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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대만/고위급 경제회담 정례화/79년 분단후 첫차관급회담서 합의

    【워싱턴 교도 AFP 연합】 미국과 대만은 정례 고위급 경제회담을 개최하기로 22일 워싱턴에서 합의했다고 미재무부 대변인이 전했다. 이 대변인은 양국이 지난 79년 국교를 단절한 이후 이날 처음으로 열린 경제문제에 관한 차관급 회담에서 그같이 합의했다고 밝히고 이 조치는 작년 9월 미국이 대만정책을 일부 완화한 후 시작된 양국간의 비공식 경제접촉과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22일의 차관급 회담에 관해 재무부 대변인은 로렌스 서머스 재무차관을 단장으로 한 미대표단과 허가생 경제부 부부장을 단장으로 한 대만정부 대표단이 재무부에서 만나 양국간의 경제 및 무역관계를 검토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양국대표단이 이 대화를 지속해야 하며 다음 회담을 대만에서 열기로 합의했다』고 전하고 『이 대화가 정례적으로 해마다 열릴 것』이라고 지적했다.
  • 북에 쌀을 보내는 뜻/장정행 편집국장(서울광장)

    사상 처음으로 치르는 4대 지방선거의 열기에다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한 흥분이 전국을 휩쓸고 있다.마흔 다섯번째 맞는 「6·25」도 두가지 대사에 묻혀버리는 듯싶다.끔직하고 어려웠던 그 때를 잊지 말자고 해마다 이맘 때면 갖가지 행사들이 열렸으나 올해는 그나마 눈에 띌만한 변변한 행사가 보이지 않는 것 같다. 「6·25」가 나던 해 태어난 사람도 이제 마흔 다섯살이 되었고 갓난 아이를 포함하여서도 「6·25」를 경험한 사람이 전 인구의 20%에 미치지 못하니 「6·25」에 무심할 때가 되었을 법도 하다. 「6·25」가 일어났던 때는 물론 70년대 초반까지만해도 북한은 우리보다 형편이 나은 편이었다.북한에는 비교적 풍부한 자원에다 공업이 발달해 있었던데 비해 남한에는 인구는 많은데다 이렇다할 공업 기반이 없이 농업에만 의존해오다 갑자기 분단이 된 결과였다.일상 생활에 필요한 경공업 제품은 물론 북한이 송전을 중단하자 기본적인 에너지조차 확보하지 못했을 정도였다. 그러나 60년대들어 남한은 본격적인 경제개발계획과 수출정책으로급성장을 하여 74년 1인당 GNP에서 북한을 추월한뒤 지난해에는 북한(9백23달러)의 9.2배인 8천4백83달러에 이르렀다.전체 GNP규모도 남한이 북한의 17.8배로 격차가 벌어지게 됐다. 반면 주체사상을 내세우며 자급자족의 지상천국을 건설하겠다고 큰소리를 치던 북한은 과도한 국방비의 지출과 일인독재의 폐쇄체제로 경제난이 가중된 끝에 인민들을 먹일 식량까지 모자라는 형편이 돼버렸다.여기 저기 식량을 구하러 다니다 급기야 우리에게까지 손을 벌린 것이 바로 이번 쌀 제공회담이다.미·북 경수로 협상의 타결에 이어 이번 쌀제공 회담에서 북한이 보인 여러가지 변화는 현재 북한이 겪고있는 경제적 어려움이 어느 정도 심각한 수준인가를 잘 말해 주고 있다. 우리에게 상당량의 재고가 있다고는 하지만 북한에 무상으로 주기로한 15만t의 쌀이 결코 적은 양은 아니다.우리 국민이 12일동안 먹을 수 있는 양이며 지난해 북한 쌀 총생산량의 10%에 가깝다.우리 쌀의 제공에 이어 일본 쌀까지 들여가면 식량난 해결에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런대로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우리가 많은 쌀을 아무 조건없이 북한에 선뜻 제공하기로 한 것은 북한의 어려운 식량 사정을 돕는다는 순수한 동포애와 인도주의적 차원에서였다.7월중 2차회담을 갖고 15만t 정도를 추가로 지원할 약속도 하고 있다.실로 분단 50년만에 남북간에 순수하게 이루어진 협력이다.이번 쌀제공이 그동안 얼어붙었던 남북관계를 트고 실질적인 교류를 열어가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는 점에서 국민들도 대체로 지지하며 기대도 대단하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반대와 우려의 소리도 적지않다.왜 아무런 대가도 없이 그냥 주느냐.우리의 동포애를 북한이 과연 순수하게 받아들이고 고마워 할 것 같으냐.결국 북한 체제를 도와주는 것이 아닌가.등등의 여러가지 이유들이다. 실제로 북한은 쌀을 받아가면서도 여러가지 요구조건이 많다.주민들에게 남한에서 온 쌀을 감추려는듯 포장에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도록 요구하고 쌀제공사실을 서울과 평양에서 발표키로 했던 약속도 지키지 않고 있다.게다가 『남조선 경제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엉뚱한 선전을하는가하면 「남조선정권타도투쟁」을 선동하고 대남비난도 전보다 훨씬 강화하고 있다.엄청난 양의 쌀을 요구할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이다.한시라도 빨리 쌀을 보내려고 밤을 새워 도정을 하고 선적을 하고 있는 우리와도 아주 대조적이다. 그러나 북한이 아무리 감추려해도 남한쌀과 경수로를 받았다는 사실을 주민들에게 감추지는 못할 것이며 결국은 대화와 개방으로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다.그 거대한 소련도 결국 무너지지 않았는가. 다만 우리측도 2차회담부터는 너무 서둘지 말아야겠다.서둘 필요가 없다.딱한 측은 북한이고 우리에게는 느긋하게 기다릴 여유가 있다. 이번 쌀제공이 제발 좋은 결실을 맺기를 기대한다.
  • 한·일 「협력과 경쟁」의 당당한 관계 정립해야(사설)

    ◎광복 50년 수교 30년 금년은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주년이 되는 해이다.지난 22일은 바로 그 한·일수교 30돌이 되는 날이었다. 김일성사망 1주기를 앞두고 연이어 이루어진 북핵타결 및 쌀제공의 극적 성사에 이어 일본의 대북쌀제공 및 수교움직임도 한·미와 경쟁하듯 활발해지고 있다.세계유일의 분단·냉전지대로 남아있는 한반도에도 마침내 화해·공존의 탈냉전 새바람은 불기 시작한 것인가.주목되고 기대되는 가운데 맞고있는 각별한 광복 50주년이자 한·일수교 30돌인 것이다. ○한반도의 탈냉전 기운속에 국교정상화를 위한 「한·일기본관계에 관한조약」의 성립은 격렬한 찬반논란의 혼돈을 겪었으며 30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엇갈리는 평가와 논란은 이어지고 있다.긍정과 부정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는 2중성의 불가피한 결과다.한·일수교 및 관계정상화는 당시의 시대상황이 요구하는 필연의 과정이었다.그것은 우리경제와 안보를 위해 필요불가결한 것이었다.그러나 그 성립과정과 내용 및 그 이후의 일본행동은 우리의 기대에 크게 못미치는 것이었다. 30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우선 한·일조약의 성립과 수교가 우리경제발전과 안보,그리고 동북아안정에 미친 직간접의 긍정적 영향을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불만스런 내용과 액수였지만 총6억달러의 청구권자금 등은 분단의 장애와 전쟁의 폐허에서 일어나야 했던 우리경제에 도움을 준것이 사실이다.수교에 따른 인적·물적 교류의 급속한 확대 또한 우리의 성장발전을 위한 촉진제역할을 했음도 부인할 수 없다. ○우리경제 기여 평가하지만 그럼에도 우리가 한·일기본조약과 일본에 대해 불만을 느끼는 것은 조약자체의 내용과 성립과정은 물론 일본의 경제대국답지 못한 지나친 국가이기주의적 처신 때문이다.당시 우리는 약하고 다급한 입장이었으며 강하고 여유있던 입장의 일본은 이같은 우리의 약점을 최대한 이용함으로써 불공정하고 굴욕스럽기까지 한 조약을 성립시켰던 것이다. 그러나 보다더 우리를 실망시키고 분노케 하는 것은 국왕까지 동원된 일본정부의 과거사에 대한 입에 발린 형식적 사과·사죄,그리고는 본심을 말하는 우파들의 연이은 망언들과의 교차였다.종전 50주년을 맞아 채택하려 했던 의회의 「부전 및 사죄결의」의 무의미화 및 실종은 일본의 숨겨졌던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일 자신과 민족적 긍지를 우리는 일본이 하루속히 참다운 반성속에 아시아 선린으로 돌아오기를 진심으로 바란다.김영삼대통령이 취임 이후 일본에 대해 대범하고 관대한 태도를 보여온 것도 그런 취지에서 일 것이라고 우리는 생각한다.「지난날의 감정에 연연하고만 있어선 안되며 자신감과 민족적 긍지를 갖고 당당하게 협력하며 경쟁해 나가야 한다」는 대통령의 지적은 수교30주년을 맞는 오늘의 우리가 되새겨야 할 대일관이다. 탈냉전후의 일본은 이전의 일본과는 많이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미국에 대해서도 문자그대로 「아니오」를 말하기 시작 했다.우리에게도 마찬가지다.더 이상 「죄지은 이웃」이 아닌 일본의 모습을 보여준다.지금당장 우리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대북쌀제공 및 수교를 서두르고 있다.한반도문제에 대한 발언권강화를 노리는 움직임이다.우리가 직면한 하나의 현실이다.수교 30주년을 맞는 지금 우리도 이제 새로운 현실인식과 호혜의 원칙을 기초로 「당당하게 협력하고 경쟁하는」 대등한 보통국가적 대일관계를 주도적으로 추구해 나가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일,부도덕 국가 오명 벗어야 동시에 일본도 이제는 반성할줄 모르는 부도덕 국가의 오명을 벗어던져야 한다.독일의 나치스 청산처럼 반성과사죄 할것은 분명히 함으로써 일제의 망령을 깨끗이 청산하고 국가적 도덕성을 회복해야 할 것이다.그래야만 경제대국이자 잠재적 군사대국으로서 진정한 세계적 지도국이 될 수 있으며 동북아의 안정에도 확실하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 국적선(외언내언)

    북한에 쌀을 운반할 선박이 우리의 국적선으로 결정된 것은 상징적 의미 이상의 의의를 갖고 있다.국적선이란 일반적으로 자국에 적을 두고 자국의 국기를 달고(기국주의) 운항하는 선박을 말한다. 한국의 선박법 제 2조·5조·11조를 보면 국적선의 의미가 분명하게 드러난다.제 2조의 경우 대한민국 선박(한국선박)은 국유 또는 공유선박,대한민국 국민이 소유하고 있는 선박,대한민국의 법률에 의해서 설립된 상사법인으로서 출자의 과반수와 이사회 의결권의 5분의 3이상이 대한민국 국민에 속하는 법인이 소유하는 선박(이 법인의 대표이사는 대한민국 국민이어야 함) 등으로 규정하고 있다. 제 5조는 한국선박이 아니면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할 수 없다고 되어 있고 11조에는 한국선박은 건설교통부령이 정하는 바에 의해서 대한민국 국기를 게양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이번에 북한에 쌀을 싣고 가는 선박이 한국 국적선이라면 그 선박은 당연히 태극기를 달아야 한다. 또 국제법상으로는 선박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은 소속국적 국가의 국내법 적용을 받게되는 게 일반적 관례다.이른바 기국주의를 택하고 있는 것이다.국내법과 국제법을 종합해 볼 때 국적선이란 바다에 떠 있지만 해당국가의 주권이 미치는 주체로 취급되며 「움직이는 영토」에 해당한다.북한이 지금까지 교역에서 제 3국적선을 이용토록 한 연유가 바로 한국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런 북한이 이번 쌀회담에서 한국국적선을 받아들이기로 한 사실은 한국법(선박법)과 주권을 추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때문에 국적선 합의는 법률적으로나 정치적으로 커다란 의미를 갖는 것이다.또 「시 아펙스」호가 분단 이후 처음으로 태극기를 달고 북한 영해를 통해 북한 항만에 입항한다는 것은 국민들의 마음을 흐뭇하게 하는 일이다. 이번 국적선 합의가 앞으로 한국과 북한간의 정기항로 개설의 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 「교역 상담창구」 무협 구평회 회장에 듣는다(인터뷰)

