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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포츠교류(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7)

    ◎「92올림픽 단일팀」 구성에 서광 비친다/이미 원칙합의… 「통일 축구」로 기틀 다져/내년초 체육회담서 큰 결실 기대 「작은 통일」에서 「대통합의 신시대로」.남과 북이 분단 46년만에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함으로써 통일축구와 탁구 및 청소년축구를 통해 「작은 통일의 본보기」를 보여주었던 남북스포츠 교류는 이제 그 차원을 한단계 높인 「남북체육통합」을 이룰 신시대를 맞게됐다. 남북체육교류는 정치·경제·군사문제와 달리 그동안 쌍방간에 큰 이견이 없었던데다 남과 북이 이 분야에서만큼은 서로가 교류의 필요성을 인식하고 이를 바탕으로 이미 「통일축구」 등을 통해 의미있는 이정표를 세워 어느 분야보다 폭넓게 활기를 띨 전망이다. 남북의 대화채널이 북측의 내부사정 때문에 거의 닫혀 있을 동안에도 체육분야에서만은 단일팀이 구성되고 통일축구가 실현되는 등 좋은 분위기를 유지해왔다. 탁구와 축구에서 남북단일의 코리아팀을 구성하면서 뛰어난 성적을 거두었고 통일축구는 그렇게 멀게만 느껴졌던 서울과 평양을 오가면서 7천만 겨레에게 감동과 희망을 안겨주었다. 이제 남과 북이 이시점에서 함께 풀어야 할 최대의 과제는 92바르셀로나하계올림픽무대에 단일팀을 출전시키는 일로 이를 논의키 위한 남북체육회담의 재개 분위기가 이번 합의서 서명이후 무르익고 있다. 남북체육회담은 지난 8월17일 판문점에서 열기로 예정돼 있었으나 북한이 유도선수 이창수의 귀순사건을 트집잡아 일방적으로 연기시킨 뒤 지금까지 교착상태에 빠져 체육회담의 한계(?)를 드러냈었다. 박철언체육청소년부장관은 고위급회담 폐막 당일인 지난13일 한국체육기자연맹이 주관한 「체육기자의 밤」행사에 참석,『제5차남북고위급회담에 참가한 북측대표들을 만나 교착상태에 빠진 체육회담의 재개를 위해 협조해 줄것을 요청했다』고 밝히고 『북측도 이제는 이창수사건을 문제삼지 않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해 구체적인 결실이 있을 것임을 예고했다. 당시 박장관이 이처럼 남북체육회담의 재개를 낙관하고 있는 것은 ▲남과 북이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서명한 현시점에서 이창수의 귀순은 이미 지나간 일로 더이상 회담재개의 걸림돌이 될 수 없고 ▲올림픽예비엔트리 마감일이 내년 3월25일로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예비엔트리마감일을 감안,늦어도 내년 1월중에 체육회담재개를 제의할 방침이다. 체육회담재개일자가 우리측의 요구대로 잡혀질 경우 남북스포츠교류의 최대현안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의 남북단일팀 파견에는 큰 문제가 없을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남과 북이 지난 90년 북경아시안게임을 전후로한 남북체육장관회담을 통해 바르셀로나올림픽에 단일팀을 파견키로 이미 합의한바 있는데다 선수단구성등 세부적인 절차문제는 탁구와 축구에서의 단일팀구성 전례가 있어 희망적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코리아팀」을 이룰 경우 전력은 배가돼 88서울올림픽에서 한국이 이룩한 종합4위(금12·은10·동11)에 버금가는 좋은 성적을 올릴수 있을 것으로 체육계는 기대하고 있다. 이경우 코리아팀은 미국·독일·소련에 이어 중국과 4위다툼을 벌일 것이란 관측이다.현재 한국이 잡고있는 올림픽금메달 목표는 대략 12개 정도이며 북한이 가세할 경우 줄잡아 3∼4개가 추가될 것이란 전망이다. 종합국제대회의 꽃인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단일팀이 구성돼 좋은 성적을 낼 경우 남북간에는 친선경기의 개최및 참가,체육시설의 상호이용,그리고 체육지도자및 기자의 상호교환,합동및 전지훈련실시등 남북스포츠의 현안들이 잇따라 해결되면서 남북체육은 통합의 국면을 맞게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남북스포츠가 여기에 멈추지 않고 교류를 지속해 나간다면 관심과 인기도에서 올림픽을 능가하는 월드컵축구대회를 오는 2002년 서울과 평양에서 동시에 개최할수 있을 것이란 희망도 가능케 한다. 남북간의 체육관계자들은 지난 64년 도쿄올림픽을 시작으로 굵직한 국제대회를 앞두고 스포츠교류 공동개최 단일팀구성등에 관한 체육회담을 열었으나 그때마다 체육회담이 가지고 있는 한계에 부닥쳐 실패한 부끄러운 경험을 되풀이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체육회담이 과거처럼 걸림돌이 생길지라도 고위급회담에서 합의·서명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대타협에 기댈 수 있는만큼 남북스포츠교류의 향후 전망은 밝다고 할 수 있다.
  • 우편통신 교류(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6)

    ◎「말길」빨리 트여야 「40년이질화」풀린다/독일선 20년전 실천… 동질성회복 뒷받침/한핏줄끼리 편지한장 못하는 나라 어디있나 「언제쯤이면 북에 있는 친지소식을 들을 수 있을까」 「당장 만나지는 못하더라도 글월 한장,전화목소리 한마디라도 나누어봤으면」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우편과 전기통신교류원칙 합의소식은 벌써부터 북에 연고를 둔 많은 국민들의 가슴을 설레게 하고 있다. 그동안 우리나라는 만국우편연합(UPU)회원국 1백68개 국가중 1백66개국과 우편교류를 해오면서 한핏줄인 북한과는 유일하게 등을 진채 지내왔다. 전기통신 역시 국제통신연합(ITU)가입 1백70개국가와 전화소통을 해오면서도 북한과는 72년 남북적십자회담 이후 「남북대화용」24회선만을 열어놓고 있을 뿐 민간교류는 단절된 상태다. 그러나 우편과 전기통신분야는 가장 비정치적이며 인간의 기본적 욕구에 속하는 기본권적 특성으로 분단국이나 국가간 교류와 개방의 선도역을 맡아왔다. 동독과 서독이 서로간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공존을 통해 민족적 협력과 교류를 촉진해가는 방안으로 통일전 20년동안이나 체신교류를 시행한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때문에 이번 남북간의 우편·통신교류합의는 그 실현 여하에 따라 민주동질성 회복과 비정치적분야 기능통합을 통한 민주공동체 형성에 첫걸음을 떼워줄수 있을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남북한은 과거에도 우편분야에서 합법적으로 남북교류를 가졌던 역사가 있다. 46년 38선을 경계로 한반도를 분할 점거하고 있던 미소양군이 공동위원회를 열어 남북한 우편물교환에 합의함으로써 46년 3월 15일 개성역에서 첫우편물교환이 이뤄졌던 것이다. 당시 회담에서는 38이남과 이북간의 한국인통행문제,운수기관통행,전력교환등 4개항목도 함께 합의됐으나 5개합의 사항중 유일하게 우편물교환만이 실질적으로 결실을 봤는데 이는 우편물교환의 비정치적 성격을 다시한번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1차 남북우편물교환은 남북간에 연락이 두절된지 반년이 넘었기 때문에 남행우편물이 1만여통,북행우편물이 무려 30여만통이나 됐다고 한다. 민족의 통일열망을 담아 「38우편물」이라 불렸던 이 남북우편물교환은 48년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과 함께 법적근거가 소멸된 이후에도 계속돼 6·25직전까지 모두 2백80여만통의 편지가 남북간에 오고갔다. 이와같은 과거역사에서 보듯 남북우편·통신 교류는 양측의 의지만 있으면 기술적으로는 언제든지 즉각 실천가능한 분야이다. 우선 우편의 경우 「38우편물」처럼 남북우편당국이 상대측의 주민이 수신인으로 되어있는 우편물을 수집해 상대측에 전달하며 우편물을 받은측은 자기측의 배달망을 통해 수신인에게 배달하는 방법으로 교류를 시작할수 있다. 전기통신의 경우 남북한을 연결하는 통신회선 시설이 먼저 갖춰져야 하는데 현재 남한은 판문점까지 음성전화 4백8회선과 TV중계용 5회선용량의 광케이블을 깔아둔 상태고 북한도 판문각까지 동축케이블을 묻어놓고 있어 판문점과 판문각까지 회선만 서로 연결한다면 전화통화도 즉시 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체신당국은 남북통신기술단을 설치,남북간 우편·전기통신교류의 기술적 문제를 해결하고 남북간 통신기술의 통일적 발전을도모한다는 계획이다. 이와같은 남북 우편·통신교류는 합의서에서도 명시했지만 완벽한 비밀보장이 전제돼야 한다.방송의 경우도 전파방해가 없어야 함은 물론이다.북한의 경우 개성에 대남전용의 NTSC방식 방송국을 갖고 있고 전화회선 70만회선 TV보유대수 2백만대로 남한의 1천5백만회선 1천만대와 큰 차이를 보여 교류의 손익을 따질 경우 우리가 불리할수도 있지만 교류의 목적이 상호 신뢰회복과 평화분위기조성에 있는 만큼 기본원칙에 충실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우편및 통신교류가 시작되면 서로간에 기능적인 상호의존관계가 생기면서 공통의 통합이익을 낳고 상호교류가 다른 분야로 확산돼 두 사회를 밀접하게 연결시킬 것이다. 전문가들은 현재 남북이 합의한 「교류」차원 관계에서 향후 「개방」차원으로까지 관계가 진전되기까지에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면서도 이번 합의를 계기로 차세대매체인 직접위성방송(DBS)이나 고선명TV(HDTV)방송방식 통일,대중국 또는 대소련 남북공동통신로건설,남북공동위성사용방안등을 모색해야 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 “한국엔 핵무기가 없습니다”/노 대통령 「핵부재」선언(사설)

