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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동 경비구역내 군사시설 제거를/북측,정전위서 제의

    【판문점=유재림기자】 북한은 오는 8월15일 그들이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개최할 계획인 「범민족대회」와 관련,23일 유엔군측에 대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내의 모든 무장인원과 군사시설물을 제거하라고 제의했다. 북한측은 이날 상오 11시 판문점 군사정전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제456차 군사정전위 본회의에서 이같이 제의하고 남북대화 촉진과 한반도 긴장완화를 위한 선결조건으로 ▲비무장지대내의 콘크리트장벽과 철조망제거를 위해 조직될 「분단장벽 해체 공동위원회」 활동에 대한 편의제공 ▲무력증강과 팀스피리트 한ㆍ미 합동군사훈련등 「전쟁연습」중지 등을 요구했다.
  • “무지개를 쫓는 김일성”/불지,7ㆍ20선언 계기 북한특집

    ◎못이룬 남한적화의 꿈… 아들에게 물려줘/45년 전시 체제… 남은 것은 경제 파국 프랑스의 르 휘가로지는 22일 한국의 「민족 대교류 기간」 제의와 이에대한 북한의 거부사실을 중점보도하면서 이를 계기로 개인숭배 권력세습등 북한의 실상을 폭로하는 특집기사를 게재했다. 다음은 「김일성,인간극성」제하의 르휘가로지 기사의 요약이다. 이미 왜소해진 「큰 지도자」 김일성은 오늘도 일곱빛깔 무지개를 잡으려 나무꼭대기에 오르고 있다. 이상한 도시 평양을 45년이나 지배하고 있는 올해 78세의 이른바 「인간북극성」 김은 결코 이즈러 질 수 없다는 몽상에 잠겨 있다. 스탈린도 죽고 모택동 티토도 사라졌으며 차우셰스쿠까지 없어졌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더욱 가관인 것은 자신의 후계자를 정해 놓았다는 사실이다. 「김」의 뒤는 다시 「김」이 이어받게 될 것이다. 「위대한 지도자」의 아들 김정일이 「사회주의 낙원」을 넘겨받도록 계획되어 있다. 북한에서는 간단히 되는 일이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거대한 김의 동상벽화 또는 터무니없는 그의 전기들과 관련한 개인숭배에 연결되어 있다. 김이 어떤 조선소를 방문했다고 하자,그가 한 노동자에게 선글라스 하나를 선물하면 이를 받은 사람은 물론 이 장면을 본 모든 사람은 「감격에 목이 메인다」. 김이 어느 공원에 나타나면 그곳에 있는 「진달래꽃은 오직 인민을 영도하시는 경애하는 수령을 위해서만 활짝 피어난다」. 또 그가 어느 학교에 들렀을 때 선생은 학생들에게 「김일성 어버이께서는 자녀를 몇명이나 두셨지요」라고 묻고 어린 학생들은 합창하듯 입맞추어 「우리는 모두 어버이 수령의 자녀입니다」라고 답하는 것이다. 북한의 선전에 의하면 김일성은 한국의 시조인 단군이 나라를 편 백두산에서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2차대전중 김은 격렬한 항일투쟁을 벌였다고 하지만 선전으로밖에 믿어지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존재가 알려진 것은 소련군 관할의 한 수용소에서였으며 그때 그는 소규모 게릴라부대 인솔자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남한이 군사정권과 산업화로 비춰진 반면 북한은 저개발과 개인숭배사상으로 표징되었다. 김의 「지상낙원」은 오직 남한을 제국주의자들로부터 해방시키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다. 북한은 항상 총력전의 구호아래 총동원체제를 갖추고 있다. 전쟁의 이름아래 토론도 있을 수 없고 반대의견의 제시는 엄두를 낼 수 없다. 이같이 숨막힐 듯한 전쟁준비는 1945년부터 계속되어온 것이며 힘에 겨워 헐떡거리면서도 지속되고 있다. 괴상한 왕국,한건의 시위도 없고 누구도 싫어하는 이 나라에서 집권자는 인민들이 열광적으로 지지하고 있는 것으로 믿고 있다. 그리고 김정일이 후계자라고 수시로 선전하고 있다. 어린시절부터 천재성을 나타냈다느니 판단능력,관찰력,재능 등으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16살때 수천권의 책을 읽었다는등의 선전이 바로 그것이다. 김정일은 한 여배우에 빠져 영화관에서 시간을 보내곤 했다. 한국에서 그는 테러의 지령자로 비난받고 있으며 살생을 즐기는 빗나간 독재자의 모델이 될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 휴전선이 실제로 개방되는 날 남북한 주민들은 아마도 분단의 현실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그날에도 역시 북한주민들은 『위대하신 어버이수령 김일성­』하는 노래를 불러야 될 것이다.
  • 범민족대회 선별초청ㆍ판문점 철회땐/정부,백두∼한라산 대행진 허용

    ◎남측 인사의 참가도 보장/오늘 법무ㆍ국방ㆍ통일원장관 합동발표/장벽유무 확인 북측 초청 용의 정부는 북한이 판문점에서 열기로 한 범민족대회 준비에 따른 이른바 「서울에서의 2차 예비접촉」을 위해 북한측 관계자와 해외대표들이 서울로 올 경우 이를 허용할 방침이며 북측이 범민족대회에 특정세력에 한한 선별초청을 철회할 경우 남측 인사의 대회참가를 보장키로 했다. 정부는 23일 상오 9시 정부 종합청사에 홍성철통일원ㆍ이종남법무ㆍ이상훈국방 등 3부 합동기자회견을 갖고 노태우대통령의 7ㆍ20 「남북간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에 대한 후속조치를 밝히는 가운데 이같은 정부입장을 공식표명할 예정이다. 정부는 범민족대회 참가에 따른 입장을 정리,▲북한측이 전민련ㆍ전대협 등 특정세력의 선별초청을 철회,우리 사회 각계각층 대표를 초청한다면 남측 인사의 참가를 보장하고 ▲사회 각계각층대표 초청과 함께 판문점 이외의 평양 등지에서 대회를 개최한다면 대회 참가자들이 백두산∼판문점∼한라산을 잇는 소위 「조국통일촉진대행진」도보장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는 또 북한측이 「민족 대교류」 전제조건으로 내건 국가보안법철폐,임수경양 문익환목사 등 밀입북 구속자석방문제는 북한의 사회안전관계형법동시철폐,북한내 강제수용돼 있는 정치사상범의 석방과 연계하여 협의하기 위해 남북 법무장관회담을 개최할 것을 이날 합동회견을 통해 밝힐 예정이다. 합동회견에서는 또 북한측이 군사분계선 남쪽에 있다고 주장하는 이른바 콘크리트장벽 철거문제와 관련,그들 눈으로 직접 그 존재여부를 확인할 수 있도록 북한측 관계자를 초청할 용의가 있음도 아울러 밝힐 예정이다. 정부는 이와함께 북한측이 조평통 성명을 통해 우리의 제의를 일단 거부했지만 이 성명 가운데는 부분적으로 자유왕래의 협의가능성을 내비치고 있고 아직 우리측에 공식거부의사를 통보해 오지 않은 점을 감안,오는 30일의 실무접촉에 북한측이 응하도록 거듭 촉구키로 했다.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22일 『북한측이 우리 국가보안법이 통일에 장애가 된다고 생떼를 쓰고 있는 만큼 북한의 사회안전관계형법도 같은 테이블에 올려놓고 실무장관끼리 비교ㆍ검토를 하여 문제가 있다면 동시에 철폐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말하고 『우리는 굳이 법무장관회담이 아니더라도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도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이 소식통은 또 『북한이 「콘크리트장벽」을 운위하면서 「분단장벽해체 북남공동추진위」의 구성을 주장하고 있는 만큼 우리는 우선 그같은 장벽의 실재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공동조사단 구성을 제의할 것』이라고 말하고 『모스크바방송도 자유왕래를 막는 「콘크리트 장벽」이 아니라 대전차 장애물에 불과하다고 밝히고 있다』고 덧붙였다.
  • 북 주장 휴전선장벽/소,“탱크 저지용”

    【내외】 북한이 「분단의 상징」이라고 주장하는 휴전선상의 콘크리트 장벽은 「반탱크 장애물」이라고 소련관영 모스크바방송이 19일 보도했다. 모스크바방송은 주평양 타스통신기자인 이반 지하르첸코의 기사를 인용,한국은 지난 70년대말 군사분계선 이남을 축으로 해서 「반탱크 장애물」을 세웠다고 전했다. 북한은 이와관련,최근에도 대중집회를 열고 이의 철거를 주장했으며 서울은 북한의 이러한 요구를 일축했다고 모스크바방송은 덧붙였다.
  • 「7.20 남북왕래선언」을 듣고/서병철(서울시론)

