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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석에 바라본 지자제(이동화칼럼)

    귀향해 본 농촌의 추석은 역시 풍성했다.햇곡 햇과일 등이 가지가지 많기도 했지만 이런 느낌은 한여름 내내 땀흘려 일한 농민들과,고향의 가족 친지들을 찾아온 도시인들이 흥겹게 함께 어울리는 모습에서 더욱 진하게 풍기고 있었다. 특히 농민들의 투박한 웃음속에 보이는 자긍의 모습은 추석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는 원동력이 되고 있음을 손쉽게 느낄수 있었다.노인분들도 『살아생전에 처음』이라던 극심한 무더위와 가뭄까지 뚫고 이겨낸 결실의 보람이 얼굴과 행동과 말 속에서 풍기고 있는 것이었다. ○기대반 우려반의 지자제 그동안 썰물빠지듯 도시로 나간 젊은이들이 잠시나마 돌아와 모인 시골사랑방은 이런 분위기 때문인지 농촌진흥세미나 장소로 변해있었다.주제는 고수익작목선택에서부터 농어촌자매결연,농공단지의 성패,UR이후의 자구책 등등. 그중에서도 가장 흥미있고 주목을 끈 주제는 내년중반부터 본격실시될 예정인 지방자치에 관한 내용들이었다.이 문제에 대해서는 농촌에 사는 이나 도시민이나를 막론하고 기대반 우려반의 관심을 나타내고 있었다. 지자제시대를 보는 이들의 관심사는 선출될 인물,개발계획,공직풍토등 다양한 것이다.특히 인물에 관한 흥미는 일반적이면서도 광범위하다고 말할 수 밖에 없었다.서울시장감을 비롯해 직할시장 도지사 등의 자천타천 후보감들은 이미 여러차례 언론에 보도되어 사람들의 입초시에 오르고 있지만 지방도 예외는 아니다. ○예상후보놓고 설왕설래 군수후보로는 어떤 마을 어느 성씨의 누가 있고 장단점은 어떻고 판세예상은 어떻고 하는 얘기에서부터 군의원예상후보까지 도마에 올려져 난도질 당하는 시절이 된 것이다.언론에서 정식으로 보도하지 않았을 뿐 윤곽이 드러날대로 다 드러나고 있는 실정이라 하겠다. 여기에 더하여 누구는 A를 밀고 누구는 B를 지지하며 누구는 C를 지원하는 등 동네분위기가 이상해진 곳조차 있다는 얘기다.또 선거가 닥치면 어느 마을이나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현상이 나오게 마련이고 그 후유증은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선거때의 것과는 달리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 일반론이었다. 농촌일이라는 것이 서로 돕고 품앗이를 해가는 협업이 절대 필요하다는 관점에서 농민들의 걱정이 많았다.이 때문에 협업을 장려하고 강화하는 차원에서 향약을 고치는등 미리 대비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젊은이들이 적은 농촌에서 정치오염을 막기위한 자구책이라고나 할까. ○지역개발관련 진통예상 다른 하나의 관심은 지역개발이다.택지나 농공단지는 어디에 어떻게 조성될 것으로 보이고 그것이 우리마을에는 어떤 이익과 손해가 있다든지,읍외곽도로를 어디에 새로 만들어야 한다든지,관광지 개발이 어떻다든지 하는 것들이다.이런 것들중 많은 부분은 주민들의 이해가 엇갈려 진통을 겪게 될것이다.또 무분별한 지역이기적 개발은 보다 광역적인 차원이나 국가적 안목에서 보아 소탐대실의 부작용을 낳을수 있다.이런 생각을 하면 뒷맛이 씁쓸하다. 그밖에 지자제실시와 관련하여 화제에 많이 오르고 개탄의 대상이 된것은 지방공직자의 기강에 관한 문제였다.인천북구청 세무직원들의 부정때문에 새로이 부각되었지만 그곳뿐 아니라 다른 많은 곳에서도 정도의 차이일뿐 눈에 보이지 않는 부정부패가 아직도 독버섯처럼 자리하고 있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었다. 물론 그렇지 않은 선량한 공직자가 더 많지만 국민의 체감은 꼭 이와 비례하지 않는데 문제가 있다.이런 체감도를 떨어뜨릴 처방이 나오지 않고 지자제부터 본격 실시된다면 이는 바로 난관을 안고 일을 시작하는 것과 다를것이 없는 것이다. 앞에 설명한 여러가지를 보더라도 본격적인 지자제는 그밖의 많은 문제들까지 안고 시작될수 밖에 없는 형편이다.이것이 제대로 뿌리를 내리고 자리를 잡았을 때는 민주주의발전의 요체가 될수 있겠지만 역기능이나 역작용이 클때에는 국가와 국민에게 오히려 독이 될수있다. ○준비에 지식인 나서야 때문에 우리같은 좁은 국토와 분단상황아래에서는 지자제 자체가 불필요하다는 강경반대의 입장도 있다.또 우리의 정치의식과 지역패권주의까지 들며 그런 입장에 동조하는 사람도 적지않다.이런 지적이 아니더라도 지자제가 손쉽게 굴러가리라고 예상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획기적인 발상전환은 못하더라도 최소한 시행착오를 가능한한 줄일수 있도록 하는데에 정부와 여야정당,그리고 지식인들이 나서서 적극 노력할때가 아닌가 한다.
  • 「X세대」 시어머니(송정숙칼럼)

    황금띠에 KBS­TV가 내 보내는 드라마 『당신이 그리워질 때』에 나오는 중년의 시어머니가 요즘 화제인 것 같다.이른바 X세대인 며느리는 직장을 가지고 자기일을 하면서 생활비도 안들이고 아이는 시어머니가 길러주는 편한 시집살이를 하고 있다.그래선 시어머니는 『내가 즈네들 애나 길러주는 사람이냐』고 심술이 나서 남편과 늙은 자기시어머니의 뜻에 맹렬히 반기를 들고 젊은 것들을 내쫓으려 한다.이를테면 「X세대 시어머니」다. 이 시어머니가 비슷한 또래인 초로의 주부들에게는 대상만족이 되는 모양이다.이제는 대가족을 거부하고 핵가족으로 살려고 하는 젊은 세대는 고전이 되었고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안맡으려 하고 며느리는 오히려 시부모에게 얹혀서 개개려고 하는 타산적인 「신세대」의 시대로 바뀐 것이다. 최근엔 이런 이야기도 들었다.그자리에 있던 중년의 한 여성이 자기는 시자가 붙은 식구는 다 싫다고 말했다.얼마나 싫은가 하면『만약에 시어머니가 금덩어리를 이고 대문앞에 와서 「아나 여기 금덩어리 가지고 왔다」한다면 「그것만 내려놓고 가세요」할지언정 가지고 들어오시라고 할 생각은 없을 만큼 싫다』는 것이었다.그렇게 말한 여성이 보통주부도 아니고 여류작가여서 듣는 동안 진땀이 날 지경이었다.그런데 그말을 듣고 있던 좌중의 젊은 주부 하나가 냉큼 이렇게 받는 것이었다.『선생님,그거 모르세요? 옛날에는 맛있는 걸 갖다가 며느리네 냉장고에 넣어놓기만 하고 가 주는 시어머니가 제일좋은 시어머니였는데요,요새는 그걸 가지고 와서 아파트경비실에 맡겨놓고만 가는 시어머니가 최고래요』 이렇게 발칙하고 가당찮은 며느리들이 그득한 세상이므로 아직 젊은 시어머니가 아들내외와 어린 손녀를 한사코 내쫓으려 하는 드라마를 보며 시어머니들이 박수를 칠만도 하겠다.죽어라고 공부 잘하게 만들어서 명문대학 출신으로 키워놓았더니 제아내밖에 모르는 아들도 이 드라마에는 나온다.제아이를 키워주는 어머니에 고마워하기는 커녕 타박만 한다.요즈음 우리가 기르고 있는 대개의 아들들이 그 비슷하다.이런 아들 며느리에게 노후를 맡길 생각은 처음부터 안하는 것이 현명하다. 이렇게 난감한 세상이 되어가므로 싱가포르에선가 「효도법」이 만들어졌다는 뉴스가 들어오자 귀가 번쩍 띄어 사방에서 관심을 보이며 우리도 따라 해보자는 여론이 일어났다.특히 70노인이 아흔넘은 노모의 목을 조른 사건이 일어나자 더욱 그랬다. 그러나 법으로 강요된 「효도」,그것이 지금처럼 자란 젊은이들을 바꿔놓을 수 있겠는가.법 때문에 마지못해 모시는 봉양이 그나마의 부모 자식관계를 또 얼마나 황량하게 만들겠는가.무엇보다도 그토록 이를 갈며 시부모를 싫어하는 며느리와 그 남편인 아들의 봉양을 받는다는 것에 이제 많은 시부모들이 미련을 갖고 싶어하지 않는다.그렇다고 딸은 어떤가.외국생활을 하는 젊은 부부들은 시어머니보다 장모를 선호해서 비행기태워 모셔간다.그러나 그것은 장모가 딸을 위해 산후구완도 잘하고 헌신적으로 살림도 해주기 때문일 뿐이다.장모의 영향력이 큰 미국사회에서는 「장모를 죽이고 싶은 충동을 받아본 사위」가 압도적 다수라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장모죽이기」가 유머의 소재로 제일 자주 동원도 된다. 그러니 자기도 어쩔 수 없이 너무 오래 살게 되어 이런 자손들에 의해 길에 버릴 수 밖에 없는 딱한 대상이 되거나 차라리 죽이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하는 인생의 끝을 맞는 일이 모든 부모들은 공포스럽다.더욱이 사랑하는 자식에게 부모를 목누르는 패륜의 죄를 멍에로 씌우는 운명 같은 것을 부모는 상상도 하기 싫다. 이미 어차피 혼자살 수 밖에 없는 노인들이 수두룩하다.그들은 어느날 혼자맞게 될 죽음과 부패되도록 아무에게도 발견되지 못한 자신의 주검에 대한 악몽속에 시달리며 살기도 한다. 그런 노년들이 바라는 것이 그다지 과한 것은 아니다.지금 우리가 아는 것처럼 비참한 「양로원」은 아닌 그런대로 지낼만한 노인시설에서 늙음을 보내다가 호스피스 봉사의 도움을 받으며 최소한의 품위를 지키며 인생을 마감하고 싶을 뿐이다. 식민지세상과 분단과 전쟁과 그 질기던 가난한 시대의 터널을 뚫고 오늘을 이룩해온 오늘의 노인들은 적어도 그런 정도의 소망쯤은 충족받을 만한 자격이 있다.연금이나 보험 같은 재산으로 그런 것을보장 받을 능력이 있는 노령도 늘어가고 있고 자식들도 「흉악한 불효」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그 정도의 의무를 수행할만한 각오를 하고 있는 사람들도 많다.아직은 부모를 양로원에 보냈다는 「누명」이 부담스러워 모시는 시늉을 하고 있는 자식들의 위선적인 「모시기」에서 서로가 벗어나기 위해서도 이제는 그 해법이 시급해졌다.
  • 통일되면 북 부동산 되돌려 받나/독 사례 연구서 첫 출간 화제

