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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생 한국의 정치상황(새로쓰는 한국현대사:27)

    ◎“동족상잔 막자”… 김구중심 「대북협상」 강격 제기/5·30선거서 「보수」 약화… 이대통령 자유당 추진 분단정권의 수립후 남과 북에서는 각각 정권을 확고히 하기위해 총력을 기울였다.신생 대한민국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지 않을 수 없었던 좌익과 북에 대한 견제를 강화해 나갔다.또 정치적으로 적과 동지가 생겨나고 정치상황도 변화했다. 대한민국 수립 이후에도 통일독립촉진회를 주축으로 한 남북협상파는 미소 양군의 철수와 민족자주권을 주장하며 북한과의 평화협상 노력을 기울였다.그러나 목적은 한 번도 이루지 못했다.이런 와중에 북한의 조종을 받는 좌익의 대정부 무장봉기가 거세지기 시작했다.남한에서는 마침내 19 50년 5월 5·30선거를 통해 다시 국회를 구성하고 반공정책쪽으로 기울었고 얼마후 이 땅에서는 전쟁이 발발하고 만다. ○좌익·대북견제 강화 우리는 분단정권 수립후 전쟁발발까지의 기간중 활발한 움직임을 보였던,즉 당시 정치세력의 흐름을 적지않게 주도했던 통일독립촉진회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주로 남북협상파를 주축으로 결성한 이 통일독립촉진회는 세력을 가진 한독당을 얼마만큼 끌어들이느냐를 놓고 고심했다.남로당의 반정부 무장봉기가 극성을 부리고 좌우의 대립이 거세지는 과정에서 남북협상파는 동족상잔의 전쟁을 막자는 환상에 기울었다. 이 통일독립촉진회 결성에는 김구 엄항섭 조완구 등이 발기인회를 만들 때까지 참여했다.통일독립촉진회의 주장은 ▲미소 양군의 한반도 동시 철수를 통한 민족자주권 쟁취▲남북 제정당및 사회단체의 정치협상등이었다.김구등 한독당의 일부인사는 초창기 다소 적극적인 참여의사를 밝혔다. 1948년이 지나가고 49년에 접어들면서 38선과 산악지대에서의 남북간 무력대립이 심해져갔다.이때 북한은 남북 제정당지도자협의회를 열어 그 협의회에서 남북총선거를 실시할 수 있는 선거지도위원회를 구성하자고 제의해왔다.그 내용은 「남북에 현존하는 정권에 남북총선거를 지시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하여 남북 총선거를 실시하고 외국군대를 철거시켜 통일정부를 수립하자」는 것이었다. 북한의 「남북 제정당사회단체 지도자협의회에 의한 통일정부 수립운동」제의에 대해 김구는 일단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반면 김규식은 소극적이었다.당시 김구의 심경은 그가 1949년 3월21일 「신민일보」사장과의 회견에서 밝힌 내용에 잘 나타나 있다.김구는 그때 이렇게 말했다.『우리민족의 생존권과 우리의 주권을 획득하는 길은 오직 하나밖에 없는 것입니다.그것은 민족자결정신에서 미소 양군의 즉시 철퇴를 요구하고 남북협상에 의해 우리의 통일정부를 우리의 손으로 세우는 것입니다.혁명세력과 반역집단이 합작할 수는 없으나 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하등의 이유도 없는 것입니다』 김구는 이 회견에서 이승만 대통령을 공격하고 혁명세력간 좌우합작과 남북협상등을 통해 자주적 통일민족국가 수립을 호소했던 것이다.「혁명세력끼리의 남북협상」으로써만 동족상잔의 불행을 막을 수 있으므로 그 운동이 실패하더라도 그 길을 가야한다는 주장이었다.이에 대해 김규식은 상당히 회의적이었다.김규식은 이미 서로 다른 정권이 성립한만큼 현실적으로북한의 제의가 불가능하며 자칫 북한 공산당의 계략에 빠져들 수 있다는 신중론이었다.한독당내의 반공주의자들은 물론 김규식의 견해에 동조하는 편이었고 끝내 통일독립촉진회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기를 거부했다. 1949년 4월을 넘기면서 북한은 남조선민전과 북조선민전을 합하고 인공수립에 참가했던 남한의 우익 혹은 중도좌파 정당을 참가시켜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을 서둘렀다.북한은 남한의 한독당,민족자주연맹,통일독립촉진회를 이 전선에 끌어들이기 위해 전전긍긍했지만 성과는 없었다.그러던중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의 결성대회가 6월25일부터 평양에서 열렸다. 김구는 조국통일민주주의전선 결성대회가 이틀째 접어든 19 49년 6월26일 안두희라는 현역장교의 저격으로 그의 거소 경교장에서 생애를 마쳤다.혁명세력끼리의 합작이나 협상이라면 성립되지 않을 어떠한 이유도 없다고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이상을 추구해온 김구는 파란만장한 생애를 그렇게 마감했다.그 나이 73세였다. 해방공간에서 한때 김구는 이승만과 우정을 나누었다.그들은반탁운동에서는 협력했다.그러나 김구는 단독선거와 단독정부에는 반대의사를 분명히 함으로써 이승만과 사실상 정적의 사이가 되었다.특히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고 이승만이 초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이후 더욱 그러했다.그리고 김구는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도 남북협상의 미련을 버리지 않았다. 이승만은 김구를 못마땅하게 여겼다.이승만은 김구가 남북협상을 주장하면서 지난날 임시정부 지지를 맹세하는 단체를 조직한다고 비난했다.또 김구가 다음해 예정된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자기 지지자들을 당선시키려는 준비를 서두르는 가운데 반정부 운동을 선동하고 있다고 확신했다. ○“협상에 미련” 못마땅 이승만은 김구의 저격범 안두희를 김구의 측근으로 보았다.이승만은 1949년 6월28일 미국의 친지 RT 올리버에게 보낸 편지에서 안두희를 한독당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던 인물로 단정했던 것이다.이어 이승만은 이 편지에서 안두희가 김구를 방문했을때 비서들을 모두 밖으로 내보내고 둘이서 비밀대화를 나누었다고 전하고 세발의 총성이 울렸다고썼다.그러면서 마지막으로 편지내용을 어느 한구절도 인용하지 말 것을 당부했다. 제헌국회 안에도 이승만을 반대하는 세력이 많았다.그러나 부분적으로나마 반대파들을 통제해나갔다.이승만은 자신이 유엔대사로 임명한 조병옥도 사실상 경계했다.유엔에 남아있기를 희망하는 대통령의 뜻도 능히 거역할 수 있고 모든 사람들이 쪼들려도 개인자금을 조달할 능력을 가진 사람이 바로 조병옥이라고 평가했다.특히 경찰을 장악하고 있는 내무부장관 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이 이승만 대통령의 생각이었다. ○민족주의세력 득세 어떻든 이승만은 임시변통으로 사람들을 쓰고 부려먹었다.조병옥도 그러한 케이스였고 뒷날에는 정적이 되었다.초대 주미대사였던 장면도 예외가 아니었다.그리하여 서서히 정치판도가 변화하는 가운데 1950년이 다가왔다.그해 5월30일 제2대 국회로 가는 5·30선거가 실시되었다.그 결과 대한국민당,민주국민당,국민회등 기성 보수정파의 원내세력이 줄어들었다.반면 민족주의 세력을 포함한 중간파가 약간 두두러졌다.특히 여당입장에있던 대한국민당과 원내 제1당이었던 민주국민당이 무소속에 밀려 소수로 몰락해버렸던 것이다. 19 50년 5·30선거는 이승만 대통령의 정치기반을 약화시켰다.무소속으로 자기 주장을 국민들에게 호소해왔던 이승만은 정당을 등에 업지 않을 수 없었다.그래서 이승만은 자기가 만들었던 대한독립촉성국민회를 중심으로 자유당을 서서히 엮어나갔다. ◎이정권·민국·한불업계 낙선 공작/“김성수·김준연 남감찹과 내통” 몰아/현야 경찰서장 교체… 중진들 대거 탈락 1950년 5월 실시된 5·30 국회의원 선거에서 이승만 정권이 카운터파트인 민주국민당과 한국독립당등 경쟁 상대들에 대해 조직적인 선거방해를 시도한 사실이 드러났다.이같은 사실은 서울신문 특별취재반이 미국립공문서보존관리국에서 긴급 입수한 조인트 위카(JOINT WEEKA),즉 주한미국대사관 주재 무관들이 작성한 주간보고서에서 밝혀졌다. 이 조인트 위카에 따르면 당시 이승만 정권은 선거전 민국당과 한독당 후보들을 낙선시키기 위해 간첩사건을 조작했으며 대대적인 경찰인사도 단행했다.조인트 위카 13편(50년3월31일자)에 따르면 이승만정권은 대한정치공작대를 통해 민국당 중진들이 군경에 잠입한 남파간첩들과 연계된 것으로 조작했다.이는 남북 분단정권 수립후 남쪽에서 좌익에 대한 경계심이 고조되던 시기에서 주효한 전략으로 작용한 것으로 이 보고서는 풀이하고 있다 정치공작대는 그해 3월20일 국가보안법 위반 범죄수사를 위해 경찰 1백명으로 구성한 정보조직으로 김성수,조병옥,백관수,김준연등 민국당 중진들이 간첩과 내통한 것으로 조작했다.이 공작에는 윤치영 임영신 이범석등이 가담했고 특히 윤치영이 이끈 여당격의 대한국민당이 깊숙이 관여한 것으로 조인트 위카는 기록하고 있다(조인트 위카 16,50년4월14일자).대한국민당은 70여명의 입후보자를 내세워 민국당의 이슈를 혼란으로 몰아갔으며 민국당을 패배시키려는 선거전략도 구사했다(조인트 위카 13,50년 3월31일자). 조인트 위카는 이어 정치공작대 사건은 결국 4월중순경 조작극으로 드러났지만 당시 이승만 지지세력의 가장 큰 적수였던 민국당과 한독당은 큰 타격을 입을 수 밖에 없었던 것으로 결론지었다.한편 이 정보보고서에 의하면 당시 정권은 선거에 앞서 5월초 미군정 시기부터 민국당이 장악했던 지방 경찰서장직을 대폭 바꾸는 바람에 민국당의 중진들이 선거에서 대거 낙선한 사실도 들추어냈다.
  • 「새로쓰는 한국현대사」 속의 두거인 재조명

