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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늘어나는 세부담… 동독재건 달갑잖은 서독인(통일독일의 과제:중)

    ◎지원비용 10년간 8천억불 소요/1인당 1만불 추가부담 불가피/“일자리 줄고 일당 적어진다”… 볼멘 소리도 지난 3일밤 베를린에서 만난 헬무트씨(49)는 『통일이 이렇게 빨리 이뤄질 줄은 미처 생각지 못했습니다. 동독지역 사정을 알아보고 돈벌이 사업을 찾아보려고 합니다』라고 말했다. 중북부 고도 첼레시에서 선대로부터 가구점을 물려받아 경영해 오고 있는 헬무트씨는 라이프치히시 투자환경을 둘러보기 위해 가던중 호텔방을 못구해 민박을 하는 같은 아파트에 부부가 함께 방을 잡았다. 『동독지역에 복구사업이 본격화되면 신ㆍ개축하는 건물들이 많아 가구수요가 크게 늘어날 것』이라며 헬무트씨는 새 건물에 필수적인 카펫이 많이 팔릴 것으로 예상돼 라이프치히 시내에 큰 점포를 낼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마침 베를린에서 떠들썩하게 펼쳐지는 통일축제 행사에는 관심조차 없는 듯 다음날 새벽 짐을 챙겨 떠났다. 서독인들이 통일에 대한 반응은 얄미울 정도로 자기중심적이다. 돈벌이가 되는 사업은 어떤 것인가,세금은 얼마를 더 내야 하는가 등 우리가 보기에는 부수적인 문제에 더 큰 관심을 갖고 있다. 분단 반세기만에 역사적인 통일을 이룩했건만 서독인들에게서 당연히 기대할 수 있는 「게르만민족의 우수성」「세계사의 새로운 주도자」「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비교」 등 거창한 대답을 들어볼 수 없는 일이 이상하게 느껴진다. 축제의 거리에도 요란한 구호를 적은 플래카드나 포스터가 없을 뿐더러 신문들도 주택ㆍ환경문제 등 통일후의 과제와 문제점에 더 큰 비중을 둔 기사를 싣고 있었다. 적어도 서독인에게는 통일이 이념적이라기보다는 현실적인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 같았다. 통일축제기간에도 중부도시 쾰른에서는 사진박람회가,남부도시 뮌헨에서는 10월 축제가 통일보다도 더 큰 관심속에 진행돼 수십만명의 인파가 몰렸다. 10월 축제장에서 만난 울리히 침머만씨(47)는 『동독지역을 서독수준으로 이끌어 올리려면 천문학적인 자금이 들텐데 결국 우리가 부담하게 될 것 아니냐』면서 『통일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너무 서둘러 한 것 같다』고 말했다. 축제장의 대형 맥주홀인 호프 브로이하우스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대학생 로타르 브릿지케군(22)은 『통일이 됐다고 달라질 것은 없지만 아르바이트일자리가 줄어들고 일당이 낮아질 우려가 있다』고 걱정했다. 독일정부는 향후 2000년까지 동쪽지역 재건에 필요한 재정을 8천억달러 규모로 잡아놓고 내년부터 10년계획에 착수할 예정이다. 이 재원확보를 위해 국민 1인당 추가 담세액은 1만여달러(7백여만원)나 되며 서독인들은 이에 대해 강한 반발을 하고 있다. 이미 독일정부는 통합과정에서 1차로 1천1백50억마르크의 「통독기금」을 마련하기로 하고 올해에 2백20억마르크를 조성하고 있는 중이며 서독의 납세자들로부터의 강한 반발에 부닥치고 있다. 침머만씨는 『동쪽제도가 갑자기 붕괴되는 바람에 서독인들에게도 큰 부담을 안겨놓았다』며 『지난해 11월 동베를린 대탈출이라는 예기치 못했던 사태가 없었더라면 통일작업이 시간을 갖고 확실히 추진되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1월 일후 동독지역에서는 한달 1만여개씩 9월말 현재 10여만여개의 사기업이 생겨나고 이들중 절반이상이 자금ㆍ경영면에서 서독인들이 간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들 사기업들은 당초 서독인들의 기대와는 달리 기능인력의 부족,경영미숙,낮은 생산성 때문에 서쪽지역의 투자자들을 불안하게 하고 있다. 사회주의체제 붕괴과정에서 동쪽지역에서는 서독지역의 신문ㆍ잡지 등이 불티나게 팔렸으며 최근에는 서독의 신문재벌들이 동독신문에 직접 투자하려는 움직임도 있었으나 주춤한 상태라고 한다. 베를린의 한 신문연구소에 따르면 서독의 신문들은 1페이지당 필요한 제작인원이 2ㆍ4명이나 동독신문은 5명이나 돼 동독신문을 인수하거나 투자하려던 서독신문들이 망설이고 있다는 것이다. 신문사 뿐만 아니라 일반기업들도 사회주의체제의 동독기업들이 생산규모에 비해 지나치게 많은 직원들을 고용하고 있어 생산성이 낮은데다 이들을 해고할 경우 사회적인 비판의 대상이 될 것을 우려해 동독지역의 진출을 망설이고 있는 실정이다. 서독 남서부 알브슈타드시에서 칭키스칸이라는 중국 음식점을 경영하는 교민 이종규씨(55)는 『이곳 바덴뷜템베르크주는 독일의 어느주보다도 가장 잘사는 주로 주민들은 통일의 환희보다는 통일후 짊어지게 되는 재정적 부담에 대해 더 큰 관심을 표시하고 있다』며 『독일사람들이 통일을 지나치게 이기적으로 받아들이는 모습을 볼 때 감정이 없는 국민인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 이씨는 『우리도 분단국가인만큼 통일이 절대적인 소망이지만 지나친 기대나 환상에서 벗어나 현실적인 과제로 보고 차분하게 대비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역사적인 사흘간의 통일축제가 끝난뒤인 5일의 베를린시가지는 평상시의 제모습으로 돌아와 축제의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거리를 오가는 시민들은 자신의 나라가 통일이 된 사실조차 잊은듯한 표정들이었다.
  • 결국 정상회담으로 가야 한다/남북고위급 1ㆍ2차회담을 보고(사설)

    해결의 실마리가 잡힐 듯 희망을 갖게 하면서도 역시 험난함을 느끼게 하는 것이 오늘의 남북한 문제 아닌가 여겨진다. 남북한은 당국간 고위급회담을 계속하고 접촉을 유지하도록 합의했다. 정상간 회담 가능성도 배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서울과 평양의 두 차례 고위급회담에서 양쪽은 어떤 합의문건 하나 채택하지 못했다. 분단 45년간 남북에 가로놓인 보이지 않는 장벽은 역시 두껍다는 사실을 실감하게 된다. 통일에 이르고자 하는 대화와 교류의 길 또한 멀고 험하다. 남북의 접촉이 잦아지면서 더욱더 남북 사이의 거리를 느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오늘의 한반도,남북한의 현실이다. ○북한이 변해야 하는 이유 남북고위급 제2차 평양 본회담 역시 그러했다. 7천만 한민족의 기대에 찬 시선은 물론 전세계의 관심이 집중됐던 회담이었다. 그것은 이번 회담에서 당장 어떤 가시적 성과를 기대해서라기보다는 서울회담 이후 전개된 직접적인 남북한 관계 및 남북 양측과 주변국간 관계의 급변 전개가 어떤 형태로 투영될까 하는 궁금증 때문이었다. 결과는 지금 세계에서 마지막 분단국으로 남게 된 한반도의 남북한 문제 해결은 보다 오랜 시간에 걸친 진지한 노력과 변화의 과정을 거칠 수밖에 없겠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이었다. 서울회담 이후 근 40일간에 걸친 안팎의 변화요인에 비추어 우리는 이번 평양회담에서 남북한 관계개선과 화해 및 협력시대로 진입하기 위한 북한측의 성의있고 변화된 자세가 보여지리라고 기대했었다. 북한측은 그러나 그들 「두 개의 조선」 거부논리에 대한 명확한 입장과 해명을 유보한 채 여전히 정치 군사문제 우선토의를 고집했다. 북한의 일관된 「하나의 조선」 논리에는 근본적으로 대남적화혁명논리가 잠재돼 있다. 그들의 양당국간 회담과 접촉에 현실적으로 참여하면서도 「하나의 조선」을 고수하는 것은 대남전략을 포기할 수 없다는 의사표시이다. 우리는 그들의 이율배반성과 자기모순적인 한반도정책을 배격하고자 하는 것이다. 아울러 정상회담에 대한 북한 주석 김일성의 긍정적인 언급 역시 정상회담의 필연성 및 효용성을 강조한 것이기보다 의례적인 것이 아닌가여겨져 앞으로의 진전을 주시하게 된다. ○대화의 계속,교류의 축적 그러나 어떻든 남북한의 대화는 진전되고 접촉과 교류는 축적돼야 한다.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도 역시 상이한 기본입장과 주장을 해소하지는 못했으나 서울회담에서의 포괄적인 내용을 각기 부분적으로 수용하는 자세를 보임으로써 3차 서울회담의 결실전망을 밝게 해줬다. 다시 서울에서 만나고 평양으로 이어지는 고위급회담은 언젠가 가시적인 결실로 나타날 것이다. 남북한은 이제 한반도의 통일이 갖는 역사적 필연성과 민족적 당위성으로 하여 그 과정에서 더이상 떨어질 수 없고 조만간 합일돼야 한다는 대원칙을 함께 수용한 것이다. 북한측이 주장하듯 정치 군사문제의 선결,남북 불가침선언도 그러하고 이산가족 재회와 3통협정 체결 등 남한측의 주장도 모두 남북 화해와 통일을 위한 실질적이고도 구체적인 요건임은 분명하다. 특히 남측으로서도 정치 군사문제의 선결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다만 남북문제 해결에 있어 우선 순위의 문제는 하나의 방법론에 불과할 뿐이라는 사실도알아야 한다. 쉬운 것부터 시작,점차적으로 어려운 것을 해결하여 본질문제에 접근하는 방법 또한 바람직한 것이다. 당국간 접촉으로 해결할 수 있는 것과 민간차원으로 넘길 수 있는 것이 다를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가 주장하는 「다방면에서의 다각적인 접근」인 것이다. ○정상의 만남이 뜻하는 것 남북관계 해결의 출발은 무엇보다도 상호 이질적인 체제와 이념이 존재하고 있음을 전제로 해야 한다. 그러한 현실과 원칙이 인정되지 않는 한 대화와 접촉은 형식적인 명분에 그칠 뿐이다. 거기에는 인간이나 국제관계의 핵심요소인 상호 신뢰와 존중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남북한 화해시대의 막을 여는 것이 정상간의 만남으로 비롯돼야 한다는 우리의 주장은 여기에 근거한 것이다. 정상간의 대좌와 격의없는 대화로써 문제의 핵심이 무엇인가를 가려낼 수 있는 것이고 무엇보다도 상호 존중과 신뢰의 토대를 이끌어낼 수 있다고 우리는 보는 것이다. 또한 상호 통치권적 결단에 의한 문제의 원천적인 해결의 길이 마련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 측면에서 한반도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대한민국의 국무총리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석 김일성을 만나 정상의 메시지를 전하고 평화통일 문제를 협의한 것은 그야말로 역사적인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우리는 남북고위급회담의 성사 및 진행과정에서 빚어진 양쪽의 상이한 입장이나 주장에 대해서,또는 회담의제가 내포하고 있는 본질적인 내용의 차이에 관해 구체적인 논평은 유보하고자 한다. 다만 남북의 화해라는 민족적 대의와 대도가 무엇인가를 자각하는 쌍방의 노력이 계속 요청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은 것이다. 남북이 더이상 서로 외면하지 않고 당사자로서 문제해결에 임하는 가운데 통일의 그날까지 공존번영하는 한민족공동체임을 자각할 수 있는 토대가 제공됐다면 그것으로 고위급회담의 성과는 나타난 것이다. 남북은 계속 만나고 얘기해야 한다. 서울과 평양,평양과 서울에서 대화는 계속되고 교류는 축적돼야 하는 것이다.
  • 총리회담의 의의와 전망/전문가 대담

