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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남사업」사령탑의 실체를 파헤친다(오늘의 북한)

    ◎총리회담 막후 실세는 「조평통」/정치·외교담당 당정거물들로 구성/대남 정세분석·성명·백서등 발표/작년 허담사망뒤 윤기복이 총지휘/부위장 16명… 전금석·김용순등 「전문가」 많아 고위급회담등 남북관련사업을 총지휘하고 있는 북한의 사령탑은 과연 어디일까? 이같은 궁금증은 특히 지난 2월의 「남북합의서」발효에 이어 「5·7이산가족 노부모방문단및 예술단」교환합의가 전격적으로 이뤄지면서 더욱 커지고 있다.북한의 대남사업기구로는 당비서국,대남사업담당비서,당중앙위대남사업부,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심의위원회와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등이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데 북한관측통들은 이들 기관 가운데 가장 핵심적이며 큰 영향력을 발휘하는 곳으로 조평통을 꼽고 있다.오는 13일로 결성31년을 맞는 대남전선전략의 전위기구 「조평통」의 실체를 알아본다. 지난해 11월 분단 이후 최초의 남북여성교류로 기록된 「아시아의 평화와 여성의 역할」토론회가 서울에서 열렸었다.당시 북측 인솔책임자는 여운형선생의 장녀로 현재 북한 최고인민회의 부의장직에 올라있는 여연구였다.그러나 여연구는 하세였고 배후에서 참가자들의 발언수위로부터 복장·행동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지침을 내리고 「감독」한 실세는 조평통서기국 참사로 있는 정명순이었다. 정명순은 북측 참가단의 대변인을 겸임,눈에 자주 띄기도 했지만 취재기자들에게 「사령탑」으로 비쳐질만큼 그의 역할에는 무게가 실려 있었다.한마디로 『역시 대남사업의 CP(지휘소)는 조평통』이란 인식을 확인시켜 주기에 그의 언행은 부족함이 없었다. 조평통은 지난 61년 4·19직후 남한사회가 극도로 혼란했던 시기에 사회 일각에서 제기된 「남북협상론」에 호응하기 위해 급조된 조선로동당의 외곽단체다.김일성의 발기에 의해 당시 내각 수상이던 홍명희를 위원장으로 이름뿐인 북한의 정당과 사회단체등 각계 대표 33명이 망라돼 발족했으며 중앙위원회,상무위원회,서기국을 산하에 두고있다. 북한이 밝히고 있는 조평통의 기능과 목표는 『남한주민과 해외동포들을 김일성사상으로 무장시키고 자주적 통일실현을 위한 정치선전사업을 조직·진행』하는 것과 『북한의 사회주의 역량과 남한의 「애국적 민주주의 역량을 자주적 통일위업달성을 위한 투쟁에로 조직·동원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조평통이 대남전선전략의 전위기구임을 스스로 밝힌 대목이다. 조평통의 공식적인 대남사업양태는 남한내 정세변화에 대해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반박을 하고 나서는 「서기국 보도」를 비롯,고발장·공개질문장·성명·백서·비망록등 다양하다. 북한이 조평통을 통해 이제까지 발표한 대표적인 대남제의로는 「평화협정체결」(81·5),「3자회담개최」「84),「국회회담개최」(85)등이 있으며 지난 90년 노태우대통령의 「7·20 민족대교류」제의 때는 이를 거부하는 성명을 발표하기도 했다.또 지난해 5월에는 남한시국과 관련,노대통령의 사임을 촉구하는 「공개질의장」을 낸 바 있다. 이처럼 국가기구상의 조직도 공식적인 남북대화창구도 아닌 입장에서 북한의 각종 대남정책을 주도해 오고 있는 기관이 바로 조평통이다.한마디로 초월적 기구인 셈. 조평통의 인적 구성이 대내정치및외교분야에서 실세로 통하는 당·정의 거물들로 짜여져 있는 점은 이 기구의 북한 권력내부에서의 위상을 점칠수 있게 하는 또다른 시사다. 84년 1월이후 위원장으로 있다 지난해 5월 사망한 허답이 당정치국원과 최고인민회의 외교위원장을 겸임하면서 대남정책에 절대적 힘을 발휘했던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공식 보도는 없었으나 허답에 이어 위원장에 오른 것으로 알려진 윤기복(66) 역시 당비서국 대남담당비서,당중앙위 대남사업부장,최고인민회의 통일정책심의위원장등 대남사업핵심부서를 모두 장악하고 있으면서 김부자로부터 각별한 신임을 받는 경제통이다. 윤은 또 대남공작사업 총본부로 알려진 「3호청사」의 총책임자라고도 전해지고 있으며 현재 북한이 추진하고 있는 경제중심의 실리적 대남접촉 역시 윤의 정책에서 비롯된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조평통의 부위원장수는 대략 16명 정도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가운데 전금철부위원장은 남북적십자회담 대변인(72년),국회회담준비북측대표(85년부터),범민족대회 북측준비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겸직하면서 통일문제연구소를 운영하는 실전과 이론을 겸비한 실력자로 통한다. 유엔대사·외교부부장 등을 역임하고 해외동포들의 북한연계에 주력하고 있는 한시해도 부위원장 가운데 한명.70년대부터 대남사업에 깊숙히 관여,현재 남북고위급회담 북측 대변인을 맡고 있는 안병수도 서기국장 출신의 현직 부의장이다. 이밖에 김용순당외교담당비서,양형섭최고인민회의의장,김영남외교부장,황장엽사상담당비서,여연구최고인민회의부의장등이 정책지원세력으로 조평통부위원장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최근들어 조평통명의의 「성명」이나 「서기국 보도」등을 통한 대남비방이나 제의가 뜸해진 것은 의미있는 변화로 지적되고 있다. 지난달 한시해와 황장엽이 일본기자들과의 회견에서 북한의 핵사찰문제와 관련,발언한 것과 윤기복이 워싱턴 타임스에 북한의 한반도공산화통일방식 포기를 암시하는 발언을 한 일이 있긴 하나 모두 조평통명의가 아닌 개인자격의 비공세적 발언이었다. 이같은 조평통의 활동자제는 다음의 두가지 이유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첫째는 남북고위급회담등 정부당국간에 공식대화채널이 유지되고 있는 점이고 둘째는 북측이 남북경협에 목을 매다시피하고 있는 마당에 헐뜯어봤자 남측을 자극할뿐 소득이 별로 없을 것으로 판단했기 때문이란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최근의 「근신」에도 불구,조평통이 대남전선전략의 발톱까지 송두리채 뽑아버린 것은 아니란 사실이다.
  • “통일후유증” 독일파업/이기백 베를린특파원(오늘의 눈)

    독일이 통일후유증을 톡톡히 치렀다. 재정이 건실하고 생산성이 높아 노사갈등이 좀처럼 표출되지 않던 독일사회가 공공서비스 노조가 11일간이라는 전후 최대의 파업을 벌여 충격을 주었다. 이번 파업의 동기는 통일후 매년 1천1백억달러라는 막대한 돈을 동독투자에 쏟아 붓는 부담으로 지난해 물가가 4.8%라는 기록을 세웠고 근로자들은 이에 상응하는 임금인상을 요구한데 있다. 노조원 2백30만명의 공공노조는 독일에서 금속노조 다음으로 큰 조직이다.도시기능의 근간을 담당하고 있는 공공노조는 그 책임에 걸맞게 평소 단체행동에는 신중한 자세를 보여 때로는 너무 보수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그런데 이번 비장의 보도를 빼어든 것이다.여걸로 통하는 마티스 노조위원장은 8일 파업을 끝내며 『우리는 위대한 정치적 승리를 거두었고 이는 파업에 협조한 시민들의 힘』이라고 선언했다. 노조위원장의 선언은 의례적인 치사라기보다는 이번 파업에서 보인 시민정신의 발휘와 극한상황을 피하려는 노조의 노력을 돋보이게 한데 대한 표시로 보인다. 노조는 처음부터 이번 파업이 사용자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경고파업」이라고 강조,노조원의 1%도 안되는 인원만을 동원해 「전면파업」이 가져올 극한 상황을 피했다. 시민들은 노조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중교통수단이 마비되자 자전거 출퇴근으로 대응했다.파업기간중 도심에 쏟아져 나온 자전거와 심지어는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출근하는 정장의 50대 신사는 인상적인 모습이었다.또 시민들은 비닐쓰레기에 버릴 것을 쌓아두어 쓰레기가 넘쳐흐르는 도심에 비해 깨끗한 주택가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파업이라면 으레 「공권력 투입」「결사투쟁」「화염병·최루탄 공방」등 극한 상황의 전개과정만 보아온 마지막 분단국 기자의 눈에는 이같은 독일파업의 양상이 이상해 보일 정도다. 더욱이 독일이 이번에 치른 통일후유증은 우리도 언젠가는 한번 겪어야 할 과정이기에 남의 일로만 보이지 않으며 우리가 타산지석으로 배워야 할 교훈이라는 느낌이다.
  • 민자 경선/대의원표 확보전 가열

    ◎청주서 개인연설회… 지지호소/김 후보/「청소년정책」 또 발표,득표 총력/이 후보 민자당의 대통령후보경선은 김영삼후보가 6일 충북 청주에서 첫 개인연설회를 갖고 이종찬후보도 5일 같은 지역에서 대의원 80여명과 만찬을 함께 하며 지지를 호소한데 따라 본격적인 유세전의 양상으로 돌입한 가운데 두후보진영의 대의원들에 대한 접촉도 더욱 빈번해지고 있다. 김후보는 이날 충북지역대의원 2백여명과 당소속의원 2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개인연설회에서 『역사적인 전환기를 맞아 정직성과 도덕성에 기초한 강력하고 효율적인 지도력으로 시련을 극복하고 희망의 시대를 열수 있도고 최선을 다하겠다』고 강조했다.또 지역·계층간의 갈등을 극복하는 화합의 큰정치,물가안정과 흑자경제등을 통한 제2의 경제도약,분단문제등을 해소하는 자주적이고 점진적인 통일정책등을 펴나가겠다고 밝혔다. 이후보측은 이날 청소년정책을 발표,△오는 95년까지 전국국민학교에 대한 전면 급식실시 △정부지원탁아기관의 확충 △교육과 보육의 일원화등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후보는 이에앞서 5일 충북대의원들과 간담회에서 『이지역 지구당위원장들은 대부분 김후보진영의 회유에 넘어갔지만 대의원들은 14대 총선에 나타난 민의에 부응해 올바른 선택을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 한­체코 정상회담 이모저모/양국번영 축원… 화기의 대좌1시간

