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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말도 잊은 40년만의 부자포옹/축구인 이회택씨 평양서 아버지 상봉

    ◎같은 호털방서 밤새워 “지난얘기” 두손을 만지작거리며 계속 문쪽에 눈길을 주고 있던 리용진씨(63)가 벌떡 일어났다. 『회택이 아니냐,회택이구나』 리용복씨(58)도 달려가 이회택감독(44)을 얼싸 안았다. 10일 하오9시 고려호텔2층 회의실. 아버지 용진씨,삼촌 용복씨보다 늦게 홀에 들어온 이감독은 한꺼번에 다가온 아버지와 삼촌에 안겨져 이쩔줄을 몰라했다. 기억조차 희마한 아버지얼굴이 현실로 다가오지 않았기 때문. 40년만의 부자상봉은 아들을 한눈에 알아본 아버지의 오열과 아슴푸레한 기억속에서 방황하던 아들의 생경함으로 더욱 아픈 장면이 계속되었다. 감정이 복받치듯 아버지는 울음을 터뜨리며 한동안 말문을 열지 못하다가 띠엄띠엄 한마디씩 말을 이었다. 『회택아,이게 40년만이구나』 『예,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야,회택아,다시한번 보자』 고려호텔2층 회의실은 이산과 상봉의 아픔이 진하게 퍼져있었다. 6.25전쟁때 의용군으로 나섰다가 북쪽으로 간 아버지와 4살때 생이별. 얼굴한번 못보고 말한번 듣지못하고 40년을 살아온 아들의 만남은 당초 하오9시께로 예정되었다. 그러나 시간을 기다리지 못하고 황해북도 신계군 정봉리 집단농장에서 일찌감치 달려온 아버지와 남북통일축구경기 한국선수단을 따라와 고려호텔에 묵고있던 이감독이 예정시간보다 3분먼저와 이들의 만남은 하오8시57분에 이루어졌다. 부자는 한순간 엉겨붙어 3분간의 억센 포옹으로 40년의 한을 풀고 자리에 앉았다. 그리고 말을 이었다 『아버지를 알아보겠느냐』 『할아버지와 꼭 닮았습니다. 알아보겠습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습니까』 『우리야 행복하게 산다. 못만날줄 알았다. 그러나 이렇게 만나게 되다니…』 『할아버지는 6.25다음 다음해 돌아가셨습니다. 돌아가실때까지 즐거울때나 슬플때나 아버지 이야기만 했습니다』 『자식걱정으로 편히 가시지도 못했겠구나』 말문을 튼 부자는 그제서야 일가친척의 안부를 주고 받았다. 그리고는 하루면 오갈 수 있는 갈이 40년만에 이어진 것을 원망하기도 했다. 이야기하면서 아버지는 아들의 손을 꼭 쥐고 어루만졌고 또 어루만졌다. 이날 40년만의 부자상봉은 전 국가대표축구팀 감독이었던 아들 이씨가 지난해 이탈리아 월드컵최종예선전때 북한의 박두익감독에게 아버지의 생사확인을 부탁,생존을 확인하면서 실마리가 풀렸다. 이들 부자는 이날 밤10시35분까지 1시간40분동안 대화를 나눈후 일단 이감독이 묵고 있는 고려호텔22층 21호에 들어가 문을 닫고 밤새워 이야기를 계속했다. ○“형 조속상봉 기대”/이회택씨 삼촌 한편 경기도 김포읍 사우리에 살고 있는 이감독의 둘째 삼촌 이용섭씨(56)는 『TV화면을 통해 형님을 보니 기쁘기 짝이었다. 아직 63세밖에 되지 않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70세나 75세 노인으로 보여 안타깝다. 하루라도 빨리 형님들을 만나보고 싶다』고 말했다. 이씨는 『회택이가 평양에 갈때 부친께 드린다고 한복한벌과 사슴뿔을 가지고 갔다』고 전하고 『나는 20년전 어머니 환갑때 찍은 가족사진을 보냈다』고 밝혔다. ◎상봉부자 일문일답/“1천만이산가족 우리처럼 만나야”/이회택/“분단된후 처음 아들 보니 꿈만같아”/아버지 ­(이감독에게) 아버지를분단이후 처음 만난 소감은. ▲이감독=아버지ㆍ삼촌과 만난 것은 대단한 영광이다. 현재 남한에 있는 이산가족이 남북한 합쳐 1천만명이나 되는데 이를 계기로 나혼자만이 아닌 천만이산가족이 이렇게 만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감독에게) 아버지와는 어떻게 헤어졌는가. ▲이감독=당시 4살인 나로서는 기억이 분명치 않다. 6.25동란이 우리를 갈라놓게 된 것이다. 서로 이념이 다르고 사상이 달라 아버지와 나는 남과 북으로 헤어진 것으로 알고 있다. ­(아버지에게) 우선 40년만에 아들을 만난 소감은. ▲아버지=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수령님과 경애하는 지도자 김정일동지께서 분단이후 처음으로 아들을 만나게 해주셔서 기쁘기 그지없다. 고마운 은공에 대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격을 느끼고 있으며 40년만에 내아들 회택이를 만나고 보니 꿈만 같다. ­(아버지에게) 아들을 첫 눈에 알아볼 수 있었나. ▲아버지=어릴때 모습이 기억에 가물하다. 그러나 아버님(이감독의 할아버지)으로부터 회택이가 나를 닮았다고 하는 말씀을 들었다. ­(아버지에게) 아들의 생존소식을 언제 알았나. ▲아버지=지난해 8월 지도원이 찾아와 살아있다고 해서 알았다. 또 그자리에서 서로 만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감독에게) 만나는 첫 순간 아버지임을 알아보았는가. ▲이감독=어렸을때 사진으로 보아왔고 지난해 9월 싱가포르에서 벌어진 월드컵아시아지역 최종예선전에서 북한의 박두익감독이 건네준 사진을 받아본 순간 아버지와 삼촌을 분명히 확인 할 수 있었다. ­(이감독에게) 이감독은 부자상봉의 큰 기쁨을 나눴는데 앞으로 이산가족간의 자유왕래에 대한 견해는. ▲이감독=이산가족의 만남은 남북 국민간의 염원이다. 북남통일ㆍ남북통일이니 하는 말이 안들리도록 좋은 여건이 마련되기를 소망한다. 북조선 사람들이나 남한사람들이 언젠가 단합되고 한나라가 될 수 있도록 바라는 마음이 간절하다. ­(이감독에게 집요하게) 현재 이산가족이 남북 합쳐 1천만명이 되는데 빨리 통일해야 한다는게 남북주민들간에 일치된 바람일줄 안다. 이감독의 입장에서 통일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몫이 있다면 이에 대한 계획은. ▲이감독=통일은 정치하는 분들이 하루빨리 좋은 안을 내놓아 해결책을 찾고 이산가족도 서로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 “북한­일 수교 순항 기대”/김일성,고려연방제 통일 거듭 주장

    ◎오자와 간사장 만나 【도쿄=강수웅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9일 방북중인 도이 다카코(토정다하자)위원장과 회담을 가진 데 이어 10일 오자와 이치로(소택일랑) 자민당 간사장과 회담을 갖고 앞으로 5년내 남북한이 통일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주석은 회담에서 『남북분단 50주년을 맞는 오는 95년 이전까지는 통일되지 않으면 안될 것』이라고 말하며 통일방법은 지금까지의 북한측 주장인 고려연방제 통일안이 최선이라고 되풀이 강조했다. 오자와 간사장과의 회담에서 김 주석은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부총리의 북한 방문때 제의한 국교 정상화 문제가 자민당의 간사장,나아가 가이후 도시키(해부준수)총리에 의해 차질없이 추진될 것을 기대한다고 말했다.
  • 남북 축구 50여년 만에 오늘 “화합 한마당”

    ◎월드컵 전술로 「통일골문」 연다/최고 스타 최순호ㆍ김주성,허리맡아/기습역공 대비,정용환ㆍ김판근 포진 【평양=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11일 하오 3시 평양 5ㆍ1경기장에서 벌어질 남북 통일축구대회를 앞두고 남북한 양팀의 스타팅멤버 윤곽이 밝혀졌다. 한국대표팀의 주전 가운데는 부상중인 박경훈(허리)과 이영진(발목)이 제외되고 나머지 선수들은 북경아시안게임 주전선수들이 그대로 기용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대표팀 박종환 감독은 『분단 후 처음으로 평양서 펼쳐지는 경기여서 부담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그러나 정정당당하게 좋은 내용의 플레이를 펼쳐 한국축구의 진가를 평양 관중들에게 보이고 싶다』고 말했다. 박 감독이 구상하고 있는 베스트 11은 GK 최인영,DF진에 정용환 홍명보 김판근 구상범,MF진에 최순호 김주성 윤덕여 김상호를 기용하고,FW진에는 발빠른 고정운(또는 황선홍) 서정윤을 내세울 작정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수비진에 신진 정광석 노정윤의 기용도 고려되고 있다. 명동찬 감독이 이끌고 있는 북한대표팀은 수비에치중하면서 체력을 바탕으로 한 기동력과 스피드로 상대를 역습하는 축구를 구사하고 있다. 명 감독은 노련한 김광민 한영일 윤종수를 공수의 축으로 하고 북경아시안게임 멤버를 거의 그대로 내세워 홈그라운드에서의 승리를 노리고 있다. 북한의 예상 스타팅 멤버는 GK 김춘원(또는 김치원) DF 오영남 김경일(또는 탁영빈) 김종만(또는 정용만) 김광민,MF 최영선 한영일(또는 김윤철) 방광철 윤종수,FW 김윤철 김종성으로 예상된다. 그러나 명 감독은 과거 어느 감독보다 선수기용의 폭이 넓고 임기응변에 능하다는 편이어서 박종환 감독은 대응책에 부심하고 있다. 박 감독은 정용환을 내세워 개인기가 좋은 노장 한영일을 막게 하고 윤덕여를 윤종수의 전담마크맨으로 활용할 구상이며 북한의 역공에 대비,미드필드부터 강력한 압박수비를 펼쳐 공수연결을 차단하는 작전을 계획중이라고 밝혔다.
  • 이회택 감독 부자상봉(사설)