    ◎“남북제안의 「공통분모」 구체화가 과제”/상호체제 부정적 언급 없었던건 큰 의미/북한 진의 정확히 분석… 유연대응 바람직/“평양은 체제유지에 위기감”… 분야별 회담등 통해 변화 유도를 16일부터 18일까지 평양에서 열린 남북총리회담에서 분단 45년만에 처음 우리측 고위정부인사인 강영훈 국무총리가 김일성주석과 요담,남북정상회담개최에 대한 전향적인 답변을 김주석으로부터 받아냄에 따라 남북정상회담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 강총리의 김주석 면담의 의미 및 남북정상회담의 실현 가능성,남북총리회담의 전망 등을 전문가의 대담을 통해 알아본다. ▲김창순 이사장=평양 2차 고위급회담은 비록 합의문 채택은 성사시키지 못했지만 남북 양측이 총리회담이 중단돼선 안된다는 인식아래 제3차 회담을 서울에서 계속키로 합의했다는 사실에서 그 성과와 의미를 찾아야할 것 같습니다. 물론 우리측이 남북한간의 교류ㆍ협력을 선행과제로 보는데 비해,북한측은 이를 분단을 고착화시키는 방안으로 보고 정치ㆍ군사문제부터 먼저 해결할것을 요구하는등 상호 접근방식에서 근본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지만 그래도 정상회담 문제에서는 과거보다 한발짝 구체화된 느낌입니다. 그럼에도 김일성주석이 총리회담의 성과가 있어야만 정상회담이 가능하다고 한말은 김이 종전부터 늘 해오던 것으로,획기적으로 변했다거나 도약한 것으로 평가해선 안될 것입니다. 그말은 뒤집어보면 정상회담을 위한 모든 선행조건이 충족돼야만 정상회담을 하겠다는 의사로 봐야 합니다. 다만 정상회담에 대해 명확한 부정적인 언급이 없었던 점이 평양회담이 남긴 의미랄까요. 어쨌든 3차 서울회담에서는 좀더 구체화되리라 봅니다. 특히 1ㆍ2차 회담에서 의견의 접근을 보았거나 사실상 일치된 문제에 대해선 3차회담에서 합의서를 채택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서병철교수=지난번 1차 서울회담은 상호 입장을 개진하는데 회담의 비중이 두어졌고 이번 평양회담은 합의문 채택에는 실패했지만 상호 통일을 향한 접점을 찾으려는 노력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히 양측이 주장한 내용중 상당부분에서 의견을 같이 했다는점이 이번회담의 성공적인 측면이 아닐까요. 그중에서도 거의 합의문채택 문턱에까지 갔던 불가침선언문제의 경우 우리측이 화해와 협력을 바탕으로 북측이 제기한 내용을 포함시키는 방법으로 접근함에 따라 이제 서명형식만 남은 듯한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김일성의 남북정상회담에 관한 발언에 대해서는 좀더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은데 지금까지 김은 이 문제에 대해 이번처럼 호의적으로 표현한 적이 없습니다. 물론 손님을 초대해 놓고 문전박대할 수 없는 사정도 있을 수 있지만 김이 정상회담에 대한 명확한 거부의사가 있었다면 그처럼 말하진 않았을 겁니다. 어떤 형태로든 정상회담을 가질 의사가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듭니다. ▲김이사장=이미 1ㆍ2차회담에서 드러난 것처럼 북한은 한국의 유엔단독가입을 저지하기 위해 총리회담을 계속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국의 유엔단독가입 저지 이유야 주지하다시피 북한측이 일관되게 견지해온 「하나의 조선」정책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 정책은 쉽사리 변하지 않으리라 봅니다. 그리고남북간에 현격한 시각차이를 보이고 있는 팀스피리트훈련 문제에 있어서도 그들은 이 문제를 회담의제로 꾸준히 제기,내년에라도 회담을 통해 중단시킬 수만 있다면 자신들이 중대한 승리를 거둔다는 방식으로 회담에 임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의 위대한 영도자의 요구에 따라 팀스피리트훈련이 중단됐다는 내치용으로 팀스피리트훈련과 총리회담을 연결시키고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북한측은 총리회담을 쉽사리 중단시키진 않을 겁니다. 우리의 경우 45년만에 실현된 총리회담을 어떻게든 지속시켜 남북관계를 화해와 교류,협력관계로 전환시켜야 할 필요성에 직면해 있습니다. 이처럼 남북총리회담은 상호 필요성에 공통분모를 두고 있기 때문에 3차회담은 2차회담보다 더 희망적이라할 수 있습니다. ▲서교수=앞으로의 회담에 대한 전망에 앞서 회담과정에서 나타난 북한의 태도를 분석해보고 그들의 본심이 무엇인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물론 북한이 총리회담에 응하게 된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소련의 압력이지만 동서독이 통일되는 상황에서 이 지구상의 마지막 분단국으로 서로 대화조차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에 대한 김일성의 체면문제도 영향을 미쳤을 것으로 봅니다. 그리고 동구권의 탈공산화과정에서도 조직적으로 체제관리를 해온 루마니아,불가리아 등에서 공산정권이 그대로 지속된다는 측면도 김에게 체제유지에 대한 미련을 심어준 것 같습니다. 그렇기때문에 앞으로의 회담에서 내용면에선 상당한 변화를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김이사장=북한은 금년 4월 총선에서 기존 대의원의 30% 이상을 교체하는 등 위험요소가 있는 세력들을 권력층에서 배제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5월에는 권력구조개편을 단행했습니다. 이러한 북한의 권력개편은 어차피 이번 총리회담과도 연관될 수 밖에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키고 싶군요. 또 우리가 소련과 국교수립을 했지만 소련은 아직도 북한에 대해 동지적인 입장에서 충고와 권고를 할 수 있는 처지입니다. 그렇기때문에 북한이 최근 대일ㆍ대미 유화제스처를 취하는등 부드럽게 나온다고 해서 이를 변화된 자세로 보면 오산입니다. 특히우리사회는 북한에 비해 이념면이나 전술ㆍ전략적인 차원에서 조직적으로 단련이 돼 있지않기 때문에 북한이 유화전술로 나올 때 많은 혼란을 겪습니다. 90명의 대표단과 기자단을 이끌고간 우리의 총리를 환영하지 않는 것이 그들의 본래 모습입니다. 음악회나 축구경기에 참가하는 선수단은 인민의 차원에서 환영하지만 남한측 정부대표단을 환영하면 실체를 인정하는 꼴이 되기 때문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같은 북한의 자세를 정확하게 인식하고 대처하는 것이 어쩌면 총리회담을 성공으로 이끄는 선결과제라 할 수 있습니다. ▲서교수=상호 실체인정문제는 이미 논쟁거리가 못된다고 봅니다. 북한은 지금까지의 정책을 부인하는 결과를 빚기 때문에 공식적으로 상호체제인정 표시를 못하는 것이지 총리회담을 통한 간접정상회담이 이를 확인시켜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지금 한반도의 상황은 지난 70년 동서독이 정상회담을 가졌을때의 분위기와 유사합니다. 제1차 데탕트에서 동서독 정상회담이 이뤄졌듯이 제2차 데탕트를 맞은 지금 남북정상회담이 실현 안될 이유가 없습니다. 한반도내에서 또다른 6ㆍ25의 가능성은 희박한 것으로 보지만 북한으로부터 전쟁포기에 대한 명백한 담보만 얻어낸다면 우리는 상당부분 양보해도 좋을 겁니다. ▲김이사장=남과 북은 이미 1차회담을 통해 자주ㆍ평화ㆍ민족대단결 이라는 3가지의 기본원칙에 대해 합의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양측이 상당한 견해차이를 보이고 있는 남북불가침선언 문제도 몇가지 부분에서는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핫라인설치,대규모 군사연습의 사전통지,비무장지대의 비무장화 보장 등의 문제는 사실상 의견접근이 이뤄진 상태라 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한된 범위내에서 이문제도 공동선언까지 유도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얘기가 약간 빗나간 것 같습니다만 이번 회담에서 우리의 강총리가 2가지면에서 잘했다고 봅니다. 첫째가 북한이 내정간섭적인 요구를 계속할 경우 우리도 할말이 있다는 부분입니다. 공산이념에 젖은 쪽과 대화할때는 나름대로 자신의 당당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로서는 국민의 의사를 확실하게 대변할필요가 있습니다. 또 북한의 언론이 북한측 의도만 일방적으로 보도했다는 지적도 적절했습니다. 양측이 대화를 할때는 양측의 입장이나 주장이 고르게 알려져야 대화의 의미가 있기 때문입니다. 2차회담 첫날 다소 냉랭했던 분위기가 2일째부터 다소 누그러진 것도 우리의 이같은 당당한 태도에 기인한 바 크다고 봅니다. 그들에게 우리를 아무렇게나 대해도 될 상대로 보여서는 안됩니다. 선전ㆍ폭로효과를 노리는 북한측에 제동을 걸면서 구체적인 현안에 대한 접근을 유도해나가는 방안을 강구해야 할 것입니다. ▲서교수=3차회담에서는 역시 그동안의 회담에서 나타난 공통점을 어느 형태로든 명문화시키지 않겠나 생각됩니다. 특히 경제협력 또는 무역문제는 남북이 상호보완 측면에서 진전될 수 있을 겁니다. 유엔가입문제는 북한측이 3차회담 일정을 유엔총회 폐막시점에 맞추려는 것으로 볼때 올해안에 해결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앞으로는 총리회담 뿐 아니라 분야별 회담 등을 통해 북한측의 입장변화를 유도해야 합니다. ▲김이사장=이제 남북문제와 통일문제는 우리에게 있어 국내문제라 할 수 있습니다. 서독이 독일의 통일을 유도해 낸 것처럼 우리도 우리 내부의 약점을 최소화하는 노력이 병행돼야 합니다. 우리의 자세가 허약하고 스스로 변변치 못할 때 총리회담에서의 성과도 기대할 수 없습니다. 이제 우리 스스로가 북한을 상대로 해서가 아니라 민족 전체의 차원에서 통일의 주체라는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북한측에서 볼때 「서울은 아무 것도 아니다」라는 인식을 계속 갖게 할때 통일에의 접근은 더욱 어려워집니다. 우리 사회가 통일의 구심점이 될 수 있는 여건을 꾸준히 조성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또 북한측은 자신들의 체제를 언필칭 인공국이라고 합니다만 전제군주제와 같은 체제를 유지해 오고 있습니다. 요컨대 아직도 그들에겐 비정상적인 요소가 많고,그런 만큼 자신들의 모습을 드러낼 가능성이 큰 사회ㆍ문화적 교류 및 접근방식을 꺼리고 있습니다. 총리회담에서 갑작스런 대단원이나 큰 성과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전망하는 것도 이같은 이유때문입니다. ▲서교수=북한이국제적인 환경변화에 따라 대화에 나서고 있다는 점등을 고려해 볼때 우리는 보다 활발한 북방외교의 추진등을 통해 이들 국가가 북한의 개방에 영향을 미치도록 해나가야 할 것입니다. ▲김이사장=북한은 종주국인 소련의 개방화추구등 주변동맹국의 변화에 상당한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특히 소련 고르바초프정권의 개방과 개혁정책추구 이후 자신들도 변화를 모색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습니다만 체제유지의 위기도 감수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져 있습니다. 이같은 맥락에서 볼때 북한측이 95년도까지 통일을 이룩하겠다는 주장의 의미를 심각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앞으로 총리회담과정 등에서 이와 관련한 북한측의 의도를 분석해보는 작업도 병행해야 할 것입니다.
  • 평양 총리회담… 해외의 반응

    ◎“한반도에 「화해의 바람」 불기 시작했다”/김일성 “노대통령” 호칭… 「변화」 반영 미/정상회담 가능성 보인건 큰 결실 일/남북한 45년 긴장상태 대화통한 해결 기대 중 ▷미국◁ 워싱턴 포스트지는 19일 『북한의 김일성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회담에 조건부로 동의함으로써 남북한간 해빙속도가 빨라졌다』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그러나 총리회담의 선결실을 강력히 요구한 김의 주장은 남북한 정상회담을 지연시키려는 기도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포스트지는 『앞으로의 총리회담은 양측의 상이한 제안들을 융합시켜 남북한의 두 대통령이 정상회담에서 서명할 수 있는 공동문서로 만드는데 초점이 모아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포스트지는 『이번 총리회담은 불협화음이 강했지만 양측 관리들은 만족을 표시했으며 공동성명은 12월 3차회담의 실질적인 성과를 예견했다』고 보도하고 특히 한국관리들은 「위대한 지도자」 김일성이 노대통령을 지칭할때 공식직함을 사용한 사실을 들어 이번 회담에 만족을 표명했다고 전했다. 뉴욕 타임스지는 『이번 회담에서 남북한이 긴장완화에 관한 합의 도달엔 실패했지만 앞으로 화해가 이루어질 수 있다는 희망을 가질 이유가 있었다』고 보도하고 김일성이 강영훈총리에 대해 총리 호칭을 사용한 것을 중요하게 평가했다. 타임스지는 북한대표들이 한국정부의 정통성에 회의를 나타내기 위해 쓰지 않았던 총리 호칭을 세계 최장 집권독재자인 김일성이 개인적 위신을 무릅쓰고 썼다는 것은 아주 의미가 크다고 분석하고 이에 대해 한국관리들은 김이 개인적인 역할을 하고 있다는 진전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타임스는 그러나 노태우 대통령의 정상회담 제의에 대한 김의 반응은 모호했다고 전했다. ▷일본◁ 제2차 남북총리회담은 비록 구체적인 성과없이 끝났지만 북한 김일성주석이 사상 처음으로 남한의 총리와 만났다는 사실 및 남북수뇌회담에 기대를 표명했다는 것 자체가 이번 회담의 최대 성과라고 일본에서는 보고 있다. 도쿄(동경)신문은 19일자 조간 1면 톱기사에서 『한국과 북한의 최고지도자의 회담은 분단이래 45년간 한번도 실현된 일이 없다』고 지적하고 『김주석이 이번 처음으로 한국총리와 만나 「총리회담에서 눈에 띄는 성과를 올린다면」이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으나 직접 수뇌회담 실현에 기대감을 표명한 것은 예가 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이것은 남북관계개선을 위한 남북당국자간의 대화 뿐만 아니라 일ㆍ북한관계등 아시아정세 전반에도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니혼 게이자이(일본경제)신문도 『표면상으로는 큰 진전은 없었으나 회담전망이 밝다는 것을 나타냈다』고 평가했다. 또 이번 회담에서 실질적으로 상호의 정권과 체제를 인정하는 분위기가 높았다는 것도 전진이라고 말할 수 있는 부분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김주석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수뇌회담 개최에 의욕을 표명한 것은 총리회담에서 한국측의 양보를 강요하는 작전에 지나지 않는다는 냉정한 판단도 한국내에서 나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지적했다. 마이니치(매일)신문은 『김주석이 남북수뇌회담에 강한 의욕을 나타냈다는 사실은 앞으로의 한반도 긴장완화에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이것은 국제적 고립화의 가운데 경제상태가 극히 악화되고 있는 북한으로서는 김정일서기에게 안정된 상태에서 권력을 세습시키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분석했다. 아사히(조일)신문 역시 북한의 유연성을 평가,오는 12월 제3차 서울회담에서 어떤 성과가 나올지 모른다고 조심스럽게 전망하면서 틈이 없지는 않으나 일단은 진전을 이룩한 것으로 평가했다. 학자들도 이번 회담의 성과를 대체적으로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게이오(경응)대학 오코노기 마사오(소차목정부)교수는 『한반도를 둘러싼 새로운 환경은 북한측도 의식하고 있다. 이번 회담에서 북한측이 유연한 자세를 보였다는 견해도 있는데 이것은 북한측이 미국과의 관계개선을 꾀하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회담에서의 북한측 「불가침선언」과 남한측 「남북 화해선언」은 그 내용이 비슷하며 상대방에 주도권을 주지 않으려는 것 뿐이다. 이 회담은 쌍방의 주장에 관한 도식을 부각시켰으며 중요한 제3차 회담에의 발판을 구축했다는점에서 성공적이었다』고 밝혔다. 규슈(구주)국제대 하야시 가즈노부(임일신)교수도 『이번 회담의 최대의 성과는 제3차 회담개최의 발판이 된 점』이라고 말했다. 그는 『회담의 과정중에서도 재확인 되었지만 「2개의 조선」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북한측의 기본적 자세는 변하지 않았다』고 지적하고 『그것은 「남」으로부터의 여러계층의 대표단을 맞아들이는 대응의 차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홍콩◁ 홍콩언론들은 대부분 강영훈총리와 김일성주석이 악수를 하는 사진과 함께 남북한 총리회담 내용을 19일자 외신면 머리기사 등으로 비중있게 다뤘다. 친중국계 대공보는 평양발 신화사통신을 인용,김주석이 노태우 대통령에게 처음으로 「대통령」이란 호칭을 사용한 점과 남북한 정상회담을 빠른 시일안에 갖자고 제의한 것 등을 강조했다. 성도일보는 강총리와 김주석의 만남이 남북상호간 우호관계의 시작인 것으로 풀이할 수 있으나 통일상태에 접근하기 위해서는 보다 깊은 상호이해가 병행돼야 할 것이라고 논평했다.사우스차이나 모닝포스트지의 경우 남북한 총리 2차회담에 관한 기사와 함께 한중 무역사무소 개설협약이 서울ㆍ평양의 잦은 대화를 뒷받침하는데 한 몫을 하고 있음을 지적하고 오는 24일 중국측은 평양에 대표단을 보내 무역사무소개설에 따른 한중 관계밀착의 불가피성을 상세히 밝힐 것이라고 보도했다. 신만보는 비록 남북한이 40년이란 긴세월동안 정치군사면에서 대치해오긴 했지만 최근 양측 축구팀의 친선교환경기ㆍ통일음악회 등 일련의 우호적인 비정치적 행사가 이뤄지고 있는데다 점차 커지고 있는 한반도주민들의 통일열망과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가 대치상태의 종식을 앞당길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 신문은 또 한반도통일이 아시아전체의 평화적인 분위기를 촉진시켜 이 지역 공동발전에도 적잖은 기여를 하게 될 것임을 강조했다. ▷중국◁ 중국관영 북경방송은 18일 평양에서 열린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1차회의(17일) 소식을 하루늦게 논평없이 보도했다. 이날 북경방송은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1차회의가 17일 평양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렸다고 전하면서 이 회의에서 북한총리 연형묵이 기조연설을 통해 「불가침선언」 초안을 내놓았으며 ▲쌍방간 유엔문제 합의도출이전 유엔 단독가입 반대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방북인사석방 등을 주장했으며 이에 대해 한국의 강영훈총리는 『남북이 서로 상대측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쌍방간 관계를 개선하고 관계정상화를 실현해야 한다』고 강조하면서 ▲이산가족의 상호방문 ▲체신ㆍ경제분야에서의 협조 및 교류 등을 제의했다고 보도,남북총리의 기조연설내용을 똑같이 상세히 소개했다. 이 방송은 이어 쌍방간 18일 상오 비공개로 2차회의를 진행했다고 덧붙였다.
  • 김일성,“남북정상회담 기대”/강 총리와 첫 대좌