    ◎이승만·김구의 우정과 갈등/황해도출신 한살산… 상해 임정활동 공통점/해방후 우남은 「군정」·백범은 「협상」을 추구 조선왕조 끝시기로부터 오늘날 남북대립시기에 이르기까지 많은 정치지도자들이 배출됐다.그 가운데 우남 이승만과 백범 김구는 앞자리를 차지하는 인물이다. 우남은 18 75년에,백범은 18 76년에 태어났다.모두 황해도 출신으로 사실상 동년배지만 백범은 우남을 평생동안 형님으로 모셨다.어려서 한학을 공부한 우남은 성장하면서 서양문물에 눈을 떠 미국 조지워싱턴대학,하버드대학,프린스턴대학 등에서 국제정치와 국제법을 전공했다.그리고 일찍 기독교 정신문화를 받아 들였다.이와는 달리 토착적 성장의 길을 걸은 백범은 서당 글공부가 교육의 전부였다.또 토착종교 동학에 가담해 왜병과 싸우는 등 민족적 정열을 불살랐다. 두사람은 1919년 3·1운동 직후 시차를 두고 상해 임시정부를 통해 연결고리를 맺는다.우남은 대한민국임시정부 초대 대통령으로,백범은 마지막 주석으로 선출되어 독립운동 일선에 나섰던 것이다.그러나우남과 백범은 임정과의 연결에서 질적 차이를 드러냈다.백범은 임정을 떠나지 않은 채 그 간판을 해방의 시점까지 지킨데 비해 우남은 미국을 무대로 외교 선전 측면의 독립운동을 벌였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들은 해방된 조국에 환국해서는 독립정부 수립운동에 앞장 섰다.1945년 12월 모스크바에서 「한반도 문제에 관한 미·소·영·중 4개국 외무장관 합의 의정서」가 발표되었을 때는 손을 맞잡고 싸웠다.그러나 두 지도자 사이에는 차츰 노선의 차이가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했다.우남은 강력한 반소·반공론에 입각해 남한의 단선·단정노선을 제기하고 나섰다.이 노선에 반대한 백범은 이데올로기보다 민족을 앞세웠다. 1947년에 공식화된 미국과 소련 사이의 냉전은 미국으로 하여금 우남이 주장해온 단선·단정론을 지지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그리하여 미국의 주도아래 국제연합은 19 48년 5월10일 남한에서 총선거를 실시해 대한민국을 건국시키는 일을 서두르게 됐다.남한의 단선·단정은 분단체제의 고착은 물론 동족상잔의 비극을 불러 일으키게될 것이라고 비판한 백범은 남북협상을 추진했다.백범은 김규식과 함께 1948년 평양 남북정치지도자 연석회의에 참석한다.그러나 북한은 곧 세워질 공산정권의 합법성을 쌓는데 두 애국지도자의 충정을 이용했을 뿐이다. 5·10총선거에 따라 대한민국 제헌국회가 성립됐다. 국회의장에 선출된 우남은 헌법에 의해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초대 대통령 자리에 올랐다. 5·10총선을 거부했던 백범은 자신이 이끌던 한국독립당을 중심으로 통일운동을 벌였다. 백범의 통일운동은 고귀했으나 외로웠다.결국 1949년 6월26일 육군대위 안두희의 흉탄에 쓰러지고 말았다.통일된 독립국가 수립을 꿈꾸던 그의 숭고한 사상은 오늘날 까지도 우리의 지표가 되고 있다. 우남은 건국 초기에 험난한 길을 걸었다.특히 1950년6월25일 북한의 전면 남침을 맞아 미국과 국제연합 지원아래 싸워서 국가를 수호했다.대한민국의 건국과 수호는 확실히 그의 큰 업적이라 할 수 있다.그러나 사사오입개헌과 1960년 3·15부정선거는 그에게 오명을 안겨 주었다.그는 전 국민을 분노시킨 4·19혁명에 의해 하야할 수 밖에 없었다. 돌이켜 종합해 생각해 보건대 백범 두분 모두 우리 배달겨레에게 소중하게 기억된다. 우남은 건국과 국가수호라는 업적을 남겼으며 백범은 분단상황에서 민족의 통일을 잊지 않게 하는 정신적 자산을 남겼다.두분은 훌륭한 저술가이기도 했다. 우남의 「독립정신」과 「일본내막기」는 그의 뛰어난 국제정치 안목을 보여 주고 백범의 「백범일지」는 그가 민족의 자유와 자존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말해 준다.
  •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미 상원외교위 증언

    ◎가까운 장래의 미 외교정책 목표/미국은 한·일·중과 불필요한 대결말라 헨리 키신저 전미국국무장관은 13일 미상원 외교위원회에 출석,「가까운 장래의 미국 외교정책목표」에 관해 증언했다.키신저의 증언을 요약한다. 냉전이후의 외교정책 방향을 어떻게 세워야할 것인가의 문제는 진정 미국이 국제사회로부터 받은 역사상 가장 어려운 난제중의 하나이다.냉전 때의 문제보다도 덜 위험하지만 한층 복잡해 거의 모든 기본요소가 동시에 사라져버린 세계에서 방향감각을 되찾는 것과 흡사하다. 너무도 많은 미국인들이 외교적으로 이뤄져야 할 일들이 모두 달성되었다는 환상을 가지고 있다.그러나 세계는 지금 틀을 짜면서부터 미국이 배제된 결정들이 가면 갈수록 많아지는 추세다.이같은 추세는 피할 수 없는 필연적인 것은 결코 아니다.미국은 건설적인 세계질서의 틀을 잡아갈 능력을 아직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인들은 제한없는 선택의 장으로 외교정책을 여기고 있고 국제적 약속에 대해 참여나 철회의 결정을 언제나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선에서 이해한다.냉전에서 이긴 미국인들은 외교란 영원한 승자가 없다는 점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군사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들은 점점 줄어드는 대신 경제와 기술의 중요성은 급속도로 높아져 간다.현재 세계에는 비군사적 결정에서 힘을 대등하게 겨룰 수 있는 6,7개의 주요국가들이 있다. 이같은 국제질서에서는 한 국가의 지배적 우세 아니면 힘의 균형 등 두가지 길만이 안정을 보장한다.그런데 국민 여론을 통한 미국의 정치는 곤란하게도 이 두가지 접근 모두를 거부하는 경향을 보여왔다.헤게모니는 힘의 소진을,힘의 균형은 끝없는 긴장을 뜻하기 때문이다.새로운 세계질서는 균형개념에 바탕을 두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 현실적 판단이다.과거에는 정복을 통해서만 균형의 변화를 끌어낼 수 있었으나 지금은 경제와 기술이 획기적인 변화를 만들어낸다. 미국 뿐아니라 모든 주요국가들은 지금 과도기에 놓여있다.이럴 때 이론적으로 미국은 지난 19세기 최강국 영국이 취했던 「아주 특별한 경우외에는 특정 편을 들지 않고 모두와 좋게 지내고자 한」「멋있는 고립주의」를 추구할 수 있으나 걸림돌이 너무 많다.또 미국은 자신들이 믿는 가치가 전세계에 보편적으로 통용될 수 있다는 신념이 강한 국가다.세대간에 역사적 경험의 상이함이 정책결정의 혼란을 부추기고 있는데 결국 배타적이지 않는 국익바탕 주의냐 아니면 소위 다자간 국제주의냐의 갈등으로 귀결된다고 할수 있다. 클린턴 대통령의 외교노선은 다자간주의 쪽에 기울어져 있다.심한 국수적 고립주의자가 아니라면 국익과 국제 콘센서스를 양 극단으로 구별하지 않는다.실제 세계에선 뉘앙스의 차이일 따름이다.이런 점들을 명심한 뒤 유럽과 함께 현 미국 외교정책의 「사고지역」이라 할 아시아를 살펴보도록 하자. 미국은 최근 수년간 때로 불필요하게 중국·일본등 여러 아시아국가들과 동시에 불화에 휩싸임으로써 아시아정세에서 나오는 이득을 얻는데 실패했다.미국은 아시아 주요국가들과 동시에 대결하지 말아야 한다는 점을 외교정책의 좌우명으로 삼아야한다. 현재 거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의 정치적 상황은 극도로 취약해지고 있으며 대부분 국가는 과도기에 처해 있고 이같은 변형은 내부적으로 민족주의와 국제주의간의 긴장을 조성한다.기존의 동맹관계도 수정될 것으로 보인다. 일본은 정치제도의 틀이 근본적으로 바꿔지는 중이며 외교정책의 방향도 똑같이 그럴 전망이다.자신을 낮추고 숨기는 정치시대는 끝나 한층 민족적이 되고 지금보다 훨씬 「정치적」이 될 것이다. 중국은 등소평으로부터 차세대 지도층으로의 권력이행이 거의 완료된 것으로 짐작된다.그럼에도 등이후가 안정되는 데는 수많은 변수의 터널을 통과해야 한다.경제적 성장은 어쩔수 없이 정치체제로 하여금 최소한 산업정보사회에 발맞추는 시늉을 내도록 할 것이다. 한국은 통일에 대한 욕망과 고립에 대한 두려움이 동시에 마음을 휘어잡고 있다. 이같은 변화는 아시아에서 경제의 세계화가 요구하는 국제주의와 정치적 결속에 큰 효과를 발휘하는 민족주의간에 긴장을 야기하고,미국의 정책이 변화의 와중에 있음을 감지한 결과등으로 현존의 동맹및 우방정책에 대한 재고압력을 일으키고 있다. 최후로 남아있는 분단국인 한국은 통일문제에 국가의 온 신경이 집중될 것이다.합법적인 상대로 취급해 주지 않으려는 북한의 전략과 맞서야 하는데 핵문제 때와 같이 북한은 미국과 직접 문제를 해결하려 한다.미국은 북한의 경직성이 세계경제에서 배제된 데서 연유한 만큼 접촉을 통해 그들의 고립감을 풀어줘야 한다는 입장이나 한국은 이에 대해 불편한 심기를 갖고있어 충돌의 소지마저 안고 있다.나아가 한국은 중국 그리고 일본까지 자신의 통일추구에 전적으로 동감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배경으로 해서 민족주의적 성향을 확대하고 있다.따라서 중국과 미국이 계속 지금처럼 사이가 좋지 않다면 한반도의 상황도 나쁜 국면으로 빠질 수 있다. 미·중 관계가 조속하게 회복되지 않고 대립이 심화되면 미국의 일본에 대한 영향력은 극적으로 감소할 것이며,한국은 어쩌면 화염통으로 변할는지 모른다.
  • 뜨거운 설전/DJ­“구당의 결단”/KT­“사리의 표출”