    남북통일축구대회 1차전에 출전하는 한국 남녀 선수단이 9일 북경을 떠나 평양에 도착했다. 모두 76명으로 짜여진 우리 입북단 가운데는 낯익고 이름이 자자한 전 축구대표팀 감독 이회택씨(45ㆍ현 포철 감독)가 끼여 있어 눈길을 끈다. 고문자격으로 간 이 감독의 손에는 새로 지은 한복 한벌과 속옷,그리고 가족사진이 들려 있었다고 한다. 그는 꿈에도 그리던 북에 계신 아버지 리용진씨(62)를 만나러 간 것이다. 6ㆍ25 때 헤어진 아버지 이씨는 황해남도 신계읍에 살고 있다. 농사를 짓던 아버지는 이제는 농사일을 그만두고 쉬고 있다고 한다. 이 감독의 부자상봉은 87년 2월 방콕의 킹스컵축구대회에 포철팀을 이끌고 갔다가 북한대표팀의 박두익 감독을 만나 아버지의 생존여부 확인을 부탁하면서 비롯됐다. 지난해 10월 싱가포르 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에서 다시 만난 박 감독은 이 감독의 아버지가 살아계심을 알려주었다. 이 감독의 이번 방북은 통일축구의 성사를 계기로 이산가족 상봉차원에서 추진돼 실현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아버지를 만나면 목놓아 실컷 울겠습니다』고 한 이 감독의 방북 소감은 우리 이산가족의 심금을 울리는 공통어일 것이다. 그들의 꿈은 살아생전 고향땅을 밟아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분단 45년의 한결같은 소망이기도 하다. 이산가족의 바람이 한때나마 이루어지지 않은 것은 아니다. 1985년 9월,40년의 기다림과 남북적십자회담 14년의 우여곡절 끝에 남북 고향방문단 50명씩이 서울과 평양에서 한없는 눈물을 흘리며 만남의 한을 푼 적이 있다. 그러나 그것은 잠시뿐 분단이 벽은 다시 굳게 잠겼다. 그로부터 5년 뒤인 올 3월 일본 삿포로에서 열린 겨울철 아시아경기대회에서 우리는 한필성ㆍ필화 남매의 40년 만의 극적인 만남을 보았다. 『오빠,왜 이제 왔어요』하고 외친 여동생의 절규가 아직도 귓전을 때린다. 그뒤 우리 정부는 노태우 대통령의 특별담화를 통해 8ㆍ15광복절을 전후한 「민족대교류기간」을 선포,판문점을 통한 상호방문을 제한없이 허용키로 하고 임진각에 우체국과 환전소까지 설치했으나 6만여명의 방북신청이 있었을 뿐 북측의 명단접수거부 등으로 오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남북한 양측은 시대적 요청에 따라 남북총리회담과 북경아시아경기대회를 통해 민족화합과 민족의 동질성을 확인하기 시작했고 나아가 스포츠교류의 물꼬도 텄다. 우리 축구대표팀의 평양방문은 남북 교류의 첫걸음이며 이회택 감독의 방북은 개인차원에서의 첫 인도적 교류로서 우리의 관심을 옭아매고 있는 것이다. 우리 축구팀이 11일 평양 5ㆍ1경기장(능라도경기장)에서 경기를 마치고 13일 판문점을 통해 돌아오면 곧이어 북한대표팀이 서울을 방문할 것이다. 축구팀의 상호방문경기는 다른 스포츠 종목의 교류도 이끌 것이라는 전망이다. 독일 통일의 기본여건이 상호방문 전화ㆍ우편교환 텔레비전 개방 등 민간교류였다는 사실은 축구팀의 오고감과 이회택 감독의 부자상봉의 뜻을 곱씹어보게 한다. 우리는 이 감독 집안의 만남을 머리로 하여 모든 이산가족의 희망이 하루속히 이루어지도록 남북 당국자들이 노력하기를 거듭 당부하는 것이다. 그리되면 임진각에서 망향제를 올리며 고향하늘을 바라보는 이산가족의 고통도 사라질 것이다.
  • 우리축구팀 평양 도착하던 날/방석순ㆍ우정식 특파원 제1신

    ◎엄청난 환영인파… 호텔입장에만 30분/순안공항 3천명 마중… 악수세례/옥류관 만찬 땐 「우리의 소원」 합창/숙소 고려호텔 한증탕ㆍ파친코장 갖춰 서울신문사는 남북통일축구대회를 생생히 취재ㆍ보도하기 위해 본사 북경아시안게임 합동취재단원이었던 방석순 차장(스포츠서울 체육1부)과 우정식 기자(〃 사진부)를 9일 평양에 특파했다. 다음은 두 기자가 보내온 평양도착 제1신. ▷공항◁ ○…9일 낮 12시 정각 남쪽 선수단과 기자단들을 태운 조선민항 특별기가 도착하자 순안공항은 환영분위기에 달아올랐다. 공항에 나온 3천여 남녀 환영객들은 모두 손에 꽃을 들고 『조국통일』 『조국은 하나다』라는 함성을 지르며 손님들을 맞이했다. 기내에서 간단히 인적사항을 대조하는 것으로 입국수속을 끝낸 선수단ㆍ기자단중에서는 정동성 체육부장관이 맨처음 트랩을 내렸다. 정 장관이 내려서자 환영나온 김유순 북한올림픽위원회 위원장ㆍ김형진 부위원장ㆍ최용해 축구협회장이 다가와 『진심으로 환영한다』며 악수를 나눴다. 또 30여명의 북한 기자들이 몰려나와 열띤 취재경쟁을 벌이기도 했다. ○…선수단이 트랩에 모습을 나타내자 일부 환영객들은 트랩 앞까지 다가와 남녀 축구선수들의 손을 잡으며 『잘왔다』 『조국통일』 등을 외쳤다. 또 일부 환영객들은 최순호ㆍ김주성 등 한국 남자 축구선수들을 목마 태워 환영객 터널 사이를 1백여m나 행진했고 다른 선수단과 기자단들에도 손목을 잡으며 반가움을 표시했다. ○…이날 환영객들은 한복을 차려입은 젊은 여성과 청년ㆍ어린이 등으로 다양했는데 이들은 한국선수단ㆍ기자단을 태운 10대의 승용차와 3대의 버스가 공항을 떠나자 뒤따라 뛰기도 했다. 환영객중 일부 부인들은 눈물까지 흘리며 『생전에 남쪽 축구선수가 평양에 오는 것을 보고 통일 멀지 않았다는 것을 실감하게 됐다』고 말했다. 평양 베어링공장 노동자인 김영희씨(23ㆍ여)는 『7일 방송과 신문을 통해 남쪽 축구선수단이 온다는 소식을 듣고 놀랐다』며 아침 일찍부터 공항에 나와 기다렸다고 말했다. ▷연도◁ ○…순안공항에서 한국선수단 숙소인 창광거리 고려호텔까지는 약 21㎞. 차량이 많지 않은 데다 4차선으로 도로가 넓은편. 선수단 차량행렬이 지날 때마다 일반 차량이 일단 정지해 30여분밖에 걸리지 않을 거리였으나 이날은 환영인파와 여러번 선수단 차량의 길이 막히는 바람에 1시간45분이나 소요됐다. 환영인파는 김일성광장에서부터 고려호텔까지 특히 많았는데 기자단 및 선수단이 호텔 입구에서 버스에서 내려 호텔 앞까지 들어가는 데도 30여분이나 걸렸다. 일행을 태운 버스가 호텔에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1천여명의 평양시민이 몰려들어 버스에서 내릴 수가 없을 정도였다. ▷만찬◁ ○…9일 평양시 모란봉 대동강변 청류벽에 자리잡은 한식집 옥류관 남북선수단 만찬은 분단 이후 어느 때에도 볼 수 없었던 절절한 동포애를 나눈 꿈같은 순간의 연속이었다. 최용해 북한 축구위원장이 한국선수단을 초청,마련한 만찬에서 한국의 정동성 체육부 장관ㆍ북한의 김유순 체육위원회 위원장을 비롯한 남녀 선수 임원 취재기자에 이르기까지 참석한 모두는 하나로 엉켜 피붙이임을 확인했다. 하오 7시10분 시작된 만찬은 각테이블에 남북 체육관계자ㆍ선수ㆍ임원들이 고루 섞어 앉아 잉어회 해상꿩 완자볶음 잣죽 신선로 등 전통음식을 즐기며 조용한 분위기 속에 진행됐다. 아버지를 북에 둔 이회택 감독과 그 아버지 소식을 전해준 박두익 감독,한국땅에 오빠 한필성씨를 둔 한필화씨,통일축구 대임을 맡은 박종환 감독,명동찬 감독 등이 서로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정을 나누었다. 만찬이 끝날 무렵 북한 가수들이 민요에 심취해 있던 남북 체육인들은 흥이 오르자 「우리의 소원」등의 노래를 합창하기도 했다.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김유순 북한 체육회 위원장의 손목을 이끌고 테이블을 돌며 남북 교류와 통일을 향한 전진을 다짐했으며 선수들과 함께 어울려 무대 위아래에서 통일을 합창했다. 분위기가 고조되자 부자상봉을 앞둔 이회택 감독의 눈에도,나이어린 남북축구선수들의 눈에도 모두 그렁그렁 이슬이 맺혔다. 남북의 만찬은 예정시간보다 1시간이나 넘게 진행됐고 헤어지는 자리에서 남과 북의 모든 체육인들은 상기된 얼굴로 통일을 향하는 징검다리의 첫 돌을 놓았다는 뿌듯한 자부심을 보였다. 이날 정동성 체육부장관은 북측에 용과 호랑이가 그려진 도자기를 선물하는 등 초청에 응한 귀빈으로서 만찬장을 주도했다. ▷숙소◁ ○…지난 85년 남북 고향방문 당시 서울 손님을 맞았던 고려호텔은 45층에 2개 빌딩이 나란히 있고 평양 최고급호텔로 객실 5백여개,호텔 지하에는 안마실ㆍ한증탕ㆍ이발소ㆍ파친코장이 있다. 이날 고려호텔에는 북한 노동당 창립 45돌을 축하하기 위해 온 각국 대표단도 같이 묵고 있는데 베란다에 나와 호텔에 들어서는 한국선수들을 구경하기도.
  • 우리축구단 평양도착/내일 경평전/북경서 「조선민항」 이용

    【평양=방석순 특파원】 분단 이후 처음 열리는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 한국선수단이 취재기자단 20명과 함께 9일 낮 12시 조선민항 편으로 평양에 도착,평양시민들의 큰 환영을 받았다. 남북간 민간교류는 지난 85년 이산가족만남 이후 두번째. 정동성 체육부 장관을 비롯한 선수단 일행 76명이 비행장의 환영인파를 헤치고 나와 평양시가지의 군중속을 뚫고 숙소인 고려호텔에 도착한 것은 1시간45분 만이었다. 한편 인솔단장인 정동성 체육부 장관은 고려호텔 회의실에서 『조국분단 반세기 만에 친선을 다짐하는 남북통일 축구경기를 갖기 위해 우리는 오늘 이 곳에 왔다. 이번 경기가 남북 체육인들간의 우의를 다지고 격의없는 대화의 장으로 발전해 조국통일에 이바지되기를 바란다』는 도착성명을 발표하고 평양시민들의 환영에 감사한다고 말했다. 이날 순안비행장에는 북한올림픽위원회 김유순 위원장 등이 영접나와 고려호텔까지 선수단을 안내했다. 남북통일축구경기는 11일 하오 3시 열린다. 이번 경기는 평양측의 기술지원을 받아 같은 날 서울에TV녹화방영될 예정이다.
  • 남북영화제 오늘 전야제/양측대표단 뉴욕에 도착… 내일 개막식