    노태우대통령은 18일 『이 시각 우리나라의 어디에나 단 하나의 핵무기도 존재하지 않음』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노대통령은 지난 11월8일 「한반도의 비핵화」를 선언한바 있지만 이번의 선언으로 우리정부의 비핵화정책은 완전히 실현됐으며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또 하나의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했다.남북은 지난 13일 서울에서 열린 제5차 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분단46년만에 남북화해의 새 장을 열었으나 핵문제에서는 「한반도에 핵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을뿐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별도의 대표접촉을 통해서 논의하기로 했었다. 남한에 핵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은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정원식국무총리가 북한이 그동안 주장해온 남북의 동시핵사찰을 수용,북한의 순천비행장과 녕변핵시설,그리고 남한의 군산비행장을 동시에 시범사찰할 것을 제의함으로써 이미 알려진 것이지만 노대통령의 12·18선언은 북한의 결단을 촉구하고 이 땅에 다시는 분단과 전쟁,대결과 반목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확고한 결의를 보여준 것으로 평가된다. 우리정부는 핵문제를 다룰 남북대표접촉을 오는 23일 판문점에서 갖자고 제의해놓고 있다.북한은 지금 이 접촉에 대비한 대책을 숙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지만 이제는 망설일 이유가 없다.대한민국의 국가원수가 핵부재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이 마당에 무슨 명분으로 핵무기를 개발하고 사찰을 거부하겠는가. 우리는 오는 23일 예정대로 남북대표접촉이 실현되고 이 접촉에서 한반도의 핵문제가 같은 민족끼리 원만하게 타결되기를 기대하고 있다.남북의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후 미국이 핵문제를 합의서에 포함시키지 않은데 대해 불만을 나타낸 것으로 보도된 바 있지만 핵문제에 관한 한 한미간에는 긴밀한 협의를 해왔으며 아무런 이견도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따라서 미국은 노대통령의 핵부재선언에 대한 적절한 확인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제 우리는 북한의 반응과 태도를 주시하고 있다.판문점 접촉에서 「한반도 비핵화 공동선언」을 흔쾌히 수락하고 국제원자력기구와 핵안전협정을 체결해야 하며 아무런 조건없이 핵사찰을 받아들여야 한다.북한이 진정으로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원한다면 핵무기 개발을 즉각 포기해야 하며 핵재처리 시설과 농축시설도 없애야 한다. 북한이 노대통령의 핵부재선언에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핵무기 개발도 포기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지만 이를 거부할 경우 국제적인 압력은 가중될 수밖에 없으며 유엔안보리를 통한 강제사찰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핵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남북간의 화해와 관계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음을 여러차례 주장해 왔다.노대통령의 핵부재선언을 계기로 북한의 긍정적인 결단을 다시 한번 촉구하는 바이다. 남북합의는 하나의 약속일 뿐 평화 자체가 아니므로 북은 그 실천의지의 전제조건이 될 핵포기를 선언하고 이행하는 행동을 보여줘야 할 것이다.
  • 소 연방의 소멸과 한반도(사설)

    소비에트 사회주의공화국연방(USSR·소련)이 마침내 소멸된다. 고르바초프 연방대통령과 옐친 러시아공화국 대통령의 합의에 따른 것이다. 91년의 마지막 날인 오는 31일이 운명의 날이다. 낫과 망치로 상징되는 사회주의혁명의 붉은 깃발이 크렘린의 게양대에서 하강되면 그것으로 끝이다. 소련을 탄생시킨 1917년 볼셰비키 사회주의혁명 이후 74년만의 종언인 것이다. 물론 소련이라는 국가실체의 소멸은 아니다. 소비에트연방은 해산되지만 공화국들은 남는다. 옐친이 주도하는 독립국가공동체로 새 출발하는 것이다. 어떤 형태의 것이 될지 아직은 분명치 않다. 분명한 것이 있다면 공화국들의 위상이 거의 절대적으로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자유·민주·자본주의 공화국들의 필요에 따른 자발적 공동체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분명하고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공산주의 혁명의 공식 종언을 의미한다는 사실일 것이다. 연방의 붕괴보다도 공산혁명과 함께 탄생한 소비에트의 소멸,그리고 공산혁명 그 자체의 공식 종언에 더 큰 역사적 의미를부여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공산주의 소련은 소 국민은 물론 세계에 대해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이었던가. 돌이켜보면 고통과 희생의 강요로 일관되었던 74년의 공산혁명사였다. 공산주의 이장사회 건설의 명분밑에 얼마나 많은 인명의 희생과 고통의 강요가 요구되고 정당화 되었던가. 소련에서는 물론 동구와 중국대륙,그리고 한반도와 인도차이나에서 있었던 역사를 생각하게 된다. 모든 것이 잘못되고 실패였음이 드러나고 있다. 고르바초프의 페레스트로이카도 결국은 그런 자각에서 출발한 것이었다. 74년간의 공산주의가 세계에 기여한 것이 있다면 자본주의의 파멸을 막는데 도움을 준 사실 뿐이란 역설적 평가도 있다. 사회주의의 장점인 분배와 평등의 가치를 두고 하는 말이다. 공산권은 그로서 「빈곤의 평등」을 달성했지만 덕분에 서방은 복지 자본주의와 사회민주주의를 발전시킴으로써 공산혁명의 의미를 퇴색시키고 말았던 것이다. 소련과 동구,그리고 인도차이나가 모두 원점으로 돌아갔다. 누구와 무엇을 위한 공산혁명이요 희생이며 고통이었단 말인가. 중국과 북한은 그런데도 여전히 사회주의 고수를 다짐하고 있다. 그러나 중국도 정치사회주의와 경제자본주의라는 정경분리의 방향이다. 시간은 걸리겠지만 결국 소련등의 방향을 향하고 있다. 공산혁명의 포기와 민주화개혁의 변화는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듯 어쩔 수 없는 세계사적 시대의 요구인 것이다. 소련의 소멸을 보면서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분단과 골육상쟁의 한반도는 공산혁명의 가장 큰 희생자의 하나였다. 소련의 소멸이 상징하는 시대의 요청에 부응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다. 최근의 남북한 합의도 그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이데올로기는 이미 역사의 유물이요 골동품이 되어 버렸다. 어떻게 하면 이 무의미해진 분단을 가장 적은 혼돈과 희생과 비용으로 종식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 남북한의 공통된 역사적 소임이다. 북한의 질서있는 민주화 개혁의 달성이야말로 가장 바람직한 방법이 아니겠는가. 그것을 돕는 것이 우리의 할 일일 것이다.
  • 북,합의서 실천때/남북 대화 큰 진전/정부,일에 전달

    정부는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채택한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발효·실천되어야만 일­북한수교교섭의 전제조건의 하나인 남북대화의 의미있는 진전을 충족시킨다는 입장을 일본정부에 17일 공식 전달했다. 유종하외무차관은 이날 상오 일­북한수교회담의 일본측 수석대표인 나카히라 노보루(중평립)일외무성본부대사를 면담한 자리에서 『남북한이 합의서를 채택,서명한 것은 분단이래 처음으로 평화공존을 정립키로 했다는 점에서 획기적이라 할수 있지만 북측의 실천의지가 행동으로 나타날 때까지는 남북대화의 의미있는 진전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 「기금관리」등 16개 법안 통과/국회 본회의