    ◎「이념」이 교류를 막을수 없다. 나라간에 정치이념과 체제가 다르다고 해서 대립하거나 적대관계를 유지하는 시대는 이미 지났다. 이데올로기는 정치와 경제운영의 지침으로서 효력을 상실하였고 마르크스­레니니즘은 20세기 상반기에 현실 사회주의를 이끌었던 한 정치사상으로 소개될 정도로 퇴색하였다. 또한 서로 다른 민족간에 이해관계가 대립된다 할지라도 타협과 대화로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일반적인 추세가 되었다. 이와 같은 화해분위기는 미소간에 돈독해진 우호관계를 통하여 동서진영간 새로운 긴장완화가 조성되면서 전세계로 확산되었다. ○공산이념 이미 퇴색 그런데 오직 한반도에서만은 같은 민족간에 극한 대립을 하고 흩어져 살고 있는 가족끼리 만나보고자 하는 절실하고도 소박한 염원이 달성되지 않고 있다. 따라서 노태우대통령의 7월20일 남북한 자유왕래 제의는 중요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북한이 응해야만 효력을 발생하는 일방적인 것이지만 8월15일 광복절을 전후한 5일간 남북한동포 누구라도 원하기만 하면 상대측 지역을방문할수 있게 한다는 선언은 동서독간 성탄절과 부활절 휴가기간에 왕래조건이 완화되어 인적교류가 활발해지고 이것이 바로 오늘날 통일에 기여한 사실을 상기시킨다. 7월1일 경제사회통일에 이어 12월2일 서독 총선거를 전후하여 정치적 통일마저 가능하게된 독일의 경우 작년 11월9일 크렌츠 전동독국가 평의회 의장이 동서독간의 국경선을 개방한 역사적인 조치를 취한 것이 통일열차의 출발신호였다. 동서독간의 이산가족이 만나는 인적교류는 동서진영간의 정치 분위기,특히 미소 두 강대국간 데탕트 혹은 긴장추세와 두당사국의 정책에 따라 교류의 열기가 기복을 나타내었지만 완전히 두절된 적은 없었다. 분단된 지역간의 접근을 유도하는 합의에 도달하기 위하여 협상할 때 획기적인 제의를 되풀이하여 공통점이 축적되어 문제가 해결된 경우가 독일의 경우 허다하다. 특히 인적교류에 있어 동독은 서독과 서베를린을 잇는 고속도로를 동독땅에 통과시키면서 수시로 경제적 지원요청을 했고 서독은 지나친 요구임을 알면서도 이를 수락하여 동독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만들었다. 그 결과 국경선 개방 이전에도 가족과 친지간의 만남은 생활화되어 연간 1천만명이상이 상호 방문하였다. 남북한간의 인적교류가 실제로 가능하게 된다면 아마도 동서독의 경우와 비슷하게 될 것으로 예상된다. 서독인들이 동독 당국으로부터 비자를 교부받아 이산가족을 방문하는 것이 교류의 주종을 이루어 연간 7백40만명에 달했으며 동독으로부터는 3백40만명이 서독을 방문하였는데 대부분이 노인들이기 때문에 「연금자 방문」으로 불렸다. 동독은 비노동력이 서독에 머물러 연금지급을 하지 않게 되기를 은근히 희망하여 퇴직자들에게 제한없이 여행허가를 하여 주었다. 또한 동독은 긴급한 가정사정이 발생했을 경우 젊은층에게도 서독방문을 허용하여 연간 1백20만명이 혜택을 받았는데 부모사망ㆍ위독,자녀결혼 등 인도주의적인 면에서 여행희망을 거부할 수 없을 경우에 한하였다. 서독의 강력한 경제력이 통일의 촉매제인 것과 마찬가지로 인적교류를 원활하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 이러한 관점에서 우리는 경제성장을게을리하지 말아야 한반도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교훈을 얻게 된다. 실제로 서독은 동독에 대하여 경제지원을 하면서 국민간의 활발한 교류를 통하여 분단이 가져다준 불편을 제거한다는 원칙을 세웠었다. 한편 동독은 인도주의적인 사항에 융통성있는 태도를 보임으로써 대외 이미지를 개선하고 동시에 국가개발에 필요한 자원을 획득한다는 목적을 달성키위하여 인적교류에 나섰었다. ○국경선 의미 잃어 남북한간 인적교류의 시기로 우리의 최대 명절인 광복절이 채택된 것과 마찬가지로 동서독간에는 기독교국가답게 성탄절이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이제는 철거되어 분단을 상징하는 기념품으로 둔갑한 베를린장벽이 1961년 동독에 의하여 구축된 후 3년동안 유독 서베를린 거주자들에게는 동베를린 방문이 허용되지 않았었다. 마침 1963년 12월17일 성탄절을 1주일 앞두고 동서독간에 통행증명서 발급에 관한 협정이 체결되어 명절에 이산가족이 만날 수 있었다. 그후1972년 12월 양독간 기본조약이 체결되어 관계가 정상화될때까지 이 협정이 계속 유효했었다. 나라와 나라를 가르는 국경선의 의미가 점차 퇴색하고 문턱도 낮아지고 있다. 서유럽의 여러나라를 연결하는 고속도로를 따라 여행할 때 국경선에서 여행증명서를 내 보여야 할 경우가 드물다. 프랑스 서독 벨기에 네덜란드 룩셈부르크 스위스 등 여러나라들간의 국경선은 이제 지도상에 그려진 구획선에 불과하다. 헝가리와 오스트리아간의 국경선에 가설되었던 철조망이 작년 봄 철거되고 이곳이 동서국민들의 서독이주 관문 역활을 해준 것을 잘 알려진 일이다. 많은 나라들이 상호간 비자면제협정을 체결하여 국민들의 여행에 편의를 제공한다. 한국국민은 서유럽의 모든 나라에 비자를 받지 않고 3개월간 제한없이 여행할 수 있다. ○지금은 통일의 호기 그런데 하물며 같은 민족이 헤어져 살면서 만나볼 수조차 없는 상태가 게속된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일이다. 독일같이 2차대전의 패전국도 아니면서 남의 손에 국토가 분단된 것도 애석한데 유리한 국제환경이 조성되었음에도 내힘으로 이를 극복못하는 처지가 안타깝다. 독일이 통일되는 것을 보면서기초적인 일조차 해결 못하는 무능함이 부끄럽기만 하다.
  • 동ㆍ서독 통일 이끈 자유왕래/베를린장벽 어떻게 무너졌나

    ◎“인적교류가 분단종식 지름길” 공동인식/63년 성탄절에 첫 개방… 이듬해 자유왕래 노태우대통령의 「7ㆍ20 민족대교류기간 선포」로 인해 남북한 주민간의 자유왕래문제가 최대관심사가 되면서 우리와 같은 분단의 아픔을 겪었던 동ㆍ서독간의 인적교류역사는 우리에게도 좋은 본보기가 되고 있다. 오는 12월1일 정치적 통일까지 이룰 예정인 동서독은 『인적교류의 활성화가 통일의 지름길』이라는 평범한 진리를 체험적으로 가르쳐준 국가이기 때문이다. 동서독은 이미 지난 63년 12월25일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일시 개방,동베를린과 서베를린간 인적교류 즉,주민왕래를 실현시킨 바 있다. 바로 이념과 체제를 뛰어넘은 분단국 최초의 자유왕래인 셈이다. 63년 12월17일 서베를린 시의회와 동독정부대표가 크리스마스때 양쪽 시민들이 서로 통행할 수 있는 통행증발급합의서에 서명했고 이에 따라 63년 12월18일부터 64년 1월5일까지 동서베를린 시민들이 상대방지역을 방문,친지들을 만나는 감격을 누렸었다. 이를 계기로 양측간에 설치된 「철의 장막」을 차근차근 허물어가기 시작한 동서독은 교류협력을 통한 민족공동체 의식을 공고히 해나갔다. 첫 인적교류가 이루어진지 1년도 채 안돼 동서독은 64년 부활절을 계기로 자유왕래를 실시하기에 이른다. 64년 서독은 서독국민이 제한없이 동독내 어느지역도 방문할 수 있다고 선포했고 동독은 60세이상 연금수혜자에게 서독방문을 허용한다고 발표한 것이다. 노대통령의 7ㆍ20선언과 같은 조치를 서독은 26년전에 단행한 것이다. 동독은 또 72년부터 친지의 사망등 긴급가사로 인한 경우에도 서독여행을 허가했다. 정치범인도는 63년부터 허용됐으며 더욱이 동독인들의 서독이주는 61년부터 가능했다. 특히 이때부터 동서독인들은 분단의 상징으로 우리나라의 판문점과 비교되는 찰리검문소 등을 통해 통행증만 제시함으로써 자유롭게 왕래할 수 있게 됐다. 더욱이 서베를린에 주재하는 외국인들은 매일 상ㆍ하오에 걸쳐 이 찰리검문소를 통해 동베를린으로 출ㆍ퇴근하기도 했으며 동서베를린간의 전화통화도 언제든지 가능했다. 또한 비록 소수이긴 했으나 동서독인들 가운데서도 정기통행증을 가진 사람은 동서베를린을 오가며 출근하는등 꾸준하게 인적교류의 물꼬를 터왔다. 서독은 브란트수상이 집권하면서 동방정책을 추진,동독과의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전개해 나갔다. 브란트수상은 69년10월 당시 시정연설을 통해 『서독은 동독과 동등한 자격으로 협의할 용의가 있다』고 선언,「1민족 2국가이론」을 정책기조로 삼았다. 이는 그전까지의 할슈타인원칙(동독과 수교를 맺고있는 국가와는 관계개선을 하지 않겠다는 것)이 서독외교정책의 기조였던 사실에서 보면 가히 파격적이라고 평가할 만한 것이었다. 브란트는 이제 힘입어 70년 3월19일 동독의 슈토프총리와 동서독분단이후 첫 정상회담을 갖고 양독간의 우호협력관계를 가일층 강화시켰다. 브란트는 또 같은해 5월21일 슈토프와 가진 2차정상회담을 통해 양독관계를 규정하는 20개 항목을 제시,양독관계를 쾌속순항하게 만들었다. 이같은 인적교류와 정비례해서 물적교류ㆍ협력도 매년 증가추세에 있던 양독은 드디어 72년 12월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양독관계를 반석위에 올려 놓았다. 이에 앞서 양독은 교통조약과 통행협정을 체결,인적교류에 따른 만반의 준비를 갖추기도 했다. 이를 바탕으로 양독은 73년 유엔총회에서 유엔동시가입을 달성하게 된다. 이때부터 서독을 여행하는 동독인이 매년 5백만명이상에 달하고 동독인의 70%이상이 서독TV를 시청하게 되면서 양독간의 통일기운이 싹트기 시작했다. 70,80년대를 거친 양독간의 꾸준한 교류는 마침내 동독측이 89년 11월 9일 일방적으로 취한 베를린장벽의 개방으로 이어진다. 이 장벽의 개방으로 동독인들이 하루 2천∼3천명씩 서독으로 몰려오는 이주붐이 일자 동독정권은 서독으로의 흡수통합방식을 인정하게 되고 경제적 통합에 이어 오는 12월말까지 정치적 통합을 완료하게 되는 것이다.
  • 「7·20 선언」의 의의와 전망(민족대교류:상)

