이 돼 67년 독립했다. 외세에 의해 강제로 분단된지 50년만에 남예멘이 독립하자 곧 통일문제가 현안으로 떠올랐다. 양국은 같은 민족,같은 언어,같은 종교(수니파 이슬람교)를 갖고 있었지만 이데올로기 차이는 현격했다. 동서대결무드가 고조됐던 79년에는 국경분쟁으로 전쟁도 치렀다. 그러나 이 전쟁도 양국민의 드높은 통일열망으로 한달만에 휴전에 이르렀고 81년에는 통일을 목표로 한 아덴협정이 체결돼 양국통합의 기본원칙이 천명되기에 이르렀다. 81년 11월 북예멘 살레대통령이 남예멘을 방문,통일노력을 본격화시켰고 83년 예멘최고평의회가 구성돼 통일방안을 구체화시켰다. 86년 남예멘에서는 사회주의체제를 고수하려는 강경파가 쿠데타를 일으켜 득세하기도 했으나 고르바초프등장이후 새로운 평화공존시대가 열리면서 다시 통일노력이 기울여졌다. 당초 오는 11월 30일로 예정된 통일이 5월 26일로,또 다시 22일로 6개월이나 앞당겨진 것은 외세의 개입,북예멘 북부지역의 시아파 원리주의자와 남예멘 극좌파의 반통일움직임을 조속히 배격해야 한다는 양국지도자들의 공통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밖에도 양국의 정치ㆍ경제사정도 통일을 촉진시킨 요인으로 분석된다. 북예멘은 독립후 왕정에서 공화정으로 바뀌고 쿠데타도 빈발해 왔다. 아직도 북예멘 사회는 부족중심적이며 중앙정부의 행정이 지방에서 잘 집행되지 않고 있다. 1인당 GNP도 6백50달러,총 GNP57억달러에 불과함에도 불구하고 국방비가 5억3천만달러나 이르는 등 경제사정도어렵다. 남예멘도 86년 내전을 겪는 등 정정이 불안하며 총 GNP 10억달러,1인당 GNP 4백30달러에 국방비는 2억달러 수준에 이르고 있어 통합의 필요성이 절실한 형편이다. 더욱이 양국 국경지역에서 84년부터 발굴되기 시작한 유전의 공동탐사필요성과 공동탐사경험도 통일에 일조했다. 시바여왕의 전설이 깃들어 있는 예멘땅에 통일이 옛날의 영화를 한꺼번에 가져다주지는 않겠지만 양국은 이미 양국국민의 자유왕래를 보장하고 있고 20일 군통합도 완료한 터라 통일에 큰 어려움은 따르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서독통일과 함께 남북예멘의 통일은 동서화해시대를 확인하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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