    ◎“자유에의 신념,동구개혁의 횃불”/노 대통령/“남북분단벽도 멀지않아 무너질것”/하벨 체코슬로바키아의 바츨라브 하벨대통령은 방한 이틀째인 27일 상오 청와대에서 노태우대통령과 단독·확대정상회담을 가진데 이어 하오에는 국립묘지를 참배하고 비원과 한국종합전시장(KOEX)을 관람한뒤 노대통령이 주최한 청와대만찬에 참석하는 등 바쁜 일정을 보냈다. ▷정상회담◁ ○…노태우대통령과 하벨대통령간의 정상회담은 단독 및 확대회담순으로 상오10시30분부터 약1시간가량 진행. 노대통령은 본관 2층 접견실에서 하벨대통령과 단독회담에 들어가기에 앞서 『방한을 따뜻이 환영한다』고 말하고 『일본방문성과는 좋았느냐』고 인사. 하벨대통령은 『오랜기간 소원한 관계였던 두 나라간에 국교가 정상화돼 한국을 방문하게되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화답. 정상회담에 앞서 하벨대통령은 본관 1층로비에서 노대통령이 지켜보는 가운데 방명록에 서명하고 뒤이어 양국 대통령내외는 1층계단앞에서 기념촬영.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대통령 부인 김옥숙여사는 영부인 접견실에서 하벨대통령부인 올가 하블로바여사와 별도 환담. ○…노태우대통령과 하벨대통령은 45분간의 단독정상회담을 마친뒤 집현실로 자리를 옮겨 양측의 관계장관과 수행원등 각각 10명씩이 배석한 가운데 확대회담을 시작. ▷공식환영행사◁ ○…노태우대통령은 체코슬로바키아 국가원수로서는 처음 방한한 하벨대통령 내외를 맞아 27일 상오 청와대 대정원에서 공식환영식을 가진뒤 약 1시간동안 단독 및 확대정상회담. 노대통령 내외는 상오 10시 6분전 청와대 본관 정현관 앞에 도착한 하벨대통령내외와 반가운 악수로 첫 인사를 나누고 대정원의 사열대에 함께 등단. 공식환영식은 양국 국가원수에 대한 경례속에 체코 국가와 애국가가 연주되고,하벨대통령이 의장대를 사열한데 이어 전통 복식을 차려입은 국락대의 분열순으로 진행. 노대통령은 환영사에서 『자유와 평화,그리고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각하의 굳은 신념은 동유럽 개혁의 횃불이었다』며 동구개혁의 정신적 지주로 숭앙돼온 하벨대통령의 방한을 환영하고 체코의 번영을 기원. 하벨대통령은 이에 『체코에서 공산독재를 종식시킨 민주혁명은 인권신장은 물론 경제 사회에 광범위한 변화를 가져온 기틀을 마련했다』고 답사.하벨대통령은 이어 『냉전의 마지막 유산인 한반도 분단장벽도 멀지않아 무너질 것』이라고 전망하고 『귀국의 민주화는 무엇보다 최근 총선을 통해 입증됐다』며 양국 민주화가 어느 정도 결실을 거두고 있다고 평가. ▷공식만찬◁ ○…노태우대통령이 이날 저녁 청와대에서 베푼 하벨 체코슬로바키아대통령을 위한 공식만찬은 시종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1시간30분동안 진행. 노대통령은 만찬사에서 『한국과 체코가 외교관계를 수립한지는 이제 겨우 2년이 조금 지났지만 우리 모두가 오랜 친구처럼 느껴지는 것은 자유와 평화를 위해 싸워온 두 나라 국민이 역사속에서 서로를 깊이 이해하고 존경하기 때문일 것』이라며 『두나라 사이의 영원한 우의를 위해 함께 축배를 들자』고 건배를 제의. 하벨대통령은 답사에서 『우리 국민들이 1988년 서울올림픽 개막식 TV중계를 통해 알게된 귀국의 유구한문화전통과 선진기술에 대해 깊은 감명을 숨기지 못하던 그때를 본인은 잘 기억하고 있으며,바로 그때 우리국민들은 귀국에 대해 과거에 알고 있던 것들이 거짓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고 소개하고 『바로 이것이 우리 국민의 잠재적 저항 의식을 고취시켜 마침내 1989년 전체주의 정권을 무너뜨린 혁명을 이룩하게 하였다』며 두나라 국민간의 정신적인 유대를 강조. 두나라 정상은 공식만찬에 앞서 접견실에서 선물과 자필서명이 든 사진을 교환했으며 만찬후에는 민속공연장으로 옮겨 공연을 관람.
  • 백범암살/엇갈리는 증언… 진상규명 본격화해야