    ◎독 반환못받아… 동독투자에 걸림돌/반환하되 금전보상도 병행 바람직 남­북한이 자본주의체제로 통일될 경우 남북분단 이전에 북한에 땅을 가졌던 개인의 재산권은 어떻게 될 것인가. 국가가 원소유자에게 땅을 반환해야 하는가,아니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하는가. 정부가 김일성 사망을 계기로 「갑작스런 통일」에 대비,법과 제도의 정비를 서두르고 있는 가운데 법무부가 14일 「독일통일·동구제국 재산몰수처리 개관」을 펴내 관심을 끌고 있다. 이 책은 이질적 체제간의 통합을 지향하는 우리나라도 통일이 되면 재산권 재편과정에서 몰수재산처리문제가 대두될 것이기 때문에 통일후 재산권문제를 연구하는데 중요한 모델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동안 통일독일이나 동구권의 몰수재산 처리문제에 관한 경제적 측면의 연구는 있었으나 본격적인 법적 연구는 처음이다. 주광일법무실장은 『통일이 되면 북한의 부동산에 대한 권리를 증명할 수 있는 등기서류 등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게는 부동산을 돌려주고,개인에게 돌려줬을 경우 재산의 상태가국가경제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을 경우에는 돈으로 환산해 보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이 책은 통일독일이 몰수재산처리의 기본원칙으로 당초 반환우선원칙을 정함으로써 구동독지역의 경제재건에 큰 걸림돌이 됐다고 밝혔다. 언제 진짜 주인이 나타날 것인지가 불확실해 동독투자에 나서는 사람이 없고 반환을 신청한 서독의 원소유자들이 투자를 통한 경제활성화와 고용창출보다는 자신들의 재산증식에 주된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구동독의 주민들도 주택이나 토지의 소유권이 불확실해 투자를 꺼렸다. 이처럼 부작용이 커지자 소유권이 불분명한 반환원칙 보다는 보상을 통한 방법을 가미해 구동독지역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자는 의견이 강하게 대두돼 독일정부는 반환우선원칙은 고수하되 예외를 인정하는 「현실론」으로 선회했다. 이에 따라 독일정부는 구동독지역에 대한 법적·제도적 투자장애요인을 제거하기 위해 관련 법령의 개정을 지속적으로 추진했다. 그 결과 90년9월 「미해결재산문제의 처리를 위한 법률」이 제정되었다. 이법률은 통일조약 발효 이후 연방독일 법률의 일부로 되었으며 반환원칙이 광범위하게 제한되고 각종 투자자보호규정이 삽입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 「태백산맥」 용공시비 유감/황진선 문화부기자(오늘의 눈)

    영화 「태백산맥」을 둘러싼 「용공」 시비가 일단락됐다.8일자로 공연윤리위원회의 심의를 무수정 통과함으로써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음이 확인된 것이다.그러나 심의 통과까지의 일련의 과정은 우리 사회가 성숙하지 못했음을 그대로 드러낸 것 같아 안타깝다. 지난달 중순 「자유민주수호애국연합」이 공윤과 극장협회 등에 편지를 보낸 것부터가 잘못이었다.영화가 이념 또는 사상적으로 문제가 있다면 공윤이 판단할 일이다.더욱이 영화는 공윤의 심의를 통과해야 일반인에게 상영될 수 있다.그럼에도 이들 단체는 영화가 만들어지기도 전에 『태백산맥이 소설과 같이 만들어졌을 경우 화약·휘발유·석유·가스 등 모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극장 상영을 저지하겠다』는 내용의 협박편지를 보냈다.참으로 예술 창작의 자유가 허용되는 법치국가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언론의 보도 태도에도 문제가 있었다.이 단체가 『영화가 소설과 같이 만들어졌을 경우』라고 명기한 것은 영화를 보고 난 뒤 행동 여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일 것이다.그런데도 일부 언론은 거두절미하고 「태백산맥」을 상영할 경우 무조건 폭파 등의 수단을 사용할 것처럼 보도했다.이는 한마디로 주사파 논쟁으로 시끌시끌한 요즘의 사회적 분위기,즉 센세이셔널리즘에 편승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단체가 국가보안법 위반혐의로 고발한 소설 「태백산맥」의 저자 조정래씨의 기소 여부도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사안이다.「태백산맥」은 5·6공화국 당시의 대표적 베스트 셀러였다.일각에서는 「분단문학의 최고봉」으로 평가하기도 했다.그런 소설에 대해 이제와서 사법처리를 검토한다는 것은 일반인의 법감정과는 맞지않는 일이다.더욱이 서슬퍼랬던 5·6공 공안당국이 당시에 어떤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는 것은 법적으로 문제가 없거나 면죄부를 준 것으로 해석할 수 밖에 없다. 소련 등 동구 국가의 붕괴로 사회주의 실험은 이미 끝났다.이제 사회주의가 다시 준동하리라고 믿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지난달 31일 창원지방법원의 최인석판사가 「한국사회의 이해」의 저자인 경상대 교수들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하면서 『우리 사회의 사상적 건강 상태가 이를 소화하지 못할 정도는 아니다』라고 한 것처럼 보다 넓은 이해심과 포용력이 필요한 때라는 생각이다.
  • 통일대비 어떻게… 민자 국책자문위 토론

    ◎독일식모델 원용하되 형태 달아야/예멘식 정권이익 노린 결합은 불가/북핵문제 통일여건 조성 최대장애 7일 서울 여의도 민자당사에서는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과 북한핵문제를 둘러싼 주변 4강의 이해각축등 물살빠른 통일환경의 변화속에서 통일을 준비하기 위한 구체적 대안을 모색하는 토론회가 열렸다. 민자당 국책자문위(위원장 김진재) 주관으로 열린 「한국 통일대비 어떻게 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이날 토론회에는 베트남과 독일 예멘에서 통일전후의 현장을 지켜본 전직 대사들과 이상옥전외무부장관등 전문가들이 참석,우리의 통일준비 방향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였다. ○…먼저 김진재국책자문위원장은 『한반도 주변의 급격한 변화속에 우리 내부에는 「통일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는 당위」라는 주장과 「현실의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면서 통일을 경험했던 이들 3개국의 통일방식의 비교를 주문. 신동원전서독대사는 『베트남의 군사적 무력통일방식은 우리의 평화통일 정책과 맞지않고 예멘도 통일요건이 충족되지않은 통일로 다시 분단을 맞았다』고 지적한뒤 『모델면에서 우리에게 가장 참고가 되는 것은 독일』이라고 정리. 신전대사는 독일의 통일을 충족시킨 조건으로 『첫째 주변정세가 시장경제와 민주화를 지향하는 본질적 개혁으로 방향을 선회한 점,둘째 분단국의 일방당사자인 공산동독이 그러한 변화를 수용해나간 점,셋째 통일을 수용하는 서독이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수용능력을 구비했다는 점』을 꼽았다. 유지호전예멘대사는 『예멘의 통일은 민족적 이익이라는 추상적 목표보다는 남북 양측의 정권적 계산이 일치함으로써 가능했다』고 전제하고 『특히 72∼88년 사이의 헌법·대화기구,통일방안등에 대한 제도적 합의보다는 88∼90년 사이 소련붕괴및 걸프전으로 주변국들의 분단유지 노력에 공백이 생긴 점이 남북예멘의 진지한 통일협상을 가능하게 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예멘은 통일직후 과도기에 사회전반의 통합실패,특히 상층부와 달리 야전군의 통합에 실패함으로써 다시 내전과 분단으로 회귀했다』고 통일을 완수해나갈 역량의 중요성을 강조. 이상옥전외무부장관은 『김영삼대통령이 지난 8·15경축사에서 밝혔듯 우리는 모든 통일 가능성에 대비하되 흡수통일을 원하지 않고 있다』면서 『한국형 통일은 3가지 모델 가운데 참고할만한 독일과도 그 형태가 달라야 한다』고 문제를 제기. ○…평화통일의 조건과 관련,신동원전서독대사는 먼저 2차대전뒤 분단을 강요한 주변국의 「결자해지」를 강조. 김대영국토개발연구위원은 『통일직후 정부가 실천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범위를 한정하지 않는 한 1조3천억불이니,1조5천억불이니 하는 통일비용 추계치는 의미가 없다』면서 『북한을 시장경제로 바꾸는 최소한의 관리비용만 갖춘다면 비용부담때문에 통일을 망설일 필요가 없다』고 「점진적 통일론」에 이의를 제기. 이에 대해 이전장관은 『미·소·중·일등 한반도 주변4강이 전쟁억제와 평화통일지지라는 원칙에 공감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반도의 주변정세는 지금 꽤 성숙돼 있다』고 평가한뒤 『그러나 핵문제를 고리로 한 북한의 대남강경노선이 주변정세를 꼬이게 하는 근본요인』이라고 말했다. ○…분단당사국으로서의 통일준비 방향에 대해서는 유전대사가 『제도화된 사회통합등 실천적 준비없이 권력의 안배로 시작한 예멘통일은 결국 실패로 끝났다』면서 『특히 양측을 지배해온 일당제는 비밀협상에만 의존,통일에 대한 국민의 여론수렴기회를 박탈하고 통일직후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에 대한 대안제시를 불가능하게 했다』고 다원주의적 토양의 중요성을 강조. 신전대사도 『독일은 통일을 전후해 정권이 여러차례 바뀌면서도 자유·민주적 질서,시장경제,법치주의와 인권보장등 주변 강대국을 불안하게 하지 않는 점진적 통일을 조용히 추구,국제적 신뢰를 쌓음으로써 스스로 방해받지 않고 냉전의 유산을 거두어낼 수 있었다』고 정리.
  • 남북한 우편물교환 촉구/UPU,결의안 만장일치 채택

    만국우편연합(UPU)은 6일 상오 서울 삼성동 한국종합전시관에서 열린 본회의에서 1백68개 참석회원국의 만장일치로 「남북한 우편물교환 촉구결의안」을 채택했다. 보토드바로스 UPU사무총장은 결의안 채택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UPU회원국들의 자유로운 통상우편물 상호교환은 전 영역에서 보장돼야 한다』는 UPU헌장을 상기시키고 『UPU서울총회를 계기로 한반도에서도 남북한이 빠른 시일내 상호 우편물 교환을 실시할 것을 전회원국의 지지를 얻어 촉구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남북한간 우편물 교류를 성사시키기 위해 UPU사무총장이 양국에 권고서신을 보내는 등 적절한 조치도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결의안은 강제력은 없으나 우리 정부가 그동안 북한측에 민족의 동질성회복 차원에서 통신교류를 제의해 온 것과 입장을 같이한 것이어서 향후 북한의 반응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편 체신부는 UPU결의안에 환영의 뜻을 표시하고 『남북한간 우편교류가 조속히 실현돼 분단이후 50년간 소식이 끊긴 1천만 이산가족을 포함,남북한 전체 국민간 이해의 폭이 증진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 중국 핵전문가들 대만방문/홍콩지/거물급 7명 입국… 기술협력 모색