    ◎“총리회담의 가시적 성과 희망”/노대통령 구두메시지 전달 강 총리/대북 경협제의에 반응 보여 김일성 【평양=권기진 특파원】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18일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 대한 강력한 기대를 표명했다. 김 주석은 이날 하오 금수산의사당(주석궁)에서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강영훈 국무총리 등 남한측 대표단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총리회담에서 취급되는 문제는 정상회담에서도 논의될 문제이므로 양측 총리들이 노태우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이 빨리 개최될 수 있도록 노력해주기 바란다』고 밝혀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강한 기대를 표시했다. 김 주석의 이같은 기대 표명과 관련,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북측은 그동안 고위급회담이 잘되면 최고위급회담이 이뤄질 수 있다고 수차례에 걸쳐 밝혀왔다』면서 『강 총리의 정상회담 필요성 제기에 대한 의례적인 답변으로 본다』고 분석했다. 김 주석은 『정상회담이 이루어지기에 앞서 총리회담에서 가시적인 결과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노 대통령을 만나면 좋은 결과를 가져오는 상봉이 돼야지 아무런 결과가 없이는 인민들에게 실망을 주니,총리들이 잘 준비하여 정상회담이 순조롭게 열릴 수 있도록 많은 사업을 해줄 것을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면담에서 강 총리는 『노태우 대통령은 하루빨리 통일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강력한 의지를 갖고 있다』고 전했고 이에 대해 김 주석은 『하나의 민족 하나의 나라가 되도록 통일돼야 한다』고 말했다. 김 주석은 고위급회담에 대해 『우리가 제기한 지 10년 만에 개최돼 뜻깊은 일』이라고 말하고 『이번 평양회담에서 비록 문건의 채택에는 이르지 못했지만 3차회담을 서울에서 열기로 했으니만큼 기대가 크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북의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다. 이날 개별면담의 내용은 공개되지 않았으나 강 총리는 노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하고 조속한 정상회담을 촉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서 김 주석은 지난번 서울회담 당시 노 대통령이 연 총리에게 전달한 경협제의 등에대해 어떤 형태의 의사표시가 있었을 것으로 보여 그 내용이 주목된다. 이날 김 주석과의 면담에는 고위급회담 대표 7명과 수행원 3명이 참석했고 면담이 끝난 뒤 대표단은 집무실앞 현관에서 김 주석과 기념촬영을 가졌다. 한편 우리측 대표단은 3박4일간의 평양일정을 끝내고 19일 하오 1시30분 판문점을 통해 돌아올 예정이다.
  • 걸음걸이 무거운 느낌… 건강한 모습/김일성 주석 인상기

    ◎얼굴빛 검은 편… 시종 곧은 자세 유지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 총리를 면담한 북한의 김일성 주석은 우리측 대표단에게 깍듯이 경어를 사용하며 시종 웃는 모습을 보여 매우 부드러운 인상. 김 주석의 건강상태는 78세라는 고령에 비하면 건강한 모습이었으며 목소리른 약간 쉰 듯했으나 힘은 있어 보였다. 또한 걸음걸이는 약간 무거운 듯한 느낌이었고 얼굴빛은 조금 검은 편이었다. 또한 걸음걸이는 약간 무거운 듯한 느낌이었고 얼굴빛은 조금 검은 편이었다. 김 주석은 처음 강 총리를 맞아 악수할 때나 우리 대표단을 맞이할 때도 꼿꼿이 서서 어색함이 없이 인사를 했고 어조도 보통 북한사람들이 사용하는 것 보다는 부드러운 느낌이었다. 김 주석은 기념촬영을 할 때나 서서 인사를 할 때는 두발을 약간 벌렸고 허리는 꼿꼿한 편이었다. 또 기념촬영을 할 때는 양손을 뒷짐지는 모습을 보였다. 이날 김 주석의 복장은 검정색 싱글에 감색에 가느다란 무늬가 섞인 넥타이를 매고 있었다.
  • 김일성,집무실 문앞서 강총리 마중/우리대표단,평양 주석궁 찾던 날

    ◎우리측에 깍듯이 경어… 줄곧 밝은 표정/총리회담 호칭… 통일노력의 성과 바라/이례적 서구적 춤 공연… “남측 대표에 대한 성의” 북한방문 3일째인 18일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은 상오에는 비공개회의를 가진 데 이어 하오에는 평양의 김일성 주석궁(금수산 의사당)에서 김 주석과 면담하는 등 3박4일의 일정 가운데 가장 극적인 하루를 보냈다. 우리측 대표단은 이날 저녁에는 양형섭 최고회의 의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했으며 우리 기자단은 비공개회의가 열리고 있는 동안 평야시내 노동신문을 방문,신문제작 과정을 둘러보았다. ▷김일성 주석 면담◁ ○…18일 하오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의 강영훈 국무총리가 북한의 김일성 주석을 예방,20분간 요담했다.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 정각 평양시내 금수산 의사당 현관에 도착,주석궁측의 안내를 받아 김 주석 집무실로 향했다. 강 총리가 주석집무실 입구에서 20여m 떨어진 지점에 이르자 집무실 문이 열리면서 김 주석이 강 총리를 맞았다. 김 주석과 강 총리는 반갑게 악수를교환하면서 『반갑습니다』 『잘 오셨습니다』라고 서로 인사를 나누면서 집무실 안으로 나란히 걸어 들어갔다. 집무실 복판에 장방형 탁자가 마련 돼 있었고 동서로 마주보는 자리에는 강 총리와 북한 연형묵 총리가 앉았으며 김 주석은 남북 양총리의 한 가운데 좌정. 이 자리에서 강 총리가 먼저 『주석 각하,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태우 대통령께서 김 주석에게 정중한 안부를 전해달라고 말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감사합니다. 노 대통령께서 건강하시는지요. 서울에 가시면 「사랑하시는」 나의 인사를 전해주시오』라고 응답. 이어 강 총리가 『제가 서울을 떠날 때 노 대통령께서 여러 가지 말씀이 계셨습니다만 김 주석께서 남북 관계개선을 위해 총리회담을 개최하게 한 데 대해 인사를 전할 것을 당부했습니다』라고 말하자 김 주석은 『피차 마찬가지지요. 귀측의 호응으로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데 대해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라고 답했다. ○…김 주석과 강 총리와의 단독면담은 사진촬영을 위해 약 3분간 공개됐는데 김 주석이 『강 총리 고향이 북쪽이라면서요』라고 말하자 강 총리는 『네 그렇습니다. 45년 전에 평양을 거쳐 서울로 갔습니다. 연 총리를 두번째 만나니까 친근하게 여겨집니다』라고 답변. 이어 김 주석은 『이번 회담에서 귀측이 우리측 제의에 호응해 나섰기 때문에 나는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평양에서 양측이 여러 가지 진지한 얘기를 서로 나누어 결실을 맺을 분위기가 조성되었으니 앞으로 좋은 성과가 있을 것으로 희망합니다』라며 밝은 표정을 짓기도. ○…강 총리를 제외한 우리측 회담대표 6명과 수행원 3명 등 9명은 이날 하오 3시10분쯤 주석궁 현관에 도착,10분간 집무실 옆 대기실에 머문 다음 3시21분쯤 집무실에서 김 주석과 면담. 김 주석은 강 총리가 우리측 대표단을 소개하자 홍성철 통일원장관,정호근 합참본부장 순으로 일일이 악수를 하며 반갑게 맞았다. 김 주석은 우리측 회담대표 및 수행원과 인사를 끝낸 다음 『자 모두를 앉읍시다』라며 직사각형 긴탁자 북쪽 중앙에 좌정했으며 같은 쪽 좌우에는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과 안병수 조평통서기국장 등 북한측 회담 대표 및 수행원이 착석. 김 주석은 양측 대표단이 모두 참석하자 『저는 이번에 총리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평양에 온 여러분들을 열렬히 환영합니다. 조국통일을 위해 많이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인사말을 했다. 이에 대해 강 총리는 『우리 회담대표를 바쁘신 가운데 이렇게 만나게 해주어 대단히 감사합니다. 이번에 평양에 와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습니다만 회담에서 구체적인 합의점을 찾지 못해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라고 응답. 김 주석은 이어 『고위급회담이 열린 자체가 우리민족의 전망을 밝게 내다보는 좋은 계기라고 생각합니다. 지난 80년대부터 10년 만에 열리게 된 이번 고위급회담은 우리 민족의 앞날에 밝은 전망을 갖게 해줘 매우 기쁘게 생각합니다. 문건 채택은 못했지만 다음 기회에 서울에서 열리는 총리회담에서 좋은 결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합니다』라고 말했다. 김 주석과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은 하오 3시21분부터 30분까지 10분간 진행됐는데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에게 최고의경어를 사용하면서 시종 밝은 표정으로 환대해 주목. 김 주석은 우리 대표단과의 면담을 끝낸 다음 3시30분부터 35분까지 5분간 주석궁 중앙홀에서 남북 양측 대표단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으며 촬영이 끝난 다음 우리 대표단과 일일이 악수를 나누며 『안녕히 가십시오』라고 작별 인사. 우리측 대표단과의 면담에 앞서 강 총리는 이날 하오 3시부터 김종휘 대표와 연형묵 총리가 배석한 가운데 20분간 김 주석과 개별면담을 가졌는데 이 자리에서는 공개면담 때보다 더 깊숙한 얘기가 오간 것으로 알려졌다. 김 주석은 면담중 「고위급회담」이라는 표현 대신 「총리회담」이라는 용어를 계속해서 사용. ○…주석궁 현관벽은 대리석으로 장식됐고 중앙통로에는 붉은 카펫이 두껍게 깔려 있었다. 현관에서 중앙홀에 이르는 천장에는 대형 샹들리에가 중앙 4개 양쪽 5개씩 모두 14개가 달려있는 등 은은하면서도 호화스런 분위기를 자아냈다. 중앙홀 정면벽에는 (기념촬영 한 곳) 백두산 삼지연의 봄 풍경을 그린 대형 그림이 걸려 있었고 중앙홀 양 옆에는 오엽송 분재가 놓여있었다. ▷18일 비공개회담◁ ○…18일 상오 10시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2차 비공개회담에 앞서 강영훈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는 전날 있었던 평양시 인민위원장 주최옥류관 만찬에서 맛본 평양냉면ㆍ날씨ㆍ첫날회담 등을 화제로 15분 동안 환담. 양측 기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남북총리는 전날보다 다소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 대화를 나눴으나 각 분야에서 통일문제를 놓고 「차근차근」 추진해 나가자는 우리측 입장과 「속도」를 강조하는 북측 입장이 엇갈려 가벼운 신경전. ▲연=어젯밤에 편안히 주무셨습니까. ▲강=아주 참 조용하고 방온도도 꼭맞게 조절해줘서 잘 잤습니다. 평양가면 평양냉면 한번 꼭 먹어봐야지 했는데 역시 평양냉면 맛은 다릅니다. 잘 먹었습니다. ▲연=어제 학생소년궁전에서 어린애가 그림그리는 것 보셨지죠. ▲강=천재적이더군요. 4살짜리가 그리는 데 두살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고 해요. 젖먹을 때부터 그리기 시작했다는 말이지요. 옆의 여덟살난 여자아이도 명필이더군요. ▲연=옛날부터 한민족이 본래똑똑하지요. 어제 1차회담을 했는데 서울쪽에서 어떻게 보도하고 있습니까. ▲강=잘 진행돼 간다고 보도합니다. 한술에 배부르겠느냐는 얘기가 있듯이 갑자기 다 해결될 수는 없지 않습니까. 그러나 우리가 상대방의 입장과 시각을 확실히 알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려는 의지가 뚜렷하다는 게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런 점에서 오늘부터 잘 해갑시다. ▲연=잘 합시다. 평양시에선 어떤 평이 있느냐 하면 말입니다. 북남 고위급회담이라는 것이 「고위급」이 달려서 회담수준도 높을줄 알았는데 수준이 대단히 낮다고 합니다. ▲강=교육을 어떻게 그렇게 시켰어요(웃음). 숙소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대단히 실망했다고 얘기하더군요. ▷양형섭 의장 주최 만찬◁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8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의장이 천리마거리 목란장에서 주최한 만찬에 참석. 양 의장은 만찬사에서 『구두쟁이 셋이면 제갈량보다 낫다」는 말이 있다』며 『민족 앞에 책임진 정치인으로 남조선의 국회의원들과 손잡고 민족재생의 길을 함께 걸어나갈 용의가 있다』고 피력. 강 총리는 답사에서 『통일을 이룩한 동ㆍ서독의 경우에서 보는 것처럼 지속적인 대화와 교류 축적이야말로 남북으로 갈라진 민족이 가야 할 길』이라고 지적하고 『서로 존중하고 서로 양보하는 대화의 숨결 속에 증오와 대결의식은 봄눈 녹듯 사라질 것』이라고 강조. 강 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만찬이 끝난 뒤 경음악과 남성독창ㆍ3중창 등 공연을 관람했는데 「4계절의 춤」이라는 제목의 무용은 얇고 짧은 의상에 서구적인 춤이어서 이채. 북측의 한 참석자는 『우리는 본래 민족적인 무용을 좋아하는데 이같은 무용을 공연한 것은 남측 대표에 대한 북측의 성의』라고. 강 총리가 공연히 끝난 뒤 무대에 올라가 악단과 가수ㆍ무용수 등 출연자들과 악수를 나누며 준비한 선물을 전달하자 참석자 전원이 기립박수. 강 총리 일행은 만찬에 앞서 이날 하오 평양 중구역에 위치한 인민대학습당을 약 45분간 관람했으며 기자단은 비공개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노동신문을 방문한 데 이어 하오에는 김일성경기장에서 1시간10분 동안 학생 5만명이 연출하는 「일심단결」이란 집단체조를 관람. ◎“합의 없어도 크게 진전” 남/“「불가침」 타결 못봐 유감” 북 ▷대변인 회견◁ ○…18일 남북고위급 이틀째 비공개회담에 대한 남북간의 시각은 긍정과 부정이 다소 엇갈리는 듯한 분위기로 양측 대변인의 별도 회견을 통해 표출. 똑같은 장소(인민문화궁전 1층 회의실)에서 먼저 회견을 가진 북측의 안병수 대변인은 『우리는 불가침선언을 제기하면서 오늘 회담에서 매우 쉽게 합의될 것으로 확신했다』며 기본적으로 남북간에 큰 이견이 없는 점 등 그 근거를 예시. 안 대변인은 『남측에서는 밟아야 할 절차가 많아 국무총리라 해서 당장 합의를 해줄 수는 없다고 하길래 그러면 가조인이라도 하자고 했으나 불가피하게 합의를 보지 못했다』며 『대단히 유감스럽다』고 피력. 이어 우리측의 임동원 대변인은 서두에 『과거 어느 때보다 차분하고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회담이 진행됐다』고 강조한 뒤 『합의선언문이 나오지 않았다고 해서 실패한 회담이 아니라 내용면에서 많은 접근을 보아 대단한 진전을 이룬 회담』이라고 평가. 임 대변인은 회담내용을 조목 조목 설명한 뒤 양측 안의 내용이 유사한 데도 불가침선언이라는 명칭상의 문제로 합의를 하지 못하는 이유에 대해 『헌법에 불가침문제는 국회의 비준을 거치도록 돼 있는 제도상 절차 때문』이라고 설명. 임 대변인은 『강 총리가 회담에서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선 총리라 해도 권한 밖의 일을 하는 등 법을 안 지키면 감옥에 들어가게 될지도 모른다. 북측 제도와는 다르니 속도전도 좋으나 절차를 밟도록 하자」고 농담을 곁들여 우리 입장을 설명하기도 했다』고 소개.
  • 평양 남북회담 이틀째 이모저모