    ◎홍국태ㆍ홍영희 남북오누이 상봉 가능성 【뉴욕=김정열특파원】 분단 45년만에 남북영화인이 한자리에 모이는 제1회 남북영화제가 한국측 대표단과 북한측 대표단이 모두 도착,예정대로 10일(한국시간) 전야제에 이어 11일부터 개막된다. 조선예술영화촬영소 부총장 엄길손(영화감독)을 단장으로한 북한측대표단은 지난6일 중국민항편으로 뉴욕에 도착했으며 한국영화업협동조합 강대선이사장을 단장으로 하는 9명의 공식대표단과 14명의 비공식대표로 구성된 한국측도 지난8일 뉴욕에 도착,주최측인 뉴욕남북영화제 집행위원회(위원장 주동진)의 환영을 받았다. 한편 9일현재 북한측대표단은 유엔주재 북한대표부 숙소에 들어간뒤 일체 외출을 하지 않고 있는데 북한측대표단장 엄길손은 정무원 부총리급에 해당되는 고위급 인사이며 오미란과 홍영희는 북한을 대표하는 인기배우이다. 특히 홍영희는 한국측 비공식대표단원중 한명인 홍국태씨(50ㆍ한국문학주간ㆍ대한변협회장을 지낸 홍승만씨의 아들)의 6촌여동생으로 김정일이 발탁,17세때인 70년 「꽃파는처녀」에서 주인공 꽃분이 역을 맡게된 배우로 북한지폐에 얼굴이 실릴정도로 유명하다. 홍영희의 아버지는 승현씨로 6ㆍ25때 월북했다가 외동딸 영희가 10세때인 지난63년 간첩으로 남파되었다가 전향,84년 사망했다. 이번 영화제집행위원회의 한 관계자는 오는 14일까지 계속되는 영화제기간동안 홍국태씨와 조카 홍영희씨가 자연스럽게 상봉하게 될 것으로 본다고 말하고 특히 앞으로 양측이 합작영화제작 문제 등 남북교류를 위한 심도있는 논의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 “새독일,유럽패권 추구 않을 것”/“통독의 조타수” 겐셔외무 회견

    ◎“세계평화 구축ㆍ유럽통합에 적극 기여/냉전종식 기류 타면 한반도통일 가능” 독일통일의 한 주역이었던 한스 디트리히 겐셔 독일외무장관은 4일 베를린에서 열린 첫 동서독 합동의회에 참석한 뒤 본에서 가진 첫 내외신 기자회견을 갖고 통일독일은 국제사회에서 책임을 지고 유럽의 통합에 노력할 것이며 결코 패권주의를 추구하지 않을 것임을 밝혔다. 겐셔장관은 특히 남북한 국민들이 진실하게 통일염원을 실천해나가고 정치인들이 이를 수행해 나가면 머지 않아 통일을 달성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장관은 할레(Halleㆍ동독영역) 태생으로 독일통일의 감회가 더욱 크실텐데. ▲저는 통일의 이날을 그 누구보다도 더 간절히 기다려 왔습니다. 저의 정치활동의 가장 큰 꿈을 이루게 되어 몹시 기쁘고 통일독일의 첫 외무장관이 되는 영광 역시 아주 큽니다. ­그동안 유럽공동체(EC)ㆍ유엔 등에서 이들 기구들의 성격과 기능을 존중하면서 독일 통일정책을 꾸준히 펼쳐오는 일이 쉽지 않으셨을텐데요. ▲통일은 저의 심장처럼 중요했습니다. 그래서 저는독일 통일을 위해 전제가 되는 공통점들은 유럽내에서 먼저 찾아지고 해결되어져야 한다고 믿어왔습니다. 이러한 기본정신을 바탕으로 우리 정부는 2차대전 후 외교정책을 추진해 왔습니다. 흔히들 말하는 서부유럽의 단결과 협력이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을 전유럽의 마당(장)으로 불러들이는데 아주 결정적인 기능을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유럽인들은 1975년 핀란드 헬싱키에 모여 유럽의 안전과 협력을 약속하는 헬싱키협정을 맺을 수 있었습니다. 제가 여러 기회를 통해 반복해 말했듯이 유럽은 하루저녁 사이에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지만 이 헬싱키협정같은 것은 유럽내에서 특히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에서 많은 변화들을 이끌어 내는데 아주 중요한 기능을 담당했다고 생각합니다. ­얼마전 프랑스 듀마(Dumas)외무장관은 통일독일은 옛 주도권을 다시 잡으려 할지도 모른다고 말했습니다. 새로운 통일독일의 잠재력을 생각할 때 만에 하나라도 가능성은 없습니까. ▲전혀 그런 가능성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저는 통일을 아주 긍정적으로 평가합니다. 새통일독일의 지리적 위치,늘어나는 인구,또 경제력 등을 고려할 때 통일독일의 무게가 늘어나는 건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늘어나는 무게를 힘의 팽창이 아닌 더많은 국제적 책임으로 인식하고자 합니다. 통일독일은 무엇보다도 유럽통합을 위해,그리고 세계평화에 이바지 할 것입니다. ­1933년 1월1일부터 유럽단일시장이 형성됩니다. 이 유럽단일시장을 어떻게 준비하고 계신지요. ▲저는 이 유럽단일시장 형성을 위해 제가 할 수 있는 능력범위내에서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이 단일시장형성은 독일 뿐만 아니라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의 커다란 관심사입니다. ­작가 토머스 만은 독일의 유럽이 아닌 유럽의 독일을 원한다고 했습니다. 독일 마르크화를 주축으로 한 유럽의 게르만화,즉 독일 마르크화의 헤게모니에 대한 우려의 소리도 높은 것 같은데요. ▲만약 통일독일의 마르크는 남고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의 화폐들이 마르크로 흡수된다면 「헤게모니」라는 말이 있을 수 있겠죠. 그러나 우리 독일 정부는 위와 정반대로 다른 유럽공동체 국가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통화의 안정과 유럽중앙은행의 불종속을 원합니다. ­평소 장관께서는 경제연합 못지 않게 정치적 연합에도 많은 관심을 두고 일하고 계시는 줄로 알고 있습니다. 독일식 모델,즉 연방제 구조가 유럽의 정치적 연합에 타당하다고 보시는지. ▲그 누구도 유럽의 중앙국가를 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의 미테랑대통령은 전 유럽의 연방제를 말하고 있습니다. 저는 독일의 연방제모델이 유럽에 잘 적용될 수 있으리라고 봅니다. ­통일독일을 미국ㆍ소련과 함께 세계강국으로 보시는지요. ▲아닙니다. 그렇게 되기를 원하지도 않습니다. 이제 새로운 세계질서 속에서 기존 강대국들의 역할도 변할 것으로 봅니다. 세계는 유엔을 중심으로 상호협력해야 합니다. 모든 국가들이 서로 얽혀있기 때문입니다. 세계는 제3세계문제ㆍ군축문제ㆍ환경오염문제 등 세계평화를 위해 많은 신경을 기울여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한국의 통일문제를 어떻게 보시는지. ▲최근 기존의 동구권 국가들의 변화 그리고 동서독의 통일은 오랜시간 동안의꾸준한 노력과 준비를 인정하면서도 하나의 획기적 사건이었다고도 해석할 수 있겠습니다. 이런 변화들에서 볼 수 있듯이 이제 기존 이데올로기의 벽은 무너져 내렸습니다. 한국민은 1950년부터 3년간의 전쟁으로 분단의 아픔이 더욱 크리라 생각합니다. 그러나 남북한 국민 모두 진실하게 통일을 염원하고 추진해 나간다면 그리고 일선의 정치인들이 책임있게 정책을 수행해 나간다면 머지않아 한반도에도 통일의 그날이 꼭 오리라 확신합니다.
  • 통독이 한반도에 준 교훈(새 독일 탄생:5ㆍ끝)

    ◎「통일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서독,69년 동방정책 이후 꾸준히 접촉/물적ㆍ인적 교류 늘려 갈등해소 노력을/한민족 공감대 형성… 북한 개방분위기 조성 도와야 독일 통일은 동독국민들의 「대탈출」이 절정에 달했던 지난해 11월이후 불과 1년도 못되는 사이 ▲2월6일 동독내의 비공산당연립정부 출범 ▲6월17일 동독국가 해체작업 시작 ▲7월1일 동서독 경제ㆍ사회 통합 ▲9월14일 통독조약 조인 등 급템포로 이루어졌지만 내부적으로는 이미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보아야할 것 같다. 패전의 페허에서 49년 출범한 서독 기민당(CDU)의 아데나워 정권은 자유민주정치제도와 친서방 보안정책으로 서방진영의 일원으로서의 지위를 확고히하면서 경제 재건과 번영을 바탕으로 착실한 분배정책을 펴 내부적인 안정을 다졌다. 이어 69년에 출범한 사민당(SPD)의 브란트 정권은 CDU 정권의 업적을 토대로 이른바 동방정책을 추진,소련을 비롯한 동구권과의 관계개선을 이룩했으며, 「일민족 이국가」론에 기초 값비싼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동독과의 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양독관계를 안정시키고 인적ㆍ물적 교류 확대의 물꼬를 텄다. 82년에 다시 집권하게 된 CDU의 콜 정권은 SPD의 동방정책을 계승발전시키고 탄탄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동독 교류의 폭을 넓히면서 동독국민들 가슴 속에 개방과 민주화의 씨앗을 묻었다. 그 씨앗이 때마침 불어닥친 소련 개혁정책의 화풍 속에 발화,마침내 통일의 계기를 맞게 된 것이 저간의 과정이다. 이같이 치밀하고 장기간에 걸친 통일작업에도 불구하고 이제껏 서로 다른 체제 속에서 숨쉬던 조직들이 하나로 묶이기까지에는 겪어야 할 많은 후유증을 안고 있는 것 또한 사실이다. 지난 4일 독일 통일 후 베를린 제국의회 건물에서 가진 첫번째 전독의회에서 통일독일의 첫 총리가 된 헬무트 콜 총리는 『이제 독일이 통일되었으나 우리들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모든 분야에 내재되어 있는 내부적인 분단을 공동의 목표에 맞게 조정해나가는 일』이라고 말하고 『앞으로 수년간 정신적ㆍ문화적ㆍ경제적ㆍ사회적인 분단 후유증을 치유하는 데 총력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독일통일 작업은 이처럼 역대 정권들의 장기간에 걸친 꾸준한 노력의 결실로 얻어진 것이지만 막상 통일이 이루어진 오늘 독일 사회에서는 내부적 갈등의 해소가 가장 핵심적인 과제로 떠오르고 있다. 동서분단 이후에도 경제적인 교류와 인적왕래가 이루어지고 TV시청 등을 통해 양 체제 속에 사는 국민들이 서로를 잘알고 지내왔음에도 불구하고 제반분야에 남아 있는 갈등과 후유증 극소화가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하여야 할 문제로 지적되고 있는 것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많다. 남북한은 분단 이후 동서독과 같은 인적ㆍ물적 교류가 전혀 없었으며 양체제의 국민들이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 통일이 되더라도 문화적ㆍ사회적 갈등과 충격이 심각하리라는 것은 짐작하고도 남는 일이다. 독일 통일과정에서 볼 때 같은 냉전의 결과로 빚어진 한반도의 분단과 독일분단은 「지리적인 분단」이라는 점을 빼 놓고는 서로 비교할 만한 것이 없을 정도로 독일은 하나의 게르만민족이라는 정신 아래 상호신뢰의 기틀을 다져 왔으나 우리의경우는 적개심의 심화만이 가속화되었다고 하겠다. 이제부터라도 우리는 한민족이라는 인식 아래 북한의 개방과 상호교류의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 급선무이며 이와 함께 통일에 대비한 힘의 축적을 서둘러야 할 것이다. 서독은 시장경제에 뿌리내린 경제력을 바탕으로 동독과의 경제교류를 의도적으로 손해를 보면서 추진해왔다. 서독은 동독과의 무역거래에 있어 동독이 제15위의 교역상대국이지만 동독의 입장에서 볼 때 서독은 소련 다음의 교역상대국이어서 동독경제가 서독경제에 예속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동독은 통일될 때까지 대서독 무역거래에 있어 매년 20억달러 이상의 이익을 보았으며 서독으로부터 지난 10여년간 1백억달러의 무이자 신용대출을 받아 그 결과 서독의 경제지원을 받지 않을 경우 언제라도 파산될 취약구조로 바뀌로 말았다. 특히 서독은 지난 83년 동독이 외화부족으로 외채지불 불능상태에 빠졌을 때 7억달러의 현금차관을 제공했고 그 대가로 동독의 개방과 양독간의 교류증대를 요구하는 등 동독의 개방을 계속해서 유도했다.이와 함께 독일통일이 대중매체인 TV의 상호시청으로 가속화되었다는 지적도 있다. 동서독간에는 TV시청에 관한 합의는 없었지만 동독국민들은 당국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대부분 서독 TV를 시청하고 있어 서독국민들의 생활수준을 구석구석까지 알고 있을 정도였다. 동독국민들은 TV를 통해서 사회주의와 자본주의의 우열을 가늠하게 되었으며 결국 트라비승용차 한대를 구입하는데 신청 후 13년이 걸리고,냉장고나 TV를 구입하려면 3∼5년이 걸리는 사회주의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에 염증을 느껴 대탈출을 결행했던 것이다. 통독으로 독일이 하나의 국가가 되었지만 독일이 안고 있는 문제는 그동안 침체 속에서 헤어나지 못한 동독지역을 얼마나 빨리 서독지역 수준으로 끌어 올리느냐는 것이다. 통일독일정부는 앞으로 10년 안에 가장 시급한 도로ㆍ상하수도ㆍ주택 문제를 서독수준으로 끌어 올린다는 목표 아래 이미 복구작업에 착수했다. 독일의 통일 뒷마무리 작업이 이같이 순조로울 것으로 여겨지는 이유로는 단단한 내실과 이해득실을 떠난 한민족이라는공감대가 강하다는 점이 지적되고 있다. 독일의 상황과 한반도의 상황이 다르기는 하지만 통일에 대비한 노력과 준비는 빠를 수록 좋다는 것이 독일 통일에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교훈이라 하겠다.
  • 소,“「한반도 2개 국가」인정해야”/북한의 한ㆍ소수교 비난에 반박