    ◎의원선거법은 오늘 전체회의 처리 국회는 16일 본회의를 열어 정원식국무총리로부터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대한 보고를 듣고 기금관리기본법안,자동차관리법개정안,국회에서의 중계방송등에 관한 규칙안등 16개 법안과 2개 규칙안을 통과시켰다. 본회의에서는 또 이자헌민자당원내총무를 재석의원 2백80명 가운데 2백66명의 찬성으로 국회운영위원장으로 선출했다. 그러나 이날 민자당이 본회의에서 채택할 것을 추진했던 남북 합의서에 대한 지지결의안은 민주당측이 내년 1월10일이후 임시국회를 소집해 심의할 것을 주장함에 따라 채택하지 못했다. 한편 외무통일위및 통일특위연석회의에서 최호중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남북관계기본합의서는 국가간 조약이 아니라 남북한간 특수관계에 따른 잠정적인 협정의 성격을 띠고 있다』면서 『따라서 국가간 조약에 필요한 국회비준동의절차를 밟을 경우 분단고착화의 우려를 낳을 소지가 크고 물자교류·합작투자등도 GATT등 국제적인 규제를 벗어나기 힘든 난점이 있다』고 답변했다. 한편 여야는 내무위제출선거법개정안내용중 현행 3개월에서 1년으로 늘리기로 했던 선거사범 공소시효를 6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 기습능력 제거등 군축 가시화 급선무(남북「화해시대」로 가는가:4)

    ◎불가침/병력등 후방이동… 검증 통해 신뢰 쌓아야/군사훈련 참관·DMZ공동감시 실효기대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남북한이 상호 침범을 않기로 합의함으로써 지난 53년 7월27일 휴전협정체결이후 38년 5개월만에 제2의 전쟁을 막고 평화를 보장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게 됐다. 광복이후 분단과 6·25전쟁을 겪은 남북한에게 가장 절박한 과제는 무한정한 군사력증강경쟁을 하지 않고 군사대결을 푼 상태에서 평화를 정착시키는 문제였다. 6·25전쟁은 당사자인 한국이 제외된채 국제연합군을 대표한 미국과 조선인민군최고사령관·중국인민지원군사령관등 미·조·중 3국의 휴전협정으로 종결됐다.이때문에 한국의 지도자들은 남북한간에 불가침협정이나 평화조약을 체결하는 것이 긴장완화를 위한 상징적인 조치가 될 것이라고 주장해 왔다. 북한은 84년 이후 미국과는 평화조약,한국과는 불가침선언을 하자고 제안해오다 90년 10월 남북고위급회담에서 불가침선언에 조인할 것을 촉구했었다. 북한이 주장해온 미국과의 평화협정이나 한국과의 불가침선언에 의해 한반도에 안정과 평화가 단시간안에 정착되는 것은 아니다. 평화협정을 미국과 맺어야 하겠다는 북한의 외교정책은 『조선문제는 외세에 의존하지 말고 조선사람끼리 해결하자』는 그들의 주장에 비추어 볼 때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북한의 속셈은 평화협정내용에 주한미군철수를 포함시킴으로써 이 협정의 비준을 통해 주한미군철수를 달성하겠다는 것이다. 북한은 올해초 유엔군사령관이 군사정전위원회 유엔군측수석대표를 한국군장성으로 임명한데 대해 한국은 휴전협정 당사국이 아니라는 이유를 내세우며 군사정전위원회 개최 제의를 해오지 않고 있다. 노태우대통령은 지난 88년 유엔총회연설을 통해 『한국은 결코 북한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선언을 한뒤 90년8월에는 한국정부가 8월15일을 전후해서 5일간 남·북한자유왕래를 허용하기위해 비무장지대내의 휴전선을 개방하겠다고 발표한바 있다. 노대통령의 이런 선언과 제안은 올림픽개최이후 북방정책의 결실에서 오는 외교적인 자신감을 바탕으로 한 한반도통일정책의구체적인 실천방안이다. 남·북한간 불가침합의가 이루어졌다고해도 휴전선을 경계로 1백만명이상의 군대가 대치하고 있는 상태에서 평화가 보장된다고 할수 없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불가침조약이 침략전쟁을 예방하지 못했다는 것은 너무나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번 합의서에 명시된대로 ▲무력불행사 ▲분쟁의 평화적 해결 ▲군사당국자간의 직통전화설치운영등은 차후 구성될 군사공동위원회에서 협의하게 된다. 군사공동위원회는 휴전이후 최초로 남·북한의 대장급 장성을 수석대표로한 5∼6명의 장성급 장교를 대표로 군사적인 신뢰구축과 분쟁해결·군축실현문제를 추진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인 과제는 ▲대규모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및 통제 ▲비무장지대의 평화이용 ▲군인사교류및 정보교환 ▲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 ▲단계적 군축실현 ▲검증문제이다. 대규모군사훈련의 사전통보와 참관은 나토와 바르샤바조약기구의 선례를 따를 수 있으며 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은 휴전협정 1조와 11조의 규정대로 공동감시 소조의운용으로 실효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군인사 교류및 정보교환은 가장 초보적인 단계로 남북 해군의 비무장 상호교환 방문과 군사공동위원회의 남북한 군사시설방문및 인적·정보교환,군체육부대의 친선체육대회등을 가상할 수 있다. 불가침 합의에 따른 가장 중요한 과제는 상호기습능력을 제거하기 위한 공격무기와 병력의 후방배치를 포함한 단계적인 군축실현이다. 한국의 군비통제방향은 제1단계 신뢰구축에 이어 제2단계 군비제한,제3단계 군비축소 등 3단계 과정을 설정하고 있다. 신뢰구축이 이루어진 단계에서 탱크와 미사일·잠수함등 공격무기를 상호 동수보유 원칙에 따라 적게 보유한 측을 기준으로 보유수준을 설정하고 초과분을 폐기하며 무기감축에 따른 운영병력도 감축하는 것이 군비제한 단계이다. 군비제한단계 이후의 군비축소 단계에서는 무기및 병력을 상호 균형감축하고 병력배치를 휴전선에서 후방으로 이동,공세적인 운용을 통제한뒤 상호 감시기지를 운영하면서 현장검증을 실시하는 것이다. 남북한의 군축실현을 위해서는상호 신뢰구축과 함께 쌍방의 군사력을 파악할 수 있는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거짓없는 솔직한 군사정보와 자료를 제공하고 군장교단의 친선교류를 통해 남북의 믿음을 확보하는 길이 불가침 합의에 의한 군축협상의 출발이 된다. 이러한 상호신뢰 없이는 남북군사공동위원회는 또 하나의 군사정전위원회와 같은 비생산적·소모적 논쟁만 계속하게 될 것이라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비록 오랜 세월이 소요된다고 해도 불가침 합의에 따른 군축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 중국,「해협회」 공식 발족/대 대만 공식통로 마련

    【북경 AFP 연합】 중국은 16일 반관영기구인 해협양안관계협회(해협회)를 공식 출범시킴으로써 대만과의 직교역과 운수 및 통신관계 개설등 실질적인 쌍무문제를 논의할 수 있는 통로를 분단 42년만에 처음 열었다. 이날 출범한 해협회는 명칭상으로는 민간기구이나 정부의 지원을 받으며 역시 대만의 반관영기구인 해협교류기금회(해기회)의 상대기구가 된다. 대만문제 담당 최고위관리들과 산업계 지도자등 65명의 회원으로 구성된 해협회의 설립으로 중국은 대만과 공식적으로 비정치적인 협상통로를 갖게됨으로써 본토와 직접접촉을 금지하고 있는 대만의 정책을 우회하여 양국간의 쌍무문제를 협의할수 있게됐다.
  • “「핵협상」서 평양의 참뜻 드러날 것”/해외논평