    ◎김대중씨 내외연모임 발언/나눠먹기식 당 운영 더이상 안돼 지난 92년12월19일 정계은퇴시에는 정치를 하리라고는 생각지도 않았다.사실 (신당 창당으로) 정치를 재개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국민과의 약속을 못지키는 것이 된다.그러나 이에 대해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 민족의 운명이 중대한 기로에 서 있고 여야가 자기 몫을 다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조그만 힘이라도 보태야 겠다고 생각했다. 김영삼 대통령은 지역감정과 용공음해로 당선됐지만 축복해 주었고 영국으로 떠나면서도 잘하기를 바랐다.영국에서 이기택총재에 대해서도 아낌 없는 지원과 성원을 했다.그러나 현실은 배신감마저 느끼게 했고 이는 나의 부덕의 소치로 생각한다. 국정현실은 큰 혼란에 빠져있고 개혁 마무리도 실패했으며 권력은 보복차원으로 악용되고 있다. 이제 우리당은 당권만 생각하고 당에 대한 책임은 지지 않는 나눠먹기식 정당으로 당다운 모습을 잃어버리고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 없는 정당이 됐다.이러한 모습의 정당 총재를 과거에 보지 못했고 지도부도 이를 묵인한 책임이 있다. 우리당은 지방자치 단체장을 책임지고 관리,지원해야 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전유권자의 57%인 20·30대의 지지를 정착시키는 노력도 시급하다.안정 희구 보수세력들이 이번 선거에서 지지해 주었는데 차제에 중산층을 끌어안는 모습으로 개혁되어야 한다. 많은 여성유권자들의 지지를 정착시키기 위한 정책개발도 시급하다.특히 통일문제는 우리당이 그간 각고의 노력으로 추진해왔다.경제와 문화가 지배하는 시대인 21세기에 대처하는 당개혁도 필요하다. 비록 도덕적으로 깨끗하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여건을 버리고 일시적으로 비난을 받더라도 국정의 혼란과 마비된 제1야당의 정당기능을 그대로 바라만 볼 수 없다. 정기국회부터 당이 일대 개혁,잘하는 모습으로 심기일전하면 서울과 경기 호남을 축으로 다음 총선에서 제1당이 되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니다. 6개항의 개혁결의가 당에서 수용되고 나눠먹기 체제의 지양이 보장되고 당개혁의 걸림돌인 이총재의 사퇴가 확보되면 당내 개혁으로 갈 수 있다. ◎이기택 총재기자회견 내용/당 깨라고 국민이 표 준것 아니다 6·27지방선거는 민주당에 지역감정 극복과 수권정당 건설,정권교체신화의 목표를 향한 새출발을 요구하고 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김대중아태재단이사장은 신당창당을 통해 당을 혼란에 빠뜨리고 있으며 나는 이에 한없는 비애를 느끼고 있다. 총재인 내가 책임질 일이 있으면 8월 전당대회를 통해 책임을 물어야 한다.순수집단 지도체제를 요구한 인사들이 지금에 와서 신당의 명분으로 당운영을 문제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총재직 사퇴요구는 정치적 음모다.나는 이런 음모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다.총재사퇴요구는 먼저 김이사장이 정계복귀 의도를 포기하고 신당창당을 백지화할 때 당의 개혁을 위한 분위기 조성차원에서 수용할 수 있다. 나는 김이사장의 정계복귀에 반대한다.그의 은퇴선언은 정치적·역사적 의미와 무게가 실린 것이다.누구의 강요가 아니라 김이사장 스스로가 정권교체를 위해 내린 결정이며 국민들은 이를 양 김씨의 은원 관계를 청산하고 새로운 역사의 물꼬를 여는 계기로 인식했다.김이사장이 국민적 비판을 무릅쓰고라도 다시 뛰겠다면 정도를 걸어야 한다.형체도 없는 신당논리를 내세워 자신이 만든 당을 때려 부수려 해서는 안된다.국민들이 당을 깨라고 표를 던진 것이 아니다.국민들은 신당창당을 「정통야당의 송가」라고 일컫고 있다. 내각제 개헌론은 국민의 바람과 동떨어진 소모적 정치논쟁에 불과하며 국론분열의 상처만 안길 뿐이다.일개 정치인의 이해 때문에 국민들이 피흘려 얻은 대통령직선제를 바꿀 수는 없다.아울러 시대가 바뀌면 사람도,역할도 바뀌어야 한다.신진대사가 막히면 사회는 정체되고 퇴행할 뿐이다.지역등권론 역시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것으로 이를 정치적으로 악용해서는 안된다. 나는 한평생 야당의 길을 걸어오면서 이 순간까지 국민앞에 떳떳하다.앞으로 성패를 떠나 원칙과 합리를 바탕으로 정치의 정도를 걷겠다. ◎김대중씨의 “정치재개” 선언을 보고/「삼풍」처럼 무너진 정치신뢰 삼풍백화점 붕괴사고와 김대중씨의 신당창당 및 정계복귀에 관한 기사가 연일 언론의 지면을 덮고 있다. 하나는 사회적 사건이고 또하나는 정치적 사건이다.그러나 두 사건 모두 국민에게 충격과 놀라움을 안겨주고 있다. 슬픔과 비통속에 온 국민이 잠겨 있는 동안 여의도 정치무대에서는 삼풍백화점의 붕괴 못지않게 「신뢰의 붕괴」가 시작되고 있다. 김대중씨의 정계복귀는 전적으로 개인의 자유다.정계은퇴도 개인의 자유다.지난 92년12월19일 정계은퇴를 선언한 것은 누가 강요한 것도 아니요,법적으로 규제한 것도 아니다.그렇듯이 개인의 자유는 존중을 받아야 한다.그러나 정치인의 자유에는 그만한 책임이 뒤따른다.그분이 언급한 「장사하는 사람이나 글쓰는 사람」과는 다르다.온 국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정말 진지하게 정계은퇴선언을 하던 그 모습을 TV로 지켜본 기억이 너무 생생하다.그 분위기는 장엄하기까지 했다.눈시울을 붉힌 사람도 있다고 한다.많은 국민은 명예의 선택이라고 자랑스러워 했다.그분의 정치적 약속과 시중의 장사하는 사람의 약속은 그분이 장사꾼이 아니라는 차이만큼 클 수밖에 없다. 먼저 국민은 궁금하게 생각한다.왜 박수를 받았던 정계은퇴선언을 다시 거두어들이는 것일까.이번 지방자치선거에서 압승한 민주당을 차버리고 왜 신당을 만들려고 하는 것일까. 많은 사람이 명약관화한 그 이유를 어렴풋이 알고 있지만 그래도 본인의 설명을 듣고 싶어한다.아태재단이 이 나라 21세기를 위해,그리고 통일한국을 위해 진정 준비하는 세계적 연구기관이 될 것이라는 그분의 말에 대한 믿음을 버리기 어렵기 때문이리라.우리사회에도 한 분쯤은 정계의 대원로로서 존경과 신망을 한몸에 받을 수 있어야 한다는 기대가 가슴에 묻혀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제 우리는 지금까지의 그분의 언행에 대한 내용과 과정이 어떠했다는 사실을 빨리 알아차리는 것이 현명하다는 주위사람의 말을 실감하기 시작했다. 김대중씨의 정계복귀에 대한 논란이 있었던 지방선거에서 「당원으로서 당을 지원할 뿐」이라는 그분의 말씀과 민주당 대변인의 말을 우리는 기억한다. 차라리 지방선거를 그분의 정계복귀에 대한 평가라고 미리 규정했더라면 궁색한 변명이나 여론의 날카로운 질책을 피해갈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매우 떳떳했을 것이다. 이제는 어쩌랴.지방선거를 문민정부의 중간평가라고 몰고가서 압승한 민주당이 수권정당으로서 체질을 정비하기는커녕 한사람의 「야당」을 추스리지 못해 국민의 기대를 저버리고 새로운 정당을 만들겠다는 「과감한 결단」을 함으로써 『국민쯤이야』하는 대접을 국민에게 주고 있다. 그분이 대정객으로서 이 나라 민주주의를 쟁취한 만큼 아직도 그러한 열의가 살아 있다면 8월 전당대회를 통해 당원의 결정을 묻는 절차적 민주주의에도 모범을 보이는 것이 당연하다.언제까지 이 나라에서 줄서기정치를 강요하고 지역할거주의를 볼모로 국민의 판단을 흐리게 할 것인가. 분단된 이 나라의 통일을 위해 앞장섰던 그분이 지역등권주의라는 신조어로 동서를 또 쪼개려는 참뜻은 무엇인가.상황과 여건에 따라 정치철학과 주장이 뒤바뀐다면 이 나라에 비전 있는 정치는 언제나 이루어질까. 민주주의 지도자로서 명예롭게 남길 원했던 뜻있는 국민은 삼풍백화점 붕괴만큼이나 신뢰가 무너지고 있음을 가슴쓰리게 생각하고 있다. 몇 푼 더 벌어보겠다고 백화점 문을 못닫게 한 삼풍백화점 경영진이나 지방선거 승리를 여세로 멀쩡한 당을 버리고 새살림을 차리겠다는 것이나 과거시대가 남긴 일방통행적 오만과 독선의 끈질긴 유산인가.
  • 국제전화료 초단위 계산/경장관 국회보고

    ◎10월부터… 통화료 인하효과 빠르면 오는 10월부터 국제전화요금 징수방법이 현행 분단위에서 초단위체계로 바뀌면서 전체적인 요금수준도 인하될 전망이다. 경상현 정보통신부 장관은 13일 제176회 임시국회 통신과학기술위원회에서 주요업무 추진현황 보고를 통해 『올 하반기중에 현행 국제전화의 분단위 요금징수체계를 초단위로 세분화하겠다』고 밝혔다. 우리나라의 국제전화 요금체계는 1분을 기본으로 하고 1분 초과때마다 최초 1분요금의 75%가 가산되는 분단위제를 채택하고 있다.이러한 분단위 징수제는 1분1초를 통화해도 2분요금이 부과되는 등 불합리한 점이 있어 수익자부담원칙에 충실할 수 있도록 초단위제로 전환해야 하는 것으로 지적돼 왔다. 정보통신부는 이에따라 국제전화요금 징수제도를 초단위제로 개편한다는 방침을 확정하고 다음달 안에 요금수준등 구체안을 마련키로 했다. 현재 국제전화요금의 분단위제를 채택하고 있는 나라는 미국 중국 네덜란드 등이며 일본 대만 홍콩 인도네시아 등은 초단위로 돼있다. 경장관은 또 이동전화 설비비및 통화요금구조를 합리적으로 개편하는 한편 일반전화 설비비의 경우 전기통신 요금구조와 공기업 민영화일정등을 감안해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보고했다.
  • 「2002 월드컵축구」 한·일 공동개최(쟁점)