    ◎남북 쌀회담 막전막후와 경협 전망/“김용순등 당실세가 배후 지휘”/평양시민 1백만 식량증산 동원/정무원쪽과 갈등… 전금철로 대표 교체/북,경협에 적극적 자세… 교역 확대 될것/임가공위주 소규모 대북투자 바람직/월드컵 공동개최엔 정치적 결단 필요 ­남북문제가 여러가지로 잘 풀려가는 듯합니다만. ▲남북간 쌀협상을 두고 북한 권력내의 매파와 비둘기파간의 치열한 암투가 있었습니다.결국 심각한 식량난 때문에 매파가 비둘기파의 의견을 수락했고,나중에는 매파가 협상을 주도하는 이변이 일어났습니다. ­북한에서 누구를 매파로,누구를 비둘기파로 볼 수 있습니까. ▲북한의 당과 군이 매파죠.이에 비해 세계 돌아가는 사정을 잘 알고,실제 살아가는 문제를 다뤄야 하는 정무원쪽이 아무래도 비둘기파의 성격을 갖고 있습니다.우리가 알기로는 당초 쌀협상의 북한측 대표는 정무원 사람이었던 것으로 돼 있었습니다.누군지 밝힐 수 없지만 그것이 회담 직전에 전금철로 바뀌었습니다. ­이번 남북간 쌀협상타결이 남북경협확대로 이어지리라 보십니까. ▲서명주체의 이름은 정무원 산하의 대외경제협력추진위원회 전금철 고문으로 결정됐지만 노동당과 군을 대표하는 권력핵심부에서 쌀회담을 적극 지원,타결을 이끌어냈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을 포함해 남북관계의 진전을 꺼려하던 북한권력이 이번 쌀회담을 계기로 한국정부와의 적극적인 관계개선에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일 막후외교 치열 ­일본이 이번 쌀회담에서 일정한 역할을 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무역진흥공사가 이 일에 끼어든 것도 그렇고요. ▲김용순 노동당비서가 쌀회담타결을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것이 사실입니다.남북한은 물론 일본·미국등도 막후에서 치열한 외교전을 펼쳤습니다.지난 3월 평양에서 열린 「북·일 수교회담」에서 일본대표인 와타나베 미치오 전외상이 김용순비서에게 「남한과의 쌀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일본이 북한에 쌀을 지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남북정부간 대화가 어려우면 준정부기관인 대한무역진흥공사와 북한의 삼천리총회사를 내세우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고 제안,김용순이 이를 수용했습니다. 구회장은 이번의 쌀협상이 실질적인 남북간 정부차원에서 타결됐고 북한내 실세인 김용순이 막후에서 진두지휘한 만큼 앞으로의 남북경협을 『큰 길에 나선 상태』라고 전제,활발한 움직임을 예상했다. 그러나 일본은 쌀회담을 북·일수교의 지렛대로 활용하려는 의도가 있고 북한도 수교시 받을 수 있는 막대한 배상금에 눈독을 들이고 있어,남북 쌀제공타결이 자칫 북·일 양국간의 수교를 위한 들러리로 전락할 위험에도 대비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큰길」 들어선것 ­북한의 식량사정이 어느 정도인 것으로 알고 계십니까. ▲북한이 최근 평양시민 1백만명을 지방으로 보냈습니다.부분적으로 폭동 등을 예방,김정일정권의 공고화를 위한 사전포석일 수 있습니다.그러나 실제로는 이들을 농촌으로 보내 식량증산에 투입하기 위한 조치로 볼 수 있습니다.남한측으로부터 식량원조을 받은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질 경우 지도노선(주체사상)에 큰 흠집이 생기지만 이를 각오할 정도로 식량사정이 심각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쌀제공집행기구가 대한무역진흥공사가 아닌 민간기업에 돌아갈 뻔했다는 이야기도 있습니다. ▲북한측은 지난 달부터 대한무역진흥공사를 접촉창구로 삼기 전에 북경에 나와 있는 우리 대기업들과 다양한 채널을 통해 접촉하면서 「쌀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습니다.기업들도 쌀제공을 경색된 남북경협의 돌파구로 판단,적극적으로 검토하고 있었고 정부도 「아무런 조건 없이 쌀을 제공하겠다」는 원칙에 따라 이를 긍정적으로 검토하기도 했습니다.그런데 북한측이 와타나베의 의견을 수용,무공에 접근했습니다.이것이 우리정부에 긴급보고되면서 「민간기업을 통한 쌀제공」이 한단계 격상된 것 입니다.「정부차원의 쌀제공」을 북한이 끝까지 거부했다면 정부는 기업명은 밝힐 수 없지만 쌀문제로 북한과 막후접촉을 벌인 모기업을 선정,쌀제공창구로 삼는 방안도 검토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활발한 경협이 예상된다고 하셨는데 구체적인 전망과 우리측의 대책은 어떻습니까. ▲남북경협은 장사라는 기본원칙에 정치(남북대화)와 교육(자본주의화)이라는 두 가지변수가 얽혀 다른 장사보다 복잡하고 어려운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이번의 쌀협상타결로 남북경협에 청신호가 켜진 것은 사실이지만 대규모투자에 대한 안전장치가 없는 상태에서는 기업들이 마음놓고 투자를 할 수 없습니다.남북대화(정치협상)가 진전돼 투자보장협정과 이중과세방지,임금결제 등에 관한 문제가 타결돼야 본격적인 경협이 가능합니다. ○이기주의 버려야 현재 가장 염려가 되는 것이 과열경쟁입니다.최근 전경련이 남북경협특별위원회를 가동,대북투자시 과열경쟁와 중복투자를 막는 장치를 마련했습니다.하지만 이것도 기업들이 소아적인 이기주의자세를 버리지 않는 한 유명무실한 기구로 바뀔 가능성도 있습니다. ­쌀회담타결로 북·일간 급속한 관계진전을 예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북한은 사실 한국쌀보다 일본쌀에 더 관심이 많습니다.물량(30만t)도 한국보다 많고 북·일수교에 앞서 배상금으로 미리 받았다고 선전할 수 있어 김정일체제에 타격도 훨씬 적다는 이유지요.일본도 북·일수교를 무라야마정권의 당면과제로 설정,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즉 쌀을 지렛대로 수교회담을 성공적으로 수행하면 대북경협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북한도 수십억달러로 예상되는 배상금을 손에 쥘 수 있다면 붕괴직전까지 간 경제를 재건할 수 있다는 복안이 있을 겁니다.결국 양국은 수교라는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 쌀문제를 효과적으로 이용,실리와 명분을 동시에 충족할 수 있다는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따라서 양국이 이 과정에서 가장 큰 걸림돌로 여기던 한국쌀 제공문제가 타결된 만큼 북·일관계는 급진전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일본쌀에 더 관심 ­남북관계의 개선이 예상된다면 2002년 월드컵유치위원장으로서 월드컵 남북공동개최의 가능성이 있습니까.어떻게 노력하고 있습니까. ▲공동개최는 세계축구연맹(FIFA)의 규약개정이 선행돼야 하는 등 어려움이 많은 것이 사실입니다.하지만 과거 포르투갈에서 열린 세계청소년축구대회에서 남북단일팀을 구성하는 등 민족의 이름으로 FIFA의 규정을 뛰어넘은 전례도 있습니다.개최형식등은 우리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일입니다.유치신청서의 최종마감일(9월말)까지 남북관계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아무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유치위원장으로서 북한 관계자들을 만나면 「분단된 상태에서 공동개최라는 거사를 이룩해야 전세계에 한민족의 우수성을 알리는 것이 아니냐.또 역사에 기록될 이 일을 해내야 후세에 떳떳할 것」이라는 말을 자주 합니다.공동개최가 현실적으로 어려움이 많지만 신청서를 낼 때까지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추진하겠습니다. ­무협의 5만회원 가운데 남북교역을 희망하는 기업이 많은데 지원책과 경협의 추진방향은 어떻습니까. ▲무협은 현재 정부를 대신한 「남북교역상담창구」로 지정돼 회원사에게 남북교역절차와 관련법규 및 서식작성방법 등에 관한 자문을 하고 있습니다.부산과 대구·광주지부 등 10개 지부에 상담요원 1명씩을 파견,지원하고 있습니다.현시점에서 가장 유망한 분야는 임가공 위주의 소규모투자입니다. ○북,민간원칙 불변 이를 통해 북한경제도 이해하고 신뢰도 쌓아 대규모투자에 대비하는 전략을 짜야 합니다.남한기업이외국기업의 선점을 우려하지만 사실 북한은 「황금알을 낳은 투자지」도 아니고 구매력을 갖춘 시장도 아닙니다.남북관계의 개선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이지만 북한은 아직까지 「남북경협은 남한정부를 배제하고 민간차원에서 추진한다」는 원칙에 변함이 없습니다.따라서 남북경협의 활성화의 전제조건은 북한과의 정치적 관계의 개선이며 정부차원에서 경제적인 안전장치를 만들 때까지 임가공 위주의 교역에 치중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 남북쌀회담 타결을 보고/이용필 서울대교수(기고)