    ◎「분단의 벽」 개방으로 허문다/경제력 바탕,완전개방 향한 전향적 조치/북측 거부 불구 화해 향한 대장정 나서야 45년간 지속되어온 분단의 종식을 위한 새로운 돌파구가 시계에 들어오고 있다. 7·20 노태우대통령의 「남북간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분단 반세기이전에 기어코 이뤄내고야 말겠다는 의지의 실천적인 조치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8·15 광복절을 전후한 5일간 북한동포들의 남한 전지역 방문허용→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시 남북 교류정례화→남북한 주민의 완전자유왕래 등은 한시적 시범교류를 거쳐 전면 완전자유왕래를 실현하겠다는 것으로 현실적이고 실현가능한 조치로 평가되고 있다. 이번 「민족 대교류」 특별발표는 북한측이 광복절을 전후한 같은 시기에 판문점 북측지역에서 「범민족대회」를 개최한다는 시기적 일치성과 함께 지난번 제1백50회 임시국회에서 남북교류협력법이 입법되어 교류에 필요한 제도적 장치가 이미 마련되었다는 점에서 그 실천의 가능성이 다른 때보다는 훨씬 큰 것 같다. 노대통령은 그동안 남북 대결지양,화해와 통일을 위한 일관된 정책추진을 계속해왔고 남북한 개방의 여건이 어느 정도 성숙되었다고 판단,이같은 방안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88년 7·7선언에 이어 유엔총회연설(88.10.18) 한민족공동체통일방안(89.9.11) 6·29 3주년 특별연설(90.6.29 북한을 통한 항공기 선박 물자의 무제한 허용) 등이 모두 화해와 개방의 일관된 맥락에서 나온 것이다. 남북한 주변및 세계정세의 변화도 이같은 개방조치의 여건을 성숙시켰다고 할 수 있다. 소련·동구 등의 개혁·개방이 가속화되면서 동서 냉전체제가 새로운 데탕트시대로 접어들고 있고 특히 베를린장벽의 철폐와 동서독 통일의 현실화가 눈앞에 다가왔으며 샌프란시스코 한소 정상회담에 이은 양국 관계정상화를 위한 8월초 모스크바 양국 공식회담 개최합의도 이를 촉진시켰다. 또 미­일­중­소 등 한반도 주변관계국과 영­독­불 등 우방이 한반도의 냉전종식을 지지,지원하는 분위기를 적극 조성하고 있는 것이다. 이같은 주변환경속에서 노대통령은 우리의신장된 경제력과 함께 북방정책의 잇딴 결실로 민족통합의 주도권을 발휘할 시기가 왔다고 판단,민족 대교류의 과감한 개방조치를 취한 것이다. 이번 민족 대교류 제의는 북한의 대남 2중전략,즉 대외적 평화공세와 내부적인 대남 교란전술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동요의 공간을 시의적절하게 파고들었다는 점에서 많은 함축의미가 있다. 북한 김일성은 올 신년사에서 전제조건을 달았지만 남북한 사회의 완전개방,자유왕래를 제안했고 최근에는 판문점 북측 지역을 일방적으로 개방하겠다면서도 우리 정부의 개입을 허용치 않겠다는 바탕위에서 남쪽 특정세력의 「범민족대회」 참석을 종용하고 있다. 또 북한은 남북한 고위급회담의 1,2차 본회담의 서울­평양 개최에 일단 합의하는등 성의를 보이면서도 우리 국내 정치상황을 이유로 국회 예비회담을 일방적으로 연기 통보하는 한편 그들의 매체를 통해 남한 국회해산까지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이같은 2중전략도 세계정세의 변화에 따라 개방정책이냐 아니면 대남 교란전술의 지속이냐는 갈림길에 서서히 다가가고 있고 이 양쪽 정책선택 결정의 딜레머속에서 상당한 동요를 보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노대통령의 이번 제의는 북한으로 하여금 그들의 「평화제의」가 진심이었는지 위장이었는지를 내외에 입증시켜주는 계기가 될 것으로 분석된다. 왜냐하면 민족 대교류 제의는 그동안 북한측이 내놓은 제의를 전폭 수용한 데다 남쪽을 방문하는 북한동포에 대해 남한의 전면개방이라는 보따리를 하나 더 얹어 제시했기 때문이다. 정부는 20일 하오 강영훈총리 명의로 오는 30일 이에따른 실무접촉을 갖자고 제의했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할 책임과 의무가 있는 정부로서는 우리 국민이 북한지역을 방문했을 때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의 약속을 북한당국으로부터 받아내야만 북한 방문자들에게 남북한 왕래증명서를 발급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특별발표에서 노대통령은 남쪽을 찾아오는 북한 동포의 신변보장과 무사귀환 보장을 다짐했기 때문에 북한이 남북교류에 진실된 마음이 있다면 상응한 조치를 해야 할 것이다. 현실적으로 북한의 판문점 범민족대회에 전대협·전민협 등의 일부 세력이 참가를 희망하면 정부는 관계절차에 따라 승인을 한다는 방침이나 무엇보다 이들의 신변안전 무사귀환 보장이라는 북한당국의 약속이 선행되어야 가능하다고 할 수 있다. 만약 이들 특정 대학생단체뿐만 아니라 이북5도민회,자유수호연맹,재향군인회 등 단체도 이곳에 참가해보겠다고 신청해올 경우 정부가 무조건 거부를 할 수 없으며 기회를 균등하게 부여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정부당국자가 판문점 공동안전지역(JSA)은 휴전체제의 유지로 긴장완화를 위해 협정으로 설치된 지역인 만큼 이곳에서 선전·선동집회를 개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본다고 밝힌 점을 감안해보면 범민족대회 참가만을 목적으로 방북을 신청해올 경우 허용하기가 다소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물론 북한이 평양이나 다른 곳에서 민족통일을 진정으로 염원하는 대회를 연다면 이의 참가는 무제한 허용한다는 게 정부방침이다. 북한은 우리의 민족 대교류 제의에 대해 이례적으로 신속히 이날 하오 조국평화통일위원회의 성명을 통해 「콘크리트장벽 철거」라는 억지주장을 펴며 거부했다. 따라서 앞으로 북한의 태도변화가 없는 한 민족 대교류가 8·15를 전후해 실현될 가능성은 희박해졌으며 북한주민의 남한방문을 우리가 일방적으로 개방키로 천명했지만 북한당국이 이를 허용하지 않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에 우리의 획기적인 개방조치에도 불구하고 가까운 장래에 실질적인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서독도 63년 크리스마스를 기해 베를린장벽을 한시적으로 열었던 것을 시발로 오늘날 통독의 여건을 마련했음을 상기할 때 이같은 판문점 개방및 남북왕래는 통일로 가는 길에 거쳐야 할 관문이기 때문에 우리는 북한이 이번 제의를 일단 거부했다 해도 꾸준히 개방과 화해를 향해 대장정을 해야 할 것이다.〈이경형기자〉
  • 노대통령 특별발표

    친애하는 7천만 동포 여러분, 나는 세계가 냉전체제의 대결을 종식하고 새로운 화해의 질서를 이루는 큰 변혁속에 평화적인 통일을 하루라도 빨리 실현하기 위해 남북 민족의 교류를 위한 우리의 결정을 밝히려 합니다. 나는 1988년 7월7일 특별선언을 통해 남북이 한 민족으로서 대결관계를 지양하고 서로 협력하는 동반자로서의 관계를 발전시켜나갈 것을 밝혔습니다. 나는 그해 10월18일 유엔총회 연설을 통해서도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남북을 가르는 분단의 벽을 헐고 모든 부문에 걸쳐 자유로운 교류를 실현할 것을 제의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지난 2년사이 세계는 지난 시대의 질서를 그 바탕으로부터 바꾸고 있습니다. 개방과 화해의 조류는 동서세계를 가르는 장막을 걷고 이념과 체제를 초월하여 협력하는 새로운 세계를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베를린과 동서독일의 장벽을 무너뜨려 독일은 통일을 현실로 만들고 있습니다. 이제 한반도에 분단의 단절과 냉전의 대결을 종식시킬 때입니다. 한반도만이 이 세계에서 유일하게 냉전체제로 인해 분단된 땅으로 남아있을 수 없습니다. 더욱이 남북 동포가 서로 왕래조차 못하고 있는 현실은 유구한 역사를 가진 문화민족의 자존에 비추어서도 더이상 지속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는 1990년대안에 평화적 통일을 이루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21세기를 우리 겨레의 영광된 세기로 맞아야 합니다. 남북의 화해와 민족의 통합을 이루기 위해 필요한 일을 남과 북이 이제는 과감히 실천해야 합니다. 나는 해방 45주년을 맞는 올해 8월15일을 전후한 5일간을 「민족 대교류의 기간」으로 선포합니다. 우리는 8월13일부터 닷새동안 판문점을 통로로 열어놓고 북한동포들을 제한없이 받아들일 것입니다. 우리는 이들이 원하는 남쪽의 어느 지역도 자유로이 방문할 수 있도록 할 것이며,원하는 사람 누구라도 만날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 우리는 남쪽을 방문하는 모든 동포들에게 가능한 모든 편의를 제공하겠으며,필요하다면 숙식도 지원할 것입니다. 우리는 또한 이 기간중 우리 국민 누구라도 제한없이 판문점을 통해 북한을 방문할 수 있도록 조처할 것입니다.우리는 남쪽을 찾아오는 모든 북한동포의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할 것이며,이에 상응한 북한측의 조처를 기대합니다. 나는 북한이 판문점 북측 지역뿐 아니라 북한의 어느 곳이라도 자유로이 가볼 수 있도록 전지역을 개방하고 북한방문을 원하는 남쪽 동포들을 우리와 마찬가지로 제한없이 받아들이기를 바랍니다. 올 광복절의 민족교류를 성공적으로 이루면 우리는 추석·설날·한식 등 민족명절을 전후로 교류를 정례화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를 바탕으로 우리는 남북의 겨레가 언제나 자유로이 왕래할 수 있는 길을 열 수 있을 것입니다. 남북동포들간의 왕래와 교류는 통일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입니다. 북한의 김일성주석도 지난 1월1일 남북한사회의 완전개방과 자유왕래를 제의한 바 있습니다. 나는 이러한 면에서 볼때 올 광복절에 민족교류와 남북한의 전면개방을 실현하는 데 아무런 장애도 없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나는 북한측이 아무 조건을 붙이지 말고 광복절 민족 대교류를 수락할 것을 촉구합니다. 북한측이 불가피한 사정으로 상호교류를 받아들이지 못한다면,우리는 북한동포에 대한 우리 사회의 전면개방을 일방적으로 실천할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외국인이 판문점을 통하여 남북한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도록 이를 허용할 것입니다. 정부는 오늘 밝힌 내용이 실현될 수 있도록 필요한 모든 조치를 취하고 준비를 갖출 것입니다. 내와 동포 여러분, 남과 북은 이념적,정치적 차원을 떠나 민족통합에 진실로 노력해야 합니다. 통일된 나라,7천만이 하나가 된 우리 겨레가 펼칠 21세기가 얼마나 눈부시고 위대할 것인가를 생각하며 민족의 소망을 이루는 데 모두가 동참해 주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 「7ㆍ20 남북자유왕래 선언」의 뜻(긴급대담)