    ◎남북한 교차승인 필요성 역설/모스크바방송 【내외】 소련 관영 모스크바방송은 5일 소련이 한국과의 수교로 한반도 분단을 영구화하고 있다는 북한의 주장에 대해 『문제는 상호 비난하거나 꾸지람하는 것이 아니라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이날 모스크바방송은 한소 수교와 관련한 논평원의 글을 통해 그같이 반박하고 최근 일본의 자민ㆍ사회당 대표단이 북한을 방문,일ㆍ북한간 수교를 위한 회담을 조속한 시일내에 개최할 것을 합의한 점을 상기,『평양은 도쿄가 서울에 아주 가까운 동맹국이라는 것을 무시하고 있는가』라고 반문하면서 한국과 우방인 일본에 관계개선 손짓을 보내는 북한의 양면성을 꼬집었다. 이 방송은 이어 한소간의 국교수립은 정당한 것이었다고 강조하면서 그 이유로 ▲한국이 극동지방에서 경제적으로 가장 발달된 나라에 속한다는 것을 무시할 수 없다는 점 ▲지난 2년간 활발해진 한소간의 경협 발전이 수교를 필요로 했다는 점을 들고 이번 양국간의 수교가 『모스크바에도 서울에도유익하다는 것은 명백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이 방송은 최근 남북한간 고위급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것을 거론,이것이 「대결에서 대화에로 넘어서는 주요 진일보」라고 논평하는 가운데 남북한간의 건설적 대화를 위해서는 쌍방간의 지혜와 인내심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국제적인 협력」도 필요하다고 지적하고 『교량은 하나의 강 위에만 세울 수 없는 것이다. 이런 구상이 모스크바와 베이징ㆍ서울,그리고 워싱턴ㆍ도쿄ㆍ평양이라는 상호승인의 길 위에 놓여 있는 것』이라고 강조,미일과 중소의 남북한 교차승인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 베를린의 한국교민들이 본 통일 현지좌담

    ◎“「중단없는 교류」가 통독 앞당겼다”/60년대부터 동독지원… 공감대 넓혀가/「반세기의 벽」실감… 국민성격까지 차이/“장벽 무너질 땐 남다른 감회… 통일은 개인업적 될 수 없어” 분단 45년만에 통일을 맞은 통독은 이제 단일국가로서의 힘찬 첫걸음을 내디뎠다. 그러나 독일통일은 같은 냉전체제의 유물이었던 우리나라의 분단과는 달리 양쪽체제가 재결합을 위해 부단한 노력을 해왔던 결과라는 점에서 우리에게 많은 교훈을 준다. 주어진 통일이 아니라 얻어낸 통일이라는 것이 현지에서 통일과정을 지켜본 대부분 한국교민들의 소감이다. 현재 베를린에만 3천5백여명의 교민들이 살고 있으며 이들은 자신들의 생활을 통해 통일과정을 누구보다 생생하게 체험했으며 남다른 통일염원을 갖고 있다. 이들의 눈에 비친 독일통일의 원동력,통일을 위해 우리가 노력해야 할 일들을 좌담을 통해 알아본다. □참석자 △이일남 (베를린 한인학교 교장) △조종식 (베를린 한인학교 추진위원장) △박춘식 (재독한국과기자협 회장) △정동양 (한인회장) △이석순 (베를린 한국간호협 부회장) ▲박춘식=지난해 11월 동독 국민들의 대탈출로 독일통일이 급속히 진전됐지만 사실 독일은 분단과 동시에 통일작업이 추진되어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동안 양쪽 체제는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적으로 중단없는 교류를 추진해 왔으며 이러한 것이 서로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저는 10월3일 독일의 통일에 앞서 동독축구팀이 분데스리가에 편입되고 2개밖에 없는 동독 아이스하키팀이 서독협회에 들어와 대표팀으로 경기를 하는 것을 보고 이 사람들이 이미 오래전부터 통일작업을 계획적으로 추진해 왔구나 하는 점을 느꼈습니다. ○자본주의 우월성 확인 ▲이일남=이번 독일통일은 그동안 반세기동안에 걸친 사회주의 운영체제와 자본주의 체제의 우월성 비교가 끝났다는 점을 확인시켜 준 것이라 하겠습니다. 시장경제를 중심으로 국력을 키워온 서독정부는 60년대부터 동독에 많은 도움을 주었으며 동독 국민들도 그것을 알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또 서독측이 동독측에 너그럽게 대해 왔다는것이 우리와는 다르다 하겠습니다. 일례로 동서독이 분단되어 있는 상태에서 동독정부가 경제적인 이유로 서독에서 서베를린으로 가는 차량들의 검문을 강화하면 그 이유를 눈치채고 재정적인 지원을 해주었습니다. 그러면 동독정부는 모르는 척 하며 종전과 마찬가지로 서독지역과 서베를린을 오가는 차량통행에 대한 검문을 완화했습니다. ○서독 자신감이 원동력 ▲조종식=상대에게 관대하면서도 생색을 내지 않는 자세가 중요합니다. 도움을 주었으면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지 그에 대해 왈가왈부 할 필요가 없습니다. 오래전에 남한이 큰 홍수가 나 북한이 쌀과 옷감을 보내왔을 때 쌀에서 냄새가 난다느니 옷감의 질이 어떻다느니 하는 기사가 신문에 나는 것을 보고 참 서글픈 생각이 들었습니다. 정부가 흘린 것인지 신문이 이야깃거리를 만들려고 그런 기사를 썼는지는 모르지만 각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이 성숙한 통일의식을 갖고 상대방에 너그러운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20년을 넘게 독일에 살아왔지만 이곳 매스컴들이 생색을 내거나 상대방을 비난하는 기사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동독국민들은 그러나 어떤 체제가 살기 좋은 것인가를 잘 알고 있었으며 그것이 대탈출로,또 통일로 발전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서독은 자신감을 갖고 동독의 투정을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정동양=이곳에서 볼 때 우리정부의 시책에 현실감각이 결여된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한 예로 동서독이 이미 통일을 하기로 합의를 하고 지난 7월1일 경제통합을 이루어 동서베를린의 왕래에 아무런 걸림돌이 없음에도 이곳을 찾는 우리나라 관광객과 여행자들은 동베를린에 가기 위해서는 현지공관에 사전신고를 하도록 해 많은 불편을 주었습니다. 분단국의 국민으로 통일이 되는 나라에 찾아와 여러곳을 보고 싶은 심정은 인지상정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그런데도 정부는 독일이 통일될 때까지는 동베를린이 동구권에 속하는 만큼 동구권 여행지침에 따라 동베를린을 여행할 경우 외교관ㆍ언론인들은 사후신고를,일반인은 사전신고를 의무화해 현지 분위기와는 어울리지 않는 간섭을 고수해왔습니다. ○통일 뒷처리 완벽 준비 ▲이일남=최근 베를린 시내에는 전 동독지역에서 관광을 하러 오거나 쇼핑을 하러 오는 사람들을 많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경제에 익숙해져 있는 전 서독 사람들이 경쟁사회에서 살아온 때문에 좋게 말하면 세련되고 나쁘게 말하면 까졌다고 할 수 있는 데 비해 전 동독 주민들은 순박하고 어수룩한 면이 있을 정도로 행동과 표정만 보아도 식별할 수 있습니다. 동부지방 사람들은 가난에 익숙해 인내심이 강하고 관대하다는 것이 일반적인 체험론입니다. 이에 비해 서부지방 사람은 풍족한 생활을 하다보니 까다롭고 외국인을 멸시하는 풍조가 있습니다. 한민족이 반세기 가까이 떨어져 생활을 하다보니 국민들의 성격까지 차이가 날 정도로 달라졌다고나 할까요. ▲이석순=서독정부는 통일에 대비해 말없이 꾸준히 노력해왔습니다. 통일과 더불어 도로ㆍ통신ㆍ주택확충을 위해 서독은 앞으로 천문학적인 액수의 투자를 해야 할 형편입니다. 이 때문에 서독국민들은 더많은 세금을 내야하기 때문에 통일과정에서 반대하는 의견도 상당수 있었습니다.그러나 정부는 장기간에 걸친 재정적인 축적으로 국민들의 납세를 최소화하고 동독의 재건에 신속한 투자를 할 수 있는 자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들리는 말로는 현재 상황에서 독일 국민들이 아무일도 하지 않고 지내도 3년을 먹고 지내는 데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데 우리 형편은 선진국의 문턱에 들어가기도 전에 흥청망청 지내는 바람에 막상 통일이 될 경우 통일 뒤처리를 제대로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드는군요. 최근 통일열기가 고조되는 것은 좋은 일이나 그에 대비한 준비가 더욱 중요하다는 생각입니다. ▲정동양=베를린 장벽이 무너질 때는 눈물이 날 정도로 부러움을 느꼈습니다. 베를린에 거주하는 외국인들 중 분단국인 한국인만큼 독일통일에 대한 감정이 착찹했던 국민들은 없었을 것입니다. 원래 마르크시즘이 독일에서 발전돼 한세기에 걸쳐 소련을 비롯한 공산국가에서 시험의 시기를 거쳤는데 처음 시작한 국가들에서 자체내의 문제점들이 곪아터져 막을 내리는 마당에 북한과 중국에서만 아직까지 변화의 징조가 없다는 것이이상할 정도입니다. 그러나 서양에서 출발한 사회주의가 동양국가에서 열매를 맺을 것으로는 아무도 생각지 않습니다. ○우리완 크게 다른 여건 ▲조종식=우리나라에서도 통일이 이루어지는 분위기가 조성되려면 소수에 의한 정치체제가 하루 빨리 개선되어야 할 것입니다. 북한은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지만 해방후 남한의 권력구조가 소수의 그룹으로 짜여져 있었기 때문에 통일문제도 그들의 전유물인 것처럼 여겨져 왔습니다. 독일의 경우 동방정책은 아데나워 총리시절부터 추진돼 브란트 콜총리에 이르기까지 같은 정책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콜총리시대에 꽃을 피운 독일통일이 특정개인이나 특정정당의 성과로 평가되지는 않고 있습니다. 모든 것이 국민과 더불어 이루어졌다는 것이 우리와 다르다고 하겠습니다. ▲정동양=제가 독일에 올때는 그야말로 잘 살아보겠다는 한을 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제 잘사는 국가가 되었습니다. 사회주의도 자본주의도 다 장단점을 갖고 있습니다. 그런데 독일통일에서 보다시피 동독의 모든제도가 서독에 통합흡수됨으로써 그에 대한 대답은 스스로 결정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독일의 경제는 시장경제이나 사실은 사회시장경제체제 입니다. 물론 잘 사는 사람과 못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 전체적으로 볼 때 우리와 다르다 하겠습니다. 국가가 세제를 통해 꾸준히 사회복지 정책을 써왔기 때문에 국민들 사이에 괴리감이 없어 통일문제에 관해서도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었습니다. 다시 말해 통일과제에 대해서는 자체내의 공감대를 충분히 형성해 내부적으로 모든 준비를 해놓고 있다가 정부가 국제적인 분위기가 조성되자 그 찬스를 재빨리 나꿔챘다고나 할까요. ○한반도에도 기쁨 올 것 ▲이일남=그에 비해 우리의 정치상황은 국민들에게 실망을 안겨주고 있습니다. 통일을 당쟁차원에서 다루다보니 그럴듯한 제안들만 풍성할 뿐 힘의 축적이나 발전이 없습니다. ▲이석순=최근 포츠담 경찰국장이 공산치하에서의 경찰국장을 했다는 데 대해 스스로 책임을 지고 사퇴를 했습니다. 그런데 포츠담시 당국은 한달여의 공백기간이 있음에도 통일정부가 경찰국장을 임명해야 한다며 새국장의 임명을 미룬 사례가 있습니다. 그러나 경찰국장이 사임한 뒤 누구도 그의 비리를 비난하거나 인신공격을 하지 않았습니다. ▲박춘식=독일통일이 우리에게는 부러움을 주지만 우리도 어느땐가 통일의 기쁨을 누릴 때가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두가 목소리를 높이기보다 자신의 일에 충실해 내실을 다져야 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독일통일이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지만 우리의 현실과는 무척 다른 것만은 사실입니다.
  • 북한,언어도 사상교육에 활용/한글날 계기로 본 평양의 이질화 실태