    ◎북한 핵사찰 수락여부 의문 여전 ▷미 WP지◁ 워싱턴 포스트지는 14일 남북한합의서 채택에 관한 해설기사에서 한국이 협상을 서두른 나머지 북한의 핵무기 보유 가능성을 높였다는 우려를 서울의 언론과 전문가들 사이에 불러 일으켰다고 보도했다. 포스트지는 이 협정이 서울과 평양간의 가장 큰 쟁점인 북한의 핵개발을 정면으로 다루지 않았다고 지적하며 김일성과의 역사적 정상회담을 열망하는 노태우대통령이 북한에 국제적인 핵사찰 요구를 빠져 나갈수 있는 이유를 제공한것이 아니냐는 의문을 많은 옵서버들이 나타냈다고 보도했다.포스트지는 서울의 일부 언론의 보도를 인용,한국정부는 평양으로부터 핵문제에 관한 주요 양보를 끌어내지 않고 경제협력 협정 등을 타결함으로써 큰 실책을 범했다고 논평했다. 포스트지는 한국과 일본의 관리들은 한국측 처사가 북한에 대한 국제적인 핵사찰 압력을 약화시킬 것으로 보지 않았으며 서울 주재 한 서방외교관도 불가침협정 체결이 가져올 중요한 신뢰구축의 이익에 주목했다고 보도했다. ◎휴전이래 역사적 사건될지 주목 ▷미 NYT지◁ 뉴욕 타임스지는 14일자 1면 주요기사로 남북한이 13일 합의서명한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가 제대로 지켜지리라고 믿는 사람은 서울에 많지 않을 것같다』고 보도했다. 서울발로 보도된 이 기사는 합의서가 막상 서명된 13일에도 서울의 분위기는 신비감이나 축하분위기마저 결여된 느낌이라면서 남북한간에 과거에 결코 이루어진 일이 없는 이번과 같은 괄목할만한 협정내용을 김일성정부가 지키리라고 믿는 사람은 서울에 불과 몇사람 뿐이라고 썼다. 이 신문은 한 서방외교관의 말을 인용,이번 「합의」가 휴전이래 가장 큰 역사적 사건이 될 것인지 아니면 하나의 휴지조각에 불과할 것인지는 좀더 시간이 지나봐야 할것이라고 지적하고 남한측의 기본전략은 북한에 총리회담에서 얼마간 양보함으로써 북한이 점진적으로 핵문제 해결에 접근해오도록 하려는 것일지도 모르나 북한측에 이번 「합의」는 가중되는 핵압력을 따돌리려는 하나의 연막일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남측,독일서 교훈… 통일 안서둘러 ▷프랑스 로몽드지◁ 지난 10월 캄보디아 평화협정 체결후 마지막 냉전의 불씨였던 한국이 데탕트를 체험하게 되는가.전쟁 뒤 30년,분단 뒤 46년이 지나 한반도는 마침내 평화를 꿈꿀 수 있게 되었다.화해 불가침 교류 협력 합의서가 13일 서울에서 두 체제의 총리 사이에 조인되었으며 이는 사실상 분별있는 첫출발이다. 이번 합의서 조인은 화석화하고 소외된 북한 체제에게는 심리학적인 성공이다.그러나 평양의 의도가 명확히 확인되기 위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에 대한 남북한의 공식적인 합의가 이뤄져야 한다. 처음으로 두 한국의 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당분간 재통일은 늦춰지게 되는 것 같다.북한은 자신들이 말하는 「괴뢰」 남한 정부를 흡수하는 연방제 통일안을 실현하는데 성공하지 못했다.독일 통일의 정치적 재정적 타격에 깊은 인상을 받은 서울은 북한을 안아들여 통일하는 일을 이전보다 서두르지 않게 되었다. ◎통일 돌파구여부는 아직 미지수 ▷독 디벨트지◁ 남북한 총리는 13일 서울에서 화해·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에 서명했다.이로써 15개월 전에 시작된 총리회담은 최초의 의미있는 성공을 거두었다.그러나 이것이 진정 화해의 전기가 될는지,그리고 장기적으로 통일의 돌파구가 될지는 아직 미지수다.특히 북한으로서 껄그러운 것은 바로 교류에 관한 합의다. 북한측은 자신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무역과 경제협력은 그럭저럭 수용할 수 있으나 남북한간의 여행,이산가족 방문,우편·전화연결,지금까지 분단되었던 도로와 철도의 연결,TV·라디오 방송을 포함하는 상대방의 미디어 수신허용은 참 난처한 것이다. ◎남북한관계 비약적인 진전 기대 ▷중 신화사◁ 중국 신화사통신은 14일 남북총리회담에서 「남북간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 협력에 관한 합의서」가 정식으로 서명된데 대해 『남북한관계(조선 북남관계)는 비약적인 진전을 보이고 있다』며 높이 평가했다고 일 교도통신이 북경발로 보도했다. 평양발 기사는 이번 합의에 대해 『통일 3원칙을 제창한 19 72년 7·4공동성명 이후 중요한 것이며46년동안의 분열에서 쌍방이 처음으로 서명한 「포괄적인 합의」』라고 지적했다. 신화사통신은 또 『남북한이 문화·스포츠등 각종 교류를 깊게하고 한반도의 긴장완화와 평화통일을 요망하는 국제사회의 호소에 부응,유엔에 동시가입하는 등 긴장완화를 위한 일련의 흐름이 이번 합의로 이어졌다』고 분석했다. 신화사통신은 이어 핵관계에 대해서도 『쌍방이 합의에 달하면 한반도 정세에서 보다 한층 긴장완화에 도움이 된다』고 언급,한반도 비핵화의 조속한 합의에 기대감을 표명했다. 그러나 이 기사는 『이번 합의내용을 현실적인 것으로 하기 위해서는 쌍방이 노력을 계속하고 국제사회가 지원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 「합의서」 초당적 지지 요청/노 대통령,3부요인·여야대표에

    ◎총리회담 성과 설명/경제인도 접견… 남북교류 활성화 협력 당부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상오 박준규국회의장 김덕주대법원장 정원식국무총리등 3부요인과 조규광헌법재판소장,민자당의 김영삼대표최고위원 김종필·박태준최고위원,민주당의 김대중·이기택공동대표등 여야지도자들을 청와대로 초청,조찬을 함께 하며 제5차남북고위급회담 성과를 설명하고 남북문제에 있어서의 초당적이고 거국적인 협조를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자리에서 『이번 회담에서의 합의서 채택으로 분단 46여년에 걸친 단절과 대립의 남북관계를 교류와 협력의 관계로 전환시키는 전기가 마련됐다』고 말하고 『국회가 이번 합의서를 지지하는 결의를 해달라』고 요청했다. 노대통령은 『이제 남북관계도 진전된 만큼 여야도 13대 국회를 원만히 마무리 지어 정치권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이수정청와대대변인은 노대통령이 연형묵북한총리와의 별도 면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의 조기성사를 희망했다는 보도와 관련,『그 문제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여러차례에 걸쳐 입장을 표명했기 때문에 새로 거론할 필요가 없었으며 지금은 정상회담을 하자고 할 시점이 아니다』라고 밝혔다. ◎15대 재벌 총수 접견 노태우대통령은 14일 상오 청와대에서 정주영현대그룹명예회장,이건희삼성·구자경럭키금성·김우중대우그룹회장 등 국내 15대 그룹회장들을 접견,제5차 남북고위급회담결과를 설명하고 남북경제교류 활성화에 대비한 경제계의 협조를 당부했다. 노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이번에 합의서가 채택되기까지에는 우리의 경제력을 오늘같이 키운 경제계의 덕이 크다』고 치하하고 『앞으로 남북관계의 진전과 함께 남북간의 경제교류와 협력관계도 공식적으로 진행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노대통령은 『내년 한햇동안 우리경제가 안정성장을 이루는 내실을 다져야만 통일도 앞당길 수 있다』고 지적,『이를 위해 정부는 내년의 선거가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기업도 시대상황의 변화에 따라 새로운 인식을 가져야 한다』면서 『특혜등 비정상적인요소들은 감추어질 수도 없느니 만큼 기업은 법과 기업윤리를 지켜야 할 것이며 법을 어기면 제재를 받을 수 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 남·북 합의와 주변국 책임(사설)

    남북한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는 미·일·중·소등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국들로부터도 큰 환영을 받고있다.북한의 핵문제에 관한 구체적 합의가 없는데 대해 아쉬움을 보이면서도 그것은 세계의 마지막 냉전지대인 한반도에도 마침내 화해와 공존의 탈냉전이 시작되고 있음을 알리는 최초의 구체적 신호라는 환영의 평가를 하고있다. 세계는 탈냉전을 지향한지 오래다.동아시아의 그것은 한반도에서 비롯되어야 하나 북한의 개혁거부와 핵무장고집등으로 지지부진 했다.남북한관계는 완화보다는 긴장으로 치달아온 느낌이다.그것이 이번합의로 방향전환을 하게된 것이다.합의내용과 정신이 잘 지켜지고 존중된다면 남북한관계는 급개선될 것이며 그것은 곧 한반도를 둘러싼 동아시아의 탈냉전을 가속시킬 것이 틀림없다.국제적으로도 크게 환영해야 할 바람직스런 사태의 전개인 것이다. 당장에 예상되는 것은 남북한과 미·일·중·소의 관계개선 가능성이다.그동안 미일은 남북한관계개선을 대북한관계수립을 위한 전제조건의 하나로 삼아왔다.한중관계는 그러한 미일과 북한관계부진 때문에 지장을 받아왔다.이번합의는 그러한 전제조건의 하나를 제거하는 것이된다.따라서 이번합의는 남북한관계뿐아니라 남북한과 그 주변국들과의 관계에도 큰 변화를 가속시킬 가능성이 충분히 있는 것이다. 미일과 북한의 관계개선은 한반도의 남북한관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탈냉전을 위해서도 유익할 것이다.따라서 남북한관계에 보조를 맞추고 증진을 유도하며 지원할 미일과 북한의 관계개선을 우리는 반대하지 않는다.그러나 한가지 경계하고 싶은 것은 주변국들은 어떤 형태로든 남북관계를 저해하는 결과를 가져올 행동은 조심해야 할 것이라는 점이다.특히 일본은 경제적 이익에 민감하고 남북한의 화해·협력·통일 보다는 적당한 대립갈등을 바라는 입장이라는 경고도 있어 왔다.북한은 일본의 돈 때문에 이번 합의를 서둘렀다는 해석도 있었다.만에 하나 이런 북한을 상대로 일본이 책임을 망각하고 엉뚱한 속셈으로 남북관계에 대한 발언권의 강화나 노린다면 그것은 큰 불행일 것이다.다행히 미일 모두 우리보다더 신중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합의사항의 성실한 이행을 지켜보겠다는 것이고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확실한 결단이 없는 이상 북한과의 관계에는 진전이 없을 것임을 천명하고 있다.북한은 경제사정이 급박하고 미일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하다면 우선 이번 합의의 내용과 정신을 충실히 지키고 존중할 뿐 아니라 핵무장포기의 확실한 결단도 빨리 내려야 할 것이다.조건과 명분은 이제 충분히 갖추어졌다고 생각한다. 끝으로 우리는 마침내 시작하려 하는 이 엄청난 변화의 문턱에서 한반도문제에 대한 주변국들의 책임을 다시한번 강조해 두고 싶다.그들은 한반도 분단 및 대립갈등과 냉전에 중요한 책임이 있는 관계국들이다.그러므로 이들은 그 해소를 유도하고 지원해야 할 국제적 책임과 의무가 막중하다.동시에 그러한 의무를 빌미로 새로운 이익을 추구하거나 그로인해 남북한관계를 저해해서도 안될 것이다.미·일·중·소는 이 점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 합의서 하룻만에 위반/로동신문 주장