    한국과 일본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20 02년 월드컵 축구대회 개최권을 놓고 한일 공동개최론이 새로운 이슈로 떠올랐다.월드컵대회의 한일 공동개최는 올해 초 일본측으로 부터 흘러 나왔으나 한국의 여론이 거세자 슬며시 들어갔었다.그러나 이번에는 한국측에서 공동개최론을 들고 나왔다.월드컵대회의 한·일 공동개최에 대해 찬반론을 들어본다. ◎찬성/경기장 신설 등 2천억이상 소요 큰 부담/「비용」절반 줄고 출혈경쟁없아 증진 한국과 일본이 유치 경쟁을 벌이고 있는 오는 20 02년의 월드컵축구대회 개최지를 놓고 한·일 공동개최론이 갑자기 대두됐다. 한국이 개최권을 따낼 수 있다는 보장만 있으면 그것은 두말 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출혈 경쟁을 벌이다 개최권을 따내지 못한다면 두나라의 우의에 금이 가고 국민들의 실망 등 후유증이 많이 뒤따르게 된다.따라서 공동개최가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국제 스포츠대회의 성공적인 개최 여부는 그 나라의 국력과 비례한다.또 사회전반에 걸친 성장의 중요한 바로미터이기도 하다. 일본보다 경제력이 크게 뒤지고 사회기반이 약한 우리로서는 단독 개최가 그만큼 위험부담이 많은 것이다. 월드컵대회의 한일 공동개최를 바람직하게 생각한 데는 몇가지 요인이 있다. 첫째는 두나라의 협력과 증진을 위해 필요하다.한국과 일본은 미우나 고우나 동반자 관계를 맺어오고 있다. 특히 양국은 21세기 태평양시대를 이끌어 가야할 입장이어서 앞으로도 계속 선린의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 서로 소모적인 월드컵대회 유치 경쟁보다는 공동개최를 통해 더욱 우의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만일 한국과 일본이 공동개최를 하게 된다면 한나라에서 개최하는 것을 두나라가 분산 개최하면 국제축구연맹(FIFA)이 월드컵 개최의 조건으로 내세우는 경기장 시설의 부담이 절반으로 줄어들게 된다. 한국이 단독 개최를 할 경우 5∼6개의 경기장을 신설해야 하며 비용만도 2천억원 이상이 필요하다. 이 경우는 일본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공동개최를 하게되면 양국이 현재의 시설만으로 충분히 치를수 있다는게 양국의 월드컵유치위원측의 얘기다. 아울러 양국의 합의에 따라 유치경쟁에 드는 비용을 아시아 축구발전의 기금으로 활용한다면 일석이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다. 다음은 개최권을 따내지 못했을 때의 양국 국민의 감정을 고려해야 한다. 겉으로 보이지는 않치만 정부는 물론 국민들 사이에서도 월드컵대회 유치를 놓고 지고 이긴다는 의식이 팽배해 있다. 두나라 국민간에는 역사적 문화적으로 뽈때 절대 져서는 안된다는 정서가 크게 작용한 까닭이다. ◎반대/한국은 일본 빛내주는 조연국 정락 안될말/「단독 유치」좌절되더라도 끝까지 추진해야 올림픽과 함께 「세계적 스포츠제전」으로 꼽히는 월드컵대회는 축구라는 단일종목의 대회이지만 세계에서 30억명 이상 TV수상기를 통해 관전하는 엄청난 규모의 빅이벤트이다. 우리는 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바 있어 월드컵대회 마저 개최한다면 또 한번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세계화의 기틀을 다질 수 있는 기회라 하겠다. 그런데 지난해 말부터 일본쪽에서 심심잖게 흘러나오던 월드컵대회의 한·일공동 개최론이최근 우리쪽으로 부터 나오고 있어 체육계는 물론 국민들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고 있다. 우선 월드컵대회를 한국과 일본 두나라가 함께 개최하게 된다면 일본보다 뒤늦게 유치경쟁에 뛰어들면서 내세웠던 ▲3회 연속출전을 포함해 월드컵대회 본선 4회진출을 한 아시아축구의 최강국이며 ▲88년 서울 올림픽을 성공적으로 치른 노하우를 지녔고 ▲지구상 유일의 분단국가로 월드컵대회를 통해 남북통일의 물꼬를 트겠다는 등의 명분이 무색케 된 셈이다. 특히 국민 대다수가 월드컵대회의 한·일공동 개최를 반대하는 의견이 여론 조사를 통해 나타난 현상인데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가 이 문제를 들고 나왔는지 이해할 수가 없다. 만일 일본과 공동개최를 한다면 시설 교통 통신 관광 등 모든 면에서 열세인 한국은 일본을 빛내주는 조연국으로 전략할 것이 뻔하다. 20 02년 월드컵대회 유치는 국민의 희망이다. 올림픽에서 보여준 것처럼 월드컵대회를 개최하면 대회를 어느나라 보다 더 훌륭히 치를 수 있다고 국민들은 믿고 있다.우리나라는 또 그만한 역량을충분히 갖춘 국가이다. 두나라가 치열하게 경쟁을 벌이다 어느 한쪽이 유치권을 따내지 못한다면 그 나라는 유치 실패에 따른 후유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렇치는 않겠지만 만에 하나라도 단독 개최의 자신이 없어 공동개최 쪽으로 선회했다면 한일공동 개최가 성사되더라도 국민들로 부터 호응을 받지 못할 뿐더러 대회 자체가 외면당할 가능성이 크다. 한일공동 개최가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책일 수는 있다. 그러나 실패할 때 실패하더라도 단독개최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자세가 필요하며 결과에 승복하는 것이 스포츠 정신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이다. ◎우리의 의견 ○대일 국민감정 고려해야 신문선 (MBC 축구해설위원)=한동안 뜸하던 월드컵대회의 한일공동 개최론이 정치권에서 흘러나온 것은 지금까지 유치활동을 벌여온 유치원회를 비롯,축구관계자들을 김빠지게 하는 일이 아닐 수 없다.특히 공동개최론의 진원지가 정당의 실력자라는 점에 대해 심히 유감스럽다. 월드컵대회 유치는 이제 국민적 차원으로 승화된지 오래다. 이런 마당에한일공동 개최론은 말도 되지 않는다. 특히 일본과의 국민감정을 생각할 때 있을수 없는 일이다.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 조영증(프로축구 LG감독)=스포츠는 누가 뭐래도 정정당당히 싸우고 승자는 패자를 감싸고 패자는 승자에게 축하를 보내는 것이 기본정신이다. 그런데 공동개최는 승자도 패자도 없이 무승부로 끝내자는 얘기가 된다. 경기를 치르다 보면 무승부도 나올 수 있다.그러나 한일 공동개최는 싸움도 하기전에 합의로 경기를 마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스포츠 정신에도 위배될 뿐만 아니라 관중을 기만하는 행위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국민을 우롱하는 처사로 밖에 받아들일 수 없다. ○아시아서 첫 시도해봄직 김호(프로축구 삼성감독)=지난해 미국 월드컵대회에 우리 대표팀을 이끌고 출전했을 때 월드컵대회는 한나라가 아닌 여러나라가 공동으로 개최하는 방안이 검토될 것이라는 말을 들었다. 개인적으로야 한국이 단독 개최를 한다면 축구인으로서 또한 국민의 한사람으로 더 없는 영광이다.그러나 현재 국제축구계에서 일고 있는 이같은흐름은 조만간에 현실로 나타날 것으로 여겨진다 . 그렇다면 한일공동 개최로 서로의 자존심을 살리면서 아시아대륙이 제일 먼저 월드컵 공동개최의 장을 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본다.
  • “한­남아공 협력관계 급진전/양국 우호관계 자랑스럽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어제 이한 넬슨 만델라 남아프리카공화국대통령은 8일 『한국과 남아공의 관계는 초기단계에 불과하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될 수 있을만큼 협력관계가 빠른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밝혔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상오 국회본회의 연설을 통해 『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이라며 『우리가 남아공과 주변지역,나아가 아프리카 대륙의 르네상스를 시작하는 시점에서 한국과의 우호관계를 돈독히 하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앞서 김영삼 대통령은 이날 아침 청와대 상춘재에서 만델라 대통령과 조찬을 나누며 양국의 관계증진방안등에 관해 폭넓게 의견을 교환했다. 만델라 대통령은 이날 낮 2박3일간의 방한일정을 마치고 특별기 편으로 이한했다. ◎만델라 대통령 국회연설 요지 우리는 새로운 세계의 탄생을 지켜보고 있습니다.평화,번영,조화 속에서 살 수 있도록 각국이 협력하고 노력하는 새로운 시대입니다. 미래는 국가간,지역간의 영원한 동반자 관계를 토대로 합니다.21세기초에는 아·태지역이 세계경제의 중심지로 부상할 것입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이 르네상스를 시작하면서 한국과 우호관계를 돈독히 다지게 된 것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역시 한국과 같은 경제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기에 여러분의 성공에 찬사를 보냅니다.우리 두나라의 민주화 투쟁을 지지해준 전세계 국민에 대해서도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우리 국민들은 그 어떠한 장애물도 민주화와 인권운동을 저지할수 없다는 것을 보여줬습니다.남아공은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기 위해 이미 많은 진보를 이룩했습니다. 우리는 한국의 노력을 보면서 크게 힘을 얻고 있습니다.양국간 경제적 협력이 증가하고 있는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두나라 관계가 지금은 초기 단계이지만 멀지 않아 모든 분야에서 실질적인 관계가 이룩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국은 남아프리카의 13번째로 중요한 무역상대국입니다.비금속과 광물이 남아프리카의 주요 수출품이고 한국은 기계,섬유,의류,각종용품등을 우리나라에 수출하고 있습니다.이를 더욱 확대하기 위해서는 정부와 민간의 과감한 노력으로 광범위한 잠재력을 실현시키도록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한국기업들이 이미 우리나라에서 주택사업 등 기업활동을 벌이고 있는 것에 대해 기쁘게 생각합니다.어제 양국이 서명한 문화협정과 과학기술협정은 공동의 목적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하리라 확신합니다. 한국과 같은 빠른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균형된 거시경제의 촉매자로서 또한 감독자로서 정부의 관여가 있어야 할 것입니다.남아공은 한국이 대외관계에서 새로 채택한 노선을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습니다.우리는 아프리카 남부의 인접국들과 밀접한 협력관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멀지않아 한국민에게 강요되었던 국토분단이 해소되기를 바랍니다.남아공은 평화적으로 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한국의 노력을 전폭적으로 지지합니다. 양국은 지리적으로 먼 나라입니다.그러나 공동의 인간애,공동의 희망,평화와 정의와 민주주의를 향한 공동의 꿈들이 우리를 이웃으로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 「통일의 소망」 뱃고동에 싣고…/씨 아펙스호 청진항으로 떠나던날

    ◎남녘 동포애 한시라도 빨리 전달됐으면…/「우리의 소원」 가락속 힘찬 출항/실향민들 “마음도 함께…” 눈시울 【동해=조성호 기자】 「우리의 소원은 통일…」 25일 우리 쌀을 싣고 북한으로 떠나는 씨 아펙스호를 환송하는 동해항에 통일을 염원하는 「우리의 소원」이 울려퍼졌다. 국민들은 『6·25 발발 45주년을 맞은 바로 그 날 북한에 쌀을 보내게 돼 감회가 깊다』며 『하루 빨리 북한 동포들에게 골고루 나눠졌으면 좋겠다』고 입을 모았다. ○…중앙 부두에서 비가 내리는 가운데 하오 5시부터 시작된 「우리 쌀 북한수송 출항행사」는 통일원 송영대 차관의 경과보고,농림수산부 최인기 장관의 「정부양곡 인도증」 전달 등에 이어 화동 김상년군(10·송정국교 3년)이 김예민 선장에게 꽃다발을 걸어주는 것을 마지막으로 20분만에 끝났다. ○…씨 아펙스호는 5시20분 쯤 북평고교 밴드부가 연주하는 「우리의 소원」에 맞춰 고동을 울리며 출항했고,시민들은 박수와 환호로 환송. 행사장에 나온 표성례 할머니(73·동해시 천곡동 주공 5차아파트)는 『6·25 전쟁이 한창이던 28살 때 남편과 함께 월남,동해시에서 살았다』며 『굶주리는 북한 동포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또 『평양에는 남동생을 비롯한 친인척들이 많이 산다』며 『쌀을 싣고 가는 배에 내 간절한 마음도 함께 실어 보내고 싶다』고 눈물을 글썽였다. 이모와 함께 부두에 나온 황선아양(9)은 『우리나라가 자랑스럽다』며 『하루 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해항은 행사시작 30분전인 하오 4시30분부터 갑자기 번개와 천둥이 치는 등 폭우가 쏟아지다 출항 뒤인 하오 5시30분 쯤 그쳤다. ○…빗속에서도 씨 아펙스호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많아 행사장 주변 곳곳에서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기도. ○…씨 아펙스호는 행사에 앞서 환송객들을 위해 7개의 화물창고 가운데 1개를 활짝 열어 화물칸에 실려있는 쌀을 공개해 박수를 받았다. ○…동해시청은 행사 준비를 위해 상오 비상연락망을 통해 전 공무원을 출근시켰고 동사무소는 출항하는 씨 아펙스호를 보려는 주민들을 위해 군용 및 관용버스,쌍용양회 동해공장의 통근차 등 23대의 버스를 동해항 노선에 긴급 배치. ○…우리 국적선으로는 분단 이후 처음으로 북한 항구에 입항하는 「씨 아펙스」호는 동해항을 떠나 12마일 밖 영해까지 해양결찰대 소속 경비정 4척의 호위를 받았다. 그 이후에는 해군 함정이 레이더로 항로를 점검하며, 북한 영해에 들어서면 북한 당국의 지시를 받게 된다. 씨 아펙스의 항해거리는 약 2백80마일(약 5백30㎞)로 최고 12노트로 달려도 목적지인 청진항까지는 24시간 이상 걸린다.
  • 변화기류속 「6·25」45돌(사설)