    ◎두차례 「철자 개혁」… 두음법칙등 무시/한글날도 1월15일로 멋대로 제정 10월9일은 뜻깊은 한글날. 그러나 남북 분단 45년에 걸쳐 남북한간의 언어가 이질화되어 가고 있듯이 북한은 한글날도 우리와 달리 1월15일을 「훈민정음 창제일」로 기념하고 있다. 즉 한국에서는 세종대왕이 훈민정음을 완성(세종 25년 계해)한 후 정인지 등 여러 학자들로 하여금 해례를 붙이게 하여 반포했던 1446년 9월 상간(세종 28년 병인)을 양력으로 환산,매년 10월9일을 한글날로 제정,기념하고 있다. 이에 반해 북한은 훈민정음 반포일 보다 2년 앞당긴 1444년 1월15일을 기념일로 설정하고 있는데 이는 세종 25년 12월(이조실록)에 『이달에 임금이 언문 28자를 친히 만들었으니… 이를 훈민정음이라 한다』고 기록돼 있는 것을 근거로 삼고 있다. 북한은 훈민정음 창제일을 1961년까지는 1월9일로 기념해왔으나 1963년부터 1월15일로 변경,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는데 15일이라는 날짜는 이조실록 뿐 아니라 어떤 고전에서도 유추해낼 수 없는 임의의 날짜이다. 다만 1월15일이라는 날짜는 1928년 김일성에 의해 창간된 그들 최초의 신문이라고 주장하는 「새날」의 창건일과 일치하고 있다. 이같은 기념일의 차이보다도 더욱 문제로 되고 있는 것은 북한이 문화어정책을 추진,심화되고 있는 남북한간 언어 이질화이다. 북한의 언어정책은 두차례에 걸친 철자 개혁을 경계로 3기로 나눌 수 있다. 제1기(45∼54년)는 통일안시대로 북한에서도 조선어학회의 한글맞춤법통일안을 지지,남북의 차이가 없었으며 다만 1949년에 한자를 폐지,한글전용을 단행했다. 제2기(54∼66년)는 「조선어철자법」이 제정되어 시행된 시기로서 이로 인해 언어 이질화가 심화되는 결과를 빚게 됐다. 1954년 제정된 「조선어철자법」은 한글맞춤법 통일안을 수정한 것인데 한글 자모를 종전의 24자모에 ㄲ ㄸ ㅆ ㅉ 등 된소리 5자와 ㅐ ㅒ ㅔ ㅖ ㅚ ㅟ ㅢ ㅘ ㅝ ㅙ ㅞ 등 중모음자 11자를 추가하여 40자모를 만들었다. 이는 얼핏 사소한 변화로 보이지만 사전이나 색인의 자모배열법에서 엄청난 차이를 나타내게 되어 ㅇ으로 시작되는 낱말의 경우 ㅉ이 끝난 후 맨뒷부분의 아ㆍ야ㆍ어 등에서 찾아야 한다. 또한 자음자의 명칭을 기윽 니은식(또는 그 느 드…식)으로 고쳤고 쌍기역 쌍디귿은 된기윽ㆍ된디으ㄷ으로 바꾸었다. 이와 함께 두음법칙을 무시하여 낙원을 「락원」,양심을 「량심」으로 읽도록 했다. 제3기(66∼현재)는 이른바 「조선말규범집」이 시행된 시기이다. 1966년 공포된 「조선말규범집」은 「조선어철자법」을 개정한 것으로 띄어쓰기를 더 세밀히 규정하고 표준발음법을 더 확충한 것이다. 이 시기에 이른바 「문화어운동」이 시작되었는데 김일성이 66년 5월 『혁명의 수도인 평양말을 기준으로 언어를 발전시키자,표준어라고 하면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는 것처럼 생각되기 때문에 문화어란 말로 고쳐쓰자』고 강조한 데서 비롯됐다. 이에 따라 북한은 약 5만개 이상의 어휘를 「문화어」의 형태로 다듬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이 사업은 첫째 한자어는 한글고유어로 대체하고 고유어가 없을 때는 「풀이말」로 쓰며 둘째 외래어 역시 고유어로 대체하며 셋째 정치용어는 사상교육에 활용키위해 한자어라 할지라도 수정을 금지하며 넷째 과학기술용어 및 대중화된 한자어ㆍ외래어도 그대로 사용한다는 기본방침 아래 이루어졌다.
  • 여자농구 중국 꺾고 「금」/배드민턴 혼복 2연패/한국 종합2위

    ◎북경대회 오늘 폐막 【북경=본사 합동취재단】 한국 여자농구가 강호 중국에 역전승을 거두고 아시아 정상에 우뚝섰다. 한국은 제11회 북경아시안게임 폐막을 하루 앞둔 6일 여자 농구가 중국과의 1ㆍ2위 결정전에서 77-70으로 승리,금메달을 추가했다. 한국은 또 배드민턴 혼합복식에서 박주봉­정명희조가 인도네시아의 아르비­히르토노조와 풀세트까지 가는 접전 끝에 2­1로 승리,86년 서울대회 우승에 이어 2연패의 위업을 달성했다. 한국은 최종 메달집계에서 금 54,은 54,동 73개로 중국(금 1백83,은 1백7,동 51)에 이어 종합2위를 차지했으며 중국은 대회 3연패를 이룩했다. 한편 이번 대회는 7일 하오 8시 공인체육장에서 화려한 폐막식을 갖고 열전 16일 대단원의 막을 내린다. OCA(아시아올림픽평의회) 회원국 가운데 이라크를 제외한 37개국 6천명의 대가족이 참가한 이번 대회에서 아시아의 젊은이들은 16일 동안 조국의 명예를 걸고 힘과 기를 겨루는 한편 인종과 언어 종교를 초월,우의를 돈독히 했다. 특히 이번 대회는 분단과 갈등으로 가슴앓이 해온 남과 북의 한민족이 한데 어울리고 대륙과 섬의 중국인들이 화해의 잔치를 벌이는 등 화합의 장을 여는 데 크게 기여했다.
  • 유럽전역에 신평화질서가 움튼다/변화하는 안보구조(새독일 탄생:4)