    【도쿄 AFP 연합】 북한은 14일 남한정부가 여전히 전쟁과 한반도의 분단을 원하고 있다고 주장하면서 남한이 전날 체결한 남북합의서를 하룻만에 위반했다고 비난했다. 이날 북한 공산당 기관지 로동신문은 도쿄에서 수신된 관영 중앙통신이 보도한 기사에서 남한정부가 이번 제5차 남북고위급 회담중 북측대표단에게 북한을 비방하는 영화를 관람케 함으로써 합의서 내용을 위반했다고 주장했다.
  • “통일 대장정의 초석을 놓았다”

    ◎「합의서」 타결 의의와 전망/긴급대담/신뢰 다진후 경협등 실질 조치를/「흡수통일론」 자제로 북 우려 불식해야/북,개방·집안단속 이중정책 펼듯 남북한이 13일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한 것은 분단 이후 남북관계를 최초로 정상화시키는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평화통일로 가는 커다란 디딤돌이 될 이번 합의에 즈음해 서울신문은 남북문제 전문가인 나종일(경희대 대학원장)서병철(외교안보연구원)두 교수의 긴급대담을 통해 합의를 이룬 배경과 우리의 통일과업수행에 미칠 파장을 짚어 본다. ▲나종일교수=역사적인 이번 남북합의를 보고 문득 깨달은 사실은 남북관계가 20년을 주기로 크게 개선됐다는 사실입니다. 6·25이후 거의 20년만인 지난 72년 7·4공동성명을 채택한 바 있는 남북이 또 다시 20년만에 평화정착의 획기적 전기를 마련했습니다.이번 합의도 그동안 남북관계에 기복과 난관은 많았지만 그래도 점진적 개선이 이뤄져 왔다는 연장선 위에서 만들어졌다고 보아야 합니다.▲서병철교수=남북간의 이번 극적 합의는 우선 공산주의이념이 더이상 아무런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일반적 추세와 함께 이념보다는 민족주의가 더 우선시되는 세계적 경향이 합의배경으로 작용한것 같습니다. 또한 독일통일이후 독일이 유럽의 핵심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는것도 우리 민족에게 자각의 계기를 제공했다고 봅니다. 북한으로서는 현재 당면한 식량문제,원자재 고갈로 인한 경제난등 어려움이 산적해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남북관계회복을 통해 서방진영과의 관계개선을 꾀할 것으로 보입니다. ▲나교수=분단 반세기를 되돌아 보건대 남북간의 갈등은 평화통일등 원칙적 문제라기보다는 그같은 원칙에 접근하기 위한 현실적 이해관계 때문에 파생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핵문제해결이나 최소한의 평화공존의 장을 마련하는 것등 현실적 이해관계에서도 공통영역이 확보됐다는 것을 이번 합의의 배경으로 볼수 있습니다. ▲서교수=남북간 합의도달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 것은 핵문제입니다.한반도 비핵화를 위한 공동선언이나 주한미군 시설 비핵화선언 등은 핵은 가지고 있더라도 실제로 활용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국제문제에 있어서도 비난의 대상이 될 뿐이기 때문에 이것을 십분 활용,돌파구를 찾았던 것으로 보입니다. 북한이 지금까지 호전적이란 비난을 받아온 것도 핵문제와 관련,북한이 핵사찰을 거부해 왔기 때문입니다.북한의 핵사찰문제는 대일·대미관계개선의 선결조건이었던 만큼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작용했습니다. ▲나교수=핵문제에 있어서 양측이 합의영역을 확보한 것이 이번 합의의 촉진제로 작용한 것 같습니다. 북한은 그동안 독특한 자신들의 체제전반에 대한 안전보장을 확보하기 위해서 핵보유 유혹을 받아 왔으나 이제 이같은 핵정책을 유지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닫지 않았나 싶습니다. 즉 국제교류를 통한 경제발전을 위해서는 그같은 핵정책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고 할수 있지요. 물론 소련사태 등 국제정세의 변화와 걸프전에서 재래식 전투능력의 우세를 확인한 미국이 더이상 전쟁억지력으로서 주한미군의 핵보유가 필요없게 된 것도 합의의 요인이 됐다고볼수 있습니다. ▲서교수=이번 합의는 결국은 희망사항을 제도화한 것이기 때문에 조만간 협력시대가 가시화될 것으로 보입니다. 즉 상호 군비감축을 통해 경제회복과 상호보완적 산업구조를 발전시켜 나갈 것이며 대외적으로도 한민족의 우월성을 과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북한의 안정이 남북한 신뢰구축에 도움이 되는 만큼 장기적으로 통일분위기를 조성해 나가면서 북한이 체제위협을 느끼지 않도록 주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교수=이번 극적인 합의 이후에도 북한은 당분간 이중적 정책을 유지할 것으로 보입니다.즉 개방을 추구,외부세계에 적응해 나가면서 외부와의 교섭과정에서의 충격이 주민들에게 전달되지 않도록 완화하는데 총력을 경주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북한이 80년대말부터 밀어닥친 사회주의권의 몰락,사회주의국가경제의 침체,북한외교를 우회하는 우리의 적극적 북방정책등 자신들을 둘러싼 충격적인 변화에 지나치게 허둥대지 않고 대응하고 있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다행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서교수=이번에 남북이 합의에 도달한 것은 양쪽이 상호 이념에서 탈피해 민족주의를 중시하고 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인만큼 앞으로 가시적인 진전이 있을 것으로 기대됩니다. 4개 분과별로 실질적인 조치가 이루어질 것이며 남북한 정상회담을 통한 교류증진이 보다 활발히 전개될 것으로 보입니다. ▲나교수=서교수님께서 통일에의 행복한 시나리오를 말씀하신데 대해 저도 원칙적으로 공감합니다만 그리 밝지 않은 징후도 있다는 것을 직시해야 할 것입니다. 예컨대 통일과정에서 경제적 비용은 감수할 수 있을지 모르지만 문화적 이질감은 견디기 어려운 고통일 것입니다. 남한은 많은 가구에서 자동차를 보유하는등 소비수준이 높아졌음에도 아직 선진국의 생활수준이나 정치를 부러워하는 「부러움의 문화」에 젖어 있습니다.이에 반해 북한 「인민」들은 바깥세상을 모르니까 열악한 삶의 질에 만족하는 「만족의 문화」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각적인 교류와 개방으로 북한이 만족의 문화에서 깨어나지 않는한 통합과정에서 상당한 고통이 수반될지도 모릅니다. ▲서교수=북한이현재 가장 우려하고 있는 것은 독일의 경우와 같은 흡수통일론입니다. 북한은 국민들이 자유사상에 물드는 것을 경계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친 「바람」이 들어오는 것은 반대할 것입니다. 때문에 우리의 입장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남북 신뢰구축의 틀이 마련된 이상 분위기 조성에 노력하면서 시간적 여유를 갖고 대응하는 것이 바람직 합니다.
  • “통독의 기폭제” 동서독 기본 조약/베를린서 본 통일 “독일지석”