    ◎“이념·체제 넘어선 진한 동포애 확인”/북은 이산가족 상봉등 전향적 자세 보여야 북한 쌀지원을 위한 남북한 당국자간의 회담이 다소의 진통끝에 타결된 것은 북한의 주민들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북한 관계의 개선이라는 점에서 환영할 만한 일이다.남북한의 합의 요지는 우리측이 1차로 쌀 15만t을 무상으로 제공하며 가능한한 조속한 시일내에 인도한다는 것이다.특히 우리측에서 제공되는 쌀 포장에는 일체 표기를 하지 않기로 한것은 북한당국의 체면을 신중하게 배려한 결과라고 하겠다.그뿐만 아니라 7월 중순에 제2차 회담을 갖기로 합의하였다. 이번에 타결된 남북한 당국자간의 합의는 대체로 다음 몇가지 점에서 평가될 수 있다.첫째는 김일성 사후 남북한간의 냉각된 관계가 호전되면서 당국자간 대화가 성사되었다는 점이다.특히 지난해 3월 「서울 불바다」발언으로 특사교환접촉이 결렬되었고 그후 김일성사후 남북한관계가 더 악화되었으나 다시 남북한간에 화해분위기가 조성되기에 이르렀다. 두번째는 극심한 식량부족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북한 동포들에게 우리 농민들이 애써 농사지은 쌀을 제공함으로써 동포애를 느끼게 된 점이다.이념과 체제를 넘어서 고락을 함께 할 수 있는 일이 분단 50년만에 실현된 것이다.세번째는 남북한이 분단 상황에서 대립과 반목을 일삼기보다 상호 대화하고 또한 협조해서 공존공영하는 것이 민족의 이익과 장래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깨닫게 된 점이라고 하겠다. 우리는 북한 당국이 이번 쌀회담에서 적극적인 자세를 보여주게 된 이유에 대해 잘 알고 있다.보도에 의하면 북한은 올해 식량부족분이 2백70만t이나 된다.그래서 북한 당국이 이 부족분을 메우기 위해 미국 중국 태국 이집트,그리고 일본 등 10여개국에 지원 요청을 했다는 것을 볼 때,얼마나 식량난이 심각한 것인가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이러한 북한의 내부사정이 북한 당국자로 하여금 쌀협상을 시급히 타결하게 만든 요인이라고 풀이된다.이러한 어려운 상황에 놓인 북한 동포들과 당국자의 처지를 고려해서 우리측이 상당한 양보자세를 취한 것은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 큰 전기를 제공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북한 당국은 우리측이 조건없이 쌀을 제공하기로 동의한 점을 성실한 자세에서 수용하고 나아가서 남북한 관계의 개선에도 한 걸음 더 진취적 움직임을 보여주어야 한다.따라서 북한 당국도 그 성의의 표시로서 납북된 어선 제86우성호 선원들의 송환,이산가족 상봉 등 비정치적인 인적 및 물적 교류에 대해서 상응하는 조치를 취해야 한다.물론 우리는 북한당국이 이미 지난주 콸라룸푸르회담에서 한국형 경수로 지원과 관련,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사실상 수용한 것으로 이해한다.그렇다고 해서 북한당국이 종전의 대남 정책을 쉽게 변화시키리라고 기대하기는 아직 이르다.대체로 전체주의적 체제는 경직된 정치제도이므로 단시간내에 이념과 정책을 쉽게 그리고 대폭적으로 수정하기가 어렵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잘 이해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체제가 구조적 모순과 만성적 경제침체의 늪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과감한 대남정책의 전환,남북한간의 대화와 교류,다른 국가들에 대한 개방적 정책을 점진적으로 추구해야 한다.북한 당국이 낡은 이데올로기적 노선을 고수하고 전근대적 지배체제를 유지하려고 고집한다면 그것은 시대의 흐름을 거역하게 된다는 역사적 교훈을 하루속히 깨달아야 한다.오늘과 같은 세계화,정보화,그리고 지구화시대에 고립된 상태에서 주민들과 체제를 억압적으로 통제할 수는 없다. 북한 당국은 세계사적 흐름과 민족자존의 논리에 비추어 국제적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 적응하는 정책을 펼쳐 나가야 한다.우리는 남북한이 쌀협상을 성공적으로 타결했다는 점에서 1991년에 채택된 「남북 사이의 화해와 불가침 및 교류협력에 관한 합의서」의 정신으로 되돌아갈 수 있다는 긍정적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이러한 의미에서 북한 당국이 개방적 정책전환을 보이게 된다면 그것은 바로 분단된 남북의 민족이 과거의 반목과 불신 그리고 증오심과 적대의식을 청산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또한 평화정착을 통한 민족 공영과 공존의 원칙을 수용하는 전환점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해 본다.
  • 대북 지원/해상 수송작전/5만t 7월까지 북송 완료

    ◎대한통운 트럭 5천대 동원 항만까지/국적선 「씨 아펙스」호 첫 남·북 항로 운항/표시없는 40㎏들이 포대에 포장 해운항만청은 각 해운선사와 비상연락망을 가동해 놓은 상태로 북한 쌀 수송을 위한 비상체제로 들어가 있다.정부의 대책이 내려오는 대로 배를 수배하는가 하면 가야할 항구를 지정하고 있다. 정부는 이번 쌀 지원을 위해 도장 및 포장재 공장을 전국적으로 고루 배정하는 한편 동해 포항 울산 부산 진해 마산 광양 목포 군산 인천항에서 쌀을 선적하기로 했다. 북한에 1차로 제공되는 5만t의 쌀중 2천t이 1차로 22일 동해항에서 처음 선적된 뒤 24일 북한의 나진항으로 출발한다.이번 쌀 수송은 분단이후 최초로 남성해운의 국적선 「시 아펙스호」(Sea Apex)가 맡아 남북항로를 운항할 것으로 알려졌다.시아펙스호는 22일부터 쌀을 선적,24일 동해항에서 공해로 빠져나간 뒤 25일 밤이나 26일 새벽 북한의 나진항에 입항할 예정으로 보인다. 남성해운은 20일 하오 3시쯤 해운항만청으로부터 3천ⓣ급 선박을 준비하라는 긴급 연락을 받고,마침일본 시모노세키에서 부산항에 들어온 국적선 시 아펙스호를 이날 상오 10시 동해항으로 출발시켰다.이 배는 21일 밤 동해항에 도착,22일 아침부터 선적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해항청은 당초 26일로 예정됐던 최초의 쌀 수송 일정이 24일로 당겨짐에 따라 2천∼3천t급 선박을 긴급 수배했으나 내항선 업체중에서는 운항선박이 없어 외항선사린 남성해운의 선박을 투입했다. 정부는 북경 쌀회담이 합의문 발표 이전에 관련부처 관계자 회의를 거치면서 비밀리에 쌀수송 작업을 추진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2천t을 우선 북한에 보내는데 이어 8천t도 이달중에 북한으로 수송한다. 나머지 4만t은 7월중에 추가 공급될 예정이다. 현재 동해안은 원활한 하역작업을 위해 접안예정인 중앙부두의 석회석야적장 일부 1천2백평을 하치장으로,중앙부두 배면 유휴도로 5백10평을 차량대기소로 확보하고 육상 크레인(시간당 1백t2기)를 갖춰놓고 있다. 하역작업은 연이누언 3백명이 투입돼 철야로 작업하고 우천시를 대비해 깔판 5백개,복포 2백장을 준비하는 등 만반의 태세를 갖추고 있다. 작업지시를 우리 측 선원이 할 수 있도록 선장과 선원들을 한국인으로 하고 선원들에 대해서는 언행을 조심하도록 보안교육을 시키고 있으며 북한에 들어가면 우리 측과 곧바로 통신으로 연락할 수 있도록 했다. 정부양곡의 육상운송을 독점하고 있는 대한통운은 10t 화물트럭 등 5천여대의 육상 운송장비 가운데 여유분을 최대한 동원,이날부터 전국의 양곡창고­도정공장­항만간 쌀운송에 나서기로 했다.건교부는 우선공급분 수송에 이어 부산,인천,울산,포항,여수 등의 항구를 이용,나머지 4만t도 이런 식으로 수송할 계획이다. 이번에 가공된 쌀은 40㎏들이 폴리프로필렌 포대로 포장되고 있고,포대에는 아무런 표시를 하지 않았다.93년산 쌀을 선택한 것은 이들 쌀이 비교적 항구로 이동하기 가까운 거리에 저장돼 있기 때문이다.
  • 자연사 박물관(외언내언)

    박물관의 역사가 오랜만큼 그 형식과 의미의 변화도 다양하다.박물관이 성립된 것은 2세기무렵.귀족계급의 수집품들이 전시장이 있어야 할만큼 늘었기 때문이다. 중세·르네상스시대에는 교회의 공공박물관들이 발전했다.1683년 옥스퍼드대학박물관이 처음으로 과학박물관을 만들었고 1750년 룩셈부르크가 궁전을 공개하여 궁전박물관의 효시를 이루었다.1801년 나폴레옹은 무력으로 예술품들을 찬탈하여 루브르박물관을 생성케 했다.이후 민속박물관과 민속야외박물관의 전형을 만든 것은 스웨덴 노르웨이 핀란드 등이다. 자연사박물관의 역사는 1635년 파리에서 출발되나 1846년 건립이 시작된 미국 스미소니언협회 국립자연사박물관이 대표적 모델이다.상식적으로는 생물 및 지학자료의 수집과 전시를 말하지만 자연인류학·고고학·민족학등의 자료가 더 크게 탐구된다.때문에 또 단순한 자료의 전시가 아니라 이념적 의도가 전시물에 적극 표현된다는 특징을 갖는다. 스미소니언 자연사박물관은 미국같은 다인종국가라는 조건에서 「하나의 삶의 터전」속에 살고 있다는 터전의 공유의식을 강조한 박물관이다.영국의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의 이해와 애정을 표제로 하고는 있지만 대영제국의 세력권을 과시하려는 의도가 더 크게 담겨 있다.때문에 광범위한 세력권내 자연연구결과를 원지역보다 우월하게 전시한다. 우리문화계의 오랜 숙원이었던 국립자연사박물관 건립계획이 20일 확정됐다.어떤 목적으로 어떤 박물관을 창조해낼 것인가에 한번 더 신중해 볼 때다.우선 빈약한 수준에 있는 고대사와 고대 생태계에 대한 연구가 확대돼야 할 것이다.생태계로만 보아도 지금에도 멸종되고 있는 생물종들은 한둘이 아니다. 그리고 참으로 통일된 삶의 터전과 의식을 만드는 작업을 해야 할 것이다.단절과 분단의 역사를 극복한 모습이 자연사박물관에서도 찾아져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 쌀 2천t 24일 첫 북송/나 부총리/북경회담 남북합의 발표

    ◎제공약속 15만t 전량 무상/7월중순 2차협상 갖기로 정부는 21일 우리측이 북한측에 1차로 쌀 15만t을 전량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북경 차관급 쌀회담의 최종 합의내용을 발표했다. 나웅배 부총리겸 통일원장관은 이날 하오 기자회견을 통해 이같은 합의내용을 공식발표하고 대북 추가 쌀제공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2차 당국자간 회담을 오는 7월 중순에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 남북 양측은 이날 하오 합의한 날로부터 10일 이내에 대북 쌀지원 1차분을 해상을 통해 선박으로 북한의 청진·나진항등에 인도하는등 7개항의 합의내용이 담긴 합의문에 서명한뒤 북경 차관급 쌀회담을 마무리했다. 정부는 이날 우리측 이석채 재경원차관과 북한 정무원의 대외경제위원회의 위임을 받은 전금철 대외경제협력추진위 고문이 공동합의문에 서명했다고 밝혔다. 남북은 북한측에 보내는 1차분의 쌀은 40㎏단위로 포장하되 원산지등 일체의 표기를 하지 않기로 하고 이 합의내용을 실행하는 쌍방주체로 우리측은 대한무역진흥공사,북측은 조선삼천리총회사를 지정했다. 나부총리는 『2차 쌀회담에서는 쌀문제 뿐만 아니라 그밖의 여러가지 문제를 논의하게 될 것』이라면서 『회담장소는 우리측으로선 가능한한 한반도내에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나 북한측과의 접촉을 통해 추후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부의 다른 고위 당국자는 이와 관련,『2차 회담에서는 남북관계 전반에 대해 논의하게 될 것』이라고 말해 이번 북경회담에서 양측이 남북대화 채널 복구등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모종의 이면 합의를 이뤘을 가능성을 시사했다. 나부총리는 또 이번 회담 타결이 북한에 피랍된 우성호 선원들의 귀환에 긍정적 작용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합의에 따라 오는 24일 동해항에서 남성해운 소속 씨아팩스호가 2천t의 쌀을 싣고 북한의 나진항으로 첫 출발할 예정이다. 한국 국적선이 남북간 항로를 공식 운항하는 것은 남북분단 이후 처음이다. 씨아팩스호는 22일부터 쌀을 선적,24일 동해항을 출발해 최단거리로 운항,25일 밤 또는 26일 새벽 나진항에 입항할 예정이다. 이어 3∼5천t급 국적선들이 잇따라 도정을 끝낸 쌀을 싣고 동해·포항·울산·부산·진해·마산·광양·목포·군산·인천등 10개항을 출발,북한측이 지정한 남포·원산·청진·나진항등에 입항할 예정이다. 한편 정부는 남북 쌀회담이 타결됨에 따라 이날 송영대 통일원차관 주재로 16개 유관부처 실무자들이 참석하는 「대북 곡물지원 실무대책회의」를 열고대북 쌀제공은 남북협력기금과 정부 예비비에서 재원을 충당키로 의견을 모으고 통일원에 쌀지원을 원활히 추진하기 위한 종합상황반을 설치키로 했다. 정부는 또 금명간 나부총리 주재로 통일관계장관회의를 열어 부처별 추진상황을 점검하는 한편 이번 대북 쌀지원이 남북대화 재개 및 경협 활성화등 남북관계 개선에 긍정적으로 기여토록 하는 방안을 논의할 예정이다.
  • 의미와 전망/남­북 화해·협력의 새무드 조성(쌀 대북 지원)