    6·25전쟁 45돌을 맞는다.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전쟁이지만 동족상잔(동주상잔)의 참담했던 그 아픔과 고통을 세월이 흘렀다해서 어느 누가 잊을 수 있겠는가. 최근 탈냉전의 국제질서속에서도 한반도는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로 남아있으며 휴전선을 사이에 둔 남북한의 군사적 대치는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상황이다.전쟁은 끝난 것이 아니라 정전상태에 들어가 있는게 엄연한 우리의 현실인것이다. 6·25전쟁은 남북 통틀어 2백만명 이상의 사상자를 냈고 전국토를 초토화 하였으며 1천만명이상의 이산가족을 만들어냈다.북에 의해 도발된 적화야욕의 이 엄청난 민족적 비극과 고통에 대해 당사자인 북한정권은 아직 한번도 반성과 사죄를 한 일이 없는 것은 유감이 아닐수 없다. 남북관계는 그동안 「기본합의서」가 채택되고 평양과 서울에서 여러차례 고위급회담을 가졌음에도 북한측의 무성의와 회피로 실질적인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그러나 최근 한국형 경수로 지원과 인도적 차원의 한국쌀제공이 성사됨으로써 남북한 관계의 새로운 변화가예고되고 있음은 참으로 다행스러운 일이다.경수로지원이나 조건없는 쌀제공은 한반도에서의 평화정착을 희구하는 우리정부의 간절한 염원과 순수한 동포애의 발로임을 북한당국은 잊어서 안될 것이다. 북한이 진정한 평화를 추구한다면 순수한 인도주의적 차원의 남북 이산가족상봉과 노부모의 고향방문을 1차적으로 실현시켜야 할 것이다.분단의 땅 저쪽 지척에 부모형제와 고향을 두고 반세기 가까이 오가지 못하는 것은 얼마나 통한스런 일인가.시간은 기다려주지 않는다.더 이상 미룰수 없는 일이라고 본다. 아울러 북한은 에너지·식량난의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회생시키기 위해 남북경제협력에 적극 나설 것을 촉구한다.21세기 아시아·태평양시대에 남북한이 경제협력과 교류를 통해 공동의 번영을 모색하는 일이야말로 세계평화에 기여하고 민족사의 위대한 전진을 기약하는 일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 6·25 45주년을 맞으며/이호철 작가(일요일 아침에)

    강원도 동해항에서 태극기를 단 국적선이 남북분단 이후 처음으로 2천t의 쌀을 싣고 북한 나진 항을 향해 첫 출발할 예정이다.이어서 3천t,5천t급 우리 국적선들이 잇따라 남한 곳곳에서 쌀을 싣고 목포·군산·마산항 등지를 출발,북한측이 지정한 남포·원산·청진·나진항 등으로 들어가게 될 것이다.금년 6·25 45주년의 뜻은 바로 이 엄연한 사실로 함축되지 않을까.우연이라고 하기엔 너무너무 기이하다.하필 어째서 6·25인가.하필 어째서 6·25 45주년을 맞아 북한에 가게 되는가. 하늘의 뜻 같은 것이 문득 와닿는다.45년 전,바로 이날에는 똑같은 최단거리 항로로 무시무시한 남침이 자행되었던 것이다.그리고 이날 이때까지 1백55마일 휴전선을 비롯한 남북 대치 상황은 애오라지 철통처럼 이어져 오기만 했던 것이다.아아,그렇다.이게 하늘의 뜻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보도에 따르면 동해항에 첫 도착한 쌀은 강원도 고성에서였다고 한다.이 점도 남달리 뭉클하게 와닿는다.역시 그렇지,그 곳은 45년전 6·25때까지는 북한 체제에 속해 있었고,지금도그 지방에는 6·25 피난민들이 가장 많이 터를 잡고 살며 몽매에도 잊지 못하는 고향하늘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그이네들이 어찌 이 일에 화끈하게 나서질 않을 것인가. 김영삼 대통령도 「남북관계 해빙의 대전기」를 획하게 된 남북한간의 쌀 협상이 타결되고 나서 지난 22일,『앞으로 더 주겠다.보유량 중 여유분이 없으면 외국에서 사서라도 주겠다』고 언명했다. 요컨대 이일에 화끈하게 들어서는 데는 위 아래가 없고 정부당국과 민간의 차이가 없는 것이다.굶기 직전의 북한 동포들에게 쌀을 보내주자는 일에 어느 누가 망설인다는 말인가.다만 여기서 다음 두가지 사실만은 명백하게 못 박아두어야겠다. 그 첫째는 이 쌀이 과연 남쪽 민초들의 뜻대로 정말로 굶주리기 직전의 북쪽 민초들에게 가 닿을 것인가 하는 점이다.사실은 북쪽의 민초들도 벌써 환히 알고는 있을 것이다.남쪽 동포들이 1차분으로 1천8백억원어치나 되는 쌀의 일부를 보내주었다는 것을 모를 리가 없다. 그런 소식은 공기 알갱이의 기별과도 같은 「눈치」로 이미 훤히 꿰고 있는것이다.그것이야말로 유구하게 이어져 내려오는 바로 민초들,백성들의 지혜인 것이다.이것을 모르거나 소홀히 여길때 그 권력은 볼장 다 보게 된다.반드시 망한다.이 이상의 만고의 진리가 없다.남쪽 쌀이 들어왔다는 것을,남쪽 민초들의 피와 땀이 어린 갸륵한 정성이 가 닿은 것을 추호나마 속이려고 들거나 어물쩍하게 넘기거나 왜곡하려고 들때는 하늘의 철퇴가 내려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금년 초에 귀순한 한 농업 전문가는 『남한 정부가 북한에 쌀을 지원해주는 이유를 이해할 수 없다.김정일은 남한이 준 쌀을 끝까지 숨기면서 인민들에게 나누어 주지도 않고,설령 나누어준다 해도 자신의 은덕으로 선전하는데 이용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었는데,설마 그러기야 할까.아무리 악독한 권력자라 할지라도 그런 종류의 행태 끝이 어떠리라는 것을 모르지는 않을 것이다.선전? 선동? 그런 것들은 벌써 오래 전에 끝장나 있는 정보화 시대인 것이다.아무리 알 길을 막으려 들어도 막아지지 않는 것이 작금의 지구촌 세계이다. 둘째,이번 「쌀협상」에서도 북한측은 안간힘으로 우리 「당국」과 민간을 분리시키려고 하였는데 북한 당국의 그 저의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을, 우리 남쪽의 민초들은 이미 속속들이 훤히 꿰고 있다.그리하여 이 자리서 다시 한번 분명하게 밝히거니와 이제 이 남쪽 세상은 이런 문제에 관한한 「당국」과 「민간」이 따로 없고 우리 국민 한사람 한사람이 바로 「당국」이기도 하고 「민간」이기도 한 것이다.얼핏 「난장판」처럼도 보일 터이지만 이틀 뒤에 있게 될 우리 지자제선거는 바로 우리 민초 한사람 한사람이 진짜 진짜 당국자임을 보여주고 바로 이 힘으로써 딱한 처지에 있는 북한 민초들을 도우려고 나선 것이다.
  • 미­대만/고위급 경제회담 정례화/79년 분단후 첫차관급회담서 합의

    【워싱턴 교도 AFP 연합】 미국과 대만은 정례 고위급 경제회담을 개최하기로 22일 워싱턴에서 합의했다고 미재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양국이 지난 79년 국교를 단절한 이후 이날 처음으로 열린 경제문제에 관한 차관급 회담에서 그같이 합의했다고 밝히고 이 조치는 작년 9월 미국이 대만정책을 일부 완화한 후 시작된 양국간의 비공식 경제접촉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22일의 차관급 회담에 관해 재무부 대변인은 로렌스 서머스 재무차관을 단장으로 한 미대표단과 허가생 경제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대만정부 대표단이 재무부에서 만나 양국간의 경제 및 무역관계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양국대표단이 이 대화를 지속해야 하며 다음 회담을 대만에서 열기로 합의했다』고 전하고 『이 대화가 정례적으로 해마다 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북경 쌀회담/북과 이면계약 없었다/김 대통령 기자간담 내용