    ◎대결관계 벗어나 신뢰·협조 계기로/대표부 교환… 인적·물적교류를 촉진/분단구조 다른 한반도,이제야 대화 튼 셈 우리와 같이 분단의 역사속에서 19년 앞서 동서독 기본조약을 체결하고 18년만에 통일을 이룩한 독일은 어떤 길을 걸어왔으며 우리가 배워야할 점은 무엇인지를 알아본다. 동서독은 72년12월21일 「동서독기본조약」을 체결함으로써 대결의 관계에서 신뢰와 협조의 기틀을 마련했다.20개항으로 된 기본조약은 서두에 「유엔헌장의 정신에 따라 양독은 동일한 의무를 갖는 선린의 관계를 유지해 나간다」고 기본정신을 밝히고 상호 무력과 비방의 포기를 천명했다. 「선린관계」의 실천조항으로서는 ▲현경계선의 인정과 불가침 ▲상대방영토에 대한 국가주권인정 ▲내정및 외교정책의 독립성과 자결권 존중을 주요 내용으로 하고있다.이밖에 동서독은 유럽국가들과 공산진영을 막론하고 서로 우호관계를 맺기로 합의했으며 국제협약이 규정하는 군사력의 제한및 군비축소에 협력하기로 했다.동서독은 또 관계개선을 위해 실무적이고 인도주의적인문제에 관해서는 추후로 규범을 마련해 나가며 본과 동베를린에 대표부를 설치 운영키로 하는 한편 언론인들의 취재허용,인적 교류절차의 간소화,상호 유엔가입문제등도 의정서에 규정했다. 기본조약을 맺음으로써 동독은 서구 국가로부터 잇따라 국가로서 인정을 받게 되었으며 73년9월 동서독이 나란히 1백33번째와 1백34번째로 유엔에 가입,산하 기구에서 긴밀히 활동하며 협력관계를 다져나갔다.서독도 나치의 피해국들인 헝가리·폴란드·체코등과 우호조약을 맺고 막강한 경제력을 바탕으로 영향력을 확대,89년 동독국민들의 헝가리 대탈출 때 공산국들이 동독으로 송환하지 않고 서독으로 보내 베를린장벽 붕괴와 90년8월 동서독 통일조약과 독일통일로 이어지는 대드라마의 주인공이되는 기초를 쌓았다. 동독은 특히 기본조약체결이후 서독으로부터 경제지원을 받을 수 있었지만 다른 한편 인적·정보교류의 확대로 체제의 약점이 부각돼 국민들로부터 괴리되고 「하나의 독일」을 추구하는 서독측의 끈질긴 공세로 수세에 몰리기 시작했다.서독의 우월성에압도되고 재정지원에 중독이 돼 이미 서독의 자장권에서 헤어날 수가 없게 되었다. 동서독관계는 기본적으로 남북한관계와는 다르기 때문에 각기 기본조약 또는 「합의서」를 채택하게 된 시대적 상황이 중요시된다.남북합의서는 동서독의 기본조약과 마찬가지로 상호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의 정신이 공통이지만 한반도와 독일문제는 지리적 분단을 제외하고는 비교의 기준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동서독기본조약은 2개의 독일을 인정한 외교적 합의로 「분단」이라든지 「통일」이라는 단어가 한마디도 없는 것이 특징이다.이는 소련에 의한 인조국가였던 동독이 처음부터 독일은 분단된 것이 아니라는 이른바 울부리히트의 새로 태어난 「2개의 독일론」으로 북한이 해방이후 줄기차게 외쳐온 「하나의 조선」정책과는 상이하다.패전국인 동서독은 2개의 독일이라는 현실을 수용하고 전승국들의 통제속에서도 계속 교류를 통해 게르만민족의 동질성을 추구해 왔으나 남북한관계는 처음부터 요새화된 휴전선을 경계로 철저히 분리된 상태였기 때문에이제 막 대화의 길이 트였다고 통일과 연계시키는 것은 무리라는 지적이다.
  • 남북합의 실천의지 뒤따라야/북은 핵에 대한 미련 버리라(사설)

    남북은 서울에서 열린 제5차고위급회담에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를 채택,분단 46년만에 한반도의 평화정착을 위한 획기적인 기틀을 마련했다.그러나 핵문제에 있어서는 「이땅에 핵이 존재해서는 안된다」는데 인식을 같이 했을 뿐 그 실천 방법에서는 견해차를 좁히지 못해 미결의 장으로 남겨 놓았다.남북의 총리는 13일 기본합의서에 서명한뒤 핵문제는 이달안에 별도의 기구를 구성,계속 논의키로 했다고 발표했다.우리는 핵문제가 타결되지않고는 남북관계개선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견해를 여러차례 표명해 왔고 기본합의서가 채택된 이 시점에서도 같은 견해를 갖고 있다. 남한의 정원식국무총리는 이번 서울회담에서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을 제안하면서 북한이 그동안 줄기차게 주장해온 남북동시핵사찰수용의사를 천명했다.정총리는 92년1월31일까지 북한의 순천비행장과 영변의 핵시설,그리고 남한의 군산비행장을 시범사찰하자고 제의했다.그러나 북한의 연형묵정무원총리는 「한반도비핵지대화」주장을 되풀이 했을 뿐 새로운 제안을 내놓지 않았다.북측으로서는 남측의 전격적인 제안에 놀랐고 이때문에 합의서 채택이 급진전했으며 핵문제를 다룰 별도의 기구구성에도 동의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들의 주장을 대폭 수용한 마당에 종래의 주장만을 고집할 수 없었던 것으로 짐작된다.앞으로 구성될 「핵기구」는 남한의 「한반도비핵화선언」과 북한의 「한반도비핵지대화」를 놓고 절충점을 찾아 나가겠지만 북한의 태도여하에 따라서는 쉽게 타결될 수 있을 것이란 것이 우리의 희망적인 관측이다.북한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사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강변하고 있지만 영변등지에 핵시설이 있고 빠르면 92년안에 핵무기를 보유하게 될 것이란 것은 여러경로를 통해 확인되고 있다.북한이 지금이라도 핵무기개발을 포기할 경우 한반도의 핵문제는 저절로 해결된다.남과 북에 핵무기가 없어야 한다는 것은 우리겨레의 생존을 위한 대전제이다.남쪽에 핵무기가 있었다면 이미 철수가 완료됐거나 가까운 시일안에 그렇게 될것이란 것이 이번 회담에서 확연하게 드러났다.따라서 북한이 핵시설동시사찰에 동의하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협정에 서명하면 한반도의 비핵화는 실현되는 셈이다.북한이 주장하고 있는 비핵지대화는 한반도를 핵우산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하려는데 목적이 있지만 그것은 주변 핵보유국가들과의 협의없이는 불가능하다.북한도 이점을 잘 알고 있을 것이다.때문에 한반도의 비핵화를 먼저 선언한 다음 주변의 핵보유국들과 비핵지대화를 논의하는 것이 순서라고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개발 뿐만 아니라 엄청난 파괴력을 지닌 재래식무기생산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무기수출이 외화벌이의 절반을 차지하고있는 절박한 실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무기수출에 의한 외화벌이 보다는 남북의 경제협력과 교류를 확대하는 것이 경제난 타개를 위해 훨씬 효과적이고 합리적인 방안임을 명심해 주었으면 한다.
  • 남북 화해·불가침·교류협력 합의서/전문