    ◎일제청산·단정반대로 이박사와 갈등/극우·친일파 조직적음모 여부가 초점/안 1년복역후 출감… “암시”발언 의무투성이 백범 김구선생 암살사건의 진상은 과연 어떤 것일까.암살지령을 내린 배후는…? 사건발생 43년이 지나도록 줄곧 단독범행을 주장해온 암살범 안두희씨(75)의 최근 증언으로 이 사건이 다시 세인의 관심을 끌고 있다.안씨는 최근 두차례에 걸쳐 『김창용육군특무대장·장택상초대 수도경찰청장,노덕술수도경찰청수사과장,최운하수도경찰청정보과장 등이 나와 반공이념·인생철학이 같았으며 이들 모두 백범을 미워했다.누구로부터 암살지시를 받지는 않았지만 이심전심으로 알고 범행을 결심했다』고 증언해 갖가지 추측만 무성하게 낳고 있다.백범암살사건의 전말과 관계자들의 증언,앞으로의 사건전개 전망등을 짚어본다. ○안두희발언 계기 사건전말·관계자주장 재조명 백범은 1919년 중국의 상해로 건너가 이봉창·윤봉길의사등의 의거를 지도하는 등 독립운동에 몸바쳐 임시정부의 주석에까지 올랐다.그는 8·15해방을 맞아 45년11월 26년만에 광복 조국에 돌아왔다. ◎반탁운동에 앞장 백범은 서대문 경교장에 숙소를 정한 뒤 28년 이시영 이동령 등과 함께 중국에서 창당한 한국독립당을 이끌며 45년 12월 모스크바삼상회의에서 우리나라에 대한 신탁통치가 결의되자 반대운동에 앞장섰다. 47년 11월 국제연합(유엔)은 남북총선거에 의한 독립정부수립을 결의하고 48년초 총선거감시위원단을 한반도에 파견했다. 그러나 백범은 『남한만의 단독정부수립은 남북분단을 고착화 시킨다』면서 5·10선거에의 참여를 거부하고 통일정부수립을 위해 김규식과 함께 평양으로 가 김일성 김두봉등과 4자협상등을 벌였으나 아무런 성과를 얻지 못했다. 백범은 8월15일 이박사를 대통령으로 한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뒤에도 경교장에 머물며 일제잔재의 청산과 통일정부수립 등의 노선을 견지,갈수록 이박사등과 거리가 멀어졌다. 이같은 상황아래서 49년 6월26일 정오 경교장 2층 집무실에 있던 백범은 육군포병사령부 소속 안두희소위가 쏜 4발의 총탄에 맞아 파란만장한 생애를 마쳤다. 안두희는 범행직후 『단독범행』이라고 밝힌뒤 헌병사령부 김병삼대위 등 헌병들에게 연행돼 육군중앙고등군법회의(재판장 원용덕소장)에서 「살인및 군인의 정치관여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이태원 형무소에 수감됐다.한달뒤 대전형무소로 이감된 그는 곧이어 징역15년으로 감형됐으며 백범 1주기를 하루 앞둔 50년 6월25일 6·25의 발발과 함께 형집행정지처분으로 석방됐다. 전쟁이 한창이던 그해 7월10일 육군소위로 복직됐으며 51년 국회질의에서 이같은 사실이 문제가 되자 소령으로 예편,강원도에서 식품군납업체를 경영하게 됐다. 그의 「단독범행」주장에 대해 49년8월 한독당 중앙상무위원회는 이대통령에게 ▲백범이 안을 응대한 시간이 겨우 3분에 불과하고 안과 같은 청년과 정치언쟁을 벌였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범인의 심리로 일시적 흥분에 의한 것이면 1발로 족할 것이며 저격후 8발의 탄환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권총을 던지고 체포당한 것은 안의 개인적 행동으로 간주할 수 없다▲경교장 경비경찰관의 손에 체포되는 즉시 난데없이 헌병대가범인을 데려간 것은 있을 수 없다는 등의 진상규명 요청서를 보내 의문을 제기했다.백범의 장례는 그해 7월5일 서울운동장에서 국민장으로 엄수됐다. ◎새로운 내용은 없어 백범암살에 대한 안두희씨의 최근 증언이후 안씨의 배후문제에 대한 또다른 증언들이 쏟아지고 있으나 그동안의 증언들과 거의 비슷한 것으로 새로운 것은 별로 없으며 안씨 역시 최근 두차례의 증언에서 일부 대목을 번복하는 등 오락가락하고 있다. ▲안두희씨(범인)=당시 백범을 암살하라는 직접적인 지시를 받지는 않았으나 김창용육군특무대장 초대수도경찰청장을 지낸 장택상씨와 친일경찰관으로 수도경찰청 수사과장이던 노덕술,정보과장 최운하씨 등으로부터 백범을 암살해야 된다는 강력한 암시를 받고 공감해 범행했다. ▲김신씨(70·백범아들·전교통부장관)=김창용육군특무대장 등이 지시했다는 안씨의 증언은 빙산의 일각이다.이승만정권하에 있던 친일세력과 해방후 남한의 단독정부 수립을 추진한 세력을 중심으로 당시 군부와 경찰·정계 고위층을 망라한 정권차원의 배후세력이 선친살해에 관련되었다는 일부 증거를 갖고 있다.그러나 정확한 명령계통을 밝히지 못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진상규명 작업은 계속돼야 한다. ▲최대교씨(91·변호사·당시 서울지검장)=사건직후 최초지휘때 김병삼헌병대위가 한때 경교장출입을 막기도 했다.권승렬법무부장관과 함께 대책을 숙의하기 위해 이범석국무총리 집에 갔으나 꿩사냥을 갔다고 해 신성모국방장관 집으로 가 아프다는 신장관을 겨우 만나 『경무대에 빨리 백범피살 사실을 알려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하자 『이제 진정한 민주주의가 됐다』고 말했다.또 검사장인 나도 모르게 범인 안씨에게 비밀당원증을 발급해준 김학규 한독당 조직부장 등 민간인 7명의 살인교사죄 구속영장을 김익진 당시 검찰총장이 직접 청구,한격만서울지법원장에 의해 발부됐다.이를 김총장에게 항의하자 『저 영감(이대통령 지칭)이 일체 비밀로 하라고 해서 그러니 양해해 달라』고 해 백범암살 수사가 왜곡되고 있다고 판단,얼마뒤 사표를 냈다. ◎“동족에 죽을일 없다” ▲선우진씨(71·당시 백범비서실장)=백범피격 하루전 대광고교 교감 박동엽씨가 찾아와 『옛 제자인 김정진소령을 만났더니 역시 제자인 오병순소위가 암살조에 가담,괴로운 나머지 털어 놓았다』고 밝혀 『몸조심 하십시오』라고 백범선생께 말했다.백범은 『동족에게 맞아 죽을 일은 하지 않았다』면서 이같은 경고를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말을 박씨로부터 들었다. ◎인천에서 사격 훈련 ▲정관일씨(71·안씨와 육사특8기 동기생으로 포병사령부에 함께 근무)=안씨는 당시 장은산포병사령관의 지시로 인천앞바다 비밀사격훈련장에서 주5회 극비사격훈련을 받았다. ▲홍영기씨(74·국회의윈·당시 육군법무감실검찰과장)=안씨를 기소한뒤 채병덕육참총장이 부르더니 『안두희에게 몇년을 구형할 생각인가』고 물어 『살인범이니 마땅히 사형』이라고 대답했더니 『사형은 너무 심하니 징역10년만 구형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배후 은폐위한 사기 ▲한필동씨(72·사건당시 김창용특무대장과 같은 부대에 근무·미국거주)=김창용의 지시로 백범을 암살했다는 안두희씨의 증언은 진짜 배후인물을 감추기 위한 거짓말이다.내가 알기로는 신성모국방장관·채병덕육참총장,김태선내무장관 등의 비호아래 장은산포병사령관이 요원들을 훈련시키고 전봉덕헌병사 부사령관이 작전을 지휘하는등 백범암살이 조직적으로 이뤄졌다. ▲김교식씨(56·현대역사자료연구소장)=안씨의 증언은 앞뒤가 맞지않으며 직접 명령을 내렸던 조직을 보호하기 위해 사건뒤 수사과정에서 처음 만난 김창용을 끌어들였을 뿐이다.당시 상황으로 미루어 장택상 노덕술 최운하씨 등도 암살사건에는 개입하지 않았고 김태선씨 또한 김지웅을 지원하며 경찰쪽에서 별도의 암살계획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에 포병장교인 안씨와 접촉이 있었다는 것은 납득이 가지 않는다.암살계획의 시나리오는 포병사령부쪽에서 실행을 맡고 헌병사령부쪽에서 현장을 감시하며 육군정보국제3과에서 수사종결처리를 맡는 것으로 짜여진 것으로 보는게 옳다. ○서거43년… 「백범암살 재조명」을 보며/박성수 정문연교수 ◎민족정기 바로잡는 계기로/「통일민족주의」의 큰뜻 되새겨야 할때 최근백범 김구선생의 암살범 안두희가 범행 40여년만에 드디어 일부 배후 인물을 밝혔다 하여 세인을 놀라게 하고 있다.그러나 그의 증언 내용이 겨우 빙산의 일각을 드러냈을 뿐 바다속의 엄청난 얼음덩어리는 여전히 그 정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잠겨 있다. 안두희의 증언 자체가 이처럼 불성실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범행이 얼마나 중대한 과오였는가에 대해서도 거의 반성하고 있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움을 금할 수 없다는게 세론이다.아직도 안두희는 자신을 애국지사로 착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할 정도로 그의 증언 태도는 오만하기까지 했다. 백범 김구선생은 한국독립운동사의 대명사라 해도 과언이 아닌 큰 인물이다.그의 이름 두자를 빼고 대한민국 임시정부 27년사를 쓸 수 없음은 물론 광복이후 47연사도 기술할 수 없는 것이다. 『백범이 살아 있었어야 한다』는 말은 어느 누구에게 물어 보아도 이구동성으로 나오는 대답일 것이다.백범은 생전에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라고 칭송받게 만들어야 한다고 외쳤었다.「아름다운 나라」란 더러운 나라가 되어서는 안된다는 뜻일 뿐만 아니라 선생 자신이 아름드리 거목이듯이 이 나라도 아름드리 나무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그가 군정을 반대하고 남북협상의 불가능에 도전한 사실을 안두희와 같은 극우반공주의자들은 단순한 용공주의자로 몰아 세울수 있었을지 모른다.그러나 평생을 통일운동에 몸바친 선생의 혈적을 모르는데서 온 무지의 소치였다.흔히 임정을 상해시대 14년(1919∼32년),이동시대 8년(1932∼40년),중경시대 5년(1940∼45년)으로 구분하고 있는데 이 27년을 단순한 독립운동의 역사로 보아서는 안된다.그것은 동시에 통일운동의 역사였기 때문이다. 특히 중경시대에 이르러 모든 민족주의 진영은 임정산하에 통일되었으나 공산주의자들 만은 연안으로 도주하여 중공산하에 들어갔으며 1950년 6·25 남침의 주력부대가 되는 김무정의 소위 조선의용군이 되었다.김구선생은 귀국후 임정시절에 이루지 못했던 통일운동을 광복된 조국에서 실현하려고 했다.그것이 군정반대로 나타난 것뿐이다.그에게 있어 남북통일은다름아닌 한국독립운동의 연속이요 완성이었던 것이다. 좌우익투쟁의 피비린내나는 해방정국에서 그것은 부당하게도 김구로선으로 명명되어 그 실질이 왜곡되고 말았으나 그것은 김구자신의 역사신앙이었던 것이다. 만일 김구선생이 그때 없었어도 될 안두희라는 인간,아니 짐승에게 쓰러지지 않고 살아계셨더라면 우리 현대사는 얼마나 달라졌을까를 모두들 궁금하게 생각하면서 아쉬워하고 있다. 다른것은 몰라도 최소한 남북의 분단상태를 악용한 이른바 사이비 통일민주주의만은 이땅에 뿌리 내리지 못했을 것이고 진실된 통일민주주의가 자라나서 통일의 날을 앞당겼을 것이다. 오늘처럼 김구선생의 독립정신,통일정신이 절실한 때가 또 있었을까.또 오늘처럼 우리나라가 아름드리 나라로 커야 한다고 바라던 시대가 또 있었을까.다시한번 경교장의 비극을 되돌아보고 우리의 앞날을 생각할 때라 할 것이다.
  • 남북한의 관계진전/현지 홍보강화 논의/재외공보관회의

    92년도 재외공보관회의가 22일 상오 공보처 회의실에서 재외공보관 41명이 참가한 가운데 열렸다. 최창윤공보처장관은 이날 개막 치사를 통해 『우리나라는 의존시대에서 자존시대로,개도국에서 선진국으로,약소분단국에서 통일강국으로 도약하기 위해 국가적 과제를 안고 있다』면서 『이같은 전환기적 상황에서 공보관들은 사명의식을 갖고 계획적·적극적 해외홍보활동을 통해 나라의 국제적 위상을 높여달라』고 당부했다.
  • 강원도:상(새로 쓰는 북녘지리지:25)