    ◎「합의문 비공개」 약속… 신뢰구축차원 지켜야/대남비방·우성호 송환 자연스럽게 풀릴것 ▷모두발언◁ 김영삼대통령은 23일 기자간담회를 갖고 북한에 우리 쌀을 지원하게 된 과정과 앞으로의 진행과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분단 50년 사상 처음으로 우리 농민들이 생산한 많은 양의 쌀을 식량난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보낼 수 있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는 먼저 국민 여러분께서 이번 대북 쌀지원과 관련하여 보여주신 뜨거운 관심과 성원에 감사드립니다. 우리가 북한 동포에게 쌀을 지원하게 된 것은 여러가지로 뜻깊은 일입니다. 우리는 오래전부터 북한 동포들이 식량난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어왔고,이를 가슴아프게 생각했습니다.그래서 나는 기회있을 때마다 순수한 동포애적 차원에서 아무런 조건없이 북한에 식량을 제공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던 것입니다. 우리의 입장이 이처럼 순수했기 때문에 남북관계의 특수성으로 곡절이 많았음에도 이번 쌀 지원 협상이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 있었습니다.이번 접촉을 통해 북한 당국도 우리의 순수한 뜻을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을 것입니다. 나는 이번 남북간의 합의가 상호 신뢰 구축에 적지않은 도움이 되었다고 믿습니다. 우리가 경수로건설 지원 결정에 이어 이번에 북한에 쌀을 제공하기로 한 것은 남북이 상부상조하면서 공존공영의 시대를 열어가기 위한 것입니다.우리 국민은 물론 미국,일본,중국 등 여러나라가 쌀협상 타결을 환영하고 있는 것은 우리의 이러한 취지를 잘 알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북한당국도 우리가 쌀을 지원하는 취지와 목적에 맞게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하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랍니다. 정부는 이번 쌀지원이 약속한 기일내에 차질없이 추진되도록 할 것입니다. 나는 이번 쌀지원을 계기로 북한이 생산적인 대화와 교류협력의 장으로 나오기를 기대합니다.이는 우리 국민 모두의 한결같은 바람입니다. 정부는 7월 중순에 예정된 남북대화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를 앞당길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남북관계에 관해서 지나친 기대나 환상을 가져서도 안될 것입니다.남북관계에는 아직도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항상 현실에 발을 굳건히 딛고 서서,인내심을 가지고 북한을 대해야 합니다.너무 성급한 기대를 갖지말고 문제를 하나하나 차근차근 풀어나가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당면한 안보현실에 대하여도 항상 냉정한 입장에서 필요한 모든 대비를 해야 할 것입니다. 국민 여러분께서도 이 사업이 남북관계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계속 뜨거운 성원을 보내주시기를 당부드립니다. ▷일문일답◁ ­북한은 어느정도의 쌀이 필요한가.또 우리는 어느 정도의 추가지원 능력이 있나. ▲김대통령=북한이 필요한 쌀의 양은 1백만t이라고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이 밝혔다.이차관으로부터 어제 모든 보고를 받았다.가능하면 우리쌀을 보내고 우리의 식량 재고에 문제가 있으면 국제시장에서 사서 보내겠다.정부는 농촌을 보호하기 위해 쌀을 비싸게 수매하고 있다.국제가격의 3∼4배가 된다.국제시장에서는 싸게 살 수 있다.이런 문제는 7월중순 회담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될 것이다.지금 얼마를 더 지원한다고 얘기할 수는없다. ­북한이 이번 쌀 지원을 계기로 대화와 단계적 개방에 나선다는 구체적인 증거가 있는가. ▲김대통령=북한에 대한 여러가지 정보를 갖고 있다.북한은 여러형태로 변할 수밖에 없다.이번에 쌀 받는 것도 참으로 식량난이 어렵기 때문이다.우리는 동포애적인 차원에서 제공하는 것이다.남북이 신뢰를 가져야 한다.남북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신뢰다.약속대로 쌀이 가게 되면 신뢰가 쌓이고 여러가지 상황이 변할 수 있다. ­경수로 협상이 타결되고 쌀 지원도 이뤄졌는데,남북간의 정상회담이 필요한 단계가 오지 않았나. ▲김대통령=알다시피 작년 이맘때 남북은 정상회담을 준비했었다.남북간에 모든 것이 약속돼 7월에 나와 김일성주석이 평양에서 만나기로 모든 약속이 끝났었다.그런데 갑자기 7월8일 김주석이 죽음으로써 회담이 이루어지지 못했다.만일에 이뤄졌다면 한반도의 평화는 물론 통일에 하나의 큰 이정표가 됐을 것이다.지금도 아주 아쉽게 생각한다. 시기가 언제냐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김정일 비서가 주석으로 승진할 것으로 생각한다.그렇게 되면 김일성주석의 유훈을 받들 것으로 믿는다. ­북한은 조문 문제로 계속 시비를 걸고 있는데. ▲김대통령=그 문제는 작년 이맘 때,7월9일 이미 한 얘기가 있다.그 때 아쉽게 생각한다고 말했다.이번에 쌀이 약속대로 가게 되면,신뢰가 구축된다. ­북에 가는 쌀이 우리가 보낸 취지와 맞지 않게 군량미 등으로 전용될 경우,어떻게 할 것인가. ▲김대통령=그점에 관해서는 다 생각하고 있다.북한의 식량난이 심각하기 때문에 우선 주민들에게 나눠줄 것이다.그런 문제는 당국자간 회담에서 매듭될 것이다.쌀 15만t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5만t이면 우리는 7∼8일간을 먹는다.북한에서 잡곡을 섞으면 20일 먹는다.15만t이면 북한의 전주민이 두달이상 충분히 먹을 수 있는 양이다. ­7월의 2차 회담에서 쌀뿐만 아니고 여러가지 논의가 가능하다면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는가. ▲김대통령=쌀이 일단 가야 된다.쌀이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아직 시간이 걸린다.여러분도 둘이서만 만나면 온갖 얘기를 다 하지 않나.딱 하나만 얘기하지는않는다.여러분 짐작에 맡긴다. ­북한과의 막후접촉이 필요하면 계속하는 것인가. ▲김대통령=당국자 회담을 우리정부가 주도적으로 하고 있고,남북간에 약속도 다 되어있다.회담 멤버도 좋고.이석채 차관은 모든 것을 다 커버하는 사람이다.또 회담 전에 나와 이차관이 충분히 얘기를 나눌 것이다. ­북한은 쌀을 받고도 남한에 대한 비방을 계속하는데. ▲김대통령=우리나라 사람들,참 급하다.자연스럽게 해결될 문제다.우성호도 자연스럽게 돌아오게 될 것이다. ­외국에서 쌀을 사면서까지 지원하는 데 대한 비판도 있는데. ▲김대통령=동포애와 민족적 입장에서 볼 때 북한의 식량난이 보통 어려운 것이 아니다.도울 수 있으면 돕는게 도리다.또 우리에겐 그런 능력이 있다. ­처음에 5만t을 보낸다고 하다가 이제는 몇십만t이 간다는데,북경에서 이면계약이 있었던 건 아닌가.합의문안을 발표하지 않는 이유는. ○2차회담 장소 확정 ▲김대통령=이면계약은 전혀 없다.물론 합의문을 그대로 다 발표하지 못한 부분이 있다.딱 한가지인데,개인간의 관계도약속을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북한이 그 부분만은 밝히지 말라고 간곡히 부탁했다.정부 당국자의 서명과 관련된 부분이다.다 끝나면 알게 된다.그 쪽에서 절대 발표 말라고 요청,안하기로 상호간에 합의했다.그 때문에 오해도 있는데….그정도는 지켜주는 것이 신뢰구축에 옳다. ­2차회담의 장소와 시기는. ▲김대통령=그것도 이미 결정됐다.날짜·장소를 다 정해 뒀다.우리는 발표하자고 했지만,저쪽이 반대했다.꼭 지금 발표 안해도 마찬가지 아닌가.어차피 7월 중순이면 다 알게되는 것인데. ­쌀 말고 다른 곡물도 지원하나. ▲김대통령=상대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북한이 쌀 이외의 곡물,예를 들어 옥수수·수수등에 대해서는 얘기가 없었다.전부 쌀이었다.또 우리나라에서는 옥수수 등이 거의 생산되지도 않는다. ­쌀 지원에 모두 2천억원 정도가 드는데.예산 반영은 어떻게 하나. ▲김대통령=우선 예산으로 처리해야 하겠지만,그것은 큰 문제 아니라고 생각한다.예견하고 있었던 일이다.우리 경제규모가 대외적으로 1천억달러 수출을 얘기하지만 전체를따지면 교역량이 3천억달러 규모다.그 정도는 해결할 수 있다. ­지방자치 선거가 중앙정치적인 투쟁 양상으로 바뀌어 혼탁상을 보이는데. ▲김대통령=국민들이 정확하게 알아줬으면 좋겠다.그것이 간절한 부탁이다.지방자치 선거는 어디까지나 지방 일꾼을 뽑는 것이다.중앙정치와는 분리돼야 한다.시장이나 지사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처럼 얘기하지만,그럴 수는 없다.호소카와 전일본총리가 도지사 시절,도지사 집무실보다는 도쿄에 가 있는 시간이 더 많았다.정부의 모든 도움 없이 시장이나 지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과대포장하지 말아야 한다.
  • 한·일 「협력과 경쟁」의 당당한 관계 정립해야(사설)

    ◎광복 50년 수교 30년 금년은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지난 22일은 바로 그 한·일수교 30돌이 되는 날이었다. 김일성사망 1주기를 앞두고 연이어 이루어진 북핵타결 및 쌀제공의 극적 성사에 이어 일본의 대북쌀제공 및 수교움직임도 한·미와 경쟁하듯 활발해지고 있다.세계유일의 분단·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도 마침내 화해·공존의 탈냉전 새바람은 불기 시작한 것인가.주목되고 기대되는 가운데 맞고있는 각별한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돌인 것이다. ○한반도의 탈냉전 기운속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관계에 관한조약」의 성립은 격렬한 찬반논란의 혼돈을 겪었으며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엇갈리는 평가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는 2중성의 불가피한 결과다.한·일수교 및 관계정상화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그것은 우리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그러나 그 성립과정과 내용 및 그 이후의 일본행동은 우리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선 한·일조약의 성립과 수교가 우리경제발전과 안보,그리고 동북아안정에 미친 직간접의 긍정적 영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불만스런 내용과 액수였지만 총6억달러의 청구권자금 등은 분단의 장애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야 했던 우리경제에 도움을 준것이 사실이다.수교에 따른 인적·물적 교류의 급속한 확대 또한 우리의 성장발전을 위한 촉진제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경제 기여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한·일기본조약과 일본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은 조약자체의 내용과 성립과정은 물론 일본의 경제대국답지 못한 지나친 국가이기주의적 처신 때문이다.당시 우리는 약하고 다급한 입장이었으며 강하고 여유있던 입장의 일본은 이같은 우리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불공정하고 굴욕스럽기까지 한 조약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더 우리를 실망시키고 분노케 하는 것은 국왕까지 동원된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입에 발린 형식적 사과·사죄,그리고는 본심을 말하는 우파들의 연이은 망언들과의 교차였다.종전 50주년을 맞아 채택하려 했던 의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의 무의미화 및 실종은 일본의 숨겨졌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일 자신과 민족적 긍지를 우리는 일본이 하루속히 참다운 반성속에 아시아 선린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김영삼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해 대범하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것도 그런 취지에서 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고만 있어선 안되며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수교30주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일관이다. 탈냉전후의 일본은 이전의 일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미국에 대해서도 문자그대로 「아니오」를 말하기 시작 했다.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더 이상 「죄지은 이웃」이 아닌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지금당장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쌀제공 및 수교를 서두르고 있다.한반도문제에 대한 발언권강화를 노리는 움직임이다.우리가 직면한 하나의 현실이다.수교 3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도 이제 새로운 현실인식과 호혜의 원칙을 기초로 「당당하게 협력하고 경쟁하는」 대등한 보통국가적 대일관계를 주도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부도덕 국가 오명 벗어야 동시에 일본도 이제는 반성할줄 모르는 부도덕 국가의 오명을 벗어던져야 한다.독일의 나치스 청산처럼 반성과사죄 할것은 분명히 함으로써 일제의 망령을 깨끗이 청산하고 국가적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경제대국이자 잠재적 군사대국으로서 진정한 세계적 지도국이 될 수 있으며 동북아의 안정에도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북에 쌀을 보내는 뜻/장정행 편집국장(서울광장)