    남과 북은 분단된 조국의 평화적 통일을 염원하는 온 겨레의 뜻에 따라 7·4남북공동성명에서 천명된 조국통일 3대원칙을 재확인하고 정치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여 민족적 화해를 이룩하고 무력에 의한 침략과 충돌을 막고 긴장완화와 평화를 보장하며 다각적인 교류·협력을 실현하여 민족공동의 이익과 번영을 도모하며 쌍방 사이의 관계가 나라와 나라사이의 관계가 아닌 통일을 지향하는 과정에서 잠정적으로 형성되는 특수관계라는 것을 인정하고 평화통일을 성취하기 위한 공동의 노력을 경주할 것을 다짐하면서 다음과 같이 합의하였다. ▷제1장 남북 화해◁ 제1조 남과 북은 서로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고 존중한다. 제2조 남과 북은 상대방의 내부문제에 간섭하지 아니한다. 제3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한 비방·중상을 하지 아니한다. 제4조 남과 북은 상대방을 파괴·전복하려는 일체 행위를 하지 아니한다. 제5조 남과 북은 현 정전상태를 남북사이의 공고한 평화상태로 전환시키기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하며 이러한 평화상태가 이룩될 때까지현 군사정전협정을 준수한다. 제6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대결과 경쟁을 중지하고 서로 협력하며 민족의 존엄과 이익을 위하여 공동으로 노력한다. 제7조 남과 북은 서로의 긴밀한 연락과 협의를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후 3개월안에 판문점에서 남북연락사무소를 설치·운영한다. 제8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후 1개월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정치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화해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2장 남북 불가침◁ 제9조 남과 북은 상대방에 대하여 무력을 사용하지 않으며 상대방을 무력으로 침략하지 아니한다. 제10조 남과 북은 의견대립과 분쟁문제들을 대화와 협상을 통하여 평화적으로 해결한다. 제11조 남과 북은 불가침 경계선과 구역은 1953년7월27일자 군사정전에 관한 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과 지금까지 쌍방이 관할하여 온 구역으로 한다. 제12조 남과 북은 불가침의 이행과 보장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후 3개월 안에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구성·운영한다.남북군사공동위원회에서는 대규모 부대이동과 군사연습의 통보및 통제문제,비무장지대의 평화적 이용문제,군인사교류및 정보교환문제,대량살상무기와 공격능력의 제거를 비롯한 단계적 군축실현문제,검증문제등 군사적 신뢰조성과 군축을 실현하기 위한 문제를 협의·추진한다. 제13조 남과 북은 우발적인 무력충돌과 그 확대를 방지하기 위하여 쌍방 군사당국자 사이에 직통전화를 설치·운영한다. 제14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후 1개월안에 본회담 테두리 안에서 남북군사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불가침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 및 군사적 대결상태를 해소하기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3장 남북 교류협력◁ 제15조 남과 북은 민족경제의 통일적이며 균형적인 발전과 민족전체의 복리향상을 도모하기 위하여 자원의 공동개발,민족 내부교류로서의 물자교류,합작투자등 경제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6조 남과 북은 과학·기술·교육,문화·예술,보건,체육,환경과 신문,라디오,텔레비전및 출판물을 비롯한 출판·보도등 여러분야에서 교류와 협력을 실시한다. 제17조 남과 북은 민족구성원들의 자유로운 왕래와 접촉을 실현한다. 제18조 남과 북은 흩어진 가족·친척들의 자유로운 서신거래와 왕래와 상봉 및 방문을 실시하고 자유의사에 의한 재결합을 실현하며 기타 인도적으로 해결할 문제에 대한 대책을 강구한다. 제19조 남과 북은 끊어진 철도와 도로를 연결하고 해로·항로를 개설한다. 제20조 남과 북은 우편과 전기통신 교류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연결하며 우편·전기통신 교류의 비밀을 보장한다. 제21조 남과 북은 국제무대에서 경제와 문화등 여러분야에서 서로 협력하며 대외에 공동으로 진출한다. 제22조 남과 북은 경제와 문화등 각 분야의 교류와 협력을 실현하기 위한 합의의 이행을 위하여 이 합의서 발효후 3개월 안에 남북경제교류·협력공동위원회를 비롯한 부문별 공동위원회들을 구성·운영한다. 제23조 남과 북은 이 합의서 발효후 1개월안에 본회담 테두리안에서 남북교류·협력분과위원회를 구성하여 남북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의 이행과 준수를 위한 구체적 대책을 협의한다. ▷제4장 수정및발효◁ 제24조 이 합의서는 쌍방의 합의에 의하여 수정 보충할 수 있다. 제25조 이 합의서는 남과 북이 각기 발효에 필요한 절차를 거쳐 그 문본을 서로 교환한 날부터 효력을 발생한다. 1991년 12월 13일 남북고위급회담 남측대표단 수석대표 대한민국 국무총리 정원식 북남고위급회담 북측대표단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무원총리 연형묵
  • “정상회담 조기개최 필요”

    ◎노 대통령,연 총리 접견… “신뢰구축·관계진전” 강조/“남북 최고지도자 분단문제 해결해야”/핵문제 올해안 확고한 합의 기대/「합의서」 실천으로 민족비극 종식 노태우대통령은 13일 상오 청와대에서 북한의 연형묵정무원총리등 제5차 남북고위급회담에 참석한 북측대표단 7명을 접견,합의서채택이후 남북한 관계등에 대해 의견을 교환했다. 정원식총리를 비롯한 우리측 대표단 7명도 동석한 이날 접견은 노대통령이 연총리와 30여분동안 별도요담한 데 이어 이루어졌고 오찬이 뒤따랐다. 노대통령은 연총리와의 요담에서 남북정상회담이 남북간 신뢰구축등 관계진전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면서 조기성사의 필요성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으나 청와대측은 구체적인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노대통령은 연총리에게 한반도의 핵문제와 관련,『이번 회담에서 핵문제에 관해 완전한 해결을 보지 못한데 대해 유감으로 생각하지만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해야 한다는데 대해 남북이 인식을 같이한데 대해 평가한다』면서 『앞으로 판문점회의를 통해 올해안에 핵없는 한반도 실현을 위한 남북간에 확고한 합의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노대통령은 이어 북측대표단과의 접견에서 『이번 합의서 채택은 진정 역사적인 일로 성공적으로 타결을 이룬데 대해 온국민과 함께 치하한다』면서 『합의서 타결이 그동안 남북사이에 벌어진 비극을 종식시키는 시발이 되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노대통령은 『합의가 이루어 진것은 남북의 최고지도자가 민족 염원에 따라 결단을 내렸기 때문이라고 믿는다』고 말하고 『이제부터는 합의서 내용을 실현하고 실천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하면서 성실한 실천을 위한 노력을 촉구했다. 노대통령은 합의서 내용중 불가침문제와 관련,『이는 선언에 그쳐서는 안되며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것으로 미흡한 부분은 앞으로 설치될 군사공동위와 분과위에서 논의되고 구체적으로 실현되길 기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노대통령은 이어 『남북이 민족양심에 입각해 협의하고 대화를 나누면 못 풀 문제가 없을 것』이라면서 『김일성주석도 이 세기가 가기 전에 민족·분단문제를 해결해야 역사에 훌륭히 기록될 것』이라고 말했다. 연총리는 『위대한 수령께서는 연방제에 의한 통일의 실현을 현실적이고 합리적이라고 믿고 계신다』고 전제,『이보다 더 좋은 방안이 있고 필요하다면 대통령각하께서 말씀하신 방안을 같이 내놓고 토론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남북정상회담에 대한 의사를 우회적으로 피력했다.
  • 「남북 정치적 실체 인정」 첫 명문화

    ◎「합의서」 법적 성격과 의미/이장희 한국외대교수·국제법/국가사이 조약과 동등효력/“통일 지향” 규정… 분단 고착화 방지 남북간에 체결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는 분단국가가 평화적 통일로 가기 위한 잠정적·과도적 국가관계를 규정한 협정의 성격을 띠고 있다. 이번 합의서는 대외적으로는 2국가간의 조약 형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민족 내부적으로는 남북간의 관계를 특별관계로 규정,교류협력을 통한 민족의 동질성회복과 통일지향적 평화공존체제를 제도화한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이번 합의서는 「2중적 법구조」의 체계를 갖추고 있어 형식은 국제법상의 조약이지만 그 내용은 민족내부의 특수관계를 존중한 잠정 협정이다. 즉 남북한의 비정상적 관계를 정상화 하는데 남과북을 주권국대 주권국의 관계로 설정하면 분단을 고착화 하는 것이 되기 때문에 분단국 상호간의 기본관계를 잠정적 특수관계로 규정,남북관계 정상화를 꾀하고 있다. 이 합의서는 지난 72년 체결된 독일의 「동서독 기본조약」과 그성격이 유사하다.우리의 경우 지난 89년에 선언한 한민족공동체 통일방안의 「민족공동체 헌장」에 해당된다. 남북간의 이날 합의서는 남북한기본관계를 정상화 하는데 필요한 2가지 기본전제를 충족시켰다는데 큰 의미가 있다. 그 하나는 남북한이 문서상 최초로 상호 정치적 실체존중을 약속함으로써 남북한이 각기 한반도에 대한 단독 대표권을 포기한 것이요 다른 하나는 남북한이 각각 관할영역을 1953년 7월27일 휴전협정에 규정된 군사분계선으로 인정함으로써 영역한정권을 인정했다는 점이다. 또 휴전협정으로 인한 현재의 전시도 평시도 아닌 남북간의 불확실한 법적상태를 남북한이 주체가 되어 평화체제로 전환한 점도 특이사항이라 할수 있다. 이날 합의서의 법적효력은 그 형식이 국제법상의 조약에 해당되기 때문에 국내법상 법률적 효력을 갖게된다.따라서 법률은 헌법에 위반돼서는 안되기 때문에 현재의 헌법 영토조항은 수정이 불가피하다. 또한 냉전논리에 입각해 만들어진 제법률의 개정도 뒤따라야 할것으로 보인다. 이날 합의서의 외교적의미는 우선 남북한 유엔동시가입 이후 2개 주권국이 존재하던 남과 북이 민족내부적으로 통일관계를 약속함으로써 분단고착화를 막는 효과를 가져왔을 뿐아니라 상호실체를 인정함으로써 남북한 교차승인과 통일지향적 평화공존시대의 막을 열었다는데 있다. 그러나 남북한의 이날 합의는 교류와 협력을 위한 어떤 구체적인 이행사항보다는 원칙이나 선언적인 측면이 더 강한만큼 하위 규범체계가 마련되지 않는한 「7·4공동성명」처럼 선언적 수준에 그칠 우려도 배제할 수 없다. 때문에 이번 합의가 과거 정권적 차원에서 이용된,결코 제2의 「7·4공동성명」이 되지 않게끔 하기 위해선 남북대화의 협상결과를 신뢰성 있게 보장하는 법적·제도적 장치를 국내적·민족쌍방적·국제적 차원에서 마련해야 할것이다.
  • 남북총리 서울회담 폐회연설