    ◎“이념보다 민족 우선”… 가장 현실적 통일 접근/중국­대만간의 「협약없는 교류」 배울만/4강엔 「한반도 데탕트」 지원 유도 계기/북측 강온싸움 가속화 예상…보안법 철폐등 내세워 시간벌기 펼칠지도 「민족대교류」를 제의한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우리정부가 북한의 주장을 전향적으로 수용,민족교류를 통해 통일을 앞당기자는 획기적인 선언으로 북한의 대응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낳고 있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정치의 흐름과 북한의 변화를 예의주시해온 최평길교수(연세대)와 도흥렬교수(충북대)의 대담을 통해 이번 특별발표의 의의와 배경 그리고 이 발표 앞으로 남북관계에 미칠 장단기적인 영향 등을 들어본다. □참석자 ▲최평길교수 연세대 ▲도흥렬교수 충북대 사회=이동화 편집부국장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발표는 일차적으로 선언적인 의미를 담고 있지만 앞으로 이를 어떻게 구체화하느냐에 따라서 남북분단의 벽을 허물수도 있으며 남북간의 교류를 촉진시키는 중대한 계기가 되리라고 봅니다. 노대통령의 특별발표의 전반적인 의미와 그 배경에 대해 말씀해 주십시요. ▲최평길교수=노태우대통령의 제의는 분단이후 45년이라는 세월이 흐른 지금 우리사회가 분단을 극복하기 위해 북한의 모든 제의를 수용할 수 있을 만큼 성숙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원한다면 모든 왕래와 교류를 허용하겠다는 이번 제의는 분단이후 민족사에 일대 획을 긋는 쾌거인 동시에 세계사적인 흐름으로 볼때 「당연한」조치라고 봅니다. 다만 70년대에 7ㆍ4남북공동성명이 있었다면 오늘의 이같은 제의는 88년 서울올림픽 이전에 나왔어야하는 것이 아닌가하는 아쉬움이 남습니다. 이번 특별발표는 전세계의 유일한 분단국가인 남북한이 실질적인 통합의 길로 나아가는데 있어 진일보한 조치가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또 북한의 개혁과 개방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되는 한편 간접적으로는 미ㆍ일ㆍ중ㆍ소 등 주변 4대강국에 대해 남북한의 실질적인 통일을 위한 대화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분위기를 조성할수 있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경제교류부터 시작 이번 제의가 구체적인 결실을 거둘 수 있는가 하는 점은 우리측이 어떤 후속조치를 취하느냐와 북한이 과연 이를 수용할 수 있느냐에 달려있습니다. ▲도흥렬교수=특별발표의 의미나 배경은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으나 우선 우리 정부가 우리체제에 대한 자신감을 가시적이고 구체적으로 표명했으며 이러한 자신감을 바탕으로 남북교류의 실체접근을 시도했다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둘째는 김일성의 올 신년사에 대응,북한이 제의하고 있는 통일정책을 전향적이고 포괄적으로 수용하면서 이를 실천하기 위한 현실적인 선언으로 볼 수 있으며 세번째는 독일통일에 크게 고무받아 우리도 통일을 이룰 수 있다는 자신감을 표명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습니다. 특히 이번 선언은 한ㆍ소 정상회담의 성사에 이은 양국간의 관계진전,7ㆍ7선언이후 계속된 우리측의 각종 대북제의등 일련의 과정을 거쳐서 나온 것으로 통일을 앞당길 수 있는 혁명적인 거보가 될 것으로 봅니다. ­이번 제의가 갖는 의미를 여러 면에서 지적하셨는데 이 제의를 앞으로 어떻게 실천하느냐가 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됩니다. 판문점공동경비구역내 북측지역의 개방선언,8ㆍ15범민족대회,남북고위급회담 등과 관련해 이번 제의가 남북관계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말씀해 주십시요. ▲최=북한의 정치ㆍ경제ㆍ사회적인 여건을 종합해 볼 때 우리가 추진하는 방향으로 보조를 같이 하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봅니다. 가령 북한은 소련으로부터는 정치ㆍ경제적인 개방압력을,중국으로부터는 단계적인 경제적 개혁이나 대외경제적 개방을 종용받고 있지만 이를 받아들일 수 없는 실정입니다. 동구식의 개혁ㆍ개방정책을 추진할 경우 북한체제의 근저를 뒤흔들 것이라는 점을 잘 알기 때문입니다. 현재 북한내부에서는 개방과 개혁을 추구하는 경제ㆍ행정관료 중심의 진보파와 혁명1세대라는 수구파 사이에 정책적 갈등이 노출되고 있고 이에 따라 대내적 정책방향은 물론 대남정책에 있어서도 뚜렷한 방침이 정립돼 있지 못한 것으로 분석됩니다. 따라서 북한은 고위급회담등 정치선언적 의미가 큰 남북회담에는 응할 것으로 보이지만 실질대화는 기피하면서 여러가지 조건을 붙여 한국정부에 그 책임을 전가하는 태도를 당분간 견지하리라고 봅니다. 또한 남북고위급회담도 범민족대회의 진행을 지켜보면서 거부하든지 아니면 7ㆍ4공동성명당시 서명자인 김영주대신 박성철이 나왔듯이 연형묵총리를 내려보내는 것이 아니라 전총리등 실세가 아닌 제3자를 내세울 가능성도 높습니다. ▲도=북한이 보일 반응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으리라 봅니다. 여러가지 어려운 문제를 안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우리의 이번 제의를 받아들일만한 준비가 전혀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현재 북한은 경제적으로 매우 어려운 입장에 처해있습니다. 북한경제를 연구하는 소련학자들에 따르면 북한의 1인당 국민소득은 4백달러를 넘지 않으며 더 놀라운 일은 공장ㆍ기업소의 가동률이 40∼50%에 불과하다는 점입니다. 72년 남북적십자회담이 서울과 평양에서 열린후 85년 남북고향방문단이 다시 남과 북을 오가는데는 13년이 걸렸습니다. 즉 남북간의 비교열세를 확인했던북한이 평양시가지를 대대적으로 정비,자신있게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까지 그만큼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계획적이고 치밀한 판단이 서야만 북한사회를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북한의 권력층이 그들의 체제열세를 대내외에 노출시킬 수밖에 없는 자유왕래를 허용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입니다. 또한 북한은 급변하는 국제정세에 「창조적으로」 대응하기 위한 방식을 모색하는 과도기의 단계에 있고 김정일 후계체제의 구축에도 많은 걸림돌을 안고 있습니다. 이런 상태에서 북한이 과연 우리의 의도대로 따라오겠느냐는 것은 역시 의문입니다. 따라서 북한은 직접적인 거부가 아니라 국가보안법의 철폐라든가 임수경ㆍ문익환목사의 석방,미군철수 등 여러가지 전제조건의 해결을 강력히 주장하면서 나름대로의 대응방식을 찾기까지 시간벌기작전을 펼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번 제의가 남북한에 미칠 장기적인 영향이나 파급효과 등은 어떻습니까. ▲최=직접적으로는 우리 국민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것이며 더 나아가 우리의 통일정책을 미ㆍ일ㆍ중ㆍ소 4대강국은 물론 세계에 알리는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간접적이고 장기적인 측면에서는 북한에도 상당한 파급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생각합니다. 특히 북한의 권력 핵심부에 큰 영향을 미쳐 개혁성향을 가진 계층과 세습체제를 고수하려는 수구계층과의 갈등을 야기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문제는 북한의 권력핵심부를 어느 쪽이 차지하느냐에 달렸는데 이번 제의는 개혁파의 세력부상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또한 북한은 김일성의 연령(78)등을 고려,오는 92년이나 가까운 시일내에 정권교체의 혼란이 빚어질 가능성을 예측할 수 있는데 이번 제의가 변수로 작용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겠지요. ▲정=그렇습니다. 북한에서의 이념투쟁을 가속화하는 계기가 될 것이란 분석에는 저도 동감입니다. 북한은 그동안 선동적 통일전선차원의 각종 제안을 내놓았으나 이번에 우리정부가 북한의 제안을 적극 수용함으로써 앞으로는 섣부른 선동이나 선전적인 제안을 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중ㆍ소서도 교류지원 ­민족교류가 통일로 가는 지름길이 된다고 할 수 있겠는데 민족교류에서 통일에 이르기까지 어떤 과정을 거치는 것이 바람직한지,또한 동서독과 중국ㆍ대만등 외국의 경우와 비교,어떻게 민족교류를 전개해야할지 말씀해 주십시오. ▲최=북한의 수용여부가 무엇보다도 중요하며 주변 4대강국의 지지여부도 중요합니다. 남북한을 포함한 6자가 수용할 수 있는 것은 동서독과 비슷한 경제교류입니다. 경제교류는 중국과 소련도 이해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북한에 사회주의경제의 최대 약점인 생산관리기법이나 기술을 제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군비축소와 관련된 실질적인 결실이 있어야 하며 북한도 이를 진심으로 원한다고 봅니다. 따라서 우리측은 선 군비축소통제,후 신뢰구축을 주장하는 북한의 제의를 전향적으로 수용,이를 동시에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도=남북관계에서 우리는 대화와 접촉ㆍ교류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주장을,북한은 선 군비축소주장을 펴왔습니다만 앞으로는 전제조건이 없어야 하며 이점에서 대만의 방식을 참고로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만의 행정원은 지난 87년 10월 대만인들이 대륙의 가족을 방문할 수 있도록 했으며 이를 위한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규정을 마련했습니다. 이에 따라 대만인들은 가족방문을 시작했고 이어 관광ㆍ비즈니스방문 등으로 대륙방문을 확대해오고 있습니다. 이렇듯 중국과 대만간에는 거창한 공식적 협약도 없이 왕래가 이뤄지고 이를 통해 동질성과 전통성을 회복,신뢰구축을 이루어 나가고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도 대만식의 방법을 도입할 필요가 있으며 북한도 제한된 기간이지만 조건없는 왕래를 허용함으로써 오해와 불신을 조금씩 씻어내야할 것입니다. ▲최=독일은 동서독분단이후 즉시 매년 4백∼5백여명씩 크리스마스가 되면 서로를 방문할 수 있었고 점차 그 수를 늘려나갔습니다. 우리는 6ㆍ25전쟁으로 이것마저 없었는데 이번 제의를 계기로 이제부터라도 제한된 수,제한된 기간이나마 서로 오가는 일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한편 북한은 지난 60년대는 조총련을 통해,80년대는 재미교포를 통해 경제적인 도움을 추구했는데 90년대에는 북한출신 한국기업인들을 불러들여 부분적인 경제적 도움을 이끌어내는 방안을 찾을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또 순수한 관광객유치를 통해 제한적이나마 북한을 개방한다고 과시하면서 외화를 벌어들이는 방식을 취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우리 정부가 통일을 이루기위해 앞으로 취해야할 조치들을 말씀해 주십시요. ▲도=대만의 예처럼 구체적인 후속조치를 취해야할 것이며 관계법에 따른 남북교류협력추진협의회를 조속히 구성,활동을 시작해야 할 것입니다. ○“선언앞서 제도 마련” 또한 북한의 입장을 고려,정책추진의 완급을 조정해야하며 냉전적 사고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는 일부 국민들의 반응도 생각해 현실과 동떨어진 급진적인 조치는 자제해야 할 것입니다. 특히 우리의 분배구조를 개혁,7.7%에 이르는 3백30만명의 절대빈곤계층의 불만을 해소하는 것도 통일로 나아가기 위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입니다. ▲최=첫째 정치적 선언에 앞서 법적 제도적 조치를 먼저 취해야합니다. 국가보안법 개정을 서둘러야 하고 냉전시대의 법규ㆍ정책을 과감히 정비해야 합니다. 둘째 통일과 민족교류의 문제를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해서는 안됩니다. 특히 정부는 내부결속을 위해 야당 및 재야 등 각계각층과 충분한 협의과정을 마련해야 합니다.
  • 「7·20선언」… 각국의 반응