    ◎“적화 포기하라” “자극말라” 두 총리 입씨름/기조연설 말미 고성 오가 어수선/악수도 없이 회의종료… 냉랭한 분위기/강 총리,북측의 편파보도 시정을 촉구 평양방문 이틀째인 17일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방북 대표단 일행은 상오에 인민문화궁전에서 열린 제2차 남북 고위급회담 1차회의에 참석한 데 이어 하오에는 평양시내 관광,학생 소년궁전에서의 공연관람,최문선 평양시 인민위원장주최 만찬 참석,영화관람 등으로 바쁜 일정을 보냈다. ▷옥류관 만찬상◁ ○…17일 저녁 옥류관에서 최문선 평양시 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주최한 강영훈 총리환영 만찬은 이날 낮의 회담 때보다는 한결 누그러진 분위기./ 최 위원장은 만찬인사를 통해 『평양은 현대도시들의 큰 사회적 문제인 공해 실업 범죄 교통난 같은 것을 모르며 주택문제는 91년에 가면 완전 해결된다』고 은근히 자랑. 이어 강 총리는 답사를 통해 『우리는 겨레에게 더이상 실망을 주지 않는 대화,민족분단의 아픔을 덜어주는 대화,통일의 주춧돌을 놓고 기둥을 세우는 대화를 꾸준히 해나가야 된다』며 『그러기 위해서는 상대방을 무너뜨리겠다는 생각이나 통일문제를 정치선전에 이용하는 태도를 버려야 하며 대결상태의 유산을 과감히 청산해야 한다』고 강조. 특히 만찬인사 모두에서 북쪽 최 위원장은 강 총리를 「강 수석대표」로 호칭하는 북측관행을 깨고 『강영훈 총리 등 대표단 일행을 환영한다』고 총리 호칭을 썼고 인사말 끝에서도 「강 총리」로 호칭하며 건배를 제의. 이에대해 북측관계자는 『정식회담에서는 수석대표로 호칭하지만 평양시장(인민위원장)의 만찬에서 총리로 부르는 것이 당연한 것이지 뭐 특별한 일이 될 게 있겠느냐』고 의미를 축소. 그러나 우리측의 「연 총리」호칭에 북측이 「강 수석대표」로 일관해와 신경이 거슬렀던 한국 대표단은 무엇인가 의미있는 시그널이 아닐까하여 관심을 갖는 눈빛. ▷소년궁전 방문◁ ○…강 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5시 만경대 학생소년궁전을 방문,약 2시간 동안 소년예술소조의 활동상황을 둘러보고 종합공연을 관람했다. 강 총리는 이날 숙소로 찾아온연형묵 북한총리의 안내로 소년궁전에 도착,수영장 손풍금실 가야금실 서예실 등을 둘러봤다. 공연내용 중에는 「우리마음 담아 피운 꽃」,「조선은 하나다」라는 춤과 노래 등 정치성이 가미된 프로그램들이 들어있어 분위기가 다소 어색. 이날 공연은 「우리의 소원은 통일」합창으로 끝을 맺었는데 뒤쪽 관람석의 청소년관중은 약속이라도 한 듯 리듬에 맞추어 박수를 치기 시작하더니 노래가 끝나고 우리측 대표단이 현장을 나서자 장내가 떠나갈 듯 박수를 치며 『민족통일』을 연호. 북측은 6∼7세부터 12∼13세 가량의 어린 소년소녀들이 14개 프로그램을 연주하고 춤을 춘 이날 공연 후반부에 이같은 「문제」 프로그램을 붙였다. 평양시내 곳곳에 나붙은 「조선은 하나다」 포스터를 배경으로 소년소녀들이 강렬한 행진곡 리듬으로 「조선은 하나다」를 연주한 데 이어 「우리는 평화를 사랑해요」라는,42명이 출연한 무용프로그램은 핵무기 반대ㆍ주체사상탑의 상징을 곁들여 강 총리 등 대표단 일행은 떨떠름한 표정을 짓기도. ▷강 총리 숙소환담◁○…이날 상오 공개로 진행된 첫날 회의의 끝무렵에 약간의 「신경전」을 벌였던 강 총리와 북한 연 총리는 이날 오후 만경대 소년학생궁전공연 관람에 앞서 숙소에서 잠시 환담하며 「화해」. 공연장으로 강 총리를 안내하기 위해 숙소인 백화원초대소를 찾은 연 총리의 『점심식사를 잘하셨느냐』고 인사를 건넸고 두 총리는 거의 동시에 『회담장 밖에서 만나면 얘기가 잘되는데…』라며 18일 비공개회의에서 성과가 있기를 기대. 연 총리는 『딱딱한 책상에 않지 말고 식탁에 앉아서 회담을 하면 잘될 것 같은 데 어떠냐』고 조크를 건넸고 강 총리는 『함께 기차라도 타고 여행하면서 회담하면 더욱 잘 될 것』이라고 응답. 이어 두 총리는 날씨와 배추농사 등을 화제로 10여분 동안 가벼운 대화를 나눈 뒤 승용차에 함께 타고 소년학생궁전으로 떠났다. ▷회담장◁ ○…이날 상오 10시에 개막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은 지난달 서울에서 열렸던 1차 회담때와 똑같은 방식으로 약 2시간동안 진행. 비교적 냉랭한 분위기 속에서 다시 개막된 회담에서 우리측강영훈 총리와 북측 연형묵 총리는 회의에 들어가기에 앞서 10여분 동안 환담. 회담장에 들어선 양측 대표들은 악수를 나누고 일단 자리에 앉았으나 사진기자들을 위해 양측 총리가 따로 악수를 나누며 포즈를 취했다. ▲연=잘 주무셨습니까. ▲강=너무 조용해서 정신없이 잤습니다. 방음이 잘 되어서인지 새소리도 없더군요. 방이 넓어 춥지않을까 했지만 따뜻하여 잘 잤습니다. ▲연=우리가 서울에서 온 다음에 비가 많이 왔지요. ▲연=그냥 온 정도가 아니고 집중적으로 쏟아졌습니다. 그래도 댐을 많이 건설하고 대책을 세워서 피해가 그만해졌지요. ▲연=보도를 보니 강 선생도 많이 나가 돌아다니시더군요. 수습됐다니 기쁩니다. ▲강=(잠시 침묵 후)=이번에 와 대접받고 있습니다. 초대소 음식이 산해진미인데 이것을 먹으며 지난번 연 총리 대접이 소홀하지 않았나 느껴집니다. ▲연=이 다음에 잘 해주시지요(웃음). ▲강=처음 먹어보는 게 많습니다. 감자떡이 쫄깃쫄깃하고 맛있습니다. 양강도 특산품이라도 하던가요. 감자하나 가지고도 이렇게 여러가지로 요리하는 것 보면 민족 우수성이 나타납니다. 오랫만에 김치도 맛있게 먹었어요. ▲연=심심하지 않던가요. ▲강=내입에 맞았습니다. ○…환담을 끝낸 남북총리는 인사발언에 들어갔는데 연 총리는 9분간,강총리는 11분 동안 인사. 먼저 인사말을 한 북한의 연 총리는 『쌍방 대표단의 평양ㆍ서울방문은 비록 서로 초행길이기는 하지만 우리는 이 길에서 구면이 됐다』면서 『계속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 분단의 장벽도 허물어지고 통일의 서광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피력. 강 총리는 이에 『정치의 첫째가는 덕목이 국민들의 얼굴에서 눈물을 닦아주는 일』이라며 이산가족 문제의 해결을 적십자에만 맡기지 말고 책임있는 당국이 적극 나설 것을 촉구. 강 총리는 특히 기조연설을 통해 지난 9월 서울회담에 대한 북측의 보도태도를 따끔하게 지적해 눈길. 강 총리는 『북측의 보도매체들이 일방적으로 북측 주장만 보도하면서 우리측 주장을 비방하고 북측 주민에게 사실 그대로 알리지 않는 불공평하고 편파적인 보도태도를 보였다』며 북측의 적대적인 정책의 전환을 촉구. 강 총리는 『만약 상대방 체제를 존중하지 않고 내정간섭적인 일을 계속한다면 그것은 결국 구시대적인 대결정책을 지속하자는 것과 다를 게 없다』고 일침. ○…이날 강 총리와 연 총리는 예정시간보다 10여분이 지난 낮12시10분쯤 회담을 끝내면서 서로 기조연설 내용을 놓고 잠시 입씨름을 벌이는 등 날카로운 신경전. 이날 강 총리가 북측에 대해 대남 적화노선을 포기할 것을 촉구하는 내용이 담긴 발언으로 기조연설을 끝내자 북측의 연 총리는 『서로 진실문제를 논의하지 않고 상대방을 자극하면 문제가 해결되겠어』라고 언성을 높이며 문제를 제기. 이어 연 총리가 『회담을 논쟁으로 해서는 안되며 대화로 해야한다』고 어조를 약간 낮추자 강 총리는 『북측에서도 우리를 자극하는 발언을 하지 않았느냐 어제 저녁 연회장에서는 서로 웃으며 잘 지냈는데 회담만 하면 왜 이렇게 되는지 모르겠다』고 응수. 강 총리는 이어 『이것은 어디까지나 싸움을 하자는 것이 아니고 서로의 입장을 확인하려는 것 뿐』이라고 답변하자연 총리는 『내일 다시 보자』며 여운을 남긴 채 자리에서 일어나 이날 회담은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 종료. ○…전체회의 첫날 회담장에는 평양에 상주하는 소련ㆍ중국 특파원 10여명을 비롯,30여명의 외신기자들이 나와 남북고위급회담 진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평양측은 북경 상주 불가리아ㆍ독일ㆍ일본 언론기관의 몇몇 취재기자들 10여명에게 입국을 허용했으나 상세한 브리핑이 없어 이들은 남북한측 기자들에게 회담에 대해 질문 공세.
  • 「대결청산」방안 서울ㆍ평양 시각차 여전