    ◎정 총리 연설 우리는 이제 막 남북합의서를 채택했습니다. 오늘 이 순간 바야흐로 세계적으로 전개되고 있는 화해와 협력의 물결이 이땅에도 다 닿았습니다. 이제 우리 민족은 민족적 역량과 슬기를 한데 모아 이땅에 평화를 정착시키고 자유와 인권과 행복이 보장되는 통일국가를 이룩하기 위한 큰 걸음을 내딛게 된 것입니다. 우리는 온 겨레가 바라마지 않던 결과를 창출해냄으로써 겨레에 희망을 안겨 주었으며 남과북은 핏줄이 흐르는 하나의 민족이라는 사실을 더욱 분명히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남과 북은 비로소 상호존중하는 가운데 공존공영하면서 평화와 평화통일을 추진할 수 있는 바탕을 마련하게 됐고 7천만 민족의 통일염원을 현실 속에서 실천해 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나는 이런 의미에서 오늘의 이 합의가 대결과 분단의 시대를 마감하고 협력과 통일의 새 시대를 열었다고 믿습니다. 이제 우리 땅에서도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습니다. 과거의 어두웠던 날들을 뒤로 하고 이제부터는 통일의 새 날을 향하여 매진해 나아갑시다. ◎연 총리 연설 내외의 커다란 관심 속에서 열린 제5차 북남고위급회담이 막을 내립니다. 이번 5차회담에서 이뤄진 북남합의서 타결은 7·4공동성명발표 이후 가장 귀중한 성과이며 우리는 북남합의서에 서명함으로써 고위급회담과 폭넓은 대화를 계속 벌여 나갈 수 있게 됐을 뿐만 아니라 북남 사이의 정치·군사대결을 해소할 수 있게 됐습니다. 이번 회담에서의 성과는 온 겨레에 크나큰 기쁨을 주었고 세계인민의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통일·평화를 바라는 겨레의 기대가 성취돼야 하며 이번 회담의 성과를 끌어서도 안되고 후퇴해서는 더욱 안됩니다. 핵문제도 대표접촉을 통해 비핵평화지대화를 이루도록 해야 합니다. 회담성과를 훼손시키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며 팀스피리트훈련은 신중히 검토돼야 할 것입니다.합의서와 핵문제 토의를 위한 대표접촉에 거는 겨레의 기대에 부응할 것을 강조하는 바이며 이 합의서가 발효되는데 필요한 절차를 빠른 시일 안에 마무리 짓고 이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바입니다.
  • 남북46년 냉전장벽 스스로 허물다(남북 「화해시대」로 가는가:1)

    ◎외세분단 딛고 「평화통일장전」 첫 마련/북,남의 경협·대일 수교에 유연성 보여/직교역·합작투자등 인적·물적교류 급속히 늘듯 남북관계가 획기적인 전환기를 맞게 됐다. 남북은 12일 역사적인 합의를 도출함으로써 이제 46년간 계속돼온 대립과 대결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화공존,더 나아가 통일로 나아가는 대장정의 첫발을 내딛게 됐다. 그리고 남과 북의 이번 합의는 냉전의 사생아로 태어난 남과 북이 탈냉전의 세기적 조류에 발맞춰 분단극복의 토대를 확고히 구축했음을 의미한다. 외세에 의한 강요된 분단을 살아온 남과 북은 이제 「통일장전」으로 기록될 이번 합의서를 주체적 협상을 통해 타결함으로써 분단극복의 주체로서의 제 몫을 되찾았으며 하나의 뿌리,하나의 핏줄,하나의 문화를 공유해온 민족공동체회복의 가능성을 활짝 열었다. 특히 남북은 이번 회담에서 남북의 기본관계를 정립한 「남북사이의 화해와 불가침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함께 「한반도 핵의 제거」라는 의외의 큰 성과를 거둠으로써 한반도 평화의 항구적 보장장치를 마련했다. 아울러 남북이 이번 합의과정에서 지난 46년간 일관돼온 북한대남정책의 기본노선을 근본적으로 변화시켰다는 점은 평가할만한 일이다. 북한은 사실 이번 5차회담에 나오면서 합의서 쟁점조항으로 남았던 「평화체제로의 전환」과 관련,남한을 한반도 평화협정체결의 주체로 볼수 없다며 대미평화협정체결을 주장했다.또 「하나의 조선」논리에 배치된다며 서울·평양상설연락사무처 설치에도 반대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등 언론개방에 대해서는 「독일식 흡수통일기도」라며 반발했으며 교류협력부문의 실천기구인 3통위원회구성에 대해서도 반대했다. 북한은 그러나 당초 수용을 거부했던 이런 모든 쟁점사항에 있어 남측의 주장을 대폭 수용하면서 집요하게 고집해왔던 그들의 논리를 대부분 철회했다. 북측의 이같은 국면전환은 회담진행과정에서도 감지되듯 최고지도자 김일성주석의 결심없이는 불가능한 것이다.바로 이점은 북한의 대남정책의 최고결정권자인 김일성주석의 대남관이 전향적으로 바뀌고 있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김주석의 이같은 인식전환은 남북관계가 이번 합의를 계기로 더 이상 후퇴할 수 없으며 합리적인 방향으로 거듭 발전되어 갈 것임을 예고하는 대목이다. 그리고 이는 곧 다소 「선언적이고 원칙적인」성격의 이번 합의서가 72년의 7·4공동성명과는 달리 실효성과 실천성을 보장하는 진정한 「합의문건」이 되리라는 평가를 가능케 한다. 물론 남북이 이번에 합의서를 채택하게 된데는 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당위성과 함께 서로의 긴요한 내부적 필요성이 크게 작용한 것이 분명하다. 특히 사회주의권의 몰락 이후 극심한 물질적·정신적 황폐감에 젖어온 북한은 상황타개의 돌파구를 대남관계의 개선,그리고 이를 통한 남한경제력의 유입,남북관계개선을 고리로 한 대일 대미관계 진전에서 찾으려 한 것으로 보인다. 때문에 「인적·물적교류를 통한 개방」에 반대해온 북한은 4차회담이 끝난후 4차례 열렸던 판문점대표접촉에서 이미 합의서조항중 남북경제협력부문에 적극적인 대응을 보였으며 이번 회담 기조연설에서는 실천기구인 남북경제공동위원회를 비롯한부문별 공동위원회 구성에 선뜻 호응하고 나왔다. 특히 최근 직·간접교역을 통해 이뤄진 2억달러이상의 남북물자교역 경험은 외화부족,식량부족,에너지부족 등으로 파산직전에 놓인 북한경제에 남북경협의 매력을 강하게 느끼게 했으며 이같은 유혹은 북한의 대남기본원칙마저도 바꾸도록 했다는게 회담관계자들의 분석이다. 북한은 또 이같은 남북경협에 대한 유혹과 함께 남북관계의 진전을 심화되고 있는 국제적 고립탈피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계산을 하고 있는것같다.특히 북한은 미국등 국제사회의 거센 핵사찰압력에 맞서 한반도핵의 당사자해결주장을 내세우면서 대일수교및 대미관계개선의 결정적인 계기를 이번의 남북합의에서 찾을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북한은 주한미군핵철수가 기정사실화 되면서 국제핵사찰압력을 외면할 수 없는 상황하에서 핵사찰수락에 앞서 남측의 핵재처리시설포기요구를 받아들임으로써 남측에 직접적인 대북경제 지원을 요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동시에 미국측의 요구이기도 한 이 문제를 수용함으로써 대미관계개선의 보다 확실한 길을 열고자 한 것으로 풀이된다. 어쨌든 남북관계는 이번 합의결정으로 질·양면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을 것으로 보인다. 직교역이나 합작투자등 남북간 경제협력·물적교류가 빠른 속도로 늘어날 것이며 이산가족을 중심으로 한 인적 교류의 길도 열릴 것이다. 그리고 이같은 구체적 실천조치들을 논의하기 위한 남북경제협력공동위원회및 군사공동위원회 등 합의서실천기구들 역시 남북간 합의에 의해 구성,운영될 것이다. 서울과 평양의 길은 더욱 넓어질 것이며 분단의 아픈 현장이던 판문점도 남과 북을 연결하는 관문,이산가족의 극적인 해후를 거듭하는 만남의 장이 될 것이다. □주요 남북대화 일지 ▲71.8.12 남,적십자회담개최 제의 ▲71.9.20 적십자회담 첫 예비회담 개최 ▲72.7. 4 7·4남북공동성명 발표 ▲80.2. 6 총리회담을 위한 실무대표 접촉 ▲84.9.29 북한 수해물자 인도·인수 ▲85.9.20 남북이산가족고향방문단 및 예술단공연 동시교환 ▲90.9.4∼7(서울),10.16∼19(평양),12.11∼14(서울),91.10.22∼25(평양),12.10∼13(서울) 남북고위급회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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