    ◎조건없이 지원… 관계개선 북의 호응기대/납북어부 송환­쌀 추가제공땐 교류 “순풍” 북경 쌀회담의 타결은 우리측이 북한당국에 본격적 남북 화해·협력시대로 가는 뚜렷한 이정표를 제시했다는 큰 의미를 지닌다. 사실 북한에 대한 쌀제공은 쉬운 듯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대내외적으로 체제우월성을 선전해온 북한당국의 체면이 걸려 있는데다 우리 내부에서도 곧 허물어질 북한체제에 굳이 「영양제」주사를 놓아줄 필요가 있느냐는 부정적 시각이 없지 않은 탓이다. 하지만 북한의 갈 데까지 간 식량난과 어떻게 해서든 남북관계개선의 돌파구를 열어야 한다는 우리측의 전향적 자세가 마침내 대북 쌀제공이라는 접점을 찾았다.남북분단 이래 최대규모의 실질적이고 인도적인 협력이 이뤄진 것이다.지난 84년 북측이 우리측에 수재물자를,91년에는 우리측이 북측에 쌀을 보낸 선례는 있으나 규모면에서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물론 북한의 절박한 식량난이야말로 이번 쌀회담이 결실을 하도록 하는 알파요 오메가였다.북한은 80년대 후반이후누적된 곡물생산부진으로 올들어 「하루 두끼먹기운동」등 주민에 대한 내핍강요로는 버틸 수 없는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외화부족과 대외신용도의 추락으로 외미도입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런 사실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당국의 입장을 우리측이 대국적으로 이해하는 자세를 취한 것도 협상타결의 촉진제였다. 이를테면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장기저리상환에,그것도 북측의 무연탄과 맞바꾸는 민간차원의 구상무역에 동의,북한당국의 체면을 살려준 것이다. 이처럼 쌀지원과 관련해 우리측은 별다른 전제조건을 달지 않았다.쌀제공은 북한당국의 호전성을 약화시키고 아울러 북한주민에게 우리의 선의를 간접적으로나마 알려 장기적으로 남북화해분위기를 조성한다는 전략목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 조치로 당장 남북당국간 전면적인 대화가 재개되는등 관계개선의 획기적 전기가 마련될 것으로 내다보기는 어렵다.엄밀히 말해 이번 쌀지원은 우리측이 북한당국에동족끼리 교류와 협력을 도모해나가자는 일방적 화해메시지를 보냈을 뿐이기 때문이다.이를 받아들이느냐는 여전히 북한의 선택에 달려 있다는 얘기다. 대화채널복원등에 대한 명확한 보장장치도 없이 우리측이 너무 쉽게 합의해준 것이 아니냐 하는 아쉬움이 제기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이같은 맥락에서 나포한 우성호 선원을 조만간 돌려보내느냐 여부가 북한의 태도변화를 판독할 수 있는 일차적 시금석이 될 것이다.이같은 가시적 조치가 1단계 대북 쌀제공 이후 우리측의 추가곡물제공으로 이어질 경우 남북관계는 일단 순풍을 맞게 될 전망이다. 일부 관측처럼 이번에 쌀과 관련한 공식합의문 이외에 양측이 남북대화와 관련한 모종의 이면합의를 맺었다면 그러한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북 쌀제공 환영”/여야 성명 여야는 21일 북한에 대한 쌀제공 협상이 마무리된 것을 환영하는 성명을 각각 발표했다. 민자당 박범진 대변인은 성명을 통해 『북경협상이 타결돼 북한에 쌀을 보낼수 있게 된 것을 크게 환영한다』면서 『이를 계기로 남북간의 교류협력이 확대되고 남북관계가 상호 신뢰를 쌓을수 있는 방향으로 진전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민주당의 박범진 대변인도 성명을 내고 『인도적 차원에서 북한동포에게 쌀을 제공하는 것은 참으로 잘한 일』이라고 평가한 뒤 『북한도 우리의 제안을 조건없이 받아들임으로써 남북대화가 성큼 다가서는 상응한 조치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쌀 첫 북송 영예 「씨 아펙스」호/3천1백t급 컨테이너선/선령 6년… 남성해운 소속 북한에 쌀을 싣고 갈 남성해운은 한일간 항로에서 컨테이너와 벌크화물을 수송하는 중견 해운업체다. 남북분단 이후 최초로 남북항로에 국적선을 띄우는 영광을 안게 된데는 김영치(53)사장의 부친인 김한수 전 사장이 해방 전부터 국내 연안을 운항하는 내항선업을 해온 인연 때문이다.해방 뒤 내항선 물동량이 늘면서 사세가 커지면서 53년 한일간을 운항하는 남성해운을 설립,오늘에 이르렀다. 84년 해운합리화 조치 전에는 세계일주항로를 운항했고 회사규모도 당시 국내 최대 선사였던 대한선주와비슷했을 정도다.그러다 해운업체의 난립으로 84년 해운합리화 조치가 단행되면서 남성해운도 자사보유 선박 87%를 매각해야 하는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현재 남성해운은 컨테이너선 5척,일반화물선 5척을 보유하고 있으며 지난해에는 한일간 물동량 증가로 매출 4백50억원에 5억원의 당기순이익을 냈다. 이번에 쌀을 싣고 북한에 들어가는 이 회사의 씨 아펙스호(SeaApex)는 89년 국내 계획조선자금으로 건조된 선령 6년의 3천1백t급 준 커테이너선이다.한일항로에 투입돼 일반화물을 수송해 온 이 배에는 중국의 조선족 교포선원 2명과 14명의 한국 선원이 타고 있다. 선상 기중기 3대를 장착,시간당 42t,하루 8백40t을 처리할 수 있다.각종 무선통신장비와 항만전화가 탑재돼 있어 북한의 나진항에 입항하더라도 본사와 연락이 가능하며 일본 대리점이나 지점과도 연락할 수 있다.
  • “남북대화 물꼬트는 계기 됐으면…”/대북 쌀지원 각계 소리

    ◎동포애 차원 “쌍수환영”/우리쌀 받는 것도 북녘의 큰 변화/북한은 이산·서신교류로 화답을 『인도적 차원에서 내린 결정이므로 이번 쌀 북송은 얼어붙은 남북관계의 물꼬를 트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중국 북경에서의 남·북한 관계자 접촉이 잘 풀려 21일 우리가 북한에 쌀을 보내기로 했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사회 각계각층 인사들은 남북관계에 대한 기대와 함께 환영의 뜻을 밝혔다. 대부분의 국민들은 이번 쌀 북송이 통일을 향한 진정한 출발점이 되길 기원했다.나아가 한순간의 지원이 아닌 이산가족교류·경제협력·자유왕래 등 남과 북 사이에 보다 큰 화해와 협력의 틀을 마련하는 전기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피력했다. 서울YMCA 전대련(63) 회장은 『동포끼리 힘들 때 서로 나눠먹는 것은 인륜·도의상 당연한 일』이라고 말하고 『북한이 우리의 쌀을 받아가는 것 자체가 새로운 변화』라고 평가했다. 고려대 이필상(경영학·48)교수도 『어떠한 정치·경제·사회논리 보다 순수한 동포애의 차원에서 이번 조치는 환영할만한 일』이라고밝히고 『정부는 이를 계기로 북한에 조심스럽게 접근,주도적으로 남북대화의 물꼬를 트고 의미있는 경제협조체제를 이뤄나가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유재현 사무총장은 『이번 일은 정부당국 사이의 대화를 통한 결실이라는 점에서 화해와 협력의 시대로 나아가는 전기가 될 것』이라고 강조하고 『이를 계기로 올해안에 총리급회담이나 정상회담을 성사시켜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 사이의 대화를 주도적으로 펼쳐야 할 것』이라고 역설했다. 서울시교육청 김대성(48) 장학사는 『분단 50주년을 맞아 남북이 동포임을 확인하는 절차의 하나로 학생들의 교육적인 측면에서 볼 때 무척 바람직스러운 조치』라면서 『어차피 보낼 것이라면 가급적 일본보다 먼저 우리 쌀을 보냈으면 한다』고 말했다. 농협중앙회 유통 담당 김동균 이사도 『그동안 경직돼왔던 남북관계가 급진전되기를 바란다』고 말하고 『농협은 광복 50주년 기념행사로 이보다 뜻깊은 일이 없다고 판단,이미 도정과 수송 등 모든 과정에 대한 준비작업을 마친 상태』라고 전했다. 이화여대 김석준(행정학) 교수는 『1년 남짓 냉각된 관계를 유지해온 남북이 쌀협상을 타결했다는 자체가 광복 50주년을 기념하는 역사적 발전』이라고 평가하고 『남북한은 이를 계기로 이산가족 교류와 남북정상회담 성사 등 산적한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서울 광신고등학교 홍래 교장도 『평소 학생들에게 북한주민 개개인은 마음씨 착한 우리의 동포로 보아야 한다고 가르쳐온 만큼 무엇보다 뜻있는 조치』라고 밝혔다. 백형구(59) 변호사는 『식량난을 해결하기 위해 보낸 쌀이 군량미로 전용되거나 외신보도처럼 외화벌이용으로 다른 나라에 재수출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이라고 말해 정부의 대응체계 강화를 촉구했다. 한편 재계는 21일 쌀회담합의는 남과 북이 한민족공동체임을 일깨워준 쾌거라며 모두 환영의 뜻을 보였다.
  • 남북관계 개선 주춧돌 놓았다/북경 쌀회담 타결의미