    ◎강영훈총리 기조연설 요지/“상호 실체인정… 도와주고 도움받는 관계로”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정상화하기 위해서는 서로 상대방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해야 하며 상대방 내정문제에 간섭하지 않는다는 합의의 토대가 이룩되어야 한다. 우리는 이와 같은 토대위에서 교류협력과 정치 군사적 신뢰구축,그리고 균형있는 상호 군축을 실행하고 민족화해와 평화정착을 이룩하고자 한다. 남북 쌍방은 다각적인 교류협력 분야 중에서도 1천만 이산가족들의 문제해결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또한 남북 쌍방은 남북간의 물자교류와 경제협력을 적극 추진해 나가야 한다. 남북간에 통행ㆍ통신 및 경제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하루빨리 채택되어야 함을 강조하면서 이에 대한 우리측의 제안을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남북통행에 관한 제안=①남북의 주민이 육로ㆍ해로ㆍ공로를 통하거나 또는 외국을 경유하여 남북을 왕래하는 절차와 준수해야 할 의무 등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을 왕래하는 자는 자기측 당국이 상대지역 방문을 허가하는 증명서와 방문지역의 당국이 발행한 방문허가증명서를 소지한다. ③남북의 당국은 통행을 위하여 쌍방의 합의에 따라 통과지점 및 통행로를 지정한다. 육로의 경우 우선 「장단」과 판문점을 통과지점으로 하며 경의선 철도와 문산ㆍ개성간의 도로를 연결한다. ④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는 방문하는 동안에 필요한 물품과 일정한 한도를 초과하지 아니하는 선물을 휴대할 수 있다. ⑤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관할지역에 들어오는 인원에 대한 교통수단을 제공한다. ⑥상대측 지역을 방문하는 자는 상대측의 질서와 안내에 따른다. ⑦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자에게 불의의 사고가 발생하면 긴급 구제조치를 취한다. ⑧남북의 당국은 자기측 지역을 방문하고 있는 자에게 허가된 목적 수행을 위한 활동을 보장하고 신변안전과 무사귀환을 보장한다. ⑨통행에 따르는 제반문제를 협의ㆍ조정하기 위하여 남북통행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⑩통행에 따르는 실무문제를 관장하며 행정지원 및 연락업무 수행과 남북통행위원회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서울 평양 판문점에 공동연락사무소를 설치ㆍ운영한다. ◇남북(통신)에 관한 제안=①남북간 상호 우편ㆍ전기통신의 교류에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의 우편당국은 상대측의 주민이 수신으로 되어 있는 우편물을 수집하여 상대측에 전달하며,우편물을 전달받은 측은 자기측의 정상적인 방법으로 수신인에게 배달한다. ③남북한 우편물의 교환장소는 판문점으로 하고 주1회 교환을 원칙으로 하되 필요한 때에는 남북의 당국간 합의로 따로 정할 수 있다. ④남북의 당국은 남북간 전기통신 교류를 원활히 하기 위하여 필요한 시설을 갖추어야 하며 남북간 전화통화는 교환대를 통하여 연결하고 이를 점차 자동화한다. ⑤남북으로 교환되는 우편 전기통신 요금은 남북 당국이 협의하여 결정한다. ⑥남북의 당국은 남북으로 교류되는 우편 전기통신에 대하여 비밀을 보장하며 어떠한 경우에도 이를 정치적 군사적 목적에 이용하지 않는다. ⑦남북간 통신교류에 수반되는 제반문제를 협의ㆍ조정하며 남북간 통신교류의 확대ㆍ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남북통신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⑧남북간 우편ㆍ전기통신 교류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간 통신기술의 통일적 발전을 도모하며 남북통신위원회로부터 위임된 사무를 처리하기 위하여 남북통신기술단을 설치ㆍ운영한다. ⑨남북의 당국은 우편ㆍ전기통신 교류에 관한 국제적 협약을 존중한다. ◇남북경제교류 협력에 관한 제안=①남북 당국은 상호간의 물자교류 및 경제협력 사업을 원활하게 추진하기 위해 필요한 사항을 정한다. ②남북간의 물자교류 또는 경제협력사업의 당사자는 품목별 또는 사업별로 쌍방이 각각 지정하는 해당기관으로 한다. ③교류대상 품목은 상호보완의 원칙에 따라 정한다. ④교류양은 쌍방의 수급사정을 감안하여 연간 교류규모를 조정한 후 품목별로 교류당사자간 상담을 통해 결정한다. ⑤교류물자의 가격은 국제시장가격을 고려하여 교류당사자간 합의에 의하여 결정한다. ⑥거래방식은 청산결제 방식으로 하되 경우에 따라 다른 방식으로 할 수 있다. ⑦결제사무는 쌍방이 지정하는 남과 북의 은행이 직접 담당하도록한다. ⑧결제통화는 스위스 프랑화로 한다. ⑨상호간의 물자교류는 민족내부교역 차원에서 추진하며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 ⑩교류물자의 수송방법은 교류물자의 특성ㆍ중량ㆍ운송비 등을 감안하여 교류당사자간에 상호 협의하여 정하되 철도ㆍ자동차ㆍ선박ㆍ항공기를 합리적으로 이용한다. ⑪남북간에 자원의 공동개발ㆍ합작투자 등 제반경제협력을 실시하며 경제분야에서의 공동대외 진출과 공동대외협력 사업을 추진한다. ⑫경제협력사업의 규모,실천방법 및 조건,실시시기 등에 관하여는 경제협력사업의 당사자간의 협의를 통하여 정한다. ⑬남북간의 물자교류와 경제협력을 실현하며 경제적 유대를 회복하고 민족경제의 공동발전을 도모하기 위하여 쌍방의 부총리급을 위원장으로 하는 남북경제협력 공동위원회를 설치ㆍ운영한다. 이상과 같은 다각적인 교류협력 실시와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 해소방안에 대한 협의를 진전시키기 위하여 부문별 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할 것을 제의한다. 합의된 의제에 따라 교류협력협의회와 정치 군사협의회의 두 부문별협의회를 구성ㆍ운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다. 무엇보다도 다음과 같은 3개항의 당면과제에 대해 귀측의 성의있는 태도 표시가 있기를 거듭 촉구한다. 첫째로 조국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앞당기기 위해서는 남북 관계개선과 화해협력의 새시대를 열어야 한다. 둘째로 분단으로 야기된 민족적 고통을 하루속히 덜어주어야 한다. 셋째로 남북 동포들이 다같이 잘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평화통일이 이룩되기 이전이라도 남북이 공존공영을 도모해야 한다. ◎연형묵 총리 기조연설 요지/“분열지향 자세 벗어나 주체통일 모색을” 제1차 회담 때에 제기된 쌍방의 제안들을 비교하여 보면 근사한 점도있고 차이점도 있다. 근사하다고 하는 것은 첫째로 의정과 관련된 기본문제 토의에 앞서 서로 공동의 기초로,출발점이 될 수 있는 원칙적인 문제에 대하여 합의를 보자는 점이다. 둘째로 의정에 따르는 방안들을 기본적으로 정치ㆍ군사ㆍ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의 세가지로 구분하여 제기하고 있는 점이다. 셋째로 근사한 점은 매개 방안들에 전개되어 있는 부분적인 항목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쌍방의 제안들에는 이상과 같은 근사한 점들이 있는 반면 신중한 토의를 요하는 본질적인 차이점들도 있다. 첫째로 문제해결의 선후차와 관련된 것이다. 즉 우리는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는 문제에 선차성을 부여하면서도 이와 병행하여 다방면적인 협력과 교류를 실현해 나갈 것을 제기하고 있는 반면에 귀측은 협력과 교류문제에 선차성을 부여하면서 군축문제를 차후의 과제로 제기하고 있다. 둘째로 군사문제 해결의 단계설정과 관련된 문제이다. 즉 우리는 군사문제들의 해결을 하나의 통일적 과정으로 보고 있으나 귀측에서는 군사적 신뢰구축 단계와 군축단계를 서로 구분하고 있다. 셋째로 미군과 그의 핵무기의 철수와 관련된 문제이다. 넷째로 쌍방의 제안들이 부분적인 근사점은 있으나 총체적으로는 그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쌍방이 차이점을 극복하는 데서 중요한 문제는 첫째로 나라의 통일문제 해결에서 주체를 철저히 세우는 것이다. 둘째로 우리들의 제안에서 나타나고 있는 차이점을 극복해나가는 데서 중요한 것은 쌍방이 다같이 통일지향적인 자세를 가지는 것이다. 셋째로 중요한 것은 북남 사이의 불신에 대해서 같은 인식을 가지고 그 해결 방도를 바로 찾는 것이다. 우리는 「민족대교류」니 「60세 이상 노부모들의 고향방문」이니 하는 일시적 미봉책으로 갈라져 사는 겨레의 간절한 염원을 달래려고 할 것이 아니라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함으로써 호상 불신을 근원적으로 제거하고 인도주의문제와 협력ㆍ교류문제도 적극적으로 철저히 해결해야 한다. 넷째로 중요한 것은 통일문제 해결의 가장 가깝고도 합리적인 길을 모색하는 것이다. 상대방을 없앨 것을 전제로 하는 단일제도에 의한 통일의 길이 아니라 서로 먹거나 먹히우지 않고 통일하는 길,두 제도,두 지역 정부를 그대로 두고 하나의 국가,하나의 민족으로 통일하는 길을 택해야 한다. 쌍방의 제안 가운데서 보다 전진적이고 실천적 의미가 있는 합의문서를 작성ㆍ발표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며 그러한 역사적인 문건으로서 다음과 같은 남북 불가침에 관한 선언을 채택ㆍ발표할 것을 제의한다. ◇북남 불가침에 관한 선언(초안)=북과 남은 조선반도에 조성된 긴장상태를 가시고 전쟁을 방지하며 나라의 평화와 평화통일을 이룩하려는 일치한 염원으로부터 출발하여 7ㆍ4 공동성명에 밝혀진 자주ㆍ평화통일ㆍ민족대단결의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철저히 준수하며 상대방에 존재하는 사상과 제도를 인정하고 존중하며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않을 데 대하여 합의하면서 다음과 같이 엄숙히 선언한다. 제1조,북과 남은 하나의 민족으로서 어떠한 경우에도 상대방을 반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무력으로 상대방을 침해하지 않는다. 제2조,북과 남은 있을 수 있는 의견상이와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3조,북과 남 사이의 불가침 경계선은 1953년 7월27일부 조선군사 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으로 한다. 제4조,북과 남은 호상 불가침에 관한 약정을 확고히 담보하기 위하여 군비경쟁을 중지하며 무력을 단계적으로 축감한다. 제5조,북과 남은 당면하여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ㆍ운영한다. 제6조,이 불가침선언은 북과 남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7조,이 선언은 북과 남이 각각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이를 상대방에게 알리는 통고문을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하며 어느 일방이 폐기를 통고하지 않는 한 조국통일이 실현되는 날까지 효력을 가진다. 다음으로 이번 회담에서 우리들이 결속을 짓고 넘어갈 문제는 우리가 제1차회담에서 긴급문제로 제기한 바 있는 유엔 대책문제와 「팀스피리트」 합동군사연습 중지문제,방북인사 석방문제이다. 첫째로 쌍방은 남북고위급회담 본회담과 대표접촉에서 유엔 대책문제를 통일위업에 이롭게 협의ㆍ해결 하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둘째로 쌍방은 본회담과 대표접촉에서 유엔 가입문제와 관련한 합의를 이룩할 때까지 그에 대한 토의를 계속한다. 셋째로 쌍방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유엔 대책문제를 합의하기 전에는 어느 일방도 먼저 유엔에 가입하지 않는다. 방북인사 석방문제도 남북대화 분위기에 맞게 시급히 해결되어야 한다.
  • 몸에 밴 의타심… 정부만 쳐다보는 동독인(통일독일의 과제:상)

    ◎돈많은 서쪽 동포에 “기대반 경계반”/부동산 소유자들은 옛주인 나타날까봐 “불안” 통일독일은 지난 10월3일을 전후한 사흘간의 축제를 마치고 새로운 국가건설에 국력을 집중하고 있다. 그러나 45년간 다른 체제에서 살아온 동서지역 국민들간에는 생활ㆍ의식ㆍ행동에 큰 골이 생겼으며 민족의 동질성회복이 과제로 남게 됐다. 통일과정을 현지취재하는 과정에서 만나본 독일인의 얘기를 중심으로 통일에 대한 동독인의 기대,서독인의 불안,민족성회복노력 등을 3회에 걸쳐 싣는다. 통합된 베를린은 동서의 장벽이 철거되었지만 여전히 보이지 않는 선이 동서를 가르고 있었다. 분명 경계선은 없지만 서쪽에 있다 동쪽지역으로 들어서면 거리의 분위기부터가 달라진다. 서쪽지역의 주택과 건물들은 저마다 특색을 갖고 말끔히 단장되어 있는데다 베란다에는 으레 각양각색의 꽃이 진열되어 있고 창문안쪽에는 하얀 레이스커튼이 드리워져 있다. 그러나 동쪽지역의 건물들은 한결같이 우중충한 회색에다 군데군데 무너진 벽이 허연 살을 드러내고 있거나 유리창이 깨어진채로 방치되어 있기 일쑤다. 하인츠씨는 『자동차 한대 구입하는데 12년,냉장고는 5년,TV는 3년을 기다려야 차례가 왔다』며 사회주의체제의 고질적인 물자부족을 개탄하고 『이제 돈많은 서쪽 동포들이 도와줄테니 상태가 곧 좋아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지상전차인 에스반이 구부러진 궤도를 돌아가는 금속성음과 군데군데 패인 히틀러시대의 자연석 차도를 달리는 트라비승용차의 매연으로 주민들이 고통을 받고 있는 공해문제도 통일독일이 시급히 해결해야할 과제중의 하나이다. 성능이 좋은 벤츠나 BMW승용차를 타고 남부유럽을 여행한번 다녀오고 싶다는 것이 동쪽 주민들의 한결같은 꿈이다. 번화가의 여관 여주인인 마티나 헤미히씨(52)는 하루 숙박료가 1∼3층은 80마르크,4∼5층은 60마르크라고 해 그 이유를 물으니 『낮은층은 수세식 화장실과 욕실이 갖춰져 있으나 높은층은 그렇지가 못하다』고 설명했다. 동쪽지역 접객업소뿐만 아니라 주택의 경우도 화장실에 물통과 손잡이가 긴 바가지가 놓여있는 경우가 많아 화장실이 거실보다말끔한 서쪽 가옥들과 큰 비교가 된다. 모든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고 부를 균등배분한다는 사회주의 이상은 좋은 제도이나 생활의 질을 높이는데는 취약점이 있다는 것이 독일통일이 남긴 교훈이었다. 여관주인 헤미히씨는 『호네커일당이 다 해먹다 보니 우리는 40년전과 조금도 나아진게 없다』며 『콜이 우리를 살려주겠지요』라고 역시 통일정부가 문제를 해결해 주길 희망했다. 베를린에서 서쪽으로 1백여㎞ 떨어진 슈테그레츠마을을 찾은 것은 통일축제가 끝난 다음날인 지난 5일 하오 5시쯤이었다. 마을 입구에 자리잡은 「사자주점」을 들어서자 백발의 건장한 주인은 힐끗 한번 쳐다본후 맥주따르는 일을 계속했다. 자리에 앉아도 그는 인사는 커녕 자기자리로 돌아가 마시던 술잔을 계속 비울뿐 주문조차 받으려 하지 않았다. 벽난로에서 새어나온 갈탄 연기와 담배연기속에서 낡고 둥근 테이블에 앉아서 잡담을 하던 동네주민 10여명도 갑자기 말을 끊은채 경계심을 늦추지 않았다. 서독주민들의 경우라면 아파트계단이나 이른 새벽 길거리에서마주치게 되면 『안녕하십니까』하고 먼저 인사를 건네 어색한 분위기를 피하는 세련된 태도를 보인다. 주문한 맥주잔을 다 비우고 『맛이 좋다』고 칭찬하자 이를 호의로 받아들인 주인의 얼굴에는 경계심이 사라지고 『당케,당케』를 연발한다. 그는 자신의 이름이 마티아스 쾨니히(66)라고 소개하며 『축복받은 독일,통일된 조국이라지만 나로서는 앞날이 걱정될뿐』이라며 불평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목재소에서 근무하다 12년전 은퇴한 쾨니히씨는 20여평 크기의 주점과 방이 딸린 이 건물을 한달 수입의 15%인 월 2백마르크의 집세를 내고 살아 왔으나 최근 서독 주인이 나타나 『집을 가급적 빠른 시일안에 반환하라』고 요구했다. 지금까지는 국가에서의 임대주택은 자신의 주택이나 다름없었는데 통일과 더불어 새 주인이 나타나 쫓겨나게 됐다는 것이다. 사회주의체제에서 별다른 불편없이 살아오던 쾨니히씨는 갑자기 나타난 집주인에게 쫓겨날 형편이 되었다. 쾨니히씨와 같이 동독지역에서 주택ㆍ농지ㆍ공장부지의 새 주인이 나타나 생활의 불안을느끼고 있는 사람들은 1천8백만 주민중 1백만명에 이르고 있는 실정이다. 독일정부는 아직 사유재산환수에 대해 최종결정을 내리지 않고 있으나 부동산을 가능한한 원주인에게 돌려준다는 원칙이어서 동독지역 주민들의 불안은 클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다른 체제에서 반세기 가까이 살아온 독일민족은 과보호와 경쟁상태에서 각기 다른 국민성을 갖게 됐다는 분석이 나와 관심을 끌고 있다. 동베를린 지역의 샤리테병원 정신심리과 의사인 알렉산더 슐제박사(39)는 『지금까지 사회주의체제에서 살아온 사람들은 통일의 기쁨보다는 새로운 불안감에 휩싸여 있다』고 서독지역 주민과 다른 동독지역 주민들의 심리상태를 분석했다. 슐제박사는 『그것은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오는 불안감 때문입니다. 동쪽 주민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밀어 닥칠지 모르며 생활터전도 흔들려 불안해하고 있다』며 『우리는 그동안 사회주의라는 온실속에서 안일하게 살아왔기 때문에 모두가 색깔도 없이 똑같은 형태가 되었으며 모험을 회피하려는 소시민근성이 몸에 베이게되었다』고 분석했다. 분단 45년만에 양쪽 국민성에도 커다란 단절이 형성된 느낌이다. 한쪽이 시장경제의 경쟁속에서 닳고 닳았다면 한쪽은 사회주의이 과보호 속에서 순치되었다고 할 수 있겠다.
  • 일,“대 북한 외교 적극 전개”/외교청서 발표/동서화해에 능동대처