    【홍콩 연합】 중국의 저명한 핵과학자및 전문가 7명이 분단후 처음으로 대만을 방문중이라고 홍콩의 문회보,연합보,신보가 5일 타이베이발로 보도했다. 중국 핵과학자와 전문가들은 「양안핵에너지교류강연회」 등에 참석하는 한편 대만 핵과학자들을 활발하게 만나고 있다고 이들 신문은 전했다. 이들은 대만 청화대학의 초청을 받고 지난 3일 타이베이에 도착했다고 홍콩언론들은 말했다. 이번에 대만을 첫 방문한 중국 핵과학자와 전문가들은 대륙의 저명한 핵과학자들인 중국핵학회 이사장 왕덕희와 북경 청화대학 총장이자 중국핵학회 부이사장겸 중국과학원 회원인 왕대중및 중국핵학회 사무총장 왕전영 등이다. 또 중국원자과학연구원 부원장 양천록,중국핵공업총공사 부총기술자 모환장,중국 첫 핵발전소인 진산핵전공사 부총경이(부사장) 전검추,중국핵학회 학술교류부 연구원 거극비가 포함돼 있다.
  • 강영훈·정원식 두 전총리/남북회담 비화집 낸다

    ◎8차례 고위회담대표 경험 살려/회담장서의 북측 행동등 상술/역사의 이면 충실하게 재정리/향후 회담에 길잡이로 활용토록 지난 90년 서울에서 열린 1차 남북고위급회담에서부터 2년동안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진행된 8차례의 남북고위급회담의 우리측 대표였던 강영훈(1∼3차)·정원식(4∼8차) 두전직 국무총리가 책을 쓰고 있다. ○“국가에 마지막 봉사” 분단 45년만에 처음으로 남북총리가 상대편 정상과 악수하고 남북정상회담의 성사가능성을 보여준 2년동안의 숨가쁜 드라마를 기록으로 담고 있는 것이다. 김일성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중단된 남북정상회담이 멀지않아 어떤 형태로든 다시 추진될 것에 대비,정상회담및 이를 위한 예비회담,더 나아가 통일협상에 이르는 후임 대표및 당국자들에게 참고서를 제공하겠다는 충정에서다. 작업은 지난해 7월 세종연구소 이사장에 취임한 정전총리가 지난해 10월 「국가를 위해 마지막으로 봉사할 수 있는 의미있는 숙제」로서 남북회담 비화를 정리하기로 결심하면서 시작됐다. 정전총리는 이에따라 재단이사회에서 남북회담 이면사를 정리하는 프로젝트의 승인을 얻은뒤 강전총리에게 이같은 뜻을 전달,흔쾌히 동의를 얻어냈다. 작업은 고위급회담 대표로 참가했던 두 전직총리를 포함하는 4명의 위원으로 연구팀(팀장 정원식)을 구성하고 예비회담·실무접촉등 공식접촉과 각종 비공식접촉 창구를 맡았던 20여명으로 구성된 자문위원단을 가동,진행되고 있다. 편견을 막기위해 같은 날짜의 같은 상황에 대해서도 참가했던 모든 관계자들의 증언을 통해 크로스 체크하는 확인과정을 거치고 있다. 오는 연말까지 20여권 안팎의 남북회담 자료집을 낸다는 목표아래 바삐 움직이고 있으나 일반인에 대한 공개여부는 남북대화의 진전속도등을 고려,정부측과 신중한 협의를 거쳐 결정할 방침이다. 이 비화집의 절반이상은 대표간 대화록,공동발표문등 공식행사와 관련된 것이다.그러나 북한대표단이 우리측의 새로운 조건에 대해 평양과 연락을 취하면서 대응하기까지 우리측에 포착된 일거수 일투족등 긴박한 회담과정에서 미처 정리하지 못한 역사의 순간들도 모조리 담을계획이라고 정전총리는 말했다. 물론 현장에 있던 관계자들의 기억이 희미해지고 서로 엇갈리는 부분도 있어 애를 먹기도 한다. ○기억 엇갈려 애먹어 평양의 주석궁을 방문했을때 김일성주석이 접견실에서 나왔는지 홀에서 걸어나왔는지등 시시콜콜할 수도 있는 부분까지 상황에 대한 완전한 기억일치가 이루어지고 나서야 활자화한다는 원칙을 정해놓고 있다. 정전총리는 『남북기본합의서라는 귀중한 합의문서를 이루어낸 8차례의 고위급회담이었지만 선례가 없는 상황에서 당혹스러웠던 적이 한두번이 아니다』라면서 『다음사람들이 조그마한 참고자료로 활용,민족의 숙원인 통일을 앞당기는데 도움이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 구동독 지역/시장경제 체제로 발빠른 변신(현장 세계경제)

    ◎만여기업 민영화 거의 완료/올 경제성장 9% 돌파 전망/예산부담·실업문제 등 통합 후유증 극복 성공 옛 냉전때 제일 잘사는 공산권 국가였던 동독이 냉전이후 가장 빨리 새 경제체제로 변신하고 있다.독립국가연합으로 분열한 구소련은 물론 인근의 동구 공산국가들은 사회주의 붕괴 직후 경쟁적으로 철저한 사유·민영화등 자본주의 개혁에 돌입했었다.이들 가운데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서독과 통합독일을 이루었던 동독은 기존체제 파멸과 흡수통합의 이중 변화를 감당해야 하는 어려운 처지였다. 그러나 동독 지역은 여러 판단착오와 정책실패로 인해 지금도 통합 후유증을 앓고있지만 구소련·동구권에서 단연 돋보이는 속도로 시장경제 체제로의 변혁가도를 달리고 있다. 먼저 이같은 변화의 중요한 지표인 국유기업의 사유화 작업이 순조로운 진행 끝에 완료를 바라본다.서독 정부는 단일통화등 동독을 경제적으로 통합한 지난 90년7월 동독 지역의 1만3천6백87개 기업을 인수했으며 곧바로 이들의 민영화에 착수했다.「가장 빠른 시일내에 자본주의로 체제를 변환시키는」 방안으로서 이들을 국내외 민간투자가들에게 매각한다는 정책이었고 이를 전담하는 기구인 공공신탁청(트로이한트)을 베를린에 설치했다. ○공공신탁청 곧 해체 마침내 트로이한트는 주어진 임무를 거의 완수하고 올 연말 해체될 예정이다.1만3천여 인수 기업체중 지난달 말 현재 1백47개만 남고 나머지는 모두 민영화 절차가 종료된 상태다.대부분이 새 주인에게 매각돼 명실상부한 민영화를 달성했으나 상당수 기업체가 끝내 매입 투자가를 찾지 못해 폐쇄·해산되는 종말을 맞았다. 또 국가강탈을 통해 국유화된 기업들은 소유권이 분명할 경우 이전 소유자에게 반환조치 됐다.그런데 기업체란 어엿한 자산을 매각처분하는 과정인 데도 공산체제의 국유기업 민영화는 매각수입의 몇배나 되는 비용을 통일정부와 국민들에게 부담시켰다. 트로이한트는 설치 4년이 지난 현재 정부로부터 총 2천1백70억달러에 달하는 국가예산을 민영화 자금으로 교부받았다.이 비용은 동독기업의 채무변제와 상당수 업체에 대한 운영·재편경비 조달로 발생했다.이 정부 교부금중 4백68억달러만이 매각대금및 운영수입으로 회수됐다.독일정부와 세금을 내는 독일국민들은 결국 동독민영화로 1천7백억달러의 「빚」을 안고있는 셈이다. 이 민영화는 더욱이 4백10만명이었던 대상 기업의 전체 종업원을 현재 1백50만명으로 감축시키고 말았다.2백만명 이상의 동독 국영기업 근로자들이 일단 일자리를 잃은 것이다. 이같은 심각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동독 경제는 통합의 충격으로 인한 산업 침체를 눈에 띄게 극복해가는 중이다. ○산업생산량 급증 지난해 동독지역의 경제성장률은 7%를 기록했으며 올해는 9%에 달할 전망이다.90년부터 92년까지 50%나 감소했던 산업생산량도 지난해 9%나 증가했다. 앞으로 10년이나 지나야 동독 경제가 국제경쟁력을 갖출 것이라는 부정적 견해도 있지만 조선,반도체 칩생산 분야는 현재도 괄목할 만한 수준에 이른 것으로 평가된다. 지난 2차대전 패배이래 서독이 세계에 자랑한 경이적 경제발전은 마르크화의 저평가와 근로자의 저임금에서 촉발됐다는 것이 정설인데 통합직후 동독은 단일통화 정책및 고임금 현실로 인해 서독 같은 「호재」를 처음부터 기대할 수 없는 형편이었다.그래서 독일 총 수출액 가운데 동독지역 기업들의 기여도는 단 2%에 지나지 않으며 통합후 이 지역에서만 모두 45만개의 중소기업이 설립됐지만 제조업체는 단 9천개에 불과하다. ○기간시설 확충 박차 그렇지만 서독제등 외제에 압도당했던 기본소비재 산업이 동독인들의 수요 부활로 회복되고 있는 등 긍정적 징후들을 쉽게 찾게 된다.통일연방 정부와 동독지역 주정부들이 도로·기간시설 등 사회간접자본 확충에 거액을 투자하고 있다.덕분에 이 지역에서 건설업의 생산총액 비중이 서독지역의 배인 15%에 달한다. 무엇보다도 국가예산 부담과 실직자 양산의 부작용에도 불구하고 동독기업의 민영화는 현대화된 공장들을 단시일에 동독지역 곳곳에다 배치시키는 효과를 낳았다.또 동독 기업을 매입한 투자가들은 매입총액을 훨씬 웃도는 1천1백20억달러를 신규투자하겠다고 매입조건의 하나로 약속했다.트로이한트도 매각되지 않은 기업체를 즉시 폐쇄·정리하는 대신 장기적 전망이 좋은 업체에 9백40억달러를 투자해왔다. 합계 2천억달러가 넘는 이 투자는 뿌리얕은 동독 시장경제를 곧 멋지게 결실보게 할 것으로 기대된다.
  • 대만,본토기업인 방문 자유화/“정치와 분리,경제교류 촉진”

    ◎행정원대륙위,3개규정 마련 【홍콩 연합】 대만 행정원(중앙정부) 대륙위원회는 중국경제인들의 대만방문을 대폭 자유화하는 3개 규정들을 분단 45년만에 처음으로 마련하여 통과시켰다고 고공염 대륙위 부주임(차관)이 밝혔다고 홍콩언론들이 30일 일제히 타이베이발로 크게 보도했다. 고부주임은 대륙위가 29일 타이베이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중국과의 정치적 문제를 제쳐두고 경제·무역·농업·교통·통신·우편 등 분야의 교류를 앞으로 본격 강화하기 위해 「중국인 대만방문 경제무역활동종사 허가방법」 등 3개 규정들을 한꺼번에 통과시켰다고 밝혔다. 나머지 두 규정은 「중국 농업계인사 대만방문 상관활동종사 허가방법」 및 「중국 교통업계인사 대만방문 상관활동종사 허가방법」이라고 고부주임은 밝혔다. 그는 이 3개 규정들이 곧 행정원 각료회의 통과후 공포,시행될 것이라고 밝히고 방문기간은 1개월간이며 1년에 두차례 방문할 수 있다고 말했다. 대만정부의 이같은 결정은 대중국 정책의 새로운 완화이며 앞으로 중국과 대만의 경제교류는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홍콩연합보·대공보·성도일보 등은 말했다.
  • 한승조교수,이적성교재 「한국사회의 이해」 허구성 비판