    ◎도명·철원­고성­김화군명 남북이 공용/분단후 월남의 원산시·문천­안변군 편입/함대 도사린 원산엔 북송교포 많이 거주 강원도는 민족상잔의 6·25로 말미암아 두 동강이 났음에도 불구,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남북한이 같은 지명을 쓰고 있는 것이 특징인데 철원군 고성군 김화군 등이 그 예이다. 강원도는 해방전 함경남도에 속해 있던 안변군과 문천군,원산시를 흡수,도세를 넓혔는데 그리운 김강산을 품고 있어 이 강산 제일의 관광 보고를 가진 도이기도 하다. ○2개시15군 거느려 현재의 강원이라는 이름은 1395년경부터 불려 오고 있다.17세기 이후 원양 강양 강춘 등으로 불린적도 있는데 강릉과 원주의 첫글자를 딴 합성어다. 1895년 전국을 23부(부)로 나눌 때 강원도 지역은 강릉부와 춘천부 관할 지역으로 나뉘었다가 이듬해 다시 합치게 되었다. 해방후 38선을 경계로 강원도는 두 동강이 났고 1946년 9월에는 함경남도의 원산시와 당시 문천군·안변군이 이 도에 편입되었다.이때부터 원산시가 강원도의 도소재지가 됐다. 북한의 강원도는 6·25동란으로 고성군 철원군 김화군 등의 휴전선 이남지역 일부를 잃었는데 모두가 처절했던 격전지역이다. 그후 1952년의 대대적인 행정구역 개편때 법동 천내 세포 판교 창도 금강 등의 새로운 군을 만들었다. 1954년에는 창도군에서 김화군이 분리되었고,1991년에는 문천군이 시로 승격되었다. 이로써 북한의 강원도는 2개 시(원산 문천)와 15개 군(차호 행정구역표 참조)을 거느리게 되었으며 1991년말 추계 상주인구는 약 1백57만명,면적은 약 1만1천1백여㎦이다. 원산시는 강원도에 편입되어 도소재지가 된 이래 인구는 약 28만명으로 늘어났으나 항구를 비롯한 시의 영역에는 별로 변화가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강원도에 편입될 당시 원산시는 덕원군 적전면과 부내면을 흡수했을 뿐이며 현재의 행정구역은 50개 동·리로 구성돼 있다. ○금강산관광 관문 평양에서 약 2백㎞ 떨어진 항구도시 원산은 일본 등 외국으로부터 북한으로 들어가는 해상관문이며 근래에는 금강산 관광의 관문역할도 한다. 때문에 1백72㎞의 원산∼평양 고속도로가 건설되고 1989년에는 원산∼금강산 사이의 고속화도로도 뚫렸다.송도원여관 금강산여관 등 숙박시설을 비롯한 관광시설도 상당히 확충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시가지는 10층이상의 고층건물이 곳곳에 배치되고 외견상 대단한 무역항인양 20층이 넘는 빌딩도 들어서 있다. 그러나 원산시에는 겉보기와는 달리 수령의 명령만 떨어지면 엄청난 화력으로 밀고 내려올 북한의 해군 함대기지가 은폐돼 있고 「지상의 낙원」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북송선을 탔던 재일동포와 일본인처들이 회한의 눈물이 바다로 이루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원산시에는 북송 동포와 그 가족들이 가장 많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들이 받고 있는 온갖 박해와 생활고는 말할 것도 없으며 일본의 가족·친지를 수탈하기 위한 인질로 잡혀 있는 것이나 다름 없다는 게 일본 공안조사청의 보고였다. 1991년에 시로 승격한 문천시는 북한에서 손꼽히는 유색금속 야금공업기지인 문평제련소가 있고 강철·염료 등의 공장도시라는 사실 외에는 입수된 특별한 자료가 없다.노동자구와 노동자가많이 살아 시로 승격된 것으로 보이며 현재 행정구역은 1개읍(문천)과 5개 노동자구,15개 리로 구성되어 있다. 강원도 역시 대형 공공건물과 대학시설들이 도소재지인 원산시에 집중되어 있다.이수덕대학(전 원산교원대학),금강대학(전 원산의학대학),정준택경제대학(전 원산경제대학),동해대학(전 원산수산대학)등등…. ○삼방등 폭포 많아 도의 동부지역은 한반도의 척추인 태백산줄기(맥)가 뻗어있어 지세가 높고 험하며 서부로 가면서 낮아지는데 태백산줄기의 서부에는 북동­서남 방향으로 아호비령산줄기 마식령산줄기 광주산줄기 등이 뻗어있다. 해발 평균 1천m이상인 태백산줄기에는 금강산(1천6백38m)을 비롯,높은 산봉우리들이 솟아있고 평강과 철원 일대에는 넓이 5백90㎦의 현무암지대인 평강철원고원이 펼쳐져 있다. 마식령산줄기와 광주산줄기 사이에는 추가령지구대가 놓여있는데 그 길이는 약 2백㎞에 이른다.폭은 곳에 따라 다르나 삼방협곡과 같이 1백m 정도로 좁은 곳도 있으며 삼방폭포 고음폭포 등 폭포가 많다.유명한 삼방약수도 이곳에서난다. 온통 거대한 산줄기들이 점령하고 있어 평야지대라야 도 전체 면적의 20%에 불과하지만 그런대로 이름난 평야로는 안변벌 고성벌 등이 있다.안변벌은 넓이가 1백㎦인데 사방 30리가 넘는다고 하여 「안변30리벌」이라고도 불린다. 강원도의 연안에는 여도 신도 등 60여개의 섬과 세계의 명승인 총석정·해금강 등이 있고 갈마반도·장아대끝·수원단과 원산만·송전만 등이 있다. 식물분포상은 다양한 편이어서 1천3백여종이 분포돼 있는데 그 가운데 금강초롱 금강국수나무 왕제비꽃 금강봄맞이꽃 등은 우리나라 특산식물로 꼽힌다.
  • 「보안법 철폐」 주장/재야투쟁본부 결정

    「천주교정의구현 전국사제단」「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등 재야단체회원과 학생 등 3백여명은 11일 하오2시 서울 중구 장충동 동국대 중강당에 모여 국가보안법의 철폐를 주장하는 「범국민투쟁본부」를 결성했다. 이들은 결성선언문에서 『남북분단과 냉전구조의 산물인 국가보안법은 통일의 진전에 걸림돌이 되고있다』면서 『일부 조항 개정이나 대체입법이 아닌 법의 완전 철폐』를 주장했다.
  • 대학에 인공기를 걸겠다니…/장수근 북한부장(오늘의 눈)

    대학 캠퍼스에 인공기를 내걸고 적기가를 합창하리라 한다. 북한영화를 돌려보며 팩시밀리로 김일성에게 축하전문도 보낼 것이라고 한다. 김일성의 80회 생일을 맞아 우리의 대학생들이…. 세칭 주사파 운동권 학생들이 주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 전대협은 「통일을 위한 일상사업계획」이란 이름 아래 추진하고 있는 이같은 「사업」의 목적이 「북한바로알기」에 있다고 강변한다. 「북한 바로알기 운동」. 좋은 착상이다.언젠가는 함께 부둥켜 안고 볼을 비벼야할 핏줄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절반」북한을 바로 안다는 것은 통일을 앞당기는 동인이 될수 있기에 싱그럽기까지 하다. 그러나 전대협이 「북한 바로알기」를 그런식으로 이해하고 있다면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일다. 북한. 그곳은 전대협이 알고 있듯 민족의 자긍과 주체의식이 생동하는 「낙원」이 아니다. 북한은 오직 김일성만을 위해 숨쉬고 행동하는 「통일일꾼들」로 가득찬 「21세기 우화의 고장」일뿐이다. 「전체는 하나를 위하여,하나는 전체를 위하여」라는 구호 아래 지상최대의 우상화쇼가 벌어지는 실락원이 바로 북한임을 전대협은 알아야 한다. 노래도,연극도,영화도,매스게임도 오직 한 사람,김일성을 위해 창작되는 곳이 북한이다. 북한노래를 따라 부르고 영화를 보는 것으로 북한을 제대로 알 수만 있다면 구태여 말릴 일도 못된다. 안타까운 것은 김일성 유일사상에 찌들어진채 만들어진 저들 노래와 영화의 겉만 보고 혹해 「주사」니 뭐니 하며 심취하는 치기다. 전대협이 80회생일 축전을 보내겠다는 김일성.과연 그가 누구인지를 전대협은 곰곰 생각해봤는지 묻고 싶다. 6·25를 일으켜 강토를 분단시키고 「아웅산폭파사건」과 「KAL기폭파사건」등 수많은 만행과 테러를 자행한 북한정권의 창출자가 바로 그다. 또한 시대착오적인 전제군주적 사회주의를 고수하며 북한주민들의 인권을 철저히 유린하고 있는 「수령」이 김일성이다. 그런 김일성에게 생일축전보내기운동을 전개하는 전대협의 기도는 김일성의 80회생일을 지상 최대의 정치선전쇼로 떠벌리고 있는 북한놀음에 손발을 맞추고 나서는 것에 다름아니다.지금이야말로 우리 젊은 지성들이 북한을 바로 봐야 할 때다.그리고 외곬의 생각에서 열기를 덜어낼 때다.
  • 여자의 강·전장의 겨울/분단과 6·25의미 새롭게 조명(문학)