    【도쿄 연합】 일본은 16일 앞으로 북한과 외교관계를 보다 적극적으로 전개할 것이라고 공식 표명했다. 이날 각의에 보고된 금년도 일 외무성 외교청서(일 외교 근황)는 한반도 정세에 대해 『소련을 비롯 사회주의국가들과 한국간의 급속한 관계개선은 남 북한 분단의 배경이 되고 있는 동서 대립 구도에 변화가 일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지적,『일본도 앞으로 보다 적극적으로 북한과 관계개선에 임할 것』이라고 밝혔다. 청서는 또 대소 문제와 관련,『동서 긴장완화 추세를 전세계적으로 확고히 정착시키기 위해서는 일 소 관계의 근본적인 개선이 중요하다』고 전제,내년도 고르바초프 대통령의 일본 방문은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인 계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청서는 특히 미국의 경우 『소련에 대한 위협 인식이 저하되고 있는 반면 일 경제기술력에 대한 위협감이 높아지고 있다』고 분석하고 『경제ㆍ사회ㆍ인간관계 등 모든 면에서 일본을 이질적인 나라로 간주해 별도의 규정을 적용해야 된다는 이른바 「대일정책 수정론」이 대두되고 있다』고 밝혔다.
  • 초라한 판문점 마중… 형평잃은 대접/한종태 정치부 기자(문화초점)

    ◎「남의 실체」 의도적으로 불인정 16일 상오 판문점 북측 지역인 통일각에서 있었던 우리측 대표단에 대한 환영행사는 예상밖으로 너무나도 「초라」했다. 북한측이 보낸 환영인사라고는 고작 김광진 인민무력부 부부장을 비롯한 북측 대표단 6명과 우리측 대표단에게 꽃다발을 안겨준 화동 7명뿐 더이상의 환영인파는 찾을 수 없었다. 「역사적」 등의 수사를 쓰지 않더라도 남한의 국무총리가 남북간 현안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땅을 밟는다는 북행의 의미를 생각한다면 이날 북한측이 보여준 태도는 섭섭함마저 든다. 우리측 대표단이 개성역과 평양역에 도착했을 때도 환영나온 민간인은 한명도 없었다고 수행기자들은 전하고 있다. 우리모두가 잘 알다시피 우리측의 민간인이나 민간단체가 북행할 때는 표현이 힘들 정도로 엄청난 환영열기를 만들어준 그들이다. 물론 그것은 다분히 계산된 유화적 제스처다. 불과 이틀 전에 판문점 북측 지역인 판문각 앞뜰에서 행해진 범민족통일음악회 우리측 참가단에 대한 환영인파와 그보다며칠 전에 있었던 남북통일축구대회 참가 대표단에게 베풀어준 열렬한 환영모습에서도 이같은 현상은 뚜렷하게 나타난다. 무려 6백명이 넘는 환영인파가 좁은 장소에 나와 우리측 전통음악인들을 부여잡고 눈물까지 흘리는 장면에서도,15만명을 수용하는 5ㆍ1경기장을 가득 메운 통일축구대회 관중들에게서도 누구나 동족으로서의 가슴 찡한 무언가를 느꼈음 직하다. 북한측 자세의 이러한 대비는 자신들이 실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는 남한당국의 고위인사들이 평양에 온다는 사실 자체가 반갑지 않다는 것 이외에는 달리 설명할 방법이 없다. 그렇더라도 「조국통일이 지상과제」라고 떠들어대는 북한측이 스스로 생각하는 비중은 다를지 몰라도 똑같은 초청대상자인 우리 정부당국과 민간인 사이에 이같이 형평잃은 대접을 했다는 것은 기본적인 의전절차를 떠나서 아무래도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지금까지 남한당국 배제논리에 따라 줄곧 남북간 민간대화를 부르짖어온 북한 입장에서는 당연한 일일 수도 있다. 또한 북한이 체제유지의 근간이념인 「하나의 조선」 정책을 수정하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남한당국에 대한 「오만함」은 계속될 수밖에 없고 또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다. 한소 수교 및 한중 관계개선,그리고 일 북한 관계진전 움직임 등 한반도주변 상황이 빠른 속도로 변화하고 있는데도 아직까지 대남 정책에서는 어떠한 변화 가능성도 용납치 않으려는 듯한 북한이 답답할 뿐이다. 결과적으로 이제는 최근 잇따라 있었던 남북 상호교환방문 사례들을 곰곰이 분석해보고 우리들의 대북 자세를 다시한번 정리해볼 시기가 아닌가 싶다. 몇차례에 걸친 북한의 유화적인 자세에 『북한이 드디어 화해와 협력의 국제적 추세에 동참하기 시작했다』라고 너무 성급하게 기대 이상의 판단을 내리지는 않았는지 곱씹어볼 때라고 생각된다. 일부에서는 오는 18일 김일성 주석이 강영훈 국무총리와의 단독면담에서 상당한 정도의 대남메시지를 전할 것으로 관측한 바 있으나 당분간 이같은 기대는 「기대」에 그칠 수밖에 없을 가능성이 크다. 우리가 아무리 정치ㆍ경제적으로 대북우위를 점하고 있더라도 북한이 「하나의 조선」이라는 빗장을 풀지 않는 한 진정한 남북 화해의 길은 요원할 수밖에 없고 그럴수록 남북현실에 대한 분명한 인식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고 느껴진다. 북한측이 보여준 이날의 초라한 영접에서 다시한번 『통일에 대한 환상은 금물』이라는 얘기를 가슴깊이 되새기게 된다.
  • 남북 총리회담 진전을 기대한다(사설)

    통일을 위한 남북한 대화는 비단 정치ㆍ군사분야에만 그 중심축을 둘 수는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그러나 통일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은 정치ㆍ군사분야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바로 그것이 한반도문제가 안고 있는 어려움인 것이다. 남북한은 오랫동안 문제접근에 있어 입장을 달리해 왔다. 남측은 다방면에 걸친 다각적인 대화와 교류를 통한 점진적인 방향을 추구해왔고 북측은 항상 정치ㆍ군사문제 우선해결을 주장해 왔다. 최근에 들어서는 양측의 입장이 많이 접근됐고 특히 정치ㆍ군사분야 토의에 대한 남측의 전향적 자세로 국면타개의 토대가 형성된 것도 사실이다. 우리는 이같은 사실에 유의하면서 남북한 고위급 제2차 평양본회담이 열림에 즈음하여 이번 회담이 지난번 서울회담의 포괄적 토의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부분적으로라도 실질문제에 대한 구체적 합의점에 도달하도록 쌍방이 노력해줄 것을 진심으로 기대하는 것이다. 북한 주석 김일성은 최근 남북한 문제 및 통일접근 노력에 언급하면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흡수통합되는 것이아닌 것』이라고 얘기한 바 있다. 이 점과 관련해서는 이미 지난번 서울 회담 때 연형묵 북측 총리도 『서로 상대방을 누르려 하지 말고 이기려고도 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바로 그것이다. 남북한이 40여년 동안 분단되고 있다는 사실은 민족적인 불행이요 비극이지만 역사적으로 냉엄한 현실이다. 남북한은 그동안 분단상태에서 전쟁과 적대와 대결을 빚어왔지만 그 속에서 각기 상이한 체제와 이념을 고수해 왔다. 따라서 어느 한쪽이 다른 한쪽을 흡수통합할 수 없으며 서로 상대방을 누르려하거나 이기려고 하지 않는다면 냉엄한 현실 즉 상대방의 실존을 인정하고 존중해야 한다. 남북한 문제의 본질적인 해결은 그로부터 비롯돼야 하는 것이다. 북한은 최근들어 그들의 이른바 「하나의 조선」 논리의 강도를 높이고 있는 듯하다. 그러나 그것은 한반도에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그 우월성이 이미 객관적으로 입증된 남측의 체제 및 이념을 애써 부정하려는 비현실적인 자기모순 논리이다. 이에 대한 해답은 오늘날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국가들의 탈사회주의 이념,일당독재 포기,자본주의 시장경제 도입 등을 파악하는 것으로서 충분하다. 진심으로 강조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남북문제 해결의 역사성이나 그 민족적 당위성에 비추어 한민족공동체로서 공존번영하고자 하는 북한의 정책을 반박하거나 구태여 부정적인 시각으로만 보지는 않는다. 다만 그 논리적 모순의 내용을 파악하고 정확한 현실인식 아래 모든 대화에 임하기를 바라는 것이다. 북한측은 서울 회담에서 남북한 단일의석 유엔 가입,불법 방북인사 석방,팀스피리트 중지 등 3개 선결과제를 제시했다. 그들 주장대로 정치ㆍ군사문제 우선 토의이다. 남측으로서는 부분적인 신축성이 고려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이 역시 체제와 이념,원칙에 관한 문제인 것이다. 전제할 수도 없고 전제해서도 안되는 과제이겠으나 쌍방 신중하고도 이성적인 접근이 있어야 할 것이다. 평양회담의 성과를 기대하고자 한다.
  • 평양도착 성명

    평양시민 여러분,남북의 동포여러분,우리 대표단은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하기 위하여 유서깊은 이곳 평양에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먼저 우리 대표단 일행을 따뜻하게 환영해준 평양시민들과 북녘 동포 여러분에게 사의를 표하면서,남녘의 우리 국민들이 보내는 뜨거운 인사를 전하는 바입니다. 우리 일행은 판문점에서 이곳 평양까지 멀지 않은 길을 오는 동안 참으로 만감이 교차하였습니다. 분단된 나라들이 통일을 이룩하고,우리를 남북으로 갈라놓은 나라들도 서로 협력하며 공동번영을 추구하는데 우리만이 아직도 냉전체제가 남겨놓은 불신과 대결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안타갑고 착잡한 심정을 금할길 없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뒤늦게나마 남과 북의 총리와 고위당국자들이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민족의 화해와 단합을 실현할 역사적 과업에 나서고 있다는 사실을 실감하고 퍽 기쁘고 다행스럽게 생각하였습니다. 남과 북이 서로 다른 사상과 제도를 유지하고 있으나 이것이 더이상 우리 민족을 갈라놓는 분단의 장벽이 되도록 그대로 둘 수는 없습니다. 5천년 동안 하나의 민족공동체를 이루고 오순도순 살아온 우리가 서로 오고가지도 못하고 소식조차 끊어진 이 고통스러운 상황은 이제 더이상 지속되어서는 안될 민족의 수치요,비극인 것입니다. 우리가 하루빨리 분단의 장벽을 허물고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민족공동체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이것이 조국의 평화통일을 촉진하는 지름길입니다. 우리는 과거사에 매달려 더이상 그 누구를 탓하거나 원망하기 보다는 서로 손잡고 민족의 단합과 화해를 도모하여 평화와 통일의 대로로 달려 나가야 할 때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국토의 분단으로 말미암은 겨레의 고통을 덜기 위하여 그리고 서로 자유롭게 왕래하고 소식을 전하고 교류하고 협력하면서 다 함께 잘사는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이곳에 왔습니다. 남과 북이 불신과 대결의 어두운 역사를 청산하고 서로 믿고 서로 돕는 관계를 하루빨리 이루어야 한다는 일념으로 이곳에 왔습니다. 그리하여 7천만 겨레가 갈망하는 자유와 평화와 통일의 그날을 앞당겨야 한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이곳에 왔습니다. 우리 대표단이 지난 9월 서울에서 열린 제1차 회담에서도 강조한 바 있습니다만,남북관계를 개선하는 첫 걸음은 무엇보다도 남과 북이 서로의 실체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상대방을 부정하는 적대적 자세를 버리는 것만이 평화를 보장하고 통일을 앞당기는 길인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서로가 서로를 불신하고 적대시하는 모든 대결의 관계를 지양할 것을 선언한 바 있으며,이것은 남북고위급회담에서 견지하는 일관된 우리의 입장입니다. 쌍방 대표단은 제1차 회담을 통해 각기 밝힌 입장과 제안들을 놓고 허심탄회하게 의견을 교환함으로써 서로를 더 잘 이해하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쌍방의 제안에는 공통점도 있고 차이점도 있지만 서로 상대방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양보하는 자세로,공통점은 지체함이 없이 구체적인 실천에 옮겨 나가고,차이점은 그 폭을 좁혀 나가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목소리 높여 통일을 외치는 것보다는 통일을 향하여 오늘 할 수 있는 일부터 당장 실천에옮겨 나가야 합니다. 온겨레가 다 잘사는 통일의 집을 짓기 위하여 한장 한장 벽돌을 쌓아 올려야 할 것입니다. 우리 대표단은 이번 평양회담에서 남북의 대표가 서로 지혜를 모으고 힘을 합친다면 새로운 진전을 이룩할 수 있으리라고 확신하면서 성의와 노력을 다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북녘 동포들과 온겨레가 남북고위급회담의 성공을 기원하고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시는 데 감사드리며,우리를 따뜻하게 환영해주신 평양시민과 북녘동포 여러분에게 다시한번 사의를 표합니다.
  • 우리 대표단 방북 이모저모