    ◎“근형대사서술 북 「조선전사」 복사판”/마르크스주의 시각서 현실진단 “오류”/“한국경제체제 신식민지적 독점자본주의” 악의적 분석/「6·25 책임」 얼버무려 김일성에 “면죄부”/사회관계 「협조」 보다 「갈등」 관계로 서시적 파악 고려대의 한승조교수(정치외교학과)는 29일 경상대교수 9명이 공동으로 집필한 「한국사회의 이해」의 허구성을 조목조목 비판하는 「한국사회의 이해­무엇이 문제인가」라는 논문을 냈다.한교수는 이 논문에서 『이 책은 「한국사회의 이해」라기 보다는 「한국사회의 마르크스주의적 이해」 또는 「한국사회에 대한 좌경운동권의 시각」이라고 이름붙이는 것이 더 적절할 것 같다』고 비판했다.다음은 한교수의 논문 요지. ▷시각과 방법의 내용과 문제점◁ 갈등과 협조가 공존하는 사회관계를 갈등관계로만 파악하는 것은 편파적이다.또 지배자와 피지배자,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강자와 약자의 관계에서 전자가 옳을 때도 있지만 후자가 옳을 때도 있으므로 무조건 약자들 편에 서야만 올바른 사회과학이 된다는 말은 이성적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대립하는 이해관계에서 중립적 입장에 선다는 것은 올바른 사회과학자의 태도가 아닐 뿐아니라 보편타당한 지식을 추구하는 사회과학의 기본목표나 전제에 배치된다. ○중립적입장 부당 「한국사회의 이해」는 사회과학을 부르주아 사회과학과 마르크스주의 사회과학으로 분류하고 전자가 수구적 보수적 과거지향적인데 비해 후자는 진보적 미래지향적이라고 말한다.그러나 현대사회과학은 끊임없는 자기혁신을 계속해왔으므로 수구적일 수가 없다.마르크스주의는 현대산업사회의 초기단계에서는 적실성을 가졌으나 산업화 중기나 후기에는 전혀 적합하지 않게 됐다.따라서 아직도 마르크스주의의 교조주의자와 같은 시각에서 한국의 현실을 진단 처방하려고 든다는 것은 딱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근현대사의 내용과 문제점◁ 저자들은 근대 민족해방운동 과정에서 자신들의 계급적 이익 때문에 타협한 계층과 끝까지 싸웠던 계층의 구도가 8·15 이후 현단계의 사회구조및 지배권력의 형성과정과 그에 대한 저항운동에도 계속되고있다고 주장한다.그러나 여기에 서술된 한국의 근현대사는 좌경이데올로기에 의해 왜곡된 사회및 역사인식 그대로다.노동자 농민계급이 주도적 역할을 한 적이 없어 보인다.무엇보다도 난감한 일은,이 책의 근현대사부분에서 서술된 역사는 북한에서 간행된 조선전사의 역사서술과 크게 다른 점이 없다는 점이다. ○“필연적 전쟁” 주장 이 책은 「분단국가와 한국전쟁」이라는 대목에서 해방 8년간의 시기는 현재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여러 모순을 배태시킨,그럼으로써 오늘날 우리의 삶을 조건지은 중요한 역사적 계기였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또 6·25는 해방직후 국내외에서 일어났던 좌우대립의 결과이며 남북한에 통일된 민족국가를 수립하려던 민족의 열망이 좌절된데서 필연적으로 일어날 수 밖에 없었던 전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그러나 이런 시각은 한국전쟁의 책임소재를 모호하게 만듦으로써 한국전쟁의 최고 주모자인 김일성에게 면죄부를 주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이다. 해방 8년간 공산주의자들이 저지른 가장 어리석은 실책이 바로 6·25다.6·25는 남북한 국민의 과반수에게 반공의식을 내면화하는 계기가 됐다.그렇다면 무엇보다도 좌익과격분자들이 왜 사사건건 잘못된 전략전술 때문에 실패하게 됐는가를 분석해보아야 할 것이다.보수우익세력이 어떻게 해서 좌익세력을 누를 만큼 발전·강화됐는가에 대한 고찰이 있어야 할 것이다. ▷사회구조의 내용과 문제점◁ 「한국국가의 성격」이라는 부분에서 저자는 한국의 국가적 성격을 내국독점자본의 이익을 기본적으로 옹호하면서도 동시에 제국주의국가 독점자본의 이익을 아울러 대변하는 종속적 파시즘체제로 규정하고 있다.그러나 저자들은 그들이 거론하는 종속적 파시즘체제이건 관료적 자본주의이건 남한체제보다 북한의 국가성격에 더 적합한 개념을 가지고 어거지로 남한에다 갖다 붙이고 있다.김일성부자에게 종속된 파시즘체제는 바로 북한체제에 꼭 들어맞는 개념용어다.그런데 훨씬 더 적합한 북한에 적용할 생각을 하지 않고 현실적으로 거리가 먼 남한체제만 들먹이는 것은 객관적이고 성실한 학자들의 연구자세가 아닐 것이다. ○종속적파시즘 규정 한국경제체제를 신식민지적 독점자본주의체제라고 성격지우는 것은 너무 악의적이며 현실성이 희박한 분석방법이다.본국과 식민지의 관계를 보아도 본국이 부유해지고 식민지는 더 가난해져야 한다.그런데 지난 반세기동안 반대로 한국은 급속도로 부유해진데 반해 미국은 상대적으로 가난해졌다.정치 경제 문화적 지배 종속관계를 가지고 식민지 여부를 말할 수도 있다.두 나라의 힘의 균형이 압도적으로 미국측에 기울어져 있었던 것도 사실이나 한·미간의 의존 협력관계는 한국국민측의 희망이나 요구에 의해 유지된 것이었다. 남한의 경제체제를 독점자본주의체제로 규정하는 것도 현실을 과장 왜곡한 것이다.한국에 굴지의 재벌이 있고 그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것도 사실이다.그러나 그들이 나라의 정치 군사 외교 경제 사회 교육을 지배하거나 조정할 만한 영향력을 행사한 적은 없었다.그들을 또 제국주의국가의 독점자본의 종속기관 또는 하청사업체라고 볼 수도 없다.이런 나라의 경제를 신식민지 독점자본주의경제라고 비방하는 것도 이성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다. 저자는 한국경제의 개혁과제로서 첫째로 재벌해체를 강조했다.재벌을 해체하고 업종을 전문화하며 국민기업으로 전환해야 하고 노동자들도 경영참여권을 가지며 경영자와 더불어 책임지게 돼야 한다는 것이다.한국경제의 소중한 자산이라고 할 수 있는 대기업을 무조건 해체하라고 주장함은 경제현실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주장이다.이와함께 저자가 주장하는 관료적 경제지배의 철폐와 경제민주화,재산보유세나 양도소득세를 대폭 높이는 한편 임차인을 보호하고 임차료 인상을 억제하는 방안,저임금 임금격차의 철폐와 장시간 노동등 생산직 근로자들의 소외및 농업보호정책등도 경제현실을 무시하고 어린이와 같은 원칙론만 되뇌인 것일뿐 그로 인해 발생하는 부작용과 위험부담을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 것이다. 「한국사회의 이해」는 지배이데올로기란 지배계급의 세계관을 사회구성원에게 침투시켜서 그 세계관에 동조하게 만들며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을 억제하거나 유도함으로써 그 계급의 지배를 정당화해주는 사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또 저자는 한국사회의 지배이데올로기로 국가안보와 발전·근대화의 이데올로기,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데올로기,노사협조와 산업평화의 이데올로기,경제안정과 성장·국제경쟁력·정보화사회 이데올로기,교육영역에서의 경쟁 이데올로기등을 들고 있다.이것을 재생산하고 영속시키는 국가기구가 바로 교육기관 언론기관 종교단체들이며 이런 국가기구들은 사회의 모순을 은폐하는 동시에 피지배계급의 저항을 방지해 국민대중의 동의를 동원하는 역할을 해왔다고 하고 있다.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은 자본주의적 정치·경제체제를 와해 전복시키기에 앞서서 우선 사상적 정신적으로 부정 파괴하려고 든다.대한민국의 정치체제를 떠받치는 지배이데올로기로서 반공이데올로기,자유민주주의와 법치주의의 이데올로기,경제회복과 국제경쟁력 강화의 이데올로기등을 분쇄하지 않고서 북한이 노리는 남한체제의 적화통일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다. ○정치변혁운동 유도 ▷사회운동의 내용과 문제점◁ 「한국사회의 이해」의 한 저자는 농민운동을체제변혁운동의 일환으로 전개할 것을 주장한다.그리고 투쟁을 지역적 특수성이 있는 과제에 집중하면서 동시에 전국적인 농민 일반의 과제해결을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내가 보기에 민족민주운동은 정치적인 변혁운동이며 혁명활동이지 건실한 사회운동이 아니다. ▷대책과 건의◁ 이런 교수들에 대한 법적 제재나 사회적 응징은 다음 세가지로 나타날 수 있을 것이다.첫째 교수들을 방치 불문하는 방법이다.둘째는 교수에게 반성의 빛이 있거나 개전의 정이 보이지 않으면 재교육과정을 밟은 다음에야 그들의 신분을 보장해주는 방법이다.셋째는 그들을 이적행위자로 몰아서 대학에서 응징 제재하는 방법이다. 참고적으로 말해두거니와 과거에 국민윤리나 대학이데올로기를 비판하기 위한 정책과목들은 어용과목이기는 하지만 그나마 그런 국책과목이 폐기되면서부터 이런 위험증세가 본격화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95년부터 국민윤리는 국가고시과목에서 폐기될 것이므로 좌경사상을 가진 젊은이들도 어려움없이 국가공무원으로 진출할 가능성을 열어놓게 됐다.그 결과 북한정권의 사상교육과 선전선동을 대행해주는 것과 별로 다름이 없는 대학강의및 사회교육이 고개를 들게 됐다.
  • 중국교포 근로자 데려다 쓰자/최필립(기고)