    ◎여자… 살기위해 몸바친 기구한 삶 그려/전장… 탈이념시각서 전쟁의 원인 규명 이제까지와는 다른 시각으로 분단을 바라보는 두편의 소설이 잇따라 출간돼 눈길을 끈다. 최근 출간된 현길언씨의 장편소설 「여자의 강」(한길사간)과 구효서씨의 장편소설 「전장의 겨울」(모음사간)은 6·25가 통과하는 한 시기를 배경으로 분단과 6·25의 의미를 새롭게 캐묻는 작품이다. 최인훈의 「광장」에서 조정래의 「태백산맥」에 이르는 분단문학의 흐름을 이어받은 이 두 소설은 이제까지 분단문학에서 소홀히 취급돼 왔던 측면을 비중있게 다루고 있어 이채롭다. 「여자의 강」은 여자의 성을 객체화,타락시키는 요소로서의 분단의 역사,「전장의 겨울」은 6·25전쟁의 원인규명에 각각 치중하고 있는데 특히 「전장의 겨울」은 6·25 미체험 세대로서 「해방전후사의 인식」을 비롯한 사회과학서들을 읽으며 자란 젊은 작가들의 분단시각을 대변하는 도전적인 작품으로 주목된다. 「태백산맥」이 계급투쟁 또는 반제국주의라는 이분법적 이념의 잣대로 이야기를 풀어 나가고 있다면 「전장의 겨울」은 아무런 편견없이 그 모든 분단적 상황에 내재한 근본적 동인들을 추적하고 있다. 따라서 이제까지 이념전쟁으로서의 6·25의 성격을 희석시키면서 보다 자유로운 사고의 틀 안에서 6·25의 의미를 새삼 묻고 있는 것이다. 『이유도 모르고 싸우다 겨울능선에서 죽어간 영령들을 위해』라는 작가의 말에서 드러나듯 이 작품은 전쟁에 투입된 병사들의 대부분이 전쟁의 발발원인이나 전쟁목적을 잘 모르고 있었다는 추정에 근거하고 있는데 그들의 처지는 월남전에 파병된 한국군의 처지와 크게 다를 바 없다. 전투에 투입된 주인공 주기호 일병은 숙명론자 김병도 하사,이상주의자 서석,인민군으로 전향한 아버지 주도현 등을 만나면서 전쟁의 원인을 차츰 깨달아가며 자신의 운명론적 전쟁관을 극복해간다. 아울러 미군과의 포로수용소생활을 통해 주일병은 브루스 커밍스류의 한국전쟁을 내전으로 보는 시각 냉전으로 인한 제국주의와 사회주의간의 대리전쟁으로 보는 시각 등 다양한 6·25의 발발원인에 접하게 된다. 그러나 작가는 전쟁의 발발원인을 감히 단정짓게 하지는 않는다. 작가는 다양한 전쟁의 원인을 열거하는 과정에서 이제까지 이념의 맹목성을 정치적으로 이용해온 정권의 부당성을 고발하고 있는 것이다. 결국 그 모든 역사적 질곡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조국을 사랑할 것을 다짐하고 통일에의 앞날을 기약하는 주인공상을 보여주는 「전장의 겨울」은 현대 젊은이들의 열린 시각을 잘 반영하고 있는 분단소설이다. 한편 「여자의 강」은 가부장적 시각에서 여성을 묘사하여 비난을 샀던 「태백산맥」이 간과했던 부분들을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제주 4·3사건으로부터 6·25,그 이후까지의 분단역사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 「여자의 강」은 박명자라는 빨치산출신의 여주인공이 어려운 시절에 자신의 성을 도구화하여 목숨을 보전시키고 결국 물질적 성공과 연이은 정신과 파탄에 이르는 과정을 그려보이고 있다. 전쟁이나 내란같은 혼란한 시기에 여성의 성은 단순한 욕망충족의 수단이나 남성 힘의 발산대상으로 전락됐음을 이 소설은 상기시킨다. 특히 분단의 시대에 있어여성의 성은 이념적인 도구,정치적 흥정의 대상,또는 어떤 보상의 수단으로 이용되어 왔는데 박명자는 이를 극복하는 차원에서 자신의 성을 적극적으로 사용해 오히려 물질적 성공에까지 이른다. 그러나 작가는 이러한 허황된 성공에 여주인공의 정신적 파탄이라는 비판의 칼날을 들이댄다. 즉 작가는 박명자를 진실로 사랑하며 어려움속에서도 순수를 지켰던 몇몇 사람들의 의미를 여주인공에게 깨닫게 함으로써 이른바 「성의 정치학」에 맞서는 「사랑의 정치학」의 당위성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 신동엽창작기금 곽재구·김하기씨 선정

    ◎심사위,“민족·소설문학발전에 기여”/1인당 지원금도 5백만원으로 높여 올해로 실시 10회를 맞는 신동엽창작기금 수여대상자로 시인 곽재구씨와 소설가 김하기씨가 각각 선정됐다. 3월28일 창작과비평사에서 열린 심사위원회에서 신경림·염무웅·현기영·이동순씨 등 심사위원들은 곽씨의 경우 『「사평역에서」등 여러 시집을 통해 맑은 감성과 따뜻한 언어로 소외된 이웃들의 삶을 껴안는 탁월한 서정시를 창조,민족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것을,김씨의 경우 『분단현실에 의해 잊혀진 미전향 장기수들의 삶을 치밀한 사실성과 튼튼한 역사의식으로 형상화한 중·단편들을 묶은 소설집 「완전한 만남」을 출간하여 소설문학의 발전에 기여』한 점을 선정이유로 들었다. 곽재구씨는 지난 81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로 등단,「5월시」동인으로 활동하며 「사평역에서」「전장포 아리랑」「한국의 연인들」「서울 세노야」등 4권의 시집을 펴냈으며 김하기씨는 89년 「창작과비평」에 단편 「살아있는 무덤」을 발표하며 등단,90년 첫 소설집 「완전한 만남」을 내놓았다. 고신동엽시인의 문학정신을 기리기 위해 지난 82년 신시인의 유족과 창작과비평사가 공동제정한 신동엽창작기금은 「능력있는 문학인으로서 민족문학 발전에 기여할 수 있는 인물중 지원을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창작지원을 하는 것으로 수혜자는 기금수여후 2년이내에 작품을 완성,출간하도록 되어 있다. 역대수혜자는 소설가 이문구 김성동 현기영 박태순 윤정모 방현석씨,시인 하종오 송기원 김명수 김종철 양성우 이동순 김사인 도종환 김남주씨 등이다. 신동엽창작기금은 올해 10회부터 1천만원으로 인상,수혜문인 2인에게 5백만원씩 지급된다.창작기금 수여식은 9일 하오7시 서울 출판문화회관 강당에서 열린다.
  • 일 사회당의 생일축하 사절(사설)

    일본 제1야당인 사회당이 오는 15일 김일성 80회 생일잔치에 당수를 단장으로 하는 1백30여명의 대규모 축하사절단을 파견할 예정인 것으로 보도되었다.일본·북한국교정상화촉진전국연합(가칭)을 만들어 전국적인 운동에 본격 착수할 방침인 것으로도 알려졌다. 이것을 우리는 어떻게 보고 받아들여야 하는가.곤혹스러움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일본은 아시아에서 가장 앞선 선진민주국가의 하나로 되어 있다.냉전시대엔 아시아자유진영의 선도적 위치에 있었으며 탈냉전이후엔 아시아의 바람직한 민주질서 정착을 위해 노력해야 할 책임이 있는 나라다.그런 나라의 제1야당이 공산독재의 수호를 여전히 고집하고 있는 북한의 수령 생일잔치를 축하하러 대규모 사절을 보낸다는 것은 아무래도 이상하고 어울리지 않는다. 얼마전 일본·북한조기수교추진을 이유로 가네마루부총재가 극우파의 저격까지 받은 집권 자민당도 이번엔 10여명의 대표단을 파견한다.여야가 경쟁이라도 하는 것 같다.북한이 어떤 나라이며 김일성이 누구인가.일본의 자민·사회당이 모를리없다.지도자들도 마찬가지다. 국가수반의 생일을 국경일로 정해 해마다 거국적으로 축하행사를 벌이는 나라는 군주국가가 아닌이상 북한뿐일 것이다.부자의 생일을 모두 그렇게 하는 나라는 더욱 없을 것이다.평양등 일부 전시용도시와 군사적 준비를 제외한 많은 인민의 민생은 도탄에 빠져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다.1천만 이산가족의 상봉을 거부하고 있다.많은 권위있는 국제기구에 의해 세계 최악의 인권 및 노동탄압국으로도 평가되고 있다.국제적 테러국으로 지목받고 있으며 일본인들도 그 피해를 보고 있다. 그런 나라의 수령생일 잔치에 일본정치인들이 대거 참석해 함께 잔치를 벌인다는 것은 역시 어울리지 않는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례적인 대규모 축하사절을 보내는 저의는 무엇인가.북한과의 조기수교 달성을 위한 정지작업에 있을 것이다.거듭 지적하는 바이지만 우리는 일본이 북한과의 조기수교를 서두르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남북분단 고착과 양다리외교 및 남북견제가 목적인가 의구심을 갖게 된다. 일본은 반핵운동으로 유명한 나라다.특히 사회당은 그 기수역할을 해온 일본 제일의 야당인 것이다.북한은 핵무장을 고집하고 있다.상식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북한의 핵무장 포기를 요구하는데 앞장서야 할 정당이다.그런데도 입을 다물고 있는 것은 부자연스럽기 짝이 없는 일이라고 일본의 신문들도 사설을 통해 지적한 일이 있다.침묵을 지킬뿐 아니라 북한의 은폐전략을 돕고 있는 인상마저 주고 있는 것이다. 핵은 덮어둔채 조기수교운동을 벌이고 대규모 생일축하 사절을 보내는 사회당을 보면서 받는 인상이다.그런 일본과 사회당을 세계는 어떻게 볼 것인지 한번쯤 반성해 보길 바란다.우리도 일·북수교를 반대하지 않는다.다만 조건이 갖추어져야 한다고 생각할 뿐이다.아직은 시기가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민주화까진 못가더라도 핵무장의 야심만 분명히 포기한다면 우리뿐 아니라 세계도 적극 찬성할 것이다.무리하게 서둘 이유가 없다.일본 사회당은 북한의 핵무장 포기 설득을 위한 대규모 사절부터 먼저 파견하는 것이 순서가 아닌가.
  • 서울에 온 세계적화가 장 크리스토(인터뷰)