    ◎“서울∼평양 가까워진 느낌”… 남북 총리 재회/“대동강은 여전… 인심은 조석변” 강 총리/대표단 일행,교예극장서 「곰전투」등 관람/북 안내원들,담당기자 찾느라 우왕좌왕 남북 분단 이후 45년 만에 우리측 총리로서는 처음으로 16일 북한을 공식방문한 강영훈 국무총리 등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평양에서의 역사적인 첫날밤을 보냈다. 우리 대표단은 숙소인 대동강 상류 백화원초대소에서 짐을 푼 뒤 평양시내 교예극장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가 주최하는 인민문화궁전에서의 만찬에 참석한 후 북한영화를 관람했다. ▷남북 총리회동◁ ○…이날 하오 1시35분쯤 숙소인 정부초대소(백화원)에 도착한 강 총리 일행은 초대소 로비에서 연형묵 북한 정무원 총리의 영접을 받고 응접실로 자리를 옮겨 약 5분간 환담. 먼저 연 총리가 『대표단 일행의 방문을 진심으로 환영한다』고 말하자 강 총리는 『오면서 보니 우리 일행을 위해 추계 대청소까지 하는 등 준비가 대단했다는 것을 피부로 느꼈다』고 감사를 표시. 연 총리가 이어『평양과 서울 사이가 매우 먼 것처럼 알았었는데 자주 내왕하다보니 가까운 것 같다』고 말하자 강 총리는 『대동강을 건너다 보니 산색은 옛날과 같으나 인심은 조석변이라는 옛말이 떠오른다』면서 『연 총리의 마음은 변하지 않았을 것 같다. 기쁜 마음으로 왔다』고 말해 폭소. 연 총리는 이어 응접실 좌우에 걸린 북한의 명승지를 그린 대형 풍경화를 가리키며 북한이 고향인 강 총리에게 『생각나는 곳이 없느냐』고 묻자 강 총리는 고향인 약산의 풍경화를 바라보며 『학교 다닐 때 매일 올라다녔는데 특히 진달래꽃이 아름다웠었다』고 회상. 강 총리는 뒤편에 있는 총석정 등 대동강과 금강산 그림을 둘러보며 『나는 아직 금강산을 가보지 못했다』고 하자 연 총리는 이를 받아 『다음 오실 때는 구경할 수 있겠죠』라고 말한 뒤 『오시느라고 피곤하실텐데 쉬시지요』라며 일층 숙소로 안내. ▷만찬◁ ○…북한 연형묵 총리는 이날 약 6분간에 걸친 만찬연설을 통해 『북과 남의 첨예한 군사적 긴장상태는 통일의 노래ㆍ통일의 춤으로 들썩하는 평양의모습과 엄청난 대조를 이루는 우리의 냉엄한 현실』이라면서 『대결을 없애고 단합과 통일을 실현해야 하며 그러자면 첨예한 정치군사적 대결상태를 시급히 해소해야 한다』고 주장. 연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측 강 총리를 두번 거명했으나 지난번 서울회담 때 「총리」라고 불렀던 것과는 달리 「수석대표선생」이라고만 호칭. 강 총리는 만찬답사에서 『사람과 물자의 왕래와 교류가 촉진된다면 자연히 신뢰가 쌓이게 될 것이며 이를 바탕으로 어떠한 어려운 문제도 하나하나 쉽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이라면서 각 분야에 걸친 접촉ㆍ교류와 협력의 조속한 실천을 강조. ○…인민문화궁전 대연회장에서 열린 연 총리 주최의 만찬은 우리측 대표단 일행 90명과 북측 관계자 1백10명 등 2백여명이 참석. 북한측은 만찬테이블을 34개 만들어 한개 테이블에 6∼7명씩 배치했는데 한 테이블당 우리측 일행은 2명씩 자리를 잡도록 조치. ○…만찬이 시작된 지 1시간10분 가량이 지난 하오 9시5분쯤에는 북한의 만수대예술단이 등장해 만찬분위기는 더한층 고조.23명으로 된 만수대예술단은 「도라지타령」을 시작으로 「고향」 「꽃파는 처녀」 「노들강변」 「봄의 노래」 등 우리측 대표단에게도 귀에 익은 음악을 연주. 특히 인민배우인 주창혁과 함금주가 노래한 춘향전중의 사랑가는 만찬 참석자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들이 노들강변을 부를 때는 일부 참석자들이 가사를 따라 부르기도. ▷교예극장 공연◁ ○…우리측 대표단 일행은 이날 하오 5시30분 교예극장에서 공중곡예ㆍ곰전투ㆍ외바퀴자전거 타기 등 14개 서커스 프로그램을 관람. 양측 대표단을 비롯 좌석 3천5백석을 거의 채운 관중들은 고난도 묘기가 나올 때마다 박수를 치며 환호. 특히 외바퀴자전거 타기를 하던 연기자가 두차례 실수를 하자 관중들은 물론 우리측 인사들도 박수로 격려. 요술을 한 인민배우 김택성씨는 공연에 앞서 빨간 글씨로 「조국통일」이라고 적은 광목을 펼쳐보였고 이에 관중들은 일제히 환호. ▷영화관람◁ ○…인민문화궁전에서의 만찬이 끝난 뒤 대표단 일행은 밤 10시35분 안병수 북측 대변인 안내로 평양 청년회관에도착,「평양의 모습」 「조선의 민속」이라는 문화영화를 자정까지 약 2시간 동안 관람. 영화시작에 앞서 강영훈 총리와 안 대변인은 응접실에서 잠시 환담을 나누었는데 안 대변인이 『학생들의 집단체조는 수령님께서도 관심을 많이 갖고 계시니 꼭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관람을 권유. 이에 강 총리는 『집단체조를 보고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이데올로기적이라고 하더라』며 관람을 사양하기도. ▷숙소도착◁ ○…대표단 일행이 탄 승용차와 버스 행렬은 평양역을 출발한 지 약 15분만인 하오 1시45분쯤 숙소인 백화원에 도착. 승리거리와 대학생거리 등을 지나 초대소까지 달리는 동안 연도의 시민들은 남측 대표단 일행을 향해 손을 흔들어 환영. 안내원은 『시민들이 남쪽 대표들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소개. ○…83년에 건설됐다는 백화원초대소는 대리석으로 된 통로바닥이 카펫으로 덮여있고 천장에는 크고 작은 샹들리에가 매달려 있는 등 호화롭게 치장. 객실에는 소주ㆍ수삼주ㆍ인삼주 등 북한산 술과 사이다 등 음료수ㆍ황태포ㆍ과일 등이 비치돼 있으며 차를 마실 수 있도록 뜨거운 물이 담긴 보온병도 비치. ▷평양역 도착◁ ○…대표단 일행은 하오 1시20분에 평양역에 도착. 특별열차가 역구내로 서서히 들어가 멈추자 북측 안내인들은 자신이 맡은 남측 수행원과 기자들을 찾느라 우왕좌왕. 역구내에는 붉은 바탕에 흰 글씨로 쓴 「영광스런 조선노동당만세」등의 대형구호들이 어지럽게 천장에 매달려있기도. ▷개성역∼평양역◁ ○…대표단 일행은 통일각을 출발한 지 1시간15분 만에 개성역에 도착. 개성역에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와 노동당 및 역무원 관계자 수십명이 나와 대표단 일행을 영접해 조촐한 분위기. ○…대표단 일행이 개성에서 평양까지 타고간 특별열차는 객차 14량과 소화물칸 1량이 달린 콤팩트식 열차. ▷판문점 출발◁ ○…제2차 남북고위급회담 우리측 대변인인 임동원 외교안보연구원장은 판문점을 통과하기 직전인 이날 상오 8시40분쯤 통과성명을 발표하고 이번 회담에 임하는 우리측의 입장 등을 천명. ○…북측 영접요원으로 나온 최우진 대표(외교부 순회대사)와 최봉춘 책임연락관은 상오 8시50분 우리측 대표단이 타고갈 10대의 벤츠승용차와 함께 군사분계선을 넘어 우리측 지역의 평화의 집 앞에 도착. 강 총리는 상오 9시 정각에 북측 최 대표 및 우리측 대표들과 함께 평화의 집에서 나와 승용차에 탑승. 강 총리는 뒷좌석에,최 대표는 앞좌석에 각각 앉았으며 양측 책임연락관과 우리측 대표 6명도 각각 하늘색 벤츠승용차에 탑승한 후 곧바로 군사분계선을 넘기 위해 출발.
  • 평화공존등 남북 관계정립의 분수령/평양총리회담 전망과 쟁점

    ◎상호체제 인정 등 합의 노력/금강산 공동개발 경협 모색/우리측/「당국자간 대화」 지속여부 최대 관심사로 16일부터 오는 19일까지 평양에서 열리는 제2차 남북총리회담은 강영훈 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고위당국자들이 분단 45년 만에 처음으로 평양을 공식적으로 방문하게 된다는 점에서 우선 그 의미를 찾을 수 있을 것 같다. 남북 총리가 오는 17일과 18일 두 차례에 걸친 공개 및 비공개회의에서 「남북간 정치·군사적 대결상태 해소와 다각적인 교류·협력실시 문제」라는 포괄적인 의제를 놓고 지난 1차 서울회담에 이은 두번째 공식협상을 벌인다는 점에서 2차 평양회담은 앞으로 남북 관계의 분기점이 될 수 있는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고 할 수 있다. 지난 1차 서울회담에서 남북 총리는 정치·군사문제와 교류·협력문제에 대해 탐색전 차원에서 서로의 기본 입장을 밝힌 만큼 2차 평양회담에서는 쌍방이 이같은 문제들에 대해 보다 구체적이고 본격적인 의견을 제시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2차 평양회담의 결과에 따라 남북이 대결상태와선전전만을 계속해 왔던 전후 45년을 청산하고 통일을 지향하는 90년대의 새로운 남북 관계를 정립할 수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남북 정부당국간의 유일한 대화창구인 총리회담이 앞으로 3,4차 회담으로 계속 이어질 수 있는지도 이번 회담의 분위기로 점쳐질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한소 수교,일북한 관계개선,유엔 총회에서의 한국 단독가입 지지분위기 확산 등 지난 1차 서울회담 이후 한달여 동안 벌어진 급격한 국제정세의 변화는 2차 평양회담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측된다. 남북 쌍방이 1차회담 때와 기본입장을 크게 달리하지 않고 있기 때문에 2차 평양회담에서 획기적 성과를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것이 지배적인 관측이다. 북한은 이같은 국제정세의 변화와 내부의 심각한 경제난,세습체계구축 등으로 인해 대외적으로는 개방정책으로 전환하고 있는 듯한 기미를 보이고 있지만 대남정책에 있어서 만큼은 적화통일노선이라는 기본정책을 고수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기 때문이다. 북한은 이번에도 지난1차회담 때 제기했던 ▲유엔 단일의석 가입 ▲팀스피리트훈련 중지 ▲임수경 양 등 방북구속자 석방문제 등 3개 긴급과제의 선결을 우선적으로 되풀이 주장할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은 이같은 3대 긴급과제가 해결되어야 정치·군사적 신뢰구축이나 교류·협력문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우리측은 이에 대해 원칙론적인 차원에서 수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며 2차회담에서도 이같은 입장을 견지,정공법을 펼 것으로 예측된다. 노태우 대통령은 대표단이 떠나기에 앞서 15일 상오 강 총리를 비롯한 회담대표 7명을 청와대로 불러 격려하는 자리에서 『민족적인 문제는 양보할 것과 지켜야 할 원칙문제를 구분해야 하고 원칙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우리의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일관성 있는 우리의 입장을 견지하는 것이야말로 북한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다』고 원칙론을 강조했다. 2차 평양총리회담은 1차회담과 같이 공개(17일) 및 비공개회의(18일),18일 강 총리 및 대표단의 김일성 주석 면담 등으로 진행된다. 쌍방이 허심탄회하게 의견을토로하고 의견을 접근시켜 합의를 이뤄낼 수 있는 기회는 비공개회의에서다. 특히 강 총리는 김일성 주석 단독면담에서 노 대통령의 구두메시지를 전달할 것으로 알려져 있어 강 총리·김 주석간 대화내용이 크게 주목된다. 강 총리는 1차 공개회의에서 기조발언을 통해 1차회담에서 제시했던 남북 관계개선을 위한 기본합의서 8개항을 골격으로 북측의 3원칙을 수용한 민족통일을 위한 기본합의서를 제시할 방침이다. 이 합의서 안에 포함된 정부의 기본입장은 상호실체 인정을 통한 평화공존,가능한 분야의 교류·협력 추진,이산가족 교환방문 실현문제 등 3가지로 요약될 수 있다. 이 가운데 상호실체 인정 부분은 1차회담에서 북한측이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였던 것으로 알려진만큼 현안으로 부각될 전망이다. 쌍방은 이번에 분과위 설치에 합의할 가능성이 가장 높다. 1차회담에서 우리측은 경제협력·군사공동위 등 2개의 분과위 구성을 제의했고 북측은 정치·경제·군사·사회 등 4개 위원회를 주장했기 때문에 3개 정도의 분과위 구성에 합의,공동성명(코뮈니케)방식으로 발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경제협력에 대한 합의도 도출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북한측이 안고 있는 심각한 경제난,북측회담 대표인 김정우 대외경제사업부 부부장이 금강산 개발에 관심을 나타내고 있는 점 등을 감안하면 금강산 관광단지 공동개발 등에 대해서는 합의가 가능할 것 같다. 우리측은 또 지난 1차회담에서 쌍방이 합의했던 적십자회담 재개도 북측에 촉구할 계획이다. 유엔 가입문제와 관련,1차회담 이후 2차례의 실무대표 접촉을 가졌으나 북측의 단일의석안은 불합리한 점을 지적하고 다시한번 북측의 설명을 들어본 뒤 쌍방간 의견이 좁혀지지 않으면 2차회담이 끝난 뒤 유엔에 단독가입할 방침이다. 따라서 북측은 우리의 우방국인 미국이 안보리의장국이 되는 11월에 3차회담을 서울에서 개최하자고 제의해올 가능성이 높으며 이 경우 연내에 4차 평양회담도 열릴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아무튼 그동안 대외정책의 변화조짐을 나타내온 북한의 2차회담에 임하는 자세가 회담의 결과를 가름지을 수 있을 것으로 관측된다.〈박정현 기자〉
  • 외언내언