    ◎일이 남미교포 쓰듯 외국인보다 동포를 최근 일부 기업들이 추진하고 있는 외국인 근로자 수입에 대해 일각에서 반대여론이 비등하고 있다.이같은 반대시각은 우리가 중국에서 어렵게 살고있는 동포들의 국내 취업보다 외국인 근로자 수입에 더 열을 올리고 있다고 보는데서 비롯되는 것 같다.근로자 수입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중국교포들로 국내 근로시장의 수요를 채울 수 있다고 지적한다. 중국교포들은 일제시대 항일운동을 했던 동포의 후손 또는 일제의 압제를 피해 해외로 나간 우리동포들이다.그러나 우리는 이들의 국내 활동을 크게 제한하고 있는 실정이다.이들을 외국인으로 규정한 국내실정법을 철저히 적용,조국에 머물려는 동포들을 불법체류자로 만들고 있다. 가까운 일본의 예를 보자.일본은 브라질 교포3세,4세들에게 무제한 체류비자를 내주고 있다.즉 아무때나 일본에 와서 취업해 돈을 벌고 아무때나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하고 있는 것이다.상파울루­서울간 대한항공 좌석은 대부분 이들 일시귀국 일본인 교포들로 만원을 이루고 있다. 우리도 일본처럼 한국 성을 갖고 한국말을 하는 사람들을 교포로 인정해 입국심사장에서 확인만 한 뒤 입국시키면 되지 않을까.최소한 국내에 친인척이 있는 사람에게는 입국을 무제한 허용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정부 관계자들은 중국교포들에게 일본처럼 국내취업길을 열어주게 되면 중국정부로부터 인종차별이라는 비난을 받게 된다고 말한다.중국여권을 가진 다른 중국인들에게도 같은 취업허용등의 조치를 취해주도록 요구한다는 것이다.그러나 중국의 인종차별 비난을 우려해 동포들의 취업을 허용치 못한다는 것은 「구더기무서워 장 못담근다」는 소리가 아닐까.우리 한핏줄에게 모국의 입국을 자유롭게 하도록 한다는데,누가 뭐라 한들 우리의 일관된 입장만 견지하면 그만 아닌가. 중국교포 누구든 입국을 할수 있게 허용한다면 제3국 근로자는 들여올 필요가 없게된다.또 제3국 근로자들로 인해 파생되는 각종 사회적 문제도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된다. 독일의 경우 지난 60년대 터키근로자 1백만명을 수입해와 아직까지 이들의 처리로 고심하고 있다.이들 근로자들 때문에 독일 산업이 발전했다고도 하나 이들때문에 지출되는 각종 사회보장 비용 또한 결코 만만치 않다.독일은 최근 터키인들에게 터키로 돌아갈 경우 정착비로 5만마르크씩 주겠다고 발표했으나 별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이들 터키인들 때문에 학교를 따로 지어야하고 혼혈아문제가 생기고 의료보험비용을 따로 내야하는등 각종 사회문제가 발생해 독일정부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우리의 경우 산업발전을 위한 인력수입선을 동남아인에서 중국교포로 대체한다면 이민족간 문제가 발생치 않게된다.중국교포가 한국 여성과 결혼해도 혼혈아등의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또 중국교포가 돈을 벌어 중국으로 되돌아갈 경우 그는 한국기업의 중국진출 교두보 역할을 하게된다. 기업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의 저임금 덕택에 중국등 동남아국가에 비해 우리의 수출경쟁력이 강할수 있다고 주장한다.또 세계화 추세속에 이들 외국인근로자들을 일정기간 국내에서 취업시킨 뒤 귀국시켜 친한파로 활용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기업들은 외국인근로자수입에만 신경을 쓰지 각종 사회적 문제에 대비하는데는 관심이 없다.따라서 정부는 민족생존권 차원에서 이미 선진국들이 겪었던 외국인 근로자문제를 직시하고 철저한 사전 대비책을 세워야 한다. 아무리 누가 뭐래도 한국교포가 우선이다.이는 세계화 추세와는 전혀 무관한 사항이다.중국교포들은 우리나라가 독립하기 전에 마지못해 그곳에서 살게된 우리의 형제들이다. 해방후 그리고 우리가 독립한 후 해외로 나가 살고있는 교포들과는 근본적으로 성격이 다르다.그러나 우리조상들이 제 구실을 못해 나라와 국민을 지키지 못해 떠났던 그들,그리고 그 후손들,또 해방후 분단없는 조국이 되었더라면 모두들 고향을 찾아왔을 동포들이다. 우리가 과연 그들을 타국인으로 대해야만 하는 것일까.답은 하나밖에 없다.
  • “「북핵­경협」 연계정책 불변”/이 통일부총리 관훈토론회 일문일답

    ◎군의 김정일지지 확고… 쿠테타 불가/통제상황 장기화땐 체제지속 의문 ­김정일이 권력을 순조롭게 승계할 것인가.승계한다면 얼마나 유지할 것으로 보는가. ▲북한은 20년간 끈질기고 면밀하게 준비해와 권력승계에 별다른 문제가 없는 것같다.얼마나 유지할지는 쉽게 판단할 수 없다. ­권력승계에 별문제가 없다는데 정부는 왜 최근 북내부의 이상설을 자주 언급하는가. ▲김정일의 건강이 좋지 않다는 것과 권력승계는 별개의 문제다.김정일의 건강에 대해서는 속단하기 어렵지만 정보를 종합해볼 때 건강이 좋지 않은 것같다.정부가 모든 가능성에 대해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은 북한의 극심한 식량난등 경제사정이 매우 좋지 않은데다 국제적인 대세로 보아 변화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북한의 통제상황이 장기화될 때 체제가 유지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북한의 상황이 실제로 혼란한가.아니면 정부와 언론이 그렇게 보는 것인가.군부의 동향은 어떤가. ▲북한은 현재 큰 혼란이 없다.최근 전단살포등 단편적인 사건은 다른 사회라면크게 문제되지 않는다.현재 북한군에서는 충성의 문제는 없고 따라서 쿠데타시도 같은 것은 없을 것이다. ­김정일이 미국에 대해 화해제스쳐를,남한에 대해서는 비방을 하는등 분리정책을 쓰는 이유는. ▲그것은 첫째 전체주의체제인 북한이 어려운 국면에서 국민을 통제하기 위해 가상적을 만들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둘째 이처럼 어려운 게임을 하면서 한·미간의 괴리와 갈등을 만들 수 있다는 계산도 깔려 있다고 본다. ­북·미회담의 합의성명에는 특별사찰부분이 분명치 않은데. ▲그런 측면이 있다.그러나 일부분은 계획된 모호성이라고 할 수 있다.과거의 예로 볼 때 북한은 정확히 문서로 쓴 것도 지키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한·미간의 이해와 합의는 철저하고 정확한 것이어야 한다는 게 우리정부의 생각이고 지금까지 잘 지켜져왔다. ­김정일체제에서 김일성보다 더욱 느슨한 연방제를 추구한다면. ▲통일방안에서 중요한 것은 지금부터 첫단계인 교류협력단계까지 어떻게 첫걸음을 내디딜 것인가 하는 데 있다.또 그 이전에 남북기본합의서상의각종 위원회를 어떻게 가동할 것인가 하는 문제다.매우 느슨한 연방제라면 우리의 국가연합과도 별차이가 없다.교류협력단계를 어떻게든 지날 수만 있다면 그것은 우리통일방안의 2단계에 속하는 남북연합단계와 비슷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정부의 입장은 김정일체제가 안정되기를 바란다는 입장으로 해석할 수 있는데 김정일의 대남 테러지휘자로서의 경력 등을 고려할 때 정부의 김정일권력인정은 도덕적 문제에 봉착할 수 있는 것이 아닌가. ▲현시점에서 김정일체제의 안정이 남북관계에 도움이 된다는 것이 우리의 입장이다.김정일의 과거 전력문제는 그에게만 국한된 게 아니라 김일성의 문제이기도 하다.북한이 단계적으로 어떻게 남북관계에 협조적 긍정적 자세를 보일 것인가에 따라 도덕성 문제에 대한 입장도 달라질 수 있다. ­문민정부 출범이후 대통령의 발언으로 비추어볼 때 대북관이 여러번 바뀌었다는 지적들이 있는데 정부의 북한관은 일관성이 있는 것인가. ▲한마디로 말해 정부의 대북관은 상당히 일관성이 있는 것이며 그점에 있어서는어려운 문제가 없다.그 일관된 입장의 표현이 지난 8·15 대통령연설이다. ­새 통일방안에서 군사적 신뢰구축문제는 어느 단계에서의 과정인가. ▲군사적 신뢰구축의 문제는 1단계 교류협력의 단계에서 시작되야 하는 문제다.기존의 남북기본합의서에 입각해 군사공동위를 속개,군축까지는 단번에 실행할 수 없어도 서로 합의할 수 있는 부분은 단계적으로 실천해나가야 남북연합단계로 갈 수가 있다. ­대북경수로지원을 뒷받침할 국내법체계가 갖추어져 있는가. ▲경수로지원과 같이 막대한 돈이 투입되는 사업은 국민적인 합의 없이는 불가능하다.때문에 경수로방식을 둘러싸고 한국형이냐 러시아형이냐의 문제가 제기됐을 때 러시아형이 채택된다면 국민들이 동의하지 않을 것이라고 우방국가들에게 일관되게 얘기했다. ­미국과 일본은 경수로지원에 어느정도의 부담을 해야 된다고 보는가. ▲미국과 일본의 부담의 몫은 정해지지 않았다.그것은 앞으로 상호토의해야 할 문제다. ­북한의 핵투명성보장과 남북경제협력의 연계정책에 대해 정부의 정책변화가 있는가. ▲거듭해서 밝히지만 핵문제와 경제협력문제는 연계시킨다는 것이 정부의 입장이다.핵문제가 단계적으로 해결돼나갈 경우 이에 따라 남북경제협력도 추진할 계획이다. ◎이 부총리 기조연설 요지/“북은 우리평화노력 볼모 잡고 있다” 해방이후 반세기의 분단사를 돌이켜보면 남과 북에는 ▲건국의 단계 ▲산업화 경쟁단계 ▲민주화단계등을 거치면서 개방과 고립,변화와 폐쇄라는 상반된 구조가 정착됐고 이제는 ▲통일로 향한 노력의 단계에 접어들었다. 남북간 체제경쟁은 북한에 ▲대세의 불리 ▲남북간 국력의 불균형 ▲체제의 불안정이라는 「3불현상」을 초래했으며 이 시점에서 북한에는 두가지의 선택이 주어져 있다.그 하나는 현명하고 바람직한 것으로 그들이 당면한 「3불현상」을 인정하고 새로운 상황에 대한 적응을 통해 변화를 시도하는 것이다.다른 하나는 구시대적 모순을 안은채 막다른 길을 향해 나가는 것이며 이 경우 대세는 더욱 불리해지고 불균형은 심화되며 불안정은 증폭될 것이다. 북한의 「3불현상」 가운데 특히 국력의 불균형은 통일과정 관리책임의 상당부분을 우리어깨에 메고가지 않을 수 없게 하고 있다.통일을 향한 남북의 책임은 더이상 50대50의 게임이 아니다.한마디로 우리는 북한이 처한 어려움도 함께 걱정해야 할 국면으로 들어가고 있다. 북한이 「3불현상」을 일시에 타개하는 유일무이한 구원책으로 매달리기 시작한 것이 핵이다.북한은 핵을 개발함으로써 세계사와 국제환경의 대세에 버티어 나갈수 있고 남북한 국력 불균형을 전도시키며 대내적으로는 체제의 불안정을 해소할 수 있다는 판단아래 오랫동안 모든 역량을 핵개발에 집중시켜 왔다. 이러한 북한의 핵전략은 적지않은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 같다.그 이유는 국제사회도 우리도 세계적 공존공영의 시대에 무력충돌을 피해야겠다는 평화에 대한 강력한 애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한마디로 우리의 평화유지에 대한 집념이 바로 북한의 핵전략을 통한 위협의 볼모가 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북한핵문제 해결을 위해서는 북한이 조속한 핵확산금조약(NPT)복귀는 물론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핵안전조치협정에 따른 사찰의무를 완전히 이행하고 남북간에 합의한 한반도 비핵화공동선언을 준수해야 한다.이는 민족전체의 생명과 재산은 물론 우리 후손들의 번영과 안전이 걸려있는 대단히 중요한 문제이다. 북한은 「3불현상」을 핵개발로 해결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리고 한반도에서의 에너지 수급을 포함한 공동번영의 길을 남북이 함께 찾아나서는 방향으로 태도를 선회해야 할 것이다. 우리의 평화유지 노력을 볼모로 삼는 식의 위협효과는 무한한 것이 아니며 한계가 있는 것이다.국제사회도 미국도 또한 우리도 평화유지를 위해 모든 원칙을 타협의 대상으로 방치할 수는 없는 것이다.우리는 북한이 바로 지금이 평화와 타협을 위한 가장 적절한 시기임을 이해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한반도의 평화를 위하여 남북의 공존공영을 위하여 민족통일로의 전진을 위하여 우리는 언제나 진지한 대화의 문을 열어놓고 있다.
  • 아마추어 무선통신/HAM 전성시대 예고