    ◎동ㆍ서화해 따라 나토ㆍ바 기구 역할 변화/「유럽안보협」 중심,구주통합 열기 확산 독일의 통일문제는 항상 유럽의 질서재편이라는 개념과 동의어로 여겨져 왔다. 그것은 게르만민족사에 점철되어온 분단과 재통일 그 자체가 그때 그때 유럽질서변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어 왔기 때문이다. 이번의 동서독 통일도 예외일 수는 없는 것이다. 오히려 통독이 유럽사회에 끼칠 영향은 과거 어느때 못지 않을 것이라는게 지배적인 분석이다. 동서독이 하나됨은 전후 40여년간 지속되어온 동서대립체제와해의 실제적이며 구체적인 증거이다. 한민족의 분단극복의 차원을 넘어 유럽을 갈라 놓았던 이데올로기 갈등의 해소라는 국제정치사적 의미를 지니는 것이다. 통독을 두고 유럽의 지각변동이라는 표현이 사용되고 있는 것도 이때문이다. 새로운 독일의 탄생으로 가장 큰 변화가 예상되는 분야가 유럽의 안보구조이다. 그동안의 통독추진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고비였던 통일 독일의 군사적 지위문제,즉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와의 관계는 새독일이 계속하여 회원국으로 남는 것으로 결론 지워졌지만 그렇다고 하여 종래의 유럽안보체제가 그대로 존속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유럽국가들은 거대 독일출현에 따른 걱정을 덜기 위한 방편의 하나로 새독일을 나토의 테두리안에 묶어 두길 희망해 왔다. 따라서 나토의 외형은 일단 그대로 유지되는 형태를 취하게 됐다. 그러나 유럽방위기구로서의 나토의 기능검증이 이미 오래전부터 진행중이며 동서긴장 완화의 첫 결실이라 할수 있는 새독일의 탄생은 이를 더욱 촉진시킬 것으로 기대된다. 아울러 상대적 군사기구였던 바르샤바조약기구 역시 동독이 빠지게 됨으로써 변신이 불가피 하게됐고 이러한 여건변화에 따라 군사기구에서 정치적 기구로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이같이 동서가 서로 적의 개념을 희석시켜가고 있는 과정에서 새로이 추구되고 있는 것이 유럽의 신평화질서이며 이는 기존의 유럽안보협력회의(CSCE)의 활성화로 보다 구체화되고 있다. 동서독 통일의 축제가 벌어지던 지난 3일 뉴욕에서는 CSCE 35개회원국(동독의 소멸로 현재는 34개국) 외무장관들이모여 오는 11월19일부터 21일까지 파리에서 CSCE 정상회담을 열기로 확정 발표했다. 서유럽국가 전체(미국 캐나다 포함)와 알바니아를 제외한 동구권국가 모두가 참석하는 CSCE회담은 75년 「헬싱키선언」을 근간으로 하여 전유럽의 새로운 평화질서의 구축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와 같이 새독일 출현 후 유럽의 안보구조는 기존의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가 겉모양새로는 계속 남아 있으며 대립적 관계에서 협력파트너의 관계로의 이행이 추진될 것으로 전망되며 이와 곁들여 CSCE가 전유럽의 정치적 통합,즉 「유럽 공동의 집」이라는 원대한 목표를 향해 새로운 질서의 창조를 담당해 나갈 것으로 점쳐진다. 이같이 유럽의 안보ㆍ정치적 새질서 마련의 계기를 제공하고 있는 통일독일은 경제적 측면에서도 만만치 않은 영향력을 발휘할 것으로 보인다. 사실 통일독일에 대한 유럽국가들의 현실적인 두려움은 군사적인 면보다는 경제적인 이유에서 더욱 고조되고 있다. 동서독이 통일됨으로써 그들의 경제점유율은 전체 EC의 33%에 달하게 된다. 이는 현재를기준으로 파악해본 예상치에 불과하며 새독일이 군사력보유의 제한을 받게 됨으로써 군비지출이 적어 그만큼 경제력 팽창의 속도가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여타 유럽국가들은 새독일이 동구권에 대한 영향력을 넓혀나갈 경우 독일이 경제적 패권주의로 빠져들 위험성이 많은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CSCE를 중심으로한 전체유럽의 공동체창설 주장도 바로 이와 같이 안보적측면과 결코 분리시켜 생각할 수 없는 경제적이유가 큰 몫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통일독일의 첫 총리인 콜은 92년말로 예정된 EC의 경제통합에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겠다고 거듭 다짐하고 있다. 콜은 한걸음 더 나아가 소련과 동구권까지를 포함한 전유럽경제권을 창설하자고 주장한다. 그러나 새독일의 이같은 주장과 다짐들이 현실화될지는 아직 아무도 장담하려 들지 않는다. 그래서 통일독일 탄생으로 인한 경제적 측면에서의 유럽의 앞날은 아직은 안개속일 수 밖에 없다.
  • 정부,유엔 단독가입 신청방침/어제 남북한 실무접촉

    ◎북,「단일의석」 주장 되풀이/16일 총리회담서 최종 설득 남북한 쌍방은 5일 상오 10시 판문점 중립국 감독위 회의실에서 유엔 가입문제 협의를 위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실무대표 접촉을 가졌으나 쌍방이 기존 입장만을 주장해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오는 16일 제2차 평양고위급회담 이전에 한차례 더 실무접촉을 갖기로 했다.〈관련기사 2면〉 우리측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과 북한측 최우진 외교부 순회대사가 각각 수석대표로 참석,2시간30여분 동안 비공개로 진행된 이날 접촉에서 우리측은 남북이 유엔에 동시에 가입하는 것만이 평화통일을 촉진할 수 있는 현실적이고 유일한 해결방안임을 강조하고 공동가입을 거듭 촉구했다고 남북대화사무국이 이날 밝혔다. 그러나 북한측 대표 최우진은 『남북한 유엔 동시가입은 분단을 고착화·합법화시키는 분열주의』라고 비난하고 『박길연 유엔주재 대표부 대사가 유엔에 제출한 서한은 주체사상을 바탕으로 하고 있으며 유엔 가입에 대한 북한의 기본입장이 바뀐 것이 아니다』며 「두개의 조선반대」 및「단일의석 공동가입」이라는 기존 입장을 되풀이했다. 최우진은 또 『한소 수교는 한반도에 두개의 국가를 만들려는 분열주의 책동』이라며 대일 수교협상 제의와 관련,『자주·평화·친선의 대외 기본정책에 일본이 굽히고 들어오고 지난 시절에 대해 잘못한 점을 시인하고 사과하기에 받아들인 것』이라고 주장했다고 정부의 한 당국자가 전했다. 정부는 북한이 유엔 안보리 서한내용과는 달리 우리측에 단일의석 공동가입을 계속 주장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을 지연시키려는 의도라고 판단,오는 16일 평양 제2차 고위급회담에서 북한의 입장이 바뀌지 않을 경우 곧바로 11월쯤 우리의 유엔 단독가입 신청서를 제출키로 했다. 이 당국자는 『2차 평양회담에서도 북한측의 태도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나지 않는 한 우리만의 단독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수밖에 없다』고 밝히고 『현재 유엔의 분위기로 볼 때 중국도 거부권을 행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남북 쌍방은 오는 16일 평양 제2차 총리회담에 앞서 한차례 더 가질 실무대표접촉의 구체적 일시는 추후 책임연락관 접촉을 통해 결정하기로 합의했다.
  • 통독의회,새 선거법 채택/“양독지역서 5% 득표땐 의석 배분”

    ◎개원 첫날부터 총선 정책 공방/“분단 45년의 벽 융화로 극복” 콜총리/“동독 외면한 공약 남발”비난 라퐁텐 【본 AP 연합】 통일독일 출범 3일째를 맞은 5일 전독일 회의가 본에서 첫 회의를 개최하고 새로운 선거법을 채택함으로써 오는 12월2일로 예정된 전독총선이 당초 계획대로 실시될 수 있게 됐다. 이날 전독일 의회에서 의원들의 압도적인 찬성으로 채택된 새로운 선거법은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판결을 받은 동서독간의 선거협약을 대체하게 된다. 새로운 선거법은 통일 독일을 동서독으로 선거구를 양분해 동독출신의 의원은 동독지역 유권자의 5% 지지만 얻으면 원내로 진출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선거법에 따라 민사당과 같은 소규모 정당들도 원내에 진출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게 됐다. 동서독은 통일에 앞서 한 정당이 원내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전체유권자 가운데 5% 이상의 지지를 얻어야만 한다는 내용의 선거협약에 합의한 바 있었으나 대법원으로부터 위헌파결을 받음으로써 12월2일의 전독 총선실시가 불투명했었다. 한편이날 회의는 지난달 12일 모스크바에서 개최된 「2+4」회담에서 체결된 2차대전 전승국들의 독일에 대한 권리를 종식시키는 협약을 승인했다. 【베를린 로이터 AP 연합】 독일 통일에 따라 구동독출신의 일부 각료와 의원들이 통일된 연방정부에 합류한 가운데 4일 전후 45년만에 처음으로 전 독일의회(하원)가 구제국의회(라이히스타크) 건물에서 개원,오는 12월의 전독 총선을 겨냥한 정책대결로 첫 통일의정을 장식했다. 회의 벽두 새로 연방정부에 무임소 각료로 입각한 5명의 동독출신 장관들이 콜 총리앞에서 입각선서를 한 가운데 시작한 이날 회의는 나치독일과 스탈린 통치,베를린 장벽에서의 희생자들에 대한 의원들의 추모 묵념과 함께 진행됐다. 서독출신 의원 5백19명과 새로 연방의회에 가담한 1백44명의 동독 의원들을 합쳐 모두 6백63명의 의원이 참석한 가운데 개회된 이날 회의에서 헬무트 콜 총리는 독일이 국내외에서 좋은 이웃이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지난 45년간 분단의 상처를 조속히 극복하기 위해 모든 독일인들이 자기희생의 헌신적 자세를 가져야할 것이라고 역설했으며 사민당과 동독의 구공산당 지도자들은 콜총리와 기민당의 통일정책 등을 격렬히 비난하는 등 통일의회 개원 첫날부터 총선을 의식한 의원들의 열띤 설전이 불을 뿜었다. 콜 총리는 통일독일이 당면한 가장 큰 도전은 분단 45년의 영향을 일소하는 것이라면서 『독일을 문화ㆍ경제ㆍ사회 등 제반 모든 분야에서 하나로 융화시키는 일이 앞으로 독일의 가장 큰 과제가 될 것』이라고 역설했다. 흑ㆍ적ㆍ황의 독일 3색기가 펄럭이는 가운데 베를린의 구제국 의회에서 이날 상오 10시 개회된 회의에서 그는 특히 『독일역사의 양지에 있던 서독인들과 공산독재에 고통받던 동독인들의 간격을 메워야만 한다』고 전제하고 『지난 40년동안 피폐화한 것을 몇주나 몇달안에 훌륭한 상태로 만들 수는 없을 것이나 이를 빠른 시일내에 극복할 수 있도록 독일의 모든 역량을 발휘해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이어 발언에 나선 사민당의 오스카 라퐁텐의원은 그러나 콜 총리가 급속한 통일이 동독측에 가져온 고난을 외면한채 대독일만 추구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오는 12월 총선에서 콜 총리와 대결할 라퐁텐의원은 또 콜총리가 세금인상으로만 가능한 공수표를 남발하고 있다고 공격하는 등 통일독일 의회는 개원 첫날부터 사실상의 선거전으로 치달았다.
  • 양국 수교 의의와 남북관계 전망/대담