    ◎“대지예술은 자유를 표현”/베를린 의사당건물 천으로 덮을 계획 세계미술사에 대지예술(LANDART)이란 새로운 장르를 탄생시킨 불가리아출생의 세계적인 화가 장 크리스토씨(56)가 19일 내한,서울·경주등지를 돌아보고 24일 출국했다. 한국에서의 첫 작품전(갤러리현대,갤러리서미,21일∼4월4일)개최를 계기로 부인·아들과 함께 내한한 그는 지구상에 남은 마지막 분단국가 한국에 그의 대지예술을 펼치겠다는 「적극적인 구상」을 안고 돌아간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플로리다주 비스케인만의 11개섬을 6백50만평방피트(5만8천5백㎡)의 분홍색 폴리프로필렌천으로 둘러싸거나(83년),파리의 퐁뇌프다리를 44만평방피트의 천과 4만2천9백피트의 밧줄로 감싼 거대한 포장작업(85년)을 해 세계를 놀라게 한 그는 『그것이 곧 아무도 소유할 수 없는 위대한 자유를 뜻하는 작업들』이라고 얘기했다. 『나의 예술은 다른 미술작품들과 달리 길어야 2∼3주 정도밖에 존속될 수 없다.예술은 소유할 수 있으며 영원히 존재한다는 고정관념을 허물어뜨리는데 내 작업의목적이 있다』면서 『어느 특정장소에서 얻는 영감에서 출발되는 나의 설치작업들은 주변여건이나 장소의 특성 때문에 쉽사리 작업허가가 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수년을 기다려가며,경우에 따라선 수십년을 두고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고 했다. 『이 작업들은 결코 돈으로 계산되지 않는 한순간의 작업이므로 엄청난 용기가 필요하지만 그것이 곧 나만의 예술이란 긍지로 오늘에 이르고 있다』는 크리스토씨는 작업에 드는 비용은 작업전에 그가 기초로 만드는 드로잉과 콜라주(2만∼40만달러)등의 판매대금으로 충당한다고 밝혔다. 그 유명한 비스케인만 작업에는 3백50만달러,퐁뇌프다리에는 4백만달러가 들었고 지난해 일본과 미국에 자그만치 1천3백40개의 푸른 대형 우산을 계곡을 따라 설치한 작업에는 2천6백만달러가 소요됐다고. 크리스토씨는 현재 베를린 의사당을 천으로 씌우는 작업과 뉴욕 센트럴파크 산책로를 따라 노란 천을 단 1만개가 넘는 철제문을 세우는 작업을 구상중이며 이번 서울전에서 그 드로잉과 과거 대표작들의 드로잉,사진을 발표하고 있다.
  • 합의서·비핵화선언/남북,유엔에 공동제출

    남북한은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와 「한반도 비핵화에 관한 공동선언」을 유엔에 공동으로 제출했다고 외무부가 21일 밝혔다. 박수길 주제네바대사와 이철 북한주제네바대표부대표는 20일 하오(현지시각)제네바주재 유엔군축회의에 합의서 영문번역본과 공동선언 불어 번역본을 공동으로 제출했다. 남북한이 국제기구에 공동으로 문서를 제출한 것은 분단이후 처음있는 일이다. 유엔 군축회의는 두 문건을 공식문서로 채택,오는 25·26일쯤 유엔 전회원국에 배포할 예정이다.
  • 우방화하는 한­로 관계(사설)

    구소련을 사실상 승계한 러시아의 안드레이 코지레프외무장관이 서울을 다녀갔다.러시아외무장관의 첫 방한이었다.한·노외무회담에선 옐친대통령의 9월 방한문제가 논의되었으며 우리와 세계의 최대현안인 북한의 핵포기를 위해 공동대응키로 하는 등의 합의가 발표되었다.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화해와 정상화의 단계에서 우호·협력과 우방의 차원으로 발전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북한의 핵문제에 대한 공동대응외에도 러시아는 대북한군사협력도 한국과 사전 협의하고 자제할 것이며 공격용 무기는 판매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양국은 옐친대통령 방한때 선린협력조약의 체결도 추진키로 했으며 자원개발등 경제·과학·기술협력도 강화해 나가기로 합의했다.한·노관계가 우호국,동맹국의 관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내용들이다. 우리는 한·노관계의 이러한 발전을 긍정적으로 평가하며 환영한다.전후 45년의 냉전기간동안 우리 외교와 세계활동무대는 사회주의권으로부턴 봉쇄당한 반쪽의 것이었다.물심양면의 큰 제약이었으며 뼈아픈 분단비용의하나였다.탈냉전으로 그 벽이 무너졌으며 우리의 무대와 기회는 두배로 확대되었다.북방외교는 통일을 위해서뿐아니라 세계무대의 확대를 위해서도 필요한 것이었다.세계는 탈냉전에서 화해와 우호·협력의 새질서로 급속히 발전해 가고 있다.우리와 한때 최대의 적대국이었던 러시아와의 관계도 당연히 그런 방향으로 나가야하며 가고 있는 것이다. 한국과의 관계증진 결과 러시아의 대북한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약화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노관계의 발전이 북한에 미칠 심리적 영향은 클 것이다.개방·개혁의 큰 압력이 될 것이다.남·북한관계와 한·중관계발전에도 긍정적 영향을 미칠 것이며 전쟁억제의 안보효과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역시 우리의 세계경제·외교무대확대일 것이다.당장의 부정적 시각에도 불구하고 광대한 영토와 풍부한 자원의 러시아는 무한잠재력의 나라다.장기적으로 보면 값싸고 풍부한 자원의 공급처가 될수 있고 개발의 일터이자 수출 시장으로서의 잠재력도 크다.최근의 어업협정이나 이번의 사할린자원개발협력합의 등은 이미 그 가능성을 실증하고 있다. 외교적인 측면에서도 큰 힘이 될수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미국과 일본은 정치·경제·외교·안보 등 모든 면에서 없어서는 안될 우리의 중요한 우방들이다.앞으로도 계속 이들 우방들과의 우호·협력관계는 강화시켜 나가야할 것이다.그러나 무역마찰과 지역패권주의 등에서 보듯이 이해가 상충되는 면에선 언제나 우리가 양보를 강요당하는 입장이었던것도 사실이다.중국이나 러시아와의 관계는 미·일등 우방들의 부당한 압력이나 요구를 자제시키는데 도움이 될수 있을 것이라는 측면도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러시아와의 관계증진은 형성되어가고 있는 새로운 국제질서에 적극 대응하고 참여하며 기여하는 방법의 하나일 수도 있다.바람직한 세계질서의 정착을 위해 필요불가결한 러시아의 개혁과 안정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한반도 주변질서의 견제와 균형을 위해서도 한·노관계의 발전은 필요할 것이다.
  • 남북화해 틈탄 토지투기(사설)

    위장증여 형식의 불동산변칙거래는 투기와 탈법이 겹친 가증스러운 불법행위다.이런 불법행위가 최근 다시 고개를 들고 있어 걱정이다.국세청이 토지거래허가제에 묶인 농지와 임야 등을 위장해 변칙거래해온 투기성 부동산 매매관련자 1천1백80명을 적발,조사하고 있는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번 투기행위는 먼저 그 거래자체가 불법성을 띠고 있어 일반적인 투기와 다르다.토지거래에 관한 허가를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이를 피하기 위해서 변칙증여형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이들은 수단과 방법이야 어떻든간에 돈만 벌면 된다는 상습적인 투기꾼들로 여겨진다. 부동산투기가 우리 사회에 미치는 해독은 광범위하다.투기꾼이 불로소득을 얻는 그 자체문제로 끝나지 않는다.땀흘려 열심히 일하지 않고 번돈은 쉽게 쓰게 마련이다.현재 호화·퇴폐·향락적인 생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의 대부분이 불로소득자들로 알려지고 있다.이들의 사치와 낭비적인 생활이 우리사회에 위화감을 조성하고 있음은 익히 알려진 일이다. 이번 변칙거래는 투기자체가 갖고 있는 해악 뿐이 아니라 불법성을 갖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이들은 법질서를 파괴하면서까지 불로소득을 노린 사람들이다.단순히 투기를 하고 세금을 포탈하는 등 조세관련법을 어긴 것이 아니다.형사고발의 대상이다.이들은 그들의 변칙거래행위가 형사처벌의 대상이 되는 것을 알면서도 불법거래를 하고 있어 더욱 가증스럽다.이들이 그같은 사실을 알면서도 범법행위를 저지르고 있는 것은 경제사범에 대한 처벌이 다른 범죄에 비해 관대하기 때문이다. 또 변칙적인 투기거래의 대상지가 경기와 강원등 남북한간 화해무드와 관련된 지역이라는 점이 주목된다.이들은 우리 민족의 염원인 통일을 그들의 불로소득 수단원으로 악용하고 있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남북분단의 비극과 이산가족의 아픔을 조금이라도 생각할 줄 안다면 휴전선 가까운 지역의 땅을 상대로 불법적인 투기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이번 변칙거래는 법이전의 양식과 도덕성에 비춰볼 때 지탄되어 마땅하다.이런 투기를 그대로 둔다면 남북간 경협확대에 비례하여 투기가 확대될 것이다.더구나 이번 투기는 시기적으로도 매우 민감한 반응을 불러 일으키게 한다.지금은 국회의원 선거기간이다.자칫 잘못하면 투기가 재연될 개연성이 매우 높은 시기이다.그러므로 관계당국은 전국의 부동산 동향을 면밀히 점검하고 동시에 투기조짐이 있는 지역에 대해서는 즉시 적절한 조치를 취해야 할 것이다. 특히 사직당국은 이번과 같은 위장증여의 불법거래에 대해 엄중한 처벌이 있어야 한다.사직당국은 투기꾼들에게 벌금을 물려 약식기소하지 말고 체형이 선고되도록 해야 할 것이다.경제사범이 일반형사사범보다 가벼운 형을 받는 일이 없어져야 한다.
  • 민통선 개발… 「국제관광지의 꿈」이 익는다