    ◎새달부터 장비형식승인 폐지따라/무허장비 양성화… 동호인 크게 늘듯 김일성 사망소식을 세계에 가장 먼저 알리는데 공헌한 아마추어 무선통신(HAM)이 오는 9월부터 장비에 대한 형식검정이 폐지됨에 따라 전성시대를 예고하고 있다. 체신부는 최근 아마추어 무선국의 이동운용을 허용한 데 이어 오는 9월부터는 HAM기기의 까다로운 형식검정도 폐지하기로 결정했다.체신부 곽태근감리과장은 『HAM은 경제적 이익 보다는 개인의 취미활동을 위한 무선통신으로 사용하고 있어 이의 활성화와 국산기기의 생산·판매를 촉진하기 위해 형식검정을 폐지하게 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에 따라 지금까지 일본과 대만 등지에서 개인적으로 구입,형식승인을 받지 않고 사용해온 HAM 장비들이 양성화됨은 물론 외국의 단파방송을 듣는 인구도 크게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또한 국산 수신기는 주파수대가 고정돼 북한방송 청취가 불가능하나 외국 제품은 수신 주파수대가 넓어 북한방송을 직접 청취하는 사람도 꽤 늘어날 전망이다.그러나 아직은 북한방송 청취를 현행법상 금지하고 있어 청취허용 여부를 둘러싼 논란도 클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단파는 4∼25MHz대의 주파수를 이용,수천 ㎞까지 전파를 보낼 수 있어 장거리 및 국제방송통신용으로 사용되고 있다.HAM 동호인들은 그동안 무선통신 장비를 이용해 미국 VOA와 영국 BBC,일본 NHK,중국 RB 등 세계 각국의 1천여 단파방송을 청취,외국어를 공부하거나 뉴스방송을 통해 지구촌 소식을 가장 빨리 알았다.뿐만 아니라 외국 무선사들과의 교신으로 친구를 사귀는 등 민간 차원의 국제교류에도 일익을 담당해 왔다. 현재 국내에는 아마추어 무선연맹에 가입한 사람이 6천여명에 이르고 비회원까지 합치면 1만명 이상이 활동하고 있다.무선통신연맹의 김석필씨(25)는 『형식검정 폐지로 남북분단 상황에서 규제가 심했던 전파이용이 활성화되고 우리도 미국이나 일본,유럽처럼 HAM 전용위성을 이용하는 시대가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 주차료 10분단위 산정/행쇄위/11월부터… 30분까지는 기본료

    행정쇄신위원회(위원장 박동서)는 22일 주차요금의 초과요금 산정 기준을 현행 30분에서 10분으로 세분화,주차시간 30분까지는 기본요금을 부과하되 그 뒤부터는 10분 단위로 요금을 산정하는 내용의 개선안을 발표했다. 정부는 행정쇄신위의 개선안을 바탕으로 관련 조례를 개정,공영주차장은 오는 11월쯤 시행에 들어가기로 했으며 사설주차장도 행정지도를 통해 같은 기준을 적용하도록 권장할 방침이다. 현행 주차요금은 30분단위를 기준으로 산정돼 5분만 초과돼도 30분요금을 물어야 하기 때문에 주차장 이용자의 민원을 야기했었다. 위원회는 또 그동안 금지되어 온 유원지 안의 기존 건축물과 공작물의 증·개축을 허용하기로 했다.
  • 국회 정보위 운영의 과제(사설)

    국회 정보위는 미국과 독일의 주요정보기관 및 의회시찰팀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위원회의 운영규칙과 내규등을 마련하기 위한 작업에 착수했다고 한다. 미·독에 이어 세계에서 세번째로 지난 6월 국회에 설치된 정보위가 해야할 가장 우선적인 과제는 국가기밀을 철저하게 유지하고 정보기관을 이상적으로 통제 조정하는 것임이 이번의 2개반 소속의원들의 시찰에서 확인됐다.이 제도를 독자운영하고 있는 선진 두 나라에서의 현장학습은 소속의원 모두에게 많은 관점과 교훈을 주고있다.특히 독일정보기관의 최대목표가 동서독통일에 대비한 정보수집에 있었다는 사실은 한국적 모델정립에 참고할 가치가 있다. 뭐니 뭐니해도 이 두 나라 정보관계위원회의 가장 핵심은 이중삼중의 철저한 보안 통제속에 운영되고 있다는 점이다.우선 위원회 시설이 이를 입증한다.창문조차 없는 별도통로의 지하회의실에 3중의 출입문과 완벽한 도청방지 장치,회의실의 24시간 경비근무등은 어떠한 상황속에서 회의가 진행되는지를 잘 설명해 준다. 회의내용은 더욱 엄격하다.위원회에 보고된 내용은 물론 위원들의 질문내용과 답변까지 완전비밀속에 이뤄진다.1년에 10여차례의 회의는 언제 여는지 열렸는지 알수도 없다.위원회에서 거론된 내용은 소속정당의 당수에게 보고하는 것도 법적으로 금지될 정도로 보안이 철저하다. 지난6월 창설된 정보위가 이상적 체제를 갖추기까지는 많은 시행착오를 거치겠지만 우선 분명한 것은 정보위가 국회안에 설치돼있는 여타 상임위 운영방식과는 차별화되어야 한다는 점이다.우선 정보위도 상임위라는 통상적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특정정보를 놓고 소속당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당략적 무기로 삼으려는 종래의 관행은 원천적으로 봉쇄되어야 한다.그러려면 소속위원의 엄격한 선정이 요구되며 기밀유지가 현저하게 위협을 받게될 경우 이에 대한 응분의 제재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적어도 정보위에서는 여야의 구분이 아니라 이에 참여하는 소속위원 개개인의 철저한 국가관과 그 의식이 강조될 뿐이며 국가최고기밀을 다룬다는 긍지와 책무가 최우선의 과제가 되도록 해야한다. 국가정보기관의 기능을 보완하는 일이야말로 국회의 임무가 아닐 수 없다.우리의 경우 정보위의 설치가 정보기관의 정치사찰등 역기능의 통제 감독에 1차적 목적이 있었던 만큼 국익을 최우선으로 하는 선진국의 모델은 우리에게 새로운 사고를 요구하고 있다.분단된 우리 실정에 맞는 정보위의 참된 위상과 운영이 요구된다.
  • 고교생 의식화 잡지 적발/운동권대학생,「새날열기」 발간

    ◎“6·25는 남한정부 책임” 명기 운동권대학생이 출판사를 차려 고교생을 대상으로 하는 의식화잡지를 제작,일선고교 주변서점에서 대량판매해온 사실이 밝혀져 경찰이 수사에 나섰다. 서울 청량리경찰서는 22일 서울 동대문구 답십리동 483의 39 삼용빌딩 423호 「새날열기」출판사대표 손령우군(23·동국대 사회학과4·전국학생정치연합의장)을 국가보안법상 이적표현물제작·배포혐의로 수배했다. 손군은 지난 4월부터 고교생을 상대로 월간잡지 「새날열기」를 출판,6·25전쟁의 책임이 남한정부에 있다고 규정하고 고교생들의 정치투쟁을 선동하는 내용의 글을 실어온 혐의를 받고 있다. 경찰은 손군이 1년여의 준비기간을 거쳐 매달 1천여권씩 모두 4천여권의 잡지를 발행,권당 1천5백원씩 서울시내 고교 주변서점에서 팔아온 사실을 밝혀내고 자금원과 배후세력을 캐는 데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 경찰은 이날 법원으로부터 영장을 발부받아 잡지사 사무실과 이 잡지를 인쇄한 서울 중구 초동 세명문화사등 2곳에 대해 압수수색을 실시해 잡지 2백여권을압수했다. 경찰은 이에 앞서 지난 20일 이 잡지 편집국장 정모군(19·서울 성동고 93년졸)을 같은 혐의로 소환,출판경위와 편집방침·판매현황등에 대해 조사를 벌인 뒤 일단 귀가조치했다. 이 잡지 7,8월호 여름방학특집호에 실린 외부기고문 「통일이 다가온다」에는 『통일운동은 분단으로 인한 기득권을 누리는 세력들을 분쇄하기 위해 국가보안법철폐,양심수석방,평화협정체결,한반도비핵지대화,군비축소,미군철수 등에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연방회의와 통일헌법을 제정해 통일국가를 수립하고 연방제 국가아래서의 정치활동을 통해 국내문제를 해결한다』고 돼 있어 연방제통일안등 북한측의 주장을 그대로 싣고 있다. 또 6월호에 실린 외부기고문 「다시 쓰는 한국전쟁」에는 『(6·25발발 직전)습관적인 남한 이승만정권의 북진통일발언에 맞추어 북한의 재무장이 이뤄졌다』며 6·25가 남한의 북침정책에 따라 일어난 전쟁이며 비극의 원인이 남한정부와 미국측에 있다고 기술돼 있다. 경찰조사결과 고교때 학생회운영위원과 동아리연합회회장등을 지낸정군은 고교연합서클인 「새날열기」편집위원으로 활동하면서 동국대등 각 대학 총학생회와 연계돼 의식화학습을 받은 것으로 밝혀졌다.
  • 슈브니코프(전 평양주재 구소련대사)가 말하는 김정일 부자와 북정권