    제시 오언스.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미국의 이 흑인 스프린터를 위한 대회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그는 남자 육상 1백mㆍ2백mㆍ4백m 릴레이와 넓이뛰기에서 우승,4관왕의 경이적인 위업을 이룩했다. 베를린 올림픽은 또 우리 민족에게는 손기정이 비록 일장기를 달았지만 마라톤에서 우승해 한국인으로는 첫 올림픽 금메달리스트가 된 역사의 현장으로 기억된다. ◆제11회 베를린올림픽은 히틀러의 나치즘이 세계 정복의 야욕을 꿈꾸는 가운데 그해 8월1일 개막됐다. 정치ㆍ인종ㆍ이념을 초월한다는 올림픽정신은 뒷전으로 밀어둔 채 히틀러는 「비유태계 백인(게르만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하기 위해 그 대회를 유치했다. 스포츠를 통한 내셜널리즘을 앞세운 히틀러는 또 3천만 달러라는 당시로서는 막대한 돈을 쏟아 넣었다. 그러나 그의 망상은 오언스라는 한 흑인선수에 의해 여지없이 깨져버렸다. ◆그러한 어두운 과거를 가진 베를린시가 2000년도 올림픽을 유치하기로 결정했다. 베를린시 지도자들은 최근 통독 후 가진 첫 합동회의에서 베를린시는 인간에 대한 이해와 국민들간의 평화라는 올림픽 이상을 진작시킬 평화적 통일의 적절한 상징이라고 선언하면서 올림픽 개최지의 후보로 나서기로 한 것. 베를린시의 올림픽 개최는 지난 88년 12월의 미 소 정상회담 때 레이건 전 미대통령이 분단도시의 양쪽에서 여는게 어떻겠느냐고 발언한데서 싹텄다고. ◆베를린시는 분단의 상징이었던 브란덴부르크 문을 중심으로 반경 10㎞ 범위안에 각 경기장을 세워 치르는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동베를린시 재건의 일환이기도 한 베를린시의 올림픽 유치안은 대회준비에 약 30억달러(한화 약 2조원)를 투입하며 대신 텔레비전 중계료 등을 합쳐 약 40억달러의 수익을 계상하고 있다는 것. 꿩먹고 알먹는 계획이다. 사마란치 IOC위원장도 『냉전은 끝났다. 올림픽으로 동서 대결이 종결됐음을 기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고 말한 바 있어 93년의 올림픽개최지 결정에서 베를린시와 아시아경기대회를 치른 중국의 대결이 볼만하게 됐다.
  • 「노대통령 연설집」 일 의사가 자비 출판(특파원수첩)

    ◎정상철영의 파격적 집필 화제/의회서의 연설내용 10가지로 나눠 설명/양국이 교훈으로 삼아야할 점등 적시 이노우에 데츠히데(정상철영)라는 사람은 마취과 의사이다. 야마구치(산구)현 출신으로 올해 38세,부인과 2남1녀의 자녀를 두고 있다. 지난 78년 히로시마(광도)대학 의학부를 졸업했으며,1년6개월간 미국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대학에 유학하기도 했다. 지금은 기타규슈(북구주) 종합병원에 근무한다. 『저는 한국과는 아무런 관계도 없습니다. 한국에 가본 일도 없으며,한국인 친구도 없습니다. 서울에는 한번 가보고 싶으나,원체 틈이 없어서… 』 이같이 말하는 그가 최근 파격적인 일을 해냈다. 「노태우 연설을 읽다」라는 자기 직업과는 전혀 무관한 책을 펴낸 것이다. 1백28페이지에 불과한 소책자이지만,지난 5월25일 노대통령의 일본 국회에서의 연설을 조목조목 나눠 설명하고 일본과 한반도에서 교훈으로 삼아야 할 대목을 객관적으로 짚어냈다. 출판도 물론 자비였다. 『연설은 평이한 표현으로 시종했으나 내용은 너무 깊어 많은 일본인들에게 감명을 주었다』고 시작되는 이 책은,그 집필동기를 이렇게 밝힌다. 『이 연설을 단지 흘려 읽어서는 안될 것이다. 왜 그런 표현을 썼는가,그 배경이 되는 역사적 사실은 무엇인가,노대통령의 표현은 과연 정확한가 등을 상세히 검증해가며 이 연설을 읽어보자고 나는 생각했다』 이 책은 노대통령의 연설 전문을 다음 10가지로 나누고 있다. ▲인사 ▲일본에의 찬사 ▲한국현대사의 개관 ▲민주주의에의 선언 ▲격동하는 세계정세 ▲한반도분단과 통일에의 결의 표명 ▲아시아의 장래 ▲일본과의 실무적 관계 ▲「과거」의 청산과 일본에의 요망,재일한국인문제 ▲양민족 우호를 위한 호소 등이다. 저자 이노우에 의사는 이 연설의 모두에 나오는 『나는 대한민국의 국가원수로서 역사상 처음으로 일본 국회의 연단에 선 것을 영광으로 생각합니다』라는 대목에서부터 찬사를 보낸다. 노대통령은 그만큼 자부와 각오를 갖고 연설을 행했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는 일본 헌법상의 「천황」의 규정을 비판한다. 『천황은 일본국의 상징이며 일본국민통합의 상징으로써,그 지위는 주권을 갖는 일본 국민의 총의에 바탕을 둔다』는 규정으로서는 누가 국가원수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이 책의 저자는 법률가도 아니며,역사학자도 아니다. 본인의 말을 빌리면 『지난해 가을 세계정세가 격동할 때부터 한반도는 어떻게 될 것인가에 관심을 가져왔을 뿐』이라는 것이다. 그런 입장임에도 그는 역사적 고증을 필요로 할 때는 사실을,법률적 뒷받침이 필요할 때는 그 이론을 적절히 찾아 구사하고 있다. 『노대통령이 가슴을 펴고 국가원수라고 한 이면에는,한국은 이제 군주제를 폐지했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한국의 군주제를 무너뜨린 것은 1910년 한ㆍ일 합병에 의한 일본이었다. 즉 침략에 의한 군주제의 폐지는 일본이 최후의 가해자이며 한국은 최후의 피해자로 된 것』이라며 자신을 반성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후기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이 책은 일반인이 일반 미디어를 어떻게 소화하려 했는가의 하나의 패턴이기도 하다. 한반도에 대해 그다지 지식은 없으나 흥미가 있어 이제부터 관심을 가져보겠다고 생각하고있는 사람에게 하나의 시작으로서 조금은 뜻이 있는 것이 되지 않았을까 라고 자부하고 있다. 나는 노대통령의 무류성을 강조하려고 이 책을 쓴 것은 아니다. 그러나 좋은 것은 좋다고 확실하게 자신의 평가를 주장해 보는 것도 또한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 연설의 검증을 위해 나는 꽤 에너지를 쏟아 부었다. 그 결과에 따른 평가이다. 가령 연설이 입에 발린 것이어서 전문가가 아닌 나만의 흥분이라고 웃음을 사더라도 나는 결코 후회하지 않겠다』 도쿄(동경)에서 규슈(구주)까지 전화를 걸어 그에게 물어 보았다. ­당신은 노대통령의 국회연설 보습을 TV에서 보았는가. ▲천만에,나는 의사라 바빠서 보지 못했다. 또 볼 생각도 안했다. 노대통령은 군출신이라는 선입관만 갖고 있었다. 연설문은 신문에서 읽은 것이다.
  • 외언내언

    남북한은 너나할것없이 90년대를 통일을 이루는 시간대로 잡고 있다. 동ㆍ서독이 분단 45년 만에 통일을 달성해 지구상에 하나 남은 분단국인 우리의 통일염원은 그 어느 때보다 간절하다. 통일을 위한 첫걸음은 뭐니뭐니해도 갈라진 땅의 사람들이 오가는 것. 통일독일은 그러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 준다. ◆얼마전 북경에서 열린 아시아경기대회에서 남과 북의 사람들은 비정치적인 스포츠에 의한 인적 내왕이 통일로 가는 지름길임을 확인했다. 우리 축구팀이 평양에 가서 남북통일축구대회를 가진 것도 그러한 때문이리라. 경기장인 능라도벌은 민족화합과 통일을 바라는 함성과 열기로 가득했다. 가슴이 뻐근해지는 장면이 아니었던가. 남북 양측은 이를 계기로 91년 나고야세계탁구선수권대회와 92년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단일팀을 구성해 파견한다는 원칙에 합의하고 구체적인 문제들은 앞으로의 체육회담을 거쳐 협의키로 했다. 북경아시아경기대회 단일팀 구성이 거의 합의점에 다왔다가 흐지부지됐던 점을 거울삼아 앞으로 단일팀 구성문제 논의는 순조로웠으면 한다. ◆정부는 스포츠화합을 확대해나간다는 방침 아래 오는 23일의 통일축구 2차전에 참가하러 서울에 오는 북한대표단을 맞아 전국체육대회를 남북한에서 번갈아 여는 「통일체전」을 제의하리라고 한다. 1980년대의 체전은 86서울아시아경기대회와 88서울올림픽에 대비한 우리의 스포츠 역량을 쌓는 데 역점을 두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두 대회를 성공적으로 치러냈다. 그러하다면 90년대를 여는 전국체육대회에는 통일과 관련하여 새로운 뜻을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제71회 전국체전이 15일부터 7일간 청주를 비롯한 충청북도 여러 곳에서 펼쳐진다. 체전이 충북에서 열리기는 올해가 처음. 체전을 처음 개최하고 통일연대도 연다는 점에서 이번 체전의 의미는 충북도민은 물론 우리 모두에게 각별하다. 이번 대회가 아무쪼록 민족제전이라는 전통적 의의를 십분 살리면서 통일체전에 대비하는 알찬 잔치가 되길 바란다.
  • 북한도 이젠 변해야 한다/남북고위급 평양회담에 앞서(사설)

    북한은 아직 변하지 않고 있다. 최근 북한 내부로부터 전해지고 있는 몇 가지 사항들은 그들의 대외정책 내지 한반도문제 접근자세가 조금도 변하지 않고 있음을 말해준다. 북한 주석 김일성은 며칠 전 방북중이던 도이 다카코(토정) 일본 사회당위원장 등을 만난 자리에서 통일문제와 관련,『하나의 나라 하나의 민족,두 개의 제도 두 개의 자치정부로 하자는 것』이라고 말해 종래의 고려공화국연방안을 거듭 고집하고 나섰다. 북한 부주석 이종옥과 박성철도 그들 노동당창건 45주년 기념사를 통해 고려연방제안을 주장하면서 주한미군 철수,남북대화에 있어서의 정치 군사문제 우선토의 등을 계속 주장하고 나선 바 있다. 또한 북한의 대남 통일전선전략 수행기구로서 경우에 따라 대남 창구역할을 도맡는 조국평화통일위원회 위원장으로 있던 허담이 물러나고 대신 노동당 중앙위원인 윤기복이 기용된 것도 그들의 대남 전략과 관련하여 예삿일로 보이지 않는다. 윤은 지난 72년 남북적십자 서울 본회담 때부터 자문위원으로 또는 공식대표로 여러 차례 서울에온 일이 있는 인물이다. 적십자 서울회담 땐 서울 한복판 회담장에서 축하연설 명목으로 공개적으로 김일성과 북한 체제에 대한 찬양,선전ㆍ선동 연설을 해 생방송중계로 이를 듣던 시민들의 분노를 샀던 일도 있다. 조평통은 61년에 창설된 그들 노동당 외곽단체이며 대남 통일전선 조직으로서 남한의 정치 사회적 혼란을 부추겨 대남 혁명전략을 수행하는 전위기구이다. 이런 일 저런 현상으로 미루어 북한의 대남자세는 아직 별다른 변화를 보이지 않고 있음이 확인되는 것이다. 북한이 걸핏하면 입에 올리는 「하나의 조선」 논리도 최근 들어 그 강도를 더하고 있다. 그것은 한반도에 엄연히 존재할 뿐 아니라 체제ㆍ이념,경제력면에서 북한보다 월등 우월한 한국의 실체를 애써 부정하려는 궤변에 불과한 것이다. 한국으로서는 이미 소련과 수교를 이뤘고 중국과의 관계개선도 크게 진전되는 단계에서 구태여 「두 개의 조선」 부정에 대해 괘념하는 바 아니나 그들의 대한반도 시각과 고리타분한 대남 전략에 변화가 없다는 사실은 남북한 문제의 장래를 위해서도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 측면에서 보면 남북한 축구경기와 뉴욕의 남북영화제,한국 음악인 초청 등에서 보인 북한의 유화적 태도도 다분히 계산된 전략의 하나가 아닌가 의심되기도 한다. 우리는 남북 문제해결의 역사성이나 민족적 당위성에 비추어 북한의 정책을 일일이 반박하거나 항상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고자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우리의 접근자세나 대화 및 교류노력에 비추어 그쪽의 주장과 입장이 문제해결 차원이 아닌 대결승부의 차원에서 유지되고 있는 듯한 점에 아쉬움을 갖는 것이다. 남북한간 체제와 이념은 지금 구태여 그 우월의 차이를 따질 필요가 없다. 특히 전통적인 사회주의 이념과 체제에 관한 한 소련을 비롯한 동구권 사회주의 국가들의 탈이념,일당독재 포기,자본주의 시장경제도입 등이 무엇을 말해주는가를 파악하는 것으로 그 해답은 가능하다. 오늘날의 세계에서 국가간의 분쟁이나 현안타결은 패권주의로서 이뤄질 수가 없다. 남북한 통일문제와 관련해서는 김일성도 최근 『한쪽이 다른 한쪽으로 흡수 통합되는 것이 아닌 것』이라고 했다. 지난번 서울에서 열렸던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북한측의 연형묵 총리도 이점을 분명히 했던 것이다. 그러나 남북문제 접근에 있어 그 어떤 경우에도 가장 중요한 것은 순수성과 진실성이다. 통일은 오랫동안 분단된 국토와 민족을 하나로 하는 가장 역사적이며 민족적인 과업이다. 우리측의 순수하고도 진지한 자세와는 달리 북한은 언제나 대남 전략차원에서 대화와 교류에 임하고 있음을 우리는 아쉽게 여기는 것이다. 남북축구 교환 평양경기에 이어 곧 서울경기가 열린다. 남북한 음악인회의가 열리고 그보다 오는 16일부터는 남북고위급 제2차 본회담이 평양에서 열린다. 그 모든 대화와 접촉을 전략차원에서만 수행할 경우 국면의 진전이나 바람직한 결과는 기대할 수 없는 것이다. 북한이 변해야 하고 한반도문제 접근에 있어 민족적 대의로서 순수하고 진지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우리에게 있어 최선의 통일은 자유와 협력공존의 틀이 최대로 보장되는 평화적 통일이다. 따라서 안팎의 사정이 어렵고 북한의 대남전략이 변하지 않고 있는 이럴 때일수록 우리의 남북대화 정책이나 통일정책은 분명하고도 명확해야 하리라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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