    사상 처음으로 치르는 4대 지방선거의 열기에다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한 흥분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마흔 다섯번째 맞는 「6·25」도 두가지 대사에 묻혀버리는 듯싶다.끔직하고 어려웠던 그 때를 잊지 말자고 해마다 이맘 때면 갖가지 행사들이 열렸으나 올해는 그나마 눈에 띌만한 변변한 행사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6·25」가 나던 해 태어난 사람도 이제 마흔 다섯살이 되었고 갓난 아이를 포함하여서도 「6·25」를 경험한 사람이 전 인구의 20%에 미치지 못하니 「6·25」에 무심할 때가 되었을 법도 하다. 「6·25」가 일어났던 때는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북한은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북한에는 비교적 풍부한 자원에다 공업이 발달해 있었던데 비해 남한에는 인구는 많은데다 이렇다할 공업 기반이 없이 농업에만 의존해오다 갑자기 분단이 된 결과였다.일상 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제품은 물론 북한이 송전을 중단하자 기본적인 에너지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들어 남한은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과 수출정책으로급성장을 하여 74년 1인당 GNP에서 북한을 추월한뒤 지난해에는 북한(9백23달러)의 9.2배인 8천4백83달러에 이르렀다.전체 GNP규모도 남한이 북한의 17.8배로 격차가 벌어지게 됐다. 반면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자급자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북한은 과도한 국방비의 지출과 일인독재의 폐쇄체제로 경제난이 가중된 끝에 인민들을 먹일 식량까지 모자라는 형편이 돼버렸다.여기 저기 식량을 구하러 다니다 급기야 우리에게까지 손을 벌린 것이 바로 이번 쌀 제공회담이다.미·북 경수로 협상의 타결에 이어 이번 쌀제공 회담에서 북한이 보인 여러가지 변화는 현재 북한이 겪고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상당량의 재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 무상으로 주기로한 15만t의 쌀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우리 국민이 12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며 지난해 북한 쌀 총생산량의 10%에 가깝다.우리 쌀의 제공에 이어 일본 쌀까지 들여가면 식량난 해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많은 쌀을 아무 조건없이 북한에 선뜻 제공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돕는다는 순수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였다.7월중 2차회담을 갖고 15만t 정도를 추가로 지원할 약속도 하고 있다.실로 분단 50년만에 남북간에 순수하게 이루어진 협력이다.이번 쌀제공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트고 실질적인 교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도 대체로 지지하며 기대도 대단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소리도 적지않다.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주느냐.우리의 동포애를 북한이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고마워 할 것 같으냐.결국 북한 체제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등등의 여러가지 이유들이다. 실제로 북한은 쌀을 받아가면서도 여러가지 요구조건이 많다.주민들에게 남한에서 온 쌀을 감추려는듯 포장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쌀제공사실을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키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게다가 『남조선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엉뚱한 선전을하는가하면 「남조선정권타도투쟁」을 선동하고 대남비난도 전보다 훨씬 강화하고 있다.엄청난 양의 쌀을 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한시라도 빨리 쌀을 보내려고 밤을 새워 도정을 하고 선적을 하고 있는 우리와도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감추려해도 남한쌀과 경수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감추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은 대화와 개방으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 거대한 소련도 결국 무너지지 않았는가. 다만 우리측도 2차회담부터는 너무 서둘지 말아야겠다.서둘 필요가 없다.딱한 측은 북한이고 우리에게는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있다. 이번 쌀제공이 제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 남북쌀회담 타결을 보고/이용필 서울대교수(기고)

    ◎“이념·체제 넘어선 진한 동포애 확인”/북은 이산가족 상봉등 전향적 자세 보여야 북한 쌀지원을 위한 남북한 당국자간의 회담이 다소의 진통끝에 타결된 것은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남북한의 합의 요지는 우리측이 1차로 쌀 15만t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가능한한 조속한 시일내에 인도한다는 것이다.특히 우리측에서 제공되는 쌀 포장에는 일체 표기를 하지 않기로 한것은 북한당국의 체면을 신중하게 배려한 결과라고 하겠다.그뿐만 아니라 7월 중순에 제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이번에 타결된 남북한 당국자간의 합의는 대체로 다음 몇가지 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첫째는 김일성 사후 남북한간의 냉각된 관계가 호전되면서 당국자간 대화가 성사되었다는 점이다.특히 지난해 3월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특사교환접촉이 결렬되었고 그후 김일성사후 남북한관계가 더 악화되었으나 다시 남북한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는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 농민들이 애써 농사지은 쌀을 제공함으로써 동포애를 느끼게 된 점이다.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분단 50년만에 실현된 것이다.세번째는 남북한이 분단 상황에서 대립과 반목을 일삼기보다 상호 대화하고 또한 협조해서 공존공영하는 것이 민족의 이익과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번 쌀회담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게 된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올해 식량부족분이 2백70만t이나 된다.그래서 북한 당국이 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 중국 태국 이집트,그리고 일본 등 10여개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을 볼 때,얼마나 식량난이 심각한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북한의 내부사정이 북한 당국자로 하여금 쌀협상을 시급히 타결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풀이된다.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동포들과 당국자의 처지를 고려해서 우리측이 상당한 양보자세를 취한 것은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큰 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당국은 우리측이 조건없이 쌀을 제공하기로 동의한 점을 성실한 자세에서 수용하고 나아가서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도 한 걸음 더 진취적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따라서 북한 당국도 그 성의의 표시로서 납북된 어선 제86우성호 선원들의 송환,이산가족 상봉 등 비정치적인 인적 및 물적 교류에 대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물론 우리는 북한당국이 이미 지난주 콸라룸푸르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 지원과 관련,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이해한다.그렇다고 해서 북한당국이 종전의 대남 정책을 쉽게 변화시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대체로 전체주의적 체제는 경직된 정치제도이므로 단시간내에 이념과 정책을 쉽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가 구조적 모순과 만성적 경제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대남정책의 전환,남북한간의 대화와 교류,다른 국가들에 대한 개방적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북한 당국이 낡은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고수하고 전근대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한다.오늘과 같은 세계화,정보화,그리고 지구화시대에 고립된 상태에서 주민들과 체제를 억압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세계사적 흐름과 민족자존의 논리에 비추어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우리는 남북한이 쌀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점에서 1991년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북한 당국이 개방적 정책전환을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분단된 남북의 민족이 과거의 반목과 불신 그리고 증오심과 적대의식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또한 평화정착을 통한 민족 공영과 공존의 원칙을 수용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 국적선(외언내언)

    북한에 쌀을 운반할 선박이 우리의 국적선으로 결정된 것은 상징적 의미 이상의 의의를 갖고 있다.국적선이란 일반적으로 자국에 적을 두고 자국의 국기를 달고(기국주의) 운항하는 선박을 말한다. 한국의 선박법 제 2조·5조·11조를 보면 국적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제 2조의 경우 대한민국 선박(한국선박)은 국유 또는 공유선박,대한민국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선박,대한민국의 법률에 의해서 설립된 상사법인으로서 출자의 과반수와 이사회 의결권의 5분의 3이상이 대한민국 국민에 속하는 법인이 소유하는 선박(이 법인의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함)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 5조는 한국선박이 아니면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할 수 없다고 되어 있고 11조에는 한국선박은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서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번에 북한에 쌀을 싣고 가는 선박이 한국 국적선이라면 그 선박은 당연히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 또 국제법상으로는 선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소속국적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받게되는 게 일반적 관례다.이른바 기국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국내법과 국제법을 종합해 볼 때 국적선이란 바다에 떠 있지만 해당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주체로 취급되며 「움직이는 영토」에 해당한다.북한이 지금까지 교역에서 제 3국적선을 이용토록 한 연유가 바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북한이 이번 쌀회담에서 한국국적선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실은 한국법(선박법)과 주권을 추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때문에 국적선 합의는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이다.또 「시 아펙스」호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북한 영해를 통해 북한 항만에 입항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일이다. 이번 국적선 합의가 앞으로 한국과 북한간의 정기항로 개설의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교역 상담창구」 무협 구평회 회장에 듣는다(인터뷰)

    ◎남북 쌀회담 막전막후와 경협 전망/“김용순등 당실세가 배후 지휘”/평양시민 1백만 식량증산 동원/정무원쪽과 갈등… 전금철로 대표 교체/북,경협에 적극적 자세… 교역 확대 될것/임가공위주 소규모 대북투자 바람직/월드컵 공동개최엔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문제가 여러가지로 잘 풀려가는 듯합니다만. ▲남북간 쌀협상을 두고 북한 권력내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습니다.결국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매파가 비둘기파의 의견을 수락했고,나중에는 매파가 협상을 주도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를 매파로,누구를 비둘기파로 볼 수 있습니까. ▲북한의 당과 군이 매파죠.이에 비해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실제 살아가는 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무원쪽이 아무래도 비둘기파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기로는 당초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는 정무원 사람이었던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그것이 회담 직전에 전금철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남북간 쌀협상타결이 남북경협확대로 이어지리라 보십니까. ▲서명주체의 이름은 정무원 산하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 고문으로 결정됐지만 노동당과 군을 대표하는 권력핵심부에서 쌀회담을 적극 지원,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려하던 북한권력이 이번 쌀회담을 계기로 한국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 막후외교 치열 ­일본이 이번 쌀회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무역진흥공사가 이 일에 끼어든 것도 그렇고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쌀회담타결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입니다.남북한은 물론 일본·미국등도 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대표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이 김용순비서에게 「남한과의 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남북정부간 대화가 어려우면 준정부기관인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김용순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구회장은 이번의 쌀협상이 실질적인 남북간 정부차원에서 타결됐고 북한내 실세인 김용순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만큼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큰 길에 나선 상태』라고 전제,활발한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쌀회담을 북·일수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북한도 수교시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배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남북 쌀제공타결이 자칫 북·일 양국간의 수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길」 들어선것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북한이 최근 평양시민 1백만명을 지방으로 보냈습니다.부분적으로 폭동 등을 예방,김정일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식량증산에 투입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남한측으로부터 식량원조을 받은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질 경우 지도노선(주체사상)에 큰 흠집이 생기지만 이를 각오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제공집행기구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아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달부터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접촉창구로 삼기 전에 북경에 나와 있는 우리 대기업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면서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기업들도 쌀제공을 경색된 남북경협의 돌파구로 판단,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정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북한측이 와타나베의 의견을 수용,무공에 접근했습니다.이것이 우리정부에 긴급보고되면서 「민간기업을 통한 쌀제공」이 한단계 격상된 것 입니다.「정부차원의 쌀제공」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했다면 정부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쌀문제로 북한과 막후접촉을 벌인 모기업을 선정,쌀제공창구로 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발한 경협이 예상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전망과 우리측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남북경협은 장사라는 기본원칙에 정치(남북대화)와 교육(자본주의화)이라는 두 가지변수가 얽혀 다른 장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이번의 쌀협상타결로 남북경협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투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남북대화(정치협상)가 진전돼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임금결제 등에 관한 문제가 타결돼야 본격적인 경협이 가능합니다. ○이기주의 버려야 현재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과열경쟁입니다.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가동,대북투자시 과열경쟁와 중복투자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기업들이 소아적인 이기주의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회담타결로 북·일간 급속한 관계진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사실 한국쌀보다 일본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물량(30만t)도 한국보다 많고 북·일수교에 앞서 배상금으로 미리 받았다고 선전할 수 있어 김정일체제에 타격도 훨씬 적다는 이유지요.일본도 북·일수교를 무라야마정권의 당면과제로 설정,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즉 쌀을 지렛대로 수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북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북한도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붕괴직전까지 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복안이 있을 겁니다.결국 양국은 수교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쌀문제를 효과적으로 이용,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양국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던 한국쌀 제공문제가 타결된 만큼 북·일관계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쌀에 더 관심 ­남북관계의 개선이 예상된다면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서 월드컵 남북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있습니까.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공동개최는 세계축구연맹(FIFA)의 규약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등 민족의 이름으로 FIFA의 규정을 뛰어넘은 전례도 있습니다.개최형식등은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유치신청서의 최종마감일(9월말)까지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유치위원장으로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분단된 상태에서 공동개최라는 거사를 이룩해야 전세계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또 역사에 기록될 이 일을 해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공동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신청서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겠습니다. ­무협의 5만회원 가운데 남북교역을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데 지원책과 경협의 추진방향은 어떻습니까. ▲무협은 현재 정부를 대신한 「남북교역상담창구」로 지정돼 회원사에게 남북교역절차와 관련법규 및 서식작성방법 등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부산과 대구·광주지부 등 10개 지부에 상담요원 1명씩을 파견,지원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임가공 위주의 소규모투자입니다. ○북,민간원칙 불변 이를 통해 북한경제도 이해하고 신뢰도 쌓아 대규모투자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남한기업이외국기업의 선점을 우려하지만 사실 북한은 「황금알을 낳은 투자지」도 아니고 구매력을 갖춘 시장도 아닙니다.남북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경협은 남한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이며 정부차원에서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때까지 임가공 위주의 교역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대북 지원/해상 수송작전/5만t 7월까지 북송 완료