    ◎분단이래 최대규모… 대화돌파구 마련/북 체면 포용한 우리측 협상자세 주효 북경 남북 쌀회담의 타결은 장기적으로 남북 화해·협력시대를 일구는 밑거름이 될 것으로 보인다. 남한의 북한에 대한 쌀제공은 대내외적으로 체제우월성을 선전해온 북한당국의 체면이 걸려 있었다는 점에서 쉬운듯 하면서도 어려운 문제였다. 하지만 대북 쌀지원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성사됐다.이는 일차적으로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 마련을 염두에 둔 우리측의 적극적인 자세에 힘입은 바가 크다. 그러나 무엇보다 북한의 절박한 식량난이야말로 이번 쌀회담이 결실을 맺도록 하는 알파요 오메가였다고 할 수 있다. 북한은 80년대 후반이후 누적된 곡물생산 부진으로 올들어 「하루 두끼먹기운동」등 주민들에 대한 내핍 강요로는 버틸 수 없는 최악의 식량난에 직면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설상가상으로 외화부족과 대외 신용도의 추락으로 외미도입마저 여의치 않았다. 이로 인해 북한의 올 한해 곡물부족분은 무려 2백60만t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그러나 5월말 현재 북한은 해외로부터 절대 식량부족분의 10% 밖에 도입하지 못한 상황이라는 후문이다. 이같은 한계상황 때문에 북측도 어쩔 수 없이 남한쌀을 받아 들이지 않을 수 없었던 셈이다.물론 우리측이 이 사실이 북한주민에게 알려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북한당국의 입장을 대국적으로 이해하는 자세를 취한 것도 협상 타결에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이를테면 우리측이 육로수송이 바람직하다는 당초 입장을 접어 두고 북측이 요구한 해로수송에 합의해 줬다.나아가 사실상 무상으로 제공하면서도 외형적으로는 북한의 무연탄과 맞바꾸는 민간차원의 구상무역에 동의한 것도 역시 북한의 체면을 고려했기 때문이다. 이처럼 이번 쌀지원과 관련해 일단 우리측은 전반적인 남북간 화해 분위기 조성을 위해서 아무런 조건도 내걸지 않았다.그렇다고 해서 당장 남북 당국간 전면적인 대화무드로 연결되는 등 남북간 관계개선을 위한 획기적 전기가 마련됐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 그러나 이번 회담은 남북분단 이래 최대규모의 협력이라는 결실을 남겼다.지난 84년 북측이 우리측에 수재물자를,91년에는 우리측이 북측에 쌀을 보낸 선례는 있으나 규모 면에서 이번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따라서 이번에 대북 쌀지원이 성사됨으로써 적어도 장기적인 남북관계 개선을 위한 튼튼한 주춧돌은 놓여 졌다고 볼 수 있다.이같은 관측은 북측이 나포한 우성호 선원들을 조만간 돌려 보내느냐에 따라 일차로 진위가 검증될 것이다. 더 나아가 이같은 가시적 조치가 1단계 대북 쌀제공 이후 우리측의 추가 곡물제공으로 이어질 경우 남북관계는 일단 순풍을 맞게 될 전망이다.이번 회담에서 쌀과 관련한 공식 합의문 이외에 양측이 남북대화와 관련한 이면 합의를 맺었다면 그같은 가능성은 더욱 높아질 것이다. ◎북경 쌀회담장 주변 표정/합의문 작성주체 싸고 막판 진통/“21일 새벽 중대발표” 흘러나와 긴장 ○…대북한 쌀제공을 위한 남북한 회담은 4일째 우리측 대표단이 머물고 있는 북경 서북쪽의 샹그릴라호텔 2층 연회장에서 관계자외엔 출입을 엄금한 채 비밀리에 마라톤회의로 진행. 양측 대표 16명은 이날 상오 조어대 주변에 있는 신대도호텔로 장소를 옮겼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자 다시 샹그릴라로 이동해 밤늦도록 회의를 벌였다고 한 관계자가 전언. 이날 샹그릴라호텔 입구에선 공안(경찰)과 호텔안내원들이 TV카메라의 진입을 원천 봉쇄했고 회의장인 2층 연회장 입구 등에서도 관계자외 제3자의 접근을 막는 등 극도의 보안을 유지하려는 모습. 이날 진행된 회의에서 양측은 20일 원칙을 합의해 놓고도 구체적인 시행사항에 걸려 난항을 겪고 있다고 회담장 주변의 한 관계자가 전언.양측 대표단은 합의문의 작성 주체,쌀의 하역장,인도 시기 등을 둘러싸고 이견을 보이는 등 진통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북한측은 계속 이번 쌀회담이 민간 성격의 접촉이지 결코 정부 사이의 접촉이 아님을 분명히 하고 있다고. 한편 우리측 대표단의 이름이 등재돼 있는 샹그릴라호텔 23층에는 외부 전화는 물론 노크에도 응답을 않고 있으며 호텔 주차장에 주중한국대사관 소유의 검은색 소나타 한대만이 먼지를 뒤집어쓴 채 주차해 있는 모습.한 호텔관계자는 한국대표단은 다른 층에 방을 빌려놓고 모임을 갖고 있다고 귀띔. ○…이날 하오7시40분무렵 회담장인 샹그릴라 호텔로 들어오던 북한대표단 일행 3명은 호텔 입구에서 기다리던 국내보도진과 한차례 실랑이를 벌이기도. 이들은 촬영하던 TV촬영기자의 카메라를 밀치며 『왜 무례하게 사전허가도 없이 사진을 찍나,기자들이 회담을 방해한다.통일하러 왔는데 왜 이러느냐,남조선기자들은 도덕도 없느냐』며 고함을 지르기도. 모두 가슴에 큰 김일성배지를 단 이들은 회의가 잘 됐느냐는 질문에 『잘되길 바란다.끝난뒤 이야기하면 되지 않느냐』며 엘리베이터를 타고 회담장으로 향하는 모습. ○…20일 하오10시쯤 주중 한국대사관의 한 관계자는 1층 로비에서 기다리던 기자들에게 『이미 합의가 사실상 마무리됐다.빠르면 2∼3시간내로 발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이미 이석채 재정경제원차관등 대표는 호텔을 떠났다.실무진에서 문안작성을 하고 있다.발표가 있을것에 대비,발표장으로 쓸 방을 예약해 놓았다』고 말하는등 회담이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음을 시사. □남북 쌀관련 일지 ▲59년9월=북,사라호태풍 이재민에게 쌀3만섬 등 제공용의 표명 ▲62년1월=북,풍랑만난 남한 어민에 쌀등 지원 제의 ▲67년1월=김일성 매년 쌀2백만섬,전력 10억 kwh등 대남 제공용의 밝힘 ▲77년1월=남,인도주의적 입장에서 대북식량제공 용의표명 ▲84년9월=북적,쌀5만섬 등 대남 수재물자 제공 ▲90년7월=「사랑의 쌀」8백t(1만가마)북한 반출 ▲91년4월=남 천지무역상사와 북 금강산 국제무역개발회사,쌀 직교역 합의 ▲95년3월7일=김영삼 대통령,베를린 외교3단체 연설중 대북곡물제공 용의표명 ▲95년5월15일=김영삼 대통령,IPI서울총회 개회연설중 곡물지원 용의표명 ▲95년5월25일=북 이성록 국제무역촉진위원장,일본방문중 남한쌀 수용의사 표명 ▲95년5월26일=나웅배 부총리,조건없는 곡물지원 제안 ▲95년6월6일=송영대 통일원차관,북측에 공식적 회신 촉구 ▲95년6월12일=김영삼 대통령,재차 조건없는 쌀제공의사 발표 ▲95년6월17일=남북차관급 쌀회담 북경개최
  • “다양한 장르”… DMZ주제 전시회

    ◎8월1일부터 15일간 전국 50여개 화랑 참여/통일·환경문제 등 미래상 조명/100여 작가 작품 전시… 「토론마당」 개최도 국토 분단의 상징이며 지구상에서 유일하게 생태환경이 파괴되지 않고 보존돼 있는 비무장지대(DMZ)를 주제로 민족분단과 통일,나아가 인류환경보존의 문제를 다각적으로 살펴보는 대규모 전시회가 광복절을 전후해 열린다. 「비무장지대를 민족대공원으로 만들자」는 문화운동을 펼쳐온 비무장지대 예술문화운동작업전 조직위원회(위원장 이반 덕성여대교수) 실행위원회는 오는 8월1일부터 15일까지 「비무장지대 작업전」(FRONT DMZ)을 개최한다. 지난 91년부터 격년제로 열려 3회째를 맞는 올해 전시회는 광복 50주년과 유엔이 정한 「관용의 해」를 기념하는 의미에서 비무장지대 밖의 50여개 화랑에서 동시다발적으로 1백여명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전국적인 행사로 치러진다.전시내용도 비무장지대가 상징하는 민족분단·통일·역사·정치·사회·경제등 이념적 주제부터 생태계 및 환경보존에 관한 주제,비무장지대의 미래상에 관한주제에 이르기까지 폭을 넓혔다. 작가선정위원회는 출품작가들을 30∼40대의 젊은 층을 주축으로 구성,다양한 장르에서 왕성한 창조성과 실험정신을 엿볼 수 있도록 했다.고낙범 장문걸 오병욱 배석빈 이강화 도학회 류인 김현근 김재홍 안창홍 최석운 강경구 문봉선 조순호 김아영 박문종 김선두 김호득 오원배 양주혜 임옥상 김병종 오치균 신현중 임영선 조덕현 강요배 박항률 강관욱 성선옥 황창배 안성금 석철주 홍승혜 윤장렬 윤동천 공성훈 이불 전항섭 이인 임정기 민정기 육근병 안필연 이건용 김무기 최정화 한만영 손장섭씨 등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는 작가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를 계기로 비무장지대작업전의 성과를 정리하고 새로운 방향을 모색하는 뜻에서 오는 7월 총 7백쪽의 「비무장지대의 과거,현재,미래」라는 제목의 자료집을 발간키로 했다.또 8월11일에는 국내외 학자들이 참가하는 「비무장지대 국제토론마당」을 세종문화회관 대회의실에서 갖는다. 행사 개막식은 8월9일 인사동 하나로빌딩앞 공터에서 열릴 예정이다.개막행사에서는 통일시 낭송회,얄타회담과 천막안에서의 한반도 분할을 다룬 코믹풍자극,독일통일 당시의 비디오모음쇼등으로 꾸며진다. 한편 서울의 참가화랑은 공평아트센터,청남갤러리,덕원갤러리,관훈갤러리,가나화랑,가람화랑,갤러리 동주,상문당,서호,나갤러리,대림화랑,동산방화랑,모인화랑,백송화랑,백악 예원,서경갤러리,선화랑,세계화랑,예성화랑,인데코,조형화랑,토도랑,한선갤러리,갤러리 이콘,인데코,갤러리 이즘,서림화랑,샘터화랑,조선화랑,최갤러리,J&C갤러리등.또 지방에선 맥향화랑(대구),쌍인화랑(광주),스페이스 월드(부산),갤러리 한솔(제주),예인화랑(마산),무심갤러리(청주),아라리오화랑(천안) 등이 참여한다. 주최측은 참가작가들과 함께 오는 7월15일 동해안지역 비무장지대와 판문점을 답사할 계획도 갖고 있다.
  • 광복50년­한국안보의 좌표와과제/국제정치학회 학술회의 발표전문요지