    김일성이 사망한지 40여일이 넘었으나 북한은 김정일체제 공식출범을 미룬채 핵관련 미­북대화만을 진전시켜나가고 있다.그들은 남북대화등 대남정책에 있어서는 아직까지 이렇다할 긍정적 변화조짐을 보이지 않고있다.김일성사후 김정일의 위상과 그가 그리고 있을 남북관계 청사진등 북한의 향후 진로와 내부동향등에 대한 궁금증만 커가고 있다.또 김정일의 자질과 성격등에 관해서도 여러 엇갈리는 견해가 제시되고 있는 실정이다.본지 이기동 모스크바특파원은 최근 북한사정에 정통한 미하일 슈브니코프 전평양주재 구소련대사(70)를 만나 김부자의 행적,향후 북한정권의 장래에 관한 그의 견해등을 들었다.통산 13년간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한 북한통인 슈브니코프 전대사는 특히 소­북한관계가 원만한 82∼87년 평양주재대사로 근무,김일성부자와는 매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1924년 러시아 툴라시에서 출생한 그는 소련군사외국어학교를 졸업했고 소련공산당 중앙위 국제부 한국(남북한)과장을 역임했으며 외교관으로선 주로 북한관련 업무를 담당했었다.슈브니코프 전대사는 인터뷰에서 김일성의 모스크바 비밀방문,김정일의 사생활과 주변인물등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얘기들을 털어놓았다.그러나 특별한 개인적 유대 때문인듯 그의 김부자 평가는 비교적 후하다는 인상을 주었다.이런 점을 감안하더라도 북한사정에 밝고 특히 김부자를 가까이서 지켜보았던 전직 구소련고급외교관의 북한평가와 분석은 향후 「김정일 평양」의 향방을 가늠하는데 도움이 될 귀기울여 볼만 한 것들이었다. ◎평양식사회주의 미래가 없다/김일성 추모기간 끝나면 권력승계 무난/핵탄제조 능력… 플루토늄 보유량 적어 ­북한주재 대사로 근무했던 80년대는 소련과 북한관계가 밀월과도 같은 순탄한 시기였던 것으로 아는데 평양근무는 얼마나 했는지. ▲60년부터 3년간 첫번째로 평양대사관에서 근무했다.그리고는 본국으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에서 일했고 69년부터 73년까지 다시 평양근무를 했다.모스크바로 돌아와 당중앙위 국제국 한국과장으로 일하다 82년 12월 북한주재 대사로 발령받았다.87년 12월까지 대사로 근무했으니 평양대사관에서만 13년을 일한 셈이다. ○13년간 평양에서 근무 나의 북한대사 재임기간이 소련­북한 양국관계가 가장 우호적인 시기였다는 점에 동의한다.이 기간중에 김일성주석이 모스크바를 두번 방문했다.나는 그중 한번은 김주석을 직접 수행,1개월에 걸친 기차여행을 함께 했다.60년 이후 그는 모스크바를 방문한 일이 없다.주재국 대사인 나 개인으로서는 좋은 기회였던 셈이다. ­김주석의 모스크바방문의 구체적 시기는 언제였는가. ▲첫번째는 체르넨코 서기장 재임시인 84년이었고 두번째는 고르바초프 서기장 때인 86년이었다.이중 84년 방문때 내가 모스크바까지 김주석과 동행했었다.1개월간 기차로 시베리아를 거쳐 모스크바로 왔다가 귀국 때는 벨로루시,우크라이나,몰도바,루마니아를 돌아 평양으로 갔다.모스크바는 공식방문이었지만 나머지는 비공식방문이었다.86년 방문 때는 비행기편을 이용했는데 나는 동행치 않았다. ­김주석은 고소공포증으로 비행기여행을 극히 꺼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고소공포증은 아니다” ▲그가 비행기여행을 피한 것은 사실이다.하지만 그것은 척추에 문제가 있으니 비행기여행은 피하라는 의사들의 권유 때문이었다.비행기 착륙시의 충격이 허리에 무리를 줄수 있다는 것이었다.그가 서 있는 모습을 보면 알수 있겠지만 그는 항상 허리를 똑바로 펴고 꽂꽂이 서 있었다.그것은 조금이라도 굽히는 자세가 되면 척추에 통증이 왔기 때문이다. ­김주석은 말년에는 심장질환을 앓은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사망원인도 심근경색으로 발표되었다.평소 그의 심장병 병세는 어느 정도였는가. ▲나이가 들면서 심장에 이상이 생긴 것은 사실이다.80년대 중반에 심장발작을 한차례 겪었다.내가 대사로 있을 때였는데 소련의사를 보내달라는 부탁도 자주 있었다.대부분 김정일이 직접 찾아왔고 외교부장을 보낼 때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나는 본국에 요청해 의사를 보내주었다.하지만 당시 러시아의사들의 최종진단은 『심장질환의 증세는 있으나 집무에는 지장이 없고 나이에 비해 건강하다』는 것이었다. ○북서 모반 있을수 없다 ­김주석 사망과 관련,한때 자연사가 아니고 정치적 변고와 연관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나돌기도 했다. ▲1백% 불가능한 이야기다.자연사가 분명하다.김일성 주변을 보면 모반은 불가능하다.절대 불가능하다.김일성 주변의 인물은 김정일이 모두 통제하고 있다.그리고 김일성·정일 부자의 관계는 어떻게 보면 부자지간 이상이었다.김정일은 정실 소생의 장자다.김일성은 그를 끔찍이 아꼈다.김일성이 김정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때가 많았다는 얘기가 있지만 내가 아는한 그렇지 않다.텔레비전을 통해서 보니 김주석 사망후 김정일의 얼굴이 아주 못쓰게 됐던데 무엇보다 부친의 죽음에 대한 슬픔이 컸기 때문이었을 것이다.물론 김주석 사망으로 받는 정치적 중압감도 큰 짐으로 느껴졌을 것이다. ○추모기간 지나면 승계 ­김일성 사망 1개월이 훨씬 지났는데 아직 김정일이 주석과 당총서기직을 승계했다는 발표가 없다.다소 이상한 일 아닌가.후계구도에 진통이 있는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오고 있는데. ▲김정일은 70년대 중반 공식 후계자로 확정되면서부터 실제로 국가경영 실습을 해왔다.70년대 당중앙위원으로 들어간 뒤 이후 정치국원,그리고 4∼6인으로 구성되는 정치국 상임위원이 됐고 김주석 사망당시는 군최고사령관이었다.그리고 요로에 자신의 심복들을 배치해놓고 있다.부친과 같은 세대인 원로들로부터 한결같은 지지를 받고있다.그래서 그의 권력승계는 별 문제 없이 이뤄질 것으로 보는 것이 옳다.김일성 추모기간만 끝나면 주석직 승계와 함께 국가지도자로서의 일을 시작할 것이다.당총서기는 정치국에서 이미 선출해놓고 발표만 미루고 있을수도 있다.당대회소집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하기 때문이다.다시 말해 김정일은 이미 「경애하는 지도자」였고 군통수권자였다.부친 사망과 함께 자연스럽게 제1인자가 되도록 미리 치밀한 장치가 돼있었던 셈이다. ○김일성 음주 극히 자세 ­김정일이 아버지와 같은 카리스마도 없고 세습승계에 대해 일반주민은 물론 권력층 내부에도 반발이 있을 것으로 추측해볼 수 있지 않겠는가.김정일은 과연 북한 최고지도자가 될만한 인물인가. ▲대사로 근무할 당시 김정일을 비교적 자주 만나 가깝게 지냈다.그는 수시로 나를 불러 식사도 하고 술도 함께 마셨다.당시 그는 술을 아주 조금 마셨다.김일성도 술은 극히 자제했다.이점에 대해 외부에서는 잘못 알고있는 것 같다. ○카레이스·영화 큰 관심 내가 겪은바로는 김정일은 말이 적은편이다.지나치게 자기 생활을 드러내지 않으려 하는 점이 특징이다.북한 같은 사회에서 2명의 지도자가 존재할 수는 없다.그래서 그는 의식적으로 부친의 그늘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지 않으려 했던 것으로 생각한다.때때로 『이 사람은 진짜로 권력 정상에 오를 생각이 없는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김정일은 부친과 사진을 함께 찍는 것에 대해서도 신경을 많이 쓸 정도로 몸조심을 했다.소련대표단이 그렇게 북한에 자주 갔는데도 김부자와 함께 사진을 찍은 것은 단 한번 뿐이었다. 젊었을 때 김정일은 여러 스포츠를 즐겼다.특히 카 레이스를 좋아했고 영화·음악등에 관심이 많았다.그런데 나이가 들면서 차츰 성격이 조용하고 신중한 쪽으로 바뀌었다.부친의 영향 때문으로 볼수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보통사람들이 겪는 인격성장 과정과 같다고 할수 있다.김일성대학 철학부에 다닐때 성적은 좋은편이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고 외국에서 공부한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손혜림,손성필의 친척 알콜중독자라느니 성격적으로 문제가 있다느니 하는 말을 나로서는 이해할수 없다.그와 자주 낚시도 다녔는데 나라문제에 대해 비교적 잘 알고있고 또 나름대로 정치에 대한 철학도 가지고 있는 교육받은 사람이란 인상을 받았다.그의 사생활등을 무조건 비난하는 것보다 그가 어떤 인물인지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그의 경력은 물론 부친이 만들어 준것이 사실이다.그러나 김일성이 5자녀중 그를 후계자로 택한 것은 장남이기 때문만은 아니지 않겠는가.나름대로 그의 능력을 평가하지 않았겠는가. ­김정일의 가족관계는 잘 알려져있지 않은데.몇차례 이혼했다는 얘기도 있고. ▲가까이 지내면서도 그의 집에는 한번도 가본적이 없다.부인이 있고 자녀가 2명 있다는 사실만 안다.내가 평양에 대사로 있을 당시 그의부인 이름은 손혜림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모스크바주재 대사 손성필과 친척인 것으로 안다.김정일은 자신의 사생활에 대해서는 말하지 않았고 북한에서는 이것이 비밀사항으로 돼있다.그는 60년대초 부친을 따라 모스크바를 방문한 적이 있고 80년대 중반 북경에 간적이 있으나 그외 외국이라고는 나간 적이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한때 동독 방문설이 있었으나 루머임이 확인됐다. ­아웅산 폭파사건,대한항공기 폭파사건,그리고 여러차례의 한국인 납치사건의 배후에 김정일이 있었다는 것이 정설로 돼있다.대사가 그의 성격등에 대해 잘못 알고있는 것 아닌가. ○소·동구 붕괴에 위기감 ▲솔직히 말해 그 사건들의 배후에 대해 나는 들은 것이 없다.한국에 적대적인 세력이 저지른 사건임은 분명하지만 당시 소련정보기관들은 추가정보를 전혀 얻지 못했었다.북한 정보기관의 소행이었더라도 그들의 속성상 비밀사항이 외부에 새나오지는 않는다. ­앞으로 김정일이 어떤 정책을 취할 것으로 예상하는지. ▲국내정책과 대외정책을 포함,모든 정책방향이 김일성생존시와 동일할 것으로 보면 된다.다소의 변화가 있더라도 표면적인 것에 불과하고 본질적으로 동일할 것이다.지금 북한에서 정책을 바꾼다면 체제변화가 불가피하다.김정일은 소련,동구의 예를 지켜보았다.체제변화를 쉽게 용납지 않을 것이다. ­경제난 때문에 결국 정책변화가 불가피한 시기가 올것이라는 견해에 대해서는. ○김영주도 정일을 아껴 ▲북한은 폐쇄경제체제를 유지하고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운 처지라는 것은 사실이다.북한경제는 소련에 의존한 체제였는데 지금은 그 관계가 단절됐다.지금 러시아지도자들은 북한에 대해 강경한 정책을 취하고 있다.그러나 북한은 외부세계가 그들을 고립시킬수록 더 주체체제를 강화하는 특성이 있다.경제적으로 어려워도 그들은 살아간다.북한은 지금도 철저한 분배사회다.그래서 사회안정면에서 본다면 어쩌면 러시아보다 낫다고도 할수 있다. 예를들어 현재 러시아에서는 소비재가 상점에 넘쳐나지만 주민 90%가 이를 살 능력이 없어 불만이다.북한은 그렇지 않다.그들은 아예 가난하지만 주민 모두가 이를 참고 사는데 익숙해있다. 다시 말해 북한을 고립시키는 정책은 좋은 결과를 낳기 힘들다는 것이다.한국을 비롯한 서방세계는 북한의 개방을 유도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물론 김정일은 한국과의 협력이 북한사회의 내부붕괴를 초래할 것이라는 점을 알기 때문에 신중하게 대응하겠지만 그들을 고립시키는 것보다는 이 개방을 유도하는 정책이 더 효과적일 것이다. ◎북,내부붕괴 우려 개방 신중/“주석,정일 매우 아껴… 부자관계 이상”/후처소생 평일은 대권 넘볼수 없다/김정일 나이들며 술적게 마시고 신중/김일성 항공여행 기피,척추통증 때문/80년대 중반에도 심장발작… 자연사 확실 ­삼촌인 김영주,이복동생 김평일은 개인적 야심이 없겠는가. ▲그들은 김정일과 같은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나는 김영주와 아주 가까운 친구로 지냈다.그는 모스크바대학을 나왔는데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느껴졌다.김평일은 후처소생이어서 어차피 북한사회에서 김정일과는 격이 다르다.김일성은 생전에 김정일내외,그리고 거기서 난손자들을 특히 귀여워하며 아꼈다. ○불만있어도 표현 못해 ­북한에 반정부,반체제세력이 있는가.김정일에 대한 군부의 충성은. ▲심각한 반대세력은 없다.인텔리겐차,교육받은 계층가운데 다소 불만이 있을 것이라는 점은 상식적으로 짐작할수 있는것 아닌가.그러나 어떤 사람이고 그런 생각을 드러냈다가는 엄청난 불이익을 당한다.조심해야 한다.따라서 사회전반에 질서가 유지되고 있다. 군부의 김정일 지지는 확고하다.오진우는 김정일의 젊은 시절 스승이었고 그를 아주 좋아한다.오진우가 언젠가 심한 교통사고를 당했을때 김정일이 직접 내게 찾아와 모스크바로 보내 치료를 받게 해달라고 부탁해 그렇게 해준일이 있다.후일 오진우와 술자리를 함께 했는데 그는 김정일과 내게 진심으로 감사했다.오극렬도 김정일을 매우 아끼는 사람이다. ­반정부 시위,주민들의 봉기가 일부 있었다는 얘기도 간혹 들리는데. ▲북한은 그런 일이 가능한 사회가 아니다. ­김정일의 여성편력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대사의 견해는. ▲물론 내가 그의 사생활을 다 안다고는 할수 없지만 그런 유의 얘기는 잘못된 정보에서 기인하는 경우가 많다.사회주의국가 간부들은 끝없이 밀려드는 일거리들로 숨돌릴 틈도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김정일이 오래전부터 실질적 국가경영을 맡아왔다고 볼때 방탕한 생활에 할애할 시간이 많지 않았을 것으로 생각한다. ­북한은 핵무기를 만들 능력과 의사가 있다고 보는가. ▲영변의 핵단지는 연구·훈련용으로 규모도 매우 작다.물론 핵폭탄을 제조할수 있는 인력과 기술은 갖고 있고 운반수단도 가지고 있다.그러나 핵폭탄제조에 필요한 플루토늄을 북한은 갖고있지 못한 것으로 알고있다.그들을 밀어붙이기 보다는 협력의 장으로 이끌어내기 위한 화해의 정책이 바람직하다고 본다.북한은 이론적으로는 핵무기를 만들 능력이 있지만 실제로 이를 현실화할 능력은 없다고 본다. ○핵탄 현실화 어려울것 ­대사의 평양근무 기간은 소련이 한국과의 관계개선을 모색하던 시기였는데 북한당국의 항의나 섭섭함의 표시는 없었는가. ▲공식적인 항의는 없었다.당시 소련지도부는 한반도의 평화를 원했다.그러나 그 방법에 있어서 북한정부와 차이가 있었다.우리는 국제사회가 모두 문을 활짝 열고 살아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나 북한은 주체사상을 고수했다.소련지도자들은 주체에 대해 반대했고 이것이 양국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그러나 북한당국이 주체사상을 굳이 고집하는 데는 우리로서도 별다른 대책이 없었다. ­가까이서 본 김일성은 어떤 사람이었는가. ○66년에 조·소 정상회담 ▲ 그가 취한 정책의 옳고 그름은 일단 논외로 하자.우선 분단,남북대치등의 어려운 상황에서 50년 가까이 집권한 것은 보통 일이 아니다.블라디보스토크에서 있었던 브레즈네프와 김일성간 양자회담을 4시간 가량 지켜본 적이 있는데 그는 참모의 도움없이 회담을 잘 이끌어나갔다. ­블라디보스토크에서 그런 회담이 있었다는 것은 금시 초문인데. ▲외교비밀인데 실수로 발설한 것 같다.66년 그런 회담이 열렸었다.당시 소원했던 양국관계 정상화를 위해 두 지도자가 비밀리에 만났고 그후 양국관계는 급속히 좋아졌다.양국관계사에 매우 중요한 회담이었다.이 자리에서 공식 협정체결 같은 것은 없었으나 주로 경제분야에서 많은 원조약속이 이루어 졌고 군사원조를 포함한 군사협력,기술지원 약속도 이뤄졌었다. ­공산주의,특히 북한 공산주의체제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러시아에서는 70년이나 되는 실험이 실패로 돌아갔다.여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을 것이다.나는 사회주의가 지향하는 인간의 삶에 대해 지금도 신념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다.그러나 북한이 하고있는 사회주의는 미래가 없다고 본다.전혀 없다.남한을 방문한 적은 없지만 체제경쟁에서 북한이 졌다.그러나 그들이 굳이 그렇게 살겠다면 그렇게 놓아두고 그들이 스스로 변화를 택할 때까지 도와줄수 밖에 없지 않은가.
  • 이부영의원 재항소심 첫 공판/재판연기 싸고 설전 1시간