    ◎대한통운 트럭 5천대 동원 항만까지/국적선 「씨 아펙스」호 첫 남·북 항로 운항/표시없는 40㎏들이 포대에 포장 해운항만청은 각 해운선사와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놓은 상태로 북한 쌀 수송을 위한 비상체제로 들어가 있다.정부의 대책이 내려오는 대로 배를 수배하는가 하면 가야할 항구를 지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쌀 지원을 위해 도장 및 포장재 공장을 전국적으로 고루 배정하는 한편 동해 포항 울산 부산 진해 마산 광양 목포 군산 인천항에서 쌀을 선적하기로 했다. 북한에 1차로 제공되는 5만t의 쌀중 2천t이 1차로 22일 동해항에서 처음 선적된 뒤 24일 북한의 나진항으로 출발한다.이번 쌀 수송은 분단이후 최초로 남성해운의 국적선 「시 아펙스호」(Sea Apex)가 맡아 남북항로를 운항할 것으로 알려졌다.시아펙스호는 22일부터 쌀을 선적,24일 동해항에서 공해로 빠져나간 뒤 25일 밤이나 26일 새벽 북한의 나진항에 입항할 예정으로 보인다. 남성해운은 20일 하오 3시쯤 해운항만청으로부터 3천ⓣ급 선박을 준비하라는 긴급 연락을 받고,마침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항에 들어온 국적선 시 아펙스호를 이날 상오 10시 동해항으로 출발시켰다.이 배는 21일 밤 동해항에 도착,22일 아침부터 선적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항청은 당초 26일로 예정됐던 최초의 쌀 수송 일정이 24일로 당겨짐에 따라 2천∼3천t급 선박을 긴급 수배했으나 내항선 업체중에서는 운항선박이 없어 외항선사린 남성해운의 선박을 투입했다. 정부는 북경 쌀회담이 합의문 발표 이전에 관련부처 관계자 회의를 거치면서 비밀리에 쌀수송 작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2천t을 우선 북한에 보내는데 이어 8천t도 이달중에 북한으로 수송한다. 나머지 4만t은 7월중에 추가 공급될 예정이다. 현재 동해안은 원활한 하역작업을 위해 접안예정인 중앙부두의 석회석야적장 일부 1천2백평을 하치장으로,중앙부두 배면 유휴도로 5백10평을 차량대기소로 확보하고 육상 크레인(시간당 1백t2기)를 갖춰놓고 있다. 하역작업은 연이누언 3백명이 투입돼 철야로 작업하고 우천시를 대비해 깔판 5백개,복포 2백장을 준비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작업지시를 우리 측 선원이 할 수 있도록 선장과 선원들을 한국인으로 하고 선원들에 대해서는 언행을 조심하도록 보안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북한에 들어가면 우리 측과 곧바로 통신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양곡의 육상운송을 독점하고 있는 대한통운은 10t 화물트럭 등 5천여대의 육상 운송장비 가운데 여유분을 최대한 동원,이날부터 전국의 양곡창고­도정공장­항만간 쌀운송에 나서기로 했다.건교부는 우선공급분 수송에 이어 부산,인천,울산,포항,여수 등의 항구를 이용,나머지 4만t도 이런 식으로 수송할 계획이다. 이번에 가공된 쌀은 40㎏들이 폴리프로필렌 포대로 포장되고 있고,포대에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93년산 쌀을 선택한 것은 이들 쌀이 비교적 항구로 이동하기 가까운 거리에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 의미와 전망/남­북 화해·협력의 새무드 조성(쌀 대북 지원)

    ◎조건없이 지원… 관계개선 북의 호응기대/납북어부 송환­쌀 추가제공땐 교류 “순풍” 북경 쌀회담의 타결은 우리측이 북한당국에 본격적 남북 화해·협력시대로 가는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북한에 대한 쌀제공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대내외적으로 체제우월성을 선전해온 북한당국의 체면이 걸려 있는데다 우리 내부에서도 곧 허물어질 북한체제에 굳이 「영양제」주사를 놓아줄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 시각이 없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북한의 갈 데까지 간 식량난과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우리측의 전향적 자세가 마침내 대북 쌀제공이라는 접점을 찾았다.남북분단 이래 최대규모의 실질적이고 인도적인 협력이 이뤄진 것이다.지난 84년 북측이 우리측에 수재물자를,91년에는 우리측이 북측에 쌀을 보낸 선례는 있으나 규모면에서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의 절박한 식량난이야말로 이번 쌀회담이 결실을 하도록 하는 알파요 오메가였다.북한은 80년대 후반이후누적된 곡물생산부진으로 올들어 「하루 두끼먹기운동」등 주민에 대한 내핍강요로는 버틸 수 없는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외화부족과 대외신용도의 추락으로 외미도입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런 사실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당국의 입장을 우리측이 대국적으로 이해하는 자세를 취한 것도 협상타결의 촉진제였다. 이를테면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장기저리상환에,그것도 북측의 무연탄과 맞바꾸는 민간차원의 구상무역에 동의,북한당국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이처럼 쌀지원과 관련해 우리측은 별다른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쌀제공은 북한당국의 호전성을 약화시키고 아울러 북한주민에게 우리의 선의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려 장기적으로 남북화해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전략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당장 남북당국간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는등 관계개선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보기는 어렵다.엄밀히 말해 이번 쌀지원은 우리측이 북한당국에동족끼리 교류와 협력을 도모해나가자는 일방적 화해메시지를 보냈을 뿐이기 때문이다.이를 받아들이느냐는 여전히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대화채널복원등에 대한 명확한 보장장치도 없이 우리측이 너무 쉽게 합의해준 것이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나포한 우성호 선원을 조만간 돌려보내느냐 여부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판독할 수 있는 일차적 시금석이 될 것이다.이같은 가시적 조치가 1단계 대북 쌀제공 이후 우리측의 추가곡물제공으로 이어질 경우 남북관계는 일단 순풍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일부 관측처럼 이번에 쌀과 관련한 공식합의문 이외에 양측이 남북대화와 관련한 모종의 이면합의를 맺었다면 그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북 쌀제공 환영”/여야 성명 여야는 21일 북한에 대한 쌀제공 협상이 마무리된 것을 환영하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민자당 박범진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북경협상이 타결돼 북한에 쌀을 보낼수 있게 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남북관계가 상호 신뢰를 쌓을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박범진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동포에게 쌀을 제공하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 뒤 『북한도 우리의 제안을 조건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남북대화가 성큼 다가서는 상응한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쌀 첫 북송 영예 「씨 아펙스」호/3천1백t급 컨테이너선/선령 6년… 남성해운 소속 북한에 쌀을 싣고 갈 남성해운은 한일간 항로에서 컨테이너와 벌크화물을 수송하는 중견 해운업체다.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항로에 국적선을 띄우는 영광을 안게 된데는 김영치(53)사장의 부친인 김한수 전 사장이 해방 전부터 국내 연안을 운항하는 내항선업을 해온 인연 때문이다.해방 뒤 내항선 물동량이 늘면서 사세가 커지면서 53년 한일간을 운항하는 남성해운을 설립,오늘에 이르렀다. 84년 해운합리화 조치 전에는 세계일주항로를 운항했고 회사규모도 당시 국내 최대 선사였던 대한선주와비슷했을 정도다.그러다 해운업체의 난립으로 84년 해운합리화 조치가 단행되면서 남성해운도 자사보유 선박 87%를 매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현재 남성해운은 컨테이너선 5척,일반화물선 5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일간 물동량 증가로 매출 4백50억원에 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번에 쌀을 싣고 북한에 들어가는 이 회사의 씨 아펙스호(SeaApex)는 89년 국내 계획조선자금으로 건조된 선령 6년의 3천1백t급 준 커테이너선이다.한일항로에 투입돼 일반화물을 수송해 온 이 배에는 중국의 조선족 교포선원 2명과 14명의 한국 선원이 타고 있다. 선상 기중기 3대를 장착,시간당 42t,하루 8백40t을 처리할 수 있다.각종 무선통신장비와 항만전화가 탑재돼 있어 북한의 나진항에 입항하더라도 본사와 연락이 가능하며 일본 대리점이나 지점과도 연락할 수 있다.
  • “남북대화 물꼬트는 계기 됐으면…”/대북 쌀지원 각계 소리

    ◎동포애 차원 “쌍수환영”/우리쌀 받는 것도 북녘의 큰 변화/북한은 이산·서신교류로 화답을 『인도적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므로 이번 쌀 북송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국 북경에서의 남·북한 관계자 접촉이 잘 풀려 21일 우리가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쌀 북송이 통일을 향한 진정한 출발점이 되길 기원했다.나아가 한순간의 지원이 아닌 이산가족교류·경제협력·자유왕래 등 남과 북 사이에 보다 큰 화해와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서울YMCA 전대련(63) 회장은 『동포끼리 힘들 때 서로 나눠먹는 것은 인륜·도의상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우리의 쌀을 받아가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변화』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이필상(경영학·48)교수도 『어떠한 정치·경제·사회논리 보다 순수한 동포애의 차원에서 이번 조치는 환영할만한 일』이라고밝히고 『정부는 이를 계기로 북한에 조심스럽게 접근,주도적으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고 의미있는 경제협조체제를 이뤄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유재현 사무총장은 『이번 일은 정부당국 사이의 대화를 통한 결실이라는 점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계기로 올해안에 총리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사이의 대화를 주도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울시교육청 김대성(48) 장학사는 『분단 50주년을 맞아 남북이 동포임을 확인하는 절차의 하나로 학생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척 바람직스러운 조치』라면서 『어차피 보낼 것이라면 가급적 일본보다 먼저 우리 쌀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유통 담당 김동균 이사도 『그동안 경직돼왔던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농협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로 이보다 뜻깊은 일이 없다고 판단,이미 도정과 수송 등 모든 과정에 대한 준비작업을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이화여대 김석준(행정학) 교수는 『1년 남짓 냉각된 관계를 유지해온 남북이 쌀협상을 타결했다는 자체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 발전』이라고 평가하고 『남북한은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 교류와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 광신고등학교 홍래 교장도 『평소 학생들에게 북한주민 개개인은 마음씨 착한 우리의 동포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온 만큼 무엇보다 뜻있는 조치』라고 밝혔다. 백형구(59) 변호사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낸 쌀이 군량미로 전용되거나 외신보도처럼 외화벌이용으로 다른 나라에 재수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해 정부의 대응체계 강화를 촉구했다. 한편 재계는 21일 쌀회담합의는 남과 북이 한민족공동체임을 일깨워준 쾌거라며 모두 환영의 뜻을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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