    ◎남북 비공격적 방어취한뒤 군축·재통일 시도를/안보전문가 교류 촉진… 신뢰구축 여건 창출해야/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 비슷… 분단영구화 우려 한국국제정치학회(회장 황병무 국방대학원교수)는 16일 국내외 학자를 초청,서울 힐튼호텔에서 「광복 50주년 한국안보의 좌표와 과제」를 주제로 국제학술회의를 개최했다.17일까지 이틀간 열리는 이 회의에서 배리 버전 교수는 한반도를 포함한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가면 한반도 분단이 고착화·영구화 될 우려가 크다고 지적했으며,보른 몰러 박사는 한반도 통일이 국가연합­연방국가­완전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주장해 주목을 끌었다. 이 회의에서 발표된 논문을 간추려 본다. ◇「공동안보와 비공격적 방어:한반도에의 적실성」(보른 몰러 덴마크 코펜하겐대 평화·분쟁연구소 선임연구위원)=공동안보의 군사적 의미는 비공격적 방어에서 우선 찾을 수 있다.이는 문자 그대로 상대국에 대한 위협을 취하지 않음으로써 상대국의 안보를 고려하는 것이다.한반도에이를 적용시킬 경우 가장 이상적인 형태의 군사적 대치는 남북한 모두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고 미국 역시 방어력 군사력으로만 남한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런 방안보다는 덜 매력적이지만 다음으로 상상할 수 있는 시나리오는 남북한은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국은 전혀 개입하지 않는 형태를 취하는 것이다.(여기서 불개입이란 미군 철수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다) 남북한이 비공격적 방어를 취하는 반면 미군이 철수하고 유엔군이 이를 대신해 주둔하는 경우를 상정할 수 있다. 나는 ▲72년 남북공동성명의 정신에 입각한 상호간의 신뢰구축과 안정을 도모하고 ▲한반도에서 핵위협을 완전히 제거하며 ▲선제공격의 준비태세에 대한 옵션을 제거하고 ▲공격능력을 줄여가며 ▲일반군축을 시도한 뒤 마지막으로 항구적인 평화의 구축을 위해 재통일을 추진할 것을 권고한다.나는 한반도의 통일이 국가연합과 연방국가 그리고 완전한 통일의 수순을 밟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남북한 군사신뢰 구축과 군축」(제임스 매킨토시 캐나다 안보연구소 선임연구원)=남북한 안보관계의 향상을 위한 노력에 있어 신뢰구축은 단순한 신뢰구축 수단을 적용하는 것 이상의 것과 관련되어 있다.신뢰구축은 기본적인 안보개념의 변화과정을 촉진하는 활동이다.신뢰구축이 성공적으로 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기본적인 조건들이 일치해야 한다. 비록 북한이 남한에 대해 중요한 문턱을 넘어서려는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아직도 북한에서 이런 조건들은 신뢰구축을 뒷받침하는 요인이 되지는 않는다.이는 현재 의미있는 신뢰구축이 남북한간에 가능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한다.따라서 기본적으로 남북한간 그리고 지역전문가 그룹과의 상호작용의 기회를 촉진하는 것을 시작으로 이런 과정을 지원하기에 충분한 촉발조건을 창출하는데 기여하도록 해야 한다. 복합적인 신뢰구축 협정은 아직까지는 시기상조인 것으로 보인다.신뢰란 안보개념에 있어 장기적인 변화를 의미하는 것이지,감축협정을 무익하게 추구하는 것이나 전후관계를 고려하지 않은 투명성 보장수단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다. ◇「변화하는 국제 및 국가안보의 패러다임과 중급국가들의 안보기획에 주는 의미」(배리 버전 영국워윅대 국제관계학과교수)=한국이 속한 동아시아는 탈냉전시대의 정치·군사적 안보복합체의 형성이란 관점에서 볼때 문제지역의 하나이다.전반적으로 힘의 수준은 극적으로 상승하고 있고 힘의 분포는 변화의 가능성이 높으며 강한 민족주의를 보이고 있다. 또 국제제도는 취약한 반면 중국과 대만,남북한간의 심각한 대립을 포함해 역사적 반목,국경분쟁,문화적 분열등을 많이 보이고 있다.더욱이 높은 수준의 군비지출과 군사현대화에다 몇몇 국가는 필요할 경우 핵보유국이 될 능력을 지니고 있다.이렇게 볼때 동아시아는 19세기 유럽과 상당한 구조적 유사성을 지닌다. 지역상황의 취약성 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19세기 유럽의 세력균형과 같은 방향으로 나갈 때 분단이 고착화,영구화될 것이다.최악의 경우는 중국과 일본의 경쟁사이에 말려드는 것이다.때문에 한국은 동아시아가 군사적인 세력균형체제로 될 가능성을 최소화시키는 방식으로 지역국제사회의 구축에 일차적 관심을 쏟아야 한다.이를 위해 중국의 행동을 온건화시키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고,일본에 대한 나쁜 역사적 기억을 고무시키는 일을 중단해야 한다.미국이 아시아 안보에서 발을 빼거나 훨씬 더 이기적 자세를 취할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또는 미국을 계속 붙들어 맴으로써 이 지역의 국제사회 구축을 지연시키는 위험도 감수해야 한다.
  • 한반도 통일여건 진단과 전망/한·러·일·중 4개국의 시각

    광복 50주년을 맞아 지난 50년을 뒤돌아 보고 한국통일의 현단계와 전망을 짚어 보는 국제학술회의가 지난 12∼14일 고려대학교 언론대학원과 프레스센터 공동주최로 서울 호텔신라에서 열렸다.한국을 비롯,미국 러시아 중국 일본의 학자와 언론인들이 참석,「한반도 분단의 역사적 재조명」「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세계속의 통일한국 위상」등 3개 주제로 나누어 주제발표와 열띤 토론을 벌였다.이 세미나의 「한반도 통일여건의 진단과 전망」주제 회의에서 발표된 한반도 통일에 대한 미국·러시아·일본·중국의 시각을 요약 소개한다. ◎미국/북한은 계몽적 협상대상/대화로 평화적 해결 희망/톰 레이드 워싱턴포스트 동경지국장 미국인들이 한국 통일에 대해 갖고 있는 견해를 일반 대중과 학자,그리고 관리나 공무원들의 입장으로 구별해 말할 필요성을 느낀다. 우선 일반인들은 대부분 주변에서 흔히 마주치는 부지런하고 검소한 한국인 이민자들을 단지 한국인들로 알 뿐 남한인으로 알고 있지 않다.이것은 한국이 분단국가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즉 이들은 한반도의 분단이 일시적인 상태로 언젠가는 통일될 것으로 믿고 있으며 통일을 미국에 대한 위협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에 비해 학자들은 대개 통일방식과 통일 후의 형태와 관련해 대개 두 그룹으로 나뉘어 한국을 바라 본다.그럼에도 양측 모두 남한은 국제사회에서 신뢰할 만한 국가이며 합법적인 정권을 구축했다는 점에서 의견이 일치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에 대해선 합법적인 정부로 인정하는 측과 무모한 독재국가로 보는 측으로 양분된다.전자의 경우 북한이 통일 후 중요한 역할을 차지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편이며 후자는 한반도 통일이 독일과 마찬가지로 공산주의 국가가 더 크고 부유한 민주국가로 흡수 통일돼야 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한편 정치인이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이 민감한 한국통일 문제에 대해 통일은 불가피하며 바람직한 것이라는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다.미국의 관리나 외교관 가운데 한국의 영구분단을 주장하는 사람은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 한국문제에 대한 논쟁은 대 북한관계에서 시작된다.현재의 클린턴 정부처럼 북한을 이란과 쿠바처럼 계몽적인 협상이나 강·온 정책을 병행해야 할 나라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과 적으로 간주하는 주장이 그것이다.이들 관리나 공무원들은 대부분 학자들의 주장을 따르는 편인데 클린턴 정부측의 견해는 아무리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대화와 협상을 통해 해결하자는 측이고 또 북한을 적으로 간주하는 측은 독일처럼 흡수통일을 택해야 한다는 주장에 경도돼 있는 분위기다. ◎러시아/파격적인 경제계획 수립/안정된 국제환경 조성을/세르게이 곤차로프 역사학자 러시와와의 관계에 있어서 남한은 북한보다 빠른 발전상황을 보여왔다.현재 러시아와 남한은 연대관계에서 민감한 문제들을 해결하는 방안을 발견한 것으로 보인다.그 예는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 문서자료들을 김영삼 대통령에게 제시하는 것과 관련한 신사협정이다. 러시아와 남한간의 관계수립과 발전은 양측 모두에게 이익을 주었지만 기대했던 것이 모두 이루어진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한다. 일반적으로 말해 남북한과 러시아의 관계에 있어서 러시아는 혁명적이고 폭력적이기보다는 현실적이고 평화로운 과정을 택한다.북한과의 정상관계를 유지하고 남한과의 연대를 진척시킴으로써 러시아는 한반도에서의 상황의 안정성과 예측 가능성에 기여할 수 있었다. 러시아는 극동아시아의 다른 주요세력들과는 달리 한반도 통일의 결과에 대해 우려할 것도 잃을 것도 없다.예를 들어 일본에서는 통일한국이 경제·군사적인 면에서 이 지역에서의 일본의 경제 군사적인 역할에 도전할 수 있다는 우려가 대두되고 있다.또 남북한 경제교류가 빠르게 발전한다면 중국에 행해지는 남한 투자의 몫이 북한쪽으로 기울게 된다.미국에 있어서도 한반도 통일은 남한내 군사주둔의 문제를 해결하는 어려운 과업을 제기하고 그것은 불가피하게 일본과 미국간의 안보 유대의 재평가를 필요로 할 것이다.그러나 러시아는 그 모든 문제로부터 비교적 자유로운 형편이다. 한반도 통일의 전개는 무엇보다도 남북간 정치·안보 대화를 비롯한 경제 문화 인도주의적 교환에서부터 남북한과 지역내의 주요국들을관련시키는 파격적인 경제 사회적 계획들을 이행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또한 한반도 주위의 안정적인 국제 환경을 보장하기 위해 북동아시아에서의 다각적인 안보계획을 점진적으로 전개하는 조치가 동시에 진행돼야만 한다. ◎일본/남한 여유자본 많지 않아/통일후 재건비 준비해야/다오카 순지 아사히신문 아에라지 부편집인 일본이 한반도 통일에 관해 갖고 있는 이미지는 대체로 독일 통일에 대한 것과 비슷하며 일본의 안보 이해관점에서 볼 때 그런 형태의 한반도 통일은 3가지의 긍정적 측면이 있다. 우선 일본이 결코 무관심할 수 없는 이웃국가의 전쟁 가능성이 사라진다는 점이다.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 날 경우 일본의 고도로 조직화된 운송 시스템이 상당한 부담과 혼란을 겪게 되고 한·일 합동전쟁 노력을 방해하기 위한 북한 특공대의 공격을 예상해야 하며 일본으로 이주하는 한국민들의 처리를 염두에 두어야 한다.뿐만 아니라 일본 정부는 일본내 미군에 상당량의 재정적 지원을 제공해왔다는 측면에서 한반도의 평화로운 통일은 두번째 한국전쟁의 가능성을 제거한다는 점에서 일본인들에겐 훨씬 더 반가운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통일을 독일과 비교할 때 통일 후 한국이 더 어려운 측면이 많을 것으로 점쳐진다.우선 통일후 남한인 2명이 북한인 1명을 부양해야 할 정도의 인구비율이 큰 문제점으로 작용할 것이며 남북의 극심한 빈부격차도 어려운 과제가 될 것이 뻔하다.이와 함께 가장 심각한 문제랄 수 있는 것은 남한이 북한을 재건립하는데 이용가능한 여분의 자본을 적게 보유하고 있다는 점이다.이는 통일전 서독이 세계 최대의 차관 대여국이었던데 비해 남한은 현재 1백억달러가 넘는 채무가 있음을 볼 때 심각성을 더해 주며 일본 투자가와 금융가들이 통일 한국이 겪어야만 할 경제적 난관에 대해 가장 우려하게 만드는 부분이다. 만일 한국이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데 실패한다면 수백만의 북한 주민들은 북한의 산업이 남한의 산업과 경쟁할 수 없기 때문에 불평많은 실직자가 될 것이므로 통일직후 북한내에서 신속한 경제발전 프로그램을 시작해야만 할 것이다.또 일본 측에서도 통일후 거대한 양의 원조와 차관을 제공하기는 어려운 형편으로 일본이 얼마나 「과거의 북한」을 돕기 위해 부담을 질 것인가는 두 국가간의 우호적 관계에 달려 있다고 보아야 한다. ◎중국/미 북 핵타결 긍정적 효과/신뢰 쌓아 점진적 교류를/구오시민 인민대 명예교수 중국은 한반도와 가까운 이웃이다.북한과는 국경이 맞닿아 있으며 한국과는 서해를 사이에 두고 마주하고 있다.양국 국민은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 긴 역사를 갖고 있다.한때는 파시스트와의 전쟁에서 서로를 지원했다. 한국과 중국은 완전한 외교관계를 수립하였고 지난 3년동안 모든 측면에 있어서 급속한 발전을 이루었다.경제분야에서는 서로 매우 보완적이며 광범위한 협력을 하고 있다.양국 교역량은 지난 92년 50억6천만 달러에서 94년 1백17억2천만 달러로 늘어났다.이제 중국은 한국에 있어 3번째,한국은 중국에게 6번째로 큰 무역 상대국이 되었다.또 한국이 중국에 투자한 액수는 17억 달러,투자종목은 2천개가 넘는다.중국은 한국의 투자를 가장 많이 유치한 국가가 되었다.양국 국민간 교류나,문화·교육·과학·기술 분야의 협력과 교류도 빠르게 늘어 났다. 한반도에서 핵이 사라지고 평화 및 안정을 실현하는 것은 중국의 꾸준한 입장이다.중국은 한반도 국민들과 선린관계 및 우호관계를 오래 갖기를 진심으로 희망한다.중국 인민은 반세기 전의 분단 때문에 한반도 국민들이 겪은 고통을 이해하며 그들의 자체 노력으로 통일이 실현되기를 원한다.중국은 양쪽이 참을성있고 진실한 대화와 조언을 통해 끊임없이 노력하여 현존하는 문제를 해소하기를 바란다.또 양쪽이 과거의 증오심을 버리고 서로 신뢰를 향상시킴으로써 스스로 주도권을 갖고 평화통일 이루기를 희망한다. 북한과 미국이 핵문제에 대한 기초적 합의에 서명한 뒤 한반도 상황은 긍정적 방향으로 발전되고 있다.비록 큰 차이가 몇가지 남아 있긴 하지만 모든 관련 당사자들은 협상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세계적인 추세임을 인식하게 되었다.현재 남북 양쪽도 평화통일을 중요하게 여기고 있으며 주변국들은 한반도에서 평화와 안정을 유지하고 싶은 공통 희망을 갖고 있다.한반도 상황은 완화된 상태로 유지될 것이며 점진적 통일은 시대의 추세가 될 것이다.
  • 「경수로 타결」을 보고/전인영 서울대교수·국제정치학(기고)