    ◎「한ㆍ소 악수」 동북아 역학의 새 축으로/북방ㆍ동방정책 맞물려 분단극복 첫 난관 통과/북한은 개방충격 우려… 대미 급속접근 못할 듯/미 영향력 고조 예상… 전통적 우방과의 긴밀관계 유지 중요/정종욱/김유남 한소 외무장관이 지난 1일 유엔본부에서 수교합의 공동코뮈니케에 서명함에 따라 지난 45년간 지속된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와 남북한관계는 새로운 전기를 맞게 됐다. 한소 수교의 역사적 의의와 한반도 정세에 미칠 영향 및 향후 남북관계 전망 등을 전문가들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정종욱 교수=지난 1일 한소 외상간에 합의된 수교결정은 한반도 분단사에 새로운 획을 긋는 역사적 사건으로 평가해도 손색이 없을 것 같습니다. 한소 수교가 동서독 통일이라는 엄청난 사건에 가려 외형상 다소 왜소해 보일지 모르나 소련이 한반도 냉전사에 차지하는 위치나 대륙세력과 해양세력의 각축장이었던 한반도에 대해 소련이 지녔던 정책 등을 고려하면 한반도주변 역사의 재편을 알리는 빅 이벤트임에 틀림이 없습니다. ○소,아시아서 입지 확보 ▲김유남 교수=이번 한소 수교의 역사적 의미를 평가하려면 소련의 동방정책 내역을 살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식민지 정책으로 일컬어지는 유럽의 팽창주의 노선에 편승,추진된 러이사의 동방정책은 20세기 초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배함에 따라 좌절되기까지 한반도 주변정세에 막대한 영향를 끼쳤습니다. 이번 한소 수교는 소련의 입장에서 볼 땐 지난 85년간 단절된 동방정책의 복구란 측면에서 그 역사적 의미를 갖고 있다는 점입니다. ▲정 교수=그렇습니다. 소 입장에서는 한소 수교로 소련이 해양세력으로서 한반도내에서 85년간 상실한 교두보를 다시 확보함과 동시에 태평양 진출의 발판을 마련했다는 점에서 오랜 숙원을 달성한 셈이죠. 소련은 1945년 전승국으로 다시 한반도에 진출할 기회를 가졌으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38선 혹은 휴전선 이북에 한정됐었기 때문에 여전히 아쉬움이 남아 있었던거죠. 그러나 이번 양국간의 수교로 한반도 전역에 걸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아시아국가로서의 입지를 확보하는 절호의 기회까지 포착하게 된 겁니다. 그리고 우리의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한반도의 분단은 남북분단 외에도 남북 동맹국간의 단절이라는 상황의 이중성 때문에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었는데 이번 한소 수교로 한반도 냉전의 주요 외곽을 구성하고 있는 소련과 관계 정상화함으로써 분단극복의 1차적 난관을 통과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소간에 국교가 정상화됐다고 해서 북한이 오랜 동맹국인 소련과의 관계를 단절하게 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립니다. 오히려 최근의 일본과 북한의 급속한 접근 움직임에서 보듯이 한소 수교를 남북한 교차승인의 시대가 도래하는 신호로 파악하는 것이 옳을 겁니다. ▲김 교수=한소 수교가 남북한관계에 미칠 영향을 정확하게 평가하기란 대단히 어렵습니다. 다만 남북분단이 한반도주변 4강의 냉전구조 속에서 파생된 점을 감안하면 한소 수교는 이같은 냉전 4강의 구조적 뼈대에 변화를 가져온다는 측면에서 한반도주변 생태계에 일대 변혁을 일으키는 사건이라고 봅니다. ○전체 영향력 차이 없어 여기서 우리가 유의해야 할 대목은 한소 정상화에도 불구하고 동북아지역에 대한 소련의 영향력은 일부 개별국가에 있어 질적인 변화가 있다손치더라도 전체적으로 볼 때 양적인 면에서는 거의 차이가 없다는 점입니다. 소련은 과거 북한에 대해 지녔던 영향력을 남북한에 걸쳐 분산시키면서 동시에 남북한간의 관계를 적절히 이용하는 위치에 섰다고 봐야합니다., ○한반도 냉전종식 계기 ▲정 교수=한소 수교의 손익을 평가하려면 한국과 소련이 수교로 얻게되는 손익대차 대조표부터 만들어보는 것이 이해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소련은 최고 50억달러로 추산되는 한국의 경협자금도 매력적이지만 85년만에 한반도에 전진기지를 안전하게 확보했다는 전략적인 측면 역시 무시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경우 주변관계 정상화로 한반도 주변의 냉전구조에 종식을 고했을 뿐만 아니라 통일을 성취할 수 있는 중요한 전기를 마련했습니다. 그럼에도 냉전 이후의 한반도주변 국제정치가 이제부터 본격화된다는 점을 잊어선 안될것입니다. ▲김 교수=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미국ㆍ일본 등 우리의 기존 우방과의 관계를 어떻게 재정립하느냐에 촉각을 곤두세워야 할 때라고 봅니다. 주변 4강과 남북한이 갖는 함수관계를 인정,최근의 북한과 일본의 관계도 새로운 시각에서 긍정적으로 수용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7ㆍ7선언의 저류를 이루는 교차승인의 진정한 의미가 아니겠습니까. ▲정 교수=북방정책은 이제 한소 수교를 이뤄냄으로써 중요목적 중의 하나를 달성했고 남은 문제는 대중국 관계개선일 것입니다. 중국은 소련과 달리 북한과 대단히 밀접한 우호관계를 유지해 왔기 때문에 한소 수교가 실현됐다고 해서 당장 중국의 한반도정책이 변화하고 한중관계 정상화가 이뤄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다소 무립니다. 그럼에도 한소 수교는 중국이 한반도정책에서 고집해 왔던 정경분리원칙을 깨뜨리게 하는 좋은 촉매제가 될 것입니다. 한중간에 외교기능까지 수행할 무역사무소 설치가 예견되는 등 점진적인 정치관계 개선까지 바라볼 수 있는 상황에 와 있습니다. 일본과 북한도 수교교섭 단계에 있고 미­북한 관계도 주한미군과 평화협정체결 문제 등이 남아있기 때문에 당장 정치적인 관계개선은 힘들지만 북한ㆍ일본 관계개선에 따라 평양과 워싱턴의 관계개선도 예상보다 빨리 진척될 것으로 보입니다. ○데탕트기류 미가 주도 ▲김 교수=북방정책의 성공요인으로 우리의 주체역량 강화와 자주외교 등을 들 수 있지만 국제적인 데탕트무드가 주류를 이뤘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데탕트는 미국의 주도로 이뤄진 것입니다. 그런데 미국은 한소 관계가 점진적이라기 보다는 혁명적으로 개선된 데 대해 지지를 표명하면서도 우려를 감추지 못하는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북한의 입장이나 미­북한 관계에 하등의 변화가 없기 때문에 한소 수교만이 동북아 긴장완화의 필요 충분조건은 아니라는 얘깁니다. 그러나 미국도 대외정책을 수행함에 있어서 원칙 못지 않게 국익을 앞세우는 만큼 한소 수교를 대북한정책 전환의 계기로 삼아 북한에 획기적인 제의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미국이 중국과 국교를 정상화시키기까지 중국학생 재교육 과학기술이전 등 엄청난 간접투자를 했던 경험을 북한에 대해서도 시도,경제민간교류 차원의 발전이 예상됩니다. ▲정 교수=북한이 전략ㆍ전술적인 변화는 조심스럽게 추구하고 있지만 한국에 대해 아직까지 기본원칙을 고수하고 있고 통일과 관련된 원칙적인 문제에 관한 근본적인 정책수정은 아직까지 가시화되지 않았기 때문에 주변정세변화 만큼 남북한 관계가 개선되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시기상조입니다. 2차 남북 총리회담에서 북한이 어떤 태도를 보이느냐에 따라 북한의 변화에 대한 평가가 가능하리라 봅니다. 한소 수교를 계기로 우리 정부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기본적인 장기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그동안 북방정책 과정에서 드러난 지나친 「한건주의」 자세를 지양하고 조화를 이루면서 통일로 연결시킬 수 있는 방향으로 신중히 구상해야 합니다. 여기서 고려해야 할 사항은 우리 우방과의 관계를 결코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는 점입니다. 북방정책 성공의 큰 요인인 미소간 데탕트는 소련국력에 의해 성취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소련의 국력 쇠퇴과정에서 생겨났기 때문입니다. 바꿔 말하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할 강대국으로서 소련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줄어들고 미국의 영향력은 반대로 고조되고 있습니다. 우리의 북방정책이 미국과의 관계를 소홀히 하는 차원에서 추진되어서는 안됩니다. ▲김 교수=우리가 소련과 국교를 수립하고 중국과 관계개선을 하는 마당에 북한의 변화가 없는 한 한반도 문제의 탈출구가 없다는 식의 자세를 계속 유지해야 하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다소 의문이 남습니다. 지금까지도 그랬지만 좀더 과감하고 능동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이 북한으로 하여금 폐쇄사회에서 벗어나는 명분을 찻을 수 있게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대중 관계개선만 남아 이제 북방정책은 중국과의 국교정상화만 남은 상태여서 사실상 끝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앞으로는 정상적인 외교와 남북외교만 남았기 때문에 북방정책이라기 보다는 내한정책이라고 해야 옳을 것입니다. 지금까지 북방정책이 정치적 결단에 의해 좌우됐기 때문에 전문성이 다소 결여되고 한건주의가 팽배했으나 앞으로는 국익을 앞세운 종합적인 외교를 펴나가야 할 것 입니다. ▲정 교수=무리하게 중국과의 관계정상화를 추구하다 국내외로 부작용이 초래되지 않을까 걱정하는 김 교수의 취지에 십분 동의 합니다. 남북한 관계에서 한국이 보다 적극적인 자세를 취할 수 있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에 대해서도 기본적으로는 이의가 없지만 문제는 북한이 주변변화와 한국의 적극적인 양보조치를 수용할 태세와 능력이 있느냐는 것입니다. 미국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북한은 미국과의 교류를 통한 개방의 엄청난 충격을 견뎌낼 능력이 아직 갖춰지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생각이 듭니다. 따라서 미ㆍ북한 관계개선이 빠른 속도로 진전될 수는 없으면 일ㆍ북한 관계개선에도 상당한 한계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북ㆍ남방정책의 불균형이 오히려 남북한관계 불안을 초래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열강 이해각축 경계를 ▲김 교수=소련과 국교를 맺고 중국과 국교정상화의 문턱에 다가섰다고 해서 모든 게 끝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군사 안보 경제 문화의 존적인면에서 미국과 특수관계를 유지해온 만큼 이 특수관계를 어떻게 하면 자연스럽게 일반관계로 바꿔나갈 것인지 마음자세를 정립해야 합니다. 새 벗인 소련을 대함에 있어 옛 벗인 미국과 깊은 협의를 갖지 않으면 안될 것 입니다. ▲정 교수=결론적으로 말해 한소 수교가 한반도에서의 북방외교 후기질서를 창출하는 중요한 계기라는 점을 높이 평가하면서도 20세기 초 한반도 주변 열강의 각축 과정에서 한민족이 입었던 불행을 또다시 되풀이하지 않도록 정부가 신중히 정책을 세울 것을 당부하고 싶습니다. 앞으로 주변국가 각자의 이해관계에 따라 서로 견제하고 균형을 이루는 새 질서 속에서 남북한이 상호 관계개선을 게을리 할 경우 오히려 주변열강의 이해관계에 의해 한반도의 운명이 결정될 수 있다는 위험성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 대미ㆍ일 관계개선 촉구/소 외무,북한에