    ◎최북방 특정개발지역 고성군을 가다/금강산 초입… 통일위 연계 준비/내년부터 매년 10억 시설 투자/2천1년까지 평화의 댐등 관광권 조성 금강산을 바로 눈앞에 두고 북으로 이어지는 길목인 강원도 고성군. 통일의 빗장이 열리면 이곳은 「국제적 관광지」로 발돋움하게 돼 주민들의 기대 또한 한껏 부풀어 있다. 더욱이 지난달 13일 노태우대통령이 강원도를 순시한 자리에서 이곳을 비롯,강원북부 3개지역을 통일에 대비한 특정지역으로 지정해 단계적으로 개발해 나가고 민통선을 북상시켜 이 지역주민들의 불편을 덜 수 있도록 다각적인 방안을 강구하라고 지시하면서 「통일의 전진기지」로 급부상하고 있기도 하다. 이에따라 실향민이 전체주민 4만1천명 가운데 60%를 차지하고 있는 고성군민들은 북쪽과 서쪽에 30.5㎞의 휴전선을 끼고있고 동쪽해안을 포함,3면이 접적지역으로 안보의 상징이던 이곳이 통일의 길목이 된다는 자부심이 이만저만 큰 것이 아니다. 지금의 고성군은 천하제일 명산인 금강산과 고성읍등이 속해있는 원래 군지역의 51%가 북한지역이고 나머지 49%인 6백21㎦에 군청소재지인 간성읍등 2개읍과 민통선북쪽인 현내면을 비롯,3개면으로 되어있다. ○통일의 전진기지 절경의 동해안을 끼고 북으로 달리는 7번국도를 따라 속초를 벗어나 고성군으로 들어서면 곧바로 바닷가쪽에 자리잡은 관동팔경의 하나인 정간정을 지나게 된다. 삼포·송지호 해수욕장을 거쳐 화진포를 지나 약 50분을 자동차로 달리면 민통선 최북방인 현내면 명호리 통일전망대에 이르고 손에 잡힐듯이 가까이 다가와 있는 금강산 1만2천봉의 마지막 봉우리라는 구선봉.그곳이 외금강에서 금강산으로 들어가는 초입이다. 통일전망대에서 만난 주민 최영봉씨(38·간성읍 상2리)는 『이 지역은 금강산과 설악산 중간지점으로 만약 개발만 된다면 국제적인 관광명소가 될것』이라면서 『민통선 이남지역도 발길 닿는 곳마다 관광지요,휴양지』라고 말했다. 고성군이 통일의 전진기지로 발돋움하려는 노력을 시작한 것은 지난 84년 통일전망대가 세워지면서부터였다. 그동안 호국과 통일을 갈망하는 건봉사 복원이 추진되고지난해 세계잼버리대회개최로 토성면 신평리의 땅 2·825㎦를 깎아 대형야영장과 콘도등 위락시설을 갖추었다. 지난해부터는 거진읍 화진포 국민관광지사업장의 망치소리가 더욱 커지고 있다. 이에따라 화진포는 그언덕에 6·25전에는 김일성별장이,종전후에는 이승만대통령의 별장이 있었던 곳.분단의 아픔을 되새기게 하는 이곳에서 아픔을 씻어내는 새로운 출발점으로 변하고 있었다. ○곳곳에 천혜자원 오는 2001년까지 모두 90억6천여만원을 들여 이일대 1.697㎦를 개발,정부가 제3차국토개발계획의 일환으로 추진하고 있는 철의삼각지∼평화의 댐∼통일전망대를 연결하는 통일안보순환관광권의 중심지역으로 조성한다는게 고성군의 계획이다. 지난해에만 10억7천여만원을 들여 8천2백㎡의 광장을 만들고 도로를 개설했으며 올해에는 9억8천여만원을 투입,이달초부터 본격적으로 각종 기간시설및 주변환경조성사업에 나서고 있다. 이와함께 군에서는 현내면등 민통선 북쪽 주민들이 살고 있는 명파·배봉·화곡·마달리등 4개마을 중심으로 새로운 개발계획을 수립,통일전망대에서 끊겨진 7번국도가 이어질 경우에 대비하고 있다. 고성군수 이용선씨(47)는 『사실 지금까지 민통선 북쪽지역의 사업은 마을안길을 넓히고 다리를 놓는다든지 주거환경개선사업차원에서 소규모사업에 그쳐왔다』면서 『앞으로는 빠른속도는 아닐지 몰라도 남북을 연계하는 고리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는 기반 조성 방향으로 개발사업의 성격이 바뀌게 되지않겠느냐』고 조심스레 전망했다. 지난 82년부터 민통선북방지역개발사업이 추진되어 왔으나 투자규모가 매년 3천만∼3억여원수준으로 마을 안길포장,농수로개설등에 지나지 않았으나 내년부터는 10억원이상이 투자될 전망이다. 여기에다 정부가 그동안 민통선지역 주민들의 숙원사업이라고 할 수 있는 민통선북상 계획을 구체적으로 수립,이곳을 포함해 철원·양구지역의 민통선을 3∼5㎞정도씩 북쪽으로 당기기로 하고 있어 통일기반조성에 보다 한발짝 더 다가서고 있다. ○철저한 공영개발 통일전망대부근 남방한계선 근처인 수풍면 덕산리에 살다 종전후 가족들과 명파리에 정착한이백규씨(47)는 『고향과 가까운 곳에 살기위해 이곳에 왔는데 민통선이 더욱 위쪽으로 올라간다면 잘하면 고향까지도 갈 수 있을것 같다』면서 『그동안 이곳에서 농사를 짓는 주민들은 군사적인 이유로 출입에 많은 통제를 받았는데 이 기회에 동네어귀에 있는 검문소도 좀더 북쪽으로 옮겼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또 설악산에서 나와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화진포를 중심으로 동해안쪽에 있는 송지호·삼포·문암이 3대 국민관광지로 지정돼 이들 지역사이를 잇는 20개 소규모해수욕장주변에 위락시설공사를 하고 있는 곳이 늘어나면서 관광벨트로의 가능성도 서서히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 이밖에 대진·고성산·가진 공현진·봉포·신평·원암등 6개지역 3·354㎦를 종합휴양지로 지정,각종 휴양시설을 짓는다는 계획아래 군은 올해 송지호등 6개지역의 환경영향평가를 하고 고성산지역등 5개 지역에 대해서는 종합휴양지 승인신청을 할 계획이다. 그러나 군은 지난 89년 2월 금강산개발소문으로 한 때 일었던 부동산투기바람이 재발하지 않도록 하기위해앞으로의 개발은 점진적으로 추진하되 철저히 공영개발방식으로 하고 민자를 유치하더라도 민·관공동출자형식인 제3섹터방식으로 할 방침을 세우고 있다. 이러한 계획이 순조롭게 추진된다면 고성은 멀지않아 「통일을 위한 길목」이 될것은 분명했다. ◎이용선군수에 들어본 고성의 청사진/“금강∼설악 관광특구 장기적 추진”/북녘연결 7번국도 따라 휴양지 건설(인터뷰) 『이제 고성군은 우리나라 최북단에 위치한 안보의 첨병이라기보다는 통일의 빗장을 여는 교두보로서 자리를 굳혀나갈 것입니다』 이용선고성군수(47)는 『남북교류를 위한 금강 설악권을 연계한 관광특구조성 가능성이 무르익고 정부의 민통선 북상조치가 구체화됨에 따라 그중심에 있는 고성군이 선도적 역할을 해야한다고 말했다. ­금강산과 설악산을 연계하는 관광특구의 개발을 한다면 고성군이 그 주축이 되어야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고성군은 설악산과 금강산의 가운데에 자리잡고 있으며 금강산으로 가장 손쉽게 들어가는 길목입니다.그리고 수려한 해안을 끼고 있는데다 민통선지역인 탓에 아름다운 경관이 그대로 보존되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를 대비해 금강산을 가는 우리쪽의 거점지역조성을 위한 계획이 있어야 할텐데요. ▲그래서 화진포를 중심으로 금강산으로 향하는 7번국도를 따라 국민관광지구와 휴양지구로 나눠 지난해 부터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했습니다.특히 화진포는 현재 정부차원에서 철의 삼각지대∼평화의댐∼통일전망대와도 연결되는 통일안보 순회관광권역 개발차원에서 공사가 진행되고 있는데 장기적으로 볼 때 금강·설악권 연결과도 무관하다고 볼 수 없지요. ­그러나 현재 화진포의 개발지역은 전체면적의 20%도 채안되지 않습니까. ▲개발이 확정된 지역은 전체 1·697㎦가운데 0·2㎦에 지나지 않고 있습니다.나머지 지역도 장기적으로 개발한다는 방침은 세우고 있습니다.정부에서 민통선북상을 계획하고 있어 개발이 가능할 것으로 봅니다. ­남북교류에 대비,현내면 명파리등 민통선 북쪽지역의 개발은 어떻게 추진되고 있습니까. ▲지금까지는 마을 안길포장등 소규모 동네사업만을 해왔으나 앞으로 민통선이 마을 북쪽으로 올라가면 다른지역보다 중점적으로 투자할 계획입니다.북쪽으로 갈수록 경관이 더욱 아름다운 이상 금강산으로 가는 길목인 이 지역의 개발은 불가피하다고 봅니다.그리고 개발을 한다면 또다시 투기바람이 일지않도록 철저히 대비책을 강구할 계획입니다. ­주민들의 여론은 어떻습니까. ▲북쪽의 고성읍이 6·25전까지만해도 이지역의 중심지여서 왕래가 잦았고 실향민들이 많아 교류를 위한 개발은 적극 환영합니다.
  • 한­미 우호 “미 국익에 중요” 79%