    ◎“민족적 큰 이익 확보했다” 미국과 북한은 6월13일 콸라룸푸르에서 그동안 난항을 거듭해온 「경수로협상」에 일단 종지부를 찍고 절충적 합의에 도달했다.양국은 지난 4월 18∼20일 사이 베를린에서 개최된 제3차 경수로전문가회담이 결렬되자 5월20일부터 장소를 콸라룸푸르로 옮겨 김계관과 허바드간 북·미준고위급회담을 열어 합의점을 찾으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여왔다.비록 한국측의 불만과 비판의 여지는 아직도 남아 있지만 콸라룸푸르 경수로협상타결은 북·미관계와 남북한관계 및 일·북한관계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긍정적 계기를 마련했다. 이번 대북경수로지원문제가 타결됨으로써 미국과 북한은 제네바기본합의문 이행의지를 재확인했으며 한국은 KEDO(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가 선정하는 경수로모델(울진 3·4호기)을 북한이 수락한다는 간접적인 표현방식으로 경수로제공의 중심역할을 인정받았다.클린턴 미국대통령 또한 김영삼 대통령에게 친서를 보내 KEDO가 선정하는 노형이 「한국형」이 될 것임을 확인했다. 콸라룸푸르 대북경수로지원문제 타결은 미국과 남북한 3국의 상충되는 실리와 명분 및 체면을 북·미 양자회담에서 감안하고 절충하여 산출된 것으로서 무엇보다 세나라 모두에게 공통이익이 될 수 있다는 점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싶다. 미국과 남북한 3국의 득실을 비교적으로 평가할 때 단기적으로 북한의 득이 가장 크다고 말할 수 있다.비록 북한이 원자로 모의작동장치와 송배전설비 등 10억달러상당의 추가부담 요구목표를 달성하지는 못했지만 불확실한 「핵카드」를 사용해 1천㎿ 용량의 한국표준형 원자로 2기와 대체에너지 중유를 확보했다는 것은 여하튼 큰 외교적 성과가 아닐 수 없다.체제 및 정권유지를 위해 미국의 군사적 위협에서 벗어나기를 바라며,심각한 식량 및 물자난 등의 경제적 난제를 해결해야 하고,국제적 고립상태를 하루빨리 청산해야 할 북한으로서는 섣불리 북·미 제네바합의문을 파기할 수 없는 상태에 처해 있었다. 미국은 북한의 핵과거를 덮어둔 채 현수준에서 핵개발을 동결함으로써 세계적으로 핵확산금지조약체제를 유지하고 한반도긴장완화 및 동북아안정을 도모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성과에 만족할 수 있게 되었다.더구나 클린턴 행정부는 경수로건설비용의 대부분을 한국과 일본에 떠맡길 수 있게 되었으며 북한의 추가부담요구를 기술적으로 회피하는 데 성공했다. 한국은 북·미회담에서 소외되고만 현실을 우려하고 그로 인해 심한 좌절감을 느껴왔다.한국민은 지난번 제네바회담에서 나타난 기본합의문이 미국과 북한의 입장 및 이익을 서둘러 절충한 결과였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한국의 이익이 계속 희생될 수 있다는 현실에 분노와 두려움을 느껴야 했다.따라서 한국은 콸라룸푸르회담에 대해서 민감할 수밖에 없었고 경수로건설비용의 대부분을 분담하는 대신 우리가 중심적 역할을 수행하기를 바랐다. 합의문에 한국형이라는 확고한 표현을 삽입하지는 못했으나 한국은 실질적인 주계약자가 되었다는 사실에서 위안을 찾을 수 있게 되었다.한국은 단기적 이익을 양보하였지만 서서히 나타날 장기적이고 민족적 차원의 보다 크고 중요한 이익을 기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타결을 수용할 수 있을 것이다.경수로타결은 경색되어 있는 남북한관계를 풀어줄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며 인적·물적 교류의 불가피한 증대는 분단의 고통을 줄이고 북한의 변화를 촉진시키는 동시에 통일기반을 조성하는 데 기여하게 될 것으로 믿는다. 콸라룸푸르에서의 북·미간 경수로협상타결은 우리에게 탈냉전시대의 엄청난 변화를 실감시켜주었으며 북한의 변화,특히 실용주의 대외노선의 추구를 확인시켜주었고 북한의 정책결정과정과 대외협상행태가 불합리하지만은 않다는 특징들을 보여주었다. 특히 콸라룸푸르 타결이 김일성 사망 1주기가 다가오는 시점과 대북 쌀지원문제가 한창 논의되는 시점에서 이뤄졌다는 사실은 조심스럽게나마 멀지 않아 남북한 경제교류및 협력이 활성화될 수 있다는 예측도 가능케 한다.
  • “예언서 「격암유록」 신앙촌서 위조”

    ◎역학연구가 김하원씨,저서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서 주장/77년 신도가 필사본 중앙도서관에 기증/공복·남북분단·한국전쟁 정확히 예견/구세주로 박태선씨 거명… 신앙촌에 유리하게 윤색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을 능가한다는 예언서 격암유록은 진품인가,위서인가.격암유록이 70년대 중반 만들어진 위작이며,이를 위조한 집단은 한 때 사회에 큰 물의를 일으킨 신흥종교 한국예수교 전도관부흥협회(전도관·일명 신앙촌)라고 주장한 책 「위대한 가짜 예언서 격암유록」이 나왔다(만다라 펴냄). 16세기의 기인 격암 남사고가 남겼다는 격암유록은 광복과 남북분단,한국전쟁 발발,「4·19」,「5·16」등 주요 사건을 일어난 날짜까지 정확히 예견한 예언서로 정신문화연구원에서 91년에 낸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소개돼 있다.또 그 존재가 널리 알려진 80년대 후반부터 이를 다룬 해설서만 10여종 나오는 등 한민족 최고의 예언서로 꼽히는데다 최근엔 일본에서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이 갖는 애매함을 풀어주는 비결」로 각광받고 있다. 그러나역학연구가 김하원씨(37)는 자신의 책 「위대한 가짜…」에서 격암유록이 전도관 교주 박태선 장로(지난 90년 사망)를 구세주로 조작하려고 꾸며낸 위서라며 조목조목 그 근거를 댔다.우선 우리나라 예언서의 특징이 구세주나 성지 를 암시하는 수준인데 비해 격암유록은 「박태선」과 「전도관」을 직접 거명하고 있다는 것.가령 성인을 「십팔복술 탄생하니/삼성수원삼인지수/양일구의 우팔일세」라고 표현했는데 여기서「십팔복」은 「박」을,「삼인수」는 「태」,「양일구팔」은 「선」을 풀어썼다는 해석이다.신앙촌이 들어선 경기도 소사(현 부천시)및 범박·계수동,그 일대 산들인 성주·소래·노고산 따위 지명들도 곳곳에서 그대로 등장한다는 것.이밖에 한문성경을 적당히 윤색한 부분들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김씨는 격암유록이 공개된 과정도 추적했다.현재 인용되는 격암유록은 국립중앙도서관 소장본으로,1944년 필사본으로 알려져 있다.44년 기록이 광복이후 현대사를 정확히 예측했다는 점에서 격암유록은 최고의 예언서로 평가받아 왔다.김씨는 그러나 이 필사본이 중앙도서관에 기증된 때는 지난 77년이며,44년에 필사했는지 여부도 실제 검증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이와 함께 기증자인 이모씨(88)는 한학에 조예가 깊은 사람이며 지금도 신앙촌에 살고 있는 신도라고 밝혔다.그는 『격암유록이란 실재하지 않는 예언서이며 1975∼77년에 이씨에 의해 만들어진 가짜』라고 결론짓고 있다.김씨는 『격변기일수록 예언서는 평범한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면서 엉터리 기록을 최고의 예언서로 믿어 장래를 망치는 불행이 우리사회에 더이상 있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했다. 한편 김씨의 「위서」주장에 대해 한학자 권모씨(69)는 『격암유록은 광복 전부터 전해내려온 진짜 예언서이며 만약 전도관과 연결된다면 전도관쪽에서 그 내용을 적극 이용했기 때문일 것』이라고 반박했다.
  • 와타나베 망언은 민족모독이다(사설)