    ◎화합·통일의 길 여는 새 전기/미국 “체제 우월” 서울의 자신감 표출/일본 “긴장완화 위한 실질조치” 환영/유럽 “실현되면 45년 만의 관계 진전” ▷일본◁ 일본조야는 20일 광복절을 기해 민족 대교류를 하자는 노태우대통령의 제의를 일제히 환영했다. 정부대변인 사카모토 미소지(판본삼십차)관방장관은 기자회견에서 노대통령의 특별담화와 관련,『남북간의 실질적인 교류가 진전되고 대화를 통한 교류가 이뤄지는 것은 매우 바람직한 일』이라고 지적하고 『일본정부는(노대통령의 제안이) 실현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한편 일본 언론들도 노태우대통령의 특별담화를 일제히 이 날짜 석간 1면 머리기사로 취급하고 노대통령의 대담한 제의에 북한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주목된다고 말했다. 도쿄(동경)신문은 1면 톱기사와는 별도로 2면에 「한국대통령의 성명요지」와 해설기사를 게재했다. 이 신문은 해설기사를 통해 『노태우대통령의 제안은 북한과의 화해를 위해서는 우선 교류확대로부터 시작한다는 한국측의 자세를 구체적으로 나타낸 것』이라고 지적하고 『이는 북한측이 주한미군 철수및 한국의 유엔가입 반대등 「정치원칙론」을 고집하고 있는 것에 대항,남북 이산가족재회및 직접무역등 현실적인 남북교류의 길을 열겠다는 의지가 담겨있는 것』이라고 풀이했다. 아사히(조일)신문은 본 기사와 해설·요지 등을 1면과 2면에 나눠 상세히 싣고 노대통령의 제안이 북한에 의해 그대로 받아들여져 실현될 가능성은 적지만 이번 제안이 남북분단의 벽에 구멍을 뚫는 실마리가 될지 모른다고 평가했다. 요미우리(독매)신문도 요지와 해설을 2개면에 나눠 싣고 노대통령의 특별담화는 학생과 재야단체등의 북한방문을 인정하겠다는 입장을 밝힘으로써 북한으로 하여금 거부할 명분을 잃게 하고 인적 교류를 통해 북한을 개방으로 유도하겠다는 뜻이 담겨 있지만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함으로써 통일환경을 조성하자는 주장을 되풀이해 오고 있는 북한이 노대통령의 제의를 수락할 가능성은 적은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도쿄=강수웅특파원〉 ▷미국◁ 미국 언론들은 20일 노대통령의 남북한 자유왕래제의를 일제히 주요기사로 보도했다. 뉴욕 타임스지는 『한국이 한국전이래 적대관계를 계속해온 북한의 주민들에게 조건없는 남한방문 초청을 제의하기는 이번이 처음』이라고 논평했다. 타임스는 『노대통령의 제의는 세부사항이 개략적』이라고 지적하고 『그러나 그것은 최근 남북한이 오랜 교착상태끝에 총리회담 일정등에 합의한 난관타개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제스처로 보인다』고 풀이했다. 워싱턴 포스트지는 『노대통령의 제의는 수십년간 지속돼온 한국의 대북 국경봉쇄정책과 승인없는 대북접촉규제정책을 뒤집은 것』이라고 보도하고 『이 제의는 앞으로 남북한간의 적대관계에 큰 변화를 나타내고 군사대결 위협을 감소시킬 것』이라고 전망했다. 포스트는 『노대통령의 제의가 보여준 핵심요소는 서울의 자신감』이라고 강조하고 한국은 경제붐·강력한 군사력·공산주의 이념의 퇴조 등에 힘입어 북한에 대한 두려움이 과거에 비해 적어졌다고 덧붙였다. 포스트는 그러나 북한이 공산세계를 변화시키고 있는 자유화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에 오는 8월15일을 전후한 시기에 자유왕래의 실현을 전망하기는 어렵다고 보도했다.〈워싱턴=김호준특파원〉 ▷유럽◁ 프랑스의 A2­TV는 20일 아침뉴스를 통해 한국이 민족 대교류기간을 설정,제의한 것은 남북한 주민의 자유왕래를 실현하여 남북분단을 해소하기 위한 조치라고 논평하면서 이 제의가 실현되면 45년 한반도분단이후 최초의 실질적인 남북 관계진전이 이룩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프랑스의 르몽드지는 이날 「북한,남한의 제의를 거절」이라는 제목아래 노대통령의 제의내용과 북한의 거부사실을 자세히 보도했다. 이 신문은 노대통령의 제의가 한소간 국교정상회담 개최발표직후에 나온 점을 지적하면서 『한국측의 저의가 당장 결실을 얻지 못하더라도 한국이 국제적으로 냉전해소시대의 챔피온의 자리를 굳힐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분석했다.〈파리=김진천특파원〉 ▷홍콩◁ 신만보·성도일보 등 홍콩의 석간신문들은 한국의 노태우대통령이 광복절과 추석등 민족명절에 남북한 동포들이 판문점을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북한측에 제의한 사실을 20일 외신면 머리기사로 크게 보도했다. 홍콩 언론들은 노대통령이 처음으로 올해 광복절을 맞아 남북동포의 왕래를 자유롭게 하도록 제의한 점은 한반도가 일제식민통치에서 벗어난 날을 기념하는 것과 관련,한반도의 냉전종식은 물론 통일전망을 밝게 해주는 것으로 분석했다.〈홍콩=우홍제특파원〉
  • 방북신청 8월6∼11일 접수/북한에 가려면 이렇게

    ◎교류기간엔 신고제… 이후엔 허가제/시도 민원실에 주민증·사진 등 제출 「민족 대교류 기간」의 선포로 오는 8월13일부터 17일까지 5일동안 북한방문을 희망하는 사람은 학생·정당·사회단체 등 소속과 신분에 관계없이 누구나 간단한 서식절차만 밟으면 방문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특히 분단 45년동안 법적인 제약등에 묶여 북녘 고향의 가족·친지 등을 만나지 못했던 1천여만명의 이산가족들이 대거 방북신청을 해올 것으로 예상된다. ○…남북왕래는 우선 민족 대교류 기간동안에는 신고제,그 이후에는 허가제로 실시된다. 교류기간동안에는 누구나 통일원장관이 발급하는 남북 왕래증명서를 소지하면 방북할 수 있는데 증명서 발급은 신청자가 상당히 많을 것으로 보여 통일원에서 전담하지 않고 전국의 각 시·도 민원실에서 증명서 신청접수및 발급업무를 맡을 예정. 정부는 신원진술서등 복잡하고 까다로운 서류를 일체 생략,본인이 인장·주민등록증·사진(여권용) 등만 지참하고 직접 8월6일부터 11일까지 기간동안 증명서를 신청할 수 있도록 할 방침. 증명서는 당초 공무원신분증 양식도 검토했으나 20여일의 촉박한 기간을 감안,기존의 「북한방문증명서」에 사진과 기본적인 인적 사항만 기재될 예정. 정부는 오는 30일 남북 실무접촉이 열릴 경우 판문점 출입사무소 설치문제를 논의할 예정인데 우리측 출입(통과)사무소는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결정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판문점 통과후에는 개별적인 교통수단 이용보다는 재일교포 모국방문단의 경우와 같이 행선지별 버스이용이 유력할 것으로 전망. ○…민족교류기간 이후부터는 임시국회에서 통과된 남북교류협력법과 곧 마련될 시행령에 따라 남북왕래를 하게 된다. 지금까지 북한 주민과의 접촉과 남북왕래는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대통령특별지시1호 기본지침에 따라 복잡하고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 통일원장관의 허가를 얻어야 했으나 남북교류협력법과 시행령으로 그 절차가 대폭 간소화될 것이라는 것이 정부당국자의 설명이다. 남북교류협력법은 오는 25일 국회에서 정부로 이관돼 국무회의 의결과 대통령의 서명을 거쳐 관보로 공고함에 따라 효력을 발생하게 되며 시행령도 모법에 곧이어 마련될 예정인데 늦어도 8월 초순까지는 법적 제도가 완료될 전망이다. 정부는 남북 교류기간이후 서류는 대폭 간소화하고 증명서 발급기한도 1주일이내로 축소하되(과거 2주일) 신청자에 대해서는 심사과정을 거쳐 증명서를 발급해 주는 허가제로 시행령을 마련할 방침이다.〈박정현기자〉
  • 남북문제 해결의 새 초석/노대통령 민족 대교류 제의에 부쳐(사설)