    【뉴욕 교도 연합】 예두아르트 셰바르드나제 소련 외무장관은 3일 오늘의 세계에서 분단된 한반도는 「변칙적인 것」이라고 지적하고 북한에 대해 일본 및 미국과 관계를 개선할 것을 촉구했다. 셰바르드나제 장관은 이날 교도(공동)통신과의 회견에서 가네마루 신(김환신) 전 일본 부총리가 이끄는 일본 대표단이 지난주 평양을 방문한 것은 「명백히 긍정적인 조짐」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반도의 분단은 「비극적」이며 「부자연스런 것」 이라면서 『세계적으로 지속적인 긍정적 조류에 비추어 볼 때 한반도의 분단은 나날이 변칙적인 것이 되고 있다』고 말했다.
  • 「분단 41년」의 청산과 과제(새 독일 탄생:3)

    ◎“과도기 없이 통일”… 현실적 융화에 어려움/낙태ㆍ환경보호문제 등 의견 대립 첨예/베를린행 인파 급증… 주택ㆍ교통난 심화/동독기업 도산 속출… 연말가면 실업 1백만 예상 최근 베를린 도심에서는 급격히 늘어난 교통량을 해소하기 위해 간선도로마다 버스ㆍ택시전용차선이 등장했다. 일반승용차가 버스전용차로 운행할 경우에는 20마르크(9천2백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버스전용차선으로 다니는 승용차가 심심치 않게 눈에 띄고 벌금을 둘러싼 시비가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규율과 질서를 존중하던 독일정신(Deutsche Geist)의 실종이라고 하겠다. 이 문제에 대해 지난 9월28일자 「베리리널 몰겐포스트」지는 다음과 같이 관계자의 의견을 소개하고 있다. 만프레드 카이절(49ㆍ열쇠공)은 『최근엔 버스를 타도 전보다 30여분 늦게 귀가하게 된다. 나는 직장에 늦지 않게 출근하고 싶으며 역시 퇴근후 정확하게 집에 도착하고 싶다. 그래서 가끔 차량들이 없는 버스차선을 이용하게 된다. 교통정책에 대한 재검토가 필요하다』 디터 스캄브락스(37ㆍ경찰국 경감) 『동독지역서 온 운전자들이 버스차선에 익숙해질 필요가 있다. 그들은 버스차선에 대해 전혀 유념하지 않고 있다. 최근 악화된 교통체증을 해소하기 위해 다른 방법은 없기 때문에 공공교통수단의 우선 소통이 불가피한 실정이다』 서독의 서민대상 백화점인 알디(ALDI)에는 요즘 이른 아침부터 물건을 사려는 동독지역 사람들이 장사진을 이루며 줄을 서 있다. 아침 10시부터 개점하는 백화점은 오전중에 일부 상품이 동이 나 줄서기에 익숙하지 못한 서베를린 사람들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이들이 선호하는 상품은 주로 가전제품이어서 컬러TVㆍ비디오제품들을 들고 가족들이 무리를 지어 베를린 도심을 다니는 동독지역 주민들이 눈에 많이 띈다. 1마르크라도 절약하기 위해 알디의 바겐세일을 고대하던 서베를린 중산층은 뒷전으로 물러나고 가격도 상승해 생활의 불편을 가중시키고 있다. 이밖에 통독 이후 호황을 누리고 있는 업종은 주택임대업자와 중고자동차판매업 등이지만 가격이 폭등하는 바람에 서민들의 생활이 쪼들리고 있어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시내 주택임대사무실에는 임대 신청을 하기 위한 시민들이 길게 늘어서 있으며 임대료가 몇달새 2배까지 오른데다 신청이 접수된 뒤에도 2∼6개월을 기다려야 한다. 방3에 응접실이 있는 1백㎡ 규모의 아파트는 월 임대료가 연초 2천5백마르크 정도였으나 최근엔 4천여 마르크로 치솟았다. 통일뒤 베를린에만 30여만명의 외래인이 몰려 들었다는 집계여서 주택문제가 큰 사회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2∼3년된 중고차도 여유있는 동독출신 사람들이 몰려들어 벤츠 300의 경우 2만5천∼3만마르크를 홋가,통일전에 비해 5천∼1만마르크가 상승한 가운데 거래되고 있다. 이같은 모든 문제는 독일통일 예상을 뒤엎고 급속히 진전되는 바람에 독일정부가 국민들의 통일요구에 사전준비가 제대로 안된채 끌려간 때문으로 지적되고 있다. 독일통일의 동기를 여러측면에서 분석할 수 있겠으나 지난해 가을 서독으로의 대탈출로 불이 당겨진 이후 전광석화처럼 통일 작업이 추진된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미리 계획된 통일이 아니라 내부로부터 분출된 갑작스런 욕구때문에 이뤄진 통일이어서 많은 문제점과 갈등을 과제로 남겨 두었다고 하겠다. 통일의 직접동기는 여행자유화였던 것이다. 여행을 마음대로 할 수 없도록 묶어둔 동독의 사회제도는 국민들로 하여금 불만과 반발을 자초했으며 평소 강제로 주입시켜온 「제국주의」에 대한 적개심도 퇴색시켰다. 지난해 동독시위의 첫 구호는 「여행자유화」였으며 이것이 공산당 일당독재의 장기화,이에 따른 폐쇄사회의 모순,경제침체에 대한 불만으로 이어져 서독으로의 대탈출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부터 체제의 변화를 목적으로 들고 일어난 것이 아니기 때문에갑작스런 통일은 많은 갈등을 과제로 남겨놓고 있다. 이때문에 40여년 분단갈등의 해소문제는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보다는 사회주의 체제에 익숙해진 동독사람들이 경쟁과 능력을 중시하는 시장경제 사회에 어떻게 빨리 적응하느냐 하는 사회적인ㆍ경제적인 문제로 이어지고 있다. 독일통일조약에 따라 사회주의 동독의 각종 제도는 서독체제에 맞도록 개편되어야 하는데이 과정에서 벌써부터 많은 문제점들이 노출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 대표적인 과제들중에는 낙태법ㆍ실업ㆍ투자ㆍ환경문제 등이다. 이런 문제들은 통일독일 정부가 앞으로 시간을 가지고 풀어나가야 할 과제이지만 서독국민과 동독국민들 사이에 의견의 차이가 많아 쉽사리 실마리를 찾기가 힘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실제로 서독에서는 낙태를 금지시키고 있으나 동독은 이를 허용하고 있는 실정이어서 통일후 서독 여성들이 동독으로 건너가 낙태시술을 받는 사례가 늘어날 것으로 예상된다. 서독의 집권 기민당은 낙태법문제에 관해서는 절대로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어서 그 귀추가 주목되고 있으나 2년간의 유예기간을 두고 낙태에 관해서는 기소하지 않는다는 결정을 내렸다. 통독후 가장 골치아픈 문제로는 실업문제와 인플레현상이다. 사회주의경제가 다 그러하듯 동독의 경제는 지금까지 적정인력 투입이나 균등분배에 중점을 두어왔기 때문에 통계상으로는 실업률 0% 였으나 경제통합후 3개월만인 현재 동독지역의 실업자수가 30여만명에 이르는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전독 문제연구소의 쿳페박사는 최근 『새 경제질서는 충분한 사전준비나 과도기도 거치지 않고 갑자기 닥쳐왔다』며 『향후 2년내에 동독기업의 30%가 도산할 것이며 실업자수는 연말까지 1백만명,91년까지 전체 노동력의 25%인 2백만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히고 있다. 장기간에 걸친 양국의 체제가 합치는 과정에서 표출되는 갈등은 시간만이 해결할 수 있는 문제이며 독일인들은 이를 현명하게 해결할 것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분석이다.
  • “제2의 비스마르크”헬무트 콜 총리

    ◎결단력 갖춘 “통일의 설계사”/12월 전독총선서 압승 확실 통일독일의 초대 총리자리를 차지한 헬무트 콜(60)에게 세계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불과 1년전까지만 해도 별다른 인기를 얻지 못하던 콜은 20세기 후반 최대의 사건으로 일컬어지는 통독을 솜씨있게 요리해 냄에 따라 철혈재상 비스마르크에 비견되고 있다. 비스마르크가 1871년 분열된 독일을 힘으로 통일시킨데 반해 콜은 분단된 독일을 빈틈없는 외교능력으로 통일시킨 것이다. 독일이 통일된 요인으로 소련에서 고르바초프가 등장한 이후 무르익은 동서 데탕트와 지난해 가을 동구를 쉽쓴 민주화혁명 등 외부적인 요소를 물론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러한 호기를 놓치지 않고 통독으로 이끌 수 있었던 것은 콜 총리를 중심으로 한 서독 지도자들의 능력 때문이었다. 콜은 동독이 지난해 11월9일 베를린장벽을 민주화의 열풍으로 붕괴시킨 뒤 곧 통독 10개항을 발표,통독을 국제무대에 핫이슈로 부각시키면서 기정사실화 했다. 또 콜은 독일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던 미ㆍ소ㆍ영ㆍ불 등2차대전 전승국 지도자들을 설득시키기 위한 외교노력을 겐셔 외무와 함께 강화했다. 그는 지난 7월16일 소련을 방문,고르바초프로부터 『통일독일의 나토(북대서양조약기구) 가입 허용』이라는 양보를 얻어냄으로써 통독에 대한 최대의 걸림돌을 제거할 수 있었다. 콜은 지난 82년 총리가 된 것도 행운이었다. 당시 집권사민당과 연정을 이룬 자민당의 일부 의원들이 슈미트 전총리의 정책에 대한 반발로 콜 진영으로 합세,불신임안을 제출함으로써 13년간의 중도 좌파연정을 붕괴시켰기 때문. 그러나 지난 47년 기민당에 입당한뒤 69년 라인란트 팔츠주의 최연소 지사,73년 기민당 최연소 총재 등 화려한 기록을 세우기도 한 역사학박사인 콜에게도 시련은 있었다. 그는 지난 76년 총선에서 총리에 도전했으나 실패했으며 80년에는 동맹관계에 있는 기사당의 슈트라우스에게 총리후보를 빼앗겼으며 76년ㆍ83년 총선시에는 출신지역구에서 탈락,비례대표로 구원되는 수모를 당하기도 했었다. 신장 1백92㎝ 체중 1백30㎏의 거대한 체구를 지닌 그는 경제ㆍ국방전문가인 슈미트 전총리에 비해 특별한 전문분야도 없으며 정치력도 부족하다는 혹평을 받았다. 그의 인기는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30%선을 밑돌아 집권기민당 내에서도 비판의 소리가 높았었으나 통독을 이룸으로써 그의 위치는 확고해져 57년만에 치러지는 오는 12월2일의 전독총선에서도 라이벌인 라퐁텐 사민당 총리후보(46)를 물리치고 승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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