    ◎10월10일 2차공판 열기로/“의정활동 위해 정기국회 뒤에 열자”/변호인단/“보안법 개폐이유 연기 이해 못할일”/재판부 민주당 최고위원 이부영피고인(52)에 대한 국가보안법위반등 사건 파기환송심 첫 공판이 17일 상오 서울형사지법 항소3부(재판장 변동걸부장판사) 심리로 열렸다. 재판부는 이날 공판에서 실질적인 사건심리는 하지 않고 이피고인의 모두진술만 들은 뒤 변호인의 공판연기요청을 받아들여 오는 10월10일 2차 공판을 열기로 하고 재판을 마쳤다. 이피고인은 이날 모두진술을 통해 『정부·국회·사법부 전체가 철저히 법에 따라 운영되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바쁜 국회일정을 포기한채 재판에 참석했다』며 『재판기일이 오늘 지정된 것에 대해 정치적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지는 않는다』고 밝혔다. 이피고인은 그러나 『분단과 남북대결구도 속에서 만들어진 구시대적 국가보안법과 집시법에 의해 현직의원이 재판받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고 『대통령도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천명하는등 시대상황이 많이 달라진 만큼 재판부가적극적이고 새로운 판단을 내려주기 바란다』고 완곡히 요청. 변동걸부장판사는 『이번 재판기일은 법원의 순수한 의무로서 순서에 따라 지정했을 뿐 어떤 정치적인 의도도 없었다』면서 『일부 정치권이 오늘 공판에 대해 정치적 의구심을 제기하고 있는 것 같아 이같은 재판부의 입장을 밝힌다』고 설명했다. 이날 재판에서는 다음 공판기일을 지정하는 문제를 놓고 재판부와 변호인단 사이에 1시간여 동안 신경전을 벌여 눈길을 끌었다. 변호인으로 나온 민주당 홍영기의원은 『당지도부의 한사람인 이의원이 정상적인 의정활동을 수행하도록 정기국회가 끝날때까지 재판을 연기해 달라』고 요청하고 『민주국가에서는 3권분립 못지않게 「3권협조」도 중요한 만큼 이러한 조치가 사법부의 위상을 침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정기국회나 국보법의 개폐논의를 이유로 재판을 연기하는 것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못박고 『다만 변호인들이 아직 이 사건 기록을 충분히 검토하지 못해 시간적인 여유가 필요한 점이 인정된다』며 10월10일 하오 2시로 2차 공판기일을 지정.
  • “김일성 7월7일 묘향산 시찰뒤 사망”/일 아사히신문 보도

    ◎“김대통령 영접 지휘 끝낸뒤 심장발작” 【도쿄=이창순특파원】 북한의 김일성주석은 지난달 7일 묘향산근처에 있는 농장을 방문한 후 그날밤 심장병 발작으로 졸도,평양으로부터 급파된 의료진의 응급치료를 받았으나 다음날 새벽 사망했다고 아사히(조일)신문이 16일 문명자씨의 말을 인용,보도했다. 한국계 재미언론인으로 김일성장례식에 참석했던 문씨는 북한측 요인으로부터 이같은 김일성사망에 관한 설명을 들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문씨에 따르면 김일성은 지난달 7일 특별초대소가 있는 묘향산으로 가 같은 달 25일에 열릴 예정이던 남북정상회담에서 김영삼대통령을 맞을 준비를 지휘했다.회담일정에는 묘향산에서의 회담이 특별히 포함되어 있지 않았으나 김대통령을 그곳에서 쉬게 할 계획이었다는 것이다. 김일성은 『남북분단후 최초의 역사적 정상회담』이라며 흥분된 표정으로 각료 여러명을 동반,초대소의 침실과 욕실등을 점검한 후 냉장고에는 북한명산의 미네랄워터를 준비하라고 지시했다. 김일성은 그날 하오 37,38도의 무더위속에근처에 있는 농장을 현지시찰한 후 묘향산으로 돌아왔다.그날밤 김일성은 갑자기 심장병 발작을 일으켰으며 측근에게 『괜찮다』고 말하며 쓰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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