    광복 45년,건국 42년을 맞는 오는 8월15일을 전후한 5일동안 분단됐던 민족의 재결합이 일시나마 이루어질 수 있을까. 노태우대통령의 광복절 민족 대교류 선언은 광복에 이은 40여년 분단민족사에 최대의 과제를 제기하고 있다. 이번 선언은 88년 7·7선언과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에 입각한 구체적인 문제해결 의지로서 북한측의 상응조치 여하에 따라서는 분단극복의 획기적인 계기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남북한이 분단의 장벽을 제거하고 체제와 이념의 차이를 극복하려면 먼저 대화와 교류가 쌓여야 한다. 남북한 주민 누구나 어디에서든 자유롭게 만나 이산의 한과 적대의 증오를 해소해야 한다. 민족 대교류 선언은 우리쪽부터 그렇게 하겠다는 의연한 결의이다. ○「한민족공동체」 의지의 확산 지난 88년 「7·7 특별선언」은 북한에 대한 기존의 기본인식과 정부의 통일외교정책 방향에 새로운 전환을 가져왔다. 그 선언으로써 북한은 더 이상 경쟁·대결·적대하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 신뢰와 화해협력을 쌓아나가는 민족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식되었다.북한에 대한 인식의 전환은 경쟁과 대결의 남북한관계가 결국은 민족 스스로를 해치는 행위라는 자각과 반성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7·7 선언정신에 입각한 지난해의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은 보다 구체적으로 남북의 공존공영과 민족사회의 동질화,민족공동생활권의 형성을 지향했다. 민족 대교류 선언은 바로 그것을 위한 행동방안이라 해도 좋다. 8·15 광복의지를 바탕으로 민족 대교류가 이뤄진다면 그것은 다시 설날로,단오절로,추석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게 되면 당국의 만류를 뿌리치고 「가자 북으로」라고 절규하던 젊은이들의 함성도 잦아들 것이다. 그런 점에서 민족 대교류 선언은 분단극복의 장애요인을 완전히 제거하고 체제와 이념을 초월하는 징검다리의 역할을 건너뛰어 이윽고 민족통합과 국토통일의 또 하나의 초석이 되게 되는 것이다. 광복절 민족 대교류 선언의지에는 북한측의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개방,남북의 자유왕래 주장이 완전무결하게 발전적으로 함축되고 있다. 체제와 이념을 초월해서 분단극복의지를 극대화한다는 측면에서 보더라도 남북 자유왕래의 장애요인은 더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인적 교류에 있어 인원 지역상의 제한이 철폐되었고 그것은 다시 교류의 정례화로 이어질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폐쇄빗장 풀고 개방해야 최근 우리가 국가전략및 남북한문제와 관련하여 한소 관계개선을 서두르고 있는 것도 궁극적으로는 한반도문제 해결의 길을 열고자 함에서이다. 이미 한소 정상회담이 이뤄졌고 오는 8월 모스크바에서는 양국의 각료급 공식회담이 열리게 돼 있다. 한소 관계개선에 있어서도 우리는 북한을 결코 배타적인 대상으로 삼지 않는다. 안팎의 여러가지 예민한 정세변화에도 불구하고 북한과 소련은 여전히 맹방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한소 관계개선에서 북한이 배척되고 제외돼서는 안되는 까닭이 바로 이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한반도문제 궁극적인 해결의 당사자는 어디까지나 남북한이라는 사실이다. 그러한 쌍방 당사자끼리의 논의와 합의는 꾸준한 대화와 교류의 축적으로써만 가능하다. 대화가 문제해결의 이론이라면 교류는 민족간의 끊어졌던 맥을 다시 잇는 행동이 되는 것이다. 북한은 이제 이 대화와 교류의 정례화와 구체화를 위해 상응한 조치를 보여야 한다. 남북한 상호교류에는 인적·물적 분야가 있다. 국제적인 화해조류와 남북한 현실변화의 추세에 비추어 상이한 체제와 이념이 더이상 문제되지 않는다면 남북교류에 있어 이제는 아무런 장애도 없다. 우리는 이미 7·7선언 후속조치의 하나로서 남북한간 물자교역개방조치를 발표한 바 있었다. 지난번 임시국회에서는 남북교류협력법안과 남북협력기금법안이 통과됐다. 북한은 이제 더이상 대화와 교류를 거부하고 회피할 명분이 없다. ○대화와 교류 축적의 길 80년대 중반에 들면서부터 우리는 실로 커다란 변화의 격랑속에 휩싸여왔다. 국제적으로 냉전체제가 붕괴되고 화해와 협력의 새로운 국제질서가 구축되고 있다. 그 세계사적 추세속에서 오로지 한반도만이 최후의 냉전지대로 남게 되었다. 그것은 7천만 민족의 수치이며 오랜 역사를 가진 민족의 긍지와 자존심을 훼손당하는 일이다. 회고컨대 우리 민족은 조선말엽 세계정세의 흐름에적절히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국권을 상실하고 반세기간에 걸친 민족적 수난을 겪었다. 그러한 역사의 교훈을 상기해야 한다. 우리 민족이 세계적 흐름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내외의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해 나갈 수 있을 때에 비로소 민족 전체에 유리한 환경을 만들어갈 수 있다. 그 국제정세가 우리 민족에게 항상 유리하게만 전개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오늘날의 유리한 국제정세를 적절히 활용하지 못한다면 민족사의 발전에 커다란 과오를 범하는 것이다. 동서독의 예에서 보듯이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의 축적이야말로 남북문제 해결의 길이다. 진지한 대화와 핏줄이 교류하는 가운데에서는 과거의 한과 증오와 적대의식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다. 옛 러시아 속담에 『어설픈 평화라도 좋은 싸움보다는 낫다』라는 말이 있다. 말을 바꾸면 최악의 대화라도 전쟁보다는 낫다는 일깨움일 것이다. 남북한은 이제 전쟁은 다시 말고 적대도 말아야 한다. 북한이 좋다면 오는 8월15일을 전후한 남북한 곳곳에서는 분단민족 재결합의 일대 축제가 펼쳐질 것이다. 특히 이산가족들의 그러한 기대와 희망을 북한은 외면하지 말아야 한다.
  • 남북대화와 북한의 표리(사설)

    남북한의 관계개선은 과연 가능한가. 대화는 진전되고 교류가 쌓여가면서 분단극복의 토대가 마련될 수 있을까. 이같은 질문은 어떻게 보면 하나의 우문에 불과하지만 요즘 오고가는 남북한간 대화논의와 북한측의 표리부동한 자세를 보면 저절로 생기는 의문이 아닐 수 없다. 9월초 남북한 총리회담이 확실해짐에 따라 양쪽의 대화와 교류,그리고 궁극적으로는 통일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는 듯하더니 이번엔 북한쪽에서 19일로 날짜까지 잡혔던 남북 국회회담 예비접촉을 일방적으로 무기연기시켰다. 북한은 우리 국회내의 여야충돌과 의원직 사퇴파동을 연기이유로 내세웠다. 그러나 이번 국회회담 예비접촉은 지난달 20일 그쪽에서 재개를 제의해온 것이다. 그들 안팎의 사정과 분위기를 고려하여 필요하다고 판단하면 일방적으로 대화재개를 요청하고 다시 대남선전ㆍ선동에 이용할 수 있다면 언제고 약속된 대화를 연기하고 회피하는 그들이어서 이번 일방적 연기도 우리로서는 크게 괘념할 바 아니다. 그러나 「남한 내부사정」에 「우려」까지 표해 가며일방적으로 회담연기를 통보한 것은 한마디로 남북한간 모든 대화에 임하는 그들의 저의와 속셈이 어떠한 것인가를 다시 보여준 셈이 됐다. 결국 예비접촉이나 회담 자체에는 별 문제가 없는데도 남한국회의 「위기상황」이라는 것으로 과장하여 뭔가를 얻어 보겠다는 상투적인 태도로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한마디로 북한은 우리 국회의 내부 상황이나 우리 정치의 체제 및 이념,사회규범과 도덕률에 대해서 우려할 필요가 없다. 국회에 상정된 관계법안의 내용과 여야의 견해차이로 물리적인 충돌이 있었다 하더라도 그것은 근본적으로 민주정치의 광장인 국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경우에 따라 발전을 위한 진통일 수 있고 의견조정을 위한 과정일 수 있다. 우리 국회는 지금 그 후유증을 최소화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중이다. 국회회담 예비접촉에는 아무런 차질도 없을 뿐더러 여야대표가 지금 당장이라도 함께 참석할 준비가 돼있는 것이다. 북한이 실망하고 우려할 사태도 아니었고 그들이 비아냥거린바 해산직전에 처해있는 위기상황도 아닌 것이다. 우리가 우려하고 실망하는 것은 오히려 북한쪽의 변함없는 자세와 태도이다. 그들은 동구에서 진행되고 있는 사회주의의 개혁과 혁명적 상황을 외면하고 오히려 반대로 그들 주체사상을 더욱 강화할 뿐이다. 남북대화에 있어서는 아직도 대남 전략측면을 고수하고 있고 철저한 집안단속과 더불어 대남선동을 계속하고 있다. 그것이 바로 한반도에 새로운 긴장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다. 남북한간의 장벽을 허물고 대화를 하자는 데 있어 상대쪽의 내정이나 의회상황은 결코 우려의 대상일 수 없다. 또 그것이 대화 회피나 연기의 요인도 아닌 것이다. 그보다는 스스로 자신의 내부를 돌아보고 세계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를 살피는 지혜를 가져야할 것이다. 우리는 북한당국에 간곡히 당부한다. 이제 상투적인 선전이나 비방은 하지 말아야 한다. 앞으로의 대화와 교류에는 한마디,한 행동에 진실을 좀 담아가기를 바라는 것이다.
  • 「통일 독일」의 나토가입(사설)