    오늘은 현충일이다.나라를 위해 목숨바친 영령들께 머리 깊이 숙여 절하는 날이다.우리가 오늘 절하고 뵈올 분들 중에는 6·25전쟁에서 꽃다운 나이로 산화한 유무명의 국군 용사도 있고 일제식민지배하에 있던 조국의 독립을 위해 온갖 신고를 겪은 독립지사 열사들도 계시다.특히 나라 잃은 설움속에 만리타향을 헤매며 적신을 탄알삼아 침략국의 심장에 타격을 가하려고 생명을 초개같이 버렸던 분들이 묻혀 계시다.광복한지 50년에 이르고도 분단의 운명 때문에 미처 못모신 분들의 유해를 송구해하며 우리는 오늘을 맞고 있다. ○현충일 아침에 듣는 일 망언 바로 그 현충일에 우리는 다시 한번 일본의 해괴한 망언과 접한다.침략의 야심으로 왕비시해의 만행까지 서슴지않고,옥새찍기를 거부한 국왕을 겁주기 위해 온갖 실질적이고 상징적인 물리력을 다 동원하여 강압으로 성사시킨 이른바 「한일합방조약」이란 것을 『원만히 체결된 조약』일 뿐이라고 망령되게 우기는 사람이 하필 일본의 외교행정을 대표하던 전임 외무장관이다. 그것은 우발적이고 일과적인 말이 아니다.악의적이고 계획된 민족모독의 망언이다.망언 레이스의 선수가 「와타나베」로 이어졌을 뿐 51년에 「요시다 시게루」를 시작으로 53년에 「구보다」가,64년에는 「오노」가,88년에는 「오쿠노」가 이어 뛰고 오늘 「와타나베」가 또하나의 계주선수로 등장한 망언의 집요함에 우리는 넌더리가 난다. ○일과 아닌 계획적 망언계주 그 집요함이 증명하는 것은 이 나라가 지닌 근원적인 부도덕성이다.와타나베의 교언이 가증스런 것은 『공식문서 어디에도』일본이 한국을 식민지배 했다는 단어가 씌어있지 않다고 한 대목이다.개인이 볼모상태에서 인정한 문서도 억압이 풀리고 자유로운 상태가 되면 바로 잡는다.국가간의 조약들에서 강압이 이뤄진 것은 역사가 바로 잡는다.그것이 국가간의 양식이고 도의다.일본은 그것을 하지 않고 기회 있을 때마다 그것을 뒤집기 위한 망언선수를 내세운다. 망언이 있을 때마다 확인되는 것은 앞으로도 그것이 고쳐질 징조가 안보인다는 것이다.총리로부터 주요장관에 이어지는 거물들의 이어달리기가 전외무로까지 이른 망언계주는 우리에게 분노보다 참담한 실망을 안겨준다.그러나 한국은 일본의 양심을 비치는 거울이다.그것이 일본의 운명이기도 하다. ○도덕적 미성숙의 나라 일본 비록 경제적으로는 거인의 체격을 지녔지만 세계를 주도하는 선진국 역할이 일본에 맡겨질 수 없는 것은 일본이 도덕적으로 성숙하지 못한 나라이기 때문이라는 것이 국제사회의 지적이다.우리는 일본이 그런 나라로 머물기를 원치 않는다.두나라의 운명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해서도 일본이 도덕적으로 거듭나 우리곁에 있기를 바란다.그러나 여전히 일본은 선의를 저버린다. 나라사이의 역사도 순환의 원리를 겪는다는 것이 우리의 신념이다.문명사의 중심이 동북아에 있을 때 일본은 한반도로부터 은혜를 입었다.그들이 문명의 주도권을 바꿔쥔 서양을 받아들였을 때 한민족은 그들의 흙묻은 발아래 짓밟혔지만 앞으로 다가 오는 태평양 문화권의 시대에는 한국민족이 뼈대 곧은 중심국으로 설 것이다.그 기운은 일본의 생존과 발전을 위해서도 절실하다는 것을 우리는 확신한다. ○망언·취소의 놀음도 끝내야 국교정상화 30년을 맞으며 『올바른 역사인식의 바탕으로 21세기를 향한 미래지향적 관계를 정립』하자는 일본에 대한 우리의 제의가 우리만을 위한 것이 아님을 영리한 그들도 당연히 알고 있다.그런데 여전히 이런 망언을 뱉어놓는 것은 세계사람들에게 그들의 순화되지 못하는 악의의 본성을 들키는 일이라고 할수 있다. 수치로운 일이다.일본의 생각 깊은 사람들이 나서서 이 소멸될줄 모르는 불순한 인자의 소탕에 힘쓰기를 당부한다.그리고 이제 망언과 취소의 놀음도 여기서 끝내주기 바란다.
  • 「조선족」 문제에 대한 바른 인식(사설)

    중국을 방문하는 우리여행자들은 현지에서의 언행에 각별히 조심해야겠다.관광비자로 중국을 방문한 국내 유명가수들이 「조선족축제」에 무리하게 출연하려다 좌절당했으며 중국정부는 우리정부에 중국방문 한국인들의 재중조선족에 대한 민족의식고취 언행의 자제등을 요청해온 것으로 알려졌다.안타깝고 개탄스런 일이다. 우리정부가 이같은 중국정부 요청에 적극 협조키로 한 것은 잘한 일이다.중국 만주의 길림,흑룡,요녕등 동북3성 거주 「조선족」 한인/은 약2백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냉전과 분단으로 잃었던 이들과의 만남은 탈냉전과 중국의 문호개방이 가져다준 소중한 선물의 하나였다.그것을 우리는 제대로 수용·소화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느낌을 받는다. 수교전인 91년 8만7천여명이던 방중한인은 93년 15만명,94년 30만명으로 늘어났으며 금년엔 50만명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이들이 가장 많이 찾는 지역이 「조선족」 집중거주지역인 동북3성이다.백두산및 한만국경을 찾아 관광을 하면서 재중동포들과 교류도 하고 사업도 벌이는 것까지는 좋은 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항상 도가 지나치는데 있다.한동안 중국의 「조선족」들에게 뽐내고 멸시하며 낭비하는 졸부근성의 추태로 동포들을 실망·분노시킨다는 보도더니 이번에는 방문자들의 사려깊지 못한 언행이 소수민족문제에 특히 민감한 중국정부를 자극해 공식 자제요청까지 나오게 되었다는 보도다. 우리가 대중국관계에서 절대 잊어서 안될 사항이 있다면 그것은 재중교포는 우리 핏줄이지만 중국에 사는 이상 어디까지나 중국국민이라는 사실과 한만국경의 현상변화는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현실인식일 것이다.한국과 중국의 관계 발전은 물론 한반도 통일의 여건조성을 위해서도 중국의 「조선족」문제에 대한 올바른 국민적 인식은 필요하다.
  • 「6·25내막 모스크바 새증언」 시리즈를 읽고

    ◎한국전 배경·전개과정 밝혀냈다/러 강도 자료보다 다양… 역사 재구성 기여 기대 우리는 왜 지나간 역사적 사건의 자료를 발굴하고 그것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는가? 역사는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여 주는가? 최근에 「서울신문」에 집중 연재되고 있는 한국전쟁관련 구소련자료를 보면서 우리는 이러한 물음을 거듭 던지게 된다.이 자료들은 일부는 과거에 알려진 것이기도 하지만 많은 새로운 내용을 담고 있어 우리에게 더욱더 새롭게 역사의 의미를 반추하게 만든다. 특히 19 50년 6월 발발한 한국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는가? 약 반세기 전의 사건에 대해 우리는 왜 아직도 관심을 가지고 이의 진실을 추적하고자 노력하는가? 거기에는 많은 이유가 있겠지만 적어도 다음과 같은 세 가지가 가장 큰 이유일 것이다. 첫번째는 이 사건의 크기 때문이다.이 사건은 의심의 여지없이 한국현대사 최대의 사건이었고 또한 가장 많은 사람이 죽었다.두번째는 그 영향의 크기 때문이다.이 사건의 직접적인 영향 때문에 아직도 우리는 분단상태를 지속하고 통일을 이루지 못하고 있다.세번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의 진실이 아직도 완벽하게 밝혀져있지 않다는 사실 때문이다.바로 이점에서 이번 자료의 발굴은 의미를 지닌다. 하나의 역사적 사건에 대한 진실의 추적은 그 사건을 기록한 자료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자료는 진실의 보관자이자 전달자이기 때문이다.그러나 사실은,역사적 사실을 기록한 자료조차도 반드시 객관적인 것은 아니다.거기에는 기록자의 주관이 들어가며 공개될 때에도 역시 정치적 판단이 게재된다. 이점에서 냉전의 해체는 현실의 변화 뿐만 아니라 역사해석에서도 하나의 전환점이 되지않을 수 없었다.그것은 두가지 점에서 그러하였는데 하나는 그것이 역사를 인식하는 데 있어서의 전환점이 되었다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방대한 구소련의 자료들이 공개됨으로써 냉전시기의 사태들을 재해석 하게하였다는 점이다. 세계의 많은 학자와 대학,연구기관들이 냉전의 해체이후 구소련의 자료를 발굴하려 노력하고 있고 이 자료들은 냉전시대 현대세계사의 비밀을 밝혀줄 『마지막 보고』로 불렸다.우리에게 구소련의 자료들은 특히 더 많은 관심을 불러일으키지 않을 수 없었다.그것은 분단,북한정권수립,전쟁 등 우리 현대사의 결정적 고비들이 스탈린시기 소련의 정책과 밀접 불가분의 관계에 놓여있었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분단과 한국전쟁에 대한 소련의 정책은 이 두 사건을 객관적으로 이해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측면이 아닐 수 없었다.사실상 분단과 초기 북한정권수립에 대해서는 그동안 국내외 학자와 언론,여러 기관들의 노력으로 상당부분이 밝혀져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아직도 한국전쟁에 관해서는 다른 시기에 비해 소련부분의 역사적 사실이 훨씬 덜 알려져 있었다.이에 대한 종합적인 자료는 지난해 김영삼 대통령이 옐친 대통령으로부터 넘겨받은 것이 거의 전부였다. 이번에 「서울신문」에 연재되고 있는 자료들은 앞의 옐친문서와 몇가지 중요한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첫번째는 우선 양적인 측면이다.지난번 김영삼 대통령에게 전달된 문서의 양은 기본문헌 100건 279페이지와 보충문헌 116건 269페이지였다.그러나 이번 발굴,공개된 자료는 950건에 3천여 쪽에 달한다.약 6배에 달하는 양인 것이다.우리는 멀지않은 시기에 이 문건 전부를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그럴 경우 이는 한국전쟁과 초기 북한,소련의 대한정책의 규명에 크게 기여할 수 있을 것이다. 두번째는 자료의 출처이다.지난번에 대통령에게 전달된 문서들은 러시아 외무성문서 중심이었다.그러나 이번에는 외무성문서뿐만 아니라 대통령문서보관소,구소련공산당중앙위,국방부문서가 포함되어 있어 훨씬 더 다양한 자료를 담고 있다. 세번째는 자료발굴의 주체이다.이점이야말로 앞의 두가지 차이보다 더 큰 차이일 것이다.지난번 대통령에게 전달된 문서들은 전부 러시아측이 선정하여 전달한 것이었다.우리는 러시아가 스스로 선정한 자료만을 전달하였다고 해서 문제가 있다고 단정하지는 않지만,그러나 자료의 공개는 공개자의 판단에 크게 좌우되지 않을 수 없다.지난번 자료는 이점에서 많은 문제를 안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외교문서는 전달하였지만 정작 중요한 내부정보문서와 정책결정·내부토론문서는 거의 전달하지 않았다.이번 「서울신문」의 자료도 후자를 전부 포함하고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이점에 관한한 옐친이 전달한 것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이를테면 이 두 문서는 전쟁의 결정과 전개과정에 있어 스탈린의 역할에 대해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우리는 이 자료를 보면서 누가 방화자냐,누가 더 주도적이었느냐 하는 문제는 이제 접을 때가 되었다고 본다.그점은 사실 더이상 규명치 않아도 될만큼 분명해진 것이기 때문이다.필자가 판단하기에 스탈린과 모택동·김일성은 각기 제각각의 국가적 이해를 갖고 있었으며 그에 따라 행동했을 뿐이다.이점을 망각하면 우리는 영원히 소모적인 논쟁에 빠질 뿐이다.김일성·박헌영이 주도하였다고 해서 마치 스탈린·모택동의 역할과 책임이 축소되거나 면제되는듯한 논의는 전혀 옳은 것이 아니다.그들 역시 자기 국가의 관점에서 동의를 하고 지원을 하였던 것이다. 워싱턴에 보관되어있는 북한의 방대한 당시 자료들,우리의 자료들,그리고 이미 대부분이 공개된 미국의 자료,아직 거의 공개되지 않고 있는 중국의 자료와 함께 이번의 러시아자료를 총체적으로 종합 검토할 수 있을 때 우리는 비로소 우리시대에 가장 커다란 그림자를 드리웠던 한국전쟁에 대해 그 완벽한 재구성에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이번 자료가 그에 큰 기여를 할 것임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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