    ◎갤럽,미국 1천명 「대한관」조사/엘리트층 75% “한국 좋아한다”/“통일가능” 54%… “북한핵 우려”도 69%/49%가 “경제분야에 최대관심” 미국인들은 한·중·일 3국 가운데 한국에 대해 가장 호감을 느끼고 있으며,한국을 미 국익에 중요한 대상국으로 평가하고 있다. 또한 40여년전의 한국전은 아직도 미국인들의 뇌리를 지배하고 있고,많은 미국인들은 북한의 군사력과 핵개발 능력을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사실은 미국의 여론조사기관인 갤럽과 포토맥 연구소가 지난 79년에 이어 13년만에 두번째로 실시한 「미국인의 한국에 대한 태도 조사」에서 밝혀졌다. 지난달 18세 이상의 미성인 1천18명과 전화 인터뷰를 통해 실시된 이 여론조사 결과는 5일 포터맥 연구소에 의해 발표됐다. 이 조사에서 한국과 주변국에 대한 느낌을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53%는 한국에 대해 「호의적」이라고 답변한 반면 32%는 「비호의적」이라고 답변했다. 중국에 대해선 호의적 46%,비호의적 45%,일본은 호의적 51%,비호의적 45%가 각각 나왔다.또 북한에 대해선 30%가 호의적,55%가 비호의적이라고 답변했다. 특히 소득·학력·직업면에서 상위권에 속하는 중산층·엘리트 집단,즉 여론 지도층의 한국에 대한 호의적 응답률은 75%에 달했다.이는 일본 66%,중국 44%에 비해 훨씬 높은 것이다.이 그룹은 거의 모든 부문에서 한국및 한미관계에 대해 우호적이었으며 그 내용도 잘 알고 있었다. 한국에 대한 이같은 우호적 감정은 과거에 비하면 다소 감소된 것이다.갤럽과 포토맥 연구소의 지난 79년 조사에선 한국에 대해 58%가 호의적,27%가 비호의적 반응을 나타냈었다.그러나 지난 13년간 한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감정 선회율(10%)은 일본·중국에 대한 미국인들의 친근도 감소와 비교할 때 훨씬 적은 것이다.이 기간중 일본과 중국에 대한 부정적 변화는 각기 65%,39%에 달했다. 이번 조사에서 미국이 국가이익을 위해 한국과 우호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전체의 79%(중산층·엘리트는 89%)로서,79년의 69%에 비해 10%가 늘어났다. 한국을 생각할 때 제일 먼저 연상되는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엔 30%가 한국전을 언급함으로써 한국전은 여전히 한국에 관한 미국인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음을 드러냈다. 다음은 한국 상품 9%,한국 국민 5%로서 이에 대한 인지도가 미국인들에게 한국을 이해하는 정보 소스로 부각되고 있음을 보여 주었다.이밖에 남북 분단 4%,경제발전 3%,가난과 고아 3%,정치 2%등의 답변이 나왔으며 불신·서울올림픽·한국음식·동맹국·값싼 노동력·공산주의등이 각각 1%씩 언급됐다. 한국에 대한 관심 사항으론 49%가 경제문제,42%가 역사와 문화를 선택했다.특히 여론 지도층의 60% 가량은 한국의 경제발전을 가장 관심있는 분야로 보았다.그러나 한국뉴스에 대해서는 57%가 관심이 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주한미군에 대해선 응답자의 73%가 동북아평화와 안보에 기여하고 있다고 평가했다.이는 13년전에 미군의 계속적인 한국 주둔을 지지한 수치(66%)보다 높은 것이다.남북한이 향후 수년내에 동서독처럼 평화통일을 이룩할 가능성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선 ▲가능성이 아주 높다 11% ▲어느 정도 있다 43%,그리고 ▲별로 없다 31% ▲전혀없다 11%의 답변이 나왔다.다시 말해 54%가 긍정적,42%가 부정적 전망을 피력했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에 대해선 69%가 크건 작건 위협이 된다고 평가했다.또한 67%는 미­북한 관계개선을 북한의 핵무기 개발 포기와 인권 개선등과 연계시키는 것을 지지했다. 노태우대통령이 한국의 현직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고 답변한 응답자는 전체의 14%에 달했다.중산층·엘리트 집단에선 이 수치가 30%로 올라갔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발표한 포토맥 연구소의 윌리엄 와트 회장은 「외교사안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식은 놀라울 정도로 낮다」고 지적하며 「노 대통령에 대한 이같은 인지도는 괄목할만한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갤럽 조사에 의하면 미국인 가운데 미국과 인접한 캐나다의 수상 이름을 알고 있는 사람은 13%,멕시코의 대통령 이름을 말할 수 있는 사람은 3%에 지나지 않는다.금년초 부시 미대통령이 일본 방문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84%는 일본수상 이름을 모르고 있었다.단지 7%가 일본 수상 이름을 말할 수있었고 나머지 7%는 모호한 답변을 했다. 노대통령을 한국 대통령이라고 인지한 사람들은 그의 업적을 아주 높이 평가했다.즉 노대통령의 한미관계 개선업적에 대해 응답자의 78%가 「효과적」이었다고 답변했고 민주화 증진면에선 70%가,북한과의 관계개선면에선 60%가 유사한 평가를 했다.와트씨는 「미국 대통령이 이같은 평가를 받았다면 백악관은 큰 만족감을 느꼈을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 「이산가족재회의 갈등」 주제 돋보여(객석에서)

    ◎연극 「춤추는 꿀벌」을 보고 남북한간의 인적왕래가 자유로워지면 1천만 이산가족의 반세기에 걸친 아픔과 설움은 씻은듯이 가실까? 지난 달 26일부터 오는 5일까지 문예회관 대극장에서 공연되는 여인극장의 「춤추는 꿀벌」(노경식작·강유정연출)은 바로 이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 연극으로 주제가 돋보이는 작품이다. 이질화된 민족문화와 정서의 동질성회복 못지 않게 심각한 이산가족의 문제,분단으로 남북에 각각 가족을 거느리게 된 이산가족이 통일이 될 경우 맞게될 신분상의 혼란과 이중적인 가족의 개념등을 감상적인 차원을 넘어 객관적으로 미리 생각케 하는 동시에 윤리적·도덕적 인식의 전환을 역설하는 연극이다. 「춤추는 꿀벌」은 40여년전 혼자 월남한 윤노인(이진수반)집에 북한에 살고 있는 50대의 큰아들(이호성반)이 방문하면서 시작된다.생사조차 확인할 길이 없어 애타던 아들과의 재회의 기쁨도 그러나 잠시뿐.북에서 온 아들은 윤노인이 남쪽에서 새로 장가를 들어 아내(박승태반)와 딸(정경순반)외손자를 둔 평범한 가장이 되어있는 사실을 인정하려 들지 않으면서 갈등은 표면화된다.윤노인의 본부인이 북한에 버젓이 살아있어 자신은 하루아침에 작은 부인신세에 40년동안 허깨비만 붙잡고 살아왔다는 생에 대한 허망함과 덧없음에 빠진 아내는 가출을 한다.40년만에 찾아온 「귀한 손님」이 입장에 따라 불청객이 된 것이다. 윤노인은 물론 남북에 있는 그의 아내와 가족들 모두가 분단의 피해자임을 보여주는 대목이다.그러나 나흘동안의 방문기간을 마치고 북으로 돌아가는 큰아들은 되돌릴 수 없는 현실을 어쩔 수없이 받아들이며 언젠가 다시 만날 날을 기대하며 돌아간다. 사실주의적인 연극을 일관해온 여인극장의 이번무대는 단 한번의 무대변환없이 고정된 무대공간속에서 진행돼 단아하다는 인상과 함께 너무 밋밋해 단조롭다는 인상마저 준다. 또 「얼음보숭이」「뜨락또르」「가락지 빵」등 북한의 문화어를 대사 중간중간에 직접 사용한 것이 눈에 띤다. 그러나 복잡 미묘한 문제에 대한 작가나름의 상상력에 기초한 해결책 내지는 대안의 제시보다 문제제기 차원에 그쳐 답답한 심정을 안은 채 극장문을 나서게 한다.
  • 일제 징용·배상 학술토론 잇따라

    ◎반민족문제연·36년사연 주최 심포지엄 종군위안부문제와 관련된 일본정부의 사과와 배상,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에서 현실적으로 가장 큰 쟁점으로 배상문제가 부각되는등 남북관계의 진전과 국제질서의 변화속에서 식민지배의 청산문제가 새로운 현안으로 등장하고 있다. 3·1절 73주년을 맞아 반민족문제연구소(소장 김봉우)는 「식민지배 청산문제의 민족사적 이해」라는 주제로 지난 27일 흥사단강당에서 기념학술심포지엄을 열고 우리민족의 미래와 관련,식민지배청산의 중요성과 역사성에 대한 열띤 논의를 벌였다. 고려대 강만길교수는 「일제침략전쟁의 성격과 그 피해」라는 발제문을 통해 『민족분단 자체가 바로 식민지배의 미청산이므로 식민지배의 청산은 민족의 주체적 평화적 재통일에서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고 전제하고『때문에 현시점에서 식민지배 청산문제를 재조명해보는 것은 민족재통일의 방향을 설정하는데 불가결한 밑거름』이라고 주장했다. 강교수는 식민지배의 피해를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기회를 박탈하고 경제적으로는 민족자본의 축적에 의한 자율적인 산업혁명의 기회의 박탈,문화적으로는 민족성과 주체성·자존심을 훼손당한 점 등으로 정리했다. 한편 격월간지 「순국」 1·2월호는 「다시 보는 한·일간 전후배상」이라는 특집을 싣고 식민지배문제의 처리와 최근 진행되고 있는 북한과 일본의 수교협상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윤해동씨(역사문제연구소 상임연구원)는 「한일간 식민지 지배문제 처리의 현황과 과제」라는 기고문에서 강제연행자문제를 포함,한일간의 전후처리문제가 미흡하게 처리된 원인은 한국이 전승국으로 대우받지 못한 것과 60년대 한일간의 교섭과정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윤씨는 한일합병조약을 무효화시키고 일본의 사과와 배상을 받아낼 수 있게 지난 65년 체결된 한일기본조약을 개정하고 북한·일본의 수교조약도 위와 같은 논리로 관철될 수 있도록 정부차원의 노력을 기울이는 것이 식민지배청산의 과제라고 주장한다. 이와함께 일제36년사연구소(소장 서남현스님)는 29일 서울에서 한·일 학자들이 모여 해방 47년만에 처음으로 일제하에 강제연행됐던 징용·징병·군속·정신대등 강제연행문제를 다루는 「조선인 강제연행에 관한 국제심포지엄­북해도지역을 중심으로」를 열어 진상규명과 역사속에서의 올바른 자리매김을 놓고 활발한 논의를 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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