    소련이 마침내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에 동의했다. 고르바초프 소련대통령은 콜 서독수상과의 정상회담을 끝내고 16일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에 반대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그것은 서독과 서방세계의 통일독일 나토가입 주장에 완강히 거부해온 소련의 중요한 태도변화 내지는 양보를 의미한다. 그것은 또 독일 조기통일작업의 마지막 걸림돌이 제거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이며 이로써 이미 통화ㆍ경제ㆍ사회통합을 달성한 동ㆍ서독이 오는 12월2일의 동시자유총선을 통해 정치통합의 완전통일을 이루는 길이 순조롭게 되었다. 동ㆍ서독의 통일은 유럽대륙에 거대한 게르만민족국가가 탄생하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은 2차대전의 악몽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미국과 유럽은 물론 소련에도 불안한 걱정거리를 안겨주는 현상의 변화를 뜻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미국과 서유럽은 통일독일을 나토의 테두리속에 묶어둠으로써 거대독일의 탄생이 제기하는 위험을 최소화하려 하고 있으며 소련은 거대독일의 나토가입이 소련에제기하는 안보상의 위험을 들어 그것을 반대해 왔다. 이같은 안보상의 위험 외에도 소련은 통일독일의 나토가입을 반대해야 할 이유들이 많았다. 고르바초프대통령은 5년간의 개방ㆍ개혁에도 불구하고 경제를 개선시키지 못하고 있다. 그러면서 그의 신사고외교는 동유럽의 상실만 초래했다는 보수파의 비판이 이번 공산당대회에서도 제기되었을 정도다. 소련은 2차대전당시 나치스 독일과의 싸움에서 2천7백만명의 인명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고 있다. 동독을 포함하는 동서유럽의 국경선은 그러한 소련의 희생에 대한 보답이란 것이다. 그것을 이렇다할 대가도 없이 상실한다는 것은 어떤 이유로든 설명이 안되는 것이다. 고르바초프는 통일독일의 나토 가입반대로 서독과 미국등 서방으로부터 경제지원등의 양보를 최대한으로 받아내려했던 것이다. 콜 서독수상은 이미 30억달러의 차관제공을 결정했으며 미테랑 프랑스대통령과 함께 1백50억달러의 대소지원을 서방세계에 촉구하고 있다. 서방선진국 정상회담에서도 대소 경제지원 원칙이 확인되었으며 그에 앞선나토정상회담에선 소련을 적이 아닌 잠재적인 우방으로 표현하기도 했다. 콜총리는 이같은 경제지원 약속과 나토등 서방세계의 대소 인식변화를 기초로 고르바초프대통령을 설득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고르바초프는 회견에서 나토등 서방의 대소 인식변화에 고무되어 반대를 철회했다고 밝혔다. 이번 독소 정상회담에서 급부상된 통일독일과 소련간 새 조약 내지는 협정구상도 고르바초프의 결심에 큰 도움을 주었을 것으로 분석된다. 이번 공산당대회에서 고르바초프의 권력기반이 강화되어 대외문제에 관한 입지가 보다 자유로워진 것도 중요요인의 하나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이같은 유럽정세의 바람직한 방향으로의 전개에 안도하면서 그것이 한소수교등 아시아와 한반도 정세의 올바른 전개에도 기여하게 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고르바초프 신사고외교에 있어 독일다음에 해결해야 할 중요문제는 세계유일의 냉전유산이 되어버린 한반도 분단문제라 생각한다.
  • 판문점 안내책자 발간/국ㆍ영문판 6만부 무료 배포

    통일원은 15일 판문점 개방에 대비한 판문점 안내책자를 발간했다. 신국판 32페이지로 된 이 책자는 ▲6ㆍ25전쟁이 남긴 것 ▲판문점의 유래 ▲경내시설및 군사분계선 ▲주변풍경 ▲판문점에서 이뤄지고 있는 일들 ▲분단의 굴레를 벗어나는 길 등 6개 항목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공동경비구역 안내도를 비롯한 자료사진을 담고 있다. 통일원은 이 책자를 국문판 3만부ㆍ영문판 3만부씩 발간,판문점을 방문하는 국내외 관광객에게 무료로 배포할 계획이다.
  • 북의 대남전략 변화없어 결실 기대난/첫 남북총리회담과 연형묵

    ◎연총리는 합리적 성격의 기술관료 출신/김부자 신임 두터우나 행동반경 의문 북한의 정무원총리 연형묵(65)이 오는 9월초 서울에 온다. 지난 12일 남북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이 남북총리를 각각 단장으로 한 남북고위급회담 1,2차 회담을 오는 9월초순 서울과 10월 중순 평양에서 번갈아 개최키로 완전합의함에 따라 분단 45년만에 최초로 북한의 총리가 서울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장차관급(북한의 경우 정무원 부장ㆍ부부장)을 비롯,수행원 33명,기자 50명 등 모두 90명의 대표단을 이끌고 서울에 오게될 연형묵총리는 현재 북한내 권력서열 6위의 혁명 2세대. 북한권력 서열상 김일성­김정일 부자를 떠받치고 있는 70대고령의 혁명 1세대인 오진우(73ㆍ3위ㆍ인민무력부장),이종옥(79ㆍ4위ㆍ부주석),박성철(76ㆍ5위ㆍ부주석)에 이어 김영남(65ㆍ7위ㆍ외교부장) 허담(65ㆍ11위ㆍ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 등 60대중반의 혁명 2세대중 선두주자로 나서고 있는 인물이다. 그는 김일성대학 이공학부와 소련우랄공대에서 금속ㆍ기계ㆍ전기ㆍ전자 등을 공부한 대표적인 기술관료(테크노크랫)로서 북한의 행정집행기구의 총책임을 맡고있는 동시에 당정치국원ㆍ당중앙위원 등을 겸직,노동당의 정책결정에도 깊숙이 관여하고 있다. 그는 지난 85년 정무원 제1부총리겸 금속기계공업위원장을 맡아 정무원에 첫 진출,88년 12월 이근모의 후임으로 총리직에 선임됐는데 기계공업분야에 정통하며 북한의 대외경제협력 등을 추진하는데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83년과 84년 김일성을 수행,중국ㆍ소련ㆍ동구권 등을 방문하는 등 김일성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며 러시아어와 불어ㆍ일어 등에도 능통,국제감각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1925년 북만주에서 태어난 그는 70년 당중앙위 부장에 기용되면서 얼굴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만경대 혁명학원 1기생으로 김정일의 선배이자 70년대 3대혁명소조운동이 벌어졌을 때 당책임지도원을 맡았던 경력이 말해주듯 김정일 후계체제의 강력한 후원자로서 앞으로 김정일의 정치ㆍ경제 참모로서 중요한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연형묵은 판단이 예리하고 날카로우며 합리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알려져 있는데 김일성의 두터운 신임을 받고 있는 동시에 김정일의 측근인 그가 앞으로 있을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어떠한 자세를 보일지 주목되고 있다. 이와 관련,북한문제전문가들은 경제실무에 밝으며 합리적인 사고를 지닌 기술관료출신의 연형묵이 보다 유연한 모습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하지만 북한이 판문점에서의 8ㆍ15 「범민족대회」개최와 제정당ㆍ사회단체가 참여하는 「통일협상회의」개최를 거듭 주장하고 있는 등 기존의 대남적화 통일전략을 바꾸지 않고 있어 남북고위급 회담에서 얼마만큼의 결실을 거둘지 예측하기 어렵다고 말하고 있다.
  • “북한의 개방·개혁 지원”/탈냉전 조류 통일로 연결

    ◎노대통령 평통 해외지역 회의에 메시지 노태우대통령은 13일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90년도 해외지역 회의에 보내는 메시지를 통해 『90년대는 우리가 평화통일을 성취하는 연대가 될 것』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하루속히 개방된 세계로 나와 국제사회의 책임있는 성원이 될 수 있도록 우리는 그들의 개방과 개혁을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날 로스앤젤레스 유니버시티 힐튼호텔에서 열린 LA지역 회의에서 현경대평통사무총장이 대독한 이 메시지에서 『북한은 더이상 우리가 적대하거나 경쟁할 상대가 아니며 통일의 그날까지 우리와 공존공영해야 할 같은 민족공동체』라며 이같이 말했다. 노대통령은 『우리는 냉전체제의 붕괴,동구의 민주화및 소련의 개혁등 세계의 변화에 슬기롭게 대응하여 그것을 통일을 이루는데로 이끌어야 한다』고 말하고 『2차대전 종전과 함께 해방을 맞았을 때 우리가 뭉치지 못하고 분열하여 분단의 고통을 초래한 잘못을 또다시 되풀이해서는 안된다』며 민족적 단합을 강조했다. 이날 회의에서 평통자문위원들은 『해외동포의 통일의지와 역량결집을 위해 적극 노력한다』는등 3개항의 결의문을 채택했다. 평통해외지역 회의는 이날 LA지역을 시발로 16일 휴스턴,18일 워싱턴,20일 뉴욕,23일 중남미(아르헨티나·부에노스아이레스),8월1일 일본 도쿄에서 차례로 개최된다.
  • 고위회담 성사를 통일 성사로(사설)

    그 가능성 예측대로라면 오는 9월초 어느날 서울에서는 남북한 총리급고위회담이 열리게 된다. 지난번 예비회담에 이은 몇차례 실무접촉에서 양쪽은 의외롭다 할 정도로 별 이견없이 본회담 개최에 따른 실무사항에 합의했다. 오는 26일의 예비회담에서 합의문서가 서명된다면 서울과 평양의 길은 다시 이어지게 된다.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바람직한 일이고 통일이전 분단해소 노력에 발전적인 전기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남북 고위급예비회담 실무접촉에서 논의된 대로 남북한 대표단이 서울과 평양을 항공기편으로 오고감을 상상해볼 수 있다. 휴전선 비무장지대(DMZ) 상공으로의 직항이 쌍방에 의해 허용된다면 분단이후 허가에 의한 첫 여객기 왕래가 될 것이다. 분단된 민족과 갈라진 국토의 통합이란 무엇인가. 비행기와 기차·자동차로 오고가고 이윽고는 단절됐던 문화와 풍속이 다시 이어지고 통화와 생활권이 묶어지는 것 아닌가. 동독과 서독이 그러했고 남북예멘이 그렇게 돼 가고 있다. 오늘날 우리들 남북대화와 교류가 가는 길이 바로 그래야 한다는것이다. 아직은 그 길이 멀고 험하겠지만 최소한도 그러한 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취지에서 우리 당국은 제1차 남북 총리회담이 열리는 시기에 맞춰 「통일주간」을 선포할 방침이다. 또 마침 그 기간은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발표(9월11일) 1주년을 전후하는 기간이다. 우연의 일치일는지는 몰라도 최근 전해지기로는 북한이 그들의 당면한 경제난을 타개하고 서방 자본국들과의 유대를 도모하기 위해 남방정책을 추구할 것이라 한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우리는 그들의 남방정책이 우리의 북방정책에 대응하는 정책입안이라고만은 여기지 않는다. 북방정책이든 남방정책이든 그것은 이제 지구상 최후의 분단국이며 냉전지대인 남북한이 그들 자신을 위해 취할 수밖에 없는 역사의 필연이며 시대의 추세에 따른 것이다. 문제는 그 시기를 포착하고 정책수단을 선택하는 판단의 차이였던 것이다. 북방정책과 「남방정책」이 만나는 곳에서 분단을 극복하고자 하는 민족적 의지가 집결되고 민족적 통일의식의 공감대가 이뤄진다면 한반도문제는 궁극적 해결의 단초가 잡히고 기초가 놓이는 것이다. 물론 최근 남북한 양쪽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통일의 방법론은 아직 기본적으로 차이를 보이고 있다. 크게 보아 남쪽은 통일민주공화국이라는 통일국가 형태에 이르기 위해 중간단계로 체제연합의 성격을 갖는 남북연합을 상정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통일국가 그 자체의 성격을 띠는 이른바 「고려연방제」를 내세운다. 어느 것이 현실적이고 합리적인가는 양쪽 당사자의 시각과 인식에 따라 다르겠으나 국내외적으로 이미 객관적인 평가는 나 있다. 남북한 총리회담에서는 북쪽이 주장해왔던 정치·군사문제가 토의될 것이고 교류와 협력을 위한 제반 구체적인 문제가 협의될 것이다. 그 어느 것 하나도 민족문제 해결을 위해 소홀히할 수 없는 것이다. 아니 그것이 전부이다. 거듭 강조하건대 대화에는 상호 신뢰와 이해 양보이외에 협상의 기본원리에 대한 동의가 앞서야 한다. 그것이 명분과 형식이다. 그 모두에 충실할수록 대화의 실효는 클 것이다.
  • 9월 남북 총리회담 합의의 의미

    ◎한반도 평화구축의 거보될까/교류협력등 현안 실질협상 기대/전례없는 우호분위기… 전도 밝아 12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남북 고위급예비회담의 2차 실무대표접촉을 통해 남북쌍방이 고위급회담 개최에 따른 합의서 문안정리작업을 완전 타결지음으로써 제1ㆍ2차 본회담의 서울및 평양개최가 사실상 확정되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본회담의 개최날짜는 오는 26일의 제8차 예비회담에서 최종 발표되겠지만 남북쌍방 실무대표들이 이미 이날 접촉에서 정확한 회담날짜에 합의한 것으로 알려져 남북 관계개선의 실질적인 첫발이 내디뎌졌다고 판단된다. 이제 쌍방간에는 이날 접촉에서 타결된 합의서 서명및 교환절차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그리고 이같은 마지막 절차는 오는 26일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열리는 제8차 고위급예비회담을 통해 완결짓도록 예정돼 있다. 따라서 남북관계에 심대한 영향을 미칠 돌발적인 변수가 발생하지 않는 한 연형묵정무원총리를 비롯한 북한대표단의 서울행은 기정사실화된 것으로 보인다. 통일원의 한 당국자는 이와관련,『고위급회담의 개최를 1백% 확신한다』고 말했다. 남북문제 전문가들은 그동안 14차례의 남북 상호방문 전례로 볼때 1차 고위급회담이 9월5일부터 8일까지 3박4일간 열릴 것으로 보고 있다. 또 강영훈국무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의 평양행도 북경 아시안게임이 끝난 직후인 10월 중순경 이뤄질 것이 확실하다. 남북 고위당국자간의 이같은 서울과 평양교차방문은 실로 분단이후 처음있는 역사적인 대사건임에 틀림없다. 물론 지난 72년 3차례의 남북 조절위원회가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개최된 적이 있지만 이는 순수한 의미의 당국자간 회담으로 볼 수가 없다는 것이 남북문제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더욱이 남북 쌍방총리들이 상호 방문한 자리에서 노태우대통령과 김일성주석을 자연스럽게 만날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으로 관측됨에 따라 남북 정상회담의 개최가능성도 점차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이렇게 된다면 45년동안 이념과 체제의 이질감으로 인해 분단의 벽을 굳게 쌓아올렸던 남북관계에 획기적인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되며 이러한 움직임의 원동력은 바로 남북 고위급회담의 개최라는 데 이견이 있을 수 없다. 더구나 남북 고위급회담에서는 의제자체가 「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로 설정돼 있는 만큼 남북간의 모든 현안을 다룰 수 있다는 측면에서 군축문제,불가침협정 체결,인적ㆍ물적 교류의 활성화 등에 있어 그야말로 실질적인 관계개선을 실현할 수 있고 나아가 남북간의 평화통일까지도 내다볼 수 있게 됐다. 바꿔말하면 고위급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구축을 위한 제도적 장치마련 및 교류협력보장 등의 현실적인 문제가 충분히 거론될 수 있다는 진단이다. 한마디로 남북간에는 현재 상당한 정도의 우호적인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으며 이것이 두차례의 실무접촉에서도 그대로 나타났다고 보여진다. 쌍방간에 그동안 이견을 보였던 사항들에 대한 합의과정을 지켜보면 이러한 분위기는 금방 감지된다. 예를들어 국호사용,대표단의 항공기이용,취재기자 관련조항 등에 있어 남북쌍방이 보여준 양보와 타협정신은 높게 평가할 수 있다. 이번만은 우호적이고 생산적인 남북간의 직접대화분위기를 깨뜨리고 싶지 않다는 게 남북쌍방 공통의 심정인 것 같다. 1차 본회담의 서울개최가 기정사실화됨에 따라 남북 대화사무국을 비롯한 정부내 관계부서는 이번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기 위해 대표단 숙식ㆍ교통ㆍ통신 등 제반문제와 회담장소선정 등의 실무작업에 조만간 착수할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내에서도 이번 고위급회담의 개최가 남북 관계개선의 지렛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종전과는 매우 다른 자세로 임하고 있다는 것이 관계자들의 지적이다. 여하튼 남북 고위급회담의 성사는 그동안의 선언적인 남북 교류협력을 벗어나 진일보한 관계개선의 결정적인 척도가 될 것으로 판단된다. 동ㆍ서독의 통합에서도 나타나듯이 분단을 해결하는 데는 당사자들끼리의 직접대화가 무엇보다 중요하기 때문이다. 9월 초순이면 남북대표단 90명이 서울에 오게된다. 이들의 방문은 지난 85년 제1차 고향방문단의 교환방문때보다 엄청난 파급효과를 미칠 것으로 짐작되며 남북대표단의 일거수 일투족은 온 국민의 관심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하다고 보여진다. □남북 쌍방간에 타결된 합의서(추정) 중요 내용 ●명칭:남북(북남) 고위급회담 회담날짜:1차 본회담 9월 초순 2차 본회담 10월 중순 *3차이후는 매차 회담때 합의해 결정 회담장소:1차 본회담 서울 2차 본회담 평양 회담의제:남북간의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문제 회담대표단 구성:쌍방총리를 수석대표로 한 각기 7명으로 하되 대표는 장ㆍ차관급(부장ㆍ부부장급)으로 구성,군대표는 참모총장급 포함,2명이내로 하며 각기 편리한대로 그 수를 정한다. 수행원및 기자수:수행원 33명 기자 50명 회담형식:쌍방회담으로 하며 필요에 따라 총리단독회담과 부문별 회담개최 합의서채택:예비회담수석대표가 서명한 뒤 1통씩 교환 회담보도:쌍방합의에 따라 합의내용을 공동작성,발표 회담장 표지및 시설:회담장에는 어떠한 표지도 않는다 초청측은 상대측 대표단과 기자단을 위해 통신시설을 설치신변안전보장:총리명의로 된 신변안전보장각서를 회담 5일전 판문점에서 교환 대표단 표지:쌍방대표단은 자기측 총리가 발행한 신분증명서를 지참. 왕래절차:쌍방은 상대측 지역에 들어가는 인원들의 명단을 5일전에 상대측에 통보하고 왕래수단은 비행기로 할 수 있다. 취재활동:취재활동은 화해와 단합,통일에 도움이 되도록 한다. 체류일정:3박4일 회담 5일전에 통보 편의제공:초청측이 모든 편의 제공 직통전화:이미 가설된 서울과 평양간의 직통전화선을 이용하되 필요할 경우 합의에 따라 증설 가능 합의서 발효:쌍방이 서명,교환한 때로부터 효력 발생
  • 남북한 총리 9월초 서울회담/3박4일/실무접촉 합의

    ◎10월 중순 평양서 2차 대좌 남북 총리를 각각 단장으로 한 남북 고위급회담 1,2차 회담이 오는 9월초순 서울과 10월 중순 평양에서 번갈이 개최된다. 남북 고위급회담 예비회담 실무대표들은 12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회의실에서 비공개 접촉을 갖고 이같은 내용의 합의서 문안을 최종 확정함으로써 남북 쌍방은 오는 26일 제8차 예비회담에서 쌍방 수석대표간에 합의서를 서명ㆍ교환하는 절차만을 남겨뒀다고 남북 대화사무국이 발표했다. 이에따라 북한의 연형묵정무원총리를 비롯한 장차관급의 대표 7명,수행원 33명,기자 50명 등 모두 90명이 오는 9월초 3박4일동안의 일정으로 서울을 방문하게 된다. 우리측의 신성오(외무부 정보문화국장) 김보현(국무총리실 행정조정실 심의관)대표와 북측의 최우진(외교부 부장) 최성익(조평통 서기국 부장)대표는 이날 2시간여동안 진행된 접촉을 통해 ▲국호사용은 안하며 ▲본회담 대표단의 왕래는 항공기를 이용할 수 있고 ▲편파적인 보도 완전금지 조항을 삭제하는 등의 내용으로 된전문과 19개항에 걸친 합의문에 최종 합의했다. 남북 쌍방은 그러나 이날 합의된 1,2차 고위급회담의 정확한 개최일시 등 구체적인 합의내용 발표를 합의서에 서명ㆍ교환하는 26일의 8차 예비회담까지 유보키로 양해했으며 3차 고위급회담부터 회담일시및 장소 등은 그 직전 회담에서 정하기로 했다. 쌍방은 또 용지ㆍ규격을 똑같이 하고 한글로 쓰여진 합의서를 2통씩 작성,8차 예비회담 직전 쌍방실무대표의 재확인 절차를 거쳐 서명한 후 각각 1통씩 교환하고 쌍방 수석대표의 합의서 낭독과 고위급회담 성사에 대한 연설을 갖기로 합의했다. 쌍방이 이날 회담개최에 완전 합의함으로써 분단 45년사상 처음으로 남북의 총리를 비롯한 고위당국자들이 「남북간의 정치ㆍ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문제」를 의제로 공식대좌하게 돼 한반도 평화구축의 제도적 장치마련과 남북교류ㆍ협력의 보장 등 남북관계 개선의 획기적 계기가 마련될 것으로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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